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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4대째 이어온 전통장 “모든 음식, 몸에 이로워야”

흔히 `음식은 손맛`이라 한다. 같은 재료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요리 맛이 달라진다. 오랜 경험을 지닌 숙련자들은 겉보기엔 손대중으로 해도 음식 간을 딱 맞춘다. 특히 장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는 전통장은 유난히 손맛을 탄다.범촌식품 이동욱 대표는 “손맛은 과학이다. 요리하는 사람의 감각이나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손맛의 근본적인 차이는 자연환경이 좌우한다”며 “된장 효모균은 그 종류가 수백 가지에 이르는데, 전라도와 경상도의 균이 다르다. 경상도 내에서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의 효모균은 또 다르다. 이 균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 손에 붙어 `손맛`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하미연 3대 전수자60년 숙성 씨된장·간장 기본젓갈 등 40여종 제품 판매□ 4대째 이어온 전통장의 원조신광면 호리에 자리한 범촌식품은 4대째 이어져 내려온 손맛을 자랑한다. 진주 하(河)씨 가문은 살림살이의 가장 귀중한 재산인 전통장을 딸이나 며느리에게 물려주는 것이 집안내력이었다. 지난 1950년 한식 요식업을 시작하며 범촌한정식, 범촌매운탕 식당을 운영하고, 2005년부터 범촌식품을 설립해 전통발효식품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이 대표는 “정식지명인 `호리` 이전에 사업장 뒤편 산속에 호랑이가 살던 굴이 있어 `범이 살던 마을`이란 뜻으로 범촌이라 불렸다. 지난 100년간 토박이들이 이곳에 살며 전통장 만들던 것을 계승해 `범촌`이라 이름 짓고 그 맛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든 범촌식품은 60여 년간 숙성된 씨된장과 씨간장을 기본으로 한다. 이 대표의 어머니인 하미연 회장이 3대 전수자로서 직접 장을 담근다. 재래고추장과 한식간장, 한식소스로 만든 제품 종류는 장아찌, 젓갈, 대게장, 밥식혜, 절임식품 등 40여종에 이른다. 이 대표는 “요즘엔 전국 곳곳에 전통장을 만드는 업체가 많아졌지만, 우리는 단순히 장을 담가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해 최고의 한정식을 내놓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음식에 대한 철학도 남다르다. `모든 음식은 몸에 이로워야 한다`는 이념 아래 음식을 먹는 것이 재료의 생명력을 먹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조리 시 감미료나 첨가제는 넣지 않는다. 식재료가 지닌 온전한 기운을 소비자 식탁 위에 그대로 올리고자 맛과 특징을 최대한 살려 조리한다. 음식도 생명력을 지녔다는 뜻에서다.□ 전통장으로 세계인 입맛 유혹가장 좋은 식자재는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라고 했다. 재료의 99%는 포항시에서 난 것을 사용한다. 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거리, 즉 푸드마일(food-mile)을 줄여 신선한 재료로 건강밥상을 지키기 위해서다.정성 담긴 손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프리미엄 식품 위주로 소량 생산하기 때문이다. 일반 식자재용 상품처럼 대량생산하지 않고, 사업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 판매계약을 맺는 것이 원칙이다. 손맛에 반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짜지 않고 맛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심지어 담백하다는 이도 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이야` 싶던 한 주부는 먹을수록 질리지 않고 깊은맛을 느껴 `이게 진짜 명품장아찌구나!` 싶었다고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상품 후기엔 다른 제품을 먹었다가 후회했다는 고백도 있다. 국내를 넘어 중국, 일본, 미국에도 고추장과 장아찌, 젓갈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다고. 덕분에 연간매출은 3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특화 소스를 개발해 토마토케첩처럼 대중적인 한식장을 만들 계획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통장이 지닌 뛰어난 기능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전통발효식품의 세계화가 목표다. 그는 “발효 음식에 기술력을 결합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수출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해외 소비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김혜영기자hykim@kbmaeil.com

2016-08-04

영덕 복숭아 달콤한 속살 한입 깨물면 샘솟는 꿀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시인 이육사는 고향의 여름을 이렇게 읊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역사에는 `만약...`이란 게 없다지만, 만약 육사가 영덕에서 태어난 작가라면 “내 고장 칠월은 복숭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노래하지 않았을까?비단 시인만이 아니다. 인간 모두에게 유년의 기억은 지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셔츠가 땀으로 젖는 계절이다.열대야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여름이 더없이 반가운 사람들도 있다.바로 영덕의 복숭아 재배 농민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분홍색으로 예쁘게 익어가는 복숭아를 보면 한여름 더위와 스트레스가 모조리 날아가 버린다.25년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박형식(53)씨는 `영덕의 진미`인 잘 익은 커다란 복숭아를 들어 보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 번 보세요. 다른 곳에서 이런 복숭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영덕 복숭아는 크기도 크기지만, 당도가 높아서 한입 깨물면 꿀물을 마신 것 같습니다.”어렵지 않게 수질 좋은 농업용수를 구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거기에 적당히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풍부한 일조량은 영덕의 복숭아를 아삭아삭한 식감과 뛰어난 풍미로 익어가게 만든다.맛과 향기로 입과 코를 동시에 자극하는 복숭아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여름 과일의 여왕`이다.“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복숭아 농사를 지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털복숭아를 옷에 문질러 먹다가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습니다.” 복사꽃 피는 언덕에서 보낸 유년이 떠오른 듯 이제는 중년의 사내가 된 박형식 씨의 표정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영덕 농민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복숭아가 타 지역에서 재배되는 복숭아보다 맛있고 향기로운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를 일조량의 차이로 해석한다. 아래는 영덕농협 복숭아공선회 이공규(62) 회장의 설명이다. “통상 전국 연평균 일조량은 대략 2300여 시간입니다. 그런데, 영덕은 2700시간이 넘습니다. 거기다가 비도 적게 내리는 편입니다. 당도가 적당하고 비타민C 함유량이 높은 영덕 복숭아는 이런 재배조건에서 탄생하는 겁니다.”자연적인 조건 외에도 영덕군은 복숭아의 품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관수시설 확충과 버팀대 개량 등의 재배환경 개선사업을 지원하고, 우량 품종의 복숭아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맛과 향을 가진 복숭아를 생산하려 애쓰고 있지요”라는 게 이 회장의 부연이다.영덕 복숭아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동선별을 통한 품질의 균일화와 지역 복숭아 브랜드를 통합해 명실상부한 특산품으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시도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복숭아는 오래 전부터 `신선의 과일`로 불렸다. 하얗고 긴 수염을 기른 신선들이 학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을 두던 계곡. 그 계곡에 들어서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게 바로 복숭아나무였다.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이상향이나 별천지를 `무릉도원`(武陵桃源·`桃`는 복숭아 또는, 복숭아나무를 의미)이라 부른 것만 봐도 옛사람들 또한 복숭아를 진귀한 과일로 생각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무속인들은 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회초리가 악귀를 쫓는다고 믿었다.신선이 아끼는 신성한 나무이니, 사악한 기운을 가진 잡스러운 귀신이 이를 두려워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복숭아의 원산지는 고대 중국이다. 일부 중국인들은 복숭아의 외형이 미인의 풍만한 엉덩이를 닮았다고 믿었다. 해서, 농담처럼 복숭아를 “양귀비의 둔부”라고 칭하기도 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와 유럽으로 전해진 복숭아는 동서양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받았다.한국에서도 예부터 복숭아를 길러 먹었으나, 판매를 위한 상품으로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 초반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영덕에서도 복숭아와 관련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1959년 거대 태풍 `사라`(Sarah)가 한국을 덮쳤다.영덕 역시 태풍의 위력 앞에 완벽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농경지 대부분이 침수됐고, 논밭은 밀려온 모래와 자갈로 인해 황무지로 변했다.그러나, 전화위복이었을까? 사질토로 변한 토양이 복숭아 재배에는 최적의 조건이 돼주었다.영덕이 `향기로운 복숭아의 고장`으로 이름을 높인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태풍 사라가 있었던 것이다.이처럼 수난 속에서 찾아온 기회를 영덕군청과 농협연합사업단은 놓치지 않았다. 영덕 복숭아의 전국화를 위해 `복사꽃선녀 선발대회`와 `영덕 복사꽃 큰잔치` 등의 홍보 이벤트를 열었고, 수도권에서 시식행사도 수차례 개최했다. 세상사 모든 일 속에는 명암이 더불어 존재한다. 영덕의 복숭아 농가에도 어두운 그늘은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농촌 젊은이들로 인한 노동인력의 고령화는 작지 않은 문제다.복숭아 재배에선 순차적 작업이 중요한데, 부족한 일손으로 인해 작업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영덕군과 영덕농협 복숭아공선회 등은 복사꽃이 피는 시기와 복숭아 수확시기에 필요한 인력수급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이는 면역력을 높이고, 어혈(瘀血)과 변비를 예방하며, 니코틴을 포함한 몸 속 독소제거에도 효과가 있는 품질 좋은 복숭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햇빛 눈부신 영덕의 야트막한 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환청처럼 노랫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고전·현대 아울러 많은 시인들에게 시심(詩心) 선물한 복숭아탐스럽고 매혹적인 생김새와 여름날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싱그러운 향기, 거기에 달콤한 맛까지 삼박자를 갖춘 과일 복숭아. 세상과 사물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그 결과를 문장으로 옮기는 걸 업으로 삼는 시인묵객(詩人墨客)이 복숭아를 지켜만 봤을 리 만무하다.복숭아는 고전과 현대문학 속에 무시로 등장해 독자들의 마음을 연분홍 빛깔로 설레게 했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772~846)는 大林寺 桃花(대림사 도화)를 통해 복사꽃을 노래한다.人間四月芳菲盡(인간사월방비진) 山寺桃花始盛開(산사도화시성개) 長恨春歸無覓處(장한춘귀무멱처) 不知轉入此中來(부지전입차중래). 풀어 쓰면 이런 내용이다. “사람세상의 꽃은 이미 졌는데 / 산중의 복사꽃은 이제야 피었구나 / 가버린 계절을 안타까워했는데 / 봄이 여기서 몸을 숨겼을 줄이야.”복숭아가 열매 맺기 전 피는 복사꽃 한 떨기를 봄 전체로 은유한 백거이의 시는 고대 중국 낭만적 시풍(詩風)의 한 절정을 보여준다. 자연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읽어내는 보기 드문 절창이 아닐 수 없다.대구 출신의 시인 이상화는 관능을 키워드로 복숭아를 관찰한 듯하다. 1923년 발표된 `나의 침실로` 서두를 읽어보자.“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모두가 알다시피 수밀도는 복숭아를 달리 이르는 단어다. 애틋하게 그리는 여인 혹은, 조국을 복숭아 닮은 가슴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선 이상화 초기 시들에서 발견되는 탐미성과 전위성을 확인할 수 있다.경북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시인 송찬호는 제목부터가 `복숭아`인 시의 마지막 연을 이렇게 쓴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한여름 밤의 꿈.”수많은 과일을 맛볼 수 있는 여름철에 복숭아 하나만을 독점적으로 지칭해 `한여름 밤의 꿈`이라 노래했으니, 복숭아의 향기와 맛이 얼마만큼 큰 힘으로 시인을 매료시켰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원로시인 이생진(87) 역시 복사꽃을 특별히 아낀 것 같다. “나는 가끔 오래된 혼백과 이야기하는 수가 있다 / 북한산 유일한 복사꽃 나무 밑에서처럼...(중략) / 이걸 못보고 봄이 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찬란한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는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여름이 오면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탐스런 과일로 익어가는 복숭아. 이생진은 누구도 함부로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도저한 흐름을 복사꽃송이에서 본 것이다.무궁무진한 시의 소재. 그 속에서 시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온 복숭아와 복사꽃. 앞으론 어떤 젊은 시인이 복숭아 향기롭게 익어가는 여름을 노래해줄까.영덕 /이동구기자/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8-03

털없는 복숭아 `넥타린`으로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벼농사 중심의 농업국가이다. 봉건주의 조선을 지탱한 양대 축은 이데올로기로는 유교(儒敎)요, 산업에서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상징되는 농업이었다. 조선시대에 조정이 세종대에 농사직설, 효종대에 농가집성, 숙종대에 산림경제 등 국가적인 농법서 편찬사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한 것은 애민(愛民)의 발로이면서도 국부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선의 백성은 모두 군사로 육성한다는 국가적 목표 아래 군역에 고통받기도 하고, 세원(稅原)으로서 농토에 붙박혀 떠날 수가 없는 `가렴주구`,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농업이야 말로 한반도의 백성에게는 가족을 먹여살릴 하늘과 다름 없는 쌀을 생산하는 중요한 기술이었기에 끊임 없이 매달려 궁리한 결과, `농업DNA`는 한국인의 한 특성이 됐다. 망국의 한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던 미주 이민 한인 가운데 농업으로 대륙에 이름을 아로새긴 명사들이 수두룩하게 배출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경남 통영출신 통역관 김형순 미국의 천도복숭아 개발 성공`김형제상회` 설립 美전역 판매독립운동·구호사업에도 헌신동업자 김호, 해방 후 애국가 소개숙주나물 통조림으로 富 일군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라이스 킹`으로 알려진 김종림도성공한 초기 이민 한인 이름 올려□ 미주 최초의 한인 백만장자 김형순캘리포니아 리들리와 다뉴바 일대에 드넓게 펼쳐진 과일농장을 지나다보면 우리나라의 국도변처럼 생산자들이 운전자를 상대로 직거래를 하기 위해 세워놓은 입간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넥타린`(Nectarine)이라는 생소한 과일이름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바로 `미국의 천도복숭아`다.미국인들이 `털 없는 복숭아`로 부르는 이 신품종의 개발자는 경남 통영 출신의 김형순(Harry S. Kim, 1886~1977)이다.통역관으로서 1903년 첫 이민선 갤릭호를 탄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본토에 입국한 다음 1916년 리들리에 정착해 대학교수의 도움으로 넥타린을 개발했다. 미국인들은 복숭아의 잔털에 특히 알레르기가 심하다는 점에 착안한 그는 조선의 천도복숭아를 염두에 두고 복숭아와 자두를 육종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처음에는 묘목을 판매하던 김형순은 아예 `김형제상회`(Kim Brothers, Inc.,)를 통해 미 대륙 전역에 넥타린을 판매함으로써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초기에 하와이를 거쳐 본토에 입국한 한인들은 처음에는 주로 `철새노동자`로서 수확철마다 리들리와 다뉴바에 거주했다. 김형순이 김호(본명 김정진, 1884~1968)와 공동설립한 김형제상회라는 든든한 언덕은 리들리에 한인 타운이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두 김씨는 조국을 위해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을, 후에는 구호사업에 헌신했다. 현재 리들리시에 남아 있는 옛 한인장로교회(현재 멕시코교회)는 김형순이 기부한 대지 위에 한인들이 1938년 직접 건립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미국인교회와 라이온스클럽에서 기금과 구호물자를 지원받아 전쟁고아와 난민을 도왔다. 이번 취재에서 확인한 그의 대저택은 사후 40여년이 지났으나 옛 주인의 명성을 확인케 해주는 건축물이었다.반면 그의 동업자였던 김호의 저택은 길건너편에 단촐한 규모로서 소박한 성품을 짐작케 해줬다. 그는 한때 여운형과 친분을 맺었으며 배재와 이화학당에서 수학, 물리, 영어교사를 지내고 도미해 해방 후에는 한국에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소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세워졌다. □ 유일한 박사도 농업으로 성공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1895~1971)박사는 근검과 성실, 투명 경영과 사회헌신을 위한 기업가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한국의 기부문화에 원조격의 모델이 돼 왔다. 하지만 그가 도미 역정의 초기에 미국에서 생소한 숙주나물로 부를 일군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일한은 1922년 숙주나물 등을 통조림에 넣어 파는 라초이회사를 설립해 6년 만에 자산 200만 달러 규모의 회사로 키워 `숙주나물 킹(King)`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라이스 킹`(Rice King) 김종림(1884~1973)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1907년 23세에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철도 노동자로 일하다가 가주로 이주해 1914년 벼농사에 뛰어들었다. 당시 쌀을 재배하지 않던 가주였지만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수요가 폭증해 연간 8만 달러(현재 가치 100만 달러)를 벌 만큼 거부가 됐다. 그가 1920년 2월 북가주 윌로우스 지역에 5만 달러(현재 가치 60만 달러)를 기부해 창설한 `한인비행학교`는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가 됐다.이민선조를 기리는 재미 한인들 `리들리의 마지막 한국인` 로버트 김버려진 한인묘지 발견 뒤 외부에 알려김명수 재미 중가주 해병대전우회장24년째 매년 2차례 한인묘지 헌화봉사한인들의 미국 이민사에서 중요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중가주 초기 한인들의 숨겨진 역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졌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국(故國)의 역사연구와 추모사업에서 소외돼 왔다. 이들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진 계기는 스스로 이민 길의 험로를 경험했기에 타국의 묘지 한켠에 쓸쓸하게 방치돼 있는 이민선조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주머니를 털어 조촐한 헌화에서 시작해 추모사업으로 발전시켜온 한인 후예들의 노력 때문이었다.지난 6월13일 로스앤젤레스시 써니힐스 양로원에서 만난 로버트 김(김경옥·93·사진)은 `리들리의 마지막 한국인`으로 불릴 만큼 중가주 한인사의 산증인이다. 그의 부친 김유호는 1903년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첫 입도한 최초 이민자이다. `사진결혼`부부의 이민2세인 그는 귀국을 선택한 아버지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서 중국을 거쳐 미군속으로서 패망한 일본, 다시 하와이를 거쳐 본토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부침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1960년경 리들리에 정착해 인접한 다뉴바의 학교재단에서 회계행정 담당으로 22년간의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결과 리들리와 다뉴바의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사가 됐으며 김형순과 김호 등 한인 명사들과 많은 일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가 이민선조들의 역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이사 직후 그의 아내가 집 근처의 묘지를 산책하면서 비롯됐다.“하루는 아내가 집으로 막 울면서 들어왔어요. 미국인들의 공동묘지 한구석에 낯선 이름들이 있어서 읽어보니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거예요. 묘비에 부인이 없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함께 집 정원의 꽃들을 꺾어서 무덤마다 헌화하기 시작했지요.” 그는 1남2녀의 자녀를 모두 성공시키고 부인이 작고한 뒤 LA의 양로원에 홀로 거주하고 있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성성한 눈빛과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가 인상 깊은 로버트 김은 “죽으면 리들리에 묻히고 싶지만 가족묘가 있는 하와이로 가야 할 것 같다”며 “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철저하게 가르쳐달라”고 당부했다. 로버트 김의 오랜 임무는 김명수(76) 재미 중가주해병대전우회 회장에게 이어졌다. 해병대 97기인 그는 1987년 12월 LA로 이민해 의류사업 등에 종사하던 중 1992년 2월 로버트 김과 함께 리들리묘지를 첫 방문했다. 이후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와 8·15광복절 등 매년 2차례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의 관심도 없이 요즘도 종이에 직접 태극기를 그려 넣어 189기의 무덤에 꽂고 있다.김명수씨는 “저 무덤에 누워 계신 이민선조들은 모두 자갈밭을 개간하신 분들”이라며 “그 위에 지금 우리가 씨를 뿌리고 있으며 수확의 열매는 우리의 후손들이 누리게 될 것이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글·사진/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8-01

선진시스템·문학강의·연주회도… 작지만 알찬 관악도서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김민석(30)씨는 오랜 취업준비 끝에 최근 A기업에 입사했다. 맡은 업무와 회사 분위기 파악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김 씨.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의 취미인 `독서`의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런 김 씨에게 이용자 친화적인 관악구의 효율적인 도서관시스템은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홈페이지 통해 책 신청하고원하는 장소에서 받아볼수 있어55만권 책 데이터베이스화도서대출·반납 편리하게도서관 신축보다 민간자본 유치해유휴공간 활용, 내실부터 다져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도서관다문화 가족위한 프로그램까지하드웨어 아닌 소프트웨어로 승부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관악구 도서관 통합홈페이지에 접속해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출퇴근 시 이용하는 지하철 신림역에서 그 책을 바로 찾아볼 수 있는 것. 반납 또한 지하철역에 설치된 도서반납기를 이용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책을 받아볼 수 있는 관악구의 선진적인 도서관 이용체제.구 내 40개의 도서관이 소장한 55만 권의 책을 데이터베이스화 해 구민이 평소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도서 대출과 반납이 가능하도록 만든 관악구의 혁신은 국내외 많은 도서관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 관악구가 타 지자체가 부러워하는 `도서관 시스템`을 갖춘 배경에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유종필 씨가 있다. `세계 도서관 기행` 의 저자이기도 한 유 씨가 관악구청장으로 취임한 2010년부터 현재까지 관악구의 도서관 시스템은 해를 거르지 않고 업그레이드되고 있다.2009년 5개에 불과했던 관악구의 도서관은 2014년엔 43개로 늘었고, 각각의 도서관이 효율적 네트워크로 연결됐다. 이를 통해 자신의 집 가까운 도서관에는 없는 책도 신청을 통해 이틀 안에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이 업무를 위해 관악구는 6명의 전담직원을 운용한다. 이들은 몸이 불편해 도서관까지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의 집으로 책을 배달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지식 도시락 배달`로 명명된 이 서비스를 통해 지난해 관악구민이 읽은 책은 도합 36만 권. 그 책들을 쌓으면 에베레스트산(8천848m) 턱밑까지 도달하는 약 7천m 높이가 된다. “걸어서 10분이면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관악구청 도서관과 직원들이 지난 6년간 마음속에 담아온 슬로건이다. 관악구에 자리한 43개 도서관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승부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관악구청 도서관과 임병재 도서관운영팀장은 “빠듯한 예산으로 무작정 도서관을 신축하기는 현실상 힘들다. 대신 민간자본을 유치하고, 유휴 공간을 활용해 작지만 내실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구 관악구청 청사 1층 여유공간을 활용해 만든 `용꿈 꾸는 작은도서관`, 공유지를 활용해 환경친화적으로 꾸민 `도림천에서 용나는 작은도서관`, 방치돼 있던 관악산도시자연공원 내 매표소를 리모델링한 `관악산 시(詩)도서관` 등은 임 팀장이 설명이 현실화 된 생생한 사례다.신림로3길에 위치한 관악문화도서관(지하2층·지상5층)은 17만 권의 도서를 갖춘 관악구의 메인 도서관이다. 서울대학교와 지척인 여기에선 입구에 늘어선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 혹은 벤치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이 도서관 외에도 관악구엔 4개의 공공도서관과 33개의 소규모 도서관이 있고, 지하철 신림역·봉천역·서울대입구역 등엔 `무인 도서예약·대출기`와 `스마트도서관 자동반납기`가 설치돼 있다.3년째 관악구에 거주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B씨는 “책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도 좋지만, 더 매력적인 건 도서관에서 각종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관악구 내 공공도서관 5곳에서 진행된 `길 위의 인문학` `다산 정약용 이야기` `명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시험 준비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바쁜 B씨에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했다.여기에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도 관악구청이 내세우는 문화행사다. 분기별로 시인과 소설가 등을 초청해 허심탄회한 이야기의 시간을 나누는 북콘서트. 독자들이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 앞에서 작품을 낭송하고, 연주회와 작가 사인회 등이 동시에 열리는 이 행사에는 작년에만 1천150명이 참석했다.`책과 구민을 보다 가까이`하려는 관악구청의 노력은 이것만이 아니다. 임병재 팀장은 부연한다. “주민센터 내에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다문화가족을 위한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어린 시절부터 책과 함께 하는 환경조성을 위해 `북 스타트 운동(아이들을 위한 독서교육 프로그램)`도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도 관악구의 도서관시스템은 끊임없이 발전할 겁니다.” 이런 형태의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췄으니, 이를 보고 배우려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시도가 이어지는 건 명약관화한 일. 2016년 상반기에만 부산광역시 남구청, 전라북도 문화예술과 도서관문화시설팀, 완주군 교육지원과 도서관팀, 서울시 중구청 교육체육과, 거창군 문화관광과, 안성시립중앙도서관, 동대문구 문화체육과가 관악구 도서관과를 찾아 도서관 운영과 문화행사·이벤트 진행의 노하우를 배워갔다.지구 전체가 인터넷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된 세상이니 외국에서도 관악구의 도서관 체제와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좋은 것을 모방하려는 노력은 외국도 국내와 다르지 않았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관악구로 시찰단을 보냈고,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교수들을 보내 “우리도 관악구의 도서관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줬다. 또한, 중국의 CCTV와 일본의 `동경신문` `주니치신문` 등은 `특색 있는 한국의 도서관`, `지식복지를 추진하는 미래 창조 도서관`이란 제목 아래 관악구의 도서관을 다룬 방송과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유종필 구청장은 “사람이 곧 미래”라고 말한다. 그 사람과 미래에 대한 투자의 방점을 `책`과 `도서관`에 찍고 있는 관악구의 내일을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글/홍성식 기자사진제공/ 구창웅

2016-07-29

유기농 `검푸른 보석` 가공판매로 고수익

“원래는 서울에서 사업을 했어요. IMF 때 실패를 겪고 2000년도에 포항으로 귀농했습니다. 처음엔 새송이버섯을 재배했는데, 어휴, 그것도 만만찮더라고요. 또 실패했죠(웃음).” 포항시 남구 대송면 홍계리에서 `포항블루베리농원`을 운영하는 이호재 대표는 두 번의 실패담부터 털어놨다. 다사다난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는지 그의 눈이 잠시 멍해졌다. 실패를 겪어본 사람만의 여유가 표정에서 묻어났다. 이 대표는 “감히 상상도 못했죠. 블루베리가 제 인생 2막을 열어줄 줄이야. 이 검푸른 열매가 몸도 마음도 온통 보랏빛향기로 물들였습니다. 허허허…” 탄탄한 열매 달콤한 맛에 반해 해마다 주문 늘어체험농장 큰 인기…천연식초 개발 연구도 한창□블루베리가 제2의 인생 열어줘연이은 낭패를 겪었던 이호재 대표는 지난 2008년 블루베리 재배를 결심했다. 세 번째 도전이었다. 블루베리를 심을 임야를 장만하고 묘목을 심었다. 욕심을 채우기보단 신념을 지키기로 했다. 운제산자락 아래 청정지역에서 재배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농약도 치지 않았다. 친환경유기농 재배를 경쟁력으로 삼았다.한철 수확량은 5~6t에 달한다. 남들보다 이르게 수확하는 것이 비결이다. 보통은 6월 말쯤 돼야 열매를 딸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5월 초부터 수확해 8월까지 판매 가능하다. 덕분에 1년 중 이맘때가 가장 바쁘다. 세계적인 블루베리 생산지인 북미에서는 수확이 한창인 7월을 `블루베리의 달`로 부른다. 재배부터 생산, 포장, 배송까지 모든 작업은 이 대표의 손을 거쳐야 `포항블루베리농장` 인증마크를 달 수 있다. 당일 수확한 것은 그날 판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외국은 농장 규모가 워낙 크고 블루베리를 딸 때 기계를 사용하다 보니 생산량만큼은 작은 농원과 비교가 안 된다. 그래도 수입품과 비교했을 때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한다 싶었다. 수작업으로 유기농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배송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승부수로 던졌다”블루베리 맛에 대한 자랑을 부탁하자 이 대표는 부쩍 말이 많아졌다. “허~말재주가 없어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망설이더니 이내 “친환경 재배로 믿고 먹을 수 있는데다 열매가 탄탄하고 맛이 달다”고 했다.해마다 주문하는 단골들은 다른 블루베리를 먹어봐도 포항블루베리농원 제품만 한 것이 없다고 한다. 이것저것 먹어봤더니 과육이 시거나 특별한 맛이 없던데 이 대표가 재배한 블루베리는 달고 맛있다는 것이다.□블루베리는 `검푸른 보석`2년 전부터는 블루베리를 가공판매하기 시작했다. 고압추출기를 이용해 진액주스와 발효액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물 한 방울 넣지 않고 원액 95% 이상 들어간다는 점을 강조했다.지난해엔 재배생산 위주의 농업에서 벗어나 6차 산업으로의 확장을 위해 100평 규모의 체험농원도 조성했다. 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단체로 몰려와 수확 철에는 아이들 발자국이 늘 남아있다.▲ 포항블루베리농원 이호재 대표.이어 이 대표는 또 하나의 결실을 소개했다. 2012년 재배에 들어간 체리가 3년 만에 성공해 지난해 6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블루베리와 마찬가지로 유기농 재배해 과육이 싱싱한데다 알이 굵고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최근에는 블루베리로 천연식초를 만드는데 한창 연구 중이다. 이 대표는 블루베리를 `검푸른 보석`이라고 했다. 사업할 때 비하면 적은 수익이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농촌생활에서 비로소 삶의 가치를 찾았다고.그는 “조용히 귀농생활을 즐기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농원에 사람 발길이 잦아지니 삶의 활력을 얻었다”며 “우리 지역에서 생산한 친환경 블루베리를 정성으로 키워 앞으로도 안전한 먹거리, 좋은 식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다양한 체험행사도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7-28

내 일처럼 심고 가꿔 `일천만그루 나무심기` 초과 달성

살기 좋은 구미 만들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10년간 추진된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의 성공에는 시민들의 동참이 한몫 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추진된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이 당초 목표를 넘어 1천21만6천본(102.1%)의 나무를 심을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시민들의 노력에 대해 알아보자.기념일 식수 등 시민 참여 이끌어내자발적 헌수 등 1만6천그루 식재시민봉사단체 속속 결성, 호응도 높여기업·대학·시민단체 등도 동참 대열에동락공원 등 4곳 시민헌수동산 조성`그린오너제` 도입으로 사후관리도 철저□ 나무심기에 관한 공감대 형성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은 시민의 손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는 정주여건 개선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역별 공원·녹지, 산림(공공부문)과 개인, 공동주택(민간부문) 등 세부적인 10개년 계획을 마련해 진행됐다.특히 시는 민간부문에서의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의 분위기 확산 및 붐 조성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마련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시민이 참여하는 헌수·기념식수운동이다.운동은 생일, 결혼, 회갑, 졸업, 기업체 등의 기념일에 식수와 헌수를 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시민참여를 이끌었다.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들이 신청을 하면 시는 수목의 식재 가능 여부를 파악한 뒤 직접 이식을 해 주고, 수목 명찰, 수목성장 사진 등을 제공했다. 단체나 기업체에게는 동산 호칭을 부여하고, 표지석도 설치해 줬다.식수 장소는 개인의 경우 동락공원 야외무대 주변, 원평시설녹지, 거주지 인근 공원 및 녹지에, 단체의 경우는 수량, 수형 등을 고려해 식재계획 수립 후 동락공원, 송정공원, 낙동강 고수부지 등에 식재했다. 이밖에도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 선포식 행사, 각종 회의, 반상회 등에서 홍보물 광고를 통한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헌수(기념식수) 실적은 161명(단체)이 1만5천977본(12억3천600만원 상당)을 식재했다.□ 시민들의 씨앗 나누기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이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으면서 나무심기운동이 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시민봉사단체가 만들어졌고, 이런 봉사단체를 중심으로 나무와 꽃씨를 나눠주는 행사가 곳곳에서 전개됐다.구미에는 매년 3월 말 나무와 꽃씨를 나누어 주는 행사가 연례적으로 열리긴 했었으나, 그다지 참여도가 높지 않았었다.하지만 2008년 시민봉사단체가 결성된 이후 시민들의 참여도는 크게 늘기 시작했다.특히 2011년 4월 5일에는 구미역, 구미버스터미널 앞, 선산버스터미널 앞 등 3개소에서 구미시산림조합, 나무사랑시민연합, 구미꽃예술협회 등의 자원봉사단체가 영산홍과 목련, 매실 등 유실수종 7천본, 나팔꽃, 해바라기 등의 꽃씨와 고형비료를 시민들에게 나눠줘 큰 호응을 얻었다.이 단체들은 시민들에게 화단이나 생활주변 공간에 꽃과 나무 심는 방법과 관리하는 방법을 안내했다. 또 읍면동 새마을부녀회 및 자생단체를 통해 가로변 자투리공간에 봉사활동으로 나무를 식재하고, 꽃을 심는 등 아름다운 도시건설 분위기 확산에 노력했다.□ 시민헌수 동산 조성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이 확산되면서 많은 헌수와 기념식수가 줄을 이었다. 161명(단체)이 1만5천977본을 자발적으로 헌수·기념식수를 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2억3천600만원 상당에 해당한다.대표적으로 대구은행에서 3년간 대형 느티나무 60본 3억원 상당을 헌수해 동락공원 및 구미IC에 그늘목과 경관목을 조성했다.또 TMC기업체에서 3년간 벚나무 400본 1억5천만원상당을 가로수 식재로 헌수해 식재했으며 구미1대학에서 청단풍외 3종 1천만원 상당, 남구미로타리 클럽에서 소나무외 12종 8천400만원 상당, 형곡 박기호 씨가 느티나무 17본 1천400만원 상당, 부곡동 이창원 씨가 단풍나무 1천200만원 상당, 선산발전연합회에서 단풍나무 1천200만원 상당, 기업체 한국버들컴파니회사에서 소나무 강송묘목 400만원 상당, 송광매실농원에서 매실나무 500만원 상당 등을 식재했다.시민들의 자발적인 헌수와 기념식수가 이어지자 구미시는 이들을 위한 시민헌수 동산을 조성했다. 동락공원, 원평도시숲, 오태동 입구 공한지 등 4개소에 시민헌수 동산을 조성하고, 헌수자의 생활권주변 공원이나 녹지조성지 공간에도 헌수 또는 기념식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심은 나무에 대한 관리 역점구미시는 나무심기와 더불어 심은 나무에 대한 관리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을 하면서 수목 식재가 급증하자 녹지의 제초작업, 가로수의 가지치기작업, 조경수와 수벽의 전정작업, 수목의 비배관리, 연도변 쓰레기 처리 등 사후관리 작업량이 늘어나면서 관리 인력소요도 늘어났다.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으로 녹지 54개소, 학교숲 23개소, 어린이공원 106개소(신규 37), 근린공원 18개소(신규 6), 도시숲 4개소, 마을쉼터 및 자투리공간 37개소, 휴양림 1개소, 생태숲 1개소, 산림욕장 1개소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다. 시는 원활한 관리를 위해 `그린오너제`를 도입·시행했다.`그린오너`는 말 그대로 녹색의 공간을 내가 주인처럼 관리하고 가꾼다는 의미로, 생활권 주변의 녹색공간을 맡아 고사가지 정리, 쓰레기 줍기, 수목 이름표 붙여주기 등을 하고 있다. 구미시에는 현재 17개의 단체가 그린오너로 등록돼 월별 또는 분기별로 그린오너 활동을 함으로써 깨끗한 연도변 환경을 유지하고 쾌적한 녹색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녹화운동 사례공모 최우수상 수상구미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일천만그루심기운동은 당초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도심 곳곳에 공원이 만들어지고, 주변에 꽃밭이 있는 녹지쉼터공간이 조성되는 등 구미시가 녹색도시로 바뀌었다.이런 노력으로 지난 2013년 산림청에서 실시한 전국 도시녹화운동사례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으로 구미시는 각종 녹화사업에 대한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나무사랑 분위기 조성 및 도시숲 저변확대에 기여한 점과 한국전력공사와 저수고가로수 바꿔심기 협약체결, 학교·기업·단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그린오너제 운영, 나무사랑시민연합회의 나무 및 꽃묘 나누어주기, 1인 10그루 나무심기 서명운동 등의 다양한 활동이 타 지자체에 비해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남유진 시장은 “시민들과 함께 한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으로 구미가 회색도시에서 녹색도시로 탈바꿈했다”면서 “울창한 숲은 시민들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미래의 자손들에게도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보전·관리엔 많은 정성 필요 시민들에 관리법 홍보 주력 나무사랑시민연합 문관휘 회장 인터뷰“심기만 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관리 보전이 더욱 중요하죠.”지난 26일 만난 구미시나무사랑시민연합 문관휘(45·사진)회장의 말이다.구미시나무사랑시민연합은 지난 2008년 10월 창립·출범한 봉사단체로, 그동안 나무심기 활동을 비롯해, 그린오너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문 회장은 이 단체 6대 회장이다.그는 “구미시와 시민들의 힘으로 지난 10년간 일천만그루나무심기라는 대업적을 쌓았다”며 “이제는 이 나무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 나가야 할지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간 중심으로 운영되는 제2의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은 나무를 심기보다는 관리·보전에 중점을 두고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나무사랑시민연합은 분기별로 27개 읍면동에 위치한 공원과 숲길, 산림 등에 식재된 나무의 가지치기, 주변 정화활동 등의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또 최근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식재된 나무의 관리방법을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문 회장은 “식재된 나무를 보전하고 관리하는 데에는 많은 인원과 정성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활동에 중요하다”고 했다.그는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으로 조성된 도시숲 등이 시민들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는지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저 보기 좋은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며 “일천만그루나무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문 회장은 최근 한 언론에 보도된 자료를 인용해 나무 한 그루가 한 해 미세먼지 35g을 흡수하고, 느티나무 한 그루가 배출하는 산소가 성인 7명이 1년간 숨쉬는데 필요한 양이라고 알려줬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6-07-28

어머니 손맛 생각나는 고등어 추어탕

`맛집기자`를 하려고 그랬는지, 어릴 적부터 식성이 좋았다. 어렴풋한 기억에 어머니의 증언을 더하자면, 밥을 먹다 부모님이 입씨름을 벌일 때 어린 나는 숟가락을 한 손에 들고 “밥 좀 먹자!”며 울었다고 한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지금도 보양식 한두 가지를 빼곤 모두 잘 먹는 편이다.그래도 피하는 음식은 있었다. 미꾸라지를 넣어 끓인 국, 추어탕이다. 맛 때문은 아니었다. 고등어, 갈치, 꽁치를 좋아해 생선이라는 이유도 통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미꾸라지를 한 무더기 사온 어머니는 넓은 대야에 그것을 풀어놓곤 했다. 매끈한 몸을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이던 미꾸라지는 곧 형체가 없어지고, 국이 되어 식탁에 올랐다. 살아 있던 미꾸라지가 생각나 차마 떠먹을 수 없었다.당시 추어탕은 내게 어른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어른이 되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언제부터인지 어머니는 “요즘엔 미꾸라지가 없다”며 고등어를 추어탕처럼 조리해 국을 끓였다. 바닷가가 인접한 우리 지역에서는 고등어로 만든 추어탕이 향토 음식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어머니가 만든 고등어추어탕에 밥 한 공기 말아 먹고 나면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못 먹는 음식도 하나 줄었다.지난여름, 지인 소개로 북구 흥해읍의 `정영희 고등어추어탕` 식당에 갔었다. 어머니 손맛과 비슷해 그 맛이 인상깊었다. 지난주 또 한 번 그 집을 찾았다. 다시 보니 한 그릇에 6천원으로 가격이 저렴한데다 양도 푸짐해 주변에 알려야겠다 싶었다. 주문 포장해 갖고 가는 손님도 있어 `맛집`이라 확신했다. 이 집 고등어추어탕은 이름 그대로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를 삶아 살만 발라내고 갖은 채소와 함께 끓인 국이다. 걸쭉하지만 구수하면서 개운한 뒷맛이 특징이다. 향토 음식으로 불리는 만큼 지역 특색이 담겼다. 다진 마늘과 매운 고추를 국물에 풀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입맛에 따라 산초가루를 뿌려도 된다. 풍미가 더 깊어진다. 평소 `추어탕 애호가`라던 한 선배는 “이 집 참 맛있다”라며 아예 뚝배기를 들고 마셔버렸다.반찬도 하나하나 나무랄 게 없다. 제철 나물을 무친 초록 반찬이 주를 이루는데 그 중 가자미조림이 별미다. 달콤한 양념에 버무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밥 도둑으로 통한다.속도 든든하다. 고등어의 영양성분은 미꾸라지에 뒤지지 않는다. 등 푸른 생선으로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치매 예방 효과도 있다. 바닷가 근처 사는 사람들은 고등어추어탕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도 했다. 괜히 보양식이 아니다. 이 집에선 밥도 양껏 먹을 수 있다. 추가 밥값은 받지 않는다.연일 30℃를 웃도는 불볕더위에 포로가 된 입맛과 기력은 고등어추어탕 한 그릇에 무장해제 된다.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해서 고등어 맛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예부터 전해져오는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그 맛을 즐기면 된다. 옛 추억 떠올리게 하는 고등어추어탕으로 한여름 견디다 보면, 어느덧 살 오른 미꾸라지가 식탁에 오를 계절도 다가온다./김혜영기자

2016-07-27

스마트 폰으로 톡,톡,톡… 안동 특산물이 안방에 와르르

“안방에서 안동의 농·특산물 사세요”안동시는 2004년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축·특산물 홍보와 판매 확대 등을 위해 인터넷 쇼핑몰인 `사이버 안동장터(www.andongjang.com)`를 개장했다. 최초 문을 열 당시 `안동장터`에는 49개 업체가 입점했고 상황버섯과 간고등어, 하회탈, 한우, 김치, 신약 등 500여 농·특산물이 판매대에 올랐다. 안동시는 소비자들이 `안동장터`를 믿고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철저한 품질 관리를 하고 다양한 보증 장치도 마련했다.개장 12년차로 접어든 `사이버 안동장터`가 신도청시대를 맞아 변화의 중심에 선 만큼 시스템의 견고함은 물론 다양하고 특색 있는 판로 모색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개장 12년차 사이버 `안동장터`생산자 215명, 2천920개 상품판매간편결제 도입한 모바일 쇼핑몰 인기전통시장과 농특산물 축제 접목다양한 문화 생산해 관광객 유치 노력□ 전자상거래의 시작 `사이버안동장터`2000년에 접어들어 대형 유통업계는 기존의 오프라인의 한계를 탈피해 온라인을 이용한 전자상거래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전자상거래란 인터넷 등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한 상품거래 즉 온라인 쇼핑으로, 인터넷 상에 `사이버몰`이라 불리는 가상점포를 만들어 각종 상품을 통신 판매해 고객이 매장에 직접 방문할 필요 없이, 어디서나 상품을 비교하고 주문할 수 있는 상거래를 말한다.현 시점에서는 온라인 매출이 오프라인 매출을 앞서고 있다.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시장 논리 속에 고령화된 농업인들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고 시장 경쟁을 통해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고자 할 동력을 잃을 위기에 직면했다.이런 현실에서 안동시는 지역 내 모든 농·특산물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직거래 쇼핑몰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사이버안동장터`를 구축했다. □ 안동시 대표 농·특산물 쇼핑몰로 자리매김사이버안동장터는 올해 7월 현재 215명의 생산자가 입점해 2천920개의 상품을 등록·판매하고 있다. 고객 회원수는 1만7천481명으로 누적 매출액은 42억원.그간의 운영 실적을 살펴보면 개장 초기인 2005년 누적 매출 1억을 달성했고, 2008년 누적 매출 10억원, 2011년 20억원, 2013년 30억원, 2015년 40억원으로 내·외적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꾸준히 매출액이 상승했다.우수 판매 제품은 쌀, 사과, 마, 버버리찰떡, 간고등어, 국화차, 한우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일 평균 접속 수는 200~300여명, 최대 접속수는 1천690명까지 기록했다.이러한 흐름 속에 지역에서 농·특산물을 생산하는 경우 가장 먼저 사이버안동장터에 입점하는 것은 관례가 됐다. 또한, 안동장터는 쇼핑몰로서의 기능에 지역 농·특산물 홍보창구로서의 기능이 더해져 지역 농가 매출액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장터에는 소비자의 신뢰도 향상을 위해 생산자 프로필, 상품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생산자와의 문의를 통한 오프라인 직거래도 이루어지면서 지역 농가 매출액 상승에 도움을 주고 있다. □ `사이버안동장터` 활성화에 열과 성안동시는 구축한 사이버안동장터를 보다 활성화해 지역 농·특산물 생산농가의 매출 향상에 보탬이 되고자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2010년 안동장터의 브랜드 강화를 위해 상표를 개발, 2012년 특허청에 등록했다. 상표의 특징은 지역명인 `안동`과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를 합성해 네이밍했다.해당 브랜드는 국내의 우수한 상표를 선발해 시상함으로써 상표의 중요성을 알리고 상표의 전략적 개발 및 출원을 장려하고자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가 주최·주관하는 `2015 우수상표권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또 2015년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를 맞아 사이버안동장터 쇼핑몰 이용 고객에게 보다 편리한 구매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모바일 쇼핑몰을 구축했다.이로써 사이버 안동장터는 PC용 쇼핑몰의 한계를 극복하고,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한 쇼핑몰로 거듭났다.`사이버안동장터 모바일 쇼핑몰`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디자인으로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모바일 간편 결재 기능을 도입해 상품구입과 대금결재를 편리하게 했고, 입점업체만의 미니 홈페이지가 구축돼 손쉬운 업체 검색을 통해 상품과 업체 정보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모바일 쇼핑몰은 구축과 동시에 총매출액의 10%를 차지하는 등 지역 농가의 매출액 향상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 지역 농·특산물과 전통시장의 만남지역 농·특산물과 전통시장의 관계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예전부터 지역 농·특산물의 주된 판매처는 전통시장이었기 때문이다.최근 전통시장은 대형 유통업체의 지방 출점으로 많이 위축됐다. 대형마트는 안동시와 같은 중소도시에도 주민과 멀지않은 가까운 관계에 있다. 자연히 원스톱 쇼핑이 이루어지고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대형마트에 소비자들이 몰린다.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전통시장은 다양한 볼거리 제공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즉, 전통시장에 문화를 접목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려 하고 있으며, 여기에 지역 농·특산물이 가미되고 있다.전통시장과 지역 농·특산물이 접목한 다양한 문화를 살펴보면, 우선 서부시장과 간고등어의 만남, 서부시장 간고등어 축제가 대표적이다. 서부시장 간고등어 축제는 2011년부터 매년 9월 중순에 개최된다.안동의 우수한 먹거리인 안동간고등어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충분히 살리고 서부시장만의 특색 있고 뛰어난 상품을 알려 침체된 전통시장을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면서 시민과 관광객이 찾아오는 전통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또 안동한우를 바탕으로 한 안동한우축제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풍산시장 일원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안동한우는 여성소비자가 뽑은 프리미엄브랜드 대상에서 올해까지 5년 연속 지자체 한우부문 대상을 받았다. 안동 대표 브랜드인 안동한우와 전통시장인 풍산시장의 만남으로 관광객에게 우수한 안동한우의 맛과 명성을 홍보하고 전통시장 상인들의 구수한 사투리와 안동의 인심까지 느끼게 해 특산물과 전통시장이 서로 상생하는 우수한 롤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안동찜닭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다. 안동찜닭은 예전부터 안동구시장 내에 터전을 잡은 대표 먹거리다. 안동구시장은 찜닭을 활용한 팔도열차투어,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각종 지상파 및 케이블방송의 시장 투어 등으로 전국구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올해부터는 글로벌명품시장 육성사업으로 한 단계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 지역 농·특산물의 변화급변하는 시장 체제에 맞서 지역 농·특산물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의 첫 입문은 사이버안동장터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개인 쇼핑몰 홈페이지 및 블로그 구축, 홈쇼핑 활용 등 다양한 판로 확보에 매진하고 있는데다 전통시장을 이용한 판로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변화된 유통환경에 물러서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있는 건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제품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새로움에 감동하고 열광하지만, 현실에 안주해 발전이 멈춘 제품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예전에 비해 온·오프라인에 많은 판로가 열려 있고, 농·특산물에 대한 홍보 창구도 다양하게 구축돼 있다. 이렇게 다양한 통로를 활짝 열고 나가려면 먼저 농·특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이는 안동시 전체의 이미지이고 결국 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이 된다.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동종의 무수히 많은 제품이 같은 환경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선 가격 경쟁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신뢰받는 농·특산물에 가격 경쟁력까지 더하고, 사이버안동장터 및 전통시장 활성화의 노력이 조화를 이루면 새천년 미래의 도읍지 안동의 위상 강화는 물론 지역 농·특산물 경쟁력 제고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권기웅기자 presskw@kbmaeil.com

2016-07-26

지역사회와 거리 좁히기 적극 나서

호국문예경연·병영캠프 등 개최누구나 해병대 체험기회도 가능軍장병들 해안정비·의료봉사 등대민봉사로 든든한 지원군 역할□ 지역주민의 품으로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세대인 40~50대 남성들이 군생활을 하던 시절인 1980~90년대까지만해도 군대는 지역사회에 다가가기보다는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였던 것이 사실이다.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군대 내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군을 신뢰하지 않고 이면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경향이 강했다.이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0년대 들어 군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민간단체, 기업 등을 대상으로 부대를 개방하고 군이 변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주민들이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해병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우선 해병대 1사단은 부대 내에서 나라 사랑 호국문예 경연대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올해로 37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시, 수필, 수채·크레파스화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포항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참가자들로 하여금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확고한 안보관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부대 내에 배치돼 있는 한국형상륙돌격장갑차(KAAV)와 전차, 자주포, 견인포, IBS 등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지난 1997년 시작돼 해병대를 알리는데 혁혁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해병대 캠프도 지역사회에 다가가려는 해병대의 노력 중 하나다. 해병대에 따르면 해병대 캠프는 1회당 300명 내외를 신청받아 연간 동계 1회, 하계 3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총 113회에 걸쳐 3만4천961명이 수료했다.캠프에 참여하게 되면 해병대 소개를 비롯해 IBS 상륙기습기초 훈련, KAAV 탑승훈련, 해상생존술, 화생방 체험 등 강한 해병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캠프참가자들은 고된 훈련을 견뎌내며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고 주위에 감사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해병대는 2013년 충남 태안에서 고등학생 5명의 목숨을 앗아간 해병대 명칭을 사칭한 사설캠프의 사례를 계기로 해병대, 해병대 캠프, 해병대 캐릭터, 고유 앰블럼 등 부대명칭과 마크, 로고의 저작권과 상표권 등록을 마쳐 사설캠프의 난립을 차단하고 있다.또한 전문교관진과 군의관이 포함된 의료진을 구성해 철저한 안전감독과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병영문화캠프를 주관하고 있다.□ 포항 지역사회의 든든한 우군2013년 포항 용흥동 산불에서 해병대의 활약을 앞서 언급한 바 있듯 해병대는 적극적인 대민지원 활동으로 포항 지역사회의 든든한 우군이 되고 있다.봄, 가을 두 차례 농번기가 오면 남구 구룡포읍, 동해면, 북구 흥해읍, 청하면, 송라면 등 포항지역 16개 읍·면·동에서 연간 2만여명의 장병을 투입해 지역 농민들의 생업을 지원하고 있다.장병들은 모내기와 모판 나르기, 과실열매 솎기, 봉지 씌우기 등 농가에 필요한 다양한 활동을 돕고 있다. 해병대는 저소득 고령농가를 우선순위로 선정해 교육훈련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우선 순위로 대민지원을 진행하고 있다.아울러 대민지원 기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전 장병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일일 단위로 개인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또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촌지역 주민을 위해 의료봉사활동도 실시하고 있다. 해병대는 송라면, 동해면, 청하면 등 읍·면지역을 중심으로 주기적으로 이동진료실을 만들어 놓고 군의관, 간호장교, 의무부사관, 의무병 등이 참여해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무료로 점검해주고 있다.이밖에 해안가에 위치한 포항지역의 특성을 고려, 구룡포해수욕장, 도구해수욕장 등 해안가를 중심으로 해안환경정화활동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6-07-25

수많은 해외 독립유공자들, 독신으로 비참하게 생 마쳐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를 일컫는 중가주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로스앤젤레스(LA) 한인사회로 상징되는 남가주와 샌프란시스코가 중심인 북가주는 미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인듯 우리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중가주는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이어진 하와이 농업 이민 1세대 한인들이 북가주를 통해 미 본토에 입국해 남부로 이동하며 전역에 250만 교민을 형성하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해외독립운동 사적지이다. 오죽했으면 교민사회에서 `미주 한인 이민역사의 성지`라는 평가까지 나오겠는가. 이들은 비록 역사에서 이제 거의 잊혀졌지만 비천한 신분과 가난 속에서도 이름 없는 해외독립 유공자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제 리들리와 다뉴바를 중심으로 한 중가주 한인 이민사를 복원하는 일은 과거의 거울에 내일의 길을 비추는 모색으로서 그 의의가 충분하다. 하와이 첫 공식 이민자 중 2천명 美 본토 밟아당시 한인 전체 이민자 3분의 1이 중가주 정착리들리엔 안창호·다뉴바엔 이승만이 거점 삼아경쟁적으로 관리하며 독립자금 거둬 들여이민 1세대 중 경주출신 매장기록 유일한 김경선29세 청년 시절부터 농장 날품팔이로 늙어간 뒤환갑 나이에 스스로 목숨 버린 한많은 生 안타까워□ `포와`에서 `상항` 거쳐 `딴유바`까지자동차로 LA를 출발해 우리 고속도로와 같은 5번과 99번 프리웨이를 3시간 가량 달리면 다뉴바이며 다시 30분을 더 가면 리들리가 나온다.전형적인 농촌도시인 이곳은 킹스리버(King`s River)가 공급하는 풍부한 용수와 일조량,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분지의 지형으로 인해 `미국의 과일바구니`로 불릴 만큼 과수 농업이 발달돼 있다.이번 현지 취재 기간 중 직접 차를 몰아 달려본 도로변에는 복숭아와 오렌지, 아몬드 등 갖가지 유실수가 끝 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해보면 나무 아래에는 노동력 부족으로 수확되지 않은 낙과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히스패닉들도 취업을 주저할 것 같은 이 과일 수확 임노동자들의 선조는 지난 1904~1905년께부터 시작해 1930년대 무렵, 한때 300~500명이 모여 살았던 한인 이민자였다. LA 거주 사학자 이자경씨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른바 `포와`(하와이)에서 근로기간을 마친 한인 임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귀국이나 하와이 잔류, 미 본토 입국 등 다음 행선지를 선택할 수가 있었다.그 결과 하와이 첫 공식 한인 이민자 7천500여명 중 1천500~2천여명이 `상항`(샌프란시스코)을 통해 미 본토를 밟았다. 이들은 곧바로 솔트레이크시티 등의 대륙횡단철도 공사현장이나 덴버의 광산에서 중노동을 하거나, 하루 일당 1~2달러로 다소 낮지만 리들리와 `딴유바`(다뉴바)의 포도나 오렌지 농장에서 과일 수확을 했다.극히 드문 사례지만 1909년에는 박제순이 유타주에서 현지인의 토지를 빌려 사탕수수를 직접 재배하기도 했다. 한인들은 본토 입국 후 초기 5년 동안 성실하게 삶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국민회와 동지회의 주무대중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규모가 가주 전체 한인의 3분의 1을 점할 만큼 성장하자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양대 거두였던 도산 안창호와 우남 이승만이 지나칠 리가 없었다. 이들은 각기 노선을 달리해 사사건건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나 경쟁적으로 리들리와 다뉴바의 한인사회에 정성을 쏟았다.결국 리들리는 안창호의 계열인 대한민국민회가, 다뉴바는 이승만이 중심인 동지회가 각각 거점으로 삼기에 이르렀다.이 때의 감정으로 인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자 리들리의 한인들은 한국 입국 비자를 받지 못할 만큼 불이익을 받았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다.□ 독립지원 이면에 일탈의 양면도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은 미주 한인들의 독립성금에 크게 의존할 만큼 공헌도가 컸다. 대부분이 독신자인 한인 노동자들은 `먹고 남은 것은 조국 광복운동 후원에 바쳤다`(김원용 저 `재미 한인 50년사`)고 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힘든 노동과 가족의 위안도 받을 수 없었던 처지에서 이들 가운데 일부는 도박과 마약에 빠지고 살인과 폭행 등 범죄와 일탈의 심각성을 보이기도 했다.결국 노동력을 상실한 은퇴 한인 이민자들은 리들리 한인교회 앞 한인이 운영하던 하숙집에 집단 거주하며 열악한 의식주로 연명하다가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임종 조차 지킬 이가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 경주사람 김경선의 흔적을 찾아서이번 취재에서 리들리와 다뉴바의 공동묘지에 안장된 미주 한인 이민1세대 가운데 매장기록이 확인된 유일한 경북 경주 출신 김경선본지 18일자 1면 보도의 행적을 거슬러 가는 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미국 중가주의 작은 농촌도시 다뉴바의 공동묘지에 쓸쓸히 잠든 그의 존재는 지난 6월14일(현지 시간) 오후 현지 안내를 맡은 한 교민이 건네준 명단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애국선열 명단`제목을 단 11쪽 분량의 이 묘지 기록에 기재된 한인 1세대 매장자는 리들리 189명, 다뉴바 58명 등 모두 247명으로 생몰 연대와 출신지, 사인(死因) 등이 담겨 있었다. 물론 성씨만 기재되는 등 미확인자도 적지 않았다.출국 전 이미 국내 취재에서 제물포항을 통해 하와이로 농업이민을 떠난 7천500여명의 출신지 중 경상도가 세 번째이며 그중에서도 경주 출신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자의 눈에 김경선이 띈 것이다.유일하게 `경주`가 기재된 그는 1874년생으로 1934년 4월28일, 만 59세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생을 접었으며 `중가주 독립당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기록돼 있었다.한인 매장자 가운데 그리 드문 사인은 아니었으나 확인된 유일한 경주사람이니 자연히 행적에 관심이 갔다. 이어 다음날 방문한 다뉴바에서 묘비 하나로 남은 그를 뭉클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이 쓸쓸한 사내는 누구이며 어떤 일이 있었길래 머나먼 고국의 나이 60세가 된 해에 생을 버렸던 걸까?18일 귀국한 뒤 곧바로 경주시에 취재를 했으나 동명이인은 있을 뿐 1874년생은 없었다. 미심쩍은 생각에 포항시에도 문의했으나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번 취재의 시작 지점이었던 인천의 한국이민사박물관에 도움을 청했다. 얼마 뒤 이메일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같은 이름이 모두 8명 확인되지만 출생년도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첫 보도를 해야 하는 11일이 코앞에 다가오는데 속이 탔다. 하지만 흔한 이름이 아닌데도 8명씩이나 확인된다는 점에 의문이 들어 다시 용기를 내어 재확인을 요구했다. 며칠 뒤 이현아 학예사로부터 놀라운 답변이 왔다. `미국 측 도착자 명단에서 재확인을 해보았더니 경주시가 아닌 상세 거주지로 □ Dong으로 기록된 김경선이라는 이름이 검색`된다는 것이다. 이 학예사는 `1904년 9월 26일 몽골리아(Mongolia)호로 하와이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도 덧붙였다.그렇다. 김경선이 경주 시내인 노동동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29세의 청년으로 하와이로 건너간 그는 다시 본토로 건너가 농장의 날품팔이로 늙어간 뒤 끝내 외로운 삶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그렇다면 이쯤에서 그에 대한 더 이상의 확인은 미뤄두기로 했다. 잘만 하면 그의 혈족들을 찾아 보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그가 마지막 눈을 감던 순간, 먼 시절 이역만리 경주의 토함산에 걸렸던 뭉개구름과 알천변의 물놀이, 반월성지의 첫사랑을 그리워했으리라는 추모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비록 자신은 비루한 처지 속에서 떠돌이로 생을 마쳤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가난한 주머니를 열었으며 이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후손들이 있다면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7-25

세상의 모든 예술 만나는 파리시민 사랑방 같은 도서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에피소드부터 하나. 10대 청소년들이 끝도 보이지 않게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1층 안내데스크에서 “퐁피두도서관 담당자와 5분쯤 인터뷰가 가능한가?”라고 물었다.잠시 후 세련된 옷차림의 중년여성이 계단을 통해 2층에서 내려왔다. 언론담당관 크리스틴 카리에였다. 예고 없는 방문이었음에도 그녀는 친절했다. 약속했던 5분의 인터뷰는 15분으로 길어졌다.1977년 국립예술문화센터와 함께 개관 소장도서 40만권 한정해 신간 로테이션 빠르게영화·음악 등 예술·문화 전 장르 만날수 있어카페·영화관·비디오 자료·갤러리 전시실 등20~30대 젊은 층의 전폭적 사랑받는 도서관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퐁피두도서관 언론담당관 크리스틴 카리에.재밌는 사건(?)은 인터뷰가 끝난 후 일어났다. 통역자를 통해 크리스틴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한국엔 국립도서관이 몇 개나 되느냐?” “한국 도서관의 관리주체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다오.” “서울과 지방 도서관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누가 기자이고, 누가 언론담당관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3개의 매체를 거치며 10년 넘게 기자를 해왔지만, 이처럼 `호기심 많은` 취재원은 처음이었다. 아는 한도 내에서 질문에 답해주며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게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 모습이고, 많은 책을 읽으며 살아온 자의 지적 호기심이구나.`크리스틴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퐁피두도서관은 1977년 개관한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와 함께 생겨났다.철골과 배관을 숨기지 않고 외부로 노출한 대담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퐁피두센터는 그 독특한 미적 완성도로도 이름이 높아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등과 함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한 번은 들러보고 싶어 하는 곳. “책, 음악,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더불어 숨 쉬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퐁피두도서관은 바로 이 퐁피두센터 2~3층에 자리했다. 크리스틴의 설명에 따르자면 “도서관을 향한 프랑스인의 현대적 요구에 가장 효과적으로 답하는 공간”이 바로 퐁피두도서관이다.소장도서를 40만 권 내외로 한정시켜, 출간시점이 오래된 책은 외부로 내보내고 항상 새로운 소설과 시집, 미술과 음악 관련 신간들을 채워 넣는 퐁피두도서관의 시스템은 젊은층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0대와 20대 방문자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프랑스의 어떤 도서관보다 늦게 문을 닫는 것도 장점이다. 퐁피두도서관이 불을 끄는 시간은 밤 10시. 이 원칙은 일주일에 단 하루,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휴일과 국경일에도 지켜진다. 비유를 해보자. 프랑스국립도서관(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이 3천500만 권에 이르는 희귀한 고서적과 고문서를 소유한 점잖은 교수라면, 퐁피두도서관은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몸을 뒤채는 쾌활한 학생이라 할 수 있다. 퐁피두센터는 젊은이들의 `지적 열망`에 효과적으로 답하는 공간 배치로도 이름이 높다. 1층에는 카페테라스, 영화관, 서점이 위치해 있고 2~3층은 열람실과 학습실, 비디오 및 음향 자료실과 프레스 미디어실로 꾸몄다. 여기에 4층과 5층엔 갤러리와 그래픽아트·조각 전시실이 자리했다. 퐁피두센터 한 곳에서 책은 물론 영화와 음악, 미술까지 예술의 거의 전 장르와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게 무료라는 것도 주머니 가벼운 소년·소녀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틴이 가지고 있는 퐁피두도서관에 대한 자부심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인구대비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북유럽이 더 많아요. 하지만, 북유럽은 춥고 흐린 날씨 탓에 도서관이 `따뜻한 동네 카페`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사교공간으로서의 비중이 더 큰 거죠. 아마 순수하게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오는 이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더 많을 걸요.” 환하게 웃어 보인 크리스틴이 말을 이어갔다.“프랑스는 국가가 운영하는 도서관만이 아닌, 대학 도서관과 지역의 민간도서관도 인프라가 좋은 편이죠. 거기서 체계적인 도서관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관한 도움을 요청하면, 파리에서 전문가가 파견되기도 한답니다.”내침 김에 도서관과 책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이 여성에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다행히 기자도 들어본 이름이 나왔다.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 한국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작품을 번역·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당연지사 “왜 그의 소설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노래하듯 들려준 크리스틴의 답변이 잘 쓰인 한 편의 프랑스 시 같았다. “외로움에 대한 해석이 독특해요. 어쩔 수 없는 생의 비극적 정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게 좋았죠. 게다가 슬픔에 접근할 때도 문장은 한없이 아름다워요. 그러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취재와 인터뷰를 마치고 퐁피두센터 앞 광장으로 나왔다. 햇살이 제법 따가운데도 젊은이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이야기하거나 광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소규모 공연을 지켜보느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거기서 만난 프랑스 소녀 소피(18)와 소년 루카스(17)는 “퐁피두센터 안에선 책도 읽고 영화와 전시회도 보고 친구랑 아이스크림도 먹어요. 이렇게 광장으로 나와선 형과 누나들의 악기 연주와 마임(Mime)을 보기도 하죠. 아저씨도 파리를 즐겨보세요”라는 말로 기자를 즐겁게 했다.앞으로 20~30년 후쯤에는 소피와 루카스의 아들·딸도 퐁피두센터와 그 앞 광장에서 책, 음악, 미술, 공연과 함께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낼 것이다. 바로 그런 청춘시절의 경험이 그들을 예술을 알고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시키지 않을까.※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글/홍성식 기자·사진/이준성 기자

2016-07-22

쇠퇴한 중앙동에 복합개발사업 옛 활기 되찾을 무한가능성 열려

지난 2015년 4월 1일 포항시 북구 대흥동 구도심에 위치한 구 포항역은 역사이전과 함께 지난 100년간 수행했던 역세권으로서의 역할에 종지부를 찍었다. 역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글 싣는 순서1. 영국 산업발전 견인차 `맨체스터 리버풀역`2. 영국 과학·산업 역사 한눈에 `맨체스터 MOSI`3. 시민의 발이 문화공간으로 `충남 보령문화의전당`4. 포항역의 역사(歷史)와 KTX시대5. 옛 포항역 부지 가능성과 개발 기대효과옛 포항역 복합개발사업 용역 진행주택·체육시설·편의시설 등사유지 포함 수만평 규모 확대 개발구도심 활성화 신호탄 기대비록 도로개설로 인해 역사(驛舍)는 철거됐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역주변 부지는 개발을 앞두고 있다. 이번 개발사업의 중요포인트는 주민 스스로가 개발에 대한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앞서 영국 맨체스터의 사례에서 과거 맨체스터 리버풀역이었던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 인근 도심지역인 스피닝필드는 런던부동산연합(Allied London Properties)이라는 민간기관이 주도아래 2000년 이후부터 본격화됐다.런던부동산연합은 15억파운드라는 엄청난 민간자본을 유치해 박물관으로부터 1㎞ 가량 떨어진 스피닝필드 지역에 비즈니스, 상업, 주거가 복합된 새로운 지구를 만들었다. 맨체스터 시의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1만6천명이 넘는 인원이 스프링필드 지역에 입주한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구 포항역이 위치한 포항 구도심지역은 침체일로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1980~90년대 가장 번화했던 포항 중앙상가 일대는 젊은 청춘들이 추억을 쌓는 공간으로 늘 생기가 돌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도로변 상가들은 점포가 비어있기 일쑤고, 일부는 아예 임대문의조차 없이 방치되고 있다.쇠퇴한 상권은 점점 되살리기 어려워졌고, 휴일이나 주말이 되면 각종 아울렛·쇼핑센터가 들어선 가까운 대구·울산·경주 등으로 쇼핑객들이 빠져나가면서 지역자본이 유출되고 있다.이 때문에 지난 1980년대 4만6천여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했던 포항시 북구 중앙동은 2016년 6월 기준 1만7천여명에 불과하다.이는 포항시 북구지역 동단위 행정구역 8곳 중 환여동(1만1천여명)에 이어 2번째로 적은 규모다.이같은 상황에서 구 포항역 복합개발사업이 구도심활성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구 포항역 철도부지는 약 6만6천97㎡(약 2만평)의 규모로 소유지분은 국유지가 4만4천145㎡, 코레일이 2만633㎡, 포항시가 1천319㎡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개발에 추가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변 사유지의 범위설정이 이뤄진다면 개발범위는 수만평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구체적인 안이 제시되지는 않고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예상안은 행복주택, 주차장, 광장, 체육시설 등 주거와 편의시설이 포함된 복합개발이다. 현재 구도심 인근에 위치한 중앙동, 대흥동, 죽도동 등지에는 대규모 주거시설이 없어 퇴근 이후에는 상당수의 인구가 장량, 문덕 등 신시가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여러 주거·편의시설이 함께 들어설 경우 퇴근이후에도 머물 수 있는 인구를 확보하게 되고 더불어 상권의 활성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또한 지난해 개관해 포항시민의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는 포은중앙도서관과 경북동해안 최대 규모의 죽도시장, 중앙상가 등과 효과적으로 연계하면 상당한 인구유입 효과와 관광객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여기에 포항역 이전으로 폐선된 효자역~포항역간 철도부지 4㎞구간에 대한 공원화 사업 추진도 본격화되면서 휴식기능을 더한다면 구 포항역 일대는 인구를 모으고,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구 포항역 개발사업은 단기간에 마무리짓기 위해 사업속도를 높이기 보다는 10년, 20년을 내다보며 사업을 진행해야 성공적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제시 등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사업시행자가 이를 반영한다면 구도심활성화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데 소중한 수단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안병국 포항시의회 건설도시위원장지역주민 아이디어·대안 제시로도심재생사업 시너지 효과 기대-구 포항역 복합개발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지난해 4월 포항시, 한국철도시설공단(KR), 코레일 등 3개 기관이 구 포항역 개발사업을 위해 MOU를 맺은 바 있다. 그런데 협약을 맺고 KR이 용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사업범위를 확대해 주변 사유지도 함께 개발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사업주체에 변화가 생겼다. 사업범위가 사유지로 확대되면 국토부 지침과 법적근거 등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주체로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LH의 사업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수개월간 각 기관이 입장을 교환했고 지난 6월 포항시와 LH가 새로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사업구상을 위한 용역을 수행 중이다.-개발사업이 어떤방향으로 가야만 구도심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우선 사람이 살아야 한다. 상주인구가 늘어나면서 유동인구도 덩달아 확보가능해진다면 근거리에 있는 상업지구와 연계해 활발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LH의 구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행복주택의 경우 젊은 직장인, 신혼부부, 대학생이 70%이상이라 소비층이 다소 약한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투자가 수반되기 때문에 구도심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구 포항역 축소복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장소인 만큼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철거이전 실시했던 실측모델을 바탕으로 개발사업 부지 한켠에 마련한다면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KTX역 이전의 포항역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주고 건물 내에 갤러리, 전시회 등을 수시로 개최할만한 공간을 제공한다면 구도심의 새로운 명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가장 중요한 사실은 구 포항역 복합개발사업은 역세권을 상실하고 구도심침체를 우려한 주민들 스스로가 자구책을 들고 나오면서 추진된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포항시에서 도심재생과 중앙상가 활성화 등을 위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도심은 여전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주민들이 협의체구성 등을 통해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요구를 제시하고 대안을 의뢰한다면 구 포항역 개발사업은 도심재생사업과 더불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끝

2016-07-21

고분 뒤에 또 고분이… 숨바꼭질 하는 23개의 초록능선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 이후 31년 만에 경주 대릉원을 다시 찾은 건 겨울의 기운을 채 떨치지 못한 올 초봄이었다. 고분 위 잔디는 아직 물기와 푸른 기운을 머금기 전이었고, 쌀쌀한 날씨 탓에 관광객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소 황량한 풍경. 하지만, 이후 취재를 위해 봄기운이 완연했던 4~5월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대릉원을 포함한 경주 일대가 벚꽃과 유채꽃으로 환했고, 가족 단위의 관광객과 연인들로 인해 도시 전체가 젊은 에너지도 가득했다.대나무·소나무 우거진 역사의 보물창고엔미추왕릉·천마총 등 이십여 봉분이 옹기종기계절마다 다른 매력, 여행객 발길 이어져`감수성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소설가 강석경은 대릉원의 봄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미추왕릉에서 왕들의 계곡으로 걸음을 옮기니 고분 뒤편에 또 고분, 능선이 숨바꼭질하듯 변한다. 내 가슴은 희로애락으로 들끓건만 자연의 곡선은 저리도 평화로운가. 뱀 허리처럼 휘어진 오솔길로 들어서자 좌우 앞뒤로 거대한 고분에 에워싸이고, 봄날 풀이 막 돋기 시작하는 금빛 고분들 속에 서 있으니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싶다.”이처럼 아름다운 `봄날의 대릉원`을 두어 차례나 보았으니, 당연지사 `대릉원의 여름`도 궁금해졌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선 다시 2개월을 기다려야했다.그리고, 뜨거운 햇살이 드러난 팔다리를 까맣게 태우는 7월 중순. 대릉원을 다시 찾았다. 차를 세우고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선 입구에서부터 기자의 기대는 찬탄으로 바뀌었다.시원스레 몸을 하늘로 뻗어 올린 대나무는 푸르른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쉴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고 , 고분 사이사이에 꽃을 피운 백일홍은 대릉원을 찾은 중년의 여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100일간 꽃을 피운다하여 `백일초`로도 불리는 백일홍은 그 강렬한 진분홍 빛깔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력적인 꽃이다.경주의 여름은 인간만이 아닌 미물들까지 설레게 하는 힘이 있어서일까? 높디높은 미추왕릉 봉분 위에서 까치 몇 마리가 날개를 접고 종종걸음을 쳤다. 그 옛날 왕에게 예의를 표하는 듯도 보였다. 대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대릉원 한 구석에선 청설모가 겁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좌우도 돌아보지 않는다.선생님의 인솔 하에 친구들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는 에밀리(18)는 산처럼 거대한 왕들의 무덤과 기묘하게 자라난 소나무들, 거기에 분홍색 꽃과 귀여운 청설모 사이에서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해보였다.“한국은 처음인가요? 여기 어때요”라는 질문에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에요. 정말 놀랐고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답하는 에밀리의 목소리는 한국의 또래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청명하고 귀여웠다.방학을 맞아 멀리 경기도 수원에서 경주를 찾은 대학생 커플 김OO씨와 강OO씨는 스물한 살 동갑내기. 어제 오후 경주에 도착해 옛 궁궐터와 국립박물관, 동궁과 월지, 첨성대 등을 둘러보고 하룻밤을 묵은 후 대릉원을 찾았다는 연인은 학구적이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금관총을 꼼꼼히 둘러보고는, 그걸 작은 공책에 메모하던 강씨는 “1천500년 전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금관을 만들어냈고, 예술적 감각으로 빚은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다는 게 신비롭게 느껴져요. 어렵게 생각됐던 역사가 책에서 볼 때와 달리 직접 현장에 와서 보니 흥미롭게 다가서네요”라며 백일홍처럼 빛나는 웃음을 지었다.대릉원 한편에는 경주에서 진행된 각종 토목공사 현장에서 찾아낸 신라시대의 석조물을 모아놓은 공간이 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그 석조물과 짙게 드리워진 나무그늘을 배경으로 점잖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선뜻 다가가 말을 건네기가 어려울 만치 엄숙한 풍경이었다.기자는 상상했다. 저 노인은 사라지는 세상의 풍경과 때마다 돋아나는 새로운 생명, 화려했지만 동시에 덧없었던 왕들의 생애와 반복되지 않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인간의 삶을 기록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그때쯤 다시 한 번 강석경의 결 고운 문장이 떠올랐다.“대릉원으로 들어서니 하늘로 뻗은 노송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화단에 심어진 나무 잎들이 바람에 물결친다... 경주엔 능이 많아 소나무가 많고 자연환경이 좋은 것 같다... 선조들의 꿈이 묻힌 능은 그 크기만큼 우리들에게 환상을 주니 경주를 경주답게 하는 주역은 능이다.”경주를 경주답게 해주는 능. 그 능 스물셋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대릉원은 `역사의 보물창고`에 다름없다. 소중한 것도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홀하게 대하기 쉽다. 혹, 경주의 역사와 빛나는 문화유산도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날 우리에게 대릉원은 무엇이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역사란 어떤 의미인가?화사한 인사로 사람들을 배웅하는 백일홍과 올곧은 기질이 군자를 닮은 대나무숲 사이를 빠져나오는 순간, 벌써부터 `대릉원의 가을`과 `대릉원의 겨울`이 궁금해졌다. 이 기다림 또한 달콤할 것이리라. 미추왕이 잠든 거대한 `신라의 정원`시내 한가운데서 산책하며 역사공부 즐기는 드문 체험총면적 41만4천545㎡(12만5천400평)의 `거대한 정원`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대릉원은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선 신라시대 왕과 왕비 그리고, 귀족의 유택으로 추정되는 23기의 고분과 만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신라왕조 최고 권력층의 사후 집단거주지`인 것이다.`대릉원`이란 명칭은 `삼국사기`에 서술된 “미추왕을 대릉(大陵)에 장사지냈다”는 문장에서 착안해 지었다고 한다. 미추왕은 신라 13대 왕으로 262년부터 22년간 재위했다.그는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성군이었다. 농민 등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의 형편을 살폈고, 노인을 존중했다. 가뭄과 홍수 등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사신을 각 지역으로 파견해 피해 정도를 보고받은 후 도움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궁궐을 증축하자는 대신들의 건의도 “백성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거부했다. 이런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니, 백성들이 미추왕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신라만의 독특한 무덤군(群) 형태를 취하고 있는 대릉원은 사적 175호인 미추왕릉과 대량의 금관과 유물이 발굴된 천마총 등이 자리하고 있어 일 년 내내 여행객과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또한 대릉원은 경주 외 다른 지역과 달리 평지에 고분을 조성했기 때문에 `산 자`와 `사라진 자`의 흔적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관광 포인트`로서도 그 의미가 크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시내 한 가운데서 확인하는 드문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1970년대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역사공부와 산책을 겸할 수 있도록 공원처럼 조성한 대릉원은 경주시민들에겐 자랑할 만한 휴식공간이 되고, 국내외 관광객들에겐 세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풍경으로 다가온다.대릉원을 조성할 당시 발굴된 유물은 숫자도 숫자지만, 인류학적·고고학적 가치도 높은 것들이 상당수다. ◆서수형 토기 ◆수레형 토기 ◆상감목걸이 ◆천마도 ◆금관 및 각종 금장신구 등은 천년 세월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끝

2016-07-21

몸·마음 치유하는 힐링 `친환경 농장` 인기

“한 부부가 농장으로 오는 길에 크게 다퉜나 봐요. 농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는데 남편과 아내가 서로 멀찍이 떨어져 걷더라고요. 말하지 않아도 냉기가 흘렀죠(웃음). 제가 가이드를 맡아 부부와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봤어요. 돌아가실 때요? 두 분이 손 꼭 잡고 가더라고요.” 포항시 대표 6차 산업 현장인 `하은농장`을 운영하는 이성혜 대표는 농장에서 생긴 작은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는 “농장이 완성되기까지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많았어요. 특별하지 않은 이 작은 농장에서 일어난 숨겨진 에피소드를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고구마 캐기·천연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속노랑 고구마 가공 사계절 판매·일자리 창출7년간 8만여명 블로그 방문…온라인판매 불티□고구마가 전부인 하은농장하은농장의 근간은 고구마다. 이 대표는 남편과 함께 친정집인 죽성리에서 고구마를 재배하며 농장을 가꿨다. 이곳에서 자란 고구마는 다른 지역보다 크기가 크고 당도도 높다. 하지만 추위에 약해 농촌에서 오랫동안 보관하기가 어려웠다. 고구마 수확 후 매년 12월 이전에 판매를 마쳐야 하는데 1차 생산으로 얻는 소득이 너무 낮았다.이후 고구마를 말리거나 분말 형태로 가공하면서 농장은 차츰 활기를 띠었다. 친환경 인증받은 속노랑고구마를 생산해 지난 2014년 말랭이 가공 사업을 시작했다. 말린 고구마 6kg(약 12만원)은 밭에서 캔 고구마 10kg(최상품 최대 3만원)을 4박스 판 것과 같은 수익을 냈다. 고구마를 가공 생산해 사계절 판매 가능해지자 농한기에도 일거리가 생겨 농촌 일자리도 늘었다.□아이들 몸과 마음 치유하는 곳이 대표는 지난 2010년 마을주민의 집 한 채를 빌려 체험장을 조성했다. 농촌에 아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목사인 남편은 평소 결손 가정 아동을 돌보며 후원해왔다. 부부는 이 아이들에게 고구마 캐기와 말랭이, 삼색수제비, 양갱, 천연비누 만들기 체험거리를 제공했다. 철 따라 블루베리를 따거나 두부도 만들었다. 체험장은 지난 2012년 죽성리가 포항시로부터 `농촌건강장수마을`로 선정된 이후 더욱 붐볐다.지난 7년간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하은농장은 오직 방문객의 입소문으로 이름을 알렸다.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지역아동센터가 관심을 보였다. 마케팅전공 교수나 마을해설사도 농장 문을 두드렸다. 농장의 연간 방문객은 500여명에 달한다. 이 대표는 주변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청정지역에 사람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다들 `숨은 일화`를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농장을 다녀간 이들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몸과 마음의 치유다. 특히 아토피피부염을 앓는 아이들은 농장 체험활동을 통해 증상이 나아졌다. 마음에 상처를 품은 소외계층 아이들도 또래와 어울리며 아픔을 잠시 잊었다. 이 대표는 “아이들이 체험놀이에 한창 집중할 때 곁에서 동요를 불러준다. 휴대전화나 게임기를 손에 붙들고 있던 애들도 어느새 함께 어울려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연 속에 푹 빠진다”고 말했다.□블로그 누적 방문객 8만5천명지난해부터는 부쩍 어른들이 힐링을 위해 농장을 찾는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에 감탄하며 도시에서 보기 드문 산딸기, 뱀딸기같은 식물을 반기는 이들이 많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다”며 좋아하는 어르신도 있다. 농장은 인근 마을노인회 어른들을 초청해 무료체험도 지원한다.이 대표가 블로그에 일기처럼 글을 써 올렸던 농장소식은 이제 소통의 창이 됐다. 지난 7년간 블로그 누적방문자 수는 8만5천214명. 온라인 주문판매도 불티가 난다.그는 “고구마를 재배하고 가공 생산해 수익을 얻지만, 체험활동으로 얻는 보람이 더 크다. 농장에서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체험활동이 아이와 어른에게 소중한 추억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하은농장은 내부 시설을 보완해 다음달이면 완성된 면모를 갖춘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끝

2016-07-21

수중군자 에게선 `수박향`이 난다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80)은 은어를 두고 “존재의 시원(始原·사물이 시작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라고 했다. 작가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란 소설집을 평하며 한 말이다. 은어는 보기 드물게 한국문학사를 대표할만한 평론가와 중견작가로부터 `상찬`을 받은 물고기가 된 것이다.그러나, 은어를 높여 추켜세운 건 두 사람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깨끗한 물에서 기품 있게 헤엄치는 은어의 자태에 반해 `수중군자`(水中君子·물속에 머무는 군자) 혹은, `청류(淸流)귀공자`라 불렀다. 게다가 몸통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달큰한 수박의 향기까지 품고 있으니, 은어는 `물고기의 귀족`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다.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품격 높은 단맛을 낸다`는 의미로 `스위트 피시`(Sweet fish)라 부르며 많은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았고, 중국에선 `물고기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하여 `유향어`(有香魚)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영덕은 바로 이 은어가 헤엄치는 오십천(五十川)으로 유명하다. 특히, 오십천에 서식하는 은어는 가슴지느러미에 선명한 타원형의 황금색 무늬가 있어 예로부터 `황금은어`라 불렸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은어에 비해 그 형상이 보다 유려한 것.왕이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두말 할 나위 없이 가장 좋은 식재료와 진미는 왕이 사는 궁전에 바쳐졌다. `군자의 풍모를 갖춘` 영덕의 황금은어는 조선의 왕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때에 맞춰 은어를 진상하는 것이 영덕을 다스리던 관리들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였다.요즘처럼 냉장시설이 갖춰진 트럭이 없던 시절. 상하기 쉬운 물고기를 먼 한양까지 가져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황금은어를 제대로 진상하지 못해 벼슬에서 물러난 이들도 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까지 생겨났다.영덕에서 은어 전문요리점 화림산가든을 운영하는 박재훈(58) 대표는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은어박사`다. 오랜 경험을 통해 직사광선을 싫어하는 은어의 생태를 파악했고, 이를 감안하여 햇살의 각도까지 보면서 낚싯대를 내리는 수준. 올해로 20년째 은어를 직접 잡아 식당을 운영하는 박 대표에게 물었다.“오십천 황금은어가 다른 지역의 은어와 다른 점이 뭔가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향입니다. 영덕 은어에게선 잘 익은 수박향이 납니다. 사실 전라도 섬진강과 함경도 청진에도 은어는 삽니다. 하지만, 영덕 은어의 향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겁니다. 왜 옛날 임금들이 유독 영덕 은어를 즐겨 먹었겠습니까. 바로 향 때문이에요.” 말을 마친 박 대표가 방금 잡아온 은어를 눈앞에 내밀며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다. 은은한 수박향이 풍겨오는 듯도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영덕 은어에서는 다른 지방의 은어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가 날까? 영덕은 토질이 좋기 때문에 송이버섯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바로 그 영양분 가득한 흙이 비가 내리면 오십천으로 흘러든다. 여기에 오십천에 쏟아지는 풍부한 일조량과 적절한 수온이 합쳐져 은어가 좋아하는 `청태`를 잘 자라게 한다. 이 청태를 먹고 자라기에 영덕 은어는 독특한 향을 지내게 된다는 것.`황금은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영덕 은어의 지느러미 무늬 빛깔은 투명할 정도로 맑은 오십천의 깨끗한 수질에서 연유했다. 이처럼 “영덕 황금은어의 역사적 유래와 생태를 알게 되면 누구나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그렇다면 그가 추천하는 `최고의 은어요리`는 뭘까? “제가 간장게장에 착안·응용해 만든 은어간장절임입니다. 이걸로 명인 인증까지 받았죠.” 강산이 2번이나 바뀔 만큼 긴 시간을 은어와 함께 해온 사람이 가장 자신 있게 권하는 요리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맛과 더불어 은어의 영양가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은어는 내장을 빼지 않고 회로 먹는다. 튀기거나, 굽거나, 끓인 것도 내장째 먹기 때문에 버릴 게 없는 생선인 동시에 부족한 칼슘 섭취에 좋다.또한, 하천의 규조류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내장에 다량의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편도선 관련 질환에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우리가 어릴 땐 손자·손녀가 목이 아프다고 하면 할아버지가 은어를 말려 가루로 만든 걸 먹이곤 했다”고 부연했다.사실 한국의 산과 강이 적잖게 오염되면서 `청정수`에서만 살 수 있는 자연산 은어의 숫자도 차츰 줄어들고 있다. 이의 대안으로 영덕군은 황금은어 치어를 양식해 방류함으로써 황금은어가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은어에 관해서라면 영덕군청 직원들도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곧 오십천 일원에서 열릴 `영덕 황금은어 축제` 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는 군청 공무원 김경훈(42)씨. 그는 영덕을 찾는 관광객과 피서객이 불편함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개인 시간까지 희생하며 일에 몰두하고 있다.“맑고 깨끗한 하천과 바다가 있는 우리 군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지역에서 힘들게 식당을 꾸려가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은어축제가 영덕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흥겨운 축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김 씨의 얼굴엔 웃음과 땀방울이 동시에 번졌다.“축제현장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만들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진정한 힐링을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죠. 그래서, 축제 프로그램도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준비 중입니다. 물론, 맛있는 영덕 황금은어도 드실 공간을 마련할 것이고요”라는 게 이어진 김경훈 씨의 설명이다.옛날엔 임금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고, 예술가들의 글과 그림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며,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영양가 높은 요리로도 이름을 알린 은어. 영덕의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황금은어`다. 올 여름 휴가는 `영덕 황금은어`와 함께 엄마·아빠와 함께 반두잡이 체험온 가족 잊지못할 추억 만들어요아이들의 방학과 직장인의 하계휴가가 겹치는 7월 하순. 가족들이 고민에 빠질 시기다.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에서 뭘 하며 보내지?” 이런 질문을 아내와 아들·딸에게 던질 아버지가 있다면 그 답을 영덕에서 찾아보면 어떨까.영덕군은 “올해도 어김없이 황금은어와 함께 하는 신나는 여름축제가 영덕읍 오십천 둔치 일대에서 펼쳐집니다”라고 말했다.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진행될 `2016 영덕 황금은어 축제`가 바로 그것.송이버섯, 복숭아, 대게 등과 함께 `영덕의 4가지 진미`로도 불리는 황금은어. 이 은어를 테마로 한 축제는 지난 1999년 처음 시작됐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시끌벅적한 일회성 공연을 지양하고, 아버지세대에겐 옛 기억을 돌려주며 아이들에겐 흥겨운 즐길거리인 `반두(작대기와 그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도구)잡이 체험` 등을 도입해 영덕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해온 `황금은어 축제`.지난해에만 5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영덕을 찾았다. 올해도 축제 준비를 위해 영덕군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역상권 활성화를 돕고,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기 위해서다.올해는 예년에 비해 보다 더 풍성한 프로그램이 `황금은어 축제`를 채운다.◆황금은어 반두잡이 체험을 필두로 ◆어린이를 위한 물고기 맨손잡기 체험 ◆황토민물고기 맨손잡이 체험 ◆숯불 은어구이 체험 등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4대 체험행사`가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고, 축제현장 곳곳에 물놀이 기구를 설치해 더위를 떨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오토캠핑장과 야영장도 마련해 요즘 아이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야외 숙박`의 매력도 느끼게 해줄 계획이다. 수상 자전거 체험과 수중생태 체험도 주목할 만하다.피서객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확충하고, 영덕이 내세울 수 있는 먹을거리를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군청이 신경을 쏟고 있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관광홍보관과 지역특산물 판매장도 들어설 예정.여기에 낭만적인 강변에서의 영화 상영과 신명나는 난타 공연, 통기타와 오카리나 연주에 `황금은어 노래자랑`까지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이 펼쳐진다니 이번 여름휴가를 `2016 영덕 황금은어 축제`와 함께 할 가족들은 후회할 일이 없을 듯하다.관련문의: 054)732-4411(황금은어축제추진위원회)/이동구·홍성식기자

2016-07-20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 활기·열정 가득한 구미 구현

과거 구미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지난 10년 동안 구미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뤄왔다. 공단 확장과 리모델링을 통해 경제영토를 넓혔고, 산업다각화 추진으로 전자의료기기, 자동차부품, 탄소섬유 등 미래 먹거리를 확보했다. 산업도시의 한계점으로 지적되어 오던 환경과 문화, 교육과 복지 등 정주여건 개선에도 힘쓰며 도시의 격을 한 단계 높였다. `세계속의 명품도시`를 향해 부단히 달려온 구미시정 10년을 맞아, 객관적 지표를 통해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했던 구미시의 진정한 면모를 살펴본다. 연간 출생 4천800여명, 도내 1위국가산단 5개 보유 내륙 최대 산단일천만그루 나무심기 10년간 전개`탄소제로도시`로 이미지 구축낙동강 수상레포츠 체험센터로수변도시·관광도시로 재도약□ 책 읽는 젊은 도시로구미는 30세 미만 인구비율이 전국 시·군 최고로 한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젊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지난해 연간 출생아 수가 4천800여명으로 도내 1위를 기록했다.경북 전체 출생아 수가 2만2천여명인 점을 고려하면 도내 신생아 10명 중 2명은 구미에서 태어난 셈이 된다. 인구 증가는 현대 도시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이자 도시의 지속성장 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 요인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구미시는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도시다.하지만, 구미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항상 책과 가까이 하는 도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국 40만 이상 지자체 중 구미시는 인구대비 열람석수 1위, 장서보유 2위, 공공도서관 6개 등 전국 최고의 독서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특히, 구미시는 2007년부터 범시민 독서운동인 `한책 하나구미 운동`을 추진해 지역을 대표하는 독서문화운동으로 이어오고 있다. □ 내륙 최대 산업단지와 안전도시 건설구미시는 전국 최초로 국가산단 5개를 보유한 1천100만평 규모의 내륙 최대 산업단지다. 현재 공사가 한창인 `5단지`와 `확장단지`조성이 마무리되면 신소재, 태양광, 웨어러블 디바이스, IT의료융합, 3D융합 등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 온 다양한 미래 먹거리 산업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최첨단 친환경 산업공간으로 탄생하게 된다.특히, 구미국가5단지는 `융복합 탄소성형 클러스터`조성을 통해 국내 탄소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역으로 육성될 계획이다.또 2013년 재난·안전사고 전담조직인 안전재난과와 환경안전과를 신설하고, 전국 최초로 구미 화학재난 합동방재센터를 개소해 대규모 화학사고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협업체계를 마련했다.구미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도내 최초로 2017년을 목표로 `WHO 국제안전도시`공인을 준비하고 있다. 또 2014년 전국 최초로 조성한 여성·아동 안심귀가거리, 도내 최초로 시행한 택시안심귀가 서비스, 여성무인택배 서비스, CCTV 대폭 확충 등 도시 전반에 대한 안전체계를 구축해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안전서비스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 레저스포츠의 활성화`산업도시`, `회색도시`라는 별칭이 항상 따라다니던 구미가 `녹색도시`, `탄소제로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2010년 4월 전국 최초로 `탄소제로도시`를 선언한 구미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과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또 대경권 유일의 기후변화 체험·교육시설인 구미시 탄소제로교육관을 개관하고, 탄소제로도시 테마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현재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탄소제로도시로 거듭나고 있다.특히, 2014년 3월 세계 최초로 무선충전 전기버스의 대중교통 운행시대를 열었다.구미시는 2013년 무선충전 전기버스 시범사업 도시로 선정돼 1년간의 시범운행을 통해 2014년 세계 최초로 시내버스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올해도 전기버스 2대를 추가로 도입, 총 4대의 전기버스를 운영하고 있다.구미시는 2006년 남유진 구미시장 취임과 함께 전국 기초지자체 최초로 `일천만그루 나무심기 운동`을 10년간 전개해 `녹색도시 구미`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시민들이 걸어서 5분 안에 쉼터나 도심 숲 공원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남 시장의 꿈은 취임 10년 후 현실이 되었다. 이 사업으로 구미의 3대 도심 숲과 명품 가로수 숲길이 탄생했다.구미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미가 보유한 자연경관 등을 이용해 내륙 최고의 레저스포츠 도시로 발돋움 하고 있다.2013년 완성된 구미산악레포츠 공원은 전국 최초로 3대 산악레포츠(인공암벽등반·산악자전거·패러글라이딩)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또 지난 6월 개장한 낙동강 수상레포츠 체험센터를 필두로 레저스포츠 시설이 대거 구축된다.`낙동강 7경 6락 리버사이드 프로젝트`의 세부 시설들이 하나둘 들어서면, 구미는 낙동강 중심의 명품 수변도시로서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우뚝`지난 10년 동안 구미시는 시정 전 분야에 걸쳐 주요기관으로부터 400여개의 상을 받았다.지역복지 정책 평가 10년 연속 우수지자체 선정, `2016 대한민국 창조경제 대상` 경영혁신부문 기관 대상 수상 등 시정 10년 결실이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특히, 지난해 말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한국지방자치경쟁력평가`에서 시 부문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전국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도시로 평가받았다. □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구미시는 10년의 시정을 되돌아 보고, 이를 밑거름으로 현장에서 시민들과 소통하고, 시민들을 위한 시정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남유진 구미시장은 지난 1일 민선6기 시정 3년차가 시작하는 날 공식행사 없이 아침 일찍부터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일정을 펼쳤다.이른 새벽 환경미화원과 함께 `폐기물 수거`를 시작으로 구미역 광장에서 시민, 새마을단체 회원 등 100여명과 `7월 새마을 대청소`를 실시했다.또, 매주 금요일 금오산 대주차창에서 열리는 `농특산물 금요직거래장터`를 방문해 생산자·소비자 단체 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애로사항을 청취했다.7월 한달 동안 농업인과 함께 하는 `농촌현장 체험 일손돕기`, 관내 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발로 뛰는 생생 기업 탐방`, 어르신의 전당 및 삼성원 방문 등 각계각층의 시민과 근로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민생 행보를 이어간다는 것도 남유진 시장의 계획이다.이와 관련 남 시장은 “지난 10년간 초심을 가슴에 품고 달려왔다.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된다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세계 속의 명품도시 구미의 완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6-07-19

13만 군민 에너지 결집해 호국·평화의 성지 칠곡 건설

민선 5기를 거쳐 민선 6기 군정을 소신있게 이끌면서 `행정의 달인``작지만 강한 단체장`이란 수식어가 붙은 백선기 칠곡군수.백 군수는 `군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새로운 칠곡 100년 실현`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13만 군민의 역량과 힘을 결집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이를 통해 많은 일자리는 물론,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청년이 희망을 갖는,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정당하게 대접받는 도시를 만들고자 칠곡의 백년대계(百年大計) 설계를 실행해 나가고 있다. 민선 6기 출범 2년을 지나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군민과의 소중한 약속이자 행정신뢰의 기본인 공약사항(5개 분야 61개)에 대한 추진상황 점검결과, 17개(27.9%) 사업은 완료됐고, 37개(60.6%) 사업은 진행 중이다. 7개(11.5%) 대형사업은 곧 착수할 계획으로 백 군수가 군민과의 약속을 책임 있게 지키고 있다는 평가다.5년간 583억 부채 상환 실현소통·공감의 신뢰행정 구현도내 군부 첫 CCTV센터 개소농촌여성행복센터 전국 첫 개관`세계평화 문화대축전` 개최 등시 승격위한 본격 행보 추진□ 고금리 지방채 상환 성실히 이행백 군수가 군민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킨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2011년 10월 민선 5기 취임 당시 약속한 `부채 Zero화` 실현이다.그동안 백 군수는 군수 관사 매각과 경상비 절감 등 행정개선과 자구노력을 실천해 취임 당시 715억원이던 지방채 중 583억 원을 지난 5년간 갚았다. 지방채 상환 중 부족한 재원은 국·도비 확보로 충당했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칠곡군은 전국 군 지역 최초로 `칠곡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설립해 군민에게 최상의 일자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농기계특화단지와 왜관3 일반산업단지도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또 러시아와 북미 무역사절단 파견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왜관·약목·동명시장의 현대화사업(114억)으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여민동락(與民同) 군정 추진`오지마을 해피데이트``이장과의 대화의 날 운영``찾아가는 연두순방``소통 콘서트` 등을 통해 농업인과 다문화가정, 상공인 등 다양한 계층과의 간담회를 통해 군민과 진솔하고 격의 없는 대화 노력에 힘썼다.특히, 할매할배의 날 운영과 19개 인문학마을 조성 및 인문학 축제, 29개의 학습동아리 양성 등으로 나눔·배려가 있는 공감행정을 비롯해 `군민 대통합 위원회`와 `정책평가단` 운영으로 신뢰행정을 구현했다. □ `칠곡호국평화기념관` 개관`호국평화기념관`에는 개관 8개월 만에 약 12만명의 유료 관람객이 다녀갔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만 2천300여명이 방문하는 등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전쟁 기념관으로의 존재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칠곡 건설경북 내 군부로는 최초로 CCTV 통합관제센터를 개소해 1천269대의 CCTV를 경찰과 함께 빈틈없이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안심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방범용 CCTV 273대를 모든 마을에 설치해 강ㆍ절도 범죄 발생을 40% 감소시켜 전국 군 단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 3위에 선정됐다. □ 13만 군민의 행복지수 제고지역 노인의 전당 증축으로 편안한 휴식·문화공간 확보, 매년 600여개의 노인 일자리 제공, 북삼과 지천의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장난감 도서관 설치, 경북도 군부 최초로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받는 등 문턱 없는 복지 칠곡을 실현했다.또 호이장학재단 설립 5년만에 장학기금 72억원을 조성하고 지금까지 지역학생 512명에게 5억 4천6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매년 지역 대학생 180명에게 경북대 등 6개 대학의 향토생활관을 지원하고 있다. □ 농업을 미래성장 산업으로농촌여성행복센터를 전국 최초로 개관해 여성농업인의 행복지수를 높였고, 농업 보조금이 특정인에게 고액·중복·편중 지원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경북도내 처음 개관한 `농업6차 산업관`도 침체에 빠진 칠곡 농업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 머무르고 싶은 도시 칠곡 건설덕산체육공원 개장과 노후한 석적읍 청사와 약목·동명면 청사를 새롭게 단장해 도서관과 평생교육장 등 문화가 있는 주민행복공간으로 탈바꿈시켰으며, `착한일터` 17곳, `착한가게` 188개로 도내에서 나눔행진 1위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자치단체 전국 최초로 재능기부단체인 `어름사니`를 결성해 현재 131명의 회원들이 이웃을 위해 끼와 지식을 나누고 있다. □ 시 승격 추진 및 미래 먹거리산업 육성백 군수는 지난해, 부군수 직급을 상향 조정하고 두 개의 국을 설치해 사실상 시에 해당하는 행정체제를 갖추었고, 이달 `시 승격 기획단`을 신설했다. 본격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해서 희망의 미래를 대비한다는 복안이다.이와 함께 후손에게 떳떳하게 물려줄 칠곡을 생각하면서 이제껏 추진해온 사업들은 하나씩 마무리하고 새로운 미래먹거리 사업 발굴과 신성장동력 확보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문화ㆍ관광진흥 주력지난해 수립한 △낙동강 호국평화벨트 △관광기반 활성화 △산업단지 조성 △주거지역 확충 등 칠곡발전 4대 전략과제를 구체화하고, 시 승격에 대비한 도시기반 인프라 구축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특히 호국브랜드화 사업으로 추진하는 호국평화공원과 한·미우정의 공원, 관호산성공원, 역사너울길 조성사업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고, 국내 유일 호국 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을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정착시켜 칠곡을 호국과 평화의 성지로 가꾸어 나갈 계획이다.백선기 군수는 “동심동덕(同心同德)의 마음으로 13만 군민의 역량과 에너지를 결집해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겠다”면서 “잘사는 군민, 새로운 칠곡 건설을 위해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칠곡/윤광석기자 yoon77@kbmaeil.com

2016-07-18

시간당 20~30센트 `철새노동자` 든든한 독립자금줄로

지난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교과서` 논쟁은 보수와 진보로 갈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다시 한번 확인나는 계기가 됐다. 그 와중에서 역사학계에는 1980년대 중반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우리 독립운동사의 초점이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진보 계열과 무장투쟁사에 집중돼 왔다는 자성론이 일기도 했다. 동시에 미주지역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소외돼 온 해외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와 기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본지는 5회에 걸쳐 지난 1903년 1월 하와이 행으로 시작된 미주 한인 이민 1세대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이는 한국 독립운동사와 이민사를 함께 살피는 동시에 총인구의 5.5% 시대를 맞는 다문화의 한국사회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농도`(農道)와 `항일`(抗日)을 내세우는 경북에는 역사의 또 다른 뿌리 찾기이기도 하다. /편집자주103명 태운 공식 첫 이민선 갤릭호1903년 1월13일 호놀룰루에 입항2년동안 美 이주민 7천500명 달해도시선 철도·탄광 등서 중노동캘리포니아선 농장서 주로 일해영어 서툴고 정착 제대로 못한상당수 노동자들 독신으로 생 마감매월 수입 10% 독립운동에 보태와대구·경북 중 경주 이민자 수 `최다`1928년 결성 `영남부인회` 활동하와이 이민사회 경북위상 가늠케해□ 미국 본토 이주의 계기공식적인 첫 이민선으로 기록된 갤릭호가 최초의 미국 `포와`(조선인들의 당시 하와이 지칭) 농업 이민자 103명을 태우고 호놀룰루에 입항한 날은 1903년 1월13일이다. 이들 가운데 검역소 신체검사에서 합격돼 사탕수수 농장에 배정된 인원은 86명, 나머지는 다시 귀국하게 됐다.`구한말 한인 하와이 이민`(인하대 출판부)와 `경북독립운동사`(안동대 안동문화연구소) 등 문헌에 따르면 하와이 이주는 조정과 미국 알렌 공사가 개입해 시작됐다가 일제의 압력으로 1905년 8월 막을 내리기 까지 모두 7천500여명을 내보냈다.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형편은 일본이 개입한 사기 브로커들에게 속아 1905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애니켄농장으로 팔려간 1천55명의 동포에 비해서는 다소 나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배삯을 선금으로 대신 지불한 농장주들로부터 착취나 다름 없는 노동과 주거 여건 아래 고통에 시달렸다.인천광역시는 국내 공식 이민의 첫 출발지답게 지난 2008년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에는 지난 1905년 5월28일 남편과 함께 몽골리아호를 타고 불결한 선실과 멀미의 고통 끝에 호놀룰루항에 입항해 다시 마우이의 사탕수수농장에서 힘겹게 살아간 함하나 할머니의 증언이 기록돼 있다. `배 속에서 … 둘이 열흘을 굶고 있으니 기운이 하나도 없어. 대한땅에서 가져온 삼이라는 약을 가져온 거 … 칼로 갈아 가지고 물 떠다가 그거 한 갑씩 물 먹고 삼가루 조금 타가지고 먹기를 한 주일반 열흘 동안 먹고. 호놀룰루 오니깐 머리가 흔들흔들.…`이들은 오늘날 250만명으로 불어난 미국 한인사회의 이민 1세대 선조이다. 하지만 오늘의 역사는 당시 7천500여명의 공식 이민자들이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어떤 길을 걸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여러 근거를 종합하면 1904~1905년부터 `상항`(샌프란시스코)을 통해 본토에 입국한 하와이 이민 1세대는 2천11명에 이른다. 그리고 절반 가량이 하와이에 정착했으니 조선으로 귀국한 인원은 1천500~2천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1905년 11월 을사늑약의 즈음에 망국민의 신세는 그들이 또 다시 이민의 길에 나서도록 운명의 등을 떠밀었다.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입국한 조선인들은 농업에 종사한 직업적 한계로 인해 도시에서는 주로 점원이나 잡역부로 밖에 취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철도 건설현장이나 탄광의 중노동을 택했다. 나머지는 샌프란시스코 아래의 농업도시인 프레즈노 일대 중부 캘리포니아(중가주)로 유입돼 농장의 임노동자로 고용됐다.한때 미 중가주 한인 이민사의 중심, 리들리와 다뉴바는 이제 역사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져 있지만 북가주의 중심인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로 대표되는 남가주의 사이에 위치해 당당히 한획을 긋게 된다. □ 중가주의 잊혀진 초기 한인이민사지난해 한국에는 지난 1920년 전 세계에서 최초로 열린 3·1운동기념식을 담은 해외 기록영상이 소개돼 반향을 울렸다. 1919년의 3·1운동이 일제에 의해 짓밟힌 뒤 해외의 동포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이다. 당시 역사의 무대는 바로 다뉴바라는 생소한 미국의 소도시였다. 영상 속 한인들은 주로 양복 정장을 한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한복의 대용인 듯 간호사 차림의 흰옷을 입고 당당한 모습이었으며 말과 자동차에 탄 한인들은 상당한 규모의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당시 리들리와 인근의 다뉴바에는 캘리포니아 한인의 3분의 1이 거주할 만큼 세력이 컸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당 20~30센트의 임금을 받으며 지금의 멕시칸들처럼 과일과 채소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월생활비 10~15달러의 신세였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한인 미국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3년 펴낸 `미주지역 한인이민사`에 따르면 이들의 일은 작업조건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철새 노동자`로서 영어에도 서툴러 상당수가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1920년대 이후 미주 한인사회는 `독립의연금, 공채금, 혈성금, 국민부담금, 독립금` 등의 이름으로 최소 1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해 상해임정 등 아시아와 구미 각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들은 정든 고국산천과 부모형제를 떠나 이역만리에서 망국민 이민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매월 수입의 10% 가량을 주저 없이 바쳤다. 앙숙이었던 이승만과 안창호가 경쟁이라도 하듯 `조국독립`의 명목 아래 이들의 호주머니를 찾아다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 이민자 수, 대구·경북이 세번째 `구한말 한인 하와이 이민` 등 각종 근거에 따르면 하와이 이민자 7천500여명 중 대구경북 출신자는 세번째 규모이다. 총 7천519명으로 산정한 자료에 따르면 경상도는 676명으로 경기도 906명, 평안도 696명의 뒤를 이었다.이 가운데 `한인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미국 이민국의 기록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03년 1월부터 1904년 6월까지 처음 1년 반을 기준으로 하와이에 도착한 2천647명의 이전 거주지는 경기도 932명(35.2%), 경상남도 376명(14.2%), 경상북도 193명(7.3%)로 영남이 한때 두번째를 차지했음을 알 수가 있다.기초단체를 기준으로 보면 1904년 1~6월까지 대구를 포함한 경북에서는 경주가 2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20명, 청도 11명, 예천 9명, 영덕 7명, 성주 6명의 순이었다. 경주는 하와이 이민 초기인 1903년 1~6월까지는 다른 경북 출신과 마찬가지로 전혀 입국 기록이 없었으나 이후 7~12월까지 9명이 첫 등장했으며 대구 6명, 상주·예천·의성·청도가 3명씩 기록됐다.따라서 당시 하와이 이민사회에서 경북의 위상은 상당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1928년 호놀룰루에서 결성된 영남부인회의 활동은 특히 눈길을 끈다. 고국에서 상대의 사진 한장으로 선을 본 경상도 출신 `사진신부`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경남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이극로의 하와이 방문 연설회가 계기가 됐다. 영남 출신 여성들의 열렬한 환영이 못마땅했던 이승만이 “경상도 놈이 박사면 아는 것이 얼마나 되며 국어는 얼마나 안다고 강연하겠다는 것인가”라며 폄하했다는 소문이 나돌게 돼 단체의 결성으로 이어졌다고 기록들은 전한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7-18

도청신도시 조성 통한 시너지 극대화 이끌어 예천 경제활성화 최선

총 8천200여 세대 아파트 신축 예정올 상반기까지 688세대 1천287명 입주1965년 이후 처음으로 인구 증가추세맛고을 문화거리·곤충생태원 등문화관광 인프라 확충 관광지 개발 박차□ 경북 신청사 개청으로 신도청시대경북도청이 이전한 2016년은 예천군에 있어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08년 6월 8일 경북 도청 이전이 확정되고, 지난 2월 중순 이전을 완료해 3월 10일 신청사 개청으로 신도청시대가 개막됐다.도청신도시 1단계에는 총 8천200여 세대의 공동주택이 신축될 예정으로 임대주택을 제외한 7천100여 세대의 아파트 중 1천287세대가 신축을 완료하였고, 5천800여 세대가 건축 중에 있다.지난해 말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해 상반기까지 3개 단지 1천287세대 중 688세대 1천720명이 입주해 1965년 이후 줄기만 하던 인구가 증가하였다.예천읍 도심을 관통하는 한천을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한천 고향의 강 정비 사업`은 현재 73%의 공정으로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또한, 예천읍 시가지 가운데 위치한 맛고을길에 예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먹거리를 개발해 신도시 주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560m의 구간에 62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음식특화거리인 맛고을 문화의거리 조성을 완료했다.예천군 농산물의 규모화, 규격화를 위한 농산물산지유통센터가 지난해 개소해 공선출하체계를 확립했다. 이로써 농산물의 대외 경쟁력을 제고했다. 풍양면에 남부 농기계임대사업소를 추가로 설치해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으며, 신도시 근교에 신선 채소 등 전문생산단지를 확대·조성하였다.예천군에서는 그동안 상수도 취정수장 7개소가 여러 지역에 산재해 운영되고 있어 지역개발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었으나, 이것들을 2개소로 통폐합해 운영하는 내용의 수도정비기본계획이 변경돼 지역 개발도 탄력을 받게되었다.변경계획은 총 1천667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1단계로 도청 신도시에 공급하고 남는 상수도 물을 개포, 지보, 용궁, 호명 배수지에 공급하고, 2단계는 예천취수장을 확장해 용문, 감천으로 수돗물을 공급한다.이외에도 군민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 경상북도 농정대상평가에서 5년 연속 대상 및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지방재정조기집행평가 전국 최우수, 제안제도운영평가 최우수, 고객감동 도시브랜드지수평가 전국 1위 등 44여개 분야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신도시와 연계한 주변지역 개발예천읍과 신도시를 연결하는 8.5㎞ 직통도로 개설사업은 현재 70%의 공정으로 올해 10월 말 준공을 목표로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으며, 직통도로 주변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용역을 완료해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신도시 조성에 따른 시너지를 선점할 계획이다. 또한, 예천읍 철도 이설에 따른 주변 2만㎡의 부지에 중단기적으로 먹거리타운 등 특화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예천군에서는 35년만에 보문면 신월리 일원에 제2산업단지를 259억 원의 사업비로 25필지 18만6천㎡에 조성해 현재 10개사 13필지가 분양되었으며, 우수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또한, 도청신도시 배후지역으로서 투자여건 기반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식음료로 특화한 제3산업단지를 제2산업단지 인근에 286억 원을 투자해 28만4천㎡ 규모로 2019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신도시 인근에 일반산업단지도 조성해 신도시의 조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계획이다. □ 문화관광 인프라 확충예천군은 신도청시대를 맞아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을 방문하는 유동 인구도 증가하여 휴양과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관광인프라 확충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낙동강과 백두대간을 축으로 하는 관광지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지난해 10월에 준공된 국립산림치유원에 산림치유문화센터를 추가로 조성해 곤충생태원, 사과 테마파크와 연계한 체험관광지를 조성할 계획이다.또한 강 문화와 생태자원을 테마로 하는 삼강문화단지 조성사업은 2019년까지 21만㎡의 부지에 942억 원을 투자해 강문화전시관, 보부상체험촌, 전통가옥체험장, 봇짐야영장, 생태공원 등을 조성한다.이를 통해 회룡포와 연계한 생태·문화체험의 랜드마크로 조성할 예정이다. □ 신도시와 연계한 농업 유통체계 구축예천군은 5년 연속 경상북도 농정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전체 예산의 17%가 넘는 640여억 원을 농업분야에 투자해 농가 소득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신도청시대에 대비한 로컬푸드 체계를 갖추고, 근교농업단지를 조성하며, 대규모 사과 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사과테마파크 조성도 연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6차 산업의 육성, 예천참우 명품화 사업, 산림자원 보호 육성 등 지역산업의 근간인 농·축산·임업의 기반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 2016 예천세계곤충엑스포 개최예천군에서는 올 7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17일간 `곤충의 꿈 이야기`라는 주제로 예천세계곤충엑스포를 개최한다. 예천공설운동장에 위치한 주행사장은 곤충주제관, 곤충놀이관, 곤충산업관, 파브르의 정원, 벅스워터파크, 농특산물 판매장으로 조성한다.곤충주제관에서는 곤충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종합적으로 선보이고, 특히, 미래 식량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곤충을 활용한 음식, 국내 및 세계곤충식품 조리대회, 곤충식품 체험존, 곤충식품 쿠킹 콘서트 등 곤충식품에 관한 모든 것을 만나볼 예정이다.▲ 이현준 예천군수가 민선6기 취임 2주년을 맞아 새 각오를 다짐하고 있다.곤충놀이관에는 아이들이 교육과 놀이를 함께 즐기고 뜨거운 열기를 식히며, 곤충 관련 학습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곤충산업관에서는 곤충사육 신기술 및 곤충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파브르의 정원`은 곤충이 서식하는 자연환경을 그대로 조성해 자연 속 곤충의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한다.이현준 예천군수는 민선6기 취임 2주년을 맞아 “신도청시대의 개막, 50년 동안 줄기만 하던 인구의 증가, 맛고을 문화의 거리 조성, 농산물 산지 유통센터 건립 등 군정 전반에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하며,“남은 2년도 군 청사 신축 마무리, 스포츠 마케팅 전개, 신도시의 조기 활성화, 일자리 창출, 예천 세계곤충엑스포의 성공 개최, 세계 활연맹 창설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예천/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16-07-15

650년 역사 `문화·교육 유기적 결합한 창조적 공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인류가 역사와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지식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책 이외의 어떤 것들에서 세상을 배울 수 있을까? 책이 인간이 만든 최고의 `보물`이라면, 도서관은 `보물창고`다. 본지는 프랑스 파리와 서울시 관악구의 선진적인 도서관문화를 소개함으로써 향후 포항지역 도서관이 그려갈 청사진에 미력한 도움이나마 주고자 한다. -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1368년 세워진 세계 첫 민간도서관 펼쳐진 네권의 책모양 형상화한 건물쇠·나무·유리·흙의 조화, 동선도 편안1692년 개방… 서적 3천500만권 보유장 폴 사르트르와 앙드레 지드, 폴 엘뤼아르와 알베르 카뮈의 나라.대통령이 소설가인 문화부장관(앙드레 말로)을 예술가로서 존경하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급진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의 대변인을 맡는 나라. 다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독일과 더불어 유럽 현대철학의 생성과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나라.재론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는 지구 위에서 손꼽히는 `문화강국`이다. 지난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의 가혹한 식민통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행태에 대한 비난이다. 그 나라가 이룬 문화적 성취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는 게 아닐까.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사회의 중심에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que Nationale de France)이 있다. 펼쳐진 네 권의 책 모양을 형상화한 거대한 금빛 건물이 보는 이를 부드럽게 압도한다. 파리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1368년 세워진 세계 최초의 민간도서관이다. 그 역사가 자그마치 648년에 이른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1692년.여기엔 병인양요 때 한국에서 반출된 `외규장각 도서`도 보관돼 있었다. 그것들이 `대여`라는 형식으로 사실상 반환된 것은 2011년이다. 현대에 들어서며 프랑스는 `접근성`을 문화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자”는 매력적인 구호는 파리 시민들을 도서관으로 이끌었다.문화와 예술을 누구보다 아낀 유럽 정계의 거물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대통령은 1988년 “국립도서관을 세계 최대 규모로 리모델링 하겠다”고 발표한다. 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닌, 문화와 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미테랑이 마음속에 그린 그림을 현실로 옮겨 지금의 국립도서관 모습으로 축조한 사람은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이런 이유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으로도 불린다.파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접 찾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쇠와 나무, 유리와 흙이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서고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동선은 자연스러웠고, 열람실 창밖으론 푸른 나무가 열을 맞춰 서 있어 눈이 편안했다.보유한 책은 3천500만 권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분량. 도서관 바깥엔 휴식공간도 잘 조성돼 있어, 도시락을 먹거나 음료수를 나눠 마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그러나, 정작 놀라운 건 도서관의 외형이나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의 거침없는 비판의식과 딱 부러지는 의견개진은 더 놀라웠다.바칼로레아(Baccalaureate·프랑스의 대학입시 자격시험)를 준비하고 있다는 17세 마리안느와 18세 알렉산드라. 평소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 않고서는 논술형으로 진행되는 바칼로레아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다. 시험에선 이런 유형의 문제가 출제된다고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일체의 의미를 박탈해가는 것인가?”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예술은 현실에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40대 중반인 기자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어려운 논제들이다.이런 교육환경에서 자란 탓일까. 비록 10대지만 둘의 독서량이 적지 않다는 것을 주고받은 몇 마디 말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프랑스 도서관은 규모보다는 그 안에 채워질 콘텐츠에 관해 더 고민해야 돼요”라는 마리안느의 똑 부러지는 어법과 “사회에선 모두가 공평하게 돈을 나눠가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곤궁한 학생들에겐 1년에 30유로(약 3만9천원)인 전문도서 열람료를 면제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라는 알렉산드라의 주장에는 논리적 빈틈이 없었고, 철 덜 든 소녀의 칭얼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독서의 힘` 외에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무는 붉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 출구에서 스위스와 프랑스를 오가며 일한다는 해운회사 직원 클로드(49)와 그의 친구 마커스(52)를 만났다. 휴가 중이라는 둘에게 “편히 쉬거나 여행을 가지 왜 도서관에 온 것인가”라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하다.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단 새로 나온 소설을 찾아보는 게 휴가를 즐기는 보다 좋은 방법 아닌가?”라는 반문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나이와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프랑스 사람들은 오늘도 도서관을 향한다. 불어 닥친 경제적 불황에 휘청거리고 있지만, 유럽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배후에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책`이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글/홍성식 기자·사진/이준성 기자

2016-07-15

담장 허물고 자투리 공간에도 `녹색 숨결`

`일천만그루나무심기` 큰그림 실행 위해시청 옹벽부터 허물어 녹지공간 확보학교들도 잇단 동참, 체험숲으로 일궈7개 거리에 특색있는 가로수길 조성인동도시숲 대왕참나무 숲길 등 3곳`한국의 아름다운 가로수 62선` 선정□ 일천만그루나무심기 운동 추진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개년 계획으로 추진된 `일천만그루나루심기운동`은 시민의 손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 시켜나가는 정주여건 개선사업이다.2006년 남유진 구미시장이 이 사업 추진을 공표했을 당시 일천만 그루라는 양적인 목표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대부분 반대하거나 외면했었다.하지만 남 시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묵묵히 사업을 세부적으로 나눠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갔다.우선 관련된 사업들을 선정하고, 지역별 공원·녹지, 산림(공공부문)과 개인, 공동주택(민간부문) 등 세부적인 10개년 계획을 마련해 발표했다. 공공부분에서 공원·녹지공간을 확대조성하고, 생활주변의 녹지를 쾌적한 녹색쉼터로 바꿨다. 특성 있는 가로수 거리를 조성하고, 도심의 부족한 녹지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담장허물기사업, 벽면녹화 사업, 수벽조성사업, 장미식재사업, 학교숲조성사업, 연도변의 자투리공간 조성사업 등을 추진했다. 민간부문에서는 기업체의 수목 식재, 아파트 조경의 수목식재와 질적 수준 향상, 가정의 수목 식재 등을 유도했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2007년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선포식 행사를 갖고, 본격적인 나무심기 운동에 돌입했다. □ 부족한 녹지공간을 마련하라구미시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도심에 녹지공간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나무 일천만 그루를 심을 수 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도심에 부족한 녹지공간을 마련해야 했다.구미시는 이를 위해 담장을 허물기로 했다. 담장허물기로 인해 생긴 공간에 쉼터와 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구미시는 2007년 1월 설계심의를 거쳐 구미시청 옹벽담장(높이 2.2m·길이 240m)과 수위실을 허물고, 이 공간에 벽천분수, 소형연못, 파고라 등 다양한 조경시설을 갖춘 해뜨락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또 인근 구미교육지청, 구미우체국과도 수차례 회의를 거쳐 전면가로를 통합해 담장을 허물었다. 특히, 구미시청 담장허물기 사업으로 인한 시청공원화는 2007년 11월 TBC와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동주최한 제9회 대구·경북환경 문화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이는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1년 2개월만에 거둔 성과로 구미가 회색도시 이미지를 벗고 녹색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이렇듯 관공서의 담장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공원과 쉼터가 생기자 학교들도 담장허물기사업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도심속 학교들은 담장을 허물고 특색있는 수목을 각종 시설물과 조화있게 식재해 열린 학교숲 체험공간으로 일궈나갔다. 이들 중 금오공고의 담장허물기 사업은 부지면적 1천850㎡에 1억7천여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병풍식(십장생도)광장, 산책로(금오공고 운동장 연결), 조형물(Be in Harmony!), 쉼터(벤치)와 소나무, 배롱나무, 청단풍 등 5천400여본의 수목을 식재했다. 특히, 전국 최초로 조성된 높이 2.4m의 12폭 십장생도 병풍식 광장은 구미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매김 했다. 또 한전과 경찰서 등 유관기관의 협조로 기존 삼거리에 무질서하게 배열된 신호기, 배전반, 가로등, 고압전신주 등을 이전해 쾌적한 거리로 만들었다. □ 걸어서 5분 거리에 쉼터와 공원을남유진 구미시장은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을 시작하면서 “시민들이 걸어서 5분안에 공원이나 쉼터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남 시장은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버려진 생활주변의 시설녹지와 자투리 공간 등을 활용했다. 녹지조성이 되지 않아 인근 주민들이 농사를 짓거나 쓰레기로 뒤덮힌 시설녹지를 정비해 나무와 꽃을 심고 간이체육시설과 산책로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임오녹지조성, 사곡철로변 녹지조성, 광평녹지조성, 원호녹지조성, 송정녹지조성, 상공회의소 주변 녹지조성, 구미1대학 앞 녹지조성 등 곳곳이 푸른 녹색으로 변모하고 시민들의 쾌적한 쉼터로 변했다. 또 연도변 자투리 공간에도 나무를 심고 꽃을 심어 거리의 환경을 개선했다.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차로 구미를 찾은 사람들에게 첫 모습으로 녹색도시 구미를 보여주기 위한 작업도 진행됐다. 남 시장은 2009년 1월 산림청과 한국철도시설공단에게 협조요청을 하고, 공모 사업에서 철도 녹지 무상사용 및 지자체 도시숲 조성사업(2009~2011·25억원) 선정을 이끌어 냈다.또 한국철도공사 산하 여러 기관(충청지역본부, 대구본부, 구미역, 김천역, 왜관역)을 수차례 찾아 철로변 경관개선에 협조를 얻어 철로변 사면에는 목련, 산딸나무 등 16종 1천417본과 영산홍 등 7종 3만5천164본을 식재해 완충녹지의 기능을 높였다. 철도변 경계에는 덩굴장미 1천500주 등을 식재하고 녹지내부에는 폭 2m의 황토포장을 설치해 시민들의 건강증진을 도모했다.□ 구미 3대 도시숲 탄생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의 성과로 구미 3대 도시숲이 탄생했다. 그 중 첫번째 도시숲이 `인동도시숲`이다. 구미시의 동쪽관문인 인동지역의 도로변 시설녹지 3.1㎞ 구간이 불법주차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던 것을 2007년부터 3년간에 녹색자금 14억원을 포함, 총 35억원을 투자해 폭 15m의 쾌적한 `인동도시숲`으로 조성했다.또 경부고속도로변 원평시설녹지 2km 구간을 2008년까지 27억원을 투자해 나무와 억새를 심고 개울을 만들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심 속 숲으로 만들었다. 현재 이곳은 시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거나, 자전거길로 애용하고 있다.시내중심을 관통하는 철로변도시숲은 경부선철로 2.1㎞ 구간을 정비한 것으로, 이 중 박정희로 철로변 도시숲길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어린 시절 상모동에서 구미면까지 20리(약 8km)길을 통학하던 거리다. 박정희 대통령 자서록 `나의 소년시절 중에서`를 모티브로 해 조형물 `학교 가는 길`, `책을 좋아한 소년`을 설치하고 주변에 녹음수(단풍·느티나무)를 식재해 스토리텔링 거리로 만들었다. □ 테마가 있는 가로수 특화거리 구미시는 64.85㎞ 거리에 4만1천여본의 가로수를 심어 지역별, 거리별로 특색있고 테마 있는 특화거리로 조성했다. 봉곡~문성 일대와 박정희로에는 쌀밥을 해결했다는 뜻에서 흰꽃 이팝나무를 식재하고, 금오공대 주변에는 마로니에 나무, 운동장 일대에는 느티나무, 강변로 일대에는 왕벚나무, 읍면 25번국도에는 배롱나무를 식재해 거리경관을 꾸몄다. 또 가을철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금오산 메타세콰이어 거리, 시청 후문의 은행단풍거리, 운동장로의 느티나무 단풍거리, 광평동 플라타너스 단풍거리, 인동 대왕참나무거리 등 7개소의 거리를 `단풍이 아름다운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해 시민들이 낙엽을 밟으면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특히, 인동도시숲 대왕참나무 숲길과 송정 철로변 느티나무와 왕벚나무숲길, 해평 송곡리 느티나무 숲길은 2013년 3월 산림청의 `한국의 아름다운 가로수 62선`에 선정돼 구미의 새로운 명물 거리가 됐다.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6-07-14

옛 포항역 100년 역사보존 ·新 역사주변 개발이 남겨진 숙제

일제 강점기때 대구~포항 경동선 착공해방 후 포항역서 청룡부대 월남파병도1970년대 포항제철 건립으로 새 전환기어촌에서 공업도시로 변신, 부흥기 맞아2011년 KTX 포항직통노선 공사 착공철도기념물 옛 포항역 축소 복원키로글 싣는 순서1. 영국 산업발전 견인차 `맨체스터 리버풀역`2. 영국 과학·산업 역사 한눈에 `맨체스터 MOSI`3. 시민의 발이 문화공간으로 `충남 보령문화의전당`4. 포항역의 역사(歷史)와 KTX시대5. 옛 포항역 부지가 지닌 가능성과 개발에 따른 기대효과□ 첫 시작은 일제의 침략통로우리나라 철도 역사(歷史)는 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33.2㎞)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당시 서구열강과 일제로부터 수시로 위협을 받았던 조선은 철도개설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일제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철도는 침략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포항 철도의 시작도 일제 침략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대구와 포항을 연결하는 경동선(慶東線, 현 대구선)은 1916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지시로 철도회사인 조선중앙철도가 착공했다.같은해 11월 1일 대구~하양 구간이 우선 개통됐고, 2년 후인 1918년 10월 31일 나머지 구간인 하양~포항간 109.1㎞가 개통되면서 포항역은 보통역으로서 업무를 시작했다.경동선은 두 레일의 간격을 지칭하는 궤간이 762㎜로 표준궤인 1435㎜에 절반 가량에 불과한 협궤로 연결됐다.협궤는 부설이 쉽고 비용이 저렴해 20세기 초반 식민지 지역의 철도 부설에 널리 이용됐다.1919년 6월에는 포항에 주둔한 해군부대와 인접한 포항 학산역까지 노선이 준공되면서 군장병들의 이동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경동선이 개통한지 3년 만인 1921년 10월에는 부산~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구간 중 일부인 울산~포항 구간이 개통됐다.이후 1935년 12월 16일 조선총독부가 경주~포항 구간을 인수한 뒤 이를 표준궤로 교체하는 광폭궤도 공사에 착수했으며 1945년 6월 10일 부산진~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전구간이 표준궤로 운영됐다. □ 월남전 파병과 포항제철소해방을 맞으면서 포항역 철도의 활용성은 한동안 크게 줄었다.해방 이전 일본이 아시아대륙 진출의 연결통로로 이용했지만 이후에는 인구 5만의 작은 어촌마을인 포항을 오가는 승객이나 화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20여년간 암흑기를 겪은 포항역은 월남전 발발과 함께 역사적 장소로 거듭나게 된다.1965년 10월 3일 해병대 여단규모 500여명으로 구성된 청룡부대의 출발을 시작으로 6년여 동안 수만명의 파월장병들이 이곳을 통해 베트남으로 향했다.어린 나이에 가족과 생이별하는 슬픔을 뒤로하고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치는 장병들의 모습은 포항역을 애환이 담긴 장소로 만들었다.포항제철소가 건립되기 시작하면서 도시발전이 시작된 1970년대 포항역은 부흥기를 맞았다.어촌이 주요산업이었던 작은 도시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자재 및 제품운반을 전담할 운송수단의 필요성이 부각됐던 것이다. 이를 위해 1971년 4월 포항역과 포항철강공단 내 괴동역을 연결하는 괴동선(5.6㎞)이 개통됐다.괴동선은 현재 화물전용 노선으로 바뀌어 여객수송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개설초기에는 포항제철소 직원들의 통근열차도 함께 운행됐다.하루 10여회 운행된 괴동선 통근열차는 자가용 문화가 발달되기 이전인 1990년대 초까지 포항시민들로부터 널리 이용됐다.포항시사(市史)에 따르면 포항 철도가 전성기를 맞은 1990년 한 해 동안 768만여명의 승객이 포항역을 이용하기도 했다.1992년 12월에는 포항과 서울을 잇는 새마을호가 최초로 운행됐고, 1997년 7월부터는 대구와 포항을 오가는 통근열차가 1일 6회로 운영되기도 했다.□ KTX개통과 역사(驛舍)이전고속철도망이 본격적으로 구축된 2000년대 들어 포항역은 쇠퇴기를 맞았다.경부선을 중심으로 운행된 KTX는 새마을호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2010년 인근지역인 신경주역에 KTX가 들어온 이후 포항역의 존재는 희미해졌다.포항과 서울을 오가는 시민들이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탑승하기보다는 신경주역에서 KTX를 탑승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자연스레 포항역 이용객 숫자는 감소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1년 6월 KTX포항 직통노선 연결공사를 착공하면서 포항역 역사(驛舍) 이전계획이 수립됐다.한국철도시설공단은 포항시 북구 대흥동에서 100년 세월을 보낸 포항역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이인리에 마련키로 하고 2013년 9월부터 305억원을 투입해 신역사를 건립했다.결국 2015년 4월 2일 KTX 포항노선이 개통되면서 포항시 북구 대흥동 옛 포항역은 영구폐쇄가 결정됐다.같은해 9월 포항시는 도심 교통정체 해소방안으로 용흥동~대흥동간 왕복 4차선 횡단도로를 개설계획을 수립했다.그런데 이 노선이 옛 포항역 역사를 관통하도록 설계되면서 다소간의 논란이 발생했다.도로 개설을 위해서는 옛 포항역의 철거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특히 포항역은 지난 2013년 코레일로부터 철도기념물로 지정되며 역사(驛舍)가 지닌 역사(歷史)적가치를 인정받은 만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포항시는 이같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구 포항역 역사를 축소복원키로 하고 건물철거가 진행되기 전 현장확인 및 실측을 통한 복원기초자료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3단 구조의 비대칭 박공지붕의 독특한 모양과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 목재기둥, 아날로그 기차시간표 등을 원본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이들 자료는 축소복원 계획이 수립되면 축소복원된 역사(驛舍) 내에 전시될 예정이다. □ KTX 누적이용객 300만시대 눈앞개통한지 1년 3개월여가 지난 포항역은 어느덧 이용객 3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포항역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1년 3개월간 총 수송인원은 269만9천74명(KTX 217만6천145명, 무궁화호 52만2천929명).이는 5천여명이 매일같이 포항역을 이용한 수치로, KTX는 교통오지라 불렸던 경북동해안권역의 오명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지역민들의 최고 이동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특히 코레일에서 오는 8월 15일 예정된 수서발 KTX 개통에 맞춰 포항역 열차편수를 일일 왕복 2회 이상 증편하기로 검토할 만큼 수요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실제로 포항역은 평일 초저녁시간대는 물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전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포항시민과 인근 주민의 이용률이 높다.하지만 주요교통수단으로서 입지를 다져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우선 개통 당시부터 지적됐었던 고객 편의시설과 상업시설의 부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인근 역세권 개발도 지지부진한 상태다.만성적인 포항역 주변 불법 주·정차 문제와 추가 진입로 설치 및 연계교통망 확충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이에 대해 포항역은 내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교통혼잡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해결할 것을 약속했다.포항역 관계자는 “열차 승하차 시 역사 내부의 교통혼잡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며 “포항시 등 관계기관과 협조를 통해 이용객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박동혁기자phil@kbmaeil.com

2016-07-14

봉계리 농민 300명 “함께 잘살자” 결실

농업회사법인 ㈜봉좌마을 박용해 대표는 6차 산업 성공 비결로 3가지를 들었다. 지리적인 혜택과 주민들의 정성에 이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농부의 두뇌`를 꼽았다. “마을 주민들이 다 함께 잘살려면 농부가 똑똑해져야 합니다. 주어진 자연환경 아래 농부의 두뇌, 즉 새로운 발상(idea)이 더해지면 그 결과는 어마어마합니다(웃음)”출자금 18억으로 공동체 결성 `명품마을` 탈바꿈농산물·가축·승마·트랙터여행 등 다양한 체험식당·캠핑장 등 운영 수익으로 마을발전 투자◇300명이 출자금 18억원으로 출발5년 전 이맘때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리 주민들은 생계 고민에 머리를 싸맸다. 이들의 생업은 농업이었다. 마을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농업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민들은 `철든농부`가 되기로 맘먹었다. 약 300명이 모여 공동체를 결성하고 출자금 18억원을 모았다. 주민 스스로 지역발전을 이끌겠다는 신념 하나로 봉좌산 자락에 서린 봉황의 기운을 담아 `봉좌마을`을 꾸리기 시작했다.수십 년간 생산재배에만 몰두했던 농부들은 먼저 가공제조 활동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가장 자신 있게 잘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쌀로 떡볶이, 떡국 떡을 만들자 농업부산물이 다양해졌다. 부족한 일손은 일자리를 만들어 채웠다. 그만큼 농가소득도 늘었다.주민들은 공기 좋고 물 맑은 봉좌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지길 바랐다. 새마을정신이 깃든 인성교육의 장으로 만들고자 마을 사람들의 배움터였던 기남초등학교를 농촌체험센터로 만들었다.관광체험 아이디어도 쏟아냈다. 가축농장을 조성하고 말먹이, 소먹이 체험활동을 실시했다. 포항승마공원과 연계한 승마체험도 인기를 얻었다. 우리밀칼국수 만들기는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한달에 1천여명 찾는 `명품마을``똑똑한` 농부들은 고구마, 옥수수 수확체험을 요리 활동과 연결지었다. 직접 농작물을 캐서 삶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요리하는 과정에서 재미가 더해지니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방문체험자는 `고구마가 이만치 맛있는 줄 몰랐다`며 소비자로 나섰다. 이후엔 온라인 주문으로 이어진다고.박 대표는 “방문자 수를 정식 집계해보진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루에 150명이 올 때도 있어 대략 한 달에 500명에서 1천명 정도 찾는다”라며 “이는 최소한의 겸손한 수치를 말한 것”이라고 웃었다.농부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것은 트랙터리무진 마을여행. 트랙터 마차를 타고 역사문화 현장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때 주민들은 여행가이드가 된다. 그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가 해설사로 나서 봉계리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 전하는 셈이다.주민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 덕에 봉좌마을은 포항시로부터 지난해 6월 농어촌체험휴양마을, 11월엔 농어촌인성학교로 지정받았다.박 대표는 “체험 활동을 계기로 봉좌마을에 제2의 새마을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잘 살아보자`는 뜻으로 농촌발전을 주도했던 새마을운동은 이제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철든농부식당` 꼭 한번 가볼 곳봉좌마을은 도시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고향`이 되고자 캠프장과 숙박시설도 마련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철든농부식당`은 친환경 농산물로 손칼국수, 비빔밥을 만들어 판매한다. 조미료는 물론 수입농산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농업의 자존심을 지키고 관광객 건강도 지키기 위해서다. 식당 수익은 다시 마을 발전에 사용된다.박 대표는 봉좌마을을 지역명소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어 “마을 자랑거리를 6차 산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며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요구 사항을 미리 파악해 지역 6차 산업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2~3년 후엔 봉좌마을에서 생산한 작목이 `없어서 못 팔 정도`일 것이라고 짐작했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7-14

한울원전·울진군, 알알이 풍요로운 문화열매 키워냅니다

한울원전 홍보관서 영화·공연·강의 등 다양한 행사 무료 제공…지역민 사랑 듬뿍동해안 최대 음악축제 `울진뮤직팜페스티벌`로외부관광객 유입…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도□ 천혜의 자연환경 울진, 문화 오지 오명“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백범일지의 한 부분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치열한 투쟁을 지도했지만, 군사력이나 물질적 풍요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행복을 주고 나아가 남들도 행복하게 하는 문화의 힘과 중요성을 강조했다.오늘날 문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로서 각국의 국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K-POP,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를 해외로 수출하여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한류문화를 즐기려고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하지만, 발전한 문화 인프라와 콘텐츠는 수도권에 집중돼 지방에서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기 어려운 실정이다.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전국 공연장 1천188곳 중 54%에 이르는 640곳이 서울·인천·경기도에 있다. 국내 뮤지컬의 49%, 콘서트의 68%가 이들 지역에서 열렸으며, 경북에서 열린 공연은 각각 전체의 4%, 1%에 불과했다.울진으로 범위를 좁히면 문화생활 여건은 더욱 척박해진다.울진은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울창한 소나무 숲, 그리고 맑고 깨끗한 바다까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영화관은 전무하고 문화공연장과 미술관도 각각 단 한 곳뿐일 정도로 울진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은 한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한울원전 홍보관, 울진지역 문화예술 향연의 장문화적으로 소외된 울진 지역민들을 위해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희선)는 일상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울원전 홍보관은 최신영화, 명사특강 등 지역사회에 필요한 문화적 요소를 맞춤형으로 제공함으로써 지역의 종합문화공간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동해안 최대 음악축제 `울진뮤직팜페스티벌` 개최와 각종 문화행사 지원을 통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등 울진군 문화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한울원전 홍보관은 1/3로 축소한 원자로 모형을 비롯해 두께가 120㎝에 이르는 원자로 건물 콘크리트벽 모형, 에너지 역사관, 지역홍보코너, 느린 우체통 등 다양한 전시물과 체험공간을 갖추고 있다. 이곳이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대도시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문화의 장`을 지역주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이다.382석 규모의 한울원전 홍보관 대강당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가장 대표적인 행사가 지역주민을 위한 최신영화 상영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1일 3회 상영한다. 특히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 등의 인기 영화를 상영할 때면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홍보관을 가득 채운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최신 인기영화 `히말라야`와 `검사외전`을 각각 상영해 만원사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역주민들에게는 한울원전 홍보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한 달을 마무리하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됐다.지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홍보관에서 열린 다양한 행사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 어린이날을 앞둔 5월 2일, 지역 어린이와 학부모 6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마술 공연과 함께 페이스 페인팅, 풍선아치문 설치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 어린이들의 얼굴에 함박 웃음꽃을 피웠다.이어 3일에는 KBS, EBS 등의 방송에 다수 출연한 명강사 인하대학교 윤태익 교수를 초청, `가족의 재발견, 나로부터 비롯되는 변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개최했다. 강연에 참석한 지역주민들은 TV에서 보던 유명인사의 생생한 강의를 듣고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며 가족과의 진정한 소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값진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한울원전 홍보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는 지역주민들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선사하고 있다.□ 한울원전 울진 고품격 문화창달사업자지원사업은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원전의 사회적 수용성 증대와 지역공동체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이다.2005년 7월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과 함께 시행된 사업자지원사업은 △교육·장학사업 △지역경제 협력사업 △주변 환경개선사업 △지역복지사업 △지역문화 진흥사업 △그 밖의 기타사업 등 총 6개 분야 단위사업으로 나뉜다.매년 전전년도 발전량 1kWh당 0.25원을 사업비로 환산해 사업자인 한수원이 전액 지원한다. 한울원전은 2006년도 116억원을 시작으로 2015년 153억원 등 사업비 누계 약 1천449억원을 지역발전과 지역주민 복지증진을 위해 사용했으며, 그 중 지역문화진흥사업에 지원한 사업비는 200억원에 이른다.한울원전이 실시하는 대표적인 문화사업으로 `울진뮤직팜페스티벌`을 꼽을 수 있다. `울진뮤직팜페스티벌`은 매년 여름 울진에서 열리는 동해안 최대의 음악축제로,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외부 관광객 유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7월 31일과 8월 1일 양일간 열린 2015 울진뮤직팜페스티벌에는 싸이, 인순이, 에일리, 엠블랙 등 유명 가수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 여름밤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한울원전은 금강송면문화회관 리모델링, 도서관 도서구입 지원, 노인학교 기자재 지원 등을 통해 지역 문화 기반 확충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와 함께 문화활동기회가 적은 울진지역 주민들을 위해 각 읍·면 주민들의 화합과 축제의 장을 여는 `경로 효 잔치`와 윷놀이대회, 면민 체육대회, 신년 해맞이 행사 등 지역 문화·예술·체육 행사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이희선 한울원전 본부장은 “울진을 흔히 문화불모지라고들 하는데, 오히려 울진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각종 문화재 등 대중문화를 뛰어넘는 역사·자연 문화의 보고라 생각된다”면서 “울진 군민들이 지역에 자부심을 갖고, 대중문화에 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울원전이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울진/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2016-07-13

작지만 강한도시 고령, 역사·문화·관광 메카로 힘찬 도약

군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곽용환 고령 군수의 민선 6기가 어느덧 2주년을 맞이했다.곽용환 고령군수는 “2014년 7월 1일, 민선 6기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날을 되돌아보면서 무투표 당선이라는 큰 영광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으로 군민들의 바람인 `희망찬 고령! 행복한 군민!`이라는 군정 목표 달성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고 했다.고령은 지난날 영호남 접경권의 작은 도시에서 경북의 3대 문화권으로 경주와 안동에 버금가는, 작지만 강한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비약적인 도약을 거듭해 왔다. 특히 2017년 올해의 관광도시 선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도약하고 있다.이런 노력으로 대한민국 창조경제 CEO대상(2년 연속), 대한민국 문화관광 우수축제 선정(2년 연속), 제5회 지자체 생산성 대상 우수상, 매니페스토 경진대회 공약이행분야 우수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게 됐다.국정과제인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현장 중심의 능동적 행정을 통해 책임과 책무를 지키며, 군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가야문화특별시 고령군의 2년을 되돌아본다.광주~대구, 중부내륙 고속도 교차사통팔달 교통, 기업입지 최적화대가야 품은 도시전체가 박물관지산동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스마트농업 육성위한 발전계획 수립농업자동화· 6차 산업화 확충 박차◇ 낙동강 창조경제 + 대가야 문화융성고령군은 지리적으로 산동권과 산서권으로 구분돼 있어 산동·산서권역별 특화된 발전전략을 통해 지역발전의 양대 축으로 활용해 나가고 있다.산동권의 발전목표를 낙동강 창조경제 실현으로 정하여 행정복합타운 및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 신 성장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지역특화농산물을 육성 지원해 대도시권 배후의 창조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산서권의 발전목표는 대가야 문화융성 추진.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대가야문화누리 건립,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사업 등 대가야 역사문화·관광의 거점도시로 육성해 자연친화적 농촌 생활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활력 창조경제도시고령군은 광주-대구간 고속도로와 중부내륙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등 사통팔달의 교통 여건과 대구광역시 성서공단 및 대구국가산업단지가 인접하는 등 기업입지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매년 기업체가 증가하여 명실 공히 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창조경제도시로 거듭나고 있다.이러한 여건에 발맞춰, 창조경제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다산 일반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산업단지의 집적화를 추진하고, 전략적인 투자유치 활동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역균형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말 4차로로 확장 개통된 광주-대구간 고속도로와 중부내륙 고속도로가 동서남북으로 교차해 영호남 물류유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돼 현재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철도 가설이 추진되고 있는 남부내륙고속철도(김천~고령~거제)와 더불어 대구~광주간 철도 가설이 검토중에 있어 동서남북으로 교차되는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가야문화특별시 고령고령군은 520여 년 찬란했던 대가야의 도읍지로서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의 출생지로 대가야의 역사문화유적이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어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같은 유서 깊은 고장이다.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 등재를 위해 작년 10월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상남도, 김해시, 함안군과의 협약을 맺었다. 앞으로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연계해 세계유산 등재 관리단 및 사무국 설립과 국내·외 학술대회 개최로 세계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2015년 9월, 문화체육복지 복합공간인 `대가야 문화누리`가 착공 3년 만에 위용을 드러냈다.지역 문화예술의 요람인 문화예술회관과 수영장, 헬스장을 갖춘 국민체육센터, 문화밸리 등 7개의 복합시설이 모습을 갖춰 지역문화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대가야체험축제는 차별화된 체험축제로 신비한 대가야의 실체를 알렸다.지역에 산재한 역사·문화·관광자원을 연계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성장 동력이 되는 축제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역동적인 교육형 축제,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다시 찾는 문화관광축제를 표방한다.◇ 빛나는 명품도시고령군은 군민의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매력적인 도시공간 창출과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고령문화원, 청소년 문화의집 등 문화 및 평생교육 시설을 통해 어르신은 물론 지역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다양한 끼와 재능을 발산하게 해 그들의 꿈과 희망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주민의 오랜 숙원이었던 도시가스 공급 사업을 2014년 착공해 2015년 10월 7일부터 공급을 시작했다.다산면 일대는 낙동강변 교통과 창조경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산면 상곡지구 도시개발사업으로 700여 세대 월드메르디앙 아파트단지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이러한 주변 개발요인으로 다산면은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급부상 중이다.◇ 경쟁력 있는 농촌특구농촌 생활여건 개선으로 누구나 살고 싶은 부자농촌 조성을 위해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운수면·성산면·다산면·개진면·쌍림면 소재지 내 기초생활기반을 확충하는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우곡 도진·대가야 중화·쌍림 안림 용담권 단위의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권역단위 종합정비사업, 대가야 신리·운수 운산·다산 노곡·우곡 봉산 마을 소득증대를 통한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살기좋은 `행복누리 고령`을 만들고 있다. 경쟁력 있는 스마트 농업육성을 위한 농촌종합발전계획 수립으로 지역 농업의 발전방향을 마련했으며, 시설원예자동화생산시설, 기술집약형생산시설, 노동력절감 기계장비, 일손돕기 지원 등으로 고령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또한 재해예방 및 지역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기반 확충과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위해 수리시설 정비, 노후위험 저수지 정비 사업, 영농기반 확충 긴급보수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대가야 농산물 직거래센터를 건립해 생산자는 더 받고, 소비자는 덜 내는 유통구조로의 전환도 확립하고 있는 중이다.◇ 건강한 복지도시나눔과 실천으로 노인·장애인 등 서민과 함께 하는 `복지 고령`을 만들기 위해 대가야 희망플러스사업을 확대해 운영 중이다. 이는 수요자 중심의 실천적 복지체계 구축을 통해 복지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이다.구 보건소 건물은 리모델링을 완료해 2015년 6월 고령군 노인회를 포함한 9개 사회단체가 입주해 복합문화복지시설로 활용하고 있다.고령화사회에 대비해 공동급식시설, 공동생활홈, 경로당 등 노인복지시설을 확충해 사회적 고립감 해소 및 안전한 노후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의 다변화, 평생교육 활성화를 통해 노인의 사회참여 기회 확대로 건강한 노년생활도 돕고 있다.또한 새로운 여성시대에 발맞춰 여성 사회교육 프로그램, 출산장려시책, 드림스타트 운영, 아이 돌봄 서비스 지원 확대 등 여성의 권익증진과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의 안정적 사회 정착을 위해 합동결혼식, 사회적응 교육, 모국방문 등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화합과 통합의 열린 행정도시군민의 눈높이에서 군민의 삶을 직접 찾아보는 맞춤형 현장행정 서비스를 확대하고, IT를 활용한 군민의견 수렴과 신속한 생활민원 처리로 군민의 생활편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참여 예산제도와 지방재정 공시 등을 통해서는 재정운용의 실효성을 확대했다. 고령군 교육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맡아온 (사)고령군교육발전위원회를 활성화해 대가야교육원 운영, 청소년 국제교류 확대, 장학사업, 향토생활관 운영 등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또한, 대가야 장인아카데미, 평생교육 등을 대가야문화누리로 통합해 효율적인 인력 배분과 지원 프로그램 다양화로 행복교육 1번지를 꿈꾸고 있다.곽용환 군수는 “군민과의 약속을 가슴에 담고 군민과 공유하는 군정으로 고령군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행정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희망찬 고령! 행복한 군민!`이라는 군정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당부했다.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16-07-12

경제효과 연간 2천억… 지역 활력소 역할 `톡톡`

2011년부터 신병·가족 부대밖 나들이 허용숙박비 등 포함 경제효과 연 3억원 `훌쩍`병사 외출·외박 소비효과도 8억이나 달해지방세도 매년 50억 이상 납부, 市재정 도움장교 등 직업군인·가족 씀씀이도 만만찮아800명 취업유발 효과까지 적잖은 보탬 줘□ 전군 최초 영외면회 긍정적 영향6·25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 시로 승격한 포항은 인구 5만여명에 불과한 작은 어촌마을이었다.전쟁통에 인구가 5만명 밑으로 추락했지만 1958~1959년 해병대가 정식으로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1958년 4만9천32명이었던 인구는 2년만인 1960년에 5만9천555명으로 크게 늘었다.해병대의 존재는 도시전체에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장병을 가족으로 둔 면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외박을 나온 장병들도 포항시내를 가득채웠다. 간혹 민간인과의 갈등, 부대원간의 다툼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해병대는 1968년 포스코가 포항에 설립되기 이전까지 포항지역 경제활성화에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이같은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해병대는 2011년 11월 전군 최초로 신병수료식 후 가족과 함께 부대밖 나들이를 하는 영외면회를 허용했다. 영외면회는 `선진 병영문화 안착`이라는 해병대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그동안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병영문화를 자율적 개방적인 문화로 혁신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이는 4년여가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해병대에 입대한 신병은 2010년 1만2천6명, 2012년 1만2천686명, 2014년 1만2천820명이다. 이들 전원이 포항에 위치한 교육훈련단에서 6주간의 군사기초훈련과 해병대 특성화훈련을 받고 있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변신을 완료한 장병들은 해병대만이 실시하는 특별한 신병수료식 행사인 `빨간명찰 수여식`을 마친 후 가족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환동해미래연구원 전명종 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영외면회를 하기 위해 포항을 찾는 가족의 숫자는 신병 1인당 3.5명 정도다. 이들이 숙박비, 교통비 등을 포함해 1인당 7만5천원을 소비한다고 가정할 때 경제적효과는 연간 3억원이 넘는다.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반병사들의 외출·외박으로 이뤄지는 소비효과도 추정가능하다. 외출·외박을 나온 장병들은 소속부대에서 1~2시간 이내 복귀가능한 지역(위수지역)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같은 조건은 주변도시 중 가장 큰 규모인 포항을 벗어날 확률을 낮추고 있다. 따라서 장병들은 외출허가를 받을 경우 1인당 평균 4만5천원, 외박은 9만5천원을 포항에서 소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숫자를 연간 외출·외박허가수에 맞춰 분석해보면 외출 6천여명, 외박 8천여명 등 총 1만4천여명이 창출하는 경제적효과는 연간 8억원이 넘는다. □ 납세의무도 충실히해병대가 포항지역에 미치는 경제적효과는 납세자의 역할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해병대는 주민세, 지방소득세, 자동차세, 담배세 등 지자체가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징수하는 세금인 지방세를 지난 2013년 기준 약 53억원을 납부했다. 이는 해병대가 포항에 주둔하지 않았다면 포항시 재정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자동차세는 군용차량의 경우 면세혜택을 받기 때문에 부대원 개인이 소유한 차량에만 한정해 소유세 11억2천여만원, 주행세 17억여원 등 28억여원을 나타냈다. 담배소비세는 2012년 국방부가 조사한 군인복지실태조사에 따라 해병대 소속 직업군인 중 59.6%, 병사 53.5%가 흡연을 한다고 가정, 10억6천여만원이 산출됐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해 이후 담배세가 2배 가까이 오르면서 동반상승효과를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주민세 1천300만원, 지방소득세 4천800만원, 지방교육세 13억8천만원 등을 포함하면 53억원의 지방세를 납부한 것으로 분석됐다.국가에 납부된 세금 중 지자체의 행정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지방교부세는 보통교부세와 특별교부세 두 가지로 나뉜다. 보통교부세는 용도를 제한하지 않고 지방정부가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 재원이고, 특별교부세는 재해, 공공시설 등 특별한 재정수요가 있을 때 교부되는 특별한 재원이다. 대체로 보통교부세가 군부대의 지역주둔과 관련있으며 해병대 주둔으로 인한 지방교부세는 16억5천여만원으로 확인됐다.이처럼 지방세 53억원, 지방교부세 16억5천만원은 포항시가 2013년 한 해 동안 확보한 지방세 2천870억원과 지방교부세와 2천818억원의 각각 1.8%, 지방교부세의 0.6%에 해당되며 이는 해병대가 납세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 지역총생산액 1% 이상 차지 이밖에 부대건설 발주효과, 직업군인 소비효과, 부대운영효과 등 직접효과와 다양한 산업으로 이어지는 간접효과 등도 포함할 수 있다. 부대시설의 신·증축 공사를 위한 건설업체 발주비용은 지난 2013년 총 6건을 통해 52억3천여만원이 소요됐다. 이 금액은 대형공사 포함 여부에 따라 해마다 변동폭이 매우 큰 편이나 지역 건설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주둔지역에서 장교, 부사관 등 직업군인과 군인가족들의 소비행위로 창출되는 경제적 효과도 있다.군인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업군인의 월평균 가구당 총소득은 290만6천원이며 생활비는 213만7천원으로 총소득의 약 73%를 차지하고 있다. 해병대의 경우 86.5%를 나타내 92.6%를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는 해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출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분석한 2013년 기준 해병대 부대원의 소비효과는 약 348억원에 이른다. 부대운영효과는 행정소모품 구입, 부대원의 사기진작, 부대장 관사 운영비, 부서원 격려 및 간담회, 부대행사, 부대원 여비 등에 이용되는 부대운영비로 연간 6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이렇게 해병대가 포항지역에서 소비한 금액은 다양한 산업으로의 간접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2012년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발표한 포항 산업연관구조분석에 따르면 포항의 생산유발계수는 1.984, 부가가치유발계수는 0.794, 취업유발계수는 20.3명이다. 환동해미래연구원이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해병대는 포항에 776억원의 생산유발효과, 310억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795명의 취업유발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할 경우 해병대의 포항주둔으로 인한 경제적효과는 연간 1천846억원에 이르며 이는 경북도가 발표한 2010년 포항시 지역총생산액인 17조5천467억원의 1.05%를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규모는 해병대 가족투어가 실시된 2012년 초부터 더욱 늘어나 오늘날 연간 2천억원이 넘는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6-07-11

“치유하고 힐링하는 행복한 영주 건설”

민선6기 취임 2주년을 맞은 장욱현 영주시장은 시정 키워드를 `힐링`과 `행복`으로 설정했다.영주가 가진 우수한 문화와 자연가치를 부각시켜 치유와 힐링관광 도시로 특화하고, 시민 중심의 섬김 행정을 추진해 행복한 도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천혜의 자연자원과 문화자원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영주시는 그 발전 가능성을 점차 높여나가고 있다.시민의식 향상위해 다양한 시책 추진현장중심 행정에 시민 참여율도 높여풍부한 소백산 산림자원 활용해전국 최초 힐링특구 관광명소로 부각점촌~영주간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대규모 국책사업도 성공적 추진△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섬김 행정`영주시는 지난해 경북도민체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저력과 힘을 보여줬다.기초질서가 확립된 모범적 도시 분위기는 영주를 찾은 많은 선수와 관계자, 관광객들에게 수준 높은 편의를 제공했다. 민선 6기 들어 추진한 기초질서 확립 등 도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정책이 주효한 결과다.장욱현 영주시장은 취임 후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을 비롯해 시민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책을 추진해왔다.매월 2회 대중교통 이용의 날을 정해 운영해 교통문제 개선은 물론 침체한 대중교통 업계의 경기회복에 힘을 보탰다. 도시의 변화는 행정서비스 분야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현장 중심으로 모든 것을 추진하고 시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계기를 만들어 시민의 참여율과 관심도를 높인 점이 단연 돋보인다.특히, 민원 One-Stop 처리를 통한 민원 1회 처리제도를 정착시켜 복합민원 286종을 해결했다.민원처리과정 알리미 서비스로 일반민원 348종도 해결하는 등 적극적이고 신속한 업무 수행으로 지난 4월 기준 민원처리 기간을 60.78% 단축했다. △ 발전하는 힐링관광, 역동적인 지역경제영주는 2014년에 전국 최초 힐링특구로 지정된 데 이어 오는 8월 개원하는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 한국문화테마파크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해 나가고 있다.다스림은 국제적인 산림치유의 허브로 소백산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활용해 심신을 치유하는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녹색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할 전망이다.오는 2020년까지 조성되는 한국문화 테마파크는 총사업비 1천565억원 사업비를 투입해 고택과 템플스테이, 힐링 투어, 푸드테라피 등 종합적인 힐링 클러스터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영주댐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건설되는 새로운 리조트와 전통문화체험단지, 오토캠핑장 등 관광명소 특화사업도 추진 중이다.일자리 창출과 기업유치에도 역량을 결집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현재까지 누적된 투자유치 금액은 전체 3천254억원이며 시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복합영화관 디와이와 코레일 인재개발원 건립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돼 영주시민의 생활여건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하이테크 베어링 산업화 기반 구축사업을 위한 국비확보와 기업유치를 추진해 270억원 규모의 베어링 시험 평가센터 구축 및 클러스터 조성으로 베어링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는데 발판을 마련했다.또 올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모사업을 통해 총사업비 200억원을 확보하는 등 영주가 기계산업의 필수 부품인 알루미늄 산업의 중심지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9천8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구체적인 성과를 거둬 서민생활을 안정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영주시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경제활동 친화성 분야 공장설립부문에서 S등급을, 외국인투자기업 친화성 부문에서 A등급을 받아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미지를 굳혔다.△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영주지역에서는 최근 중앙선 복선전철화와 영주댐, 영주적십자병원, 가흥~상망 간 국도 대체 우회도로, 산양삼·산약초 홍보교육관, 국립산림약용자원연구소, 하이테크 베어링 산업화, 실내수영장, 대한복싱전용훈련장 등 대규모 국책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동서내륙철도(점촌~영주 간 전철화사업)가 제3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되는 등 철도도시로서의 재도약을 본격화하고, 도시 환경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시는 구 영주 역사를 중심으로 202억원을 투입해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주기반이 불량한 하망동 곱작골지구 활성화 사업, 하망동 보행환경 개선·국토환경디자인사업, 자전거 공원조성,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등 도·농간 균형발전을 위한 시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치유와 인성교육의 메카영주시는 선비문화수련원과 선비촌, 청소년수련관을 연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힐링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힐링산업화를 위한 마스터플랜도 수립해 영주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선비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현대적 선비정신을 실천하고자 선비정신 실천운동본부를 중심으로 범시민 실천 캠페인을 전개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신가치인 선비정신이 세계인의 시대정신이 될 수 있도록 근간을 마련했다.평생학습도시를 위해 도립 영주도서관과 영주시립도서관을 통합한 영주 통합도서관을 착공해 내년 완공할 계획이다.실내수영장과 대한복싱전용체육관도 건립해 체육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또, 정부에서 추진 중인 지역 학사형 행복주택 공모사업과 서울 영주학숙 건립을 병행 추진해 지역의 인재를 육성하고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힘쓰고 있다. △ 희망 주는 농업도시귀농귀촌 인구가 많은 영주시는 예비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농업창업 One-Stop 지원센터인 `소백산 귀농 드림타운`을 지난달 개원했다.이곳에서는 귀농귀촌인의 경제적 자립과 영농교육을 비롯해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이와 함께 1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명품 부석태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콩 세계 과학관을 지난해 개관해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콩의 산업화와 상품화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특히, 시는 지역경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농업의 발전을 위해 영주사과, 풍기인삼, 영주 한우의 품목별 혁신 추진단을 구성해 포장 디자인 통일, 품질 및 재배관리 등 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여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농특산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지난 5월에는 서울 경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서초구 영동농협에 400평 규모의 `영주 한우 프라자`를 만들어 영주 한우를 알리고 수도권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함께하는 나눔복지 실현시는 65세 이상 홀몸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주거시설 3곳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4곳를 추가 운영하는 등 사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 효 문화 진흥원과 노인종합복지관, 장애인 종합복지관 건립 등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웰빙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찾아가는 복지, 나눔 복지를 실현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지난해 12월 기공식을 가진 영주적십자병원은 국내 최고수준의 대학병원과 협동진료체계를 구축하고 최신의료장비와 숙소건립에 소요되는 52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성공적으로 건립되고 있다.장욱현 영주시장은 “신도청 시대를 맞아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힐링관광의 기반을 조성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라며 “힐링과 선비정신의 중심도시, 활력 있는 경제도시, 경쟁력 있는 농업도시를 만들어 나가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영주/김세동기자kimsdyj@kbmaeil.com

2016-07-11

산업화 시대의 상징 구미, 회색빛 벗고 녹색으로 물들다

선사시대부터 지속되어온 유구한 역사와 독특한 전통문화를 꽃 피워온 구미시는 도립공원인 금오산과 천생산, 태조산 등에 둘러싸여 있으며,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도심 중앙을 흐르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도시다.그러나 1960~70년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잃었으며,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숲이나 공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구미시는 기후적 특성을 완화시키고, 시민들이 보다 나은 도시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을 전개해 녹색도시로 변모했다. 구미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2의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을 시작했다. 본지는 아름다운 도시환경을 갖춘 명품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구미시의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 과정과 성과, 녹색도시 구미의 비전 제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한다.`전자산업도시·회색 공단도시` 불명예 벗기위해2006년부터 `1천만그루 나무심기운동` 꾸준히 추진□ 구미는 어떤 도시인가?구미시(龜尾市)는 경상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산업단지(24.7㎢)를 보유한 도시다.서울로부터 277㎞, 부산으로부터 167㎞ 거리에 있으며, 면적은 615㎢로 경상북도 전체 면적의 3.2%에 달한다. 인구는 42만명이며, 선산읍, 고아읍을 비롯한 6개 면, 19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구미시는 신라 초기 일선군으로 불렸으나 진평왕 36년(서기 614) 일선주로 승격되었고, 경덕왕 16년(서기 757) 숭선군으로, 고려시대에 선주라 했다.조선 태종 13년(서기 1413)부터 선산군으로 명명돼왔으며, 1978년 2월15일 선산군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분리되었고, 1995년 1월1일 국내 최대 내륙첨단공업도시 구미시와 선진농업지역인 선산군이 통합돼 지금의 도농복합도시가 되었다.구미는 신라시대 불교가 처음 전해진 곳으로 우리나라의 불교문화의 시발점인 곳이기도 하다.고구려의 승려 묵호자(일명 아도화상)가 처음 신라에 들어와 불교를 포교한 곳이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일대다.도개면 도개리의 도개(道開)란 마을 이름도 불교가 이곳에서 발생해 도가 열렸다는 연유로 지어져 오늘날까지 불리우고 있다.또 해평면 송곡리 냉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신라 최초의 사찰이다. 구미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기초를 다져 영남사림파를 탄생시킨 정신문화의 근원지이기도 하다.“영남인물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대로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특히 조선 성리학의 연원인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 등 학자와 사육신 하위지, 생육신 이맹전, 한말 의병대장 왕산 허위 등 숱한 우국지사와 과감한 수출 정책을 추진하고, 새마을운동을 창시해 국가경제의 기틀을 다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예술 분야의 명창 박명주 등을 배출했다. □ 산업화로 급성장한 구미과거 구미는 선산군 중심의 농업이 산업의 주축이었으나,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당시 한국은 6.25전쟁으로 인한 외국의 원조경제에서 탈피하고, 자체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와 기업 모두가 노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이에 정부는 1967년 전자분야 개척에 성공한 일본에서 시행중인 방안을 모방해 1968년 `전자공업 진흥임시조치법`을 제정하고, 이를 토대로 1969년 1월 종합적인 진흥방안을 갖춘 `전자공업진흥법`을 공시한다.`전자공업진흥법`과 같은 확고한 제도적 초석이 다져지면서 전자공업 육성을 위한 구미공단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구미공단은 1969년 1월3일 `구미공업단지 설립추진대회`를 출발점으로, 1970년 3월 경북도에서 추진한 일반단지 조성사업, 1971년 5월 한국전자공업공단의 설립과 함께 같은 해 11월 첫 삽을 뜬 전자단지 1공구 조성사업을 시작하면서 대역사가 시작됐다.이렇게 건설된 구미공단은 정부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1974년 7천900만달러를 수출한 이후, 1975년 1억달러 돌파, 2004년 200억달러, 2005년 300억달러 수출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첨단IT도시라는 칭호와 함께 회색공단도시라는 불명예도 함께 얻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시민들의 정주여건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져 갔다. 이에 구미시는 `살기 좋은 도시 구미`를 위해 일천만그루나무심기라는 대장정에 돌입한다. □ 회색빛에서 푸른 녹색도시로`전자산업도시`, `공단도시`라는 별칭이 항상 붙어다녔던 구미.구미시는 이러한 도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살기 좋은 구미 만들기 프로젝트`일환으로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을 최역점 시책사업으로 추진하게 된다.2006년 취임한 남유진 구미시장은 `전자산업도시`, `공단도시`에서 `녹색도시`, `행복도시`로 구미를 변화시킬 계획을 구상하고,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들을 하나씩 준비해나갔다. 우선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공원과 녹지 등을 확대 조성하는 사업을 검토했다. 공원과 녹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자 자투리공간부터 확보하기로 한다.이 자투리공간 확보를 위해 시작한 사업이 `담장허물기 사업`이다. 공공기관과 학교 등의 담장을 허물어 도시숲과 쉼터를 만들고, 그곳에 담쟁이, 장미덩굴 등을 심을 계획을 세웠다.구미시청부터 시작했다. 시는 2007년 1월 설계심의를 거쳐 높이 2.2m, 길이 240m의 옹벽담장과 수위실을 허물고, 벽천분수, 소형연못, 파고라 등 다양한 조경시설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해뜨락공원을 조성했다. 이어 인근의 구미교육청, 구미우체국과 수차례 회의를 거쳐 담장을 허물어 나갔다.일부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 시민단체는 담장허물기 사업이 예산 낭비의 표본이라며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미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묵묵히 사업들을 하나 둘씩 진행해 갔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공서와 학교 등의 담장이 없어지고, 그 공간에 시민들의 쉼터와 녹지공원들이 들어서자 시민들도 일천만그루나무심기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면서 당초 계획인 일천만 그루를 102%를 상회하는 1천21만6천본을 식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이에 힘입어 구미시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녹지 60개소, 담장허물기 30건, 학교숲 25건, 헌수 161명(단체), 어린이공원 106개소(신규 37), 근린공원 18개소(신규 6), 도시숲 4개소, 마을쉼터 및 자투리공간 37개소, 휴양림·생태숲·산림욕장 각 1개소 등을 조성하면서 쾌적한 녹색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 녹색도시 구미 완성구미시가 전국 기초단체 최초로 추진한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은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얻었다.정주여건 개선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녹지공간 확보가 필수라는 남유진 시장의 인식을 바탕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10년간 지속되면서 살기 좋은 녹색도시의 기반을 조성했다.구미시는 지난해 11월4일 금오산 대주차장에서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 달성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민간 주도방식의 `제2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을 선포했다.시는 그동안 시민들의 참여가 꾸준히 진행돼 왔고, 구미시 나무사랑시민연합 등 많은 시민단체들이 함께 사업을 추진해 오면서 노하우도 많이 쌓은만큼 사업 추진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간주도 방식의 제2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으로 구미시가 친환경 녹색도시로 거듭나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도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도시를 되길 기대해 본다.구미/김락현기자

2016-07-08

영화배우 같은 남자가 가져다주는 해산물 요리 어때요?

“이탈리아는 미남들이 사는 국가”라는 이야기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 전역에 퍼져있는 풍문이다. 기자 역시 귀를 가졌으니, 그 말을 듣지 못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건 뭐지? 남부 항구 바리에서 출발한 기차가 숨을 헐떡이며 달린 끝에 나폴리역에 도착했다.그런데, 구걸로 삶을 이어가는 동냥아치도 패션쇼 무대 위에 선 모델처럼 잘 생겼다는 이탈리아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역 근처엔 기념품과 싸구려 바지와 셔츠를 파는 검은 얼굴의 사람들 뿐. 미남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다.절벽끼고 위태롭게 달리는 낡은 버스, 두려움도 잊게만든 아름다운 풍경톰 크루즈보다 잘생긴 포지타노 식당 웨이터의 `이탈리아식 낭만` 정겨워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는 경제발전의 차이가 전혀 다른 별개의 나라로 느껴질 정도라더니, 그 이야기가 과장이 아닌 모양이었다.듣는 사람에 따라선 화를 낼 수도 있는 비교가 될 것 같지만,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는 동남아의 빈한한 국가 라오스나 캄보디아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우중충했다. 물론 기자는 알고 있다. 여행자가 처음 도착한 도시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전엔 동유럽을 4개월간 여행했다. 일부러 한국 식당이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보다 큰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 음식을 먹은 지도 오래였다. 나폴리에선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자란 이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된장찌개와 냉면을 즐기고 싶었다. 해서, 인터넷을 뒤져 나폴리역 인근 한국인 숙소를 찾았다.유럽은 도로와 건물이 일정한 방식에 의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어, 길 찾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그러나, 그건 잘 그려진 지도가 있고, 길눈이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형성됐을 때만이 가능한 일. 기자는 30년지기 친구 집도 갈 때마다 헷갈려 하는 사람이다.메모한 주소만 들고는 숙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다시 혼란에 빠졌다. 바리역에서 기차표 발매기 앞을 서성이던 것처럼 나폴리역 광장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혼자서는 숙소를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바로 그때다. 이번에도 흑인 하나가 성큼 다가와 물었다. “도와줄까요?” 아주 짧은 그 물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바리에서 만난 흑인과 달리 이 사람은 183cm인 기자의 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러나, 덩치와는 관계없이 새까만 얼굴에 떠오른 환한 미소가 더없이 착해 보였다. 입술 사이로 새하얗게 빛나는 가지런한 이가 눈부셨다.주소를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그걸 훓어본 그가 “따라오라”며 앞장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커다란 짐 보따리를 등에 멘 채로. 가고 싶어했던 한국인 운영 숙소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길을 찾아준 흑인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했다. 행상이 분명해 보이는 그에게 물었다. “보따리 안에 든 게 뭐냐?” 착한 웃음을 얼굴 가득 띤 채 그가 가방을 열었다.조악하고 가벼운 화산암으로 만든 이탈리아 여행 기념품이었다. 1개에 5유로, 3개엔 10유로라고 했다. 10유로를 주고 1개만 집어 들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5유로짜리 지폐를 거슬러주는 흑인의 친절. 진원지가 불분명한 감정이 밀려왔고, 이상스레 슬퍼졌다.흑인과 백인에 대한 차별이 살벌했던 시대의 미국. 흑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서로 때리고 맞아야 하는 권투를 직업으로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맞으면 아프고, 상대를 때리는 것이 좋을 까닭이 없는 게 보통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흑인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이란 한계가 분명합니다. 나 또한 권투선수가 되지 못했다면 거리를 떠도는 강도가 됐을 겁니다.”편견과 선입견의 그늘 아래 사는 사람들.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는 흑인도 분명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언제쯤이 돼야 인간이 인간을 편견과 선입견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우리 앞에 도래할까?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그렇다고, 이탈리아 여행이 위와 같은 고뇌와 슬픔만으로 이어졌던 건 아니다. 유쾌함과 즐거움 또한 적지 않았다.이탈리아 남부의 해변도시 아말피와 포지타노. 그리고, 소렌토. 바위 위에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멋들어진 도시.그곳으로 가는 길. 100m가 넘어 보이는 절벽을 끼고 2차선 좁은 도로를 낡은 버스가 위태롭게 달렸다. 그러나, 누구도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아름다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엽서 같은 풍경이 두려움을 멀리로 날려버렸다. 절경을 눈앞에 두고 터뜨리는 감탄사는 서양인과 동양인, 흑인과 백인, 아이와 노인이 다르지 않다는 걸 그 길에서 알게 됐다.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포지타노의 절벽 위 레스토랑. 음식과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종업원이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보다 더 잘 생겼다. 내려다보이는 바다의 색채처럼 푸르스름한 수염자국. 거기에 뚜렷한 이목구비. 세련된 헤어스타일에 커다란 키까지.프라이팬에 녹인 버터를 한 숟가락 떠먹은 양 느끼하게 발음되는 그의 이탈리어어가 더없이 정겨웠다. 요리를 주문하는 여자들 모두에게 윙크를 날리는 모습도 귀엽기 짝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댔다. 그가 부르던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아직도 기억될 정도다. 바로 이게 이탈리아식 낭만이 아닐까.다시 여름이 왔다. 푸른 바다가 그리운 계절. 아드리아해를 닮아 세상 누구보다 파란 눈동자를 빛내는 포지타노의 웨이터가 가끔 아니, 자주 그립다. 미식가의 나라 이탈리아에선 뭐 먹지?이탈리아는 미식가의 나라다.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이탈리아인들은 너나없이 맛깔스런 음식과 포도주를 앞에 두고 이야기 주고받는 걸 즐긴다.한국인들과 기질적으로 비슷하다. 한 나라를 여행한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음식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화의 하나. 이탈리아 사람과 여행자들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담백한 맛이 일품인 피자이탈리아 피자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넓게 편 밀가루 반죽 위에 올리는 재료도 많지 않다. 약간의 치즈와 절인 올리브, 루콜라 등의 싱싱한 녹색 채소와 선명하게 붉은 토마토소스 정도가 전부다. 그렇기에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낸다. 특히 남부 나폴리 일대의 피자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빼어난 맛을 자랑한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일종의 멸치젓갈인 앤초비(Anchovy)를 곁들인 피자를 권한다. 걱정과 달리 전혀 비리지 않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해산물만약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섬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사파이어보다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는 푸른 바다 근처의 레스토랑은 꼭 방문해야 한다. 은은한 숯의 향기가 배어 있는 싱싱한 생선구이와 남유럽 특유의 향신료를 가미해 만든 가재와 게 요리는 그 맛이 일품이다. 눈부신 햇살 아래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한 끼 식사. 금전적으론 부담이 되겠지만, 사랑하는 연인이나 아내를 위해 한 번쯤은 호기를 부려볼만 하다.▲이민자들이 즐기는 음식은 뭘까 이탈리아 전역엔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에서 이주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떠나온 자신들의 나라를 잊지 않기 위해 먹는 각종 전통음식들을 맛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북아프리카인들이 즐기는 쿠스쿠스(Couscous·밀가루로 만든 좁쌀 모양의 알갱이에 익힌 고기와 채소를 곁들여 먹는 요리)와 터키와 이란 사람들이 좋아하는 케밥(Kebab·양념한 양고기나 닭고기를 구워 채소와 함께 먹는 요리)은 독특한 향기와 식감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내주 금요일부터는 특집기사 `포항지역 도서관 선진화를 위한 방안`을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홍성식의 지구촌 방랑기`는 8월 19일 다시 시작됩니다.사진제공/서지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7-08

천년왕국 마지막 시대가 묻힌 `삼릉` 비운의 제왕들 넋이라도 있고, 없고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어떤 권력도 10년을 이어 영화 누리기가 힘들고, 제아무리 어여쁜 붉은 꽃이라 해도 그 온전한 색채는 열흘을 가지 못한다고 했다. 통일신라말 신덕·경명왕 통치 시절엔 기울어진 국운 속 천재지변까지 잦아8대 아달라왕릉 옆 父子가 나란히 묻혀신덕왕릉은 두번이나 도굴 당하기도경주시 배동에 위치한 삼릉(사적 219호)을 찾았던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대낮임에도 하늘은 캄캄했고, 때때로 벼락까지 치는 궂은 날씨. 능으로 오르는 소나무 숲길이 질척거렸다. 통상 `삼릉`으로 칭해지는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능 또한 여지없이 비에 젖고 있었다. 서남쪽 방향 지척에 위치한 55대 경애왕릉 역시 마찬가지. 아달라왕의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왕은 모두 신라가 기울어가던 시절의 통치자들이었다.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장기간 지속된 신라왕조. 992년 동안의 부침과 그 속에서 벌어졌던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떠올리니 진원지를 알기 힘든 우울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렇다, 사라지거나 떠나는 모든 것들은 눈물과 한숨 속에 자리한다. 그것이 한 개인의 죽음이건, 천년왕국의 소멸이건.흐리고 비가 오는 날임에도 경주가 한국만의 관광지가 아닌 `세계적 관광지`임을 증명하듯 일본인 단체관광객 십여 명이 삼릉을 찾아왔다. 일본인 특유의 조용함으로 가이드를 따르던 그들이 아달라왕릉 앞에 멈춰 섰다. 일본어 설명이 안내자로부터 이어졌다. 해석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일 터였다.“한국의 유명한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록돼있지 않지만, 이곳은 신라의 8대 임금인 아달라왕의 무덤입니다. 지름이 20.4m이고, 높이가 5.2m나 되니 꽤 큰 고분이지요. 하지만, 경주 시내에 있는 거대한 왕릉들에 비하면 소박한 규모입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됩니다. 저기 보이는 혼유석(魂遊石·영혼이 쉴 수 있도록 무덤 전면에 놓아둔 돌)은 현대에 들어서 만든 것이고요.”아달라왕릉의 서쪽 바로 옆, 그러니까 세 개의 고분 중 가운데 자리한 것이 신덕왕릉이다. 이 역시 원형봉토분이고, 통일신라시대 고분의 양식인 횡혈식석실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신덕왕릉은 두 차례에 걸쳐 도굴범들의 침입을 받았다. 한 번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1963년이었다. 두 번의 도굴은 이 능이 내부에 긴 연도(羨道·고분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를 두고 정방형의 평면에 할석(깬 돌)을 쌓은 석실분임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었으니, 도굴이란 범죄가 역사적 실체를 확인시킨 웃기고도 슬픈 사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덕왕 통치 시절엔 천재지변이 많았다고 한다. 봄이 한창인 4월에 서리가 내리고 지진이 일어났으며, 잦은 해일과 떼로 몰려든 까치와 까마귀 탓에 백성들이 힘들어 했다는 기록이 바로 그것. 이런 걸 감안하고 생각해보면 신덕왕은 살아있을 때는 고민이 끊이지 않았고, 죽어서도 자신의 유택을 도둑에게 내놓아야 했던 불행한 사람이었다.그렇다면 삼릉의 가장 서편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든 경명왕의 삶은 어땠을까? 신덕왕의 아들인 그는 기울대로 기운 국운을 어렵사리 떠받치고 있던 왕이었다. 과거의 영화는 이미 사라졌고, 당시 신라는 경주 일대 작은 지역만을 다스리는 소방(小邦)으로 전락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궁예와 견훤은 지속적으로 신라를 압박했다.매사냥을 즐겼던 낭만주의자였으나, 망해가던 나라에서 경명왕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아버지 신덕왕 때와 유사한 흉측한 일도 곳곳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벽화 속의 개가 울부짖고, 황룡사 탑의 그림자가 한 달씩이나 거꾸로 섰으며, 메뚜기떼가 훑고 간 들녘은 폐허로 변했다. 비극의 정점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이런 상황이니 선대의 임금들처럼 화려하고 거대한 능을 조성할 여력이 없었다. 이에 대해 경주학연구원 박임관 원장은 “통일신라시대 말기는 지극히 혼란스러웠다. 왕의 재위기간도 짧았다. 권력이 불안정하고,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상황이니 사후의 장례절차도 간소화되었으리라 추측된다. 경명왕릉을 포함한 삼릉 전부가 전대 신라왕들의 고분과 비교해 단순하고 소박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경명왕릉의 봉분 높이는 4.5m, 지름은 15.9m다. 황남대총이 폭 120m, 봉분 높이가 23m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그 작은 규모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게다가 `삼국유사` 등에서는 “경명왕은 황복사 북쪽에서 장사 지내 화장한 후 그 뼈를 성등잉산(省等仍山) 서쪽에 뿌렸다”고 적혀 있어 역사학계에서는 `경명왕릉에 묻힌 사람이 과연 경명왕이 맞는가`라는 논란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박임관 원장은 아래와 같은 말로 `삼릉 속 매장자의 진위논쟁`을 부연했다. “문헌상으로 볼 때는 삼릉이 누구의 무덤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17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경주의 박씨와 김씨 가문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왕릉을 지정했고, 그것에 대한 정밀한 비판과 검증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냉정함과 논리를 갖춘 사학자들의 비판적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이 같은 박 원장의 지적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한 해 경주를 찾는 관광객은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을 포함해 대략 1천200만 명. 엄청난 숫자다. 이들에게 신라 역사와 고분에 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체험적 역사학습을 통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의 비껴갈 수 없는 책무이기 때문이다.삼릉에서 200m쯤 걷다보면 신라 55대 경애왕의 능과 만날 수 있다. 신덕왕의 아들이자 경명왕의 동생이었던 경애왕 또한 아버지와 형처럼 불행했던 삶을 살았다. 당시 한반도에서 새로운 권력자로 커가던 왕건에게 굴종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며 나라를 지키고자 했으나, 결국 후백제의 실력자 견훤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함께 있던 왕비와 후궁들은 후백제군에게 능욕까지 당했다고 전해진다.삼릉을 돌아보고 내리는 빗속을 걸어 계곡에 이르렀다. 조그만 새 몇 마리가 흐린 하늘로 날아올랐다. 신라왕조의 마지막 시대를 살다간 불행했던 왕들의 넋이 환생한 건 아니었을까? 詩가 떠오르는 삼릉계곡 솔숲비오거나 자욱히 안개 낀 몽환적 풍경사진작가들에 사랑 받는 보물같은 곳본격적인 더위와 장마가 몰려온다는 뉴스가 아침잠을 깨운 날. 경주 삼불사를 뒤로 하고 울창한 소나무숲에 이르렀다. 이른바 삼릉계곡.훌쩍 큰 키로 우아하게 늘어선 소나무들이 푸른 바람을 만나 천 년 전 목소리 그대로 아기처럼 울고 있었다. 여름날이 선물한 고적한 풍경. 그 짙고 푸른 정물화 속에서 신라와 신라 사람들을 각별히 흠모한 미당 서정주(1915~2000)의 `붉디붉은` 시 한 편을 떠올렸다.“속눈썹이 기이다란 계집애의 연령은/댕기 기이다란/은댕기 기이다란/瓦家千年(와가천년)의 은하 물굽이/푸르게만 푸르게만 두터워갔다/어느 바람 속에서도 부끄러운 열매처럼 부끄러운 계집애/靑蛇(청사), 뽕나무에 오디개 먹은 청사/천둥 먹음은/번갯불 먹음은/소나기 먹음은/검푸른 하늘가에 초롱불 달고/고요히 吐血(토혈)하며 소리 없이 죽어갔다는 淑(숙)은/유채 손톱이 아름다운 계집이었다 한다.”일상에 매몰돼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중·고교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시 한 편쯤 낭송하게 만드는 힘이 삼릉 솔숲에는 존재한다.소리 없이 비가 오거나, 자욱한 안개가 부드러운 커튼처럼 숲을 감싸는 날이면 삼릉 일대 소나무는 잃어버린 꿈의 은유가 된다. 그 숲길을 걷는 늙은 사내들은 폐병에 걸려 하얀 손수건을 피로 적시던 `숙`이란 이름의 첫사랑을 아프게 떠올린다.사진작가들의 촬영지로도 명성이 자자한 삼릉계곡과 소나무숲은 경주가 자긍심 속에서 아끼는 보물 중 하나다. 전세계 음악팬에게 사랑받는 영국 가수 엘튼 존(69)은 삼릉 소나무를 찍은 한국 작가의 사진을 2천만 원에 구입하기도 했다. 그가 만약 경주를 찾는다면, 신라의 고분과 불국사 등의 고찰(古刹)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나무와 풀을 허투루 보지 않는 예민한 예술가들은 말한다. “수명이 다한 소나무들은 솔방울을 많이 매달고 있다. 왜냐고? 소나무는 자신이 죽을 때를 안다. 그 시기가 되면 종족보존의 본능이 발동하는 것이다.”삼릉 일대 소나무들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터. 그들이 지켜본 신라 천년의 역사가 무언의 목소리로 술렁이는 삼릉계속 솔숲은 여전히 비밀스럽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