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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육군사관학교 안동 유치, 충분히 명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안동에 육군사관학교(육사)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거듭 밝혔다. 이 후보는 지난달 28일 고향인 안동을 찾아 “육사 유치를 공약했다가 혼이 많이 났다. 그럼에도 굳이 안동에 유치한다고 공약한 건 안동이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육사 안동유치’ 공약은 당내에서도 반대의견이 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송영길 대표는 지난달 22일 충남권 선거유세에서 “논산의 가장 큰 이슈가 육사이전 문제인데 논란이 많다. 대선이 끝나고 재검토해 정리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에 대해 “육사 유치를 추진하던 그 지역(논산)에는 더 나은 공공기관을 추가 배치해서 균형을 맞춰주면 되지 않나”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현재 서울 노원구에 있는 육사는 지난해 정부가 신규 주택 공급을 위한 공공택지 지정지역으로 거론하면서 이전논의가 시작됐다. 국방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는 논산시를 비롯해 상주시, 강원도 원주시·화천군, 경기도 동두천시, 전남 장성군 등이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은 이 후보의 거듭된 공약으로 안동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부상한 상태다. 이 후보도 강조했지만, 안동은 육사를 유치할만한 명분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석주 이상룡, 백하 김대락, 일송 김동삼 등 신흥무관학교를 창설한 주역 중 상당수가 안동의 유림들이다. 신흥무관학교는 광복군 탄생의 산실역할을 해, 육사의 전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안동시가 육사이전 후보지로 고려하고 있는 곳은 도심인 송현동에 있는 121만㎡ 규모의 옛 36사단 (백호부대)부지이며, 지금은 예비군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소도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집권당 대선후보가 안동에 육사를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꺼낸 것은 물론 대구·경북 민심을 의식한 포석일 것이다. 그러나 육사의 안동이전은 국가정체성 확립이나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충분한 명분이 있다. 안동시민들은 오는 9일 선거 이후 ‘육사 안동유치 추진위’를 구성해서 본격적인 유치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국민의힘을 비롯해 여야 정치권 모두가 힘을 보태주길 기대한다.

2022-03-02

최악 가뭄 속 대형 산불, 3∼4월이 더 걱정

유례없는 가뭄 속에 크고 작은 산불이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경북 영덕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주는 경북 고령과 대구 달성에서도 잇달아 산불이 일어나 큰 피해를 냈다.지난달 26일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에서 일어난 산불은 두 번이나 재발화하는 바람에 진화하는 데 무려 4일이나 걸렸다. 또 지난달 2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서 시작한 산불은 고령군 쌍림면까지 번져 축구장 950개 면적과 맞먹는 675ha 면적의 산림을 태웠다. 헬기 35대, 진화 요원만 2천500여명이 동원됐다.최악의 겨울 가뭄이 이어지면서 올 들어 두달 동안 발생한 산불은 전국적으로 225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118건보다 두배가 많다. 경북서도 16개 시군에서 38건의 산불이 발생, 작년보다 12건이나 더 많았다. 문제는 겨울 가뭄이 당분간 더 지속할 거라는 기상 예보다. 또 연중 산불 발생이 3∼4월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예년 통계를 보면 봄철(3∼4월)에 일어나는 산불이 전체의 67%다.반면에 올 들어 전국적으로 내린 비의 평균 강수량은 8.7mm다. 예년의 17% 정도다. 대구는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은 무강수일이 무려 71일간 이어졌다. 50년 만에 최악 가뭄이라 한다.가뭄과 건조한 날씨, 강풍까지 동반하면서 올해 산불은 났다 하면 대형이다. 지난달 15일 영덕에서 일어난 산불도 축구장 560개 면적의 산림을 태웠다. 특히 건조한 날씨로 산과 들이 바짝 마른 상태라 진화됐던 불도 다시 되살아나는 경우가 많다.3월부터는 연중 가장 건조한 시기다. 봄철 산행과 행락객 발길이 잦고 영농준비로 농촌도 분주하다. 산불 발생 우려가 그만큼 커지는 계절이다. 산불 방지를 위한 관련 당국의 촘촘한 예방이 중요하다. 경북도가 지역별로 담당자를 지정하는 산불 책임제를 도입한 것은 순발력 있는 조치다.등산객, 농민 등 모두가 산불 예방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산불 발생 대부분이 실화나 쓰레기 소각같은 작은 부주의에서 빚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2022-03-02

폴리서치

‘폴리서치(politics+research)’는 여론조사업계에서 쓰이는 말로,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여론조사를 함으로써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같은 신조어는 폴리페서(Polife ssor)가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의 합성어로 이뤄진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됐다.폴리페서가 대학 교수직을 발판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처럼 폴리서치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폴리서치란 용어가 등장한 것이 바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최근 3·9대선 여론조사에서 조사 방식이 다른 두 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바람에 빚어진 논란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기존 정례 조사를 ARS(자동응답) 100% 조사로 해왔으나 대선 종반전에 접어든 시점에 별개로 전화면접 100% 조사를 진행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ARS 조사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접전을 보였지만, 전화면접 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윤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KSOI 측은 조사 방법에 따라서 결괏값이 다른 점을 있는 그대로 알려 여론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고 밝혔다.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중요한 건 추세인데, 기존 조사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를 갑자기 발표하는 건 통상적이지 않다는 비판이다. 때마침 모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SNS에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가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 해당 기관의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도 벌어졌다.공정성이 생명인 여론조사기관의 폴리서치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결코 용납돼선 안 될 범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02

주권자의 시간이 돌아온다

조혜신포항시북구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한동대 법학과 교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한때 광장에서 노래로 불리기도 했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다. 대한국민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근거이자 이유인 것이다. 이제 곧 이 주권자에게 특별한 시간이 다가온다. 바로 선거이다. 주권자가 주권을 행사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대통령 선거는 주권자의 의사가 가장 직접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법이다.물론 주권자는 하나의 의사를 갖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를 전체의 의사로 간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다수의 의사를 끌어모으기 위한 정치세력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게 된다. 이 과정은 때로 주권자의 심기를 어지럽히기도 하고 주권자의 이익과 바람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 시간은 그간에 잠복되어 있던 갈등과 대립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때이다. 이것이 정치에 대한 회의와 무관심이라는 폐단을 낳기도 하지만,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가장 특별한 시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때이다.얼굴 생김새만큼이나 생각도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공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는 이 어려운 일을 상당히 지혜로운 방법으로 해결한다. 주권자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주권자의 시간이 도래하면 그간에 쌓인 갈등과 대립을 드러내고 새로운 공존의 조건을 합의한다. 바로 그 주권자의 시간이 선거인 것이다. 그 다음 주권자의 시간이 돌아오기까지 우리 공동체가 평화롭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한 대타협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대선이 대통령이라는 한 공직자의 선출 그 이상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면 선거 과정을 통해 분출되는 다양한 목소리는 타협점을 모색하는 주권자들의 대화이자 토론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지혜로운 주권자를 광장으로 불러내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향연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03-02

시대정신과 예수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한 시대가 공유하는 정신과 문화양식, 이념과 신앙은 그 시대의 삶의 방식이 되는 보편적 정신으로 이를 시대정신이라 한다. 역사를 평가할 때에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평가하는 내재적 접근방법과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는 외부적 접근방법이 있다. 과거 역사의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 이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내재적 접근법으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이승만은 외부적 접근법으로는 백 년을 내다봤다는 높은 점수를 받는다. 백 년 앞을 내다보며 산 사람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백 년이 지난 다음 외부적 접근법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역사적 인물 중에 내가 본 최고의 선구자는 예수이다. 성경은 선구자를 선지자로 표현한다. 선지자는 현재의 시대정신으로 산 사람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시대정신을 열어가는 자를 의미한다. 예수는 당시 시대정신과는 전혀 다른 앞서가는 정신을 가지고 살았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유대의 전통인 율법주의로 대변된다. 그 당시의 보편적 시대정신은 남자와 여자, 내부인과 외부인, 주인과 종, 성인과 어린이를 차별하였으며 약자에게 불공정한 성전 제사제도와 안식일 법,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분하는 정결제도와 음식을 차별하는 음식규정, 죄인, 세리, 이방인, 병자, 장애인 등과 접촉을 금하는 차별적 율법 규정들로 대표된다. 예수는 이런 시대정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법을 제시하면서 성전을 허물라 하고 제물을 파는 자들의 상을 엎어 버린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음식을 먹는 것을 허락하여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안식일 법을 깨뜨린다.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정결규정도 깨어 버린다. 여성과 어린이, 남자와 여자, 내부인과 이방인, 주인과 종을 차별하는 규정도 깨어 버린다. 접촉이 금지되어 있는 죄인과 세리와 이방인과도 접촉을 하고 교류를 한다.예수는 이런 차별과 불공정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사회적 죄로 보고 이 억압구조를 깨뜨려 해방시키고자 했다. 당시의 시대정신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종교적으로는 이단이요 정치적으로는 지배체제에 대한 반역이다. 그러기에 당시 시대정신은 당연히 예수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예수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예수는 수없이 “내가 가는 길을 너희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슬러(Eisler)는 예수가 살던 그 시대에 예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사람은 소크라테스나 피타고라스 정도라야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예수는 영원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의 소유자였고 선지자요 구원자였다. 그 시대에는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의 말대로 그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는 시대정신으로 살았다.

2022-03-02

개화(開花) 즈음

배문경수필가 툭, 겨울을 뚫고 매화가 가지에 꽃잎을 열었다. 제주도부터 꽃소식을 들고 달려오는 봄바람의 발걸음 소리가 분분하다. 꽃소식에 점심시간에 황성공원을 걷다가 칼바람에 겉옷을 목까지 당겨 잰걸음으로 돌아왔다. 겨울 끝이라고 방심한 탓이다. 입춘이라고 봄에 들어서려다 문지방에서 넘어질 뻔했다. 겨울은 조금 더 기다리라고 아직 방을 뺄 생각이 없다.나는 매화를 좋아한다. 유유상종이라고 얼마 전 매화만 그리는 친구의 전시회에 갔었다. 매화 가지가 작은 종지에 꽃물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어사화처럼 둥글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바탕색이 파랑일 때와 붉을 때 매화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림을 그린 친구도 한복을 곱게 여밀 때와 원피스로 정장을 차려입었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달라 화들짝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파란 바탕의 매화를 보니 고흐의 ‘아몬드 꽃이 피는 나무’가 오버랩 된다. 일본 에도시대 서민층 사이에 유행하던 목판화 우키요에가 도자기를 감싸고 바다를 건너 고흐에게까지 당도했다. 새로운 화풍에 놀란 화가들이 앞 다투어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고흐는 자신의 그림 곳곳에 일본을 담았다. 고흐의 ‘꽃피는 매화나무’는 히로시게의 ‘가메이도 매화정원’을 유화로 모사한 작품으로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은 판화인데 고흐가 유화로 모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일본 땅에서 피어난 매화가 바다 건너 저 멀리에서 다시 피어난 것 같다.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 하루는 매화나무를 팔 사람이 왔지만, 김홍도는 살 형편이 아니었다. 때마침 그림의뢰를 하는 사람이 사례비로 3천냥을 주자, 김홍도는 2천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함께 술을 마셨다. 그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 남은 200냥으로 겨우 쌀과 나무를 들였다고 하니 단원의 고결한 성품과 의연함을 느낀다.매화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꽃이 있을까.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는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기에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가족들과 즐겨 치는 화투의 두 번째가 2월 매화인 것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대학 다닐 때 차편이 불편했던 나는 정원에 매화가 구름처럼 피어나던 친구 집에서 얹혀살다시피 했다. 아침이면 한 상 차린 밥상에 허겁지겁 내가 밥숟가락을 옮기면 친구는 늘 서너 숟가락 뜨고는 가자고 재촉했다. 어머니는 늘 좀 더 먹으라며 친구에게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깨작거리곤 했다. “야야, 더 먹어라, 이렇게 잘 먹으니 얼마나 좋아”라며 잘 먹는 나의 식성을 칭찬하셨다. 열여덟의 허기지던 나는 어느새 쉰 고개를 넘은 지 오래다. 그 사이 친구 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는 형편이다.어떤 이는 치매의 한자를 어리석다는 뜻의 ‘치매(癡呆)’가 아닌 ‘치매(致梅·매화에 이르는 길)’라고 한다. 치매(致梅)는 무념무상의 세계에 이른다는 뜻으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누구세요”라는 어머니의 말이 엄마 손 잡고 놀러 나갔다가 길을 잃은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 같다. 울컥 눈물이 나다가도 자신의 병을 안다면 더 고통스러울 터인데,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에 치매를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이야말로 절망적이다. 다만 치매(癡呆)일지라도 치매(致梅)로 가는 길이라고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며 한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저 어머니 머리에 환하게 피어나는 매화야말로 자식들의 세상을 밝히고자하는 매화등은 아닐까.봄으로 들어선다는 입춘과 동면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있는 우수(雨水)를 지나도 겨울은 물러날 기색도 없이 영하의 날씨를 고집한다. 하지만 제주도를 출발한 꽃소식이 통도사 홍매화를 피워 올렸다. 이제 갓 어린아이 새끼손톱만 한 발긋한 꽃망울이 가지를 뚫고 올라온 것이 보인다. 추위 속에서도 매화가 꽃문을 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래도 봄은 곧 올 터이니 나는 매화 향에 그윽이 잠겨 볼 참이다.

2022-03-02

‘피넛’의 미래, 전기추진선박으로 이어지나

EBS 교육방송과 친해진 계기는 육아 때문이었다.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뽀로로’의 도움으로 매일의 육퇴(육아퇴근)가 가능했다. 온 몸이 젖은 스펀지처럼 무거울 때 아이와 함께하는 애니메이션 휴식도 달콤했다. 이야기와 주제도 다양해 어른들도 쉽게 빠져들었다. 덕분에 갇힌 육아 속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꼬마버스 타요’의 ‘피넛’ 등장이 대표적이다. 유치원에서 막 돌아온 아이의 간식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땅콩버스 ‘피넛’의 에피소드를 듣게 됐다. 참고로 엄마들은 손으로는 간식을 만들며 귀로는 애니메이션을 듣는 멀티플레이어다. 집안일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질문공세에 시달리다 생긴 기술인 셈이다. ‘꼬마버스 타요’는 새내기 버스인 ‘타요’를 주인공으로, 버스 친구들의 우정을 담은 EBS 장수 애니메이션이다. 이 날은 새로 온 친구인 전기버스, ‘피넛’이 소개됐다. 갑자기 피곤해져 ‘타요’의 도움으로 충전소를 찾았지만 천연가스충전소(CNG)인 바람에 전기충전소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그 후로 이어진 아이의 질문세례는 상상에 맡긴다. 피넛의 실제 모델인 ‘프리머스(PRIMUS)’가 ‘선두’를 의미한다는 것과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이 버스 회사 이름인 ‘에디슨’과 같다는 이야기, 카본이 말랑말랑해 땅콩처럼 둥근 모양의 차가 됐다는 등 진땀을 흘려가며 설명해 준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덕분에 엄마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각종 기술과 탄소중립에 관한 상식을 얻을 수 있었다.얼마 전에는 선박용 배터리팩을 실은 자동차가 개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엄밀히 말하면 전기추진선박의 전원공급시스템(배터리팩)이 차량형태로 구현되는 것이다. 항만과 터미널에 충전소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과 기술문제로, 이동·교체가 가능한 배터리팩을 차량에 싣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순수 전기추진 선박의 배터리가 탈부착 가능하며, 세계 최초라고 한다.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전기추진선박도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2010년 이후로 선박과 항만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국가별, 국제기구별 각종 대책이 쏟아졌다. 대형 컨테이너선 1척에서 배출하는 초미세먼지가 화물트럭 50만대와 맞먹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추진 전략’을 발표하고, 후속계획에 착수했다. 해운·항만·수산분야는 ‘환경친화적 선박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선박법)을 필두로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다. 배터리팩을 차량 형태로 구현한 전기추진선박(전기추진차도선-K1)도 해양수산부의 지원 덕분에 세계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내년 시운전에 나선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저감 외에도 친환경선박법이 갖는 의의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시장 선점 효과다.탄소배출을 줄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데에는 모든 이들이 동의한다. 다만 그 성장이 특정 산업을 선점하는데 유리하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경제학부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 출간으로 이 문제를 짚었다. 경제대국들이 어떻게 시장을 선점하며 산업을 주도해왔는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에게는 어떤 패널티가 주어졌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며 선진국의 위선을 알렸다. 후발주자로 힘겨운 압축 성장을 이뤄낸 우리에게 이번 기회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미세먼지로 악명 높았던 LA항이 최근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80%가량 줄였다고 한다. 이해관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파트너십이 유효했다고 하지만 정작 들여다보아야 할 점은 육상전원공급장치(AMP) 설치 비용이다. 부두에 정박한 선박은 냉동고 등 자체 설비를 사용하기 위해 유류발전기를 가동한다. 정현미작가 차량 공회전과 마찬가지로 이 때 내뿜는 초미세먼지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다. LA항은 이를 줄이기 위해 7개 터미널에 2억 달러(한화 2천400억)를 들여 AMP를 설치했다고 한다. 물론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펀딩을 통해서다. 정부의 특정 산업 지원이 어떤 효과를 노리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고로 전기추진선박 시장규모는 2018년 8억 달러에서 10년 후 124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2022-03-02

네? 그건 상식이라구요?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다보면 종종 그런 글들을 마주치게 된다. “영국이 섬이라는 게 상식이야?”, “시계 읽을 줄 모르면 멍청한 거야?”, “꼭 자기 이름 한자로 쓸 줄 알아야 해?” 등등, 타박을 듣거나 혹은 창피함을 느꼈던 경험을 토로하며 정말 상식이 맞는 것인지 되묻곤 한다. 물론 여기에 달린 댓글은 대개 “응, 상식이야. 그 정도는 제발 좀 알아둬”와 같은 상식(?)적인 댓글이 달리기는 하지만, 간혹 그러한 글들을 읽다 보면 나 또한 의문이 들곤 한다. 대체 상식이라는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건가 하는 의문.초등학교 1학년 때 한자 시간에, 담임 선생님에게 그런 타박을 들은 적이 있다. 숫자를 10까지 한자로 쓸 줄 모른다는 이유로 상식이 없다는 둥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는 둥, 온갖 모멸적인 말이 8살 아이에게 쏟아졌다. 그땐 그게 어마어마하게 큰 죄인 것처럼 느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8살짜리 애가 모를 수도 있지. 왜 남의 집안을 들먹거린담? 자기는 8살 때 그렇게 잘 알았나? 아니 그리고, 애가 모르면 가르쳐야지. 참고로 그날 울먹이며 집에 돌아온 나를 본 할머니께서는 이야기를 듣곤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교무실을 아주 뒤집어 버리셨다. 애가 모르면 가르쳐야지, 선생이 애한테 못된 소리나 하고 있다며.조금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모르는 건 언제나 존재한다. 박사에 평론가에 이런저런 타이틀을 달고 있는, 밖에서 보면 어쩌면 꽤나 수재(?)같아 보일 나는, 사실 상식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당연히 배우는 내용은 잘 모른다. 열일곱 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했었고, 복학해서도 3학년 때까지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해본 일이 없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께 참 죄송하긴 한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모두가 똑같이 모범적이고 평범하게 살겠어요.지금도 학교에서, 문단에서, 출판사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걸 느낀다. 매번 대화를 끊고 모르는 걸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요즘엔 모르는 게 나오면 조용히 기억해놨다가 대화가 다 끝나면 옆 사람에게 몰래 묻거나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곤 한다(심지어 웃긴 얘기조차 뒤늦게 이해하곤 혼자 낄낄거리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 속에서 나름 체득한 게 있다면,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다만 어떤 순간에는 실례일 수도 있다는 것. 나로 인해 회의가 중간에 끊어지거나, 혹은 대화의 맥이 끊기는 경우들 말이다.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정중함을 장착하곤, 물어볼 타이밍을 조심스럽게 재곤 한다. “저, 사실, 제가 그런 쪽은 잘 모르는데, 그게 어떤 거죠?” 그렇다보니 누군가 내 이야기에서 모르는 부분에 대해 물을 때면 역시나 정중해지게 된다. “어, 음, 그게 말이죠. 사실 저도 잘은 모르는데 이런저런 이야기예요.” 중요한 건, 그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안기지 않는 것. 묻는 일에서도 대답하는 일에서도 중요한 건 ‘나’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지금이 무척이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대로 생각되겠지만, 나에게 체감되는 ‘현재’는 좀 과하게 엄하고 과도하게 엄밀한 시간 같기도 하다. 글에서 혹시라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틀릴 때면 곧장 자격논쟁이 벌어지기도 하거니와 방송에서 조금이라도 꼬투리 잡힐 이야기를 하면 하차하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비판과 비난의 경계쯤에 놓인 그 엄정한 말들에서, 모르는 것은 ‘죄’로 취급받으며 그에 대해 사죄하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진다(마냥 모르는 것도 마냥 틀린 것도 아닌데도). 나도 모르는 새에 우리나라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아주 상식적인 것으로 굳혀진 것 같다. 정작 그래야 할 부분에선 안 그러면서.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의 논점은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무지를 죄로 취급할수록 무지한 자들은 자신의 무지를 숨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타인의 무지를 물어뜯는 것에만 더욱 집중하게 된다. 반대로,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니다. 알려는 노력이나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인정 없이, 사람은 나아질 수 없다. 모르는 게 죄냐며 발끈하는 사람과, 모르는 건 죄라고 발끈하는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말해보는 게 좋을지 고민이 많다.

2022-03-01

패배한 조연이 향하는 곳은

추억의 만화영화를 찾아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매주 같은 시간에 방영되던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서 놀이터의 미끄럼틀까지 포기하고 텔레비전 앞을 향해 달려갔던 어린 시절을 지나왔더랬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오프닝 음악을 따라 부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었다. 만화 속의 세계는 얼마나 매력적인지. 상영 시간은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그렇게 한 화가 끝나고 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누가 이겼는데?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는데? 내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만이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OTT 서비스의 시대가 왔으며 좋아하는 만화의 시작부터 완결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재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만큼 만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달콤한 과자를 곁들이며 편안한 자세로 누워 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성공이라는 개념에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최근 내가 보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요리왕 비룡’이다. 주인공인 비룡은 열세 살로 사천 출신의 천재 요리사다. 사천요리의 대가였던 어머니의 비기(秘技)를 물려받아 특급 요리사 시험에 응시하게 되고 최연소로 합격하는 영광을 누린다. 비룡의 신념은 명료하다. 요리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것. 그는 사명을 가지고 불우한 이들에게 최상의 요리를 선물하는 역할을 자처한다.비룡과 요리 대결을 펼치는 대부분의 조연은 그러한 신념과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다. 명예나 돈, 이기심을 앞세워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한다. 요리를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일까. 비룡은 그들과의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비룡을 응원하고 그의 승리를 바랐던 어린 날과 달리 지금은 조연들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생일대의 승부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그들의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지 못하는 벽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세상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모습과 나 자신이 서서히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지금 패배한 조연에 공감하고 있구나.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정말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매번 승리하는 주인공은 비룡뿐만이 아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거나 어떤 어려운 상황이 찾아와도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인물은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주인공의 자리에서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승리를 쟁취하며 겸손이란 미덕까지 겸비하고 있다. 그건 패배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패배자의 절규로 인해 주인공은 진정한 승리자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젊은 나이에 놀라운 결과를 이뤄낸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이자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이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이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 나 자신이 보잘것없게 느껴진다.이따금 우리는 자기 자신이 세상의 변두리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은 정해져 있으며 우리가 흘려보내는 일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만 같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 이유는 주인공을 빛내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신발에 들어 있는 모래 알갱이처럼 거슬린다. 툭툭 털어내도 떨어지지 않는 우울감이 덮쳐오면 이 지난한 시간이 별 볼 일 없는 삶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누가 그랬던가. 승리하면 배울 수 있는 것이 적지만 패배하면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그러나 연이은 패배만큼이나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끊임없이 승리한다는 것은 비현실의 영역이며 그것이야말로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승리로 점철된 주인공의 인생을 관조하고 일종의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낙관이 가득한 세계와 만나는 일. 그것은 지금까지도 만화영화를 시청하는 까닭이자 동시에 거기에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어렸을 때만큼 마냥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주인공에게 패배한 채로 떠나는 조연의 등을 본다. 그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거기에서는 과연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승부에서 비참하게 패배할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전설의 요리를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이깟 요리,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포기할 수도 있다. 어쨌든 패배한 조연은 자신만의 길을 떠났다. 비록 ‘요리왕’이라는 칭호는 얻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의 서사가 애틋하고 그들이 그려낼 내일이 궁금하다.

2022-03-01

캥거루 케어(Kangaroo Mother Care)

조현태수필가 의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을 인용해 본다.2010년 8월 26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냈다. 죽었다고 판단한 미숙아가 엄마 품에서 2시간 만에 회생했다는 보도였다. 그 대충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호주 퀸즐랜드에 사는 오그 부부는 수년 동안의 노력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그러나 예정보다 14주나 일찍 태어나 체중 1kg도 못 미치는 미숙아는 숨이 멎었다. 의료진은 20분 동안이나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어 사망으로 결정하고 시신을 산모에게 건넸다. 아기와 이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산모는 축 처진 아기를 받아 안고 모두 병실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산모와 남편이 상의를 모두 벗고 두 사람의 품 안에 아기를 함께 안아 따뜻한 체온을 나눴다. 아기를 안고 ‘아가야 사랑한다’ 말하며 쓰다듬고 키스하고 입을 열어 젖을 물렸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자 아기의 몸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고 의사에게 알렸다. 의사는 숨진 아기의 반사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산모는 손가락에 모유를 찍어 아기의 입술에 발랐다. 잠시 후 아기가 헐떡거리는 숨을 쉬기 시작했다.신문은 이러한 방법을 ‘캥거루 케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방법은 1983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처음 시행됐다. 미숙아를 위한 인큐베이터가 부족해 고육지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이처럼 미숙아에게 어머니가 피부를 맞대는 스킨 투 스킨(skin to skin)은 아기의 저체온 위험과 심각한 질병의 발병률을 낮춰준다고 한다.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면 아기의 호흡, 심장 박동수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체온 손실을 막아주며 잠도 잘 자게 해 준다고 한다. 또 신생아 때 부모와 접촉을 많이 한 아이는 뇌신경도 잘 발달하며 캥거루 케어를 하는 엄마는 모유수유를 더 오래 하는 경향이 있고 아기를 돌보는 데 자신감을 갖게 한다.제일병원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는 “미숙아들은 어머니 젖을 직접 못 빠는 경우가 많은데 캥거루 케어를 통해 개선할 수 있으며 어머니도 모유의 양을 늘일 수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일산 허유재병원 산부인과 홍승옥 원장은 “캥거루 케어는 보통 미숙아에게 활동된다고 생각하지만 만삭아에게도 놀라운 효과를 보이고 있으며 애착관계 증진, 면역력 상승 및 두뇌발달 측면에서 권장되고 있다”고 말했다.신생아에게는 부모가 곧 토대요 바탕이며 환경이라 하겠다. 그래서 부모가 건강해야 하고 슬기로워야 하고 용감해야 한다.아직 당선되지 아니한 후보를 미숙아에 비긴다면 신생아는 당선자라 해도 될 터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모든 배경(국민)은 부모에 견주어진다. 최고 통치 자리를 차지하게 허락한 주체는 국민이 아닌가. 당연히 건강하고 지혜롭고 용감한 국민이 애착과 긴밀한 소통으로 훌륭한 통치를 이끌어 낼 것이다. 그럼에도 훌륭한 통치는 마치 저 혼자서 터득한 걸로 알면 또 실패자다. ‘아가야 사랑한다’에 포함된 체온과 모유는 은근 슬쩍 던져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2022-03-01

없는 죄 감옥?… 과오 있어도 예우를

이명균창원대 명예교수 어느 대선 후보께서 유세 중 “…. 제가 지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갈 것 같다…. 검찰은 있는 죄도 덮어버리고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조직”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은 아마 진심에서가 아닌 유세장 분위기에 휩싸여 엉겁결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 표현은 단적으로 말해서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인 우리나라 법질서를 전면 무시하는 발언이며, 나아가선 우리 헌법 제1조 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어떤 사건에 대해 검찰의 기소에 다소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그 행위자가 수감되려면 최종적으로 법원판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죄 없음에도 감옥 간다는 말은 검찰과 법원을 모두 불신한다는 뜻인데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누가 뭐래도 법질서와 민주적 절차들이 잘 지켜지고 있는 우리나라이기에 설령 감옥에 가고 싶다고 해도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갈 수는 없다.얘기가 나온 김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황당하다고 여길지 모를 인문 논리적 담론을 한마디 하려한다. 즉 전직 대통령에 대해선 헌법 제84조에 해당하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가 아니면 재임 중 중대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퇴임 후 형벌을 받는 일은 없도록 하는 예우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만약 대통령 퇴임 후 형벌에 해당하는 과오를 범했던 사실이 발견된다면 그 사안의 진행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한 참모나 장관은 반드시 엄한 처벌을 받게 되는 장치는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에게 보고할 사항에 대해 실무 담당자나 중간 보고자가 합리적 타당성을 근거로 윗사람의 뜻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을 때 “너 죽을래?”라는 식으로 말하는 부류의 사람을 엄히 처벌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을 그런 형태로 보필하는 사람은 업무적 판단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모시는 자세마저 잘못됐기에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자리에 앉는 하늘같은 은총을 받은 사람은 대통령과 국가를 위해 신명을 바쳐 올바르게 잘 보좌할 각오를 해야 하며 그것이 의무이고 도리이다. 대통령도 인간이니 오판이나 착각이 있을 경우 힘들거나 마음이 아파도, 올바른 조언과 충언을 전하여 바로 잡아야한다. 응당 해야 할 일을 성가시다고 피하기만 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미루고 떠맡긴다면 이는 임명권자에 대한 불충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의 오판이나 잘못된 업무수행을 바로잡거나 말리는 일을 못하겠다면 그 대신 벌 받을 각오를 하든지 아니면 자리에서 즉시 물러나는 것이 옳은 자세다. 다만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선 관련내용과 그 진행의 전후관계를 자세히 공개해 국민들과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는 절차나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광복 후 우리 손으로 뽑은 아홉 분 대통령 중에 퇴임 후 무사히 생을 마치신 분은 단 두 분뿐이다. 이는 매우 슬픈 일이면서도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가품격에 비추어 봐도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2-03-01

오미크론 정점 전 방역패스 중단 괜찮은가

정부가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던 식당 등 다중시설 이용 등에 적용하던 방역패스(접종증명)를 어제부터 중단했다. 이날부터 11개 다중이용시설과 감염 취약시설, 50인 이상 모임. 집회 행사에서도 QR코드를 찍지 않아도 된다. 4월로 예정된 청소년 방역패스도 중단된다.정부는 “상황에 따라 방역패스를 재개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제도 도입 4개월만에 사실상 제도시행을 포기한 것이다.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의 특성과 연령별, 지역별 형평성 등을 고려한 것이며 고위험군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이동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서울과 부산에 이어 대구지법이 60세 미만자에 대해서도 방역패스 적용을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려 방역패스의 일률적 적용이 힘들어진 점 등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전 방역패스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이처럼 쉽게 방역패스를 해제한 것은 납득이 안 간다.외국의 사례를 보면 오미크론 정점이 지나서야 방역패스를 중단하고 있다. 국내는 아직도 오미크론 정점이 오지 않았다. 보건당국은 선거일인 9일 하루 확진자가 23만명을 예상하고 이달 중순에는 35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확진자 동거인에 대한 격리도 해제함으로써 지역사회 전파가 상상 이상 빨라질 것이 우려된다. 정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시간연장 요구 등을 감안, 6명과 오후 10시로 묶인 거리두기 조치도 완화할 것을 검토 중이라 하니 정부의 섣부른 해제조치로 오미크론 변이가 더 큰 유행으로 번질까 두렵다.오미크론이 중증화율이 낮다고 하나 오미크론 변이 확산 후 위중증환자는 200명대에서 700명대로 늘었고 사망자도 하루 114명으로 역대 최고치다. 위중증자가 1천명을 넘으면 의료체계가 감당키 어렵다. 80만명에 육박한 재택치료자가 지금도 코로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방역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 판단하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정부의 방역 신뢰가 땅에 떨어졌으니 툭하면 정치 방역이란 소리가 나온다. 개학까지 앞두고 있는 시점이니 낭패를 당하지 않게 정부는 정신을 바짝차려야 한다.

2022-03-01

촌철살인의 선거

선거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대선후보 진영의 입도 거칠어지고 있다. 말 한마디로 상대 후보를 제압하기 위한 용어 구사가 불꽃을 튀긴다. 이럴 때 선거용 입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이어야 제구실을 한다. 짧은 말 한마디로 상대의 급소를 찔러 유권자의 마음을 뺏어야 하기 때문이다.문 정권을 빗대는 대표적 용어 중 하나가 내로남불이다. 한자말은 아니지만 사자성어 형식을 통해 국민에게 그 뜻이 잘 인식된 용어다.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이젠 이중적 모순된 행동을 꼬집을 때 쓰는 대중 용어가 됐다.대선 후보 간 경쟁에서 진 사람이 잘 쓰는 말 하나 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이다. “스스로 계급장을 떼고 뛰겠다”는 뜻이다. 경쟁에 져 승복은 했지만 마음의 불편함도 함축한 말이다. 민주당 이낙연과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이 말을 사용했다.중국 전국시대 최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초나라 등 6개국이 동맹을 맺은데서 나온 합종연횡(合從連橫)도 선거철에 자주 등장한다. 선거에 불리한 당이 소수당과 힘을 합치자는 것으로 과거에도 있었고 20대 대선서도 시도되고 있다.속담 중 “오얏나무 밑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마라”는 말도 선거에 잘 등장하는 것 중 하나다. 특히 여당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행사에 참석할 때 야당에서 이를 인용한다.최근 이재명 후보가 “정치 보복은 나중에 몰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야당으로부터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비난을 받았다. “겉으로는 친한척하면서 뒤에서 뒤통수 친다”는 뜻이다. 선거에서 촌철살인은 가늠키 어려울 만큼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 말에는 팩트와 진실이 담겨야 힘이 살아나는 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3-01

포항과 포스코, 우선 서로 신뢰하는게 중요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달 28일 포스코 사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포스코 지주사(포스코홀딩스) 포항 이전에 대한 합의서는 이제 시작이다. 시작이어서 불안정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지난달 25일 발표한 합의문 내용 중 포스코홀딩스 소재지 이전과 관련한 문구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고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합의문에 서명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두고, 실질적인 본사이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최정우 회장 서명이 빠졌다 하더라도 이 회사 당연직들이 서명을 했다. 대선 후에 최 회장이 포항시를 방문해서 추가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이날 포항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김정재·김병욱 국회의원, 정해종 포항시의회 의장, 김희수 경북도의회 부의장도 동석했다. 참석자들은 ‘대시민 담화문’을 통해 “포스코지주사 서울 설치 계획 철회와 함께, 포스코 지주사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설치, 그리고 지역상생협력사업 추진을 골자로 한 합의서를 시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며 “앞으로 범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합의서의 성실한 이행을 포함한 철저한 사후관리를 하겠다”고 말했다.이 시장이 언급한 것처럼, 포스코지주사 포항이전을 핵심으로 하는 합의문 내용 중에는 실효성 논란 소지가 있는 부분이 더러 있다. 이 부분은 최정우 회장이 곧 포항에 와서 시민들에게 설명을 하면 될 것이다. 포스코는 포항시민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포항시와 포스코가 상생협력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상호신뢰 문제다.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는 포항시와 포스코지주사, 포스코가 함께하는 TF를 하루빨리 만들어 이차전지·수소·바이오 등 신산업에 대한 포항투자 방안 등 후속조치들을 빨리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포항시는 이번 사태가 도시미래를 한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포스코가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해서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할 필요가 있다.

2022-03-01

투표율 낮으면 民意 왜곡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모레(4일)부터 이틀간 실시되는 대선 사전투표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돼 고령층을 중심으로 투표율이 뚝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지금의 확진자 추세라면 사전투표일이나 9일 본선거일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오미크론에 감염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선관위가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해 별도의 투표시간을 마련했지만, 기저질환자나 병세가 좋지 않은 유권자들은 투표를 꺼릴 확률이 높다.사전투표가 조작가능성이 있으므로 선거일인 9일 당일에만 투표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퍼지는 것도 국민의힘으로선 안타까운 부분이다. 지난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사전투표 부정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사전투표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의힘 주지지층인 보수층과 60대이상에서 사전선거를 부정선거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실제 지난 4·15총선 당시 투표용지 출력 과정에서 다른 투표용지와 겹쳐 인쇄(배춧잎 투표지)됐거나, 투표용지 고정을 위해 부착한 화살표 모양 스티커가 함께 인쇄(화살표 투표지)된 경우가 있어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부정선거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생각이 우리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유튜브를 통해 지난해 총선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국민의힘으로선 유권자 모두가 사전투표든, 본투표든 투표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박빙승부가 예상되는데다 유권자 절반 이상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투표율은 승패를 가를 최대변수로 여겨지고 있다. 윤 후보도 “당일 투표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사전투표, 반드시 해 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민주당은 사전투표율이 높을수록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사전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결과 이 후보 지지층에서 사전투표를 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전투표에서는 코로나 확진 및 밀접접촉으로 인한 격리자도 투표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일 당일 치러지는 본투표일과는 달리, 사전투표는 이틀간 진행되는 만큼 둘째 날인 5일 확진·격리자 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선관위는 유권자가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갖는 것에 대해 해소해 줄 책임이 있다. 이와관련, 중앙선관위 측은 “소위 ‘배춧잎 투표지’나 ‘화살표 투표지’는 투표사무원의 부주의나 인쇄 과정에서의 오류에 의한 것으로 부정선거와 무관하고, 정규 투표용지로서의 효력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투표용지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투표자를 역추적하거나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일각의 소문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유권자들은 투표 관리의 투명성과 방역의 안전함을 100% 믿고, 사전투표든 본투표든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민의(民意)가 왜곡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2-03-01

정치 신뢰, 해답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김진국 고문 옛날 정치를 들먹이는 사람을 많이 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온갖 욕을 하던 사람이 그를 소환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으려던 사람이 ‘그래도 그분은…’이라고 추모한다. 추억이 현실보다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그때는 그래도 정치 도의라는 게 있었다. 속으로야 음험한 꿍꿍이셈을 품어도 겉으로는 아닌 체 명분으로 포장했다. 요즘은 명분이고, 체면 따위는 내팽개치고, 낯 뜨거운 언행을 거침없이 배설한다. 말 뒤집고, 거짓말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다.후보끼리도 ‘같잖다’, ‘겁대가리’ 같은 상스러운 표현이 거침없이 오간다. 정치 현안을 다루는 언행들도 상식을 벗어난다.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3일 국민의당과의 막후대화를 폭로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철수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는 등 제안을 해 온 것도 있다. 안 후보는 아시는지 모르지만….”‘안 후보가 아시는지 모르지만’이란 말은 “당신 측근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안 후보와 그 측근들을 이간질한 것이다. 물밑 대화를 공개하면 본인의 협상만 중단되지 않는다. 윤석열-안철수 사이의 모든 대화 통로가 다 막혀 버린다. 정치 도의도 신뢰도 모두 포기한 행동이다. 단일화보다는 안 후보 진영의 와해를 노린 수다. 적을 이기는 잔꾀를 잘 낸다고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는 게 아니다.윤석열 후보도 단일화가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단일화 없이도 이긴다는 생각 같다. 민심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마지막 투표함을 열기 전에는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자만하다 뒤집힌 선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최근에 다시 지지율이 박빙으로 좁혀지고 있다.안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단일화를 생각했다면, 윤 후보는 군소후보들을 흡수하는 단일화를 말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이 아니라도 적어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같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안 후보가 포기할까. 당선 가능성이 윤석열·이재명 후보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안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380만 명(8.5%)에서 660만 명(15%) 정도가 있다. 500만 명 정도의 그 지지자들이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진지한 제안에 외면하고, 조롱하면 모욕이다. 힘으로 누르면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종국에 표의 쏠림이 생기더라도 굴욕감을 느낀 표가 어디로 움직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제나 힘으로 굴복시키는 정치를 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양강이 아닌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체제를 선거구제 개혁을 통해 만들겠다” “위성정당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총리 국회 추천,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제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말보다 행동”이라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부터 치명적인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처리에 협조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을 만들었다. 막상 선거 때는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군소정당들은 기존 선거법에서보다 더 불리한 선거를 치렀다. 안철수 후보도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이재명 후보는 토론에서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성정당 없어도 압승했을 선거였다. 민주당이 뺏어간 의석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이 가져갈 의석이었다. 민주당이 만든 법이다. 아쉬운 일이 해결되자 입을 씻었다. 이번에도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어제는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결의까지 했다. 그렇지만 불과 며칠 전 새벽에 날치기로 추경을 통과한 정당이다. 숫자의 힘으로 독주하는 그 체질이 갑자기 바뀔까.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국민의힘이건 민주당이건 소수당의 싹을 없애려고 한다. 자신들과 비슷한 색깔일수록 더 짓밟는다. 그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분권형은 말뿐,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 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질주한다. 그래도 겁내는 건 국민이다. 해법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본사 고문

2022-02-27

다시, 악의 평범성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책임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가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에게 잡혀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지켜본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이 존재한다고 했다.악이라는 것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독가스로 유대인을 학살한 일을 아이히만은 자신의 자리에서 명령을 수행했고, 심지어 법을 지키며 그 일을 했다고 했다.그는 사형장으로 향할 때조차도 자신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꼿꼿하게 서있기 위해 발목과 무릎을 묶은 밧줄을 느슨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잠시 후면 여러분과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만세…”라고 말한 뒤 죽었다.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말하기에서의 무능, 생각하기에서의 무능과 판단하기의 무능함을 보았다며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더욱더 평범하게,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 없이 만든다”고 경고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의 독후감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가 말한 ‘우리 안의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인류세’라는 말이 있다. 25~15만 년 전에 탄생한 인류가 46억년 된 지구에게 ‘생태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로 붙인 말이다.‘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보자.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팀의 ‘인류세 : 인간의 시대’에 나오는 이야기다.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는 77억 인구가 250억 마리의 닭들과 함께 살아가는 ‘닭들의 행성’이며 우리가 먹는 닭의 조상은 ‘붉은들닭’으로 8천년 전부터 가축화되었단다.이 ‘붉은들닭’은 원래수명대로 산다면 30년을 사는데 현재 식용 닭의 수명은 중국 55일, 미국 45일, 한국 평균 35일이다. 길어도 두 달을 못 넘기며 로마나 중세시대의 닭들과 비교하면 다리와 가슴부분만 비대하게 자라고 5배 정도 빠르게 성장하도록 변형시켰단다. 그렇게 효율적인 닭이기에 일 년에 650억 마리 정도를 먹어치울 수 있게 됐단다.이 엄청난 대학살에 우리는 공기 중에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는 축산업과 유통업에서 생산하는 치맥으로 동참하고 있다.닭들이 어떻게 부화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어떻게 죽어서 튀겨지고 우리 집 앞으로 배달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주문하고 먹어치운다. 삼겹살을 뒤집으며 아무도 돼지의 분뇨를 치우다가 죽어간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다.닭과 돼지와 소는 인간들 덕에 자신의 종이 지구에서 번성하게 된 것을 고마워할까? 가축들의 죽음도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면 우리가 진행한 거대한 가속의 반생태적 문명이, 무심코 먹는 육식메뉴가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평범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46억년 된 지구를 70년 만에 거덜 낸 실력을 생각하면 ‘악의 비범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생태문명선언’이라는 책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영화감독 황윤은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에서는 ‘육류세’가 의회에서 논의 중이며 뉴질랜드에서는 가축사육에 ‘트림세’를 물리고 있다고 한다.캐나다는 2019년에 우유를 제외한 식물기반 자연식의 ‘캐나다 국민권장식단’을 발표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교육부행사에 채식을 기본식단으로 제공하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식물식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뉴욕시는 지속가능한 식생활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볼티모어에서는 200개의 학교에서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식품에 대해 가르치고 축산업이 기후변화와 물, 그리고 생물종다양성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아랜트가 말한 ‘우리 안의 악의 평범성’을 말하기, 생각하기, 판단하기를 통해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생태학자 최재천은 ‘호모 심비우스’에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모두 함께 사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유전자에 적혀있는 본능 같은 게 아니다. 이 지구를 공유하고 사는 다른 모든 생명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21세기 새로운 인간상으로 ‘호모 심비우스’를 제안한다”고 했다.호모 심비우스는 ‘공생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설 곳이 지구에는 없다는 절박함이 묻은 말이다. 협력하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경고의 말이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의 사유와 삶을 어떻게 꾸릴지를 안내하는 책 ‘소크라테스 스타일’에서 철학자 김용규가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로 ‘우리 안의 아이히만’이 저지르는 ‘악의 평범성’을 다시 상기하자.“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가난한 사람들과 지구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신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2022-02-27

울릉 늦겨울의 우산고로쇠 수액 채취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울릉도는 겨울철에도 주변 표층수온이 섭씨 10도 이상을 나타내는 비교적 따뜻한 바다에서 기인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최고봉인 성인봉(해발 986.5m)과 만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폭설이 가장 빈번하게 내리는 지역이다.울릉도의 겨울은 눈으로 상징된다. 눈은 수목의 뿌리가 얼지 않도록 보온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수목이 생육을 시작하는 봄철에 눈이 천천히 녹으면서 뿌리에 수분을 공급함으로써 울릉도 수목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2월 중순 울릉도는 울릉도 겨울의 선물인 우산고로쇠수액 채취가 본격 시작된다. 고로쇠나무는 해발 100~1천800m에 자생하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다.특히 우산고로쇠나무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고로쇠나무로, 해발 3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라고 있다.다른 지역의 고로쇠나무수액과 비교 연구에 따르면 우산고로쇠나무 수액의 당도는 3.06%로, 다른 지역의 당도 0.8~2.0%에 비해 매우 당도가 높다. 특히 우산고로쇠나무 수액 중 칼슘의 함량은 약 522mg/ℓ로 통상의 고로쇠나무(16.2~153.3mg/ℓ)에 비해 뛰어나게 높아 고로쇠가 골리수라 하여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속설의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산고로쇠에서 항암효과 및 피부 미백효과와 함께 신경세포의 퇴행을 막는 항산화 효과에도 우수한 것으로 판명됨으로써 천연 기능성 물질로서 여러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우산고로쇠나무 수액채취 시기는 12월~1월보다는 연중 기온의 일교차가 높은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에 주로 이뤄진다.고로쇠 수액의 분출 원리는 고로쇠나무 내부와 외부의 압력차에서 기인한다. 나무 조직을 구성하는 도관세포 내부의 공기는 추울 때는 수축하고, 따뜻할 때는 팽창하는데 이러한 수축 팽창 원리에 따라 뿌리로부터 양분을 흡수한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 중 최저기온이 영하 4℃, 최고기온이 영하 12℃, 일교차가 15℃ 이상일 때 가장 이상적인 채취 조건이 이루어진다. 울릉도는 통상 연 중 2월 중순에서 4월 중순 사이에 연 중 일교차가 가장 높으며, 한편으로 3월 중순 이후에는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따뜻해지기 때문에 고로쇠 수액의 적절 채취 시기는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에 이뤄진다.울릉도에서 본격적인 우산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는 1970년대 수액 채취가 이루어진 백운산, 지리산에 비해 비교적 최근인 2002년부터 수액채취 허가가 나면서 시작되었다.현재 울릉도에서 우산고로쇠 채취 생산자는 80여명으로, 수액채취와 품질관리는 울릉군산림조합 및 울릉군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울릉도에서 고로쇠나무의 이용은 울릉도 개척기 무렵부터 활발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울릉도 전통 가옥이면서 문화재청 중요 민속자료로도 지정된 울릉도 너와집의 널판의 재료가 바로 우산고로쇠나무이었다.울릉도는 지붕을 덮을 정도로 잦은 폭설이 내리기에 견고하면서도 눈에 적응하기 위한 집 구조가 필요했다. 산의 잡목을 구해 우물정자로 포개어 건립한 후에 그 위에다 지붕으로 너와를 올렸다. 고로쇠나무는 그 결이 단단하여 너와에 제격이었다. 그럼에도 해양성 기후 특성상 수분을 가득 머금은 눈의 무게로 인해 너와집이 붕괴되는 일도 예전에는 빈번하게 있었다. 1934년 2월의 어느 한 중앙지에 실린 울릉도 폭설 호외 기사는 4m에 이르는 폭설로 울릉도 용암골의 가옥이 붕괴되어 자고 있던 가족 모두가 참변을 겪었다는 안타까운 기사가 실려 있다. 울릉도 주민들에게 가옥의 재료로 울릉도 개척기의 어려움을 함께했던 우산고로쇠나무가 이제는 수액으로서 울릉도 주민의 겨울 소득원이 되고 있다.매년 겨울이면 잦은 풍랑특보로 인해 1달에 보름 가까이 여객선이 결항되어 고립의 섬이었던 울릉도가 올해는 지난 2021년 9월부터 포항-울릉도간 항로에 취항한 1만9천988t의 대형 카페리호인 뉴씨다오펄호의 운항으로 눈 덮인 울릉도의 풍광을 즐기고자 하는 등산객들로 비교적 활기를 띄고 있다.우산고로쇠와 함께 울릉도 풍성한 해산물은 울릉도 겨울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청정 해역의 어패류와 다양한 해조류도 한몫을 한다.왜 섬 주변에서는 그리고 울릉도(독도) 주변에서는 해조류가 풍성하게 자랄까? 해양 심층으로부터 영양염 공급도 있겠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육지로부터 영양염 공급에 주목하고 있다.특히 울릉도는 화산섬이라는 특징과 물이 풍부하여 육지로부터 영양염 공급에 우수한 조건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으로 알려진 포세이돈의 이름은 원래 땅의 남편, 땅의 주인을 의미하며, 대지를 뒤흔드는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바닷물에 녹아있는 거의 대부분의 물질은 육지에서 운반된 물질이다.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지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다와 육지가 가장 정직하게 만나는 곳이 바로 섬이다.

2022-02-27

안강송(安康松)

안강으로 소풍을 갔다. 소나무의 모양이 특별한 숲이 있어서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흥덕왕릉에 간다고 하니 집에서 가까운 곳인데도 다들 잘 모르는 눈치다. ‘태정태세문단속 예성연중집단속’, 이렇게 엉터리로라도 조선의 왕들은 우리 입에 오르내렸지만, 신라의 왕은 몇 대인지도 모른다. 우선 혁거세를 시작으로 마지막 경순왕까지 총 56명이고 그중 소재 불명을 빼면 왕릉은 총 37여 기가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주인이 확인된 무덤은 단 8기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추정할 뿐이다.그 가운데 제42대 흥덕왕릉에 도착했다. 능의 주변 비석에 ‘흥덕’이라는 글자 덕분에 주인이 분명해진 운 좋은 능이다.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어래산 기슭 능골에 있다. 능골은 왕릉이 있는 고을이라서 붙은 이름 같다. 주차장이 얼마 전에 새로 만들었는지 훤하다. 화장실에 들르니 천장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손을 씻으니 수도꼭지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와서 추운 날씨에도 기분이 좋았다. 흥덕왕의 백성에 대한 사랑인가, 하며 웃었다.능을 만나려면 먼저 소나무 숲을 지나야 한다. 사실 소나무에 가려서 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레솔이 빽빽하다.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둘러서서 능을 감싸 안았다. 솔밭 사이로 바람 소리를 따라 걸었다. 갈비가 쌓여 푹신한 오솔길을 내디딜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잔가지가 투닥투닥, 산비둘기가 낯선 손님이 왔다고 경계하며 부부 울었다. 용솟음치며 올라가듯 비스듬히 누운 나무, 두 그루가 꽈배기처럼 껴안고 자라는 나무, 드디어 소나무 병정들 사이로 능이 보인다.흥덕왕은 부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천 년이 지나도록 신라의 로맨티스트라 불렸다. 하지만 막상 소나무 숲 앞에 놓인 안내표지판을 보면 놀랄 것이다. 장화 부인은 남편이자 삼촌인 흥덕왕이 두 동생을 살해하는 현장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왕이 부인을 사랑했다는 말이 진짜일까 싶다. 왕위에 오른 지 2개월 뒤에 왕비가 죽었다. 왕은 무덤을 안강읍에 정하고 자신도 죽으면 그 자리에 합장하라고 했다. 자기가 묻힐 자리를 미리 정해둔 것이다. 왜 왕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했을까.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죄의식 때문에 경주의 중심지를 피했던 것이라 짐작해본다.구석에 있어서일까, 신라의 능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봉분과 그 둘레의 십이지신상, 무인상과 문인상, 4마리의 석사자에 석주까지 이렇게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원성왕릉과 이곳이다.봉분 둘레의 네 방향에는 석사자 네 마리가 지키는데 모두 보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왕릉의 주변을 천 년이나 한눈팔지 않고 경계하는 충직한 모습이다. 드디어 능에 다가서서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본다. 열두 마리의 동물이 판에 새겨져 그 특징을 보고 무슨 동물일까 맞춰가며 거닐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세월에 뭉개져 귀가 쫑긋한 토끼와 구불구불한 몸의 뱀만 모습을 알아볼 정도였다.왕릉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거북이를 못 보고 지나치기 쉽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소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흥덕왕릉의 이름을 지켜준 거북이니까 등이며 발의 모습도 살펴주길 바란다. 이 거북은 등에 비석을 지고 있는 귀부인데 아쉽게도 비석과 머릿돌은 사라졌다.능을 다 돌아보았다면 이곳의 백미인 소나무 숲의 소리에 다시 귀 기울일 때다. 소나무를 솔이라 부르는데 솔은 으뜸을 의미하는 말 ‘수리’ 또는 ‘술’이 변한 것으로 나무 중에서 최고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름철 강우량이 적을 뿐 아니라 온도 격차가 심해 소나무가 살기에 아주 좋지 않은 곳에서 자라느라 안강의 소나무는 구부러지고 뒤틀린 모양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 지역만의 특징적인 소나무라 ‘안강송’이란 이름도 따로 붙여주었다. 흥덕왕릉을 지킨 공덕을 인정받아 정이품송처럼 이름을 얻었다. 드높은 소나무 숲에서 마음을 씻었다. /김순희(수필가)

2022-02-27

포스코 지주사, 포항 설립 결단 환영한다

포항시와 포스코그룹이 지난 25일 포스코 신설지주사(포스코홀딩스)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을 포항에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포스코의 ‘탈(脫)포항’ 논란을 둘러싼 포항시와 포스코 간의 격화된 갈등이 일단락됐다. 합의서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정해종 포항시의회 의장, 강창호 범시민 대책위 위원장,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 전중선 포스코 사장이 서명했다. 포스코그룹을 대표하는 최정우 회장 서명이 빠진 것과 관련해서는 최 회장이 조만간 포항을 찾아 입장을 표명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합의서는 ‘포스코 지주회사 소재지는 이사회 및 주주설득과 의견수렴을 통해 2023년 3월까지 포항으로 이전할 것을 추진하고,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에 본원을 설치하는 등 포항 중심의 운영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포항시와 포스코, 포스코홀딩스는 앞으로 TF를 구성해 지역상생협력 및 투자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포스코홀딩스 소재지 이전을 1년 후로 미룬 것은 지난 1월 28일 열린 포스코 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소재지를 서울로 한다는 내용을 의결했기 때문에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다시 주주들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근무하던 기획·전략·신산업 담당 인력 200여명이 분리돼 3월2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에 있는 기술연구원과는 별개로 포스코그룹이 지난 1월 4일 개원한 RD 컨트롤타워이며, 인공지능(AI), 2차전지 소재, 수소 등 미래기술 연구에 특화한 조직이다.포스코가 포항을 비롯해 대구·경북 지역민의 여론을 받아들여 비수도권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포스코는 내년에 포항으로 오는 포스코홀딩스와 미래기술연구원이 실질적인 그룹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그러려면 최정우 회장이 가급적 자주 포항본사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최 회장이 포항에 머물면서 주요 회의를 주재하거나 많은 국내외 인사들을 만나면 포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 보유도시’가 된다.

2022-02-27

약육강식의 세계

“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먹이”라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자연의 생존법칙을 일깨우는 말이다.“우수한 자는 이기고 미흡한 자는 패한다”는 우승열패(優勝劣敗)와 “성공하면 왕이 되고 실패하면 도적이 된다”는 성왕패구(成王敗寇)라는 말과 비슷하다. 강한 자가 끝까지 남는 것은 일종의 자연 섭리다.다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인지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약한 자가 살아남아 강한 자를 무너뜨리는 일을 자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본래 의미도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아니고 가장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강해서 살아남은 것인지 살아남아서 강한 것인지 어느 것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강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한다는 데 별반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국가 존망 위기에 몰린 우크라이나 사태가 곧 약육강식의 국제 질서다. 날아 간 이해가 얽히면 어떤 논리나 순리보다 자국의 힘이 우선 작용한다. 국가적 이익에 물러설 나라가 없다는 뜻이다.바람 앞에 등불 같은 우크라이나는 서구 열강과 러시아의 신냉전 분위기 속에 어느 날 갑자기 제물로 남을 운명에 처해 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피난길로 나선 국민들은 일찍이 부국강병하지 못한 자신들의 모습을 자책하고 있을지 모른다.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앞에 버티고 있고 언제나 힘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는 한 한반도 안보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먼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평화 타령보다는 자주국방의 기틀을 다지는 반면교사의 정신을 가져야 할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2-27

신한울 1·2호기 재개, 정치적 의도 없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회의에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의 이른 시간 내 정상가동”을 언급했다. 평소 대통령이 낸 원전 관련 메시지와는 그 톤이 달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가 정책 전환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나 하면 또 다른 일각에선 대선을 앞둔 정치적 노림수로 보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을 점검하는 차원”이라 했지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왔던 청와대 측이 갑자기 원전공사 재개를 밝힌 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다.울진군의회 원전특별위원회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 변화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며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득표를 위한 일시적 정책 변화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신한울 1·2호기는 공정률 99%로 사실상 완공 단계다. 2018년 4월과 2019년 2월에 각각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막혀 운영허가가 3∼4년 가량 연기됐다.특히 문 정부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가까이가 원전사용을 찬성함에도 고집스럽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원전건립에 따른 매몰비용 발생 등 국가적 손실도 적지 않게 냈다. 청와대가 이제 와 신한울 1·2호기 등의 공사 재개를 주문했다면 그것이 정책 변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밝히는 게 올바른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선을 앞둔 득표용 노림수라는 비판을 받아도 달리 해명하기가 어렵다.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며 새로운 원전시대를 열어갈 계획이다. 정부의 원전 정책이 미래지향적이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지금이라도 정책 변화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차제에 신한울 3·4호기 공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밝히는 것이 정부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2022-02-27

유튜브 선거전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 순서다. 절대 권력일수록 언론의 통제도 절대적이기 마련이다. 통제 밖으로 유출하는 언로를 막지 않고는 권력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시작부터 친정부 좌파들이 방송매체를 접수했다. 지난 정권이 발탁했거나 우파성향의 인사들은 당연히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방송매체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정보에 의존해서 현실을 인식하기 마련인데, 지상파 방송은 물론 보수성향 종편방송도 생사여탈권을 쥔 정권에 대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론을 필두로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틀어쥐면서 좌파들의 장기집권 플랜이 착착 진행 되는가 했다.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유튜브(YouTube) 개인방송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다. 지상파방송에서 쫓겨난 인사들이나 보수패널로 출연하던 평론가들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개설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권의 억제로 막혔던 언로가 새로운 물꼬를 트고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노란딱지’를 붙여 수익을 차단하는 등의 제재가 가해졌지만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원천봉쇄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유튜브는 미국의 구글(Google)사가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기 때문에 함부로 통제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수십만의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하는 바람에 지상파방송들의 권력옹호가 잘 먹혀들지 않게 됐다.유튜브 개인방송은 대부분 그 성격이 좌와 우로 뚜렷이 갈린다. 즐겨 찾는 구독자들도 인터넷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돼, 양편 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래서 확증편향을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일방의 독단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더 많다고 할 것이다. 자유우파 유튜버들이 종북주사파가 주축이 된 좌편향 언론의 균형을 잡는 역할은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유튜브 기능은 결코 적지가 않은 것이다.우리나라 좌파세력은 상당기간 학습된 논리와 단합된 조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파 성향의 국민들은 대부분 지리멸렬 개별적인데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지식도 갖추지를 못했다. 그래서 좌파들의 준비된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거점으로 한 보수성향 국민들의 반격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정의감과 양식을 갖춘 논객들이 명석한 해설과 논평으로 대거 보수층 국민들을 계도하고 탄탄한 논리로 무장시킨 것이다. 반민족 매국노와 친일 독재자로 매도되었던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국과 민족중흥의 영웅으로 당당하게 추켜세울 수 있게 해준 것도 유튜브의 힘이었다.본격적인 대선정국에 들어서자 정권교체의 가망이 높아지고 있다. 다행히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그 수훈의 갑은 자유우파 유튜버들이란 생각이다. 그들이 불철주야 사회의 혈맥인 언로를 열어 마비된 세상을 일깨운 덕이라 할 것이다.

202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