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소탐대실의 중국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 가지는 특권의식을 텃세라 말한다. 특권의식이라 표현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위세를 떨치고 사람을 괴롭히는 경우도 포함한다.텃세는 특정지역이나 직장, 단체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자주 일어나는 사람 간의 문제다. 과거 직장인 상대로 새로운 직장에서 기존직원의 텃세를 경험했느냐는 물음에 70%가 경험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는 뜻이다.먼저 입양한 강아지가 뒤늦게 들어온 강아지를 시기해 못살게 군다는 사례도 있다. 사람에게만 텃세가 있는 게 아니라 동물도 텃세를 한다.텃세와 달리 홈그라운드 이점이라는 게 있다.“똥개도 제집 앞에서는 50점을 딴다”는 시쳇말이 이를 뜻한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외 다른 지역에서는 8강이 한계라는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는 4강 신화를 만들었다. 선수도 잘 싸웠지만 2002년 FIFA월드컵 경기에 등장한 붉은 악마의 응원 덕이 컸다.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붉은 악마의 함성과 물결은 다른 나라 선수를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홈그라운드라는 게 이런 장점이 있다. 이는 합법적 어드밴티지다.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한 한국은 홈그라운드 이점을 활용해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인 4위를 목표로 삼았다. 비록 7위에 그쳤지만.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 편파 판정시비로 세계인의 비난을 싸고 있다. “올림픽이냐 중국체전이지”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홈그라운드 이점을 활용하는 지혜는 내버려 두고 텃세만 부린 중국 탓이다.금메달 한두 개 더 따겠다고 국격 실추를 감수하는 중국의 태도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10

단일화 셈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야권 단일화 논의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단일화에 선을 긋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단일화 가능성을 내비치며 밀당에 나선 분위기다.단일화를 둘러싼 양측의 셈법은 어떤 것일까. 먼저 ‘단일화’ 화두를 띄운 윤 후보 측은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이점을 살려 안 후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반면, 안 후보는 단일화와 거리를 두며 자신의 지지율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윤석열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입장은 선명하다. 언제든 담판을 짓겠다는 태도다. 그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끼리 서로 믿는다면 단 10분 만에도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지를 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달까지 “공개적으로 할 말 없다”며 선을 긋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안 후보도 예전에 비해 긍정적인 발언으로 응수하고 있다. 안 후보는 윤 후보의 발언과 관련, 윤 후보의 일방적인 생각이라고 일축했지만 ‘윤 후보의 연락이 오면 만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과거 “단일화는 없다”는 입장에서 많이 진전된 입장으로 해석된다.어쨌든 20대 대선을 20여 일 앞둔 시점에서도 단일화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양측의 단일화 셈범이 다르기 때문이다. 윤 후보의 경우 다자대결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기록하고 있어 단일화가 매우 시급하다고 판단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단일화 이슈를 선점하면서 야권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동시에 안철수 후보를 소수정당 후보로 부각시켜 지지율 하락을 유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반면 안 후보는 단일화 논의에 자신이 적극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정치의 폐해를 비판하며 출마한 자신이 국민의힘과 단일화를 할 경우 출마명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확실한 대선승리와 대선 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국민의힘 윤 후보와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실제로 박관용 김형오 박희태 강창희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전직 의원 191명이 10일 오전 국민의힘 윤석열·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를 향해 “후보 단일화는 승리의 길이고 통합의 길이다. 정권 교체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절체절명의 명령”이라며 “각자의 길을 멈추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고 단일화를 촉구하고 나섰다.윤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여유있게 이길 수 있는 필승카드로 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안 후보로서도 10%에 채 미치지 않는 지지율로 대선끝까지 완주하는 것보다 야권 통합의 대의명분을 지키면서 담판을 통해 총리직이나 야권 공천지분 등을 확보한다면 새로운 정치판을 짜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항간에는 이미 야권 단일화 성사여부와 시기를 두고 내기가 벌어질 정도다. 단일화 셈법의 결론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무척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2022-02-10

동메달이 행복한 이유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제24회 동계올림픽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됐다. 개막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판정 논란이 일고 있다. 남자 쇼트트랙 1천m 준결승전에 출전한 우리나라의 두 선수도 실격 처리됐다. 경기를 직접 관람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황당하고 어이없다”라는 견해를 밝혔다.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줄 결과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천500m 경기에서 나왔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값진 첫 메달이다. 주인공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같은 종목의 동메달을 땄던 김민석 선수이다. 첫 메달의 영예를 안은 김민석 선수의 인터뷰가 궁금했다.“후회 없는 레이스를 했다.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이 저보다 잘 탔기 때문에 제 경기에 승복하고 결과에 만족한다.” 그런데 4년 전 올림픽에서 금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이번에도 똑같다. 지난번 대회의 결과를 설욕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을 텐데 23세 동메달리스트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밝았다.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동메달이 은메달보다 행복한 이유를 설명했다. 메달이 결정되는 순간 동메달리스트의 행복 점수는 10점 만점에 7.1점인 반면, 은메달리스트는 4.8점에 그쳤다. 이러한 차이는 ‘가상의 성취’ 때문에 발생한다.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을, 동메달리스트는 노메달을 비교 기준으로 삼았기에 동메달리스트가 더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어떨까.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가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18~2020년 평균 국가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을 기록했다. 전체 조사 대상 149개국 중 62위이고, OECD 38개국 중 35위에 해당한다.1974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2008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 교수와 저스틴 울퍼스 교수는 부유한 국가일수록 복지 인프라가 발달해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을 방증하고 있는 듯해 씁쓸하다.3월 9일에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는 순간, 대선 주자들도 사활을 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관심은 권력이라는 금메달을 쟁취하는 것이지만, 국민들은 동메달과 노메달도 모두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OECD 자살률 1위의 오명을 벗고 행복 선진국으로 이끌어줄 지도자를 간절히 찾고 있다.대선이 끝나고 얼마 후인 3월 20일은 ‘세계 행복의 날’이다. 새로운 지도자와 정부는 경제 성장과 복지 증진을 함께 이루어내며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수 있을까. 또한 우리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반목, 불신과 불공정을 극복할 수 있을까. 메달의 색깔과 관계없이 행복한 세상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022-02-09

산속으로 올라간 타이어

김규인수필가 자갈길, 흙탕길, 아스팔트 가리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내 몸은 닳았고 어느 날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정비소 한 곳에 던져진 채 여러 달을 보냈다. 밤이 이슥한 어느 날, 차에 실려서 밤길을 달렸다. 어디가 어딘지 구별할 수도 없는 곳에서 내렸다. 날이 밝아 사방을 둘러보니 산속이었다.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귀촌이라고 하더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시에서 오염된 공기만 마시다가 오니 낙원이 따로 없다. 터지도록 구르기만 하던 나에게 이런 휴식이 주어지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앙증맞은 새싹은 얼마나 귀여운지. 뾰족이 땅을 헤집고 나오는 싹을 보면 신기하였다. 내 옆의 꽃을 찾아 나비가 날아들고 벌이 꿀을 따갔다. 자연의 잔치는 향기로웠다. 나를 내려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멧돼지가 냄새가 나서 다니지를 못하겠다고 나를 보고 야단을 쳤다. 멧돼지뿐만이 아니었다. 밑에서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엉덩이를 들었더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여 싹을 틔울 수 없다고 쑥이 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옆의 친구도 나이 든 나무 위에 걸터앉았다고 젊은 녀석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혼이 났다.주위를 둘러보니, 기름때 묻은 친구들의 몰골과 사고로 살갗이 찢어진 친구는 속살을 부여잡았다. 흰색의 줄로 장식한 네 명의 친구는 같은 차에 달렸던 형제라며 가까이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데 하나 같이 얼굴이 굳어졌다. 주위에서 여기는 올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과 공존할 수 없는 성분을 지녔다. 썩어서 거름이 되지도 화분이 되지도 못한다.“누가 여기에 쓰레기를 버렸어.”승객을 위해 달리고 짐을 싣고 달리고, 평생 사람을 위해 닳고 닳도록 일했는데, 갑자기 쓰레기라니 속이 터졌다. 도시의 길가에 버려져 파리떼가 득실거리는 쓰레기를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아무 말 없이 째려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버린 사람과 싸잡아서 범죄자로 취급한다. 폐타이어 신세가 되면 몸속에서 철을 뽑아내고 깨끗하게 씻고 잘게 부서지면 고무 분말이 되어 다시 원료로 사용된다. 고무 매트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운동장에 트랙 바닥으로 깔린다. 아스팔트 원료로 쓰이기도 하고 아니면 나를 태워 산업체에서 열에너지가 된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몸을 쓰레기라고 부르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싶다.이제야 밤늦게 허겁지겁 나를 내린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다른 사람 모르게 우리를 내리느라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면서 내리고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귀촌하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쉬라고 내려준 줄 알고 얼마나 고마워했는지,나를 사용한 이도 사람이고 이곳에 버린 이도 사람이다. 평생 사람을 위해 일했는데 산속에 버려지다니, 자원을 쓰다가 버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지만, 인간은 알아야 한다. 문명의 이기물을 함부로 버리면 반드시 역습당한다는 사실을….

2022-02-09

을축(乙丑)

육십갑자의 두 번째 을축(乙丑), 하늘에는 을목(乙木)이라는 힘이 나타나는 시간이고, 땅에서는 소(축토·丑土)의 성질과 같은 기운일 때 하늘의 그 기운을 잘 소화하는 때다. ‘소 축(丑)’이 아직 간신히 동지(冬至)를 지닌 ‘을목(乙木)’을 만난 형태며, 을목(乙木)을 ‘겨울 들판의 풀 위에 소가 앉아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겨울 들판에 소가 나가면 먹을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고삐에 묶여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것도 아니고 팔자 좋게 외양간에서 김이 펄펄나는 ‘여물’을 오무작거리며 먹기만 하면 된다.소 축(丑)은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갖가지 고난과 고초가 많지만 끈기와 생명력을 지녀서 기죽지 않고 봄의 농사일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해서 덕을 베풀며 근면 성실하고 집념이 강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삶을 특징으로 한다.소는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어 씹는 특성을 가진 동물이다. 소의 입은 하루 종일 바쁘다. 낮에는 뜯은 풀을 씹느라 바쁘고, 밤에는 낮에 뜯어 먹었던 풀을 게워서 이를 다시 씹느라 바쁘다. 바로 되새김질을 하느라 바쁜 것이다. 그래서 축(丑) 소띠는 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모든 화의 원인이 되며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백호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집(白湖集)’ 언설(言說)에 따르면, 말을 잘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지금은 말하는 기술을 가르치려 애쓸 시기가 아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도록 하고, 천천히 말하게 하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주어야 할 때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말솜씨는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외향적이라고 해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며, 내성적이라 해서 말을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헛된 걱정을 버리자. 옛 사람이 말하기를, 말은 간단하게 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겼다. 말은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간단하게 하려는 것이겠는가? 말할 만한 것을 말해야 하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과시하는 말은 말하지 않아야 하고, 남을 헐뜯는 말을 말하지 않아야 하며, 사실이 아닌 말을 말하지 않아야 하고, 바르지 못한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말을 하는데 이 네 가지를 경계한다면 말을 적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적게 하게끔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군자의 말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말한다”고 하였고, 또 “좋은 사람의 말은 적다고 하였는데 부득이한 경우에 말해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말을 적게 하게끔 되는 이유다.조선 숙종 6년(1680년) 서인이 남인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경신환국으로 말미암아 당대 최고의 유학자 윤휴(尹鑴)는 소주와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 배경에는 ‘천하의 이치란 한 사람이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반주자적’ 입장 때문에 주자를 절대적 가치로 여긴 서인들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렸고, 개중에서 주자학을 통해 신분 질서를 강화하고 양반 사대부의 특권을 굳히고자 했던 송시열의 사주와 모략이 크게 작용했다.생각이 다르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해본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할 때 진정한 대화를 이룰 수 있다.대화는 독백과 달리 상대가 있다. 대화의 윤리가 필요한 이유다. 이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윤리가 필요하다. 의사소통도 능력이다. 말 잘하는 재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위르겐 하바마스는 이상적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들고 있다. 첫째, 이해가능성이다. 서로가 상대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울 것 같지만 이것조차도 쉽지 않다. 둘째, 진리성이다. 사실적으로 참인 말을 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다. 거짓으로 대화할 수는 없다. 셋째, 정확성이다.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정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실성이다. 태도의 문제이다. 얼마만큼 신뢰성을 보여줄 수 있는가이다. (김영필 ‘우리 시대의 철학적 문제들’에서 인용) 류대창명리연구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을 다듬어 치장하고 말솜씨를 단련하여 나라에 자기의 재능과 기술을 아주 크게 부풀려서 팔고 있다. 알고 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경우가 생각 밖으로 많다. 나라가 안정되고 큰일이 없을 때에는 설사 삼 년이 넘도록 그러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도 크게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라에 큰일이 일어나게 되는 경우에는 마치 속이 텅텅 비고 가죽이 이미 썩은 흙처럼 문드러진 채찍으로 말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어찌 그 사람 혼자만 몸을 망치고 부끄러운 이름을 후세에 남기게 되는 일에 그칠 것인가. 나라에까지도 그 환란이 미쳐서 나라의 질서와 기초를 흔들어 놓게 되는 것이다.소의 되새김질을 돌아보며 ‘말잔치’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 남이 하는 말을 꼼꼼히 되새겨보는 지혜가 필요하지는 않을지? ‘소에게 하는 말은 새어나가지 않지만, 아내에게 한 말은 새어나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2022-02-09

면세점 구매한도 폐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국내 면세점 업계 지원을 위해 5천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한도가 이르면 3월부터 폐지된다. 정부는 9일 다음달 중 5천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 한도를 폐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개정 세법 시행규칙을 발표했다.개정 시행규칙은 향후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다음달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면세점 구매 한도가 사라지는 것은 지난 1979년 제도 신설 이후 43년 만이다. 정부는 그동안 면세점 구매 한도를 1979년 500달러이었던 것을 1985년 1천달러, 1995년 2천달러, 2006년 3천달러, 2019년 5천달러로 늘려왔다.그랬던 것을 올해부터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면세업계를 지원하고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한도를 아예 없애기로 했다. 실제로 국내 면세점 매출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2019년 24조8천586억원에서 2020년 15조5천42억원으로 37.63% 감소했다.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되면 그동안 내국인 여행객들이 면세한도 문제로 구매하지 않았던 1천만원 이상 고가의 가방이나 시계 등을 살 수 있게 된다. 다만 면세 한도는 600달러로 유지돼 한도를 초과하는 구매액에 대해서는 20~55%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국내면세점 업계는 최근 명품 브랜드의 면세점 철수까지 겹쳐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이 시내 면세점 매장 철수를 추진 중인 가운데 샤넬이 부산과 제주 면세점에서 운영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면세점 업계의 어려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09

잠자코 기다리는 일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만들 때엔, 몇 가지 조심해야 하는 게 있다. 우선 요리하기 전 바깥에서 있었던 일은 깡그리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칼을 이용해 식재료를 다듬을 때엔 달팽이의 속도로 아주 느리게 썰어야 하고, 무언가 볶거나 구울 땐 반드시 약한 불로 해야 한다.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로 요리를 하면 반드시 다치기 마련이다. 빠르고 거칠게 칼질을 하면 손가락을 깊게 베어버리기 쉽고 잡생각에 빠져 들다간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을 데이고 만다.저녁 식사를 만드는 동시에 다음날 먹을 점심 도시락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요리 시간이 은근 긴데다 어느 때엔 고된 노동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고 대충 끼니를 때우다 보면 빈혈이 더 심해질 게 뻔하니, 무슨 수를 쓰던 건강한 밥을 만들어 먹기 위해 부던히 노력중이다. 물론 그만큼 두 손과 팔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날이 늘고 있지만.언제부터였을까. 학창시절 별명이 고구마일 정도로 답답할 만큼 행동도 느리고 만사태평하던 내가, 지금은 모든 상황에 쫓겨 ‘빨리 빨리’를 외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다음 열차를 타도 되지만 굳이 떠나려는 열차에 몸을 구겨 넣는다거나, 빠르게 오가는 환승 구역에서 천천히 걷는 사람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만다.씻는 것도 빨리, 먹는 것도 빨리, 업무조차 빠르게 끝내기 위해 점심시간마저 쪼개어 일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과다한 업무량과 무의미한 결과물뿐이라 현재는 나 몰라라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대체 무엇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나는 자꾸 화가 나 있었다. 장소불문 누군가 말만 걸어도 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어서, 내 꼴이 약간 우스워 보였을 지도 모른다.게다가 짧고 자극적인 미디어를 소비하는 일이 유일한 취미가 되는 동안 날카롭고도 생소한 문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너무 쉽게 잊어 버렸다. 이젠 문장을 읽어내는 일이 외로운 해독처럼 느껴지는데다, 읽고 쓰는 행위에 있어 떠오르는 의문이나 생각을 저 멀리 던져버리는 요령이 생겼다. 내 생활 패턴과 생각은 나날이 심플해지고 단순해지는데 어느 때엔 이게 좋다가도 어느 때엔 아득히 암울해진다.아주 가끔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특히 또래의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이들을 마주하면 피해갈 수 없는 몇몇 질문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아무 구멍이든 파고선 들어가고 싶다. 그 어떤 물음에도 명확히 대답할 수 없는데다가 이 모든 게 정말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아무리 조심히 요리한다 한들, 예기치 못하게 생겨버리는 몇몇 개의 물집이 있다. 모두 나의 조급함에서 생겨나버린 크고 작은 상처들. 약간의 힘만 주어도 뜨거운 물을 흘리며 터질 물집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기 마련이니 일단 그대로 둔다. 시간이 약이라는 간단명료한 막연함을 믿으며.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2018년 나는 원인모를 피부 알레르기를 얻었다. 단순한 자극이나 마찰이 생겼을 때 두드러기가 올라오는데, 요즘은 별 다른 이유 없이 작고 빨간 수포가 피부 위로 일어나고 있다.돌연 생긴 수포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유발하는데 이럴 때에 처방 받은 약을 먹기도 하고, 스테로이드 연고도 발라보고, 세라마이드가 함유된 차가운 로션을 듬뿍 발라 온 몸을 도배해보지만 사실 그리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기다림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얄밉게 쏙 사라지고 마니까.지금 내 손에 맺혀 있는 물집들도 그렇다. 다른 일을 하다 문득 물집을 보면 이미 터져버리고선 반투명한 막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이다. 웅크려 있던 뱀이 허물을 벗고 홀연 사라진 듯이.불청객 같은 상처가 사라지고 불그스름한 새 살이 돋아난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간단하게 일어나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아무리 식상하고 단촐한 물집 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잠자코 기다려보기로 한다.

2022-02-08

세상의 모든 불빛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를 한 지 벌써 5개월이 됐다. 일은 익숙하지만 날씨는 적응하기 힘들다. 종일 겨울비가 내린다. 우비도 챙겨 입어야 하고, 빗길 안전에도 유의해야 한다. 비 오는 날 신경 써야할 것은 또 있다. 고급 아파트 단지는 배달 오토바이의 지상 출입을 막는다. 이런 날 지하 주차장은 위험하다. 에폭시로 마감된 바닥면에 물기가 생기면 몹시 미끄럽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갑자기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그러면 다치는 것도 문제지만 손님이 주문한 음식이 엉망이 된다. 특히 국물 음식은 더 조심해야 한다.절대 넘어져선 안 돼. 천천히, 두 발을 땅에 디디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울 때처럼, 엉금엉금 오토바이를 몬다. 땀인지 빗물인지 몇 방울의 물이 눈썹을 타고 뺨으로 흐른다. 차가운 겨울비와 우비 안의 열기가 섞이면서 하얀 김이 오른다. 107동 지하 현관 앞에 간신히 오토바이를 세운다. 40층에서부터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나도 40층에 가야 하는데, 아마 음식을 주문한 손님이 조금 전 귀가한 모양이다.신축 고급 아파트여선지 지하까지 엘리베이터가 금방 내려온다. 40층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힌다. 40층은 처음이다. 이렇게 높은 아파트가 있는 줄 몰랐다. 아기가 자고 있으니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달라는 요청에 조심스레 음식을 문 앞에다 내려놓는다. ‘배달완료’ 버튼을 누르고 돌아서는 등 뒤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감사합니다” 마음 환해지는 한 마디. “맛있게 드세요” 속삭이듯 말하고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지하 2층에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40층까지 올라오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복도 끝에 창문 하나가 열려 있다. 창문 밖 야경을 바라본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이 일의 기쁨 중 하나다. 40층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모든 불빛들이 물기를 머금어 보석처럼 빛난다. 상자에서 마구 쏟아진 사탕 같고, 엉킨 채로 콘센트 꽂은 크리스마스 전구 같고…. 글씨가 됐다가 얼굴이 됐다가 어느 한 시절 혹은 잃어버려 그리운 무엇이 되는 저 불빛들이 애틋하기만 하다.현재 우리나라 자가보유율은 61퍼센트다. 얼마 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자가보유율을 80퍼센트까지 올리겠다고 말했다. 자가보유율이 80퍼센트가 되어도, 90퍼센트가 되어도, 아니 99퍼센트가 되어도 내 집은 없을 것만 같다. 10명 중에 6명이나 집을 갖고 있다는데, 왜 내 주변엔 집 없는 사람들뿐인가. 나도, 아버지도, 엄마도, 동생도 자기 집이 없다. 고철 주워 월세 보태던 할아버지는 12년 전 돌아가셨는데, 저세상에 ‘내 집’을 구하셨을까?화장한 분골더미 속에 철심 몇 개가 녹지도 않고 널브러진 걸 보며 ‘저세상에서도 방세 치를 걱정에 쇳덩어리를 지니고 가시려 했구나’ 안쓰러웠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불빛들 중 내 것은 하나도 없구나. 나는 문득 내가 데이빗 보위의 노래 ‘Space Oddity’에 등장하는 우주비행사 ‘톰 소령’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톰 소령은 비행선이 고장 나 캄캄한 우주를 끝없이 표류한다. 지구는 점점 멀어져 희미한 한 점 불빛이 되고, 그는 지구와의 교신이 끊어지기 직전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제 톰 소령은 망망한 암흑을 영원히 떠도는 우주 먼지, 나도 “Can you hear me, Major Tom?”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저 무수한 불빛들 중 내가 돌아갈 별이 어디 있을까 찾아본다. 불빛들이 한꺼번에 뭉치면서 윤곽 없는 색채의 덩어리가 되고 만다.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지하 2층으로 하강하는 엘리베이터 안은 중력 없는 우주공간의 깡통우주선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다음 배달 콜이 울린다. 짧은 공상, 그리고 긴 감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갈 때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세상의 모든 불빛들이 내게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세상 어딘가에 환하게 빛나고 있을 내 불빛을 찾아서, 나도 쏟아지듯 달려가야지. 비에 젖은 채 뭉개지는 저 불빛들을 보면서 시구 하나를 외운다. “이제 불 켜진 집에 돌아가게 허락해주십시오. 고통이신, 그리고 사랑이신 적막한 황혼의 하나님이여”(장석주, ‘완전주의자의 꿈’)

2022-02-08

중국의 적반하장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당시 복식과 풍속을 나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독특한 화법으로 그려진 풍속화 하나로 당시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전통 복식이란 그 민족이 가진 오랜 정체성의 표현이다. 김홍도의 그림에서처럼 옷 하나로 그 민족이 가진 고유한 사상과 관습 등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입는 옷이지만 민족정신이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한국의 한복을 비롯 일본의 기모노, 베트남의 아오자이, 만주족의 치파오 등이 이런 종류의 옷으로 다른 나라에선 베낄 수 없는 독자적 민족문화의 하나다.복식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전통 한복의 유래를 고구려 고분벽화(4∼6세기)에 나타난 그림에서 찾는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저고리에 해당하는 긴 상의를 입고 바지 차림이다. 신라와 백제 유물에서도 동일한 유형의 유물이 나와 시기적으로 보면 우리 민족의 한복 역사는 1천60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2022 중국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중국 소수민족 대표가 한복을 입고 등장해 논란을 빚었다. 중국이 김치와 삼계탕에 이어 이번에는 한복까지 문화공정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국민적 비판이 크다. 중국의 문화 침탈이 이젠 도를 넘었다는 여론이다.한복은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한국의 전통의상으로 소개된다. 누가 뭐래도 우리 고유 의복임이 틀림없다. ‘대장금’ 등 우리나라 사극(史劇)이 외국에서 인기를 끈 배경에도 우리 고유 한복의 아름다움이 한 몫한 탓이다.중국의 역사 왜곡이 한두 번 아니지만 한복(韓服)을 중국의 한복(漢服)에서 유래했다는 그들의 주장이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중국의 문화공정에 대한 국민적 경계심 더 높여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08

기업의 존재이유, 미션과 비전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2022년 설날을 맞이하여 지인들로부터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이하여 뜻하시는 일들 두루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시고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라는 문자와 서예가인 지인으로부터 붓글씨를 선물 받았다글은 ‘비도진세(備跳進世)’라는 단어로 “도약을 준비하여 세상에 힘차게 나아가다”라는 내용이다.안부 인사와 글을 선물 받고 필자는 ‘올해 내가 뜻하는 일이 무엇이었지’라고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그냥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계획을 잘 수립하고, 실천하는 인생이 훨씬 알찬 인생이 될 것이며, 직장 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그냥 주어진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지금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필자는 ‘세명의 석공 이야기’를 좋아한다. 1666년 성바오로성당 건축 현장에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인부들에게 물어봤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건축가는 세명의 석공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라고 질문하자, 첫번째 석공은 주인이 시킨 돌을 깎고 있습니다. 두번째 석공은 돈을 벌기 위해 돌을 깎고 있습니다. 세번째 석공은 후대에 남길 위대한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라고 답을 한다. 똑 같은 일을 하는데 가치관은 달랐다는 것이다.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일을 하는 사람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의 결과(Out-Put)는 확연한 차이를 가져온다.우리는 세번째 석공의 대답에 주목해야 한다.지금하고 있는 일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일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힘든 일임에도 즐겁게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훌륭한 기업에는 경영 미션과 비전이 존재한다.미션은 우리 기업 또는 조직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조직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미션은 개인의 철학, 불변의 가치,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철학과 가치를 담는 것이다. 즉 미션을 통해 왜 존재하는지 아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비전은 우리 조직이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모습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조직의 목표를 나타낸다. 막연한 꿈이나 희망이 아닌 비전을 통하여 미래의 이상과 목표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즉 비전을 통해 무엇이 될지 아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삼성을 예를 들어 보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에 도전하는 혁신적 기술, 제품,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미래 사회에 대한 영감 고취”라는 미션이며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잘 나타내고 있다. “미래 사회에 대한 영감, 새로운 미래 창조”라는 비전으로 간결하면서도 열망하는 바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필자는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잘 수립하고 구성원 모두에게 알려서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2022-02-07

봄빛 희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선다는 입춘은 예고편으로 아직은 봄날이 한참 있어야 온다. 설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코로나19 오미크론의 확진자가 하루가 다르게 폭증세를 보이고 있으니, 예상과 우려를 넘어 걷잡을 수 없는 역병의 딜레마에 속수무책으로 빨려드는 것 같다. 3년째 계속되는 지리멸렬한 바이러스의 변이에 몸서리만 쳐지는데, 계절과 세상의 봄날은 허공의 그물에 갇혀버린 듯 싸한 바람이 여전히 빈 가슴을 후비고 있다. 코로나에 빼앗긴 일상에도 과연 봄이 오기는 오는 걸까?그러나 얼음장 밑에서도 봄물은 흐르고 눈 덮인 산야에서도 복수초가 피어나듯이, 봄은 분명 더딘 걸음으로나마 조금씩 오고 있다. 차디찬 땅 속에서도 뿌리는 물긷기를 멈추지 않고 새움을 준비하는 여린 풀들은 단단해진 흙을 하나씩 밀어내고 있다. 비록 비닐하우스 작물이긴 하지만 미나리나 부추 등의 채소는 파릇하고 싱싱하게 싹을 키워 벌써부터 봄의 향과 입맛을 한껏 돋우고 있다. 무채색 겨울빛이라 하지만, 대지는 이처럼 알게 모르게 동면 속에서도 봄빛 생동과 희망을 품으며 만물을 다독이고 채비하고 있다.“솔숲 다한 곳에 물소리 새롭고(松林盡處水聲新) 한적한 개울녘엔 미나리 싹 돋아나네(閒溪濕地芹芽發)” - 강성위 한시 ‘次送元二使安西’ 중봄은 색깔과 향기로 온다. 파릇한 새싹이며 향기로운 꽃에서 새봄의 빛깔이 반짝거리면서 눈과 코를 자극할 때 비로소 봄날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봄은 결코 쉽사리 호락호락하게 오지 않는다.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가 내리면서 두어 차례 봄샘추위가 지나가야 미상불 봄처녀의 발길이 살포시 닿게 되는 것이다. 새 풀 옷을 입고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찾아오는 봄처녀를 맞이하기 위해 봄의 전령인 달래와 냉이가 서둘러 여린 싹을 내밀고 양지 바른 개울 가에는 미나리 싹이 돋아나는 것이리라. 얼음이 녹고 쌓인 눈도 녹아 개울에 보태기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한결 새롭고 맑은 것이리라.이렇게 봄이 다가오면 자연은 저절로 풀리고 녹고 새롭게 돋아나며 더불어 흐르는데, 사람 사는 세상에는 결코 그렇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숱하고 흔하기만 하다. 끝없는 질시와 반목, 불신과 배신이 팽배하고, 갈등과 대립의 긴장 속에 배타와 독선이 판을 치는 형세이니, 어느 날에야 얼음장 같은 냉랭함이 녹고 칼날 같은 빗장이 풀릴 수 있을런지 요원하기만 하다. 개인적인 해묵은 감정이나 견해차도 그렇지만,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즈음해 그러한 기류가 더욱 가세되고 증폭되는 듯해 안쓰러움을 넘어 안절부절하기만 하다.미증유의 블랙홀 같은 코로나19의 난마에 구멍 난 가슴인데, 난무하는 가담항설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시선은 고뇌일까 고소(苦笑)일까?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역병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좀 더 편하고 나은 삶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봄빛 가득한 희망의 새싹이 풋풋하게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2022-02-07

추리소설 사상 가장 독특했던 ‘브라운 신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미스터리’란 어쩌면 아무 트릭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하나의 그럴 듯한 역설에 불과하다.추리소설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도, 그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도, 범죄에 얽혀 있는 흥미로운 트릭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미스터리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요즘 한국에서도 추리소설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추리소설이란 언제나 사건의 발생과 해결 사이에서 일어나는 서사를 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 장르적 정체성을 구성한다. 아마도 추리소설만큼 이 반복적 규칙성에 고집스러운 장르란 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추리소설의 역사에서 바로 이러한 반복적 규칙성에 대해 가장 강력한 대안이 되었던 가장 독특했던 추리소설이라면, 바로 영국 작가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들 수 있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은 1911년에 자신이 이전까지 써왔던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단편들을 처음으로 엮어 ‘브라운 신부의 결백(The Innocence of Father Brown)’이라는 단행본을 냈고, 이후 이 독특한 탐정은 인기를 얻어 36년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5권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나왔다.에드가 앨런 포우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으로부터 아서 코난 도일의 탐정 ‘셜록 홈즈’로 이어지는 추리문학의 계보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들이 확립했던 범죄현장의 무질서로부터 과학적 방법을 동원한 추리라는 일련의 방법을 통해 질서를 추구해가는 현대에는 일반화된 추리기법에도 이미 익숙해 있을 터이다. 독자는 책장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나버린 사건을 만나게 되고, 아직은 동기도 단서도 불명확한 혼란 자체인 사건을 탐정은 단서를 모으고, 이들을 조합하여 추리를 하고,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는 사건 발생 이전의 시간을 재구성해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것이 바로 현대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도식이다.이런 추리소설의 전형성에 익숙한 독자들이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를 보게 된다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당혹감은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는 낯설기 짝이 없는 무질서와 비도식성, 그리고 비일관성일 것이다. 겉보기에는 전혀 탐정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는 브라운 신부는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무질서한 사건 현장의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뛰어든다.관찰과 논리적 추론을 통해 이론을 만들어내는 근대의 과학자 타입의 탐정이 아니라, 기꺼이 무질서에 참여하면서 그 사건과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타입의 탐정에 해당한다.이에 앞서, 1908년에 쓴 ‘목요일이었던 남자(The Man Who Was Thursday)’에서 체스터턴은 무질서가 갖는 창조성을 논했던 바 있다.이 브라운신부는 범죄 사건의 현장을 ‘베이커 스트리트 221b’의 실험실로 옮겨오는 근대 과학자 타입의 탐정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널려 있는 무질서 속에 존재하는 질서를 간파해내고 그 속에 참여해서 그 질서를 폭로해내는 타입의 탐정이다. 그러니, 어눌해 보이는 브라운신부의 눈이 반짝이기 전까지 그 사건의 트릭은 트릭조차 아니었던 셈이다.브라운신부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조약돌을 어디에 숨길까 질문하고, 그것을 듣고 있던 플랑보라는 인물은 ‘해변’이라고 답한다. 잎사귀를 숨기기 좋은 곳이라는 질문에는 ‘숲속’이라고 답한다. 이것은 누구나 인용하기 좋아하는 그 유명한 체스터턴의 역설이다.하지만 이어 브라운 신부는 잎사귀를 숨길 ‘숲’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고 있다. 우리는 잎사귀를 숨기고자 숲을 만드는 식으로, 자기의 발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규칙 자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미 백 년 전에 체스터턴은 그렇게 질문했던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2-02-07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Ⅴ)

-안나는 나와 함께 하는 동안만 우리 집안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약속하마. 하지만 안나와 안나 뱃속의 아이는 다르다. 이제 네가 약속해다오. 안나 뱃속에 있는 아이를 너의 동생으로 인정해다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 아이를 경쟁자라 여기지 말거라.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 내가 저 세상으로 갈 무렵이면 너도 이미 제법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는 그저 그 아이가 건강하게 바르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커 준다면 그때 가서 그 아이가 할 일이 있겠지.-알겠습니다.필립이 대답했다. 만식은 무릎과 허벅지를 손으로 움켜쥐며 필립을 보았다. 억울하다, 서운하다, 그럴 수 없다.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거지? 알겠습니다, 라니. 필립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그 여자를 사랑하십니까?필립이 만식에게 물었다.-사랑이 무엇이냐?만식이 대답했다.-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부끄럽지 않으십니까?필립이 다시 만식에게 물었다.-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하느냐? 젊고 건강한 여자를 가질 수 있다면 너는 거부할 수 있느냐? 내가 칠십 먹은 여자와 함께 있으면 아름다운 것이냐? 돈 있고 건강이 있는데, 욕망이 있는데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 도덕, 다른 사람들의 시선, 순리 따위 말하지 마라. 그것들에 신경 쓸 것이었으면 애초에 인공 장기 따위 이식받지 않았다. 나는 벌써 죽었지. 나는 안나의 피부, 가슴, 엉덩이를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게 사랑이라면 안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게 징그러운 노욕이라면 노욕이겠지. 노욕이면 또 어때.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진 것뿐이다. 안나도 내게서 받고 싶은 것을 받을 것이고. 우리는 서로 주고받은 거다. 너는 다를 줄 아느냐?만식은 이렇게 대답했다.짐을 다 챙긴 만식이 병동의 수간호사를 불렀다. 짐을 집으로 보내 달라 부탁했다.수간호사는 당황했지만 이내 네, 하고 대답했다. 굳이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원래는 안 해드리는 건데.수간호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흘렸지만 만식은 대답 없이 병실을 나섰다. 확실히 이전보다 숨쉬기 편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것이 맞기는 한데, 어디에 세웠더라? 차를 어디에 세워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하 2층이 맞는데. 만식은 천천히 지하 주차장 벽을 따라 걸었다. 왼쪽 기둥 뒤쪽 낯익은 차가 보였다. 저렇게 먼 곳에 세워두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만식의 손을 잡았다. 만식이 고개를 들었다.-자네가 여기 어쩐 일인가?-회장님 혼자 퇴원하신다고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 차를 타시지요. 바로 옆에 세워두었습니다.만식은 차 뒷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내 차는 어쩌지?안전띠를 매며 만식이 물었다.-옮겨다 놓겠습니다.-열쇠는?-저희에게 비상키가 있습니다. 지금 옮기도록 하겠습니다.-저희라니?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제가 오면서 한 명 더 데리고 왔습니다. 회장님을 모시는 것, 회장님 차를 옮겨 놓는 것 두 가지를 혼자 할 수 없어서.만식을 태운 차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십 분 정도 지난 뒤 만식의 차도 뒤따랐다. 만식은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등을 기댔다. 걱정을 했단 말이지. 기특했다.-회장님 드실 음료를 챙겨왔습니다. 직접 달인 것이라고, 직접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고, 꼭 다 드시라 하더군요. 콘솔박스에 있습니다. 만식은 콘솔박스에서 텀블러를 꺼내 텀블러의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이 올라왔다. 약간은 쓴, 하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만식은 차창을 내리고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아서 걸러질 것입니다. 만식은 이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잠시 후 만식은 잠이 들었다. 만식을 태운 차는 경부고속도로로 향했고 만식의 차는 서울양양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 시간쯤 지나 만식이 탄 차가 금강 휴게소에 들어섰다. 푸드 코트 앞쪽에 정차를 하자 푸른색 티셔츠를 입은 사내가 올라탔다. 사내와 만식을 태운 차는 다시 출발했다.푸른색 티셔츠는 운전석에 앉은 사내와 몇 마디 나누고는 만식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만식이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운전을 하던 사내가 앞좌석에 놓여 있던 가방을 건넸고 푸른색 티셔츠는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만식의 어깨에 꽂았다.

2022-02-07

RE 100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이다.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여기서 재생에너지는 석유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태양열, 태양광, 바이오, 풍력, 수력, 지열 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RE100은 정부가 강제한 것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일종의 캠페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크게 태양광 발전 시설 등 설비를 직접 만들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서 쓰는 방식이 있다. RE100 가입을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본부인 더 클라이밋 그룹의 검토를 거친 후 가입이 최종 확정되며, 가입 후 1년 안에 이행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이행상황을 점검받게 된다.국내 기업 중에서는 SK그룹 계열사 8곳(SK(주),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SK브로드밴드, SK아이이테크놀로지)이 2020년 11월 초 한국 RE100위원회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국내 제도는 재생에너지 100% 사용 선언 없이도 참여가 가능하나,산업부는 참여자에게 글로벌 RE100 캠페인 기준과 동일한 2050년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권고한다. 다만, 2050년까지 중간 목표는 참여자의 자율에 맡겨진다.RE100은 에너지 정책분야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인데, 최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져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07

대통령 후보들, 문화전쟁에 응답하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국제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정책연구소가 세계 28개국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총 12개 항목 중 빈부·이념·정당·학력·성별·세대·종교 등 7개 영역에서의 갈등이 1위를 기록하여 ‘문화전쟁(culture war)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분석되었다.문화전쟁의 핵심으로 지적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은 전체 국민의 87%가 인정했고, 빈부갈등(91%), 계층갈등(87%), 성별·세대·종교 갈등(80%)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높게 인식되었다. 이 같은 국제비교는 우리사회가 당면한 ‘갈등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통합의 시급성’을 일깨워주고 있다.물론 현대사회에서 각 집단의 가치와 이익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다면적 차원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집단갈등이 적정수준에서 조절되지 못하고 폭발할 경우,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사라짐으로써 국가적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특히 대선과정에서 경쟁후보들이 득표율 제고를 위해 ‘갈라치기’전략을 구사할 경우 문화전쟁은 더욱 치열해진다.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은 문화전쟁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온갖 포퓰리즘 공약들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문화전쟁에 대해서는 표를 잃을까봐 모른 체하는 ‘비겁한 정치인들’이 대통령 되겠다고 난리다.중병에 걸려 있는 나라의 갈등은 외면하고 선거의 이해득실만 계산하는 후보는 지도자 자격이 없다.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대통령 후보는 당면한 문화전쟁에 분명히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대통령은 ‘진영의 보스가 아니라 국가의 원수’이다. 국민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진영논리나 확증편향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윤리’와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가 충돌할 때 당연히 후자를 우선해야 한다. ‘국가통합의 상징으로서 대통령’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문화전쟁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고 있는 시대적 소명이다.이를 위하여 대통령 후보들은 문화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각종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후, 토론을 통하여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집권하면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후보들은 각자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상호 토론함으로써 국민의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특히 이 공론의 장에서는 문화전쟁의 ‘핵심원인이 되고 있는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인한 이념 및 정당 간의 갈등해소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 빈부·학력·성별·세대·계층 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경제·사회정책들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문화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선출되는 새 대통령은 집단갈등을 경계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후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진영논리와 편 가르기, 선택적 공정과 내로남불 정치로 우리사회의 문화전쟁을 최악으로 몰고 왔다는 사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기 바란다.

2022-02-07

상식과 진실에 승복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나는 문재인 정권 후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잘못되고 부족한 정책”이라고 혹평했다. 문 대통령이나 ‘문빠’들이야 섭섭하겠지만 그러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정권교체’ 의견(56.0%)이 ‘정권 유지’ 의견(36.7%)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한 일을 꼽자면 한도 없다. 그중에서도 사법 신뢰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법원은 힘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다. 돈 있고, 권력 가진 사람이 많다. 주먹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엔 법이 옳고 그름을 가려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마저 없다면 힘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그런데 그게 무너졌다. 민감한 재판이 있을 때마다 판사 성향부터 따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사건이 판사에 따라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되는 일이 벌어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 범죄는 진영 대결의 축이 되어 진실은 사라져버렸다. 대통령까지 ‘마음의 빚’을 얹었다. 서울·부산시장, 충남지사가 줄줄이 성폭행 사건을 일으킨 것도 기이한 일인데, 여성 인권을 외치던 사람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조어로 감싸는 데는 탄식만 나온다. 치외법권 특권층인 셈이다.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씨는 유죄 확정됐지만, 사법 저울을 믿기에는 신뢰가 너무 바닥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법원이 ‘제왕적 대통령’을 받드는 부속기관쯤으로 인식된다. 경찰은 원래 상명하복의 조직이지만, ‘검찰 개혁’은 검찰과 공수처까지 정권의 하청기관으로 몰았다.진실을 가리는 또 하나의 보루는 언론이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통신… 정부 힘이 미치는 매체들은 ‘어용’이란 딱지가 낯설지 않다. ‘공정’은 언론계에서 추억이 되어간다. ‘선전 선동’을 언론의 소명처럼 주장한다. 진실은 숨어버렸다.“거짓말도 반복하면 사람들이 믿게 된다”는 요설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북한은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한다. 천안함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아웅산 폭탄테러, 김정남 살해도 모두 뒤집는다. 그게 북한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불리한 것은 무조건 뒤집는다. 진실을 뒤집는 기술자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선거는 진실과 거짓을 마구 섞어 야바위판이 됐다. 궤변가들이 전문가 행세다.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도청’보다 ‘거짓말’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일이다. 닉슨의 거짓말을 드러낸 것은 언론과 엄정한 사법 체계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집요한 수사로 닉슨을 궁지에 몰았다. 닉슨이 콕스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법무부 장관과 차관 모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범죄를 감추어주면서까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문재인 정부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1년이 넘도록 다투고, 지청장이 사건 수사를 방해한다. 주요 사건 증인이 줄줄이 자살하는데, 진실은 정권이 끝나도록 감춰진다. 범죄자가 큰소리치고, 고발한 사람은 두려움에 떤다.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라다.이게 차기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어진다. 투자금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몰아줬지만 “너는 깨끗하냐”라며 덮어버린다. 정부 공금으로 가족 부식을 사고, 공무원이 민간인의 수행비서, 살림 비서 역할을 한 녹음과 사진이 나와도 아랫사람 탓만 한다. 개인 왕국 같다.사실을 시인하지도,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았다. 반성 없이 고쳐지지 않는다. 시의회에서 지적당한 일이 10년간 이어졌다. 수시로 뒤집는 공약이 어떻게 바뀔지 믿을 수 없다. 진심 어린 시인과 사과가 먼저다. 가뜩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한계에 이르렀다. 상식이 통하고, 진실에는 승복하는 사회가 정말 그립다./본사고문

2022-02-06

나는 실존주의자다

이정희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나는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실존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반응은 “어머, 그래요”, 또는 “그런데, 실존주의가 뭐에요”라고 묻는다.지금 이 시대야말로 실존주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양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3인방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궁극적인 질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였다. 이 질문이야말로 철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끌리는 사람은 분명 실존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물론 실존주의자는 실존주의 철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 않고서는 실존주의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해서 실존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사르트르는 우리들이 언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가 최고의 실존주의자로 추앙받는 이유는 진정으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이다.며칠 전 오랜만에 서점에 들렸다가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신나게 사가지고 나왔다. 실존주의는 자유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철학이며, 성실과 용기를 무기로 삼아 현실을 직시하고 사물을 철저하게 통찰하는 법을 이야기 하는 철학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그동안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실존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간단하고 단호하게 정의한 책은 없었다. 나는 진정한 실존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먼저,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철저히 파헤쳐 봐야겠다. 현재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는 어떻게 발생했으며, 코로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며,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고 치열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우리가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 안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잠재력 발견이야말로 실존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획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항목이다.실존주의자를 정리하면, 무슨 일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어떠한 상황이든 변명을 하지 않는 사람, 결코 나약하지 않으며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 인간의 존엄과 자존심과 위엄을 당당히 지키는 사람, 정의롭지 않은 일에 의연히 맞서는 사람,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 원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 인생의 역경 속에서도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실존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우리가 사는 사회는 끔찍하게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자적인 자세로 올바른 삶을 목표로 살고자 한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2022-02-06

토끼가 한숨 잔 이유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토끼는 거북이가 느리다고 자꾸 놀렸어요. 그러자 거북이가 토끼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어요. 토끼는 바로 승낙하고 시합에 나섰지만 한숨 자다가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어요.”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다. 거북이의 꾸준함과 토끼의 어리석음이 한눈에 대비되어 보인다. 실제로 이 우화는 거북이의 우직함을 칭찬하거나 토끼의 자만을 나무라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간단한 이야기 같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아리송하다. 토끼의 잘못을 나무라는 것은 자기보다 많이 느린 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할 때 기를 쓰고 달렸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정말 토끼에게 거북이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달리라고 해야 하나? 한숨 잔 토끼를 게으르다고, 어리석다고 탓하는 것은 약자와 경쟁하는 기득권자를 채찍질하는 셈이다.그렇다고 거북이의 성실함을 칭찬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문제는 있다. 태생적인 약점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특이하거나 영웅적인 사례를 일반화하여 약자를 다그치는 것은 가혹하다. 한때는 잠자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혼자 갔다고 거북이를 나무라는 논리가 인기 있었다. 그러나 이미 불공정한 게임에서 약자에게 강자를 도우라는 요구는 연대나 배려의 의미를 오남용한 것이다.진호(가명)는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우는 소년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해 두려움이 많다. 며칠 전 진호와 ‘토끼와 거북이’를 읽으며 거북이는 왜 토끼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을까, 토끼는 왜 한숨 잤을까 물어보았다. 진호는 먼저 이런 말을 한다. 왜 이기는 것만 말해요? 체력이 좋아진 걸로 말하면 안 돼요? 아하, 정말 그렇구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체력이 늘었을 테니 지더라도 의미가 있네. 그러자 뒤이어 이렇게 말한다. 토끼는 일부러 낮잠을 잤어요. 거북이에게 힘을 주고 싶어서요. 거북이는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서 시합을 한 거예요.학식 높은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한 진호의 해석에 머리가 띵했다. 도대체 왜 우리는 토끼를 교만한 게으름뱅이로만 해석했을까? 왜 토끼가 거북이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달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깨워 같이 갔어야 한다는 논리에 왜 동조했을까?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른들, 공정의 프레임에 갇힌 어른들, ‘함께’를 오용하는 어른들을 진호는 멋지게 한 방 먹였다. 진호가 이런 말을 하기까지 혼자 겪었을 고통의 시간을 조금은 짐작하기에 울림은 더 컸다.그런데 진호 친구들은 진호를 위해서 낮잠을 자줄 수는 없을 텐데, 거북이처럼 달릴 수 있겠어? 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네. 저는 할 거예요. 진호, 참 장하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츤데레 토끼와 우직한 거북이가 많아지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2022-02-06

수(藪)를 듣다

북송리 북천수의 사계절을 들었다. 다들 숲이라 이름 붙일 때 이곳은 수(藪)라 불렀다. 수풀, 덤불이라는 뜻의 수이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느껴져 매일 한 시간 이상 걷자고 마음먹고 찾아간 곳이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 해였다.북송리 북천수, 소나무 숲의 이름이 특별하다. 다른 고장에도 있을 테지만 포항은 동네 숲을 많이 간직한 도시다. 선비가 지와 예를 갖추듯 푸른 동해와 깊은 계곡까지 겸비했다. 해안선이 길어서 바람을 막고자 방풍림으로 해송을 길게 심었고, 동네마다 둘레에 나무를 심어 가꿨다. 내 어릴 적 학교 소풍 장소였던 송도 솔밭과 기계 서숲, 여인의 숲, 청하 관송전, 덕동숲, 언뜻 기억나는 곳만도 이만치이다.두내, 양촌, 천방, 큰동네, 건너각단 등으로 불리던 자연마을들은 1914년에 통합되어 북송리가 되었다. 북송리에 북천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북천수가 있어서 북송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결국, 솔숲이 행정구역 통합을 이루어낸 셈이다. 정월 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은 이 숲의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 후 마을 앞산에서 산제를 지낸다. 이때 전년도에 묻어둔 간수의 상태를 보고 그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풍습이 있다. 이처럼 북천수는 수해방지림인 동시에 방풍림의 역할을 해 왔으며,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의 신앙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큰 마을 숲으로 인정받아 2006년 3월 28일 천연기념물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흥해현지도’와 1938년 조사된 ‘조선의 임수’에 이 숲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조선 철종 때 흥해 군수 이득강이 북천에 제방을 쌓고 4리에 걸쳐 숲을 조성하였는데 현재는 그 일부만 남아 있다. 숲의 길이가 2천400m, 너비는 150m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광복 직전에 일본인들이 크게 훼손하여 대부분의 노송이 잘리는 운명에 처한다. 그 이후로도 수십 년 동안 무단벌목, 방치에 따른 주민 생활오물 투여, 농경지 개발 등으로 인하여 북천수는 숲으로서의 고유한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전통마을 숲 복원사업으로 일대 정비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나마 남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규모는 길이 1천870m, 너비 70m(천연기념물 지정구역 면적은 21만1천923㎡)로 조성 당시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상당 정도 회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송림은 4곳으로 하동 송림, 예천 금당실 송림,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그리고 북천수이다.이 숲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숲 가운데 세 번째로 긴 숲으로 알려져 있다. 수종은 소나무와 곰솔이다. 소나무는 뿌리가 깊게 자라기 때문에 방풍림으로 제격이라고 한다. 소나무의 줄기는 붉은색을 띠고 곰솔은 검은색이다. 검은 솔이라 부르다 곰솔이 되었다 한다. 두 나무를 정확히 구분하는 방법은 새순을 보는 것이다. 소나무의 새순은 줄기와 같이 적갈색이나 곰솔은 회백색을 띤다.숲 가장자리에 서부초등학교가 자리했다. 학교 둘레에 소나무가 가득한 걸 보니, 오래전에는 이곳도 북천수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양덕동에 사는 민영 선생님은 아이들을 숲에서 뛰놀게 하려고 이 학교에 보낸다. 자신의 차가 없어서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포은도서관 앞에서 흥해로 가는 차로 갈아탄다. 서부초는 1, 2교시 합쳐서 수업하고 쉬는 시간이 30분이다. 점심시간에도 얼른 밥을 먹어치우고 밖에 나가려고 한다. 아이들은 숲에서 곤충도 관찰하고 솔방울도 주우며 산책을 즐긴다. 민영 선생님이 매일의 수고로움을 겪으면서도 이 학교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북천수라고 했다.숲 옆을 흐르는 곡강천을 옛날에는 북천이라 불렀다. 북천변에 심은 나무 북천수는 이제 거대한 마을 숲이 되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서부초에서 아이들을 키우듯, 숲에는 자연 발아유도지 4곳을 설정하여 유목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였다. 아름드리 둥치가 숲의 과거라면 솔방울이 뿌리내려 서로 키가 다른 어린 소나무들이 숲의 미래다./김순희(수필가)

2022-02-06

관직은 손님처럼

백선기 칠곡군수 ‘재세여려 재관여빈(在世如旅 在官如賓)’이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세상살이는 나그네처럼 하고 관직 생활은 손님처럼 하라는 뜻이다.조선 후기 문인 성대중은 규장각에서 교서관 교리의 벼슬에 있을 때 이 글을 좌우명으로 삼아 벽에 써 붙여놓고 공직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는 관직을 자신의 특권이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익을 버리고 미래를 내다보며 청렴하게 업무를 처리했다.돌이켜 보면 필자도 모든 혼과 열정을 군정에 쏟아붓고 칠곡군 최초의 3선 군수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결국 손님처럼 왔다가 오는 7월 후임 군수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손님처럼 떠나야 한다.개인 백선기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지만, 칠곡군수 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리더의 선택은 조직과 지역의 운명을 좌우하기에 후임 군수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첫째, 현재보다 미래를 내다보며 기본과 원칙을 지켜나갔으면 한다.2011년 취임 당시 칠곡군은 전국 82개 군(郡) 단위 자치단체 중 예산 대비 채무 비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한 해 이자로만 3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심지어 시중 금리보다 훨씬 높은 6% 이상의 고이율 지방채도 떠안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정 불건전단체’로 낙인이 찍혀 군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필자는 일부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눈앞의 인기보다 미래를 내다봤다. 2012년부터 ‘재정건전화 로드맵’을 마련해 채무 청산 작업에 본격적인 속도를 냈다. 채무상환을 위한 재원은 고질 체납세 징수, 낭비성 예산 감축, 행사 경비 절감, 선심성 보조금 관리강화 등을 통해 마련했다.또 군수 관사를 매각하고 부채상환을 위해 각종 ‘경상경비 10% 절감’을 실천해 매년 8억원의 비용을 아꼈다.이를 통해 재정 건전성이 향상되자 지역의 명운을 결정할 대형 국·도비 사업을 본격적으로 유치할 수 있었고, 2018년 군비 부담 일반채무를 전액 상환해 국·도비 사업과 코로나19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군의 재정 건전성 확보로 차기 군수의 어깨가 가벼워지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둘째, 포퓰리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선거를 앞두고 정부에 이어 지방자치단체장들도 경쟁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민수당, 출산장려금, 육아 수당 등 지자체의 현금복지 경쟁은 우려스러울 정도다. 2017년 지자체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53.7%를 기록했으나 지자체가 앞 다퉈 무상복지에 뛰어들면서 지난해에는 48.7%로 50%대를 밑돌았다. 포퓰리즘의 망령에 사로잡힌 현금복지로 인해 재정난이 심화되어 정작 필요한 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기 어렵게 됐다. 차기 군수는 미래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포퓰리즘을 멀리했으면 한다.셋째, 지도자는 청렴해야 한다.다산 정약용 선생은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로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며 청렴하지 못하면 관리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지도자는 본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1년 취임 당시 칠곡군이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인 5등급에 이름이 올라 충격을 받았다. 강력한 자구책을 통해 청렴도가 점진적으로 상승해 현재는 경북도 최상위권인 2등급을 기록하고 있다.넷째,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과거에는 절차를 무시하고라도 목적 달성을 위해 밀어붙이는 강한 추진력이 주효했다면, 지금은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와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설득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필자는 지역민의 다양성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군민 대통합 위원회를 통해 하나의 목소리로 순화 시켜 계층 간 화합을 이끌어냈다.끝으로, 군수는 벼슬이 아닌 공복으로 봉사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군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군수를 군민들은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주도하고 민간부문에 일일이 간섭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자율, 경쟁, 책임의 원칙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중시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읽고 군정을 꾸려나가야 한다.손님은 잠시 머물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난다. 후임 군수는 다음 손님을 생각하며 행정을 펼치는 아름다운 손님이길 기대해 본다.

2022-02-06

상부상조 정신

좀도리라는 말이 있다. 전라도 지방의 방언으로 절미(節米)란 뜻이다. 경상도에서는 종도리라고도 부른다. 아낙네들이 밥을 준비할 때 쌀이나 보리를 한줌 씩 덜어 항아리에 담아두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부엌의 한쪽에다 좀도리 항아리를 놓아둔다.좀도리 항아리에 어느 정도 곡식이 쌓이면 제사를 지낼 때나 집안에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이를 꺼내 사용한다.경우에 따라서는 시장에 내다 팔아 딸아이의 꽃신발이나 양말을 사기도 하고 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썼다. 식량이 넉넉하지 못했던 옛 시절 우리의 주부들은 이런 방법으로 근검절약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또 이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전해져 왔다.십시일반(十匙一飯)의 시(匙)는 숟가락이고 반(飯)은 밥이다. 열 사람이 자기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 다른 사람을 위해 밥 한 그릇을 만든다는 사자성어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수가 힘을 모은다는 뜻으로 쓰인다.과거 조선시대 향약은 마을 단위의 자치규약이다. 이 규약에는 마을주민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자고 한 약속을 담아 두었다. 나라의 개입 없이 주민들 스스로가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상부상조 정신을 담은 규약인 것이다.지난해 연말에 시작한 이웃돕기 성금이 1월 말로서 초과 달성했다. 법인보다는 개인이 더 많은 이웃돕기 행렬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대구는 112억원, 경북은 169억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일 예정이다.특히 이웃돕기 성금 모금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불경기를 뚫고 목표달성을 무난히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지역민들의 상부상조 정신이 빛나 보이는 결과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