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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장실 청소하는 선승, 히라야마

2024년에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한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는 도쿄의 지역성이 매우 풍부하게 드러나 있는데요. 한강을 중심으로 남북이 크게 나뉘는 서울과 달리, 도쿄는 에도 시대부터 교코(쇼군이 살던 곳)를 중심으로 무사들이 주로 살던 서쪽과 서민들이 주로 살던 동쪽이 나뉘고는 했습니다. 히라야마는 도쿄의 동쪽에 살면서, 도쿄 서쪽의 시부야구로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하며 지냅니다. 그렇기에 히라야마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쿄라는 도시의 공간적 특성을 파악하게 됩니다. 히라야마가 사는 곳은 비교적 서민들이 사는 동네로, 저렴한 이자카야나 목욕탕, 낡은 아파트(우리식으로 하자면 연립주택) 등이 남아 있는데요. 이에 반해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시부야구는 부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특히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화장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더럽고 칙칙한 느낌의 공중화장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곳은 비영리 단체인 일본재단과 시부야구가 깨끗하고 접근하기 좋은 공중화장실을 목표로 만든 열일곱 개의 화장실이니까요. ‘THE TOKYO TOILET’이란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에는 안도 다다오나 구마 겐고 등의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참여했는데요. ‘퍼펙트 데이즈’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현재 도쿄에서는 이 열일곱 개의 화장실 투어를 하는 여행 상품이 있을 정도입니다. 영화는 지루할 정도로 차분하고 정밀하게 히라야마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그는 아침에 동네 노인의 비질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이불을 개고 간단한 세면을 한 후에,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청소용 미니 봉고차에 올라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갑니다. 점심에는 일터 근처에 있는 신사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를 필름카메라에 담고, 퇴근 후에는 노인들이 다니는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그며, 아사쿠사 지하에 있는 역시나 오래된 이자카야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집에 와서는 100엔을 주고 산 헌 소설책을 읽으며 잠드는 일상을 보내는데요.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히라야마의 일상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바로 그 평범의 지극함에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우리가 별다른 의식도 없이 행하는 일상의 그 모든 일들에, 마치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동전 하나 열쇠 하나 놓는 위치까지 정확하게 정해져 있을 정도인데요. 그렇기에 히라야마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신성함마저 느껴집니다. 특히 화장실을 청소할 때, 히라야마의 정성과 집중은 최고조에 이르는데요. 그 결과 관객들은 히라야마가 닦는 것이 공중 화장실의 변기가 아니라, 사당의 제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저는 히라야마가 혼신을 다하여 닦는 것이 다름 아닌 변기라는 사실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여겨집니다. 히라야마가 너무나 열심히 닦고 빛내는 변기란. 후배 타카시의 말처럼 “어차피 더러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히라야마의 화장실 청소란 그야말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에 해당할 텐데요. 이러한 순간에의 몰입은 그가 날마다 코모레비를 카메라에 담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코모레비는 바람과 햇빛에 의해 늘 변하는 순간의 연속이며, 히라야마는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정도로 소중히 하는 겁니다. 가출한 조카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순간’에 대한 강조는 드러납니다. 히라야마는 조카에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데요. 나중에는 조카까지 노래를 부르듯 이 말을 따라 합니다. 이 말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가치부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토록 순간에 집중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에서는, 일본 사회의 심층을 형성하고 있는 불교 특히 선(禅)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6세기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일본인의 종교적 심성 한복판에는 늘 불교가 있었습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대개의 일본인들은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사후에는 불교식 이름(戒名)을 받으며, 일본 가정 대부분에는 지금도 불단(仏壇)이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특히 일본의 지배계급이던 무사들은 선(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이러한 선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바로 일상을 하나의 수행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선에서는 작은 것에서 위대함을 보고, 속된 것에서 성스러운 것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니까요. 차 한 잔 마시는 것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것에도 그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바로 이러한 선의 정신이 놓여 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는 어쩌면 청소부로 변신한 우리 시대의 선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1-20

팔레스타인 학살은 멈출 것인가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종교와 민족적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자그마치 15개월 이상 이어졌다. 아주 오래전부터 갈등을 거듭했던 두 나라의 다툼은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 희생자를 낳았다. 가자 지구를 향해 수시로 날아드는 이스라엘 군대의 폭탄에 공포에 질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은 영상을 통해 가감 없이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반전과 휴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각처에서 터져 나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선 지난 1년3개월 동안 15만7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정부는 2023년 10월 7일 개전 이후 지난주까지 팔레스타인인 4만6899명이 사망했고, 11만72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부정할 수 없는 ‘학살’ 수준이다. 평화와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21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비극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19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휴전 협정이 발효됐다. 전쟁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 하마스는 이스라엘 인질 3명을 돌려보냈고, 이스라엘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잡혀온 수감자 90명을 감옥에서 내보냈다. 이른바 ‘포로 맞교환’이다. 이것이 두 나라 간 공존의 신호탄이 됐으면 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향후 6주 동안 교전을 멈춘 후 노약자를 위주로 인질을 석방하고, 감옥 문을 열어 수감자를 풀어주기로 합의했다. 이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 종전(終戰)으로 가는 길이 속히 열렸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20

4·19와 6·10, 그리고 1·19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1월 19일,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공덕동 서부지방법원에서 재동의 헌법재판소까지 긴 행진을 했다. 전날인 18일 오후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된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20~30대 청년들이 중심이 된 시민들이 이렇다할 사전 연락도 없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날은 토요일, 원래 광화문에서 전광훈 목사 교회 쪽이 주최하는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예정과 달리 대통령이 영장 실질 심사에 직접 참석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서부지방법원으로 달려갔고, 그러자 광화문 세력도 서부지방법원으로 합세하기로 한다. 이날 오후부터 한밤까지, 그리고 19일의 새벽까지 날이 아주 길었다. 시민들은 불법적으로 영장을 발부한 이순형, 신한미 전담판사와는 다른 주말 당직판사가 심사를 맡는다는 사실에 큰 기대를 걸었다. 차은경 판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지간히 찾아들 보고 화제에도 올렸다. 이런 저런 판결 이력들을 살펴 이 사람은 혹여 다를지도 모른다고들 했다. 자정을 훨씬 넘겨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법원을 둘러싼 사람들이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빛깔의 것이었다. 청년들은 나이든 사람들과도 다르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부지방법원은 그동안 억눌려온 분노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서부지방 법원 유리창들, 외벽들, 그밖의 시설물들이 파손되고 경찰 바리케이트도 부서졌다. 경찰이 법원 진입을 유도했다고도 하고, JTBC 기자가 유리창을 깨고 조작뉴스를 방영했다고도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든 폭력과 파괴는 정당화될 수 없다. 날이 새자 한밤의 시위대가 해산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하기로 한 시민들이 새로 모여 들었다. 거리 행진은 길었고,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의 강압적인 심판 진행에 거세게 항의했다. 이 1월 19일의 상황은 필자로 하여금 지나쳐 온 한국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4·19혁명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학생 시위대의 한 사람인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촉발된 것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가 오늘 사월혁명이라 부르는 4·19의 새벽이 밝아오게 된다. 1960년의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가 사월혁명으로 일어났다면, 1987년 6월 10일에 시작된 6월항쟁은 1월 14일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 의해 촉발되었다.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시민들은 호헌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쳤다.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국민주권 박탈상태에 국민저항권을 발동한 것이었다. 이번 1·19 사태는 지난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 포고가 직접적 배경이라 하겠다. 지금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측은 계엄령 포고가 2024년 4월 15일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부정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포고 당시에 대다수 국민은 계엄령 포고가 21세기의 번영을 구가하는 한국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황당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대통령이 다수파 야당의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고 체포, 구속까지 당하게 되면서 국민들 생각과 감정이 아주 달라진 것 같다. 필자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다. 과연 22대 국회는 가짜였던 것이 아니냐. 이것이 지금 국민들이 의혹을 품고 대통령을 심정적으로 동정하는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2025-01-20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자유,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선택

김소현 의원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점검하고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을 맞이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두 가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둘째,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반이다. □ 자유민주주의 : 대한민국의 핵심 토대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과정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에 두고, 시장경제를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룬 국가이다. 법치주의 토대 아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반면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며 이를 대체하려는 좌파적 담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나아가 국가의 지속가능성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좌파진영은 대중영합주의라 일컫는 감성정치와 집단 선동으로 진보적 이미지를 구축하며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전략은 단순히 정책을 넘어 정체성과 가치를 둘러싼 담론 자체를 지배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파진영은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충분히 강화하지 못했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 우파진영 지도자들의 무거운 책임감과 깊은 숙고(熟考)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 자유주의 체제를 지키는 우파의 책임 정당정치가 부실하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도 흔들리게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는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상태이며, 우파정당은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 강화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담론을 적극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첫째, 철학적 기초의 강화, 둘째,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호, 셋째,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미래지향적 비전 제시. 우파진영은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임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 철학적 기초임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또한 자유주의의 철학적 깊이를 대중과 소통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우파진영의 또 다른 과제이다. 좌파진영은 간결하고 매력적인 구호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 삶과 연결짓는 담론으로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 냈다. 반면 우파는 이론적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데 그쳤고, 결국 보수정당정치의 사상과 철학의 빈곤함을 드러나게 했다. 이는 단지 우파진영의 사명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를 지키는 길이기에 좌파의 도전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미래를 이끌어갈 유일한 선택임을 설득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단순히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가치체계이고 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적 기반이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가치가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시장경제를 통해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이 선택한 길이며,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본질이며, 이 체제를 지키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정치적 지도자나 제도만으로는 국가를 지킬 수 없다. 이 나라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원동력인 깨어있는 국민만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김소현 경주시의원

2025-01-20

남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에 자만하지 마라

김진국 고문 여론조사가 이상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뒤집혔다. 오차 범위 안이니까 뒤집혔다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당장 망할 것 같았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한 건 의외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9%, 민주당은 36%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탄핵 직후인 지난해 12월 셋째 주에 국민의힘이 24%로 바닥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15%포인트가 올랐다. 48%였던 민주당은 12%포인트가 떨어졌다. 여론조사에는 오차가 있다. 그렇지만 큰 흐름은 틀리지 않는다. 다른 조사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지난주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은 35%, 민주당은 33%였다. “내가 잘해서 당선되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0가지를 잘하기는 어려워도, 한 가지 실수는 순식간에 저지른다. 선거는 그 한번의 실수가 결정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도 다르지 않다. 거부감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은 유권자도 많지만, 결국 승부를 가른 건 비호감을 피하려고 떠도는 표다. 윤석열 후보가 좋아서 찍은 사람보다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선택한 유권자가 많다. 비상계엄의 중심은 윤 대통령이다. 그를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비상계엄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뚱딴지같이 터졌다. 법리 다툼을 벌이고는 있지만, 국민 마음속에서는 일찌감치 판결이 내려졌다. 생중계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은 민주화 성과를 한꺼번에 허물었다. 한 사람이 잘못 판단하면,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민의 분노는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뒤 윤석열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재명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주목 대상이 옮겨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동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지율이 압도적 1위다.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조급한 언행, 절제하지 않는 발언, 집권당이 다 된 것 같은 오만함이 그런 우려를 부채질했다.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이 대표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계엄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혹은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느냐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좋으냐 싫으냐로 여론이 나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열성 지지자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어느쪽도 잘한다고 칭찬받는 상황이 아니다. 상대방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을 호감도로 착각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탄핵의 강’을 건너느라 고생했다. 민주당은‘조국의 강’을 넘어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의리’, ‘배신’ 논란도 있었다. 조국혁신당이 성공해 조국의 강이 옳은 길인지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결집은 강력하지만, 강성 지지자만으로는 큰 판에서 이길 수 없다. 국민의힘은 반성과 혁신보다 ‘의리’를 선택했다. 책임을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몫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여야가 협력해 가능했다. 보수·진보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쓰겠다”고 선전했지만, 가장 폐쇄적으로 인선했다. 함께 촛불혁명에 성공했는데, 보수 세력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 아니라 ‘적폐 청산’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리품을 독식했다. 모든 분야에서 반대 세력은 몰아냈다. 대법원장까지 ‘적폐’로 몰았지만 모두 무죄였다. 진영정치의 골을 깊이 팠다.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정치는 사라지고, 보복만 남았다. 검찰총장 대통령의 길을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의 행동이 이번 탄핵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주저하게 했다.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은 문재인 후보 때보다 더 크다. 남의 실수로 얻은 표는 내 표가 아니다. 여도 야도 돌아보고, 반성할 줄을 모른다. 남의 실수로 얻은 득점에 자만할 때가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9

尹 구속이 정당지지율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구속이 여야 정당 지지율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최근 반등추세에 있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6~7월쯤 예상되는 ‘조기 대선’ 결과에도 주요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궤멸위기에 처했던 여당 지지율은 지난주부터 민주당에 앞서는 ‘골든크로스’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100%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39%로 민주당 지지율(36%)을 3%p차로 앞섰다. 갤럽의 지난 7~9일 조사에선 민주당(36%)이 국민의힘(34%)을 2%p 앞섰다. TK(대구·경북)지역에선 국민의힘 지지율이 58%로 민주당(15%)을 압도했다. 역시 지난주(13~15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율이 35%로 33%인 민주당을 2%p차로 앞섰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주류들은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추세가 “강성 지지층의 과표집 때문”으로 보고 있지만, 새해들어 여야 정당에 대한 여론추이 변화는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민심변화의 원인은 우선 윤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층이 총결집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입법권력에다 헌법재판소, 공수처, 경찰 등 공권력까지 장악한 듯한 민주당의 폭주가 보수정당의 외연을 중도층으로까지 넓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당은 연이은 강공드라이브로 기존의 강성지지층 결집에는 성공했지만, 중도층 신뢰는 오히려 잃었다는 전문가 지적이 많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30% 초반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도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주 CBS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대표의 지지율이 현재 30%가 채 넘지 못한다. 지금처럼 탄핵·계엄 국면에서 이 정도면 높다고 볼 수 없다. 야당의 과도한 입법권력과 탄핵 남발로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여론추이로 볼 때 윤 대통령 구속이 여당엔 호재, 민주당에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 수사를 둘러싼 절차적 정당성 논란, 그리고 ‘내란특검법’을 강행한 민주당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화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다시 부각될 경우 여론이 급속도로 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1-19

‘철강·이차전지산업 위기 극복에 모두 힘 모아야’

이강덕 포항시장 지난해 말 예기치 못한 비상계엄 사태 후 이어진 어수선한 탄핵정국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나라 경제 전반이 더욱 얼어붙었다. 주요국 간의 산업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보호무역주의 또한 강화되는 와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재취임하면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외적 정세가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가운데 국가 기간산업 철강과 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도시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포항시 역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철강산업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건설 등 내수부진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특히 저가의 중국·일본산 제품이 국내로 물밀듯이 유입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9.7% 인상된 산업용 전기료도 기업 경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차전지 역시 전기차 캐즘(수요정체)이 지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2기는 관세 장벽과 전기차 보조금 지원 축소 등을 예고하고 있어 시장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그 여파는 포항 지역에 혹독한 한파로 다가왔다. 철강업계의 경우 공장 가동률이 해마다 하락해 일부 공정에선 60%대에 그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 포항 제1제강공장에 이어 11월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현대제철도 축소 가동을 논의하고 있다. 이차전지 역시 기업 가동률이 크게 줄면서 지난해 8월 기준 포항 지역의 이차전지(화학)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절반 이하에 머물렀다. 지역 주력산업인 철강과 이차전지의 위기는 일자리 감소 등 시민 삶에 커다란 위협이 되는 것은 물론 국가 경제 안보 및 생존과도 직결된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 기업 등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우리시는 산업 위기 극복에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에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국내 기업 제품에 대한 의무할당제, 중소기업 정부지원금 확대, 산업용 전기료 인하 등 ‘특별 대책마련’을 지속 요청하고 있다. 아울러 ‘산업위기 대응특별지역’ 지정 역시 적극 건의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극심한 조선업 침체를 겪은 울산 동구 등이 지정돼 근로자·실직자 지원,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 등에 대한 실질적 지원으로 위기 극복에 탄력을 받은 사례가 있는 만큼 조속한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정치적 상황을 떠나 민생을 위해 ‘철강·이차전지 특별지원법’ 제정에 대해 여야가 함께 고민해 줄 것도 호소하고 있다. 우리시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난 15일 중기부가 ‘중소기업 특별지원 지역 지정’을 2년 연장한데 이어 최근 정부가 이차전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데 대해 적극 환영하며 향후 더욱 실효성 있는 지원이 이어지길 고대한다. 한편 우리시는 지역 주력산업 위기와 혼란한 정국으로 얼어붙은 민생경제와 골목상권에 온기를 불어 넣고 시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연초 600억 원 규모의 포항사랑상품권을 10% 할인된 가격에 조기 발행해 연말연시 위축된 소비를 진작시키고 소상공인을 위한 특례보증 재원을 2000억 원 규모로 확대 조성해 소상공인의 경영안정을 도모할 방침이다. 또 교육발전특구와 글로컬대학을 중심으로 청년의 정책 참여와 맞춤형 청년 정책을 강화하고, 교육기관과 협업해 이차전지 인재를 2030년까지 1만 명을 육성해 나가고자 한다. 아울러 시 전체 세출 예산의 70%인 2조 여 원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해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건설업체 수주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 하고있다. 또한 지역경제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도록 관공서, 사회단체 등에 ‘착한 소비’ 활동에 동참해 줄 것을 적극 당부하고 있다.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대들보인 철강과 이차전지 두 주력산업이 하루빨리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 총화전진(總和前進)하는 2025년을 만들어 가겠다.

2025-01-19

행주

어디선가 탄내가 난다. 누가 뭘 태우고 있나보다. 베란다 창을 타고 넘어오나 보다 생각한 나는 보고 있던 TV에 눈을 고정시켰다. 냄새가 점점 더 심해졌다. 퍼뜩 머릿속에 경보기가 울렸다. 벌떡 일어나 싱크대로 뛰어가서 가스렌지를 껐다. “어휴, 또 태웠다.” 빨래 삶는 솥에 행주를 넣고 삶고 있었다. 5~6개의 하얀 행주는 절반이 바닥에 심하게 눌어붙어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폭폭 삶아서 햇볕 아래 말리면 느껴지던 그 뽀송뽀송함이 너무 좋은데. 베란다와 부엌의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래도 매캐한 냄새는 빠지지 않은 채 마음 깊이 가라앉는다. 몇 달 사이 벌써 여러 번 행주를 태워버렸다. 사용해서 닳은 행주보다 태워버린 행주의 수가 훨씬 많다. 오후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갔다. 오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입들이 분주하다. 경험담이 쏟아져 나온다. 한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폰 봤냐고 물었단다. 아이들이 쓰러질 듯이 웃으면서 엄마가 지금 폰들고 전화하고 있잖아 하더란다. 그런 것도 문제지만 가스불은 큰일이 생길 수 있다며 입을 모았다. 가스 밸브에 타이머를 부착하라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쓰니까 세상 걱정없다고 하면서. 다른 친구는 천행주를 쓰지 말란다. 어느 회사 제품이 좋다며 일회용 행주 쓸 것을 권한다.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천행주 대신 일회용 행주를 쓰면 편하긴 하겠지만 환경오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날 모임 화제는 치매, 경도인지 장애, 건망증 등에서 떠돌았다. 검사를 받아 봐야 한다든가, 아직 치매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자위 섞인 목소리. 서로 아마 건망증일 거야로 결론짓고 돌아서는 뒷모습들이 코끝을 찡하게 눌러왔다. 정말 건망증인가보다. 건망증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기억하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일시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장애의 한 증상이다.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거나, 해야 할 일의 종류가 많은 상황처럼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저하될 때에는 더 잘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나이가 드는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도 늘어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면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퇴행성 질환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에 감별을 위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날 저녁 퇴근한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집에서 탄내가 나지?” 그때까지 환기를 시켰음에도 탄내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 아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타이머를 가스렌지에 부착하자고 한다. 전에도 몇 번 타이머 얘기를 하는데 픽 하고 웃고 말았었다. 이 날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전영숙 시조시인 밤에 침대에 누워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같이 나오던 길이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생활하는 친구는 나오기 전 노트 하나를 꺼내더니 집안 곳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적혀 있는 것이 궁금해 보았더니 집안 점검 목록이었다. 가스밸브, 전등, 멀티탭, 커피 머신 전원 등등. 집안 곳곳에 놓인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일종의 자가점검표였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니 지방에 가다가 불안해서 다시 돌아온 적이 너무 많아 생각해 낸 것이라 한다. 굳이 천행주를 고집하는 내 마음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익숙한 것을 버리기 싫은 마음이 아닐까. 낯섦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익숙한 것은 다루기 쉽고 편하니까. 건망증 또한 익숙함과의 이별 연습 아닐까. 잘 저장되었던 냉장고에서 재료를 하나씩 꺼내면 언젠간 저장된 것이 얼마 남지 않아 느낄 두려움.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익숙함만을 고집하는 건 아닌지. 다들 나름으로 건망증을 이겨나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는 자가점검표로, 또 다른 누군가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모든 것을 메모하는 방법으로. 타이머를 달까 ? 아니면 일회용 행주를 조금 써 볼까? 무엇이라도 시도해봐야겠단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시조시인 전영숙

2025-01-19

독감 공포와 비타민 C

우정구 논설위원 비타민C 부족으로 발병하는 괴혈병은 인류가 역사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사람을 괴롭혀온 질병이다. 괴혈병이라 이름을 붙인 것처럼 원인도 모르고 치료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16∼18C 대항해 시절, 선원들의 최대 고민은 오랜 항해 중 발병하는 괴혈병에 대한 공포다.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 무렵 배에 탄 선원 160명 중 100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항해 중 선원들은 피부가 탄력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지며 입에서 피가 나는 증상을 보였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비타민C는 인체의 환원제로서 콜라젠의 합성효소 활성화 등에 있어 필수적인 성분이다. 귤이나 사과 등 과일과 여러 채소류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성분이다. 일부 동물은 비타민C를 체내에서 스스로 합성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1753년 영국 해군이 식사 환경이 비교적 양호한 고급 선원한테는 괴혈병이 발생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후 괴혈병과 비타민C와의 관계가 정확히 규명된 것은 1900년대에 들어서다. 1937년 비타민 C를 발견한 헝가리 출신의 알베르트 스젠트죄르지는 노벨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비타민C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우리의 건강을 지켜준다. 특히 우리 몸의 대사활동이나 면역체계, 세포분열 등에 영향을 준다. 면역체계를 강화해줌으로써 독감과 같은 질병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독감이 대유행하고 있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C를 충분히 섭취해 독감 공포에서 벗어나 보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1-19

시대의 도끼질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1904년 1월 17일 초연된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장막극 ‘벚나무 동산’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86세 먹은 늙고 병든 하인 피르스가 벤치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다.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리서 소리가, 끊어진 현(絃)의 구슬픈 소리가 들린다. 정적이 다가온다. 그리고 동산 먼 곳에서 도끼로 나무 패는 소리만 들려온다.’ 살아있지만, 물화(物化)돼 버린 늙은이는 미동도 없어서 무대는 텅 비어버린 것 같다. 인간이 사라진 무대를 채우는 것은 소리뿐이다. 현악기의 줄이 끊어진 듯한 소리를 뒤이어 정적이 찾아들고, 정적을 이어서 나무를 베어내는 도끼질 소리가 들린다. 무대는 점차 어두워지고, 서서히 막이 내린다. 극작가 체호프의 최후 대작 ‘벚나무 동산’은 그렇게 끝난다. 백과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거대한 벚나무 동산을 장사꾼 로파힌에게 팔아넘긴 귀족 여성 류보피 안드레예브나는 도망치듯 파리로 떠난다.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지만, 그녀에게는 동산을 지킬 능력도 그럴 의지도 없다.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 애인이 기다리는 파리로 가려는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충성스러운 하인 피르스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자랑스러워했던 벚나무 동산은 다차로 만들어질 것이어서 속물적인 로파힌은 서둘러서 벚나무를 베어내고자 한다. 여기서 도끼질 소리는 귀족이 대표하는 토지 자본이 상인이 대표하는 상업자본으로 이동하는 상징적 기호다.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하고, 신흥 부르주아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는 의미도 도끼질 소리에 담겨 있다. 시대와 체제의 변화 양상을 체호프는 소리 하나로 단출하게 표현하는 놀라운 능력의 극작가다. 이 장면에서 연구자들은 부조리극의 단서를 찾아낸다. 인간과 인간의 언어가 소멸하고, 오직 사물의 소리가 지배하는 공간. 인간의 갈등과 대립이 완전히 사라짐으로써 무대의 본질이 소멸한 그곳에 도끼질 소리만 들리는 부조리한 상황을 포착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시대는 생명을 다하고, 전혀 이질적인 시대가 다가온다. 해마다 겨울이면 나는 장작을 만들 요량으로 도끼질을 한다. 3∼40분 도끼질을 하노라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물성(物性)이 다른 까닭에 숱한 도끼질에도 끝까지 저항하는 끈질긴 나무도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우리 속담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임을 확인한다. 공든 탑도 때로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의 집념으로 묵직한 쇠도끼로 질긴 등걸을 내리친다. 어떤 나무는 끝까지 버티며 자신의 모양새를 끝내 유지한다. 이런 때에는 도끼질을 멈추고 나무에 축하 인사를 건넨다. ‘그래, 네가 이겼구나.’ 50일 가까이 진행되는 내란 사태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도끼질이 어설픈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총력을 다해 저항하는 내란 수괴와 졸개들의 저급하고 추악한 행악질에 우리가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악의 본산과 잔당은 뿌리까지 뽑아 척결해야 하는데, 우리 도끼날이 무딘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맵고도 통렬한 도끼질을 염원한다.

2025-01-19

제품에 가치를 더하는 힘, VE 활동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VE(Value Engineering) 활동을 통해 2023년 적자기업에서 2024년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한 포스코 베트남(POSCO Vietnam) 법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법인은 베트남 남부 붕따우에 있는 포스코의 대표적인 현지 생산기지이다. 지난 2006년 11월 15일 설립된 이 법인은 FH(풀하드) 50만톤(t), 냉연강판 70만톤(t)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2023년 저가의 중국산 냉연 제품이 베트남 시장에 유입되면서 이 기업도 경영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제품 판매가는 낮아졌는데, 원가 비중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어 팔면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었다. 2024년 임원진은 고민 끝에 VE 기법을 도입하였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여 큰 성과를 얻게 되었다. VE는 1947년 미국 GE사의 로렌스 D. 마일즈가 창시했다. 당시 석면이 전면 금지되는 ‘석면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벨트 컨베이어의 석면 바닥재를 대체할 재료를 고민하던 중, ‘더 싸고 더 좋은 대체 재료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제품의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원가가 저렴한 종이 불연 바닥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 성공을 계기로 VE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V(Value) = F(Function)/C(Cost)란 공식이 유명해졌다. VE는 가치(V)를 높이는 활동이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능(F)을 높이던지, 비용(C)을 낮추든지 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제품의 기능(F)은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비용(C)을 최소로 하는 원가혁신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법인은 VE 활동으로 제조 가공비 중 재료비, 경비, 외주비를 세분화한 후, 공장 운영에 큰 비용을 차지하는 전력비, 연료비, 운전 재료비, 포장 재료비 등 4가지 항목을 집중적으로 개선했다. 이를 위해 전력의 76%를 차지하는 유틸리티 비용, 연료의 80%를 차지하는 NG 사용량, 운전 재료비의 51%를 차지하는 압연유 사용량, 포장 재료비의 52%를 차지하는 보호판 사용량을 절감하기 위한 워크숍을 실시해 총 225개의 문제점을 발굴하고, 이 중 49건을 집중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톤(t)당 제조 가공비는 15.4% 개선되어 흑자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VE 활동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에는 첫째, 전원이 원가절감의 절박함을 공감하고, 제조원가를 세분화하여 고비용 항목에 집중, 둘째, 고비용 항목의 낭비를 발굴하고 과제화하여 직책자가 직접 과제를 수행, 셋째, 좋은 아이디어가 사양되지 않도록 임원의 빠른 의사결정을 내린 점이다. 원가절감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 고객은 물건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사는 것이라는 기업의 관점 전환이 필요하며, 값싸고(C), 좋은 기능(F)의 제품을 고객에게 공급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경영인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VE 활동은 기업 경쟁력 확보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 활동을 통해 ‘하나를 팔아도 이익이 나는 강한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25-01-19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유영희 작가 지난주 우연찮게 두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 한 모임에서 A가 말한다. “이번에 젊은 여자들이 너무 나서서 탄핵을 주장해서 민주당 지지를 끊었어요.” B가 묻는다. “20대 여자들이 광장에 나오는 것과 민주당 지지가 어떤 관계가 있어요?” “민주당이 지나치게 페미니즘을 내세워서 20대 남자들이 국힘으로 갔으니까요.” “탄핵을 반대하시나요?” “그건 아닌데 20대 여자들이 꼴 보기 싫어요.” 다른 모임에서 C가 말한다. “양쪽이 너무 극단적이에요. 상대에게도 일말의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면 좋겠어요.” 그러자 D가 반박한다. “그런 양비론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확한 좌표를 찍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서 가장 약자의 입장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약자는 경호처 직원이라고 어느 문화 셀럽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경호처 직원 입장에서 보면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두 모임에서 이 대화는 한두 번 더 왔다 갔다 하고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원래 모임의 주제가 아니기도 했고, 두 모임의 구성원들이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는 편이라 아마도 더 이야기하다가 불편해질까 봐 서로 조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관계일수록 논쟁을 통해서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한 책이 눈에 띄어 냉큼 손에 넣었다. 아리안 샤비시의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라는 책인데, 원제를 보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논쟁하기’이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몇 가지 이슈를 제시하고 그런 이슈가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논쟁 당사자의 입장을 세세하게 설명하면서도 그 이슈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A는 페미니즘을 내세우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며느리 때문에 서운함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삭이느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고 D는 야당 쪽 정치 활동한 경력이 있다. 한두 마디로 툭 나오는 어떤 정치적 견해라도 그 기저에는 오랜 세월 쌓인 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주제로 모인 경우, 갑자기 나온 몇 마디 말로 생각이 바뀔 수는 없다. 대립되는 두 입장이 논쟁을 통해서 반드시 의견의 일치를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논쟁을 하다 보면, 나의 주장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 주장의 배경과 의미를 이해하게 될 수 있다. 그 정도만 되어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룰을 가지고 긴 시간 논쟁해야 한다. 며칠 전 어떤 정치인이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시간제한 없는 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을 보았는데, 같은 맥락이다. 아리안 샤비시의 말처럼,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이 인격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기본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부터 진지하고 성숙하게 논쟁하는 기회를 피하지 말아야겠다.

2025-01-19

‘개소리에 대하여’

노병철수필가 ‘On Bullshit’라는 수필이 있다.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가 20년 전에 쓴 책이다. 우리나라에선 ‘개소리에 대하여’로 번역되었다. Bullshit은 헛소리, 허튼소리로 점잖게 번역이 되는데 이 책은 조금 과격하게 ‘개소리’로 번역하고 있다. 이 책에 요지는 거짓말쟁이(liar)와 개소리쟁이(bullshitter)를 구분한다. 거짓말은 진실을 알고 상대를 속이는 것이고 개소리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소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조차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말로 ‘아니면 말고’식이다. 종이신문과 몇 안 되는 공중파 방송에 의해 정보를 전달받던 시절에 우리는 참과 거짓을 언론에서 표현한 그대로를 믿었었다. “신문에 났어.”라는 이 한마디로 모든 논쟁은 종결됐다. 따라서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명감이 있었고 불의에 항거하는 기개가 남달랐다. 그게 기자정신이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 결과물을 기사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타협이란 것이 없었다.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기자가 쓴 기사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권력의 감시자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였다. 언론이 입법, 사법, 행정의 뒤를 이은 제4의 권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은 변하고 언론도 변했다. 권력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쏟아내고 권력을 향한 용비어천가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언론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잘 예로 드는 것이 나폴레옹 이야기다. 유폐돼 있던 코르시카를 탈출해서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해 오는 상황에 따라 그를 지칭하는 단어가 식인귀, 괴물, 폭군에서 나중에는 ‘황제 보나파르트 폐하’라는 극존칭으로 변하는 아부 근성을 말한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주는 속칭 ‘빨아주는 기사’를 생성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거짓 기사에 놀아났다. “당신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보가 없는 사람이다. 당신이 신문을 읽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정보를 얻는 사람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자 정보는 메이저 언론만 가질 순 없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정보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사건의 사진이 몇 분도 되지 않아 사진으로 전송되어 버리고 주요 메이저언론만 장악하면 국민의 생각도 바꿀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은 군사정권 종식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그 한 예가 이번 계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계엄군의 행동을 안방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건을 입맛에 맞게 덮으려야 덮을 수가 없게 됐다. 그럼에도 왜곡 보도는 여전하며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 선동과 날조,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사용한 기사 등 질이 낮거나 자극적인 기사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유튜브 같은 매체도 언론 역할을 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방송을 해댄다.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자극적인 것을, 화면을 만들어 송출한다. 사람들의 관심도를 높여 돈을 벌기 위해 거짓 뉴스가 판을 친다. 이런 잘못된 기사나 방송에 현혹되어 자칫 어설픈 정치 논단까지 일삼게 되고 만다. 정말 주의할 일이다.

2025-01-16

지는 햇살이 만든 햇귀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한파(寒波)를 밀고 내려오던 동장군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한 지난 14일 늦은 오후, 평년 기온을 회복한 겨울 바닷가를 나가보았다. 영일대 난간에 기대어 서쪽을 보니 붉은 윤슬을 가르며 제트 보트가 달리고 그 건너 해변에는 저녁나절의 산책을 즐기는 모습들이 어른댄다. 파도가 쉴새 없이 밀려오는 넓은 모래밭을 걸으면 물결이 밀려왔다 간 흔적 위에 많은 고둥 껍질이 예쁘게 깔려있고 흰 갈매기들이 몰려다닌다. 그 가운데 모이를 던져주는 소녀 주위에는 수십 마리의 갈매기 떼들이 몰려드는데 부근을 지나는 내 얼굴을 스치듯 하여 놀라기도 한다. 지난해 무안공항 참사의 원인이기도 한 갈매기 떼, 그러나 겨울 해변에서 활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새떼들이다. 해변에 찍힌 갈매기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무안공항 참사를 떠올려본다. 대형 참사가 나면 으레 ‘시체 팔이’를 하던 정치집단들이 희한하게도 이번 대형 인명 참사에는 조용하니 참 신기한 일이다. 입지조건이 좋지 않은 해변에 공항 건설을 한 것부터가 잘못이고 운항 허가도 졸속이라고 하는데도 아무런 투쟁이 없다니 어쩐 일인가.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며 천천히 걸어서 모래밭 끝 방파제까지 가서 바위에 앉아 쉬려는데 뒤쪽에서 붉은 햇살이 비친다. 저녁나절인데 웬 일출인가 하고 동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바다 건너에서 해돋이처럼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환호공원 위에는 스페이스워크가 어깨에 힘주어 과시하는 듯 우람한 자태가 있고 그 옆 고층아파트의 넓은 유리 벽이 지고있는 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겨울의 저녁녘에 해가 돋을 때의 빛 즉, 햇귀를 보는 듯한 신비로운 마음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금새 그 모습은 사라지고 스페이스워크 위로 보름달이 떴다. 마침 보름쯤이라 일몰과 월출 시간이 비슷하게 오후 5시 30분경이었기에 묘한 느낌이었다. 조금 어둑해지고 갈매기 떼들도 자취를 감출 때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마음도 씻었다. 15일 아침, 윤 대통령이 체포되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3일 만에 공조수사본부의 억지스러운 행위로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유혈 충돌 없이 재집행 6시간 만에 완결되는 현장을 보면서 저녁의 햇귀 풍경을 떠올렸다. 계엄의 정당성을 떠나 그렇게나 완강하게 버티더니 왜 관저의 뒷문으로 잡혀 나갔을까? 자신 있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국민 앞으로 나와 계엄의 속뜻을 피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는 햇살도 아파트 유리에 비치면 빛나는 햇귀라도 보여줄 수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면, 트럼프 취임, 동유럽 전쟁,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 등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가 산더미인데 걱정이다. 햇귀 현상이 사라진 힘 빠진 저녁 바다를 되돌아오면서 보니 모래 위의 발자국은 지워져 버렸고, 방금 지나온 발자국도 밀려오는 물결이 지워버린다. 시골집에 노란 납매가 한창 피어 향기를 뿌려준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꽃이 더 향기롭다고 하니, 우리도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면 더 밝고 힘찬 국가가 되리라 믿는다.

2025-01-16

경주시 공직자 임용식

우정구 논설위원 익선관(翼善冠)은 한국민속대백과 사전에는 조선시대 왕, 왕세자, 왕세손 등이 곤룡포를 입을 때 쓰는 관모(官帽)로 설명한다. 일설에는 중국 당 태종이 관모로 제정했다는 말도 있고, 당시 신라 등에서도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도 있다. 익선관의 모양은 2단으로 턱이 지고 앞보다는 뒤쪽이 높다. 뒤에는 매미 날개 모양의 대·소각(小 角) 2쌍이 위쪽을 향해 달려 있다. 조선시대 왕들이 사용했고 고종이 왕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익선관을 쓴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공직자에게 익선관은 청렴의 상징이다. 익선관에 달려 있는 매미의 날개가 곧 청렴을 뜻한다. 유래는 중국 서진의 시인 육운의 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육운은 매미에게는 군자가 지켜야 할 5가지 덕목이 있다고 했으며 그를 선충오덕(蟬蟲五德)이라 불렀다. 선충오덕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은 선비 갓끈과 닮아 문(文)이요, 매미는 오로지 맑은 이슬과 수액만으로 살아가니 청렴의 청(淸)이다. 또 농민이 애써 일군 곡물을 탐하지 않아 염치가 있다 하여 염(廉)이며,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만 생활하니 검소한 검(儉)이다. 한 여름이 지나면 죽을 때를 알고 있으니 믿을만 해 신(信)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천년도시 경주시가 신입 공무원 임용식에 신라복과 청렴을 상징하는 익선관을 착용케 하는 이색적인 임용식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신라 천년고도의 도시 특징을 대외에 알리고 공무원의 청렴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경주시의 이색 임용식이 APEC 개최도시 이미지와 잘 어울려 사람들의 눈길을 잡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16

대구·경북 관광객을 유혹할 음식들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나는 천하의 장돌뱅이다. 바람 따라 떠도는 떠돌이다. 전국 방방곡곡 ‘가슴에 사랑 안고 달 가듯’ 간다. 올해는 ‘경북 방문의 해’다. 동해선 등 5개 철도 노선이 동시 개통된다. 태백산맥의 수려한 자연경관, 청정 해변과 금강송 숲 어우러진 동해안, 고즈넉한 전통이 깃든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면 시름이 사라지고 마음 부자가 된다. 관광 프로그램과 콘텐츠, 그중 첫 번째는 친절이고 두 번째는 식도락이다. 음식만큼 뇌리에 남는 것이 없다. 어느 지역을 다니든, 주민들 생각하며 8색조(色調) 수선화를 준비한다. 자식 교육비 걱정하지 않고, 가끔 부부 손잡고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어서다. 전라도는 양념류 채소와 젓갈, 유배 문화 영향으로 음식이 발달했다. 경상도 음식은 담백하다. 내륙으로 가면 짜진다. 자식들 오랜만에 집에 올 때 먹이는 마음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자. 나를 울린 대구·경북 8가지 음식이다. 관광 코스 식단 메뉴에 넣자. 또 수도권 등 전국에 식당을 열어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고, 지역 이미지메이킹을 하자. ① 소고기: 경북에서 가장 강한 음식 재료는 소고기다. 특히 영주 등 소백산 기슭에서 자란 소고기 맛은 살살 녹는다. 대구에는 광주 생고기에 해당하는 ‘뭉티기’가 있다. ‘뭉티기’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이면 부러울 게 없다. 무를 듬뿍 넣고 대파를 송송 썰어 넣은 빨간 소고기 국도 참 맛있다. ② 고등어: 고등어에 굵은 소금을 뿌려 간 맞추는 ‘간잽이’는 예술가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보들보들해 자반만으로도 밥 한 공기가 부족하다. 고등어 무조림·묵은지 찌개에 또 한 공기다. 안동에 가면 헛제삿밥, 안동 국시, 안동찜닭에 안동소주로 천국에 온 듯하다. ③ 꽁치: 구룡포에 가면 쫄깃 쫀득한 ‘과메기’ 맛에 취해 인생이 익고 사랑이 익는다. ‘과메기’를 세 번 먹으면 거친 겨울 바다도 두렵지 않다. 꽁치는 회로도, 연탄불 찌개로도 끝내준다. 포항 바닷가에 홀로 앉아 ‘영일만 친구’를 부르면 날이 새고 해가 뜬다. 전남 강진·해남지역에서 나는 김국을 곁들이면, 매출이 두 배로 는다. ④ 물곰: 영덕 강구항이나 죽변항 바닷가 식당에서 파는 물곰 지리국은 지난밤 음주로 인한 쓰린 속을 달래는 데 최고다. 전주 콩나물 해장국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술꾼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⑤ 돌미역: 울진과 영덕 등의 돌미역은 산모의 건강 회복에 최고지만, 맥주 안주로도 좋다. 자연산 홍합으로 미역국을 끓이면 바다를 통째로 먹는 기분이 든다. 돔이나 민어 미역국도 소고기 미역국보다 더 맛있다. ⑥ 닭: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냉장고가 없던 시절, 닭고기를 장(醬)에 보관했다. 오래 묵은 장에서, 장을 먹은 닭을 꺼내어 떡국을 끓이면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 이유를 알 수 있다. ⑦ 송이버섯: 강원도와 더불어 경북 북부 지역에서도 송이버섯이 꽤 난다. 맛과 향기, 그리고 약효가 절묘하게 결합된 최고의 식품이다. 소고기 송이구이도 귀하지만, 샐러드로 만들면 가을 별미가 된다. ⑧ 토란: 토란은 땅의 달걀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식품이다. ‘토란 속대 숙회’도 별미다. 닭고기를 삶은 육수에 알토란을 넣은 뒤, 닭고기를 결대로 찢어내어 삶은 알토란을 돌려 담으면 고급스럽고 몸에도 좋은 음식이 된다.

2025-01-16

계단을 오르는 여자

정미영 수필가 매서운 겨울비가 아파트 단지를 역동적인 빗물체로 풀어헤친다. 빗방울이 굼뜨게 내리는 틈을 타 집을 나선다. 퇴원한 후,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누워 지내는 것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맨 꼭대기 층에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한참이나 기다린다. 무리한 운동보다는 걷기부터 시작해야지. 동 입구에 다다른다. 그칠 줄 알았던 빗줄기가 더 굵어져 땅 위로 곤두박질을 거듭하고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나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려니 아쉽다. 그 순간 열린 비상문 사이로 계단이 보인다. 16층에 있는 나의 집으로 이어진 길을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밟는다. 신음을 토하고 숨 고르기를 반복했지만 계단 오르기를 멈출 수는 없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계단을 오르는 여인’이 있다. 그는 여인이 오르는 계단을 통해 삶의 여정과 노력, 끊임없는 도전과 성장을 담아내고 내면적인 탐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고 한다. 나는 오늘, 마치 고흐 그림의 모델이 된 듯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내 삶의 여정을 나타내며, 오르는 과정은 인생을 건너가는 나의 노력과 도전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남편이 심장 시술을 하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즈음 나는 수필가로 등단을 했고 논술 선생님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몸져누운 남편을 바라본 뒤, 집에 있는 컴퓨터로 ‘논술생 모집’이라는 광고 전단지를 만들었다. 나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대용량 프린트기를 구입해서는 용지를 출력했다. 그러고는 어린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몇 날 며칠 계단을 오르내렸다. 전단지를 1500세대 현관문에 일일이 붙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요령이 없던 탓에 다리가 붓고 팔이 무척이나 아팠다.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던 내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계단을 오르내리면 운동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한 푼이라도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어렵고 힘든 순간이었다. 계단은 내가 성장하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의 용기와 의지를 자주 시험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여기, 계단 위가 맞는지, 현실적으로 자각할 때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찾아들었다. 한번은 복도 창문으로 감빛 노을이 번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따뜻한 저녁밥을 해놓고 아이들을 기다려야 하는 시각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더욱 급해져서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다녔다. 눈앞에 펼쳐진 계단은 나에게 긴 여정을 거쳐야만 휴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때론 두려웠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 보았다. 가족은 항상 내 곁에서 위안을 주는 존재고 나를 앞으로 계속 걸어가라고 힘이 되어 주었다. 가족의 사랑은 마치 그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넘어지지 않게 나를 비춰주던 빛과 같았다. 그 빛을 따라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며 성장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여정의 막바지에는 가족의 사랑이 깃든 따뜻하고 안정감을 주는 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단지를 붙인 것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자 용기의 발현이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이전에 전업주부로서 살던 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한 명의 학생과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생님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드디어 시작했다. 나는 지금, 쉬엄쉬엄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다양한 형상의 계단을 무수히 마주할 것이다. 그 가파른 여정은 끝이 없겠지만 어려움과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나 자신이 허방을 딛지 않도록 서두르지 말고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야겠다.

2025-01-15

죽여줄게요

죽도시장 새벽 세 시 자연산 잡어를 받아 여섯 시에 좌판 아지매들에게 도매로 넘기고 나서 해장술 하면 하루의 생업은 대충 마무리 그러나, 수줍게 한 할마시 다가오셔 아재, 혹은 죽은 거, 경매 안 되는 거 좀 주면 안 되것나 망설임 없이 즉답(卽答)한다 알았니더, 슬그머니 골목 뒤에 가서 남은 활어를 기절을 시키거나 아예 분질러 선뜻 팔라고 내어준다 시장의 교란이긴 하나 물러섬이 없다 경쟁은 비교의 우위가 아님을 몸으로 설파 뜻 모를 살생으로 하루를 구축함 오만 원이 이만 원이 되어도 그 잔잔한 거래, 그것이 적절한 환희가 된다 먹고 사는데 지름길이 있는가 직선이 곡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리 없다. 새벽 어시장 경매장에는 집어등을 보고 몰려드는 은빛 찬란한 오징어처럼 싱싱한 사람들로 눈이 부시다. 그렇게 삶은 치열하게 진행이 된다. 나는 경매가 정직한 거래라고 생각하지만 그 효율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편견이리라. 경매를 떠나 간혹 상식을 벗어나는 이상한 거래를 하는 후배가 있다. 그는 스스로 약자이면서도 더더욱 약자의 편에서 살려고 한다. 그는 시장을, 세상을 아름다운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1-15

달력 미신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에서 보내온 달력을 받아본다. 집안 어딘가의 빈 벽에 붙여둔다. 달력으로서의 효용성보다 그림이나 사진에 눈길을 줄 때가 더 많아 달이 바뀌어도 미처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작년 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청계사의 절 달력과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달력을 얻었다.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발행처별로 달력에 기재돼 있는 날들이 다르기도 하려니와 흥미로워 나란히 걸어두고 비교해 봤다. 절의 달력에서 을사년, 서기 2025년인 올해가 불기로는 2569년, 단기 4358년임을 알 수 있었다. 매일의 날짜 아래 육십갑자가 띠 동물 그림 옆에 쓰여 있다. 제삿날에 제문 쓰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성도일’, ‘관음재일’, ‘지장재일’, ‘약사재일’과 같은 날을 연꽃그림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이들 재일은 매월 재를 올리는 날인가 보았다. 불교의 기념일은 가톨릭교의 기념일에 비하면 크게 많지 않은 편이다. 예를 들면 1월 한 달 중에서 6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념일이어서 솔직히 놀랐다.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일은 ‘성 대 비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3일부터 12일까지는 5일의 ‘주님 공현 대축일’ 전후에 치르는 의식의 날인 듯 보였다. 다른 달에도 기념일들이 빼곡했는데 가톨릭 역사의 그 수많은 성인들을 모두 섬기는 듯했다. 그 모든 날을 기억하려면 달력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두 달력을 유심히 관찰하고 읽으면 보통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종종 오늘은 무슨 날이지? 들여다 보곤 한다. 며칠 전, 휴대폰에서 “달력 구하러 오픈런”이란 기사에 눈길이 가서 읽었다. 은행 달력을 얻으러 은행 앞에서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고,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은행 달력을 사겠다는 글이 올라온다는 기사였다. 스마트폰이 달력과 시계의 기능을 다하는 21세기에 웬 레트로 감성인가 했는데 그 내막을 알고 보니 헛웃음이 난다. 달력미신이란다. 은행 달력은 돈을 부르고, 병원이나 약국, 제약사의 달력은 건강하게 한다며, 소방서 달력은 화재를 예방하고 보험사 달력을 걸어 두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이 만들어지고 미신이 되어 이와 같은 달력 품귀라는 사회적 현상이 생겼단다. 대전의 유명한 빵집 성심당의 달력을 얻어 걸어두면 행운과 먹을 복이 들어온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그래? 우리 집에 있는 저 달력은 어떤 복을 줄까? 절의 달력은 부처님의 보살핌이니 좋다. 가톨릭달력은 병원 달력이니 건강은 확보되었다 치고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의 달력은 공부를 잘하게 한다고 소문내 볼까? 재물복까지 욕심이 났다. 서울에서 하나은행지점장으로 있는 이질녀에게 메시지를 넣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기사 얘기를 했더니 이모 달력 필요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지. 며칠 후 도착했다. 오픈런으로도 못 구한다던 바로 그 은행 달력이었다. 한 장에 3달이 펼쳐진 달력, 절이나 성당의 기념일이 없는 대신 24절기와 음력이 공손하게 새겨진 유난히 희고 깨끗한 달력에 나의 이벤트를 빼곡하게 채워 넣어 우리 집만의 달력을 만들어 볼까 한다. 이질녀 덕에 재물복까지 확보했으니 든든하다.

2025-01-15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 잡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는 생명 활동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율신경계는 크게 교감신경 과 부교감 신경 두 가지로 나뉜다. 이 두 신경은 마치 시소처럼 상호작용하며 신체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는 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역할과 이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교감신경은 우리 몸이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 상황에선 심박수가 증가하고 호흡이 빨라지며 혈압이 상승하는데, 이러한 반응을‘투쟁-도피(fight-or-flight)’ 반응이라고 한다. 이는 생존에 필요한 순간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반면 부교감신경은 몸을 안정시키고 회복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소화를 촉진하고 심박수를 감소시키며, 신체가 휴식과 재생 모드로 전환하도록 돕는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될 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깊은 잠에 들 수 있다. 따라서, 교감신경을 낮추고 부교감신경을 약간 활성화 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겐 최적의 건강법이 될 수 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인이 겪는 과도한 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여러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잦은 스마트폰 사용, 불규칙한 생활 패턴 등이 교감신경을 지나치게 활성화시킨다. 이로 인해 만성 피로, 불면, 소화 불량, 성인병인 고혈압, 면역력 저하와 같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지나치게 우세할 경우에는 무기력감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신경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관리에 매우 중요하다. 유산소 운동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준다. 달릴 때는 몸이 힘들어도 정신은 현재의 심란함을 잊어버리게 되며, 달리고 나서 머리가 맑은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뛰게 된다. 또한, 요가와 명상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또 깊고 느린 복식 호흡은 즉각적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준다. 따라서 적당한 유산소 운동과 명상은 현대인들이 꼭 해야 할 필수 건강 관리법이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카페인과 당분 섭취를 줄이고,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여 신경계를 안정시키면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나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면 스트레스가 줄고 수면의 질이 향상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 전반적인 신체와 정신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유산소 운동, 명상, 취미생활 등의 작은 생활 습관의 변화를 통해 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위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2025-01-15

다시 시작하는 나라

장규열 고문 지난 2년 반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특기할 만한 시기였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자랑하던 나라가 갑작스럽게 어려움에 처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나라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민주주의의 기본 틀이 흔들렸고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이 시기는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안겨주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기회가 아닌가. 대한민국은 지난 60여 년간 놀라운 경제적, 정치적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다. 그랬음에도, 지난 두해 반동안 우리는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와 사회적 신뢰의 붕괴를 목격했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는 이 나라의 파행을 목도하면서 상당한 혼돈을 경험했으며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의아하게 여겼다.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 거듭되는 거짓말과 권력남용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권 전반에 대한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공정과 정의를 내세웠던 정치인이 이를 배신했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패배감은 국민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겼다. 우리는 흐르는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교훈을 건져올려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멈춰 있을 수 없으며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와 공적관념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기본은 국민의 신뢰가 아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회복해야 한다. 법치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공정한 사법 시스템과 권력의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지난 동안 우리는 극단적 대립과 분열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고,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소외된 계층과 낙후된 지역을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경제 성장의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소중함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급격한 기술변화와 위협적인 환경위기로 기존의 경제모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첨단기술 산업에 주목하고 투자하며 청년과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경제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장려하는 교육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한국의 전통과 현대성을 융합하는 방식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었다. 나라가 직면한 문제가 작지 않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가진 국민이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은 더 이상 과거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세대와 세계적 흐름을 고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는 공정한 원칙 위에서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2025-01-15

대통령의 뒷모습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5일 오전 10시 33분.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해 체포됐다. 강제력을 동원한 국가수반의 체포는 이 나라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용산 관저에서 과천 공수처로 이동한 여러 대의 차량 중 한 대에서 내린 윤 대통령은 포토라인을 만들고 기다린 기자들을 따돌리고 후문을 통해 서둘러 조사실로 향했다. 그 짧은 순간, 언론사의 카메라가 대통령의 뒷모습을 찍었다. 국가 의전서열 1위의 인물이 멀쩡한 정문을 두고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조급하게 ‘뒷문’으로 들어가다 ‘뒷모습’이 찍힌 사진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역사의 기록으로 선명하게 남을 터. 분명 자랑스런 장면은 아닐 듯하다. 비상계엄 선포,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과 탄핵 의결,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집회로 연일 소란스러운 대통령 관저 일대, 최근 시작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 지난 연말과 올 연초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했다. 윤 대통령에 관한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은 두 편으로 갈려 현재도 갈등과 반목을 지속 중이다. 화합 속에서 희망과 꿈을 설계해야 할 새해 벽두와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 서글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떠올려보면 한국 대통령 중엔 비극적인 말년을 보낸 이들이 적지 않다. 이승만은 하와이 요양원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에 쓰러졌으며, 노무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는 짧지 않은 감옥생활을 했다. 오늘 지켜본 ‘윤석열의 뒷모습’이 또 다른 한국 대통령 한 명의 비극을 예고하는 시그널은 아닐지. 국민들은 답답하고 딱하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25-01-15

경상북도 무형유산이 된 포항흥해농요

(메) “모시야 적삼 반적삼에 분통 같으나 저 젖 보소” (받) “많이야 보면 병이나 되고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 이 노래는 포항시 흥해읍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른바 흥해농요 ‘모심는소리’의 한 구절로 초여름 물이 질퍽한 논바닥에서 펼쳐지는 남녀 간의 사랑노래다. 모내기 논에서 일렬로 선 일꾼들이 모를 심을 때 한 쪽에서 선창으로 “모시야 적삼 반적삼에 분통 같으나 저 젖 보소”하고 메기면 다른 한 쪽에서 후창으로 “많이야 보면 병이나 되고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하고 받는다. 바로 이 포항흥해농요가 최근 경상북도 무형유산이 됐다. 경상북도는 지난해 12월 19일 포항흥해농요가 경상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음을 고시(제2024-503호)함으로써 흥해농요는 포항지역 전통민속예술로서는 처음으로 무형유산이 된 것이다. 흥해농요는 무엇이며, 어떤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농요란 농사에 관계되는 노래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농경시대 농민들이 부르는 민요는 농삿일을 하는 과정에서 부르지는 않더라도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농한기에 휴식을 위해 놀면서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농민들이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가 어떤 식으로든 농사와 연관되어 있다. 포항 흥해는 예로부터 농사가 아주 발달한 곳이다. 2018년 현재 흥해읍의 농경지 면적은 동해안 최대 규모이다. 이 중 벼농사 면적 역시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곡창지대이다. 저지대가 많고, 곡강천 상류의 대형 저수지에서 공급하는 풍부한 용수가 있기에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 점은 농요가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들판에서 일을 할 때 농사꾼들은 힘을 쓰는 과정에서 동작을 맞추기 위해, 또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 일에 맞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게 농요인데, 넓은 들을 가진 흥해에는 예부터 다양한 농요가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전국 대부분의 농촌이 그렇듯이 1970년대부터 농업의 기계화와 이농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농요는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농사 현장에서는 더 이상 노래가 불리지 않게 되었고, 가창자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그들의 고령화와 함께 ‘전승 단절’이라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흥해농요는 1990년대초 농촌인 북송리와 어촌인 죽천리를 중심으로 학계의 채록이 이루어진 덕분에 다행히 음원이 보존되어 왔으며, 그 일부가 ‘포항지역 구전민요’(박창원, 1999)라는 책을 통해, ‘소리로 듣는 포항의 민요’(박창원, 2015)라는 음반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 자료에는 북송리의 소리꾼 김선이·최화식 선생의 노래가 실려 있다. 김선이(여, 1927년생) 선생은 구룡포에서 태어나 17세 때 혼인해 북송리에 정착했다.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나물캐는소리’, ‘시집살이소리’, ‘치이야칭칭나네’ 같은 여성들이 부르는 민요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노래를 부르는 분이다. 목소리가 맑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음정과 발음, 감정이입으로 사람들이 사랑을 받아 왔다. 현재 95세로 생존해 있는 흥해농요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흥해농요의 살아 있는 전설 김선이 선생. 흥해농요의 또 다른 가창자는 지난 1995년 작고한 최화식(남, 1923년생) 선생이다. 포항 신광면 출신으로 40대에 북송리에 정착했다. 허스키한 음성과 신명나는 소리로 주변의 사랑을 받았다. 북송리 풍물패 상쇠로서 풍물소리 반주에 맞춰 부른 ‘지신밟는소리’는 최고의 절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선이 선생과 남녀 교환창으로 부르는 ‘모심는소리’가 일품이며, ‘물푸는소리’, ‘풀써는소리’ 같은 희귀한 소리도 할 줄 안다. 그러다가 북송리 1세대 소리꾼인 김선이 선생의 지도를 받은 국악인 박현미 씨가 2018년에 흥해읍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포항흥해농요보존회를 결성하여 소리의 보존 및 교육에 나서면서 흥해농요는 전승의 계기가 마련됐다. 흥해농요보존회는 발족 이후 전승자료집으로 ‘어절씨구 흥해야! 흥해의 민요’(2019),‘김선이의 흥해농요(CD)’(2020),‘다시 부르는 흥해농요(CD)’(2021),‘맥을 잇다, 박현미의 흥해농요(CD)’(2022)를 제작하고, 보전·전승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2회(2019, 2021) 개최하였으며, 2022년에 경상북도 무형유산 지정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2023년 9월부터 몇 차례 심사를 거쳐 2024년 12월에 최종 지정을 받았다. 현재 흥해농요는 1990년대초 필자가 채록한 음원을 바탕으로 ‘보리타작소리’,‘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물푸는소리’, ‘논매는소리’, ‘망깨소리’, ‘지게목발소리’, ‘어사용’, ‘과부신세타령’, ‘치이야칭칭나네’, ‘지신밟는소리’ 등을 재현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박창원 수필가 그 중에서 ‘모찌는소리’나 ‘모심는소리’는 메김과 받음에서 끊김이 없는 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삶의 애환이 진하게 스며 있는 나머지 노래들에는 풍농 기원의 세시풍속이 나타나 있는 점, 그리고 흥해의 지명과 사투리 등 지역의 문화적 요소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민속적·학술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흥해농요는 포항흥해농요보존회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흥해읍행정복지센터 강당에서 개최하는 ‘흥해농요교실 무료강좌’를 통해 전승의 맥을 잇고 있다. 앞으로 흥해농요는 흥해 지역뿐만 아니라 포항지역 전체 민요의 채록과 정리, 전승교육, 공연 등을 통해 포항을 대표하는 무형유산으로서의 알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1-14

황금연휴 훈풍이 불까?

우정구 논설위원 정부는 오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내수경기 진작과 관광활성화 등의 긍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설 명절은 임시공휴일인 27일을 포함하면 6일 연속으로 쉴 수 있다. 직장인이 31일 날 휴가를 낼 수 있다면 무려 9일간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드물게 맞는 황금연휴다. 그러나 정부가 의도한 내수진작의 경제효과에 대해 일부에선 엇갈린 반응을 내놓는다. 평일 영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은 휴일이 긴만큼 손해라는 주장이다. 현행법상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임시공휴일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연휴의 양극화를 우려하는 측도 있다. 지난해 설 연휴기간은 4일(2월 9∼12일)간이다. 그럼에도 연휴기간 인천공항을 통해 빠져나간 여행객 수가 무려 100만명이나 됐다. 고향 대신 해외를 선택한 사람들이 전년의 두 배였다. 여행사에는 관광이나 휴양을 위해 만든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이다. 지난해 연휴기간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보면 올해도 해외로 나가는 사람은 작년 못지않게 많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일각서는 정부의 전망과는 다르게 “설 연휴가 길어지면 소비자들이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국내 자영업자들은 내수진작 효과를 얻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특히 계엄사태 후 이어지는 탄핵정국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태여서 설 연휴 경기진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턴가 휴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날을 임시휴일로 지정하는 관행이 생겼다. 내수진작이 목적이다. 정부의 의도한 대로 긴 설연휴가 내수시장을 살리는 훈풍이 되길 바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14

개학 임박… 의대정원 논의 시급하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인구이동이 많은데다 호흡기질환이 유행하는 설연휴를 앞두고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금도 독감이 유행하면서 사망자가 늘어 장례식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지금까지 의료시스템이 버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명절 비상응급 대책을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발표했지만, 환자를 둔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70%가 의정 갈등 탓에 스트레스나 피로감이 크다고 했다. 겨울철에는 특히 초응급환자(중증외상, 급성기 심근경색, 뇌경색 등 전문의 협진이 필요한 환자)가 많아 응급실이 정상 작동되지 않으면 사망자가 속출할 수 있다. 겨울에는 코와 기관지 점막의 방어 능력이 떨어지고, 폐나 기관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세균·바이러스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한다. 최근 독감환자 사망자가 급증하는 것도 상급의료기관의 비정상적인 응급실 운영이 원인일 수 있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의료위기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수련병원과 강의실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정부가 지난주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하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의료계 반응은 냉랭하다. 정부가 언급한 원점협의는 2026학년도 의대정원(2000명 증원포함 5058명)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여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또 사직한 전공의(1만2187명)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수련 특례’와 ‘입영연기’ 조치도 하겠다고 했다. 정부방침에 대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2026학년도부터는 의대정원을 기존(3058명)보다 더 줄이거나 아예 신입생을 뽑지 말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충분히 고려해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의정갈등 해소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공백 상태가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의료시스템 붕괴는 시간문제다. 지난주 치러진 제89회 의사국시 필기시험에는 모두 285명이 응시했다. 응시자 전원이 합격한다 해도 올해 신규 의사 수가 300명을 넘지 않는다. 지난해 의사국시에는 3천231명이 응시해 3천45명이 합격했다. 현재 전공의들이 떠난 수련병원에서는 전문의들의 사직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3~10월 전국 수련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1729명으로, 전공의 이탈 이전인 2023년 같은 기간 사직한 865명에 비해 약 2배 증가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가중된 진료부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외래·입원 환자 진료가 대폭 줄어들면서 수련병원의 경영난도 심각하다. 2025학년도 개학이 코앞에 다가온 만큼 의대정원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2026학년도에 또 2000명 증원되는 것으로 도장이 찍혀버릴 수 있다. 시급성 등을 고려하면 하루빨리 의료계는 정부와 대화 테이블에 앉아 의정갈등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2025-01-14

미래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가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핵심 역량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기술 발전, 고객 요구 변화, 글로벌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직원들 수준이 기업의 격을 만들고 경쟁력의 근간을 이룬다. 기업은 미래 경쟁력을 구축하기 위한 주요 요건과 핵심은 무엇인가. 미래 경쟁력의 주요 요건은 첫째, 혁신과 기술역량이다.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다. 연구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로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둘째, 유연성과 적응력이다.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새로운 트렌드와 고객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성과 ESG 경영이다.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장기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윤리적 경영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넷째, 인재 확보 및 육성이다. 창의적이고 유능한 인재를 유치하고 학습과 성장을 지원하는 기업 문화 조성이다. 다섯째, 글로벌화 및 네트워크 구축이다. 해외 시장 진출 및 글로벌 협력 강화가 경제적으로 국경이 의미가 사라진 21C에 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여 세계 속에서 상장하는 것이다. 여섯째, 고객 중심의 경영이다. 고객이 없는 기업은 존재 할 수가 없다. 고객의 니즈를 실시간 파악하고 제품 기능과 디자인에 반영하여야 한다. 개인화 된 서비스와 데이터를 활용해 차별화 된 가치를 제공하여야 한다. 미래 경쟁력 요건 중 가장 핵심은 인재 육성이다. 기업에서 보면, 생산하는 제품으로 매출과 손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매출과 손익이 좋다고 기업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과거는 직원이 일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아가는 종속의 개념이었다면, 현재는 회사의 비전을 함께 실현해갈 동반자가 되었다. 직원이 회사의 주인이 된 것이다. 좋은 회사는 인재육성 프로그램이 있고, 잘 육성된 인재가 개인 및 회사의 비전을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훌륭한 인재가 조직의 장으로 있으면 회사의 조직과 시스템, 프로세스도 잘 정비되어 간다. 조직과 시스템, 프로세스를 움직이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재를 육성하지 않고 관리만 하는 조직은 기업 성장이 더디고 비효율적이며, 밝은 미래를 보기 어렵다. 조직은 생명체와 같아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신입사원부터 퇴직까지 계층과 레벨에 맞게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신입사원은 하얀 도화지다. 교육 훈련을 통해 어떤 밑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미래의 그림이 그려지고 완성된다. 생산 현장이 다양한 배움터가 되고 내가 습득한 기술과 속도가 내 가치를 말하는 조직문화가 되면 기술혁신과 인재 양성이 곧 기업 미래의 경쟁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2025-01-14

겨울 삽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북풍한설에 개울과 무논은 하얗게 얼어붙고 한낮에도 처마 끝에 고드름이 자라며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들며 오싹 시리게 했다. 물기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물기가 순간적으로 얼면서 쇠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기도 하는 등 혹독한 추위가 있어야 겨울 맛이 나는 듯했다. 변변찮은 방한장구도 없이 구멍 난 양말에 벙어리장갑을 끼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루 종일 무논의 얼음판에서 노는 것이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던지, 지금 되새겨보면 동화 같은 겨울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어렵고 빈한하던 시절, 겨울철의 강추위가 찾아오면 먹고 입는 것조차 모자라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또래들과 곧잘 어울려 얼음을 지치거나 자치기, 팽이치기를 하다가 배고파지면 간식으로 먹는 것이 호주머니에 조금씩 넣어 온 땅콩이나 생고구마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넉넉지 않아 친구들에게 좀 얻어먹거나 즉석에서 닭싸움이나 구슬치기 내기판(?)을 벌여 어쩌다가 이기게 되면 쾌재를 부르며 맛있게 배를 채우곤 했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언덕 위에 올라 매운 바람 속에 연날리기를 즐기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가오리연에 작은 꿈을 실어 보내기도 했었다. 맹추위에 놀이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보일러가 없던 때라 동절기가 되면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일이었다. 소달구지를 끌고 나무하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거나, 또래들과 함께 지게를 지고 마을 주변의 산비탈로 나무하러 숱하게 다니곤 했었다. 키 높이 두배 이상의 검불을 지게에 수북하게 지고 오거나 베어낸 나무 밑동 장작을 한가득 바지게에 지고 오면, 어머니께선 애썼다며 으레 고방의 단지에서 살얼음이 낀 식혜를 한 대접 퍼주시곤 했었는데, 달금 시원하고 쌉싸래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듯하다. 그렇게 산과 들에서 해온 나무로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을 지핀 온돌방에 밤이면 둘러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윷놀이를 하면서 기나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울리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함께 듣거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귀신 이야기며, 어느 마을의 처녀총각 연애담을 시시덕거리며 듣다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깔깔거리며 짓궂은 장난질을 해대기도 했었다. 그렇게 설설 끓는 온돌방에서 정담과 재미로 한겨울을 보내며 차츰 성장했던 것 같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 조향미 ‘온돌방’ 중 추위에 떨며 손발을 동동거리면서도 겨울놀이를 즐기던 동네 꼬마들은 혹독한 추위에 맞서며 또래들과 어울려 끈기를 배우고 인내심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렇게 찬바람과 혹한 속에 내성(耐性)을 길러 풍파의 세상을 맵차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5-01-14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의 휴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나

장은희 대구본사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의 불성실한 직무 수행 논란이 1년을 넘어섰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근무태도와 직무소홀 문제를 지적하며 사퇴를 촉구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다. 윤 청장의 근무태도는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해 말부터 그가 여러 중요한 회의와 행사에 불참하면서 직무소홀 문제가 확산됐으며, 일각에서는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일 열린 동구청 시무식에 윤 청장이 불참하고 신년사를 서면으로 대체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그는 신임 부구청장이 취임식을 하는 자리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윤 청장은 “병가와 연가를 내고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청장이 지난해 연가와 병가를 사용한 일수는 지난 10월 말 기준 66일이다. 연가 21일, 병가는 45일이다. 윤 청장이 쓸 수 있는 휴가는 연가 24일, 병가 60일로 법정 일수를 초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기초단체장이 뚜렷한 이유없이 이만큼 자리를 비우는 사례는 드물다. 윤 청장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직무수행 논란과 관련해 “구청장을 처음 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해명하면서,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면 연말까지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구청장의 공백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동구청이 최근 ‘동구 신천동 현대시티아울렛에서 화재 발생’이라는 어이없는 오발송 문자를 보내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운 것도 구청장 공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윤 청장은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캠프 회계책임자 A씨와 함께 계좌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았고, 미신고 계좌에서 총 7800여만원을 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혐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윤 청장의 정신적 고통이 물론 크겠지만, 그렇다고 재판으로 인해 구정을 소홀히 하는 것은 동구주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윤 청장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단체장 자리가 몇 달 동안 비워도 될 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청장이 직무를 소홀히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구주민들에게 돌아간다. 하루빨리 대구 동구청이 구청장 공백상태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jangeh@kbmaeil.com

2025-01-13

조명가게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조명가게’는 코마 상태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날 시내버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면서 탑승자들은 죽거나 중상을 입는다. 중환자실에 실려 온 생존자들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의료기기에 겨우 의존해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혼수상태에서 그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한 체험을 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딘지 이상하다.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은 이질감을 눈치 채는 순간, 바로 그 자신 또한 이상한 세계에 속해 있는 이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상한 세계에는 어두운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의 끝에는 조명가게가 있다. 현실에도 존재하고 환상에도 존재하는 이 수상한 가게는 사람의 생사를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처럼 환하게 불 켜진 전구들로 가득하다. 전구들은 모두 누군가의 생명 빛이다. 전구가 깨지거나 불이 꺼지면 그 사람은 죽는다. 반대로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 전구를 찾아 간직하게 되면 삶으로 다시 건너갈 수 있게 된다. 조명가게는 불교의 삼도천이나 가톨릭의 연옥과 비슷한 개념의 장소인 셈이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건 죽은 자들이다. 조명가게가 있는 골목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은 장례를 치르고 발인이 마쳐지기까지 사흘 동안 산 사람들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은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든 삶 쪽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다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코마 상태의 현민(엄태구)을 살리기 위한 죽은 지영(김설현)의 헌신이다. 살아서는 농아라는 이유로 현민의 부모로부터 외면 받은 지영이 버스 사고로 허리가 끊어진 남자친구를 붙들고 처절한 바느질을 한다. 이때 힘껏 바늘을 꿰는 팔의 운동이 환자의 심박그래프와 겹쳐지는 장면은 뭉클함의 최대치를 느끼게 한다. 내 의지로 살아가지만 삶은 내 의지만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살게 하는 것 같아도 어느 모르는 시공간에서 누군가가 나를 살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교회에 안 나간 지 오래됐지만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던 복음성가를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살게 한다는 믿음, 또 내가 당신을 살게 하리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보고 누웠을 때/ 당신의 심장은 아래로 쏟아지고/ 내 심장은 쏟아지는 세상을 받아냈는데/ 내 팔베개에서 자꾸만 강물이 흘러/ 당신 귀는 깊이 잠들지 못했네/ 내 피가 실어 나르는 복숭아 꽃말을/ 다 듣고 있었네 그때 나는/ 벌써 죽은 사람이었고/ 당신은 살아서는 다시 못 꿀/ 꿈처럼 가엾이 아름다웠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년 전에 쓴 ‘몽유도원’이라는 졸시다. ‘조명가게’를 보고 나서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시가 어딘지 달라져 있다. 여러 번 읽어봐도 시는 그대로인데 뭐가 달라진 걸까. 드라마의 내용이 겹쳐지면서 내 시지만 애틋해진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 저승으로 간다. 저승으로 가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은 “다시 못 꿀 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산 사람은 떠난 이와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존재보다 부재가 더 환한 빛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람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어 드라마에 전경화되지는 않지만 망자를 대하는 장례지도사들의 품격 있는 태도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안팎에서 동시에 두드리는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필요한 것처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의지까지 다 동원되어야 한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운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의 전구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조현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창작 수업 첫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한 남자분이 활짝 웃으며 “잘생기셨어요. 키도 크고” 대뜸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손이 차다며 나를 이끌고 온풍기 앞으로 가더니 따뜻한 바람에 손을 녹이게 했다. 연말부터 쭉 지치고 어두웠던 마음에 뭉클한 빛이 번졌다. 내가 그들에게, 또 그들이 내게 전구가 되어주는 조명가게의 문이 열렸다.

2025-01-13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그냥 인간은 주어진 것 없이 바람처럼 떠다니는 건지, 두 가지 중 어떤 것인지 의문이 들 때에 보는 영화. 새로운 해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포레스트 검프’를 꺼내어 봤다. 극중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IQ75의 경계선 지능장애로 척추가 굽어 다리에 보조장치를 달고 다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이 검프를 무례하게 쳐다보아도,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능이 현저히 낮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도 그의 어머니는 포레스트는 남들과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키고, 늘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포레스트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또래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그런 포레스트에게 처음 손을 내민 것은 또래 여자아이 ‘제니’뿐이었다. 성인이 돼 제니와 길을 걷던 어느 날, 마을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포레스트. 그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내달렸을 뿐인데 너무 빠르게 달린 나머지 미식 축구 감독 눈에 띄게 된다. 포레스트의 달리기 실력을 보고 감동을 받은 축구 감독은 그를 대학으로 이끌게 되고, 입학 이후에도 달리기 실력 덕분에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된다. 결국 전미 대표팀 선발, 대통령상까지 받으며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졸업식에선 우연히 군 입대 팸플릿을 받게 되고, 그 길로 군대에 입대하게 된 포레스트. 그곳에서 친구 버바를 만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정글 속 격투에서 친구 버바를 놓치게 된다. 버바를 구하기 위해 정글을 헤매보지만 다른 전우들을 구출할 뿐, 너무 늦게 버바를 구한 탓인지 그의 목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지고 만다. 버바를 잃어 슬픔을 겪는 포레스트지만, 그 와중에 여러 전우의 목숨을 구한 공로로 대통령 명예훈장을 받게 된다. 그 와중 또다시 우연히 탁구를 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탁구에도 소질이 있던 포레스트는 전국을 돌며 위문공연을 다닌다. 머지않아 미국 탁구 대표팀까지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으며, 탁구로 중국에 간 첫 미국인이라는 기록마저 세우게 된다. 우연히 발길 가는 대로 뻗을 뿐인데, 모든 것을 타고난 능력 마냥 뛰어나게 소화하는 포레스트지만 언제나 운이 따라주진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은 포레스트는 급히 고향으로 가지만, 어머니의 병은 매우 심각해졌고 살 날이 많지 않다는 말을 듣고 만다. 포레스트는 예기치 못한 이별을 준비하게 되고, 어머니는 포레스트에게 신이 주신 능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이야기한다. 포레스트가 신이 준 운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것은 자신이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며 “인생은 하나의 초콜릿 상자와도 같아, 무엇이 들어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거든”이란 말을 남기며 죽음에 이른다. 어머니의 죽음, 제니와의 거듭되는 이별로 지친 포레스트는 결국 어느 날 갑자기 무작정 집을 나서 달리기 시작한다. 앨라베마주를 횡단하고 또다른 목적지, 더 나아가 더 멀리 있는 목적지를 향해 뛰며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며 이별의 슬픔을 묵묵히 견딘다. 포레스트의 이유 없는 달리기는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그의 행동에 영감 받은 추종자들이 늘지만 포레스트는 꿋꿋하게 3년 2개월 간 꾸준히 달린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견딜 수 없는 슬픔의 순간이 조금 물러났을까. 3년이 지나고 나서야 포레스트는 이제 집에 가야겠다며 달리기를 문득 멈춘다.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간 포레스트는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제니의 편지를 받고 제니에게로 향한다. 영화 속 포레스트는 제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제니는 삶을 이리저리 방황하지만 그런 제니 곁을 맴돌며 포레스트는 묵묵히 기다린다. 그 와중에 초콜릿 상자 속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어 먹듯, 주어진 삶을 착실하게 살아낸다. 어떠한 불만도 없이, 하나의 길을 착실하게 개척해나가며 늘 좋은 성과를 낸다. 물론 성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 전쟁에서 별을 보았던 것. 바다에서 지는 태양, 사막에서 떠오르는 태양 등 그는 외로움과 공허의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었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가 갖고 싶었던 모든 사랑의 형태는 자신을 떠나갔지만 그럼에도 포레스트는 운명이 주어진 것처럼, 또는 바람처럼 떠다니며 살아간다. 새해가 밝았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 화면을 멈추고선 새로운 해의 태양을 맞이해본다. 올해의 내가 바람 같은 일들에서 씩씩히 살아냈으면 좋겠다.

2025-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