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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날 데려가 주소” 분단현실과 부딪치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2-26 02:01 게재일 2016-02-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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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김원일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분단 문학의 대표 작가 김원일(74)이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소설집`비단길`(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작가는 1966년 `1961·알제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이 책은 김원일의 여덟번째 소설집이다. 책은 단편소설` 어둠의 혼``미망`, 장편소설 `마당깊은 집``불의 제전``아들의 아버지`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과 맥을 함께하는 소설 7편으로 채워졌다.

김원일의 소설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 그 뼈대 주위를 채우는 이야기들로 자신만의 삽화를 그리듯 한 장 한 장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잊히고 사라졌지만, 김원일은 그 시간에 머물며 기꺼이 그때 그 사람들의 증인을 자처한다.`6·25전쟁이 있었고, 남과 북이 갈라졌다`는 간단한 사실 주변에 놓인 많은 사람들, 그래서 비슷하면서 각각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작가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풀어온 것이다.

특히 이번에 수록된 소설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미 성인이 된 그가 아버지의 행방을 추적하려 나서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소설을 통해 그는 자신의 평생 주제였던 `아버지`를 좀더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로 담아낸다. 작가는 특히 `아버지의 부재`라는 거대한 세계를 직접 대면하는 소설을 책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작가가 50년 동안 일궈놓은 문학 인생이 한 단락 매듭지어지는 듯한 겸허한 감상을 느끼게 한다.

김원일이 소설을 통해 꾸준히 `비어 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말해왔다면, 소설 `비단길`은 `자리로 돌아온 아버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1950년 9월 인민군이 예천 지방에서 퇴각할 무렵 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고, 그 `존재`를 알리는 것으로 표제작`비단길`은 시작한다.

`비단길`은 월북한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고, 남쪽 가족들이 그 소식을 전해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머니는 60여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 `여보 날 거기로 데려가주이소`라며 오열한다. 어머니는 이산가족상봉 후 완전한 치매 상태로 들어간다.

1942년생인 작가는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어릴 적에 전쟁을 경험한 당사자다. 성인이 되어 6·25전쟁을 경험한 그의 윗세대 작가들과는 시선의 지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가 그려내는 전쟁의 이미지들은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을 보여준다.

특히 동세대인인 김병익의 실제 경험담을 풀어낸 `형과 함께 간 길`은 김원일의 이 같은 시선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형이 휴가를 얻어 고향 집에 와서 벌어지는 이 짧은 이야기는 성인으로서 전쟁을 겪고 있는 형과 그런 형과 사회를 어린아이의 눈으로 관찰하는 동생에 관한 소설이다.

충격적인 역사를 함께 경험했지만 관찰자적인 입장(그러나 지금의 이삼십대처럼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에서 그려진 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되풀이되는 소소한 일상의 한 장면처럼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게 서술된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김원일의 소설은 한번에 모든 설움이 쏟아지는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곤 한다. 마음속에 품은 깊은 한을 쉽게 내보이지 않다가`비단길`에 이르러 “제발 날 거기로 데려가”달라는 날카로운 비명, 그 단 한 번의 울부짖음으로 이 책은 우리를 `분단`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한다. 이미 지나간 역사처럼 보이지만, 아직 생생하게 뛰고 있는 아픔은 김원일의 소설을 읽어가는 이들을 6·25의 비극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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