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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방소멸특별법 통과가 균형발전 시발점 되길

지방소멸을 막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소멸 대응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89명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은 수도권의 인구집중과 심각한 저출산 및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지역의 급격한 증가 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따라서 특별법이 통과되면 지방소멸 특별지역에는 각종 세제 혜택과 재정지원이 가능해진다. 특히 대통령 소속의 민관합동 지방소멸대응 국가특별위원회가 설치 운영돼 지방소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수립되고, 지방소멸에 대해 보다 효과적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지방소멸 특별법 제정은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학수고대해 온 법이다. 소멸위기에 빠진 지방을 구할 법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여야의원이 공동 발의함으로써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영호남 8개 시도지사가 이미 수차례 이 문제 해결을 정부에 촉구한 바 있어 지방소멸과 국토균형발전의 문제를 법률적 근거를 갖고 실행할 수 있는 이 법안의 국회 통과에 벌써 지역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우리나라는 합계출산률이 0.84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0명대다. 2020년 국내 출생아 수는 27만여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20만명대로 떨어졌다. 부동산가격 폭등과 높은 청년실업률 등으로 젊은층 사이에는 출산 기피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감사원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지금 추세라면 2017년 5천136만명이던 국내 총인구는 100년 후는 1천510만명 수준으로 준다. 인구감소로 전국의 229개 시군 중 105개(45.9%)가 인구소멸위기 지역으로 분류됐으며 경북에만 16개 시군이 이에 해당된다. 인구감소 문제는 지방소멸뿐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흔들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저출산, 고령화, 지방분권 정책 등은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단편적 대응에 그쳐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와 정치권은 지방소멸과 국토균형발전의 문제가 실효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위기의 지방이 살아나고 전국민이 동등하게 행복한 삶을 누리는 획기적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1-11-21

在중국 울릉군향우회의 독도사랑 돋보인다

중국 상해와 무석, 소주 3개 한국학교 초·중·고교가 지난 16~17일 양일간 독도의 날(10월 25일)을 기념해 실시한 작품(백일장, 해외홍보 포스터캐릭터) 공모전 시상식을 각 학교에서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3년전인 2018년부터 시작된 공모전은 중국에 있는 울릉향우회가 주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아름다운 동해가 있습니다. 동해에는 아름다운 울릉도가 있습니다. 울릉도에는 아름다운 독도가 있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학생들에게 울릉군 독도가 우리 땅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울릉군 향우회 장창관 회장은 “여러 가지 여건상 해외에서 독도사랑 공모전을 열기는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어린 학생들이 직접 우리영토인 독도를 홍보해 보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공모전 입상자 중 대상은 경상북도지사상, 최우수상은 울릉군수상, 우수상은 민주평통 상하이협의회장상, 장려상은 독도박물관장상, 입선작은 대한민국독도협회 중국총연합회상이 수여됐다고 한다.한국과 일본은 최근 독도 문제를 놓고 어느 때보다 냉각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외교 차관들이 미국에서 진행하려던 공동기자회견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방문을 문제 삼은 일본의 불참 통보로 미국 측 대표만 홀로 회견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청장이 독도경비대를 격려하기 위해 독도를 방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경찰청장의 임무다.청와대는 지난 18일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뒤 예정된 3국 공동기자회견이 한·일 양국의 독도 문제 충돌로 무산된 것과 관련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의 영토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이 독도문제로 감정이 격화돼 있는 상황속에서도 재중국 울릉군 향우회가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을 교포학생들에게 꾸준히 각인시켜주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도 크고, 감동적이다. 정부도 밝혔듯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하게 우리 고유의 영토다. 중국에 있는 우리 교포학생을 비롯해 우리 조상이 혼과 얼을 바쳐 지켜 온 독도를 영원히 대한민국 영토로 지킬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21-11-21

유력 대선후보들의 ‘열린귀’ 아쉽다

심충택 논설위원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경주 도림사 대나무 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삼국유사 설화는 정치권력의 ‘막힌 언로(言路)’를 풍자한 글이다. 현 정권의 메인스트림인 586세대도 대학시절 언론의 자유를 목말라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했던 의사표현의 도구는 신문방송이 아니라 대자보였다. 그러면 그들이 180석 국회의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현 정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열려 있는가.지난해 한 대학생이 대학 구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법원이 유죄(벌금 50만원) 판결을 내린 것은 현 정권의 언론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씌워 기소를 하고,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말까지 가동하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위에서 언론에 대한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 관련 법안을 패키지로 논의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언론사의 취재행위를 법으로 차단하고 대자보시대를 열자는 것과 다름없이 생각된다. 문제는 차기 유력 대통령후보들의 언론관도 현 정치권력과 다름없다는 점이다.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와 관련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우리의 카톡, 텔레방 댓글로 커뮤니티에 열심히 써서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을 알리자”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4일 경남 거창군청 앞에서도 지지자들에게“기울어진 운동장, 나쁜 언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즉흥연설을 했다. 이 후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일 때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언로가 막혀 소통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변의 충고를 듣는 것을 꺼려해 중진급 국회의원들도 그의 방을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윤 후보가 기자들과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언론 인터뷰 등을 최소화하고 기자들이 캠프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대선 경선기간 동안 그의 캠프는 ‘서초동 캠프’라고 불렸다. 캠프가 마치 검찰청처럼 폐쇄적이고 관료화돼 있다는 의미다.유력 대통령 후보 모두 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은 가까이하고, 비판언론은 멀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근본적 기능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자이자 비판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언론은 권력자들의 홍보도구가 아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에게 언론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버리고 언론의 견제 비판 기능을 즐길 줄 아는 철학을 가지길 권한다. 권력자가 비판의 소리를 포용하는 역량이 없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뒤끝이 좋지 않았다.

2021-11-21

선비가문의 전통, 양동마을

윤영대수필가 경주 양동마을은 500년 전통을 가진 역사 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설창산을 업고 넓은 안강 들판의 정기를 안으며 기와집과 초가집 150여 채가 하늘의 별처럼 어울려있는 성라고택촌(星羅古宅村)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이 되어 처가입향으로 집성촌을 이룬 씨족 마을이며 우재 손중돈(愚齋 孫仲墩)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먼저 이향정(二香亭)에 갔으나 안뜰의 향나무를 보지 못하고 내려와 마을체험관에서 여러 가지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나온 학생들과 섞여서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인 심수정(心水亭)으로 올라갔다. 농재 이언괄(聾齋 李彦适)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고 ‘마음을 고요한 물 같이 가져라’는 뜻이다. 우람한 느티나무 숲 정자에서 바라보는 마을 정경 또한 일품이다. 근처 강학당을 보고 큰길을 따라 거림(巨林)까지 올라가서 안골로 들어갔다.큰우물에서 두레박도 올려 보고 능선 바로 아래 지어진 근암고택과 상춘헌, 사호당 등 이씨 집안 고택을 살펴보았다. 전통적 남녀유별 생활상이 엿보이고 사랑채와 화단이 멋있게 배치된 뜰을 기억하며 내려와서 깨끗한 마을 길을 걷는 마음은 평온하다. 서백당(書百堂)이 새겨진 큰 바위 옆 흙담 길을 오르면 경주 손씨의 대종가로 이 마을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가 지었다는 송첨종택(松7C37宗宅)이 있다. 대학자 손중돈과 이언적이 태어난 명당 터라기에 사랑채 쪽으로 들어가니 밑둥치부터 세 가지로 자라서 혼자 숲을 이룬 500년 된 향나무가 풍성한 품을 내어준다. 서백당 누마루에서 사진을 찍고 ‘참을 인(忍)’자 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 선비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고택 이름들은 옛날 살았던 주인의 호를 땄단다.옆 언덕의 낙선당을 들렀다가 앞쪽 산길을 올라가니 안계 댐 공사로 이곳까지 옮겨온 경산서당(景山書堂)이 대문을 열어 반긴다. 조용한 안뜰로 들어가면 높은 기단 위 강단의 마루에 걸린 현판들의 가르침이 훌륭하다.안골 언덕에 올라 성주봉을 보면 고즈넉하고 멋스런 기와집 26채를 품은 마을은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정주형 문화유산’이다. 물봉골 대성헌을 보고 양동마을의 대표적 저택인 보물 제411호 무첨당(無5FDD堂)에 갔다. 깨끗하고 커다란 사랑채 마루에 걸린 많은 현판 중에 ‘좌해금서(左海琴書)’란 특이한 글씨체는 ‘영남의 대표 가문’이라는 대원군의 죽필(竹筆)로 쓴 글이다.국화꽃이 고운 큰길 개울가 연못에는 선비들의 마음처럼 수련이 자라고 있다. 보물 제412호 향단(香壇)길은 한양으로 올라간 형을 대신해서 동생 이언괄이 노모를 모셨다는 곳, 독특한 화려함이 돋보이는 고택이다. 마지막으로 앞 언덕에 있는 보물 제442호 관가정(觀稼亭)으로 갔다. 누마루가 멋있는 청백리 손중돈의 간결한 살림집이다. 향나무들이 허리 굽혀 넘보는 담장 밖으로 나와 평화로와 보이는 마을을 나서면 안강 들판을 씻어온 형산강둑엔 하얀 갈대가 하늘대고 있다.

2021-11-21

기억과 망각의 싸움

조현태​​​​​​​수필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자 대문 우편함에 눈길이 갔다. 자질구레한 자동납부 통지서와 얇은 책 한 권이 꽂혀있었다. 이미 납부된 요금은 이메일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따로 영수 통지서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매번 우편으로 발송되니 본척만척하고 휴지통에 던졌다. 이런 통지서를 모두 생략한다면 엄청난 종이와 재원이 절약될 텐데. 책만 가지고 들어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뒤적거렸다.두어 시간 지났을 때, 전화할 일이 있어 휴대폰을 찾으니 없었다. 아차! 자동차 거치대에 두고 왔구나. 그새 부재중 착신이 네 개가 떴다. 차례대로 전화를 했더니 하나같이 전화도 받지 않고 뭐가 그리 바쁘냐고 타박이었다. 여차저차 하였다고 설명하자 정신을 어디다 두고 그러느냐는 핀잔까지 했다. 근래에 깜빡증이 점점 늘어난다.살다보면 이러한 깜빡증이 아니라 영원히 잊어버렸으면 더 좋을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반세기가 지나도 또렷이 남아있으니 오히려 애석하다. 특히 가슴깊이 새겨졌던 아리고 쓰린 생채기에 대한 기억은 왜 잊어버릴 수 없을까.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애꾸눈이라고 놀림 받던 기억, 삼층 옥상에서 추락하여 죽지 않고 발목만 박살났던 사건, 애인 빼앗기고 사기 당해도 대거리 한 번 못하고 풀이 죽어 술만 퍼마시던 아픔…. 차라리 야생동물처럼 몇 초 만에 잊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듬어보면 뼈아픈 추억이 쉽사리 되살아나는 감정은 그 당시에 새겨진 상처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불행이 싫어서 얼른 잊고 싶은 반면 행복은 좋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을까. 그러면 행복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만큼 평생 동안 잊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았던 행복은 상처만큼 오래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 행복이 보장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아팠던 것만큼 오래 간직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좀 더 행복하고픈 욕심이 작용하니까.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 할 터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은 항상 미완성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욕심’을 빼면 ‘미완성’도 없어지는 계산이 된다. 그렇다면 빨리 잊을수록 좋을 것 같은 아픔은 왜 미완성이 없을까. 당연히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행복이 되려면 더 이상 행복하려하지 않아야 하리라.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사소한 일이든, 생명을 잃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든 망각했다는 것은 같다. 하찮은 일은 용서되기 때문에 또 잊어버려도 되고, 대단한 일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좋았던 것은 기억할수록 좋고, 나빴던 일은 잊을수록 좋지 않은가.기억과 망각이 맞서 싸운다면 어떨까. 싸워서 이긴 자의 쾌감보다 패배한 자의 처절함이 훨씬 더 진할 터이고, 패배는 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을 바에는 질 것을 염려해야 할 터이다. 여차하면 시비나 걸고 상대를 깔아뭉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삶의 방식이 너무 식상하다. 기억과 망각이 손잡고 미완성에 도전하는, 그래서 끝없이 노력하고 삶을 경영하면 좋겠다.

2021-11-21

‘지역대표성’ 무시하는 선거구획정 개선을

여야가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위(정개특위) 구성에 합의하면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문제가 주요의제로 상정될 전망이다. 그동안 농어촌 지역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인구 감소와 행정구역 재편 등으로 총선 때마다 선거구가 조정돼 지역대표성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됐었다. 경북도 내 대부분 군지역이 마찬가지지만, 예천군을 예로 들면 2012년 19대 총선때부터 21대 총선(2020년)때까지 매번 선거구가 조정됐다. 19대에는 문경·예천 선거구, 20대에는 영주·문경·예천 선거구, 21대에는 안동·예천 선거구에 속했다. 이 때문에 선거 때마다 예천군민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소외감’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예천군은 오는 2024년 치러지는 22대 총선에서도 군위군의 대구편입이 예고돼 있어 또다시 선거구가 조정될 것으로 점쳐진다. 군위군이 대구시로 편입되면 현재의 군위·의성·청송·영덕 선거구는 인구가 줄어들어 조정이 불가피하다. 인구 하한선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접 자치단체의 선거구를 편입할 수밖에 없고 그 대상으로 예천군이 지목되고 있다.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농어촌 지역 선거구의 경우 인구하한선과 함께 선거구 면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은 국회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획정의 기본방향과 관련해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및 산촌지역은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지역대표성이 선거구획정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특히, 도시로의 인구유입과 지방의 인구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인구수만을 편향되게 적용한다면 농촌지역의 선거구는 도시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미국의 하원 선거구획정 과정을 보면, 대부분 주에서 인구수 외에도 선거구의 지리적 인접성, 지역이익의 대표성 등을 일반적인 획정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농어촌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지역대표성 훼손 문제와 투표가치의 평등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거구획정 개선과 관련한 입법안을 여러차례 국회에 제출했지만 이 의안들이 정개특위에서 한번도 심사받지 못한 채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가동되는 21대 국회 정개특위에서는 선거구 획정 개선문제가 주요의제에 포함되길 기대한다.

2021-11-18

코로나 환자 폭증세, 대구·경북 선제 대응 필요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이틀 연속 하루 3천명을 넘었다. 11월부터 시작한 일상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 조치로 확진자 증가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최근 확진자 증가 흐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증가세는 모처럼 맞이한 일상회복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전체 신규 확진자 중 수도권에 80%가 몰려 지방은 그런대로 버티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특징으로 보아 언제 어디서 확산세를 키울지 알 수 없다. 대구와 경북도 하루 100명 내외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 잠시도 소홀할 틈이 없다.중앙방역대책본부는 18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천292명이라 밝혀 전날에 이어 3천 명대가 이어졌다. 이날 확진자는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서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최대치로 기록됐다. 서울 등 수도권이 2천583명(78.9%)이며, 대구와 경북은 하루 12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특히 위드 코로나 실시와 함께 중점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위중증 환자 수가 또 500명을 넘었다. 정부가 기존의 의료체계로 감당할 수 있다고 밝힌 500명대를 연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역에서는 중환자 병상 가동률이 80%를 넘어 의료현장에선 입원병상을 못구해 환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대란도 벌어진다고 한다.정부가 17일 60세 이상은 추가접종 기간을 6개월에서 4개월로 50대는 5개월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잘한 결정이지만 아직도 18세 이하에서는 백신접종을 맞지 못한 이들이 많다. 어제는 50만 명의 학생이 수능시험을 치렀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해방감으로 거리에 뛰쳐나오면 코로나 방역체계를 크게 흔들 수 있다. 보건당국의 발빠른 대응이 있어야 한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상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린다. 전염병의 특성을 감안하면 대구와 경북도 의료체계 준비와 방역망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유럽에서는 위드 코로나 이후 확진자 폭증으로 다시 봉쇄조치에 들어간 나라도 있다. 자영업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위드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대구시와 경북도, 정부가 선제적 대응을 할 때다. 또 국가 방역체계만 믿지 말고 국민 스스로도 해이해진 방역의식을 다시 다잡아야 한다.

2021-11-18

킹메이커

로저 스톤은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던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인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그는 정치인이자 타고난 선거 전략가로 평가를 받았지만 권모술수에 능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정치 자문가인 동시에 ‘더러운 사기꾼’으로도 통했다.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는 로저 스톤의 탁월한 전략이 있었다. 그는 트럼프와 30년 지기로 같이 활동하면서 그의 개인 정치고문 역할을 줄곧 해왔다. 둘은 여러 면에서 궁합도 잘 맞았다고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톡톡 튀는 발언 가운데는 로저 스톤의 조언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그의 정치적 신념을 엿보게 하는 말로 그가 자주 쓴 표현 중 “완전 무명보다는 악명이 낫다”는 말이 유명하다. 그는 스스로 스톤의 법칙을 만들어 그 룰에 따라 정치 전략을 구사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말 것” “모든 것을 부정할 것” “공격당하면 반격할 것” 등이 핵심이다.그의 정치 역정은 미국 넷플릭스에서 ‘킹메이커’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그는 2019년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돼 4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이용, 그를 감형한다. 사상 최악의 부패행위라는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그해 11월 실시될 선거에 그의 정치 전략이 필요했었다는 분석이다.우리 정치사에도 킹메이커가 등장한다. 노태우,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김윤환 전 의원과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킨 김종필 전 총재 등이 그들이다. 내년 대선을 두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이해찬 전 대표의 킹메이커 역할론이 등장했다. 선거 열기 속에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8

아수라 vs 내부자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과거 개봉한 영화 두 편이 화제다. 바로 영화 ‘아수라’와 ‘내부자들’이다.두 영화는 모두 국산영화로 정치권력의 부패를 다룬 영화인데, 묘하게도 현재 여야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설정이어서 공교롭다고 해야할 지,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할 지….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최근 SNS에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장동 특혜 의혹’을 거론하면서 “이름하여 ‘대장동 개발사업’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는 ‘아수라’의 악취가 풍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화 ‘아수라’를 빗대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한 것이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아수라’는 2016년 개봉한 영화다.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부패한 박성배(황정민)와 시장의 비리를 캐내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 그 사이에 낀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물고 물리는 정치범죄 스릴러물이다. 영화에서는 안남시의 부동산 개발사업과 이를 통해 시장 박성배가 각종 이권을 챙기고 범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 배경이 된 안남시라는 도시명부터 이재명 후보가 시장으로 재직했던 성남시를 연상시키는 데다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영화 줄거리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경선단계부터 시작해 ‘아수라’ 영화를 적극 소환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양상이다.민주당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을 공격소재로 소환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이 영화에 나오는 부패 정치인 장필우와 겹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을 향해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선 후보 장필우처럼 ‘X라 고독하구만’ 대사를 반복하며 소주 드실 날이 머지않았다”라고 했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은 2015년 개봉했다.기 의원이 언급한 장필우는 부패 정치인으로 재계, 언론과 결탁해 대권을 넘보는 인물로, 과거 조폭과의 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장필우는 결국 각종 비리가 드러나 파멸의 길을 걷는 데, 영화 말미에 쓸쓸하게 소주를 마시며 “X라 고독하구만”이란 대사를 내뱉는다.정치 권력의 부패를 다룬 두 영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크게 주목받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정치권의 부패와 해악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적지않았지만 유달리 두 영화는 영화배경이나 인물설정이 현 여야 후보와 닮은 꼴이라 공교롭다.이런 영화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마 정치에 대한 환멸이나 염증,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제작자의 의도야 정치권력의 부패를 정면비판하고, 이런 정치인들을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두 영화가 그린 인물이 무작정 비현실적이란 단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다.그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영화를 불러들이니 그게 서글플 따름이다.

2021-11-18

지방대가 어때서?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모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대학을 “지방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해당 대학 학생과 졸업생들은 모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고 의원실로 연일 항의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 대학은 사실 수도권에 있어서 지방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도 소위 세간의 ‘인서울’에 대한 우열감으로 지방대로 분류하고 있는 모양새이다.해당 의원은 과거에도 ‘지방대 출신임에도 KBS 아나운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취지의 표현을 사용한 사실이 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SNS를 통해 ‘블라인드 채용법’ 발의를 예고하며 지방대를 졸업했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선의로 해석하면 ‘블라인드 채용법’의 취지를 강조하여 국회를 통과하기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출신 대학을 낮추고 자신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해당 의원의 지방대 차별화는 그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당연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되고 공개석상에서 비하 발언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비하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과거 모 대학 교수님도 국회 증언에서 “지잡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국회에서 이러한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사실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지방이란 단어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신문….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서울이라는 중앙에 대응하는 단어로서의 지방은 그 본래의 의미는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방대’란 단어다.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 우리는 일체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지방에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다고 우수한 것도 아니다. 각 지역의 객체들은 세계로 도약하며 각개 약진을 해야 한다.지방대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단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파괴시키고 한국의 고절적인 이분법을 고착시킨다.한마디 묻고 싶다. 도대체 “지방대가 어때서?”

2021-11-18

합리적 추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생에는 합리적 추론이 필요할 때가 많다. 사람의 심리는 복잡 미묘하고 안팎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나 논리학, 정신의학 등에서 합리적 추론에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물론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영역 말고도 상식적 수준에서의 합리적 추론은 일상생활에서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시시각각 분별하고 판단해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합리적 추론이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다.추론(推論)이란 이미 알고 있거나 확인된 정보로부터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나 과정을 말한다. 즉 어떤 판단을 근거로 다른 판단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나 자료가 이치에 맞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합리적 추론의 과정이 필요하고, 합리적 추론을 위해서는 기왕의 사실이나 정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개인적 호불호나 이념적 편향에 등에 따른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정보의 수용에서부터 왜곡이나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여당 대선 후보 배우자가 한밤중에 낙상(?)을 해서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가짜뉴스에 강력 대처하겠다며 유포자 두 명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짜뉴스의 확산에 빌미를 준 것은 사고경위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는 낙상사고라고만 했다가 나중에는 구토 설사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열상을 입었다는 해명이 뭔가 미심쩍은 뉘앙스로 받아들여진 거였다. 병원 진료기록에는 오심 구토 설사 의식소실이라고 적혀있다니 일단은 그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그런데 그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야근을 마치고 퇴근했다가 다시 불려나가 질책을 당했다고 한다. VIP의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란다. 누가 시청의 익명게시판에 올린 그 사실이 일파만파로 퍼져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고 당사자가 VIP일 경우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다, 그게 어찌 퇴근한 사람을 불러내어 문책할 만큼 다급하고 중대한 일인가. 다음날 출근을 하면 불러도 충분한 일인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퇴근한 구급대원을 서둘러 불러낸 것에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 상급자는 어디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지 않았을까, VIP의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란 구실일 뿐이고, 그날 그 사고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보고들은 일체의 사실에 대한 함구령을 내리려는 것이 화급히 불러낸 진짜 이유가 아닐까.대선정국에는 온갖 가짜뉴스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자기 편 후보는 미화하고, 상대편 후보는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위해 흑색선전에 혈안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합리적 추론에 따른 올바른 판단으로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한판 승부다.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 오로지 국민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렸다.

2021-11-18

존재의 용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랍비이며 사회 운동가인 마커스는 부켄발트 강제수용소에 숨겨져 있던 904명의 아이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구출하는데 힘썼다. 그때 구출 받은 아이 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이 있었다. 위젤은 유대인들이 교수대에서 죽어갈 때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탄식소리를 듣는다. 신의 부재는 위젤이 수용소에 있는 동안 내내 던진 질문이었다. 그 순간 그는 “나는 교수대에 죽어가는 저들과 함께 있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신이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부재를 깨닫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를 구출하는데 힘쓴 마커스는 아들이 소아마비로 죽자 절망 가운데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때 아인슈타인은 “아들이 더 이상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식이 불러오는 ‘착시적 망상’에 불과하며 존재의 방식을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틸리히는 죽음이 가져오는 절망은 존재하던 것이 없어지는 ‘비존재의 충격’때문이며 만일 죽음이 비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을 달리하는 것으로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고 하면서 이를 ‘존재의 용기’라 했다. 비존재는 절망을 가져오지만 존재는 희망과 용기를 불러온다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2021-11-17

모성의 순례지

백후자수필가 가을이 만든 하늘·바람·빛을 먹은 이파리에 물이 든다. 초록이 빛을 잃으며 노란 물이 오른다. 노랑이면 단연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를 찾아 떠난 길, 바알간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밭을 지난다.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가서 다다른 곳은 청도 적천사다.일주문 대신 은행나무가 마중을 한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바람소리만 스칠 뿐 고요하다. 발소리를 죽이며 둘러본다. 젊은 부부 한 쌍이 공양미를 올린다. 둘은 부처님 앞에 공손하게 삼배를 올리고 한참 머물다 나간다. 어느 한때 내 모습을 보는 듯하여 저절로 눈길이 따라간다. 법당을 나선 부부는 천왕문을 나서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란히 걷는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에 가깝다. 고려 명종 5년, 보조국사 지눌이 오백 명의 수도승을 머물게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절을 중건할 당시, 절 부근 숲속에 도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조국사가 가랑잎에 범 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풀어 놓으니, 도적이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당시 보조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곳에 은행나무가 자랐으니 천연기념물 제402호, 적천사 은행나무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삼 미터까지는 하나의 줄기이다. 그 위로 세 개의 가지로 나뉘어 자란다. 높이 이십팔 미터에 둘레가 십일 미터 가량으로 암나무이다. 바로 옆에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다르나 비슷한 키 높이로 견준다. 두 나무는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려 맞잡으며 나란히 서 있다. 두 은행나무의 다정한 모습에 부부 은행나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열매가 맺히는 걸로 봐서 암나무이다.적천사 은행나무의 특별함은 유주(乳柱)이다.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에 생긴다. 은행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은행나무는 스스로 치유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주이다. 특정의 방어물질이다. 대체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모유의 줄기인 유두와 흡사하다. 그런데 적천사 은행나무의 유주는 모양새가 독특하다. 굵직하고 기다란 고드름처럼 생긴 것,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것, 둥근 혹처럼 생긴 것도 보인다.유주는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젖기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근과 더 닮은 이유로 예로부터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네들의 등살에 도려져 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적천사의 은행나무 유주는 길쭉한 생김새가 남근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남아를 잉태하고자 하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법당에서 보았던 젊은 부부가 은행나무 밑으로 간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가만히 유주를 쓰다듬는다.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젊은 부부를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원하는 곳에 가닿기를 바란다.불투명한 일, 내가 가진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선 것 같을 때 인간은 신앙을 찾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일지라도 내가 믿으면 신앙이다. 내 안의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곳, 내 안의 답답함을 기탄없이 다 들어주는 곳. 있는 자 없는 자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모든 건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은행나무 아래 서서 유주를 바라보며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 또한 신앙이다. 토테미즘이면 어떻고 샤머니즘이면 또 어떤가. 그 또한 마음이 가는 곳이다. 간절함의 끝에 닿으면 통한다고 했다.백 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 선다. 울룩불룩 올라온 유주가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진다.

2021-11-17

눈 내린 날 우리는

우리네 강산은 아름답다. 봄에는 새파란 잎과 들꽃,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바다가 펼쳐진다. 가을에는 온 산에 단풍, 겨울이면 하얀 눈이 세상을 덮는다. 사계절이 순환하고 계절마다 자기 풍경을 펼치는 자연이 있어 우리네 삶도 다채롭다.함박눈 : 함박꽃 송이처럼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 가루눈.싸라기눈 : 빗방울이 갑자기 찬바람을 만나 얼어서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가랑눈 : 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눈설레 : 눈과 함께 찬바람이 몰아치는 현상.도둑눈 : 밤에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살그머니 내린 눈.떡눈 : 물기를 머금어 떡처럼 척척 달라붙는 눈송이.살눈 : 얇게 내리는 눈.설밥 : 설날에 오는 눈.숫눈 : 눈이 와서 덮인 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눈.길눈 : 한 길이 되도록 쌓인 눈.눈석임 : 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 스러짐.소나기눈 : 폭설.자국눈 : 발자국이 겨우 날 정도로 적게 온 눈.잣눈 : 잔 자쯤 온 눈.풋눈 : 초겨울에 약간 내리는 눈.우리에게는 눈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첫눈 내리는 날 어디서 만나자. 손톱에 들인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오는 날까지 남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꿈은 눈처럼 순수했다. 꿈은 눈 녹듯 눈석임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날까지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다.‘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첫눈 오는 날 만나자/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팔짱을 끼고/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더러 사먹기도 하면서/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첫눈 오는 날 만나자/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에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었다. 뙤창문을 입김 호호 불어 닦아, 바깥을 내다보면 밤새 도둑눈이 함박 내려 마당이 온통 하얬다. 문을 열면 낯설고 환한 세상이 펼쳐졌다. 바깥으로 나가 신발을 신고 처마를 나설 때, 숫눈 위에 차마 첫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뽀드득 한 발 뽀드득 두 발, 발자국을 찍는 감촉이 참 좋았다. 그렇게 첫 발자국은 길이 되었다. 발자국은 사립문을 지나 고샅으로 나가 이웃과 이웃을 이었다.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공터에 모였다. 눈을 수박만하게 뭉쳐 굴렸다. 이쪽으로 굴리고 저쪽으로 굴리고, 눈덩이는 점점 커졌다. 힘에 부쳐 더 굴릴 수 없을 때, 다시 눈을 뭉쳐 굴렸다. 굴린 눈덩이가 적당히 커지면 큰 눈덩이 위에 올렸다. 헌 양은 대야를 씌우고 숯덩이로 눈코입을 만들고 솔가지를 꺾어 수염으로 붙였다.집집마다 골목마다 눈사람이 섰다. 곰방대를 물고 담배 피는 할아버지 눈사람, 큰 냄비를 쓰고 나무 창을 든 병정 눈사람, 이제 걸음마를 뗀 자식 같은 눈사람, 자기 멋대로 생긴 눈사람, 참말이지, 할머니 같고 동생 같고 가족 같았다. 밤새 추위에 떨까 봐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했다.서너 명씩 패를 짜서 눈싸움을 했다. 눈을 뭉치고 던지고 날아오는 눈뭉치를 피하다가 눈 위에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뒤섞여 뛰어놀면 어느새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평소 쌓인 감정을 실어 눈덩이를 던지기도 했다. 눈싸움, 눈사람, 눈썰매, 눈미끄럼틀, 함께 뛰어놀면 묵은 감정은 다 날아가고 개운한 웃음만 남았다.눈 오는 날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다 순수해졌다. 눈밭에서 뒹구느라 옷을 다 버려도 어른들은 나무라지 않았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크고 또 그렇게 저절로 커야 사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추위를 이기고 체력을 키우는 데 그만한 놀이가 없었다.종일 뛰어놀았으니 몸이 나른했다. 아랫목에 누워도 눈밭에서 뛰어놀던 그림이 지워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면 잠도 꿈도 눈송이처럼 포근했다.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1-17

대구국가산단, 첨단 유망기업으로 넘쳐 나길

대구시가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한 대구국가산업단지 2단계 구역에 대한 분양에 나선다. 이번에 분양되는 2단계 용지는 1단계 산업용지가 거의 분양됨에 따른 것으로 1차로 15필지 14만2천㎡ 규모다. 대구시는 첨단기계업종 4필지와 기초산업업종 11필지를 분양하며 필지별로는 최소 3천800㎡에서 최대 1만2천700㎡를 분양한다. 분양가격은 도심권 산업단지로는 비교적 저렴한 3.3㎡당 약 125만3천원 수준이라고 밝혔다.대구국가산단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늦게 건립된 국가산업단지다.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으로 1991년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이 무산된 지 거의 20년만에 조성된 국가산업단지다. 1단계는 현재 85% 정도가 분양되고 물산업 클러스트와 물기업, 로봇기업 등 140여 업체들이 입주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테크노폴리스와 바로 인접해 있으며 자율주행자동차 시험센터, 국가로봇테스트필드, 물기술 인증원, 전기차 등 대구의 미래먹거리 산업과 4차 산업이 집합하는 곳이라 비전도 좋은 곳이다. 교통도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IC와 가깝고 대구도심으로 연결되는 4차선 도로가 있어 편리하다. 구미의 IT산업과 창원의 기계산업과도 연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대구는 전기차와 로봇산업 등 미래먹거리 산업 발굴을 통해 산업구조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도시의 쇠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체 855만9천㎡의 대구국가산단에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것은 대구경제에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대구시도 이런 점을 감안,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중견기업의 유치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달성국가산단은 1단계에 이어 2단계도 첨단 유망기업이 많이 입주해 경제 파급효과를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 파급력이 큰 기업일수록 더 좋고, 외지업체도 유망하다면 적극 유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입주 조건을 더 좋게 해주더라도 영향력 있는 업체가 유치되면 좋겠다. 지방도시의 쇠퇴를 재촉하는 수도권 집중에 대응할 지역차원의 유일한 방법은 대기업 유치와 같은 경제수요 개발이다. 일자리창출과 지속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의 대구국가산단 유치에 더 박차를 가해 주길 바란다. 대구국가산단이 유망기업들로 가득찰 날을 기다린다.

2021-11-17

국민의힘 선대위는 윤석열 인사역량의 시험대

그동안 진통이 심했던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대위 체제가 조만간 발표될 것 같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하는 ‘통합형 선대위’가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당 대표는 총괄선대위원장의 지휘를 받는 상임선대위원장을 맡고, 선거비용을 총책임지는 당 사무총장에는 권성동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선대위와는 별도로 후보직속으로 국민통합위와 미래비전위를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국민통합위는 야권통합과 외연확장, 집권후 지지기반확대 역할을 맡고, 위원장은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비전과 정책입안 등의 청사진을 그릴 미래비전위원장 후보로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검토된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윤석열 후보 선대위 구성을 두고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설 등 듣기에도 거북한 불협화음이 이어져 왔다. 이와 관련해 윤 후보가 그저께 “이준석 대표가 역할을 100% 할 수 있게 선대위를 꾸리고 싶고, 이 대표도 무리를 하지 않아 갈등설은 다들 소설 쓰는 것”이라며 정리를 한 것은 잘한 일이다.선대위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윤 후보의 인사역량을 가늠하는 1차 시험대다. 선대위는 후보의 의중이 즉각 실무선까지 전달되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당이 ‘용광로 선대위’라는 명분 아래 당과 캠프인사 대부분에게 직책을 줘 ‘관료화된 선대위’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후보가 이리저리 휘둘리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은 최악이다. 윤 후보가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최근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윤 후보를 만났을 때 “선대위 구성도 중요하지만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도 최대한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한 말이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경선주자들을 선대위에 합류시키는 포용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대선은 아직 4개월이나 남았다. 윤 후보는 그동안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여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앞서고 있지만, 선거 판세는 여러 번 요동칠 것이다. 윤 후보가 정권교체에 대한 비전과 국정운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여론의 지지가 썰물처럼 빠질 수 있다.

2021-11-17

남극의 ‘인천빙하’

남극에 ‘인천 빙하’가 생겼다.영국 남극지명위원회가 최근 서남극 갯츠 빙붕(Gets Ice Shelf)에 연결된 빙하 9개 중 1개의 이름을 ‘인천 빙하(Incheon Glacier)’로 지었다고 인천시가 밝혔다.위원회는 서남극에서 아직 이름이 없었던 빙하 9개에 주요 기후 회의를 개최했던 전 세계 도시 9곳의 이름을 붙였다.인천시는 2018년 10월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를 개최한 인연으로 빙하 이름을 부여받게 됐다.남극지명위는 인천 외에 제네바·리오·베를린·교토·발리·스톡홀름·파리·글래스고 등 총 9개 도시 이름을 서남극 빙하 9개의 새 이름으로 명명했다.빙하에 도시 이름을 붙인 것은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는 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조치다.올 2월 한국 극지연구소와 영국 리즈대, 스완지대 등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번에 이름이 새로 붙은 9개 빙하 등 서남극의 14개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14개 빙하가 녹으면서 남극 바다로 떠내려가는 속도가 1994년과 비교했을 때 25년 만에 23.8% 빨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인천 빙하’의 이동 속도는 25년간 2.9% 빨라지는 데 그쳐 14개 빙하 중 변화 폭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논문에 따르면 인공위성 관측 결과 1994년부터 2018년까지 약 3천150억t의 얼음이 이 지역에서 사라졌다. 이는 전 세계 해수면을 약 0.9mm 높일 수 있는 양이다.인천시는 ‘인천 빙하’이름이 생긴 것을 계기로 더 적극적으로 탄소 중립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17

마스크 수능, 두 번째

장규열 한동대 교수 그 날이 왔다. 어김없이 수능의 아침을 맞는다. 대한민국 청년이 10대를 마감하며 모두 겪는 통과의례 수능 앞에 온 국민이 긴장한다. 지난 18년의 공부를 이 한 날의 시험이 결정하기에 몸보다 마음이 춥다. 수험생의 마음이 떨리고 부모는 가슴을 졸인다. ‘하루만 잘 견뎌라’ 응원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속내가 종일 아리다. 실수없이 실력만큼만 토해내고 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친구들이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오늘이 야속하다. 선생님들도 제자들의 이 하루가 안타깝고, 가족과 친지들마저 함께 관심을 모은다. 이날은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코로나와 대선으로 어지럽지만, 수능만큼은 누구도 소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온 나라를 몰아넣는 절묘한 긴장에 올해도 빠져든다.그 ‘하루’가 문제다. 하필 이날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바닥인 건 용납되지 않는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오늘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엄청난 경사를 맞거나 깊은 슬픔을 당해도 수능은 수능이다. 무조건 오늘 치러야 한다. 거른다면 온통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365일 가운데 딱 하루만 치르게 하겠다는 생각은 누가 지어냈을까. 여지껏은 그랬다 하고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교육과 관련된 시스템을 바라보는 정책적 시선은 왠지 늘 느슨하고 게으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데 우리 수능은 언제나 그 자리다. 말랑말랑하고 총기발랄한 10대에게 일 년에 적어도 서너 차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대학이 무슨 성역도 아닌데,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상태를 체크하면서 오늘처럼 불필요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가.수능의 역할도 문제다. 실력평가인가 소양인증인가. 대학입시제도에 설정된 관문이지만, 실력을 평가하여 줄세우기의 도구로 삼는 일은 지극히 구시대적이다. 다음 수준의 학습을 견뎌낼 수 있겠는지 기본소양을 인증하는 정도로 그 기능을 조절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놀랄만큼 다양해진 바에 수능의 결과로 학생의 실력을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오늘에 어울리지 않는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스산한 아침에 목줄을 조이듯 서 있는 수능의 옛스러운 모습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지났다.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살피는 새로운 수능은 일 년에 수차례 설정하여, 학생도 교사도 훨씬 편안하고 유연하게 치러야 한다. 실수를 돌아보며 수정해 가는 값진 경험을 교육과정 가운데 허용해야 한다. 일년에 딱 하루 로또처럼 만나는 수능은 이제 접어야 한다.한 번 시험을 잘 쳤던 경험을 평생 붙들고 국민 앞에 무례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지 않는가. 인성과 소양의 바닥을 보았지 않은가. 제도와 시스템은 세대와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오늘을 향해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울인 수고와 노력은 반드시 결실과 보상으로 돌아오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쉬지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은 사람이 끝내 이기는 나라를 세워야 한다. 수능과 대입제도는 오늘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다음세대가 살아야 나라가 사니까.

2021-11-17

일본제철의 고로 폐쇄, 우리에게 던진 교훈

김영철 포항상공회의소 사무국장 일본은 철강산업에 있어서 세계 최고를 유지해왔고, 우리 포항 또한 일본의 영향을 적지않게 받아서 성장한 도시다. 최근 지역 일간신문(경북매일)을 통해 ‘일본 산업도시의 아픔 (11월 1·8일 자)’이 전해졌고, 우리 포항이 직면해야 될 상황인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이번에 소개된 히로시마현 쿠레시와 동일본 이바라키현 카시마시는 주력산업이 철강산업이며, 글로벌 경쟁력 심화와 탈탄소 압박 등의 요인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간 일본제철이 고로를 폐쇄하는 산업도시이기도 하다.일본제철은 1950년 창업하여 1970년 이와타와 후지제철이 합병하고, 2012년 스미토모금속과 합병, 2016년에는 일신제강과 합병하는 등 몸집을 불려 일본 전역에 15기의 용광로를 운영하며 세계 최대 조강생산량과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현재까지 60년 넘는 세월 동안 일본 경제를 견인해왔고, 세계 철강업계의 선두 주자였으나, 중국의 공급과잉, 우리 지역에 거점을 둔 포스코의 기술 역전 등으로 고전을 면치못하다 수익성도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일본제철은 2020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15기의 용광로를 10기로 감축하기로 하면서 두 도시는 갖가지 지원책을 제시하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 것 같다.쿠레제철소 폐쇄 결정은 취급품목, 생산성, 경쟁력 등을 고려한 조치이지만, 고로중단 조치로 일부 전환배치되는 인력 외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이며, 제철소 근무 인력의 가족이 소비하는 지역의 상점, 음식점, 숙박시설 등에 미치는 간접영향까지 포함하여 지역경제에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직격탄을 맞은 쿠레시는 인구감소, 세수 축소와 직면하고 다각도로 회생안을 찾지만 지역 자체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여있으며, 지역대기업에 의존하여 시대 흐름에 둔감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선례가 있다보니 공업용수와 수도요금 인하, 녹지율 완화 등을 지원해 온 카시마시는 100억엔 규모의 지원을 일본제철에 제안한데 이어 탈탄소 정책기조에 맞춘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에 50억엔 상당의 지원안을 제시했으나 2024년 고로 폐쇄를 막을 수는 없어 비상이 걸린 상태가 되었다.고도 성장기 자부심으로 살았던 두 도시는 용광로 불이 꺼지며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 위기에 처해있고, 기업도시로 재건은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면 두 도시의 지역사회와 행정기관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은 지역사회를 지탱했고, 지역사회는 기업을 키워왔던 상황에서 상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에서 우리 포항시와 지역사회도 바다 건너 일본의 상황으로 보지 말고, 가까운 미래에 직면하게 될 우리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대비해 가면 좋겠다.쿠레시 신하라 요시아케 시장은 최근 “지금까지 대기업과 하청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산업의 쇠퇴를 직시하지 못했다”며 민감도가 낮았음을 시인하고 “미리 대비했더라면 지금과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 가득한 표현에서 우리 지역사회는 교훈을 삼아야 될 것이다.

2021-11-17

공직 후보자부터 법을 지키자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가지가 플래카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능생을 응원하는 것부터 주택조합의 홍보용, 시정을 비판하거나 공공기관이 게시한 플래카드 등 다양하다.플래카드는 적은 비용에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시선을 교란해 사고의 위험성도 높아 전국의 지자체들은 플래카드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올해 처음으로 등장한 시가지를 뒤덮은 수능생 응원 플래카드는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있는 출마예상자들이 게시한 것이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민들이 많다.매년 수능시험이 치러졌지만 잠잠하다 선거를 위한 여론조사 등이 맞물리며 게시된 정치인들의 수능 응원 플래카드는 순수한 의도라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더욱이 이들 플래카드가 원활한 통행과 운전자의 시선 확보를 위해 조성한 교통섬에 게시되거나 경산시가 지난 2013년 12월 조례로 지정한 플래카드 없는 거리에도 게시된 것은 큰 문제다.경산시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 거리를 만들 목적으로 시청 네거리에서 오거리 구간을 플래카드 없는 구간으로 지정했지만 1년 중 대부분 플래카드가 게시되고 있어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경산시는 현재 85곳의 플래카드 게시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능 응원 플래카드는 교통섬의 나무와 나무를, 시가지의 전신주와 전신주, 교량의 난간 등을 이용해 도시미관을 헤치며 후보 예상자의 이름을 펄럭이고 있다.경산시는 공익 플래카드는 플래카드 게시대가 아닌 장소에도 게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고 있지만, 과연 올해 등장한 입후보 예정자들의 수능 응원 플래카드가 공익과 불법을 묻는다면 대다수 시민이 불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법을 지키라며 불법을 동원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다.경산시의 시정을 이끌며 법을 지켜야 할 공직 후보자들이 앞장서서 스스럼없이 불법 플래카드를 게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후 약방문이겠지만 경산시도 법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법의 권위, 시민의식을 높이자. 장래의 공직 후보자들이 모범으로 삼는 선배로 남는 것이 권력을 잡기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져보자.경산/shs1127@kbmaeil.com

2021-11-16

2021 포항음악제 ‘관객의 시작’

김재만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단장 과거 클래식 공연을 기획해 본 사람으로서 첫 번째 부딪치는 문제가 “아직은!”이라는 부정적 견해이다. 그들에게 우리 도시는 대중음악에만 친화적이고 클래식 공연에는 시민들의 예술적 소양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위험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하지만 2021 포항음악제에서 보여 준 관객의 모습은 무대에 선 최정상 아티스트들에게 역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빛나는 페스티벌이었다.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로비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어린 학생들이 포함된 가족에서부터 2030 청년들, 삼삼오오 모임을 이룬 4050, 더욱이 멋진 코트에 머플러까지 목에 두르고서 마치 영화 스크린에서 막 튀어나온 배우 같은 차림의 6070 세대들까지 관객들의 연령층 구성부터 완벽 그 자체였다.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남아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 과연 관객들은 아티스트들의 연주와 교감하고 행복감을 누릴 수 있을까? 아마도 “아직은!”이라는 사람들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을 거다.마침내 폐막공연의 첫 무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이 연주가 준비되었고, 객석 등이 꺼짐과 동시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연주자들을 무대로 등장하게 했다.“끝났다!”. 인터미션(Intermission)이 될 때까지 관객들은 ‘포항의 기억’에 녹아 있었고. 연주자들은 그 어떤 연주회보다 행복한 듯 두 번, 세 번 연달아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순간 “포항의 관객, 시민들은 위대하다!”라고 속으로 수십 번 되뇌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서 한껏 어깨가 하늘로 향했다.한때 공연연출가로 기획자로 오랜 시간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공연의 마지막 정점은 관객이 만들어 준다!”는 확신을 늘 가지고 살아왔다. 배우, 무용수, 클래식 연주자, 성악가 등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관객의 질에 따라서 공연이나 연주가 달라진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2021 포항음악제는 “아직은!”이 아니라, 왜 포항이 전국지자체 중 1차로 법정문화도시에 지정되었는지를 증명해주는 시민 승리의 현장이며, 내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설레임의 끝판왕이다.

2021-11-16

작은 생태계 소식

강길수수필가 쌓아 둔 빈 비닐 비료 포대 위를 낫공치로 마구 두드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반사 동작이다. 일고여덟 번쯤 두드리자, ‘아마 죽었을 테지…’하는 생각이 났다. 그제야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어 동작을 멈추었다.‘괜한 오기로 한 생명을 죽이는구나’하고 속말이 나왔다. 낫 날 끝으로 비닐 포대를 이리저리 뒤졌다. 축 늘어진 목표물은 없었다. 맨 아래 비닐 포대를 뒤졌을 때, ‘아! 그랬구나’하는 속말도 나왔다. 드러난 땅에 구멍이 나 있다. 내 반사 동작의 목표물은 구멍으로 도망간 게 틀림없다. 아마, 따뜻한 낮 기온에 먹이 찾아 나왔다가 나를 만나 줄행랑쳤으리라. 아까 현장 식탁용 판자를 들어낼 때, 달아나던 생쥐도 생각났다.주말 텃밭을 가꾼 지 다섯 해째다. 처음 시작하면서 ‘노지재배를 하자’고 아내에게 떼를 쓰듯 주장해 동의를 얻었다. 유기질 비료를 주로 쓰고, 무기질 비료는 최소한만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농약도 첫해에 모종할 때 토양에 쓰는 분해성 농약을 조금 쓴 후, 다음 해부터는 쓰지 않았다. 아내는 가끔 농약과 비닐 덮개 안 쓰면 작물이 안 된다고 들은 소리를 말했지만, 일부러 흘려들었다. 텃밭 가꾸기는 가족에게 무농약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마련해주려 시작했기 때문이다.첫해엔 무성한 잡초를 손으로 뽑아내는 데 애를 먹었다. 이랑을 만들고, 들깨, 파, 옥수수, 고구마, 고추 등을 심었다. 작물이 자라나자 고구마, 고추는 순이 나오는 족족 고라니가 뜯어 먹었다. 옥수수도 통이 달리자, 멧돼지가 처참하게 대공까지 짓밟으며 어린 통옥수수를 다 따먹었다. 밭엔 결국 들깨와 파만 남게 되었다.아까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줬다 치자고 마음먹었다. 아내는 헌 현수막이라도 구해다 밭 가를 두르자고 했다. 왠지 야박하다는 생각에 그리하지 않았다. 요즈음 농촌에는 논밭을 펜스나 망으로 두르거나, 심지어 천장까지 망으로 덮은 곳이 제법 보인다. 해충이나 새, 산짐승들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한 농민들의 자구책이다. 어릴 땐 못 보던 풍경이다.텃밭엔 식용 야생초들도 많이 났다. 민들레, 왕고들빼기, 쇠비름, 질경이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식용 야생초를 뽑지 않고 적당할 때 뜯어 먹었다. 상추처럼 생으로 먹거나, 비빔밥에 넣어 먹는 재미와 보람도 누렸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까 무슨 애벌레, 거미, 메뚜기, 잠자리 같은 땅 위의 곤충과 굼벵이, 지렁이 등 땅속 생물들도 함께 사는 터전이 되었다.텃밭에서 일할 때면 참새, 딱새 같은 새들이나, 개구리, 잠자리 등 생물들이 일부러 가까이 찾아온다고 느낄 때가 많다. 사람 냄새나, 가져간 먹을거리 냄새, 혹은 소리나 움직임 같은 신호를 따라온 것일 터다. 저들은 사람과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일까. 더구나 논들이 텅 빈 늦가을날, 우리 작은 텃밭에서 생쥐와 뱀, 개구리, 여러 곤충, 땅속 생물들을 모두 만나다니…. 행운이다.아래, 위 두 다랑이가 모두 50평 정도인 작은 생태계 텃밭…. 농약과 비닐만 쓰지 않아도, 자연은 말없이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기쁜 소식의 현장이 됐다.

2021-11-16

대구 사람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금요일 대구 문화방송 ‘시인의 저녁’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이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대구 사람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면 어떻겠는가?’는 문제 제기. 지금까지 대구 사람들이 생각해온 기준은 혈연, 지연, 학연에 얽힌 것이라 한다. 시대가 바뀌고, 들고 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에 이런 기준을 재고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그가 제시한 기준 가운데 내가 동의한 대목은 이러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여기에 뿌리 내린 사람은 당연히 대구 사람이다. 그러나 직장이나 다른 목적으로 대구에 이주한 사람 가운데 대구에 기여하고 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대구 사람에 넣자. 대구를 떠난 ‘출향(出鄕) 인사’ 가운데서도 대구를 그리워하고 대구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도 대구 사람 범주에 포함하자는 것이다.그의 제안은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지금까지 30년 대구에 살면서 나는 여러 번 대구 사람의 정체성 때문에 말다툼을 했다. “말투가 여기 사람 아니네에?!”, 하면서 끼워주지 않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아니 여기서 일하고 봉급 받아 생활하는 나 같은 사람이 대구 사람 아니면, 누가 대구 사람이죠?!”하는 나의 항변은 늘 간단히 무시됐다. 나 또한 더는 우기지 않기로 했고, 앞으로도 그럴 요량이다.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왜들 그렇게 말투에 집착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마치고 타지로 나간 사람들은 같은 말투 하나로 이내 대구 사람이 된다. 하지만 타지에서 굳어진 말투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은 대구에서 오래 살아도 대구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참 이상하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요즘 젊은 세대는 대구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대구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듯하다.서울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해 대구로 내려온 상당수 정치인은 언제나 대구 사람이다. 그들이 서울에 집이 몇 채 있는지, 매주 서울에 가든지 말든지, 1년에 며칠이나 대구에 머무는지 하는 문제는 아예 무시한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무장돼 있거나, 그런 생각에 익숙한 대구 사람들이 무섭다. 여기서 출발하는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남이가!” 철학이다. 말투 하나로 그들은 언제나 정치적-이념적 동지가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한다.4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라는데, 대구는 툰드라의 정치적·이념적 동토가 해동되지 않은 곳이다. 젊은이들이 왜 대구를 떠나려 하는지, 관심조차 없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끼리 열심히 하면 된다는 저 강력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끼리’라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우리만의 틀에 갇혀 배제와 적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자신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거기에 순혈(純血)의 철옹성을 쌓고 안주한다. 그들은 성 바깥의 풍경이나 변화에 무심하다. 세상과 세계가 어떻게 바뀌는지에도 무관심하다. 그저 우리끼리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당신은 정녕 대구 사람인가?!

2021-11-16

싸워야 할 때를 안다는 것

나는 유난히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 말싸움이라고는 져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세 살 터울인 친오빠를 필두로 학교 친구들, 동네 언니들, 심지어는 선생님들과도 언쟁을 피하지 않았다.말끝마다 “왜요?” 하고 묻는 아이들의 화법에는 묘한 힘이 있다. 생각의 여지를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혹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까닭을 제대로 설명해보아라”와 같은 말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스스로 증명하라는 것과 같다.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태도를 유지하며 말싸움을 하다 보면 상대는 제풀에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가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싸움의 특성에 관해서 깨달았다. 상대를 공격하면서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폭력성과 뒤따라오는 허무함. 상대를 이긴다는 건 정말 이기는 일이 아니었고 일그러진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이겼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했다.어떤 것도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나쁜 상황만 생겨났다. 어째서 나는 이들과 언쟁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그런 의문이 길어지자 묘한 회의감이 찾아왔다.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그만 갈등도 피해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분명한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꾹 눌러 삼켰다. 솟아오르는 감정을 외면하거나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하고 이해해버리는 방향을 선택했다.칼날은 차라리 목구멍 안에 감추고 있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누군가는 내가 점잖아졌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내가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내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싸움의 지난한 과정이 귀찮아졌을지도 모른다.뭔가에 분노한다는 건 굉장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마음이 특정한 상대를 향해 있을 때는 더욱더 힘들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해버리면 끝날 일이지만 싸우려고 하면 여러모로 복잡해진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의 잘못뿐만 아니라 내 잘못까지도 자연스럽게 들춰지게 된다.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비겁하고 치졸한 인간인지 꺼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한 과정이 힘겹고 아프고 성가실 수밖에 없다.회사 선배가 습관처럼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는 친구의 고민을 들었다. 지적하기에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고 함부로 건의했다가는 사이가 틀어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그분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그냥 좋게 생각해.”라는 말이 내 입에서 기어코 튀어나왔을 때야 나는 내가 ‘너무 쉽게’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시위대 때문에 꽉 막힌 도로를 바라보며 ‘아, 정말 피곤하다’라고 생각한다든지, 부당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시스템을 바꾸려는 목소리를 낼 때 ‘그도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면서 넘겨왔던 날들. 어리석고 게으른 생각으로 점철된 시간들.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이런 나의 모자람을 친구에게 들킨 것이 창피했다.이제까지의 나의 싸움은 얕보이기 싫어서 내는 큰소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입을 다무는 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싸우지 않아야 할 때와 싸워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진정으로 싸워야 할 때를 아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꺼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을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것일 테다. 그래야만 하니까. 누군가는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그들은 기꺼이 싸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위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배제된 이들의 존립을 위해.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단 한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때를 떠올린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는 날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내게는 더 많다. 이 고요한 시간은 누군가의 투쟁으로 인해 받고 있는 특혜라는 생각을 한다. 그 치열한 분투를 내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2021-11-16

낭만이 사라진 세계에서

한국 영화에서 ‘느와르’라는 장르는 더 이상 한때의 유행이 아니다. ‘초록 물고기’, ‘비트’에서부터 ‘친구’를 거쳐 ‘비열한 거리’, ‘신세계’, ‘차이나타운’, ‘불한당’과 ‘아수라’에 이르기까지, 범죄 조직을 소재로 하는 느와르 영화는 이미 한국 영화의 한 축이 되었다. 현실의 부정함과 비정함에 대해 폭력으로 응수하는 느와르의 문법은 우리가 현실에서 상상하지만 감히 실현하지 못하는 것을 저지르고, 비록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에 끝까지 충실하고자 분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그 속에서 유오성은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인데, 한국형 느와르의 정점을 찍은 ‘친구’에서 준석을 통해 보여준 그의 연기는 이후 수많은 느와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연기의 교본이 되었다. 우정과 의리, 그리고 비정함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비극 속에서, 그의 천부적인 표정 연기는 느와르적 인물이 취해야 할 감정연기의 표본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 그가 최근 ‘강릉’이라는 영화를 통해 느와르 장르에 다시 복귀했다. 여기에서 유오성은 그간 보여준 연기 경력을 느와르라는 틀 속에 모두 녹여낸 것 같은 표정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연기한 길석이라는 캐릭터는 이전의 유오성식 느와르 연기와는 분명 결이 다르다. 비슷한 위치에 놓인 인물과의 정쟁으로부터 빛을 발하던 이전의 인물 연기와 달리, 여기에서 길석은 조직 내에서 든든한 아우이자 형이라는 다소 다른 인물로 제시된다. 그 속에서 유오성은 의리와 우정을 중요시 여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규율을 위해 상대를 단죄해야만 하는 인물을 충실하게 연기해낸다.여기에서도 다시금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표정 연기다. 첫 장면에서부터 바다를 배경으로 진한 파랑 계열의 톤 속에서 터져나오는 그의 표정 연기는 영화 전체를 압축해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무게감을 갖고 있었다. 이후로도 그의 표정 연기는 영화의 터닝 포인트마다 등장하여 그 장면의 개연성을 표정만으로 납득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해안도로의 격투 장면에서부터 리조트의 옥상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전까지의 스토리란 바로 이 장면의 유오성의 표정 연기를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 속에서 유오성은 길석의 입을 빌어 ‘더 이상 낭만은 없다’고 말하며 경쟁 조직의 두목을 무참히 칼로 찌른다.영화를 모르는 평자의 평이겠으나, 사실 영화로서의 ‘강릉’은 좋은 작품이라 하긴 어렵다. 기존의 영화들을 통해 반복된 느와르의 문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지만 개연성의 부족으로 인해 번번이 극적 긴장을 상실하며, 개연성의 부족을 학습된 관객의 느와르적 감각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인물의 설정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설정처럼 강제로 주입된다. 그렇다보니 인물의 성격과 심정을 유추할 수는 있으나, 몰입되지는 않는다. 이는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는 관객에게 플롯이 가지는 내적인 개연성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느와르적 문법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가정하며 그것에 기대어 따라가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길석의 대사를 듣고 나면 왠지 그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의 의도적인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예컨대 우리가 기대하는 의리와 조직의 규율, 그로인해 초래되는 비극이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현실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한 편의 살인극에 불과하다는 것. 영화가 여러 개연성을 위한 장면을 생략한 것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은 게 아니라 더는 그와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 말이다. 우리가 느와르를 통해 기대하는 것들은 하나의 낭만에 불과하고, 현실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멋없고 잔인하며 무정할 따름인 피바다에 불과하다는 것, 어쩌면 그게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영화의 의미였던 것은 아닐까.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영화의 첫 장면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유오성이 길석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표정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모든 의리와 우정이 낭만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 그런 낭만마저도 돈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그것이 아직 건재하게 살아있다는 ‘척’을 해야만 하는 인물의 슬픔. 우리가 그나마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그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척을 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는 메타 픽션적인 교훈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리라.

2021-11-16

대구시 건의 대선공약, 대구 거듭날 기회 삼자

대구시가 내년 3월 실시될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에게 건의할 40조원 규모 2021년 지역 대선공약을 확정, 발표했다. 대구시의 지역 대선공약은 지난 3월부터 실국별로 과제를 발굴하고 8개 구군과 유관기관, 시민여론조사 등을 통해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 정리한 것이라 한다. “대한민국 남부권의 글로벌 거점으로 도약”을 비전으로 내세웠고 모두 5대 분야 16개 사업으로 준비했다. 대구시는 이번에 확정한 지역공약을 각 후보 진영에 전달하고 채택을 적극 건의할 예정이다.5대 분야 사업은 다음과 같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17조원) △품격있는 역사문화도시조성(3조원) △미래산업 선도도시건설(6조) △탄소중립 녹색도시건설(6조원) △동서화합 균형발전분야(6조원) 등이다.대구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분야가 총 망라되었고 이것이 만약 대선공약으로 채택된다면 지역발전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러나 알다시피 대선공약은 여야 구분없이 부동산 정책과 같은 전국적 이슈와 더불어 지역별로도 현안 요구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지역이 요구한다고 대선공약을 무조건 받아주지도 않지만 설사 받아준다고 해도 공약 이행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공약이 되면서 표심은 가져가고 실천이 안 되는 경우를 말한다.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와 타당성을 근거로 대선공약 이행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지역단위의 공약은 폭넓은 지역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고 사업의 타당성도 인정받아야 설득력이 있다. 우리지역으로서는 백년 앞을 내다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조속한 건설이 우선 사업으로 손꼽힌다. K-2 군공항의 원만한 이전과 신공항 건설에 따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선주자의 약속이 필요하다.특히 통합신공항은 국제공항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고 경제물류공항으로서 기능을 확실히 구비해야 지역의 미래가 있다. 대구는 28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꼴찌다. 당선된 단체장마다 꼴찌 탈출을 공약으로 내놓았지만 아직도 개선 여지가 없다. 대구시가 발표한 20대 대선공약이 대선후보의 공약으로 채택되도록 모두가 힘을 모으고 이것이 대구가 거듭나는 기회가 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1-11-16

캐스팅보트 MZ세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 사이에 MZ세대 표심잡기가 한창이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여러 차례 드러났듯이 20∼40대 초반의 MZ세대의 표심이 대선후보 결정의 승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면서 이들 세대를 위한 정치권의 공략이 노골화되고 있다.MZ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해 이르는 말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소비행위를 통해 표출하는 집단이다.이들은 특히 SNS를 기반으로 하는 유통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영끌 대출로 주식시장과 암호화폐의 상승장을 주도하는 세력이 바로 MZ세대다.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세대는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다. 그러나 이들 세대가 점차 노화되면서 자산이 MZ세대로 이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5년마다 1조3천억 달러 가량의 자산이 MZ세대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투지은행인 모건스탠리는 미국 인구의 4분1을 차지하는 Z세대가 2034년에 가서는 미 역사상 가장 많은 세대로 등극할 것으로 전망했다.마케팅 용어에서 유래한 MZ세대는 이제 경제,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두루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서도 MZ세대의 적극적 투자와 소비패턴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특히 선거를 앞두고 캐스팅 보트 세력으로 떠올라 관심이다. 그러나 청년실업난, 주택가격 폭등 등 그들 세대가 안고 있는 고민 또한 적지 않다. 그들의 고민에 공감하는 정치권의 진정성 있는 노력만이 표심을 얻지 않을까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6

순대가 비록 대순 아니지만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세상에는 / 순대라 불리는 종교가 있다. // 그 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 맨 먼저, 자신이 / 평생 삼켜 온 내용물 토해내고 / 전신 뒤집어야 한다. …. 세상에는 순대라는 종교가 있다. / 숱한 고난을 이겨낸 / 그를 위해 식탁 앞에는 커다란 칼과 도마가 / 함께 자리 잡고 / 전신 드러낸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 숟가락과 젓가락 든 사람들 모여들고 / 경건한 마음으로 / 그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문학뉴스 2018년 4월 16일에 게재된 박기영의 시 ‘순대론’의 일부이다. 돼지 창자 안팎을 깨끗이 씻어낸 뒤 당면, 채소, 고기 등 각종 소를 선지에 버무려 그 안에 채워넣고 쪄낸 우리 고유의 음식인 순대. 박기영 시인은 이를 종교로까지 승화시켰다. 수저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먹기를 기다린다고 표현한 대로 한국인으로 순대 싫어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서울 관악구에 살던 결혼 초에는 신림동 순대타운을 즐겨 찾았고, 독립기념관을 다녀올 때면 천안 아우내 장터의 병천 순대를 먹고 오기도 했다. 마땅히 당기는 음식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학교 근처 식당으로 동료교수와 함께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여러 부위의 돼지고기와 순대가 듬뿍 들어있는 순댓국은 서민들의 든든한 한끼 식사이다. 소주 한 잔에 얼큰한 순대술국은 하루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훌륭한 ‘소울푸드’도 된다.성경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순대를 먹는 것은 구약 성경과 유대인의 율법에서 금기를 두 개나 어기는 행위이다. 순대가 비록 대수는 아니지만, 내가 유대교인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지난 11월 초에 한 식품업체가 지저분한 환경에서 순대를 만드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보도가 나가자마자 이 업체에는 거래를 끊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며칠 뒤에 업체의 회장은 소비자들에게 사죄문을 올렸다.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오늘의 200여 명의 대가족과 400억 매출의 식품회사를 일군 제게 순대는 학교이고 공부이고 생명이고 제 삶의 모든 것”이었다며 다시 일어나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K-순대’ 세계화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약속과 다짐도 하였다.식구 모두 순대를 좋아하여 진공포장된 순대를 사서 집에서 쪄 먹곤 한다. 이 보도가 나가기 며칠 전에도 두 묶음짜리 순대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니나다를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포장에 찍혀 있었다. 아내는 그 순대를 치워 버렸다. 음식을 남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는 내가 그 순대를 먹을까 염려해서 나 몰래 버려 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순대를 먹지 못할 것 같다. 순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우연이겠지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내 성의 본관과 같다. 회장의 성이 박씨이니 우리 가문과는 관계가 없을 터이지만, 왠지 사죄문에 마음이 짠하다. 부디 이 기업이 약속을 꼭 지키고 다시 일어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일이 우리 전통 음식과 길거리 음식의 위생 관리를 더 철저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1-11-16

포스텍 같은 공과대학에서 의과학자 양성 필요

이강덕 포항시장이 그저께(15일) “포스텍에 연구중심 의대를 반드시 설립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혀 성사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포스텍(포항공대) 관계자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가진 미국 보스턴시 등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 시장은 “포항시가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역점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의료산업의 혁신과 도약을 위해서는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했다. 이 시장은 이번 보스턴시 방문에서 바이오산업 생태계 구축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종성 보스턴대 교수와 요하네스 프루어하우프 바이오랩 센트럴 대표를 비롯해 현지 바이오·의료전문가들을 만나 보스턴시 바이오산업의 성공 스토리와 랩 센트럴 운영 노하우를 들었다.포스텍은 이미 지난 7월 연구중심 의과대학의 전 단계로 오는 2023년부터 의과학대학원을 신설해 신약과 치료기술 개발,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연구중심 의과대학의 필요성은 얼마 전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포항 남구·울릉군)은 “신약개발이나 바이오헬스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은 공과대학이 있는 대학에 연구중심 의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도 포스텍이나 카이스트 같은 유수 공과대학에서 연구중심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의과학자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포항에는 조만간 세계 기업 가치 1위인 애플이 둥지를 튼다. 애플은 내년에 포스텍 캠퍼스에 RD지원센터와 개발자 아카데미를 설립해 포스텍과 함께 운영한다. 애플이 창사 이래 최초로 설립하는 교육기관 장소로 포항을 선택한 것은 포스텍을 비롯해 제3·4세대 방사광가속기, 나노융합기술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포항금속소재산업진흥원 등의 우수한 연구기관이 입지하고 있기 때문이다.경북도에는 현재 상급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다. 우리나라도 이제 코로나19와 같은 신종바이러스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바이오생태계가 구축된 포스텍 같은 공과대학에서 의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202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