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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추경호의 사즉생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 달성에서 3선을 한 추경호 의원이 집권 여당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새로 선출됐다. 그는 선출 소감으로 “사즉생 각오로 독배의 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가 마치 전쟁터 같음을 예상한 발언이다.또 그는 영남당이란 이유로 “TK출신이 맡아선 안 된다”는 당내 비판에도 출마함으로써 당내에서의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원내대표로서 역할을 잘하지 않으면 영남권에 부담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사즉생을 꺼낸 것도 당내외의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사즉생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저술된 것으로 전해지는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원전에는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로 돼 있다.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다.우리한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랑대전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일갈한 내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자병법’에 기록된 이 말이 수천년 전해져오면서 시대를 넘어 널리 사용된 것은 말의 무게감이 그만큼 큰 탓이다. 조선시대 무사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전해지니 장수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적합했던 모양이다.영화 명랑대전에서 이순신은 비장한 각오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웠다. 더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22대 국회가 열리기도 전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거대 야당의 독주가 예사롭지 않다. 추 대표의 사즉생은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전쟁터의 장수와 심정이 같다는 뜻이다. 추 대표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2

野 입법폭주… 추경호 협상력·리더십 통할까

국민의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추경호 의원(3선·대구 달성)의 어깨가 무겁다. 당선되자마자 야권의 ‘입법 폭주’부터 막아야 할 처지다. 대구로서는 주호영(수성갑)·윤재옥(달서을) 의원에 이어 그가 세 번째 잇달아 원내 사령탑을 맡게 됐지만, 앞날이 워낙 가시밭길이라 축하한다는 말도 하기가 어색하다. 그는 당장 총선 참패로 사분오열된 여권을 통합시키고, 입법권을 장악한 야권과의 협상에서 명분과 실리를 챙겨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생명까지 걸어야 할 과제도 기다리고 있다.이달 말 재표결이 예상되는 ‘채상병 특검법’ 대응부터 난제다. 야권 6개 정당 지도부는 그저께(11일) 대통령실 청사 인근에서 예비역 해병대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2대 국회 민주당 초선 당선자들도 하루전인 10일부터 ‘채상병 특검’을 수용하라며 국회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22대 국회가 개원도 하기 전에 장외투쟁부터 시작하는 ‘강성야권’을 상대해야 할 추 원내대표로서는 착잡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선(先)수사 후(後)특검’ 입장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 그로서는 야권과의 협상 재량권도 사실상 없는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다.민주당이 현재 특별법 형태로 추진하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원금’ 지급과 같은 포퓰리즘 입법을 막아내는 것도 추 원내대표 코앞에 놓인 숙제다. 그리고 그는 22대 국회 원 구성을 앞두고 상임위원장 독식을 주장하는 민주당과 타협해 성과물도 만들어 내야 한다. 야당에서 예고한 각종 특검법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이다.추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정치와 국회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상해야 한다. 타협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협치”라고 했다. 추 원내대표의 협상력과 리더십으로 22대 국회는 21대와는 달리 ‘여야협치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2024-05-12

대구 서구 일원 ‘악취 민원’ 진정되려나

대구시가 악취 민원이 폭증하는 원인으로 지목하는 대구염색산업단지 일대를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대구시가 다음달 1일부터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한 곳은 서구 비산동, 평리동, 이현동 등 염색산단 일대 84만9684㎡ 규모다.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염색산단 내 악취배출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장은 지정 고시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악취시설 설치계획을 제출하고, 1년 이내에 악취방지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매년 악취 실태조사도 의무적으로 시행한다. 악취 배출기준을 초과하면 조업정지 등 과거보다 강력한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이번 발표에 대해 주민들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서구 일대에 발생하는 악취에 대한 저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환영의 뜻을 비췄다고 한다. 그러나 서구는 염색산단 외에도 음식물 분뇨, 하수처리장 등 악취를 유발하는 시설이 많이 모여있어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대구시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염색산단에 대한 악취오염도 조사를 벌인 결과, 조사대상 624건 중 12.7%인 79건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지속적이고 철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서구 일원의 악취 민원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80년 들어선 염색산단과 함께 악취 유발시설들이 많아 악취는 서구 최대 민원으로 손꼽혀 왔다.특히 작년 서구지역의 신축 아파트 입주가 대거 시작되면서 한 해 동안 1만3000건이 넘는 악취 민원이 접수됐다. 주민들은 악취로 인해 두통과 어지럼증 등을 호소했다. 또 일부 아파트에서는 바람이 불면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악취에 시달린다는 주장도 했다.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된 경주의 A공업은 악취지역 지정후 악취 민원이 크게 줄어든 곳이다. 타 지역의 사례를 참고하면 대구시의 이번 조치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은 높다.대구시도 철저한 관리를 통해 저감효과가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서구 일대가 가진 악취 불명예를 벗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4-05-12

한국과 대만의 실력 차이

홍석봉 언론인 한국과 대만은 공통점이 많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렸다. 시장경제의 우등생이 됐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로 분단돼 있다. 1980년대 민주화를 이뤘다. 경제적으로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여왔다.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 이후 한국이 줄곧 앞섰다. 2013년 대만은 2만2522달러로 2만7178달러였던 한국에 큰 차이로 뒤졌다. 격차가 점점 줄어 2022년 대만은 3만2756달러, 한국은 3만2409달러로 18년 만에 역전됐다. 대만 정부는 2022년 1인당 GDP가 대한민국을 추월했다고 선언했다. 한국에 뒤졌다는 열등감에 빠져 있던 터였다. 절치부심했다. 마침내 한국을 따라잡고 이젠 앞서가고 있다.그 중심에는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있다. TSMC는 국가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대만은 생산설비 없는 반도체 회사들을 타깃 삼아 파운드리 산업을 발전시켰고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의 주축이 됐다. 미·중간 반도체 전쟁에서도 키를 쥐었다. 미국과 일본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주며 투자 유치에 나설 정도다. 지난해 4분기 TSMC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61.2%로 압도적 1위다. 2위인 삼성전자는 11.3%로 쪼그라들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은 가장 먼저 TSMC를 구할 것’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다. 기업 하나가 나라의 생존을 좌우할 만큼 위상을 갖췄다.대만의 놀라운 성장은 2016년 취임한 차이잉원 총통의 산업 전략 영향이 컸다. 정부의 혁신적인 인프라 구축과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양국의 경제 현주소는 정부의 실력 차이를 잘 보여준다. 대만이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동안 우리는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삐걱대고 SK 하이닉스 공장 건설은 용수난과 주민 이주문제로 질질 끌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타이틀을 TSMC에 내주고 인텔에 이어 3위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잘 나가던 원전 산업을 내팽개쳤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으로 경제 추락을 자초했다.경제계 일각에서 대만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이 차츰 살아나고 있지만,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한국은 끝났다’고 진단하는 외국 언론의 시각이 적지 않다.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저성장 기조에 빠진 한국이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제조업의 침체가 뼈아프다. 경제성장률 하락과 일자리 창출 부진, 세수감소에 따른 재정여건 악화 등 사면초가다. 정부를 채찍질해 난국을 헤쳐나가도록 해야 할 정치권마저 정쟁에 골몰한 채 오불관언이다.정부는 총선 패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분위기를 일신하고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대만의 눈부신 변신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정치권과 경제계가 분발, 이재용 삼성회장이 언급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2024-05-09

첫 삽 뜬 대구대공원, 대구의 새 랜드마크 되길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일대에 조성될 대구대공원 사업이 30년만에 드디어 첫 삽을 떴다. 지난 8일 기공식에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주민 등이 참석해 공사 시작을 축하했다.대공원 조성사업은 전체 면적(162만5000㎡) 중 80% 이상을 동물원과 산림레포츠시설로 만들고 나머지는 공동주택 3천가구와 학교 등 공공시설로 채운다.사업비 1조5000억원이 소요되며 대구도시공사가 민영개발 방식으로 추진한다. 이 사업의 핵심은 동물원 조성이다. 이곳에 동물원이 만들어지면 1970년 조성된 달성공원 동물원이 이곳으로 이전하게 된다. 규모는 달성공원 동물원보다 10배 가량 크다. 방사 면적도 기존보다 5.7배 넓어져 동물복지 실현도 가능해진다.숲속 넓은 면적에 동물원이 만들어짐에 따라 친환경적 분위기 속에서 동물들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계획대로라면 물개, 얼룩말, 사슴, 사자, 호랑이 등 많은 동물들이 이곳에 입주해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특히 홍 시장이 “동물원에 판다를 들여올 수 있도록 중국 정부와 협의를 하겠다”고 밝혀 벌써 화제다. 만약 판다가 대구로 오면 대공원 동물원은 전국적 흥행이 가능한 곳으로 바뀔 수 있다. 에버랜드의 경우 푸바오 열풍이 불면서 지난 한해 입장객이 215만명에 달해 푸바오 등장 전보다 두배가 늘었다.대구대공원은 1993년 공원시설로 결정됐지만 실제 공원으로 개발되지 못한 채 시간을 끌다가 이번에 첫 삽을 떴다. 대공원 주변에는 대구미술관과 간송미슬관, 삼성라팍 야구장이 있고 롯데가 대형쇼핑몰을 건립 중이어서 대규모 여가공간으로 변신하기에 매우 적합하다.대구시가 대공원 조성사업의 콘텐츠를 얼마나 다양하고 획기적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이 일대는 전국유명 관광명소로 바뀔 수 있다. 홍 시장도 이곳을 “전국에서 가장 쾌적하고 이름다운 공원, 또 동물들이 서식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했다.여가 공간이 부족한 대구에 동물원이 포함된 대공원이 만들어지는 데 대한 시민들의 관심 또한 크다. 대구시의 열정과 노력으로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2024-05-09

경주 월정교(月精橋)

우정구 논설위원 남천이 흐르는 경주의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설화 속의 장소다.원효대사가 파계를 각오하고 요석공주와 연을 맺으러 일부러 강물에 뛰어든 곳이 바로 남천(당시는 문천)이다. 요석공주의 아버지 태종무열왕은 원효의 기이한 행동을 알아채고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인물이 신라 문자인 이두를 고안하고 신라 10현의 하나로 꼽히는 설총이다.월정교는 1984년부터 복원을 위한 자료수집과 고증작업을 벌였으나 2018년에야 복원사업이 완료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35대 경덕왕 18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라 왕궁이 있는 월성과 건너편 남산을 연결하는 다리다. 조선시대 들어와 유실된 것을 고증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했다.길이 66m, 폭 13m, 높이 6m로 양끝에 문루(門樓) 두개 동이 세워져 있다. 워낙 오래된 다리인 데다 고증자료만으로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아 현재의 모습이 당시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신라 천년의 도시 경주시의 역사성을 재현하고 관광상품을 늘린다는 취지가 복원의 학술적 목적보다 앞섰다는 평가다.경주에는 역사성을 배경으로 야경 명소로 꼽히는 곳이 여럿 있다. 동궁과 월지, 금장대, 첨성대, 월성 등이 있으며 월정교도 그 중 하나다. 고풍스럽고 예쁘게 단장한 월정교에서 바라본 경주의 모습에서 신라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국빈공식 만찬장으로 월정교를 추천했다고 한다. 월정교의 역사성과 아름다움, 스토리 등으로 볼 때 손색이 없는 장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9

‘與野협치’ 더 멀어지게 한 尹 대통령 기자회견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국정운영 상황과 향후 계획을 밝혔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데다, ‘해병대 채상병 특검’ 등 윤 대통령 신변을 겨냥한 야권의 공세가 극심한 상황에서 열린 이번 회견은 윤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 동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렸다.우선 가장 예민한 현안인 채상병 특검과 관련, 윤 대통령은 “수사 결과를 보고 납득이 안 되면 제가 먼저 특검을 하자고 하겠다”면서 ‘선(先)수사 후(後)특검’ 입장을 고수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해서는 ‘정치 공세’라고 선을 긋긴 했지만,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증원과 관련해서는 “설득으로 풀어나가겠다”며 기존의 강경입장을 확인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국민보고’자리에서는 지난 2년간의 국정성과를 설명하고,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 등 향후 3년의 국정운영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날 회견에 대한 대체적인 반응은 ‘사전에 충분히 예상했던 답변’이라는 게 주류다. 기대이상의 공감 가는 내용이 없었다는 얘기다. 지난 2월 KBS 대담 때처럼 오히려 불통이미지를 강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사실 어느 대통령이든 기자회견에서 호평을 받기는 어렵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민생이나 정치 현안에 대해 정답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정치적 반대세력이 국민 절반 가까이 되는 것도 부정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이유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국정 기조 쇄신을 기대했던 많은 국민을 실망시키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는 정치공세라고 했고, 순직한 해병대원에 대한 특검은 수사를 지켜보자며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 명령대로, 윤석열 정부를 바로잡아가는 일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 동안 ‘민의’를 앞세운 야권의 전방위적 공세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2024-05-09

윤석열 대통령이 해야 할 ‘정치’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지난 총선에 여당이 패배한 후 윤석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라와 국민을 다스리는 일이 정치이고, 대통령이 공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정치인데 새삼스러운 언급이 아닐 수 없다.사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동안 열심히 정치를 해왔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해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꼽을 수 있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 외교·안보의 정상화, 쇠퇴한 원전사업을 복원한 것과 노동개혁 등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은 분명 상당한 공적이었다.그러나 정권을 빼앗긴 좌파 세력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깎아내리기에 혈안이었다. 저들의 안위와 정치생명을 위해서는 나라의 장래나 민생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음모든 협잡이든 못할 짓이 없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여당은 총선 참패를 면치 못했다.총선 승리로 국회를 장악한 좌파 세력은 기고만장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틀어잡으려고 입법독재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법리스크다. 대표를 비롯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검찰의 조사나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적 처리에 따라 당사자들의 정치생명은 물론 당의 입지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이제는 윤 대통령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고지식하게 밀고 나간다고 국민이 알아주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절감했을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좌·우의 세력이 극명하게 엇갈려 대결하는 상황에선 민심을 얻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그 민심이란 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선동이나 포퓰리즘에도 쉽사리 부화뇌동하는 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치의 성패는 결국 민심에 달렸다. 성실하고 정직하면 알아주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는 정치를 잘 할 수가 없는 것이다.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좌경화된 언론매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최상의 홍보팀을 꾸려서 내전이나 다름없는 좌·우 대결의 구도에서 여론전에 밀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 훌륭한 성과도 여론을 선점하지 못 하면 소용이 없다. 거짓 선동이나 모함에 대해서는 즉각 대응하고, 국민들이 납득하고 인정할 때까지 몇 번이고 거듭해서 설명하고 홍보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통령 자신도 월 2회는 정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해서 불통의 굴레를 벗고, 국정 현안에 대해서 명확하고 투명하게 정책과 의사를 밝혀야 한다. 물가안정과 취업확대 정책 등 피부에 와 닿는 민생정책에 진력하고 무너진 법치를 확립하는 일도 미루지 말아야 한다.범죄 집단을 선택한 병든 민심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45% 민심을 위한 정치를 하기 바란다. 범죄자들과는 타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탈한 5%의 민심도 돌려놓고 과반의 지지기반을 확보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이다.

2024-05-09

부모 사랑과 자식 효도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5월의 맑은 날, 어버이날에 유튜브를 훑어가다가 ‘어머님 은혜’ 노래를 들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것, 그것이 어머니의 은혜라는 것이다.어버이날 자식들의 안부 전화를 받으면 기쁜 마음이 된다. 시인 김소월도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했듯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를 쓰신’ 어머니의 가이없는 희생과 지극하신 정성으로 길러주신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라는 존재의 책임을 알았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자식들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고 효도를 기다려 보아야겠다.어버이날은 1956년 5월 8일 ‘어머니날’로 제정되었다가 효(孝)와 경로에도 뜻을 두어 1973년 어버이날로 되었고 이날 자식들은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부모님 은혜에 감사드리고 있다. 카네이션 꽃말은 ‘사랑과 존경’이다. 떨어져 사는 자식들에게 꽃 한 송이를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전화로 안부를 물어올 때면 가족의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마음속으로 부모님을 불러본다. 어머니, 우리 엄마를 부르면 뭔가 모르게 애처로움이 앞서고 아버지, 아빠라 불러보면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반(半)’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 마음’을 느끼게 된다. 늙고 병들어 세월의 무게가 새겨진 아버지의 어깨와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며 착한 아이로 길러주시다가도 엄한 회초리를 들던 어머니의 손은 모두가 자식 잘되라고 가르쳐주신 부모님 은혜이다.시골집 아궁이에 불 땔 때면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댄다. 6남매 키우시느라 참 고생하셨다. 50여 년 전 자식들이 많아 먹고살기 힘들 때 나라에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쳤었지. 이제는 출산율 0.7이라는 인구절벽에 서서 자식의 교육 방향을 왜곡(歪曲)해 버려 효도라는 가치 추구는 어렵게 돼가고 있다.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삼강오륜은 희미해져 버렸고, 도덕과 예절은 찾기 어려울 듯 사회가 어지럽고 각종 범죄가 활개 치는 시대, 효의 부재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저출산 시대의 자식 사랑은 물질과 권력 우선의 사회행태로 인해 일신의 평안함만 생각한 인성교육 부족이 문제다.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 즉, 사람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교육을 지양하며 정부에서는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 왔다. 그 내용을 보면 초등 1,2년은 효와 정직을 가르쳐 떡잎부터 바르게 키우고 3,4년은 예와 협동, 책임을, 5,6년은 존중과 배려, 소통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으며 중등은 자유학기제를 도입하여 예체능에도 힘을 쏟고 있다.우렁이는 알을 낳고 부화하면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자애심이 있고 가물치는 알을 낳는 고통에 눈이 멀게 되면 부화한 새끼들이 차례로 먹이가 되어 주는 효를 실천한다는 얘기도 있다. 감사할 줄 아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학문중심 교육으로 인성교육은 살아가는데 별거 아닌 것으로 인식된 지금, 부모님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품을 줄 모르는 세대를 키우고 있는 느낌이다.부모의 자식 사랑과 그에 보답하는 효도는 이 사회가 밝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요람이 되게 할 것이다.

2024-05-09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APEC 경주 유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후보도시 선정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20년만에 다시 한국에서 열리는 APEC 후보도시에는 경주시와 인천시, 제주도가 3파전을 벌인다.외교부는 지난 7일 경주시 등 후보도시 3곳을 발표하고 이달 중 후보도시 대상 현장실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6월 중에는 개최도시가 최종 선정될 전망이다.2021년 7월 APEC 유치 의향을 공식 표명한 경주시는 경북도와 시·도민 등이 혼연일체돼 준비해온 그간의 모든 과정을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받는다. 개최 희망도시 중 유일하게 기초단체인 경주시는 지방의 중소도시라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워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APEC이 표방한 포용성의 가치에 부합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시대라는 시대적 정신과도 맞는다는 설명이다.APEC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면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포용성을 시대적 가치로 생각한다. APEC은 멕시코 로스카보스(2002), 러시아 블라디보스톡(2012), 인도네시아 발리(2013), 베트남 다낭(2017년) 등에서 이미 성공적 개최를 한 바 있어 경주 개최가 낯선 일은 아니다. 또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지방시대를 실천하는 당위성과 균형발전을 이루는 명분에서 경주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경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 도시다. APEC은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역량괴 비전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인 동시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 국가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회의다. 천년고도 경주는 한국의 빛나는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줄 최고의 도시다. 타임지 등 국제언론이 세계 100대 관광도시로 국내선 유일하게 소개한 도시다.이달 시작되는 선정위 실사단 방문에 경주시는 총력 대응해 시·도민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주시 개최의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특히 중소도시도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계기가 돼 지방시대를 앞당기게 된다면 APEC 경주 개최가 가지는 의미는 더한층 클 것이다.

2024-05-08

‘아침이슬’ 그리고, 김민기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침’과 ‘이슬’이란 2개의 보통명사로 ‘아침이슬’이란 고유명사를 만든 사람이 있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요약되는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이름 김민기(73).작곡가이자 가수, 공연연출가이자 시인에 필적하는 수준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인 김민기의 아우라(aura)는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난다.“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으로 시작해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로 끝을 맺는 ‘아침이슬’. 삶의 무게가 힘겨워 울고 있는 젊은이들에겐 성가(聖歌)와 같은 숭엄함으로 위로를 전했고, 자신과 더불어 공동체를 아끼며 살고자 결의했던 이들에겐 총알보다 더 강위력한 변혁의 무기가 돼주었던 노래다.‘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인 김민기가 아픈 모양이다. ‘위암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경향 각처의 신문에 오르내린 게 올해 이른 봄. 미디어와의 접촉을 꺼리는 김민기의 성향 탓에 병세가 어떠한지는 소수의 사람들만 안다고.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엔 김민기와의 추억담을 털어놓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마치 곧 이별할 사람과의 기억을 반추하듯.2018년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TV 화면에 등장해 아나운서 손석희와 인터뷰를 한 김민기는 이런 말을 했다. “노래의 주인은 그걸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1987년 6월. 항쟁의 거리에서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단다. 과연 김민기다웠다.그가 병마를 이겨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면식은 없지만 이 나라 중년 모두는 청춘의 어느 한 부분을 김민기에게 빚지고 있으므로./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8

악성 정보공개청구 남발, 공무원들이 멍든다

악성민원인이 제기하는 무더기 정보공개 청구로 행정력 낭비가 심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악성민원인이란 공무원에게 부당한 요구나 폭언을 일삼거나, 같은 청구를 반복해 업무를 마비시킬 의도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악성민원은 심각한 인권침해일 뿐만 아니라 공무집행 방해에도 해당되지만 대부분 공무원은 보복이 두려워 참고 넘어간다. 지난 3월에는 포트홀 보수 공사를 위해 교통을 통제하던 경기 김포시 공무원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전국 자치단체가 비슷한 추세지만 경북 예천군을 예로 들면, 민원인들의 정보공개 청구가 지난 2020년 551건에서 2023년 1715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민원인 중에는 최근 3년에서 많게는 5년 이상의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어 직원들이 서류 복사나 개인정보 확인 작업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예를 들어 민원인이 3년간 공무원의 개별 출장 및 업무추진비 집행 내용을 청구할 경우, A4용지 2천 장이 넘는 분량의 문서를 담당자가 작성해야 했다. 정보공개 청구는 신청 접수일로부터 10일 이내에 공개하게 돼 있다. 예천군 한 공무원은 “특정부서를 대상으로 악의적으로 자료를 청구하는 때도 있고, 지인을 활용해 동일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정부가 최근 민원 취지와 업무방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치단체가 심의위를 열어 종결 처리할 수 있도록 법적근거를 마련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의하면, 최근 2년간 정보공개청구 건수는 총 354만6822건인데 이 중에서 상위 10명이 청구한 게 82만7160건이다. 1명당 많게는 30만 건 가까이 정보공개를 청구하며 의도적으로 담당 공무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일부 자치단체의 경우, 정부의 법령개정에 맞춰 자체 조례 개정을 추진중이다. 해당조례가 정당한 정보공개 요구에 대한 거절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곤란하지만, 악성민원을 근절할 수 있는 장치로서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2024-05-08

스승의날을 생각한다

장규열 고문 불가능했을 일이 벌어졌었다. 직장생활 끝에 뜻을 정해 떠나기는 했지만, 모든 게 서툴렀다. 그가 아니었으면 오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지도교수 미라클(Gordon E. Miracle) 선생은 낯설었을 한국 유학생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었다. 직장을 잡아 학교를 떠나기 전날, 교수님과 마지막으로 마주 앉았다. ‘교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깊으므로, 오늘은 제가 무엇이라도 갚아드리고 싶습니다.’ 뜻밖의 제안이었을까.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내가 자네를 위해 선생으로 뭘 특별히 했는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자네가 굳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부터 만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만 하게나.’라고 했다.참으로 충격이었다. 받은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서 살아온 수십 년이지만, 그 말씀을 실천했는지 창피하기 짝이 없다. 스승과 제자. 그는 선생이라는 내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상과 일과 가운데 선생이자 동료였다. 온 힘을 다해 함께 하였고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학생들에게 그리 했을까. 어느 한 순간 받은 큰 도움이 아니라 유학생활 칠 년을 건너며 날마다 받았던 스승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다. 나를 기억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흉내라도 내어보았는가. 제자가 퇴직한다니까, 구순을 훌쩍 넘기신 선생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선생이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끝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배려와 진심으로 만났던 선생님이 그리워진다.다시 스승의 날. 박제된 구호처럼 글자만 그럴싸하다. 마음에 짐만 쌓으며 슬그머니 지나가는 날이 아닌가. 어느 하루를 잡아 어색하게 챙길 일이 아니다. 교육의 마당에서 날마다 만나는 ‘선생과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삶을 나누고 믿음을 쌓으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에 끈끈해지는 게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학생이 인권을 외치고 선생이 교권을 주장하는 곳은 이미 학교가 아니다. 교육과 성장이 일어나는 곳일 수가 없다. 교육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가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르침의 의미를 새롭게 살려야 하며 배움의 큰 뜻을 들어올려야 한다. 받을 것을 따지기보다 나눌 것을 헤아려야 한다. 학생들은 내일을 품었을 터이다. 선생은, ‘내가 가르쳐 내일이 열린다’는 흥분으로 살아야 한다.진심은 통한다. 학생과 부모들이 인정하고 따라와 주는 일도 선생에게 달리지 않았을까. 정성을 쏟으면 식물도 반응한다는데, 온 마음을 쏟아 만나는 아이들이 바뀌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선생님은 그래서 ‘가르치는 일이 정신적 업무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육체적 노동이었다’고 하였다. 마음과 몸을 던져 세상을 바꾸시는 선생님들이 아직도 많다. 대학입시에서 교대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학생 숫자가 줄어 걱정이라지만, 학교에는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억도 다 못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기적입니다.

2024-05-08

어버이날, 엄마를 부르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5월 8일이 예전엔 어머니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아침 일찍 학교 가기 전,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언감생심 생화는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빨간 색종이로 접어 만든 보잘 것 없는 카네이션을 엄마는 하루 종일 왼쪽 가슴에 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시며 아버지는 왜 아버지날은 없나 하셨다. 전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런 불평을 하셨나, 그 원성이 통했나,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1973년부터는 어머니날이 어버이날이 되었다. 한 송이의 카네이션을 더 만들어 아버지께도 달아드렸으니, 아버지는 소원을 푸셨을까. 아버지의 가슴 꽃도 그날 종일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어버이날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엄마가 더 사무침은 나 혼자만의 마음인지 모르겠다.귀가 어두운 엄마였다. 엄마가 꽤나 젊었을 때부터 귀가 어두워졌다는데, 그 연유에는 다양한 설이 있었다. 외가댁의 유전이라는 설도 있고, 나를 낳은 후 산후조리를 잘못해서라는 설도 있고, 사업 실패해 경제력이 없어진 아버지 대신으로 30대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라는 설도 있었다. 세 가지 설 중 한 가지가 나와 관계된 거라, 왠지 귀 어두운 엄마에게 일말의 잘못을 했다는 미안함을 늘 가지고 있었던 나의 유년이었다. 커서는 돈 벌어서 엄마의 귀를 반드시 내가 고쳐주리라는 결심이자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대학 졸업 후 엄마를 이비인후과에 모시고 갔고, 당시의 의학으로는 절대 고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수술 대신 보청기를 맞춰드렸다. 그 후 보청기를 바꾸고 수리하고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덜려 애썼다. 보청기를 했음에도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잘 듣지 못한 엄마였다. 대신 엄마와 말하려면 손으로 엄마의 손목이나 팔을 툭툭 쳐서 내게 눈길을 돌리게 한 후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말을 전한다. 그리고 손짓과 과장된 표정으로 얘기하는 것이 큰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통하기가 쉬웠다. 모녀지간에 긴한 속엣말을 할 수 없으니 엄마도 나도 서로 많이 답답해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편지였다. 엄마가 내게 더 많은 편지를 썼고, 나의 편지와 답장은 아주 이따끔이었다. 게을러서이기도 했지만 편지를 쓰려 종이 위에 ‘엄마’를 쓰면 먼저 눈물이 났기 때문에 접었던 기억이 많다. 대학 4학년 11월, 전국적으로 큰 규모의 학생운동으로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학교를 가지 못했으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취 중이었기 때문에 집에도 가지 못했다. 그 무렵 라디오에서 편지를 공모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평상시 잘 쓰지 않던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제목이 ‘엄마가 듣지 못할 편지’였지 싶다. 몇 달 후 당선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부상으로 보내준 법랑냄비세트를 받았다. 라디오로 들은 나의 편지는 꽤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 같은데, 편지를 쓴 나는 들으며 울었으나 정작 엄마는 끝내 듣지 못한 편지였다.엄마를 소리내어 부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지금도 자그맣게 입을 오므리고 입모양을 만들어 엄마…. 라고 소리낼라치면 눈이 먼저 답한다. 눈가가 스멀거리고 촉촉해지려 한다.

2024-05-08

어지럼증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단어가 어지럼 하나밖에 없어서 표현을 어지럼이라고 하지만 어지럼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의 강한 어지럼증은 한방에선 현훈이라고 한다. 이러한 어지럼증의 특징은 불안정한 자세나 자세변동에 의해서 증상이 심해지고 구역감과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말초성인 경우가 많다.전정기관의 원인인 경우가 많으나 이석증을 제외하고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어 대증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방에선 어지럼증에 효과적인 약들이 많아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한방 치료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약으로 치료를 하며 상부의 체액을 소통시켜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 전정기관에 염증이 생기면 붓게 되고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몸이 약한 사람들은 회복이 되지 않으면 만성으로 어지럼증이 지속되는데 이런 경우 특히 효과적이다. 택사나 백출 같은 몸의 물을 제거하는 약재로 처방을 하며 현재 몸 상태에 따라 약재를 가감한다. 효과가 빠른 경우는 몇 달 고생한 경우라도 한 두달 안에 호전을 본다.눈이 어지러운 독특한 경우가 있는데 차를 탔을 때 어지럼을 많이 느끼거나 눈앞에 눈발이 날리는 것과 비슷하게 눈앞에 뭔가가 지나갈 때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경우는 시호나 반하 같은 몸의 면역을 높이고 간의 열을 내리는 약재를 베이스로 한 약들을 처방하면 좋아진다. 눈이 어지럽다고 표현을 하는 경우는 상부의 체액을 소통시키는 방법이 아닌 몸의 면역을 높이고 눈으로 올라가는 열을 내리는 약들을 조합해서 쓴다.장시간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앞이 캄캄해지거나 오랜 시간 서있을 때 발생하는 것은 기립성 저혈압인 경우가 많다. 여자들에게 많고 마르고 약한 사람 혹은 노인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 실신 원인의 3분의 1가량이 이런 경우라 몸을 움직일 때 조심하고 평소 체력관리나 음식관리로 몸 상태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몸이 약하고 혈액순환이 약해서 생기는 어지럼증이라 몸에 맞춘 보약을 먹으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심장을 강화하고 몸을 따듯하게 혈액 순환을 시켜주는 육계와 당귀 등이 들어간 약으로 처방을 한다. 몸이 약한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증상이라 소화기가 약한 경우는 소화기를 강화 할 수 있는 한약재를 처방하면 더욱 좋다.한방 시술로는 상부경추를 풀어주는 추나와 함께 뒷목에 습부를 하고 침과 약침을 놓아 머리로 가는 혈액 순환을 도와주는 방법을 쓴다. 상부경추가 눌리면 척수액 흐름이 좋지 않아 어지럼증과 두통이 발생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상부 경추를 풀어주는 시술을 한다.초음파로 직접 보면서 성상신경절에 약침을 주입하는 방법도 있다. 성상신경절은 교감신경의 관문으로 이 부분을 풀어 주면 불면과 가슴두근거림 뿐만 아니라 인체의 많은 부분이 개선된다. 몸에 맞는 보약이라고 보면 되고 꼭 초음파로 보면서 시술을 해야 안전하게 할 수 있다.

2024-05-08

동요와 윤극영 + 박목월

배문경 수필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첫 창작 동요가 100살이 되었다.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의외로 제목을 맞히기 어렵다. 정답은 내용에 없는 ‘반달’이다.올해는 한국 첫 동요로 인정받는 ‘반달’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24년 경성(지금의 서울)에 아동 문학가이자 작곡가인 윤극영은 관동대지진에서 탈출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고통 받다 숨진 누이의 죽음으로 복받친 설움을 안은 그의 눈에 보인 한 장면은 바로 ‘반달’의 가사가 된다.그가 평생 지은 수많은 동요는 어린이거나 한때 어린이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노래였다. ‘까치까치 설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드름’ ‘따오기’ ‘기찻길 옆’ ‘어린이날 노래’ ‘나란히 나란히’ 등 그가 작곡한 주옥같은 동요다. ‘반달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600여 곡의 동요를 남겼다.동요가 된 목월의 ‘얼룩 송아지’ 노래비가 경주 황성공원에 있다. 1968년에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 노래비가 세워졌는데, 그중 하나가 목월의 ‘얼룩송아지’ 노래비다. 박목월이 짓고 서울대 음대 출신의 손대업이 작곡해서 널리 알려진 동요다. 이 노래는 1960년대 문교부 제정 음악 교과서에 실렸고, 어린이들은 물론 국민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소는 우직하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동물이다. 농부인 아버지의 곁에서 논과 밭을 갈고 짐을 운반하며 팔려서는 자식들의 학자금이 되었던 든든한 자산으로 우리와 뗄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가장 쉽고 많이 부르는 동요 ‘송아지’의 주인공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 토종 한우인 얼룩배기 ‘칡소’를 보고 동시를 썼다고 한다.동시가 동요가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동요축제 ‘KBS창작동요대회’가 33회를 거치는 동안 400여 편의 새 동요를 발표하였다. 1989년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시작으로 ‘수수꽃다리’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꼭 안아줄래요’ ‘내 손은 바람을 그려요’ 그리고 작년 대상곡 ‘뻥뻥 뻥튀기’까지 이 시대 어린이들의 감성을 표현하는 동요들이 발표되고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올해 제34회 KBS창작동요대회에서는 창원문협 도희주가 쓴 노랫말 동요가 대상을 수상했다.‘멍멍 기분이 좋아/ 헥헥 강아지가 / 내 품으로 달려온다/ 졸랑졸랑 우리는 좋은 친구/ 꿈속에서 우리는 좋은 친구’-‘강아지’부분경주문인협회 주관 2024년 제57회 목월 백일장 초등저학년 장원작품이다. 시제는 초등저학년은 강아지 또는 우산, 고학년은 엄마 손과 봄비 중에 선택한다. 중학생은 달력과 사춘기, 고등학생은 보름달과 돌다리, 대학 일반부는 계단과 회오리였다. 어린아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서 표현한 문학 장르의 하나인 동요가 인구감소와 더불어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이번 목월 백일장을 통해 가족의 연대를 보았다.원고지를 받아 든 참가자들이 숲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았다. 글을 쓰기 위해 텐트와 앉은뱅이 탁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돗자리를 깔고 두런두런 시제에 대해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소풍 나온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낮 12시까지 본부석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라 모두 마음이 바빠 보였다.아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듯이 동요가 사라지는 날을 생각할 수 없다.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부터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따라한다, 아이들의 순수한 시기를 어른들의 모습을 그냥 모방함으로써 동요를 잃어버리고 있다. 지금 목월의 시(詩)가 세상 사람들에게 향수(鄕愁)를 느끼게 하고, 그리움은 수채화처럼 번져 과거와 현재가 어울림으로써 세상이 살만한 가치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목월의 목소리 들리는 듯하다.

2024-05-08

소만(小滿)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가 소만(小滿)이다. 태양의 황경이 6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5월 20일(음력 4월 13일)이다. 음력으로는 4월의 절기다. 소만은 입하와 망종(芒種) 사이다.소만(小滿)은 한자로 ‘작은 것이 가득찬다’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조금씩 여름 기운이 차올라온다는 뜻으로 지난 겨울에 심었던 밀, 보리, 마늘, 양파 등의 열매가 영그는 때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가득찬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번에 뿌려놓은 싹이 이제 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벼농사를 위한 모내기를 시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소만이라는 말은 모든 만물이 자라나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라는 의미인데, 소만은 식물이 잘 자라는 시기다. 햇볕이 가득하고 모든 식물의 색깔이 연초록으로 변한다. 가을에 심어놓은 보리를 베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를 하는 때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밭농사는 김매기를 하고, 벼농사는 모판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농사 준비에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예전에는 이 시기가 가장 불행했던 때다. 바로 보릿고개의 아픈 추억이 있었다. 작년에 수확한 밭작물도 다 먹었고, 들나물과 산나물도 씨앗을 맺으니 먹을 것 없고, 보리 수확은 아직 더 기다려야 했으니 모진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지금은 먹을 것이 차고 넘친다. 추수한 보리, 밀, 죽순, 봄나물인 씀바귀, 냉이, 시금치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이 시기에 봉선화가 피면 잎과 꽃을 찧어내고 백반을 넣어 손톱에 물을 들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과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래 이 풍속은 오행설에 붉은색(赤)이 사귀(邪鬼)를 물리친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또 풋보리를 몰래 베어 그슬리고 밤이슬을 맞힌 다음 먹으면 병이 없어진다는 속설도 있다.속담으로는 ‘소만(小滿)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가 있다. 계절상으로 봤을 때 여름이라 따뜻한 시기이지만, 이따금씩 차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 노쇠한 사람이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가 있기에 경고의 의미가 있다.소만은 사월(巳月)의 중앙에 해당하는 절기이다. 사월은 양기가 힘차게 활동하는 시기로 만물이 힘찬 에너지를 뿜어내며 정열적으로 성장하고,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시기다. 사월은 모내기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집 나간 사람도 사월에는 들어온다는 말도 있다.동물로는 뱀이다. 뱀은 징그러우면서도 끌리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꺼림과 끌림의 이중성으로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사화(巳火)의 특성이다. 그 매력에 가까이 가서 친하게 지내려고 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다가 갑자기 변덕으로 상대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성질이 있다.하지만 단정하고 잘 다듬어진 용모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화끈해 보일 수 있지만, 일을 추진할 때는 세밀하고 침착하고 논리적이고 예의가 바르다. 주어진 환경 변화에 따라 업무를 파악하고 전체를 장악하며, 업무환경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 놓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장애물을 거침없이 통과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뱀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물러서는 점이 없는 것처럼 이런 기운이 넘치는 달이 사월이다.사월의 뱀은 양기의 상징이다. 성질이 급하고 화(火)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활동적인 일을 하는 것이 성향에 어울린다. 주역으로 보면 중천건(重天乾)괘에 해당한다. 여섯 효(爻)가 모두 양(陽)으로 64괘 가운데 가장 강하고 튼튼한 괘다. 주역을 대표하는 괘다. 초구(初九)는 물에 잠긴 잠룡(潛龍)에서 시작하여 상구(上九)는 항룡유회(亢龍有悔)다.‘문언전’에서는 항(亢)자를 ‘나아가는 것만 알고 물러서는 것을 모르며, 존속하는 것만 알고 멸망하는 것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사실 나아감과 물러섬을 항상 잊지 않고 동시에 살필 수 있다면, 분명 보통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한창 잘나갈 때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미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뛰어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문언전’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성인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진퇴와 존망을 알고서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사람이라면 아마도 성인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신분은 귀하나 지위가 없고, 높이 있어도 다스릴 백성이 없으며, 어진 이가 아래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후회가 뒤따른다. 다시 말해 ‘지극히 융성할 때 그 지나침을 살핀다’라는 말이 주역의 큰 뜻이다.초구 잠용은 물에 잠긴 용은 배우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상구 항룡은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가 겸손히 은퇴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구부득고(求不得苦)는 원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이다. 부족한 것이 충족되면 얼마 있지 않아서 권태에 빠진다. 권태를 벗어나고자 다른 무엇을 욕망하면서 다시 고통에 빠지게 되니, 인간의 삶이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인간은 맹목적인 애욕이 있어 부족한 것을 취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욕망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같이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24-05-08

효도문화가 왜 ‘올드한 가치’로 취급받나

심충택 논설위원 1970년대 한국의 효도문화에 대해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훌륭한 사상”이라고 했다. 토인비는 1973년 런던을 방문한 한국 정치인에게 “만약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꼭 가져가야 할 제1의 문화가 한국의 효 문화”라며, 우리나라 가족제도를 극찬했다. 당시 서구사회는 보수주의에 대한 청년들의 급진적인 저항으로 히피문화와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던 시기였다. 서구 지식인의 눈으로 봤을 때,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콩 한 쪽도 이웃끼리 나눠 먹은 한국문화가 신기하고 부럽게 느껴졌을 것이다.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이번 어버이날(8일)에는 꽃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고 한다. 가정의 달 성수기 임에도 ‘카네이션 특수’가 사라지면서 화훼농가와 꽃집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다. 부모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어버이날 문화를 ‘낡은 유교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보편화되는 추세가 아닌지 우려된다.부모세대를 경시하는 풍조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7월말 민주당 혁신위를 이끌었던 김은경 위원장은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남은 생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로 표결해야 하느냐”는 기막힌 말을 했다. 20세 유권자 표는 60세 유권자의 세 배에 해당하는 표를 비례 행사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사고방식이다.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시라”고 했고,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변해 사람이 멍청해진다”는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 폐지 공약을 내놨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어버이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는 수년째 변하질 않는다. 간병과 가난에 대한 고통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비극이 줄이어 발생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올해 약 950만명으로, 내년에는 1천만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100세를 넘기는 노인들 역시 해마다 늘어 올해는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해 노인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인터넷을 보니, 요즘에는 여러가지 ‘효도대행’ 상품도 나온다. 부모에게 단순하게 주기적인 문자를 보내주는 것부터 손 편지 쓰기, 함께 술 마시기, 같이 산책하기 등 상품내용이 다양하다. 1주일에 2~3번 안부문자 보내는 데는 5만 원, 선물 대리발송 옵션이 붙는 경우에는 5만 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토인비가 부러워했던 우리나라 효도문화가 점점 퇴색돼 가는 세태를 겪으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아무런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부모세대들의 희생과 가족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2024-05-07

알박기로 논란된 청송군 골프장 조성사업

청송군이 공영개발로 추진하는 27홀 규모 골프장 조성 사업이 이번엔 공정성 시비로 논란이다. 청송군은 지난달 25일 교보증권 컨소시엄을 청송군 골프장 조성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컨소시엄 업체 가운데 일부 업체가 골프장 조성 예정부지 내 핵심 자리에 2만9000여 평의 땅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것. 특히 청송군 골프장 조성과 관련해 설계용역을 맡은 업체도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져 공정성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청송군 골프장 조성 사업은 청송군 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시작했다. 교보증권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기 전 2022년 6월 한림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석연치 않은 사유로 포기하면서 이 사업은 2년간 표류해 왔다.한림건설은 국내 상위권 건설사로 수도권에 2개의 골프장을 보유한 업체. 한림건설은 우선협상대상자 계약 후 50억원의 사업이행보증서를 제출해야 하나 이를 이행치 않아 계약이 해지됐다. 당시 한림건설이 계약을 하지 않은 이유도 부지 매입 문제인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이번 재공모 과정에서도 3개 업체가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으나 2개 업체가 중도에 포기한 것 역시 알박기 부지 때문이라 하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어도 뒤끝이 개운치 않은 분위기다. 포기한 업체 관계자가 “시험출제자가 시험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니 공정성에 대한 군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산림레포츠 휴양단지 조성사업은 전국 최고 청정휴양지를 자랑하는 청송군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사업이다. 군민들도 조기에 마무리돼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사업 절차 과정에 법률적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공정성 문제로 사업의 취지가 훼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정성은 공기관의 업무 집행에 있어 행정의 균형을 이르는 말이다. 시대적 흐름으로도 공정성은 법률적 문제 못지않게 민감한 문제다.2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골프장 조성 사업의 순항을 위해 군의 명쾌한 해명이 먼저 있어야겠다.

2024-05-07

정부는 ‘저출생 해법’ 경북도에서 배워라

심각한 저출생 현상이 현실적 위기로 다가오면서 경북도가 본격적인 ‘저출생과의 전쟁’에 들어갔다. 경북도는 이달부터 1천100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저출생 극복 정책을 시행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필요한 곳에 빠르게 자금을 투입해 저출생 문제를 경북도에서 해결해 보겠다”고 했다. 이번에 편성된 추경예산은 완전돌봄을 비롯해 미혼남녀 커플 매칭 사업, 출산지원, 신혼부부 월세 지원, 육아기 부모 단축 근무 급여 보전, 돌봄 아빠 교실 운영 등에 투입된다.이철우 지사는 지난 3월 저출생대책 회의를 주재하면서 경북도가 가장 먼저 0세부터 초등학생까지 완전돌봄 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했었다.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주택 1층을 사들여서 아이들이 집에 오면 돌봄방에서 마음껏 놀고 공부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0세부터 2세까지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 이후는 공동체(전업주부나 봉사단체 등) 구성원에게 수당을 주고 맡기는 구체적인 돌봄방식도 제시했다.경북도가 저출생 문제 해법을 찾는데 전 행정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만큼 인구소멸 위기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지난 2월 20일 22개 시·군 단체장과 각급 기관장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저출생과의 전쟁’ 선포식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저출생극복을 위한 모금운동도 펼치고 있으며, 상당한 성과도 내고 있다.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2024 인구 보고서’에 따르면, 저출생으로 인해 우리나라 9년 뒤 초등학교 입학생(7세)은 지금(작년 43만명)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경북도처럼 저출생 현안에 대해 그렇게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사회 저출생의 중요한 원인을 ‘불필요한 과잉 경쟁’ 때문이라고 진단했듯이, 저출생현상의 근본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수도권 일극주의’ 탓이 크다.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을 비수도권으로 분산시키지 않으면 저출생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2024-05-07

행복한 어린이

우정구 논설위원 어린이날을 맞아 각 교육기관 등이 어린이와 관련한 설문을 조사해 보면 그 내용에 공통점이 있다. ‘가족과 사랑’이 공통의 단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예컨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어린이들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를 가장 많이 대답한다.또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질문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가기’.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이란 단어가 제일 많다.어린이들은 각종 설문조사에서 행복의 조건을 손꼽으라 하면 ‘화목한 가정’을 가장 먼저 말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천진난만하고 깨끗한 동심에서 어른들은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을 닮아가니 어른들이 솔선해 모범적 생활을 하라는 의미로도 풀이한다.최근 교직원노동조합이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생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초등생 10명 중 6명이 거의 놀지 않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논다고 대답했다. 그 외 시간은 학원과 학습지, 온라인 학습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우리나라는 사교육비 지출은 GDP 대비 압도적 세계 1위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8.3%다.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7.2시간, 특히 초등생의 경우 사교육 참여율은 85.2%로 10명 중 약 9명이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OECD 국가 중 우리 어린이의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는 수치다. 1년 365일을 어린이날처럼 보낼 수 있는 우리사회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7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① 영양제와 매미 애벌레

◆연재를 시작하며=스토리가 아닌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말한다. “한정된 짤막한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소설이란 문학 장르 중 가장 짧은 형식인 ‘엽편소설’ 역시 그렇다. 원고지 25매 안팎의 문장으로 세상과 사람,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꿈과 환멸을 드러내기 위해선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긴장’과 ‘에너지’가 필수. 문학을 통한 세계 해석과 심미적 위안이 사라진 21세기. 경북 포항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며 괜찮은 소설을 쓰기 위해 악전고투 중인 작가 김강(52)이 ‘엽편소설 연재’라는 간단찮은 도전을 본지를 베이스캠프 삼아 진행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향후 격주로 게재될 김강의 엽편소설이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인지 궁금하다. 아직 문학과 소설이 가진 사회적 힘을 신뢰하는 독자들의 관심과 질책을 더불어 기대한다. - 편집자 주 맥주캔 꺼내 한 모금 마신 그녀가 이번에는 찻장을 열었다.“자. 이거.”영양제다. 25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의 과학적 처방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어드밴스’라는 단어가 덧붙여진 영양제. 살색 영양제 한 알은 25가지의 비타민과 미네랄의 단순한 복합체가 아니다. 이것은 격려와 칭찬이다. 그녀가 순신에게 영양제를 챙겨주는 날은 순신이 하는 짓이 그녀의 마음에 든 날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양제는 없다. 처음에는 그녀가 영양제를 주지 않으면 오늘은 왜 안 주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에게서 영양제를 받지 못한 날이면 순신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이 있는지 먼저 생각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영양제는 순신에게 평화와 안도의 상징이다. 긍정과 부정의 되먹임 기전의 매개다. 예외적으로 영양제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녀가 순신에게 최후의 부탁을 하는 경우다. 이번에도 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없다.순신의 손바닥에 영양제를 올려놓으며 그녀가 말했다.“내일 별일 없으면 아이들 데리고 가서 매미를 잡아줘. 아니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 애들이 매미 잡고 싶다고 말한 게 언제야? 저번 주부터 매미, 매미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데 어째 그렇게 꼼짝을 안 해? 부탁이야.”그를 처음 만났을 때, 미경은 이미 몇 번의 선과 연애를 해 본 뒤였다. 학창 시절 몇몇의 연애를 제외한다면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은 제법 그럴싸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번듯한 직장이 있거나, 집안의 재산이 대단하거나, 둘 다였다. 그럼에도 미경이 그들 중 하나와 결혼 하지 않은 것은 굳이 그들에게 기댈 이유가 없어서였다. 이미 많은 것을 갖춘 그들에게 미경은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무언가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부인은?’ 이라는 질문에 ‘네, 약사인데, 집에서 쉬고 있어요. 굳이 와이프까지 밖에서 일하는 것 원치 않거든요.’라고 대답하며, ‘멋져요.’라는 반응을 기다리는 그들의 허영에 보탬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그는 달랐다. 어렴풋이 속이 비치는 번데기 같았다. 껍데기 속에서는 뭔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미경은 그를 만날 때마다 껍데기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떤 때는 찰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호령하듯, 가다듬듯 ‘아, 아’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와 일곱 번째 만나던 날 미경은 카페의 조명에 비친 껍데기 속에서 날개 같은 것을 보았다. 형광의 푸른색, 곧 껍질을 찢고 튀어나와 하늘로 날아 오늘 것 같은. 어릴 적 보았던 청띠제비나비의 날개.“미경 씨, 나는 말이지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글도 쓰고 싶고요,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좋을 것 같아요. 나무와 꽃을 기르는 일도 해야겠어요. 물론 돈도 많이 벌어야겠지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인생이 길지 않으니 그 중 어느 하나만 정해서 깊이 파고 들어가라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요. 길지 않은 인생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능력만 된다면. 함께.”‘능력만 된다면’ 이라는 전제에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미경 씨랑 함께.’라는 말에 가슴이 흔들렸다. 청띠제비나비의 날개를 붙잡아 곁에 두고 싶었다.번데기에서 나오면 나비가 될 줄 알았는데, 매미였던 건가. 아니면 아직 번데기 속에 있는 걸까. 영양제를 받아먹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식기를 정리하는 그를 보며 미경은 생각했다.영양제는 정확히 오 년 전 등장했다. 그 해 순신은 회사를 그만뒀다. 순신은 작은 책방을 열고 싶었다.“정치와 철학, 예술에 관한 책들만 취급하는 책방. 아이들 문제집이나 입시 혹은 수험서들, 처세에 관한 책, 사전 등은 취급하지 않는 ‘말 그대로’ 책방을 가지고 싶어. 한편에는 작은 강의실을 두고 매주 작은 강의를 열거야. 벽에는 스크린을 달아놓고 매일 저녁 혹은 정해진 시간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거야.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찰리 채플린 주간입니다. 이렇게 미리 공지하는 거지. EBS 다큐 프라임 중에서 좋은 것들을 다시 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그 시간에 맞춰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드는 거지.”순신이 미경에게 말했을 때, 사업자금은 충분한지, 퇴직금으로 가능한 것인지, 운영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미경이 물었고 순신은 대답하지 못했다.“자기 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을게. 이유가 있겠지.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돈 벌어오라고 말하지도 않을게. 내가 벌고 있으니 그 정도면 우리 가족이 사는데, 풍족하지는 않아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대신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어. 빠른 시간 내에 말해줘. 가능하면 문서로.”다음 날 저녁, 자기 전 미경은 순신에게 영양제 한 알을 건넸다.“뭐야?”“영양제.”“무슨 뜻이냐고?”“뜻은 무슨 뜻. 이제 우리도 몸을 챙기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퇴근할 때 하나 가지고 나왔어. 사람들은 열심히 사 먹는데, 정작 약사인 나는 영양제 한 알도 못 먹고 있네 싶어서 들고 나왔지. 하루 한 알씩 챙겨 먹자.”이후로 오 년이 지났고, 순신은 아직 계획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미경은 재촉하지 않았고, 순신은 전업주부 역할을 맡았다. 순신은 어쩌면 가사노동이 자신의 찾던 직업일 수 있다 여기기 시작했고 미경 또한 순신이 많지 않은 월급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것 대신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며 집안일을 해주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을 쓰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오전 10시 아이 둘을 데리고 순신은 아파트 뒤 소운동장으로 향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잡고 돌아와야 했다. 느티나무, 감나무, 벚나무들에 둘러싸인 소운동장 사방에서 ‘메엠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과 실눈을 하고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보며 매미를 찾았다.“저기요, 저쪽 매미 소리가 제일 커요.”제법 밑동이 굵은 감나무를 가리키며 아이들이 달려갔다. 순신은 느린 걸음으로 따라가 나무 아래에 섰다. 아이들은 감나무 잎 사이로 내리는 햇빛에 눈부셔하면서도 매미를 찾아 감나무를 빙빙 돌았다. 순신은 아이들을 따라 나무를 올려보다 눈이 부셔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땅이다. 저 흙 아래에서 매미 애벌레는 7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긴 세월을 기다리다 땅속에서 나왔겠지. 망설임 없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겠지. 드디어 짝을 만나고, 길어야 2주 남짓한 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아빠. 찾았어요. 저기. 저기 있어요.”잠시 아래를 보고 있는 사이에 큰 아이가 매미를 찾아냈다. 아래에서 2.5m정도 높이에 감나무에 바짝 붙어있었다.“빨리요. 아빠. 날아가기 전에 빨리 잡아요.”그러고 보니 매미가 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저 녀석들은 날 수 있기는 하는 걸까. 날개는 멋으로 혹은 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해놓고, 사실은 나무에 기어올라 바짝 붙은 채 그저 소리만, 소리만 우렁차게 울어대는 것은 아닐까.감나무는 두 팔로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두 팔과 두 다리로 나무를 감싸 안았다. 아기가 배밀이를 하듯 팔로 한 번 당겨 오르고 다리로 한 번 밀어서 오르고, 반복하면서 나무를 올랐다. 쉽지 않았다. 해 본 적 없었으니. 아이들은 ‘아빠, 빨리요.’를 재촉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많이 올라가지도 못했다. 내가 무슨 매미도 아니고 이게 뭐람. 이럴 줄 알았으면 긴소매 옷을 입고 오는 건데, 바지마저 반바지에 이게, 이게 뭐야. 팔과 다리에 묻은 땀이 더 힘들게 만들었고 아팠다. 지면에서 2m 정도 올라갔을까. 나무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뭐하는 겁니까?”경비 아저씨였다.“매미 잡으려고요.”작은 아이가 대답했다.“매미를 잡는다고?”“네.”“그 불쌍한 것을 잡아서 뭐하려고. 이 동네 매미는 다 똑같아. 참매미야. 참매미. 잘 들어봐. ‘매엠 매엠 매엠 매에에에에’ 이렇게 울잖아. 이렇게 우는 것은 백 프로 참매미야. 확인할 것도 없어,”순신은 난감했다.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오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다. 이대로 내려간다면 실망할 텐데. 오늘 저녁, 아니 내일까지 영양제를 못 얻어먹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가는 거다. 순신은 경비 아저씨의 말을 못들은 채 하며 두 다리로 몸을 밀어 올렸다. 눈앞에 매미가 있다. 이제 손만. 손만 뻗으면 된다. 그때 경비 아저씨가 소리를 쳤다.“거기 아저씨 내려오소. 불쌍한 아이들 괴롭히지 말고 내려오소. 빨리.” 매미가 울음을 멈췄다. 왼손의 힘이 빠졌고, 하필이면 불어온 바람에 잎이 흔들려 햇살이 눈으로 들어왔다.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매미의 울음이 멈춘 것과 바람이 불어온 것과 눈부신 햇살과 이리 내려오라는 주문 같은 경비 아저씨의 말이. 본지에 엽편소설을 격주 연재할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끝

2024-05-07

혁신으로 단단해지는 중국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1990년대 중국은 ‘마차 타고 로켓 쏘는 나라’라는 말이 있었다. 한국과 국교 수립이 얼마 되지 않은 1996년 북경을 갔을 때 첫 인상은 후진국 사회주의 국가 정도의 이미지였다. 북경 시내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면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동남아 수준의 거리였다.북경 올림픽을 전후로 대내외 투자가 크게 일어나고 경제 발전과 함께 유명 기업도 탄생했다. 한국 기업 진출이 본격화 되고 무역 규모도 커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중국인의 마인드와 사회주의 사상은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이 많았다. 공산 정부의 방침 아래 움직이는 수동적인 국민성이 혁신이 들어가면서 변화가 일어났다.필자가 2008년 1월,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청도의 포스코 법인을 갔을 때 일이다. 혁신 전문가 주재원이 투입되면서 중국 현지인의 마인드와 조직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스스로 문제를 찾고 개선하는 문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혁신 담당 주재원에게 ‘많이 가르쳐 주지 마시오’했던 기억이 난다. 시키면 하는 수동적 사회주의 사상으로 매월 급여에 직접 연계해서 인사 평가하지 않으면 근태 관리가 안 될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포스코 혁신이 도입되면서 스스로 개선하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이곳 공산주의 국가에도 혁신이 들어가면 변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포스코가 베트남에 제철소를 지을 때 현지 채용인을 어떻게 교육할까 고민이 된다는 CEO의 말씀에 중국에 답이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후 3개월 뒤에 청도 법인은 관둥성 혁신 대상을 받고 중국 신문에 게재되면서 포스코 혁신이 부각되었고 전국에서 벤치마킹 러시가 일어났다. 3년 뒤에 중앙 공산당 혁신우수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시각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필자가 2009년 상해의 소주시에 위치한 포스코아 법인을 컨설팅 할 때 중국인의 마인드 변화는 쉽지 않았다.현채인과 주재원의 관점이 달라 이를 해결하는 데 밤 늦게 술 한 잔을 나누며 경청하고 해결책을 찾아가기도 하고, 중국 직원의 사고 변화와 스스로 움직이는 조직 분위기 형성에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 중국의 발전 된 모습을 보면 14억 인구의 1인당 GNP가 만 불을 넘어서는 경제성장국이 되었고 여기에 사회주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데 혁신이 역할을 하지 않았나 사료된다.혁신은 종교, 사회문화, 국민성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어떤 교육을 통해도 다른 나라의 국민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혁신을 통해서 마인드의 변화와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개인의 성장과 기업의 발전은 물론 부강한 나라로 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우수한 민족성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유태인들도 개선해야 할 맹점이 있기 마련인 데 종교 마인드에 변화가 오면 평화로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한다. 사람은 교육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교육과 실행을 통해서 변화된 내 주변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변한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도 가치를 창조하는 혁신이 들어가니 건강한 조직, 경쟁력 있는 기업과 부강한 나라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2024-05-07

비 내리는 고향집 마당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신록의 초목 위에 비가 내리니 푸르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면서 생동의 기운이 한껏 왕성해지는 듯하다. 파릇한 잎사귀에 은구슬 같은 빗방울이 자분자분 내려앉으며 은밀한 밀어를 속삭이는 듯한데, 연두와 초록의 물결 위에 빗금 치며 내리는 비는 싱그럽고 산뜻한 오월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 온종일 쉼없이 녹파(綠波)를 더하고 있다.모처럼 고향에서 비를 맞으니 차분한 감회가 산허리에 걸린 실안개마냥 몽실몽실 피어난다. 아카시아 흰꽃을 적신 비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고, 연록의 숲에서 내리는 빗줄기에서는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이십 수년째 빈집으로 남아있는 폐허 같은 고향집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넓직한 풀잎에 닿으면서 내는 소리가 맑고 정겹지만 더없이 애잔하게 들린다. 불현듯 빗소리가 들려주는 맴돌이 소리에 유년의 울림 같은 회억이 아스라해진 가슴을 적셔주는 듯하다.상수도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으레 처마끝의 물받이에서 떨어지는 지점에 양동이나 큰 단지를 옮겨와 빗물을 받곤 했는데, 초반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가관이었다. 양동이나 알루미늄 세숫대야 떨어지는 낙수소리는 ‘타다다닥~’ 하며 자지러질 듯 요란하게 들리다가 이내 줄어들고, 단지나 옹기 같은 곳에 떨어지는 낙숫물은 마치 마이크 소리를 내는 듯 깊고 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몇 개의 용기에 빗물을 받으면서 내는 소리는 음계도 없고 음정도 제각각이었지만, 산만한 듯 정겹고 또렷하게 들리는 빗물의 이색적인(?) 연주가 아닐 수 없었다.또한 어떤 때는 또래들과 어울려 빗 속을 헤치며 호박순을 잘라서 만든 대롱을 몇 개 이어 빗물의 흐름을 유도하면서 낙수소리를 듣는 재미에(?) 빠지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옷이며 양말까지 담방 비에 젖게 되는 일명 ‘노배기’가 돼서 집엘 오게 되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께선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게 하시며 벙드레죽(수제비)을 쑤어 주시거나 배추전을 부쳐 주시곤 했었다. 요즘도 비 오는 날의 날궂이 음식으로 파전이나 부추전 따위가 단연 구미를 당기게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들었었던 낙숫물의 리듬에 맞춰 전 부치는 소리가 그렇게 맛있게 피어나던 기억이 갈수록 생생해지며 차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그렇게 빗물을 받아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시면서 비 내리는 날에 수제비나 부침개를 해주시던 어머니께선 초록이 우거진 북망산천에서 땅으로 스미는 빗물을 맞고 계시니 애절하기만 하다. 아카시아나무가 고향집 마당까지 침범하고 담쟁이 넝쿨이 옛집을 에워싸며 스산함과 황폐화를 더해도, 문득 기억 속에 낯익은 낙숫물소리와 정재(부엌) 칸에서 들리던 전 부치는 소리가 엷은 감미로움으로 다가오니 어찌할까나?엷은 안개 속에 하염없이 내리는 초록비가 음률인 듯 리듬인 듯 귓전을 스치는 고향집 마당 한 켠에는 그나마 활짝 핀 불두화가 위무인 듯 환하게 반기고 있었다.

2024-05-07

‘특검=민의’로 보는 野…22대 국회 격랑 예고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주 본회의에서 특검법을 통과시켰지만,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행사를 건의하겠고 밝혀 여야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4월 29일 영수회담을 열고 협치정치를 공언했지만 불과 열흘도 안돼 정국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7월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사망한 채상병 사건에 대한 초동 수사·경찰 이첩 과정에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특검을 도입하자는 게 핵심이다. 특검 규모는 파견 검사 20명을 포함해 최대 104명이다.윤 대통령은 오는 9일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최근 “특검은 행정권에 속하는 수사권을 사실상 입법부에서 가져가는 것이어서 반드시 여야가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뜻을 참모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해병대원 특검법 일방 처리를 사법 질서와 삼권 분립을 교란시키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민주당은 현재 대통령실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오는 27~28일 재의결을 통해 21대 국회에서 특검법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은 재의결 과정에서 국민의힘 ‘이탈표’가 예상외로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야 의원이 모두 본회의에 참석한다고 가정했을 때, 여권에서 최소 18명이 이탈하면 특검법이 재의결된다. 이미 안철수·조경태·김웅 의원 등은 ‘이탈표 예약자’로 분류되고 있고, 공천탈락자나 낙선자 중에서도 본회의 불참자가 다수 있을 것으로 보여 국민의힘으로선 특검법 ‘부결’을 자신할 수 없는 처지다. 민주당은 현재 특검을 거부하는 것은 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사실상의 ‘식물정부’로 보고, 정국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읽힌다. 앞으로 ‘특검정국’이 끊임없이 전개될 22대 국회가 걱정이다.

2024-05-06

술까지 끊게한 모정(母情)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최근 할리우드발 흥미로운 가십 하나가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신부들의 전쟁’ 등의 작품에서 호연을 펼쳐 한국 영화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앤 해서웨이(42)가 5년째 금주 중이고, 여덟 살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술잔 들 일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뉴욕타임스와 ABC 등 미국 유수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고백한 바 있다. 과거 앤 해서웨이는 술 탓에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을 정도의 주당(酒黨)이었다. 대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신 술. 배우 생활을 하면서 주량은 더 늘어났고, 그 음주 습관은 전도유망한 여배우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그랬던 앤 해서웨이가 “아직은 아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나이다. 아들이 대학에 가면 다시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니 모정이 술을 이긴 것이다.‘모정’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장면. 케이트 윈슬렛(49)은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오른 영국 여배우. 수십 만 파운드짜리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시상식장을 드나들던 그녀가 아들을 등에 업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찍혔다.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에 낡고 헐렁한 면바지를 입었음에도 등에 업힌 아들 조 알피를 돌아보며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의 행복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같은 무게의 황금을 준다 해도 아들을 금과 바꿀 어머니는 없다”. 중국 속담이다. 가정의 달로 불리는 5월. 가정의 일상이 행복하게 유지되는데 모정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거론하는 건 바보짓이다. 부엌에서 아침 짓는 어머니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면 좋을 날이 내일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6

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민주주의가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병의 원인은 ‘제도’에도 있지만 ‘사람’이 더 큰 문제다. 확증편향과 선택적 정의에 갇힌 중환자들이 자신은 병이 없다고 하니 ‘웃픈’ 현실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분노와 적대가 만연해서 독선과 편견, 오만과 아집이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랫(D. Ziblatt)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의 핵심규범은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인데, 이것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견해 차이를 존중하고 자기의 절대성을 고집하지 않아야 유지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집행권을 가진 대통령은 주저 없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외관상 각자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니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관용·타협이라는 절차규범을 어긴 것이다. 입법 권력과 집행 권력의 ‘힘의 대결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정치가 전쟁과 다른 점은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경쟁자’로 인식하는데 있다.민주주의는 이성주의와 합리주의를 토대로 한다. 하지만 견리망의(見利忘義)하는 정치인들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이기적이며 부족적인가를 말해준다. 부족주의 정치는 국가이익보다 당파이익을 중시한다. 철학의 빈곤과 이기심으로 확증편향에 갇힌 정치인들의 선동과 매도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기둥은 공정과 정의다. 롤즈(J. Rawls)가 말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절차적 공정’을 통한 ‘결과적 정의’를 의미한다. ‘정의가 힘’이 되어야지 ‘힘이 정의’가 되는 정치로서는 정의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재명과 조국의 경우처럼 힘으로 공당을 사당화하거나 범죄혐의를 정치적으로 덮으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의 지배’를 부정하고, 권력으로 ‘법에 의한 지배’를 기도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배신이다.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처음이자 끝이다. 모든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언론의 비판기능이 죽으면 민주주의도 죽는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통제와 사정기관을 통한 공포정치로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고 했다. 법을 적용하는 공권력의 남용이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는 시민의 주권을, 그리고 ‘공화’는 공공선을 말한다. 우리의 미래는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가 되는 ‘공화정(共和政) 정신’에 달려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너와 내가 함께하려면 관용·대화·타협의 정신이 필수다. 우리가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진정한 공화주의자로 거듭날 때 비로소 한국 민주주의는 회생될 수 있다.

2024-05-06

대구·경북민 생활 판도 바꿀 광역환승제

2004년 KTX 고속철이 우리나라에 처음 개통 운행되면서 전국이 두 시간대 생활권에 놓이게 됐다.교통의 발달은 일반인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교통 인프라가 위치하는 장소에 따라 도시의 흥망도 갈리게 된다. 철도가 처음 놓이면서 역사가 생긴 장소가 그러했고, 고속도로가 뚫리는 곳에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교통 인프라는 인류의 삶을 바꾸고 생활의 질을 더한층 높이기도 했다.대구시와 경북도내 8개 시·군이 동일생활권으로 연결하는 지자체간 대중교통 광역환승제 시행을 약속했다. 지난주 대구시와 경북 경산, 영천, 구미, 김천, 고령, 성주, 청도, 칠곡 등 8개 지자체가 대중교통 확대 시행을 위한 업무협약과 시스템 구축을 위한 용역착수 보고회를 대구에서 가졌다.오는 12월부터 대구시를 중심으로 9개 시군이 대중교통 광역환승제를 함께 실시함으로써 대구인접 도시간의 인적·물적 교류확대는 물론 시도민의 대중교통비 부담도 크게 줄이게 됐다.특히 연말 개통 예정인 구미∼대구∼경산간 대구권 광역철도망과 함께 대중교통 환승제가 연결됨으로써 350만명이 30분 생활권에 놓이게 된다. 비수도권 도시로서는 최초로 대중교통 광역환승제가 시행돼 관련 시·군 주민의 생활패턴 변화가 주목된다.대구와 인근 8개 시군이 대중교통체계를 같이함으로써 생기는 변화는 매우 다양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대중교통 활성화로 시·도민의 교류가 활발하고 생활인구 증가로 인구소멸 대응 효과도 기대된다.또 350만 인구가 공동생활권에 놓이면서 대구를 중심으로 한 메가시티 형성도 가능해진다. 거대한 생활권을 바탕으로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 특히 군위·의성에 세워지는 신공항과도 연계돼 대구·경북 경제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짐작이 된다.비수도권 최초 시행되는 대중교통 광역환승제가 시·도민의 교류 확대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최적의 교통환승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대구와 경북 전체를 연결하는 미래의 교통망 구축도 준비해야 한다.

2024-05-06

핵개인 시대에 가족의 의미

유영희 작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거쳐, 21일에는 부부의 날로 마무리된다. 그 중간에는 스승의날까지 있다. 여기저기서 가족 모임을 한다고 분주하다. 자식이 결혼하면 아무리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살더라도 분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기념일이 있을 때면 모두 약속을 잡는다.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에 모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배우 전원주 씨가 금쪽상담소에 나와서 돈은 있어도 외로워서 자식과 살고 싶은데 어느 자식도 자신과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전원주 씨처럼 나이도 많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서운함에 많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이 든 부모가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2022년 통계만 보아도 3세대 가구는 3% 정도뿐이다. 반면, 1인 가구는 34%를 넘었고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전원주 씨 사례 영상 댓글에도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는 의견이 거의 전부다.이렇게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 대해 송길영은 ‘시대예보’에서 핵개인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2세대 가구를 핵가족이라고 불렀다면, 1인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핵개인 시대라면서, 사람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오래 살게 되기 때문에 핵개인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니 이런 시대가 와도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아닌 위로도 곁들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핵개인의 시대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잘 적응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직장을 다니는 젊은이도 1인 가구의 고립감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연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족 같은 강한 연결도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약한 연결도 사회적 소속감을 부여해주는 토대가 된다. 아즈마 히로키 역시 ‘약한 연결’이라는 책에서 전통 사회 가족 유대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필요하다고 한다. 다만, 세계화라는 세상의 변화 앞에서 강한 연결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신, 약한 연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인터넷도 검색을 잘하면 충분히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현실 공간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내 경우는, 어차피 5월에 생일이 있는 딸도 있어서 어버이날은 따로 신경 쓰지 말라고 진작에 다짐해두었다. 그 생일 기념도 일부는 온라인으로 한다. 유럽과 호주에 떨어져 사는 어떤 가족은 영상통화로 만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상황이 변하니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된다. 핵개인 사회에 적응하기를 강조하다가 자칫 고립되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사람에게는 약한 연결은 물론이고, 가족 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연결의 방식과 형태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핵개인화되는 시대에서도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려면,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잘 인식하고 가족이라는 강한 연결을 상황에 맞게 조화롭게 이어가야 한다.

2024-05-06

국회의원은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김규인 수필가 정부와 의료계의 강경 대치, 말끝마다 가시가 돋친 여야의 발언, 총선에서 패배한 여당 대선 유력 주자의 발언으로 선거가 끝났는데도 마음이 불편하다.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총선 승리자들과 국회의장 후보자들의 발언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기에 하이브와 어도어의 대치까지 국민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다.국제정세의 불안으로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는 오늘도 계속된다. 이를 부추기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경제적, 사회적 불안을 부채질한다.국내외 정세를 곰곰이 생각하면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한다.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인, 나아가 집단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 환자의 아픔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인 의료인, 사람들을 위로해야 할 노래도 이권 앞에서는 멈춘다. 그들 눈에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모두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보지 않는다.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료인들, 마음의 위로와 양식을 들려줄 예술인도 약속이나 한 듯이 국민은 뒷전이다. 그들의 볼썽사나운 이익 추구 싸움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은 피곤하다. 국민은 단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패막이에 불과하다.총선에서 대파를 들고나온 국회의원 당선자가 대파 가격을 걱정하는 걸 볼 수가 없다. 단지 총선용으로만 활용할 뿐이다. 사과값이 안정되니 다른 식재료값이 오르고, 직장인 평균 점심값이 일만 원을 넘는다. 텔레비전은 국내외 경제가 어렵다고 말한다. 매일 고물가에 시달리며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서민의 삶이 팍팍하다는 방증이 아닐까.세계 경제는 불경기에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내세우는데 정치권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한다. 심지어 수백조 원의 국가 채무와 집값을 크게 올려놓은 당에서 다시 모든 국민에게 25만 원을 주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국회에서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며 법을 만드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으려는지.선장도 없는 배에서 배신자 타령만 하는 여당과 승리에 취해 변절자라 손가락질하는 야당이 자신들의 권력만 추구하는 한 우리나라의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치가 4류라는 이건희 회장의 말씀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배신자와 변절자 타령보다 시급한 국가의 현안들이 쌓여있는데 말이다.나날이 줄어드는 출생률은 나라의 존립을 위협하고 언제 좋아질지 모르는 경제는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린다. 백년대계의 교육은 학폭과 학생 인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사들은 지쳐간다.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은 늘어만 가는데 의사들은 병원을 떠난다.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나라 위해 일할 때는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라진 협치를 이번에는 다시 살려내어야 한다. 국민에게 존중받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주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202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