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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래는 늙지 않는다

어느 가을날, 한 문화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작사 클래스를 함께 개발하고 운영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해 주셨다.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지역의 문화재단이니만큼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을 텐데, 어째서 그들이 아니라 타지역에 사는 나에게 그러한 제안을 건네는 것인지. 재단 직원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노인들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마다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나는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 정도가 떠올랐는데 첫 번째는 세대차이로 인한 소통의 문제였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문제였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먼저 소통의 문제는 내가 우리 할머니와 오랜 시간 같이 살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진행하면 수업의 회차는 늘어날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강의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단의 제안을 수락했고, 총 16주에 걸친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첫 시간, 수강생들을 처음 만나며 느낀 점은 생각보다 젊다는 것이었다. 나는 노인이라고 하면 우리 할머니처럼 등이 굽고 머리가 새하얀 분들을 생각했는데, 딱 우리 아버지 연배인 65세부터 75세 사이의 분들이 주로 모여 주셨다. 사실 우리 아버지도 따지고 보면 노인으로 분류가 될 연세이신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많게는 80대 초반의 수강생도 계셨는데, 옷차림도 세련되고 활력도 넘치셔서 전혀 그 연배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려온 노인의 이미지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노인은 과거 우리가 생각하던, 맥없이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전히 젊은이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새로 만난 노인 수강생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차근차근 노래를 만들어갔다. 개강 전에는 사실 선생님들께서 어떤 이야기를 가져오실지에 대해서 큰 기대가 없었다. 대부분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거나 무색무취한 일상의 나열일 뿐이겠지. 그런데 그것 역시 나의 오산이었다. 선생님들이 가져 오신 이야기들은 그들의 삶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한 선생님은 자신의 이상형 배우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사로 만들어 오셨다. 또 어떤 선생님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다시 한 번 헌신적으로 사랑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시기도 했다. 노래를 만들던 시기가 가을이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노래하신 선생님들도 있었다. 외롭다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열망이다. 노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이고 남성인 이 분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청춘들에게 뒤지지 않는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젊은 나로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 들려주신 선생님들도 있었다. 사별한 남편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내려간 노래는 내가 쓴 어떤 이별이야기보다도 절절했고 한편으로 뜨거웠다. 어떤 선생님은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자신이 경험했던 전쟁의 참혹함을 떠올리셨다. 그리고 지금 한가로이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평화로움에 감사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드셨다. 수많은 경험들이 켜켜이 쌓이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노래가 되었다.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이다. 노인 복지는 아주 중요한 이슈이다. 나는 노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노인들을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다. 아무런 동력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사회가 떠안아야 하는 비용으로 취급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노인들은 여전히 젊은이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면서, 젊은이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분들이었다. 아직 맡을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있는 분들이다. 나는 사회가 이런 분들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서로에게 배우자는 취지에서였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에게 가르칠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있다. 내가 만난 노인들은 가르치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어떤가.

2025-04-06

희망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멈춰 있던 제도가 다시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이 사회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더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발화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감각할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온 주체였다. 광장에서, 일상에서, 제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정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여전히 오래된 피로와 불신이 남아있다. 법적 판단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불안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신뢰는 단번에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끝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 다시 출발선에 섰다. 신발끈을 꽉 묶고, 앞으로 다가올 다음 장을 펼쳐야 한다. 그것은 글을 쓰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언제나 도입부에선 망설임이 먼저 떠오른다. 막상 쓰기 시작한 서술도 자꾸 지우게 된다. 적확한 표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과 언어 사이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 본격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기까지는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만큼은 다르다. 마침표가 가까워졌다는 확신은 이전에 쌓아 올린 문장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무언가를 끝냈다는 안도와 함께 해방되는 듯한 감정이 따라온다. 우리는 오늘의 장면을 마지막처럼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정말 마침표를 찍어도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일까? 누구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첫 문장을 넘긴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막막한 것은 당연하다.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구체적인 상상에서 시작된다. 더 나은 사회를 떠올리는 바람.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태도다. 상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은 증명되었다. 그것은 낙관이 아니라 일종의 증거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제도의 권위가 아니라 결국 시민의 손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해왔다. 추운 날 광장에서 함성을 보탰고 조용한 일상에서도 무게를 견뎠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말 없는 연대 안에서 지난한 시간을 보내왔다. 실망과 피로가 반복되며 어떤 희망에도 쉽게 기대지 않는 태도가 굳은살처럼 마음에 자리잡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냉소였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태도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회복을 다시 배워야 한다. 들끓는 다음은 이성의 테두리에 담아내고 무뎌진 감정은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상처는 질문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의문을 쏟아냈다. 사유가 공론의 언어로 이어지고 제도로 연결될 때 희망은 지속된다. 정치가 제때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반복되는 피로 속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시민이 쓴 문장을 정치가 지워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욕망이 우리의 언어를 가로채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대통령이 헌재 판결로 물러난 것은 우리 헌정사에서 두 번째다. 그 숫자의 무게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단 한 번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코 가벼운 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우리가 마주한 실패의 수가 아니다. 쉽지 않은 세상을 쉽지 않게 바꿔 가는 시민이 존재해 왔다는 증거다. 법이 움직이기 전 움직인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결론도 쉽게 믿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문장은 계속하여 번복되어 왔고 너무 자주 진실이 지연되어 왔다. 가끔은 말보다 침묵이 더 정직하다고 믿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써 내려갈 것이다. 그것은 환호도 단죄도 아니라고. 결국 일상의 지속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단어를 놓아갈 뿐이다. 우리 사회의 다음 장면이 희망의 형태를 띠고 있기를 바란다. 바꿀 수 있다. 바로 이 첫 문장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은 언제나 이러한 문장들 위에서 시작되었다.

2025-04-06

“그런 날들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이희정시인 작고 예뻐서 데려온 애가 남천이었어요. 어디서나 잘 자란다고 하고. 한동네 살다가 이사간 금천이라는 애도 생각나고. 그래서 잘 키워보고 싶었죠. 생각날 때마다 창문 열어 주면서 물 주면서 그랬는데 시들해요. 일조량이 부족했을까요. 금천이가 중학생이 되어 놀러왔을 때 엄마 뒤로 숨던 일이 생각납니다. 동네에 그애가 있다 생각하면 신나면서도 그랬어요. 그런 날들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물건을 돌려주러 가는 길에 그애가 자란다면 딱 이렇겠구나 싶게 엄청 크고 무성한 남천을 봤어요. 이 집에서는 밖에 내놓고 기르는 모양이더라고요. 남천을 잘 키우면 이렇게 되는구나.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키우던 애가 커서 키우는 마음이 뭔지 아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왜 자꾸 잊을까요. 얼른 가서 남천을 봐야겠어요. -임승유,‘중요한 역할’전문 (‘생명력 전개’, 문학동네) 흔하디 흔한 남천(havenly bamboo)이라는 식물이 있다. 영하 17도의 추위를 견디며 꽃과 열매, 잎이 모두 사계절을 살아낸다. 점입가경, 전화위복 등의 꽃말로 가을에 성숙해져서 겨울로 갈수록 더욱 붉어진다. 오가는 거리 건물 앞이나, 갓길 화단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다. 임승유 시인의 시선은 흔한 것에서 낯섦의 형식으로 나아간다. 시집 해설을 변용해 이렇게 달리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나와 그러나 그 나란 그 자체로 온전한 나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 무의식적인 행동, 그것에 대한 시선들이 얽혀 있는 나 그리고 알파라는 형식 말이다. 어떤 요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재료가 당연히 필요하듯, ‘나’에 대해 말하기 위해 ‘나’의 시선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시선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식물과 공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시간이 아닌 식물의 시간으로 삶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낯선 시선으로 나를, 일상을,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삶을 헤쳐나가는 방법 하나쯤은 강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네에 가끔 들리는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이 좋아서, 혹은 카페 주인이 금천이와 같은 친구여서. 다 떠나서, 그 작은 카페 통창 밖으로 작은 화단이 있다. 담장에 우드 울타리를 타고 남천이 자라는데 생명력이 남다르다.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엄청 크고 무성한 남천” 이를테면 식물의 상태가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얼마 전 작은 화분에 옮겨와 서재에 두고 보는데 시들하다. “생각날 때마다 창문 열어 주면서 물 주면서” 돌보는 데도 마음만큼 좋지 않다. 처진 생명을 보는 일은 슬프다. 지난 계절 시린 영혼을 보는 것처럼 덩달아 아프다. 시인의 시에서 남천이라는 이름을 만나고, 키우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남들이 다 가고 없는 겨울 화단, 늦은 계절 점입가경의 염을 담아 남천이라는 이름을 올린 태초의 사람, 키우는 자의 마음에 대해. 식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을 만지는 일은 어렵다. 제 살던 곳에서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낯설어도 다치기도 쉽고 상하기도 쉬운 언어여서 말이다. 이만큼의 봄이 왔다, 순서대로 피고 또 질 것이다. 해마다 교정의 벚꽃 터널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같은 듯 보여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구성원들을 발견한다. 생명의 연이란 그래서 귀하다. 얼른 가서 서재에 두고 온 남천을 돌봐야겠다.

2025-04-06

APEC이 바꿀 경주의 미래, 세계가 경주를 주목합니다

주낙영 경주시장 2025년, 경주가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바로 이곳, 경주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아시아·태평양 21개 회원국 정상은 물론, 아세안 사무국,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 태평양도서국 포럼(PIF) 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함께해 세계 경제의 미래를 논의합니다.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경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지역 발전을 이끌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부와 국회, 민간도 경주를 응원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이 경주를 직접 방문해 APEC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를 당부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이 자리에서, 경주가 세계와 만나는 관문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습니다. 국회 역시 여야 합의로 ‘APEC 정상회의 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이후 지역 발전 전략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초당적 협력이 만들어낸 이 특위는 APEC을 통해 경주가 더 큰 도약을 이루는 데 든든한 힘이 될 것입니다. 민간에서도 발 빠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7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경주를 방문해 APEC 경제인 행사 준비 상황을 직접 점검하며 민간 차원의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대한상의와 딜로이트 컨설팅이 공동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APEC 정상회의로 발생할 경제적 파급효과는 약 7조 4,000억 원, 고용 유발 효과는 2만 2,634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 경주시는 이러한 기회를 반드시 살리기 위해 전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 및 유관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회의 운영은 물론, 도시 기반 정비와 이미지 제고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첫 결실로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9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제1차 고위관리회의(SOM1)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회의 기간 동안 약 2,000명의 APEC 관계자들이 경주를 찾았고, 숙박과 식음, 관광 활동 등을 통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대규모 국제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며, 경주가 국제회의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가 됐습니다. 회의 기간 운영된 청년 감성 팝업스토어, K-콘텐츠 홍보관, 참가자 맞춤형 관광 프로그램은 큰 호응을 얻으며 경주의 매력을 국내외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경주시는 오는 10월 정상회의 본행사를 앞두고 도시 전반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주요 도로와 교통망 정비는 물론, 숙박 및 관광 인프라 현대화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APEC 이후를 대비한 중장기 전략도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포에 건립 중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는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동경주IC 일대에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경주는 원자력 기술 기반의 미래 산업도시로 성장하며,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경주시는 APEC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국제회의 유치, 민간 외교 확대, 문화 교류 활성화를 위한 전략을 꾸준히 추진하겠습니다. 찬란한 역사문화 자산 위에 첨단 기술과 산업을 더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도약은 시민 여러분의 참여와 협력이 있을 때 완성됩니다. 깨끗한 도시 환경 조성, 친절한 손님맞이, 경주의 문화 알리기 등 일상 속 실천이 곧 세계를 향한 민간 외교입니다. 시민 한 분 한 분의 자부심과 환대가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을 ‘경주다운 경험’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경주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가장 성공적인 국제행사로 만들겠습니다. 세계 속 경주,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 위에 선 경주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2025-04-06

헌법재판소의 판결 범위는 어디까지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4월 4일 온 국민이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헌재가 있는 안국 역을 비롯해서 근처 광화문역까지 지하철 운행을 통제하고 365일 영업하는 교보문고까지 휴업하는 등 만일에 있을 사태를 대비해서 그런지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법 조항으로 볼 때 이번 대통령 탄핵소추안 판결은 단순한 사안이다. 12·3 비상 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여야 한다’는 조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판결에서 8명 재판관 모두 탄핵소추 5개 사유에 대해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그러나 2월 25일 최종 변론 후 30일이 훌쩍 넘어도 판결이 나오지 않자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과 인맥을 문제 삼으며 헌재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에서 3분의 2 동의를 얻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임명직 재판관 몇 명이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제 대통령 파면 판결로 이런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나는 이것을 계기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숙고하게 되었다. 유시민을 비롯해서 탄핵 찬성 쪽 국민들이 판결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꼽은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는 대목에 대해 나는 이것이 헌재가 판결 기준으로 삼을 항목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국민의 신임 여부’라는 근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가까이는 한덕수 총리 탄핵 판결에서부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박근혜 두 대통령의 탄핵 판결에도 나온다. 2004년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각’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벗어나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자격을 상실한 경우라고 했고, 이것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신임 여부가 헌재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기능이 더 많다. 이런 식으로 되면 국민의 신임 배반을 판단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오남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한덕수 탄핵소추만 보아도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의견이 5명이었는데도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4명인 것은 위헌을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다. 작년 12월 18일 어느 매체에서 언급했듯이, 헌법재판의 본질이 ‘정치적 사법 작용’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 신임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는 ‘여론’이니, 찬반 여론전에 국민의 반목만 심해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65조에서 탄핵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국민의 신임 배반’이라는 조항은 없다. 그러니 파면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키는 국민의 신임이 아니라 위헌이어야 한다. 앞으로 헌재는 피소추인의 헌법 조항 위반 여부만 신중하고 신속하게 판단해서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를 줄여주기 바란다.

2025-04-06

‘우리’를 되살릴 수는 없을까

김규인수필가 나라가 산불을 진압하느라 긴 시간을 보냈다. 전국 열한 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산불처럼 계엄선포에 따른 좌우의 극심한 대립도 강풍을 만난 듯 커져만 갔다. 온 나라가 재난과 좌우 대립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불길은 하늘이 잡았고 극심한 논쟁과 시위는 파면으로 끝을 맺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건조한 바람만 불고 텔레비전을 켜도 극심한 대립만 보였다. 대외적인 통상의 어려움에도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강대국이 휘두르는 관세의 철퇴에 방향을 잡지 못한 대한민국호는 흔들리기만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산불로 인한 불안과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우리 주위를 맴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노점상 김정순 할머니의 선행 기사가 있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신의 어려운 삶에도 평생 모은 1억 원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무작정 전남대학교를 찾은 할머니. 자신이 공부하지 못한 한을 더는 주위의 어려운 학생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 마음을 적신다. 할머니가 선뜻 내민 많은 돈은 우리를 위함이었다. 나의 욕심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손을 내민 것이다. 어쩌면 사회지도층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온갖 추한 모습을 보이며 싸움질할 때 할머니가 우리 사회에 내민 선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 그동안 우리는 남을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데에 혈안이 된 건 아닌지. 어쩌면 우리 사회를 이끄는 것은 이런 선한 마음들이다. 지난 3월 25일, 산불이 난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 마을에서 나이 드신 주민들을 업어서 대피시킨 인도네시아 국적의 선원 수기안토(31) 씨의 사연도 감동을 준다. 남의 나라에 돈 벌러 와서 자신이 다치면 고국에 남은 가족들이 염려되었을 건데도 불길을 헤치고 “할머니”라고 부르며 나이 드신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불꽃이 강풍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데, 몸이 재산인 외국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선행을 베푸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와 함께 사람들을 구한 마을 이장 김필경(56), 어촌계장 유명신(56) 씨 같은 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극심한 정쟁으로 사회에서 ‘우리’는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대한민국이 가진 강력한 힘의 원천인 ‘우리’를 되살릴 수는 없을까. 노점상 할머니가 남긴 우리의 씨앗을 살리고 여기에 수기안토 씨의 인류애를 더한다면 ‘우리’라는 공동체 문화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극단적인 싸움과 이기심 뒤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주 보고 서서 상대를 향해 고함을 지르기보다, 이웃을 위해 내미는 손이 필요하다. 서로의 가슴에 든 가뭄을 정으로 적셔나가야 한다. 갈라진 마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서로에 대한 원망과 한숨만이 주위를 맴돌 뿐이다. 우리 이웃이 남긴 소중한 씨앗을 꽃 피우는 데 함께하지 않으려는가. 사회가 어려울 때 우리를 지켜낸 건 주위의 이웃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 손을 잡을 때 온기가 사회로 퍼져나갈 것이다.

2025-04-06

행정은 대구염색단지에 관대한 것일까

최근 대구염색단지 내 하수관로로 보랏빛 염료로 추정되는 물질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 인근 주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단속할 관계당국이 매뉴얼이 없어 사실상 원인 규명과 진원지를 찾을 수 없다는 말에 허탈해 하는 반응이다. 누가 밤사이 몰래 염료 등을 흘러보내도 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염색산단에 대해 행정당국이 유독 관대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대구염색산단은 1981년 설립 이후 대구경북의 경제 성장을 이끈 산업역군으로 누구도 부정 못한다. 지금도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응원한다. 비록 예전같지 않은 경기로 어려움을 겪지만 산단의 중요성이 변할리가 없다. 다만 환경문제가 우리 삶의 질과 관련해 중요 과제로 대두되면서 주민들은 기업도 환경기준에 맞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구 서구청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후 대기방지시설 교체를 진행했다. 73%는 염색산단에 집중했다. 그 결과, 서구청은 2019년보다 지난해 9월까지 주요 악취 물질인 암모니아 수치와 황화수소 수치가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노후시설 개선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대구염색산단은 환경문제 유발로 2030년까지 군위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목표대로 이전이 되지 않으면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맞춰 석탄화력발전소를 친환경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 큰 부담도 안고 있다. 하수관로 이물질 유출 사건이 비록 미제로 남았으나 산단 주변 주민들에게는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남았을 소지가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4-04

4월의 이야기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시인 박목월은 ‘4월의 노래’에서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며 꿈의 계절을 노래했는데, 영국 시인 엘리엇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깨우는 무엇이 있어서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의 4월에는 가슴 아픈 기억의 날들이 많다. 해방 4년 후 터진 제주 4·3사건은 탄압과 학살로 제주도민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고, 4·19혁명은 민주화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으며, 10여 년 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들의 꿈을 노란 리본에 묶어버린 충격적인 사건이다. 참으로 잔인한 4월의 기억들이지만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보듬듯 화사한 봄의 정령이 우리 앞에서 하늘하늘 춤추고 있다. 청명날 맑은 공기 마시며 풍년을 빌어야 하고, 한식에는 예의를 갖추어 조상님 묘소를 돌봐야 하는데 이날은 또 산불 조심도 해야 한다. 지난 3월의 대형 산불로 인해 넓은 산림과 많은 마을이 새까맣게 잿더미가 되어 버린 기억은 아직도 마음속 잔불을 정리하고 있는데, 마음이 타고 있을 이재민에게 각계각층에서 보내준 온정의 손길이 이들을 치유해 주기를 바란다. 곧 식목일이다. 울창한 산림을 위해서 나무를 심는 것과 함께 관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목일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산림복구’라는 국가적 과제를 잘 수행하여 50여 년 전만 해도 황폐된 산림의 ‘복구 불가’ 판정을 받은 나라가 2020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로부터 최근 25년간 산림 증가율 세계 1위, 산림 크기 4위라는 ‘기적의 나라’로 판정받았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식목일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정해졌었다. 60년 ‘사방(砂防)의 날’로 폐지되었다가 다음 해 복귀되었고, 2006년 다시 제외되어 법정기념일로 되었다. 그런 탓인지 식목에 대한 국민 인식이 줄어든 듯하니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및 생물 다양성 감소 등에 대한 인식 전환과 참여로 식목일이 국민 마음에 다시 살아나도록 힘쓰자.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단체 나무 심기 등으로 산림 보호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4월은 축제의 달이기도 한데, 이번 산불로 여러 지자체에서 예정된 식목 행사가 취소되었고, 포항도 이달 중순에 계획되었던 해병대 축제를 비롯하여 호미곶 돌문어 축제와 장량떡고개 벚꽃 문화축제도 연기되었다. 그러나 4월에는 부활절이 있다.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듯, 산불 피해를 입어 잘 곳과 생활 터를 잃은 주민들에게 사랑의 성금과 봉사활동으로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부활의 의지를 줘야겠다. SNS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식목일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고 4월7일이 임시공휴일로 결정됐다고….‘끝까지 읽어보세요’ 한다. 뜻밖의 일이라 쭉 읽어봤더니 아! ‘오늘은 만우절’이라는 거짓말 6행 시였다. 남을 속이려는 ‘빨간 거짓말’은 아니고 그렇다고 남을 편안하게 하는 선의의 ‘하얀 거짓말’도 아니고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까만 거짓말’도 아닌데…. 만우절에 회색 거짓말일까? 4월은 그래도 봄꽃이 화려한 행복의 꽃밭이기를 기다려 본다.

2025-04-03

강요하지는 마라

노병철수필가 누군가가 내 생각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논리가 없고, 궤변이다. 왜 저런 생각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설득해 보려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이미 확정 편향적 시각으로 모든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오직 자신의 사고에 몰입되어 생각이 다른 타인을 경멸한다. 세대 간의 간격이 넓어 서로의 사고 폭이 좁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동시대 같은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하긴 쌍둥이라도 의견차는 존재한다니깐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삶의 부조리란 개인의 욕구와 사회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며, 이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한다. 말을 이렇게 하니 참 어렵다. 하지만 쉽게 풀이할 마땅한 말도 없다. 오늘 대통령이 탄핵당하든 기각이 되든 어떤 결론이 헌법재판소에서 나올 것이다. 그 결과를 보고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 성향에 따라 반 미치는 사람들이 속출해 난리가 날 것 같다. 이들은 개인의 욕구와 사회 현실의 불일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울분을 토하고 과격해질 조짐이 보인다. 이미 여러 곳에서 좋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갈수록 흥분도는 더해갈 것이다. 일반적인 윤리의식과 통상적 일반인의 상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니 어안이 벙벙하다. 마치 카뮈의 이방인이란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도 슬퍼하지도 않고 살인을 저질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태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에 휩싸여 폭력까지도 불사할 정도로 흥분한다. 모두가 나만의 사고에 몰입되어 있다.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자기 생각이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 마음 같지 않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서나 들을 법한 말을 요즘 사람에게 들으면 조금 뜬금없다. ‘생뚱맞다’라고 표현해야 하나. 사람 마음이 똑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정반대인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사람들은 절대 한 방향만 바라보지 않는다. 문제는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물리적 힘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냄새나는 홍어를 먹기 싫은데 누군가가 총이나 칼을 얼굴에 들이대면서 먹으라고 강요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마누라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해서 밥상을 엎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을 보고 ‘맞을 짓 했다’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그 누구도 타인의 생각을 강요받을 이유는 없다. 난 냄새 나는 홍어가 먹기 싫다. 맞아가면서 먹는 것은 더 싫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 강요하는 것은 파쇼적 사고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끝이 그렇게 좋지 않았음을 우린 배웠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은 늘 극단주의자들에게 선동당하고 급기야 폭력적으로 변하고 만다. 참으로 참담하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2025-04-03

상부상조 정신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민족에게는 바쁜 농사철에는 일을 서로 나눠 하는 좋은 전통 관습이 있다. 마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조직한 두레나 품앗이 등이 그것이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필요할 때 부르고 달려가 도와주는 상부상조 정신의 협동조직이다. 농업이 주된 기반인 농촌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마을 단위의 협력조직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사회가 형성되면서 어려울 때 남을 돕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다. 이런 상부상조 정신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본심이 선량하기 때문이다.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한 숟가락씩 모으면 한 그릇의 밥이 된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보태면 한 사람을 돕기가 쉽다는 말이다. 역시 상부상조 정신과 통하는 표현이다. 영남지역 산불의 피해복구와 이재민을 돕기 위해 100억 원을 쾌척한 기업이 있어 화제다. 다단계 기업인 애터미(주)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100억 원을 전달했는데, 지금까지 모금회에 전달된 성금 중 역대 최고라 한다. 원래는 애터미 직원들의 자조 모임에서 산불 피해 회원을 돕기위해 시작한 것이 회사가 참여하면서 100억 원대로 커진 것이라 한다. 경북 산불피해가 알려지면서 각계의 성금들이 줄을 잇고 있다. 포스코 그룹이 20억 원, 포항의 삼일가족이 1억 원을 기부했으며 기업과 공공기관, 금융기관, 연예인, 개인 등 성금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국채보상운동의 본거지인 대구와 경북의 상부상조 정신이 경북 산불 피해주민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성금이 피해주민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길 기원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3

대구공항 활성화가 TK 신공항 성공의 열쇠

대구시가 2030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 중인 대구·경북 신공항(TK신공항)이 예정대로 진척되고 공항이 개항됐을 때, 신공항의 항공수요를 가늠할 주요 잣대 중 하나는 현재 운영 중인 대구국제공항의 이용객 수다. 대구국제공항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연간 이용객 수가 400만명을 넘겨 개항 이래 가장 많은 여객수요를 기록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여행객이 급격히 줄고, 그 여파로 지금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 여행객이 다시 증가하면서 전국의 지방공항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작년 1∼7월까지 전국 지방공항의 이용 여행객 수는 1047만명으로 조사됐다. 전년보다 63.3%가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김해, 김포, 제주, 청주, 대구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구국제공항의 이용객 수는 코로나 이전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청주공항보다도 뒤졌다. 대구국제공항 이용객 증가가 부진한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대책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대구시가 군위·의성에 신공항을 건립해도 항공수요가 창출되지 못하면 공항운영 전반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구국제공항은 지방공항 중 유일하게 도심에 자리잡아 접근성이 좋은 공항으로 소문나 있다. 그럼에도 항공수요 증가가 미미하다면 원인을 찾고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대구국제공항의 이용객 증가는 대구·경북의 미래를 걸머지고 갈 TK신공항의 활성화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대구시는 항공수요 증가와 관련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신공항 개항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구국제공항이 하계시즌을 맞아 기존노선 증편과 운항을 중단하고 있던 일부 국제노선의 운항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또 7일부터 국제선 환승시설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즌에 맞춘 항공 스케줄도 조정해야겠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대구공항을 활성화 시킬 전략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2025-04-03

헌재선고 후폭풍,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

오늘(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정치·사회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심각한 후폭풍이 몰아칠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의원 60여 명이 2일부터 헌재 인근 안국역 앞에서 24시간 탄핵 반대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도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지도부가 총출동해 광화문 철야 농성 등 장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헌재결정을 받아들이고 갈등해소에 나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광장세력의 극렬한 반발을 유도하는 것 같다. 탄핵 찬반 양측은 3일에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집회를 열고 여론전에 총력을 쏟았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이날 오후 7시부터 탄핵 심판 ‘끝장 대회’를 열고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탄핵에 반대하는 단체들도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전날부터 철야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양측 모두 폭발 직전의 모습이다. 선고를 앞두고 사회적 긴장분위기가 정점에 이르자 각계에서 통합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일 “정치인들께 당부드린다. 지금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공동체의 안정과 생존을 우선해야 할 때”라며 정계를 직접 겨냥해 자제를 호소했다. 여야 정치권이 어떤 결정이 나든 승복하고 갈등 해소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도 “여야가 강대강으로 대치하다 마주 보던 두 기관차가 충돌한 것 같은 파국을 맞았다. 탄핵 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정당이 100% 승복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선고당일까지도 윤 대통령이나 민주당에서는 승복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차분하게 헌재결정을 기다릴 것”이라는 메시지만 냈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헌재 판결 승복 여부에 대해 “승복은 윤석열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무조건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파면결정이 나지 않으면 대대적인 불복투쟁을 벌일 태세다. 지금 분위기라면 탄핵심판 선고 이후 후폭풍을 우리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2025-04-03

한 사람만을 위한 법 해석이 가능한 나라

김세라 변호사 형사소송은 크게 수사와 공판 절차로 나누어진다. 수사기관이 수사를 해 범죄 혐의를 밝혀낼 증거를 확보하면 피의자를 기소하고, 공판이 시작된다. 수사 방법 중 체포·구속·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는 국가의 힘으로 국민의 신체를 제압하고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기에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강제수사의 요건을 엄격히 정하며, 체포·구속 기간도 명확히 정해두고 있다. 형사절차에서 기간이 문제될 때 법률에 시(時)를 기준으로 규정한 것이 있고, 일(日), 월(月)을 기준으로 규정한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피의자를 체포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 시(時) 기준이라면, 검찰 구속기간에 대해 최대 20일이라고 정해놓은 것은 일(日) 기준, 기소 후 법원의 구속기간을 2개월 단위로 정한 것은 월(月) 단위 규정이 되겠다. 이런 시, 일, 월 단위의 기간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 법은 자세히 규정한다. 일, 월, 연 단위로 규정해 놓은 것은 역(曆)에 의해 계산하되 구속기간의 경우 초일을 산입하라고 한다. 밤 11시 59분에 구속되었어도 1일 구속한 것으로 치라는 뜻이다. 또 피의자가 법원에 체포·구속 적부심을 청구하면 그 적부심 재판을 위한 기간은 체포 구속기간에 넣지 말라고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기간을 보장하고 피의자가 적부심 청구를 남발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70년 이상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별다른 이견 없이 적용되어 온 것이고, 이를 통해 수많은 피의자가 구속 또는 석방되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취소 사건에서 법원은 이와 전혀 다른 판단을 하였다. 검찰단계에서 피의자 구속기간은 20일이라는 일 단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를 시간 단위로, 그러니까 480시간으로 해석하라는 것이다. 적부심 청구로 법원에 계류된 시간도 시간을 재서 480시간에서 빼라고 했다. 결국 이 새로운 해석에 따라 구속이 취소되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석방되었다. 구속기간 관련한 법원의 첫 해석이자, 그에 따라 석방된 최초 사례가 되었다. 물론 법령의 최종 해석 권한은 법원에 있는 것이므로 이제는 판례가 바뀌었다 볼 수도 있었다. 검찰이 구속취소 결정에 대해 항고해서 대법원에서도 동일한 판단이 내려졌다면 앞으로 구속 피의자들의 구속기간은 시간 단위로 계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례적으로 쿨하게 항고를 포기하고, 전국 검찰청에 종전 방식대로 구속기간을 ‘시’가 아닌 ‘일’ 단위로 계산하라는 공문을 보내기에 이른다.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이 해석이 오로지 윤석열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해프닝이었음을 검찰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필자는 한동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형사소송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검찰 구속기간을 20일이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480시간이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이 법이라는 것이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단 한번만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라고는 차마 가르치지 못하겠다.

2025-04-03

쉼의 통점

배문경수필가 새벽에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곁에 둔 핸드폰을 더듬어 누르자 한 시다. 배가 아파서 잠결에 깬 것인지, 갱년기 불면증인지 겨우 한 시간 눈을 붙였다. 이즈음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두 시간 잤다 싶으면 번쩍하고 눈꺼풀이 걷히면 이후 잠들 수가 없다. 잠들기 전 일이 떠올랐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몰려왔다. 동시에 위가 비틀리며 따갑게 통증을 유발했다. 손바닥으로 통증 부위를 둥글게 문질렀다. 위가 부은 것인가. 위액분비가 심한가. 원인을 찾다 수년 전 그녀를 만나던 장면으로 생각이 날아갔다. 연말에는 행사가 많았다. 대구 K 호텔은 화환이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소속된 문학회의 화환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열기가 추위를 녹여내고도 남았다. 이미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이 큰 행사를 주관하는 홍 선생님과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리허설 중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했다. 진행 관계자가 이럴 때는 시간에 쫓겨 걱정스럽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밝고 화사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화색 좋은 그녀들을 보며 경주에서 온 서너 명인 우리 일행들도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그때 급하게 들어서던 그녀를 봤다. 적당히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정돈된 옷이 잘 어울렸다. 그녀의 꽤 잘 쓴 글을 접한 이후 스타를 쫓는 팬처럼 올 때마다 그녀를 먼저 찾아 인사를 나눴었다. 반갑다고 다가가는 순간 그녀의 발에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남색 플라스틱에 흰 줄이 두 줄 그어져 있는 실내서 싣는 신발, 이 추위에 그녀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정장을 한 모습이었다. 중학교 과학 교사라고 전해 들었다. 별것 아닌 듯이 “아~ 슬리퍼 신었네요. 인주샘!” 그제야 자신의 발을 보더니 잊고 그냥 나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나도 마주 보며 그럴 수 있다며 마주 보고 웃었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문학 장르에서 큰 상을 받고 두각을 나타냈으며 촉망받는 작가였다. 나는 잘 가던 대구로의 행보가 쉽지 않아지고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한 번씩 떠올랐지만 바쁜 일상으로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시간은 그렇게 거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문득문득 그녀의 소식이 바람결에 날려와 내게 소식을 전했다. 문득 일상을 마감할 즈음에 그녀가 뇌리에 와서 박힌 건 이상했다.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치자 수상 소식과 아름다운 모습도 몇 컷이 보였다. 지인의 홈피가 열리고 그녀의 글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녀의 이름 아래에 괄호 속에 생몰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태어난 해와 생을 마감한 해가 다 적힌 건…, 믿기지 않아 전화를 돌려 지인에게 확인을 시도했다. “아까운 사람이지. 스트레스로 인한 위암이었어.” 시인으로 우뚝 서고 싶었던 그녀는 높은 서울로의 진출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때론 무엇에 꽂히면 앞뒤 좌우 없이 앞만 보고 달릴 때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어찌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인지,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이루지 못한 꿈과 좌절감으로 시커멓게 속이 탔을 그녀를 암으로 몰아넣은 모양이었다. 새벽 위통을 견디기 위해 물을 들이켰다. 위액이라도 중화시켜야 속이 덜 아플 것이었다. 근래 전에 없던 위통이 왜 새벽 한 시에 나를 깨운 것인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은 멀리 달아나 버린 상태였다. 나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수시로 굶고 수면 부족에, 이곳저곳에 있는 행사에 초대되거나 직접 치러내야 하는 일들 속에서 종종거릴 때가 많다. 나의 뇌리를 스친 그녀의 기억은 나의 현재 상황을 일깨웠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가. 바쁜 일상에서 내가 놓치고 빠뜨린 것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들을 잊고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나를 쳐다본다. 어떡할 거냐고 무슨 대답을 바라는 듯이, ‘쉼 때론 쉼이 필요해’라고 뱃속의 무엇인가가 여행도 하고 너를 위해 오직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하라고 타일렀다. 내일 이른 시간으로 위내시경을 예약하며, 오직 나를 위한 쉼 시간도 예약했다.

2025-04-02

오어사(吾魚寺)

경북 포항 오천 항사리에 가면 오어사라는 절이 있다 한 놈의 땡중 때문에 한때 구설수에도 올랐지만 흠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눈 질끈 감고 용서해야지 그래야 서로서로 사람이 되지 그밖에는 모든 것이 이쁜 절 부처가 아무리 부처라 해도 인간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모양이라 운제산(雲梯山)은 장구해도 덜 떨어진 인간 하나 감당 못했네 오어사, 이리저래 그냥 절하라고 있는 절, 업보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 쌓고 닦으며 평생을 수행하지 성불은 무슨, 그냥 닦는 거지 장작을 패는 마음의 인간의 따스함, 삼팔광땡 같은 후광과 온기가 있어 그것으로 충분하리. 능엄경에서 읽었다. ‘사마타’는 마음의 본래 자리인 집을 보는 단계로 돈오를 일컫는 말이다. ‘삼마다’는 집의 대문을 통과해 집에 들어서는 단계로 점수를 가르키는 말이다. ‘선나’는 집 안마당을 거쳐 방 안까지 걸어가는 단계로 불이(不二)를 말한다. 이 말을 나는 껌을 씹듯 중얼거리곤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4-02

이성과 감정의 조절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간의 뇌는 감정과 이성을 조절하는 두 가지 주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전두피질은 논리적 사고, 판단, 충동 조절 등의 기능을 담당하고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과 같은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두 영역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균형이 깨질 경우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스트레스와 불안 반응이 증가하면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이는 심박수 증가, 근육 긴장, 호흡 속도 증가 등의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며 지속될 경우 만성 스트레스, 불안장애, 수면 장애 등의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전전두피질이 충분히 기능하면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되어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을 억제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신체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심박수가 낮아지고 호흡이 깊어지며 근육이 이완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한의학적 치료 방법으로는 한약 요법과 초음파 약침 치료가 있다. 한약은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균형을 맞추고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약을 환자의 증상에 맞게 처방하면 전전두피질의 기능이 강화되어 스트레스가 조절되고 또 편도체의 과활성을 억제하여 불안과 긴장을 완화 할 수도 있다. 이는 신경계의 균형을 맞추어 감정 조절과 수면 개선에 도움을 준다. 한약 처방은 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맞춰 처방되므로 한의원에 가서 한의사의 처방을 받아야한다. 초음파 약침 치료는 성상신경절에 약침을 주입하여 교감신경의 과활성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성상신경절은 교감신경 과항진을 억제 하는데 한약재를 증류한 약침을 놓으면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을 억제하고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초음파를 이용하면 성상신경절의 위치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어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성상신경절을 치료 하면서 부교감 신경을 제어 하는 미주신경까지 같이 약침 치료를 할 수 있다. 명상은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상을 하면 편도체의 활동이 감소하면서 감정적 반응이 완화되고 전전두피질의 기능이 활성화되어 충동 조절과 이성적 판단력이 향상된다. 또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여 심박수를 낮추고 호흡을 안정화시키며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다. 복식호흡을 통한 명상은 편도체의 반응성을 낮추고 스트레스 저항력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 규칙적인 명상 습관을 유지하면 전반적인 신경 균형이 개선되면서 긴장 완화에 지속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한약 치료와 초음파 약침 치료를 병행하고 명상을 통해 뇌의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면 더욱 효과적인 자율신경 조절이 가능하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규칙적인 실천이 건강한 신체와 마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5-04-02

내 인생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골프나 배드민턴, 야구 등의 스포츠에서 골프채, 라켓, 배트 등으로 공을 칠 때,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멀리 빠르게 날아가게 만드는 최적 지점을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라고 한다고 했다. 최적의 타격면이라는 뜻이라는데, 원래 스포츠 분야에서 나온 용어인 걸 검색해서 알았다. 야구선수는 배트에 공이 이 스위트 스팟에 딱 맞는 순간 공이 제대로 멀리 날아갈 것을 안다고 했다. 스포츠 용어인 ‘스위트 스팟’은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로 좋은 시기나 부분, 한 마디로 최적화된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제 분야에서의 스위트 스팟은 경제가 이례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시기를 의미하고 마케팅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에 가장 매력을 느끼는 시점 혹은 그 느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어를 샘 리처드 교수(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과)가 쓴, 최근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으로 접했다. 유튜브의 숏츠나 채널로 종종 리처드 교수를 만났기에 그가 쓴 책이 궁금해서 사 읽었다. 리처드 교수의 강의실은 특별했다. 간편한 티셔츠나 청바지 차림의 교수는 계단식 큰 강의실에서 주제를 말한 후 여러 학생들을 앞자리로 불러 앉힌다. 자발적으로, 혹은 불려 나온 학생들은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었다. 교수가 질문하고 학생들이 답하는 형식의 그 강의는 ‘SOC 119’라는 유튜브 채널로 전 세계에 방송되며 교육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17년엔 ‘그런 말은 하면 안돼요’라는 제목으로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수업을 진행해 미국 에미상 교육·학교 프로그램 부문 최고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는 뉴스도 들은 적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인종과 성별,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가운데 학생들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나 타인의 관점으로 사고하도록 지도하는 강의다. 교수가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혁신적인 방식인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 5만 명이 넘었다고 했다. 리처드 교수는 한국문화와 한류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강의를 자주 해서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근한 대표적인 학자다. 리처드 교수는 인생에도 ‘스위트 스팟’과 같은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시점에 맞닥트리게 되고 그 중 인생 최고의 순간이 바로 ‘스위트 스팟’이라는 것.‘스위트 스팟’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으며, 어쩌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 찾아내고 느끼는 것이라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위트 스팟’이라는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 단어를 ‘타이밍(timing)’ 혹은 ‘줄탁동시(5550啄同時)’ 정도로 치환했더니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었다.‘타이밍(timing)’은 어떤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 적절한 좋은 시기를 뜻하는 것이고, ‘줄탁동시(5550啄同時)’는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는 순간 알에서 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역시 최고의 순간이라는 뜻 아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스위트 스팟’은 언제나 열려 있다. 매 순간일 수도 있다.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2025-04-02

법과 원칙이 흔들리면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다. 그의 한마디 언사와 한자락 품행은 국가의 신뢰와 직결된다. 그런 공직자가 거짓말을 한다면 누가 참말 할까. 지진이 난 자리에서 세상에 믿을 것이 사라지듯이, 공직자가 허언을 하는 국가에는 믿을 사람이 없어진다. 개인의 도덕적 결함을 넘어 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문제가 된다.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직자들의 거짓해명과 말바꾸기가 거듭해서 드러나고 있다. 위법한 사실이 밝혀져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거짓말이 드러나면 얼버무리기 일쑤다. 사실이 판명되면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고 시간이 지나면 국민의 분노가 사그라질 것이라는 계산으로 무책임한 태도를 유지한다. 공직자의 말은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하고 국가 전체가 끝내 거짓과 기만의 온상이 되어간다. 법과 제도는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원칙은 문명사회의 기본이다. 법이 특정집단만을 위해 유리하게 사용되고 차별적으로 적용되면 사회는 ‘공동체성’을 잃고 정의롭지 못한 집단으로 떨어지고 만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치·경제적 사건들에서 법과 제도가 모두 공정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의문이 든다. 어떤 이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아예 법망을 피해 가는 반면, 힘없는 개인은 사소한 실수로도 법의 혹독한 심판을 받는다. 누군가 법 위에 군림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 국민은 법치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나라는 질서를 잃는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적인 가치와 질서를 정하는 가장 높은 법이다. 헌법이 정치적 이익이나 특정집단의 목적에 휘둘린다면, 나라의 법적 기초 그 자체가 무너져 내린다. 최근 공직자들의 일탈과 거짓을 두고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게 아닌가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헌법이 특정계층의 이념과 정략에 따라 흔들린다면, 대한민국 국가공동체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로서 명맥을 이어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법치가 약화된 나라들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경제적·외교적 고립을 자초했다. 법과 원칙이 흔들리는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나라는 없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예측가능성이 흔들리는 나라에 재정투자를 실현하지 않으며 국제기업들은 불확실성이 큰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글로벌환경에서 신뢰받는 국가로 남기 위해서는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헌법질서를 분명하고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국가가 정의롭고 공정하게 운영될 때에만 국민은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는 일만큼 나라에 긴요한 일은 없다. 공직자가 거짓말을 일삼고 법이 특정집단을 위해 휘어지며 헌법이 흔들리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우리는 공정한 법 적용과 진실을 말하는 공직자를 원한다. 정상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 법과 원칙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나라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상식과 정의가 살아 숨쉬는 국가로 우뚝 서는 날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나라가 바로 서야 국민이 숨을 쉰다.

2025-04-02

與野, 헌재 선고에 승복하는 분위기 조성을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헌법재판소가 오는 4일 오전 11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를 선고한다고 밝혔지만, 헌재 재판관들은 1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평결을 마쳤다는 게 중론이다. 헌재 내부적으로 인용이든 기각이든 큰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재판관들이 선고당일까지 소수의견을 바꿀 여지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관들은 선고일 전까지 평의를 몇 차례 더 열어 결정문을 마무리하고, 선고 당일엔 마지막 평의를 열어 선고 절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앞으로 헌재가 선고당일까지 보안유지를 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법조계에서는 변론 내내 논란이 된 쟁점들(국무회의의 적법성, 선관위 군투입 정당성, 오염된 증언 인정여부, 검찰 조서 탄핵증거로 쓸지 여부 등)에 대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 8명의 재판관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윤 대통령 파면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재판관 8명 중 6명 이상이 인용 결정을 하면 곧바로 파면된다. 헌법은 대통령이 파면된 경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가 6월 3일을 선거일로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반면, 재판관 3명 이상이 각하 또는 기각을 결정할 경우 윤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한다. 헌재 주변에선 선고일까지 대규모 탄핵 찬반 집회가 예정돼 있다. 선고당일에는 양측간의 충돌과 유혈 폭력사태도 우려된다. 정치권이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앞장서서 선고결과에 승복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진영싸움을 유도하며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는게 현실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나마 헌재의 결정에 승복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민주당 상당수 의원은 “탄핵이 기각된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할 수 있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우리사회는 현재 좌우 진영 간의 갈등이 폭발 직전 상태다. 헌재결정이 또 다른 극단적인 대립을 유발할 경우, 정치권도 감당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2025-04-02

한국의 정(情), 미얀마에도 나눠야

홍성식(기획특집부장) 경북 일대를 초토화시킨 산불의 상흔이 크고도 깊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재난의 복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유사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단단한 채비도 갖춰야 마땅하다. 한국인 대부분은 정이 넘치는 사람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화마에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한 국민성금이 불과 며칠 사이에 800억원 가까이 모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살고 있던 집과 정성껏 키우던 농작물을 사나운 불길에 빼앗긴 이재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다독여줄 손길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을 터. ‘더불어 사는 공동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재해로 인한 수난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미얀마에서도 1948년 나라가 독립한 이후 가장 큰 지진이 발생해 3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아직 무너진 건물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의 구조가 진행 중이라 사망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뉴스도 들려온다. 군사독재와 내전(內戰)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더해 지진으로 인한 생지옥까지 펼쳐지고 있으니 미얀마의 사정이 딱하고 측은하다. 연민과 동정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다. 이 땅 옛 어른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의 수난과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가르쳤다. 다행히 땅이 흔들리고 집이 무너져 비탄에 빠져 있는 미얀마 국민들을 위한 구호의 움직임이 늦지 않게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산불 이재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정’을 미얀마에도 기꺼이 나눠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02

국회 APEC 특위 출범, 성공에 전력 쏟아야

탄핵 정국으로 여야가 극한 대치를 보이는 가운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지원을 위한 국회 APEC 특별위원회가 이달초 출범했다. 위원장에는 5선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맡았다. 국회 APEC 특위는 APEC 정상회의 준비 및 운영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 방안을 강구하는 특별기구다. 특히 개최지인 경주의 인프라 확충과 관광,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도 특위에서 다룰 수 있어 특위 출범에 대한 지역의 기대감도 크다. 앞으로 총리실의 APEC 준비위원회와 국회특위, 지자체 등 3자가 손발을 맞춰 2025 경주 APEC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게 된다. APEC 개최까지 6개월 정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큰 효과를 내기 위해선 국회특위의 활약이 절대 필요하다. 특위가 적극 나서면 정부 예산이나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고 정부와 국회, 지자체간의 협력도 수월해진다. APEC은 21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국제행사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들의 경제적 결합을 돈독히 하기 위해 만든 기구여서 경제적 성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출범 후 처음 개최되는 APEC 회의여서 세계적 주목도도 높다. 행사 주최국인 한국의 입장에서도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내포된 행사다. 행사의 성공적 수행은 국가 이익에도 크게 부합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행사 개최지인 경주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규모의 이런 행사가 또다시 경주에 열린다는 보장은 없다. 이번 기회에 경주의 발전을 10년 정도 앞당긴다는 각오로 행사 준비에 나서야 한다. APEC은 전세계 GDP의 61%, 총 교역량의 50.7%를 차지하는 회의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회의인 만큼 개최지 경주를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성을 알리고 혁신적인 인프라 조성을 통해 경주를 세계적 관광도시로 부각시켜야한다. 국회특위는 탄핵정국에서 벗어나 초당적 협력으로 APEC 경주 개최가 성공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5-04-02

화마(火魔)의 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잔인하다 못해 처참했다. 비통하고 참담하기만 했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옛 숨결이 스민 문화재며 고택이나 가옥 등을 가리지 않고 화마는 닥치는대로 순식간에 집어삼키며 광란의 불춤을 추고 있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백주 대낮에도 화산처럼 먹구름이 솟아 오르고 불기둥이 솟구치는 괴물 같은 불길 앞에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마저 숯검댕이로 타들어 가는 절체절명의 현실 앞에 망연자실하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만물이 소생의 몸짓으로 새순과 싹을 틔우는 생동의 길목에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만고에 푸른산이며 대대손손 가꾸고 지켜온 터전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무참하게 일그러지며 무너져버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분신처럼 키우던 가축이며 산속이 집이었던 토끼, 다람쥐, 고라니 따위의 짐승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디로 정처 없이 떠나 갔을까? 불길 앞에 온몸이 타들어가도 의연히 버티는 나무들의 외마디 절규 같은 타닥거림을 누가 애처로이 들어주기라도 했던 것일까? 사상최악의 피해를 낸 경북 북동부 대형산불은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5개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149시간만에 꺼졌다. 26명의 사망자와 4천여 명에 이르는 이재민, 3천채가 넘는 건물의 소실 등으로 천문학적인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한 순간의 부주의와 실화로 인해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바뀌게 됨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자나 깨나 불조심’ 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산불로 인한 상상 초월의 인적·물적인 피해가 따르게 됨을 경고하며 심각성과 경각심을 시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방천지 느닷없이 연막을 둘러치며/걷잡을 수 없는 불길 가증의 혀 날름대니//애타게 울부짖으며/숯덩이로 스러지고//대대의 보금자리 잿더미로 주저앉고/골골이 외마디소리 뼈저리게 타들어가도//무참히 집어삼키며/삶마저도 할퀴네” -拙시조 ‘화마(火魔)의 혀’전문 우리나라 산불의 대부분은 사람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된다고 한다. 입산자에 의한 실화,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소각 등 절반 이상이 사람에 의한 실화 또는 소각행위에서 비롯된다. 즉, 인위적인 요소가 가장 큰 산불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시체계와 입산통제, 감시원 배치 등으로 집중 감시하고 계도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보다는, 사전 점검과 예찰을 선제적으로 실시하여 조기에 산불 발생의 징후를 인지 및 즉각적인 대응으로 대형산불을 예방하는 것이중요하리라고 본다. 3~4월의 고온건조한 날씨와 편서풍의 영향으로 연간 산불 발생의 절반 이상이 봄철에 나타나게 된다. 본격적인 농번기로 농부들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의 바깥 나들이 활동이 늘어나면서 산불 발생의 위험도도 증가하게 되는 것이니 만큼, 각별한 주위와 산불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인정사정 없이 할퀴고 위협하며 잿더미로 만드는 화마에게 한평생 일궈온 우리의 삶과 재산을 제물로 바칠 수야 없지 않을까?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너도 나도 불조심’하여 국민 모두가 평온한 일상을 지켜가면 좋겠다.

2025-04-01

Intelligent Factory 향한 초일류기업의 꿈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초일류기업(World Class Company)은 특정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단순한 글로벌 기업을 넘어, 업계 표준을 주도하고 장기적인 성장과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기업을 가리킨다. 포스코는 WSD(World Steel Dynamics)에서 철강업계 15년 연속 경쟁력 1위를 자리하고 있다. 더 나은 기업, 지속 가능한 경영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을 쉼없이 이어가야 한다. 미래는 상상 초월의 세상이 오고 있다. AI 지능화 시대, 생산 프로세스 수준, 수작업 자동화, 로봇 설비 점검 등 DX(Digital Transformation) 기술 모델이 빠르게 만들어 지고, 미래 모습인 Intelligent Factory를 향해 다양한 기술을 접목 해나가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 초일류기업의 조건은 무엇인지 탐색해 본다. 초일류기업의 조건 첫째, 해당 산업에서 세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글로벌 고객 기반이 확보되어야 한다. 규모의 경제 조건을 확보하고 전략적 경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둘째, 혁신적인 기술력과 연구 개발(RD) 투자로 차별화된 기술 보유와 기술 전도 및 산업 표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강력한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를 위해 소비자와 고객에게 신뢰받는 브랜드 구축과 월드 클래스 수준의 브랜드 가치 보유를 하는 것이다. 넷째, 탁월한 경영전략과 리더십이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경영 전략과 강력한 기업 문화와 비전 보유이다. 가령, 일본 철강업은 50년 동경 건물 리모델링과 자동차, 선박 등 철강 수요와 투자 대비 수익 고려 8500만톤 전략 생산체제이다. 다섯째, 지속 가능한 경영과 ESG 실천이다. 사회적 책임과 친환경 경영 실천,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경영 방식 등이다. 여섯째, 전 세계에 생산 및 유통망을 보유하여 안정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와 공급망 구축이다. 최근 미국 관세 폭탄 부가와 세계 무역 질서의 큰 변화에 대응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재 확보와 조직 문화이다. 글로벌 인재 유치와 육성 시스템 구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행복한 직장과 창의성을 높이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최근, 포스코는 근무 조건 변화, 2030세대 특성, 안전 등 변화 된 흐름을 반영하여 현실화 된 혁신체계를 정립하고, 개인의 성장과 기업 경쟁력을 확보 해나가고자 QSS(Quick Smart Solution) 2.0 활동 킥오프를 예정하고 있다. 미래 AI 시대를 대비하면서 생산 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고 변화에 맞게 문제 해결 방법론을 진화 발전시켜 가고 있다. 즉, 전문가 영역과 현장 영역을 구분하여 효율적으로 선택과 집중하는 것이다.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단순한 매출 성장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혁신, 강력한 브랜드, 차별화된 기술력, 글로벌 네트워크, ESG 경영 등 고려 한 미래 기업 Intelligent Factory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2025-04-01

오늘은 단체장·지방의원 재보선 투표일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조기 대선 풍향계’로 인식됐던 4·2 재보궐 선거가 오늘 치러진다. 이번 선거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 조기 대선이 확정될 경우, 향후 민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왔다. 교육감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을 뽑는 미니 선거지만, 대선 직전 전국의 민심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 선거구가 TK(김천시장)를 비롯해 PK(거제시장), 서울(구로구청장), 충청(아산시장), 호남(담양군수) 지역에 하나씩 있어 관심을 더했다. 하지만 지난달 28~29일 실시된 사전투표결과 이번 재보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지극히 낮았다. TK지역의 경우 김천시장 재선거 사전투표는 전체 선거인 11만7704명 중 2만1592명이 참여해 18.34%의 투표율을 보였지만, 대구시의원을 뽑는 달서구 6선거구 (본리동, 송현1동, 송현2동, 본동)는 선거인 6만1632명 가운데 2113명이 투표, 투표율이 3.43%에 그쳤다. 고령군의원 나선거구(다산·성산)는 선거인 9969명 중 1687명이 사전 투표에 참여해 16.9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보수·진보 양진영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출마한 부산시교육감 재선거는 당초 전국적인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전투표율은 5.87%를 기록했다. 역대 교육감 보궐선거의 사전투표율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지역별 사전투표율은 서울 7.68%, 부산 5.87%, 대구 3.43%, 인천 16.38%, 대전 5.18%, 경기 7.61%, 충남 11.94%, 전남 25.81%, 경북 18.23%, 경남 14.34%였다. 이번 재보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떨어진 것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여야가 극한 충돌을 하고 있는데다, 영남지역 산불 피해가 확산되자 각 당이 선거운동 자제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김천시장 재선거 등에 후보를 냈지만 지도부 차원의 유세는 하지 않았다. 민주당도 야권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지도부 지원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조국혁신당과 2파전이 벌어지는 전남 담양만 찾았다. 모든 선거가 중요하지만, 이번 재보선은 12·3 비상계엄 이후 유권자들의 첫 ‘정치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내외 도시 간 경쟁을 주도하면서 시민 삶의 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역량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단체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도시의 품격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방의원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지방의원들은 재선, 3선을 거치면서 국회의원 못지않은 전문가로 생활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 누군지를 잘 선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출마자 정보 확인과 투표 참여는 필수적이다. 정책 등 선거공보는 선관위 누리집 정책·공약마당을, 재산이나 병역·학력·세금납부·전과기록 등은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을 확인해 보면 된다.

2025-04-01

제80회 식목일

우정구 논설위원 올해는 우리나라가 식목일을 지정한 지 80년 되는 해다. 식목일은 지정 3년만에 국가 공휴일로 다시 변경됐다. 해방 무렵만 해도 우리나라 산은 황폐함 그 자체였다. 식목일 제정은 범국가적 행사를 통해 황폐화된 우리 국토를 푸르게 가꾸어 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기념일이다. 식목일 날짜는 조선시대 임금이 참석하는 친경(親耕) 행사에서 유래했다. 매년 음력 3월 임금이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농단에 나가 농사를 직접 짓던 날을 식목일의 기념일로 잡은 것이다. 식목일이 정해진 후 과거 수십 년 동안 이날이 되면 관공서는 물론이요 학생, 직장인 등 모든 국민이 나무심기에 총동원됐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식목일 행사가 진행되면서 196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산림녹화의 모범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198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발표했다. 국토의 63%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지금 전국 방방곡곡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해방 이후 온 국민이 산림녹화에 노력한 결과다. 잘 가꾸어진 산림에서 국민이 받는 혜택과 가치는 무진장하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고 나라를 풍성하게 하며 국민들에게는 행복감을 선사한다. 경제성장에 주력하던 어느날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여론에 따라 2006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그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로 서울시 면적에 가까울 만큼 산림이 타버렸다. 이번 식목일은 자랑스러운 우리 산림녹화의 역사와 산림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1

산불로 농사포기 속출, 농촌소멸 우려된다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경북 북동부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의 피해 규모가 구체화되면서 농민들의 생활 터전이 완전히 망가진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농사를 전업으로 살아왔던 농민의 생활수단인 농지, 과수원. 축사, 비닐하우스, 농기계 등이 모두 잿더미로 변해 복구 의지가 상실된 이주민 가운데는 농촌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영양의 한마을은 전체 22채 주택 중 15채가 불에 타면서 농촌마을 자체가 없어질 판이다. 이 마을 한 농민은 “농경지가 모두 불에 타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 자식이 있는 도시로 갈 생각”이라며 얼마 안 되는 마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고 했다. 또 안동의 한 농민은 “한 평생 땅 파먹고 사는 것만 해와 다른 일은 못한다. 나이가 젊으면 다른 일도 해보겠지만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과수원을 경영하던 또다른 농민은 “10여 년 키운 과수나무가 모두 불타버렸다. 이제 새로 묘목을 사서 심는다 해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르니 농촌을 뜰 생각”이라고도 했다. 특히 귀농으로 농촌에 정착했던 귀농인 가운데 약 30% 정도가 화마 이후 불안해진 농촌생활을 벗기 위해 다시 도시로 갈 생각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산불 피해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된다고 해도 농촌지역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소멸의 문제는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화마를 입은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지역은 모두 인구소멸위험지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의성은 한때 소멸위험지수가 전국 상위권에 있던 곳이다. 이번 경북 산불은 산림에만 피해를 준 것이 아니고 산간지방 주택과 농경지, 과수원, 축사 등에도 큰 피해를 입혀 상당수 농민의 농업기반이 사실상 붕괴됐다. 단순히 임시 거주주택을 마련해주거나 생활필수품 공급 등으로 이주민 재기를 도울 수는 없다. 이재민이 생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거지 인근에 주택을 짓고 생계 도모를 위한 세심한 지원책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경북의 산불은 지방소멸과 연계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2025-04-01

‘산불 추경’ 시급한데 민주당은 왜 제동거나

경북 북동부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이재민 2800여 명이 잿더미가 된 집에 돌아갈 수 없는데도, 여야는 ‘산불 추경’ 편성에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그저께(31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하고 추경과 국회 일정 등을 논의했지만, 신경전만 벌이다 빈손으로 헤어졌다. 여당은 산불 대응을 위한 추경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정부가 제시한 10조 원 규모의 추경안을 즉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민생회복소비쿠폰’ 약 13조 원과 ‘지역화폐 발행’ 등 35조 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경북 산불 이재민 지원보다는 전 국민 현금살포에 추경편성의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이와관련,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산불 추경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35조 원 규모의 ‘슈퍼 추경’편성을 고수하면서 “정부가 재난·재해 대응 등에 얼마나 소요되는지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어 최소한의 판단 근거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산불피해 주민들로선 추경 편성이 분초를 다투는 일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영남권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복구에는 최소 3∼4조 원 가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재난대응 목적 예비비는 4000억 원 수준에 그쳐 추경편성 없이는 피해 복구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산불이 기승을 부릴 때 의성과 청송, 영양 등을 방문하면서 이재민들에게 피해복구를 반드시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도 “당 차원의 대규모 산불 피해 지원 TF를 구성해 이재민 지원,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겠다”면서 정부에 추경안을 신속히 제안하라고 촉구했다. 통상 정부에서 추경안이 제출되면 국회 본회의 통과에 걸리는 시간이 최소한 한 달은 소요된다. 민주당은 수천 명의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 추경안을 이달 중에는 처리해 주길 바란다.

2025-04-01

품격 있는 사회를 위한 조건

2025년은 일본의 고베와 오사카 지역을 강타한,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이 발생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지만, 우리와는 달리 참으로 지진이 많은 나라인데요, 1995년 1월 17일 한신·아와지 지역에 발생한 진도 7.3의 강진으로 인해 무려 65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오사카와 고베 지역이 일본 경제의 중심지인 만큼, 피해액도 당시까지로는 최대 규모인 약 10조엔에 이르렀습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30주년을 맞는 일본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데요. NHK의 장수 프로그램인 ‘100분 명저(100分de名著)’에서는 올해 1월 안극창(安克昌·1960-2000)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心の傷を癒すということ)’(1996)이라는 책을 다루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공동환상론’이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일본과 동서양의 고전을, 두 명의 진행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나와 한 달 동안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그 권위 있는 방송에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한인 안극창의 저서가 다루어진 것인데요, 방송이 시작된 지 약 15년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한인의 저서가 다루어진 것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 처음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져온 충격과 이후 안극창이 현장에서 펼친 치료 활동을 기록한 일종의 르포르타주입니다. 이 책은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피해지의 의료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31회 연재한 글들을 모은 책으로, 1996년에는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일본에서 고전의 지위를 확고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1996년에 ‘고베 365일’이라는 부제를 달고 초판이 나온 이후, 2011년에는 ‘대재해 정신의료의 임상보고’라는 부제를 단 개정증보판이, 2019년에는 ‘대재해와 마음돌봄’이라는 부제를 단 신증보판이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2020년에는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이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일본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라는 책뿐만 아니라, 안극창이라는 사람 자체가 정신과 의사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데요. 일례로, 2022년에 일본의 대표적인 정신과 의사들을 다루는 ‘마음의 과학’이라는 학술 연구서 시리즈의 하나로, ‘안극창의 임상작법’이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트라우마(심적 외상),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마음돌봄(心のケア) 등의 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한신·아와지 지진이 발생한 1995년부터라고 합니다. 그러한 공론화의 한복판에 재일한인 안극창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안극창은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담의 방문판매’라고 할 정도로 피난소 등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피해자들을 만났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겪은 일들을 신문에 연재까지 했던 겁니다. 그렇기에 그가 지진으로부터 5년밖에 지나지 않은 2000년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도, 이때의 과로가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본래 트라우마 연구로 유명했던 안극창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에서 대지진을 겪은 사람들이 PTSD에 시달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술했는데요. 피해자들이 겪는 과도한 각성, 사건의 재체험, 회피(의욕 부족), 부정적 인지나 기분 등의 증상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생존자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자책감,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죄의식에도 주목했습니다. 피해자들이 겪는 증상 중에는, 안극창 본인도 겪은 일로서 지진 현장을 벗어나면 그곳을 현실이 아닌 환상처럼 느끼는 ‘리얼병’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안극창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며, 그것은 바로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는 많은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치료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피해자가 외부의 공포와 위협으로부터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심리적 거처’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마음돌봄은 진료실의 의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것’, ‘심리적 거처’를 마련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극창은 누구도 혼자 방치되지 않고,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야말로 품격 있는 사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안극창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토록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재일한인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재난은 사람을 한순간에 사회의 약소자로 만들기에, 재일한인으로 살아온 안극창은 그 누구보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깊이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안극창은 자신의 출신을 숨기기 위해 ‘안(安)’이라는 본래의 성 대신 ‘安田’이란 일본 성을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사용했다고 합니다. 안극창의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헌신 뒤에는, 재일한인으로 살아온 그의 만만치 않은 삶이 놓여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25-04-01

중년의 사치

어느덧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며 삶이 점점 고요해진다고 느꼈다. 예전의 불꽃 같은 열정은 온화한 불빛이 되었고 사소한 것에도 웃을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여중 동기로 만나 성장기를 공유하며 여전히 함께한 세 친구는 모이기만 하면 소녀시절로 돌아가 깔깔대고 품위를 상실한 채 거침없는 언어를 뱉어냈다. 셋은 얼마 전부터 의기투합했다. 10년 동안 함께 매달 소액을 모아둔 돈이 나름의 큰돈이 되어 중년이 된 자신을 위해 시원하게 한 탕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기준을 만든 것은 절대 가족이나 생활비로 쓰지 않기였다. 오로지 ‘우리만의 사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이름하여 ‘중년의 사치 프로젝트’였다. J는 젊은 시절부터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다. 결혼과 출산,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그녀의 관심은 아이들의 교육비와 가족의 안위로 옮겨 갔다. 그래서일까. J는 곗돈을 타는 날, 진지한 얼굴로 선언했다. “난 이번에 명품 가방 살 거야.” 우리 둘은 그 진지한 얼굴에 박장대소했다. 며칠 뒤 J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안에서 나온 것은 반짝이는 가죽의 명품가방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처음 품에 안는 엄마처럼 조심스레 가방을 매만졌다. 너무 예쁘지 않냐며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은 고급스러운 샹들리에처럼 반짝였다. L은 우리 중 가장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늘 떠나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그녀를 붙잡아 두었다. 아이들 교육, 남편의 일, 부모님 간병 등 그녀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늘 고정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곗돈을 타던 날, 다짜고짜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고 했다. 혼자서 프랑스 파리를 가겠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눈이 동그래졌지만 그녀의 멋진 중년의 첫 발을 있는 힘껏 응원해 주었다. L은 자신을 위한 여행을 감행했다. 귀국한 그녀는 우리를 만나 그 곳에서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에펠탑 아래서 마신 와인, 센강 위를 비추던 저녁노을, 그리고 모르는 언어로 길을 물으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던 이야기까지. “이번 여행이 나를 살렸어. 다시 일어나 이겨낼 힘이 생긴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우리는 간 큰 중년이라며 놀려댔지만 그녀의 용기와 추진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은 내게 돌아왔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오래 전부터 품어왔던 꿈을 세상에 내어놓기로 했다.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 오래 전부터 습작했던 시들을 펼쳐 글을 정리하고 또 다시 퇴고를 하며 큰 주제별로 분류를 하며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나만의 시집이 세상으로 나왔다. 김경아 작가 첫 출간 기념으로 친구들에게 사인을 하여 책을 주었다. 친구들은 내 책을 손에 들고 한낮의 태양처럼 여유롭고 당당하게 웃어 보였다. 함께 돈을 모으며 어떻게 자신만의 사치를 즐겼는지, 그 사치가 우리를 어떻게 다시 살게 했는지 우리 셋은 안다. 행복한 기억의 편린들이 우리만의 사치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우리 중년의 여인 셋은 그렇게 서로의 삶을 축복했다. 중년의 사치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고 선언이었다. 돈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우리에겐 큰 보물이 남았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과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 함께 공유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크기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삶의 사치가 때로는 작은 순간에 깃들어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지나친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친구와의 웃음 속에 담긴 온기,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이렇게 스쳐가는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우리를 그려갈 것이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가장 소중한 사치임을 알아가는 순간 내게 주어진 시간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작가

2025-04-01

파면을 기다리며

허민 문학연구자 2024년 12월 3일 밤을 기억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그 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묵혀뒀던 ‘흑백요리사’ 다섯 편을 몰아보고 있었다. 새벽 2시 즈음 이제 잠이나 자볼까 하고 핸드폰을 보고 나서야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카톡창에 떠 있는 백여 개의 메시지들, 앞다퉈 발표되는 뉴스 속보, 담을 넘는 국회의원, 국회의 유리창을 깨는 군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들. 순간 나는 내가 다른 시간대로 혹은 다른 세계관으로 ‘워프’된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당신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나는 한국근현대문학을 공부했고, 식민 지배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중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엄령이 인지됐을 때 내 몸은 얼어붙었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할지, 친구들의 안위를 물어야 할지, 어딘가로 대피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어야 할지 분명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나름 연구자라며 그렇게 많이 읽고 쓰곤 했는데 저항에 관한 서사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보았다. 총기를 무장한 채 동원된 군인들과 맞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대체 저들의 용기는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국회를 향해 어떻게 자기 몸을 이끌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장갑차를 온몸으로 막은 저 청년은 대체 누구일 수 있는 걸까. TV를 보고 마냥 놀라고만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만큼, 계엄군을 마주하며 인간 바리케이트를 형성하고 있는 저들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들었다.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저이가 말하는 ‘종북’과 ‘반국가세력’은 야당을 뜻했던 것일까? 그래도 대략 국민의 절반 정도가 지지하는 정당일 텐데, 설마 국군통수권자가 군사력을 동원해서 잡아들이려고 할 수 있는 건가. 여전히 믿기지가 않지만, 믿고 싶지 않은 장면과 소리를 이미 너무나 많이 보고 들어버린 것 같다. 탄핵이 기각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모두가 2차 계엄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혹자는 현실적으로 2차 계엄이 발동될 리 없다고 말한다. 군인과 경찰들이 더이상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들이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건 옳지 않은 일에 대한 정의감과 두려움, 자기 판단에 대한 신뢰 덕분이었을거다. 하지만 헌재에서 비상계엄이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대체 군인들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항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 죽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건가? 국회를 군인들이 봉쇄해도 문제없다는 건가? 계엄 정도는 그냥 넘어가지는 건가? 대통령 권한의 악의적 남용에 눈 감고 대체 어떤 미래를 모색하자는 건가?

202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