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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봄의 반영

비가 이틀째 내린다. 기우제를 지내며 오래 기다린 만큼 반가워 봄비님이라 치켜세운다. 창가에 밤새 속살거린 빗소리 덕분에 바스락거리던 세상이 촉촉해졌다. 물빛 머금은 봄을 맞으러 우산을 받쳐 들고 나들이를 나섰다.신경주역에 다다르니 비는 안개로 모습을 바꾸며 산 위로 기어오른다. 기찻길을 이고 선 다리 밑을 지나 들어가니 동네가 나타났다. 화천 3리다. 화천이라는 동네 이름은 김유신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냇가에 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꽃내’라고 불렀다 한다. 후에는 꽃내가 화천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꽃내가 더 정겨운데 누가 한자 이름으로 고쳐 불렀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김유신 장군이 보았던 꽃이 무슨 꽃일까, 마을 안으로 접어드니 논두렁 가에는 하얗게 매화가 피었고, 빈 밭에는 주인 몰래 광대나물이 가득 피어 보라색 이불을 펼쳐놓은 듯하다. 신라 화랑들은 이 길로 산에 올라 몸과 마음을 수련하였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훈련하는 모습 또한 꽃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다. 꽃내를 서성이며 이 동네를 오르내리는 화랑의 행렬을 상상해 본다. 산 정상에는 김유신이 검으로 내리쳤더니 반으로 갈라졌다는 바위가 있다. 그래서 산 이름이 단석산이 된 것이라 한다.마을 입구에 낮게 모여 앉은 집부터 산수유 한 그루씩 담장 안에 들여놨다. 산수유 마을이라고 불릴만하다. 몸에 띠를 두른 당산나무 옆으로 계곡을 따라가지를 늘어뜨린 노란 물결이 차를 세우게 했다. 길옆에 주차하고 집에서 내려온 커피를 나눠 마시며 비에 젖어서 바람에 흔들리는 산수유를 감상했다.속이 따뜻하게 데워졌으니 백석암을 향해 걷기로 했다. 금방 백석암의 아랫절이 보였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저수지가 나타나면서 민가는 사라진다. 산길이지만 차를 타고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길을 따라 오를수록 산수유나무가 식구를 불려갔다. 단석산을 오르는 길이 가팔라질 때까지 포장이 된 길이다. 백석암까지 1킬로미터 정도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올 즈음 산수유 군락지가 펼쳐진다.골짜기 가득 산수유가 들어차 물안개마저 노란빛이다. 물소리도 계곡을 훑어 내려오다 노랗게 취한 듯 부서진다. 우리 일행도 몸피 굵은 산수유가 오래 묵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알아차리고 잠시 제자리에 머물러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졌다. 비가 내리는 날씨라 잔뜩 흐린 하늘이었지만 숲은 노랗게 조명을 밝혀놓았다.함께 이야기를 들으려 계곡과 계곡을 잇는 다리 위에 물이 고였다. 그 속에 산수유가 빨갛게 지난 열매를 떨궈 놓자, 참나무가 빈 가지를 드리운다. 가만히 보니 까만 가지에 빨간 꽃이 핀 한 폭의 수묵화였다. 반영이다. 반영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 것을 다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봄이 지난가을이 전해준 빨간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비를 통해 표현한 시였다.무엇에 반영하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비치는 상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거울과 같이 매끄러운 곳에 반영이 되면 선명하게 비칠 것이고, 잠시 고인 물에 어린 모습은 부드러운 선으로 상이 맺힐 것이다. 하지만 시냇물과 같이 움직임이 있는 물에 반영이 된다면 흔들리는 형태로 일렁일 것이다.산수유는 약재로 쓰려고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다. 그래서 집 가까이 심어서 열매를 약으로 썼다. 누구는 신장에 좋으라고 길렀고, 누구는 겨울에 약해진 몸을 보하려고 열매를 땄다. 안에 든 코르닌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유사해서 꾸준하게 챙기면 갱년기 증상에도 좋다고 하니 친구들과 함께 챙겨 먹어야 할 약재다.김종길 시인은 아버지가 따온 붉은 열매가 자신의 몸속에 붉게 흐르게 했고, 문태준 시인은 농부처럼 산수유나무도 그늘을 넓히며 한 해 농사를 짓는다고 썼다. 그렇게 산수유는 농사꾼이라는 물체에 닿아서 약재로, 시인에게 닿아서 수십 년을 사람들에게 읊조려지는 시로 반영되었다. 봄의 반영에 나를 드리운다./김순희(수필가)

2022-03-20

국민의 눈으로 판단하라

김진국 고문 정치에 왜 명분이 필요한가. 무조건 싸워 이기면 되는 것 아닌가. 이기면 진 쪽을 다시는 덤벼들지 못하게 짓밟고, 지면 불복하고, 발목을 잡으며 호시탐탐 복수 기회를 노리고…. 국민이 먹잇감이고, 그걸 차지하려는 맹수의 싸움이라면 그래도 된다. 제왕들의 전쟁도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다. 대통령 후보들도 스스로 ‘머슴’이라고 부르지 않았나.주인인 국민의 눈으로 보면 달라진다. 부정하지 않고, 일 잘할 머슴을 선택할 권리가 주인에게 있다. 좋은 머슴을 고르려면 경쟁시켜야 한다. 어느 한 쪽도 없앨 수 없다. 선택권이 사라지면 머슴이 횡포를 부린다. 지고도 불복해 일을 못 하게 발목을 잡으면 피해가 국민에게 간다.새 대통령 취임식이 50일도 안 남았다. 정권 이양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알력이 심하다. ‘레임덕’의 유래가 된 시기다. 이름과 실제 힘 사이의 거리가 고통을 준다. 넘기는 쪽은 아쉽고, 불만이다. 넘겨받는 쪽은 의욕이 과잉이다. 과격한 일부 지지자들의 아우성은 논외로 치자. 그렇더라도 정권의 핵심 정치인들까지 불복(不服)하는 것은 걱정스럽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시시비비가 분명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냉정하게 볼 수 있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건국 이후 정권 교체가 많았다. 하지만, 정상적인 교대는 드물다. 불행한 퇴임이 많은 탓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해외로 쫓겨갔고, 박정희 대통령은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위기로 확실한 레임덕을 맞아, 김대중 당선인이 취임 전부터 수습에 나섰다.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가족의 뇌물 수수 의혹으로 수사받았다. 문서 반출 논란도 있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봉인한 것으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 문서들을 어디선가 찾아내 임기 내내 ‘적폐 청산’ 칼날로 삼았다.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고 순탄한 건 아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친구를 믿고 권력을 넘겼지만, 백담사로 유배됐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함께 감옥에 갔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송금 수사로 집권당이 쪼개지는 곡절을 겪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사람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사람을 썼다.이번 정권 이양도 덜컥거린다. 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16일 회동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18일 윤 당선인을 빨리 만나고 싶다며 실마리를 풀었지만, 언제 돌부리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임기 말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다. 한쪽에선 “대통령의 인사권에 왈가왈부하지 말아라”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오만한 내 사람 챙기기”라고 으르렁댄다.간발의 득표 차이가 갈등을 증폭시킨다. 24만7077표. 역대 최소인 0.73%포인트 차이다. 올인한 도박판에서 한 끗 차이로 모두 빼앗긴 꼴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총선에서는 50%에 못 미치는 득표로 3분의 2 의석을 차지했다. 우리 제도의 문제지만 선거 결과는 승복해야 한다.자기를 부정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문빠’는 자기 진영의 잘못을 인정해본 적이 없다. 패배 원인의 하나인 ‘내로남불’이 승복을 가로막는다. 신념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선거 직전까지 정권 교체 여론이 50%를 넘었다. 상대 정당이 잘한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졌다. 반성하지 못하면 달라질 수 없다.왕권 이양이 아니다. 국민의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 공기업 사장의 89%가 임기 절반을 다음 대통령과 같이 일한다. 임기 마지막까지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책 방향도 다르다. 청와대 근무자나 민주당 당직자들이다. 이런 보은 인사는 국정 방해다. 그렇다고 선거가 끝났는데 패배 정당을 모욕하는 건 피해야 한다. 정치는 전리품을 얻는 전투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봉사다. 정권 교체는 반복해 일어난다. ‘블랙리스트’도 안 되지만 넘겨주는 측의 금도도 필요하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정치하는 자는 그 정도의 명분은 세워야 한다./본사 고문

2022-03-20

‘타이타닉’을 보지 않은 남자

김규종경북대 교수 코로나19의 선물 가운데 하나는 세계의 다채로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로 만원이 되곤 했던 2020년 이전의 대형 영화관들은 장삿속에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윤이 남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수입하여 배급했다. 복합 상영관이라는 것은 말뿐이고, 실제로는 잘 팔리는 서너 개 영화 일색이었다. 그런 상황이 코로나19 이후 일변하였다.장삿속에 정신이 나가 있던 복합 상영관들이 정말로 다양한 영화를 세계 전역에서 수입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내가 본 영화는 대개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제작된 것이다. 프랑스, 에스파냐, 핀란드, 도이칠란트, 일본, 영국, 홍콩, 중국 등등을 들 수 있다.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소재 또한 폭력-속도-사랑-공상과학 일변도를 넘어서 우리의 현실과 상상력을 극대화한 경우가 많았다.20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복합 상영관에서 핀란드 영화를 보았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라는 긴 제목을 가진 영화. 영화 제목에서 의도적으로 빠트린 어휘가 있다. 영어로 표기된 원제에는 있지만, 수입 과정에서 일부러 뺀 것 같다. ‘눈먼’이라는 어휘가 남자 앞에 있었건만, 수입사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장애인 영화라는 걸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다발성 경화증으로 가슴 아래 육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남자 야코가 주인공이다. 더욱이 그는 경화증의 결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아침마다 그를 깨워주는 다정한 문자 메시지가 멀리서 날아온다. 그가 사는 곳에서 천 km 떨어진 곳 사는 또 다른 여성 장애인 시르파다.시르파는 혈관염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그녀의 소망은 바이오 생약 치료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항암치료가 필수적이며, 생약 치료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시르파. 야코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그녀를 찾아가서 만나겠다고 마음먹는다. 다섯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야코는 충분히 시르파를 만날 수 있다.장애인 택시를 타고 정거장으로 가다가 그가 운전기사에게 라디오 소리를 높여달라고 부탁한 다음 “자유다!” 하고 외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면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 이동의 자유와 권리가 야코 같은 중증 장애인에게는 사후의 낙원이자, 그림 속의 성찬일 따름이다. 자신의 차폐된 공간을 벗어나 모험을 강행하는 야코가 공중에 대고 소리치는 ‘자유’는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던가?!오늘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유의 이면에는 그것을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선배 투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공기처럼 물처럼 차고 넘치는 값싼 물건인 양 당연시한다.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들이 매일 겪는 장벽과 차별과 슬픔이 느껴진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세상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2022-03-20

국민의힘 ‘현역의원 공천 최소화’에 공감

국민의힘이 이번 주 6·1 지방선거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대구·경북 지역에 적용할 공천 잣대가 관심을 끌고 있다.국민의힘은 일단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현역 국회의원 공천을 최소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지난 주말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방선거공천은) 과거로 회귀한 인물이 아니라 미래로 전진할 인물을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 정치인 위주가 아니라, 미래 정치를 리드해 나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공천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한 후 여소야대 정국에서 의석수를 최대한 늘려야 하는 국민의힘으로서는 당연히 우선순위에 둬야 할 공천기준이다.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72석이며, 국민의힘은 국민의당(3석)과 합당이 이뤄지더라도 113석에 그친다.국민의힘 현역의원 중 광역단체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홍준표 의원(대구시장)을 비롯해 서범수 의원(울산시장), 윤한홍 의원(경남도지사), 김성원·김은혜 의원(경기도지사), 윤상현 의원(인천시장) 등이다. 이들 의원들이 대거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경우, 해당 지역구는 보궐선거가 치러져야 해 민심이 악화할 수 있다. 많은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보궐선거 귀책사유가 국민의힘에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면 국민의힘은 3·9 대구 중·남구 보궐선거 때처럼 후보도 내지 못한 채 의석을 잃을 수 있다. 새 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국회 상임위별 의석수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역의원들이 뚜렷한 명분없이 단체장 선거 출마를 고집할 경우 당은 당연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에서 그야말로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뭔가 한 부분만 더 삐걱거렸다면 선거에서 졌다. 현 정권의 산실인 이 지역 지방선거에서 과거처럼 ‘밀실공천’이나 ‘인지도중심 공천’을 하면 민심이 동요하고,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동력도 떨어질 수 있다.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해당 지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후보로 내세워주길 바란다.

2022-03-20

대구·경북 혼인 건수 전국 최저, 일자리가 답

지난해 우리나라 혼인 건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대구와 경북은 혼인 건수에서도 전국 최저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통계청이 최근 밝힌 202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19만3천건으로 전년보다 9.8%가 줄었다. 1970년 통계작성을 시작한 후 최저치다. 2016년 28만2천건으로 30만건을 밑돈지 불과 5년 만에 20만건 밑으로 떨어졌다. 대구지역 혼인 건수는 지난해보다 12.6%(1천53건), 경북은 9.8%(880건)가 각각 감소했다. 특히 대구는 7천287건으로 2019년 1만대건이 무너진 후 해마다 1천여건씩 떨어지고 있다. 인구 1천명 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도 대구와 경북이 각각 3.1건으로 조사돼 전국 평균 3.8건을 밑돌았다. 대구와 경북의 조혼인율은 전국 꼴찌다. 전국적으로 결혼 건수가 떨어지는 것은 인구감소와 미혼 남녀 결혼관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나 지난해 경우 극심했던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통계당국은 분석했다.문제는 대구와 경북의 혼인율이 전국 꼴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독 대구와 경북 미혼 남녀들이 다른 지역보다 결혼을 기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이곳을 떠나는 것과 연관해 분석해 본다면 우리 지역의 혼인율이 낮은 것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한 조사에 의하면 결혼적령기 남성의 절반이 “집 마련 등 결혼조건을 갖추기가 어려워 결혼을 기피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혼인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개인의 경제적 여건 충족이 주요 원인이다. 결혼이 출산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혼인율을 높이는 다양한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지자체 차원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좀 더 실효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좋은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민의 삶 만족도를 높이는 정책에 전력해 가야 한다. 도시가 살 수 있는 길이다.GRDP 전국 꼴찌 등 지역이 가지고 있는 꼴찌라는 불명예를 하나둘 벗어던질 수 있게 지자체의 분발이 필요하다.

2022-03-20

되풀이되는 ‘알박기 인사’ 논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문재인 정부가 임기말에 ‘알박기 인사’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6일 첫 오찬회동을 하기로 했다가 불발된 것도 인사에 대한 이견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측은 윤 당선인측이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요구 등 무리한 압박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청와대의 알박기인사에 대한 이견때문이라고 했다.한마디로 신·구권력이 인사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부딪친 셈이다. 정권 인수·인계작업이 험난해질 모양새다.국민의힘은 17일에도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인사권 행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곧 임기가 만료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 지명 등 공기업·공공기관 인사를 윤 당선인과 협의해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임기가 불과 1개월밖에 남지 않은 문 대통령이 보은성 인사를 고집하는 것은 대통령직에 주어진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것”이라며 “내 사람 챙기기, 알박기 인사에 전념하는 것을 보니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고 비판했다.실제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시절 3년간 정무특보로 일한 명희진 전 특보는 지난달 25일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로 임명됐고, 가스안전공사는 지난 10일 임찬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임기 2년의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한국은행을 포함한 공기업·공공기관 인사들의 인사에 대해 “5월9일까지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며, 대통령의 인사권에 해당하는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사실 ‘알박기인사’ 논란은 역대 정부에서도 매번 반복돼왔다. 새로 권력을 잡은 정부가 과거 정부에서의 인사권 행사를 ‘알박기’라고 규정, 물갈이를 시도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여정부 때에는 2004년 5월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어지간히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임기가 남은 정부 산하기관장의 퇴진을 촉구했다.이명박(MB) 정부 초기엔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퇴진을 압박한 바 있다.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이 사건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박근혜 정권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서 사표를 받아내거나 사퇴를 종용한 사건이다.대법원은 올해 초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에 대해 각각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런 사례들을 문재인 정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정권교체 후 통합과 포용의 정치로 나아가려면 원만한 정권이양작업이 필수적이다. 정권교체기의 갈등과 반목은 진영간 갈등과 마찰을 극대화하고, 마침내 국론분열의 위기에 이르게 한다. 현 정부의 자성을 촉구한다.

2022-03-17

SK 1조대 투자, 구미경제 활력 기폭제 되길

대기업의 잇단 철수로 침체 분위기에 빠져 있던 구미경제에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기업인 SK실트론이 구미 3산단에 1조500억원을 투자해 300mm 반도체 웨이퍼 공장을 증설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반도체 웨이퍼는 반도체 기판의 핵심소재로, 최근 전기자동차 및 5G 시장을 기반으로 수요가 날로 증가하는 분야다. 특히 글로벌 시장의 반도체 생산이 대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한 투자라는 면에서 구미산단 활성화에 기여할 부분도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우리나라 전자산업 메카로 명성을 떨치던 구미산단은 최근 삼성, 한화, LG 등의 계열사 사업장이 잇따라 폐쇄되거나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일자리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LG전자 TV 라인의 해외이전에 이어 태양광 사업장 폐쇄, 한화 구미사업장의 충북 보은 이전, 또 삼성물산의 패션부문 사업 중단으로 구미사업장이 폐쇄되는 불운이 이어졌다.이번 SK실트론의 1조원대 투자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구미가 소재, 부품, 장비 중심도시로 거듭나도록 행정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고 구미 상의도 적극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누구보다 반기는 사람은 구미시민이다. 작년 12월 구미형 일자리사업으로 시작한 LG BCM 양극재 공장의 설립과 함께 SK 실트론의 통 큰 투자가 구미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구미산단은 경제물류 중심공항으로 조성될 군위소재 통합신공항과 위치적으로 가까워 공장의 입지여건도 대폭 개선될 예정이다. SK 실트론의 투자를 계기로 더 많은 기업이 구미산단을 찾을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정치권 노력이 필요하다. 웨이퍼 공장이 구미에 오기까지 구미시의 노력이 컸다. 지자체의 노력이 도시의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더욱 분발해야 한다. 새 정권의 탄생으로 높아진 지역민의 기대감을 채워주길 바란다.

2022-03-17

‘특화산업 육성’이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대구지역 기업 362곳을 대상으로 ‘최근 지역 경제 상황에 대한 대구 기업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 기업의 84.6%가 ‘지방 소멸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42.6%는 지방 소멸 위협이 심각한 정도라고 했다. ‘대구와 수도권 간 격차’에 대해서도 ‘더욱 확대됐다’는 응답이 77.9%를 차지했다. 응답기업들은 지방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로는 절반이상(52.4%)이 지역 특성에 맞춘 특화산업 육성을 꼽았다. 대구상공회의소 측은 “새 정부가 지역 특화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 주길 바란다”고 했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지난해 연말 대구·경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역특화산업 육성과 관련, “지역균형발전의 한 축이 지역특성화산업의 경쟁력 확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지역특화산업육성은 새롭게 등장한 지역개발정책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지역경제 활성화나 지역개발의 촉진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역특화산업은 지역의 자원과 인력, 기술력과 전통을 바탕으로 성장하므로 지역경제에 미치는 관련효과가 매우 크다.대구시와 경북도도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에서 이 지역 특화산업 육성을 국책사업으로 반영해 줄 것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대구시가 대표적인 특화산업으로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의료산업을 비롯해서 로봇산업, 물산업, 미래차산업, 에너지산업, 스마트시티 분야다. 경북지역은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첨단 바이오 신약개발, 친환경·자율주행 모빌리티 산업, 차세대 소부장(부품·소재·화학업종)산업, ‘경북 푸드밸리’ 산업 등이 있다.지금까지 정부주도로 추진되어 온 특화산업육성정책은 여러 부처별로 다양한 사업이 추진돼 효율적이지 못했고, 지원자금도 너무 적어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 새정부 인수위에서는 국정과제 리스트를 만들면서 지방소멸위기와 직결된 지역별 특화산업 육성을 국정운영의 핵심정책으로 삼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기를 바란다.

2022-03-17

노마스크 염원

우정구 논설위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닌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의 불편함이란 이루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95%가 불편함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불편한 이유도 가지가지다. “숨쉬기가 힘들다”가 가장 많았고 피부 트러블 발생, 귀부분의 아픔, 안면에 열 느낌, 안경에 습기가 찬다, 마스크 비용 부담 등등이다.이런 불편함보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피로감과 스트레스 심지어 우울증까지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사회 문제도 됐다. 또 마스크 착용이 어린이들의 언어 발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와 부모들에게 걱정도 안겨주었다. 만약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날은 국민 축제의 날로 삼아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그러나 마스크 착용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뛰어난 방역 조치란 점에서 마스크 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방역 당국도 마스크를 벗는 시기를 현재로선 예단키 어렵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다.미국과 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오미크론 확산세가 정점을 지났다고 평가하고 지난달부터 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확진자였다가 치료 후 완치된 사람들 사이에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쏟아진다고 한다. 코로나 완치로 항체가 생겨 마스크 쓰기는 의미가 없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다.이에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 말한다. 새로운 변이 출현과 면역효과 감소로 재감염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오미크론이 정점을 향해 다가가지만 노마스크는 아직도 우리에겐 희망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3-17

통제되지 않은 세상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은행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체제로 그 체제는 이자와 이익을 먹고 커간다. 정상참작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을 갚지 못한 자의 땅을 뺏어가는데 사람들은 그런 체제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미 이 회사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지배체제가 되어 버린다.”존 스타인백이 ‘분노의 포도’를 통해서 한 말이다. 히틀러의 나치즘도 독일 시민들의 통제권을 벗어난 악의 지배체제가 되었고, 푸틴 정권 역시 러시아 국민과 유엔도 통제할 수 없는 전쟁 지배체제가 되었다.현대사회학자 피터 블라우는 “조직이 만들어 지면 그 조직은 만든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 사람의 통제권을 벗어나게 된다”고 했다.어떤 사람은 그 원인을 인간의 타락으로 본다. 그래서 개인이 변화되면 체제도 변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라인홀드 니이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도둑연합주식회사에서 아무리 개인이 정직하게 일해도 결과적으로 도둑질을 도운 것임으로 개인의 변화가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다. 역으로 체제가 변화되면 개인이 변화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노예제도를 폐지한 미국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이 있고, 재산을 공동분배하는 공산주의 체제에도 개인의 탐욕을 채우는 이들이 있어 체제변화가 개인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개인과 체제가 동시에 변화되어도 여전히 악의 힘은 남는다. 이를 경험한 밀란 쿤데라는 “낙원에도 감옥이 필요하다”고 했다.세상에는 존재론적으로 악한 영적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배체제를 월터 윙크는 악한 영이 지배하는 사탄의 지배체제라고 했다. 지배체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탓만이 아니고, 구조의 탓만도 아니며, 악한 영의 힘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베르자예프는 “개인이 도덕적으로 완전해지기를 기다릴 수 없으며 사회구조를 함께 변화시켜야 하고 동시에 선한 영이 영향력을 끼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예수는 개인구원과 동시에 사회구원을 위해 일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힘을 통해 잘못된 지배체제를 몰아내려 했다. [마]12:28에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서 사탄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었다”고 했다.성경 에베소서에도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것은 개인과 사회체제만이 아니라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는 악한 영들이라 했다. 칼 융은 오랜 세월 쌓인 전통과 문화는 영적인 힘을 보유한다고 했다.예수는 바리새인들의 율법과 전통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영을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몰아내었다. 오늘 인류가 직면한 통제권을 벗어난 폭력과 전쟁의 억압체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개인과 사회의 통전적 변화와 동시에 악한 전통과 문화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선한 영이 영향력을 끼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2-03-16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정미영수필가 기억의 정원에서 그리운 추억들을 불러내 이름표를 붙여 주고 싶었다. 희미해져 가던 실루엣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았다. 때로는 바람결에 실려 다니는 말들을 내 마음에 빼곡하게 걸어 놓고 날마다 행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읽었다. 아담한 수필이란 집을 짓기 위해서다.몇 년 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공연장에서 신명나는 사물놀이를 구경했다. 김덕수 명인이 태평소를 불며 등장하자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복을 몰고 가는 길놀이로 시작된 공연은, 사물놀이패의 꽹과리, 징, 장고, 북의 화려한 연주와 조화로움으로 어깨춤을 유발하더니 농악을 기본으로 사물굿판이 펼쳐졌다. 상모꾼의 상모돌리기에서 절정을 이룰 때에는 흥겨운 장단에 내 어깨도 다른 관객들과 어우렁더우렁 들썩이고, 덩달아 손도 박자를 맞추기에 바빴다.공연이 끝난 뒤였다. 전율이 찌르르 온 몸을 에둘러 나가도 가슴에는 한 줄기 짙은 감동이 여운으로 자리 잡았다. 공연 시간은 짧았지만 구경꾼들의 영혼을 맑게 해 주었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내 마음에도 수필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와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릴 수 있다면.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들어 희망을 주고 기쁨을 준다면 좋으련만.나는 수필을 사랑한다. 울림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언어의 바다를 헤엄치며 살고 있다. 좋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소재가 중요하다. 글감이라는 보물을 찾으려고 나는 항상 두리번거린다. 학창 시절에 소풍의 재미는 보물찾기에 있었다. 나무 밑이나 화단 근처, 돌무더기를 뒤지며 찾던 종잇조각. 학생이었을 때 내 눈빛이 그 순간만큼 반짝거릴 때가 있었던가. 글감 찾기는 내 생활 속에서의 보물찾기다. 빛나는 글감이 떠오르면 며칠을 머릿속에서 반죽하고 숙성시킨다.자아 성찰의 시기를 거친 내 글쓰기는 주로 밤늦은 시각에 이루어진다. 모두가 잠든 뒤에 수필을 쓰려고 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마음이 추웠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듬지를 비추는 달빛 한 점이 있어 차가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고요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처럼 조용히 의자에 파묻혀 한 줄씩 적어 내려갔다. 깊은 밤을 지새울 만했다.가끔 언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을 때도 있다. 주옥 같이 펼쳐지는 언어의 황홀경에 흠뻑 취해 있다가도, 쓰는 작업이 힘에 겨워지면 수필에서 달아나고자 버둥거린다. 하지만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해가 강물 속에 풀어지는 모습을 보면 또 다시 삶의 아포리즘을 받아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햇귀와 타전을 시작하고는, 윤슬을 머금은 수필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수필을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을 기대하며.내 사랑의 결실은 책이 출판되는 것이다. 드디어 며칠 전 2022 Prose Quartet ‘작은 것들’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작가가 StoryLab 숨비에서 기획하고 주최하는 산문 축제에 초대를 받아, 앤솔로지를 출판하고 3월 한 달간 전시회 및 낭독회를 진행한다. 작가들이 보내는 울림과 공감의 파장을 독자들이 폭넓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꽃샘바람이 불어와도 아파트 화단의 홍매화 꽃눈은 얼지 않았다. 봄꽃이 피어나기를 오매불망 지켜보는 나의 시선 때문인지 앙증맞게 피어났다. 이른 봄, 산책을 나가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매화 나뭇가지가 나를 향해 봄 내음을 물씬 풍기며 반갑게 손짓한다. 마음 가득 봄빛으로 물들이면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이 훨씬 곱게 보일 거라며, 나보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나무가 나를 위해 덕담 한 마디 따스하게 건네주는 오후다.헤아릴 수 없는 깊은 음률로 내 방 창문을 환한 햇살이 두드리고 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내 가슴 안에 담겨 있던, 기록되지 않은 단어와 추억을 소환하여 수필이란 이름의 옷을 입혀 준다. 수필을 사랑한 후에 오는, 또 다른 것들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분주할 것이다.

2022-03-16

섬, 해양영토와 관광산업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배경은 안개 자욱한 섬, ‘무진항(霧津港)이다. 음습한 기운이 가득한 무진항에서 주인공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하며 죽어간다. 동시에 ‘무진항’은 1964년 발표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연상케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무진’이라는 장소에서 몽환적인 경험을 하며 현실을 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표상하는 안개.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행동은 안개 뒤에 가려져 더욱 과감해진다.현실에서 만나는 바다 안개, 해무(海霧)는 이 같은 이미지의 극대화 버전이다. 해무는 어스름 위 어둠을 헤치며 떠다니다 아득한 순간,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곧 충돌과 침몰이 이어진다. 봄철 해무로 인한 해양사고가 빈번한 이유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3월부터 6월까지 발생하는 해양사고가 전체사고의 35%를 차지한다고 한다. ‘저시정’과 ‘황천’ 등 봄철 날씨로 인한 원인이 대다수다. 항구도시들은 뱃길과 하늘길이 동시에 막히기도 한다. 해무는 미세먼지와 함께, ‘꽃피는 봄’의 또 다른 불청객인 셈이다.벚꽃이 개화하는, 완연한 봄이다. 코로나 확진자 폭증과는 별개로 따스한 봄볕이 꽃망울을 재촉한다. 일상 회복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묶여 있었던 여행 수요와 보복 소비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립된 일상은 곧 관계로 회복되고 다시 연결될 것이다. 단절과 고립의 경험은 사실 해무가 일상인 섬마을의 모습과도 닮아있다.뱃길로만 들어갈 수 있는 섬마을은 ‘단절’의 상징이다. 그 곳에서의 삶이 일정한 폐쇄성과 배척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원인을 꼽는다. 오랫동안 낙후되고 협소하다는 선입견도 덧입혀졌다. 섬에 관한 고착화된 이런 인식은 섬 관광이 활성화되고, 자원개발과 해양영토 개념이 부각되면서 바뀌고 있다. 단절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달라진 현실의 파급력도 막강하다.해양패권 경쟁시대가 도래하면서 섬은 유인(有人)과 무인(無人)의 의미를 뛰어넘어,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있다. 섬을 경계로 해양관할권과 해양자원을 차지하려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부터다. 일본의 경우 조그마한 암석인 ‘오키노도리’를 섬으로 해석하며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주장한다. 섬이 한 국가의 최전방 해양영토가 되는 동시에 경제적 가치를 가진 해양자원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섬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아지자 우리 정부도 격렬비열도에 국가관리연안항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격렬비열도는 서해 최외각에 위치한 무인 섬이다. 최근에는 해양수산부 소속 등대관리원이 홀로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격렬비열도 인근은 한·중 공동관리 수역으로 중국 불법 어업이 빈번한 곳이다. 정부는 어족자원 보호와 해양영토 보전 등을 위해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하고 부두 등 선박 접안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해경 경비정과 어업지도선 등 선박의 입출항이 자유로워 해양영토 관리가 훨씬 수월해질 예정이다.섬은 해양영토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의미와 동시에 해양관광산업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코로나로 멈춤이 시작되기 전, 우리나라 연안여객선 이용객은 1천700만 명을 육박했다. 섬주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해양레저가 활성화되고 낚시와 섬여행 등이 늘면서 선진국형 관광형태가 도래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다만 섬여행의 이유는 해외의 경우와 사뭇 달랐다. 정현미작가 경남연구원의 ‘경상남도 섬 발전 종합계획 수립’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섬을 찾는 주된 이유는 ‘의미 있는 장소’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치를 보기 위해서’나 ‘섬 여행’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연구보고서에서 말한 ‘의미 있는 장소’의 정확한 뜻은 조사에 참여한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섬을 단순히 휴양이나 레저로만 여기지 않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섬은 냉정한 국제정세를 반영하는 국방안보의 상징이자, 해양자원개발의 독점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거기에 존재의 가치까지 더해져 관광객까지 불러 모으며 변신 중이다.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소득 3만 불 시대에 진입하면 해양레저관광산업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를 반영하듯 2010년 중·후반부터 섬관광 등 다양한 산업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위드코로나로 본격적인 관광시대가 열리면 산과 들, 바다는 다시 북적일 것이다. 단절과 고립의 경험이 강했기에 유대와 공유, 연결의 가치도 더욱 빛날 것이다. 최외각의 섬들이 항·포구로 연결돼 관광객을 맞고 해영영토 거점이 되듯, 우리네 삶도 ‘안락한 관계’ 속으로 들어서지 않을까.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게 된 섬처럼, 평범한 일상이 ‘관계’로 이어지길 고대해본다.

2022-03-16

당선인의 울진방문, 국가 존재이유 보여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5일 울진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지금 정부와 잘 협조하고 5월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주민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세밀하게 잘 챙기겠다. 힘내시고 용기를 내달라”고 했다. 윤 당선인의 이번 울진방문은 첫 지역일정이며, 대선후보였던 지난 4일에도 울진읍 국민체육센터에 차려진 산불피해 이재민보호소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이재민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원전조기 착공을 통해 특별지원금이라도 조기에 들어오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재개를 약속했다. 윤 당선인은 “울진지역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가급적 빨리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를 재개해 많이 일할 수 있게 해보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시절인 지난해 말에도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을 찾았으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시 재개’를 주요공약으로 내걸었다.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내놓으며 지난 2017년 다른 원전 4기와 함께 건설이 백지화됐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가동이 됐어야 했다. 주요기기 사전 제작과 부지 매입 등에 약 7천800억원이 투입됐지만, 건설이 중단되면서 울진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한수원은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재개하려면 산업부의 전력수급계획이 변경돼야 한다”고 밝혀, 새정부가 출범하더라도 공사 조기재개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공사가 중단된 지난 2017년 당시 부지매입이 거의 완료된 상태고, 대부분 주민이 원전건설에 찬성하는 입장이라서 산업부의 전력수급계획변경이 이루어지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윤 당선인의 이날 산불피해 현장 방문은 주민들에게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다. 당선인도 “현장에 직접 와봐야 피해상황을 알 수 있다”고 언급했듯이, 대통령의 민생현장 방문은 피해주민들에게 정신적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당선인이 산불당시 진화대원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 울진읍 중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은 것도 박수를 받을 만 하다.

2022-03-16

소형모듈원전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소형모듈원전(SMR)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 차세대원자력모델로, 대형 원전보다 크기가 작고 안전성이 높은 전기 출력 300메가와트(㎿)급 이하 차세대 원자로를 뜻한다.SMR은 기존 대형 원전인 1천~1천400㎿급보다 출력이 작지만, 원자로와 냉각재를 하나의 용기에 설치하기 때문에 건설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게 든다. 발전 효율과 안전성도 높다. 최근 미국과 영국, 러시아, 중국 등이 SMR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한국은 지난 2012년 SMR인 스마트(SMART)를 독자 개발해 세계 최초로 인허가 획득에 성공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면서 기술이 사장돼왔다. 그러던 것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탈원전 정책 폐기와 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등을 공약함에 따라 차세대 원전모델로 떠올랐다. 윤 당선인은 원전 선진국들이 SMR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인 만큼, 한국 고유의 SMR을 하루빨리 실증하고 상용화까지 마치기 위해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SMR이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으면서 국내 대기업들도 앞다퉈 SMR 인재채용에 나섰다. 삼성그룹의 싱크탱크인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가 소형모듈원전(SMR) 인재 채용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미국의 SMR 전문기업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에 지난해 2천만달러를 투자하고, 올해 추가로 3천만달러를 투입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아이다호주(州)에 발전용량 60㎿급 SMR 12기로 이뤄진 총 720㎿ 규모의 원전발전단지 건설을 진행 중이다. SMR이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길 기원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16

확진자 40만 돌파… 코로나 노이로제 시달린다

16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처음으로 하루 40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최고치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하루 4만3천여명의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도민 사이에는 코로나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확진자 수가 급증한 것은 15일부터 확진자 인정기준이 달라진 데 일부 원인이 있다. 동네 병·의원에서 받은 전문가용 신속항원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PCR 검사를 받지 않아도 확진으로 인정한다는 기준이다. 그러나 그보다 지난 한달동안 자가격리 지침과 거리두기를 계속 완화해 온 것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게 옳다.전세계 인구의 1%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확진자 비중이 26%다. 세계 확진자 10명 중 4명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것인데, 믿기 어려운 통계다. 왜 이렇게 한국에서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정부의 설명이 궁금하다.정부는 다음주 하루 평균 31만∼37만명 정도 수준에서 정점을 이루고 23일 전후 감소세로 돌아설 거라 예측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 예측이 맞은 적이 거의 없어 국민 신뢰도 없다.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오미크론 발생 정점 후에 방역규제를 완화했으나 우리는 정점이 오기도 전에 규제부터 풀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방역이다.서울대 보건대학원팀이 실시한 코로나19 국민 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3.4%가 코로나19 유행을 더는 통제하기 어려울 거로 내다봤다. 특히 정부정책 신뢰는 떨어지고 국민 불안은 더 높아진 것으로 조사돼 시중의 분위기를 반영했다.이런 와중에 정부는 계절 독감처럼 관리하겠다며 추가 방역완화까지 검토 중이라고 하니 황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위중증 환자가 1천200명대까지 늘었고 하루 300명 가까운 목숨이 희생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등하면 의료체계가 한꺼번에 감당할 수 없어 희생자는 더 늘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일상서 만나는 다수가 코로나 감염자라 생각하면 개개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정부의 어긋난 방역으로 많은 국민이 코로나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2022-03-16

마을 만들기

조현태수필가 3월 10일 새벽 4시50분 경,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이란 그림이 텔레비전 화면을 채웠다. 누구 당선, 누구 낙선보다 어떻게 당선했는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미세한 표 차이(0.73%)로 승패가 갈라진 결과가 그것이다. 그 결과는 국민 절반의 지지로 당선되고, 절반의 지지에도 낙선된 것이다.따라서 누가 당선되든 낙선된 쪽의 표심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왜냐면 모든 유권자는 새 대통령을 통하여 더 좋은 나라와 삶을 바라면서 투표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후보자들 역시 자신의 역량이 국가와 국민에게 좋은 영향력이 되려고 출마했을 터이니까.20대 대통령 선거가 양자구도로 당선이 확정되고 곧바로 당자와 낙자의 소감을 발표했다. 필자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바로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결과를 선거 부정이라 주장하며 불복하던 기억과 대조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보다 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줬다. 서로 다독이고 격려하는 모습이 필자를 매우 흡족하게 했다.그 아름다운 자세를 바라보며 교회 목사의 설교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여행객이 한적한 마을을 지나다가 노인 한 분을 만났다. 여행객은 노인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마을이 어떤 환경인지 궁금하여 ‘이 마을은 사람들이 살기에 어떤지’물었다. 노인이 대답은 하지 않고 그대는 어디서 왔으며 그 마을은 살기에 어떠하냐고 여행객에게 되물었다. 좀 머쓱해진 여행객은 ‘제가 사는 마을에는 서로 헐뜯고 비판하며 나쁜 소문도 퍼뜨리고 협력하지 않아 거기서 떠나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그 때 노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마을도 자네가 사는 마을과 다를 바가 없지. 똑같다네.”잠시 후 차를 타고 지나가던 다른 여행객이 노인을 향해 ‘이 마을은 사람이 살기에 어떠한 마을’ 인지 물었고, 노인은 그에게도 아까처럼 같은 말로 되물었다. 그러자 차에서 내려 노인에게 인사하며 ‘저희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게 지내며 서로 돕고 따뜻하게 인사도 잘 나누니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하자 노인은 반가운 표정으로 미소를 보내며 대답했다.“이 마을도 자네가 사는 마을과 다를 바가 없다네.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고 협력하며 사이좋게 지내니 사람 살기 좋은 마을이지.”남자는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떠났는데 곁에서 듣고 있던 노인의 손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우리 마을이 살기에 고약한 곳이라고도 하시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도 하시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노인은 그렇게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자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법이란다. 그 마음으로 인하여 살기에 좋은 마을을 만들기도 하고 고약한 마을을 만들기도 한단다.”이제 대한민국을 사람이 살기에 좋은 나라로 만들어가야 한다. 여행객이 걸어 왔든지 자동차를 타고 왔든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마음으로.

2022-03-15

법이 예술이 되게 해주시길

이명균창원대 명예교수 여러해 전 어느 법과대학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 일이 기억난다. 대학장의 졸업축사 중에 “법은 예술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깜짝 놀랐다. 추상같이 엄해야할 법이 어떻게 “아름다움”이 바탕인 “예술”이란 말인가? 그러나 조금 뒤에 나온 “법은 사회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라는 표현에서 “균형”이라는 말에 속으로 공감의 무릎을 쳤다. 여기서 균형은 사회질서의 균형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자연현상이든 인간사회의 질서든 균형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며 아름다움은 바로 예술이다.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정치보복’이니 ‘적폐청산’이니 하는 말들을 여러 번 들었다. 그중 정치보복이라는 말은 정치에 문외한인 필자가 듣기에 거북한 용어였다. ‘보복’은 앙갚음이란 뜻인데, 이는 개인이나 폭력조직 등이 사형(私刑)의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될지언정 정부나 국가의 공인이 보복행위를 한다는 것은 법치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과 정권의 사전에는 ‘정치보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없으리라 믿는다. 한편 ‘적폐’란 오래 지속되는 폐단이라는 뜻으로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청산되어야할 부분이다. 그러니 적폐청산이 특정 대통령이나 정권에만 주어지는 과제가 아니라 적폐가 생길 때마다 어느 정권에서든 마땅히 청산해야한다.그러나 적폐청산에 대해 대통령께서 직접 관심을 가진다면 그 자체가 정치보복으로 오해받을 수가 있다. 따라서 적폐청산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지시도 보고받는 일도 일체 없이 해당부처와 담당기관에다 통상적 업무로 완전히 맡기시고 평소 주장처럼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과 상식의 사회를 만들자”는 통치이념이 전달되기만 하면 될 것이다. 다만 해당기관에서 적폐청산 수행 중에 만에 하나라도 앞 정권의 인사와 관련된 사건·사항들이 있다면, 특별히 신속철저하게 조사 처리하되, 사법부 판단까지 최대한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그런 다음엔, 뭘 잘 모르는 말을 감히 하자면, 해당 적폐청산 관련 건에 대해선 대통령 통치권 차원에서 사면 등의 특별조치를 통해서라도 국민화합과 대통합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국민들 사이의 적대감과 갈등을 해소하여 화합과 통합의 사회를 만드는 과업이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절실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善)을 많이 폄으로써 악(惡)이 저절로 시들게 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필요악이란 말은 어쩔 수 없는 사회악이란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때로는 악이 어느 정도의 순기능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지고의 선도 보통사람에게 지나치게 강요하면 그 자체가 악이 된다고 한다. 반면 악을 용서관용으로 대할 때 오히려 선이 더 돋보이면서 그 영향력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정의원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불만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차기 대통령께서는, 법이 예술이 되게 하면서, 젠더 사이와 세대 간 그리고 이념 간의 갈등을 하루바삐 해소하여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균형 잡힌 대통합의 사회로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빈다.

2022-03-15

김병준 지역균형발전 특위에 거는 기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진행된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의 차담회 전 모두발언을 통해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자유한국당)에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드려서 본인의 허락을 받았고 이 일을 맡아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 정책특보 등을 맡아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한 경험이 있으며, 이번 대선기간 중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전반을 다듬었던 핵심 인물이다. 윤 당선인은 김 전 위원장 발탁배경에 대해 “자치분권에 대한 오랜 경륜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 정부 지역균형 발전에 큰 그림을 그려주실 것”이라고 했다.김병준 위원장도 언급했지만, 지역균형 발전문제는 국가 생존과 직결돼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출발점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정부에서는 수도권 규제완화에만 집중했지 지역균형발전 정책에는 큰 공을 들인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번에 인수위에 설치된 지역균형발전특위도 6·1지방선거를 의식해서 만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특위가 선거용 기구가 돼서는 안 된다. 윤 당선인이 대통령 임기 내내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국정운영의 최대현안으로 다루도록 특위에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일관된 지역균형발전정책 추진은 결국은 대통령의 의지문제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는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아 공공기관 추가이전 등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수립했지만 결국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립 차원에서 다루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을 비수도권으로 옮긴다고 해서 지역균형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수도권 스스로가 수도권을 넘어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리쇼어링 기업유치, 스타트업 환경조성, 대학의 인재육성 등은 해당 지역이 가진 기존의 잠재력에 국가의 지원을 더하면 얼마든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문제를 정치권력이 집중된 수도권 규제완화와 연결시켜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2022-03-15

포항 컨벤션센터 지역산업의 플랫폼으로

포항시가 지난 14일 포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 육성을 위한 최종 용역보고회를 가짐으로써 포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 건립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경북 제1도시이자 인구 50만명의 도시로서 이제와 국제전시회의장을 갖춘다는 것이 늦은 감은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내실 있고 경쟁력 있는 전시컨벤션센터를 운영한다면 환동해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의 위상에 뒤처질 것도 없다.이날 보고회에서는 포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가 지속발전 가능하게 하려면 포항만의 차별화된 MICE산업 인프라 구축과 혁신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했다.특히 4차산업혁명 등에 대응할 전시 전략을 잘 짜고 전시컨벤션센터와 연계한 각종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가운데 전시컨벤션센터와 연계한 관광프로그램 개발은 지역산업의 특성을 살리고 진작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면에서 고려할 가치가 있다. 전국적 인기를 끄는 포항의 스페이스 워크나 해양케이블, 두호공원 개발과 영일대 장미원 등을 관광 자원화하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매우 바람직한 아이디어다.전시컨벤션산업은 박람회, 전시회, 국제회의, 컨벤션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컨벤션센터 운영을 통해 각종 용역서비스가 발생하고 식음료 분야, 숙박, 관광 등 다양한 지역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전국적으로 전시장 건립이 경쟁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여서 전시컨벤션센터 운영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더 어렵다. 포항 인근인 경주에 전시장이 있고, 울산도 대규모 컨벤션센터를 건립 했다. 대구와 구미 등에도 컨벤션센터가 운영돼 포항만이 가지는 경쟁력 있고 독특한 전략이 없으면 운영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늦게 출발한 포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가 지역산업의 플랫폼이 되게끔 더 많은 전략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2022-03-15

초심(初心)

우정구 논설위원 마부작침(磨斧作針)은 “도끼를 갈아 침을 만든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공부에 염증을 느껴 산에서 내려오다 한 할머니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겠다며 열심히 작업하는 광경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다시 산으로 공부하러 갔다는 고사에서 나온 사자성어다.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도끼도 바늘로 만들 수 있다는 뜻과 우리 속담의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것과는 비슷한 의미다.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고 행동하는 사람을 나무라는 속담이지만 초심을 잊지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처음에는 어려웠던 일도 반복되는 일상이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이런 매너리즘이 초심을 잃게 하는 중요 이유다. 작심삼일은 초심을 지키기가 힘들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다.“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는 뜻의 시종일관(始終一貫)이나 초지일관(初志一貫)도 초심을 지키라는 뜻이다. 사람이란 대체로 어떤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거나 신분 상승이 되면 교만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처음의 어려웠던 환경을 잃고 오만방자해지거나 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초심을 지키자”는 말을 교훈으로 삼겠다는 것은 일이 성공하고 나서 달라지는 자기 모습을 경계하겠다는 각오다.공자는 설원(說苑) 정간편에서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충언은 듣기가 싫지만 행실에 이롭다”는 말을 했다. 지위가 높아지면 주위에서 하는 충언을 잘 듣지 않아 끝내는 낭패를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甘呑苦吐)는 말처럼 사람은 쉽고 편한 쪽을 택하는 본성이 있다. 공자는 멈추지 않으면 천천히 가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새 대통령의 초심을 지켜보자. /우정구(논설위원)

2022-03-15

말하지 않음과 말할 수 없음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언스플래쉬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수업종이 울리면 마흔 명의 학생이 기다리는 교실로 향한다. 말간 얼굴의 학생들이 반듯한 자세로 앉아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면서 준비한 강의록을 꺼내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집중력을 잃는다. 노트에 낙서를 끼적이거나 하품을 흘리고 책상에 엎어져서 자는 경우까지 속출한다. 이윽고 교실에서 떠드는 사람은 나 하나가 된다.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겪으며 자란 나는 이 친구들이 질 높은 수업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토론 주제를 꺼내놓으면 그에 관해 논의하고 생각을 모아서 놀라운 결론으로 도출해내는 방식을 꿈꿨다. 서로가 서로의 선생이 되어주는 것.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학생이었던 내가 꿈꿔오던 수업이었으며 이상적인 교육 활동의 모습이었다.그러나 현실은 가혹했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던 학생들은 계속해서 묵묵부답이다. 우리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각자의 발화를 강제하지 않으면 입을 꾹 다문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다. 나는 과거에 그렇게도 싫어했던 선생님들의 표정을 지으면서 교탁을 탕탕 내리쳤다.“너희는 왜 말을 안 하는 거야?”또 다시 침묵. 잠시 뒤 한 학생이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대답을 내어놓았다. 말할 수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란 말인가. 그 의아함을 학생은 단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해결했다.“몰라서요.”문학은 수학 공식처럼 정확한 답을 내어놓을 수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자신 안에 있는 언어가 미진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듯한 대답 대신에 모자람을 내어놓을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두려움에 가까운 마음일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말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 말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다.나라고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의식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무언가를 발화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보다 기성의 문법을 따른다. 나 자신이 세계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맞는가하는 의구심이 입을 막는다. 경솔한 언행으로 스스로의 얕음을 들켰던 경험이 있다. 여기저기 흘린 말과 글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감히 세상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에 관해서 쉽게 믿을 수가 없다.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신중하다. 그러나 침묵을 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자는 비겁하다. 나는 신중함보다 비겁함의 위치에서 용기를 내지 못했던 적이 더 많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불편한 상황들을 피했고 안온한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침묵은 분명한 혐의를 가진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화살처럼 가닿았을지도 모른다.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파괴했을 수 있다.입을 다물어버리는 것과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두 지점을 제대로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현명함이다. 말과 침묵의 간극에서 헤매지 않으며 적확한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누구도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그러한 불가능성을 바라는 작가들은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글을 써내려간다. 실패하고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여전히 발화하는 것이 두렵다. 이렇게나 겁이 많은 사람인데 글을 쓰는 일을 택했다. 스스로 고통 받기를 자처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자람을 들키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보다 쓰는 상태를 포기하는 일이 더욱 괴롭기 때문에 결국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오늘도 모니터 속의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망설이는 중이다. 교실의 맨 앞자리에 앉아 손을 번쩍 들고 답하는 모범생이 되고 싶지만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중얼거리는 학생에 더 가깝다. 이런 이야기는 세련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저런 이야기는 너무 정치적이지 않나. 경계하고 의심하면서 한 글자씩 써내려간다. 조금씩 채워지는 종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말할 수 없음의 영역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음의 태도를 줄여나가는 용기를 얻고 싶다고.

2022-03-15

안녕, ‘요섹남’

유행어는 한 사회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멸시에 가까운 혐오적인 표현인 ‘~충’과 같은 표현은 우리 사회가 어떤 요소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밥을 소리 내면서 먹는다 해서 붙여진 ‘쩝쩝충’, 상대가 무슨 말만 하면 훈수부터 두고 본다 해서 붙여진 ‘훈수충’과 같은 귀여운(?) 수준에서부터 한때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까지 했던 ‘일베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유행어의 흐름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앓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그러한 표현 가운데에는 ‘~녀’, ‘~남’과 같은 표현도 있다. 흔히 부정적 속성을 덧붙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긍정적인 의미를 덧붙여 의미화 시키기도 한다. ‘개념녀’나 ‘뇌섹남’과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재밌는 건, 이와 같은 ‘~남’, ‘~녀’와 같은 표현에서 엿보이는 불균형감이다. ‘개념녀’가 군 문제를 비롯한 한국 남성의 사정에 친화적인 발언을 한 여성을 지칭한다면, ‘뇌섹남’을 비롯한 표현들은 여성에 대한 태도가 아닌 사회적 능력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처럼 긍정적 의미에서의 ‘~녀’와 ‘~남’ 사이에 존재하는 성적 불균형감은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 사회가 해당 성별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던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잠시 이야기를 돌려보자. ‘뇌섹남’이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그 뒤를 이어 무수히 많은 ‘~남’이 우리 곁을 스쳐갔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가운데 ‘요섹남’이라는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요리를 잘해서 섹시해 보이는 남자’라는 의미의 이 말은 주로 잘생긴 남성 연예인을 향해 주로 사용되었다. 이런 말이 만들어진 까닭에는 요리를 하는 남자가 그만큼 적기도 했거니와 남자가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을 어색하게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반영되었으리라.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대중 문화적 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 또한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요섹남’이 될 수 있는 남성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잘생기고 충분히 매력적인 남성을 향해 사용되지, 보편적이고 평범한 남성을 향해서나 혹은 직업으로서의 요리인을 향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요리를 잘 할 필요가 없는 능력 좋은 남성’을 향해서만 사용된다. 더불어 이 말에는 대칭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녀’, ‘~남’의 표현들이 그렇듯, ‘요섹녀’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는데, 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여성은 요리를 잘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과 남성이 요리를 하는 것은 ‘옵션’이라는 고정관념 탓이 아닐까 싶다.그러나 이 말도 이제는 옛말이다. ‘뇌섹남’이라는 표현이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어느 순간부턴가 ‘요섹남’이라는 표현도 사라지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요섹남’과 같이 젠더 불균형적인 표현의 소멸은 우리 사회가 성적 평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지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단정이 아닐까 싶다. 아마, ‘요섹남’이라는 표현의 소멸은 1인 가구 비율의 급증과 그에 따라 요리를 해야 하는 남성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일어난 자연스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작년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비중은 전체 가구 가운데 약 30%를 웃돌고 있으며, 1인 가구의 형태는 매년 유의미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대비 약 5% 가까운 상승률로 집계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들이 자연스레 자신의 몫이 되었다는 의미이겠다. 즉, 요리하는 남자가 늘어남에 따라 그건 더 이상 ‘섹시함’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이제 우리는 또다른 ‘~~녀’, ‘~~남’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게 ‘이대남’, ‘이대녀’와 같이 정치적이며 세대론적인 멸시의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다른 종류의, 우리가 이제껏 생각 못해본 또 다른 젠더 문제가 뭉뚱그려진 표현이 될 수도 있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와 같은 표현에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가 젠더의 외관을 덮어쓴 채 잠재되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그러한 표현의 생성과 소멸은 결코 문제의 해결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겠다.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고 사라지듯, 우리 사회 또한 변하고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그게 좋은 방향일지 혹은 잔잔한 호수 밑에 썩은 흙이 잠들어가는 것처럼 기묘한 평온의 상태가 될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2022-03-15

자사고의 문제점

홍택정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자사고의 원조는 1993년 설립된 민사고다. 민족사관학교의 줄임말이지만 멋진 이름이다. 파스퇴르 우유의 창업자이기도 한 최명재 이사장의 한과 포부와 땀이 베인 말 그대로 민족의 사관학교다.교복도 한복이다. 얼마나 감동적인 이름인가?민사고는 설립의 취지에 맞는 교육을 했고, 결과도 대단했다. 몇몇 우수한 아이들 선선발 해 SKY에 합격시키는 게 목적인 입시학원 자사고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그간 해외 유수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들이 상당수다. 예고는 예대로, 외고는 외대로, 과고는 이공계로 진학해야 하는데 모두 SKY 아니면 의대, 법대로 간다.어찌 보면 고액 과외에 비한다면 경제적일 수도 있다. 숙식과 생활이 안정되는 확실한 입시학원이기도 하다.일반고보다 전국단위 모집에다 선(先)선발을 하다 보니 지역에서 내 노라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스펀지에 물 빨려 들듯 자사고로 간다.옛날에는 자연발생적인 지역의 명문고들이 있었다.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명성과 영광을 누렸다.자사고처럼 선(先)선발도 아니고, 고액의 등록금도 없어, 누구나 실력만 있으면 입학이 가능했다.지금의 자사고 운영 형태는 설립 목적과는 정반대의 입시학원이 되어 지역의 일반계 학교를 황폐화 시키고 있다.자사고 아니라도 다들 SKY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인데 한데 모아, 고액의 등록금을 받고 기숙사를 운영해 한꺼번에 몇십 명씩 합격시켜 스스로 ‘명문’이라 자위한다.교육만큼은 기회가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 물론 특출한 아이들 소위 극소수의 영재들은 현행 제도로 수용이 가능하다.그럼에도 많은 특전과 특혜가 주어지는 자사고로 진학을 유도하고 있다. 설립목적을 망각하는 입시 학원식 운영은 시정되어야 한다.공정한 룰을 적용하는 교육이 아닌, 특혜적인 교육이 현행 자사고 운영이다. 선(先)선발도 없애고, 예고에서 60명이 S대에 진학했다고 보도되는 비상식이 더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는 자사고는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을 것이다. 자사고 폐지를 두고 당국과의 존속 여부를 두고 벌이고 있는 법적인 다툼은 문제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원칙을 벗어나는 파행적 운영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자사고의 존폐를 재검토해야 한다.자사고에 입학한 아이들은 지방의 학교에 진학했더라도 대부분 일류대로 진학했을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2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