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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수타 경력 56년 장인이 뽑아낸 ‘256가락’ 면발의 비밀은…

미리 엄살을 떤다. ‘대략 난감’이다. 제대로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못 했으면, 칼럼을 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음식이 수준급을 넘어선다. 대단한 음식도 아니다. 평범한 짜장면이다. 청송읍내의 ‘고향식당’. 허름한 시골 동네의 백반집 이름이다. 이 가게 짜장면, 전국 유명 짜장면집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그 흔한 인터넷 포스팅도 네댓 개 정도다. 유명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시골 읍내의 얼마쯤은 스산한 식당이다. 입구가 ‘유리 가라쓰’ 문이다. 좌석은 ‘홀’이 30석 정도. 내부에 20~30명 정도 단체가 앉을 수 있는 방이 있다.현지 토박이가 동행했다. 점심시간을 피해 느지막한 시간에 가자고 했다. 바쁜 시간에 가면 말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엄포가 아니었다. 점심시간에는 홀과 방안이 꽉 찬다. 인터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상황. ‘점심시간의 탕수육’도 금기사항이었다. 바쁜 점심시간에는 ‘짬뽕? 짜장면?’만 가능했다. 가게 입장에서는 손해가 나는 일이다. 탕수육이 아무래도 단가와 이문이 높다.나이든 노부부가 운영한다. 남편은 주방장, 올해 일흔다섯이다. 1963년부터 수타면을 치기 시작했다. 수타면 경력 56년이다. 더러 ‘수타면 경력 20년, 30년’은 볼 수 있다. 50년 경력은 드물다. 10대 후반부터 면을 만져도 50년 경력, 60대 후반이 되면 기력이 달린다. 대부분 어깨와 등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다. 75세에 수타면, 경이롭다.아내는 홀서빙 겸 주방 보조다. 주방과 홀을 지켜보니, 왜 점심시간에 ‘짜장면, 짬뽕만 가능한지’ 알 수 있었다.대부분 가게가 기계면이나 공장면을 쓴다. 가락이 일정하다. 수타면을 두고 ‘쫄깃하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틀렸다. 기계로 뽑은 면, 공장면이 더 쫄깃하다. 수타면은 무르고 부드럽다. 현미경으로 보면 면의 겉면에 달의 분화구 같은 홈이 많다. ‘냉소다’ ‘얼음 소다’라고 부르는 소다를 조금 넣어도 면은 한결 쫄깃해진다. 배달하는 중식당의 면발은 좀체 붓지 않는다. 소다 면, 붓지 않으니, 배달이 가능하다. 소비자들도 ‘면발이 탱글탱글하다’고 좋아한다.슬쩍 물어본다. “128가락입니까?” 대뜸 “256가락”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면을 일곱 번 뽑으면 128, 여덟 번 뽑으면 256가락이다. 수타면인데 굵을 경우, 대부분 7번 뽑은 것이다. 한번을 더 더하는 것이지만 마지막 면을 뽑는 과정은 한결 더 힘들다. 면이 가늘고 곱다. 기계로 하지 않고 손으로 뽑아내는 256가락의 고운 면은 대단한 공력이 필요하다. 이른바 까다로운 ‘힘 조절’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매일 해내고 있다.오래되었다고, 무조건 반길 일은 아니다. 이 집, 면발이 희다. 소다를 극소량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다. 실제 수타 과정을 봤다. 소다 그릇이 보이질 않았다. 먹을 때도 마찬가지. 소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면이 쫄깃하지는 않지만, 탄력이 충분했다. 비밀은 냉수처리다.“한 번에 5인분 이상을 삶지 않는다”고 했다. 대중적인 식당에서, 바쁜 점심시간에 이 평범한 원칙을 지키기는 힘들다. 최소한의 양을 삶아야 면은 탱글탱글해진다. 라면을 하나 끓일 때와 10개를 끓였을 때의 면발은 다르다. 그 이치다. 부드러우면서도 차진 식감이 입안에서 살캉거린다.고명에도 ‘원칙을 지키는 정성’이 담겨 있다. 우리는 국수 위에 올리는 고명의 종류와 양에만 신경을 쓴다. ‘무엇을’보다 ‘어떻게’가 중요하다.일행이, 짜장면 두 그릇, 짬뽕 한 그릇을 주문하고 나니 약 2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짜장면의 고명, 갓 볶아낸 것이었다.‘자장미엔(炸醬麵, 작장면, zhájiàngmiàn)’의 ‘작(炸)’은 ‘터질 작’ 이다. 짜장(춘장 혹은 첨면장)에 채소, 고기 등을 넣고 팬(WOK·웍)으로 볶으면 기포가 생긴다. 열을 가하면 기포는 표면에서 터진다. 원형 첨면장, 춘장은 발효식품이다. 탄산가스가 뜨거운 불을 만나면 외부로 삐져나온다. 이게 작은 거품을 이루었다가 터진다. 그래서 ‘뽀글뽀글 터지는 장’ 작장면, 짜장면이다.‘고향식당’은 한 그릇, 한 그릇 고명을 일일이 따로 볶아서 얹는다. 대부분 짜장면 가게에서는 이른 아침에 짜장 소스를 끓여둔다. 손님이 주문하면 국수를 삶아서 헹군 다음, 끓여둔 짜장 소스를 얹어서 내놓는다. 우리는 이런 짜장면을 ‘옛날 짜장’이라고 부르면서, 원형 짜장으로 여긴다. 그렇지는 않다.원형 짜장면은 첨면장(甛麵醬, 춘장, 짜장)을 볶아서 얹는 것이다. 짬뽕도 마찬가지. 대부분 끓여둔 국물을 웍에서 한 번 더 가열 처리한 다음 얹는다, 국물이 흥건하니 볶은 것인지, 삶은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틀렸다. ‘고향식당’의 짬뽕은, 주문을 받은 다음, 채소, 해물, 고기 등을 웍에 넣고 매번 새롭게 볶는다. 유명 호텔의 중식당에서도 하지 않는 짓이다. 이 ‘미련한 일’을 매일 한다.‘고향식당’의 짜장면, 물컹거리는 채소가 아니라 사각사각한 고명이다.인근에서 6년간 가게를 운영하다가 현재 자리로 이사했다. 현재 자리에서 30년. 대부분 손님이 지역 주민, 단골들이다. 여주인은 연신 “멀리서 오는 손님들은 무섭다”고 말한다. 얼굴이 익은 손님들은 대하기가 편하다. 사정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은 ‘바쁜 점심시간의 탕수육 같은 엉뚱한 주문’도 한다. 혼자서 홀서빙을 하니, 점심시간에는 정신이 없다. 10분 이상 기다려야 주문을 겨우 받는다. 일흔을 넘긴 사람들이니 기계 사용도 서툴다. 카드 결제가 어렵다. 현금만 받으니, 외지 사람의 경우 시비도 붙는다. 궁여지책으로 외부 사람들은 피하게 된다.“군수도 못 드나드는 짜장면집”이라는 표현은 얼마쯤 과장되었다. 전임 어느 군수 시절에 군수가 ‘고향식당’에 왔다. 문제는 군청 직원들. 같은 공간에서 ‘군수 모시고’ 짜장면 먹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다. 안주인이 ‘용단’을 내렸다. 군수에게 “오시지 마라”고 통보(?)를 했다. 군수가 드나들면 군청 공무원 수십 명이 안 온다는 게 이유다.수타 경력 50년을 넘긴, 보기 드문, ‘장인’이 매일 수타면을 제대로 뽑는다. “100세 장수하시면서, 꾸준히 수타면을!”이라고 말하기도 미안하다. 수타면 뽑는 일, 힘들다.설마, 청송 주왕산 기슭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만날 줄은 몰랐다. 주왕산국립공원 올라가는 길 왼편에 넓은 주차장의 ‘킴스마운틴커피’가 자리한다. 실내는 웬만한 대도시 커피 전문점 못지않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장식했다. 30분 정도 구경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 인테리어, 커피 맛은 대도시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종류의 커피잔과 티스푼 등이 가게 1, 2층에 가득하다.원두는 생물이다. 제대로 보관하기도 어렵고 일단 볶은 후에는 빠른 기간 내에 소비해야 한다. 커피 맛이 수준급이다. 외진 곳임에도 손님이 꾸준하다는 뜻이다.주인 김해욱 씨는 가끔 무대 위에서 고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손님들을 위한 주인의 배려다. ‘스모크커피’라는 특허 커피도 개발했다. 커피잔을 열면 훈연한 나무 향이 가득하다. 스모크커피는 특허출원까지 마쳤다. ‘커피 족욕’ 등도 가능하다.밥상을 받고 괜히 횡재했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왕산 ‘청솔식당’이 그랬다. “관광지 입구에 있는 그저 그런 식당”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전혀 ‘관광지 입구의 그저 그런 식당’이 아니었다. ‘청솔식당’. 장을 직접 담근다. 두부를 직접 만든다.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말도 있다. 두부 전문점도 아니면서 두부를 직접 만드는 건 힘들다.이 힘든 일을 꾸역꾸역해낸다. 청국장을 직접 띄우는 것은 물론이다. 음식 맛은 장맛이다. 장을 직접 담그는 집을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횡재’다. 그것도 ‘관광지 입구의 식당’에서. 조미료, 감미료가 거의 없는 식당이다.이른 봄철이면 주인은 산과 들로 나선다. 대부분 나물을 직접 채취한다. 나물은 1년 내내 나오는 것이 아니다. 4~6월 사이 대부분 나물이 생산된다. 냉동, 건조 등으로 보관한다.대중적인 음식점에서 10월에 개 두릅(엄나무 새순)을 볼 수 있었다. 놀랍다. 수수부꾸미 직전의 수수 전도 아주 좋았다. 오래간만에 ‘수수한 수수 전’을 맛봤다.‘산나물 전’은 어수리 전이었다. 대부분 산나물이 그러하듯이, 제대로 된 산나물은 단맛이 아니라 향과 쓴맛이다. 기름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진 쌉쌀한 어수리 전, 아주 잘 먹었다. 오랫동안 입안에 나물의 향이 남았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10-16

구미공단 역사성+예술 문화 콘텐츠 ‘체험형 관광상품’으로

산업의 역사가 오래될수록 폐산업시설로 인한 고충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선진 산업국가들이 앞다퉈 폐산업시설을 문화시설로 탈바꿈시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구미공단 50주년을 맞은 구미시도 늘어가는 폐산업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 산업관광 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폐산업시설을 활용한 사례와 성공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폐산업시설의 재생폐산업시설 재생의 본연의 목적은 건물이 갖고 있던 장소성과 역사성은 그대로 담아내면서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데 있다. 건물을 완전히 헐어버리는 대신 외관을 유지한 채, 내부 보수작업을 통해 옛 산업시설의 흔적을 남겨 하나의 건축물이 쌓아올렸던 장소성과 역사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는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장소성과 역사성이 본연의 효용가치성과도 큰 관계가 있기 때문으로,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재생이 아니라 단순한 건물 재활용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축물이 가진 장소성과 역사성에 대한 고민을 녹여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장소성과 역사성을 무시해 실패한 경우는 허다하다. 장소성, 역사성에 대한 고민 없이 전시실을 확보하는데 급급했거나, 문화재생 목표 수립보다 건물 리모델링을 선행했거나, 사업을 주관하는 업체와 문화재생계획의 특성이 맞지 않은 경우다. 이러한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국내에서도 폐산업시설을 문화시설로 활용해 성공하는 사례가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다.△지역과 함께하는 전주 ‘팔복예술공장’전주시 팔복동에 위치한 팔복예술공장은 25년 전 문을 닫은 카세트공장에 예술의 힘을 불어넣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지난해 3월 23일 정식 개관해 1층에는 작가들이 입주한 창작스튜디오와 사무실, 지역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로, 2층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장과 교육공간으로, 옥상에는 다양한 행사가 가능한 놀이터로 구성했다. 이곳에서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지역주민에게는 문화활동과 예술교육을 제공한다. 또 예술가와 기업, 주민 간의 지역공동체 형성을 돕는다. 팔복예술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장소성, 역사성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이다. 팔복동은 1970∼80년대 전주를 먹여 살렸다고 할 만큼 공장이 많아 1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일했지만, 산업이 쇠퇴하면서 기업과 노동자들도 떠나면서 전주 변방의 주목받지 못하는 동네가 됐다. 전주시는 팔복동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그것이 현재로 어떻게 변환이 되는지를 보여야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진정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 예술공장을 설립을 추진했다. 또 설립 당시 전주 중심가에서 멀다는 이유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일부의 지적을, 전주 IC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로 전주를 찾는 외지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팔복예술공장만의 장점으로 만들어 내세웠다. 전주시와 지역예술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팔복예술공장은 정식 개관 보름 만에 2천500여 명의 방문자를 기록하며 전주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어업인들의 땀과 삶의 철학을 간직한 포항 ‘나루터 문화놀이 창고’포항 동빈내항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구 포항수협 냉동창고가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됐다. 구 포항수협 냉동창고는 1969년 1월 11일 건립돼 수산물 저장과 얼음창고로 사용되다 1997년 12월 31일 포항수협이 대신지점 청사로 이전하면서 빈 공간으로 남아있던 것을 포항시가 지난 6월 매입했다. 포항시는 이 건물을 어업인들의 땀과 삶의 철학이 담긴 공간의 장소성, 역사성을 살리고 창의성을 융합해 복합 문화거점 공간인 ‘나루터 문화놀이 창고’로 만들었다. 특히, 지난 9월에는 나루터 문화놀이 창고 개방과 2019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을 연계해 설치미술 ‘동빈내항 샹들리에’, 예술강사의 아틀리에, 클래식 공연 ‘가을낭만’, 예술컨퍼런스 캬바레, 영상미영화제, 환대의 식탁, 월드 버스킹, 축제워크숍, 도시와 문화공간을 잇는 국제콜로키움 개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또 오는 12월까지 문화적 장소 가치를 재생하기 위한 워크숍, 청년 및 예술가들의 ‘실험적 실험’ 등 임의적 활용을 통해 공간 조성의 타당성도 확보할 방침이다.△구미공단 50주년기념 아트페어에서 가능성을 찾다그동안 폐산업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구미시가 공단 50주년 기념행사로 마련된 아트페어(ART FAIR)에서 그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와 한국미술협회 구미지부가 공동으로 준비한 아트페어는 지난달 18일부터 22일까지 구미 보세장치장에서 ‘구미의 미래를 그리다’를 주제로 산업과 예술을 접목한 전국 최초의 지역 예술인과 기업, 시민 중심의 예술축제다. 특히, 산업단지 내 유휴공간을 활용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행사가 열린 보세장치장은 산단공이 입주기업의 수출입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1980년 1월 준공한 특수창고로 연면적 2천92㎡ 규모다. 준공 후 산단공이 직접 운영을 하다 2000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민간위탁으로 운영했으며, 이후 공단 사업 대상 후보지로 선정돼 현재까지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80년대 초 수출에 주력했던 한국경제와 구미공단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그대로 간직한 보세장치장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함으로써 구미 시민들에게 옛 추억과 함께 현대 미술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아트페어에는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작가 226명(개인전 116명, 단체전 110명)이 회화, 조각, 도자기, 공예, 서예 등 총 1천462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중 80여 점은 현장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또 도슨트(전시설명) 투어, 시민과 함께 하는 아트챌린지 등 다양한 부대행사로 하루 약 1천여 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았다. 이에 산단공은 앞으로도 산업단지 내 유휴공간, 공장 등을 활용한 찾아가는 미술관, 근로자들을 위한 문화예술특강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구미시, 예술·문화콘텐츠를 체험형 관광상품으로구미시는 시민들에게 예술 창작활동 공간과 문화 콘텐츠 체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이를 체험형 관광상품으로 연계하는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다. 시는 우선적으로 공모사업인 웹툰캠퍼스, 음악창작소를 내년도에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웹툰캠퍼스는 총 사업비 7억 9천만 원으로 금오시장 내 상가를 리모델링해 작가입주시설, 기업입주시설, 교육장, 전시실, 회의실, 탕비실 등과 창작 장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정규과정과 특강, 멘토링, 피칭데이, 국제교류 등을 통해 콘텐츠 산업 활성화와 더불어 체험형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또 음악창작소는 20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시설에 녹음스튜디오, 연습실, 야외 음악체험장을 만들어 전문음악인을 지원하고 일반시민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조성해 음악체험 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영상·라디오 스튜디오, 녹음실, 상영관, 체험관 등의 시설을 갖춘 영상미디어센터를 조성해 급변하는 미디어 생태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시민들이 참여적이고 창조적인 미디어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구미시가 내년부터 추진하는 예술·문화콘텐츠 조성 사업들이 대부분 체험형 사업으로 구성돼 관광상품으로 연계될 경우 구미 관광산업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0-16

노론과 소론, 철새들의 도래지(渡來地)

신임옥사(辛壬獄事)는 신임사화(辛壬士禍)라고도 한다. 옥사는 ‘감옥에 대거 갇히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고, 사화는 ‘의로운 선비들이 화를 입었다’는 말이다. 즉 조선 전기 훈구파와 사림파가 맞서 싸울 때 사림이 대거 화를 입었던 것을 사화라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조선중기 이후 사림·훈구의 구별이 없어졌을 때, 붕당정치가 이어지면서 ‘일순간에 정권이 확 바뀌는 것’을 사화나 옥사라 하지 않고 그냥 ‘환국’이라고 했다.조선 경종 초기인 1721년(신축년)부터 1722년(임인년)까지 노론과 소론이 연잉군(후에 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는 문제를 놓고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노론 4대신과 그 일당 60여 명이 경종을 시해하고, 이이명을 추대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까지 연결되어, 노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신임옥사라 한다.신임옥사로 중앙에서 칼바람이 몰아칠 때, 그 여파로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바로 노론계의 신사철, 김광택, 김석증이 그들이다. 신사철은 김재로 등과 함께 소위 ‘삼수육창(三壽六昌)’의 한사람이자 노론 4대신의 중심인물인 김창집(김수항의 아들)의 당이라는 이유로 1723년 1월 19일 장기로 유배를 왔다.김광택은 노론계의 중심인물 60여 명 중 한사람으로 신임옥사 때 죽은 김용택의 동생이었다. 김용택은 숙종이 사류(士類)들을 대거 등용할 때, 이이명의 천거로 벼슬길에 올랐지만 목호룡의 고변으로 하옥되어 국문을 받다가 죽었다. 김석증도 김용택의 가족으로 연좌되어 이곳으로 와 노비가 되었다.이들을 장기현까지 내몰고 온 신임옥사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당파간의 중상과 모략의 연속이었다. 숙종이 죽은 후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왕위에 올랐다. 숙종은 경종 외에 또 다른 왕자를 두었는데, 바로 무수리였던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이었다. 그러니까 경종과 연잉궁은 배다른 형제이다. 정치적 배경이 남인이었던 장희빈은 숙종 당시의 집권세력이었던 노론들에 의해 사약을 받고 이전에 죽었다.그런 장희빈의 아들이 경종이 되었으니 그도 당연히 남인 편이었다. 이제 노론들의 운명은 언제 꺼질지도 모르는 바람 앞에 등불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조정에는 경종의 편이 될 남인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1694년(숙종 20) 폐비민씨(廢妃閔氏) 복위운동을 반대하던 남인들이 화를 입어 실권하고 서인이 재집권하게 되었던 갑술환국때 남인은 거의 다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에는 이제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노론과 소론이 대립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소론들은 일부 남아있는 남인들과 힘을 합쳐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경종은 남인을 다시 등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산군처럼 건강하지가 못했다. 즉위 당시 34세였던 경종은 자식을 낳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병석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배경이었던 남인을 구원하여 등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만약 경종이 건강만 따라줬더라면 당시 노론들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노론에게는 경종의 이런 건강 악화가 천만 중 다행이었을 것이다. 노론의 일부 대신들은 상소를 올려 경종의 병약함을 이유로 동생인 연잉군을 세자로 삼으라고 압박했다. 몸이 허약하고 자식도 따로 없었던 경종에게는 신하들의 요청을 단번에 물리칠 힘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경종은 노론 대신들의 요구대로 연잉군을 세자로 세웠다. 자식이 아닌 동생을 세웠으니 왕세제라고 해야 맞다. 동생을 세자로 삼는 것을 허용한 경종에게 이번에는 노론이었던 조성복이 상소를 올려 ‘임금이 몸이 약해 정사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도록 하라’고 강요를 했다. 경종은 마지못해 이 요구도 받아들였다.이런 노론의 행위를 지켜보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소론들이었다. 이조참판으로서 소론의 영수인 조태구, 류봉휘(柳鳳輝) 등은 대리청정의 부당성을 상소하였고, 최석항은 한 밤중에 왕을 찾아가 울면서 명령을 환수하기를 청했다. 밤을 꼬박세운 최석항의 설득으로 결국 경종은 대리청정 명령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행위에 대해 노론이 또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론은 떼를 지어 왕에게 몰려가 침전 앞에서 본래대로 대리청정을 시행하라고 호소하였다. 이어서 노론 소론 할 것 없이 각자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경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머리만 부여잡고 있었다. 이때에 역사의 획을 긋는 상소가 하나 올라왔다. 1721년(경종1) 12월 6일, 소론의 김일경이라는 사람이 올린 다음과 같은 상소였다.…임금에게 (감히) 대리청정할 것을 요구한 죄를 지은 자들에게 죽음을 내렸다는 임금의 명령과, 승정원과 삼사가 그들이 저지른 죄목을 들어 엄하게 꾸짖도록 임금에게 청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하였나이다. 법으로 이들을 엄단하시어 군신의 대상을 세우시고 흉적들로 하여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시옵소서.한눈에 봐도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을 척결하여 왕의 권위를 살리라는 탄핵상소였다. 경종은 이 상소를 보자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함께 도저히 노론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경종은 자신을 지지하는 소론을 등에 업었다. 이 탄핵상소를 근거로 노론을 쫒아내고 소론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왕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의 4대신이 잡혀왔다. 이이명·김창집·이건명·조태채 등이 그들인데, 경종이 이들 모두를 극변으로 유배를 보내 위리안치 시켜버렸다.서서히 권력을 잡기 시작한 소론은 내킨 김에 노론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국왕의 마음을 움직인 상소문을 작성한 김일경이 앞장섰다. 그는 이제 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가 되어 있었다. 우선 노론의 인물 중 목호룡이란 사람을 매수했다. 목호룡은 남인 천얼 출신으로 청능군(靑陵君)의 집안 노비였으나, 풍수를 배워 연잉군 사친(私親)의 장지를 잡아주고 노비에서 양인이 되었다. 이후에 궁궐의 토지와 곡식을 관리하면서 부호가 되었다. 평소 시를 잘 지어 노론계인 김용택·이희지 등과 친밀하게 지내며 연잉군을 보호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변심을 하고 1722년(경종2) 소론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는 김일경의 사주를 받고, 자신이 노론계의 정인중ㆍ김용택ㆍ이천기ㆍ백망ㆍ심상길ㆍ이희지ㆍ김성행 등 60여 명과 모의해 경종을 시해하고 이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몄다고 왕에게 고발하였다. 이게 이른바 ‘목호룡의 고변사건’이다.목호룡으로부터 고변을 들은 경종은 크게 노했다. 목호룡이 거론하였던 노론의 인사들을 모두 잡아와 투옥하라고 했다. 잡혀온 사람들은 이미 유배를 가 있던 노론 4대신들과 그들의 가족 및 추종자들이었다. 백망((白望)은 이것은 세력을 잃은 소론과 남인이 왕세제를 모함하려고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심문을 담당하고 있던 남인들은 이를 묵살해버렸다.결국 역모자로 거론된 이천기ㆍ김용택 등과, 앞서 연잉군을 왕세제로 만들었던 노론 4대신인 이이명 등이 차례로 사형을 당했고, 노론 수백 명이 살해 또는 추방되었다. 반면 목호룡은 이 일로 부사공신(扶社功臣)에 올랐다가 동중추부사(同中樞府事)의 벼슬을 받고 동성군(東城君)에 피봉되었다. 이런 노론 숙청 과정이 신축년과 임인년 두 해에 걸쳐 일어났기 때문에 앞의 두 글자를 따서 신임옥사라고 한다.이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정국 속에서 가장 겁을 먹은 사람은 연잉군이었다. 자신을 지지하던 노론 세력들이 대거 죽거나 귀양을 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서, 자신도 언제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조마조마한 세월들이 흘러가고 있었다.그런데, 병약한 몸을 이끌면서도 소론과 남인들을 다시 등용하려고 애썼던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죽고 말았다. 경종의 죽음에도 여러 가지 의혹이 있다. 37세는 몸이 약했다고 하더라도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경종 죽음에 관한 추측 중에는 궁궐에서 일하던 나인들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다. 붕당정치가 극으로 치닫던 이 시기에는 궁중에서 일하던 내시와 궁녀들조차도 노론·소론으로 갈라져서 온통 당색이 가득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국왕의 독살설이 나올 법도 하였다.경종이 죽고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말자 노론이 재집권했다. 영조는 이조판서로 있던 김일경부터 유배를 보내버렸다. 그러다가 청주의 유생 송재후의 상소를 발단으로 신임옥사가 무고였다는 노론의 집중적인 탄핵이 시작되었다. 신임옥사의 주동자였던 김일경과 목호룡이 함께 투옥되어 친국을 받았다. 김일경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영조를 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영조를 ‘나으리’라 부르며 끝내 공모자가 없다고 우겼다. 별수 없이 목호룡과 김일경 두 사람만 당고개(唐古介)에서 목이 잘렸다. 목호룡의 머리는 3일간 거리에 달아매어졌고, 그가 전에 경종에게 밀고한 고변문서는 불태워졌다.노론이 재집권하면서 장기로 유배를 왔던 신사철은 복권이 되었다. 돌아간 그는 대사헌, 호조판서, 예조판서를 계속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하지만 정미환국으로 다시 노론이 추방될 때 파직되었다가 1728년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에 등용되는 등 부침(浮沈)이 계속되었다. 1740년까지 그는 공조 · 예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여러 번 지냈고, 1745년 판중추부사를 끝으로 관직을 내려놓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기로소는 정2품 이상 전 현직 문관이 나이 70세 이상이 되면 들어가는 일종의 예우기관이었다. 두 아들도 정승에 올라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신임옥사의 여파로 장기에서 1년 넘게 노비생활을 하던 김광택과 김석증도 1725년(영조1) 4월 2일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갔다.한편, 신임옥사가 있은 지 34년이 지난 1755년(영조 31)에는 그 반대세력인 소론계 인사가 장기현으로 유배를 왔다. 바로 소론 4대신의 중심인물인 류봉휘의 조카 류경원(柳景垣)이 이곳으로 와서 안치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류봉휘는 강경 소론파로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는 것이 부당하다는 상소를 경종에게 올려 대리청정을 철회하게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1725년 영조가 즉위하고 탕평책으로 노론·소론의 연립정권이 수립될 때 소론이었지만 우의정에 등용됐다. 이어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30여년 후 강경파 노론이 정권을 잡게 되자 새삼스럽게 신임옥사를 일으킨 주동자로 그가 지목되어 탄핵을 받게 되었다. 결국 함경북도 경흥(慶興)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사후 관작이 복구되었으나 1755년 다시 반역죄로 추형(追刑)을 당했다. 추형을 당할 때 그의 가족들도 연좌되어 며느리와 손자는 물론 조카들까지 모두 유배를 보냈던 것이고, 조카 중 한사람인 류경원이 장기로 온 것이다.역사를 되짚어 보면, 18세기 장기현은 노론과 소론의 정치이데올로기 싸움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런 장기현은 싸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마치 철새처럼 날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겨울을 피해갔던, 도래지(渡來地)와도 같은 곳이었다. 아니, 아늑한 보금자리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10-15

밤바다 수놓는 야경 한눈에… 낭만 찾는 관광객 발길 이끌어

‘전남 대표 도시’인 여수시는 거북선과 밤바다로 잘 알려진 남해안의 대표적 관광 물류 도시다. 인구가 28만여명으로 전남 지자체 중 순천시와 함께 선두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지표에서 전남을 넘어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해가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얼핏 경북 제1의 도시 포항과 많이 겹치는 모습이지만 그 내실은 더욱 탄탄하다.우선 경제적인 면을 살펴보면 국가 경제의 토대인 여수산단과 율촌산단이 입지한 임해공업도시로 포스코를 보유한 포항시와 그 성격이 유사하며, 인근 광양시와 함께 해운 중심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여수·광양항의 경우 총 물동량이 지난해 3억300만t(수출·입 물동량 2억2700만t)을 달성하는 등 대한민국 1위 수출·입 관문항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전남 경제의 토대 역할 외에도 여수시는 거북선과 이순신을 연계한 홍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여수가 전라좌수영의 본영(本營)으로 불리게 된 것은 1479(성종10년)에 순천(順天) 내례포의 수군만호영(萬戶塋)을 설치하면서 기존에 있던 해남의 수영을 전라우도수영, 순천(지금의 여수)의 신설수영을 전라좌수영이라 하면서부터다.1593년부터 1601년까지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본영이기도 했던 전라좌수영 여수는 조선시대 400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서 이순신 장군의 기백과 충정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 중 하나인 거북선도 여수와 관련이 있다. 여수 굴강에서 이순신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판옥선(총지휘선)을 건조해 이곳 앞바다에서 진수했다.천혜의 해양관광 자원을 보유한 관광휴양도시로서의 그 매력이 더욱 배가된다.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로도 잘 알려진 여수시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전국 주요 관광지점 입장객 통계’에서 1천508만명으로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전남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다. 올해는 (사)한국브랜드경영협회가 수여하는 ‘2019 대한민국 소비자신뢰 대표브랜드 대상’ 시상식에서 부산과 제주를 제치고 해양관광도시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여수해상케이블카여수 관광 산업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추진됐던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전국 최초로 바다 위를 통과하는 케이블카’라는 수식을 앞세우고 건설됐다. 여수시 수정동 및 돌산읍 우두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2만7천858㎡, 연장은 여수 돌산과 자산공원을 잇는 1.5㎞로 50개의 캐빈을 보유하고 있다.2012년 2월 사업계획을 승인받아 그해 9월 궤도사업 허가가 났으며 이듬해인 2013년 3월 착공식을 열었다. 이후 3년만인 2016년 5월 최종적으로 사업 준공을 승인받아 케이블카를 운영하고 있다.연중무휴로 운행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며, 속도는 2∼3m/s로 왕복에는 20분이 걸린다. 사천 케이블카 등 유명 케이블카와 마찬가지로 일반캐빈(35대)과 크리스탈캐빈(15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수시민에게는 4천원의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총 사업비는 360억원으로 여수포마(주)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케이블카 준공으로 인한 고용창출은 130명, 케이블카가 임시사용 운행에 들어갔던 2014년 12월 2일부터 지난 2018년 12월 31일까지 4년간 방문객은 827만8천여명에 달한다.하루 평균 5천670명이 다녀간 셈이다. 여수시가 추산하는 주변상가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금액도 연간 1천500억원 가량이나 된다.여수해상케이블카의 장점은 앞서 말했듯 바다 위를 지나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국내 최초의 해상케이블카라는 점이다. 아시아로 따지면 바다 위를 통과하는 해상케이블카로 홍콩, 싱가폴, 베트남에 이어 네번째인 셈이다. 일단 여수해상케이블카에 탑승하면 박람회장과 오동도 중심으로 다도해의 탁 트인 전망을 관람할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풍광 역시 여수해상케이블카만의 장점이다.여수시에 따르면 여수해상케이블카는 거북선 대교의 옆으로 지나고 지상에서 보는 여수 앞바다와는 다르게 흔히 항공 촬영된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아름다운 풍광을 직접 볼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케이블카를 이용한 관광에는 3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우선 한낮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볼 수 있으며, 이 시간대에 크리스탈 캐빈을 타면 마치 바다 위를 걸어가는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이어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물드는 여수의 바다를, 마지막으로 해가 진 후에는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장군도와 해양공원의 아름다운 밤바다 조명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화려한 빅오쇼로 유명한 여수세계박람회장.□ 여수해상케이블카와 여수 밤바다여수해상케이블카와 함께 여수 10경에 해당하는 ‘여수밤바다/산단야경’은 여수 관광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케이블카를 통한 야경 감상도 좋지만, 케이블카에서 내려 사람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야경 또한 일품이다. 낭만과 황홀함이 넘치는 여수 도심 야경은 대중가요로 불릴 만큼 낭만과 황홀함을 더해준다.여수의 도시 곳곳에는 화려한 조명이 밤바다를 수놓고 있어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데, 우선 경관 조명 시설이 설치된 진남관이 지역주민과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야경으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여수의 상징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또 오동도에서는 동방파제의 야간 조명과 황홀한 음악분수가 조명들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고, 여수해양공원에서는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장군도를 조망권 내에 두고 있어 산책을 하면서도 한눈에 아름다운 밤바다를 볼 수 있다.돌산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밤의 돌산대교와 장군도는 빛의 도시 여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광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돌산대교는 밤마다 50여 가지 색상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여수의 밤바다를 보석으로 치장하고, 여기에 장군도의 아름다운 불빛이 더해져 여수항 앞바다는 이국적 정취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오동도 동방파제 야간 조명 시설이 빛을 더하며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박람회장 전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야경을 선물한다.케이블카 자산탑승장 바로 오른편에 오동도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방파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오동도 안에는 오동도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등대가 있으며, 음악분수대, 맨발산책로 등이 있다.근사한 리듬에 맞춰 화려한 불빛과 하얀 물줄기를 뿜어내는 오동도 음악분수는 고요함과 화려함이 어우러져 한밤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 형형색색의 야경이 아름다운 여수국가산업단지도 또다른 매력이다.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웅장한 기계설비에 설치된 수만 개의 조명으로 어우러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야경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오동도.□ 케이블카 인근 여수 관광지여수시 거북선대교 하부공간(종화동 300-3)에 자리를 잡은 여수 낭만포차는 아름다운 밤바다와 바다 냄새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016년 종화동 해양공원에서 시작한 낭만포차는 전국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대한민국 최고 관광지로 떠올랐다. 올해 10월 1일부터 현 부지에 새로 자리를 잡았으며, 옛 자리의 명성을 이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2012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여수세계박람회도 해양레저관광지로 새롭게 개장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수박람회장은 지구촌 단 하나뿐인 화려한 빅오쇼를 비롯해 스카이타워, 아쿠아플라넷 등 박람회 시설물과 역동적인 해양레포츠 프로그램, 바다와 맞닿은 수변공원을 거닐며 산책하는 이들로 항시 인기를 끌고 있다.조선수군 구국역사의 상징인 진남관은 화려한 여수 관광 속에서 야경을 제외하고서라도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국보 제304호인 진남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해에 세운 단층목조 건물로 구국의 상징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진남관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2층 누각 망해루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됐으나 재복원된 바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75칸의 대규모 객사를 세우고, 남쪽의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고 이름 지었다. 건물 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다.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사찰이나 화랑,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경판고와 진남관 단 두 곳뿐이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2019-10-14

너그러운 바다의 품에 안겨

어제 천국에 다녀온 덕분에 잠을 잘 잤다. 물론 저세상이 아니라 ‘울릉천국’ 이야기다. 고백하건대, 서울에서 나는 매일 밤 불면으로 괴롭다.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도무지 잠들 수가 없다. 불면으로 죗값을 치른다 생각해도 억울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잠은 잘 자지 않는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양을 세기 시작하면 잠은 저 멀리 달아난다. 그런데 지난밤에는 어떤 상념도, 후회도, 한스러움도, 그리움도, 미안함도 없이 스르르, 푸른 잠결에 스며들었다. 맑은 풍경이 마음을 깨끗하게 한 모양이다. 나는 어제 자연에게 용서 받았다. 자고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다 가볍고 개운했다.저동항 ‘정애식당’ 미닫이문과 함께 울릉도 여행 마지막 날이 열렸다. 울릉도에 왔으면 홍합밥을 꼭 먹어봐야 한다. 누가 내게 그러라고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다. 주문과 동시에 밥을 짓기 때문에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싱싱한 홍합을 잘게 다진 야채와 함께 미리 불려놓은 쌀에 넣고 밥을 지으면 홍합밥이 된다. 홍합 육수가 밥알에 스며들어 노르스름한 빛깔을 띤다. 간장 양념장을 두세 숟갈 넣어 슥삭슥삭 비비면 고소하면서도 싱그럽고 짭조름한 냄새가 코로 훅 들어온다. 갓 지은 쌀밥의 꼬들꼬들함과 자연산 홍합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어우러져 씹는 맛이 좋다. 울릉도 음식은 대단히 맛있기보다는 오래 기억되는 쪽을 스스로 택해 지금껏 향토성을 유지하고 있다. 촌스럽고 투박한 밥과 국, 탕, 국수에서는 너그러운 바다의 품이, 바다의 품이 키운 사람의 마음이 짠맛, 구수한 맛, 슴슴한 맛, 시원한 맛, 칼칼한 맛을 낸다.울릉도의 최서북단인 태하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 예로부터 향나무가 많아 ‘향목령’으로 불린 고개가 있다. 울릉도 향나무들은 벼랑에 뿌리를 박은 채 소금 햇살을 삼켜 잎맥을 키우고 젖은 해풍을 머금어 간신히 물관을 적신다.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라는 뜻의 ‘대풍감(待風坎)’에는 순풍에 돛을 밀며 먼 바다로 나아가고픈 뱃사람들의 소망이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향나무와 함께 자라난다. 태하향목모노레일 승차장에서 앙증맞은 모노레일을 타고 대풍감 산책로에 내렸다. 15분 정도 숲길을 걸어 대풍감에 오르는 순간 온몸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몸속에 있는 모든 함성들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감탄들이, 웃음들이, 눈물들이 목구멍으로 달려 올라와 저 먼저 쏟아내 달라고 아우성을 하는 통에 눈과 코와 귀와 입을 한꺼번에 열 수밖에 없었다.대풍감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북면 해안은 월간지 ‘산’에서 꼽은 우리나라 10대 비경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색채의 마법사라는 마티스나 샤갈의 팔레트에도 없는 파랑색 바다는 현무암 바위들이 내민 검은 입술과 키스한다. 하늘은 한없이 높고 또 함부로 낮으며, 아득히 멀고 또 아무렇게나 가깝다. 이 비경을 공감각적 풍경으로 완성하는 것은 해풍이 실어 나르는 향나무 향기, 그러니까 대풍감은 자연의 ‘4D 아이맥스 영화관’인 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우리나라에, 아니 세상에 또 있을까? 대풍감에서 나는 이 세계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삶이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세상이 온통 어둡고 좁게만 느껴진다면 반드시 대풍감에 가보라고.대풍감에는 1958년부터 불을 켠 울릉도등대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태하등대라고 부른다. 높이 7.6m의 하얀 등탑 안에 항로표지관리원이 근무하는 유인등대다. 해양수산부의 ‘유인등대 무인화 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2년까지 부산 오륙도, 포항 송대말, 제주 산지, 군산 말도, 여수 소라도, 강원 고성 대진, 그리고 울릉도의 등대 몇 곳이 무인등대로 전환된다고 한다. 이미 무인화가 된 곳도 있고, 아직 등대지기가 지키는 곳도 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이곳 울릉도등대도 언젠가는 무인등대가 될 것이다. 나는 향로표지관리원이라는 엄숙한 직함보다 등대지기라는 다정한 이름을 좋아한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지금도 노래 ‘등대지기’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이곳 등대에서 마지막 등대지기가 떠나는 날, 별들도 운행을 멈춘 채 눈물 같은 빛방울을 흘릴 것이다. 등대가 한 그루 듬직한 나무라면 몸속으로 나이테 수십 개쯤 우습게 그렸을 세월이 아닌가? 등대와 등대지기는 바다가 쓰는 책의 주인공, 긴 이야기의 끝이 이제 가깝다.‘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을 내려와 서면의 버섯바위를 구경했다. 버섯을 닮았다 하여 버섯바위인데, 층층이 쌓아올려진 ‘버섯갓’ 모양의 퇴적암이다. 화산 용암과 재가 굳어 쌓인 바위를 파도와 칼바람이 함께 깎아내 신비한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남양리 비파산 국수바위도 감상했다. 157만년 전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이 바위는 높이 30m, 길이 300m에 달한다. 벽면에 수많은 주상절리가 국수가락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바위 구경에 통구미의 거북바위를 빼놓을 수 없다. 통구미는 울릉도의 유일한 자연 포구, 거기 우뚝 선 거북바위는 그 모양이 기어가는 거북이를 닮았다. 가까이서 보면 바위 곳곳에 거북이 형상의 자연석들이 있다고 한다. 눈 밝은 사람들은 엄마 거북바위에서 아기 거북이를 12마리나 찾아낸다는데 나는 세 마리밖에 못 봤다. 나머지 아홉 마리는 다음에 와서 꼭 찾을 것이다.도동항에 와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에 올랐다. 하지만 독도는 볼 수 없었다. 맑은 날보다 오히려 구름 낀 날 잘 보인다고 한다. 독도전망대 아래에는 독도박물관이 있다. 1997년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영토 박물관’이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고문헌과 고지도, 독도의 역사, 자연환경 및 생태계, 독도의용수비대의 기록 등을 전시 및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을 거닐며 뜨거워지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해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독도에 가보지 못하고 울릉도를 떠나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러나 아쉽게 헤어져야 재회도 가능한 법, 나는 짝사랑하는 소년처럼 독도를 마음에 품은 채 독도박물관을 나섰다.수많은 관광객들이 오후 3시 30분 썬플라워호를 타고 울릉도를 빠져나간다. 출항 한 시간 전, 북새통 도동항은 온갖 목청으로 요란했다. “이리 오이소” 소리, 상인과 손님이 에누리 다툼하는 소리,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소리, 오징어 냄새, 젓갈 냄새, 호떡 굽는 냄새…. 소리와 냄새가 괭이갈매기보다 먼저 와 나를 배웅했다. 항구는 생명과 역동의 에너지로 충만하다. 그 에너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면서 나는 오늘을 사는 울릉도 사람들을 만났다. 흥겨우면 흥에 취하고, 언짢으면 곧장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순수한 사람들. 알 수 없는 뭉클함을 애써 누르며 나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여객선 탑승구로 향했다.급변하는 시대의 한 구석에서 발버둥을 치며 제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오래된 것들, 촌스러운 것들의 처절한 몸짓을 본 까닭인지도 모른다. 등대지기도, 천막집도, 항구의 좌판을 이루는 작고 소소한 소리와 냄새도 조금씩 변해가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열심히 북을 두드리며 익살스러운 춤을 추는 울릉도 호박엿장수의 흥겨운 놀이판이 슬픈 피에로의 연극처럼 측은했다. 상념에 빠진 내 앞에서 “뭐 그리 복잡해. 신나게 한판 놀고 마음껏 사랑하다 가면 그만이지” 엿장수와 구경꾼들이 한데 어울려 춤판을 벌였다. 그러자 썬플라워호의 탑승구가 열렸다. 나는 2층 선실에 앉아 눈을 감았다. 등대지기, 엿장수, 이장희, 군청 주무관, 두꺼비식당 아줌마, 학포 이장님, 홍순칠, 안용복, 독도의용수비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시인 이병철

2019-10-13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성주군… 도농복합 행복성주 건설 추진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현대사회에선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 많은 나라가 건강한 경제구조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기술력과 미래로의 발전 가능성을 지닌 중소기업의 육성은 어느 국가에게나 중요한 문제다.지방자치단체에게도 마찬가지. 지역에 양질의 중소기업이 다수 존재한다면, 당연지사 지역 경제의 청사진도 환하게 밝을 것이다.성주군은 올 한 해 중소기업 지원에 아낌없는 노력을 투여했다.아래에서 성주군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한 지원책과 소통간담회로 ‘중소기업 살리기’ 나서먼저 성주군은 올 상반기에 지역 중소기업 경영에 도움을 주고자 ‘2019년 중소기업 지원시책’ 안내 책자를 만들어 성주의 중소기업 900여 개 업체에 배부했다.책자에는 성주군 중소기업 운전자금 지원 안내, 중소기업 해외마케팅 지원 사업, 지역 발전 우수기업 선정 지원 안내,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추진 등의 내용을 담았다.또한 성주군이 힘을 쏟아 추진하고 있는 ‘먹·자·쓰·놀(성주에서 먹고 자고 쓰고 놀자는 의미) 운동’,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건립추진에 대한 협조도 중소기업 측에 부탁했다.“경상북도에서 지원하는 정책자금 지원, 기술·경영혁신 지원, 수출·판로 지원 등 도의 시책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는 것이 이어지는 성주군청 기업지원과의 부연이다.성주군은 중소기업 지원시책 책자를 군 홈페이지 사이버 기업지원센터(http://www.sj.go.kr/giupsos)에 게시했다. 누구나 쉽게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책자는 기업 활동을 위한 안내서인 동시에 ‘기업하기 좋은 도농복합 행복 성주’를 알리는 데도 한몫했다는 평가다.이와 함께 성주군은 기업 투자의 활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기업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소통간담회’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군이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식을 벗어난 내용 위주의 소통간담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성주군청의 판단이다.이런 맥락 속에서 선남면 공단 진입로 인근의 주민 불편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명관로 공단 주변 가로등 설치 필요성 등을 찾아냈다.문제점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경북도청을 방문해 성주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했고, 관련 예산도 3천만 원 확보했다는 것이 군청 기업지원과의 설명이다.경북도와 함께 성주 산업단지 및 농공단지 기업체 2곳(영창케미칼, 금성산업)을 찾아 진행한 ‘현장밀착형 릴레이 소통간담회’도 중소기업인들의 눈길을 끌었다.기업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직접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어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소통간담회에선 연결로와 진입로 등 산업단지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 조성 등이 건의됐다. 성주군은 이런 의견을 적극 수용해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이와 관련 배성호 성주군 기업지원과장은 “기업이 안고 있는 어려움과 문제점을 찾으려면 언제나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며 “앞으로도 우리 군 중소기업의 가려운 곳을 시원스레 긁어주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역발전 우수기업’ 선정하고, 해외 마케팅 지원‘지역발전 우수기업’을 선정하는 것도 성주군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다. “성주군 발전에 기여한 우수한 중소기업을 선정해 기업인의 자긍심과 사기를 높이겠다”는 것이 사업의 취지다.일자리창출 증가 실적, 관내 거주비율 및 증가율, 지역발전 공헌도, 사회봉사활동 실적 등이 선정의 주요 기준이다. 기업 관련 단체와 기관 등이 추천하고 심사를 진행한다.‘지역발전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면 △환경개선정비비(직원 복리후생 사업·위험시설 개보수) 1천만원 △중소기업운전자금 지원 우대(5억까지 융자 추천) △중소기업 인턴사원제 우선 지원 △지방세무조사 3년간 유예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이 사업을 추진하는 이병환 성주군수는 “우수 중소기업 육성책이 기업인의 긍지를 높여 실질적인 고용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중소기업의 해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도 성주군이 세운 2019년 주요사업의 하나다. 이를 위해 성주군은 지역 중소기업체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실시했고, 기업에 맞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세운 뒤 5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해외 마케팅 지원사업은 외국으로의 진출 가능성이 높은 분야 위주로 성주군 소재 수출 중소기업 8~10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이후 현지 바이어 섭외와 수출상담회 개최, 차량 임차, 항공료와 통역원 지원, 현지 간담회 개최 등을 지원한다.“국내 경기 침체,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어려운 국내외 여건 속에서도 시장 다변화와 수출 증대를 통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발걸음을 함께 하겠다”는 것이 성주군청의 의지다.◇ 현장 찾아 ‘중소기업’ 애로사항 듣고 해결책 고민지난 근로자의 날 이병환 군수는 선남면에 자리한 장갑 제조업체 송죽글러브(대표 정선희)를 찾았다. 이날 이 군수는 기업의 현황과 애로사항을 들은 후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임직원들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이는 ‘민생 현장 챙기기’인 동시에 ‘중소기업 기 살리기’를 위한 행보였다.이를 성주군청 기업지원과 관계자는 “국제 경기와 국내 경기가 더불어 침체된 상황에서 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송죽글러브는 PU코팅 장갑, 라텍스코팅 장갑, 특수 장갑 등을 제조하는 성주군의 중소기업으로 2017년 ‘지역발전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현재는 약 50억 원 정도의 매출액을 보이고 있다.평소에도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하는 이병환 군수는 “어려운 경제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지역 발전에 노력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기업을 방문함으로써 어려움과 건의사항을 직접 듣고, 군정 목표인 ‘경제가 발전하는 희망 성주’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성주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제조업체 카펙발레오(대표 김상태 외 1인)도 성주군이 방문한 기업 중 한 곳이다. 군청은 중소기업을 찾는 것이 “기업과의 소통을 위한 즐거운 강행군”이라고 말한다.대구에 본사를 둔 카펙발레오는 자동차용 동력전달장치 등을 제조하는 기업이며 매축액은 7천억 원 정도다. 관련 업계에선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지역의 중소기업이 살아야 성주군도 즐겁다. 경제 발전으로 희망이 커가는 성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기업이 성장하고 있는 현장 속으로 달려갈 것”이라는 게 성주군청의 다짐이다.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에도 성주군의 중소기업 방문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민선7기 1주년을 맞이해 성주군 발전에 힘을 보탠 우수 중소기업 2곳을 방문한 것.이 자리에선 지역발전 우수기업 인증서를 수여했고, 중소기업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각종 정책을 알렸다. 물론 현장의 살아있는 목소리도 들었다.이날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부건니트(대표 윤정환)와 가천산업사(대표 신용근)는 지역 일자리 창출, 생산 매출액 증가, 종업원의 관내 거주, 지역사회 공헌도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부건니트는 2004년 설립됐다. 니트 원단을 생산하는 업체로 지난해엔 연매출액 110억 원을 달성했다. 윤정환 대표는 성주군중소기업협의회장으로 재임 중이며, 지역 발전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가천산업사는 2000년 12월 생산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콘크리트 플룸 및 벤치플룸을 생산하는 업체로 지난해 연매출액은 37억 원. 신용근 대표는 성주군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로 성주 지역에 도움을 주고 있다.이병환 군수는 “인구 7만의 ‘도농복합 행복 성주 건설’을 위해선 무엇보다 우수기업의 관내 유치가 중요하다. 또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라며 “이를 위해 성주군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 기업 애로사항 제로(0)를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 3차 산업단지 조성, 기업운전자금 지원, 우수기업 환경개선비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확대해 갈 예정”이라고 기업인들을 격려했다.‘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성주군’이라는 슬로건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전병휴·홍성식 기자

2019-10-10

‘체험’ 있어야 관광산업이 산다

△ 산업관광에 체험 인프라는 필수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8월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해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 관련 산업 유산을 돌아볼 수 있는 ‘가볼 만한 산업관광지 20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선정된 20곳 산업관광지는 2016년부터 구축한 한국 ‘산업관광’ 자원 조사 결과 수집된 470여 개의 산업관광 시설 중에서 운영 프로그램의 매력도, 산업관광지 인지도, 주변 관광자원과의 연계성 등을 평가해 선정됐으며, 전통 향토 산업, 장수 기업, 근현대 산업유산, 세계적 강소기업, 첨단산업체 등이 포함됐다. 가볼 만한 산업관광지로 선정된 경기도 수원시의 ‘삼성 이노베이션 뮤지엄’, 고양시의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 충남 서천군의 ‘한산모시관’ 등은 사물인터넷교실, 어린이 반도체 연구소, 자동차 제조공정 체험, 테마별 차량 시승, 모시 염색 및 한지체험 등의 다양하고 차별화된 체험 프로그램으로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경북지역에서는 포항시의 ‘포스코 역사관’과 문경시의 ‘에코랄라’가 이름을 올렸으나 구미시의 산업관광지는 이 20곳 안에 들지 못했다. 한국의 산업 발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구미시가 ‘추천 가볼 만한 산업관광지 20곳’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산업관광의 필수 요건인 체험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과 증강현실이 만나다… 문경에코랄라에코(환경·생태)와 룰루랄라(즐긴다는 뜻의 의성어)를 합성한 에코랄라는 문경시 가은읍 석탄박물관을 포함한 18만6천㎡ 부지에 873억 원(국비 611억원, 지방비 262억 원)을 들여 조성됐으며, 국내 최초로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을 활용해 게임을 즐기는 야외 체험시설과 나만의 영화를 제작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개념의 실내전시 및 체험공간을 갖추고 있다. 특히, 에코타운은 방문객이 직접 배우, 감독이 돼 영상 촬영, 기획, 편집까지 체험할 수 있는 ‘에코스튜디오’와 친환경 정원 ‘에코팜’, 360도 써클비전과 입체효과로 백두대간을 감상할 수 있는 ‘에코써클’ 등 생태·영상 체험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창작동화 ‘거인의 숲’스토리를 활용한 증강현실(AR) 놀이터 ‘자이언트 포레스트’는 ‘거인의 언덕’, ‘신기한 수도꼭지’, ‘험난한 길’ 등 9개 테마 코스로 구성된 야외 체험시설로 어린이들에게 신나는 모험과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조성됐다.이 밖에도 석탄박물관은 폐광된 구 은성광업소를 활용해, 석탄산업의 역사 뿐 아니라 1963년 뚫은 은성갱을 통해 실제 갱도 체험도 가능하도록 했다. 또 폐석탄 더미 위에 조성된 가은오픈세트장은 옛 고구려 궁과 신라마을 안시성, 요동성 등으로 구성돼 연개소문, 무신, 광개토 대왕 등 유명 사극 촬영지로 사용됐으며, 제1촬영장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면 제2, 3촬영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 철의 역사 한눈에… 포스코 역사관포항시 괴동동에 건립된 포스코 역사관은 9천917㎡ 부지 위에 건축 연면적 3천636㎡, 전시면적 1천983㎡의 지상 3층 규모로 포스코가 창립한 1968년부터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거듭난 현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역사관은 역사관은 테마존, 창의관, 청암관, 세계 속의 포스코,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야외 전시장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인 삼화고로의 실물을 볼 수 있다.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를 이룬 포스코인들의 발자취를 체계적으로 정리함과 동시에 한국의 철의 역사도 전시하고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산 교육장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포스코 역사박물관은 2003년 개관 이후 2015년에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일일 평균 내방객 400여 명이 찾는 포항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체험 인프라 구축을 위한 라면박물관 건립 추진산업 기반시설과 기업 박물관, 체험관 등의 복합시설을 중심으로 견학과 체험, 기업문화 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업관광. 구미시의 산업관광 자원에는 아직 체험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못한 상황이다. 오운여상과 삼성전자의 스마트시티 홍보관은 해당 기업체의 여건으로 일반 관광객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마저도 떨어진다. 구미시는 인프라 부족을 해결하고 산업관광 체험 프로그램 확대를 위해 라면박물관 건립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2023년까지 100억 원을 들여 구미공단 폐공장이나 도시재생 지역에 라면 역사관과 체험관, 포토존, 어린이박물관 등을 갖춘 연면적 990㎡의 라면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으로, 시는 내년에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신청해 사업비 50%를 지원받을 계획이다. 구미시는 국내 유일의 라면박물관 건립과 더불어 라면거리 조성, 라면축제 개발을 통해 체류형 관광객 유입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구미시가 추진하는 라면박물관의 성공 가능성은 우리와 비슷한 라면 문화를 가진 일본의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다. 1994년 3월 6일 개관한 이 박물관은 사람이 별로 없는 신요코하마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주차장 건물을 개조해 지상 1층, 지하 2층으로 구성한 이곳에는 일본 각지에서 그 맛을 자랑하는 라면 전문가들이 모여 영업을 하고 있어, 각 지방마다 특색 있는 면과 수프를 맛볼 수 있다. 또 맛의 질을 높이기 위한 행사도 다양하게 개최하고 있어 박물관과 체험형 관광을 접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통령 생가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구미시는 올해 구미공단 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기념행사와 산업시설을 기반으로 한 산업관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구미에서 외지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박 전 대통령 생가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방문객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해 생가 방문객은 20만 1천34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78만 2천600명과 비교해 약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2014년 69만 77명, 2015년 51만 9천211명, 2016년 39만 2천566명, 2017년 26만3천102명으로 매년 10만명 정도씩 감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7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가 최근 다시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해도 연간 20만 명의 관람객이 과연 적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구미시의 대표 관광시설인 구미에코랜드가 1년에 36만 명이 방문한 것만 봐도 대통령 생가는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내년 10월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부지에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이 개관되면 박 전 대통령과 구미공단을 테마로 한 구미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역사 자료를 활용한 교육 학습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또 새마을운동테마공원도 이미 개장해 운영되고 있는 만큼 빅 전 대통령 생가를 중심으로 한 산업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0-10

가성비도, 맛도 ‘곧 뒤돌아 생각날’ 한결같은 인심이어라

장터국밥… 온천골가마솥국밥 성암골가마솥국밥간판 이름이 묘하다. ‘가마솥국밥’이다.‘가마솥국밥’이라는 제목은 일상적이다. 국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는 뜻이다. ‘가마솥국밥’은 일상적이면서 ‘중립적’이다. 변화하는 음식 중에서 묵묵히 자기 이름을 고집하는, 마치 화석(化石)같은 이름이다. 육개장, 대구탕, 따로국밥, 파개장, 해장국, 선지해장국, 장터국밥 등등 여러 종류의 국물 음식이 있다.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논쟁적’인 이름들이다. 대구시, 대구의 음식 관계자들은 오랜 기간, 육개장인가, 따로국밥인가, 장터국밥인가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가마솥국밥’은 한걸음쯤 떨어진 이름이다.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그저 “가마솥에서 끓여낸 국물”이다. ‘가마솥에서 끓여낸 육개장’인지, ‘가마솥에서 끓여낸 장터국밥’인지, 따로국밥인지 가리지 않는다.경산은 대구의 배후지였다. 어느 순간 대구의 팽창과 더불어 서서히 면적, 인구 등이 줄어든다. 원래는 평야가 넓고, 곡식 생산이 많았다. 상업의 중심지였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서고, 시장에는 반드시 음식점이 들어선다. 경산에 국밥집 등이 널리 유행한 이유다.‘온천골가마솥국밥’은 경산의 대표적인 국밥집이다. 굳이 따지자면 따로국밥이면서 장터국밥 스타일이다. 장터국밥은 대파, 무 등을 많이 사용한다. 육개장에 비해 고사리, 말린 토란대가 적다. ‘온천골가마솥국밥’의 국그릇에는 유독 대파가 눈에 띈다. 해장국은 ‘기능적’인 이름이다. 육개장, 장터국밥, 선지해장국, 따로국밥 모두 넓은 의미에서 해장국이다. 어떤 국물 음식이든 해장하기 좋으면 해장국이다. 해장국의 출발은 해장이 아니라 술국이다. 술을 마시고 이튿날 속을 풀어주는, 해장국의 역사는 짧다. 불과 50~60년 정도다.오늘날 해장국은 일제강점기 ‘술국’의 변형 버전이다. 서울 ‘청진옥’을 대표적인 해장국 전문점으로 여긴다. 손님의 대부분은 이른 아침 땔감을 지고 온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이른 새벽 ‘청진옥’에서 해장을 했을 리는 없다. 손님 상당수는 멀리 남양주 등에서 땔감을 지고 온,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른 아침, ‘청진옥’에서 술 한 사발과 밥 한 그릇, 그리고 술국으로 곤한 몸을 다스렸다.‘온천골가마솥국밥’과 ‘성암골가마솥국밥’의 국밥은 큰 차이가 없다. 대파를 많이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대파는, 국솥에 넣고 끓이면 단맛이 강하게 난다. 파의 푸른 부분은 향이 좋지만, 흰 부분은 단맛을 강하게 낸다.의외로 무의 사용은 제한적이다. 무는 계절 별로 맛이 달라진다. 여름 무는 지린 맛이 난다. ‘들척지근하다’라고 표현한다. 서리 맞은 가을 무는 단맛이 강하다. 두 집 모두, 무의 사용은 제한적이다.‘온천골가마솥국밥’의 열린 주방은 볼 만하다. 서너 명의 주방 인력이 가마솥을 중심으로 연신 국물을 퍼 나르고 있다. 가마솥 몇몇에는 당장 손님상에 퍼낼 국물을 끓이고 있고, 몇몇 가마솥에는 예비용 국물이 끓고 있다.‘육국수’는, 이 지역에서는 평범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 메뉴다.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는다. ‘성암골가마솥국밥’에도 육국수 메뉴가 있다.‘성암골가마솥국밥’은 떡갈비 등의 메뉴를 보충했다. ‘온천골가마솥국밥’에 비하면 개량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음식 맛도 ‘온천골가마솥국밥’은 오래전의 맛이 강하다. ‘성암골가마솥국밥’은 변화, 진화한 맛이다. 메뉴 구성이나 실내 분위기도 마찬가지. ‘성암골가마솥국밥’은 개량된 맛이다.수준급 한우… 옛진못식육식당 남산식육식당‘옛진못식육식당’의 메뉴판은 재미있다. ‘한우막구이’는 갈비살, 갈비구이다. 갈비살은 늑간(肋間)살이다. 갈비뼈 사이의 살이다. 길게 썬 갈비살이 특이하다. 메뉴 중에 가마솥국밥도 있다. 대파는 보이지 않고 콩나물과 무가 눈에 띈다. 이 지역 ‘가마솥국밥’과는 다르다. 육개장과 장터국밥 등에 대파를 많이 넣는 것은 이 지역의 특징이다. 한때 ‘파+육개장=파개장’도 유행 아이템이었다. ‘옛진못식육식당’의 국밥에는 대파가 많지 않다. 오히려 특징적이다.‘남산식육식당’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포다. 고기와 더불어 자투리 고기를 넣은 된장찌개가 좋다. ‘식육식당’이다. 경북 전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고기도 팔고, 간단하게 식사도 할 수 있는’ 가게다. 고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 수준급이다. 지육이나 부분육으로 가져와서, 식당에서 직접 손질한다. 입구에서 연신 고기 다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시 된장찌개가 강추.한 상 가득 정성이… 다정한정식 중남식당업력으로 따지자면 ‘중남식당’이 한참 선배다. ‘중남식당’은 오래된 노포다. 음식도 듬직하다. 변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불평도 있다. 음식 가짓수, 너무 많은 접시가 아니냐, 낭비하는 밥상이다, 음식이 싱겁다, 먹을 것은 별로 없는 데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다, 등등 평가가 요란하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경산에서도 외진 하양에 있지만, 꿋꿋이 자기 길을 걷는다. 묵묵히 “우리는 이런 밥상이다”라고 주장한다.음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 존재 이유가 있다. 옳다,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음식’이라는 자기 확신이다. 언젠가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거부. “손님이 더 많이 오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할 수 있는 정도를 성의껏 해낸다. 그뿐이다. 아무리 낭비하는 밥상이라고 해도 꾸준히 20여 가지 반찬을 내놓는다. 바뀌지 않는다. 줄여도 탓할 사람은 없다. 여전히 ‘중남식당’의 밥상이라고 고집한다.‘중남식당’의 상차림에 대해서는 얼마쯤의 ‘설명’이 필요하다,그릇 수로 헤아리면 약 20접시의 반찬이 나온다. 실제로는 더 많다. 나물 네 종류를 넣은 접시가 하나, 전을 네댓 종류 넣은 그릇이 하나 있다. 20종을 훨씬 넘긴다. 나물도 재미있다. 고사리, 무, 콩나물, 푸른 잎 채소 등이다. 이 나물 반찬은 제사상에 오르는 반찬과 같다. 흰색, 푸른색, 고사리의 흑갈색, 노란색 등이 조화롭다. 전도 마찬가지. 먹든 않든 전을 이렇게 다양하게 내놓는 것은 한때 유행했던 한정식의 개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오이 냉채, 갈치 한 토막, 도라지무침, 달걀찜 등도 마찬가지. 한때 화려했던 한정식 밥상의 쓸쓸한 그림자다.‘다정한정식’은 전혀 다르다. 정반대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치고, 바뀐다.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음식의 내용부터 가격까지 바꾸고 또 바꾼다. 간략하지만, 먹을 만한 음식들로 채운다. 전통 방식은 아니다. 이런 음식이 좋겠다 싶으면 바꾼다. 손님들의 작은 목소리도 듣고 기억한다. 아내가 주방을, 남편이 홀을 맡아서 운영한다. 부부가 조용히 의논, 개발하고, 곧 음식, 접대 등에 반영한다.음식의 종류와 내용도 마찬가지다. 지역 사정에 맞춘 음식값이다. 1만 원 선. 음식 수준? 가격을 상회한다. 수준급의 음식이다. 1만 원대의 가격으로는 더 이상의 밥상을 원하는 것은 결례다 싶을 정도. 가성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밥상이다. ‘중남식당’보다 반찬 가짓수가 적지만 흉이 될 정도는 아니다. 이미 수준급의 음식으로 단골도 제법 있다.굳이 ‘설명’을 하자면, ‘다정한정식’도 ‘경북 반가의 음식’ 틀을 일정 부분 보여준다. 묵이 있고, 두어 종류의 나물 반찬을 한 그릇에 담았다. 콩나물, 푸른색 잎채소, 가지나물 등이다. 구절판 변형 반찬이 있고, 제법 그럴듯한 반건 생선조림이 있다.특이한 부분은, 별도로 내놓는 돌솥밥 형태의 솥밥이다. ‘돌’은 아니지만 1인당 솥 하나로 정갈하게 지은 밥이다. 9월에 만나는 자연산 방풍나물도 특이하다. 방풍은 흔히 초봄에 먹는 거로 여긴다. 그렇지는 않다. 가을 방풍나물도 나름의 맛이 있다. 게다가 붉은, 자줏빛 줄기의 자연산이라면 정성스럽게 준비한 반찬이라고 여겨도 좋다.오랜 전통을 지키는 ‘중남식당’의 밥상에 보이지 않는 잡채가 ‘다정한정식’에는 등장한다. 잡채는, 일그러진 음식이다. 나물도 아니고 쫄깃한 당면을 볶은 음식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나물, 진짜 잡채를 내놓으면서 짝퉁 잡채를 또 내놓을 필요는 없다.한식 밥상은, 경산에서는, ‘중남식당’에서 ‘다정한정식’으로 진화 중이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는 아니다. 변화, 발전하는 모습이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10-09

한 템포 천천히… ‘예쁜 저수지의 도시’를 만나다

인간은 모두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상을 살면서는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늘은 높아지고 날씨는 선선해졌다. 경산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 속의 또 다른 자아(自我)’를 찾아보기에 좋은 여행지다.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반곡지, 환성사, 선본사를 찬찬히 걷다보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니란 걸 느끼게 될 것이다.충분히 영민했으나 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고자 열망했던 신라의 한 승려가 멀고 먼 당나라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 그 여정의 어느 하루. 동굴에서 잠들었던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신다. 타는 듯한 갈증을 풀어준 시원하고 달콤한 물. 그러나 해가 뜨고 주위가 밝아졌을 때 그 바가지는 사람의 두개골이었고, 물 또한 새카맣게 썩어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서 크게 돈오(頓悟·갑작스런 깨달음)한 승려는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경산시 남산면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에 들어서면서 떠올린 원효의 에피소드다. 우리는 이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를 설명할 때 곧잘 사용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추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진리를 깨우친 원효는 이후 당대 백성들의 ‘정신적 스승’이 됐다.“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원효의 가르침은 싸움을 멈추고 하나의 마음으로 화합해 더 높은 경지를 지향하려는 화쟁사상(和諍思想)과 함께 현재까지도 ‘동굴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등불이 돼주고 있다.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은 경산과 관계를 맺고 있는 3명의 성현(聖賢·학식과 인품이 모두 뛰어난 인물)이 남긴 정신적 유산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경산시는 원효와 더불어 ‘신라의 3대 문장가’로 불리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표기법 ‘이두(吏頭)’를 만든 설총,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까지를 함께 이곳에 모셨다. 원효, 설총, 일연의 삶과 사상적 궤적을 연대순으로 알기 쉽게 전시해놓은 삼성현 역사문화관은 조용히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보였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을 통해 원효가 겪었던 ‘동굴에서의 밤’을 드라마틱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도 이채로웠다.경산시 관계자는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을 “세 분 성현의 정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체험공간인 동시에 도시 생활에 지친 가족들에게 여유로운 힐링의 시간을 선물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성인 관람객들이 역사문화관을 돌아볼 때 아이들은 26만㎡의 널찍한 부지 위에 들어선 유아숲체험원, 야외공연장, 분수대, 이야기정원, 레일썰매장에서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깊이 있는 인생’을 살았던 역사 속 인물을 만나보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직은 맑은 가을 햇살 아래서 뛰노는 게 더 좋은 아들과 딸 모두에게 어울리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홈페이지 https://samseonghyeon.gbgs.go.kr/밥과 고기가 사람의 육체를 살찌운다면, ‘사색의 시간’은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몸의 키가 아닌 ‘마음의 키’가 큰 사람을 더 매력적이라 느낀다.남산면 반곡리에 동화 속 풍경처럼 자리잡은 ‘반곡지’는 아름드리 왕버들이 풍성한 머리카락을 풀고 관광객을 기다리는 저수지다. 이곳을 느린 발걸음으로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더없이 낭만적이다.경산에 가겠다는 기자의 말에 지난봄 반곡지를 다녀온 후배 하나가 이런 말을 들려줬다.“그늘에 앉아 물에 비친 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 세계가 현실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겉모습만이 아닌 자신의 마음 속 풍경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려고 애쓴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터. 기자 역시 떨어지는 나뭇잎이 둥근 파문을 일으키는 반곡지 수면을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평소엔 가져보기 힘든 귀한 사색의 시간이었다. 반곡지는 청송군 주산지와 더불어 아름다운 시골 풍광을 간직한 최고의 사진 촬영 장소로 이름이 높다.경산시민들은 “농촌마을의 한적한 모습과 연못, 여기에 왕버들과 짙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봄부터 겨울까지 일년 내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라고 반곡지를 자랑한다.그럴 만도 했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원체 풍경이 빼어나 영화나 TV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물빛을 바라보며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영남대학교 부근 남매지와 대구대학교 앞 문천지도 반갑다. 경산은 ‘예쁜 저수지의 도시’라 불러도 좋은 곳이다.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더위에 힘겨워하는 계절이 가고, 산 속 나무가 붉고 노란 옷을 갈아입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이런 시기에 조그만 사찰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어본다는 건 인간인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 중 하나가 분명하다.경산시 하양읍 팔공산에 자리 잡은 환성사는 신라 흥덕왕 때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한 절이다. 고려 말기에 소실된 것을 1635년 중건했다고 한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매력을 지닌 사찰로 보였다. 일주문을 지나면 확인할 수 있는 ‘3단 형태의 대지’가 특히 이색적이었다. 대웅전과 수월관, 심검당과 요사체가 ㅁ자 모습을 이루는 환성사는 수미단, 석탑, 석등, 부도 등의 유물이 적지 않아 경내를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자가 환성사를 찾아간 날은 보슬비가 내렸다. 그 비가 선물한 고요함과 평화로운 감정이 도시에서 받은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시원스럽게 날려줬다.팔공산 관봉 아래에 위치한 선본사 역시 역사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빼놓을 수 없는 경산의 볼거리다. 491년 창건된 이 절에는 ‘진정한 효(孝)’의 의미를 알려 주는 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우뚝 서 있다. 높이가 4m를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의 높이가 효심의 진성성보다 높을 수 있을까?이외에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삼층석탑의 미려함도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가족과 함께 팔공산을 찾아 등산과 사찰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함께 맛보는 여행자들은 약수 한 잔에 오르막길을 걸어온 힘겨움을 어렵지 않게 떨쳐 내고 있었다. 오랜 시간 환성사와 선본사에서 자리를 지킨 유물 앞에서는 아이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도 볼 수 있었다.만산홍엽(滿山紅葉),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인 10월. 유서 깊은 경산의 사찰들을 찾아 마음 속 묵은 때를 씻어내고자 하는 이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주말의 가을 산행을 고대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홍성식·심한식기자

2019-10-09

‘색깔있는 관광도시’로의 도약… 생각의 틀을 바꿔라

구미는 전자, 공업을 주축으로 한 산업도시로 분류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생긴 오류가 역사와 문화, 관광 자원이 약하다는 것이다. 구미가 가진 단점을 장점으로 특화해 활력 넘치는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지금, 구미의 전략은 다름 아닌 산업관광도이다.올해 관광발전 원년으로 정한 시는 근대 산업 유산으로 지정된 오운여상, 수출산업의 탑, 구미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스마트시티 홍보관, 5공단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구미 에코랜드 전망대 등을 활용해 구미만의 특화된 산업관광으로 개발·운영할 계획이다. 산업관광의 특성과 구미시만의 산업관광이 무엇이며 이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관광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을 관광 자원이라 하며, 이러한 관광 자원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관광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관광산업이다. 관광산업은 ‘보이지 않는 무역’, ‘굴뚝 없는 공장’이라도 불릴 만큼 전략 산업으로 육성되고 있다. 관광산업은 이윤뿐만 아니라 고용 증대로 인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각 지자체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도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산업관광은 큰 맥락에서 관광산업의 한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산업관광은 1, 2, 3차 산업현장을 관광대상으로 하며, 산업과 참여 기업, 지역 경제 활성화 기여라는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산업관광은 견학과 직업체험, 제조 공정 체험, 기업 기술 체험, 진로탐색, 교육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결국 산업관광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그 산업의 특성과 기업을 함께 홍보하면서 주변의 다른 관광자원과 연계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구미의 산업관광 자원 - 오운여상과 수출산업의 탑경북도는 2013년 전국 최초로 ‘경북도 향토뿌리기업 및 산업유산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옛 모습을 간직해 산업 역사·문화적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산업유산’으로 지정해오고 있다. 구미시에는 오운여상(2013년 지정)과 수출산업의 탑(2018년 지정) 등 2곳이 산업유산으로 지정됐다. 1979년 3월 코오롱 구미공장 부지 안에 개교한 오운여상은 당시 어린 여자 직공들의 교육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됐다. 공장 내 교지 667평, 체육장 시설 690평, 난방시설을 갖춘 보통교실 4실, 특별교실 6실, 시청각실, 도서실, 음악실, 미술실, 상담실, 양호실 등을 갖췄다. 교장 1명, 교감 1명, 교사 8명으로 신입생 280명을 받았다. 입학생들은 재학 중 학비를 부담하지 않았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다. 개교 20년 만인 2000년 2월 마지막 졸업생 24명을 배출한 뒤 문을 닫았다. 20년간 총 3천11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학교는 당시 어린 여성 직공들이 3교대 작업을 하며 학업에 대한 열망과 꿈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구미국가산업단지의 관문인 광평동 로터리 가운데 위치한 ‘수출산업의 탑(높이 40m, 지름 18m)’은 1975년 구미공단 최초로 1억불 수출 돌파를 기념하기 위한 탑으로 1976년 9월 14일 준공됐다. 탑의 전면 중앙부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휘호가 새겨져 있다. 구미공단은 1973년 한국신영과 한국지월이 콘덴서 3천만 원 상당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1974년 7천9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이듬해인 1975년 공단 조성 이후 첫 1억 달러 수출 돌파에 성공했다. 당시 1975년은 전 세계가 오일쇼크로 불황을 겪고 있었던 때여서 구미공단의 수출 1억 달러 돌파는 근대산업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구미 산업관광의 현주소시는 산업 유산으로 지정된 오운여상, 수출산업의 탑, 구미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스마트시티 홍보관 등을 구미만의 산업관광 자원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조성 중에 있는 구미5공단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에코랜드 전망대 등을 주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오운여상의 경우 코오롱 구미공장 내 위치해 있어 일반 관광객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시티 홍보관 역시 일반 관광객들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시는 구미시티투어를 활용해 근대산업유산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수시투어로 진행되는 구미국가산업단지 및 근대산업유산 투어는 일요일과 법정공휴일을 제외한 날에 단체 25인 이상 신청하면 원하는 날짜에 투어가 진행된다. 신청은 전화접수(구미문화원 054-482-4452, 시청관광진흥과 054-480-2662)만 가능하다. 코스는 시청 또는 구미역에서 출발해 경북창조경제센터, 수출산업의 탑, 오운여상, 공단전경 투어, 삼성전자 스마트시티 홍보관, 전자정보기술원, 해마루공원 전망대, 구미에코랜드 전망대 등이다. 구미시가 추진하고 있는 산업관광이 시티투어를 통한 견학만 가능한 상황이기에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구미만의 관광자원… 생각의 틀을 바꿔야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산업단지를 보유한 구미시는 반도체를 기반으로 전자산업을 이끌어 온 최첨단 IT산업도시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미에 산업관광 자원은 사실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이다. 그럼에도 구미의 산업관광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많은 이들은 구미시가 관광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업관광 자원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구미의 산업과 공단을 이야기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오운여상, 수출산업의 탑 등과 연계하는 산업관광을 하지 않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산업관광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 견학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시는 그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그중 하나가 박정희로에 조성된 ‘철도변 도시숲길’이다. 이 숲길은 박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상모동에서 구미면까지 20리(약 8㎞) 거리를 기찻길을 따라 통학하던 거리에 조성됐다. 박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 추억을 담은 조형물 4개도 설치돼 있다.한때 ‘책을 좋아한 소년’의 조형물은 머리를 쓰다듬으면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숲길에 스토리가 입혀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에 맞춰 ‘박정희 대통령 등굣길 걷기체험’행사를 개최했다.이뿐만이 아니다. 시는 관광상품화를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 테마밥상을 당시 청와대 조리사의 고증을 거쳐 5종으로 개발했다. 보리밥 위주의 보릿고개 밥상과 쌀 다수확을 이룬 통일미 밥상,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혼분식밥상, 새마을운동을 독려한 새참상과 새마을도시락 등이다. 당시 대통령의 밥상치곤 의외로 소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이 모든 관광자원은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당시 일단 비판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여론이 득세하기도 했지만, 과연 시도 구미만의 산업관광 자원을 지킬 의지가 있었는지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 여론은 여전하다. 하지만 장세용 시장의 말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업적과 과오는 구분돼야 하며, 한국 근대산업에 대한 업적은 부정해선 안된다. 시가 산업관광 성공을 위한다면 관광자원에 대한 생각의 틀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0-09

낮엔 한려수도의 눈부심이, 밤엔 다리 밝히는 황홀한 조명빛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띄운 곳인 사천만에 자리를 잡은 사천시는 경남의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상으로는 여수시부터 거제시까지 이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중심에 있다. 인구는 11만5천여명이며, 시 중에서 면적은 그리 크지 않은 약 399㎢로 전국 63개 시 중 58번째로 작은 도시다. 그러나 작은 규모가 단점은 아니다. 사천은 지형 요건이 매우 뛰어난 편인데, 시의 동과 남은 고성군과 남해군을 경계해 와룡산과 바다에 걸쳐 있고 서북은 진주시와 하동군이 경계하며 지리산이 뻗어내린 산악으로 형성돼 있어 해안평야가 남북으로 전개돼 있다. 또한 덕천·사천·죽천·백천·곤양천이 흘러 수리이용이 높고 토양은 비옥하며,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어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다. 사천시는 이 외에도 한려수도의 중심 기항지이며 서부 경남의 관문 항구로서 교통의 요지이자 수산물 집산지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온화해 농수산업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은 전략산업인 항공우주산업과 더불어 사천시가 남해안 해양관광의 거점 도시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에서 대상을 차지한 삼천포 대교와 연인들로부터 가장 가고 싶은 곳 1위를 차지한 삼천포 대교공원 등을 중심으로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룡산, 각산을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체험거리가 넘쳐나는 해양 관광의 파라다이스다. 그리고 이러한 관광의 중심에는 사천바다 케이블카가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사천 관광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2018년 4월 개통된 이래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어 사천시가 해양관광 거점도시로 발돋움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사천시의 바다케이블카는 통영과 여수케이블카를 합쳐놓은 국내 유일하게 바다와 산을 동시에 지나가는 명품 케이블카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일단 사업 현황을 살펴보면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지난 2015년 12월 설치사업에 들어가 2018년 7월 4일 준공했으며 사천시 동서동(초양도∼각산) 일원에 위치해 있다.국비 50억, 도비 100억, 시비 448억 총 59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2.43㎞의 길이에 정류장 3곳, 캐빈 45대가 운영 중이다. 왕복 시 운행시간은 20∼25분정도 소요된다. 사천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 6월말까지 128만2천123명의 탑승객이 다녀가 186억여원의 이용료 수익을 냈다.사천시가 내세우는 사천바다 케이블카의 장점은 무엇보다 ‘산-바다-섬’을 잇는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라는 점이다. 즉 우리나라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산 아니면 바다를 잇는 단조로운 코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섬(초양도)과 바다와 산(각산)을 잇는 3개 정류장(대방, 초양, 각산)의 승하차 시스템을 적용해 더욱 역동적이고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안전성 역시 확보했다. 10개월에 걸쳐 풍동(風動)실험을 실시한 후 자동순환 2선식을 채택해 한겨울의 매서운 바닷바람에서도 흔들림을 최소화한 든든한 안전장치로 설계됐고, 순간 돌풍과 강풍 등 돌발상황을 대비해 모든 지주에 풍향, 풍속 계측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한 구조시스템도 마련했다. 전력 공급이 끊기면 비상 엔진으로 구동용 케이블을 돌려 비상 운행하고, 자체 모터를 가진 특수 구조차가 캐빈에 직접 접근해 승객을 안전하게 구조하게 된다.모든 구간이 무진동으로 운행된다는 점도 사천바다 케이블카의 특징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지지하고 있는 철탑부분을 통과할 때마다 덜컹거리는 진동으로 공포감을 느끼는데, 사천바다케이블카는 모든 구간이 무진동으로 운행돼 케이블카를 타는 내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직선코스(국내 대부분의 케이블카)가 아닌 대방역사에서 각산역사로 올라가는 구간이 초양역사와 대방역사 구간보다 약 26.6도가 꺾여 더욱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며 이 무진동의 묘미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그 밖에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쾌적한 캐빈의 내부 환경을 고려해 10인승 중형 캐빈을 이용하고 있으며 최대 속도 6m/s로 시간당 최대 1천300명이 이용할 수 있다. 크리스탈 캐빈은 총 45대 중 15대로 바닥이 투명 유리로 돼 있어 816m 바다 구간을 최고 높이 74m(아파트 30층 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와 연계된 사천 관광사천바다 케이블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는 다른 케이블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이자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자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71개의 무인도와 29개의 유인도가 있다. 사천바다 케이블카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사천지구에 속해 있고, 이러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 선착장 역시 케이블카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사천 8경 중 제1경인 창선·삼천포대교도 케이블카를 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케이블카 선로 자체가 이 두 대교를 따라 건설됐기 때문이다. 창선·삼천포대교는 사천시의 대방과 남해군의 창선을 연결하는 연륙교로 우리나라 최초의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다. 낮이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눈부심이, 밤이면 대교를 밝히는 아름다운 빛의 조명이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케이블카가 각산 정상에 도착하면 각산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약 해발 400m에서 사천시와 삼천포대교,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횃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수단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는 곳인 각산 봉수대도 전망대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봉수대는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 놓은 곳으로, 과거 횃불과 연기로 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던 군사 통신 수단으로 삼국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산 봉수대는 각산의 정산인 해발 408m의 고지에 있으며 수많은 자연돌을 모아 둥그렇게 만든 형태이다.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남해 금산에 있는 구정봉의 연락을 창선 태방산을 거쳐 받았다. 사량도의 공수산 봉수를 고성 좌이산 봉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사천시 관광진흥과 박용국 관광시설팀장“충분한 관광수익 올리는친환경 시설로 인정받아 ”- 사천바다케이블카만의 장점은.△바다구간 길이가 820m다. 즉 한려해상국립공원 위를 횡단한다. 이후 각산정류장까지는 산을 올라가기 때문에 바다와 산을 모두 지나갈 수 있어 누가 봐도 인프라가 뛰어나다. 사업비를 많이 들인 만큼 케이블카도 자동순환 2선식으로 지어져 매우 안전하다. 또한 바다 구간에는 지주를 박지 않아 환경적인 면도 고려했다. 1년 반 정도 운행하는 기간 강풍으로 인한 예방적 차원에서 잠시 케이블카를 세웠던 것 등의 조치를 제외하면 사고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사천 관광에 많은 도움이 되나△많은 도움이 된다. 케이블카가 건설되고 나서 재래시장 등 지역 상인들이 관광객들이 많아졌다고 몸소 느끼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워낙 방문객이 많기 때문에 숙박을 하지 않고 식사한 한 끼 해결하고 가더라도 엄청난 규모다. 케이블카 주변 땅값도 많이 올랐다.- 사업 추진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환경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이슈가 있었으나 큰 반대가 있지는 않았다. 기존에 개발이 많이 됐던 곳이라 오히려 케이블카를 설치하길 주민들이 원했다. 바다쪽에 지주를 박게 된다면 바로 어민들이 반대에 나섰겠지만, 지주를 박지 않는 쪽으로 건설을 해서 이 문제도 해결했다.- 사업을 시작하는 지자체에게 한마디△케이블카는 누가 봐도 공해 시설이라고는 볼 수 없고 기본 목적이 운송이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주택가를 지나는 곳이 많다. 주민들이 노파심에 많은 걱정을 하는 것으로 안다. 지역에 대한 발전 등을 생각하면 대의적인 측면에서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도 이를 적극 어필해야 한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10-07

“풍류는 한민족 태동 시점부터 있었던 사상적 기반”

지난 5일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에선 풍류도(風流道)의 개념과 사상적 변화 과정, 화랑의 역할 등을 토론하는 학술발표회가 열렸다.이날 정형진 신라얼 문화연구원장은 ‘풍류의 개념과 풍류도의 역사성’, 풍류연구가 한지훈 씨는 ‘풍류도는 한국음악의 뿌리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가졌다. 이날 발표회는 강석근 국제언어문학회장이 좌장을 맡아 이형우, 김봉률, 서정매, 박남수씨가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주제발표 및 토론회 내용을 요약했다.정형진·신라얼 문화연구원장정형진 ‘풍류의 개념과 풍류도의 역사성’풍류도가 삼교를 포함할 정도로 훌륭하다면그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풍류의 정확한 개념과 역사적 연원에 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최치원이 남긴 ‘난랑비서’에 의존한다. 하지만 최치원은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그것을 풍류라 한다’고 규정했을 뿐 ‘풍류’의 사상적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다.상고의 역사 흐름 속에서 풍류도의 이념이 어떻게 작동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또 풍류도가 어떤 맥락 하에서 신라로 들어왔고, 부활했는가를 설명하는 것 역시 놓칠 수 없는 문제.최치원은 ‘풍류도’를 ‘현묘지도’라 했다. 현묘한 도로 규정한 풍류도의 핵심 개념은 과연 무엇일까. 풍류의 개념에 대한 해명과 풍류도가 공동체의 이념으로 작동했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조상들이 만들어 온 역사공동체가 어떤 이념과 가치를 추구했기에 풍류도와 같은 위대한 사상을 잉태하고 전달해 왔을까? 그들이 펼치던 공동체가 삼교(유·불·선)를 다 포함할 정도로 훌륭한 이념과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우리 주변에 민족공동체의 역사 여정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풍류’는 한민족이 태동하는 시점부터 있었던 사상적 기반이었다. 우리 고유의 자랑스런 문화 전통이다.풍류도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이라면 그것의 고대 언어는 순순한 우리의 토착어였을 가능성이 높다. 풍류는 그 토착언어의 한자식 표현일 것이다.풍류라는 개념을 표현했던 원래의 토착어가 무엇이고 그 핵심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는 언어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상적·철학적으로 접근해 분석하는 것이다.풍류도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의문은 한국학 연구에 있어 핵심적인 사안이다. 풍류도의 이해는 학계의 일반 통념과 전형적인 동아시아 문화사의 흐름을 설명하고 이해함에 있어서도 큰 파괴력을 지닌 사안이다.‘풍류’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성령(聖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그 흐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생명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화랑의 삶으로 인식했다. ‘풍류도’는 근원적인 우주와 현상계 상호간의 작용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도였다. 풍류는 근원적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기(氣)인 동시에 마음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된 한자어라고 생각한다.한지훈·풍류연구가한지훈 ‘풍류도는 한국음악의 뿌리인가’우리는 독자적인 음악예술을 발전시켜 왔다그 음악철학과 미학의 바탕이 ‘풍류도’ 아닐까음악에 대한 본질 탐구는 동서양 할 것 없이 이미 고대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에는 19세기 후반 음악학(音樂學)이 정립되면서 근대적 의미의 학문으로 태동되었지만, 동양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중국의 경우 서양 못지않게 나름대로의 정치(精緻)한 철학적·미학적 음악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음악문화 영향을 삼국시대부터 받아왔고, 그들의 음악사상이 우리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독자적인 음악철학·미학을 바탕으로 음악예술을 발전시켜 온 것이 분명하다. 그 바탕이 바로 우리의 전통사상인 풍류도라고 생각한다.풍류도는 천년왕국 신라 고유의 종교, 예술, 철학, 문화의 근거이자 결정체다. 표면적으로 신라 왕실을 지배한 것은 유교·불교지만, 대다수 신라인들의 심성과 세계관, 가치관을 심층에서부터 널리 지배한 것은 풍류도다. 풍류도는 도교와 유교,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런 요소를 품고 있었던 신선사상과 샤머니즘이 하나로 융합된 신라의 독특한 세계관이다.‘풍류’라는 말은 예술, 그 가운데서도 한국의 전통음악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풍류라는 용어는 삼국시대 이후 줄곧 사용돼 왔다. 이토록 오랜 동안 풍류 개념이 한국인의 심성에 이어져 왔다는 것은 한민족 특유의 어떤 심미관 형성 근거이기도 하다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 전통음악의 철학적·미학적 단서임을 뜻하지 않을까?‘풍류도’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면, 풍류라는 용어가 현재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전통음악의 철학적·미학적 배경임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풍류도는 고대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했던 철학이자 신앙의 바탕이었다. 한국음악의 뿌리 역시 그것에서 오지 않았을까란 가설을 세워본다. 그리고 이를 풍류, 향가, 무교, 금도 등과의 연관관계를 통해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자 했다.풍류도는 철학사에서 사라졌지만 그와 별개로 ‘풍류’라는 용어가 한국 전통음악계에서는 지금도 상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상용되는 풍류라는 용어가 풍류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국음악의 뿌리는 풍류도라고 본다.다만 음악적 측면에서의 풍류와 달리 전통사상으로서의 ‘현묘한 풍류도’는 무교(토속신앙)적 요소를 통해 ‘접화군생’의 경지까지 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하겠다.종합토론“고대에 한정되지 않고 풍류도의 흔적 찾아주길”△이형우(한양대 교수)풍류에 관한 논문 대부분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풍류라는 용어풀이에 우위를 두고 어원적 정의에서 시작해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관련 자료와 근거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해석이 분분하다.풍류(風流)에서 바람은 우주의 기운이자 생명력을 말한다. 없는 듯하지만 있고, 끊긴 것 같지만 이어지며 약한 것 같아도 강하다. 바람을 가장 먼저 느끼는 대상은 나무와 새다. 신라 왕관도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흔들림, 곧 바람을 상징한다.‘풍류의 개념과 풍류도의 역사성’ 발제는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고 있지만 사실 이를 뒷받침할 사료는 충분치 않다. 주장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한다.이 논문에서는 풍류를 우리 민족의 자부심으로 평가했다. 함께 모여서 음주가무하며 평등사회를 구현해 간 우리 민족의 진면목이자, 오늘날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한류의 뿌리로 본다. 그러나 신화와 역사를 구별하지 않거나 사실과 의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문헌상의 맥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개념 혼동은 사고 체계의 무질서로 이어질 수 있다.△김봉률(동국대 교수)서양문학 전공자로서 풍류도에 대한 문헌적, 고증적, 민족고유성보다는 인류 보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봤다.어원적으로 보면 풍류도란 인간의 육체와 구별되는 것으로 영혼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추상적 개념이 생겨나 종교가 태동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바람이나 숨결에서 비롯된 정신은 감각적 인지능력과 이성적 사고로 이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관적이고 영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전자는 육신에, 후자는 영혼에 뿌리를 두고 있다.살아간다는 것은 곧 영적인 성장을 말한다.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스스로 얼마나 성장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차츰 직관적이고 영적인 지혜보다 감각적 인지능력과 이성적 사고가 중심이 되면서 영성을 잃어버리고 영혼 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풍류도는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연구자들이 고대에 한정되지 않고 동학, 대종교 등에서도 그 흔적을 적극적으로 찾아주길 바란다. 특히 가부장 이전의 사회에서 풍류도에 관한 중요한 하나의 축으로 여성의 영성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서정매(동국대 외래교수)풍류도를 한국음악의 뿌리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풍류도에 대한 해석이 지금도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고 명백한 논증이 없는 것과 결부된다.음악은 관념이 아니라 실체다. 음악에는 멜로디가 있고 리듬이 있다. 귀로 선율을 듣고 심장으로 리듬과 장단을 감지하며 가슴으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한국음악과 미학’이라는 발제에서는 한국음악에 담긴 정신적, 철학적, 사상적 측면을 밝히고자 했다. 그렇다면 유교와 불교, 도교, 무교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요소들을 풍류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아울러 화랑도에서 수용한 유교와 불교, 도교, 무교에 어떤 공통적 요소가 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풍류적인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내재된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박남수(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풍류도와 한국음악의 연관성을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해 볼 수 있다.화랑도는 신라 사회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문화현상으로, 상열가악(相悅歌樂)에서 향가를 노래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음악의 기원을 풍류도에서 찾는 것은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본다. 하지만 풍류도를 삼교가 유입되기 이전의 고유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아울러 향가에는 주술적인 성격이 보이는데 이를 무교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화랑도에 무교적인 성격이 더해진 것은 조선 전기 유학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 부분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과 해석이 요구된다.마지막으로 옥보고가 지은 30곡 가운데 국가 이데올로기로 여길 만한 곡명은 보이지 않는다. 옥보고가 금도(琴道)를 전승한 측면은 인정되지만, 오히려 진성왕 2년에 경문왕대 국선들이 왕의 미덕을 칭송한 노래를 짓고 대구화상(大矩和尙)이 곡조를 붙여 향가로 지은 ‘현금포곡’, ‘대도곡’, ‘문군곡’이 오히려 당대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적합하다고 본다./홍성식·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2019-10-06

울릉의 과거, 현재, 미래… 척박하지만 낭만적이고 호화롭다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게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별도 달도 다 따다 주겠다는 약속, 그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 터질 듯이 충만한 사랑의 고백! 이 아름다운 세레나데는 1970년대에 수많은 연인들을 꿈결 같은 낭만으로 인도했다. 현실의 삶이 아무리 남루해도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받는 이들의 거주지는 끝내 천국이다. 그러니까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는 ‘터질 것 같이 뜨거운 사랑’의 복음성가인 셈이다.저 노래를 부른 가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그가 울릉도에 산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곳이 ‘천국’인 줄은 몰랐다. 울릉도 북면 현포리 61-2번지에 천국이 있다. 거기 전설적인 포크 가수 이장희가 산다. 지난 2004년, 울릉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현포리 산기슭에 정착한 그는 자신이 가꾼 동산을 ‘울릉천국’이라고 이름 붙였다. 너른 잔디밭과 알록달록한 꽃덤불, 해와 구름을 되비추는 맑은 연못, 그리고 울릉도의 하늘과 바다가 있는 이곳 울릉천국에 온 순간, 나는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천국이 맞구나,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그런데 사실 이장희가 이곳을 ‘천국’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래에 평리침례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보다 높은 곳에 있으니 천국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불쾌하게 여기진 않을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천국과 교회는 서로 정답고 다정하게 이웃해 있다. 작은 적벽돌 건물에 흰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쁜 교회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김해용 감로의 순교기념비가 놓여 있기도 하다.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에서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동화책과 만화영화가 묘사하던 풍경 그대로 천국은 나를 반겨주었다. 평화로운 적막 속에서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불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느덧 조화로운 화음을 이루고, 어디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단순히 깨끗한 자연과 수려한 경관 때문에만 천국으로 호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2016년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들어섰다. 이장희가 자신의 땅 500평을 기증하자 경상북도와 울릉군에서 예산을 지원해 공연장과 카페, 전시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음악과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음의 천국’, 아트센터는 울릉도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사색과 휴식을 제공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이장희는 통기타를 메고 종종 공연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을 구경 온 관광객들과 정겹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은 부재 중, 파란 지붕을 얹은 소박한 집 마당엔 나비 한 마리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울릉천국에서 내려와 나리분지로 향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 지대다. 1만여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성인봉 북쪽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며 형성된 이곳 분지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성인봉까지 비교적 빠르게 오를 수 있고, 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분지의 장엄한 광경으로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할 수도 있다. 울릉도 사람들은 해발 400미터 고지대의 화구 분지에 마을을 이뤄 삼나물, 더덕, 마가목, 참고비, 명이나물 등을 재배하는데 이는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지질학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은, 울릉도가 자랑할 만한 명소인 것이다.울릉도가 본격적으로 ‘사람 사는 섬’이 된 것은 1884년 고종이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해 백성들에게 이민을 장려하면서부터다. 물론 1,500년 전 고대국가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긴 했지만 조선조가 들어선 이후 수백 년 동안 빈 섬으로 방치되었다. 19세기말 개척민들이 섬에 왔을 때, 오랜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산야에 자생하는 섬말나리 뿌리를 캐먹어 연명하는 것을 보고 ‘나리골’이라 부르기 시작한 게 나리분지 명칭의 유래다. 먼 옛날 화산 폭발을 잊었는지 나리분지는 평온하기만 했다. 분지를 둘러싼 산들 역시 짙푸른 녹음으로 화산의 기억을 감추고 있었다. 분지를 조금 걷다가 나리너와투막집과 억새투막집 앞에 멈춰 섰다. 투막집은 울릉도 개척 전 이곳 토착민들이 살던 재래 가옥 형태인데, 우데기로 외벽을 두른 것이 특징이다. 1940년대에 옛 형태대로 지어진 집이 아직까지 남아 울릉도의 중요한 문화재가 되었다.투막집 마당을 거닐며 이곳에 살았을 옛 사람의 어느 하루를 떠올려 본다. 뒤주에 얄팍하게 쌓인 쌀을 불려 술을 담그면, 누룩이 별을 흉내 내며 허연 쌀물 위에 어리비치다가 귀뚜라미 울음 먹고 달짝지근한 빛으로 찰랑였을 것이다. 술맛에 마음이 좋아진 그는 부엌을 함부로 구르던 개다리소반 절름발에 못을 박고, 반짇고리로 구멍 난 속곳들을 기우고, 탁주 한 사발에 고인 소낙비와 우레와 폭설이 대견하여 눈시울이 젖었을 것이다. 뒤란을 흔드는 바람에 잠 설친 고양이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막사발 내려놓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면 투막집 툇마루에서 홀로 탁주 마시던 이의 텅 빈 마음에 외로운 달빛이 내려와 앉았을 것이다.나리분지와 투막집을 탁주 같은 햇살 속에 남겨둔 채 북면 추산리 바닷가로 향했다. 추산 해변에서는 울릉도의 가장 아름다운 해상 바위로 꼽히는 코끼리 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이곳 추산 절벽에 마치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또 하나의 볼거리가 생겼다. 세계적인 건축가 김찬중 교수는 송곳산 옆 벼랑 위에 해와 달과 소용돌이를 형상화한 하얀 건축물을 설계했고, 이 건물은 완공된 후 영국의 유명 건축잡지 ‘월페이퍼’에서 선정한 ‘2019년 세계 최고의 호텔’이 되었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철근을 뼈대로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은 신소재인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한 덕분인데, 초고강도 콘트리트를 특별 제작한 거푸집에 한 번에 부어 통째로 건물을 완성시켰다. 세계 건축계 및 콘크리트 학계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힐링스테이 코스모스리조트는 펜션형과 풀빌라형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침대방과 온돌방, 패밀리룸 등으로 구성된 펜션형은 모든 객실에서 코끼리 바위 너머로 붉게 밝혀드는 석양의 황홀한 축제와 수평선 위로 은빛 달이 전설 고래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야외 테이블과 월풀 욕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방 내부는 천정이 둥글고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아침식사가 무료로 제공되며, 1박 가격은 4인 기준 40~50만원이다. 리조트 측은 “땅과 하늘의 기운, 음양의 조화 속에서 최고의 휴식을 누릴 수 있다”고 펜션형 객실을 소개하고 있다.그런데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도 없는, 베일에 싸인 풀빌라 때문이다. 코스모스리조트의 풀빌라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봐야 할 곳”이라는 이른바 ‘버킷리스트’ 전략과 ‘신비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이곳 풀빌라는 4인 기준 1박 숙박요금이 1천만원이라고 한다. 울릉군청 관계자들에게 들은 내용 또한 풍문과 일치했다. 환상적인 경관과 최고급 시설은 물론 서울 유명 호텔 요리사의 출장 요리까지 ‘맞춤형 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좋기에 하룻밤 묵는 데 천만원이나 하는지 정말 궁금해 죽겠다. 아마 나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평생 해소하지 못한 채 저 우주로, 캄캄한 코스모스로 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실천하기 위해 패가망신을 무릅쓰고 예약 전화를 걸 수도 있다. 그때 울릉도는 내게 진정 ‘울릉천국’이 되리라. 그러나 부디 미래의 그녀가 이 글을 읽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시인 이병철

2019-10-06

보고 듣는 단순관광은 가라… 축제·체험 가득한 고령으로

축제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흥겨움의 시간’을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우리들은 이 흥겨움의 시간을 통해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고령군은 경상북도의 유교문화권, 경주 일대의 신라문화권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작지 않은 ‘가야문화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대가야의 도읍지였던 고령은 색다른 축제와 여기에서 펼쳐지는 각종 전통·생활체험으로도 유명한 곳이다.해마다 적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고령을 찾아 엿 만들기, 딸기 따기, 두부 만들기, 도자기 빚기 등을 경험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높이고 있어 주목된다.고령군청은 “역사와 문화, 관광과 체험을 결합시킨 미래형 복합문화공간을 더욱 많이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다. 이를 통해 ‘명품 관광도시’로 도약하겠다는 복안을 세운 것이다. ‘보고 듣는 단순한 관광’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관광 프로그램 개발에 진력하고 있는 고령군의 축제와 깔끔한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대가야의 대표적 관광지들을 아래 소개한다.◇ 가을과 봄, 고령을 화려하게 수놓는 축제올해로 9회를 맞는 ‘왕릉길 걷기 대회’는 건강과 즐거움을 함께 찾고자하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행사다. 또한 무르익은 가을을 맞이하는 즐거운 축제다. 쌀쌀한 바람이 조금 불어온다 해도 참석자들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백 기의 고분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솟아있는 지산동 고분군을 걸으며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을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겨 찾는다. 그날은 사람 또한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 고령군은 이 행사를 “대가야로의 흥미로운 시간 여행”이라며 적극 홍보하고 있다.올해 행사는 11월 9일 열릴 예정이다. 왕릉길 걷기 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고, 3대째 장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대장간에 들러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농기구도 살펴볼 수 있다. 메마른 도시 생활에 지친 가족이 함께 찾는다면 의미가 더 커질 듯하다.여기에 하나 더. 해마다 4월이면 고령군의 봄을 알리는 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바로 대가야읍 일원에서 열리는 ‘대가야체험축제’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생활상과 문화·예술을 관광객들에게 선보이는 이 축제는 대가야 사람들의 삶을 테마로 독특한 문화까지 접목시킨 차별화된 체험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엔 ‘대한민국 우수축제’로 지정됐으며 이른바 ‘고령을 대표하는 봄 축제’이기도 하다. 매년 주제를 달리해 전개되는 대가야체험축제에서는 다채로운 문화 공연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성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세계 현 페스티벌’ 뮤지컬 ‘가얏고’, 악성 우륵의 사랑을 재미있게 스토리텔링화 한 ‘사랑, 다른 사랑’ 공연 등이 특히 방문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 고령군청의 이어지는 설명이다.축제가 열리는 기간엔 개실마을과 가얏고마을 등이 농촌체험 부스를 마련해 고령의 소박한 정을 한국인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까지 전하고 있다.◇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고령의 관광 명소들고령을 찾았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들이 여러 군데 있다. 가야시대 최대의 고분군인 ‘지산동 고분군’도 그 중 하나다. 주산의 남동쪽 능선 위엔 한국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지산동 44·45호분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 대가야박물관에선 대가야와 고령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왕릉전시관은 지산동 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해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불러 모은다.가야금을 만든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전시하는 우륵박물관은 음악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테마형 박물관으로 알려졌다.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는 토기와 철기, 가야금 문화를 꽃피운 대가야의 역사를 바탕으로 조성된 관광지다. 대가야 농촌체험특구에선 30여 종의 농작물을 재배 중이다. 원두막 체험과 고상가옥 체험도 해볼 수 있다.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끼고 들어선 ‘개경포 기념공원’은 선조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시조를 읊던 공간에 만들어졌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송암 김면(1541~1593)이 일본군 1천600여 명을 격퇴시킨 곳이기도 하다.“자연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낫질신리마을을 찾아보라”고 고령군청은 권한다. 오염되지 않은 산과 계곡이 방문자들을 반기는 이 마을에서 재배되는 무농약 쌀은 전국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낫질신리마을에서 채취된 산나물과 송이버섯은 누구나 좋아하는 별미다. 계절별로 벌꿀 채밀 체험, 모내기 체험, 고구마 캐기 체험, 메뚜기 잡기 체험 등이 진행된다.‘전국 최우수 체험마을’로 선정된 개실마을엔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엿 만들기와 떡 만들기는 물론, 한국 전통방식의 혼례 체험을 할 수 있어 유럽과 북미에서 고령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여기선 한옥 숙박도 가능하다. 외국인들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은다.곽용환 고령군수 인터뷰고령 역사·문화의 향기 전달‘일상 탈출’ 치유의 공간으로“고령의 힘은 대가야의 찬란한 역사·문화와 이를 효과적으로 발전시킨 관광산업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곽용환 고령군수를 최근 만났다.곽 군수는 고령군 관광의 현황에서부터 앞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까지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들려줬다. 아래 그날 오고간 이야기를 가감 없이 옮긴다.-고령의 관광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고령군은 이미 1천600여년 전 독특하고 아름다운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다.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대가야의 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관광 활성화와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고령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자원을 테마로 특색 가득한 관광 인프라를 조성해 ‘가야문화특별시 고령군’을 만들어 가기 위해 군민들과 최선을 다하고 있다.-향후 고령 관광산업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우리 군의 저력은 대가야의 빛나는 전통과 군민들의 단합된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관광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령군관광협의가 ‘관광의 민간 중심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다.-실제로 성공적인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대가야체험축제가 올해로 15회째를 맞았다. 고령군관광협의회는 이 축제의 주축이 돼 주민주도형으로 행사를 이끌었다. 그 옛날 대가야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객 참여형,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역사 교육형, 더 나아가 세대 통합형 축제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로 9년 연속 선정되는 성과를 이뤘다.-그 외 고령군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사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537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진행한 대가야생활촌 조성사업이 지난봄 완료됐다.고대국가 가야의 중심이었던 대가야 시대를 효과적으로 재현해 고령군민은 물론 우리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답답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난 치유의 공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더불어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는 축제의 중심공간이 돼 역사·문화·관광일번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경제 발전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와 대가야생활촌 사이를 전기차가 운행 중이기도 하다. 이는 거점 관광시설간 이동 편의를 제공하는 것과 함께 그 자체로 새로운 관광상품이 돼주고 있다.-향후 고령 관광의 새로운 아이템이 될만한 건 어떤 게 있을까.△3월에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됐다. 2021년이면 최종 등재될 것으로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이곳 작은 무덤에서 출토된 직경 5cm의 작은 토제방울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이 방울은 문헌에 기록된 건국 신화가 유물에 투영돼 발견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가야 역사는 물론 고대 한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동시에 관광객들의 관심도 모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체험관광의 활성화도 우리 군 관광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전병휴·홍성식 기자

2019-10-03

회색공단도시 구미, ‘색깔 있는 관광도시’ 옷 입다

한국의 근대산업화를 이끈 구미시가 2019년을 관광발전을 위한 원년으로 정하고 다양한 관광정책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구미공단 조성 50주년을 맞아 한국 경제를 최전방에서 이끌어 온 구미공단 노동자 피땀의 흔적과 산업유산들을 기존 관광자원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구미시는 삼성과 LG, SK, 코오롱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국내 최고의 첨단산업도시임에도 관광산업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미시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첨단산업도시이면서 아도화상이 신라불교의 싹을 틔우고 성리학 등 영남 유학의 뿌리가 깊은 역사·문화의 도시이다. 여기에 낙동강과 금오산, 천생산 등의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도시이다. 하지만 ‘회색공단도시’라는 이미지에 가려 구미시의 뛰어난 관광자원은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외면받아 왔다. 이러한 이유로 구미시에 사는 이들조차 어떤 관광자원이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미시가 관광산업에 집중하는 또다른 이유는 청년실업과 일자리창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의 콘텐츠가 농촌·의료·미용·공연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잘 만들어진 관광산업 하나가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이에 본지는 구미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시가 추진하고 있는 관광정책을 통해 산업과 관광을 접목한 구미만의 관광산업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최근 우리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청년실업과 일자리창출이다. 이를 위한 여러 대안과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할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관광산업이 그 지역의 소비를 늘리면서 일자리 수까지 늘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미시도 관광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미시는 2019년을 관광발전을 위한 원년으로 정하고 관광객의 획기적 증대를 위해 다양한 관광정책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관광진흥 마스터플랜 수립올해 공단 조성 50주년을 맞은 구미시는 산업관광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 관광 거점도시 도약을 목표로 ‘관광진흥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진행한다. 타지자체와 차별화된 산업관광 육성방안, 머물며 즐기는 체류형 관광상품 개발, 대구와 경북전체를 묶는 광역 관광벨트화 사업, 젊은 도시 구미만의 대표 야간 관광명소 개발 등이 추진된다. 구미시가 지속가능 발전한 도시 조성을 위해 산업도시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산업과 관광이 함께하는 도시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구미시는 최근 트랜드인 모바일기반 뉴미디어를 관광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매주 소개하고 있는 ‘사육신과 생육신이 배출된 유일한 고장’, ‘구미 핫플레이스 금리단길’, ‘별주부전의 무대인 사천시 비토섬에서 온 토끼커플의 구미여행’ 등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은 관광지소개 카드뉴스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카드뉴스는 동영상으로도 변환시켜 시 지정게시판과 버스정보시스템인 230여 개의 BIS를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또 관광지를 VR사진으로 제작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구미지역 관광명소를 실감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사용자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시는 모든 관광자원을 VR이미지와 동영상으로 명실공히 뉴미디어마케팅 선도도시로 그 명성을 확고히 할 계획이다.△한류스타 마케팅, 중국의 중심(中心)저격구미시는 사드사태 이후 다시 늘어나고 있는 중국 관광객을 겨냥해 지난 4월 중국 상해시 상해전람중심에서 열린 제16회 상해 세계관광박람회에 참가, 구미관광 홍보관을 운영해 중국 현지인과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중국 상해 세계관광박람회는 올해 16회째로 해외 53개 국가가 참가하고 750개 업체, 500명의 바이어가 초청되는 중국 최대 규모의 국제 관광 박람회로 구미시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인 맞춤형 관광 마케팅 전략을 적극 펼쳤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한류의 중심에 있는 구미출신 가수 황치열을 전면에 내세워 중국인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구미를 알리고 한국 방문시 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 홍보했다. 특히, 중국에서 황치열 인기를 증명하듯 실제 크기의 황치열 등신대와 금오산에 설치한 ‘황치열 손 조형물’, ‘황치열 기념숲’ 등 황치열 팬투어를 소개하는 중국어 리플릿은 중국 현지의 큰 관심을 모았다. 또한 중국 현지 관광업체와의 미팅을 통해 구미 관광자원을 홍보하고, 중국 각종 미디어 채널과의 인터뷰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구미관광을 적극 알리기도 했다.△시티투어 콘텐츠 강화구미를 찾는 관광객에게 구미의 다양한 문화관광자원을 보다 손쉽게 접하게 해주는 구미시 시티투어는 현재 다양한 테마를 정해 다채롭게 운영중이다. 금오산 유교 문화투어, 초전지 불교 문화투어, 전통시장 투어, 농산물 수확체험 투어 등이 대표적이다. 시는 올해 공단50주년을 맞아 근대 산업 유산으로 지정된 오운여상, 수출탑과 구미를 대표하는 삼성 전자의 스마트시티 홍보관, 5공단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구미 에코랜드 전망대를 포함한 구미의 미래를 책임질 국가산업단지와 근대산업유산을 두루두루 둘러보는 코스로 구미만의 특화된 산업관광 투어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내륙최대의 국가산업단지를 보유하고 있는 구미시만의 이점을 살려 산업현장을 대상으로 견학과 체험을 통해 구미만의 특색있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새로운 관광시장 개발 및 관광수요를 창출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역사문화디지털센터 완공을 위한 막바지 공사 박차경북도 3대 문화권 전략사업으로 2012년부터 추진해 온 ‘역사문화디지털센터 건립사업’은 고려말 야은 길재 선생부터 구한말 왕산 허위선생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개혁해 온 구미(선산)의 인물에 대한 자료를 디지털화해 교육·전시·체험하는 시설이다. 총사업비 253억 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내년 4월 완공 예정이다. 전시관, 홍보관, 체험관, 문화카페, 전망정 등의 시설을 갖춘 역사문화디지털센터는 앞으로 구미의 대표 명소인 금오산도립공원과 함께 명품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제101회 전국체전 성공적 개최 위한 관광홍보 추진내년은 구미에서 제101회 전국체전이 열린다. 구미시는 전국체전으로 4만여 명의 선수단과 관람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관광 구미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관광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구미시는 선수단과 관람객에게 볼거리, 즐길거리 등을 제공하기 위해 구미만의 특색 있는 국가산업단지 연계 산업관광투어와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장세용 구미시장은 “취임 당시부터 꾸준히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올해 공단 조성 5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시민축제를 시작으로 산업과 관광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산업 기반을 만들어 내년 제101회 전국체전에서 가능성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불교 문화재 등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관광자원을 연계하고 킬러 컨텐츠 개발, 산업문화유산, 전통문화와 자연자원, 인프라 확충, 홍보마케팅 강화, 서비스 개선 등 관광환경 개선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0-03

“에티오피아의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칠곡군이 69년 전 신세 진 에티오피아에 보은(報恩)하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에티오피아는 6·25전쟁에 참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이 ‘고마운 나라’가 최근 내전 등에 의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칠곡군이 이 나라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나섰다. 호국과 평화를 정체성으로 삼는 칠곡이기에 에티오피아 지원에 적극적이다.무엇보다 눈여겨 볼 점은 군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을 에티오피아에 보냈다. 에티오피아는 이 성금으로 도서관, 식수저장소, 마을 수도 등 여러 편의시설을 마련할 수 있었다.군민들은 “6·25전쟁에서 보여 준 에티오피아의 숭고한 희생에 결초보은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했다.군 관계자는 “첫 단계로 작으나마 경제적으로 지원했다”며 “이제부터는 문화·관광·보훈까지 영역을 넓혀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뉴부대를 기억하는 칠곡군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는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의 전투에 자국 청년들을 파병했다. 황제의 명에 따라 6천37명의 에티오피아 청년들이 3주간의 항해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청년들 중 122명이 전사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253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켰다.칠곡군은 이러한 에티오피아와 강뉴부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군민들은 에티오피아를 커피의 나라가 아닌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며 결초보은의 부담을 안고 살아 왔다.이에 군은 2014년 지역 대표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에 ‘평화의 동전 밭’을 조성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섰다.이듬해인 2015년부터 코흘리개 어린이에서 백발의 노인까지 657명이 이 대열에 동참했다. 매월 최대 1천260만원의 성금을 모아 에티오피아에 보내 티조 지역의 초등학교 2개, 식수저장소 2개, 마을 수도 9개 등을 마련했다. 또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새마을운동을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주에 전파했다. 티그라이주 새마을 시범마을에 새마을 조직 육성을 통한 주민의식 개혁과 새마을회관 건립, 마을안길 포장 등 환경개선, 소득증대사업도 지원했다.□ 디겔루나주 티조에 희망을 심다칠곡군 방문단은 2017년 에티오피아 디겔루나주 티조 지역을 방문해 칠곡 군민의 사랑을 전했다. 이들은 티조 워레다에 위치한 사구레초등학교를 방문해 칠곡군 유치원과 초등학생 5천여 명의 성금으로 건립한 ‘도서관 준공식’을 가졌다. 왜관초등학교 학생들이 고사리 손으로 만든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걱정인형’과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준비한 색안경, 캐치볼, 제기 등의 장난감도 전달했다. 당시 방문단원들은 사구레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걱정인형을 옷에 달아주고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인 제기차기를 선보이며 놀이방법도 가르쳐줬다. 이어 칠곡군 순심연합총동창회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식수 저장시설의 준공식을 갖고 물탱크에 연결된 마을 수도시설을 통해 주민들이 양질의 식수를 활용하는 것도 확인했다.백선기 군수는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병사들은 월급으로 부대 안에 보육원을 만들고 두려움에 떠는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돌봤다. 이젠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군이 에티오피아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지켜줄 것”이라며 “칠곡군민은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메마른 티조에 희망을 심고 있다”고 했다.□ 아라토 마을회관 준공식에티오피아 방문 당시 칠곡군 방문단은 티그리아주에서 ‘아라토 마을회관 준공식’을 가졌다. 이 준공식을 통해 ‘새마을 세계화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마을회관의 준공으로 새마을위원회, 청년회, 부녀회 등의 새마을 조직과 영농조합 결성이 가능해졌다.에티오피아 측은 ‘경제적 도움’보다는 ‘주민 의식개혁’이 필요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있었고, 새마을 운동이 에티오피아 국민에게 이러한 정신과 자신감이 이어지길 바라는 상황이었다.칠곡군의 방문은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았다. 당시 방문단이 도착했을 때 아라토를 관할하는 티그라이주 지역 전체가 최대한의 예우를 보였다. 티그라이주 메켈레 공항에서는 아바이 월두 주지사의 경제고문과 고위 공무원이 방문단을 맞이했다. 메켈레 공항부터 아라토 마을까지 30여 대의 오토바이와 20여 대의 차량이 방문단을 호위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지역 최대 방송국인 티그라이주 방송은 공항 도착 순간부터 늦은 저녁 시간까지 방문단을 취재했다. 또 백선기 군수와 직접 인터뷰하며 이번 사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방문단이 마을에 도착하자 주민 1천500여 명이 태극기와 새마을기를 들고 도열해 춤과 노래로 환영했다. 칠곡군과 티그라이주 메켈레 지역에 새마을 시범마을 조성 등 지역개발을 위해 긴밀히 협력키로 한 MOU도 체결했다.백선기 군수는 인터뷰에서 “아라토 마을에서 2020년까지 새마을 조직을 육성하고 생활환경개선과 소득증대사업을 실시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에티오피아와 문화·관광·보훈 업무협약 체결지속된 교류와 인연으로 협력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지난달 30일 백선기 군수와 쉬페로 시구테(Shiferaw Shigutie) 에티오피아 대사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문화·관광·보훈 교류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각종 기념일은 물론 기념행사, 축제, 국제 교류행사 등에 상호 협력키로 했다. 또 양 기관은 민간 교류를 적극 지원하고,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각뉴부대의 무훈을 재조명하며 참전용사 가족 지원에도 협력하기로 했다.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칠곡군에서 열리는 ‘제7회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부스에서는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이 네렐라(Nerela)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생두를 작은 화로에서 볶은 뒤 다시 빻아서 주전자에 넣고 끓이는 ‘커피 세리머니(Coffee ceremony)’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이자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대축전 개막식에서 펼쳐질 ‘칠곡평화마을 자립 선포식’도 함께 하기로 했다.칠곡군은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 오르미아주 디겔루나 티조 지역을 칠곡평화마을이라 부르고 초등학교 2곳을 신축하고, 초등학교 15곳의 책걸상과 기자재를 교체했다. 또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식수 저장소 4기와 식수대 11기를 설치하는 등 칠곡평화 마을의 자립 기반을 마련했다.쉬페로 시구테 에티오피아 대사는 “2014년부터 6년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백선기 군수와 군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양 측 관계를 한 단계 격상해 전략적인 파트너로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백선기 군수는 “호국과 보훈이 도시의 정체성인 칠곡군은 69년 전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자 에티오피아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며 “양 기관이 이번 협약 체결을 통해 상생 발전을 이끌어 내자”고 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19-10-01

다양한 장소·다양한 공동체서… 차별화된 서비스 나선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경로효친사상이 많이 퇴색해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를 지탱해주고 있는 중요한 사회미덕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70살이 넘은 원로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기로연(耆老宴)을 열기도 했다. 현재는 노인복지법 제6조에 따라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의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10월 2일을 노인의 날, 매년 10월을 경로의 달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조선시대 기로연은 없어졌지만, 정부는 노인의 날을 맞아 대한노인회 등 노인단체 관계자, 훈·포장을 수상하며 어르신 공경의 미덕을 이어가고 있다. 노인의 날을 맞아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포항시의 노인복지정책을 점검해 본다.□초고령사회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에 대한 걱정에 앞서 우리가 현재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흔히 우리는 초고령사회와 관련된 문제를 얘기할 때 주로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이나 스웨덴과 같은 나라들의 사례 정도를 꼽을 뿐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 두 나라의 흔한 사례들을 통해서도 초고령사회가 단순히 도시가 처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우선, 지난 2005년도에 초고령 국가가 된 일본의 경우, 공항에서부터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 시골마을의 기차역, 동네 마트 진열대 앞까지 곳곳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스웨덴의 경우는 2016년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으나 적극적인 인구정책과 노인세대에 대한 다양한 제도를 통해 오히려 경쟁성장률 면에서 EU국가의 평균인 2.0%보다 높은 2.4%를 기록했다.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는 노동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청년층의 비중 또한 크게 줄게 되고, 그 공백을 오히려 중·장년층들이 채워야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면서 정년연장은 물론 베이비붐 세대들에게는 재취업의 기회가 늘어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우리 역시도 이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민·관은 물론 지역사회가 함께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은퇴 후에 적합한 직종이 무엇인지, 어떤 직종이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포항시 노인건강복지포항시는 지역의 기업들을 중심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전직과 재취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새롭게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산업군을 비롯해 생애경력을 고려한 일자리와 같은 고용특성에 따른 사업군을 파악하는 등 다변화된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포항시는 22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천400여개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양적인 면에서는 지난해 전국 최고의 노인일자리 성과를 거뒀다. 이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포항시는 1일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일자리 사업부문 보건복지부장관 대상을 수상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다양한 경력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의 수요에 부합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를 찾아내고 맺어주는 것이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좀 더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틈새시장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포항시는 이와 관련해 일손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농어촌을 비롯해서 중소기업과 복지 분야 등을 중심으로 노인일자리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공공근로 가운데 단순 노동에 그치는 일부를 소상공인이나 복지시설에 지원하는 방식이나, 인건비를 일부 지원하는 식으로 노인일자리 사업을 활용하거나, 경력과 능력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소그룹을 만들어 참신한 아이템을 제안하면 이에 대한 지원을 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이와 함께 포항시는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교실 등 증가하는 노인들의 여가 공간 역시도 새롭게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간 나눔과 기능 혁신 등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는 입장이다.현재 포항에는 1개의 노인복지회관과 616곳의 경로당, 12곳의 노인교실을 운영·지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증가하는 노인인구와 여가 프로그램에 대한 욕구로 이미 시설 포화상태를 넘어선지 오래됐다.현재 8만명에 달하는 노인 인구 중 하루 1천100명 정도가 노인복지회관과 평생학습원을 이용하고 있다. 경로당은 2만2천명 정도가 회원으로 등록돼 있고, 이 회원 이상의 수가 노인교실을 이용하고 있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포항시는 이에 따라 두호동 노인복지회관의 경우, 지난 2016년과 올해 2차례에 걸쳐 증축을 하고, 2017년부터 경로당 8곳을 신축했다. 이어 흥해읍에 노인을 비롯한 전세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 체육관, 다함께돌봄센터 등 복합커뮤니티센터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하지만, 경로당 1곳을 건립하는데 4∼5억원, 노인복지관 1곳은 1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등 지방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단순히 노인전용공간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는 지적에 따라서 포항시는 노인여가시설뿐만 아니라 복지회관 등 지역전체의 여가공간을 베이비붐 세대와 지역민들을 위한 복지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실제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단순히 공간을 점유하고 시간을 보내는 여가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정해진 공간 활동 중심의 서비스 제공이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다양한 장소, 다양한 지역사회 공동체 내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지원으로 노인여가지원 사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낮에는 어르신들의 여가와 일자리, 나눔 활동의 공간으로 저녁과 주말에는 지역주민들과 청소년들의 공간으로 사용되며 지역민들이 함께 지역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공동체의 장으로 활용되는 복지공간 활용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2019-10-01

왕의 남자들, 장기로 오다

환관(宦官)은 통상 내시(內侍)라고도 불렀다. 환관들은 거세된 남자로, 궁에서 일하는 직책이다. 이들은 내시부(內侍府)에 속해 대궐 안 음식물의 감독, 왕명의 전달, 궐문의 수위, 청소 등의 임무를 맡았다.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비서관의 일종이었다. 내시부의 정원은 140명. 그들은 왕과 왕비 등 왕족을 모신 유일한 남자 궁인이었다.내시부의 으뜸 벼슬은 왕의 식사와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종2품 ‘상선’이었다. 종2품은 조선시대 제4위 품계로 그동안 ‘내시’하면 떠올리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권력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예를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진시황을 보좌하던 환관 조고(趙高)는 ‘황제의 자리를 맏아들 부소에게 넘기라’는 진시황의 유언을 무시한다. 그는 둘째아들 호해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긴 후 부소를 죽이고 권력을 농단하기에 이른다. 일개 환관에 의해 황제의 권력이 좌지우지되었던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결국 통일된 지 1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우리나라에서는 환관하면 김처선(金處善)이라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조선 전기 여러 왕을 시종한 그는 문종 때 경상도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단종 때 풀려나 직첩이 되돌려졌다. 1455년(단종3) 정변에 관련되어 삭직·유배되었고, 세조 때 복직되었다. 1460년(세조 6)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나, 세조의 미움을 받아 자주 장형을 당하였다. 성종 때에는 의술을 알아 대비의 신병치료에 이바지하여 가자(加資)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다시 시종에 임하였으나, 직언을 잘하여 미움을 받았다. 1505년 연산군이 스스로 창안한 처용희(處容戱)를 벌여 그 음란함이 극에 달하자, “임금치고 이토록 문란한 왕은 없었소이다“라고 극간(極諫)하다가 다리와 혀가 잘려 죽었다. 연산군은 그의 집을 당일로 철거하여 못을 파고 죄명을 돌에 새겨 그 집 길가에 묻고 담을 쌓게 하였다. 모든 문서에 ‘처(處)’자 사용을 금하여 처용무(處容舞)를 풍두무(豊頭舞)로 고치고, 일력 중 처서의 ‘처’자가 김처선의 ‘처’자와 같다하여 조서(徂暑)로 고치기까지 하였다. 김처선의 양자도 죽였고, 친족을 칠촌까지 연좌하여 처벌하였다. 하지만 1751년(영조 27)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이런 환관들은 당파싸움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다. 특히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문제가 되었던 광해군과 인조, 남인과 서인이 경쟁하였던 숙종대, 노론이 주도하면서 소론이 대항하였던 경종과 영조의 교체시기, 노론이 정국을 장악했던 정조 즉위 전후에는 서로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반 및 역모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럴 때는 왕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도 중요하였지만, 때에 따라서는 왕을 제거해야할 필요성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환관과 궁녀들이 꼭 개입되었다. 왕의 의중을 알아내는 일, 음식물에 독약을 넣거나, 왕자나 왕비가 병들어 죽기를 바라는 뜻으로 흉한 물건을 일정한 곳에 묻는 이른바 매흉(埋兇)의 실행자들은 대부분 환관과 궁녀들이었다.그 구체적인 실례는 많다. 광해군때 영창대군 옹립 사건에는 선조의 총애를 받던 환관 민희건이 끼어있다. 민희건은 선조가 죽던 날 어필(御筆)을 본떠서 밀지(密旨)라고 속인 뒤 유영경(柳永慶)에게 내주어 영창대군을 보호하게 하였다. 인조때 광해군 복위운동에도 환관 배희도가 등장한다. 유호립은 궁내사람들과 짜고 궁중에 들어가 인조를 살해하고, 광해군을 상왕으로 삼고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을 새로운 국왕으로 옹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군사가 서울에 도착하면, 환관 배희도에게 용사(勇士) 2인을 주어 인조를 시해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경종때 박상검(朴尙儉)이란 환관이 있었다. 그는 충주(忠州) 박씨로 평안도 영변 사람이다. 어려서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던 심익창(沈益昌)에게 수학하였다. 마침 김일경과 원휘(元徽)가 차례로 영변부사로 부임해 심익창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박상검도 이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뒤에 이들의 힘으로 궁궐에 환관으로 들어갔는데, 그때는 김일경이 소론의 거두가 되어 있었다. 당시 조정의 신하들은 서로 붕당을 지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헐뜯고 싸울 때인데, 김일경이 박상검을 조정에 환관으로 심어 놓은 것이었다.그 동안의 흘러온 과정을 잠시 살피자면,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노론의 반대를 받았으나 소론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게 1720년이다. 하지만 병약했던 경종은 즉위한 지 1년 되던 해(1721년), 노론 대신들인 김창집·이건명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복동생인 연잉군(후에 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삼고, 그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당시 김일경과 박필몽을 필두로 한 소론측은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는 것을 저지하고 나섰다. 결국 경종은 다시 친정(親政)을 하고, 그해 음력 12월 김일경 등의 탄핵을 받아들여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영의정 김창집과 좌의정 이건명 등을 면직시키는 등 정국이 회오리치고 있었다.이 무렵 김일경은 심복인 박상검을 이용해 노론의 지지를 받는 왕세제 연잉군을 아예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박상검은 김일경의 무리로부터 받은 은화 수천 냥을 이용해 먼저 궁내에 있는 환관과 궁녀들을 매수하였다. 반면 매수에 응하지 않는 노론계 환관들에게는 이간질하여 궁내에서 몰아냈다. 우선 자신의 편에 서지 않았던 환관 장세상(張世相)·고봉헌(高鳳獻)·송상욱(宋尙郁)이 그 쫓겨날 대상이었다.소론을 지지하던 경종은 박상검 등의 고자질을 믿고 1721년(경종1) 12월 23일, 장세상을 경성부에, 고봉헌을 광양현에, 송상욱을 경상도 장기현에 유배시켜 버렸다. 이때 이들의 가족들도 연좌되었는데, 장세상의 가족인 장두명(張斗明)도 송상욱과 같이 장기현으로 유배되었다.정적들을 제거한 박상검은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722년 1월, 궁 안에 돌아다니는 여우를 잡는다는 구실로 청휘문(淸暉門)에 여우 덫을 놓고 함정을 파놓았다. 이로 인해 왕세제가 경종에게 문안을 드리거나, 아침저녁으로 진짓상 돌보러 가는 길이 가로막혀버렸다. 당연히 경종과 왕세제 사이에는 오해와 불화가 조성되었다. 이들은 대전(大殿)의 궁녀들에게 왕세제를 헐뜯는 말을 퍼뜨리도록 해 경종이 이를 믿고 왕세제를 제거할 수 있는 명목을 만들었다.이 낌새를 눈치 챈 연잉군이 들고 나섰다. 그는 밤에 입직하던 궁관(立直宮官)과 익위사관(翊衛司官)을 불러 모아 놓고 환관 한두 명이 나를 제거하려 하니, 그들의 독수(毒手)를 피하기 위해 사위(辭位:왕세자의 자리를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이튿날 아침 대신들의 주청으로 주모자를 국문하라는 경종의 명령이 떨어졌다. 예상외로 일이 커지자 소론의 영수이던 영의정 조태구, 같은 무리의 김일경 등은 시침을 뚝 떼고 모든 관련자들을 잡아들여 빨리 처벌하라고 길길이 뛰었다. 자신들의 음모가 탄로 날 것을 걱정하여 미리 관련자들을 잡아 처치해버리려는 심보였다.의금부에서는 환관 박상검과 문유도(文有道), 궁인인 석렬(石烈)과 필정(必貞)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수사를 개시하려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석렬은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잡혀온 필정도 옥중에서 자살해버렸다. 박상검과 문유도에 대해서만 국문(鞠問)이 이루어졌으나, 이들은 끝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버티기만 하면 김일경 등이 알아서 석방해 주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관련자들을 추가로 잡아들여 심문을 하였으나 마찬가지로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 1722년(경종2) 1월 4일, 문유도도 심문을 받던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결국 그해 1월 6일, 박상검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도 전에 같은 계파인 소론의 관리들에 의해 능지처참 당하였고,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이를 두고 역사에서는 ‘박상검의 옥’이라고 한다.결과적으로 박상검은 소론의 김일경 등의 사주를 받고 경종과 왕세제 사이에 불화를 일으켜 왕세제를 없애려 했지만 토사구팽이 되고 말았다.소론의 이간질을 믿고 경종이 송상욱을 장기까지 유배 보낸 이유를 보면 옹색하기 그지없다. 유배형벌 중에서도 가장 중한 유3천5백리에 처한 이유가 고작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처사에 대해서 신하들도 임금이 중도를 잃었다며 걱정을 하는 모습이 경종실록에 보인다.송상욱과 장두명이 박상검의 계략에 밀려 장기로 유배 온 지 3년 후인 1724년에 경종이 죽었다. 재위 4년 만이었다. 경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을 뒤로하고 이제 노론의 지지를 받던 연잉군이 영조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영조가 즉위한 그해 10월 19일, 송상욱은 해배되어 장기를 떠났다. 그 이듬해인 1725년, 김일경 등이 박상검의 배후로 지목되어 탄핵되었고, 환관 손형좌(孫荊佐) 등에 대한 국문이 이루어지면서 이 사건은 다시 노론과 소론의 대립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이 무렵인 1725년 4월 9일, 그제야 장기에 와서 3년 넘게 유배살이를 하던 장두명도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뒤에 자세하게 논하겠지만, 신임사화란 것이 있었다. 노론은 신임사화를 주도한 조태구, 김일경, 목호룡(睦虎龍) 등을 공격하기 위해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와 관련자의 처벌을 주장했다. 결국 영조 때에 다시 쓰인 경종수정실록에는 “박상검(朴尙儉)이 김일경의 손발이 되어 은밀한 기회를 몰래 주선하여 안에서 해적(害賊)이 되어 안팎에서 선동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해배되어 한양으로 올라간 송상욱은 다시 제시내관(祭侍內官)으로 복직되어 궁중생활을 이어 나갔다.서울 도봉구 창동과 월계동 사이에 걸쳐 있는 초안산에는 내시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사람들은 여기를 ‘내시내 산’이라고 한다. 장기로 온 송상욱이나 그를 모함하여 장기로 보낸 박상검이나, 그들의 신분이 내시였으므로 모두 이곳에 묻혔을 것이다. 산자락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시들의 묘는 문인석 등의 석물들이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다. 누구나 이곳에 와 보면, 너무 많은 묘에 놀라고 허술한 관리에 한 번 더 놀란다. 무덤들도 봉분이 온전한 것은 거의 없고, 소나무나 아카시 나무들이 봉분 위에 자라고 있다. 한눈에 봐도 그 누구도 이 무덤들을 거의 돌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특이한 모습은 여기 무덤과 석물들이 하나같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어서도 궁궐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며 임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서란다. 생식기를 잘려버린 것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충성을 강요당한 이들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위정자들에게 희생된 영혼들이 아직도 구천을 헤매는지 을씨년스럽기조차 하다.하지만 일제 강점기까지 매년 가을이면 산 아래 마을 민초들이 후손이 없는 내시들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주었다는 안내문 글귀에서 그나마 위안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10-01

천혜의 경관이 계획된 관광인프라와 만나 세계적 명소 탄생

서울 면적의 채 두배도 되지 않는 1천100여㎢에 7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홍콩은 최근 잇따른 시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시지만, 원래는 아시아 금융과 물류 허브이자 쇼핑의 메카로 유명세를 떨쳐왔던 곳이다. 1841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그 이유에서인지 중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1국 2체제라는 이름 아래 자치권을 누리는 지방행정구역이며, 현재까지도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영토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된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배 흔적이 남아있는 이러한 이질적인 모습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차별된 많은 매력을 갖추고 있어 연중 수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등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마천루들의 모습,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홍콩 영화의 태생지, 중세 중국의 건축물 유적, 서양·중국·동남아시아가 혼재된 문화 등 많은 것들이 홍콩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부분의 인파가 몰리는 곳은 흔히 홍콩섬과 홍콩섬 맞은편이자 중국 대륙과 붙어 있는 구룡반도다. 그러나 홍콩 국제공항이 위치한 란타우 섬도 ‘의도적으로’ 관광을 위한 각종 명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선 디즈니랜드가 있으며, 그다음으로 옹핑360 케이블카를 중심으로 한 란타우 섬 일주 관광 코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옹핑360 케이블카는 홍콩을 1박 이상 머무는 관광객들이 들르기도 좋지만, 공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비행기를 환승하려고 대기하는 방문객들이 잠깐 서너 시간 짬을 내 홍콩을 구경하기에 최적화됐다.한해 2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고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계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옹핑360 케이블카와 그 주변 관광지에 대해 살펴보면, 풍광은 돈을 주고도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계획된 관광 인프라가 맞물려야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끼고 방문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란타우 섬 관광의 시작지 옹핑360 케이블카홍콩 란타우 섬은 1998년 국제공항이 생기기 전까지는 불모지였다. 그러나 공항 건설 이후 해변 휴양지인 ‘디스커버리 베이’, 유원지인 ‘홍콩 디즈니랜드’, 아시아에서 가장 긴 이중 케이블 선로를 사용하는 ‘옹핑 360’까지 들어서며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홍콩 내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란타우섬의 관광은 구룡반도를 통과한 지하철이 멈추는 퉁청역에서 시작하는데, 그곳이 바로 옹핑360이 위치한 곳이다.옹핑360은 퉁청역에서 출발해 포린사가 위치한 옹핑 빌리지까지 이동한다. 길이는 5.7㎞로 총 소요시간은 25분이다. 케이블카는 스탠다드와 크리스탈 두 가지가 있는데, 크리스탈의 경우 요금은 더 비싸지만 바닥이 유리로 이뤄져 발아래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5분이라는 시간이 얼핏 길고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란타우 섬의 다채로운 풍광은 그러한 걱정을 말끔히 씻어준다. 바다와 섬을 공중에서 바라보며 이동하는 경험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다. 출발하면 가장 먼저 퉁청 개발 지역을 지나 자연 서식지이자 낚시·조개잡이로 잘 알려진 퉁청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이 해안은 습지와 바다 식물의 독특한 조합으로도 유명하다. 이어 매일 약 1천100회의 비행이 이뤄지는 국제공항, 아시아 월드 엑스포가 먼 거리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50㎞ 길이인 홍콩-주하이-마카오 브릿지의 전경 또한 탁 트인 남중국해와 함께 어우러진다. 홍콩 란타우 섬, 마카오 반도와 광둥 지역의 주하이 시를 연결하는 이 다리에는 인공 섬과 해저 터널도 있다. 특히 란타우 섬 일대는 그 자체가 국립공원이라 케이블카 역시 친환경적으로 지어졌고, 그 덕분인지 잘 보존된 경관은 하이킹 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1978년에 설립된 22㎢ 면적의 이 공원에는 네이 락 샨과 옹핑 북부를 비롯해 선셋 픽, 이 퉁 샨, 리 파 샨, 란타우 픽 북부 경사로와 같은 꽤 많은 인기 하이킹 명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케이블카가 옹핑에 도착하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티안 탄 부처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옹핑360 케이블카와 연계된 란타우 섬 관광옹핑360 케이블카는 그 자체로도 관광상품이지만, 란타우섬 관광을 시작하는 출발지로서의 의미도 있다. 즉 케이블카만으로도 아시아에서 으뜸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 관광 인프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옹핑 빌리지다. 이 곳은 불교 테마 마을로 옹핑의 경치 좋은 자연에 동화되도록 설계·조경된 마을이다. 식당과 각종 기념품점 외에도 붓다의 길, 원숭이 극장 등의 볼거리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옹핑 빌리지를 걸어서 조금만 지나면 바로 포린사가 나온다.홍콩 최대 규모의 불교 사원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티안 탄 부처상(천단대불)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부처상은 높이 26.4m로, 연꽃 좌석과 받침대까지 포함한 총 높이는 34m다. 250t의 청동으로 만들어져 12년 동안 주조됐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야외 부처 동상이다. 관광 목적이 아니더라도 불교계에서도 유명해 세계 각지의 승려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68개의 돌계단을 올라 3층 제단에있는 큰 불상에 도달하면 플랫폼에서 란타우 섬과 남중국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포린사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타이오라는 어촌 마을이 나온다. 타이 오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어촌 마을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상 가옥들이 유명하다. 또한 핑크 돌고래가 출몰하는 인근 바다로 떠나는 돌고래 투어도 있다. 이 외에도 청사 해변, 홍콩의 유럽이라 불리는 디스커버리 베이 등도 들를만한 곳이지만, 란타우 섬 관광의 마지막은 시티게이트 아웃렛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옹핑360의 출발지인 퉁청역에 있는데 공항과 아주 가까워 입출국을 앞두고 방문하기에도 좋다. 아웃렛이라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대형슈퍼 TASTE도 있어 이를 구경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옹핑360 케이블카의 위상옹핑360 케이블카는 란타우 섬 관광의 처음이자 끝이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이동 수단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예약 없이 방문할 경우 짧게는 한 시간, 적어도 두 세 시간은 기다려야 탈 수 있을 만큼 인기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케이블카 이동 구간마다 꽉 채워진 자연 풍광과 건축물들도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타 관광지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프로그램의 역할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즉, 서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런 부분은 케이블카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케이블카는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다.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경관을 전제로 하고, 거기에다 철저한 계획을 통한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가 뒷받침돼야만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09-30

문경사과로 사랑을 전하세요

문경시는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소백산을 거쳐 새재의 주흘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산줄기들에 에워 싸인 작은 분지로 형성돼 있다.한반도 내륙성 기후의 특징인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주야간의 큰 일교차,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등 천혜의 사과재배 적지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과즙이 많으며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고유의 향기와 맛 또한 일품인 문경사과는 전국제일의 사과로, 지역 으뜸의 특산품로 꼽히고 있다.◇ 재배 및 판매현황 변화1930년대부터 재배돼 온 문경사과는 2008년도 1천600여 농가가 1천645ha를 재배해 전국 10대 주산지에 머물렀다. 재배품종도 후지, 홍로, 쓰가루가 주를 이뤄 타 주산지와 차별화가 되지 않았다. 2018년 말을 기준으로 볼 때 문경사과는 2천여호가 2천44ha를 재배하며 연간 4만5천여t을 생산, 총 생산액이 1천200억원(추정치)에 이른다. 재배면적으로 전국 6대 주산지로 성장했다.재배품종 중 당도가 제일 높은 국내육성품종인 ‘감홍’은 전국제일의 주산지로 명성이 높다.문경사과의 유통·판매는 주로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문경APC), 문경농협, 지역농협, 안동공판장 등에서 이뤄진다. 최근 사과축제를 통해 소비자직거래(특판, 택배 등) 및 가공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문경사과연구소 설치 및 운영농업 개방화시대에 대비해 지역특성에 맞는 사과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문경사과의 명품화를 앞당겨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해 2009년 9월 마성면 외어리 769번지 2만2천438㎡부지에 과수포장(약 20,000㎡)과 농기계창고(230㎡), 퇴비사(165㎡), 저온저장고(100㎡), 관리사(130㎡)등 4개의 건물을 갖췄다.국내육성품종 현지 적응 검정, 경비절감 기술개발, 농업 특허개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공동연구, 현장평가회 등을 수행해 농가의 재배기술발전과 경비절감에 기여했다. 2019년 교육관을 신축해 농업인교육 및 문경사과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문경행복농업대학 사과입문과 운영문경행복농업대학 사과입문과는 앞으로 고품질 안전사과 생산만이 대내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 사과재배 농업인의 기술수준 향상을 통해 변화하는 지역과수 산업의 선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수강대상은 귀농인, 여성농업인, 기존 과수재배인 등으로 수준별 맞춤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18년까지 1천190명이 수료했다.◇ 한·일 사과재배 기술교류 사업시는 문경사과 재도약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역에 적합한 새로운 기술 도입 및 정착을 위해 한·일 사과재배 기술교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야스마사씨와 오까다 오사무씨를 문경으로 초청해 지역에 적합한 사과재배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 현지과원을 방문, 시기별로 재배기술 교육 및 실습을 병행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73차에 걸쳐 일본방문(645명), 문경초청 순회기술교육(1만3천524명), 세미나 19회(4천874명)를 실시해 농업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한·일 사과재배 기술교류는 우리지역 사과재배 농가들에게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됐고, 선진기술의 조기정착으로 문경의 사과재배기술을 한 단계 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과수 꽃가루은행 운영과수의 안정적인 결실 확보와 품질향상을 위해 2004년부터 2015년까지 과수꽃가루은행을 운영했다. 사과, 배 재배농업인 3천86호가 꽃가루 38만1천159g을 채취, 3천352ha에 인공수분을 실시했다. 2016년 270ha, 2017년 236ha에 인공수분을 실시해 정형과 비율을 높여 문경사과의 품질향상으로 농가 소득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문경사과발전협의회 생산자 단체 육성문경사과발전연구회를 ’96년도 신규 조직해 현재의 문경사과발전협의회 육성했으며 지역사과재배농업인 500여명(사과재배농업인의 약 25%)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산자단체와 매년 문경사과품평회를 개최해 문경사과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고품질사과생산을 위한 병해충방제교육과 과원순회 현장지도 등으로 문경사과의 명성을 회복하는 기반도 구축했다.◇ 문경사과축제 및 사과학술세미나 개최문경에서 생산된 사과의 우수성과 소비자(관광객)와 함께하는 축제 육성을 위해 2006년부터 문경사과축제를 개최하고 있다.축제는 시민화합 유도 및 문경의 대내외 홍보,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기여하고 있다. 2018년에는 45만3천여명의 관광객에게 13억5천만원의 사과를 판매했다.2007년부터 국내·외 사과관련 전문가를 초청, 사과학술세미나를 개최 하는 등 농업인의 기술향상을 도모하고 있다.◇사과가공산업 현황·6차농업지도 성공모델농업인의 가공수요해결과 가공사업의 효율적인 지원체계 구축, 문경사과의 지속적인 소비창출 및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2009년부터 현재까지 농식품 특성화사업을 추진해 사과칩, 사과즙 등 가공농가 40호를 육성했다. 이 곳에서 사과생산량의 25% 정도인 8천400여t을 가공하고 있다.문경사과주스플랜트 운영을 통해서는 대량창업보육농 52호를 육성했으며, 지역 내 초중고와 유치원에 백설공주 사과즙을 공급, 급식시장을 개척했다.◇ 문경사과축제 내달 12일 개막올해로 14번째를 맞는 문경사과축제는 ‘백설공주가 사랑한 문경사과’를 주제로 공식행사, 특별행사, 체험행사, 무대행사의 차별화된 컨셉으로 오는 10월 12일부터 27일까지 16일간의 긴 여정에 들어간다.올해 축제는 주 행사장을 문경새재야외공연장으로 옮겨 관람객의 동선을 최소화해 행사의 집중도를 높였다. 사과특판부스와 문경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특산물 판매부스도 같이 운영한다. 공식행사는 10월 12일 오후 3시 주 무대에서 개막식을 시작한다.특별행사는 문경사과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특별경매를 매일 진행하며, 문경사과 품평회에서 입상한 사과와 국내·외에서 재배되는 사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과 홍보관을 상설 운영한다. 주 행사장에서는 문경사과낚시, 문경사과 볼링, 사과활쏘기, 문경사과럭키박스게임, 사과 농구게임, 문경사과다트, 문경사과스텐실 등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행사가 이어진다.주무대에서는 문경국악대전, 전통가요 페스티벌, 낙동가요제 등 굵직한 문화행사를 비롯해 사과껍질길게깎기, 사과탑높게쌓기, 보이는 라디오, 텐덤노래방 등 관람객과 시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사과특판부스와 농·특산물 판매부스를 보행자의 통행이 많은 주요 통행로에 설치해 판매 부스참여자들의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문경사과축제는 사과작황이 불안전한 가운데도 45만 여명의 관람객이 찾아 13억5천만원의 판매 실적을 올려 사과재배농가에게 큰 도움이 됐다.문경시 관계자는 “올해 사과작황이 작년보다 좋아 30%싼 가격에 문경사과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과판매액은 지난해 축제보다 늘어난 15억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19-09-29

붉은 태양 솟아오르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말하고

파랑이 다가설수록 빨강은 수줍게 물러난다. 울릉 바다의 해질녘은 꼭 젊은 남녀의 사랑싸움 같다. 도무지 잡히지 않을 것 같던 석양의 옷자락이 파도가 뻗은 손에 붙들리는 순간, 바다와 하늘이 포옹한다. 파랑으로 빨강이 스며들 때 수평선은 보랏빛 이불을 덮고, 빨강으로 파랑이 달려들 때 낮별들은 분홍색 꽃잠이 된다. 그 황홀한 로맨스의 시간에 나는 홀로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었다.낮에 이 길을 걸을 때, 저녁 바다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자리를 미리 점찍어뒀다. 해안산책로 초입에 있는 포장마차 ‘용궁’에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화음을 이뤄 듣기에 좋았다. 모둠해산물 한 접시를 시켰다. 옆 테이블에 앉은 어르신들이 나보다 먼저 저물녘 바다에 사로잡혀 있었다. “분위기 좋다”고 감탄하는 소리가 스피커와 파도 사이로 끼어들어 장단을 맞췄다. 곧 싱싱한 오징어회와 전복, 소라, 멍게, 그리고 제철은 아니지만 초장을 듬뿍 찍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방어회로 구성된 모둠해산물이 상에 올랐다. 내가 술잔을 비우면 파도가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바람의 음계가 반음 내려가 쌀쌀했다. 뜨거운 국물 생각에 오징어라면을 시켰다. 양은냄비를 비워 속이 훗훗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들이 바다로 자맥질하고 있었다. 밤바다 위를 어칠비칠 걸어 도착한 도동항의 낡은 여관, 이불을 깔고 누우니 창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다행히 꿈결만은 흔들지 못했다.섬은 육지보다 일찍 눈을 뜬다. 동쪽의 머리맡으로는 매일 신선한 빛이 신문과 우유처럼 배달된다. 새벽 5시 30분, 섬이 기지개를 켜 나도 잠에서 깼다.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겉옷을 입고 도동항에 나섰다. 어부와 상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여행객들도 졸린 발을 끌며 섬의 아무 동쪽으로나 가고 있었다. 나도 걸었다. 몇 걸음만 가면 도동항 여객터미널과 이어지는 공중공원, 부지런한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맘때 울릉 바다는 오전 5시 50분에서 6시 사이에 해를 돋아낸다. 해돋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린 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붙잡고, 해 뜨기 전 어둠과 빛이 뒤엉켜 추는 오묘한 춤을 사진에 담았다.“올라온다, 올라와!” 저 먼 수평선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붉은 이마를 누군가가 먼저 본 모양이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어둠 뒤에서 빛과 열을 끌어 모은 태양이 바다에 불을 지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이내 말을 잊었다. 울릉도의 해돋이가 워낙 장엄한 까닭이리라. 태양이 펼친 붉은 돛을 열심히 밀어주는 바람의 기합소리만 들렸다. 점차 완전한 원의 형태가 되어가는 태양을 보면서, 얼굴이 금빛으로 물든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사진 몇 장을 찍고는 걸음을 돌렸다. 하품이 났다. 다시 여관방에 누워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두어 시간 전에 본 해돋이가 마치 전생의 풍경처럼 아득하기만 했다.대부분 관광지가 그러하듯 울릉도의 식당들도 1인분은 잘 팔지 않는다. 울릉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오징어내장탕, 따개비밥, 홍합밥, 오징어불고기 등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그래서 1인분 파는 식당을 만나면 몹시 반갑다. 도동항 ‘만남의 광장’ 근처에 있는 ‘두꺼비 식당’에 들어가니 아침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속풀이와 배멀미에 좋다는 오징어내장탕을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해서 15분 만에 음식이 나왔다. 매운탕 국물에 애호박, 콩나물, 대파, 다진 마늘 등 채소와 오징어 내장이 듬뿍 들어간 것이 두꺼비식당의 오징어내장탕이다. 내심 맑은 국물을 기대했는데, 울릉도에서도 식당마다 끓여내는 방식이 다른 모양이었다.오징어내장탕은 오징어를 손질하다 대개 버리게 되는 오징어 내장을 재료로 한 향토 음식이다. 오징어 내장은 쉽게 부패해 보관이나 손질이 어렵고, 기생충 위험이 있어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지만, 그날 잡아 그날 손질하는 울릉도 오징어의 경우 신선도가 매우 뛰어나 내장을 얼마든지 식재료로 쓸 수가 있다. 오징어내장탕은 울릉도에 오지 않고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인 셈이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어보니 얼큰하면서도 간이 좀 셌다. 호박 맛이 강해 호박찌개 같다는 인상도 들었지만 오징어 내장에서 깊은 바다 냄새가 났다. 밥과 함께 후룩후룩 떠 먹다가 어느새 사발을 다 비웠다. 울릉도 음식은 꼭 겉은 한없이 무뚝뚝한데 속은 다정한, 표현에 서툰 우리 아버지들을 닮았다. 내일 또 오겠다고, 아버지를 어려워하는 아들마냥 말을 흐리며 식당을 나섰다.차를 몰고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지난 3월, 울릉읍 저동리에서 북면 천부리까지를 잇는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약 5㎞에 달하던 간극이 메워졌다. 오랜 세월 울릉군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염원이기도 했던 울릉도 일주도로의 완전 개통이 이뤄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울릉도에 와서야 알았다. 늦게 소식을 들은 만큼 새 길부터 다녀보자며, 우선 도동항을 출발해 저동항, 내수전, 와달리를 지나 북면 천부항까지, 올해 개통된 구간을 답사하며 울릉 해안선의 절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도로는 개통됐지만 여전히 곳곳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연속된 급커브와 경사로, 비포장길이 많아 운전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 버스나 관광 택시를 이용해도 충분히 섬 한 바퀴 구석구석 다닐 수 있으니, 현지 교통수단 이용을 권한다.차창 밖으로 펼쳐진 울릉 바다의 풍경은 섣부른 묘사나 상투적 감탄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절대자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지듯, 나는 저동 촛대바위 앞에, 또 섬목에서 바라보는 대나무섬 죽도의 풍경 앞에 저절로 경건해졌다. 촛불을 켜놓고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수도자처럼, 이어도를 보며 ‘황홀한 절망’을 느낀 천남석처럼 내 내부에는 울릉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졌다. 제주도나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에서 느낀 것과는 성분이 다른 감동이 울릉도에 있었다. 보다 거칠고 투박하며 맨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뭉클함이랄까. 괭이갈매기들의 천국인 관음도를 향해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울릉 바다의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하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삼선(三仙)바위가 된 세 선녀는 현무암 검은 알몸을 내놓은 채 지금껏 푸른 물로 살을 씻고 있었다.바람과 파도가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때려대는 통에 흥분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먼저 몸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스스로 세운 가설에 이상하게 설득되어 바다 속으로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울릉도에서는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잠수함에 타지 않아도 신비로운 바다 속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 북면 천부에 있는 천부해중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수중 전망대다. 천부항소공원에서부터 바다 쪽으로 이어진 다리 끝까지 걸어가면 파란 페인트칠이 인상적인 원통형 모양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높이는 총 22m 가량인데,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해수면 아래 수심 6미터 지점까지 내려가면 넓은 유리창을 통해 바다 속을 볼 수 있다.나선형 계단을 빙빙 내려가 거대한 바다를 텔레비전 크기로 축소해놓은 창 앞에 선 순간, 나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말았다. 돌돔, 자리돔, 복어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푸른 바다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속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울릉도 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천진한 동심도 잠시 뿐, 환한 미소는 이내 사라지고, 낚시꾼의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미간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연산 돌돔회의 탱글탱글한 육질, 그 달면서도 고소한 감칠맛 생각에 침이 막 고인 것이다.물속에 있다가 물 밖으로 나오니 울릉도가 낯설었다. 변덕스러운 섬 날씨가 몰아왔던 먹구름도 걷혀 하늘이 맑았다. 마치 침례를 받은 교인처럼, 마음이 깨끗해진 나는 불현듯 천국이 궁금해졌다. ‘울릉 천국’을 향해 차를 몰았다.          /시인 이병철

2019-09-29

웃음 가득한 ‘예주문화예술회관·영덕 해변’… 명품 공연장으로 자리매김

인도 남부 도시 알라푸자(Alappuzha)를 여행했을 때다. 수로가 예쁜 조그만 마을에서 이틀을 묵었다.첫날 밤. 영국에서 왔다는 나이 지긋한 관광객의 권유로 소규모 극장에서 까따깔리(Kathakali)를 관람했다. 대사 없이 몸짓과 춤, 타악기 연주만으로 인간의 환희와 고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인도 전통 무용극. 기자를 포함한 수십 여 명 관객들 모두가 보는 내내 즐거워했다. 낯설고 새로운 것은 언제나 인간을 크게 매혹하는 법. 좋은 공연은 지역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매력적인 관광상품도 될 수 있다. 이런 간명한 사실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양질의 문화·예술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고자 고심하고 있다. 영덕군도 마찬가지다. 그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을 위해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예주문화예술회관과 ‘최고의 야외 공연장’이라 할 수 있는 영덕의 해변을 찾았다.◆영덕 아이들에게 즐거움 준 ‘번개맨’과 ‘로봇 SW 페스티벌’예주문화예술회관은 양질의 공연에 목말랐던 영덕 주민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매력적인 공연이 열릴 때마다 많은 주민들이 회관을 찾는다. 이곳에서 펼쳐진 ‘로봇 SW 페스티벌’ 뮤지컬 ‘번개맨’ ‘코미디 리사이틀’ 등은 장르의 다양성은 물론 기획력까지 돋보였다. 자녀를 동반한 부모, 노인과 청년들이 모여 앉은 공연장은 세대간의 간극을 메워 주기도 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예주문화예술회관이 브로드웨이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영덕의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던 작품은 모두가 예상하듯 ‘번개맨’. 아동을 위한 공연이 드문 현실에서 ‘꼬마 관객들’의 환호성을 부른 무대였다. ‘번개맨’이 영덕에 나타난 날은 예주문화예술회관 주차장이 밀려드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번개맨’은 18년 동안 이어져온 한국의 대표적인 유아 공개방송. 부모들은 휴가를 내면서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장을 찾았다고 한다.영덕의 공연기획 실무자들은 EBS를 설득해 예주문화예술회관에서의 3회 공연을 성사시켰고, 3번의 공연 모두 만석을 이뤘다.‘번개맨’ 출연진과 스태프 200여 명은 영덕에서 3일간 머물며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이용했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3천200명의 관람객이 몰린 ‘로봇 SW 페스티벌’도 영덕의 아이들이 즐거워한 행사였다. “콘텐츠가 색달랐고, 진행도 매끄러웠다”는 평가를 받은 이 페스티벌은 영덕문화체육센터에서 열렸다.행사장을 찾은 아동들은 커다란 로봇과 마술사가 펼치는 특별한 이벤트에 박수를 보냈고, 로봇을 직접 조종하며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온 30대 아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애들에게 딱 맞는 프로그램”이라며 환하게 웃었다.◆새롭게 단장한 예주문화예술회관 ‘웃음 가득한’ 각종 공연예주문화예술회관은 얼마 전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유아를 데리고는 공연 관람이 어려운 부모의 입장을 감안해 유아실을 새로 만들었고, 분장실도 넓혀 출연자들의 불편을 해소한 것. “객석도 기존 531석에서 679석으로 늘어났고, 로비의 디자인도 세련되게 바꾸었다”는 게 이어지는 영덕군청의 설명이다.새로운 모습을 갖춘 회관에선 ‘코미디 빅리그’와 ‘웃찾사’ 등 TV 코미디 프로에서 활동한 개그팀 졸탄과 DJ 쥬쥬, 개그맨 박수홍, 손헌수가 무대에 섰다.애초엔 주로 젊은층이 올 것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적지 않은 어르신들이 객석을 찾아 즐거워했다. 이날 관객은 1천100여 명. TV에서 보던 연예인들을 가까이서 만난 관객들은 공연진이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크게 웃었다는 후문이다.앞으로도 예주문화예술회관의 공연 스펙트럼은 계속 넓어진다. 뮤지컬과 코미디에서 마술쇼, 발레, 비보이 공연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마술사 최현우의 ‘매직 블록버스터’는 모든 세대가 흥미롭게 관람했다. 익스프레션 크루의 퍼포먼스 ‘마리오네트’ 무대 또한 호평을 받았다. “공짜로 이런 공연을 보는 게 미안할 정도”라고 말한 관객도 있었다고 한다. 가수 홍진영과 조항조의 콘서트는 중장년층에게 좋은 선물이 됐다.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의 연주회와 명창 박준형의 ‘상생 비나리’, 박금희 발레단의 춤 공연 역시 “영덕 주민들의 문화향유권을 신장시 켰다”는 평가다. 지난해 예주문화예술회관을 찾은 관객은 모두 2만2천193명.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오는 10월 29일엔 태권도와 발레, IT융합기술이 결합된 특별한 공연 ‘LED 비바츠 태권·발레’가 무대에 오른다. 한국의 대표적 국기(國技)인 태권도와 서양 예술 장르인 발레에 디지털강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첨단 기술까지 더해져 아이들은 물론, 성인 관객도 충분히 매혹할 작품이다.또 12월 19일에는 아날로그 세대의 감수성을 민감하게 자극할 영덕군 송년콘서트 ‘015B김형중 메모리즈’가 예정돼 있어 벌써부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영덕 해변’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공연장사시사철 푸른 파도가 매혹하는 영덕의 바닷가도 예주문화예술회관 못지않은 ‘최고의 공연장’이 돼주고 있다. 해변은 영덕군이 가진 또 다른 ‘명품 공연장’이다.‘썸머뮤직페스티벌’은 영덕 해변에서 펼쳐지는 흥겨운 문화·예술 행사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관광객과 군민이 모이는 곳에 직접 찾아가 그들과 즐거움을 나눈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창력을 인정받는 가수 김범수와 금잔디, 걸그룹 ‘여자친구’ 등이 이 공연에서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다.지역의 음악 동호인들도 평소 갈고 닦은 솜씨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영덕군 여성합창단과 영덕 색소폰동호회, 예주줌마난타팀, 통기타 동호회 ‘들꽃’ 등은 부정할 수 없는 영덕 해변의 스타다. 이들 외에도 ‘영덕 최고의 관광지’로 이름 높은 고래불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 장사해수욕장엔 걸그룹 모모랜드, 가수 김연자, 부활, 휘성 등이 찾아와 팬들에게 흥겨움을 선사했다.대중음악 공연과 함께 테너 류정필과 소프라노 한경미 등은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영덕군민들에게 선보였다. ‘뮤지컬 갈라쇼’를 통해서다. 강구정보고등학교 치어리더들의 깜찍한 율동도 어르신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청춘버스킹 공연’이란 제목으로 열린 김창기밴드와 ‘자전거 탄 풍경’의 콘서트, 재즈 팝 밴드 ‘클래시 도미넌트’ 콘서트도 주목받은 공연들이다.◆‘장사리-잊혀진 영웅들’과 함께 한 썸머 뮤직 페스티벌얼마 전 개최된 올해 ‘영덕 썸머뮤직 페스티벌’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를 영화로 제작한 ‘장사리-잊혀진 영웅들’과 함께 한 의미 깊은 자리였다.‘자유의 함성: 장사 여름 상륙작전’이란 헤드카피가 행사장을 찾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수 DJ DOC와 오마이걸, 위키미키, 핑크레이디, 왁스 등이 영화의 무대가 된 장사해수욕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해상 불꽃놀이도 관람객의 탄성을 불렀다. ‘물총 페스티벌’과 모래 조각전도 동시에 열려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켰다.대진해수욕장에서는 청춘버스킹 방송 녹화가 진행됐고, 예주문화예술회관에선 미니콘서트도 펼쳐졌다.축제 현장을 찾은 이희진 영덕군수는 “우리 군을 찾아준 관광객, 군민들과 의미 있는 행사에서 기쁨을 나눌 수 있어 더없이 즐겁고 영광스럽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영덕군청 또한 “앞으로도 실력 있는 뮤지션과 예술가들을 초청해 여행자와 주민들이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향후 축제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증폭시켰다.예주문화예술회관과 영덕 해변에선 앞으로도 각종 콘서트와 문화·예술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9-09-26

느긋한 정취가 보탠 식도락의 기쁨이란…

늘 짠하게 바라보는 집들이다. ‘명봉양푼매운탕’은 깊은 산속에서 메기 매운탕, 홍어를 파는 곳이다. 다른 메뉴도 좋다. ‘유정식당’은 직접 잡은 미꾸라지로 전골을 내놓는다.‘명봉양푼매운탕’은 민물 매운탕을 주 종목으로 한다. 메기 매운탕은, 물론, 좋다.반전은 이 집의 백숙. 놓아먹인 닭과 인근에서 구한 능이버섯의 조화가 아주 좋다. 방목 닭은 질긴 맛이 있다. 푹 고아서 내놓으면 제대로 자란 닭고기의 맛이 난다. 여기에 능이버섯을 적절하게 더하면 더할 나위 없는 ‘능이버섯백숙’이 된다. 부추를 조금 더하고, 별다른 조미료 없이 끓여낸다. 능이버섯의 진한 맛과 방목 닭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주인이 호남 출신의 아낙이다. 경북 북부로 시집왔다. 음식 만지는 손끝이 맵다. 언젠가 시금치 무침을 세 번이나 리필했던 적도 있다. 깊은 산속의 자그마한 식당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특이하게 홍어를 내놓는다. 홍어를 찾는 손님도 제법 있다.밑반찬들이 제법 짭짤하다. 인근에 명봉산이 있다.‘유정식당’. 차별화된 식당이다. 고집불통이다. 자연산 국산, 양식, 중국산 미꾸라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이른 아침 바깥주인이 길을 나선다. 인근의 논배미나 못, 크고 작은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직접 잡는다, 가게 한구석에 미꾸라지를 넣어둔 붉은 통이 있다. 이미 2~3일 동안 진흙을 토해낸 미꾸라지다. 이 미꾸라지로 전골을 끓인다.오랫동안 직접 잡은 미꾸라지로 탕을 끓였다. 국산 양식을 쓰면 편하다. 자연산도 구할 수 있다. 굳이 미꾸라지를 직접 잡는 것은 “직접 잡는 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 등에서 취재 요청을 하지만 거부했다. 방송에 출연한 후, 손님들이 밀려오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 자연산 미꾸라지는 늘 부족하다. 이 집의 미꾸라지 음식은 특이하다. 서울식으로 ‘통추’를 사용한다. 큰 냄비에 미꾸라지를 넣고 채소를 더한 다음 푹 끓인다. 탕이라기보다 ‘전골’이다. 농경지역이면서 미꾸라지 손질은 마치 서울식 같다. 통추에, 된장도 아니고 매운맛이 도는 붉은 국물이다. 형식도 탕이 아니라 전골이다. 식탁에서 손님들이 직접 끓여 먹는다. 건더기를 먹고 나면 수제비를 넣어서 먹을 수도 있다.경북 지역의 지자체들은 모두 자체 브랜드 쇠고기를 내놓는다. 안동과 예천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안동한우, 예천참한우가 따로 있다. 예천사람들은 ‘참한우’ 맛이 제일 낫다고 주장한다.바로 그 참한우를 사용하여 육회비빔밥을 내놓는다. 겉보기로는 별 차이점이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고기 육질이 비교적 탄탄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고기는 씹는 맛”이라고 주장한다.‘백수식당’은 오래된 노포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났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주차장, 실내가 말끔하다. 음식도 잘 정리된 모습이다.유기를 사용하니 아무래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식당이니 음식은 얼마간 달다.예천에 무슨 공항?, 이라고 되물을 법하다. 예천에는 한때 민간항공기가 뜨고 내린 공항이 있었다. 지금은 군용으로만 사용한다. 공항 가까운 곳에 ‘공항휴게소’가 있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편의점과 식당이 붙어 있다. 한쪽은 편의점, 한쪽은 식당이다. 예천 참한우를 내놓는 고깃집인데, 식사메뉴로 육회비빔밥도 내놓는다.나물 만지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정갈한 밥상이다. 육회의 신선도도 좋다.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비벼 먹어도 되는 경북 북부식 육회비빔밥이다. 정확한 식당 이름은 ‘예천신공항휴게소’다.‘단골식당’과 ‘고향식당’의 공통점이 있다. 직화, 석쇠구이다. 내용은 다르다. ‘단골식당’은 돼지고기와 더불어 ‘오징어불고기’가 유명 메뉴다. ‘고향식당’은 예나 지금이나 돼지고기를 연탄 직화, 석쇠로 구워낸다.위치도 전혀 다르다. ‘고향식당’은 예천 읍내에 있다. 이전하기 전 군청 바로 가까운 곳이다. ‘단골식당’은 용궁면이다.‘단골식당’은 전국구 맛집이다. 순대국밥, 돼지고기 음식으로 널리 알려졌다. 손님들은 단골식당의 국물 맛이 진하다고 한다. 토렴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단골식당’은 토렴을 했다. 가게 한쪽에 큰 가마솥을 걸고 주방 인력들이 끊임없이 그릇에 국물을 담고, 따라내고, 다시 담고를 반복했다. 겨울철 밥알이 차가울 때 토렴을 통하여 밥을 뜨겁게 하고, 국물의 깊은 맛을 그릇에 담았다.‘고향식당’은 소박한 집이다. 가게 안팎이 모두 허름하다. 음식은 늘 수준급. 가게 입구 좁은 공간에 연탄 화덕이 몇 개 있다. ‘주인 아들’이 열심히 석쇠로 돼지고기를 구웠다. 고추장, 고춧가루로 양념한 돼지고기불고기는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가족 경영이다.돼지고기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 음식이 꾸준한 것도 보기 좋다.모두 묵을 주요 메뉴로 내놓는 가게들이다. 도토리묵이든 메밀묵이든 가리지는 않는다. 도토리가 귀해지면서 메밀묵이 주 메뉴가 되었다. 원형 청포묵은 녹두로 만든 묵이다. 녹두로 만든 묵은 색깔이 푸르스름하다. 청포묵을 만들 때, 치자 물을 들이면 묵 색깔이 노르스름해진다. 황포묵이다. 청포묵은 푸른 색깔은 아니다. 오히려 흰 색깔에 가깝다.‘전국을달리는청포집’은 청포묵 전문이지만 정작 주력 메뉴는 ‘탕평채’다. 묵과 녹두나물, 홍당무, 달걀지단, 쇠고기 채썬 것, 미나리 등 푸른 채소를 골골이 놓는다. 먹을 때는 김 가루 정도를 더하고 뒤섞는다. 안동, 예천 등지에서 널리 먹는 탕평채다. 예천 현지에서는 ‘잘 차린 한정식을 내놓는 집’으로 여긴다. 밥상에 반찬이 20가지쯤 되는, 한상차림 전문점인 셈.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맛집이다.‘통명식당전통묵집’은 메밀묵이 주력 메뉴다. 현지 사람들은 ‘통명묵집’으로 부른다. 메밀묵을 썰어서 국물에 넣고 신김치, 김 가루 정도로 맛을 낸 메밀 묵밥이 아주 좋다.‘통명묵집’과 ‘동성분식’은 태평추가 좋다. 태평추는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에 신김치, 돼지고기를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것이다. 황포, 청포묵, 탕평채가 비교적 고급스러운, 반가의 음식이라면, 태평추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겨울이 되면 예천 읍내 군데군데에서 태평추를 끓인다. 연탄불 위에 태평추를 올려놓고 술잔 기울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통명식당전통묵집’은 행정구역으로는 읍내지만, 읍내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다. 통명리. 가게 바로 옆에 개울이 있다. 허름한 시골집이지만 나름대로 운치도 있다.‘동성분식’은 읍내 작은 골목 안에 있다. 아주 작고 허름한 식당. 봉놋방이 있고, 작은 주방이 있다.‘초산정’은 전통식초 전문 업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식초를 만든다. 전국의 식초 장인들과 손을 잡고 ‘전통식초협회’를 결성했던 한상준 대표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지자체를 찾아 식초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식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유산초와 초산초다. ‘초산정’은 초산초를 위주로 전통식초를 제조, 관리하는 회사다. 식초, 전통식초, 식초산업은 아직 정확한 규정이 없다. 소비자들은 마트 등에서 손쉽게 구하는 ‘양조식초’를 식초로 믿는다. 그렇지는 않다. 공업, 대량 생산한 식초는 발효, 숙성의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값싼 대량 생산물일 뿐이다, ‘초산정’에서 만드는 ‘전통식초’가 바로 식초다. 다른 것은 식초 맛을 내는 공장 생산품일 뿐이다. 민간의 유산초는, 마시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양념으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다. 식초가 가지고 있는 각종 비타민, 미네랄도 ‘전통식초’와는 다르다.‘초산정’의 한 대표는 정부 해당 기관과 협의, 정확한 식초의 규격을 정하는 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한 대표가 만드는 ‘오곡미초’ 등의 레시피는 홈페이지(www.chosanjung.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09-25

잠시 돌아와 마음 뉘일 고즈넉한 시간과 마주서다

넉넉한 인심과 수려한 풍광이 찾는 이들을 매혹하는 예천군. 오염되지 않은 맑은 강과 하늘을 향해 뻗은 푸른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숲. 재론할 것 없다. 예천은 아름다운 도시다. 내달 펼쳐질 ‘세계 활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예천을 다녀왔다. 회룡포와 삼강주막이 선물한 낭만과 곤충생태원에서 느낀 즐거움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활과 화살만 잡으면 당 태종 이세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고구려 장수 양만춘이나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떨어뜨렸다는 윌리엄 텔처럼 명궁(名弓)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청복리 널찍한 공간에 시원스레 조성된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을 찾은 날. 강사의 도움을 받아 양궁체험장에 섰다. 활은 무거웠고, 화살은 과녁에서 자꾸 멀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즐거움에 빗나가는 화살을 보면서도 웃었다. 1979년. 예천여고 2학년 ‘소녀 김진호’는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 5관왕에 오른다.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각종 양궁대회가 열리는 이곳은 해마다 1만여 명의 양궁선수, 임직원, 선수 가족들이 찾는다. 지역경제 발전에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예천군체육사업소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와 홍콩의 양궁선수들에게도 ‘최적의 훈련지’로 호평받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진호국제양궁장 인근엔 활 체험장과 다목적 운동장, 풋살 경기장도 만들어졌다. 주민들에게 ‘운동을 통한 건강한 삶’을 선물하기 위해서다.양궁 경기가 없을 때면 많은 방문객들이 ‘활쏘기’의 짜릿함을 즐기려 이곳을 찾는다. 기자는 초보자용 ‘리커브 활쏘기’를 체험했다. 좀 더 역동적인 걸 원하는 사람이라면 ‘국궁 체험’이나 움직이는 목표물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AR 무빙 타깃 활쏘기 체험’에 도전하면 된다. 팀을 구성해 실력을 겨루는 ‘활 서바이벌 체험’은 젊은층에게 인기다. 활은 구석기시대 때부터 사용됐다. 1만5천 년 전 그려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서도 화살을 든 사람을 볼 수 있다. 한국 역시 고구려 무용총 벽화(수렵도)와 김홍도의 민화 등에서 활과 화살을 확인할 수 있다. 활쏘기는 우리 선조들이 심신을 단련해온 수단 중 하나였다. 세계전통활연맹(WTAO)이 창립되기도 한 ‘활의 고장’ 예천군은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2019 예천세계활축제’를 연다. 양궁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활을 문화관광 상품으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다. 축제에선 외국 공연단의 활쏘기 시범과 전통 무예 등을 관람할 수 있고, 전국 양궁동호인 대회도 이 기간에 열린다.예천군은 “다양한 공연이 펼쳐질 개막식과 거리 퍼레이드가 관광객들에게 흥겨운 볼거리를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천 전국가요제와 어르신 노래자랑, 도립국악단과 무용단의 화려한 무대 또한 기대해도 좋을 프로그램. 축제 현장에선 예천 특산물과 공예품이 판매되고, 여행자의 입을 즐겁게 해줄 푸드트럭도 운영된다. 아이들은 플래시 몹(Flash mob)과 불꽃놀이를 기다릴 듯하다. 연초부터 축제의 기본 구상을 시작한 예천군청은 ‘2019 예천세계활축제’의 성공을 위해 철저한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했고, 곧 자원봉사자 발대식도 열 계획이다. 상세한 축제 프로그램과 행사 일정은 예천세계활축제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ywa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조그만 생물 곤충, 인류의 귀한 동반자”예천 곤충생태원서 만난 ‘미래의 비전’“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문장은 긴 고민의 시간을 인간에게 던진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작은 ‘곤충’들. 이것들은 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예천군 효자면에 자리한 ‘예천 곤충생태원’은 위에 언급한 질문에 답하는 공간이다. 살아있는 곤충을 직접 보며, 그것들이 가진 ‘미래의 비전’까지를 유추할 수 있는 곤충생태원은 한국에선 전례가 드문 곤충 전문전시관.이곳을 찾은 부모들은 ‘세계의 나비관’에 전시된 날개 고운 나비와 ‘3D 전시관’ 속 화면을 종횡하는 곤충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살아있는 곤충과 교감할 수 있는 ‘신기신기 곤충체험실’과 개미와 꿀벌의 생태를 관찰하는 ‘찰칵찰칵 벅스하우스’는 그곳에서 체험한 유년의 기억을 오래 떠올리게 할 것이 분명하다.과학자를 꿈꾸는 소년·소녀들에게 예천 곤충생태원은 ‘친절한 선생님’으로 역할한다. 갈색거저리, 흰점박이꽃무지, 장수풍뎅이 등은 식량자원이 고갈된 지구에서 유용한 식용 곤충이 될 수 있는 것들. 예천군은 식·양용 곤충의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위해 5개의 농업법인도 설립했다.대구에서 온 강석훈(42) 씨는 “평소 벌레를 무서워하던 아들이 장수풍뎅이를 직접 본 이후엔 곤충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며 웃었다. 강씨 아들의 장래 희망은 이제 곤충학자가 됐다.동화 속 공간처럼 만들어진 ‘예천 곤충생태원’엔 동굴곤충체험관, 훨훨 나비터널 등이 있어 방문객들의 환호성을 부른다. 거기까지 운행되는 모노레일에 탑승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다.생태원 관계자는 “조그만 생물인 곤충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귀한 동반자임을 깨닫게 된다면, 인간의 삶도 보다 풍요롭게 변화하지 않을까”라는 철학적인 견해를 전하기도 했다.곤충생태원 지척엔 금당실 전통마을과 초간정, 용문사와 석송령, 선몽대 등 예천군이 내세우는 관광명소도 적지 않다. 돌아보기를 권한다.내성천이 빚어낸 절경 ‘회룡포’ 감상 후엔옛 정취 가득 ‘삼강주막’서 낮술 한잔 ‘캬~’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맑은 날도 좋지만 흐린 날이라고 유명짜한 풍광이 달라질 리 없다. 풍광 좋은 예천. 그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회룡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근사하게 묘사된 한국화를 방불케 한다. 누가 붓을 든 것일까?식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회룡포 일대는 ‘눈부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유려하게 꺾어지는 물길과 빛나는 모래사장. 거기에 깃을 털며 날아오르는 하얀 새들의 몸짓까지.회룡포를 찾아 예천군 용궁면까지 달리는 길도 매력적이다. 짙푸른 녹음과 적요해서 더욱 눈길을 끄는 비포장 시골 도로. 그 끝에 출렁이는 강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 길을 “신선이 사는 곳에 이르는 여정”이라고 말한다.KBS 오락·여행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 회룡포는 내성천 푸른 물길과 그 안에 자리한 조그만 마을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절경이 방문객들을 압도한다.여기까지 찾아간 이들이라면 당연지사 ‘삼강주막’도 가야 한다. 이른바 “한국의 마지막 주모‘가 있던 낭만의 공간. 그 옛날, 과거 급제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림으로써 부모의 자랑이 되고자 했던 청년들이 지친 다리를 쉬어가던 곳.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34호. 선비들만이 아닌 보부상과 뱃사공의 힘겨움까지 넉넉하게 안아주던 이곳은 방과 마루, 요리를 만들던 부엌으로 구성돼 있다. 아궁이엔 아직도 옛날 그을음이 그대로다.지난 2006년 ‘우리나라 마지막 주모(酒母)’로 불리던 유옥련 씨가 사망한 후엔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됐다. 이듬해 주막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된 것은 “전통을 복원하고, 이를 스토리텔링화 하겠다”는 예천군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회룡포 전망대를 내려와 갈 곳을 찾는 이들에게 삼강주막은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지금도 저렴한 안주와 막걸리를 팔고 있으니, 백일몽을 부르는 ‘낮술’ 한잔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9-09-25

낙동강,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다

‘제7회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이하 낙동강 대축전)’이 오는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칠곡보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낙동강 대축전은 낙동강이 가지는 역사, 기억, 호국을 바탕으로 ‘칠곡, 평화로 흐르다’를 주제로 다양한 컨텐츠를 준비했다.육군 제2작전사령부 주관의 ‘낙동강지구 전투전승행사’와 3년 연속 통합 개최돼 더욱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낙동강지구 전투전승행사’의 경우 지난해까지 각각의 공간에서 킬러 콘텐트 구축의 축전과 전투 전승행사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올해는 이전의 경험이 어우러져 각각의 공간에서 융복합 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것으로 기대된다.낙동강 대축전은 특산물을 활용해 먹고 즐기는 ‘그저 그런’ 축제가 아니다. 6·25전쟁의 마지막 보루로써 역할을 하며 전쟁의 아픔을 일깨우고 전 세계에 평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를 위해 지역의 정체성과 축제를 홍보하고자 백선기 칠곡군수를 비롯한 공직자 및 군민들이 자발적인 홍보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낙동강 대축전 홍보에 동참하며 경북 대표축제 품앗이 홍보까지 이끌어냈다.본지는 1년 간의 준비 끝에 새롭게 펼쳐질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을 소개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올해 낙동강 대축전은 칠곡보생태공원을 중심으로 평화 테마파크와 강 건너 오토캠핑장에 위치한 호국 테마파크로 공간이 분리된다. 각 테마파크를 잇는 ‘파크 브릿지’를 행사장 중앙 430m 부교로 설정해 공간을 완성도 있게 연결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으로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기억을 미디어 아트 왜관철교를 통해 만나는 ‘왜관철교 속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움직이는 AR영상으로 만나는 55일의 이야기와 낙동강을 한눈에 담아 보는 평화 전망대가 놓인 ‘평화의 숲’ △신나는 음악과 현란한 조명 아래 롤러를 타며 평화를 만끽하는 문화놀이 공간인 ‘평화야 롤러와’ △대한민국 군 최신 무기 전시와 훈련병 체험 등을 통해 만나는 ‘호국 테마파크 등 70여 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처음으로 선 보이는 ‘평화야 롤러와’는 옛 추억을 담은 롤러장을 현대적인 무드로 해석한 공간이다. 신나는 음악과 현란한 조명, 롤러를 타며 평화를 만끽하는 문화놀이 공간이다. 평화야 롤러와는 롤러스케이트장, DJ박스, 포토존, 오락실, 푸드존으로 구성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신나게 롤러를 타며 평화를 만끽할 수 있다.□ 실경 뮤지컬 ‘55일’6·25전쟁 당시 치열하게 전투가 펼쳐졌던 낙동강, 관호산성 등의 실경을 배경으로 파사드, 레이저 등의 최첨단 특수효과가 동원돼 펼쳐지는‘실경 뮤지컬 55일’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 예정이다. 이 공연은 실제 경치를 활용해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길이가 50m에 달하는 대형무대 △관호산성을 스크린으로 이용한 8m 대형 LED 스크린 2대 △실제 낙동강을 활용한 워터스크린 △3만 안시급 국내 최고해상도 빔 프로젝트 △공간전체를 커버하는 레이저와 특수조명 △다양한 폭죽과 특수 효과 등 다양한 연출을 활용해 40분의 러닝타임으로 한 편의 영화같은 퀄리티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전문 배우뿐만 아니라 40명의 칠곡 군민과 50명의 현역 군인이 함께 연출해 더욱 의미있는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군민배우는 계급장과 군번이 없이 탄약과 식량 등의 군수 물자를 지게에 짊어지고 운반했던 노무부대원과 책 대신 총을 들고 전투에 임한 학도병 역할을 담당한다. 50사단 장병으로 구성된 군인배우는 69년 전 북한군과 남한군이 돼 실감나게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현할 계획이다.□ 특별한 보훈6·25전쟁 당시 마산·왜관·영천·포항 일대를 잇는 ‘워커 라인’을 성공적으로 사수했던 미 육군 워커(Walker) 중장의 손자인 샘워커 2세가 이번 대축전을 찾을 예정이다. 대를 이어 한국을 사랑했던 워커 가문의 특별한 감동은 물론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쉐페로 쉬구테 월라사 주한에티오피아대사 역시 칠곡군을 찾을 계획이다. 호국을 도시 정체성으로 삼고있는 칠곡군은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 오르미아주 디겔루나 티조를 칠곡평화마을이라 부르고 식수와 교육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또 티그라이주 아라토 셈하에서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새마을 운동의 정신을 전파했다. 군은 쉐페로 대사와 함께 낙동강 대축전에서 ‘칠곡평화마을 자립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인터뷰: 백선기 칠곡군수참전용사·호국영령에 보은전후세대엔 안보교육 현장“호국과 보훈,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고 특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호국평화 축제를 맛깔스럽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합니다.”백선기 칠곡군수는 다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공직자들과 함께 1년 간 쉼 없이 축전 준비에 열중했다.그가 낙동강 대축전에 대해 열정을 쏟아붓는 것은 다름아닌 칠곡군의 정체성과 전세계에 평화의 메세지를 전파하기 위함이다.백 군수는 “칠곡의 역사와 도시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문화행사가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이다. 낙동강대축전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참전용사에게는 보은(報恩)의 장이요, 전후세대에게는 안보를 교육하는 현장학습의 무대이다”며 “낙동강 대축전을 통해 호국과 보훈이 6월 같은 특정한 시기와 현충시설과 같은 제한된 장소에서만 실천하는 의전행사가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향유하고 실천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실제 낙동강 대축전은 진화 중이다. 지난해 30만 명의 구름과 같은 관람객을 불러 모았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지침에 따라 실시한 평가에서도 5점 만점의 만족도 중 4.28점을 얻었다. 이는 문화관광축제 평균 점수인 3.47점을 크게 상회하는 점수다.올해 낙동강 대축전에서 펼쳐질 각종 공연에는 관람석 두 자리가 비워 있을 예정이다.그는 “올해부터 각종 공연이 열리는 무대에는 관람이 가장 용이한 VIP 좌석 두 곳을 전몰장병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종 장병을 위해 비워둘 예정이다. 국화꽃을 올려두고 정복을 입은 부사관 후보생이 미동도 않고 옆에서 지킬 예정이다. 비어있는 자리는 낙동강 대축전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잘 전달하는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에서 비롯됐다. 올 가을에는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인 칠곡군에서 자신의 모든 것과 가족의 행복까지도 포기했던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고 존경과 감사를 보냈으면 한다. 역사의 이름으로 당신을 초대한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그는 함께 고생한 공직자 및 군민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백 군수는 “이번 축전을 준비하느라 1년간 고생한 공직자와 자발적으로 홍보에 참여한 군민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또 경북 대표 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나서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및 관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19-09-25

영의정이 장기에서 죽다

1690년(숙종 16) 10월 12일, 사늘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는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외지 손님이라곤 손꼽힐 정도로 한적하던 경상도 장기 땅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허겁지겁 내려왔고, 장기현감은 이들을 수발하느라 혼비백산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작년 2월에 이곳으로 유배를 왔던 영의정이 갑자기 객사를 했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직책도 그렇거니와, 그가 다름 아닌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인 김수흥(金壽興)이었다. 그의 명성하나로도 전국의 이목이 경상도 장기현으로 집중되기에는 충분했다.김상헌은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었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던 그가 후에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필수고전 시가가 되었다. 조선후기의 대표적 세도가문인 안동(장동) 김씨는 실질적으로 김상헌에서 출발했다.하지만 이 집안도 한 때 이처럼 고통을 겪을 때가 있었고, 그 고뇌의 현장이 바로 경상도 장기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 사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숙종 집권기의 환국정치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환국(換局)은 ‘시국 또는 판국이 바뀌는 것’을 일컫는데, 숙종의 재위 기간에만 세 번의 환국이 있었다. 숙종은 이 환국정치를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이끌어 갔다.숙종이 임금 자리에 오를 때의 집권세력이었던 남인은 힘이 너무 강했다. 그 유명한 우암조차 몰아낸 무소불위의 세력이었다. 그래서 숙종은 남인의 힘을 약화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남인의 영수였던 영의정 허적이 자신의 아버지 잔치를 위해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궁궐에서 쓰는 천막을 집으로 가져가고, 궁궐의 악공들을 동원한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숙종은 남인들을 역모로 몰아 쫓아내고 서인들을 적극 등용하는데, 이를 경신환국(1680)이라 한다.이렇게 권력을 다시 잡은 서인들은 자기들 세상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제 모든 자리가 서인 일색이었으니 자신들이 지도권을 놓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숙종의 생각은 달랐다. 두 번째 정치 승부수가 1689년에 일어난 기사환국이다. 이 해에 궁녀 장옥정이 낳은 왕자 윤(昀)을 원자(元子)로 책봉하는 문제를 놓고 남인과 서인 간에 격돌이 일어났다. 숙종은 윤을 원자로 책봉하고 장옥정을 희빈(禧嬪)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당시의 집권세력이던 서인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비(正妃) 민씨(인현왕후)가 아직 나이가 젊으므로 그녀의 몸에서 후사가 나기를 기다려 적자(嫡子)로서 왕위를 계승함이 옳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인들은 숙종의 주장을 지지했다. 숙종은 어느새 왕권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성장한 서인의 전횡을 누르기 위해서는 남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숙종은 남인을 재등용하는 한편, 원자의 명호를 자신의 주장대로 정하고 장옥정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왕비 인현왕후 민씨는 쫓겨났고, 송시열은 삭탈관작 당하고 제주로 귀양갔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이때 송시열과 같은 계열에 섰던 김수흥도 관작을 삭탈당하고 장기현으로 유배되고, 동생인 김수항도 남인들의 공격을 받고 사사되는 등 서인의 거물 100여 명 이상이 파직되거나 유배를 갔다. 그 대신 권대운·김덕원·목래선 등의 남인이 정치적 실세로 등용되었다. 이게 기사환국이다.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남인들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1694년 다시 한 번 환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숙종은 희빈이 너무 방자하게 굴자, 민씨(인현왕후)를 쫓아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인들 중 일부가 폐비 민씨 복위 운동을 비밀리에 전개했고, 이것을 안 남인들은 민씨 복위 운동에 관여한 서인들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숙종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오히려 남인 세력을 쫓아내고 서인을 다시 등용했던 것이다. 기사환국으로 왕후(王后)가 된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강등시키고, 인현왕후 민씨를 복위시켰다. 이해가 1694년 갑술년(甲戌年)이라고 해서 갑술환국이라고 한다.기사환국으로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김수흥은 호가 퇴우당(退憂堂)이다. 동생도 영의정을 지냈는데, 앞서 언급한 김수항이다. 이들 형제들은 조선후기에 문명을 떨쳤던 장동(壯洞)김씨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서울 장의동(壯義洞)을 터전으로 한 장동김씨는 원래는 안동김씨인데, 이들만 따로 신안동김씨라고도 한다.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한 김상용, 앞서 언급한 김상헌 등이 이 가문에서 나와 충절로 가문을 빛냈다. 김상헌에게는 수증·수흥·수항이라는 세 명의 손자가 있었는데 모두 높은 벼슬을 하여 이 삼형제를 삼수(三壽)라고 했고, 증손인 창집·창협·창흡·창업·창집·창립 등 여섯 명도 모두 걸출하여 이들을 육창(六昌)이라 했다. 이들 삼수육창(三壽六昌)은 조선후기의 정치·사상·문화·학술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김원행, 김조순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명성과 덕망을 드날렸다. 순조 때 김조순을 시작으로 조선후기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1626년(인조4) 10월 16일 태어난 김수흥은 조부 김상헌으로부터 가학을 이어받았다. 김상헌의 학통은 율곡과 김장생으로 이어온 서인이었다. 따라서 김수흥은 송시열과 송준길로 이어진 서인 학문의 정맥을 접하게 된 것이다.명문가에서 성장한 김수흥은 동생 김수항과 함께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요직을 거치다가 36세에는 당상관인 통정대부의 품계에 올랐으며 사간원 대사간, 한성부 우윤, 승정원 도승지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그의 호인 퇴우(退憂)가 말해주듯 그는 벼슬에 나아갔을 때에나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에도 임금과 백성에 대한 근심을 우선적으로 하였다. 48세에는 종1품의 품계에 올라 판의금부사를 지냈으며, 다음해 국정 최고의 자리인 영의정에까지 올랐다.김수흥은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듯 했으나, 현종과 숙종 연간에 빈번하게 일어난 옥사(獄事)로 인하여 유배와 은거를 하는 등 부침이 많았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춘천으로 유배를 다녀오는 가하면,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집권하자 영중추부사로 복직했다. 아우 김수항의 뒤를 이어 1688년에는 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1689년 2월에 기사환국으로 된서리를 맞고 장기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장기로 온 김수흥은 마치 15년 전에 이곳에서 왔던 우암 송시열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사람들 틈에 끼여 토속을 즐기며 강학에도 힘썼으나, 아쉽게도 이듬해인 1690년 10월 12일 병을 얻어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65세였다. 그의 갑작스런 객사는 조선왕조실록에 졸기(卒記)가 실릴 정도로 세상의 이목거리였다.장기에서 죽은 김수흥의 관(棺)은 경주를 통해 서울로 갔다. 김수흥의 상구(喪柩)가 올라갈 때에, 경주 영장(營將) 남헌(南巚)은 편오군(編伍軍) 2개 부대를 편성하여 그의 관을 메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었다. 나중에 남인들이 이를 알고 문제 삼아 남헌은 사헌부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김수흥은 오랫동안 관직생활을 하면서 그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일들에 관련된 수많은 상소와 차자(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를 올려 당시의 병폐를 지적하였고, 이를 시정할 계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국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의 개진은 충군우민(忠君愚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0권 5책으로 편찬된 그의 문집 퇴우당집(退憂堂集)에 소차(疏箚)·계(啓)·의(議)가 6권이나 될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그가 시무(時務)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그의 문집에는 장기 유배지에서 쓴 시들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몇 편을 소개하면 이렇다.장기 배소에 도착하여 의금부 감압관 오수대(吳遂大)를 조정으로 보내며/ 到長鬐配所 別吳金吾 遂大 還朝큰 바다가 동쪽에 붙어있고/ 大海東臨近무리지은 산들은 북쪽멀리 아득하네/ 群山北望遙떠도는 삶은 본래 이와 같은 것/ 浮生本如此함께 한 자 보내고 나니 내 넋조차 사라지네/ 莫遣旅魂消영남대로 봄바람 사납지만/ 嶺路春風厲강담(江潭)의 풀 색깔은 새롭구나/ 江潭草色新외로운 신하 임금 그리워 눈물짓고/ 孤臣戀君淚북쪽으로 돌아간 사람 지워지질 않네/ 灑向北歸人봉산에서 보고 느낀 일/ 蓬山卽事한양에서 10년 동안 이룬 것이 고작/ 京洛十年成底事천리 밖 바닷가에 여생을 부치는 일인가/ 海山千里寄殘生짧은 봄밤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春宵旅榻仍無寐자리에 누워 거센 파도소리만 듣고 있네/ 臥聽長鯨鼓浪聲장기에서 불행한 최후를 맞았던 김수흥은 1694년 갑술환국 때 송시열과 같이 관작이 회복되었다. 그가 죽은 지 5년 만이었다. 이때부터 사림들이 우암 송시열을 향사하는 원사(서원·사우 및 영당)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장기사람들도 우암 영당(影堂) 건립을 추진했다. 현재 장기면 읍내리 용전이란 곳에 터를 마련하고 1707년에 죽림서원 건축을 시작하여 1708년에 완공을 보았다. 1709년 4월 6일에는 우암 영정을 봉안하였고, 퇴우당 김수흥의 문집도 같이 이곳에 보관하였다.이렇듯 김수흥은 정국의 변동에 따라 부침이 심하였지만 충군우민(忠君憂民·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함)과 선우후락(先憂後樂·다른 사람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나중에 즐김)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식은 그의 문학세계에도 깊이 스며들어 젖어 있다. 그리고 죽림서원과 이곳으로 유배를 왔던 또 다른 노론계 인맥들을 통해 장기사람들에게도 그의 사상이 깊이 전파되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09-24

‘달성 100대 피아노’ 선율… 가을 정취에 흠뻑 젖는다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는 피아노의 선율이 대구 달성군에서 울려퍼진다.‘2019 달성 100대 피아노’가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달성군 사문진에서 개최된다.8년째 맞는 이번 축제는 다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블록버스터 공연의 새로운 경지를 선사한다.예술감독은 2012년~2016년까지 총 5번의 100대 피아노와 함께 해 온 임동창씨가 맡는다. 임 감독은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평의 100대 피아노의 향연을 펼친다.지휘봉은 ‘2018 달성 100대 피아노’의 총 연출을 맡았던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잡는다. 품격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감성 보컬 가수 백지영씨와 7080의 우상 쎄시봉(송창식, 조영남, 김세환)도 출연해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예정이다.□ 달성 100대 피아노의 역사2012년 ‘달성 100대 피아노’는 달성군 개청 100주년을 앞두고 대구 사문진으로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것에 착안해 처음 개최됐다. 이후 달성의 대표적 축제로 자리 잡은 이 축제는 해를 거듭하며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지역적 사회적 특성과 문화적 기획력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첫 축제 당시 8천명이던 관람객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2017년 5만명, 2018년 6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간 본 공연에 참여한 아티스트만 해도 1천명이 넘는다.이러한 축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 피아노가 유입된 장소라는 역사적 사실에 피아노 공연이라는 옷을 입힘으로써 문화향유를 갈망하는 주민 욕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달성 100대 피아노’는 지역의 특색을 결정짓는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또 달성을 넘어 시민들이 사랑하는 대구의 문화자산으로도 입지를 확고히 다져왔다.2017년 10월 유네스코 음악창의 도시로 선정된 대구광역시는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교류와 창의산업·관광 등 다양한 갈래로 국제 문화도시로의 발돋움을 하는 시점에서 ‘달성 100대 피아노’는 중요한 음악적 자원으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는 역량과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축제의 성장달성문화재단은 지난 8년간 다양한 시도로 ‘달성 100대 피아노’를 성장시켜 왔다. 이탈리아 ‘피아노 시티 밀라노’와 MOU를 체결한 뒤 연주자를 초청한 바 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소프라노 신영옥, 피아니스트 이루마, 유키 구라모토 등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도 초청해 지역주민들의 목마른 문화 갈증을 해소시켰다. 지역민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들의 성원 속 기부도 이어졌다. 지난해 달성군 가창면의 한 교회 목사가 130년 전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대구로 들어온 피아노를 달성군에 기부했다.당시 국내에 들어온 피아노는 미국산과 유럽산으로 구분되는데, 미국에서 들어온 피아노는 낙동강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여왔다고 전해졌다. 피아노를 기부한 배진형 목사는 “사문진을 통해 들어온 피아노의 역사성을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이 피아노는 지역 피아노의 역사성을 보여주며 군민들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피아노는 달성군청 2층에 전시돼 있다.□ 달성 문화의식·주체성 이끌다대구시와 달성군의 대표적 축제로 자리 잡은 ‘달성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비단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탄탄대로의 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지난해 사업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예산도 확보하지 못해 공연 개최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수차례의 추경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 대표 공연의 연속성을 깨뜨려선 안된다는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역민들은 ‘달성 100대 피아노 콘서트’ 개최를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금에 동참했고, 개인 뿐 아니라 지역의 기업들도 함께했다. 이들의 열정에 감동한 군의회가 힘을 보탰다. 그래서 ‘달성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지역민들의 문화의식과 주체성이 눈여겨 볼 만하다.□ 올해 공연의 주안점6번째 예술감독을 맡은 임동창씨는 어느 해보다 100인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임씨는 100대 피아노의 웅장하고 장엄한 선율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 세계 유일의 블록버스터 피아노 축제인 ‘달성 100대 피아노’의 확고한 정체성을 선포한다.또 특별기획으로 ‘2019 달성 100대 피아노’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한다. 이들은 피아노·판소리·보컬(가요, 성악 등) 분야의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은 예년과 차별된 프로그램을 주도한다. 이들에게는 예술적 에너지를 증폭시킬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첫 날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씨가 지휘 한다.사회는 배우 김태우가 맡아 관객과 친근한 소통으로 음악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21세기형 클래식 뮤지션이라 불리며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피아니스트 지용, 색소폰으로 영혼을 만지는 뮤지션 소울 마에스트로 대니정, 파워풀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 국내 최정상 피아니스트 김영호, 김재원, 유영욱, 윤철희로 구성된 피아노 앙상블과 지역의 대표 소프라노 이윤경이 출연해 풍성하고 품격 높은 무대를 펼친다. 이 밖에 첼리스트 예슬과 아코디어니스트 임슬기가 출현해 피아노와 어울리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다.둘째 날에는 임동창 예술감독이 획기적인 연출을 선사한다. 먼저, 100인 피아니스트의 웅장함에 100인 설장구와의 협업을 더해 장대한 선율을 배가시켜 관객의 이목을 집중 시킨다. 올해의 새로운 시도인 협연자 12인(피아노, 판소리, 성악)이 주축 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 이들과 100대의 피아노가 함께하는 무대를 만든다.김문오 달성군수는 “올해의 100대 피아노 향연은 기대해도 좋다. 군민은 물론 대구시민들이 사문진나루터를 찾아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 보기를 권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평소 힘든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힐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19-09-22

사파이어 빛깔 바닷물 출렁이며 신비한 음악 연주하고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鬱陵島)로 갈거나/ (….)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風浪)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유치환의 시 ‘울릉도’다. 시인은 동쪽 먼 바다의 한 점 섬 울릉도를 애타게 불렀는데, 지난 여름 내 그리움도 청마 못지않았다. 섬이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동안 나 역시 섬으로만 향하는 마음에 가슴이 일렁였다. 하지만 섬이 뭍으로 밀려올 수 없듯 나도 섬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두 번의 태풍이 뱃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은 언제나 더 큰 욕망을 일으키는 법이어서 내 마음은 지난 여름 내내 울릉도에 살았다. 미지의 옛 나라인 우산국의 백성이 되어 이사부의 정벌군처럼 몰려오는 태풍을 원망해보기도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섬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질수록 여름 끝자락에서 내 입술은 때 이른 단풍처럼 붉어져만 갔다.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입술은 달아오른다. 울릉도를 말하고 싶어서, 노래하고 싶어서, 이 기행문을 통해 섬과 대화하고 싶어서 입술은 물론 손끝까지 벌게지는 동안 추석 지나고 가을이 됐다.마침내 바다가 길을 열어주었다. 요란한 가을장마와 제17호 태풍 ‘타파’ 사이에서 동해는 며칠 밤낮으로 가만히 다정했다. 울릉도로 가는 바닷길은 네 갈래다. 강원도 강릉과 묵호, 경북 후포와 포항에서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서울에서는 강릉이나 묵호가 가깝고, 후포에서 배를 타면 3시간 채 걸리지 않아 울릉도에 닿는다. 하지만 나는 포항에서 출항하는 썬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다. 울릉도를 오가는 가장 큰 여객선이기 때문이다.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누군가는 얼굴이 환하고 누군가는 안색이 어둡겠지. 어떤 이는 행복을 좇아서 가고 또 어떤 이는 불행으로부터 도망쳐 갈 것이다. 그 ‘사람의 얼굴’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나는 아침 9시 50분, 거대한 선체 위에 가을 아침 햇살이 샛노란 해바라기를 피워낸 썬플라워호에 올랐다.평일인데도 여객선 안은 붐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는 줄은 몰랐다. 추석 연휴에만 무려 7천 명의 관광객이 들어왔다고 한다. 울릉도 인구가 1만 명인데, 명절 동안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로 섬이 보름달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연휴가 끝나도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 발길은 끊이지 않는 듯했다.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여객선 안,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눕고, 또 어떤 사람들은 컵라면과 삶은 계란을 먹고, 또 또 어떤 사람들은 화투패를 돌렸다.3시간 40분의 항해는 모처럼 만끽하는 휴식과 사색의 시간이었다.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며 책을 읽고, 원고를 교정했다. 나에게는 천국과도 같던 여객선 안이 다른 이에게는 지옥이 되었을까. 너울이 심한 날이 아니었음에도 여기저기 배멀미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혼이 나간 얼굴을 하고 주저앉아 있다가 여객선이 한번 꿀렁거리면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는 것이었다. 귀 밑에 붙인 패치도, 출항 전에 먹은 멀미약도 좀처럼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 배에 탈 일이 많은 낚시꾼들은 효과가 확실한 ‘초강력 멀미약’을 구비해 다니곤 한다. 요즘 같은 때에 추천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네론’이라고 하는 일본 제품이 있다.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효과는 정말 확실하다. 멀미 때문에 울릉도에 갈 엄두를 못내는 사람이 있다면 권해볼 만하다.‘멀미 대소동’을 피해 잠시 눈을 붙였다. 이내 뱃고동이 크게 울어 내 옅은 잠을 깨웠다. 오후 1시 30분, 썬플라워호는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항구에 발을 내딛자마자 왁자한 소리들과 함께 어깨 부대끼는 복작임이 나를 에워쌌다. 숙박업소, 식당, 택시, 렌터카, 투어 상품 등이 저마다 손을 흔들며 “이리 오이소” 소리쳤다. ‘먹고사는 일’의 그 활달한 힘 앞에, 그 숭고한 수런거림 앞에 나는 외지인이 으레 가질 법한 경계심을 풀어버렸다. 마음 빗장이 열린 자리로 현무암처럼 투박하고 거친 사투리들이 날아 들어왔다. 돌덩이 같은 말들이지만 사근사근 마음을 두드리는 묘한 다정함이 있었다. 별 흥정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숙소와 차량을 정해버렸다.복잡한 일을 비교적 쉽게 처리하자 잊고 있던 배고픔이 발길질을 해댔다. 식당만큼은 발품 팔아 찾아보기로 했다. 골목과 골목들이 얽히고설킨 울릉도 도동을 걷는 일은 마치 미로를 탐험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여행지의 좁은 골목에서는 그곳 사람들의 꾸밈없는 일상과 취향, 아기자기한 생활들을 엿볼 수 있다. 예술작품 전시회장에 온 사람마냥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한 허름한 식당 앞에 멈춰 섰다. 울릉군청 앞에 있는 ‘돌섬식당’은 울릉도의 대부분 음식점들이 그러하듯 따개비칼국수와 따개비밥, 홍합밥, 오징어내장탕 등을 판다. 스테인리스 미닫이문에 주인 부부가 직접 따개비를 따는 모습, 정답게 따개비를 손질하는 모습 등 대문짝만 하게 붙여 놓은 사진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따개비칼국수를 주문했다. 사실 따개비란 것을 처음 먹는 순간이었다. 숱하게 바다낚시를 하며 갯바위에서 밟고 다니던 그 따개비가 음식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알고 보니 탈모에 좋은 아르기닌이 풍부해 고급 식재료로 각광받는다고 한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먹을거리가 귀한 섬, 척박한 환경에서 섬사람들이 억척스레 찾아낸 식재료라 생각하니 칼국수를 휘저을 때 푸른빛을 언뜻 내비치는 따개비살이 참 귀하게 여겨졌다. 따개비칼국수는 간단하다. 따개비 삶은 육수에 칼국수 면과 애호박, 청양고추 등을 넣고 끓여낸 후 김과 참깨를 고명으로 얹으면 끝이다. 간단한 레시피지만 면과 따개비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빨아들이면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시원함과 등대불빛의 온기, 푸른 물 내음이 몸속으로 함께 들어온다.소박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동항으로 향했다. 도동항 여객선터미널과 이어진 행남해안산책로를 걷기 위해서다. 도동항 방파제에서부터 저동 촛대바위까지 이르는 둘레길로 길이는 총 2.6㎞다. 왕복하는 데 1시간 20분쯤 소요된다. 동해에서도 먼 바다인 울릉의 물결은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랑을 지녔다.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으면 발꿈치부터 정수리까지, 혈관을 흐르는 피마저 파랗게 물드는 느낌이 든다. 걸을수록 몸이 가벼워진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바닷새가 되어 몸이 떠올랐다가 다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가을햇살로 짠 은빛 비늘의 스웨터를 입었다. 해안산책로에서 가장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은 해식동굴이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가 깎아낸 협곡에는 사파이어 빛깔의 바닷물이 쌀 씻는 소리로 차르르, 탬버린 소리로 차르르, 사랑하는 이가 긴 머리를 감는 소리로 차르르 밀려오고 밀려나가며 신비한 음악을 연주한다.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는 해식동굴의 풍경을 SNS에 올렸더니 난리가 났다. 지중해에 있느냐고,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느냐고, 이런 바다색이 있을 수가 있느냐고 호기심과 부러움, 놀라움을 담은 댓글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었기 때문이다.조금 걷다보니 ‘용궁’이라는 이름의 횟집이 나타났다. 움푹 팬 홈통 지형 빈터에다 테이블을 펴고 생선회와 전복, 오징어, 소라, 멍게 등 해산물을 파는 식당이다. 발밑까지 밀려들어오는 바다의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감촉을 온몸으로 만끽하면서 바다가 키운 해산물로 혀끝의 쾌감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따 저녁에 오이소” 하며 지어보이는 푸근한 미소가 없었더라도 오늘 저녁 식사는 무조건 이곳이라고, 점을 세게 찍어두고는 다시 걸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이 무작정 떠오르는 오후였다. “따사로운 가을날 낯익은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좋아한다. 그곳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는 곳은 없으리라.”             /시인 이병철

2019-09-22

풍경과 역사 어우러진 “성주로 떠나볼까”

오래 전 한 시인은 “길은 길 위에서 끝이 없다”고 썼다. 문인다운 표현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는 법. 다소 어렵고 추상적인 이 문장을 유쾌하고 즐겁게 이해하기 위해 붉은 단풍 물든 아름다운 ‘길’을 직접 걸어보면 어떨까? 달콤한 참외의 생산지로 유명한 성주군엔 가을을 만끽하며 유유자적 산책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 적지 않다. 역사의 향기가 깃든 길에서부터 향긋한 꽃차가 유혹하는 길, 여기에 등산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길까지.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라면 물론 좋고, 혼자 떠나도 외롭지 않을 여덟 갈래 ‘성주의 길’을 아래 소개한다.◇정견모주길에선 향긋한 꽃차 한 잔을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야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길’은 국립공원 가야산 속에 ‘조용히 숨어있는 진주’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어릴 적 읽었던 신화에서 만난 신비로움을 간직한 길과 무척이나 닮았다. 서늘하고 쾌적한 그늘이 한참 계속되는 숲길에서 느끼는 청량함이 좋고,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역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을 달래준다. 생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길을 따라 숲속 곳곳에 위치한 정자와 포토존에서 사진을 남기는 가족과 연인들이 적지 않았다.바로 옆에 자리한 야생화식물원에는 짚라인 등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를 놀이시설이 완비돼 있어 언제나 환한 웃음꽃이 핀다. 소규모지만 아기자기한 만물상과 조그만 꽃길은 식물원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여기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아버지는 야생화로 만든 꽃차 한잔을 즐겨도 좋을 듯하다. 향긋한 차의 향기는 고단한 일상을 살아온 이들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선물이다.◇ 성밖숲과 별고을길에선 눈과 귀가 모두 행복성밖숲은 가족 모두가 함께 성주를 찾은 이들에게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역사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다. 여기에선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별고을길 탐방단’이 성주 여행을 떠난다.이들은 성주에 관한 전문적 역사 지식을 갖춘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성주군의 주요 사적지를 돌아보며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별고을길을 여행하게 된다. 성밖숲에서 출발해 읍내에 있는 쌍충사적비, 성산관, 심산기념관, 봉산재, 독산 등을 지나며 역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의미가 적지 않을 것 같다.오순도순 모여 앉아 점심을 먹은 후에는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성밖숲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여기선 맨발 걷기와 그림 그리기 등의 활동이 진행된다. 이후 이어지는 ‘숲속 힐링 음악회’는 2시간 동안 여행자들을 치유의 시간으로 이끈다. 음악회에선 클래식, 통기타, 퓨전 국악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연주된다. 이른바 ‘눈과 귀가 모두 행복한 문화행사’다. 음악회는 21일과 28일, 오는 10월엔 12일과 19일에 열릴 예정이다.◇ 역사의 향기를 따라 세종대왕자태실과 감응사로성주군 생명문화공원 주차장에서 세종대왕자태실문화관으로 들어서면 실감나는 조선시대 역사 스토리가 전개된다.이곳에선 배아 모양으로 만든 조선 왕조의 태실 모형과 만날 수 있다. 태실의 수호 사찰인 선석사에 올라 태봉을 바라본 후 태실로 향하면 ‘모든 생명은 우주처럼 소중한 것’이란 세상사 진리와 새삼 마주치게 된다. 세종대왕자태실에선 세종대왕의 열여덟 왕자와 더불어 세종의 원손인 단종의 태실도 확인할 수 있다.한개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7개 민속마을 중 하나다.물론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여기에 숨겨진 보석은 바로 ‘감응사 산책길’. 전통 한옥과 토담은 푸른 하늘이 높아지고 산의 나무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가을에 특히 아름다움을 빛낸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사진작가들이 이 계절을 기다려 감응사를 찾는다. 마을 북쪽 전망대에서 절로 향하는 산길은 여행자들의 감탄사를 부른다. 아직은 덜 알려져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이 길의 장점이다.성주군청 관계자는 “조용함 속에서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가을의 감응사 산책길이 최고”라며 엄지를 세운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영취산 아래 한개마을도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지친 다리를 쉬며 마시는 감응사 옥류정의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는 성주 여행이 주는 반가운 선물 중 하나다.◇ 회연서원과 청천서원,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걸었던 길성주는 조선 선조 때의 대학자 2명을 배출한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양강(兩岡) 선생’으로도 불리는 두 사람은 동강(東岡) 김우옹과 한강(寒岡) 정구. 동강의 경우엔 대가면 칠봉리 청천서원에 배향(配享·학식과 인품이 높은 사람을 기려 서원에 모시는 것)됐고, 한강 정구는 수륜면 수륜리 회연서원이 배향하고 있다.회연서원 뒤쪽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대가천 맑은 물과 함께 기암괴석과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기가 막힌 경치를 그려낸다. ‘무흘구곡 제1곡’으로 불리는 봉비암이 대표적이다.봉비암에선 반대편 ‘무흘구곡 제2곡’인 한강대가 내려다 보인다. 서원에서 한강대로 뻗어난 하천의 양 옆에는 ‘선비의 꽃’으로 불리는 매화가 심어져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도 수성리 중매댁을 들러 돌아오는 코스는 걷기에 힘들지 않다. 대가천의 물소리와 소슬한 바람 소리가 가을이 바로 곁에 왔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곳을 다녀온 관광객들은 “풍경과 역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현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선 오는 10월 5일부터 ‘황금들녘 가야산 메뚜기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독용산성에서 일출을 보고, 가야산 선비산수길로성주 독용산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 줄기에 위치했다. 해발 955m의 정상부에는 독용산성이 들어서 있다. 이는 가야시대의 토성으로 둘레가 7.7㎞. 영남지역 산성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지만 아름다운 산세와 완만한 등산길을 갖춘 독용산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관광지다. 자동차나 자전거로 산 중턱까지 갈 수 있어 전문 등산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자들이 좋아할 듯하다.독용산성 자연휴양림은 해가 뜨기 전 걸어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웅장하게 복원된 아치형 동문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낭만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다녀온 이들이 전하는 평가. 아쉽게도 숙박 시설은 보수 공사로 인해 12월이 돼야 다시 열린다.걷기에 어렵지 않고, 넉넉하고 미려한 풍경을 눈에 담으려는 사람들에겐 ‘가야산 선비산수길’(1코스 성주호둘레길 23.9㎞·2코스 가야산에움길 11.3㎞)을 권한다.1코스는 데크 로드와 호수 위를 지나는 길이다. 아라월드에서 전망대로 올라가 성주호를 조망할 수 있기에 “장쾌한 호연지기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린다”는 것이 성주군청 문화관광과 관계자의 말. 죽전폭포를 거쳐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제2코스는 폭포의 맑고 시원한 물소리가 일품이라고 한다.◇ 만물상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는 가야산 산행대회가야산은 ‘조선 8경’의 하나이자 ‘한국 12대 명산’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색채를 보여주며, 신묘한 형태의 기암과 절벽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재론의 여지없는 ‘천혜의 자연환경’이기에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해발 1천433m)은 성주군의 자랑이다. 가야산 만물상은 정견모주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그곳 바위들이 1만 가지 형상을 이루고 있기에 ‘만물상’이라 불린다.2010년까지 대략 40년간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라 원시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성주군은 “(북한) 금강산 만물상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이에 더해 “천년고찰 심원사의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걷다보면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동화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는 10월 26일 ‘가야산 산행대회’가 개최된다.앞서 언급한 성주의 ‘아름다운 길’과 그 길 위에서 진행될 각종 축제에 관한 궁금증이 있다면 성주군청 문화관광과(054-930-8372)로 문의하면 된다./전병휴·홍성식기자

2019-09-19

찬 바람 조금씩 불어 오면은, 별 보러 갈래한약 내음 가득한 ‘한방 힐링명소’로 갈래

그악스럽던 2019년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새벽녘 불어오는 바람에서 북쪽 벌판의 시원스러움이 느껴져 달력을 보니 어느새 9월 중순. 추석을 보낸 독자들은 결실의 계절을 대비하고 있을 터. 영천시 역시 찾아올 관광객과 여행자를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가을의 문턱. 한약 내음 가득한 한의마을, 아직도 호국의 함성이 선명한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꿈’의 메타포인 ‘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보현산천문대 등 영천 여행의 핫 플레이스를 돌아보았다.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 하고플 땐 한의마을다양한 약선음식·한방차 등 맛 봐전문의가 운영하는 한의원도 자리조용한 평일 오후. 영천시 화룡동으로 차를 몰았다. 깔끔하게 조성된 한옥 위 날렵한 검은 기와가 인상적인 동의참누리원 영천한의마을에 들어서니, 자연스레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한의원 혹은, 한의사를 접할 때면 예외 없이 기억나는 백석(1912~1996)의 ‘고향’이다.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그러면 아무개 씨를 아느냐 한즉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손길이 따스하고 부드러워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젊은 시인이 타향에서 몸이 아파 한의원에 갔다. 거기서 긴 수염을 기르고 온화한 표정을 가진 한의사를 만났는데, 고향 어르신의 친구였다. 그의 위로와 진맥에 앓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안해졌다는 내용을 담은 시. 영천한의마을과 썩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한방 약재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약선음식관, 다양한 한방차를 준비하고 있는 찻집, 연인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숙박이 가능한 한옥체험관을 갖춘 영천한의마을 안엔 전문의가 운영하는 한의원도 자리하고 있다.“이곳 건물들은 인간의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순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오장육부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한국 한의학의 발전 과정과 다양한 약초·약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의기념관에선 한방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한의마을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 또한 대부분 ‘기(氣)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몸을 보호한다는 주제로 제작된 것들이다.‘한방 테마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족욕 체험과 한방비누 만들기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인기다.6천원을 지불하면 컴퓨터와의 문답을 통해 자신의 체질을 파악할 수 있고, 체질에 따른 건강 상식도 알려준다. 이후 한약재가 들어간 따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15분쯤 편안한 휴식을 만끽하게 된다. 어성초 등 한약재를 이용하는 한방비누 만들기 체험(1만원)에 참여한다면 자신이 직접 만든 비누 3개를 가져갈 수 있다.영천시는 1960년대부터 한약재의 집산지이자 유통 중심지로 이름이 높았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약재만도 500종에 가깝다. 이런 지역적 특수성에 착안해 매년 열리는 ‘영천한약축제’는 건강 문제에 민감한 현대인들의 관심을 모은다. 올해 축제는 27일부터 29일까지 한의마을에서 개최된다.‘행복한 가을 힐링’이란 슬로건 아래 펼쳐질 제17회 영천한약축제에선 한방명의 진료관, 사상체질 체험관, 한방뷰티 체험관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건강·치유 체험’과 함께 한약재 전시장, 야생화 전시관, 약초동산·약초터널도 만들어져 방문객들과 만난다. 행사장에선 각종 한약재와 영천 특산물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동의참누리원 영천한의마을 홈페이지 www.yc.go.kr/toursub/ycherb□ 영천한약축제 관련 문의: 054-339-7247보현산천문대반짝이는 별빛 아래 낭만을 찾아서동양서 가장 큰 1.8m 광학망원경해발 1천124m 산 정상에 설치기자의 몸무게는 약 85kg. 하지만 이건 지구에서 측정했을 때다. 달이나 태양에서 몸무게를 잰다면 얼마나 될까? 이 궁금증은 보현산천문대에 설치된 체중계 위에서 풀렸다.영천은 ‘별의 도시’다. “별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라는 보현산이 있고, 해발 1천124m 산 정상엔 동양에서 가장 큰 1.8m 광학망원경이 있다.영천시 화북면에 자리한 보현산 천문과학관은 드넓은 우주와 빛나는 별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각종 천문과학 학습 시설을 마련했다.“어린이들이 무한한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보며 다가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 천문과학관 측의 바람이다. 이를 위해 ‘게임으로 배우는 우주 훈련’ ‘가상 태양계 행성 탐험’ ‘우주에서의 적응 방법’ 등 흥미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1박2일로 진행되는 ‘천문과학 캠프’도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시간이 넉넉한 여행자라면 천문과학관을 둘러본 후 보현산천문대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꼭대기가 지척인 곳까지 올라가면 주차장이 있다. 거기에 차를 세우고 20분쯤 쉬엄쉬엄 걸어가면 보현산천문대가 나온다. 산새의 울음소리만이 청아한 조용한 숲길은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그저 그만일 듯했다. 평소엔 해가 진 이후 출입이 제한되지만, 매년 과학의 날(4월 21일)을 전후해서는 야간 공개행사가 열린다.마지막으로 재밌는 정보 하나. 지구에서 85kg인 사람이 달에 가면 몸무게가 13kg으로 줄어든다. 태양에 가면 기자의 몸무게가 놀랍게도 2천364kg이 된단다.□보현산 천문과학관 홈페이지 www.yc.go.kr/toursub/starsm/main.do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생생한 한국전쟁 현장 속으로가상전투 체험장서 영상 감상야외선 서바이벌 게임도 즐겨영천시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진 지역 중 하나다. 그해 9월 5일부터 13일까지 남과 북의 군인들은 영천 일대에서 향후 전개될 전쟁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랬기에 이 전투를 ‘조국의 명운을 건 영천 대혈투’라고도 부른다.북한군은 영천 동북쪽 방향에서 공격을 해왔고, 국군은 이에 맞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다. 만약 이 전투에서 밀렸다면 낙동강 동·서 보급로가 모두 차단되는 것은 물론, 남한의 마지막 방어선 전체가 흔들리게 됐을 것이다.이를 잘 알고 있던 국군 8사단은 부대원 전체가 목숨을 건 호국 의지를 다지며 영천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영천시 창구동에 들어선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극적으로 뒤집은 영천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영천이 ‘호국의 도시’임을 잊지 말자는 뜻도 담았다고 한다. 메모리얼파크는 전망타워와 전시관, 가상 전투 체험장 등으로 이뤄졌다. 2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에선 임진왜란 당시 영천 지역 의병들의 활약상과 일제강점기 의병 활동, 앞서 언급한 영천전투와 관련된 생생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 ‘1950, 영천 대혈투 속으로’에서는 대형 화면을 통해 상영되는 역동적인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10대 학생들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다.시원스레 펼쳐진 야외에선 시가전과 고지전 전투에 참여해볼 수 있다. 20~30대 관광객들에게 인기인 ‘서바이벌 체험’이다. 이곳에선 페인트 총과 디지털 헬멧, 보호용 장갑을 착용한 사람들이 지휘통제소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전투 체험’을 진행하고 있었다.영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타워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면 ‘영천지구 전적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그 앞에 서면 숭고한 자기희생을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젊은 군인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홈페이지 www.yc.go.kr/memorial/main.web/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9-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