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2박 3일 힐링 여행기
이제는 덥다는 말로는 부족한 여름이다. 여름을 이기는 게 힘들면 즐기는 편이 낫다. 물놀이를 하거나 영화관이나 미술관 같은 실내로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보다 휴가를 가면 제일 좋다. 휴가의 휴는 실 휴(休)자다. 나무 그늘에 사람이 들어가는 모양의 글자다. 그러니 올여름은 나무 그늘이 많은 평창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편집자 주>
평창은 산이 대부분인 곳이다. 푸른색이 많아서 차를 타고 어디를 가도 눈이 편안하다. 평균 해발 고도 700m라는 것을 이용하여 ‘Happy 700’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서늘한 여름 휴양지로 홍보하고 있다. 겨울이 길고 설질(雪質)이 좋아 스키 하기 좋은 곳이다. 눈도 많이 오고 게다가 겨울에는 -30℃ 가까이 내려가기도 한다.
여름 역시 고원 지역답게 굉장히 시원한데 평창 전역의 모든 관측소에서 열대야가 기록된 적은 단 1번도 없다. 대한민국의 몇 없는 냉대 습윤 기후 지역이라 1년 내내 시원하고 추우며, 평창읍을 제외하고 폭염 특보가 거의 없고 아예 없는 해도 자주 있다. 겨울도 굉장히 길어서 이곳 스키장들은 매년 전국 최속으로 시작해 4월까지도 영업하는 개장하기도 했다. 포항의 밤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여름이라 평창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픈 심정이다. 올해로 4년째 평창으로 2박 3일 휴가를 떠났다.
해발 700m의 열대야 없는 여름
자연과 산 어우러진 치유 여행지
이동 편리한 드라이브 코스 가득
경사 낮은 ‘발왕산 천년주목숲길’
오대산 월정사·상원사 사찰 탐방
개망초 활짝 핀 육백마지기에 매료
조선왕조실록박물관 등도 볼거리
첫날, 발왕산 케이블카를 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이용객이 적어 우리가 조용히 즐기기에 더 좋았다. 발왕산 천년주목숲길은 ‘2023 한국관광의 별 무장애 관광지’ 부문 선정지로 발왕산 정상에 조성되어 있다.
유모차, 휠체어 등의 보조기구가 완비되어 있으며, 경사도 8% 이하의 완만한 코스로 데크길을 설계하여 관광 약자인 장애인, 영유아, 임산부, 고령자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높은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아름드리 주목이 여러 이름표를 달고 우리를 맞는다. 나무 가까이 가면 남녀 성우의 목소리로 이름이 생긴 이유와 뜻과 나무마다 특성을 들려준다. 들으며 사진을 찍고 나무를 우러러보기도 했다. 그중에 마유목은 연예인 박경림이 들려 주어서 더 반가웠다.
그렇게 풀꽃 이름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발왕산 정상에 올랐다. 샬라라한 원피스 차림인 나를 보고 지나는 여행객이 치마를 입고 오를 수도 있구나하며 지나갔다. 그만큼 평탄한 산책길이었다. 무엇보다 선선해서 민소매로 올라온 분은 춥다며 몸을 움츠렸다. 케이블카 타는 곳에 식사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멋진 뷰까지 더해진 음식값이 만만치 않아서 우린 핫도그와 요거트로 뱃속을 달래고 내려왔다.
둘째 날, 새벽에 일어나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맨발로 걸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걸으니 후두둑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정겨웠다. 이른 시간이라 숲길의 주인은 우리였다. 밤새 비가 와서 계곡에 물이 가득해 쏴아아~~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오대산은 언제 보아도 편안하다. 월정사 탑은 수리를 끝내고 수려한 모습을 드러냈고, 경내는 이른 아침이라 고요하다.
우리는 물소리를 더 즐기려 상원사로 향했다. 월정사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골짜기를 따라 산속 더 깊이 들어갔다. 비포장이라 비가 오지 않는 날엔 먼지 나지 않게 천천히 달려야 한다. 좀 전까지 비가 내려 먼지는 없어도 길에 다람쥐가 먹이를 먹으러 내려와 있으니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이 길은 늘 천천히 숲 구경 물 구경 다람쥐 구경하며 오르는 길이다. 상원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이고 안동에서 이 멀리 가져 온 동종이 유명하니 꼭 보고 와야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월정사가 나라에서 입장료를 받지 말라고 하니, 주차비라는 이름으로 6천 원을 받는다. 시정해야 할 일이라 본다.
내려오다 월정사 입구에 조선왕조 실록박물관이 있다. 실록과 의궤 등 중요한 기록을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의 기록이 담겨있다.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보관되었는지 영상과 실물이 있으니 볼만하다. 어린이 박물관에는 체험도 가능하니 더 좋다. 로비는 책 읽기에 좋은 카페뷰다. 책 몇 권 들고가서 한나절 읽고 나와도 좋을 분위기다. 박물관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다.
나오는 길에 위치한 캔싱턴호텔 자수 정원은 프랑스 빌랑드리 성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초록 잔디에 어린 왕자가 꽃다발을 들고 있어서 인증샷을 찍었다. 새파란 미로 정원에서 시원한 분수 소리를 즐길 수 있어 아름답다. 평창은 차를 타고 달리다 눈 돌리면 딥한 녹색의 파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또 초록빛의 당근밭이다가 배추밭이 이어진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바라보니 밭에 노란꽃이 폈나했더니 알타리무 뽑아서 담는 플라스틱 상자였다. 밭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마지막 날에는 육백마지기에 올랐다. 6월엔 샤스타데이지가 하얗게 덮었다는데 여름엔 개망초가 육백마지기 가득 피었다. 하얀 꽃송이들을 흔들며 바람이 분다. 언덕에 선 바람개비가 돈키호테에 나오는 풍차처럼 웅장하다. 무지개빛 계단을 내려가면 두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교회가 있다. 마주 앉아 가족의 건강을 기도했다. 대관령 하늘목장과 전나무 숲 쉼터 밀브릿지는 내년에 보기로 하고 남겨두었다.
숙소는 지난 3년은 알펜시아에 포스코에서 운영하는 연수원이 있어서 가족 찬스로 이용했었다. 그 주변에도 호텔과 리조트가 많아서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특히 공연장과 구경거리도 있어 안성맞춤인 곳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용할 수 없어서 평창군 대관령면 소재지에 호텔을 예약했다. 너른 평창군 여기저기로 구경 가기 좋고 먹거리도 많은 곳이라 선택했다. 황태구이와 황태국을 아침 식사로, 옹심이와 감자전을 점심으로 저녁은 오리구이를 먹었다. 다만 평창이 목장에 풀어놓고 키우는 한우를 맛보려니 소시민이 먹기엔 너무 비쌌다. 한우는 돌아오는 길에 안동에서 먹었다.
휴가를 떠날 때마다 캐리어에 책 한 권을 넣어 간다. 올해 책은 마스다미리의 ‘주말엔 숲으로’와 ‘밤하늘 아래’였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소소한 일상을 슥슥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체 속에 슬쩍 건네는 등장인물의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 그런 책이다. 호텔이나 카페에서 피식 웃으며 보기 딱 좋다. 지난여름엔 ‘제철 행복’을, 2023년에는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 , 2022년에는 ‘돈키호테’를 가져갔다. 읽다가 잠들기도 하고 또 좋은 문장은 옆지기에게 읽어주기도 하면 더 맛있는 휴가가 된다.
/김순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