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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느리게 걷는, 문경 돌리네

문경에는 옛 지명이 돌실 또는 도리실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동그랗게 돈다는 뜻으로 마치 접시 모양처럼 지반이 옴폭 내려앉은 지형이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카르스트 습지’ 지형이다. 현재는 굴봉산 둘레길과 생태탐방로가 형성되어 있고 전망대와 홍보관과 데크 탐방로가 놓여 있어 특이지형과 생태 환경을 가까이서 오감으로 느끼고자 방문하는 사람들이 찾아든다. 딱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에 좋은 장소다.카르스트라는 명칭은 아드리아 연안의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에 있는 카르스트 지역의 전형적인 암석 지대를 연구하면서 사용된 용어로, 석회암지대가 빗물이나 산화탄소가 함유된 지하수로 인해 녹아내리면서 형성된 독특한 지형을 뜻한다.석회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탄산칼슘이 많이 내포되어 있어 물에 더 빨리 용식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주로 깊은 고랑이 패여 울퉁불퉁한 지형을 형성하는 카렌(라피에) 지형과 접시 모양의 돌리네 지형과 그 아래의 종유석 동굴 등이 발달한다.돌리네·우발라·폴리에·카렌(라피에)·석회암 단구·석회동굴 등 다양한 지형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돌리네는 동그란 싱크홀과 같은 지형을 말하며 사발형·접시형·깔대기형 등이 있다. 우발라는 여러 개의 돌리네가 연결되어 분지 지형을 만든 것으로 형태가 다양하다. 폴리에는 우발라가 확장되어 거대 평지 형태로 드러나는데, 대체로 돌리네가 경작지로 활용되면서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라피에는 석회암지대에서 녹지 않고 남겨져 있는 암석 돌출부를 이르는 말이며 석회동굴은 돌리네에 형성된 싱크홀에서 유입된 물이 동굴 형태를 이루며 녹아내린 석회암지대이다. 고수동굴·성유굴·환선굴 등 오래전부터 관광지로서 사랑받아 온 지형이기도 하다.카르스트 지형은 석회암의 특성상 물에 잘 녹고 물 빠짐이 좋아 자연적으로 습지가 형성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투수층이 물이 빠지는 속도를 늦춰 습지가 형성되기도 한다.한국에서는 강원도 평창·정선·삼척·영월 등 일대, 충북 제천과 단양, 경북 문경 그리고 북한의 황해도 서흥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한은 강원도에서 남서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계 옥천지향사를 중심으로 나타나며, 북한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일대의 캄브리아계 평남지향사에 집중적으로 발달되어 있다.람사르 습지 후보지로 알려진 문경 산북면 굴봉산 돌리네 지형은 대략 해발 200미터 지점에 있는 카르스트 습지 지형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접시 모양의 단독 분지 지형을 띄는데, 지표면의 하천보다는 지하수가 잘 형성되어 있다. 장마가 지면 굴봉산 돌리네 지형에 내렸던 빗물이나 모여있던 지하수가 세 지점에서 지표면으로 삼출되어 습지의 저수지로 유입된다. 이곳의 토양은 모래의 함량이 높고 암회색 내지는 흑색의 토양이 발달하여 물 빠짐이 좋으나 지하 30~60미터 아래에는 테라로사(붉은 흙)가 불투수층을 형성하고 있어 연중 2개월 정도는 저수지로 물을 유입할 수 있다.카르스트 지형임에도 물웅덩이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봄이면 양서류가 울고 야생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낙지다리·으아리 등과 같은 희귀 식물과 층층나무·물푸레나무가 어울린다. 가을에는 억새와 버드나무의 조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 또한 수달·담비·붉은배새매 등과 같은 희귀 동물을 포함해 약 700종이 넘는 생물의 생명수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현재는 해설사에게 산중의 생태 습지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문경 호계면 일대에도 석회동굴과 카렌·돌리네·우발라 등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이 드러난다. 선암리 일대에서만 11기의 돌리네가 발견될 정도로 돌리네 지형이 집중되어 있으며, 사발형·접시형·깔대기형 등 여러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부곡리 일대에서는 돌리네·우발라와 숫굴·암굴 등과 같은 석회동굴도 발견되었다. 숫굴은 부곡리 굴넘재의 돌리네에서 유입된 지표수가 원인으로 추정되며, 암굴은 식수로도 활용되던 곳으로 굴 안에는 호수도 형성되어 있다. 지천리와 우로리 일대에서는 길쭉한 우발라와 우로굴이 발견되었다.또한 문경대학교에서는 카렌(라피에) 지형의 일부를 남겨두어 빗물에 용식된 울퉁불퉁하고 복잡한 모양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작년에는 가은고 지리동아리에서 가은읍 야산의 카르스트 지형인 우발라와 라피에 군락을 발견하기도 했다.문경은 카르스트 지형 중에서도 국내 유일의 독특한 돌리네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며,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도 집중적으로 분포된 곳이다. 다양한 동·식물이 많아 계절마다 다른 생태 환경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무엇보다도 걷기 좋은 탐방로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자연을 마음에 담을 기회를 제공한다. 오늘도 자연을 둘러보며 느리게 걷기에 여념이 없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10-16

연대와 위로의 시공간 ‘무코리타’에서

무더운 여름,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수산물 가공공장으로 청년 야마다가 들어선다. 오징어 배를 따고, 말끔히 손질을 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그에게 사장은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는 법이야”라는 말을 건네며 무코리타 연립주택을 소개하고 평화로우며 무료한 이곳 마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살다보면 쌓여가는 짐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또 다른 짐을 만들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된다.잊고 싶었던 그곳의 인연이 다시 이곳으로 소환되고,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들과의 사연이 연립주택의 현관문을 넘나든다. 어느 날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는 한줌의 유골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으로 오게된다. 유골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 잊는다는건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리하여 그곳으로 돌려 보내는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당연히 그것에는 절차가 따르고 그 절차에 따른 남아 있는 이들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보여준다.수산물 가공공장 사장은 야마다에게 1년, 5년, 10년을 살다보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채우고 비워나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영화의 무대가 되고 있는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입주민들에겐 무엇인가를 채우는 삶보다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듯한 결핍의 삶을 살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이 펼쳐질 때면, 결핍이 아니라 집착이며, 쉽게 떠나 보내지 못하는 감정을 담아 둔 유골함 같은 삶이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방마다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불교의 시간 개념에 찰나(刹那)와 겁(劫)이 있다. 찰나는 극히 짧은 시간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이뤄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75분의 1초, 0.013초의 상상하기 힘든 짧은 시간이다. 겁은 한 세계가 만들어져 존속하다 파괴돼 무(無)로 돌아가는 한 주기를 말한다. 찰나와 겁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지극히 짧은 순간과 인간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무코리타(牟呼栗多)는 이러한 찰나와 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시간이다. 30분의 1일, 48분이라는 길이를 가지며, 낮이 밤으로 바뀌는 시간, 노을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그 어디쯤의 시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 바로 ‘강변의 무코리타’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하루 하루 성실히 일하다 보면 또 다음 달이 오고 그러다 내년이 오고 순식간에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지”라고 야마다가 일하는 수산물 가공공장 사장은 말한다. 수없이 많은 찰나의 순간으로 채워지는 무코리타의 시간. 10년쯤이면 잊혀질 것은 잊혀진데로 비울 것은 비우고 또 다시 새로운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순환의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묻는 야마다의 질문에 “하지만 그 의미는 10년을 경험해보지 않곤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이라고 대답한다.무코리타 연립주택엔 모두 죽음이라는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빛과 어둠이 함께하는 시간, 즉 삶과 죽음이 서로 교차하는 그 시간의 어디쯤 물리적 공간으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이 존재한다. 결핍의 공간에 결핍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여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간다.야마다는 첫 월급으로 밥을 짓고, 공장에서 얻어 온 오징어 젓갈로 밥을 먹는다. 혼자 시작된 밥상엔 이웃의 침범(?)으로 젓가락이 놓이고 그가 싸들고 온 반찬으로 조촐한 식탁은 정서적 풍성함이 쌓여간다. 채우고 비우는 식사의 과정처럼 각자의 상처와 상실의 감정들이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치유되어 간다.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중심에 두고서 살아가야하는 의미를 말한다. 특별할 것없는 일상과 단촐한 밥상, 반복되는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 속에서 찰나는 채워지고 1년, 5년, 10년의 무코리타가 흘러갈 것이다. 무코리타 연립주택에서 무코리타의 시간은 흘러가고, 이별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 절망은 어떻게 극복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강변의 무코리타’에서./김규형 (주)Engine42대표

2023-10-16

모두 대통령 책임이다

김진국 고문 직접 당해봐야 아는 사람은 하수(下手)다. 당하고도 모르는 사람은 하지하수(下之下手)다. 지난주 서울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예상했던 결과다. 보수 지지자들도 “용산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안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13일 한국갤럽 조사를 봐도 내년 총선에서 정부 견제론(48%)이 정부 지원론(39%)보다 9%포인트 더 많다.그런데도 국민의힘 선거 전략이나 인사청문회 대응은 따로 놀았다. 자신만만한 것을 넘어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런 참사를 예견하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그렇지만 사후 수습이라도 제대로 해, 하지하수는 면해야 하지 않나.서울의 한 구청장 선거에 불과하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던진 충격은 전국선거급이다. 서울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여야가 모두 나서 전국적 선거로 키웠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하나의 시험대로 여겼다. 윤석열 정부를 일차 평가하는 기회이기도 했다.구청장 선거지만 진교훈 후보나 김태우 후보는 뒷전이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결이었다. 앞장서 의미를 키운 건 윤 대통령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김태우 후보가 유죄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잃으면서 치러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관으로서 민간인 불법 사찰, 여권 인사 비리 묵인 의혹 등을 폭로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윤 대통령은 김 후보를 사면·복권하고, 사실상 강서구청장 후보로 낙점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그를 공천하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보궐선거를 앞두고 복권한 그의 의도를 국민의힘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공익 제보에 가까운 김 후보의 폭로 야기된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려는 윤 대통령의 뜻이 충분히 이해된다.하지만, 정치에서 정답과 오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을 떠나서는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독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지도자들에게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라고 한 이유다. 강서구는 국민의힘에 불리한 ‘험지(險地)’라고 한다. 그러나 역대 선거를 따져보면 험지라는 말로 털어버릴 문제는 아니다. 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46.97%, 이재명 후보는 49.17%였다. 이재명 후보가 이기기는 했지만 2.2%에 불과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56.09%를 얻어 송영길 민주당 후보(42.10%)를 14% 차이로, 김태우 구청장 후보는 51.3%로 김승현 민주당 후보(48.69%)를 2.61% 차이로 이긴 곳이다.이번 득표율, 56.25%(민주당)대 39.19%(국민의힘)는 20년 4월 21대 총선과 비슷하다. 당시 강서 갑·을구를 합친 득표율은 민주당이 55.40%,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39.95%였다. 그때 서울 4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41석,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8석을 차지했다. 경기도에서는 51석 대 7석, 인천에서는 11석 대 1석으로 수도권에서만 103석 대 16석으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강서구가 험지건 아니건, 수도권 민심이 21대 총선과 비슷하다는 건 확인됐다. 그대로 대입한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지역구 의석의 44.3%인 서울·인천·경기에서 103 대 16에 가깝게 국민의힘이 참패한다는 말이다. 그 뒷일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레임덕이 시작되고,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된다. 단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가장 힘이 세다. 그런데도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가로막혀 쩔쩔맸다. 총선 참패 이후의 모습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뒤늦게 후회했다. 중앙일보 인터뷰를 보면 측근들의 비리를 살피지 못했다고 한다. 당 지도부가 만나려고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강하고,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그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 꼬이게 된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15

“커피 나오셨습니다”

커피 한 잔 주문한다아메리카노 나오셨어요나보다 지체 높으신 커피를 마신다와플도 나오셨습니다공손한 목소리다커피숍의 원목 의자는나이테가 자란다덜 마신 커피를 놓고 품위 있게 일어서면드디어 난 화가가 된다고갱님, 감사합니다―이송희,‘현대인의 화법’전문 (이름의 고고학, 2014) 한글날에 즈음하여 이송희 시인(1976년~)의 의미심장한 시 한 편을 만난다. 제목은‘현대인의 화법’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커피가 나오실 수는 없기에 첫수부터 어법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계속 이렇게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표현도 맞는 표현으로 용인될지 모른다. 말을 바르게 만들려면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언어를 탓하지 말고 우리가 사는 모습과 환경을 돌아보는 게 먼저다.”라고‘표준국어대사전 바로잡기’에 나선 박일환 시인의 인터뷰 내용(2023년10월6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이 겹쳐오는 순간이다.이송희 시인이 직접 자서에서 밝힌 것처럼 2003년 등단 이후, 여전히 시조를 쓰고 있는 젊은 시인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대시조,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현재의 언어로 쓴다. 시조를 고지식한 편견에 가두는 독자들의 인식을 깨고 있는 실험적인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시인이 말하는‘변화된 언어’란 무엇일까. 정격의 양식 안에서 새 시대의 담론을 담아내는 것이 정형시의 숙명이라면 이 시가 견지하는 것은 현대인의 화법이다. 시의 첫 구절이 그리는 풍경은 다수의 현대인의 익숙한 일상을 보여준다. 어쩌면 아침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신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다. 가볍게 주문한 커피는 등장부터 존엄하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어요” 눈치챘을 테지만 이 시는 어법에 맞지 않는 한국어 높임말 사용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나보다 지체 높으신 커피를 마신다” 커피의 지체만 높아진 것은 아니다. “와플도 나오셨습니다” 거기다 “공손한 목소리다”이송희 시인의 시대 비판적 풍자는 비단 잘못된 언어 사용만이 아니다. 물신주의가 만연한 현 세태 속 돈의 위력을 풍자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풍자의 날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명철 평론가의 표현처럼 “자기풍자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해설을 요즘 신조어인 ‘복붙임(복사해서 붙이기)’을 해보면, “돈이면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사회, 돈으로 교환되는 대상은 이제 돈의 가치가 얹어지면서 돈이 활성(活性)을 띤 위력을 지닌 존경의 대상으로 둔갑한다. 심지어 “드디어 난 화가가 된다. 고갱님, 감사합니다.”처럼 “그 둔갑의 대상은 예술의 가치로 치환되는데, 즉 ‘고객(客)’+‘님’= ‘고갱(P.Gauguin,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 ‘님’으로 자음접변 음운 현상을 통해 그 실체가 보란 듯이 전도되고 있다.”한글날을 앞두고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등교했다. 글로벌학교의 특성상 교내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와 한국어 중 어떤 언어가 편하냐는 질문에 한 학생의 말 또한 이 시만큼이나 풍자적이다. “저는 0.5개 국어를 쓰는 것 같아요, 한국어도 영어도 온전치 못한 것 같아요.” 순간 이 학생의 말이 현시대의 전체를 상징하는 부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희정 시인 사실 그것 외에 언어의 왜곡은 더 심각하다. 심지어 신조어 사전이 생길 만큼 젊은 세대들의 줄임말이나 특정한 조어법을 통한 언어가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대화 중에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 접두어 ‘개’는 맛있을 뿐만 아니라 “개 이쁨” 등 이쁘기까지 하다니. 불과 한 세대만 흘러도 어쩌면 사라지거나 변해 버린 언어로 인해 세종의‘나랏말쌈은 듕국’이 아닌 ‘지금과 달라’ 그 어원을 밝히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이송희 시인이 말하는 ‘변화된 언어’란 바로 이러한 현 세태의 안타까움을 외면하지 않고 적실히 담아낸 지금 이 자리의 뼈 아픈 사회적 언어이다. 서정시의 슬하에 풍자의 이면이 짙다.“커피숍의 원목 의자는 나이테가 자란다”

2023-10-15

인류는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됐을까?

박진홍 부국장 인류는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됐을까?600만 년 전 유인원에서 분기된 후 직립보행으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두뇌가 발달했으나 불과 수십만 년 전까지 조잡한 석기를 사용했던 인류.우연히 불을 이용하면서 생존 가능성은 높였으나 여전히 맹수들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인류.별 볼일 없던 인류가 갑자기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급부상한 이유가 무엇일까?현대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때문으로 보고 있다. 7만 년 전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네안데르탈인, 동아시아에는 데니소바인이 살고 있는 등 당시 지구에는 여러 종의 인류가 존재했다. 동아프리카에는 치아와 턱이 작아지고 뇌용량도 현대인과 비슷한 현생인류 사피엔스종이 살고 있었다.이때쯤 사피엔스는 아라비아 반도와 유라시아 전체로 번져 나가는 동시에 인지혁명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지혁명은 우연히 인류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뇌의 내부 배선이 바뀌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즉 인류가 상상력울 가지면서 전설과 신화, 종교가 등장했고 더 큰 집단과 더 원활한 인간 협력관계를 만들게 된 것.또 언어 사용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 취득과 저장, 소통이 이뤄지면서 인류의 두뇌는 더욱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피엔스는 배, 활과 화살, 바늘, 예술품, 장신구를 만들어냈고 상업과 장거리 교역, 문화, 교육, 신념 등도 창조한다. 하지만 인류의 인지혁명은 호주대륙 등의 동물들에게는 큰 참극이었다. 4만5천년전 인류가 바다를 건너 호주에 정착한 후 대형 캥거루(2m)와 왕도마뱀(5m) 등 대형 동물 24종 가운데 23종이 인간의 사냥에 의해 모두 멸종했다. 인도네시아와 북극해 랭켈섬, 뉴질랜드, 아메리카 대륙도 상황은 비슷했다.세월이 흘러 기원전 1만년 전후.인류는 터키 동부와 이란 서부지방 등지에서 농업과 가축을 키우는 농업혁명을 맞게 된다.밀과 완두콩, 올리브 나무, 포도를 재배했고 염소는 BC 9천년, 말은 BC 4천년부터 키우기 시작했다. 식량 생산이 급증하면서 인구도 팽창해 BC 1만년에는 인류가 500만∼800만명에 불과했으나 AD 1년에는 농부만 2억5천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커진 부락이 도시가 되고 지배 엘리트층이 생기면서 다시 국가와 제국으로 발전한다.BC 8500년 터키 여리고의 주민 수는 수백명에 불과했으나 BC 5천년 메스포타미아에는 수만명 규모 도시가 생기기 시작한다. 효율적인 작물 재배를 위해 달력이 생기고 법과 정치체제 그리고 문자와 숫자가 발명된다.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면서 유기적으로 사람들의 인지 능력도 높아진다. 이로써 인류는 ‘역사의 세계’로 진입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하지만 농업혁명 역시 지구의 생태계에 많은 비극을 초래했다.기득권층은 모든 사회에서 법과 종교를 이용, 피지배층을 지배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가축에서 비롯된 홍역, 결핵, 천연두, 백일해, 인플루엔자 등 전염병들도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또 과거 599만년 동안 나무에 기어 오르고 동물을 뒤쫓는 등 수렵채집 생활에 익숙했던 인류가, 농사일을 하다 보니 디스크탈출증과 관절염, 탈장 등 새로운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가축들도 점점 비참해져 현대의 닭은 생후 3개월만에, 수송아지는 4개월 만에, 수퇘지는 6개월만에 인류의 식량이 되기 위해 모두 도살된다.모두 꼼짝달싹 못하는 비좁은 공간에서 살만 찌워지는 고통을 겪다 자연수명의 3%도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젖소의 경우 임신과 출산을 서너 달 간격으로 반복하다 결국 생후 5년만에 도살된다.현대과학은 ‘현재 지구의 최고 절대자가 된 인류에게는 은밀한 비밀이 두 가지 있다’고 말한다.첫째는 인류는 동물과 다른 영적인 존재로 여기고 싶지만, 여전히 ‘거대 영장류의 한 과에 불과하다’는 것.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 차이는 1.6%다.또다른 비밀은 인류에게는 진화 과정에서 ‘문명화되지 못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 등 형제 자매가 많았다’.우리 모두는 약 250만년전 오스랄로피테쿠스가 공동조상이지만,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진화하던 네안데르탈인 등이 어느 시기 모두 멸종해 버렸다.사피엔스는 대략 30만년전에 출현했다.인류 역사가 이러한데 과연 우리 사피엔스종은 언제까지 멸종하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을까?

2023-10-15

선거와 반면교사

우정구 논설위원 반면교사(反面敎師)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나쁜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다면 그 사람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사업을 성공시켜간다는 것이다.비슷한 말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실패를 통해 자신의 행동 양식을 개선해 나갈 때 쓰는 말이다. 반면교사는 부정적 대상을 가르키는 말이나 타산지석은 꼭 그런 게 아니란 점에서 뉘앙스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교훈으로 삼아 나에게 도움이 되게 한다는 뜻에서 의미는 같다.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를 놓고 국민의힘 내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야당에 큰 격차로 패배하자 안팎에서 쏟아지는 강한 비판으로 임명직 당직자들이 전원 사퇴하는 등 혼돈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파격적 쇄신이 없으면 내년 4월 총선도 어려울 것이란 비판에 당이 어떤 대책을 강구할지 궁금하다.홍준표 대구시장은 보선 결과를 두고 “파천황(破天荒)의 변화 없이는 내년 총선도 어렵다”고 말했다. 파천황은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의 상태를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뜻인데, 홍 시장의 파천황 표현은 천지개벽에 버금갈 변화를 만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정치권의 승패를 두고 흔히 병가지상사란 말로 서로 위안을 삼을 때가 많으나 정치는 승리자의 몫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면 현실 정치에서 우위는 필수다.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했다. 모든 게 교훈이 된다는 말이다. 여당이 쏟아지는 비판을 어떻게 수용하고 자기 혁신의 도구로 삼을지 모르나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내년 선거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15

中企 탄소중립 역량 높일 대책 서둘러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및 탄소중립 대응현황 조사에 따르면 2026년부터 시행되는 EU CBAM에 대해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은 “잘모른다”는 응답을 했다. EU쪽으로 수출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도 절반가량은 CBAM에 대한 대응 방안이 없는 것으로 응답해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대응력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그에 대한 대응책이 절실한 것으로 분석된다.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가 규제가 강한 국가에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할 경우 적용하는 관세다. 유럽연합이 가장 앞서 이 제도 시행에 나섰고 2026년부터 EU로 수출되는 상품은 CBAM 적용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우리나라도 문재인 대통령 시절인 2020년, 지구촌의 기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의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로 하는 탄소 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지구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글로벌 추세이나 이로 인한 기업의 부담은 상당하다. 특히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일수록 그 부담은 더 가중해질 수밖에 없다.최근 한국은행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6% 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충격적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고탄소산업 비중이 높은 부울경 지역의 성장률 하락폭은 1.5% 포인트를 넘어설 것이 예상된다고 했다.탄소중립 이행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단적으로 적시한 수치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부담은 따지고 보면 기업의 몫이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책이 반드시 필요하다.지난해 기술보증기금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탄소중립과 관련해 “준비가 돼 있다”고 답한 업체는 3.2%에 불과했다. 중기일수록 탄소중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설비전환에 필요한 자금부족 등으로 사실상 탄소중립에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설비전환에 따른 자금지원, 대기업과의 상생 협력방안 모색 등 정부가 앞장서 해결할 과제가 태산처럼 많다. 하루가 바쁘다.

2023-10-15

공동 학술대회 참석 후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해마다 가을이면 러시아학 전공자들은 공동 학술대회를 기다린다. 6·25 사변과 냉전, 베트남 파병과 1·21사건 그리고 10월 유신 같은 사건을 경험한 한국에서 러시아 관련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고, 1992년 11월 19일 문화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 러시아 연구는 난맥상 자체였다. 연구를 위한 도서(圖書)를 구하는 게 불가능했고, 전문가 양성은 언감생심이었으니 말이다.1990년대 이전 러시아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국내에서 연구하면서 해외의 지인을 통해 서적을 구하는 것이고, 그 둘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나 분단 도이칠란트 혹은 영국이 선호된 나라들이었다. 러시아학 전문가들은 크게는 국내파와 유학파, 유학파 가운데서도 미국파와 유럽파로 나뉜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그런데 33년 전 한러 수교로 오늘날 러시아학 전공자들 상당수는 러시아 유학파다. 얼마나 심도 있는 연구를 했는지, 하는 문제는 논문이나 학회에서 판가름 난다. 글이나 말은 연구자를 가장 잘 알려주는 도구다. 셰익스피어가 장막 비극 ‘햄릿’(1601)에서 일갈한 것처럼 “간결함은 지혜의 요체”이기 때문에 말하려는 핵심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연구자의 기본적인 덕목 가운데 첫 번째일 것이다.10월 14일 러시아학 관련 4개 공동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격변의 러시아-유라시아와 한국’이란 제목 아래 ‘러시아 어문학’과 ‘문화-역사’ 그리고 ‘사회과학’의 네 분야에서 온종일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러시아 희곡 연구자인 나는 생소한 ‘사회과학’ 분과 발표를 신청했다. 그리고 발표를 위해서 특별히 파워포인트 자료도 준비하여 열차 편으로 상경했다.‘동북아시아평화경제공동체 구상’이 나의 발표 제목이다. 21세기 대표적인 세계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2004)과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 그리고 그들의 사상적 지주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1980) 같은 서책에서 단서를 얻은 발표문이다. 요약하자면, 남북한이 평화를 매개로 공존하여 마침내 통일 한국을 만들고, 이것에 기초하여 동북아에 새로운 평화경제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구상이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나온 ‘동북아 허브’를 떠올리는 독자는 복 많이 받으시길!)유럽연합(유럽), 아프리카연합(아프리카), 아세안(동남아시아), 나프타(북미), 메로코수르(남미)가 입증하는 것처럼 블록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미-중-일-러 4강이 충돌하는 위험지대 동북아에는 이런 공동체가 없다. 그리고 공동체를 추동할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신과 의혹으로 얼룩진 중-러, 중-일, 러-일 관계 때문이다. 또한 남북한의 적대적 공존 역시 지역의 불화와 대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나의 구상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몽환적이라 비웃는 사람에게 나는 말한다. “세계를 바꾸는 것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몽상가나 낭만주의자”라고. 별을 찾아 밤하늘을 볼 때다.

2023-10-15

의대정원확대 ‘비수도권·필수의료’에 집중을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1천명선까지 늘리는 방안을 직접 발표한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폭을 놓고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어들었던 351명을 다시 늘리는 방안 △정원이 적은 국립대를 중심으로 521명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왔지만, 실제로는 확대 폭이 1천명을 넘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올들어 의료계와 시민사회, 전문가들과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장기간 논의를 해왔다. 대한의사협회와는 14차례 회의를 했고, 지난 8월에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 산하에 한국소비자연맹 등이 참여하는 전문위원회를 가동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여론을 수렴했다.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작년기준 인구 1천 명당 2.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수준이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떨어진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의대 정원은 지난 2000년 10% 줄어든 뒤 2006년 이후 3천58명으로 묶여 있다.의사단체는 의대 대폭증원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 비수도권 지자체의 경우 의사부족으로 인한 의료체계 위기상황은 심각하다. 대구지역에서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응급 환자가 입원할 곳을 못 찾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헤매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소아과 전문의 부족으로 오전 9시만 되면 소아과 병원의 하루 예약이 끝나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전국 소아과 700여 곳이 사라졌다는 통계도 있다.의대정원 확대로 우려되는 점은, ‘의대진학 열풍’이다. 상위권 수험생들의 의대쏠림과 주요대학 이공계 학생들의 의대진학을 위한 자퇴·휴학이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 올해만 해도 서울대 신입생 중 휴학생이 418명이나 되는데 상당수가 의대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려면 도(道)단위 지자체 병원이나 필수의료(소아과·외과)쪽의 의사를 집중보강하는 방향으로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2023-10-15

미래를 여는 혁신의 길

정상철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꿈은 도전을 낳고 도전은 열매를 얻는다. 삶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고 자기창조다. 인류의 역사나 기업의 생리를 보면 지속적인 미래를 준비하고 도전하지 않은 것은 중도에 멈춤이 있을 뿐이다. 미래를 여는 혁신의 길은 현재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내외 현황과 변화를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른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래로 나갈 방향에 맞는 전략과 경영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운영체계와 실행력이 성공의 관건이 된다. 이를 혁신경영이라 한다. 혁신경영 성공 요건은 무엇일까. 첫째는 리더십이다. 혁신은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 조직 수장이 혁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지속적인 스폰서십이 성공의 우선조건이다. 우화에 의하면,‘우리 마음 속에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먹이 주는 쪽이 이긴다’가 답이다. 균형 있는 조직운영과 리더십이 실패를 막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열린 의사소통이다. 혈관이 막히면 고혈압과 동맥경화가 생기듯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되는 기업문화가 되어야 효율적인 개선활동이 될 것이다. 셋째, 자원투자이다. 혁신활동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예산, 시간, 인력, 기술적 지원이 되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원가절감 방침 아래 필요 투자를 못하고 타이밍을 놓치면 여러 부작용이 발생되는 것이다. 셋째는 조직의 역량강화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혁신의 수준은 조직원의 능력이 결정 짓는 것이다. 내부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과 세대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제공해야 한다. 넷째, 혁신 방법론이다. 혁신의 본질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기업은 대내외 상황변화와 앞서가는 방향 설정, 전략과 타이밍에 맞게 문제를 풀 수 있는 혁신방법론으로 진화 발전하지 않으면 TOP의 관심에서 멀어져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활동인프라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시간, 손, 동기부여 등 개선인프라를 갖추지 못하면 우물가에 숭늉을 바라는 격이다. 기업활동에 안전은 기본이나 안전 행정이 지나쳐 문제의 본질을 못 본다면 기업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올 수 있다. 필자는 P사를 10여 년 컨설팅 하면서 생긴 꿈은 P웨이를 완성하는 것이다. 일의 속성과 설비 특성, 생산프로세스의 특징을 이해하고 전략에 따라 변해가는 생산조건의 문제개선을 위해 혁신의 Tools도 진화 발전해나가야 한다. 사회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혁신의 가치인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사회봉사의 꿈이 있다. 조직에 혁신을 넣으면 건강한 조직,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힘이 있다. 금년 10월부터 미래혁신경영연구소란 1인 기업을 설립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실행으로 얻는 지식, 경험을 건강한 사회, 부강한 나라가 되는 데 일조를 하고자 한다. 미래를 여는 혁신은 기업의 백 년을 보장하여야 하고 그것은 자사에 맞는 혁신을 잘 선택해서 진화 발전을 통한 고유의 혁신문화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결국, 기업의 혁신은 TOP의 관심, 지속성과 진화 발전에 있다.

2023-10-15

나도 정의감 중독자일까?

유영희 작가 지난 주 목요일에 동네 문화 행사에 다녀왔다. 지역 문화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정책 토론회였는데, 공공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어 관심이 갔다. 그런데 자료집을 보니, 오프닝 공연 연주자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의 약력은 누락되어 있고, 연주곡의 작곡자도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행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행사를 주관한 기관에 전화하니, 담당자는 그쪽에서 보내준 대로 편집했다며 같은 말만 반복한다. 결국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다음부터는 오류가 없도록 꼼꼼하게 살피겠습니다. 이렇게 답변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하니, 담당자는 내 말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따라한다. 그러자 조금씩 올라오던 감정이 고삐가 풀리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차, 나도 정의감 중독자인가?’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한때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 분노는 정의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안도 슈스케는 ‘정의감 중독 사회’에서 ‘분노’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지만, 정의감에 휩싸여 분노가 폭주하면 정의 실현은 간 데 없고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해롭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감정을 일그러진 정의감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와 다른 사람에게 건전한가?’를 숙고하고, 나아가 관여할 필요가 있는 일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가늠해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여하고 싶다’와 ‘관여할 필요가 있다’를 구분하는 일이다.이런 이야기는 자칫 소시민적 행복을 추구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개인이 관여하기도 어렵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관여할 필요가 있는 일은 해야 하며, 다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분노는 지혜로운 이성으로 대체되고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이것을 참고해서 내 행동과 감정을 점검해보니, 관여할 필요성보다는 평소 오타 하나에도 지나치게 예민한 나의 특성이 작동해서 관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소소한 에피소드지만, 이렇게 올바름을 추구하는 행동의 기저에는 해결을 기다리는 마음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충분했다.여기저기 SNS에 분노를 폭발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정의감에 중독된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의감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도 해야 하지만, 사회 교육 기관에서도 개설하면 좋겠다. 분노하는 내 마음의 기저를 인식하는 연습은 혼자만 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확산될 때 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관여할 필요가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하게 실천할 때 정의는 더 잘 실현된다.

2023-10-15

순우리말을 사랑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올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77년이 된다. 비가 올 듯한 날씨에 베란다 밖으로 태극기를 달고 고개 내밀어 살펴보니 130여 가구의 아파트 벽면에는 다섯 집 정도가 걸려있다. 국경일에 대한 국민 의식이 좀 더 고양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념식 중계방송을 보며 한글날 노래를 3절까지 따라 불러봤다. ‘한글은 우리 자랑이요 문화의 터전이며 생활의 무기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라고 다짐하고 보니 한글과 우리말 사랑의 마음이 잔잔히 일어난다. 한글은 4글자(ㅿㆁㆆㆍ)가 없어지고 자음 14자, 모음 10자 총 24자로 소리가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글자이다.요즈음 글을 읽다 보면 그 의미를 잘 모르는 말들이 있다고 한다. 말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의 휴대폰 대화와 문자전송 등에서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따른 지식으로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유행되기도 하여 우리말에 편입되거나 짧게 유행하고는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특히 한글은 거의 모든 발음을 나타낼 수 있기에 한자어나 외래어로 유입된 지 오래되어 발음이 변하여 고유어로 오인되는 귀화어(歸化語)도 상당히 많다. 우리 고유어라고 생각되는 단어들이 외래어일 수도 있고, 순우리말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명확하게 가려내는 것이 어렵기에 논란도 있다.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한자문화권에 들어있어서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가 많고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기초적인 단어는 일본어로 대체되었으며 또 나라가 발전하며 서방 국가들과 많은 왕래로 영어가 스며들었다. 이러한 언어문화 변화의 다양화로 우리 고유어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고 그 유입을 차단하기란 불가하고 또 적합하지도 않아 다른 방향의 언어순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개념이 들어올 때 한자어를 이용하기 편하고, 고유어를 한문으로 음역(音譯)하면서 그에 비슷한 한자를 쓴 결과 순수한 우리말과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글을 쓰면서 가능한 한 순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함축된 뜻을 전하려면 한자어를 쓰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순우리말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순우리말인 줄 알았던 바람(風)과 가람(江)이 고대 중국어에서 왔고 붓, 쇠도 어원은 중국어에 있다고 하니 놀랍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선조들은 중국대륙에서 옛 문화를 공유한 탓이라고 봐야할까? 감자 고추 대추도 한자어의 변형이며, 심지어 김치도 침채(沈菜)라는 어원을 갖는다는 설도 있다. 이와 반대로 한자어로 오해받는 순우리말에는 근심, 마감, 거문고 등이 있고 생각도 생각(生覺)이 아니란다. 우레도 우뢰(雨雷)가 아닌 순우리말이고 에누리도 일본어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고유어로 착각하는 것에는 가짜, 공부, 귤 그리고 수를 셀 때의 ‘개(個)’도 한자어이고 냄비, 가방은 일본어, 담배와 빵은 포르투갈 언어라고 한다.캘리그라피 공부를 하며 외래어 같은 순우리말 몇 개를 듣고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자연 그대로 변함없는-온세미로’ ‘사랑하는 사이-예그리나’ ‘즐거운 내일-라온하제’ 등 순우리말을 많이 사용하여 꽃가람 흐르는 ‘세상의 중심-가온누리’가 되길 바란다.

2023-10-12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세력들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를 법치주의(法治主義)라고 한다.‘법 우위의 원칙에 따라 모든 국가 작용을 법규범에 따르게 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원리’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대다수 국가들이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진보된 통치원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일 것이다. 국가권력을 단순히 형식적인 법률에 구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실질적인 법 가치에 구속시키는 원리, 즉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고, 모든 법률은 그 헌법의 가치를 실현할 때에만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문재인 좌파정권은 좌경화된 정치세력이 어떻게 법치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그들이 ‘촛불혁명’이라고 찬양하는 대규모 군중시위부터 초법적인 요소가 없지 않았다. 그 세를 휘몰아 대통령을 탄핵하고 좌파정권을 탄생시켰고, 그야말로 민중혁명인 듯 일거에 방송매체를 장악하고,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우파정권 인사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하는 등 정치권의 좌경화 물갈이를 단행했다.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간 격앙된 민심을 지속적으로 붙잡아 놓기 위해서는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가 필수라는 걸 알았다. 그런 전략이 적중해서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해 입법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법(검수완박), 임대차3법, 기업규제3법, 노동3법, 남북관계협력법(대북확성기, 대북전단 금지), 언론 중재법 등을 무소불위로 밀어붙였다. 정권이 바뀌어도 입법부는 조금도 위축되는 법이 없이 사사건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지난 정권과 좌파정당의 비리를 덮기에만 혈안이다.문재인 정권의 사법부 장악은 법치파괴의 결정판이었다. 좌경화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맡았던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에 임명하면서 정부의 눈치를 보는 사법부로 만들었다. 그 좋은 예가 조국 사건, 드루킹 사건 등에 유죄를 선고한 임성근 판사에게 국회가 탄핵을 강행하려 하자, 그것을 이유로 임 판사의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 놓고 국회에 나가서 거짓말까지 하였으니 대한민국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김명수 대법원장 행태에는 사법부의 독립이나 법의 공정성, 사회정의구현 같은 기본적인 법의식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법연구회 출신들로 사법부의 요직을 채우는 등 코드인사를 자행하고, 관례를 무시하고 서울 중앙지법에 김미리 부장판사를 4년 동안 유임시켜 울산시장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기소한지 2년3개월 동안이나 뭉개는 재판지연을 하게 했다. 김명수는 대법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곳곳에 그가 심어놓은 판사들은 여전히 좌편향적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이재명 야당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판사도 김명수가 심어놓은 사람이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 되었음에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도 그런 연유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0-12

DGB금융그룹과 김태오 회장의 행보

홍석봉 대구지사장 DGB대구은행이 창립 56주년을 맞았다. 대구은행은 1967년 최초의 지방은행으로 출범한 후 반세기 넘게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대구은행은 지난 6일 56주년 창립기념일을 맞아 전 직원이 나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지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자축했다. 하지만, 만 56년이 된 대구은행의 안팎 사정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 보인다. 급격한 디지털화 등 금융환경 변화와 금융 당국에서 조여오는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특히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다가 주춤한 시중은행 전환은 선결과제다. 그간 제기됐던 CEO리스크 극복과 각종 일탈행위로 드러난 내부통제 부실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전임 회장에 이어 불거진 CEO의 사법리스크는 DGB금융그룹의 골칫거리다. 어떻게 해서든지 털고 가야 한다. 그리고 증권계좌 불법 개설로 실추된 은행의 신뢰도 빨리 회복해야 한다. 책임 소재를 가려 문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수장이 최근 1주일 사이 DGB금융그룹과 김태오 회장에 대해 연달아 경고장을 날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김 회장의 3연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불거진 연령제한 규정을 바꾸려는 시도와 관련,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며 현 회장이 재선임될 수 없다며 못 박았다.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대구은행의 불법 계좌개설 파문이 시중은행 전환 심사 과정에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구은행이 추진 중인 시중은행 전환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구은행의 불법 계좌개설 파문을 비롯한 비자금 조성, 채용비리, 캄보디아 공무원 뇌물 증여 등 대책과 질의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김태오 회장은 2018년 5월 전임 박인규 회장이 불법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됨에 따라 경영 공백이 생긴 DGB금융지주의 구원투수로 영입됐다. 이후 연임에 성공했고 2년간 대구은행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캄보디아 투자와 관련, 검찰에 기소됐다. 황병우 은행장과 사외이사 선임 등과 관련해서도 말이 나왔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김 회장의 3연임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것이 금융계 안팎의 시각이었다. 여기에 불법 계좌 개설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겼고 회장후보 관련 규범 변경 논의가 일자 김 회장의 3연임 논란이 불거졌다. 금감원은 이참에 DGB금융의 지배구조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주총까지다. 경영안정 등 치적도 있지만 사법리스크와 내부관리 문제는 DGB금융그룹에 큰 부담이다. 금융당국은 경고음을 보내며 DGB금융그룹과 김 회장을 압박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 김 회장의 퇴진과 후임자를 거론하는 분위기다. DGB금융그룹이 하루빨리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 신뢰를 되찾고 시중은행 전환을 성공리에 마무리해 전국적인 은행으로 거듭나는 것이 지역민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다.

2023-10-12

최강 예비군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가 적어 예비군 의존도가 높은 이스라엘의 군병력 운용 방식에는 많은 나라들이 관심이 많다.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스라엘은 약 40만명의 예비군을 긴급 소집했다. 이때 외신들은 “이스라엘처럼 빠르게 예비군을 소집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불가능한 일”이라 평가했다.이스라엘은 인구 780만명으로 상설군은 17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45만명의 예비군을 현역처럼 부릴 수 있어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다.이스라엘 남성의 의무 복무기간은 3년이고 여성은 2년이다. 이들은 함께 입대해 소부대를 편성하고, 복무기간이 끝나면 해당 부대를 통째로 예비군 부대로 전환시킨다.전환된 부대는 이후 약 20년간 매년 소집 훈련을 같이 받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이들은 평생 전우이자 친구로서 전우애를 다지게 된다. 이런 전우애가 막강한 군사력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만이 가진 독특한 예비군 운용방식이자 장점이다.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간 전쟁을 보면서 특별히 눈길이 가는 뉴스 중 하나가 이스라엘 예비군의 귀국 행렬이다. 각국에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던 이스라엘인들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공항으로 속속 집결되는 모습은 참으로 참신하고 이색적이다.로이터 통신은 “프랑스 파리의 국제공항에도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 청년들이 줄을 섰다”고 보도했다.중동에 많은 나라와 적을 하면서도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이스라엘에는 이런 막강한 예비군이 건재하기에 국토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12

‘스페이스 워크’ 기업과 도시의 값진 상생물

포항 환호해맞이공원에 있는 국내 최초·최대 체험형 조형물 스페이스 워크가 개장 2년도 안 돼 체험 방문객 2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1월 첫선을 보인 스페이스 워크는 개장 1년 만에 100만명을 돌파하고, 10월 현재 198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돼 포항의 랜드마크로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독일계 예술가 부부가 철강도시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살려 만든 국내 최초·최대 체험형 스틸트랙 조형물인 스페이스 워크는 마치 우주를 걷는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 관광객의 인기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특히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반짝이는 야경과 맛집 등이 SNS 인증으로 소문나면서 포항의 필수 여행코스로 자리를 잡고 있다. 또 최근에는 각종 촬영지로 부상되는가 하면 JTBC 드라마 주인공의 야간 테이트 장소로 촬영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스페이스 워크가 단시간에 전국적 유명 명소로 떠오르고 포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것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상생 노력한 결과다.공공미술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포스코의 기업시민 정신이 출발점이 됐고, 이를 적극 뒷받침 한 포항시의 지원이 좋은 결과를 만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페이스 워크가 포항의 관광명소화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사례는 외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은 소장 미술품으로도 유명하지만 미술관의 독특한 건축양식이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경우다.스페이스 워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쾌거를 얻으며 이제 전국의 많은 도시들이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해양문화관광도시 포항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 일로 반가운 일이다. 관광객 200만명 돌파가 1천만명 돌파로 이어지고 기업과 도시가 만들어낸 상생물이 제2, 제3의 스페이스 워크 탄생으로 이어져 경북의 관광 및 경제에 큰 힘이 되길 바란다.

2023-10-12

시민여론이 바로 ‘대구신청사 건립’ 해법이다

대구시가 최근 잠정 중단된 시청 신청사 건립 사업에 대한 시민여론 조사(리얼미터 의뢰, 만 18세이상 1천명 대상)를 한 결과, 80.7%가 ‘시 재정이 호전될 때까지 보류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대구시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빚까지 내 시청사를 새로 짓는 것을 대부분 시민이 원치않는 것이다. 신청사 건립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신청사 예정지 및 유휴부지를 매각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답변이 60.5%로 다수의견을 차지했다. 대구시는 앞서 신청사 건립 재원 마련을 위해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부지 15만8천㎡ 가운데 절반 가량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대구시의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여론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꼭 신청사를 지어야 할 경우 유휴부지를 매각해 건립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대구시가 현재 매각 대상으로 꼽는 유휴부지는 성서행정타운과 시청 동인청사 및 주차장이다.신청사 건립 비용은 4천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시는 시 소유 자산과 두류정수장 유휴부지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고, 그 돈으로 시청사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대구시는 “계획대로 진행되면 대구경북신공항 개항 시점에 신청사가 완공될 수 있다”고 밝혔다.대구시의 이러한 계획에 반대하는 ‘시청사 바로세우기 추진위원회(달서구민들로 구성)’는 지난 11일부터 “신청사는 원안대로 건립돼야 한다”며 대시민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추진위가 주장하는 ‘원안’은 옛 두류정수장 전체를 시청사 부지로 지정해 대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대구시는 지금 중구 동인동 청사가 비좁아 경북도청 후적지(문화체육관광부 소유)를 1년 단위로 계약해 ‘산격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산격청사 일대는 곧 도심융합특구로 지정될 계획이어서 대구시로선 신청사 건립시기를 계속 미뤄둘 수 없는 형편이다. 대구시와 달서구는 이번에 발표된 시민여론조사와 시 재정상태를 토대로 해서 대화를 통해 신청사건립 해법을 찾길 바란다.

2023-10-12

소설 ‘달꽃’과 ‘덴동어미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며칠 사이 두 권의 소설을 읽었다. 250쪽 내외 분량의 짧은 소설이라 단숨에 읽을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둘 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에 여성이 주인공인데다 경상도 사투리를 활용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달꽃’은 지난 8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작가 이화리는 경주에서 나고 자라 경주를 문학의 뿌리로 삼은 작가다. 20년 전 잠깐의 인연이 있어 아주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는 사이다.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진 않지만 글이 야물고 내공이 깊다. 신간이 반가웠다. ‘촌년’ 작가라고 밝힌 그녀는 ‘촌이야기’를 ‘촌말’로 쓰겠다고 작가의 말을 대신했다. 작심하고 경주를 배경으로 경주 사투리를 사용하겠다는 거다. 130년 전쯤 전 경주 안강, 현곡 등을 배경으로 경주의 이야기를 경주의 말로 쓴 ‘달꽃’은 여성만의 신체적 생리적 능력을 이야기한다. 터부시되어온 여성의 달거리를 인간의 존엄과 우주적 신성으로 드러냈다. 또한 여성에게만 강요했던 순결 이데올로기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꾸짖고 달래고 어루만진다. 방언학자 이상규는 발문에서 “통상 터부시되어온 달거리와 경상도 방언의 고유성을 오묘하게 복원시킨 소설”이라며 여성들에겐 위안과 감사를 경주인들에겐 토착적 언어의 선물이 될 것이라며 치하했다.일부러 찾아 읽은 ‘덴동어미전’은 경북대 도서관에 소장된 ‘소백산대관록’이라는 필사본 속에 있는 내방가사 ‘화전가’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화전가는 경북의 여성들이 짓고, 필사하고 낭송하는 문학인 내방가사 중 흔한 유형의 가사다. 그 중 ‘경북대본 화전가’는 구성이 독특하고 내용과 묘사가 특히 뛰어나서 문단에서 크게 평가하는 작품이다. ‘소백산대관록’이 1938년 필사되었는데, 작중 1886년(고종 23년) 괴질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도 130여 년전쯤으로 거슬러 짐작할 수 있다. 경북 영주 순흥을 배경으로 ‘덴동어미’라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담의 장편가사이다. 이방집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녀가 네 번의 결혼과 재혼을 반복하며 살아온 굴곡진 이야기를 화전놀이라는 여성들만의 유희 장소에서 수다로 풀어낸 대서사시이다. 이 가사의 배경이 영주 순흥이고 덴동어미가 이곳 출신인데다 화전놀이에 참여한 여성들이 영주 인근에서 결혼하여 온 여성들이라 이 지역의 사투리가 주로 쓰였다. 덴동어미가 30여 년을 예천, 상주, 경주, 울산, 영해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그 지역의 방언들이 사용되기도 했으나 주로 경북 북부지역의 사투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 구사가 예사롭지 않은 박정애 작가 역시 경북 청도 출신이었다.경북 출신의 여성 소설가가 경북의 사투리로 쓴 130여 년 전의 여성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소설은 많이 닮았다. 주인공 여성들의 인생유전이 남달랐음에도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스스로 당당하고 서로 격려하는 장면 또한 닮은꼴이다. 사투리는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내어 읽어야 맛이 사는 글말이다. 나직히 소리내어 읽으니 나는 아예 소설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곳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2023-10-11

경북예술의 미래지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높아지는 하늘과 서늘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고 있다. 푸르던 들판은 차츰 황금물결로 넘실대고, 산자락의 잎새는 가볍게 흔들리며 엷게 물들어가고 있다. 청록을 자랑하던 수풀은 기온의 변화에 하나씩 잎사귀를 떨구거나 변색으로 수런대며 서서히 산하를 물들일 채비다. 이른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번째의 봄’이라는 가을은,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이슬이 번갈아 초목을 쓰다듬고 어우르며 두번째의 봄을 부르고 있다.그렇게 가을이 오면 사람들의 가슴도 설렘과 그리움으로 물들기 마련이다. 화사한 단풍에 젖어 구르몽의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흩날리는 낙엽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가 하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파란 하늘과 오색영롱한 풍엽은 감성의 바다에 빠져들게 하기도 할 것이다. 눈으로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자연의 변주곡이 온갖 상념(想念)의 촉수를 자극하는 10월은, 다채로운 축제와 전시·공연이 많고 각종 행사가 줄을 잇는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대표적인 것이 10월 첫 주부터 열린 경북예술제가 아닐까 싶다. 경북예술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예술을 통해 도민의 정서순화에 이바지하며 새로운 문화 경북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제45회 경북예술제’ 개막식이 지난 6일 경산에서 열렸다.민족의 스승이신 원효대사, 설총선생, 일연선사를 기리는 삼성현(三聖賢)역사문화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경북도 행정부지사, 경산시장 등의 내빈과 경북예술인,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억의 노래가락과 신명난 타북 마당, 경북예술상 시상, 축하공연 등이 진행되는 동안 노을 마저 곱게 피어나 시종 흥겹고 아름다운 예술제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개막식을 시작으로 (사)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 산하의 8개 단체에서는 경산시 및 기타 지역에서 부문별 특색있고 독창적인 전시, 공연 등 한마당 축제의 장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문인협회에서는 경북예술센터에서 ‘2023 경북문인 글과 그림전’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미술협회에서는 아카이브 영상으로 온라인 작품전을 열었는가 하면, 사진과 음악을 비롯해 팝스 연주회, 연극, 국악한마당·무용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전문성을 살린 작품과 공연을 준비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도민들에게 풍부한 볼거리, 예술향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북예술의 정체성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융성의 기틀을 다지는데 일조했다.경북예술인들의 땀과 열정으로 펼치는 경북예술제는 경상북도 최대의 문화축제이다. 장르별, 지역별 작가들의 예술적 가치와 문화적 창조력이 지속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창작활동을 지원하여, 지역 고유의 풍성한 문화유산과 잠재력을 발굴, 접목하여 미래지향적인 21세기 대한민국 예술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정치와 경제, 인구 등의 중앙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지만, 문화와 예술의 기반은 얼마든지 지역성을 살린 특성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문화로 소통하고 예술로 교감하는 일상이 윤택하고 아름답듯이,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이 곧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2023-10-11

아이라는 세상

배문경수필가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주소서. 불러 있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겸허히 서게 해주소서.” -김시천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행복육아’란 주제로 공모전이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백 여 편이 넘는 에세이와 동영상이 그 정도의 숫자로 전달되었다. 나도 자식을 키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의 일부분은 교집합이었고 때론 개성이 있고 대부분의 내용은 유사했다. 단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 키운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엄마가 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렵게 임신을 해도 유산이 되거나 임신이 안 되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공수정을 선택한 모성(母性)이 눈물겨웠다. 엄마가 되고 싶은데 주어지지 않는 한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부부가 좌절할 것인가.오래전 난소가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임신이 안 되어 병원을 찾았고 여러 번의 실패에 병원을 다녀와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때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눈물 흘리던 친구가 생각난다. 서너 명의 여자들이 얼마나 기뻤는지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 아이가 이제는 대학을 다니고 있다. 이처럼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기도는 읽는 내내 나 자신을 낮은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기에 충분했다.한 생명을 잉태해서 열 달이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나 아닌 타자를 몸속에서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더더욱 쌍둥이 엄마가 겪을 힘듦이 글을 통해 잘 나타나 있었다. 하나도 힘들다는데 다둥이인 경우 배수(倍數)로 고난한 시간을 경험했으리라. 워킹맘들의 힘듦 또한 시간의 배분과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이제 낮 시간 국가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키워준다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 숫자가 적어진다.어느 순간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어지고 아이들의 재롱이 사라져감을 느낀다.지금 한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로 가장 빨리 국민이 사라질 나라 1위다. 임신과 육아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큰 책임 앞에서 삶의 사래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신과 육아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큰 책임 앞에서 회피한다. 많은 미혼과 기혼의 남녀가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전대미문의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득을 보겠노라고 얼른 임신을 선택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모성의 힘듦 뿐만아니라 아빠들의 절반의 노력들이 돋보였다. 아내와 아이를 케어하는 내용이 신선하기조차하다. 아내를 위해 본인이 아침을 만들고 아이를 위해 과일을 썰어 둔다는 아빠. 손녀손자를 위해 유치원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마칠 때 차를 기다리며 느끼는 감회는 따뜻했다. 자녀를 키울 때는 몰랐던 애틋함이 묻어났다.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충분히 바쁘다. 그래도 내 자녀를 위해서 손자손녀를 위해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을 배려하는 경우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아이를 키울 때는 바빴고 정신없이 보낸 세월이었다. 이제 다 커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자식을 보는 것은 흐뭇하다. 자식들이 힘들어 할 때 내리사랑으로 손자손녀를 돌봐주는 것도 큰 기쁨이 아닐까. 유명한 음악가이자 시인인 한 분은 외국에 있는 딸을 위해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를 돌봤다. 그 아이를 위해 시집을 냈을 정도이다. 그 사랑의 깊이를 보는 듯하다.에세이와 동영상에서 돌발적이고 신선한 많은 이야기들, 사랑의 문집이었다. 사랑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 일인가. 좀 더 아이들이 세상을 밝힐 아름다운 씨앗이 되도록 배려할 일이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 어린 소녀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공원에 나와서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다. 눈을 비비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맙구나. 고맙구나.우리에게 내일은 바로 아이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 우리들의 미래여!”

2023-10-11

신유일주(辛酉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여덟 번째는 신유(辛酉)이다. 천간(天干)의 신금(庚金)과 지지(地支)의 유금(酉金)은 모두 금(金)의 성질로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이며, 은장도 같은 형상이다. 동물로는 흰 닭이다.신유일주는 완제품 보석처럼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위험한 아름다움이 내재해 있다. 섬세함과 잔인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숙살지기를 품고 있다. 숙살지기는 가을의 쌀쌀한 기운을 말한다. 이는 만물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실제로는 성장에너지를 거두어 저장하는 행위이기에 열매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살리는 기운이기도 하다.건전한 사람이 많고, 자립심이 강하여 혼자 힘으로 성공하는 자수성가형이다. 고난이 찾아와도 굳센 마음으로 이겨내는 힘이 강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고 갈등을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경이 예민하고 냉정하기에 고요하고 평온한 것을 좋아한다.특징으로는 직관력이 발달하고 주관이 확실하여 부지런하며 강직한 성품이다. 자기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면 다 믿어버리는 기질이 있다. 한 번 꽂히면 끝까지 가는 성질 때문에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60갑자에 3대 고집(을묘, 임자, 신유)이 있다. 그 중에서 신유가 가장 강하다. 고집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고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는 성미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조선시대 이광려(1720∼1783)는 벼슬이 참봉에 불과했지만, 덕행과 학식이 높아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백성을 배고픔에서 구하려는 고집과 집념으로 고구마 재배에 뛰어들었다. 중국에 가는 사신이나 역관에게 종자를 부탁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일본 통신사로 가는 조엄에게 부탁해 고구마 한 포기를 구해 집에서 시험 재배했으나 실패했고, 동래부사 강필리에게 부탁해 몇 포기를 구했으나 또 실패하고 말았다.이광려는 실패했지만 그의 구민(救民) 노력에 감명을 받은 강필리가 뒤를 이었다. 따뜻한 남해안 지역에 고구마를 심어 성공했으나 북상하지 못했다. 이어 김장순이 등장하여 선종한이라는 사람과 합작해 서울에서 시험재배에 성공한다. 서경창이라는 사람은 아무 지위도 없는 선비였다. 그는 실학을 연구하면서 식량문제 해결에 노력하여 북쪽지방의 가난한 백성들도 고구마의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다음 차례로 전라도 관찰사 서유구는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종저보’를 저술한다. 그에 의해 고구마는 남쪽 거의 모든 지역으로 전파된다.이런 숱한 노력의 결과로 1900년대 초 고구마는 전국적으로 재배되었다. 그나마 뜻있는 선비들의 수백 년에 걸친 고집스러운 노력 때문에 고구마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고구마에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기아에서 구하고자 했던 이름 없는 선인들의 땀과 노력과 집념이 묻어 있다.신유일주 남자는 재주가 있고 자립심이 있으며 인정을 베풀 때는 봄눈 녹듯이 다정하다. 허나 냉혹하고 잔인한 면도 내재하고 있다. 머리가 좋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결혼할 때 여자의 외모보다는 능력을 우선시한다. 여자는 자기를 보석처럼 빛나게 해주는 남자를 선호한다. 남편을 친구나 동료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고, 금전에 대한 집착이 강해 알뜰하며 낭비가 없는 편이다. 남녀 모두 고집으로 충돌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신유일주의 유(酉)는 닭이며, 12지지 중의 대장이다. 그래서 우두머리를 뜻하는 추(酋)로도 쓰인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라는 닭이다. 대단한 집념이 있는 싸움닭이며, 죽는 줄 알면서도 나름대로 정의감으로 외길을 가는 성격이다. 닭의 역할은 어둠의 시기에 새벽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혁명적 기운이다.천간 신(辛)은 음(陰)에 속하는 여자다. 찬바람이 휙휙 부는 마지막 잎새처럼 앙팡지며, 추운 겨울도 끝까지 버티는 맵고 찬 보석 같은 여자다. 타인을 위해 대가없이 희생하는 구도자적 정신도 겸비하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보면 어딘가 취한 것 같다고 해서 술 주(酒)에도 사용된다. 배우자를 끝까지 사랑하며, 사별하면 다시 배우자를 찾는 것도 닭 유(酉)의 성질이다.남자에 취하건, 사랑에 취하건, 어딘가에 의지해서 취해야만 사는 사람. 남자가 그러한 여자를 만나거나, 여자가 그러한 남자를 만나면 정말 멋있는 일이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 소설 ‘귀여운 여인’에 나오는 주인공 올렌카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여자였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올렌카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울하던 때에 전형적으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극장의 공연매니저 쿠킨을 만나게 된다. 그가 힘들어 하고 짜증내는 모습을 보면서 연민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 결혼한다. 그가 죽자 올렌카는 다시 우울해진다. 그러던 중 목재상 프스토발로프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그들을 죽음이 갈라놓았다.그러나 올렌카의 사랑은 또 이어진다. 대상은 다르지만 사랑의 속성은 동일하다. 자기 집 별채에서 세 번째 사랑을 찾은 것이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수의사 스미르닌은 군대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몇 해가 지나 수의사가 어린 아들 샤샤와 함께 돌아왔다. 올렌카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모성애의 기쁨에 빠져 행복해 한다.올렌카가 귀여운 것은 그녀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고 누군가와 함께할 때 행복해 한다. 자크 라캉의 ‘타자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으로 둔갑하여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견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남편의 생각인 것이다. 혼자가 된 그녀는 늙어가지만, 어린 샤샤를 만난 후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주려고 한다. 사랑받길 원하는 자는 상대가 자신을 다시 한 번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보내주기를 바란다.

2023-10-11

DGB금융 회장, 새인물이 될 가능성 커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DGB금융지주 김태오 회장의 3연임에 제동을 거는 발언을 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고객 동의 없이 예금연계 증권계좌 1천여개를 임의 개설한 혐의로 대구은행을 강도 높게 검사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김 회장의 연임 논란까지 발생하자 DGB금융 지배구조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원장은 지난 5일 서울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취재기자들에게 “DGB금융이 회장후보 연령제한을 다른 금융사 수준으로 높이는 것에 대한 논의는 물론 할 수 있지만, 이미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시작된 상황에선 축구경기가 시작됐는데 룰을 중간에 깨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임을 준비하는 CEO는 경쟁자들과 대비할 경우 정보의 양이나 이사회와의 친분 등에서 모두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DGB금융은 내부 규범에 ‘회장은 만 67세가 초과되면 선임 또는 재선임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 말에는 만 69세가 된다.DGB금융은 지난달 25일 회추위를 열고 회장 선임 원칙 및 관련 절차를 수립한 상태다. 첫날 회의에서 회추위는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 확보라는 대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회추위는 앞으로 내·외부 후보군을 압축하기 위해 롱리스트·숏리스트(3명) 선정과정을 거친 뒤 후보평가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연말쯤이면 최종후보자가 결정된다.DGB금융 차기회장 선임에 대한 대구·경북지역의 대체적인 여론은 내부사정에 정통한 금융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며, 현재 황병우 현 대구은행장을 비롯해 몇몇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차기 DGB금융 CEO는 기본적으로 경영성과가 뛰어나야 하며, 대구경북 경제 발전과 성공적인 시중금융그룹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선정돼야 한다. 회추위가 독립적인 위치에서 이미 확정된 절차와 프로그램을 잘 이행해 최적임자를 선정하길 바란다.

2023-10-11

대추와 정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혼사를 치르고 우리 집 식구임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시부모는 새 며느리 치마폭에 대추를 던져주며 아들딸 많이 낳고 건강하게 살도록 기원한다. 하필 대추였을까. 장석주 시인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라 하였다. 한 알의 대추가 마치 태풍, 천둥, 번개와 같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끝내 이기고 견디어 검붉은 빛깔 멋진 대추를 선사하듯이, 새색시와 새신랑도 삶을 잘 헤쳐가기를 기원하면서 한 줌 대추를 안겼겠지.태풍과 천둥과 번개가 없는 삶은 없다. 어려움과 시련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의 살아가는 길 위에는 시련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콧펙(Scott Peck)도 ‘삶은 어렵다(Life is difficult.)’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였다. 개인의 삶이 어렵다면 사람이 모인 집단과 사회가 걷는 길도 쉬울 수는 없다. 무엇이라도 거두고 이루기 위하여 우리네 살아가는 여정은 힘들고 어렵다. 시련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혜롭게 견디고 슬기롭게 이겨내어 보다 나은 열매가 열리도록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가져다주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 것인가. 지나가야 할 수많은 어려움들 가운데 찾아온 태풍과 천둥과 번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가진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인가를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나라가 어느 모로 보아도 어려운 일로 한 가득이다. 허리띠를 졸라맬 여유도 없을 만큼 일상이 어렵다는데 정치는 선거 놀음에 여념이 없다. 교육이 무너져 사방에서 아우성인데 정치는 표밭갈이에만 심취해 있다. 미래가 안갯속처럼 도통 보이지 않는데 정치는 과거로만 치달리고 있다. 나라 밖은 저만큼 달려가는데 나라 안은 시간이 멈춘 듯 갑갑한 마음. 왠지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은 필자에게만 드는 생각일까.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온 젊은 선수들에게서나 겨우 힘을 얻는 국민은 하루하루가 태풍이고 천둥이며 번개가 따로 없다. 구청장 보궐선거가 결판이 나면 무엇이 조금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정치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그것도 그리 기댈 것이 되지 못한다.대추는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며 젊게 해 준다고 하였다. 특별한 약성보다는 조화와 영양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시련을 이겨낼 뿐 아니라 그런 결과 주변까지 맑고 밝게 하며 따뜻한 화합의 기운마저 보듬어 내라는 의미로 새색시는 대추를 한아름 받아들었던 것이다. 태풍과 천둥과 번개를 이겨낼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나은 빛깔로 변화해 가는 모습은 한 알 대추에서도 관찰도 가능하다. 우리 정치도 오늘 만난 어려움에 빠져있을 일이 아니다. 견디고 이겨낼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익어가는 대추를 바라보며 정치가 나라를 살릴 것을 기대해 본다.

2023-10-11

이색 ‘모자(帽子)페스티벌’

홍석봉 대구지사장 조선 후기 풍자 시인이자 방랑 시인 김병연(金炳淵)은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다가 투항한 것을 비난하는 시로 장원한 것을 수치로 여겨, 일생을 삿갓을 쓰고 단장을 벗 삼아 전국을 방랑했다. 풍자와 해학의 시로 퇴폐한 세상을 조롱했다. 100년 전 경성에서는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만든 ‘맥고모자’가 유행했다고 한다. 이렇듯 모자(帽子)는 우리의 생필품이었다. 모자를 쓰는 것은 성인을 상징했다. 스무살이 되면 처음 모자를 쓰는 ‘관례’라는 성인식을 했다. 명예의 상징으로 여기고 의복의 한 부분으로 취급했다. 집 안에 들어갈 때도 신발은 벗어도 모자는 벗지 않았다. 식사 때도 모자를 썼다. 모자는 장신구 역할을 넘어 신분과 계급,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고 구별하는 수단이었다. 조상들은 삿갓이나 갓(흑립), 패랭이 등 다양한 종류와 용도의 모자를 사용했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평할 정도였다.모자는 햇빛 차단과 보온, 먼지 방지, 안전, 멋, 신분표시 등의 목적으로 머리에 쓰는 용품이다. 서양에서도 성인은 남녀 불문하고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우리나라 최초로 ‘모자’를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린다. 13일부터 15일까지 상주 경상감영공원에서 ‘2023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우리 전통모자와 세계 70개국 이상의 전통모자 등이 ‘세계모자전시관’에 선보인다. 25명의 출연자가 모자를 돌려쓰며 게임을 즐기는 등 다양한 놀이와 공연이 마련돼 있다. 상주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세계모자페스티벌’에 관심이 뜨겁다. 이번 주말 이색적인 모자 축제가 기대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11

신공항 예타면제 확실시… 이젠 속도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민간공항의 예비타당성 면제 안건이 오는 17일 국무회의에 상정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0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신공항 예타 면제와 관련한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대구 동구을)의 질의에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10월 중 면제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변함으로써 확인됐다.강 의원에 따르면 이 안건은 “현재 12일 차관회의, 17일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되는 게 유력하고 특이사항이 없으면 신공항 민항의 예타 면제는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민간공항 예타 면제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기획재정부의 예타 면제 확정,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가 진행되고 국토부의 기본계획 용역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특히 최근 물가상승률이 높아 총사업비를 최적화하려면 서둘러 건설해야 하는데 국토부도 이날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신공항 사업은 이제 조기 착공에 무게의 추가 옮겨지고 있는 모양새다.대구시는 예타면제 통과를 시작으로 신공항사업에 따른 제반 집행을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 사업을 대행할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 후속 준비가 태산같이 많다.최근 화물터미널 위치를 두고 대구시와 의성군, 경북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사업의 속도를 내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대구시가 10월말까지 이 문제를 빨리 매듭짓자고 제안한 것은 사업 진행 속도의 중요성 때문이다. 마침 원 장관도 이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으니 화물터미널을 둘러싼 갈등을 하루빨리 종식시켜나가야 한다. 당사자간 원만한 협의가 최상임을 두말할 나위 없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사업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한 대역사다. 소멸위기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필사의 수단이다. 그동안 신공항 사업은 많은 난관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생각하며 사업의 성공을 위해 매진해가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정치권과 자치단체의 합심된 힘이 필요하다.

2023-10-11

시달리는 마음

타인에게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못하는 말. ‘원래 모든 사람은 부족한 점이 있어. 부족하다는 사실에 너무 얽매이면 안 돼. 네가 가진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지.’ 친구에게든, 같이 문학을 하는 사람이든, 혹은 학생에게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준다. 그게 세상을 사는 꽤 좋은 마인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만 바라보면서 사는 삶이라니, 너무 지치지 않나?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 건 그저 타인의 질투어린 시선이나 동경어린 시선 속에서만 있는 것이고, 그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보면 모든 사람은 잘난 점 한 두 가지와 부족하고 미진한 여러 가지 결여를 제각기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불완전하고, 어딘가 비틀려있고, 혹은 자신이 저지를지 모를 실수에 불안해하는 사람.그러니 너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어차피 모든 사람은 제각각 모자라고, 약간은 바보 같고, 혹은 비틀린 구석이 한 두 가지쯤은 있기 마련이라고. 단지 서로 모자란 부분이 다르고 바보 같은 구석이 달라서 네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게 온전히 타인을 위한 말인가 하면,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해주며 내 모자란 마음을 채우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나는 늘 내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한국은 유독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것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것들을 잘 충족시키며 살아오진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가 되면 대학에 진학하고, 때가 되면 면허를 따고, 때가 되면 군대를 가고, 때가 되면 취직을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한 번도 제 때에 해보거나, 잘 이뤄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신 나름의 경력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적도 있지만, 그것들이 과연 등가로 비교될 수 있는 것들일까?딱히 자기 비하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타인에게 그런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30대 중반이 된 이후로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아직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거나,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엔 이게 나의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나의 삶을 제대로 평가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저 필사적으로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평가받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해낸 결혼을 너는 못했지. 내가 이룬 정규직을 너는 못했지. 내가 해낸 것들을, 너는 해내지 못했지 하고.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삶을 과대평가하고 싶은 사람들. 예전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성격 참 이상하네’하고 생각하곤 넘겨버리곤 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절대 다수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쩌면 그들도 자신의 결점이 두려운 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대신에 어떻게든 자신이 이뤄낸 요구들을 생각하고,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면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기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건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는 건 꽤 즐겁고 나름의 쾌감을 주는 일이니까.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꽤 괜찮은 삶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곤 하니까. 그 과정에서 누군가 조금 우울해지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니까.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걸까, 아니면 극심하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걸까. 스스로든 채울 수 없는 자족감을 채우고자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적어도 건강한 마음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그것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는 똑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도 나도, 결국엔 똑같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시달리는 사람들인 셈이다.우리의 결여와 결점들은 누구의 시선에서 결정된 것들일까. 우리가 구태여 비슷한 수준으로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면서, 타인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너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건 대체 누구에 의한 것일까. 내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삶도 꽤 괜찮은데. 좀 부족한 거 있어도 제법 살만한 인생인데. 고민이 많아지는 30대 중반의 하루다.

2023-10-10

꽉 닫힌 마음

명절이 지나면 자취방의 냉장고가 풍성해진다. 엄마가 싸준 음식 때문이다. 갈비부터 시작해 김치찜, 전복장, 닭발, 육개장까지.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다.내가 만들면 왜 이런 맛이 안 날까? 엄마 등 뒤를 괜스레 기웃거리고 요리 비법을 배워보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도 내가 만든 음식은 묘하게 싱겁거나 짜다. 엄마는 그런 내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다. 김치찌개 그거 김치에 물만 넣으면 되는 건데, 뭐가 어렵다고 그래? 그런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 내 말이 그 말이니까. 똑같은 재료로 맛을 내지 못하는 내 문제가 뭔지 나도 참 궁금한 것이다.그런 고뇌가 길어지면 휴대전화를 들고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게 된다. 거기엔 온갖 종류의 음식이 다 있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휘황찬란한 요리는 물론, 아이스커피 한 잔도 속전속결로 배달되는 시대 아니던가. 태국 여행 중 먹었던 것과 똑같은 맛을 자랑하는 똠얌꿍부터 프랑스 유학파 파티시에가 만든 마카롱,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이나 탕후루도 클릭 한 번이면 집안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그러니 몸이 지치고 힘든 날엔 자연스레 배달을 찾게 된다. 식재료를 썰고 볶아내고 가지런히 담아서 먹고 치우는 것을 생각하면 배달 음식의 가격이 꽤 합리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문제는 먹고 나서 항상 후회한다는 것. 집에서 만든 밥을 먹을 때의 느낌과는 다르다.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하다. 한두 입은 맛있는데 그 후엔 물려서 쳐다보기가 싫다. 배는 부르는데 어쩐지 헛헛한 기분도 든다.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이 담겨온다는 것도 달갑진 않다. 나의 한 끼에 너무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저번에 주문한 동태찌개는 포장 용기가 덜 닫혔는지 국물이 흥건하게 흘러있었다. 그걸 받아들었을 때의 난감함은 배고픔마저도 잊게 했다. 가게에 항의할까 하다가 그만두지 싶었다. 일부러 뚜껑을 닫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실수한 거지. 누구나 그렇듯이.그러고 보면 엄마의 음식이 담긴 용기는 하나같이 꽉 닫혀 있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도무지 열기가 힘들었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낑낑대고 숟가락으로 텅텅 두드려도 요지부동이던 뚜껑을 만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신경질적으로 쏘아댔다. 왜 이렇게 세게 닫았어? 아무리 해도 못 열겠단 말이야. 그러면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는 말보다 반찬통 못 열겠다는 말이 먼저 나간 것에 후회하는 것도 잠시, 어떻게 알아서 잘 좀 해보라는 엄마의 말에 발끈해서 몇 마디 더 쏘아붙이고 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꽉 닫힌 반찬통을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여겨진다. 뚜껑 하나 못 여는 사람. 내가 먹을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걸까. 거기다 뭘 잘했다고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너그럽게 넘어가면서 왜 엄마에겐 유독 박하게 구는 걸까. 탓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탓한 내 모습이 참 못났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엄마는 이제 반찬통의 뚜껑을 적당히 느슨하게 닫는다. 대신 비닐로 몇 번이고 감고 또 감는다. 뭐 이렇게까지 쌌대. 괜히 쓰레기 많이 나오게. 나는 또 그렇게 툴툴대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담긴 용기를 열어본다. 맛깔스러운 냄새가 확 끼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역시나 맛있다. 감히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적당히 달짝지근해서 감칠맛이 돈다. 이런 반찬이면 입 짧기로 유명한 나도 공깃밥 두 그릇 뚝딱 비워낼 수 있다. 부른 배를 탕탕 두드리면 자연스레 엄마의 손이 떠오른다. 투박하리만치 길고 곧은 손. 가끔은 엄마가 미련하다고도 생각됐다. 직장 한 번 쉬지 않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집에서 한 밥을 꼬박꼬박 먹였다. 지금도 그렇다. 명절이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내온다. 왜 맨날 저렇게 음식을 해. 그냥 사 먹지, 하면서 혀를 내둘렀던 적도 있다.알고 있다. 온 힘을 주어 반찬통을 꽉 닫는 엄마의 마음을. 외부의 먼지가 들어갈까, 내부의 것이 흘러넘칠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얼굴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난 엄마 밥이 제일 맛있더라. 나의 그 한마디로 충분하다는 듯이 소녀처럼 와르르 웃는 엄마.그 웃음을 완벽히 밀봉된 용기에 꽉꽉 채워 아주 오래 간직하고 싶은 요즘이다.

2023-10-10

한글날을 기념하는 방법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었다. 전국적으로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공유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도 국어문화원이 중심이 되어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와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매년 반복되는 한글날의 각종 이벤트를 무심히 넘기거나 어학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공휴일이란 편안함이 더 크게 다가왔던 탓이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에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글 창제 및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이 몇 년 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한류가 있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K-팝, K-푸드, K-콘텐츠 등 다양한 K-컬처에 세계인이 주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BTS’가 상징하는 K-팝과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K-콘텐츠가 앞에서 끌고 K-푸드, K-뷰티 등이 뒤따르는 K-컬처는, 국가적 지원을 동력 삼아서 더욱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하지만 마냥 자부심을 느끼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지난 8월 140여개국 4만명의 대원이 참석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K팝 콘서트’로 마무리되었다. 알다시피 잼버리는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 등으로 일부 국가 대원이 중도에 퇴소하고, 태풍의 영향으로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를 결정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세계적 대회의 파행을 막고자 K-컬처를 대안으로 내세운 정부의 방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잼버리 정신’과 한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랑스러워야 할 K-팝이 이렇게 소비되는 것에 찜찜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영어 중심주의는 어떤가?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 솟아있는 거의 모든 아파트의 이름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어다. 우리나라에 유학을 온 외국인 대학원생들은 한국어를 몰라도 학위를 받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문해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심심한 사과’ ‘사흘’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은 한자어나 순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관습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따져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말을 몰라도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한 사과’‘사흘’과 같은 단어가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삶의 구조에 있다.한글날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문화를 구분해야 한다. 이념이 당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혹은 K-컬처)을 홍보하는 행위의 근간이라면, 문화는 대중의 정신과 사고에 미치는 한글의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행위이다. 이제라도 한글이 상징하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일회성 이벤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2023-10-10

연륜의 힘, 그리고 그 아름다움

최선희 경운대 교수 “늙은이 너무 불쌍해하지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그래주고 싶어 쓴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게 강변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사는 것을 맛있어하면서 살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난 소리 같아서 대견할 뿐 아니라 고맙기까지 하다. 물론 내가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단맛만은 아니다.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 게 연륜이고, 나는 감추려야 감출 길 없는 내 연륜을 당당하게 긍정하고 싶다.”박완서 작가가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노년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어쩌면 노년을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이런 각오는 모든 노년세대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나온 삶은 수많은 희로애락과 함께 켜켜이 쌓아온 경험으로 숙성된 내공을 가졌지만 현실적으로 용인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8.5%로 고령사회이고 2024년 내년이면 노년세대가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어 초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 한다. 이런 속도로 인구 노년화가 진행되면 노인 평균연령이 100세가 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고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이런 인구 고령화 현상은 자칫하면 노인차별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노인차별주의란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우리가 노인을 향해 갖는 부정적인 태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실제 학생들에게 ‘노인’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라 했더니 “고지식하다, 보수적이다, 잔소리와 불평이 많다, 쇠약하다, 지루하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했다. 이런 인식은 세대 간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노년의 긍정적인 모습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노년세대가 가진 가장 긍정적인 태도와 의식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의 연륜이 가진 아름다운 내면세계일 것이다. 연륜은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다. 무수한 나이테를 가진 늙은 수양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며 우리에게 시원한 안식처를 제공하듯이 주름진 노년의 여유로운 표정은 우리의 힘든 삶을 보듬어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이 경험한 인생의 지혜가 우리들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강도는 다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무르익은 그들의 경험은 저마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고 이 달 10월은 경로의 달이기도 하다. 매년 이맘때면 100세를 맞은 노인을 위한 청려장(장수지팡이) 전달,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표창, 영정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인구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 고령사회를 앞둔 노년의 시대에 이런 일회성 행사보다 노년의 연륜을 인정하고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기대해본다.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게 될 노년의 삶, 그대로의 존재가 인정되어 권리와 의무가 부여될 때 그들은 연륜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보물을 풀어놓을 것이다.

2023-10-10

총선과 겹치는 국정감사, 民生을 우선 챙기길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어제(10일) 막을 올렸다.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열리는 이번 국감은 다음달 8일까지 24일간 진행된다. 대구시와 대구·경북지역 공기업과 국립대, 공공기관들도 12일부터 오는 24일까지 국감을 받는다. 16일에는 대구지방국세청과 대구본부세관, 조달청이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서, 17일에는 경북대와 경북대병원, 대구·경북 교육청이 경북대에서 국감을 받는다. 행안위는 23일 대구시와 대구경찰청을 대상으로 국감을 실시한다. 어제 열린 국토교통위 국감에서는 대구경북신공항 사업 추진상황이 현안으로 거론됐다. TK신공항 건설추진단이 국토부 전담조직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와 경북이 갈등을 빚고 있는 화물터미널 입지와 사업을 추진할 특수목적법인 구성 등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국방부 국감에서는 대구시와 국방부 간의 업무협약체결이 지연되고 있는 대구 군부대 이전 사업에 대한 추진 과정이 주요이슈로 다뤄졌다.우려되는 점은, 이번 국감이 총선일정과 겹쳐진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는 13일부터 재외선관위 설치를 시작으로 내년 총선 준비 절차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 여야는 정국 주도권을 놓고 한 치 양보없는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대법원장 공백 사태’ 같은 예민한 이슈가 불거져 국감뇌관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국감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 논란, 탈원전 및 이권 카르텔 의혹 등을 철저히 규명하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영장이 기각된 것을 빌미로 윤석열 정부가 야당탄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국감이 정쟁의 장이 되면서 민생문제가 뒷전으로 밀려선 안 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최악의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힐 기미가 없고, 실질임금은 사상 처음 감소했다. 최근에는 휘발유와 경유가격이 끝없이 오르면서 고물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국감무용론’이 나오지 않도록 여야는 민생문제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202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