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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로나 7차 대유행 임박…백신접종률 높여라

지난 4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올 겨울철 코로나 유행은 변이 바이러스 유입 상황에 따라 하루 최대 20만명까지 확진자 발생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7차 유행 정점규모를 밝힌 것도 처음이지만 하루 20만명 규모는 지난해 6차 대유행 당시 발생한 18만명대보다 많은 수치여서 코로나 7차 대유행에 대비하는 국민적 경각심이 필요한 때다.지난 9월 26일 실외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내 착용 외는 사실상 전면 해제됐다. 국민이 느끼는 코로나19 상황은 사실상 종식 수준에 가깝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도 사라지고 별종 독감 정도로 여기는 수준으로 경계심도 거의 없다. 마스크를 낀 사람은 많지만 일상은 거의 정상회복에 도달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등장으로 7차 대유행이 닥칠 수 있다는 보건당국의 예측에 우리는 이제 다시한번 긴장감을 추스러야 한다. 전문가들은 7차 대유행 정점을 11월 말이나 12월로 본다.그동안 코로나 백신접종으로 생긴 면역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는 인구가 많아진 탓인데, 당국은 면역력이 떨어진 인구가 전체 국민의 68%(약 3천500만명) 정도라 한다.감염과 백신효과로 생긴 면역력이 떨어지고 새 변이의 등장과 동시에 국민의 경계심도 느슨해져 코로나19가 기승하기에 적합한 시기가 도래했다는 의미다.확진자 수가 최근 3주째 증가세를 보이고 하루 확진자도 4만명대에 이르러 지난달 중순 하루 평균 2만명대의 두배다. 6일 0시 현재는 3만6천675명 발생으로 일주일 전보다 2천여명이 늘었다.설상가상으로 겨울철 들면서 독감 등 호흡기 증상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멀티데믹도 우려된다. 코로나19에 맞설 방법은 백신접종과 개인의 방역수칙 준수가 최선이다. 아직은 느슨한 방역 분위기로 백신접종률이 매우 낮아 걱정스럽다.면역력이 높으면 감염되더라도 중증화율과 치명률을 낮출 수 있다. 더 늦추지 말고 백신접종을 서둘러 국민적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

2022-11-06

징비록의 교훈

우정구 논설위원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군무를 총괄하는 도체찰사 직위에 있었던 서애 류성룡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쓴 책이다. 국정과 군무의 최고 책임자였기에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조선과 일본·명나라와의 외교관계, 전투성과, 백성의 생활상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특히 그는 전쟁 전의 배경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해 전쟁을 미리 막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도 책에 담았다. 또 책은 임진왜란을 자국 중심으로 바라보았던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는 “난중의 일은 부끄러울 따름이다”라고 적어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을 책에서 밝혔다.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으나 그 속에서 우리가 건질 수 있는 것은 교훈을 얻는 데 있다. 징비록을 쓴 류성룡은 비록 남인이라는 정파의 일원이었지만 임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했다.역사학자 토인비는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그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해 당할 것”이라 말했다.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의 위기감이 점증하는 분위기다. 한미 국방장관이 만나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국에 적시적으로 전개할 것”을 밝혔으나 북한의 비상식적 도발 행위로 보아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의지를 얼마나 억제할지는 미지수다.징비는 “잘못을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임진왜란은 우리 민족이 기억하는 가장 참혹한 재앙의 역사적 사건이다. 징비록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반면교사 삼아 안보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재난을 한번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06

대구 여성영화제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12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열한 번째를 맞은 ‘대구 여성영화제’가 지난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렸다. “우리는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표어를 내건 주최측의 주장이 마음에 닿는다.‘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대해 영화로 이야기하고 연대하고자 합니다.’ 성소수자와 미혼모, 트랜스젠더,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 일자리 구하는 청소년,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녀,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앞다투어 상영되었다.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입지는 제대로 마련된 적이 없다. 대규모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梨泰院)의 옛 이름 가운데 하나가 동명(同名)의 이태원(異胎院)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놈들에게 겁탈당하고 그들의 씨를 가진 여성들이 모여 살았다는 곳 이태원! 임란 이후 불과 38년 만에 당한 병자호란 대참사의 희생자인 환향녀(還鄕女)들이 호로자식(胡虜子息)들과 함께 거주한 곳 이태원! 한 서린 여인들의 보금자리 이태원!여성의 시련은 12,000년 전 형성된 홀로세의 기후 조건에서 10,000년 전 시작된 농업혁명이 시발점이다. 농경과 목축의 계급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을 경험해야 했던 여성들이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 후 여성들의 권리 찾기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여성과 함께 고통을 감내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적잖게 자리하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대구 여성영화제’가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초점(焦點)을 맞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11년을 지나오면서 영화제를 추진해온 담당자들이 계속 겪어야 했고 겪고 있는 대구시의 무관심과 냉담함이다.문화관광 부서에 가서 재정문제와 홍보를 말하면 그들은 여성 관련 부서로 가라고 한다. 여성 관련 부서에 가서 지원을 호소하면 문화관광으로 가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11년을 넘어섰다. ‘컬러풀’도 모자라 ‘파워풀’을 내건 대구시장들의 문화적 문맹과 정치적 맹목은 날이 갈수록 극심하다. 아직도 토건에 목을 매는 그들의 근시안적인 행정은 21세기 세계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대구시장은 ‘금호강 르네상스’라는 구호와 더불어 5천400억을 들여 강바닥을 할퀴고 자전거길을 내고 각종 오락 시설을 만들겠다고 한다. 단군 이래 가장 악질적인 4대강 사업의 아류이자 판박이로 대구시의 재정을 고갈하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5천400억을 들여 시민들의 눈에 훤히 보이는 성과를 바탕으로 그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삼척동자도 알지 않을까?!열렬 여성들이 11년째 열고 있는 ‘대구 여성영화제’에 최소한도의 재정적인 지원과 인간적인 예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21세기 세계는 이른바 시멘트 콘크리트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소프트웨어가 좌지우지한다. 그 점 명징하게 이해했으면 좋겠다.

2022-11-06

기적같은 광부들 생환…중요한건 再發 방지

지난달 26일 오후 6시 봉화 아연광산에서 갱도붕괴 사고로 고립된 광부 2명이 4일 밤 11시 3분쯤 모두 구조됐다. 어둠과 추위, 공포 속에서 광부들이 221시간을 버티며 기적같이 살아남은 것이다. 인근 안동병원으로 옮겨진 이들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한다. 그동안 구조작업에 애를 먹었던 소방당국은 매몰되지 않은 제2 갱도를 통해 지하 140m까지 내려간 뒤 실종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1 갱도 쪽으로 진입로를 뚫어 극적으로 이들을 발견했다. 구조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매몰된 광부들의 끈질긴 생존본능이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냈다. 20여 년 경력의 베테랑 광부인 박모씨는 “3일째 몹시 배가 고팠는데, 그 뒤로는 배고픈 줄도 잘 몰랐다”고 했고, 새내기 광부인 박모씨도 “지하수로 목을 축일 때 토하고, 힘들었다”고 가족들에게 전했다. 이들은 괭이를 들고 탈출로를 파내기도 했지만, 사고 사흘째부터는 갱내 좁은 공간에 비닐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우면서 추위를 견뎌냈고, 평소 소지했던 커피믹스를 밥처럼 마시며 구조대를 기다렸다고 한다.국내에선 지난 1967년 8월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에서 갱도 붕괴로 고립된 광부가 16일 만에 구조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지하 125m지하에 고립된 광부는 지하수를 마시면서 배고픔을 견디고 무사히 구조됐다.이번 사고는 광산 갱도하부 46m지점에서 갑자기 밀려들어온 펄(진흙 토사물)이 갱도아래로 수직낙하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해당 갱도에는 모두 7명이 작업 중이었는데, 2명은 스스로 대피했고, 3명은 광산 측 구조대에 의해 구출됐다. 사고 당시에도 광산업체는 119에 늦게 신고해 구조작업을 지연시켰고, 고립된 작업자 가족에게도 제때 통보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봉화 아연광산은 지난 8월에도 갱도를 지탱하는 시설 부실로 붕괴사고가 나 사상자 2명이 발생한 곳이다. 경찰은 왜 두 달 사이에 연이어 유사사고가 발생했는지 사고경위를 철저히 조사해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2-11-06

안전 소홀, 일상이 된 ‘공포’

홍석봉 정치에디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과 문화 강국의 자긍심이 산산이 무너졌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왜 이렇게 빈발하는 후진국형 참사에 치를 떨어야 하는가.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의 참담한 아픔은 어떻게 달랠 것인가.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국민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떤 유형의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서다.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은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국민 가슴을 후벼 팠다. 파문이 확산되자 사과했다. 비난은 숙지지 않았다. 장관 파면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장과 경찰·소방청장이 줄이어 국민 앞에 사과하고 고개 숙였다.당국의 대처 소홀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압사 사고 위험을 호소하는 112신고가 잇따랐지만 외면했다. 3년 만의 사회적거리두기가 없어진 핼러윈 행사에 10만 이상 인파가 예측됐지만 행정과 경찰은 손 놓고 있었다. 많은 조짐이 있었는데도 대책 마련을 등한히 했다. 경찰의 부실 대응과 늑장 보고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책임 추궁이 불가피해졌다.이태원 참사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예로부터 가뭄과 홍수 등 기상재해로 큰 피해가 발생하면 임금이 ‘부덕의 소치’라며 기우제를 지내고 하늘에 빌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지는 못할 망정 책임을 발뺌했다. 윤석열 정부의 도덕성과 능력이 의심받는 이유다. 국민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사태 수습과 보상 등 문제가 남았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국민에게 대응 부실을 사과해야 한다. 더 이상 안전 소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호우 피해 상황을 점검하며 “국민의 안전에 대해 국가가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는 공직자의 직무라는 점과 국민 안전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한 발언이다.국내외 전문가 진단도 쏟아졌다. 밀집된 군중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 조치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사전 준비만 제대로 했어도 충격적인 인명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과밀 상황에 익숙해진 국민들의 무감각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순신 장군은 평소 철저한 계획과 준비로 전쟁에서 이겼다. 안전에 요행은 없다.정부는 뒤늦게 주최자가 없는 행사도 안전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뒷북 행정이다. 그래도 구멍 난 외양간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이태원 참사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안전불감증의 기제가 여지없이 작동했다. 우리는 대구지하철과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몸서리치는 사고를 겪었다. 공포가 일상이 됐다. 그렇게 안전을 강조하고 투자했지만 아직도 구멍투성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망을 촘촘히 갖췄지만 별무효과인 듯 하다.항상 안전에 대비하는 국민 의식이 필요하다. 애도 국면이 끝나면 바로 책임추궁과 보상에 들어갈 것이다. 국민 세금이 투입돼야 한다. 언제쯤 일상이 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022-11-03

5센티의 기적

우정구 논설위원 마애(磨崖)란 자연암반이나 절벽에 부조나 선각 등으로 새긴 그림이나 글씨를 말한다. 다양한 마애조각 중 불상이나 보살상 등을 주제로 조각한 것을 마애불상이라 부른다.마애불상은 기원전 인도 석굴사원 조영에서 시작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후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됐고, 우리나라에는 6∼7세기경 백제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충남 태안군 동문리에 있는 백제시대 마애삼존불 입상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마애불로 전해지고 있다.마애불상으로 등록된 문화재(2020년)는 국보 6점, 보물 20점, 시도지정 문화재 50점 등이 있다.‘5센티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을 바로 세우기 위한 고불식이 지난달 31일 마애불 현장에서 있었다.2007년 5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열암곡 석불좌상 보수를 위해 작업하던 중 엎어진 채 발견된 이 불상은 약 600여 년전 지진으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 불상은 지진으로 넘어질 때 암반과 불과 5센티 간격을 두고도 부딪치지 않아 얼굴 등이 온전히 보존돼 ‘5센티의 기적’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오뚝한 콧날과 이지적인 부처님 모습이 신라시대를 대표할 부처님 상이라 한다.그동안 마애불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불교계와 문화재청 등이 여러 번 논의를 벌였으나 무게가 80t에 이르고 산비탈에 있어 원형 손상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지금껏 발견 상태로 보존해 왔다.지진과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원형이 잘 보존돼 국보급은 된다는 이 불상은 발견부터 많은 스토리를 품어 더 흥미를 준다. 원형 복구의 기대감이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03

北 도발 울릉도까지 겨냥, 대피훈련 강화를

북한이 지난 2일 오전 휴전 이후 처음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공해상 방향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면서 울릉군 전역에 첫 공습경보가 발령되는 긴박한 사태가 발생했다. 미사일이 떨어진 지점이 거리상으로는 속초가 더 가깝지만 미사일이 울릉도 방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울릉도에서만 공습경보가 자동으로 울리게 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울릉도를 향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우리 영토에 대한 도발행위”라며 정부에 동해 방어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나라에 공습경보가 발령된 것은 2016년 2월 7일 북한의 ‘광명성 4호’ 인공위성 발사 직후 서해 최북단인 백령도·대청도에 발령된 지 6년9개월 만이다. 이날 오후엔 북한이 동해상으로 100여발의 포병사격도 해 강원 고성군 주민들도 울릉군민들처럼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북한은 어제(3일)도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군은 이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초유의 NLL 이남 탄도미사일 도발에 나서고 우리 군도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에 나선 데 이어, 북한이 중장거리 이상급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면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 수위는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울릉도 공습경보 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앞으로 우리나라 어느 지역도 북한의 미사일 과녁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울릉도는 이날 갑자기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섬 전체가 깜짝 놀라며 주민들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다고 한다. 사이렌 소리만 요란했을 뿐 어떤 상황인지 안내가 없었던 탓이다. 울릉군은 공습경보 발령 24분이 지나서야 군민들에게 대피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주민들은 친척의 전화를 받거나 TV자막을 통해 위급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울릉군 공무원들만 군 청사 내 지하공간 등으로 신속하게 대피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북한 도발에 대비해 평소에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민방공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22-11-03

3개월만에 확대된 물가… 관리 고삐 더 죄라

10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7%를 기록하는 등 물가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10월 들어서는 전달(5.6%)보다 상승폭이 오히려 더 커졌다.한국은행 관계자가 “내년 1분기까지 5%대의 물가 오름세가 이어질 것 같다”는 전망까지 내놓아 서민 살림살이가 얼마나 더 팍팍해질지 걱정이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연초 3%대의 국내 소비자 물가가 7월 6.3%를 정점으로 8월 5.7%, 9월 5.6%로 둔화세를 보이다가 10월에 또다시 5.7%를 기록, 상승폭이 3개월만에 확대됐다.그동안 물가상승을 주도해 온 석유류와 농축산물 가격은 한풀 꺾였으나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세를 다시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고물가는 코로나 사태로 힘겹게 지내온 서민 살림살이에 큰 타격을 안겨준다. 고물가를 이유로 당장 금융기관의 대출금리가 7%대까지 치솟아 서민들의 부담이 커졌다. 외식하기도 부담스러워졌다는 사람이 많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이 올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서민들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문제는 앞으로 당분간 고물가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정부도, 한은 관계자도 이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또 한번 기준금리를 올리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니 물가가 언제나 잡힐지 답답할 뿐이다.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아직도 대외적 불안 요소는 많다. 9월 중 산업활동 동향에서 나타났듯이 국내의 소비, 생산, 투자 등은 트리플 감소세다. 국내 경기회복 흐름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정부가 나서 산업계의 활동을 독려하고 경기를 진작시켜 경제 흐름을 빨리 정상화 시켜가야 한다. 특히 고물가를 잡는 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지난달 대구는 5.8%, 경북은 6.4%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보여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대구시와 경북도 등 자치단체도 물가를 잡는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물가상승의 최대 피해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다시 한번 물가 잡는 고삐를 죄어야 한다.

2022-11-03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의 미래는 물론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질 때 우리나라 미래는 밝을 것이다. 반대로 왜곡되고 편협한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대부분 좌경화되었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낭독한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는 그런 현실을 적시하고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저희 세대에게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이미지는 ‘악마’ 그 자체였습니다. 386 운동권들이 차지한 전교조와 학원가 강사들의 재미있는 역사 수업 사이사이에 뿌려지는 충격적인 단어들은 감성이 충만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매우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극과 충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세뇌된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박혀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 살린 ‘영웅 박정희’를, 국민들을 핍박한 ‘악마’로 각인시켜왔던 것입니다”김 변호사는 1981년생으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에 태어난 40대 초반이다. 그의 추도사를 들어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그 중에서도 40대들이 왜 그토록 좌편향적인지를 알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있었던 6·25전쟁의 참화나 새마을운동 따위는 아득한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렸고, 반면 386운동권들은 세련되고, 똑똑하고, 요즘 말로 굉장히 힙한, 젊은 삼촌·이모들 같았기에 더욱 친근하고 닮고 싶었던 거라고 했다.“386 운동권 세대의 ‘민주화 운동’은 마치 영웅의 일화 같았고, 폭력과 억압, 최루탄을 뚫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모습은, 과장되고 미화되어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세대들은 경험해본 적도 없는 최루탄 냄새가 마치 나는 듯했고, 영화 속 동료가 군홧발에 짓밟혀 죽어 나갈 때는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도피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직접 경험했던 로맨틱한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그러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거리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웠겠는가. 그 노인네들이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열사의 나라 건설현장에서, 서독의 탄광에서, 베트남 전쟁터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대가로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것을, “태어나 보니 잘 사는 나라였다”는 세대가 어찌 알 것인가. 오늘날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그렇게 비하하고 조롱하고 혐오하는 늙은이들이 피땀으로 심은 나무의 열매라는 것을.그러나 김소연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일말의 안도와 기대를 갖게 한다. “여전히 30년이 넘도록 스무 살 캠퍼스 낭만과 최루탄의 향기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행한 세대인, 우리 선배 386 운동권 일부는 정치권에 남아 철 지난 이념선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희 MZ세대가, 이들을, 이 불쌍한 386들을, 스스로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빠져나오고 해방될 수 있도록, 그리고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11-03

축제 속의 질서의식

윤영대 수필가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을 보며 축제 분위기의 가을을 즐겨야 할 10월의 마지막 주말, 뜻하지 않은 대규모 인명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 체 우리 사회의 질서의식을 생각해 보았다.10월 29일 밤 10시경, 내가 넓은 영일만 밤바다의 정취를 즐기고 있을 때 서울 이태원에서는 외국풍의 핼러윈 축제의 흥겨운 한때를 즐기려던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에게 막히고 밀려 쓰러지고 압사(壓死)당하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3년간이나 억눌렸던 마음을 털어내려고 모여들었다가 졸지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국가기념일도 아닌 날에 상업적, 신 문화적인 행사로 정착하며 귀신이나 괴물 분장을 한 채로 돌아다니는 축제로 미국과 일본 등 몇 나라에서만 즐기고 우리에게는 20여 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사고의 발단은 ‘노 마스크’의 자유로움으로 약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좁은 언덕 골목길을 통제 없이 쏠려 다닌 탓이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10여 건의 112신고를 받았다지만 그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 미흡했고 안전 관리 부실 또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겠다. 예년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는 사실을 기초로 안전 대책을 세우고 시민의 긴급신고에는 정확한 판단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출동하여 구조했어야 했다. ‘압사 될 것 같다’, ‘아수라장이다’라며 경찰의 통제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희망도 꺼져갔고 중고생 6명을 포함한 20~30대 젊은이들 154명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다.이러한 압사 사건은 외국에서도 일어났었다. 최근 10월 1일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지역에서 벌어진 프로축구장 난동으로 174명이 사망하기도 했고, 작년 4월 이스라엘 종교축제에서 44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이들처럼 평지에서도 질서가 깨어지면 군중들은 그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더구나 경사가 있는 폭 4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아마 세계 기록이겠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문화와 기술, 경제 대국으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어이없는 사고가 났으니 외국 여러 나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위로를 보내고 있다.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 정부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합동 분향소도 설치하여 추모함과 동시에 사건의 원인을 찾고 있다.이번 사고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참사가 없도록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안전교육이 필요하겠다. 경찰과 소방대원을 도와 심폐소생술(CPR)을 하거나 환자를 이송하는 등 ‘얼굴 없는 의인들’도 많았다. 항상 준비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사고에 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사고 난 후의 대책 마련에 핀잔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외양간을 잘 고쳐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미 저질러진 일, 엎질러진 그릇이기는 하지만 희생자에 대해서는 진정한 애도의 마음을 품고 동시에 그들 가족과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트라우마도 잘 치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2022-11-03

전 세계 탄소중립(Net Zero) 전환, 대만도 실행 돌입

린천푸 주한 대만 총영사 전세계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전환 노력이 시작되었다. ‘파리 협정’은 국제 협력 메커니즘의 혁신적 규범도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모든 국가의 광범위한 협력을 필요로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만은 국제사회와 협력할 의지와 능력이 있으며,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전세계적인 탄소 중립 전환 노력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대만은 세계 21위의 경제주체로 인도 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번영과 안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국제 공급망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신기술을 통해 생산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지속적인 반도체 혁신을 통해 전자 제품의 다양한 스마트 응용 프로그램을 구현해내고, 글로벌 에너지 절약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대만은 탄소 중립 노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며, 이미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2년 5월까지 재생 에너지의 누적 설치 용량은 12.3GW로, 2016년에 비해 1.6배나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2005년에서 2020년까지 대만의 GDP는 79% 증가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온실 가스 배출 총량은 45% 감소했다. 대만은 경제성장과 온실 가스 배출량이 더 이상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2021년 4월 22일 지구의 날, ‘2050 탄소중립 전환’ 추진을 발표했다. 곧이어 ‘대만 2050 탄소중립 배출 노선 및 정책’을 공표하고 “에너지, 산업, 생활과 사회” 등 4대 전환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동시에 ‘과학기술 RD’ 및 ‘연관 법안’을 2대 주요 기반으로 풍력/태양열, 수소 에너지, 미래 지향적 에너지, 전력 시스템과 에너지 저장, 에너지 절약 및 탄소 포집 저장 및 활용, 운송수단의 전기화 및 비탄소화, 자원 재활용과 제로 폐기, 천연 탄소 싱크(흡수원), 탄소중립 생활, 녹색 금융 및 공정한 변혁 등 12개 항목의 관련 정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다.특히 지속가능 에너지, 저탄소, 재활용, 탄소 네거티브, 사회과학 등 5개 분야에서 탄소중립 전환에 필요한 과학기술 연구개발 기반에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기후변화대응법’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명확하게 설정하여, 기후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기후변화 적응 전문 대책을 업데이트 및 정보 공개 및 대중 참여 강화해 나갈 것이다.또한,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을 도입해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한 배출 감소 촉진과 저탄소 녹색 성장을 주도하며, 점차적으로 기후에 대한 법적 기반을 완성해 나갈 방침이다. 대만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민간 투자를 독려하며 일자리 창출 및 에너지 자립과 사회 복지를 향상시켜 대만 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도록 할 것이다.안타까운 것은 대만이 정치적 편견으로 인해 국제기구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대만은 글로벌 기후 문제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따라서 국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곤란하고, 관련 업무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전세계 기후 관리의 공백을 초래시킬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실제, 제한된 고유 에너지 보유 및 대외 무역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가진 대만이 만약 ‘파리 협정’과 연계된 국제 협력에 참여할 수 없다면, 향후 대만의 산업 녹색화 프로세스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국제 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대만은 국제 감축 메커니즘에 공정하게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글로벌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따르는 위협에도 직면해 있다.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대만이 탄소중립 실현 문제로 큰 타격을 입게 되면 이는 국제 협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세계 경제에도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탄소 중립의 추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집단적, 세대적 책임이다. 국제사회가 함께 협력해야만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지난 2년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만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우호적이고 잠재력 있는 나라임을 증명하였다. 대만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메카니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 받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이러한 노력을 지지해 주기를 당부 드린다. 더 나아가 대만이 국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공정하고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보장되기를 희망한다.

2022-11-02

심폐소생술

홍석봉정치에디터 심폐소생술(CPR)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태원 참사가 계기다. 사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건진 이들이 많았던 때문이다. 참사 당시 현장에 CPR 방법을 아는 사람이 많았더라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CPR 방법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사고 당일 서울 이태원의 참사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에 빠진 환자 수십 명이 도로 위에서 CPR 조치를 받았다. 다급한 상황 속에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쓴 시민들의 사연이 SNS로 전해졌다. 사고를 목격한 의대생과 간호대생이 사고 현장에서 밤새 CPR을 했다는 글도 있다.이후 SNS와 인터넷에는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과 CPR 방법 게시물이 속속 게시됐다. 응급처치 강습 기관에도 시민 문의가 부쩍 늘었다.현재 초·중·고 학생은 학교에서 CPR을 포함한 응급처치 교육을 배운다. 군과 민방위교육, 산업현장 등에도 단골 프로그램이 됐다.심장마비 환자의 경우 목격자가 즉시 CPR을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CPR은 사람의 생명줄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심폐소생술은 심폐 기능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멎었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숨이 멎지 않도록 지연시킨다. 심정지가 발생하면 늦어도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병원 치료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일부 논란도 있다. 여성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릴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이뤄진 심폐소생술은 긴급 처치만으로는 강제추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배워야 할 때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02

문화경쟁력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이 문화로 떴다. K-pop과 한국영화의 성공이 줄을 이었다. 국경과 세대를 넘는 유행이 생겨났고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다. 한국말 배우기 열풍이 일었으며 한국문화를 모방하려는 외국인들이 적잖이 보였다. 코로나 언덕을 넘으며 관심과 흥미가 더 높아지길 기대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한국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에도 변화가 있다. 글로벌시대의 역동성은 무엇이든 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고 해석한다. 한국과 한국문화는 그간의 긍정적인 이해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까. 문화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우리만의 문화인가. 우리만 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문화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콘텐츠를 보여주는가. 문화에 담긴 이야기를 그 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때, 콘텐츠를 장소와 동일시하여 그 스토리를 만나고 경험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찾는다고 한다.케이컬처(K-culture)가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감동과 맥락을 전달할 때, 우리 문화의 경쟁력과 영향력은 배가된다. 성공을 경험한 우리의 콘텐츠가 전혀 새로운 감동을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문화가 젊어야 한다. 이야기가 세대를 관통하면서도, 특히 ‘다음세대’가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을 때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다. 전통적인 옛이야기일수록 오늘의 콘텐츠로 새롭게 만들어 전달해야 한다. 우리만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무리 많아도,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고 가치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문화적 자긍심은 세대를 넘어 전달이 가능할 때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문화적 환경이 글로벌하게 펼쳐질수록 콘텐츠를 오늘의 세대와 어울리도록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문화원형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젊은 세대와 함께 향유하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초연결(super-connectedness)이 현실이 되었다. 지구상 어느 곳과도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글로벌세상에서 문화도 그런 환경에 걸맞게 진화해야 한다. 이야기에 실렸을 가치와 내용을 적절하게 전달하고 공유해야 한다. 우리만의 전통과 기준을 고집하기보다 현재적이며 글로벌한 가치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인과 함께 즐기며 호흡할 콘텐츠를 지향해야 하고 끊임없이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과 방역, 경제와 한류로 쌓아온 나라의 저력을 지속적인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려면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다듬어야 한다.문화의 경쟁력은 그 콘텐츠가 독창적이면서 젊은 세대와 세계인의 감각과 함께 할 때 형성된다. 디지털과 초연결의 새로운 사회환경에도 주목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만들고 확장하여 갔으면 한다. 나라의 영향력은 문화의 힘과 비례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케이컬처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지지될 터이다. 경제가 바깥의 울타리를 만들어 낸다면, 문화는 속깊은 자긍심의 뿌리를 제공한다.

2022-11-02

봉화광산 매몰자 구조, 왜 이렇게 늦어지나

지난달 26일 봉화 아연광산 붕괴사고로 매몰된 인부 2명(56세, 62세)에 대한 구조작업이 일주일째인 2일 현재에도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어 안타깝다. 소방당국은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생존확인용 76㎜(천공기) 시추작업이 실패한데 이어, 지난달 30일부터 추가로 98㎜ 시추작업을 계속해 갱도 185m까지 진입했지만, 생존 예상지역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소방당국은 업체측이 가진 도면을 바탕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도면은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정확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소방당국은 정부가 지원한 천공기 3대를 추가로 투입해 생존이 확인되면 이 관을 통해 구조 때까지 통신시설, 식품, 의약품 등을 내려보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생존여부 확인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실종자 가족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이번 사고는 갱도하부 46m지점에서 갑자기 밀려들어온 펄(진흙 토사물)이 갱도아래로 수직낙하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모두 7명의 인부가 갱도 안에 갇혔다가 5명은 탈출하거나 구조됐지만 2명은 아직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공포감이 엄습하고 숨이 막힐텐데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견딜지 가슴이 먹먹하다”며 국내외 최고전문가들이 현장에 와서 구조작업을 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1일 현장을 방문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작업자를 구조할 시추 전문가와 설비를 총동원하라”고 관계당국에 주문했다. 경북도는 행정부지사를 반장으로 구조대책반을 가동하고 구조작업과 지원사항을 현장 지휘하고 있다.봉화 아연광산은 갱도를 지탱하는 시설이 부실해 지난 8월에도 동일한 수직갱도에서 붕괴사고가 나 사상자 2명이 발생한 곳이다. 지금은 실종자 구조에 총력을 쏟아야 할 때이지만, 불과 두달전 같은 갱도에서 유사한 매몰사고가 났다면 사전에 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다. 경찰은 오래된 광산의 붕괴사고 재발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번 봉화 아연광산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

2022-11-02

대구~영천 30분 생활권 시대… 기대감 크다

경북도는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영천(금호)구간 연장사업이 국토부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신규사업으로 반영된 하양~영천 구간이 국토부 투자심사를 통과하면서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만 통과하면 2026년 공사 시작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12월 완공 예정인 도시철도 안심~하양 구간과 연결되는 이 사업은 총 5km 구간, 2천52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다. 이 사업이 완성되면 대구, 경산, 영천을 잇는 광역교통망이 형성돼 이 일대 생활권에 큰 변화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경북도는 “청년 인재 유입과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 광역교통의 일대혁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공사 중인 영천 경마공원과 연결되면서 경북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영천~하양 구간 도시철 연장은 지난해 영천시민이 뽑은 시정베스트 1위다. 영천시민은 지역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사업으로 손꼽고 있다는 것이다. 영천시도 역세권인 금호읍 중심으로 신도시를 조성하는 등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어서 지역민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새로운 교통망의 신설은 지역 균형발전과 더불어 주민의 생활권을 한곳으로 묶어 동질의 문화를 누리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과거 고속도와 철도망 구축이 그러했고 이제 신공항 건설이 지역발전의 화두로 등장한 시대다. 대구와 경산, 영천를 잇는 광역철도망 구축은 이 지역을 30분 생활권으로 만든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남은 과제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중앙부처와 정치권과 긴밀히 협의해 사업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지난 9월 영천행사에 참석해 차질없는 사업 추진 등을 약속한 바 있으며, 이만희 국회의원도 “영천 경마공원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의 합심된 노력으로 마지막 관문 통과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2-11-02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트라우마의 치유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밤에 서울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비좁고 비탈진 골목길에 몰려든 대규모의 축제 인파가 넘어지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청춘들의 축제는 삽시간에 비극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156명의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도 26명 포함돼 있다. 전 세계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에 놀라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10만여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지만, 현장에는 200명도 안 되는 경찰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 인력은 현장 통제보다는 범죄 예방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행자들이 몰린 골목길의 안전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앞뒤로 꽉 막힌 골목에는 안전도 꽉 막혀 있었다. 결국 사고 사흘 만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정부는 이번 달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이태원이 속한 용산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참사를 미연에 막지는 못했지만, 정부 당국은 총력을 기울여 사고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발생한 트라우마의 치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고 다음 날 성명서를 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큰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대규모 정신건강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영상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목할 점은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반복해서 보는 행동이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것이다.‘트라우마의 이해와 치유’의 저자인 캐롤린 요더는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사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트라우마를 겪은 집단은 폭넓은 두려움, 공포, 무기력감,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이를 사회적 혹은 집단적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다.필자는 포항 지진 일주년에 발표했던 연구 보고서에서 집단적 트라우마 체험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지진 진앙지와 인접했던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를 인터뷰했었는데, 이들에게서 중층적인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지진으로 인한 일차적 트라우마와 함께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SNS 전파를 통한 이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실제 지진보다 방송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이번 참사의 경우 참혹한 현장의 모습과 심폐소생술 장면 등이 방송과 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해졌다. 언론에서는 사건 관련 보도를 할 때 유가족들의 심정을 한번 더 헤아려 주기 바란다. 시민들도 SNS를 통해 참사 현장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지금은 슬픔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며 함께 울어야 할 때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보듬을 때 트라우마로 막혀 있던 마음에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022-11-02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김규인 수필가 SK CC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의 서비스는 멈췄다. 5천만 명이 이용하는 카카오톡, 3천700만 명의 카카오페이, 3천만 명의 카카오T 이용자는 일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사거나 점심을 먹고도 식사비를 치르지 못해 애를 먹었다.화재로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 카카오택시 등 관련 서비스가 모두 사라졌다. 영업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며칠 동안 빈 점포를 지켜야 했고 택시 기사는 울리지 않는 콜을 기다리며 손님을 찾아 나섰다. 이것도 지쳤는지 그늘에 차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쉬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카카오 서비스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일상이 멈춰버렸다.집안의 가장인 어린 소녀가 일하다가 기계에 끼어서 죽고 건축공사 현장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오늘도 일어난 교통사고는 내일이면 다시 발생한다. 매일 일어나기에 사고는 일어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사고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정말 큰 사고가 일어난다.괴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했고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를 한순간에 잃었다. 한마디로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이 일시에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대한민국은 안전한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사태가 테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화재로 인한 것이기에 근심은 더 깊어진다.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할 불순한 목적으로 일을 저지른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달려들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는 2층 건물로 1층을 띄워 지어서 아래쪽으로 바람이 통하고, 이중으로 담을 쌓아 사고 바깥을 둘러 산불이 나도 건물 안쪽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지붕은 크게 지어서 비가 와도 건물 안으로 들이치지 못했다. 창문도 비를 막기 위해 처마 위쪽으로 바짝 높여 냈으며, 아래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통풍이 잘되게 하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여러 개의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했다.궤짝 안에 보관하는 실록도 기름종이로 덮고 오랜 보관으로 붙는 것을 막으려고 책과 책 사이는 질 좋은 종이를 끼워 뒀다. 약재를 넣어 벌레 침입을 막았으며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 보자기로 싸고 궤짝을 자물쇠로 채웠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준비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러한 우리 민족의 철두철미한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비용을 줄이고자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을 미루고 독촉에 쫓겨 안전은 자꾸 뒤로 밀린다.까탈스러울 정도로 일을 처리하던 우리의 철저한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안전을 무시한 가운데 세계 일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높이 올라가는 첨단의 기술일수록 그 토대는 튼튼해야 한다. 안전과 기술의 균형을 맞추고 서로를 위한 배려의 손길이 더해질 때 가능하다.

2022-11-02

솜사탕과 풍선

배문경 수필가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다. 그 아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십여 미터씩 줄지어 서 있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나는 표정이다. 어른들도 옛 생각에 젖어 있다.신라문화제의 일환으로 각 기관이 행사를 진행했다. 경주문인협회에서는 향가 시 낭송대회와 독서삼품과 백일장을 개최했다. 가을이라 여기저기 놀이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할 행사로 성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솜사탕과 풍선아트였다. 무료라는 배너를 설치하고 두 사람이 열심히 솜사탕 부스에서 분홍 설탕, 노랑 설탕, 보라 설탕을 넣고 동그란 솜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이끌고 와서는 하나씩 손에 쥐고는 달콤한 세상을 맛본다. 연인들의 표정도 달짝지근하다.하늘은 푸르고 아이들의 싱싱한 웃음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여기저기 장난치며 뛰노는 아이들이 있으니 대회는 사람들로 붐볐다. 긴 풍선에 기계로 바람을 넣자 길게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귀여운 푸들이 되고 해맑은 해바라기가 되었다. 천막 곳곳에 붙어있는 여러 모양의 풍선 모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선물을 받으려고 긴 줄이다.어릴 적 운동회가 생각난다.나는 달리기 선수였다.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만국기가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축제 분위기였다. 학교 입구 쪽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벌건 기름기가 도는 육개장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낮술에 찌든 동네 아저씨 서넛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만국기가 운동장의 담장과 건물 기둥에 대각선으로 연결되어 펄럭였다. 나는 공책 서너 권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단거리 육상과 멀리뛰기 선수였기에 운동회 날은 휘파람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특히 바통을 이어받아 운동장을 반 바퀴 도는 릴레이 경기에서 운동회의 승부가 결정되곤 했다. 지고 있을 때 그것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이 결국 그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상대방을 이기고 바통을 넘겨줄 때 숨은 턱에 차고 응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울렸다. 여자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 때가 많았다.그때도 운동장 한쪽에는 솜사탕을 만들어 팔던 아저씨가 있었다. 설탕을 한 숟가락 넣으면 빙빙 돌아가던 기계는 거미줄 같은 설탕 줄을 대신 내놓았다. 그러면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나무젓가락 끝에 감기 시작했다. 그러면 하얀 솜사탕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로 기계 옆에 붙어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 사서 베어 물던 아이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한쪽을 떼서 입에 넣으며 약을 올렸다.내가 솜사탕을 먹었을 때는 달라붙던 설탕의 눅진함이 입과 손가락에 쩍쩍 붙었다. 설탕의 달달함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지나간 시간은 늘 기억에 풍선처럼 부풀려져 있다. 갖가지 색깔의 풍선에는 상상의 바람이 가득했다. 작게 불면 볼품이 없고 크게 아주 크게 불다 보면 제 부피를 넘어서서 ‘펑’하며 터져 조각나 버리던 풍선, 각각의 인생처럼 다양한 색으로 하늘을 수놓듯이 다양한 삶이 인생길을 만든다.부풀어 터질듯했던 유년의 기억 속 편린들이다. 다양한 색의 솜사탕처럼 갖가지 꿈들이 세상에 무지개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저 아이들처럼 한껏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내달릴 힘들이 넘쳤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나이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가 아니었을까.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 풍선은 힘이 빠져 탄력 없이 손아귀에 쉽게 잡힌다. 솜사탕은 부풀었던 설탕의 꿈들이 녹아 혓바닥과 손가락에서 달짝지근한 맛으로 스며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차 부피가 줄어드는 것인지 모른다.한때 부풀고 달아올라 뭔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슴 벅차던 시절을 지나오니 이젠 바람이 빠져 말랑하다. 편안한 중년의 오후다.

2022-11-02

예측 불가능한 해양생태계

몇 해 전 통영 사량도 앞바다에서 스노클링(물안경과 오리발, 스노클 정도의 간단한 장비들을 이용하여 잠수를 즐기는 스포츠)을 한 적이 있었다.바다 속 해초를 보며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데 갑자기 신기한 물고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꼬리에 형광물질을 묻힌 듯한 모습은 기존 우리가 알던 물고기와 사뭇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형형색색의 무리들이 산호와 해초 사이를 유영 중이었다. 백화현상으로 곳곳이 하얗게 변한 바닥과 열대어 모습의 물고기까지 마주하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청정해역에서 직시한 바닷속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변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가슴 아팠다. 바다사막화와 기후변화, 급격하게 다가오는 우리의 뼈아픈 현실이었다.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해양수산부는 지난 달 ‘기후변화가 바꾼 우리 바닷속 풍경’이라는 제목의 도감을 발간했다. 우리 바다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열대·아열대 해양생물 180종의 생태학적 특징을 담은 도감으로,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통영 사량도 일대에서 봤던 어종이 실제 아열대 해양생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자, 해수온 상승으로 우리 바다 생물들이 북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즉, 열대·아열대 해양생태계의 특성을 알아야 우리 바다의 변화에 대응 가능하다는 부연 설명도 함께였다. 도감에 따르면, 남해안의 대표적인 어패류인 소라는 300km가 떨어진 경북 울진에서도 서식이 가능하며, 기수갈고둥 역시 경북 울진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활동반경을 넓혔다고 한다. 그만큼 바다가 따뜻해지고 그에 맞춰 해양생물들도 이동 중이라는 의미다.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과 해류의 변화는 해양생태계의 서식지 이동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남해안과 부산에 출몰한 정어리 떼다. 지난달부터 정어리 떼 수만 마리가 마산과 부산 일대에 나타났다. 마산만의 경우 좁은 해역에 정어리 떼가 갑자기 유입돼 산소부족으로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에서는 떼 지어 이동하다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원인규명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과거 개체수가 많았던 정어리 떼가 수십 년째 줄어들다가 최근에 다시 늘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는 최근 동해에서 잡히기 시작한 참치와 비슷한 맥락이다.동해에 참치(참다랑어)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열대·온대성 기후에 사는 참치는 원양어업의 대표적인 어종으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온 상승으로 참치 떼가 한반도까지 이동하면서 정치망(자루 모양의 그물에 테와 깔때기 장치를 한 어구로, 대상 생물이 들어가기는 쉬우나 되돌아 나오기 어렵도록 장치한 그물)에 걸리기 시작했고 어민들은 이를 어판장에 내다 팔았다.하지만 국제적인 쿼터에 묶여 있는 참치를 모두 처분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랐다. 결국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참치를 먼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 사체들이 해류에 떠밀려 동해안 해수욕장을 덮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금도 동해어민들이 쿼터제를 폐지해달라고 시위하는 이유다.기후변화로 해양생태계가 변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그래서 어족자원이 고갈되거나 어종이 다변화하는 등의 생태계 흐름에 능동적인 대응이 어렵다. 원인을 찾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따를 뿐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예측불확실성은 불안을 낳는다. 생태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해양생태계의 이상 현상은 우리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촉발시키고 이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인과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현미 작가 당장 참치 쿼터제를 풀면 갑자기 늘어난 어족자원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어민 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 고급어종의 횟감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마구잡이 참치어업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던 전철을 또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참치는 쿼터제 덕분에 다시 개체수가 늘었다는 가설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 동시에 참치의 증가로 다른 어종에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태계의 오묘한 균형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해양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은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은 어종에서 발생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모든 가능성을 현재의 기술로 예측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자정능력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자 기후변화를 늦춰야 하는 당위다.빠른 시일 내에 정어리 떼가 출몰한 이유를 알아내고 열대어종 180종이 아닌, 더 많은 어종의 도감이 계속 발간되길 기대해본다.

2022-11-02

욕망만 간단히

몇 해 전, 2학기 첫 수업에서 동급생들보다 예닐곱 살 많은 한 학생이 재직증명서를 내밀며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고, 대신 매주 과제를 성실히 제출하겠다며 출석에 관한 양해를 부탁했다. 취업자의 대체 출석을 조건부 허용하는 학칙도 있고 해서 ‘성실한 과제 제출’을 전제로 허락했다. 매 학기마다 1주차에는 수업 소개, 진도 및 평가 계획, 목표 등을 안내하고, 표절, 무단인용, 중복제출 등 창작물과 과제물에 대한 창작윤리를 강조한다.이스마일 카다레의 ‘꿈의 궁전’을 읽고 어느 부분이 매혹적인 판타지로 다가왔는지를 짧게 써 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출석 인정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메일에 첨부된 과제물을 열어보았다. 어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책 리뷰를 그대로 긁어서는 종결어미와 부사만 슬쩍 바꿔 자기 글인 양 제출한 것이었다. 2주차 수업에서 출석을 부르며 한 사람씩 과제 피드백을 해줬는데, 자리에 없는 그 학생 순서에서 “(책을) 안 읽고 쓴 것 같아요… 짜깁기한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내가 한 이야기가 그 학생에게 전해졌는지 수업 이틀 뒤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나쁘게 하셨다면서요? 직접 연락해 말씀하셔야지, 그렇게 뒷담화하시니까 불쾌하네요” 하는 장문의 항의 문자를 받았다.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한 건 불쾌할 수 있겠다 싶어 그 부분을 사과했다. 또 한 번 날이 선, 나를 훈계하는 투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답을 하려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관뒀다. 울릉도 도동 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던 환한 가을날이었다.불쾌하긴 했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행여나 감정적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여길까봐 그 학생의 과제물과 시험답안은 객관적으로, 아니 더 너그럽게 평가했다. 학칙은 취업 학생에게 줄 수 있는 점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범위 안에서 최고점을 줬다.그리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미리보기 화면에는 “선생님, ㅇㅇㅇ입니다. 이번에 제 책이 나왔습니다”까지 적혀 있어 내게 책을 보내주려 주소를 묻는 건줄 알았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온라인 서점 구매 링크와 함께 “관심 부탁드립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인사말 같은 건 없었다. 씁쓸했다.지난 학기 성적 입력을 마치고, 한 학생으로부터 성적 정정 요청 메일을 받았다. 아주 길게 써내려 간 장문에는 수업에 대한 칭찬, 감사 인사와 함께 자신이 왜 A+를 받지 못했는지 의아하다는 질문,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고 뛰어난 학생인지 설득하려는 주장, “교수님의 강의가 제 인생에서 큰 깨달음을 준 수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디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기억되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귀여운 협박(?)까지 담겨 있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날,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아 답메일을 보냈다. 그 학생 성적을 올려주면, 다른 학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은 정정할 수 없지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내가 쓴 책들을 보내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받길 원한다면 주소를 남겨달라고 했다. 메일을 보냄과 거의 동시에 ‘수신확인’ 상태가 ‘읽음’이 되었다. 아마 정정 요청이 받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빠뜨린 내용이 있어 10여분 뒤 메일을 하나 더 보냈다. 마음이 몹시 상했는지 나중에 보낸 메일은 내내 읽지 않다가 닷새쯤 지나서야 읽었다. 두 개의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자기 필요에 의해 할 말을 했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으므로 더는 용건 없다는 것일 테다. 이 학생에게 주려고 포장해놓은 책 꾸러미를 풀었다. 씁쓸했다.요즘 학생들이 생각하는 ‘용건만 간단히’의 의미가 이런 것일까? 요즘 세대는 더 이상 예의를 배우지 않는다. 나도 아직 30대이고 미혼이지만, 3040 부모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우리 애한테 왜 그래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영 마뜩찮다. 부모의 훈육 탓만은 아니다. 각자도생의 이기적 사회 풍조에서 젊은 세대가 배울 만한 어른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 듯하다. MZ세대의 ‘용건만 간단히’는 어쩌면 ‘욕망만 간단히’가 아닐까? 씁쓸하다.

2022-11-01

마라탕의 인기는 어디까지?

최근 집근처에서 산책을 하다 깜짝 놀랐다. 최근 2-3년 사이에 마라탕 가게가 부쩍 늘었다는 게 확연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마라탕은 2010년대 중국인과 유학생을 대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특히 최근 3-4년부터 마라탕 열풍이 지속되며 약 32개의 마라탕 브랜드가 국내에 생겨났다. 그 중 일부는 10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칠 정도로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마라탕이란 중국 쓰촨을 기반으로 하여 둥베이 지방을 거쳐 만들어진 중국 요리다. 한자로 마(痲)는 저리다 혹은 마비 라는 뜻을 지녔고, 라(辣)는 맵다, 탕(71D9)은 뜨겁다는 뜻을 지녔다. 초피나 팔각, 정향 등 다양한 향신료를 가열해 향을 낸 기름에 육수를 부은 다음 채소나 고기, 버섯, 두부 등의 식재료를 넣고 끓이는 탕요리다.마라탕의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네이버 기준 검색량 키워드를 조회해보았을 때 ‘마라탕’의 월간 검색량 조회수는 총 40만건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검색 비율은 10대 27.7%로 가장 높게 나왔고, 그 다음은 20대 27.6%로 나왔다. 더 재미있는 건 여성의 비율과 남성의 비율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는데, 여성은 73.0%, 남성은 26.9%로 조사되었다. 10대 대표 간식이라 불리는 ‘떡볶이’의 월간 검색량은 월 24만 8천건이었다. 떡볶이의 24만 보다 훨씬 높은 40만 건이라는 검색량은 마라탕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해볼 수 있었다.또한 마라탕 선호가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2년 7월 기준으로 한 카드 회사가 체크카드를 발급한 회원의 ‘음식점 이용금액’ 소비 패턴을 분석했더니, 중·고등학생 여학생의 마라/샹궈 음식점 이용금액이 3위를 차지했다. 4위는 떡볶이가 뒤따랐다. 반면 중고등 남학생은 1위 배달/야식, 2위 햄버거, 3위 커피전문점으로 마라/샹궈 음식점에서의 이용금액은 순위에 없을 정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이렇게 Z세대 여학생 사이에서 마라탕이 유행한 이유는 뭘까? 알싸하고 자극적이라 국물조차 먹지 않는다는 중국 마라탕과는 달리, 한국 마라탕은 대부분 사골 국물을 주로 쓴다. 매운 국물에 푹 절여진 야채와 고기 그리고 어묵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국밥만큼이나 든든한 한끼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한국 특유의 달거나 시원한 매운 맛이 아닌, ‘알싸하고 얼얼한 매움’은 마라탕에서만 즐길 수 있는 낯설고 이국적인 맛을 지녀 더욱 중독성을 지닌다.또한 마라탕은 내가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커스터마이징해서 먹을 수 있단 특징이 있다. 먹고 싶은 채소와 고기, 어묵, 해산물 등 수십 가지 재료를 취향대로 담아 카운터에 내면 무게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 뒤 주방에서 조리를 한 다음 내어준다. 금액 또한 저렴하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주문 방식이 다소 번잡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Z세대는 자신의 입맛과 취향, 그리고 개성을 반영하는 과정을 즐기고 소비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마라탕의 유행 덕분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마트나 슈퍼에서도 마라탕 소스나 각종 향신료, 재료 등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대형 식품회사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추어 자극적인 향신료를 빼고 사골 육수를 사용한 마라 소스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어, 기호대로 선택할 수 있단 이점이 있다. 또한 하이디라오나 라오간마 등의 중국 현지에서도 유명한 브랜드 상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요리 과정 또한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마라탕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유튜브에선 이미 마라탕 먹방(마라탕 만들기)’ 영상이 조회수 964만회를 기록하고 있고, ‘야식으론 절대 먹지 마라 마라탕’이란 제목을 가진 동영상은 약 734만회라는 조회수를 지니고 있을 정도다.이젠 길거리를 걷다보면 마라탕 외에도 마라 국밥이나 마라 떡볶이, 마라 라면, 마라 부대찌개, 마라 치킨 등 마라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라탕은 나트륨이 많은 음식이라 자주 먹게 된다면 고혈압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되도록 국물을 마시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한 마라의 얼얼한 중독성에 빠지게 되면 국물을 참을 수 없게 된다. 특히 날이 쌀쌀해진 저녁엔 각종 채소를 넣은 마라탕이 생각난다. 맛있는 음식으로 오늘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다니, 단순하고 가벼운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가을날이다.

2022-11-01

1만가구 넘은 대구 미분양… 특단 대책 나와야

대구지역 미분양아파트가 1만가구를 돌파했다. 11년만에 최대 물량이다. 수도권 전체 미분양주택 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이 대구지역에 깔려 지금 대구는 부동산 빙하기를 맞고 있다. 국토부 통계에 의하면 9월 중 대구지역의 미분양 공동주택은 1만539가구로 한달사이 2천237가구가 증가했다. 전국 미분양 물량의 25.3%로, 작년 같은 달 2천93가구와 비교하면 무려 5배나 늘었다.지난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에서 부동산 규제지역의 추가 해제, 무주택. 1주택자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 일괄 50% 완화, 새 아파트 중도금 대출보증도 분양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조치를 내놓았지만 시장에서 약발은 잘 먹히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내놓은 반시장적 규제를 풀면서 시기를 놓친 감이 없지 않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이미 본격화된 데다 주택담보 대출금리가 7%까지 치솟으면서 집을 사겠다는 심리적 수요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특히 대구의 부동산경기는 본격적인 침체기에 접어들어 지난 9월 규제지역 해제에도 미분양 물량은 더 늘어나는 추세다. 11월 들어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 추가조치가 발표되나 그 내용이 수도권 중심에 치우쳐 지역실정에는 맞지 않다는 여론이 많다. 부동산 관련한 규제를 지방 차원에서 지역실정에 맞도록 조정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전국을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지금의 규제방식으로는 지역사정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지금 대구는 부동산 거래가 끊어지면서 신규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주택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집값은 폭락하고 거래는 끊겨 진퇴양난에 몰린 사람들이 아우성이다.미분양 아파트 1만가구가 넘어선 지금 상황을 관계당국이 그냥 바라만볼 수는 없다. 대구시와 정부가 특단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분양 물량이 많이 쌓이면 건설사의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주택가격은 너무 올라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거래가 올스톱되는 것도 시중경기를 어렵게하는 요인이다. 거래 정상화를 위한 당국의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

2022-11-01

국가애도기간

우정구 논설위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영국 정부는 장례식이 있는 날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애도와 관련한 지침을 발표했다.“행사 및 스포츠 경기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개별조직의 재량에 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단체가 애도지침을 수용하고 여왕의 국가공헌을 기리고 존경의 뜻을 표시했다. 영국의 가장 전통있는 백화점 중 하나는 그날 매장을 닫았다.또 노동계는 파업을 중단하고, 일부 금융기관은 금리 인상을 일주일 연기하는 결정도 했다.국가애도기간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그들을 애도하고 추도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우리나라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46명의 용사가 순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애도기간을 정한 바 있다.155명의 희생자와 152명의 부상자를 낸 이태원 핼로윈 참사와 관련해 정부는 오는 5일까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관공서는 조기를 게양하고 공무원은 근조리본을 달고 근무하며 그들의 희생을 애도한다.우리 역시 강제된 요구는 없다. 그럼에도 각종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 내지 연기되었다. 방송의 주말 연예프로그램도 결방하고 연예인의 팬미팅조차도 연기가 되는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애도기간 동안 국민 모두는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특히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기성세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통렬한 반성의 시간을 갖는 기간이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01

지금은 政爭·혐오 발언 자제할 때다

심충택 논설위원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여야가 지난달 31일 정쟁을 중단하자고 뜻을 같이했지만 그야말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고 직후 의원들에게 지역구 활동을 포함한 모든 정치·체육활동을 중단하라는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당 지도부가 보낸 공문에는 언행 주의, 불필요한 공개 활동·사적 모임 자제, 음주 행위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 자제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더불어민주당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이재명 대표는 “무엇보다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당 대표실 뒤에 걸린 ‘야당탄압 규탄! 보복수사 중단!’ 문구를 하얀색 천으로 가리기도 했으며, 주호영 대표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했다.그렇지만 정치인들의 자제는 여기까지였다.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듯한 조짐이 민주당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현 정부를 겨냥해 “일방통행 조치만 있었어도, 안전 요원을 배치만 했어도, 인파의 흐름을 모니터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고 말하지 말라”며 정부·지자체 책임론을 제기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시켰을 법도 한데 이것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도 “이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니다. 이건 정치 문제가 맞다”며 끼어들었다.우리 국민 모두에겐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정치권이 앞장서 진행한 극단적인 진영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앞으로 이태원 참사의 충격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청년들의 허망한 죽음을 슬퍼하는 국민들 앞에서 정치권이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듯한 언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남영희 부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하야를 주장한 것은 사회혼란만 부추기지 사고수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판이다. 남 부원장 발언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SNS나 각종 댓글에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등의 정치적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온라인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각종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번지고 있다. 특히 희생자를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내용의 게시물도 올라와 유가족들의 슬픔을 가중시키고 있다.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희생자 명복을 빌고 그 가족의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정부의 사고 수습과 원인 규명, 지원책 마련을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따져보고 또 대책을 마련해서 두 번 다시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애도기간을 일주일 간으로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2022-11-01

선제대응지역 지정… 포항산업계 활력 찾길

태풍 ‘힌남노’로 아직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겪는 포항시의 재해복구를 위해 정부가 지난달 31일 포항시를 2년간(10월 31일~2024년 10월 30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포항시는 이 제도 시행 이후 혜택을 받는 첫 지자체다. 이강덕 포항시장과 포항출신 김정재·김병욱 국회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종섭 국방부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만나 포항의 태풍재해 현황을 설명하고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정부는 지난 9월 28일 “태풍피해로 인한 국가 기반산업의 위기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포항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기 위해 현장실사를 했었다. 현재 포항 철강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은 지난 9월 6일 엄습한 태풍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봤음에도 재난지원금 지급을 비롯한 직접적 피해 지원이 없어 경영위기가 심각한 실정이다. 태풍으로 포항에서는 포항제철소를 비롯해 현대제철 포항공장 등 400여 개 기업이 침수, 건물 파손, 토사 유출 등의 피해를 봤다.정부의 선제대응지역 지정으로 포항시는 향후 피해기업 설비 복구비, 경영안전자금, 산업단지 기반 재정비, 철강산단 구조전환 촉진 등 17개 사업에 6천396억원의 지원을 받게된다. 이와함께 기업들도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대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 금융도움을 받을 길이 생겼다. 정부는 철강산단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은 별도로 마련해 보겠다는 생각이다.포항시가 정부에 요구한 예산이 많이 삭감되긴 했지만, 정치권과 힘을 합쳐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받은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예산은 국회심의 중에 증액될 여지는 있다. 아직 포스코 포항제철소 조업이 정상화 안돼 협력업체와 관련 중소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포항시는 이번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계기로 기간산업인 철강업계가 태풍피해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예산 확보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2-11-01

공정하다는 착각

조현태수필가 마이클 샌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카지노 업계의 대부인 억만장자 셀던 에이들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세계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간호사나 의사보다 수천 배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카지노 시장과 보건 시장이 모두 완전경쟁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시장 가치가 그들의 사회 기여도를 나타내는 진실한 척도라고 볼 까닭은 없다. 그들이 소비자 수요에 얼마나 부응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도덕적 가치에 기여도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슬롯머신을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보다 더 큰 도덕적 중요성을 갖는다.(‘공정하다는 착각’p.223)운수와 선택을 비교하자면 능력과 자격의 판단이 불가피해진다. 도박에서 져야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질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짊어진 도박사는 졌을 때 사회에 그의 판돈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의 불운은 자업자득이다.물론 어떤 경우는 과연 무엇을 ‘선택’으로 볼 것인지 모호해진다. 어떤 도박사들은 도박중독에 빠져있다. 슬롯머신은 도박사들이 노름을 끊지 못할 만큼씩만 이기도록 승률이 조작되어 있다. 이런 경우 도박은 선택이라기보다 약자를 이용해 먹는 강압의 결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런 리스크를 걸머지는 한, 행운 평등주의자들은 그들이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책임져야 마땅하다. 적어도 그런 일에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줘야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무엇이 진정 자발적인 선택인가에 대한 친숙한 논쟁을 넘어서, 운수와 선택의 구분은 또 다른 고려 때문에 모호해진다. 보험의 가능성이다. 만약 내 집이 불타버렸다면 분명 그것은 운이 나쁜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화재보험을 들 수도 있었는데 들지 않았다면 ‘설마 불이 나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매년 쓸데없이 보험금 내기를 아까워했다면? 화재 자체는 ‘눈먼 운’이라도, 보험을 들지 않은 나의 선택은 나의 불운을 ‘선택 운’으로 바꿔 놓는다. 보험에 들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며 납세자들에게 내 집의 손상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p.237)도박에서 잃은 판돈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나, 화재보험에 들지 않고 불탄 손해를 보상해 달라는 요구는 마땅히 거부당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약에 중독된 자가 마약을 구하지 못하면 곧 죽을 지경이어도 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한 것을 불법이라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공정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방편임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렇듯이 일부 고위층이 직위나 욕심을 보전하기 위해 사회적 물의에 마약처럼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일수록 공정한 고유 업무에 충실한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떡고물이라도 얻으려고 그 주변을 맴돌며 열띤 응원까지 하는 모습도 보인다.이 현실을 두고 누가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끝판 왕 보험사는 없을까.

2022-11-01

‘퇴비장’을 ‘토양장’이란 용어로 하면서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2007년 개정)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을 ‘자연장’으로 치를 수 있는데,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흙과 섞어 용기사용 없이 또는 생화학적으로 분해 가능한 용기에 담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법률 제2조). 이 장례 방법은 넓이는 가로세로 50센티미터 이하 그리고 깊이는 30센티미터 이상 땅을 파서 골분을 묻으면서 분묘를 만들지 않고 유골을 묻은 자리에 석물 등을 설치할 수 없으므로 아주 자연친화적이다. 초기엔 거부 반응도 많았으나 지금은 자연장법을 따르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최근 신문기사에 의하면 미국에선 ‘퇴비장’이란 장사 방법이 시행되고 있다는데 이는 시신을, 전통적 매장이나 화장이 아니라 거름용 흙으로 만들어 처리하는 ‘인간 퇴비화 매장’(Human Composting Burial) 방식이며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 방식은 시신을 철제 용기에 담아 풀과 꽃, 나무 조각, 짚 등 생분해 원료를 더한 뒤 6~8주간 바람을 통하게 하여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시신을 천천히 자연 분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매장은 시신 처리부터 관 제작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데다 생분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며, 화장도 목재·연료 등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데, 그에 비하여 퇴비장은 환경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일부 시민들은 퇴비장이 고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불경스러운 장례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가톨릭 교계 등에선 인간을 일회용품으로 만드는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육신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퇴비장의 합법화에 반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서의 창세기에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는 구절이 있으니 가톨릭 교계에서도 생각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퇴비장에 대해 반대할 사항이 아니라고 본다.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든, ‘퇴비장’이란 용어를 ‘토양장’으로 바꾸어서 우리나라 자연장법에도 이 방법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낙엽이나 풀이 말라서 쌓이고 그것을 온갖 생물들이 이용하고 마지막에는 미생물까지 가세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토양’이다. 토양은 우리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물과 함께 꼭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퇴비’라고 하면 옛 농사법에서 풀, 짚 등과 가축의 똥, 오줌 또는 그 밖의 잡살뱅이를 섞어서 만든 거름을 연상하게 되어 기분이나 느낌이 좋지 않을 것이나, ‘토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가장 소중한 요소인 흙이니 ‘토양장’이라 부른다면 부정적 생각이나 이미지는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토양장으로 만들어진 토양을 고인이 좋아했던 장소 등에 뿌리거나 유족들의 뜻에 따라서는 집안의 나무나 화단에 뿌려서 유해를 가족 곁에 두며 고인의 모습을 기리는 것도 의미 있는 장례법일 것이다.

2022-11-01

초기 기독교미술의 앱스 모자이크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밀라노 칙령이 발효되면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허용했다. 기독교도들은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로마의 공공건물 구조를 모방해 교회를 지었고 벽면을 그림으로 장식했다.초기기독교 시기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벽화기법은 모자이크였다. 모자이크는 아주 오래된 기법으로 작은 크기의 돌 조각이나 유리에 색을 입히고 그것을 배열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섬세한 묘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관리가 용이하고 보존력이 탁월하며 무엇보다 빛을 받아 반짝이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교회가 지어지고 그곳을 그림으로 장식해야 했던 기술자들은 난생 처음 기독교라는 신생 종교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이들은 아직 창작하는 미술가가 아니라 제작하는 기술자였다. 재료를 능숙하게 다루어 형상을 만드는 일은 육체노동으로 여겨졌다. 교회를 장식해야하는 임무가 떨어졌을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이미지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입히는 것이었다. 로마의 산타 푸덴치아나(Santa Pudenziana) 교회 앱스 모자이크는 그 당시 기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교회건축에서 앱스(apse)는 제단이 놓인 뒤쪽 공간의 끝 쪽 벽면을 가리킨다. 앱스의 상단 부분은 움푹 들어간 반구형으로 마무리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장식이 들어간다. 산타 푸덴치아나의 앱스 모자이크는 420년경에 제작이 되었다. 로마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초기기독교 시기의 모자이크 작품이다.모자이크에는 옥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덥수룩한 수염의 중년으로 그려진 그리스도를 비롯해 모자이크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고대 로마의 의상인 토가(Toga)를 입고 있다.황금색의 화려한 토가는 그리스도의 위엄과 고귀함 그리고 성스러움을 드러낸다.값진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황금 보좌에 앉은 그리스도는 오른팔을 넓게 펼치며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왼손으로 펼쳐 보이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가 쓰여 있다. “Dominus conservator ecclesiae Pudentianae”, 번역하면 “주님이 푸덴치아나 교회의 보호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문구만 아니라면 모자이크가 묘사하는 장면을 로마의 어느 철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라 해석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모자이크의 후경에는 견고하게 세워진 건축물들이 그려져 있다.흔히 천국을 상징하는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해석된다. 짙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황금 십자가가 세속적 시공을 초월한 듯 하늘에 떠 있다. 십자가의 의미는 공공연하다. 인류의 타락, 죄와 심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구원이라는 기독교 핵심교리를 함축해 상징하는 것이 십자가다.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귀한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 좌우로 실체를 알 수 없는 날개 달린 생명체가 보인다.십자가 주변에 떠있는 생명체들은 신약성서의 4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대한 상징이다.사람은 마태를, 사자는 마가를, 황소는 누가를, 독수리는 요한을 상징한다. 이 같은 상징의 성서적 근거는 요한계시록 4장에서 찾을 수 있다. 산타 푸덴치아나 앱스 모자이크에 묘사된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4복음서자들의 상징은 ‘영광의 그리스도(Majestas Domini)’라고 하는 독립된 도상으로 발전해 중세미술에 나타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0-31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Ⅶ>

간혹 출근 시간 필립은 회사 사옥의 소나무 앞에서 소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다. 어깨를 낮추어 뒤로 제치고, 턱을 아래로 당겨 내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필립을 보며 직원들은 만식에 대한 그리움이라 여겼지만 필립은 만식을 그리워한 적 없었다. 말하고 싶었다. 이 일은 이렇게 할 것이고 저것은 저렇게 처리할 것입니다. 듣고 싶었다. 나무 아래 만식의 대답을. 해답은 네가 알지. 나는 들어주기만 할 뿐이지. 만식은 생전에 이렇게 말해준 적 한 번도 없었다.필립이 늦은 퇴근을 하는 날이면 소나무는 회사를 나서는 필립의 등 뒤로 선선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겨울이 오면 세찬 바람을 막아 줄 소나무였다.필립은 소나무를 지나치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제야 아버지로 오셨군요.-이제 다시 편해지셔야지요. 저도 이제 상황 파악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아버님이 작은아버님과 함께 하신 일이 제법 되던데. 이제 제가 집행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의 말에 영권이 웃었다. 크게.-우리 조카님이 아버님의 유지를 받든다 하니 이제야 내 마음이 편해지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네. 고마워. 그래 그 젊은 아가씨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제 동생입니다. 아버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것도 있고.변호사에게 맡겨놓았거나 금고에 보관해 둔 유언장은 없었다. 만식이 필립을 만나 안나의 뱃속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유언이 되었다.필립은 만식의 부탁 중 가능한 것들은 모두 들어 줄 생각이었다. 필립은 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야 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노마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탁과 약속은 그것들을 행하는 자의 의지에 기댄 것들이다.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 무엇을 하게 될지는 나중의 문제다. 그것 또한 필립에게 달려 있었다.-한번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이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봐야지. 어디서 볼까? 나야 조카님이 편한 시간, 편한 장소면 다 좋아. 요즘 의회 일정도 없고.-다음 달 십오 일부터 이십이 일 사이에 편하신 시간을 말씀 주시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저는 십육 일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물 준비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수행원 없이 만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즘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그래야겠지. 어디 보자. 그러면 내가 일정을 한번 확인하고 다시 말씀을 드리겠네. 뭐 특별한 일은 없을 거야. 어디서 볼까? 공이나 한번 칠까? 아니야. 조카가 공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 술은 어때? 술 좋아하나?-작은님 뜻하시는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만, 수행원 없이 만나려면 이번에는 특별한 일정은 안 만드시는 것이.-듣고 보니 그렇군. 알겠네.필립과 영권은 서로 전화를 먼저 끊으라며 실랑이를 했다. 결국 영권이 전화를 먼저 끊었다.영권과 통화를 끝낸 필립은 다시 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야. 날짜를 잡았어. 먼저 말했던 대로 십육 일 만나기로 했어. 내용은 이전과 비슷하니까 모두 같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너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굳이 듣고 굳이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게. 넌 어때? 진행해도 되겠어?-네. 이미 마음먹은 일인걸요. 형님도 감당하셨잖아요.-그래, 그러면 러시아 가기 전에 들러서 얼굴이나 한번 뵙고 가도록 해. 어찌되었건 할 건 해야지.영산에서 아드님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모니터에 메시지가 올라왔다.들어오라 해.인호가 방으로 들어와 영권 앞에 섰다. 영권이 고개를 들어 인호의 얼굴을 보았다.-살이 좀 빠졌나 보다. 얼굴의 턱 선이 보이는 구나-요 며칠 동안 잠을 설쳐서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인호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만지며 대답했다.-그래 무슨 일이냐?영권이 인호에게 물었다. 약속이나 전화 없이 영산시를 벗어나 영권의 사무실까지 오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이틀 뒤 러시아에 갑니다. 영산시 시의원들 연수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나? 십오 일인가?영권은 책상 달력을 보며 말했다.-네. 일주일 일정입니다. 인천공항으로 출국하는 거라서 조금 일찍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출발하기 전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새삼스럽구나. 최 회장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십육 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혹시 같이 보겠느냐? 수행원 없이 만나기로 했지만, 너는 내 아들이니. 러시아 가는 것 취소하고. 연수 동행이야 한 번쯤 빠져도 되잖아?-아닙니다. 아버님 혼자 만나십시오. 필요 이상으로 깊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김강 소설가

2022-10-31

대구-안동 맑은물 협약, 도시상생의 모범되길

대구시와 안동시가 2일 안동댐에서 낙동강 상류댐 물을 대구 식수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안동·임하댐 맑은물 공급과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다. 이번 협약으로 대구시는 지역의 숙원인 대구취수원 다변화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하며, 안동은 대구시의 협력으로 신공항 산단 유치 등 지역발전의 새로운 모티브를 모색하고자 한다.협약안에는 △안동시는 대구시에 맑은물 공급 적극 지원 △대구시는 안동시에 국비 등 기금 지원과 안동 농특산물의 구매 △국가 상수도 계획 반영에 상호협력 △안동·임하댐 수질 개선 및 수변관광 활성화 등에 상호협력 △신공항 연계 산업단지 조성 계획에 안동시가 포함될 수 있게 노력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대구시민에 대한 맑은물 공급은 1991년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 이후 30년 넘게 끌어온 대구시 숙원사업이다. 전 정부에서 구미 해평취수장을 공동 취수장으로 활용하자는 것을 요지로 해결책으로 제시했으나 구미시의 반대로 지금은 원점 상태다.홍 시장이 취임하면서 안동 임하댐 물을 상수원으로 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안동시장이 전격 수용하면서 이 문제는 지자체간 상생협력 차원에서 해결점을 모색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양 도시가 상호협력을 통해 각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어서 색다른 의미가 있다. 안동시는 지난 수십년동안 지역민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힌 안동·임하댐을 수자원으로 활용해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일으키고자 하고, 대구는 댐을 통해 보다 맑은물을 식수로 공급받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두 도시의 협약으로 안동·임하댐 물의 활용에 관한 합의는 도출됐으나 국가 차원의 정책 반영과 예산확보 등 추가적 난제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두 도시의 상호협력과 상생의 정신이 뒷받침되면 이런 문제도 충분히 풀어갈 수 있다.날로 치열해지는 도시경쟁 사회에서 지자체간 상생협력은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대구와 안동의 협약이 두 도시 발전에 기여하는 성공한 협약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