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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경북형 재선충 대응 모델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가운데, 또 다른 산림 재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바로 ‘소나무 재선충병’이다. 감염된 소나무는 탄소 흡수 능력을 상실하고 고사하며, 이는 산불 확산 위험을 더욱 높인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 중 산림 부문이 3,200만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전체 감축 목표의 11%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는 국내 등록 자동차 2,550만대의 연간 배출량(3,060만t)을 초과하는 수준이며, 2024년 탄소배출권 가격 기준으로 약 3,85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재선충 확산으로 인해 이 같은 탄소흡수 효과가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탄소 흡수량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므로, 재선충 대응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2020년 기준, 대구의 연간 탄소 순흡수량은 44만9,000t으로, 서울(8만9,000t), 부산(27만7,000 t)보다 월등히 높다. 경상북도는 전국 산림의 21.2%를 차지하며, 연간 1,028만7,000t의 탄소를 흡수하는 대한민국 대표 탄소흡수원이다. 그러나 2023년 기준, 경북에서는 전국 피해량의 40%에 해당하는 123만7,000 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고사했다. 연구에 따르면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 1그루당 연간 약 20kg의 탄소흡수 기능이 상실된다. 이 같은 피해가 지속될 경우 경북 지역의 연간 탄소흡수량은 최대 100만t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는 산림병해충 대응을 위해 국가적·광역적 협력 모델을 도입한 사례가 많다. 일본은 ‘긴급 방제 지역’을 설정하고 감염목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으며, 드론과 AI를 활용한 조기 탐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에서도 미시간, 오하이오, 인디애나 등의 주(State) 간 협력을 통해 감염목 이동을 제한하고 피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대구·경북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대구경북형 재선충 대응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대구경북 재선충 방제 협의체’를 구성하여 감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공동 방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드론과 AI를 활용한 조기 탐지 시스템을 도입해 감염목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특히, 감염 지역을 공동 관리하는 ‘광역 방제 구역’을 설정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감염목을 제거하고 예방 작업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피해 지역의 산림 회복을 위한 대규모 조림 사업을 추진하여 탄소흡수 기능을 회복하는 장기 전략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탄소흡수원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한다면, 탄소중립 실현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대구·경북이 선제적으로 재선충 대응 모델을 마련한다면,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제는 산불과 재선충 피해를 동시에 막기 위해 대구와 경북이 협력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펼쳐야 할 때다.

2025-02-10

고통의 신비

강길수 수필가 장미 밑둥치들을 살펴본다. 한 주에 두 번은 걸어서 지나는 화단이다. 이곳 장미들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오가는 길손들을 즐겁게 한다. 처음에는 관심 없이 지나다녔지만, 시간이 가며 이 화단 장미들이 유별나게 곱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지날 때마다 장미들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곳 장미는 왜 다른 것들보다 더 곱고 크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낼까. 내가 알아낸 것은, 정원사가 가지들을 자주 잘라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미는 매번 가지가 잘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새 가지가 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젊은이가 더 아름답듯, 새 가지에 피어난 장미꽃이니 더 크고 고왔던 것일까. 문득, ‘고통의 신비’가 떠올랐다. 성당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드리는 네 가지 신비 중의 두 번째다. 네 신비는 ‘환희, 고통, 영광, 빛’이다. 2월 초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장미 밑동은 추운 막바지 겨울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밑동 속에서는 머지않아 다가올 봄에 활짝 꽃피울 새순을 내보낼 준비에 여념이 없으리라. 순과 잎, 꽃의 모양과 색깔을 디자인하고 실행계획도 세울 거다. 묵주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그중 고통의 신비는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까운 주제이다. 불교에서도 인간의 삶을 고해라 하듯이, 고통은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묵주기도의 고통은 죄 없는 그리스도가 온갖 모함으로 받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고통의 정점은 죽음이다. 고통을 감내하고 죽음으로써 부활하는 신비로 묵주기도는 이루어졌다. 한겨울을 능가하는 입춘 꽃샘 한파가 물러나면, 겨우내 준비했던 새순은 눈을 틔우고 자라나 꽃봉오리를 맺을 터. 무르익은 봄날 마침내 꽃봉오리는 화려한 꽃잎을 열어 아름다운 자태를 온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흰장미, 분홍장미, 노랑장미, 붉은장미, 흑장미 모두 피어나 생명의 거리를 밝히리라. 지금 우리 사회도 고통의 신비를 겪고 있다 싶다. 무너져 가는 자유민주국가 질서를 간파한 대통령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 이에 감동한 많은 국민이 거리로, 광장으로, 대통령관저 앞으로, 법원 앞으로, 구치소 앞으로 모여들어 대통령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 그 결과, ‘비상계엄’이 ‘비상계몽’으로 승화하며 많은 20~30 젊은이들을 일깨워 함께 걷게 한다. 구치소에 갇힌 대통령의 지지율이 51%란 여론조사 보도를 몇일 전 보았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이 실감 난다. ‘사필귀정’이란 마음도 든다. 내란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내란 주범으로 몰아 탄핵한 아이러니의 진실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부정선거 발본색원이 12·3 계엄의 주목적임을 민심이 알아챈 것이다. 꽃샘추위가 가고 봄이 오면, 사람들이 오가는 작은 화단에 올해도 고통을 이겨낸 고운 장미가 활짝 필 것이다. 그때쯤, 우리나라도 탄핵이란 고통이 자유민주주의란 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함빡 피어나고 말리라.

2025-02-10

비효율의 아름다움

글을 쓸 때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날도 적당히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이는 제목을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골랐다. 글이 잘 나오는 날이어서 집중을 하고 써내려가고 있는데, 뭔가 서늘한 감각이 들었다. 들리는 음악들이 형편없는 건 아닌데 뭔가 무미건조한 느낌.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맛이 나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 공기를 삼키는 듯 전혀 배가 부르지 않은 느낌. 누구의 음악들인지 확인을 하려고 플레이리스트 하단의 글을 봤더니 아뿔싸, ‘이 플레이리스트는 AI로 자동 생성된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 사람의 음악 애호가로서 위기감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어땠는가. 갖고 싶은 음반의 발매 날짜를 손꼽아 기다려 레코드 가게에 간다. 음반 한 장을 들고 집에 달려온다. 조그만한 라디오 데크에 CD나 테이프를 넣고 노래가 재생되길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앨범 속지를 꼼꼼히 살피며 정성스레 음악을 들었다. 노래를 거의 다 외울 때까지 그것을 반복하곤 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다음은 디지털 음원의 시대. 음반을 사서 뛰어오는 설렘과 속지를 읽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중한 선곡을 통해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다 그 선곡하는 행위마저 사라지고 만 것은 최근의 일이다. 타인들이 선곡해 놓은 플레이리스트들을 재생하곤 하다가 이제 그 시기마저 넘어 사람이 만들지도 않은 음악을 듣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음악 듣는 방식은 비효율에서 효율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변모해왔다. 음반을 사러 가는 물리적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노래를 고르는 생각의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급기야는 생산자들의 번거로움 마저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내게 음악을 듣는 행위는 정신에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 그런데 오늘 나는 문득 이 행위가 더 이상 나의 정신에 그 어떤 영양도 제대로 공급해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사진들도 그렇다. 어릴 적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보관되어 언젠가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 그 시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 준다. 2000년대, 디지털 카메라 시절에 찍었던 사진들은 이리저리 뒤섞여 외장하드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지만 어쨌거나 보존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마저 골동품이 되고 휴대폰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게는 이제 어떤 사진이 남아 있는지, 어디에 어떤 시절들이 저장되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해 주신 말씀이 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디지털의 홍수가 내게 준 것은 그야말로 정서적 갈증이었다. 나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 물건을 샀다. 집에 물건을 늘리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들어가는 중고 오디오 데크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카세트테이프 몇 개를 사서 듣기 시작했다. 그 옛날 음반을 사서 들을 때의 감각이 조금이나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후로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불편한 방식으로 음악을 다시 듣다보니 설령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음원을 듣는 때가 있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리스트를 고민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그동안 휘발되기만 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내게 조금씩 남아 머물게 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오키, 모허, Neil Young, Michael Kiwanuka 등의 앨범이 최근에 그랬다. 내친 김에 필름카메라도 하나 장만했다. 1996년에 생산된 자동필름카메라.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꽤 돈이 드는 일이다. 필름 값과 현상하고 스캔을 하는 값까지 생각해보면 셔터 한 번 누르는 데 몇 백 원이 드는 셈이다. 그러니 매순간 신중해지곤 하는 것이다. 숨을 참고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들이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게 된다. 비싸고 불편하지만 이 역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점점 촘촘해지고 시간은 점점 없어진다.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은 유리한 선택이 되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가끔 불편함을 요할 때가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레토르트식품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서글프듯이, 손수 지은 밥처럼 불편한 음악과 사진 같은 것들만이 채울 수 있는 부분들도 있는 것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삶 속에 가끔 이러한 불편함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 주변에 추전하고 싶은 요즘이다.

2025-02-10

질문의 이유

상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언스플래쉬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든 묻게 된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기 위함이거나 사회적 처세술로 비롯된 관성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질문은 언제나 상대에 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상대와 시선을 맞춘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태도로 물음표를 건넨다. 그러니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여기서 ‘무엇’이라는 범주는 너무나도 방대해서 선뜻 대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취향이 확고한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을 수 있다. 대답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겠다. 상대가 내어놓은 답은 놀라울 것이다. 타인의 발자국은 항상 예상치를 벗어나게 되어 있으니. 그의 시선이 닿은 세계가 모여 한 사람을 그리는 무늬가 된다. 낯선 상대는 어느 순간 형태를 갖추고 내 안에 안착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고고한 감식안을 뽐내며 근사한 이야기를 내어주고 싶지만, 내 삶을 구성하는 것은 하나같이 진부하고 소소한 것뿐이다. 세련된 물건으로 가득 찬 가게보단 아무렇게나 방치된 숲이 좋고 떠들썩한 자리보단 홀로 보내는 쓸쓸한 새벽이 편안하다. 힘차게 발을 구르는 날보다 빈둥거리는 시간을 더 사랑하며 재미없고 촌스러운 것에 쉽게 매료된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기에 작가나 책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아직 읽지 않은 책에 관해 답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어쩐지 망설이게 된다. 잠시 뒤로 물러나 한 번 더 생각할 때도 있다. “그 작가를 좋아하세요?” 그와 같은 질문은 평단의 평가나 대중의 시선 따위를 묻는 것이 아니다. 호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명확한 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인공 폴은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시몽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가 미소 짓게 되는 것은 그의 뜻밖의 질문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세요?” 이토록 간단한 질문은 그녀를 치열한 고민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애 관해 생각하는 일을 언제부터 멈추게 되었는지. 폴은 의문한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폴은 스스로를 이미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열정이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애인은 그녀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청년, 시몽의 등장과 함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의 과감함,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경험한다. 폴은 시몽의 편지를 받고 생각한다.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답을 내어놓는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생각의 분투 끝에 다다른 ‘모르겠다’는 결론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매우 심플하다.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 관해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그렇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가장 어렵다. 시몽의 마음을 확인한 폴은 자신의 애인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더라고.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 게.” 그는 브람스 얘기는 집어치우라고 말하지만, 폴은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이건 브람스에 관한 얘긴걸.” 중요한 것은 브람스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브람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괴로움을 느끼는지. 그러한 질문에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된다. 애정과 연민, 사랑과 이별까지도. 상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마지막 장을 덮어도 마침표보단 물음표가 남는다. 그 어려운 영역을 끝끝내 더듬겠다는 의지, 희미하게 보이는 윤곽을 붙잡는 노력이 우리를 가깝게 만든다. 질문의 이유는 그런 것이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2025-02-10

서울구치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금 서울구치소는 서울에 있지 않다. 의왕에서 성남 가는 방향에 있다. 옛날에는 경성감옥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대문형무소라 했다. 8·15 해방 후에 서울형무소라 했다. 1967년에 서울구치소로 바뀌었어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계속 있었다. 1987년 11월 15일에 지금의 의왕시 포일동으로 이전했다. 나는 1984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는 제5공화국 시절이다. 2학년이던 1985년 11월 18일 아침 8시, 서울 시내 14개 대학 학생 191명의 한 사람으로 민정당 정치 연수원 3층 건물에 들어갔다. 점거농성이었다. 학생들은 건물 안의 책상 등 집기들을 가져다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에 바리케이트를 쳤다. 경찰 진입에 대비한 것이었다. 불이 잠깐 났던 것도 같은데, 위험하다고들 하며 금방 꺼버렸다. 관련 기사는, 소방차 여덟 대가 출동해 옥상의 학생들에게 물을 뿌렸고, 2,100여 명의 정사복 경찰들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옥상 철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여섯 시간 반의 농성은 경찰 ‘백골단’이 옥상 철문을 절단하고, 학생들을 한쪽으로 내몰아 몽둥이로 두드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날 하늘에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부모님들이 걱정한다고, 농성을 풀라고, 선무방송을 했다. 그때 학생들은 ‘점거 농성’을 ‘자살택’이라고 불렀다.‘자살’이란 체포를 면할 길 없음을 의미했다. ‘택’이란 ‘전술’을 뜻하는 ‘tactic’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체포, 연행된 학생들은 각기 소속된 대학 근처의 경찰서로 옮겨졌다. 나는 관악경찰서로 옮겨져 조사를 받았다. 저녁 여섯 시가 조금 지났을까, 담당 형사가 “전원 구속”이라며,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 ‘전원 구속’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되었다. 지난번 서부지법 사태가 날 때까지 꼭 그런 줄만 알았다. 서부지법에 진입한 청년들을 “전원 구속”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인터넷을 뒤졌다. 실제 구속자는 82명에 ‘불과’했다. 나는 ‘선별’된 82명 중의 한 사람이었고, 그나마 기소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때 3년형인가를 받은, 같은 과 선배의 모습을 지금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대학 2학년생, 서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열흘을 관악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내고, 서울구치소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이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현저동에 있던, 지금의 의왕으로 옮겨지기 직전의 서울구치소에서 열흘을 보냈다. 나머지 열흘은 의정부교도소로 보내졌다. 이렇게 열흘씩을 법무부 교도 행정을 ‘속성 이수’한 끝에 다시 사회로 내보내졌다. 사십 년이 흐른 지금, 불법체포, 불법구속에 항거한 청년들이 ‘폭력시위’ 죄목으로 ‘전원 구속’이라 한다. 부정선거를 밝히려고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은 누명을 쓰고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그 청년들의 미래를,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힘겹게 독재와 싸워 얻은 ‘87년 체제’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부정선거’가 ‘87년 체제’의 국민주권 원리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2025-02-10

밥 짓는 연기 사라진 한국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귀한 손님이 오면 커다란 밥그릇 가득 고봉밥을 담아 고깃국과 함께 내어주는 게 가장 융숭한 대접이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30~40년 전 이야기다. 20세기 한국인의 주식은 누가 뭐라 해도 ‘쌀’이고, 쌀로 만든 ‘밥’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그에 따라 식습관과 선호하는 먹을거리 역시 달라졌다. MZ세대는 아침밥을 포기하고, 간단한 시리얼이나 과일을 먹으며 등교나 출근을 준비한다. 독거세대가 늘어나며 아예 아침을 거르는 이들도 부지기수. 당연지사 쌀의 소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가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나왔다. 이 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올해 식량용 쌀 소비량은 273만t으로 예측된다.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들 게 명약관화해 보인다. 내년에는 269만t으로 떨어지고, 2030년엔 253만t, 2035년이 되면 233만t으로 감소될 것이라는 게 연구원의 전망. 해마다 큰 낙폭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밥 짓고, 먹는 풍경도 바뀌게 만들었다. ‘20세기 고향 풍경’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 있었다.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철수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머니의 가마솥밥을 대신하는 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밥’이다. 즉석밥의 시장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국민 1인당 평균 식량용 쌀 소비량은 현재 55.8㎏. 30년 전인 1994년 소비량 120.5㎏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년 이상 세대들에겐 밥 짓는 연기조차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10

경북도민 역외 진료비 전국 최고, 대책은 없나

정부의 지방의료 육성 정책에도 지방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으로 지방에 거주하는 중증·암환자들의 서울 소재 의료기관 이용이 연간 1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폐암, 간암, 위암 등 주요 암의 경우 지방거주 환자의 40% 이상이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이는 5년 전보다 15%가 늘어난 수치라고 하니 정부의 지방의료기관 육성책 발표와 별개로 지방의 환자들은 여전히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도 지역 의료체계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거점병원과 국립대병원을 서울의 빅5 수준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권역별로 3년간 최대 500억원 지원하고 지역인재 의대 전형비율을 현재 40%에서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의정갈등이 1년 이상 끌고 있는 탓도 있으나 지방의 환자들은 피부로 느낄만큼 지방의 의료수준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이 많은 경북은 외지 진료 비중이 더 심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경북지역 주민이 치료를 위해 1년간(2023년) 타지에서 지출한 의료비가 무려 2조4380억원이다. 경북은 대구, 부산, 경남, 울산 등 경상권 권역에서 타지 의료기관 지급 진료비 비중이 36.5%로 가장 높다. 시군별로 보면 도서 지역인 울릉군이 86.6%로 가장 높았고, 영양군과 청송군이 80%를 상회했다. 정부가 밝힌 지역거점병원 육성이 시급히 이뤄지지 않는 한 환자의 수도권 쏠림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렵다. 문제는 환자의 수도권 쏠림과 동시에 지역자본의 역외유출도 심화된다는 사실이다. 환자의 역외 쏠림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노령화가 되는 미래에는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소재 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거점병원 육성 정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경북의 경우 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과 국립안동대 의과대 신설 등이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한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025-02-10

TK에서는 왜 ‘지방의원 후원회’ 저조할까

지난해부터 지방의원도 국회의원처럼 후원회 개설이 가능해졌지만, 대구·경북지역 지방의회에서는 실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원 정치후원금 제도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도입됐다. 지방의원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연간 모금 한도는 광역의원 5000만원, 기초의원 3000만원이며 선거가 있는 해는 두 배까지 가능하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광역·기초의회를 통틀어 대구지역(161명)은 후원회를 개설한 의원이 전혀 없었고, 경북은 341명 중 3명(경북도의원 2명, 구미시의원 1명)만 후원회를 개설했다. 전국적으로는 지방의원 3865명 중 354명(9.2%)이 후원회를 두고 있다. 광역의회는 전북도의회가 개설률 37.5%로 1위를 기록했고, 서울시의회 30.4%, 경기도의회 28.8%, 전남도의회 26.2%, 인천시의회 25% 순이었다. 기초의회는 2988명의 의원 중 180명(6%)이 후원회를 개설했다. 수도권과 호남지역을 제외하고 지방의원들이 후원회제도를 외면하는 이유는 ‘비용부담’ 탓이 크다. 후원금을 받더라도 사무실 유지비용과 직원 인건비를 충당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주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후원회 설립절차가 복잡한 것도 문제다. 후원회 등록신청, 회계책임자 신고 등이 까다롭고 후원회를 설립한다 해도 정치자금 수입·지출 절차, 회계보고서 작성과 제출 방법 등이 어려워 지레 포기를 한다는 것이다. 지방시대의 중심에는 지방의원들이 있다. 지방의원들의 입법 활동과 예산 심의, 집행부 감사 등은 생활정치를 정착시키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후원회 제도는 재력은 없지만 역량 있는 청년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순기능도 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적했듯이, 선관위를 중심으로 후원금 회계프로그램 사용법과 기부금 사용방법, 사례 교육 등을 통해 지방의원들이 후원회제도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5-02-10

퍼즐

우리는 저마다의 조각을 손에 쥐고 살아간다. 어떤 조각은 금세 자리를 찾아가지만 어떤 조각은 어디에 끼워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때때로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하다가 뒤엉켜 버리는 순간도 있다. 결국 모든 조각은 저마다의 자리가 있음을 자각한다. 어린 시절 색색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가 하나둘 맞춰지며 선명한 그림이 되어가는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퍼즐 한 조각을 들고 침침해져 가는 눈으로 끼워넣고 있을 때가 많다. 어린 시절 단순한 놀이처럼 여겼던 퍼즐이 이제는 삶의 은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조각이 흩어진 채 시작되지만 차근차근 맞춰 가다 보면 선명한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삶의 조각들은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순조로웠고 계획했던 일들이 잘 진행되어 조각이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느낀 순간들도 있었지만 애써 끼워 넣은 조각이 어긋나고 방향을 잘못 잡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었다. 내 삶의 조각은 언제나 하나가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맡아야 할 가장의 자리에 엄마가 있었고 집 안의 엄마 자리는 늘 부재중이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생각’이라는 시에 나오는 시구처럼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난 늘 엄마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루를 보냈다. 하교하는 길에 소낙비가 내려도 내게 우산을 가져다주는 보호자는 없었다. 내 삶의 퍼즐은 완성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빈 공간이 못 견디게 신경 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조각 하나가 없는 모습 그대로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었고, 때로는 빠진 조각 하나의 이야기로 의미가 짙어지기도 했다. 빠진 조각을 찾기 위해 나의 여정은 더 단단해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라진 채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조각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나는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 앞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단순히 조각 하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을 찾기 위해 걸어온 모든 과정 속에서 자신이 성장해 갔던 것은 아닐까. 김경아 작가 누군가에 기대어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미완의 조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그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가기 위해 뾰족한 부분은 깎아내고, 네모진 부분은 둥글게 다듬으며 점점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했다. 어쩌면 퍼즐은 처음부터 미완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든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져야만 그림이 완성된다고 믿지만 사실 인생이라는 퍼즐에는 처음부터 빈 공간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빈틈이 있다고 해서 그 그림이 불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여백이 우리를 더 성장하게 만들고 새로운 조각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조각이 다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의미 있는 한 조각을 발견하는가일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퍼즐판을 바라본다. 몇몇 조각은 이미 제자리를 찾아가 또렷한 그림을 이루었지만 아직 맞춰지지 않은 빈 공간들을 끝까지 다 맞출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빈자리조차 하나의 계단임을 안다. 언젠가 알맞은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설령 몇 개의 조각이 끝내 남더라도 그것이 곧 나만의 그림으로 남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조용히 다음 조각을 맞출 순간을 기다린다. /김경아 작가

2025-02-10

발칸반도 민족주의 ③민족주의 파괴력

연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은 또 한 번 발칸반도를 아귀지옥으로 변하게 했다. 인류전쟁사에 정점(?)을 찍는 폭력이 일어나면서 발칸은 또 피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히틀러는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어서 살육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지구 화약고’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른다. “보스니아 분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조직적이자, 힘과 힘이 충돌한 필연적 사건이었다.” 1993년 영국 수상 존 메이저가 한 말이다. 하긴 발칸반도와 인류전체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를 두고 비교해보았을 때 발칸반도 학살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타인종,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과 우리민족이라는 우월성이 빚어낸 학살,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한 고도화된 폭력이었다. 한 나라에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에서는 내 뜻에 반하는 세력이 있는 이상 필연적으로 폭력이 동반된다. 국제질서는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두들겨 패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발칸반도에서 상대적으로 인구 비율이 높은 민족은 전 지역에 걸쳐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뿌리인 본국(예를 들어 세르비아 같은)의 지원을 얻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예를 들어 보스니아)에서 독립을 외치며 분쟁을 일삼는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한 민족이 각기 다른 나라에 갈려 살면서 그곳에서 독립을 요구해보라. 기막힌 노릇이 아닐까. 우리나라 인천, 혹은 제주도에 일본인들, 혹은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 살면서 스스로 독립국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것도 본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말이다. 발칸반도에는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 발칸반도 맹주를 자처하면서 타 인종에 대한 살육과 폭력이 정의로 포장되는 악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들만의 민족은 광기에 휩싸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자가발전해 자긍심을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상승기류에 대항하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로 일순간에 내몰리고 자연적으로 배타적,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판이 짜인다. 더구나 같은 민족이면서 본적도 만져본 일도 없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도 없는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할 말을 잊게 한다. 21세기에도 다르지 않다.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대루마니아주의와 슬라브족 첫 제국을 건설했다는 대불가리아주의는 오랜 갈등으로 늘 반대편에서 총칼을 들이댄 맞수이자 관객의 입장에선 폭력의 세트다. 발칸반도 동남부를 대표하는 대세르비아주의야 말할 것도 없다. 코소보 인종청소 주역들이니 말이다.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해결된 듯하지만, 세르비아에 의해 저질러진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불안한 산맥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는 스스로 발칸반도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부유한 나라이자, 그만큼 뛰어난 민족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나라 이름에서 보듯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말이 한 국가이지 한 지붕 세 가족이 험악한 인상으로 으르렁거리는 형국이다. 이 외에도 동방정교와 로마가톨릭, 이슬람 등의 종교 갈등은 또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글쎄…. 민족과 종교와 영토분쟁에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이들의 조각보 같은 반도의 미래를 신인들 알까? 안다면 1천 년 전에 해결했겠지만 말이다. 민족이란 유기체는 어떤 사건과 역사를 체험하고 공유하느냐에 따라 개념이 포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상은 물론 생각의 공유에 따라 민족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처럼 민족주의가 마치 고대국가 혹은 중세 때부터 시작되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무지막지한 착각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시발점이다. 울릉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벗어난 적 없는 할아버지와 흑산도 할머니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사투리로 무장되었다면 소통에 애를 먹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박필우 작가 하긴 북한과 일본이 전쟁이 나면 어딜 도울 것이냐의 물음에 일본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필자의 주위에 태반이 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민족이 빨갱이보다 하수가 분명하다. 비약하면 아래로부터 단 한 번도 민중항쟁이 일어나지 않은, 말 잘 듣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족 일본이란 나라도 있다. 단언컨대 착한 백성, 그것이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다. 죽음에 떠밀려도 감동의 눈물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순종의 미학 말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어 끝으로 맺는다. “어떤 이는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지만,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낸다” - 오스카 와일드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2-10

이재명 대표의 적은 이재명이다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이 기세다. 6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39%, 더불어민주당이 37%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내란 혐의로 탄핵 소추당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지지율도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까지 내리 참패했다. 그런데 ‘친윤’(친 윤석열)은 기세다. 심지어 이달 초 윤 대통령 지지율이 51%인 여론조사까지 나와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대개 20%대를 저공비행하다 비상계엄 직후 10%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상승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의원들이 면회하려고 줄을 서 있다. 지난 3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에 이어 7일 윤상현·김민전 의원이 면회했다. 10일에는 김기현 전 대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이철규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5명이 찾아간다. 같은 NBS 조사에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55%)이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40%)보다 많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50%)도 재창출해야 한다는 의견(41%)보다 많다. 비상계엄에 대해 여전히 비판 여론이 더 높다.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뒤집어진 건 아니다. 비상계엄은 온 국민이 눈으로 지켜봤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뒤 ‘차기 정권은 민주당 것’이라고 당연시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여론이 묘하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뜨지 않는다. 대체로 ‘정권교체’ 의견이 50% 근처라면, 민주당 지지율은 40% 정도, 이 대표 지지율은 30% 근처다. 정권이 바뀌긴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 대표는 더 싫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은 비호감 경쟁이었다. 윤석열 후보 지지가 많은 게 아니라, 이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이제 윤 대통령은 물러날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차기 대통령 후보다. 여론조사에 이상 조짐이 보이는 건 이 대표 책임이다. ‘이재명 포비아(공포)’라고 한다. 보수세력에 이 대표 집권은 공포다. 지난 총선 공천 때 적대 세력을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이재명 포비아’는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려는 이 대표의 꼼수도 ‘신 스틸러’다. 이 대표 재판과 윤 대통령 탄핵이 시간 경쟁을 벌인다. 이 대표는 확정판결로 피선거권을 잃기 전에 탄핵하고,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선거가 시작되면 처벌이 어려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되자 검찰이 기소를 철회했다. 그러니 보수층 유권자는 탄핵보다 이 대표 재판을 먼저 끝나야 한다고 매달린다. 탄핵하더라도 당장은 지연시켜야 이 대표 출마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탄핵 반대 여론을 자극하는 게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공직을 맡을 수 없다. 당연히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하지 못한다. 6-3-3원칙(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에 따라 2023년 9월 끝났을 재판이다. 이 대표의 지연 전략 탓에 아직도 2심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4일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를 위헌이라고 제소했다. 2021년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한 조항이다. 누가 봐도 지연 꼼수다. 그는 항소심 통지서 수령도 계속 회피했다. 변호인 선임을 두 달 이상 끌었다. 추가 증인도 13명이나 신청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아예 이 법률 조항을 없애는 개정을 추진한다. 이 재판만이 아니다. 대장동 재판에서도 대부분의 증거에 부동의하고, 증인 148명을 법정에서 모두 다시 심문하도록 했다. 재판이 빨리 진행되면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 칩거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나. 정치인이 민심을 얻지 못하면 모두 잃는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9

대구시 공공공사 발주, 경기부양 효과 나오길

지난 3일 동북지방통계청이 발표한 12월 대구경북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대구지역 건설 수주액은 2408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건설공사 총 수주액의 겨우 1.0%다. 대구지역 건설업계의 건설공사 수주 규모가 전국 1% 수준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물론 12월 실적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지만 대구 경제의 전국 비중에 비해서도 턱없이 못 미치는 결과다. 전년동기 수주액(8808억원)과 비교해도 72%가 급감한 수치다. 통계청은 재건축 주택, 신규주택, 학교, 병원 등 민간부문 공사가 저조했던 것이 원인으로 분석했다. 대구 지역 부동산 경기는 수년째 동면 상태다. 건설경기를 뒷받침하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으니 건설경기가 좋을 리 없다. 게다가 고물가, 고금리,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건설업계의 유동성이 압박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 미분양 주택은 8000가구가 넘으며 집값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건설 관련 산업 전반이 무너질지 모른다. 대구시가 연초부터 대형 공공건설공사 조기 발주를 서두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대구시는 지난주 대형 공공공사 발주 계획 설명회를 열었다. 100억원 이상의 대규모 공사에 대해서는 계획단계에서부터 지역건설업계에게 추진계획, 발주시기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그들이 공사를 수주하는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특히 공공건설공사에서 지역제한 입찰이나 지역의무 공동도급 우선시행 등 지역업체 보호방안을 이행하도록 발주처를 독려했다. 이 조치와 관련 홍준표 대구시장은 “수주 가뭄을 겪는 건설업계의 시름이 조금이나마 해소됐으면 한다”며 대구시 공사 발주가 건설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희망했다. 어려움을 겪던 건설업계에게는 단비같은 소식이다. 특히 건설업계의 의견을 청취해 지역 업체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행정이 앞장서겠다고 하니 기대감도 크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다. 지방정부와 지역경제가 힘을 모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야 한다.

2025-02-09

시추 한번으로 “석유없다”… 성급하지 않나

포항 영일만 앞바다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첫 탐사시추에서 기대했던 수준의 석유·가스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는 첫 시추공 주변의 다른 6개 유망구조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추가 시추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프로젝트 자체가 사기극이라며 책임을 묻겠다는 태세다. 정부는 지난 6일 “시추결과 가스의 징후는 발견했으나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은 아니었다”며 사실상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된 것처럼 발표했다가, 하루 뒤인 7일에는 “가스의 징후가 좀 있다. 후속 탐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며 말을 바꿨다. 정부의 이런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두고, 국민의힘에선 관련 공무원들이 야당 눈치를 보면서 성급하게 프로젝트 무산 발표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보면, 세계 어느 나라든 첫 시추에서 유전이 발견되는 케이스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선 세계 최대 규모인 남미 가이아나 유전은 14번째, 노르웨이의 에코피스크 유전은 33번 만에 시추에 성공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대부분 해외 유전 개발 사업들은 시추를 거듭하면서 확보한 시료를 분석해 성공률을 계속 높여간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한 번 시추해 봤는데 바로 석유가 나오면 산유국이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고 한 말에 공감이 간다. 첫 시추공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성공률이 20%에 달한다는 것은 탐사 시추를 포기할 수 없는 확률이다. 정부와 석유공사가 지난해 6월 첫 시추를 시작할 때도 최소 5번의 시추공을 뚫겠다는 전제가 있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변변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 쉽게 접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국운이 걸린 자원개발이 정쟁에 발목이 잡혀 무산되는 것은 후손에게 죄를 짓는 행위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긴 안목으로 시추작업을 진행해야 하고, 정치권은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2025-02-09

그래도 봄은 오리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며칠째 입춘 한파가 사납게 몰아치고 있다. 마당에서 장작을 패다가 세차게 몰아닥치는 바람 등쌀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 많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생각한다. 크고 작은 낙엽과 비닐 쪼가리, 몸통 잃은 감꼭지까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동쪽과 서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가 힘에 겨운 듯 구슬픈 울음소리를 터트리곤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가장 추운 시기를 설 이후라 여겼다. ‘논어’에서는 이것을 ‘세한(歲寒)’이라 기록한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노라.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1840년 안동 김씨의 득세로 졸지에 제주 대정으로 유배 가야 했던 추사 김정희는 이 구절에 착안하여 1844년 ‘세한도’를 그려 이상적(李尙迪)에게 선물한다. 풍양조씨가 조정을 주물렀을 때 추사는 이조판서로 재직하여 문전성시를 경험한다. 하되 세상인심은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법. 대정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귀양살이로 고초를 겪자 그를 찾아오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그러던 차 중인(中人) 출신 역관이자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이 책을 바리바리 챙겨 천릿길을 달려오자 그에 감읍한 추사가 완성한 명화가 ‘세한도’다. 입춘 한파를 겪으면서 날짜를 헤아리니 1월 29일 설 지난 지 어언 열이틀 지났다. 그래서 세한 추위라 말한다 해도 그다지 그르지 않을 성싶다. 이번 추위가 닥치기 전에 썩어 내려앉은 마루를 수리하고, 너덜너덜해진 담장을 고치고, 지저분한 뒷마당을 산뜻하게 단장했다. 설맞이 행사로 생각하여 지출과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말끔한 2월과 만난 것이다. 어느 틈엔가 히아신스 초록초록한 새싹이 고개 내밀고 있기로 적잖게 놀랐다. 아니, 이런 무지막지한 날씨에 봄맞이를 이렇게 서두르다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히아신스를 사진에 담고, 작년에 잘라낸 잔디로 녀석을 덮어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앞에 자리한 홍매(紅梅)에는 어느새 몇몇 꽃망울이 하늘을 향해 몸을 열었다고 한다. 지난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청통 와촌에 사는 선배 교수가 집안일을 도와달라 청했기로 유쾌한 노동과 흐뭇한 점심 밥상 앞에서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가슴 깊은 곳에 무엇인가 묵직하고 답답하게 터를 잡고 앉아서 24시간 내내 찍어 누르는 기분이다. 그런 연유로 누구와 만나더라도 흔쾌하거나 상큼하지 않고 뭔가 엉키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 비루함과 난잡함, 끈적거림과 추잡함 같은 것이 우리 국민을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 저 인간을 저토록 추악한 타락과 방종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들은 그 날밤의 날벼락 같은 ‘비상계엄’과 ‘포고령’을 낱낱이 기억한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과 눈더미를 견디며 탄핵과 구속을 외쳤는가?! 그자는 재판정에서 치사하고 비루한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구명도생을 꿈꾸지만, 우리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은 끝내 오고야 말리라!

2025-02-09

짠테크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짜다’와 ‘재테크’가 합쳐진 ‘짠테크’ 바람이 분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MZ세대와 직장인의 지출이 줄면서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과거 기성세대가 무조건 안 쓰고 안 먹던 방법으로 절약했던 것과는 다르다. 요즘 신세대는 쓸 것은 쓰되 알뜰하게 쓰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그것이 짠테크다. 이 흐름이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자리를 잡을 지 아니면 일시적 흐름에 그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불황으로 소비패턴에 변화가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즘 젊은이가 많이 찾는 온라인의 짠카페 방에는 자신만의 절약 필살기가 자주 등장한다. 금리가 좋은 짠테크 통장을 소개하기도 하고 자동차 기름 절약하는 방법, 싼 제품 제대로 구입하기 등 자신이 경험한 짠테크 방법을 공유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 온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10여 년 전부터 유행했던 가성비(價性比)를 소비선택의 주요 포인트로 삼는다. 호주머니 사정이 악화되면서 가격 대비 성능 좋은 상품을 골라 찾는 알뜰소비로 바뀌는 것이다. 전 제품 5000원 이하의 가격을 고수하는 다이소 매장을 찾는 이가 늘어난 것은 이런 변화의 반증이다. 특히 다이소 매장에 등장한 저가 화장품이 소비비자의 인기를 모으면서 편의점에서도 3000원짜리 저가 화장품이 등장하는 이색적 현상도 빚어졌다. 짠테크의 본뜻은 안 쓰겠다는 것보다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해 재화를 모으는 것이다. 명품 매장에 줄서지 않고 경기변화에 잘 적응하는 신세대의 새로운 소비 패턴이 바로 짠테크다. 불황이 낳은 바람직한 소비문화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09

반쪼가리 자작과 아령 사회

유영희 작가 SNS에서 ‘아령 사회’라는 말을 접했다. 우리 사회가 극단만 두툼해지고 중간은 얇은 사회로 되어간다는 뜻이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2024년 조선일보에 홍성국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인터뷰한 내용에도 아령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점점 아령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상대방이 사라져야만 내가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니, 이탈로 칼비노의 환상 소설 ‘반쪼가리 자작’의 교훈이 떠오른다. 환상 소설이라는 컨셉에 맞게 등장인물을 기상천외하게 설정했지만, 양극화된 현실을 풍자한 깊이가 남달라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에 나갔다가 몸이 세로로 반쪼가리가 된다. 하지만 환상 소설답게 그는 죽지 않고 반쪼가리 상태로 각각 따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먼저 돌아온 반쪼가리는 농노들의 가축을 반쪽 내는 등 악의 화신처럼 잔인하게 군다. 농노들이 그를 싫어하고 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선한 반쪼가리는 분명히 착한 의도이기는 한데, 농노들에게 요구하는 도덕 기준이 너무 높고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한센병 환자에게 영혼도 치료해야 한다면서 도덕적인 행동을 강요하며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던 음악 연주와 놀이를 금지했다. 결국 농노들은 악한 반쪼가리 이상으로 선한 반쪼가리도 증오한다. 다행히 두 반쪼가리가 모두 한 여자를 좋아하자, 그 여자는 두 반쪼가리와 한날한시에 결혼을 약속하여 그들을 결혼식장에서 만나게 한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두 반쪼가리의 몸을 붙여 꽁꽁 묶어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자 반쪼가리들의 극단적 행동은 멈춘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면 뻔한 교훈이 되었겠지만, 반전의 여운이 깊다. 현대 사회가 너무나 복잡해졌기 때문에 아무리 온전한 몸을 가진 자작이라도 혼자 정치를 잘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세상이 비로소 잘 돌아가게 되었다고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말은 홍상국 전 의원의 제안과 상통한다. 그가 아령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우리 삶의 70~80%는 경제와 관련되어 있으니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에 식견 있는 사람이 국회에 많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결정에 불복하여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사람들이 거의 체포되었다. 그중 이형석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의 집에 한 방송사가 가 보니 지하 작은 방이었다고 한다. 아령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선동가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런 사람을 이용한다는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주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경제성 없어서 폐기되었다는 뉴스가 대서특필되었다. 대왕고래프로젝트는 전문가가 경제성을 증명할 수 있는 사업이다.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정치 논리로 사업을 추진하지 말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진짜 전문가들을 기용해서 아령 사회를 끝낼 수 있어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 기대해본다.

2025-02-09

딥시크에서 대한민국으로

김규인 수필가 중국 량원펑이 저사양의 엔비디아 H800 칩을 2천 개만 사용해 딥시크를 개발했다. 미국의 주요 AI 기업뿐만 아니라 챗GPT는 고사양의 H100 칩으로 1만6천 개를 사용한 것과 성능은 비슷하다. 딥시크는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안 받는 저사양의 H800 칩을 사용해서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더 크다. 미국은 중국의 최첨단 제품 개발을 막기 위해 트럼프 1기 때부터 중국의 화웨이가 미국산 반도체를 사지 못하게 규제했다. 이런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 때도 그대로 시행하였다.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기술 독립을 이루었고 저사양의 부품으로 딥시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고민도 깊어진다. 미국 인공지능 업체가 반격을 시작한다. 딥시크가 AI 모델 훈련을 위해 오픈AI 데이터 무단 수집 여부를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조사한다. 딥시크가 오픈AI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챗GPT에 버금가는 성능의 인공지능을 개발한 것은 오픈AI의 데이터를 도용하여 이용한 덕에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 00 딥시크의 효율성 높은 인공지능에 알리바바가 다시 새 모델을 출시한다. 중국의 틱톡 운영사인 중국 바이트댄스도 플래그십 인공지능 모델을 업데이트하며 새 모델의 성능이 미국 오픈AI 모델을 뛰어넘는다고 주장한다. 다른 미국의 대형 IT 업계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인공지능 사업을 확산하려고 계획 중이다. 이제까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AI 업계는 빅데이터 센터의 설립으로 수준 높은 계산, 많은 에너지 소비, 최첨단 반도체 칩을 사용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딥시크의 개발로 저렴한 인공지능 모델 개발이 확산하면 굳이 엔비디아의 비싼 칩을 사용하지 않고 개발하는 추세가 확산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에 기회도 함께한다. 인공지능 개발의 효율을 다시 생각하는 순간이다. 인공지능에 있어 선진 업체를 추격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IT와 반도체 업체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으로도 유사한 성능을 나타내는 중국의 딥시크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가.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독점 납품하는 SK하이닉스나 납품을 위해 품질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단기적으로는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AI 반도체 시장의 저변이 커질 수 있어 긍정적인 면도 크다. 그동안 높은 장벽으로 고전하는 삼성전자나 IT업계도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 같다. 절박한 정도가 때론 사업 승패를 좌우한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독립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였을까. 우리에게도 그러한 고민이 지금 필요하다.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 이 둘이 효율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세계를 제패하는 인공지능을 한국에서 개발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엔비디아 일변도의 인공지능용 칩에서 이제는 우리도 독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딥시크의 성공이 대한민국 인공지능과 반도체, 제조업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인공지능과 첨단 산업의 선두 주자로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2025-02-09

졸업식

졸업식 풍경. 그날, 2월의 햇살은 화사해서 슬펐다. 눈가를 찡그리며 터덜터덜 걷는 뒤로 졸업을 서로 축하하는 가족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졸업장 하나만 들고 나서는 걸음이 무거웠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데 멀리에서 여동생이 작은 꽃다발 하나를 들고 뛰다시피하며 내게 오고 있었다. 하던 일이 잘못 되어 그 뒤처리를 하느라 부모님은 결국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뒤늦게 꽃다발을 사서 여동생에게 준 것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나의 졸업식이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졸업은 내겐 의미가 깊은 것이었다. 누구의 졸업식을 가던 축하하는 마음을 듬뿍 가지고 갔다. 결혼을 하면서 내 아이들의 졸업식만큼은 크게 축하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큰 아이도 작은 아들도 자신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며 대학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졸업장 받아오는 것으로 끝이었다. 1961년에 개정된 교육법에 의해 2월 졸업은 꽤 오래 지속되어왔다. 그 당시의 졸업식은 졸업생이나 가족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후배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이란 노래를 불러주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졸업식 풍경은 점차 엄숙함과 경건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한때는 뒤풀이로 밀가루 뿌리기나 계란 던지기 등의 문화가 생겨났었다. 그것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건전한 졸업 문화를 조성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코로나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졸업식의 광경은 또한번 달라졌다. 운동장에서 하던 졸업식은 실내로 그 자리를 옮겨 비대면으로 시행되었고, 무겁고 엄숙하던 졸업식은 축하의 의미가 강한 축제의 느낌이 가미되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졸업식에 간다고 해서 놀랐다. 대부분의 졸업식이 2월이라고 생각했었는데, 1월에 하는 졸업식이라니. 학사 일정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신학기 준비기간 조성 등으로 요즘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12월말이나 1월 졸업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집앞 강변 산책을 하며 대나무숲을 걸었다. 대나무는 일정한 크기가 되면 마디를 만든다. 그것이 대나무가 속이 비어 있음에도 곧고 바르게 높이 자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속이 텅 비었는데도 거센 폭풍에 휘어질 뿐 쉽게 부러지지 않는 것이 마디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것은 성장의 발판이자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생장점인 것이다. 졸업도 하나의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매듭이며 마디이다. 한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만큼 얻지 못했어도 그것을 하나의 마디로 매듭짓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 과정에서 성취한 것이 있다면 축하하며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인간의 지혜가 졸업식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우리는 여러 번의 졸업식을 거치면서 살아간다. 공식적인 배움의 장을 지나가면서 맞는 졸업식도 있다. 사설기관에서 일정 기간을 채워 무엇인가를 배우고 끝내는 일도 있다. 집 근처의 평생대학이나 주민센터를 통해 다양한 취미나 운동에 몰두하며 분기별로 수료를 하고도 있다. 그런 작고 큰 졸업식을 거치면서 우리는 삶의 크고 작은 마디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 어떤 마디는 다소 빈약하고 어떤 마디는 좀더 단단하게 맺으면서. 무엇보다도 인생의 가장 커다란 졸업식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맞게 될 것이다. 졸업하는 주인공은 나이지만 그 축하를 직접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때 얼마나 진정으로 나를 아꼈던 사람들이 찾아오는지에 내 졸업식 점수가 매겨질 것 같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평가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와도 괜찮을 것 같다. 참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같이 축하해주면 참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마지막 졸업식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작은 매듭을 지어가는 평범한 삶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산책을 마쳤다. 강물에 반사되는 햇살이 눈부시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2-09

시민과 함께하는 APEC, 경주의 새로운 변화 이끈다

주낙영 경주시장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여덟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0월 말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위상을 드높이고, 미래를 향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경주시는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상회의장 개보수, 숙박시설 정비, 미디어센터, 만찬장, 전시장 건립 등 기본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주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대적인 도로 정비와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경주가 찬란한 역사를 품은 문화도시이자 현대적 관광 인프라를 갖춘 도시라는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릴 생각이다. 주회의장인 보문관광단지와 더불어 불국사, 경주IC 등 주요 진입로를 포함한 5개 노선에 총 사업비 247억 원을 투입해 도로 포장, 조명 설치, 보행로 및 자전거도로 정비 등 대대적인 정비를 진행한다. 특히 보문관광단지는 1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음악분수광장, 산책로 정비, 경관조명, 미디어파사드 등 야간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시는 주요 진입로를 중심으로 노후 주택과 담장 정비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울산 방면, 포항 방면, 경주IC 방면 등 주요 도로변의 노후된 건축물과 담장을 경주만의 특색있는 디자인을 입혀 도시의 품격을 한층 높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노선별 사전 조사를 완료했으며, 주택가 담장 25곳을 포함해 가로변에 역사성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적용할 예정이다. 경주시의 이 같은 노력에 대해 너무 외형에만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당연히 행사 내용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을 만났을 때 첫 인상이 중요하듯 도시가 주는 이미지도 중요하다. 이번 APEC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세계 많은 정상들과 고위급 각료들, 글로벌CEO들과 전세계 언론인들이 경주를 처음 찾게 될 텐데, 그들은 경주라는 창을 통해 대한민국을 보게 될 것이다. 그만큼 경주가 주는 첫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사실 행사 자체는 역대 어느 정상회의 보다 더 잘 치를 자신이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치른 대한민국이다. 비록 경주가 작은 지방도시이지만, 세계NGO총회를 비롯해 150여 차례의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은 단순한 행사 개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주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따뜻한 미소와 친절, 질서와 청결로 글로벌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아름다운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 경주시는 매월 네 번째 수요일을 ‘APEC 클린데이’로 지정하고, 민관이 함께하는 손님맞이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APEC 클린데이를 통해 지역 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노후 시설물과 다수 민원 취약지 등을 중점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또한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내 집·내 점포 앞 치우기, 우리 동네 꽃밭 가꾸기, 집 앞에 꽃 화분 내놓기 등 ‘시민과 함께하는 APEC 경주 10대 실천과제’를 발굴해 실천해 나갈 예정이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서 동아시아 문화와 교류했던 역사적 전통을 지닌 도시이다. 이제 우리는 그 유산을 계승해 21세기 국제도시로 도약하는 길목에 서 있다.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며, 이를 통해 경주는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남은 기간 철저한 준비로 성공적인 APEC 개최를 이루고, 이를 발판 삼아 경주의 위상을 한층 더 높여야 한다. 시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

2025-02-09

고전으로 세상읽기 ④ 치지-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근본적으로 깨달아야

“‘격물(格物)’은 ‘단지 하나의 사물에 다가가 그 한 사물의 이치를 극진히 궁구하는 것’이고, ‘치지(致知)’는 곧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해 얻음으로써 나의 지식이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격물이 ‘사물 하나 하나’(예, 철수네 집 대나무, 영희네 집 대나무)에 다가가 그 사물들의 이치를 직접 살피는 것’이라면, 치지는 ‘자신의 생각을 통해 그 각각의 사물을 관통하는 하나(‘대나무’라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지식 축적과 함께 이성의 힘을 키우는 구체적 방법인 ‘생각하기’의 ‘치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알아보는 순서는 첫째, ‘생각- 생각하는 존재, 인간’, 둘째, ‘추리- 생각은 추리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이성의 날’입니다. ◇사고실험을 통해 발견된 생각 상대성 이론은 실험실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특허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버는 돈은 저녁때나 일요일에 선술집에 들러 썼으며 한가로운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많은 시간을 생각하는 데 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가끔씩 쉬는 시간이 생길 때면 사무실 책상 서랍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서는 뭔가 갈겨쓰곤 했습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그 서랍을 자신의 ‘이론 물리학과’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풀릴 듯하면서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있어서 답답했다. 그날 밤도 여전히 그걸 알아내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그는 매우 흥분되어 있었다. ”고 했습니다. 이후 그는 대여섯 주 만에 38장의 논문 초안을 완성했습니다. 그 논문이 바로 상대성 이론의 시작이었습니다.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은 실험실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머릿속 ‘생각’에서 탄생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짬이 날 때마다 그리고 자신의 집 침대에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결론이 날 때까지 끝까지 파고든 끝에 마침내 찾아낸 것이 ‘E=mc²’입니다. 머릿속 ‘생각’으로 하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한 자연과학의 위대한 발견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많은 원리와 이론들이 순수한 ‘생각’인 사고실험에서 시작되거나 사고실험을 통해 발견되었습니다. 인문학, 사회과학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이 실험실이 아닌 ‘사고실험’, 즉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유의 출발인 공자와 플라톤의 주장들이 ‘생각’으로부터 나왔고, 중세 주희의 신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이 ‘생각’에서 나왔고, 근대를 선도한 홉스, 로크, 루소의 자유주의 사상들이 당연히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주희는 ‘대학’의 ‘경문1장’ 해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내 마음의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는’ 상태는 어떤 의문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답이 나올 때까지 그 이상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거기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물론 그 ‘생각’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핵심은 ‘생각’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료를 찾아봐야 할지, 무엇을 먼저 알아봐야 할지 등에 대한 답도 모두 스스로의 ‘생각’으로부터 나옵니다. ◇생각은 인간의 본질적인 행위 작가인 한 지인은 오래전 자신이 쓴 글을 읽고 한 번씩 놀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흥미로운 관점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멋진 표현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아무리 봐도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특별한 관점, 그런 멋진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글을 쓸 때 그는 그 이상의 새로운 관점, 그 이상의 멋진 표현을 또 생각해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일단 글쓰기에 들어가면 작가는 해당 주제에 자신의 에너지와 모든 생각을 집중합니다. 운동하면서도 그 주제를 떠올리고, 식사하면서도 그 주제를 새기고, TV를 시청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여전히 그 주제로 꽉 차 있습니다. 들리는 것,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주위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그 주제로 연결됩니다. 당연히 평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고, 또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과정에서 놀라운 아이디어 확장이 일어납니다. 글 쓰는 것만이 아닌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심코 지나칠 때와 집중적으로 ‘생각’할 때의 결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 ‘다방’ 편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고, 어리석은 이라 할지라도 생각을 하게 되면 성인(聖人)이 된다.” 오늘날의 일상적 표현으로 바꾸어보면, ‘일류대를 졸업하고 초일류 회사에 들어간 이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시키는 일만 하면서 깊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간판밖에 내세울 것 없는 일류 바보가 되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고민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쌓여 지혜를 갖춘 현명한 이가 된다’ 정도 내용이 되겠습니다. 어떤 다른 것도 아닌, ‘생각’하는 습관 여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을 지혜로운 이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어리석은 이로 퇴보시키기도 합니다. 그대가 이 꽃을 보았을 때 꽃은 비로소 그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었으니 사실 ‘생각’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위대한 발견이나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행위입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인간적’입니다. 시인 김춘수는 시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이하 생략)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는 그냥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했습니다.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관심, 사람의 생각이 무의미를 의미로 바꿉니다. 주희의 성리학과 대립해 ‘마음(心·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왕양명도 일찍이 ‘꽃’으로 생각의 의미를 나타냈습니다. ‘전습록’ ‘황성증의 기록’ 편에서 한 사람이 왕양명에게 묻습니다. “선생께서는 천하에 마음 밖의 사물이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 깊은 산 속에서 저 홀로 피고 지는 꽃은 제 마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왕양명이 답합니다. “그대가 이 꽃을 보지 않았을 때 이 꽃은 그대 마음과 같이 그냥 적막 그 자체였다. 그대가 이 꽃을 보았을 때 꽃은 비로소 그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었으니, 곧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산속에 그냥 저 혼자 피고 지는 꽃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인식되었을 때 비로소 꽃은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으로 존재합니다. 앞의, 시인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비로소 ‘꽃’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향할 때 그것은 존재하고, 인간이 생각을 거두면 그 존재 역시 거두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하는 인간’ 또는 ‘인간의 생각’이 없다면 이 세상에 존재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지혜가 있는 사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은 무의미를 의미로 바꾼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새롭게 내놓은 자신의 인식론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으로 표현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천문학 관점을 바꾼 것처럼, 자신은 사물에 대한 사람의 인식 관점을 기존의 ‘사물 중심(객관)’에서 ‘인간 중심(주관)’으로 전환시키는 ‘사고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사물은 사람의 오감(五感)에 닿아 저절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지성(또는 오성, Verstand)’의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인간의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사물 자체가 실제 존재하더라도 인식될 수 없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동기 작가(경영학 박사) 신동기인문경영연구소 대표 칸트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감성’은 인간에게 선험적(Transcendental)으로 주어진 ‘공간’과 ‘시간’이라는 ‘두 개의 주관적 직관 형식’으로 대상 사물의 ‘현상(現象·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의 바깥 모양·Erscheinung)’을 수용합니다. 이어 ‘지성’은 이 수용된 ‘현상’에 선험적으로 주어진 12가지의 범주를 적용해, 그 현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감각 경험적 인식의 ‘개념화’ 과정에서 ‘지성’은 ‘판단’을 합니다. ‘사물 현상의 개념화를 위한 사고 형식’인 12가지 ‘범주’는 ①양과 관련된 3가지, ②질과 관련된 3가지, ③관계와 관련된 3가지 그리고 ④양태와 관련된 3가지, 총 12가지입니다.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들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라는 칸트 본인의 주장대로, 칸트에게 있어 사람의 ‘인식’은 언제나 ‘감성’을 통해 수용된 ‘현상’과 ‘지성’을 통해 판단된 ‘개념’, 이 둘의 종합을 거쳐 완성됩니다. 사람의 ‘생각’은 무의미를 의미로 바꿉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없다면 만물은 그냥 적막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을 가진 인간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하기를 게을리한다면 이때 역시 만물은 그 존재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 치열하게 궁구해, 끝 모를 심연 저 깊은 곳까지 그 생각이 이를 때 비로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자신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2025-02-09

지속 가능한 청송의 미래를 위한 길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지방소멸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청송군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희망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성과로 2024년 지방자치단체 재정분석 평가에서 경북 도내에서 유일하게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이는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효율적인 예산편성과 안정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인정받은 결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한다. 청송군은 올해 농업 경쟁력 강화와 정주 여건 개선을 핵심 과제로 삼고, 지역의 미래를 위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청송군의 대표 농산물인 사과 산업은 기후 변화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은 스마트 농업 도입을 확대하고, 생산비 절감과 노동력 부족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는 ‘꼭지 무절단 사과 유통’과 ‘무적엽 사과 생산’으로 불필요한 재배 과정을 없애 영농 인력을 절감하고, 반사필름 없이 고품질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평면과원 조성사업’을 통해 농업 비용과 영농 폐기물 감소의 이중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최근 청송사과 전문연구시설인 청송황금사과 연구단지를 준공하였으며, 이곳에서 사과 스마트 재배 표준 매뉴얼 개발과 평면형 수형 재배 기술 연구 등을 진행하여 청송사과의 과거 100년을 기반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올해 여름부터 산지공판장에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중도매인들이 사과 경매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공판장 처리 물량을 증가시키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유통 구조를 구축할 것이다. 농업 발전과 함께 지역 내 정주 여건 개선도 중요한 과제이다. 청송군은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청송공공임대주택 청년빌리지와 진보면 공공임대주택 건립 사업이 있다. 이러한 주택은 청송군 내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청년 유입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도심 환경을 정비하고, 회전교차로 설치와 도시계획도로 정비를 통해 교통 환경을 개선할 것이며, 노후 상수관로 정비 및 급수구역 확장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청송군의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정책 추진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변화이다. 농업 혁신과 정주 여건 개선이 함께 이루어질 때, 청송은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며, 지역 주민과 행정이 함께 협력하여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간다면, 청송군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5-02-09

집값 폭락한 대구·경북, 악성 미분양도 늘었다

대구와 경북의 부동산 경기는 언제쯤 기지개를 켤 수 있을까. 수년째 이어져 오는 대구·경북지역의 부동산 경기침체는 내수경기 활성화에도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산업이 내수시장에 미치는 후방효과를 생각하면 대구경북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본사 취재팀이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정보 통계시스템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대구와 경북의 집값(주택종합매매가격지수 기준)은 최근 3년간 대구는 18%, 경북은 2%가 각각 떨어졌다.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구의 경우 세종시(22%) 다음으로 전국에서 낙폭이 가장 컸다. 경북도내 중에는 경산(10.5%), 구미(8.5%), 포항(4.7%)이 비교적 낙폭이 컸던 지역으로 조사됐다. 5일 국토부가 발표한 1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대구와 경북은 미분양 주택이 다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7월 이후 줄어들던 미분양 주택이 10월부터 다시 증가해 대구는 8807가구, 경북은 6987가구로 집계됐다. 특히 악성 미분양인 준공후 미분양은 대구가 2674가구, 경북이 2237가구로 전달보다 862가구, 866가구가 각각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대구가 악성 미분양이 가장 많고, 전남에 이어 경북이 세 번째로 많다. 부동산 산업은 앞서 언급했지만 주택이나 비주거용 건물 등에서 파생하는 재화생산과 소비에 관련된 것으로 경제적 파급력이 매우 강하다.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내수산업 활성화와 직결되는 분야다. 대구와 경북의 부동산 경기는 정상적 거래가 어려울 정도로 수년째 침체 늪에 빠져있다. 최소한의 이사 수요라도 감당할 정상적 거래를 위해선 경기 진작책이 나와야 한다. 대구시가 이런 점을 고려, 수도권과는 다른 비수도권만의 주택정책 필요성을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정부의 시원한 대답은 없다. 최근 정치권이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완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얘기가 들리나 그것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자체에 관련 권한을 대폭 이양하거나 비수도권에 맞는 획기적 맞춤형 정책이 나와야 한다.

2025-02-06

배터리·바이오 34조 투입… 포항경제에 ‘단비’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34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배터리·바이오 중심)기금’ 조성은 대구·경북 경제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차전지와 바이오 특화단지로 지정된 포항으로선 더 반가운 소식이다. 특화단지에는 정부공적자금이 우선 투입된다. 관련 법률안 개정을 통해 기금이 조성되면 저리 대출과 투자가 쉽게 이뤄질 수 있어, 철강산업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포항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기금은 산업은행이 일정 규모의 자금을 펀드에 먼저 출자해 마중물 역할을 하면 시중은행이 뒤따라 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적립된다. 펀드에 시중은행이 참여하면 산은이 독자적으로 투자할 때보다 더 많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현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고 밝힌 이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까지 겹쳐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조 단위에 달했던 배터리 3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수천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당연히 배터리 3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포항지역 소재사들도 실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에는 코스닥 시가총액 1위를 기록했던 배터리 소재 기업 에코프로비엠이 ‘2차전지 캠퍼스’를 구축하고 있다. 이 캠퍼스에는 양극재를 양산하는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이엠, 전구체 원료·제품을 생산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수산화리튬을 제조하는 에코프로이노베이션, 산업용 산소와 질소를 양산하는 에코프로에이피,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하는 에코프로씨엔지가 입주해 있다. 그리고 포항은 지난해 6월 바이오특화단지로 지정된 이후, 기존 바이오 연구개발 인프라(세포막 단백질 연구소,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 포스코 연구진)와 연계해 인허가 특례지원을 통해 국제적 바이오·백신허브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국회와 잘 협의해서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게 되면, 포항지역 관련기업이 저리 대출 또는 지분 투자 형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위축된 지역경제에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다.

2025-02-06

정월 대보름 소원 빌기

우정구 논설위원 오는 12일은 음력으로 1월 15일이며 정월 대보름날이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은 이 날을 설 명절만큼 중요한 명절로 여겼다고 한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나 보름날 자정을 전후해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도 올렸다. 설날이 의례가 많이 있었다면 정월 대보름날은 공동의 행사가 많았다. 대표적 행사의 하나가 달집태우기다. 달집태우기는 정월 보름달이 떠오를 때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질러 주위를 밝히는 행사다. 액을 쫓고 복을 부른다고 한다. 달집을 태우면서 절을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고 여름철 무더위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달집이 훨훨 잘 타오르면 그해 풍년이 들고 잘 타지 않거나 꺼져버리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새해 처음으로 맞는 보름날을 맞아 과거의 세시풍속들이 지금도 조금씩 전해져 온다.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풍속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대중적이다.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달이 뜰 무렵이면 서둘러 동네 동산에 올랐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풍년이 들기를, 자녀를 가진 부모는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빌었다. 처녀 총각들은 좋은 배필을 만나 시집 장가들기를 소원했다. 부럼깨기나 오곡밥·약밥 먹기, 귀밝이 술 등의 풍속도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또 가족의 건강까지 한해의 모든 안녕을 정월 대보름달을 통해 소원했다. 정치적 대혼란 속에 맞는 올해 대보름날에 우리 국민은 무엇을 소원할까. 가정의 평안 그리고 나라의 안정을 소망하는 사람이 가장 많지 않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06

대중음악축제 ‘환희! 포항’을 제안하며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과학기술 기반의 산업이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면, 감수성과 상상력의 문화예술은 도시민을 행복하게 한다. 포항은 1970년대 포스코가 입지하면서 철강 산업 중심으로 한국 산업화를 이끌었다. 현재는 이차전지·소재 산업 육성으로 4차 산업혁명을 착근시키고 있다. 포항은 포항제철이 들어서기 전에는 전통적으로 수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울릉도에서 잡힌 오징어가 포항에서 타 지역으로 거래되었다. 이름 모를 주막집에서 소주에 취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나에게 영일만 횟집에서 재첩국에 취하던 달빛 아래에서의 밤이 잊혀지지 않는다. 포항은 경북 동부의 최대 도시이자 산업·국제 해양·문화 교류 중심도시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이제는 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문화에서도 시민은 물론 국내외 분들과 소통하며 바람을 일으키는 환 황해 등대로 우뚝 서야 한다. 포항에 어울리는 영어 단어를 하나 고르자면, 바로 ‘Delight’(즐거움, 환희)다. 즐거운 도시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런던은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유명해졌고, 뉴욕은 브로드웨이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 예술 자원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분야는 단연 음악이다. 사람은 귀로 깊은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요일 낮 12시에 방영되는 ‘전국노래자랑’부터 저녁에 방영되는 ‘트롯 대왕’까지, 노래가 끝나야 비로소 일주일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외국인들에게도 음악은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오감의 향연이었고, 이탈리아 피렌체의 5월 음악제는 도시와 함께 꽃피우는 음악의 르네상스였다. 음악의 여러 장르 중 클래식과 팝은 모두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나는 킬리만자로의 이상과 죽도시장 바닥의 현실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래서 남녀노소 대중 모두가 미칠 수 있는 ‘대중음악회’를 한여름 바닷가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5월 말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국제불빛축제를 열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환희! 포항’ 축제는 호주의 시드니에서 매년 열리는‘비비드 시드니!’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음악과 빛, 음식이 어우러진 3중주를 즐길 수 있다.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이 축제에는 한국 관광객만 5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환희! 포항’ 축제는 포항시·경북매일신문사·포항MBC가 공동 주최·주관을 하고 경북과 포항의 문화예술인들이 주도를 한다. 8월 1일부터 일주일 이상 개최하되, 모든 유관기관들이 조금씩 손해를 보며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포스코는 철로 제작한 야외 공연장을 마련해 주며,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의 안전성과 유익성을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행사 후원사가 된다. 출전 가수 라인업을 화려하게 꾸며야 한다. 날짜별로 트로트·힙합·재즈·팝 등으로 색깔을 달리한다. 조용필 가왕은 ‘창밖의 여자’를, 최백호 선배는 ‘영일만 친구’를 부를 것이다. 아바(ABBA) 같은 외국 그룹 뮤지션도 초청해 이 음악 축제에 불을 질러버리는 것도 좋다. 동해안에서 잡힌 생선들은 불티나게 팔리며, 숙박시설·식당가는 ‘시장 짱!’을 외칠 것이다.

2025-02-06

독한 사람들

노병철 수필가 새해가 밝아오면 늘 하는 소리가 있었다. ‘금연’.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우습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띈다. 정부는 더 강력한 경고문을 담뱃갑에 박아 넣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로 담배를 끊게 만들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이지만, 정부에서는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담배 판매금지를 못 하게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해롭다’는 문구만 남발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담배회사와 담배 농가의 붕괴를 포함한 담배 산업의 소멸, 그로 말미암은 엄청난 세입 감소와 사회적 비용을 아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국민건강을 담보로 세수를 챙길 것인가. 그래도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한 건 사실이다. 담배를 시내버스에서도 피웠고 고속버스 안에서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의자 뒤에 재떨이가 있었다. 특히 영화 보면서도 담배를 피웠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간에 필름을 한번 갈아 끼울 때는 너도나도 피워대는 통에 극장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온갖 발암성 물질이 있다고 해도 담배는 숙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남성’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깐. 챨스 브른슨이 담배를 피우면서 악당을 죽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담배 입에 물고 포커 돌릴 때 우린 화장실 뒤에서 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가며 폼을 잡곤 했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담배를 끊은 지 20년 정도 된 것 같다. 쉽지는 않았다. ‘금연 주식회사’라는 책을 읽어보면 금연을 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벌칙을 주는데 집사람을 잡아다가 전기고문하고 그래도 피우면 마침내 죽여 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자의 고통은 지옥의 고통으로 묘사되고 사실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매 순간 담배의 유혹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유혹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힘든 일을 마친 후에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의 추억을 더듬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과감하게 결단내야 한다. 사실 보건복지부 공무원도 아니고 금연 프로그램 종사자도 아니다. 금연을 홍보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그렇게 착한 인성을 가진 인간도 아니다. 술 마시고 마늘로 싼 돼지고기 쌈을 안주로 먹고 담배까지 한 대 피운 사람이 친하다고 내 귀에 대고 속삭일 땐 정말 못 견디겠다. 솔직히 흡연으로 인한 일반적 건강론은 내 알 바 아니다, 단지 그 역겨운 냄새에서 해방되고 싶을 뿐이다. 담배 냄새는 너무 지독하다. 이젠 진짜 담배를 끊어야 할 때이다. 옛날엔 담배 끊은 사람보고 ‘독한 인간’이란 말을 했다. 그만큼 담배 끊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 어려운 금연을 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찬사와 시기가 함축된 말이 ‘독한’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독한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언제까지 역한 냄새 풍기는 독한 인간으로 살 것인가. 을사년 새해는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제대로 한번 금연을 결심해 보자.

2025-02-06

입춘, 봄이 온다는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봄이 저만치 오는데 매서운 한파가 몰려오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이 영하권에 들어서면서 곳곳에 한파 특보가 계속되고 있다. 한파주의보는 영하 12도 이하 날씨가 이틀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되는데 포항 경주 구미 등 전국 17개 지역에 내려졌고 경북 북부는 한파경보까지 내려졌었다. 여기에 전남, 전북과 울릉도, 독도는 대설경보까지 내려져 교통안전에도 비상이 걸렸고 항공기 여객선도 결항하고 있다. ‘입춘 추위는 꿔다해도 한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한 2월 초순의 날씨다. 체감기온이 영하 20도가 된다는 이번 추위와 강풍은 주말까지 이어진다는 예보이니만큼 기저 질환자나 65세 이상 노인들은 야외활동을 삼가고, 이곳 동해안 지역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화재 예방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입춘이 지나면 봄이 오겠지만 마음을 모아 빌어보기로 하고 입춘이 드는 3일 밤 11시 10분을 기다려 입춘첩을 현관문에 붙였다. 늘 써오던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신에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사태가 염려스러워 나라의 안녕을 염려하며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의 입춘축(立春祝)에서 하나를 뽑아 반반 섞어서 ‘입춘대길 국태민안’으로 써 붙였다. 현관을 깨끗이 닦고 들어와서 설날 자식들이 선물로 준 견과류를 깨물며 ‘부럼깨기’도 했다. 그리고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의 입춘방(立春榜)처럼 다음 날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 바닥도 쓸었다. 어디서 금덩어리가 나오는 복이 오려나…. 시골집 기둥에도 입춘첩을 붙였는데 이 나라의 입춘첩은 어떤 것을 붙일까? 대통령은 구치소에 있으며 탄핵과 특검에 묶여 국회와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있으니, 비바람이 순조로워 시절이 평화롭고 풍년이 들도록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8C50)을 마음에나마 붙여볼까. 바다 건너 미국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보호무역의 현실화를 들먹이며 관세 전쟁으로 가려는 위험이 크다. 국경 접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협상이 극적인 타결을 이루어 30일간 유예됐다지만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10% 추가 관세 등에 서로의 문을 닫아 난맥상이다. 이에 우리의 반도체, 철강산업, 2차 전지의 수출 대외 리스크는 최악의 침체와 더불어 환율도 높게 치솟고 있으니 특히, 수출의존도가 중국에 32% 미국에 16.2%로 높은 경북은 무역 한파에 비상이 걸릴 듯하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세계적 무역 한파에 그동안 잘 담가 놓았던 한국의 대외수출품 장독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정계는 장독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여전히 추운 천막 속에서 홍매가 피나 백매가 피나…. 서로의 뿌리만 갉아 대고 있으니 밝은 봄날을 기다리는 국민은 입춘대길만 읽을 뿐 가슴이 아프다. 장성동 천마지 둘레길을 걸어봤다. 숲길 옆 진달래는 아직도 콩알만 한 꽃봉오리가 맺혀있고 출렁다리 지나며 내려다본 얼어있는 못가엔 청둥오리 몇 마리가 조용하다. 그러나 이제 곧 봄이 오려니, ‘입춘에 비 오면 풍년이 든다’ 했으니 어저께 뿌린 눈발이 땅을 적셔 풍년이 올 것을 믿는다.

2025-02-06

국민 92%가 “정치적 갈등 심각하다”고 인식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갈등 요인은 ‘빈부격차’가 아니라 ‘진보·보수 간의 진영싸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전국적으로 번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일촉즉발의 충돌위기에 놓인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지난 2014년 이후 매년 사회갈등과 사회통합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어제(5일) 발표한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 92.3%가 여러 사회적 갈등 사안 중 정치영역에서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했다. 보사연이 이날 발표한 자료는 지난 2023년 6∼8월 19∼75세 남녀 3950명을 상대로 면접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의 정치적 갈등성향을 구체적으로 보면, 71.41%는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르면 함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할 의향이 없다’고 했고, 58.2%는 ‘진영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심지어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나 지인과 술자리에 같이할 의향이 없다’는 사람도 33.02%에 달했다. 기타 사회갈등 요인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82.2%), 노사갈등(79.1%), 빈부갈등(78.0%),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갈등(71.8%), 지역갈등(71.5%) 순으로 조사됐다. 보사연의 조사시점이 1년 6개월 정도 지난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정치적 갈등 수준은 훨씬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 사회실태조사에서는 주로 사회갈등 요인 1순위는 ‘경제적 양극화’가 꼽혀왔지만, 정치적 성향이 압도적인 갈등요인이 된 것은 윤 대통령 취임이후 계속된 여야간의 정쟁(政爭)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갈등의 변수로 ‘정치권력’을 꼽은 사회학자는 막스 베버다. 경제적 요인(자본가와 노동자)을 사회변동의 원인으로 본 칼 마르크스와는 달리 베버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수(주로 정치권력)가 사회 내 갈등을 촉발한다고 봤다. 베버의 갈등이론이 우리사회를 분석하는 유효한 도구가 되는 셈이다. 정치적 갈등은 물론 여야 정치인들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유튜브 채널이나 방송의 시사·대담 프로그램 탓도 크다. 팩트체크 없이 증오 섞인 말을 마구 내뱉는 패널들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에 빠지게 한다. 일부 공영방송의 경우 패널의 편향성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흔적은 보이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논평하기보다 자신의 진영논리에 따라 상대를 비난하는 거친 토론으로 일관한다. 시청자 중에는 특정 패널의 토론이 시작되면 아예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무차별적으로 방영되는 정치 프로그램 속에서 국민이 건강한 이데올로기를 가지려면 스스로 정보의 진위를 선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는 수밖에 없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2-05

혹한에도 오토바이는 달린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눈보라가 하늘을 뒤덮는 겨울, 혹은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 피자나 통닭 따위의 야식이 먹고 싶다면 늦은 밤 오토바이로 배달되는 그걸 주문할 것인가?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미끄러운 도로 위를 달릴 배달원의 안전을 위한다면 주문을 하지 않아야겠지만, 생계 수단으로 오토바이 배달을 선택한 이들의 수입을 생각하면 날씨를 봐가며 주문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코로나19 사태’ 때 신종 직업으로 부상한 ‘배달 라이더’. 밥이건 술이건 모여서 함께 먹는 게 아니라 비대면으로 혼밥과 혼술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배달 라이더들은 바쁘다. 오토바이는 자칫하면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운송 수단. 눈이 내려 노면이 얼어붙으면 사고의 위험성이 더 커진다. 입춘(立春)을 지나 우수(雨水)를 향해 가고 있지만, 요 며칠 추위는 절기와는 무관하게 극악스러울 정도다. 서울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 하고, 경북도 영하 10도 안팎의 기온이 연일 이어지는 형국. 이런 상황이니 매서운 바람 속을 달리다가 받아든 따뜻한 차 한 잔은 배달 라이더들에게 더없이 귀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을 터. 최근 한 통신사는 배달 라이더들의 훈훈한 둥지 역할을 하는 ‘휴 서울 이동노동자 북창쉼터’를 소개했다. 이동노동자는 배달 라이더와 퀵서비스 기사다. 거길 가면 잠시나마 난로 앞에서 김 오르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핫팩도 준다니 그들에겐 고마운 공간이 분명하다. 서울시는 북창동 외에도 서초동과 합정동에 쉼터를 만들었다. 이런 건 경북의 지자체가 얼마든지 벤치마킹해도 좋지 않을까? 혹한의 오늘 밤도 배달 오토바이는 달린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05

‘국정협의체 현안’이 곧 TK지역의 숙제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이후 ‘휴업’ 상태였던 여야정 국정협의체가 다음주 재가동된다. 여야는 지난 4일 국회에서 국정협의체 실무회의를 열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참여하는 4자회담을 이르면 10일 열기로 했다. 국정협의체에서는 반도체특별법과 고준위방폐장법을 비롯한 경제·민생 법안처리가 주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2월 임시국회에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담긴 반도체특별법과 ‘에너지 3법’부터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너지 3법은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법, 해상풍력 특별법이다. 제1차 추경편성도 주요의제가 될 전망이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국정현안은 모두 TK(대구경북)지역의 핵심과제와 직결돼 있다. 먼저 포항 앞바다 유전개발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 시추작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려면 올해 본예산에서 민주당이 전액삭감(497억원)한 관련예산을 추경에서 복원해야 한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적정성을 의심하며 시추예산을 책정하는데 적극 반대하고 있다. 원전 11개가 있는 경북으로서는 에너지 3법에 포함된 고준위방폐물 처분장법 역시 긴급 현안이다. 현재 국내 대부분 원전은 고준위 방폐장이 없어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방폐물을 원전 내에 임시로 쌓아두는 실정이다. 구미에 집중돼 있는 반도체 소재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미래먹거리법’으로 불리는 반도체 특별법도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정 공백이 길어진 가운데, 여야정이 국정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긴급현안을 추진하려면 거대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조기대선을 의식해서 우클릭하고 있다는 비판은 나오고 있지만, 최근 이재명 대표가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면서 국정협의체 가동에 대한 접점이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2025-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