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대구-10월 18일까지 ‘덕수궁’ ‘설경’ 등 특유의 필선 담긴 대작 전시장 1·2층에 걸쳐 거침없이 펼쳐져 작품 ‘폭포’ 7m 높이 압도적 스케일
“마음을 닦고 다스리는 것이 먼저고, 맑고 부끄러움 없는 삶의 태도가 먼저다. 자비로움과 자유로움, 거리낄 것 없는 삶의 태도를 100% 실천하느냐가 목표이다. 그래야 붓도 제자리를 간다”- 소산 박대성 화백
리안갤러리 대구는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10월 18일까지 한국 수묵화의 거장 소산(小山) 박대성(80) 화백의 개인전 ‘화여기인(畵如其人)’을 개최한다.
박대성 화백은 한국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 있는 화풍을 통해 현대미술이 주를 이루는 아트씬(Art Scene)에서 작가 특유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활용해 생동감 있는 필선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고유한 문화를 묘사한다.
지난 2022년 미국 서부 최대 규모의 미술관인 LACMA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는 한국인 최초로 박대성 화백의 전시 ‘고결한 먹과 현대적 붓(Park Dae Sung: Virtuous Ink and Contemporary Brush)’이 개최됐다. 전시는 약 두 달 연장전이라는 반응을 이끌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이후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등을 포함한 총 8곳의 미술관에서 순회전이 진행됐다. 다트머스 대학 김성림 교수 주도로 발간된 전시 도록 ‘Ink Reimagined’는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고유의 민족성, 역사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는 것이 한국화라고 생각한 그는 오방색에 모든 우주의 색이 깃들어 있다고 믿은 선조의 믿음을 따라 작가의 먹빛은 단순하면서도 간결하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재료와 강렬한 필법, 단순 색채배합을 바탕으로 공간을 아우르는 대규모의 작품 스케일 및 다시점(multiview)으로 바라본 구도가 함께 더해져 비로소 완성된다.
특히, 박 화백의 작품 스케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압도적이다. 지금까지 선보인 전시작 중 11m에 가까운 큰 대작 ‘몽유도원도’(2011년) 외에도 12m에 달하는 ‘코리아 판타지’(2022년)는 한국화 중에서도 보기 힘든 위용을 자랑한다.
이번 리안갤러리 개인전의 제목인 ‘화여기인(畵如其人)’은 ‘그림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인간과 작품을 동일시하는’ 이른바 ‘~과 같다(~如其人)’에 그림의 의미를 더했다. 여기에는 박대성 작업의 근간이 되는 철학을 관람객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에는 약 16점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전시장 1, 2층에 걸쳐 ‘폭포’와 ‘덕수궁’, ‘설경’과 같은 작가 특유의 필선이 담긴 대형 작품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은 1층에 있는 9m 높이 전시벽에 설치된 ‘폭포’다. 이 작품은 세로 7m, 가로 3m의 거대한 크기로 일반 전시 공간에서는 쉽게 선보일 수 없는 규모지만 리안갤러리의 높은 층고와 어우러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유감없이 펼칠 수 있게 됐다. 두개의 폭포가 세차게 내려오는 바닥 아래에 작가가 직접 고안한 한글체가 정갈하게 나열돼 있는데 글을 따라 읽다 보면 마치 관객과 폭포수가 혼연일체가 되는 착각이 든다.
2층에 설치된 ‘유류’는 이번 개인전을 위해 작가가 특별히 2024년부터 준비해온 버드나무 연작 시리즈다. 작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만월과 함께 생명력 넘치는 능수 버드나무 가지가 화면 전체에 일렁인다.
하루하루를 정진하며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과정을 올 곳이 지켜가는 작가의 신념이 이번 전시를 통해 여과 없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수묵화 대가’, ‘불국사 화가’, ‘한국 산수화의 거장’ 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양하지만 한 획으로 그는 소산(小山) 박대성이다.
박 화백은 1945년 경북 청도 출생으로 현재 경주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그는 1969년부터 8년 연속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선했고, 19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2020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호암 미술관 등 국내는 물론 미국 LACMA미술관을 비롯해 다트머스 대학교 후드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미술관, 휴스턴미술관 등 해외 미술관에도 소장돼 있다. 2015년에는 작품 830점을 경주엑스포대공원 솔거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솔거미술관 건립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