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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간 욕망의 끝판왕, 죽은 자의 천국

사후세계의 천국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궁극적 욕망의 표상이요, 지상에서의 고통과 결핍을 넘어선 풍요, 불멸, 평화, 완전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만든 처절한 상징이다. 천국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구 세계다. 믿거나 말거나, 죽은 자의 천국은 없으며, 오지 않으며, 온다 한들 죽은 후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백번을 양보하여 천국이 존재한다 치더라도, 죽은 이후 천국의 도래는 용서할 수 없다. 왜 하필 죽은 이후에 오는가. 있다면 죽기 전에 오라. 천국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천국의 부재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이다. 이들은 천국을 믿음으로써 현재를 낭비한다. 이들은 천국을 믿음으로써 삶에서 도피한다. 이들에겐 천국이란 낙타가 짊어진 거대한 짐이다.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천국은 아무런 관심 사항이 아니다. 이들은 천국의 부재로 인하여 고통받지 않는다. 이들은 천국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며, 천국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유예하지도 않는다.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우리네 삶은 ‘오직 한 생’이라 그랬다. 인류의 수 많은 현자들은 릴케처럼 우리네 삶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걸 알았다.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직 한 생인 지금 이 삶의 소중함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돌아오질 않을 이 한 번의 삶을 위하여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도덕적 삶은, 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기준일 뿐, 천국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자격증이 아니다. 현자는 천국을 위하여 다음 생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나머지 삶을 천국에서 보상받겠다고 기대하면서 지난 삶을 살아왔던가! 그래도 늦지 않았다. 남은 삶을, ‘지금의 삶, 여기의 천국’에 아낌없이 투자하여야 한다. 후회할 일도, 후회할 필요도 없다. 천국이란, 인간이 지어낸 욕망의 끝판왕이다. 욕망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현실 세계에서의 결핍과 불완전을 사후에 보상하려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정교한 상징 체계가 천국이다. 과도한 욕망은 삶을 힘들게 하고 고통 속으로 몰아간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천국에의 집착은, 욕망에 대한 집착과 동의어이다, 천국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현실 세계를 경멸하게 하고, 삶을 부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천국에의 집착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갈지 모른다. 이 세계 너머 저 세계는 없다. 천국을 찾고 싶다면 주위를 살펴보면 된다. 그냥 눈을 뜨면 된다. 여기저기 천국이 널려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죽은 이후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천국에 대한 갈망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질 것이다. 죽음과 그 이후는, 산자의 인식(생각)일 뿐, 삶의 부분도, 삶의 연장도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존재 하는 동안 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죽음이 올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천국을 믿는다면, 그대는 허무주의자일 가능성이 많다. 천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당신의 주변에서 깨끗이 정리하시라.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니, 천국이라는. /공봉학 변호사

2025-08-18

보수와 진보, 그리고 좌파와 우파

일반적으로 보수(保守)란 전통과 질서를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신중한 변화를 선호하는 정치·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법과 질서, 가족제도, 시장경제의 자유, 국가 정체성 유지 같은 기존의 제도와 가치가 사회 안정의 기반이라고 보고 그것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다. 반면 진보(進步)는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조리를 변화·개혁하려는 입장이다. 기존의 제도나 전통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바꾸어서 인권, 평등, 복지의 확대를 지향한다. 물론 보수와 진보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보수에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혼란을 막고 사회의 기반을 지키려는 장점이 있는가 하면,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도 그에 대한 대처가 너무 느리거나 소극적일 수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에 비해 진보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불합리한 점을 혁신적으로 개선한다는 장점과 함께 급격한 변화가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실 정치에서는 순수한 의미의 보수나 진보는 드물고, 상황과 사안에 따라 두 가지 성향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은 18세기 프랑스혁명에서 비롯됐다. 혁명 당시 국민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의장의 오른쪽에는 왕권과 전통질서를 지지하는 인물들이 앉았고, 왼쪽에는 공화주의와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앉았던 것에 유래하여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따라서 우파는 보수적 성향을, 좌파는 진보성향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 후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확산되면서 보수와 진보가 본격적인 사상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보수는 귀족·지주·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왕정·교회·시장경제를 옹호하였고, 진보는 자유주의자·공화주의자·노동운동가를 중심으로 평등, 참정권 확대, 복지 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출발점일 뿐, 이후 각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좌·우, 보수·진보의 관계는 복잡하게 변해왔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다양한 형태의 보수와 진보가 공존한다. 미국에서는 작은 정부, 낮은 세금, 전통적 가치, 자유시장, 강한 국방을 중시하는 공화당이 보수 성향을 보이고, 복지 확대, 인권·환경 보호, 소수자 권익 확대를 강조하는 민주당이 진보성향이다.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교대로 집권하며 정치적 균형을 유지해왔고, 프랑스는 국민연합(RN)과 공화당이 우파, 사회당과 좌파연합이 진보진영을 대표한다. 독일은 기독교민주연합(CDU)이 보수, 사회민주당(SPD)이 진보지만,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 같은 제3세력이 정책 방향을 조정하는 중도 실용주의 성향이 강하다. 북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강세이고, 일본은 보수 실용주의가 대세다. 우리나라는 지금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보다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대립이 극심하다. 정권을 잡은 좌파들은 진보는커녕 낡은 이념에 함몰되어 오히려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결국 국가 정체성을 허물고 그동안 피와 땀과 눈물로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8-18

김건희와 뇌물 공여자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유명 디자이너의 목걸이와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 그리고 또 무엇이 오갔을까?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 씨의 ‘뇌물 스캔들’이 차츰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뇌물 공여는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에 처벌 수위 또한 높은 범죄다. 사적인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관련된 직무에서 일하는 사람을 매수하려고 돈이나 물품을 제공하는 행위를 뜻 하는 뇌물 공여. 법적으로는 인사권과 정치적 결정권이 없지만, ‘영부인’은 그 명칭이 가진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호가호위가 가능한 자리다. 그렇기에 더욱 몸을 낮추고 고개 숙여 겸양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아내가 아닐지. 그런데 김건희 씨는 어땠나? 최근 특검의 압수수색이란 초강수 앞에 긴장한 서희건설은 2022년 나토 순방 당시 김건희 씨가 착용한 목걸이, 브로치, 귀걸이를 자신들이 준 것이라 고백했다. 이는 김씨 구속의 결정적인 사유가 됐다. 이뿐 아니다. 또 다른 한 사업가는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 씨의 요청으로 고가의 시계를 구입해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김씨는 “시계를 사주면 나중에 돈을 주겠다”는 약속도 깨뜨렸다고 한다. 세칭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성배 씨 역시 특정 종교단체의 이권 청탁을 받고 김건희 씨에게 고가의 목걸이와 가방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특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비싼 선물을 사주고 부정한 청탁을 한다는 것, 심지어 그런 청탁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건 아직 한국이 후진국의 그림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나라 얼굴에 이처럼 먹칠을 했으니, 뇌물을 받은 사람은 물론 건넨 이들에게도 엄정한 수사와 법적 처벌이 있어야 마땅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18

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유혹들

영국의 사학자이자 정치가인 액튼(John E. E. Dalberg-Acton)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이재명 대통령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가르침이다. 대통령이 ‘힘의 정치’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지 않으면 불행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사적 이익’에 대한 유혹이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재판이 중단된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해소하려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절대 권력은 그런 기도를 할 수 있고, 이미 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에 측근을 임명했고, 자신의 변호인들을 법제처장·국정원기조실장·대통령실법무비서관 등에 포진시켜 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검찰인사권을 이용해서 수사검사들을 한직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고, 검찰과 사법부를 겨냥한 입법을 통하여 그들을 압박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대장동 및 불법대북송금 사건이 조작되었으므로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고 검찰과 법무장관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검찰개혁과 사법정의를 명분으로 ‘셀프 사면’하려는 유혹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집권 초반이라서 역풍을 조심하고 있지만 적당한 시기가 오면 그 본색이 드러날 것이다. 자칭 ‘국민주권정부’라고하면서 민심과 상반되게 사법체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든다면 국민이 용납할 수 있겠는가? 공정성을 상실한 당파적 이익추구도 문제다. 야당이었을 때는 전액 삭감한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를 정권을 잡자 사과 한마디 없이 슬쩍 부활했고, 야당이었을 때는 복지부장관 후보 1명 청문회에 증인·참고인으로 25명을 채택했는데, 여당이 되자 장관 19명 청문회에 단 7명만 채택한 것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횡포다. 또한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상호의 고발뉴스,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등 친여 유튜버들은 대통령실기자단에 등록해주고, 야권 성향의 보수 유튜버들은 배제함으로써 공정성을 잃었다. 당파적 이익추구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정당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코드 인사와 권력 사유화’의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이진숙과 강선우의 인사 실패에서 보듯이 실용주의를 역설한 대통령이 코드 인사를 하는 것은 모순이다. 게다가 ‘권력 불나방들’은 또 얼마나 아첨하고 있는가. 인사 참사를 저지르고도 “대통령님의 인사 수준이 너무 높다”는 강훈식 비서실장, “이재명은 민족의 축복”이라는 최동석 인사혁신처장 등 수많은 간신들이 낯 뜨거운 아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스맨(yes man)’들에 둘러싸여 사유화된 권력으로서는 정도정치(正道政治)가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성공하는 대통령은 ‘권력이 마약’임을 명심하고 절제하지만, 실패하는 대통령은 자제력을 잃고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한다.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길로 가느냐는 대통령의 선택이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대통령으로서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8-18

여행을 떠나요

곧 여행을 떠난다. 사실 이주 전쯤 급히 계획한 여행인지라 갑작스레 떠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이왕 떠나는 여행, 그간 가고 싶었던 교토로 가기로 했다. 이 년 전 방문했던 교토의 여름은 뜨겁고 습했지만 아름다웠다. 오래된 담벼락과 새파란 하늘, 좁은 골목과 고택, 사이사이의 기찻길 등 마주하는 곳마다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한 풍경이 오랜 기간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단 점이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다. 나는 일본의 소도시에서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며 내가 지금 어떤 걸 위해 살고 있고,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끝마치기 위해 간다. 하루하루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책상에 앉아 비슷한 업무를 하고, 비슷한 시간대에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잠자기 전까지 생각하는 것도 잠이 드는 자세도 모든 게 똑같은 하루. 비슷한 굴레 속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짜증과 화를 삼키고 있다. 급작스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당황한 나머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 상황까지 미처도 그저 또다시 아침이 찾아왔고, 출근을 해야 하고, 정해진 업무가 있기 때문에 묵묵히 일을 한다.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고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고, 흔들리고, 또 단순한 것에 마구 웃어버리는 요지부동의 날들.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서, 모두가 비슷한 힘듦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의미 없이 도망을 치다보니 내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은 퍽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많다면 많고 적으면 적은 나이. 어떤 이는 내게 새로운 도전은 너무나 늦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아직 한참 좋을 나이이기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응원한다는 말을 한다. 타인의 말에 휩쓸리지 않아야 할테지만 나는 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좋아하는 게 없어서 무슨일을 할지 모르겠는데, 어떡하죠? 말을 꺼낼 때마다 나보다 더 듣는 이가 난처해한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언제부턴가 편하지 않다. 집은 계속 살아가는 곳이기에 해결해야 할 집안일, 이메일 확인, 생활비 걱정 같은 현실적인 부담들이 언제나 쌓여있다. 우리 뇌는 매일 반복되는 환경과 자극에 익숙해지면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그 자극들을 ‘자동모드’로 처리한다고 한다. 이러한 뇌의 습관적 패턴은 우리가 매일 걷는 출근길의 행동을 자동으로 수행하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아끼고, 더 중요한 자극에 집중할 준비를 한다. 이러한 습관적 패턴이 많을수록 일상은 단순해지고 생각은 간결해진다. 익숙한 패턴 속에 갇히는 순간부턴 새로운 생각이나 깊은 사유, 내면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일상 속 자기연민에 호되게 빠져 있다면, 호기롭게 쇼파에서 몸을 박차고 일어나 ‘때가 되었군’ 생각해야 한다. 잠들어있던 여권을 깨우고, 캐리어의 먼지를 닦고, 가장 요란스러운 네임택을 캐리어에 달고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찾는다. 더는 지체 없이, 더 많은 인지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뇌를 깨워야만 한다. 여행은 일하지 않는 상태를 선언하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 아닌, 삶의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 택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맞는 것인지, 현재 나에게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나는 늘 삶의 방향을 정하기 전, 답답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처음은 집 근방의 작은 소도시들, 그리고 점차 나아가 기차를 타면서 처음 들어보는 도시들을 골라 누볐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로 위험했고 외롭고, 맛있는 걸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열망과 집요함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선택을 끝끝내 했고, 끝까지 행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삶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꿈과 일상은 다른 것이라고 누군가 선을 딱 그으며 말해도 결국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하고 정의해야 하기에 또다시 중요한 여행을 앞두고 있다. 다가오는 가을엔 하프 마라톤을 뛸 것이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력이다. 단거리처럼 순간적인 속도가 아닌 오랜 시간 꾸준히 달리는 힘이 필요하기에 체력과 페이스조절이 핵심이다. 체력과 페이스조절을 하기 위해선 우선 같이 뛰는 라이벌들이 아닌 나의 호흡과 마음가짐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린다면 후반에 지쳐버릴테고 너무 느린다면 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힘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 때론 일상에서 벗어나 아주 낯선 곳까지 찾아가 ‘나’를 집중하다 보면 결국 지금보다 훨씬 편안함에 이르를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시인)

2025-08-17

유럽 콤플렉스 너머

여름방학을 맞아 지중해에 다녀왔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시작으로 아테네, 몰타 발레타와 고조섬 블루라군, 스페인 몬세라트와 바르셀로나까지 12일간의 여정이었다. 한국은 폭염과 폭우가 계속됐지만 지중해의 여름은 청량했다. 햇볕은 뜨거워도 습하지 않아 돌아다닐 만했다. 걷고 먹고 마시고 더우면 풀장이나 바다로 뛰어들었다. 직장생활 15년 만에 처음으로 2주 휴가를 얻은 친구와 동행해서 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렇게 썼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2005년, 2015년에 이어 2025년까지 10년 주기로 세 번씩이나 그리스를 여행한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처음 여행했을 때에 비해 지나치게 관광지가 돼 버린 산토리니가 생경하긴 했지만 깎아지른 칼데라 절벽에 금빛 폭포수처럼 넘쳐흐르는 석양은 역시나 장관이었다. 스무 살 무렵의 가난한 배낭여행은 이제 하려 해도 할 수 없다. 체력과 용기가 고갈됐기 때문이다. 돈은 좀 들어도 일몰이 아름다운 해안 절벽의 레스토랑에서 차가운 산토리니 와인과 함께 문어와 생선 요리를 먹었다. 일정 내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마시고 싶은 거 다 마셨다. 예전에는 유럽에 가면 부러운 것만 보였다. 중세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거리에는 음악과 예술이 가득하고 거길 걸어 다니는 사람들 얼굴엔 활력과 여유가 넘쳤다. 음식은 맛있고 맥주의 풍미는 그윽했다. 유럽 문학과 미술, 클래식 음악의 아우라에 기가 죽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가 보니 오히려 한국의 좋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껏 열 번쯤 유럽을 여행했는데 20대와 30대 초반에 들끓던 선망이 이제 잔잔해졌다. 경험의 누적과 반복 탓만은 아니다.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나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치안, 위생, 공중도덕, 환경, 경제력, 의료, 대중교통, 서비스업, 시민의식 등은 유럽 대부분 국가를 훨씬 상회한다. 그토록 기가 죽던 문화예술도 꿀리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나라다. 케이팝의 세계적인 인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국립중앙박물관도 있다. 제일 사무치게 감각한 건 음식이다. 예전에는 유럽 음식이 다 맛있었다. 여행 다녀온 후에는 왜 한국에는 유럽 맛을 내는 레스토랑이 없을까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음식이 훨씬 맛있다. 양식에 비해 한식이 맛있다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먹는 유럽 음식이 현지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방문한 도시마다 심사숙고해 레스토랑을 골랐다. 잘한다는 집들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짜거나 달거나, 파스타면에 소스가 배지도 않고, 식은 고기는 질기고, 해산물의 선도도 떨어졌다. 몰타 발레타의 페루 식당에서 먹은 남미음식 ‘상코초’, 바르셀로나에서 먹은 애저구이 ‘코치니요 아사도’와 먹물 빠에야, 아테네에서 먹은 베트남쌀국수 정도가 인상적이고 나머지는 그저 그랬다.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스튜, 스시, 디저트 모두 한국이 더 잘한다. 그러고 보면 세계화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여러 면에서 유럽과 대등하거나 넘어섰다. 유럽의 전통과 근대성을 동경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열심히 학습해서 넘어서고 나아가 한국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따라하다 넘어설까 봐 걱정되는 게 있다. 그리스 국가부도 이후 아테네 경제는 거의 회복됐지만 중심지인 오모니아는 슬럼화되어 재생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번화하던 상점가는 온통 공실이고 젊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거리엔 노숙인, 부랑자, 이민자들로 가득하다. 10년 전 참 활력 넘치고 아름답던 곳이 이제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방문 자제를 권하는 지역이 됐다. 하필 호텔을 그쪽에 잡았는데 대낮 길거리에 널브러진 채 팔에 주사기를 꽂고 마약을 투약하는 중독자들을 계속 마주쳤다. 겉으로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지만 민생 경제는 갈수록 곪아간다. 상점들이 폐업하고 거리에 활기가 없고 청년들의 얼굴은 어둡고 출생률마저 바닥이다. 하물며 여러 어둠의 경로로 마약이 유통돼 여기저기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피자, 파스타 맛있는 걸로 만족하고 싶다. 따라할 걸 따라하자. 오모니아 거리의 살풍경을 서울에서 보고 싶지 않다. /이병철(시인)

2025-08-17

이벤트 정치는 실용정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국정 운영의 철학과 비전의 중심에 언제나 국력의 원천인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국민 임명식’이라는 행사에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편지’에 담은 내용이다. 너무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형식과 의미가 무엇인지 뜨악하다. 이 대통령의 이날 광복절 기념사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그는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정치가 꼭 그 상태다. 그는 이어서 “분열과 배제의 어두운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바꿀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꼭 필요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매우 실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대통령이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배경도 이념적 동지의 틀에 묶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그의 이 제안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날 그가 남북 관계에 대해 지적한 말대로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행동’을 믿기에는 아직 신뢰가 부족하다. 특히 취임 초기 그의 인사는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국민임명식도 실용과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다. 어디에도 그것을 뛰어넘을 의미는 없다. 그런 점에서도 이날 행사를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떠오르는 게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다. 그는 자칭 황제가 됐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비오 7세 교황까지 참석시켰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왕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빌렸고, 대관식을 통해 교회와 귀족들의 복종을 받아내려 했다. 황제는 이미 절대자지만, 정통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절대권력에 대한 찬가를 듣고 싶었던 셈이다. 이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대통령이 되었다. 과반에는 미치지 못해도 49.42%, 1728만7513표를 얻었다. 그 표보다 엄중한 임명장이 어디 있겠나. 선거 과정을 통해 공약으로 국민에게 약속도 했다. 그런데 굳이 왜 ‘국민임명식’이라는 이벤트를 벌인 걸까. 문재인 정부야말로 이벤트에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많았다. 재임 중에만 그런 게 아니다. 퇴임 후엔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을 살겠다”라던 그는 정반대 행보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벤트는 ‘실용’과 거리가 멀다. 그는 “그 모든 미래의 중심에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벤트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 대통령이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한 행사다. 임명장을 80장씩 받은 것도 이 대통령이다. 80명의 ‘국민 대표’는 나폴레옹 대관식에 참석한 교황과 귀족들처럼 들러리일 뿐이다. 유신독재 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처럼 선거했지만, 국회의원이 아니다. 소속 정당도 없다. 대통령을 반대하는 대의원 후보는 나설 수도 없었다. 미국의 대의원과 비슷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무효표 몇 표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 사람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15일 참석한 국민의 대표는 다양하게 선발했다. 그렇지만 정색하고 국민 대표라고 할 것도 아니고, 거창하게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줄 대표성도 없다. 결국 이벤트, 보여주기 쇼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국민의 대표는 국회의원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국회라도 국민의 대표는 국회다. 흔히 독재자는 정치적 파트너인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직접 상대한다. 국회의 대표성을 무시하고,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적 권위,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정통성을 나누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이벤트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답지 않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17

한 톨의 쌀에서 미래를 보다-농업대전환의 길

지난 4월 일본 니가타현을 찾았다. 세계적인 브랜드 쌀 ‘고시히카리’를 직접 마주한 순간, 나는 농업이 단순한 재배를 넘어 철학과 문화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쌀 한 톨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네 차례의 검사를 거친다. 정성 어린 포장을 통해 소비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농부는 장인으로 존중받는다. 그 현장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칠곡의 농업도 이제 그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선명해졌다. 현실은 냉혹하다. 기후는 달라지고, 농촌은 늙어가며, 젊은이들은 떠난다. “이대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희망은 방향에서 온다. 그래서 우리는 농업대전환의 길을 차근차근 열어가려 한다. 먼저 쌀부터 바꾸려 한다. 왜관·북삼·동명에 프리미엄 쌀 단지를 조성하고, 생산에서 포장까지 전 과정을 새롭게 설계할 계획이다. 1인 가구 시대에 맞춘 소포장과 진공포장을 도입해 신선도를 오래 지켜낼 것이다. 직거래 접점도 넓혀 농산물에 ‘칠곡’이라는 이름값을 더해 갈 것이다. 목표는 쌀을 단순한 먹거리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지역 브랜드로 키우는 일이다. 대전환은 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참외·고추·딸기 등 주요 품목 전반을 함께 끌어올릴 계획이다. 값싼 물량 경쟁의 시대에서 벗어나, 고품질과 특화로 승부해야 한다. 많이가 아니라 잘하는 농업, 흔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농업, 값싼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농업이 우리가 지향할 길이다. 생산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고령화된 현장에서 노동력만으로 버티기는 어렵다. 수경재배와 수직재배를 도입해 서서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드론 방제를 확대해 작업의 정확도를 높이고 농약 사용량을 줄이겠다. 땀과 근력만이 아니라 기술과 데이터가 함께하는 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농민의 삶을 지키는 길이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는 길이다. 가공과 유통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저급과 참외를 활용한 비건가죽은 ‘버리는 것을 벌이가 되게 하자’는 생각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유주방을 통해 농민의 소규모 식품 창업을 돕고, ‘퍼뜩시장’ 같은 판로를 넓혀 소비자와 더 가깝게 만나겠다. 아파트 단지, 고속도로 휴게소, 도심 광장에서 만나는 직판장은 신선함과 신뢰를 동시에 전하는 창구가 될 것이다. 농업은 이제 재배를 넘어 체험과 문화가 결합한 6차 산업으로 확장될 것이다. 안전은 농업의 뿌리다. 농업인이 직접 참여한 안전교육 뮤지컬 ‘농터맨’ 같은 시도를 더 발전시켜, 교육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보완해 나가겠다. 안전이 확보될 때 지속 가능성도 단단해진다. 환경 역시 미래를 가르는 과제다. 유용미생물배양센터를 통해 친환경 농법 보급을 넓히겠다. 영농부산물은 파쇄·재활용해 미세먼지와 산불 위험을 낮추겠다. 농약과 소각에 의존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가는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아이들에게 깨끗한 미래를 물려주는 길이다. 농업대전환은 곧 농민의 삶의 대전환이기도 하다. 기술이 들어오면 허리는 덜 굽히고도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 판로가 넓어지면 농민의 소득이 안정되고, 자부심도 커진다. 변화는 결국 사람에게서 완성된다. 농민이 존중받을 때 농업도 지속된다. 앞으로는 청년들이 다시 농촌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팜과 데이터 농업은 젊은 세대가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농업이 힘들고 낡은 산업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때, 농촌은 다시 활력을 찾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다. 농업이 흔들리면 농촌이 무너지고, 농촌이 사라지면 우리의 삶터도 함께 위태로워진다. 지금이 변화의 적기다. 앞으로의 농업은 데이터와 기술로 정밀하게 관리되고, 가공과 유통으로 가치가 확장되며, 문화와 체험이 더해지는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그 방향을 분명히 바라보고, 현실적인 걸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 길을 군민과 함께 열어가겠다. /김재욱 칠곡군수

2025-08-17

강릉가는 열차에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태화강 역에서 강릉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서울과 세종, 천안 등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강릉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4시간 이상 가야하는 것보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과 해변을 끼고 달릴 기차의 운치에 대한 기대가 마음을 흔들었다. 작년 12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 기차는 좌석 간의 거리도 넓고 쾌적했다. 여행의 기대치가 올라가고 있었다. 서너 명의 중년 남녀가 열차에 올랐다. 친숙한 사이인지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전 10시 경 출발해 오후 2시 넘어 도착하니 다들 점심이 걱정인가 보다. 서로 음식을 갖고 왔냐고 물으며 커피와 과일을 나눈다. 정겹다. SRT와 KTX의 도입은 시간의 단축과 함께 열차 안의 풍경을 바꾸었다. 거기에 코로나는 그 모습을 더욱 빠르게 정착시켰다. 그 시기에는 기차 안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기에 숨죽인 침묵이 자리했었다. 자거나 휴대폰을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열차에서 음식을 섭취해도 된다고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문화에 젖어들었다. 기차 안에서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가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조용히 앉아 옆의 사람과는 눈길조차 주고 받지 않은 채 휴대폰에만 눈길을 주거나 눈감고 자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었다.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가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이며 문화인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바뀐 풍속도가 그 때까지 마음에 든 것도 사실이었다. 강릉 가는 열차도 ktx-이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긴 시간의 여행이어선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승무원도 조용히 하라고 제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옆의 모르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권하는 소리도 들렸다. 어린 시절 가끔 탔던 열차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김밥을 싸오고 삶은 달걀과 사이다, 과일을 먹으며 가족들, 친구들과 담화를 나누던 그 시절의 기차 안 풍경을 조금 나이 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긴 시간의 여행에 그런 것은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열차는 계속 푸른 풍경을 뒤로 보내며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아쉬움에 생각은 과거로 흘러간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던 ‘배우며 생각하며’라는 책이 생각났다. 사고의 확장을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서 초등학생들과 토론하기에 좋은 교재였다. 그 중에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문명인들이 먼 오지의 원주민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과 시설을 보며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가져다주었다.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원주민들의 생각은 중요치 않았다. 기계를 사용하면 원주민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문명의 발달이 문화의 발달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문명인들의 삶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강릉 가는 차안에서 서로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모습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앗이와 두레로 서로의 품을 나누고 정을 쌓던 것이 우리였는데···. 조금은 수선스러워도 그 안에 넘치는 정이 담겨 있는 그 모습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정담을 나누며 가는 것이 비문화인의 모습은 아니니까.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옆모습을 처음으로 가만히 쳐다본다. 점심을 전혀 먹지 않던데. 가지고 있던 샌드위치라도 나눌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쑥스러움이 손길을 눌렀다. 정동진이 가까워오니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들과 옆자리의 아저씨가 내릴 준비를 한다. 그들의 여행이 따뜻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다음엔 샌드위치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나기를 또한 바라본다. 정동진을 지난 열차 차창 밖으로 동해의 바다가 비로소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이번 역이 이 열차의 마지막 종착지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도착해서 강릉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8-17

바가지요금, 이제는 그만

여수와 울릉도에서 관광객에 대한 불친절과 바가지요금 문제가 일어났다. 그전부터 언론에 바가지요금 문제가 오르더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휴가철이 되니 뉴스에 단골 메뉴처럼 오른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바가지요금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 건데, 왜 이런 문제는 고쳐지지 않고 계속 일어날까. 속초에서도 오징어 두 마리를 5만6000원에 사고, 식당에서 추가 주문에 시달려야 했다는 게시글이 속초시청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 이것은 어디 야수나 울릉도, 속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가지요금을 주고도 속으로만 삭이고 넘어간 관광객이 더 많을 것이다. 일 년을 별러 온 여름휴가인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국인이 이러한 데 외국인은 어떠할까. 한국관광공사가 받은 2024년 관광 불편 신고를 보면 1위는 쇼핑(306건)이었고 2위는 택시(158건)였다. 택시 관련 불편 사항은 부당요금 징수와 운전사 불친절 등이 문제였다. 유명 유튜버 빠니보틀이 어느 나라건 택시 기사는 믿지 않는다는 말이 공연히 나온 말이 아니다. 서울역 인근 쉐라톤 호텔에서 크라운 파크 서울까지 택시를 이용한 한 외국인 관광객이 1.5km 구간을 이동한 요금으로 2만4000원을 지불했다. 택시 기사는 바가지요금을 받을 생각을 했는지 미터기도 켜지 않은 채 운행하며 8100원 정도의 정상적인 요금보다 세 배 정도의 바가지요금을 받았다. 지자체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캠페인을 한다. 대전시는 ‘2025 대전 0시 축제’ 개막에 맞추어 바가지요금을 없애기 위한 민관합동 캠페인을 펼쳤다. 이는 대전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전국의 지자체마다 행사를 앞두고 사전에 지역민을 상대로 바가지요금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행안부는 바가지요금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없애기 위해 ‘휴가철 물가안정 특별대책 기간‘을 정하고, 민관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이러한 노력에도 바가지요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한 철 장사라는 생각에 눈이 멀어 관광객과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며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다. ’백 명의 사람이 한번 오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오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요즈음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손님이 당한 억울한 마음은 금방 인터넷을 타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 퍼져나간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눈앞의 이득보다 적정한 이윤을 보며 오래도록 유지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선행을 베풀어 뜻하지 않은 대박을 낸 사장님들의 기사가 오른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사장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행복한 이런 길을 왜 마다할까.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고 남들에게도 욕을 먹는 일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한 대가로 돈을 벌고 밥을 먹는데 그 입속으로 다른 사람의 원망이 섞여 들어간다면 기분이 어떨까. 자신과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밥이 손님들의 고마움이 함께하면 좋겠다. 인터넷을 달구진 않더라도 선한 영향력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장님이 되는 건 어떨까. 누구에게나 당당한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김규인 수필가

2025-08-17

누가 배터리를 바꿔줄까?

10년 전 아버지가 혼자 사실 때 가장 힘들어한 것이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었다. 파킨슨 병으로 14년 간 투병하시는 엄마 간병의 고통보다 대화 상대가 없는 외로움의 고통이 더 힘들다고 호소하셨다. 자식들이 자주 가고 요양보호사도 세 시간씩 방문하지만 24시간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도 자식들과 같이 사는 것은 한사코 거부하시다가 결국 엄마가 돌아가신 후 7개월만에 아버지도 엄마를 따라가셨다. 외로움은 노인의 심신 건강에 이렇게 치명적이다. 만약 그때 돌봄 로봇이 있었다면 아버지의 외로움은 줄어들었을까? 2024년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아기처럼 생긴 AI 로봇을 개발했다. 영상을 보니, 이 로봇이 독거노인과 함께 살면서노인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할머니는 효돌이 로봇에게 옷도 만들어 입히거나 장신구도 달아주고 안아준다. 효돌이는 할머니에게 약 먹을 시간도 알려주고 애교 있는 말도 해준다. 어떤 할머니는 민희라고 이름 붙인 AI 로봇 덕에 두 달 만에 우울증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2013년 제작된 ‘체인징 배터리’라는 5분짜리 애니메이션에도 돌봄 로봇이 나온다. 이 영상은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아들이 로봇 선물을 보내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할머니가 무언으로 로봇과 교감하면서 기쁨을 되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로봇이 작동을 멈추자 배터리를 갈아주어 살린다.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눈을 뜨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로봇은 자기처럼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배터리를 가져오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할머니가 먼저 죽고 로봇도 결국 배터리를 갈아줄 사람이 없어서 정지한다. 그때 할머니 영혼이 와서 로봇의 손을 잡고 하늘로 같이 간다.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AI 로봇의 유용성과 필요성을 설득하는 영상이다. 그러나 효돌이든 애니메이션의 로봇이든 이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외로움 극복에 실제 도움 될지 아직은 실감 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6월에 나온 뉴스를 보니 2029년이 되면 전 세계 돌봄 로봇 시장은 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1999년에 처음 개발된 돌봄 로봇이 2010년대까지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돌봄 로봇의 수요가 급성장한 것이다. 일본은 올해 3월 와세다대 연구진이 요양 환자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예방하는 등 실제 돌봄 인력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돌봄 로봇 ‘AIREC’를 개발했고 보험 지원도 해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효돌이 판매를 검색해보니, 현재 9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이고 복지 혜택을 받으면 28만 원 정도다. 이렇게 돌봄이 기계로 대체되는 추세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일지는 의문이 든다. 올해 말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출시될 가정용 로봇 ‘볼리’와 ‘Q9’는 기계처럼 생겨서 효돌이만큼 교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아버지가 생전에 효돌이가 있었다 해도 외로움은 해소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도 필요하고 약간의 갈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17

무궁화 꽃의 품격

국민 대다수가 무궁화 꽃을 우리나라의 국화인 줄로 알고 있지만 이것이 법적으로 공인된 근거는 없다. 국민정서상 무궁화를 국민 모두가 국화(國花)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해온 것은 기록상으로 2000년이 넘는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시대 이전부터 하늘의 꽃으로 불리며 귀하게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는 무궁화 나라라는 뜻의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다고 한다. 무궁화를 국화로 하기 위한 법 제정 작업은 19대 국회부터 20대, 21대에 걸쳐 여러 번 시도가 있었지만 법 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8월 8일을 무궁화의 날로 정해 부르고 있지만 이는 민간단체에 의해 제정된 날이지 국가 지정 기념일은 아니다. 무궁화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국화 지정이 안 된 때문이라는 분석도 한다.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님이 작곡했다. 그러나 애국가 가사 말의 작사자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안익태는 일제 강점기 때 애국가 가사 말이 스코틀랜드 민요 곡에 붙여 불려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작곡을 했다고 한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이 곡에 붙여 널리 불리게 되자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꽃으로 더욱 공고히 자리를 잡게 됐다. 무궁화 꽃은 법적 지위가 없음에도 공무원의 임명장과 국회의원 배지, 사법부의 법복, 우리나라 최고훈장(무궁화대훈장)에도 쓰이는 등 국가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민족의 꽃이란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민족의 꽃인 줄 알지만 늦었지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후속조치가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가 딱 어울린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7

‘광복 80주년’을 맞으며

찌는 듯한 무더위와 날 선 칼날처럼 쏟아지는 폭우가 반복되는 대단한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장마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다. 이런 여름이 앞으로도 계속되고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형편이다. 살아있는 거대 유기체 지구가 내지르는 고통의 소리를 더욱 확대하는 최악의 생명체가 인류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하기 어렵다. 2025년 8월 15일 아침도 매우 무덥고 습하다. 하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태극기를 들고 나가 대문에 게양한다. 산들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태극기가 산뜻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나는 태극기 게양에 인색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와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을 기억하면서 아픈 마음의 조기(弔旗)를 다는 것에 한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오전 빛나는 태양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내걸린 태극기는 얼마나 아름답고 당당한가?! 국기에 담긴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과 가슴 아픈 날을 온 국민이 함께 돌아보고 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소중한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 운명체의 구성원이란 명징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에는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슬픔과 절망으로 점철된 사건이 훨씬 많았다. 해마다 4월과 5월이면 교정을 물들이던 최루탄의 하얀 비말(飛沫)과 눈물로 범벅된 선후배들의 얼굴이 오늘도 삼삼하게 떠오른다. 유난히 행복하고 건강해야 할 20대의 10년 세월을 한숨과 탄식, 절망과 우울로 보내야 했던 세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이런 정황은 최근 몇 년 동안 달라진다.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한국 문화의 힘이 바탕이 되어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와 춤, 드라마와 노래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의 정점을 찍은 것은 2024년 12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진정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대 사변(事變)이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언제부턴가 나는 ‘국뽕’에 취하기 시작했다. 나이 서른에 서독일로 유학 나갔다가 경험한 쓰라린 통증이 시나브로 해소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혐오와 멸시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셈이다. 무엇인가 많이 부족하고, 창피하고, 당당하지 못한 한국 사회가 어느 날 문득 선진 사회로 진입했다는 뿌듯한 감동! 나의 ‘국뽕’을 완전히 날려버린 참혹한 비상계엄과 엄중한 내란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면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80주년 광복절을 맞이하고 있다. 내란 세력의 근본적이고 조속한 척결과 건강하고 행복한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국민의 열망이 합쳐지고 있다. 하나둘씩 밝혀지는 계엄과 내란의 본질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생각한다. 이승만의 부당한 ‘반민특위’ 해체로 흐려진 민족정기를 이참에 완벽하게 다시 세움으로써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의 미래를 광명으로 빛나게 해야 할 일이다. 이 땅에 더는 계엄과 내란이 없는, 자유-평등-형제애가 넘치는 대한민국 건설이 광복 80주년의 가슴 벅찬 교훈일 것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17

나는 두 항구 사이를 걸었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물 위에 줄지어 앉아 있는 수많은 요트와 어선이 차가운 지중해 바람을 따라 출렁거렸다. 마르세유는 그리스인이 세운 도시로 그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로의 관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새 지평을 열고자 희망에 부풀었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를 걸었다. 부두를 걷다 보니, 마르세유의 대표적 상징 조형물인 파빌리온이 나왔다. 거대한 거울 지붕 구조로, 도시의 하늘을 반사하고 사람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움직이는 풍경화’로 유명한 공간이었다. 나는 주변 풍경이 빛과 어우러져 거울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건너편 마르세유 광장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흘러와 눈송이처럼 내 어깨 위로 내려앉고 사람들의 노래가 축복처럼 광장을 맴돌았다. 나는 화려한 조명 불빛이 도시를 감싸 안은 그 순간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다. 해마다 겨울이 돌아오면 마르세유 광장에서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언덕 위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보였다. 어부들의 수호성인에게 바치는 기도처였다. 거센 파도 앞에서 두 손 모아 기원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같았으리라. 뱃사람들은 고깃배의 안전과 만선의 꿈, 무사히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한다. 그것은 바다를 향한 간절한 기도이자, 가족과의 약속이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을 떠올렸다. 동빈내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과 갈매기 울음, 생선 비린내에 묻은 소금기, 죽도시장 상인들의 입담이 들려오는 듯해 마르세유 구 항구가 낯설지 않았다. 나는 분명 처음으로 프랑스 땅을 걷고 있는데, 동빈내항의 시간과 냄새가 뒤따라오고 있어 정겨웠다.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들을 받아들였다. 북아프리카 지역과 유럽의 피난민들이 건너와 발자국을 겹겹이 남겼다. 그래서인지 골목길에 머무르고 있으니, 어디선가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즐겨먹는 쿠스쿠스 냄새가 풍기고 아랍어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항구는 이방인들에게 처음은 낯선 곳이었지만, 결국에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생활의 뿌리를 내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세월이 흐르고 언어가 섞이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마르세유는 하나의 얼굴이 아닌 다채로운 얼굴로 살아가는 도시가 되었다. 포항과 마르세유는 닮은 듯했다. 동빈내항은 한국전쟁 직후 바다를 의지해 살아야 했던 이들의 출발점이었다. 그때는 항구가 곧 생존이었다. 마르세유처럼 동빈내항도 고단한 삶의 이주자들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흘러 포항종합제철을 중심으로 생계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이 정착했다. 용광로는 노동자를 불러 모았고 그의 가족들은 동빈내항 주변에서 생활했다. 고향 사람과 타 도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억양과 습관이 모여 지금의 포항이 형성되었다. 본토박이들은 타지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모두 끌어안으며 제 몸처럼 품었다. 사물의 이치는 한결같으리라. 바다는 경계를 가르지 않고 흘러들어온 강물과 뒤섞여 움직인다. 이처럼 항구 도시는 항해자들을 수용하고 포용하며 마음을 연다. 마르세유와 포항이 외지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것처럼, 앞으로도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삶의 결을 어루만지는 노력이 끊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공동체란 벽을 두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함께 살아갈 집의 새로운 지붕을 같이 짓는 일이다. 지역에서 오래 뿌리내린 현지인과 이주민이 각자 개성이 넘치는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어우렁더우렁 공존하는 길을 모색한다면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성싶다. 그것이 항구를 품은 도시의 진정한 삶일 것이다. 바다는 항해하는 자들을 데려가고 다시 데려온다. 마르세유의 짙푸른 바닷바람을 느끼며 동빈내항으로 돌아올 날을 생각했다. 두 항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 둘 사이를 걸었다. 내 발걸음마다 그리움의 흔적을 남겼다. /정미영 수필가

2025-08-13

명상과 침치료 뇌파를 바꾼다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한 불면, 불안, 두근거림, 소화 장애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히 이상하다. 병원 검사를 해도 별다른 문제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상들 대부분은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이 자율신경의 흐름과 장부의 기능 정서의 상태까지 함께 고려해서 접근하고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뉜다. 교감신경은 긴장, 각성, 활동을 담당하고 부교감신경은 이완, 회복, 수면, 소화 등을 담당한다.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계속되는 자극과 정보 속에 살기 때문에 교감신경이 늘 흥분된 상태에 놓이기 쉽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만성 피로,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불안, 집중력 저하 같은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단순히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뇌파를 긴장 상태인 베타파에서 이완 상태인 알파파나 세타파로 유도해주는 강력한 도구다. 호흡을 천천히 고르게 하면서 감각을 내면으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신경계는 반응하기 시작한다. 심박수와 혈압이 낮아지고 몸 전체가 회복 모드로 전환된다. 뇌에서는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흥분이 줄어들고 전두엽의 조절 기능이 살아나면서 감정이 안정된다. 하지만 명상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몸에 긴장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명상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앉아 있으려 해도 초조하고, 잡념이 끊이지 않는다. 이럴 때 한방치료 특히 자율신경에 직접 자극을 하는 약침치료가 자율신경 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 성상신경이나 미주신경 익구개 신경절에 있는 혈자리를 약침으로 자극하면 뇌와 장기 사이의 긴장된 신경 회로가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한다. 약침을 맞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거나 긴장된 게 풀리면서 잠이 스르륵 오기도 한다. 이건 부교감신경이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여기에 더해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는 한약을 병행하면 치료의 지속성과 깊이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처방들에 들어가는 약재들은 복령, 시호, 치자, 황련 등이 있고, 이들 한약은 심장과 간 신장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몸 안의 기혈 흐름을 부드럽게 하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높여준다. 단순히 불안함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원인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명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훌륭한 자기치유법이지만 몸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명상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이럴 땐 억지로 혼자 해보려 애쓰기보다 우선 간단한 걷기나 운동 혹은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이완시킨 후 명상에 드는 것이 좋다. 5분 10분 천천히 명상의 시간을 늘려 나가면 된다. 만약 안정이 안된다면 한약과 약침으로 몸의 긴장을 먼저 풀어주는 게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명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깊은 이완과 집중의 상태는 한방치료와 함께할 때 더 안정적으로 더 깊게 접근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8-13

방학을 방학답게!

평소 손주들의 하교를 친외할머니가 번갈아 가면서 도왔다. 정한 시간에 학교 돌봄교실에 가서 애들을 마중하고, 약간의 간식을 먹이며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방학이 되면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종일 집에서 돌봐주고 애들은 방학 내내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돌봄교실에 보낼 수밖에 없다. 3학년인 손자는 그렇게 2년, 4번의 방학을 보냈다. 방학이 되어도 학교엘 가야 하니 이게 무슨 방학이야 툴툴 볼멘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안쓰러워 영화관엘 데려가는 일탈을 감행하면 그렇게나 좋아했다. 7월,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며느리는 아이들의 방학 중 스케줄을 짜느라 몇 날 며칠 골머리를 앓는 것 같았다. 도리없이 돌봄교실과 방과 후 수업을 선택할 것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학원 순례. 손주들은 올 여름방학을 또 그렇게 보낼 게 뻔했다. 이번엔 내가 며칠을 고민한 후 통 큰 결단을 해 아들 내외에게 알렸다. 이번 방학엔 애들에게 방학을 방학답게 누리게 해주자. 돌봄교실도 방과 후 수업도 신청하지 말고 다니던 학원도 최소화해라. 예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 시골 외갓집, 이모집에 가서 한여름을 보냈듯이, 아예 할머니집에서 방학을 지내도록 해보자. 꼭 다녀야 할 학원은 직접 데려다줄게. 의외로 선선히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평소 세 군데 학원을 한 곳으로 줄이는 용단도 내렸다. 난 나대로 애들과 함께 할 방학 버킷리스트를 열심히 짰다. ‘동굴 탐험’, ‘고양이 카페가기’, ‘선비체험’, ‘미술관 가기’, ‘마술 배우기’, ‘대구시티투어버스 타기’ 등등.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어느 날 밤 두 아이가 짐을 잔뜩 챙겨들고 예고없이 들이닥쳤다. 그렇게 아이들의 할머니집 방학살이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도 방학 중 버킷리스트를 메모해보라고 했다. 손자는 ‘시내 가서 놀기’, ‘음식 만들어 먹기’, ‘그냥 책읽기’, ‘매미잡기’, ‘할머니와 글씨연습’, ‘놀기 놀기 놀기’. 손녀는 ‘바다에 가서 해뜨는 모습 보며 높이뛰기’, ‘아지트 만들기’, ‘딱 하루 뒹굴거리기’. 방학 중 하루 일과표도 셋이 머리 맞대고 같이 짰다. 7시 반에 일어나고, 8시에 아침 먹고, 11시에 EBS 보기, 9시 반에 자기. 그리고 하루 한 시간 정도 공부 시간을 상의하고 정했다. 그 이외의 시간은 맘대로 하라고 했더니 ‘놀기 놀기 놀기’로 도배를 했다. 그래 그래 그러자. 방학이잖아... 크게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두었다. 방학이 두 주나 지났다. 그 사이 스파게티와 또띠야피자를 만들어 먹었고, 뒷방은 아지트로 내줬다. 고양이카페에도 가봤다. 지난 토요일엔 벌레잡기를 대신해 예천곤충체험관엘 다녀왔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 마술사와 약속을 잡아, 오늘 카페에서 두 시간 남짓 마술을 보고 배웠다. 집에 오자마자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마술쇼를 펼치고, 손녀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기부터 썼다. 이렇게 버킷리스트는 하나씩 체크되는데, 하루일과표는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침엔 늦잠이 일쑤고, 놀기 시간이 아니어도 놀고 공부시간에도 논다. 뭐 어때 봐 준다. 방학이니까…. 손자는 할아버지와 한 침대에서, 손녀는 내 품에 안겨서 잠드는 행복은 덤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8-13

조국의 사면과 무너진 공정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조국 전 법무장관의 사면이 최근 결정됐다.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서다. 실망스럽다. 조국 전 장관은 의사가 될 역량을 가지지 못한 딸을 각종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의사가 될 자격을 갖춰주려 했고,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와 함께 아들 시험의 답안을 대신 써주는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자신이 통치하는 동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다. 조국 씨는 문재인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내각 법무장관을 지냈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름을 의미하는 단어란 걸 초등학생도 안다. 조국 씨의 행위가 공정했나? 대답은 뻔하다. 그럼에도 문재인 씨는 자신을 찾아온 이재명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조국을 사면해 달라” 요청했다. 한심하다. 오죽했으면 민청학련 출신의 노정객 유인태 씨가 “참으로 염치없다”며 핀잔했을까. 조국 전 장관의 사면에 찬성하는 이들은 말한다.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검찰권이 남용됐고, 전수 조사를 하면 조국 정도의 편법과 불법을 사용해 자식을 조력한 장관과 국회의원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기간을 한정하지 않고, 의심 가는 행적을 보인 전·현직 장관과 국회의원을 모두 조사한 후 재판에 넘겨 저지른 죄만큼 벌을 주면 될 일이다. 그런 걸 하라고 검사가 있고, 경찰이 있는 것 아닌가.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고 이런저런 사정까지 봐줘가며 죄 지은 자를 대통령 맘대로 풀어주는 것. 잘못 사용된 사면권은 시민의 피로 애써 만들어낸 ‘법에 의한 통치’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위가 아닐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13

갑을문화 소멸선언

모두 ‘갑을관계’에 익숙하다. 모든 업무에서 갑은 언제나 상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을은 그에 종속된다. 위계적 구조는 민간기업 사이에서 그치지 않고, 공공영역과 나아가 조직 내부의 관계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직위, 연령, 경력, 출신 배경 등 외형적인 요소가 갑과 을을 규정하며 그에 따라 업무 관계가 형성된다. 갑을 구분은 전문성이나 성실성 등 본질적 기준보다 앞서 작동한다. 파면된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도 한 장면이 포착됐다. 피의자 측이 경찰의 신문은 거부하고 특별검사가 직접 신문하길 요구했다. ‘검찰은 갑, 경찰은 을’이라는 인식이 작동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공권력 조직 안에서 상하관계로 계급화된 문화는 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한다. 갑을관계가 작동하는 조직에서 의사결정의 흐름은 비논리적으로 흐른다. 갑이 내리는 지시나 요구는 을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기대하고 업무구조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을 억압한다. 을이 실질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가졌더라도 감히 갑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정책이든 사업이든 수준높은 전문적 논의와 협력이 이뤄지기 어렵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구성원의 역량과 전문성을 경시하게 만든다.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면서 조직 전체의 사기는 자연히 떨어진다. 상사의 말 한마디가 절대적 기준이 되는 환경에서는 역량보다 눈치와 충성이 더 중요하다. 실적과 성과보다는 줄을 잘 서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 된다. 유능한 사람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관성과 위계에 길들여진 조직의 풍경만 남는다. 갑을위계는 스트레스의 원인이기도 하다. 상호 신뢰보다는 억압과 불신이 조직을 지배한다.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눈치를 보며 경쟁하게 되며 건강한 조직문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내부의 역학은 갈등으로 점차 무거워지고 고스란히 조직전체의 비효율로 되돌아온다. 갑을문화가 업무적 관계를 규정하면 누구의 기여가 어떻게 평가되는지도 모호해진다. 공정한 보상과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정한 리더십도 자리잡지 못한다. 갑을풍토에서 유능한 인재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어 조직은 지속적으로 활력을 잃는다. 사회는 갑을로 돌아가지 않는다.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 서로를 존중하는 협력시스템과 전문성을 기초로 하는 효율적 판단이 중요하다.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걌다. 그럼에도 우리의 업무환경은 갑을관계를 문화적 기초로 삼는다. 바꿔야 할 것은 사람보다 시스템이다. 직위나 지위, 배경이나 학벌이 아니라 전문성과 성실성에 기반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평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적절하게 존중받는 업무환경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정부든 기업이든 업무조직 내외부 어디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당신에게 을이었던 상대방은, 당신은 여러 여건상 할 수 없는 그 일에 최선을 던지는 전문인이 아닌가. 조직의 성격이 무엇이든 조직의 위치와 상관없이 구성원 모두의 자리에서 최상의 역량이 최고의 수준으로 발휘될 때, 관련된 조직들의 역량이 살아나고 전문성이 빛을 발할 터이다. 갑을문화는 사라져야 할 구태 중의 구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8-13

철강 산업을 다시 세우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역할

1970년대 영일만 바닷가에 세워진 포항종합제철(포스코)과 포항철강산업단지는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우리나라 산업화의 산실이다. 특히 포항철강산단은 정부의 공업 입국 정책에 따라 포항제철의 태동과 함께 연관 산업을 유치하고 철강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국내 최초의 지방공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국가 경제 도약의 발판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우리 선배들과 동료들의 피땀으로 일군 포항의 철강 산업은 반세기 수많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국가 산업화를 견인한 자부심과 혼이 깃들어 있다. 포항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은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전후방 산업의 소재로, 오늘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한민국 제조업의 토대가 됐다. 그러한 포항의 철강 산업이 지금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산 저가공세, 산업용 전기료 인상, 미국의 고율 관세 등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 내 철강업체 상당수가 가동을 멈췄고, 공장 문을 닫은 기업도 늘고 있다. 대기업조차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중소업체들은 중대한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로 인한 고용 감소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 경제는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졌다. 산업 일터와 골목상권 등 생계 현장에서는 ‘IMF 때보다도 더욱 힘들다’며 전례 없는 위기로 인해 지역 전체가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의 위기는 개별 기업이나 특정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다. 따라서 지역의 산업계와 포항시, 유관 기관단체들은 뜻을 모아 정부 차원의 종합 지원을 담은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즉각 지정해줄 것을 지속 호소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부의 보조금과 재정지원, 전기료 인하, 탄소 감축 설비투자 지원,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연구개발 지원 등 실효성 있고 폭넓은 지원책 마련도 촉구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국회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얼마나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철강 산업의 기반 자체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냉혹한 현실의 경고음이 울리는 사이, 여당은 ‘노란봉투법’ 통과를 외치고, 야당은 이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시간을 끌고자 한다. 법안 하나를 두고 정쟁을 반복하는 동안, 산업을 되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정쟁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입법과 정책 대응이다. 우선 철강품목 고율관세(50%) 유지에 따른 대미수출 철강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여야가 모처럼 공동 발의한‘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제정이 급박한 상황이다. 동시에 산업용 전기료 인하, 금융·세제 지원, 기업 구조조정의 고용 연계 책임 강화 등 실질적인 방안 또한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기업 역시 책임 있는 경영으로 위기에 처한 지역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철강 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포항만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가 무너지는 신호탄이며,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정부와 국회는 현실을 엄중히 직시하고 벼랑 끝에 선 철강 산업을 지킬 책임을 다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다시 한 번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철강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 세계적인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특단의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 /전익현 포항철강산업단지 관리공단 이사장

2025-08-12

금단

올여름 내 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신호를 보냈다.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밤이면 눈꺼풀이 무거워져도 잠이 오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는 순간마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작은 종이 울렸다. 병원 진료를 받으니 의사는 ‘자율신경계 불균형’이라고 했다. 교감 신경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마치 경계 태세를 풀지 못하는 병사 같다고 설명했다. 평생 괜찮다며 달려오던 몸이 이제는 더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은밀하지만 단호하게 경고한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내렸던 결정은 커피와의 이별이었다. 아침마다 주방에 들어서면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물줄기 위로 피어오르는 향기는 하루를 여는 기지개였다. 검은 물결 속에 흩어지는 갈색 거품을 바라보는 그 몇 초는, 나만의 고요한 의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의식을 중단해야 했다. 한 모금만 마셔도 심장이 두 배 속도로 뛰었고 숨이 가빠졌다. 아무리 ‘마임드 콘트롤’을 해 보아도 자의적으로 조절이 되지 않았다. 의사도 커피는 안 되겠다고 했다. 오래된 친구를 문밖으로 내모는 것만큼 서글픔이 밀려왔다. 커피 없는 아침은 텅 비어 있었다. 몸은 불안했고 마음은 허전했다. 마트 진열대에 놓인 원두봉지들이 풍기는 향은 마치 나를 시험하는 유혹 같았다. 텀블러 속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끝이 근질거렸다. 나의 커피 습관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었다. 늘 바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기폭제였고 위로였다. 그것이 사라지자 몸뿐 아니라 마음에서도 금단현상이 찾아왔다. 그러다 문뜩 깨달았다. 커피만이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놓아왔다. 결혼 후 혼자만의 여행은 먼 꿈이 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책 한권 여유롭게 읽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좋아하던 피아노 건반을 만져본 지는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하다. 합창단의 단원으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러본지는 손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로 가물하다. 어느날 친구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듣다가 잊고 있었던 손끝의 설렘이 되살아났다. 그 순간 깨달았다. 커피처럼, 삶은 나에게서 많은 것을 조금씩 떼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놓음의 이유는 다양했다. 커피를 놓은 건 건강을 위한 나의 결정이었지만 다른 많은 놓음들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상황이, 책임이, 혹은 나이 듦이 조용히 빼앗아 간 것들이었다. 피아노, 책, 느긋한 저녁 산책···. 그것들은 내 의지가 아닌 삶의 흐름에 휩쓸려 떠나간 것들이었다. 그 부재 앞에서 느끼는 허전함과 초조함은, 커피 금단이 주는 감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금단은 불편하다. 몸과 마음이 저항하고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만 피어나는 가능성도 있다. 커피 대신 나는 허브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맛 같아 밋밋했지만 어느 순간 레몬밤과 케모마일 향이 은근히 스며드는 걸 느꼈다. 피아노 대신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오래된 나의 목소리를 다시 찾았다. 몸이 보내온 경고로 나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빈 자리는 빨리 다른 것으로 채워졌다. 여전히 커피향을 맡으면 가슴이 설레지만 나는 안다. 놓는 것이 반드시 잃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금단은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주고 오래 잊고 있던 나를 불러낸다. 오늘도 나는 커피 잔 대신 따뜻한 허브차를 손에 쥔다. 향은 옅지만 그 옅음 속에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창밖을 바라보면 잃어버린 것들이 남긴 빈자리 위로 부드러운 빛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예전의 나는 그 빈자리를 애써 매우려 했고, 매우지 못하면 불안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워진 자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금단은 우리를 잠시 멈춰 세웠다.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난 자리에서 우리는 그동안 지나쳐 온 마음의 결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때로는 그것이 상실의 슬픔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커피를 내려놓으며, 놓는다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 안에서 커피의 자리는 허브차가, 피아노의 자리는 글이, 떠나간 시간의 자리는 다시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언젠가 이마저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때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놓고 다시 채우는 과정 속에서 이어진다. /김경아 작가

2025-08-12

대세르비아주의의 탄생:암흑기 세르비아의 빛

세르비아 민족주의는 민족의 정체성과 세르비아 민족에 대한 단초가 될 만한 요소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스만트루크제국의 압제 4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자의든 타의든 세르비아가 독립을 맞이하면서 세르비아 공국-세르비아왕국을 거쳐 민족이라는 장대한 용어가 사건과 역사와 인물이 조화를 이루어 화려한 부활을 맞는다. 19세기 중엽 수도사인 부크 카라지치(1787~1864)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출발하는가?’ 등 자문자답하며 세르비아인에 대한 미래에 해답을 찾았다. 그는 언어학에 몰두하면서 발칸반도에 한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원대한 꿈을 꾼 인물이다. 그 뒤를 이어 정치가 가라샤닌(1812년~1874년)의 노력으로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는 오랫동안 대세르비아주의 이념에 몰두했다. 그리고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위대한 인물과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세계가 우리(We)와 그들(They)로 규정될 때 가라샤닌을 비롯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역사에서 코소보 전투를 살려냈다. 정의를 내걸었지만, 편향된 애국심이 가슴에 요동쳤고, 권력자 구미를 당겼다. ‘이교도와의 최후의 성전’은 민족주의 발흥에 있어 완벽한 조건을 두루 갖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때부터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이 있다면 세르비아인에게 코소보가 성지로 거듭났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중세 발칸을 호령했던 듀산황제가 거느렸던 영토적 개념이 세르비아뿐이라면 별 문제가 없었다. 타 공화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세르비아인의 국가를 향한 군사적 저항을 정당화해버린다. 이제 더 필요한 것은 없었다. ‘검은 새의 들녘’ 코소보는 세르비아 민족 성지로 거듭났고, 20여 년 남짓 제국을 구축했던 듀산황제는 세르비아인 영원한 황제로, 코소보전투가 벌어졌던 1389년 6월 28일은 성 비투스의 날이자, 영원히 기록되어야 하는 성전의 날로 탄생했다. ‘강자 스테판 듀산!’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에 민족이라는 의기에 요동쳤고, 민족 이상에 상처를 내는 일에는 자동적 분기탱천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잊지 못하듯 세르비아인으로서는 민족주의라는 의기가 가슴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역사적 인물들을 세르비아민족주의의 영원히 빛나는 별로 새겨 넣었다. 그리고 이것이 훗날 살육의 싹이 자라났다. 스테판 듀산이 거느렸던 영역은 세뇌당한 국민 머리에도 반드시 차지해야 할 상징적인 국경선이 되어 버렸다. 20세기에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2차 세계대전에 이어 유고슬라비아 학살전쟁, 더 나아가 20세기 가장 더러운 보스니아전쟁과 코소보 살육전 신념으로 거듭나게 된다. 대세르비아주의라는 망령은 이렇게 해서 창조된 후 도미노처럼 연이은 사건으로 세상을 경악시켰다. 물론 세르비아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극우민족주의 우스타샤 정권이 나치 지원 아래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 35만 명을 학살했던 상처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자신들만 핍박해대니 억울하고 원통할 지경이다. 성지라고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코소보에 이방인들이 들어와 진을 치고 나라를 세웠다며 국제사회에 선언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 금세 다른 물이 채워지듯 네마냐 왕조가 이슬람제국에 멸망한 후 코소보에 살던 일부 세르비아인은 압제를 피해 지금이 수도 베오그라드를 비롯해 노비사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지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떠나고 난 빈집에 오스만제국이 평정한 알바니아계 이슬람이 몰려들어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코소보 땅에 알바니아인이 80% 이상을 차지하면서 자신감이 붙는다. 나아가 자주적 독립 국가를 선언하며 국경을 긋고 세르비아를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국제사회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냉혹하기만 한 국제사회는 먹을 것 없는 코소보에 독립국가가 세워지든 말든, 폭력이 자행되던 말든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러자 알바니아계 민족주의자들은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자민족 희생을 미끼로 걸었다. 코소보 내 세르비아인 경찰을 살해해 의도적인 폭력을 부추겼다. 울고 싶은 놈 뺨을 갈겨준 대가는 혹독했다. 알바니아계 민족주의자가 원하는 대로 세르비아는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를 향한 제노사이드를 감행했다. 알바니아계가 의도한 대로 자민족을 희생양으로 삼아 국제사회 관심을 끄는 것에 성공한다. 나토의 개입이 본격화 되자, 세르비아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민족을 위해서라면 역사를 위조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선동과 폭력이 확산되고, 결국 처참한 상처로만 남는다. 알바니아 내 세르비아인 학대가 일어나며, 몬테네그로 내 알바니아계에 대한 핍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게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에서 살아가는 세르비아인 역시 바늘방석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인간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또한 악랄해질 수 있는지를 실험 중일 것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8-12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능력

‘레몬이 생기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인생이 당신에게 레몬(신맛, 불쾌한 것)을 주면, 그것을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라’라는 의미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생으로부터 레몬을 건네 받으면 단념하고, “어쩔 수 없어, 운명이다. 기회가 없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주위 상황을 탓한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레몬을 건네 받고 ‘이 불행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레몬을 어떻게 레모네이드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불운, 역경, 실패와 마주했을 때 그 상황을 활용해 긍정적이고 유익한 결과로 바꾸라는 뜻이다. 기업에서 보면,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능력’은 여러 분야에서 다르게 불리지만, 본질적으로는 ‘역경 전환 능력’ 또는 ‘전환력(轉換力)’, ‘회복 탄력성’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불리한 상황, 손실, 실패를 오히려 유리한 기회나 성과로 바꾸는 힘이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꾼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뉴욕시 모닝사이드 거리 100번지에 살고 있는 ‘델마 톰슨’이라는 여인은 “세계전쟁 당시 제 남편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모하비 사막 근처의 육군으로 배치되었고, 남편과 함께 지내기 위해 그곳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군사작전으로 출동하여 혼자 남았고, 모래 사막과 선인장만 보이고 50도가 넘는 모하비 사막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삶이 너무도 힘들고 차라리 감옥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는 두 줄로 된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두 사람이 감옥 창살 밖을 내다보았다. 한 사람은 땅의 진흙탕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았다.” 이 단 두 줄의 글이 여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늘의 별을 보기로 마음 먹고, 현재 처한 상황에서 좋은 면을 찾기로 한 것이다. 모하비 사막에 사는 인디언과 멕시코계 사람들과 사귀게 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돈을 주고 산다고 해도 팔지 않았던 모하비 사막의 매력적인 형태의 선인장과 북미 원산의 다년생 관목인 유카(Yucca)를 선물 받았다. 후에 관상용, 조경 식물산업으로 수익 창출이 되었고, 수 만 년 전에 해저였던 사막 모래에 감춰진 조개의 비밀을 연구하고, 그 연구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여인은 유명인이 되었다. 무엇이 이토록 상황을 변화시켰을까? 모하비 사막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인디언도 그대로였다. 단지, 그 여인이 마음의 태도를 바꾼 것뿐이다. 우리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고자 하는 단순한 시도를 통해 뒤가 아닌 앞을 보게 된다. 주어진 상황을 탓하며 부정적이던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것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바빠지도록 자극하여 지나간 일, 끝난 일 때문에 슬퍼할 시간과 마음이 없도록 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얻은 것을 활용하는 것보다 손해를 이익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것이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8-12

넘치는 복을 주시는 박필근 할머니

“복 많이 받으세이~ 젊을 때 마이 노소~ 나도 젊을 때는 날아 댕겼니더.” 오랜만에 뵌 박필근 할머니는 여전히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을 나눠주셨다. 짧은 만남 동안에도 계속해서 “복 받으라”라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미 박필근 할머니로부터 너무도 많은 복을 받아왔다는 것을. 할머니는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늘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복된 말씀을 건네시는 분. 내가 알고 있는 박필근 할머니는 그런 분이다. 8월 초, 숨 막히는 더위 속에 할머니를 다시 찾은 이유는, 싱가포르 매체 스트레이츠 타임즈(The Straits Times) 에서 202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과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일본군 전시 성노예 피해자분들을 기획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다른 생존자분을 인터뷰한 웬디 테오 특파원은 “오늘 할머니 컨디션은 어떠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부분 생존자분이 백 세에 가까운 고령이시고, 더위도 심해 나 역시 오늘 할머니의 상태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할머니는 긴 평상 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마치 세월을 낚듯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디서 왔노?”라고 반가워하시며, “서울서 나 보러 왔단 말이가”라며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동행한 기자님도 할머니의 환대에 감동해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우리는 함께 칼국수도 먹고, 마트에 들러 장도 보며 소소하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기자님은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다. 아픈 기억을 굳이 꺼내지 않으려는 그 배려에 나도 고마움을 느꼈다. 대신, 일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 소용없니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시며 “나는 일본에 사과도 받고 싶고, 배상도 받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던 그 할머니셨다. 그런 할머니가 이젠 “다 소용없다”라고, “이제 곧 죽는다”라고 되풀이하시는 모습에 우리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오는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다. 올해 포항여성회에서는 환호공원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 건립 10주기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 포항에서는 많은 시민들께서 마음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며, 참으로 뜻깊은 순간을 함께했다. 하지만 지금, 서울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은 바리케이드에 갇혀 보호받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하염없이 기다리시던 수많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이제 박필근 할머니를 포함해 생존해 계신 피해자는 단 여섯 분만이 남아 계신다. 다가오는 8월 14일, 다시금 혐오와 조롱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우리 모두 따뜻한 관심과 존중으로 할머니들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분들이 살아 계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연대와 기억을 다 할 수 있기를.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08-12

중대재해 극약처방, 후폭풍 감당할 수 있나

“모든 산재 사망 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직보하라.” 지난 9일 휴가에서 복귀한 이재명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처음으로 내린 지시 사항이다. 전날 경기 의정부 DL건설 아파트 공사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을 보고 받고 나온 주문이다. 건설현장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대통령이 직접 실시간 챙기겠다는 의미다. 중대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고 공감이 간다. 소년공 생활을 겪어본 이 대통령에겐 산재 사고가 남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중대재해 사고 발생 건수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는 매일 2명 이상 산재 사고로 사망했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건설업의 산재 사망률은 다른 업종은 물론 선진국에 비해서도 몇 배 높다.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로 긴급대책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의 잇따른 공사현장 사망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책했다. 그 뒤 이 회사의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심정지 사고가 또 발생하자 “면허취소 등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 이후 건설업계는 산재 불안감으로 인해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있다. 대구시내에서도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중인 아파트 건설현장 4곳이 중단된 상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2년부터 최고 경영자에게도 산재의 형사 책임을 묻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강경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 중이다. 그렇지만 이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안전 불감증이 주요 산재 원인이겠지만 건설업계의 하도급 시스템, 외국인 근로자의 소통 문제, 고령 인력 등의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공사장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가 주로 배치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건설업계뿐 아니라 지난 2024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됨에 따라 대구·경북지역 영세기업들도 매일 초비상 상태다. 금형·주물업 등 대구시내 공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뿌리산업 사장들은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뜨거운 쇳물이나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공정이 있는 업종이 많아 직원들이 잠시만 방심해도 산재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는 조선·철강·화학업종의 대기업 CEO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중대재해법상 형사처벌 근거가 되는 경영진 과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의도를 가진 ‘고의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더라도 재해만 발생하면 대부분 경영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 중에는 만약 사고가 나서 사장이 구속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자연적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계도 막연해진다. 극약처방만으로 산재사고를 막는 방법은 뿔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8-12

모병제 시대 올까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보다 병력 수를 늘리는 것이다. 전투원의 손실은 고려치 않고, 많은 전투원을 한곳으로 빠른 시간 안에 집결시켜 적의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두고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 부른다. 인구가 많은 중국이 한국전쟁 때 썼던 수법이다. 그러나 이젠 많은 군사를 동원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로 인해전술은 오히려 병력 손실을 키울 위험한 전술로 꼽힌다. 현대전에 맞지 않다. 소총이나 칼을 무기로 싸우던 예전에나 통하던 전략이다. 군사 수를 앞세웠던 중국도 지금은 병력보다는 기술전략 중심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우리나라 국군 병력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최근 6년 사이 11만 명이 줄었다. 최근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군의 병력 수는 45만명 수준이다. 이는 국방부가 실제 전투 수행 시 필요한 최소 병력 수 50만명보다 5만명이나 모자란다. 군 병력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직접적 원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보면 군병력은 당분간 늘어나기가 어렵다. 군병력의 급격한 감소는 북한과 대치한 우리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특히 군 병력 감소로 사단급 이상 부대도 59곳(2006년)에서 42곳으로 크게 줄었다. 사단급 부대 한 군데가 줄면 인근 부대가 전력을 분담한다. 현실적으로 병력 배치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속도도 늦어진다. 전문가들은 군병력 감소에 대응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고 한다. 모병제 도입이 생각보다 빨리 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2

어화, 벗님네야

“어화, 벗님네야. 우리 소리 들어보소!” 사람 손길 멈춘 두 번째 해 여름날. 우거진 푸른 생명의 노랫가락이 녹지 숲에 여울진다. 도시 한가운데서 진초록 풀들의 노래를 듣다니, 푸진 행운이다. 도심의 S 초등학교 서북쪽에 사람이 만든 녹지가 있다. 그 안엔 다 커 보이는 여러 그루 소나무가 적당한 거리로 살고, 측백나무 몇 주, 사철나무 서너 그루, 느티나무 두어 주도 함께한다. 나무들 사이에 잔디, 쑥, 망초, 바랭이, 강아지풀, 클로버 등 여러 종의 야생 풀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못 보던 외래종도 함께 지낸다. 메마른 시가지에 이런 녹지가 있음은 주민에겐 분명 축복이다. 성경이 가르치듯,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그 안에 살다가 그 품으로 돌아가는 존재니까. 사람들은 녹지 안 의자에서 담소하며 쉬어가고, 훌라후프를 하며, 애완견과 함께 산책도 즐긴다. 이를테면, 녹지는 동네공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한 주에 대여섯 번 녹지 숲을 걸어서 오간 지가 10년째다. 하니, 나도 이 숲과 교감하는 사람이리라. 녹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런 게 녹지와 시민에겐 중요치 않으니까. 재작년까지, 한 해 두세 번 사람이 벌초했다. 한데, 작년부터 벌초가 사라졌다. 학교 문 오른쪽 녹지 중간쯤에 내걸린 현수막 하나 때문일 거다. 바람에 살랑이는 현수막엔 이렇게 씌어 있다. “…공원토지는 개인 사유지입니다. 주인의 허락 없이 본 토지를 사용 시 고발될 수 있습니다. -토지 소유자 알림- ” 그랬다. 이 녹지는 공공지가 아니고 사유지였다. 아마도, 지주가 벌초했던 측에 이의를 제기한 결과가 바로 현수막이리라. 바다 쪽으로 1/3 지점에 녹지를 가로질러 학교진입로가 있다. 벌초할 때는 그 왼쪽 녹지에도 산책로가 있었다. 벌초 안 하니 풀이 무성해져 발길도 끊어지고, 산책로도 사라졌다. 벌초는 달리 말하면, ‘풀에 대한 사람의 규제’다. 규제를 푸니 2년 만에 녹지는 풍성한 원래 모습으로 바뀌었다. 넉넉한 자연, 진초록 숲이 부르는 노랫가락을 마음의 귀로 듣는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 좀 바라보소···.” 불현듯 ‘인간사회도 자연과 원리는 같구나!’하고 속 소리가 가락에 실려 들린다. 벌초 곧, 규제를 안 하니까 녹지가 자생력으로 싱그런 자연 숲을 이루었듯, 자유민주주의 국가사회도 규제를 줄여야 자생력‧경쟁력이 높아질 게 아닌가. 미국은 자국 경제를 위해 ‘관세 포탄’을 세계에 터뜨렸다. 각국이 전전긍긍 협상에 응하며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관세 협상 같은 국익 챙기기보다 노란봉투법‧방송 3법, 법인세‧주식거래세 인상 등 국가경쟁력을 해칠 수 있는 전체주의적 입법과 규제정책에 넋이 나가 있다. 한심하다. 장기 집권을 위한 표를 의식한 때문인가. 부디 정치인들이 ‘벌초 않기’를 깨달아 개인과 당보다 나라와 국민을 더 헤아려, ‘어화, 벗님네야. 우리나라 앗싸!’라고 노래하는 길로 나서기 바란다. /강길수 수필가

2025-08-11

술꾼에 관한 그럴듯한 수명 계산법

장수는 모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자 행복의 큰 부분이다. 한때 환갑이 장수의 기준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환갑은 장수마을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인간의 수명이 날로 길어진다. 오래 살면 장수이지, 다른 장수가 있겠느냐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에 물음표를 던져 본다. 오래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생물학적 장수가 장수일까? 아니면 진정한 장수가 따로 있을까? 술꾼의 수명에 관한 아래의 계산 방식을 보라. 90을 살아도 70에 죽은 자가 있으며, 70에 죽어도 90을 산 자가 있다. 술꾼의 수명을 언급하기 전에 물리학적 시간 개념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다소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시간은 실재가 아니며,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전통 물리학에서의 시간은, 존재 하는 것이며, 흐르는 것이며, 과거, 현재, 미래로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대물리학에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상대적), 흐르지 않으며(심리적 인식),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양자중력이론에서는 기본방정식에 시간 항이 없다. Wheeler-DeWitt 방정식). 요약하자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라는 것이다(까를로 로벨리). 현대 물리학적 관점에서 시간은 존재 하지 않는 환상으로 치부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한다. 물리학은 그렇다 치고. 시간이라는 게 당연히 존재하고, 세월도 흐른다는 개념을 전제로 술꾼의 수명을 계산하여 보자. 재미 삼아. 주 2회 술을 마시는 술꾼을 예로 들어보자. 이 술꾼은 술을 마실 때마다 과음하는 주당이다. 그는 퇴근 후 저녁 내내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한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므로 다음 날 오후 정도 되어야 술이 제대로 깬다. 술을 마시는 데 필요한 시간과 술을 깨는 데 필요한 시간이 모두 술로 인하여 소비되는 시간이다. 이 주당은 1회 음주로 사실상 하루를 소비한다. 일주일에 2회 마시면 2일이 소요되므로 한 달에 8일(2일 4주)을 술을 마시는 데 소비한다, 계산의 편의상 하루를 양보하여 일주일(7일)이라 치자. 그러면 이 술꾼은 한 달에 일주일을 술을 마시면서 보내는 셈이다. 일 년으로 계산하면 12주 술을 마시고, 이를 달로 환산하면 3달이다. 20세부터 70세까지 50년을 술을 마시면 150달을 술을 마신 셈이고, 이는 12년의 세월이다. 어디 시간 낭비만 있으랴. 에너지, 인격, 돈, 가정의 화목 등등이 술과 함께 허무하게 소비된다. 술을 끊으면 술로 인하여 소비되는 그 시간에 또 다른 의미 있고 창조적인 것들을 할 수 있다. 술의 노예가 되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 수처작주는 그림의 떡이다. 주인이 사람이 아니고, 술이다. 필자도 한때 그런 삶을 살았으나, 일찍이 깨달았다. 오래 살았다고 다 오래 산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진정한 장수라는 타이틀은, 의미 있는 삶을 산 자에게 붙여져야 할지도 모른다. ‘한 번의 만취는 이틀의 시간을 뺏는다. 술은 마시는 자의 적이요, 인생을 단축시키는 달콤한 독이다. 술은 빌린 기쁨을 높은 이자로 갚게 만든다.’ 술의 지옥에서 탈출하자. 술을 끊으면 새로운 삶이 열릴지니, 천국이 그대의 것이라. /공봉학 변호사

2025-08-11

동시구속 위기에 처한 부부

전직과 현직을 불문하고 대통령과 아내가 동시에 구속되는 일은 아직까진 없었다. 재직 시 저지른 비리나 권력 남용으로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재판 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던 대통령은 적지 않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그랬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랬다. 노무현은 검찰 조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의 흑역사로 기록될 부끄러운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아내가 구속된 사례는 아직까진 없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치욕스런 신기록(?)이 세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이야기다. 윤석열 씨는 이미 뜬금없는 12.3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수감된 상태다. 그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다. 만약 죄가 입증된다면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가 불가피하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낮췄지만, 윤석열 씨의 부인 김건희 씨가 의심스런 행위를 통해 부정하게 주식을 거래하고, 각종 청탁과 함께 고가의 가방과 목걸이 등을 받았다고 의심하는 국민들이 그렇지 않은 국민보다 훨씬 많다. 이미 여러 정황이 김건희 씨의 범죄 혐의를 지목하고 있는 상황. 12일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김건희 씨의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건 구속 사유 중 하나다. 김씨는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인용 직전 자신이 운영했던 사무실 컴퓨터를 포맷했다. 탄핵 이후엔 휴대폰을 바꿨다. 압수된 휴대폰의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다. 떳떳한 삶을 살았다면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다. 만약 김건희 씨가 구치소에 갇힌 남편을 따라 자신도 구치소로 가게 된다면 또 하나 한국 역사의 오점이 추가될 듯하다. 서글프고 개탄스런 일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11

청계천 문학기행

토요일 아침 열 시. 장소는 보신각 옆 할리스커피. 스물 남짓한 ‘창작교실’ 사람들이 일찍부터 모였다. 날씨는 그 뜨거운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선선하다. 가끔 비도 뿌린다는 예보다. 오늘은 청계천 문학기행 날이다. 보신각이 기행의 출발점이다. 채만식 소설 ‘냉동어’에서 주인공 대영이 보신각을 가리켜 낡은 시대가 새로운 시대와 동거를 하고 있는 궁상스럽고 초라한 꼬락서니라 했다. 그러나 오늘 보신각은 한결 늠름하다. 종로 네거리 보신각 길 건너편에는 종로타워 33층짜리 빌딩이 높이 솟아 있다. 그곳이 옛날 ‘민족자본’ 화신백화점 자리다. 또 다른 길 건너편에는 전봉준이 두 팔을 묶인 채 앉아 있다. 죄인을 가두는 전옥서가 영풍문고 자리에 있었고 여기서 전봉준이 저형당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광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광교 건너편에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생가가 있었다. 다옥정 7번지, 그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지금은 청계천이 넓혀져 이 번지수는 청계천 속에 들었다. 구보는 한낮에 청계천변 다옥정 집에서 나와 광교 건너 보신각 있는 종로 네거리 쪽으로 걸어가게 된다. 광교에서 우리는 계단으로 천변 아래로 내려간다. 가는 비가 흩뿌리는 청계천은 한결 운치가 있다. 수표교 쪽에서 다시 천변 위로 올라서 다리를 건너자 오늘 순례의 주된 장소라 할 전태일 기념관이다. 청계천은 문학사적으로 세 개의 심상(이미지)을 갖는다. 먼저, 청계천은 특히 북악산 밑 백운동 계곡과 청풍계 쪽의 백운동천, 인왕산 아래 수성동 계곡에서 발원한다. 청계천이라는 이름은 이 청풍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청계천은 청풍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학적 흐름과 관계가 깊다. 다음, 청계천은 작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나 장편소설 ‘천변풍경’을 통해 구축한 불결함과 가난, 그리고 이를 매개로 연결된 서민들의 ‘공동체’적 삶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청계천 이미지는 해방 후, 6·25 전쟁 후에까지 연결된다. 마지막 하나가 전태일의 청계천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과 대구, 부산 등에서 성장한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에 ‘시다’로 취직하게 되면서 운명적인 길을 걷게 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1984년은 그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 ‘청계피복노조’가 합법성 쟁취를 위한 싸움을 가열차게 벌이던 때였다. 뜻도 제대로 모르고 시위를 나갔다 전경에 쫓겨 고가도로 밑으로 뛰어내린 기억이 선명하다. 어렵고 어지러운 때면 이 전태일이라는 존재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어째서 그의 죽음은 여전히 숭고하게 느껴지는가? 희생을 ‘내세운’ 다른 흔한 죽음들과 달리. 이것이 나의 지속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나고 죽는 것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없다. 인간은 아직까지는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이므로, 어떻게 죽느냐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전태일기념관을 나와 세운상가까지 걷다가 버스를 타고 버들다리(전태일다리)로 간다. 다리 위 전태일 반신상을 ‘참배’하는 것이 마지막 코스다. 세 시간 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다시 배우고 생각한 길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