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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북도 해외시장 개척, 코로나 극복 희망점 되길

경북도가 오는 11월 27일 6박8일 일정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20여명의 대표단은 네덜란드와 터키 등을 방문하고 현지 단체장 접견과 투자 유치를 위한 각종 업무협약 등을 체결할 예정이다. 경북도의 이번 해외시장 투자유치 및 개척 활동은 2년 가까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처음 이뤄진다는 점에서 기대와 의미가 크다. 특히 오는 11월 시작되는 위드 코로나에 발맞춰 벌이게 되는 경북도의 해외시장 투자유치 활동은 업계 지원을 위한 시의적절한 대응으로 평가된다.경북도는 이번 해외투자 유치 활동에 이어 내년 1월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2)도 참석한다. CES와 연계한 투자유치와 통상확대, 지역농산물 판매 등을 위한 해외시장 개척도 함께 벌이게 된다고 한다.경북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2년 가까이 해외 교류와 투자유치, 통상확대에 나서지 못했다”며 위드 코로나시대 개막을 계기로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그동안 문을 닫고 있던 해외시장도 백신접종 확대 등을 통해 이제 조금씩 문호를 개방하는 추세에 있다.코로나 사태로 침체에 빠졌던 국내시장 경기를 일깨우고 수출업계에게는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경북도의 해외투자 유치 활동에 많은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현재 경북도의 수출실적도 코로나 대유행에도 불구,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해외투자 유치 활동으로 올해 경북도가 계획한 400억 달러의 수출실적이 무난히 달성하길 기대한다.2년 동안 움츠렸던 해외시장 활동이 이제는 기지개를 켜고 있다. 괌과 사이판 등 해외 항공 길이 열리고 해외교류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경북도의 이번 해외시장 개척은 이런 점에서 선점적 의미를 넘어 업계에게 큰 자극제가 될 수 있어 긍정적이다.경북도는 위드 코로나에 맞춰 나서는 해외시장 투자유치가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달라진 국제환경을 잘 살펴보고 지역업계에게 도움이 될 정보 등을 잘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본격적인 위드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경북도의 해외투자 전략에 기대를 걸어본다.

2021-10-20

오늘부터 스쿨존에 잠시 정차해도 단속된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21일부터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안 모든 도로의 차량 주정차가 금지된다. 통학거리가 멀어 부득이 차량을 이용해서 등하교해야 하는 어린이를 위해서는 ‘통학차량 안심승하차 존’이 운영된다. 학교 정문이나 후문 근처에 파란색 안내 표지판이 설치된 곳에서만 정차가 가능하며 5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 스쿨존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 2개의 도로가 만나는 교차지점 등에는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이 설치돼있다. 경찰이 집중 단속을 진행하는 오전 8시~오후 8시에 스쿨존 안에서 주정차했다가 적발되면 일반도로의 3배인 12만 원(승용차 기준)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스쿨존 현장 상황을 충분히 모니터링하며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당분간 주변 주민들의 불편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단속 강화로 대로변 차량소통은 원활해지겠지만, 이면도로는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혼잡해질 게 뻔하다. 스쿨존 주변 주택 밀집지역의 비좁은 골목길은 등하교 시간 차량이 얽혀 통행마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주차난으로 인해 차량 소유자와 주민 간의 다툼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스쿨존 구역 상가에서도 불만이 쏟아질 수 있다. 잠깐이라도 차량이 정차할 수 없으니까 손님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쿨존 교통안전은 어린이 보호를 위한 조치이니만큼, 불편이 있더라도 국민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초등학교, 어린이집까지 가는 통학로에 있는 어린이보호구역 29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이 중 20개 지점에 무인 교통단속카메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대상은 전국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점 16곳과 초등학교 정문 등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요 시설 주출입구 13곳이다. 교통단속카메라는 규정 속도위반 차량을 적발할 수도 있지만 운전자가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스쿨존 안전을 위해 당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조치는 교통단속카메라를 확대 설치하는 일인 것 같다. 운전자들은 주변에 초등학교나 유치원 등이 있다면 단속카메라에 관계없이 과속주행은 삼가고, 도로에 설치된 어린이보호구역 안내표지를 살피며 주정차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2021-10-20

‘특별함’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2년 반을 사귀다 마침내 늦깎이 결혼을 한다며 준비가 한창이던 지인 하나가 갑자기 무슨 수가 틀렸는지 안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알고 본즉, 결혼할 사람이라고 또 사랑하니까 많이 퍼주고 하다가 결국 덩그러니 밑둥치 하나만 남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신세가 돼버린 것이었다. 소설 속 나무는, 그래도 노년이 돼 돌아온 소년과 짧은 시간이라도 보냈지만, 현실 속 나무들은 만신창이가 된 자신과 마주해야 하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그런데 왜 사람들은 잘해 주는 상대를 그리 헌신짝 대하듯 할까?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상대의 ‘베풂’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거나 예전만큼 베풀지 않으면 도리어 서운해하거나 화를 내고 심지어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애초부터 인성이 시쳇말로 ‘글러 먹어서’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평범한 이들조차 사실 그런 경우도 많은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한 존중/존경은, 타자와는 다른 그 사람만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할 때 자연스레 생겨나는 법이다.옛말에, ‘夫婦有別’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別’은, 조선조 대학자인 한원진과 정약용이 “각자 제 남편/아내를 두고서 난잡하지 않은 것”이라 해석한 데서 보듯, 성 윤리에 대한 단서다. 즉, 남자 또는 여자로서의 성 역할에 대한 ‘구별’보다는, 상대방을 ‘각별/특별’히 인식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선조들은 내 짝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타인에 대한 마음과 같을 수 없다고 보아, 다른 아낙/남정네들과의 情事를 극도로 꺼렸으며, 설사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윤리에 어긋난다고 보아 크게 지탄하기도 했던 것이다.그런데 상대에 대한 이 ‘특별함’은, 발견하는 사람의 안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갖추기 위한 사람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조선조 학자 유희춘의 아내 송덕봉이, 서너 달 다른 부임지에서 기생을 멀리함을 자랑한 남편의 편지에, ‘이를 두고 고결하다며 덕을 베푼 생색을 낸다면 당신도 분명 담담하여 사심없는 사람은 아닐 터. 마음이 깨끗해 밖으로 유혹을 끊고 안으로 삿된 생각이 없다면 어찌 꼭 편지를 보내 공치사를 한 뒤에야 남들이 알아주겠습니까?’라며 일침을 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신이 나를 아내로서 ‘특별히’ 여긴다면, 기생을 안 만남이 당연한데, 뭐 그리 자랑삼느냐는 명확한 태도에서 여성으로서의 기품과 범접할 수 없는 품위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처럼 ‘특별함’은 바로 스스로가 스스로의 바운더리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데서 빛나는 법이다. 오래 전 사석에서, 모 사업가가 애인 없어 속상하다는 푸념을 하자, 다들 ‘요즘 시대에 애인 없으면 바보’라며 놀린 일이 있었다.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배우자에 대한 특별함을 망각한 시대의 한 단면이라 웃프지 않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10월, 몸도 마음도 풍성한 이 멋진 계절 가을엔, 그동안 소홀히 해 왔던 내 짝에 대한 ‘특별함’을 한번 발견해 보면 어떨까? 또 나만의 ‘특별함’을 가꾸는 노력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인간관계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2021-10-20

메타버스와 디지털 격차

김규종 경북대 교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용과 주근깨 공주’를 보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모든 연령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만화영화지만, 어른들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에 영화관에 들어온 아이는 한 명이었다. 아이는 영화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교차함에 따라 몰입도에 차이를 보였다. 가상세계에 완전히 몰두하되, 현실세계에는 시큰둥했다.호소다 마모루의 2009년 만화영화 ‘썸머 워즈’를 보고 아주 놀란 적이 있다. OZ라는 가상세계를 일본 농촌의 대가족과 연결하는 내공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저런 상상력을 가진 감독이 여전히 일본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 것이다. 12년이 지난 2021년에 그가 보여주는 가상세계는 훨씬 진화한 공간으로 다가온다.감독은 ‘메타버스’를 영화의 전면에 배치한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상처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면서 세상과 단절한 여고생 스즈. 제한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도 못하던 스즈. 그런데 메타버스의 가상공간 U에 접속하자마자 스즈는 놀라운 가창력을 가진 아바타로 재탄생한다.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벨’이란 아이디로 새롭게 탄생하여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스즈. 가상공간 U의 가입자는 50억! 순식간에 1∼2억의 가입자를 매료시키는 벨. 여기서 스즈와 벨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일본의 평범한 고교생 스즈와 가상공간을 매혹하는 새로운 스타 벨의 정체성이 뒤섞여진다는 얘기다.가상공간에서 만나는 용의 상처와 고통을 동정하는 스즈는 실제 현실에서 그를 찾아내려 한다. 스즈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현실의 ‘케이’를 만나고, 그를 보호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가상공간과 현실세계의 조화롭고 경이로운 만남이다. 아바타의 세계를 현실로 인도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인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호소다 마모루!만화영화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깊은 한숨이 나온다. ‘썸머 워즈’에서 가상공간과 실제 현실은 따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이번에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 두 공간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서로 이어져 있다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가상공간의 경이로운 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메타버스’는 단순한 3차원 가상공간이 아니라, 가상공간과 현실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며, 현실과 가상세계의 교차점이 삼차원 기술로 구현된 세계라는 말이 실감 나는 영화가 ‘용과 주근깨 공주’다. 저런 세계가 바로 옆에서 펼쳐지고 있건만, 한국의 노인들은 그저 그런 드라마와 빤한 노래자랑에 열광하며 세월을 보낸다.공공장소에서 울려 퍼지는 전화기도 끌 줄 모르는 노인들. 그들이 조만간 경험하게 될 디지털 격차가 두렵다. 메타버스가 일상화하는 시점이 온다면, 세대 간의 상호이해와 소통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 늦기 전에 노인 세대를 위한 디지털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1-10-19

코로나19, 풍속을 바꾸다

박창원​​​​​​​수필가 우리가 만들어가는 물질문화는 빠르게 변한다. 걸어 다니다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2,3년마다 휴대폰을 바꾸고 하는 것은 물질문화의 변화다. 전 세계인이 이 변화의 물결 속에 별 거부감 없이 동참한다. 그러나 풍속, 종교, 의식주 같은 정신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법으로도 바꾸기 어렵다.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긴다.우리 사회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다수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혼례, 장례, 제례 같은 생활풍속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허례허식적 요소가 많아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지켜 온 미풍양속이라는 수식어를 등에 업고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문화로 존속해 왔다.내 집안의 경우 명절 때마다 고향 어머니 댁에 대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해 오다가 지난 추석에 대구의 맏형 댁에서 형님 가족만 모인 가운데 차례를 지냈다.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해 추석, 올 설에 이은 세 번째다.그렇게 공고하던 우리의 생활풍속이 최근에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조사의 경우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직접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축하를 하거나 문상을 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혼례에 관한 한 우리는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다. 모처럼 맞은 주말에 지인 자녀의 혼례식이 있어 예식장에 간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식장으로 올라간다. 줄을 서서 혼주에게 눈도장을 찍고, 축의금을 식권과 바꾼 다음 여러 손님이 뒤섞인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장례는 또 어떤가? 누가 상을 당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퇴근하자마자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간다. 수십 개의 조화가 줄지어 있는 복도를 지나 빈소에 도착하면 이미 많은 문상객이 와 있다. 빈소에서 고인에게 예를 표하고 상주에게 몇 마디 위로를 건네고 부의금을 건넨 다음, 접객실로 이동하여 지인들과 인사를 하고,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온다.이처럼 우리는 친지, 동료, 사회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데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인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생활풍속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정부에서 1969년 1월에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바꿔 보려했지만 실패했던 이 풍속이 지금 변하고 있다. 청첩이나 부고를 할 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축하나 조문을 제한한다고 하고, ‘마음 전할 곳’이라는 난에다 혼주나 상주의 계좌번호를 적어두는 추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사람 아니면 축의금을 계좌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이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정부도, 시민단체도 아닌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이 현상으로 인한 팬데믹이 종료되더라도 제례나 경조사는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소가족 단위로 축소되고 절차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라는 시대 구분은 이처럼 우리의 생활풍속에서도 예외가 없어 보인다.

2021-10-19

사색의 계절

언제부턴가 한국인이 선호하는 계절이 가을에서 봄으로 바뀌었다.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국민을 상대로 선호 계절을 조사해 보았더니 2014년 조사에서는 가을이 1위로 선택됐다. 그러나 5년 후 같은 내용으로 다시 조사를 했더니 이번에는 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사기관은 이유는 명확지 않으나 벚꽃 열풍과 많아진 봄철 축제와 무관치 않을 거라 풀이했다.그러나 성별 조사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갈라졌다. 남성은 가을(40%), 여성은 봄(45%)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봄과 가을은 기온이 비슷한 계절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채근담에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이 바로 그것이다. 봄은 따뜻한 바람에, 가을은 찬 서리로 비유한 것이다.어느 작가는 봄을 상쾌한 아침에 비유했고, 가을은 차분한 저녁으로 표현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가을은 영혼의 계절”이라 불렀고, 헤르만 헤세는 가을은 “더 높은 삶으로 들어가는 계절”이라 말했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옆에서’라는 자신의 시에서 서리 속에 홀로 피는 가을 국화를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현했다.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가을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독서의 계절, 그리움의 계절, 사색의 계절, 낭만의 계절이라 불리는 것 등은 나름 가을의 특징을 잘 드러낸 말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은 계절이 돌아왔다. 시끄러운 세상일 뒤로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깊은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19

옛 노래의 추억과 한류의 빛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1920년 6월에 창간된 천도교 청년회의 기관지인 ‘개벽’ 1922년 1월호에 실린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전문이다. 단 4연으로 된 짧은 이 시는 처음에 작곡가 안성현에 의해 가곡풍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안성현은 월북하여 북한의 공훈예술가 칭호까지 받았고 2006년 북한에서 세상을 떴다. 안성현의 곡으로 된 ‘엄마야 누나야’는 작곡가의 월북 탓인지 지금은 거의 불려지지 않는다.이 시는 KBS의 초대 악단장이었던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인 김광수에 의해 다시 노래로 만들어졌다. 지금 불리는 노래는 거의 김광수 작곡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작곡가의 영향이 컸던지 안성현 곡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꽤 많다. 김광수 작곡의 동요풍 노래인 ‘엄마야 누나야’는 성악가가 부르기도 하고 대중가수가 부르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도쿄국제가요제, 아테네국제가요제, 칠레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국제적 가수 정훈희가 부른 대중가요로 기억되고 있다.대중가요의 힘이 큰 때문일까? 서울 한강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은 한강서 좀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이따금씩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아들만 주르륵 넷인 집안의 셋째이기에 누나는커녕 누이동생도 없지만, 어린 시절 한강 백사장에서 모래를 만지며 놀던 기억 속에서 있지도 않은 어여쁜 누이가 늘 함께 하는 것은 이 노래 탓이리라.이른바 ‘글로벌 슈퍼밴드’ 구성을 목표로 한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가 지난 6월 21일에 시작해 지난 4일에 막을 내렸다. 아들 덕에 보게 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나는 가끔씩 전율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렇게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멋들어지게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도 하고, 제 흥에 푹 빠져 즐겨가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 열정은 또 얼마나 대단하던지.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문외한의 눈과 귀여서 그랬나, 최종 수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반에 탈락한 지원자들까지 기량이 떨어지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비틀즈의 노래를 즐겨들으며 자란 7080세대의 나는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보며 한국 가요, 한류의 힘에 새삼 놀라고 있다. 이들 아이돌그룹은 연예기획사의 치밀한 기획과 투자와 노력이 만들어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과물, 최고의 상품(또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 가수가 부른 노래의 세계적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올라온 슈퍼밴드 출연자들의 면면에서 나는 그 열풍의 단초와 빛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겨레의 몸과 혼 속에 스며있는 음주가무의 전통이 한류의 빛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그나저나 부동산업계에선 김소월을 두고 한강변 아파트의 폭등을 예견한 시인이라는 농담이 떠돈다는데, 젊은 시절에 대중가요만 듣고 있지 말고 일찌감치 한강변에 자그마한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어야 하나?

2021-10-19

포항지진 이재민, 4년만에 텐트생활 접었다

포항시는 어제(19일) 오전 흥해 실내체육관에서 그동안 체육관에서 생활해 오던 지진피해 이재민들이 텐트 생활을 끝마치고 체육관을 떠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발생한 규모 5.4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구호시설에 머물러왔던 이재민들이 이날 4년여 만에 임시대피소 생활을 마무리 지은 뜻 깊은 행사였다. 이재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국무총리실 소속 포항 지진피해구제심의위원회가 제19차 회의를 열고, 한미장관맨션과 대신동 시민아파트에 대해 ‘수리 불가’ 판정을 내리면서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받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흥해 실내체육관에는 지진 발생 직후 흥해읍 주민 수천명이 대피했었지만, 어제까지 거주해온 주민들은 20가구 정도 된다. 여진이 잦아들자 주민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고, 흥해읍 대성아파트를 비롯해 지진으로 전파(全破) 판정을 주민들은 LH와 부영 등이 제공한 임대주택으로 떠났다. 4년 동안 체육관에서 텐트생활을 해오던 이재민들은 모두 한미장관맨션 입주민들이다. 한미장관맨션은 지진으로 벽이 갈라지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 피해가 났지만, 전파 판정이 아닌 소파(小破) 판정을 받았었다. 전파 판정이 나야 임대주택 거주 자격을 얻는데, 포항시가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정밀안전진단을 거쳐 ‘약간 수리가 필요한 정도’인 C등급을 매기면서 이주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한미장관맨션 입주민들은 ‘아파트 내부에 한 번이라도 직접 들어가 봤다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포항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패소했었다. 이재민들은 피난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지금이라도 올바른 판단이 이뤄져 다행이라는 입장이다.수리불가 판정을 받은 한미장관맨션은 곧 재건축이 추진될 예정이다. 체육관을 떠나는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기존 아파트를 철거한 후 재건축할 때까지 지진특별법 지원금으로 인근에 주거지를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온갖 트라우마를 겪으며 고통에 시달렸을 이재민들이 안전한 주거지를 마련해 새출발하길 바란다.

2021-10-19

인구감소지역 고시 정도론 지방소멸 못 막아

행정안전부가 경북도내 16개 시군 등 전국의 89개 시군구를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이번에 지정된 지역에 대해서는 내년에 신설되는 1조원 규모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행·재정적 뒷받침도 하겠다고 한다. 지방소멸 문제와 관련해 중앙정부가 대응체계를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이번 지정 고시의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인구소멸 문제에 대해 지자체와 정부가 수십조원의 예산과 각종 정책을 쏟아부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과 지방의 인구 감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대책을 논의하고 예산을 투입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혁명적 조치 없이는 실효적 성과가 없다는 것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다.행안부가 매년 1조원 규모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제도적으로 지원에 나선다고 하지만 지방에서 인구증진 효과가 나오긴 어렵다는 뜻이다. 행안부는 이를 계기로 지역이 활력을 찾는 전환점이 되길 희망하나 이번 조치는 언 발에 오줌누는 격에 불과하다.행안부 자료에 의하면 경북은 전남과 함께 16개 시군이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고시 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1981년 319만명의 경북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64만명으로 줄었다. 지난 한해동안만 2만6천명의 인구가 감소했다.국토 면적의 11%인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비정상적 수도권 일극체제를 파괴하지 않는 한 지방의 인구감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인구감소 지역을 지정 고시하고 1조원의 예산을 통해 각종 인구활력 증진사업을 추진한다고 수도권으로 넘어간 젊은이가 지방으로 되돌아 오진 않는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혁명적인 정부 조치가 필요하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만해도 정부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말로는 국토균형발전을 외쳤지만 내용은 알맹이가 없다. 행정이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방으로 권한을 분산할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정부 조치가 지방소멸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지역민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방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획기적 해법을 내놓아야 지방도 수긍할 수 있다.

2021-10-19

공정과 평등이라는 게임의 룰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여러 문화들을 어떠한 제한 없이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고 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된 덕분에 우리 세대는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던 문화들을 아주 손쉽게 향유할 수 있었다. 만화, 영화, 음악, 판타지 소설 등 다양한 문화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나의 10대를 사로잡은 것은 게임이었다. 삼국지, 영웅전설, 랑그릿사, 울티마 등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게임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화려한 그래픽과 비장한 스토리에 사로잡힌 우리는 꼼짝없이 밤을 새어가며 전국의 통일과 세계의 안위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이 되어갔다.내가 게임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 이유가 있다. 1등을 강요하지만 어떻게 1등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나의 노력보다 늘 더 노력하는 누군가로 인해 경쟁 속에서 뒤처지기만 했던 현실과 달리 게임의 세계는 공정과 평등을 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 강해질 수 있으며, 노력은 결과와 늘 일정하게 비례했다. 다른 것 필요 없이 단지 컴퓨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이 세계를 현실보다 사랑했던 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세계는 현실보다 공정했다. 노력을 하고, 그 노력에 따라 공평한 결과를 분배받을 수 있는 세계. 모든 기회가 평등하게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세계. 물론 ‘리니지’와 같은 MMORPG 게임에서는 빈부의 격차와 힘의 논리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또한 게임의 룰에 따라 얼마든, 언제든, 누구든 뒤집을 수 있었다. 필요한 건 게임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노력 두 가지 뿐이었다. 우리가 그 세계 속에서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와 같은 게임의 룰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 또한 이젠 옛날의 얘기에 불과하다. 게임의 룰은 더 이상 모든 유저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현실의 자본력이 게임 속 판도를 결정하는 가운데, 게이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남들보다 많은 지식이나 노력이 아니라 게임 밖 현실에서의 재력이다. P2W(Pay to Win)이 기본 법칙이 된 게임 속에서 플레이를 통해 강해지는 것보다 같은 시간 돈을 벌어 그 돈을 게임에 쏟아 강해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게 된다면, 과연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게임일까? 이와 같은 구조는 게임의 룰이 왜곡되고 변형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게임의 룰은 모든 유저에게 공정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게임의 룰 또한 유저의 자본력에 의해 그 적용이 얼마든 달라진다.90년대와 2000년대의 게임사가 유저 친화적 입장에서 게임을 디자인하고, 유저를 하나의 새로운 세계에 정착시키고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과 달리, 이제 게임사는 유저들에게 더욱 경쟁을 부추기며 그러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으로 과금을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게임의 룰은 더 많은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되며, 이와 같은 과정은 유저들을 지치게 만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가뜩이나 수저 계급론이 팽배해진 현실 속에서 게임 속 세계마저 현실과 유사하게 돌아가도록 구성된다면, 이를 환영할 게이머는 과연 몇이나 될까? 최근 나타난 NC소프트의 부진은 이와 같은 게임사의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들이 예전과 같은 게임의 룰을, 공정과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이 지켜지는 세계를 원한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게임의 룰이 공정하고 평등할 때, 그리고 이것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게임 속 세계는 나름의 합리성을 통해 지속된다. 그와 같은 게임의 룰이 깨질 때, 유저들은 게임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전 게임의 향수에 빠지거나 클래식 버전의 게임에 몰입하는 건 단순한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공정과 평등이라는 게임의 룰이 지켜지는 세계를 원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게임이 현실을 닮아가는 것이 유독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에게 도피할 곳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선언과 같기 때문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 글이 게임에 대해 말하고 있음에도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2021-10-19

예술과 우울

예술가의 뇌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미미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우울한 감정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정신 분석가들의 결론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역사상 위대한 예술가로 칭해지는 이들은 때때로 우울증을 앓았다. 빈센트 반 고흐, 슈베르트, 말러, 헤밍웨이…. 이들의 작품은 섬세하며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을 건드리고 추동력이 있으며 한없이 경계가 넓어지는 경험과 함께 강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에트바르트 뭉크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으로 칭할 수 있는 ‘절규’를 보고 있노라면 시각적 이미지로 국한되지 않고 청각과 촉각적 지점까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그림에서 얼굴에 손을 대고 있는 인물은 정면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다. 관객에게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다. 거기에서는 공포가, 절규가, 찢어지는 것과 같은 비명이 흘러나온다. 같은 주제로 그린 그의 소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덧붙여 있다.“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정수리 위로 해가 내리쬐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날, 친구들과 길을 걸어가던 뭉크는 문득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관찰한다면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내적으로 발동된 잠재된 불안과 두려움에 가깝다. 그러나 뭉크에게 그것은 분명 실재하는 감각이었을 것이다.그와 함께 같은 거리를 산책하던 친구들은 느끼지 못했던 원천적인 고통과 슬픔. 뭉크에게 그토록 섬세한 감정의 파동을 일게 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뭉크에게 죽음은 머나먼 추상적 개념이 아니었다.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폐렴으로 잃었고, 같은 해 남동생 역시 같은 병으로 죽었다. 강압적으로 그를 통제하던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났다. 뭉크는 “나는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하나는 신체적인 허약함이고, 하나는 정신병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과도한 불안증세와 심지어 환각 증세까지 겪게 되면서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던 전적도 있다.그의 작품을 그의 삶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그는 다른 사람보다 확실히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이었음은 확실하다. 그의 내면에서는 강렬한 추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명명하기에는 부족한, 정신이 망가졌다는 것으로 국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뭉크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그건 뭉크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유령처럼 속삭이는 텅 빈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삶의 무용함, 혼란, 외로움, 불가능한 이해와 관계, 붙잡을 수 없는 감정들…. 그것을 듣는 일은 분명히 고통스럽다. 불가해하고 어리석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해내는 것 역시 그러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위대한 작품들은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의 결과인 것이다.우리의 생각의 끝은 어딜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하여 그 생각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 거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매번 생각의 과정 중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 그것을 단지 ‘죽음’이라는 관념으로 치환할 수는 없다.예술가들은 그곳에 끝끝내 가닿기 위해 늦은 밤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마음껏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 불분명하고 고통스러운 행위가 그들을 좌절시키고 또 기적처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2021-10-19

그림 때문에 분열된 동·서방교회

서양미술사에서 13세기는 중세에 속하며 고딕양식이 서유럽 전역에 확산되던 시기이다. 13세기를 이탈리아어로는 두에첸토(Duecento)라고 부른다. 1200년대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두에첸토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비잔틴 미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1054년 기독교는 정치적, 신학적 입장차 때문에 교황 중심의 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제국의 동방정교로 분열되었지만 비잔틴 미술은 이탈리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미술을 마니에라 그레카(maniera greca)라고 부른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그리스 풍’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비잔틴 양식을 가리킨다.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교회는 수백 년 넘게 갈등과 반목을 이어왔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로마제국 단독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티누스 대제 사후 그 이름에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불림·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으로 옮겼기 때문이다.비잔티움이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분명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수도의 이전은 중심의 이동이자 권력의 이동이다. 그리고 그 권력에는 종교 권력도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최고의 머리는 성인 베드로의 대를 잇는 로마의 교황이다. 그런데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옮겨가면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로마 교황과 대립하게 된다.동·서방교회 충돌의 불씨가 된 것은 성화 사용에 대한 입장차였다.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기는 했지만 기독교 교리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여러 신학적 쟁점들이 종교회의에서 다퉈지고 있었다. 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을 두고 찬반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을 한다. 대(大)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그림 사용에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교육적 목적으로 그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미술품 사용 반대파는 우상숭배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성서의 가르침을 이유로 내세웠다. 교황의 지침에 따라 서방교회는 적극적으로 미술품을 수용했던 반면 비잔틴의 동방교회는 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파괴했다. 이 사건을 가리켜 ‘비잔틴 성상파괴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술품 사용을 둘러싼 두 교회 간 분쟁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476년 게르만의 침략으로 서로마제국이 몰락했다. 게르만족은 원활한 통치를 위해 토착 로마인들과의 유대 및 결속이 필요했고,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를 적극 수용했다.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 야만족들을 개종시키는데 미술품은 용이한 수단이었다. 반면 비잔틴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가면서 각 지역별로 다양한 신학적 이론들이 생겨났고, 교리에서 벗어난 이단적 사상으로 비잔틴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숭배 문제와 직결된 그림 사용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서방교회는 로마제국 황제의 정통성을 이어가던 비잔틴에 명목상 종속되어 있었다. 730년 비잔틴의 황제 레오 3세가 성상금지령을 내렸고, 이를 이유삼아 서방 교회가 콘스탄티노플에 바치던 세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서로간의 골이 깊어졌다. 로마 가톨릭의 속내는 성상금지령을 빌미로 비잔틴의 정치적 간섭과 규제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은 비잔틴과 거리를 두는 대신 야만족들이 세워 왕성한 힘을 키운 프랑크 왕국에 손을 내밀었다. 교황 스테파누스 2세는 754년 파리 북부 생드니 대성당에서 프랑크의 왕 피핀 3세를 위한 축성식을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그에게 ‘프랑크의 왕이자 로마의 대군’이라는 직위를 내렸다. 이로써 프랑크의 왕은 교황으로부터 지배와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교황은 프랑크 왕의 힘을 등에 업고 비잔틴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미술사학자

2021-10-18

문두루비법을 행하다, 사천왕사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에 대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문헌기록에는 유독 신성스럽고 기이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12 신라본기12 경명왕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3년(919년)에 사천왕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塑像)이 들고 있던 활의 줄이 저절로 끊어지고, 벽화의 개가 소리를 냈는데 마치 짓는 것 같았다”.삼국유사 권2, 기이2, 문무왕법민(文武王法敏)에는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자, 갑작스런 풍랑이 일어 당나라군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이 구절은 어느 소설에 등장할 법한 말은 아니다. 바로 사천왕사와 관련된 기록이다. 사천왕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앞서 사찰이 위치한 낭산(狼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낭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남북방향으로 긴 능선을 이루는데 삼국사기 권3 실성이사금조에는 “12년(413년) 가을 8월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니 누각과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노는 것이니 마땅히 이곳은 복 받은 땅이다’라고 하였다.이때부터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처럼 낭산은 신라왕실은 물론 신라인들에게도 신성한 신유림(神遊林)으로 인정받았고 그래서인지 사천왕사의 창건은 물론 주변으로 망덕사지, 황복사지, 선덕여왕릉 등 다수의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이렇듯 낭산은 당시 신라사람들에게 복된 땅이자 신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사천왕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닐까?사천왕사와 관련된 창건기록으로 이야기를 되돌아가 본다. 삼국유사 기록처럼 사천왕사는 당나라군의 침입을 물리친 영험을 계기로 창건되었다. 당나라군이 침입한다는 소식에 왕은 여러 신하들과 방어책을 논의했는데 명랑법사(明郞法師)가 아뢰길 “낭산 남쪽 신유림이 있으니, 그곳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도량을 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그러나 사찰을 짓기에는 급박하자 명랑은 다시 “채색 비단으로 절을 임시로 지으십시오”라고 답한다. 이에 명랑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비밀법(文豆婁秘密法)을 지으니, 당나라와 신라 군사가 싸우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고, 그 후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문무왕 19년·679년)라고 했다 한다.문두루비법은 산스크리트어 무드라의 음을 딴 밀교의 비법으로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의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급박하게 임시로 만든 후 탄생한 사천왕사는 고려시대까지 문두루비법과 관련된 단석(壇席)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혹시 이 흔적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동·서 단석지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사천왕사와 관련해서는 기록뿐 아니라 발굴조사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발굴조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이루어졌고 강당지-금당지-탑지 등의 가람배치를 밝히는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금당지 앞에 동·서로 대칭을 이루고 서 있었을 탑지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쌍탑의 석탑으로 정착되는데 목탑에서 쌍탑의 석탑으로 변화하는 가교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사천왕사이다.흔히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 한국은 석탑이 많은 나라라고 하는데 물론 한국에서도 목탑과 전탑이 있었다. 황룡사 구층목탑과 목탑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사찰이 여러 곳 존재한다.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아 삼국시대 목탑의 원형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목탑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탑지에 심초석과 사천주가 있느냐에 따라 알 수 있는데 사천왕사에서는 동·서 탑지에서 모두 목탑지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발굴조사 당시 주목된 것은 탑지 기단면에서 확인된 벽전이다. 바로 녹유신장벽전이다. 이 벽전은 명칭부터 논란이 있었는데 사천왕상, 신장상, 신왕상, 소조상, 팔부중상 등 어떻게 불러야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여기에서는 녹유신장벽전으로 부르고자 한다. 정여선 ​​​​​​​학예연구사 녹유신장벽전은 목탑 기단부 한 면에 6점씩 모두 24점이 배치되었고 따라서 동·서 탑지를 합하면 모두 48점인 셈인데 얇은 녹유를 시유한 것으로 복원결과 높이 90cm, 너비 70cm, 두께 7~9cm로 확인되었다. 이 벽전은 아치형의 감실에 갑옷을 입은 눈을 부릅뜬 신장상으로 두 악귀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매우 실감 있고 자세하게 표현된 부조상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각각의 벽전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얼굴의 모양과 바라보는 방향, 머리에 쓰고 있는 관(투구)의 모양, 갑옷의 모양, 앉아있는 자세 등이 달라 총 3종류로 구분된다. 특히, 목탑지 한면의 중앙에는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을 기준으로 3종류가 1세트를 이루어 한 면에 2세트씩 배치된 것인데 이 상들의 얼굴 방향이 첫 번째는 좌측, 두 번째는 중앙, 세 번째는 우측을 응시하고 있다. 이는 조각에 있어 뛰어난 불교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배치에 있어서도 매우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녹유신장벽전은 통일신라시대 우수한 조형기술로 제작된 것으로 이처럼 목탑기단면에 장식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혹시 녹유신장벽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세 종류의 벽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각각 어떻게 다른 자세와 모양을 취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사천왕사를 이해하는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2021-10-18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강길수 수필가 젊은 날, 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란 소공동체 활동을 시작했었다. 창단 단원으로 출발하여 오늘 해단할 때까지, 오랜 기간 참여했다. 해단 사유는 단원들의 수가 줄어, 더는 소공동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단원이 줄어든 원인은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 전출이 주된 요인이었다. 전출은 타 시도로 가는 경우와, 같은 지자체에 살면서도 주거지 이동으로 거리가 멀어져 떠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대별 되었다. 우리 성당이 기존 시가지에 있어서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요즈음의 사회 여건도 작용했다.새 교우 영입, 혼성체제 도입, 상위 단체 지원요청 등 자구책을 쓰면서 버티어 왔다. 40주년을 반년 남짓 앞두고, 남은 단원이 한 명밖에 안 되었다. 결국, 해단하기로 했다.젊을 땐 인구가 유입되며 선교가 잘 되어, 분가(分家)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간부 맡을 이가 모자라서다. 하지만, 반세기도 안 된 해단 앞에서 ‘긴 세월 동안 함께해 고마웠고, 행복했다’라고 카톡 인사를 보냈다. 격세지감과 회한, 어떤 슬픔도 가슴에 여울져 왔다.알파와 오메가란 말이 있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 알파(α)와 끝 자 오메가(ω)를 말한다. 주로 그리스도교에서 신앙대상의 영원한 존재성을 말할 때 많이 사용해 오다가, 요즈음은 일반적으로도 많이 쓰고 있다. 일반적 뜻은 처음과 끝 혹은, 어떤 무엇의 전부를 뜻하는 말이리라.무릇 만사는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이 있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먼지 한 알부터 흙, 돌, 바위, 지구 등 자연은 물론, 나아가 원자에서 태양계, 우주에 이르는 물질계도 같다. 바로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체와 물질계의 존재 양태는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안에 있다’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당연히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는 ‘시간’이란 야릇한 존재, 변수 또는 개념이 그 몸이다. 시간은 물리학이나 철학에서 끊임없이 다루어 왔지만, 명쾌한 답은 아직도 못 얻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살면서, 거부할 수 없이 처절하게 당하며 겪어내야 할 괴물이 시간이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한다’라든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란 속담만 보아도 그렇다. 시간의 절대 폭력 앞에 던져진 것이 모든 존재이다. ‘유종의 미’란 말도 있다. 목표를 끝까지 잘 이루어 내는 일이리라. 그렇다면 앞 소공동체 활동은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일까.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출발한 다른 단체는 계속되므로 그렇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결국, 만사는 꿈보다 해몽이란 말인가.오래 활동한 성당 소공동체의 알파와 오메가 법칙 결과가 이럴진데, 사회와 국가의 그것은 어떠해야 할까. 정권이 나라를 한 번도 겪지 못한 길로 막무가내 끌고 가는 우리 사회…. 그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이, 주권자 국민인 내게 실망을 주고 있다.

2021-10-18

미안하다고는 안 할 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고1 때다. 어쩌다가 응원 밴드에 들게 되어 큰북과 심벌즈를 담당했다. 음악 선생님이 몇 번 쳐보라고 하더니 두 악기를 내게 맡겼다. 피아노를 잘 쳤던 친구는 어코디언을 맡았는데, 바로 연주를 잘했다.시내 공설운동장에서 학교 대항 응원이 끝나고 그 친구가 내게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화를 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는 피아노 잘 치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고, 그 부러운 마음만큼 큰북이나 심벌즈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 잘 치는 애가 나를 칭찬하니까 열등감이 폭발한 것이다.그 날의 일이 가끔 생각난다. 이렇게 아무 때나 갑자기 생각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선영의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에는 신경이 예민해지는 정도, 때때로 일어나는 걱정이나 생각, 불안해질 때 하는 행동, 그것들이 일어나는 빈도,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느낌 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참거나 조절하려고 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나 자책 역시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후회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대로 그런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때의 나라면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면 후회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그때 내가 너한테 한 말, 미안하다고는 안 할게. 그런데 이제는 너 원망 안 해. 그때 나는 남편 없이는 숨도 쉴 수 없었어.’ 요즘 인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15회에서 나온 대사다. 5년 전 친하게 지내던 형이 주인공 대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자 누나(형의 아내)가 주인공 홍두식에게 ‘네가 죽었어야지, 왜 형이 죽어.’라고 했던 말에 대해 사과 아닌 사과를 이렇게 한 것이다.드라마 작가가 ‘수용’의 의미를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그랬어’라는 누나의 말은 그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제 누나는 홍두식이 죄책감 느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아이에게 홍두식을 삼촌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모두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허지원 교수 역시 ebs2의 ‘무덤덤한 심리학’ 강의에서 ‘그때는 내가 취약했지’라고 받아들이고, 지금은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나 스스로 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내가 지금 알아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삶이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그렇다고 이런 수용이 대오각성하듯이 단번에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할 수 있다. 그럴 때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때 왜 그랬는지 분명하게 알 것, 그리고 지금 내가,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 나가면 된다.

2021-10-18

‘드라마속 도시’로 각광받는 포항, 활력 넘친다

그저께(17일) 종영한 tvN 인기 주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갯차)’의 실제 촬영지인 포항이 ‘드라마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갯차’가 방영된 이후 드라마 속 주무대이며 5일장터인 청하면 청하시장(극중에는 공진시장)과 청진리 해변(윤 치과위치), 구룡포 석병리, 북구 흥해 오도리 사방기념공원, 청진3리 어민복지회관, 석병1리 마을회관, 월포해수욕장 등에는 최근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이달 첫째·둘째 주 연휴 때는 1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드라마 제작진이 민원을 고려해 촬영지 주변 마을은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공지할 정도였다.포항시는 지난주 ‘갯차’ 주무대를 비롯한 포항 일대의 관광활성화를 의제로 해서 관련부서 회의를 갖고,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세부추진계획을 세웠다. 우선 주요 촬영지점에 관광코스 안내판과 포토스팟 등을 설치해 관광객이 현장에서 드라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번주부터 평일에 한해 포항시티투어 코스에 ‘갯차’ 촬영지도 포함시켜 운영하기로 했다.포항이 드라마 관광지로 유명해 진 것은 지난 2019년 방영된 공효진·강하늘 주연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부터다. ‘갯차’ 촬영지가 관광지로 뜨자 최근에는 ‘동백꽃 필 무렵’ 주 촬영지인 남구 구룡포읍과 그 주변 명소도 포항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 이달부터 11월까지 가을철에는 ‘동백꽃 필 무렵’의 한 무대인 구룡포읍 해안둘레길 일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느니 어린 자녀를 둔 가족에겐 주요 관광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드라마 로케이션 담당자들은 포항이 촬영지로 뜨는 가장 큰 이유는 대도시인데다 조용하고 한적한 어촌을 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특한 형태로 구성된 긴 해안선은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이 “드라마속 촬영지를 찾아가는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관광산업이 포항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듯이, 드라마 제작진이 최고의 촬영지로 꼽는 포항의 관광문화 자산이 ‘갯차’ 방영을 계기로 국내외에 널리 홍보되기를 바란다.

2021-10-18

부스터샷

부스터샷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의 면역효과를 높이기 위해 추가접종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 돌파 감염이 계속되면서 백신 부스터샷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미국, 유럽, 영국 등은 이미 부스터샷 접종을 실행하고 있다.올해 7월 화이자 백신으로 면역저하자 대상 3차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부스터샷을 통해 전 연령층에서 재감염률과 중증 악화율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부스터샷은 고령층의 중증 악화나 입원을 예방하는 효과가 5~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4차 접종을 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모더나 백신의 부스터샷 효과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병원과 프랑스 연구진이 지난 8월 각각 NEJM과 JAMA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토론토 대학병원 연구팀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2개월이 지난 장기 이식 환자를 대상으로 부스터샷 접종을 진행했는데, 3차 접종을 마친 집단의 바이러스 중화율 중앙값이 71%에 달했다. 3차 접종을 하지 않은 집단은 바이러스 중화율 중앙값이 13%에 불과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부스터샷을 접종한 사례는 없다. AZ 백신과 같은 바이러스벡터 방식의 얀센 백신의 부스터샷 효과 임상시험 결과는 있다. 얀센 백신 제조사인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초기 임상시험 결과 얀센 백신을 접종한 지 6개월 지난 참가자들에게 두 번째 백신을 투여한 결과 이들의 항체 수준이 최초 접종 4주 뒤와 비교해 9배 높았다고 발표했다.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얀센 백신 접종자에 대한 부스터샷 접종계획 수립을 지시한 것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고려한 조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아무리 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18

기상 이변에 대비한 농작물 관리 만전을

지난 주말 전국 일부 지방에서는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등 10월 중순 기준으로 64년만에 가장 추운 아침 기온을 기록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올 가을 첫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다. 주말인 17일 오전 6시30분 기준 경북 봉화 석포가 영하 1.9도를 기록했고, 안동 1.2도, 김천 2.3도, 대구는 3.9도를 기록했다. 불과 수일 전만 해도 반팔차림으로 다녔던 시민들은 일주일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겨울 날씨에 황당해했다.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뛰었다는 소리도 나왔다.17일 나타낸 아침 최저기온은 1957년 10월 19일 영하 0.4도를 기록한 후 64년 만에 10월 중순 최저기온이라 한다.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생긴 이상기온이라 하지만 지구촌의 이같은 기상이변은 날로 잦아지고 있다. 지난 7월 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100년 만의 기록적 홍수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앞으로도 이같은 기습한파나 폭설 등의 기상이변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어 기상변화에 대한 준비가 미리 돼 있어야 한다. 특히 농축산 농가들은 농작물과 가축의 안전관리를 위한 사전대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번 기습한파로 일부 농가서는 냉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농촌진흥청은 수확기에 접어든 가을배추와 무는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서둘러 수확하도록 하고 수확이 어려울 경우 부직포, 비닐, 짚 등을 덮어 냉해 피해가 없도록 대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시설작물의 경우 비닐하우스나 온실 등 내부시설 보온관리가 중요하다. 밤사이 10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지 않게 천창과 측창을 잘 닫아주고 낮에는 환기관리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지금은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수확을 앞둔 농작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피해가 경미한 과일은 출하를 서둘고 정상과일도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지구 온난화로 지구촌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폭우와 폭설,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과학자들은 이같은 지구촌의 기상이변이 갈수록 빠르게 가속화할 것이라 경고한다. 국가 차원에서 대비가 있겠지만 농촌도 갑작스런 한파나 폭설 등의 기습적 날씨 변화에 항시적 준비가 필요하다. 기상이변에 잘 대비하는 것도 농업을 살리는 길이다.

2021-10-18

인간은 부정성 편향이 있다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당신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거리 반대쪽에서 아는 사람을 보았다. 당신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버렸다”면 당신의 감정은 부정적일까? 긍정적일까?아마 부정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당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화가 났을 것이다.그러나 나중에 그 사람이 말기암 진단을 받고 망연자실해 당신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고 적어도 화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이 상황은 정신의학적으로 사건 자체는 중립적이라고 본다.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생각과 해석에 따라 감정과 행동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 감정과 행동 반응은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왜 인간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을 가질까?원시시대 인류의 이야기로 거슬러 가보자. “밀림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그때 저 멀리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부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놀고 있었고 한 부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맹수라고 생각하고 미리 피신을 했다” 어떤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까?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피신을 하지 않았던 인류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맹수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리 피신했던 인류가 생존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우리는 생존한 자의 후예이다. 그렇다.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은 원시시대 직접적 위험에 많이 노출된 환경에서 생명을 지켜 내고자 한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인지적 기제이다.인간의 뇌는 변연계 특히 편도체가 이를 위험인자로 느끼게 해서 위험상황에서 일단 피하도록, 다시 말해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하도록 설계되도록 진화됐고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능으로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좀 전에 제시한 예로 다시 돌아 가보자.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사실은 맹수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바람 소리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동물이 지나가는 소리 알 수도 있다. 그렇다. 많은 경우 위험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특히 현대에는 원시시대와 같이 맹수가 나타나서 목숨을 잃는 위험요소는 사실상 거의 없다.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사건조차 인생에서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숨을 담보하는 잠재적 위험 때문에 더 이상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할 필요성이 사라졌다.그러나 인간이 진화하는 속도는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에 우리는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속에서 살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중립 상황이나 애매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한다. 또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를 동시에 접하게 되었을 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내용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예를 들면, 우리는 웃는 얼굴보다는 화난 얼굴, 타인의 선한 행동보다는 악한 행동,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 칭찬보다는 비판, 긍정적 경험보다는 부정적 경험에 더 반응한다.그렇다면, 우리가 가지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가?먼저,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해서 느끼는 감정, 다시 말해 자꾸 부정적으로 내달리는 기울어진 감정은 대개 병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서 유래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다시 말해 우리의 부정적 사고, 부정적 감정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는 안경을 끼고 자신, 타인, 세상,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므로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값을 제거하고 바라보아야 사실에 근접한다는 것이다.특히 정신적 스트레스의 과부하에 있는 현대인은 과거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우울감, 미래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불안감이 흔히 있을 수 있으나, 우울감과 불안감 대부분은 우리가 두려워할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또한 지나가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이다.결코, 우울감과 불안감이 당신의 정체성일 수 없다.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값을 제거한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창조적 동기와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또 극심한 부정적 사건을 겪었을 때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아닌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이루기도 한다. 극심한 부정적인 사건조차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자신의 더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

2021-10-17

인구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이다!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대한민국 인구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지난해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처음 발생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OECD 198개 회원국 중 7년째 꼴찌다.산모가 첫째 아이를 출산하는 시기도 OECD 국가 중 가장 늦다.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을 공개한 OECD 국가(30개국)의 평균 나이는 29.3세(2019년 기준)다. 하지만 한국은 이보다 2.9세 많은 32.2세다. 지난해엔 이 연령이 32.3세로 1년 새 0.1년 더 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추세가 두드러지면서 출산율 감소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이 추세라면 30년 후엔 대한민국 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정부는 심각성을 깨닫고 2006년 저출산 대책을 처음 발표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정부가 2006년 이후 16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책정한 예산만 총 380조2천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작금의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했다.이유가 뭘까. 예산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유아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크게 감소한 반면, 저출산과는 상관없는 사업에 예산이 투입됐다. 지난 16년간 책정된 저출산 예산 중 아동, 청소년, 산모를 지원한 규모는 전체 절반을 가까스로 넘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저출산 예산의 43.0%를 차지했다.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심화됐다. 대책 첫 해인 2006년 76.8%에 달했던 영유아 대상 예산 비중은 지난해 31.5%, 올해 26.1% 등으로 크게 줄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자녀 양육 가구를 지원하는 사업만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했지만, 3차 저출산 대책이 시작된 2016년부터는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사업도 저출산 대책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올해 저출산 예산엔 △프로스포츠팀 지원 △돌봄노동자권리보호사업 △게임기업 지원 △기술인력 지원 △에코 스타트업 지원 △폐업예정 소상공인 지원 △협동조합 종사자 지원 △지역 문화 기획자 지원 등도 포함됐다. 이들 사업은 저출산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가족 여가 진흥이 저출산 대책이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데 지원하는가 하면,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도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했다. 이러니 저출산 예산을 두고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수도권 집중 현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를 포함하는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국토의 11.8%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는 50.1%로 전체 절반을 웃돌았다.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것이다. 지방의 청년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서울공화국’, ‘서울민국’, ‘수도권공화국’이란 말이 등장한 지 오래다.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역은 심각한 인구 유출에 허덕이면서 수도권과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수도권 과밀로 지나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혼 후에도 주택문제나 교육비, 육아비용 등의 부담으로 출산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고령 인구’, ‘초고령 인구’ 중심사회로 치달으면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방분권이니, 지역균형발전이니 하는 갖가지 정책들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들고 있으나 자리를 만들고 예산만 축내면서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내년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3월9일)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1일)가 치러진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인구소멸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공약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대장동’, ‘화천대유’, ‘천하동인’, ‘고발사주’, ‘손바닥 왕(王)’ 등 온갖 비리 의혹과 고자질, 무속 논란으로 대선 키워드가 점철되고 있다.후보들은 이제라도 인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국민 앞에 공약해야 한다. 구호에만 그칠 수 있는 경제정책과 주택안정, 일자리 창출, 지역균형발전 공약은 곤란하다. 그동안의 정책들을 점검하고 예산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의견을 수렴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는 게 완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인구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2021-10-17

집권여당의 ‘대구조롱’ 어디까지 갈 건가

심충택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경기 광명시을)이 지난 13일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대구”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듣고 ‘저 사람이 정말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날 국회 국감에 출석한 권영진 시장에게 “대구가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사태로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됐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대구의 초기대응이 미흡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중국이 아니라 대구로 인해 코로나19가 한국에 확산됐다는 기가 막힌 주장이다.코로나19가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은 정설로 굳혀져 있다. 당시 중국에서 매일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중국인 여행객 입국 제한조치에 나섰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차단’ 필요성이 강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정부는 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른다며 ‘고위험지역(우한) 차단과 출입국 검역 강화’라는 방역원칙을 발표한 후 국제공항 입국장을 열어놓았다. 그 사이 국내에선 중국을 다녀왔거나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전파됐다. 대구에서도 지난해 2월 18일 국내에선 31번째로 첫 환자가 나왔다.국민의힘 대구출신 국회의원들은 지난주 발표한 ‘(권 의원의)망언규탄 입장문’에서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초기 감염자 입국을 막지 못해 대구시민들을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시켰다. 코로나 대확산의 진짜 근원지는 문재인 정권 자신이다”고 밝혔는데, 공감이 간다.대구·경북은 신천지교인인 31번 환자가 발생한 이후 8일 만에 누적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섰다. 양 의원이 대구시의 초기대응이 미흡하다고 했는데, 당시 방역상황은 2월 25일부터 3월 9일까지 대구에 머물며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확보를 진두지휘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잘 알고 있다. 대구시민과 방역당국, 의료진은 일심동체가 돼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벌이면서 52일만에 ‘확진자 제로’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대구시민은 스스로를 봉쇄했고, 대구시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구성원들은 모두 밤을 꼬박 새우며 대구의 의료시스템을 지켜냈다. 당시 생활치료센터와 드라이브 스루 선별검사, 이동검체검사, 자가격리자 의료진관리 등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적인 노하우는 모두 대구가 만들어냈다. 초기대응이 미흡했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대구시민들이 당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양 의원처럼 집권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대구에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는 ‘우한폐렴’이라는 단어는 못쓰게 하면서 ‘대구발 코로나19’라는 지역비하 단어는 마구 썼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대구경북에 봉쇄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언급해 시민들은 대구가 감옥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민주당 한 청년위원은 “문 대통령 덕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고 했다.대구 국회의원들도 입장문에서 지적했지만, 집권여당은 대구시민들을 같은 국민으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2021-10-17

야당 경선토론 후보역량·정책 검증에 집중을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의힘 경선과정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주 제주지역 선거대책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정신머리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망하는게 낫다”고 언급한 이후,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오만방자’, ‘망언’ 등 선을 넘는 단어를 쏟아내며 경선토론회가 난장판처럼 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을 향해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않고는 앞으로 정치를 계속하기 어렵겠다”고 말한 홍 의원은 지난 15일 열린 일대일 맞수토론에서도 “윤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도덕성 문제에서는 피장파장”이라며 공격수위를 높여갔다.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보기엔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토론회 과정은 채널을 돌리고 싶은 막장드라마나 다름없다. 후보들의 국가경영 역량과 정책을 검증하며 지지외연을 확장해 나가도 시원찮은데 서로간 인신공격에 집중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국민의힘은 지난주 57만명 규모의 경선선거인단 구성을 완료했다. 다음달 5일 발표될 경선결과는 이준석 대표가 선출된 이후 크게 증가한 신규당원들의 지지성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과정에서 각 후보들은 선거인단에게 국가경영비전과 정책을 설명하고 동조를 얻어야 한다.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확신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냉철한 판단력과 함께 견해차를 조정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토론회 과정에서 각 후보의 부정적인 모든 요소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검증과정을 거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선 필요하기도 하다. 상대후보가 도(度)를 넘고 격(格)이 떨어지는 공격을 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 공격에 못 견디며 화를 내선 곤란하다.그렇다고 후보들이 서로의 국가경영 역량이나 공약정책 검증은 외면한 채, 라이벌 후보를 조롱하기 위한 ‘퀴즈식 질문’을 계속하거나, 집권여당의 공격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해서 자당 후보를 몰아붙이는 행위는 자살폭탄을 터트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행위는 당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경선후보 토론회의 본질에도 벗어날 뿐 아니라, 기존의 지지자들도 떠나가게 한다.

2021-10-17

마지막 거리두기 2주… 슬기롭게 넘겨야

오늘부터 비수도권인 대구와 경북에서는 백신접종 완료자 6명을 포함 최대 10명까지 사적모임을 가질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5일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더 연장하면서 인센티브 확대와 더불어 여러 가지 규제를 완화했다. 사적모임은 수도권은 접종 완료자 4인을 포함 8명까지, 비수도권은 접종 완료자 2인을 추가해 10인까지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식당과 카페의 영업시간도 비수도권지역은 밤 12시까지 2시간 더 연장했다. 스포츠 경기 관람과 결혼식, 종교행사 참석 등도 기준을 완화했다.그러면서 정부는 앞으로 2주간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기간이라 말했다. 이 기간을 잘 넘겨야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오랜 기간 지속된 방역조치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방역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그러나 방역체계가 감염자 통제에서 위중증 환자 최소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급작스런 환자 발생은 없을 것인지, 있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우리의 의료체계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위드 코로나 체계에 들어간 이스라엘, 영국, 싱가포르의 사례를 잘 살펴봐야 한다. 국내서는 아직도 100일 넘게 네자리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델타 변이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 위드 코로나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방역 긴장감 해이로 이어질까 봐도 걱정이다. 다행인 것은 신규 확진자가 줄고 국내 백신접종 완료률이 이달 내 목표(70%) 달성이 가능한 등 방역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란 점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 보건당국은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접종률을 끌어올리고 백신 패스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사적모임이 완화되고 위드 코로나로 들어간다고 마스크를 벗고 제한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위드 코로나로의 연착륙을 위해선 국민 각자가 방역수칙을 잘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위드 코로나 단계라 하더라도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면 방역을 다시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 전 단계인 이번 2주동안 모두가 마음의 준비와 함께 슬기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21-10-17

마크롱의 원전회귀

지구온난화로 생존에 위협받는 동물로 코알라가 자주 주목을 받는다. 코알라는 물 대신 유칼립투스라는 나뭇잎의 물을 섭취하며 살아가는데 수분이 많이 함유된 유칼립투스 나무가 지구온난화로 생식이 부진해져 코알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코알라 개체 수는 25% 줄었다.영국의 공공정책연구소는 2005년 이후 전 세계에서 홍수가 15배 늘고 고온과 강추위 등 극한 기온도 20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IPCC(기후변화국제협의체)는 2050년까지 지구온난화 상승폭을 1.5도 내로 유지하려면 2100년까지 대기에서 이산화탄소 7천300t을 포집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9억ha의 땅을 숲으로 복원해야 가능한 일인데 9억ha는 남한 면적의 90배다. 과연 인류의 힘으로 가능할 지 의문이다.기후변화대응이란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인류의 대응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거나 대기에서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생활 속 실천 방법으로는 친환경 제품 사용, 물 아껴쓰기, 쓰레기 줄이기, 재활용품 쓰기 등이다.유럽 최대 원전 대국인 프랑스가 점진적 탈원전 정책에서 원전 육성 쪽으로 에너지산업의 방향을 전환 주목을 받고 있다. 탈원전을 외쳤던 마크롱 대통령은 원전분야에 총 1조4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원자력이 현실적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유럽 10개국 에너지 장관도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한 최상의 무기는 원자력”이라고 했다.국민 67%가 원자력 유지를 찬성하는데도 탈원전을 고집하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제 짚어봐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17

포항시, 역대 최대 기업 투자 유치의 의미

이강덕 포항시장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격언이 있다.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어 고립돼 무너지고 말지만, 길을 뚫어 소통, 교역을 한다면 발전과 번영을 이뤄낸다는 말이다. ‘길’은 기존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시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최선봉에는 ‘기업 유치’가 자리하고 있다.우량 기업을 유치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파급 효과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기업 유치는 이제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자 저출생·수도권 집중 등에 대항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위한 첨병으로 그 의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최근 포항시는 이차전지, 바이오, 수소 등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투자유치에 성공하면서 지역 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신산업 관련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한 금액은 총 6조 8천억원에 이르며, 포항시의 역대 최대 성과이다.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이자 ‘미래 산업의 쌀’로 불리는 이차전지 분야는 총 2조2천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생산에서 재활용까지 집적화된 ‘포항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는 에코프로는 물론 포스코케미칼, GS건설 등 빅3 앵커기업과 중견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유치 및 공장 증설이 이어지고 있다.바이오 및 수소 분야 또한 대기업과 기술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의 투자와 공장 건설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다.이로 인해 지역 내 1만7천명 가량의 일자리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19조5천억원 정도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임에도 이처럼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뤄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포항시가 꾸준히 저력을 축적했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철강 일변도의 기존 산업 구조를 탈피해 이차전지, 바이오 등 다변화된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이라는 한 발 앞선 과감한 ‘도전’을 통해 신성장 산업에 최적화된 생태계 구축에 성공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포항에는 블루밸리국가산단, 융합기술지구, 영일만4산단 등에 이차전지(배터리), 바이오, 수소 등의 기업 성장에 토대가 될 특구와 최고 수준의 RD시설 및 실증단지 등 우수한 산업생태계가 조성돼 있다.이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포항시의 각 구성원들의 각고의 노력이 합쳐진 결실이다.특히 포항시는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유망 산업을 미리 내다보며 RD 인프라 등 구축을 위한 ‘국·도비 보조사업’을 대폭 확보하면서 일찌감치 토대를 다져나갔다. 국·도비 보조사업 예산은 지난 2014년 3천527억 원에서 7년이 지난 올해는 현재까지 1조713억원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도의원들의 협력은 물론, 저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다같이 합심해 정부와 경북도 등을 수시로 방문해 사업의 필요성을 적극 설명하는 등 발 벗고 나선 열정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조성을 비롯해 세포막단백질연구소, 강소연구개발특구, 철강산업재도약 기술개발사업 구축 등 미래 신산업 연구 및 산업화의 기초를 튼튼히 닦았고, 기존 산업의 경쟁력도 강화해 나갔다.또한, 포항시 구성원들과 함께 ‘절실한 마음’으로 기업 유치에 매진했다.청주에 본사를 둔 에코프로의 포항 유치를 위해 2017년에 직접 발로 뛰며 청주 본사를 방문해 인센티브 등을 설명해 기업 유치에 성공한 바 있고, 최근 연이은 기업유치에도 실무진에서의 전문적이고 신속한 행정 처리로 신뢰감을 제공하며, 경제성 검토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포항시는 반세기 전 대한민국 산업화를 주도한 철강산업의 ‘영일만 기적’을 이뤄낸 위대한 도전의 도시이다. 이제는 미래 신성장산업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투자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해 ‘제2의 영일만 기적’을 이뤄낼 낼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위대한 도전의 길을 우보전진(牛步前進)의 자세로 다 함께 개척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1-10-17

추억을 긷는 소리

시끌벅적한 소리가 사라졌다.20년 넘게 초등학교 옆에 살았다. 아이들이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학교가 있다는 것에 무조건 이사를 결정했었다.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열어두면 쉬는 시간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가 그 문으로 들어온다.하지만 이맘때 들려오던 운동회 소리가 코로나 때문에 끊겨버렸다. 날이 정해지면 한동안 운동장에서 매스게임 연습하느라 선생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날아오고, 행진곡이 배경음악으로 쉴 새 없이 동네를 들썩거렸었다. 그런 소리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마스크에 묻혔는지 초등학교 옆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이십 대인 아들 둘이 졸업한 초등학교이다. 저 학교에서 큰아이는 봄가을로 여섯 번이 넘는 운동회를 경험했다. 일기장을 뒤적이니 2005년 9월 29일의 운동회 장면이 만국기를 흔들며 나타났다. 둘째가 1학년에 입학해서 5학년인 형과 함께 체육복 차림으로 신나게 학교로 향했다. 내 어릴 적 같으면 운동장에 만국기 날리고 장사꾼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그 틈새에 할머니가 밤 삶고, 떡 싸서 큰 나무 아래에 전을 폈을 것이다.도시에 사는 우리 아이들의 운동회는 심심하다. 그저 맨손 달리기 한 번이면 끝이다. 남편과 나의 운동신경을 닮아 재바르지 못한 두 아들은 늘 꼴찌를 못 면한다. 학교 가기 전 아이들에게 남편이 부탁한다. “일등 하면 안 된다. 꼴찌로 달려라, 천천히. 너같이 잘 생긴 사람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천천히 달려줘야 해. 알았냐?” 말도 안 된다고 킥킥거리며 현관을 나선다. 저녁에 야영 간 남편이 전화했다. 3등, 4등을 했다니까 5학년은 세 명씩 달리고 1학년은 4명 달렸나 한다. 보물찾기나 장애물경기처럼 여러 변수가 없는 맨손 달리기는 어차피 다섯 명 달리면 5등, 여섯 명 달리면 6등 하는 아이들이라 위로할 방법으로 뒤로 처질수록 용돈을 더 주겠노라 약속했었던 거다. 그 후로 아이들이 맨손 달리기를 즐겼다.다음 해 가을, 두 아이의 학교 운동회날이 돌아왔다. 늘 간단하게 오전에만 하던 소운동회를 올해엔 학부모님들 다 모시고 거창하게 한다고 초대장을 들고 왔다. 수업 시간 쪼개서 달려가니 2학년 둘째의 달리기 순서였다. 달려가다가 훌라후프 다섯 번 넘고 또 달려가기였다. 신발 맞는 거 신으랬더니 또 형 신발을 신고 달려가느라 낑낑거리는 게 안타까워 목청껏 그냥 뛰라고 응원을 보냈다. 안 그래도 겨우 4등으로 달리다가 드디어 신발이 벗겨졌다. 엄마의 바람은 뒤로하고 우리 둘째 되돌아와서 천천히 신발을 다시 껴 신는다. 그동안 다른 애들 다 뛰어가 버리고 없다. 그래도 5등으로 웃으며 뛰어간다.6학년 큰애는 ‘손님 찾기’라고 쪽지에 적힌 대로 한 다음 달려가는 건데 4-4반 선생님을 찾으라는 쪽지를 잡았나 보다. 다른 선생님들 다 나와서 누구 찾냐고 물어보시는데 하얀 바지 입으신 4반 남자 선생님이 맨 꼴찌로 나와서는 아들더러 이왕 꼴찌인 거 아이 혼자 뛰어가게 했다. 헐! 성질 더러운 나는 화가 치밀었다. 초등학생 담임이 운동회를 뭐로 보는 거지?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걸 배우도록 하는 게 운동회인데 꼴찌라고 그냥 혼자 뛰어가게 한다고? 안 그래도 부끄럼 많은 아들은 뻘쭘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얼굴에 쓰였다. 끝까지 손잡고 뛰어줘야지 선생님아. ‘님’자도 붙이기 싫었다.그 와중에 교감 선생님, 맨 나중에 단상에서 내려와 옆에 다른 아이 손 잡고 꼴등으로 달리던 아이를 거의 끌다시피 데리고 날아가서 3등으로 골인했다. 역시 교감 선생님 짱이다. 어른이라면 그 정도 모범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지.콩주머니로 박을 터뜨려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마지막 청군 백군 학년 대표들이 나와 이어달리기를 하며 전교생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다음에야 운동장이 조용해지던 기억 속의 운동회, 일기장 속에서 길어 올린 아이들의 운동회로 허전한 가을의 쓸쓸함을 달랬다. /김순희(수필가)

202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