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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마일치즈김치

배문경 수필가 천년의 미소라고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를 본다. 천 년 전의 미소가 저랬을까. 넉넉하고 평화롭다. 일부분이 달아나고 없어도 미소는 온화한 할머니 같다.지난 7일은 세계 미소의 날이었다.‘세계 미소의 날’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사람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의와 친절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도록 하자는 뜻에서 제정되었다. 매년 10월 첫 번 째 금요일이다.재즈보컬가수 넷킹콜의 ‘Smile’을 카카오 톡으로 지인에게 아침인사로 보냈다. 몇 해 전 아카데미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Joker)’ 예고편에 사용된 곡이다. 그러고 보니 이모티콘에 다양한 미소가 있다. 하나 혹은 두세 개를 인사말과 함께 보냈다. 우리 일상이 미소로 시작된다면 좋지 않을까싶은 마음에서였다.어느 순간 자고 일어나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휴대폰 알람소리에 일어나 씻고 거울을 보고 다듬고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사는 일이 지겹고 행복하지 않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매일 매일, 일상의 지겨움에 지칠 때 즈음해서 주말이 있고 명절이 있고 국공일이 있다. 미소 짓는 날이라고 하니 웃음이라도 한 번 날려본다. 실없다싶어도 세상은 나비효과라는 것도 있으니 하루가 즐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얼마 전, 리어카에 뻥튀기를 담아서 끌고 다니며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리어카의 전부를 팔아도 삼사만원이 될 듯 말 듯 했다. 간호사회에서 나오는 연말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얼굴을 쳐다보던 할머니는 “나는 이렇게 살아도 자식들이 객지에서 먹고 살만하고 집에서 무료하게 있기 싫어서 리어카를 끌고 나온 사람이다. 날 도와주기 보다는 다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얘기했다. 치아가 다 썩어 내려앉아 앞니가 몇 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서서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민망함을 느꼈다.가끔 주머니에 있는 몇 천원으로 뻥튀기를 사드리곤 했는데 그 후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실수가 아니었나 싶다. 리어카에 뻥튀기를 파는 그분이 나보다 마음부자였다. 미소부자였다. 뻥튀기를 살 때 그분의 행복도 함께 샀어야했는데 어설픈 눈으로 내가 더 미소가 많다고 착각했다. 뵐 때마다 웃으며 담소라도 나눴더라면, 하시는 일이 값진 일이라 여겼다면 발길이 이어졌을텐데 후회가 밀려온다.‘세계 미소의 날’을 제안한 인물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마일 아이콘을 고안한 미국의 디자이너 하비 볼(Harvey Ball)이다.그는 그가 1963년 고안한 스마일 아이콘의 본질적인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기념일을 만들어 진정한 미소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비 볼의 고향 우스터에서 매년 세계 미소의 날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기념행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간의 웃는 얼굴 풍선, 길바닥 그림, 아카펠라 콘서트, 서커스 공연, 파이 먹기 대회 등이 펼쳐진다.하지만 세계 미소의 날이 있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많으리라. 아직 코로나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하다보면 상대로 저절로 웃음을 띠게 된다. 리어카를 끌며 뻥튀기를 팔던 할머니도 리어카에 폐휴지를 담아 끌고 가시는 노인도 오늘 하루는 편안했으면 좋겠다. 노을 지는 하늘 보며 편안하게 허리를 펴며, 살아있어 행복하다고 주름진 얼굴에 웃음 가득했으면 좋겠다.그 날 이후 서툰 동정을 보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만날 때마다 미소를 짓지 못하고 깊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가난에 대한 무시는 혹여 없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할머니는 어쩌면 미소가 가난한 나를 동정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을 반성하며 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나 염화미소를 떠올리며 연습했다. 간혹 사진을 찍을 때처럼 ‘스마일, 치즈, 김치’를 반복했다.덕택일까. 방송에서 세계 미소의 날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2022-10-12

오직 기술만이 살길이다

김규인 수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미국의 금리상승으로 세계 경제는 끝 모를 터널 속에서 헤맨다. 전쟁 와중에도 각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살아남아야 하기에 국가가 가진 역량을 총집결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나라는 나라대로 살아남기에 바쁘다.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가파른 속도로 금리를 올린다. 달러를 빌려 쓴 개발도상 국가나 달러에 의존하는 세계 경제는 심한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돈이 없고 경제 규모가 적은 나라들은 물가 폭등으로 어려움이 늘어난다.환율이 높아져 수입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돈을 빌려 쓴 서민은 이자를 내느라 가난에 허덕인다. 이 시대의 절대 명제는 살아남는 것이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살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의 세계는 경제도 전쟁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 우선주의만을 고집한다.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챙긴다. IRA에 따라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전기차를 미국에서 최종 조립해야 하고, 배터리의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에도 조건을 붙인다. 이 관련 규정을 충족해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 생산하여 미국에서 인기리에 판매하는 현대와 기아의 전기차는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칩4를 말하고 삼성전자 공장을 유치하더니 실제적인 혜택은 미국 국적의 기업에만 준다. 미국은 철저히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챙길 뿐 자유로운 무역 질서나 동맹을 위해 혜택을 주는 것은 없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시든 것이 미국이 한국과 대만으로 구매처를 바꾸었기 때문이다.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에도 불똥이 튀었다. IRA 조건을 충족하기 위하여 구매처와 원재료인 리튬과 니켈을 수급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동안 중국에서 50% 이상을 구매하던 리튬의 공급처를 바꾸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놓칠 수 없는 기업은 조건을 충족할 수밖에 없고, 충족해야만 한다.리튬은 금속으로 배터리에서는 양이온의 상태로 음이온으로 이동함으로써 전기를 발생하며 다른 금속에 비해 효율이 매우 높다. 리튬은 배터리 양극재로 성능이 우수한 필수 원재료다. 채굴이나 정제도 우수한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리튬 확보와 정제 후 배터리의 성능을 높이는 전쟁 중이다.포항공과대학과 울산과학기술원의 공동연구로 한 번 충전으로 600㎞를 달리는 배터리를 개발했다. 음극재 없이 음극 집전체만으로 충전과 방전이 가능하다. 대단한 연구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말해준다. 살아남아야만 하는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사는 방법은 우수한 한국인의 두뇌로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다.IRA 같은 무역장벽은 우수한 기술만이 뚫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살길은 원재료 구입선을 다변화하고 시장을 확대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을 개발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단한 대한민국 기업체에 박수를 보낸다.

2022-10-12

인플레이션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올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8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애초의 예상과 다르게 우크라이나의 선전이 이어지며, 러시아의 핵 사용에 대한 공포까지 감지되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 8개월 우리는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을 맞이해야만 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를 상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 연준은 올해 기준금리를 연속해서 3번이나 0.75%를 올렸다. 유럽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에너지 대란의 영향으로 마침내 10%를 넘겼고, 한국의 물가도 30년 만의 최고치를 달성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전례 없는 금리 인상을 했다. 전 세계가 역사적인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쟁은 경제 위기를 가져온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전 세계가 펼친 ‘코로나19’와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겹치며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가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러시아의 광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자국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제한하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제품을 중국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법안을 공표했다.글로벌 시대에 자국 중심주의가 회귀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변화는 자산 가격의 급락으로 표현된다. 불과 2년 전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살포한 현금으로 우리는 유동성 잔치를 즐겼다. 잔치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기도 했다. 이제는 다시 주식에서 예금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하락 뉴스가 매일 들려오며 개미 투자자들의 미래도 암흑 속에 쌓여있다.자국 중심주의로의 회귀는 경제 위기를 유동성으로 해소하려는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펼친 미국 중심의 정책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다는 목적을 공유했다. 처음부터 ‘공동의 이익’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미국이 살포한 달러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발등에 떨어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닥치면 막대한 유동성으로 극복하려는 정책이 어떤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막대한 유동성이 곧 현금 살포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달러 패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는 곧 다른 국가들의 더 큰 위기를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UN이 미국의 금리 인상 자제를 촉구한 것은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리고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차분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10-12

막말 정치인

우정구 논설위원 어떤 대상물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한자(漢字) 글의 출발이다. 날 일(日)은 해의 모양을, 달 월(月)은 달의 모양이며 불 화(火)는 불이 활활타는 모양을 묘사한 글이다. 입 구(口)는 입의 모양을 본떴다. 혀 설(舌)은 입에서 혀가 튀어나온 모양을 표현한 글자다.품성의 품(品)자는 입 구(口)자를 세 개 모아 완성했다. 품위를 지키려면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어느 작가는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고 했다. 온기가 있는 따뜻한 말은 상대의 슬픔을 감싸주는 대신 차가운 말은 상대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는 뜻이다.말은 내 생각을 전하는 단순한 언어 전달의 수단을 넘어 그 사람이 가진 사상과 인격을 대표한다. 공자는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들을만한 말을 한다. 그러나 말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言)라고 말했다.누군가 말은 생각의 집이라 했다.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이 나오고 악마를 생각하면 악마가 튀어나오는 법이다. 생각이 망가지면 말도 망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을 경계한 금언은 수도 없이 많다. 말이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은 말이 가지는 참다운 의미를 잘 표현한 금언이라 하겠다.국정감사를 벌이던 국회의원 입에서 막말이 터져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정치인 막말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걸핏하면 터져나오는 막말로 정치의 격이 엉망이 된다. 세련되고 품위있는 말로 관료나 상대 정치인을 압도하는 달변의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22-10-11

실력으로 작동되는 TK사회 만들자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7일) 울산시청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하면서 중요한 말을 했다.‘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할 경우 정부가 모든 역량을 결집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각 지방정부가 먼저 정책 아이디어를 내면 중앙정부가 평가해서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이나 사업기획 역량을 쌓으라는 말과 다름없다.나는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백번 공감이 간다. 대부분 지방정부가 마찬가지지만, 과거 대구·경북(TK)은 공동체 전체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나 사업 아이디어(예를들어 대구경북통합신공항)를 공론화 한 적이 별로 없다. 대신 일부 기득권 그룹의 이익에 맞는 사업을 사회현안으로 포장해 연줄로 국비를 따내는데 익숙해 있었다. 자연적 공직사회의 정책발굴이나 사업기획과 관련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TK가 온갖 모욕과 설움을 당한 것도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윤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모여 국가균형 발전에 대한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여서, 앞으로 국정운영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회의에는 주요 국무위원들과 민선 8기 광역단체장,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이 정규멤버로 참석했다. 향후 분기별로 열리게 될 이 회의체는 지방정부간의 정책·사업 기획력을 둘러싼 경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TK는 특히 새로운 자세로 무장하지 않으면 지방정부끼리의 대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6일 시청출입기자들과 만나 “연말이나 신년이 되면 국비 몇 푼 더 받아왔다고 신문 1면 톱기사로 나오고 그런 것, 나는 ‘천수답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정부 스스로) 사업과 정책을 확보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TK의 자생력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짐작된다.역대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TK 주류그룹은 중앙정부 실세들과 전화 한 통화로 줄이 닿아 웬만한 인허가는 쉽게 해결했다. 아마 주요사업도 이런 식으로 해결했을 가능성이 있다. 역량은 기획력이 아니라 평소 연줄을 얼마나 잘 잡았느냐가 판가름했다. 공직자들이 외연을 넓히고 실력을 쌓거나 밤새워 사업과 정책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TK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TK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지방정부간 평가에서 선두권에 랭크되려면 정치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정책발굴이나 사업기획에 대한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타지역 공직자들이 전략적으로 지역 이익을 극대화하던 기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TK의 위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디지털 세상과도 맞지 않다. 사이버 세상에서도 TK는 타지역에 뒤떨어지는 퍼스낼리티를 가진 것이다. TK는 이제 실력으로 작동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022-10-11

자리와 사람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비 그치고 돌멩이 들어내자 / 돌멩이 생김새만 한 마른자리가 생긴다. /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발 크기가 비어 있다. / 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 키는 다 젖었고 / 걸어온 자리만큼 말라가고 있다. / 누가 나를 순하다 하나 그것은 거친 것들 다 젖은 후 / 마른 자국만 본 것이다.”문정영 시인의 시집 ‘그만큼’(시산맥사)에 수록된 시 ‘그만큼’의 1행부터 7행까지다. “따뜻한 감성을 바탕으로 존재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함께 삶의 원형질을 잘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의 정서는 이 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비가 왔지만 돌멩이가 덮고 있었던 땅은 돌멩이를 들어내자 뽀송한 마른 자리를 드러낸다. 시인이 서 있던 자리에는 발 크기의 자국이 났고, 발이 가려주어 비를 덜 맞은 땅 또한 빨리 말라간다. 무생물인 돌멩이는 생명체가 디딘 것보다 더 분명한 자국을 남기며 젖음을 해소시켜 준다. 아마 뜨거운 햇볕이 대지를 온통 말리려 했다면 움직이는 발밑보다 돌멩이 아래의 땅이 습기를 더욱 많이 머금고 생명들을 품었을 것이다.자리는 중요하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孟子)가 범(范)이라는 곳에서 제나라 임금이 있는 곳에 갔다가 왕자의 당당함을 보고 감탄하며 “있는 위치에 따라 기운이 바뀌고, 먹는 것에 따라 몸이 달라지니 위대하구나, 지위여!(居移氣 養移體 大哉居乎, 거이기 양이체 대대거호)”라고 말하였다고 맹자 진심편(盡心篇)은 기록하고 있다. 왕자도 역시 사람의 자식이지만 귀한 곳에 살고 따라서 좋은 음식으로 몸을 만들고 다스림으로써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기운과 풍채가 위엄이 깃들게 되었다는 말이다.맹자의 ‘거이기 양이체’라는 말은 우리 속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과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특정한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과는 다른 노력을 하여야겠지만, 그 지위에 올라서면 자리가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가기도 한다. 위치에 따라 얻게 되는 정보의 질과 양이 다르며, 높이 올라갈수록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많은 정보가 무슨 소용이랴. 그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책무를 온전히 수행하지는 못하면서 자리가 주는 이익만 쏙쏙 챙긴다면 차라리 묵지근히 자리를 지키면서 비올 때는 마른 자리를 만들고, 태양 아래서는 습기를 유지시켜주는 돌멩이가 더 나은 존재가 아닐까.미국에서 혼잣말 비슷하게 했다고 하는 우리 대통령의 욕설 파문은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에 정쟁거리로 등장했다가 잠잠해졌던 야당 대표의 욕설 파문까지 다시 불러오고 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라는 직위는 둘 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자질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최고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위치다.누가 어떤 자리에 앉고 서느냐도 중요하지만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면서 자리를 온전히 지켜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자리에 오른 자, 그 자리에 걸맞게 행동하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은 “무조건 무조건이야”가 아니다.

2022-10-11

맹인이 사는 방법

조현태수필가 조금씩 시력이 나빠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 어둔하고 느리지만 별 지장을 느끼지 않고 살았다. 왜냐면 지금껏 살면서 세상의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연습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 없을 뿐 신체의 다른 기능은 여전하여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크게 없는 듯 했다. 다만 조심스럽고 느릴 정도였다.1급 시각장애 때문에 결혼은 포기하고 혼자 살기로 작정했는데 어느 날 좋은 남자를 만났다. 장님 아가씨의 눈이 되어줄 요량으로 결혼을 제안한 남자가 있었다. 여자 쪽에서야 평생을 도움만 받고 살아야 할 상태라서 많이 망설였다. 한 남자의 장래에 자신이 끼칠 피해가 어떨지 손바닥 보듯 했겠지. 하지만 남자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남편 입장으로는 항상 아내와 함께 행동하며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불안하여 매우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함께 생활해 보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외출이든 집안 청소든 아니면 음식을 조리하든 아내 혼자 거침없이 해냈다. 이를테면 시장 갈 때 지팡이 하나만 들면 해결되었고 식재료를 구입하여 냉장고에 보관하여도 어떤 것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무슨 요리를 하면 어떤 재료가 있어야 하고 어디에 두었는지 훤하게 알고 있는 터라 조금도 어색하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도록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제 남편은 직장에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었고 아내 혼자 외출을 해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아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두터운 믿음으로 용기가 되어주었다.아내가 이렇게 된 연유는 간단했다. 혼자서도 살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야채 썰기, 갖은 양념하기, 끓이기, 그릇에 덜어 상차리기,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식사하고 설거지하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척척 잘 해야 하는 것이 목표인지라 눈물겨운 연습과 훈련을 거듭했다. 더러는 실수하여 부엌칼에 손을 다치기도 했고 손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하여 끝내 성공하기를 반복하고 또 했다. 그 결과 나중에는 두 눈이 멀쩡한 사람에 버금가는 전업주부의 고유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에 사랑하는 빛이 반짝반짝 했다. 이러한 사연에 필자도 그 남편에 못지않은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남다른 연습과 훈련으로 없어진 눈도 있게 하는 상황에 최근의 정치가 겹쳐진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해당 학위도 취득하여 수십 년 동안 정치 현장에 몰두한 사람이 아닌가. 장님도 귀머거리도 아니요, 사지가 멀쩡하고 명석한 두뇌까지 갖추었으면 그 많은 훈련과 경험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조금도 전문 정치가로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뭔가. 전혀 정치를 모르는 농부나 어부보다 더 어설프고 교활하게 보이니 이게 웬일인가.필자는 외치고 싶다. 장님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심혈을 기울여 관찰하고 배울 용의는 없느냐고.

2022-10-11

말하는 마음, 듣는 마음

세상에 발화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어딜 가도 조용히 사색하는 사람 보다 지치지 않고 떠드는 사람만 보인다. 나부터 그렇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일기장은 물론이고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 여기저기에 끼적여놓은 문장을 보면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러운 감정까지 든다. 이것이 필요한 이야기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브하지 않은가? 매일매일 비슷비슷한 문장을 적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쓰는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은 작아질 대로 작아져서 반쯤 베어 문 땅콩보다 더 조그매지는 기분이다.글을 쓸 때만이 아니다. 평소에도 나는 굉장히 수다스러운 성격이다. 대화를 주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정적을 참지 못하며 침묵과 함께 찾아오는 엄숙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어려운 일을 위트 있게 넘기고 싶어서 상대에게 무례한 언사를 행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자책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다음에는 입을 열지 않을 거야. 침묵을 견디는 사람이 될 거야. 다짐해보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그러한 결심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다시 시끄럽게 떠드는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것도 없었던 때, 자기 연민으로 똘똘 뭉쳐 주변을 왜곡시켜 보거나 마냥 숨어 있고 싶어 했던 시절, 나는 어떤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의미한 행동은 세상에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잘못되었어. 그러니까 이 세계가 망할 수밖에 없는 거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의 말을 가로막고 상대가 얼마나 편협한 관념에 갇혀 있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너는 왜 본질을 못 봐? 나는 선명하고 자신감 있는 척했지만 끝끝내 어떤 것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어리석음을 인지하면서도 발화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굳이 이해해보려는 태도야말로 내가 존립할 수 있는 이유였으니까. 그때의 나는 이상한 결연함이 있었다. 입을 다무는 것은 비겁한 것이라고. 끓어오르는 언어를 숨기지 말고, 밖으로 모두 드러내 보이자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말하는 양은 더욱 늘어났고 발화의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술자리의 거친 언어는 정제되었고 강의의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불안이 들었다. 뭔가를 선동하고 있는데 그것이 위험한 방식인 것 같은 기분. 이것은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하고 강조하는 말은 원론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스스로가 선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주입하려 했다. 나는 말하는 것을 멈추고 물었다. 너희의 생각은 어때? 그들의 입에서 놀라운 언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 내가 들여다보지 못한 지점과 알지 못한 세계를 전달받았다. 끝끝내 장악할 수 없는, 아니 장악할 필요가 없던 그들의 역사였다. 비로소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어렵다. 발화보다 경청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다정한 마음과 체력이다. 상대의 말을 하릴없이 듣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불쑥 끼어들어 이런저런 것들을 정정하고 싶다. 그러나 상대의 말 뒤에 숨은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순간 나를 넘어서 우리라는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건 굉장히 근사한 일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발화하는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어딘가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독자를 상상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내뱉는다. 그러나 한 쪽에서 나는 듣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 소설 속 인물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활자로 옮기는 일을 한다. 말하는 마음과 듣는 마음은 맞닿아 있다.이제는 알 것 같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뭔가를 바꾸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불안과 불만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세상에는 계속해서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외롭고 어려운 투쟁을 지속하며 누군가에게 가닿으려 애쓰는 마음이 있다. 그것에 대해 한 마디를 더 보태는 것보다 이야기를 듣고 곱씹고 생각해보는 태도. 거기서 기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말하는 마음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듣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다정한 마음의 시작이 될 것이다.

2022-10-11

사과라도 잘 하고 싶어

말하기 수업 첫 시간에는 항상 실수를 겁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대신 실수를 했을 때에는 반드시 사과하라고 덧붙인다. 그게 작은 실수든, 혹은 큰 실수든.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아이들은 이 부분에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사과라는 말이 무겁게 들리는 까닭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틀린 것을 인정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꾸만 꾀를 낸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신의 말과 행동이 정당하게 들릴 논리를 찾는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지만, 틀려선 안 되기에 자신을 끝없이 합리화시킨다.다음부터 조심하겠다는 말 한 마디면 해결될 일도 그러다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커다란 거짓말을 동반한다. 과외를 할 때부터 그런 상황을 몇 번쯤 겪다 보니, 이제는 아예 수업 첫 시간에 사과에 대해 가르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겁내지 말라고. 그건, 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혹은 나의 마음이 너와 다를 때에도 쓸 수 있는 표현이라고. 사소한 실수에서부터 누군가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을 때에까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거라고. 그 정도의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러니 미안하다는 말은 목숨을 건 사죄나 영어에서의 ‘Apologize’ 같은 것이 아니라고. 그건 그냥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사람들끼리의 최소한의 성의 표시 같은 거라고.종종 그런 아이들이 있다. 그럼 그런 사과는 가식이고 거짓말인 거 아니냐고. 자신은 진심이 아니면 사과하기 싫고, 진심이 아닌 사과는 받고 싶지 않다고. ‘진심’이라는 말이 무겁게 들리기보다는 귀찮은 무언가를 처리하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진심. 그걸 어떻게 확인하지? 어떻게 믿을 수 있지? 타인의 진심을? 자신의 진심조차 믿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고작 인간이? 지나고 나서야 늘 그것이 자신의 진심이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유약하디 유약한 인간에게, 나는 종종 진심이라는 말은 너무 해로운 말장난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어쩌면 너무나 원론적인 이야기라서 뭘 그런 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시기가 언제든 좋으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서로의 실수에 대해 잘 사과하고,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수준 낮은 이야기처럼 들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하지만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또 어른이 되고, 아이들은 그런 어른에게서 배우며 자랄 테니까. 그래, 어디 이게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어른들이 그랬으니 아이들 또한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자란 것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유감이라는 간단한 말조차 하지 못해서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타인을 욕보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실수는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실수에는 죽일 듯이 달려드는 정의 중독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그가 죽을 때까지 물어뜯으면서, 자신이 그 자리에 서는 것이 두려워 필사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고, 타인에게 죄를 전가하는 사람들이란.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과를 잘 하지 않는 사람들만큼이나 무서운 건, 사과를 잘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토록 진심과 진정성을 강조하는 사회이면서, 이 사회는 누군가의 진심과 진정성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는 것이다. 자신 또한 어떠한 진심도, 어떠한 진정성도 없이 단지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을. 자신 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생존’하고 있을 따름이며, 정의나 대의보다는 돈과 안락함에 얼마든 쉽게 유혹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니 우리가 타인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건 오직 그것이 자신의 돈과 안락함에 도움이 될 때뿐이다. 그 모든 악순환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진심이라거나 진정성 같은 말들을 만들고 치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실수하지 않을 자신도 없고, 사람 없이는 살아갈 자신도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투박하게 구르고 실수하며 끝없이 사과하며 사는 수밖에. 나는 말하고 싶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그러다보면 무수히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사과하는 수밖에. 끝없이 사과하고, 끝없이 실수하며, 그렇다하더라도 끝없이 시도하며 살아갈 수밖에. 내가 지쳐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투박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2022-10-11

교회건축과 바실리카

서양미술사는 서유럽지역에서 나타난 미술을 주로 다룬다. 시기적으로는 4세기 초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서양미술사가 시작된다. 유럽문화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와 로마시대 미술은 여러 시대에 걸쳐 서양미술의 모범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인용되기는 하지만 서양미술사의 직접적인 연구영역은 아니다.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내린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도들의 종교 활동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밀라노칙령 이전 기독교도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해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기독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무덤이나 가정에 숨어서 몰래 예배를 드렸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인정하게 된 것과 관련해 설화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후기 로마제국은 광활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네 명의 황제가 구역을 나누어 다스리는 사두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두정치는 오래 존속하지 못했다. 황제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 로마 근교 밀비우스 다리에서 결전을 벌였다. 전투 전날 밤 콘스탄티누스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 막사에서 잠을 청하던 콘스탄티누스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는 십자가를 보여주며 ‘이 표식 아래 승리를 얻을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콘스탄티누스는 십자가 모양을 깃발과 방패에 새긴 후 전투에 나섰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 얻다. 십자가의 도움으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믿은 콘스탄티누스는 이듬해인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해 기독교를 인정했고 이로써 서양미술사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종교 활동이 허용된 기독교도들이 마주한 첫 번째 문제는 예배드릴 적절한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신전을 개조해 교회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교도들이 우상을 모신 곳이라는 종교적 거부감 외에도 신전의 내부 공간이 협소했다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군중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기독교도들의 눈에 들어 온 것이 바실리카였다. 공공건물이었던 바실리카는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건축구조를 가졌다. 장방형(長方形)의 바실리카는 넓은 공간을 갖추고 있어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 팔던 실내시장의 기능을 했으며 재판이 진행되기도 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군집할 수 있을 정도로 실내 공간은 충분히 넓었다. 출입구 반대편 끝 쪽에 재판장의 자리가 무대처럼 조성되어 있었던 것도 교회로 쓰기에 유리한 구조였다. 건축적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그곳에 기독교도들은 예배의 중심인 제단을 모셨다.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에 교회를 짓도록 명령했다. 그렇게 건축된 것이 라테라노의 산 조반니,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이들은 모두 바실리카 형식으로 지어졌다. 콘스탄티누스 때 건축된 이 교회들 중에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재건축된 것이고 옛 모습은 추측해 재구성한 도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장방형의 평면도를 보이는 옛 성베드로 대성당 내부는 모두 다섯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앙에는 넓고 높은 공간 신랑(身郞)이 위치해 있고 좌우에 각각 두 개씩 낮고 좁은 통로 측랑(側廊)이 마련되어 있다. 신랑과 측랑 사이에는 줄지어 서 있는 기둥들이 공간의 경계를 이루고 천장은 열려 있어 대들보와 지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바실리카에서 교회건축의 모범을 발견한 기독교도들은 또 다른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다. 교회를 어떻게 장식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기독교가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는 우상숭배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 내에서의 성화상 사용에 대한 입장차는 이후에 벌어질 동서 교회의 분열은 물론이고 미술사 전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0-10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Ⅳ>

그게 다 살기가 팍팍해져서 그래. 요즘은 남자고 여자고 다 일을 해야 되니까. 이런 것 듣고 다닐 여유가 없어진 거지. 우리 아들 내외만 해도 그래. 둘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점점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아. 얼마나 딱해 보이는지. 그렇다고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산이라고 해봐야 아파트 하나, 고향에 조그만 언덕 하나 있는 것을. 그렇다고 덜컥 걔들한테 줘버릴 수도 없잖아. 나도 죽을 때까지 쥐고 있을 것이 필요하니까.아니 지금, 아파트 하나, 산도 하나 있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은근히.니들은 왜 말만 섞으면 꼭 그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거야?어쨌든 젊은 사람들이 불쌍해. 나는 사실 요즘 버스 타는 것도 미안해. 젊은 사람들한테. 우리가 하는 게 뭐 있나? 맨날 먹고 놀면서 시간 보내는 거잖아. 다들 뒤늦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내가 냅네.’ 하고 있잖아. 돈 한 푼 안 내면서 버스도 타고, 강의도 듣고, 놀러 다니고, 매달 통장에 돈도 들어오고. 그거 다 젊은 사람들이 벌어서 낸 세금이잖아. 염치없이 받아먹기만 하는 것 같아서 영 맘이 편치 않아. 이러자고 늙은 것은 아닌데 말이야.우리가 왜 하는 게 없어. 이렇게 모였다가 수업 끝나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하면서 돈 쓰잖아. 몰려다니면서 여행도 하고. 옷도 사 입고. 식당, 커피숍, 여행사, 옷가게까지 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건데? 우리가 공짜만 쫓아다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 기분 나빠. 우리도 젊었을 때 열심히 일했거든. 세금도 많이 냈고.그 식당이랑 커피숍에서 월세 받아먹잖아. 자네가. 자네가 건물주잖아.또 왜 이래. 그러면 월세를 받지 말라는 말이야? 그리고 월세 보다 더 한 것이 그, 그 뭐냐,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받아가는 돈이라던데.내 말이 그 말이야. 그 프렌차이즈 회장도 대부분 우리 같은 노인이잖아. 이리저리 젊은 사람들만 불쌍한 거지. 그러니 생각 좀 하자고. 누가 일하고 누가 세금 내서 우리가 사는지. 이 답답한 양반아.그럼 어떡하라고. 때 되고 나이 들면 알아서 죽으라고? 목을 매달기라도 하란 말이야?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젊은 사람 찾는다는 인호의 말이 시작이었다. 매해, 매번 비슷한 대화들이 반복되었다.어르신! 어르신들! 이러지 마시고요.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팥빙수라도 드시러 가시지요.중간에 말을 끊거나 중재를 해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인호의 몫이었다.20년 전 영권이 인호에게 자기 대신 지역구를 관리해 볼 것을 권했다. 인호는 실습이라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지역구를 물려받을 것이고 머지않아 국회의원이 되리라, 그렇게 여겼다. 어느 분야든 십 년 정도면 관록이 생기고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영권의 나이가 육십 대 후반, 곧 칠십 대에 접어들 때였다. 이제 쉬셔도 될 만하다 생각했다.너는 네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느냐?인호가 3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히자 영권이 물었다.아버님이 보시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그동안 지역구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나누었습니다. 제가 영산시를 위해, 또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의 정치를 해보고 싶습니다.인호은 영권의 질문이 형식적인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그동안 지역구를 관리하며 쌓아온 것을 영권이 모를 리 없었다.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지역구에서 노인들과 웃으며 노닥거린다고 그게 정치라 생각하느냐. 복지를 위해 몇 가지 정책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행시킨 것이 정치라 생각하느냐. 그건 공무원도 할 수 있고, 네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거라.인호가 아닌 영권이 3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했고, 영산시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영권이 인호에게 너는 정치를 모른다, 말했지만 영산시에서 얻은 영권의 표는 인호가 만들어내고 지킨 표였다.내가 어디 자네 아버지가 좋아서 찍은 줄 아는가? 얼굴 못 본 지 오래된 양반인데. 자네가 워낙 잘하니까 찍었지. 자네 정말 효자야. 효자.선거가 끝난 후 만난 유권자들이 인호에게 한 말이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인호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아쉬움은 더욱 컸다. 자네가 워낙 잘하니까, 라는 말만 인호의 귀에서 맴돌았다. 인호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주는 말이었다. 인호의 자신감과 확신이 커져갈수록 영권에 대한 섭섭함도 같이 커졌다.다음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왔다. 사람들이 영권과 인호에 대해 말했다.김 의원도 좀 그래.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나? 이제 아들에게 내려주어도 되지 않아?무슨 말이 그래? 국회의원 자리가 세습하는 자리인가? 자기가 물려주고 싶다 하면 우리가 뽑아줘야 하는 거야? 그리고 김영권이나 김인호나. 그게 그거 아니야? 새로울 것도 없겠구만.영산시에서 인호는 이미 신선한 존재가 아니었다. 영권만큼 익숙한 사람이었다. 영산시에서 인호는 인호가 아니기도 했다. 인호가 나타나면 의례히 영권의 대리인이라 생각했다.

2022-10-10

‘메타버스성장’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영화 ‘아바타’는 2009년 공개된 미국영화로 판도라라는 외계 위성을 배경으로 하는 SF영화인데,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세계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를 보면, 서기 2154년에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자원을 채굴해야 했는데, 판도라 토착민 나비(Na’vi)족이 거주하는 곳에 언놉타눔이라는 대체자원이 가득했다.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살 수가 있고 인간보다 신체적 조건이 월등히 좋은 나비족의 거주지에 묻혀있는 대체자원을 탈취하기 위해 지구인은 나비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 원격 조정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켜 나비족으로 보내게 되면서 일어나는 SF판타지 영화이다.이 ‘아바타’ 영화는 내가 뽑는 최고의 영화 순위 3위안에 꼭 드는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비롯한 영화 ‘아바타’ 제작진의 엄청난 상상력과 표현기술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거둔 2021년 기준 전세계 수익은 28억4천724만달러(4조386억원)로 지금까지 개봉된 모든 영화 중 1위이다. 당초 이 영화 주인공 출연 조건으로 수익의 10%를 제안 받았지만, ‘본’시리즈를 위해 거절한 영화배우 맷 데이먼은 이 일이 배우 활동 중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여기에다 맷데이먼이 경악할 일이 생긴 것이 금년 12월 16일 ‘아바타2:물의길’이 개봉된다는 것인데,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영화 ‘아바타’는 실제 세계의 우주(Universe)에 부합하는 인터넷 기반 3D 가상세계로 표현하는 ‘메타(가상, 초월)버스(세계)’ 기술의 대표적 산물이다. 지난 5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는 ‘메타버스’가 직접 언급된 국정과제가 7개나 되며, 연관된 과제를 포함하면 무려 15개다. 이 중에서 77번 과제 “민관 협력을 통한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실현”을 보면, AI·데이터·클라우드 등 핵심기반을 강화해 메타버스·디지털플랫폼 등 신산업을 육성,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도약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메타버스특별법 제정, 일상·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메타버스 서비스 발굴 등 생태계 활성화, 블록체인을 통한 신뢰 기반 조성 등 메타버스 경제 활성화 계획을 포함했다.지난 4월 문형남 숙명여대 주임교수는 한 칼럼에서 성장모토로 이명박 정부는 녹색경제·녹색성장을,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ESG성장’과 ‘메타버스성장’을 강조하고 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인지 대구시는 8월말 수성알파시티에서 과기정통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약 5천억원 규모의 전국 1호 SW진흥단지 조성 등 총 2조2천억원 규모의 ‘8대 ABB 혁신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한다.경북도는 최근 ‘디지털 기회의 땅! 메타버스 수도 경북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벌써 국비 481억원을 포함한 총 769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였다. 이를 통해 ‘한류 메타버스 월드’, ‘메타버스 노마드’, ‘신라왕경 디지털복원’ 등 사업추진 통한 ‘메타인구 가상도민 1천만명’을 기대하고 있다.

2022-10-10

홍준표와 즐풍목우(櫛風沐雨)

홍석봉정치에디터 즐풍목우(櫛風沐雨)란 일신의 안위를 잊고 천하를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하느라 시간이 없어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목욕을 한다는 뜻이다.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요순시대 황하의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국가 사업이었다.순 임금이 신하인 우(禹)로 하여금 홍수를 막도록 황하의 치수사업을 맡겼다. 우는 물길을 터서 사방의 땅과 온 나라에 흐르게 했다. 뒤에 임금이 된 우는 당시 몸소 삼태기와 삽을 들고 물길을 정비했다.우는 치수 책임자로 일하는 13년 동안 집에도 가지 않고 인부들과 함께 물 속에서 생활했다. 장딴지에 살이 안보이고 정강이 털이 몽땅 빠졌다고 한다.그는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목욕하면서(즐풍목우) 나라의 안정을 꾀했다. 우 임금이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몸을 힘들게 한 것이 이러했다고 한다. 장자(莊子) 천하편(天下編)에 나오는 이야기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즐풍목우의 심정으로 대구를 바꾸고, 대구 재건을 담대하게 밀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그는 기득권 카르텔을 깨지 않고서는 대구의 미래가 없다며 대구의 변화를 위해 시정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있다.‘즐풍목우’는 홍 시장의 대표적인 정치적인 수사다. 중요한 고비마다 즐풍목우를 되뇌이며 자신을 채찍질했다.2017년 탄핵사태로 위기를 맞은 자유한국당의 대표에 취임하면서, 또 지난해 8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때 ‘즐풍목우’심경으로 국민을 위한 희생을 다짐했었다. 즐풍목우의 다짐이 빛을 발하길 바란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10

꿈결 같은 설악산 단풍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 가을채비를 나서는 발길이 가뿐하기만 하다. 계절의 수레는 어김없이 빛과 색과 열매를 드러내며 부지런히 굴러가고 있는데, 너무 바쁘거나 궁색(?)하게 계절의 변화와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아집에 사로잡혀 외곬스럽게 살아갈 수 있으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이웃과 사회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데, 좀 더 열리고 트인 가슴으로 자연과 교감하고 만상(萬象)과 공감하는 여유와 감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하루는 연휴 내내 이불 속에서 뒹굴어도, 바깥에서 활기차게 움직여도 어김없이 지나가게 마련이다.그래서 떠났을까? 근 5년만에 설악산에 다시 올랐다. 1990년 초에 처음으로 대청봉을 오르고 그 풍광에 매료되어 자주 찾아야지 해놓고는 쉽사리 가지 못해 아쉬움이 컸었는데, 그나마 5년만에 다시 오를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만 했다. 톱니바퀴같이 돌아가는 일상을 벗어나서 마음이 끌리고 몸이 향하는대로 누구라도 홀가분히 떠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현실의 짜인 일들과 주어진 역할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낡은 일상의 반복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아직은 가슴이 뛰고 심신의 건재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름의 주관이 뚜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과연 설악산은 명산답게 새벽부터 등산객들로 붐볐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새벽 등산코스는 초입부터 상당히 가팔랐다. 랜턴을 비추며 수많은 계단과 비탈길을 오르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발길은, 어쩌면 살아가면서 차근차근 밟고 지나가야 하는 삶의 단계적인 수순과 절차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힘들면 쉬엄쉬엄 숨을 고르며 완급을 조절하고,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물과 주전부리는 등반의 추동력을 유지시키는 연료 같은 것이었다. 마침 서녘하늘에서 반기던 새벽달이 넌지시 등을 밀어주는 것 같아서 산행의 발걸음이 한결 수월해진 것 같았다.“구름이 넘나드는 숨막힐 듯 우뚝 솟은/암봉(巖峰)에 달라붙어 기는 듯 줄을 타고/각고의 끈덕짐으로 한 걸음씩 옮긴다//쭈뼛쭈뼛 칼날바위 안간힘으로 오르고/위태위태 바위부리 부여잡고 지나며/아찔한 공룡의 등짝 곡예하듯 밟는다//험난함이 커질수록 비경(秘境) 외려 빛나던가/추색(秋色) 짙은 천화대 하늘에 핀 꽃송이들/골골이 뼈대같은 기암 염주처럼 얽혔네//한시름 넘기면 또 한고비 다가오듯/시련의 마루터기 악착같이 넘고 나니/마등령 갈림길에서 들려오는 산의 말씀” -拙시조 ‘설악산을 오르며’운무가 수시로 끼고 걷히는 선경(仙境)같은 능선을 타면서 더해지는 감흥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부터 오른다(登高自卑)는 것을 보여주며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춰야 함을 새삼 일러준다. 또한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듯이 높은 곳에 거처하면 떨어질 것을 생각한다(居高思墜)는 평범한 가르침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벽안개가 피어나는 서북능선의 몽환적인 단풍숲에 꿈결처럼 파고드는 아침햇살은 그야말로 절정과 찬탄의 서정시를 쓰고 있었다.

2022-10-10

혁신진화원리와 성공하는 기업

정상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혁신을 도입하는 것은 건강한 조직, 제조 수준을 높여 수익성 확보 및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 가기 위함이다. 기업에 혁신을 잘못 도입하거나 자사에 맞게 진화발전시켜 문화로 가지 못하면 중도에 멈추게 되고 고급 낭비가 된다. 미국 GE(General Electric)는 젝웰치 회장이 6시그마를 도입해 성공시켜 세계 선도기업이 되자 국내에서도 1995년부터 L사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여러 기업이 도입했으나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 기업이 혁신을 도입해 실패를 하게 되는 원인은 혁신기법을 이해하지 않고 유행따라 도입하거나 진화발전하지 않아서다.혁신진화원리관점에서 보면 도입, 모방, 응용, 창조 등의 4단계를 거치게 된다. 도입단계에서는 혁신기법의 수행원리와 기능을 학습하고, 필요성, 적용성, 효과성 및 전략과 연계성이 있는지 검토 후 도입해야 한다. 모방단계에서 모델라인을 선정해 혁신기법의 수행원리대로 따라하며 그 과정과 결과에서 장단점과 특징을 분석한다. 응용단계에서 혁신의 토양, 즉 기업문화, 조직 특성, 일의 속성과 생산프로세스의 특징에 맞게 응용, 진화시켜 혁신기법 최적화를 만들어 간다. 창조단계에서는 전 생산라인에 확산적용하며 필요 기능과 융합을 통한 진화로 종합체계화시켜 기업의 고유 혁신문화로 재정립시켜가는 것이다.일하는 사고와 일하는 방법이 기업 조직과 경영전반에 스며들어 제품생산방식으로 정착이 되는 단계를 기업혁신활동 성공으로 정의한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포스코는 국내 여타 기업처럼 6시그마를 도입하여 적용했으나 3년 반만에 기업혁신 전문컨설팅 ‘부즈앨런해밀턴’의 진단을 받고 ‘도입은 합격, 체질화는 미흡’이란 결과를 받았다. 6시그마 혁신기법의 특징은 데이터로 시작해서 데이터로 끝난다는 말을 할 정도로 통계 분석을 통한 문제해결 방법론인데 포스코의 생산조건 문제본질을 보면 통계적 전문 Tools인 미니탭, 데이터마이닝 등을 사용해야 하는 대상은 적은 편이고 기본 데이터만 분석하면 문제해결이 7~80% 되는 속성이 있었다.포스코가 6시그마를 자사의 문제 본질과 해결 필요요건에 맞춰 진화시킨 것이 현재 활발히 활동중인 QSS(Quick Six Sigma)활동이라 할 수 있다. QSS활동은 6시그마의 기법을 응용해 진화시킨 것 뿐만 아니라 제철소 특성상 TPM을 도입해 설비의 최적 생산조건을 만들어 가고 TPS의 낭비제거 사상과 IE기법의 인체공학적 일의 효율성을 추구해 종합 혁신방법론으로 최적화해 17년째 큰 성과를 내며 지속되고 있다.하지만, 기업의 성장발전과 미래를 위한 경영전략에 맞는 혁신기법으로 지속적으로 진화발전하지 않으면 달리는 자전거처럼 멈추면 넘어지는 속성이 있다. 경영 흐름이 쉴새없이 변해가듯이 혁신의 기법도 기업의 생산전략에 부응하는 기법 고도화를 끊임없이 추구해나가야 한다. 예를들면, 철강업의 미래 경쟁력은 자동차를 넘어 비행기, 우주산업 등 새로운 강종을 개발해 생산해내려면 혁신기법도 끊임없이 고도화, 최적화 되어야 지속 가능한 기능을 다 하는 것이고 기업은 성공적인 월드 클래스로 가는 것이다.

2022-10-10

비분강개(悲憤慷慨)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은 지금 내전(內戰) 중이다. 북쪽의 김정은 세습독재체제와의 대결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남한 내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과의 전쟁이다. 물론 무력으로 적을 살상하는 전쟁은 아니다. 언론매체를 이용한 선전선동이나 집단시위 등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여론전이다. 그 여론전의 목표는 선거의 승리로 정권을 잡고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는데 있다. 일견해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정치행위로 보이지만, 그 한쪽이 나라의 체제를 부정하는 집단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이제 가까스로 자유우파가 정권을 잡긴 했지만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법원과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 핵심적인 기구의 요직에 좌파정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가 하면 정부조직에조차 좌파정권이 ‘알박기’해놓은 인물들이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매체까지 좌파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치명적이다. 여론전의 주무기가 언론인데,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은 핵폭탄급 위력을 가진다. 언론이 편파, 왜곡, 조작하면 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똑똑히 보아온 바이다.내전 장기화의 결말은 망국이다. 전쟁은 어느 한쪽이 확실히 이겨야 끝이 난다. 지유우파가 승리하면 자유대한민국은 존속할 것이고, 종북 좌파가 이기면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붕괴의 길을 갈 것이다. 전쟁판에 중도가 설 자리는 없다. 방관자의 무책임한 태도나 회색분자들의 양비론 따위는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다. 원하든 싫어하든 승리한 세력의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체제전복을 꾀하는 반역의 무리들로부터 국가를 수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윤석열 정권이 가진 것이라고는 수사권 완전박탈을 앞두고 한동훈 법무장관이 고군분투하는 검찰권뿐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지난 정권 불법·비리의 정점을 향해 수사의 칼날이 다가가자 좌파세력들은 발작적으로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그들의 유전자엔 잘못의 반성이나 패배의 승복이란 없다.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것이 좌파들의 전략이다.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침소봉대하기 위해 혈안이고,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적반하장으로 뒤집어씌우기가 먹힌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여론전을 이기기 위해서는 중도를 얼마나 끌어오느냐가 관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들의 불의와 비리, 무능과 후안무치를 낱낱이 파헤쳐 폭로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들의 실체를 확실히 알아야 중도가 돌아설 터이니.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북핵의 위협과 경제난국에 대처해도 모자랄 판에 내란으로 국력을 소진하다니, 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비분강개를 금할 수가 없다.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천우신조가 아닐 수 없다. 우국충정을 가진 국민들이 모두 나서서 나라를 구할 때이다.

2022-10-06

새로운 하늘을 열자

윤영대수필가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에 태극기를 달며 생각을 해봤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지 4355년,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반만년의 역사를 써왔다. 최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가고 있음을 느끼며 위대한 나라의 자긍심으로 새로운 세상의 하늘을 열고 이 지구상에 우뚝 서기를 다짐해 본다.1970년대 경제건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일제 식민통치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최빈국에서 세계 10위 권의 경제 강국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을 가슴 펼쳐 자랑하고 싶다. 세계 최고 수출국으로 OECD의 무대에 같이 섰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 이웃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됐다. 불과 반백 년,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도 밝은 빛이 보인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 그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지금, 바람직한 민족문화를 더욱더 가꾸고 닦아서 세계의 넓은 하늘로 날려 보아야 한다.국제 음악콩쿠르에서 들려오는 찬사와 영화계에 이어지는 낭보에 우리는 자랑스럽다. 아카데미상과 칸 영화제, 그리고 에미상의 연이은 수상 소식, BTS 등 K-pop과 함께 K-드라마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각종 올림픽에서 보여준 메달 소식과 과녁을 명중시키는 양궁 전사들의 의지는 활 잘 쏘는 동이족 후예임을 알렸다. 축구 야구 등에서도 힘껏 그라운드를 누비며 ‘코리아’를 외치게 만든다. 반만년 역사 속에 언제 이렇게 우리 민족의 슬기와 용기를 보여주었던가.한글 덕분에 문맹률 1% 미만의 유일한 나라, 이제 세계인들도 이를 알고 많은 나라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더 나아가 나라 글로 채택한 민족도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세계를 열게 하는 자랑이 된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유럽에서는 상표에 한글 병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국의 맛을 세계로’의 기치를 앞세운 음식문화, 한복의 아름다움을 매료시키는 공연과 전시회 등 그동안 꽃피우지 못했던 한류가 세계 곳곳으로 흐르며 맑고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알리고 있다. 가전제품은 이미 세계인의 생활환경에 스며들었다.어디 이뿐이랴. 과학, 기술, 산업 분야에서도 새 하늘이 열리고 있다. 세계 8번째로 개발된 초음속 KF21 ‘보라매’가 하늘을 날았고 T50 고등훈련기 ‘블랙이글스’는 하늘에 태극기를 그리며 박수를 받았다. 우주로의 비행도 시작됐다. 순수 우리기술로 제작된 ‘누리호’가 우주로의 길을 뚫으며 암흑의 하늘을 열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도 열강의 기술을 넘어 합리적 가격과 신속한 생산력으로 세계의 지킴이가 되고 있다. 근래 몇 년간 잠들었던 ‘탈원전’을 깨워서 그간 잃어버렸던 에너지를 되찾고, 두려움을 벗어나 더 안전한 생활의 기반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역사는 흐른다. 그동안 물적 성장에만 쏟았던 마음을 사랑과 배려, 질서를 가르치는 교육으로 민주 국민양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렇듯 세계로의 길을 뛰어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할 우리 민족의 힘을 모아야 할 지금, 소소한 집안일들로 온갖 분탕질에 집착하는 정치계를 볼 때 한심한 생각이 든다.자! 하늘이 열리고 오천 년, 다시 한번 더 새로운 하늘을 열어보자.

2022-10-06

정치와 국격

홍석봉정치에디터 우리나라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K팝, K드라마, K영화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손흥민과 김민재가 축구변방 한국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배터리와 자동차가 선전하고 있고 조선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거기에 국산무기까지 힘을 보탰다. ‘K방산’이 최근 잇단 해외 수출 낭보를 전하며 우리나라의 위상을 잔뜩 높였다. 폴란드 대박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방산 수출액이 올해 200억 달러를 넘어서 빅4가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당분간은 수주 호황이 이어질 전망이다.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서 우뚝 섰다.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부러워하고 시샘할 정도의 발전을 이뤘다.하지만 진흙탕 국내 정치가 자랑스러운 성취를 여지없이 깎아 내리고 있다. 이병철 전 삼성회장이 4류로 평가했던 우리 정치는 이젠 5류가 됐다. 막장에 빠진 채 허우적대고 있다.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국운 융성의 상승 기운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순방 외교와 관련, 비속어 공방이 꼬리를 물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됐다. 극렬지지층을 위한 ‘정쟁’만 판을 친다. 민주당은 국회 다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 정부에 계속 다리를 걸고 있다. 좌파 세력도 가세해 어깃장을 놓는다. ‘이xx’ 발언은 더 없는 호재가 됐다. 내홍으로 몸살을 앓는 여당도 이에 질세라 이재명 대표의 각종 의혹을 꺼내들고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다. 여야가 서로 국격 훼손에 책임을 묻겠다며 아귀다툼을 한다. 국민은 경제난으로 고통 받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위협하는 마당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기대하는 국민이 어리석을 따름이다. 정치가 국민의 기를 살려주기는커녕 피로도만 높여주고 있다. 국민들이 되레 나라를 걱정하는 판국이다.거기에 한 언론이 기름을 부었다. 국익은 도외시한 채 대통령의 말실수를 세계에 까발렸다. 그것도 모자라 해당 정부에 확인사살까지 했다. 한국 언론의 행태를 꼬집은 외교관의 SNS 유머글에 헛웃음만 나온다.예수의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발언을 한국언론은 ‘예수, 매춘부 옹호 발언 파장.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라고 보도했다. 석가가 구도의 길을 떠나자, 한국 언론은 ‘국민의 고통 외면, 저 혼자만 살 길 찾아나서’라고 보도했다. 위인들의 언행을 우리 언론은 이렇게 왜곡 보도했을 것이라는 비아냥 글이다. 언론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때다. 정치와 한 통속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언론이 정론직필의 본령만 제대로 지켰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말 실수가 잦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는 30%대를 오르내리며 두 달째 바닥권이다. 대통령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제된 언어와 행동으로 품격을 갖춰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민심을 살펴야 한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하지만 국격 훼손의 주범인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나.

2022-10-06

축제의 계절

우정구 논설위원 10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10월 한달만 전국적으로 수 백개의 축제가 열린다. 코로나 이후 모처럼 만에 폭발한 축제로 많은 사람이 축제의 장으로 빠져들고 있다.특히 민선 단체장이 등장한 이후 지역의 특성을 살린 축제가 붐을 일으켜 한해동안 1천개가 넘는 축제가 벌어져 축제 홍수에 대한 비판론도 나온다. 그러나 일본은 2만개가 넘는 축제가 열려 축제 없으면 쓰러질 나라라 할 정도이고, 프랑스는 약 10만개의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우리나라 축제 개최 수를 두고 많다 할 수도 없다.축제의 본질은 즐기는 것이다. 억눌렸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잠시의 일탈을 통해 본능적 쾌감을 느끼는 일이다. 지역과 문화와 연고성을 엮어 지역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페스티벌이나 카니벌을 즐기는 서구인의 축제도 본질적으로 우리와 다르지 않다.동질의 문화감을 느끼며 지역주민간 유대와 화합을 지속시키는 축제의 효과는 긍정적이다. 또 지역의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상승 작용시켜 일체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축제의 장점이다.그러나 수많은 축제가 양산되는 과정에서 축제가 상업적으로 흐르거나 단체장의 성과물로 전락되는 일도 적지 않다.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비생산적 축제란 비난도 나온다. 지금 대구·경북 10월도 축제로 물들고 있다. 어느 축제가 볼만하고 어떤 축제가 축제의 본질에 잘 부합하는지 축제의 장으로 들어가 즐겨볼 좋은 기회다.대구에서는 오페라, 재즈, K-팝, 한방문화 등을 묶은 판타지아 대구페스티벌이 열리고 있고, 경북은 안동탈춤, 신라문화제, 영주인삼축제와 울진송이, 경산포도, 의성마늘축제 등 손꼽을 수 없을만큼의 축제가 한창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06

고구마를 캐며

양태순 수필가 가을볕이 흐뭇한 미소를 흩뿌리는 오후다. 나는 찐 옥수수를 들고 고구마 밭으로 가다가 넘어질 뻔했다. 저 혼자 깨춤을 추던 발이 조붓한 둑길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남우세스럽게 고꾸라지지는 않았지만 생채기가 난 발가락이 시원한 것이 운동화가 달아났나 보다. 신발을 찾으려고 풀숲을 헤치자 놀란 풀무치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풍경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날갯짓에 빠져든다.눈에 익은 느낌은 과거로 이어지는 때가 많다. 열두 살 무렵의 나는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 캐는 대신 메뚜기 잡느라 바빴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한 고랑씩 맡아 줄기를 걷어내고 고구마 수확하느라 열심이었지만 뒤처져 따라가는 내 호미질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 밭에는 굼벵이가 더러 있었다. 어머니가 땅심을 키운다고 수시로 퇴비를 내고 분뇨를 뿌린 탓이었다. 크고 잘 생긴 고구마를 캐서 손에 들고 자랑하려고 하면 굼벵이가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희한하게도 인물 훤한 고구마에만 흠집을 내놓기 일쑤였다.우리 집은 물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그 때는 대부분 물고구마를 심었다. 모양과 색깔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크고 많이 생산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굵기는 해도 모양이 볼품없고 굼벵이가 파먹어 얽은 고구마가 많았다. 지나치게 굵은 것보다 배가 살짝 나오고 아담하면서 몸매가 매끈한 것이 상품 가치가 좋은데 말이다. 형제들이 먹은 것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려난 것들이었다. 별다른 요리법이 없던 때라 삶아 먹는 것이 다였지만 그 맛을 어디에 비할까.우연히 텃밭이 생겼다. 농사는 질색인 나지만 집과 가까워 텃밭을 가꾸어볼 마음을 내었다. 어머니의 훈수로 밭을 갈고 고구마를 심었다. 유기농 거름도 사서 주고, 잡초를 뽑고, 때맞춰 물을 주며 정성을 들였다. 그 덕인지 줄기가 곧잘 뻗어나가며 잎이 진녹색을 띄어 땅 속에서 알이 쑥쑥 자라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형제들과 같이 먹을 생각에 군침을 삼키며 가을을 기다렸다.오늘은 형제들이 모여 고구마를 캐는 날이다. 한 고랑씩 맡아서 캐기 시작했다. 호미가 흙 속을 부드럽게 파고들어야 하는데 텅텅 튕겨져 나오는 듯 한 소리가 났다. 그래도 묻혀 있는 고구마에 대한 기대로 팔에 힘을 주어 호미질을 했다. 처음 드러난 실체는 엄지손가락 굵기였다. 낙심하지 않고 반 고랑을 캐어 봐도 씨알은 형편없다. 거의가 손가락 크기이고 간혹 먹을 만한 크기가 있었다. 게다가 땅 깊은 것만 안 고구마 때문에 다들 손에 물집이 생겼다. 형제들은 캐낸 고구마를 들고 난리다. 이걸 어떻게 먹느냐고. 아무래도 내년 농사 위해 빡시게 일 하는 것 같으니 저녁은 격하게 차려야 한단다.나는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누어 먹을 생각에 몹시 설렜다. 이토록 부실한 놈을 숨기느라 잎들이 그리 무성한 줄 상상도 못했다. 나는 민망한 속내를 숨기고 내가 지은 것이니 가져가서 잘 먹으라고 했다. 밭둑에 앉아있는 어머니는 우리가 하는 양을 보며 웃으시지만 아쉬운 마음까지 숨길 수는 없는지 고랑에 둔 눈길을 차마 거두지 못한다.이번에도 겉모습에 속은 듯하다. 무성한 줄기 아래에 토실한 고구마가 있으려니 믿었는데 헛꿈이었다. 겉이 번드르르할수록 실속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주 속는다. 거침없는 입담에 속아 물건을 사기도 하고 꼼꼼히 살펴보고 들어야 하는 보험도 상대의 말솜씨에 넘어가 후회하기도 했다. 아마도 마음보다 눈이 먼저 반응하는 모양이다.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데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외적인 것에는 빼어난 말솜씨와 다양한 표정, 몸에 배어있는 움직임이 있고 내적인 것에는 스며 나오는 인품과 말투, 상대를 향한 따뜻한 시선,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다. 한 면만을 보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많은 오해를 낳는다.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다. 고구마를 캐면서 또 배운다. 눈만 믿지 말고 여러 요소를 두루 참작하여야 한다는 것을.언제쯤이면 마음창이 맑아질까. 한 꺼풀 아래에 숨어있는 보석을 알아보려면 구름과 바람을 부지런히 키질하여 깜깜한 하늘에서 빛이 나는 별, 그 별의 키질을 배우면 될까.

2022-10-05

친환경 ‘해양기술’의 세계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논리는 이제 일상이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많은 변화들이 생활 전반으로 퍼지고, 많은 이들이 텀블러 이용과 빨대 사용 중지, 자전거 타기 등 일상의 소소한 변화에 동참한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ESG경영으로 기후 변화 등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기업에 관심이 쏟아진다.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두고, 기업의 경영가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해양수산부가 개최한 ‘2022 해양수산 창업 콘테스트’ 수상자들의 아이디어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아이디어의 사업화와 상용화의 의미를 넘어 현재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 체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자세한 이유를 되짚어보자.해양수산부는 지난 6월 30일부터 약 3달에 걸쳐 ‘2022 해양수산 창업 콘테스트’를 진행했다. 유망 아이디어를 발굴해 사업화할 목적으로 2015년부터 시작된 창업 콘테스트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양 기술의 소개장으로 활용되어왔다. 올해는 ‘배양생선(Clean Fish)’ 생산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벤처기업)인, ‘바오밥헬스케어 주식회사’가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배양생선’이라는 낯선 단어가 들린 지 몇 년 만에 한국에서도 대량생산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배양생선은 배양육, 즉 대체육의 시장이 커지면서 덩달아 주목받았다. 남획과 기후변화 등으로 어족자원 고갈이 현실화되자 이에 대안으로, 어육으로만 이뤄진 생선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배양생선은 실제 물고기의 근육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배양액에서 키워낸다. 배양액에서 늘어난 세포 중 농축 세포만 뽑아내 3D프린터로 생선살을 찍어내고, 이 과정에서 바이오잉크를 섞어 물고기의 형태를 살린다. 3D바이오프린팅을 이용한 조직재생 전문기업인 ‘바오밥헬스케어’가 배양생선의 대량생산 기술을 갖춘 것도 우연이 아니다.2020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대체육 가공 기업은 20여개 가량이라고 한다. 그 중 세포배양방식의 해산물을 생산하는 기업은 6개 정도다. 참치 대체육에 집중하고 있는 핀리스 푸드(Finless Foods)가 대표적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참치는 2022년 현재 멸종 위기 종이다. 2015년 세계자연기금은(WWF)은 전 세계 참치 개체수가 과거에 비해 70%가량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각 국가별 쿼터를 정해 잡을 수 있는 양이 제한된 대표적인 어종이다. 참치가 배양생선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배양생선의 대량생산은 어족자원 고갈의 대안이 될 뿐만 아니라 깨끗한 생선(Clean Fish)이라는 이미지도 갖추고 있다. 미세플라스틱과 중금속 축적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배양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변형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후변화의 시대, 단백질 공급원으로 배양생선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이 외에도 해양기술을 통해 진일보한 현실을 마주한 경우는 꽤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용 홍합접착제와 혈액동결보존제다.홍합이 강한 파도가 치는 바닷가 갯바위에 붙어있는 이유는 홍합에서 분비되는 강력한 접착성분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홍합의 이런 접착성분을 인체에 활용하는 홍합 단백질 유전자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접착 강도가 세고 생채 적합성이 높아서 인체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최근에는 방광에 생긴 누공(구멍)까지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방광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해 치료가 쉽지 않다고 한다. 더욱이 화학접착제의 경우 인체 내 부작용이 많아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홍합단백질의 접착제는 자연유래성분으로 생체 내 부작용과 거부반응이 적어 치료가 어렵기로 유명한 방광 누공까지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혈액동결보존제 역시 해양 기술의 대표적인 경우다. 극지연구소는 2018년 남극 로스해에 서식하는 해양미생물에서 얼음성장억제물질(항동결 바이오폴리머)을 발견했다. 이를 혈액 동결에 적용해 보존제를 만들었다. 항동결 성분이 영하의 온도에서도 혈액 내 수분 동결을 막아 혈액동결보존을 가능하게 했다. 혈액이 동결되면 혈액 내 적혈구 세포가 파괴돼 그동안 혈액동결보존에 어려움이 있다. 정현미 작가 한편, 항동결 물질은 화장품 분야에서도 활용될 예정이다. 극지연구소는 남극에서 발견한 해양미생물의 얼음성장억제물질과 북극 효모에서 발견한 결빙방지단백질을 활용한 노화방지화장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빙으로 화장품 효능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결빙방지단백질의 세포막 보호 기능을 활용해 주름 개선 및 노화방지 화장품을 개발한 것이다.홍합접착제와 혈액동결보존제는 당장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해양기술의 무궁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양기술은 해양미생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양생물에서 착안한 기술을 연구·개발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인다.오염되지 않은 배양생선을 먹고 홍합접착제로 상처를 치료하며, 항동결 물질이 포함된 화장품을 쓰는 시대다. 동시에 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기술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상의 소소한 실천과 함께 기술의 도약에도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이 두 가지가 양립해야 기후변화 속 우리네 일상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2-10-05

국민은 숨이 막히는데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의 말이 중국과는 달라서 한자만으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제 뜻을 바로 실어 펼치지 못한다. 내가 이를 가엾게 생각하여 새롭게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무두 쉽게 배워 날마다 쓰므로 편하게 하려 함이다.’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하면서 세종은 생각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지구상에 헤아릴 길 없이 많은 언어들 가운데 스스로 문자를 가진 민족이 채 서른도 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대개는 영문 알파벳을 빌어 표기한 경우가 많아서 우리 한글은 독특하기가 견줄 데가 없다. 그런 글자를 만들었던 까닭이 글쎄 ‘어린 백성의 불편함’을 알았기 때문이며, 글을 ‘사람마다’ 쉽게 배워 쓰면서 편안하길 바랐던 것이었다니!놀라울 따름이다. 군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백성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의 불편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왕의 진심’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백년도 훌쩍 넘는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궁궐 밖 시민들의 삶을 걱정하는 지도자의 아픈 마음이 거의 보인다. 고루한 신하들의 격렬한 반대를 예상한 그는 한글을 거의 혼자서 만들었다고 한다. 반포하면서 저렇듯 절절하게 백성을 염려하는 왕의 마음을 기록한 것은 속좁은 관료들의 꽉 막힌 심사를 넘으려 했음이 아닐까. 진심으로 백성을 생각하여 왕이 손수 쉬운 글자를 만들었으니 신료들은 그리 알고 다른 말씀을 마시라. 왕과 백성이 하나로 묶이는 경험을 우리는 576년 전에 한 셈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만나는 지도자와 백성의 모습은 어떠한가.정치에서 우리는 진심을 읽을 수 있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국민을 마음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보이는가. 아니면 정략과 술수로 겨우 피하기만 하는 말싸움의 아수라가 아닌가. 그만하면 보일만도 한데, 국민이 만난 어려운 상황과 고단한 일상은 누구도 헤아리지 않는다. 물가가 뛰고 이자가 춤추며 환율이 올라가도 정치판은 오히려 복지부동이 아닌가.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일이 이 판에 무에 그리 급한지 알 길이 없다. 난관을 헤치며 하루하루를 사는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누구도 돕지 않는 처절한 나날을 2022년에 만나고 있다니! 한글날을 맞으며 정치는 세종의 속마음을 다시 한번 읽었으면 한다. 무엇으로 세상을 바꿀 것인지, 누구를 위하여 정치를 하고 있는지. 최소한 당신 자신의 영달을 위함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는가, 아니면 때때로는 뒤로도 흐르는가. 말로만 국민을 주워담는 정치는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당신들이 아무리 ‘국민’을 떠들어도 국민은 당신의 마음을 이미 읽고 계신다. 공천과 당선에만 관심이 있어 일신의 안위만 생각한다는 걸. 아니라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공감과 배려가 보여야 한다. 오늘 만난 어려움에서 국민의 어깨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져야 한다. 사이다 발언도 이제는 식상하다. 국민은 숨이 막히는데, 정치는 국민을 생각하라.

2022-10-05

물고기의 반란

홍석봉정치에디터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철이다. 그런데 가을 전어가 사라졌다. 제철이 됐지만 남해안에서 전어가 잡히지 않는다. 수온 상승이 원인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어장 환경이 바뀌고 있다. 수확량도 크게 줄었다. 전어가 ‘금전어’가 됐다.지난 7월 영덕 장사해수욕장에서 죽은 참치 1천여 마리가 발견됐다. 어민들이 버린 것이었다. 피서객들이 썩은 참치 악취에 시달렸다. 피서객들은 최고급 횟감인 참치가 해안에서 버려진 채 썩어가자 어리둥절해 했다. 참치 포획량은 국제협약으로 정해져 있다. 이에 할당량을 초과해 잡은 참치를 버린 것.수온 상승과 해류 변화로 동해에서는 잡히지 않던 참치가 최근 다량으로 잡혀 폐기되는 일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어부들은 참치 포획량을 확대하거나 어쩔 수 없이 잡은 참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우리나라 바다에서 명태와 꽁치가 사라진지는 오래됐다. 국산 명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급기야 2014년 해양수산부 등이 나서 현상금(?)까지 걸고 명태 수배령을 내렸다. 명태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이제 동해에서 조금씩 잡히고 있다고 한다.찬 바다에서 사는 명태와 꽁치는 종적을 감추고, 따뜻한 바다에서 사는 고등어와 멸치 등은 더 많이 잡힌다.물고기의 반란은 기후 변화가 주요인이다. 지구 온난화는 사람이 주범이다. 온난화로 우리나라 바다 수온이 지난 54년 동안 1.35도 올랐다. 전 세계 평균 상승 폭의 5배다. 2050년에는 최대 2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바다 생태계의 변화로 어느날 괴물 물고기가 밥상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업보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05

내 그림자에 가려 빛을 잃은 키 작은 꽃을 위해

오낙률 시인·국악인 가히 꽃의 붓다라고 불릴만한 연꽃은 잎과 꽃이 너무 크고 화려한 탓에 다른 꽃들에 그늘을 드리울까 봐 아예 물에서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련도 홍련도 가시연꽃도 그 차가운 물에서 평생을 사느라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칠월에서야 꽃송이를 피우는지 모를 일이다. 연꽃의 꿈속에 ‘내가 꽃으로 살면서 내 꽃그늘에 가려 빛을 잃고 사는 나보다 키 작은 꽃을 살필 줄 아는 꽃이 있다면 그에게 온 계절을 다 맡겨 세상을 꽃밭으로 가꾸게 하리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 연꽃은 그 여름 물속에서 수행의 꽃송이를 가꾸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무릇, 아름다운 꽃이란 그 빛깔도 빛깔이지만 고개라도 살짝 숙여 필 줄 아는 꽃이어야 그에게서 아름다운 향기와 풋풋함과 청초함이 배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가끔 꽃길을 걷다가 다소곳이 고개 숙인 꽃을 만날 때면 그 모습에서 오랜 자연생활에서 유전형질처럼 이어온 참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날로 자기중심적으로 변해 가는 우리네 사회상과 비교하여 생각하면 각별한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인류가 생존을 위한 먹거리 조달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오늘날의 문명사회로 더불어 사는 모습을 활짝 핀 꽃밭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릇 꽃밭이란 수많은 종류의 꽃이 어우러져 피어야 비로소 꽃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꽃밭 같은 세상에 살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라고 자만하며 군림하려는 꽃이 있다면 그는 이미 향기를 잃은 꽃이거나 어느 집 창가에 놓인 꽃병에서나 볼 수 있는 외로운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꽃의 가치를 판단하는 보편적 시각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왜 모든 동물이 배설하는 분변은 구릴까. 그것은 한 동물의 몸에서 배출된 분변은 이미 더 이상의 효용 가치가 없으니 자연에서 빨리 분해되라고 체내에서 분해물질에 해당하는 암모니아 효소 처리를 하여 내보내니 그럴 수 있겠고, 또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네가 살면서 먹고 마시는 행위가 늘 이렇게 타자의 희생에서 얻어지는 구린 짓이니 잘 살피며 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어느 날 껌을 씹다가 그만 입술을 깨문 기억이 있다. 단물 다 빠진 껌을 습관처럼 너무 오래 씹은 것이었다. 피가 멈추고 혓바닥으로 내 치아를 더듬어보니 나는 너무 날카로운 치아를 지니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내 날카로운 치아에 물려 피를 흘린 이웃은 없는지 살피며 살 일이다.커다란 가마솥 안에 삶은 돼지고기에서 설설 김이 피어오르는 그 시간이 세월이고 그 모습이 세상이 아닐까 싶다. 개라는 동물은 꼬리 칠 줄 안다는 이유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녔음에도 인류의 가장 밀접한 반려동물 위치까지 올랐다. 그것도 개의 입장으로 보면 종족생존의 한 방편이 되는 줄 알지만, 항간의 정치권에는 자신이 지키는 울타리 주인에게 충성하기 위해 앞뒤 분별없이 무참히 타자를 물어뜯는 인간이 너무 많은 것 같다.

2022-10-05

국군의 날 기념식 논란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국군의 날 기념식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10월 1일 건군 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소개된 영상이 문제가 됐다. 행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국군의 결의를 담은 영상이 소개됐는데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갑차가 돌연 출현한 것이다. 해당 영상에 나오는 장갑차는 ‘중국 92식 보병전투차(ZSL-92)’로 알려졌다.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동영상 제작 과정에서 잘못된 사진이 사용된 것을 시인했다. 또 온라인 영상에 대한 해당 부분 수정을 각 방송사에 요청했다. 그럼에도 파장이 줄어들지 않자 결국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유감 표명으로 이어졌다. 이 장관은 4일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죄송하다. 이런 일이 없도록 챙기겠다”고 답변했다.국군의 날 기념식에 대한 논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대의 경례를 받은 후에 ‘부대 열중쉬어’를 하지 않고 연설을 하려고 했다. 현장 지휘관이 작은 목소리로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대신했지만, 야당에서는 연설 내내 장병들을 경례 상태로 세워 둘 참이었느냐며 비판을 했다.6년 만에 계룡대에서 거행된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이런저런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 안타깝다. 물론 행사를 치르다 보면 실수가 생길 수는 있다. 그렇지만 국방에 있어서만큼은 작은 실수라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 현실 때문이다.북한은 국군의 날에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4일에도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은 한때 홋카이도와 아오모리현에 피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북한은 올해 탄도미사일을 21차례 발사했는데, 현 정부 출범 이후로만 9번째이다.‘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던 것처럼,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어느 한쪽의 적극적인 행동은 힘의 긴장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은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에 지속적인 긴장을 야기시키고 있다. 국군의 날 기념식 해프닝에 여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지난달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을 때 등장했던 장갑차가 있었다. 해병대 1사단에서 출동시킨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였다. 물바다를 이룬 포항 시가지에서 시민 구조에 나선 장갑차의 모습에 전 국민이 주목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군의 존재를 실감한 순간이었다.국군의 날 기념식 영상에 포항에서 활약했던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가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등장했던 장갑차는 국군의 존재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국군의 날 기념식 영상에 난데없이 나타난 중국 장갑차를 보면서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된 우리 장갑차의 모습이 반갑고도 든든하다.

2022-10-05

아르바이트? 안 합니다

최근 아르바이트 구인난이 심각하다. 단계적 이상회복으로 인해 영업 시간이 늘어나고 주문량 또한 증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할 사람이 없어 많은 자영업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구인공고를 올려도 몇 달째 연락이 없는데다 전보다 시급을 올려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 오죽하면 자영업자들은 고용을 포기할 지경이다. ‘손님보다 더 귀한 알바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구인구직 전문 포털인 ‘알바천국’이 실시한 설문 결과에 의하면 전체 고용주 113명 중 79.1%가 알바생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자 수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78.9%로 1위로 꼽혔으며, 올해(2022년) 알바생 구인 체감 난이도는 매우 어렵다(44.4%)로 조사되었다.약 115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표 카페인 ‘아프니까 사장이다’ 에서도 ‘구인난’ 키워드가 쓰인 글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사장님들은 시급을 1만 2천원에서 최대 2만원까지 내걸어도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강제휴무와 강제 영업시간 단축, 홀 규모 줄이기 같은 방법을 택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구인난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발생하고 있다. 현재 20대 청년들의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량공유서비스 운전자나 배달 라이더, 물류 센터 등의 플랫폼에 집중되고 있다. 2021년 11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 자료 조사에 의하면 플랫폼에 종사하는 긱워커(단기로 계약을 맺은 일회성 근로자)는 2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20대 청년들은 그때그때 상황과 필요에 따라 계약을 맺어 노동을 제공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형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또한 많은 구직자들은 그간의 ‘시간 쪼개기’ 고용 형식을 거부하고 있단 것을 보여준다. 시간 쪼개기는 주휴수당 조건인 주 15시간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알바생 여러 명을 상대로 3-4시간 정도로 짧게 고용하는 형태다. 선택권 없는 짧은 노동시간, 높은 업무 강도,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술집이나 식당, 카페에서의 근무를 꺼려하는 것이다. 몇몇 자영업자 사장님들은 이 문제점을 알고 급히 인건비를 인상하고 인력 확보를 위해 그간의 고용 프로세스도 바꾸어 보지만 많은 구직자들의 마음을 돌려 세우기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나는 19살부터 많은 알바를 해왔다. 일식집과 베이커리 겸 카페, 족발집, 화장품 가게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해봤지만 사실 좋은 기억이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3-4년이 지난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특히 개인 사장님이 계시는 작은 규모의 가게에선 난처한 일이 많았다. 교육 기간을 핑계로 3개월간 최저시급조차 주지 않는 곳이 대다수였고, 당시 3개월이 지나면 가게나 개인 사정을 핑계로 습관처럼 자르는 곳이 빈번했다. 5인 미만의 사업장은 법적인 책임을 묻기도, 부당함을 해소하기 어렵단 점을 교묘히 이용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이런 점을 다 제외하고도 제일 힘들었던 점은 아르바이트생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음 자를 수 있다는 고용주의 태도였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2년 넘게 기쁜 마음으로 일을 했던 곳도 있었다. 최저 시급에 집에서 약간 거리가 먼 일식집이었다. 그곳의 사장님은 늘 다정하고 따뜻한 말로 안부를 물어봐주시지만 도를 넘어서 사생활에 대해 캐묻진 않으셨다. 그릇이 부족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날엔 입은 옷이 다 젖을 정도로 하루 종일 설거지만 하던 적도 있었다. 일의 강도는 높았지만, 그럼에도 2년 내내 큰 불만 없이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건 사장님의 친절한 언행와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섬세한 배려 덕분이었다. 오히려 일을 그만 두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많은 경험을 했고, 그 경험 덕분에 낯선 사람을 만나 친절히 대하는 데에 익숙한 편이다.아르바이트 근무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좋은 자영업자도 있을 것이다. 근로자의 필요성과 요구를 조금 더 헤아려 더 나은 근무 조건과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보상이 만들어진다면 최저 시급임에도 많은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이 모여들 것이다. 물론 자영업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에서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할 것이고, 결국은 모두가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문제다.

2022-10-04

관크와 인공지능, 그리고 아우라

지지난주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 회원 음악회에 다녀왔다. 매년 가을마다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것)의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2년씩 세 번, 6년째 예술의전당 골드회원을 유지 중인데, 회원 음악회 한 번이면 연회비 10만원이 아깝지 않다. 아니 황송할 정도다.거장 정치용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최나경과 협연했다. 1부는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와 메르카단테 ‘플루트 협주곡 e단조’, 2부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으로 꾸려진 무대였다.음반과 유튜브로만 듣던 월드스타 최나경의 연주를 눈앞에서 보니 쥐떼들이 왜 피리 소리 따라가다 연못에 빠져 죽었는지 알겠다. (내가 또 쥐띠다) 메르카단테 협주곡 1악장 플루트 솔로의 첫 음이 울리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음악은 세계를 여럿으로 분리하기도 하고, 이미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합하기도 한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 넋 놓고 들었다. 현악단의 합주 때 악기를 내려놓고 독주를 기다리는 그녀 표정과 몸짓도 다 음악이었다.앙코르로 연주한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은 그저 경이로움이었다. 플루트를 모르지만, 플루트로 할 수 있는 모든 기교를 다 본 것 같았다. 특히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주법을 플루트로 소리 낼 때마다 무슨 마술을 보는 기분이었다.2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은 곡 자체가 지닌 격정적이고 강렬한 에너지와 그것을 차분하게 통제하고 조율하고 극대화시키는 정치용 지휘자 사이의 상응이 아름다웠다. 2악장은 다른 교향곡들의 4악장 이상으로 세게 치닫고, 4악장은 몇 개의 클라이맥스가 있는지 다 셀 수 없을 정도. “불행한 결혼에 몹시 고민하던 시기의 산물”이라는 곡 해설을 읽고 미혼이지만 이해 완료되었다. 음악 듣고 결혼과 더 멀어진 느낌이랄까.모든 현악기가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3악장에서도, 태풍처럼 몰아치는 4악장의 격랑 속에서도, 앙코르곡 슈트라우스 ‘관광열차 폴카’의 경쾌함 가운데서도 단원들 표정은 편안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쾌했다. ‘소통’을 중시한다는 정치용 지휘자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연상케 했다. 커튼콜 때 각 파트 단원들을 일일이 일으켜 박수 받게 한 다정함 역시 아름다웠다.단 하나 아쉬운 건 역시 ‘관크’(타인이 영화나 연극 등을 관람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뜻의 신조어. 관객+크리티컬의 줄임말)다. 플루트 협주곡 마지막 3악장이 무르익을 때 내 옆옆 자리서 울려 퍼진 스마트폰 인공지능 음성, “음악을 찾지 못했어요. 주변 소음이 너무 심하지 않은지 확인해주세요” 소리가 크기도 했고, 오래 지속되기까지 했다. 지난 3월 크리스티안 짐머만 내한공연 때도 똑같은 관크가 발생했다고 한다. 본인도 당황했겠지만 한 사람이 느낀 당혹감은 2천명 관객이 빼앗긴 감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발레리를 인용하자면 “음악의 세계와 소음의 세계는 분명히 갈라져 있다. 하나의 소음이 하나의 고립된 사건임에 비해 하나의 음악은 저 혼자서 우주를 만든다. 연주회장에서 한 악기가 떨어 울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하나의 시작이라는 느낌, 한 세계의 시작을 갖게 된”다. 그런데 “어느 연주회장에서 교향악이 울려 퍼져 위압하는 동안에 만일 의자 하나가 넘어진다든가, 누가 기침을 한다든가, 문이 닫혀진다든가 하는 일이 생긴다면, 당장에 우리는 무언지 모를 파열의 인상을 갖게 된다. 그 순간 베니스 유리와도 같은 본성의 그 무엇이 깨어지거나 금간 것”이다.완벽하게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인공지능은 음악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 음악을 소음으로 인식했다. 내가 어제 연주회장에서 본 것은 기술복제시대의 한계다. 모든 걸 데이터화해 무한 반복하는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 즉 아우라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날 콘서트홀에 울려 퍼진 인공지능의 음성에도 최나경의 아우라는, 음악의 한 우주는 조금도 깨지지 않았다. 음악이 이겼다. 인간이 기술을 이겼다.연주회가 끝나고,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린 음악당 광장을 걸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좋았다. 멀리 있는 것이 잠시 가까이 온 그 느낌, 아우라였다.

2022-10-04

구미시에는 복지직만 부족한가

김락현 경북부·구미 구미시에서 복지직 수를 증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사회 전체적으로 복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만큼 복지직 수를 늘려가야 한다는 것에 이견을 가질 수는 없다.하지만, 구미시의 경우 공무원 1인당 주민수가 224명으로 경북도내에서 가장 높다. 복지직 공무원만 부족한게 아니라 공무원 전체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그럼에도 시의원들은 앞다퉈 복지직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열린 구미시의회 2022년도 행정사무감사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시의원들은 복지직렬 국장이 포항은 2명, 안동·경산·문경·김천에 각 1명씩 있는데, 구미에는 5급 복지직공무원의 수가 3명에 불과하다며 조례상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A시의원은 구미시 복지직 공무원 1인당 복지대상자수가 1천600명으로, 김천시 1천190명, 상주 990명보다 많다고 지적했다.과연 시의원들의 주장처럼 구미시에는 복지직 공무원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걸까.구미시에 따르면 공무원 총정원은 2012년 1천586명에서 2022년 9월 1천824명으로 238명(15%)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행정직은 660명에서 771명으로 111명(17%), 시설직은 171명에서 209명으로 38명(22%)이 증가했고, 복지직은 77명에서 155명으로 78명(101%) 늘었다. 최근 10년동안 복지직 증감율이 가장 높다.5급 복지직 수도 구미시와 인구가 비슷한 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구미시(인구 41만) 3명, 의정부시(인구 46만) 3명, 파주시(인구 49만) 2명, 김포시(인구 48만) 2명, 경기도 광주시(39만) 2명으로, 낮은 수치는 아니다.복지직 공무원 1인당 복지대상자수도 구미시가 1천600명, 김천시 1천190명이라고는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복지업무 대부분이 행정업무이기에 복지직렬만 복지대상자수에 비교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다. 복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행정체계도 이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늘어나야 하지만, 특정 직렬만 언급하거나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다.이제라도 경북도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구미시 공무원 1인당 주민수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kimrh@kbmaeil.com

2022-10-04

포은선생의 충절과 학덕의 창조적 계승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선선한 바람 결에 코로나19의 지긋지긋함을 털기라도 하듯 크고 작은 축제가 각처에서 열리면서 문화의 달을 실감케 한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 등이 성황리에 마쳤거나 열리고 있으며, 진주남강유등축제 등이 다음 주부터 열릴 예정이라서 모처럼만의 가을축제가 활기를 띠는 듯해 다행스럽다.포항에서는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는 ‘제13회 포은문화축제’가 당초 9월초에 개최될 예정이었이나, 난마 같은 태풍의 무자비한 내습과 피해복구로 인해 잠정 연기된 상태다. 태풍의 상흔은 좀체 가시질 않지만, 언제까지 탄식만 하고 주저앉을 수 없는 일이라 주변을 추스르며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인적, 물적인 피해가 컸었던 오천읍 지역은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자취가 서린 영일정씨의 본향이기도 해서 동방이학(東方理學)의 비조(鼻祖)인 포은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충효와 학문을 재조명해 계승, 발전시키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그 일환으로 최근 포은선생 추모백일장을 열고 오천서원 일대에 포은선생의 시문을 석각(石刻)한 비림(碑林)이 국내 최초로 제막돼 의의를 더해주고 있다. 포은의 본향에서 선생의 충효정신을 기리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성현의 사상과 업적을 일깨워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열린 백일장은 서원향교 활용화사업 차원에서도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향유하며 숨결을 불어넣은 계기가 돼 이채로웠다. 또한 오천서원 경내에 국내의 저명 서예가들이 포은선생의 시와 명문을 필묵(筆墨)으로 남기고 돌에 새겨 만세(萬世)에 전하려는 비림 조성사업은 우리의 전통 서예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연차적으로 입비(立碑)를 추진함으로써 서원에 학자와 예술인들이 즐겨 찾고 머물면서 격조 높은 문화공유와 후학들의 인성지도·정서함양에 도움을 주는 한편, 전통과 현대의 퓨전문화로 재창출, 전파할 수 있어서 사뭇 주목된다.그에 더하여 5일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 전관에서 열리는 ‘제5회 포은서예국제대전’과 교류전은 세계 11개국 서예 지망생들과 저명작가들이 출품하여 포은선생의 학맥과 자랑스러운 기풍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는 기회와 예술적인 교감을 도모해 한결 고무적이다. 각 지역이나 특색에 따라 공모전이 넘쳐나는 시대에 포괄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제교류전과 문화예술로의 소통은 문화도시 포항을 한층 고양시키며 한국의 예술문화를 단계적으로 글로벌화시키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역사적인 인물이나 배경이 되는 유적을 생각하고 돌아보며 학문과 사상을 널리 알리고 진작시키는 것은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지역민들의 의식과 지자체의 안목에 달려있다. 그것은 곧 그 도시나 지역의 문화적인 품격과 자산이며 비전이기도 하다. 포은선생이 남긴 대쪽 같은 절의와 충·효·예의 정신문화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이 꽃피고 포항이 포은 정몽주의 고장임을 각인시키며 미래지향적인 문화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2022-10-04

기업 소통의 바람직한 매개체, 혁신활동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소통으로 완성되는 기업의 문화’를 근간으로 이번 칼럼에서는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기업 소통 환경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우선 경영진이 소통을 잘 하고 싶다면 직원들의 건의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직원들의 소통은 단지 윗사람이 자신의 소리를 잘 들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또한 직원의 입장에서 경영진과 소통을 잘하려면 경영진이 관심있는 과제에 대해서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경영진이 관심있는 부분에 대해 성공사례를 만든다면 경영진은 그 직원들의 말에 반드시 귀 기울일 것이다.일반적으로 경영진은 일상적인 루틴(routine)한 업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깨끗한 현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장 없고 불량 없는 현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돈 되는 현장을 만들 것인가에 관심이 높다. 따라서 직원이 힘을 모아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현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혁신활동을 통한 소통 성공 사례로는 포스코를 빼놓을 수가 없다. 포스코의 QSS(Quick Six Sigma) 혁신활동으로 쌍방향 소통을 실천하였다. QSS활동 전 직원들은 경영진이 현장 방문에 모두 숨었다. 괜히 잘못 걸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QSS활동을 하고 난 후 경영진이 현장을 방문하면 모두 나와서 자신이 개선한 것을 자랑하게 되었다. 변명보다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신바람나는 조직 문화가 된 것이다. 이 QSS활동에는 솔선활동, 격려활동이라는 강력한 소통 무기가 있기 때문에 더욱 활성화 된다. 솔선활동은 경영진이 QSS활동을 먼저 체험하여 전원참여를 이끌어 내고,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며, 격려활동은 경영진이 주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하여 직원들의 혁신활동 내용에 대한 칭찬, 격려, 대화를 통해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경영진의 소통 목적과 직원들의 소통 목적은 다르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본다. 윗사람이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소통 전달율은 90% 수준으로 높지만 반대로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전달하고픈 소통 전달율은 10%수준 밖에 안된다고 한다. 따라서 쌍방향 소통으로는 QSS혁신활동 만한 것이 없다.소통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위 사례에서 소개한 포스코의 QSS처럼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시스템에 대한 상호 신뢰도가 높을수록 소통이 잘되는 조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의 좋은 문화는 진정한 소통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진정한 소통은 혈구지도(7D5C矩之道)에서 답(答)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어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로 “윗사람이 내게 해서 싫은 것을 아랫사람에게 하지 말고, 아랫사람이 내게 해서 싫은 것을 윗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혈구지도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신을 척도로 삼아 남을 생각하고 사례 깊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사람의 직원이라도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열고 나올 수 있도록 혈구지도를 나부터 실천하길 바란다.

202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