1928년 가을 기독교계 언론인 `기독신보`의 기자는 평양의 풍경을 이렇게 소개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평양을 처음 와 본 사람에게 평양의 유명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구동성으로 예배당의 종소리라고 한다.(중략) 사면 팔방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는 서로 교향이 되어 과연 황혼의 평양성을 흔들어 빼는 감이 없지 않았다.” 당시 평양에는 인근 대동군까지 포함하면 50여 개 교회가 있었고 교회 종소리가 명물이 될 정도로 기독교가 성행하면서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까지 불리기도 했다.
`남산재 사람들`(그물)은 해방 전 평양의 대표적 교회 중 한 곳인 남산현교회의 역사와 이 교회를 통해 활동했던 교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남산현교회는 평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했던 교회로, 지금은 이 자리에 북한 인민문화궁전이 들어서 있다.
작은 초당에서 출발한 교회는 헌금과 노동을 통해 10여 년의 시간을 거쳐기와집 예배당으로 커졌다. 선교사도 없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힘으로 마련된 교회는1903년 새 예배당 봉헌식이 열릴 때는 2천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교세를 확장했다.
그러나 남산현교회가 유명해진 것은 1919년 3.1운동이 계기가 됐다. 당시 남산현교회의 신흥식 담임목사는 민족대표 33명 중 한 명으로 서울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참석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부담임이었던 박석훈 목사 역시 평양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평양 형무소에 수감중 순국했다.
이런 활동 등을 통해 남산현교회는 `항일 민족운동`의 성지로 인식됐고 3·1운동 이후 청년과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계기가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