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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헌재의 정파성, 법에 대한 신뢰 붕괴시킨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가장 힘겹지만 새로운 세상을 목도할 9부 능선을 지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듣기에 따라서는 ‘조기대선’을 떠올릴 수 있는 글이다. 야권에선 이미 “꽃피는 봄으로 예상되는 대선에 올인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문형배 소장 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소(헌재) 재판관 2명의 퇴임이 4월 중순 예정돼 있어 헌재가 3월 중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이 원하는 4월 조기대선이 가능해진다. 조기대선은 헌재 손에 달렸다. 이 대표가 ‘9부 능선’을 자신 있게 언급한 것은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속도를 내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헌재는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헌 여부를 2월 3일 선고하겠다고 발표했다. 권한쟁의심판 접수부터 선고까지 한 달밖에 걸리지 않는 일정이어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헌재는 통상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선고하는데 이 사건 선고를 위해 특별기일(월요일)까지 잡았다. 최대한 서두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 후보자는 지난 2009년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민노당 보좌진 등에 대해 1심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려 정치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 헌재에는 마 후보자 사건보다 먼저 제기된 탄핵심판 사건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이다. 한 총리 탄핵심판은 국정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히 결론을 내야 하는 사안이다. 헌재가 국정안정보다 진영논리를 우선시한다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와 관련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골수 좌파 재판관이 한 명 더 있어야 대통령을 확실하게 파면시킬 수 있다는 헌재의 조급함이 드러났다”면서 “상식과 논리에 맞지 않다”고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의 정파성은 지난 2023년 3월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권한쟁의 심판에서도 논란이 됐다. 헌재는 당시 진보성향 재판관들이 주도해 법무부와 검찰이 제기한 검수완박법 쟁의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국가의 헌법적 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이다.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은 국민의 법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당연히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정파성이 개입돼선 안 된다. 오직 헌법정신에 충실한 심판을 해야 한다. 만약 이번 심판에서 헌재 재판관들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올 경우, 국민적 저항이 따를 뿐 아니라 헌재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2025-01-30

양춘포덕(陽春布德)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는 바뀌고 새 날이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하기가 못내 부끄러웠던 새해맞이였다. 서로 낯빛을 숨기며 인사하고 안부하기조차 주저했던 날선 나날도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지나자 아픔도 슬픔도 차츰 무뎌졌다. 한숨이 배긴 했지만 그럭저럭 인사도 오가곤 했다. 그래 잊히기 마련이고 또 잊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또 하나의 새해맞이. 설날이 다가오자 먼 옛날의 제자에게서,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도 새해 인사를 받는다. 보고 싶습니다. 부디 올해는 무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안부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 중 최민경 회장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카드 하나가 뭉클하다. ‘봄볕 같은 덕을 펼치다.’ 금빛반짝이는 빳빳한 카드에 정갈한 글씨, 그 아래 둥글고 단호하게 새긴 양춘포덕(陽春布德). 이 매서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은 오고야 말 것이라는 시간의 순리를 새기며 느끼자 몸이 벌써 따뜻해진다. 그래 곧 봄이 올 거야…. 겨울 속의 봄이라 하면 판자벽에 검고 끈적끈적한 페인트를 칠한 교사(校舍)에 기대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해바라기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조개탄 몇 덩이 넣어 간신히 추위를 면하다 금방 식어버린 교실보다 겨울 볕이라도 쬘 수 있는 바깥이 차라리 더 나았다. 바람기만 없으면 교실 밖이 덜 추웠다. 쨍하게 시린 하늘을 쳐다보면 눈이 부셔서 보이지도 않는 해가 보낸 온기가 변변찮게 입은 겨울옷 속까지 스며들어 따뜻해진다. 주머니에 넣었던 손조차 꺼내 볕을 쬐며 햇살을 잡아본다. 말없이 해바라기를 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화기가 돌고, 곁의 친구와 서로 얘기를 나눈다. 활기 넘치는 남자 아이들은 더워진 몸을 주체 못해 기댔던 판자벽을 떠나 뛰며 장난치기를 시작한다. 추위에 지치고 떠는 아이들을 웃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이 햇살이 바로 덕(德)이 아닐까. 비록 봄볕 아니더라도. 덕(德)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좋은 것에 머무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이 문구는 주로 정치에 빗대어 풀이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큰 배움은 바로 정치라 할 수 있으니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밝은 덕을 베푸는 것이라는 조언이요, 주문이다. 국민만을 생각하는 정쟁보다는 상생이다. 어디 정치에서뿐이랴. 어떤 작은 조직에서도 덕은 리더의 덕목이다. 작은 이익보다 큰 포용이다. 이웃 간에도 덕은 서로 베풀며 살아야 할 규율이자 인정이고, 가정에서도 어른이 어른다우려면 모름지기 덕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도덕적·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능력으로서의 덕(德)은 품격이다. 나라의 국격이요, 인격이다. 다음 달 3일이 절기상으로는 입춘이다. 바야흐로 봄의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모쪼록 올해는 나라가, 사회가, 이웃이 그리고 가정이 따뜻한 봄볕 같은 덕이 넘쳐나도록 펼쳐지면 좋겠다.

2025-01-30

세뱃돈 유감

우정구 논설위원 세뱃돈의 유래는 중국설과 국내설이 있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는 음력 1월 1일이면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붉은 봉투(紅包)에 돈을 넣어 주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해가 바뀐 새해에도 악귀와 불운을 막아줄 것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세뱃돈으로 전래됐다는 설. 국내설로는 조선시대부터 해가 바뀌어 세배하러오는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을 내주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것이 세월이 흘러 점차 돈을 주게 되면서 세뱃돈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1960년대 들어서는 10원짜리 지폐를 세뱃돈으로 주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 세배는 설날에 차례를 마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새해를 맞게 된 것을 기념해 문안 인사를 드리는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래야 어쨌거나 새롭게 맞는 신년을 맞아 가족과 친지간에 인사를 나누고 건강과 안녕을 비는 인사란 점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세뱃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새해에도 건강하고 학업과 사회생활에 충실하라는 뜻에서 주는 일종의 정표다. 설날에 주는 세뱃돈은 명절 문화로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가 정을 주고받는다는 뜻에서 기분 좋은 풍속이다. 그래서 설을 앞두고 은행권은 세뱃돈을 위한 신권을 교환해주고 있다. 1년 중 신권 유통이 가장 많은 달이 설이 낀 달이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올해는 설전 신권 발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2022년보다 40%가 줄고 작년보다도 13%가 줄었다. 불경기 한파로 신권을 바꾸려는 사람이 줄어든 탓이다. 신권이 준만큼 세뱃돈도 줄었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불경기 탓에 어린아이가 받을 세뱃돈도 줄었다 생각하니 이번 설날이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30

울릉도공항 버드스트라이크 가능성 작다…울릉도는 새들의 천국 아니다

김두한 기자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현재 건설되는 울릉도공항의 버드스트라이크(조류 충돌) 가능성이 제기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버드스트라이크 염려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일부에서 조류 충돌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나 울릉도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지적인 듯하다. 울릉도에는 과거 독수리, 깍새(슴새), 흑비둘기 등 비교적 몸집이 큰 조류들이 무리를 지어 살았다. 하지만, 독수리와 깍새는 이미 완전히 사라졌고 사동 흑비둘기 서식지에는 한두 마리가 눈에 띌 정도다.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는 새롭게 등장한 조류는 꿩이다. 꿩은 높이 날지 않고 바닷가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버드스트라이크 대상 조류가 아니다. 울릉도에 참새 등 작은 조류가 많지 않아 길조로 여겨지는 까치 20여 마리를 육지에서 데려와 방류한 뒤 키워보려 했지만 몇 년 만에 개체가 모두 사라졌다. 문제는 울릉도 바닷가에 서식하는 괭이갈매기다. 하지만, 공항이 건설되는 지역에는 괭이갈매기 서식지가 없다. 괭이갈매기는 서식지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공항이 건설되는 주변 해안가에 가두봉(해발 194m)이 있다. 물론 바다를 메워 건설되는 울릉도 공항 활주로 건설을 위해 모두 절취해 산이 사라진다. 하지만, 가두봉에는 애초부터 괭이갈매기 서식지가 없었다. 울릉도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북면 관음도 인근 주변이다. 괭이갈매기는 서식지를 떠나 멀리 이동하지 않은 특성이 있다. 예를 들면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관광객들이 새우깡 등 과자로 괭이갈매기 접근을 유도한다. 하지만, 갑자기 일시에 사라진다. 처음 보는 광경에 관광객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이유가 있다. 괭이갈매기는 자기 구역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관음도 주변 등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울릉도 북면지역이고 공항건설은 남서쪽이다, 거의 반대 방향에 가깝다. 울릉도는 평지가 아니라 바닷가에도 해발 3~400m가 되는 산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육지와 비교하면 괭이갈매기 서식지와 울릉공항 건설현장은 수십 km 떨어져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울릉도는 새의 천국도 아니고 버드스트라이크를 일으킬 위험지역이 아니다. 그런데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전문가들의 섣부른 진단이 국민의 여론을 왜곡 할 소지가 있다. 울릉도 공항의 안전을 위해 과할 정도의 안전에 대한 염려는 고마운 일이지만 잘못된 정보로 준공되지도 않은 공항이 벌써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줘 개항 후 이용객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1-30

지혜로운 중재자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

심한식 경북부 A 업체가 경산시 용성지역에 조성키로 한 경산컨트리클럽(주)이 또 해를 넘기며 지역의 민심을 중재할 수 있는 중재자의 존재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경산컨트리클럽(주)은 지난 2007년 용성면 가척리 산 34-1번지 일원에 27홀 규모로 2009년까지 조성돼 낙후지역으로 전락한 용성지역의 지역 경제에 큰 힘을 줄 것으로 기대됐다. 용성면은 한때 1만 2000여 명이 거주하는 활기찬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3000여 명이 거주하는 낙후지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산컨트리클럽(주)이 지역의 경제를 살릴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편입부지의 소유권이 있던 A 문중의 반대로 18홀 규모로 축소되고 지역주민 일부가 주민생존권 확보와 환경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 등을 요구하며 민원을 제기하자 경산시의회 의견 청취에서 동의를 얻지 못해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경산시의회는 조정자 역할보다는 주민 합의를 선제조건으로 요구하며 불편함을 비켜갔다.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골프장 조성 사업은 코로나 19의 특수를 맞으며 경산컨트리클럽(주)이 2022년 하반기 사업재개 의지를 밝히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였으나 여전히 지역주민들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또 한해를 넘긴 것이다. 용성면 골프장 조성이 장기간 표류하며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 간의 보이지 않는 골이 깊어지고 매입이 완료된 땅들도 관리되지 않아 주변 농경지가 큰 손해를 입고 있지만, 여전히 중재자의 존재를 찾을 수 없어 사업추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A 사는 여전히 반드시 골프장을 조성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중재자의 부재는 용성면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원로의 역할을 찾기 힘들다. 조정자, 중재자의 역할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권에서조차 아부성 발언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실정이니 지역에서 전체를 위해 소신 있는 발언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수가 아닐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나타날 중재자를 기다려 본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01-30

대통령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

장규열 고문 우리 사회에는 대통령을 마치 군주처럼 여기는 잠재의식이 남아 있다. 5000년 역사 가운데 왕조 정치가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했고, 민주주의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기간은 고작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부를 거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체제가 뿌리를 내린 기간은 지극히 짧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고통스런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갈등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 대통령이 대선 토론에 나설 당시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어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이는 후보 본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군주제적 잔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오늘 겪는 사회적 소란 속에도 대통령을 국가의 대표자라기보다 통치권력자로 여기는 경향이 뿌리깊게 깔려있다. 대통령을 뜻하는 영어표현 ‘President’는 원래 ‘앞에 선다’ 또는 ‘대표한다’는 원어적 의미를 담고있다. 그러나 한자표현 ‘대통령’에는 ‘크게 통치하는 최고명령권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히 있다. 이는 대통령제의 본질을 오해하게 만들며, 군주적 이미지를 굳히는 효과를 낳고있다. 제왕적대통령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본령을 회복하기 위하여 직함으로서 ‘대통령’의 명칭변경을 제안한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기본을 고려할 때도 ‘대통령’이라는 명칭은 행정부 수장의 역할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입법부 수장을 ‘국회의장’, 사법부 수장을 ‘대법원장’으로 부르듯, 행정부의 수장에게도 더 균형잡힌 명칭이 필요하다. 예컨대 ‘행정수반’, ‘국무원장’, 또는 ‘국정총장’ 등으로 개칭하여, 대통령의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통치자이기보다 제한적인 책임자임을 강조해야 할 터이다. 대통령 명칭의 변경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직제의 개정, 관련 조직 및 법령의 정비 등 부가적인 사안들이 동반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본질을 구현하고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대적으로 필요하고 의미있는 과정이라 여겨진다.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놓고볼 때, 민주정부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이라는 직함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을 넘어, 국민이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가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대표자임을 재확인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25-01-26

긴 설 연휴 가스안전으로 시작

장재원 한국가스안전공사 경북동부지사장 한국가스안전공사 경북동부지사는 설 연휴 기간 난방, 음식 조리 등 가스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가스사고예방을 위해 국민 모두 쉽고 간단하게 지킬 수 있는 안전 수칙을 안내한다. 최근 5년간 가스사고는 409건 발생, 연평균 사고감소율 8.7% 가스사고는 지속적 감소 추세로 발생하고 있으며, 통계를 살펴보면 LP가스 48.4% 이동식부탄연소기(캔) 18.6%, 도시가스 20.8%, 고압가스 12.2% 차지하고 있다. 원인별로 사용자취급부주의 116건, 시설미비 89건 등 전체사고의 50.2%를 차지하고 있다. 사용처별로는 주택 141건 식품 접객업소 68건으로 전체사고의 51.1%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LP가스 사고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 사용에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가스버너 및 부탄 캔 사용 시 사용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먼저, 부탄 캔 사용 시 부탄 캔과 열원을 가까이 두면 안 된다. 최근 인덕션이나 난로 위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올려놓고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잘못된 사용으로 과열된 부탄 캔이 파열할 수 있다. 또, 휴대용 가스버너의 불판 받침대보다 크기가 큰 과대 불판 조리 기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불판에서의 복사열 때문에 내부에 장착된 부탄 캔의 내부압력이 상승하면서 파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휴대용 연소기(가스버너 등)를 보관할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부탄 캔과 휴대용 연소기는 사용 직후 분리하는 것이 좋다. 사용 직후의 잔열에 의해 가스레인지 내부에 장착된 부탄 캔의 내부압력이 상승하여 파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휴대용 가스버너를 이중으로 적재해 보관하면 부탄 캔의 내부압력 상승으로 인해 파열 위험이 커지고, 나란히 놓고 사용하면 부탄 캔이 가열되어 폭발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중 적재 및 병렬 사용은 금물이다. 이와 더불어 오랜 기간 집을 비우기 전 가스레인지 꼭지와 중간밸브, 주밸브(LP가스는 용기밸브)를 잠가야 안전하고, 연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하고, 혹시라도 가스 누출이 의심되면 관할 도시가스 사나 LPG 판매점 등에 연락해 안전점검을 받고 나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연휴를 맞아 캠핑을 계획한다면 텐트 내 가스버너, 가스난로 등 가스용품은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특히 가스난로는 일산화탄소 중독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가스 사용량이 급증하는 연휴 기간에 가스시설 이상 유무를 반드시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가족들과 안전한 연휴를 보내고자 반드시 가스안전 수칙을 지켜주기를 당부한다.

2025-01-23

국민은 지금 배가 고프다

노병철수필가 국가 정책은 다수의 국민이 이해하고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국가의 폐단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세계화’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활동하고 선진국이라는 나라만 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그런 세계화의 노력이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대중 정부의 정책은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햇볕 정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퍼주기 정책’이라고도 말한다.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하면서 북한에 대한 포용적인 접근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증진하고자 했으나 북측의 기만에 놀아났다는 질책만 듣게 된다. IMF 때 급한 나머지 좋은 기업 마구잡이로 팔았다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이명박 정부의 개발 우선 정책은 지방 균형발전 같은 것은 뒤로 미루고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경제 정책을 극대화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지방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말았고 4대강 사업으로 경제는 운하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해외 자원 개발한답시고 브로커에게 속아 그네들에게 넘어간 국가 세금이 거의 천문학적 숫자로 밝혀졌다. 국민의 세금은 대통령의 주머닛돈이 절대 아닐 텐데 이해가 가지 않은 일이 너무 많이 벌어졌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는 공무원조차 그 실체를 잘 몰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나중 탄핵받고 그 실체가 최순실에 의한 창조인지 대충 알게 되었다. 당시 대구시는 ‘창조 사과’를 도시 브랜드로 정하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만큼 ‘창조경제’라는 것에 대한 감조차 잡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영국의 경영 전략가 존 호킨스에 의해 정립된 경제용어를 정부 관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 유학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워런 버핏의 경제론을 많이 따라 그동안 유지해 왔던 재벌 부양정책에서 가져다주는 낙수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급속한 인건비 상승은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조였고 집값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 어설픈 정부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럼, 윤석열 정부는 기본 정책 기조를 어디에다 두고 있을지 찾아봐도 무엇하나 제대로 나오는 것이 없다. 초반에는 규제 완화와 민간 주도 성장을 핵심 경제 정책으로 들고나왔다. 이명박 시절 정책을 갖다 쓴 느낌이 들 정도였으나 사회정책에서 그 유명한 ‘공정’이란 말이 등장한다. 나중 명태균 보고서로 정책 회의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최순실같이 일개 사인에 의한 정책 장난이었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경제 정책은 명확성이 중요하다. 정책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못하면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공무원들도 올바른 정책 방향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관치 금융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권력욕에 국민경제는 내팽개치고 좌우 논쟁으로 혼란만 야기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고 싶다.

2025-01-23

6일간의 긴 설 명절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24절기 마지막 대한(大寒)도 지났다. 소한 땜을 하느라 한파가 지나갔는지 조금 푸근해진 날씨에 성질 급한 꽃망울들은 맺기 시작하는데 심술꾼 미세먼지가 서북쪽 대륙에서 ‘나쁨’으로 밀려오더니 ‘낮음’으로 되다니 다행이다. 내일부터 ‘푸른 뱀띠해’의 설날 연휴가 엿새나 이어지는데 이 긴 명절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행복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주말과 연휴 사이의 27일이 월요일이라 정부에서는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며 6일간의 황금연휴를 만들고 ‘민생경제 회복의 확실한 계기로 삼겠다’며 관광 활성화와 내수경기 진작을 위하여 국내 여행과 착한 소비를 부탁하고 있다. 여기에다 31일이 금요일 샌드위치 데이라, 연차 휴가를 쓰게 되면 2월 2일까지 무려 9일간의 연휴가 된다. 이제 곧 입춘인데 따뜻한 마음의 휴가를 계획해 보자. 우리의 세속 풍속인 설날에는 정성껏 차례상을 차려 절하고 예쁘게 설빔 입은 자식들에게 세배받고 세뱃돈을 주며 덕담도 들려준다. 그리고 하얀 떡국을 따뜻하게 끓여 먹으며 또 한 해 가족의 행복을 빌어보는 것이다. 옛날 정월 초하루 전후한 날 밤에는 ‘야광귀’라는 신발 귀신이 와서 뜨락에 벗어둔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신발을 빼앗기면 1년 동안 불운(不運)이 닥친다고 신발을 방 안에 숨기거나 벽에 체를 걸어두었는데, 야광귀가 체의 구멍 수를 세다가 날이 새어 돌아간다는 재미있는 얘기도 있다. 요즘은 복조리를 사서 복을 담아보라는 복조리 장수도 사라졌다. 올해의 귀성길은 더욱 붐비겠다. 10일간 약 3500만명의 대이동과 설 당일에만 600만명이 예상되어 당국에서는 안전관리 강화에 주력하고 있으며 설 연휴 4일간(27~30일) 전국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한다. KTX, STX 등 열차도 최대 40% 할인하고 국내선 공항과 여객터미널 등의 주차장도 감면하고 있으니 모처럼의 긴 설 연휴를 맞아 고향의 부모님을 찾는 마음이 좀 더 편안해졌으면 한다. 또 고속버스 시외급행버스도 증편 운행한다고 하니 차량운행도 대폭 늘어나는 만큼 안전 운행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향 나들이를 더 즐기도록 지방자치단체들은 각자의 관광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포항은 기계 문성리에 있는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과 남양 홍씨 종택을 전면 개방하여 고향의 정을 흠뻑 느끼도록 할 계획이다. 6일간의 긴 연휴 동안 많은 친족과 지인들을 만나서 밝은 인사 나누며 명절 놀이하며 모이는 곳에 요즘 급성 호흡기 질환인 독감 등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위생관리에도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특히 이번 독감은 RSV 바이러스 감염으로 기침 가래 콧물과 인후통 등 영유아와 고령층에 치명적이니만큼 의심자 접촉을 삼가며 개인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여 모처럼의 가족 만남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건당국도 ‘응급의료체계 유지 특별 대책’을 발표하여 다음 달 5일까지 응급의료 분야의 부족 등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한다. 아무쪼록 긴 설 연휴에 너무 마음을 풀지 말고 알뜰한 계획과 안전 수칙 등을 잘 지켜서 ‘소한 얼음 대한에 녹듯’이 따뜻한 설날을 보냈으면 한다.

2025-01-23

달빛 대구의 승부수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내륙에 자리 잡은 달구벌 대구는 낮은 산줄기가 연이어 펼쳐진 풍경이었다. 그 안에 자리한 들판은 마치 달처럼 둥글게 펼쳐져 있었고, 들판 한가운데로는 강물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습지가 넓게 퍼져 있어 자연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다. 대구는 광주와 함께 대표적인 ‘빨대 도시’로 불리며, 인근 경북과 전남 시군들의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면서도, 대구로 유학 온 학생들에게 하숙과 자취방을 제공하며 가용 자금을 마련해왔다. 이제는 대구가 달 구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를 때다. 승부처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신년 초가 되면 일본 자치단체의 시정연설과 장기발전 계획을 인터넷에서 찾아 꼼꼼히 분석해 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께서는 일본 돗토리 현의 ‘육아 왕국’ 정책을 눈여겨보시는 것 같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일본 돗토리 현의 합계출산율 1.80명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돗토리 현 공무원만큼 경북도 공무원들이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삼성 출신 헐크 이만수 선수는 대학 시절 무용과 여학생 이신화를 사랑했다. 그는 매일 새벽 십 리를 달려 그녀의 집 창문을 두드렸다. 지금도 그는 야구를 미치도록 사랑하며,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자비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지방행정의 열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어느 자치단체에 이만수 선수가 야구 사랑하듯, 자기 고향 발전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수 있는 인물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대구·경북에 중요한 시기가 찾아왔다. 대구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경관을 해치고 있는데, 이는 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구 동구에 공항 이전으로 인해 약 250만평의 큰 땅이 생겼다. 또한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부지 539만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발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미 대강의 밑그림은 나왔지만,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보인다. 통합 신공항 건설 계획은 두바이와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야 하지만, 도심 이전 부지 활용 계획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대구와 경북이 동원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은 한계가 있으므로,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도심공원을 조성한다는 목표로 접근해야 한다. 인류 치유의 답은 자연에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능가하는 거대한 공원을 만들어 음악회와 시민 피크닉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 또한 고급 전원주택을 지어 한국의 비버리힐스로 만들고, 개발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자연이나 정원 박람회를 개최하여 세계인의 관심을 끌자.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자연을 통해 배우는 청색기술 연구센터를 건립하여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계기로 삼자. 돈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있지만, 달빛 고속철도 건설을 포기하고 그 예산을 대구와 광주에 5조원씩 나누어 전 국민을 위한 자연 교실을 만드는 데 사용하도록 건의하고 관철시키자.

2025-01-23

美 빅테크 기업

우정구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7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등장한 빅테크 기업 수장들의 자리 배치가 화제였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 가족들이 앉은 자리 바로 뒷좌석에 앉아 많은 사람의 시선을 모았다. 한 상원의원은 그들을 보고 “트럼프 내각인사들 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정치적 의미를 달아 주었다. 빅테크(Bic Tech)는 빅자이언츠(Big Giants)라고도 부른다. 미국 정보기술 산업에 가장 크고 지배적인 기업을 말한다.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의 기술기업이다. 이 회사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상장기업으로 통한다. 빅테크에 대한 특별한 기준은 없다. 통념적으로 본다면 엄청난 규모의 시가총액을 가진 회사다. 보통은 수천억 달러에서 많게는 3조 달러가 넘는 기업도 있다. 또 하나, 기술의 혁신 능력이 뛰어난 점이다. 문제는 그들이 만든 기술이 디지털 세상에서 일반인의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경제의 트렌드를 바꾸는 세상을 만들면서 생기는 도덕과 윤리적 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기업의 도덕적 노력은 물론 당연하다. 우리의 일상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AI에 대한 윤리와 규제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빅테크 기업들이 예우를 받는 모습은 대통령과 이들 간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을 바꾸는 빅테크 기업이 앞으로 트럼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상의 그림을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 세상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 기대감도 크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01-23

이름의 무게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학급에 70명이 넘었다. 초록색 천으로 싸인 출석부가 좁고 길쭉했다. 펼치면 한자로 된 이름이 빼곡했다. 이따금 선생님께서 내게 출석을 부르는 일을 맡기셨다. 모르는 한자가 있어도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또 모두 다 여학생이어선지 비슷비슷한 이름이 많았다. 끝자가 거의 자(子), 순(順), 숙(淑), 희(姬), 옥(玉)이었다. 정을 첫 자로 쓴 이름들도 많았는데, 내 이름과 한자를 달리 쓰는 애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대부분 곧을 정(貞), 맑을 정(淨), 고요할 정(靜)의 한자였고 정(正)자는 없었다. 남들과 다른 뜻의 이름자를 가진 나는 까닭 없이 뿌듯했다. 어느 날 신문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신문엔 내가 모르는 한자가 더 많았지만 함께 읽는 척하다가 정(正)자를 찾아내고는 아버지께 내 이름자의 내력을 여쭸다. 집에선 내 이름을 옥(玉)이라고만 부른다. 니가 났을 때 워낙 동글동글하다며 할머니께서 그렇게 지으셨지라고 하셨다. 옥(玉)자 말고요, 정(正)자요…. 아 차라리 여쭙지 말 걸 싶은 대답을 들었다. 니가 정월에 났거든…. 난 이월이나 삼월에 나지 않았음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이옥이 삼옥이보다는 정옥이 더 낫지 않은가. 이름대로 바르게 살아야지 무슨 결기 같은 것이 생긴 건, 그 몇 년 후였다. 무슨 연유에선지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세상 가장 공손한 자세로 앉은 어머니가 뭔가를 묻고 점쟁이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긴 대답을 한다. 어머닌 좋아하는 기색이기도 하다가 때론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더 바짝 점쟁이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셨다. 옆에서 그저 심상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점쟁이가 대뜸 이름을 물었다. 바를 정(正) 구슬 옥(玉)이라고 대답했더니 이름자를 크게 쓰면서 대통령 이름자하고 같네. 이름 풀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만은 아주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 때 나는 내 이름의 정(正)자를 내 삶의 신조로 삼기로 결심했다. 불교 진각종단 위덕대에 다니게 되자 내게 또 하나의 이름, 불명(佛名)이 생겼다. 수계관정(受戒灌頂)으로 받은 불명은 ‘대자은(大慈恩)’이었다. 크게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라로 풀이하자 왠지 내겐 버겁다는 첫 생각이었다. 특히 대(大)가 그랬다. 정사님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인연 따라 이름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부처님의 뜻이라고 하셨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기엔 역량 부족이지만 두루 봉사하면서 살자. 최소한 폐 끼치면서 살지는 말자.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폐 끼치고 살았다는 생각에 두렵다. 언젠가 중국 시안의 대자은사라는 절엘 갔다. 내 불명과 같아 반가워 감격했다. 서유기로 유명한 현장이 수좌로 있으면서 역경사업을 했다는 절이다. 당 고종이 모후인 문덕황후를 위해 세워, 절 이름을 ‘자애로운 어머니의 큰 은혜’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했다. 역사깊은 내 불명에 사명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들었다. 절에 가면 불명을 조심스럽게 쓴다.

2025-01-22

발 건강과 전신 건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우리 몸을 지탱하는 기둥인 발은 단순히 걷고 뛰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발의 건강은 전신 골격의 균형을 유지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중요한 발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전신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발은 우리 몸의 균형과 자세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발바닥에는 수많은 뼈, 관절, 근육, 인대가 얽혀 있어 이는 몸의 무게를 분산하고 충격을 흡수한다. 발의 구조가 약해지거나 변형되면 이러한 균형이 무너져 전신 골격에 영향을 미친다. 평발이나 족저근막염 같은 발 질환은 무릎, 골반, 허리의 구조를 무너뜨리고 통증을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발이 체중을 고르게 지탱하지 못해 다른 부위에 과도한 부담을 주면 자연히 인체는 틀어진다. 바른 자세와 걸음걸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의 아치가 적절한 형태를 유지하고, 발목과 발바닥 근육이 충분히 강해야 한다. 이는 정형외과적 문제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전신 골격의 균형을 잡아주고 몸의 면역력까지 높여준다. 발은 몸의 가장 말단에 위치해 있지만 혈액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는데 발바닥의 근육과 정맥은 걷거나 뛰는 동안 압력으로 혈액을 심장으로 다시 보내는 펌프 역할을 한다. 특히 발목을 움직일 때마다 발바닥 근육이 수축하면서 혈액이 위로 이동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발이 건강하지 않으면 이러한 펌프 기능이 약해져 정맥류나 부종 같은 순환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발의 혈액 순환을 개선하려면 규칙적인 스트레칭과 마사지가 도움이 된다. 또한 편안하고 적절한 신발을 착용해 발의 피로를 줄이고 혈류를 원활히 해야 한다. 또 꾸준한 운동은 발뿐만 아니라 전신의 구조와 혈액 순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발 건강을 지키는 실천 방법으로는 첫째 적절한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의 아치를 지지하는 쿠션이 있는 신발을 선택하고 발이 편한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좁거나 굽이 너무 높은 신발은 발목에 무리를 주고 발가락의 변형을 주니 피하는 것이 좋다. 예쁜 신발 보단 유명한 브랜드에 내 발이 편한 신발을 착용하자. 규칙적으로 발목 돌리기 발가락 스트레칭 등 간단한 운동을 통해 발의 유연성과 혈액 순환을 촉진할 수 있다. 심심하면 움직여 주자. 스트레칭 후 발 마사지를 하고 족욕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발 마사지를 하거나 따뜻한 물로 족욕을 하면 혈류가 개선되고 근육 긴장이 완화 된다. 과도한 체중은 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으니 저녁 운동 후 간식은 먹지 않는 게 좋다. 발은 골격의 토대이자 건강의 시작점이다. 발 건강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전신 골격의 균형과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많은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발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고 건강한 발을 위해 작은 습관부터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만있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내가 행동하고 실천하면 나의 건강은 조금씩 개선된다.

2025-01-22

부자는 부자와만 결혼한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맥’(脈·인간과 사물이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으로 끝나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나라다. 인맥, 학맥, 혼맥 등을 일상에서 흔히 듣게 된다. 여전히 엄존하는 유교적 전통과 어떤 것이건 동질성을 가진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성정 탓일 게다. 실제로 사회생활에 인맥과 학맥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집안에 출세한 어른이 있다면 친인척의 아들과 딸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각 지역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문끼리 정기·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중년과 노년세대는 인맥과 학맥처럼 혼맥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 집 사위가 행정고시를 패스 했다더라” 혹은, “저 집 며느리는 쟁쟁한 가문의 딸인데…” 등은 그 사위와 며느리를 얻은 집안의 자랑이 되기도 한다. 고루한 이야기지만 현실이 그렇다. 최근 한 경제일간지엔 앞서 언급한 혼맥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 그곳 고가 아파트에 사는 젊은 남녀 수십 명이 단체미팅을 했다고 한다. 잘 차려진 요리를 먹고, 와인을 마시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부잣집 자녀들. 이는 분명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를 가진 자신들의 ‘급’에 어울리는 사위와 며느리를 얻고 싶다는 그들 부모의 뜻이 반영된 미팅이었을 터. 인맥, 학맥, 혼맥 등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과 자질이 인간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 되는 세상이 오기 전엔 씁쓸하지만 이런 세태가 지속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22

대통령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

장규열 고문 우리 사회에는 대통령을 마치 군주처럼 여기는 잠재의식이 남아 있다. 5000년 역사 가운데 왕조 정치가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했고, 민주주의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기간은 고작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부를 거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체제가 뿌리를 내린 기간은 지극히 짧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고통스런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갈등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 대통령이 대선 토론에 나설 당시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어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이는 후보 본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군주제적 잔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오늘 겪는 사회적 소란 속에도 대통령을 국가의 대표자라기보다 통치권력자로 여기는 경향이 뿌리깊게 깔려있다. 대통령을 뜻하는 영어표현 ‘President’는 원래 ‘앞에 선다’ 또는 ‘대표한다’는 원어적 의미를 담고있다. 그러나 한자표현 ‘대통령’에는 ‘크게 통치하는 최고명령권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히 있다. 이는 대통령제의 본질을 오해하게 만들며, 군주적 이미지를 굳히는 효과를 낳고있다. 제왕적대통령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본령을 회복하기 위하여 직함으로서 ‘대통령’의 명칭변경을 제안한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기본을 고려할 때도 ‘대통령’이라는 명칭은 행정부 수장의 역할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입법부 수장을 ‘국회의장’, 사법부 수장을 ‘대법원장’으로 부르듯, 행정부의 수장에게도 더 균형잡힌 명칭이 필요하다. 예컨대 ‘행정수반’, ‘국무원장’, 또는 ‘국정총장’ 등으로 개칭하여, 대통령의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통치자이기보다 제한적인 책임자임을 강조해야 할 터이다. 대통령 명칭의 변경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직제의 개정, 관련 조직 및 법령의 정비 등 부가적인 사안들이 동반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본질을 구현하고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대적으로 필요하고 의미있는 과정이라 여겨진다.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놓고볼 때, 민주정부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이라는 직함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을 넘어, 국민이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가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대표자임을 재확인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오늘의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의 안정적인 일상과 평온한 국정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대통령직의 본질을 재조명하고 그 역할을 재정의해야 한다. 직함변경 논의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강화하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다시는 국가의 지도자가 불행한 길에 서지 않도록 하는 배려도 함께 버무려 대통령 명칭 변경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여 맡겨진 임기 동안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일해야 하는 성실한 일꾼이어야 한다.

2025-01-22

15층에서 내려다본 지구

윤명희 수필가 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허둥거린다. 지나는 길에 잠시 들리겠다고 하자, 조심해서 오라는 말과 함께 천천히 오라는 말이 길게 따라붙는다. 혼자 사는 아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 뒤로 미처 치우지 못한 베란다를 떠올렸나 보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쓰레기를 양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갈 것이다. 지난 여름, 휴가라고 모처럼 집에 온 아들과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았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막 리모컨을 돌리는데 잡다한 물건 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누울 자리도 없어 앉아 자야 할 만큼 온 집을 물건으로 가득 채웠다. 그녀가 주워 온 것들은 쌓이고 쌓여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른 프로 보자는 아들의 말을 자르며 잘 보란 듯이 볼륨까지 높였다. 화면에 비치는 것들의 썩은 냄새가 내 코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들끓는 파리에 바퀴벌레까지 눈앞을 어른거렸다. 아들은 할머니가 저장강박증 환자 같다고 했다. 아픈 기억으로 생긴 마음의 빈 공간을 물건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끌어 모은 물건들은 누가 봐도 쓰레기로 보일 것들이었다. “너도 아픈 기억이 있니?”라고 묻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베란다에 분리해 둔 재활용은 다 버리고 왔느냐, 생활쓰레기통은 깨끗이 다 비웠느냐는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이 뜨거운 여름, 온 집안에 퀴퀴한 향수가 피어오르겠다고 하자, 아들이 기겁했다. 쓰레기까지 껴안고 살려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겠다는 내 말에, 그는 눈만 끔뻑끔뻑한다. 나는 집의 평수에 예민하다. 거주할 곳 한 평을 늘리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가. 아침에 눈 뜨기 바쁘게 일하러 가고,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대충 배달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고, 겨우 일어나 빨래한다. 그 또한 일이 덜 바쁠 때 말이지, 주말 없이 일 할 때는 빈 택배상자와 배달음식 통들로 베란다가 점점 좁아진다. 쉬는 날 큰마음 먹어야 치운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할머니를 핑계로 아들에게 제때 버리라고 각인시키려했다. 할머니 집에 도움을 주려는 이웃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쓰레기들을 끌어내 차에 싣는다. 화물차가 몇 대나 줄을 지어 실어낸다. 저렇게나 많다고? 끝없이 나오는 것들에 숨이 턱 막혔다. 나는 할머니 걱정보다 끌어내는 쓰레기에 눈이 꽂혔다. 온갖 병균이 내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몇 대의 차가 나가고 나자, 조금씩 집안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볼일을 마치고, 아들의 아파트에 들어섰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경비아저씨가 플라스틱 더미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오물이 묻은 배달 음식 통들을 건져 포대 옆으로 던졌다. 달라붙었던 음식 찌꺼기가 바닥에 흩어졌다. 분리수거장을 넘어 주차선까지 몇 개나 침범한 것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해 몇 바퀴나 돌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았다. 누가 붙잡아 둔 건가, 짜증이 살짝 올라왔다. 나는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한참 만에 숫자가 천천히 내려오고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쓰레기 더미 속에 서 있다. 손가락에는 플라스틱이 든 커다란 봉지와 일반쓰레기 봉지가 걸려있고 발치에는 종이상자가 가득이다. 한 번 만에 다 버리고 싶은 그의 마음이 줄줄이 그것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종이상자에 얹힌 크고 작은 택배 상자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들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거들어주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그에게 목례하고 아들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악이 먼저 마중한다. 아들은 보란 듯이 베란다 문까지 열어두었다. 나는 빈 쓰레기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베란다 문을 닫으려다 바깥을 내다보았다. 잎들을 놓아버린 겨울나무의 앙상함 사이로 큰 포대들이 보였다. 조금 전에 봤던 것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재활용 포대들이 더 많은 차선을 물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첩첩이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였다. 그들도 똑같이 쏟아내고 있겠지. 곧 쓰레기가 15층까지도 금방 차고 오를 것 같다. 할머니는 남들이 만든 쓰레기를 집에다 모으고, 나는 내가 만든 것들을 집 밖에 버리고 있다. 집안이 깨끗하지 않으냐고 묻는 아들에게 나는 할 말이 없어, 애초부터 만들지를 말라며 등짝을 후려친다.

2025-01-22

밀양 영산정사 성보박물관, 그리고 세계 최대의 와불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일등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보다는 모든 걸 순위의 결과를 놓고 등수로서 평가하려 한다. 존재의 가치와 참 의미보다도 최초, 최고, 일등이라는 수식어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웬만한 명함으로는 고개를 내밀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밀양 영산정사는 그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벗어나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발행하는 진기한 세계 기록을 모은 기네스북에 기재된 사찰로, 세계 최대의 와불과 동종, 성보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의 부지만 16만7000여 평이고, 전각은 2층으로 지어진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 성보박물관, 관음대불, 요사채, 석탑, 포대화상, 십이지신장, 연당, 폭포 등으로 꾸며져 있다.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밀양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영산정사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번지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와 군사들이 훈련했던 절골(불당골)로 불리던 삼적사 자리에, 불국사와 조계사 주지를 지냈던 경우 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밀양의 가장 서쪽인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 사명대사의 힘으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는 의미로 무안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정자가 많은 가례리 서가정마을을 지나 사찰로 들어가는 농로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그 좌측에 작은 산 하나를 통째로 받치고 있는 듯한 거대한 황금색 와불이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면 ‘영축산(靈鷲山) 영산정사(寧山精舍)’라는 표지석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사찰의 테두리 안에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영산정사와 와불은 거리로 400여 미터 떨어져 있어 탐방을 떠나기에 앞서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와불 가까이 있는 주차장과 영산정사 주차장을 선택할 수 있는데,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방문한다면 어느 곳에 주차하든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두 군데를 다 돌아보아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을뿐더러,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 외형적으로 영산정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 최대의 황금색 와불상이다. 영산정사 사찰 못미처 높은 언덕 위에 조성되었는데, 와불과 가까운 주차장에서는 약 5분 정도의 오름 길이 이어진다. 흔히 누워있는 불상을 와불이라고 하는데, 불상을 받침 하는 좌대의 길이가 120m, 불상의 길이는 82m, 높이가 21m인 거대한 불상이다. 세계 최대의 와불상답게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가 철근 콘크리트로 된 기단 부분까지 만든 상태에서 2004년경부터 갑자기 방치되었다. 자금난으로 참여한 건설사 간에 소송이 벌어져 공사 진행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2016년 1월에 공사가 재개되어 발목 부분이 건축되었으며, 2018년 3월에 와불상으로 향하는 길이 정비되었다. 2019년 초 불상의 머리와 눈 부분이 추가로 부착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2022년 7월에 준공이 되었다. 와불상을 여유롭게 천천히 한바퀴 돌아본다. 내부는 아직도 개발 중으로 미완성인 듯 보인다. 와불상 앞마당에서 북쪽을 응시해 보니 파란 하늘 아래 긴 능선들이 일렁거리며 춤을 추는 듯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738.8m인 영축산이다. 창녕과 밀양의 경계에 위치하며 일명 영취산으로도 불리는데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창녕에서는 바위산, 밀양에서는 순한 육산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 산 앞쪽 자락에 세워진 사찰이 영산정사다. 와불에서 영산정사까지는 느린 걸음걸이로 대략 15분 정도다. 사찰 입구 좌측의 범종루에는 세계평화호국기원대범종이라고 불리는 무게 27톤의 세계 최대 범종이 보이고, 전방으로 보이는 7층 형상의 건물에 가장 많은 눈길이 간다. 다양한 불교 문화재가 소장된 성보박물관으로, 2012년 9월에 정식으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이다. 입구에서 2000원을 내면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 내부는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국사전에는 불교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서른여섯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한글 창제에 기여하고 ‘나랏말싸미’란 영화로 제작되어 역사 왜곡이란 논란에 휩싸인 ‘신미대사’를 필두로, 시계방향으로 원효, 의상, 사명대사 등의 영정이 액자로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영정은 죽음으로서 신라 땅에 불교를 받아들이게 한 이차돈 존자의 영정이었다. 2층에는 세계 각국 2000여 점의 불상이, 3층에는 백만과의 진신사리가, 4층에는 종이 대신 나뭇잎에 쓴 불경인 패엽경이 각각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100만의 진신사리와 팔만대장경의 원본인 ‘10만 패엽경(貝葉經)’은 세계 기네스북에 등록되어 있어 그 의미를 더했다. 영산정사는 요즘 말로 가장 많이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 최대, 희귀한 유물들이 즐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불교문화 체험과 확산의 중심지로 거듭 태어나고 있어서다. 200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도 국사전 은밀한 곳에 보관되어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볼 것을 권한다. 풍만한 얼굴에 당당한 풍채로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다. 이만큼 다 돌아보았으면 하루 일정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도 부족함이 생길 수 있다. 돌아오는 여정에 무안면 고라리를 방문하면 어떨까. 사명대사 생가터와 사명대사 유적지가 있는데, 영산정사에서는 차량으로 겨우 5분 이내의 거리다.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이 찾도록 연꽃 모양의 4층짜리 타워형 놀이시설을 만들어 호기심을 더했다. 정자와 포토존, 데크로드를 설치하는 등 산책로를 정비해 놓았다. /지홍석 수필가

2025-01-21

비트코인과 지갑, 그리고 상속

얼마 전 오랜 지인의 부고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됐다. 고인은 몇 년 간 지속된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뜻밖의 소식에 슬픔도 잠시, 고인의 마지막 게시글에 시선이 멈췄다. 그동안 잘 버텼고 이제는 잘 정리하겠다는 말.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 말이다. 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나의 죽음 앞에 다른 무엇이 우선시 될 수 있겠냐마는 남겨진 가족이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없는 동안 가족에게 전하고픈 것들과 그러한 목록들을 실행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보유한 자산을 가족에게 잘 전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은행계좌를 비롯해 부동산, 주식, 보험 등 내 금융정보를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다. 보통 고인의 금융계좌는 사망신고 후에 상속인이나 가족에게 인계된다. 하지만 온라인 거래가 보편화된 요즘 금융기관을 통해 조회되지 않는 디지털 자산들도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금융기관에서 조회되지 않는 자산이다. 가상자산은 별도로 관련 정보를 남겨두지 않으면 가족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예치되어 있는 자산은 상속자산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접근 조치가 필요하다. 여러 곳의 거래소를 이용한 경우 이들에 대한 계정정보를 일일이 정리해 둘 필요도 있다. 개인지갑에 가상자산을 예치한 경우 관리가 더 까다롭다. 특히 개인지갑의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개인키(Private key)를 잊어버리면 보관된 자산을 영구히 찾을 수 없다. 개인지갑은 거래소와 달리 관리 주체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키를 잃어버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소유자의 비트코인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개인키 분실로 유실된 비트코인이 수백만 개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분산원장이라 불리는 비트코인은 개인 간 거래(Peer to Peer)를 목적으로 설계된 만큼 자산 관리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다. 개인지갑은 복잡한 암호키 생성을 통해 보안 위험을 줄였지만, 관리상의 어려움이 뒤따른다. 편의상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인 방책일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익숙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였다. 하지만 거래소를 이용한다는 것은 개인지갑을 대신해 거래소 지갑을 이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관리 편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보안 위험이 상존한다는 의미다. 비트코인 등의 가상자산이 보편화될수록 관리 측면의 이슈는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가상자산 또는 개인키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관해 주는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이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이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고인과 유족 모두에게 필요한 조처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분실한 비트코인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유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부고는 가족 중 한 명이 올린 것이다. 고인께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가족에게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정보를 미리 알렸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사후 조치들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잘 정리하겠다는 고인의 말은 산자들에 대한 배려에 다름아니다. 고인의 마음 씀씀이가 사뭇 경외롭게 느껴지는 하루다.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2025-01-21

포스코 자원봉사의 웃음꽃

춥지 않은 소한(小寒)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大寒) 없다 했던가. 한 해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도 지구온난화에 밀려 북풍의 혀를 날름거리던 동장군이 여지없이 맥을 못 추고 있다지만, 동토의 비탈엔 아직 잔설이 꼿꼿하게 서려 있고 얼어붙은 강줄기는 수시로 얼음장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고 있다. 그다지 강추위가 아닌데도 시국은 온갖 기현상(?)으로 볼썽사납게 얼어붙고 민심의 파고는 난파선을 집어삼킬 듯 격하게 요동치고 있으니, 설 대목의 경기와 민생은 걷잡을 수 없이 팍팍해지며 힘겨움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헤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꽃망울을 튼다//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도/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문병란의 시 ‘희망가’중)고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추위 속에서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쓰러지지 않도록 하고, 난전에서 쪼그리고 앉아 시금치 묶음을 다듬으며 누군가 사 갈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덤덤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지만, 누군가가 길거리의 휴지를 줍고 따스한 인정으로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험난한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고 따스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삼삼오오 팀을 이뤄 해안가에 밀려나온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거나,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정원수의 전정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고, 경로당 시설을 방문하여 창문 방충망을 교체해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부품을 직접 조립하여 완성된 컴퓨터를 취약 가정의 학생들에게 기증하고, 새해를 맞아 연하장이나 붓글씨로 새해 소망을 적어 나누어 주는 등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재능봉사단이 연초부터 펼치는 ‘맞춤형 봉사활동’의 일부이다. 이는 임직원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과 특기, 기술을 활용하여 소외되거나 취약한 지역사회 에 도움을 주고 사랑을 나누는 공익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이다. 즉, 포스코 임직원들이 급여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과 포스코1%나눔재단의 출연금을 경북공동모금회에 전액기부 후 포항시자원봉사센터에서 배정된 예산에 따라 45개 재능봉사단이 지역사회를 위해 저마다 특색 있고 다양하고 유익한 활동을 펼치는 선순환 봉사활동인 셈이다. ‘스스로/스스로의 생명을 키워/그 생명을 다하기 위하여/빛 있는 곳으로 가지를 늘여/잎을 펴고/빛을 모아 꽃을 피우듯이//추운 이 겨울날/나는 나의 빛을 찾아 모아/스스로의 생명을 덥히고/그 생명을 늘여/환한 내일을 열어 가리’ - 조병화 ‘난(蘭)’전문 어쩌면 추운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자원봉사의 꽃을 피워가는 포스코 봉사단원들의 따스한 손길은, 한겨울에도 묵묵히 어려움을 견디며 빛과 희망을 찾아 향기 짙은 꽃을 피워가는 난을 닮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주말이나 휴일을 반납하며 스스로 한결같이 활동에 임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 보람의 꽃이 피어나듯이, 수혜자의 얼굴에는 만족과 기쁨의 웃음꽃이 청초한 난꽃 마냥 환하게 피어나리라.

2025-01-21

조직문화는 경영의 승부처다

‘조직문화는 경영의 승부처 중의 하나가 아니라 승부 그 자체이다’ IBM의 루 거스너 전 회장의 말이다.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말해준다.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경영자의 과제 중 하나이다. 최근 기업에서 수평적 조직으로 개편하고 직급과 호칭을 단순화 하는 등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궁리를 한다. 변화된 시대에 맞는 조직문화가 경쟁력이고 좋은 기업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는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사뭇 궁금해진다. 조직문화는 조직 내에서 공유되는 가치, 믿음, 규범, 행동 양식 등을 의미한다. 조직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 상호 작용, 의사결정 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구성원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 업무 수행,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조직문화의 구성 요소로 첫째, 가치와 신념이다. 조직의 핵심가치와 믿음 체계는 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고객중심, 혁신, 책임감 등이 해당된다. 둘째, 규범과 행동양식이다.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따르는 규칙, 절차, 행동 기준 등을 의미한다. 정해진 프로세스나 공식적인 규정을 포함할 수 있다. 셋째, 의사소통 방식이다. 정보가 어떻게 흐르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지에 관한 방식이다.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는 문화도 있고 수직적인 소통 구조를 가진 문화도 있다. 넷째, 조직의 상징, 언어, 전통, 의식 등이다. 조직이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직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보여준다. 다섯째, 작업환경이다.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조직 내의 분위기나 업무의 진행 방식도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직문화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가지가 있다. 긍정적인 조직문화는 직원들의 협업을 촉진하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며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 조직 문화가 시대의 흐름에 잘 맞을 때 만족도가 높고 이직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조직문화가 시대 흐름에 불일치할 경우 불만이 커지고 이직이 증가할 수 있다.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가진 조직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발전시키는데 유리하다. 리더십 스타일과 의사결정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평적인 문화는 리더들이 협력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또한 기업의 외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고 좋은 조직문화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며 경쟁력을 높여 나갈 수 있다. 기업의 CEO가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려 할 때 현재 주어진 이슈에만 집중하면 조직운영에 불균형이 일어나고 부정적인 조직문화를 초래하여 경영에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안전관리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비효율성과 부정적인 문화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조직문화는 기업의 전략적 목표와 방향성을 지원하거나 방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조직의 성장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5-01-21

여전히 ‘권고’로 지방의회 길들이는 정부

지방의회가 출범한지 올해로 34년(1991년 개원)이 됐지만, 중앙정부는 아직도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것 같다. 법률이 아니라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지방의원들을 길들이려 하는 태도는 개원당시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시비를 거는 단골메뉴는 지방의원들의 국내외 연수 비용문제다. 언론에서 지방의원 해외연수와 관련해 혈세 낭비 또는 ‘셀프 출장심사’ 등의 부정사례를 보도하면,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최근 지방의원들의 해외출장 비용제한과 사전·사후관리를 위해 ‘지방의회 공무국외출장 규칙 표준’을 개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지방의회가 이를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말이 권고지 지키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이 다쳐 강제성이 다분하다. 주요 내용은 해외 출장 심사 및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지금은 심사위원회(광역의회 9명 이상, 기초의회 7명 이상) 의결을 거친 출장계획서를 심사 후 3일 이내에 누리집에 게시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 출국 45일 이전에 출장계획서를 누리집에 올려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출장 후에도 심사위원회가 출장결과의 적법·적정성을 심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항공과 숙박대행, 차량임차, 통역을 제외한 예산 지출은 전면금지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보는 “교육을 통해 지방의회에 올바른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삐딱한 생각’과는 달리, 지금 지방의원들은 해외연수가 필수적이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를 예로들면 지역 현안 해결과 입법, 정책대안을 발굴하는 수많은 의원연구단체가 있다. 연구성과를 위해서는 해외주요 도시 벤치마킹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구시의회에서는 사회문제해결연구회, 대구 희망포럼, 미래 발전 포럼, ED 포럼, 지역 혁신·성장 포럼, 희망정책 연구 포럼 등에 의원 대부분이 중복 가입해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경북도의회도 마찬가지다. 해수담수화시설 발전연구회, 저출생 대책연구회, 학교폭력 정책연구회 등 16개의 의원연구단체가 결성돼 수시로 세미나와 간담회를 연다. 현안에 대한 용역을 발주해 조례제정에 참고하기도 한다. 기초의원들의 공부의욕도 광역의원 못지 않다. 대구 수성구의회를 예로들면 미래지향적 도시숲 만들기 연구회, 책 읽는 의원 모임, 둘레길 연구회 등의 연구단체에 의원 모두가 참여해 도시발전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예산낭비 문제는 어제오늘 제기된 일은 아니지만,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이를 통제하려 드는 것은 월권이다. 엄연히 지방자치법과 조례에 의해 운영되는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압박하는 것은 지방의원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지침이나 권고는 상급기관이 업무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하급기관에 내려 보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양대 축인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하급기관으로 여기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지방자치정신에도 어긋난다.

2025-01-21

MAGA 시대 개막

어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전 세계인의 관심사였다. 트럼프 공포증이라 불릴만큼 강력한 그의 정책들 때문에 전 세계가 긴장된 모습으로 그의 연설을 지켜보았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역시 예상한대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rica Great America·MAGA)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취임 연설 30분 동안 미국을 뜻하는 ‘아메리카’ 단어가 41번 등장하고 “미국은 이전보다 더 위대하고 강해진다”고 외쳤다. “미국의 황금시기가 이제 시작됐다”고도 말했다. MAGA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상징이다. 그가 내세웠던 선거공약인 MAGA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부터 미국 기존의 많은 정책들이 일거에 달라진다. 세계시장 질서가 바뀌고 새로운 질서가 구축될 것으로 예측이 된다. 세계 각국이 긴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가장 큰 이유로 강력한 경제정책을 손꼽는다. 일부는 “미국사람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순한 맛보다 매운 맛을 필요로 했다”는 말로 트럼프의 강력한 리더십을 꼬집기도 한다. 미국 경제를 살려야 하는 데는 미지근한 정책보다 화끈한 정책을 제시한 트럼프가 논란이 있는 인물인데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을 지금보다 10배 가까이 올리는 것 등이 대표적인 트럼프식 발상이다. 동맹국 관계를 떠나 미국을 최우선 하는 MAGA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의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아직은 크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다시 위대하게” 할 한국의 리더십은 언제 쯤 등장할 수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1-21

행정은 대구염색단지에 관대한 것일까

황인무 대구본사 최근 대구염색단지 내 하수관로로 보랏빛 염료로 추정되는 물질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 인근 주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단속할 관계당국이 매뉴얼이 없어 사실상 원인 규명과 진원지를 찾을 수 없다는 말에 허탈해 하는 반응이다. 누가 밤사이 몰래 염료 등을 흘러보내도 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염색산단에 대해 행정당국이 유독 관대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대구염색산단은 1981년 설립 이후 대구경북의 경제 성장을 이끈 산업역군으로 누구도 부정 못한다. 지금도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응원한다. 비록 예전같지 않은 경기로 어려움을 겪지만 산단의 중요성이 변할리가 없다. 다만 환경문제가 우리 삶의 질과 관련해 중요 과제로 대두되면서 주민들은 기업도 환경기준에 맞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구 서구청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후 대기방지시설 교체를 진행했다. 73%는 염색산단에 집중했다. 그 결과, 서구청은 2019년보다 지난해 9월까지 주요 악취 물질인 암모니아 수치와 황화수소 수치가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노후시설 개선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대구염색산단은 환경문제 유발로 2030년까지 군위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목표대로 이전이 되지 않으면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맞춰 석탄화력발전소를 친환경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 큰 부담도 안고 있다. 하수관로 이물질 유출 사건이 비록 미제로 남았으나 산단 주변 주민들에게는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남았을 소지가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1-20

오징어 게임과 민주주의의 원칙

허민 문학연구자 민주주의는 지난한 과정을 동반한다. 국정운영이나 정책 결정은 물론 사사로운 의사진행조차 그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의 설득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론 마주하기도 거북한 정치적 라이벌 혹은 적(適)을 종용해야 할 때도 있다. 그 회유의 단계가 아무리 비루하거나 지루해도 감정적으로 기피만 해서는 어떤 결실도 이뤄낼 수 없다. 현실정치에서 대화와 타협, 토론과 숙의가 필수적이라는 건 일종의 상식으로 통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실제 수행되기 위해서는 공감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자기의 마음을 공공의 관점에서 추스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2·3 비상계엄은 민주주의의 지난한 과정을 감당하지 못한 대통령의 무력(無力)한 무력(武力)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에 대한 징벌 역시 지난해 보이는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란 저절로 성숙되는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인내와 양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 특유의 지난한 의사결정 과정을 합리적으로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와 투표는 민중의 의사를 대의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는 불완전한 제도이기도 하다. 선거라는 제도는 언제나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유권자의 30~40%정도는 투표를 포기하며, 그중에는 아예 선거권이 박탈된 계층도 있다. 더구나 어느 선거에서든 당선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과반 정도의 민의를 마주해야만 한다. 정치인에게 ‘겸허할 의무’가 주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차등적으로 구분케 하는 정치 참여의 원리다. 이때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결과를 받게 된 적지 않은 민의는 어떻게 사회적으로 처리돼야 할까? 바로 이 선거제도의 난점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이다.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체제의 ‘순수한’ 생존 법칙을 아이들의 놀이 형식으로 융해하여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즌2에서는 참여자들의 목숨값을 대가로 한 게임의 지속 여부를 투표행위를 통해 결정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한쪽에는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가능한 많은 액수를 차지하면 된다는 자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어떻게든 게임을 멈추고 살아나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 간의 갈등은 투표를 통해 강제로 봉합되는데, ‘51:49’의 구도 속에서 승리하지 못한 ‘49’의 의사는 사지(死地)로 내몰리게 된다. 패자에겐 다음 투표까지가 그야말로 ‘지옥의 시간’인 것이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승자 독식이라는 그 형식적 결과의 관철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는 투표를 통해 대의되지 못한 사람들의 의견을 정치적·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를 아울러 고민케 하는 장치라는 데서 연유하는 것 아닐까? 민주주의란 나 혹은 내가 속한 세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지난하지만 꾸준히 모색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내란 정국에서 다시금 새겨야 할 원칙이라 하겠다.

2025-01-20

제조업에 힘을 모아야

김규인 수필가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2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440만1000명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9만7000명 감소한 수치다. 12월 전체 취업자 수도 5만2000명이 줄어든 2804만1000명이다. 취업자 수는 -7.2%를 나타낸 건설업의 감소가 가장 컸다. 그러나 규모가 큰 제조업에서의 감소는 걱정스럽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고용은 줄어든다. 지난 10여 년간 제조업의 비중은 2011년 30%에 달하던 것이, 2023년에는 25.6%로 줄어들었다. 대한민국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체가 줄어들고 사라지면서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제조업의 위축은 근로자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지고 소비는 줄어들고 산업은 다시 침체의 늪에 빠진다. 2025년도 트럼프 등장으로 고율 관세 부담으로 세계 경제 전망은 불투명하고 환율은 치솟는다. 관세를 무기로 자국 경제를 살리려다가 세계 경제를 어둡게 한다. 자국 우선주의 앞에 동맹도 우방도 없고, 우리의 수출 주역인 제조업은 거센 풍랑을 맞아 위태로운데 흔들리는 정치는 경제에 부담만 준다. 중국을 향한 미국의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판매처를 잃고 세계시장에 제품을 싼값으로 내놓아 우리 제조업을 더 힘들게 할 것이다. 그동안 중국 제품은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휴대전화, 조선과 철강, 전기차와 이차전지, 석유화학 제품과 기계제품에서 높은 가격 경쟁력으로 매년 한국 제품을 대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60%의 고율 관세에 대응하여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마저 이루어진다면 한국 제조업은 설 자리를 잃는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국내 기업도 자구책 마련에 바쁘다.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고 보다 값싼 재료를 찾고 인건비를 줄이려고 동남아로 생산 거점을 옮긴다. 그러나 동남아 이전은 산업체의 생명을 잠시 연장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전하면서도 근심 어린 표정이 가득하다. 대기업이 사활을 걸고 개발하는 첨단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디고 기존 제품 시장은 자꾸 줄어든다. 이러한 어려움을 헤치고 확립한 기술은 생명이 짧고 경쟁업체로의 기술 유출도 심각하다. 돌아보면 제조업체가 기술을 개발하며 시장을 확대하며 종사자들에게 월급을 주며 유지하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 제조업이 살길은 무엇일까.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인 호세 무뇨스는 미국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를 발표했다. 자동차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투자로 시장에서 입지 강화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미국과의 투자와 경제 협력에 적극 참여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제조업의 위기에 국가의 총력 지원이 필요하다. 때를 놓치면 제조업은 고사 위기에 몰려 무너지고 만다. 기업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살려야 한다. 위기의 순간을 잘 극복하면 기회는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살피는데 이념도 사사로운 감정도 버리고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를 위해.

2025-01-20

인생, 아무도 모른다

아내는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고...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미술 레슨을 받으러 간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레슨 시간을 합하면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그동안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평소 둘이 함께 하는 육아가 한 사람의 몫이 되면 체감적으로 서너 배 정도 힘이 드는 느낌이 들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쉽지 않았던 날이었다. 잘 자던 아기가 배가 고파 깨서 분유를 먹였고, 먹자마자 아기는 큰 볼일을 봤고, 아기를 씻기고 바닥에 잠시 눕히고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 아기는 거실 바닥에 작은 볼일을 보고 있었고, 다시 아기를 씻겨야 했고, 이번에는 딸꾹질을 시작했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 또 분유를 먹이는 길고 긴 과정을 수행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다시 아이를 안아 재우고 있을 때 아내가 집에 돌아왔다. 두 눈이 퀭해진 나를 보고 아내가 힘이 들었는지 물었고, 나는 세상 가장 초췌한 표정으로 짧은 시간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했다. 별 것 아닌 이 장면이 우스웠는지 아내는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고, 이것을 살짝 편집해서 SNS에 숏폼 영상으로 올려 보면 어떨까 제안했다. 나는 휘뚜루마뚜루 편집을 해서 대충 나의 SNS계정에 올려두었는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이 영상이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무섭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상을 업로드한지 48시간 정도가 지난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14만을 돌파했고 지금 현재도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당연히 반갑다. 내 본업으로 얼굴을 알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 SNS가 노출되는 것은 내 창작물들을 홍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 하반기, 나는 내가 그동안 발표했던 음악들과 시편들을 갖고 수십 편의 숏폼 영상을 제작했다. 작품을 고르고, 자막을 달고, 그와 어울리는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 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매일 반복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피땀 흘려 노래와 시를 창작한 시간까지 더하면 정말 공을 많이 들인 것인 셈인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많이 아쉬웠던 참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올린 일상 영상이 빵 하고 터져버리다니.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 이틀만에 14만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내게 있어서는 대단한 수치이다. 유튜브에 올려둔 내 뮤직비디오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이다. 이 영상의 현재 조회수는 39만. 그러나 그것은 업로드 한 지 5년 만에 달성한 결과이다. 그냥 육아가 힘들었다고 아내에게 푸념하는 영상이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니, 실소를 참기가 어려운 일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어떤 일이 이런 식으로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내 삶에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앞서 말한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 역시 아무런 기대감 없이 내어 놓은 곡이다. 이 노래가 알려지게 된 사정이 아주 뜬금없었다. 야근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 노래가 군 복무를 하고 있는 현역 장병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 생활관에는 스마트 스피커가 하나씩 있다는데, 장병들이 무심코 ‘집에 가고 싶다’고 외치면 스피커가 내 노래를 재생해주곤 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내가 쓴 일곱 권의 책 중 가장 잘 팔린 것은 ‘사축일기’라는 책이었다. 이 역시 출판사의 제안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앞서 야심차게 내어 놓았던 나의 첫 산문집이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의기소침했던 터라 받았던 계약금이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팔려줘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출판사에서 요청한 것은 가벼운 글이었는데, 나는 그 요청에 맞는 글을 쓰면서도 속으로 ‘이런 글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가 쓴 첫 번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증쇄를 찍으며 유명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는 결과를 내어 주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고,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똑같은 야심과 기대감으로 프로젝트를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일은 가볍게 툭툭 해냈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행한 일 앞에서 우쭐해져서도 안되고 함부로 의기소침해져서도 안 된다.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이니 그저 매번 담담하게 계속 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5-01-20

거짓말은 이불처럼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에 훨씬 능한 아이였다. 현실과 멀리 떨어진 이야기,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장면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무시무시한 괴물이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든지 방에 난 창으로 요정이 찾아왔다고 떠드는 것. 어떤 면에서 그것은 거짓말이라기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형상을 믿는 것에 가까웠다. 간밤에 느꼈던 두려움이나 이질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자라면서 나는 거짓말의 무시무시함을 체득하게 되었다. 특히 악의를 가지고 내뱉는 거짓말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깨달았다. 상황을 모면하고자 꺼낸 말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도 경험했다. 나를 둘러싼 오해가 커지는 과정, 사실이 아닌 것들이 나의 영혼에 덕지덕지 붙는 순간도 있었다. 거짓말은 짓궂은 악마처럼 나를 괴롭혔으나 동시에 나 자신도 거짓말이라는 무기를 들고 타인을 향해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짓말의 세계에서 안온함을 느끼는 경우도 존재했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일, 그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일, 누추한 현실을 외면하고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일이 그러했다. 그럴 때의 거짓말은 한 줌으로 남은 희망이자 미지의 세계를 긍정하는 힘이었다. 거짓말이 있기에 현실을 버틸 수 있었고 헛된 상상의 영역으로 인해 삶의 부피가 한껏 풍부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필연적인 거짓말이니까. 얼마나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의 거짓말을 믿기로 합의한 모종의 협력 관계다. 잘 구축된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애란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이러한 지점을 유려하게 풀어 놓는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소설 속 선생님이 고안한 자기소개 게임이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는데 그중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안에 감추고 있는,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거짓말의 형태로 발화할 수 있다. 거짓말이라는 형식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조차 몰랐던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청소년들이다. 세상의 모든 인물이 그렇듯 그들 역시 각자의 상황에서 감내해야만 할 것들이 존재한다. 가정 환경이나 좌절된 꿈과 같은. 그들의 시간은 어떤 것보다 뜨겁고 생생하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무궁무진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무언가 발설하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린다.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 같아서 모두 웃어넘길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삶은 거짓말처럼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현실에서 도망치는 법을 상상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캄캄한 어둠 안에서 숨을 죽이다 보면 고통이 모두 지나가게 될까. 상황이 끔찍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결국 우리는 이불 밖으로 나와야만 하고 꼿꼿이 서서 차가운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외롭고 두려울지라도.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이 종국에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는 문장을 떠올린 이유기도 하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힘이 생긴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더 나은 쪽으로 발을 디디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김애란 작가가 ‘작가의 말’에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적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마치 이불 같은 것. 추운 날 다정하게 덮어주면서 마음이 약해지면 꼼짝없이 붙들리는 것. 바람이 차갑게 불수록, 그로 인해 나 자신이 속절없이 흔들릴수록 절실히 생각나는 것.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 것은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위로로 작동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불도 거짓말도.

2025-01-20

폐지

김경아 작가 태풍경보가 내렸다. 비바람이 다짜고짜 해송의 멱살을 흔들어 댄다. 해송은 흔들리면서 힘겹게 버틴다. 수평선 너머에서 시커먼 너울들이 거침없이 다가온다. 오늘 밤이면 방파제를 훌쩍 뛰어넘은 파도가 배들을 다 삼켜버리겠다. 바닷가로 이사 온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이다. 포구는 전쟁 전야처럼 긴장감이 가득하다. 밀려올 파도에 대비하는 뱃사람들의 몸짓이 분주하다. 배를 계류하기 위해 위치를 옮기고 배마다 육상 비트에 홋줄을 건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배와 배가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밧줄로 팽팽히 묶어 스크럼을 짠다. 풍랑이 몰아치면 줄은 배들이 서로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홋줄은 굵은 밧줄이다. 성인 남자의 팔뚝만큼 두껍고 길이도 길다. 작은 배는 혼자서도 줄을 걸 수 있지만 큰 배는 어림도 없다. 그러므로 윈치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홋줄을 당긴다. 홋줄에 묶이면 배는 고정이 된다. 누군가가 풀어주지 않으면 배는 아무리 요동쳐도 바다로 떠나지 못한다. 더 넓은 바다로 떠나야 할 엄마는 집에 묶여버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생계는 외할머니가 떠맡았고 외할머니가 생선을 팔러 나가면 집안일은 모두 엄마가 떠맡았다. 밤이 이슥해지면 잠투정하는 동생들을 다독거리느라 토막잠을 잤다.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외할머니는 엄마를 시집보냈다. 시집은 친정보다 형편이 조금 나아서 춘궁기에도 배는 곯지 않았고 가끔 웃을 일도 생겼다. 그러나 아버지가 폐결핵에 걸리면서 엄마의 삶은 또 발목이 잡혀 버렸다. 아버지의 병은 외할머니에게 쓰나미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일만 시키다 어렵사리 시집보냈는데, 또 병 치다꺼리라니, 딸에게 당신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주었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깊은 시름에 들었다.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지 할머니는 정신줄까지 모조리 놓아 버렸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삶은 항해가 아니라 표류였다. 할머니는 밤이면 귀신이 보인다고 울었다. 자다 말고 쫓아간 엄마에게 할머니는 매질을 했다. 심한 욕설도 내뱉었다. 가족의 생계도 고스란히 엄마에게 맡겨졌다. 종일 생선과 씨름하느라 몸에는 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안 곳곳에 일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으로 부엌으로 빨래터로 분주히 몸을 놀리다 보면 밤이 이슥해졌다. 서른도 안 된 엄마의 고운 손은 점점 지문이 닳고 닳아 거칠고 투박해졌다. 엄마를 옭아매는 줄은 하나가 아니었다. 깜깜한 골목길을 들어서면 울고 있는 자식들, 뼈만 앙상히 남은 채 피를 토하며 기침만 해대는 남편, 벽이며 바닥이며 마루며 온 집안을 배설물로 칠하는 할머니, 발목, 허리, 손목에 줄이 매어져 있었다. 엄마도 꽃이 피는 봄날이면 치맛자락 펄럭이며 꽃구경도 가고 싶었고 지천이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가을이면 생선 좌판 걷고 단풍을 보러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하루 놀고 나면 내일 끼니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이어지는 줄은 동아줄보다 질겼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줄이었다.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줄을 끊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겠지만, 그렇다고 인연의 줄까지 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며느리라는 줄은 경우에 따라 끊을 수 있지만 자식과 연결된 줄은 누구도 끊을 수 없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먼 길로 떠나셨다. 엄마를 옭아맨 홋줄이 하나씩 끊어지면서 엄마는 자유를 조금이나마 찾았다. 그러나 꽃다운 나날이 이울어버린 뒤였다. 게다가 자식들을 더 보듬어야 했다. 엄마는 더 넓은 바다로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항구가 되었다. 제 마음대로 움직였던 몸의 지체 하나하나가 또 발을 묶었다. 자식들이 성장해 하나씩 항구를 떠났다. 그렇다고 엄마는 쉬지 않는다. 집을 떠난 자식들이 가끔 돌아와 쉬었다 갈 때 바리바리 내어준다. 밥을 먹고 돌아서도 ‘밥 먹을래’하고 묻는다. 인연의 끈이 손주까지 이어져 챙길 입이 많아졌다. 그래도 그것을 천륜의 줄이라 여기고 늘 몸을 놀리지 않는다. 엄마와 나는 탯줄로 이어졌다.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끊어지면서 핏줄이 되고 그때부터 생긴 인연의 줄이 엄마와 나를 잇고 있다. 엄마라는 항구를 떠난 지 오래지만, 엄마는 이제 휴대폰을 통해 문자를 보내온다. 밥 묵었나, 아픈 데 없나. 엄마는 스스로 자식과 홋줄을 묶는다. / 작가

2025-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