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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민의 회초리가 나라를 살린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국민’이다. 정치인은 주권자의 감시와 비판을 두려워하지만, 국민이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권력을 남용한다. ‘권력은 마약’일 뿐만 아니라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주권자는 여차하면 정치인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여당의 행태를 보라. 민주당은 이미 12년 전에 ‘을(乙)’의 목소리를 듣고 ‘갑질’을 근절하겠다고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억강부약(抑强扶弱)’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래놓고서는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이진숙을 교육부장관에, 그리고 보좌진에게 온갖 ‘갑질’을 일삼은 강선우를 여가부장관에 지명한 것은 전형적인 표리부동이요 자가당착이다. 국민의 비판이 점점 커지자 대통령은 이진숙의 지명을 철회했고, 강선우는 임명을 강행하려했다. 민주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강선우를 적극 비호했으나 국민들은 결코 회초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야당과 언론은 물론이고,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강선우의 갑질’이 ‘이진숙의 표절’보다 더 나쁜데 왜 측근이라고 두둔하느냐는 여론이 확산되었고,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떨어지자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가 마침내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다. 한편 야당의 정치행태는 어떤가? 국민의힘은 야당의 책임인 여당 견제는커녕, 제 살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잃고 나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니 어이가 없다. 윤석열에 대한 판단은 이미 헌재 판결과 대선 결과로 법적·정치적으로 모두 끝났음에도 아직도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전한길 같은 극우 선동가에 휘둘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심지어 당 지도부는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혁신의 일환으로 요구한 친윤 4명(나경원·송언석·윤상현·장동혁)의 거취표명에 대해 ‘다구리(뭇매의 속어)’를 가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더 이상 혁신을 거부하고 퇴행을 계속한다면 국민이 결단을 내려야한다. 작은 회초리로 반성하지 않으면 큰 회초리를 들어야 하고, 그래도 혁신을 거부한다면 ‘회초리가 아니라 몽둥이’가 약이다. 도저히 고쳐 쓸 수 없는 정당이라고 판단되면 버릴 수밖에 없다. 시대착오적인 ‘가짜 보수’가 죽어야 민심을 받들어 혁신하는 ‘진짜 보수’의 시대가 열린다. 이처럼 정치인들에게는 국민의 회초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국민의 이성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사유하지 않는 천박함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했듯이, 이성이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은 회초리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나라를 살리는 회초리는 ‘진영인의 회초리’가 아니라 ‘이성인의 회초리’다. 깨어 있는 국민은 결코 진영정치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공정한 심판자의 회초리’가 나라를 살린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8-04

증오를 버려야 실용주의가 성공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쓸 것”이라며 “진보의 문제도, 보수의 문제도 없다. 오직 국민의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전부터 그는 여러 차례 실용주의를 언급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를 기존의 어떤 이념적 틀로 묶기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운동으로 보면 유도도, 태권도도 아니고, 잡초 같은 투지를 가진 싸움꾼의 싸움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자신을 ‘실용주의’라고 강조한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가장 잘 포장한 표현이다. 그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길을 걸었다. 기존의 민주당 주류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경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혹독한 압박 속에 정치적 위기를 넘겼다. 정치생명이 끝날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 정부 때도 어려웠지만, 문 정부 때가 더 위험해 보였다. 당권을 장악한 뒤 지난해 총선 공천에서 이재명 대표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난다”라는 말로 과감하게 물갈이했다. ‘비명횡사’(이재명계가 아니면 죽는다)가 유행어가 됐다. 문재인 정부 때 당한 설움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다. 호남 출신도 아니고, 이념 성향이 분명한 운동권 출신도 아니다. 지역 변호사로 싸우면서 시장, 도지사를 거치며 중앙당과는 다른 통로를 지나왔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이념 성향으로 특징짓기는 쉽지 않다. 최대 공통점은 그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고, 충성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과 위주로 움직이는 실용주의가 그에게는 적절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과거 대통령 중에 실용주의를 강조한 이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자기 철학이 더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예상치 못한 행보가 여럿 있다. 그의 행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특정 이념이나 지지 기반의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실질적인 맥락은 이해하고, 따지고, 결정하려 들었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 한 예다. 그를 지지한 정당이나 유권자는 전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정관념을 넘어서려 노력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의 회고록 ‘운명’에 기록해 놓았다. 그는 한·미FTA 체결을 결정한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FTA에 반대한 진보주의자들의 이론과 견해를 나는 존중한다. 그러나 그분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방과 관련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라는 것이다. 그가 믿고, 강연도 했다고 밝힌 ‘외채 망국론’은 한국 실정에 맞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 OECD 가입에 대해 “나도 야당 시절 안줏거리처럼 비판했다”라면서, “가입하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지금 민주당의 주류조차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다. 하지만 그는 실용을 취했다. 이 대통령도 실용주의를 실현할 조건을 갖췄다. 과거의 다른 정치지도자에게 빚이 많지 않다. 지지 기반 내에서 카리스마를 갖췄다. 정부는 물론 당도 확실하게 장악했다. 습관처럼 방향을 정해버렸던 과거의 틀을 깨기 위해 지지자를 설득할 능력과 힘을 가졌다. 남은 것은 본인의 결심과 냉정한 판단이다. 우리와 수교할 1992년만 해도 중국이 매우 힘들었다. 반만년 역사에 한국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유일한 시기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이 홍(紅)·전(專) 투쟁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십 명의 명멸한 야심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라졌을 게 뻔하다. 실용주의가 성공하려면 증오를 버려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제 다시 선거를 치를 일이 없다. 남은 것은 역사의 평가다. 증오에 사로잡히면 모든 일을 진영으로 보게 된다. 우리 편은 무조건 감싸고, 상대는 타협이 아니라 척결 대상이다. 다시 ‘내로남불’로 갈 건가. 이 대통령은 다른 길을 선택할 능력이 충분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03

헐크 호건은 안 죽어

초등학생 시절 토요일 방과 후 티브이 채널을 2번으로 돌려놓고는 못 알아듣는 영어 방송을 보며 두 시가 되기만 기다렸다. 화질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투성이고 비 오는 날엔 수신 상태가 더 나빠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를 만지면서 거실의 동생에게 “나와?” 외치며 화면 조정을 해야 했던 그 채널은 AFKN 주한미군방송이다. 볼거리 놀거리가 많지 않던 그때 AFKN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영해주던 미국 프로레슬링 WWF(현 WWE)는 신세계였다. 뱀 사나이, 경찰관, 이발사, 백만장자, 장의사 등 다양한 캐릭터의 거구들이 펼치는 승부는 ‘뽀뽀뽀’나 만화에 없는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비디오대여점에도 프로레슬링 테이프들이 있었다. 몇 년 지난 과거 경기 영상을 녹화한 것이지만 미디어 속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던 지라 실시간인양 실감났다. 지난주 AFKN에서 ‘홍키통크맨’에게 졌던 ‘마초맨’이 어제 빌려본 테이프에서는 설욕했다며 친구들에게 떠들면 비디오를 먼저 보고 AFKN을 나중에 본 친구는 반대로 홍키통크맨이 설욕했다고 주장하다가 서로 감정이 격해져선 책상을 밀어놓은 교실 뒤편을 링 삼아 레슬링을 했다. 순수하고 멍청해서 귀여운 시절이었다. 우리의 영웅은 단연 헐크 호건이었다. 탈모로 정수리가 비었어도 한 올씩 애써 치렁치렁 늘어뜨린 금발의 뒷머리와 그에 대비되는 풍성한 수염이 멋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몸무게 303파운드 월드레슬링페더레이션 챔피언 헐크 호건!”이라는 아나운서 멘트와 함께 등장곡 ‘Real American’이 울려 퍼지고, 터질 듯한 근육으로 노란 셔츠를 찢으며 그가 링에 오를 때 도파민이 폭발했다. 따라한다고 찢어먹은 ‘난닝구’가 여러 벌이다. 아무리 당겨도 안 찢어져서 가위로 미리 잘라놔야 했고 그럴수록 헐크 호건의 괴력은 아이들 사이에서 더욱 신화가 됐다. 헐크 호건은 1980~90년대 어린이들에게 “꿈을 위해 기도하고, 비타민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서 정의, 강함,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티브이 화면 속 프로레슬링의 단순하고 강렬한 서사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배웠는데, 선악이 교묘한 지금과 달리 흑과 백처럼 뚜렷하던 그때 매번 정의의 편에 서서 승리하는 그를 보며 ‘선한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악당의 공격에 초죽음이 되어 패배하기 일보직전 ‘헐크 업’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해 기적적으로 이기는 그는 ‘불멸’이라는 단어의 완벽한 인간화였다. 어느 날 악역으로 전환해 충격을 주기도 했고, 인종차별 발언 등 실제 사생활에서의 논란도 있었다. 바위 같던 근육은 노년이 되어 쭈글쭈글해졌다. 영웅의 이상적 기억과 현실의 실존이 충돌할 때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걱정 근심 없이 마음껏 꿈꾸던 유년기,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영웅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어릴 적 혼자 놀이터에 남겨졌을 때, 학교에서 속상한 일을 겪었을 때 티브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그의 강함에 위로 받은 날들이 있었다. 동시대의 전설적인 레슬러 ‘브렛 하트’는 “그는 수없이 많은 병든 아이들, 혹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탈의실에서 불려 나갔다. 본인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쉬고 싶었겠지만, 아픈 아이들을 위해선 언제나 시간을 냈다. 그들에게 진정한 영웅이 되어주기 위해서였다”라고 회고한다. 결코 안 죽을 것 같던 영웅이 세상을 떠났다. “헐크 호건의 죽음”이라는 수사가 말도 안 되는 형용모순으로 읽힌다. 이제 세상은 복잡하고 각박하며 링 위의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영웅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헐크 호건의 죽음은 그저 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던 어떤 정서, 시절, 추억, 촌스럽고 낡은 ‘선한 영웅’에 대한 신뢰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가 노란 셔츠를 힘차게 찢을 때 어린 소년은 ‘나도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돕겠다’는 기특한 용기를 품었다. 그 소년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소년은 사라져도 영웅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디오가게에서 빌린 ‘레슬매니아3’ 테이프에서 헐크 호건이 ‘앙드레 자이언트’를 들어 메치던 순간은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다. 그가 8090키드들에게 남긴 유산,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그 통쾌하고 짜릿한 믿음은 지금도 누군가의 삶의 선택과 가치관과 방향에 스며 있다. 그렇게 영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웅이 살아 있는 한 소년도 계속 있다. /이병철(시인)

2025-08-03

시와 운동

최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헬스장에 가면 자전거와 런닝머신 밖에 하지 못했기에 매번 꾸준히 다니지 못했지만 이젠 정말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이 간절해져서, 결국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과 함께 하는 PT 수업을 받게 됐다. 처음 수업은 제자리에서 걷기, 다리를 위로 올려 복부를 접는 동작 등 아주 간단한 운동부터 시작했다. 숨을 쉬는 법을 몰라서 늘 힘이 들면 숨을 참기 바빴고, 아주 적게 움직이는 동작에서도 땀이 비오듯 났기에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던 적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음날이 되면 근육통이 심하게 찾아와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괴로웠고,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도 꽤나 고통스러워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맨몸 운동의 다음 단계인 기구를 쓰게 되고, 무게를 들게 되면서 전에 혼자 운동했을 때와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점과 운동의 기쁨을 알게 됐다. 유튜브 영상으로는 상세히 알 수 없었던 디테일한 동작이라든지, 올바른 자세와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선생님을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더욱 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운동은 하나의 동작을 일정한 자세와 힘을 들여 단순히 반복한다는 점에서 꽤나 큰 만족감을 줬다. 멈추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동작을 완료하게 되고,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경지에 다다라 팔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려와도 어찌 됐든 그 고비를 이기고 나면 결국 미세하게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 챌 수 있단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변화하기 위해선 몸과 마음이 함께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마음의 다짐이 아주 먼 계획까지 그럴 듯하게 나아가 봤자 몸이 움직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몸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다시 헬스장까지 가기만 한다면 그 하루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동작을 반복하며 만들어 내는 단순한 리듬을 유지하며 성공과 실패로 하루를 정의하는 것이 아닌, 해냄과 해내지 않음으로 하루를 착실히 쌓아간다. 10kg를 겨우 들던 무게를 이제는 40kg로 추가해서 동작을 해내거나 말랑하고 흐물거리던 피부가 조금은 단단해 졌단 몸의 변화를 느끼거나, 특정 부위의 자극을 잘 느낄 때면 노력 대비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어깨와 등, 팔을 자극하는 동작은 30회씩, 스쿼트와 런지는 60개씩, 복부 운동은 100회씩, 유산소 30분 정도를 마무리로 곁들어 진행하는 고작 한 시간 남짓한 간단한 운동이지만, 괴로움 속에서 꾸준히 나아가는 힘과 집요함을 얻게 된다. 단순하고도 정직한 움직임은 결국 내가 나에게 주는 다정한 관심이 되어 머지않아 보상처럼 돌아온다. 운동을 가기 전 후, 여름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한다. 초록으로 가득 물든 나무 사이에서 한 포기의 풀잎처럼 흔들리다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은 드높고 광활한 기쁨을 안겨다 준다. 매미 소리와 함께 풍경의 일부가 되어 아주 먼 곳까지 내다보면 무겁던 마음과 짓눌리던 스트레스도 가볍게 날려보낼 수 있다. 밤으로 향하는 저녁 하늘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을 준다. 주홍으로 가득 물들었던 하늘이 오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둠으로 잠기면 내 마음이 가라 앉아 있다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과 상관없이 시간이 흐른단 광경은 조용한 위로가 되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껏 웅크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시간은 흐른다. 잘려나가는 손톱을 보는 것처럼 붙잡을 새도 없이 허망하게, 또는 모래 위에 쓴 잘 살아보겠단 다짐의 글자들을 자꾸만 파도가 채어간 대도, 나는 또다시 자라나는 손톱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손톱깎이를 꺼내들어 잘라내고 또 연인의 손을 잡고 바다로 나아가 사랑한다는 글자를 계속해서 쓴다. 주변을 둘러보며 나를 받드는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의 대상들이 나를 보고 있음을 계속해서 몸으로 느낀다. 그럼 하루를 살아내야만 하고, 나는 더 건강해야만 한다.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어찌 됐든 아주 사소한 것에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더 절망하지도 않고, 실패와 과거에 기웃거리지도 않고 오늘을 살아 낸다. 이왕이면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즐겁게. 그리고 시를 쓴다. 한동안 멈춰 있던 시쓰기였지만 이제는 누군가 부탁하지 않아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시를 쓴다. 이것이 계속해서 쌓여서 머지않은 날에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단 생각을 했다. 반복적으로 써내어야만 탄생하는 시와 일정한 움직임을 통해 같은 곳의 근육을 자극하여 만들어 내는 몸의 리듬, 나는 하루를 살아낸다기보단 하루를 만들어 가며 지내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8-03

보행자 신호 작동기 앞에서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보행자 신호 작동기를 눌렀다. 둥근 기계의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며 ‘작동기를 눌렀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한 아저씨가 묻는다. 그렇게 눌러야 하는 거냐고? 신호가 바뀌지 않고 있어 당황했다고 하신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횡단보도의 불이 초록 불로 바뀐다고 이야기했더니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다고 한다. 굉장히 놀라셨나 보다. 나도 그랬다. 이 년 전이었다. 낯선 동네를 처음 가는 날이었다. 앱을 통해 노선을 찾아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야 해서 횡단보도 앞에 섰다. 퇴근 무렵의 강변로는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로 넘쳐났다.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런 때는 아무리 여러 번 확인을 하고 왔어도 마음 한편은 늘 수선스럽다. 족히 20분은 서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한 사람이 전신대 옆에 있는 둥근 물체를 눌렀다. 잠시 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나중에 자세히 둥근 물체를 보니 보행자 신호 작동기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신문물이었다. 보행자 신호 작동기는 보행자가 직접 버튼을 눌러 횡단보도 신호를 바꾸는 장치이다. 통행이 적은 도로나 교차로에서 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버튼을 누른 후 약 20초 정도를 기다리면 초록 신호로 바뀌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르지 않으면 마냥 기다리고 있어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다. 철저히 보행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작동기는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변화를 원할 때 그 결정을 하고 안 하고는 온전한 나의 의지이다. 작동기를 눌러야 신호등의 색이 변하듯이 내가 결정하고 움직여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이곳으로의 이사 결정이 그런 거였다. 연고가 없는 낯선 곳이라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말에 생각은 많아지고 길어졌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주변의 만류도 강경했다. 오랜 동안 아니 거의 전 생애를 살아온 도시를 떠나 낯선 장소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커다란 변화 앞에서 오랜 시간 고민 후 마음을 굳혔다. ‘잠시만 더 기다려주세요’ 라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변화는 시작되고 있지만 바로 결과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옆의 아저씨는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눈길을 자꾸 주고 있다. 타고 갈 버스가 올 시간이 여유있는 나는 비교적 느긋하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생활에 젖어들고 적응하기 까지는 여러 달이 걸렸다. 가끔은 향수병에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했고, 많아진 시간 앞에 놓여있는 무료함에 우울감이 들기도 했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수필반에 등록했는데 강사분이 대학교 선배셨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과 변화가 시작되었다. 선배님을 통해 시조 쓰는 분들을 만나고 삶의 반경이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살아가면서 보행자 신호 작동기를 누르듯이 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크고 작은 문제 앞에 놓이게 된다. 변화의 결과를 알 수 없기에 그 선택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변화가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늘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동기를 누르지 않으면 좋은 쪽이든 아니든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때론 늦게 눌러서 타고 가야 할 것을 놓칠 때고 있었고, 일찍 건너가 여유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드디어 ‘건너가도 좋습니다’ 라는 신호가 들렸다. 아저씨는 급한 걸음을 옮겼다. 막 정류장을 출발하려는 버스에 간신히 탑승하는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쓰고 있던 양산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타고 가야할 버스가 저만치서 오고 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8-03

생활인구에서 찾은 내일의 희망

지금 대한민국은 낮은 출생률로 심각한 인구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의 수는 국가경쟁력과 연결되는 것으로 인구감소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사회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등록 인구는 지역 민심을 대변하는 선거구와 정부가 지원하는 보통교부세, 광역지자체 조정교부금의 기준이 되는 등 지역발전의 원동력이라 볼 수 있어 청도군도 인구 유입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출생 장려금 지급, 신혼부부 지원 등 적극적으로 청년층에 구애를 펼치고 있다. 주민등록 인구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것이 생활인구다. 생활인구는 특정 지역에서 거주·체류·활동하는 인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주민등록 인구 외에 통근·통학·관광·업무 등 목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과 외국인을 포함한다.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근거해 2023년 1월 시행된 법정 개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 유출 대응을 위해 도입되었고 생활인구는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예측할 좋은 자료로 청도군에는 귀중한 힘이 되고 있다. 청도는 인구로 인해 ‘낙담과 희망’이라는 두 단어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청도군은 인구소멸지수 전국 8위에 고령화율 4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 구조로 행정안전부가 지난 2021년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돼 지방소멸 대응 기금을 받고 있다. 청도군의 지방소멸 위기는 단순한 인구감소 문제가 아니라 지역 생존의 문제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정주 여건 개선과 생활인구 유입, 청년 정착, 출산 장려 등을 키워드로 수립한 대응 전략으로 2022년 10월부터 자연적 감소의 악재에도 전입자가 전출자 수를 웃도는 순수 유입인구의 영향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군은 2022년 70억 8300만 원의 지방소멸 대응 기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확보한 대응 기금 472억 3800만 원은 지역 변화를 이끄는 귀중한 자원이 되었다. 청도군의 지방소멸 대응 투자는 체류형 관광 활성화로 관계 인구 극대화와 지역 공간 상품화로 생활인구 활성화, 도시공간 개선과 귀농 귀촌을 통한 정주 인구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민등록 인구 증가와 청도의 생활인구는 지역에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이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활인구에서 3월 체류 인구가 32만 8000명으로 주민등록 인구 4만 1000명의 7.8배에 달해 전국에서 7위, 경북도 내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등 평균 30만 명의 생활인구가 지속으로 청도를 방문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인구의 청도 방문은 인접 도시 430만 명의 생활인구가 청도를 찾을 환경을 조성하고 고부가가치화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청도의 3대 비전 중 하나인 ‘문화·예술·관광 허브 도시’ 조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의 결과다. 군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특히 신혼부터 임신·출산, 영아, 학생, 청년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1인당 최대 2억 5000만 원 상당을 지원하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정책은 군민의 삶을 높이는 동시에 인구 유입과 정착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또 생활인구의 지역 정착을 위해 인구소멸 대응 기금의 최대 확보와 함께 각종 공모사업으로 지역의 모습을 변화시키며 청년의 정착과 출산을 장려하는 등 최대의 노력을 하고 있다. 청도군이 지난해 37건 1566억 원을 확보한 공모사업은 국·도비의 비율이 73%에 이르는 우량 공모사업으로 군의 재정압박을 줄여주었고 올해도 23건 147억 원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군의 끊임없는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청도군은 이러한 노력과 함께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문제 해결과 문화생활 영유에도 적극적이다. 정기적으로 청도를 방문하는 생활인구 유입을 위해 월 10만 원대 임대주택 136호와 빈집을 활용한 월 1만 원 주택 10호 등과 자연 드림파크와 산림치유 힐링센터 내 숙박시설 조성, 700석 규모의 아트홀과 전시 공간을 갖춘 생활문화복합센터, 예술인을 위한 창작공간도 조성 중으로 생활인구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청도는 이러한 노력에 안주하지 않고 지역민 모두가 경쟁력을 갖춘 지역으로 자리매김해 인구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2025-08-03

아부하는 정치인

이솝우화 ‘까마귀와 여우’편에서 여우는 고기를 물고 있는 까마귀에게 이렇게 말한다. “까마귀님의 아름다운 목소리 듣는 게 소원”이라고. 그러자 우쭐해진 까마귀가 “까악”하며 소리를 내자 고기가 땅에 떨어진다. 여우는 잽싸게 이를 물고 달아난다. 듣는 이에게 이득이 되면 칭찬, 아부하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게 과장된 칭찬을 하면 아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정확한 대답은 아닌 것 같다. 칭찬과 아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역사를 보면 정치인에게 아부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보여진다. 아부를 해서 손해를 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부를 한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요, 아부했다고 고소를 당할 일은 더 없다.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를 아부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을 안목 있는 이로 생각한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미화하거나 칭찬하는 법안들이 줄줄이 상정돼 논란이라 한다. 미 일부 하원의원이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250달러 지폐를 만들고 거기에 트럼프 초상화를 넣자는 법안을 상정했다. 또 일부는 100달러 지폐에 들어 있는 미국의 건국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 초상화 대신 트럼프 대통령 초상화를 넣자는 법안도 만들었다 한다. 워싱턴 덜레스국제공항 이름을 트럼프 공항으로, 트럼프 대통령 생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자는 법안까지 등장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인에게 아부가 출세의 중요한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도를 넘은 법안들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비열한 충성 경쟁”이라 꼬집었다. 정치인의 아부는 동서양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03

폭염(暴炎)과 자연

날마다 이어지는 폭염경보가 언제 수그러질지 궁금한 시점이다. 내가 경험한 가장 극심한 더위는 1994년 7월 21일 낮 최고기온 39.4도를 기록한 대구에서다. 그해 대구의 7월 평균기온은 30.2도로 우리나라 역대 최고기온으로 기록돼 있다. 가구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았기로 한밤중에 잠을 깨는 것이 시민들의 다반사(茶飯事)였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우리가 겪고 있는 폭염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40도를 넘는 지역이 날마다 속출하고 있다. 일본 중부지역의 효고현과 교토부 그리고 오카야마현 같은 지역에서는 40도를 넘어서는 고온이 기록되고 있다 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같은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일상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낮에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저녁 어스름 무렵 산책을 하노라면 경이로운 장면에 걸음이 절로 멈춰지곤 한다. 불같은 땡볕을 자양분 삼아 날마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로 왕성하게 성장해나가는 초목이 그 주인공이다. 한두 달 전에 모내기한 논을 진초록색으로 장식하는 벼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현저하다. 어제와 그제 오늘이 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는 학(鶴)과 왜가리를 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벼가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자란 탓에 그들이 즐겨 먹는 개구리며 미꾸라지, 붕어 같은 먹잇감을 구하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이제 녀석들은 무릎 높이까지 낮아진 청도천 인근에서 잠행하고 있다. 거의 삼 미터 높이까지 자라난 달맞이꽃은 마치 관목처럼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며 거리를 수호한다. 이따금 만나는 주황색 능소화(凌霄花)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계절이란 표정이 역력하다. 한낮의 살인적인 열기를 무색하게 하면서 능소화는 지상으로 천상으로 세력을 확장한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에서 심었다는 능소화의 기상과 인내를 보면서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지독한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선사하는 자연이 놀랍기만 하다. 한여름 폭염과 폭우 그리고 태풍을 뚫고 풀과 나무는 생장을 거듭한다. 젊은 시절 내가 여름을 가장 좋아했던 까닭도 거기 있었다. 여름은 약한 것은 모질게 죽여버리고, 강한 것은 지극하게 살려낸다. 노자는 이것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천지자연은 인하지 않아서 만물을 종이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도덕경' 5장)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자연과 인간이 다른 점은 약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인간은 아무리 모질어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와 실천궁행을 근본이념으로 삼는다. 가족과 사회를 대행하는 강력한 조직으로 근대국가가 등장한 이후 이런 상황은 날로 개선돼 가고 있다. 자연도태와 문명사회의 이율배반적인 공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자연의 폭력적인 양상을 가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가혹한 역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망각하지 말아야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03

빈집에서 살아남기

빨갛게 부은 눈으로 그녀는 나를 건너다보았다. 입술은 뭐라고 말하고 싶은 말을 삼키려는 듯 꼭 다물어져 있다. 그리고는 손에 든 휴지를 눈가로 가져가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녀는 마치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빈 집에서 혼자 살아 보셨어요?” 며칠 전 출근 준비를 하며 틀어놓았던 TV에서 또 부모 없이 빈 집을 지키던 자매가 화마에 생명을 잃었다는 뉴스를 봤다. 비슷한 뉴스를 본 지 채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며 몇 년 전 내게 빈 집에서 혼자 살아봤느냐고 묻던, 한여름에도 긴 팔 셔츠를 입고 어깨까지 늘어뜨린 파마머리로 햇빛을 못 봐 창백해진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쭈뼛쭈뼛 상담실로 들어왔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서른 초반의 그녀는 청소년기 이후 내내 혼자 살며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이른바 고립은둔 청년이었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적응을 못해 잘리기 일쑤였고 상담실에 내원할 당시에는 심한 우울과 언젠가부터 가지게 된 척추추간판탈출증 등 건강문제까지 겹치며 경제활동을 전혀 못 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밤마다 돈 벌러 간다며 밥상 위에 엄마가 바가지에 부어놓고 간 쌀뻥튀기를 집어먹으며 TV를 보다 잠이 들곤 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의 찬모였던 엄마는 밤이 늦거나 아침이 되어야 휘청휘청 돌아와서는 한낮까지 코를 골며 잠을 자야만 했다. 엄마가 깨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동네 문구점 앞 오락기계 앞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거나 가끔은 엄마가 준 천 원짜리 지폐가 동전이 되어 다 없어질 때까지 오락을 하며 놀았다. 엄마의 일터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여전히 혼자인 밤이 많았던 초등학교 4학년 가을쯤이었다고 했다. 라면을 끓이려는데 그날따라 가스렌지가 말을 잘 안 듣고 불이 잘 안 붙더란다. 불이 붙는지 보려고 가스 화구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가 머리카락과 입고 있던 셔츠에 불이 화르륵 붙으며 왼쪽 옆얼굴과 겨드랑이 쪽 피부를 데었다고 그녀는 무심히 말했다. 엄마는 다 큰 것이 조심성이 없다며 짜증을 냈고 병원에 두 번 다녀온 후에는 그냥 상처가 아물도록 기다렸다고, 그녀는 살기 퍽퍽했을 엄마가 그래도 자신을 버리지 않아준 건 참 고마운 일이라고 일찍 세상을 뜬 엄마 얘기를 할 땐 흠뻑 젖은 목소리가 되고 눈이 빨갛게 붓도록 울었다. 아직도 우리는 돌봄에서 소외된 아이들,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내몰린 부모들을 외면하며 살아야 하나.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전히 빈 집에서 혼자 살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그녀 앞에서 함께 눈시울만 붉힐 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담사로서의 무력감이 나를 짓누른다. 세상이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을 지켜내는 걸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고서는 가장 좋은 방법,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이 상황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거란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답답함은 두통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 어른들 모두가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면 지킬 수 있지 않겠나, 꽃보다 더 귀한 어린 주인들을. 눈을 감고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신현자 라온재심리상담연구소장·재활심리학 박사

2025-08-03

노후 준비, 누구의 책임인가?

작년 12월부터 다시 가계부를 쓰고 있다. 2년 전 금융감독원에서 재무 컨설팅을 받기 위해 반짝 열심히 쓰고 나서는 다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때부터라도 가계부를 꾸준히 쓰지 못한 것은 평생의 습관 고치기가 쉽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가계부 관리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도 크다. 수입이 많지 않기도 하고 가정 경제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지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때가 많아 딸들의 도움을 받아 가계부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2025년 1인 가구 중위소득이 256만 원이고, 1인 가구 적정생활비는 192만 1천 원이며, 최소필요노후생활비는 월 136만 1천 원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 비하면 내 소득은 중위소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지출이 큰 항목인 주거비 지출이 없으니 내 지출 목표가 어마어마하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항상 지출이 수입을 넘는 달이 많다. 이럴 때는 무조건 안 쓰는 것이 답이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수입이 더 줄어들 텐데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결국 8월부터 연금을 수령하기로 했다. 작년부터 연금 수령 자격이 되었으나 미루다가 받을 돈은 일찍 받는 쪽이 유리하다는 주위 말을 믿고 결정했다. 임의가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몰라서 뒤늦게 가입한 데다 수입 불안정으로 최소 금액으로 납부한 터라 금액만 따지면 최소필요노후생활비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지금은 수입이 있으니 그런대로 살 수 있지만 수입이 줄어들면 낭패인지라 최대한 은퇴를 늦추는 수밖에 없다. 어느 기사를 보니, 2024년 12월 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보고한 ‘1인 비임금 근로자의 국민연금 인식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에서도 “대체로 ‘노령’이라는 사회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노동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나도 딱 그 경우에 해당하는 셈이다. 올해 발표한 국민연금 개편안에서는 내년부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렸다. 그러나 국민연급 가입자 월 평균 소득 309만 원인 사람이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한다는 전제로 나온 수치라서 해당 안 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월 평균 연금수령액은 67만 원이니,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이렇게 노후 준비를 못한 것은 1차적으로 개인 책임이 크다. 내 경우만 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경각심이 부족했다. 노후 준비를 위한 정보가 국민 모두에게 닿을 수 있게 정부가 더 노력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알고는 있어도 연금을 납부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현재 일정 소득 이하의 농어업인에게나 두루누리사회보험료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 영역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이다미 연구위원은 소득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반영하여 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할 것을 주문하면서 특수고용직 같은 실질적 사용자가 사회보험을 부담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가 안정되는 데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03

아버지가 없어진다

이율곡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어머니는 신사임당이라고 코흘리개 애들도 안다. 우리나라 최고 고액의 지폐의 모델이기도 하니깐 그 위세는 대단하다. 하지만 이원수라는 아버지는 어디 가도 찾을 수 없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인물이어서 그런가? 조선은 분명 유교 문화의 시대이다. 그래서 조선은 부계 중심의 사회로 형성되어 있다. 자식 제사는 없어도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는 당시 풍습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영향이 이어져 온다. 제사를 합치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 중심으로 제사를 합치지 할머니나 어머니 기일에 맞춰 합치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도 반론하지 않는다. 마치 외손자보다 친손자가 더 끌린 듯 부계의 전통은 우리 몸 깊숙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유교의 대가인 이율곡 집안은 달랐다.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중심의 사회이었음에도 아버지 이원수의 존재감은 간데없다. 심지어 아버지가 계모 권 씨와 재혼하자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율곡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려다가 환속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그 영향인가? 불교는 이상하게도 어머니 중심의 효를 강조한다. 모계를 중심으로 효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부모은중경에,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후에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이었던 양주동 박사가 부모은중경 내용을 보고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를 만든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전부 어머니 찬양가이다. 불교에는 오역죄(五逆罪)라는 다섯 가지 아주 큰 죄가 있다. 오역죄를 범하면 저승에서 가장 지독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 묘사된 이 지옥의 고통 받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형벌이다. 다섯 가지 죄 중 맨 처음 나오는 것이 어머니를 해한 인간이 나온다. 아버지는 두 번째이다. 어머니가 더 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다는 것은 노벨상 수상자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증명이 되고 있다. 그들이 애들을 키울 때 머리를 때리지 않고 대신 귀싸대기를 때릴 정도로 머리를 중하게 여겨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유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한 민족이다. 부모에게 물을 가져가야 할 때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간다. 어머니에게 물을 먼저 가져가도 바로 아버지에게 물을 건네기에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고 그 권위는 자라면서 체득되고 있다. 그 결과물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아버지의 위치가 너무 비참하다. 평생 돈 벌어 먹이고 입혔건만, 돈 안 벌어 오니 대접이 영 신통찮다. ‘부모’란 단어가 ‘모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상한 징후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딸이 제 엄마만 데리고 외국 여행 간단다. 나만 고양이랑 집을 지켜야 한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31

'햇빛연금'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극한 강우와 ‘대프리카’라는 별명을 실감케 하는 폭염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재난이 되었다. 이러한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답은 바로 ‘탄소중립’에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 속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최근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햇빛연금’ 정책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이 재생에너지 생산의 주체가 되어 기후위기 대응에 직접 참여하고, 안정적인 연금 소득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햇빛연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려 한다. ‘햇빛연금’이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전기 판매 수익을 매달 연금처럼 돌려받는 모델을 말한다. 핵심 원칙은 ‘에너지 민주주의’와 ‘이익 공유’이다. 즉, 과거 대규모 발전소가 독점하던 전력 생산을 시민의 손으로 가져오고, 그 혜택을 지역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재원은 주로 시민들의 투자나 조합 출자금 그리고 정부의 정책자금 융자 등으로 마련된다. 물론 초기 설치 비용 부담이나 발전수익의 변동성 같은 문제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공공 주도의 금융 지원을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특히 대구경북은 연평균 일조시간이 2200시간을 넘어 전국 최고 수준의 태양광 발전 잠재량을 자랑하며, 넓은 산업단지와 농촌 유휴부지가 많아 ‘햇빛연금’의 최적지로 꼽힌다. ‘햇빛연금’의 성공 사례는 국내·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 강국’ 독일은 시민들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는 ‘시민발전소’가 전체 재생에너지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에서는 전남 신안군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햇빛연금’을 통해 섬 주민 1인당 분기별로 최대 60만 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태양광이 노인들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 소멸 위기 극복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사례들은 주민 수용성 확보와 투명한 이익 분배가 성공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구는 아파트 베란다, 공공기관 및 학교 옥상, 서대구·성서 산업단지 등 공장 지붕을 활용한 ‘도심형 햇빛연금’을, 경북은 ‘영농형 태양광’이나 유휴 산지를 활용한 ‘농촌 상생형 햇빛연금’ 모델을 적극 도입할 수 있다. ‘햇빛연금’의 성공적인 확대를 위해서는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초기 투자 부담을 줄여줄 금융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또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민 갈등을 예방하고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갈등 조정 메커니즘’ 구축도 시급하다. 이제 대구경북이 국가의 ‘햇빛연금’ 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 지역의 강점을 살려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이다. ‘햇빛연금’은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며 기후위기 시대의 진정한 주역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우리 집 지붕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가 대구경북의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7-31

말이 화(禍)가 돼

설화(舌禍)란 경솔한 말 한마디로 재앙을 불렀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 진시황의 한 부하가 미인을 조롱하는 말을 했다가 집안 전체가 망하는 멸문지화를 당한 일화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은 함부로 말을 하지 말고 항상 언행을 신중히 하라는 의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 역시 사소하지만 적절한 말 한마디가 큰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교훈을 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 한마디로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벼락출세도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교묘히 말을 잘하고 얼굴 빛을 화려하게 꾸미는 자 중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말했다. 여기서 아첨하거나 알랑거린다는 뜻의 교언영색이란 말이 유래됐다고 한다. 또 설저유부(舌底有斧)란 어려운 사자성어가 있다. “혀 밑에 도끼가 있다”는 뜻이다.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으며 때로는 도끼처럼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삼사일언(三思一言)과 연결되는 교훈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과거 자신이 한 말이 되돌아 와 설화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에 임명된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자신이 뱉은 말들을 감당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주 먼 옛날 일인 줄 알았던 말들이 도돌이표처럼 되살아나 구화지문(口禍之門)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말 중 문재인 대통령은 “멍청한 사람”, 이재명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말이 막말의 백미다. 말이 화(禍) 된다는 걸 몰랐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7-31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8세의 말자씨를 남 몰래 좋아하던 세 살 많은 남성 노 씨는 어느 날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만나자며 말자씨 집을 찾아왔다. 거절해도 한참을 집 앞에서 버티고 있던 노씨가 그럼 가는 길이라도 알려달라고 조르자 그를 빨리 보내기 위해 말자씨는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큰 길까지 함께 걸어갔다. 으슥한 골목 어귀에서 별안간 노씨는 “키스만이라도 하자”라며 말자 씨를 덮쳤고, 넘어진 말자씨의 입을 강제로 맞췄다. 반항하는 과정에서 말자씨는 노씨의 혀를 물고 말았고 노씨의 혀는 1. 5센티미터가량 절단되었다. 말자씨의 행동은 정당방위일까, 중상해죄의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이는 1964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이다. 당시 검찰과 법원은 말자씨를 중상해죄의 범죄자로 판단했다. 심지어 말자씨는 노씨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노씨는 강제추행 또는 강간 미수의 혐의가 적용되지도 않은 채 특수협박 및 주거침입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되었지만, 중상해죄로 기소된 10대 소녀 말자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말자씨를 조사하던 검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책임져야지, 결혼해야겠네” 법원은 한 술 더 떴다. 남자가 덮친 데엔 길을 같이 걸어가 준 말자씨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 최말자씨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과 성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중상해죄 전과범으로 60년을 살아 온 말자씨는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단지 자신에 대한 불법적 폭력과 성범죄에 대항해 자기 몸을 지키려 했을 뿐이었던 10대 소녀는 자신에게 내려진 부당한 법의 잣대에 순응하지 않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며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성범죄에 대한 정의가 변해갔다.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성범죄에 저항하다 남성의 혀를 절단하고 만 여성들은 모두 정당방위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78세가 된 말자씨는 ‘56년 만의 미투’를 단행해 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고, 5년의 쉽지 않았던 재심 청구 과정을 거쳐 결국 대법원의 재심 결정을 받아냈다. 지난 7월 23일 열린 재심 재판의 마지막 변론에서 검사는 말자 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그리고 검사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씨에게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사죄드린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1960년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사건들이 말자씨의 사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용기 있는 여성은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결백함을 위해, 또 후손들은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실현하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건이 자신의 이름을 딴 사건으로 불리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고 재심 개시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결국 재심 재판과 검사의 무죄 구형을 받아냈다. 살다 보면 저렇게 늙고 싶다 생각이 들게 하는 멋진 할머니들이 있다. 최말자 할머니 같은 멋진 할머니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성폭력과 여성에 대한 일그러진 편견을 여전히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31

여름은 가고 또 여름이 가도

무슨 말이든 해 보라고 채근했지만, 엄마는 말이 없었다. 행여 한마디라도 할까 귀를 대고 지켜보았던 마지막 사흘이 지금도 명치에 앉아있다. 엄마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며 병원에 갔다. 의사는 위암이 초기라 수술만 하면 괜찮아 질 거라고 했다. 우리는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이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수술이 시작된 지 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의사가 나왔다. 속을 열어보니 암이 마치 밀가루를 흩뿌려놓은 것 같아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길어야 6개월이라는 말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원에 필요한 것을 가지러 집으로 가야했다. 허정거리는 걸음으로 차에 오른 나는 대성통곡 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이 울음을 삼켜버렸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남편이 운영하는 공장으로 출근했다. 대충 사무실 일을 마무리한 후, 친정으로 갔다. 아버지가 며칠 동안 병원에도 오지 않아서였다. 이제 괜찮아질 거라 믿고 있는 엄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몇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신 적이 있어 두려웠다. 밥상을 차려 두고 나는 병원으로 가야 했다. 엄마 곁에서 살갑게 살아왔던 날들이 사라져간다. 갑자기 허물어져 가는 둥지를 붙잡고 허둥거린다. 엄마가 없는 세상이 나는 무서웠다. 닥치면 다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남편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표정과 행동은 평소처럼 했지만, 내 속은 떨고 있었다. 안타까움과 애살스러움은 처음 얼마간이었다. 병원 생활이 가면 갈수록 말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알아서 했다. 씻어주고 닦아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여동생이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들고 왔다. 한나절 동안 옆에 앉아 입에 넣어주고, 물수건으로 손도 발도 닦아주었다. 그녀 앞에서 엄마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종알종알 수다 속에 엄마가 웃었다. 그 시간에 나는 친정으로 갔다. 병원에서 대충 식사를 때우는 아버지의 생활이 궁기에 절은 듯했다. 가져간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집안 대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상을 차렸다. 엄마가 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속옷과 양말까지 챙겨두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여동생이 방금 간 듯 했다. 엄마가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숙이는 진정성이 있데이”라고. 나는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었다. 그럼 나는? 이라고 그때 장난처럼 말했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점점 아기가 되어가던 엄마는 내가 당신에게 소홀하다고 여긴 것이었을까. 추석날 아침이었다. 시댁 주방에는 사촌동서까지 차례상에 낼 음식 준비로 바빴다. 온 집안 식구들이 시끌벅적한 틈 사이로 남편이 나를 찾았다. 엄마가 위독하다고 했다. 앞치마도 벗지 못한 채 차에 올랐다. 친척들의 걱정이 길게 따라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널브러진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명절이라고 와 있던 삼촌과 숙모가 나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잠시 비빌 언덕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내가 결정해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모두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 가는 그 길이 서러웠다.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남동생 내외가 왔다. 며칠 머무는 동안 오롯이 엄마의 아들이 되게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가고 엄마가 말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옆 침대에서 같이 잤다고. 모두가 잠든 밤에 엄마는 아들이 옆에 앉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엄마 손에 떨어지더라고 했다. 엄마는 당신이 깨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울음을 삼켰다. 아들이 잠들고, 엄마는 밤새 이불을 덮어주고 또 덮어 주었다고 했다. 의사가 말했던 6개월이 지나고 2년도 더 지난 여름날, 엄마가 눈을 감고 입도 다물었다. 먼 길 떠나기 전에 어떤 말이라도 해 보라고 졸랐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다.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생각했을까. 말없이 사흘이 지나고 엄마의 맥박이 멈추었다. “희야, 아부지를 니한테 맡겨서 미안테이” 엄마는 그 말 한마디 하기가 그리 주저되었던가. 여름은 가고 또 여름이 가도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윤명희 수필가

2025-07-30

명품 수난 시대

명품. 말이 좋아 ‘럭셔리’, 실은 골치 아픈 부담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명품을 들었다 하면,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게 되는 시대. 명품이 문제일까, 그 명품을 쓰는 사람이 문제일까, 아니면 명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일까. 사람에 따라 이름난 브랜드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욕망일 수 있다. 디자인이 예쁘니까, 품질이 좋으니까, 혹은 유명인들이 들고 다니니까. 각자의 판단이며 선택이다. 문제는, 명품을 가졌다고 해서 사람이 곧 명품이 되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명품이 사람을 감당하지 못해 수난을 겪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 부인의 명품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한다. 처음에는 ‘받은적 없다’고 했다가, ‘받았지만 빌렸었다’고 했었고. 이제는 ‘모조품’이란다. 결국, 공직자 재산으로 신고하지 않았거나 출입국 시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물품들이 문제가 되니, ‘ 명품이 아니고 가짜였다’는 해명이 등장했다. 웃지못할 코미디다. 이쯤되면 그 명품도 억울하겠다. 처음엔 공직자의 부적절한 수령으로 시비에 휘말리더니, 뒤늦게는 ‘그건 짝퉁’이라는 말 한 마디에 자존심이 짓밟혔다. 진품이든 모조품이든 처음에는 ‘있는 척’ 하다가, 나중엔 ‘없는 척’ 하기 위해 명품의 위신까지 끌어내렸다. 진품이든 아니든, 문제의 본질은 ‘품격’이다. ‘사람이 명품을 만드는가, 명품이 사람을 만드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답은 자명하다. 아무리 값비싼 명품을 걸쳐도 품위와 진정성 없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는 장식물에 불과하다. 반대로 검소한 옷차림 속에서도 곧은 인품과 당당한 태도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명품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바로 그것이 ‘사람의 품격’이다. 명품을 소지한 사람이 아니라, 명품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가짜를 구입해서 오빠에게 선물했다가 자신이 필요해지자 오빠에게 빌려서 출국했다.’ 설명이 길다. 이렇게 발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된 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 그에게는 그 어떤 명품을 둘러줘도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 해외순방에서 버젓이 사용했었다는 허영과 기만에서 국민의 자존감은 여지없이 흘러내린다. 명품을 통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 가방과 시계, 옷과 구두, 의상과 장신구. 명품이 늘어가면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듯한 착각. 명품은 결국 소유자의 태도와 언행에 의해 평가받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명품을 걸치는 순간, 명품은 더 이상 명품일 수 없다. 명품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당신이 걸친 그 명품이 부끄럽다’고 말해야 한다. 명품의 가치는 가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걸치는 사람의 ‘품격’에 있다. 물건보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 명품이든 무명이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인간’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명품에 휘둘리는 시대,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30

유치한 용비어천가

말을 한 사람 외엔 대부분의 국민이 낯이 뜨거워 실소를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려나 조선 같은 봉건시대 왕에게도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한다는 건 칭송이 아닌 결례가 될 게 뻔하다. “하늘이 내린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느냐.” “그가 이 시대에 나타났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축복이다. 5년은 너무 짧다. (대통령을) 10년, 20년을 해도 될 사람”…. 얼핏 조선 왕조 최고의 혼군(昏君)이라 불리는 연산군 앞에서 간신배의 전형인 임사홍이 한 아첨처럼 들린다. 그러나 천만에. 위에 인용된 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한신대학교 석좌교수 김용옥과 이 정부 인사혁신처장 최동석이 한 말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의 네 번째 임금 세종의 명령으로 그의 선조인 목조에서 태종까지 여섯 명 통치자의 행적을 기려 만든 서사시(敍事詩). 헌데, 사전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현대사회에선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아랫사람들의 언행을 “용비어천가 부르고 있네”라며 비꼬기도 한다. 한 대학의 석좌교수고, 차관급 공무원이라면 사인(私人)이 아닌 공인에 가깝다. 자기 생각엔 칭송의 대상이 세상 최고라 느껴져도 말은 가려 해야 하는 법이다. 특히나 칭송을 받는 상대가 정치·경제적 힘을 가졌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런 금도(襟度)를 지키지 못한다면 자칫 나잇살 먹고 아부나 일삼는 철부지로 오해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의 힘은 장황함이 아닌 간결함에서 온다. 무엇이건 넘치는 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 우리 선조들은 그걸 과유불급이라 했다. 김용옥 교수와 최동석 처장에게 정중히 권한다. 이제 그러지 마시라. 대통령도 위와 같은 언사를 좋아할 리 없으니.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30

울릉도 ‘비곗덩어리 삼겹살’로 관광업 휘청…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기를”

비곗덩어리 삼겹살 파동으로 울릉도 관광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한 유튜버가 울릉도 여행 중 한 식당 종업원의 실수로 엉터리 삼겹살을 제공받은 후 이를 유튜브 영상으로 게시하면서 파문이 일었고, 사태가 겁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식당 주인은 어떻든 잘못은 자신의 책임임을 시인하고 유튜버에게 장문의 이 메일로 사과를 했고, 유튜버도 “사과를 받겠다”고 했다. 울릉군수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열흘째 많은 미디어 매체들이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울릉도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 울릉도에서 당한 배신감을 고려하면 백배 천배 사과해도 모자란다. 울릉도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여행지이고, 연간 40만 명이 이곳을 다녀간다. 대다수 군민들은 관광객을 환영하고 실제 관광 분야에서 적잖게 종사하고 있다. 유튜버도 울릉도가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해 울릉도 관광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네티즌과 미디어의 행위는 “이때다”라며 마치 울릉도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한 종업원이 실수로 비곗덩어리 가짜 삼겹살을 제공한 일로 정녕 다시는 찾으면 안되는 곳인지…’ 를. 더욱이 군민의 대표인 군수까지 나서 진정으로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 일 아닌가. 울릉도는 대한민국 동해에서 유일하게 섬 하나가 군 단위의 지자체인 보석 같은 섬이다. 일본이 야욕을 드러내며 뺏으려는 민족의 섬 독도도 지키고 있다. 울릉도가 있기 때문에 한반도 남한 면적 보다 더 큰 바다(해륙)의 주권도 대한민국에 있다. 서·남해 수천 개의 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위를 갖고 있는 셈인 것이다. 물론 애정이 깊을수록 어떤 잘못된 일에 대한 배신감도 더 커질 수는 있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부분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관광지 울릉도 대다수 관광업 종사자들의 사기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현재 울릉도는 사면초가다. 경제 불황으로 관광객이 감소하고, 그러다보니 뱃길도 줄어들고 있다. 관광산업이 지속적이고 연쇄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정주기반이 약한 울릉도의 미래는 뻔하다. 가장 우려스런 것은 주민들이 떠나는 상황이다. 계속 매를 맞으면 상처는 덧날 수 밖에 없다. 살아봐도 매력이 없고 경제적 어려움의 극복이 어려우면 울릉도를 떠나는 섬 주민들이 늘어나 섬을 비우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울릉군민들이 심기일전해 더욱 잘 해야겠지만, 악재가 자꾸 겹치면 의욕도 사라진다. 울릉도와 울릉주민들은 여전히 좋은 점과 잘하는 것이 더 많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지켜봐 주면 어떨까. 울릉도는 인구소멸지역이다. 한때 울릉도에서 오징어와 명태, 미역·김의 생산이 많이 생산될 당시에는 주민등록 인구 3만 명을 포함해 총 5만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수산자원이 고갈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군민들이 알게모르게 하나 둘씩 울릉도를 떠나 이제 전체 인구는 9000명 정도 밖에 안된다. 국민들이 애정과 사랑으로 울릉도를 다시한번 감싸안아 울릉주민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일 할 발판과 계기를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이때문에

2025-07-29

대세르비아주의 탄생과 식민지배 - 암흑기 세르비아

대 이슬람 코소보 항전 패전을 끝으로 세르비아에는 암흑의 시대가 찾아왔다. 세계 시대적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단절된 공간,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채 이슬람 생활양식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삶을 이어갔고, 어쩌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종교가 달랐음에도 데브시르메(Devsirme), 즉 전쟁포로 중 소년 징발과 공납이란 방식에 의한 직업군인 에니체리에 기꺼이 발을 들이며 전쟁을 수행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가 공격했을 때 이슬람 술탄을 위해 결사항전 했던 세르비아 병사들이었다. 이렇듯 지금에 와서야 유럽의 영역에 유입되지만, 당시에는 그저 이슬람제국 백성일 뿐이었다. 피지배민족은 봉건제도 아래 중앙과 분리된 느슨한 구조 속에서 충성을 다하며 질서에 편입된다. 종교가 비교적 자유로웠으니, 세르비아정교를 가지고서도 다른 이슬람민족과의 전투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슬람 연구자들 주장대로 이교도 강제 개종금지는 성경 코란의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일련의 이러한 조건 속에서 종교단체 집단 거주지이자 통제를 위한 집단 밀레트를 중심으로 제국에 순응하면서 세르비아민족이라는 영속성을 간직할 수 있었다. 정교회라는 믿음을 보장받으며 오스만트루크제국 압제에 순응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생활 수준도 다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오스만 지배를 받은 세르비아는 말 그대로 식민정책으로 문맹의 나라였다. 교육기관이라곤 세르비아에 대학교는커녕 중학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두 개가 전부였다. 문화를 전파하는 인쇄소는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세르비아어조차 배울 수 없어 그리스어를 공식 언어로 정해 학교에서 교육할 정도였다. 이웃 몬테네그로는 더 열악했다. 1834년까지 어떤 교육기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세르비아 사람들은 합스부르크제국의 지배를 받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로 터전을 옮겨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19세기 초 슬로베니아에는 초등학교가 1천 개를 넘었다. 세르비아인 귀에도 이런 소식이 들렸을 법했다. 그러자 당연히 크로아티아로 가면 잘살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도중에 목숨을 잃거나, 국경 수비대에 뇌물을 주고 겨우 성공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이동한 세르비아인이 크로아티아에 터전을 잡으면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훗날 배타적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자 살육의 발판이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 눈치 빠르고 발 빠른 인간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네 일제강점기처럼 제국에 빌붙어 자민족 고혈을 짜내는 인간도 생겼다. 메메드 소콜리에 의해 세르비아 정교가 활기를 띤다. 하지만 어떠한 관용에도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리스마저 오스만트루크제국 발아래 들면서 통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세르비아 정교회를 그리스 정교 교구에 예속시켜 버리자 세르비아인은 자존심이 상했다. 세르비아정교회는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스만트루크 지지를 얻어 독립교구로 거듭나고자 종교의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1557년 목표에는 성공했으나,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지지하며 정당화하는 악수를 둔다. 일련의 이 사건에는 오스만제국에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메메드 소콜리가 중심이 되었다.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까지 해가며 술탄 쉴레이만의 수족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세르비아 페치교구가 부활했고, 자신의 동생 마카리우스를 세르비아 주교로 올려 부흥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엄격하게 바라보면 밀레트라는 종교조직 속에서 세르비아인 통제를 위한 과정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대신 산악지방이 대부분인 발칸반도 지형 상 트루크 귀족 지배에서 벗어난 농민의 패쇄적인 삶은 정체되기 마련이었다. 그러자 조직적인 항쟁은 오랜 세월 동안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세르비아정교라는 정체성은 꾸준하게 이어갔다. 하지만, 정복전쟁을 즐겼던 술탄 무스타파 2세(재위 1695~1703)는 정교회세력이 점차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페치 교구를 폐쇄해버린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세르비아정교회는 지지기반이 허약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종교 자체는 민중항쟁의 구심점에 있었지만, 이는 세르비아에 성인으로 추앙된 인물들이 가슴 뛰는 추억을 불러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정교에는 대략 58여 명의 성인이 기록되어 있는데, 네마냐왕조 시조를 비롯해 세르비아정교회가 독립교구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 사바, 세르비아 최초 황제 스테판 듀산, 코소보 영웅 밀로슈 오빌리치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18세기에 시작된 세르비아 항쟁은 민족적 항쟁이 아니라 발칸반도 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주장처럼 신앙에서 파생된 순교자적 저항에 힘이 실린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7-29

나에게 말을 걸다

한없이 조용한 방 안에서 문득 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대답은 없었지만 그 말은 오래 묵혀 있던 무언가를 흔들었다. 최근 들어 이유 없는 짜증이 잦아졌다. 가족의 사소한 말에도 날이 서고, 혼자만 있고 싶고 가슴이 조여 오는 듯한 불안이 몰려왔다. 불면의 밤이 늘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율 신경이 망가졌다고 한다. 갱년기 증상과 겹쳐 신체와 정신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기라고. 그러자 억눌렀던 것들이 떠올랐다. 결혼 후 쉼 없이 달려온 시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나가 맞벌이를 시작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 노릇에 며느리 노릇에 딸 노릇까지. 나는 언제나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최고’라는 기준에 나를 밀어 넣었다. 누구보다 잘해야 했고 누구보다 헌신해야 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지쳐 있었다. 쉼 없이 달려온 삶, 한시도 멈출 수 없었던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숨 가쁘게 달리기만 했지 단 한 번도 멈춰 서서 ‘나는 괜찮은가’ 되묻지 못했다. 정작 내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무심했고 감정의 먼지를 털어낼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겉으론 살아내는 듯 보였지만 속은 점점 텅 비어갔다. 누구보다 나를 혹독하게 다그치고 몰아세운 사람도 결국 나였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실망 시키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내 안에서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한밤중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아픈 것도, 그동안 너무 참았기 때문이야.” 그 말이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내가 건넨 말에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그 한 마디에. 살면서 우리는 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배우자로서. 그러나 정작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드물었던가. 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해 마음이 다친 줄도 모르고 숨이 차도록 달리다 지쳐 쓰러져서야 아팠던 것을 깨닫는다. 나를 돌보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연민이며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몸이 아프면 쉬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잠시 멈춰야 한다. 그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숨 고르기다. 자기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일, 그것이 곧 치유의 시작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빠도 타인의 기대가 아무리 무거워도 결국 나를 지켜낼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절실히 깨닫는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하고 묻고, 밤에는 “수고했어, 오늘도 잘 버텼어.”라면 나를 토닥인다. 내가 살아온 루틴과 다른 방향이지만, 너무 흔한 말인 것 같지만 나쁘지 않았다. 거울 속 주름이 깊어진 나의 얼굴에도 “그래도 잘 살아 왔어.” 라고 말을 건넨다.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살기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나의 내면이 고요히 정돈되어야 타인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기대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결국 내가 나를 돌보는 만큼, 나는 타인에게도 따뜻한 존재로 설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같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하루가 아닌, 나를 위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유일하고 가장 소중한 책임감임을 깨달아 간다. 나는 이제야 삶의 중심에 나를 세워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텼던 과거의 나를 다독이고 이제 안간힘 대신 온기 어린 말로 나를 이끌어간다. 그 한마디는 내가 살아갈 다음 날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07-29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삼복더위의 절정인 중복이다. 여름의 초입부터 유난히 무더워져서 왠만한 불볕더위쯤이야 다소 적응이 된 듯하지만, 갈수록 기세등등해지는 폭염의 고삐는 언제쯤이나 느슨해지려는지 ‘온 세상이 시뻘건 용광로 속에 있는 것 같은(萬國如在紅爐中)’의 시구가 피부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폭염 아니면 폭우로 돌변, 온열질환과 수해를 위협하는 이상기후에 더욱 긴요하고 철저한 대비와 예방에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염천, 폭서가 무색할 정도로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군 다채로운 공연으로 잠시 더위가 멈칫해진 듯하다. 포항시 자원봉사자들을 위로하고 시민 화합을 위한 뮤직 감사콘서트 컨셉으로 ‘아세만사(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음악회가 다양한 레퍼토리로 성황리에 열린 것이다. 수개월 간의 준비와 연습을 거쳐 마침내 고품격의 열띤 공연이 펼쳐지면서 관객의 환호와 갈채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다양한 볼거리와 흥겨움의 열기로 가득한 버라이어티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고나 할까? 박진감 넘치는 퓨전국악을 시작으로 경쾌한 노래와 활달한 춤, 구성진 민요와 계면조의 시조창에 스토리와 붓글씨 퍼포먼스를 곁들인 시낭송, 힘차고 거침없는 난타와 목소리를 대신해주는 유장한 악기연주와 오케스트라의 폭포수 같은 선율, 그리고 풀잎 한 장으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이색적인 풀피리 연주 등이 때로는 잔잔하고 차분하게 펼쳐지다가 때로는 멋스럽고 흥겹게 풀어내며 무대와 객석을 잇는 감동의 울림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80여명의 출연진 모두 일상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봉사활동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봉사자들이라 주목된다. “저마다의 끼와 재능을 펼쳐 보이며/소박한 듯 수수하게/열의(熱意)인 듯 진지하게/흥겨움과 웃음을 솟게 하고/찬사와 감동을 자아내며/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네//···.//음악과 무도(舞蹈)가 피어나며 시가 흐르는 저녁/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선율 따라 별빛 따라/흥겹게 어울리고 한결로 소통하니/도탑고 멋스러워라 한여름밤의 꿈빛이여!/나누고 베풀며 챙겨주고 함께하니/고맙고 아름다워라 상생의 울림이여!”-拙詩 ‘아세만사, 상생의 울림’ 중 지난 2017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 9회째로 열린 ‘아세만사’ 음악회는 자원봉사자들이 보유한 다양한 재능으로 스스로 참여하고 누리며 예능으로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즉, 봉사활동 현장에서 나눔과 베풂으로 봉사의 가치를 빛낸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감사의 선율이라 할 수 있다. 소외되고 어두워진 사회 곳곳에 따스한 손길을 내밀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자원봉사자들은 소리 없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일상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생각을 나누고 개인의 자존감과 지역의 연대감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익성을 지향하며 유무형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그와 함께 지역의 다양한 재능을 가진 봉사자들을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일상 속의 자원봉사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봉사자들에게 진정한 감사와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아세만사’ 음악회가 아름다운 봉사문화로 지속되기를 축원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29

세상은 변하고 기업수명은 짧아진다

더 이상 한국에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없다. 미국은 더 앞에, 중국은 우리를 추월하여 앞에 섰다. 1990년대에 선진국(미국, 일본, 독일)의 첨단 기술에 뒤지고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저가 생산 사이에 끼어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세계 전자업계의 리더였던 소니(SONY) 등 기술력, 브랜드, 고부가가치 면에서 일본에 뒤처졌지만 중반에 들어서면서 삼성이 소니를 추월하고 LG전자마저 경쟁력에 앞섰다. 2000년 3월, 필자가 동경 아키하바라 전자 도시에 갔을 때 삼성전자 제품은 진열대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소니는 전자업계 미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디지털 전환에 실패하는 사이 삼성은 반도체, LCD, 휴대폰 시장에 초점을 두고 급성장하며 글로벌 선두에 섰다. 하지만 영속하는 기업은 없다. 언제든 퇴화할 수 있는 게 기업의 생리다. 경영을 못하여 망하기도 하지만 산업이나 소비자, 시장의 변화를 못 따라가도 영속 기업은 어렵다. 외부의 경제위기나 사회적 불안정성도 기업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기업 수명은 지속적으로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35년 기준으로 90년이던 것이 1975년 30면, 2015년에 15년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기업 수명이 짧아지는 이유는 산업 재편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할 당시 휴대폰 세계 최강자는 노키아였다. 노키아가 시장에서 사라지기까지 불과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계 1등도 변하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하지 못하는 시대다. 철강업에서도 일본을 앞서던 한국 기업이 중국에 밀려 경쟁 상대에서 멀어지는 흥망성쇠의 흐름이 있다. 기업의 실적을 분석할 때 매출과 영업이익 수치만 볼 것이 아니라, 신사업 분야에서 올린 매출과 이익을 따로 봐야 한다. 미래 먹거리가 계속 준비되지 않는 기업은 당장은 건재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기업 평가를 할 때 총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등의 재무 재표만 보는 것이 아니다. 기업평가에서는 조직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적 성과 관리 도구인 BSC(Balanced Scorecard)를 사용한다. BSC는 재무 지표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비재무적 지표를 포함한 재무, 고객,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 등 4가지 관점에서 조직 성과를 균형 있게 평가한다. 재무적 관점은 조직의 수익성, 성장성, 생산성 등을 측정한다. ROI, 매출 성장률, 순이익율 등이다. 고객 관점은 기업의 제품 만족도, 고객 충성도, 시장 점유율 등기업의 신뢰 수준을 보는 것이다. 내부 프로세스 관점은 생산 리드타임, 불량률, 공정 개선지표, 조직 내부 운영 효율성 등을 평가한다. 학습과 성장의 관점은 직원 교육 시간, 조직문화 지표, 직원 만족도 등 인적 자원개발과 조직 역량 강화도 측정하는 것이다. 이런 듯 기업의 수명은 사회와 시장 변화를 예지하고 전략적 미래 비전 설정과 지속적 도전만이 영속 기업 여부를 판가름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29

‘타운홀미팅’ 일정 TK는 언제 잡힐까

이재명 대통령은 광주·대전에 이어 지난 25일 부산에서 가진 세 번째 타운홀 미팅 자리에서 “지방 발전전략을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빠르게 시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침 북극 항로가 활용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기 때문에, 부산이 북극항로 개척에 따른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연내에 해양수산부가 이전하는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부산시민들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실 수 있는데 우리 정부에서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겠다”면서 “좌초되지 않도록 하는 게 첫 번째고, 지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두 번째”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부산에서 언급한 북극항로 개척과 신공항 건설은 대구·경북(TK)지역에서도 겹치는 현안이다. 북극항로 개척은 경북도가 일찌감치 기획하고 있는 사업이다. 경북도는 지난해부터 북극항로 상용화에 대비해 포항 영일만항을 ‘거점항만’으로 건설하는 내용의 용역을 발주해둔 상태다. 국제컨테이너 터미널을 갖춘 영일만항은 북극항로 ‘관문항’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TK신공항사업은 현재 가덕도 신공항과 마찬가지로 첫 삽도 뜨기 전 개항 연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내년부터 당장 토지 보상에 들어가야 하지만, 재정 문제에 부딪혀 한 발짝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만약 연말까지 건설비 조달계획이 확정되지 못하면 내년에 예정된 토지보상과 기본설계의 지연이 불가피해 2030년 개항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광주에서 열린 첫 번째 타운홀 미팅에서 광주 군공항 이전 해법을 찾기 위해 대통령실에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그 후 대통령실은 곧바로 정부·지자체가 참여하는 6자 협의체를 가동했다.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의 취지와 목적은 TK 신공항사업과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TF는 그동안 광주시가 추진했던 소음도 측정, 이전지역에 대한 보상 규모와 방안, 이전부지 개발계획과 관련한 자료를 국방부·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으로부터 넘겨받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TF는 8월중 첫 회의를 연다고 한다.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는 이 대통령이 직접 챙길 것으로 보여 건설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TK지역으로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다. 대구시는 최근 민주당 대구시당에 이어, 국민의힘 대구시당과도 정책협의회를 가지고 ‘TK지역 현안의 국정과제화’를 건의했지만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산, 광주처럼 TK지역이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며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는 ‘타운홀 미팅’ 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 다음 타운홀 미팅 장소로는 대구를 비롯해, 인천, 울산, 서울 등지가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위상과 대구시장 공석인 점을 감안할 때, TK지역이 뒷순위로 밀릴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 지역 민주당 시·도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의 역할이 기대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29

중국산 김치의 습격

중국산 김치하면 한국인에게는 충격적인 기억들이 있다. 2021년 3월 중국의 한 김치공장에서 직원이 알몸 상태로 김치를 절이는 장면이 공개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비닐을 씌운 대형수조 안에서 상의를 벗은 한 남성이 배추를 절이는 모습은 한국인에게 큰 충격으로 각인됐다. 중국산 김치는 이보다 앞선 2005년에도 기생충 알이 검출돼 파문을 일으켰고, 2013년에는 병원성 대장균이 검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산 김치가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노출되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자들이 중국산 김치를 기피하는 현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지금은 중국산 김치가 국내 외식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게 되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에 수입된 외국산 김치는 거의 전량 중국산 김치로 16만3000t에 달했다. 이는 작년 동기보다 10%가 늘었다. 이 상태로 이어질 경우 연말엔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산 김치는 비위생적 이미지에도 이미 국내 외식시장을 장악하고 장차는 일반가정 내 식탁까지 넘보는 상태에 도달했다. 이유는 국내산 김치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앞선 때문이다. 중국산 김치 가격은 국내 김치의 5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최근 들어 폭염 등 이상기후로 배추 작황이 부진하고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외식업소 대부분이 중국산 김치로 대체하려는 분위기라 한다. 경제성이 있는데다 간편함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까지 겹쳐 이 상태로 방치한다면 한국산 김치를 구경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이 무너질 판이다. 적절한 대책이 있어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9

뻐꾸기 탁란

뻐꾸기가 꾀꼬리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알은 꾀꼬리알보다 일찍 부화한다. 부화하지 않은 꾀꼬리알은 일찍 부화한 뻐꾸기 새끼에 의하여 둥지 밖으로 밀려나 추락하여 깨진다. 둥지의 주인인 꾀꼬리는 뻐꾸기를 자신의 새끼로 생각하고 열심히 키운다. 자연의 섭리로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한 장면이지만, 어느 숲속 나무 위의 꾀꼬리 둥지에서 조용히 벌어지기만 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세계에도 ‘탁란 형 무임승차’가 판을 친다. 알고도 속는 세상. 욕망, 정치, 종교의 바닥이 그러한 곳이다. 당신의 욕망은 진정 당신의 것인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언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욕망은 누군가가 당신의 정신적 둥지에 몰래 낳은 ‘타인의 욕망이라는 알’일지 모른다. 유튜브 알고리즘, 넷플릭스 큐레이션은 당신의 감정, 욕망을 조작하여 ‘내가 원해서 샀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주체적 소비가 사라진 공허한 소비의 현장이다. 정치의 영역은 어떤가. 자기 책임과 정체성을 숨긴 채, 타인의 시스템이나 신념, 노동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이익을 실현하는 ‘탁란 형 권력’. 이것은 권력자가 기존 도덕, 종교, 민족주의 담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슬쩍 얹어 다수의 대중이 그것을 ‘자기 것’이라 믿고 행동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의 가치라는 둥지’에 ‘전혀 다른 목적의 알’을 몰래 넣는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평생 열심히 투표하듯이 지배층이 만든 세계관을 피지배자가 스스로 내면화하여 실천하는 노예도덕의 현장이다. 종교라고 별반 다를까? 대한민국의 모든 종교는 ‘샤먼이라는 뻐꾸기 탁란’일지 모른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등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그 핵심에는 ‘샤먼이라는 근본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부처, 예수의 본래 면목은 둥지 밖으로 밀려나 사라졌다. 뻐꾸기는 오직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뿐이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지를 살펴보면 탁란 형 신앙인지 아닌지는 단번에 알 수 있다. 탁란 형 성전은 거짓 사랑과 헛된 자비라는 장막이 드리워진 공사 현장이다. 위 세 곳의 현장들을 진실하게 들여다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의 욕망’을 소비할 수 있고, ‘바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참된 기도’를 할 수 있다. 굳이 칼 융을 빌리지 않더라도 탁란 형 인간은 인간의 ‘자기 됨(Selfhood)’에 실패한 자다. 무의식 속 타자의 그림자가 자기를 덮어 그것이 나의 것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 자비, 우정. 부모, 자식, 시민, 근로자, 신자, 애국자라는 개념이 내 새끼처럼 품고 사는 ‘타인의 알’ 이라면 믿겠는가. 안전한 가짜 자아에 속아서는 안 된다. 평생 단 한 번도 뻐꾸기를 의심한 적이 없는 꾀꼬리여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내 안의 알’은 누구의 것인지 살펴보자. ‘탁란된 것들’은 나의 자아를 점유하고 욕망, 윤리, 감정의 방향까지 설정한다. 해체하고, 폭로하고, 새로운 주인의 도덕을 찾아 떠나보자.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두려울지 몰라도 어느 순간 평화가 찾아와 그대를 다스릴지니. /공봉학 변호사

2025-07-28

나라 예언직

‘예언직(豫言職)’이란 단어가 있다. 가톨릭에서 주로 쓴다. 가끔 ‘예언자직(豫言者職)’이라고도 한다. 국어사전에는 예언직, 예언자직이 없는 대신 ‘예언’을 두 뜻으로 적었다. 첫째,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함’을 뜻한다. 둘째, 기독교에서 ‘신탁(神託)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또는 그런 말’이라 했다. 가톨릭의 예언직은 국어사전 예언의 둘째 뜻에 ‘직’을 붙인 게 주된 뜻일 것이다. 신탁자(神託者) 그리스도의 세 직분 곧, 예언직‧사제직‧왕직 중 예언직은 신자들에겐 으뜸 직분이라 생각된다. 1962~1965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황청에서 열렸다.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하여 바오로 6세 때 마무리 지었다. ‘교회의 현대 사회와의 소통과 쇄신’을 목표로 한 공의회는, 16개 문헌을 반포했다. 그중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제2장 ‘하느님의 백성’에서 ‘특히, 신앙과 사랑의 생활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산 증거를 널리 전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입술의 열매를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그 예언 직에 참여한다(히브13,15) 하였다. 제4장 ’평신도‘에도 ’위대한 예언자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실 때까지 당신의 예언직을 수행하시되, ····. 성직계를 통해서뿐 아니라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 성취하시는 것이다‘라 했다. 또, "‘···.계속 회개하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암흑의 세력과 악신들을 거슬러“(에페6, 12) 싸움으로써, ···. 이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하겠다’라고 하였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도 참여한다.” 이는 특히,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해진 믿음을 온전히 지키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때, 평신도이건 성직자이건 간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라 했다. 결국, 예언직은 ‘믿음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성심 다해 그 증인이 되는 직무’라 요약되겠다. 가톨릭이 사도 때부터 순교자의 역사로 빛나는 것은 바로, 신자들이 목숨 걸고 예언직 삶을 산 결과가 아닐까. ‘예언직’을 국가에 접목하면, ‘나라 예언직’이 될 것이다. 가톨릭이 예언직 삶으로 빛나듯. 국민도 나라 예언직 곧 공정한 주권자로 산다면 얼마나 밝을까. 특히 언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학계 등 지도층의 나라 예언직 삶이 절실하다. 최근 나라 예언직 삶의 모범은, ‘모스 탄 미국 제6대 국제 형사사법 대사’란 생각이 짙다. 주류 언론, 법조인,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 관료들이 못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해냈으니까. 우리나라는 헌법 제1조가 밝힌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도 국민에게서 나온다. 또,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한다고 그 전문은 밝힌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를 위해 나라 예언직을 살아내어 자유민주적 질서를 높여나가야 한다. 즉, 국민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지지를 선언하고 그 증인으로 산다면, 나라가 융성하여 국리민복으로 빛나리라 믿는다. /강길수 수필가

2025-07-28

그땐 누가 이스라엘을 도울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 비극적 상황 속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사 직전의 딸에게 줄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구하러 갔던 가자 지구 주민이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 맞은 것. 마구잡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 지구엔 모든 게 모자란다. 전기와 식수가 공급되지 못하고, 생필품 부족은 이제 일상이다. 세상에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연명의 마지막 수단인 원조식량 배급까지 막아섰다. 최근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가자 지구에서 9만 명의 아동과 여성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대부분이 긴급한 치료를 필요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122명이 굶어 죽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가 보낸 식량의 배급을 방해하는 이스라엘의 횡포는 멈출 기미가 없다. 땅에서 나눠주면 총격을 가하기에, 밀가루 포대를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원조하겠다고 나선 국가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요르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거기에 하마스가 사용할 무기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불허했다.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적이 굶는 것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한다. 묻는다. “전쟁과 무관한 팔레스타인 아이들까지 당신들의 적인가?” 세계 28개 나라가 ‘비인도적인 처사를 멈추라’고 이스라엘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소 귀에 경 읽기다. 2차대전 때 이스라엘인들은 히틀러에 의해 현재의 팔레스타인과 유사한 고통을 겪었다. 그때 유대인을 곤궁에서 구한 건 연합국이다. 가자 지구에 대한 핍박이 앞으로도 지속된다고 가정하자. 향후 이스라엘이 위험에 빠졌을 때 누가 나서 그들을 돕겠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28

'옛날 사람'

세월이 참 빠르다. 어수선한 시국 따라 시간은 더 가파르게 흐른다. 안후이성, 난징에 갔다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주일 훌쩍 넘겼다. 다녀오고 나서는 한 이틀 끙끙 앓았고, 그 사이에 이효석 축제에 학술대회 지원 못 해준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토요일에는 탈북작가와 함께 하는 ‘나도 작가다’ 창작교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난 해에 이어 두번째,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새롭게 하고자 했다. 북한에서의 삶의 문제는 나의 중요한 문학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 사이에 어느 아침에 갑자기 혈뇨가 빨갛게 흘러 이곳저곳 병원을 알아보기도 했다. 건강하시던 부친은 돌아가실 때까지 암을 무려 네 개나 앓으셨는데, 그 중 하나가 신장암이셨다. 일요일에는 ‘길 위의 인문학’. 폭염 속에서 나와주신 분들 서른다섯 분은 될 것 같은데, 서촌 ‘이상의 집’에서 ‘윤동주 하숙집’ 지나 ‘윤동주 문학관’, ‘환기 미술관’으로 순례를 한다. 지금 서울은 폭염. 저녁에는 한증막이요, 아침부터 불볕더위다. 수화 김환기의 파란 추상화 앞에 서자 이제야 마음이 차분함을 얻은 듯한 느낌. 그러자 이제서야 중국 떠나기 직전 집에 배달되어 온 소포 하나가 생각난다. 영문 모를 큰 박스가 부쳐져 왔는데, 최근에는 ‘북아일랜드’에서 청계천 책들 주문한 것 외에는 박스가 올 일이 없다. 어렵사리 무거운 소포를 들여놓고 열어보니 금방 밭에서 따낸 것 같은 옥수수가 한가득. 이게 뮌가, 하면서도 금방 떠오르는 얼굴은 강원도 정선 사는 시인 친구, 시집 ‘사랑의 환율’을 펴낸 이다. 갓 밭에서 따낸 푸른 잎 옥수수를 보기 얼마 만이던가. 옥수수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옛날 대전 변두리 태평동에 59평 밭을 어렵게 장만하신 아버지가 옥수수, 감자, 깨 같은 농사를 지으셨던 일. 어렸을 때 참외밭 같은 작물 가꾸던 솜씨로 어느 해 옥수수가 얼마나 탐스럽게 다닥다닥 열렸는지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고는 이상의 수필 ‘산촌여정’에 등장하는 옥수수. “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여기서 ‘갑주’란 갑옷과 투구. 옥수수들 늘어서 있는 것 보고 군인들의 관병식, 곧 열병식을 떠올리는 작가 이상의 ‘문명스러움’이라니. 나면서부터 쭉 시골에 살아 ‘옛날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은 얼마나 귀한가.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으로 이민 가 억척스럽게 새 삶을 개척해 오면서도 습속이나 가치관은 옛날 60년대나 70년대나 80년대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귀한가. 서울을 경험하고도 옛날 고향으로 돌아가 잃어버릴 수도 있을 ‘옛날 스러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귀하디 귀한가. 손수 농사 지은 것을 멀리 있는 사람 생각나 우체국을 찾아 보낼 수 있는 ‘옛날 사람’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번잡하기만 한 서울의 생활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이냐. 그러고 보니, 나는 저 논산에 내려가 농사 지으며 살아가는, 북에서 떠나온 귀한 옛날 사람 작가도, 한 분, 알고 있었다. 논산 사람의 그 묵직한 ‘옛날스러움’이 더없이 귀해 보이는 날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7-28

“닫힌 문 하나가 생명을 살립니다 ”

“왜 문을 닫지 않았을까….”한겨울 이른 아침,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안타까운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방화문이 열려 있어 계단실을 타고 연기가 빠르게 상층부로 퍼졌고, 그 결과 심정지, 추락사 등 크고 작은 인명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수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1층에서 발생한 화재가 연기로 확산되며, 10층 주민이 끝내 귀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공통으로 방화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방화문은 단순히 화재를 막는 문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이 화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지켜주는 ‘생명의 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아파트에서는 여전히 방화문이 고정장치로 열려 있거나, 도어스토퍼로 눌린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일부 단지에서는 ‘휴즈 타입’처럼 화재 시 실제로는 연기를 막지 못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어, 평소 점검과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소방청과 전국 소방서에서는 ‘방화문 닫기 안전 문화 운동’을 본격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아파트 대피계획 세우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국 계단실형 아파트의 방화문 유지‧관리 실태를 일제 점검하고,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대상 맞춤형 컨설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계단실형 아파트의 경우 구조상 피난 통로가 단일 계단실로 제한되기 때문에, 방화문 하나만 열려 있어도 굴뚝 효과로 인해 유독가스가 빠르게 위층까지 퍼지고, 이는 치명적인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장비도, 복잡한 훈련도 아닙니다. 바로 “평소에 방화문을 잘 닫아두는 생활 습관”입니다.   우리가 함께 실천해야 할 세 가지만 지켜주세요! 방화문은 항상 닫아 두기– 연기와 불꽃을 차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입니다. 방화문 자동 폐쇄 장치 정상 작동 여부 점검– 매월 한 번, 체크리스트를 작성하여 관리사무소 직원과 함께 확인해 보는 게 좋습니다.   방화문 앞에 물건 쌓아두지 않기– 피난 경로를 막는 작은 물건이 생명줄을 끊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을 넘어,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방화문 하나가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에 따라 화재 상황에서의 생사(生死)가 갈립니다. 대피계획 수립, 방화문 관리 실태 점검, 그리고 생활 속 실천 운동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스스로 안전을 지켜가는 문화 운동입니다. 지금, 우리 집 방화문은 닫혀 있습니까? 오늘 하루, 현관문을 나서기 전 방화문을 꼭 한 번 확인해 주세요. 닫힌 문 하나가, 소중한 생명을 지킵니다.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