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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해에는 해각을 만나기를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 감당할 만한 다른 감정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을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어느 시인이, 자기를 돌보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영된 티비 단막극 ‘기억의 해각’에서 배우 문근영이 맡은 주인공 오은수의 감정도 이렇게 중층적이다.은수는 남편 정석영이 알콜 중독으로 7년을 방황하는 동안 불평 한번 없이 남편을 돌보았다. 그러다가 석영이 잘못 휘두른 칼에 베이고 유산까지 한 후 자신이 알콜 중독에 빠졌다. 석영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은수를 돌보지만 지쳐가고, 은수는 바다로 들어간다. 그때 25살 청년에게 구조된다. 그의 이름은 해각. 은수는 그에게 남편을 용서할까 봐 술을 마신다고 한다. 은수가 해각과 여행을 떠난다면서 집을 나서자 석영이 뒤따라온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해각이 보이지 않는다. 석영은 곧 그 해각이 자신의 25살 모습인 것을 알아챈다. 석영은 젊은 시절 밴드를 만들어 무대를 꿈꾸다가 접고 기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은수는 기억 못하지만, 밴드 이름 해각은 은수가 지어준 이름이다. 단막극이지만 이런 은수의 심리변화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알콜 중독으로 횡포를 부리는 석영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은수의 모습은 지고지순하다. 남편이 잘못 휘두른 칼에 베이고 아기를 유산한 후에야 남편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다. 맨정신의 은수는 사랑의 감정만 자신에게 허용하고 있다. 분노는 사랑 뒤로 밀려나 있다. 그래서 은수의 사랑 방식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김용태가쓴 ‘가짜 감정’에서 지금 보이는 감정 뒤에는 다른 감정이 있다고 한다. 겉에 보이는 감정을 가짜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 뒤에 있는 감정은 진짜 감정이다. 그러나 진짜 가짜가 좋다 나쁘다의 뜻은 아니다. 그래서 가짜 감정, 진짜 감정이라기보다 겉감정, 속감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은수의 고통은 자신의 속감정을 잘 살피지 못한 데서 시작한다. 알콜 중독 남편을 한결같이 돌보는 겉감정은 언젠가는 한계가 온다. 분노를 꽁꽁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칼부림 있고 난 후 술의 힘을 빌려 폭발한다. 그러나 그 역시 은수 진짜 속감정은 아니다. 음악을 사랑하던 25살의 남편을 해각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것은 남편에 대한 티없는 사랑이 진짜 속감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각을 만난 후 은수는 알콜릭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이렇게 속감정은 알기 어렵다. 증오 속에 사랑이 숨어 있기도 하고, 행복 속에 고통이 숨어 있기도 하다.해각은 새 뿔이 돋아나려고 묵은 뿔이 빠진다는 뜻이다. 묵은 뿔이 빠지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새 뿔이 난다. 속감정을 대면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묵은 뿔이 빠지지 않으면 새 뿔이 돋아날 수 없듯이 고통의 시간 없이는 치유될 수 없다. 새해에는 해각을 만나게 되기를 가만히 기원해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딱 맞는 드라마다.

2021-12-27

포항 10대 뉴스, 평가받을 만한 소식들이다

포항시가 그저께(26일) 2천300여명의 시민이 SNS 등을 통해 선정한 10대 뉴스(12월 6일부터 13일까지 집계)를 발표했다. 10대 뉴스 상위권에는 인기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촬영지로 포항이 선정된 것, 새로운 포항의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스페이스워크’, 세계 최고 IT 기업인 애플 유치 등이 랭크됐다.상위권으로 꼽힌 뉴스 모두 올해 포항이 전국의 주목을 받은 내용이다. 동해안의 아름답고 한적한 해변 풍경을 배경으로 촬영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포항의 이미지를 ‘한번은 꼭 찾고 싶은 도시’로 만들면서 관광객 유치에 주요역할을 했다. 지난달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체험형 조형물로 오픈한 ‘스페이스워크’또한 포항의 새로운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특히 올해 포항이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끈 뉴스는 애플을 유치한 것이다. 애플은 그동안 스마트폰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시장에 투자할 마음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지만, 내년에 포스텍(포항공대)에 둥지를 틀고 한국에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애플이 설립할 RD지원센터와 개발자 아카데미에는 앞으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꿈꾸는 엘리트들이 대거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포항이 최근 5년간 역대 최대 규모인 6조8천억원의 투자유치에 성공한 소식, 지진피해 구제지원금 지급으로 흥해체육관 이재민들이 1천435일 만에 집으로 돌아간 것, 포항시가 포스텍에 연구중심 의과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세계 바이오산업의 메카인 미국 보스턴시를 방문한 소식도 시민들이 주요뉴스로 꼽았다.올 한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민 모두가 엄청난 고통을 겪은 한 해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포항시가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부러워할 만한 많은 성과를 낸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2022년에는 포항을 ‘희망특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 시장의 포부처럼 포항시가 새해에도 더욱 분발해서 희망으로 가득찬 도시가 되길 기대한다.

2021-12-27

전국에서 가장 빨리 늙어간다는 경북

경북은 전국에서 초고령사회 진입속도가 가장 빠르고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시·군 자치단체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노령화가 시대 흐름이라 하지만 경북이 전국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자치단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꼴이라 씁쓸한 마음을 가질 도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국가통계포털에 올라온 2020년 주민등록 연앙인구를 보면 지난해 전국 261개 시·군·구 중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시·군은 109개로 41.8% 점유율을 보였다. 경북은 23개 시·군 중 19개 시·군이 이에 포함돼 전국 시·도 중에도 가장 많다. 또 경북의 의성은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이 40.8%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군위(39.7%), 청도(37.1%), 영덕(37%) 등을 포함하면 전국 10위권 안에 경북의 4곳이 들어있다.초고령사회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경우다. 경북은 전체 고령인구비율도 이미 20%를 넘었다. 경북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소멸위기 지역을 안고 있다는 것과 연관 지어보면 경북의 노령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한국사회 전체가 노령화의 길로 가고 있어 불가항력의 측면도 있으나 그렇다고 이를 간과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지방단위의 대응책이라도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노령화 속도라도 늦출 수 있는 것이다.노령인구가 많아지는 초고령사회는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 도시의 성장세가 멈추거나 떨어진다. 노인빈곤문제가 대두되고 노인인구에 대한 복지수요가 늘면서 국가나 자치단체의 재정적 부담이 는다. 도시는 활기를 잃고 독거노인의 고독사와 노인범죄 증가 등의 사회문제도 야기된다.지방도시의 초고령화 문제는 저출산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층의 지역이탈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 국토균형 발전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치단체 차원의 강력한 대응은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북도의 제2고향 갖기 운동 등은 시의적절한 대응이라 하겠다.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피할 수 없다면 이를 수용하는 능동적 변화도 필요하다. 경북의 노령화에 대응할 보다 혁신적 노력이 있어야 할 때다.

2021-12-27

참아야하는 직업

조현태​​​​​​​수필가 어떤 청년이 보석 감정사가 되고 싶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유명한 보석 감정사를 찾아갔다. 수많은 직업 중에 보석을 감정하는 기술이 가장 배우고 싶은 분야라면서 잘 가르쳐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늙은 감정사는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달갑지 않게 여겼다. 보석감정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청년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간절한 부탁을 거듭했다. 자신이 충분한 소질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다. 그래도 감정사는 고개를 저었다. 보석 감정 기술을 배우려면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데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끈덕지게 매달리는 청년을 보고 감정사는 못 이기는 척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이튿날, 그 청년이 찾아오자 손바닥에 작은 보석 하나를 올려주며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보석을 보고 있으라’고 했다. 대화도 하지 않았고 감정기술을 위한 어떤 정보도 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다음날 아침에도 청년의 손에 어제의 그 보석을 쥐어주며 ‘오늘도 어제처럼 하라’고 했다. 셋째 날도, 넷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청년은 일주일 동안 보석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열흘이 지났지만 똑같은 상황에 청년은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었다.“스승님, 언제부터 감정기술을 배우게 됩니까?”그러나 보석 감정사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무뚝뚝하게 ‘왜 지겹냐’면서 자신의 일만 계속했다. 이미 열흘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한 청년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 감정사를 찾아가는 것이 낫지 이런 식으로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또 다시 보석을 쥐어주며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만 한다면 보석을 집어던질 생각까지 했다.다음날도 감정사가 그 보석을 청년의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집어던지려는 순간 어제까지 줄기차게 보던 그 보석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막상 보석을 던지려다 말고 고개를 갸웃하며 ‘어제까지 보던 게 맞는데’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제야 늙은 보석 감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온종일 작은 보석 하나만 들여다봤으면 그냥 봤을까? 뒤집어 보고 문질러 보고 침 발라보고 닦아보고 굴려보고…. 아무리 봐도 그게 그거였으리라. 동일한 보석이었으나 오랫동안 바라보는 가운데 어렴풋이 그 보석만의 독특한 면을 보게 되었다.늙은 감정사가 청년에게서 찾고 싶었던 것은 인내심과 끈기였다. 예리한 관찰력과 정확한 분별력도 오래 참으며 기다리는 중에 생기는 것을 감정사는 알고 있었다.어떤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참고 또 참고 다시 참다가, 참다가 도저히 참지 못했다면 이미 참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무턱대고 참으란 말이 아니다. 결론에 이르기 위한 참음이다.기회는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찾아온다. 적어도 대결 구도에서 끝내 이기려면 얼마나 슬기롭게 참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참아내기 어렵도록 끈질기게 괴롭혀야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괴롭힘을 얼마나 잘 피하느냐가 곧 자신의 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2021-12-26

보람찬 새해를 맞자

윤영대수필가 올해의 달력을 벗기고 2022년 임인년 새 달력을 걸며 ‘벌써 한해가 흘러갔구나.’ 하며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겨 본다.코로나19가 설쳐댔던 1년을 지나며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무사한 것에 감사하고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나만의 소소한 일상에서 할 일을 찾고 글을 쓰고 작은 취미를 살리며 지냈고, 조용히 배움터에 나가 쉬지 않고 자기계발을 해 온 것,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 백신 다 맞은 것…. 그게 모두이다. ‘무엇이 변했나?’ 고희를 넘은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어지럼증에 병원을 찾았더니 크게 염려스러운 것이 아니라 안심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와 괴질의 확산에 만남을 줄이고 마스크 쓰고 비대면 대화를 하며 약간의 우울증이 온 듯한 것이 내가 달라진 것인가? 그렇게 되뇌며 마지막 달력을 떼어 냈다.즐겁고 행복했던 일은 있었던가? 보람 있는 일, 늦으나마 나의 꿈을 이룬 것은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있으면 나를 일깨우고 힘을 내도록 해주었던 가족들과 이웃, 지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연말 인사를 해야겠다. 후회되는 일, 다 하지 못한 일, 잘못한 일, 슬펐던 일, 미워했던 일들은 없었는지도 곱씹어 봐야겠지만 지나간 일들은 잊도록 하자. 부정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 역병의 검은 기운은 줄어들지 않아서 송년 모임도 없어 섭섭하지만 거리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화려한 오색 등불 옷을 차려입고 캐럴도 들려주며 산타의 선물처럼 용기를 북돋운다.동짓날도 지났다. 음의 기운이 다하고 양의 기운이 시작되었으니 가슴 쭉 펴고 밝은 기운을 받아들이자. 내년엔 우리에게 주어진 ‘대선’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지런한 소가 역병을 막아주었으니 내년엔 호랑이에게 힘을 빌어보자. 호랑이 꼬리 호미곶에서 ‘상생의 손’ 사이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나라와 집안의 안녕을 빌어보고 싶지만 해맞이 행사가 모두 취소되어 아쉽다. 연말 제야의 종소리를 귀에 담고 새해 첫날 호미곶과 영일대 바닷가로 나가서 나라와 가족의 평온을 빌어왔던 기억들이 좋다. 다같이 모여 간절한 마음으로 손 모아 비는 사람에게는 병마가 덮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슴에 새겨보는 것도 새해를 맞는 다짐일 텐데….딸이 선물로 보내준 예쁜 다이어리를 펼쳐 보니 또 한 해의 빈칸들이 나의 알찬 기록을 기다리고 있다. 우체국에서 사 온 연하 카드에 새해 인사를 쓰고 크리스마스 씰을 호랑이 우표 옆에 붙여 보내는 마음도 기쁘다. 자선냄비에 지폐를 넣어주고 적십자 회비도 보냈다. 작은 것이지만 마음이 푸근하다. 새해 소원은 모두 건강과 행복을 비는 마음이겠지만, 더욱더 절실하게 생각 에너지의 파동을 키워 기적을 이루어 보라는 격려도 있다. 기쁜 삶의 의욕과 희망으로 부정적 생각을 버리고 항상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갑자기 몰려온 추위에도 시골집 뜰에 노란 납매가 피어나 텅 빈 골목에 향기가 가득하다. 새해는 행복 가득한 날들이 되길 빌며, 한글서예 마지막 수업 때 나의 좌우명을 덧대어 써봤다.‘맑은 마음 밝은 얼굴 고운 말씨 따뜻한 손길로 보람찬 새해를 맞자.’

2021-12-26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김시동 전 예천읍장 지방자치시대는 선거를 통해서 주민의 손으로 직접 단체장을 선출한다.예천군수선거에는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2명의 인사가 표밭갈이를 하고 있다. 군민들은 청렴과 진취적인 결단력을 갖춘 인물을 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여건을 갖춘 자치단체라 할지라도 그 단체장의 능력과 리더십이 없다면 초일류지방자치단체의 실현은 불가능하다.정치 지향적이고 권력 추구적인 몇몇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우리 군민들이 그토록 지방자치 부활을 소망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지역의 살림에 스스로 참여하고 감시하여 ‘보다 나은 삶(better life)을 영위하고자 하는 소망과 독재화 된 중앙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치를 구현하므로써 궁극적으로 민주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지방자치제 실현을 추구했을 것이다.어떻든 지방자치 30년을 돌이켜 보면서 많은 유권자들이 제도도 중요하지만 역시 지도자를 잘 뽑아야겠다는 결론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똑같은 제도하에서 운영되는 지방정부도 정직하고 능력있는 단체장을 뽑은 곳은 ‘일취월장’ 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각종 비리에 연루돼 ‘쇠고랑’ 찬 단체장들의 모습이 TV에 나올 때 유권자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이와 달리 열악한 자치단체라 할지라도 단체장의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리더십은 주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간다.개인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질을 제시해본다.첫째, 지방자치단체장은 검증된 정책능력과 폭넓은 인적네트워크, 그리고 자치단체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강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둘째,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 현안을 잘 알고 해결할 행정력을 갖춘 강력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조직 장악력과 창의력 그리고 추진력이 나온다. 서툰 행정, 잘 모르는 행정은 설자리를 잃기 마련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이듯 행정은 지역주민들의 삶이다.셋째, 자치단체장은 소통능력이 있어야 한다.다양한 지역현안에 대해 주민·직원들과 함께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소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모든 공직자들이 단체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군민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그런 단체장이 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할지라도 구성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민주성과 독선적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되며, 시대는 변해 가는데 그 흐름을 좇지 못하고 옛날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도 안될 것이다.넷째, 지방자치단체장이 어떤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군민 우선 결정을 해야 한다. 군민 도움 여부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법률 검토이다.합법도 중요하지만 합목적 행정도 매우 중요하다.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아무리 권한을 하부 단위에 대폭 위임한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사항에는 꼭 위의 눈치를 보는 우리의 현실에서 단체장의 업무는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이를 감당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한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법이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지자체장은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한다.특히 자질 면에서는 근면과 성실, 도덕성과 책임감, 청렴한 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어야 하며, 발로 뛰고 현장을 누비며, 늘 만날 수 있는 ‘현답행정’이 몸에 배여 있어야 한다.끝으로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이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지도자가 부패하면 직원들도 똑같이 부패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하고, 항간에 유행하는 측근 비리가 절대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겠다.이번 선거에서 예천군민들은 지역 현안을 잘 알고 해결할 능력을 갖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2021-12-26

나는 기다립니다

선물이 도착했다. 산타할아버지 같은 친구가 멀리서 보내온 보따리를 풀었다. 참하게 포장한 반짝이는 리본을 풀자니 아까울 지경이다. 손편지까지 써서 실어 보낸 것이라 친구의 마음을 열어보는 기분이다. 이십 대 청년이 된 아들 둘의 어린아이 모습까지 기억할 만큼 오래 이어진 인연의 끈이다.오래된 끈과 띠를 모아 국립대구박물관에서 한국의 복식 특별전을 한다기에 길을 나섰다. 포항과 대구를 잇는 긴 띠인 고속도로를 달려가니 한 시간 조금 더 걸려 도착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때 닫힌 공간이라 걱정했는데, 그 넓은 곳을 돌아보는 내내 박물관이 온통 내 차지였다. 조용하게 전시품과 영상과 글을 온전하게 느꼈다.첫 방에는 왕의 허리띠가 놓였다. 벽 전체에 끈이 흔들리고 띠가 출렁이는 영상이 흐른다. 배 부를 때와 고플 때 시시각각 달라지는 허리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허리띠의 미학에 대한 짧은 시였다. 창(猖)은 미쳐 날뛰다, 어지럽다란 뜻의 한자이고, 피(披)는 헤치다, 펴다, (끈을) 풀다 라는 의미를 품었다. 그래서 헐렁한 우리 한복을 입고 끈으로 매무새를 다듬지 않으면 ‘창피하다’란 말로 이어진다. 사극에 등장하는 술 취한 사람이나 미치광이는 옷고름이나 허리띠 없이 옷이 풀어 헤쳐져 있다. 창피한 복장이다.우리나라에 허리띠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이천 년이 넘었다고 한다. 서봉총의 금허리띠는 신라 시대가 황금의 나라였다는 것을 자랑하였고, 금속공예로 구현된 고려의 허리띠는 문양에 등장하는 사람이 내 엄지손톱보다 작아 그 섬세함을 느끼려면 돋보기로 봐야 할 지경이다. 왕의 허리띠에는 가장 귀한 재료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이 모두 들어가서 위엄과 기품을 느끼게 했다.조선 시대의 신분증인 호패도 허리에 끈으로 매달았다. 첫 돌에는 다섯 가지 색을 넣은 오방장두루마기나 까치두루마기라 불린 옷을 입히고 오래 살라고 십장생을 수 놓은 돌띠를 매 주었다.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가 생각났다. 빨간 털실 한 가닥이 이어져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기를 기다리고, 배우자가 떠나며 끈이 끊어지지만, 자식이 자라 뱃속에 손자가 다시 빨간 끈으로 표현돼 삶이 빨간 털실로 끝없이 이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전시회 마지막 방을 나오기 바로 전에, 두 개의 허리띠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김일 선수의 챔피언 벨트. 어린 시절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몇 집뿐이라 ‘김일 레슬링’을 보려고 좁은 방 가득 동네 사람 모두가 들어왔었다. 경기는 박치기왕의 승리로 끝났고 방을 나오는 사람들 얼굴이 모두 발갛게 홍조를 띠었다.또 하나의 띠는 고희경 대위의 것이었다. 부모님 전 상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에 계실 아버지와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가 또박또박 적혔다.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자 나라에 큰일 하게 되었다고 기뻐하셨는데 곧바로 6·25가 터져 안부도 전하지 못하고 급히 전쟁터로 가게 되었다. 포탄이 터지는 포항에서 전우들과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1950년 8월 어느 여름 불효자 올림이라 끝맺는다.그다음 글이 추신인가 하고 보니, 이 편지가 가상의 것이란 설명이었다. 고희경 중위는 전투에 참여한 지 두 달 만에 포항 기북면 무명 380고지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목에 걸고 있던 인식표와 띠쇠와 계급장이 2009년 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유해와 함께 발견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유가족을 찾지 못해 가상의 편지를 작성해보았다는 설명이었다.전투 중에 동료가 사망하면 앞니 사이에 인식표 하나를 박고 남은 하나의 인식표는 수거해 온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누구의 유해인지 알 방법이라고 한다. 아들도 군대에서 더미를 이용해 이 방법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고희경 중위는 전사한 후 한 계급 올라 대위가 되었지만, 가족과의 끈이 아직도 이어지지 못했다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박물관을 나오며 70년간 끊어진 빨간 인연의 끈이 어여 가 닿기를 기도했다./김순희(수필가)

2021-12-26

울릉도·독도에 출어한 제주 해녀 이야기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복지회관 한 켠에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라는 비석이 자리 잡고 있다. 비석에는 협재리 대한부인회가 1956년에 설립했나느 내용과 함께 뒷면에 30여명의 해녀 이름이 빼곡이 적혀있다. 1950년대 울릉도와 독도에 출어 했던 제주 한림읍 협재 해녀들의 이름이다.제주 해녀들은 왜 울릉도를 거쳐 독도까지 출어했을까? 제주도와 한라일보가 공동 발간한 제주 출향 해녀 발취를 기록한 ‘저 바당에 그리움의 세월을 묻다’라는 책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실려 있다. ‘독도 화포채취 작업 시상식 기념’‘대한상무회 울릉군 연합분회’라는 글귀와 함께 1964년 7월 19일 날짜가 새겨져 있다. 독도 어업사에서 중요한 사진이다. 화포는 미역을 말한다.지난달 25일 울릉문화유산지킴이 50차 모임에서 ‘울릉도·독도 해녀이야기’라는 주제의 분임조 발표가 있었다. 울릉도에서 열린 그리고 울릉주민에 의한 첫 해녀 재조명 자리이었다.직접 제주도를 방문해 독도에 출어한 협재리의 김공자 해녀의 생동감 있는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울릉도 도동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 해녀들 몇 분을 인터뷰하는 등 현장감 높은 발표였다. 김공자 해녀는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제주 해녀 30여명을 모집해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물질을 갔다고 증언했다. 또한 1952년에는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이 제주 해녀 10여명을 조사목적으로 고용해 활동했다는 기록도 있다.한 번에 30~40명의 해녀들이 1950~60년대 당시에 어떻게 독도에서 생활했을까? 해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도에 지하수가 샘솟는 큰 동굴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바로 독도 서도 북서쪽에 위치한 독도에서 유일하게 지하수가 산출되는 물골을 말한다.제주 해녀들은 이곳 물골에서 생활하며 식수를 얻으며 한 번에 많게는 몇 달간의 독도 생활을 이어갔다. 또한 물골의 샘을 지키는 신에 대한 감사 표시로 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물골에 있는 동자석 모양의 산신에 제를 지내는 등 물골의 존재를 소중히 여겼다 전한다.제주 해녀들의 독도 출어는 독도 첫 주민 최종덕을 만나면서 보다 활발해진다. 울릉도 도동어촌계와 독도 어장권을 계약한 최종덕은 1964년부터 김공자, 고순자 등 제주 해녀들을 고용해 독도에서 수개월간 상주하며 어업활동을 이어갔다.최종덕은 제주 해녀들과 함께 1966년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물골을 정비하고, 현재의 서도 주민숙소 자리에 어민보호소를 신축하기도 했다.제주 출향 해녀들은 독도에서 어업활동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1960~1980년대 당시의 열악한 독도경비 활동 및 독도 행정 강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물골 계단 정비공사, 독도경비대 삭도 공사 등 각종 독도 시설정비공사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제주 한림 출신의 고 김화순 해녀는 1982년 독도경비 중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순직한 독도경비대원 시신 인양공로로 울릉경찰서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해녀들의 독도에서 물질 한 회 한 회가 삶의 터전으로써 독도를 지키는 행위 그 자체였다.독도 주민 김성도(1940~2018)씨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독도 주민 김신열씨 또한 제주 한림 출신 해녀이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그리고 89개의 크고 작은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89개의 부속도서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바위가 바로 동도 남쪽에 위치한 해녀 바위이다. 제주 출향 해녀들의 독도에서 고단한 삶이 그나마 남아 있는 흔적이다.김공자 해녀와 울릉도 도동에 거주하시는 한영숙 해녀는 독도에서 바다사자(강치)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김공자 해녀가 바다사자를 안고 있는 사진은 독도 어업사에서 중요한 기록의 한 장면이다. 울릉도 행정중심지인 도동에는 몇 해 전부터 강치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강치 거리에 해녀들의 이야기를 불어 넣을 필요가 있다. 울릉도 도동은 저동항이 아직 발달하기 전 독도로 출어하는 해녀들의 대합실이었다. 제주 출향 해녀들은 아직도 1960~70년대 도동의 거리를 기억하고 있다.한편으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해녀문화와 울릉도·독도와의 다양한 교류활동도 필요하다. 울릉군 도동읍과 제주 한림읍간의 마을 교류 사업도 생각해 봄직하다. 협재리 복지회관 한 켠에 세워진 기념비에 설명문 하나 없는 것도 아쉽다. 현재 울릉도에는 제주 출신 해녀를 포함한 10여명의 나잠어업 종사자가 있다.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고려하여 다양한 지원 대책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온 몸으로 울릉도·독도 바다를 지켜온 분들이다.또한 독도 출향 해녀들의 활동을 포함한 체계적인 ‘독도 어업 활동사’ 기록화 작업이 필요하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서는 2022년 상반기 독도전용소형조사선 독도누리호 취항을 계기로 지역 어촌계와 협력해 독도 연안 해양수산자원 관리 및 이용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2021-12-26

갱년기 여성을 위한 맞춤형 운동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최근 국내외 연구들에 의하면 운동이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많은 결과들이 제시되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이 다양한 만성적인 질병의 예방에 효과가 있고, 건강한 삶에 있어서 필수 요소라는 의견도 있다. 갱년기 여성들이 겪는 여러 가지 증상들을 특정 형태의 운동에 의해 치료할 수 있고, 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에서 갱년기 증상이나 문제가 적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갱년기 여성들의 경우 호르몬 분비가 감소되어 골다공증, 비만과 혈관의 탄력성 저하로 심혈관계 질환에 잘 걸리고, 심리적으로는 고독감과 우울증에도 곧잘 시달린다. 다수의 국내외 연구에서 갱년기 여성이 활발히 운동하면 열성 홍조, 불면증과 통증에 개선 효과가 있으며,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불안, 초조감이 상당히 줄어든다고 한다.그런데 너무 지나친 신체적 활동은 열성 홍조와 다른 혈관운동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너무 강도 높은 운동은 근골격계와 관절의 부상과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여 개인별 운동처방과 적절한 감독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맞춤형 운동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대목이다.대표적인 증상인 열성 홍조(안면홍조)는 폐경 초기 여성들에게 혈관운동 장애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증상이 되풀이되거나 그 정도가 심할 경우 만성 수면장애, 피로가 나타나며 이에 따라 짜증, 기분의 변화, 집중곤란과 행동장애를 가져와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신체 활동은 여성의 심혈관계 질환을 감소시키고 걷기 등 경량 운동은 매우 유익한 효과가 있으며 자신의 건강과 체력 상태를 고려한 운동은 이러한 효과를 더욱 향상시킨다.특히 주 3회, 8주 이상, 중강도로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여성은 운동습관이 없는 여성보다 열성 홍조의 발생빈도가 낮게 나타나는데, 이는 운동을 통해 시상하부의 β-엔도르핀(beta-Endorphin) 분비를 증가시켜 온도조절 중추를 안정시켰기 때문에 운동이 체온조절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 수 있다.폐경으로 인한 에스트로겐 결핍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며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복부에 지방을 축적시키는데, 이는 심혈관 및 관상동맥 질환의 발병위험을 초래하여 건강증진 및 유지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적절한 신체적 활동과 운동은 내장지방, 피하지방을 줄이고 최대산소섭취량, 탄수화물대사, 혈중지질, 혈압 등을 개선시키고 혈관 내막과 지질 기능을 향상시켜 심혈관계 위험인자를 낮춘다.특히 유연성운동, 저항운동, 유산소운동을 조합해서 하는 복합운동 프로그램에서 열성 홍조 69%, 수면 46%, 통증 46%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으며, 혈관운동 장애, 심리적 장애, 복부 불쾌감, 피로 등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폐경 전후로 여성은 남성보다 일찍 근육량과 근력의 손실이 빠르게 진행된다. 근육의 손실로 인해 근력이 약화되는데, 특히 50~60대에 15% 정도의 근육 손실이 발생한다. 이같이 여성의 노화에 의한 빠른 근육조직과 기능 저하는 골절과 낙상 위험을 높인다.갱년기 여성에서 규칙적으로 맨몸운동 등 저항운동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근력의 손실을 방지하고 골밀도를 높이는 데 효과는 더욱 커진다.특히 주 2~3회 이상 ‘앉았다 일어서기’, ‘팔굽혀펴기’ 등 맨몸운동은 근육량 증가와 근신경계 기능을 증진시키므로 골절의 위험을 낮추고 낙상에 의한 대퇴골절의 발생 빈도 또한 줄여주는 것으로 많은 연구의 결과들이 밝히고 있다.갱년기 여성들은 골관절염과 같은 퇴행성 관절질환, 요통, 당뇨,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질환을 함께 가질 수 있고 호흡, 순환계를 비롯하여 피로회복 저하 등 생리기능 측면에서도 예비력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운동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배제하고, 건강 및 체력을 적절하게 향상시키는 방법과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운동처방 전에는 의학적 검사를 통해 신체의 이상이나 질병의 유무 등 건강도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정식 자전거, 실내조정(Rowing Ergometer) 등 측정이 가능한 운동기기로 순환계나 근육과 관절에 부하를 가하여 산소섭취량, 심박수 등 운동능력을 평가하는 체력 및 운동부하 검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같이 맞춤형 운동은 적절한 검사항목을 선택하고 해석하여 그에 맞는 운동의 강도와 빈도 그리고 기간과 유형이 주어질 때 효과가 더욱 커진다.사람은 누구나 노화의 과정을 겪는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로 인해서 불편함이 생긴다면 그저 두고만 봐서는 안 된다.최근 메타분석 연구에서 여성의 대략 60%는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대체요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전문적인 진료와 치료, 그리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맞춤형 운동을 통해 갱년기 여성들이 삶의 질을 더욱 향상시켜 나갔으면 한다.

2021-12-26

롯데쇼핑몰, 대구 경제에 정말 도움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대구시 수성구 대흥·연호동 수성의료지구내 ‘대구롯데쇼핑타운’(롯데몰)이 지난 5월 공사에 들어가 현재 지반정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4년에 토지분양을 받은 이후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공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롯데몰 부지는 주상복합단지, 또는 호텔이 건설된다는 등등의 소문이 나면서 롯데측의 진의에 대한 무수한 의혹이 제기돼 왔다. 롯데측은 7만7천49㎡ 에 달하는 이 부지를 3.3㎡당 538만원에 매입했다. 부동산업계는 현재 주변 상업용지가 3.3㎡당 1천500만원 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성의료지구는 이름 그대로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이 해외 제약사 등 의료관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헐값에 부지를 분양한 곳이다.2025년 개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 롯데몰은 지난해 6월 지하 1층, 지상 8층, 연면적 25만314㎡규모로 건축허가를 받았다. 대구 신세계백화점(21만4천635㎡)보다 매장 면적이 17% 가까이 큰 수준이다. 백화점, 아울렛, 영화관, 스포츠시설, 외식, 오락 등을 하나의 공간에 집약시킨 대구 최대 쇼핑몰로 만든다는 계획이다.권영진 대구시장은 수성의료지구에 롯데몰이 입점하게 돼 대구경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공식석상에서 밝혀왔다. 정말 대구시장은 롯데몰로 인해 대구경제가 좋아지고 고용이 확대될 것으로 믿고 있는가. 나는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우선 롯데몰이 수성의료지구에 둥지를 틀면 반경 2km내에 있는 범어·만촌동과 시지지구의 골목상권은 붕괴될 것이 뻔하다. 전통시장 상인들과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백화점, 할인점 같은 대형 쇼핑몰이다. 평소에 집 주변 가게나 전통시장을 주로 이용해 오던 시민들은 생필품 구입이나 외식에 편리한 대규모 쇼핑몰이 생기면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돼 있다. 골목상권은 공동체 경제의 정맥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만큼 골목상권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롯데몰이 얼마나 많은 지역업체를 입점시키고, 대구시민을 직원으로 고용할지 모르겠지만, 주변 골목상권 붕괴는 많은 서민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롯데측은 지난달 롯데몰 사업 주체를 대구 현지법인(롯데쇼핑타운대구)에서 서울 본사(롯데쇼핑)로 변경했다. 사업주체 변경의 의미는 대구 현지법인이 운영 중인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과는 달리, 하루 매출액이 그날 바로 서울본사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롯데몰이 신세계백화점과 비슷한 매출액을 올린다고 가정할 경우, 매년 1조원에 달하는 매출액이 서울로 빠져 나가게 된다.사업주체 변경 외에도 롯데측의 신뢰성을 의심할 만한 일이 최근에 또 발생했다. 롯데측과 대구시가 맺은 상생협약에는 롯데몰 건설공사 시 지역업체 이용과 인력참여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최근 롯데몰은 지반정지 작업을 하기 위한 공사를 외지업체와 20여억원에 계약체결을 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대구시는 롯데측 입장만 변호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2021-12-26

대구 단독주택지 종 상향, 개발 부작용 없어야

대구시가 50년 동안 묶여 있던 단독주택지에 대한 종을 상향하고 건축물 층수와 허용용도 등을 완화하는 대규모 단독주택지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대구시가 발표한 단독주택지는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 사업으로 조성된 남구 대명동, 달서구 송현동, 수성구 범어동·만촌동 일대 12개 동이다. 면적으로는 6.1㎢ 규모다. 이들 지역은 앞으로 대구시가 행정절차를 진행하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고층아파트와 상업시설 등을 지을 수 있게 된다. 현재 대상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4만6천여 세대 10만명 이상 되는 만큼 종 상향에 따른 파급 효과와 영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종 상향은 그동안 찬반 논란이 꾸준히 있었던 문제다. 토지 이용의 규제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온 주민의 해제 요구와 규제를 풀면서 일어날 무분별한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대구시는 50년간 지속된 규제지역의 건축물이 상당히 노후화됐고, 주차장, 공원 등 생활기반시설 부족과 주거환경 악화로 단독주택지에 대한 혁신적 관리가 필요했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특히 최근 수년간 도심 곳곳에 고층아파트 등이 세워지고 있는 데 반해 단독주택지에 대한 규제로 이들 지역주민의 상대적 박탈감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문제는 이번 규제 완화가 대구지역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구는 아파트 과잉공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일부 지역에서 미분양 사태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단독주택지 종 상향이 이뤄지면 부동산시장 침체를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시가 유연한 도시계획정책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마련하겠다고 하나 종 상향 지역에서의 난개발을 얼마나 잘 막아낼지도 숙제다.대구지역 부동산 시장의 안정적 관리는 시민의 재산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장 질서유지와 도시개발 측면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단독주택지 종 상향이 가져올 영향을 잘 분석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자칫하면 내년 선거를 의식한 성급한 정책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21-12-26

넥타이의 퇴조

정장을 자주 입는 남성이면 누구나 자신이 가진 넥타이 중 한두 개 정도는 뜻깊은 추억거리가 있다.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이거나 승진 기념 혹은 생일 등 특별한 날에 받은 넥타이가 바로 그것이다. 넥타이는 남성 패션의 시작이자 완성이라 할 만큼 남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패션이다. 그래서 남성에게 주는 선물로는 넥타이가 제격이다.정치인에게 넥타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좋은 정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빨간색은 열정적 이미지를 나타내고 싶을 때, 오렌지색은 감성적 표현을 하고자 할 때, 파란색은 평화로운 이미지를 전달할 때 맨다고 한다. 매우 공격적이었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빨간색 넥타이를 즐겨 맺다. 중국의 시진핑이 자주 매는 자주색은 강력한 중국을 상징한다고 한다.2016년 신사의 나라 영국의 하원은 오랜 전통을 깨고 의원에게 노타이를 허용했다.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결정이기도 하지만 권위와 격식의 문화를 벗어 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언제부턴가 직장인 사이에서도 노타이 차림의 캐주얼 복장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 패션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2000년대 초반 70%에 가깝던 출근시간대 정장차림이 10년 후에는 30%로 줄었다고 한다.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정부 공식행사에서도 노타이 차림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분위기다.최근 통계청이 넥타이를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대상품목에서 제외했다. 소비가 줄어든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했다. 17세기 크로아티아 군인 복장에서 유래해 남성패션의 독보적 자리를 차지했던 넥타이가 퇴조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서운함을 느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26

박근혜 사면, 야권분열 이어져선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는 31일 0시부로 단행되는 대통령 특별 사면 명단에 포함되면서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허리와 어깨통증 등으로 장기치료를 받아왔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당분간 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사면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제외시켰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감된 전직 대통령이 2명 있는데, 굳이 한 사람만 고른 것은 정치보복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고 비난했다. 현재 이 전 대통령은 거동이 힘들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이번 특별사면 명분이 국민통합이었다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을 사면에서 배제한 것은 옹졸한 처사’라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9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와 내란선동혐의로 징역 9년형을 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까지 복권 또는 가석방하면서 이 전 대통령만 사면에서 쏙 빼버린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향후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박 전 대통령이 만약 의중을 밝히는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선거판세가 요동칠 수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퇴원할 때까지는 침묵을 지킬 가능성이 높다. 법률 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병원에 있는 동안 정치인은 어떤 분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박 전 대통령이 만약 선거를 눈앞에 두고 야권 통합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국민의힘 내 친박계 기반이 취약한 윤석열 후보에겐 힘이 실릴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거나 과거 국정농단 사건수사에서의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보수진영 내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일각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야권분열의 계기로 작용해서는 절대 안된다.

2021-12-26

안동시의회에 등장한 3류 개그맨?

피현진 경북부 안동시의회가 지난 21일 2차 정례회, 제3차 본회의를 열어 각종 안건을 의결하고 30일간의 의사일정을 마무리 했다.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이번 회기에서 안동시의회는 2021년도 행정사무감사,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 예산안을 처리했다.여기까지는 모든 기초의회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늘 해오던 일이다. 그런데 안동시의회는 이런 당연한 일 외에 타 기초의회에서 하지 않고, 해야될 필요도 없고, 해서는 안될 일도 하고 있다. 바로 동료 의원에게 장난을 치는 일이다. 그것도 회기 중에.시의회 한 의원은 이날 정례회를 폐회하는 자리에서 단상에 올라 연설하는 동료 시의원을 향해 여러 가지 행동으로 웃기기 시작하는 등 장난을 쳤다. 조례안에 대한 심사보고에 나선 시의원은 이 같은 장난에 웃음이 터졌고, 연신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는 등 곤란해 했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은 이 같은 모습을 제지하지 않고, 함께 웃으며 때로는 장난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당시 본회의장엔 시의원들 외 시장과 부시장, 시청 집행부 공무원을 비롯해 방청객 30여 명이 있었고, 이런 모습은 인터넷과 시청·시의회 사내 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생중계됐다.문제는 이런 일이 이번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0월 열린 제229회 임시회에서도 위의 상황과 같은 상황이 연출된 적이 있었다.방송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의원들의 행동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어떤 사람은 “초등학생들도 학급회의 등 시간에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하는데 시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초등학생들만도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대표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안동시의회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 2항에는 의원의로서 품위 유지를 지적하고 있으며, 4항에는 시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5항에는 시민의 명예를 고양시키기 위해 항상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6항에는 의원 상호 간 예의와 인격을 존중한다고 적고 있다.의원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장난이 스스로 시의회 윤리강령을 모두 어기는 일이고 나아가 의원들 스스로 명예를 갉아 먹는 일이다.기초의회 의원들은 시민을 대리해 자치단체를 감시·견제하는 등 시민들의 민의를 대변하는 아주 중요하고 막중한 의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결코 가벼운 3류 개그맨이 되려해서는 안된다. 특히 그 자리가 회기 중인 본회의장이라면 더욱더 무거운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안동/phj@kbmaeil.com

2021-12-23

성탄절 추억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 청소년 시절엔 부지런히 교회를 드나들었다. 함석지붕의 단층 목조건물과 나무기둥의 종각이 있는 작은 교회에는 낡은 풍금도 있었다. 산과 들 말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좋은 만남의 장소였다. 교회의 청소나 페인트칠 등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청소년들이 맡아서 했는데, 그 중에서도 성탄절행사 준비가 가장 큰 일이었다. 소나무를 베어와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대나무 뼈대에 창호지를 발라 별모양의 등을 만들었다. 저녁마다 모여 유초등부 어린이들에게 성극과 무용, 합창 연습도 시켰다. 한밤중에 오들오들 떨면서 촛불을 켠 별등을 들고 먼 마을까지 새벽송을 갔던 일도 잊지 못한다.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 문학이니 철학이니 독서에 빠져들면서 교회를 떠났지만 해마다 성탄절이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살을 에는 삭풍에 문풍지 우는 밤이면, “까막까치 다 얼어 죽겠다.” 할머니는 그렇게 짐승들 걱정을 잊지 않았다. 요즘처럼 방음장치 된 이중 창문 안에서는 밖에 태풍이 불거나 난리가 나도 모르겠지만 옛날 창호지문으로는 낙엽 지는 소리 달빛에 수런대는 댓잎소리도 환히 들렸다. 방안에 누워서도 한 호흡으로 자연과 소통하니 어찌 날짐승들 안부인들 궁금하지 않겠는가.단간 셋방에 신접살림을 차려 첫 아이를 얻은 해 겨울이었다. 한파가 닥쳐 밤새도록 전신주가 울부짖고 깨어질 듯 창문이 덜컹대는 밤이었다. 무심결에 ‘까막까치 다 얼어 죽겠네’ 중얼거리다 문득, 낮에 본 시장 바닥의 거지 모자가 생각났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한 여자가 두어 돌이 되었을까 싶은 아이와 함께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시장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린것이 이 밤을 넘길 수 있을까, 생각하니 하얗게 잠이 달아났다. 내 아이는 기침만 해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데….“혹한을 몰아오는 칼바람에/ 밤새도록 전신주가 울부짖고/ 깨어져라 창문이 덜컹댄다// “문 열어라 이놈들아,/ 너희만 살면 다냐?”// 시장 바닥에 실성한 그 여자/ 두어 돌이 되었을까 싶은 어린것과 함께/ 이 밤 무사할까, 얼어 죽지나 않을까”- 졸시 ‘겨울 밤’이튿날 아침에 찾아가보니 먹을 것을 얻으러 갔는지 여자는 보이지 않고 아이 혼자 사시나무처럼 떨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읍사무소 사회과로 전화를 해봤으나 아무 대책이 없다고 했다. 몇 군데 교회에 전화를 해서 겨울 동안만 데려다 놓을 수 없겠느냐고 했지만 역시 안 되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교회 청년들을 불러 의논을 했다. 권사인 장모님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 없어 결혼 후 건성으로 다니던 교회였다. 텐트가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히말라야 눈 속에서도 텐트로 야영을 하지 않던가. 주머니를 털어 시내로 텐트를 사러갔다. 사정을 얘기 했더니 텐트 값을 많이 깎아주었다.시장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바닥에는 두꺼운 스티로폼을 깔았다. 오줌에 절은 누더기도 버리고 깨끗한 이불로 갈았다. 따끈한 호빵을 한 봉지 사서 안겨 주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이 내리고 희끗희끗 눈발이 날렸다. 성탄전야였다.

2021-12-23

추합의 애환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오늘 포스텍 전화 추합 몇 시에 시작하는지 아실까요?”“카이스트 빠지는 분 계시면 빨리 알려주세요 ”요즘 유명 이공계 학생, 학부모 카페에는 이런 애타는 목소리로 가득하다.추합이란 ‘추가 합격’의 준말인데 한국 입시 시즌의 독특한 풍경이다.카페에는 ‘추합을 위한 빠져요’라는 보드가 따로 설치되어 있어 정보를 주고 받는다. 한마디로 교육부가 대학 정원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코미디 같은 풍경이다.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애간장을 태우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이 다른 수험생에 의해 ‘빠지기’를 눈에 빠지게 기다린다. ‘빠진다’는 말은 그 대학을 포기한다는 말이니까 지원자들에겐 정말 애타게 듣고 싶은 말이다.대학을 6개까지 지원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긴 하다. 당시에는 대학을 단 한 개만 지원해 낙방하면 후기 대학을 가던가 아니면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비하면 여러 개의 대학을 동시에 지원해 원하는 대학을 고르는 현 상황은 한보 진보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추합에 목매는 현 상황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포스텍을 포함한 우수 대학들에서 합격을 포기한 학생이 수천 명이 된다는 것이 뉴스로 크게 올라온다. 포스텍·카이스트·서울대 동시 합격자가 어디를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나 추가 합격자가 어디를 가는가 하는 것도 초관심사이기도 하다. 이공계는 주로 다른 대학 의대에 중복 합격한 수험생이 등록을 포기하면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경쟁대학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대학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미국 명문 스탠퍼드 대학도 합격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으로 간 학생들이 어떤 대학으로 갔는지 통계표를 작성하기도 한다.그러나 한국과 차이점은 스탠퍼드 대학은 정원이 없이 매년 2천500명 정도를 합격시켜 등록한 학생들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대강 1천500명 정도가 되는데 그 숫자는 매년 일정하지 않다. 정원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추합이라는 난리를 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최근 차기 정부에서 교육부 해체를 공학한림원 원탁 토론회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했다고 한다.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대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다.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었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추합으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를 볼 때마다 정원 자율화와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전가의 보도처럼 흔들면서 대학을 규제하는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다. 더 이상 추합으로 전화통을 붙잡고 애를 태우는 모습이 없었으면 한다. 자율은 당분간 혼란스러워도 결국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리를 잡게 된다.

2021-12-23

우울한 크리스마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처음 발견된 오미크론 변이는 델타 변이보다 가벼운 증상을 유발한다는 현지 의료진의 의견이 알려지면서 한때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뜻하는 낭보로 전해지기도 했다. 덜 치명적 방식으로 진화해 감기처럼 가볍게 자나갈 수 있어 올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될 거라는 낙관론이었다.그러나 실제는 기존의 변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감염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 89개국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되고 있다. 영국 등 유럽에서는 오미크론의 변이가 우세종으로 바뀌면서 각종 상점들이 셧다운에 들어가고 있다.내일이면 크리스마스 날인데 크리스마스 시즌 분위기가 암울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선물 준비로 한창 붐빌 도심거리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연말 대목을 잔뜩 기대했던 상인들은 강화된 방역조치로 줄어든 손님에 그저 한숨만 내쉰다. 대목 장사를 망친 상인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진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보통의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백신을 접종하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벌써 2년째 ‘집콕’ 크리스마스를 맞아야 하니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크리스마스는 기독교에서 예수 크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부활절 다음으로 가장 큰 기념일로 옛날에는 성탄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1949년 정부수립 후 이날을 최초로 공휴일로 지정했다. 70년 이상 공휴일로 지내온 날이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이날은 시민에게는 그해 마지막 공휴일로서 송년의 아쉬움도 달래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받는 미담이 넘치는 날이다. 하얀 눈이 내려 더 아름다워야 할 크리스마스 휴일을 올해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망쳐놓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23

비수도권 ‘청년 고용악화’…손놓고 있는 정부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그저께(22일) 포항지역 청년 고용시장이 코로나19로 인해 양과 질 모두 악화하고 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 포항지역 청년 인구는 총 7만9천358명으로 전체 인구(50만3천388명)의 15.8%를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순유출 중이다. 고용 측면에서도 청년 취업자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실업자는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청년인구 수도권 유출과 고용시장 악화는 우리나라 비수도권 대도시들이 겪는 공통된 현안이다. 청년들이 취업기회와 양적·질적수준이 높은 고용시장을 찾아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려가고 있으니 포항과 같은 인구 50만 규모의 도시는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단이 별로 없다.수도권은 양질의 청년인구 유입으로 인해 인적자본 확보와 함께 노동생산성 증가, 임금수준 상승이라는 선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가 이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으니 사회·경제분야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은 극도로 심화하고 있다.포항시도 마찬가지지만, 비수도권 대도시가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고용시장을 안정화 시키려면 청년들이 만족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 일자리 문제는 대기업유치, 그리고 지역 산업구조 개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성과를 내기도 쉽지 않다.지난해 우리나라는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14만 명 추월했다. 수도권 순유입인구 중에는 청년층이 가장 많다.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한 정부대책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정부는 오히려 기업·대학 이전 규제 완화, 신도시 개발 등으로 수도권 과밀화를 부추기고 있다.국회의원 의석수를 비롯한 정치권력 구조상 수도권 인구집중은 앞으로 더욱더 가속할 것으로 예측된다. 비수도권 지역에 청년들이 살고 기업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정부의 철학이 중요하다.

2021-12-23

독이 든 사과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독이 든 사과’가 정치권에 회자되고 있다. 백설공주는 계모 왕비가 사과 파는 행상인으로 가장해 준 사과에 독이 든 줄 모르고 먹었다가 쓰러졌으나 결국 다른 나라 왕자와 만나 결혼해 잘살게 됐다는 스토리로 이어진다.하지만 독이 든 사과의 본질은 우선 당장 겉보기에는 예쁘고 맛나 보이지만 독이 들어 있어 해로운 물건을 가리킨다. 정치권에서 네거티브전을‘독이 든 사과’로 비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특정 후보가 경쟁 후보의 약점이나 단점을 후벼파듯이 들춰내 흠집을 내면 상대 후보의 지지도를 떨어뜨릴 수 있어 자신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이미 양식있는 국민들은 네거티브가 횡행하는 선거풍토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현재 대선판이 네거티브로 혼탁해지고 있는 데는 진영대결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란 진단이 유력하다. 정치권의 양대 진영을 굳이 나눈다면 민주화와 40대, 산업화와 60대 세력으로 나눠진다.혼탁한 대선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경쟁자인 상대 진영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고, 발전적 경쟁자 관계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양 진영의 소모적 비방전은 정책경쟁에 쓸 시간을 비생산적인 흑색선전에 모조리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 지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좀먹는다. 이것이 네거티브 선거의 가장 큰 폐단이다.이제 여야 모두 ‘정책선거로의 회귀’를 내걸고 과감하게 변화에 나서야 한다. 우선 집권당인 여당부터 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여당이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며 야당과 토론을 시도해야 한다. 정치 선진국인 미국의 선거를 보면 여야 대권후보들이 TV토론에 나와 정책을 두고 일대일로 맞붙고, 이에 대한 여론의 찬반동향이 유권자들의 선호에 그대로 반영되곤 한다. 아무리 논란 많은 정책이라 해도 상대방 후보의 약점만을 헐뜯고 비판하는 네거티브전보다는 낫다.야당 역시 여당 후보를 국민과 국가가 더 풍요롭게 잘 살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으로 이겨야 한다. 여당과 정부의 실수, 또는 반사이익에 기대어 무작정 정권교체를 주장해선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으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가 되는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여러 정치세력의 합의와 협치로 운영되는 의원내각제로 바꿔야한다. 첨예한 진영대결을 조장하는 양당체제의 선거제도 역시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류·3류 정치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서로 헐뜯고 깎아내리는 ‘독이 든 사과’정치,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이번 대선은 누가 국가와 국민을 부강하게 하고, 자유와 권리를 잘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가름하는 선거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1-12-23

오미크론 대구도 뚫려…비상 대책 서둘러라

대구에서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진자가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지역사회가 비상이다. 감염자는 미국에서 입국한 40대 남성으로 동거가족 2명도 오미크론 감염이 의심돼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국내 오미크론 확진자는 23일 현재 23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의심환자도 108명에 달한다. 지난 1일 인천에서 처음으로 오미크론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3주 만에 국내 감염자가 200명대를 넘었다. 델타 변이가 200명대 될 때까지 2개월여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3∼4배 정도 전파력이 빠르다.국내서는 서울, 경기, 인천, 광주 등 벌써 전국 10개 자치단체에서 오미크론 환자가 확인됨에 따라 지역사회 전파가 이미 상당히 진행됐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전문가들은 한두 달 내 국내서도 오미크론이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한다.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확인된 오미크론은 현재 세계 89개국에서 확인될 만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존의 우세종인 델타 변이를 제치고 새로운 지배종이 됐다고 질병통제예방센터가 공식 확인했다. 지난주 미국 내 신규 감염자 중 73%가 오미크론 감염자라 한다. 미국에서는 처음 보고된 이후 19일 만에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았다. 놀라운 전파력이다.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병상 확보다. 빠른 전파력으로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의료시설과 인력이 일시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 중증병상 가동률은 80% 수준이다. 80%면 사실상 포화상태나 다름없다. 경북의 경우 남은 중증병상은 하나도 없다.정부는 22일 내년 1월까지 중등증 이상 병상을 1만개를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벌써 늘렸어야 할 병상을 이제야 늘린다니 미덥지 못하다. 대구와 경북은 같은 생활권이다. 대구에서 발생한 오미크론 변이가 경북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물론 지자체도 긴장감 갖고 확산세 저지에 나서야 한다. 하루 200∼3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지역사회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상황 인식을 모두가 엄하게 가져야 한다.

2021-12-23

코비드(COVID) 세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또 멈췄다. 일상 회복 지원금까지 쏟아부었지만, 일상은 회복과 더 멀어졌다. 사람의 일상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그래서 일상은 숨을 쉰다. 일상이 숨을 쉴 수 있는 에너지는 관계다.사람의 일상을 분석해 보면 관계 아닌 것이 없다. 사람은 관계를 맺기 위해 산다. 관계가 단절된 사람에게 있어 일상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일상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기력은 사람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 대표적인 결과는 범죄다.최근 흉악 범죄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은 일상이 멈춤으로써 사람 관계가 끊겼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람만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은 이해와 배려다. 그 힘이 현실에서 실현된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에서 사랑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 되었다.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기적인 마음이다. 코로나야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변질된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백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나, 대통령 후보들은 돈으로 국민을 희롱하지 말고 끊어진 사람 관계를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관계를 잃어버린 것은 사회만이 아니다. 사회보다 더 위중한 곳이 학교다. 일상보다 더 빨리 멈춘 곳 역시 학교다. 학교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하고, 또 기본적인 기능이 관계 형성이다. 학생은 관계를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 학생이 배우는 관계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은 사회를 발전시킬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코로나 대창궐 이후에 교육 당국은 교육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온라인 수업이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최면에 빠른 정부는 벌써 그것이 임시방편인지 잊어버렸다. 그래서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 형성처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만 나오면 온라인 수업부터 생각한다. 온라인 수업은 이제 교육계의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사실은 교육을 뿌리부터 왜곡하고 있지만 말이다.K-방역은 어디 가고 오미크론 이후 학교는 또 멈췄다. 학생의 성장과는 상관없이 온라인 수업 덕분에 교육부 시계는 멈춤 없이 학년말을 향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의 성취도와 무관하게 진급과 졸업 준비로 바쁘다. 과연 학생들의 내년 학교살이는 어떨까?온라인 수업 기간은 학생에게 있어 학습 공백기이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특별 교육 기간을 두거나, 교육과정을 조정한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학교는 무책임하게도 그냥 때가 되었으니 학년을, 학교를 떠나라고 학생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력 저하 타령이다.코로나 시대를 건너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불신과 허무다. 코로나와 불신과 허무, 그리고 관계를 잃어버린 지금 세대를 이름 지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코비드(COVID) 세대’라고 할 것이다. 코비드 세대의 중심에는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를 잃어버린 학생이 있다.

2021-12-22

김정은 정권 10년을 평가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12월 17일 평양에서는 김정일 사망 10주년 추도대회가 태양궁전에서 개최되었다. 동시에 김정은의 10년의 행적을 찬양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현지 시찰 열차에서 심근 경색으로 사망하였다. 김정은은 장례 시부터 북한 정권의 최고 통치자로 행세하였다. 권력의지가 강한 김정은이 형 김정철을 제치고 미리 후계자로 결정된 결과이다. 1984년생 당시 27세였던 김정은은 애도기간 내내 눈물을 흘렀다. 그 후 그는 당 제1비서로 추대되고 오늘의 총비서, 국무위원장이라는 북한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김정은은 집권 초반부터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그를 둘러싼 당·군 간부를 수시 교체하여 충성도 경쟁을 유도하였다. 공산주의 국가 권력 이양과정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백두혈통론’을 내세워 3대 세습을 이어갔다. 그는 2013년 고모부 장성택마저 공개 처형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이복형 김정남도 처치하였다. 그는 집권 초반부터 2016년까지 현영철, 리용하, 장수길 등 약 100명의 권력 측근을 숙청해 버렸다.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당 조직비서 조용원, 동생 김여정, 현송월 부부장이 그의 핵심 측근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인민제일주의를 내세워 인민 경제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인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공언도 하였다. 그는 19개의 경제 개발 특구를 설정하고, 시장 경제의 허용을 통해 북한 경제의 획기적인 발전을 획책하였다. 그러나 4차례의 핵실험과 60여회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유엔과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라는 역풍을 초래하였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의 북·중 국경 봉쇄는 올해 총 교역액을 3억 달러로 추락케 하였다. 김정일 집권 시 3.86%의 경제 성장은 0.84%로 주저앉아 버렸다.김정은의 핵·경제 병진노선에 따른 북미 협상을 통한 체제 보장이라는 외교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가 추구한 2018년 판문점회담, 9·19 평양 합의는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은 북미관계 뿐아니라 남북관계마저 경색시켜 버렸다. 핵개발을 북미 회담의 지렛대로 삼아 북미관계 개선과 체제 안전의 보장이라는 그의 목표는 좌절되어 버린 것이다.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의 폭파는 남북관계마저 단절시켰으며 북미간의 외교적 돌파구도 보이지 않고 있다.김정은 정권 10년, 북한 경제 회복과 체제의 안전이라는 그의 목표는 현재로서는 멀어진 꿈이 되어 버렸다. 유엔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 팬데믹은 북한의 경제 문제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인민제일주의를 내세운 김정은 정권은 식량 문제마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이 국가 제일주의를 앞세워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은 600여 개로 늘어나고 주민들의 휴대 전화는 벌써 800만대를 넘어 버렸다. 엄격히 통제된 북한 사회도 정보화시대에 ‘진공속의 안정’으로 남을 수는 없다. 평양의 봄은 언제쯤 오려는가.

2021-12-22

산수유 열매, 그리움으로

산수유 꽃차를 우린다. 바짝 말랐던 꽃잎이 화사하게 물에서 피어난다. 찻물이 서서히 노랗게 변한다. 찻잔을 입에 대자 떫은 향이 입안에 퍼진다. 한 모금 입속에 모았다가 삼킨다. 입안에 떫은맛이 금방 사라지고 은은한 차향이 남는다.봄이 오면 고향마을 뒷산에 산수유꽃이 가장 먼저 피었다. 건너편 진달래가 신호를 받아 드문드문 연분홍 꽃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땅들은 들썩들썩,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꽃들이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따스한 바람이 불면 어느 사이 산수유가 뒷산을 가득 물들였다.사물에 대한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계절에 따라, 함께하는 이에 따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억이 소환된다. 내게 산수유나무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산수유꽃이 피면 노란 꽃그늘 아래 어머니가 있고 열매가 열리면 열매를 따서 가을 햇볕에 말리는 어머니가 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어머니의 산수유가 떠오른다.어머니의 삶은 몹시 추웠다. 하루하루를 넘겨도 도무지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머지않아 봄이 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농사일에 허리 한 번 펼 수 없을지라도. 어머니는 봄을 좋아했다. 뒷동산에 산수유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면 자주 중얼거렸다. 봄이 와서 꽃을 피웠는지, 꽃이 피어 봄이 왔는지. 산수유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산수유꽃은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의 꽃으로 보인다. 꽃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면 꽃차례에 노란색 꽃이 소복이 모여 있다. 자그마한 우산을 펼쳐 놓은 것처럼. 마치 별들이 하늘 향해 모든 것을 열어놓은 듯하다. 하늘바라기, 별바라기, 꿈바라기가 거기에 얹혀있다. 충분히 별바라기 했다면 산수유는 이제야 열매를 맺는다. 봄꽃이 모두 피고 지고, 여름꽃도 사라지고 단풍조차 다 떨어진 후에 손톱모양의 열매를 단다.산수유나무의 고향은 중국 산둥성이다. 산둥성에서 구례군 산동면 계척마을로 시집온 새색시가 산수유 열매를 들고 와서 심었다고 한다. 새색시는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정서도 많이 달라 힘들었지만,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했다. 새색시는 통일신라 말기의 유학자 최치원의 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최치원이 중국에서 공부하다 급히 귀국하면서 딸에게 산수유씨앗을 쥐여줬다고 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신라 청년을 만나 지리산 산동면에 시집왔다. 새색시는 많은 날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녔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새색시는 고향의 어머니 또한 많이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마당 안팎에 심은 산수유나무를 보듬고 그리움을 달랬다. 그때 심은 산수유나무가 천 년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할아버지나무, 할머니나무, 아들나무도 있다. 지금까지 구례군 산동면 일대는 산수유꽃과 산수유 열매로 가득하다. 이순혜​​​​​​​수필가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산동마을 사람들은 산수유 열매를 팔아 자녀를 공부시켰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꽃을 따서 말리고 열매를 수확할 때 산수유 꽃그늘 아래 있음을 감사하게 여겼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사랑 덕분에 나무도 살아가고 그들의 아이들도 살아갈 수 있었다. 산수유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은 우리와 같은 생명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나 싶다. 산수유 열매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열매를 따서 씨를 털어내고 말려 차로 마시면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해준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마음까지 따듯하게 데워준다. 산수유차는 온갖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즐겨 마신다. 어머니의 산수유는 어떠했을까, 고된 노동에서 허리 펼 때 보았던 희망이었을까, 오종종히 어머니 어깨에 매달린 자식들의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오롯이 산수유꽃과 열매만으로 함박웃음 지었을 어머니의 마음이었을까, 고향의 씨앗을 땅에 묻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것은 또 다른 그리움의 표현이었을까, 골짜기마다 산수유가 물들인 것을 보며 새색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어디에다 그렸을까. 얼마나 깊은 곳에 새겼을까.인생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건넌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꽃들이 시끌벅적 폭죽을 터트려 꽃을 피울 것이다. 노란 꽃물에 내 마음을 앉혀놓고 있으면 곧 가을에 이르러 붉은 산수유 열매를 볼 것이다.창가에 앉아 산수유 열매를 본다. 창밖의 바람에도 찻물이 노랗게 일렁인다. 내 안의 세포들이 일어나 추억 한 장을 갈무리하고 페이지를 넘긴다.

2021-12-22

국민의힘 내부분열, ‘윤석열 리더십’ 아쉽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집안싸움으로 시끄럽다. 그저께(21일)는 이준석 당 대표가 선대위 지휘체계를 놓고 조수진 최고위원과 충돌한 후 “상임 선거대책위원장과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또 다시 선대위의 난맥상이 드러났다. 이 대표는 이달 초 이른바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과의 갈등으로 나흘간 잠행을 하다 윤 후보와 울산에서 회동한 후 복귀했었다.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충돌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이유는 따로 있다. 선대위 의사결정이 윤핵관으로 대표되는 일부 윤 후보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김종인·이준석 두 사람이 주도하는 선대위의 소외감이 그동안 불만으로 누적됐다고 한다. 예를들어 윤 후보 지역 방문 일정이 선대위 각 본부와 협의없이 결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나는 윤 후보 지시만 듣는다”며 당 대표에게 항명한 것도 선대위 존재를 부정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당내 의원들에게 변변한 선대위 직함 하나 내주지 않으려고 후보주변을 가로막는 일부 측근문제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는 소리가 나온다.국민의힘이 윤 후보의 가족리스크에다 내부분란으로 뚜렷한 국정비전을 제시하지 못하자 최대지지기반인 대구경북지역 민심도 상당히 동요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선대위 구성과 운영과정에서 한 달 동안 벌인 내부분열의 결과물은 윤 후보 지지율 하락이다. 윤 후보가 지금과 같은 심각한 내부 분란을 조기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을 수 있다. 선대위 내부에 곪아 터진 문제가 있다면 윤 후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충돌을 두고 “그게 바로 민주주의가 아니겠느냐”, 또는 김종인 위원장이 선대위를 재구성하겠다고 하자 “반가운 얘기다”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윤핵관이 존속하는 것도 큰 문제다.

2021-12-22

경북 투자유치 10조, 내실 있는 성장 이끌길

경북도와 도내 23개 시군의 올해 투자유치 규모가 코로나19 사태에도 10조원을 돌파했다. 당초 투자유치 목표 5조원을 훨씬 뛰어넘으며 지난해보다도 54%가 증가했다.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과다.경북도와 시군의 투자유치가 성과를 낸 것은 자치단체와 관계공무원 등의 노력과 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차전지와 반도체, 바이오 등의 첨단기술 분야 기업이 경북을 투자처로 삼았다는 것이다. 매우 고무적이다.경북도는 투자유치에 기여한 기업과 시·군공무원을 격려하고 시상을 했다. 기업부문 대상을 받은 포스코케미칼은 2019년 4월 인조흑연 음극재공장을 건립키로하고 2천189억원을 투자해 최근 블루밸리 산업단지에 1단계 공장 준공을 했다. 올 7월도 이차전지 양극재공장 신설을 위해 6천억 규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지역별로는 포항시와 구미시가 가장 많은 투자유치를 이끌었다. 포항시는 포스코케미칼, GS건설, 에코프로 등을 유치, 이차전지 허브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구미시는 2년간 24개 기업과 3조원이 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경북 경제의 양축을 이끄는 포항과 구미의 기업유치가 대거 성사된 것은 경북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특히 군위·의성지역에 건립될 통합신공항과 영일만항을 이용한 물류 기능이 기업 유치의 매력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경북도 등은 통합신공항의 조기 착공과 영일만항의 인프라 확장 등 기업유치에 유리한 요소들을 잘 챙겨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코로나 사태와 수도권 집중이라는 최악 상황에서 경북도내 기업투자 유치규모 10조원은 빛나는 성과다. 도와 시군은 이에 만족지 말고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더 분발해야 한다. 통합신공항 건설을 기업유치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기업 유치는 일자리 창출과 젊은 층이 지역에 남는 경제의 선순환을 만든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도시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경제뿐이다. 투자를 약속한 기업이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자치단체의 중요 몫이란 점 잊지 말아야 한다.

2021-12-22

오년마다 한 계단씩 가라앉는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큰일이다. 대선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사람들의 믿음을 세우기보다 무너뜨려서 큰일이다. 나라의 갈 길을 보여주기보다 흐리멍텅하게 만들어 큰일이다. 내일이 보여야 하는데 오늘마저 뭐가 뭔지 가늠하기 힘들어 큰일이다. 청년들에게 힘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짐만 안기니 큰일이다. 여성들에게 든든한 무엇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되레 헷갈리게만 하니 큰일이다.믿음직하게 보여주는 건 도무지 없고 거짓과 땜빵만 즐비하니 큰일이다. 학교에서 배운 일들이 모두 다 반대로 벌어지니 큰일이다. 큰 선거가 나라의 큰일이어야 하는데 그 선거가 큰일나게만 만드니 큰일이다. 국민은 고구마를 백개쯤 입에 문 것처럼 답답하고 억울하다. 보나마나 엄청난 돈들을 쓰고있을 터인데 덕이 되는 건 하나도 안 보이니 큰일이 아닌가.대선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 당신들만 없었어도 나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며 자라고 있었을 다음세대가 대선에서 무엇을 배울까. 온 나라의 선생님들이 학생들 앞에서 정직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집집마다 가정에서 아이들 기르면서 착하게 자라라고 마음도 먹기 힘들지 않을까. 소신과 원칙은 내팽개칠지라도 눈앞의 이익에는 아귀같은 심성들만 즐비한 오늘이 아닌가. 어제까지 애지중지 가까웠어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언제라도 등돌리는 차가운 우정을 보고있지 않을까. 심대하게 틀어졌다가도 술 한잔에 쇼처럼 마술처럼 어깨동무를 하는 세상에 신의와 성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배운 바는 모두 신속하게 잊어야 하는 세상을 배우는 게 아닐까. 나라는 오년마다 한 계단씩 가라앉는다. 국민은 선거를 겪으며 사나워질 뿐이다.신뢰라면 무너질 바닥도 없다. 이제 우리에게 서로를 믿는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진영의 의미를 망각하며 떠돌며 헤맨다. 보수와 진보는 발전을 위한 멋진 양 날개여야 하거늘, 당신이 섬기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표에 따라 인기에 흔들리며 마구 오락가락하는 모습들에서 국민은 당신이 무엇을 믿는다는 겐지 알 바가 없다.보수든 진보든 다시 가서 공부하고 오시라. 나라와 국민은 한치라도 잘 살고 싶지만, 진영 간 악다구니에는 지쳐만 간다. 소신과 철학도 보이지 않는 이전투구는 정치도 아니고 씨름도 못 된다. 든든한 오늘을 지켜내든지 희망찬 내일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나. 선진국 문턱에서 후진국 정치를 목격하는 국민의 처지를 헤아려는 보는지.나라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국민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징검다리 삼아 내일로 달려가야 한다. 말재주꾼을 기다린 적이 없으며 구호만 들먹이는 사람을 기대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여 일하고 또 일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생각도 반듯하고 실력도 출중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오년 만에 만나는 대선이 대박을 터뜨려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한 계단 올라설 수 있을까. 희망을 당기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2021-12-22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리플리 증후군의 이름은 미국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리플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반항아적 기질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친구이자 재벌의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린리프의 인생을 가로챈다. 즉, 톰 리플리가 아닌 디키 그린리프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연극은 막을 내린다.실제 현실에서도 리플리 증후군의 사례는 다양하다. 지난 2007년 동국대 교수 임용 및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선임 과정에서 예일대 박사학위와 학력을 위조한 S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 사건을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 빗대어 ‘재능 있는 S씨’로 표현하면서 리플리 증후군이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4년에는 SBS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08년부터 6년 동안 48개의 유명 대학교를 전전하며 신입생 행세를 한 학생의 사연을 추적 보도하기도 했다.리플리 증후군이 위험한 것은 욕구 불만족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본인의 상습적인 거짓말을 진실인 것으로 믿게 되면서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신조어는 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후보의 부인의 학력과 경력에 대해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공격하면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22

아버지와 부대찌개

아버지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 가방공장 사장이었다. 덕분에 나는 유복한 환경에서 유년을 보냈다. 우리 집이 있었고, 옥상엔 아버지의 골프 연습 시설이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주말마다 낚시를 다녔고, 엄마는 평일 오전에 에어로빅과 꽃꽂이를 했다. 그러나 IMF 사태로 아버지 공장은 부도를 맞고, 집안 곳곳엔 차압딱지가 붙었다. 아버지는 지방을 전전하는 행상이 되어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조차 힘들었다.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아버지가 일 년여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에어쇼 행사장에서 무슨 일을 한다며 놀러오라고 했다. 아버지 본다는 생각에 설레어 토요일 방과 후 성남 비행장으로 갔다. 비행기들이 일으킨 모래바람 너머 아버지가 손을 흔들었다. 빨간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소시지를 굽고 있었다. 파인애플을 꼬치에 끼우고 있었다. 나는 좋아하던 군것질거리를 실컷 먹는다며 마냥 즐거웠고, 아버지는 웃었다. 빨간 모자챙 아래 그 웃음이 얼마나 애처로운 것인지 깨달았을 때 나는 어른이 돼 있었다. 머리가 굵어 아버지가 어려웠다. 살가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게 됐다. 같이 목욕탕에 갈 수 없을 만큼 멀고 어색해졌다.아버지는 십 여 년 전 충남 당진 대호만 물가에 컨테이너 집을 짓고 정착했다. 된장과 청국장을 담가 팔고, 낚시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서툰 손으로 닭도리탕이나 라면을 끓여 내고, 평생 좋아한 낚시 실컷 하면서 편하게 사시는 듯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하는 날까지 나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만큼 무뚝뚝한 분이다.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수술이 잘 됐다. 위를 절제했으므로 식사량이 줄어 몸집이 작아진 아버지, 약해진 아버지는 아들이 감당해야 할 슬픈 풍경이다. 그해 여름 대호만에 갔더니 아버지가 전복을 넣고 옻닭을 삶아주셨다. 고기에는 손도 못 대고 국물만 뜨는 아버지, 아버지 앞이라 울진 못하고 그저 먹기만 하는 나, 내가 먹어 치운 닭 한 마리, 뼈대만 남아 앙상한 낚시 좌대, 아버지 따라 야윈 대호만 물, 먼지 쌓인 아버지 낚싯대, 햇살 내려앉은 장독대, 덜 마른 빨래, 일찍 덮어버린 에어컨, 아무것도 모르는 뒤란의 닭과 개들, 유난히 푸른 하늘, 반짝반짝 빛나는 약통… 내게 각인된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어린 나를 목마 태우던 젊고 건강한 사내에서 힘없는 촌로로 대체된 지금, 나는 빨간 모자를 쓰고 소시지를 굽던 옛날의 아버지 나이가 됐다.얼마 전, 아버지가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정기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수면내시경 검사에는 보호자가 필요하다. 어떤 내색을 잘 안하는 아버지는 그동안 동네 친구분과 함께 병원에 다녔는데 이번엔 추수철이라서 동행이 어렵다고, 그래서 “혹시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10시면 끝날 거야” 내게 완곡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동네 친구분을 보호자로 하여 병원에 다니셨다니, 아들 눈치를 보시다니, 속상하고 죄송했다.차가 막혀 30분 늦게 도착하니 당진서 먼저 온 아버지는 노란 검사복을 입고 병원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청력이 약해져서 간호사가 묻는 말에 내가 몇 번 대신 대답했다. 혈압 재고 내시경실로 가 검사 받으실 동안 나는 수납하고 원내 약국에서 약 처방을 받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잘 부축해드리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오늘 내내 어지러울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쳐보였다. 아버지를 부축하고 걸었다. 힘껏 붙잡고 싶은데 힘껏 붙잡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들의 마음이다. 부축도 견인도 아닌 동작으로 아버지 팔에 손을 얹은 채 말없이 걸었다.밥 먹고 가자 하셔서, 검사 2시간 이후부터 식사가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먼저 올라가…” 아버지 혼자 식사하실 게 눈에 밟혀 병원 권고를 무시하고 근처 백반집에 들어가 앉았다. 아버지 입맛에 맞게 청국장이나 우렁된장을 시키려는데, 아버지가 부대찌개를 가리켰다. 햄과 소시지 같은 걸 드시는 줄 몰랐다. 아버지의 뜻밖의 취향, 세월은 흐르는데 내가 모르는 아버지가 너무나 많다.어쩌면 아들 입맛에 맞추려고 부대찌개를 시키신 게 아닐까. 아버지는 부대찌개를, 아들은 우렁된장을 생각하는 어긋남이 아버지와 아들의 평생이다. 지금은 어정쩡한 부축에 실린 아들의 가벼움과 아버지의 무거움 사이를 걷고 있지만, 부대찌개를 먹고 아들은 살찌고 아버지는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부축하는 팔에 점점 힘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늘 그랬듯 아버지와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주앉은 밥상 위에 부대찌개 끓는 소리만 들렸다.

202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