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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게 씌어질 수 없는 다짐

등록일 2022-12-13 19:38 게재일 2022-12-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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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한 권의 책 / 윤경희 청송군수 <br/>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왠지 이 글귀를 들으면 대다수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뒤이어질 내용이 구구단처럼 자동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이 ‘서시’는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의 대표작이다.

누구나 삶의 고달픈 순간은 뜬금없이 혹은 간헐적으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고통은 여태껏 쌓아 올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고통을 극복할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며 고비를 넘기며 한 단계 성숙한 삶으로 발돋움한다.

바로 그거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내린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인간 스스로 극복해내는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등산처럼 활동적인 일이 될 수도 있고 혹자에게는 산책이나 독서처럼 사색의 영역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따금 서재에 들어가면 손이 잘 닿지 않는 책장의 맨 아래쪽을 향해 손을 뻗을 때가 있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켰던, 색 바랜 시집 한 권이 꽂혀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윤동주는 일제시대, 시로써 온몸으로 저항했던 시인이다. 1917년에 태어나 29세의 나이로 옥사한 그의 짧은 생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서시의 한 구절처럼 그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무의식적으로 각인시켜 두지 않았을까.

시집 속의 주옥같은 시들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쉽게 씌어진 시’다.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 국어 시험에 종종 등장하던 작품이었는데, 그때는 운율과 은유법 같은 문제 풀이 답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터라 시의 감흥 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필자가 지천명, 이순의 나이를 거치며 한 기업의 대표와 기초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삶이 순탄치 않다고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마다 이 시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사실 이 시는 힘없고 무능력한 조국에 비통해하며 창씨개명한 시인이 일본 유학에 가서 쓴 시이다.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소멸되어 가는 민족의식에 애끓는 심정으로 죽기 전 쓴 다섯 편의 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것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중 발췌

윤경희 청송군수 

시인은 남의 나라에서, 조국의 무너짐 앞에서 이렇게 쉽게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반성한다. 하지만 그저 암담하다고 좌절하지만은 않겠다고 한다. 등불을 밝히고 시대처럼 반드시 올 광복의 아침을 기다리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 절망의 시대에 슬픔과 부끄러움을 노래했지만 그 저변에는 끝까지 저항하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밝힌다.

시 속의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가 광복이었다면 필자가 바라마지 않았던 희망은 가시적으로 포장된 업적이 아니었다. 필자가 한 지역을 이끄는 단체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다. 어떤 난관에서라도 도덕적 순결과 양심을 지키고 싶었다. 허울 좋은 평판보다 우리 지역, 소중한 우리 군민들에게 단돈 10원이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의지가 다였다.

이렇게 겉으로는 쉽게 읊조리는 말일지언정 윤동주처럼 속으로는 기필코 쉽게 씌어질 수 없는 다짐이었다고 외치고 싶다. 다가올 내일에도 결코 쉽게 내딛지 않는 발걸음으로 “하나 되는 우리 청송에, 그 이상의 도약으로” 주민들 곁에 머물 거라고 약속한다.

그 약속은 광복된 조국처럼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로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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