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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뽕나무에 청어가 사라졌다

어릴 적, 산골 마을에서 자랐다. 읍내에서 십 리를 더 가야만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앞쪽에 넓은 들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농사지을 평평한 땅은 없었다. 부모님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골짜기를 개간했다. 밤낮없이 비탈밭에 돌을 걷어내고 쟁기질했다. 그러고는 한 달에 두어 번 시장에 나가 산골에서 먹을 수 없는 생선을 사 왔다. 찬 바람이 부는 이맘때 어머니는 청어과메기를 몇 두릅 사 왔다. 그러고는 뒷마당에 있는 뽕나무에 걸어놓았다.초등학교 다닐 때, 양잠이 성행했다. 마을에 누에를 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자 부모님도 덩달아 양잠업에 뛰어들었다. 산비탈 밭에 뽕나무를 심었다. 봄이면 아버지는 여린 뽕나무 가지를 지게 한가득 져 왔다. 마당 한 곳에 부려 놓으면 우리는 가지를 훑어 뽕잎을 땄다. 오월 끝자락의 뽕잎은 마당에서도 초록으로 물들었다.봄의 산비탈은 간식 창고였다. 우리는 사이다병을 구해 산에 갔다. 한 손에는 뽕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겼다. 반들반들한 속살이 보이는 꼬챙이를 들고 사이다병에 오디를 따 넣었다. 그리고 사이다병에 넣은 오디를 꼬챙이로 열심히 찧었다. 팔이 얼얼할 정도로 찧으면 오디는 사이다병에서 뽀글뽀글 거품을 냈다. 그러면 사이다병 주둥이를 입에 대고 끄트머리를 탁탁 치면 국물이 졸졸 흘러내렸다. 지금 생각하면 순수 무결점 오디주스인 셈이다. 이미 손과 입은 시커먼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댔다.누에를 칠 때는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방 하나를 언니와 같이 사용하는 것도 싫은데 누에와 같이 자는 것도 싫었다. 딸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막무가내로 누에 방을 만들어 버리는 부모님은 더 싫었다. 그러함에도 벽 한곳에 누에 방을 천정까지 닿게 했다.밤마다 꿈길이 무서웠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그때부터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형광등을 켜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불을 끄고 누우면 또 소리가 났다. 서너 번 형광등 스위치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다 스르르 잠에 빠졌다. 또 빗소리에 놀라 화들짝 깨면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였다. 아침이면 내 머리맡에는 까맣고 동그란 누에똥이 수북했다. 누에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채반에 있던 누에가 자는 내 얼굴에 떨어졌다. 손가락만 한 누에가 꼬물꼬물 내 몸에서 돌아다닐 때는 몸이 뻣뻣했다. 이순혜 수필가 그래도 새하얀 누에고치를 보면 마음이 맑아졌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고치는 순백의 색이라 여러 가지 상상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지우기도 했다. 잘록한 허리와 통통한 몸은 소설에서 읽었던 여자 주인공 같아 혼잣말로 여러 사람의 대사를 하며 놀았다. 한참을 갖고 놀다 어머니를 도왔다. 겉에 묻은 가느다란 실을 떼고 자루에 차곡차곡 넣었다. 시골에서 유일하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때라 우리도 한몫 거들었다.겨울이면 뽕나무가 들썩거린다. 추위가 시작되면 뽕나무에 걸어 두었던 과메기를 꺼내느라 수시로 나무를 기웃거렸다. 어머니는 자주 마루에 앉아 꾸덕꾸덕한 청어 과메기의 껍질을 벗겼다. 누런 쌀 포대기에 대가리 자르고 내장 걷어내고 뼈를 추리고 살점을 발라냈다. 두레 밥상에 앉은 우리는 밥그릇에 초장을 담아놓고 어머니의 손을 살폈다. 아버지 한 입, 어머니 한 입, 우리들 한입, 차례대로 먹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오래 남았다. 청어의 비릿함보다 고소함이 더 강했다.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루었던 뽕밭은 사라졌고 뒷마당 뽕나무에 걸쳐놓았던 과메기도 사라졌다. 내 유년의 따스한 윗목의 그리움 한 조각도 사라졌다. 그래도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에 삼백 년 된 뽕나무가 있다고 하니 참 다행이다. 어쩌면 거기 뽕나무가 들썩이고 있을지도. 봄이 오면 그곳으로 가리라.

2023-01-29

지금은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집중할 때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 12일 전력정책심의회를 열고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을 확정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향후 15년간의 전력수급 전망과 수요관리 발전, 송·변전 설비계획을 담은 중·장기 계획이다.이 계획에 의하면 원자력 발전은 2021년 27.4%에서 2030년 32.4%, 2036년 34.6%로 증가하며, 신재생에너지는 2021년 7.5%에서 2030년 21.6%, 2036년 30.6%로 늘어난다. 2021년과 비교하면 15년간 원전 발전은 7.2%가 늘어나고, 신재생에너지는 23.1%가 증가한다. 2021년 발전 비율 1, 2위였던 석탄과 LNG는 64%에서 23.7%로 떨어진다.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재생에너지 비율이다. 환경단체와 야당에서는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제시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 목표치(30.2%)에서 크게 후퇴했다고 비판을 한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문 정권에서 제시한 30.2%에서 21.6%로 낮추는 것은 실수라는 것.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고, 과학적 근거도 없다는 주장이다.‘현실적인 목표치’라는 진단도 나오긴 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신재생에너지 계획조차도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과감한 수준”이라고 했다. 산자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활용해 실현가능하고 균형잡힌 전원 믹스를 구성했다”라고 설명했다.정부는 기본계획 발표에서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해서 2021년 35%였던 청정에너지(원자력+신재생에너지)를 2030년 54%로 높이고 2036년에는 65.2%까지 높인다고 했다. 그런데 원자력은 청정에너지인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다. 현세대의 자원 고갈과 CO2 배출로 인해 다음 세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배려다. 그런데 원자력은 반감기가 10만년에 달하며, 특히 우라늄 찌꺼기는 10만 년이 지나도 반밖에 줄지 않을 정도로 ‘무한대의 오염물질’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원자력은 청정에너지가 아니다.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탄소중립의 해답은 북유럽처럼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정책이라 생각한다. 독일은 2014년,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한 법을 정비한 뒤 재생에너지 생산에 박차를 가해 2021년 42%에서 2022년 47%까지 비중을 높였다. 2035년까지는 전체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법안도 발표했다.우리는 이런 독일에서 교훈을 얻을 줄 알아야 한다. 독일은 1995년까지 재생에너지가 1%에 불과했지만, 국민적인 합의와 노력으로 탈원전을 추진하고 100% 재생에너지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독일은 국토가 북위 51° 위에 위치해 우리나라(38°이남)보다 일조량(태양광)이 38%나 부족한 국가다.우리나라는 독일을 모델로 해서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중립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회원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제조업 강국으로써 무역이 경제 주축인 우리나라가 도약하기 위해선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40%, 2040년 60%, 2050년 80%까지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가야 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법도 정비하지 않는 실정이다. 지자체마다 중구난방이다. 그리고 주민들은 태양광발전시설을 혐오시설 취급하며 맹목적으로 반대만 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며, 제조업 중심의 경제대국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RE100, 즉 재생에너지 100% 달성은 필수적이다. 다행인 것은 산자부가 지난 1월 4일 신재생에너지 정책심의회를 열어서 ‘태양광 시설의 주거지역 이격거리를 최소 100m 이상으로 한다’는 지침을 마련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산자부는 이와함께 도로에는 이격거리를 설정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그동안 대부분 지자체들은 태양광 시설을 할 경우 주거지역에서 500m, 도로에서 500m 이격거리를 두도록 조례에서 규정했다. 구미시를 예로들면, 이 조례를 적용하면 태양광 설비가 가능한 부지가 구미시 전체 면적의 0.09%뿐이라고 한다.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생산한 곳에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양광 시설을 대도시 주변, 공단 주변의 농지에 설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최근 발표했듯이, 태양광·풍력 발전소가 많은 전라도에서 전력을 생산해 많은 송전 손실을 떠안고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우를 두 번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최근 전기 생산단가가 올라서 한국전력의 KW당 전기 구매 가격이 300원 이상이나 돼 태양광 수익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대도시 공단주변 농지에 설치한다면 송·배전 비용도 줄고 농민들의 소득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태양광 시설은 비닐하우스보다 더 친환경적이다. 텃밭에 비닐하우스를 허용하듯이,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 철폐로 신재생에너지 자립의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2023-01-29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자, 우울증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2023년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어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다.과거에 대한 부정적 해석을 하게 되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희망을 노래할 수 없다. 다시는 희망을 되찾을 수 없다는 절망이 그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기도 한다.대부분의 극단적인 선택 시도자들은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갈등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희망이 없음을 느낄 때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매년 약 100만 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지난 45년간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 선택률이 60%나 증가했다.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극단적 선택률 1위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21년 한해 1만3천35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는 하루 평균 37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39분마다 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특히 10∼30대 사망원인의 1위가 극단적 선택이다. 또 1990년 연간 3천157명의 극단적 선택자가 30여년 만에 무려 4배 이상 급증했다.국내외 연구를 종합해보면 모든 극단적 선택자의 약 80%가 생물·심리·사회경제적인 요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우울증과 연관돼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요우울증 환자의 약 67%에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며 약 15%가 궁극적으로는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다고 보고돼 있다. 특히, 우울증 첫 3개월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률이 50∼70배로 가장 높아 우울증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해야 극단적 선택을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우리나라에서 극단적 선택률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정신건강에 대한 무지(無知)와 사회문화적 편견(偏見), 정신건강에 대한 국가,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不在)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생각된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6명 가량이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이 얕은 ‘정신건강 문맹(文盲)’으로 나타났다. 또 정신질환 치료 등에 대한 오해가 많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개인이 나약하거나 의지가 부족해 생긴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 우울증 환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신체 호르몬인 인슐린의 기능이 잘못되면 당뇨병이 되듯,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우울증 환자들의 뇌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특히 세로토닌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는 우울증이 본인의 의지박약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하나의 질병임을 의미한다.우울증은 현재 유병률이 날로 증가하는 질병 중 하나로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하버드대의 연구에도 우울증이 사망과 질병에 의한 장애를 동시에 감안한 질병 부담 측면에서 그 장애도가 전체 질병 중에서 2020년에는 2위다.오는 2030년에는 1위 질병으로 예측되면서 우울증의 만연(蔓延)에 대한 대비를 강력하게 요청받고 있다.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15%로 우리나라 국민의 약 750만명 정도가 평생에 한번 이상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흔한 병으로 ‘마음의 감기’로 알려지며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자 치료가 매우 잘 되는 병이지만, 방치할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매우 무서운 질병이다.그러나 우울증을 앓는 3분의 2 이상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우울증을 효율적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 데는 사회문화적 편견이 너무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편견의 장벽이 우울증의 치료를 가로막고 있고, 우리 사회의 높은 극단적 선택률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난 2020년 우울감·우울증 유병률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2∼8배 이상 높아졌다. 엄청난 증가세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더욱 걱정된다. 지난 2020년 우울감·우울증 유병률이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이다.이제 우울증은 더 이상 한 개인의 성격의 문제로 몰아서는 안 된다. 생명을 앗아가는 중요 질환이자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질병으로 인식돼야 한다.또 우울증의 문제는 국가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조기 발견과 적절한 치료는 의학적 측면뿐 아니라 국가 사회적으로도 매우 절실한 문제다. 우울증을 피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당신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면 당당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라. 몸이 힘들면 감기에 걸리고 마음이 힘들면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감기에 걸리면 치료를 받듯,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이는 극단적 선택 풍조를 예방하는데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되는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치료이다. 의학계는 전문적인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으면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2023-01-29

계묘년 나라 운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매년 정초가 되면 흔히들 한 해의 운세를 알아본다. 옛날에는 주로 길거리 역술인들에게 복채를 내고 토정비결을 보았지만 요즘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각종 운세를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운세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매년 운세를 보는 사람은 그것이 매번 적중하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운세가 좋다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나오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보통의 인심이다.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즉 4가지 간지(干支)에 근거해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을 사주명리(四柱命理)라 한다.이는 세계가 6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는 원리에 의한 것인데, 그 과학적 근거나 주창한 사람에 대해서는 명확한 것이 없다. 중국의 복희씨(伏羲氏)가 기원전 2637년을 갑자년으로 정한 것이 시작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황제(黃帝)가 사관인 대요(大撓)에게 명령하여 갑자(甲子)를 지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사실이기보다 신화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아무튼 한무제가 태초력을 반포한 것이 60갑자의 역사적인 계기였다.유명 역술인들과 무속인들이 저마다 올해의 국운을 점치고 있지만 서로 주장이 달라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역리(易理)가 어떻든 나라의 운세는 결국 국민이 만든다. 같은 땅이고 같은 민족인데도 남북한의 운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보면, 국민들이 어떤 지도자와 체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로 운세가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국민이라면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남한과 북한이 왜 하나는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하나는 최하위 권의 빈국이 되었는지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올해의 국운도 물론 국민들의 판단과 의지에 달렸다. 대한민국 민심은 지금 크게 삼등분 되어 있다. 극심하게 대립하는 좌파와 우파가 있고 그 중간에 부동층(浮動層)이 있다. 내전에 가까운 좌·우의 대결에 부동층이 어느 쪽에 더 많이 가담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좌파가 이기면 북한의 세습체제를 따라 패망의 길로 가는 것이고, 우파가 승리하면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단정적인 이런 판단과 논리를 비웃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식자층 사람들일수록 더 그럴 테지만, 진리는 소박하고 단순명료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아직은 한겨울이지만 대한민국 국정에 분명 봄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그동안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흔들고 법치를 파괴한 세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세력에 휩쓸리고 동조했던 민심들도 조금씩 의구심을 갖는 것 같다. 좌파세력들이 세뇌하고 망가뜨린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비리와 거짓과 후안무치를 파헤치고 단죄하는 일이 우선인데, 불철주야 진상규명에 나선 검찰에 의해 머지않아 하나씩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정부가 책무를 다해야겠지만, 국민들도 힘을 모으고 보태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파사현정이라는 대의가 역사의 주류가 되었을 때 국운에 청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2023-01-26

세계 가곡여행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1월 17일, 25명의 가곡 동호인들과 10주간 즐겁게 노래했던 세계 가곡여행을 끝내고 나니 마음이 왠지 허전해지며 또 가곡여행이 기다려진다.‘가곡여행? 어디로 어떻게 다녀왔는데….?’ 그러나 관광 여행이 아니다.지난해 11월 초, 포항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성악가와 함께 떠나는 세계 가곡여행’ 공지가 떴다. 포항시민을 대상으로 11월 15일부터 10주간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매주 화요일 2시간씩 성악가의 지휘로 우리나라 가곡과 함께 세계적으로 애창되는 노래를 배우는 교육문화 프로그램이다. 오전 오후 2개 반 25명씩 모집한다는 내용이어서 지인들과도 의견을 나누고 신청했더니 당첨, 물론 여행비는 무료였다. 마침 단풍 짙은 가을이 끝나가는 계절에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헛헛한 마음이었는데 가곡을 부르며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5년 전 포항오페라단이 지원한 ‘가곡교실’에 참여하여 중앙아트홀에서 2년 4학기 동안 1주일에 하루, 성악가 두 분의 지도로 많은 가곡을 배우며 불렀던 모임이 있었다. 여태껏 듣기만 했던 가곡, 처음 불러본 가곡, 또 멋진 외국 가곡을 원어로도 불러보며 음악용어도 많이 배웠었다. 매 학기 말에는 발표회를 했었는데 나도 무대에 서봤던 참 재미있고 즐거운 교실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지원이 끊기고 중단되어 아쉬웠던 3년이 흘러갔었다.이번 여행의 첫출발하는 날 오후, 포항시청 대잠홀로 갔었다. 입구에 놓여있는 명단 맨 아래에 내 이름이 있었고, 듬직한 악보집을 받고 연습실로 들어가니 여행객들 표정이 밝다. 인사하니 반쯤은 낯익은 분들이고, 대부분 5~60대인 듯, 70대도 있었다.이번 ‘가곡여행’은 성악가 하형욱 교수가 지휘를 맡았고, 여러 성악가와 연주자들도 참여했다. 행사 개요가 적힌 푸른색 팸플릿을 보니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우리 가곡과 세계 유명가곡을 성악가와 함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곁들여 감상하고 같이 불러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2022 문화 취약지역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국고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하여 포항문예회관에서 포항 지역민을 위해 지원하는 행사였다.첫날 정겨운 우리 가곡 시간에는 익숙하고 친숙하며 학창시절 다 함께 불렀던 노래 ‘가고파’, ‘선구자’등을 부르고 감상하니 가슴이 시원했다. 그 다음에는 첫사랑 등 신작 가곡과 영·미 가곡, 프랑스 샹송도 배웠고, 연말연시에는 이탈리아 칸초네, 독일 리트들을 원어로 부르기도 했다. 마지막 10주째 날에는 무대 위에서 중창도 하고 음악가들의 성악과 기악 연주를 들으며 환호했으며, 마지막으로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합창하며 서로를 돌아봤다. 그렇게 화요일이면 기다려지는 가곡여행이었으나 아쉽게도 10주 만에 끝마치고 나니 여행객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귀한 추억을 남겨주어 감사하다.이 멋진 가곡여행을 계속해 주기를 포항문화재단 등 관련 단체에 부탁드려본다. 예산이 어려우면 여행자들의 일부 분담을 고려하며 장소와 지휘 반주 등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새봄에도 가곡여행을 같이 떠나보고 싶다.

2023-01-26

최강한파

우정구 논설위원 중국 헤이룽장성 모허시는 이번 설 명절에 닥친 시베리아발 한파로 지난 22일 아침기온이 영하 53도로 떨어지는 진기록을 세웠다. 말이 영하 53도이지 이 정도의 날씨에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자못 궁금하다.모허시는 중국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로 흑룡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행객도 거의 가지 않는 곳이라 여행관련 정보도 거의 없다.보도에 의하면 모허시의 이번 한파 기록은 1969년 영하 52.3도 기록을 경신한 것이라 한다. 꽁꽁 언 과일을 벽돌로 깨어도 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의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30도다. 한반도에서 가장 춥다는 북한 중강진의 1월 평균 기온 영하 19.5도는 비교권 밖이다.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어렵다.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도시는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시다. 인구 30만명이 산다. 겨울이 장장 8개월이나 지속되고 12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라 한다. 공식적으로 영하 55도가 되면 휴교령이 내려진다니 정말 상상이 안 된다.설 전후 시작한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제주도는 강풍특보와 대설경보, 한파경보 등이 겹쳐 내려지면서 하늘길이 막혔다. 설연휴를 맞아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발을 동동 굴렀다고 한다. 서울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이 역대급 한파로 한차례 몸살을 앓았다. 최근 발생한 한파는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제트기류의 고리가 약해졌기 때문인데, 북극지방의 냉기를 막아주는 제트기류가 약해진 것은 지구온난화가 직접적 원인이라 한다.지구상에서 발생하는 각종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범지구적 대응의 필요성을 지금 우리 모두가 체험하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1-26

인구 해결책, 개방과 포용 뿐이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주민등록 인구가 작년 한 해 20만 명이 줄었다. 3년 연속 감소됐다. 합계출산율은 0.79명으로 역대 최저다. 세계 꼴찌다. 저출생, 고령화 때문이다. 산업 현장과 농어촌은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마비될 지경이다. 학교는 학생이 없어 줄줄이 폐교다. 병역자원도 급감했다. 정부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점점 더 떨어진다. 백약이 무효다. 빈 자리는 다문화 가정이 겨우 메워주고 있다.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 명 시대다. 코로나19로 주춤하던 국내 체류 외국인이 다시 늘고 있다. 외국인이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 됐다.2천200년 동안 나라를 지속한 로마는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천 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 로마인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이같이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로마인의 개방성에서 찾았다.지혜는 그리스인만 못했고, 신체적인 면에선 켈트인(게르만인) 보다 떨어졌으며, 기술은 에트루니아인보다 못하고 경제 개념은 카르타고를 능가할 수 없었던 로마인이 이들을 지배했다, 개방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로마는 초기 왕정시대 7명의 왕 중 라틴족은 시조인 로물루스를 포함, 단 2명뿐이었다. 나머지 5명이 이민족 출신이었다. 그 만큼 열려있었다. 전쟁의 패자까지도 포용, 로마인으로 동화시켰다. 심지어는 노예가 관료가 될 정도였다. 다신교를 인정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였다. 종교분쟁은 없었다.진나라는 중국 서북방 변방 국가이자 오랑캐라고 천시 받았다. 이런 진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강력한 군대와 인재 중용 정책이 있었다.진 효공은 위나라 출신 상앙을 재상으로 등용해 나라의 골격을 세우고 국부를 튼튼히 했다. 진의 재상 중에는 백리해, 건숙, 유여 등 다른 나라 출신이 많았다. 진시왕의 책사인 이사도 추방당할 위기가 있었다. 이때 이사는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는 자세 때문에 높아지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버리지 않아 더 깊어진다’는 글을 지어 올렸다. 진시황은 이사의 간언을 수용하고 재등용, 마침내 국가를 부강케 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진나라의 재상 25명 중 타국 출신이 17명이고 7명은 출신 불명이다. 확실한 진나라 출신은 단 한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진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된 배경에는 이런 개방적인 인사정책이 있었다.경북도가 외국인 유치 묘안을 내놓았다. ‘외국인 광역비자’제도 도입이다.광역비자는 비자 발급 권한 일부를 도지사에게 넘겨주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지방정부가 외국의 산업 인력, 이공계 유학생과 그 가족 등 지역에 필요한 인력을 주도적으로 선정해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있다.국회도 광역비자 도입을 위한 법률 개정작업 중이다. ‘아시아의 작은 미국, 경북’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꿈이다. 이 지사의 모범적인 다문화 사회 구상이 조만간 꽃 피울 수 있길 기대한다. 로마와 진 나라 사례에서 보듯 나라가 번성하려면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한다. 개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외국인과 공존하는 사회가 돼야만 인구소멸 위기를 피할 수 있다.

2023-01-26

우리집 설날 풍경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번 설에도 우리는 모두 호텔에서 만났고 헤어졌다. 올해는 대구의 자연휴양림을 겸한 한적한 호텔을 찾았다. 방 셋을 예약해 두었다. 나와 남편 둘에다가, 서울 큰아들네 4명과 대구의 작은아들네 4명 모두 합하면 10명이다. 세배는 모두 우리 방에 와서 하고, 새해 덕담 나눈 후 아침 조식을 하러 갔다. 여유롭고 느긋하고 무엇보다도 며느리와 손주들이 좋아해서 이런 명절 지내기를 정한 나 자신이 뿌듯하기까지 하다.30년 전 시어머니 장례 후, 제사를 누가 모실지 남편과 시숙 3형제분이 숙의를 하셨다. 그 일이 상의할 문제인가마는 맏형님네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상태였고, 둘째 형님은 모태신앙으로 기독교를 믿는 분이셨다. 형제 중 막내인 남편은 선뜻 내가 모실게요 말하기에 내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었다. 이 사람도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잖느냐고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나는 흔연히 내가 모시고 싶다고 얘기했다.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어머님께 아이들을 맡겼고, 기쁘게 우리 아이 둘을 키워 주셨던 분이었다. 제사를 모시면 그 보답이 될까 싶은 생각이었다. 또한, 친정어머니가 제사 지내고 어른 모시는 큰집이 얼마나 좋은가를 자주 얘기했으며 평소 그 소임을 감당하시는 큰어머니를 매우 부러워하셨다. 당시 36살밖에 안된 나는 비록 막내지만 제사를 지내면 친정어머니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큰집 행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예전 조선시대에는 윤회봉사라고 해서 아들딸 구분 없이 자녀들이 조상들의 제사를 나누어 모셨던 적이 있었다. 반드시 맏이만 제사 의무를 질 필요는 없다는 얕은 지식도 나의 결정에 한몫했다.100일 동안 매일 아침저녁 상식을 차려 올리는 100일 탈상을 했고, 초하루 보름엔 삭망을 지내는 풍습을 따랐다. 매년 설과 추석의 두 차례 차례와 기제사도 나름 정성껏 준비하고 모셨다. 그렇게 25년을 제사를 지냈다.두 형제가 3년 간격으로 차례로 결혼을 하고, 또 연년이 4명의 손주가 태어나자 명절 풍경이 갑자기 왁자해졌다. 시숙들 식구와 함께 모이면 15명이나 되니 와, 이건 보통일이 아니라는 현실감에 새로운 모색을 할 시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직장 다니는 두 며느리에게 명절증후군 따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야 뭐, 옛날 시속 숭상하고 잘하든 못하든 내가 자발적으로 맡은 일이었지만, 나의 며느리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5년전 추석 차례 지낸 후, 가족회의를 하자고 했다. 그리곤 내 생각을 얘기했다. 어쩌면 나의 일방적 선언, 또는 통보였다고 하는 게 더 맞다. 기제사는 우리 두 내외가 힘닿는 대로 모시겠다. 명절엔 차례 대신 성묘를 하겠으며, 아이들과는 이 귀한 연휴엔 가족 여행을 계획하겠다고 했다. 손주들이 더 크면 어려울 일이기에 내년부터 바로 시행할 거라고 했다. 시숙께서 그동안 고생했다는 치하도 곁들여 흔쾌히 두말없이 동의해 주셨다.그리고는 우리는 해마다 두 번의 정기적인 가족여행을 준비하여 경주, 부산, 여수 등지에서 만나고 명절을 보낸다.

2023-01-25

대한민국 교육시장 글로벌화 추진해야

이상규 한글세계화재단 감사 대입 정원 미달이 속출하고 있다. 2023학년도 정시에서 지방 소재 113개 대학 중 59곳은 3회 지원을 감안한 실질 경쟁률 3대 1에 못 미쳐 ‘사실상 미달’ 상황이다. 신입생 수가 입학 정원보다 3만∼4만 명 부족한 현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미달 규모의 70%는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온다. 수시와 정시에서도 속수무책으로 사실상 대학이 학생 선발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해외 고급노동 인력을 받아들여 한국에서 발전된 농업, 공업, 기술 산업 인력으로 채우는 동시에 그들에게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비자 규제 혁신을 해야 할 상황이다. 찾아가는 현장 대학 프로그램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빠진 대학에서 야간 교육 혹은 계절 교육 방식으로 해외 고급인력을 산업현장의 노동 인력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문을 닫는 대학에 충원하는 선순환적 교육 국제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노동인력의 관리 문제와 그들에게 주어지는 교육 등 제약을 가하는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동시에 지자체 단위로 필요한 인력 수급과 그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고급 농업, 기술 산업 노동인력을 수급하는 동시에 가능한한 국내 이민의 문턱을 낮추어나가는 교육 혁신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경북 성주 참외 농장, 구미 화훼단지, 고령의 딸기농장 등에 매년 매 군마다 200∼300명 규모의 해외고급 노동인력을 수급한 후 적절한 노동보상을 한 다음 이들을 찾아가는 현장대학으로 유인하여 지방 노동인력도 채우고 대학붕괴를 막는 방식의 국가와 지방이 연계한 전략이 필요하다. 다만 비자 제약 등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노동자 국내 체류와 관리 문제를 더 연구하여 지방 자치정부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체계 구축을 해야 할 것이다.현재 당면한 국내 노동인력 감소에 따른 노동인력 충당을 도모하면서 대학교육으로 연계하여 침몰해 가는 국내 대학교육 환경을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현재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은 세계 6위권이다. 70∼80년대 우수 인력이 해외 유학을 통해 닦은 우수한 지식정보 인재들이 이 나라를 위해 기여해온 덕분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저개발 혹은 중도국가 우수 인력을 한국에 대거로 유입시키는 전력을 펼쳐야 한다. 호주가 전 세계 대학에 재학중인 농대생을 받아들여 토마토 농장이나 파인애플 농장에 노동인력 연수생으로 활용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대한민국 대학교육의 시장을 국제화하는 동시에 선순환적인 다목적 교육 시장의 개방과 노동 시장의 문을 단계적으로 열어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인구감소의 추이로 보면 2∼30년 후 대한민국의 인구는 반토막이 나고 100년 후가 되면 대한민국이 지도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민족주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시대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2023-01-25

공존이라는 두 글자

정미영 수필가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돋을볕이 숲속에 스며드는 시간이다. 자연과 사람을 잇는 노거수 숲을 걷기 위해 연일 중명 원골숲으로 들어선다.노거수 우듬지를 비추는 햇살 한 점에 눈이 부시다. 고요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처럼 삶의 아포리즘을 받아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마을 숲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회화나무 7본과 말채나무를 비롯해 팽나무, 느티나무 등속의 노거수가 많이 있다. 아름드리나무 숲길 위에 잠시 멈춰 서 있으니 한줄기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노거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면 수많은 잎들이 사연을 매달고 있는 듯하다. 나는 나뭇잎 속에 담겨 있는 씨줄날줄 설피창이로 엮였던 이야기들을 정독한다.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소중한 자식을 기다리던 늙으신 부모님의 그리움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누군가의 아픔까지, 나무는 화석처럼 온전히 기억하며 나뭇잎으로 피워내는 것 같다.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공존의 이유가 있을 터이다. 자연의 윤회 속에서 나무와 사람이 서로 이웃하여 안부를 묻고 있는 곳이 원골숲이다. 노거수의 몸피가 야위면 사람이 막걸리 몇 사발을 부어 주며 원기를 북돋우고, 사람의 몸과 마음이 허기지면 나무가 치유의 기운을 내뿜어 주는 곳이 여기다. 가끔은 나무가 사람에게, 가끔은 사람이 나무에게, 서로 의지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노거수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두런거리는 나무의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마을 정자 앞이다. 어르신들이 담소를 한가로이 나누고 있다. 수령이 많은 나무와 연세가 지긋한 노인의 모습에서 닮은 듯, 연륜이 묻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주름진 나이테에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가늠해 본다.나무의 내력을 알고 있는 그 분들 곁에서 600년 된 회화나무가 쉬나무를 의지해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한국 전쟁 이후 어느 해, 개구쟁이 아이들이 나무의 동공(洞空) 속에 들어가 놀면서 불장난을 했다고 한다. 이 나무 옆에 쌓아두었던 콩더미에 불이 옮겨 붙는 바람에 화력이 더해져 상당 부분 소실되었다. 회화나무는 몸통이 불에 데여 흉터가 남고 나뭇가지가 일그러졌단다.쉬나무를 의지해 고난의 시간을 견뎠던 것일까.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안 되고 근처 나무와 어깨를 겯고 있어야 된다는 공존의 이치를 터득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거센 폭풍우를 견딜 수 있고 눈보라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을 것 같다.쉬나무는 해마다 수북하게 꽃을 피운다. 어쩌면 쉬나무는 회화나무가 상처를 딛고 봄마다 여린 잎을 피어내는 모습에 더욱 분발했을 수 있다. 그 덕분에 꽃 무더기 사이로 꿀벌들이 날아다닌다. 쉬나무는 여름에 향기롭게 꽃을 피워 꿀을 듬뿍 담고 있는 밀원수종이다. 다른 수종의 나무뿐만 아니라 자신을 찾는 생명들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소중하다.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가 다르다. 하지만 나와 인연을 맺는 이들에게 쉬나무처럼 도움을 주는 의미 깊은 삶을 살아도 좋을 성싶다. 노거수의 너그러운 성품이 내게 옮겨와 내 마음을 가득 물들이면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이 훨씬 곱게 보일 거라며, 나보다 생을 오래 건너온 나무가 나를 위해 덕담 한 마디 따스하게 건네준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회화나무 줄기를 쓰다듬어 본다. 노거수의 숨결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음률로 내 마음을 품어 주는 것 같다.나는 메마른 일상이 반복되어 간신히 버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지금처럼 노거수 앞에 두 팔 벌려 우두커니 서 있을 것이다. 소멸되지 않는 나무 영혼을 끊임없이 소환하여 치유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면 아마 내 마음은 편안해지겠지.나는 지금,노거수 아래에서 공존이라는 두 글자를 내 마음에 돋을새김 하는 중이다.

2023-01-25

세계적인 해양레저관광도시

해양레저관광도시 조성에 대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23년 업무보고에서 해양레저관광산업 활성화의 방안으로 ‘한국형 칸쿤’이란 가칭의 해양레저관광도시를 제시했다. 관광과 예술, 리조트, 먹거리 등 다양한 융·복합 해양콘텐츠를 제공하는 거점을 만들어 지역 경제 활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동시에 주요 연안에 해양레저활동을 지원하는 대규모 마리나를 확충하고, 도서지역에 휴게소 기능의 바다역을 구축해 K-마리나루트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해양수산부가 이상형으로 제시한 칸쿤은 유엔 산하의 세계관광기구 인증을 받은 관광 특화 도시로 멕시코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멕시코 정부는 1970년대 외국관광객과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카리브해 칸쿤에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했다. 200여 개에 이르는 숙박시설을 갖추고,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해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혼여행지로 특히 유명하다.해수부는 이와 함께 남해안 권역에 대표적인 해양레저관광벨트를 조성하고, 동북아시아를 대표할 해양레저관광산업 중심지를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제안했다.경상남도가 현재 추진 중인 거제 장목관광단지의 국제해양관광거점 사업과 비슷한 구상으로, 기대효과 또한 일맥상통한다. 해양레저관광벨트는 경상남도와 부산시, 전라남도가 맺은 ‘남해안 글로벌 해양관광벨트’ 협약과도 연계된다. 결국 정부와 여러 지자체가 나서 남해안을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앞으로 이와 관련 사업에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한편, 경상남도가 추진 중인 거제 장목관광단지에는 1조2천억 원의 민간자본이 투입돼 힐링 체류형 휴양시설이 조성될 예정이다. 지난 11일 경상남도는 거제시, JMTC 컨소시엄과 협약을 맺고 복합문화 상업시설과 국가별 정원, 힐링체험 숙박시설 등을 갖춘 국제해양관광도시 조성의 첫 시작을 알렸다.경상남도가 국제해양관광거점을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제시한 도시는 ‘싱가포르 센토사’다. 세계최대 규모의 해양수족관과 골프장, 고급 리조트 등을 갖춘 센토사는 우리에게는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싱가포르는 국가 자체가 세계적인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인데다 남부의 섬에 관광휴양도시까지 인위적 조성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현재 우리나라가 착안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칸쿤과 센토사 등 앞서 설명한 도시에 뒤지지 않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졌지만 전략적으로 관광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대두된다. 각 지자체별로 해양축제와 엑스포 유치 등 한국의 해양관광지를 알리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항상 짧고 굵었다. 경남과 부산, 전남이 함께 모여 남해안 관광브랜드와 관광 상품을 공동으로 개발하자고 협약을 맺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개의 지자체가 해안관광도로 조성 등 관광 인프라를 함께 확충해야지 장기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와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등 굵직한 행사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모두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현미 작가 우리나라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은 유네스코 자연유산 등재 등으로 이미 입증 받았다. 다만, 이를 보존하면서 함께 누릴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없다는 점이 항상 아쉽게 남는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휴양지는 규모의 경제를 갖춘, 그래서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을 말한다. 제주도와 부산 등이 이미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긴 했지만 정부와 경남도, 부산시 등이 말하는 규모의 관광지는 아니다.가덕 신공항이 들어서고, 남부내륙철도가 깔리면 남해안권은 관광지로서 최적의 교통망을 갖추게 된다. 서울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의 관광객이 우선은 타깃이 될 것이다. 그 이후에는 K-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부흥에 힘입어 더 큰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사실 세계적인 관광지를 만들자는 제안은 그동안 자주 반복돼 왔다. 각 지자체별로 국제공항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정부와 지자체가 한 목소리로 하나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한국의 글로벌 위상도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조성될 해양레저관광도시와 해양레저관광벨트가 세계적인 관광도시 ‘한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길 희망해본다.

2023-01-25

CCTV와 개인정보 보호

홍석봉 대구지사장 작년 말 기준 전국의 폐쇄회로(CC)TV는 인구 3명 당 한 대 꼴인 약 1천700만 대로 추정된다. 지자체 등 정부기관보다 민간이 설치한 것이 10배 이상 많다고 한다. 우리 주위 곳곳에 CCTV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2010년 CCTV 노출 빈도 조사 결과 국민은 하루 최대 110회, 이동 중에는 9초에 한 번꼴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당시보다 몇 배 이상 높아졌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CCTV에 감시당하며 산다. 진화한 CCTV가 범죄 현장을 경고하고 경찰에 알리기도 한다.CCTV 설치후 5대 강력범죄 발생건수가 26.6% 감소했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CCTV는 사생활침해와 감시라는 부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해킹 우려도 높다.CCTV는 범죄 발생 시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반면에 사생활 침해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이 개인정보보호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일정 부분 노출과 감시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당사자 동의 없이 CCTV 화면을 제공받은 대구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최근 벌금형을 받았다.엘리베이터의 경고문을 훼손한 당사자를 찾으려 아파트관리사무소장에게서 CCTV영상을 무단 제공받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법원은 “수사기관을 통해 확인했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정당한 방법으로 수집되지 않은 영상은 증거능력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경위 이상 간부가 아닌 경찰관이 압수한 CCTV 영상은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는 판결도 있다. 화질이 안 좋거나 원본이 아닐 경우 CCTV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넘쳐나는 CCTV 속에 인간을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25

평균수명과 대학교육

장규열 한동대 교수 여성은 86세, 남성은 80세까지 산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평균수명 83세는 세계 3위 수준이다. 일본과 스위스가 아주 작은 차이로 앞서며 우리 앞에 있을 뿐,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사람들인 셈이다.사회경제적 현실을 반영하며 예측하는 바에 따르면, 2067년에는 평균수명이 90세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한다.싱클레어(David Sinclair)는 저서 ‘기대수명(Lifespan)’에서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인류의 평균수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어렵지 않게 113세 정도에 이를 것이라서, 모두 증손자를 넘어 고손자를 만나보게 될’것이라 한다. 오래 살 터이며 모두 장수할 모양이다. 좋을까?미국 페퍼다인(Pepperdine)대 총장을 역임했던 데븐포트(David Davenport)는 ‘오늘 대학졸업생들은 사는 동안 평균 여섯 번 직장을 옮길 것이며 두 번 이상 커리어를 바꿀 것’이라고 예견했다.20대 초반에 마친 대학교육을 기반으로 평생을 사는 교육모델은 수명을 다했다. 배우기를 20대 초반에 마친 사람이 거의 10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사회환경이 다가온다. 대학졸업생이 학사를 딴 그 분야가 아예 사라지면 그는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같은 분야의 지식집적도도 이전과는 달라서 겨우 몇 달 안 가 새로운 지식체계가 들어서고 생소한 기능이 필요해진다. 오래는 살겠지만 무엇을 기반으로 살아갈 것인지 난감해지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모두 어찌할 터인가?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태어난 아이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고 사람 몫을 하도록 가르쳤던 교육모델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궤도에 한 번 올려놓았더라도 스스로 판단해 또 배우고 다시 배우는 ‘학습사이클의 연장’이 긴요하게 됐다.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과 대학 4년을 기본으로 구성된 교육년수모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20대 전후의 학생들만 주로 상대하던 대학교육모델을 전면 개편하고 문을 넓혀 새로운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를 반겨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이른바 ‘평생교육’을 하지만 교육대상으로서 20대 초반을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바뀌지 않았다. 전통적인 대학교육의 곁다리격으로 겨우 열리는 우수리 교육으로는 새로운 사회환경을 대할 수 없다.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대학은 운명을 달리할 터이다. 대학은 그렇다치고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매사에 호기심의 안테나를 세우고 궁금증의 스위치를 올려야한다. 지식은 집적도만 증대된 게 아니라 유연성과 환골탈태력도 증강됐다. 금방 나왔던 게 언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온라인과 디지털은 연결성만 증폭된 게 아니라 가변성은 폭증했다. 평균수명을 끝까지 건강하게 지키며 살아가려면 실력을 키워야 함은 물론 확장성과 가변력에 있어 역량을 가져야 한다.정부가 노인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대학이 교육대상의 확장에 힘쓰는 한편,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늘어갈 기대수명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평균수명이 기대되지만 건강수명은 우려스럽다.

2023-01-25

포항과 포스코의 ‘2·25 합의’ 지켜질까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포항시민뿐만 아니라 대구·경북지역민의 관심은 2월 16일로 예정된 포스코그룹 이사회에 쏠려 있다. 포항시와 시민대표(범대위), 그리고 포스코가 지난해 2월 25일 체결한 ‘3개 합의사항(지주사소재지 이전, 미래기술연구원본원 포항 설치, 상생협력)’ 중 지주사(포스코홀딩스) 소재지 이전문제가 이사회에서 사실상 결정되기 때문이다. 포스코 주주총회는 3월 17일 열리지만,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으면 아예 지주사 주소를 포항으로 옮기는 것은 물 건너간다. 포항시와 포스코측은 그동안 ‘2·25 합의사항’을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 상생협력TF를 가동해왔다.지난 연말 상생협력TF가 포항시의회에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지주사소재지 이전안건은 이변이 없는 한 주주총회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측은 지난해부터 해외 주요 투자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기업홍보행사 등을 통해 주주들을 적극 설득해 왔으며, 주요주주들이 별 무리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현재 포항지역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원사격을 하고 있어, 이 문제는 긍정적인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미래기술연구원 본원 포항설치와 관련해선 포스코측이 3월 이전까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 본원을 설치하겠다는 의사를 포항시에 통보한 상태다. 미래기술연구원은 산학연 협력 부서, AI연구소, 이차전지소재 연구소, 수소저탄소연구소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AI연구소와 이차전지 소재·수소저탄소연구소를 RIST 건물에 입주시키겠다는 것이다. 연구원장, 소장, 스태프가 포항에 상주하면서 상용화 단계의 연구를 수행하고, 수도권 분원에서는 산학연협력 부서를 통해 인재 영입에 주력하겠다는 제안이다. 지역상생협력 문제는 포항제철소가 최근 수해복구를 완료하고 정상가동된 만큼 추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투자와 관련해선, 포스코가 이미 이차전지 분야를 중심으로 향후 3년간 5조원을 포항에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나름의 청사진이 속속 나오고 있다.이러한 포스코측의 움직임은 그러나 아직 포항시와 시의회로부터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닌듯 하다. 시와 시의회는 포스코가 명실상부한 ‘포항본사 시대’를 열려면 지주사 신사옥이 포항에 건설돼야 하고, 이를 최정우 회장이 시민에게 약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측은 간격차는 좁혀야 하겠지만 다소 과하다는 감정을 내비친다. 국제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포항시와 시의회가 현실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대규모 자금투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포항시와 포스코와의 관계에 대해 취재하면서 일관되게 느끼는 것은 양측 모두 상대방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측은 우선 포항이 자신을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워준 ‘산실(産室)’이라는 점을 잊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봤으면 한다. 지난해 포스코홀딩스 주소지를 서울에 옮길때 더 심사숙고하고 고민했어안 했다.포항시도 포스코가 효율성과 성과를 최대가치로 두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포항시가 ‘포스코의 어머니’ 존재로 계속 남으려면, 기업의 논리를 이해하고 아낌없이 배려해 주는 자세 또한 무엇보다 필요한 부분이다.

2023-01-24

세뱃돈

우정구 논설위원 세배(歲拜)는 한해를 무사히 넘기고 새해를 맞는 어르신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우리 미풍양속의 하나다. 세뱃돈은 인사차 찾아온 이들에게 빈손으로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어르신이 조금씩 세뱃돈을 쥐어보낸 것이 유래가 됐다.돈의 가치가 지금처럼 크지 않던 시절, 떡국과 술상을 차려 대접하기도 했고, 차례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싸서 갈 때 들려 보내기도 했다.기록에 의하면 1960년대에는 세뱃돈이 10원 정도, 1980년대 들어서 500∼1천원, 1990년대는 1만원권이 세뱃돈으로 사용됐다. 5만원권이 등장한 2000년대 들어서 세뱃돈의 액수가 커져 부담스러워졌다는 시중 여론이 나왔다.이번 설 명절에는 유난히 세뱃돈을 두고 많은 얘기가 오갔다. 물가가 오르고 불경기가 심해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진 직장인에게 세뱃돈이 적지 않게 부담이 됐다는 후담이다. 한 포털사이트의 여론조사에서도 10명 중 4명이 “설 명절 비용이 부담스러웠다”는 답변을 해 불경기 여파가 설 명절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음을 짐작게 했다.이런 가운데 가수 이적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3만원권 지폐가 나오면 좋겠다”는 글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으면서 세뱃돈을 둘러싼 논란을 더 뜨겁게 했다. “3만원권 지폐가 나오면 세뱃돈으로 적당할 것 같다”는 이적의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5만원권을 부담스러워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라며 3만원권 발행 촉구 결의안까지 내겠다고 응답해 세뱃돈 논란이 신화폐 발행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로 번지기도 했다.세뱃돈은 유래에서 보듯이 미풍양속의 정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오가는 것이 참 의미다. 3만원권 발행의 유용성은 세뱃돈과는 별개로 따져볼 문제가 많을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24

설날 풍속의 변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해마다 맞이하는 설날은 가슴 설레기만 하다. 어디든 찾아갈 곳이 있고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슴 넉넉한 일이다. 가고는 싶어도 반겨 맞는 사람이 없다거나, 산천이 가로막혀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울까? 더욱이 민족의 설명절을 맞이해서는 그지없이 서럽고 가슴 아릴 것이다. 어쩌면 설날은 비로소 새해가 열리는 날에 온 가족이 고향에 모여 조상을 기리며 부모와 형제자매, 친척의 유대감과 정을 나누는 시간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여건의 변화에 따라 요즘은 서로 한번 만나고 모이는 일도 쉽질 않아 보인다. 그만큼 세월의 갈퀴질에 시달리거나 코로나19 같은 희대의 역병에 발목 잡혀 쉽사리 어딜 가거나 움직이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난 설 연휴 때의 귀성이나 나들이 차량의 이동은 작년에 비해 36% 늘어날 정도로 많은 움직임을 보였다. 4년째 코로나가 만연해도, 최근의 확연한 확진자 감소세와 정부의 방역대응 완화책 등으로 억눌린 가슴을 떨치기라도 하듯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귀향길에 오르거나 여행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귀성, 성묘차량으로 전국 주요도로에 정체구간이 늘어나고, 겨울 축제장이나 재래시장에도 모처럼 북적이며 인파가 몰리는 등 코로나 이후 3년만의 ‘대면명절’에 활기를 띠는 모습들이다. 설 연휴 해외여행도 동남아와 일본 등으로 떠나는 패키지상품이 대부분 예약 마감되는 등 2020년 설 연휴 때의 52%를 회복할 정도로 활성화되고 여행심리가 되살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모바일과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명절의 풍속도가 다소 변화하고 있다. 귀성 교통정체를 피한 이른바 ‘역귀성’ 행렬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고, 명절연휴에 가족단위의 해외여행이나 휴양시설 이용객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화상회의 앱 켜고 차례·세배·덕담을 나눈다거나 온라인 추모·모바일 성묘·모바일 세뱃돈으로 대신하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활용추세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편리와 효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삶의 양태가 전통의 가치와 고유한 풍습마저 조금씩 변모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시대의 변천 속에 풍습과 문화의 점진적인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은 어린이처럼/티없이 순한 눈빛으로/이웃의 복을 빌어 주는 새해 아침//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대하듯/언제 보아도 새롭고 정다운/고향 산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새해엔 우리 모두 산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언제나 서로를 마주 보며 변함없이 사랑하고/인내하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야 하리’-이해인 시 ‘새해엔 산같은 마음으로’ 중설날에 즈음해 손수 만들어 으레 주고받던 연하장도 대부분 모바일 콘텐츠로 간편하게 나눈다지만, 필자는 수십년째 고집스레 화선지에 수묵을 곁들인 붓글씨로 새해 덕담을 써서 친척과 지인들에게 전하곤 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산 같은 마음으로 소중히 지키고 오랫동안 이어가는 노력은, 산 같은 믿음과 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2023-01-24

불완전한 시선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데이터의 시선’이라는 제목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잠시 헷갈렸다. 데이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인지?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데이터의 시선인지? 예전에는 후자의 경우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겠지만, 지금은 데이터가 나보다 나를 더 잘안다고 말하는 시대이기에 어쩌면 후자가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더이상 원유가 아니라 데이터”라고 말했다.“알고리즘에 낚여서”라는 말을 우리는 이제 너무 쉽게 하지만, 그 알고리즘은 사람의 행동과 말과 글을 관찰하고 모은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데이터 없는 알고리즘은 기름 없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다.지금 빅테크 기업들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언어모델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GPT, BERT, 그리고 최근 ChatGPT까지. 그리고 그 성능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처럼 시를 쓰고 심지어는 코딩까지 해준다.언어모델개발을 초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람들이 작성한 온라인상의 수많은 글들을 Wikipedia, Fox News, CNN News 같은 사이트로부터 수집한 후, 이것을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훈련데이터로 사용하게 된다. 대표적인 훈련 방식은 주어진 문장에서 한 단어를 고의로 제거하고 그 제거된 단어를 예측하도록 컴퓨터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예측되어진 여러 개의 단어들 중 확률이 제일 높은 단어를 답으로 제시하게끔 하는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인공지능 언어 모델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훈련 데이터, 즉 우리 인간이 온라인상에서 생성한 글들이 항상 온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부족함과 불완전함, 우리의 선입관과 차별주의적인 편견 및 정치적인 색깔까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글이기 때문이다.그런 불완전하고 편견을 가진 글을 훈련 데이터로 사용해서 학습된 인공지능 모델은 어쩔 수 없이 편견을 가진 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인간이 가진 시선이 인공지능의 시선이 되는 것이다. 데이터는 우리 인간의 시선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범죄자 재범률을 예측해서 보석 석방을 승낙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아프리카 미국계인에게 인종차별주의적 결정을 내려 한 때 큰 기사거리가 되었었다. 우리의 잘못된 선입관이 그대로 인공지능에 반영된 하나의 사례이다. 인종차별 기계를 만든 셈이다.우리의 불완전한 시선은 불완전한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불완전한 데이터는 불완전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며, 그런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우리를 불완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데이터의 시선이다. 그리고 때로는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도래하기도 한다. 완벽한 것을 창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고 신을 믿는 이유이다.우리의 디지털 행동이 데이터이고, 그 데이터가 인공지능을 만든다. 우리 모두가 인공지능 개발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2023-01-24

미래 동구 조성 영감 얻은 책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래 도시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까.대구광역시라는 도시에 살고, 좁게는 대구광역시 동구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는 늘 도시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특히 지난해 7월 대구 동구청장에 취임하면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동구청장으로 동구라는 도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동구를 어떤 도시로 만들어야 할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펼쳤다.저자는 최근 방송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현준 교수로 방송에서 본 그의 말에 빠져 책을 읽게 됐다.책은 전체적으로 우리가 사는 공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 회사, 학교, 상업시설, 공원 등 우리가 생활하고 있거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공간의 미래를 살펴본다. 건축가이기도 한 저자는 앞으로 우리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을 하기도 한다.인상 깊게 읽은 지점은 서울 한강의 전망과 뉴욕 허드슨강의 전망을 다룬 부분이다.저자는 서울강북에서 강남을 바라본 강변 풍경이 모두 똑같다고 말한다. 똑같은 모습의 20여 층짜리 아파트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풍경.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울 강남의 모습이다.저자는 강남과 대비되는 장면으로 뉴욕을 말한다. 뉴저지에서 허드슨강 건너편에 있는 뉴욕은 각기 다른 높이와 모양의 빌딩들이 조화를 이루며 제각각 서 있는 모습이다.이런 뉴욕의 풍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온다. 맨해튼의 강변 풍경이 멋있는 이유는 다양성이 만드는 적절한 불규칙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이 지점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다양성이다.도시 개발을 앞둔 동구에 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낙후된 도시 이미지가 강했던 우리 동구는 지금 도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신천, 신암, 효목 등에 재개발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고, 도시재생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공항후적지 개발을 앞두고 있다.공항후적지로 한정 지어 생각하면, 210만 평에 달하는 이 땅은 과연 어떻게 개발이 되어야 할까. 이 문제의 답도 책에서 조금 찾을 수 있었다. 분당보다 강남에 더 가까운 IT 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 하지만 이곳에 일하는 직원들은 판교를 떠나 성수동 같은 구도심으로 이사를 가기 바란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빽빽한 건물, 건물 안에 들어오면 나올 일이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을 봐야하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 섞여 쉬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지난해 10월 동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항후적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38.9%가 ‘테마가 있는 도심 숲, 수변 공간 조성’을 원했다. 주민들 역시 자연과의 조화, 쉼터를 바라는 것이다.공항후적지 개발을 앞둔 지금은 개발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시기다. 설문조사에서도 첨단산업 유치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친화적 개발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복합 상업 시설 조성을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210만 평은 매우 큰 면적이다. 다양성 있는 도시, 볼거리가 풍부한 도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되려면 지금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반영되었으면 한다.첨단산업 단지로 출근하는 직장인, 수변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는 가족, 복합 상업 시설에서 쇼핑을 즐기는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기는 공항후적지를 꿈꿔본다./김재욱기자

2023-01-24

방이라는 관

“요즘 관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시내에 있는 고시원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 작은 관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내자 마음먹었죠. 믿을지 모르시겠지만 사실 4년 전 제가 지금 가진 돈으로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답니다.” (황수아 희곡, ‘가로묘지 주식회사’ 부분)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인 황수아의 ‘가로묘지 주식회사’는 집값 폭등으로 고시원 임대료마저 감당 못하게 된 무주택자들이 관에 세 들어 산다는 내용의 세태 풍자극이다. 미친 주거난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은 관마저 구하기가 어렵다.‘관(棺)’은 육체의 노화, 질병, 불의의 사고, 절망감에 의해 삶에서 죽음으로 떠밀린 인간의 최후 거처다.황수아는 관을 더 이상 밀려날 곳 없는 이들의 마지막 ‘방’으로 묘사하며 고시원의 하위 주거 형태로 두는 핍진한 상상력을 펼치지만, 사실 그 관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원룸, 옥탑, 반지하, 고시원, 달방에 뚜렷하게 나타난다.그곳들에서 발생한 무수한 고독사들을 떠올리면 1인가구의 좁고 습하고 냄새나는 방은 확실히 관이다.지난해 여름, 폭우에 침수된 서울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방이 관이 된 것이다.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김성규,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던 2004년의 시는 18년 지나 시참(詩讖)이 됐다. 한국사회의 외피는 화려해졌지만, 찬란한 빛은 더 짙은 그늘을 키웠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쓰러졌다. 집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반지하동굴’에 산다. 관 속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는다.침실과 거실과 부엌과 현관의 구별이 없는 방, 좁은 공간에 억지로 문 하나 끼워 넣어 화장실을 겨우 둔 방, 그마저도 없어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 방, 집이라고 하기엔 거기 사는 그 자신도 민망해서 ‘방’이라고 부르는 방, 여기 계속 살다간 죽을 것 같은 방, 이미 내가 죽은 방, 사람이 죽어도 사람이 모르는 방, 닦아내고 긁어내고 집게로 건져서 사람이었던 주검을 수습해야 하는 방, 관인지 방인지 모르겠는 방, 아니 관. 그곳이 바로 한국사회의 원룸이다.원룸은 집을 포기하고, 집 비슷한 것을 포기하고, 그나마 집 같은 것을 또 포기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사는 곳이다.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으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 삼백에 삼십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씨 없는 수박 김대중, ‘300/30’)라는 노래에서 무주택자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으로 방을 구하러 다닌다.신월동에서는 옥탑 투어를 하고, 녹번동에서는 지하실 탐사를 한다.고작 “삼백에 삼십”으로는 옥상 연탄창고나 지하 방공호 같은 방 밖에 빌릴 수 없다.“삼백”은 사회초년생이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지닌 전재산이고, “삼십”은 한 달에 지불할 수 있는 최대치의 거주비용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공간은 계급이 된다. 이제는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에게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라고 부르는 세상이다.이 계급사회에서 원룸은 가장 비천한 세계다. 브랜드 아파트, 단독주택, 고급 빌라, 역세권 오피스텔이 카스트를 이룬다면, 계급 바깥의 원룸에 사는 장애인, 독거노인, 미혼모, 청년 예술가, 취업 준비생은 불가촉천민들이다.모두 다 소중한 생명이자 존엄 있는 인간, 하나의 개별적 우주이지만,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입장권인 ‘지상의 방 한 칸’이 없어 소외된 자들이다.심리적 문제, 취업 실패 등 여러 이유로 사회 진출을 포기한 채 외출 없이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은둔 청년’이 서울에서만 13만명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6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설 연휴에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가지만, 이들에게는 돌아갈 집도 떠나갈 집도 없다.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의 틈입을 차단한 그 방들이 부디 관이 되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다. 복지는 늘 사각지대를 향해야 한다.

2023-01-24

연두가 주는 믿음

기나긴 겨울이다. 겨울의 낮은 짧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면 일부러 짬을 내어 산책을 한다. 귀한 겨울 볕을 맞으며 몸을 움직여보지만 급하게 밀어 넣은 점심 식사 때문인지 속은 더부룩하고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다.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모를 안양천 주변을 따라가며 이런저런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갈 때 쯤, 어느덧 시계는 12시 50분을 가리킨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커피 한 잔을 사서 다시금 자리로 돌아갈 때엔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를 불현듯 검사 받는 듯한 시큰둥한 기분이 더해진다. 그럴 때엔 자연스레 손바닥에 말랑하게 잡히는 책 한권을 떠올린다. 연두색 표지 속 콜리플라워와 와인잔 그리고 아티초크가 그려진, 소설가 한은형 작가님의 ‘오늘도 초록’이란 책이다.‘오늘도 초록’은 한 손으로 들고 읽기 좋은 작은 판형과 자유자재로 잘 구부러지는 부드러운 표지, 모난 곳 없는 둥그런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무광 재질의 얇은 종이는 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겨 종이를 펄럭일 떄마다 기분 좋은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인 만듦새가 마음에 들어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책이지만, 물론 가장 좋은 건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는 글의 내용이다. ‘이 모든 것은 완두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식물의 연두색에 꼼짝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완두콩 때문에 알게 되었다. 슈퍼에서 완두콩을 보면 늘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에. 어쩌자고 망사 주머니도 연두색인지… 연두색 망사 틈으로 보이는 완두콩의 꼬투리… 색과 형태가 완벽하다. 이 꼬투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가르고, 벌려, 콩알들이 얼굴이 내미는 순간을 보는 건 도무지 지루하지가 않은 것이다.’ (본문 중에서)‘그리너리 푸드’의 주제로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다보면 금새 배고파진다. 맛의 묘사와 음식의 생김새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전개되어 희미하던 입맛을 깨우고 눈빛을 반짝이게 한다.‘연한 낙지와 함께 먹는 은은한 미나리의 맛’, ‘달고 시큼한 장아찌의 냄새’, ‘말랑하고 순수한 아보카도의 맛’, ‘입 안을 자극하는 포도잎 쌈의 쌉쌀함’이나 ‘입맛을 돋우는 민트와 쿠민의 색’ 등 책에 등장하는 식재료들은 얼핏 보아도 비슷한 연두와 초록색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초록주의자라 칭하며 값나가는 필레미뇽의 소고기 스테이크보다 함께 곁들어 나오는 구운 야채를 더 좋아하고, 몸과 마음이 초록의 기운에 반응하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초록을 먹지 않고 두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초록과 연두를 대하는 열렬한 예찬은 깊고 풍요로워 단숨에 연두의 세계로 몰입되게 한다.또한 저자는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연두빛의 서양호박인 주키니를 맛있게 먹고 나선 다음날 주키니를 사서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이후 때에 따라 주키니에 버터를 넣거나 오일을 넣거나 새우를 넣어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맛있는 레시피를 만들어낸다. 재료의 조화와 조합에 신경을 쏟는 것은 물론, 먹는 시간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넣어 새로운 요리를 구상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낯선 식재료를 더 맛있게 연구하고 요리해 결국 내 입맛에 꼭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끌림을 끌어와 나의 것으로 누리어 삶의 애정을 더하는 자세가 무척 근사해 보였다. 저자가 정성스레 내어 놓고 이야기하는 모든 연두와 초록으로 이루어진 음식 외에도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생한 숨이 방울방울 매달려 부지런히 반짝이는 것 같달까. 봄을 알리는 색이라 불리는 연두는 메마른 겨울을 뚫고 새로운 생명을 틔워 자라난다는 점에서 싱그럽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지녔다. 또한 노랑과 초록의 중간색에 자리한 연두는 일상 속에서 새싹, 어린이, 자연 등의 색채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정신의 평화를 갖게 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책에서 연두를 발견한 이후로는 이제 막 고개를 드는 연두를 느긋이 바라보게 되었다. 연두가 품은 조용한 평화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다가오는 계절을 기대하게 되는 기분 좋은 믿음을 갖게 한다.회사 옆에 자리한 안양천의 산책로는 물길을 따라 고르게 깔려 있다. 퇴근 시간 이후 러닝을 할 때에 주로 택하는 장소기도 하다. 걷고 달리는 이 땅은 머지않아 새로운 연두의 세계가 펼쳐질 테니, 겨울 내내 쌓아 왔던 습관과 생활에 대한 애정을 착실히 들고선 새로운 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본다.

2023-01-24

아빠, 해고야

강길수 수필가 “아빠, 해고야!”지난 늦가을 오후, 냇가에서 다섯 살 맏손자가 제 아빠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이는 이어 말했다.“아빠! 오늘 메뚜기 못 잡으면 해고란 말이야.”그제야 나도, 제 아빠도 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 녀석은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하며 아빠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들의 당돌한 말에, 아빠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하긴 제 아빠가 낚시할 때, 여기서 메뚜기를 보았다고 녀석에게 자랑하며 잡으러 가자고 했다니 그럴 법도 하다. 내가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메뚜기 부지런히 잡아보자!”우리 집 3대 남자 셋은, 이렇게 메뚜기를 찾아 나섰다. 벼를 베고 논이 텅 빈 지 한참 지났다. 냇가와 냇둑에 만발한 억새꽃이 소슬바람에 윤슬처럼 출렁인다. 풀들이 말라버려 메뚜기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은 드물다. 메뚜기는 잘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냇가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나는 거의 손자와 함께 다니고, 녀석 아비는 조금 떨어져 다녔다.눈은 열심히 메뚜기를 찾으면서도, “이 녀석이 ‘해고’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제집에서 가족들 간에 썼나. 아니면, 유치원에서 배웠나.” 하는 의문들이 마음속에 오갔다. 냇가 억새 사이로 난 오솔길 좌우, 냇바닥 컬러포장 길 양옆, 마른 풀밭, 냇둑 등을 훑으며 메뚜기를 찾았다. 한편, 큰아이의 늦은 결혼으로 늦게 태어난 녀석이 어느새 커서 어른 같은 말도 쓸 줄 아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이윽고, 메뚜기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메뚜기를 잡았다. 손자가 든 빈 생수병에 메뚜기를 함께 넣었다. 녀석은 메뚜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생김은 벼메뚜기 같은데, 몸은 팥중이 색이다. 벼메뚜기가 냇가로 와 보호색 옷으로 갈아입었나 싶기도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손자 녀석이 말했다.“아빠, 이젠 해고 안 해도 돼. 메뚜기 잡았으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손자 녀석의 또렷한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녀석은 해고와 그 취소의 개념을 다 알고 있었던 게다. 후일 녀석 엄마에게 이 일을 물어보니, 어린이 만화 방송이나 동영상에서 배운 듯하다고 했다. 두세 시간 이어진 메뚜기잡이에서 우리는 서너 마리를 더 잡았다. 페트병 안에서 폴짝거리는 메뚜기들을 쳐다보는 손자 녀석의 얼굴에, 숫저운 ‘어린이 마음’이 하얀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손자의 꾸밈없는 ‘어린이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불러왔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 설파하는 그는, ‘어린이 마음’을 어른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는 분명, ‘어린이 마음’을 잃고 있다. 입은 ‘국민·민생·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은 국민을 깔보며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 그들이 과연 ‘어린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꼭 밝혀내야 할 부정선거 이슈는 외면하고, 혐의자 방탄 국회만 일삼는 자들.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부디, ‘어린이 마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01-19

까치 까치 설날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부르는 동요가 귓전에 맴도는 설날이 다가왔다.올해는 일요일이라 작은 설이라는 ‘까치설’과 대체공휴일을 더해서 4일 연휴이기에, 10여 년 만의 설날 한파가 예상된다고 하지만 가족 모두 한데 모여 한해의 건강과 풍요를 바라는 덕담을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음력 정월 초하루는 일제 강점기 때 구정(舊正)이라 했고, 국민 모두 땀 흘리며 일했던 박정희 시절에는 신정·구정 2중 과세(過歲)를 하지 말라고 공휴일에서 제외시켰고 전두환 때인 1985년에 ‘민속의 날’로 지정되었다가 4년 후 ‘설날’ 명절 이름을 되찾아 고향의 부모님 뵙고 가족과 친척의 만남으로 정을 나누는 4대 명절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그러나 세대의 변화로 고유한 민속 명절로서의 가치와 풍습을 이어나가려는 기운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설’이라는 어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새해가 되니 ‘낯설다’, 묵은해를 보내니 ‘서럽다, 섧다’, 한 해의 시작이니 몸과 마음을 ‘사리다’, 새로운 기운이 ‘서다’ 등이 있지만, 새해를 맞아 마음을 곧게 가지고 몸에 새로운 기운을 서게 한다는 뜻에 설날의 의미를 찾고 싶다.정월 초하루이기에 원일(元日) 원단(元旦) 등 처음이라는 뜻을 많이 쓰지만, 신일(愼日) 달도(601B5FC9) 등 삼가고 조심하자는 것도 있으니 마음가짐을 평온하게 하고 매사에 신중하는 삶의 자세로 설날을 맞이하자.올해는 코로나 방역 조치 해제 후 첫 설 연휴이니만큼 교통 정체가 심할 것이 예상되지만, 버스·철도·항공기·연안여객선 등 교통수단을 증편 운행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4일간 면제한다고 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고향을 찾아 가족의 안위를 묻고 사랑을 전했으면 좋겠다.설날 아침, 고운 설빔으로 갈아입고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차례(茶禮)를 지낸 후 웃어른께 세배드리고 세뱃돈과 함께 안녕과 건강을 바라는 덕담(德談)을 주시면 그 속에 가족의 훈훈한 정과 따뜻한 마음을 담아보는 것도 설날의 행복이다.그리고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긴 가래떡 맛있게 먹고 구들목에 둘러앉아 윷놀이도 하다가 밖으로 나가 남자애들은 제기차기 딱지치기하고 아가씨들은 널뛰기하며 담장 너머를 살피기도 했었다.어른들은 들판에서 하늘 높이 연을 띄워 액운을 날려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자취일 뿐, 요즘은 보기 어렵다.설날 새벽에 복조리 장수의 외침에 일어나 대나무로 만든 복조리를 몇 개 사서 부엌 기둥에 묶어두었던 추억이 있다. 지금 그 풍경은 사라졌지만 예쁜 끈으로 묶은 장식용 복조리를 사서 문간에 걸어두어야겠다.새해 첫날 새벽에 처음 듣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한해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聽讖) 풍습에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 길하고 까마귀 소리는 흉조라 하니, 고운 댕기 들이고 예쁜 설빔 차려입은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 던져주면 할배 할매 부르며 깔깔대고 안겨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족의 행복을 가져오는 까치 소리가 아닐까….

2023-01-19

제2의 바라카 기적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으로 유명해진 바라카 원전을 우리는 ‘기적의 원전’ ‘사막의 기적’이라 부른다. 한번도 원전 수출을 해본 적이 없는 한국이 세계 최강 원전기술을 자랑하는 프랑스를 제치고 UAE 원전 수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막의 모래 폭풍과 50도가 넘는 열사의 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원전을 온전히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4년동안 한국측은 약속한 기일과 예산 범위 내에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 외부 환경에 민감하고 고도의 안정성이 요구돼 툭하면 늦어지기 일쑤인 원전 준공일을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한국은 이를 지켜낸 것이다.UAE 모하메드 대통령이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대한민국”이라 치켜세웠고 “바라카 원전을 통해 쌓은 양국의 신뢰”라 언급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폴란드 원전 수주전이 벌어졌을 때도 우리나라가 제일 강조한 장점은 예산과 공기를 정확히 지킨다는 사실이었다. 폴란드 일부 언론은 “한국이 덤핑하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을 수용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으나 UAE가 보여준 한국에 대한 신뢰는 한국 원전의 대외 신인도를 올리는 데도 한 몫할 전망이다.바라카 원전은 한국전력이 주계약자로 사업을 총괄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두산, 현대, 삼성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공정 전과정에 참여하는 팀코리아 형태로 일하고 있다.한국기업들의 팀워크와 끈질긴 근성, 땀 등이 모여 국가의 신뢰를 높인 것이나 다름없다. 열사의 사막에서 선전한 우리기업의 투지가 제2의 바라카 기적을 다시 만들지 국민적 기대가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19

여당의 폭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진박감별사’가 정치권에 재소환됐다. 국민의힘 내홍이 여당의 아픈 상처인 ‘진박감별사’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현재의 여당 상황은 2016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힘이 전당 대회를 앞두고 내홍이 깊어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친윤세력으로부터 불출마 압박을 받아온 나경원 전 의원이 코너에 몰리자 친윤계를 공격하며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나경원 전 의원은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됐다”고 했다. 장 의원을 2016년 총선 당시 공천 칼자루를 휘둘렀던 친박계 중진에 비유한 것이다. 당시 ‘공천 파동’과 ‘옥새 파동’이 터지면서 압승이 유력했던 새누리당은 패하고 만다.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판세가 급격히 불리해지자 대구 지역 새누리당 후보들이 두류공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 퍼포먼스까지 벌였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회초리를 들어주시라”며 지역 정서를 자극하는 극약처방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는 결국 탄핵과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친윤계 초선 의원들이 나 전 의원 비판 성명서를 발표하며 나 전 의원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친윤, 비윤, 반윤, 진윤, 멀윤으로 분화됐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 당시와 흡사하다. 배경엔 차기 총선 공천권이 자리하고 있다. 차기 총선을 위한 ‘줄서기’다. 이 줄을 놓치면 공천은 물건너가기 십상이다. 현역 의원들이 동아줄을 잡기 위해 줄 서는 모습이 역력하다.대통령 바라기는 점입가경이다. 거대야당의 횡포를 나무라던 여당이었다. 그런 여당이 한 솥밥 전 동료 의원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고 있다. 초선들까지 집단 가세, 마구 핥퀴고 있다.나 전 의원의 발언이 정부 기조와 다르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다. 대표 출마를 막기위해 벌떼같이 덤벼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경선 룰을 ‘당원 투표 100%’로 바꿔 반윤인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 논란이 됐다. 다시 나경원 솎아내기로 눈총받고 있다. 여당의 잇단 비상식적인 폭주에 국민은 머리를 젓고 있다.당 분열을 우려하는 내부 위기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자해정치’라는 비판까지 나온다.친윤계의 대응에는 나 전 의원 간판으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나 전 의원이 대표가 될 경우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공천권을 쥐고 당을 장악해야 다음 총선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윤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할 우군 확보도 절실하다. 하지만 유승민과 나경원 등 비주류의 대표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당의 일사분란한 모습이 국민에게는 온당치않다는 느낌을 준다.현재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다한 사람들이다. 국민의힘의 내분은 정치 불신을 더할 뿐이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국민의힘의 분열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2023-01-19

나목(裸木)을 읽다

배문경수필가 팔다리가 앙상하다. 바람 한 점 붙들 힘조차 없다. 겨울바람이 팔과 다리 사이로 쌩쌩 지나간다.남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 서있는 나무들이 한결같다. 하나같이 헐벗은 노인의 몸피 그 자체다. 예수나 석가모니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탁발승의 모습이다. 아! 모두 다 내려놓고 서있는 나무가 고행하는 성자 같다.나무가 서 있는 길가를 벗어나면 들판은 바람소리로 가득하다. 날아온 까마귀 떼들이 낟알을 주워 먹는지 전선위에 앉았다가 떼로 몰려와 논을 새까맣게 수놓는다. 저들도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해 가벼운 몸피로 수십 킬로를 날아다닌다. 겨울의 풍경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다 버리지 않고 어찌 가벼워 질까. 허공을 날아야하는 새들의 숙명이다. 저 가벼움을 위해 부리로 씨앗을 쪼아 먹고 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더 빨리 나는 생존을 몸속 깊이 유전(遺傳) 받았을 새. 새들도 나목처럼 뼛속을 비워 겨울을 난다. 지나가는 구름 한 조각은 새 위에 얹힌 그림자로 상상의 새처럼 크다. 그것 또한 가볍기만 하다.새는 자유를 찾아 난다지만 서있는 겨울나무는 제 뿌리로 단 한 보를 옮기지 못한다. 그래도 살아남아 내일로의 순환으로 이어져 갈 것이다. 바람이 사지를 흔들며 멱살을 잡고 비가 온몸을 적셔도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그 무엇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도 변함없는 것으로는 나무만 한 것이 있을까.장기유배지를 다녀왔다.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포항 장기 유배지인 장기숲(장기임수)을 보았다.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외진 곳이다. 그 곳에는 송시열이 심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다산이 머물던 곳에는 유림(儒林)인 느릅나무 숲이 있었다. 우암은 가정과 향당과 조정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실천한 참 선비였다. 큰 눈으로 보면 그가 추구한 세상은 의리가 존중되고 예의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문명의 세상이었다.“….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이 깎고 가는 바람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는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의 부분이다. 두 거장이 내 몰린 곳에서 나무는 귀향 살이 하던 그들의 마음처럼 세상의 고뇌로 메말라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메마른 삶을 산다는 것은 힘들다. 정년을 앞둔 직장생활은 편치 않다. 활기차고 진취적인 젊은 날과는 달리 경기의 후반을 뛰는 선수처럼 승부에 마지막 온 힘을 부어 스스로를 태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수강했던 인생 재설계 과정이 생각난다. 백세시대, 즐거움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삶의 욕망과 집착을 접어 몸과 정신을 가볍게 비워내야 오늘과 내일을 살 수 있다.내일을 채울 또 다른 준비는 젊은 날과는 다른 생각과 대책이다. 좀 더 깊어진 인생의 연륜을 이용해서 지혜롭게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주위에 서서히 정년을 맞아 자신의 의자를 뒷사람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늘어나는 노인의 숫자와 더불어 실버가 실버를 간호하는 세상이 왔다. 젊은 노인세대가 세상의 빈 곳을 채울지도 모른다.어느 날부터 꽃과 잎을 다 털어낸 겨울나무가 좋아졌다. 자신을 향해 깊게 파고들어 기도하는 저 나무가 나의 저변에 깔린 손톱크기 밖에 안 되는 자존심과 깜냥을 비웃는 듯하다. 단단함과 고요함으로 나를 일깨운다. 수묵화처럼 배경과 나무색만으로도 그 깊이를 짐작할 명작(名作)이다.추사의 세한도는 귀양길에서 만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낸 그림이다. 그 당시 제주도에 유배를 간 그에게 제주도라고 덜 추웠으랴.이번 겨울은 조금 더 춥다. 나이가 주는 사회적 한계를 체감한다. 나이만큼 무거워지는 여건은 저 겨울나무가 묵언처럼 제시하는 침묵(沈黙)과 구도(求道)만이 답이 아닐까.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나무가 오늘 아침, 안부를 묻는다.“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2023-01-18

<1> 당나무의 예언으로 공매에 참여하다

경북매일은 계묘년 새해를 맞아 서진국 작가의 단편소설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를 연재합니다. 소설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 는 1950년대 삶의 각오를 1980∼1990년대 부동산 투자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기업체 사장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격주 목요일 6회에 걸쳐 소개될 예정입니다.1. 껄껄껄,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고, 허참! 동네 입구에 목 좋은 요지 땅에 서 있는 당나무가 말했다. 귀신도 빌딩은 쳐다봐야 한다고 또 깔깔댄다. 옛날 같으면 빙의가 된 당나무 앞에서 감히 여자들이 깔깔 되다니, ‘세월 이긴 장사 없다더니….’ 하면서 당나무가 혀를 찼다. 선돌가 마을 입구에는 수백 년 된 수령을 알 수 없는 당나무가 있다. 주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위치에 따라 당나무가 될 수 있는데, 마을입구나 신당 곁에 서 있으면 당나무가 되어 마을을 지킨다. 당나무는 그 나무에 신령이 나무를 통로로 하여 강림하거나 그 곳에 머물러 있다고 믿어지는 나무를 말한다.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은 태백산맥 꼭대기에 있는 나무 신단수 밑에 강림하였다. 신목 신앙이 한민족의 태초부터 시작하였음을 알려준다. 고조선 이래 신목에 대한 신앙은 무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내려온다. 옛날부터 땅의 정기가 하늘과 통하는 곳에 신당을 지어 놓고 제사를 지냈다. 마을을 수호하고, 마을 주민들의 긴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당나무도 결국 그가 서 있는 토지 위치에 따라 그 신분이 결정된다.태백산맥이 동해바다에 다다라 다시 불끈 솟은 선돌가, 마을 입구 최고 요지에 서 있는 신목이 된 당나무는 마을은 물론 국가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꿰뚫고 있다. 소박맞은 여자가 이 동네를 떠날 때도 잠시나마 당나무 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떠났고, 나무 위에 모여 있던 학들을 총으로 쏘려 던 포수를 벼락 맞게 한 것도 그랬다. 남남쪽 월남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맹호부대를 따라 떠났던 박씨도 여기서 애인과 포옹하다 끝내 떠나고, 슬프게도 전사했다는 통지만 돌아왔다. 가난해서 목숨을 담보로 한 머구리의 슬픈 애환의 사연도 서글프다. 선돌가 당나무에는 또 다른 큰 비밀이 있었다.선돌가에서 친구같이 자란 당나무는 김 사장과 반드시 지켜야 할 운명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당나무가 지금처럼 자라 신목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김 사장의 역할이었다고 당나무는 생각하고 있다. 날씨가 가물어 목이 말라 갈기갈기 말라 죽어 갈 때도 그렇고, 도로가 새로 나게 되어 당나무가 대형 포크레인에 베어 쇠톱으로 동강동강 잘릴뻔 한 것 모두가 김 사장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여 우회 도로가 나게 한 것이다. 당나무는 김 사장에게 신목의 주술을 걸어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태수의 빙의를 씌워준다. “태수 태수 비게 태수 용마람에 대장” 지붕 위에 있는 용마람 최고 태수 대장에게 도술을 부려 달라고 맡겼다.김 사장은 용마람 태수 대장의 신령으로,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라는 한편의 신의 계시를 서술한다. ‘부동산 신화’는 부동산으로, 인생역전을 이룩한 생생한 실제 체험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 한 것이다. 김 사장은 지난 밤에 당나무의 신령스러운 꿈을 꿨다. 당나무가 자기 자리를 내놓으면서 거기에 앉으라고 한 것이다. 평소에도 김 사장은 마을의 수호신인 그 당나무를 믿고 있었다. 김 사장이 A토지구획정리조합으로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조합이 마련한 회의실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웅성대고 있었다. 민간 조합에서 체비지를 공개 추첨을 통하여 매각하고 있었다. 남자들보다도 여자들이 더 많아 보였다. 여기저기서 몇 명씩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으나 대부분 초조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김 사장도 이번에 조합에서 매각하는 체비지 공매에 참여하기 위해 5일 전에 미리 입찰보증금을 입금하고 오늘 공개 추첨을 통한 매각 절차에 참여하고 있었다. 입찰방법이 감정가로 해서 입찰 통에 넣고 입찰표를 공개적으로 뽑는 방법이었다. 복불복이었다. 김 사장은 조합이 매각하는 토지 중 가장 요지 중의 요지의 두 필지에 참여했다. 먼저 한 필지에 87명이나 투찰한 토지부터 공매 절차를 진행했다. 조합에서 입찰에 참여한 사람이 너무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여한 필지부터 개찰했다. 서진국 작가 민간이 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행정기관에서 도시계획으로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지정한 곳에 토지소유자들이 민간조합을 만들어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보면 토지소유자들이 일정한 동의 형식으로 구성한 조합이 시행사이고, 조합이 직접 택지개발을 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러한 능력을 가진 건설업체 등과 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를 시공사라 한다. 일반인들이 토지구획정리지구에 부동산을 투자하면, 대체로 안전하면서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투자의 방법 중 하나이다.구획정리 방식의 토지의 변화는 당초 자연녹지 상태에서 도시계획으로 지구단위 계획이 지정될 때 가장 가격이 폭발적으로 뛴다. 그 후 조합이 구성되어 개발 계획이 승인되어 큰 도로망이 나오면 다시 한 번 가격 상승 요인이 생긴다. 산을 깎는 등 본격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실시계획이 승인되면 필지별 감정을 하여 환지예정지를 지정하는데 이때가 되면 자기 토지의 위치를 알 수 있어 또 한 번 토지의 신분이 변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이 완료되어 환지처분이 되면 모두 건축이 가능하고 신번지가 나와 등기가 된다.

2023-01-18

건강하고 오래 사는 법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예전엔 노인이 하는 ‘어휴, 죽어야지’라는 말이 삼대 거짓말 중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너무 아파서 힘들다 하는 하소연이지만 그럼에도 내심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일 것이다.옛 원전에도 이러한 장수와 관계된 구절들이 있다.‘상고시대에는 도를 알았기 때문에 음식에는 절도가 있었고 생활에는 법도가 있어 함부로 힘을 쓰지 않아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이다.스트레스를 받으면 심박수가 늘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동공은 확장되며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 소화기로 도는 혈액을 근육으로 보내어 빠른 판단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문제는 요즘 우리가 겪는 생활에서 이러한 상황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업무에 대한 부담, 가족들과의 불화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신경 쓸 일은 자꾸만 늘어간다. 스트레스에 과다 노출되면 자주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지며 불안감도 심해지고 불면증도 생긴다. 소화기의 기능이 떨어져 만성 위염 등이 생길 수 있고 이런 건강 악화는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코르티졸이 분비되는데 이는 일종의 면역 억제 상태를 유지시켜 감염성 질환이나 암 등의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으로 지목받는 것이다.‘황제내경’에서는 ‘뜻을 가라앉혀 욕심을 적게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수고롭게 하여 게으르지 않게 하면 기가 순조로워져서 각기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 모두 원하는 바를 얻었다’라 하여 스트레스의 원인을 멀리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대해 욕심을 가진다는 것은 어떠한 일을 해내기 위한 추진력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마음이 편안할 정도의 욕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행동하면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동의보감’에는 장수하는 섭생법으로 고치법(叩齒法·치아를 부딪히는 것)과 호흡법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이는 일종의 명상법으로 편향 집중된 생각을 환기시키고 고치, 호흡 등의 부담없는 동작들로 주의를 돌림으로써 만성 스트레스의 상태를 빠져나오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를 실천하는 것보다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 다른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편이 훨씬 쉬운 것이다.수천년 동안 많은 사람의 관심사였던 오래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가 과거나 현재나 비슷하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우리는 진시황이 찾아 헤매던 불로초를 곁에 두고도 먹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아 그간 너무 오래 달리기만 하여 내 마음이 지친 것은 아닌지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 나를 좀 더 아껴주는 한해를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23-01-18

예정된 미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방대학에서 근무하다보니 출산율에 민감한 편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국가거점국립대학으로 주변의 사립대학에 비해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조금씩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올해부터 우리 대학은 ‘탄력정원제’라는, 경쟁력이 없는 학과의 정원을 인기 있는 학과에 배분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인문대학에 정원 미달인 학과가 있는 까닭에, 입시철이면 경쟁률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났다.1인 가구는 세계적 추세이지만 출산율이 1이 안 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출산율 감소는 한국 고유의 문화인 셈이다. 통계에 의하면 2005년 이후 43만 명 이상을 유지하던 연도별 출생아 수는 2016년 4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고 이후 급감하여 2022년 25만 명 수준이 되었다. 출생아 수가 43만 명 이상을 유지하던 시절 태어난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는 현재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2016년 출생아가 대학에 입학하는 2035년 이후의 상황은 상상조차 두렵다.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라는 한국적 문화 현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때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가 정당 내부의 역학관계에 따라 사직하면서 널리 알려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2005년 출범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5년은 40만대 후반을 유지하던 출생아 수가 43만으로 급격히 떨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이다. 이후 현재까지 단체는 유지되었지만, 출생아 수는 20만대로 진입했다. 이 정도면 진작 해체해야 마땅한 조직이다.2023년에 출생아 수는 어디까지 또 떨어질까? 어쩌면 출생아 수를 늘릴 고민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편이 현명한 것일 수 있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어울릴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점점 심각해지는 ‘고독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뭐 하나 쉽게 답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우리는 이런 물음에 답을 찾을 준비가 되어있나.입학정원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앞두고 대학개혁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산업 동향과 취업률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현재의 방향성이다. 그런데 한국 대학은 20년 전부터 비슷한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인문학은 20년 전에도 지금 현재도 위기다. 산업과 자본의 시각에서 인문학은 언제나 불필요한 지식이었기 때문이다.‘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의 수단으로 저출산 문제를 다루어서는 지금까지 그랬듯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개혁은 눈앞의 산업 동향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변화 방향에 대한 협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앞서 제기한 미래 사회 로봇과 인간의 공존이나 고독사 문제에 대한 질문과 그 해법을 찾는 곳이 대학이 되어야 한다. 시각을 바꿔야 예정된 미래를 조금이라도 웃으며 맞을 수 있을 것이다.

2023-01-18

고교평준화제도의 명과 암

홍석봉 대구지사장 중학교 교육이 고교입시 위주로 과열되자 교육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별로 선택 지원하는 고교입시를 폐지했다. 고교평준화제도다. 교육격차를 줄이고 교육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반계 고교는 학생을 선발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지역별로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받는다.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첫 시작됐다. 1975년에는 대구·인천·광주가 1979년에는 대전·수원·마산·전주·제주·청주에서 시행된 후 중소 도시까지 확대됐다.하지만 학력 저하, 교육여건 미비 등 문제가 발생했다. 학부모 등이 반발하자 일부 지역에서 평준화를 해제했다. 2000년대 이후 다시 적용지역을 확대했다. 2008년에는 포항에서 고교평준화제도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다. 고교 진학을 위한 입시 과열을 막고 학력 격차를 줄이며 학생 간 위화감을 없앨 수 있었다. 반면 교육의 하향평준화,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교육의 획일화, 사립고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2023학년도 대입수시합격자 발표 결과 비평준화 때 한해 30여 명을 서울대에 합격시켰던 지역 명문 포항고가 고교평준화 이후 쇠락을 거듭, 올해는 단 한 명의 서울대 합격자도 내지 못했다. 대신 포항영신고와 동성고는 각각 4명씩 합격했다. 평준화의 명암이다.기대됐던 사교육비 감소와 과열 교육 해소의 효과는 별로 없었다. 학습 부담을 줄이지도 못했다. 보완책으로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학교, 자립형 사립고 등이 도입됐지만 또 다른 1류고를 낳았다.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평준화제도다. 교육의 기회균등과 경쟁을 통한 수월성 추구라는 상반된 이념을 조화시킬 방안은 없을까./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18

일자리만큼 문화가 급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역의 인구 위기가 전국뉴스에까지 다루어졌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누구도 신통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가히 대학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역에서도 졸업과 함께 젊은이들이 사라진다. 뉴스에 등장한 청년들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걸 첫째 이유로 꼽는다. 혹 두 번째 까닭을 물어는 보았는지.필자가 대학에서 발견한 또 하나 중요한 까닭은, ‘지역에는 재미가 없다’였다.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고 삶을 풍성하게 할 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혹 수도권과 비슷한 무엇이 있다고 해도 규모나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같은 값이면 지역이 아닌 큰 도시에서 즐기고 싶다고 한다.무엇이 있어봤자 수도권에는 이미 있었던 게 뒤늦게 펼쳐진 정도라고 평한다. 4년 이상 머물러 공부했던 지역에 대하여 그들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대학이 지역에 있어도 ‘지역의 대학’은 아닌 셈이다. 짧지않는 시간이었음에도 지역은 대학생들에게 비전과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터이다. 대학생들이 재학 중에 지역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고 졸업 후에도 머물러 삶을 이어가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역에 문화가 있다는 말은 타지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뜻이어야 한다. 타지에도 있는 걸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면 모방 또는 추격이면 몰라도 지역의 문화라 부르기엔 부족한 게 아닐까.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만나보지 못한 볼거리, 맛보지 못한 먹거리와 찾을 수 없는 놀거리가 우리 지역에 있어야 한다. 문화가 힘이 되려면 차별성과 독립성이 느껴져야 한다. 달라야 하고 여기에만 있어야 한다. 놀라워야 하고 타지에는 없어야 한다. 비슷한가 싶어도 다르게 만들어야 하고 이곳이 아니면 찾을 수 없어야 한다. 희소성이 있어야 문화가 되고 독창성이 보여야 사람이 모인다. 지역의 분위기에 문화의 상상력이 넘실거리면 재미를 느낄 발길이 머물게 된다.문화에 젊은 감각을 실어야 한다. 대학생 청년층과 다음 세대에 주목해야 한다. 문화를 ‘옛 모습을 복원하는 정도’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름다운 전통을 살리고 멋진 이야기를 재현하는 일이 소중하지만 젊은이들이 즐기고 누릴 만한 재미를 싣지 못하면 구태를 찾아낸 이상의 의미를 건질 수 없다. 멋진 옛이야기와 오랜 전통에 오늘의 감각을 실어 쉽고 재미있게 나눌만한 문화상품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어린 세대가 반기는 문화가 만들어질 때 문화에도 비전이 실리고 미래가 열린다. 멈춰선 느낌을 가져야 문화라 여기는 생각을 벗어야 한다. 문화를 청년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재미가 없으면 지역은 또다시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고 만다. 문화의 마당에 젊은 감각이 흐르고 청년문화가 깃들며 다음 세대가 호흡해야 한다. 굳이 붙들지 않아도 찾아와 머무는 지역이 되려면 문화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다른 지역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문화콘텐츠에 젊은 감각을 입혀야 한다. 문화가 지역의 내일을 당기도록 이끌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2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