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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詩낭송으로 피어난 ‘포항 12景’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가을의 언저리에 시의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났다. 툇마루 위에 달아 놓은 주홍빛 곶감이 대롱거리고, 기와 담장을 넘어선 담쟁이 넝쿨이 앙증맞게 반기는 작은 뜰에서 시와 가락의 향연이 소담스럽게 펼쳐졌다. 낭랑한 시낭송의 음색이 오후의 햇살 마냥 정갈하게 스며들고 구성진 민요와 시조창이 대금과 어우러져 흥겹게 흐르는가 하면, 피아노의 선율에 가곡이 더해지고 가녀린 듯 신명나는 춤사위까지 곁들여지니, 날아가던 새들도 감나무 가지에 다투어 내려앉고 기웃대던 오죽(烏竹) 잎새마저 서걱거리는 박수로 환호하는 듯했다.최근 포항시 남구 효자동의 한 서옥(書屋) 뒤뜰에서 열린 ‘시가 흐르는 뜨락(詩뜨락)’의 풍경이다. 시인을 초청해서 시낭송과 시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주 테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처럼 가락을 곁들이거나 연주를 더해 다채로운 감칠맛을 우려내기도 한다. 이러한 ‘시뜨락’은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포항시낭송회의 시낭송가들과 함께 경향의 시인을 초대해서 시낭송회를 열고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시낭송 토크이다. 공연장이나 실내가 아닌 뜨락에서 열리는 시낭송 마당이 신선하고, 문인과 독자가 시를 매개로 만나 교류하고 공감하며 문학과 시낭송 예술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문화사랑방인 셈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시뜨락’은 이번에 여섯번째를 맞아 기북 출신의 오낙율 시인을 초대해서 시 나눔행사를 벌였다. 마침 11월 1일 오낙율 시인의 네번째 시집 ‘포항 12景’(문학공간시선)이 출간되어 축하를 겸해 펼친 시낭송 마당이 뜻있고 정겹게 여겨졌다. 이 시집에는 오낙율 시인의 서정적 자아를 통한 자아성찰과 존재 해석을 진술하는 76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오시인은 사회 현실을 관조하고 그것을 자기 철학과 신념으로 해석하고 진술하는 시를 쓰며 탄탄한 시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이 시집은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포항의 명소 12경을 둘러보고 소박한 소감을 형상화한 것이 주목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포항 12경에 대한 단편적인 시가 더러 쓰여지기도 했었지만, 연작시 형태로 ‘포항 12景’을 쓰고 시집명으로까지 내기는 처음이라고 본다. 그만큼 오낙율 시인은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며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생활현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참여한 15여 명의 시낭송가들은 저마다 낭송할 시들을 가슴으로 품으며 특유의 음색과 호흡을 가다듬어 멋들어지게 낭송했다. 춘하추동 사계의 테마로 낭송할 시들을 구분해서 3~4명씩 배경음이나 하모니카 멜로디에 맞춰 낭송한 시들은, 하늘하늘 나풀나풀거리며 만추의 뜨락에 결 고운 음률의 수를 놓는 듯했다.이렇게 포항 12경이 시로 읊어지고 시낭송으로 울려 퍼짐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더욱이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여 명실상부한 문화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포항시에서, 이와 같이 작은 음악회를 곁들인 시낭송회와 문인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시뜨락’ 행사는 문화로 너울지는 포항 만들기의 작지만 큰 발돋음이 아닐까? 문화는 삶이고 힘이며 지속발전가능한 미래이다.

2021-11-15

상생과 협력의 힘, QSS동반성장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책에서 본 내용인데 소양강에서 30년간 어부생활을 한 분이 직접 목격하였다는‘뱀과 가물치’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이야기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가던 중 강 바로 옆나무에 매달려있는 뱀이 물속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목격한 것부터 시작된다.자세히 들여다 보니 강바닥에 병든 것처럼 뒤집혀져 있는 가물치를 물에서 건져내려고 안달복달하는 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놀라운 것은 뱀이 열심히 가물치를 감아서 물 밖으로 올리려는 순간, 힘이 센 가물치는 몸을 확 비틀어 빠져 나오는 행동을 반복하였고, 나중에는 뱀이 약이 올랐는지 나무에서 땅까지 내려와서 온 힘을 다해 가물치를 감으려는 순간 가물치는 후다닥 소리를 내면서 뱀을 물고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이다.가물치는 지혜를 발휘하여 뱀을 잡은 것이었고, 최소한의 대가로 최대의 효과를 얻었던 것이었다.필자는 P사의 ‘QSS혁신활동 지원 프로그램’이 가물치처럼 ‘지혜로운 동반성장 활동’이라고 생각하여 우수사례로 소개하고자 한다.동반성장이란 경제 규모 차이가 있는 대상끼리 상생과 협력을 통해 더불어 성장하는 것으로 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최근 상생과 협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화두가 되었고, 많은 대기업이 동반성장 활동으로 중소기업에 금전, 장비 등의 경제적 지원을 해 주면서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하지만 일부 경제적 지원 활동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경제적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중소기업이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그러나 P사의 동반성장 활동인 QSS활동은 달랐다.QSS(Quick SixSigma)활동 지원은 P사에서 자체 양성한 컨설턴트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혁신을 지원한다.이 활동은 현장의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Solution)을 제공하여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직원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자신감은 더 큰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중소기업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개선리더 등 전문가를 양성하여 컨설턴트가 나와도 스스로 운영하여 자력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로 QSS의 매력이다.필자가 10여년 전 컨설팅하였던 P사 계열사를 최신 방문했을 때 자사 스스로 QSS혁신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자사의 협력사, 공급사, 고객사까지 계단폭포식으로 확산 전파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고 그 회사를 컨설팅한 것에 대해 정말 자랑스러웠다.사과를 따주는 활동보다는 사과나무를 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활동이 정말 더 소중하고 효과도 더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필자는 더불어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에의 참좋은 프로그램이 QSS혁신활동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보며 이를 적용하여 본원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대한민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1-11-15

미스터리로 빚어낸 ‘쿨’한 세계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일본과 한국에 동시 발간되거나 불과 몇 달 사이를 두고 번역출판 된다. 가장 최근에 번역된 ‘백조와 박쥐’(양윤옥 역, 현대문학)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위치가 바뀐다. 쿨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계가 조금 진지해지는 징후가 아닌가 기대한다. 외국의 작가가 쓴 작품 중에서 한국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읽힌 책을 떠올려 본다면, 일본의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사진)를 빼놓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1985년에 ‘방과 후’라는 정통 추리소설로 데뷔한 그는 매년 2~3편의 책을 꾸준히 출판해왔고, 그 대부분이 이미 한국에도 소개되고 번역되어 있으니 말이다. 매년 2~3편의 책을 출판하는 인기 작가 자체는 해외에 드물지 않지만, 그 대개의 책들이 한국에서 번역 소개된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제외하고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편, 한 편 그의 작품이 시나브로 번역되어 나올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그가 만들어둔 세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어떤 소설보다 잘 읽히고, 어떤 소설보다 인간의 감정과 호기심이 결합해 있는 마력을 가진 세계다.배를 타고 몇 시간이나 가야하는 외딴 섬에 지어진 호텔 같은 곳에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다양한 방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도저히 풀 수 없는 밀실의 트릭과 살해방법들, 사라지는 흉기들. 아마 정통적인 추리소설의 팬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르적 관습일 것이다. 모든 종류의 관습이 그러하듯, 이미 책을 펴든 순간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관습과 계약을 끝낸 상태이다. 그토록 먼 곳에 왜 호텔이 있을까 라든가, 그들은 왜 거기로 가야만 했을까, 게다가 하필 왜 모든 문제를 풀어낼 탐정은 왜 일행 사이에 끼어들어 있을까 하는 중요한 질문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 된다. 사건의 발생과 해결 사이에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범죄의 해명에 나선 탐정과 마치 공정한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은 환상만이 추리소설 독자의 유일한 게임의 규칙이다. 그러니, 앗, 하는 사이에 범인을 놓쳐버리는 아슬아슬한 시간적 지연도, 추리소설 독자에게는 즐거움일 뿐이다.지금까지 한국에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은 이처럼 미스터리로 가기까지의 비현실적인 구성이나 독자가 탐정과 지적인 경쟁을 벌인다는 추리소설 읽기의 독특한 측면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소설적 전통에서 소설은 대개 마음을 움직이거나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지, 머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적인 소설이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움직여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소설이 그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의미이리라. 히가시노 게이고는 처음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정통 추리소설로 소설계에 입문하여 꾸준히 추리소설을 써왔지만, 종종 다양한 장르로 확장하면서 정통 미스터리만이 아닌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거나 장르를 결합한 장르 혼종적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에 처음 히가시노 게이고가 알려지고 번역되기 시작한 시기가 미스터리에 기반해서 독자의 마음에 무언가 남겼던 ‘비밀’(1998년 출판, 1999년 번역)이나 ‘백야행’(1999년 출판, 2000년 번역)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두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이른바 ‘역주행’하여 그의 정통 추리소설까지 번역되기 시작되었고, 한국에 어느새 히가시노 게이고 월드가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그가 펼쳐놓는 세계는 결코 심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누군가가 있다. 호텔에서도, 공항에서도, 나무신을 모신 작은 절에서도, 그리고 코로나가 한창인 지금 여기에도 사건은 발생하고, 누군가 그것을 해결한다. 그만큼 쿨한 세계는 또 없다. 세상이 어디 그런가, 싶다가도 그만 그 쿨한 세계에 스스로 들어가게 된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1-11-15

‘삼국유사’ 속 경주 남산의 스님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보물 제2071호)과 ‘삼국유사’ 탑상편 ‘생의사석미륵’조에 기록된 미륵불상은 동일한 불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최근 이 상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는데, 불상의 도상(미륵의좌상)과 석실(석굴) 봉안과 같은 특징을 고려했을 때 이 불상은 선관 수행(禪觀修行)의 목적으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승려의 수행법 중 하나인 선관은 특정한 대상을 관(觀)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선관은 몇 가지 수행단계를 거치지만, 결국 부처(미륵불)의 친견이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남산 불적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 ‘생의사석미륵’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선덕왕 때 생의(生義)라는 스님이 항상 도중사에 거주했다. 꿈에 스님이 그를 데리고 남산으로 올라가 풀을 묶어서 표를 하게하고, 산의 남쪽 마을에 이르러서 말하길, “내가 이곳에 묻혀있으니 스님은 꺼내어 고개 위에 안치해주시오”라고 했다. 꿈을 깬 후 친구와 더불어 표시해 둔 곳을 찾아 그 골짜기에 이르러 땅을 파보니 석미륵이 나오므로 삼화령 위에 안치했다. 선덕왕 13년(갑진)에 절을 짓고 살았으니 후에 생의사라 이름하였다”이야기 속 생의스님은 평소 도중사에 거주했었다. 그는 꿈에서 알려준 대로 남산에 올라가 석미륵상을 찾은 뒤 삼화령 위에 불상을 봉안하고, 선덕왕13년(643 혹은 644) 그곳에 생의사라는 사찰을 만들었다. 생의스님은 원래 왕경의 ‘도중사’ 승려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남산에 ‘생의사’를 짓고 거처를 옮긴 것이다. ‘생의사’라는 사명(寺名)에서 알 수 있듯 이 절은 생의스님을 위한, 생의스님에 의한 사찰임이 감지된다. 이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삼국유사’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조로 이어진다.“3월 3일(765년)에 왕이 귀정문의 누 위에 나가서 좌우의 측근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거리에서 위의(威儀) 있는 승려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이때 마침 위의가 깨끗한 고승 한 분이 배회하고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말하는 위의 있는 승려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를 물리쳤다. 다시 한 승려가 납의를 입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이 보고 기뻐하여 누각 위로 맞이했다. 통 속을 보니 다구가 들어 있었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승려는 충담이라고 했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승려가 답하기를 “소승은 매해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공양하는데 지금도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이 이야기는 충담스님이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하기 위해 남산에 갔다가 돌아오고 있는 장면이다. 충담스님은 매해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공양하러 남산에 다녀온다고 했다.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것 역시 하나의 수행과정. 이야기 속에서 충담스님은 남산에 기거하는 것이 아니라, 왕경 사찰에 거주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즉 스님의 본사(本寺)는 왕경의 평지사찰이었고, 남산에는 특정시기에 수행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구성에서 평지사원과 남산 불적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유사’ 기사에는 남산과 관련한 승려의 모습을 수행자처럼 묘사하고 있다.“한 거사가 행색이 남루하고 손에 지팡이를 짚고 등에 광주리를 이고 와서 하마대 위에서 쉬고 있었는데 광주리 안을 보니 마른 생선이 있었다. (경흥법사의) 시종이 그를 꾸짖어 “너는 중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 어찌 더러운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이냐”라고 하였다. 중이 말하기를 “그 살아 있는 고기를 양 넓적다리 사이에 끼고 있는 것과 삼시의 마른 생선을 등에 지는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이냐”라고 하고, 말을 마치고는 일어나 가버렸다. ~중략~ 남산 문수사의 문 밖에 이르자 광주리를 버리고 사라졌다. ~중략~ 경흥은 그것을 듣고 한탄하여 “대성(大聖)이 와서 내가 짐승을 타는 것을 경계하였구나”라고 하고 죽을 때까지 다시 말을 타지 않았다.” 김동하​​​​​​​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8년 정유에 (망덕사)낙성회를 베풀었는데 왕이 가마를 타고 와서 공양하였다. 한 비구가 있었는데 외양이 남루하였다. 몸을 움츠리고 뜰에 서서 또한 재를 보겠습니다”라고 청하였다. 왕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장차 재가 끝나려 하니 왕이 그를 희롱하여 말하였다. “어느 곳에 주석하는가?” 중이 비파암이라고 하였다. 왕이 “이제 가면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공양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하지 말라”라고 말하니 중이 웃으며 “폐하도 역시 사람들에게 진신석가를 공양했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을 마치고는 몸을 솟구쳐 하늘에 떠서 남쪽을 향해 갔다. ~중략~ (남산의) 비파암 밑에 석가사를 세우고, 모습을 감춘 곳에 불무사를 세워 지팡이와 바리를 나누어 두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삼국유사’ 감통 ‘경흥우성’조에 기록된 내용으로 경흥법사의 사치스러움과 비교해 남산에 기거하는 거사는 남루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두 번째 역시 ‘삼국유사’ 감통 ‘진신수공’조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망덕사 낙성회에 참석한 효소왕과 비교해 남산 비파암으로 떠난 비구(석가진신)의 모습은 남루하다. 앞서 소개한 충담사의 이야기에도 위의(威儀) 있는 승려와 비교해 충담사는 초라한 모습이다.세 이야기들 속에서 감지되는 남산과 관련한 승려의 모습은 유사하다. 이야기 속 승려들은 두타행(頭陀行)을 실천하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그려졌다. 이는 당시 남산 불적이 가지는 성격의 일면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남산은 승려의 공간이면서, 수행의 공간이었다. 당시 승려는 험한 산지계곡에서 공덕을 쌓기 위해 조탑과 조상을 통한 수행을 감행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불적은 산림수행의 장소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2021-11-15

우리, 국어 사전 읽으실래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오늘 사전을 세 권 샀습니다. ‘국어 어원 사전’, ‘우리말 어감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입니다. 갑자기 웬 사전이냐고요? 고백하자면, 몇 달 전 책을 정리하면서 크고 두꺼운 국어사전을 없앴습니다. 그러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은 아직도 책꽂이에 꽂혀 있습니다. 이 사전은 작지만 풀이가 아주 길고 예문까지 있어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전이라고 하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개성 있는 사전도 있습니다.‘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사전에 미친 두 남자를 취재한 NHK 다큐멘터리에 추가 자료를 덧붙인 책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전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야마다 다다오와 표제어가 145만 개나 되는 ‘산세이도 국어사전’의 겐보 히데토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도쿄대학 동기인 데다 ‘메이카이 국어사전’을 같이 편찬했지만, 그 후 교류를 끊고 각자 개성 넘치는 사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제가 특히 눈이 가는 사전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입니다. ‘연애’를 예로 들면,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 풀이를 보니, 영화 ‘행복한 사전’이 생각납니다.영화 ‘행복한 사전’의 주인공 마지메는 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하는데, 하숙집 주인 할머니의 손녀 가구야를 짝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지메에게 사전 편집부 직원들은 ‘사랑’ 풀이를 맡깁니다. 드디어 마지메는 가구야에게 고백하면서 사랑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서 자나깨나 그 사람의 머리에서 안 떠나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몸부림치고 싶은 마음 상태, 성취하면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자기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는 딱 맞는 단어를 찾은 것이지요. 영화의 원작 소설 ‘배를 엮다’를 쓴 미우라 시온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제 김무림의 ‘국어 어원 사전’을 펼쳐서 ‘사랑’을 찾아봅니다.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풀이 아래 어원이 나와 있습니다. 중세 국어의 ‘ㅅ·랑(ㅎ·다)’의 기본 의미는 ‘생각(하다)’였다고 합니다. ‘우리말 어감 사전’을 보니, 애인과 연인을 구분해줍니다. 애인은 구어체에, 연인은 문어체에 쓰고, 애인은 한 사람을 가리키지만 연인은 한 쌍을 가리킬 때도 많다는 것을 예문을 들어 설명해줍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에도 의미가 비슷한 단어들을 꾸러미로 묶어서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줍니다.영화 ‘행복한 사전’에 ‘사전이란 말의 바다를 건너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말을 찾아주는 기적이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개성 있는 사전을 읽으며 기적을 자주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삶도 기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2021-11-15

아시안게임 공동유치, 글로벌 도시 도약 전기로

대구시와 광주시는 15일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용섭 광주시장, 지역국회의원, 각 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38년 하계아시안게임 대구광주공동유치준비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지난 5월 대구시와 광주시가 2038 아시안게임 공동유치를 선언한 지 6개월만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유치 활동에 들어가게 되는데, 두 도시는 “한마음을 싣고 나아갈 위대한 비상의 시작”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2038년 아시안게임의 비전과 기본방향을 양 도시가 함께 공유하고 공동유치를 위해 연대하고 협력할 것을 다짐하는 행사다.대구시는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광주시는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각각 성공적으로 개최한 도시다. 두 도시의 하계아시안게임 유치는 동서화합과 인적·물적 교류 촉진으로 스포츠 관광과 경제 활성화를 꾀하는데 목적이 있다. 특히 글로벌 시대를 맞아 두 도시의 브랜드가 글로벌화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계아시안게임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주관으로 4년마다 개최되며 OCA회원 45개국 1만여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메가스포츠 대회다. 현재 아시안게임 개최지는 2022년 중국 항저우, 2026년 일본 아이치나고야, 2030년 카타르 도하, 2034년 사우디 리야드가 확정된 상태며 통상 10∼14년 전에 개최지가 결정된다.양 도시의 공동유치가 성공되기 위해선 준비과정도 만만찮다. 아시안게임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수립, 대한체육회 유치신청, 문체부의 타당성 조사 등이 통과돼야 하고 대회진행을 위한 시설과 교통 등의 인프라 확충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그러나 두 도시는 여러차례 세계대회 등을 치른 풍부한 경험이 있고 최근 두 도시가 협의해 이뤄낸 대구와 광주 간 달빛철도 건설이 확정되는 등 양 지역간 교류 등을 볼 때 개최지로서 여건은 충분하다. 서울과 부산, 인천에 이어 한국의 네 번째 개최지로 결정된다면 이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두 도시의 공동유치준비위원회 출범이 유치 성공으로 이어지고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로 도시발전이 가속화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2021-11-15

음악저작권 투자

음악저작권 투자란 국내 대표적인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 뮤직카우를 통해 주식처럼 ‘음악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사고 파는 행위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기법이다. 뮤직테크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음악 저작권 평가액 매수·매도를 통한 시세차익과 매달 배당처럼 나오는 저작권료 등 크게 2가지다.예를 들어 지난 6월 악동뮤지션의 ‘I Love You’ 저작권을 매수했다면 매달 저작권료가 뮤직카우 내 지갑에 쌓인다. 해당 플랫폼에서는 ‘캐쉬’란 단위로 음악 저작권을 구매할 수 있다. 캐쉬는 현금과 단위가 같다. 즉 1캐쉬가 1원이다. 국내계좌로 출금 시 출금 금액이 1만원 이하인 경우 500원의 수수료가 발생하고, 월 2회는 무료다. 이 거래의 누적 거래액은 지난 10월말 기준 2천500억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음악 저작권 구매방식은 주식과 비슷하다. 이용자가 매매가를 적어 구매주문을 걸어 놓으면, 해당 가격에 매도하겠다는 매도자와 거래가 자동으로 체결된다. 음악 저작권료의 현재가는 가장 최근 체결된 매매가다. 거래가 체결되는 금액으로 시세가 정해지기 때문에, 언제든지 곡의 흥행성, 곡 자체의 특수성에 따라 시세가 변동될 수 있다.다만 뮤직카우에서 거래되는 것은 저작권의 지분이 아니라,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이다. 저작권료참여청구권은 해당 음악의 저작권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구매한 지분 비율로 지급받을 수 있는 권리다. 즉 특정한 곡의 저작권은 법적으로 이 저작권플랫폼이 보유하고 있고 투자자들은 이 플랫폼과 저작권료를 나누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음악저작권 투자는 자산을 불리는 데 유력한 또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15

‘군위군의 대구편입’ 입법예고, 환영한다

군위군의 대구편입이 행정안전부의 입법예고로 기정사실화됐다. 행안부는 지난 12일 자체 홈페이지에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간 관할 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올렸다. 입법 예고 기간은 12월 22일까지 40일간이며, 이 기간동안 제정안에 대해 의견이 있는 기관·단체 또는 개인은 행안부에 우편으로 의견서를 보내면 된다. 행안부는 법 시행일을 내년 2022년 5월 1일로 못 박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편입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의견수렴 후에는 내년 1월 중 법제처 심의와 국무회의 상정 등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1~2월 중 국회에 법률안을 상정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문제는 국회통과 여부인데, 법률안이 정부 입법으로 제출됐기 때문에 여당 쪽에서 반대할 명분이 약한 것은 다행이다. 특히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의 선결조건인 이 법률안을 부결시킬 가능성은 낮다.법이 시행되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군수직은 대구시 군위군수로, 도의원은 대구시의원으로, 군의원은 대구시 군위군의원으로 선출된다. 경북도교육청 소속인 군위교육지원청은 대구시교육청 소속으로 넘어간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경북도교육청 일반직인사와 내년 3월 전문직인사가 이미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군위교육청 분위기는 연차가 높은 직원의 경우 경북도에 남기를 선호하고 있는 반면, 젊은 직원들은 대구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도교육청에서는 군위교육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편입과정에 학교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사전대비를 하고 있다.군위군은 앞으로 대구 편입과 동시에 도시화가 가속화 돼 많은 변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북도의회 심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군위군의 대구편입에 대해서는 그동안 찬반양론이 대립해 왔다. 이제 정부가 편입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입법예고를 한 만큼, 시·도민 모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계획대로 2028년 이전에 완공될 수 있도록 역량을 모아야 한다.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가덕도 공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건설돼, 인천공항에 이은 제2의 관문공항 역할을 해야 한다.

2021-11-15

지역 축제 메타버스 옷을 입다

백선기​​​​​​​​​​​​​​칠곡군수 코로나19가 확산세가 1년 반을 넘어서면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백신접종과 함께 감소하길 기대했으나, 감소는 커녕 전파력이 더 빠른 델타변이 바이러스로 변종되면서 포스트 코로나가 슬며시 위드 코로나로 바뀌고 있다.정부도 ‘종식’보다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갖추는 것에 정책 목표를 두고 있다.이렇듯 코로나19로 비대면 방식이 확산되면서 가상 세계와 현재의 세계가 무경계화 되는 메타버스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메타버스(Metaverse)란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상에 만들어진 가상세계를 뜻한다.온라인 속 3차원 입체 가상세계에서 아바타의 모습으로 구현된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놀이하고, 소비하고, 일하고, 돈을 버는 등 현실의 활동을 그대로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메타버스에서의 영역은 단순 교류를 넘어 정치, 경제, 노동, 의료, 교육, 쇼핑, 공연 등으로 까지 활동범위가 크게 넓어지고 있다. 세계 메타버스 시장은 올해 35조원으로 추정되며, 2025년에는 34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글로벌 통계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다국적 기업들도 메타버스 분야에 사활을 걸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칠곡군은 코로나19로 중단된 주민들의 공연에 대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고 지역 대표 축제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메타버스를 도입했다.자치단체에서는 축제에 메타버스의 옷을 입힌 것은 최초의 시도라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메타버스에서 제대로 된 축제가 열릴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백신 패스’가 없어도, 안전사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칠곡군은 코로나19에 맞서 기간과 공간을 확장하고 온라인으로 관람객을 유도했다.또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온·오프라인으로 행사 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고 마을로 찾아가는 소규모 공연으로 코로나 확산을 예방했다.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은 9월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44일간의 사전 축전에 이어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본 축전이 이어졌다.메타버스 축전장은 포스터, 대축전 공식홈페이지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입장하고 게임 캐릭터를 만들 듯 아바타를 꾸미고, 별명을 설정한 뒤 행사장 곳곳을 누빌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만나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기도 했다.축전장에는 △평화라디오 △전국민퀴즈쇼 △최태성 역사 토크쇼 △칠곡 커머스 경매쇼 △평화반디 백일장 △칠곡 메타버스 오십오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특산물 홍보관, 산업홍보관, 네이버 쇼핑을 이용한 라이브 커머스 등도 마련했다.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이 위드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축제 콘텐츠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칠곡군에서 불기 시작한 메타버스 축제 훈풍은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대구의 대표적 도심 축제 중 하나인 ‘동성로축제’와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축제인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도 메타버스를 도입해 신개념의 문화 축제로 펼쳐졌다.강원도는 메타버스를 커피 축제에 도입해 200만 접속이라는 대박을 쳤고, 대한민국 국군장병들과 60년을 함께 해온 국내 최장수 버라이어티쇼 ‘위문열차’도 메타버스 공간에서 열렸다.이러한 자치단체가 주관하는 메타버스 축제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아직까지 대기업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져 아바타의 움직임이 어색하고 콘텐츠가 단순하거나 흥미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력과 콘텐츠를 보완하고 인문학적 스토리와 상상력을 총동원해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춰 나가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축제와 메타버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기 때문이다.

2021-11-14

길이 달콤하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걷기에 참 좋다. 여름부터 포항 여기저기를 찾아 매일 아침 걷기 시작한 것이 가을이 깊도록 이어졌다. 철길숲의 맨 끝 지점인 효자교회에서 유강까지 가는 코스를 걸었다. 가장 최근에 꾸미기 시작한 길이라 미완성이다. 유강에 이르러서는 흙길이라 걷기엔 폭삭해서 좋은데 비 오는 날엔 질척거려 신발에 진흙이 다 달라붙었다. 가로수는 덜 자라 햇볕을 다 가리지 못한다.그래도 새길을 걷는 맛이 있다. 지나는 이도 다른 길에 비해 적어 소란스럽지 않아 가을 아침 공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기찻길 옆으로 코스모스가 남은 가을을 붙잡고 흔들고 여름꽃인 미국수국이 갈바람이 시린지 남은 꽃잎 끝을 말리고 있다. 나무에 내걸린 풍경이 바람에 스치운다. 새벽부터 출근한 새소리가 덧입혀져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그때, 함께 걷던 진아씨가 묻는다. “이건 무슨 꽃이에요?” 시골 출신이라 도시녀에 비해 꽃과 나무 이름 몇개 더 알고 있다고 무엇이든 자꾸 물어온다. 푸힛, 사실은 나도 잘 모르는데 말이다. 잎 모양이 지난해 청하중학교 교정에서 본 나무였다. 함께 간 순옥언니가 아들과 함께 심었다는 그 나무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입속에서만 가물거렸다.스마트폰이 나설 때다. 가까이 가서 꽃과 잎이 자세히 나오게 사진을 찍어 검색란에 올리자 비슷한 무리의 꽃나무들이 주르륵 펼쳐진다. 그중에 눈에 익은 이름이 보였다. ‘은목서’, 처음 들었을 때 나무 이름보다 역사책 언저리에 써진 선비 이름 같다고 느꼈던 그 이름 맞았다. ‘은’은 하얀 꽃이 펴서 붙여진 것일 테고, 목은 나무, 그럼 서(犀)는 무슨 뜻일까, 한자를 찾아보니 무소 서였다. 수피가 코뿔소의 피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었다.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가니 향이향이, 끝내줬다. 마스크를 하고 있는데도 뚫고 들어와 내 몸을 달달하게 만들었다. 꽃 이름을 물은 진아씨에게 얼른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다. 원래 냄새를 잘 못 느낀다며 마스크를 벗고 나무 가까이 코를 들이밀었다. 앗 따거, 뾰족한 잎에 찔려 화들짝 놀란다. 달콤한 향기와 달리 가시를 세운 잎 모양이 독특하다. 나도 조심조심 가지 마디에 피어난 꽃잎에 코를 파묻고 향을 흠뻑 받아들였다.한껏 향에 취한 뒤 나무 전체를 찍으려고 뒤로 물러서니 그 옆에 가로수들이 은목서였다. 대부분의 나무가 떨켜를 만드는 서늘한 늦가을에 이제서야 하얗게 꽃문을 여는 나무를 만나서인지 신기하고 반가웠다. 아기 손톱 같은 몽오리들이 오종종하니 피었는데도 향기는 길을 가득 채웠다.향에 취해 한번은 아쉬워 그 길을 두어 번 오갔다. 내일 또 오자하고 돌아섰다.나무 사전에는 팔월에서 시월에 핀다고 하는데 지금은 십일월이다. 사전의 내용을 고쳐 써야겠다. 열매는 다음 해 이월 삼월에 맺힌다고 하는데 진아씨는 4월쯤에 몇 개 주우러 오겠다고 한다. 나는 종일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꽃집을 하는 친구에게 은목서 한 그루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고양이를 입양한 후 그 좋아하던 꽃을 포기했었다. 고양이 호흡기에 꽃이 독이 된다 해서 꽃병이 여러 날 휴업상태였다. 그런 이유를 곱씹어봐도 은목서는 탐이 났다. 고양이 보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시댁 마당에 심기로 하고 질러 버렸다. 며칠 후면 은목서는 우리 식구 이름이 될 것이다.“푸른 하늘 으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아무 하안나무 토끼 한 마리.” 노래에 나오는 계수나무가 목서라고 한다. 주황색의 꽃이 피면 금목서 하얀색이 피면 은목서이다. 향이 좋아서 샤넬넘버.5의 재료로 쓰인다고 하니 효자교회 근처 철길숲은 지금 고급 향수의 바다다.신기한 건 하나 더 있다. 뾰족하던 잎이 나무가 성숙할수록 둥그스름해진다는 것이다. 아직은 모가 난 내 마음도 나이가 들면 조금씩 무뎌질 거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은목서를 가까이 두고 마음지침서로 들춰봐야 가능한 일이다. /김순희(수필가)

2021-11-14

소리조경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꽃구경 할 일도 많지 않은 늦가을인데 기청산식물원에 가고 싶어진다. 아주 천천히 잎을 피워서 키 작은 나무들이 햇볕을 잘 받아서 무럭무럭 크도록 한다는 나무. 듬성듬성 잎을 피우지만 잎을 피운 자리는 잔가지가 많아 매의 날카로운 눈도 피할 수 있어 새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나무.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아 ‘조경의 마지막은 소리조경이다’는 깨달음을 주었다는 나무.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느릅나무가 보고 싶어서다.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만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자기들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만 들으려는 사람이 늘어나서일까? ‘소리조경’은 고사하고 참 소란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듣는 이의 정서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빠르고 큰 소리로 눌러버리려고만 하지 들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휴대폰을 끼고 살다보니 혼자서도 시끄러운 시대가 돼버렸다. 소리도 처방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3배 빠르게 재생하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나고 8배 빨리하면 귀뚜라미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 3옥타브 내리면 돌고래 소리와 닮았고 8옥타브를 내리면 파도의 밀물, 썰물소리와 닮았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예언한 대로 지구의 생물들 간의 소리는 조화로운 비율의 원리가 반영되어있다. 소리와 음악은 이처럼 신비롭다. 우리는 왜 그 조화로움을 잃어버린 것일까?신선도를 수련하는 중에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물이 도와 같다는데 어떤 연유입니까?”“네 옷이 더러우니 우선 빨래부터 하고 오너라.”제자가 빨래를 해서 가져가니 스승이 물었다.“그래, 옷이 어떠냐?” “예, 깨끗해졌습니다.”“네 더러움을 누가 가져갔느냐?” “물입니다.”“그럼, 너는 물한테 무엇을 줄래?”이런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대화가 그립다. 흐르는 물소리에 맞서는 음악은 없다. 물소리는 사람은 물론 만물이 그 생명을 유지하는 움직임의 소리이므로 가장 깊은 소리이며, 근원적인 힘을 가진 소리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을 이렇게 얘기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고루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기꺼이 처하나니, 그런 까닭에 거의 물은 도에 가깝다.” 속은 올곧고 굳세어 쉬지 않고 아래로 흐르지만 겉으로는 유약한 듯 부드러우니 막아서는 것이 있으면 융통성 있게 에둘러가며 주변의 땅 생김새를 따른다. 바로 외유내강(外柔內剛)한, 전형적인 군자의 덕이요 모습이니, 도덕을 잃지 않으며 또한 현실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니 물소리는 세상의 가장 큰 음악이고 소리조경인지도 모른다.정화수 한 그릇을 받으러 가는 길에 행여 길바닥에 나와 밤잠 자는 벌레들을 죽일까봐 대나무가지로 길을 쓸며가는 빗질소리도 그립다. 새벽 1시 동네의 우물에 맨 처음 고이는 맑은 물을 한 그릇 떠놓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하늘의 별과 나무와 바위에 빌던 우리 옛 분들의 마음은 이미 그 물을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풍물놀이에서 쇠가락을 물 흐르듯이 치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마음호흡을 물과 같이 하라는 말과 같다. 대교무교(大巧無巧), 기교의 단순 복잡을 넘어 서는 기운 생동함을 깨치자는 말이다. 범패, 특히 쌍계사 진감국사의 어산(魚山)은 해 떠오를 무렵 섬진강 물고기들의 비약에서 발원 되었다고 한다. 꽹과리소리에 생명의 약동과 비약을 안아 들인 것이다. 쇠를 물 흐르듯이 치라는 말은 그 물속에서 흐름을 타고 노는 물고기처럼 가라앉고 뛰어오르는 것까지도 포함한 말이다. 솟는듯하다 잠기고 잠겼다 다시 솟아오르는 싱싱한 물고기장단을 치라는 말이다. 꽹과리도 물의 덕성을 알아야 세상 사람이 듣기 좋은 신명난 소리를 낸다니 세상의 으뜸소리는 물소리인 듯하다.가을이 깊었다. 깊은 산사라도 찾아가 이른 새벽에 바위 하나를 찾아 가만히 앉아보라. 삭. 삭.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면 나는 비로소 고요해진 것이다. 세상의 많은 소리들이 어지러울 때 신라의 최치원은 계곡물로 벽을 쳐 세상소리를 못 들어오게 했다니 참 멋진 ‘소리조경’이지 않은가! 우리를 생기 돌게 하는 가을의 소리들을 챙겨듣자.사람이 내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입은 하나고 귀가 두 개인 것처럼 말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자. 그렇게 많이들은 사람들의 말이라야 세상을 위로할 수 있다. 따뜻한 위로의 말, 고개를 끄떡이며 ‘그래 맞아’하는 공감의 말은 좋은 관계의 추임새다. 느릅나무에 찾아와 노래하는 꾀꼬리만큼은 아니지만 ‘귀로 먹는 약’은 될 수 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은 귀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하는 말은 소음일까 소통일까? 이래저래 ‘소리조경’이 필요한 시대다.

2021-11-14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은 다시 오는데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 우리는 5년마다 반복하여 축제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대통령 선거의 계절만 다가오면 동서고금의 성공했거나 실패한 지도자들의 면면을 떠올리면서 나름대로 선택의 기준과 원칙을 정해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인물에게 투표를 한다. 이번에 선택한 인물이 역사와 국민 앞에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결정하지만 지나간 대통령들은 대부분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건국 이후 19대에 걸쳐 총 1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한국대통령들의 잔혹사는 우리 정치가 이보다 더 후진적이고 비극적일 수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같아 참으로 착잡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현명한 군주를 찾았지만 유능한 리더의 덕목과 기준은 너무도 엄격하여 시공을 다 뒤져봐도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모두가 인정하는 지도자를 찾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는 것 같다.해마다 연말이 되면 교수 1천명의 조사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지난해(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이지만 원래 존재하는 고사성어는 아니다.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바꾼 신조어로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똑같은 상황에 부딪쳐도 남은 비난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럽다는 이 말은 특권과 반칙, 거짓과 위선이 팽배한 현 시대상을 그대로 표현한 단어여서 씁씁함을 감출 길 없다.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전회 모두 매진된 세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의 주연을 맡은 87세의 원로배우는 다가오는 대선의 계절에 대통령 후보들에게 바라는 3가지 만큼은 꼭 유념해 주기를 바란다면서 어려운 말문을 열었다.우선 국민 통합이 중요하며 나를 반대한 사람도 국민임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과거로 후퇴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미래를 향한 비전은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도덕적으로 청렴해야 한다. 대통령자리는 돈 먹는 자리가 아니다. 법위에 군림하는 자리는 더욱 아니다. 국민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국가를 잘 보존하고 형편이 나아지게 해야 한다. 리어왕 분장을 한 노배우는 덧붙인다. 늙을수록 칭찬을 좋아하는데 리어왕도 그러다 속아 넘어가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정치도 매한가지다. 칭찬이나 아첨에 휩쓸리지 말고 아프지만 정직한 충고를 새겨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어둡고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특권과 반칙, 공정과 상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은 당시 지배계층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의심을 한다.우리에겐 다소 낯선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모범복지국인 스웨덴에는 ‘타게 엘란데르’ 라는 정치인이 있다. 재임 시절 모든 특권을 버리고 오직 국민의 삶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이웃처럼 보낸 엘란데르 총리가 외투 한 벌, 구두 한 컬례로 23년 총리직을 수행하고 은퇴 후 낙향했을 때 오히려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이 지지자들 보다 더 많았다고 하니 그의 대화와 타협, 특권 없는 삶 그리고 국민통합을 위한 노력에 대해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가 어느 정도일까 짐작이 된다. 정계를 은퇴하면 천덕꾸러기가 되어 하루아침에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지는 우리의 정치풍토와 사뭇 대조적이다.타임머신을 타고 600여년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의 제4대 군주인 세종대왕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역사상 세종시대 만큼 흙수저의 전성시대가 없었고 부정부패라는 단어를 잊을 만큼 청백리 문무백관들이 넘쳐나는 시기도 없었다. 인재등용에 있어 저울처럼 공평했으며 모든 공은 백성과 신하의 몫으로 떠 넘긴 세종의 리더십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뭄과 흉년이면 3가지 이상 반찬을 얹지 못하게 했고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날마다 수확량이 많은 벼 품종을 개발하라며 집현전 학자들을 닦달했던 임금의 모습은 오늘을 가는 모든 지도자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다시 대통령 선거의 계절은 다가오고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전 현직 대통령이 정파를 초월한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국민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말이지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지지층과 비지지층을 분열시켜 전선을 확대시키고 반사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세력이다.역사에는 거짓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다. 역사는 거짓도 기록은 하되 진실만을 기억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래서 역사만큼 두려운 단어는 없다. 대통령 선거는 역사의 일부분이다.아직은 누구인지 어느 진영인지 희미하게 보이지만 통합과 공정을 앞 세워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분열과 차별을 선택하여 과거로 후퇴할 것인지는 오로지 국민들의 몫이 될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향해 가고 있다.

2021-11-14

자율재능 드림 콘서트

윤영대수필가 지난 8일 경북교육청문화원 대공연장에서 중학생들로 이루어진 윈드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렸다. 개교 70주년을 맞은 청하중학교의 제6회 정기연주회였다. 청하중학교는 경상북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예비미래학교에 지원하여 자율재능학교로 선발되어 각종 특기교육을 실시해온 결과 올해 미래학교로 지정되어 앞으로도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재능을 키워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자율재능학교는 2015년 시작되어 학생이 편중된 학교와 유휴교실이 있는 인근 학교 간의 win-win사업으로 재능신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과정 선도학교를 의미하며, 학생활동 중심의 수업(스포츠), 창의적 체험 활동(승마, 골프),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국악, 음악) 등으로 꿈과 끼를 키우고 학교 교육의 만족도를 향상시킨다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참여 학교들은 이러한 교육 활동으로 학생들의 우정이 돈독해지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고 반기고 있다.시골 학교의 학생 수는 날로 감소하고 있고 폐교위기에 처한 초·중등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청하중학교도 지방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옛날 수백 명이던 전교생 수가 올해 100여 명을 조금 넘고 한 학년에 30명도 채우기 힘들어한다. 다행히 자유 학구제와 여러 특별교육 프로그램에 힘입어 ‘아름다운 전원학교, 함께 꿈꾸는 행복학교’라는 슬로건 아래 농어촌 학생들의 적성계발과 문화적 감수성 향상을 목표로 한 ‘1인 1악기’ 프로그램 등으로 올바른 인성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 송림의 이름을 딴 ‘관송 윈드오케스라’를 2014년에 창단하여 포항시향과 대구 음악인들의 헌신적인 지도를 받아 매주 월·화·토 그리고 방학 중에도 연습을 거듭하여 오늘의 알찬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전교생 109명 중 66명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뿐만 아니라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호른 등 성인에게도 어려운 관악기까지 다루고, 여기에 적성이 맞지 않은 학생은 모듬북반, 사물놀이반, 기타반, 우쿨렐레반, 밴드반 등 음악동아리를 만들어 각자의 특기를 뽐내고 있었다.그날 프로그램을 보니 대단하다. 사물놀이 의상을 입고 북을 신나게 두드리고, 기타 치며 노래하고, 가벼운 클래식과 영화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모습은 2시간 내내 가슴 뿌듯하게 박수 치게하고 시골 학교 재능꾼들의 벅찬 꿈이 무대 가득 넘쳤다.프로필을 보니 현악4중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학생은 비엔나 음악콩쿠르 대상을 받았고 또 한 명은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여 각종 콩쿠르에 입상하고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음대 재학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단원들의 노력으로 2016년 제41회, 2019년 제44회 두 번이나 대한민국 관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였고 각종 페스티벌 공연과 재능기부 등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농어촌 전원학교에서 자율 재능교육을 받고 계속 그 꿈을 키워 나가는 학생들을 볼 때 지금의 주입식 위주 교육방식도 많이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청하중학교의 꿈 ‘자율재능 드림 콘서트’가 매년 연주되기를 바란다.

2021-11-14

경쟁의 이점

조현태 ​​​​​​​수필가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생물은 어떤 형태로든 경쟁을 하면서 산다. 사람이나 동물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경쟁으로 인하여 서열도 정해지고 더 큰 이익을 챙기려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여 경쟁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경쟁을 부추길 것도 아니다. 어쩌다가 식물도 경쟁한다는 것을 듣고 좀 놀랐다. 고정된 장소에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 식물이 경쟁할 수가 있을까. 더구나 생각이나 감정도 없이 주어진 토대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을 식물이 있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식물도 경쟁한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예컨대 어떤 산에 다른 수종은 없이 한 종류의 나무만 있다고 하자. 빽빽하게 잘 자라는 듯해도 그 숲은 많이 약한 나무 군락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섞여 자란다면 서로가 경쟁하듯 건강한 숲을 이룬다고 한다. 왜냐면 수종마다 영양이라든가 수분의 정도, 혹은 일조량과 해충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필요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뿌리와 가지, 잎, 줄기는 물론이요 키까지 유리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땅 속에는 뿌리가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요 가지나 줄기는 일조량이 충분하도록 생장해야 하리라. 잎이나 고유한 향기는 해충 또는 유익충에 대처하지 않겠는가.그러나 같은 종류의 나무만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필요가 같다면 같은 조건을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다. 공기, 수분, 햇빛, 바람, 온도 등등을 있는 그대로 갈라 먹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약하거나 자리를 불리하게 잡은 나무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터이다. 나아가서 해충이나 유익충도 같은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므로 훨씬 단순한 생장을 할 것이다.양식한 물고기보다 자연산을 더 좋게 여긴다거나 밭에서 재배한 인삼보다 자연에서 자란 산삼을 선호하는 까닭이 뭔지를 생각하게 한다.만약에 고양이만 많으면 쥐도 많아야 하지만 고양이와 쥐가 섞여 있으면 굳이 많지 않아도 서로 약삭빠르게 잘 살 궁리를 하지 않을까. 그러면 궁리를 하는 측면과 그렇지 않은 상황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터이다.이것이 동물의 세계에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식물도 그러한데 사람에게는 오죽하랴. 문명이 있고 지배력이 있고 지능과 언어까지 있으니 경쟁으로 치면 가장 처절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겠다.안타까운 것은 같은 항목에서 경쟁이 심하다는 데 있다. 돈 때문에, 권력 때문에, 지위나 명예 때문에,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같은 목표를 두고 경쟁하면 나눠먹기 밖에 더 되겠는가. 경쟁하는 효과가 떨어지니 결과도 늘 부족할 뿐이다. 돈과 권력을 따로 경쟁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해당 분야의 전문인이 차지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돈에 승리한 사람은 돈만 있고 권력은 전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돈으로 경쟁하여 이긴 사람은 돈이 많고 권력이 적을 뿐이다.식물도 동물도 선한 경쟁을 하건만 유독 인간만 다투어 갈라먹기를 고집하고 있다. 사람이 경쟁을 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제 살 상하게 하는 경쟁보다는 다양한 경쟁을 하면 좋겠다. 이겨서 제 일인자가 되는 경쟁 말이다.

2021-11-14

경북도 예산 11조대…경기회복 마중물 돼야

경북도의 내년도 예산이 1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당초 예산보다 5천979억원(5.6%)이 증가한 것으로 11조원대 예산 편성은 내년이 처음이다. 내국세 증가와 정부 재정 확장에 따른 국가보조사업 등이 늘어난 때문인데,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내년 예산이 어떻게 쓰일지는 모두의 관심이다. 경북도는 역대 최대 규모 예산을 두고 당면 현안인 코로나 극복에 집중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우 도지사는 “지역경기 활성화에 우선 투자해 일상회복을 도모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경북도는 이에 따라 내년에 편성되는 예산을 크게 4개 분야에 중점 투자한다고 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민생지원과 미래형 경제구조 대전환, 촘촘한 경북도 복지체제 구축, 지역균형발전 인프라 확충 등이 그것이다.문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짜인 내년 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고 그리고 성과를 낼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출은 행정 본연의 목적인 주민의 공공복리를 위해 쓰이는 회계다. 회계의 적절한 배분과 성과는 회계 지출의 생명이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이 낭비가 되고 결과적으로 주민이 피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특히 지난 2년간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는 국가나 지방의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서민경제가 받은 타격은 더 심각했다. 이런 위기일수록 공공 예산은 더 꼼꼼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돼야 한다. 코로나로 상처받은 소상공인들의 아픔을 달래주면서 서민경제 회복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복지도 잘 챙겨야 한다.이번 예산편성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그리고 청년의 도약, 일자리 창출 등에 많이 배정된 것은 단계적 일상회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내수 촉진을 위해 편성한 4천억원대의 문화관광 등 서비스산업에 대한 지원도 장차 효과를 기대해볼 만 것이라 하겠다.코로나 사태로 아직 우리 사회는 위축된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도 경북도의 예산이 풀리면서 지역경기도 본격 회복기에 접어들었으면 한다.

2021-11-14

청년세대를 위해 대선후보가 할 일

심충택 논설위원 어떤 선거든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지역이나 사람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지난해 총선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국책사업으로 성사시킨 PK(부산·경남) 지역이 대표적이다. 내년 대선에서는 아직 대부분 부동층으로 남아 있는 2030세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캐스팅보트로 부상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민주화를 거치면서 진보성향이 강한 40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보수성향이 강한 60대이상 고령층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특정 이념에 정착하지 않는 20대와 30대 표심은 두 후보가 모두 놓치고 있다.전체 유권자 중에서 약 3분의1을 차지하는 이들 청년세대는 이념과 지역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선거 당시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는 ‘스윙보터’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기 이익 중심으로 정치 현안을 판단하기 때문에 정권에 의한 피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 실제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 당장 현실에 필요한 변화를 제시하는 것에 관심도가 높다.청년세대의 이러한 성향을 인식하고 여야후보들은 최근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부동산과 일자리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선대위에 후보 직속 기구인 ‘청년 플랫폼’을 신설해 당내 청년들을 전면 배치했다. 외부 인사 영입도 준비 중이다. 경선 과정에서 ‘398 후보(20대의 3%, 30대의 9%, 40대의 8% 지지율)’라는 조롱을 들은 윤석열 후보는 첫 공식 일정부터 이준석 대표를 만나 청년세대의 취약한 지지세를 확장할 아이디어를 들었다. 특히 윤 후보는 경선 후 홍준표 의원을 지지했던 청년당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당장 홍 의원의 선거대책위원회 참여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홍 의원이 젊은 층에 어필했던 장점을 적극 벤치마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다만, 여야후보들이 청년세대들을 향해 경쟁하듯이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는 모습은 걱정스럽다. 대부분 공약이 돈 퍼주기다. 이재명 후보는 청년 기본 대출 1천만원과 연 200만원의 청년 기본 소득을 약속했다. 기본 주택 100만호 중 일부는 청년들에게 우선 배정하겠다고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세계 여행비 1천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떠냐는 말까지 했다. 윤석열 후보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 청년에게 월 50만원의 청년 도약 보장금을 최장 8개월간 지급하겠다”고 했다. 청년 재산 형성 보조도 언급했다.홍준표 의원이 청년세대에게 강한 지지를 받은 것은 국회의원 정원축소와 로스쿨 폐지, 대입 수시 폐지 같은 정책공약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 신규당원이 급증한 것도 새로운 정치와 정책 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일회성의 선심경쟁으로는 젊은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이들의 미래에 부담을 지우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대선후보들은 청년층의 절절한 고민과 기대를 경청하면서 이들의 삶의 질이 실질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 정책공약을 개발하고, 서로 치열하게 공약검증을 하길 바란다.

2021-11-14

인플레이션 공포

미국 블롬버그 통신은 지난달 “밥값과 이발비를 내기 위해 금조각을 떼어내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내용은 베네수엘라에서는 1세기전 금을 교환수단으로 사용하던 시절로 되돌아갔으며 월급도 금으로 주고 호텔 숙박비도 금으로 주고받는다고 했다.베네수엘라는 수년전부터 공식 물가상승률 발표를 하지 않는다. 한때 물가상승률이 수백만%까지 치솟았고, 지금도 수천% 뛰고 있다. 법정화폐의 가치가 떨어져 이 나라와 인접한 콜롬비아 국경지대에서는 베네수엘라 화폐로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상인도 등장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인플레 폐해는 거의 구제불능 상태다.인플레이션은 통화량 증가로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다. 물가가 오르니 돈 가치가 떨어져 수출이 잘 안된다. 경제 악순환이 이어진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통제를 벗어난 상태로 수백%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1980년대 남미 국가들에서 볼 수 있었던 일이다. 표퓰리즘의 근원지 남미 국가들은 국가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바람에 아직도 경제난에 허덕이는 곳이 많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5대 산유국이지만 체베스 대통령의 포퓰리즘으로 현재는 하루 소득 2달러가 안되는 극빈층이 70%를 넘는다.미국, 중국의 소비자 물가가 수십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과 남미, 아시아국가도 비슷한 양상이라 한다. 해외 언론은 “물가 폭등으로 올 겨울 굶어 죽는 사람이 급등할 것”이란 소식을 전한다. 국내 소비자 물가상승세도 심상찮다. 일각에선 인플레까지 염려한다. 이런 참에 정치권에서는 표심을 잡겠다고 돈 풀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4

‘기초의원 연수’ 칭찬받으려면 신뢰성이 중요

‘위드 코로나’ 시행과 함께 경북도내 기초의회가 기다렸다는 듯이 제주도 등으로 관광성 연수를 떠나 논란이 되고 있다. 구미시의회는 지난주(10~12일) 2박 3일 동안 제주도에서 숙박하며 연수회를 가졌다. 연수에는 시의원 12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10명이 참여했다. 칠곡군의회도 최근 2개반으로 나눠 2박3일씩 연수명목으로 부산과 제주도를 다녀왔다. 경주시의회도 이달초 2박3일동안 시의원 19명과 사무국 직원 10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주도에서 연수회를 했다. 지방의원 연수는 의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지역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예산안과 조례안 심사, 행정사무 감사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지방의원들이 전문가를 초청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가능한 한 많이 거쳐야 한다. 특히 의정활동 경험이 적은 초선의원들의 경우 역량 강화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전국적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의원 3천751명 가운데 초선 의원이 62%를 차지한다.지금까지 지방의원들의 국내외 연수가 말썽이 된 것은 공부보다는 관광에 치중하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구미시의회 등 최근 연수를 다녀온 기초의회의 일정을 보면, 2박 3일 동안 특강과 강의는 지방자치법 전면개정, 재정집행 진단과 예산안 심사과정 등 2∼3과목 뿐이고, 나머지 일정은 관광지 탐방과 견학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니 겉으로는 연수를 간다고 하면서 놀러갔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마당에 연수장소를 관광지로 정한 것은 문제가 많다.구미지역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최소한 지금의 어려운 지역 경제를 조금이나마 생각을 했다면 연수 장소를 경북도내로 선택했어야 했다”고 한 말에 공감이 간다.자치분권시대를 맞아 지방정부 역할이 커지고 주민들 수준도 높아짐에 따라 지방의회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내년부터는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권한도 대폭 강화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지방의원 스스로 자신이 충분한 자질과 전문성,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서, 항상 자질강화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2021-11-14

승자의 저주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경제용어에 ‘승자의 저주’란 말이 있다.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른 것이 본질적인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켜 정작 시장에서는 승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경쟁에서 이긴 승자에게 무슨 저주가 생긴다는 말일까. 가격을 헤아리기 힘든 고가품을 놓고 경매를 벌인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점점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원래 생각했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 결국 물건을 차지했다. 하지만 실제 물건의 가치가 당신이 지불한 금액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나면, 당신은 경쟁에서 이기고도 손해를 보게된다. 이것이 승자의 저주다.보통 사람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다. 아슬아슬하게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수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이것이 나중에 대학 진학하는 데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해 현저히 높은 아이들의 성적 수준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내신을 획득하지 못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치권에서도 승자의 저주는 자주 나타난다.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되면 당 차원에서는 다수당이 되기 위해 국민들이 원하는 공약들을 무차별적으로 내놓는다. 결국 그 선거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너무 무리한 공약들을 내놨을 경우 이행할 수 없게 돼 국민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 다음 선거에서 표심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투표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탄핵을 주도했던 국회의원들은 이겼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가 찾아왔다. 국회 의석수만을 믿고 힘을 과시했지만, 결국 민심을 거스르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민심은 등을 돌렸고, 탄핵 주도 세력들은 2004년 18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닌 힘의 우위를 앞세운 밀어붙이기 전략은 결국 승자의 저주를 불렀다.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후보 역시 선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승자의 저주’에 맞닥뜨린 모양새다. 윤 후보는 민심에서 10% 남짓 홍준표 후보에게 뒤졌지만 당심에서 크게 앞서 어렵사리 후보가 됐다. 그가 경선 승리를 위해 치러야 했던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번 경선에서 보수세력이 정권교체를 위해 반문재인 정서를 묶어내는 구심점으로 선택한 인물이 윤석열이라는 건 최종 확인됐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보수 혁신’의 분위기가 사라졌고, 2030세대가 바라는 공정과 정의 등 정치 전반에 대한 개혁 의지가 퇴색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특히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공정과 정의를 지지하는 2030세대로부터 윤 후보가 지지를 받지못한 것은 윤 후보가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지상최대 과제다. 윤 후보가 ‘승자의 저주’를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 지가 향후 대선승부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듯 싶다.

2021-11-11

포항시 ‘좋은일자리’로 인구마지노선 지키길

포항시가 올 들어 인구 50만 붕괴를 막기 위해 시행한 ‘주소이전지원금 지급사업’의 성과에 대해 시의회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포항시는 지난 9일 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에 ‘주소이전지원금 지급사업의 추진효과’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사업이 시작된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포항시로 주소를 이전한 1만5천969명에 대해 주소이전 지원금 47억5천200만원을 지급했다. 이 사업으로 인해 지난 1월 50만2천736명이었던 포항시 인구는 지난 10월 50만3천179명으로 443명 증가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시의원들은 “결과적인 수치로 보면 한 사람을 전입시키는데 1천만 원을 쓴 셈이다. 차라리 이 사업에 쓴 예산을 정주여건 개선에 사용한 것이 나았다”, “전입만 생각할게 아니라 전출을 최소화시키는 방안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이에 대한 노력이 없었다. 인구정책을 위한 사업이라기 보다는 예산을 쓴 것에 불과하다”, “예견된 실패로 본다”는 등의 질타를 쏟아냈다. 시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포항시 손정호 정책기획관은 “2020년 수준의 감소추세가 지속됐을 경우 올해 9월 중 인구 50만이 붕괴됐을 수 있다. 주소이전 사업으로 전입인구가 확대돼 전체 인구증가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손 기획관이 언급한 것처럼, 주소이전지원금 지원사업으로 포항시 인구가 다소 회복세를 보인 것만으로도 포항시로서는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현재 경북도내 대부분 시·군이 인구감소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출산율이 줄어드는데다 인구가 수도권으로만 몰려들고 있으니 비수도권 지자체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도내 23개 시·군 중 80%가 넘는 19개 시·군이 소멸위기지역에 속하고, 7개 시·군은 소멸고위험지역으로 발표됐다. 포항은 지난해까지 지진 등의 영향으로 5년여 사이에 인구가 1만7천여 명이나 줄어들었다.이런 추세를 방치하면 포항시 인구는 조만간 50만 명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인구가 50만 명 이하로 줄어들면 대도시 수준의 각종 특례지원을 받지 못해 도시위상이 크게 떨어진다. 포항시의원들도 지적했지만, 포항시가 인구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시적 지원금이 아니라 스스로 인구를 유인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21-11-11

구미형 일자리사업 늦었지만 분발 기대한다

지지부진하던 구미형 일자리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10일 구미시청에서는 LG화학과 경북도와 구미시 등이 참석한 가운데 LG화학의 구미형 일자리사업 투자협약 및 노사민정 상생협약식이 있었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과 LG화학, 경북도, 구미시 등이 참여해 구미형 일자리사업을 시작하기로 협약을 맺은 지 2년만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LG화학은 신설법인 LG BCM을 통해 경북 구미공단 6만여㎡ 부지에 2025년까지 약 5천억원을 투자, 차세대 이차전지양극제 생산공장을 건립기로 했다. 고용 창출 1천 명, 연매출 1조5천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미형 일자리사업은 광주형 일자리사업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 시도되는 상생형 일자리사업이다. 상생형 일자리사업은 정부가 추진하고 기업과 지자체, 근로자 등 경제 주체들이 협의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이미 경차 생산에 들어갈만큼 사업 추진이 활발하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광주시가 현대차보다 더 많은 지분을 투자해 사업을 주도하는 반면 구미형 일자리사업은 LG화학이 전액 투자하고 경북도와 구미시는 부지 및 세제 혜택, 복리후생 시설 등을 지원하는 투자촉진형 일자리사업이다. 대구시도 최근 대동그룹의 계열사 대동모빌리티와 대구형 일자리사업을 협약했다. 대동그룹은 계열사를 통해 대구국가산단 10만2천㎡ 부지에 2천234억원을 투자, 800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상생형 일자리사업이 지역별로 새로운 형태의 경제모델로 정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과 고용 등이 얼마나 효율적 성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경제주체의 노력에 따라 상생형 일자리사업의 성과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지금 구미 경제는 대기업의 잇따른 지역 이탈로 매우 어려운 처지다. 이때 이뤄진 LG BCM의 대규모 투자는 지역민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대감을 주고 있다. 2년만에 시작한 LG BCM의 투자가 성공할 수 있도록 아무쪼록 지역사회가 관심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모범적 선례를 만들어 또다른 상생형 일자리사업이 이어지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LG의 구미형 일자리사업의 분발을 응원한다.

2021-11-11

김장김치

우리의 선조들은 24절기 중 입동(立冬)을 기준으로 해마다 김장을 담근다. 지금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김치 담는 시기가 많이 뒤로 미뤄졌으나 겨울로 들어서는 입동 때가 김장하기 제철이다. 특히 김장재료인 배추와 무 등이 이 시기가 지나면 얼어 싱싱하지 않기 때문이다.김장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문화다. 엄동설한 3∼4개월 동안 먹을 채소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김장은 저장방법 또한 독특하다. 저장기간 생긴 발효작용으로 김치의 영양을 높이고 풍부한 맛도 내게 된다.김장김치는 배추와 무를 주재료로 하고 미나리, 갓, 마늘, 파, 생강 등을 부재료로 한다. 소금과 젓갈, 고춧가루로 간을 맞추어 겨우내 보관한다. 지역에 따라 특성이 있는데 이는 주로 기온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북쪽지방은 기온이 낮으므로 김장의 간을 싱겁게 하고, 양념도 담백하게 하며 신선미를 살린다. 그러나 남쪽지방은 대개 짜게하고 소금만 쳐서는 맛이 없으므로 젓국을 많이 사용한다. 김치는 동김치, 보쌈김치, 백김치 등 200여 종에 이른다. 우리의 선조는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C를 김치를 통해 섭취했다.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김장문화를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세대에서 세대로 기술이 전승되고 김장 담그기를 통해 이웃간 나눔을 실천하고, 공동체적 연대감 형성 문화에 주목한 것이다. 또 다른 나라 문화유산과는 달리 한국 김치의 전수자는 전국민이라는 특징이 있어 흥미롭게 보았다.김장철이다. 우리가 먹는 김장김치는 우리 민족 전통과 맛과 영양소 어느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는 것이 없다. 세계가 인정한 김장김치의 힘이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1

포스텍, 어게인 2010!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1968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로젠탈 교수는 상당히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지능측정 검사(IQ)를 실시한 후 결과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뽑은 몇 명의 학생들에게 검사결과가 최상이라고 통지하고 선생님이 이들을 칭찬하게 하였다.그 결과는 놀라웠다. 1년 후 이 학생들의 학습효과는 현저히 증가하였고 성적은 물론 IQ도 향상되는 기적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이것이 그 유명한 로젠탈 효과이다. 남이 알아주고 칭찬해 주면 개인의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논리이다.포스텍은 지난 10일 발표된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 이공계 분야 국내 1위를 카이스트에 내주고 2위로 내려왔다.국내 대학만 200개가 되는데 이공계 분야 2위란 대단한 것이고 여전히 포스텍은 최일류 대학이라고 부르는데 손색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1994년 처음 중앙일보 랭킹이 발표된 시절 포스텍은 첫해 1위를 한 후 카이스트와 1위 자리를 주고 받아 왔기에 카이스트에 1위를 내준 것이 큰 문제일 수는 없다.그런데 문제는 포스텍의 랭킹이 최근 전반적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대학평가에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두 개의 기관(QS, THE) 랭킹에서 포스텍은 크게 고전하고 있다.물론 이러한 대학평가들이 정확히 대학간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평가기준에 따라 대학의 랭킹들은 들쭉날쭉하여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그러나 이유가 어쨌든, 포스텍이 과거 QS 국내 3위, THE는 국내 1위를 하며 세계랭킹 28위까지 갔던 (2010년)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포스텍의 연구력이나 세계적 위상이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해외의 경쟁 대학들, 국내의 경쟁대학들의 노력이 포스텍의 노력에 비하여 속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대학의 사명은 무엇인가? 훌륭한 졸업생을 사회에 배출하여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대학이 되어야 한다.87년 개교한 포스텍의 기세는 세계와 경쟁한다는 기개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포스텍은 국내 1위라는 자부심이 확고했었다.포스텍은 10여 년 전 국제화 위원회와 경쟁력 위원회를 발족하면서 2010년 역사적인 영어공용화 캠퍼스 선언을 했다. 포스텍은 포스텍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기개로 전진했고, 세계 28위, 국내 1위라는 국내 어느 대학도 깨지 못한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이후 평가기준 등이 바뀐 탓도 있지만, 경쟁 대학들의 연구력과 평판도가 상승 하면서 포스텍은 국내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최근 포스텍은 “어게인 2010”을 외치면서 국제 평가에서 반드시 과거의 명성을 찾아 국내 1위 대학으로 다시 도약하겠다는 결의를 확고히 하고 있다.로젠탈 효과와 비슷하게 “형식이 내용을 좋게 한다”는 논리가 있다.포스텍은 내용이 갖추어진 대학이다. 이제 형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한국대학이 세계 랭킹에서 이룬 최고 랭킹은 여전히 포스텍이 보유하고 있다.포스텍의 “어게인 2010”을 기대해 본다.

2021-11-11

가을 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추수를 마친 들판이 벼들의 키만큼 낮아졌다. 낟알을 떨어낸 볏짚이 줄지어 누워 가을볕에 말라간다. 이는 물론 저절로 된 가을 풍경이 아니다. 땅을 갈아 벼를 심고 가꾸는 일련의 과정에 자연과 인위(人爲)가 뒤섞였다. 그 인위에는 사람의 육신보다는 기계문명이 더 큰 역할을 했다. 바둑판같은 구획정리,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 곧게 흐르는 수로, 곳곳에 설치된 관정까지 들판도 이제는 상당히 문명화 된 모습이다. 비료와 살충제, 제초제 같은 농약이 없어도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들판의 가을 풍경에는 이런 내막이 있다.갈색으로 보호색을 바꾼 메뚜기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란 속담이 있듯이 철지난 메뚜기다. 꼬투리 터진 콩알처럼 튀어 달아나던 한창 때의 모습이 아니다. 이번 가을에 새삼 발견한 것은 메뚜기들이 작아졌다는 사실이다. 제초제와 살충제 때문에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알겠는데, 메뚜기들의 몸집이 절반가량이나 작아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비와 잠자리도 이따금 눈앞을 스친다. 아직은 쑥부쟁이 같은 늦게 핀 꽃들이 있으니 나비의 역할도 남았으리라. 늦가을 들판에는 바야흐로 억새가 제철을 맞는다. 억새는 노후가 유난히 길고 젊은 시절보다 더 환한 모습이다.들판을 휘돌아 흐르는 냇바닥에 우거진 풀들은 제멋대로다. 일 년에 한두 차례 큰물이 져서 휩쓸리기도 하지만 저절로 난 풀과 나무들이 길길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다. 억새와 갈대가 주종이지만 군데군데 버드나무도 있고 그 틈새를 비집고 온갖 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무질서하고 혼잡한 자연의 숲이다. 그 속에서 새들은 둥지를 틀고 고라니가 몸을 숨기기도 한다. 사실 냇바닥의 생태계는 오래된 자연의 모습은 아니다. 골재를 채취하거나 준설을 하면서 파낸 냇바닥을 자연이 급조한 생태계인 셈이다. 그런 혼잡에도 불구하고 봄철에는 신록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지금은 가을빛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가을 길에는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 모두를 아우르는 가을 빛이 있고 그것이 또 정서의 강을 이루기도 한다. 봄의 생기와 여름의 열정을 지나 가을에는 차분해지고 완숙해지는 계절이다. 그러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다 놓아버리고 허허로워지는 계절이다. 자연의 가을이 그렇고 인생의 가을도 그렇다. 가을에는 가을 길을 갈 일이다. 가을의 산천초목이 내어주는 길, 높푸른 하늘 흰 구름이 써늘해진 바람이 가리키는 길이 있다. 아무튼 한 두 마디 시적인 문장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생태의 모습들이 가을 들길이다.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도 한다. 사람에 따라 그 길은 다양하고 우여곡절이 많기도 할 것이다. 탄탄대로거나 꽃길이거나 난마처럼 뒤엉킨 길이거나 죽음이라는 종착지는 같은 길이다. 그러나 산천초목이 일사불란 계절을 따라가듯이 인생에도 어디든 희망의 이정표가 없지는 않은 게 섭리다. 다만 욕심이나 어리석음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할 뿐이다. 생명의 이정표, 대자연의 이정표를 수시로 확인하는 삶이라야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2021-11-11

의존의 병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심리학자 가토 다이조는 의존심리가 강한 사회는 공포와 적대감으로 가득찬 세상을 만든다고 했다. 의존심리는 자주, 자존, 자립심의 결여로 인한 나약함과 그에 따른 불안, 공포,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힘 있는 것에 의존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발생한다. 이런 의존심리가 보편화 되면 힘 있는 것에 의존하고 기생하는 ‘의존병의 사회’가 되어 병든 세상이 되어 버린다. 이반 일리치는 스스로 고칠 수 있는 병도 병원에만 의존하는 지나친 의존심을 ‘의원병(醫原病)’이라고 했고 이 병이 보편화가 되는 ‘의원병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몸에 대한 자율권을 잃어버리고 병원과 의사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종속사회가 된다 했다. 의존병은 마음의 지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 해 줄 수 있는 것을 외부 세계에서 찾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일원이 되거나 극단적인 정치사상 집단에 들어가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의존하게 된다. 하나님은 의존에만 빠지는 신앙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외세 의존적 독립과 전쟁을 치른 우리는 지금도 자율권의 침해와 그 영향을 지금도 받고 있다.예수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로마라는 거대한 지배체제가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부패한 성전신앙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두 지배체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로마와 성전기득권자에 의존하여 살고자 하는 의존의 병에 걸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인 마음의 지주와 자율성을 잃어 버렸다. 이렇게 의존병에 든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던 것이 베데스다 연못의 사건이다. 베데스다 못은 간헐 온천으로 물이 끓어오를 때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병을 고쳤다. 여기에 예수가 방문 하였고 38년이 되어도 병을 고치지 못한 병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들어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는 “나를 들어 못에 넣어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다. 그의 진짜 병은 의존의 병이었다. 예수는 단순히 육신의 병을 고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로마와 성전기득권자의 지배체제에 의존하며 살고자 했던 의존병을 치유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자유의지를 되찾아 자주하고 자존하는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구티에레즈는 “나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고 했다. 남의 우물물에 의존하지 말고 내 우물에서 살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의존기립과 의존보행을 극복하고 자발기행, 자발보행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의존병의 사회를 구원함에 있었다. 오늘 우리가 고쳐야 할 병이 아닐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2021-11-10

말로는 부족한

양태순 수필가 마음에서 말이 되기까지 순간일 적이 있다. 멋진 풍경을 볼 때, 늘 보던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여쁜 돌,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 떼, 서늘한 바람에 묵묵히 버티는 억새, 가을날 선물꾸러미를 터뜨리듯 툭 터지는 석류, 한겨울 몰래 피운 야생화들. 그것들을 마주하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다. 예쁘다와 좋다.울주군 간월재에 갔다. 억새가 일품이라고 너도나도 인증샷을 올려놓아서 가보고 싶어서다. 모처럼 나선 산길을 걷자니 눈이 시원해진다. 산 능선을 따라 오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골짜기와 골짜기가 겹쳐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풍경은 명화 부럽지 않았다. 가을은 고개 위에서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잎들을 개구쟁이 붓질하듯 휙휙 물들이며 오고 있었다.억새평원은 장관이었다. 좋다는 감탄사를 남기고 부리나케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밀려드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다음 주변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되었다. 동서남북 두루 둘러볼 수 있었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고 억새는 그 위를 덮을 듯 무성했다. 바위와 억새가 만들어내는 가파른 길은 아득하였으나 색색의 옷들이 무늬를 더해 절경이었다. 다른쪽은 억새 뒤로 산 능선이 그윽하게 둘러쳐져 포토존으로 사람들이 복작였다. 은빚억새 위로 사람꽃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나는 억새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으면서 냄새를 맡고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가을 안으로 들어간 듯하였다.산을 오르며 연신 좋다는 감탄사를 뱉었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굽이진 길을 오르내리며 다가왔다 멀어지는 풍경 앞에서, 스스로 잎을 떨구는 나무 아래서 보라색으로 존재를 알리는 꽃향유를 보며, 가족끼리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에, 좋다를 고명처럼 얹었다. 그리고 저 홀로 익어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잎들과 잎들이 만들어내는 가을잔치에 마음을 빼앗겼다. 밖으로 나온 말은 좋다는 한마디였으나 속에서 일어난 감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감정은 섬세하게 분화한다. 좋다는 두루뭉술한 덩어리에서 여러 결로 나뉘어진다. 내 처지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파동이 다르다. 바꾸어 말하면 똑같은 감정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밖으로 나온 말이 같아도 다르게 읽히는 순간이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있을 때는 따로 해석이 필요치 않고 저절로 필터를 거쳐 들어온다. 좋다는 말에 숨어있는 뉘앙스랄지 미묘한 차이를 캐치할 수 있다.좋다는 말을 열 번 한다고 같은 뜻이 아니다. 얼키설키 감겨오는 감정의 결에는 차이가 있다. 특별한 것이어서, 설레고 기뻐서, 영원할 것 같아서,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동행한 사람과의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다시는 못 볼 아름다움을 숭배하기 위해, 수없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시집의 구절 등이 모두가 좋다는 말에 포함되는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얼렁뚱땅 좋다는 말속에 밀어넣고 만다.간월재 억새평원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말들이 어째서 꼭 필요한 순간에는 숨어있는가. 그동안 읽은 책 속의 명문장들을 복기한 것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는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 앞에서 기껏 좋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내가 느낀 감동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어서 머릿속이 쑥대밭이었다.시의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몇 번을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다. 감정을 말로써 조곤조곤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생각을 끄집어내려 해도 마음 안에 뭔가가 있는데 건져지지 않을 때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순간이다.마음의 눈이란 말이 있다. 사물을 볼 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뒷면을 보는 것이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바람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알아야 풍경 속의 풍경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아직도 나의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닫힌 문 앞에서 소멸하고 만다. 가을산에 촤르르 펼쳐진 멋진 문장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고 안타깝다.솜씨를 부린 글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아내는 정(情) 같은 글을 쓰고자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가을이다.

2021-11-10

붉음, 그 마지막 정열을 사르다

겨울로 가는 길목, 수목원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찬바람이 이 골짝에서 저 골짝으로 불자 나무들이 서둘러 다른 색깔로 잎을 물들인다. 사람도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수목원을 찾는다. 이들의 왁자한 소음을 잘 버무리면 푸짐한 가을 한 상이다.붉은 꽃등이 내준 길을 따라 걷는다. 바람 한 자락에 나뭇잎이 화르르 떨어진다. 단풍나무가 잎을 떨어뜨려 푹신한 융단을 깔아 놓았다. 단풍의 해사한 빛에 이끌려 나무 아래 머문다. 나무가 뿜어내는 붉고 고운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뭇잎 하나, 둘 주워 손바닥에 살포시 올린다. 군데군데 벌레가 갉아 먹고, 서로 부딪쳐 바스러진 잎이 제각각이다. 단풍잎의 크기는 비슷해도 색깔은 다르다.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을 요즘에는 자주 올려다본다. 하늘이 맑아 고개를 들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신발 끈 매고 나서면 하늘이 내려 준 풍경을 오롯이 내게 들일 수 있다.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나뭇잎을 보는 것은 황량한 겨울을 건너야 하는 인간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위안이다.붉은 丹, 바람 楓, 은행나무 잎이나 갈색으로 변하는 나무도 단풍이라 부른다. 나무의 특성에 따라 잎을 각기 다르게 물들인다. 조금 빨리 물을 들이고 햇볕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붉은 단풍나무 아래 서자 나도 붉게 물든다. 붉음은 사람을 모이게도 했다. ‘붉은 악마’가 거리에 모여 토해내는 열정은 얼마나 붉고 뜨거웠던가.보이는 것이 전부인가, 단풍나무가 주는 화려한 것만 보았다. 나뭇잎들은 왜 떨어질까, 왜 가장 곱고 아름다울 때 잎을 떨어낼까, 뙤약볕의 여름을 잘도 견디고 비와 바람, 몇 번의 강한 태풍에도 제 가지를 잘 챙겼는데, 나뭇잎은 가장 화려할 때 사람을 불러들이고 잎을 떨어뜨리려 하는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찬바람이 불면 나무는 미련 없이 잎을 버린다. 때를 놓치면 후회할 일이 생기니까. 버릴 때를 알았다. 그동안 광합성을 하느라 고생한 잎을 떨어뜨리기 전, 마지막 혼신의 힘으로 아름답게 핀다.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이유는 생의 마지막에 단풍이 단풍다운 본연의 색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닐까.그냥 서서 엄동설한을 견뎌야 하는 나무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필요하다. 가지가 많아 잎이 풍성하면 넉넉한 양의 수분이 필요하다. 가진 게 많으면 나무도 겨울을 견디기 힘이 든다. 긴 겨울 동안 얼어붙을 수도 있고, 가지마다 매달린 잎들이 눈보라에 마주할 일이 더 생길 수 있다. 나무는 추위가 엄습하기 전에 우리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물하고, 서둘러 몸을 가볍게 한다.내 어머니는 가난했다. 잠시도 몸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흙 묻은 옷이 마를 틈 없이 밭에서 살았다. 비 오는 날이 돼서야 어머니는 우리 차지였다. 가난해서 밀가루로 만든 먹거리뿐 이었지만, 항상 배가 불렀다.우리는 추운 겨울, 서로 아랫목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사실은 누가 더 어머니 곁에 앉을 수 있을까 경쟁했다. 아랫목에서 피어나는 어머니의 옛이야기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랐고, 지난한 삶에도 조금씩 볕이 들었다. 들창으로 스미는 햇살이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때, 어머니는 큰 병을 얻었다. 이순혜​​​​​​​수필가 어머니 곁에 자식들이 머물고 치료를 도왔다. 하지만, 부모·자식이라는 끈은 정성만으로 버틸 수 없었다. 온갖 약을 써도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지셨다. 어느 날, 이제는 안 되겠다며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깊게 파인 어머니의 주름만큼 투박하지만, 누런빛이 나는 것을 슬며시 꺼내셨다. 손을 내민 우리에게 어머니는 팔찌를 하나씩 채워주셨다. 서로 의지하고 양보하며 둥글게 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얼굴에 붉은 꽃이 벙긋했다.어머니 얼굴에도 마지막 꽃을 피웠다. 어머니가 평생을 몸담은 곳에 기부하라고 부탁했다. 어머니의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향한다며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적지만 큰 베풂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자식들의 형편을 알았지만, 평생 흙 만지며 번 돈으로 어머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달았다. 어머니의 마음이 가는 곳, 그곳을 바라보며 참 많이 기뻐하셨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단풍처럼 붉었다.단풍나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았다.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버려야 할 때를 알았다. 가장 아름다울 때. 이제는 무거워진 것을 하나둘 내려놓을 때이다.

2021-11-10

내일 생각은 누가 하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자본주의가 가진 최대 약점은 무엇일까? 자본이 중심이 되어 세상만사가 돌아간다.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돈. 돈 많은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일들을 드물지 않게 목격하는 유전무죄와 돈이 없으면 감수해야 한다는 무전유죄. 돈이 힘이 되는 세상이 아닌가. 약육강식과 약자도태도 금력의 정도 차이로 나타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망하면 죽는다’는 적자생존 인식을 공포스럽게 그리고 있다. 돈의 힘은 과연 세다. 하지만, 이 모든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머니게임’의 뒷 자리에는 보다 더 싸늘한 약점이 도사리고 있다.누구도 ‘내일’을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좋은 이웃’이 되고자 하는 이는 뉴스거리가 된다. 거의 비정상이다. 둘러보아도 진지하게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말이 좋아 백년대계라는 교육을 누가 진정으로 걱정하는가. 인류최대의 난관이라는 기후위기를 고민하기는커녕 속속들이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강고한 ‘쩐의 논리’는 내 주머니만 고민하게 하고 내 가족만 추스르게 한다. 공연히 남을 생각하는 이는 바보가 되고, 혼자서 선의을 떠올리는 자 공상가가 된다.내일을 걱정하고 남들을 돌아보다가는 오늘을 놓치고 기회는 흘러간다. 착한 생각과 미래 걱정에 돈이 함께 할 턱이 없다. 오늘 눈 앞에 펼쳐진 기회에 집중해야 하고, 돈 앞에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이웃은 못 본 척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는 잊어야 한다. 단기에 집중해야 하고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모두의 눈을 멀게 한다. 적절하게 눈을 감아야 성공하고, 철저하게 매정해야 겨우 이긴다.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은 ‘내일 생각’을 잊게 하는 데 있다. 돈을 사랑하게 하여 남 생각을 못하게 하는 데 있다.정치는 달랐으면 하는 게 소박한 국민들의 생각이다. 우리 정치가 나라의 미래를 꿈꾸게 하고 다음 세대를 걱정했으면 한다.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미래와 선의를 끊임없이 망각하게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당신들은 달랐으면 한다. 당장 20대와 30대가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을 진심으로 보듬고 함께 내일을 기획해야 한다. 누구도 우리 교육의 내일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길고 긴 미래를 확보하려면, 교육의 틀부터 바꾸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미래와 다음 세대를 회복하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약점을 극복하고, 내일을 향한 비전을 찾아야 하고 남들을 향한 배려에 나서야 한다.자본주의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공감 능력을 낮추려 하지만, 우리는 그 약점을 간파하여 지혜롭게 이겨내야 한다. 내일을 향해 생각을 열어야 한다. 멀리 바라보아야 나라가 산다.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에 살피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이웃이 웃어야 모두가 행복하다. 자본주의의 약한 부분을 이겨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편해진다.

2021-11-10

월성 1호기 7천억 날리고 기어코 해체인가?

고리 1호기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원전인 월성원전 1호기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7천억원의 수리비를 들여 연장운영에 들어갔던 월성 1호기 폐쇄를 두고 그동안 경제성 평가 조작과 사회·경제적 비용 낭비란 거센 비판이 있었지만 정부의 탈원전정책 기조 속에 기어이 해체 과정을 밟는 모양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9일 “월성원전 1호기의 해체 로드맵이 이사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수원은 해체계획, 안전성 평가, 부지복원 등 최종 해체계획서를 작성하고 주민의견 수렴과 품질보증계획서를 첨부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으면 해체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해체 비용은 8천129억원으로 추산된다 했다.원전은 수명이 종료되더라도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수명을 연장해 가동한다. 미국 등 전 세계가 그렇게 한다. 월성 1호기도 2012년 11월 설계수명이 끝나 가동을 중단했지만 7천억원의 수리비를 들여 2022년까지 연장운영에 들어가기로 했다.그러나 현 정부 들어 탈원전정책이 추진되면서 월성 1호기는 2018년 가동이 중단됐다. 수리비에 투입된 비용과 원전기술 사장, 원전기술자 양성과 이탈 등의 문제로 탈원전에 대한 반발 여론도 만만찮았으나 정부는 여전히 탈원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현재 국내에는 고리 2호기를 비롯 10년 내 수명종료를 앞둔 원전이 7기나 된다. 월성 1호기와 같은 방법으로 이들 원전도 운영을 종료한다면 국내 에너지 수급에는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 월성 1호기 중단 등 현재 탈원전정책만으로 한전의 적자가 갑자기 불어나는 등 각종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특히 이번 해체에 들어가는 월성 1호기는 감사원 감사결과 “경제성이 낮게 평가됐다”는 결과가 나와 사법당국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앞으로 이와 관련 어떤 논란거리가 더 등장할지 알 수 없다.월성 1호기 해체에 소요되는 비용 8천여억원과 보수비용을 합치면 1조5천억원 이상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부담을 늘리고 에너지 수급 불안정으로 전기료도 올려야 할 판이다. 경제적 약자인 서민이 가장 심한 타격을 입어야 한다.국민의 67%가 원자력 사용에 찬성이다. 국제적으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이 대세다. 우리도 동참을 선언했다. 원전없는 탄소중립은 현실성이 없다. 월성 1호기 해체는 재고돼야 한다.

2021-11-10

대선 테마주의 허상

대선 테마주가 증권시장을 뜨겁게 달구곤 한다. 대선 테마주는 여야의 대선 후보와 관련있다는 기대심리 확산으로 주가가 오르는 주식을 가리킨다.그러나 전문가들은 공약에 따른 정책 수혜 기대감이 아니라 대표의 인맥 등 별다른 근거없는 대선 테마주 투자는 위험하다고 조언한다.대표적인 것이 바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적 테마주로 꼽힌 경남스틸과 삼일이다. 이 종목의 지난 9일 종가는 4천170원으로 5일부터 9일까지 3거래일 간 77.45% 추락했다. 올초 경남스틸의 주가는 주당 1천875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홍 의원이 대선 출마 선언일(17일) 이후 5천원대로 치솟았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홍 의원이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주가는 더욱 뛰었다. 최고 1만1천950원(9월28일)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이렇게 올랐던 주가는 홍 의원의 경선 패배와 함께 고스란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삼일 주가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7월말 2천800원에 불과하던 주가가 홍 후보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한달여 만에 최고 9천300원(9월13일)까지 3배 이상 폭등했다가 홍 의원의 경선 패배와 함께 2천700원선으로 내려앉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테마주로 꼽힌 서연, 서연탑메탈, NE능률, 크라운제과, 깨끗한나라, 덕성 등도 대표이사, 최대주주, 사외이사 등이 윤 후보와 같은 파평 윤씨라거나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묶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테마주도 대표가 경기도 성남 출신이라거나 이 후보와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분류됐다.별다른 근거없이 대표 인맥에 따라 분류된 대선 테마주의 주가 널뛰기는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