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신속한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편의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심각한 폐해도 야기하고 있다. 책임 없는 표현의 자유가 무한하게 허용되면서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정보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가짜뉴스가 있다. 카더라식 억측 보도를 넘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민 뉴스, 현재 세계는 이 가짜뉴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가짜뉴스의 최대 피해자는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다. 가짜뉴스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고 또 그물망처럼 얽히게 되면서, 가짜뉴스의 양산과 유포는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가짜뉴스는 존재했다. 경상도 예안의 선비 김령(金坽·1577~1641)은 일기에서 이와 관련한 일화를 기록하며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었다.
1641년(인조18) 1월 8일의 일기에서 김령은 3일 전 초5일에 여강서원의 사당 참례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가짜뉴스 일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날 권귀중이라는 인물의 성명을 서원 명부에서 지워 버렸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얼토당토않은 말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을 비난하고 배척했기 때문이었다.
권귀중은 평소 떠들고 다니길 1577년 인종(仁宗)의 정비(正妃)인 인성왕후(仁聖王后)가 세상을 떠나 국상(國喪)을 치를 때 그 초기에 김성일이 소를 잡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말의 출처를 따져 물을 때마다 권귀중은 ‘안동의 어떤 사람에게 들었다’라며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었는데, 이날 여강서원 사당 참례 때 그 출처가 정유번이라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백성 전체가 상복을 입는 왕실의 초상에 사가(私家)에서 소를 잡았다는 루머를 퍼뜨렸으니 김성일의 명예가 실추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김성일은 경상도 안동 출신으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1568년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는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되어 의병장들과 함께 전투를 이끌었다. 이듬해 경상우도순찰사를 겸해 도내 각 고을에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령은 ‘계암일록’에서 다음과 같이 일기를 이어나갔다.
“이때 와서 비로소 그 말이 정유번의 혀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정유번은 비루하고 패려궂은 인사로 매우 형편없는 자인데, 권귀중이 그의 말을 곧이듣고 함부로 선대의 현인(賢人)을 비난한 것이다. 대개 섭섭한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 하니, 통탄스럽고 분하다. 정축년(1577) 겨울, 국상(國喪) 초기에 지역이 멀어서 미처 부음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안동 임하의 한 일가에서 일이 있어 소를 잡았다. 그러나 부음을 듣자마자 쇠고기를 다른 곳에 두고 아주 탄탄하게 봉해서 닫아 두었다. 이 당시 학봉[김성일]은 서울에 있으면서 미처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때였다. 그때에도 와전된 말이 있어서 임하의 온 문중이 이를 변론해 바로잡았는데, 어찌 60년이 지난 뒤에 또 이것으로 학봉에게 누를 끼치려 할 줄을 알았겠는가? 권귀중은 이 땅에 용납될 수 없는 자이다. 소인을 한을 품은 독이 매우 우려스럽다.” -김령의 ‘계암일록’ 1641년 1월 8일의 일기 중에서
김성일 사후 60년이 지났음에도 그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김성일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기에 다행스럽게도 이 가짜뉴스는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물리적 거리에 따라 소통의 원활성이 결정되던 시대에는 정보 수집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변형되거나 왜곡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의도적이라기보다 입소문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앞의 사례처럼 여러 가지 이유에서 악의를 가지고 악성 루머를 만들어내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오보나 허위 악성 루머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파급 범위와 영향력이 막강하지는 않았다.
급속도로 발전된 기술력 위에서 가짜뉴스는 생산과 동시에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더욱이 지금은 사적 이익 추구만을 목적으로 처음부터 드러내놓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실정이다. 출처를 따져 진실을 가린다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리니 가짜뉴스에 현혹된 대중의 관심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사실과 거짓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팩트체크’가 수반되어야 할 만큼 정보를 걸러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에,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의심해야 하는지 반드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