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칠푼 고리

윤명희 수필가 눈빛들이 진지하다.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런 웃음기는 사라지고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섰다. 통팥시루떡까지 수북이 쌓아올린 고사 상이 제법 구색을 갖췄다. 두어 시간 전에 급조한 축문을 회장인 金이 맛있게 읽는다. 막걸리를 잔에 붓고 절을 한다. 지갑을 열어 복전까지 내 놓는다. 뻗정다리가 된 남편까지 절을 하자 뭘 저렇게까지 할 게 있나 싶은데, 뒤이어 깁스를 한 鄭까지 목발을 옆에 세워두고 절을 한다. 퇴주잔에 막걸리를 붓고 다시 잔을 채우는 張까지 엄숙하다. 고사를 핑계로 모여 놀자는 취지는 온데간데없다.먼저 사건의 발단이 된 건 남편이다. 화물차에서 밧줄로 물건을 묶다 떨어졌다. 평소의 실력으로 봐서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다. 어이없어 하는 남편을 돌아가며 놀려댔다. 칠푼 고리가 그렇지 뭐. 어느 밤, 鄭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놀림이 날렵하기로는 모자람이 없는 그가 한자 남짓한 빈 페인트 통 위에서 넘어져 발뒤꿈치가 어그러졌다는 것이다. 남편의 목발을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작은 金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낮에 힘들게 일했노라 보여주기 식의 엄살은 사양한다는 우리의 타박에 그는 사다리에서 두 번 떨어지면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법이라 했다. 누구처럼 깁스를 하면 표시라도 날 텐데 겉은 멀쩡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어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회장 金이 칠푼 고리 이름이 아까운 인간들이라며 한심해 했다.큰소리치던 그가 갈비뼈가 두 대나 나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비가 억세게 온 다음날 농장에서 미끄러졌다나. 농사일이 가장 바쁜 철에 일은 고사하고 숨도 크게 못 쉬는 형편이 되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말이 없는 新까지 전립선 치료로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돌아보니 아직 張이 남았다. 나는 그의 아내에게 다친 이들을 위로하는 술자리를 만들자는 말을, 액막이 고사라도 지내야 하지 않겠냐는 말로 대신했다. 그녀는 흔쾌히 통팥시루떡을 두 대 해오겠다고 했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날이 잡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기를 삶고 수박을 들고 왔다. 내게 떨어진 건 축문이었다. 한 번도 고사를 지내 본 적이 없는 나는 인터넷을 뒤져 동냥을 했다. 늦게 만난 좋은 인연 100세 후 가는 그날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보살펴달라는 청탁을 천지신명께 고하는 축문을 만들었다.우리는 몇 년 전 귀촌으로 만난 인연들이다. 도시에서 살 때 얼마나 잘 나갔노라는 말은 필요치 않았다. 느지막한 나이에 시작한 농사일에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팔을 걷어붙였다. 내가 가진 농기구가 필요하다면 빌려주고, 내 힘까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섰다.그들이 칠푼 고리가 된 것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남편과 金, 鄭이 경운기 앞에 섰다. 나와 金의 아내는 나무 그늘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녹이 반쯤 얹힌 경운기의 시동이 당체 걸릴 생각이 없다. 밑바닥까지 훑어보는 그들의 표정이 심각했다. 방금 고쳐왔는데 뭐가 또 문제고? 이것저것 다 열어보고 돌려봐도 끄덕도 않는다. 고쳐준 사람을 원망하며 다시 고치러 가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지나던 동네할아버지가 무슨 일이냐며 거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한 번 까딱 하자 경운기가 힘차게 돌아갔다. 나는 세 남자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경운기 사건으로 그들은 스스로 칠푼 고리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셋이 모이던 비닐하우스에 농사실력이 팔 푼도 안 되는 칠푼오리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그들도 칠푼 고리라는 이름에 토를 달지 않았다.고사가 끝난 자리, 음복 상을 차리고 막걸리가 한 순배 돌았다. 몇 달 사이에 연이어 이런 사단이 난 것은 칠푼 고리 이름 때문이라며 개명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좋은 뜻을 담은 새 이름이 하나 둘 나오더니 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남은 생이 칠푼오리로만 끝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버린 것이다.

2023-10-25

울릉해녀문화제의 가치와 전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울릉도의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천혜의 섬 울릉도 도동항에 간간이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도동여객선터미널 옥상 공원에서 시와 음악이 흐르고 해녀들의 삶과 애환이 물결처럼 여울지는 새로운 문화가 피어났다. 바다를 지키고 가꾸며 바다와 함께 적극적인 삶을 살아온 울릉도 독도 해녀해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나는 해녀랍니다’ 주제의 해녀 문화제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 프로그램 ‘한 점 섬에 살거나’의 공모사업으로 울릉도에 거주하는 해녀들과 지역 문화예술인·동호인·관계기관 등의 참여와 협조로 이뤄졌다.햇살 좋고 바람 선선한 휴일 늦은 오후, 울릉도 주민들과 관광객 등이 설렘과 기대로 삼삼오오 공원으로 모여들고 갈매기들도 궁금한지 공중을 선회하며 문화제를 반기는 듯했다. 한 켠에 마련된 시식코너에는 해녀들이 직접 잡거나 채취한 문어·전복·소라 등을 맛볼 수 있었고, (사)독도재단에서는 설문지에 따라 독도 배지 등의 기념품을 나눠주는 등 작은 축제마냥 약간 들뜨는 분위기였다.그런 가운데 울릉도 해녀들의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해녀의 삶을 생생하게 들려준 해녀 이야기, 경북문협 울릉지부장의 해녀에게 바치는 자작시 낭독과 포항시낭송회 3명의 회원이 해녀, 해남 차림으로 3편의 시를 시극(詩劇)으로 펼쳐서 의미를 더했다. 또한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현대무용팀 ‘팀오르다’의 해녀 물질을 주제로 한 무용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으며, ‘유네스코 해녀의 가치’ 강연에서는 울릉도 해녀의 삶과 활동, 역사와 의의를 이야기해 해녀들을 이해하고 가치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축하공연으로 울릉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단체인 팀포유색소폰, 울릉아리랑, 독도팝스오케스트라, 통기타를 사랑하는 모임 등이 출연하여 행사의 흥을 더하며 인기를 끌었다.경북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번 울릉도·독도 해녀 문화제를 통해 해녀의 삶이 재조명되고, 해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스토리와 울릉도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울릉도에는 9명의 해녀가 살고 있는데 모두 제주 출신이다. 이들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해녀문화와 함께 독도주민, 독도의용수비대와 더불어 독도의 바다를 일구고 지켜온 산증인이다. 제주출향해녀들의 물질이 울릉도 독도를 이어주고 일궈왔지만, 고단하고 힘겨운 해녀들의 삶의 가치와 의미가 거론되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지난 4월 ‘울릉도독도해녀해남보전회’가 결성되고 해양아카데미가 열리는 등 해녀에 대한 인식변화와 처우개선의 움직임이 보여 다행스럽다. 최근에 경북해녀협회가 창립된 것도 향후 해녀문화 조성과 네트워크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바다의 밥상을 차려주는 해녀들은 바다의 자원이다. 울릉해녀문화제가 제주도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제주해녀축제’와 연계해 세계 유일의 여성공동체 문화인 해녀어업문화의 전승과 보전을 위한 교류와 협력, 육성과 지원 등으로 해녀문화를 선도하고 경북 해녀활동의 활성화를 기대해 본다.

2023-10-24

또, 다른 시간에 대한 성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는 SF(Science Fiction)를 좋아한다. 암울한 기술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는 지점을 생각하는 순간이 무척이나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20년대 한국 문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SF소설의 위상은 고무적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소수만의 전유물이었던 SF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기술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했다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이후부터 즐겨 읽는 작품 목록 중에는 미국의 SF작가 할란 엘리슨의 ‘제프티는 다섯 살’이 제일 위에 놓인다.이 소설은 스물두 살이 된 도널드의 시선에서 여전히 몸과 마음이 다섯 살에 머물러 있는 친구 제프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 도널드와 제프티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다. 도널드가 자신의 TV 판매점에 몰려든 손님을 상대하다 극장을 향해 출발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멍하니 TV를 바라보던 제프티는 공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결국 제프티는 혼자 극장으로 갔지만, 뒤늦게 도널드가 갔을 때는 동네 아이들에게 맞아서 신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도널드는 다섯 살에 머물러 있는 제프티를 철저히 외면하는 그의 부모님을 목격하며, 정말 ‘현재’가 ‘과거’보다 진보했는지를 절규하듯 물어본다.지난 토요일은 둘째 아이 유치원의 가족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운동회를 마치고 첫째 아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둘째 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게 했다. 총 여섯 명의 아이는 술래잡기, 얼음 땡 놀이 등을 했다. 아이들과 놀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힘껏 논다. 어른이 보기엔 비효율적인 놀이를 즐겁게 반복하며 아이들은 금방 땀을 흘리고 서로 잡기 위해 뛰면서 눈을 마주치면 뭐가 좋은지 큰 소리로 웃었다. 비록 언니들의 세계에 끼어들진 못했지만, 둘째 아이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온전히 노는 순간에 몰입하고 있었다.어른의 세계는 어떤가? 나는 조금 뛰어다니자 지쳐서 그늘로 들어갔다가, 아이들이 부르면 다시 놀이터로 나가길 반복했다. 한 시간이 넘어가자 시계를 살펴보며 집에 갈 시간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제프티는 다섯 살’을 떠올리고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본 것은 확실했다.‘제프티는 다섯 살’을 학생들에게 읽히면 흔하게 나오는 반응이 과거를 ‘복고’로 해석하며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가 ‘과거’보다 정말 진보했는가? 라는 도널드의 질문을 우리에게 되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어린이의 시간은 효율과 능률이란 어른의 논리가 아니라 자기의 본능에 충실한 삶을 만든다. 어린이의 시간을 공유하며 만드는 진보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진보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23-10-24

김용판·권영진 충돌, 공천 ‘샅바싸움’인가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대구 달서병)과 권영진 전 대구시장이 대구시 신청사 건립 지연 문제를 두고 공방전을 벌여 주목받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달서병 출마설이 나도는 권 전 시장을 김 의원이 견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국회 행안위원인 김 의원은 그저께(23일) 열린 대구시 국감에서 홍준표 시장에게 “권 전 시장이 재임 시절 코로나 등으로 신청사 건립기금 중 1천370억원을 유용해 건립이 지연됐다. 달서구민에게 속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권 전 시장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사용한 것은 600억원이다. 오히려 김 의원이 홍 시장 눈치만 살피다가 신청사 건립을 무산시킬 위기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권 전 시장은 “사용한 600억원 중 일부는 결산추경에서 채워 넣었다. 김 의원의 발언내용은 가짜뉴스에 다름아니다”라고 반박했다.권 전 시장은 차기 총선에서 대구 달서병 출마설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발표된 대구시 신청사 건립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그의 결심을 재촉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재임시절이던 2019년 12월 이미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신청사 건립장소가 옛 두류정수장 부지로 결정됐는데,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신청사 건립 사업을 보류해야 한다’고 발표돼 감정이 격화됐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지난 19일 “신청사 건립은 두류정수장 유휴부지 일부를 매각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건립재원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었다.앞으로 총선이 다가올수록 곳곳에서 지역구 현안을 두고 현역의원과 도전자 간의 충돌이 잦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민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지역현안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결코 역기능적 측면으로 볼 필요는 없다. 김 의원과 권 전 시장 사이에서 오가는 메시지를 통해 달서구민들은 신청사 건립을 둘러싼 새로운 이면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총선지지자를 결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2023-10-24

인요한 혁신위 ‘레드팀’이 돼야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3선·대구 달서을)는 지난 대선 때 레드팀으로 불리는 선거대책위 후보전략자문위원장을 맡았다.민주당 입장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의 약점을 파고들며 ‘쓴소리’를 하는 게 주요역할이었다. 윤 원내대표는 자신의 레드팀 경험을 소개하며 “듣기 불편한 내용까지 후보께 가감 없이 전달했다. 대통령실 가교가 돼 제대로 민심을 전했다”고 했다.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슬럼프에 빠진 당을 구하고 레드팀장 역할까지 해야 할 여당 혁신위원장이 그저께(23일) 선임됐다. 국민의힘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선택한 혁신위원장은 호남출신 인요한(64) 연세대 의대 교수다. 이미 국민의힘 총선 영입 대상으로도 거론돼 왔다는 점에서 파격적이진 않지만, 스타성과 주도성을 갖췄고 여당의 외연확장에 대한 확고한 지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인물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경력도 있어 강경 보수지지층에서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인 위원장의 가문은 구한말부터 4대째 한국에서 선교·의료·교육 활동을 펼쳐 왔고, 이 공로로 2012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됐다.인요한 혁신위는 지금부터 혁신위원을 구성한 후, 활동 기간과 범위, 다룰 과제 등을 결정해야 한다. 혁신위가 당 쇄신과제를 선정할 때는 어떤 식으로든 당원과 국민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혁신위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구성됐기 때문에, 혁신과제가 당 지도부 거취나 총선공천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당 쇄신과제 하나하나가 폭발성을 지닐 소지가 다분하다. 자칫 혁신위가 당 지도부에 종속됐다는 소리가 나오거나, 실천불가능한 혁신과제를 선정하면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혁신위는 자나깨나 ‘민심’을 반영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민입장에서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대통령실이나 당 지도부를 향해서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레드팀이 돼야 한다. 인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정치를 하게 된다면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여당의 지지층 확장이 호남까지 폭넓게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로 해석된다. 한국정치와 관련해서는 “정치가 국가수준에 비해 발전을 못했다”고 평가절하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싸우더라도 타협해서 절충안을 찾으라는 것인데 소모전만 벌이며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인 위원장의 과거 발언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지역주의 해소와 국민통합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일단 정치이념이 특정정당이나 지역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식의 급진성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여당지도부는 혁신위가 당 쇄신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총선관련 주요정책 입안권한을 혁신위에 대폭 양보해야 한다. 만약 혁신위가 제기능을 못하면,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재기할 확률이 아주 낮아진다.

2023-10-24

외투기업 성공사례로 우뚝 선 구미 ‘도레이’

도레이첨단소재는 일본 도레이 그룹의 자회사다. 1972년 경북 구미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구미국가산단과 함께 50년 세월을 함께 한 기업이다. 한일관계라는 잦은 정치적 바람에도 흔들림없는 시설투자와 연구개발로 지금은 글로벌 탄소섬유 시장에서 압도적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지난해 매출액은 2조6천여억원이다. 구미에 본사를 둔 기업 중 매출액이 가장 많다. 임직원 수가 2천400여 명에 달하며 구미지역 고용 안정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23일 도레이첨단소재는 구미4공단에 건립될 탄소섬유 3호기 기공식을 가졌다. 이번에 설립되는 3호기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고압수소압력용기, 도심항공모빌리티 등 첨단산업 분야에 적용되는 초고성능 탄소섬유를 생산하는 라인이다. 기존의 1, 2호기보다 업그레이드 되면서 생산량도 8천t 규모로 늘린다.도레이첨단소재는 경기 변동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꾸준한 투자를 이어온 외투기업이다. 2020년 1천700억원, 2021년 1천900억원, 코로나19가 확산된 2022년에는 90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는 총 3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도레이첨단소재는 기술 특화된 분야에 중점을 두고 투자해 국내 전후방 기업에 미치는 기술적 영향도 크다.외국인투자 기업이 이렇게 오랫동안 세계 1위의 자리를 견지하며 지역에 투자한 사례는 드물다,이날 기공식에 참석한 산자부 양병내 차관은 “양국관계 발전의 좋은 사례”라며 “도레이가 지속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김장호 구미시장은 “새로운 시대를 지역과 함께 준비하는 외국인 투자 기업의 모범적 사례”라 칭찬했다.도레이첨단소재가 지역과 함께 상생 발전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도레이와 구미시와의 신뢰 구축에 있다. 이날 구미시는 도레이 아키히로 회장에게 구미시민증을 수여했다. 앞으로도 꾸준한 투자와 상생 발전하는데 공동 노력하자는 의미다.외투기업 토레이첨단소재 성공 사례가 오래동안 기억되고 널리 알려져 제2, 제3의 외투기압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2023-10-24

제2 중동 붐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에 대한 국빈방문의 외교 성과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윤 대통령의 외교 세일즈로 만약 제2 중동 붐이 일어난다면 침체된 국내경제에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비전 2030 계획의 핵심사업인 ‘네옴시티’ 건설에 국내기업의 대거 참여가 성사된다면 제2 중동 붐도 가능하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어서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높은 분위기다.네옴시티는 총 5천억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사우디의 최첨단 미래형 친환경도시 건설사업이다. 사우디가 석유 의존형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고자 계획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100% 신재생 에너지로 운영되는 주거 및 상업도시다. 홍해 인근 사막 2만6천㎢(서울 면적의 44배)에 건설되는 이 도시는 마치 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도시계획이어서 회의적 시각으로 보는 이도 적지 않다.그러나 2030년을 목표로 이미 수조원대 수주가 시작돼 세계 각국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윤 대통령은 국내기업의 네옴시티 프로젝트 참여를 사우디 측에 강력 요청해 성사 여부도 관심이다.특히 제2 중동 붐이 인다고 가정하면 1970년대 에너지와 건설 중심의 중동 붐 때와는 다르다. 자동차, 조선, 첨단산업과 문화콘텐츠 등에까지 넓은 영역에서 중동 특수가 일어날 수 있어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이다.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작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40조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맺었고 이번에는 윤 대통령의 답방으로 또다시 21조원의 투자가 성사됐다. 이 정도 규모면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에 큰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단단히 준비해 제2 중동 특수를 기대해 보자./우정구(논설위원)

2023-10-24

생존 너머

좀비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는 의외로 사람에 대한 드라마다. 물론 좀비가 주인공일 수는 없으니(그들은 지성이 없고, 따라서 말을 할 수도 없다) 인간이 주인공인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여타의 좀비물과 달리 ‘워킹 데드’는 시즌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처음으로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 ‘가버너’라는 적대적 인물이 등장할 때이다. 좀비들로부터 살아남고자 사투를 벌이고, 잃어버린 생존자를 수색하고, 궁극적으로는 안전지대를 찾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1~2시즌과는 달리, 3~4시즌은 서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에피소드가 중심에 놓인다.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유형은 시즌 4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종착역의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기차의 종착역에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생존자를 포섭하기 위해 “모든 이를 위한 안식처. 모든 이를 위한 공동체”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들의 위치를 새긴 홍보물을 도시 곳곳에 부착하고 다닌다. ‘가버너’와의 싸움 이후로 살 곳을 잃어버린 주인공 일행은 홍보물에 새겨진 경로를 따라 종착역을 향해가지만, 그들이 도착한 종착역이라는 곳은 사람을 위한 안전지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먹는 식인종들의 캠프였다.작중 짤막하게 스쳐지나가듯 설명되지만, 쉽게 말해 이들은 강도들에 의해 죽을 뻔한 사람들이었고, 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이다. 타인의 생존물자를 약탈하고,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생명마저 빼앗는 강도들에게서 살아남으려 싸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타인의 생명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되어버렸다는 설정은 ‘워킹 데드’ 세계관의 잔혹함을 보여주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라는 니체의 격언을 떠오르게 만든다.그렇기 때문인지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좀비들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쓰던 주인공 일행은 이들과 조우한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다. 더는 타인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이후엔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을 생각마저 하는 주인공 일행의 모습은 좀비들이 창궐한 세계에 맞는 현실적인 모습이기에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이제 그들에게는 ‘생존’ 외에 어떠한 가치조차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그래서 시즌 종착역 주민들이 등장하는 시즌 5~6의 이야기는 유독 비참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생존에 매몰되어 서로 반목하고 타인을 위협하고, 때로는 자신의 일행을 통솔하기 위해 앞선 적대적 인물의 면모를 고스란히 반복하며 전체주의적인 태도마저 보여주는 주인공의 태도는 이제 더 이상 이 세계가 좀비의 창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시즌이 지속됨에 따라 이들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어디에도 그들을 위한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거듭 인간과 사람의 사이를 오가며 갈등하고 고뇌하며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고민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생존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사람은 타인에 대한 개념을 축소시킨다. 타인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경쟁자일 뿐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을 오직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건 그 사회가 생존 외에 어떠한 가치도 더는 존속할 수 없게 된 위험 상황임을 의미한다. 생존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세계에서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다.동물의 한 종으로서의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경쟁 상태. 그건 ‘워킹 데드’의 한 에피소드가 그러했듯 문명이 아닌 야만의 세계에 불과하다. 한 사회가 어떤 수준에 위치하는가는 이처럼 타인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증상적으로 나타난다. ‘워킹 데드’라는 드라마가 현실에서 더욱 씁쓸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좀비가 없는 세계임에도 오직 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밖에는 느끼지 않는 현실이 어쩌면 좀비들로 가득한 세계보다 더 무서운 세계인 것 같아서. 그런 세계에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증오하는 인간들을 거듭 닮아간다. 살기 위해, 인간을 잡아먹는 좀비를 닮아가듯 식인을 하게 된 인간들처럼. 지금 우리는 어떤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2023-10-24

유령을 믿을 때

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유령을 믿어? 재밌는 말이었다. ‘유령’이라는 실체 없는 존재보다 ‘믿음’이라는 행위가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유령을 믿든 그렇지 않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동생은 중요하다고 했다. 뭔가를 믿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고. 스산한 기분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유령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찾아온다고 하던데. 뒷덜미가 차가워졌다. 가을을 맞아 한껏 서늘해진 바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다.호프만은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주중에 나는 법률가이며 일요일 낮에는 적어도 음악가이다. 그리고 저녁부터 아주 깊은 밤까지 나는 아주 괴상한 작가로 산다.”그의 말대로다. 호프만의 낮과 밤은 완전히 달랐다. 낮에는 유능한 법관으로서 현실적인 삶을 살았지만, 밤에는 광기에 사로잡힌 예술가로 지냈다. 반듯하고 공명정대했던 낮의 모습을 밤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단골 술집에서 폭음하고 내일 따윈 찾아오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 어떤 작가보다 밤의 세계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모래 사나이’가 수록된 소설집의 제목 역시 ‘밤의 이야기’다.낮은 밝고 가시적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많은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밤은 어둡다. 많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충동적이고 불안하다. 낯선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다. 이렇듯 밤은 우리를 완전히 낯선 세계로 이끈다.호프만의 작품은 이러한 기이함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그를 환상 문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환상 문학은 전통적인 형식의 동화와는 다르다. 환상 문학에서의 인물들은 모두 현실적인 일상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비현실적인 요소가 일상으로 과감하게 들어온다. 이러한 뒤엉킴을 통해 기이하고 이질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그의 대표작인 ‘모래 사나이’는 불길하면서 충격적이다. 주인공 나타나엘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유모에게 모래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모래 사나이는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리”는 존재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고,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서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 먹는”다. 어린 나타나엘은 모래 사나이를 목격한다. 기억 저변에 묻어두었던 모래 사나이는 그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금 등장하게 된다.나타나엘은 괴로워한다. “무언가 끔찍한 것이 내 삶에 들어왔다”다는 것이다. 그런 나타나엘에게 찾아온 청우계 장수는 ‘눈’을 판다며 안경과 망원경을 내어놓는다. 그에게 구입한 망원경은 나타나엘의 눈을 홀린다. 그리하여 인형을 진정한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신을 믿고 도와주는 연인은 생명 없는 나무 인형으로 보게 된다.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필요한 망원경은 오히려 그의 판단력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나타나엘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눈!”이라고 소리친 채 난간 너머로 뛴다. 머리가 완전히 부서진 주인공과 모래 사나이로 대변되는 인물이 서로 겹치면서 소설은 끝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가 겪은 일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일까? 독자들로선 알 수 없다. 작품 내에서 현실세계와 환상세계가 경계 없이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건 없지만, 작가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화하고 있다. 억눌린 무의식의 발현, 한 인간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두려움, 우리가 실제라고 믿는 것을 정말 확신할 수 있는지를.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오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꿈과 현실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세계를 지탱하고 있으니까. 작품의 주인공은 환상 때문에 현실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환상 없는 현실은 진짜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에겐 현실과 환상, 낮과 밤이 모두 필요하다.깊어져 가는 가을밤, 나는 유령을 믿는 사람들에 관해 생각한다. 으스스하지만 왠지 모르게 즐겁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긴 밤이 지루하지 않다.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유령을 믿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2023-10-24

가을, 나와 마주하는 거울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가을은 ‘거울’이다. 청명한 하늘, 소슬한 바람, 낙엽 구르는 소리만큼 나를 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은 없다. 가을에는 사람의 마음도 거울처럼 맑아진다. 내면의 정신세계로 인도하는 가을은 나와 마주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가을의 고독과 외로움은 고요한 침잠과 사색을 가능하게 한다. 가을은 감상적 상념이 아니라 냉정한 성찰을 요구한다. 위대한 철인들이 품었던 질문을 나도 피해 갈 수가 없다. 우리는 그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혁신함으로써 삶의 질적 수준을 높여나간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Hermann K. Hesse)는 “가을은 더 높은 삶으로 들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다. 수준 높은 삶은 인간의 내면과 마주한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나와 마주해야하는 이유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고, 부르제(P. Bourget)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의 현실이 보여주듯이 정치꾼들이 만들어놓은 진영프레임에 갇히면 ‘사유의 정치’가 ‘믿음의 정치’로 전락한다. 광신도(狂信徒)가 된 정치팬덤들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고력이 약화되어 자기성찰이 불가능하다. 진영정치의 포로가 되어 화병(火病)에 걸린 사람들은 진영의 족쇄를 벗어던져야 그 병을 고칠 수 있다.가을은 ‘비움의 철학’을 가르쳐준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구르는 소리는 세월이 가는 소리다. 가을은 ‘집착의 계절’이 아니라 ‘버림의 계절’이다. 인간은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소망하는 건강은 몸(육체)과 마음(정신)이 동행해야 하는데, 마음 챙김이 없는 육체의 건강은 공허할 뿐이다. 우리의 삶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온다.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는 가을의 가르침에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가을은 ‘결실’과 ‘소멸’이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결실의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것도 가을이며, 다가올 북풍한설을 염려하는 것도 가을이다. 가을은 오색단풍의 환희와 바람에 뒹구는 낙엽의 쓸쓸함이 공존하고 있다. 가을의 양면성은 나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나와 마주한다는 것은 나의 장점만이 아니라 부족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단점들까지도 솔직하게 보는 것이다. 가을의 투명한 거울에 비추어 현재의 나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미래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가을에는 누구나 생각이 깊어진다. 구도자가 되어 자연의 섭리를 깨달음으로써 참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돈·권력·명예를 쫒아서 진흙탕 싸움에 휘둘리다보면 정작 중요한 내면의 정신세계를 살펴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청명한 가을 하늘에 비추어 맑은 영혼을 찾아내고, 소슬한 바람에 구르는 낙엽의 소리를 들으러 홀연히 떠나야 한다. 나를 만나러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야 한다.

2023-10-23

대구 수출에 먹구름 드리운 이-팔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 발발로 대구경제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경제동향 보고서가 나왔다. 최근 대구상공회의소가 이-팔 전쟁에 따른 ‘대구의 중동 국외투자·수출 현황과 영향’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는 이번 전쟁으로 섬유직물, 자동차부품, 의료용 기기, 공구류 등의 수출에 피해가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수출 감소와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이란에 대한 수출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고공행진 중이던 대구 수출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한다. 대구상의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발발로 두 나라에 대한 대구의 수출이 20∼40%가 줄었다”면서 전쟁이 장기화 된다면 전쟁 당사국인 이스라엘에 대한 수출 감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전국적으로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대구는 지난해 8월부터 수출이 지속 증가하는 나홀로 성장세를 보였다. 올 상반기 현재 수출실적은 전년도보다 19.8%가 증가한 60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증가율 전국 1위를 마크했다. 대구시는 연말까지 역대 최고치인 120억 달러를 목표로 속도를 내는 중이다.문제는 이-팔간의 전쟁이 중동전쟁으로 확대되면 글로벌 경제에 악재로 작용해 지역 수출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구뿐 아니라 국가경제도 이-팔간 전쟁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유 생산국은 아니지만 이란 등이 참여하는 전젱으로 확대되면 원유가격 폭등은 뻔한 일이다. 원유가격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벌써 작년말 보다 20%이상 뛰어 불안한 상태다.이-팔 전쟁으로 국제유가 불확실성이 커지고 원유가격이 폭등하면 국내물가 인상과 기업의 경영 부담도 뒤따른다. 특히 중소 수출기업이 많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대구시 등 관련단체들의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이-팔 전쟁 발발로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관련업계선 수출과 투자 확대를 위해 세제와 금융지원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계당국은 신속하고 정밀한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2023-10-23

‘경북 외교성과’ 시너지 내려면 사후관리 중요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경제사절단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많은 외교성과를 거뒀다. 이 지사는 “미국에서 K-컬처와 K-푸드에 대한 열풍과 함께 경북의 생산품들에 대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이 기간 LA 한인비즈니스대회에 참가한 경북도내 25개 기업은 미국기업들과 476건을 상담(금액 2천237만4천달러) 또는 계약했다. 역시 한인축제에 참가한 35개 농수산물 생산업체는 현장에서 45만달러(약 6억800만원) 상당의 상품을 전량 판매했다. 경북도내 기업인들이 미국의 다양한 바이어들과 접촉하며, 수출길을 모색한 경험만으로도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이철우 지사는 이번 방미 기간에 특히 항공·방산업체와 농식품업체를 집중 방문하면서 경북도 투자분위기를 유도했다. 이 지사가 방문한 항공·방산업체는 오버에어사와 아메리칸 항공, 벨 헬리콥터, 록히드 마틴 등이다. 오버에어사는 미국 항공우주국의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실증 테스트참여사로 발탁돼 UAM 항로 설계·교통관리 시스템·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경북 구미에 사업장이 있는 한화시스템이 몇 년 전부터 이 회사에 투자해 에어택시 기체 ‘버터플라이’를 공동개발하고 있다.이 지사는 미국 3대 헬리콥터 기업인 벨 헬리콥터를 방문해서는 경북도내 주요대기업(LIG 넥스원·한화시스템·풍산)과 방산부품·소재개발에 대한 상호협력을 강화하도록 주선했으며, 아메리칸 항공 본사에서는 대구경북신공항 추진 상황을 자세하게 브리핑하고, 미주 직항 노선 개설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외에도 경제사절단이 아마존 시장에 입점한 푸닷(Foodot)사와 라티노식품협회(라틴 국가 기업들로 구성) 등과 농식품 진출 협약을 체결한 것도 주목할만하다.경북도와 경제사절단이 방미기간 중 이룬 성과가 계속적인 시너지효과를 내려면 사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항공·방산업체나 푸닷사, 라티노식품협회 등과는 경북도가 수시로 협의할 수 있는 핫라인을 만들고, 수시로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2023-10-23

고교 4학년 시대

홍석봉 대구지사장 고교 4학년이 늘고 있다. 수능시험에 응시하는 반수생을 뜻한다.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는 반수생이 역대 최고로 많은 9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수생은 대학에 다니다 수능을 새로 보기 위해 2학기 휴학을 하고 입시에 재도전하는 수험생을 일컫는다. 속칭 ‘고교 4학년’이다. 대학을 중도 이탈하는 학생 수도 1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킬러(초고난도) 문항 배제’ 방침과 의대 광풍의 결과다.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18년째 연 3천58명으로 묶인 전국 의대 입학 정원의 확대를 공식화했다. 이 소식에 수험생은 물론 2030 직장인들까지 의대 입시에 뛰어들겠다고 하는 등 들썩이고 있다. 의사 면허를 취득, 개원만 하면 정년도 없고 연봉 3억 원이 보장된다. 의대 입시 준비에 따른 기회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다니던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다.의대 쏠림 현상은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반수생 및 중도이탈자 증가는 하위권 대학까지 연쇄 이동을 초래, 편입생 충원 등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 이공계 우수 인력이 의대로 몰려가면서 이공계 인재 양성 시스템도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걱정되는 것은 또 있다. 현재 중2가 응시하는 2028학년도 입시부터 수능 전 과목을 문·이과 구분 없이 치르게 돼 인문계 우등생까지 의대를 가겠다고 할지 모른다.누구나 안정적인 직업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렇게 인재가 편중된 사회는 기형적인 성장을 할 수밖에 없고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모두가 의대에 가겠다고 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의대 광풍을 잠재울 방안이 절실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23

그때 그 시절,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대구 반월당 인근에는 한국전쟁 후 대구 시내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1988)과 관련된 장소가 여럿 있다. 소설 속 집터와 약령시장·종로·군방각 등 소설 안의 장소가 근대 골목 투어라는 이름으로 현실의 콘텐츠가 되어 존재한다. 지금은 작은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주인공 길남이를 친구삼아 소설 속으로 한 발짝 들어가기에 알맞은 곳이다. 집터 골목 앞 길남이 동상 옆에서 사진 한 컷을 찍고, 캐릭터들이 그려진 벽화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곧 작은 대문이 보인다. 길남이가 처음 가족을 만났을 때를 상상하며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마당 깊은 집’은 1954년 대구 장관동 일대에 있는 어느 마당 깊은 한옥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당시 대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주인집이 사는 위채와 피난민 네 가구·길남이네, 상이군인 준호네, 경기네, 평양댁과 아들 정태-가 사는 아래채가 나온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가난과 허물어질 것 같은 도덕심과 신념을 아등바등 지키려는 사람들과 전쟁으로 무너진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자본주의 논리와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런 혼란한 곳에서 길남이는 처음으로 대구에 상경하여 가족과 같이 살게 되며, 엄하기만 한 어머니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당시의 여느 아이들처럼 어린 나이에 내적 성숙을 하며 어른이 되어간다.‘마당 깊은 집’ 위채의 삶에서는 대구의 방직·군수 산업과 연결된 부의 축적과 인맥에 따른 부조리를 엿볼 수 있고, 아래채의 삶에서는 전후에 팽배하던 가난과 결여를 확인할 수 있다. 주인집은 한옥임에도 유리가 끼워진 문이 있고, 전축에서는 영어 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다. 대물림받은 가산과 더불어 점점 확장되어가는 방직 공장을 운영하면서 부를 축적한다. 특히 아들 성준을 미국에 유학 보내기 위해 미국식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고, 미군을 포함하여 지역 인사들을 초대하는 등 부를 과시하기도 한다.또한 겨울에 셋방을 빼게 하거나 집수리를 위해 셋집을 쉽게 내보내는 등 오늘날에는 불가능한 갑질의 모습도 그려진다. 이와 대비되게 아래채에 사는 네 가구는 모두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 한 평의 가건물을 덧대어 부엌을 만들고, 작은 방에 많은 식구가 모여 지낸다. 다닥다닥 붙은 셋방들은 사생활 보호는 당연히 불가능할 정도다. 옆집 잠꼬대 소리가 들리는 건 물론이고, 하나뿐인 변소에 드나드는 이유와 횟수조차 서로 알고 있다. 하루 벌이가 넉넉하지 못하면 점심 굶기는 일쑤고, 겨울에도 난방은 쉬이 하지 못하다. 상이군인네 준호 엄마는 출산 후 2일 만에 시장 장사를 하러 나가고, 길남이는 신문팔이를 하며 중학교 학비를 모은다. 주인집 눈치 보기 바빠 때로는 서로의 등을 떠밀기도 한다. 아등바등 생을 살아내는 캐릭터가 애잔하면서도 현재가 얼마나 평화로운지 실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여기에 아래채가 수몰될 정도로 비가 내리지만 무심한 위채 사람들, 일주일간 이어진 살인 사건 덕분에 늘어난 신문 판매 부수로 이익을 보는 신문팔이, 정태의 월북 미수 사건으로 휘말릴까 겁내는 아래채 사람들 등 무거운 사건이 스냅북처럼 가볍게 펼쳐진다.또한 피난민이 모여든 방천에서 이산가족을 찾는 사람들과 새 인연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대구역 앞에 모여든 거지와 실업자들 그와 대비되는 귀금속 거리와 영화관 등의 화려한 풍경이 덧그려진다. 이 모든 것은 소설 주인공 길남이가 신문팔이를 하면서 돌아다니던 어릴 적 시선과 성인이 되어 1954년을 추억하는 시선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소설 속 1954년 대구는 전쟁 후유증과 자본주의 성장이 맞물려 공존하던 곳이었다.‘마당 깊은 집’의 길남이와 모친은 여느 모자 사이와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어머니가 바라보는 아들 길남이는 애잔한 아들과 원망스러운 남편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길남이는 가족을 버리고 월북한 부친을 대신하여 집안의 장남이란 명목하에 모진 대접을 받는다. 길남이가 바라보던 어머니도 자상한 어머니와 살벌한 마녀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어머니가 시키는 일을 겉으로는 열심히 하지만 속으로는 반발심을 꽤 표현한다. 둘의 이러한 거리감은 길남이가 스스로 사생아라고 칭하며 가출하고, 그런 길남이를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데려왔을 때 비로소 연결점이 마련된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잘못 인식한 부분을 인정하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마당 깊은 집’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무언가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가며, 성장과 성숙해지던 당시 대구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경제·문화·정치·사회가 있으며,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이 있다.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고,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일부 살아있으며, 그 직간접적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그때 그 시절은 이후의 빠른 발전에 힘입어 이미 옛 기억이 돼버렸다.지금은 남겨진 자료나 당시를 형상화한 명소만이 이를 대신한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0-23

우리는 모두 아이였던 때가 있다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 ‘홍당무(Poil de Carotte)’ 가끔씩, 망각하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아이였던 때가 있다. 단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 때의 기억은 대부분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했는지 알 수 없는 이해불가의 영역뿐이다. 그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렸고, 그렇기에 어떻게 말하거나 행동하는지 몰랐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묻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일지도 모른다.우리는 흔히 아이들이 이유 없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편견일 것이다. 아이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 나름의 합리적인 행동으로 대응한다. 또한 그것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다만, 그 합리가 어른의 그것처럼 규격이나 양식을 따르고 있지 않을 뿐이다. 또한 그것에 대해 설명할 만큼의 말솜씨를 갖지 못한 것이다. 말썽쟁이들이 부리는 말썽은 대부분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Jules Renard·1864~1910)의 소설 ‘홍당무’는 바로 그렇게 우리가 모두 아이였던 때가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르나르가 자신의 아들과 딸을 위해 1894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프랑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말썽꾸러기 ‘홍당무’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르나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해서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종종 르나르가 겪었던 어머니로부터의 학대의 경험이 표현되어 있다고 평가되곤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이 소설에는 홍당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섬세한 심리가 너무나도 잘 그려져 있을 뿐이다. 어떤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삶의 양식들이 존재하며, 그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재단하는 것은 소설을 읽을 때 그리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 소설에서 홍당무는 형도 누나도 가지 못하는 밤의 닭장문을 닫는 일을 하러 처음 나서기도 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요강도 찾지 못해 침대 위에서 그대로 대변을 누기도 한다. 또 귀에 펜대를 끼운 채로 잊어버리고 아버지에게 키스하려다가 눈을 찌를 뻔하기도 한다. 어머니, 르픽 부인의 은화를 훔치고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실수로 낚시 바늘을 어머니의 손가락에 관통하게 해서 큰 소동을 일으키고 눈물을 짜내기도 한다. 홍당무는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골칫거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에게는 아이가 가지게 마련인 나름의 생각이 있다. 이 작품은 아이라는 존재를 막연히 미화하는 동화의 기본적 양식을 따르기보다는 아이란 그렇게 늘 말썽을 부리기 마련인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이 작품이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독자에게 큰 인상을 남기고 있다면,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선을 낮춰 아이의 눈 그 자체로 본다면, 아이가 만나는 세계는 선과 악, 어떤 것으로도 재단할 수 없는 순진무구 그 자체라는 사실 말이다. 선악이란 어른의 관점일 뿐으로, 아이의 행동은 선의나 악의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는 다른 자기만의 행동 방식으로 행해진다는 메시지를 이 작품은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수 있다. 가만히 지켜보면 거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다. 선의와 악의, 성숙과 미숙, 보편과 개성 같은 명확히 굳어진 세계 인식을 갖고 있는 어른에게는 단지 그 섬세한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되기 어려운 것뿐이다. 우리는 모두 아이였던 때가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곳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 뿐이다. 쥘 르나르는 바로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10-23

지속 가능한 재활용 체계를 갖추어야

김규인수필가 비닐봉지를 뜯어 재활용품을 모으고 지게차를 이용하여 다시 이동용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곳으로 밀어 넣는다. 재활용품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흐른다. 벨트에 붙어선 사람들은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골라서 큰 포대에 담는다. 채워진 포대는 종류별로 단단하게 묶여서 재활용 공장으로 다시 보내진다. 선택받지 못해 쓸모없는 물건은 폐기물 처리센터로 보내어 태운다. 타면서 나오는 분진과 냄새와 유독가스는 우리를 괴롭힌다.쓰레기 재활용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매일 되풀이 되는 문제이다. 그런데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우리는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구는 버려진 폐기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는 남의 일인 양 나 몰라라 한다. 서로가 남 탓만 하며 지구를 살리는 시간을 허비한다.북태평양에선 미국의 텍사스주보다 큰 플라스틱 섬이 매년 그 크기를 더하는데 사람들은 누구도 먼저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쓰레기를 마구 쏟아낸다. 남극에선 빙하가 계속 녹아 빙하를 보기가 어렵다. 지구의 비명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홍수가 나고 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가뭄으로 물 구경을 한 지 오래된 나무들은 자연발생적인 산불로 몇 달째 자신을 태운다.우리나라에서도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분류되지 않은 쓰레기는 태워지거나 땅에 묻는다. 묻을 곳이 모자라서 새로운 매립지를 정할 때면 그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늘어난다.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시설을 건설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는 곳에 폐기물 처리 시설 건설을 막는다. 그나마 재활용품을 처리하는 업체가 있기에 이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다행이다.2021년 기준 재활용업체는 6천720개다. 2020년 대비 2.8% 늘어난 수치이다. 종업원 수가 5인 이하 업체의 비율이 53.8%이고 10인 이하는 4천955개로 73.7%이고 100인 이상인 업체는 98개로 1.5%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소각하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이다.대다수의 재활용업체가 영세하기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물건만을 모아서 처리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사용해 연 32만t의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복합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체를 울산에 건설한다. 재활용 소재 개발과 자원순환 생태계를 위해 삼성전자가 ‘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한 것은 다행이다. 폐기물 재활용에 있어 중요한 생산자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이제는 살기 위해서라도 재활용 비율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촘촘한 법을 만들고 생산자는 쓰레기가 적게 나오도록 제품 포장과 생산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소비자는 재생 원료로 만든 제품의 사용을 늘리고 쓰레기를 버릴 때는 철저하게 분리하여 배출해야 한다.폐기물 처리에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폐기물 재활용을 위한 지속 가능한 선순환 체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지구가 더 이상 오염되는 것을 줄이고 사람의 삶이 가능한 지구를 보존할 수 있다.

2023-10-23

다문화 시대와 문해력 교육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문해력(literacy)’이라는 용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뜻한다. 그런데 단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고, 한국어를 말하고 들을 수 있다고 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문해력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맹률’과 ‘문해율’은 다르기 때문이다. 실질 문해율이란 문서를 읽을 때 글자는 알지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율이다. 2021년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 문해율은 OECD 국가 중 중상위권에 위치한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실질 문해력 부족으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단골 소재다. ‘금일’을 ‘금요일’로 잘못 이해한 사례, ‘심심한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과’라고 받아들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주로 한자어 사용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 사이의 차이로 발생한다. 언어는 언중의 필요에 따라 변화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해력이 부족하면 전문적인 정보를 해득하기 어렵고, 오독의 가능성이 증가해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을 가능성도 높다. 더 큰 문제는 세대 간 경험의 차이보다도 더 심각한 격차가 문해력 이슈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다문화가족 아이들이 겪는 실질 문해력 부족 문제다. 농어촌 지역에는 중개업체가 개입된 국제결혼을 통해 형성된 다문화가족이 많다. 이 경우 성역할에 대한 보수적 관념 때문에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어가 서툴러도 남편은 자녀 교육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가정이 적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한국말은 곧잘 하지만, 문해력은 부족하기 쉽다. 생활 환경에서 접하는 한국어의 양과 질이 빈약하고, 잘 정련된 문어(文語)를 접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진로 선택, 진학, 취업, 금융거래, 부동산 계약, 복지혜택 등 문해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지난 10월 17일과 18일, 농림축산식품부와 경북농협은 경북지역 다문화가족 및 지역주민 50여 명을 대상으로 ‘다문화가족 농촌정착지원과정’ 현장 교육을 실시했다. 다문화가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교육의 기회가 더 많은 다문화가족에게 돌아가야 함은 물론이고, 결혼이주여성 및 다문화가족 2세들을 위한 한국어 문해력 교육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다문화가족 2세들의 문해력 부족 문제는 학교 교육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아이들은 학교보다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길며, 기초적인 문해력이 부족할 경우 교과과정을 따라가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섬세한 정책적·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우선 방과 후 교실이나 특별활동에서 전문 강사를 고용해 한국어 문해력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강사 인건비 및 공간 등을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성에게만 자녀 교육을 전담시키는 성역할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 또한 차츰 바꿔 나가야만 한다.

2023-10-23

민생 현장만 다니면 소통이 될까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반성 모드다. 그는 19일 충북대에서 “저보고 소통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분이 많아, 많이 반성하고 소통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17일 저녁에는 국민통합위원회·국민의힘 지도부 등을 청와대로 불러 “얼마나 정책집행으로 이어졌는지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라면서 ‘반성’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직진만 해온 윤 대통령으로선 매우 낯선 모습이다.그러면서 그는 민생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18일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19일도 다시 참모들에게 “나도 어려운 국민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라며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라고 지시했다. 당 지도부와 참모만이 아니라 스스로 바뀌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민심은 천심이다. 국민은 왕이다’라고 늘 새기고 받드는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평소 생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칫 “선거에 졌다고 윤 대통령의 태도가 바뀐 건 아니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말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행동이 중요하다. 과거 정치인들도 좋은 말은 많이 했다. 멋진 말, 대중에게 인기 있는 표현에 욕심을 내고, 자기 이미지를 포장하려 했다. 그러면서 행동은 거꾸로 하는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윤 대통령은 “소통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추진하면서 소통해야 한다”라며 실행을 강조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평가는 아직 이르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를 방문해 투자와 고용을 부탁하면서 이재용 회장을 구속하고, “기업의 노력을 확실히 뒷받침하겠다”라며 ‘반도체 특별법’을 약속하고는 실제로 만든 법에서 ‘반도체’라는 단어를 쏙 빼버렸다. 그는 취임사에서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조국 사태는 반전이었다.윤 대통령도 멋진 표현을 좋아하는 편이다. 실제로 앞뒤 재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다. 취임 초에 무리하다고 주변에서 말리는 ‘도어 스테핑’을 실행한 것도 그의 용기와 결단력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이 빈말은 아니라고 믿는다.윤 대통령은 단임이다. 본인이 다시 선거에 나설 일이 없다. 그는 인기가 없는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대일(對日) 외교나 긴축 재정 등은 박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의대 증원 추진과 관련해서도 그는 “이런 것을 추진한다고 선거에 손해를 보지 않겠느냐고 걱정하시기도 한다”라며 “그러나 우리는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그러면 윤 대통령은 정권이 넘어가건 말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걸까. 물론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결국 민심을 얻는다는 믿음이다. 보수진영으로선 윤석열 정권의 성공 이상으로 차기 정권 창출이 중요하다. 정권이 교체되면 윤 정부에서 했던 정책이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국가 간 약속인데도 뒤집혔다.내년 총선이 6개월도 안 남았다. 총선에서 지면 야당은 물론 여당도 차기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공무원도 태도가 달라진다. 바로 레임덕이다. 더구나 그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에 보낸 경험이 있다. 정권을 넘겨주면 퇴임 이후도 불안하다. 윤 대통령도 남의 일일 수 없다.그런데 윤 대통령 발언에는 대통령과 측근 참모, 그리고 국민의 관계만 있다. 민생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민생 현장만 뛰어다닌다고 불통이 해소될까. 과거 독재자들은 정치적 경쟁자 대신 국민을 직접 상대하려 했다. 대통령은 민생을 위해 애쓰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자기 생각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 요즘처럼 진영정치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반쪽 소통이 될 가능성이 크다.민주주의의 본질인 관용의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권력자가 정성을 다해도 정치가 풀리지 않을 때 그 책임이 야당으로 넘어간다. 눈과 귀를 조금은 더 열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22

환동해 문화도시 포항 꽃피울 ‘포항시립박물관’을 기대한다

이강덕 포항시장 현재 포항은 철강도시에서 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도약의 원동력은 자신의 뿌리를 깊이 있게 아는 데서 시작된다고 보며, 그 출발점이 바로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담은 포항시립박물관의 건립이라 할 수 있다.포항시립박물관의 건립은 우리 지역의 수많은 유물을 수집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공간 즉, 지역 수장고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시급한 현안이다.안타깝게도 포항에는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수장고가 아직 없다.이런 연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 금석문으로 평가받는 국보 ‘포항 중성리 신라비’(501년 제작 추정)가 포항에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또한, 중국 서진(西晉)시대 관인으로 포항 신광면에서 출토된 보물 ‘청동 진솔선예백장 인장’, 흥해읍 일대 고분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 등 과거 포항에서 출토된 문화유산 대부분이 다른 지역의 박물관 혹은 연구소에 보관돼 있다.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경주 불국사에 버금가는 가람이었다고 전하는 법광사지는 10년 넘게 발굴이 진행되면서 많은 조사 성과를 거두었다.신라 왕실 원찰에서만 확인되는 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인 녹유전을 비롯해, 불상·기와·토기 등 각종 유물이 3,000여 점이나 출토되었지만 수장시설의 부재로 이미 고향을 떠났거나 앞으로도 반출이 이어질 전망이다.문화유산은 그 지역의 정신을 담고 있다.포항시민의 정체성 확립과 우리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포항의 문화유산을 되찾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도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한 구심점인 수장고의 건립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박물관의 존재는 단순히 유형의 문화자원 보존에 그치지 않는다.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 발전을 견인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도시가 개발되고, 인구가 급증했으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이러한 과정에서 과거의 모습·관념·전통 등이 사라지고 잊혀져가며 안타까움을 더한다.포항시민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언어문화, 전통 놀이, 풍습 등 소중한 무형적 문화자원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 같은 정신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연구·보존해 미래 세대에게 전승해 줄 수 있는 박물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포항은 그동안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왔다.더불어 시민들이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갈증을 겪어 온 것도 사실이다.그렇기에 포항시립박물관은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 관리를 넘어, 시민들과 지역정체성을 함께 공유, 소통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또한 영일만을 따라 펼쳐지는 포항시립미술관, 2026년에 완공될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 등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해 포항시립박물관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다.용비어천가에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니’ 라는 구절이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과 열매가 많이 열린다는 뜻이다.50만 시민들의 염원을 모은 ‘포항시립박물관’이 지역민의 자긍심과 정체성의 ‘뿌리’가 되어, ‘문화도시 포항’이라는 꽃을 피우길 기대한다.

2023-10-22

경산의 광장을 기다리며

조현일 경산시장 ‘광장’소설가 최인훈이 전후 소설 중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루어 필생의 역작으로 꼽히는 중편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사전적 의미로 도시 속의 개방된 장소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넓은 공간인 광장을 이야기하고 싶다.우린 이러한 광장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광화문광장을 떠올린다.대한민국 역사 문화 중심공간으로 자리 잡은 광화문광장은 광화문의 소실과 복원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부침의 과정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중심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며 소식과 의견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고, 다양한 근·현대사를 겪으며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공간으로 발돋움했다.또 2022년 8월 다시 문을 연 광화문광장은 광화문 앞길의 역사적 의미와 깊이를 계승하고 휴식과 산책 등의 일상과 축제나 행사 등의 비 일상을 연결하는 서울 시민의 대표적 삶의 장소가 되었다.광장을 이야기하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아테네광장이다. 고대 강력한 도시국가였던 아테네는 예술과 학문, 철학의 중심지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광장에서 펼칠 수 있었다. 현재 그리스어로 ‘헌법’이라는 뜻이 있는 아테네시의 신타그마광장의 별칭인 아테네광장은 1843년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장소로 유명하다.눈을 돌려 인근 대구시를 바라보면 성공적으로 정착한 광장이 있다. 대구시는 1981년 조성된 두류야구장을 시민광장으로 조성해 지난 8월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시민광장은 대구시의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은 치맥페스티벌이 열리고 관등놀이축제 등 행사·축제의 공간으로 활용되며 시민들의 도심 속 휴식과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지금까지 광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경산시는 2024년 10월쯤에 ‘경산문화관광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다.경산문화관광재단의 설립은 문화예술과 관광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요구가 증가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콘텐츠 개발과 체계적인 문화정책 추진을 위한 전문 조직 설립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경산문화관광재단은 경산시가 출연하는 민법에 따른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문화예술 및 관광 진흥을 위한 기획 및 공모사업 △문화예술 활성화 사업과 시립예술단 운영, 예술단체와 예술인 지원 △지역축제 기획 및 추진 △관광콘텐츠 개발과 홍보·마케팅 △국비 공모사업 진행 △경산 갓바위 야영장 위탁 운영과 시설관리 등을 담당한다.지금까지 지역에서 열린 축제는 자인이나 와촌에서 개최되며 협소한 주차장과 차별되지 못한, 관심을 끌기 어려운 축제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또 지역행사들이 생활체육공원 어귀마당에서 개최되며 기획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축제다운 축제, 기획력이 돋보이는 행사, 문화와 쉼, 놀이가 어우러져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경산문화관광재단의 설립과 함께 필요해진 것이다.지역의 광장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광화문광장처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워도 지역을 대표할 힘은 있다.경북의 3대 도시로 성장한 경산이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광장을 다시 조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산의 광장은 처음부터 신중하게 접근해 시민 누구나 수긍하는 입지와 규모로 조성이 요구되고 있다.자치단체장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기록할 수 있는 업적을 쌓기를 원하고 이를 자랑으로 여긴다.하지만, 자신의 업적을 나타내고자 급하게 추진한 사업들이 후손의 부담으로 다가온 사례를 많이 목격하고 있다.경산시 광장은 시장의 업적이 아닌 시민의 힘으로 이룬 광장이 될 것이다.아테네광장이 고대에서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자유로운 토론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경산의 광장도 시민의 자랑거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지역을 찾는 방문객에게는 꼭 찾아보아야 하는 공간, 시민에게는 언제든지 찾아가도 무언가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2023-10-22

모서리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딩동거리던 피아노 소리가 뚝 끊겼다. 수업을 하다 말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교실 바닥에 의자들이 나뒹굴고 그 옆에서 상진이가 쓰러져 울고 있었다. 상진이의 이마가 지퍼처럼 열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구급약품을 꺼내 응급조치를 하는 사이 아이들이 자초지종을 말했다. 상진이가 의자 위에서 장난을 치다가 교실 문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쳤다고. 병원에 데려가려고 지갑을 챙기는데, 상진이가 문 앞에서 모서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내가 손을 잡자 씩씩거리며 발로 문설주를 몇 차례 걷어찼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냐는 듯 모서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병원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엄마를 찾았다. 접수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입구만 바라보았다. 상처를 꿰매기로 하고 잠시 대기하는데, 한 여인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당황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것으로 보아 상진이의 엄마가 아닐까 짐작했다.“아녀하태요”어눌한 발음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깡마른 체형에 키가 자그마했다. 피부는 검었으나 인상은 선해보였다. 급하게 달려 온 탓인지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동안 할머니와 통화를 해서 상진이 어머니가 동남아 여성인 줄 몰랐다.상진이의 이름이 호명되고 수술실로 함께 들어갔다. 하지만 의사는 어머니를 내보내려고 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상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간호사에게 떠밀려 나온 상진이 어머니가 한마디 던졌다.“한국 사람들은 다 모서리 같아요”무뚝뚝한 경상도 말씨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상진이가 입학한 후, 일어난 이야기들, 아이들과의 문제, 같은 반 엄마들과의 갈등, 선생님과 의사소통이 원만하지 못해 겪은 해프닝 등을 서툰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상진이의 어휘력은 또래보다 떨어졌다. 수업을 이해하는 속도도 차이가 났다. 상진이는 늘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른바 ‘왕따’였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상진이에게 상처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다문화가정의 아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서 그동안 학원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나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부드러운 피부와 따뜻한 체온 그리고 두 뺨에 흐르는 눈물, 상진이 어머니도 여느 여성과 다르지 않았다. 상진이를 잘 부탁한다며 몇 차례나 당부했다. 어둠 너머로 걸어가는 모자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김경아 작가 두 면을 연결해 주는 곳, 모서리는 한 면이 끝나는 지점이지만 새로운 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살던 세상을 넘어 새로운 세상에서 꿈을 펼치려 왔지만 자꾸만 모서리로 밀리기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서리는 상진이 어머니에게 두려운 각이었을 것이다.상진이 어머니에게 한국인의 말투와 행동은 모서리 같았을 것이다. 출생지가 다르고 말이 다를 뿐인데, 그렇다고 남을 해치기 위해 각을 세운 것도 아닌데, 상진이 어머니의 푸념이 내 가슴에 모서리가 되어 박혔다.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엄마는 같은 마음이다. 언어가 다를지라도 엄마의 눈은 내 아이에게 향해 있고 엄마의 귀는 내 아이의 소리에 열려있다. 모 나지 않고, 모서리에 긁히지도 않고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은 피부가 검다고 다를까.학원으로 돌아와 상진이에게 상처를 준 문의 모서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내 이마가 저리는 것 같았다. 이곳저곳 위험한 모서리를 찾다가 나도 타인을 들이박고 시치미를 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누구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퍼즐 맞추기에서 아귀가 잘 맞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그림이 이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이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퍼즐이 다 맞춰지면 바라는 세상이 펼쳐지는데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모서리에 두꺼운 천을 덧댔다. 아이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상진이의 얼굴도 덩달아 환해졌다.

2023-10-22

‘지방 국립대 병원 역량강화’… 방향 잘 잡았다

정부가 지난주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국립대병원 진료 역량을 서울 주요 대형병원 수준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국립대병원 의료질을 높여 사회현안인 필수의료, 보건의료 RD 혁신, 인력 양성·공급 등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게 정부구상이다. 그동안 의대정원 증원 대책에 치중하다, 지방의료 현안해결로 정책방향을 선회한 것은 바람직한 판단이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주목하고 있는 포스텍(포항공대)의 연구중심 의대설립도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희망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충북대에서 열린 ‘필수의료 혁신 전략회의’에서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지역·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 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고 밝혔다. 그 후 정부는 다양한 후속대책을 발표했다.우선 지방 국립대병원의 의사 수와 인건비 규제를 풀고 처우를 대폭 개선한다. 전체 의사 수를 늘리고 처우를 개선하면 자연적 필수의료(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분야로 인력이 분배될 수 있다. 지난 연말 전국 수련병원(대학병원) 2023년 전반기 소아과 전공의(레지던트)를 모집한 결과, 대구·경북을 포함해 영남권 병원에서는 한 명의 의사도 지원하지 않았다.국립대병원 중환자실과 응급실의 병상·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도 지원해서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근절한다. 필수의료를 지원하기 위한 수가(酬價)를 올리고,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환자 피해구제와 함께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줄이는 대책도 세운다.지방 국립대병원 의료 혁신정책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없다. 의사수와 의료질, 의료장비수준이 수도권 대형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는 이미 경험했듯이, 필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큰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이번엔 민주당도 지역·필수 의료 현안을 해결하는데 동참하고 있으니만큼 여·야·정이 힘을 합쳐 성과를 내기를 바란다.

2023-10-22

길에서 길로 길을 떠돌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삶에는 더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난다. 어떤 필연성이나 치명적인 관련성이 없는 사건과 관계가 느닷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우리는 고단한 인생을 견딜 수 있을 터다. 지난 금요일 오전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 앞을 출발한 승용차가 신천대로를 거쳐 남대구 인터체인지를 지나 광주로 향하는 장도(長途)에 오른다.고령을 지나 가조를 거쳐 거창을 넘어설 무렵 운전 시간은 한 시간을 넘어선다. 이윽고 함양 간이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한다. 이윽고 다시 승용차는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한다. 남원을 거쳐 순창과 장수를 거쳐 목적한 담양 톨게이트를 바람처럼 달려 나간다. 우리가 목적한 1차 집결지에 도달하고 보니 약속한 시각보다 30분이나 일찍 당도한다.2019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나는 광주에 자리한 전남대에서 교환교수로 생활한 바 있다. 그때 맺은 인연으로 경북대 인문대 교수 5인과 전남대 인문대 교수 3인이 광주와 대구를 오가며 세상과 인생과 역사와 미래를 토론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전남대 교수들이 우리를 초청하여 광주에 가기로 한 것인데, 점심을 담양 수북(水北)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대나무로 이름난 담양이지만,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에서는 돼지갈비가 유명한데, 돼지갈비를 손님이 굽는 게 아니라 식당에서 구워서 내오는 것이 여느 식당들과 다른 점이다. 풍성한 야채(野菜)와 잘 익어 풍미와 육즙이 넘치는 돼지갈비를 함께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담양의 막걸리도 맛에 일획(一劃)을 추가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소쇄원을 들르지 못한 게 다소 아쉬웠으나, 우리는 죽녹원으로 발길을 향한다. 굵은 대나무가 열병식이나 하는 것처럼 줄지어 선 공간에 사람들이 웃으며 걷고 있다. 요새 유행하는 맨발 걷기에 도전해 본다. 비가 온 다음이라 잘 다듬어진 진흙 길은 매우 차다. 그렇다. 이런 늦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나무랄 데 없지만, 몸이 찬 사람이 맨발로 걷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죽녹원에서 나와 ‘메타세쿼이아 랜드’로 걸음을 옮긴다.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길로 선정됐다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중심으로 놀이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도중에 작은 미술관에 들러 수묵화(水墨畵) 몇 점을 감상하는 호기도 갖는다. 아스팔트 길을 흙길로 만들어낸 지자체에 박수를 보낸다. 청도 곳곳에 넘쳐나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길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군민을 생각하는 지자체장들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너르고 크다.무려 2만 보(步)를 넘게 걸은 우리는 광주의 한식당에 자리 잡는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식당이 있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산물과 육류, 신선한 채마(菜麻) 반찬으로 차려진 식탁이 풍성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문학과 인간, 앞으로 펼쳐질 미래세대의 삶에 담길 향방에 대해, 지나간 날들의 아름다움과 환희에 대해 말을 주고받는다.잠자리에 들면서 상념에 젖는다. 길은 우리를 타자들과 이어주면서 삶의 신비와 의미를 반추하도록 인도한다. 길에서 길로 길을 떠돌며 우리는 오늘도 그 길을 간다. 환하게 웃으면서!

2023-10-22

실망스러운 한국가스공사의 지역상생 외면

대구 혁신도시에 본사를 둔 한국가스공사가 공공기관으로서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지역발전 동반자가 돼야 함에도 이런 공익적 수행 노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실망스럽다.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이 가스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작년 가스공사가 체결한 공사·용역·물품 등 계약은 모두 1천378건으로 금액으로는 2조3천404억원에 달했다. 이 중 대구기업과 계약한 것은 53건, 115억원으로 전체 계약액 기준 0.49%에 그쳤다.매체 홍보비도 총 33억원 가운데 대구경북 매체에 지출한 것은 1억4천만원으로 전체의 4%다. 지역사회공헌 활동도 작년 34억1천만원을 지출했으나 올해는 31억900만원으로 오히려 줄었다.또 기업과 연구소 등에 지원하는 연구개발비(RD)는 수도권에 70억원(44%) 지원하면서 대구와 경북은 22억원(13%)에 그쳐 공공기관 이전 취지를 무색게 한다.노무현 정부 당시 공공기관 100여개를 전국에 분산 이전한 것은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다. 정부투자 공공기관이 앞장서 지역사회와 협력해 지방소멸에 대응하고 지역경제 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한국가스공사의 지역과의 상생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정감사가 있을 때마다 비슷한 지적을 자주 받았으나 여전히 개선되지 않아 실망이다.한국가스공사는 대구를 대표하는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 이전 취지에 맞는 각종 행정집행을 통해 지역과 소통하고 상생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이상 지역민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가스공사뿐 아니라 아직도 많은 공공기관들이 지역으로 이전하였음에도 서울쪽 경제활동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고쳐져야 한다. 혁신도시 공공기관이 지방이전 취지를 살려 협력업체들이 지역으로 내려오도록 정책을 펴야 국가적 과제인 지역균형 발전도 앞당겨질 수 있는 것이다.본사가 대구인 가스공사는 지역사회와의 신뢰 구축 없이는 지역 존립의 의미도 없다. 지역과의 상생발전을 위해 전사적 차원의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2023-10-22

팔공산 단풍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지방기상청은 지난주 18일 청송 주왕산과 함께 대구 팔공산의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고 알렸다. 산 전체 중 정상으로부터 20%가 물들면 보통 단풍이 시작된다고 표현한다. 80% 이상 물들었을 때는 절정기다. 대구 경북민이 가장 즐겨찾는 팔공산의 단풍놀이가 이번주부터 드디어 본격화될 것 같다.팔공산은 대구 남쪽의 비슬산과 함께 대구 일원을 수천년 지켜온 진산(鎭山)이다. 삼국시대 신라인은 아버지 산이라 하여 부악(父嶽)이라고도 했고, 중심되는 산인 중악(中嶽)이라고도 불렀다. 풍수지리학자는 양기가 강한 아버지 산인 팔공산과 부드러움이 있는 어머니 산 비슬산이 대구사람에게 기를 불어넣었다고도 한다.원래는 공산이란 이름을 가졌으나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다 신숭겸 등 8명의 장수를 잃어버려 그들을 기린다는 뜻에서 팔공산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팔공산 주변에는 아직도 공산전투와 관련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최고봉인 팔공산 비로봉(1192m)은 봉황의 머리, 동봉과 서봉은 봉황의 날개에 해당하며 동화사가 자리잡은 곳은 봉황의 아기궁이어서 겨울에도 동백꽃이 필 정도로 따뜻하다고 한다. 게다가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우리나라 영험한 기도처 갓바위가 위치해 팔공산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지난 5월 23일 팔공산은 우리나라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첫해의 단풍철이다. 대구지방기상청은 오는 27일에서 28일사이가 절정기가 될 것 같다고 전한다.신비와 스토리가 많은 팔공산 단풍 구경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22

포스텍은 그냥 하나의 대학이 아니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포스텍을 새로이 이끌 새로운 총장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제9대 새로운 포스텍 총장으로 김성근 전 서울대 자연대 학장이 선임되어 지난 9월부터 포스텍을 이끌고 있다.포스텍은 과거 세계 28위(THE 랭킹)로 단연 한국대학의 선봉장이었고, 카이스트와 홍콩과기대, 로잔공대 등을 누르고 ‘설립 50년 이하대학’ 세계 1위로 3년 연속 랭크된 대학이기에 전 세계 교육계의 관심도 당연히 함께 하고 있다.아쉽게도 그러한 위상은 이후 지켜지지 못하였고, 이제 포스텍은 이러한 과거의 화려한 위상을 다시 복원하고 새로 세워야 하는 큰 미션을 안게 있다.최근 추진되고 있는 의과학자 양성 의대 설립추진도 학교의 위상을 올리는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학교의 위상이 의대 설립과 함께 크게 고취될 수 있고 뒤쳐진 한국 의과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금년, 연구비의 증가로 교수, 직원들에게 주어진 보너스도 좋은 인센티브이며, 재정의 탄탄함이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과거 국내 최고의 대우였던 포스텍 교수의 급여수준도 다시 끌어올려 사기를 북돋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신나는 캠퍼스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위상을 국내외적으로 새로 세우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국내외 평가를 상승시키는 건 교수 직원 학생 구성원의 자존심, 생산성과도 관계가 있고, 그리고 졸업생 명예교수들의 자부심과도 직결된다. 국내외 고교, 대학생들의 포스텍 지원과 교수직 초빙에도 중요하고 해외대학과의 교류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포스텍에 세계대학 경쟁력 연구원(Postech Institute of University Competitiveness)같은 기관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정부기관과 연계하여 다양한 보고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포스텍 브랜드가 들어가는 평가 지표를 개발한다면 포스텍 위상 상승에 크게 기여 할 것이다.현재 라이덴 랭킹(네델란드), 샹하이자오퉁 랭킹(중국) 등의 랭킹과 지표 등이 그 대학들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데 크게 공헌하였고 포스텍은 이러한 대학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Aim globally, think locally(세계를 목표로 하고 지역과 유대하라) 교훈도 중요해 보인다. 지역과의 유대강화도 중요하다. 대학 부근에 실리콘 밸리를 만든 스탠포드 대학이 좋은 예이다. 지역과의 유대를 떠나 새로운 창조를 하고, 이를 통해 세계로 뻗어가는 포스텍이 되어야 한다.국내외 포스텍을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의 재건도 필요해 보인다. 국내 리더십을 아우르는 전국적인 포럼, 카이스트 브랜드 가치에 크게 공헌한 국제총장포럼 등도 구상해 볼만한 행사들이다. 동문들을 활용한 세계 네트워크의 구성과 해외거점의 설치, 적극적인 국제화 및 국제 인지도 향상에 대한 정책 등도 필요해 보인다.복잡해 보이는 대학 총장의 역할도 간단히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내외부 자원의 유치와 활용을 통해 구성원들을 신나게 하여 그들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국내외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내부적 역량을 국내외의 네트워크와 연결. 대학의 평가와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다.분명한 것은 ‘포스텍은 그냥 하나의 대학’이 아니다. 몇 년전 유엔에서 감동의 연설이 있었다. 유엔 안보리에서 행한 한국의 유엔대사가 행한 즉흥 연설이 세간에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안보리 대표들을 가슴으로부터 울린 연설은 그 전문이 공개되어 있지만 두 개의 문구가 특히 눈에 띄었다.“한국인들에게 북한사람들은 그냥 스쳐가는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사실 “아무나가 아니라”는 말처럼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도 많지 않다. 무엇이든 “아무나” 또는 “아무 것이나”가 아니게 여기는 정신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이다.또한 “우리의 소원은 이것이다. 먼 훗날 우리가 북한을 위해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가 올바른 일을 했다(did the right thing)라고 말할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외치며 그는 연설을 매듭 지었다. 일부 참가 대사들이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이 TV에 방영됐다.우리 포스텍도 마찬가지이다. 포스텍은 이제 30년을 넘어 반세기를 향하고 있다. 그 세월동안, 그 정성과 땀을 바쳐온 교수와 구성원들에게는 포스텍은 그냥 ‘아무나의 직장’은 아닐 것이다. 그냥 하나의 대학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땅에 포스텍을 세울 때 외국에서 귀국한 교수들과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또한 위험을 안고 포스텍을 선택하였던 졸업생들에게는 포스텍은 ‘아무나의 대학’은 아니었을 것이다.한국의 유엔대사가 외쳤듯이 먼훗날 우리는 “아무나가 아닌” 우리 한국의 과학과 경제발전, 그리고 지역과 연계한 창의를 통해 세계에 이름을 떨친 포스텍을 위해 우리가 정말 옳은일을 하였구나 말할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총장으로 시작하는 지금 이 시간은 ‘아무런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3-10-22

왜 지금 RE100(Renewable Energy100)인가?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전 지구적으로 매년 3% 성장을 하면 25년마다 경제 규모가 배가 된다고 한다. 2001년에 비해 2025년은 2배, 2050년은 4배가 된다는 것이다. 2100년이 되면 경제 규모가 현재의 16배가 되는데 투입되는 에너지도 약 16배, 배출되는 폐기물도 약 16배가 된다.지구는 그것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폐기물은 최대한 줄이도록 ‘자원 선순환’을 하고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 필요에서 나온 정책이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ESG경영, RE100 등등이다.RE100은 왜 민간,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가? 글로벌 아젠다 등에 대해 국가 간의 협약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통일된 의견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하지만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Black Rock이 주도하고 있는 ESG 경영이나 CDP위원회(탄소정보공개위원회), The Climate Group이 주도하고 애플, 구글, MS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는 RE100 등은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의 구속력과 이해관계로 인해 국가 간 협약보다 훨씬 더 구속력이 있고 영향력이 실질적이다.CF100은 RE100과 무엇이 다른가. CF100은 ‘Carbon Free 100’의 약자로 RE100이 재생에너지 100% 캠페인인데 비해 CF100은 사용전력의 100%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다.CF100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자력, 수소, 탄소포집·활용(CCUS)기술 등도 포함된다. CF100은 RE100보다 더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를 인정하고, 국가별 에너지 여건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 한국은 정부와 주요기업들이 주축이 돼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RE100과 CF100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RE100은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하는 캠페인이고, CF100은 탄소배출 없는 에너지 100%를 목표로 하는 캠페인이다.RE100은 400여개의 글로벌 기업이 가입했고 CF100은 한국정부와 한국의 주요기업을 중심으로 80여개 기업이 추진하고 있다. RE100은 2050년까지 사업장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자발적 글로벌 캠페인이고, CF100은 기업들이 무탄소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국가별 에너지 여건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현재 CF100은 한국정부와 한국의 주요기업들이 중심이 돼서 주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100%가 달성하기 힘들다는 한국의 여건을 감안해서 나온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한국이 CF100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다음의 전제가 있다. 첫째 한국은 태양광,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하기에 환경이 부적합하다. 둘째 한국은 원자력발전 경쟁력이 있는 나라로 원자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다.하지만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이 재생에너지 하기가 힘들다는 전제가 틀렸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태양광은 건물의 지붕과 도시의 공터 및 농지에 조성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건물 지붕과 도시의 공터가 대부분 비어있는 처지고, 농지도 여러 가지 규제에 묶여 농지태양광을 거의 볼 수 없는 수준이다.모든 건축물의 지붕에만 태양광을 설치하여도 우리나라 탄소중립에 필요한 재생에너지의 30% 공급이 가능하다는 통계가 있다. 그리고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할 경우 한국 전체 농지의 24% 정도 설치하면 우리나라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공급이 충분히 된다.원자력은 어떠한가? 원자력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산업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해준 고마운 에너지원이다.그리고 전기생산시 무탄소인 것은 맞다. 하지만 EU택소노미에서 2023년 1월부터 원자력을 그린 에너지에 포함시키고 2045년까지 원자력발전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세계적인 추세는 원전을 청정에너지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냉각수와 방사성폐기물에 대해서는 아직 해법을 찾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준위방사성폐기장이 있는 경주 인근 산지나 태백산, 지리산 등 어디에다가 방사능폐기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그리고 RE100을 주창한 The climate Group 마이크 피어스 대표의 확언처럼 원자력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는 분류되지 않는다.RE100이든 CF100이든 궁극적인 목표는 더 이상의 지구 온난화를 막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세계 3대 제조업국가로써 2030년부터 각종 IT제품과 자동차에 RE100이 적용되는 점을 생각할 때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선진국들이 탄소중립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때 우리나라는 지난 20여년간 법과 제도조차 정비하지 않았다.우리나라가 지구온난화를 위해 지금까지 뭘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2023-10-22

이제 디지털 다이어트를 할 시간

유영희 작가 페이스북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었다. 열심 사용자도 아니고 친구도 많지 않지만, 읽을거리도 많고 접속 속도도 빨라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심지어 신호등을 기다리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보게 된다. 카카오톡은 페이스북보다 더 실시간으로 상대와 연결된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큰애에게 고양이 사진을 보내고, 친구와 수다 떨거나 업무를 보는 데 카톡은 필수다. 요즘엔 인스타그램까지 들어가고 있다.이제 현대인은 디지털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정도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은둔 생활을 해야 했던 지난 3년 간 인터넷 사용자는 더욱 급격하게 늘었다. 글로벌 인포메이션 자료에 의하면, 2022년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는 55억 명이 넘어서 보급률이 70%에 이른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한을 극복한 인터넷 세상은 인류에게 새로운 대안을 주었다.그러나 이런 디지털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와 해저케이블 등 많은 물리적 실체가 필요하다. 페이스북이 북극 가까이에 있는 스위스 룰레오 호수 근처에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세운 덕에 수십 억 명의 페이스북 가입자는 수백 장의 사진을 올릴 수 있고, ‘좋아요’를 주고받는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구글 클라우드에 온갖 데이터를 올린다. 문제는 이런 데이터를 전송하고 보관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데이터센터를 만들어야 하고, 해저케이블을 가설해야 한다는 것이다.프랑스 언론인 기욤 피트롱은 이런 디지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2년 간 조사하고 나서,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라는 책(원제 ‘디지털 지옥’)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좋아요’ 하나에도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고, 셀카 한 장에도 석탄이 필요하다면서,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땅이 개발되는지 밝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디지털 장비는 340억 개, 그 무게는 2억2천400만t이라면서, 이 장비들이 세계 전기 소비량의 10%를 차지하고 지구 온실 가스 배출량의 약 4%를 발생시킨다고 한다.그러나 디지털 산업이 엄청난 물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광물 자원을 고갈시킨다고 아무리 외쳐도 디지털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초고속인터넷망 보급률이 99.96%로 디지털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건강을 위해 작년에는 몸무게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체력이 좋아졌고, 올봄에는 살림 다이어트로 집안을 비웠다. 이제는 디지털 다이어트에 도전해보자. 정신을 빼놓는 앱 몇 개는 바로 삭제했다. 일요일 정도는 스마트폰을 끄거나 간헐적 단식처럼 일정 시간 꺼놓는 식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줄여도 좋겠다. SNS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릴 때는 그것을 위해 소비될 에너지를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자. 휴대폰의 사진도 수시로 정리하고 클라우드 청소도 해보자. 이참에 사회의 디지털 다이어트 방법도 고민해보자. 환경도 보호하고 멀리 나간 정신도 돌아올 것이다.

2023-10-22

드라마 ‘대장금’에서 배운다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2003년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대장금’은 조선 중종 때 천민의 신분으로 궁궐에 들어가 궁중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뛰어난 의술과 높은 학식으로 엄격했던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임금의 주치의가 되는 주인공 장금이의 성공 스토리를 감동적으로 그렸다. 500년 전 이 땅에 실존했던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그린 드라마는 시청률 57.8%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임금의 수라상을 책임지는 수라관은 궁녀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 궁녀가 선망하는 곳. 최고 상궁 자리는 궁녀 중 최고의 권력자라 할 만하다. 주인공 장금이가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받아 꿈꾸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라관은 대대로 최 대감댁 여식들이 차지해왔다. 병들어 물러서게 된 최고 상궁을 비롯해 그 밑의 최 상궁은 최고 상궁 자리를 노리는 강력한 후보. 그러나 아직 연륜이 부족해 대전 제조상궁의 말을 받아들여 적절한 시기에 최고 상궁 자리를 이어받고자 허수아비로 정 상궁을 내세운다.이 정 상궁이란 인물은 한때는 수라간 최고 상궁 자리를 두고 겨뤘을 만치 요리 솜씨가 빼어났던 인물. 그러나 권력 암투엔 뜻이 없어 밀려난 후 장고(젓갈을 지키는 창고)만 지키며 생아씨들과 노닥거리며 유유자적하는 걸 즐거움으로 여긴다. 그러던 중 최고 상궁 자리가 오자 그 자리가 허수아비임을 즉시 간파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음에 응하고는 ‘그냥 편히 살까, 아니면 어렵게 살까’ 고민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히게 된다.그저 쉽게 살려고 했다면 경쟁자들 기대대로 허수아비 역할을 해줬겠지만, 첫 수라상 마련할 때 제대로 보여준 것. 그걸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비록 장고에 밀려났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놀려 두었다면, 저렇게 비장의 카드를 꺼낼 수 있었을까. 정 상궁은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는 데만 급급한 게 아니라, 그는 장고에서도 자신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우린 살면서 실기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어선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 또한 실기하고 납작 숨어지내야 할 때는 철저하게 위장해야 한다. 심중을 숨기고 맨날 노래나 부르며 노닥거렸던 정 상궁이나 천둥 번개에도 무서워 도망가던 유비처럼 말이다.또한 지나치게 똑똑한 척 나서서도 안 된다는 걸 장금을 보고 배운다. 똑똑한 사람은 은연중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에 안 해도 될 말을 하게 된다. 제 똑똑함을 숨기지 못해 그 재주를 시기한 조조에 의해 죽은 양수를 떠올려보자. 명약관화해진다. 신중함과 의중을 들키지 않는 일은 세월이 하 수상할수록 더욱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눈앞에 어려운 일이 닥쳤다면 배움의 기회가 지금 또 내게 왔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가벼워질 일이다.시기심과 열등감이 자부심과 소속감을 몰아내고 나면 그 자리에는 무기력과 패배의식만 남는다. ‘내가 옳다면 화낼 필요가 없고, 내가 틀렸다면 화낼 자격이 없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날카롭다.

2023-10-22

국민만 보고 가야

홍석봉 대구지사장 메타버스(가상현실),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가 초광속이다. 기존의 상식과 틀이 여지 없이 깨지고 있다. 자칫 한눈팔다가는 일순간 한물간 사람이 될 수 있다. 혁신과 변화가 눈부시다. 흐름을 잘 읽고 적절하게 대응하면 그 변화에 편승해 미래를 주도할 수 있다. 반면 외면했다간 시대에 뒤처질 뿐이다.의사 정원 확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부가 임기 내 의대 입학 정원을 최대 3천명까지 늘리는 방안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의사가 부족해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고 소아과가 없어 인근 도시로 달려가는 판국이다. 지방 의료 붕괴가 심각하다. 경북 포항 등 지방의대 설립 요구가 들끓고 있다. 포스텍 등의 의과학자 양성 필요성도 점증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대폭 확대 필요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는 한사코 반대다.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도 의대 증원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걸핏하면 정부 정책을 비판하던 민주당 의원도 반겼다. 한 중진 의원은 “의대 정원 확대를 실행한다면 역대 정권이 눈치나 보다가 겁먹고 손도 못 댔던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의사협회는 또 일방적인 추진에는 반대를 공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다가 의료계의 집단 반발에 부딪혀 백지화했다.우리는 그동안 국민 편의를 위한 각종 정책들이 채 꽃피워보지도 못한 채 사장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호출택시 타다와 리걸테크의 좌절이 단적인 사례다.2018년 10월, 첫 운행을 시작한 렌터카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는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택시 등 기존의 서비스에 불만을 갖고 있던 소비자들은 타다에 열광했다. 타다는 출시 9개월 만에 1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급성장했다. 그러자 택시업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1년 만에 타다 회사 대표가 기소됐고 무죄판결을 받았다. 결국 국회가 일명 ‘타다금지법’을 통과시키며 막을 내린다.법과 기술의 합성어인 리걸테크(Legal-Tech)는 법률 시장의 새로운 서비스다. 하지만 리걸테크는 변호사협회와 갈등 때문에 주춤하고 있다. 그 사이 해외에서는 급성장하고 있다.노조에도 변화 바람이 인다. 한전에 ‘탈정치’를 내세운 제2노조가 출범하고 포스코노조의 민노총 탈퇴 등과 함께 일명 MZ노조가 탄생하며 양대 노총을 흔들고 있다. 이들 노조는 강성 및 투쟁일변도 노동 관행을 바꾸고 있다.혁신은 기존의 판을 바꾸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행과 규제의 틀을 과감하게 깨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이 그렇게 반대하던 원격진료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진료 확대 등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국민 편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부는 관련 업계의 설득작업과 함께 관행과 규제의 틀을 깨는 과감한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만 보고 가면 된다.

202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