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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붓다와 니체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발표하게 하고, 운이 좋다면 토론까지 시키는 수업이다. 요즘 학생들은 책과 담을 쌓고 지내기 일쑤다. 살인적인 입시 공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 어린 시절부터 엄마들이 강제한 지긋지긋한 독서, 널려있는 숱한 놀거리. 그것이 학생들에게 책과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리라.이번 학기에 나는 세 권의 책을 학생들과 읽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2030 축의 전환’, ‘대중의 반역’이 순서에 따른 독서 목록이다. 신입생들이 마주하는 급변한 환경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여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책을 고른다. 니체 하면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그가 남긴 저작 가운데 한 권이라도 통독한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고전의 범주에 들어선 책의 운명이 필시 모두 그러할 것이지만.약관 25세에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 니체는 28세인 1872년 ‘비극의 탄생’을 출간한다. 고전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비극의 쇠퇴 원인 그리고 비극의 부활을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에서 통찰한 명저다. 니체가 제기하는 철학적-정치적-사회학적 논지는 이분법에 기초하는데, 그 출발을 알린 서책이 ‘비극의 탄생’이다. 하지만 10년 만에 니체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교수직을 사임한다.소액의 연금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던 니체는 편두통과 가슴 통증, 극도의 근시, 마침내는 정신질환까지 견뎌야 하는 고난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용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일갈은 나약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21세기 20년대에 아주 유효하다. 니체는 이 세상을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으로 보았다.생로병사 외에도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의 인생 팔고(八苦)를 주장한 붓다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 불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붓다가 내세운 ‘팔정도(八正道)’는 의미심장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추구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먼 길이다. 위대한 수행자나 깨달음을 찾아 나선 ‘납자(衲子)’들에게는 맞춤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하튼 붓다와 니체는 모두 세상을 고통의 도가니로 보았다.대상을 보는 같은 눈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붓다는 끈기 있는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 인간을 옥죄고 있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삿된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호수의 물처럼 평정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위대하고 깊다. 붓다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방일(放逸)하지 말고 정진하라!’니체는 고통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짓치고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나약하고 섬약한 영혼과 육신으로 일신의 안락과 장수만을 추구하는 삶은 무가치와 무의미로 귀결된다고 역설한다. 힘들고 괴로운 세계와 정면 대결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인간이 초인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장수와 행복을 아침저녁으로 탐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들을 보면 니체는 뭐라고 할 것인가?!

2023-03-12

자살률 1위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지만 자살률로만 보면 아직은 우리는 후진국 수준이다.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26명에 이른다.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해 1만3천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10∼30대 등 젊은 층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도 충격이다.세계적으로 자살자가 많은 나라로 꼽히는 국가 가운데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면서도 자살률이 높은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다.전문가들은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빈곤 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보건복지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살률을 2027년까지 30%이상 낮추기로 하고 자살위험 요소감소 대책 등을 발표했다. 특히 자살위험 요인감소 대책으로 산화형 착화제인 번개탄 생산 금지안을 두고는 논란도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는 “번개탄을 금지한다고 자살이 예방된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는 등의 비난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살 원인에 대한 대처보다 수단에 초점을 맞춘 편협한 발상이란 비판이다.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 인사가 자택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사회의 자살률이 또한번 주목받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낯처럼 돼 버린 자살에 대한 예방대책이 시급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2

뜨거운 감자 된 ‘달성 가창의 수성구 편입론’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9일 전격적으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론’을 제기하자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장 가창면 일대 부동산의 가격 상승 기대감이 커지면서 호가(呼價)가 껑충 뛰는 현상이 생기는 모양이다. 홍 시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는 7월 군위군 편입을 계기로 대구시의 불합리한 행정구역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차원에서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했으며, 현실화를 위해서는 행정안전부 승인과 시의회 의결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홍 시장이 달성군 가창면을 불합리한 행정구역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형적으로 가창면과 달성군 주 소재지가 비슬산(1천84m)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창면민들의 생활권은 수성구인데 행정기관은 달성군이라서 주민들이 다양한 불편을 겪고 있다. 홍 시장은 “최근 대구시가 추진하는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과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제2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달성군이 거론되고 있다”며 가창면이 수성구에 편입되더라도 달성군의 군세(郡勢)가 약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최재훈 달성군수와 김대권 수성구청장, 해당 지역 지방의원들은 모두 홍 시장의 갑작스런 행정구역 개편 발언에 놀라는 분위기다. 최 군수와 김 구청장은 일단 “대상지역실태조사를 통해 주민 여론을 객관적으로 수렴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수성구의 경우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가창면민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효과를 기대하면서도 가창면의 역사성과 각종 규제 강화, 농업 분야 지원 감소 등을 우려하고 있다.달성군 가창면은 면적이 111.33㎢로 달성군 9개 읍·면 중 가장 넓으며, 인구는 7천600여 명이다. 과거 총선에서도 여러 차례 편입 논의가 있었지만, 주민 의견수렴 과정과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에 공론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홍 시장이 공식적으로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추진 의사를 밝힌 만큼, 이번 기회에 객관적인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023-03-12

공공기관 2차 이전, 철저한 준비로 대응해야

지역균형발전과 지역성장거점 조성의 기반으로 자리잡을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이 올해 안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전국 지자체들의 유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경북도는 지난 주 김천혁신도시 1차 이전기관 12곳과 연계한 30여 개 공공기관을 2차 이전기관 유치 대상으로 삼고 총력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경북도는 유치 전략 방향으로 △수도권의 임대청사 기관을 혁신도시 내 공실과 산업기반을 연계한 과학·산업 임대기관 △1차 이전한 기관의 기능과 지역전략산업을 연계한 공공기관을 유치 대상으로 삼았다.예컨대 한국도로공사와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도로·교통의 앵커 공공기관이 있는 김천혁신도시의 특성을 고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10여 개 기관을 타깃으로 했다. 또 경주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포항의 이차전지단지 등과 조합이 되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 등을 유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문재인 정부 시절 차일피일 미뤄왔던 수도권 공공기관 추가 이전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올해 내로 구체화 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 정부는 입지대상 기관과 입지 원칙 등 기본계획을 수립해 6월 중 발표하고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 이전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수도 300개 안팎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2차 공공기관 이전은 1차 공공기관 이전과 연계를 통해 국토균형발전의 시너지를 더 높인다는 계획이어서 지역마다 관심이 대단히 높다. 공공기관을 유치해야 할 지역의 입장에서는 지역산업과 연게된 공공기관이나 경제파급 효과가 큰 알짜기관을 유치해야 지역 발전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는 구도다.경북도가 유치 대상 기관 선정에 미리 나선 것도 이런 지역 간 경쟁을 의식한 움직임이다. 문제는 지역마다 내세울 논리가 얼마나 정부를 잘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논리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지자체의 노력에 성패가 달렸다.

2023-03-12

일류기업으로 가는 길

김종찬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철강 전문 분석기관 ‘월드 스틸 다이내믹스’(WSD)가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포스코를 13년 연속 1위로 선정하였다. 35개 글로벌 철강사를 대상으로 23개 항목을 평가하여 이를 종합한 경쟁력 순위를 매년 발표하고 있는데, 포스코는 친환경 기술혁신, 고부가가치 제품, 인적 역량 등 7개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평균 8.5점으로 종합 1위에 선정됐다.한 기업이 13년 동안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사례는 세계 철강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한다. 평가받은 경쟁력의 결과는 2022년 9월 한반도에 상륙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냉천이 범람하여 포항제철소 압연지역 대부분이 수해를 입었을 때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정비부서의 이상 조치 능력, 조업 부서의 내재화된 프로세스 지식, 그리고 그룹사를 포함한 광양제철소 직원들도 휴일을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수해를 조기 복구한 위기관리 능력은 그 어떤 위기도 포스코를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그렇다면 포스코를 포함한 일류기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먼저 ‘창의적인 기술력’을 들 수 있겠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에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문구를 창업 초기부터 게시하고 있다. 70년대 1차 석유 파동 때 석유자원이 20년 정도 지나면 고갈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산업 혁명 전 6억 명의 인구에서 현재 80억이 넘었지만 석유자원 고갈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술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70년대는 탐사도 시추도 초보적 기술이었고, 대륙붕 연안에서만 석유 생산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심해에서도 캐내고 셰일가스는 바위 틈 사이에 있던 가스와 석유를 녹여서 캐어내니 유한한 자원이 창의적 기술에 의해 무한해지고 기술은 자원이 된다.다음으로 ‘임계점’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달리기만 한다고 뜨는 것이 아니다. 활주로를 벗어나기 전 시속 300km에 이르러야 이륙할 수 있다. 배가 부르기 위해서는 마흔아홉 번의 숟가락의 밥이 들어가서 마지막 한 숟가락에 배가 부르는 것처럼 임계점을 넘어야 비로소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입장의 순서가 오기 직전에 자리를 뜨고, 대어가 미끼를 물기 직전에 낚싯대를 걷어 버리고, 땅의 제 임자가 나타나기 직전에 급매물로 처분해 버리니 더 큰 성과와 이익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실패에서 얻어야 한다.다음은 현장 관리를 위한 ‘생각의 중요성’이다. 부분적인 것만 보면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 작은 것에서부터 전체의 성능이 복원되고 유지돼야 한다. 현장의 소음이나 진동에 익숙해지면 불합리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익숙함이 쌓이면 당연시되고 누구도 의문점을 가지지 않게 되어, 불합리란 싹이 트고 자라 설비는 결함에 의해 고장으로 이어진다. 제품은 고객의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사라지며 기업도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산은 기도로 옮길 수 없고 반드시 삽과 곡괭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3-03-12

박사님, 박사님

유영희 작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대행사’의 주인공 고아인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차별에 굽히지 않고 불굴의 도전으로 대표가 되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머슴으로 살기 싫다며 직원이 주주인 독립 대행사를 차렸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특히 자기 능력을 믿지 못하고 주저앉고 싶은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된다.몇 년 전, 자원 활동으로 참여하던 H 생협에 박사 학위가 있는 남자 실무자가 들어왔는데 모두 그를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보다 못해, 나도 박사인데 왜 내게는 ‘박사님’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물었지만, 약간 난처해하면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그 관행은 계속되었다.그런데 문제는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렇게 항의한 것은, 다른 실무자들과 구별되게 그에게만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당해서 한 말일 뿐, 나를 박사님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속으로는, 그 실무자는 그의 연구 분야와 연관 있는 업무를 하고, 나는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자원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던 중 며칠 전, SNS에서 밸러리 영의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두어 달 전, S여대 교수가 내게 능력에 비해 성취가 적다며 몇 가지 제안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은 ‘가면 증후군’을 다룬 것인데, 가면 증후군이라는 이름은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처음 붙였다고 한다.가면 증후군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여자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신의 재능과 성취를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자기는 형편없는데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재능 있고 어느 정도 성취도 한 사람들이 증후군에 빠지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가 실패하면 ‘거봐, 남들이 알고 있는 나는 가짜거든. 나는 실패할 만해.’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위해 가면 증후군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르네 젤위거도 밤에 일어나 ‘그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 역할을 준 거지? 내가 자기들을 속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밸러리 영은 먼저 ‘가면 증후군’이 내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인식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내게 ‘박사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다는 의심하는 것이나 낙제 한번 없이 학위를 받은 것, 유명한 대학에서 오래 강의한 것 모두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가면 증후군’의 작동 방식이다.더불어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힘도 필요하다. 내게 능력이 있는지 자신을 의심할 시간에, 그동안 내가 성취한 일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어서 균형 감각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보자. 그러니,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자들이여, 자신의 재능과 성취에 대한 의심은 이제 그만 거두자.

2023-03-12

지역대학 대변신, 지자체의 역할이 커졌다

2025년부터 도입되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대구와 경북 등 전국 7개 시도가 선정됐다. 라이즈 사업이란 지역이 주도적으로 지역대학을 육성하고, 지역인재가 지역혁신을 이끌어가는 지역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지역대학 지원사업이다.교육부가 신산업 인프라 등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파생하는 비수도권 대학의 소멸위기를 돌파하려는 전략으로, 2025년부터 교육부가 쥐고 있는 지역대학 재정 예산의 50%를 지자체에 넘기는 사업이다. 그 규모가 2조원이다. 장차는 각 부처가 대학의 목적성으로 지원하는 예산도 단계적으로 라이즈에서 흡수할 예정이라 한다.또 교육부는 대학의 구조개혁을 과감히 이행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5년간 1천억원을 지원해 국가 경쟁력의 밑바탕이 될 글로컬 대학으로 육성한다. 지역대학의 건전한 육성은 국가균형발전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면에서 라이즈 사업이 성공리에 진행돼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지자체에 재정지원 권한을 넘기는 획기적 조치로 지역대학은 이제 큰 변화의 기로에 섰다. 정부의 의도대로 지자체가 지역대학의 재정지원을 주도함으로써 지방대학으로 학생이 다시 몰리고 지역 생태계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보다 다행스런 일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라이즈 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앞으로 2년간 교육부와 협의해 위기에 빠진 지역대학의 회생에 나서게 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라이즈센터를 별도로 운영해 지역특성에 맞는 특화된 전략으로 성과를 내야 할 입장이다. 경험이 없는 업무라 지자체의 역량 강화가 먼저 시급하다.동시에 생사기로에 선 지역대학의 뼈 깎는 자기 변신 노력이 수반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교육부는 낡은 관행을 타파하고, 개방적 거버넌스 구축과 학문 간 융화, 학과구조 개편, 교원인사 혁신 등이 대학이 넘어야 할 과제라 지적하고 있다.이제 지역에서도 국제적 명성의 대학이 나오고 지역의 대학이 국가 경쟁력을 선도하는 모습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라이즈 사업 주체들의 분발을 당부한다.

2023-03-09

망월지 두꺼비

우정구 논설위원 두꺼비는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긴 양서류다. 몸길이는 10∼12㎝ 정도 된다. 피부는 두껍고 등에는 불규칙한 돌기가 많이 나 있다.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긴 등 생긴 모습이 얄궂다.낮에는 돌이나 풀 밑에 숨어있다가 저녁이 되면 지렁이와 파리, 모기 따위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적을 만나면 몸을 부풀려 등위에 돋아 있는 독샘에서 하얀 독액을 내보낸다. 아시아와 유렵 등지에 많이 서식한다.우리나라는 두꺼비를 주인공으로 만든 우화나 민담, 민요 등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다. 삼국사기 신라본에는 애장왕 10년 6월에 개구리와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는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민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꺼비는 대체로 슬기롭고 의리있는 동물로 형상화된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이며 신비한 능력의 동물로 묘사된다.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망월지는 1920년 자연적으로 조성된 전국 최대 두꺼비 산란지로 유명하다. 2007년 수십마리 두꺼비가 이곳에서 로드킬 당하면서 산란지로 알려졌고, 201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하면서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이곳에는 매년 2월부터 3월 사이 두꺼비가 산란을 위한 이동을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망월지를 향해 이동하는 두꺼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동한 두꺼비는 망월지에서 마리당 1만개의 알을 낳은 뒤 산으로 되돌아 간다.2∼3개월 뒤 망월지에서 부화된 두꺼비 새끼들은 서식지인 산으로 이동을 시작하는 데 그 수가 수백만마리에 이른다. 자연상태 그대로 노출된 그들의 이동 모습은 그야말로 자연이 준 장관이다. 올해도 봄 소식과 함께 찾아온 망월동 두꺼비 대이동 소식에 귀가 번쩍 뜨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09

집권당 김기현 신임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들

국민의힘이 지난 8일 김기현 대표 선출로 전당대회를 마무리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집권당으로선 이준석 전 대표 징계 사태로 지도부 체제가 무너진 후 8개월 만에 정상 궤도에 오른 셈이다. 울산 출신 4선 의원인 김 대표는 앞으로 집권당 사령탑으로서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총선전략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대구·경북은 최대현안인 통합신공항 특별법 국회통과를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한 김 대표가 당선된 게 다행이다. 임기 2년의 김 대표는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전대 과정에서 드러난 계파 갈등과 각종 의혹을 둘러싼 당내 분열을 수습해야 한다. 친윤(윤석열)그룹과 비윤계 간 계파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대표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와 관련, 조만간 단행될 당직 인선을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전대 기간 제기됐던 울산 땅 의혹, 대통령실 행정관 선거 개입 의혹도 반드시 풀어야 할 현안이다.차기 총선승리는 김 대표가 올인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당정관계 설정과 공천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번 전대를 통해 최고위원까지 친윤그룹으로 짜여진 만큼 ‘당정 원팀’ 유지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윤 정부의 핵심 정책과 관련된 입법지원이다. 윤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건 노동개혁과 연금개혁 등은 집권당이 전력을 다해 야당을 설득해야 가능하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주요 국정현안을 해결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당으로선 차기 총선 승패가 대통령 지지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경우 야당과의 승부처에 원하는 인물을 공천할 수 있지만, 지지율이 낮으면 측근공천 논란으로 주요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에서도 민심을 잃을 수 있다.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전대 당권레이스에서 친윤·비윤그룹 간의 갈등이 깊어져 분당(分黨)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공천에 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할 이준석 전 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 측을 어떻게 포용할 것이냐도 김 대표의 숙제다.

2023-03-09

홍준표의 SNS정치

홍석봉 대구지사장 얼마 전 이문열 작가의 소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엄석대’가 정치판에서 화제가 됐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기자회견이 발단이다.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당권 경쟁 상황을 두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빗대 비판했다. 곧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 치받으면서 이준석 전 대표와 SNS 공방이 이어졌다. 뜨거운 논쟁이 오갔다.홍 시장은 천하람 후보와도 날선 공방을 벌였다. 홍 시장의 “무명의 정치인이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에, 천 후보는 “대구 온돌방에 앉아 계시니 따뜻하시냐”며 되받아쳤다.전당대회 전날엔 안철수·황교안 후보와 이준석 전 대표가 타깃이 됐다. 홍 시장은 전당대회에서 분탕질을 친 정치인은 앞날이 없을 것이라고 힐난했다.정치권에선 위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여당 상황을 꾸짖는 홍 시장 특유의 사이다 화법에 시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 옹호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미·일 동맹을 위한 고육지계라고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홍 시장은 아니라고 판단하면 상대를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사정없이 깎아내리고 면박 준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수 차례 당했다. 준엄하게 꾸짖었다. 선배로서 적절한 훈계라는 평가와 ‘꼰대’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공존한다.홍 시장의 SNS 행보는 차기 대권을 꿈꾸는 그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이란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현 정부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홍준표 시장의 SNS정치가 불을 뿜고 있다.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대구시장이 된 후 간헐적으로 올리던 SNS글이 최근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SNS를 통해 시국과 대구시정에 관한 견해를 밝힌다. 시의적절한 평을 쏟아낸다. 짧은 코멘트는 촌철살인의 글로 상대방을 저격한다. 성역도 없다. SNS정치는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어느 정치인도 범접키 어려울 정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홍 시장의 SNS정치는 정치 9단의 훈수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적절한 타이밍에 노련하고 거침없는 촌평을 한다. 숱한 정치평론가들의 평론을 압도한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국민들의 관심사를 캐치해 내놓는 촌평에 젊은층은 열광한다. 짧은 글과 촌철살인의 평은 젊은층의 취향에 딱 맞다. 반면 너무 잦은 글 게재에 식상해 하는 이들도 없잖다. 당 원로로서 기강을 잡고, 인생 선배로서 사랑의 매질도 필요하다. 하지만 자칫 개인의 정치 성향 및 신념을 바꾸라는 꼰대질이 되어선 곤란하다.대구시정은 신경쓰지 않고 중앙정치만 바라본다는 비판도 많다.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여 시간도 적고 그외 시간은 대구 시정에만 전념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역의 시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본업에 충실하고 중앙정치에는 훈수 정도에 그치라고 한다. 대구시정을 등한시할 경우 시민들이 한순간에 등 돌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유불급이다.

2023-03-09

철새는 떠나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고니와 청둥오리들이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날이 풀리자 겨우살이를 끝내고 귀로에 오른 모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의 경우 약 석 달에 걸쳐 북한과 중국 단동, 내몽골을 거쳐 러시아의 번식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국내에서 개발된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큰고니는 평균시속 51㎞ 정도로 약 923km를 비행하여 출발한 다음날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하천에 도착했다. 거기서 14일간 머물다가 다시 365km를 날아서 중국 내몽골자치구 퉁랴오 인근 습지에서 도착, 16일간 지낸 다음 다시 이동해서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 습지와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호수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도착했다.9월 29일까지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머물던 큰고니는 다시 긴 여정을 시작해서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바이칼호 인근 습지와 내몽골자치구 퉁랴오에서 머물다 11월10일 주남저수지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난해 월동하던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큰고니의 이동경로를 거리로 측정해보니 갈 때는 4천36㎞, 돌아올 때는 4천229㎞, 합해서 8천265㎞를 왕복한 것이었다.고니의 평균 수명이 30년쯤 된다고 하니, 20년 이상 이 들판을 찾아온 녀석들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아직도 회색빛이 남아 있는 어린 고니들 말고는 대부분 먼발치로 지나다니는 나를 알아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인간과 야생의 거리가 좁혀지는 건 아니다. 사계절을 함께 사는 참새나 까치 같은 텃새들도 사람을 경계하는데 하물며 철새들이겠는가. 나는 반려동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야생동물들과의 그런 긴장관계를 좁혀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하지만 겨울마다 찾아와 주는 그들이 반가운 마음은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매년 찾아오는 겨울 손님인 고니들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를 알게 된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그들에 대한 이만한 정보라도 알아야 지나가는 객이 아니라 손님이 되는 게 아닌가. 여름에만 습지가 되는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번식을 하지만 거기서 보내는 기간도 서너 달에 불과하다니 여기서 겨울을 나는 기간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사이를 오가는 동안 몇 군데 머무는 기간이 한 해의 절반가량이어서 그야말로 노마드의 생태를 가진 철새들이다. 텃새인 참새나 까치처럼 토박이인 나에게 시베리아 툰드라의 한 자락을 끌고 오는 그들의 등장은 삭막한 겨울을 한결 풍성하고 웅장하게 한다고 할까.나는 평생 이 고장의 붙박이로 살아왔지만, 고니와 청둥오리를 이웃으로 두어서 저 광활한 내몽골 초원과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마음의 영역이 넓어진 것 같다. 올 때는 시베리아의 겨울을 끌고 왔지만 갈 때는 한반도 동남쪽의 바다와 들녘의 봄기운을 끌고 가는 셈이다. 그 들녘을 날마다 지나가던 촌부에 대한 기억도 지금쯤은 중국 단둥의 어느 벌판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2023-03-09

한민족 디아스포라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3일 KBS가 공영방송 50주년 기념방송을 하며 되돌아본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유난히 나의 기억에 남아있던 것이 ‘남북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었다. 1983년 6·25 특집으로 시작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6월30일부터 시작하여 138일간이나 계속되어 1만189건의 상봉을 이루게 하여 서로 얼싸안고 통곡을 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이 아직도 가슴에 멍하다.‘이산가족’이란 ‘헤어져 만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이란 뜻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남북분단으로 흩어져 만날 수 없거나 소식을 모르는 북쪽 가족이란 의미가 깊다. ‘이산(離散)’이라는 말을 들으니 디아스포라(diaspora)가 언뜻 생각난다. ‘~너머(dia)’와 ‘씨를 흩뿌리다(spero)’라는 고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멀리 흩어지다’를 뜻한다. 원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만의 규범과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하지만,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또는 거주지’를 말한다. 그 원인으로 정치적 탄압에 의한 난민, 무역이나 노동 등에 의한 이민 등이 있으며 옛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으로 이집트 등으로 이주한 유대인이 원류이다.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생각해 본다. 현재 우리 재외동포는 약 750만 명이며, 1902년 12월 102명이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건너간 것이 한국이민사의 시작이고, 일제 강점기 식민지를 떠난 재일 조선인,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 등이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이다. 1963년부터 15년간 독일로 간 약 8천 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정착하며 나라를 알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재외한인들은 정착지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일이 많이 발생하였고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1992년 LA폭동이 일어났을 때 경찰이 한인 거주지역 보호를 외면했던 일이 대표적 예이다.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며 우리의 풍습과 언어를 전파하고 거주국 내의 권익 신장과 역량을 강화하는 등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이산가족 찾기운동을 벌였던 40여 년 전, 한밤중까지 TV중계를 보면서 수많은 아픈 사연을 듣기도 했었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도 있었고 공연을 통해 교류하기도 했다. 5월에는 인천에서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도 열린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난민, 이민, 실향, 추방 등 수많은 이주민의 희로애락을 다룬 영화들이다.우리에게는 특별한 디아스포라가 있다. 38선의 분단과 6·25전쟁으로 인해 헤어져야 했던 가족과 친척들이 한반도 내에서 철조망 하나로 인해 왕래하지 못하고 먼 해외보다 더 가기 어려운 현실에 민족적 비극을 안고 사는 것이다. 형제들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 모두 마음을 모아야 한다.이제부터 우리는 진정한 남북대화를 통하여 가깝고도 먼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서로 만나 껴안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날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2023-03-09

‘대화형 챗봇’ 열풍

홍석봉 대구지사장 챗GPT 열풍이 거세다. 대구·경북 지자체들이 앞다퉈 행정업무에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챗GPT는 출시 2개월 만에 이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이 정도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인스타그램은 2년 반, 틱톡은 9개월이나 걸렸다. 이 대화형 인공지능의 성장 속도가 엄청나다. 챗GPT가 가져올 변화와 충격은 발전 속도만큼이나 상상을 불허한다.챗GPT는 미국의 오픈AI사가 개발한 대화형 챗봇 인공지능(AI)이다. 사용자가 채팅창에 질문이나 요구사항을 적으면 AI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각종 문서 작성과 번역, 코딩 작업 등 광범위한 분야의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컴퓨터나 인터넷 못지않다.경북도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챗GPT 행정 활용 전담부서를 구성했다. AI 전문가를 초청, 강의도 들었다. 경북도는 정책 연구 용역 및 업무 계획, 통계 자료 등 활용방안을 찾고 있다. 정보통신 기업, 대학 등과 협력해 AI 기술을 행정에 접목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기초지자체도 챗GPT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대구 수성구와 남구는 최근 챗GPT 행정 활용을 위한 직원 교육에 나섰다. 달서구는 챗 GPT 관련 정보 공유와 활용 사례 등을 발굴하고 있다. 경북 영천시는 챗GPT를 행정업무 기초자료와 시정 홍보자료 등 생성에 활용키로 했다. 관련 교육도 강화한다.챗GPT를 업무에 활용하면 공무원은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등 활용 영역이 무궁무진하다.하지만 챗GPT가 만능 도우미가 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실시간 학습 불가, 논리력 부족, 기억력 한계, 저작권 침해 위험 등 한계를 지적한다.챗GPT를 과신하다가는 탈이 날 수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08

그걸 못하면 모두 죽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벗꽃피는 순서로 죽는다’고 야단이다.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이 남쪽으로부터 죽어나갈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간단다. 그건 벌써 오래전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은 게을렀을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기대며 살아온 게 수십 년이 아닌가. 대학을 잘못 운영하면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게 나라의 규정이었으니, 사고만 치지 않으면 학교는 그럭저럭 굴러갈 판이었다. 온 나라가 혁신과 개혁을 외쳐도 대학은 그냥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힘들다는 거다. 학생숫자가 눈에 보이게 쪼그라들 판이니 나라가 도와주는 걸로만 버티기에 힘들어졌다는 게 아닌가. 아직도 홀로 일어나 보겠다는 대학은 보이지 않는다.대학은 그전에도 망해 있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 거의 모든 학과가 있다. 같은 종류의 청년들을 모든 대학이 만드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대학마다 바라보는 바가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같은 무늬로만 존재하는 대학들은 이미 천천히 무너지고 있지 않았을까. 같은 전공은 같은 내용을 담는다. 교수가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는 건 핑계일뿐, 같은 껍데기가 같은 영역을 다루지 않겠는가. 모든 대학이 같은 전공학과들을 모두 가진다는 건, 대학마다 특성이 없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우리 대학은 그래서 이미 죽어있었다. 모두 같은 일을 하면서 오래도 버틴 셈이다. 이제는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순서대로랄 것도 없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있다.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간 모방하고 추격하며 달려왔다면 이제는 혁신하고 창조하며 달려야 한다. 대학은 더이상 무엇인가 많이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게 아니라 작은 무엇이라도 새것을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암기반복형 인재가 아니라 문제해결형 인성을 길러야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들도 강의 중심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의 거친 물결을 만나기 전에 학생들이 실전과 검증을 경험해야 한다. 성공의 짜릿함도 느껴봐야 하고 실패의 쓰라림도 일깨워야 한다.지방대학은 지역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대학은 지역에서 문제를 탐색하고 지역담론에 참여하여 지역과 더불어 호흡해야 한다. 교수들이 지역에서 연구프로젝트를 발견하고 학생들이 지역에서 배운 것을 나누어야 한다. 몇 년을 보내며 가르치고 배운다면서 지역과 담을 쌓은 모습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망각한 처사가 아닌가. 대학이 지역사회와 문화에 흠뻑 젖어야 하고 지역은 대학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지역과 대학은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소멸의 위기는 지역과 대학이 함께 풀어야 한다. 대학이 있으면서도 지역의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학과 지역은 함께 부끄러워야 한다. 젊은이들로 넘치면서 젊은이가 없다는 불평이 말이 되는가. 지역이 대학을 품고 대학이 지역으로 나서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지역도 대학과 함께 죽는다.

2023-03-08

삼성전자는 구미에 통 큰 투자할까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7일 취임 후 처음으로 경북 구미사업장을 전격 방문하면서 삼성전자의 구미지역 투자 확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록 삼성전자 측은 이 회장의 이번 방문이 전국 5개 지방사업장 순회 방문의 일환이라 설명하지만 구미 시민은 이 회장의 구미 방문에 특별한 관심과 의미를 부여하는 등 기대감을 표시했다. 특히 구미시가 정부 공모의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의 구미 방문이 이뤄짐으로써 특화단지 유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김장호 구미시장은 틈새 시간을 이용, 이 회장을 만나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에 삼성의 긍정적 역할과 지원, 삼성의 구미에 대한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다.구미시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의 구미 금오공대 방문과 그보다 앞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구미전자공고 방문 등 주요 인사들의 잇단 구미 방문이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긍정 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은 글로벌 사업장 8군데 중 국내 유일의 휴대전화 생산기지다. 최고의 제조기술과 프로세스를 개발해 해외 생산법인에게 전수하고 있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메카이자 마더 팩토리다.현재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는 정규직 8천여 명을 포함해 1만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다. 협력사 종사자를 포함하면 그 수가 수만명에 이른다. 삼성전자 수출액이 구미 전체 수출액의 30%를 차지하는 등 삼성전자의 구미경제 비중은 실로 막중하다.이 회장은 이날 구미사업장 방문에 이어 구미전자공고를 찾아가 학교수업을 참관하고 학생들에게는 “젊은 기술인재가 제조업 경쟁력의 원동력”이라며 지방의 기술인재 육성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의 주요 관계사에는 구미전자공고 출신 임직원 2천여 명이 지금도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미와 삼성의 인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 회장의 구미사업장 방문이 삼성의 의지와는 별개로 구미시민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회장의 이번 방문이 구미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3-03-08

지방정부 최초로 ‘챗GPT 시대’ 여는 경북도

경북도가 그저께(7일) 챗GPT(대화전문 인공지능)를 행정에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메타버스에 이어 챗GPT를 행정업무에 접목시켜 공직사회의 업무패턴을 확 바꿔보겠다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지사는 평소 “앞으로 일상적인 업무는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공무원은 창의적인 정책 활동에 집중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만큼 경북도가 앞장서서 수도권 벽을 넘어보겠다”고 밝혀왔다. 경북도는 지난달부터 행정부지사를 총괄 반장으로 하는 TF를 구성해 챗GPT를 통한 업무 효율화 시범사례를 발굴하는 중이다. 지난 6일에는 주요 간부들이 모여 국내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전문가인 유환조 포스텍 교수로부터 ‘다양한 언어로 된 데이터들을 학습시켜 정확한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경북도는 우선 전 직원들이 챗GPT를 익숙하게 다루도록 하기 위해 체험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행정효율성 향상 사례도 발굴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정책연구용역, 업무계획 등을 인공지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경북도의 싱크탱크인 경북연구원은 최근 경북형 챗GPT인 ‘챗GDI’ 서비스 모델을 완성했다. 경북연구원은 챗GPT 서비스가 시작된 지난해 11월부터 챗GDI 개발에 착수했다. 아직은 데이터 부족으로 행정업무에 활용할 수 없지만, 조만간 경북 관련 데이터를 모두 탑재하면 상용화가 가능하다. 정부도 지난 1월부터 공공영역 전 산업분야에 인공지능을 전면 도입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중이다.경북도가 보수적인 공직사회 문화를 깨고 지방정부로서는 최초로 챗GPT를 일상적인 행정업무에 활용하기로 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디지털대전환 시대에 행정기관도 빨리 변신을 해야 앞서갈 수 있다. 선진 국제사회는 이미 인공지능 플랫폼 사용이 생활화돼 있는데 공직사회가 이러한 시대흐름에 뒤처지면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 경북도가 추진하는 ‘챗GPT 행정활용’ 노하우가 전국 지방정부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3-03-08

사이에 빠진 날

양태순 수필가 신선이 쉬는 별장에 갔다. 도심을 벗어나 점점 좁아지는 도로를 지나 굽이지는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들길을 지나 산자락을 올라 가파르다 느낄 때쯤 이정표가 멈췄다. ‘사람과 산 사이에 선유산장’ 간판이 걸려 있다.입구가 예사롭지 않았다. 간판 아래 제주도의 정낭을 옮겨놓았다. 누구든 들어와도 좋으나 예의를 지키라는 무언의 안내처럼 보였다. 주위에는 나무를 이용한 귀여운 다람쥐인지 도깨비인지 모를 조각이 혓바닥을 살짝 내밀고 있다. 주인의 유머스런 감각이 느껴졌다. 산장은 길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건물 지붕이 산 앞에 살짝 엎드린 듯 안긴 듯 헷갈린다. 초록 지붕과 너와 지붕, 길옆에 피어 있는 청하국이 어울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마을을 연상시켰다. 높이 솟은 솟대에 앉은 오리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늘에 전하려는 듯 한껏 고아한 모습이다.이름만 산장이지 실상은 브런치카페에 가깝다. 차를 마시며 풍경을 음미했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날 것이었다. 찾아오는 이를 붙잡기 충분했다. 가을이 산을 떠나고 있는데 창밖에서 단맛을 키우는 곶감과 잎을 떨군 나무가 빚어내는 정취는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멍때리기 좋은 장소였다.사람과 산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먼저 시간의 거리와 공간의 거리가 있을 듯하다. 산은 우리의 일상생활 반경에서 좀 멀리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러 가야 한다. 그런 탓인지 산을 찾으려면 계획이 필요하고 준비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행인이 있어야 안심이 되기도 한다.또 사람과 산 사이에 길이 있다. 사람이 산을 만나러 가는 일방통행이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사람이 산이 보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거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산을 오르며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코앞에 펼쳐진 야생화나 나무 열매, 새 소리 정도다. 더듬는 발밑을 보거나 힘이 들어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쉼터에 다다르거나 앞서 걸어간 이들이 와! 감탄사를 쏟을 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정상에 선 순간 올라오는 길의 험난했던 과정이 잊혀질 만큼 멋진 풍경을 맞이한다. 산이 우리에게 곁을 내주는 것은 정상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살면서 던지는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다.마지막으로 상상의 공간이 존재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얼굴’ 같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산 깊은 곳에는 눈 맑은 이에게만 보이는 신성한 바위 혹은 그 산에만 있는 특별한 식물이 있을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산이든 멀리 있는 산이든 가보지 않았을 때는 산길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상상한다. 봄이면 산비탈에서 화사하게 인사하는 진달래와 푸드득 날아오르는 꿩의 날갯짓 소리, 여름이면 쑥쑥 자라난 나뭇잎들의 재잘거림과 무성한 숲에 빛살을 뿌리는 태양의 넓은 씀씀이. 철마다 다른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본다. 그리고 그 산을 찾아 묵힌 속을 토해내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가 메아리로 숨어 있음직하다.선유산장의 주인은 무슨 뜻으로 이름을 붙였을까. 산장은 깊은 산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이제 본격적인 산에 오를까 신발끈을 점검하는 지점에 있다. 마당 끝에 서면 아래로 절벽이 있고 계곡이 있어 귀를 기울이면 바람을 타고 물소리가 안겨 온다. 슬그머니 시름을 내려놓으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계절이 그리는 무늬도 한몫했지 싶다.무엇과 무엇 사이에는 서로의 삶이 얽혀 있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는 발 없는 소식에 놀이판이 더해지고, 도시와 시골 사이에는 사람이 오가고 문화가 따라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해와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는다. 이처럼 사이와 사이를 이어주는 줄은 일방적이지 않다. 노력 정도에 따라 약해지기도 하고 튼튼해지기도 한다. 갖가지 사연과 시간이 베틀 위의 씨실 날실처럼 차곡차곡 쌓일수록 고와진다. 사이에는 보이는 것에 더해 보이지 않는 삶이 섞여 물살처럼 굽이치며 흘러간다.사이는 정서영역인 동시에 탐독영역이다.

2023-03-08

임진(壬辰)

육십갑자 중 스물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임진(壬辰)이다. 천간(天干)의 임수(壬水)는 지혜를 상징하고 총명하고 속이 깊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은 음력 삼월이라 습기를 머금은 땅으로 초목을 잘 자라게 한다. 동물로는 변화가 다양한 흑룡이다.임진일주(壬辰日柱)는 이무기가 물을 만나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지도자 기질이 있어 스케일도 크며, 성격에도 흔들림이 없다. 겉은 냉정해보여도 마음은 온정이 많고, 독창적 재능이 있다. 신체가 건장하며, 자유 분망하고, 언변도 좋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능력이 있다.임진일주의 임수(壬水)는 깊은 강물이기에 드러내기보다는 비밀스럽게 행동하여 속을 알 수 없는 성격이다. 진토(辰土)는 물에 잠긴 땅이니, 조용하고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활동적이고 전진하는 성격이다. 진토는 권력 지향적이으로 명예를 중시하여 상, 하 관계가 분명한 조직에 잘 어울린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꽁하니 감추고 있으니 뒤끝이 있다.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 있어 손해 보거나 방해 받으면 공격적인 기질이 드러난다. 복잡한 감정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사고치는 경우가 생기고 다된 일을 망치기도 한다. 물 만난 용처럼 자신감이 가득하고,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흠이다.중국 공자의 6세대 자손인 공천이 지은 ‘난언’ 유복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노나라 사람 공자고가 한때 조(趙)나라에 가 있었다. 그는 조나라 임금인 평원군에 의지하여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던 추문과 계절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공자고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조나라에서 사귄 친구들이 송별을 하러 찾아왔다. 송별식을 마친 뒤에도 추문과 계절은 공자고와 사흘 동안이나 동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은 맞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추문과 계절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었다. 그러나 공자고는 단정하게 자기의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헤어져서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자, 공자고의 제자가 “저 두 분들과 선생님은 너무나 친하셨습니다. 저분들이 깊은 정을 보이시는 것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눈물까지 흘리는군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주 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고, 헤어질 때 그저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이시고 마는군요. 혹시나 그렇게도 가깝고 서로 아끼시던 친구를 가볍게 보시는 것은 아닌지요?”공자고가 “처음에는 나도 저 두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나이들인 줄로 알았으나, 지금 와서 보니 아녀자 같은 사람들이로구나. 사나이는 마땅히 뜻을 사방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지, 사슴이나 돼지들처럼 언제나 뭉쳐서 다녀야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제자가 또 다시 “그렇다면 저 두 분이 우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고가 “저 두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본래 타고난 성품인 인자함이 잘 남아 있다. 그러나 맺고 끊는 면에서 그들을 판단한다면 아직 좀 모자라는 구나”라고 대답하였다.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고, 차이점 때문에 성장한다. 타인이 베푸는 호의를 자기 잣대로 판단한다면 스스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임진일주는 괴강살이 있다. 괴강(魁7F61)이란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이다. 우두머리 즉, 대장의 기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확고한 신념이 있어 타인이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따라서 상대가 보기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을 수 있고, 약간 삐딱함까지 느낄 수 있다.과거에는 여성이 괴강살이 있으면 좋지 않게 보았다. 기본적으로 능력과 총명함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를 경시하고 스스로 자립하는 성향이 강했다. 괴강살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 있기에 무한경쟁사회에서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가 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남녀가 많고, 여자의 경우는 미인이 많고 일처리 능력도 탁월해 현대사회에서 경쟁력 있게 활동할 여지가 많다. 결벽증이 있는 것이 흠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2운성으로 묘(墓)에 해당된다. 묘(墓)는 생명이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기운이다. 감정표출이 적어 겉으로 봐선 표정을 알 수 없고 좋고 싫어하는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괴강살이 있어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성향이 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끈기가 있다.임진년인 1592년 4월 13일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역사다. 천민 출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 오다 노부다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갑작스레 죽자 정국이 혼란한 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시킨 뒤 조선과 명을 정벌한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후계자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두고 내분에 휩싸여 2년 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였다. 마침내 1603년에 에도막부시대가 시작되었다.명나라 황제 만력제(신종)는 조선에 원병을 보내 지원했다. 그 당시 명의 원군에 의한 조선의 피해도 심각했으나, 전쟁에 보탬이 된 것은 사실이다. 명나라 황제의 무능과 관료의 부패로 인해 결국 24년 만에 후금에 의해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졌다.조선왕조는 그대로 존속되었다. 혹자는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라고 말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반드시 몰락한다. 인간의 삶에는 반복이 없지만, 역사는 반복한다.

2023-03-08

모두의 집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모두의 집에 봄채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남편은 홍매실, 청매실, 자두, 사과, 샤인머스켓, 블루베리 등의 과일나무를 잔뜩 사서 집안 곳곳에 심었다. 난 올망졸망한 다육이를 30개나 들였다. 화분에 옮겨 심었으나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를 못 이길까 염려되어 방안에 모셔두고 있다. 엔간히 따뜻해지면 댓돌 옆에 가지런히 내놓을 참이다. 마당 뜨락 한켠에 심을 꽃은 무엇으로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꽃잔디, 채송화, 패랭이와 같이 땅에 납작 엎드려 피는 잘디잔 꽃이 이쁜 걸로 구상 중이다. 우물이 있는 경사진 너른 터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쉽게 심고 가꾸기 좋은 종류를 폭풍검색. 처음엔 청보리를 심으려 했다. 다 자란 후의 뒷처리가 힘들다니 패스. 유채꽃은 비교적 수월하고, 3월 초에 씨 뿌리면 5월초부터 노란 꽃을 즐길 수 있단다. 바로 꽃씨를 주문하고 심는 법을 찾아 숙지했다. 심기 1~2주 전 미리 땅을 한 번 갈아엎은 뒤 퇴비를 뿌려 주란다. 지난주 이틀을 잡초 뿌리를 뽑고, 돌을 가려내었다. 제대로 할지 걱정이지만 일단 씨는 뿌려봐야지.작년 6월, 육신사가 있는 달성 하빈의 이 집을 얻었다.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의 생가였다. 처음 소개받았을 땐, 순천박씨 집성촌인 이곳에 타성받이로 와 사는 것에 주저했다. 높은 기와담장이 있는 주위의 다른 집과는 달리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한데집이라 다소 휑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마루에 걸터앉아 앞의 산을 바라보는 탁 트인 시야가 시원했다. 비 오는 날, 기와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 패는 마당이 예뻤다. 아파트살이가 슬슬 싫증나던 참이기도 하고, 한창 흙장난하며 놀고 싶어할 손주들을 위해서도 좋을 듯 싶었다.며칠 뒤 손자를 데리고 왔다. 무작정 들어온 집이 누구집이냐고 묻길래 네 집이라고 했다. 내 집 아닌데 하더니 그럼 ‘모두의 집’이라고 하면 어때요? 제안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와 동생의 집. 그리하여 이 집은 ‘모두의 집’이 되었고 이름 대로 정말 우리 가족 포함한 모두의 집이 되었다. 서울의 손녀들도 하루를 묵더니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두의 집이니 언제든 올 수 있다며 겨우 달랬다.울도 담도 대문도 없으니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들어와도 되니 모두의 집이기도 했다. 모두의 집이니 누구든지 와서 묵어도 좋다고 지인들에게 광고했다. 육신사의 내력과 동네 자랑도 했다. 내친김에 육신사와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상화기념관을 엮어 ‘대구명문가기행’이라는 프로그램도 짜서 뿌렸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며칠을 묵었다. 또 아름다운 동행이라 이름한 성인학습자동기들도 다녀가고, 기업체모임도 가졌다. 함께 여행지산책을 하는 지인들,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가쪽 동기간 모임도 밤새워했다. 손주 친구도 초대하여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이제 모두의 집에 봄꽃이 환하게 피면 모두가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육신사를 찾는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어도 좋겠다는 야심찬 바램으로 열심히 봄단장을 할 일이다.

2023-03-08

이 꽃은 먹을 수 있나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이 꽃은 뭐예요? 이건 먹을 수 있어요? 이건 어디에 좋아요?’산과 들에 허드러지게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함께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한의사이지 식물학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건조되어 있는 한약재를 구분하고 각 약재의 효능은 잘 알지만, 산에 피는 작은 꽃의 이름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봄에 피는 꽃들 중에서 누구나 이름을 아는 몇몇은 오래전부터 훌륭한 약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개나리는 진달래와 함께 봄을 알리는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나리 꽃과 비슷하지만 나리 꽃은 ‘아니다’는 의미로 ‘개’를 붙여 개나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개나리는 암술이 긴 꽃과 짧은 꽃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둘 사이에 수분이 이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 도시에서는 꽃이 크고 이쁜 암술이 긴 꽃만 주로 심기 때문에 개나리 열매를 잘 볼 수가 없다. 개나리 열매는 ‘연교’라고 하며, 한의학에서는 여드름을 포함한 피부 염증 치료의 핵심적인 약재로 쓰인다.매화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매실 액기스나 매실주를 안 먹어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매화의 열매인 매실은 한약재로는 ‘오매’라고 부르며 신맛이 아주 강하다. 중국 삼국지에서 조조가 길을 잃어 해매다가 갈증으로 탈진하는 군사들을 보고 저 산을 넘으면 매실나무가 많다고 하였다. 군사들이 그 말을 듣고 매실의 신맛을 떠올리자 입에서 침이 돌아 갈증을 이겨내고 산을 넘었다는 ‘매림지갈-매화 숲이 갈증을 멈춘다’의 고사가 있다. 실제로는 장내유산균을 안정화 시켜 설사를 멈추고 술로 인한 주독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봄이 되면 이천, 구례, 의성 일대에서는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산수유는 우리나라 자생종 식물이라고 한다. 신라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 같았는데, 이 비밀을 안 모자장인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이후 바람이 불 때마다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두 배어내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고 한다. 산수유는 씨앗을 제거한 과육을 한약재로 쓴다. 산수유는 성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고, 허리와 무릎을 튼튼하게 해주고, 염증은 없는데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목련이 활짝 피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러나 목련 꽃이 떨어지면 왠만한 쓰레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저분하다.꽃이 피기 전 꽃봉우리는 ‘신이’라는 약재로 쓰인다. 코 점막의 혈관을 수축시키고 항알러지 작용을 해서 봄철에 알레르기 비염 등으로 콧물과 재채기가 많은 증상에 아주 효과가 좋다.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꽃도 많고 약초도 많다. 다만, 병증에 맞게 적절한 양을 옳은 방법으로 먹어야 약이 된다. 모든 약은 약효와 부작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터넷의 어설픈 상식이나 소문으로 먹다가는 건강을 망치는 일이 생기기 쉽다.

2023-03-08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프로게이머를 불러다 면박을 주는 일들. 게임 속에서 사람을 죽이면 실제로도 사람을 죽이고 싶으냐고 묻고, 게임 머니를 얼마나 가지고 있냐 묻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냐고 묻고. 물론 그때엔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시기였긴 하다. 하지만 무례한 질문들을 던져댄 패널들의 모습이란, 무지가 얼마나 사람을 무례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런 질문들은 흡사 도박 중독자에게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지금은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의 흥행과 맞물려 한국 게이머들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이제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싶냐는 등의 무례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문화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면서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됐다. 많은 것이 변한 것이다.하지만 정말 그럴까? 게임 시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종종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얼마 전 문제가 됐었던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조작 문제나, 과도한 과금 유도, 사행성 논란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이나 NFT를 융합하여 게임을 통한 수익 모델을 홍보하는 경우들을 보라. 이런 게임 시장의 세부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들이 게임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문화의 융성이나 즐거움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부 게임이라 하기엔 대다수의 한국 개발 게임들이 비슷한 루트를 걷고 있기에 우리가 게임을 바라보는 인식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이다.게임은 문화인 동시에 산업이다. 더불어 하나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것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익 모델을 구성하고 이를 중요시하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돈이 벌려야 다음 게임도 만들고 할 테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것이다. 왜 게임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가. 게임으로 돈을 벌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흔히 캐시 카우로 불리는 일부 게임을 통해 게임사는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물론 모든 게임사가 그렇다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분명 적지 않은 회사들이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회사들은 게임을 단지 돈으로 밖에 바라보지 않는다. 익명 게시판에 달린 수많은 게임회사 직원들이 게임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라. 그들은 게이머들을 단지 호구로만 바라볼 뿐, 자신들이 이끌어가는 문화의 향유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의 게임 회사들이 이런 관점으로 유저들을 바라본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대만 해도 동아시아 게임 산업을 이끌어간다고 평가받던 한국 게임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가. 이제 한국 게임은 더 이상 동아시아 게임 업계의 강자가 아니며, 단지 뽑기를 비롯한 사행성 게임과 과도한 과금 유도에 주력할 뿐인 도박성 게임만이 판치는 국가란 인상이 강하다. 그 10년 사이, 중국과 일본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꾸고 스타일을 만들어갔던 것과 대조된다.그와 같은 국가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게임 회사가 유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한국 게임 회사는 좀처럼 유저들이 왜 게임을 하는가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단지 유저들이 비교 우위를 통한 우월감을 원해 게임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근 10년 사이에 변화한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단지 그것만이라기 보단, 게임 회사가 자신들의 상품의 목적과 판매 방식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유저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으니까. 그건 단지 비교 우위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사적, 시각적, 청각적 재미나 손맛이라 불리는 컨트롤의 재미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게임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유저들이 원하는 건 그처럼 다양한 재미지, 단순히 내가 남들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아니다.그래서 한국 게이머들은 점점 한국 게임을 떠난다. 재미의 요소는 보강하지 않으면서 돈을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한국 게임 회사들에 지쳐서. 유저를 단지 돈주머니로 바라보는 게임회사들에 정이 떨어져서. 이게 단순히 게임의 문제뿐인 것은 아니다. 문화를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볼 때는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국 게임 업계의 몰락은 이런 태도의 부재가 어떻게 시장을 망가뜨리는가에 대한 선례가 될 것이다.

2023-03-07

우연과 필연 사이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 책장을 덮은 후에도 꼼짝할 수 없는 작품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뭔가를 손에 쥐었다는 감각인데 그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 본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나를 읽고 쓰는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필립 로스의 소설을 처음 읽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대던 스무 살이었고 도서관의 책장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다. 나는 젊은 날을 휘발시키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떤 우울, 무기력,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 발붙이고 서 있다는 죄책감과 세상을 향한 묘한 분노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날 책장에서 꺼내든 책이 필립 로스의 ‘울분’이었던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울분’의 주인공인 마커스는 신중하고 책임감 있으며 부지런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마커스에게 말한다. “너는 창창한 미래를 앞에 둔 청년이야. 네가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에 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그것은 어쩌면 자식을 둔 흔한 부모의 염려일지도 모르고 시대적인 필연성이었는지도 모른다.아버지는 마커스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집착을 멈추지 않았다. 마커스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선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버지?” 마커스의 발악에 아버지는 대답한다.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마커스는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고자 하고 어떤 규정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의 목표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전쟁에 끌려가지 않고 법대에 진학해 법률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신중했고 조심했다. 어떤 부분은 미성숙하기도 했고 또 어느 부분은 놀라우리만치 자기중심적이기도 했다.그런 마커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단 하나의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채플 수업에서의 대리 출석이 발각되었을 때, 반성문과 매주 수업을 듣는 것으로 대신하자는 학생과장의 말을 수용할 수 없던 것 역시 일순간의 치기가 아니다. 삶의 이면에 고요히 잠복하던 어떤 울분이 그의 마지막 선택을 추동하게끔 했던 것이다. 마커스는 퇴학당하고 징병되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 결과 마커스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이러기만 했다면 또 저러기만 했다면, 모두 함께 모여 오랫동안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그렇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의 룸메이트나 애인이 아니었다면, 채플 수업이 아니었다면, 마커스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과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비극으로 향하지 않는 길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는 것, 감정을 억누른 채 어떤 것도 분출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커스는 주먹으로 학생과장의 책상을 내리치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좆까, 씨발.”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만약 마커스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버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른다. 학생과장의 뜻대로 하여 무탈하게 대학을 졸업했다면 그는 윤택한 삶의 법률가가 되었을 수 있다. 여러 선택의 끝에는 무수한 마커스의 미래가 있고 그것이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어떤 삶을 살든 그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마주한 아버지가 외쳤듯이. “내가 옳았잖냐, 마커스. 내 눈에는 그게 오는 게 보였단 말이다.”위대한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전혀 다른 결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아주 사소하게 벌어지는 우연적 사건으로 인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운명으로 향하게 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가 그러했듯이.미국의 작가가 써 내려간 이야기는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던 스무 살의 청년에게 닿게 된다. 청년은 작품을 읽으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매우 평범한 어느 날의 사건이 삶의 어느 곳에 잠복해 있다가 어떠한 결과를 이끌게 될지는 끝내 두고 볼 일이다.

2023-03-07

‘퇴근후 카톡금지법’

우정구 논설위원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연결차단권’은 2016년 6월 ‘퇴근후 카톡금지법’이란 이름으로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은 노동자의 사생활 보장을 위해 노동시간 이외 시간에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전화, 문자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지시를 내리는 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이다.실제로 법제화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이후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퇴근 후나 주말, 심야에 디지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토록 하는 조치나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최근 정부가 근로자에게 근무시간 외 시간에 회사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인 이른바 연결차단권 보장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다는 소식이다. 유럽 등에서 시작한 이 법이 드디어 국내에도 상륙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프랑스는 연결차단권에 관한 법률을 최초로 입법해 2017년부터 시행해왔다. 노동자의 휴식 보장과 사생활 보호가 목적이다. 디지털시대라는 시대적 환경에 맞춘 입법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시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국내에서 이 법이 처음 논의될 무렵,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 법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제도의 정착에 대해선 6명이 부정적 의견을 표시했다. 이유는 카톡상 직장과 가정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을 들었다.정부가 관련 법안을 준비하자 벌금까지 부과하면서 이를 규제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회사 일이 바쁘면 주말이라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이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여론이다. 법이 능사일까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07

주 52시간제의 유연화… 기대와 우려

정부가 근로가능 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으로 늘리되 늘어난 근로시간만큼 장기휴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한다고 밝혔다.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은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 근로를 노사합의를 거쳐 월, 분기, 반기, 연단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이 많을 때는 한 주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휴가를 몰아서 쓸 수 있게 하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개편안의 핵심이다.기업은 인력 운용을 쉽게 할 수 있고, 근로자는 근로시간 선택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것이 법안 취지다.주 52시간제는 근로자의 과로를 막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업종에 관계없이 획일적 규제로 근로자의 실질임금 하락과 중소기업 경영난 등의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벤처기업이나 수출기업, 기업연구소, 중소기업 등에선 “정부가 더 일할 기회를 막는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왔다. 4차산업 혁명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됐다.선진국과 비교해서도 우리 제도는 유연성을 잃고 있다. 일본은 연장근로시간을 월 100시간, 연 720시간 안에서 허용하고 독일은 6개월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정부의 이번 조치로 기업의 업무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 된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근로시간제도 개선이 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행여 근로자의 과로를 조장하는 일은 없는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노동계에선 과로사회로 회귀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정부가 연장근로 단위기간이 길어지면서 장시간 근로가 집중될 수 있음을 우려, 4주 평균 64시간 근로준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영세사업장에서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이 얼마나 지켜질지도 사실상 의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근로시간 개편안이 사회적 공감을 얻어 성공리에 안착하길 바란다.

2023-03-07

‘이데올로기전의 도구’가 된 도심거리

심충택 논설위원 정치권의 진지전(陣地戰)이 갈수록 가관이다. 국회와 언론을 넘어 이제는 도심거리도 이데올로기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최근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도심 주요교차로와 가로수, 전봇대를 가리지 않고 걸려있는 정치현수막 때문에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대단하다.경쟁하듯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내용이 주류여서, 원치 않아도 봐야하는 시민들로선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검사들을 향해 “깡패”라고 한 말들도 길거리 현수막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초등학교 근처 현수막에 적힌 적대감이 가득한 문구 때문에 학부모들의 민원도 쇄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정당이나 정치인이 외연을 확장하고 표를 얻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마치 선거철처럼, 현수막이 도심을 뒤덮은 것은 작년 연말, 정당이나 정치인의 현수막은 별도의 신고·허가 없이 최장 보름 동안 아무 데나 설치할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법’이 슬쩍 개정됐기 때문이다. 정당현수막은 15일이라는 기간만 지키면 신고 의무, 위치나 내용에 대한 제한이 없다. 국회가 도심 길거리를 무법천지로 만든 것이다. 일반 시민의 경우 합법적으로 현수막을 걸려면 자치구 지침에 따라 약 한달 전에 접수하고, 당첨이 되면 일정 금액을 지불한 후 ‘지정게시대’에 약 10일정도 설치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총선을 의식해 또 다른 ‘자기특혜’를 만든 것이다.현수막 공해를 차단하기 위해 인천시는 정당 현수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조례 개정을 통해 현수막 게재 기간과 전화번호를 크게 명시하도록 하고, 자치구의 현수막 게시시설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서울시와 창원시는 정부에 시행령 개정을 정식 건의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과시성 현수막은 도시 미관만 해칠 뿐이니 바로 철거하겠다”고 말했다가, 민주당 대구시당으로부터 “대구시가 홍준표 시장의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장소 제한 없이 난립하는 현수막은 안전사고 발생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대구 달서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상처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인천 송도에서도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여성이 현수막 끈에 목이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수막 줄은 어두운 밤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현수막을 이용한 이데올로기전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지금까지는 공직선거법이 선거일 6개월(180일) 전부터 현수막이나 인쇄물을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7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오는 7월 31일까지 법 개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8월부터는 해당 법 조항은 효력을 잃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선거 현수막’을 내걸 수 있다. 예비후보가 범람하는 총선일이 다가오면 아마 전국이 현수막으로 도배될 것이고, 시민들은 이에 비례해 정치환멸을 느낄 것이다.

2023-03-07

오늘 여당의 전당대회는 ‘통합의 기회’돼야

오늘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국민의힘 3·8전당대회가 역대급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누가 당권을 잡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집계된 득표수는 오늘 전대에서 최종 발표된다. 이번 전대 선거인단은 전당대회 대의원, 책임당원, 일반당원을 합해 모두 83만7천여명이다. 지난해 정권교체를 거치며 당원 규모가 역대 최대가 됐다. 이번 전당대회에는 윤 대통령도 ‘1호당원’ 자격으로 참석해 국민의힘과 정부가 ‘원팀’을 이뤄나가자는 화합의 메시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이날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과 청년 최고위원 선거의 경우 당선자가 결정되지만, 당 대표 선거는 4명의 후보 중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후보가 9일 일대일 토론 후 10일 모바일 투표, 11일 ARS 투표를 통해 최종 당선자를 결정한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서 본경선 2위를 하더라도 반전을 노릴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당권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려온 김기현 후보는 결선투표 없이 전당대회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안철수·황교안·천하람 후보는 결선투표까지 가서 극적인 뒤집기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경선 과정이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혼탁해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당대표 후보들은 마지막 투표일까지도 ‘대통령실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날선 공방을 벌였다. 안철수·황교안·천하람 후보는 어제도 “대통령실 행정관의 선거개입은 공직선거법을 어긴 중대한 범법 행위”라며 김기현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특히 안 후보는 법적조치를 하겠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다.국민의힘은 이번 전대 후 집권당으로서의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전대 이후 불공정시비로 당이 더 혼란에 빠지면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아마 이러한 걱정 때문에 전당대회에 참여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오늘 전당대회를 통합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걸어왔던 지난 1년을 당 차원에서 성찰하고, 대선 이후 등 돌린 민심을 철저하게 챙기는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

2023-03-07

봄 마중 춤사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날의 서막이 펼쳐지고 있다. 황량하던 무채색의 대지엔 매화와 산수유 꽃망울이 봄의 길목을 단장하고, 양지 바른 둔덕엔 가녀린 새싹들이 음표마냥 돋아나며 때 이른봄을 알리고 있다. 슬그머니 꼬리 감추며 멀어져가는 겨울의 뒷자락으로 피어나는 아지랑이의 아른거림 속에 인동(忍冬)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내온 만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생동의 봄 채비를 하는 듯하다.약동하는 봄날은 색깔과 움직임으로부터 온다. 봄의 초입에 피어나는 복수초나 산수유는 노란 몸짓을 일찌감치 내세우는가 하면, 앙상하던 가지에 희거나 붉은 매화꽃이 등(燈)처럼 달리기도 한다. 또한 가볍게 불어오는 남풍 결에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꿈틀거리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듯 개구리가 깨어나 땅 위로 나온다는 경칩을 즈음해 온갖 생물들은 스프링(Spring)같이 조금씩 톡톡 튀는 생장의 기운을 받기도 한다.‘줄기차게/뿜어대는 해의 입김/굿거리장단에//파아란 춤사위판/땅김의 너름새로//수액을/두레박질하는/간지러운 마파람’ -拙시조 ‘춘신(春信)’ 중(1995)자연만이 봄을 맞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생동과 리듬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지난 2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는 봄 마중 같이 설레고 활달한 춤자리가 의미있게 열렸다. 경북도 지정 전문예술단체 전통연희컴퍼니 예심과 포항향토무형유산원이 전통춤의 명인 스승과 제자, 문하생이 3대를 잇는 춤사위로 활기찬 봄을 알리는 ‘2023 춤, 세대를 잇다’의 정기 발표회가 신명나고 멋스럽게 펼쳐진 것이다. 수준 높은 전통춤으로 지역 간의 문화교류와 전통문화의 계승을 알리고, 당대 최고의 세 명무가 직접 무대에서 ‘태평무’ ‘손소고춤’ ‘버꾸춤’ 등의 춤판을 벌이는, 그야말로 시대를 넘나들며 세대를 아우르는 장단과 추임으로 깊은 울림과 몸짓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하는 귀하고 보기 드문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가녀린 듯 거침없이 가락을 타는 나비의 분방한 나풀거림 같고, 뻗었다가 휘감듯 접으며 휘영청 두드림 결에 유유히 날갯짓하는 학의 비상 같은 춤사위는, 과연 율려(律呂)의 응축과 침잠, 분출과 절제의 미학 같은 그윽하고 유장한 몸짓 언어로 다가왔다. 어쩌면 격정의 소용돌이 같고 바람 속의 회오리 같이 날렵하고 교태있는 몸동작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경탄하는 내내 심금이 울려지고 액운은 얼씬조차 못했으리라.생명의 춤판이 벌어지는 봄날은 모두 부지런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운과 움직임이 있어야 새싹이 돋고 물이 오르듯이, 아름다운 움직임은 춤의 본질이자 궁극적인 예술이다. 가무(歌舞)의 민족은 흥이 일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덩실덩실 팔 다리가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른봄 마중하듯이 신바람 나게 펼쳐진 전통춤의 무대는, 변화무쌍한 율동성이 생명인 ‘춤’이 역동성을 강조해서 쓴 붓글씨 서체의 생동감과 어우러져 한결 묘미를 더했다. 대지 위에서 솟구치는 생명의 잔치를 추임새 삼아 저마다의 삶을 춤추듯이 살아보면 어떨까?

2023-03-07

챗GPT, 어디까지 할 수 있니?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챗GPT 이야기 말이다. 작년 11월 말에 오픈AI라는 회사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이다. 어지간한 보고서쯤은 뚝딱 써낸다. 이런 질문을 챗GPT에 던져보았다. 한국의 한반도 통일전략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600자 정도로 단계에 대한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1. 상호 연락과 문화 교류 강화, 2. 경제적 통합, 3. 제도 및 법률 통합, 4. 정치 및 안보 통합, 5. 문화, 사회, 교육 통합. 고등학교 학생의 과제 보고서로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이뿐 아니다. 챗GPT에게 코딩을 시키기도 한다. 나아가 코딩의 오류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교육 기관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보편적인 지식이나 규정화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주 내용인 교육과정은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특정 주에서는 챗GPT 사용을 전면금지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챗GPT를 활용한 과제에 0점을 부여한 학교도 나왔다. 전자계산기가 나왔다고 해서 수학교육이 없어지지 않았고, 컴퓨터가 나왔다고 단순업무가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검색 포털이 나왔다고 컨설턴트 직업이 없어지지도 않았다.그러나 우리가 통찰하고 인정해야 할 것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컴퓨터 없는 세상, 인터넷 없는 세상, 휴대폰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앞에 인공지능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제 인공지능 없는 세상은 없다. 우리가 모두 컴퓨터를 만들고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아도, 각자의 수준에 맞게 인터넷을 잘 활용하고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런 일들을 참 잘하고 있다. 인터넷 인프라와 서비스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챗GPT,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정보를 모으고 조합하고 정리하는 세상 친절한 개인비서다. 문제는 이 비서에게 무슨 일을 시키느냐에 따라서, 그 비서의 능력이 다르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에서 ‘반복적인 것 잘하기’는 좀 덜어내고, ‘새로운 생각 다듬어가기’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 좋겠다. 우리의 교육은 개념 이해에 집중하고 반복되는 일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맡기면 좋겠다.챗GPT, 만능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편견도 있고 오류도 있으며, 상황을 반영할 만큼 구체적이지도 못하다. 개인적으로는 영원히 인간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우리의 길이 있다. 챗GPT는 모른다. 통일의 단계는 언급했지만, 언제 어떤 단계의 일을 어떤 수준으로 해야 할 것인지, 여러 단계의 일을 어느 정도로 동시에 추진해야 할지, 정부가 바뀔 때는 어떤 조정이 필요한지. 챗GPT는 못한다.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디테일이 필요하다. 우리 각자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전문가이며, 의도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챗GPT 두려워하지 말고, 재미있게 유익하게 사용해 보자. 좋은 질문을 하자, 그러면 우리도 오늘 비서로 요술램프의 지니를 가질 수 있다.

2023-03-07

수출하는 해양암반수

홍석봉 대구지사장 먹는 물의 진화가 놀랍다. 생수에서 해양심층수를 거쳐 해양암반수까지 나왔다. 해양암반수는 개발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이런 해양암반수가 해외에 수출된다.경북도는 최근 울진 환동해산업연구원에서 연구원과 아리바이오가 공동 개발한 동해안 해양암반수(염지하수)의 인도네시아 수출 선적식을 가졌다. 해양암반수는 2013년부터 동해안(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바닷가 땅속 1천50m 깊이에서 취수해 개발한 음용수다. 그동안 국내에서만 유통되다가 첫 해외수출이 이뤄졌다.이번에 초도 수출하는 물량은 500㎖ 4만 병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판매가는 병당 5천 원 내외로 전체 2억 원 정도 규모다. 1인당 GDP가 4천300달러에 불과한 나라에서 1병에 5천 원을 주고 사먹겠다고 하니 놀랍다.해양암반수는 물속에 녹아있는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 함량이 2천mg/ℓ 이상인 암반대수층 안의 지하수다. 제조업, 바이오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염지하수는 일반 물과 달리 귀한 지하수다. 업체 측은 몇 년 동안 동해안을 샅샅이 뒤져 최적의 장소인 울진의 죽변 바닷가를 찾았다. 우리나라에 염지하수 취수 지역은 여러 곳 있지만 식수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제주와 울진뿐이다. 전문가들은 미네랄 함량이나 원수의 안전성 측면에서 울진의 염지하수를 더 높이 평가한다. 아토피 치료제로도 사용된다. 미네랄을 포함했지만 환경영향을 많이 받는 해양심층수와 달리 해양암반수는 암반에서 용해된 미네랄을 포함한 100% 무공해 청정수라는 차이가 있다.해양암반수는 뷰티, 식품 등 연관 산업으로 확대될 여지가 많다. 에비앙 못잖은 명품 생수의 탄생을 기대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06

‘에너지 그린버튼’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연구본부장 어느덧 따뜻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다. 예년에 비해 반가운 마음이 더 큰 것은 그만큼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춥고 힘들었다는 것을 말해준다.아마 급등한 난방비도 우리를 무척 힘들게 하는데 크게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다가올 봄은 잠시이고 우리를 무더운 폭염과 열대야로 시달리게 할 긴 여름이 이내 올 것이다. 지난 겨울 난방비만큼 엄청나게 커진 냉방비로 인한 큰 고통이 또 예견된다. 앞으로 더 악화할 기후변화 문제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2050 탄소중립 체제 강화로 인해 이런 에너지발 경제적 고통은 일상화될 것이다.2011년 이후 연평균 최종 에너지 소비량은 대구광역시가 1.12% 감소하였으나, 전국은 0.79% 증가하였다. 특·광역시 중에서는 울산시가 1.62%로 가장 높고, 인천시, 광주시, 대전시 순으로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최근 10년 동안 1인당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연평균증가율은 대구광역시가 ·0.74%로 전국의 0.56%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타 도시에 비해 산업 분야의 에너지소비 비중이 낮은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결국 대구광역시는 산업을 제외한 수송과 가정·상업 분야의 에너지소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 분야가 냉·난방비 상승의 직격탄을 받는 취약한 분야이다.2020년 기준 대구광역시 최종 에너지 원별 소비량 비중은 석유제품 36.0%, 전력 31.2%, 천연 및 도시가스 23.4%, 석탄 4.0%, 신재생에너지 3.1%, 열에너지 2.2% 순이다.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필요한 신재생에너지의 소비량 비중은 너무 낮고, 대외 의존적이고 에너지 경제적으로 취약한 석유제품, 전력 그리고 천연·도시가스의 비중은 여전히 너무 높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2011년 이후 대구광역시 최종 에너지 원별 소비량의 연평균증가율이 천연 및 도시가스는 증가하지만, 전력, 석유제품은 감소 추세인 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지난 겨울 난방비 폭탄이라 표현되는 큰 충격은 역설적으로 매우 다양한 에너지소비 관련 정책의 도입을 촉진하게 됐다. 특히 대구광역시 최종 에너지 소비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정·상업부문에서의 에너지수요관리 대책이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와 직결된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는 건축물 에너지 효율인증 등급 최상위와 최하위 등급의 에너지 소비량 차이가 무려 최대 7배 이상 나는 것에서도 그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건축물 주거 유형과 준공 연도별 단위면적당 난방에너지 사용량 통계에서 단독주택이고 건축물이 노후될수록 난방에너지사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에서도 에너지 효율화의 필요성이 드러난다.건물에서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소비자가 전기·가스·수도 등 자신의 에너지 사용량을 손쉽게 온라인을 통해 확인하고, 자신의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와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효과가 이미 검증된 쌍방향 정보공유 앱인 ‘에너지 그린버튼’의 도입이 시급하다.

2023-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