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한 권의 책 / 임종식 경북도교육감<br/>칼릴 지브란 ‘예언자’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해도 다 지나가고 있다. 절대 가난을 경험한 우리 세대에게 겨울은 추운 계절이다. 메주를 쑤고 김장을 담는 겨울 준비 속에서 연탄도 들이지 못하고 힘든 추위를 타는 아이들은 없을지 걱정이 된다.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이웃의 이야기들이 간간이 들려오는 이 겨울, 풍요 속에 가려진 빈곤이 자신의 부끄러움인양 아프다는 티도 못 내고 혹시나 배를 곯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더 걱정인 것은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며 배보다 가슴이 먼저 허기진 아이들이다.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속 패달을 밟고 있다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계가 단절되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높아져 각종 정신건강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내 머릿속에 아직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이 느껴질 때,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은 식어버린 내 감성에 모닥불이 필요할 때면 나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 ‘20세기의 성서’라 일컬어지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The Prophet)’로 고교시절 읽었던 감동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책이다. 100여년 전의 생각이라 어떤 이에게는 지금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모순적이라고도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모순이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소중한 무엇인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그렇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 영혼이 바로 그것이다.
‘알무스타파’라는 예언자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사랑, 결혼, 일, 아이들, 가르친다는 것, 선과 악 등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진리를 깊이 있게 던져준다. 스물여섯 편의 시적 에세이와 그가 직접 그린 신비스러운 삽화들이 담긴 이 책은 지금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화가이자 시인이며 작가인 칼릴 지브란은 1923년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영혼의 순례자’로 영미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자’이자 ‘듣는 자’이며, 자신이 전하는 말보다 오팔리즈 시민들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20세기의 단테라 칭송받는 칼릴 지브란의 글귀는 사후에도 전 세계에 널리 널리 퍼져 사람들에게 따스한 울림을 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육신의 거처를 마련해 줄 순 있겠으나 영혼의 거처까지 마련해 주진 마세요.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들은 그곳을 꿈에서조차 방문할 수 없으니까요.……(‘아이들에 대하여’ 중에서)
그의 말은 힘이 있다.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한 철학자이자 시인의 말은 그 무엇보다도 진실하다. 나는 그 치열한 진정성에 나의 기도를 덧붙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이 겨울 홀로 떨지 않기를, 홀로 외로워하지 않기를... 삶이 무엇인지, 아파질 때 읽어보라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을 넘어, 볕이 잘 드는 창 앞에 손을 맞잡고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내가 한 줄 질문을 하고 네가 한 줄 답으로 들려주면 더 좋겠다. 그럼 서로의 체온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손난로처럼 영혼을 다독이는 영혼 난로가 되겠지.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아이들 마음속에 푸른 가지를 품었으면 좋겠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는 따뜻한 경북교육의 지향점도 이것이 아닌가 한다. 손을 맞잡고 오히려 더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