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드는 요즘이다. 파도치는 바다를 품은 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이 뿜어내는 폭염을 피할 공간이 절박하다. 시원한 바람 맞으며 역사와 과학, 음악, 미술 콘텐츠를 고상하게 즐길 수 없을까. 포항에는 바다만큼이나 매력적인 ‘실내 피서’ 명소들이 있다. 새로운 ‘피서 명당’이자 문화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포항의 문화·전시 공간 6곳을 소개한다.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마련된 미술관
등대 변천사 엿볼수 있는 전시와 체험
일제시대 역사적 잔상 간직한 日건물
박물관서 과메기의 모든 것을 한눈에
책과 음악 함께 즐길수 있는 도서관도
관공서 이미지 탈피 미술·체험 공간 등
포항 바다만큼 매력적인 실내 명소 눈길
◇ 포항시립미술관, 한자리에서 만나는 예술 (북구 환호공원길 10 / 관람료 무료 / 월요일 휴관)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통유리 외벽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건물이 나온다. 포항시립미술관이다. 입구를 지나자 찬 공기가 열기를 밀어내고, 전면 유리창 너머로는 푸릇한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2025 스틸아트작가조망전: 물성, 감각하는 철’ 전시는 포항의 정체성인 ‘철’을 예술로 풀어낸다. 철근, H빔, 철판 조각들이 최옥영 작가의 손끝에서 조각상으로 탈바꿈했다. 붉게 녹슨 철 표면에는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형물 앞에 서자 철의 차가움 대신 온기 어린 감각이 피부로 전해졌다.
장두건 화백의 ‘투계’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푸른 물감을 휘갈긴 닭의 형상은 역동적이면서도 유쾌한 생명력을 품었다. 이은지씨(31)는 “해수욕장 대신에 미술관에 오길 잘한 것 같다"며 "여러 전시를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 국립등대박물관, 등대의 빛으로 만나는 해양사 (남구 호미곶면 해맞이로 150번길 20 / 관람료 무료 / 월요일 휴관)
호미곶 해맞이광장을 지나 도로 끝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렌즈처럼 생긴 국립등대박물관은 천장 가까이 설치된 1등 회전렌즈가 압도적인 위용을 뽐낸다. 독일과 일본에서 제작된 이 렌즈들은 백 년 가까이 동해의 밤바다를 밝혀왔다.
박물관에는 1903년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호미곶등대를 시작으로 속초, 묵호, 울릉도의 등대 변천사를 따라가는 전시가 이어진다. 조선총독부 시절의 수동 점등기에서 현대 자동 제어 장치까지, 기술 진화의 궤적이 한눈에 담긴다. 관람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무선표지장치, 등부표, 구조용 조명탄 등 해양 안전 장비도 만날 수 있다.
2층 해양안전체험관은 아이들에게 인기다. ‘신호기 맞추기’, ‘해상 탈출 퀴즈’ 등 체험형 콘텐츠 덕분이다.
여름방학 기간에는 하루 평균 400명 이상이 방문하는데, 8월 중순까지는 오후 7시까지 연장 운영한다.
◇ 구룡포 근대역사관, 목조 건물에 서린 겹겹의 기억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길 153-1 / 관람료 무료 / 월요일 휴관)
구룡포항 뒷골목에 가면 이국적인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이 있는데,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은 주택이다. 지금은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쓴다. 좁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와 함께 시간의 문이 열린다.
1층에는 일본식 주방, 욕실, 거실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낡은 찻장과 목제 가구는 그 시절의 생활상을 말없이 증언한다. 구불구불한 계단을 오르면 2층 접객실과 딸의 방, 발코니가 이어진다. 후지산이 새겨진 창틀과 조각된 창살 문양이 일본 전통 건축의 정서를 그대로 전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역사적 잔상을 간직한 채 관람객을 맞는다.
한 관람객은 “구룡포라는 작은 동네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 구룡포 과메기문화관, 과메기로 만나는 바다 문화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길 117번길 28-8 / 관람·주차 무료 / 매주 월요일 휴관)
불어오는 해풍 덕에 겨울 과메기로 이름난 구룡포. 여름철에도 과메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은 과메기의 역사와 제조 과정, 지역 문화까지 아우르는 체험형 박물관이다.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은 층마다 주제가 다르다. 1층은 과메기 관련 전시와 기념품 판매장이며 2층에는 수족관과 가상해저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눈앞에서 관찰하거나 디지털 화면 속 바닷속 생물을 따라 손을 움직이며 체험하는 공간은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다.
3층 선장 체험관에서는 어선 조타 장비를 활용한 생생한 항해 체험을 할 수 있다. 4층에 마련된 모션센서 기반 영상 체험관에서는 ‘바다스케치’, ‘제트스키’, ‘모션샌딩’, ‘모션슈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
◇ 포은흥해도서관, 책과 음악으로 떠나는 실내 피서 (북구 흥해로81번길 46 / 관람료 무료 / 둘째·넷째 월요일 휴관)
포항 흥해읍 중심가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유려한 곡선의 지붕과 넓은 유리창이 인상적인 건물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정식 개관한 포은흥해도서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원한 냉기가 한낮의 열기를 순식간에 식혀준다. 내부는 층마다 주제가 뚜렷해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
1층에 마련된 어린이자료실은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아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책장 사이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다.
2층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음악자료실에서는 LP와 CD 등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나무 벽면을 따라 늘어선 장서 속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골라 이어폰을 꽂고 감상하면, 도서관은 어느새 고요한 음악감상실로 변한다. 책장 너머 작은 감상실에서는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도 눈에 띈다.
3층 일반자료실은 긴 책상과 독립형 좌석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적인 열람실 구조로 조용하고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흥해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부드럽게 스며드는 자연광 속에서 독서와 공부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다.
방문객 김세현씨(38)는 “도서관인데 하루 종일 머물고 싶을 만큼 다양하고 쾌적하다”며 “무더운 날에는 이곳이 가장 시원한 피서지”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 북구청 문화예술팩토리, 관공서 속 열린 문화놀이터 (북구 삼호로 36 / 관람료 무료 / 주말·공휴일 휴관)
북구청 3~6층은 예상 밖의 공간이다. 딱딱한 관공서의 이미지 대신 세련된 조명과 설치미술, 체험 부스가 어우러져 복합문화공간을 이루고 있다. ‘문화예술팩토리’다.
3층 입구에 들어서면 2025 귀비고 기획전 연계 전시 ‘달을 그리다’가 진행 중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린 그림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4층 아트갤러리에서는 여름방학 기획전 ‘우당탕탕! 지구탐험대’가 한창이다. 바위, 숲, 바다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들 사이로 아이들이 책을 읽고, 만지고, 뛰어다니며 오감을 깨운다.
3D펜 체험, VR 체험, 북퍼퓸(책 냄새 향수) 체험, LP 음악 감상 공간 등도 마련돼 있어 세대별로 다양한 관심사를 충족시켜 준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