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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서경영과 성장하는 기업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손에 책을 놓지 않은 민족은 역사적 생존과 강한 나라로 간다. 전쟁영웅 나폴레옹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전 등 전기를 즐겨 읽고 리더십과 전략에 대한 영감을 얻고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우리는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는가. 일 년에 한 권 읽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휘호를 남겼다. 글이란 읽을수록 사리를 판단하는 눈이 밝아진다. 두 권 읽은 사람이 한 권 읽은 사람을 지배한다. 억만 장자 빌게이츠도 유년시절부터 책이 친구였고 책과 함께 하며 하버드 대학 1년 중퇴 후 기적의 역사를 썼다. 책 속에 지식을 얻고 지식에 생각을 더하면 지혜가 되고 가치 있는 기업문화로 간다.한 때 기업이 독서경영으로 바람 불은 시기가 있었다. 포스코에 독서를 중시하는 CEO가 부임하면서 독서경영이 시작되었다. 한국독서경영연구원장 H씨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코칭을 받으면서 체계적인 독서활동을 하게 되었다. 인문학에 경영을 잇는 직책보임자의 인문학강좌와 부서에 독서 도우미도 생겼다. 이어령 교수의 자문을 받아 뭔가 깨달았다는 의미의 ‘유레카’를 응용한 포레카를 만들었고 첫 문을 열 때 ‘사람은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잉태 할 때 본능적으로 웅크리는 자세의 혼자 생각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생각하는 공간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했다. 이후 지역마다 포레카를 만들고 다양한 책을 비치하여 직원들이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고 생각을 넣은 지식과 지혜를 업무에 녹여 일의 효율성을 높여 나갔다.직장인이 읽는 추천도서 20권이 권장되고 부서마다 독서 디자이너가 도우미 역할을 했다. 적절한 책을 선정하여 읽고 토론하며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켜 나간다. 책을 통해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조직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서마다 도서를 정하고 읽은 내용을 발표하고 독서 디자이너가 요약 정리한다. 정리된 지식을 어떻게 현업에 접목 할 것인지 토론하고 운영방안을 정립한다. 현업에 적용 후 다양한 반응에 대한 성공사례를 공유하고 요약된 지식과 지혜를 지식경영시스템에 등록하여 누구든 쉽게 활용하고 일에 접목한다.기업에서 독서경영의 필요한 조건은 경영진의 관심과 리더십, 독서를 장려하고 독서문화를 조성하는 일이다. 또한 적절한 도서 선택과 독서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성공한 기업은 독서를 통해 직원들의 지식과 역량을 향상시키며 일에 접목하여 효율을 높이거나 문제해결에 활용하기도 한다. 독서를 일상적인 업무의 일부로 통합하고 지식공유를 장려하여 조직 전체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책을 놓지 않는 기업이 망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성공하는 것도 직원들의 손에 책을 놓지 않는 기업문화가 토양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독서에서 지식을 얻고 생각을 넣어 지혜를 만들고 일에 접목하는 기업은 성장하는 기업이 된다.

2024-05-21

한국 시조문학의 산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과 어우러진 풍경은 정겨움을 자아내게 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쉼과 여유를 보여주는 듯하고, 멈춘 듯 흐르는 강물따라 수면에 비춰지는 정경은 한가롭기만 하다. 하늘과 산이 내려앉고 건물이나 사람의 모습까지 얼비치는 강물은 고요히 흐르면서 한 편의 시나 수필을 쓰는 듯하다. 강물을 바라보면 물결따라 마음이 흐르는 것 같고, 깊은 강이 소리 없이(深江無聲) 흐르는 것처럼 한결같이 깊어지며 소리 없이 살아가는 삶의 깊이가 강물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경남 진주시를 관통하는 남강이 휘돌아가는 가좌산 기슭에는 마치 강물이 소리 없이 깊어진 듯한 문향이 한옥의 아취 속에서 창연하게 피어나고 있다. 강물이 쌓이고 쌓여 깊이를 얻듯이, 수많은 근현대의 서책과 시조집, 문예지, 문인들의 육필, 편지, 서화작품 등이 모이고 더해져 마치 문학의 유장한 강줄기를 이룬 듯하다. 그것도 700여년 면면히 이어진, 우리 겨레의 얼과 숨결이 오롯이 담긴 시조 장르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과 유물이 깔끔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으니, 가히 시조문학의 산실(産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전문 문학관인 ‘한국시조문학관’이다. 고려말~조선시대에 간결하게 다듬어져 성행된 고유의 정형시-시조를 새롭게 부흥하고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시조시인인 김정희 선생이 11년 전 남편과 함께 사비를 들여 건립됐다.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여 금계국이 피어나는 자연 속에 모두 한옥 4채로 구성된 한국시조문학관은, 시조의 역사와 변천·홍보·다양한 문학행사를 열면서 시조문학의 발전과 깊이를 더해가는 곳이다.즉, 시조의 근현대의 사료적 가치를 집대성해 놓은 주시설인 시경루(詩境樓), 신라의 향가에 연원을 둔 고시조와 별곡, 무곡, 가사 등 시조의 근본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수류화개(水流花開), 진주와 경남지역의 향토문학 근대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숙소로도 이용되는 보문산방(寶文山房) 등의 공간이 전시·열람·체험·교육·세미나 등으로 시조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전통문학을 지키고 가꿔가는 ‘한민족 시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과연 빼곡하게 들어찬 시조집과 문예지를 비롯 김소월의 필적과 미당선생의 빛 바랜 편지, 엽서 등과 문인들의 시서작품을 직접 보니, 오랜 세월 자료를 모으고 보관하며 준비와 구상, 정리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공과 안목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한국문학의 종가라 할 수 있는 시조가 외래문화에 떠밀리고 일반인들에게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구순이 지났음에도 시조문학의 융성에 온 힘을 쏟고 계시는 김 관장님을 직접 뵈니 경외심마저 들었다고나 할까?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문화대국에는 겨레시가 있기 마련이지만, 대대로 이어온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문인들과 지자체의 몫일 것이다. 짧고도 명확한 서사구조를 가진 시조를 일상 속에서 즐겨 지으면서 현대인의 감성을 표현하고, 시조 백일장·시화전·낭송대회 등 창의적인 전환의 모색으로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를 창출하여 시조의 대중화, 세계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2024-05-21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② 규동의 기도

스토리가 아닌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말한다. “한정된 짤막한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소설이란 문학 장르 중 가장 짧은 형식인 ‘엽편소설’ 역시 그렇다. 원고지 25매 안팎의 문장으로 세상과 사람,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꿈과 환멸을 드러내기 위해선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긴장’과 ‘에너지’가 필수. 문학을 통한 세계 해석과 심미적 위안이 사라진 21세기. 경북 포항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며 괜찮은 소설을 쓰기 위해 악전고투 중인 작가 김강(52)이 ‘엽편소설 연재’라는 간단찮은 도전을 본지를 베이스캠프 삼아 진행한다. 격주로 게재될 김강의 엽편소설이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인지 궁금하다. 아직 문학과 소설이 가진 사회적 힘을 신뢰하는 독자들의 관심과 질책을 더불어 기대한다. - 편집자 주 그날 신(神)이 규동의 기도를 들었다.수십 억 명으로부터 올라오는 기도들 중 어느 하나를 콕 집어서 들을 수 없어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공평하다 여겼다. 간혹 제사장들이 골라낸 기도를 듣기도 하고 답을 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일, 드문 일이었다.아니, 지들이 기도를 하면 내가 들어야 하는 거야? 내가 언제 지들한테 기도하라 그랬어? 찬양하라 그랬지, 숭배하라 그랬지. 내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도 의미 없지. 내 뜻을 이해하든 말든, 내가 신경 쓸 것은 아니지. 내가 행하는 모든 것 그 중 어느 하나 지들의 생각에, 지들의 기준에 부합하는가 안 하는가에 나는 관심이 없단 말이지. 나는 행하고 지들은 받아들이고 그런 거잖아. 그런데 쟤들은 왜 그러는 걸까?평소 주위 몇몇이 인간들의 기도에, 인간들의 세상에 관심을 가져주십사 청하면 신은 이렇게 답했었다. 예전에는 그들의 기도를 즐기지 않으셨습니까? 누군가 물었다.그때야 인간들이 몇 명 되지 않았잖아. 그러니 들을만 했지. 한꺼번에 다 들을 수는 없어도 찬찬히 살펴보고 듣고 또 답을 주고 하는 것이 나름 재미있기도 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재미가 없어졌어. 일단 시끄러워. 인간들이 많아지니까 그렇겠지. 그렇다고 예전처럼 엎을 수도 없고. 지금 하는 꼴을 봐서는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지들끼리 숫자를 조절할 것 같기도 하니 말이야. 게다가 누구한테 하는 기도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하나고 주소도 하나인데 수신자명이 다 달라. 그리고 기도가 너무 길어. 이건 뭘 바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데,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뭐,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아. 안 들으면 되니까. 그런데 답을 안 준다고 욕하는 놈들도 있단 말이지. 아니, 내가 답을 주겠다 약속한 적 있나? 아아, 자꾸 묻지마. 짜증나니까.이랬던 신이 그날 규동의 기도를 들었다.기도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 계절의 변화, 낮과 밤, 인구 연령의 변화, 인구의 이동, 남반구와 북반구, 기술의 변화 등의 여러 요인이 기도의 양과 흐름에 영향을 준다. 이런 요인들이 얽혀 최고 지점과 최저 지점을 반복하는 유형의 파동을 만든다. 인류의 수가 어느 정도에 이른 후부터는 기도의 파동은 일정한 유형을 유지해 왔다.그런데 그날은 모든 인자들이 파동의 아래쪽으로 향했다. 지구를 뒤덮은 전염성 질환에다 북반구는 최악의 한파로, 남반구는 겪어보지 못한 고온으로 제법 많은 인간들이 생명을 잃었고, 그들 대부분이 기도에 익숙한 연령이었고, 가장 규칙적이고 열렬한 기도를 하던 두 그룹은 서로 싸우느라 신을 잊어버렸고, 가상공간의 기도들은 SNS 계정이 없는 신에게 닿지 못했다. 기도의 파동은 아래로 향해갔다.그날은 북반구 인구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깊은 밤이 일 년 중 가장 오래도록 지속되는 날이었다. 그 중 가장 깊은 시각 새벽 세 시 반에 규동이 소리 내어 기도를 했다. 신의 유일한 이름으로, 네 개의 음절만으로. 3차까지 이어진 회식 후 돌아오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며.“신이시여, 행복하게 해 주소서.”신은 그날 규동의 기도를 들었다.다음날 신의 사자 A가 규동의 직장으로 규동을 찾아왔다. 유리 칸막이 넘어 면역화학검사기에 혈액 샘플을 넣고 있는 규동을 발견하고는 곧장 규동에게로 향했다. 칸막이를 돌아 규동의 앞에 서려던 순간 사자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에게 제지를 당했고 그는 사자를 데리고 데스크 앞으로 갔다. 사자는 엉겁결에 누군가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야만했다.“대기실에 앉아 기다리시면 이름을 부를 겁니다.”사자는 한동안 대기실에 앉아있었어야 했고 유니폼을 입은 이가 이끄는 대로 진료실에 들어갔고 우물쭈물 앉아 있는 사자의 얼굴을 보던 의사가 사자의 결막을 확인했다.“빈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검사하고 결과 나오면 다시 뵐게요.”의사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사자는 규동과 대면할 수 있었다.“음, 오른쪽 팔을 이리 내밀어 이 쿠션 위에 편하게 놓으십시오.”“어떻게 하면 행복해 지겠느냐?”규동은 사자의 말에 사자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사자의 윗팔에 고무줄을 감았다.“자, 주먹을 쥐시구요.”사자는 규동의 말에 따라 주먹을 쥐었다. 소독솜으로 사자의 팔을 몇 번 문지른 규동이 채혈바늘로 사자의 팔을 찌르려던 순간이었다. 사자는 팔을 빼며 일어섰다.“뭐하는 것이냐?”“검사를 하려면 피를 뽑아야지요, 어르신.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다시 앉으세요. 최대한 안 아프게 해드릴게요.”“어젯밤 행복을 빌지 않았더냐? 나는 신이 보낸 사자다. 네게 행복을 물으러 왔다. 누구의 행복이냐? 너의 행복은 무엇이냐?”규동의 기도를 들은 그날 신은 급하게 사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규동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인간의 기도를 들었고 웬만하면 들어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규동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사자들에게 물었다. 신의 무관심을 충실히 따르던 사자들이었다. 최근의 인간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그들은, 그러나 최근이나 옛날이나 혹은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시절이나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부를 가져다주면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 황금을 쏟아주면 되는 것이냐? 안 됩니다. 황금은 바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횡재는 시기와 다툼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세금도 많이 내야 할 겁니다. 그러면 행복이 사라질 것입니다. 차라리 그에게 신선한 생각과 가능한 상상력을 주십시오. 요즘 인간 세계에서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물건이 곧 부를 뜻합니다. 안 됩니다. 어느 세월에 상상하고 생각하여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낸단 말입니까? 차라리 마음대로 세상을 주무를 수 있는 권력을 주시지요. 권력이라,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이냐? 저 헤라클래스처럼. 아닙니다. 지금 세상은 헤라클래스의 힘을 가진 자가 힘을 쓸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 자는 권력을 가진 자의 종이 될 뿐입니다. 요즘 세상은 부가 곧 권력이고 기술이 곤 권력입니다. 부와 기술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이 녀석들이! 나와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그때 사자 A가 앞으로 나섰다.먼저 다시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 주신 신께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그나마 가끔씩 인간 세상을 둘러보던 사자 A였다.신께 한 말씀 올리려합니다. 살펴보건데 이 기도의 해법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첫째,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저희는 명확한 기준 혹은 예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준 혹은 예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도를 올린 그자의 행복과 같은 것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어찌어찌 신께서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더라도 그 행복의 유지 보수까지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신께서 넓고 깊은 사랑으로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나 그가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제는 그의 행복이 다른 인간의 불행을 전제로 한다면 그 또한 안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는 그 인간의 기도가 구체적이지 못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심지어 목적어도 없습니다. 누구를 행복하게 만들어 달라는 건지.말을 마친 사자 A는 약간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오오, 다른 사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긴 소매 끝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동안 물끄러미 사자 A를 바라보던 신이 입을 열었다.그래서? 그래서 어쩌자고? 가만 보면 넌 말은 많은데 답이 없더라. 어쩌란 말이냐. 하지 말자는 말이야?사자들은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소매 안으로 숨기고 고개를 숙였다. 약간의 미소와 함께.제 말씀은….아, 필요 없고, 너, 내려가 봐. 내려가서 물어. 뭘 바라는지, 뭘 해주면 행복할 건지. 그 인간에게 행복이란 것이 무엇인지.규동은 채혈 주사기를 들고 사자 A를 쳐다보았다.“어허, 이놈이 빨리 말하지 못하느냐? 너, 이 녀석, 행복이 뭔지는 아는 것이냐?”“잠시만요.”규동은 한참 동안 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전자 의무 기록지를 살폈다.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키보드에 손을 얹었고 자판을 두드려 진료실로 메모를 보냈다.‘아무개 환자, 채혈 거부, 횡설수설. 7층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요망.’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5-21

MB의 포항방문에 대한 기자의 斷想

심충택 논설위원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고향인 포항시 흥해읍 덕실마을을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추억이 그리워 찾았다고 한다. 그의 고향집은 초가집 두 채가 있는 전형적인 옛날 시골가옥이다. MB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대통령 재임 중에도 ‘낙서를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포항을 쓸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은 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대통령 퇴임직후인 2013년 겨울 덕실마을을 찾은 후 11년 만의 고향 나들이다.MB의 고향방문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 김정재 국회의원, 이상휘·이달희 국회의원 당선인 등도 함께했다. 고향주민들은 덕실마을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이상재) 기념식수와 풍물놀이 행사를 주최하면서 MB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MB도 주민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안부를 물으면서 향수를 달랬다. 고향방문 이틀째인 17일에는 자신이 어린시절 다녔던 교회를 둘러보고, 지역 경제인들과 점심을 같이했다. 그 후 친구인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의 박사학위(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여식에 참석한 후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언론이 MB의 고향방문에 관심을 쏟은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가 되는 탓도 있다. 그가 사면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비춘 것은 지난 4·10 총선일 서울의 한 투표장을 찾은 이후 한 달이 넘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한 명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는 이번 고향방문에서도 대통령 재임시절의 업적이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다만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이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원전 수출, G20정상회의 개최, 영일만항 개항, KTX포항 노선 개통, 블루밸리국가산단 조성 등을 예로들며 고마움을 표시한 정도다. MB 재임시절인 2009년 9월 첫삽을 뜬 블루밸리국가산단(포항시 남구 구룡포읍·동해면·장기면일대)의 경우, 철강산업에 의존했던 포항을 신산업의 국제무대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곳이다. 포항은 현재 이곳을 이차전지·수소산업 중심의 미래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차전지 산업의 대명사인 에코프로그룹은 이곳에 2028년까지 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MB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대 정주영 회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 회장은 당시 “(이명박은) 평사원 일을 시켰는데 과장 일을 했고, 과장 일을 시켰는데 부장 일을 했다. 부장을 시켰는데 사장 일을 해 내더라”고 했다. 팔순이 넘긴 했지만,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던 MB가 국민과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다. 예를들어 이번 고향방문에서 “의과대학과 종합병원이 들어서야 포항이 발전한다”고 한 말은 포항시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전직 국가원수가 정치적인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많지만, 이번 MB의 포항방문처럼 여생을 고향사랑과 국민통합을 위해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2024-05-21

영부인(令夫人)

우정구 논설위원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는 대통령이나 수상 등 국가 최고 실권자의 아내를 호칭하는 말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영부인이다. 대통령의 아내가 유고 시에는 대통령의 딸이나 누이 등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부인과 결혼생활을 끝냈을 때 그의 딸이 영부인 역할을 맡았다. 우리나라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 육영수 여사가 총상으로 사망하자 딸인 박근혜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아내를 높여 호칭하는 말이다. 남의 자식을 높여 부를 때 우리는 영식, 영애라고도 부른다.대통령 부인에게는 특별히 주어진 권한은 없다. 그러나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나란히 하는 존재로 인식되기에 국민의 관심이 항상 뒤따라 다닌다. 과거 영부인들을 살펴보면 역할도 제각각이다.박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내조형이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항상 앞장서면서 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희호 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은 전략적 내조형으로 통한다. 2002년 유엔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해 기조연설도 했다.영부인에게는 권한은 없으나 그들의 역할에 따라 평가는 다양하게 나온다. 그들의 행동이 대통령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을 두고 외교냐 관광이냐를 두고 뒤늦게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통령 영부인의 처신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과거 경험으로 보아 영부인의 내조는 몸을 낮추고 대통령이 미처 못하는 그늘진 곳을 찾는 봉사활동이 국민의 호응을 가장 많이 받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21

상임위 배정의 제1잣대는 ‘현안해결 역량’

22대 국회 개원(30일)을 앞두고 TK(대구경북) 지역 당선인들의 상임위원회 배정에 관심이 쏠린다. 상임위 배정은 당선인들의 1·2·3지망을 받아 원내지도부가 조율해서 결정한다. 그저께(20일) 국민의힘이 희망 상임위원회 신청을 마감한 결과, TK지역에서는 특정 위원회에 지원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위 지원 당선인이 6명으로 가장 많았고, 산자위와 정무위 4명, 농해수위 3명 순이었다. 국토위는 의원들의 지원경쟁이 가장 치열한 상임위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 등이 소관기관이어서 SOC사업(도로·철도 건설) 유치와 예산 확보가 용이하다. 통합신공항과 달빛고속철도, 영일만대교 등 TK지역의 굵직한 현안을 다루는 상임위다. 이번 총선에서 3선 고지에 오른 김정재 의원(포항북)이 국토위를 희망했다. 김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국토위 여당 간사를 맡았다. 3선 의원은 유력한 상임위원장 후보다.산자위도 인기 상임위다. 지역 내 산단 조성, 산업별 특화단지 지정부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 입법에 주력할 수 있다. 주호영(대구 수성갑)·이인선(대구 수성을)·구자근(구미갑) 의원과 조지연(경산) 당선인이 지원했다. 정무위는 최근 인기 상임위로 부상하고 있다. 피감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현안이 주로 기업규제이기 때문에, 대기업 접촉이 잦은 상임위다. 지역구에 설정된 과도한 규제를 해소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농해수위는 비수도권과 영남권 출신이 많은 여당에서 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송언석(김천) 의원을 비롯한 일부 중진 의원이 상임위 배정을 당에 위임하기는 했지만, 인기상임위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자체 교통정리가 불가피하게 됐다. TK지역 각 지자체에 쌓여 있는 다양한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각 상임위에 의원들이 적절하게 배정돼야 한다. 의원들에게도 상임위 활동 성적은 다음 총선 공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전문성을 고려해 상임위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4-05-21

지역 미래 달린 TK 통합론, 갈 길이 바쁘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다시 불을 지핀 대구경북통합론에 대한 지역의 관심이 상당하다.22대 국회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의제의 명분이 설득력 있고,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난제에 대응하는 효과성에 대한 공감대가 높은 때문으로 짐작이 된다. 특히 2019년 민선 7기 시절 시작했던 대구경북특별자치단체 추진 때와는 내용 면에서 크게 달라 주목도도 높다.홍 시장은 대구경북의 통합은 현재 정부-광역-기초 3단계인 행정체계를 2단계로 줄인다는 점에서 과거 논의 때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한 단계를 줄임으로써 불필요한 기구를 없애고 예산절감과 행정력의 신속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 지사는 이번 통합 논의를 통해 미국 연방제 수준의 통합 자치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국방·외교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이양받아 완전한 지방자치를 완성하자는 것이다. 허울뿐인 지방자치를 멈추겠다는 뜻이다.이런 두 광역단체장의 생각에 윤석열 대통령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번 TK통합론의 성사 여부는 전국적 관심이다. 이상민 행안부장관과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 양 광역단체장이 대구에서 만나 이와 관련한 논의를 벌일 것으로 보여 그 결과에 따라 시도통합론은 타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홍 시장은 행정통합의 로드맵으로 올해 내 시도의회 의결, 내년 상반기 중 대구경북행정통합 법안 통과, 2026년 지방선거 때 통합단체장 선출 등을 제시했다. 지난번 실패한 TK통합 추진과정을 반면교사 삼아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무엇보다 지역민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날로 비대해지는 수도권에 대응하는 지역의 생존전략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 지역의 미래가 달린 선택으로 500만명 한반도 제2의 도시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정부가 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지만 수도권 집중은 멈출지 모른다. 이대로 가면 지방은 모두 소멸한다. 인구가 경쟁력인 시대에 맞춰 다시 내건 TK통합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2024-05-21

인간에게 지구만큼 너그러운 별은 없다

김규인 수필가 초속 36m의 강풍이 분다. 고층 건물의 창문이 산산조각 나고 거리엔 쓰러진 나무와 송전선이 어지럽게 널린다. 건물에서 떨어진 물건이 자동차를 때리고, 지붕이 뜯겨나간 호텔은 물에 잠긴다. 미국 텍사스는 90만, 루이지애나는 20만 가구의 정전이 발생하고 최대 900㎜의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인명 피해는 늘어나고 학교는 휴교한다.중국 허난성 일대에선 시속 100km를 넘는 강풍이 발생한다. 최대 시속 133km에 달하는 국지성 돌풍까지 일어난다. 허난성 정저우시의 노점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강풍에 밀려가고 넘어진 가로등에 깔려 행인이 숨진다. 중국 기상 당국은 기온이 35도까지 올라 대류가 불안정해서 강풍이 일어난 거라고 말한다.케냐와 브라질에선 홍수, 베트남에선 가뭄이, 동남아는 폭염이 일어난다. 지구 곳곳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속출한다.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는 너무 더워서 학교는 휴교하고 각국은 발생한 재해를 복구하기에 바쁘다. 홍수와 가뭄과 폭염 등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기상현상이 자주 일어난다.우리나라에선 비가 내리는 것이 바뀐다. 2022년 서울에선 시간당 141.5mm의 많은 비가 내렸고, 2023년 청주에선 400년 만에 한 번 올 법한 큰비가 내렸다. 시간당 강수량이 72mm 이상인 극한호우가 내리는 날이 늘어난다. 올해 5월에 강원도에는 눈이 내리더니 다음날은 29도의 높은 기온을 나타낸다.지구온난화로 애써 지은 농작물이 물에 떠내려가고 가뭄이 든 곳은 말라 죽는다. 그나마 남은 것은 바람에 날려간다.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하니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그런데도 우리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인다. 음식물은 썩으면서 발생한 가스로 다시 지구를 뜨겁게 달군다.건물이 무너지고 농작물이 쓸려가고 사람들이 다치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들.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녹은 물은 그만큼 육지를 잠식한다. 지구 환경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사람들은 이러한 지구의 아픔에 아직도 무감각하다.골프공 크기의 우박이 자동차의 유리창을 박살 내고 사람을 향해 달려든다. 이제는 제발 정신 차리라고 지구가 실력 행사를 한다. 더 이상 지구를 괴롭히지 말라고 몸으로 말하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아이처럼 사람들은 아직도 욕심을 채우기에 바쁘다. 얼마나 더 채워야 욕심을 멈추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까.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인류 공통의 문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포유류가 멸종하느냐 계속 번영을 누리는 가는 지금 우리의 손에 달렸다. 내 자식들이 계속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자. 우리는 이미 후손들의 터전을 불모지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살아갈 터전을 지키자. 인류가 지구를 버리고 이사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받기만 한 지구에 이제는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 인간에게 지구만큼 너그러운 별은 어디에도 없다.

2024-05-20

지속가능발전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통계청은 올해 3월 21일 ‘한국의 SDG(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보고서 2024’를 발표하였다. 2022년 1월에 제정된 ‘지속가능발전 기본법’에서 ‘지속가능성’이란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사회·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低下)시키지 아니하고 이들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이 법에서 ‘지속가능발전’이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포용적 사회, 깨끗하고 안정적인 환경이 ‘지속가능성’에 기초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발전이라고 정의하였다.이렇게 ‘지속가능발전’이란 것이 매우 이상적이고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만 한다. 그래서 지난 2015년 국제연합총회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17개의 목표를 채택하였고, 이 목표 아래 총 169개 세부목표와 231개 지표를 도입하였다.17개 목표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빈곤퇴치(목표1), 농업과 먹거리(목표2), 건강과 웰빙(목표3), 양질의 교육(목표4), 성평등(목표5), 물과 위생(목표6), 깨끗한 에너지(목표7),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목표8), 산업혁신과 사회기반시설(목표9), 불평등 완화(목표10),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목표11), 책임감있는 생산과 소비(목표12), 기후위기대응(목표13), 수생태계보전(목표14), 육상생태계 보전(목표15), 인권, 정의, 평화(목표16), SDG를 위한 파트너십(목표17) 등이다. 이들 17개 목표가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달성되지 못하면 ‘지속가능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그리고 17개 목표(SDGs)의 달성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도구로 ‘지속가능발전지표(SDIs)’를 도입하였다. 이 지표는 목표달성을 위한 진행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하고, 정책 결정자들이 어떤 분야에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해준다.이해를 돕기 위해 ‘지속가능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목표(SDGs)에 대응한 지표(SDIs)를 예시로 들어보자. 빈곤퇴치(목표1)의 경우는 ‘앞으로 빈곤 상태에 처할 위험이 높은가?’, 성평등(목표5)의 경우는 ‘부부간 자녀간 남녀 차별이 없고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눠서 하는가?’이다. 물과 위생(목표6)의 경우는 ‘마실 수 있는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는가?’, 기후위기대응(목표13)의 경우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실천하는가?’, SDG를 위한 파트너십(목표17)의 경우는 ‘가족 간 대화를 통해 여러 문제를 함께 알고 함께 풀어가는가?’ 등이다. 실제 이들 ‘지표’를 기준으로 ‘가정의 지속가능성’ 상태를 나쁨, 보통, 좋음 등 3단계로 평가해 보면 ‘보통’이나 ‘나쁨’이 대부분일 것이다. 더구나 비수도권으로 침체한 인구소멸지역이 많고, 맑은 물 확보가 어렵고,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산불 등의 피해가 높아지는 대구경북지역은 ‘지속가능성’ 상태가 ‘좋음’으로 평가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24-05-20

박목월의 미발굴 작품집에 거는 기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주에 발을 디딜 때마다, 천년고도의 황토 빛이 저녁노을과 함께 내 눈동자에 스며온다. “아베요 오늘이 아베 젯날”이라고 하얀 이밥 한 그릇 제상에 올려두고 기제사를 드리는 만술아비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반월성을 휘돌아 바람에 번진다. 박목월은 왜 이토록 신라 천년의 경주의 말씨를 보듬었을까? 리듬과 운율이라는 순수시의 비장을 그는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50년대 이미지즘의 시가 순수시와 함께 이 땅에 밀려오면서 표현에 공헌하지 않는 말은 가능한 한 배제하고, 대신 표현의 순수성을 유지했던 시인의 심성이었다. 이는 민요적 리듬의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이미지즘을 추구한 몸에 밴 감각적 시쓰기의 결과였으리라. 박목월은 ‘눌담’, ‘적막한 식욕’, ‘치모’, ‘만술아비의 축문’, ‘이별가’ 등에서 방언 어휘뿐만 아니라 경상도의 운율과 가락을 깔아두었다. ‘이별가’에서 외치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에 보이는 ‘뭐락카노’는 경주의 악센트를 제거하고는 아무런 이미지의 맛을 건져낼 수가 없다. 단순히 향토성이니 경상도 정체성을 담아낸 시로만 규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경상도 악센트다.‘만술아비의 축문’에서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 대목의 방언적 형상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 평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듯이 박목월의 ‘불국사(佛國寺)’라는 시에서 ‘흐는히’라는 시어의 해독을 방언적인 표현이라고 가정하면서 “흥건히” 혹은 “몹시 그리워 동경하여”의 사투리로 해석한 평론가도 있었다. “흰 달빛/자하문//달 안개/물소리//대웅전/큰 보살//바람소리/솔소리//범영루/뜬 그림자//흐는히/젖는데//흰 달빛/자하문//바람소리/물소리”. 박목월 ‘불국사’ 전문이다. 이 작품에 대한 시 형식과 운율에 대해서는 정교한 해석들이 이어져 왔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적절하게 조화한 풍경화같은 불국사의 전경들을 그려내고 있다. 운율적 표현 양식의 특징으로 3음절 대련 형식의 형식적 미학의 품격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수미상관의 구조적 여백이 불국사의 전경과 함께 적절하게 조화를 보이는 작품이다. 이 시는 설명적인 이미지를 배제하고 “허사가 거의 없는 실사로 현상학의 판단 중지”(김춘수 ‘시의 위상’ 77쪽) 상태로 장면을 훌륭하게 제시한 명작이다.그런데 문제는 ‘흐는히’라는 시어에 대한 해석이다. 이 단어는 표준어 사전에 없는 단어인데 동시에 경주방언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그러면 ‘흐는히’라는 낱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자인가? 그럴 리가 없다.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흔흔하다’라는 표준어형을 마치 방언처럼 음절을 재조정한 방언표준형이라고나 할까? 경주방언에서는 유성음 사이에 흔히 ‘ㅎ’이 탈락되는데 여기에 ‘ㄴ’을 밀어 넣어 마치 표준어인 양 방언을 사용한 결과인 듯하다.최근 시인이 돌아가신 지 46년 만에 시인의 맏아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의 비공개 육필시 166편을 세상에 소개하였다. 우리나라 순수 이미지즘 시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함께 시인 자신의 시적 변화의 궤적을 연구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에 공개된 시편 가운데 ‘용설란’이라는 시에서는 제주 토종의 용설난을 의인화하였다. 어김없이 ‘사투리’를 사용하였다. “어눌한 사투리로 가까스로 몸매를”이라고 표현하면서 “파도소리에 뜰이 흔들리는 /(중략)/ 반쯤 안개에 살아나는 제주도.// 말 辯의 깃자락에 소나기가 묻어오는/ 그 낭낭한 모음의/ 하늘./ 한라산.// 어눌한 사투리로 가까스로 몸매를/ 빚어,// 안개에 반쯤 풀리고/ 안개에 반쯤 살아나는 용설란.” 이 시에서는 제주방언에 남아 있는 아래아를 사용하여 “말 辯의 깃자락에 소나기가 묻어오는” 아래아를 텍스트로 옮겨내고 있다. “그 낭낭한 모음의/ 하늘./”에서의 ‘하늘’은 제주의 하늘이 아니다. 제주의 하늘은 아래아 하늘인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섬세함을 유성호 교수는 “고향에 와서도 고향을 떠나고 타향에 가서도 고향을 발견하는 이중성”이라고 설명했으나 이것은 오류이다. 제주 용설란에서 발견한 ‘낭낭한 모음’은 ‘아래아’가 살아있는 제주의 방언이다. 시인은 어설프고 어눌하지만 제주의 사투리로 제주의 용설란을 이미지화 한 것이다.이처럼 위대한 시인의 작품을 비평가들이 자칫 잘못 평가하여 시 작품의 본의를 허문 경우가 적지 않다. 박목월의 미발굴 작품집이 6월쯤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2024-05-20

한 손에 칼, 한 손에 쿠란

이슬람의 탄생은 동방 오리엔트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다. 최근 세계 갈등의 불씨를 끊임없이 일으키는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는 주지하다시피 하나의 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슬람이란 말 뜻 역시 ‘아살라마’(asalama), 즉 ‘복종하겠나이다’이다. 불교에서 ‘나무아미타불’에서 ‘나무’, 즉 ‘귀의하겠나이다’와 비슷한 의미다.7세기 초, 비잔티움과 사산조 페르시아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육로와 해로의 실크로드가 사실상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문화란 물과 같아서 막히면 돌아가고, 팬 곳은 채운 후 흐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전쟁터를 피해 아라비아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로가 개발되자 메카와 메디나가 중심도시로 주목받는다.이때 무함마드가 등장했다. 570년 그는 메카의 명문가 꾸레이시 가문에서 태어나 623년까지 62년을 살았다. 유복자로 태어나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곁을 떠났고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지를 다니며 힘겹게 대상 활동을 했다. 당시 혼란한 사회와 처한 삶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이때 기독교와 유대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늘 명상에 잠겼다. 붓다가 그랬듯 고집멸도(苦集滅道), 생로병사(生老病死), 괴로움과 번뇌 등 인간 사회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에 몰두했을 법하다. 나이 40세가 되던 해인 610년 하느님(알라)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 메카의 히라 동굴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만나면서, 이후 예언자가 된다. 예언자, 즉 유대교 전통에서 나온 개념으로 신의 뜻을 전달하는 대변인, ‘신의 입’을 뜻한다. 이로써 하늘, 즉 절대적인 신을 인간 세상의 잣대로 표현하는 우상숭배 타파, 평등과 평화를 강조하는 이슬람교를 완성한다. 어느 종교든 태생기에는 시대에서 파생된 의붓자식이자 이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이 순식간에 퍼진 것은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비잔티움과 사산조 페르시아제국 영향이 컸다. 622년 무함마드는 이들을 피해 추종자들과 함께 메디나로 이주해 절치부심 초석을 다진다. 이때를 헤지라(Hegira-이동), 즉 ‘이주의 날’로 정해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한다.부족 간 분쟁을 평정하고 이슬람 공동체로 결속을 다진 무함마드는 메카를 정복해 교세 확장에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전쟁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첨가해 이슬람을 형성하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 즉 지하드로 인식하게 했고, 결국 지금까지 그 정신이 내려오고 있다.무함마드도 인간인지라, 632년 메카로 순례하러 가던 도중 열사병에 걸려 객사했다. 그러나 예수처럼 3일이 지나도 부활하지 않았다.‘한 손에 칼, 한 손에 쿠란’, 많이 들어본 소리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서구 시각에서 조작한 것이다. 이슬람은 정복지라 해도 결코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포용 정책을 폈다. 무엇보다 무함마드는 용기와 더불어 공평하게 정책을 펼치면서 점령지 사람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았다. 그는 특히 입상진의(立像盡意), 즉 형상을 만들어 뜻을 강조해 전달하는 로마 가톨릭과는 경계를 분명히 했다. 포교를 위해 아이콘을 만들 수 없었다. 따라서 무함마드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경이다.이렇게 기독교 사촌 이슬람은 전성기를 맞는다. 사촌이라 함은 이슬람 역시 히브리 성서에 근거한 종교란 뜻이다. 같은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심판, 종말론 등 기본적 종교관의 골격을 공유하고 있어서다.이슬람은 예수를 인간으로 보는 가톨릭의 아리우스파와 맥을 같이하면서, 더 나아가 철저한 일원론적 유일신 사상을 확립했다. 삼위일체가 가톨릭, 정교, 개신교의 기본 교리라면 이슬람은 아담에서 아브라함, 다윗,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성경의 선지자는 신이 보낸 인간 예언자일 뿐이며, 무함마드는 ‘봉인’ 곧 마지막 예언자라고 한다. 그 때문에 복음을 완성하는 사명을 지녔다고 보는 시각이다. 현세에서 선악의 행위에 따라 최후의 날 신의 심판을 받는다는 정명사상(正名思想)처럼 구원과 응징으로 나누는 내세관은 천국의 법에 따라 움직인다. 성서 종교(아브라함)의 개념 자체가 유대교의 야훼, 기독교의 하느님,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창조주를 지칭한다. 하나의 창조주라는 개념과 종말론, 메시아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다음에 올 메시아가 누구냐 하는 데 대한 해석에 따라서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나뉜다.현세에 일어나는 종교 갈등은 인류 욕망의 찌꺼기다. 인간과 민족, 국가의 이해에 따라 폭력을 생산하고, 스스로 희생당하기도 한다. 그때의 잣대로 오늘을 재단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예수가 30세에 세례를 받아 가르침을 시작했고(누가복음 3장), 부처는 35세에 정각(正覺), 즉 깨달음을 얻었다면, 무함마드는 40세에 계시를 받았다. 이 일련의 간격, 5는 어떤 의미일까. 세속에서 풀 수 없는 형이상(形而上) 의미가 담겨 있을 법하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대사다.“인간은 생을 살려고 태어난 것이지 다음 생을 준비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미뤄야 할 행복은 없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5-20

늙어가는 대도시… 부산 이어 대구도 ‘초고령’

부산에 이어 대구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비수도권 대도시들이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청년들이 떠나면서 맥없이 늙어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베이비붐 세대(1959~1964년생)의 노년기 진입도 한몫했다.행정안전부 통계에 의하면, 4월 말 기준 대구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47만5318명으로 전체 인구(236만8670명)의 20.1%를 차지했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14.0%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도(道) 단위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지 오래됐다. 비수도권 지자체의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UN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늙은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노년층이 늘면 자연적 온갖 사회병리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대구시가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응하기 위해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본격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가장 급한 게 노인간호와 일자리 문제다. 대구시가 실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서도 노인 정책 현안 1, 2위로 ‘돌봄’(38.7%)과 ‘일자리’(38.3%)가 꼽혔다. 국가나 지자체 모두 이 문제해결을 위해 각종 정책(재가요양·돌봄, 재택의료서비스 확대,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인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이제 대도시까지 늙어가면서 국가 전체적으로는 일할 연령층이 줄어 국민연금 재정이 바닥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됐다.이러한 사회적 재앙을 막으려면 출생률을 끌어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주 TK 행정통합을 추진하기로 한 것도 인구소멸 문제 때문이다. 저출생, 지방소멸의 근본 원인인 수도권 일극주의를 막기 위해 시·도통합을 통해 국토를 다극체제로 재편하겠다는 생각이다. 인구의 지역분산을 유도하는 정부의 혁신적인 발상과 정책 없이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단이 없다.

2024-05-20

대구시, 탄소중립 선도도시로 거듭나길

탄소중립은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여 실질 배출량을 0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지구촌은 탄소의 과잉 배출로 지구 평균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여러 가지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구적 재앙을 줄이기 위해 전 세계 70여 개국이 탄소중립에 참여하고 있고, 우리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지구온난화를 막는 데는 국가뿐 아니라 도시의 역할도 크다. 우리나라도 여러 도시가 탄소중립 정책을 펴고 있지만 대구시는 그 중 앞선 도시로 꼽힌다. 지난 2022년 대구시는 총사업비 13조원을 들여 탄소중립도시 대전환을 선언하고 구체적인 전략도 발표했다.그 일환의 하나로 추진하는 친환경 사업이 성과를 냈다는 소식이다. 대구시가 매립가스를 차세대 고부가가치 친환경 에너지인 수소로 전환하는 데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를 기반으로 국제적 이슈로 부상하는 SAF(동식물성 지방, 폐기물 등을 원료로 생산하는 항공유) 생산실증에도 도전하겠다고 하니 성과에 따라 탄소중립도시로서 이미지 대전환도 가능할 전망이다.중소벤처기업부가 지원하고 대구시는 실증연구 플랜트부지 제공, 매립가스 공급, 행정지원 형태로 참여하고 기술은 (주)인투코어테크놀리지가 맡고 있다. 대구시의 수소생산 실증의 성공은 천연가스 활용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일이다.대구시는 2006년부터 쓰레기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매립가스를 포집해 지역난방 목적의 중질연료로 공급하는 매립가스 자원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으로 매립장 악취 저감과 매립장 사업료 수입 66억원, 탄소배출권 판매 수입 562억원을 창출한 바 있다.이번 수소생산 실증연구의 성공과 향후 SAF 실증연구 도전은 대구지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 이를 활용한 경제적 실익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탄소중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 지구촌 국가와 인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구시가 탄소중립의 실천적 도시로 모범이 되는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

2024-05-20

한동훈의 책읽기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오렌지색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낯익은 중년 사내 하나가 카메라에 잡혔다. 어린아이건 나이를 먹은 사람이건 독서는 비판받거나 힐난 받을 행위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칭찬의 대상이 될 일이지.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서울의 한 도서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편안한 복장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의 제목이 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보도하는 기사는 나쁠 것 없었다.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궜다. 한 전 위원장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마구잡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입에 담기 낯 뜨거운 욕설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직장 잃고 집에서 쫓겨난 노숙자의 폼 잡기 같다”란 반응엔 할 말을 잃게 된다. 책읽기는 실직하고 아내에게 구박받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가?2차대전 시기 연합군의 최고위급 장교이자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는 이런 말을 남겼다.“책을 태우는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말라. 오류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은폐함으로써 오류 자체를 은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짤막한 문장엔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세계와 인간의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법은 ‘책읽기’란 뜻이 담겼다.‘책은 사람이 만들지만, 그 사람을 만든 건 책’이라는 이야기에 고개 끄덕일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왜냐? 이미 인류의 역사를 통해 증명됐으니까. 그러므로 한동훈의 책읽기에는 죄가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도 마찬가지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0

보수의 성찰, 반성, 그리고 혁신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이 길을 잃었다. 총선 3연패에도 성찰과 반성에 인색하다. 중환자가 수술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진통제만 먹고 있다. 집권당이 되자 변화에 둔감하고 민심도 모른다. 이대로 가면 다음 지선과 대선도 필패다. 보수의 사활은 민심에 부응하여 혁신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그럼에도 구원 투수로 나선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패인으로 외연확장에 따른 내부 결속력 약화를 지적하면서 “보수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중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의 진단이 거의 돌팔이 수준이다. 참패의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고, 비대위원 7명 중 6명을 친윤으로 임명했다. 비상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이처럼 안이하니 미래가 암담하다.국민의힘은 죽어야 산다. 민심을 받들어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환골탈태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혁신 보수’로 거듭나는 일이다. 변화된 시대에 변하지 않는 ‘수구 보수’는 생존할 수 없다. 보수는 위기 때마다 가면을 쓰고 변신하는 흉내만 내다가 오히려 더 큰 화를 자초했다. 이번에도 중도 확장에 실패한 것은 ‘혁신의 가면’은 썼지만 ‘혁신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국민의힘은 민심에 민감한 ‘열린 보수’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성공한 지구적 보수는 ‘실용’과 ‘통합’을 중시한 ‘열린 보수’인데 ‘닫힌 보수’를 고집했으니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의 가치는 개인의 자유를 배려하는 동시에 공동체를 위한 통합의 구현에 있다. 약자의 좌절과 분노를 헤아리고 그들과 동행할 수 있는 따듯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나아가 수직적 당·정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당이 대통령의 시녀가 되면 민심과 유리된다. 물론 대통령이 당을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아야겠지만, 당도 ‘윤심’만 살피는 예스맨(yes man)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는 무기력한 여당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대통령의 부당한 요구에는 분명히 ‘노(no)’라고 거부할 수 있어야 유능한 정당이다.이와 관련하여 국민의힘은 ‘영남당’과 ‘고령당’의 한계를 벗어나는 혁신이 시급하다. 반공과 산업화 신화에 안주해서 지지층이 노령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심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수포당(수도권을 포기한 정당), 4포당(40대를 포기한 정당)이 되었다. 영국 보수당은 디즈레일리(B. Disraeli)의 과감한 정당개혁, 처칠(W. Churchill)의 ‘젊은 보수’와 같은 혁신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보수가 더욱 젊어지고 영남을 벗어날 때 비로소 떠난 민심이 돌아올 수 있다.보수는 수구(守舊)가 아니다. 고루한 이념에서 벗어나 미래를 개척하는 실용성 있는 나침판이 되어야 한다. 권위는 없으면서 권위주의를 고집하는 ‘꼰대당’은 시대착오다. 보수의 생명력은 실용적 변화와 혁신에 있다. 암환자가 진통제 처방으로 회생될 수는 없다. 중병에 걸려 있는 보수가 살길은 오직 처절한 반성을 통한 과감한 혁신뿐이다.

2024-05-20

금쪽같은 내 가수 김호중?

금같이 귀한 자식을 ‘금쪽같은 내 새끼’라고 하는데, 티브이 프로그램 제목이기도 하다. 방송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등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금쪽이라고 부른다. 아동 전문가 오은영 박사가 맞춤 솔루션을 제공해 금쪽이를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부모의 올바른 훈육 부재와 과잉된 감싸기가 문제 행동을 키운 사례가 대부분이다. 꾸짖어야 할 때도 예뻐만 하다 보니 아이가 자기감정과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날뛴다. ‘금쪽이’는 문제 아동을 지칭하지만 시청자들은 ‘내 새끼 지상주의’로 아이를 망치고 있는 부모를 먼저 떠올린다.금쪽같은 가수가 있다.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나와 차를 몰고 가던 중 택시와 추돌사고를 낸 후 도망쳤다. 매니저와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고,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제거해 증거 인멸까지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에 자수한 매니저는 자신이 운전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운전자는 바로 그 금쪽이, 김호중임이 밝혀졌다.음주 뺑소니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소속사는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다. 김호중 측 주장은 너무 구차해 폭소가 터질 정도였다. “술잔에 입만 댔을 뿐 술은 마시지 않았다”, “매니저가 운전했다”, “대리운전을 이용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 “아티스트가 피곤해 해서 대리운전을 맡겼다”, “공황장애가 와 사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해명할수록 엉망진창이었다. 눈물겨운 ‘김호중 구하기’가 ‘팀킬’이 되고 있는 가관이 우스웠다.소속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티스트를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누가 보면 김호중이 민주투사나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라도 되는 줄 알겠다. 예정된 공연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었고, 팬덤의 감싸기는 더 극성이었다.“얼마나 지쳤으면 그랬을까. 눈물이 난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엄청난 스케줄에 힘들었겠다는 생각뿐이다”… JMS를 결사옹위하는 사이비 신도들을 보는 듯하다. 팬클럽 명의로 구호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했지만 거절당하는 망신도 당했다.몰상식하고 맹목적인 팬덤을 방패삼아 소속사는 법과 대중을 농락하며 패악질을 부렸다. 가장 비겁한 건 그 지경이 되도록 팬덤과 소속사의 암막 뒤에 숨어 침묵하고 있던 김호중이었다.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퇴역군인 프랭크는 명문 사립교 베어드의 징계위원회에 찰리의 보호자로 참석한다. 그는 양심을 지킨 찰리를 변호하고, 비열한 고자질쟁이가 되기를 선택한 조지를 꾸짖으며 일갈한다. “일이 꼬이면 어떤 놈은 도망가고 어떤 놈은 남지. 여기 그 화형불에 맞서는 찰리가 있고, 아빠의 커다란 주머니 속에 숨어 있는 조지가 저기 있네.”팬의 말마따나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반성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수치심과 두려운 손가락질 앞으로 나아가는 이가 있는 반면 뉘우칠 용기조차 없이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 안에서 눈과 귀를 닫은 채 그 협소한 가짜 평화에 평생을 머무는 이가 있다. 그게 지옥인 줄도 모르고.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호중은 이미 불법도박 전력이 있고, 과거 그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했다는 전 여자친구와 진실공방을 벌였으며, 이번에 그가 다녀온 유흥주점은 속칭 ‘텐카페’로 불리는 룸살롱이다.소속사는 검찰총장 직무대행까지 맡은 바 있는 조남관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었다. 전관예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든 아티스트를 지키겠다더니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갈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심판마저 피하진 못할 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을 무력하게 하고 양심과 정의, 도덕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비웃는 이들에게 휘두를 대중의 회초리는 비판과 불매, 철저한 외면, 그러면서 잊지 않는 것이다. ‘트바로티’가 아니라 ‘비겁한 금쪽이 김호중’으로 내내 기억하는 것이다.거짓은 더 큰 거짓을 부르고 거짓이 태산처럼 쌓이면 결국 그 거짓 세상에서 가짜 인생을 살다가 먼 훗날 자신이 허깨비였음을 알고 가슴 치며 절규하리라. 그때는 이미 늦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관용이 우리 사회에 아직 있다고 믿는다. 순간을 피하고 비겁한 겁쟁이로 평생 살 것인가 잘못 앞에 무릎 꿇고 남은 생애 동안 더 나은 사람으로 살 것인가. 소속사와 팬덤에 묻지 말고 스스로 선택하는 게 성인이다.

2024-05-20

뜨개질하는 마음

뜨개질을 할 때면 별 다른 걱정이 들지 않는다. 실을 구멍에 넣고 또다른 실을 가져와 한 바퀴를 돌린 후 그저 실 밖을 통과하는 단순 작업의 반복일 뿐인데, 뜨개를 뜨다 보면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뜨개는 대바늘과 코바늘로 나뉜다. 같은 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바늘과 뜨는 기법에 따라 엄연히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대바늘은 조금 더 훌렁훌렁하고 부드럽게 떠지기 때문에 주로 스웨터나 목도리를 뜰 때 사용하고, 코바늘은 조금 더 딱딱하고 편편하게 떠지기에 컵 받침대나 수세미 등 작은 소품을 뜰 때 좋다.나는 주로 두 바늘로 편물을 뜨는 대바늘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두 손으로 두 가지 바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움직임이 매끄러운데다, 코 수가 틀리면 바로 수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두 손에 일정한 힘이 고르게 들어가서 더욱 안정적으로 느껴진다.대바늘 뜨개질의 매력은 쭈욱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잡생각이 들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사소한 일에도 잘 집중하기 어려운데, 뜨개질을 할 때면 신기하게도 쇼파에 몸이 파묻힐 정도로 앉아 뜨개를 뜨고 있다.두 바늘을 교차하여 실을 이어 나가는 동안은 떠오르는 걱정이 잠시 물러 난다. 바늘이 나아가는 것만큼 뜨고 있는 편물이 실시간으로 손에 잡히기에 노력 대비 실적이 크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방에 달고 다니는 장식품도 만들고 작은 물건을 넣어 다니는 파우치도 만들고, 얇은 원사를 사용해서 여름에 착용하기 좋은 하늘거리는 스카프도 만든다.바구니에 안온하게 들어가 있는 저 평온한 자세. 엎드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는 듯 실뭉치를 만지다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실을 만질 때면 바깥 세상의 뾰족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느낌이랄까.바늘을 손가락으로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뜨는 기법도 다양하다. 잉글리시 니팅은 보통 많이들 사용하는 기법으로, 실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아 뜨는 방법을 말한다. 콘티넨틸 기법은 자신이 주로 사용하지 않은 손에 실을 잡고 뜨는 방식이다. 만일 뜨는 사람이 오른손잡이라면 오른손에 바늘을 잡고 왼손에 실을 잡아 뜬다. 레버 니팅은 손을 지렛대로 사용해 속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바늘을 잡는 자세에 따라 편물의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지지만 여러 가지를 해보면서 내 손에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치 손과 실이 하나가 되어 곡을 리드하는 지휘자의 손놀림과 같달까.리듬에 맞춰 생각없이 이것도 뜨고 저것도 뜨다 보면 내 옆엔 내가 만든, 작품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털뭉치들이 잔뜩 널려 있다. 만들고 남은 자투리 실, 옆선이 울룩불룩 제 멋대로인 편물들, 어딘가 서툴고 부족하지만 직접 만든 물건으로 채워지는 나의 삶을 더욱이 애정 어리게 보게 된다.일반 실에 형형색색의 반짝이가 들어가 있는 실을 합사하여 더 다채로운 색상을 만들어 뜰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원하는 대로 색을 조합해 더욱 독특하게 만들어 볼 수 있고, 이는 기성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평소엔 눈 감고도 뜰 수 있던 컵받침 같은 쉬운 것들이 어느 날은 유독 진도가 더디게 떠질 때가 있다. 잔 실수를 계속 하다 길이 한번 잘못 든 실은 간단한 수정만으로도 복구가 되지만, 실수가 계속된다면 결국 그 줄에 있는 전체 코를 전부 다 빼내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인내심이다. 바깥 생활에서 갈고 닦은 인내심을 이 때 발휘해야 한다. 참을 인을 이마에 그린 후, 다시금 처음부터 천천히 나아가는 것. 굳세게 버티어 계속해서 나아가는 노력의 산물이 바로 뜨개인 것이다.뜨개의 또 다른 매력은 정확한 손놀림이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편물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욕심이 나서 더욱 손놀림이 빨라진다. 실을 꽉 잡아당기며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면 어느새 뜨고 있던 편물의 모양은 이상해진다. 하나의 코가 빠져 있거나 바늘이 다른 구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잠깐의 욕심이 불러온 참사. 지나친 욕심은 늘 이렇게 괴상한 모양을 띠게 마련이다. 그럴 땐 다시 뜨개를 내려 놓고 심호흡을 하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후우. 몇 초간 멍을 때리다 다시금 실을 팽팽히 잡아당겨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장력을 느껴본다. 그리고 또다시 실을 술렁술렁 넘기며 마음의 가벼움을 느낀다. 실을 정확히 컨트롤하며 편물을 뜨는 것. 세상 일처럼 뜨개 마저도 자꾸만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풀고 다시 나아가다보면 근사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뜨개도, 삶도 말이다.

2024-05-20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는 튼튼한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다. 민주주의는 발전만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으로 그렇게 배웠다. 후퇴나 파괴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우리가 민주주의의 교본처럼 생각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죽음에 관해 연구한 학자들이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시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다. 이들은 뉴욕 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칼럼을 기고해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것을 발전시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책에 이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yranny of the Minority)라는 책을 냈다.이들의 지적이 주목받는 건 민주주의 파괴가 군대 같은 무력이 아니라 투표장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 그것도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극렬한 소수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당연한 체제로 생각하고, 우리가 아무리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으로 생각한 민주주의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원래 불안하다고 한다. 선거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으면 균열이 생긴다고 한다. 이들의 지적을 새겨보면 한국은 더 위험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87년 직선제 이후 가장 큰 득표율 차(22.6%p)로 당선됐다. 그러나 야당은 승복하지 않았다. 취임 초부터 촛불집회로 흔들었다. 그것도 전임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해 놓은 한미FTA의 마무리가 꼬투리였다. ‘뇌송송 구멍 탁’이라는 선동 문구가 SNS를 타고 전파됐고, 어린 학생들부터 거리로 나섰다. 동력을 받지 못하고 임기를 보냈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여파로 대통령직은 거저 줍다시피 했다. 역대 최대 득표 차(557만951표)다. 그러나 임기 내내 주말마다 서울 중심거리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세력대결을 벌였다. 반대 진영에 비해 동원 능력과 전파, 설득 능력이 떨어져 힘이 없었을 뿐,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복과 비난은 계속됐다.윤석열 대통령도 반대 진영이 인정하지 않는다.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고 치른 총선에서 ‘탄핵’, ‘임기 단축’을 공공연히 공약으로 내걸 정도다. 국회는 국정을 논하는 곳이 아니라 전쟁터다. 선의의 비판은 없다. 전자오락처럼 오로지 상대의 힘을 빼앗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심지어 자기가 먼저 주장한 정책조차 상대측 정부가 추진하면 시비를 걸고, 방해한다.래비츠키 교수의 지적대로 민주주의는 승복해야 굴러간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승복과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시 경쟁하는 선의의 경쟁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누구도 승복하지 않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를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중단없는 정쟁 구도에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더구나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전파 속도가 빨라졌다. 극단적인 소수가 여론을 좌지우지한다. 전체 국민에서 차지하는 실제 비율보다 몇 배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팟캐스트에서 시작해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소수파의 확성기가 점점 더 커졌다. 이 확성기들은 극단 세력의 자극적인 포퓰리즘에 더 열광한다는 특징이 있다.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킹크랩’에서 실제 세력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길을 찾았다. 그 전에 유시민의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은 온라인 대화방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전투적 소수세력의 효용성을 입증한 원조격이다. NL계열이 민주노동당을 장악하는 과정은 소수파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줬다.이제 강력한 ‘전투적 소수’는 ‘노빠’(노무현 지지세력)에서 ‘문빠’(문재인 지지세력)로, ‘개딸’(이재명 지지세력)로 진화하면서 정치권의 공식이 됐다. 지난 총선에서는 조국신당이 새로운 ‘강력한 소수집단’으로 등장했다. 보수는 경쟁력이 비교가 안 된다. 설득력도, 확장성도 없다. 문제는 전투의 승패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존립이다. 지블랫 교수의 걱정거리가 미국보다 한국에 먼저 와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19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경산 유치 결과를 바라보며

조현일 경산시장 ‘아울렛’어느 날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아울렛이란 단어는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재고상품을 싸게 파는 전문점을 ‘아울렛 스토어’로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으며 백화점이나 제조업에서 자사 제품이나 직매입한 상품을 정상가격의 40~70%에 판매하는 상설 소매 점포를 이야기한다. 명품의류에서 구두, 가구 등으로 품목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이랜드 2001 아울렛이 최초다. 너도나도 아울렛이란 상호를 사용하며 가격대가 낮은 제품들이 유통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신세계와 롯데, 현대 등 대기업이 프리미엄 아울렛 15곳과 아울렛 17개 곳 등 32곳의 대형 아울렛을 운영하며 고품질의 제품을 소비자가 이익을 보며 구매하는 공간으로 인식이 바뀌었다.이들 대형 아울렛은 지역 경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일자리 창출과 생산유발 효과와 부가가치유발 효과를 고려해 지역경제에 효자 노릇을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경산시도 2008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경산지식산업지구가 대기업과 해외자본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적이 부진하지 이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 내 정주 여건을 개선해 청년들이 정주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할 대형 명품 아울렛 유치에 나섰다.지난 2020년 9월 경북도와 대기업 등이 참여한 투자유치 양해각서를 체결해 2000명 이상의 일자리와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해 인근 청도와 영천 등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다.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경산지식산업단지 1단계 산업용지에 물류 유통단지가 들어서는 것은 지정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를 고집하며 시민들이 실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실망에만 빠지지 않고 유치 염원을 담은 서명운동에 들어가고 서명 부를 관련 부처에 전달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보였고 경산시도 유치 방법을 찾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최근 산업자원부 경제자유구역위원회가 경산지식산업지구 2단계에 유통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개발계획 변경안을 승인하며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경산 유치가 눈앞으로 다가왔다.이제 경산시가 할 일이 많아졌다.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입주 대상을 찾아야 하고 참여할 기업과 미래의 잠재고객을 유치할 최고의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산시는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이 건설과 소비지출에 따른 파급 효과로 연간 방문객은 800만 명, 취업유발 효과 1만3651명, 생산유발 효과 1493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509억 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또 산업과 관광, 문화, 쇼핑 기능이 융합된 복합도시 가능해져 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식산업지구에 대형 유통업체가 입주하면 특혜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이러한 염려를 불식시키고자 공개 경쟁으로 부지를 분양하고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한 문화·복합시설 구축과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입주시키고 대지건물비율은 낮추고 용적률은 높여 다른 쇼핑몰과의 차별화로 온라인을 애용하는 고객들도 오프라인으로 옮겨 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리미엄 쇼핑몰로 만들 계획이다.이를 위해 필요한 행정절차를 제공하지만,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것이다. 특히 사업시행자의 개발이익을 재투자해 창업과 중소기업체 입지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다양한 기업 지원 인프라와 서비스를 제공해 우수 인적자원도 확보할 것이다. 지역주민 우선채용과 지역상품 마켓 조성으로 기업과 지역이 상생하는 효과도 거두어야 한다.민선 8기 경산으로 취임하며 시민들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경산 유치가 결정될 때까지 발에 구두를 신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약속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했으며 앞으로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착공까지 운동화가 발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경산지역에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입점이 가능해진 것은 실망보다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경산 입점을 위한 개발 변경안의 승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29만 경산시민의 시정을 책임지는 시장으로 무엇이 최선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충고에도 고마움을 느끼면 민선 8기 목표인 ‘꽃피다 시민 중심, 행복 경산’을 이룰 수 있음을.

2024-05-19

롤러코스터

롤러코스터. 척, 척, 척경사진 레일 위를 천천히 올라간다. 50m 이상의 중턱을 헉헉거리지도 않고 하늘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 올라간다. 잠시 정차. 하늘을 유유히 돌다가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아찔한 속도로 땅을 향해 내리꽂는다. 양팔을 벌리고 환호하는 사람,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차마 세상을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람, 혹이나 떨어질까 땀을 쥐고 난간을 꽉 잡은 사람, 다리가 새처럼 덜덜 떨리는 사람, 허벅지가 말 장딴지처럼 잔뜩 긴장해 있는 사람, 공포에 질리면서도 저마다 짜릿한 스릴을 즐긴다. 내 일상은 늘 롤러코스터 위에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 모든 것이 흔들린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나를 빙글빙글 돌려댄다. 진단을 받으니 이석증이란다. 귓속 깊은 곳의 반고리관 안에 이석이라는 물질이 흘러 다녀서 발생한다고 한다. 어떤 이유든 이석이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반고리관 내부의 액체 속에서 흘러 다니거나 붙어 있게 되면 주위가 돌아가는 듯 어지럼증이 생긴단다.병원을 다녀온 후, 빙빙 도는 현기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빙 돌고 머리가 조여 오는 두통에 시달렸다. 점점 과로나 스트레스와 상관없이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는 까닭으로 나를 흔들어댔다. 외출과 과로를 피하고 힘들면 쉬거나 낮잠을 잤다. 하지만 두 달 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중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왔다. 어떤 자세도 편하지가 않았다. 병원에서 또 이석이 빠졌음을 진단받았다. 이석이 제자리로 돌아가도 증상은 남아 있어 일상생활이 쉽지 않았다. 이렇게 빙빙 도는데 나는 세상을 바로 보고 살 수 있을까. 때때로 귀에서 폭우가 내리는 것 같았다. 맑은 날은 잠시, 비바람이 몰아쳤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가끔 천둥도 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을 견뎌내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회의가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다.어두운 밤 나 홀로 무중력 공간을 떠돈다. 땅을 향해 발을 뻗어 보지만 지구는 저 멀리서 빙빙 돌아간다. 내가 도는 것인지 지구가 도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다가 지구의 중력을 이탈해 칠흑 같은 우주공간으로 빨려가는 꿈을 꾼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남편의 얼굴이 빙빙 돈다. 나의 이석은 왜 이탈하여 온 우주를 돌려대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세상이다. 먼 나라에서는 전쟁으로, 가까운 곳에서는 내 잘났느니 네 잘났느니, 눈을 뜨면 먹어야 하는 약은 한 움큼이나 되고 나의 몸과 생각은 시간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니 어지러울 수 밖에. 때로는 어질머리 나는 세상을 잊고 싶기도 하다.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갈수록 자연에서 배운 성숙과 풍요를 누리며 살고 싶었다. 중후한 노년은커녕 골방에 갇혀 어지러움과 싸우고 있으니, 세상은 직선으로 가고 있는데 난 마치 게임을 하듯 꽈배기를 틀고 있으니. 환각이라면 차라리 깨어날 희망이라도 있을텐데. 일상이 따분하면 사람들은 번지점프를 하거나 놀이기구를 탄다. 현실이 주지 못하는 공포와 쾌감을 느끼려 롤러코스터를 탄다. 느닷없이 치솟고 사정없이 돌려대는 스릴을 즐긴다. 그리고 흔들리는 몸으로 착지한다. 온몸으로 느끼는 안정감도 공포 이후의 카타르시스이다. 여행과 모험의 목적이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으로의 복귀이듯. 김경아 작가 살다보면 높은 곳에 오를 때가 많다. 대박을 꿈꾸며 주식에 올라타지만 주가곡선은 너울거리다가 결국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허방이다. 열매가 탐나서 나무를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꿈을 따러 허공을 서성이며 수없이 허방을 디디는 우리는 착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래야 다치지 않고 바닥에서 바로 일어날 수 있는데, 그렇게 탄력성을 익혔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양이의 가뿐한 착지는 묘기에 가깝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질 때 살기 위한 본능적 몸짓이라고 한다. 나 또한 살기 위한 착지를 꿈꾸지만 고양이 같은 몸짓은 없다.약으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처방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인지 롤러코스터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저들의 몸짓이 부럽다. 가뿐한 착지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린다. 잠깐 어지러운 몸을 추스르자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개운하고 시원한 얼굴이다. 흔들리지 않는 저들의 걸음이 가볍고 경쾌하다. 나는 다시 어지러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2024-05-19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찾아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둘은 있는 법이다. 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전생의 기억을 송두리째 날리고 난 후에야 예닐곱 살을 먹는다는 얘기도 있다. 윤회를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아주 생생하게 전생을 기억하는 인간도 많다고 한다. 세계 전역에 3000명이 넘는 사람이 전생을 낱낱이 기억한다는 기록도 있다.전생을 들먹이지 않아도 ‘메밀꽃 필 무렵’(1936)의 허생원처럼 가슴에 묻어두는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오래전 서울 달동네에 살 때 보았던 장면이 어제처럼 선연하다. 무척이나 추웠던 어느 겨울날 아침 심부름을 나왔다가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청년이 길가에 있던 집의 열려 있는 대문 안으로 쑥 들어서는 것을 본다.그 집을 나오는 청년의 손아귀에는 붉은색 털실 스웨터가 들려 있었다. 아직 물기가 덜 빠져서 그런지 묵직하게 보이는 스웨터를 들고 그는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면서 그는 연방 좌우를 둘러본다. 이윽고 “도둑이야!” 하는 고함(高喊) 터져 나온다. 몇몇 사람들이 청년을 막아서거나 몸을 붙잡는다. 청년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그의 표정이 기억에 또렷하다. 붙잡혀서 잘 됐다는, 이제 됐다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크게 만족하고 평안한 얼굴의 청년이 아홉 살 난 나를 당혹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도둑질한 청년은 필사적으로 달리지 않았다. 그저 빨리 달리는 시늉을 했을 뿐, 옷을 훔쳐야겠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던 게다.미당(未堂)은 ‘무등(無等)을 보며’에서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한국동란이 끝난 이듬해에 시인이 통찰한 깨달음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이것을 현실과 유리된 시인의 관념적 사유와 인식으로 수용한다. 우리가 항용 나직하게 속삭이는 가난이란 말은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9세기 중후반 유럽 문단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빈곤과 무지에서 오는 타락과 방종이다. 찰스 디킨스가 이 주제의 선구자인데, 그는 ‘올리버 트위스트’(1838), ‘크리스마스 캐럴’(1843), ‘어려운 시절’(1854), ‘막대한 유산’(1861) 등에서 19세기 초중반 영국 노동자들의 새빨간 가난과 가난이 몰고 오는 폐해를 그려낸다.빅토르 위고의 대작 ‘레미제라블’(1862)의 주제는 청춘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아니라, 빈곤과 무지가 낳은 타락과 방종이다. 에밀 졸라가 1877년 출간한 ‘목로주점’에서 가난과 무지는 알코올중독과 무도병, 매춘으로 이어지면서 빈곤의 끝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이런 본보기를 우리는 김동인의 ‘감자’(1925)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요즘 언급되는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은 관념적 사치가 극에 달한 자의 정치적 수사이거나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빈곤 문제는 가난의 뿌리를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구두선(口頭禪)이 될 수밖에 없는 뿌리 깊은 것이다.

2024-05-19

대구백화점 80년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백화점이 창업 80년을 기념해 특별사진전을 열고 있다. 대백프라자에서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대구백화점 80년과 대구 중구 100년의 기록 사진들이 전시된다.지역 유일의 향토백화점으로 80년을 이어가고 있는 대구백화점의 과거 모습들과 대구 100년의 모습을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사진전이다.1944년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잡화류를 주로 파는 대구상회로 출발한 대구백화점은 대구경제 성장사를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대구역사의 증인으로 등장한다. 현대, 신세계, 롯데 등 대기업 백화점들의 대구지역 공략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향토 백화점으로 대구를 상징하는 백화점으로 소개된다.대구백화점을 두고 한 대학교수는 “대구백화점은 생존 그 자체만으로 칭찬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자본력으로 밀고 들어온 대기업의 지역시장 진출에도 향토 백화점으로서 존재감을 유지한 데 대한 칭찬의 말이다.지금은 폐쇄됐으나 동성로 소재 대구백화점 본점은 동성로를 대구 중심 상권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1969년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 건물을 짓고 대구 최초 정찰제 판매를 시작한 대구백화점은 동성로를 젊음과 패션의 거리로 전국적 명소로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가 크다.대기업의 지역 진출에도 대구백화점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지역민의 관심과 사랑이다. 전국에서 향토 백화점이 유지되는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 향토 백화점이란 이름으로 유지되던 모든 곳의 지방백화점은 대기업의 진출로 모두 사라진 게 현실이다.창업 80년 맞는 대구백화점의 저력이 지역의 100년 장수기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9

다시 불 지핀 ‘대구경북 통합론’을 주목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시와 경북도의 통합을 주장해 한동안 논의가 중단됐던 대구경북 통합론이 새롭게 불을 지피게 될지 주목된다.홍 시장은 지난주 제22대 대구경북 국회의원 당선인과 함께 하는 대구·경북 발전결의회 자리에서 시장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구경북 통합 구상을 밝혔다.그는 “최근 중국 쓰찬성 청두시를 방문하면서 2006년 방문 때와 달리 18년 만에 인구가 2500만명 도시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대구와 경북도 통합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그는 또 “대구와 경북 전체를 인구 500만명 광역시로 만드는 것이 대구와 경북이 각각 발전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고 좋을 것”이라는 구상도 설명했다.이에 대해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통합 논의에 적극 찬성”이라 대답하고 “대구경북은 당장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통합을 논의하자”고 화답했다. 또 당선인들에게는 “대구경북 통합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대구경북 통합론은 민선 7기부터 활발히 논의된 의제였다. 한때는 대구경북 통합단체장이 선출될 듯한 분위기까지 몰고 갔으나 통합반대 일부 여론과 정치권의 소극적 대응 등 복잡한 사정으로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민선 8기 들어 대구경북 통합론이 공식 거론된 것은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통합론의 본질은 수도권 공룡화에 대응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인구소멸에 적극 대응하자는 데 있다. 대구경북뿐 아니라 이 문제는 전국 지방 공동의 담론으로 떠올랐으나 지역 내 이해관계와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소극적 대응으로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다.홍 시장의 말대로 지금은 인구가 국력인 시대다. 지방의 도시도 인구를 늘리지 않고는 성장의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 대구와 경북은 한 뿌리란 점에서 통합에 대한 생각은 같다. 통합에 대한 여론수렴과 치밀하고 논리적인 계획이 밑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대구와 경북은 신공항 건설 등 공동의 발전을 논의할 전환점에 서 있다. 다시 불 지핀 통합론이 지역발전의 원동력 되게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4-05-19

시중은행된 대구銀, ‘은행권 메기’로 성장하길

금융위원회가 지난주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의결했다.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된 첫 사례이자, 32년 만에 새로 생겨난 7번째 시중은행이다. 대구은행은 은행권 과점 구도를 깰 ‘메기’로 투입되는 만큼, 경직된 금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도 시중은행간의 경쟁 활성화로 금리나 수수료 등에서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됐다.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내부통제와 디지털금융을 통해 금융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했다. 대구은행은 다음달 주주총회를 거쳐 57년 만(1967년 창사)에 사명을 ‘아이엠(iM)뱅크’로 바꾸고, 지방은행 꼬리표를 뗀다. 대구·경북 지역에선 기존 대구은행 사명을 병기(倂記)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대구은행이 단시일 내에 타 시중은행과 안정적·실효적 경쟁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은행의 전략은 인터넷은행의 효율성을 중심으로 전국 단위 영업망을 확대해 오프라인 대면 영업의 장점도 동시에 챙기는 ‘뉴하이브리드 뱅크’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당장 시중은행과 경쟁하기엔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선 수도권과 지방은행이 없는 강원·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점을 신설할 생각이다. 첫 신설점포는 빠르면 상반기 중 강원도 원주에 낼 계획이다.대구은행이 하루빨리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해 시중은행으로 정착하길 바란다. 경제계를 중심으로 한 대구·경북 지역민들도 하나같이 전국을 무대로 성장기회를 확대해 가는 대구은행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단지 대구은행이 꼭 명심해야 할 것은 기존의 지역 지원사업이나 중소기업 여신규모 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구은행에 의존해 왔던 이 지역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에게 소외감이나 금융공백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금융위가 대구은행 시중은행 전환을 의결하면서 ‘본점은 대구광역시에 둘 것’이라는 조건을 단 것은, 이 지역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유지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2024-05-19

인생 고수로 가는 지름길, SBS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아카시아 향이 짙은 푸르른 5월에는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스승의 날’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삼인행(三人行)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 택기선자이종지(澤其善者而從之), 기불선자이개지(其不善者而改之)”라 했다.이 말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골라 그것을 바로 잡으라”라는 뜻이다.필자는 운동으로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데, 인생이나, 기업이나, 운동이나 모두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기를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선 테니스 고수로 가는 지름길은 ‘SBS’를 실천해야 한다. SBS는 학습(Study), 준비(Be Ready), 단순함(Simple)의 약자이다.첫째 ‘Study is Best’이다. 이 말은 학습이 최고라는 말로 배우지 않고 테니스를 하는 사람은 요령만 늘어 발전이 없지만, 방법을 제대로 배우면서 노력하는 사람은 실력 향상 속도도 매우 빠르게 된다. 또한 ‘연습만이 살길이다’라는 말처럼 꾸준한 연습이 동반되어야 한다.둘째 ‘Being Ready is Best’이다. 이 말은 준비가 최고라는 말로 테니스 게임에서 상대방이 공을 칠 때 자신은 스플릿 스텝(Split Step)이란 준비 동작을 해야 한다. 이것을 하면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상대방의 볼이 잘 보여 정교한 샷을 구사할 수 있다.셋째 ‘Simple is Best’이다. 이 말은 단순함(간결함)이 최고라는 말로 테니스 포핸드 스트로크를 할 때 테이크 백을 간결하게 하는 것과 발리 시 임팩트를 간결하게 하는 것이 정확성과 파워를 높여주게 된다.우리 인생이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일상적인 루틴(Routine) 활동과 더불어 성장을 위한 프로젝트(Project)의 연속이어야 한다. 프로젝트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 기간 수행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도 SBS가 통한다.첫째 학습(Study)이다.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학습을 통해 습득하고 이해해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둘째 준비(Be Ready)다. 프로젝트 수행 단계는 준비, 실행, 마무리로 이루어지는데 준비는 수행 단계 중 가장 첫 단추로 준비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성공의 열쇠가 된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예기치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프로젝트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셋째 단순화(Simple)이다. 프로젝트의 마무리 단계에는 주로 보고서 작성과 결과 발표로 이루어진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시간이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보고서는 단순하게 작성하고, 결과 발표는 간결하게 핵심을 전달해야 한다.게임은 외면의 게임과 내면의 게임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상대와 경쟁을 하는 경우가 외면의 게임이라면, 자신을 극복하려는 경우는 내면의 게임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내면의 경기를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 나 자신과의 게임에서 SBS를 실천하여 즐기는 게임을 하고 인생 고수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24-05-19

국회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유영희 작가 작년과 재작년 두 해에 걸쳐 내가 사는 지방 의회에 의정 감시단으로 활동했다. 다음 해 예산을 심의하는 자리였는데, 질문도 잘하고 대안도 제시하는 의원이 있는 반면, 예산 계획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질타만 하는 의원도 있었다. 의장의 태도도 회의 진행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의장이 균형을 잡아야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작은 지방 의회에서도 의장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국회의 운영을 책임지는 국회의장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겠다. 매일 참석한 것은 아니지만 뜻깊은 경험이었다.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22대 1기 2년 임기를 수행할 국회의장 후보로 우원식 의원을 선출했다. 정식 국회의장 선출은 6월 초 국회 개원 후 이루어지므로 지금은 후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사실상 국회의장이 되는 셈이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선택에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그런 와중에 투표 4일 전, 후보로 나선 정성호, 조정식 두 의원이 추미애로 단일화한다며 갑자기 사퇴하여 국민의 빈축을 샀다.그렇게 추미애 국회의장이 확실한 줄 알았는데 뜻밖에 우원식 의원이 후보로 선출되어 논란이 가중되었다. 이미 4월 29일 여론 조사에서도 추미애 국회의장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결과에 추미애 강경 지지파들은 당심이 민심을 저버렸다며 탈당까지 하는 등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반대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하는 입장도 있다. 최다선 연장자가 국회의장을 맡았다는 관례를 금과옥조로 받든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말도 이들의 말은 맞다. 우원식도 5선이나 한 국회의원이고 나이는 추미애보다 한 살 많으니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추미애 의원의 강성 캐릭터 때문에, 팽팽한 여야 대치 상태의 현 정국을 잘 이끌어갈지 의문을 가진 사람도 많다.국회의장이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협치 능력은 중요하다. 우원식 후보의 과거 행적을 보니, 2017년 당시 원내대표였을 때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를 인준하는 자리에 협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국민의힘 당색이었던 초록색 넥타이를 매자고 주문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기사가 있다. 반면, 추미애 의원은, 6선이라고 해도 직전에 의원은 아니어서 불리한 점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는 등 예측하기 힘든 모습도 보여 불안하다는 평가도 일리가 있다.무엇보다 진행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중요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단일화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처음부터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중도 사퇴를 작정하고 출마한 사람도 있었다. 어느 당이라도 이런 행태를 더 이상 국민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같은 당 안에서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이 안 되었다고 탈당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의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에게 기대해본다. 임기 동안 국회의장으로서 민주주의 원칙을 실천하기 바란다.

2024-05-19

국정쇄신을 위한 대통령의 인식 변화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4·10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완패 이후 국정의 쇄신 요구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선거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2년간의 종합적 평가인 셈이다.민주당과 야권은 여세를 몰아 국정의 총책인 대통령의 국정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국정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인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행동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생각이 변해야 태도와 행동의 변화가 따른다고 한다. 총선 한 달 후인 5월 10일 갤럽의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4%에 머물고 67%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전야의 30여%의 지지율에도 못 미치고 중간평가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결과이다. 그러한데도 총선 직후의 국무회의 시 대통령의 모두 발언이나 5월 9일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의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의 인식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흔히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증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정의 난맥상과 그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국정쇄신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먼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국정의 방향은 여전히 옳다고 인식하는데 문제가 있다.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어퍼커트 세레머니는 대선후보의 자신감의 상징이 되었으며 선거전에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검찰 총장직 사퇴 후 몇 달 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 초부터 매사에 자신에 차있는 듯했다. 이런 자신만만한 태도는 마음먹은 바를 끝까지 관철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간주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은 남의 말이나 측근의 말을 듣지 않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정방향은 옳은데 국민이나 유권자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와 궤를 같이한다.고물가와 민생문제, 균형추를 잃은 외교 문제, 의사 증원과 의료 대란, 특검 등 법률안 거부권 행사와 의회 경시 등 수많은 실정이 총선 참패를 자초하였다. 대통령이 여전히 국정 방향만은 옳다는 주장은 결코 국민적인 공감을 얻기 어렵다. 지난 2년간 대통령은 야당지도자뿐 아니라 언론과도 소통을 멀리하였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는 범죄 피의자라는 명분으로 만나지 않았다.야당의 지도자가 범죄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것은 사실이지만 형 확정 시 까지는 상대를 야당 대표로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검사시절의 인식을 탈피하지 못한 결과이다. 필자는 본 란을 통해 여러 번 양자의 빠른 회담을 촉구한 바 있다.한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자회견마저 회피하였다. 취임 초기의 도어스테핑도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기자들의 갑작스런 질문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듯하다. 2022년 8월 취임 100일 특정 보수 언론과의 대통령의 회견도 국정 선전만으로 일관하였다. 지난 총선 패배 후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의 4·29 영수회담에 이어 오랜만에 5·9 기자회견도 가졌다.영수회담이나 기자회견이 대통령의 불가피한 방어적 선택일 뿐이다. 대통령은 소통 공간을 확대해야 국정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과 당정의 관계도 수직적 구도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 후 공직뿐 아니라 당 대표선임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대선의 공로자 당대표 이준석은 성폭행범으로 몰려 당을 떠났다. 나경원, 안철수 역시 당직에서 배제되었다. 지지율이 최하위였던 친윤의 김기현만이 당 대표로 발탁되었으나 총선 전 사퇴하였다. 취임 2년이 지났지만 반윤 세력은 당정에서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내각과 당은 용산 대통령실의 상명하복의 관계만 유지될 뿐이다. 정권 출범 후 황우여 비대위원장까지 5차례의 비대위 체제는 이를 잘 입증한다. 지난 총선 전야의 한동훈 비대위는 전열을 정비할 겨를도 없이 선거에 참패하고 말았다. 대통령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당정 수직관계는 당의 자생력만 가로막고 있다. 대통령에게 직언하기 어려운 구도 하에서 당심은 민심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변화 없이는 이러한 고질병은 치료될 수 없다.대통령의 인식의 변화만이 국정의 쇄신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현재 20%대의 지지율로는 국정의 동력을 도저히 회복할 수 없다.대통령은 ‘경기중이지만 후반전의 전광판’을 자주 보아야 한다. 22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대통령의 잔여 임기 3년보다 훨씬 길다. 대통령의 레임덕은 이미 시작되었다.여소 야대의 정치구도 하에서 윤석열 정부의 생존 전략은 결국 협치이다. 대통령은 다수 야당이 마련한 법률안에 대한 잦은 거부권 행사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 민주당과의 협력 없이는 원하는 법안 하나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지시, 명령, 오만, 독선의 리더십만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대통령은 심기일전하여 대선 시 공약인 ‘원칙과 상식’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자주 노출되는 격노의 정치는 자승자박의 정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거대 야당과의 협치는 대통령의 인식 변화에서 시작한다. 대통령이 생각과 인식을 바꾸면 국정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2024-05-19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거론하기 겁난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란 지구 생태계가 먼 미래에도 현재대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이라는 의미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구 생태계의 미래 유지 가능성’이다.이 용어는 로마클럽의 1972년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란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 말은 지구 생태계가 미래에도 과연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지난 2월 8일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년간 평균 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과 비교했을 때 1.5℃를 넘어선 것으로 관측된다고 보도했다. 이런 뉴스를 접하고 이제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두려워진다.산업화 이전(1850∼1900년) 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5℃ 상승하는데 남은 시간을 가리키는 동대구역 광장의 ‘기후 시계’는 오늘 현재 ‘5년 74일’을 가리키고 있다. 1.5도까지 남은 시간이 ‘5년 74일’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기후 시계의 수치가 무색하게 지난해 벌써 1.52℃를 넘어섰다고 한다. 1.5℃라는 터닝포인트를 넘으면 기후재앙이 걷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고도 무력하게 한다.인류가 어떻게든 2050년까지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에서 억제하고자 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한 온갖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봄이 되면 목련 피고 개나리 피고 벚꽃 핀다는 꽃 피는 룰이 이제 깨졌다. 지난 봄에는 세 가지 꽃이 동시에 피었다. 작년에 사과꽃이 너무 일찍 피었다가 냉해를 입어 지금 사과 값이 금값이 되었다. 올해는 온·냉해를 입은 참외가 금값이 된 현실은 기후 이변으로 겪는 이상 기온 현상의 한 본보기다. 기후 이변은 이제 지금 나와 함께 있다.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모인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2000여 명의 기후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앞으로 100년 이내에 지구 생물종의 70%가 대 멸종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대멸종에 포함된다고 한다.우리는 꿀벌의 갑작스러운 떼죽음과 뉴스에서 각종 생물종들의 멸종 소식들을 자주 들으며 살고 있다. 멸종에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독일은 기후재앙 극복을 위해 탄소중립 방안으로 탈원전부터 추진했는데, 탈석탄발전부터 안 했다고 비난받고 있다.미국은 부시가 교토의정서를 탈퇴하고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다. 그러나 바이든이 취임한 후 곧바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고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제정한 뒤 탄소중립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이끌어냄으로써 인플레이션도 잠재우고 ‘기후산업’이라는 엔진을 통해 새로운 성장시대를 구가하고 있다.EU도 유럽판 IRA를 제정해 미국을 뒤따르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우며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지구의 골칫덩어리로 비난받던 중국도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를 통해 에너지의 외부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에너지 안보에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이제 중국은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춘 국가가 되었다.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중국은 오히려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우리나라는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18년 삼척에 210만kW 석탄발전을 허가하고 원자력 발전은 폐기하는 독일 방식을 따랐다. 그런 민주당은 지난 총선 공약으로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완전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목표 30.2%에서 21.6%로 축소하는 등 세계 조류에 역행하며 원자력에 매진하고 있으나 원자력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뿐더러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전환정책과는 거리가 멀다.문·윤 두 정권의 정책적 오류와 헛발질은 고스란히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산업계 또한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전환이라는 세계 조류와는 담쌓고 딴 방향으로 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에너지전환! 화석연료와 완전히 단절하고 재생에너지로 에너지를 대체하고자 하는 시대적 조류에 눈 감은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그런 현실에 함께 눈감은 국민을 생각하면 미세먼지로 가득한 굴에 갇힌 듯 숨만 막혀 온다.어떻게 이 환란을 벗어나 다시 한번 지속가능성을 논의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희망할 수 있을까?이런 보도가 있다. 국내 태양광 신규 설치용량이 2021년 4.2GW에서 2022년 3.0GW로 2023년엔 2.5GW로 줄었는데, 아마 전 세계에서 태양광 설치량이 줄어드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일 것이라고.2020년대 전 세계에서 산업, 제조업 역량이 가장 뛰어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에너지 전환에 당장 뛰어들면 가장 효율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선도할 수 있는데도 정치지도자들의 오류와 무능, 산업계의 무책임한 안주와 안일함으로 인해 시대 조류를 역행하며 점점 세계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속가능성을 거론하기가 정말 두렵다.

2024-05-19

스승, 선생, 교사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이번 5월 15일은 부처님 오신 날과 스승의 날이 겹쳤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며, 제자들로부터 작은 꽃다발이나 손편지 등을 받으며 활짝 웃어야 하는 날인데, 위대한 스승이신 싯달타 부처님 탄신일에 같이 쉬게 되어 축하 받지 못해 섭섭하였을 터이다. 그런데 ‘휴일과 겹쳐 오히려 좋다. 학교에 있었으면 불편했을 텐데’라는 반응도 있다. 축하받을 날에 교단에 서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말은 요즘 부쩍 교권 추락이니 교권 침해라는 일들이 학생 인권 보호라는 주장과 서로 엉켜서 가르치는 일이 ‘보람과 희망’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는 탓이겠다. 작년 서이초등 교사 사망 사건 이후에도 학부모의 교권 침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우려도 있고 20~30대 젊은 MZ세대 교사들에게 ‘교단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가고 있다고 한다.가르치는 사람을 스승, 선생 또는 교사라고 부른다. 스승은 ‘제자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학문 또는 기예가 높은 사람’으로 가장 높임말이며, 사부(師傅), 존사(尊師)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생은 옛날에는 학예에 뛰어난 명인들의 존칭이었다. 그런데 ‘먼저 태어나다’는 말이니 먼저 태어나면 많이 배워 나이 적은 사람을 가르쳤다는 의미일까? 중국어도 라오시(老師), 늙은 스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성 또는 직함의 뒤에 붙여 존대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으니 옛날 임금도 두려워했던 선생의 의미는 퇴색한 듯하고 힘이 드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교사(敎師)는 각급 교육기관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를 칭하는 말이지만 요즘 일반적 의미로는 ‘평교사’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렇듯 가르침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교원(敎員)이란 명칭이 노동이라는 말과 합치면 명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선생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이고 스승 또한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삶의 지혜도 알려주는 존경받는 인물이니만큼 국가의 동량을 기르는 중차대한 업무에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선생이 바로 서면 교육도 바로 서고,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서고 굳건해진다. 사범대학의 사범(師範)은 참된 스승이 되어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고, 교육대학은 교육(敎育) 즉, 효를 가르치기 위해 매를 들었다가도 가슴에 품어주는 사랑을 배우라는 곳이다.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밀어준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처럼 가르침의 어려움만 기억하지 말고 인생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교단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서울교육청의 ‘보직 교사직’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싫다’가 약 80%이며 과중한 업무와 책임, 낮은 처우(보직, 수당)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니만큼, 교직 만족도가 낮은 청년 교사의 지원책도 강구되어야 하고, 교육자로서의 권리와 권위를 세워주고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 사(士·師·事)자가 붙은 직업 중에 의사(醫師)는 스승의 뜻이 있다. 의대 정원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여 스승의 옳은 직무를 다하길 바란다.스승의 날에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당선 감사 인사 현수막은 여러 군데 걸려있지만 스승에 대한 감사 현수막은 거의 보이지 않아 섭섭하다.

2024-05-16

5·16과 5·18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어제가 5월 16일이고 내일은 18일이다. 1961년 5월 16일에는 군사정변이 있었고, 1980년 5월 18일은 광주에서 대규모 민중시위가 일어난 날이다. 지금은 5·16을 쿠데타로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화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전자를 혁명으로 후자를 폭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형식상으로 볼 때 5·16은 성공한 쿠데타였고 5·18은 진압이 되었으니 실패한 셈이었다. 그 두 사건에 대한 역사적·객관적 평가는 관련 당사자들이 아직도 일부 생존해 있고 논란이 없지 않아 진행 중인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고, 허정내각과 개헌을 거쳐 장면내각이 수립되었지만 국정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10개월 동안 무려 2000여 건의 데모가 발생하고 연인원 100만 명이 넘게 가담을 했다. 매일 7∼8건의 데모가 일어난 셈인데, 교사의 전근을 반대하는 국민학생들의 데모가 있는가 하면 국회의원이 뺨을 때렸다고 경찰들이 데모를 했다. 심지어는 데모를 그만하라는 데모도 있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언론매체들도 사회혼란에 일조를 하고 있었다.그런 혼란의 와중에 일어난 것이 5·16 군사정변이었다. 박정희 소장과 육사 출신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로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었다. 그들이 결성한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발표한 ‘혁명공약’은 대강 이러했다. 반공을 국시로 하고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것,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청신한 기풍을 진작한다는 것, 국가 자주경제를 재건하고 민생고를 해결한다는 것, 통일을 위한 실력을 배양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 후에 들어선 박정희 정권은 위의 공약들을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평가된다.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과 노태우 9사단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12·12 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그런 사태에 반발해서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광주시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항쟁을 한 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시위가 격해지자 투입된 군 병력의 과잉진압으로 부상자가 생기고, 격분한 시위 군중들이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을 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나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5·16과 5·18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조사와 자료와 평가가 산적해 있지만, 아직은 관련·이해 당사자들이 상당수 생존해 있는 상태여서 주장과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역사는 격류도 있고 소용돌이도 있는 강과 같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온갖 것들이 섞여들고 부침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을 겪은 세계 최빈국이라는 초라한 강줄기가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대하가 되었다. 더 이상 좁은 틀에 갇혀 아옹다옹할 게 아니라 보다 원대한 시야로 역사의 향방을 통찰해야 할 때이다.

202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