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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경주공항 국제선 취항, 준비할 때다

경북도와 포항시, 경주시, 한국공항공사 포항경주공항, 경북문화관광공사 등 5개 기관은 지난 14일 경북도청에서 모임을 갖고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지원과 포항경주공항 국제선 운항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골자는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지원과 포항경주공항의 국제선 부정기편 취항에 협력하고, APEC 각국 정상회의 방문단의 안전하고 원활한 국내 여행과 입국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포항경주공항의 국제선 취항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할 문제지만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가 성공한다면 반드시 허가돼야 할 사안이다. 현재 김해국제공항과 대구국제공항에서 부담해야 할 복잡한 공항업무를 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상악화와 일정 변경 등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 외국인 방문객에 대한 서비스 지원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2025 APEC 정상회의에는 외국인 관광객 4만여 명을 포함 국내외 1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서울과 제주 등 국내로만 운항되는 포항경주공항의 국제선 취항은 국내외 여행객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필수라 할 수 있다.포항경주공항은 지난 2022년 포항공항에서 포항경주공항으로 명칭을 바꾸고 공항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울릉도 공항이 개항되면 위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포항경주공항은 항공수요 측면에서 가장 많은 혜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무엇보다 지방공항의 활성화는 지방시대를 열어가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APEC 정상회의가 아니더라도 포항경주공항은 부정기편 운항을 통해 도시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경북도가 국내선 전용공항에 국제선 부정기편 취항 허가를 중앙정부에서 시도지사 승인으로 변경해줄 것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지금은 도시와 도시간이 연결되는 국제화시대다. 지방공항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관심과 제도개선 의지가 중요하다.

2024-05-16

‘메타버스산업의 産室’로 주목받는 경북도

경북도가 최근 정부공모사업인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실증 기반 구축사업’에 최종 선정돼 국비 100억 원을 확보했다. 국비는 관련 중소기업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기술 지원과 성능 검증, 제품 상용화를 지원하는데 쓰인다.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는 크기가 1인치 이하로 작지만, 수십에서 수백 배 확대된 큰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메타버스(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세계) 디바이스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소비전력이 적어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동영상 안경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된다.구미에 있는 ‘XR(확장현실)디바이스 개발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한국광기술원, 경희대, 충남·충북테크노파크가 이 사업에 참여한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도내 350여 개의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이 메타버스 시장 진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구미지역을 중심으로 올레도스(OLEDoS) 디스플레이 사업 진출을 원하는 중견·중소기업을 지원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과 융·복합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최근들어 TV·스마트폰 등 기존 주력 제품의 성장세가 주춤해 지면서 확장현실(XR)·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기시장이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올레도스 기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는 빠른 응답속도와 높은 색 순도를 갖는 특성이 있어 각종 혼합현실 기기의 영상표시 소자(素子)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올레도스는 유리 기판 대신 실리콘 기판 위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증착해 만드는 디스플레이다. 기존 디스플레이보다 더 얇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해상도와 색상 표현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 확장현실 기기에 맞춤형 기술로 꼽힌다.이 사업에는 올해부터 2028년까지 5년간 148억원이 투입된다. 경북도가 이 사업에 성과를 낼 경우, 구미지역에 집중된 관련 중소기업 상당수가 전망이 밝은 반도체 융합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분야로 사업 진출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기대가 크다.

2024-05-16

윤 대통령, 소신과 뚝심이 필요하다

홍석봉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30% 초반 대에서 게걸음하고 있다. 부정이 긍정 평가보다 두 배가량 높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하는 등 자세를 낮췄다. 여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역 의료 체계 구축’, ‘저출생 대응책’ 등 정국 타개책을 내놨지만, 국민은 심드렁하다.윤 대통령은 경직된 여야관계, 꽉 막힌 국민소통 등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며 국정 추동력을 잃고 있다.윤 대통령이 외쳐온 4대개혁이 국민 저항에 부딪혀 주춤하고 있다. 의사 정원 확대를 두고 의료계와 마찰을 빚고 있고 연금개혁은 지지부진하다.여기에 민주당은 특검과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까지 거론하며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까지 들먹인다.윤 대통령이 최근 정치 상황과 이익 집단의 반발 등에 굴하지 않고 2년 전 대통령선거 당시 국민에게 약속한 개혁과제를 묵묵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교육·노동·연금·의료 개혁 등 4대 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선언이자 다짐이었다.윤 대통령은 “개혁은 많은 국민에게 이롭지만, 또 누군가는 어떤 기득권을 뺏긴다”면서 “이로움을 누리게 되는 사람들은 별로 인식을 못 하지만 뭔가를 빼앗기는 쪽에서는 정권 퇴진 운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표류하는 의료개혁과 낮은 국정지지율에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정치권 일각에서 지지율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와 시대적 과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겠다”고 공언했었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 70%의 반대에도 연금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는 “단기적인 국내 여론과 국가 이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국익을 선택하겠다”고 했다.애초 국민연금은 ‘낸 돈에 비해 더 받는’ 구조로 설계돼 미래세대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낸 돈보다 덜 받아야 영속성이 있다. 그런데도 공론화위 결론은 반대로 나왔다. 의정갈등도 마찬가지다. 방법엔 문제가 있었지만,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추진하던 의료개혁이었다. 의정갈등은 장기화하고 있다. 국민 피로감만 높아지고 있다.개혁은 기득권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해집단의 양보 없이는 어렵다. 반발은 불가피하다. 이제 겨우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나 했는데 우리 경제가 정치·사회의 혼돈으로 다시 뒷걸음치는 모양새다.국민의힘은 22대 총선에 참패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점수 딸 일도 별로 없어 보인다. 더는 점수를 잃을 일도 없을 듯하다. 방향은 정해졌다. 4대개혁은 국가 과제다. 국가 백년지대계를 위해서도 미룰 수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더 이상 지지율에 연연하지 말고 4대개혁을 임기 내에 마무리, 후대에 평가받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윤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소신과 뚝심이 필요하다.

2024-05-16

무자식 상팔자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명심보감에 “하늘은 사람에게 저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게 한다”(天不生 無祿之人)는 말이 있다. 지금보다 먹을 것이 훨씬 부족했던 시절에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산아제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이라 태어난 자식을 소중히 잘 키워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면 좋을 듯 하다.유교 문화가 널리 퍼졌던 동양권의 나라에서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이 최고의 행복 가치다. 잘먹고 잘살며 자식이 많아야 하며, 특히 아들이 많으면 다복하다고 생각했다. 대가족 중심사회의 핵심인 혈연중심 사고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보인다.우리나라는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1960년대부터 산아제한 정책을 시작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구호가 등장했던 시절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자녀 둘만 낳자”고 했으며 1980년대는 한 자녀 정책으로 바뀌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구호가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저출산국으로 전락한 지금의 우리 처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자식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 없어 편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말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자식이 많으면 걱정으로 편한 날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딩크족이란 부부가 맞벌이하며 자식을 의도적으로 가지지 않는 가정을 말하는데 1980년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가족 형태다. 우리나라에도 번져 저출산국으로 전락하는데 일조하는 형태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25∼39세 맞벌이 부부의 무려 36%가 무자녀란 통계가 나왔다. 무자식 상팔자 시대가 온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6

포항시 코스트코 유치에 다 걸었나? 코스트코의 간보기인가!

이부용 경제부 포항시가 미국계 창고형 대형 할인매장 코스트코 유치를 놓고 내부적으로 코스트코 외의 다른 할인매장에 대한 비교 분석조차 실시하지 않아 지역 현안에 대해 안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 트레이더스, 롯데마트 맥스 등 다른 창고형 할인점과 비교·분석한 자료가 있냐는 지적에 포항시는“각 마트별 비교 분석자료는 없다”고 답했다. 코스트코 유치 외에는 다른 할인점 유치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포항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더 선호하고 지역에 적합한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포항에 있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도 지금 축소하고 있다. 장사가 그만큼 안 된다는 얘기”라며 “포항에 이마트가 두 군데 있다. 상식적으로 시장성이 있었으면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벌써 들어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또한“기존에 있는 소매점도 장사가 안 되면 대형 마트 같은 경우는 더 안 되지 않겠느냐”며 “기본적으로 창고형 마트는 물건이 저가여서 인구가 100만 명 이상 정도 돼야 수익이 나온다”고 덧붙였다.지자체가 유치 기업의 수익을 걱정해주는 것은 상생차원에서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기존 대형마트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코스트코 유치는 더 어려운 일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6월 중순쯤 코스트코 관계자들이 객관적인 여러 데이터를 분석해서 검토를 할 것”이라며 “공무원이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포항시의 입장은 대형 할인 매장을 적극 유치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실제로 시 관계자는 “시에서 특정 창고형 마트를 지정해 들어오라 마라 할 권한은 없다”며 “입점 조건이 되고 시민들의 요구가 있으니 한번 검토해 달라고 코스트코 사장단이 내방했을 때 요청한 상태”라며 “입점 가능성 여부는 실무진이 와서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다만, 어떤 창고형 마트든지 조건이 맞으면, 허가 기준에 맞춰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마트별 비교 분석이나 설문 조사 등도 실시하지 않고 무작정 진행하는 것이, 포항시가 제대로 된 창고형 마트를 유치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한편 코스트코는 호남지역에서 처음으로 인구 26만의 중소도시 전북 익산시에 매장을 내기로 했다. 익산시는 지난 8일 코스트코코리아, 전북특별자치도와 점포 개점을 위한 투자협약(MOU)을 체결했다. 왕궁면에 있는 약 3만7000㎡ 부지에 800억원을 들여 2026년 개장할 예정이다./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5-15

개팔자 상팔자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차 한잔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뒷자리에서 한 30대 중반쯤 된 여성 네 명이서 웅성웅성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가만 들어보니, 그들 일원 중 그날 참석 못한 한 명이 개를 키웠던 모양인데, 그 개가 죽게 되어 모두에게 견(犬) 장례식 일정을 알려온 것이었다. 독신 여성이 반려견과 함께한 세월이 오래니, 가족과 같을 테고, 멤버의 경조사니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데, 부의금 금액부터 일정 조율을 어찌할까에 대한 내용이었다.근데, 마침 그중 한 명에게 전화가 왔는데, “엄마, 나 지금 대개 중요한 이야기 중이니까 나중에 전화해, 끊어”하고는 가차 없이 확 전화를 끊고는 하던 대화를 마저 이어가는 게 아닌가! 개의 장례식 참석 및 부의금에 대한 논의가 부모의 전화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아…. 세상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었다.우리말에, ‘개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새 산책하다 보면, 개가 걷기 싫다는 시늉만 하면, 바로 달랑 안고 가슴팍 안으로 신주단지 모시듯 끌어안는 풍경하며, 자칫 성가시게 짖었다는 이유로 발로 차려는 시늉이라도 했다간 동물학대죄로 고소당하는 불상사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옛날에는 섬돌까지만 오를 수 있었지, 감히 마루나 방까지 들어오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음식도 사람이 먹다 남은 것만 먹은 데다, 정월대보름에는 개보름쇠기라 하여 종일 굶기도 하는 등, 개는 그야말로 네 발 달린 짐승이었을 뿐이었는데.물론 최자의 ‘보한집’에는 주인이 잠든 사이에 온몸에 물을 묻혀 불을 끄고 주인의 생명을 구한 의견(義犬) ‘오수의 개’ 이야기가 전하고 있고, 관련하여 선비들 사이에선 개 전기를 짓는 풍속도 생겨날 만큼 개의 충성심을 찬양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집지킴이이자 충(忠)의 상징으로서 개가 인간을 능가하는 존재로서 숭앙받고 그러지는 않았다.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안아주지 않으면 어리광을 부리거나 떼쓰기도 하고, 사람보다 먼저 침대로 버젓이 가 있는 경우는 물론, 심지어 개가 힘들까봐 멀리 사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는 일정이나 장거리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사람 때문에 개를 못 보는 경우는 잘 없어도, 개 때문에 봐야 할 사람을 못 보거나 하는 일들이 이제 다반사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개팔자 ‘상팔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제 개밥 신세, 개망신, 개살구 등 안 좋은 말에 붙곤 한 ‘개’ 자도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개똑똑’, ‘개쩐다’, ‘개이득’ 등이 바로 그 단적인 예이다. 이처럼 ‘개’가 긍정적인 의미를 획득했다고 해서, 견권(犬權)이 인권(人權)보다 우선시 되어서야 하겠는가.바야흐로 신록의 계절 5월이다. 이달은 근로자의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처럼 정말 의미 깊은 날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의미깊은 달에는, 비록 개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위안을 주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반려동물이더라도 근로자를 먼저 생각하고,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은사님들을 떠올리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즉 사람을 우위에 두는, ‘개똑똑’한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 싶다.

2024-05-15

손주들과 포항나들이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어디로 놀러갈까 물으면 손주들은 십중팔구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대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 포항을 자주 가게 된다. 포항은 바다뿐 아니라 의외로 즐길 거리가 쏠쏠하다. 지난달 내내 주말마다 손주들과 포항엘 갔다 왔다. 예전 아이들이 더 어렸을 적엔 해수욕장의 모래장난 정도였다. 몇 년 전 생긴 스페이스워크도 흥미로워 했다. 최근엔 줄이 길어 포기하고 멀리서 보는 야경으로 대신했다. 포항의 핫스팟 죽도시장은 갈 수 없었다. 손주들과의 포항행에서 죽도시장을 끼울 수 있는 건, 손자 건이 생선회에 입문한 이후였다. 포항여행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우리 부부와 아들내외, 그리고 손주 둘을 데리고 오후 느지막하게 출발하여 회만 먹으러 포항에 간 적도 있다. 송도바닷가에 새로 생긴 수협활어회센터가 조용하고 주차장도 넓은데다가 싱싱한 회를 취향껏 골라 먹을 수 있어서 꽤 괜찮았다.몇 주 전엔 우리 부부가 손주 둘을 데리고 조손동행 포항을 다녀왔다. 손주들에겐 죽도시장은 시장이라기보다 아쿠아리움일 수도 있는 곳이었다. 가게의 수족관을 들여다보고 물속에 손을 집어넣으려 해서 상인들에겐 다소 난처했지만 구경하는 아이들을 말릴 수도 없었다. 횟집골목을 누비며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큰 대야에서 펄떡이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실컷 구경하고 나서야 단골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싸고 맛있는 회를 먹고, 전통시장 홍보행사기간이었던가 전통시장상품권을 되받아 얻어서 건어물과 주전부리도 살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죽도시장 건너편에 있는 포항함체험관에 가서는 배 안 곳곳을 오르내리고 누비며 즐거워했다. 손녀 린은 뱃전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더니 느닷없이 애국가를 불렀다. 학교 입학해서 배운 모양이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지켜보았다. 진지한 표정과 꼿꼿한 자세로 4절까지 부르는 아이를 보며 나도 어느새 덩달아 엄숙해지고 말았다. 다소 날씨가 쌀쌀한지라 바닷가의 모래장난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고 남편의 제안으로 장기읍성엘 올랐다. 건은 한눈에 들어오는 성벽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만리장성 아니냐며, 성 둘레를 완전히 한 바퀴 돌자고 했다. 조심하기를 당부하며 성벽 위를 조손이 손잡고 걸었다. 린은 할아버지와 손잡고 걸으며 “에효, 세상은 넓고도 힘들다”를 연발하며 숨차했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으라며 포즈를 잡을 땐 천상 여자애다.지난 주 토요일, 건을 데리고 포항엘 갔을 땐 영일대해수욕장의 영일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 위에 옛날 궁궐 같은 집이 있다고 했더니 용궁이냐며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정작 누각엔 한 번 오르내리는 것으로 흥미를 못 느낀 듯했다. 오히려 영일대 가다가 만난 마술버스킹 공연을 보며 신나고 우스워했다. 마술사가 벗어놓은 모자에 꼭 돈을 넣어주고 싶다고 해서 거금 만원을 지갑에서 꺼냈다.어제 건이 로봇과학 책을 보더니 로봇박물관에서 실제로 로봇을 보고 싶단다. 검색했더니 포항에 로보라이프뮤지엄이 있었다. 바로 가자고 하는 걸 겨우 주저앉혔다. 오는 주말에 가기로 예약했다. 아이들에게 포항은 꽤나 다양한 흥밋거리의 도시다.

2024-05-15

도심 속 물길, 포항운하

하늘이 맑고 바람이 잔잔하던 어느 봄날, 작은 유람선이 부두를 출발하여 인공적인 물길에 몸체를 들이밀었다. 물길을 가르며 천천히 나아가는 유람선에서 내다본 양옆의 전경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만 느껴진다. 운하의 좁은 폭 때문일까, 일상을 영위해가는 송도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 때문일까, 오랜만에 타보는 유람선의 흔들림에 마음도 흔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녹아내릴 듯 쏟아지는 바닷가의 햇살이 따스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녹진하게 풀어져 버린 마음에 포항 송도의 전경은 색다른 생생함으로 다가왔다.포항 송도는 포스코가 포항에 자리 잡고 융성하기 이전에는 이름 그대로 ‘섬’이었던 곳이었다. 울진에서 발원한 형산강과 동해가 만나는 하구,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에 해당되는 곳 안쪽에 형성된 커다란 섬 송도는 소나무가 무성히 자라 방풍림을 이뤄 송도로 불렸다.또한 송도의 끝자락이자 형산강 하구의 동빈내항은 신라 시대부터 물이 얼지 않아 어선을 정박시키기에 좋은 장소로 활용되던 천혜의 부두였다. 이곳은 1732년 포항창이 개설되면서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함경도에 발생한 큰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창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항구로 자리를 잡아가던 포항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일본의 발전된 어업 기술을 들여오면서 더욱 성장한다. 많은 일본인이 포항에 자리 잡았고 풍부한 수산물을 수탈했으며, 일본인 거리까지 형성하여 불야성을 이뤘었다. 일본의 패망 이후에도 포항은 중요한 군사 항구로 이용되었다.하지만 지금과 같은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이다. 포항은 포항제철소가 건설되고 도시가 빠르게 확장되면서 근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대표 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포항 원도심 일대로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심은 상업 및 주거 용지가 매우 부족해져 갔다. 포항은 형산강의 범람 피해를 방지하고 주택부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송도와 포항내륙을 가르던 형산강 및 주변의 습지대를 매립하는 하천직선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후 송도는 섬이 아닌 내륙으로 편입된다.1970년대 형산강 하구에서 동빈내항으로 이어지는 작은 물길 여럿이 매립으로 인해 막히면서 매립되지 않은 동빈내항의 인근은 점점 오염물이 쌓여갔고 심각한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원도심을 떠나갔고, 원도심 일대는 뒷골목과 같은 슬럼화가 진행되었다.도시 오염의 심각성과 슬럼화, 철강산업의 쇠퇴로 인한 지역경제의 둔화 등 도시문제를 인지한 포항은 2006년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하나의 돌파구로 시행한다. 이미 사라진 형산강의 옛 물결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포항운하를 건설하여 주변의 생태환경을 복원하고, 심각한 도시 오염의 문제를 해결하고, 슬럼화되어가는 원도심을 재정비하고 나아가 관광산업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다.스페인 빌바오나 독일의 라인강이 근대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공간을 재구축한 것처럼 포항도 비슷한 도시 공간의 재구성을 시도한 것이다.2012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대략 2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길이 1.3킬로미터, 폭 13~25미터 크기의 운하가 남북으로 연결되면서 송도는 이름에 내포된 ‘섬’이란 의미를 되찾았다. 서울의 청계천이 복원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듯이 포항의 사라졌던 형산강 줄기도 그러한 복원과정을 거친 것이다.또한 포스코 전경이 훤히 보이고, 송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운하의 끝자락에 포항운하관이 세워졌다. 독특한 모양의 포항운하관에서는 포항운하가 어떻게 복원되었는지 운하전시관에서 확인해 볼 수 있고, 드넓은 바다의 향취를 카페에 앉아 느낄 볼 수도 있다.하지만 무엇보다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제일이다. 작은 유람선이 운하를 타고 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포항 앞바다까지 나가는 유람선도 확인할 수 있다. 멀리 송도의 유명한 소나무숲도 보이고, 16년만에 제 모습을 찾은 새하얀 송도해수욕장도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재생된 포항 형산강 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포항운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달리고, 온갖 해산물의 풍성한 냄새가 가득한 죽도시장에서 상인들과 흥정하고,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손을 흔들고, 소나무숲으로 이어지는 송도 송림 테마거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하얀 모래가 매력적인 송도해수욕장을 거닐고, 야경이 멋진 포스코의 전경을 바라본다.운하를 따라 흘러가는 유람선에서 바라본 포항의 송도는 평화롭고 잔잔한 바닷가의 일상과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도심의 일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5-15

색에 물들다

피귀자 수필가 오래 볼수록 더 반짝이는 것들, 새싹 새순들이 수천의 문을 열고 나와 온 세상을 물들이며 일렁인다. 엷은 연두가 물감 번지듯 땅 위를 점령하기 시작한 봄날 겨우내 거칠었던 손바닥에도 연두물이 얼비친다. 연둣빛 봄풀들과 손 맞춤을 하면 따뜻한 기운이 나긋하게 온몸으로 퍼진다. 여리디 여린 새순들이 점령한 세상, 이보다 더 큰 이벤트가 또 있으랴.연둣빛 물감을 흩뿌린 길이 다소곳이 다리를 뻗고 혈관 같이 뻗은 잔가지에도 서서히 연두 피가 돌기 시작한다. 바닐라향이 그윽한 슈크림 같이 부드러운 색 연두. 더 없이 연연한 색이다. 한때는 보라색에 물든 적도 있었다. 보라색 라일락꽃이 좋았고 파스텔 톤 보라색에 빠져 옷과 장신구도 하나둘 늘어갔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뾰족뾰족 돋아나 천지에 일렁이는 연두에 감전되듯 흠뻑 빠져 들고 말았다. 보고 있으면 귀까지 열리는 하늘의 축복 연두의 향연. 빛을 향해 뻗어가는 연두의 미소가 폭소로 변할 때까지 나이를 잊고 어느 새 봄 처녀가 된다.누구에겐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 연두가 정점을 찍는 나뭇가지로 시선을 옮긴다. 보일 듯 말 듯 여릿한 자락을 비집고 그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하면 천지는 놀라운 일들이 뒤따르리라. 사랑스러운 봄 들판의 향기가 살랑살랑 흘러나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고 오감이 민감하게 살아나는 봄날, 잠시 표류하던 마음도 이내 자연에 흠뻑 젖어든다.색깔에도 소리가 있다면 연두는 분명 나긋한 소녀의 속삭임이리라. 가랑비같이 가슴을 적시는 저 환한 소리들, 연두는 살랑 바람처럼 유순한 색이다. 꽃샘바람 속에서 감미롭게 살랑대다가 비비적거리는 풀잎들의 소리는 애처로워서 쓰다듬고 싶은 여인의 소리다. 귀 세우고 그 내밀한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연둣빛 빗장 안에 갇힌 봄이 더 사랑스럽다.봄의 무게는 연두가, 여름은 초록이 가늠한다. 날마다 조금씩 무게를 더하는 연둣빛 봄의 물결 속에서 기쁨이 넘치다가도 조바심이 인다. 노랑 빛을 머금은 연 연두가 체온이 높아져 뜨거워질수록 초록을 얼비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덧씌워지는 초록의 물결 속에 연두는 녹아들고 단풍이 찾아오리니. 또 그렇게 한 해가 여물고.한때 천연 염색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애기똥풀에서 우러난 맑고 진한 노란색에 눈이 활짝 떠졌고 밤의 속껍질에선 중후한 멋이, 질경이의 초록색과 귤껍질과 치자, 보라색 양파껍질에서 우러난 노란색과 붉은색 물이 손수건과 흰색 천을 물들일 때마다 경이롭기까지 했다. 어느 날 삶은 대나무 잎에서 우린 물이 흰 명주 스카프에 스며드는데 숨이 멎을 뻔 했다. 연둣빛이 어찌나 부드럽게 곱던지. 그 후로 댓잎에서 우러나오는 맑고 엷은 연두색이 더 좋아졌다.봄의 노크 소리, 속삭임 같은 무 싹과 여린 새싹채소들은 입 속에서도 환하게 피어오른다. 그 맛은 포근한 이불처럼 혀를 감돌고 부드러운 풀과 나무가 연둣빛을 잉태한 봄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행복은 소소한 일상 가운데 있다는 걸 연두색으로 다시 깨친다. 혀끝에 닿는 봄풀냄새가 고향에 온 듯 평화를 주기 때문이다. 수시로 변하는 그 모든 빛깔들이 아름답지만, 풀과 나무를 입고 더욱 영롱한 빛깔을 내는 연두는 튀는 색이 아닌, 말랑한 공같이 아기 피부처럼 보드라운 빛이다.무채색이던 얼마 전과 달리 연두 빛으로 물든 오늘, 어제와 오늘을 가만히 되새겨보면, 이 우주에는 온통 이야기로 가득 차있음을 느낀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갈등도 봄 앞에서는 칠흑 같은 동굴이 아니라 연두 빛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나가는 출구가 있는. 갈등을 이겨내고 그 출구를 나서면 예전보다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므로.만물이 소생하는 근원의 빛은 단연 연두색이리라. 연두가 데워놓은 세상 속으로 연둣빛 명주 스카프를 두르고 소풍을 나선다. 솔바람과 스카프가 맞물려 하늘하늘 날아오른다. 보리 싹과 연잎 사이로 부는 바람이 빛을 더한다. 오감을 활짝 열어 돋고, 피어오르는 연한 살결을 만끽한다.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나긋한 여인 연두의 독주, 우아한 이벤트에 이어 어느새 녹음 속에 서 있다.

2024-05-15

다베이 준코,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이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또는 “난 여자라서 이런 건 못해”라는 말이 우스워진 시대가 됐다. 남성 혹은, 여성만의 고유한 영역이란 이제 한국사회에 거의 없다. 금녀의 벽은 이미 무너졌다.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수석 입학자와 1등 졸업자 중에도 여성이 있고, 육중한 공격용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여성 장교도 생겨났다. 더불어 섬세한 감각과 미적 완성도를 요구하는 고급 요리 시장에서 주목받는 남성 요리사도 흔전만전인 세상이다.하지만, 49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가파른 절벽에 매달리는 일, 여성이 목숨을 걸고 지구 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른다는 건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바로 49년 전 오늘인 1975년 5월 16일. 일본의 36세 주부 다베이 준코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산에 올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조그만 체구와 약한 체력이 콤플렉스였던 여자. 그러나, ‘어떤 산이라도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면 못 오를 정상이란 없다’는 다베이 준코의 신념은 “여자의 힘으론 난공불락”이라던 8848m의 세계 최고봉보다 높았다.그녀의 도전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1981년엔 몽블랑과 킬리만자로, 이후엔 알래스카의 매킨리와 남극 빈슨 매시프에도 오른 다베이 준코는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완등(完登)한 최초의 여성’으로 역사에 기록됐다.힘겨움과 고통을 이기고 끝끝내 목적한 바를 이루는 열정과 에너지를 남자만 가졌을 리가 없고, 여자만이 독점할 까닭도 없다.다베이 준코를 떠올리며 ‘양성평등의 길’을 함께 걸어갈 젊은이들의 미래에 박수를 보내고픈 날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15

‘대통령 탄핵’ 남발…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그저께(14일) 서울에서 열린 25차 민생토론회에서 “개혁을 하게 되면 많은 국민에게 이롭지만, 누군가는 기득권을 뺏긴다. 뭔가를 빼앗기는 쪽은 정말 정권 퇴진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의대 증원정책에 대한 의료계 집단 반발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지만, 야권이 최근 ‘채상병 특검법’ 등을 고리로 대통령 탄핵 여론을 조성하는 데 대한 불편한 생각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각종 선거 때마다 ‘정권 퇴진’이나 ‘탄핵’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차라리 대통령이 없는 게 낫다”, “빨리 끌어 내리자”는 식의 막말이 남발된 적은 없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공개석상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탄핵 소추나 임기단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됐을 때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고 했고,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채상병 사망 수사자료에서 대통령실의 구체적 관여 물증이 나왔다. 수사에 대한 불법적 개입이 확인되면 그건 바로 탄핵 사유”라고 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단행한 검찰 인사와 관련해 대통령 탄핵 수순에 들어선 것 같다고 암시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민주당은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야 6당 공동 장외투쟁에 돌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탄핵연대’를 통해 과거 촛불시위와 같은 정권퇴진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탄핵정국이 현실화하면 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나 지지율로 봤을 때, 나라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대통령 파면은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어야 가능하다.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을 국민에게 직접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여야 정쟁(政爭)이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국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2024-05-15

성년의 날을 생각한다

장규열 고문 수능은 그냥 시험이다. 대입을 위한 최소조건을 견주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걸 놓고 점수발표날이면 온 나라의 언론이 만점자를 찾아 인터뷰를 하고 공부 비결과 장래희망을 물으며 촌극을 빚어왔다.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의과대학에서 배운 의술로 여자친구를 살해하였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가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의술은 살리는 기술이다. 물론 의술로 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윤리가 있고 히포크라테스가 외친 게 아닌가. 선서의 첫머리에 ‘인류를 위한 봉사에 나의 삶을 바친다’고 새긴다. 그런데 나의 삶을 고사하고 남의 생명을 빼앗았다는게 말이 되는가. 또, ‘인간의 생명을 가장 소중하고 생각하겠다’면서 타인의 목숨을 끊은 의술이었다면, 수능 만점은 실패한 점수가 아닌가.의정갈등이 최고조다. 의대입학이 인기 만점이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벌기는 하는가 본데, 의사가 되어 지켜야 할 윤리와 품격은 누가 가르치는가. 솜씨좋은 의사를 명의라 한다면, 품성 높은 의사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의학교육이 지식과 기술을 정교하게 하도록 매진하면서 생명을 높이 존중하여 의술을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꼭 의술만 그런 것도 아니다. 경제학을 배워 나라경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정치가가 되어 국민에게 수다한 유익을 끼칠 수도 있지만 정략에 매몰되어 나라를 가라앉게도 하지 않는가. 모든 지식을 가르치는 길에 윤리와 품성을 가장 먼저 강조해야 하는 까닭이 보이지 않는가.마침 ‘성년의 날’이 다가온다. 5월 셋째 월요일을 기념하는 의미는 이제 성인의 나이가 되었음을 기억할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지녀야 할 책임과 태도를 새겨주려 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일에 상관없이 어른이 되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소양을 깨우치게 하고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도록 기대함이 아니었을까.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함께 돌아보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을까. 대입현장에서 의과대학의 인기가 치솟는 현실은 윤리와 품성을 잊게 만드는 세태를 떠올리게 하여 씁쓸하다. 자본주의 세상에 돈이 필요하지만, 돈만 따라가는 성공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 아닌가 하여 우려가 앞선다. 갓 스무살 청년에게 꿈을 길러주어야 하지만 꿈을 돈으로만 계산하도록 가르친다면 문제가 아닐까.상상과 창의를 떠올리면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대학에 펼쳐진 전공분야의 숫자만 보아도 누군가 열정과 열심을 품고 일으켰을 분야가 수두룩하다. 세상과 이웃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도움의 손길과 관심의 눈길이 필요한 대목이 수두룩하다. 성년의 날을 맞은 청년들에게 의학은 물론 그 밖에도 평생을 던져 건져야 할 세상의 굽이 굽이가 너무나 많다는 걸 일깨워 주어야 한다. 수능만점이 신기하지만 누구에겐가 가능했을 점수쯤으로 여기는 여유를 가르쳐야 한다. 어렵고 힘든 세상의 온갖 문제를 해결할 넉넉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2024-05-15

토함산 산사태, 2년 동안 당국은 몰랐나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불국사, 석굴암 등이 있는 경북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일대에서 최근 2년 동안 24건의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녹색연합이 밝힌 보고서에 따르면 토함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서쪽인 진현동, 마동 등과 동쪽인 문무대왕면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산사태가 24곳이나 발생했다는 것. 대표적인 현장은 정상부 동쪽 사면이며 가장 큰 규모로 산사태가 일어난 현장은 문무대왕면 병곡리 일대 해발 630m 지점으로 약 2000평 규모라고 한다.산사태는 지난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가 내습했을 때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보인 석굴암 위쪽 두 곳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해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경사면에 흙과 암석이 지금도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큰 비가 내리거나 지진 등으로 지반이 흔들리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석굴암의 산사태 위험은 시한폭탄이나 다를 바 없다”고 했다.힌남노는 포항시민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 있는 태풍이다. 포항 인덕동 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 차량을 빼러 간 주민 7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태풍이다. 정부가 포항과 경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안겨준 슈퍼급 태풍이다.놀라운 것은 환경단체가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기 전까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전혀 손을 쓰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방치한 것인지 몰랐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언론보도 후 뒤늦게 대책회의에 나섰다는 소식이 실망스럽다.다음달이면 장마철이 본격 시작된다. 가뜩이나 이상기후로 비가 잦은 데다 기상이변에 따른 폭우까지 예상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급하다. 토함산은 소나무, 잣나무 등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는 침엽수가 많은 곳이라 폭우에 안전치 못하다. 당국이 서둘러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가 커질 우려도 있다.토함산의 안전 대진단과 피해 복구로 문화재와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항구적 대책도 이번 기회에 마련돼야 한다.

2024-05-15

빨대 신귀족

강길수 수필가 동네 공원에 핀 커다란 이팝나무 하얀 꽃이 부드러운 목화송이다. 저 흰 목화를 타서 무명을 짜, 옷과 이불을 짓는다면 이 동네 아이들이 다 입고 덮어도 남겠다.한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팝꽃이 ‘보릿고개 배고픔을 참아 넘기는 달램의 이밥’이었다니, 우리네가 지난날 겪은 고난의 삶이 고스란히 꽃 안에 스며 있다. 가슴 아리다. 지난 산업화 시기 건설현장, 공장, 실험실, 기획, 관리, 설계, 사무실, 정부 부처 등 온갖 일터에서 불철주야 피땀 흘리며 보릿고개를 물리치던 근로자들. 그들은 이팝꽃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살까.70~80년대 산업화 시기 근로자들은 죽기 살기로 일해 나라 곳간을 채웠다. 그들은 ‘잘살아보세!’로 각인된 산업화 시기와 데모, 최루탄으로 얼룩진 민주화 시기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살아낸 주인공이다. 최루탄 자욱한 거리를 메운 운동권 학생들에게 근로자들은 일하며 말했었다. ‘저 친구들은 부모 잘 만나 대학생이 되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않고 데모만 해대는구나. 대학 못 간 우리도 있는데! ’라고….국민이 자기 벌이로 애들 키우며 저축하고, 이웃과 서로 도우며 안전하게 사는 사회가 왜 비민주사회인가. 일찍이 링컨 대통령이 정의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는 산업화 시기가 오늘보다 더 가깝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때는 국가와 국민, 민족을 위한 잘 살기 정치였기 때문이다. 한데, 오늘날 민주화 세력을 자칭하는 자들에게는 국가와 국민, 민족이 없다. 자기와 제 편 이익에만 혈안 된 행태가 뻔히 보인다. 대수의 법칙 위반 선거결과 숫자들이 그 증거다.나라가 선진국에 오르는데 근간 역할을 해낸 근로자 눈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진정한 것이라 볼 수가 없다. 솔직히 서민은 지금보다 산업화 시기가 삶의 형평성이 더 높았고, 자유로웠으며, 살기 좋았다. 일부 정치인들이 구금되거나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이 비민주이며 독재라는 주장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산업화 시기야말로 나라의 진정한 민주화 시기라고 믿는다.합법적인 정권을 독재나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반대하고 저항하며, 폭력까지 동원해 파괴하려 했던 우리 사회 민주화 운동을 근로자들은 똑똑히 보았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왜 북한과 중국 독재는 입도 뻥긋 못하면서, 동맹국 미국을 극렬히 반대하는 것일까. 일은 않고 무슨 단체에 빌붙다가, 슬그머니 민주화에 숟가락 얹은 무리가 나라 곳간 채울 생각은 없고, 빼먹을 궁리만 한다.5·18이나 세월호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나라 곳간에 빨대를 꽂아 민주화 유공자란 신분 상승을 꾸미는 작업이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빨대 신귀족’을 더 만들겠단다. 합법적 정부를 부정하는 게 민주화란 이상한 등식에 젖은 행태를, 국민은 언제까지 가슴 저리며 바라봐야만 할까.‘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가는 일’이 벌어지는 비극을 국민이 계속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24-05-13

가족의 범주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은 가정의 중요성을 고취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에 의해 지정된 것이라 한다.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등 가정의 구성원을 생각하는 날이 연달아 있는 탓에,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있는 달이다. 경제적 이유로 5월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더 나아가 가정을 꾸리지 않는 청년 세대가 늘어나는 시대에 가정과 가족의 범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지난주 전공 수업에서 학생들과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를 함께 읽었다. 소설은 요양 보호사 어머니의 집에 시간강사이자 동성애자인 딸이 자신의 애인과 함께 들어오며 시작된다. 어머니는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기 어렵고, 시간강사라는 불안정한 직업을 가졌으나 불의를 참지 못하는 딸의 성격에도 걱정이 앞선다. 딸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원망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주인공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하지만 이런 엄마를 향해 딸은 자신과 애인인 레인은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외친다. “가족이 뭔데? 힘이 되고 곁에 있고 그런 거 아냐? 왜 이건 가족이고 저건 가족이 아닌데”라는 딸의 말에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동성애자이자 시간강사인 딸은 우리 사회의 비주류다. 합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가정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동성애자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기 어려우며, 갈수록 가속화되는 양극화 현상은 청년들에게 결혼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을 포기하게 만든다. 여기에 한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여전한 편견을 떠올리면, 우리 사회에서 가정이란 개념은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이성애자 부모와 아이들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그렇지만 우리는 절절한 딸의 앞선 외침처럼 딸과 레인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점도 알고 있다. 머리로는 ‘딸에 대하여’의 딸과 레인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소설의 엄마도 그랬다. 젊은 시절 타인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환자 젠의 비참한 노후에 분노하지만, 젠과 겹치는 딸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자기 딸이 젠과 같은 쓸쓸한 노후를 맞이할지 두려운 것이다.그렇지만 소설에서 결국 엄마는 젠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키며 머리와 마음이 일치하는 삶을 이룬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엄마는 젠의 장례식장에서 조금 다른 일상과 “마주 서 있는 지금”만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거창한 미래를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제와 한 뼘이라도 다른 내일만 생각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머리와 마음이 일치하는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삶과 마주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가 많아질 때 다양한 가정이 공존하는 진정한 가정의 달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2024-05-13

서정춘의 맛깔나는 전라도 방언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2009년 10월 23일 ‘문학어의 생명’ 주제로 2009 서울문학인대회가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서울(이사장 김후란)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기조발표자였던 필자는 “모든 창조적인 문학 언어나 방언은 고도의 표현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며 방언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서정춘의 시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을 인용하며 “방언의 사용은 표준어라는 규범에서 벗어남으로써 오히려 더욱 풍성해지고 또 한껏 무게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며 “안일한 감상주의나 자아 분열적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 당당하게 전라도적 언어풍경의 윤기를 발하게 해주는 문학의 언어는 주술이요, 언어의 위반”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당시 서정춘의 시에는 순창 토박이말이 맛깔나게 숙성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시인의 시선이 지역 정서에 충분히 곰삭아 있어서 궁상스럽지 않다.그의 시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을 한 번 살펴보자. “아버지는 새 봄맞이 남새밭에 똥 찌끌고 있고/어머니는 어덕배기 구뎅이에 호박씨를 놓고 있고/ 땋머리 정순이는 떽기칼 떽기칼로 나물 캐고 있고./할머니는 복구를 불러서 손자 놈 똥이나 핥아 먹이고/나는/나는/나는/몽당이 손이 몽당손이 아재비를 따라/백석 시집 얻어보러 고개를 넘고”이 시는 ‘봄, 파르티잔’, ‘캘린더 호수’ 시집에 실려 있다. 한국시인협회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엮은 100명의 시인들이 쓴 방언시집 ‘요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에도 실려 있다. 평범한 시골의 일상 풍경이 펼쳐지다가 갑자기 몽당이손 아재비를 따라 백석 시집을 빌려보려고 재를 넘는 시적자아가 등장한다. 농촌 고유의 정취를 진하게 풍기는 방언인 ‘남새밭’은 채소밭, ‘찌끌다’는 끼얹다, ‘어덕배기’는 언덕, ‘떽기칼’은 공식 사전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화살촉처럼 만들어진 칼을 말한다. 이 칼은 농촌에서 부엌의 식칼, 들판의 낫 다음으로 다용도로 많이 사용한 칼이다. ‘몽당손’은 사고로 손가락이 잘린 손이다. 한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정순이가 등장해 여한 없는 하루의 삶을 시작한다. 안분지족이다. 가난이 몸에 익은 문학 소년은 백석시집을 빌려보려 고개를 넘는다. 읍내 서점으로 새 책을 사러가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빌리러 가는 길인데도 그 뒷모습은 너무나 행복에 겨워 보인다. 동구 밖에서 깨금박질하다가 이내 꼬불꼬불 산길 돌고 돌아가며 땀방울 훔쳐내곤 하지만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지금 우리시대보다 더 가난하고 투박한 삶으로 하루살이를 이어가던 시절의 풍경화다. 그 시절 풍진세상의 농촌 풍경인데도 정겨운 미소와 희망과 추억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서정춘 시인은 군더더기 없는 단어로 함축적인 시를 선보이면서 다양한 이미지와 영상이 연출된다. 특히 전라도 방언을 통해 농촌 풍경과 추억과 친근감을 동시에 재현했다. 마치 ‘TV문학관’이나 ‘전원일기’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느낌을 준다.방언의 풍경 속에는 과거를 호명하는 기호가 삽입된다. ‘꼭지’라는 시의 주인공인 꼭지는 ‘몽당이손 아재비’와 같이 우리의 평범한 이웃사람이다.“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여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걷다가 또 쉬는데/전봇대 아래 웬 민들레꽃 한 송이/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노랗다./젖배 곯아 노랗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 떨어져나가듯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이 시 한 복판에 핀 노란 민들레가 시골 풍경화를 불러온다. 노란 민들레에서 못 먹어 부황 든 아이 꼭지의 얼굴을 연상하고 못 얻어먹어 말라비틀어진 젖꼭지를 주전자 뚜껑 꼭지로 상상한다.서정춘 시편의 미학은 절제미와 함축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류’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하얀 순천의 음결이 섞인 부사 ‘하르르’라는 어휘는 “미풍에 단풍을 휘날리는 가을의 비명이 은닉되어 있”는 것 같다. 비단옷 스치는 듯한 의태어 ‘하르르’가 안겨주는 섬세한 느낌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여울 물소리’를 만나 함께 어우러지며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감각을 자극하며 절묘한 효과를 획득한다. 이렇듯 서정춘은 서정주에 버금갈 만큼 토속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시인이다.

2024-05-13

탐미와 감각 그리고 허무

2024년 2월 23일에는 니가타현립대학에서 ‘한국근대문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언어·이동·미디어’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는 한국근대문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이 동아시아 각지에서 모였는데요. 학계의 말석에 있는 저도 발표자의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2월 22일 아침에 인천공항으로 향했던 저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전날 밤부터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인천공항에도 많은 눈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비행기는 날아 오르지 못했고, 제가 타기로 했던 니가타행 비행기도 활주로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5시간이 지나서야 인천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니가타에서는 사전행사가 진행중이었기에, 공항에서나 비행기에서나 제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니가타 공항에 도착한 저는 요금이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는데요. 공항에서 오랫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중요한 일정에도 참여할 수 없었기에 제 마음은 소금밭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이 새로운 즐거움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요. 이유는 택시를 타고 가면서 니가타현의 맨살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니가타현은 쌀로 너무나 유명한 곳이죠. 생산량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고시히카리처럼 맛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시내를 벗어나자부터 나타난 넓은 논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던 1시간 남짓한 시간은, 단 하나의 표지판도 없이 왜 니가타가 쌀 생산량 일본 1위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맛있는 쌀과 깨끗한 물이 풍부한 니가타현의 자연조건은 일본의 전통주인 사케를 만들기에도 적합해서, 니가타현에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양조장이 존재합니다. 그래서인지 니가타의 번화가에는 폰슈칸이라는 주류판매점이 있어, 사케 자판기에 동전만 넣으면 100여 종류가 넘는 사케들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해가 다 져서야 도착한 숙소는 야히코 신사 옆에 있는 오래된 료칸이었는데요. 삼나무가 가득한 신사와 눈에 쌓인 주변 풍경은 저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속 세계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 유명한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설국’의 배경인 ‘눈의 나라(雪國)’가 바로 니가타현인 것입니다.제가 머물던 미노야 료칸과 그 주변의 풍경은 소설 ‘설국’의 실사판 같았는데요. 물론 ‘설국’의 무대는 니가타현의 에치고유자와 온천이지만, 제 마음에는 ‘설국’에 나오는 “산골짜기는 어두워지는 것도 빨라서 벌써 으스스하게 황혼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흐릿한 어둠으로 아직도 서쪽 해가 눈에 반사되면서 먼 산들이 소리 없이 다가오는 듯했다”나 “마을의 강기슭, 스키장, 신사 할 것 없이 곳곳에 흩어진 삼나무 그루들이 거뭇거뭇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와 같은 문장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야히코 신사와 그 주변을 둘러싼 커다란 삼나무, 그리고 2024년의 마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너무나도 조용하여 쓸쓸하기까지 한 마을의 풍경이 저를 ‘설국’의 세계로 데려간 것입니다.‘설국’에서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글이나 끄적이며 사는 시마무라는 눈의 나라에서 게이샤 고마코와 소녀 요코를 만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통과하여 만난 사람들인 만큼, 두 여인은 이승에는 있을 것같지 않은 신성과 모성과 여성을 체현한 신비스러운 존재인데요. 시마무라는 이들 여인과 조용하지만 농밀한 감정의 드라마를 펼쳐 나가지만, 결국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인해 그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하얀 순백의 공간에 펼쳐진 새빨간 불의 이미지로 가득한 마지막 장면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펼쳐 보인 탐미의 절정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는데요. 그 섬세한 감각의 아름다움 속에서는 죽음마저도 새로운 느낌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저는 ‘설국’을 읽을 때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시마무라도 고마코도 요코도 아닌 ‘눈(雪)’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유년기에 부모, 누나, 조부모의 죽음을 겪으며 천애고아로 성장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이 세계란,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천변만화하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무라는 허무에 불과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기에 가와바타가 그려내는 세계의 주인공은 언젠가는 ‘녹아 없어질 눈’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설국’이 창작되던 시기(1935년 연재를 시작하여 1948년 완성)가 일본의 무한확장을 추구하던 천황제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때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니가타현을 배경으로 펼쳐진 탐미와 감각의 세계는 시대를 향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식의 절규는 아니었을까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05-13

대구시장과 의협회장의 난타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는 ‘도백(道伯)’으로 불린다. 대구광역시의 인구는 대략 237만 명. 홍준표는 그 도시의 도백이다. 또 다른 명칭으로 부르자면 ‘오십만호장(4명을 1개 가구로 환산한 수치·50만 가구를 통치하는 수장)’쯤. 칙령(勅令)이 아닌 시민의 선택으로 오른 자리이니 역할은 더 크고, 책임은 보다 무겁다.임현택은 이 나라 의사협회장. 수십 억 자산을 가진 강남의 부모들을 포함한 한국 아버지·엄마 다수가 제 자식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의사들의 상징적 우두머리다. 자신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최근 이 둘이 인터넷상에서 주고받은 설전을 본다. “한 나라의 흥망은 그 나라 언어의 흥망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가져다놓을 것도 없다. 둘 모두 정제되지 못한 거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한다.임 회장이 “돼지 발정제로 성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고 시장을 하는 것도 기가 찰 노릇… 그러니 정치를 수십 년 하고도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 하니, 홍 시장은 “더 이상 의사 못하게 그냥 팍 고소해서 집어넣어 버릴까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니 별 X이 다 나와서 설친다”고 받았다.국가의 수준은 그 국가를 이끄는 자들의 어법과 무관치 않다. 여론을 선도한다는 세칭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격(國格)’을 입버릇처럼 말한다.묻고 싶다. 위에 인용한 막말이 국격을 높이고 있나? 자신들의 인격을 의심하게 하는 언사는 아닌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 사람 마르틴 하이데거가 쓴 문장이다. 대구시장과 의사협회장, 두 사람에게 던지는 질책 같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13

‘혼(混)’ 자, ‘혼(昏)’ 자 한자어 공부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이 시대를 잘 살아 가려면 한자 공부를 좀더 해야겠다. 그중에서도 이 두 글자 ‘혼’을 잘 알아야 하겠다.‘혼돈(混沌)’은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이다. 또는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 ‘어목혼주(魚目混珠)’란 물고기의 눈알과 구슬이 뒤섞인다는 뜻으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임을 가리킨다.‘일어혼전천(一魚混全川)’은 한 마리 물고기가 온 냇물을 흐려놓음이다. ‘혼탁(混濁)’은 불순물이 섞이어 깨끗하지 못하고 흐림이다. ‘혼돈씨(混沌氏)’는 하는짓이 모호하거나 정신이 흐리멍텅한 사람을 농담으로 일컫는 말이다. ‘혼돈주(混沌酒)’는 여러 가지 술을 한데 뒤섞은 술을 가리킨다. 요즘말로 ‘폭탄주’를 말하는가 보다.‘혼돈탕(混沌湯)’은 여러 가지 음식을 뒤섞어서 끓인 국이란다. 요즘으로 따지면 부대찌개인가 보다. ‘혼선(混線)’은 말이나 일 따위가 갈래가 얽혀 종잡을 수 없음이다. ‘혼란기(混亂期)’는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어지러운 시기다. 요즘 같은 때를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혼신결혼(混信結婚)’은 종교가 다른 사람끼리 결혼함이다. ‘혼돈개벽(混沌開闢)’은 혼돈한 시대를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뜻이라고 한다. ‘옥석상혼(玉石相混)’은 옥과 돌이 섞여 있다는 것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데 섞여 있음을 가리킨다.‘혼명(昏冥)’은 어둡고 캄캄함이다. ‘혼혼(昏昏)’은 정신이 아뜩하여 희미함을 말함이다. ‘혼혼맹맹(昏昏儚儚)’은 매우 흐릿하고 가물가물한 모양이다. ‘혼미(昏迷)’는 정신이 흐리고 멍하게 됨을 가리킨다. ‘혼암(昏暗)’은 불빛 따위가 없어 밝지 아니함을 가리킨다.‘혼란(昏亂)’은 마음이 어둡고 어지러움이다. ‘혼탕(昏蕩)’은 정신이 어둡고 어리둥절함이다. ‘혼왕(昏王)’은 어리석고 둔한 임금을 말한다. 옛날에 그런 대통령도 있었다.‘혼계(昏季)’는 나이가 젊고 세상 물정에 어두움을 말한다. ‘혼매(昏昧)’란 어둡고 어리석어서 아무 것도 모름이다. ‘혼한(昏漢)’은 어리석어 사리에 어두운 남자를 말한다.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모양이다. ‘병혼(病昏)’은 병이 들어 정신이 혼미함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그러셔서 안타깝고 괴로웠다.‘혼타(昏惰)’는 어리석고 게으름이다. ‘혼포(昏暴)’는 사리에 어둡고 사나움을 가리킴이다. 이런 사람은 정말 위험하다. ‘혼태(昏怠)’도 어리석고 게으름이다.‘기혼(氣昏)’은 정신이 아득하고 기력이 흐리멍텅함을 말한다.‘노혼(老昏)’은 늙어서 정신이 흐림이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혼침(昏沈)’은 정신이 푹 까무라침이다. ‘혼혹(昏惑)’은 사리에 어두워 미혹함을 말한다. 젊은 사람도 이렇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혼야(昏夜)’는 어둡고 깊은 밤을 말한다.‘혼암(昏闇)’은 어리석고 못나서 일에 어두움이다. 또는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치가 부패되어 있음이다. 지금 이 나라의 상태를 설명하기에 정확하다. ‘혼폐(昏閉)’는 어둡고 꼭 막힘이다.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 4·10 총선 전후의 우리 사회, 정말 어디로 가는 것일까?

2024-05-13

대구, ‘ABB산업의 요람’으로 자리잡는다

대구시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산업 육성을 위해 대구수성알파시티에 ‘ABB 글로벌 캠퍼스’를 건립하기로 했다. 수성알파시티를 ABB 관련 고급인재 양성의 산실로 만들어 글로벌 및 플랫폼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지하2층, 지상8층 규모로 건립될 캠퍼스에는 ABB 대학원, 글로벌 산학연 협력 공간, 연구·개발 센터, 스타트업 지원 공간이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IT분야 초격차 인재 양성, 글로벌 기업 협력 연구, 기술창업과 사업화가 이루어진다. 대구시는 앞으로 DGIST와 함께 이 캠퍼스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D-FAB) 운영을 위한 센서 파운드리 컴퍼니, MIT수준의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의과학전문대학원, 과학 영재학교 설립 등도 추진할 생각이다. 243개 기업이 입주해 조단위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수성알파시티는 이미 비수도권 최대 규모의 소프트웨어(SW) 집적단지로 자리잡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수성알파시티를 글로벌 기업·대학·인재들이 활발하게 교류하는 디지털 혁신장소로 만들겠다”고 했다. 대구시는 홍 시장 취임 이후 ABB산업 육성에 총력을 쏟아왔다. 관련산업 투자유치와 산학연 협력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DIP)과 함께 ABB벤처포럼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고, ABB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펀드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한국벤처투자, DGB대구은행, DIP가 참여하는 ‘DGB디지털제조혁신펀드’는 현재 170억원 규모로, 기업에 대한 직접투자와 주식상장, 인수합병, 역외기업 유치를 지원한다. AI연구의 핵심장비인 슈퍼컴퓨터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DGIST는 이미 지난해부터 수성알파시티에 ‘DGIST AI·SW 교육연구센터’를 설립해 ABB 산업 인재 양성과 기업 간 협업연구를 한창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대구시와 공동으로 ABB 캠퍼스를 운영할 경우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4-05-13

“집 안팔려”… 전국 최하위 입주율의 대구시

3년째 침체 국면에 빠져있는 대구지역 부동산 경기는 언제쯤 회복세를 찾을지 걱정이다. 부동산 경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주택건설산업부터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후방 효과가 커 내수경기 활성화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대구지역은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공급 과다로 인한 미분양 물량 증가 등으로 시행사는 물론 분양관련 중소업체들까지 경영난으로 전전긍긍이다.소비자 입장에서는 신규 아파트를 구입하고도 기존 집이 안팔려 입주를 못하는 일도 빈번하다. 정상적 거래까지 막히다 보니 집값이 폭락하는가 하면 전세사기 같은 부작용도 자주 빚어지고 있다.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고는 있으나 부동산 경기는 좀체 반등할 기미가 없다. 특히 대구는 미분양 무덤이란 별명이 붙은 것처럼 미분양 물량이 수년째 1만여 가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규 아파트 분양은 엄두도 못낸다. 분양을 임대로 전환하는 등 업계가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불황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최근 수성구 범어동의 한 재건축 아파트가 분양에 나서 100% 분양에 성공했으나 분양가구 수가 적고 입지가 좋았기 때문이지 분양경기 회복을 말할 수준은 아니다. 장기침체의 대구지역 부동산 경기를 진작할 특단의 대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지난 4월 대구지역의 아파트 입주율이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4월 대구지역 아파트 입주율은 57%로 전월보다 7.6%포인트가 떨어져 3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지난 2017년 7월 관련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라 한다.입주율 부진의 이유로는 기존주택 매각 지연과 세입자 미확보가 각각 33.9%로 가장 많았고, 잔금 대출 미확보가 21.4%로 나타났다. 집이 안팔리고 들어올 세입자도 없어 두 집 중 한 곳은 빈집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부동산 경기가 과잉돼 집값이 폭등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정상적 거래가 막혀 이사를 못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정부의 추가 대책 검토도 필요하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관심과 대책이 시급하다.

2024-05-13

덮어둔 것을 열어야 할 때

양꼬치를 먹다가 어금니가 깨졌다. 탕후루도 아니고 양꼬치에 이가 망가지다니. 고량주를 곁들이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취기 덕분에 와하하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길 수 있었으니까. 세상의 많은 일이 실없는 웃음처럼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취기가 가시고 입속의 빈자리가 선명해질수록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오랫동안 덮어왔던 일을 열어야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치과에 가야 했다.단언컨대 치과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공간임이 분명하다. 단단한 것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 이토록 조그만 입속에서 벌어진다니. 병원에선 공사장에서나 들릴 법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머리가 아득하다. 진료용 의자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불안이 점점 커진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고 천이 얼굴 위로 올라오면 본격적인 고통의 시작. 날카로운 기계가 치아에 맞닿는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리고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어린 시절부터 이가 약했던 나는 치과에 자주 드나들었다. 사춘기가 되어선 교정 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했다. 진료 날짜가 다가오는 게 싫어 억지로 급한 일을 만든 적도 있다. 대기실부터 병원 밖을 나설 때까지 몸도 마음도 편안하지 않았다. 아프면 손을 들라던 의사 선생님은 엄살을 받아주지 않고 간호사 선생님은 치아 관리 잘하라며 무서운 얼굴로 혼냈으니. 내 괴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는 것만 같았다.어른이 되면 치과가 무섭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치과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두려움의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는 것. 어금니가 깨진 것 같아요, 하고 접수처에 말하면서도 머릿속에선 단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의사의 진단이 끝나고 상담실에 앉아 설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치아의 상태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보다 더욱 중요한 것. 대체 얼마일까? 금액을 받아 들자 머릿속에서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꺼낼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그러니까, 무이자 할부 몇 개월 가능할까요.누구도 탓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다. 치과의 권유대로 주기적으로 방문해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스케일링을 받으며 꼼꼼하게 관리했어야 옳다. 아니, 이전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던 많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미루지 말고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비단 치아의 문제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덮어놓고 열어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방문을 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반드시 고치겠다던 주방 조명도 있다. 흩어져 있는 보험의 약관도 꼼꼼하게 따져보고 정리해야 한다. 자동차 트렁크에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타당한 핑계를 대본다. 강의가 있는 날은 몸이 너무 피곤하다. 하루에 두 번 강아지 산책도 시켜야 한다. 부쩍 좋아진 날씨에 반가운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어가고 챙겨야 하는 경조사도 끊이질 않는다. 덮어놓은 일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면 희미한 죄책감이 함께 따라붙는다. 정말이지 너무나 싫은 기분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언제까지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 자의든 타의든 반드시 직면해야 할 때가 온다. 그 상황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자책보다는 책임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미뤄둔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힘들 줄만 알았는데 도리어 개운한 기분도 든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대단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일 년에 두 번씩 치과에 방문하기로 약속하며 선물로 칫솔을 받았다. 사탕 대신 칫솔이라니. 이래서 치과가 무섭다니까. 연두색 칫솔을 가방에 넣으면서 피식 웃었다. 치아와 잇몸은 자가 회복 능력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그러니까 더 신경 써야 해요. 아직 젊잖아요. 맛있는 것 실컷 먹고 건강하게 지내야죠. 그 진부하고도 다정한 말이 사탕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병원에서 나오며 그간 덮어놓은 일들에 관해 생각했다. 조급해 말고 천천히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 양치부터 꼼꼼히.

2024-05-13

회전초밥 같은 사람들

나는 마마보이였다. 그래서 19살에 겪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가며 나는 이전에 만났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 중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아갔다.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를 수많은 사람들로 어떻게든 채워보려 했던 것이다. 대인관계가 양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나로서는 뿌듯하고도 자랑스런 일이었다. 대학 시절 내내 이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다른 건물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동안 수많은 친구, 선후배들과 인사를 나누며 요즘 말로 ‘핵인싸’임을 과시하는 것이 나의 커다란 기쁨이었다.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내 품안에 두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곁에 두기엔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작기만 했다. 가만히 둬도 내 곁에 있어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애써 지켜내야 하는 관계들도 있었다. 어쩔 수없이 소홀해지는 관계들이 생겨나면 그들은 여지없이 내 곁을 떠나곤 했다. 그 사실들을 뒤늦게 알아채고 나는 아쉬워했고 때때로 괴로워했지만 인연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갱이들처럼 흩어져버리고 말았다.붙잡아둘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그리고 그들이 나를 떠나거나 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나이를 몇 살 더 먹은 뒤의 일이었다.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애쓰는 일을 멈추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그리고 매 시절마다 내게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떠날 사람을 붙잡는데 쓰던 마음을 내게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에게 쏟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그들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갈 수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또다시 내 곁을 찾아올 이들이 있을 테니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또 몇 살을 더 먹으며 새로이 발견하게 된 사실이 있다. 멀어졌다 생각한 어떤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또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내 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훈이형이 내게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먼 과거의 일이다. 나는 대학로에서 열린 한 축제의 출연자였고, 형은 그 축제의 기획단과 출연자들에게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납품하는 젊은 사업가였다. 우리는 모두 이십대였고 그 나이대의 많은 이들이 그랬듯 금세 친해져 같이 술을 먹기도 하고 그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레 멀어져 내 기억에서 잊혀져갔다.서른이 넘은 어느 날, 몇 년 만에 기훈이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가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자신은 출판사를 차렸으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들어갈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별다른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또다시 서로의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러 이번에는 내가 그를 찾았다. 야심차게 준비한 샘플 원고가 있었는데, 출판사를 물색하던 도중 문득 기훈이형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새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빈티지샵을 열었다고 거기로 놀러오라고 했다. 나는 단숨에 원고를 들고 그의 가게로 달려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고, 그의 빈티지샵에서 교양강좌를 열기도 했고, 음악 공연을 열기도 하는 등 함께 재미있는 일들을 해 나가고 있다. 두 번이나 끊어졌던 관계가 이제는 서로와 함께 또 무슨 재미난 일을 해 볼 수 있을까 궁리하는 관계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몇 해 전 ‘회전 초밥’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다. 내 곁에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사람들이 꼭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초밥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노래다. 레일 위의 모든 초밥이 욕심나지만 내 테이블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모두를 다 내 앞으로 끌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어떤 초밥들은 어쩔 수없이 내 곁을 떠나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초밥이 내게 새로이 다가오기도 하고, 아까 떠나보낸 초밥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 초밥들 하나하나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았다.외로워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떠날 사람을 떠나게 두고 다가올 사람을 다가오게 둔다고 해서 쉽사리 외로워질 것 같지는 않다. 내 곁에는 늘 소중한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어떤 얼굴들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얼굴은 이미 오래 전에 멀어져버려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 중 누군가와 또 어떤 날 어떤 방식으로 재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을 통해 안부를 전한다. 나는 잘 있고, 언젠가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설령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내 건강하길 바란다고.

2024-05-13

안동시와 안동시의회의 소통과 협치

피현진경북부 서로 끝없이 싸우고 있다. 될 수 있으면 같은 공간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화해를 위해 잠시 같은 공간에 앉았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으르렁거린다.그 사이 지역 현안이나 발전은 미뤄지고, 이는 다시 상대방을 탓하는 재물이 돼 또다시 싸운다. 그만 하라고 만류하던 사람들도 이젠 지쳤다. 소통과 협치를 외쳤지만, 어느 하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 안동시와 안동시의회가 이렇게 싸운 지 벌써 2년이다.지난 2022년 지방선거 이후 지속된 두 기관간 반목과 갈등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항간에서는 이번 임기 내 이들이 화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들 예상하기도 한다.다만, 이르면 이달 중 싸움이 이어질지 아니면 소통과 협치의 길로 새롭게 나아갈지 결정될 수도 있다. 17일부터 안동시의회가 임시회를 열어 안동시 집행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 심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안동시는 2천400억 원 규모의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지역의 각종 현안해소와 침체된 경기 활성화 등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남은 2년을 위한 대규모 조직개편도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안동시의회도 후반기 의회를 이끌 의장단과 원 구성 논의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이들은 2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제대로 일하고, 2년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4년을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각오들이다.이제 무대는 만들어 졌다. 먼저 이번 임시회에서 안동시의회가 집행부의 예산을 얼마나 원안대로 통과시켜 주는지가 관건이다. 옳고 그름을 따져 시의 예산을 심의하는 것은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다만 분위기에 편승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면 안된다.안동시는 이번 추경에 안동경제를 견인할 굵직한 부지 매입과 저출생 극복, 전통시장 활성화, 가정용 상수도 반값 공급 등 시민의 삶과 밀접한 부분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히고 있다.시의회는 보다 면밀히 따지고 들여다보돼 문제가 없다면 관련 조례를 만들거나 개정해 사업 추진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후 문제점이 발생한다면 이를 보완하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집행부를 질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안동시와 시의회 모두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큰 부분에서 두 기관이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그 일하는 방식이 싸움이 아닌 소통과 협치가 된다면 시민들이 두 기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더 따듯해지지 않을까.이번 임시회에서 서로 양보하고 화해의 손을 내민다면 앞으로의 2년은 지금까지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으로 시민들은 기대하고 있다./phj@kbmaeil.com

2024-05-13

모든 문제는 영부인으로 통한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꼬이기 시작한 건 ‘마리앙투아네트’ 때문이다.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김경률 회계사가 ‘명품백’ 사건에 대한 대통령 내외의 사과를 요구하며 마리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이 발언에 대통령이, 특히 영부인이 격노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한 위원장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을 정도다.마리앙투아네트는 정말 악녀였을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이라”라고 말한 걸로 알려졌다. 브리오슈는 계란과 버터가 많이 들어간, 귀족들만 먹는 빵이다.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고귀한 공주’가 했다는 이 말이 인용됐다.그 책이 나왔을 때 마리앙투아네트는 어린아이였다. 혁명 당시 파리의 팜플렛에는 온갖 악성 루머들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악성 루머는 진실보다 더 잘 퍼지고, 감정을 자극한다.모든 길이 영부인으로 통하고 있다. 선거 때부터 야당은 김건희 여사를 집중하여 공격했다. 윤 대통령의 약한 고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본인은 물론 윤 대통령도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날지 짐작이 간다. 김 여사 얘기만 꺼내면 윤 대통령이 화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참모들이 정작 해야 할 말도 못 하는 것 아닌가.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윤 대통령 내외가 오해하는 건 법이 모든 진실을 밝힌다는 믿음이다. 정치는 진실보다 국민의 믿음이 중요하다.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공개됐다. 소송에서 이겨 1000만 원을 배상받았다. 그래서 해결됐나. 명품백 수수를 몰래 촬영한 최재영 목사를 사법적으로 처벌하면 국민이 “모든 오해가 다 풀렸다”라고 납득할까.국민은 이 기자·최 목사는 보지 않는다. 잘해서가 아니다. 관심이 없다. 김 여사만큼 중요한 공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테이프에서 김 여사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낸 데 대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실망이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마구 만난다는 불안이고, 국정에 개입하려는 언행에 걱정이다.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윤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 정서에 얼추 다가왔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최근에 논란된 문제도 한둘이 아니다. 오해일 수도 있다. 국무총리 물망에 오른 박영선 전 장관의 영부인 인연설이 보도됐다. 같은 대통령실 내에서 공식라인은 부인하고, 담당이 아닌 사람은 다시 번복하는 혼선을 빚었다. 여기서도 영부인 라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 관저와 윤 대통령 손바닥의 왕(王)자와 관련해 천공이니 무속이니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천공이 최재영 목사와 만나 자기가 대통령실을 움직이는 듯이 말하는 유튜브가 공개됐다.이런 논란들이 재판으로 해결될 일인가. 왜 오해의 근거를 제거하지 못하나. 왜 이런 오해와 잡음에 아까운 시간과 국력을 낭비해야 하나.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화만 낼 게 아니다. 과감한 조치로 국민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윤 대통령은 물론 영부인에게도 결국 도움이 된다.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을 외국에 보내라는 참모의 건의를 듣지 않았다가 결국 자기 임기 중 감옥에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형님을 물리치지 못해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탄압받던 시절 고생한 아들들에게 매정하게 관리하지 못해 임기 중 모두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정리한 것은 현명했다.국민이 감동해야 해결된다. 과감하게 던지면 국민도 감동하고, 오히려 동정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아내와 헤어져야 합니까”라는 감성적 접근으로 장인의 부역 논란을 뒤집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옷 로비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사과하고, 특검을 도입했다.뒷북을 치면 하고도 욕을 먹는다. 이종섭 전 주 호주대사,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문제는 결국 사퇴시켰지만, 그만한 효과가 없었다.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보다 먼저 나가야 한다. 흥정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는 건 최악이다. 특별감찰관이나 특검이나 사과를 끝내 피할 수 있겠나. 언제까지 이런 소모적 논란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야 하나. 순애보를 찍을 때가 아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12

시간과 일 그리고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시간은 왜 흐른다고 할까?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명백히 불가역적인 연속 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리학에서도 시간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인위적인 에너지가 작용하지 않았을 때 자연적인 에너지 흐름의 방향성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생산현장에서도 시간의 흐름으로 작업과 공정을 표현하고 누구나 쉽게 사용 할 수 있는 개선의 도구이다.생산현장의 시간은 원가 작업 부하 안전과 직결되며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원하는 시기에 신속하게 생산하여 제공하기 위한 단축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생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제품이 공정 간 정체가 없이 동일한 사이클(Cycle)로 연속적인 흐름이 되어야 한다. 이상적인 흐름의 모습은 공정 또는 설비 간의 작업시간이 동일하여야 하며 생산 단위의 묶음인 로트(Lot)크기를 지속적으로 줄여 궁극적으로는 1개씩 흐르게 생산하는 것이다.생산Lot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걸림돌은 다양한 고객의 주문에 대응하기 위한 설비의 준비교체 시간이며 교체에 소요되는 시간 만큼 Lot크기를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준비교체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설비가 프레스이며 교체 시간이 적게는 1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씩 소요된다. 즉 1시간에서 8시간 분량의 공정내 재공을 보유해야 연속 생산이 가능하므로 넓은 저장 공간과 큰 Lot로 인해 생산 대기시간이 길어지게 된다.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여러 모양의 차체의 부품을 찍어내는 과정의 준비교체 시간이 대부분 10분 이내로 이를 더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오히려 생산을 중단하고 실시하는 준비교체 시간보다는 설비 가동 중에 교체할 금형을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산 Lot 크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준비교체 시간이 짧다 보니 Lot 크기도 작아서 공정내 재공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고 빠르게 흐르는 생산구조를 구축하고 있었다.또한 자동차 1대가 생산되는 주기인 평균 60초에 맞추어 각 작업자 별로 작업순서와 시간을 정해 표준작업으로 만들어 일정한 패턴으로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가치 있는 동작을 지속하도록 하고 있었다. 조립 라인의 작업중 문제가 발생하여 시간이 지연되면 백업 인원이 도움을 주거나 육상릴레이에서 바통 터치 구간과 같은 존을 설정하여 작업이 늦어지면 대응 할 수 있는 구간을 두었다.특히 현장의 직책자는 작업자가 가능한 부품의 선택부터 조립까지 시간 낭비없이 최대한 편한 동작으로 반복작업이 이루어지도록 조립품의 배치와 작업 동선 치 공구에 대한 개선을 통해 작업자의 어려움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고민이 일의 80%라고 하였다. 엔지니어가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꾸짖는 말로 ‘기술의 부족을 직원이 몸으로 때운다’라고 하였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조립과 장치 산업을 떠나 시간의 중요성은 동일하다. 생산 Lot의 크기를 줄여 공정 간의 재공과 대기시간을 최소화하고 설비의 사이클 타임(Cycle Time)을 줄여 지속적으로 빠른 흐름을 만드는 노력은 품질의 확보와 함께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2024-05-12

분노가 오해 때문이라고요?

유영희 작가 포털에서 갑자기 ‘라인’ 매각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네이버에서 개발한 라인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이다. 라인은 오래전 몇 번 써본 경험이 있어, 무슨 일인가 궁금증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잘 알지 못하던 사건이라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기사나 뉴스를 최소 10개 정도라도 찾아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알게 된다.이번 라인 사태는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에게 네이버와 지분 관계를 개선하라고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분 관계 개선이란, 네이버의 지분을 일본의 라인야후에게 매각하라는 뜻이다. 이미 2021년부터 일본 정부는 네이버의 보안 소홀 문제를 트집 잡고 있던 터였는데, 작년 8월과 11월에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유일한 한국인 이사였던 신중호 CPO를 이사에서 사퇴시켰는데, 문책이라는 의혹이 많다고 한다. 4월 29일 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총무성의 조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행정지도일 뿐이라며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닌 것처럼 선을 그었다.그러나 이 문제는 ‘라인 사태’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하여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분 뺏기로 보안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데다, 일본에서 선례를 남기면 다른 나라에서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 역시 지난 9일 조국혁신당의 이해민 홍보위원장이 급하게 했다는 기자 회견을 보니, 절반의 궁금증은 모두 걱정으로 변했다. 한국 외교부가 일본 총무성에 요청하기를, 라인야후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해라고 한국 언론에 전화라도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해라는 말을 들으니, 언젠가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던 기사가 생각나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이번 사태의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는 일본 총무성이 3월과 4월 연달아 행정지도를 했는데, 정부는 왜 5월 10일에서야 유감 입장을 내놓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인 사태는 정말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이고, 그래서 네이버가 요청해야만 지원할 사안인가 하는 것이다.그동안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에 상당히 신경 썼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라인을 한국 기업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애매하게 지분을 50 대 50으로 균형을 맞췄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발표한 네이버 입장문을 읽자니, 글자 하나하나 얼마나 신중한지 한눈에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의 요청을 기다린다는 것은 얄팍한 핑계이다.더 중요한 문제는, 라인 사태가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총무성에서 라인야후에 지분 관계 시정을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민간 차원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니 정부가 이것을 민간 기업 문제라고 나서지 않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술 나눠 마셨다고 친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똑바로 대응하기 바란다.

2024-05-12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이희정 시인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노래를 부르며으쓱으쓱 춤을 추는 친구들우리는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사는데….울먹이는 준이너 그거 알아?사실, 곰들은 따로 산대아빠 곰은 수컷끼리애기 곰은 엄마랑 잠깐만 산대엄마 곰은 혼자서 살아간대자연에서는 따로 사는 동물들이 더 많아코끼리도 호랑이도 다 그렇게 살아가거든같이 살아도, 따로 살아도 괜찮아우리도 하루의 반을어린이집에서 같이 살고 있잖아―정지윤,‘곰 세 마리의 비밀’전문 (‘전달의 기술’, 상상동시집)정지윤 시인의 동시 ‘곰 세 마리의 비밀’의 첫 행은 우리 모두 널리 알고 있는 동요로부터 시작된다. 이 시는 앙증맞은 어린이 세상 속에서 상처 입은 어린 마음의 현실을 동요와 포개어 피할 수 없는 육아 현장 속에 짠하게 담아놓았다.시인은 곰의 생활 방식을 빗대어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보인다.사실상 여러 이유로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현대 가족의 구조와 육아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공간적으로는 어린이집이 주요 배경이 된다. 곰의 공간이 꿈이라면 어린 아가들의 공간은 현실이다. 곰 세 마리 동요 속에는 엄마, 아빠, 아기가 한집에 산다. 동요의 이 대목에서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사는 이혼 가정의 준이의 처지가 노출된다.하지만 마음 착한 친구들은 울먹이는 준이에게 곰들의 비밀을 들려준다.사실은, “곰은 수컷끼리 애기 곰은 엄마랑 잠깐만 산다.” 그리고 “엄마 곰은 혼자서 살아가기도 한다”며 곰이라는 동심 공간에 준이의 현실 공간을 이입해 달래 주고 있다.그런데 내부적으로는 이질적이던 친구와 준이의 가족 공간은 마지막 구절에서 동질감을 불러오는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결국 아기곰 모두 하루의 반을 엄마나 아빠와 떨어져 사회기관인 어린이집에서 맡겨져 있다는 현실을 보인다. 주제 의식이 명확한 동시다. 동심을 소재로 한 작품임에도 그 정서가 마냥 밝지만은 않은 이유다.그나마 다행이랄까. 이 동요적 공간에서는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동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율동이나 행간 바깥에 있을지도 모른다.오래 되었어도 쉬이 떠나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려 보자.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아동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는 출생 신고도 안 된 네 명의 아이들이 오랫동안 굶주림에 방치되어 있다가 집주인에게 알려진 이야기다. 게다가 버려진 네 아이들의 아빠가 모두 달랐다는 사실과 의자에서 떨어져 죽은 막내 아이는 인근 숲속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일본 도시 사회의 무관심과 인간소외로 인한 사회문제의 비극을 드러낸 참담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출생 직후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의 사례가 공공연한 현실인 우리나라 또한 다르지 않을 것 같다.여러 가지 장벽으로 비혼주의나 맞벌이 무자녀 가족을 일컫는 딩크족이 늘어나는‘씨 없는 사회’로 다가가고 있음은 주목해 볼 대목이다.오월의 거리는 감사의 인사로 넘실거린다. 반갑고 미안한 것들 사이 어린이집에서나 가정에서나 으쓱으쓱 자라나는 “아기곰은 너무 귀엽지” 않은가.

2024-05-12

2025 APEC 정상회의 감동의 드라마는 경주에서

주낙영 경주시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의 불국사·대릉원에서 세계 각국 정상들이 한복을 입고 나란히 걸으며 현안을 나눈다면 상상만 해도 정말 멋진 풍경이 아닙니까?”2025년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국격은 물론 외교·경제·문화적 영향력을 전 세계에 선보이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도시가 경북도와 경주시다.경북도는 신라·가야 유고문화 등 민족문화의 본산이고 호국충절의 고장지여 새마을·자연보호운동 등 국민정신 운동의 발상지다.신라 천년의 고도로서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경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다. 현재 유치 공모를 신청한 경주, 인천, 제주 중 경주는 유일한 기초지자체로 APEC이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과 정부의 국정철학인 지방균형발전 가치 실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 모델이다. 그간 개최된 도시 중 소규모 지방도시인 멕시코 로스카보스(2002), 러시아 블라디보스톡(2012), 인도네시아 발리(2013), 베트남 다낭(2017) 등에서 성공 개최한 사례를 보면 경주 유치의 당위성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특히 정상회의 당시 인구 7만에 불과한 관광도시인 멕시코 로스카보스는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광인프라 개발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인구 34만(2020년 기준)의 국제적 관광도시로 거듭났다.경주는 2014년 국제회의 도시로 지정됐다.경주는 국제회의 도시 지정 이전부터 세계 최초 도시 간 국제문화박람회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열어 국제문화 교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2015년 경주화백컨벤션센터(경주 하이코) 개관 이후 국제회의 도시로 꾸준히 마이스 산업 활성화 전략을 펼쳐왔다. 또한 수년간 APEC 교육장관회의, 세계 물포럼, 세계유산도시기구 총회의 다양한 분야의 대형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풍부한 노하우와 역량도 갖췄다. 특히 2022년 보문관광단지 일원 178만㎡가 비즈니스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선정돼 정부 차원에서도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또한 주 회의장인 하이코를 중심으로 보문관광단지 전체를 APEC 정상회의 독립공간으로 활용한다.보문관광단지는 숙박, 회의, 사무공간과 전시, 미디어센터 등 모든 시설을 가까운 거리에 배치할 수 있어 정상회의의 안전성과 편의성 측면에서 최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국제 정상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호와 안전이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회의개최 시 경호와 안전에 대한 요구사항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교통통제와 각종 보안 요구는 시민들의 일상에 큰 불편을 초래할 것이다.그런 반면 경주는 각국 정상의 경호와 안전을 위한 입지적 조건이 최상이다.보문관광단지는 회의장과 숙박시설 등 모든 시설이 3분 거리 이내에 위치해 이동이 매우 짧으며 다른 경쟁도시와 달리 바다에 접해있지 않아 해상을 봉쇄할 필요도 없다. 또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호 경비에 최적지다.2005년 APEC이 부산에서 개최됐을 때 한·미 정상회담은 경주 보문단지에서 열린 만큼 경호의 최적임이 입증됐다.경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관광 도시이자 첨단과학산업 도시다.한수원, 월성원전, SMR RD 전초기지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SMR 생산, 수출, 상용화기지인 SMR국가산단, 중수로해체연구원, 양성자가속기센터, 미래차 e-모빌리티 연구단지 등이 있다. 특히 경주는 영남권 산업벨트의 중심허브 도시로 인접한 울산의 완성차·조선, 포항 철강·이차전지·포스텍, 구미 전자·반도체, 안동의 바이오산업 등과 연계한 다양한 산업시찰을 통해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다. 지난해 9월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한 결과 불과 85일 만에 25만 경주인구보다 약 6배 많은 146만 3874명이라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경주가 APEC 유치 도시 선정은 숙명이자 필연이다. 오는 6월 도시 결정을 앞두고 타 도시와의 차별화된 전략과 준비로 정상회의 최적 도시임을 충분히 설명하고 현장실사, 시도별 유치계획 설명회의 준비만전 등 경주의 강점과 잠재력을 최대한 어필하여 반드시 유치하여 경북도와 경주시를 전 세계에 알리고 APEC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 메가 이벤트가 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4-05-12

짧은 여행을 마치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달 중순 몇몇 교수가 우리 집을 찾아 차를 마시며 한가로이 봄날 하오를 보냈다. 일행은 여기 머물지 아니하고 장소를 ‘각북’으로 옮긴다. 그곳은 작년 가을 대구에서 옮겨온 동료 교수가 새로이 터전을 마련한 멋진 장소였다. 바깥 공간은 입체적으로 꾸며져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했으며, 흙벽돌로 가꾸어진 내부공간은 소담하고 단아했다.저녁놀이 질 무렵 기타 반주에 노래 몇 곡 하고 인근 식당으로 이동한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다음 달, 그러니까 신록과 녹음의 5월 구룡포 1박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구룡포에서 멀지 않은 포항 남구에 아담한 집을 가진 친구가 저녁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1박 2일의 짧은 여행 계획이 속성으로 만들어졌다.요즘 주말이면 찾아오곤 하는 비바람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지난 금요일 하늘은 참으로 맑고 투명했다. 멀리 수평선 너머 포항제철의 굴뚝과 거대 콘크리트 건물이 붉은 저녁놀 속으로 하나둘씩 사라지고, 옥상에는 은성(殷盛)한 식탁과 환한 얼굴들과 약간의 열기로 달궈진 목소리가 허공을 날아다닌다. 그렇게 포항의 일몰과 초승달과 웃음이 엇갈린다.나는 기타 연주와 노래로 좌중의 흥을 돋운다. 이번에는 각자가 부를 노래를 미리 신청받았기로, 한 곡씩 순서대로 반주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든 ‘실버들’을 부르고, 또 다른 이는 최진희의 진한 음색으로 넘쳐나는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열창한다. 그렇게 ‘베사메 무초’와 ‘봄날은 간다’, ‘그때 그 사람’이 차례로 불려 나온다.여러 생선이 어우러진 회와 삼겹살이 소맥과 뒤섞인다. 그렇게 초저녁이 야음으로 질주하고, 웃음판도 커간다. 초면인 사람들도 허심탄회하게 어우러지는 열린 유희의 마당은 얼마나 우리의 팍팍한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크고 작은 일상사와 잔잔한 걱정거리와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일순(一瞬) 밤의 대기 속으로 흩어져버린다.인생이란 항해 과정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가슴 졸이고, 넘치도록 근심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과거의 아픈 기억에 매달려 자학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걱정거리를 느닷없이 소환하며 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다 거울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치는 것이다. 저 얼굴이 분명 내 얼굴인가, 하는 장탄식의 순간!짧은 여행이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은 이것이다. 좀처럼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그래서 한사코 떨어지지 않는 소소한 생활상의 문제와 작별하고 상실의 감정을 생생하게 되살리려는 것이다. 격의 없는 대화와 환한 웃음과 열렬한 가창과 자연스러운 앙천(仰天)이 선사하는 가벼운 일탈의 환희가 우리를 축복하고 격려하며 다시 나아가라고 귓속말한다.다시 밝아온 구룡포 앞바다에 붉은 해가 장쾌하게 얼굴을 내밀고, 우리는 다시 바다와 작별한 채 도회로 귀환한다. 다소 지친 몸과 마음을 동반하되, 뭔가 많은 것을 비우고 버렸다는 홀가분함을 벗으로 삼고 단단한 일상과 재회한다. 짧은 여행의 선물에 감사하면서….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