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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럴듯한 포장이 인사 혁신은 아니다

말 한번 시원하게 한다 싶었다. “문재인 같은 인간은 무능하다.” 그뿐 아니 다. “문재인은 비열한 사람”, “문재인이 오늘날 우리 국민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흉이다.” 최동석 신임 인사혁신처장이 과거에 했다는 발언이다. 그의 평가가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표현이 너무 거칠다. 야당의 반발은 약과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윤건영 의원은 SNS에 “화가 많이 난다”라며 “치욕스럽기까지 하다”라고 비판했다. 최 처장의 말에도 새길 만한 대목이 없지 않다. 그는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보은 인사’ 비판이 일자, “인사는 ‘코드인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임명권자와 성향이 비슷한 인사를 기용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성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완전히 부정만 할 수는 없다. 그는 “문재인 정부 장·차관들 명단을 쭉 봐라. 다 문재인 같은 무능한 인간들”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4년 단식 농성 중단을 설득하러 광화문에 갔다가, 갑자기 자신도 동조 농성을 시작했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다. 남의 눈을 의식한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돌아서자마자 다른 행동을 하는 일이 잦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연이은 타운홀 미팅에서 현장 민원을 단호하게 잘랐다. 그는 “제가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일선의 개별 민원을 처리할 권한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SPC 사고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추궁했다. 프레스에 팔이 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매정해 보이고, 당사자는 섭섭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게 맞다. 지도자가 가질 태도다. 이런 두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최 처장의 언행은 너무 나갔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 원천 배제 7대 원칙’을 “아주 멍청한 기준으로 나라를 들어먹었다”라고 비난했다. 위장전입, 병역 기피, 불법 재산 증식, 탈세, 연구 부정행위라는 기존 원칙에 성범죄와 음주 운전을 더한 것이다. 그는 “일꾼이 몸 튼튼하고, 일 잘하면 되지”라고 했다. 이게 단순히 도덕성으로만 치부할 문제들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해치고, 법을 어길 수 있는 사람에게 공직을 맡겨도 되나. 도덕성이 없으면서 유능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그는 특히 성 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다. 문 정부가 성범죄를 인사 원칙에 추가한 걸 비난했다. “예쁜 여자는 얼굴값 한다”라면서 “된장끼 있는 여자가 명품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해 기획’됐다며, “점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했다. 당시는 안희정 충남지사·오거돈 부산시장까지 민주당에서 성추행 사건 연거푸 터질 때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반성문을 요구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비굴한 짓”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조 전 장관에게는 “정치하라. 재능을 썩힐 필요가 없다”라고 부추겼다. 그러다 조 전 장관이 조국혁신당을 만들자 태도가 돌변했다. “조국은 이론도 없고, 과거도 숨기고 있다”, “금수저의 ‘있어빌러티’ 때문에 속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대단한 철학이 아니다. 이재명에게 유리하면 선(善)이고, 그와 적대하면 악(惡)이라는 이분법이 뚜렷하다. 그는 이 대통령이 “하늘이 내린 민족의 축복이자 구원자”라며, “5년은 짧다. 10년, 20년은 해야 한다”라고 찬양가를 불렀다. 왜 발탁됐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강선우 의원에 관한 질문에 “TV도 없고, 신문을 안 본다”라면서 피하고, “도덕성 관련된 것을 공개적으로 청문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교육정책의 기본도 모르는 교육부 장관,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나. ‘코드인사’를 인정하더라도,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진영주의라면 곤란하다. 몰(沒) 도덕이 대한민국의 공직자상일 수는 없다. 더구나 그의 역할이 공직을 전리품으로 나누는 것을 인사 혁신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위험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27

포항과 포스코, 숙명적 공진화(共進化) 관계

필자는 오늘의 포항을 보면서 미국 유학 당시 한동안 머물렀던 피츠버그시를 떠올린다. 포항의 자매도시이기도 한 피츠버그시는 철강 도시로 불리며 번성을 구가했으나 1970년대부터 신흥공업국들에 밀려, 불과 10여 년 만에 인구 70만 도시에서 30만 도시로 쇠락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녹슨 도시의 오명을 벗고 세계적인 첨단바이오·문화도시로 거듭났다. 이는 민관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수십 년에 걸친 ‘르네상스’ 운동을 벌이며 도시 재개발·재창조에 나선 노력의 결과였고, 무엇보다 혁신과 포용, 인재와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항은 지금, 철강산업의 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경제 전반이 철강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철강 공단 출근자 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포스코가 기침하면 포항경제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필자는 피츠버그에서 포항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은 포스코라는 세계적 기업과 대학, 그리고 과학기술연구 기반이 탄탄해 잠재력이 풍부한 도시이다. 포항의 산학연민관이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도시 재개발에 나선다면 피츠버그에 버금가는 도시 재창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포항과 포스코는 반세기 넘게 한 집단이 진화하면 그와 연관된 집단도 함께 진화하는, 숙명적인 공진화(共進化) 관계였으나 언제부턴가 둘의 관계가 느슨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항과 포스코가 공진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일이다. 포스코는 포항시의 산업구조 전환과 탄소중립, 디지털 혁신 등에 있어 핵심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수소·이차전지·신소재 등 포스코의 산업전환 노력에 포항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포항과 포스코는 지금부터 새로운 공진화 모델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동반자에서 미래의 파트너’로, 더욱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공진화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이는 포항시·포스코·시민사회·전문가가 함께하는 상설협의체가 되어야 하고, 환경·안전·일자리·교육·사회공헌 등 의제별 분과 운영 등을 통해 실질적 소통을 강화하면서, 공진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포스코는 청년창업·교육·복지·지역소멸 대응 등 포항시의 미래 전략사업에 대한 공동투자 참여, 수소환원제철과 친환경 소재 등 자사의 미래 사업들에 대한 포항투자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둘의 공진화는 단지 포스코의 노력만으론 요원할 것이다. 포항시와 시민들의 노력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 이에 포항시는 ‘포스코와의 파트너십 행정’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정책공유 플랫폼 운영 등을 통해 포스코 계획과 시정 목표의 교류, 공동 기획도 가능할 것이다. 환경·안전에 대한 협치 역량도 더 키워야 한다. 과학적 데이터와 정책 대안을 가지고 협의하고, ‘산업도시의 숙명’을 인정하면서도 시민 건강권 보호에는 철저해야 한다. 지역사회도 기업에 대한 균형된 시각으로 잘못은 비판하되, 지역 공헌에 대한 평가는 공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포항시와 시민, 포스코가 새로운 공진화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간다면, 지금의 느슨한 관계를 넘어 미래형 지역-기업 모델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포항과 포스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2025-07-27

익숙한 방향을 의심하기

오키나와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지난하고 숨 가쁜 일상에 너무도 지쳐있던 터라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휴가를 구상하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주 빤한 이미지였다. 맑은 바다, 따뜻한 햇살, 해안가에 나 있는 도로를 타고 창문을 연 채 선선히 들어오는 바닷바람을 마시며 드라이브하는 내 모습. 머릿속에서는 정말 완벽한 그림이 그려졌다. 문제는 그 낭만을 만끽하려면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방향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렌터카 업체 직원의 겁 주기 기술은 실로 대단했다. “사고가 얼마나 자주 나는지 몰라요.” 말끝마다 ‘진짜예요’를 붙이며, 친히 사고 현장의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부서진 범퍼와 찌그러진 번호판을 보기만 해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일본 운전 실전판!’ 제목을 단 유튜브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본 성과가 빛을 발하길 바라며, 야심 차게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는 오른쪽에 있고 차는 왼쪽 차선으로 달려야 하는 상황. 좌회전을 하기 위해 숨을 길게 내쉰 순간, 내가 켠 건 방향 지시등이 아니라 와이퍼였다. 비는 오지 않았다. 오키나와의 맑은 하늘 아래, 내 차 앞 유리엔 와이퍼가 분노에 찬 듯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렁뚱땅 좌회전을 마치고 와이퍼를 끄려는데 이번에는 방향 지시등이 켜졌다. 닦을 것도 없는 유리를 열심히 닦아대고 회전할 일 없는 도로 위에서 차는 홀로 신호를 남발하는 중이었다. 문득 직원이 사고 현장을 보여주며 덧붙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출발하는 순간 각이 다 나와요. 아, 저 사람 큰일 나겠구나.” 그의 눈에 나는 어떤 각을 그리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허둥지둥 도시를 헤쳐 나갔다. 목적지에는 도착했다. 물론 와이퍼는 그날 하루 종일 내 방향지시등 노릇을 했지만. 도착한 뒤 본 차는 출발했을 때보다 어쩐지 더 반짝반짝해 보였다. 처음엔 우습기만 했던 그 실수가 시간이 지나자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한국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관성적으로 운전을 하던 나는 낯선 도로에서 맨 처음 운전대를 잡고 연수를 받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끊임없이 “오른쪽 어깨를 중앙선에, 오른쪽 어깨를 중앙선에...” 하며 중얼대고, 신호등도 제대로 보지 못해 급정거하기 일쑤. 아마 이날의 운전대로 면허 시험을 봤다면 나는 초고속으로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익숙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길 원한다. 몸이 기억한 방향과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분명한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모든 익숙함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것도 사실이다. 살면서 그런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그건 낭패라기보단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익숙함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감각에만 기대어 방향을 정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기회. 익숙한 것들이 흔들릴 때 비로소 나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당황하고 머뭇거리고 엉뚱한 버튼을 누르며 실수하는 나. 더 잘하고 싶어서 안달 내고 그러다가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남발하는 평소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일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러나 운전에서만은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기로 했다. 수없이 머뭇거렸지만 결국 전진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와이퍼와 방향 지시등을 헷갈리는 모습이 멀리서 봤을 때는 조금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어쨌든 가고 있으니까. 핸들을 쥐고 힘차게 엑셀레이터를 밟는 마음은 스스로 분명하게 아는 것이니까. 말은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여행 내내 긴장과 조마조마함의 연속이었다. 역주행을 간발의 차로 피한 순간이 몇 번 있었고 위험천만한 길로 들어 굉장한 사고를 낼 뻔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점차 새로운 운전법에 익숙해지게 됐다. 결국 어떤 사고도 내지 않고 제시간에 무사히 렌터카 업체에 차를 반납할 수 있었다. 자동차 키를 직원에게 건네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것은 덤. 손을 번쩍 치켜들고 속으로 외쳤다. 해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이 아슬아슬 위험천만했던 순간이리라. 그렇게 나는 익숙한 방향을 의심하며 그 속에 숨어 있던 무심함과 안일함을 깨트릴 수 있었다. 그래,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용기를 얻은 것을 이번 휴가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해 두자. 그렇게 뿌듯함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한 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공항 주차장에 주차된 그리운 나의 차에 올라타며, 나는 또다시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켰다. /문은강(소설가)

2025-07-27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을 떠나보내며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Black Sabbath’의 보컬리스트이자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자체를 완성시킨 장본인 중 한 명이었던 위대한 뮤지션, 오지 오스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대한 아티스트의 죽음 앞에 적당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의 죽음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그가 불과 세상을 떠나기 17일 전에 올랐던 무대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그의 마지막 무대라고 미리 알렸다. 마치 마계의 왕좌를 연상시키는 의자에 앉아 노래 몇 곡을 부르기도 했던 그는 세상을 향해 작별 인사를 하며 이보다 더 멋진 마지막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그는 그가 다스리는 어둠의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며 끝인사를 남기는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우리 주변의 죽음을 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고 병들어 요양원으로 떠난다. 고통스런 육신 속에서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오랫동안 느끼며 크게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촛불 하나가 꺼지듯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아니면 뜻밖의 순간에 갑작스레 차에 치이거나 높은 곳에서 실족을 해서, 아니면 어떤 재난에 휘말려 인사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지워지고 만다. 아니면 절망 속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떠나는 마당에 몇 마디라도 가까운 이에게 남길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한 일은 대부분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행해지고 묻힌다. 마약과 기행으로 얼룩진 부분들이 있지만 어쨌거나 뜨겁게 살아낸 그의 76년 인생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정말 부러운 것은 희미하게 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 거대한 폭죽 하나를 쏘아 올리고 떠날 수 있었던 그의 마지막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은 유일무이한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들의 인생을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낸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마지막은 어째서 단지 그에게만 허락된 것일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고령이 되어 질병과의 싸움을 지속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되었을 무렵, 누구나 보편적으로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이들과 자신이 살았던 세상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누군가는 오지 오스본처럼 화려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조촐하고 소박한 마무리를 꿈꿀지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나는 이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과 세상에 기여하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조용히 죽음의 곁으로 걸어가겠다고 선언하는 자리를 갖는 일이 흔해진다면 어떨까. 어차피 죽은 다음이라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모여 육개장과 편육을 집어먹곤 하는 장례식 보다야 훨씬 의미 있고 멋진 일일 것 같은데. 영화 ‘타짜’에 등장하는 인물인 ‘아귀’는 자신의 숙적인 ‘평경장’의 죽음을 전해 듣고 말한다. “허허, 그 양반 갈 때도 예술로 가는구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때때로 방만한 삶을 살았지만 어쨌거나 헤비메탈이라는 에너지 넘치는 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공이 있는 예술가이다. 그런 업적에 걸맞게 정말로 예술로 떠났다. 그의 죽음에 앞선 두 번의 죽음이 떠오른다. 한 명은 그의 벗이자 음악적 동반자, 개인적으로는 그가 가장 능숙하게 다룬 ‘악기’라고 할 수 있는 천재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의 죽음이다. 랜디 로즈는 오지 오스본의 곁에서 수많은 전설적인 연주들을 선보이다 1982년 경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른 한 명은 오지 오스본은 모르겠지만,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아시아의 한 국가에서는 그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천재적인 음악적 역량으로 전설로 남게 된 인물이다. 바로 2014년 우리의 곁을 떠난 ‘마왕’, 신해철이다. 2002년에 오지 오스본의 내한 공연이 확정되었을 때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그의 업적과 위대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것이 아직도 나는 생생하다. 신해철의 사심 가득한 방송 덕분에 음반가게로 달려가 오지 오스본의 음반을 사가지고 와서 듣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쯤 오지 오스본은 다음 세상으로 잘 도착했을까. 부디 그곳의 무대에서 랜디 로즈를 다시 만나 뜨거운 공연을 펼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 날의 오프닝 뮤지션으로는 신해철을 추천한다. 백스테이지에서 만나 신나게 한 잔 하며 음악 이야기를 나눌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의 명복을 빈다. /강백수(시인)

2025-07-27

정책과 감동

30년 전 이야기다. 점촌에서 가은 집에 가려고 타던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나면 언제나 서서 가야 했다. 사람도 많았고, 교통수단도 적어 버스는 늘 그랬다. 당시 버스는 이동생활의 구세주였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반자였다. 그 시절 버스는 모두의 발이자 삶의 일부였다. 시간이 흘러 버스는 점차 잊혔지만, 그 시절이 주는 따뜻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때는 버스사업이 호황기였다. 우리가 내는 차비로 회사를 운영하고, 기사들을 고용하고, 유류비나 제반 소요경비를 제하고도 이윤이 있었다. 30년 전 점촌에서 가은으로 가던 시내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고 나면 언제나 서서 가야 했다. 마이카 시대가 오기 전, 버스는 가장 소중한 이동수단이었다. 그 시절 버스는 모두의 발이자 삶의 일부였다. 시간이 흘러 버스는 점차 잊혔지만, 그 시절이 주는 따뜻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런 젊은 날을 보내고 마이카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서 버스는, 특히 시내버스는 잊어진 존재였다. 고향 길에 비포장도로를 타고 덜컹덜컹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던 일들은 새까만 먼 옛날의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게 잊힌 시내버스가 자동차 없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는 것을. 하지만 시내버스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멀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하루 여러 번 드나들던 시내버스의 운행 횟수가 줄었고, 그만큼 더 불편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와 지자체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지 노선을 시작으로 시내버스에 보조금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 규모와 범위는 점점 크고 넓어졌다. 문제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었다. 지원하는 보조금 대비 효율이 낮아지고 있었다. 황금노선이라고 하는 점촌-문경 간 시내버스는 물론, 오지를 오가는 시내버스는 언제나 빈자리만 왔다 갔다 하는 형편이었다. 문경시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 정책은 이런 현실 속에서 나왔다. 시의회에서 한 의원이 ‘시내버스무료화’를 제안했고, 곧 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에게 카드를 제공하는 방법, 쿠폰을 제공하는 방법 등등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최적의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드나 쿠폰 지급 등의 방법은 또 다른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다. 보조금 15억만 더 들이고 부대비용이 없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문경 시내를 오가는 모든 시내버스를 누구나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타는 사람이 시민이든 아니든 구분하지 않았다. 이 정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고, 오지서 오는 사람들도 반겼다. 그러자 시내버스가 대도시에서 보는 것처럼 복잡하기 시작했다. 시내 노선에 아침저녁으로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자 생기도 돌았다. 텅 빈 채 운전기사 혼자 무료하게 달리던 시내버스에 사람들이 점점 많이 타기 시작했다. 점촌장날에는 혼잡하기까지 하다.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이 모두 이렇게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시민과 국가에 좋은 것이라고 시도하는 일들이 곧잘 질타받기 일쑤다. 그런 중에 시내버스 무료화의 시민 감동은 너무 이례적이다. 많은 정책들은 ‘소금장수와 우산장수’에 비교되곤 한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는 말도 늘 따라다닌다. 이처럼 시내버스 무료화도 양비론을 피해갈 수 없다.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비오는 날에는 소금장수 아들을 걱정하고, 갠 날에는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해, 언제나 근심걱정 속에 살아야 했다. 이 어머니는 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데 초점을 두면 어떨까? 비오는 날은 우산장수 아들이 잘 돼 기쁘고, 갠 날은 소금장수 아들이 잘 돼 기쁘면 그 어머니는 언제나 기쁜 날이 될 것이다. ‘yes문경’은 매일 걱정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매일 기뻐하는 어머니가 되어 긍정의 힘을 갖자는 슬로건이다. 특히 행정은 안 되는 방법보다 되는 방법을 찾는, no보다 yes를 지향한다. 안 되는 방법을 먼저 찾기보다 되는 방법을 먼저 찾아보는 자세가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시내버스 무료화로부터 빚어진 그늘이 있다면 지금부터 그 그늘을 걷어내면 된다. 그 그늘을 침소봉대해 긍정적인 면이 묻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현국 문경시장

2025-07-27

“여기, 내 얼굴을 가져가라.”

그들이 내 얼굴을 원하다면 여기 있는 얼굴을 가져가도 좋다. 시간의 일부였던 얼굴, 더는 시간의 일부가 아닌 얼굴, 시간에서 벗어난 얼굴. 거의 모든 얼굴이 그러하듯 한 얼굴이 스쳐간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얼굴 없는 존재들. 어부, 농부, 석공, 주부, 교사, 미화원, 조산사, 기계공. 마을과 도시를 창조했던 그들, 그곳에 살다가 이제는 풍경을 잃어버린 그들 오늘도 우리에게 오늘의 얼굴을 주소서. 어떤 얼굴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내 얼굴을 가져가라. 여기 내 얼굴이 있다. 더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얼굴, 풍경처럼 닳아버린 얼굴, 수면처럼 주름진 얼굴. 나는 닐스 비크, 내게는 배가 있다. 나는 이 배를 얼굴들로 가득 채우고 피오르를 건넜다. ―프로데 그뤼텐 장편소설, 150쪽 부분.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2025. 다산책방) 지난해 한강 작가가 노르웨이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녀의 소설을 ‘시적 산문’이라고 평한 바 있다. 여기 노르웨이의 작가, 프로데 그뤼텐(Frode Grytten)의 소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에서 그러한 시적인 순간을 만난다면 어떤가. 인구 1만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인 이곳에서 사용하는 일상어는 노르웨이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뉘노르스크어다. 작가는 욘 포세와 더불어 이 언어로 작품을 집필하는 몇 안 되는 노르웨이 작가 중 한 명이다. 흔히 시를 쓸 때 더 적합한 언어로 알려져 있다.(손화수, 역자의 말 참조) “새벽 5시 15분, 닐스 비크는 눈을 떴고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인용 구절과 도입부에서 짐작하다시피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피오르 양옆에 자리한 도시와 섬마을을 이어주는 한 페리 운전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작품이 소개하는 인물 닐스를 통해 우리는 평범함 속에는 항상 저마다의 특별함이 숨어 있다는 삶의 비의를 발견할 수 있다. 닐스의 시간과 공간을 스쳐간 “거의 모든 얼굴이 그러하듯” “이제는 보이지 않는, 얼굴 없는 존재들 / 마을과 도시를 창조했던/ 이제는 풍경을 잃어버린” 얼굴들이 기록되어 있다. 초상화(portrait)의 라틴어 어원에는 ‘끌어당기다’라는 뜻이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의 배를 탔던 수많은 ‘얼굴’을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끌어당김으로써 기록한다. 이때 어떤 기록은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되고, 그가 살아간 공간과 시대를 보여줌으로써 그 사람이 된다. 여기서 기록이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일상으로, 실은 주인공 닐스 비크의 ‘항해일지’이다. 그는 무엇을 기록했는가. “날씨와 바람, 정치와 지리” 외에 그가 한 낙서와 신문에서 베껴 적은 ‘글귀’들의 가치는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의 일지에 우리의 삶이 기록된다면 어떤 얼굴일까. 울진과 영덕 방향 국도변에는 포항의 신도시 초곡리로 꺾이는 구간이 있다. 그 ‘틈새’에 스타벅스 카페가 개점했다. 그곳은 말 그대로 확 트인 시골을 에두른 논(NON View)의 공간이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이 생경하고 이질적인 풍경이 바깥의 이미지로써 흥미로울 것이다. 말하자면 프레임이 없는 빈 공간일 텐데, 그곳을 기억으로 채워 나가며 쓰는 일은 비롯된다. 도시와 시골 사이의 얼굴은 점점 더 낯설어져 가는 현실 속의 공간과 소멸해 가는 기억의 공간 사이에 떠 있는 어떤 의식(意識)에 대한 혹은 존재에 대한 기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숲도, 바다도 아닌 부재하는 풍경, 즉 없음의 풍경이다. 미시적인 뷰의 압도하는 풍광과 대비되는 소외의 풍경에 가깝다. 매번 사람으로 붐비는 이 기이한 공간의 통창 밖은 기실은 어떤 집의 가장, 농부의 경작지로서의 일터일 것이다. 이때 “농부”라는 존재와 그 일터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마치 영화의 롱테이크 씬처럼 내가 방문하지 않은 시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지난겨울, 황량한 논에 덩그렇게 놓여 있던 건초더미는 사라지고 어느새 초록의 모가 키를 키우며 흔들리고 있는 눈앞의 풍경이 그렇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같은 날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매일 하늘색이 변하고 구름의 모양이 바뀌는 가운데 반복된 일상을 지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오늘의 얼굴을 주소서” /이희정 시인

2025-07-27

이런 제안 어떻습니까?!

퇴임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대구에 나간다. 경북대 인문대학 퇴임 교수들을 주축으로 ‘인문 세상’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 세상’은 ‘법인으로 보는 단체’로 설립되어 인문학의 확산과 보급을 목표로 1년 정도 연륜을 지닌다. 월 1회 이사회에 나가서 ‘인문 세상’의 현황과 우리가 견디는 일상과 세상사를 화제로 두어 시간 환담한다. 지난번 이사회에서 감사를 맡은 분이 솔깃한 제안을 했기로 독자 제현의 고견을 청하고자 한다. 그분은 한국 사회에 넘쳐나는 퇴직 고급 인력의 활용방안을 고민해보자고 운을 뗐다. 해마다 교직을 떠나는 초중등 교사들과 대학교수들 숫자가 상당할 것인데, 그들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문제 제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를 잠시 돌이켜보았다. 나는 퇴임 이후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단에 서고 있다. 4학기 가운데 3학기 동안 교양 교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강사료는 둘째치고 삶의 규칙성과 활력이 이어지고 있기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여유 시간이 늘어난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수업을 준비한다. 열렬하되 여유롭게, 단단하되 유연하게 학생들을 대하는 기쁨이 자못 크다. 작년 2월 18일부터 청도와 대구 시민들을 대상으로 3학기째 주 1회 무료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지식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첫 번째 주제는 ‘문명과 인간’으로 고대문명의 발생에서 시작하여 21세기와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강의는 작년 10월 하순에 종료되었다. ‘문명과 인간’ 강의에 이어 공자의 ‘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있는데, 지금까지 네 번째 장(章)인 ‘이인편(里仁篇)’을 마무리했다. 강연 시작할 당시에는 적당한 공간이 없어서 청도에 자리한 카페에서 강의를 진행했는데, 작년 말부터 ‘청도 도서관’의 도움으로 동아리방을 강의실로 활용하고 있다. 세상에는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여기 더해 경북대 인문 학술원에서 행하는 시민 인문학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다수 퇴임 교수들은 등산이나 도서관 혹은 취미생활로 차고 넘치는 시간을 축내고 있다. 아울러 그들이 가진 고도의 전문지식도 시나브로 사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감사의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온 게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가 발전된 나라의 복된 시민으로 살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회가 없음은 애석한 노릇이다.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이나 혹은 무상으로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한다면 매우 유익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지식인 양성을 위해 가족과 사회, 국가가 기울인 노력을 공염불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때마침 새로 출범한 ‘국민 주권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획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참에 녹슬지 않은 지식과 혜안, 미래기획과 통찰을 지닌 퇴임 교수들의 활용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는 것도 우리 사회를 위한 긍정적인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27

바가지 요금

바가지 요금의 바가지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설은 분분하나 명확한 게 없다. 그 중 한가지 “바가지로 물을 뒤집어 쓰다”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한글학자들은 남의 책임을 죄다 뒤집어 썼을 때 ‘똥바가지’라는 표현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피서철이 닥치자 바가지 요금을 둘러싼 시비가 잦아지고 있다. 당국이 물가질서를 외치며 바가지 요금 근절에 나서나 때만 되면 다시 등장하는 게 바가지 요금 시비다. 특히 제주도 등 유명 관광지일수록 바가지 요금이 더 기승을 부린다. “비행기표보다 비싼 제주도 렌터카 요금” 등의 말들이 이런 사례다. 내국인이 국내관광을 기피하는 이유의 1순위가 바가지 요금 때문이다. 바가지 요금 피해 해외로 나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이런 바가지 요금은 외국 관광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는 파리를 찾는 외국인에게 업소들이 고의로 비싼 요금을 받으며 바가지를 씌운다는 언론의 폭로가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상술에 빠져 바가지 요금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건 국내나 외국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울릉도에서 비계가 반이 넘는 삼겹살을 판 업소가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울릉관광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드셌다. 울릉군수가 직접 나서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엎어진 물”처럼 울릉관광 이미지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부산에서도 11월 열리는 불꽃축제를 앞두고 하루 숙박료를 200만원까지 올려 받는 업소가 있어 논란이다. 바가지 요금으로 돈 번 사람 없다. “손님이 횡재했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성공한다” 는 장사의 신이 말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7

문해력, 책 읽는 사회가 되어야

국어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2022년 8.0%에서 2023년 8.6%, 2024년 9.3%로 늘어났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읽기 영역 순위도 2006년 세계 1위에서 2018년 세계 6위로 떨어졌다. 기초학력을 측정하는 다른 여러 지표도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역 간 학력 격차도 여전하다. 읍면지역 중3 학생들의 경우 모든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대도시보다 높았다.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있거나 ‘이부자리’를 별자리의 하나로 생각하거나 ‘추후 공고’라는 표현을 학교 이름으로 잘못 이해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고지식’을 높은(高) 지식으로 이해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교 수업 시간에 기본 용어를 모르는 학생이 많아 교사가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이는 시험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학생들도 있다. 시험 시간마저 이러하니 전반적으로 수업 이해도가 낮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학생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학부모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에 “수학여행에서 중식 제공”에서 중식을 중국식 식사로 이해하여 자신의 아이에게는 한식을 요청하거나 “우천 시 장소 변경”을 “우천시”라는 지역으로 오해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이제 문해력 저하는 시급한 사회 문제이다. 국내의 반도체 회사에서 10억이라는 불량을 내었다. 원인 조사를 해보니 1분을 100초로 생각하여 수치를 잘못 입력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생산직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STOP, RUN 등의 간단한 영어와 국어 단어의 뜻을 묻거나 분수 등 산수 문제 시험을 치렀다. 시험 결과 전문대졸 출신의 평균이 70점대 중반, 고등학교 출신의 평균이 60점대 중반을 기록했다. 문해력만의 문제도 아니다. 고등학생이 1/2 + 1/3 = 2/5로 계산할 때도 있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사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사회로 나가 중년 세대가 되었고, 학부모가 되었다. 수업은 학교에서 교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가정을 포함한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교육에 함께해야 한다. 지금 교육을 심각하게 돌아볼 시점이다. 책 읽지 않는 사회가 된 지 오래고, 학생들은 길거리에서조차 휴대전화에서 눈을 못 뗀다. 마음대로 줄여 쓰는 비정상적인 문자가 난무하고 짧은 영상이 넘쳐나는 휴대전화를 보는 아이들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 든다. 어릴 때부터 길든 디지털 인간화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방법조차 못 하게 가로막는다. 문해력도 상식도 수리 능력도 부족한 아이들이 이제라도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고, 책을 들 수 없을까? 책을 읽으며 생각을 키우는 정상적인 교육은 언제나 가능할지. 디지털 선진국이라는 말이 아이들을 망치는 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책을 기본으로 생각을 키우고, 휴대전화는 모르는 것을 채워주는 보조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언제나 올 것인지. /김규인 수필가

2025-07-27

터널 비전이 문제는 아니다

지난 주말 이틀간 사진 치료 워크숍에 참여했다. 작년에 ‘사진으로 대화할까요’라는 책을 사놓고만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의 저자인 김문희 사진상담치료사가 직접 진행한다기에 바로 신청했다.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무지했거나 외면했던 여러 가지 마음 패턴을 발견했다. 그중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치료사가 A, B. C를 말했는데 A에 꽂히면 B와 C는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터널 비전에 사로잡힌 것이다. 터널 비전은 원래 시각장애를 뜻하는 의학용어로, 주변부 시야가 사라지고 중심부 시야만 남아 마치 터널 안을 보는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의미가 확장되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심리상태나 한쪽 정보만으로 판단이 편협해지는 인지적 문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같은 사진 카드에서 참여자들이 각자 다른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터널 비전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재난 상황이나 운동 경기, 큰 시험 등 고도의 집중력이 상황에서는 터널 비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본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은 듣지 않는 내게 치료사가 집중력이 좋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터널 비전은 프레임과 혼동하기 쉽지만 프레임은 아예 객관적 인지를 못하는 상태인 반면 터널 비전은 대상을 제대로 보기는 하지만 시야가 좁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다른 참가자의 시선을 보거나 사진상담치료사의 피드백이 충분하면 자신의 터널 비전을 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없다면 터널 비전은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 최근 사퇴한 강선우 여가부 장관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의 밑바닥에도 터널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강선우를 비판하는 쪽은 보좌관 갑질에 주목하고, 찬성하는 쪽은 보건복지 관련 입법 발의한 경력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주목하는 부분이 다른 것만으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집중한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심지어는 증명되지 않은 논리로 비판하는 데 이르렀을 때 문제가 커진다. 아무리 터널 비전을 가지고 있어도 더 많은 사실을 보여주면 상대를 이해하거나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는 쪽이 제시하는 사실을 축소 해석하거나 ‘음모’니 ‘수박’이니 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면 토론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은 이렇게 지나친 해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국민의힘이 반대하니 적격자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강선우 지명자를 비판하는 쪽과 옹호하는 쪽, 그중에서 논리 비약을 많이 하는 쪽이 더 단단한 프레임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국민 모두에게 사실을 공개하고 토론에 붙여 어느 쪽이 논리 비약이 많은지를 기준으로 적격 부적격을 판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자세히 설명하다 보면 내가 일부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듯이 강선우의 행태를 모두 열거하고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여론은 터널 비전을 자각하게 하는 한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퇴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한 셈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27

이혼 후 배아이식을 결정한 엄마의 마음

배아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이루어진 수정란이다. 사전적 의미로 수정 후 8주까지의 수정란을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수정 후 2주 이내의 초기 수정란을 ‘배아’로, 그 이후의 단계는 ‘태아’라고 하며 배아와 태아를 구분한다. 배아와 태아를 구분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생명권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수정 후 언제부터 인정할 것인지 문제 되기 때문이다. 2004년 부산의 한 부부는 병원에서 인공수정으로 배아 개체 3개를 얻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부인의 몸에 착상됐고, 나머지 2개는 폐기되거나 생명공학 연구에 쓰일 처지가 되었다. 부부는 인공수정으로 힘들게 얻은 배아를 차마 실험실로 보낼 수 없어 “인공수정 배아를 인간이 아닌 세포 덩어리로 규정해 연구 도구로 취급하고, 보존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한 생명윤리법은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로 국가가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수정 후 2주 이내의 배아는 헌법상 생명권이 인정되는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라고 하며 수정된 배아를 불임이나 질병 치료 연구에 이용하고 수정 뒤 5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조항은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했다. 배아와 태아의 구분을 수정 후 2주로 잡은 이유에 대해 헌재는 수정 후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 초기배아는 인간으로 볼 수 없는데 이 원시선이 수정 후 14일쯤 지나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정란의 원시선은 나중에 아기의 척추를 형성한다고 한다. 배우 이시영씨가 이혼 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인공수정 했던 배아를 이식해 임신한 것이 화제이다. 전 남편의 동의 없이 아이를 가진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전 남편이 아이에 대해 부양의무를 지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것 같다. 배아를 생성할 땐 배아의 생성과 이식에 대한 대상자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 동의는 사후에 철회할 수 있지만, 아마 이시영씨 부부는 5년 전 생성해 보관 중이던 배아의 처리 문제에 대해 따로 생각하지 못하고 이혼을 했던 것 같다. 이혼 후 배아의 보관기간 만료가 임박했고 이시영씨는 혼자 이식을 결정하고 임신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생부가 인지하거나 아이가 생부에게 인지 청구를 하면 된다. 인지가 되면 아이와 친부 사이에선 부자 관계에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아빠는 아이를 면접 교섭할 수 있으며, 상속도 이루어진다. 아이 둘의 엄마인 필자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과연 이시영씨가 이 배아를 폐기되어도 어쩔 수 없는 세포 덩이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 보관기간이 만료되어 이식하지 않을 거면 배아를 폐기하겠다는 병원의 통보를 받았을 때 “이혼했으니 폐기해주세요”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모에겐 배아도 자식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수정 후 2주 이내의 배아는 생명권이 인정되는 독립된 생명체로 볼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사실 부모의 마음과는 조금 먼 곳에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24

고스트 건

총기 사용이 허용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고스트 건(Ghoast Gun)이다. 고스트 건은 일반 총과 달리 총기 제조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생산된 총이 아니다. 일반인이 직접 제작한 불법 총기를 말한다. 인터넷에서 부품을 구입해 제조하기도 하고, 요즘은 3D 프린팅에 힘입어 초보자도 쉽게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고스트 건은 일련번호가 없다. 제조사를 추적할 수 없어 유령 총이라고도 한다. 주로 범죄에 사용되는데, 미국 총기범죄에 사용된 총의 약 30%가 고스트 건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고스트 건 규제에 관한 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몇 년전 인천공항 경찰은 12정의 총기를 보관하고 있던 40대 남자를 붙잡았다. 이 남자는 해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60여 차례 걸쳐 총기부품과 총기 관련 서적을 구입해 권총 7정과 소총 5정을 만들어 보관해 왔다고 한다. 총기 사용과 관련해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통해서 누구나 사제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지난 20일 인천에서 사제총기로 30대 아들을 살해한 60대 남성은 유튜브를 보고 총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인터넷 등에는 실제로 총기 만드는 방법 등이 상세히 소개되기도 하고 해외 포털에서도 제작 방법 등을 쉽게 접촉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서 보았듯이 사제 총기도 실제 총에 못지 않는 위력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하다. 사제 총기가 발붙이지 못할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4

부조금

장례 행사가 끝난 뒤 망자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도록 지내는 제사를 우리는 우제(虞祭)라고 하며 세 번 지내기에 삼우제라 한다. 그래서 우린 “삼우, 삼우”하는 것이다. 간혹 어떤 이는 ‘삼오’라고 말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다. 똑같이 헷갈리는 것이 ‘부조(扶助)’이다. 이것을 ‘부주’라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부조”라고 고쳐주면 ‘알아서 들어라.’ 라는 핀잔만 돌아오기에 요즘은 그냥 알아서 듣는 편이다. 장례식장에 꽃을 보낸다면서 조화를 화환으로 이야기해도 그러려니 한다. 과거에는 봉투에 한문으로 부의(賻儀)라고 써달라고 부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 인쇄된 봉투가 비치되어 있고, 축의금과 조의금 구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버려 부고장이나 청첩장에 ‘성의 보내는 곳’으로 입금하면 끝이다. 세상 살면서 유효기간이 없는 것이 딱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부조 명단과 액수이다. 이건 끝까지 간다. 완전히 ‘기부 앤 테이크’이다. 부조금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은 큰 재벌이거나 고관대작들이나 호기에서 하는 행위이고 대형할인점 할인쿠폰 지갑에 쟁기고 사는 서민은 그런 짓을 잘 하지 않는다. 문제는 부조가 다 빚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한 만큼 남도 하게 되고 내가 하지 않으면 남도 하지 않는다. 역으로 말하면 내가 부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받을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했는데 상대방은 하지 않고 있으면 둘의 관계는 아주 묘해진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만큼 돈독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배신감마저 생기게 된다. 갑을 관계에 있는 거래 관계에선 큰일 치고 난 뒤 거래 끊어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 그래서 비록 갚아야 할 빚임에도 부조를 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이 생각보다 뒤끝이 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물론 생뚱맞게 단체 문자 톡에 뜨는 부고장이나 청첩장은 예외이다. 고등학교 동창이라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무슨 문상을 가겠는가. 부고장은 이해가 간다만은 청첩은 또 다르다. 단체톡에 청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일이 청첩(請牒), 즉 손님으로 와서 축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야 가는 것이다. 자식들 결혼 시키는 나이이자 부모님 돌아가시는 나이엔 많이 바빠진다. 한 달에 부조금으로 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정년퇴직에 별반 돈벌이가 없는 이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몇 푼이라도 벌지 않고 놀러 다니기엔 상당한 지출 액수가 한동안 계속될 조짐이 있어 사람 구실하고 살기 위해선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무조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형님, 들어온 부조금을 형제자매간에 어떻게 배분했습니까?” 이젠 부조금 배분문제 말이 많은 모양이다. 갚아야 할 빚이기에 누구 앞으로 들어온 건지 배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어떤 집안에선 남는 돈 전부를 집안 돈으로 묶어 공동경비로 했단다. “난 그냥 남는 것 전부 어머니 다 드렸어.” 배분하는 게 이상하게 추잡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땐 장남이란 게 마음이 편하다. 따라준 동생들과 제수씨들에겐 고마울 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24

가짜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

일본의 문예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는 “촉시적 평면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여기서 ‘촉시적’이란 ‘촉각’과 ‘시각’이 결합된 복합적 감각을 의미하고, ‘촉시적 평면’은 터치패널을 뜻한다. 세계의 변화는 미디어의 변화로 감지되는데, 현대 사회는 바야흐로 터치패널의 시대라는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TV, 영화와 같은 과거의 스크린은 출력 전용이라 만질 수 없고 만져도 내용이 변하지 않으나, 터치패널은 표시와 입력의 두 기능이 모두 가능하여, 접촉을 통해 대상을 조작할 수 있다. 즉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 만연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보이면서 만질 수도 있는 것에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 차이에 천착한다. 스크린에서 터치패널로의 이행은 사회의 구체적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사회의 문제나 현안을 지각하는 방식이 바뀌어버렸다고 말한다. 가령 스크린의 시대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화면)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그 배후의 보이지 않는 힘(감독)을 파악하지 않으면 대상(작품)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의식이 있었지만, 터치패널의 시대에는 그 관계가 변했다는 것이다. 즉 ‘표층’의 배후에 ‘심층’이 있다거나, ‘가짜’ 너머에 ‘진짜’가 있다는 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대로 ‘가짜’를 ‘가짜’인 채로 만지고 조작하고 가공하여 그 조작 자체에서 쾌를 느끼는 시대이고, 심지어 ‘가짜’를 계속 만지다보면 언젠가 ‘진짜’에 도달한다고 믿는 시대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 현상을 예로 든다. 지식인들은 트럼프의 ‘가짜’ 이미지에 속지 말고 그 뒤편의 추악한 ‘진짜’ 욕망을 봐야한다고 했으나 이런 호소는 반대로 ‘가짜’면 어떠냐는 저항을 불러일으켰다고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가짜’와 ‘진짜’의 관계가 뒤틀린, 탈진실(Post-truth) 현상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어려운 현실로 ‘부정선거론(?)’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선거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선관위의 설명이나 사법부의 판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의혹에 매달려 부풀리고, 사회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걸면서 이를 받아주지 않는 현실을 자기 믿음의 근거로 다시 동원한다. 이들에게 진실이란 밝혀지거나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부정선거론’의 실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를 밑천으로 자기의 세(勢)를 키우려는 정치 모리배들과 마치 ‘부정선거론’이 사회의 중요한 의제인 양 그들의 주장을 받아써 주는 언론이 문제라 보인다. 이들은 부정선거 운운이 가짜인 것을 알지만 모른 척 계속 만지고 다루고 접촉한다. 그 가공의 결과가 미칠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정적 제거에만 혈안이다. 혹은 부정선거가 담론화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혼란으로부터 취할 정치적 이득이 있다고 믿는다. 가짜를 가짜인 채 계속 만지다 보면 거기서 일말의 진실에 도달할 거라는 사이비 소망의 출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왜 이들은 사회를, 법을, 합리를, 정치를, 사람을 믿지 못하나? 이런 현상의 배후에 터치패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짜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 같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7-24

안전한 여름, 우리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더위, 그리고 그 속을 식혀주는 반가운 빗소리. 우리에겐 익숙한 여름 여정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변화로 인해 국지성 폭우와 강풍 같은 이상기후가 잦아지며, 이 계절은 더 이상 평온한 휴식의 시간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장마철에는 침수와 누전, 냉방기기의 과도한 사용 등으로 인해 전기 화재의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은 가정뿐만 아니라 여름휴가를 맞아 많은 인파가 몰리는 펜션, 호텔, 캠핑장 등 숙박시설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공간이 한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다중이용시설인 숙박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는 다수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철저한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제 지난해 8월, 부천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는 냉방기기의 전원선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객실로 번졌고, 이로 인해 무려 19명의 인명피해(사망 7명, 부상 12명)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는 냉방기기의 안전 점검과 함께, 기본적인 소방시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사례입니다. 의성소방서는 여름 피서철에 때맞춰 6월 30일부터 7월 31일까지 관내 숙박 및 휴양시설을 대상으로 집중 화재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장 점검을 통해 시설 안전을 확인하고, 관계자들에게 화재 예방 수칙을 안내하는 등 사전 사고 예방에 힘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재 없는 안전한 여름을 위해서는 소방 당국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용객과 시설 관계인의 관심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용객들은 숙소에 도착했을 때 발신기나 비상구의 위치, 완강기 사용법 등을 미리 확인하고,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 시에는 과부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시설 관계인 또한 소화기, 비상조명등, 감지기 등의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하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노후 전기기기나 전선의 상태도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민박이나 펜션 같은 소규모 숙소일지라도, 기본적인 소방시설은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오며, 한 번의 부주의와 사소한 무관심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 우리 모두가 한 번 더 점검하고, 한 번 더 살펴본다면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작은 실천이야말로 더 큰 불행을 막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입니다. 안전한 여름, 우리의 관심과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2025-07-24

그 해 여름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20여 년 전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재생해서 그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해 여름, 텐트 안은 찜통 그 자체였다. 아스팔트가 진득진득하니 녹아내릴 무더위, 폭염이었다. 군용 텐트는 어디에서 났는지 노조위원장이 그곳에 누워있었다. 열흘을 넘기는 시점이 되자 그는 음료수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팔에 링거가 꽂히고 그는 쓰러진 채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정오, 나뭇잎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매미 소리가 도심의 가로수에서 울어댔다. 노조 사무실에서는 위원장의 목숨이 위험하다. 싸움을 여기서 중단할 것인지 힘들더라도 버틸 것인지 노조 집행부가 머리를 맞대며 갑론을박을 펼쳤다. 하지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노조 탄압과 임금동결이라는 큰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노조의 대항이었다. 답 없는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위원장을 제외한 집행부는 하루에 밥 한 끼만을 먹으며 일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일을 하니 그 정도라도 먹어야 한다는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환자의 식사를 하루 세끼 챙기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현기증으로 간혹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 것을. 응급실 앞에서 관리직원을 만났다. 그는 곁 눈질을 하며 노조위원장 때문에 병원 상황이 안 좋다며 노조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어설프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려 그를 넘어뜨리고 주먹다짐을 했다. “노조위원장이 죽게 생겼는데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 노조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 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조합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병원과 노조의 대립구조가 눈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끝장을 보아야했다. 여기서 지면 노조위원장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나는 제대로 한 판 싸움을 시작했다. 열흘이 넘도록 병원 관리자가 나타나지 않다가 흥분한 노조원들의 상황을 보고받은 경영진에서 임금 테이블이 다시 만들어졌다. 다행히 노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동결은 풀렸고 노조는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리고 노조위원장의 단식투쟁도 당연히 끝으로 가고 있었다. 열이틀의 단식을 푸는 날, 부드러운 죽이라도 끓여주었어야 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그 빠짝 마른 창자에 들어간 것은 김치찌개와 밥이었다. 배가 고픈 그가 밥 한 그릇을 마저 비우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후 그는 건강 상태가 나빠져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래서 밥이라도 물을 넣고 끓여서 죽으로 먹었더라면 위장병으로 평생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을. 이후 그는 병원을 관두었고 본향인 대구로 가서 일자리를 옮겨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구나 똑같은 경우의 수는 없다. 나는 그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그의 힘듦을 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40도가 넘는 좁은 텐트 속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그가 간혹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올 여름 폭염에 가로수는 축 쳐져있고 매미는 절규하듯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 이미 고인이 된 그녀 정은임을 AI 기술로 재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20여 년을 뛰어넘은 지금의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 눈을 감는다.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그녀를 그때는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든 시간이었던 그리고 서슬이 퍼렇던 그 시대 그 시절에도 자기의 목소리를 냈던 용기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자와 DJ에게 박수를 보낸다.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배문경 수필가

2025-07-23

칠포리 암각화

칠포리 암각화 소중한 것은 좀 숨어 있는 법이다 가치는 창대하나 존재는 소소하다 이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돋을새김으로 바위에다 솜털처럼 마음을 박아넣는 것이다 사람 사는 방법에 권력은 무력하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져다 해석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별의 길을 알고 하늘의 뜻을 곱씹어도 당신을 사랑하는 일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존재가 곧 축복이니 말이다 그것이 별의 길이고 하늘의 뜻이다 무너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일이 도무지 고마운 일이라, 비록 기록되지 않아도 마음에 새기니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그런 것이다. … 비가 내리는데도 오래 걸으며 둘러보았다. 대체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단이나 의식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해석을 한다. 어쨌든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의 나약함만 확인할 뿐이다. 그리고 권력의 냄새가 너무 진동한다. 내게는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 상상력의 동력을 하나 확보하는 오브제에 불과하다. 의미를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역사가에게나 문헌학자들, 금석학이나 향토사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의미일지는 모르나, 나는 모르겠다. 별의 길이나 알아 사람의 뜻을 챙겼으면 오죽 좋겠다. 비 내리는 들판은 축축했지만 처마 밑은 참 따스했다. 별의 행로의 끝인 사람의 집을 한 채 짓고 싶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23

강선우 사퇴, 더 빨랐어야 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 민주당의 우군으로 분류돼온 진보 시민단체들, 여성단체, 결정적으로 다수 국민이 “안 된다”는 의견을 분명하게 전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이야기다. 장관은 조선시대로 치자면 판서(判書).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해당한다. 자신의 위로 왕과 3명의 정승이 있을 뿐인 최고위직 벼슬이다. 당연지사 빼어난 도덕성과 능력, 여기에 백성과 아랫사람에 대한 긍휼을 갖춘 인물이 앉아야 할 자리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인사만사(人事萬事)’다. 양질의 사람을 곁에 두고 써야 정권의 격이 올라간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2200년 전 중국으로 돌아가 보자. 진나라를 세운 시황제 정(政)에겐 총애하던 환관이 한 명 있었다. 조고(趙高)라는 자다. 그는 시황제의 입 속 혀처럼 굴었다. 헤헤거리며 왕의 뒤를 따라다녔고, 아부와 아첨으로 높은 벼슬을 얻었다. 조고의 권세는 시황제 사후까지 지속됐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칭해도 어느 누구도 이에 맞서 “저건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 대꾸하지 못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다. 이 간신배가 진나라를 망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다. 대통령선거 운동 기간엔 자신을 돕고, 단식을 할 때는 이부자리를 살폈으며, 자동차 옆 좌석에 앉아 함께 파안대소하던 사람을 매정하게 내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어찌 보면 대통령도 결국 사적인 정에 휘둘리는 인간이 아닌가. 천만다행으로 23일 강선우가 스스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성찰하며 살겠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만시지탄. 논란이 지속된 한 달간 자신은 상처투성이가 됐고, 후보로 지명한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됐으니. 사퇴가 더 빨랐어야 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23

‘어느 편이냐’를 물어야 하나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순간이 있다. 무슨 말을 꺼냈다간 “아, 저 사람은 그쪽이구나” 하는 낙인이 찍힐까 봐서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이따금씩 마주친다. “당신은 어느 편이세요?” “진보세요, 보수세요?” 마치 당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면 먼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듯이. 처음엔 단순한 정치적 호기심이겠거니 생각한다. 사실 질문에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압박이 숨어있다. 어느 쪽 성향인지 밝혀야 대화가 이어지고 성향이 다르면 말조차 섞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같은 직장에서, 한 동네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이 나와 같은 편인지’가 관계의 시작점이 되어버렸다. 건강한 민주사회가 감당해야 할 정치적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자체를 위축시키는 집단주의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갈등과 혐오가 일상의 언어 속에 침투했고, 사람들은 점점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입’을 닫는 쪽을 택한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이 말이 어느 편으로 오해받을까?’부터 계산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게 정상일까? 현상의 배경에는 한국사회의 ‘진영화’구조가 있다. 대선이 끝나면 승패와 관계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이 아닌가. 이제는 대선 이후에도 진영 갈등은 오히려 격화된다. 여러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자동적으로 진영에 따라 배열된다. 경제, 복지, 외교, 국방, 교육, 심지어 재난 대응에 대한 평가까지도 ‘그쪽이냐 아니면 이쪽이냐’로 나뉜다. 이념의 내용은 사라지고 태도와 감정만 남는다. 이념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는 가치판단의 체계다. 지금은 정작 어떤 정책을 지지하느냐보다 ‘누가 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진보정권이 추진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수 정권이 하면 무조건 지지하거나 그 반대로 움직이는 식이다. 정치적 판단이 아닌 정체성의 표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같은 경향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말의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특정사안에 대해 언급할 때 상대의 성향을 먼저 가늠하려 하지 말고,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가치관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의 ‘편’을 파악하려 들기보다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도 어느 진영에 속한다는 생각을 벗어야 한다. 의견이 매번 한 편에만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생각에 일관성이 없다는 게 아니라, 삶이 단순하지 않기에 개인의 의견도 사뭇 복잡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도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 뉴스를 전할 때 단순한 ‘편 대 편’ 구도가 아닌, 이슈 그 자체의 맥락과 내용을 깊이 있게 전해야 한다. 토론의 장을 마련하되 논리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프레임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진영정치의 피로감은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과 언론 모두가 진영적 구도를 재생산하거나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점도 돌아보아야 한다. ‘어느 편이냐’는 질문은 관계를 시작하는 문이 아니라 관계를 가르는 선이다. 그 선을 흐리게 만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생각을 편안하게 인정하는 곳에서 비로소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23

오대산 상원사 관대걸이

697년 신라 효소왕 때였다. 망덕사에서 낙성회가 열려 왕이 친히 가서 공양하였다. 그때 비파암에서 왔다는 초라한 모습의 스님이 재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왕은 내키지 않았지만 말석에 앉히라고 명했다. 재가 끝나갈 즈음, 왕은 스님에게 놀리듯이 말했다. “돌아가서는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공양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하지 말라.”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왕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신 석가를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스님은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 사라졌다. 왕은 놀랍고도 부끄럽고 두려워 스님이 간 쪽을 향해서 절했다. 그가 간 남산을 찾아보게 하니 바위 위에 지팡이와 바리때가 있었다. 스님이 원래 계셨다는 암자엔 석가사를 창건하고, 그의 자취가 없어진 곳엔 불무사를 지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쓴 일연은 이와 비슷한 예화를 인용했다. 삼장법사가 왕을 초대한 행사에 초라한 행색을 하고 갔을 때는 문지기가 막더니 좋은 옷을 빌려입고 가자 막지 않았다. 자리에 앉고 음식을 내어오자 법사는 음식을 옷에게 먹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내가 초라한 행색일 때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니 이 옷을 입고 들어오자 이 자리를 허락하니 옷 덕분이 아니겠소. 그러니 옷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마땅하지 않겠소.” 삼국유사에는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관음보살들이 몸을 바꾸어 인간에게 감응한 기적의 이야기가 매우 많다. ‘부처님을 몰라보는 어리석은 왕과 모습을 감춘 부처님 이야기’ 화소(話素)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지난 일요일, 청계사 108기도성지순례로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이 이야기 화소를 다시 만났다. 신라왕이 아니라 조선의 왕 이야기였다. 조카인 단종을 죽인 세조는 꿈에 나타난 단종 모가 뱉은 침 자국마다 종기가 났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온천과 맑은 계곡을 찾았는데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고 상원사 물 맑은 계곡에서도 몸을 씻었다고 했다. 왕은 종기 가득한 등을 보이기 싫어, 신하들도 물리치고 혼자 몸을 씻었다. 마침 계곡에서 놀고 있는 동자승에게 등을 씻어달라 부탁하였다. 다 씻고 나서 세조는 동자승에게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 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고 말하자 동자승은 “어디 가서 문수보살이 직접 등을 씻어 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세조의 종기는 씻은 듯이 나았다. 현신한 문수동자에 감복한 세조는 화공을 불러, 기억을 더듬어 문수동자상을 그리게 하였고, 문수동자상을 조각하게 하였다. 이것이 상원사 문수전에 모셔져 있는 국보 목조문수동자좌상이라고 한다. 상원사 입구에는 세조가 목욕을 위해 의관을 벗어 걸쳐두었다는 “관대걸이”가 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세월의 이끼가 내려앉아 있다. 이야기가 역사로 만들어진 현장이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5만 진신이 머무는 성산이기도 하니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불심 깊은 자들에게는 숱한 기적이 재생산되는 산이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7-23

더운 날인데도 손발이 차요

손발은 늘 차갑고 가슴은 뜨겁고 답답하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며 조그마한 일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병원에서 많은 검사를 해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본인은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이런 증상은 단순히 피로 누적이나 체질 문제로 보기보다는 화병과 자율신경계의 불균형, 이로 인한 체내 열 분포의 비정상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화병은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신체 증상으로 드러나는 상태다. 화병이 있는 사람은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오르는데 그 열이 체표로 발산되지 못하고 흉곽 내부에만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보일러가 지나가는 관이 막히면 한쪽은 뜨겁고 다른 쪽은 냉골이 되는 것처럼 가슴은 답답하고 열이 나지만 손발은 늘 차갑고 시리다. 이런 열의 정체는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항진시켜 말초혈관을 수축시키고 위장관 운동과 수면 리듬까지 무너뜨린다. 전신적으로는 자율신경 실조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단순한 냉증이나 열증이 아닌 속에 울체된 열과 이로 인해 말초로 흐르지 못하는 기혈의 정체로 본다. 심화가 흉중에 치밀고 스트레스로 인한 간열이 기혈순환을 막으면 몸속의 열은 위로 뜨고 기운은 아래로 가지 못한다. 그래서 가슴은 뜨겁고 답답하며 손발은 차가워지고 소화는 더디며 마음은 불안하고 잠은 깊이 들지 못한다. 이는 마음과 몸 내장과 신경이 서로 얽혀있는 복합적인 불균형 상태이며 반드시 전신적인 조율이 필요한 시점이다. 치료는 단순히 열을 내리거나 기를 보하거나 몸을 따뜻하게만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주고 기혈순환을 원활히 하며 자율신경의 교란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억울함과 분노가 중심이 된 화병에는 가미소요산이나 소시호탕 등 시호가 포함된 계열 처방들이 쓰이고 두근거림과 불면이 동반되면 감맥대조탕 천왕보심단 같은 심신안정 처방의 합방을 고려할 수 있다. 속열과 말초냉증이 동시에 있는 경우에는 가슴의 열을 내리는 황련이나 피부를 따뜻하게 하는 육계 등을 상황에 따라 병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이러한 복합 증상에 한약 처방과 더불어 약침이나 자율신경 조절 치료도 병행된다. 성상신경절 익구개신경절 대후두신경 같은 부위에 초음파 가이딩으로 정밀하게 약침을 시술하면 교감신경의 긴장을 낮추고 말초 혈류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한약과 더불어 시술하면 심장의 두근거림이나 가슴의 압박감을 줄이고 불면을 완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증상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예민함 때문이 아니라 이는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가 실제로 깨지고 있다는 신호이며 전문적인 조절이 필요하다. 손발이 차가운 것도 가슴이 뜨거운 것도 잠을 못 자는 것도 모두 따로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 흐름이다. 몸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흐름을 읽고 조율하면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화를 억누른 채 살아온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한약과 약침 그리고 자율신경의 회복은 그 흐름을 되돌리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7-23

말의 결, 마음의 결

나무를 만지다 보면 결이 느껴진다. 결을 따라 쓰다듬으면 부드럽지만 거슬러 만지면 손끝이 걸린다. 말도 그렇다. 결이 맞으면 대화는 잘 닦인 포장도로처럼 부드럽지만 결이 다르면 말끝마다 사각거린다. 요즘 나를 지치게 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말을 정답이라 믿는다. 그녀의 말은 늘 선을 긋고 그 선 위에서만 옳고 그름을 가른다. 처음엔 설명도 했고, 우회해서도 말했고, 직진으로도 해보았으나 여러 각도의 내 노력이 무색할 만큼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그녀의 확신을 확인하는 절차처럼 느껴졌다. ‘허수아비의 오류’에 빠진 그와의 대화는 나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앗아갔다. 거리를 두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관계는 늘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내 말의 결도 거칠어졌다.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고 냉소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나를 지키려고 뱉어낸 말들이 나를 더 무겁게 만들고 나만의 틀에 가두어 헤어나오기 힘들게 만들었다. 잘 말하고 싶어 대화창 속에 만들어 낸 언어의 조합을 지우고 삭제하고 감정을 절제하고 최선을 다해 담담하게 보내도 그녀의 답은 가시가 백만 개쯤 붙은 날카로운 검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말이 거칠어질수록 내 안의 불안도 커졌다. 그녀와의 소통에는 너무 많은 틈이 벌어져 그 어떤 강력한 본드를 붙인다 한들 틈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진심이 아니라 방어였고 넘지 못할 벽을 넘는 일이었다. 잘못된 결을 풀어내야 할 의지조차 희미해졌고 이해 대신 비난만이, 신뢰 대신 의심만이 활어처럼 팔딱거렸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내 말에 틈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는 정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날은 나보다 더 흥분해주고 어떤 날은 나보다 더 차분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말을 놓아둔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는 말이 자라난다. 나도 조금씩 부드러운 결을 회복하게 된다. 말이란 결국 마음의 결이다. 서로 다른 결을 억지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다름을 인식하고도 멀어지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꼭 잘 맞는 사람만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맞지 않아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배려와 마음의 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의 결을 따지지 않고 내 마음의 결을 맞춰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위에 많다. 무심코 흘리듯 내뱉은 하소연 하나를 기억하고 먼 길을 달려와 미역국 한 냄비와 갈비찜을 두고 가며 밥 잘 챙겨 먹어라 말을 건넨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 표정의 그늘을 읽고 조용히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 내 이야기에 해답 대신 눈물을 건네며 함께 울어주는 사람, 그들은 말보다 마음을 먼저 건네는 이들이다. 그들의 말은 내 안에 스며들어 날카로워진 결을 다듬고 상처 난 마음의 결을 천천히 봉합한다. 나는 그런 이들 앞에서야 비로소 ‘말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서로의 결을 존중하고 아껴주는 이 관계들 속에서 나는 말보다 더 깊은 대화를 배운다. 대화의 결이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내게 해준다. 내 말이 누군가의 쉼이 되어주기를, 내가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길 바라게 된다. 나의 말이 가까운 이들의 마음을 베지 않기를, 내가 꺼낸 말로 누군가가 결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말은 결국 마음을 데우는 그릇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다치게 하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말을 쓸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관계는 언제나 뜻하지 않게 엇갈리고 말 한 줄에 멀어지기도 한다. 나의 입을 통해 던져진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을 때 무엇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해 본다. 나의 말이 누군가의 상처가 아니라 지친 하루의 등불이 되고 웃음이 되기를 다시 복기해 본다. 말의 결이 마음의 결임을 오늘도 새겨본다. /김경아 작가

2025-07-22

‘파친코’의 선자가 살았던 이카이노를 찾아서

2025년 4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는 세계 박람회가 열리고, 이를 기념하여 간사이 지역 곳곳에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평소에 볼 수 없는 귀한 전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9일부터 6월 12일까지 간사이 지역을 답사하기로 했는데요. 6월 9일 오후에 도톤보리 근처 작은 호텔에 짐을 푼 저는 우선 오사카의 이쿠노구(生野区)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쿠노구는 과거 이카이노라 불리던 곳으로,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장소입니다.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이민진의 ‘파친코’(2017)에서 주인공 선자가 고향인 부산 영도를 떠나 일본에서 정착한 곳이 바로 오사카의 이카이노입니다. 이카이노(猪飼野, 돼지 기르는 곳)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고대부터 돼지를 기르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20세기 들어서는 재일한인들이 이 곳에서 돼지를 길렀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듯이, ‘파친코’에서는 이카이노에 도착한 선자가 이카이노는 동물 냄새가 “화장실 냄새보다도 더 지독하게” 나는 곳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격적으로 이카이노에 조선인들이 몰려든 것은 오사카가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공업도시로 발전한 것과 관련됩니다. 1910년대 히라노강 굴착 공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요에 맞춰 조선인 노동자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왔던 것입니다. 특히 제주도와 오사카 사이에 정기항로가 생기면서, 이곳에는 제주도 출신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폭증한 재일한인으로 인해, 1930년대 초에는 이미 이 지역에 ‘조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1933년에 발행된 ‘아사히그라프’에는 ‘백의와 돼지머리로 가득한, 오사카의 명소 조선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파친코’에서 남편이 투옥되며, 집안의 가장이 된 선자도 커다란 김치 항아리를 나무 수레에 싣고 이카이노의 노천시장에 가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과거 ‘조선시장’으로 불리던 상점가는 거리 정비를 거쳐, 오늘날의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현재 ‘코리아타운’은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코리아 타운’으로 가기 위해 난바역에서 지하철을 탄 저는 쓰루하시역으로 향했는데요. 쓰루하시역 앞에도 재일한인의 자취는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쓰루하시 역의 개찰구를 나와 미로같은 골목에 들어서자, 한식 특유의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 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상표나 음식들 사진도 가득했는데요.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쓰루하시 ‘국제시장’이었던 겁니다. 1945년 패전 후 쓰루하시역 부근에는 암시장이 생겼고, 이곳에서 조선인 노점상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의 암시장이 모태가 되어 오늘날의 쓰루하시 ‘국제시장’이 형성된 것입니다. ‘국제시장’을 구경한 저는, 10분 정도 걸어 일본 내 최대 규모의 재일한인 마을이라는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는데요. ‘백제문’을 지나자 오색 문양으로 꾸며진 400미터 거리의 ‘오사카 코리아타운’ 거리가 펼쳐졌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한글 간판이 가득했고, ‘민속촌’이나 ‘광장시장’ 같은 낯익은 이름의 상호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한류의 인기를 반영해서인지 곳곳에 ‘케이(K)-컬쳐’ 관련 가게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무엇보다도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한복판에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이 유익했습니다. 2023년에 설립된 이 역사자료관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재일한인과 코리아타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귀한 자료를 알뜰하게 모아 놓고 있었습니다. 크게 ‘인트로덕션’, ‘현재-1988년’, ‘1988년-1945년’, ‘1945년-고대’, ‘알면 더 재미있는 코리아타운’이라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오랜 시간 꼼꼼하게 전시자료들을 살펴보니, 재일한인의 역사는 물론이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오랜 역사가 손에 잡힐듯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이곳에는 민족교육을 행하던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1923년 설립)와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1946년 설립)도 있었는데요. 특히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는 2012년에 유네스코의 평화와 국제적 연대라는 이념을 실천하는 학교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스쿨’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학교는 학생 수의 감소 등으로 2021년 3월(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과 2023년 3월(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에 각각 폐교된 상태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평일 오후여서인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한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걸으며, 재일한인 앞에 펼쳐진 새로운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7-22

기후변화와 재난에 대비하여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정사정없는 괴물 같은 수마에 할퀴고 휩쓸려 무너진 상흔이 처참하기만 하다. 6월초부터 폭염으로 심상치 않던 날씨가 ‘극한폭우’의 가공스러운 물폭탄으로 국토 곳곳을 불과 몇일만에 무자비하게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고 산사태로 순식간에 삶터가 사라지는가 하면, 애지중지 가꾸고 키우던 농작물과 가축들은 흔적 자취조차 없어졌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실의와 비통함을 그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더욱이 경남 산청군은 지난 3월 장기간의 산불이 난 지역에 기록적인 ‘700mm 괴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커져서 안타깝기만 하다. 예고된 장마나 태풍급의 영향도 아닌데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이상기후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연재난의 위협과 경고에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수해현장을 보면서 하루하루 무탈하게 일상을 보내며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른바 기후변화는 자연현상의 한 부분으로 일정한 지역에서 시시각각 또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기상의 변화라 할 수 있다. 폭염, 폭우, 가뭄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증가로 바람직하지 못한 기상이변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인간활동이나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등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되며,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등을 초래해 인간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음산한 구름떼/회오리에 휘감겨//비바람 사정없이 마구마구 쏟아지고 휘몰아쳐/땅과 하늘이 할퀴고 소스라치니 골(谷)과 내(川)가 요동치고/강과 산이 술렁거려 패이고 깎이고 흔들리고 꺾이다가···./적시고 파고들어 불어나 넘쳐 둥둥 떠서 여지없이 휩쓸려 떠내려가는/과욕의 부유(浮遊)같고 오욕의 민낯 같은 잡동사니의 난무(亂舞)-//삼킬 듯 날름거리는/황토빛 하류의 혀”-拙시조 ‘하류(下流)’ 전문 시대가 녹록지않고 사회적인 분위기마저 어수선해지니 날씨마저 갈수록 돌변하는가. 온통 집어삼킬 듯 괴력을 보이며 산하를 어지럽게 휘젓어놓은 자연재난 앞에 속수무책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재난에 대비하고 위협에 대응하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거나 상시적인 피해가 재발되는 인재(人災)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습 침수나 홍수경보는 물론이고 산불이나 산사태 대응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예측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단기적인 조치와 중장기적인 복원계획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산불과 산사태는 하나의 연쇄고리로 작용해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해와 재난은 일상 속에 늘 도사리고 있다. 자칫 방심하거나 소홀한 틈을 타고 어김없이 파고드는 사고와 재난의 위험 앞에 늘 조심하고 안전한 마음을 가다듬는 자세와 교육ㆍ훈련을 통해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해가는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기상이변을 염두에 두며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이 다루지 않으며, 다각적인 방안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후변화와 자연재난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비태세를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22

종교와 기업 혁신문화

말레이시아는 다종교, 다민족 국가로 이슬람교 중심의 다문화 사회이다. 이슬람교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이슬람교는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의 종교이고 국교이다. 인구의 20% 중국계는 불교, 6% 인도계는 힌두교, 도교 및 기타로 구성된다. 종교의 자유 보장은 헌법상 명시되어 있고 자국민 우대 정책은 법조계, 고위 공직 등 사회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군법보다 상위법이 종교법이고, 이슬람 종교의 영향으로 말레이 식당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고, 할라 의식을 거친 허락된 식당에서만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기업에서 보면, 공장 건축 시 이슬람교 기도실이 설계에 있어야 허락되고,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한다. 이슬람의 가치관은 식품, 화장품, 금융 등 모든 산업에 할랄 인증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하루 5회 기도 시간을 고려한 시간 운영계획이 필요하고, 8월 라마단 금식 기간에는 근무시간 조정, 낮 시간 회식, 행사 자제와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존중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민족 간 그리고 종교 간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고, 갈등을 피하고 공존을 지향하는 조직문화로 가야 한다. 또한, 현지 문화와 융합된 인사관리가 필요하다. 필자가 P사 말레이시아 2개 법인을 1년 7개월 간 컨설팅 할 때 일이다. 사무실은 중국계와 인도계가 주류를 이루고, 공간마다 자민족의 신을 모시는 신전과 법당이 있다. 생산직에 주류를 이루는 말레이계는 공장 일정 위치에 기도실이 있고 하루 근무 중에 5번의 기도와 금요일은 인근 큰 사원에 들러 기도를 한다. 우리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 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삶의 문화다. 2개 법인 중 하나는 말레이계 중심의 생산 흐름이고, 1개는 네팔,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외국인 노동자가 주류를 이룬다. 2개 법인 인적 구성과 종교, 기업 상황의 조건은 확연히 큰 차이가 있다. 여기서 혁신을 심어가는 일은 융합과 수용성에서 적잖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사의 혁신 방법을 종교와 문화, 인적 구성이 다른 해외 사업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성공하기 어렵다. 종교와 사회문화, 인적 구성원의 사고와 일하는 방식을 고려하여 현지에서 공감하는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실행력을 높여 가야 한다. 혁신 활동의 토양인 기업 문화의 근간이 되는 인사 및 조직문화의 전략이 필요하다. 다문화를 존중하는 조직 구조 설계를 위한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혼합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 음식과 일하는 사고, 습관이 달라서 융합이 어려운 민족과는 협력과 시너지 창출의 방향을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이슬람 라마단, 힌두 디왈리(Diwali·빛의 축제), 중국 춘절 등 종교의 문화를 고려한 휴무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기업에 혁신을 심어가는 일은 종합으로 봐야 한다. 종교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존중하는 조직 운영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종교와 혁신 활동 흐름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토양이 되어 성공적인 기업 혁신 문화로 간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22

충격의 기후 뉴노멀

작년 가을에는 금(金)사과 파동에 이어 금배추 파동이 일어났다. 배추 한통이 2만원까지 치솟았다. 배추 대신 양배추 김치가 식단에 등장했다. 배춧값이 폭등한 것은 작년 여름 전례없이 이어진 고온과 가을 들어 내린 집중 호우 때문이다. 토마토 값이 폭등하자 토마토가 없는 햄버거가 출시되는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올 여름에는 여름철 인기 과일 수박값이 3만원을 돌파하면서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다. 폭염과 장마로 작황이 부진한 탓이다. 한 때 대구는 사과 주산지로 명성을 날렸다. 대구 사과는 조용히 사라지고 지금은 청송 등 경북 북부지방이 사과 주산지로 바뀌었다. 그런데 기상학자들은 2100년 쯤에는 사과 재배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거란 예측을 내놓는다. 이런 현상들은 기상이변이 우리 일상을 바꾸는 한 단면이다. 과거의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희한한 세상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학자들은 뉴노멀이라 이름을 붙였다. 뉴노멀이란 새로운 질서를 뜻하는 말이다. 세상의 표준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매년 200mm의 폭우가 쏟아져도 이젠 그것이 바로 정상인 세상이다. 지난주 경남 산청지방에 내린 폭우로 13명의 사망·실종자가 생겼다. 1년에 내릴 비의 10%가 한 시간만에 쏟아졌다. 수백 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한 폭우가 이젠 매년 찾아온다고 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5년 내 사상 최악의 더위가 올 것”이라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를 만들어 낸 인류에 대한 자연의 습격일까. 재앙에 가까운 기후 뉴노멀에 대응할 준비가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2

TK신공항, 내년 토지보상 들어갈 수 있을까

지난 주말(18일)에는 대구시의회 의원들의 본회의 질의모습을 TV를 통해 시청했다. 새 정부 들어 대구시의원들이 최대현안으로 여기는 이슈가 무엇인지 궁금해서다. 예상대로 현재 표류 중인 TK신공항 건설 사업이 가장 민감한 현안으로 거론되는 듯했다. 군위군이 지역구인 박창석 의원은 이날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TK신공항 건설이 사업방식 혼선, 재정 조달 불확실성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면서 “이제 논의단계를 넘어 실질적 착공 준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계획된 신공항 사업 로드맵대로라면 내년부터 대구시가 토지보상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대한 질책이었다. 김 대행은 이에 대해 “아직 정치권, 예산 부서와 협의가 지연돼 자금 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못했다. 연말까지 자금 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내년 토지 보상 관련 절차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불가피하게 신공항 개항 시기 지연도 예상된다”고 답변했다. 연내에 국회의 관련법안(신공항 특별법)처리, 이에따른 정부 예산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TK신공항 사업이 계속 불확실성 속에서 표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행은 민주당 육정미 의원(비례대표)이 “내년에 재원 조달 방안이 확정 안 되면 토지 보상 절차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냐”고 재차 확인하자, “국비가 먼저 확보되어야 보상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TK신공항 사업의 전체 보상비(토지, 이주단지 조성)는 45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시는 지난 정부에서 사업 첫 해(2026년) 들어갈 토지 보상비(공공토지비축사업비 2766억원)를 요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투자자금 회수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는 현재 TK신공항 사업을 위해 정부에 내년부터 5년간 11조5393억원의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해 둔 상태다. 그러나 이 기금을 받으려면 지원근거가 담긴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설사 공자기금을 전액 지원하더라도 대구시가 갚을 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공자기금도 결국 대구시가 지방채를 발행해서 매입하는 부채이기 때문에, 일정기간이 지나면 갚아야 한다.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공자기금을 빌린다는 생각인데, 이자율을 3%로 잡더라도 이자만 3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까지는 이자만 갚게 되지만, 2031년부터 10년간은 원금과 이자를 같이 갚아야 한다. 대구시 재정상태로는 공항 건설 사업비 전액을 공자기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해법은 이재명 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광주도심 군공항 이전사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TK신공항건설도 정부 도움을 받아 추진하는 것이다. 대구·광주 군공항 이전 사업은 정치권이 ‘쌍둥이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 지역 정치권과 대구시, 경북도는 이 해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22

정신 나간 공무원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지명이 철회됐다. 논문 표절로 제자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식을 수억 원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교육을 시킨 자가 ‘보편적 공교육’을 지향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수장 자리에 오른다면 개가 웃었을 것이다. 이진숙은 공교육 일반에 관한 상식조차 없었다. 이진숙을 불러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한 청문회는 한 편의 조악한 코미디였다. 많은 국민이 실소와 한숨 속에서 그걸 지켜봤다. ‘대체 교육장관을 시킬 사람이 저렇게 없냐’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터. 청문회가 열린 그날. 코미디의 정점은 상식 밖의 쪽지 한 장이 찍었다. 교육부 공무원에 의해 이진숙에게 전달된 거기엔 ‘모르는 내용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곤란한 질문은 즉답을 피하며, 동문서답 하라’ 적혀있었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알다시피 청문회는 국회의원은 호통치고, 공직 후보자는 급조한 변명이나 내놓는 ‘삼류 정치쇼’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공직 후보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공직 후보자는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을 향해 답변하는 자리가 청문회다. 엄정해야 할 그 현장에서 상식 밖의 쪽지를 교육부장관 후보자에게 써서 건넨 공무원은 제정신인가? 국민이 가소로운가? 그가 속이려했던 건 몇 명의 야당 국회의원이 아니다.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 모두를 기망(欺罔)하려 했다. 작지 않은 죄다. 반드시 작성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는 후속 조치가 따라야 마땅하다. 그리고 하나 더 묻는다. 이진숙과는 또 다른 성격의 잡음을 일으켜 국민적 지탄과 공분을 야기한 강선우를 기어코 여성가족부장관에 앉히려는가? 대통령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21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모르는 것처럼, ‘영남에 갇힌 국민의힘’은 민심을 모른다. ‘우물 밖 세상의 민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하니 반성과 혁신은 언제나 말뿐이다.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7월 2주차)에 의하면 당의 지지율이 19%로 떨어졌고, 영남마저 민주당에 역전되었음(TK: 민주당 34%, 국민의힘 27%, PK: 민주당 36%, 국민의힘 27%)에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국민의힘은 어쩌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는가? 편협한 지식과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교만과 무지 때문이다. 극우세력과의 동행으로 우경화는 심화되었고, 편 가르기를 하면서 객관성을 잃고 진영정치의 노예가 되었다. 물론 당내에는 혁신을 주장하는 ‘소수의 합리적 보수’가 있지만, ‘다수의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왕따 당할 뿐이다. ‘열린 마음’으로 반성을 통해 혁신해야 했음에도 ‘닫힌 마음’으로 편협한 정치를 고집했으니 자업자득이다. 게다가 정치인의 소명은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것인데, 사익(私益)에 눈이 멀었으니 보수의 덕목인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허구한 날 우물 안 개구리들의 권력싸움으로 당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당은 망해도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문제였다. 당에서 영남의 중진의원들에게 혈전(血戰)이 예상되는 수도권으로 선거구를 옮길 것을 요구하면 대부분 이를 거부하고 탈당하여 만만한 영남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대의(大義)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릴 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중진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처럼 당은 존폐의 위기에 있는데 소속의원들은 여전히 우물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적 청산을 요구한 안철수 혁신위원장은 당 지도부의 거부로 사퇴하였고, 그 후임으로 지명된 윤희숙 혁신위원장의 쇄신 요구 역시 온갖 궤변으로 뭉개는데 여념이 없다. 오직 제 밥그릇 챙기는데 급급한 정당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국민은 당 해체 수준의 대대적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데, 대선이 끝난 지 이미 한 달 보름이 지나도 전혀 달라진 게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의힘이 우물 밖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바뀌어야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다.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진 우물 안 개구리들과 과감히 절연해야 우물 밖의 분노한 민심을 받들 수 있다. ‘낡은 보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과감히 혁신할 때 비로소 우물 밖 세상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우물 밖 세상에서는 개방적 사고와 합리적 행동이 필수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다. 경직된 사고에 갇히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만, 개방성과 합리성을 겸비한 자유인은 결코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우물 밖으로 나와서 ‘세상은 넓고 변화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7-21

베네수엘라로 가는 길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 북단에 위치한 나라다. 국토의 면적은 한반도의 4배가 넘지만 인구는 2800만 정도다. 북쪽으로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가이아나, 남쪽으로 브라질, 서쪽으로 콜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정식 국가명은 베네스엘라볼리바르공화국.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수도는 카리카스이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했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천혜의 자원을 가진 나라가 어쩌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국민과 천문학적 인플레이션, 대규모 난민을 양산하는 최빈국으로 변했을까. 그 비극은 정치 지도자의 실정과 국민 다수의 잘못된 선택이 맞물린 결과다. 1999년 등장한 차베스는 반미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석유 수익으로 무상 복지와 빈민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무료의료, 무료교육, 식량배급으로 서민의 지지를 얻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권력을 강화해갔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석유수입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경제를 산업 기반이 아닌 석유 판매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민간기업들을 국유화하며 자율성과 생산성을 무너뜨렸고, 환율을 통제하고 가격을 규제해 시장기능을 마비시켰다. 외환은 고갈되었고, 필수품은 사라졌다. 독립적 언론은 폐쇄되고 비판적 지식인은 탄압당했다. 차베스 사망 후 권력을 이어받은 마두로도 이 위기를 오히려 가속화시켰다.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오류를 반복했고, 그 결과 연간 인플레이션이 수십만 퍼센트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장에는 생필품이 사라지고, 거리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와중에 마두로 정권은 비판을 봉쇄하며 독재화의 길을 걸었다. 선거를 조작하고, 야당이 장악한 국회를 무력화하며 친정부 세력만으로 헌법을 고치는 ‘제헌의회’를 만들었다. 국가 경제는 군부와 권력층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부패는 일상화되었다. 이 모든 고통을 견디지 못한 수백만 명의 국민이 국외로 탈출했다. 남미 전역에 흩어진 베네수엘라 난민은 이미 700만 명을 넘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독재자들의 실정만이 아니다. 차베스의 환상에 열광하고, 마두로의 거짓말을 방조했던 국민들의 선택 역시 몰락의 한 원인이었다. 포퓰리즘은 당장의 이익을 약속하며 다가오지만, 그 뒷면에는 국가 시스템의 붕괴와 자유의 상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차베스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이제 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며 열광하던 군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유권자,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 비전을 중시하는 국민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한다. 무책임한 정치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분별한 대중이다. 자유와 번영은 공짜가 아니다. 국가의 미래는 지도자의 역량뿐 아니라, 그 지도자를 선택하고 감시하는 국민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팔아먹을 자원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 잘못된 길을 가면 어떻게 되는지는 북한이 잘 보여주고 있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