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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신 독점주의

19세기말 네덜란드 한 식물학자가 큰달맞이꽃에서 별종의 돌연변이를 발견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는 지속 발전되어 왔다. 과학자들은 돌연변이는 생명의 연속성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 말한다. 지구상의 진화하는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변이를 시도한다는 뜻이다.사막에 사는 검은쥐가 흰쥐로 바뀌게 된 것도 큰 새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한 자연적 변이 현상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은 번식을 유지하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도태하기 마련이다.미세한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백신이란 물질에 살아남기 위해 변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달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오스만 박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백신이 불평등하게 공유되는 한 더 많은 변이가 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코로나 백신이 주요 국가에게만 집중되는 백신 독점주의가 코로나 바이러스 종식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다. 그럼에도 지구촌은 여전히 코로나 백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모순에 빠져 있다.주요 20개국이 89%의 백신을 독점하고 있으며 오미크론 등장으로 부스터샷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선진국의 백신 독점은 더 심화할 것 같다는 전망이다. 오미크론이 처음 발견된 보츠와나와 남아공의 백신 접종률은 20% 안팎이다. 나이지리아나 에티오피아 등은 아직 1%대에 머물고 있다.빈곤국의 백신 대란을 방치하고는 코로나 대유행을 잡을 수 없다는 전문가의 지적에는 지구촌 공존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옆집 불을 꺼야 우리 집 불도 막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 모두가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19

포항예산 3兆 돌파는 ‘공무원·정치인 성적표’

포항시가 지난 16일 올 한해 예산(2조9천906억원)에다 95억원을 증액한 제3회 추가경정수정예산안을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함으로써 예산 3조원시대를 열었다. 수정예산안은 법정·의무적 필수경비와 국·도비 보조금, 특별교부세 등으로 구성돼 오늘(20일) 열리는 시의회 본회의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여진다. 포항시 예산이 3조원을 돌파한 것은 국책사업 유치 등으로 살림을 잘 살아 ‘부자 자치단체’가 됐다는 의미여서 경사스러운 일이다. 포항시 예산은 민선 6기 이강덕 시장이 취임했던 지난 2014년에는 1조3천343억원 규모였다. 그 후 2018년 2조원을 넘어선 후, 3년 만에 3조원을 넘어섰다. 7년 만에 예산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포항시는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과 관련한 RD 인프라 확충과 지역 숙원사업에 투입되는 국·도비 및 지방교부세 확보가 예산증가의 견인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포항시는 내년도 현안 해결을 위해 국비만 1조7천억원 이상 확보했다. 특히 ‘포항~영덕고속도로 (영일만횡단구간) 건설’ 사업의 경우,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사업의 타당성 조사비용 20억원을 확보함에 따라 가까스로 사업의 연속성을 살렸다. 그동안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던 영일만횡단구간 건설 사업은 내년에 나오는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의 존폐여부가 결정된다.지방자치단체 예산은 매년 자동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 예산을 확보하려면 정치권과 공무원이 일심동체가 돼 거의 일년 내내 정부와 국회, 광역자치단체를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여야 한다.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 그리고 지역 및 국가적 중요성 등을 계속해서 검토해야 하고 관련 자료와 논리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포항시가 사상 처음으로 예산 3조원시대를 연 것은 이강덕 포항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과 지역구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의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김정재·김병욱 국회의원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한 사업들은 되살리기 위해 국회 예결위원들과 관련 공무원들을 상대로 집요한 설득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단체 예산 규모는 바로 해당 자치단체 공무원과 정치권의 성적표라는 것을 포항시가 입증하고 있다.

2021-12-19

무 싹이 나왔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동치미 담그고 남은 자잘한 무 몇 개/ 밑동을 잘라내고 수반에 세웠더니/ 파릇한 싹이 돋아나 자꾸만 눈길을 끈다// 잘려진 무 동강이 기를 쓰고 밀어 올리는/ 꽃도 씨도 되지 못할 무모한 무의 싹이/ 겨우내 어둑한 방에 싱싱한 긴장을 채운다// 생명이란 무얼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시시각각 그 자체로 목적이고 충만이라고/ 연약한 무 싹이 번쩍, 나를 들어 올린다” -졸시 ‘무 싹이 나왔다’마트에서 사온 무나 당근도 며칠 두면 싹이 나온다. 생장조건이 맞지 않을 것 같은 비닐봉지 속에서 어느새 노랗게 싹을 내민 것을 버리기가 뭣해서 대강이를 잘라 수반에 세워 두고 한동안 함께 지내곤 한다. 서재 겸 침실인 좁고 어둑한 방에서 겨우내 무나 당근의 싹과 함께 호흡을 한다는 건 작지만 그런대로 생기로운 일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수천 권의 책보다 무 대강이 하나가 내민 새싹이 훨씬 더 생생한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무나 배추 같은 채소는 봄에 씨를 뿌리면 장다리가 나와 꽃이 피고 씨를 맺는다. 그것이 한해살이 식물의 정상적인 한 사이클이다. 늦가을에 수확을 하는 김장용 무나 배추는 그런 과정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것이다. 사람의 용도에 맞게 인위적으로 품종개량을 하고 심는 시기를 늦추어서 꽃피고 씨를 맺지 못하도록 한 것이니 식물로서는 여간 억울한 노릇이 아닐 터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무성하게 자란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까, 식물의 성장을 두고 꽃 피우고 씨를 맺기 위한 수단이나 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인 것이다.위의 시는 오래 전에 그런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쓴 것이다. 잘려진 무 동강이가 한사코 밀어 올리는 새싹을 무모하고 측은하게만 바라보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한 소식이 온 거였다. 어떤 경우이든 생명이란 무얼 위한 수단이나 과정이 아니라 시시각각 그 자체로 완성이고 충만(充滿)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비단 무나 당근 같은 식물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 인간에게도 해당하는 진리요 섭리라는 것이다. 삶의 무목적성이야말로 오히려 허무와 절망을 무산시키고 활로를 여는 역설이었다. 우리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어딘가에 있거나 스스로 상정한 바로 그 목적이라는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얼마 전 ‘대장동 사건’에 관련되어 수사를 받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성남도시개발 사업본부장을 거쳐 경기도 포천도시공사 사장 자리까지 올랐으니 제법 출세를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미루어볼 때 그 출세가도가 공명정대하지만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출세라는 목적을 위해서 나름 열심히 달려 왔겠지만 막상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그동안 성취해온 것들이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았을까 싶다.‘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는 것을 모토로 지금 대선판을 종횡무진 누비는 어느 후보도 그 결말이 아름답지는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은 것들이 결국 그를 삼켜버릴 늪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2021-12-16

반복되는 대입 수능 오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2022학년도 수능을 치른 입시생 중에 생명과학Ⅱ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과목 성적이 공란인 채 수능 성적표를 받았었다. 출제 오류 논란이 벌어진 한 문제를 놓고 수험생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모두 정답 처리하라는 결정이 나왔다.이 상황으로 수능 최저학력 등급이 걸린 수시는 물론이고 정시모집 일정에도 혼란이 우려된다.입시 출제 논란의 효시는 1965년 중학 입시의 ‘무즙 파동’이다. 필자는 ‘무즙 파동’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당시 ‘엿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출제됐다. 발표한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는데 무즙도 맞는다고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듬해 무즙도 정답으로 됐고 추가 합격자들이 나왔다. 이 사건은 과열 경쟁의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는 한 실마리가 됐다. 3년 후 1968년 중학교 입시에서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란 미술 문제의 복수 정답 인정 여부를 놓고 ‘창칼 파동’이 일어났고 1969년 결국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었다.입시경쟁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시 대학으로 옮겨갔다.2014학년도 대입 수능의 세계지리 출제 오류는 1년 만에 판가름이 났다. 교과서에는 EU(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권역보다 크다고 되어 있다. 세계 금융 위기로 2010년 무렵부터 EU와 NAFTA 경제 규모가 역전됐다. 평가원은 교과서대로 정답을 발표했으나 소송이 진행되었다. 결국 전부 정답 처리하고 대학들도 입학 사정을 다시 해서 수백 명이 추가 합격하는 소동이 벌어졌다.이런 상황에서 금년도 또 대입 수능 오류가 발생했다.시험시간에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듯이 한국의 대학 입시에 관한 관심은 절대적이다. 도대체 입학 시험문제로 소송을 거는 이러한 현상은 왜 자주 일어나는가? 이 현상은 절대적으로 대학 서열화 입시의 과열화에 있다.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미국 입시가 다른 건 대학들이 클러스터(cluster), 집단화되어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미국에서는 대학에 갈 때 꼭 어느 특정 대학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예일 등 소위 일류 사립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어떤 대학을 가든 괜찮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주립대학들도 버클리, 일리노이, 미시간 등 우수한 여러 개의 주립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우리도 대학을 6개까지 지원해서 수험생이 골라서 가는 제도는 매우 잘한 제도이다. 그리고 이공계는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몇 개의 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어 이공계 학생 지원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대입 수능 오류’가 반복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물론 문제 출제를 오류 없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가진 실력으로 원하는 대학의 클러스터에 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풍토가 정립된다면 반복되는 ‘대입 수능 오류’는 막을 수 있다.

2021-12-16

대구 동성로

대구 동성로는 누가 뭐래도 대구 제1의 번화가다. 하루 20만명 이상 방문객이 찾는 이곳은 백화점, 쇼핑센터, 패션타운, 호텔, 술집, 카페 등 없는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업소들이 밀집해 있다.대구의 핫플레이스이면서 맛집들도 즐비하다. 한때 대구시민이 시내(다운타운)로 간다고 하면 모두가 동성로를 가리켰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대구백화점 앞은 대구시민의 대표적 약속 장소다.대구에는 1907년 대구읍성의 동쪽 성벽을 허물면서 동성로와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등이 만들어졌고 그때 조성한 동성로 길(0.92km)이 동성로의 시발점이다. 세월이 흘러 상권이 줄곧 확대되고 동성로 영역도 더 커졌다.다른 도시들이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발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대구는 동성로를 중심으로 상권이 확장됐다. 내륙도시 특성 때문에 도시 중심에서 방사형 형태로 상권이 뻗어났다고 한다. 현재는 반월당역을 중심으로 대구역 인근과 공평동까지를 포함하는 거대 상권을 동성로라 한다.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이 곳 월 방문객은 600만 명이다. 대구 대표 여행길인 근대골목투어 길과 김광석 거리와 어울려지면서 대구 동성로 상권은 이제 전국 어디에도 손색없는 번화가로 성장했다.한국부동산원 자료에 의하면 최근 대구 동성로의 공실률이 22.5%에 이르렀다. 전국 평균 10.9%보다 크게 높다. 대구 대표 상권의 쇠퇴 징조다.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관광특구 지정까지 안될까봐 관계기관도 조바심이라는 소식이다.동성로 상권 위축에는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동성로 상권 쇠퇴에 대한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 대구시민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적 소식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16

선거철 단상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바야흐로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내년 3월 치를 대통령 선거나 지방선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침 등교시각, 인천의 한 중학교 앞에서 눈길 끄는 선거운동 광경을 목격했다.아마 중학교 학생회장 선거가 시작됐나 보다. 학교 정문 앞에서 붉고 푸른 형형색색의 피켓을 든 학생들이 줄지어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번호가 7번까지 있는 걸 보니 7명의 후보가 출마했나 보다. 회장 후보로 출마한 학생들이 표심을 얻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코스튬 플레이를 연출했다. 세계적인 히트를 친 넷플릭스 영화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체육복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학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또 다른 학생들은 지지후보의 이름과 번호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학생들은 “모두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기호 ○번, ○○○”라고 캐치프레이즈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지지를 호소했다. 어린 학생들이 기성 정치인처럼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실감과 함께 오래전 순수했던 학창시절 추억들이 떠올랐다.필자는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녔는데, 반장은 주로 담임선생님의 지명으로 정해졌다. 선생님들은 주로 공부를 잘하거나, 학교생활 하는 데 모범적인 학생에게 반장을 맡겼다. 그러니 선출직이 아니라 지명직이었던 셈이다. 반장의 임무는 다양했다. 기본적으로는 아침 등교 후 출석 점검, 수업시작 전 선생님께 인사 구령하기, 과제물 검사, 교실 청소와 미화 업무분담 지시 등등이었다. 반장을 맡으면 교무실에 자주 불려다니고, 반장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등 꽤나 성가시었지만 혜택도 적지 않았다.성적표에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란 우호적인 평가가 따라붙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제와 고백하거니와, 개인적으로는 과제물 검사를 반장이 전담하기에 스스로는 과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특혜가 있어 좋았다. 특히 선생님들에게 모범학생이란 인상을 주는 것 자체가 큰 메리트였다. 아무리 호랑이 선생님이라해도 여간 잘못하지 않고는 반장을 혼내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매 교시 수업 시작 전에 반을 대표해 일어나서 “차렷, 열중쉬어, 차렷, 경례!” 하고 선생님께 인사구령 붙이는 일이 꽤나 멋있었다. 필자 역시 그게 멋있어 보여 무척 즐겼던 기억이 난다. 다만 ‘반장들의 반장’인 전교 학생회장은 그때도 직선제로 뽑는 경우가 많았다. 선생님들마다 자신이 맡은 반 학생이 전교회장을 맡길 바랬기 때문이었을게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학생회장 후보로 나섰다가 연설원고를 모조리 까먹는 바람에 낙선했던 악몽도 이제는 정겨운 추억으로 남았다.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법. 어린 학생들이 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 선거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어떤 사람을 뽑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21-12-16

다시 일상 멈춤…정부 방역실패가 자초했다

지난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45일 만에 정부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턴했다. 정부가 강행한 위드 코로나는 결과적으로 실패였고 정부도 백기를 들었다는 뜻이다.단계적 일상회복이란 일정 규모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국가 의료역량을 의미한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면서 하루 1만 명까지 감당할 수 있다 장담했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 실시 40여 일 만에 하루 확진자 7천 명대, 위중증환자 900명대로 다가가고 병상가동률도 위험수위에 도달하자 정부가 일상회복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위드 코로나 중 사적모임 축소 등 두차례 특별대책도 발표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재택치료 중인 환자가 응급대응 체제 미흡으로 병실대기 중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방역패스도 시행하자마자 먹통에 빠져 시민 혼란만 초래했다.정부는 16일 위드 코로나 이후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 확진자와 위중증환자, 사망자 때문에 18일부터 다시 고강도 거리두기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사적모임 인원을 현재 최대 6명에서 4명으로 제한하고 식당, 카페 등의 영업시간은 밤 9시로 제한했다. 1월 2일까지 실시하는 동안 의료 대응 역량을 탄탄하게 보강하겠다고도 했다.16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15일에 이어 또다시 8천 명선을 육박했다. 연일 최다 기록 경신이다.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 같다고 한다. 백신 접종률 80%가 넘어서면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믿었던 집단면역도 소용이 없다. 최근 신규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돌파감염자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 입장은 한마디로 황당하다. 정부 방역체계를 더 믿어야 할 지 의구심도 난다.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국가 정책에 순응한 국민이 바보스럽다.지금부터 또다시 맞아야 할 일상 멈춤에 대해 걱정도 많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절망감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실시하는 고강도 거리두기가 마지막이길 기대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도 하나 정부의 말대로 탄탄한 의료 역량이 갖춰져 일상회복 길로 빨리 갔으면 한다.

2021-12-16

‘나홀로 불황’ 겪는 대구·경북 아파트 분양시장

대구·경북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들어 대구 수성구를 중심으로 과열양상까지 보였던 아파트 분양 시장이 갑자기 위축되면서 최근 분양한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들이 줄지어 청약 미달사태를 빚고 있다. 대우건설이 최근 분양한 동대구 푸르지오 브리센트(동구 효목동)는 1순위 청약에서 일반분양분 456가구 중 221가구만 분양됐다. 효성중공업이 분양하고 있는 달서구 해링턴 플레이스 감삼 3차아파트도 1순위 청약에서 일반분양분 217가구 중 49가구만 분양됐다. 특별분양에서는 146가구 중 5가구만 분양됐다. 중흥토건이 달서구 두류동에 시공하는 두류 중흥S-클래스 센텀포레는 1순위에서 225가구 중 148가구가 미달됐다. 경북지역의 경우 그동안 분양 불패신화를 이어왔던 포항에서도 청약 미달사태가 나오고 있다.대구의 부동산 시장 위축은 전국적으로 가장 심각하다. 지난 1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1월 대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 달에 비해 0.07% 떨어져 지난해 5월(-0.05%)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는 지난해 4월(-0.18%)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이며, 전국에서는 세종(-0.82%) 다음으로 두 번째로 낮았다. 전국 평균은 0.80%, 5대 광역시 평균은 0.58%로 조사돼 대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대구·경북지역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미달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공급과잉 때문이다. 여기에다 정부의 각종 규제가 겹치면서 투기성 자금들이 사라지고 실입주자 중심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렇지만 대도시 중에서 대구의 아파트 분양시장만 위축되고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이 지역 경제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대구의 아파트 신축 입주물량은 연말까지 5천500여 가구에 달하며, 내년 3월에도 5천여 가구가 분양을 기다리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내년에 대구는 실수요자 시장인 전월세 시장에서도 공급초과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조정대상지역 해제와 미분양관리지역 지정 등 관련 대책이 적기에 나와야 한다.

2021-12-16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천심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선정국.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운명이 한판 승부에 걸렸다. 결전의 날은 다가오는데 국민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예측도 하고 통계도 읽어보지만, 숫자가 분명한 무엇을 가르키지 못한다. 국가적으로도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세인들의 관심과 언론매체의 초점이 선거전에 몰렸으면서도 그 본질이 무엇일까 갈수록 오리무중이 아닌가.후보들의 공약이 선거 후에 물거품이 되는 걸 수다히 목격하였다. 철석같이 믿는 국민도 그리 없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선거전을 바라보는가. 소신과 비전은 어디로 가고 표만 따라 갈대처럼 흔들리는 우리의 선거판. 민심은 정말 천심일까, 아니면 그냥 해보는 소리였을까.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관찰, 치밀한. 그냥 보고듣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비교하고 분석하여 더 나은 선택을 이끌어내는 일. 어차피 모두에게 최선은 없다. 누구든 완벽한 후보도 없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진정성을 헤아려야 한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야 한다. 실수와 과오도 짚어야 하고 성과와 찬사도 들어봐야 한다. 이룬 일의 발자취를 돌아봐야 하고 그르친 바에 성찰이 있었는지 들춰봐야 한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바르게 일하려는 노력과 관심이 보여야 한다. 배려와 공감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하며 거짓과 음모를 경계하는 자세가 보여야 한다. 눌린 자를 헤아리는 측은지심이 있어야 하고 힘센 자의 마음을 여는 재주도 있어야 한다. 다음세대의 눈높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두렵게 여겨야 한다.20·30 유권자 청년층도 중요하지만, 청소년과 어린이들도 살펴야 한다. 학교에서 정치와 사회를 배우지만 목격하는 현실에서 더 많이 깨우친다. 그들은 오늘 대선판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공정과 정의를 배워야 하는데, 불평등과 부정의만 목격하지는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 나라의 내일은 그들에게 달렸는데, 정치권이 오늘 표에만 매달린다면 교육을 해치고 다음세대를 망치지 않을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인사가 만사라면서 날마다 뒤집히는 바꿔치기의 연속. 정직해야 한다면서 아무리 들어도 거짓으로 가득찬 정치권의 권모술수. 긴 미래를 말한다면서 몰두하는 오늘 당장의 손해와 이익. 디지털세상에서 감출 길 없는 세상의 모습에서 모든 게 다 보인다.들어서 배우기보다 보면서 배운다. 선거판이 드러내는 모습은 그들에게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책으로 익히기보다 겪으면서 익힌다. 그들이 익히는 태도와 습관은 정직에 가까울까 거짓에 가까울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배우고 익히는 게 켜켜이 쌓여 선택도 하고 투표도 할 터인데, 이대로 세월이 흐르면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표가 모여 결과를 빚는다면, 천심은 결국 우리가 만든 게 아니었을까. 하늘에서 운명처럼 떨어지는 천심에 기댈 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관찰하는 민심을 키워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다.

2021-12-15

특별자치단체 설립, 행정통합 출발점 되길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위한 준비단계로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이 구체화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을 위한 기구인 광역행정 기획단(임시기구) 승인을 행정안전부에 신청했다고 밝혔다.시·도는 이달초 끝난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행안부와 협의를 벌여 늦어도 내년 1월이면 승인을 받겠다는 생각이다. 또 승인이 나면 내년 2월께 의회 의결을 거쳐 기획단 구성 및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부단체장을 공동단장으로 하고 25명 정도의 조직으로 구성한다고 한다.특별지방자치단체는 2개 이상의 자치단체가 특정 목적의 광역사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을 경우 공동으로 설치하는 특수한 형태의 조직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추진 중인 특별자치단체는 지난해 이래 추진해 왔던 행정통합 논의의 연속선상에 있는 준비단계다. 행정통합에 대한 효과를 시·도민이 체험하고 통합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 대구·경북 통합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시·도 행정통합 목적은 본질적으로 지역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날로 커지는 수도권에 대응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있다. 대구와 경북뿐 아니라 부산·경남·울산, 전남·광주 등 전국 지자체가 이에 공감하고 광역단위 통합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도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에 자극을 받아 메가시티 지원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으로 이젠 법적지원도 가능한 상태다.이런 면에서 대구시와 경북도가 추진하는 특별자치단체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출범해야 한다. 흩어진 여론을 수렴하고 행정통합을 위한 중간 가교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광역자치단체가 이 기구를 통해 교통, 항만, 관광, 산업단지 등 공통 현안분야에서 논의와 상호 이익을 공유한다면 지역발전의 시너지는 충분히 높일 수 있다.시·도 통합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찾는 일은 사활을 건 싸움만큼 중요하다. 통합신공항과 행정통합이라는 필살의 전략으로 활로를 찾아가야 한다. 아직은 작지만 특별자치단체 출발에 거는 시·도민의 기대는 크다.

2021-12-15

바퀴 달린 냉장고의 약진

한때 ‘바퀴 달린 냉장고’라는 혹평을 듣던 국산 자동차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세계적 권위의 자동차 시상식에서 잇달아‘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올해 자동차 선진 시장인 북미와 유럽의 주요 자동차 시상식 10곳 중 6곳에서 최고상을 받았다고 15일 밝혔다. 최고상 없이 부문별로만 발표하는 왓카와 카앤드라이버를 제외하면 8개 시상식에서 6개를 받아 사실상 올해 주요 자동차 어워즈를 휩쓴 셈이다.현대차그룹은 각 국가 및 지역 자동차 전문가로 구성된 단체가 평가하는 북미·유럽·세계·캐나다·독일 등 5개 시상식에서만 3관왕을 차지했다. 엘란트라는 북미 올해의 차, GV80은 캐나다 올해의 유틸리티, 아이오닉5는 독일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자동차 전문 매체가 발표하는 시상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왓카·카앤드라이버·탑기어·모터트랜드·오토익스프레스 5개 시상식에서 현대차그룹은 모터트랜드 올해의 SUV(GV70), 탑기어 올해의 차(i20 N), 오토익스프레스 올해의 차(아이오닉5) 등으로 3번의 최고상을 차지했다. 폭스바겐, 토요타 등 세계적인 완성차 회사들을 압도한다. 특히 의미있는 것은 영국의 자동차 전문매체‘탑기어’의 평가다. 탑기어가 지난 2004년 현대차를‘바퀴 달린 냉장고 또는 세탁기’에 빗대 조롱하며 “영혼과 열정이 없다”고 비난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그후 17년이 지난 올해 탑기어는 현대차의 유럽 전용 소형 해치백‘i20n’을 올해의 차로 선정하며 “경주 트랙이나 일반 도로 어디서든 안정적이고 재밌는 주행능력을 선보였다”고 칭찬했다. K-자동차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왠지 가슴 뿌듯해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15

군위군 대구편입, 선거구획정 전 마무리돼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저께(14일) “내년 6·1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이전에 군위군의 대구편입 법률안이 시행돼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중앙선관위 김세환 사무총장은 이날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대구 동구을)이 내년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이전 군위 편입관련 법률안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선관위도 관련 법률안이 내년 지방선거 선거구가 획정되기 전에 시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률안 시행이 늦어지면 당장 해당지역 지방선거 예비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자유가 제한된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주무기관인 중앙선관위의 공식의견 발표로 군위군의 대구편입 로드맵에 속도가 붙게 됐다.정개특위 소속인 강 의원은 이날 “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된 상태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군위 편입 법률안이 조속히 시행되지 못하면 군위군의 인구 하한 문제로 자칫 의성군과 통합해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12일 자체 홈페이지에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간 관할 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올렸다. 법률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 예고 기간은 오는 22일까지 40일간이다. 의견수렴 후에는 내년 1월 중 법제처 심의와 국무회의 상정 등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1~2월 중 국회에 법률안을 상정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행안부는 법 시행일을 내년 2022년 5월 1일로 못 박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편입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문제는 내년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2월 18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혼란을 없애려면 예비후보 등록일 이전에 선거구 획정이 끝나야 하는데 행안부 일정대로 5월 1일 편입절차가 마무리 되면 출마 희망자들의 선거운동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재의 군위·의성·청송·영덕 선거구는 인구가 줄어들어 선거구 재획정이 불가피하며, 인구 하한선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접 자치단체의 선거구를 편입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선거구획정전 군위편입 법률안이 조속히 시행되도록 행정안전부와 논의하겠다고 약속했으니만큼, 내년 지방선거 예비후보등록일 이전에 군위군의 대구 편입이 정리되길 기대한다.

2021-12-15

생태 전환 교육과 환경 지혜 교육 (下)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가히 폭발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온 국가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K-방역, 백신 등을 내세우며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곧 이길 수 있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이다. 그런 인간에게 코로나는 변종 바이러스로 응수 중이다. 변종에는 정답이 아닌 해답이 필요하지만, 인간은 오로지 정답 찾기에 바쁘다.코로나는 지금까지 살아 온 인간의 삶의 방식이 오답(誤答)이라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인정(認定)을 모르는 인간은 그 신호를 해석할 마음을 잃었다. 마음을 잃는다는 것은 곧 인정(人情)을 잃는 것과 같다.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본 것이 아니고,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진실과 진리가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다.필자는 사람이 만든 말 중에 가장 이기적인 말이 극복(克服)이라고 생각한다. 극복(克服)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냄. 적을 이기어 물리침”이라고 나온다. ‘코로나19 극복’이라는 문장에 쓰인 ‘극복’이라는 말 역시 이 뜻이다.우리는 코로나 상황을 슬기롭게 넘어야 한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코로나를 무조건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한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 초월의 환경 재앙이다.코로나를 극복(克服)보다는 극복(克復)의 자세로 대하면 어떨까! 코로나는 무분별한 개발주의가 부른 인재(人災)다. 그래서 해결 방법도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바뀌면 코로나 양상도 바뀐다. 사람을 바꾸는 방법은 극복, 즉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논어 안연편에는 극기복례라는 말과 함께 “爲仁由己 而由人乎哉(인을 행함은 자기를 말미암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말미암겠는가!)”라는 글귀가 나온다. 여기에 세상 모든 문제를 풀 답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천이다. 실천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죽은 지식은 사람을, 사회를, 지구를 병들게 한다. 지식은 지혜의 근원이다.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키는 데에 필요한 것은 실천이다. 환경 지식 교육도 중요하지만, 지금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이 환경과 관련해서 배운 지식을 스스로 실천을 통해 환경 지혜로 승화하는 실천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의 생각이다. 교육부나 정부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학생의 동의 없이 일방적인 지시로 환경 교육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학생은 마음을 닫고, 교육 당국을 극복(克服)의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양심 없는 이 사회가 환경 미래 세대라고 추켜세우는 학생의 환경에 대한 마음을 영원히 못 열지도 모른다.‘기후 위기 극복 및 탄소 중립 실천을 위한 학교 기후·환경 교육 지원방안’을 세울 때 학생에게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한 번만 물어보면 안 될까!

2021-12-15

닭 우는 소리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항복을 하자 독일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은 나치경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본 회퍼는 반 나치주의자 답지 않게 나치경례를 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본 회퍼를 향해 변절자라고 비난을 했다. 나치경례를 거부하던 자들은 나치의 탄압에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제 목숨 살리기 위하여 망명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나치경례를 용납했던 본 회퍼는 히틀러에 저항하다 형무소에서 처형을 당했다. 본 회퍼에게 경례하는 일은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목숨을 아껴 두었다가 정말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는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예수께서 로마의 병사들에게 잡힐 때에 베드로가 칼을 빼 들고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때에 예수는 칼을 거두고 저항하지 말라고 하면서 순순히 포박을 받았다. 그렇게 목숨 바쳐 싸우려 했던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형장으로 가자 자기 목숨 살리기 위해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거짓증언을 하면서 도망갔다. 베드로는 작은 일에는 목숨을 거는 듯 했지만 정작 큰일에는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 반면에 예수는 작은 일에는 목숨을 걸지 않았지만 큰일에는 목숨을 바쳤다. 인간사가 그렇다. 잘 나갈 때에는 간이라도 빼어 줄듯 온갖 아부를 다하며 선봉에 서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함석헌 선생이 어려운 일을 당하자 평소에 늘 주변에 알랑거리던 사람들이 다 떠나갔다. 함 선생은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하며 탄식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 뱉는 것이 인간지사(人間之事)이고 보니 우리 사는 세상이 감탄고토(甘呑苦吐)의 기회주의 소인배들의 난장판이 될까 걱정스럽다. 공자가 말하길 “성인은 내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군자만이라도 만나 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성인 같은 요순임금 이후에 권력과 사리만 탐하는 소인배 임금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나라가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바울은 “개인적인 혈과 육을 상대하여 싸우지 말고 악한 권세를 가진 통치자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싸우라”했다. 대의명분 없는 일에 제발 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에 목숨걸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제 목숨 살기 위해 도망가던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에 문득 깨우치고 다시 돌아와 대의를 위하여 거꾸로 십자가를 짊어진다. 닭 우는 소리는 깨우침을 주는 은유적 표현으로 육사의 시 ‘광야’에도 나온다.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2021-12-15

피라칸사스처럼

양태순수필가 잎들이 떠나고 있다. 내내 붙들고 있던 가지에서 떨어져 바람을 잡고 날아오르거나 신발 밑창에 붙어서 어디론가 옮겨간다. 더러는 자신을 키워준 나무 주위를 이리저리 흩날리다 밑동에 엎드리기도 한다. 자신만의 색깔로 마지막을 마무리한다.때가 있다는 말이 크게 다가오는 계절이다.가로수에 몇 남지 않은 잎새에 새삼 마음이 간다.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연인의 떠난 마음을 귀찮게 하는 질척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은 끈적한 미련으로 보여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떠날 때가 같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스스로 지금이라고 여기는 순간이 가장 좋을 때가 아닐까.우리는 흐름의 물결에 휩쓸려 갈 때가 있다.마치 내 생각이나 존재의 이유는 없는 것처럼 따라간다. 앞서가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으로 나아가는지 알 틈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뒤처지지 않으려고 용을 쓸 뿐이다. 그래서 낭패를 보기도 한다.나는 가끔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유행이라는 이유로 사들인 옷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이나 나이와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이외에도 헤어스타일, 여행, 맛집 등이 있다. 나에게 맞는다는 말을 잊은 선택이었다. 그중에 으뜸은 검색창에 뜨는 맛집 탐방이다. 수많은 리뷰가 맛있다고 하는데 막상 찾아가서 먹었을 때 이건 아니야, 느낀 적이 많다.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남들과 어울려 가려면 같은 그룹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이다. 내가 중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여 앞서가는 그룹의 끝자리라도 차지하면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뒤처진다는 것이 무능력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해서다.이성의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오십이 넘으면서 덜거덕거리며 더 심해졌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동작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음을 느꼈을 때부터다. 마음이 바빠지고 괜스레 허둥거리며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식에 얹혀간다면 보통은 하리라 믿으며 나를 주장하기보다는 나를 안으로 불러들였다.가로수 뒤로 공장 울타리를 만든 피라칸사스를 본다.봄부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그곳에 겨울이면 빨간 열매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의 일부였다. 계절마다 눈을 빼앗는 갖가지 꽃들과 열매의 유혹에 넘어가서이다. 지금은 나무들이 잎을 떨구어 겨울이라는 여백을 만드는데 홀로 붉다. 근사한 작품으로 다가온다.지금부터 그의 계절이다. 바람이 차가울수록 마음이 시릴수록 더욱 돋보이는 피라칸사스다. 무채색 고요 속에서 흐트러짐 없는 존재를 붉게 드러내어 시선을 가둔다. 배고픈 새들에게 양식이 되어주는 보시로 사람들의 마음에 따스함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그 열매는 봄까지 가지를 붙잡고 있다.피라칸사스는 저만의 속도로 일 년을 산다. 온갖 꽃들이 앞줄에서 사랑을 받아도 시샘하지 않고 묵묵히 때가 되기를 기다린다. 기온이 널뛰기하듯 오르락내리락해도 서두르지 않고 줏대를 지켜 지긋이 내면을 키운다.무엇에 쫓기듯 달려가는 나에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큰 숨 내쉬고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으련다, 쉽지 않겠지만 흉내라도 내야겠다. 그러다 보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시린 바람 드나드는 마음 구멍을 메울 방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산다는 것은 살아내는 일이다. 각자의 앞에 쌓인 문제를 풀어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호흡에 맞춰 인생시계를 설계하면 된다. 겨울 길목을 홀로 밝혀 건너가는 저 피라칸사스처럼.

2021-12-15

길짐승일까 날짐승일까

불가에서 중생(衆生)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중생의 뜻은 두 갈래로 분화되었는데, 하나는 끊임없이 죄를 지으며 해탈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또 하나는 발음이 ‘짐승’으로 변해 사람을 제외한 동물만을 가리킨다.하늘을 나는 짐승은 ‘날짐승’, 땅 위를 기는 짐승은 ‘길짐승’이다. 들에 사는 짐승은 ‘들짐승’이며 물에 사는 짐승은 ‘물짐승’, 산에 사는 짐승은 ‘산짐승’이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은 ‘집짐승’이며 한자어로는 가축(家畜)이다. 이들을 통틀어 금수(禽獸)라고 하는데, ‘禽’은 날짐승이며 ‘獸’는 길짐승이다.우리말은 짐승뿐만 아니라 그것의 새끼도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였다. 사람으로 치면 ‘어린이’라고나 할까,풀치 : 갈치 새끼.강아지 : 개 새끼.망아지 : 말 새끼.고도리 : 고등어 새끼.간자미 : 가오리 새끼.꽝다리 : 조기 새끼.능소니 : 곰 새끼.개호주 : 호랑이 새끼.꺼병이 : 꿩 새끼.애소리 : 날짐승의 어린 새끼.초고리 : 매 새끼.병아리 : 닭 새끼.솜병아리 : 알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솜털 같은 병아리.서리병아리 : 서리가 내릴 즈음 알에서 나온 병아리.숭어/모쟁이, 조기/깡다리, 농어/껄떼기, 멸치/잔사리, 명태/노가리, 노래미/노래기, 누치/대갈장군, 방어/마래미, 웅어/모롱이, 잉어/발강이, 민어/암치, 상어/전데미, 전어/전어사리암소의 배에 있는 송아지를 ‘송치’라고 불렀다. 길짐승에게 사람처럼 태명을 붙인 이유는 소를 가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밭을 갈고 수레를 끌고, 농사에 가장 큰 노동을 담당하는 소는 사람과 가장 밀착된 교감이 있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소를 사람처럼 소중하게 여겼다.동부레기 : 뿔이 날 만한 나이가 된 송아지.부룩소 : 아직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 엇부루기.하릅송아지 : 태어난 지 1년 된 송아지.불강아지 : 몹시 여윈 강아지.찌러기 : 성질이 몹시 사나운 황소.푿소 : 여름에 생풀만 먹고 자라 힘을 잘 못 쓰는 소.애돝 : 한 살 정도 된 돼지.햇돝 : 그 해에 태어난 돼지.짐승은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다. 한 태에서 낳은 새끼 가운데 제인 먼저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불렀다. ‘門열이(문+열+이)’ 즉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으로 발음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무녀리는 산도를 연다고 안간힘을 써서 그런지 다른 새끼들에 비해 몸이 약하다고 한다. 그래서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빗대어 비유하는 말로도 쓴다.날짐승도 아니고 들짐승도 아닌 짐승이 있다. 닭과 오리인데, 둘은 멀리 높이 날지 못하거니와 걷거나 뛰는 동작도 서툴기 그지없다. 저리 굼떠서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데, 멸종되지 않고 종족을 보전하고 있다. 사람에 의해 길러진 ‘길짐승’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사람이 짐승의 생태에 개입한 건 개가 처음이라고 한다. 집짐승화되면서 개는 야성을 버리고 주인에게 아양을 떠는 동물이 되었다. 천적이 우글거리는 야생에 비하면 집은 먹이와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니, 주인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습성이 길러진 것이다.개들은 주인을 보면 배를 발랑 드러낸다. 포유류는 신체에서 배가 가장 약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강자에게 배를 드러내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주인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행위이다.애완견은 야생에서 살지 않아도 되니, 죽어라 뜀박질할 일도 없다. 천적의 눈을 피해 숨거나 몸을 움츠릴 일도 없다. 사람에게 재롱을 떨면 되고 예쁘게 보이면 된다. 그래서 사람과 함께 사는 개는 새끼를 낳을수록 예쁘고 귀엽게 진화한다. 요즘 반려동물을 보면 다 그렇다.야생에서 살 자유를 포기한 집짐승과 야생에서 마음껏 살아가는 들짐승, 둘 중 누가 행복할까.생뚱맞은 말 같지만, 이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교칙, 규칙, 윤리, 도덕에 길들여진 존재인 인간, 밥줄을 쥔 ‘센놈’에게 아양을 떨어야 하고 잘 보여야 하고 더러는 충성을 서약해야 한다. 이렇게 살라고 태어난 목숨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모든 속박을 끊고 산들바다로 떠나 원시의 자유를 누린다.어느 바닷가에서 닿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속이 탁 트인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보면 시원하고 유려한 날갯짓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유를 향한 동경 한 컷이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2-15

비판하기의 책임감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Pixabay 글을 쓴다는 직업의 특성상 내 글에 대해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 보았다는 인사치례 정도의 말이 대다수이지만, 개중에는 나의 글을 세밀하게 읽고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고마우신 분들도 있곤 한다. 그런 의견을 들을 때면 소중한 독자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런 지적들에 괜시리 서운한 마음이 들어 마음에 상처를 받곤 한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내 귀는 종종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대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로부터 문제점을 찾아낸 후 이를 개선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비판이라면, 비난은 대상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감정적으로 힐난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겠다. 분명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보면 둘을 구분하는 건 매우 간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현실에서 이 둘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건설적인 비판을 가장하고 대상을 깎아내릴 뿐인 경우도 적지 않으며, 비난하듯 감정적인 표현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 이면엔 대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돼 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비난인지, 혹은 조금은 감정적인 비판인 것인지를 구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비판은 수용하고 비난은 멀리하라는 건 누구든 알고 있지만, 그건 내가 나의 마음을 지킬 힘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지치고 힘든 순간이면 타인의 비판은 얼마든지 내 마음을 꺾어버릴 방아쇠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내가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지적인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타인의 작품에 대해 마치 폭로하듯 문제점을 지적하곤 한다. 그러한 나의 행동이 나의 가치를 올려주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다.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런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한낱 식사를 하더라도, 그 음식에 대해 평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더 나은 사례를 말하느라, 그들은 종종 내가 자신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이런 종류의 평가들은 대개 그것을 만족하며 먹는 이를 향해 “네가 제대로 하는 집을 안 가봐서 그래”라는 비난 아닌 비난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아 함께하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곤 한다.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건 비판이 단지 대상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판이라는 건, 타인에 대해 말한다는 건, 다른 대상에 대해 말한다는 건 생각 이상의 책임을 요구한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 말을 듣게 될 타인이 경험하게 될 감정적 소요에 대한 책임.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태도와 말을 잘 정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한 것과 무책임한 것은 다르다. 굳이 일침을 날린다며 치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말들을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만약 내가 당신의 비판을 받아들이길 원한다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져달라는 부탁이기도 하다.어쩌면 이런 나의 태도 자체가 굉장히 유아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지적받고 싶지 않고, 평가받고 싶지 않은 그런 아이 같은 생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더 잘할 수 있잖아’라는 식으로 무책임한 비판과 비난을 듣는 것이 때로는 나를 지치게 만든다. 왜 나는 구태여 글을 쓰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몰려올 정도로 말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실 나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근근이라도 꾸준히 잘 해나가고 싶은 것이고, 그런 종류의 비판이야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힘들고 지친 사람에게는 아주 간단한 칭찬도 때로는 구원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취향과 작품에 대해 평가할 때면 자신에 대한 것보다 수십 배는 엄격해져 무책임한 비판을 쏟아내기 일쑤다. 마치 창작을 하는 사람보다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처럼.사람들은 때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앞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은 감수해야 한다는 듯이 말하지만, 그건 무언가를 만들어본 적도, 앞에 나서 본 적도 없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정말로 어려운 건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쉬운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을 타인보다 우위에 서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자신을 증명하는 건 그 사람이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지, 쉬운 일을 반복할 때가 아니다.

2021-12-14

술 한 잔의 힘

술 마시기를 즐기는 편이다. 술에 관한 대단한 지식이 있다든가 그렇다고 소주를 궤짝으로 마시는 엄청난 술꾼도 아니기에 정말이지 ‘즐긴다’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술의 세계는 넓고 주당은 많지만 나의 식견은 짧으니 이렇게 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지. 어쩌겠는가. 감히 외쳐본다. 나는 술이 좋아.어쩌다 나는 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집안 내력은 아니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그들이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늦은 저녁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아버지가 “통닭 사 왔다!”고 외치는 건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술사랑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얻게 된 후천적 결과물인 셈이다.나를 술의 세계로 인도하고 혹독하게 단련시킨 건 대학 동기들이다. 우리는 서울 아현동과 신촌 일대를 누비며 어제도 내일도 마시고 또 마셨다. 따로 약속할 필요도 없었다. 단골 술집에 가면 나의 동료들이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지는 해를 보면서 건배를 외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귀가하던 날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신촌의 어느 술집 사장님은 우리가 자리에 착석함과 동시에 서비스로 모둠 튀김을 내어줄 정도였다.그때의 나는 술보다 술자리가 더 좋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글 쓰는 청년들, 어딘가 이상하고 비뚤어진 구석이 있는 인간들과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찌나 재밌던지. 날이 어두워지면 밖으로 뛰쳐나와 그들과 함께 실컷 떠들면서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눴다. 술 한 잔에 낯선 이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목소리가 커졌으며 선명한 정신일 때는 하기 힘든 이야기들도 술술 흘러나왔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함께 술을 마시는 행위가 늘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술병이 쌓여갈수록 더 그랬다. 이성이 풀어지면서 드러나는 민낯은 당연하게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자리에서 곯아떨어지는 사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를 벌컥 내 거나 남들과 시비가 붙는 사람, 집에 가겠다고 택시를 부르는 사람, 가겠다는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함께 술을 마시는 일에는 서로의 흑역사는 묻어두자는 암묵적 약속이 수반되는 것이 아닐까. 부끄러운 행동을 하나하나 들추어내자면 끝이 없으니.나 역시 다양한 술버릇이 있다. 그나마 공개할 수 있는 버릇 중 하나는 극도의 감정 과잉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다지 재미없는 상대의 농담에도 자지러지게 웃고 별로 슬프지 않은 일에도 펑펑 눈물을 흘린다. 눈앞에 있는 땅콩이 너무 조그매서 눈물이 나고 금이 간 소주잔의 모양에 마음이 깨질 듯 아프다. 창피한 모습이지만 널뛰는 감정을 아무렇게나 표출하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언제부터일까. 나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술자리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나 자신의 행동을 극도로 검열하게 되었으며 아무 옷이나 훌렁훌렁 걸쳐 입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들이켜는 술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주종과 관계없이 꼴딱꼴딱 잘 들이키는 편이지만 요즘에는 특히 와인을 즐겨 마신다. 계속 들이켜도 배가 부르지 않고 이렇다 할 안주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좋다. 길쭉한 잔에 와인을 꼴꼴꼴 따른 뒤 입안에 잠시 머금고 목구멍 뒤로 꼴깍 넘기면 고단한 하루가 서서히 끝나는 것이 느껴진다. 술기운이 스르르 온몸을 감싸면 아,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곤 하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술을 마시니 알겠다. 온전한 정신으로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두침침하게만 느껴지는 고민에 명쾌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날들이 늘어간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 날에는 술 한 잔의 힘이 필요하다.항상 취한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술기운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었던 나는 다음 날이면 다시 소심하고 무력한 인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취기로 걸었던 전화를 후회하고 상대에게 뱉은 말을 자책하며 내가 아닌 내가 한 약속에 발목이 잡힌다.그럼에도 아직 술 한 잔은 내게 여전한 위안이 된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골라 담는 맥주와 샤워를 마친 후에 마시는 와인, ‘요즘 일 때문에 힘들지? 저녁에 만날까?’ 친애하는 친구에게 오는 연락이 가진 위로의 힘이 소중하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한 잔의 술을 마신다. 내일의 나는 나약할지라도. 일단 지금은 건배.

2021-12-14

시민기자들의 ‘생생한 현장뉴스’ 기대된다

경북매일신문 ‘스마트 시민기자단’이 ‘지역민들과 함께 다양한 뉴스를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새해부터 본격적인 취재활동에 들어간다. 그저께(13일) 포항시 중앙로 본사 대강당에서 발족식을 가진 시민기자단은 교사, 문화관광해설사, 사진가, 생활지원사, 주부, 문화기획자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됐으며, 첫 출범하는 시민기자단이라는 의미로 ‘알파그룹’이라고 명명됐다.시민기자단은 앞으로 생생한 현장감이 묻어나는 기사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며, 언론사와 지역사회의 가교역할도 하게 된다. 최윤채 본사 사장은 이날 발족식에 참석해 “지역의 다양한 이슈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밀착 취재해 공동체 구성원이 지역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국내외에서 시민기자제도는 이제 언론사의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원천으로 자리잡았다. 시민기자제도는 미국 언론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 방송사와 신문사가 다양한 이름으로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다. 시민기자들이 쓰는 기사가 수습과정 등을 통해 훈련받은 기존 언론사 기자들에 의해 작성되는 뉴스보다 불완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존 기자들이 다루는 출입처 중심의 규범적인 뉴스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현장감 있는 기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오히려 독자들의 흥미를 더 끌 수 있다.본사가 시민기자제를 도입하는 기본 목표는 시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하자는데 있다. 시민기자들은 지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는 신문사를 대신해, 생활현장을 중심으로 한 이슈를 보도하면서 시민과 언론의 간격을 좁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앞으로 취재활동에 나설 12명의 본사 시민기자들은 이날 발족식에서 “이웃을 먼저 돌아보고 보살피는 가슴 따뜻한 삶의 현장을 소개하겠다”(윤정미 플로리스트), “지역의 숨은 명소를 널리 알리겠다”(박월수 성인문해교실강사), “한장의 사진을 통해 잠시 머무르는 여유를 전하겠다”(서정애 교사)는 포부를 밝혔다. 새해부터 현장을 뛸 본사 시민기자들의 활동에 거는 독자들의 기대가 크다.

2021-12-14

이전투구(泥田鬪狗)

정도전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등장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때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본격 활약을 시작한다.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을 비롯해 현재 경복궁과 도성 자리를 정하고 이름도 그가 지었다.하루는 태조가 개국공신인 정도전을 불러 우리나라 팔도사람의 특징을 네 글자로 표현해 볼 것을 명한다. 이때 이전투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그는 함경도 사람을 이전투구에 비유했다.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처럼 강하다는 뜻이다. 함경도 출신인 태조가 그의 말을 듣고 언짢은 듯 표정을 짓자 그는 “돌밭을 가는 소와 같다.”라는 뜻의 석전경우(石田耕牛)처럼 함경도 사람은 우직한 성품을 가졌다는 말로 바꾸어 설명했다고 한다.참고로 그가 지역별 사람의 특징을 평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사람은 거울에 비친 미인(鏡中美人)으로, 충청도 사람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春風明月)과 같고 전라도는 부드럽고 양반의 품성(風前細柳), 경상도 사람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松竹大節), 강원도는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岩下老佛)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이전투구는 원래 함경도 사람의 강인한 성격을 평하는 말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다투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이는 뜻으로 변형이 됐다.교수들이 뽑은 올해 한국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 가운데 이전투구가 세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코로나나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힘들어하는 국민은 안중에 없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마치 이전투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우리의 정치 대오각성이 있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14

열다섯, ‘오감도’와 오미크론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模型心臟(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업즐러젓다.내가遲刻(지각)한내꿈에서나는極刑(극형)을바닷다.내꿈을支配(지배)하는者(자)는내가아니다.握手(악수)할수조차업는두사람을封鎖(봉쇄)한巨大(거대)한罪(죄)가잇다.”(한자만 한글로 병기하고 원문 그대로 옮김)26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이 1934년 8월 8일자 조선중앙일보에 게재한 시 ‘오감도 시제15호’의 마지막 6연이다. 어절 사이는 물론 문장 사이의 띄어쓰기도 하고 있지 않은 이 시는 ‘오감도’ 연작시의 열다섯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 ‘오감도’ 연작시는 1934년 7월 24일에 실린 ‘시제1호’로부터 시작하여 30편까지를 계획하였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시15호’에서 결국 중단되었다.연작시 15편 모두에 대해 해석이 난분분한데, ‘시15호’에서 나는 전율을 느낀다. ‘악수조차 할 수 없는 두 사람’은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이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인사의 악수, 화해의 악수, 조약의 악수조차 할 수 없는, 시 창작 86년 뒤인 미래 세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해서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종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알파와 델타 그리고 지금 전 세계를 다시 긴장시키고 있는 오미크론 등 몇 개의 변이종만 아는 정도이지만 ‘오미크론’(Omicron)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열세 번째 변이종이다. 그런데 ‘오미크론’은 고대 그리스어 알파벳의 열다섯 번째 글자인 ‘O’의 이름이다. 열세 번째 이름인 ‘뉴’(nu)는 ‘뉴(new)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열네 번째 이름인 ‘크시’(xi)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영문 성(Xi)와 같아서 의도적으로 건너뛰었다고 한다.열세 번째 변이종에 열다섯 번째 글자 이름 ‘오미크론’을 붙인 것인데, 나는 ‘오감도 시1호‘의 첫 문장 ‘十三人(십삼인)의兒孩(아해)가道路(도로)로疾走(질주)하오.’를 떠올리며 다시 전율하였다. ‘십삼인의 아해’가 지금 열세 개의 바이러스로 돌변한 것은 아닐까? 이들이 세계의 길이란 길을 종횡무진 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시 ‘오감도’가 새롭게 읽힌다. 이상의 난해한 연작시는 열다섯 번째 작품에서 멈추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변이종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한데, 이 바이러스의 질주가 언제나 멈출 것인가.‘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 15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많은 강연자가 발굴되었고, 세바시 15분 남짓의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공자는 열다섯 나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吾十有五而志于學). 열다섯은 이렇게 좋게 풀어낼 수도 있는 숫자인데 코로나19는 이 숫자의 함의마저 혐오스러운 ‘변이’를 만들어 내었다.아, 어느덧 대학의 한 학기 수업 총 15주차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은 2년째 봉쇄 아닌 봉쇄를 당한 상태이다. 국경과 학교와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는 바이러스에게 있을까,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추악한 인간들에게 있을까?

2021-12-14

신년 해맞이 줄취소…잠시 멈춤에 동참을

포항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올해 12월 31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열릴 예정인 제24회 호미곶 한민족 해맞이축전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호미곶에서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해맞이행사가 열리지 않게 된다.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매년 2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전국 최고의 해맞이 명소다. 새해 소망을 빌며 해맞이 구경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이어서 안타깝다.하지만 위드 코로나 이후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감염증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찾는 해맞이행사 취소는 불가피하다. 호미곶 뿐 아니라 경주 문무대왕릉, 영덕 삼사해상공원, 울진 등 전국 곳곳에서 해맞이 행사가 줄 취소되고 있다.지난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의 방역체계 전환 이후 지금 우리는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루 7천명 안팎의 신규 확진자가 연일 발생하고 1천명에 육박하는 위중증 환자로 병실 부족난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중앙방역대책본부는 코로나19 주간(12월 5∼11일) 위험도 평가에서 수도권에 이어 비수도권도 최고단계인 ‘매우 높음’으로 상향했다. 정부는 2∼3일 지켜보고 감염세가 더 악화되면 특단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특히 전파력이 센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또다시 코로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우리나라도 오미크론 확진자가 13일 100명을 넘었다. 보건 당국은 수도권에서 호남까지 번져 오미크론의 전국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연말 특수가 사라진 자영업자 등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지만 대규모 사람이 몰리는 해맞이 행사의 중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지 2년이 지났으나 아직 종식에 대한 그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백신접종이 유일한 대책이나 완벽하지가 않다. 지금은 국민 모두의 자제와 인내심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때다. 국민 각자가 방역수칙을 지키고 정부 방역대책을 지켜봐야 한다. 잠시 멈춤으로 코로나 확산세를 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적극 동참에 나서야 한다.

2021-12-14

친환경을 꿈꾸는 미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철길숲길을 따라 서서히 페달을 밟으니, 넌지시 억새가 흰손을 흔들고 차마 떨어지기가 아쉬운 듯 단풍잎새는 팔랑거리며 길손을 반기고 있다.연말이 다가올수록 왠지 모를 다급함으로 일에 채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다운 시간을 제대로 못 보냈는데, 이 날만큼은 한동안 세워 둔 자전거를 점검하고 오랫만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길을 달렸다.철길숲길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포항 철길숲은 ‘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답게 주변에는 수십종의 나무와 화초가 자리잡았고, 특색있는 각종 조형물들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여러가지 테마길에 걸맞게 설치된 조형물들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여년간 철마가 달리던 선로가 사람과 자연,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친환경 복합테마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한 길을 자전거로 누비며 다다른 곳은 송도해변에 위치한 포항수협 갤러리였다.포항수산업협동조합 문화갤러리에는 (사)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을 통한 환경 사랑운동과 계몽운동에 목적을 둔 순수미술단체인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을 찾은 것은, 필자 나름대로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며 친환경 캠페인에 동참하여 환경의식을 고취해보고자 함이었다. 전시장에는 각종 생활용품이나 자동차, 공구, 도구, 용품 등을 재활용하거나 이색적으로 재해석한 미술품, 설치물 등이 다양하게 반겼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미지와 글귀, 식탁에 올려지는 산해진미의 이면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올가미 등의 그림이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특히 이색적인 것은 전시장 오른쪽 벽면을 가득 메운 ‘길바닥 껌 그림 친환경 캠페인 프로젝트’ 코너였다. 지난 10월 중순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회원들과 포스코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길바닥에 버려진 껌딱지에 그림을 그려 50여일간 전시 후 11월 말경 껌 그림을 제거, 회수하여 껌 그림으로 ‘그린 리더 배지’를 만들어 봉사활동 참여자들에게 나눠주는 추억나눔 테마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길거리 행위예술처럼 길바닥에서 껌 그림 친환경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무심코 버려지는 양심과 이기적인 소비문화 행태에 경각심을 주고 환경사랑의 실천을 제시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왔다.인간과 환경은 물과 고기의 관계(水魚之交)이다. 자연스러움이 안정과 평온, 편안함을 가져온다. 일체의 생명과 생태변화의 장(場)인 자연을 가까이하는 친환경적인 요소와 시도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가꾸고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싶다.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친환경 미술을 운동으로, 문화로 유지, 발전시켜 환경 친화적인 공존의 삶을 꿈꾸는 작지만 큰 변화의 걸음이 고무적으로 여겨졌다.

2021-12-13

기계의 발전과 유지, 그리고 개선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인류는 탄생 이래 인간의 노동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구를 개발하거나 동물 등 다른 힘을 빌려 농사를 짓거나 재화를 창출하는 노력을 지속하여 왔다. 특히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하여 생산하던 수공업에서 필요한 물건을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과 더불어 촉발된 산업혁명으로, 재화의 생산에 무생물적 자원을 광범하게 이용하게 된 조직적 경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이렇게 기계를 활용해 대량의 재화를 창출하게 되면서 국내 수요를 충족한 국가들이 남는 물건들을 앞다투어 강제로 다른 국가에 소비시키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1,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전쟁을 치르면서 기계는 더욱 발전을 거듭하여 생산성은 크게 향상 되었으며 기계가 없으면 생산을 못할 정도가 되었고 전기 컴퓨터와 결합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에 와서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빅데이터, 로봇기술, 가상현실(VR) 등과 융합되어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가 발전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생산 측면에서 보면 이 모든 기술의 발전과정 중심에 기계가 있고 복잡화, 장치화, 대형화 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고장이며 이를 예방하고 고장시 빠르게 복원하기 위한 전문가가 필요해지게 되고 운용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비용 증가의 문제를 떠나 기계가 고장없이 도입 당시의 모습으로 유지 보전(保全)되어야 운용하는 사람이 편하게 되며 생산성의 향상으로 연결된다.설비를 원래 도입 당시 모습으로 유지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5가지 요소가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조정하고, 교체하는 것이다. 이를 필자가 지도하는 P사에서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3가지를 마이머신 활동으로 명명하고 1단계 설비기본청소, 2단계 불합리 발굴 개선, 3단계 청소·점검, 급유·급지 기준서 작성 단계로 구분하고 전 직원이 참여하여 설비의 성능을 복원하고 열화를 방지하여 고장을 예방하는 활동을 2007년부터 지금까지 전 설비에 대하여 꾸준하게 실시하고 있다.포항·광양제철소에 마이머신 대상 설비로 구분한 수가 무려 1만3천여 개소에 이르며 매년 2천여 개소 이상 주임 단위에서 불합리 개선 활동을 하고 있다. 주임 단위당 연 평균 10건의 불합리를 개선한다고 보면 2만건 이상의 개선이 매년 발생하며 14년간 이어지고 있음으로 어림잡아 계산해도 28만건 이상으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실증되고 있다. 이야말로 제철소의 진정한 현장력인 것이다.현대와 같이 제조 설비가 아무리 복잡해지고 자동화·첨단화 되어도 최종적으로는 전기적 에너지를 물리적으로 변환하는 장치인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여야 재화의 생산이 가능하고 이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래 상태로 보전하는 활동이 중요하며 ‘설비보전의 5요소’인 것이다.앞으로의 현장은 기계의 발전과 더불어 적은 인원으로 설비 유지 보전을 얼마나 잘 하는가가 기술력이고 진정한 현장력이 될 것이다.

2021-12-13

그 모습을 되찾은 신라시대 청동 삼환령

경주 쪽샘 지구 신라 고분유적은 신라 귀족들의 집단 묘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적은 2007년 3월부터 현재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14년 이상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고대 왕국 신라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그 노력들로 인해 수년 간의 조사로 700여 기가 넘는 많은 무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덤 속에서는 부장품으로 사용된 다양한 종류의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는 발굴자와 연구자들의 땀이 이뤄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물은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되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깨지고 부서지고, 부식된 상태로 출토된다. 긴 세월의 흐름에 따른 것이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손되거나 부식된 신라시대의 유물들 중 상당수는 보존과학실로 옮겨져 보존처리 작업이 이뤄진다. 여기서부터 유물의 과학적 분석이 시작되는 것이다.쪽샘 41호 고분(2010~2013년 발굴)에서 발굴된 청동 삼환령 역시 부식이 상당히 진행되고 파손되어 있었다. 그런 상태였으니 주변의 작은 편까지 모두 수습하여 보존과학실로 옮겨와 보존 처리와 과학적 분석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가장 먼저 청동 삼환령의 처리 방법과 전반적인 처리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상태 조사를 실시하였다. 상태조사는 유물의 구조와 형식, 형태를 먼저 서술하고 부식 상태와 녹의 색상, 파손 부위, 유기질 유무, 재질 성분의 특이점 등 세부적인 것을 상세하면서 자세하게 기술하였다.철저한 상태 파악과 기록 조사 이후에는 삼환령 표면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하였다. 유물 표면에는 몇 가지 부식층이 확인되었는데, 동합금 유물의 부식물과 삼환령 구슬 내부의 철환에서 생성된 철제부식물 두 종류가 표면에 두텁게 고착되어 있어서, 두텁게 생성된 부식물은 실체현미경을 보며 메스나 소도구를 이용하여 물리적인 방법으로 신속히 제거해 주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고대 유물 연구에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이물질을 깔끔하게 제거하는 작업이 끝나면 유물 내부의 부식인자를 제거해주는 안정화 처리와 부식으로 인하여 재질이 약화되어 있는 유물에 강화제를 주입하고 표면을 코팅해주는 강화처리를 해주어 보존처리 과정을 완료하였다. 서두르지 않고 순차적으로 작업은 진행됐다.이러한 세세한 보존처리 과정 이후에는 다시 전체적인 조사를 통해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혹은 처리 후에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있는지의 여부를 정리하는 ‘처리 후 조사’를 하고 보존처리를 마무리 하게 된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삼환령의 모습은 둥근 고리에 세 개의 방울이 달린 매우 특징적인 유물로 확인되었다.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삼환령은 둥근 고리에 정삼각형 형태로 방울이 달리는데 반해 쪽샘 삼환령은 한 개의 방울이 파손되어 제작 혹은, 사용 당시 리벳으로 수리한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다.이처럼 보존처리 후에 해당 유물의 재질 확인, 내부 구조와 결합 방법, 수리한 흔적을 더 알아보고자 다양한 분석연구를 실시하는데, 삼환령의 경우는 재질을 확인하기 위해 X선 형광분석기(P-XRF)라는 장비를 이용하게 됐으며, 내부 구조와 결합 방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X선 촬영과 실체현미경 등을 사용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첨단의 과학기술이 과거 유물들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그렇게 분석을 진행한 결과 삼환령의 성분은 구리, 주석, 납이 주성분인 청동합금으로 밝혀졌는데, 구리의 함량이 다소 높게 확인되었다. 한편 X선 촬영을 통해 삼환령 방울 내부에는 작은 구슬이 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특히 기존에 발굴된 삼환령은 대부분 방울 안에 작은 돌이나 청동 구슬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쪽샘 출토 삼환령의 경우는 철로 만든 구슬(철환)이라는 것이 새롭게 밝혀졌으며 이 수리된 방울에만 철환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속적이고 면밀한 연구의 결과가 현실에서 도출된 것이다. 김은정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마지막으로 삼환령의 용도에 대해서는 각각의 연구자마다 이견이 있다. 말에 매달아 장신구로 사용했다는 견해와 사람이 착용한 장신구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는 것이 그것이다.발굴된 신라 무덤 속에는 말과 관련된 다양한 용품이 확인되고 있다. 물론 발걸이나 안장과 같이 기능적인 유물도 있고, 말을 꾸미기 위한 장신구도 있다. 삼환령은 말에 매달아 소리를 내는 말방울의 기능을 하면서 말을 꾸미는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한편 일부 연구자들 중에는 무덤에 매장된 사람의 허리 위치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사람이 착장한 장신구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신라 무덤 유적에서 발굴된 깨지고 부서진 보잘것없는 유물이 보존 처리와 보존과학의 노력으로 1500년 전 신라인의 문화와 기술을 전해주는 보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의미가 작지 않은 일이다.

2021-12-13

지금, 우리의 머릿속을 맴돌며사라지지 않는 그 노래의 멜로디처럼

어떤 문장은 읽고 지나간 뒤에 계속 우리를 붙잡고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 어제 잠깐 들었을 뿐인데 오늘 하루 동안 내 주변을 맴돌면서 사라지지 않는 노래의 멜로디처럼.아니,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지금 머릿속에 자동반복이라도 틀어놓은 듯 울리고 있는 노래가사의 멜로디는 마치 귀로 듣고 있는 음향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지만, 어제 읽었던 어떤 문장은 마음 깊숙하게 들어 있는 무언가를 건드려 상처를 내든가 해서, 오랫동안 다시 생각나고, 생각나고 한다. 피가 난 상처가 아물어 완전히 나아도 아렸던 그 상처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떨쳐내고자 하는 기억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글귀에 한 번 붙들린 인간은 그곳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도 인스타나 페북 같은 SNS에 따옴표로 인용된 문장들이 대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누군가의 글 속에 들어있었던 그 문장은 이제 누군가의 마음속을 붙들고 놓지 않으면서 나를 표현하는 피와 살이 되었다.영국 밴드 비틀즈의 곡 ‘엘레노어 릭비(Eleanor Rigby)’를 하루 종일 흥얼거렸던 어떤 소설 속 인물처럼, 어떤 멜로디나 가사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야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문장이 우리를 붙드는 것은 이처럼 바쁜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만큼 강렬하고 충동적인 경험이다. 우리가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라면, 주로 그 멜로디가 반복적이고 그래서 중독적인 까닭일 테다. 하지만, 어릴 때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던 어떤 노래의 가사가 새삼스럽게 우리의 마음 안쪽에 슬쩍 들어오기도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어떤 문장이 우리를 붙드는 것은 그 문장이 지금 나의 현재로 슬며시 들어와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하기 때문일 것 같다. 그렇게 우리가 여기저기에서 읽고 지나갔던 문장들은 어느새 나의 지금 마음의 풍경이나 바람을 표현하는 소중한 문장으로 바뀐다. 잡다한 금속이 귀중한 금으로 바뀌는 연금술 같은 경험이다.고백하자면 어렸을 때는 무수히 읽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는 시들이었다. 아마 어릴 때의 나는 계절의 변화 같은 당연한 것들, 눈이 내리고, 싹이 움트고, 하늘이 높아지는 모든 변화들을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계절이 변화해가는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나이가 되니, 예전에는 심상히 지나쳤던 그 시들이 묘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과서로만 배우고 가르쳤던 ‘국화 옆에서’조차 새롭게 다가온다. 문장이 변했을 리 없으니, 내가 변한 것이고, 때가 되어 그 문장이 나를 붙들게 된 것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읽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지만, 언제나 그것을 붙들리는 시기는 따로 있다.시의 경우만은 아니다. 소설처럼 읽고 있다 보면 어느새 지금 내가 문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소설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스토리의 내용에만 집중하게 되기 마련이다. 헌데 가끔씩 어떤 소설의 문장은 유독 존재감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씩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한 번의 숨이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공들여 상징으로 수놓은 문장이 아니라고 해도, 그저 여느 소설에라도 있을 법한 투박한 문장이라도 그것을 읽고 있을 때의 나의 마음으로 인해, 그 문장은 나를 붙드는 것이다. 묘하게 기억 속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그렇게, 어떤 문장은 읽고 지나간 뒤에도 계속 우리 주변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를 내기도 하고, 그것을 봉합해주기도 한다. 지금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의 멜로디처럼, 말이다. /홍익대 교수

2021-12-13

포스코그룹 ‘철강기업’ 이미지 벗어날 때 됐다

포스코그룹이 지난 주말(10일) 이사회를 열어 지주사 체제 전환 안건을 의결했다. 그룹을 물적 분할해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존속법인)를 세우고, 그 아래 철강 사업회사, 포스코케미칼, 포스코에너지 등을 자회사로 두는 방식이다. 철강회사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2차전지, 수소 등 친환경 소재업체로 자리를 굳히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지난 4월 “포스코그룹이 철강을 넘어 전기차, 2차전지소재, 수소 등 친환경 사업 선도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포스코는 지주사 체제 전환으로 미래 핵심사업을 육성해 2030년 기업가치를 현재의 3배 수준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포스코는 지주사를 상장사로 유지하고, 철강사업 회사를 100% 자회사에 비상장 상태로 유지하는 물적 분할 방식을 택했다. 회사를 분할하더라도 핵심사업인 철강부문을 상장하지 않으면 해당 실적이 그대로 지주회사에 반영된다. 주주들의 주가하락 우려를 염두에 둔 결정이다. 지주사 전환은 1월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와 기존 주주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변수로 남아 있다.포스코 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업은 성장하다 보면 창업 당시의 사업 이외에 새로운 분야의 다양한 사업을 하게 된다. 사업 범위가 커지다 보면 경영 효율성을 위해 사업체별로 별도 회사를 분리하게 되고, 분리된 회사들을 총괄해서 관리하는 지주회사가 필요하게 된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서도 주식의 소유를 통하여 국내 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를 지주회사로 정의하고 있다.지주회사 체제의 장점은 사업별 담당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업체를 별도의 자회사로 떼어 놓으면 해당 자회사의 재무제표를 통해 자회사 경영진의 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포스코는 그동안 유망 신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철강 중심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시장에서 신성장 사업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탄소 중립 등 산업계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지주사 체제 전환을 통해 시너지를 높이려는 계획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20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