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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 운항을 멈추면 울릉도 주민 삶도 멈춘다···'고립의 바다'는 국가 책임

겨울바다가 열리면 울릉도는 다시 고립된 섬이 된다. 포항·강릉·묵호와 울릉도를 연결하는 배들이 하나 둘 멈춰 섰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재현되고 있다. 대저건설의 ‘썬라이즈호’가 11월 9일부터 무기한 휴항에 들어가고, 강릉·묵호 노선도 11월 초부터 내년 3월까지 중단된다. 여기에다 울릉크루즈마저 12월 8일부터 15~20일간 정기검사로 멈추면 울릉도는 사실상 육지와 완전히 단절된다. 주민들이 말하는 “단절의 두려움”은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주민 김모씨는 “삭풍 몰아치는 울릉도에서의 겨울살이는 정말 힘든데 특히 이때 많이 아프면 정말 절단“이라고 말했다. 배는 이미 끊겨 있는데다 응급환자를 수송할 헬기도 날씨가 궂으면 뜨지 못해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며 걱정했다. 기존 엘도라도호에 이어 썬라이즈호까지 멈춘 대저건설의 결정은 기업의 책임 의식을 의심케 한다. ‘임대 종료’, ‘정비 불가’라는 명분 뒤에는 주민의 절박함을 외면한 경영 논리가 자리한다. 기업은 효율을 따질 수 있다. 하지만 공공항로를 운영하는 순간 그것은 공익의 영역이다. 그들의 배가 멈추는 것은 곧 울릉도 주민의 삶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여객선 공영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지난 수년 동안 반복돼 왔다. 법제화는 더디고, 제도적 장치는 허술하다. 예비선 확보는 의무가 아니며, 대체 운항은 선사의 ‘선의’에 맡겨져 있다. 최근 2년 간 전국 도서 지역에서 여객선 운항이 끊긴 사례는 33건, 누적 405일에 이른다. 섬 교통의 단절은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다. 뱃길이 끊기면 관광객도 사라지고, 그것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이 상황에서 ‘울릉도 관광 활성화’라거나 ‘독도 수호의 전초기지’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관광 비수기를 이유로 선사들이 운항을 줄이고 휴항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노선의 운항 중단을 경제 논리로만 판단하도록 방치한 것은 정부의 무책임이다. 수지타산만 따지는 민간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적자 보전과 긴급운항을 보장해야 한다. 섬의 교통권은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공공의 의지로 지켜야 한다. 정부는 긴급 운항비 지원제, 예비선 확보 의무화, 대체운항 책임제 등을 법으로 정비해야 한다. ‘공영제’라는 이름만 붙은 제도로는 섬의 겨울을 견딜 수 없다. 울릉도의 겨울 바다는 늘 험했지만, 올해의 바다는 유난히 거칠어 질 것 같다. 정부와 해운사, 그리고 울릉을 관할하는 경북도지사와 울릉군수 모두가 이를 직시해야 한다.

2025-10-21

바람피우면 단명한다?

‘건강하게’라는 전제 조건만 붙는다면 오래 살고 싶은 건 대다수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욕망이다. 그렇기에 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는 오랜 기간 지속돼온 과학계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는 건 다양한 사례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은 80.6세. 여성은 이보다 5.8년이 더 긴 86.4세였다. 실제로도 우리 주변을 보면 장수하는 여성을 오래 사는 남성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외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이성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가 과도한 것이 한 가지 이유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독일의 한 진화인류학 연구소는 포유류와 조류 1176종의 데이터를 분석해 성별에 따른 수명 차이를 살핀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내용 중엔 다음과 같은 추정이 담겼다. ‘짝짓기 경쟁은 동물의 수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포유류일수록 수컷의 수명이 눈에 띄게 짧다.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한 필사적 경쟁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번식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그 대가로 자신의 수명을 깎아 먹는 셈이다.’ 위는 고릴라 등 영장류의 사례를 분석한 것이지만, 인간이라고 크게 다를까?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적·정신적 에너지는 다른 어떤 것 보다 크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장수하려면 일부일처제를 성실하게 따르라’는 조언이 나올 것도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21

저질 정치의 민낯 길거리 현수막

태극기의 물결이 아닌 현수막의 물결이 넘쳐난다. 펄럭이는 현수막은 정치라는 바닥에 발들인 자들의 ‘일방적 자기선전’의 메아리이다. 길가의 아름다운 가로수를 감상할 틈을 주질 않는다. 특히 명절을 전후해서는 더 난리다. 운전에 집중이 안된다. 우리들의 고요하고도 맑은 시선은 온갖 종류의 정치인들이 도배한 현수막에 의하여 잠식당하고 더럽혀진다. 도심을 나서는 순간 이내 기분이 잡친다. 어질어질하다. 내용은 또 어떤가. 정치 초보들은 뭐 그렇다 치자. 기성정치인의 경우는 더 가관이다. 좌. 우가 다를 것도 없다. 누가 이런 저질 정치판을 보고 싶어 하기나 하나. 나름 양질의 정치를 위하여 노력해 봤자 헛수고다. 수준 이하의 현수막이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고, 결국은 정치에 관심을 끊게 만든다. 정치가(사실은 정치가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다)가 거리의 벽을 점유할 때, 시민은 마음의 벽을 쌓는다. 저질 현수막은 시민의 맑은 눈을 흐리는 민주주의의 독이다. 거리의 현수막은 정치의 미숙함을 넘어 시민의식의 피로함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저질 정치의 현수막 난장은, 시민들이 평온하게 거리를 걷고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침해한다. 정치의 품격 따위는 개밥그릇에 던져 버린 지 오래다. 애당초 품위 있는 정치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제발 나의 평온이나 침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행복추구권이 천부인권임을 선언하고 있다. 행복할 권리 중, “보기 싫은 것을 안 볼 권리”가 있다. 누군가에게, 듣기 싫은 말을 지껄이고, 먹기 싫은 음식을 권하고, 보기 싫은 걸 보게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자 범죄가 아니겠는가. 여기에 왜 면죄부를 주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듣기 싫은 말과 보기 싫은 언어를 현수막에 똥처럼 싸지르는 저질 정치 현수막을 거부한다. 누가 보고 싶다 그랬나.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 예의다. 보기도 싫은 사람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것은 무례이자, 명백한 행복추구권 침해다. 하버마스는, ’공론장 구조변동(위르겐 하버마스 저. 1961.)‘에서, ’공론장이 사적이익의 홍보장으로 퇴락할 때 민주주의는 병든다‘고 진단했다. 현수막 정치는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허상‘이다. 그것은 참여를 가장한 일방적 선전이며, 시민의 눈을 빌려 정치인의 자아를 비추는 교묘한 법의 우회다. 도심의 미관을 훼손하고, 시민의 시각과 공간을 강제 점유하며, 공공의 장소를 개인의 선전장으로 변질시키는 행위는 시민의 정신적 환경을 침해한다. 이건 ’시각적 소음‘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정한 힘은 조용하지만, 허약한 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든다‘고 했다. 정치인의 현수막이 늘어간다는 것은 그 정치인이 위기에 빠졌다고 스스로 외치는 꼴이다.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이미지정치, 홍보 정치의 현수막은 사라져야 한다. 현수막에 가려진 도심의 풍경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고, 시민의 눈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기를 바란다. 진정한 정치는, 끊임없는 소통과 실천에 걸려있지, 현수막에 걸려있지 않다. /공봉학 변호사

2025-10-20

기묘한 하마 사태

손가락에 묻은 액체의 산도(酸度)를 측정지로 쟀다. 중성이다. 한데, 왜 조금 끈끈할까. 아무리 머리 굴리고, 기억창고를 뒤져도 액체가 생긴 연유를 알 수 없다. 귀신 곡할 노릇이다. 무색무취인 걸 보면 기묘하기까지 하다. 방바닥의 보일러 배관은 탈이 없고, 천장이나 벽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또 4반세기나 사용한 전기 매트에서 액체가 나올 리 없고, 누가 쉬를 하지도 않았다. 끈적하니까 습한 날씨로 찬 방바닥에 응축된 물도 아니다. 가슴 답답하다. 마침 손자를 데리고 집에 온 둘째 아들은, 매트 코팅 성분이 오래되어 변질이나 화학 반응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암튼, 이해 불가다. 냉가슴 앓으며 일단 오염된 매트를 들어내 뒤집어 깔았다. 바닥에 닿았던 면(面)을 대여섯 번도 더 물걸레로 훔치고 닦아냈다. 질긴 섬유 원단에 은(銀) 코팅한 면이어서, 아무리 꼼꼼히 닦아내도 안에 스며든 액체는 다 제거되지 않았다. 조심스레 매트 전원을 켜고 저온으로 수 시간을 두어도 마르지 않았다. 젖은 방바닥은 같은 방법으로 다 닦아냈다. “어!”하는 한탄이 났다. 이불장 문을 연 순간 터진 시각 무조건 반응이다. “이럴 수가?”, “맞아! 바로 그거였어.” 하는 속말도 이어졌다. 이불 갈피에 ‘물먹는 하마’가 흰 종이 입을 벌리고 수직으로 서서 노려보는 게 아닌가. 들킨 ‘하마의 난리 현장’이다. 매트에 깔아 눅눅해진 보(褓)를 바꾸려고 이불장을 연 참이었다. 하마 입이 이불장 문 안쪽 면과 맞붙어 있다. 두 주 전쯤, 가을 날씨에 쓸 이불을 보겠다고 아내가 문을 열었던 기억도 났다. 그새 하마 배는 텅 비었다. 지난봄, 작은 방 이불장의 이불 갈피에 ‘물먹는 하마’ 두 개를 습기 보호막을 뗀 뒤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수평으로 넣어 두었었다. 그러고는 까마득하게 잊었다. 이불장 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닦았는데도 방바닥은 마르면 매트 원단 결 흔적이 남았다. 할 수 없이, 바닥에 헌 신문지를 두세 겹 깔아 그 위에 매트를 놓고 우선 지내보기로 했다. 사태의 원인은 차차 찾기로 마음먹었었다. 기묘하다. 물먹은 하마에서 샌 200cc가 넘을 염화칼슘액이 이불을 하나도 오염시키지 않고, 문 안쪽 면만을 타고 내려와 방바닥과 매트 사이에만 스며들게 한 누출 경로와 각도, 작용 된 물리적 힘 같은 사실들이···. 화학분석실험도 오래 했던 내가 이 이해 불가 사태 앞에서, 결정적 단서 물먹는 하마를 기억해내지 못한 무심함도. 이불장 안의 이불들과 아래 서랍장의 옷들이 죄다 오염되었더라면, 사태는 감당이 불감당이었을 터다. 십 여일 후, 매트를 들어내 욕실에 수직으로 세워 오염된 면을 수돗물로 충분히 씻었다. 하루를 말린 후 다시 깔았다. 사태 수습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아까운 시간 이틀을 들였지만, 원인을 찾아 기쁘고, 매트를 계속 쓰니 다행이다. 우리 사회도 6년째 계속되는 부정선거 주장이 말하듯, 국가기관들이 ‘기묘한 하마 사태’처럼 국민을 기만하는 비민주적 일들을 벌인 의혹들이 여전하다. 그러니 온 국민이 늘 깨어 곳곳을 살펴서 정치권과 지도층, 언론들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고 국민주권 행동에도 나서야 마땅하다. /강길수 수필가

2025-10-20

이 예감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언제나 옳기만 할 수는 없다. 그의 생각, 결정, 행위에는 늘 제대로 되지 못한 것들이 뒤섞여 있게 마련이다. 진리였던 것이 환상임이 밝혀지고 환영 속에 가려진 진실이 폭력의 장막을 찢고 밝은 제 모습을 나타낸다. 벌써, 시월도 넷째 주씩이나 되었다니. 그토록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답답한 시간이,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벌써 12월도 한 달 몇 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니. 그는 그 세월을 다 어떻게 견뎠을까. 세상이, 진실이 거꾸로 뒤집힌, 피가 거꾸로 솟아도 시원찮을 세월을 어떻게 다 참아낼 수 있었을까. 바깥을 버젓이 돌아다니는 사람도 이렇게 고통이 폐부를 찌르는데, 그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의 거짓과 적반하장을 어떻게 다 참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가을이 깊어가자, 바야흐로 세상은 다시 바뀌고 있다. 시작인가 싶던 게 끝이 보이고, 영원히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았던 게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화려한 화장이 벗겨지고, 사람들은 거짓된, 추악한 ‘맨 얼굴’을 드디어 알아차리고들 있다. 그 사이에, 가담과 추종과 배신과 비겁과 움추림의 몸짓들, 표정들이, 거짓 ‘언어술사’들의 분식조차 무력화된 자리에서, 벌거벗은 제 알몸을 부끄러워들 한다. 고독은 참 좋은 친구이지만 벌써 내 곁에서 떠나갈 채비를 한다. 어느 것 하나 진짜인 게 없는 이 가짜 체제, 세상 속에서 벌써 그게 가짜임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반갑지 않다. 진정으로 좋은 것은, 진실에 가까운 것은, 하늘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아주 적은 것처럼, 진실을 깨닫고 믿는 사람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마치 아름다운 시를 한 편 써놓고 혼자서만 입안에서 공 굴리며 기뻐하다 단물이 다 빠져서야 남들 보라고 내놓는 외로운 시인처럼, 나는 더 오래, 황홀한 고독에 머물러 있고 싶다. 그 겨울에서 이 가을에까지 나는 지독한 세월을 보냈지만, 그것은 증오와 반목의 힘으로는 세상을 옳게 세울 수 없음을, 불의로는 정의를 이룰 수 없음을 말해온 것뿐이었다. 세상은 언제까지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싸움을, 폭력을, 거짓을 동원할 텐가? 어찌하여 이상이라는 이름 아래 자유가 짓밟혀야 하고, 구원이라는 목표 아래 복종이 강요되어야 하고, 진실이라는 선전 속에 거짓이 설파되어야 하는가? 그 비속한 위선이 어찌하여 수단을 얻고 조력을 받아 풍랑 속에 든 배를 가라앉히려 하는가? 어느새 미친 폭풍우 불어닥치던 바다에 많고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으니, 이는, 비의(秘意)의 알레고리처럼 느끼 수 있는 자만 느끼는 것인가? 나만 이 기운을 느끼는 것인가?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반대로 기대에 찬 눈빛을 주고받는 것, 태평양 넓은 바다 너머에서, 남지나 해상의 소문 너머에서 이곳을 향해 불어오는 새 바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새벽까지 올해 작고한 김영현을 읽었다. 그의 ‘열세 번째 사도’(푸른역사, 2023)를 다시 넘겨보며 그도 무척이나 외로웠으리, 생각한다. 자신이 믿고 추구한 것들이 보물의 사상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그는 ‘예정된 악인’ 유다의 운명을 안타깝게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잠깐 눈 붙이고 새로 뜨니, 계절이 정녕 새로워지려는가. 어둡고 우울하던 하늘이, 반짝, 개어 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0-20

‘경산대추축제’가 남긴 것

세상의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혹 ‘미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이 미완성도 하나의 끝과 시작은 분명하다. 시작과 끝은 서로 보완의 관계로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고, 끝이 좋다면 시작에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경산시는 ‘제14회 경산대추축제 & 농산물 한마당’을, 청도군도 ‘2025 청도반시축제와 2025 COAFE 청도 세계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 축제의 평가는 선명하게 나누어진다. 어쩌면 그 결과는 이미 시작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 청도의 축제는 10월에 접어들며 분위기 띄우기에 돌입했지만, 대추 축제는14일 오후에 기자에게 보도자료가 전달되는 등 개최 의지를 의심하게 했다. 지역의 축제 목적은 분명하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나 농특산품을 널리 알리며 지역민과 방문객들이 다 함께 즐기며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먼저 호응이 이어진 청도의 축제장에는 개막부터 끝날까지 어린아이의 손을 잡거나 유모차에 어린이를 태운 젊은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붐볐다. 즐길 거리와 먹거리도 넘쳤고, 풋풋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경산의 축제장에는 나이가 지긋한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방문객들도 “보고 즐길 것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비가 내린 지난 토요일에는 더욱 선명하게 축제장의 모습이 갈렸다. 날씨는 엇비슷했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던 대추축제장과는 반대로 반시축제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 축제를 즐겼다. 축제 구성도 한쪽은 특산품 판매에만 열을 올렸고, 다른 한쪽은 축제를 느끼며 지역의 특산품을 스스로 구매하도록 짜여진 모습이었다. 결실의 가을이 깊어가면서 도내에 각종 축제가 잇따르고 있다. 저마다 특성을 자랑한다. 다들 남다른 열정으로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물론 축제에서 행사장을 찾은 사람 수도 중요하다. 하지만 준비와 진행 과정의 최선,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진정성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다녀보면 감으로 알 수 있다. 축제의 개막식과 폐막식에 부른 초대 가수가 누군가로 급을 메기는 것이 아닌 축제장을 찾은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먹거리의 다양성으로 웃음을 선물하는 것이 진정성이다. 청도의 올 반시축제는 다음 축제가 기다려지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반면 대추축제는 그러하지 못했다. 시간만 지나가면 되는 마친다는 그런 행사로 다가왔다. 다음 제15회 경산대추축제는 철저한 사전 준비로 시작부터 끝까지 방문객을 위한 축제로, 대추 생산 농가만을 위한 축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10-20

놀이터 단상

집 앞 놀이터를 갔다. 두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타던 자전거는 던져둔 채 바닥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다. 폰으로 하는 게임을 보고 있는 듯하다. 바닥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우레탄을 깔아놓아 푹신하다. 어릴 때는 몸을 많이 쓰고 놀아야 한다고 들어 왔는데,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는 그 역할을 잃은 듯하다. 손녀가 팔을 신나게 흔들고 뒤뚱거리며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다칠까 염려되어 함께 계단을 올랐다. 계단 위에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둘이 앉아 있다. 손에는 어김없이 휴대폰이 들려 있다. 주고 받는 말도 없이 서로의 폰으로 눈이 빨려들 듯하다. “내가 먼저야.”를 외치며 손녀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다. 나도 뒤따라 원통형의 틀에 몸을 던져 넣었다. 밑에서 기다렸던 아이는 다시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작은 몸을 흔들며 달린다. 간간히 내가 따라오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뒤뚱대며 걷는 모습이 귀여워 혼자 웃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놀이터에서 아이 혼자 신났다. 아이와 미끄럼을 타면서 초등학생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그 당시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를 많이 했었다. 점심 시간이나 방과 후 운동장에는 군데군데 무리지어 고무줄을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줄을 잘 넘는 아이들은 인기가 있어 서로 자기편을 만들려고 때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다. 그럴 때 꼭 등장하는 것이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었다. 날카로운 것을 들고 와 놀고 있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던 그 시절의 유치함이란. 그런 아이들을 잡겠다고 씩씩대며 따라 뛰었던 내 모습이 살포시 떠올랐다. 장난감이 많지 않았던 시절의 놀이였다. 요즈음 아이들은 주로 휴대폰을 가지고 논다. 남자아이들은 게임을 많이 하고 여자 아이들은 SNS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셀카도 자주 찍어 올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셀피(selfie)라는 용어가 영어책에 등장하고 있다. 셀피는 폰으로 자신의 자화상이나 짧은 영상을 찍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생일을 맞아 모인 아이들도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각자의 폰을 보고 있다. 혹 폰이 없는 아이들은 친구 옆에 붙어 앉아 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게 현재 학생들의 놀이문화라고 한다.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 속에 염려가 담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바뀌어가는 시대를 무시할 순 없지만 게임이나 폰에 지나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서 적절한 폰 사용 시간을 두고 아이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집이 많다고 한다. 집 근처의 육아지원센터에서 아이들 교육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공모전을 열었다. 당선작 중 옛 놀이문화를 재현해서 발전시키기로 한 것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실뜨기였다. 어린 시절 엄마는 긴 털실을 묶어 원을 만들고 두 손을 이용해 혼자 실뜨기를 하셨다. 손끝에서 다양한 무늬가 만들어지면 만화경을 보는 것 같이 신기해서 배우고 싶었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동생과 둘이 실뜨기를 하면서 놀던 기억이 새로웠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기 위해 먼저 혼자 하는 실뜨기 영상을 보았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놀이를 동영상으로 보며 익힐 수 있으니 기계의 발달을 무시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원활한 놀이를 위해서는 계속 보고 익혀야 했다. 지역아동센터에 실뜨기 놀이를 하러 갔다. 실뜨기실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가장 쉬운 방법부터 천천히 설명하였다. 곧잘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저학년 여자아이들은 손에 힘이 없어서인지 자꾸 실패했다. 가는 손가락에 힘이 실리지 않으니 실이 처지면서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공한 아이들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이다. 되풀이해 보면서 못하는 옆의 아이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가르쳐준다. 건전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역시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변화하는 시대를 따르되 건전한 놀이 문화를 형성해야 하는 것은 교육 현장 뿐 아니라 각 가정에서도 심각히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용한 놀이터엔 아이의 웃음만 미끄럼틀 위에 앉아 있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0-20

21세기 소문의 벽

‘소문의 벽’은 1971년에 발표된 이청준의 중편 소설이다. 잡지사 편집장인 ‘나’가 우연히 만난 박준이라는 소설가를 도와주려다 오히려 병을 악화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박준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였지만, 진술 공포증에 걸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는 환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나’는 박준의 작품을 찾아 읽으면서 그 위협의 실체가 전짓불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6∙25가 일어나던 해 밤중에 들이닥쳐 전짓불을 들이대고 ‘좌’냐, ‘우’냐 묻는 정체 모를 사내들에게 느꼈던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오히려 그 전짓불을 들이대는 치료법을 택하고 박준은 병원을 도망쳐 나가 버린다. 여기서 소문은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비이성적인 이념이고, 벽은 진실이 억압된 상태를 말한다. 박준은 이런 현실에 저항하여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 전짓불의 공포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어서 병에 걸린 것이다. 20세기의 소문의 벽은 진실을 구속하는 존재였지만, 그래도 저항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소문의 벽은 다르다. 며칠 전 연달아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하나는 학계에서 발표된 논문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김예지 국회의원이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철회했다는 뉴스다. 17일 뉴스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가족 동의 없이도 장기 기증을 할 수 있게 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개정안’을 철회했다. 미국 극우 인사인 고든 창 등이 이 법안을 두고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것과 관련 있다는 식의 음모론을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악의적인 왜곡된 정보로 장기 기증을 신청한 분들과 그 가족들이 불안감을 느끼거나 신청을 취소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16일 소식은 코로나 백신이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논문에 대해 정재훈 교수가 반박하는 영상이다. 이 논문은 지난 9월 26일 꽤 괜찮은 학술지에 발표되었는데, 정규 연구는 아니지만 학문적 연구 범위에 부합하는 보편적 주제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구 원문 조회 수가 학술연구로는 폭발적이다. 지난 20 여일 간 19만 회를 넘었다. 이런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도 항간에는 백신을 맞아서 암 발생률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으니, 그런 소문을 확인해주는 연구가 된 셈이다. 두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소문이 정치권력자가 아니라 민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어느 정도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재훈 교수가 암이 발견되려면 발생한 지 최소 1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리는 데 비해 코로나는 감염되자마자 증상이 나타나 바로 발견되는 질병이고, 백신 접종자가 병원에 갈 확률이 높으므로 이것만 가지고는 백신 접종과 암 발생을 연관시키기 어렵다고 외쳐도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다. 20세기 소문의 벽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무너질 수 있지만, 21세기 소문의 벽은 미디어를 타고 급격히 확산되고 있으니 어떻게 깨야 할지 갈 길이 멀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20

요행을 바라는 건 아닌지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작업자들이 무정전 전원장치용 배터리를 옮기려다 화재가 발생한 화재로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아직 완전한 복구는 되지 않았다. 비상시 대체할 시스템도 없으며 행정 기록이 영구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 컴퓨터에 없는 파일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10월 17일 자로 보건복지부 장기조직혈액통합관리시스템을 복구했다. 정상 운영을 시작한 보건복지부의 장기조직혈액통합관리시스템은 장기이식 순번과 대기자 정보를 관리하는 행정 플랫폼이다. 이 전산망이 마비되자 병원과 환자들은 혼선이 빚어졌다. 시각을 다투는 환자와 가족들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피해가 어디 이것뿐일까. 17일 현재 1등급 복구율은 40개 중 31개 복구로 77.5%, 2등급 복구율은 68개 중 41개 복구로 60.3%, 3등급은 261개 중 138개 복구로 52.9%, 4등급은 340개 중 130개 복구로 38.2%의 복구율을 나타낸다. 정부는 1·2등급 시스템을 이달 말까지, 모든 시스템을 연말까지 복구한다는 계획이다.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의 주요 데이터와 시스템을 통합 운영·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정부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총괄한다. 대전을 비롯하여 광주와 대구 3곳에서 전산 시스템을 나누어 운영한다. 대전 본원은 국가 정보시스템의 3분의 1 이상을 관리하는데, 화재로 정부24를 비롯한 647개 시스템이 중단됐다. 같은 시스템을 다른 곳에 두는 쌍둥이 서버가 아니라 서버 전환도 어려운 실정이다. 스마트 정부를 내세우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정부의 데이터 관리는 참혹하다. 백업 시스템 구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하드웨어 보강과 안전 점검도 소홀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공부문 클라우드 전환율은 45% 수준으로 85%의 세계 평균에도 크게 뒤진다. 정부 부처별로 국가 통계를 관리하며 부처 간 협조 부족으로 자료의 연계와 활용은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 업무망이 3년간이나 해킹을 당해도 몰랐으며, 어떤 자료가 유출되었는지도 모른다. 국정원이 17일 발표한 내용은 해커 조직이 다양한 경로로 행정전자서명(GPKI) 인증서 및 비밀번호를 확보하고, 2022년 9월부터 2025년 7월까지 행안부의 정부원격근무시스템을 거쳐 온나라시스템에 접속해 자료를 보았다는 것이다. KT는 해킹으로 무단 소액 결제가 장기간 이어져 왔으며, 롯데카드의 해킹 피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22년 SK C&C 판교 캠퍼스 화재로 서버 작동에 필요한 전원 공급이 끊겨 카카오의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이번 화재로 이를 나무라던 정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금융 및 통신 분야 보안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데이터 관리와 해킹에 대비한 인력을 양성하고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안전한 자료와 관리와 조선시대의 4대 사고처럼 만약의 경우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안이한 생각으로 요행을 바라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주위를 돌아볼 일이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철저히 연구하고 대비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10-20

의사 과학자

의사 과학자란 의사면허를 가지고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직 의사를 뜻한다. 과학과 공학, 의학을 융합해 혁신적 치료법을 발굴하고, 신약 개발을 통해 의료기술을 향상시키는 막중한 역할을 맡는다. 우리나라 의사 양성과정은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 양성에만 집중돼 있다. 국내서 배출되는 연간 의대졸업생 3000여 명 가운데 기초과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졸업생은 전체 1% 미만이다. 연구비 지원이나 연구기회 부족, 임상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보수 등 제도적 미비로 의사 과학자 양성이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의료기술과 서비스 수준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다만 의학발전을 뒷받침할 의료과학 분야에서의 인재 양성이 등한시되고 있는 게 문제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배출에서 이런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한국은 매년 전국 최고의 인재가 의과대학으로 몰리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제도나 사회적 분위기라면 노벨 의학상 수상자 탄생은 기대 난망이다. 우리와 비슷한 의료제도를 가진 일본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이미 여러 번 배출했다. 올해도 의사과학자이자 교수인 사카구치 시몬씨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미국과 공동수상을 받았으나 생리의학 분야에서 벌써 6번째다. 덧붙인다면 일본은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만 27번 나왔다. 포항의 포스텍이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요구한 지 꽤 오래됐다. 2022년에는 포항시민의 열렬한 응원 속에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위한 비전 선포식도 가진 바 있다. 지금 그 열기는 어디 간 것일까. 일본의 노벨 의학상 수상을 보면서 포스텍의 분발이 생각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0

모스크바 베이징 김포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 직항 항로가 모두 사라졌다. 그런 까닭에 만일 모스크바에 가고자 한다면,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야 한다. 최소 두세 시간을 경유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국 국적 여객기가 아니라, 중국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기분이 썩 유쾌할 수는 없다. 지난여름 모스크바에서 나는 전쟁 분위기를 전연 감지할 수 없었다. 전선(戰線)이 남쪽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표정이나 발걸음에서 미세한 전운(戰雲)마저 감지할 수 없었다. 푸틴의 집무실이 있는 붉은 광장의 크레믈이나, 여전히 기막히게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과 백화점 건물 주변에 몰려든 관광객들의 얼굴은 밝고 화사하기가 비할 바 없었다. 모스크바 외곽의 ‘참새 언덕’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는 동계(冬季) 운동경기 경기 시설 공사에 나는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보았던 스키 점프대 공사가 눈에 들어온다. 모스크바 시민들을 위해 한여름에 진행되는 공사 진행 상황을 보면서 과연 러시아는 전쟁하는 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찾아들었다. 모스크바강 건너편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마천루 건물 군상이 오늘날의 러시아와 푸틴 그리고 모스크바를 실감 나게 입증한다. 지극히 현대적인 외양을 띤 초고층 건물들을 보노라니, 이곳은 전쟁과 무관한 별천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에 모스크바 한국 문화원의 박 원장이 ‘여기는 전쟁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동조한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정치가들과 기업가들, 부자들과 야심가들을 위한 거대한 난전(亂廛)이다. 일찍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사연극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1939)에서 전쟁의 본질은 돈에 있으며, 그것을 움켜쥐는 이는 권력자들임을 입증한 바 있다.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억척 어멈은 세 자식을 다 잃고, 포장마차마저 시들한 마당에도 내일을 향한 꿈을 놓지 못한다. 오늘날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는 중국인들로 항시 북적거린다. 어딜 가도 그들의 시끌벅적하고 거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로 소음을 발사하는 그들의 처세에는 어떤 야만적인 경이로움마저 내재해 있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자기네가 주인이나 되는 듯 활개 치는 모양을 볼라치면 야릇한 심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장시간에 걸친 귀로(歸路)에도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했다. 마침내 내가 아무런 부대낌 없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대한민국에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어도 풍습도 음식도 풍경도 익숙한 그곳에서 설령 나를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을지라도 말이다. 모스크바발 여객기는 영종도가 아니라 김포에 스르륵 착륙한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광이 사뭇 다정하다. 서늘하고 음습(淫習)한 모스크바에서 한여름 열기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김포의 한낮을 온몸으로 감촉한다. 나의 여정은 다시 이곳에서 대구를 거쳐 청도로 이어질 것이다. 어느샌가 육신도 정신도 치유(治癒)의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20

특검이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할 해답인가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던 50대 공무원이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양평군 5급 공무원인 그는 양평 군청에서 아파트 개발사업의 개발부담금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 김건희 여사의 친정어머니가 하던 양평 공흥 지구 개발사업에 특혜를 주지 않았느냐고 추궁당했다고 한다. 숨진 공무원이 남긴 유서는 참담하다. 그는 “치욕을 당하고, 직장 생활도 삶도 귀찮다. 정말 힘들다”라고 적어놨다. 그는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특검이 기억에도 없는 진술을 받아 억지로 조서를 꾸몄다” “모른다고 해도 계속 다그친다.”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특검이 당시 양평 군수였던 국민의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의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9월 검찰은 없어진다.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남는다. 검찰이 수사권을 마구 휘두르며 전횡해 왔다는 이유다.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최 상병 특검 등 세 가지 특검을 만든 것도 검찰 수사를 못믿겠다는 뜻이다. 수사를 경찰도 아닌 특검에 맡겼다. 모든 정부 조직을 장악한 집권당이 축하면 특검을 만든다. 야당마저 양평 공무원 죽음과 관련해 특검을 만들자고 하 니, 가히 특검 공화국이다. 특검은 본래 ‘국민 의혹 해소’와 ‘성역 없는 수사’라는 사법 정의의 ‘해결사’ 로 고안된 제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의 현실은, 정쟁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극한 대립을 증폭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단순히 수사 대상의 문제만 아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 병폐인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 사법 화’가 악순환하게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는 수사기관이 정치적 의도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무기력하고, 권력자의 정적을 표적 수사한다는 의심이 검찰 개혁의 명분이 되고 있다. 같은 행위를 해도 권력자는 무죄, 야당 정치인은 유죄로 몰아간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이런 의심에서 특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특검은 정권의 지휘를 받는 검찰과 경찰이 할 수 없는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게 애초의 취지에 맞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오히려 거꾸로다. 정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지만, 검찰에서 거세한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르게 허용하는 게 다를 뿐이다. 양평 공무원의 죽음은 그 흔적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 무리한 수사를 한다고 비난했지만, 특검에는 다 주어졌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해결할 문제를 사법에 떠넘기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역할을 던져버리고, 정치를 선(善)과 악(惡)의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다. 우리 편은 선이고, 정치적 경쟁자는 악이고,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단호하게 응징하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뿔 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가짜뉴스와 선동, 선전매체를 부추긴다. 검·경 등 수사기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오직 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수사기관을 정치 투쟁의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일 사람을 요직에 앉혀, 그 조직을 장악한다. 이런 사법의 정치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특검이다. 원래 특검은 여야가 정치적 협상을 통해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를 비난하고, 검찰과 경찰조차 못 믿어 특검을 임명한다면, 그보다 더 중립적이라는 믿음을 주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오히려 정치적 색깔이 검·경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특검이 최근의 현상이다. 공수처도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가정 위에 만들 었다. 고위공직자,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할 때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검찰과 경찰보다 더 정치 중립적이었는지 의문이다. 이제 특검이 그 질문을 받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나쁘지, 사법, 수사 기관이 나쁜 건 아니다. 사법은 사법답게, 정치는 정치답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사회가 될 수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19

똘똘한 괴물

수도권의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이달 15일 주택시장 규제에 나서면서 똘똘한 한 채에 집중 몰리는 투자 수요를 잡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똘똘한 한 채는 입지와 가치, 실수요 등이 뛰어난 주택을 이르는 말로 200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단순히 고가주택을 이르는 표현이 아니고 내재 가치가 뛰어난 주택을 뜻한다. 서울에서는 강남과 용산, 마포, 성동구 등지의 도심 역세권 아파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본래는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강화와 대출규제 등을 피하는 방법으로 여러 채보다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투자 전략에서 나온 말이다. 시세 차익보다 장기 보유 시 절세 효과가 높고 자산상품 가치가 기대되는 주택이다. 그러나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집중되자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이 크게 치솟으면서 시장의 양극화가 오히려 더 심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고 지방에서도 똘똘한 한 채를 사기 위한 자금이 서울로 쏠리면서 똘똘한 한 채는 똘똘한 괴물로 불리기도 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후 수도권 일대 부동산 시장이 대혼란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25억 초과 고급주택은 주택담보 대출이 2억까지만 허용되고 반면 15억 이하 주택은 기존 한도인 6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담보가치가 역전된 현상이 생겼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강력한 규제책으로 똘똘한 한 채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6

변호사 공장

변호사는 공익을 위한 직역인가, 사익을 위한 직역인가.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 변호사는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아니라 사법 정의 실현에 참여하는 공적 전문가이다. ‘법’은 우리 사회가 약속한 정의의 최소 단위이고, 변호사는 그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로서 법을 수호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사사건은 성공보수를 못 받는다. 대법원은 형사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의 인권보호와 형사사법의 실현에 있는데, 유·무죄의 결과를 기준으로 한 보수 약정은 변호사의 직무윤리에 반하고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시했다. 한편 변호사는 사익을 위한 대변자이다. 변호사는 개별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며 그가 주는 수임료를 받아 생계를 꾸린다. 나라에서 나오는 공익 수당 같은 건 없으므로 개업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을 많이 하고 수임한 사건 의뢰인에게 승소를 안겨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변호사의 사익 추구가 공익적 역할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의 절차적 방어권을 보장하며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누군가 떼인 돈을 소송을 통해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법과 권리를 지키는 공익적 행위이기도 하니까. 결국 변호사는 사익을 매개로 공익을 실현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겠다. 매달 사무실 운영비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 변호사의 입장에선 사실 이런 역할의 구분이 쉬운 것은 아니다.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난 요즘은 특히.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되, 법질서와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유형의 로펌, 변호사들이 등장해 많은 부분을 흔들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법률서비스 피해 구제 신청 건수가 최근 4년 사이 5배 급증했다. 피해 사유는 주로 위임 계약의 불성실 이행, 법무법인의 미흡한 대응으로 인한 계약 해제 및 환불 요구, 불성실한 법률 대리에 따른 착수금 전액 환급 등이었고, 신고된 곳들의 대부분은 소위 마케팅 펌, 네트워크 펌이었다. 이런 펌들의 기본 방향은 법을 잘 모르고 변호사 인맥이 없는 사람들이 변호사가 필요해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포털사이트 상단에 뜨게 하고, 전관이나 대단한 경력의 변호사들이 사건에 관여하는 것처럼 광고하는 것이다. 광고의 가장 큰 목적은 수임이다. 승소보다는 대량 수임에 광고 목적이 맞추어져 있기에 매년 엄청난 광고비를 포털사이트에 지불한다고 한다. 의뢰인들은 대형 로펌에 맡기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실제 사건 처리는 고용된 각 지점의 어쏘 변호사들이 한다. 그렇기에 사건과 변호사와의 연결성, 애착관계가 없다. 변론 때마다 출석하는 변호사가 다르고, 사건 때문에 의논할 게 있어 전화를 해도 담당변호사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는 경우도 많다. 장인인 것처럼 광고하나 실질은 공장인 것이다. 이런 변호사 공장, 공장형 변호사의 등장은 과연 변호사의 공익성에 맞는 것일까. 오늘도 법원에서 마케팅 펌 변호사의 변론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김세라 변호사

2025-10-16

‘기후테크’

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 내내 내리던 비가 이후에도 계속 내렸다. 늦장마처럼 이어지는 비와 한여름 같은 더위는 이제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한반도 기후는 이미 과거와 달라졌다. 대구의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경북의 겨울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렇게 체감되는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은 결국 ‘탄소중립’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기후테크(Climate Tech)’라는 새로운 해법에 주목하고 있다. ‘기후테크’는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모든 기술을 말한다. 단순한 환경기술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도 경제적 성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의 길이다. 예컨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AI 기반 에너지 효율 시스템, 스마트팜, 탄소포집(CCUS) 등이 모두 ‘기후테크’에 속한다. 핵심은 환경과 경제의 균형이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지역의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테크’는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닌 ‘미래산업 전략’이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테크’는 초기 투자비용이 높고, 기술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제도적 규제도 여전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부는 탄소가격제와 녹색금융을 확대하고, 기업은 ‘기후테크’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활형 기후테크’, 예를 들어 AI 분리수거기, 에너지 절약형 스마트홈, 시민 리빙랩이 늘어나면서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에서 ‘기후테크’의 필요성이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다. 대구는 폭염과 열섬이 심각해 쿨루프, 그늘막, 제로에너지건축 등 냉방 수요를 줄이는 기술이 필수다. 반면 경북은 가뭄과 폭우가 반복되며 농업 피해가 커지고 있다. 기후적응형 스마트팜, 물 재이용 기술, 아열대 작물 재배기술은 이 지역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포항·구미 같은 산업도시는 탄소다배출 공정을 바꾸기 위해 수소환원제철, 탄소포집·저장 기술(CCUS)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도시의 에너지를 농촌이 공급하고, 농촌의 자원을 도시가 순환시키는 ‘도농 순환형 기후테크’ 모델은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덴마크는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풍력도시를 세웠고, 핀란드는 도시 전체를 데이터 기반으로 관리해 에너지 소비를 30% 줄였다. 일본 나고야는 폐기물 재활용 산업단지를 통해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였다. 대구경북 역시 국가물산업클러스터와 연계한 ‘물관리 기후테크’, 경북의 자원순환 산업단지, 대구의 탄소중립산단 조성을 통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기후테크’는 위기의 기술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다.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대구·경북이 ‘기후테크’라는 혁신의 파도에 올라타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후 회복탄력성 선도 지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0-16

큐피드의 화살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시집을 안 가고 개기는 딸 때문에 가끔 짜증이 나서 한 번씩 쏘아붙인다. 어릴 땐 찍소리도 못하던 놈이 좀 컸다고 이젠 말대꾸를 자주 한다. 말로선 못 이겨 눈만 흘기고는 머리를 돌리고 만다. 첫째는 안 그런데 둘째 놈은 제 아비 속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강사가 부모와 자식 세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금촉 화살과 은촉 화살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한다. 은촉이 아니라 납촉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납촉이 맞았다. 하지만 납촉보다는 은촉이 더 이해도를 쉽게 만드는 요인이 있고 납이든 은이든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문학적 표현에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납인데 왜 은이라고 했느냐며 따지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은 여지없는 꼰대 기질을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에로스라고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만 큐피드라고 하면 ‘화살’을 바로 생각할 것이다. 큐피드의 그리스 말이 에로스다. 동양 신화는 마치 무당 굿하는 이야기처럼 여기고 서양 전설을 이렇게 이름까지 헷갈리면서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암튼 큐피드 화살은 단 하나였다.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어 사랑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면서 화살이 사랑의 아이콘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왔다. 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의 귀재들인 작가가 나타나 재미있게 만들어 버린다. 그가 바로 유명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이다. 그가 쓴 ‘변신 이야기’에서 큐피드가 두 종류의 화살을 이야기 한다. 하나는 금촉으로 사람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하나는 납촉으로 사랑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키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이야기가 아폴론에게 금촉을, 다프네에게는 납촉을 쏘아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미치도록 빠지지만, 다프네는 오히려 도망치게 되고, 결국 다프네는 월계수(로렐)로 변해 아폴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든 명작품이 나온 것이다. 빛나는 금을 ‘불타는 욕망·신성한 매력’의 이미지를 주고 납은 무겁고 둔탁한 성질로 인해 ‘냉각· 무관심· 거부’의 효과를 줌으로써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 후 화살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 납이 아니라 은(銀)이 등장하고 철(鐵)까지 나오게 된다. 작가들이 이 재미있는 사랑의 작동 방식을 그냥 두지 않았고, 고대·르네상스 이후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이 강사는 이것을 부모와 말 안 듣는 자식 간의 관계를 금촉과 은촉이라는 화살 이야기를 가져와 설명한 것이다. 당연히 강의를 듣는 이들은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고 강의의 목적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 된다. 부모는 자녀의 연애·욕망을 제어하거나 반대하는 역할로 은촉의 화살을 맞은 것이고 자식들은 금촉 화살을 맞아 ‘불타는 청춘의 사랑’ 운운하며 무모하게 자신을 불태우려 한다. 아마도 둘째 놈은 금촉 화살을 잘못 맞은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아무리 말려도 지지리 말을 안 듣는 걸 보면. 근데 멍청한 큐피드가 나에게도 금촉을 쏜 거 아냐? 왜 자꾸 미운 자식에게 미련을 두는 거지? /노병철 수필가

2025-10-16

캄보디아로 간 청년들

캄보디아에서 우리 청년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최근 구출된 피해자들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으로 국내 취업이 막혀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 나섰던 이들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폭행과 감금, 협박, 불법행위의 강요였다. 이른바 ‘해외고수익 알바’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불법조직의 덫이었다. 피해자들은 브로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캄보디아로 향했다. ‘월 천만원을 벌 수 있다’, ‘간단한 컴퓨터 업무만 하면 된다’는 말은 사실상 인신매매에 가까운 사기였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기고 불법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업무에 동원되었다. 저항하면 폭행당하고, 탈출하면 살해협박에 노출되었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문제를 ‘해외범죄’나 ‘취업 사기’로만 볼 수는 없다. 배경에는 청년 노동시장의 구조적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통계상 실업률은 낮지만 청년층의 상당수는 불안정한 플랫폼노동과 단기계약직에 내몰려 있다. 안정된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주거와 교육, 생계비용은 끝없이 오른다. 악순환 속에서 청년들은 국내 노동시장에서의 기회를 잃고, 해외의 불확실한 제안에 기대게 된다. 정부가 신속하게 피해자 구출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대증적 반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외교부와 고용노동부, 경찰청과 정보기관이 공조하여 해외취업과 알선의 전 과정을 전면적으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율등록제’로는 불법 브로커와 인신매매 조직을 걸러내기 어렵다. 해외 구인 구직 알선업체에 대한 사전인증제 도입, 피해 발생 시 즉각적인 외교 보호 절차 가동, 현지공관 내 긴급 보호센터 상시 운영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정부의 해외 취업 정책도 재검토해야 한다. ‘청년 해외 진출’을 장려하는 것을 넘어, 안전한 일자리 보증제도와 사후 관리시스템을 장착해야 한다. 청년들이 현지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근로조건과 체류비자 상태를 공증받도록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본국 정부와 연결되는 디지털 연락망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한 노동시장, 안정된 일자리, 실질적 주거와 생계지원 정책이 없으면, 해외 취업 사기와 범죄행태 유입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청년층의 절망을 걷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국내에서 ‘괜찮은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불운한 피해자의 불행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기회의 실종’과 ‘정책의 부재’가 맞물려 만들어 낸 구조적 사고다. 우리는 청년실업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일시적 실수로 치부해 왔다. 그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청년의 기본적 생존은 개인의 과제를 넘어 ‘국가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구출 작전과 함께 해외에서 실종, 감금된 한국인 피해자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 피해자 지원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귀국 후 심리적, 경제적 회복을 돕는 통합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 그 자체다. 단기적 위기관리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보아야 한다. 청년이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0-15

지참금 4000만원과 신랑의 죽음

젊은 세대의 혼인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문제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 등 이웃한 아시아 국가들의 처녀·총각들도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은 최근 10년 사이 혼인율이 절반으로 꺾였다고 한다. 한국 역시 지난해 결혼 건수가 22만2422건으로 2023년에 이어 역대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21세기 청년들의 결혼 포비아(phobia)’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왜일까? 어째서 요즘 청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보통의 월급쟁이가 10~20년을 저축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궁여지책으로 결혼할 두 사람이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려 해도 마찬가지. 집값 상승은 필연적으로 전세 가격도 올린다. 여기에 중국은 아직도 악습으로 남아있는 ‘지참금’ 문제가 더해진다. 최근 외신은 중국 산시성에 거주하던 29세 남성이 결혼식 당일 지참금 문제로 신부와 다투다가 강물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참금 4000만원이면 충분하다, 아니다. 적다”며 신랑과 신부가 웨딩카 안에서까지 싸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약속된 결혼이 중간에서 깨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돈 문제로 인한 다툼이 파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결혼을 앞둔 신랑 혹은, 신부가 “돈보다 중요한 건 둘의 사랑”이라 말하면 “넌 결혼이라는 현실을 모른다”고 조롱당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씁쓸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5

입동(立冬)

냇물이 얼기 전에 세상으로 나갈 때 신을 보시 받은 저 나이키 운동화 잘 씻어놔야지 개털고무신 한 벌 더 장만하고 나머지 너덜너덜한 신발들도 꿰매놔야지 보랏빛 곱던 싸리나무 빗자루 손질도 하고 지붕도 덧대어 눈 내릴 때 대비해야지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약점 보완하고 상처나 흠집도 메꿔야지 눈이 내려 길이 끊기면 죽을 수 있다 생각하면 그 무엇도 미룰 수 없지 혹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후학(後學)을 위한 궁극(窮極)의 미덕이 무엇인가 설사 죽는다 해도, 마당에서 눈 맞고 죽는다면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설장(雪葬)이라 말하고 싶은데‘ 가당치도 않겠지 마음 다잡아 하얗게 잊혀질 것 그 이상의 꿈을 꾸며 장작을 팬다 생애에 걸친 악업을 쪼갠다 아궁이와 굴뚝청소도 한다 그 누구를 위해서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겨울이 온다. …… 중구난방, 다방면으로, 무작위로, 치명적으로 인간의 겨울이 온다. 경제적이든, 기후적이든, 인간적이든, 좌와 우에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가리지 않는다. 차라리 얼어 죽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후세에 명징하게 교과서로 남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도 살아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0-15

끝과 시작 사이, 아홉 번째 파도

러시아 화가 아이바조프스키의 ‘아홉 번째 파도’를 들여다본다. 바다는 뒤집어질 듯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고 조각난 배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이 부표처럼 남은 파편에 매달려 간신히 생을 붙들고 있다. 사람들은 거센 물결에 삼켜질 듯 위태롭지만 기묘하게 붉게 빛나는 하늘은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스며들게 한다. 수평선 너머 붉게 번지는 태양빛은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을 동시에 일깨운다. 문득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떠올린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홉 번째 파도’라는 표현은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끝내 마주해야 하는 죽음과 맞닿은 고독의 절정을 상징한다. 죽음은 끝이면서 동시에 삶의 모든 고통이 멈추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고 우리는 첫 번째에서 아홉 번째에 이르는 물결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설 속 인물에게 파도에 휩쓸리고 싶은 충동과 끝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공존하듯, 죽음은 두려움이면서도 해방의 욕망을 품은 여행일지 모른다. 아홉 번째 파도는 유럽 바다 문화에서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최후의 물결이자 신화에서는 가장 거세다고 전해진다. 서양에서 숫자 9는 완성을 뜻하고, 동양에서는 끝과 시작의 경계라 여겨진다. 그래서 아홉 번째 파도는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이자 새로운 시작을 품은 상징처럼 다가온다. 끝이면서도 시작이고 절망이면서도 희망이다. 아이바조프스키의 그림과 로맹 가리의 소설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 역설 속에 있다. 붉은빛으로 번져오는 하늘은 단순한 태양의 광휘가 아니다. 인간이 끝내 붙잡고 싶어 하는 마지막 빛줄기이자 소멸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파도를 맞는다. 때로는 예고 없이 덮쳐오는 고난의 물결 앞에서, 때로는 지독한 상실의 소용돌이 앞에서 흔들린다. 대부분의 파도는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고 우리는 다시 숨을 고르며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은 피할 수 없는 아홉 번째 파도가 다가온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지인의 친정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처음에는 이름을 잊고 그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오랜 세월 아버지를 곁에서 돌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인의 얼굴에는 지친 그림자가 짙어졌다. 이제는 그녀가 누구인지조차 묻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무력감에 빠졌다. 그녀가 혼자서 슬픔을 삭인다고 생각하니 내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지인의 어깨 위에 아홉 번째 파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 그녀 아버지의 육신은 살아있지만 기억이라는 바다는 이미 무너져 내린지 오래되었다. 지인은 무너져 내린 바다에서 작은 널빤지를 붙잡듯 아버지의 손을 애절하게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언젠가 아홉 번째 파도를 건너갈 때, 그것이 두려움의 파도가 아니라 평화의 파도이기를 기원했다. 삶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파도의 연속이다. 내게 아홉 번째 파도는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은밀한 기다림처럼 다가온다. 그것이 종말이라면 나는 무엇을 놓아야 하고, 무엇을 끝내 붙들어야 할까. 파도의 거품 속으로 스러지는 순간 나는 과연 소멸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나는 이제 파도를 두려움만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아이바조프스키의 붉은 바다처럼, 로맹 가리가 새들의 죽음을 페루라는 존재하지 않는 땅으로 은유했듯이 죽음은 절망만이 아니라 희망의 길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아홉 번째 파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이전의 수많은 파도를 나는 정면으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게 다가올 아홉 번째 파도는 내 삶을 집어삼키는 어둠이 아니라, 나를 더 넒은 바다로 이끄는 빛의 물결이 되기를 바란다. /정미영 수필가

2025-10-15

신라의 베짜기 전통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 여성들이 길쌈 내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3대 유리왕 9년에,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두 편으로 나누고, 임금의 두 딸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게 하였다. 이들 두 편은 7월 16일부터, 매일 새벽에 큰 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밤 열 시경에 끝냈다. 한 달이 지나 8월 15일이 되면 길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헤아려서, 이기고 진 편을 가리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 사례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의 놀이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는 소리로 ‘회소, 회소!’라고 하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뒷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 가배는 추석의 우리 고유어인데, 이 기사에서 유래한다. 추석에 하는 중요한 행사가 바로 길쌈이었다는 기록이다. 신라시대에는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길쌈을 장려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기록물인 삼국유사에서 여성의 길쌈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 찾아보았다. ‘선도산성모’조에는 신모가 처음 진한에 와서 동국의 첫 번째 임금인 혁거세를 낳았을 것이라고 했고, 하늘나라의 여러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하여 붉은색으로 물들여 관복을 지어 주었다고도 했다. ‘연오랑세오녀조’의 세오녀는 이름부터가 베짜는 여성이다. 동해안의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차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본래 해와 달의 정령이었기에 기들이 신라를 떠나자 신라에서는 태양과 달이 사라져 빛을 잃고 말았다. 신라의 왕이 급히 일본에 사신을 보내 연오랑과 세오녀의 귀국을 종용했다. 하지만 연오랑은 하늘의 의지로 일본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신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사신에게 주고,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태양과 달이 빛을 되찾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사신이 가지고 돌아온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자 태양과 달은 빛을 되찾았다. 신라의 왕은 이 불가사의한 비단을 나라의 보물로 정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린 장소를 영일현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세오녀는 비단을 짜는 여성이었고, 잃어버린 빛을 찾아준 여성이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만 봐서도 전통적으로 길쌈, 즉 베짜기는 여성의 신성한 역할이었다. 베 짜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한 여성은 왕녀이거나, 신모이거나, 빛의 정령이었다. 실제로 신라에는 직물 제조와 수공업을 관장하는 모(母)라는 관직이 있었고, 그 우두머리는 여성이었다. 또한 당시 신라는 직물을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는데, 그 유물이 일본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 생활의 기본이 되는 요소인 의식주의 가장 앞선 요소를 담당한 이는 여성이었다. 경주의 동해안 가까이 있는 동네 두산리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비단을 짜는 여성들이 있어 두산손명주짜기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령화와 국가의 무관심 속에서도 전통으로 이어가는 그들을 추석 즈음에 기려본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0-15

가을철 관절과 순환

가을이 되면 공기가 건조해지고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누적이 되면 근육이 점점 굳기 시작한다. 여름 동안 땀을 많이 흘리며 열이 많던 몸은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혈액순환이 느려지고 관절과 주변의 근육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 무릎이 시큰거리거나 허리가 묵직하고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날 때 삐걱대는 느낌이 든다. 멀쩡하던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느새 힘들고 밤이면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다. 찬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이 시기의 관절통은 단순한 일시적 냉증이 아니라 몸 전체 순환의 경고음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가을철 통증을 한습(寒濕)으로 인한 기혈순환 장애로 본다. 찬 기운이 몸속 깊이 들어오면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통증이 생긴다. 여기에 습기나 노폐물이 더해지면 관절 주위에 딱 달라붙듯 뭉치며 통증이 깊어진다. 특히 허리와 무릎처럼 체중을 많이 받는 부위는 냉기에 취약해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뻣뻣하고 무거운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관절 안의 윤활이 떨어지고 염증이 반복되면서 퇴행성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통증을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고 치료하지 않으면 계절이 바뀌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만성 상태가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일시적인 진통제가 아니라 순환을 되살리는 근본 치료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와 혈이 원활히 돌아야 통증이 풀린다고 본다. 가을철에는 체온이 떨어지면서 기혈의 흐름이 약해지기 때문에 따뜻한 약재를 이용해 해당 부위를 따뜻하게 해주고 순환을 시켜주는 약재를 추가하면 도움이 된다. 육계로 따뜻하게 해주고 작약으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다. 강활 독활로 관절에 쌓인 습기를 추가로 제거할 수 있다. 이런 약재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복용하면 잘 낫지 않는 관절통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생활관리도 치료만큼 중요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관절을 덮는 게 첫 번째다. 얇은 옷 여러 겹을 겹쳐 입고 무릎이나 허리에 핫팩을 붙이는 것도 좋다. 찬바닥에 오래 앉거나 무리하게 쪼그려 앉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 아침 운동은 조심해야 한다. 밤새 식은 몸은 근육이 수축돼 있기 때문에 바로 운동을 시작하면 관절에 무리가 간다. 몸을 충분히 데운 후 스트레칭을 하고 걷기나 가벼운 근력운동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저녁에는 따뜻한 물로 반신욕을 하거나 무릎 주변을 온찜질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관절이 뻣뻣해지는 건 단순히 노화의 신호가 아니라 몸이 균형을 잃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을의 관절 관리는 따뜻하게 하고 소통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면 혈류가 살아나고 기운이 원활해지며 통증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결국 관절 건강은 계절의 흐름과 함께 가야 한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무릎과 허리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제때 풀어주는 습관을 들이면 겨울에도 몸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유지된다. 한 번 굳은 관절은 풀기 어렵지만 꾸준히 순환을 지켜주면 다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가을의 냉기가 시작될 때 그걸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따뜻하게, 부드럽게, 느리게 돌보는 일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0-15

나를 위해, 나를 바꾸자

본지는 10월 15일부터 ‘김상국의 Wellness와 삶의 질'을 격주로 연재한다. 이 칼럼은 건강지식과 필자의 경험, 여행 체험 등을 함께 담아낸 하이브드리 에세이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웰니스’란 단순한 건강 정보가 아니라,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 균형을 아우르는 통합적 삶의 철학을 의미한다. 필자인 포항 청하면 출신의 김상국은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정년퇴임 때까지 세종대 교수로 일했다.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좋은 습관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조용한 혁명과 같다. 혁명이라고 하면 흔히 깃발과 함성, 피와 땀의 투쟁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혁명은 삶 속에 스며 있는 작은 반복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선택, 술 한 잔 대신 동네 산책을 택하는 선택, 짧은 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선택 등이 있다. 바로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큰 흐름을 바꾼다. 결국 인생은 ‘나다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무거운 책임과 일상의 굴레가 커질수록 우리는 간절히 꿈꾸던 모습과 점점 멀어지곤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끝내 자신이 바라던 삶을 현실로 만들어간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또 역사의 무대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을 보며 깨달았다. 성공은 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뇌는 익숙한 습관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벽을 넘어서는 순간, 습관은 우리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오프라 윈프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고 명상하며 자신을 지켜냈다. 그러한 습관들이 그녀를 미국을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세웠다. 한국 축구의 자랑 손흥민 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양발 훈련, 수천 번의 슛 연습, 철저한 식단 관리라는 습관을 지켜왔다. 지금의 손흥민은 타고난 재능보다 꾸준한 습관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내 곁의 제자들 역시 이를 증명한다. 매일 영어 일기를 쓰던 학생은 훗날 교수가 되었고, 또 다른 학생은 글로벌 기업에 당당히 입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천재성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지속적 실천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메타인지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 그리고 노력하면 능력이 향상된다고 믿는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반대로 실패하는 이들은 대체로 고정된 마인드셋(fixed mindset)을 갖고 있었다. “타고난 능력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변화의 문을 스스로 닫는 것이다.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단순한 다짐을 넘어 몸과 마음을 거듭 단련하는 과정이다. 한 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타인의 단점을 먼저 지적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12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며 완전히 달라졌다. “걸으면서 나쁜 습관을 버리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했다“라는 그의 고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 그의 얼굴에는 늘 잔잔한 미소가 머문다. 습관 하나가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오늘은 그냥 한잔할까?”와 “밖에 나가 걸을까?”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내일의 나를 만들고, 결국은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삶의 질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에서 갈린다. 워런 버핏은 세계적인 부호이지만 검소한 습관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는 여전히 중고차를 타고, 햄버거와 체리 콜라를 즐기며,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이웃에게는 관대하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매일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까지 지켜왔다. 지금의 워런 버핏을 만든 것은 돈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최근 나는 남미 여행을 준비하며 습관의 힘을 다시금 떠올렸다. 잉카 문명의 길을 따라 홀로 떠나는 여정은 내게 하나의 문답식 여행이다.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은 결국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힘으로 이어진다. 여행은 일상의 껍질을 깨뜨리고, 낯선 나와 마주하게 한다.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습관의 씨앗이 싹트고, 돌아와 일상 속에 심어진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재정비하는 습관의 연습장이 된다. 좋은 습관은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분명한 목표, 전략적인 계획, 그리고 “될까?”가 아닌 “반드시 된다“라는 결심이 있으면 충분하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포기하지 않는 한, 습관은 반드시 우리를 바꾼다. 나를 위해, 나를 변화시키자. 그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과 발걸음 속에 내일을 바꿀 혁명이 숨어 있다. 습관은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우리 인생을 새롭게 일으켜 세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0-14

걸음을 멈추고서야

세상은 늘 걷는 자들의 속도에 맞춰 돌아간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발을 재촉하며 살아왔다. 지난 금요일, 평범한 계단 한 칸이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헛디딘 발목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시커먼 멍이 자리를 잡았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뼈에 금이 갔고 인대가 파열된 상태였다. 깁스를 하고 3주 동안은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계단 몇 칸, 문턱 하나, 식탁 의자 하나가 이렇게 높은 장벽이 될 줄은 몰랐다. 혼자 병원에 가는 길,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일, 진료비를 수납하고 다시 택시를 호출하는 과정이 하루치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했다. 택시가 오기까지 목발에 의지하여 기다려야 하는 그 몇 분이 유난히 길었고 내 발끝은 사무치게 땅을 그리워했다. 깁스에 갇힌 발을 보며 나는 묘한 고립감을 느꼈다.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는데 나만 정지된 듯했다. 가장 서운했던 건 사람보다 내 마음이었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기다리던 나는 정작 아무에게도 내 고통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근황과 자신의 힘든 상황만 이야기했고 나는 ‘그래, 그랬구나’하며 웃어 보였다. 웃음 뒤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배려해 주리라는 기대는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갔다. 내가 청소하고, 챙기고, 잔소리하던 일들을 대신해 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사 시간이 되어도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분리수거를 비롯한 많은 집안 일들은 쌓여갔고 더뎌졌다. 내 눈에는 보이지만 내 발은 꽁꽁 묶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손과 발이 되어주던 일상은 나 혼자 만들어 낸 순환이었구나, 결국 아프면 나만 손해구나 하는 자조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발목은 좀 어때?’라며 문자를 보내오는 친구, 뜬금없이 반찬을 가득 사서 건네주는 친구, 그들의 짧은 안부는 놀랍게도 진통제보다 나를 더 깊이 진정시켰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 한편은 포근하게 데워졌다. 인간관계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행동 하나, 작은 관심 하나, 작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움직이지 못하니 오히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 너머로 스치는 햇살의 각도, 마룻바닥을 따라 번지는 먼지의 그림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의 기적을 체험하며 감사하는 내 목소리, 나는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렸고 너무 많이 여기저기 챙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돌볼 시간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없이 타인들만 챙기며 너무 많이 뛰었다. 걸음을 멈추고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까지 챙기고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가 보였다. 3주라는 시간은 짧지만 나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아직 나는 깁스에 갇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을 내려 딛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지만 통증이 주는 무게가 그것을 막는다. 멈춤 속에서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물 한 컵을 먹기 위해 애쓰는 손끝의 섬세한 의지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걷는다는 것은 그저 이동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깁스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손이 자유롭다는 것. 두 발이 동시에 땅을 딛는다는 것, 식탁까지 걸어가 밥을 먹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평범한 동작들이 이렇게도 눈부신 행위였다는 걸. 몸이 멈춘만큼 시선은 깊어졌고 불편함은 감사의 형태로 변해갔다. 세상이 내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사실을 지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깁스를 풀면 나는 다시 자유로워지겠지만 예전처럼 무심히 걷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이 발끝을 스치는 감각,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숨소리, 길가의 사람들과 스치는 짧은 인사마저 새롭게 느낄 것이다. 아픔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삶을 다시 배운다. 걸음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보게 된 것들, 그것은 나의 쉼이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다. /김경아 작가

2025-10-14

철강산업,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고 회복에도 타이밍이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쌀 생산지 ‘철(鐵)의 도시’ 포항이, 한국 철강산업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미국의 고율 관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추가 관세, 중국의 무차별 저가 철강 물량 공세까지 대외 악재는 중첩되고 있다. 여기에 국내 건설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철강업계의 시름은 바닥을 모르고 깊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철강산업고도화방안을 마련중에 있고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까지 추진하면서, 업계는 경영 전략 전반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것도 업계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철강산업은 포항 지역경제와 일자리의 핵심 축이다. 최근 생산량이 10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일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역 상권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제조업의 디딤돌인 철강이 흔들리면 자동차·조선·건설 등 전방에 있는 연관 산업 모두 타격을 입게 된다. 지역적으로도 경주-울산까지 포함한 해오름동맹부터 넓게는 전국적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와 주요 산업 도시들의 경제까지 흔들리게 된다. 업계는 “이미 포항 경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NDC 상향까지 더해지면 아예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한다. 최근 배출권거래제 등 각종 규제가 강화되면서 철강기업의 부담도 커졌다. 반면 일본 등 주요국은 단계적 전환과 대규모 지원을 병행하며 자국의 산업 기반을 붙잡고 있다. 독일 총리도 최근 EU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을 공개적으로 저지하고 나섰다. 각국 모두 경기 침체 속에서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한 ‘속도 조절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철강을 ‘관리 대상 산업’으로만 보는 시각이 강하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접근하는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목표는 유지하되 이행 속도를 조절하고 산업 보호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에서도 철강 경쟁력과 녹색 전환을 동시에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논의 중이다. 지역 정치권과 산업계 역시 제도적 뒷받침을 요구하고 있다. 한 지역 재계 관계자는 “산업 기반을 잃고 달성한 탄소중립은 공허한 성과일 뿐”이라며 “현실에 기반한 실용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의 생존은 단순한 지역 현안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조업 생태계와 국가 경제, 나아가 안보까지 직결된 문제다. 탄소중립과 산업 생존이라는 두 목표를 병행하려면, 속도 조절과 대규모 기술 투자·정책 지원도 동반되어야만 한다. 과거 포스코의 철강재로 ‘중화학공업’을 뒷받침해 고도성장을 일궜던 한국이 다시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려면, 환경 목표와 산업 기반을 동시에 지키는 ‘현실적 전환’의 유연성과 더불어 K스틸법 제정 등 국가차원의 철강에 대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산업이 버티는 것도 무기한이 아니며, 회복하는데도 타이밍이 있다. 바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0-14

수명 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가리키는 말의 뜻을 가진 빈부격차는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는데 반드시 극복돼야 할 과제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구성원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빈곤이 심화되면 사회 전체의 불행이 커진다는 의미다. 10여 년 전 한 조사에서 전국 200여 시군구에서 소득 하위 20% 집단의 기대수명이 소득 상위 20% 집단보다 짧다는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모두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밝힌 세계인의 평균수명은 72.6세(2023년)다. 남성 69.1세 여성 73.8세며 선진국인 일본, 스위스, 호주 등은 80세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에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등 개발도상국가의 평균수명은 60세 미만이다. 아프리카의 차드는 52.7세, 나이지리아는 54.6세다.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내가 태어난 나라에 따라 약 20년 가까이 더 오래 살고 더 빨리 죽는다는 뜻이다. 외국의 사례로 짚어 본 결과여서 실감이 덜 나겠지만 국내서도 이런 수명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의료격차가 수명 격차로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기대수명은 90.11세로 나타난 반면 경북 영덕군은 77.12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의사 수의 절대 부족과 대형병원 등 의료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이 원인이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수명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4

마치 ‘범죄도시’ 영화 같은 캄보디아 비극

캄보디아 범죄 단체에 의한 경북도민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충격적이다. 예천 출신 한 대학생이 범죄 조직에 납치·감금돼 고문을 당하다 살해된 사건에 이어, 13일에도 캄보디아에 간 상주 출신 30대 청년이 범죄 조직에 납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그저께 “지난 8월 19일 캄보디아로 출국한 상주출신 A(30대)씨와 연락이 끊겼다”는 가족 신고가 지난 8월 22일 접수됐다고 밝혔다. A씨는 출국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가 닷새 뒤인 24일 텔레그램 영상 통화로 가족에게 “2000만원을 보내주면 풀려날 수 있다”고 말한 뒤 다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경찰은 캄보디아 범죄 조직이 그를 감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출국한 예천 출신 대학생은 출국 2주 만에 범죄 조직에 납치돼 고문을 당한 끝에 숨졌다. 그와 함께 붙잡혔다 구조된 한국인 B씨는 “학생이 너무 맞아서 걷지도,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태였다.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고 증언했다. 숨진 대학생은 현재까지 시신조차 송환되지 못하고 있으며, 경찰은 가해자들이 ‘대치동 마약 사건’과도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캄보디아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보이스피싱, 온라인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캄보디아 범죄도시’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이를 두고 마치 ‘범죄도시’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 의원은 최근 SNS를 통해 “이재명 정권이 정치보복에 몰두하는 동안 해외에서는 우리 국민이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올들어 8월까지 330건으로 폭증했다. 이들은 대부분 ‘고수익 해외취업’에 속아 범죄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예상된다. ‘캄보디아 범죄도시’ 사건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대통령실은 13일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에는 외교부와 법무부, 경찰청, 국정원 등 관계 부처 관계자가 참여한다. 경찰도 캄보디아 대사관에 경찰 영사를 확대 배치하고, 국제 공조수사 인력도 보강할 계획이다. 특히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 사망자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코리안 데스크’ 설치 문제는 주권 문제가 얽혀있어 상대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리안 데스크는 해외 경찰에 파견 간 한국 경찰로 현지에서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전담한다. 한인 살인사건 피해자가 가장 많은 필리핀에 2012년 처음 만들어져 현재 3명이 활동 중이다. 태국 경찰에도 한국 경찰관 2명이 파견돼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늦게라도 정부가 ‘캄보디아 범죄도시’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우리 국민이 국제 범죄조직의 주 타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국민의 피해실태를 상세하게 파악해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0-14

걱정이 삶에 주는 의미

‘걱정에 대한 전략을 모르는 사업가는 요절한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 알렉시 까렐(Alexis Carrel) 박사의 말이다. 현대인의 열 명 중 한 명꼴로 신경쇠약 증세를 갖는 경우가 많고, 그 중 대부분은 걱정과 심리적 갈등이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가정주부, 수의사, 건설 현장 벽돌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병원 내과 의사를 찾아오는 70퍼센트는 불안감이나 걱정만 없애도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신경성 소화불량, 위궤양, 심장질환, 불면증, 여러 가지 두통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걱정에 대해 조명한 또 다른 책은 칼 메닝거 박사가 쓴 ‘내 안의 적’이다. 근심, 좌절, 증오, 원한, 저항, 불안에 의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파괴되는지에 대해 뜻밖의 사실들을 보여준다. 걱정은 완고한 성격의 사람마저도 병들게 할 수 있다. 북군 그랜트 장군은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그의 병을 발견했다. 그랜트 장군은 남부 수도 리치몬드 시를 아홉 달 동안 포위하고 있었다. 남군 리 장군의 부대는 기진맥진하고, 굶주리고, 녹초가 되었다. 리 장군의 부대원들은 리치몬드 시내의 면화와 담배 창고에 불을 붙이고 무기고를 태우고서 치솟는 불길이 어둠을 밝히는 동안 그 도시에서 탈출했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로 편두통과 정신적 혼란을 겪었던 그랜트 장군은 불면, 우울감 등으로 전시 외상 증후군에 시달렸다고 한다. ‘걱정은 우리 마음의 그림자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내일의 일, 사람 관계, 건강, 돈, 일의 성과까지 걱정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이 감정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걱정은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게 하는 인간 본연의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걱정은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 생각의 반복’으로 정의된다. 문제는 그 양과 지속 시간이다. 걱정이 일정 시간을 넘어서면 불안, 스트레스, 불면, 위장장애 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생산성과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리더나 조직 책임자일수록 걱정이 많다.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걱정이 통제 불가능한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 리더십의 힘은 약해진다. 토마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실패가 걱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생각했다. 걱정을 배움의 신호로 바꾸는 태도가 그를 위대한 발명가로 만들었다. 우리의 걱정도 마찬가지다. 걱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것을 ‘준비의 동력’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걱정은 미래를 대비하는 경고등이지만, 그 불빛에만 매달리면 시야를 잃는다. 걱정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경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걱정은 그림자처럼 따라 오지만 우리가 방향을 잃지않는 한 그 그림자는 우리를 삼키지 못한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꿈과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걱정은 피해 갈 수 없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만드는 지혜로 내 마음을 경영해 나가면 건강한 삶이 될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0-14

참새와 제비

참새와 제비는 같은 참새목으로 분류되지만 그 생태는 아주 다르다. 그러면서도 수천 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생 조류이긴 하지만 우리의 생활반경 안에 들어와서 삶의 일부처럼 된 새들이었다. 농경사회가 아닌 지금은, 더구나 도시에서는 참새나 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로 관심거리도 아닐 터이다. 그들에 대해 애틋한 정을 가진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참새도 제비도 그냥 보통의 조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비는 한국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여름 철새였다. 통계상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옛날에 비해 10%도 안 되게 개체수가 줄어든 것 같다. 흔할 때는 무심히 보았는데, 지금은 어쩌다 제비가 보이면 옛 동무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예부터 제비는 길일인 삼짇날(음력 3월3일)에 와서 중양절(음력 9월9일)에 강남으로 간다고 해서 길조로 여겼다. 야생조류이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함께 살아왔다. 매나 뱀으로부터 알과 새끼를 보호받는 대신 농작물에 해가 되는 벌레를 잡아먹어서 공생관계를 형성해온 셈이다. 새끼를 기르는 제비가 하루 종일 잡아 오는 벌레가 350마리 정도라고 하니, 한 쌍이 두 번 번식할 동안 필요한 벌레의 수는 상당한 정도인 것이다. 귀소본능이 강한 제비는 작년에 왔던 곳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우리가 보는 제비는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진 셈이다. 찬바람이 불면 흔히들 강남으로 간다고 하는데, 겨울 동안의 서식지는 주로 동남아 지역이고 더러는 호주까지도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악천후를 만나 죽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 흐리고 바람 거친 가을 날 제비들이 많이 나는 것은 아마도 먼 여정을 대비한 비행연습인 것 같다. 참새는 마을 근처나 들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텃새다. 귀엽게 생겼지만 농민들에게는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씩 떼로 몰려다니며 벼나 조, 수수 같은 농작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모택동은 참새 소탕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새들을 모조리 잡아버리자 병충해가 창궐해서 오히려 농사를 망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참새는 잡식성이라 곡식만 먹는 게 아니라 해충도 잡아먹는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참새들이 공짜로 곡식을 먹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참새라는 이름은 참 친근감을 준다.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지만 그런 이름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기 때문에, 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참새가 아닐까. 참새 말고도 까치나 비둘기 같은 여러 종류의 텃새들이 있고 철새들도 많지만 우리 조상들은 가장 가까운 참새를 그 모든 새의 표준으로 인식했던 게 아닐까 싶다. 시국이 몹시도 불안하고 암담하다. 건국 이래 나라의 정체성이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린 적이 없었다. 시국만큼이나 흐린 날씨에 비행 연습을 하는 제비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0-14

한국 청년 무덤 된 캄보디아

‘통장을 개설해 가져가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8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보장하며 1인1실 호텔 숙소를 제공한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청년들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장기간 계속된 경기 침체와 각종 스펙을 갖춰도 넘기 힘든 취업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가 적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학업을 마치면 직업을 찾아 독립하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 처한 20대에게 외국생활도 체험하고 거기서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이 온다면 마음이 흔들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렇기에 인터넷 공고와 지인의 권유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르는 한국 청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떠나기 전 그렸던 희망적인 미래는 캄보디아에 도착하는 순간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 고액 임금과 쾌적한 숙소, 큰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통장은 미끼였다. 현실은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가담하라는 강요와 협박, 이를 거부하는 순간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최근 예천 출신의 대학생이 위와 같은 과정 속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단 이 청년만이 아니다. 보도에 의하면 2000여 명 안팎의 한국 청년들이 캄보디아 곳곳에 독버섯처럼 들어선 ‘범죄공장’에 감금된 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종 불법행위를 강요받고 있다. 늦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현황 파악과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니, 경찰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물론 관련된 국가기관이 모두 나서 위기에 빠진 청년들을 구해내야 한다. 그건 방기해선 안 될 국가의 책무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