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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보화시대와 노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금 노년에 이른 사람들은 농경사회와 산업화시대를 거쳐 왔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전체인구의 7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하는 가난한 농업국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산업사회로 전환이 시작되었다. 어릴 때 소 먹이고 꼴 베던 소년들이 성장해서는 산업의 역군이 되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정보화시대의 노년으로 살게 된 것이다.농경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오랜 세월 쌓아온 농사의 경험과 기술은 젊은이들이 마땅히 배우고 따라야 할 삶의 지혜요 가치였다. 산업사회에 들어서도 한동안은 연륜에 따른 경험과 기술이 생산현장의 지표가 되고 권위가 되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개발되고 업무가 자동화, 분업화, 디지털화 되면서 단순히 연륜에 따른 노하우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첨단기술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젊은이들의 순발력과 적응력이 빛을 발하기 마련이었다.이래저래 오늘날의 노년은 상실감과 소외감이 클 수밖에 없는 세대다.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노령인구가 급증하는 시대에는 노인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한 사회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보화시대가 잎이요 꽃이라면 농경시대는 뿌리요, 산업시대는 줄기에 해당한다. 뿌리와 줄기가 없는 꽃과 잎이 없을진대, 이 시대를 활짝 꽃피우기 위해서는 노령인구가 근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꼰대니 뭐니 거치적거리는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뿌리와 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초등학교 동기들의 카톡방에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메시지가 뜬다. 대부분 옮겨온 것들이지만 거기에는 노년의 삶에 대한 온갖 유익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인생경영의 지혜도 담겨있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나 꼭 필요한 생활정보도 있다. 누군가 정성껏 만들었을 동영상들은 언어메시지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과 그림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도 한다. 평소에 독서를 하지 않던 친구들도 날마다 카톡 메시지를 읽는 것으로 독서의 생활화를 대신하는 셈이다.온갖 정보들이 범람하는 정보화시대는 세대 간의 격차를 더 벌리고 노년을 더 소외할 것으로 예견 했지만 사실은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무한정의 정보들을 잘만 이용하면 노년을 보다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길도 열려있는 것이다. 대다수 노년세대가 안고 있는 충분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아쉬움을 풀 수 있는 여건도 마련이 된 셈이다. 공부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종교, 철학, 역사, 예술 어느 분야든 유명 강사들로부터 무상으로 강의를 들을 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평생교육의 장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기왕의 연륜에다 인문학적 지식까지 보탠다면 시대와 나라의 근간이요 중심축의 역할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가적 혼란과 갈등을 정리할 건강한 상식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2022-08-04

한여름 밤의 꿈

윤영대 수필가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한반도로 기세 좋게 몰려오다가 열대성 저기압으로 주저앉아버리자 동해안은 그들이 담아온 열대 수증기로 말미암아 35도가 넘는 폭염과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국지성 폭우가 예보되고는 있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한다.몸과 마음의 열기를 식히려 밤바다 해변을 거닐어 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늦은 밤에도 모래밭엔 가족 나들이와 연인들의 사랑이 뿌려져 있고, 화려한 조명의 주점과 카페에는 젊은이들의 낭만이 흐드러지게 넘실댄다. 버스킹 무대에서는 기타와 색소폰 연주가 산책 나온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밝고 높다란 영일대 누각에 오르면 넓은 영일만 건너로 포스코 전광판의 현란한 흐름과 고로의 불빛이 불꽃놀이처럼 밤바다를 수 놓고 있다. 해변 광장에는 마술놀이가 한창이고, 검은 바다를 가르는 날렵한 제트 보트 뒤로 하얀 스페이스워크는 어깨를 떡 벌린 거인의 모습이다.설머리 횟집에서 물회 한 그릇 뚝딱 하고 인파에 섞여 천천히 두무치 해변길을 걸으면 주차장과 도로변에는 차량들이 빽빽하고 모래밭엔 차박(車泊)하는 천막이 즐비하다. 휴가철을 맞아 사람들은 나름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포항해변 곳곳에는 여름 축제가 계획되어 있다. 이번 주말에는 월포해수욕장 특설공연장에서 ‘여름축제의 꽃’이라는 제7회 ‘월포 록페스티벌’이 열리고 윤성아프리카와 육중완 밴드 등 록뮤지션들이 낭만적인 라이브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 또 7일에는 영일대 해상누각 광장에서 ‘제4회 색소폰 문화예술제’가 펼쳐지는데 영일대교의 조기 착공을 기원하며 ‘영일대교, 색소폰 음률로 잇다’란 꿈을 내걸고 있다. 이어 14일엔 ‘춤으로 설레임’이란 춤 공연이 포항무용협회, 포항국악협회 등 여러 예술단체가 주관이 되어 이틀간 환호해맞이공원에서 한여름 밤의 흥겨운 춤사위를 펼칠 예정이다.바다뿐만 아니다. 26일부터 이틀간 효자교회 앞 ‘상생의 숲’에서 방장산 터널까지의 철길숲에서는 ‘힐링 필링 포항 철길숲 야행’이 열려 한여름 무더위를 날린다. 이때 ‘한여름밤의 달빛 음악회’와 ‘미니 콘서트’가 계획되어 있고, ‘테마 레이져 쇼’와 함께 달등 만들기, 플리마켓 등의 다양한 체험 행사가 곁들여 시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것이라 한다. 음악분수대에서 발 씻고 몸과 마음을 힐링하며 여름밤의 꿈을 꾸어보는 것도 좋겠다.그러나 코로나 신규확진자는 어제 경북 6천100명, 포항 1천200명을 넘으며 105일 만에 전국확진자 12만여 명을 기록하였다. 우려했던 바가 현실화되면서 휴가철을 맞아 파도가 밀리는 해변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했을 사람들에게 ‘한여름 밤의 꿈’ 그 무대에 다시 어두운 장막을 치고 있다.젊은 남녀의 헝클어진 삼각관계가 숲속 요정들의 도움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코로나와 열대야 그리고 여름 축제가 잘 마무리되어 한여름 바닷가에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들고 싶다.

2022-08-04

초등교육과 박사학위가 이토록 가벼웠을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 교육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여부를 놓고 시름이니, 박사학위 표절부정 시비로 나라가 시끄럽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면서 정작 우리는 교육을 신중하게 다루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교육의 시작점과 끝점이 한꺼번에 걱정거리가 되는 일은 나라의 교육이 처한 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치원과 박사학위. 언제 공교육을 시작할지는 어린이들의 평균적 발달상태를 세심하게 살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학문적 성숙상태를 철저하게 검증하여 수여하는 박사학위는 지난한 수학과정의 종착점으로서 진중한 무게를 지녀야 한다.초등교육의 근간에 손을 대면서 장관과 대통령이 섣불리 결정하여 진행할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교육정책의 변화는 숙고와 토론, 조사와 검증을 거쳐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교육이 경제라는 식의 도구적 접근도 위험하지만 교육의 진행과정을 삽시간에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간주했던 장관과 대통령의 인식에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철회수순을 밟는 듯하여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교육을 다루는 태도에 신중함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안의 심각함에 반하여 시도교육청들이 비교적 조용하였던 일도 우리 교육의 자리를 걱정하게 만든다. 교육계가 교육을 바라보는 태도도 돌아보아야 할 터이다.대학이, 표절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드러난 사안에 대하여 ‘문제없다’고 발표하였다. 특정 대학의 부끄러움을 넘어 나라의 고등교육이 백척간두에 섰다. 표절과 오역이 넘쳐흐르는 논문에 그같은 판정을 하여 박사학위를 인정하였다. 해당 논문을 처음 심사하였던 교수들은 물론 다시 검증하였다는 인사들의 책임이 크다. 학문의 완성도를 확인해야 하는 박사학위 수여과정이 도둑질을 허용한 꼴이 아닌가. 해당대학 공동체에서 재검증을 요청한다고는 하지만, 교육계와 대학 일반이 이에 비교적 조용한 까닭은 무엇인가. 대학의 위신과 학문의 신성함은 정권의 향배나 의중과는 상관이 없어야 한다.오늘 교육이 위태로우면 내일 나라는 불안하다. 초등교육과 고등교육에서 함께 문제가 붉어진 오늘, 교육에 관하여 우리는 부끄러운 고백과 함께 특단의 각성에 이르러야 한다.어린이들의 교육을 가벼이 보았음을 고백하여야 하며 박사학위도 무겁게 여기지 않았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생계의 수단쯤으로 여겨 그리 신중하지 않았음을 털어놓아야 한다. 교육을 맡지않은 이들이 교육을 가볍게 대하여도, 미진하게 반응하여 교육이 교육답지 못한 자리까지 밀려나도록 방치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초등교육은 소홀히 대하고 박사학위는 돈으로 주고받는 우리 교육의 민낯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린이 교육을 무겁게 인식하고 박사학위의 진중함을 회복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며 학문의 위신이 걸린 일이다. 유치원에서 박사학위까지 교육의 모든 통로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새겨야 한다. 교사와 학교, 교육청과 교육계는 교육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교육이 스러진 곳에 싱싱한 내일은 없다.

2022-08-03

‘역시즌’마케팅

유통업계에‘역시즌 마케팅’이 인기다. 장마에 이어 폭염이 이어지는 한여름에 겨울 의류를 판매하는 걸 말한다. 한겨울 의류는 단가가 비싸지만, 여름에 구입하면 상대적으로 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은 매출을 높일 수 있고, 제조업체는 공장 가동일을 분산하고 재고 부담을 덜 수 있어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유통업계에선 매년 역시즌 상품 행사를 해왔지만, 치솟는 물가가 극성인 올해에는 행사 기간도 길어지고 상품가짓수도 늘어났다. TV홈쇼핑이나 백화점뿐 아니라 이커머스 업체들도 온라인에서 역시즌 행사를 펼치고 있다.롯데온은 8월 한 달간‘돌아온 역시즌’행사를 진행한다. 가장 더운 이때 겨울 패션·잡화를 최대 70% 할인 판매한다. 지난 6월초부터 진행한 역시즌 행사에서 니트·스웨터 등 역시즌 상품 판매가 2배가량 늘었기에 이번엔 겨울 신발과 가방 등 패션 상품을 판매한다고 한다.W컨셉은 14일까지 2주간 역시즌 할인 행사 기획전을 열고, 200여개 브랜드와 1만2500여종 상품을 최대 80% 할인해 판매한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6월에 진행한 모피 역시즌 판매 방송에서 1시간 만에 자체 기획 브랜드 상품부터 직수입 상품까지 80만원대부터 1천만원대의 모피를 1천벌 이상 팔았다.현대백화점도 8월 한 달간 역시즌마케팅에 나선다.‘미리 준비하는 겨울’을 테마로 겨울 패션 상품을 최대 70% 할인 판매한다.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신세계백화점의 프리미엄 패딩 팝업스토어 매출도 전년동기 대비 43%가 넘게 늘어났다.기업은 여름철 비수기 실적을 올리고, 소비자는 고가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역시즌 마케팅이 고물가 시대 새로운‘윈윈(Win-Win)’ 전략이 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8-03

한여름의 풍경 소환

오낙률 시인·국악인 여름 장마가 끝났다는데 하늘은 며칠째 잔뜩 흐린 모습을 하고 칠월을 마무리했다. 오랜 가뭄에 시달리다가 장맛비라도 듬뿍 내려주길 바라던 농민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한 하늘의 아쉬움인 듯하다. 오늘은 필자의 유년 시절에 뇌리에 저장된 풍경화 두어 폭 소환하여 글을 시작하려 한다.장마가 막 끝난 이맘때쯤의 내 유년 시절 농촌 모습은 보리타작으로 분주한 시기였다. 보리를 베고 나면 뒤따라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수확한 보리를 쌓아 뒀다가 장마가 끝난 후 탈곡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더군다나 보리 수확이 끝난 밭에는 콩이나 조를 심어야 하는데 장마가 시작되면 콩 갈이를 할 수 없으니 보리타작을 뒤로 미루는 것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마 중에 큰 태풍이라도 오게 되면 갈무리해둔 보리 더미가 바람에 날리고 비를 맞아 시퍼렇게 싹이 올라 못쓰게 되는 일도 가끔 있었는데 아직도 썩어가는 보릿대에 하얗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던, 풋풋하면서도 비릿한 보리싹 냄새가 코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보리타작이 끝난 한여름의 시골 마당엔 흔히 멍석이 깔려 있었다. 멍석엔 황금빛 겉보리가 칠팔월의 뙤약볕에 마르고 있었고, 그 덕분에 집마다 몇 마리씩 보신용으로 기르던 닭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날 며칠을 닭장 안에 갇혀서 지내야 했다. 어쩌다 닭장을 탈출한 닭이 이웃집 마당에 널어 둔 곡식을 쪼아 먹는 비상사태가 종종 생기곤 했는데 때문에 멍석 위에는 늘 긴 대나무 장대가 할머니 방문까지 걸쳐져 있었다. 도톰하게 널린 겉보리에 늘 할머니의 발등 폭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골이 나 있었고, 그것은 간간이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셔서 보리가 골고루 마르라고 발로 저어주신 흔적이었다.우리 집 가는 길은 구부정하게 휘어져 있었고 양쪽으로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 울타리에 호박 넝쿨 하며 박넝쿨이 경쟁하듯 엉켜서 자라고 호박꽃 박꽃이 만발했었다. 대문가 울타리에서 지천으로 피던 그때 그 호박꽃이 순도 높은 황금빛이었다는 사실과 황금빛 호박꽃과 하얀 박꽃이 흡사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다. 호박꽃은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벌 나비가 찾지 않는 저녁 무렵이면 잠들듯 꽃잎을 오므리는 특징이 있다. 화창한 햇살이 호박꽃에 비치면 꿀벌이며 호박벌이 뒷다리에 노란 화분을 잔뜩 묻히고 잉잉거리며 꽃잎에 드나드는데 벌들은 하나같이 꽃잎에 날아들 때는 소리 없이 들었다가 꽃잎을 떠날 때는 ‘앵’하며 큰 소리를 내고 날아갔었다.반대로 박꽃은 해가 질 무렵에서야 오므렸던 꽃잎을 활짝 피운다. 호박꽃은 동틀 무렵에 오므렸던 꽃잎을 활짝 피우고 박꽃은 달이 뜨는 저녁 무렵에야 꽃잎을 활짝 피우니, 호박꽃과 박꽃이 서로 음양 관계의 같은 선상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것 또한 최근의 일이다.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호박은 태양처럼 붉으면서 둥글게 생겼고 박은 달처럼 희면서 둥글게 생겼으니, 세상에 피는 꽃 중에 이처럼 음양의 위치를 정확히 밝혀 인간 앞에 나서는 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2022-08-03

교육이란 무엇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7월 29일 교육부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한 살 낮추는 학제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히자, 학부모·교원단체·정치권 등 사회 전반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기사를 종합하면 교육부는 학제개편을 추진하는 이유로 저소득층 아이들을 1년이라도 빨리 공교육으로 편입시킬 필요성과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아이들을 사회에 일찍 진출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들고 있다.이번 개편안은 두 가지 이유를 내세우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부족한 노동력을 사회에 빠르게 공급하겠다는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라면 미국이나 영국처럼 유치원을 의무교육으로 지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번 학제개편은 교육의 목적을 노동력 재생산에만 방점을 둔 자본 중심의 시각이 만든 참사이다. 자본이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순응의 장치로서 교육에 대한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해방 후 73년간 변함이 없었던 학제를 개편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 문제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만큼 다양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대치동 중심의 사교육 시장과 명문대 입학을 위해 존재하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비정상에 대한 지적은 오래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이 보여주듯 학벌주의는 격차사회로의 진입과 함께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양극화와 학벌주의는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환경이다.‘강남불패’가 사교육 시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은 모두 아는 바와 같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대부분 청년이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제개편은 다양한 줄기와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그렇다면 학제개편만 따로 떼어서 발표하는 교육부의 의도는 무엇일까? 여기서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겹쳐지는 것은 과한 해석일까? 하청 노동자의 목숨을 건 투쟁에 정부는 불법 파업임을 강조하며 손해배상 청구라는 무기로 압박했다. 원청은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주주 이익에 반하는 행동으로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청·하청의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는 ‘하퀴벌레(하청 노동자+바퀴벌레)’라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게 합법의 틀 안에서 형성된 노동구조다.교육부 장관은 논문표절, 음주운전 등이 문제가 되었지만, 대통령은 능력만 보고 인선을 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능력이 출중하니 과거의 논문표절과 음주운전 같은 작은 흠결은 넘어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능력이 출중한 교육부 장관의 첫 작품이 바로 이번 개편안이다. 이번 개편안은 사회적 혼란과 분노만 일으키다 실현되지 못할 것이지만, 우리는 이번 개편안을 통해 국가가 생각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또 교육과 노동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자본의 축적 구조를 외면하고 학제만 개편하여 아이들을 한 살이라도 일찍 사회에 내보내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정말 아이들을 위하는 방법인가?

2022-08-03

정축(丁丑)

육십갑자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정축(丁丑)이다. 천간(天干)은 정화(丁火)요, 지지(地支)는 축토(丑土)다. 정화(丁火)는 여름이 한창인 늦여름을 상징하고, 음(陰)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축토(丑土)는 계절로는 일월이라 차고 습한 흙이다.정축일주(丁丑日柱)는 정화(丁火)의 따뜻한 기운은 차고 습한 축토(丑土)를 생하지만(화생토·火生土), 본인의 힘이 약해 남에게 베풀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고독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봉사하고 베푸는 성질을 보여주는 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까칠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화(丁火)는 촛불과 같은 성질이 있어 자기 몸을 태워 주위의 어둠을 밝히는 기운으로 남에게 베풀며 봉사하는 삶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오늘날의 호남성과 호북성 일대에 해당했던 초나라의 백성들 사이에 행해져 내려온 제사 풍속은 그 유래가 아주 오래되었다. 어떤 무당이 그 고을에서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명성을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제사를 올릴 때에 보면 그 차림이 아주 평범하면서도 노래와 춤으로 신을 맞았다가 보내곤 하였다. 그리고 병이 낫기를 빌어주는 사람마다 회복되었고, 그가 농사를 잘 지으라고 빌어주는 사람마다 풍족하게 거두어들였다.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다른 사람의 제사를 대신 올려줄 때에 그는 살찐 소와 양을 잡고 좋은 술을 가득히 부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도 그가 병이 낫기를 빌어주었던 사람이 곧 죽어버리고 농사를 잘 지으라고 빌어주었던 사람이 그 해에 큰 병충해나 흉년을 만나곤 하였다.그 고장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매우 당황했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원인을 밝히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전에 내가 그 무당의 집에 놀러갔을 때에는 그의 집에 아무런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었네. 그래서 그 무당이 다른 사람의 제사를 올리더라도 마음속으로 아주 경건하게 올려줄 수 있었고 신령님도 그에 응하여서 복을 내려주었던 것이야. 또 그 제사 지낸 고기도 반드시 여러 사람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잖은가? 그런데 그 뒤에 그에게 자식이 여럿 생기게 되자 입는 것, 먹는 것이 많아지게 되었네. 그래서 다른 사람 대신에 제사를 올려도 마음이 진심으로 경건할 수 없었고, 신령님도 제사를 올리는 음식의 향기로운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이지. 또 제사 올린 고기들도 자기의 집으로 거두어 가게 되었다. 그 무당이 변한 것이 아니고, 사사로운 마음이 그의 생각을 이리저리 끌어당기니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고 만 것이야.”어떤 무당이든지 마음쓰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그와 같거늘, 하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남을 위해 일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 쓰고 일처리함이야 어찌 그보다 더하지 않겠는가! 중국 당나라 나은(羅隱·833∼909)이 지은 ‘나소간집(羅昭諫集)’에 나오는 이야기다.사람이 살아가면서 외부로부터 탐욕과 이기심 등이 더해질 때 처음에 추구하던 마음에서 이탈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재산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욕망의 수준을 낮추도록 애쓰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정축일주(丁丑日柱)는 더운 여름철에 소가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형국이다. 천기 정(丁)은 쭉 뻗어나가는 기운을 상징한다. 소 축(丑)은 맺다, 인연을 짓다, 끈이 이어지다 등의 의미가 있다. 현재의 환경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의 도전을 시도하고자 한다.‘소’의 은근하고 끈질김과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황소고집이 있어 가능하다.정화(丁火)가 있는 사주는 남녀 모두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편이다. 자기만의 매력이 있으며, 매력을 잘 부각시키고 연출하는 것을 잘한다. 병화(丙火)는 태양 같은 뜨거운 빛이라면 정화(丁火)는 달빛 같은 열기가 없는 빛이다.달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의하면 지상계와 천상계의 구분하는 위치로 매끄러운 수정구처럼 완벽한 천체라고 보았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모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흠이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여야만 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영국 소설가 겸 극작가인 서머싯 몸(1874∼1965)의 ‘달과 6펜스’가 있다. 타히티 섬에서 살던 인상파 화가 고갱(1848∼1903)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1919년에 발표했다.달이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숭고한 가치를 말하는 것이고, 6펜스는 물질의 욕망과 탐욕을 뜻한다. 당시 6펜스는 영국의 화폐 중에서 가장 낮은 가치를 담고 있는 은화 동전이다. 둘의 모양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폴 고갱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던 딸 알린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갱은 버텨왔던 모든 의지와 희망을 잃었다. 잠을 이룰 수도 없고 살아갈 힘마저도 잃어버렸다. 고갱은 이때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자신의 시체를 개미들이 뜯어 먹도록 산으로 올라가서 음독자살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토하는 바람에 극심한 복통을 앓으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인생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렸다.‘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1897년)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린 미완성 작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그림은 내가 그렸던 어떤 그림보다 뛰어나고 앞으로도 이 그림보다 더 뛰어난 작품은 나오기 어려울 겁니다.”서머싯 몸은 ‘달과 6펜스’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요? 때를 잘 만나고,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번 소위 성공한 사람을 가리켜서 위대함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런 위대함은 그 사람의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가지는 특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황이 변하면 위대함에 대한 평가도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서민의 생활이 어느 때보다 팍팍해졌다. 많은 사람은 실제로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행하지 않고 말로만 떠벌인다. 그러면서도 뚜렷한 가치관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민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보지도 않고 말이다. 아무리 어려운 때일지라도 살아있는 자체가 위대한 것이다.

2022-08-03

다시 간호법으로

배문경 수필가 대한간호협회에서 발간한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라는 책을 읽는다.전북이 고향인 김성덕 간호사는 대구동산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지원을 했다.그가 집을 떠날 때 가족을 설득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세 자녀와 남편이 꼭 가야하느냐는 말에 “지금 아니면 언제 가느냐? 나는 간호사(registered nurse·RN)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당당하게 가족을 설득시켰다. 코로나 현장 파견을 마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던 그녀가 촌집에서 혼자 기거했던 것도 다시 떠오른다.나는 왜 그녀처럼 모든 것을 훌훌 벗고 그 당시 코로나로 힘들어했던 그 곳에 지원서를 내지 못했을까. 아마 전국의 RN들이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래서 오랜 시간 자책하며 병원에서 조금 더 코로나로 힘든 직원과 환자를 도우려고 노력했다.그 당시 4대 일간지 1면에는 코에 반창고를 붙인 간호장교의 사진과 유사한 사진들이 실렸다. RN들이 이마에 길게 패인 주름과 콧등에 반창고를 붙인 채 기쁜 모습으로 훈장처럼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그들은 3킬로나 되는 방호복을 입고 15시간 환자들을 위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강행군을 했다. 어떤 시민은 봉투에 비누 두 개와 “의료진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메모를 같이 보냈기에 받는 사람들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올 가을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예견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4차 접종을 하느라 병원은 분주하다.얼마 전 경주간호사회 주관으로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서른한 살, 간호사가 되었습니다’를 쓴 배윤경 작가 겸 간호사인 그녀와 북토크를 진행하였다. 그녀는 러시아어를 전공해서 취업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다녀왔다. 그리고 간호대학을 다시 도전해 취업까지 한 아주 똑똑하고 열정적인 여성이다. 그녀의 글에서 보여지듯 RN의 길은 멀고 험하다.RN은 삼교대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환자의 질환으로 인해 나타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인수, 인계받는 과정이 릴레이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신규RN이 질환과 환자를 이해하고 습득할 시간이 1달에서 3달이다. 미국의 경우 1년 과정이 주어진다. 신입RN의 많은 수가 일 년을 못 넘기고 자리를 떠난다. 신규RN에게 주어지는 환자의 목숨은 커다란 부담이며 두려움이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민하고 날카롭다.이미 이 과정을 겪은 RN은 다시 신규간호사의 교육까지 맡아야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병원은 환경의 처우개선과 RN의 인원을 늘여야하다. RN이 일 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이미 많은 논문에서 발표되듯이 칠년에서 십여 년의 숙련된 RN이 환자를 간호할 경우 질환 치유율(治癒率)이 훨씬 높다. 그래서 경력RN의 중요성은 배제될 수 없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갖가지 요구를 들어주는 과정은 지난(至難)하다.이런 상황 속에서도 많은 RN들이 환자를 위한 봉사를 진행했다. 순천향대학병원 간호부는 10월 4일 ‘천사 데이’를 맞아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봉사활동은 ‘건강한 삶은 간호사와 함께, 건강한 100세를 위한 혈압관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이어졌다.환자와 보호자들이 오가는 곳에서 RN들은 혈압과 혈당, 체지방 등 검사를 진행했다. 건강 상담을 통해 혈압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더 많은 병원들이 서비스를 늘일 수도 있으리라.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복합적 질병을 간호하며 치매와 만성질환으로 건강에 대한 서비스는 더욱 필요하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의료법이 시행되고 있다. 경력RN이 현장에서 다양한 질환을 간호할 수 있는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간호가 실천되어야 한다.양질의 의료서비스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간호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참간호의 아름다운 현장을 꿈꾼다.

2022-08-03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의지가 있는가

심충택 논설위원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도권 규제완화가 브레이크 장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140건의 각종 규제혁신 사례를 발표하면서 ‘풀 수 있는 것은 다 푼다’고 밝혀 기업유치에 올인하고 있는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지난달 2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인천에서 연 ‘산업입지 규제개선을 위한 기업간담회’에서도 비수도권 지자체의 기업유치에 찬물을 끼얹는 내용이 발표됐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과 관련한 규제를 풀겠다는 내용이다. 관련 시행령이 개정되면 해외에 나가있는 ‘유(U)턴 기업’의 수도권 경제자유구역 내 공장 신·증설이 허용된다. 지금까지 인천, 경기 등 수도권 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인 투자기업만 공장 신·증설이 가능했다. 정부 발표 이후 비수도권 시민단체들은 공동으로 규탄성명서를 내고 “수도권의 초집중과 난개발을 부추기며 비수도권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맹비난했다.윤석열 정부는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유턴기업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에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기업법)’을 제정해 비수도권 지자체의 유턴기업 유치활동을 지원해 오고 있다. 대구·경북의 경우 그동안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상공회의소, 한국산업단지공단의 협조를 받아 유턴기업 유치에 전력을 쏟았다. 지난해에는 대구·경북에서 6개의 유수한 유턴기업을 유치하는 성과도 냈다. 해외 진출기업의 국내복귀 통계를 공식 집계한 2014년 이후 누적 유턴기업은 모두 108곳으로 이 가운데 대구는 5곳, 경북은 14곳이다. 최근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공급망 불안이 커지고 인건비가 많이 올라 외국에 차렸던 공장을 국내로 다시 들여오는 기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정부가 더 잘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도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몰림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당연히 비수도권 소멸이다. 현 정부처럼 효율성을 잣대로 기업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을 마구 허용하면 비수도권 지자체의 기업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 산업 투자·인력 양성 계획도 수도권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정책판단 과정에서 ‘국토균형발전’ 보다는 ‘효율성’에 집중하는 것 같다. 효율성만을 따지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은 국가생존의 문제”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지역균형발전의 최우선 조건은 수도권에 편중된 일자리와 인력을 비수도권 지역에 골고루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비수도권지역에 우수한 기업과 인재들이 찾는 대학이 들어서면 청년들이 가족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떠날 이유가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수도권 규제완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지역균형발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2022-08-02

태풍

태풍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이다. 나무가 뽑혀 나갈 정도의 강한 바람과 집중호우를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한반도는 나라의 길이가 긴 중국과 일본에 비해 비교적 태풍으로부터 안정권이다. 매년 30건의 태풍이 발생하나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3.1개 정도다. 거의 7월, 8월, 9월에 집중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이 늘고 가을 태풍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 걱정이다. 2019년에는 8개, 2020년은 6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내습했다.우리나라로 향하는 태풍은 대부분 일본으로 빠지거나 제주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에 주로 직접적 피해를 준다. 진로가 시계방향으로 휘어 포물선 형태를 그리기 때문에 경북 동해안도 종종 큰 피해를 입는다.태풍은 발생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면 사이클론, 미국에서는 허리케인이라고도 부른다. 영어 typhoon은 그리스 신화의 거대하고 강력한 괴물 티폰(typhon)에서 유래했다. 한국은 태풍(颱風)이라 표기하지만 일본은 ‘台風’으로 쓴다.한국에 가장 큰 인명피해를 입힌 태풍은 1936년 8월 발생한 태풍 3693호(당시에는 태풍 명칭이 없음)으로 1천232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재산상 가장 큰 피해를 낸 태풍은 2002년 8월에 발생한 태풍 루사다. 5조1천400여억원의 피해가 났다.한반도로 향하던 5호 태풍 송다와 6호 태풍 릴레이가 모두 열대저압부로 약해지면서 소멸 단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올 여름도 휴가철이 끝나면 태풍 7호, 8호가 밀어닥칠 것이 예상된다. 올해는 비만 적당히 뿌려 가뭄 해갈과 지구 온도를 낮춰주는 유익한 태풍이 한반도를 거쳐갔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02

‘선물(present)’

조현태 수필가 스펜서 존슨이 저술한 ‘선물’이라는 책이 있다. 한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면서‘세상에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술된 책이다. 독자로 하여금 그 여정을 따라가며 감정을 함께 공유하게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그 선물이라는 것은 노인이 들려주는 신비스러운 이야기다. 노인은 그야말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얘기하면서 소년에게 궁금증과 기대를 한껏 심어준다. 그러나 소년은 매번 현실에서 장애물에 부딪친다. 그럴 때마다 다시 노인을 찾아가 선물을 찾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그 선물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란다.”소년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간다. 그래도 여전히 선물의 정체는 모호하다. 일터와 가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끈질긴 탐색을 마치고 나서야 소년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마침내 소중한 선물을 발견한다.소년의 삶에 안내자 역할을 했던 노인은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노인의 일생과 죽음은 이제 장년이 된 소년에게 마지막 깨달음을 남기게 된다. 어느덧 소년은 그렇게 의지했던 노인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위의 다른 이들을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으로 안내하게 된다.스펜서 존슨은 다음과 같이 현재의 중요성을 정의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바로 현재 이 순간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현재 이 순간을 옳은 쪽으로 집중하라. 그러면 활력과 자신감을 얻어 그른 것도 처리할 수 있다. 현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잡념을 없앤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쏟는가에 따라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관심을 쏟으라.”present라는 단어는 선물이라는 뜻이지만 현재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다. 현재야 말로 가장 큰 선물이며 가장 소중하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그러기에 오늘을 의미 있게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와 미래 모두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탈무드’에 보면 인간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나온다. 히브리어로 키소(ciso)와 코소(coso), 그리고 카소(caso)이다. 키소란 ‘돈 주머니’란 뜻으로 돈을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코소란 ‘술잔’이란 뜻이다.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카소란 ‘노여움’이란 뜻인데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제력을 말한다. 어떤 일을 보고 얼마나 마음을 다스리고 절제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키소, 코소, 카소는 어떠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앞에 나열한 세 가지 기준에 공통된 평가시점 역시 현재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너 지금 박사라는 것은 엉터리 박사야. 왜냐면 옛날에 너는 멍텅구리였으니까.”이런 형식의 평가방법이야말로 순엉터리다.

2022-08-02

반도체 인력양성과 특성화고교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대통령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을 강조하자 교육부는 대학정원 규제를 풀고 반도체 인력을 키우겠다고 하니, 수도권 대학정원을 늘릴 경우 지방의 인재유출 가속화를 우려하며 지방대학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반도체 분야의 대학교육에 대한 논의는 요란하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인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고졸기술자 교육에 대해선 조용하다.그런데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도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에 의하면 반도체산업의 학력별 부족인원은 고교졸업생이 55%를 차지했다. 게다가 특성화고교를 중심으로 포진한 전기·전자학과 등의 고졸인력들이 반도체나 전자산업 현장에서 필수인력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2022년 추가경정 예산안을 보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학생 수가 감소함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 교육재원의 효율적 활용방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각 교육청에선 늘어난 교부금을 쓸 곳이 없어 재난지원금이나 입학준비금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현금성으로 또는 필요성이 의심스런 스마트기기 구입 등으로 썼다고도 한다. 한편 정부는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일부를 대학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학생 수가 줄어들기는 대학도 마찬가지인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여유분을 구태여 대학에 쓸 이유가 있을까. 대학에 예산이 필요하다면 학생 감소에 따른 비효율적 부분에 대한 대학구조조정을 통한 예산절감으로도 상당한 재원을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대학의 반도체학과에 증원정책 지원도 중요하지만 반도체 관련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한 지원도 시급하고 절실하다. 그러니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여유분은 당장에 필요한 반도체 관련 특성화고교 육성과 그 학생들을 위하여 쓰여야 하며 그것이 재원의 목적에도 맞다. 반도체 산업현장에서 학력별 부족인원은 고교졸업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관련 교육제도와 지원은 미비하단다. 많은 특성화고교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비한 실험실습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시설투자 확대도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노동 강도가 높고 근무조건들이 열악한 반도체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현장 고졸사원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한 대책도 수립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의 반도체교육은 정부와 대학에서 애를 쓰고 있으니 특성화고의 반도체 인력교육에 대해선 시·도 교육청,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관련 기업들이 함께 연구팀이나 협의체 등을 구성하여 지원을 강화함이 바람직하다. 특성화고교생들의 자격증 취득과 외국어학습 그리고 국비유학 및 해외연수 제도 등에 대폭적 지원을 통한 학생유치 장려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나아가 기업체근무 고졸사원들의 교양함양을 위한 문화예술 등 인문교양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를 적극 제안한다. 지역 또는 산업단지의 권역별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대학교육 기회가 없었던 고졸사원들이 퇴근 후 또는 주말에 교육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함은 개인적 자질함양과 함께 산업현장의 근무의욕 고취 등으로 근로생산성에도 효과가 클 것이다.

2022-08-02

내 집 아닌 내 집

이사를 했다. 3년 만에 하는 이사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이참에 짐 정리도 할 겸 불필요한 것들은 모조리 버리기로 했다. 다행히 친구가 이 집으로 들어오겠다 해서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은 양도할 수 있었다. 집주인에게는 7월까지만 살고 나갈 거라 미리 얘기도 해둔 터였고, 더구나 다음 세입자를 구해놓았다고 얘기까지 해놓았기에 모든 게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막상 짐을 빼고 이사를 마치고, 친구와 계약을 일주일 앞둔 상황이 되자 집주인은 별안간 월세를 올릴 거라고 통보를 해왔다. 300에 40짜리 작은 옥탑에 갑자기 45만원을 받겠으니 친구에게 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도 나처럼 사회초년생인지라 한 달에 45만원을 월세로 지불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작은 옥탑에 보증금 300, 월세가 45만원. 친구가 이사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사실 그 옥탑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다. 같은 가격대에서는 크기도 상대적으로 넉넉했고, 옥탑인 탓에 채광도 좋았다. 대학원생이던 나에게 학교까지 도보로 20분이라는 건 매우 큰 장점이었다. 나에게 맞춤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집이었다. 문제는 그게 옥탑이었다는 거고.생각보다 옥탑에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옥탑이 구축의 개인 주택에 달린 옥상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살던 곳은 다른 무엇보다 단열이 문제였다. 여름이면 옥탑은 오븐처럼 뜨겁게 달궈졌고, 겨울이면 온몸이 얼어버릴 정도로 외풍이 심했다. 에어컨과 선풍기, 보일러와 전열기는 옵션이 아니라, 옥탑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품에 가까웠다. 그래도 단열이 되지 않는 탓에 곳곳에 물이 맺혀서 곰팡이가 피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집이었다.그런 집에 월세로 45만원을 달라니. 매달 전기세며 보일러세로 일반 가정집의 2배는 족히 나오는 집인데 월세마저 올려달라는 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300에 40은 3년 전 시세라고 했다. 결국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주인에게 300에 40이 아니면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아마 이 집을 그 가격에 월세를 놓는 게 상당한 무리라는 건 집주인도 알고 있었을 거다. 당장 부동산에만 가 봐도 300에 40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 옥탑을 한 달에 45만원이나 주고 살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집주인은 우리가 가난한 고학생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새로 들어올 사람과 나의 관계마저 알고 있었으니 그런 무리수를 둬본 것이겠지. 게다가 짐도 여기에 이미 들어와 있는 상태고. 그러니 “300에 40은 3년 전 시세”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이겠지.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지라곤 고작 더 낙후한, 대신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을 찾아 가는 것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으니까.창신동 쪽방촌의 주거 실태와 주거 빈곤층의 실상을 밝힌 이혜미 기자의 ‘착취도시, 서울’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빈곤 비즈니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을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 가뜩이나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마땅한 노력 없이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형태.”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누군가에게는 현명한 투자라 생각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곤궁을 고착화시키는 현실의 아이러니. 물론 알고 있다. 집주인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일 거라고 믿고 싶다.가난한 사람은 월세가 오를까봐, 집에서 쫓겨날까봐 늘 두려움에 떤다. 비록 그 집의 평당 임대료가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당 평균 임대료의 몇 배를 상회할 지라도, 당장 목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한 달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로 지불하면서 살아간다.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는커녕 점점 더 낙후된 곳으로 이동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낙후된 주거 환경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쪽방촌, 고시촌, 원룸 촌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가난하기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 속에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지 않는 것, 아이를 낳지 않는 것뿐이라 생각하면서.

2022-08-02

여름방학을 지나며

지금 우리는 여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청명한 하늘을 마주하면 한없이 들뜨다가도 지나치게 무더운 날씨에 실온에 둔 음식처럼 기분이 상한다. 푸르른 바다와 싱그럽게 자라는 식물의 줄기를 상상하지만, 습도만큼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 듯한 찝찝함이 온종일 가시질 않고 에어컨 없는 공간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다.이 여름, 나는 휴식에 관해 골몰한다. 문자 그대로 어떻게 하면 제대로 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따가운 햇볕이 정수리를 달구는 한낮에도, 창 너머로 후텁지근한 바람만 불어오는 늦은 밤에도, 쉬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기분이다. 어느덧 올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음을 상기하면 어쩐지 숨이 가빠진다.학교에서 일하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방학이 있다는 것이다. 학생일 때의 방학과 선생이 되어서 체감하는 방학의 무게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에게 방학은 그저 마냥 즐거운 기분이라면 후자는 숨을 쉴 유일한 기회다.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붙잡는 동아줄 같은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서 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임해야지만 다음 학기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 동료들과 손을 맞잡고 다짐했다. 열심히 쉬다 옵시다, 우리.몇 달 전부터 나는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방법을 궁리했다. 비행기 표를 사서 이국의 휴양지에 다녀올까. 괌이나 하와이 같은. 아니면 서울 근교의 세련된 호텔에서 며칠 머물면서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온종일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주말에는 사람들로 붐벼서 쉽게 갈 수 없던 유명한 식당이나 평일 오후의 미술관도 떠올렸다. 그렇지만 내게 필요한 휴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경험이 아니라 비움이 필요했다. 그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던가 좋은 곳을 구경하면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리하여 이번 방학의 목표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으로 설정했다. 방학 계획표 따위는 그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노트북과 책도 내려놓았다. 떠오르지 않으면 한 문장도 발화하지 말자. 텍스트를 읽고 싶으면 그때 소설을 펼치면 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자.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바리바리 싼 짐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고 후줄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마당에 앉아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지리산에 올라가 입이 떡 벌어지는 경치에 감탄하고 천년을 살았다는 소나무와 마주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다가 지겨워지면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잤고 해가 넘어가면 가족들과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셨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이 일을 삼십 년이나 해냈어?”하고 내가 물으면 “자식을 키우려면 뭔들 못하겠느냐”고 부모님은 대꾸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마을에 찾아가 회상에 젖기도 했다. “우리 꼬마가 이렇게 자랐어!”하고 외치던 목사님의 손은 너무나 다정했고 나는 어느덧 한 시절을 통과해왔다는 감각을 느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누구에게나 방학은 필요하다. 직장인에게도 여름방학을 달라는 말은 그저 실없는 농담이 아닐 테다. 짧은 휴가로는 충족될 수 없는 긴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똑같은 삶이 쳇바퀴 돌 듯 지나간다. 물결처럼 흘러가야 하는 시간이 고이고 응축되면 썩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여름은 부패하기 쉬운 계절이니, 누구나 지치기 마련이다. 휴식은 육체와 마음을 재정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일로 나아가고 더불어 내일로 나아갈 힘을 얻게 한다.이렇게 나의 방학이 지나가는 중이다. 풀벌레가 시끄럽게 우는 여름밤, 나는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 내년에 계약 만료가 되는 월셋집과 손봐야 할 소설의 무수한 장면들, 매일매일 체감하는 나의 부족함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밖에도 처리해야 하는 현실적인 일이 가득하지만 잠시 눈을 감기로 한다. 그 대신 여름의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던 강의 표면과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면서 내는 소리를 떠올린다. 이제 며칠 후면 나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고 지켜야 할 약속을 이행하며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방학은 끝나지 않았으므로, 마치 문을 닫듯 상념은 잠시 거기에 놓아두고 나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2022-08-02

선크림 선택법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에 나설 때 선크림은 필수다. 햇살에 포함된 자외선은 사람의 피부를 늙게 만들 뿐만 아니라 피부의 콜라겐 분해를 촉진해 주름을 만들고, 색소를 만드는 멜라닌세포를 자극해 기미 등의 색소 질환을 악화시킨다.더구나 만성적인 자외선 노출은 편평세포암, 기저세포암과 같은 피부암에 걸릴 위험도 높인다. 따라서 야외활동을 할 때는 반드시 자외선 A와 B를 모두 차단할 수 있는 자외선차단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자외선 차단지수인 SPF는 자외선 B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PA는 자외선 A에 대한 차단 지수이며, 그 정도에 따라 +/++/+++ 로 표시된다. 일상적인 야외활동을 할 때는 SPF 30~50, PA ++~+++를 고르고, 해수욕장 등 자외선이 강한 지역에서는 SPF 50 이상, PA +++ 이상인 제품을 골라야 한다. 민감성 피부의 경우는 SPF 20을 권한다. SPF15는 94%, SPF30은 97%, SPF50는 98%의 차단율을 보인다.한 번 바른 차단제는 땀 등의 영향으로 조금씩 씻겨나가므로, SPF가 높은 것을 선택하더라도 양을 충분히 도포하고 자주 덧바르는 것이 중요하다.일반적으로는 외출 30분 전에 미리 도포하고, 2~3시간마다 충분한 양을 꼼꼼하게 발라야 한다. 민감성 피부의 경우에는 가급적 화학적 차단제가 들어있지 않은 물리적 차단제, 저자극 제품, 무향, 무알레르기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화학적 자외선차단제는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화학적 및 물리적 차단제제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피부건강을 지키기 위해 내 몸에 맞는 선크림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8-01

‘전환마을운동’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마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터(생활환경)이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공동체)과 그들이 형성하는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적 개념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은 ‘마을 만들기’를 동일한 생활권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마을이라는 공동의 터전을 둘러싼 다양한 생활문제 해결과 문화, 역사, 자연자원을 발굴하고 공유함으로써 관계성과 참여성을 신장시키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또한 마을 만들기는 도시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빈부격차, 일자리, 환경문제, 주민갈등, 시민질서, 여가선용, 범죄로부터의 예방, 마을안전 등의 다양한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는 지름길로 보고 있다.이렇듯 마을은 도시전체의 새로운 전환을 시도함에 있어서 가장 초기 출발점이 되는 단위로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초인 세포와 같은 것이다. 최근 이러한 마을의 특성을 살려 마을단위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탈탄소 사회를 준비하고 공동체의 회복탄력성을 만들어가는 마을운동인 ‘전환마을운동(Transition Village Movement)’이 주목받고 있다.‘전환마을운동’은 지역경제를 강화하며, 지역에너지 자립을 위해 지역의 활동가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펼치게 된다. 아울러 대안적 삶의 실천, 공유기술, 에너지비용 및 탄소배출 감소, 지역먹거리 운동, 지역경제의 성장을 추구하며, 다른지역의 활동들과 적극 협력하는 것을 선호한다.‘전환마을운동’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전환(Transition)의 개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새롭게 재해석(Reimagine)하고 재건(Rebuild)하는 것으로 최근까지 가장 비중을 높게 둔 것은 에너지전환 관련이다.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중심에 두고 모두가 상생하는 삶을 위한 변화를 끊임없이 사고하고 추구하는 커뮤니티 기반의 공동체 활동을 추구할 수 있었다. 국내·외 ‘전환마을운동’의 우수사례를 살펴보면 지역대학 등 전문가 집단의 참여와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리고 해당지역 주민대상 인식전환 교육을 필수적으로 진행하며, 단계별, 주민주도형 에너지 전환계획을 수립했다.아울러 마을의 지속성 담보를 위해 주민공동체를 구성하고 민관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지속적으로 지원하였고, 마을특성에 적합한 적정기술의 사용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특성의 ‘전환마을운동’은 최근 에너지자립 중심에서 ‘탄소중립 전환마을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핵심사업으로는 ‘탄소중립전환마을’ 거점센터 조성, 마을별 ‘탄소중립전환마을’ 가이드라인 수립, ‘탄소중립전환마을’ 추진협의회 구성, ‘탄소중립전환마을’ 모델 구축, ‘탄소중립전환마을’ 교육(에너지전환, 생태복원, 물순환, 문화복원 등) 및 ‘탄소중립전환마을’ 디자인학교 운영 등이 있다.지난해 말 대구시와 광주시는 행정안전부의 주민주도형 지역균형뉴딜 우수사업 공모에 ‘달빛동맹 햇빛찬란e’ 플랫폼 구축사업이 최종 선정됐다. 이 사업을 통해 광주시가 역점 추진한 ‘에너지 전환마을’의 노하우가 대구시의 ‘탄소중립 전환마을’ 추진에 전수되고, ‘탄소중립 동맹’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2022-08-01

쉼이 있는 삶의 리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휴가의 절정이다. 연이은 태풍 북상 예보에 고온다습한 날이 계속돼도 휴가를 떠나는 발길은 급증하고, 피서지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중복을 넘긴 7월말~8월초가 하계휴가 절정기로 전국민의 60% 이상이 피서나 휴양을 위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어, 국토교통부에서는 안전한 교통환경과 원활한 교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특별교통대책’을 마련·시행할 정도다. 코로나19의 6차 대유행 조짐으로 불안과 긴장을 떨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캉스 행렬은 왕래부절이니 우려와 설마가 넘나드는 딜레마 같은 나날이랄까?그래도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신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도돌이표 같은 일상에 더군다나 3년째 발목 잡아온 거리두기로 사람들은 얼마나 시달리고 억눌렸는지, 웬만하면 일단 집을 나서 시원한 콧바람을 날리며 그간의 지긋지긋함을 떨쳐 버리려는 모양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환경과 접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신경 써야 하고 부담스러운 것들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며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희망사항일 것이다.휴가는 어쩌면 그와 같은 방편과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휴식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일만 하는 ‘개미의 삶’에서 벗어나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라도 나를 바라볼 수 있는 휴식, 무위(無爲)에서 오는 자유감, 자유시간 동안 빈둥거릴 수 있는 게으름 등도 아주 훌륭한 여가활동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휴가를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기계처럼 일만 한다고 해서 결코 능률이나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쉼과 여가생활이 있는 일터의 리듬이 진정한 효율과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논리다.그래서 지난 주말,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 부산 나들이를 다녀온 것은 여유로운 쉼과 함께 삶의 리듬을 새삼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최대한 편하고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다가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관광명소를 찾아 눈요기를 하고, 주변 맛집에서 별미 먹거리로 입을 즐겁게 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쐰다는 것은,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의 리듬을 물결치게 하기에 충분했었다. 더욱이 부산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부산에 유치해 콘서트’장면을 우연히 접하기도 하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솟아오르는 밤하늘의 불꽃쇼가 마치 관광객을 반기는 축포로 여겨져 한결 여흥을 돋우는 듯했다.재충전의 시간은 빼곡한 일상의 갈피에서 벗어나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구름처럼 움직이고 물결처럼 흘러가는데 몸을 맡기는 것이리라. 쉼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일을 잘 하듯이, 일만 하고 쉴 줄 모르는 자는 미래 경쟁력인 창의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쉼은 준비와 도약을 위한 워밍업이자 삶의 리듬을 채워주고 생기를 더해주는 일상의 여백이며 행복의 텃밭이 아닐까.

2022-08-01

현장의 힘, 고유기술과 관리기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제조업에서 비용을 구분할 때 크게 재료비, 노무비, 경비, 일반관리비, 이윤으로 나눈다. 그런데 동일한 제품을 같은 공정으로 생산하는 회사 간에 비용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비용의 차는 기술의 차이며 고유기술과 관리기술로 대별된다. 특히 관리기술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과 LG전자가 과거 약 10년 주기로 직책자들을 대거 일본 도요타자동차로 보내 벤치마킹 한 것으로 유명하다.일반적으로 고유기술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본기술을 말한다. 철강업을 예로 들면 제선, 제강, 압연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필수 기술로 제선은 분철광을 소결광으로 만들어 석탄인 코크스와 같이 장입하여 고열로 녹이는 용선제조기술과 제강의 고순도 강을 만들기 위한 용강제조기술, 압연은 연속적으로 생산하는 연연속과 표면처리기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관리기술은 고유기술을 살리는 응용기술로 인적·물적 여러 요소를 운영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관리 요소는 생산, 품질, 원가, 납기 안전, 인력 등이 있으며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기법으로 산업공학, 품질관리, 가치공학, 전사적생산보전활동, 6시그마, 적기공급생산 등 다양한 방법론들이 있다. 이 중 6시그마는 1980년대 모토롤라에서 불량품 처리비용으로 매년 약 8∼9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지출을 막기 위해 로버트 갤빈 회장이 5년간 10배의 개선을 달성하라는 명령에서 출발해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마이클 해리 박사가 동사의 전자사업부에 근무하면서 100만개 중 3.4개의 불량인 6시그마를 달성하도록 개발한 방법론이다.이런 6시그마를 2000년대 우리나라에 많은 기업들이 도입하면서 포스코도 일하는 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현장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통계 툴을 너무 어려워해 문제를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6시그마의 문제해결단계와 전사적생산보전활동의 자주적 설비관리, 산업공학의 각종 분석기법, 적기공급생산의 낭비제거사상 등 필요한 부분만을 취해 전원참여 개선활동과 인재양성 방법으로 만들어 발전시킨 활동이 현재의 QSS(Quick Six Sigma)이다.QSS활동도 2007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 15년을 지속하면서 대내외 여건변화에 맞추어 툴도 진화되고 중점활동방향도 바뀌어 왔다. 2019년 이후는 사회적 이슈인 안전과 환경을 최우선으로 했고, 최근에는 세계적 이슈인 에너지 저감도 확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기업의 궁극적 목적인 지속적인 이윤을 창출하여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함이다.생산의 본질은 ‘좋은 제품을 남보다 싸게 만들어 고객이 필요할 때 제공’해주는 것으로 기업의 본원경쟁력이라고도 한다. 안전과 환경은 이 일을 실행하는 작업자 스스로를 위한 것으로 당연시 되어야하며, 생산의 본질 향상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 설비 도입이나 투자와 같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QSS활동과 같은 관리기술이다. 이는 사람을 통해 오랜 시간 현장에 문화로 녹아있는 것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핵심 기술인 것이다.

2022-08-01

시대의 아이콘이 된 ‘나혜석’이라는 이름

근대의 예술가상을 떠올리자면, 어쩐지 열렬히 불타오르고 금방 사그라들고 만 비운의 작가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단지 틀에 박힌 스테레오타입화된 사고는 아닐 것이다. 어떤 시대의 공기는 늘 그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들의 묵지근하게 마음을 내리누르고 있지만, 적어도 근대의 예술가들이란 그 시대의 공기를 자연스레 호흡하기보다는 새로운 공기를 불어올 바람을 찾아다니거나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예술가’들 중 대부분이 그의 시대에 앞서 있었거나 혹은 뒤서 있어서 아무런 평가도 받지 못하다가 한참 나중에서야 그에 값하는 평가를 받게 된다. 어떤 삶과 예술은 그것이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기까지 오랜 시간을, 아니 인식의 단절이라고 해도 좋을 변화를 요청하고 필요로 한다.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나혜석’(羅蕙錫·1896~1948)이라는 화가이자 작가는 바로 그러한 전형적인 근대적 예술가상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좋다.그는 여성에게는 거의 금단의 영역이라고 해도 좋았던 한국 근대 미술계에서 가장 뚜렷한 작품활동을 보여주었던 화가였고, 문학 작가로서도 일정한 자기 영역을 갖고 있는 작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나혜석’이라는 이름을 떠올린다면, 사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성취보다도, 신여성으로서 시대의 인습에 저항하다가 비운의 예술가로서 최후를 맞이했던 그의 삶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예술이란, 특히 근대의 예술이란 단지 그림 한두 편이 보여준 성취가 아니라, 시, 소설 몇 줄이 보여주는 성취가 아니라 예술가의 삶 자체가 예술화되어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혜석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 나가 ‘인형의 집’에서 자발적으로 추방당했고, 그를 통해 시대적인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 한국 최초의 문예지 ‘창조’의 동인이었던 시인 최승구와 연애하였지만, 정작 변호사인 김우영과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로서는 세기의 결혼으로, 신문지상에 기사로 실릴 정도였는데, 이는 전적으로 당시 나혜석의 유명세 때문이었다. 당시는 여성 예술가가 귀해서 여성으로서 미술이나 음악, 문학을 창작했던 작가들은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었던 시대였다. 그 때문에 신여성으로서 예술을 하고자 했던 이들은 언제나 조선 전통의 관습을 따르는 평온한 삶과 시대적 관심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삶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나혜석의 소설 ‘경희에서 나혜석 자신의 페르소나이기도 한 ‘경희’가 결혼하기 전 자신 앞에 놓인 두 개의 길을 내다보고 고민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고민이었다. 다만, 나혜석으로서는 두 개의 길 중에 평온한 삶을 택했던 것이었지만, 그 삶조차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 구미만유, 불륜, 이혼고백장, 정조취미론 등 이후 나혜석이 걸었던 삶은 조선 전래의 인습에 맞서 자기를 예술화하는 것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누군가는 나혜석에게서 결혼과 정조라는 낡은 관념에 저항했던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발견하지만, 그의 삶에서는 한국에서는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근대 예술가의 상을 떠올리게 된다. 비록 그가 평온한 삶을 바랐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렇게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시대를 앞서 나가 그것과 싸우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삶을 예술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근대 예술가의 숙명일 테니 말이다.나를 둘러싼 시대의 공기가 정체되어, 마치 그것이 나의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 때, 나는 나혜석의 소설을 읽는다. 그 속에는 다가올 예술에 대해 예감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존재가 있다. 성별이나 민족을 넘어서 시대적 편견과 싸우는 예술가들이 겪는 두려움에 여전히 공명하게 되는 것은 근대 예술의 이상이 아직 종료하지 않았다는 기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2-08-01

그 길밖엔 없어<Ⅳ>

박 팀장은 담뱃불을 손으로 튕겨냈다. 종이컵에 꽁초를 넣었다.-그러면 올더앤베러 소유 차량에서 범행이 일어났다는 거잖아. 내부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야?-그렇게 단언해서 말할 수는 없지요.허 형사는 대답을 한 후 종이컵에 남아 있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그건 그렇지. 진주 공장에 갈 때 같이 가자. 나도 도와줄게.-팀장님은 그냥 여기 계십시오. 같이 가봤자 걸리적거리기만 합니다.허 형사가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야, 뭐라고? 아직 삐져 있는 거야? 사내자식이. 야, 거기 서봐.박 팀장도 허 형사를 따라 벤치에서 일어났다. 허 형사를 쫓아갔다.-사람이 따라오면 기다려주기도 하고 그래야지.박 팀장이 숨을 헐떡였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허 형사가 이야기했다.-중고 인공 장기 말입니다. 한 번 사용한 인공 장기라 하더라도 다시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시 사용하려면 정해진 시간 내에 특수한 세척을 해야 다른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답니다. 설명이 어렵던데, 인공 장기에 처음 사용했던 사람의 세포 같은 것이 남아 있어도 안 되고, 또 무균상태로 만들기 위해 소독하는 과정 등이 필요하고. 하여튼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특수한 세척을 해야 한답니다.-그렇겠네. 재사용하는 것 자체가 찝찝하잖아. 인공 장기를 달면서 중고를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해.박 팀장이 옆 책상의 의자를 끌고 와 허 형사의 책상 옆에 자리를 잡았다.-간혹 있다 하네요. 신품과 중고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니까. 어쨌든 이 특수 세척이 필요한 데, 이 특수 세척을 할 수 있는 기계가 수거업체, 그리고 제조 회사에만 있답니다. 이게 쉽게 들여오거나 만들 수 있는 기계가 아니랍니다. 그렇다고 기계를 밀수해 와서 쓸 만큼 시장이 넓은 것도 아니고. 결국 병원이 아닌 곳에서 불법 인공 장기 이식 시술을 하더라도 수거 업체나 제조 회사의 세척을 거쳐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 수거 업체나 제조 회사에서 세척한 인공 장기가 없답니다.허 형사의 말을 듣고 있던 박 팀장이 허 형사의 말을 끊었다.-잠깐만. 세척을 해놓고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아니면 아직 세척하러 오지 않았거나. 무조건 수거 업체나 제조 회사를 거쳐야 한다면 분명히 들통 날 텐데. 다른 방법이 있는 것 아니야?허 형사는 잠시 박 팀장을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그러니까요. 이제 말하려고 하는데. 제발, 좀. 제 말 좀 끊지 마십시오. 팀장님은 그게 제일 이상한 습관입니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듣고 있지를 않습니다. 어쨌든 그런 것을 살펴볼 수 있는 방법으로 기계의 사용 횟수를 보는 것이 있습니다. 기계가 몇 번 돌아갔는지 기계 자체에 기록이 되어 있기는 한데, 장기 하나를 세척할 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세척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기계가 돌아간 횟수로는 불법 세척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세척에 필요한 약품의 사용량을 보는 것인데. 이것도 사용량을 서류 조작하거나 평소에 세척을 하면서 조금씩 따로 모아놓았다가 사용을 했다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남아 있는 양을 보는 것이라서 내부직원이 관계되어 있다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잖아.박 팀장이 허리를 뒤로 젖혔다.-그렇기는 한데요. 수거 업체나 제조 회사의 서류와 기록이 모두 진짜라 가정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시간상으로 보았을 때 아직까지 제품을 세척하지 않았다면 재사용할 수 없다 하더라고요. 재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세척을 했어야 하는 거지요.-범행의 목적이 인공 장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나?허 형사가 씩 웃으며 박 팀장의 얼굴을 보았다.-그렇지요. 제 말이 그겁니다. 전혀 다른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인공 장기 관련 사건인 것처럼 보이게 말이죠. 시체를 다시 가져다 놓은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인공 장기만 노린 놈들이라면 시체를 다시 가져다 놓을 필요는 없지요.-그렇지.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어쨌든 인공 장기가 사라졌잖아. 다른 목적이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인공 장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지. 두 가지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인공 장기와 복수, 이런 식으로 말이지. 그리고 녀석들은 자기들이 시체를 다시 가져다 놓은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말하자면 범행 장소를 헷갈리게 하려고 일부러 시체를 가져다 놓았을 수도 있지.박 팀장이 허 형사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허 형사, 아니, 우리 허 형사가 그 신호음인가 뭔가의 신호 강도에 대해서 알아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태 범행 장소도 오리무중이었을 것 아니야. 다행히 우리 허 형사가 아주 똑똑한 덕분에 알게 되었지. 여러 가지 가능한 이야기들이 있으니 모두 염두에 두자고. 인공 장기 매매도 포함해서 말이야. 중국 같은 외국으로 빼돌렸을 가능성, 수거 업체나 제조 회사의 기록이 조작되었을 가능성, 재활용하려다 여의치 않아서 접었을 가능성. 모두 다 있는 거니까. 그런데, 어쨌든 말이야. 허 형사. 인공 장기 관련해서 전문가가 다 된 것 같아. 정말이야. 신호니 세척이니 등등. 너무 잘 아는 것 아니야? 대단해. 앞으로 비슷한 사건들이 많이 생겨날 텐데. 우리도 전문가가 한 명 생긴 것 같아. 든든해.박 팀장은 인공 장기가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허 형사의 말에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인공 장기 관련해서 허 형사가 알아낸 사실들에 대해 칭찬을 했다. 허 형사는 박 팀장의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아내의 죽음과 맞바꾼 것들이었다./김강 소설가

2022-08-01

양보할 줄도 아는 게 정치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부터 휴가다. 폭염과 짜증 나는 현실을 잠시 피해 머리를 식힐 시간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곤두박질쳤다.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불만도 있지만 실망과 아쉬움도 많다. 지지 여부를 떠나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한다.20%대 지지율로는 국정 동력이 안 생긴다. 공무원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경찰의 항명도 지지율과 무관하지 않다. 임기 초에는 대통령에게 힘이 집중된다. 누구나 두려워하며 눈치를 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벌써 얕보이고 있다. 힘은 공포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어느 조사에서나 인사 문제를 지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잘하는 사람을 누구든 쓸 수 있다. 이념과 지역도 장벽이 되지 않는다. 조금만 노력하면 반대 정당의 인재까지 쓸 수 있다. 다만 인재를 알아보는 눈과 최적의 인재를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기대가 꺾인 건 여기서부터다. 사적 인연의 좁은 지인 풀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인적인 오랜 인연에 모든 국정을 의지한다고 알려졌을 때 국민은 배신감을 느꼈다. 대통령이 나눠준 그 자리는 ‘내 표’와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임의로 나눠줘도 되는 게 아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검찰 이외 경험이 거의 없다. 그게 문제는 아니다. 그 좁은 우물에 자신을 가둬버리는 게 문제다.특히 검사가 너무 많다. 검사가 모든 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서울 법대 출신으로만 채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엘리트주의만이 아니다. 세상일은 유죄와 무죄로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법률가가 많은 정치는 옳고 그름만 따진다. 피고와 원고, 내 편 아니면 적이다. 야당도 전투적인 법률가들의 목소리가 크다. 서로 내 편이 옳다고 고함지르니 대화와 타협이 있을 리 없다. 정치가 실종됐다.집권당을 보면 더 한심하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20%대로 추락하고서도 반성이 없다.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을 향해 손가락질했지만, 국민의힘도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노력 없이는 큰 세력이 될 수 없다.당장 이준석 대표 문제는 너무 성급하고, 서투르게 달려들었다. 이 대표는 대선 때 여러 차례 윤 대통령을 궁지에 몰았다. 이 대표의 힘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게 했다. 인간적으로 섭섭한 앙금이 남았을 수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노출한 문자를 보면 이 대표를 향한 불편한 감정이 ‘윤핵관’들의 과잉 충성 탓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대표를 밀어낸 방법은 너무 속이 보인다. 그런 무리한 방법은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나름의 세력이 있다. 아무리 얄미워도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 대표의 팬덤만이 아니다. 이 대표를 공격하는 전선에 극우 인사들을 배치해 집권 세력 스스로 극우의 틀에 갇혔다. 중도와 젊은 층을 모두 밀어내는 패착을 뒀다.아직 선거가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2년은 심각한 여소야대를 견뎌야 한다. 그동안 야당의 협조는 어떻게 얻을 것이며, 2년 뒤 선거는 왜소해진 정당으로 치를 것인가. 젊은 유권자는 현재의 그 숫자가 아니다. 점점 비중이 커지는 세력이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국정도 잘하는 건 아니다. 잡음이 많이 이는 게 그 부분이다. 가장 믿는 측근은 위기 때를 위해 아껴두는 법이다. 최고의 전문가를 앞세우고, 가까운 사람들은 잠시 뒤로 물리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윤 대통령은 검사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직진한다. 그러나 정치는 법정이 아니다. 지킬 것과 내줄 것을 구분해야 한다. 대화하고 타협하고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도 대통령이 보호해야 할 국민이다. 단호한 장악력도 필요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은 절제가 필요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31

장애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눈길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연일 화제를 뿌리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우영우’의 폭발적인 인기가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 우영우를 수식하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를 생각해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 천재성을 가진 자폐 장애인 우영우가 대형 법률회사에 입사하여 좌충우돌하는 게 기둥 줄거리이기 때문이다.그동안 자폐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와 드라마는 적잖다. 영화 ‘말아톤’ (2005)과 ‘그것만이 내 세상’(2017), ‘증인’(2019)과 드라마 ‘굿닥터’ (2019) 등을 거명할 수 있다. 이런 장애 영화와 드라마를 해외로 확장하면 부지기수(不知其數)가 될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장애인을 따사롭게 보듬는 인권 선진국들은 자폐를 포함한 각종 장애인을 외면하거나 냉대하지 않고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1988년 할리우드 영화 ‘레인 맨’에 등장하는 레이먼드와 그의 아우 찰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인색한 아버지로 인해 감옥에서 썩어야 했던 찰스가 거액의 유산 때문에 형 레이먼드와 여행하면서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레이먼드는 ‘서번트 증후군 savant syndrome’을 겪는 자폐 장애인이다. 한편으로는 천재적인 암기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소통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우영우 역시 자폐에 시달리는 장애인이지만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예쁘기까지 하다. 우리는 우영우를 장애인 취급하기보다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소유한 아름다운 여성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장애와 장애인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우리는 여러 사회적 난제를 이겨내는 그녀의 인내력과 빼어난 능력에 감탄하면서 드라마에 공감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따뜻하고 이해심 있는 태도로 바라보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될지 자못 궁금하다. 전장연의 주장을 보면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면모가 확연히 드러난다.“사람들은 우영우란 캐릭터를 보면서 함께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장애인도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끄고 현실로 돌아와 출근길에서 장애인이 ‘지하철 타기 선전’을 하면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의 마음들은 오간 데 없습니다.”이와 같은 이중성은 한국 사회의 민낯 가운데 하나다. 예전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팠고, 지금은 가까운 친구나 친지가 성공하면 암에 걸릴 지경이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은 여전히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우영우’가 끝나면 장애인의 이동권, 노동권, 탈시설 목소리도 시나브로 잦아들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험난한 세상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2022-07-31

소설가 연구원장

경북도가 소설가(이인화)이자 이화여대 응용융합콘텐츠학과 교수를 역임한 유철균 전 교수를 대구경북연구원장에 임명해 화제다. 대구경북연구원은 1991년 대구시와 경북도가 출연한 정책 연구기관이다. 대구경북의 산업과 경제, 도시계획, 교통,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시책을 연구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이른바 지방정부의 싱크탱크다.이곳의 수장이 소설가 출신이라니 이색적이다. 물론 그의 경력 중에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이력이 있으나 관례적인 연구기관의 수장 이력과 비교하면 파격적이고 어색하다.경북도는 인문학 기반의 원장을 선임한 배경에 대해 “융합적 연구와 파괴적 정책 대안 제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아이디어가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디지털과 인문학적 역량을 갖춘 혁신형 리더로서 역할을 기대한다”고도 했다.지금 우리시대는 상식이 파괴되는 시대다. 융복합적 사고로 이뤄지는 과학의 발명이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고 새로운 창의를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문, 과학, 기술 등 각각의 세분화된 학문이 서로 결합하고 통합하며 나아가 이를 응용해 새로운 분야를 창출하는 과정들이 반복되고 있다.예술과 기술이 만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 파괴적 변화를 일으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가 맞을 미래는 아무도 상상 못 할 일들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기술을 필두로 나타나는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세상에 대처할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소설가 출신 연구원장 임명이 파격적이지만 파괴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31

문해력이 문제라고요?

유영희 작가 얼마 전 성인들로 구성된 소설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에 참여했다가 실망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문자 그대로 읽지 않고 조사를 바꾸는 것은 다반사이고 읽고 나서도 내용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오독은 독서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가끔 보는 일인데, 문제는 그렇게 잘못 이해한 것을 다양한 해석이라는 명분을 내걸며 우길 때 참 난감하다.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도 이런 오독은 종종 일어난다. 다행히 모임에서는 서로 자기가 읽은 것을 나누면서 고칠 수 있지만, 취업을 준비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한순간 잘못 이해하면 큰 낭패를 보기 때문에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문해력은 원래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글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의미적 읽기’까지 수행하는 정도를 실질적 문해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도 문해란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기초 문해력을 습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사회가 급속히 변하면서 알아야 할 어휘가 급속히 늘어나는 데다, 관련 지식이나 정보가 없으면 정보 문서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실질 문맹률은 점점 늘어난다. 우리나라는 3년마다 성인 문해력 수준을 조사하는데, 2020년 약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학교 학력 이하의 문해력을 가진 사람은 모두 1천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이런 고민에 응답하듯, 7월 7일부터 10월 6일까지 EBS에서 ‘당신의 문해력+’를 방영하고 있다. 작년에 방송된 ‘당신의 문해력’이 6부작이었는데 올해는 그 두 배가 넘는 13부작이라고 하니 문해력 문제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방송을 보니,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의 질문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답을 하거나 거래처에서 온 업무 메일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출연해 경각심을 높여주었다.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고 새로운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사전을 찾고 문맥에 맞게 써보는 것이 좋다. 문장 간 연결 능력을 키우는 데는 추론적 질문하기가 효과적이다. 추론적 질문은 내가 강의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평소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올해 EBS 문해력 테스트에서 주식 매매 수수료나 휴대폰 약정 할인 문제를 보니, 눈앞이 캄캄했다. 2020년 EBS 문해력 조사에서 실질 문맹률이 75%라고 나왔다는데, 이번 테스트에도 당황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문해 능력 평가는, 문자 중심의 산문 문해, 서식과 도표를 포함한 문서 문해, 계산이 필요한 숫자 문해로 구성되어 있다. 인문학 중심으로 책을 읽다 보면, 사회 변화에 둔하고 숫자 문해에도 취약해지기 쉽다. 새로운 문물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려는 태도도 문해력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2022-07-31

우리 사회의 한 수준

강길수 수필가 걸어 출퇴근한다. 일터에 오가는 일과 걷기운동을 겸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사무실 가는 길은 여러 거리를 지난다. 간선도로 서너 곳, 학교 곁 두세 곳, 지선도로 두어 곳, 이면도로가 열 곳이 넘는다. 이렇게 따지니 먼 것 같지만, 약 반 시간 정도 걸린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의 출퇴근 거리(距離)가 흔히 말하는 하루 운동량 만 보에는 미치지 못하나 내겐 족한 거리다.거리마다 같거나 다른 광경들을 만나며 걷는다. 어떤 곳은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하다. 반면, 어느 길모퉁이나 바람 모이는 자리엔 많은 쓰레기가 있다. 심지어 식당의 이면도로 앞에도 다량의 쓰레기가 있다. 짧은 시간 걷는 동안 깨끗하거나 지저분한 각기 서로 다른 모습의 거리를 만나는 것은,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어서 좋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우리의 사회 수준 하나를 들킨 것 같아 씁쓸한 때가 더 많다.그럴 땐 젊은 날 일본 출장길에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에 많이 놀랐던 기억이 저절로 떠올라 우리와 비교되곤 한다. 서툰 일본어 실력으로 좌충우돌하면서 도착한 숙소에서 선잠을 자고 일어나 내다 본 이른 아침 소도시의 거리 풍경….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고운 동영상으로 살아 있다. 집집에 한 사람씩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갖고 나와, 자기 집 앞과 거리를 청소하는 멋진 모습이 부러움과 시샘으로도 다가왔었다.편도 십 리도 안 되는 길이 거리마다 다른 모양을 보여주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말하는 걸까. 어떤 이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성 때문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나, 내가 본 깨끗한 거리에는 숨은 보석들이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침마다 보았던 어떤 할아버지의 묵묵한 공원 청소, 부부로 보이는 어느 시니어 봉사자들의 꼼꼼한 쓰레기 줍기, 땀을 흘리며 아침마다 자기 사는 지역 쓰레기를 말없이 치우던 중년 남자 등이 그들이다.깨끗한 거리는 정부의 일자리 사업 청소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본다. 출근길에 만나는 쓰레기 줍는 노인만 해도 족히 스무 명은 된다. 그분들은 정한 구역만 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소외된 지역의 길은 숨은 봉사자가 없는 한 깨끗하지 못하다. 일자별로 다른 지역을 배정한다든가 하면 효과가 더 높아질 텐데, 그 많은 공무원과 시·도·국회의원 등 국민의 머슴들은 어디서 무얼 보고 살피는 걸까.삶터의 쓰레기 유무를 그 사회 수준의 한 척도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오토바이를 타고 깨끗한 거리에 황야의 무법자처럼, 쓰레기로 될 명함전단지를 휙휙 뿌려대도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잘못된 우리 사회 수준의 사례이리라. 쓰레기는 도시뿐 아니라 시골, 산과 들, 하천과 바다, 하늘에 이르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없을수록 좋은 게 쓰레기다. 온 나라가 합심하면 쓰레기 없애기가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이다.우리는 쓰레기로 버린 담배꽁초가 커다란 산불로 변해 엄청난 피해를 주고 인명도 앗아가는 불행을 겪었다. 이는 우리가 사회 수준을 높여야만 할 반면교사가 아닐까.

2022-07-31

미래 첨단산업·물류 중심도시로 도약

김충섭 김천시장 민선8기를 새롭게 출발하면서 ‘시민 모두가 행복한 김천’을 만들기 위한 생각들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나침반 삼아 초심의 마음으로, ‘살기 좋은 도시’ 김천을 향해 한걸음씩 나가고자 한다.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에게 힘이 되고, 일자리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서민들의 고단함을 덜어내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청소년들이 꿈 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오늘의 김천을 있게 한 어르신들을 더욱 정성껏 보살펴야 한다. 장애, 성별 등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않으며, 혁신에 혁신을 더해 사람이 모이고 기업이 찾아오는 역동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먼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강소기업을 집중 육성하여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4단계 산업단지 조성으로 최적의 기업입주 환경을 만들고, 유망하고 탄탄한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새내기 청년세대가 더 나은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도록 청년 창업·성장 플랫폼도 구축한다.둘째, 따뜻한 복지로 일상의 행복을 누리도록 하겠다.삶이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유지되어야 한다. 김천복지재단 활성화로 촘촘하고 세심한 복지 안전망을 구축하고 김천형 공감복지를 실현하겠다. 임신부터 출산, 양육까지 폭넓은 지원으로 아이와 가족 모두의 행복지수를 향상시키겠다. 장애인, 노인, 여성 등 계층별 맞춤형 복지시설 확충으로 삶의 질을 높이겠다.셋째, 균형발전으로 시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도시를 만들겠다.지역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려면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며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도시재생의 물결을 원도심 전역으로 확산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든다.공공기관 추가 이전과 다양한 생활문화, 의료, 교육 인프라 확충으로 자족형 명품 혁신도시를 완성하겠다. 첨단 유통시설 확충과 고품질 과수 명품화, 스마트농법 확산으로 농업소득을 향상시키고, 상하수도 등 농촌지역의 정주환경을 개선해 여느 도시 부럽지 않은 부자 농업·농촌을 만들어 가겠다.넷째, 미래를 선도하는 첨단산업도시를 만들겠다.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먹거리 산업육성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시는 한 발 빠른 대응과 준비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 신성장 동력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현재 활발하게 추진 중에 있는 자동차 튜닝, 드론, 전기자동차 산업을 김천의 먹거리 산업으로 만들겠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자동차 튜닝 클러스터, 자동차서비스 복합단지, 드론 메가시티 등 관련 사업을 착실히 추진해서 김천만의 특화된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남부내륙철도, 대구권 광역전철 김천연장 등 전국을 아우르는 십자축 광역철도망을 구축하고, 물류산업 클러스터, 스마트 그린물류 규제특구 조성으로 첨단물류 교통도시로의 위상을 새롭게 만들어 가겠다.다섯째 사람이 모이는 활력 넘치는 힐링도시를 만들겠다.문화, 예술, 관광, 스포츠 등을 융합한 새로운 힐링산업이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예술 놀이터 운영으로 생활 속의 문화공간을 확대하고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겠다. 권역별 관광 인프라 구축과 매력적인 체류형 관광벨트를 연결해 오고 싶고,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관광휴양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스포츠 시설확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사계절 내내 대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며 즐길 수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 또한 각종 스포츠 경기 때 마다 많은 관중들이 우리시를 찾아오도록 해서 지역경제와 연계시키고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며 다리를 놓는다” 는 고사성어가 있다. 어떤 난관과 어려움에 봉착하더라도 변화와 혁신의 길로 헤쳐 나가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민선8기 시정을 이끌어 갈 각오를 다져본다.

2022-07-31

일곱 웅덩이에 별이 뜨면

오늘은 기원(祈願)의 기원(起源)을 찾아 동해안 칠포리를 향한다. 이곳에는 암각화가 곳곳에 있다. 비바람에 지워져 암각화인지 모르는 것도 있고, 언덕이나 골짜기에 있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게 많다. 발품을 파는 만큼 얻는 게 있으리라는 생각에 신발 끈을 야무지게 조인다. 칠포해수욕장을 조금 벗어나자 야트막한 산 초입에 안내판 하나가 눈에 띈다. 그 뒤에 큰 가마솥만 한 바위가 보인다. 안내판이 없다면 하릴없이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바위로 여길 것이다. 수풀을 헤치고 들여다본다. 거무튀튀한 표면에 희끗희끗한 돌꽃이 피었고, 군데군데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점을 찍어놓은 듯하고 상형문자 같기도 하다.까마득한 옛날, 그러니까 겨우 쇠붙이로 연모를 만들 줄 알던 때, 이 땅에 조상들이 새겨놓은 문양들이다. 사다리꼴, 윷판, 북두칠성, 그리고 의미 모를 문양들…. 피라미드 밀실에 보존된 벽화처럼 내세관이 그려진 것도 아니고 반구대 벽화처럼 장엄한 스토리가 새겨진 것도 아니다. 이 문양은 울퉁불퉁한 돌 위에 점을 찍은 듯 줄을 그은 듯 투박하게 새겨져 있다. 더 큰 호기심을 품고 내륙으로 차를 돌린다. 곤륜산 동쪽을 끼고 개천을 따라간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더는 길이 없어 차를 버리고 걷는다. 안내판 저만치 묵정밭 한가운데에 거북처럼 웅크린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너럭바위는 갈라지고 일부는 부스러졌지만, 성혈과 별자리 문양이 또렷하다.기도문을 읽듯 문양을 하나씩 손으로 짚는다. 나와 선사시대 사람과 세월의 거리는 삼천 년이다.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전해오는 기도문이 내 손끝에 닿았을까, 아이를 많이 점지해 달라는 어머니, 사냥에서 풍요로운 수확을 기대하는 아버지, 배곯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들, 비를 내려 가뭄을 물리쳐 달라는 제사장,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내 손끝으로 전해오는 것 같다. 자동차를 곤륜산 서쪽으로 향하니 ‘오줌바위’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세상에는 멋진 이름이 많다만 왜 하필이면 오줌바위인지 궁금하다. 이정표를 따라 신흥리 북골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려 골짜기를 따라 걷는 동안에도 바위의 이름이 지어진 내력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십여 분쯤 걸었을까. 왼편 산비탈에 묘한 풍경 한 점이 보인다. 오줌바위다. 검고 누르스름한 바위가 골 따라 길게 뻗어 있다. 가까이 올라가서 보니 바위에 굴곡이 만들어지고 웅덩이가 있다. 마치 강이 흐르는 모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의문이 풀린다. 바위가 아래로 길게 누웠는데 마치 오줌이 흘러내린 형상이다.오줌바위에 올라, 한 발 한 발 떼면서 바닥을 살핀다. 오래도록 물이 흐르면서 물길을 냈고, 그 물길 따라 자그마한 웅덩이가 생겼다. 걸음을 옮기니 군데군데 윷판형 그림과 별자리 고누판, 그리고 기하학적 문양이 보인다. 하늘의 말씀을 공손히 담고 제단에 음식을 바치는 의식을 치러낸 흔적이다. 모든 기도는 하늘로 올라간다. 산과 강을 누비며 수렵하던 원시의 기도가 그랬고, 무엇이든 이룰 것 같은 문명 시대의 기도도 그렇다. 인간의 힘이 한계에 닿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이순혜 수필가 문명의 빛이 세상을 환히 밝혀도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다.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한량없이 작은, 자연의 힘에 비하면 아주 나약한, 게다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어딘가에 기대왔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던 사람들은 하늘이 있어 팍팍하고 거친 삶을 위안할 수 있었다.어느새 서녘 하늘이 붉게 물든다. 사람들은 고단한 일상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발에서부터 올라온 피로가 허리까지 번져도 마음은 한결 가볍다. 종일 발품을 판 소득이 풍성하다는 충만감 때문이리라. 암각화는 하늘과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어둠이 세상을 덮으면, 암각화 일곱 웅덩이에 고인 물에 별이 뜨겠지. 그러면 기원은 하늘로 올라가고 칠성별은 지상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반짝일 것이다.

2022-07-31

‘RE100 실천’ 중소기업도 예외 아니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며칠 전 경산지식산업단 내에 자리 잡은 중소기업인 창원정공 공장을 방문했다. 이 업체의 지난 6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니 계약전력은 600kWh이고 피크전력은 318kWh, 한 달 사용량은 4만5천kWh였다. 2년 전 신축한 공장으로 공장 사무실이 어떤 오피스빌딩 못잖게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공장 내부도 높은 천장에 LED 투광등이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는 등 어느 한구석 손댈 것이 없어 보였다. 마침 공장 지붕에 370kWh, 사무동 지붕에 80kWh, 총 450kWh의 태양광을 설치하겠다는 제안서를 받아 놓고 검토하는 단계였다.현대자동차가 RE100을 2050년에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는 내용을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ESG(환경보호, 사회공헌, 윤리경영) 경영에서는 대기업의 경우 본사 RE100(scope1)뿐 아니라 협력사·하청업체(scope2), 운송·보관(창고)업체(scope3) 모두가 RE100을 달성해야 한다. 1·2차 벤더를 비롯한 협력업체의 RE100도 아주 중요해진 셈이다.방문한 공장은 신축공장이라 당장 봐서는 에너지 절감이나 효율을 높이는데 손댈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20~30%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이 공장 전기요금은 월 950만~1천250만 원, 전력 사용량은 4만5천~6만kWh 정도였다. 특히 겨울철에는 난방 때문에 전기 사용량이 많고 일조량이 적은 것을 감안해, 소형 풍력발전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성도 있어 보였다.전기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통해서 매월 1만3천500~2만kWh의 전력량을 절감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따라서 매월 3만1천500~4만kWh의 신·재생 에너지가 필요한데 최대 450kWh 태양광을 설치하면 매월 평균 5만4천kWh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니, 이것만으로 RE100 달성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창원정공 사례를 보면, 중·소 규모 공장들도 우선 에너지 효율을 높인 뒤 상황에 맞춰서 태양광 발전시설과 소형 풍력발전시설을 설치하면 얼마든지 RE100 달성이 가능하다.대기업이 손 놓고 있다고 해서 협력업체나 중소기업들도 RE100에 손 놓고 있으란 법은 없다.다만, 대기업은 자금력이 있고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중소기업들은 이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특히 각 기업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RE100 전담팀’을 만들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RE100을 달성한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RE100 확산 풍토를 우선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마이크로소프트나 테슬라, 구글 같은 글로벌기업만이 ESG경영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나 SK,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ESG경영에 미온적이다 보니, 하청업체인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언론에서 ESG 기준을 강화한 유럽의 ‘공급망실사법안’ 시행을 앞두고 국내 수출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독일은 내년 1월부터 공급망실사법을 시행한다. 법안내용은 ‘전체 공급망을 대상으로 ESG경영평가 기준에 따라 점검하여, 발견된 문제를 공개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요구하겠다’는 내용이다. 핵심 내용은 RE100달성 여부이며, 실사대상에는 원청회사와 자회사, 공급업체, 하도급사까지 모두 포함된다.지난 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수출기업의 공급망 ESG 실사대응과 현황과제’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52.2%가 ‘ESG경영 미흡으로 고객사(원도급사)로부터 계약·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ESG 실사 대비수준’을 묻는 항목에는 ‘낮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77.2%(매우 낮음 41.3%, 낮음 35.9%)였다.대구지역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공급망실사법 시행 이전에도 유럽 기업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이제는 더욱 힘들어질 것 같다. ESG 경영이 필수지만 비용이 만만찮아 걱정”이라고 했다.하지만 창원정공처럼 공장과 사옥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매년 8천여만 원씩 20년간 전력 판매소득도 발생한다. 설치비를 제외하고도 기업에 상당한 이익이 되고, 동시에 RE100도 달성할 수 있어 ESG 요구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경산지식산업단지는 전체적으로 신축공장들이 들어서 쾌적하게 보였지만, 그보다도 공장 지붕에 가지런히 설치된 태양광 패널들이 ESG 경영에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서 인상적이었다.이제 ESG경영과 RE100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당장 시행해야 할 냉엄한 현실이다.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그렇다고 해서 어렵고 복잡한 것도 아니다. 창원정공 사례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2022-07-31

뜨거워지는 지구 : 폭염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지구가 뜨거워 지고 있다. 전 세계가 폭염피해를 입고 있지만 특히 유럽의 상황은 심각하다.프랑스는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가게 문 열기 금지’, 이탈리아는 ‘머리 두 번 감기는 미용실 과태료’, 스페인은 ‘넥타이 매지 말기’ 등으로 일상에서부터 폭염에 대응하고 있지만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BBC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에서는 2주일 동안 500명 이상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한다.영국의 경우 기후관측이 시작된 1659년 이래 363년만에 최고 기온을 돌파해 역대 최고 수준의 폭염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더위를 감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철도는 취소되거나 지연되고 학교도 일시적으로 문을 닫거나 하교 조치를 내렸다. 영국은 7월17일 자정 잉글랜드, 런던을 중심으로 폭염적색경보를 최초 발령했다. 영국 기업에너지전략부(BEIS)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에어컨 설치비중은 5% 미만에 불과해 폭염 피해에 더 쉽게 노출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관련 뉴스들이 끊이질 않고, 폭염으로 인한 피해, 사망자, 폭염일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폭염(暴炎)은 햇볕쪼일 폭(暴) 불탈 염(炎)으로 무서울 만큼 매우 심한 더위를 말한다.기상청에서는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거나, 급격한 체감온도 상승 또는 폭염 장기화 등으로 중대한 피해발생이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발효하고 있다.폭염경보는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나 급격한 체감온도 상승 또는 폭염 장기화 등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대한 피해발생이 예상될 때에 발효한다.폭염은 다른 재해와 달리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대책수립이 매우 중요하다. 체온이 41℃ 이상 올라가면 열사병이 심해져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고, 2006년 서울의 더위는 최고치 더위로 인해 3천명 이상의 초과사망자가 발생했다.폭염피해 사례로 대표적으로 2003년 3만5천명 이상의 초과사망자를 낸 유럽폭염과, 2010년 5만5천명의 초과사망자를 낸 러시아 폭염이 있다.초과사망자는 다른 계절의 평균적인 사망자 수에 비해 여름철에 추가적으로 사망하는 사람을 추정하는 폭염피해를 측정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취약계층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초과사망자의 대다수가 65세 이상의 고령자이거나, 노약자층에서 발생하고 있다.폭염으로 인해 냉방복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이유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일수록 폭염에 대처하기 어렵고 그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폭염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여, 우리사회의 불평등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이러한 폭염에 대처하는 정부의 국민행동요령은 다음과 같다. △TV,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무더뒤 기상상황을 수시로 확인 △가장 더운 오후 2시~5시에 카페인성 음료나 주류는 피하고 물을 많이 마시도록 할 것 △야외활동이나 작업을 되도록 하지 말 것△실내외 온도차를 5℃ 내외로 유지해 냉방병 예방 등이다.이러한 국민행동요령만으로 폭염을 대비하기에는 한계가 확실히 느껴지며 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예년보다 올해가 더 덥고, 올해보다 내년이 더 더울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니라 이미 기후 재앙, 지구 온난화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와 있으며 지구온난화를 멈추기 위해 탄소제로를 선언하고 실천하기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를 온실가스 감축 법제화를 위해 2021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을 공포하고 14번째 탄소중립 법제화 국가가 되었다. 지구 온난화는 특정인,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현실이자 미래로 다가왔다. 정부와 지자체가 실효성 있는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하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책을 내놓아야할 것이다.현재 심각한 상황이지만 여야는 정쟁에만 몰입하여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고 복지와 노동정책의 혼란도 폭염에 대비해야하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없다.무엇이 지금 필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하여 국가 경쟁력과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전문가 의견수렴과 공론화과정을 거쳐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해나가야 할 것이다.폭염은 가뭄과 산불, 미세먼지 등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의 대표적 지표이다. 이는 인류의 삶에 불편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경제와 식량안보, 세계평화와도 관련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새롭게 시작된 정부와 각 지방자체단체가 지금 당장 국민들과 함께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면 우리는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2022-07-31

‘윤석열표’ 캐치프레이즈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윤석열 정부를 이끌고 있다는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 혹여 검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을 ‘성남FC 후원금 의혹’사건 또는 백현동·대장동 개발특혜 의혹으로 구속해 처벌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으로 낙관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한참 잘못 짚었다. 이재명 의원이 민간기업에 특혜를 주고 후원금이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면 처벌은 당연하다. 당연한 일을 했다고 해서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란 건‘근거없는 낙관론’에 불과하다. 앞서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근본이유는 취임 후 두달이 지나도록‘윤석열표 공약’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권이 아니라 검사 출신이다. 검찰총장으로서 정치권력에 맞서싸우다 갑작스레 야당에 영입돼 대통령 후보가 됐고, 가까스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니 나라 경제에 대한 비전이나 성찰이 깊지 않다해도 탓할 일이 못된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뭔가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미 국민들 사이에서 “바보야, 언제나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나돈지 오래다. 윤석열표 공약이나 캐치프레이즈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옛말에 ‘하늘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했다. 어설프고 빈약한 독창의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작을 원한다면 배우고 모방하라는 뜻이다. 역대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를 들춰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한국 창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2건국’,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부혁신 운동’,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녹색성장’,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창조 경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녹색성장’은 환경문제에 좀 더 접근한 캐치프레이즈로, 4대강 정비를 통해 대운하를 건설하려는 속셈이란 의심을 받는 바람에 야당의 협조를 얻지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창조 경제는 표현 자체가 애매해 자신도 창조 경제를 뚜렷하게 설명해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로 일자리를 늘리고, 최저임금제를 시행했다. 공공부분 일자리가 늘고, 최저임금이 1만원 가까이 올랐다. 기업들은 임기내내 힘겨웠다.지난 대선 당시 윤 캠프에서 “우리가 내세울만한 공약의 캐치프레이즈로 어떤게 좋겠느냐”는 질문에 한 참모가 “중소기업이 잘사는 나라, 어때요?”라고 했다. 윤 대통령 역시 이 답변을 듣고 “좋은 생각”이라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후 이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채택하려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냥 묻혀 버리고 말았다는 것. 캠프 내부의 골뱅이 같은 속사정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다만 그때 무릎을 쳤던 윤 대통령에게 “중소기업이 잘사는 나라”를 ‘윤석열표 캐치프레이즈’로 추천하고 싶다. 중소기업이 99%인 이 나라에서 중소기업이 잘살면 온 나라가 잘살 수 있다. 이 나라에 꿈과 희망을 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2022-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