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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설 민심, 야권 후보 단일화의 최대 변수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주말 다녀온 고향마을에서도 주된 화제는 역시 대통령선거였다. 그중에서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될 수 있는지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었다. 아마 설 연휴가 지나면 이러한 유권자 관심은 여론조사에 반영돼 나타날 것이다.과거 대선후보 단일화 사례를 보면 대체적으로 선거 30~40일 정도시기에 단일화에 합의했거나, 단일화 방식에 합의했다. 내일(27일) 한 시민단체 주관으로 처음 열리는 야권후보 단일화 토론회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주목이 된다.국민의힘 원희룡 선대본부 정책본부장과 국민의당 이태규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최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언급한 내용은 후보 단일화의 어려움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날 원 본부장은 “추울 땐 난로가 필요했는데 지금 봄이 왔다”며 윤 후보의 ‘자강론(自强論)’에 무게를 싣는 당내기류를 강조했고, 이 본부장은 “단일후보 조사를 했을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경쟁력에선 안 후보가 월등히 높다”며 안 후보의 독자출마론을 거론했다.양당의 입장도 그렇지만, 현재로선 후보단일화로 가는 길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안 후보 지지율이 20%선까지 갈 경우 유권자들의 단일화 요구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강 1중 구도가 고착화 되면 야권의 후보 단일화 없이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일화 여론이 강해지면 양쪽 모두 단일화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조선일보가 지난 15~16일 전국 18세이상 유권자 1천1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정권교체를 원하는 응답자 중에서 야권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65.2%에 이르렀다. 경쟁력에선 윤 후보(38.5%)가 안후보(35.9%)를 앞선 반면, 적합도에선 안 후보(41.3%)가 윤 후보(36.3%)를 앞섰다.원희룡 본부장이 언급한 것처럼, 윤 후보측은 최근들어 지지율이 상승추세를 보이면서 단일화 없이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진 듯 있다. 후보 단일화 과정의 진통 등을 고려하면 4자 대결도 해볼만 하다는 게 윤 후보 측 내부 판단이다. 특히 안 후보와 각을 세우고 있는 이준석 대표가 후보 단일화 추진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내분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윤 후보 입장에선 부담이다.그러나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높이려면 후보 단일화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 대선이슈의 중심이 후보 단일화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크다. 단일화 방식으로는 현재 ‘여론조사 경선 뒤 공동정부 구성’이 그럴듯하게 거론되고 있다. 서로 손해 보지 않고 명분이 있는 합의형 단일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윤 후보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거나 안 후보 지지율이 가라앉을 경우 여론조사 경선은 생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야권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지면 지지율 흡수와 컨벤션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대선 판세가 급변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어쨌든 설 연휴이후의 민심이 야권후보 단일화의 최대변수가 될 전망이다.

2022-01-25

예술과 기술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하)

17세기 중반 프랑스 절대왕정이 설립한 왕립미술원은 서양미술사 최초의 공립미술 교육기관이었다. 이후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곳은 스페인과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의 왕정이 미술학교를 세우는데 중요한 모범이 되었다. 아카데미의 결정적인 문제는 미술을 국가의 통치이념에 따라 통제했다는 데 있다. 아카데미는 미술의 틀과 기준을 만들었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국가에 의한 미술의 통제가 아카데미를 통해 두 세기 이상 지속되면서 미술은 권력의 미적 취향을 드러내는 선전도구로 전락했다. 불안하거나 부정한 권력은 예외 없이 문화와 예술을 엄격히 다스리려했고, 그러는 동안 무기력해진 예술의 생명력은 희미해지고 사회를 이끌었던 변화와 혁신의 힘을 잃게 된다.제도의 틀 내에서 권력화된 미술은 사변적 담론에 집착하며 세상의 변화에 충분히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미술이 미술의 협소한 우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왕정이 무너져 시민사회가 도래했다. 산업혁명으로 사회, 경제구조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달라졌음에도 미술권력은 구체제의 규범을 고수하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아카데미가 미술에 남긴 가장 치명적인 폐해는 미술과 현실을 단절시켰다는데 있다. 현실의 변화 대부분은 기술을 통해 이루어진다. 원래 미술가들은 최고의 기술자들이었다. 돌을 쌓아 상상을 초월하는 장엄한 건축들을 실현한 것이 미술가들이었고, 해부를 통해 인체구조의 비밀을 밝혀낸 것도 미술가들이었다. 미술가들은 그 오래전 이미 하늘을 나는 기계를 고안한바 있고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실현시켰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미술가들은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과학자였으며 새로움으로 세상에 놀라움을 선사했던 기술자였다. 그들은 상상했고, 상상한 것을 실험했고, 실험한 것을 기술을 통해 구현해 냈다. 그렇다면 통제된 미술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19세기 중반 폐쇄적인 권위에 항거한 미술가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아카데미 미술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들 반항아들에게 미술사는 전위대라는 뜻의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카데미 미술이 신화나 고전문학의 허구적인 스토리를 이상화하고 영웅화하는데 몰두했다면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시선은 다시 현실을 향했다. 여기서 현실을 향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우선 미술가들의 시선이 현실을 향했다는 말은 현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미술에 담았다는 뜻이다. 현실의 민낯은 언제나 생각보다 유쾌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미술이 거울처럼 현실을 그대로 비추자 대중들은 당혹감과 불쾌감, 심지어 분노를 일으켰다. 현실을 향한 미술가의 시선에 담긴 두 번째 의미는 문자 그대로 ‘본다’는 시각적 경험에 관한 것이다. 보는 것에 집중한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아카데미 미술이 도식적으로 규정해둔 시각적 관습과 습관이 아니라 직접 본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원근법의 공식을 깨트렸다. 사물과 고유색의 연결고리도 끊어버렸다. 특정한 대상에 귀속된 고유색이란 시각적 습관에 기인한 것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면에 세계를 모방해 허구를 그려내는 대신 이제 미술은 색 그 자체, 형태 그 자체를 그리게 된다. 이 순간 미술사는 비로소 미술의 순수한 본연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미술이 미술 본연의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면서 현대미술이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미 기술은 미술보다 훨씬 앞서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예컨대 현대미술의 선구자 끌로드 모네는 산업화로 나날이 모습을 바꾸는 활기찬 파리 풍경에 매료되었다. 그중에서도 굉음과 흰 연기를 내뿜으며 육중한 몸체를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는 모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런데 화가 모네가 기관차의 스펙터클에 압도당하고 있을 때 이미 프랑스 전역 주요도시들이 철도망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철도는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었고 삶의 속도는 물론이고 새로운 근대적 시간관념을 만들어 냈다. 기술혁신을 이끌었던 미술이 이제 기술에 감탄하며 끌려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 격차는 따라잡기 도저히 불가능한 정도로 벌어져버렸다./미술사학자

2022-01-24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IV)

그날 밤 경찰은 중문의 해안 절벽 아래에서 만식의 아내를 발견했다. 이미 숨이 멎은 뒤였다. 유서 따위는 없었다. 경찰은 실족사라 결론 내렸다.-어찌된 일이냐?급하게 내려온 만식이 필립에게 물었다.-와인을 찾으실 정도로 기분 좋으셨습니다. 산책을 하자 하셔서 같이 걸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쌀쌀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입으실 겉옷을 가지러 갔다 오니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았습니다. 절벽 아래에 계셨습니다.만식은 필립의 뺨을 두 차례 때렸다. 필립의 몸이 휘청했다. 만식이 한 번 더 필립의 뺨을 때리려던 순간 수행해 온 비서가 만식의 손을 잡았다.-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왜, 왜 다들 제게 이러는 건지.필립은 붉게 달아오른 뺨에 손을 대며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떨렸다.-내가 너에게 말했다. 자식을 잃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아내마저 잃고 싶지 않다고.이 교수가 병실을 나가고 만식은 옷을 갈아입었다. 하필이면 퇴원하시는 날, 죄송해요. 산전 진찰 예약이 되어 있는 날이라서. 안나가 말했었다. 하루만 더 병원에서 쉬시는 것은 어때요? 그러면 제가 와서 모실 수 있을 텐데. 산전 진찰을 미룰까요? 처음 해본 수술도 아니고 충분히 쉬었다가 퇴원하는 것이니 혼자 나갈 수 있어. 만식이 대답했다. 병원에 너무 오래 있었어. 답답하기도 하고. 우리 아기와 안나의 건강을 체크하는 일인데 미룰 수는 없지. 집에서 보도록 하지. 비서실에 이야기해 두었어. 여기로 오지 말고 안나에게 가라고. 그렇게 알고 있어. 아드님이라도 오시라 할까요? 안나가 물었다. 만식은 손을 내 저었다. 아니야, 내가 출장 보냈어. 아드님이라. 그렇지, 하나 남은 아들이기는 하지. 아직까지는. 만식은 필립을 생각했다.필립에게 핸드폰을 집어 던졌던 다음날 만식은 필립을 불렀다. 필립에게 약속을 받아야 할 것도 있었고 약속을 해주어야 할 것도 있었다. 안나를 새엄마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당연히 혼인 신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혼 관계 등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다짐해주었다. 만식은 안나와 계약서를 작성할 것이라 했다.그녀와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권리에 대한,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계약서를 만들어 공증을 받아두겠다 말했다.만식, 자신을 위해서였다. 필립이든 안나의 뱃속 아이든 자신이 허락한 것 이상을 가져갈 수도 요구할 수도 없어야 했다. 내가 죽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누가 무엇을 가지든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다르지. 내 것들이니까. 내가 이룬 것들이니까. 내가 가져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만식은 무거워진 욕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떼어내고 싶지 않았다. 욕심 주머니들을 놓아버리는 순간 한없이 가벼워져 둥둥 떠오를 것 같았다. 한 점 바람에 날려 저 세상 어딘가에 처박힐 것이 분명했다. 안나 뱃속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죽은 후 누가 무엇을 가져가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지, 아무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필립에까지 생각이 이르면 만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녀석에게 넘길 수는 없지. 언젠가는 누군가를 선택해야겠지. 하지만 그 누군가가 필립이어서는 안 돼. 그러니까 오래 사는 수밖에. 더더욱 건강하게, 더더욱 오래. 안나 뱃속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나는 저 아이가 무서워요. 만식이 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의 첫날 그녀가 말했다. 유언 같은 그녀의 말이 만식의 머리를 맴돌았다. 인정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들이 만식의 머리에서 마음으로 다시 머리로, 필립을 바라보는 만식의 눈으로 옮겨 다녔다. 만식은 첫째 아이가 죽던 날, 아내가 죽던 날의 필립을 상상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형제를 잃고 엄마를 잃은, 심지어 그 모든 자리에 있었던 필립이 불쌍하기도 했다. 간혹 그 모든 자리를 이유로 아비의 정 대신 분노를 채운 자신이 과하다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만식은 자신의 삶이 길어질수록 필립이 두려웠다. 주위를 서성이며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필립이. 그리고 화가 났다.회사의 일이든 집안일이든 만식이 정한 선을 필립이 넘어설 때마다 만식은 필립에게 물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반드시 스스로 서는 것입니다. 필립이 대답하면 언젠가, 언젠가는 그날이 오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직은 아니니 서두르지 마라, 나는 아직 굳건하다. 기다리기 힘든 일이더냐? 만식이 되묻고는 했다.-네가 약속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안나와의 계약서에 대해 이야기를 한 뒤 만식이 이어서 말했다.-말씀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저의 약속이겠습니까? 아버님의 당부이겠지요. 저는 따르기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2022-01-24

가치 정점의 安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날씨 탓일까? 춥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간간이 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가 코로나19로 침울해진 가슴에 갑갑함을 가중하고 있으니, ‘삼한사미’가 괜한 푸념이 아닌 듯하다. 겨울의 불청객 같은 미세먼지의 가림막(?)으로 새해 들어 적잖은 화재와 사고로 무고한 종사자들의 생명을 앗아가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무덤덤한 일상 같지만 날씨의 변화에서부터 사회적인 현상이나 개인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행위와 움직임 속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과 사고로 이어지는 불행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고 감독과 제재를 가하는데도 고질적인 사고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데 있다.안전(安全)이란 단어의 안(安) 자는 ‘집 속에 여자(사람)가 고요히 앉아있는 모양’이라 하여 평안함이라 설명하고, 전(全) 자는 아무 데도 흠이 없는 구슬을 지칭하여 모두 가지런한 일을 나타낸다. 즉 안전이란, 일상이건 직장이건 사회생활이건 모두 집 안에 사람이 편안하게 있는 것처럼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을 정도로 여건이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태나 행위는 모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주위의 여건을 만드는 것도, 대상을 이용하는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안전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결국 거의 모든 사고는 사람이 야기하고 인적, 물적인 피해를 스스로 입게 된다.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왜 자가당착(自家撞着)한 사고나 재해가 집요하게 꼬리를 무는 걸까? 필자의 관점에서는 시스템과 비용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고 본다. 모든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안전해야 하며, 안전해진 개개인이 모이면 부분과 전체의 안전이 확보되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안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안전한 조직’과 ‘안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공기단축이니 비용절감 같은 요소가 대두되고 관행이나 불감증이 파고들면 철통 같은 안전체계에도 구멍이 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학문에 왕도란 없듯이 안전에도 절대 왕도가 없다. 철저하게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가고 의식과 시스템으로 하나하나씩 이뤄가야 한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것은 더 까다롭고 꼼꼼하게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엄마 같은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듯이 안전 앞에서는 설마나 예외도, 우연이나 요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안전은 배워서 같이 알아야 하고 안전 시스템을 철저히 이행하며 최우선 가치로 공감하는 ‘안전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동료와 가족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지키는 것들이 나를 지켜 주듯이, 안전은 처방이 아닌 예방이 우리 가족 행복의 확실한 보증수표다.

2022-01-24

다섯 손가락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모친 칠순 잔치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준비에 한창이던 후배 하나가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딸은 그냥 딸인가 보다 하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어려서부터 아들 아들 하던 모친이, 이번 칠순 잔치에도 아들이 돈을 더 많이 쓸까 노심초사하고 오히려 딸에게는 은근히 더 했으면 하는 뉘앙스에 그만 맘이 상해 버렸다는 것이다.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자식들을 모두 골고루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속담이다. 그런데 한편, 더 아픈 손가락도 있고 덜 아픈 손가락도 있다며, 부모의 자식 사랑이 모두에게 똑같진 않다고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옛날 같으면야 대를 이을 아들을 못 낳으면 소박맞기도 했고 또 아들은 출가외인인 딸과는 달리 제를 지내주기도 하고, 남편 사후 의지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은 데도, 아들 아들 하면 딸들로서는 속상할 법도 하다.그런데 사실 부모에게는 어떤 손가락이든 중요하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더 아프고 덜 아픈 손가락이라기보다는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손가락일 가능성이 크다.‘나 혹은 네가 최고’라고 하거나 반대로 아래로 내려 형편없음을 야유할 때 사용하는 엄지, 방아쇠 당기는 흉내 낼 때 혹은 남을 향해 삿대질 할 때 필요한 검지, 가장 길고 아름답게 뻗어서 손의 미학을 완성시키는 중지, 약혼 반지를 끼울 때 꼭 필요한 약지, 그리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맹세할 때 사용되는 소지처럼 말이다.즉 상황에 따라 이 손가락 저 손가락이 생각나는 것이지, 모든 손가락이 부모에겐 다 소중한 것이다. 모든 손가락이 소중하다면, 이를 똑같이 대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문제이다.손가락이 부모에게 자식과도 같듯이, 임금에게는 신하 및 백성과도 같고, 스승에게는 제자와도 같다. 무릇 부모된 자, 임금된 자, 스승된 자들은 모든 손가락을 골고루 살피고, 그중 아픔이 있는 손가락을 특별히 더 돌보되 다른 손가락을 무시하지 않고 함께 보듬어 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소외된 손가락이 없도록, 옛 임금들은 궁궐을 빠져나와 잠행(潛行)을 하며 시정을 살폈고, 딸이라고 차별않고 아들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게 한 부친 덕에 난설헌은 당대 최고의 여류 시인이 될 수 있었으며, 10세에 겨우 글을 깨칠만큼 우둔한 아들이었건만 꾸준히 지지해 준 부친 덕에, 김득신은 조선조 유명 시인이자 독서광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바야흐로 설 연휴가 코앞이다. 항상 명절 때 단골로 나오는 뉴스 중 하나는 집안끼리의 불화, 싸움, 형네, 아우네 시시콜콜 재산 문제로 언성을 높이다가 즐거워야 할 명절이 아수라장이 되는 기삿거리다. 부디 이번 명절에는 다들 손가락들과 손가락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조화를 이루어,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거나 등이 가려워 긁을 때, 악수를 할 때나 손뼉을 칠 때처럼 하나된 마음의 ‘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2-01-24

‘2050 탄소중립’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삽시간에 팬데믹 감염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22년 1월 23일 기준 전세계 약 3억5천만명이 확진되고 약 561만명이 사망하였으며, 우리나라는 약 73만4천명이 확진되고 6천540명이 사망하였다.그동안 다양한 백신과 치료약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변이종의 발생으로 언제 종식이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설사 이전에 사스나 메르스와 같이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감염병 출현이 우려되고 있다. 그 이유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로 인해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의 서식환경이 인간과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아직 파악되지 않은 수만종의 감염병유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갑자기 노출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코로나19는 실수로 떨어진 발등에 불이라면 기후변화는 아름다운 우리 산골마을을 통째로 집어삼킬 대형산불이다. 매년 이전에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한파와 폭염, 집중호우와 대형산불들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는 곧 닥쳐올 엄청난 대재앙의 전조임에도 강건너 불구경 마냥 한가로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글로벌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를 기후위기(Climate Crisis)보다 더한 기후재앙(Climate Disaster)으로 표현하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535억t(한국 7.1억t, 2017년 기준)을 완전히 없애는 탄소중립(Carbon Neutral)을 주장하고 있다.탄소중립은 인간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흡수 또는 제거해서 실질적으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기후변화를 2100년 이전에 완전히 멈추고 1.5℃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반드시 전지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넷제로(Net-Zero) 상태로 도달시켜야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2050과 탄소중립을 같이 붙여 시기적 의미와 넷제로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탄소로 지칭하는 온실가스는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CO2) 외에도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화불화탄소(HFCs) 등 매우 다양하다.2021년 11월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 190개국 3만여 인사들이 참가한 제26차 UN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 겸 세계 130여 정상들이 참석한 정상회의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2050탄소중립 의지를 확고히 했다.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참석하여 비교적 대담한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시하였다. 종래보다 14%나 상향한 감축목표로 발전, 산업, 수송 등 전분야에서 감축률을 크게 상향하였다.우리 대구와 경북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2018년 현재 각각 약 1천666만t과 7천688만t으로 1990년 대비 82.5%와 112%나 증가하였고, 2030년까지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경북에서 2050 탄소중립을 강건너 불 보듯 하면 매우 곤란할 것 같다.

2022-01-24

에너지 캐시백

에너지 캐시백은 이웃보다 전기를 덜 쓰면 그만큼 현금으로 돌려주는 국민 에너지 절감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절감량 산정은 올해 2~5월의 전기사용량과 과거 2개년 2~5월 전기사용량 평균을 비교한다.정부는 최근 세종과 전남 나주, 충북 진천 등에서 에너지캐시백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아파트 단지 단위로 참여할 경우 절감량에 따라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 개별세대별로 참여하면 1kWh(키로와트시) 당 30원을 현금으로 돌려준다.예컨대 나주시 전체 43개 아파트 단지 중 20개 단지(1개 단지 평균 600세대, 1세대당 평균 500kWh 사용)가 단지별 경쟁을 신청하고, 단지별 경쟁에 참여한 전체 단지의 연간 평균절감률이 1%인 경우 평균절감률보다 각 참여단지의 연간 절감률이 높으면 절감량 구간에 따른 지급단가를 현금으로 돌려준다.아파트 단지 내 각 세대도 개별적으로 참여 가능하다. 전체 참여세대의 평균 절감률보다 높게 전기를 절약한 경우, 전기 절감량에 대해 1kWh 당 30원의 캐쉬백을 지급한다.만약 나주시 전체 2만6천900세대 가운데 8천세대(세대당 월 500kWh 사용)가 세대별 경쟁을 신청하고 세대별 경쟁에 참여한 전체 세대의 연간 평균 절감률이 5%(연간 평균 절감량 300kWh)인 경우를 가정하면 전체 참여세대 연간 절감량은 240만KWh(300kWh x 8000)다. 평균절감률보다 각 참여세대 연간 절감률이 높은 경우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인류에게 생존의 위협이 되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캐시백 사업은 탄소중립 노력의 일환이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바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24

독도 수호단체 247개… 연구망 확대 필요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최근 독도재단의 독도 관련 기관·단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외 독도 수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수가 247개로, 지역별로는 서울이 115개로 가장 많고 경북이 47개소, 대구 16개소, 경기 11개소 순으로 나타났다. 종류별로는 민간단체가 158개소로 가장 많고, 정부 및 지자체가 42개소, 대학 부설 연구소 및 학술단체가 29개소이다. 독도에 대한 국가 혹은 국민적 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이다.독도 영토주권 수호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연구기관과 민간단체간 유기적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연구기관의 민간참여연구의 모범사례로서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가시일수 조사 사업이 있었다. 이 사업은 2008년 7월부터 1년 6개월간 울릉도 특정장소에서 울릉주민이 매일 독도가 보이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이다. 국내 독도 연구자들이 유사한 연구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고려할 때 연구기관과 민간의 협업연구를 통한 독도 연구의 지평 확대는 매우 의미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민간 협업 연구 관련해 최근 일본의 울릉도 향토사 연구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그동안 시마네 지역 향토 사학자를 중심으로 독도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해 오다가 오키신보, 울릉도우회보 등 울릉도 관련 자료를 발굴하여 울릉도 향토사 연구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는 울릉도·독도 관련 향토사 연구는 대단히 미비한 편이다. 이러한 울릉도·독도 향토사 연구는 지리적 특성상 독도 연구기관으로만 한계가 있으며, 울릉도의 민간단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이런 협업은 바다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독도 해역에서 오랫동안 물질을 하며 장기간의 바다 변화를 관찰해 온 해녀야말로 진정한 바다 생태학자이며 기후연구학자라 할 수 있다.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해녀와 과학의 만남은 유사한 연구를 반복하는 독도 연구의 새로운 지형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독도 관련 민간단체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활동을 해온 울릉주민으로 구성된 민간단체가 있다. 먼저는 향토사랑이 곧 나라사랑이라는 취지로 1988년 5월 창립된 푸른울릉독도가꾸기회이다. 독도 관련 민간단체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이다. 1996년까지 독도나무심기 활동을 주로 전개했으며, 1988년 한국탐험협회, 한국외국어대 독도연구회와 함께 울릉도-독도간 뗏목탐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 뗏목탐사는 독도 관련 대표적인 노래인 한돌의 ‘홀로아리랑’ 탄생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이덕영은 발해의 해상 무역 항로 복원을 위해 발해 당시의 기후조건과 항해조건을 고려하여 뗏목으로 발해 항로를 탐험한 발해 1300호 선장으로 활동하였다.푸른울릉독도가꾸기회는 또한 한국외국어대 독도연구회와 연계하여 독도 미군폭격피해 사건 자료 발굴과 함께 독도의용수비대 보훈 활동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전라도 여수 거문도 지역 답사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전라도 지역민들의 울릉도·독도 도항과 독도 명칭 유래 조사 등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는 1991년부터 2007년까지 단체의 회장을 역임한 울릉주민 이예균 회장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이예균 회장(1948~2018)은 독도 관련 연구기관과의 활발한 연계를 통하여 울릉도 향토사 연구 및 독도 현장 연구가 확장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이예균 회장은 또한 독도 주민의 정주 여건 개선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울릉도 및 독도 연구가 이 만큼 발전하는데는 이예균 회장과 같은 숨은 공로자가 있었기 때문임은 분명하다.울릉도의 민간단체로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단체는 2013년에 발족된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울릉군지부이다. 독도는 울릉주민의 삶의 터전이며 또한 행정구역상 울릉도의 부속섬으로서 울릉도와 연계하여 울릉주민의 삶의 터전과 문화로서 독도를 지킬 필요가 있다. 슬로푸드 울릉지부는 울릉도의 토속 음식을 바탕으로 울릉도의 전통 문화 보전에 역점을 두고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울릉도에는 7종(섬말나리, 칡소, 옥수수엿청주, 울릉홍감자, 긴잎돌김, 울릉손꽁치, 물엉겅퀴)의 특산물이 국제슬로푸드협회에 의해 맛의 방주로 지정된 바 있다. 최근 경북도와 울릉군에서는 울릉도의 산채 관련 음식·생활 문화에 주목하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추진을 준비중이며, 또한 울릉손꽁치어업 또한 국가중요어업유산 추진을 준비중에 있어 후속 활동이 기대된다. 울릉도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문화로서 독도를 지키는데 있어서 울릉도·독도 육상 식물 및 해양생태 연구기관과의 활발한 협업을 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슬로푸드 울릉지부와 함께 2016년 발족된 울릉문화유산지킴이 또한 울릉도 문화유산 보전과 울릉 주민에 의한 독도 영토 수호 활동에 기대되는 단체이다.해양수산부에서는 매년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독도 관련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교육·홍보 및 연구·조사 활동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가시일수 민간 참여 연구 사례처럼 독도 연구기관과 민간단체 협업 사업을 보다 장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최근 일본의 울릉도 향토사 연구 동향과 관련하여 울릉도 내 민간단체의 역할을 보다 확장할 수 있는 국가적 관심과 활동 지원도 필요하다.

2022-01-23

근골격계질환과 현장중심의 맞춤형 운동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근골격계 질환이란 반복적인 동작, 부적절한 작업자세, 무리한 힘의 사용, 날카로운 면과의 신체접촉, 진동 및 온도 등의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건강장해로서 목, 어깨, 허리, 상·하지의 신경·근육 및 그 주변 신체조직 등에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이와 같은 작업관련 근골격계 질환은 초기에는 증상호소 이외에 특별한 진단방법이 없어 객관적인 임상검사에 의한 조기진단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초기에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기능장해를 동반하여 복합적인 질병의 형태로 진전될 수 있다.최근 산업재해분석에 의하면 근골격계 질환은 35세 이상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신체부담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발생율이 27.9%에 달하고, 이중 허리통증은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이고 있다. 여러 직종 중 제조업 근로자의 산업재해는 40%에 이르고, 이중 70% 이상이 신체부담작업으로 인한 허리통증이라고 보고되었다. 이같이 근골격계 질환은 산업재해 주요 유형이며, 특히 제조업 종사자와 연령이 높을수록 증가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보건교육과 작업부하 및 부적절한 자세, 그리고 직무스트레스 등과 같은 주요 근골격계 질환 유발 원인과 이에 대한 인간공학적 개선에만 집중하고 있어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이와 달리 선진국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인간공학적 접근과 함께 자각증상이 있는 사람을 위한 통증 경감을 위한 운동을 조기 관리프로그램으로 적용하고 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노동 상실 일수가 유의하게 줄었다는 효과가 검증되면서 정부 부처가 나서서 개별 사업장에 맞는 운동프로그램을 개발하기를 권장하고 있다.그런데 개인별로 차별화하지 않은 획일적인 운동프로그램보다는 근로자의 작업형태에 따른 근골격계의 변화를 반영한 맞춤형 운동프로그램이 통증 감소와 더불어서 휴무일수와 재해율 및 보상비용이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는 게 국내외 연구들의 공통된 결과이다.근골격계는 자세나 동작을 잡는 것에 관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근골격계는 호흡을 담당하고 혈액순환에도 참여하며 몸의 신진대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근골격계의 기능과 역할은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다.인체의 기능 중심 관리는 운동이 핵심이다. 운동은 근골격계의 유연성, 근력, 근지구력, 평형성, 민첩성, 순발력 및 협응력 등을 향상시킨다. 그러나 혼자서 운동하거나 비체계적인 운동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올바른 운동은 바른 자세와 동작 및 기능적 활동을 통해 작업 자세 및 작업 능률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폐기능이 향상되고 골관절염 증상이 감소한다. 심폐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천천히 오래할 수 있는 고정식 자전거, 수영 등 충격이 적은 운동 종류가 적합하다. 운동 강도는 중등도 이상이어야 하는데, 일반인의 경우 최대산소섭취량의 60% 정도가 해당한다. 중등도 이상의 유산소성 운동을 1주일에 최소한 3회, 매번 50분 이상을 해야 심폐기능이 향상된다. 자신의 건강 및 체력상태에 맞는 운동의 강도와 빈도 및 시간은 전문기관의 운동 부하 검사를 통해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근력운동은 근육에 대한 산소공급능력, 특히 혈류량을 늘려 지속력을 높인다. 자신의 몸무게를 이용하는 앉았다 일어서기, 팔굽혀펴기 등 맨몸운동부터 시작해서 밴드, 아령이나 바벨을 사용하는 운동 유형이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근력을 향상시키려고 할 때에는 최대근력(1RM)의 80~85%를 6~8회 반복하고, 근지구력 강화를 위해서는 최대 근력의 60% 이하 무게를 15~20회 반복하는 방법이 적합하다. 근력운동은 인체의 적응 및 회복시간이 필요하여 운동 형태에 따라 일주일에 2~3회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근력운동을 할 때에는 숨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데, 근육이 수축하여 힘을 낼 때 숨을 내쉬고, 반대 동작에서는 숨을 들이쉬어야 흉부 압력이 감소되어 무리가 없다.유연성운동으로 스트레칭은 근육동통을 감소하고 상해를 예방하며 기능 활동을 향상시킨다. 정적 스트레칭이 근육에 주어지는 긴장도가 적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스트레칭의 원리는 근육의 길이를 확장하여 늘려주는 것인데, 유연성 향상을 위해서는 근육을 정상의 길이보다 약 10% 이상 늘려야 한다. 한 번 늘리는 시간은 근육의 긴장 지점에서 들숨과 날숨을 길게 5~6회 반복하거나 20~30초 정도가 적절하다. 스트레칭 횟수는 최소 주 3회, 주 5~6회가 이상적인데 매일 해도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 스트레칭은 무엇보다 정확한 자세가 중요하며 근육이 이완된 상태에서 하면 더 좋다.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근로자 대상의 맞춤형 운동프로그램이 통증과 장애지수 개선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휴무일수와 재해율 등이 줄었다는 연구결과들이 계속 제시되고 있다.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들처럼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조치로서 인간공학적 접근만으로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근골격계 자각증상자를 위한 현장중심의 맞춤형 운동프로그램을 적극 시행했으면 한다.

2022-01-23

지방정치인의 덕목과 자질

서건식(사)안전모니터봉사단 영주지회장 정치에 나서려는 사람들은 진실로 자신을 돌아봐야한다. 무엇을 위해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내가 남보다 경쟁력이 얼마나 있는지, 내 마음속에 국민이나 지역주민을 위해 헌신할 자세가 돼 있는지, 정치인으로 살아가기에 자질과 덕목을 갖추었는지, 정무적인 판단을 잘 할 자신이 있는지도 스스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첫째는 정치인의 최대덕목은 인성이다.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그 사람을 알려면 과거를 보라는 말도 있다.당선을 위해 공천권 자를 위한 정치활동이 아닌 주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인이 돼야 한다.둘째는 지역발전의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이다.출산율 저하와 수도권 집중으로 지역이 소멸해가고 있고 상황에서 당선을 위한 달콤한 공약보다는 10∼20년 후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중장기의 비전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과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셋째는 열정과 실천의지다.지역 정치인의 마인드는 부모가 자식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그 이상의 애정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오직 지역의 발전과 주민들의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서 헌신하고 실천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넷째는 소통과 공감능력이다.집행부와 의회가 권력남용이 아닌 상호 견제와 협력이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며,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서 일방적인 독선이 아닌 이해당사자와도 소통으로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설득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다섯째는 청렴성과 도덕성이다.많은 정치인들이 임기 중 뇌물과 횡령 배임 등으로 처벌을 받고 있다.후보시절에는 누구나 도덕성과 청렴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여섯째는 화합과 통합능력이다.후보 때는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지만 당선 후에는 화합과 포용의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라 할수 있다.사람의 인성과 능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정치인이 되려면 오랜 기간 동안 정치 입문을 위한 사전준비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검증을 받아 후보자로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이제 제20대 대통령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선거 직후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예비후자등록이 2월 1일부터 시작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자질은 필수고 덕목과 인성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갖추고서야 출마를 결심해야 할 것이다.이기심이 가득한 출세지향주의자들의 선거판이 아닌 주민을 위한 덕목을 갖춘 준비된 후보가 많이 나와서 선의의 경쟁을 하길 기대해 본다.지방자치가 실시된지도 30여년이 지났다.많은 시행 착오와 발전적 변화 등 다양한 경험이 축적 됐다.지방자치가 시행된 시간만큼 정치를 하려는 이들의 역량과 자질 또한 성장했길 바라는 마음이다.이번 지방선거가 감투와 작은 권력쟁취를 바라는 이들의 각축장이 되지 않길 다시한번 바라 본다.중국 북송 때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사마광이 말하기를 “재주와 덕을 갖춘 사람은 성인(聖人)이고, 둘 다 없으면 우인(愚人)”이라고 한다.덕이 재주를 앞서면 군자(君子)요, 재주가 덕을 앞서면 소인(小人)이다.무릇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서 소인을 얻느니 차라리 우인이 낫다”고 했다.사마광은 정치인 중에서 필요한 덕목을 크게 2가지로 봤다.그것은 재주(능력)와 덕(성품)이다.정치인을 평가할 때 우선순위는 재주와 덕을 겸비 한 인물로 성인이라 평하고 그 다음으로 덕을 갖춘자로 군자, 재주와 덕이 없는 이를 우인, 재주만 있는 자를 소인이라했다.어떤 사람을 선택하냐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권한이다.권리와 권한,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길 바라는 마음이다.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행복은 유권자 스스로의 몫이다.

2022-01-23

난젓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귀에 익숙한 바이올린 소리가 통화연결음이다. 봄에는 봄이, 여름엔 여름이더니 12월부터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그것도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 노래로 곡명이 잘 못 알려진 ‘2악장 라르고’이다. 겨울이 왔다고 음악으로 알려준다.겨울이면 내 고향 안동에서는 집 집마다 겨우살이 준비로 김장에다 한 가지를 더했다. 바로 난젓이다. 난젓은 겨울에만 해 먹는 음식인데 동태나 생태를 물 좋은 놈으로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가운데 큰 뼈만 없애고 대가리부터 꼬리, 내장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두들겨서 만들었다. 무를 아주 많이 채 썰어서 넣고 마늘, 생강도 아끼지 않았다. 거기에다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릴 때, 국간장과 천일염으로 간을 맞췄다. 제일 나중에 재피가루를 넣은 후 단지에 차곡차곡 재운다. 시원한 곳에 놓고 발효시켜서 겨우 내 먹는 별미였다. 닭찌짐처럼 씹을 때마다 잔뼈가 씹히는 식감이 독특하다. 그러니 잘 두드려야 한다.우리 집은 할아버지께서 젓갈을 특히 좋아하셔서 매일 상에 서너 가지를 올렸다. 명란, 창란같은 것은 장에 나가셔서 깡통째로 사다 놓고 드셨다. 젓갈용 작은 접시가 몇 개, 김, 생선의 제일 중간 토막, 달걀찜 같은 찬이 차려진 할아버지 전용 개다리소반을 들고 사랑채에 내 갔던 기억이 있다.난젓을 담그는 날은 온 동네가 명태 다지는 소리로 떠들썩했다고 한다. 칼부터 쇳돌에 갈아야 한다. 제사가 많아서인지 할아버지 칼 가는 솜씨는 깔끔했다. 요즘 내가 쓰는 부엌칼로 생선을 다졌다가는 이가 다 나갈 테니, 대장간 불에서 달구며 만든 무거운 식칼을 사용해야 한다. 명태 본래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난타가 이어진다.고기가 준비되면 무채를 썬다. 무는 접실무가 맛이 좋다. 우리 동네를 접실이라 부르던 조선 시대에 영조(英祖) 임금이 접실무의 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하에게 구해 오라고 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게으른 신하는 한양의 동대문시장에서 무를 구해다 바쳤고, 그게 들통나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니 내 고향 무맛은 안 봐도 비디오다. 싱싱한 동해에서 잡은 명태에 달고 맛있는 접실무를 버무려 만들었으니 최고의 반찬이었다.고향 떠나온 지 40년이 넘은 나는 잊어버린 음식이었다. 평택 사는 인숙이가 삼촌이 즐겨서 자주 해 먹었다며 그 맛을 기억하고 만드는 방법까지 알고 전해주었다. 지금 안동에도 해 먹는 집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했다. 오래 다져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도마 소리가 아랫집에 들려서 아파트에서는 항의 들어올 일이라 더 하기 힘들다. 시골집 마당에 멍석 깔고 집안 여자들이 다 나와 다지고 썰며 수다로 하루가 저물어야 만들어진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르고 우리 엄마 세대가 돌아가시면 난젓도 함께 사라질지 모른다.난젓 기억나냐고 친정엄마께 전화로 여쭈었다. ‘느 할아버지가 육고기에 생선 없이 식사하는 분이냐.’ 는 이야기부터 마뜰에서 소 피를 사와 선짓국을 끓였다는 이야기, 부엌은 창살이 뚫린 곳이라 한 데나 마찬가지여서 상에 접시를 놓자마자 얼어서 주르륵 미끄러지더라, 찬물에 손이 얼면서 끼니때면 식구마다 상을 차리니 상이 네 개였다고, 그땐 젊어서 감당했었지 한다.퇴근 시간이 맞아 아들 회사 앞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컬러링보다 음질이 좋은 것으로 골라 비발디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겨울 중 2악장을 들었다.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한 것이 쨍하게 추운 겨울을 지나온 뒤 따뜻한 난로 옆에서 뜨개질하는 할머니와 가족들이 평화롭게 쉬는 듯한 풍경이 그려진다. 추운 겨울이지만 오히려 푸근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며 충전하라는 소리 같다.난젓이 담겼던 단지가 바닥을 보일 즈음이다. 그러니 긴 겨울이 반은 지났다. 소한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고 하는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 대한이 그제다. 봄이 멀지 않았다./김순희(수필가)

2022-01-23

희망을 찾아가는 선거

김진국 고문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대통령 선거전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과거만 있고, 미래가 없다. 득표를 위한 사탕발림과 홍보 기술이 늘었지만 꿈과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내는 선심 공약을 보면 나라 곳간이 거덜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우크라이나 국민은 정치 풍자 드라마 ‘인민의 종’에서 사이다 발언을 한 코미디 배우 볼로디미르 젤린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로 끝났다. 젤린스키는 코미디언 친구와 친척들을 정부 요직에 앉혔다. 전문가 없는 아마추어 국정은 표류하고, 내분이 격화됐다. 러시아가 군대를 국경에 집결해 무력 위협을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젤린스키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우리는 그보다 나은가.뽑을 후보가 없다는 사람이 많다. 대선 후보의 비호감도가 더 높다. 지난 연말 한국리서치 조사를 보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호감도가 39.3%인데, 비호감도는 59.1%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호감도 38.0%에 비호감도 60.5%.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좋아서 찍는 게 아니라 더 싫은 후보를 떨어뜨려야 하는 투표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축제가 나라를 걱정하는 선거가 됐다.후보들이 추경 액수 올리기를 경쟁한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내지르는 모양새다. 올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게 겨우 지난달이다.그뿐 아니다. 후보마다 돈 나눠주는 공약을 쏟아낸다. 장년 수당, 청년 기본소득, 아동수당, 문화예술인 연금…(이재명 후보),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확대, 무상급식 확대, 부모 급여…(윤석열 후보). 결국 세금 올리고, 나랏빚 얻어야 할 약속들이다. 막걸리, 고무신 선거와 무엇이 다른가.북한이 새해 들어서만 4번이나 미사일을 쏘아대는데 이재명 후보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한다.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책, 사이버 안보를 위한 예산은 언급 없이 사병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것을 서로 자기 공약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표에 대한 아부다.선거 쟁점들이 미래보다 과거에 쏠려 있다. 후보와 후보 가족의 과거를 뒤지는 일이 미디어를 뒤덮었다. 아무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지만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 집권 뒤에도 정적의 뒤를 파고, 공격하는 일에만 몰두할 거라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그는 새 시대를 준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결단했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착수했다. 에너지도 내부 토론을 거쳐 원자력발전이 당분간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결론 내렸다.문재인 대통령은 “나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과거만 쫓아다니다 끝나간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에 매달렸다. 그런데도 조국·윤미향 사건과 잇단 성 추문에서 자기 진영 사람은 철저히 감쌌다. “극우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장기 집권’ 발언은 적폐 청산의 숨은 의도를 말해준다. 오죽하면 이재명 후보마저 조국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국민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고 실망시켜 드리고 아프게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사과했을까.정치적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의회 정치가 불가능하다. 정적을 적폐로 몰고, 반일 감정을 이용해 진영 단합을 도모한다. 심지어 우당(정의당)의 뒤통수까지 치며 의회를 장악했다. 선거에 잠시 유리할 수 있지만 국가 앞날은 깜깜하다.중앙선관위 전 직원이 들고일어나 상임위원 유임을 반대했다. 검찰과 법원, 선관위…. 선수들이 심판을 맡는 나라가 정상적인 민주국가인가. 선거가 끝나면 또다시 복수혈전, 과거 집착을 반복하지 않을까. 제왕적 대통령 당선이라는 ‘한방’에 모든 운명을 거는 정치, 그런데도 최선(후보)을 찾을 수 없는 선거…. 이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그래도 우리는 투표장에 가겠지. 차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하기 위해. 우리까지 내일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본사 고문

2022-01-23

자치분권 2.0 시대, 포항시의회의 과제

정해종포항시의회 의장 지난 1월 13일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문을 열었다. 1988년 전부 개정 이후 32년 만에 다시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핵심은 주민 참여와 지방의회 기능의 강화다.실질적 자치분권의 실현과 지방자치제도의 완성을 도모하려는 자치분권 2.0시대를 맞이하여 주민참여 확대와 지방의회의 위상과 권한이 확대되는 추세가 입법에 반영된 것이다. 물론, 그에 비례하여 지방의회의 책임성과 투명성도 강조되었다.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주요 내용은 크게 주민조례발안제와 지방의회의 인사권독립, 정책지원관제 도입이 그 핵심이다. 그 밖에 의회정보공개 확대, 기록표결제도, 지방의원 겸직신고·공개, 윤리특위의 의무화 등이 법률에 반영되었다.개정안은 주민들이 직접 조례안을 만들어 지방의회에 청구할 수 있는 주민조례발안과 주민감사, 주민소송 청구 기준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하향했다. 주민감사 진행에 필요한 청구인 숫자도 줄였다. 우리 포항시에 해당되는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는 300명에서 200명으로 청구기준이 완화되었다.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이다. 인사권 독립은 지방의회의 숙원 사업이었다. 지금까지는 의회사무국 소속 직원 임용권이 단체장에게 있었다. 즉, 포항시장이 시 소속 공무원들을 포항시의회 사무국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임용해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의회 소속 사무직원 임용권을 지방의회 의장이 가지게 되어 의회의 자율성이 강화된다.지방의회의 정책 역량강화를 위해 의정활동 지원을 하는 전문인력인 정책지원관을 둘 수 있다. 의원정수의 1/2 범위에서 두게 되는 전문인력은 의정자료 수집과 조사, 연구 및 의정활동 지원을 하게 된다.그동안 다소 미흡했던 시민참여의 주민자치 영역과 지방의회의 전문성, 투명성의 제고를 위해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었다. 하지만, 당초 국회논의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가 특례시 조항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점은 우리 포항시의회의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운 부분이다.인사권은 독립되었지만 조직구성원과 예산편성권은 여전히 집행부의 권한으로 남겨진 부분 또한 아쉬운 점이다.현재 포항시는 국-과-팀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포항시의회는 사무국장 1명에 전문위원 8명, 3명의 팀장으로 ‘과’없이 팀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다. ‘과’설치도 시급하다. 앞으로 견제와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구성원과 예산편성권도 완전히 독립되어야 할 것이다.새로운 변화의 시기에 주민참여의 문턱을 낮추고 지방의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방의회의 분발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커진 권한만큼 책임이 매우 무겁다. 이에 포항시의회는 자치분권 2.0시대의 출발선에서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한 새로운 각오를 다져 본다.

2022-01-23

웃음과 가면

김규종 경북대 교수 내 집의 이름은 ‘파안재(破顔齋)’다. ‘파안대소(破顔大笑)’라는 한자어에서 따온 것이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게 웃는 웃음이 파안대소다. 실제로 이런 웃음을 언제 웃어보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나처럼 웃기 좋아하는 사람이 이럴진대 2022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 가운데 파안대소하는 분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웃음의 기억이 흐려져 가는 개인과 사회, 국가는 건강하지 못하다. 웃음은 건강의 징표이기 때문이다.유치원과 요양병원 가운데 웃음소리 들리는 곳이 어딘지 생각해보면 결론이 나온다. 전염성 강한 웃음은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필수 요건이다. 웃음의 걸림돌이 되는 사회악과 시대정신, 개인 혹은 집단의 세력이 강하면 웃음은 사라진다. 웃음 대신에 억압과 강제와 법과 공권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횡행하는 사회는 고장 났거나, 회복 불능의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법이 지배하는 사회는 언뜻 공정하고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착시현상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상군 열전’의 주인공 상앙 혹은 공손앙 내지 상군(商君)의 최후가 그것을 웅변한다. 상앙의 변법으로 전국 7웅의 강자로 부상한 진나라가 훗날 천하를 통일하여 중국 최초의 제국을 이루지만, 불과 15년 만에 망한다. 법가로 통일할 수는 있을망정, 제국을 경영할 수는 없다는 교훈이다.법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가면이 횡행한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감추고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 득시글거리는 세상. 웃음은 눈물만큼이나 개인의 속내를 밖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그런데 웃음을 억압하는 제도적 장치가 법률적으로 보장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정치풍자와 웃음이 오래도록 금기시된 우리나라 같은 사회에서 웃음은 불경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중세 유럽의 기독교가 강제한 엄숙주의와 경건주의가 웃음과 희극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폭력적으로 억압한 일은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의 초월적 절대자 자리에 인간과 인간의 눈이 들어서면서 중세 천년은 종언을 고한다. 그와 함께 인간의 관점과 기준, 인간의 웃음과 눈물이 신과 교회를 대신한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은 교회가 강제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카니발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코로나의 세계적인 유행과 더불어 우리는 2년 넘도록 마스크의 가면을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우리는 그나 그 여자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진짜 표정과 속내를 읽어낼 수 없다. 모두가 마스크의 외피 안에서 내면을 감추고 살아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간과 인간의 격의 없는 유대 관계가 약화-붕괴하기에 이르렀다.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 숫자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이해관계의 충돌, 세계관의 마찰, 세대의 불협화음, 서울과 지방의 불평등, 각종 사회적 모순의 격화가 가면 뒤로 숨는 기괴한 현상이 전개된다. 자, 가면부터 벗어보면 어떨까?!

2022-01-23

퍼주기 경쟁

3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면 과연 살만한 세상이 올까. 여야 대선후보 누가 당선돼도 청년 일자리가 늘고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불공정과 양극화 문제도 해결될 것 같다. 또 국민소득 5만 달러와 경제규모 세계 5위권 대국도 멀지 않을 것 같아서 해보는 소리다.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들이 쏟아내는 공약을 보면 이런 착각에 빠진다. 선진 복지국가가 바로 문턱 앞에 와있다. 대선 후보들의 뻔한 공약인 줄 알면서도 국민의 귀는 그래도 솔깃하다. 공약 실천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제시가 없어 황당하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덕이 된다면 기대감을 떨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이번 대선 후보들의 퍼주기 경쟁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열된 분위기다. 한 후보가 연말 기본공제액을 1인당 2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니 같은 날 오후에 다른 후보는 자녀세액 공제를 올리고 인적 공제연령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도박판에서 맞받아치기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정치인의 포퓰리즘이 국가 경제를 멍들게 하고 나아가 나리를 망친 사례가 많은데도 표만 된다면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공약을 쏟아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공약이 쏟아질지 걱정이다.정치는 약속이다. 공자도 “정치는 올바름(正)”이라 했다. 바르게 하는 것 이상의 정도는 없다는 뜻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정치에도 적용되는 말이다.좋은 정치는 국민을 기만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부족한 부분들을 공평하게 채워준다. 넘치는 게 있다면 이를 덜어내고 우리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경쟁적 퍼주기는 이미 적정선을 넘었다. 국가 미래부담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곤혹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23

공영방송의 퇴조

1927년 영국 왕실의 칙허장을 받고 시작한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강력한 공영방송사로 유명하다. 공영방송이란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는 데 있다. 시청자로부터 받은 수신료를 재원으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송이다. 국가가 재원을 맡아 관리하는 국영방송과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민간방송과는 다르다.공영방송은 정부나 광고주의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 엄격하게 공영을 유지하려는 것은 방송으로서 공적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존립해야 하는 이유 중에는 상업방송이 방송의 공익성을 유지토록 견제하는 기능도 있다.영국 정부가 BBC방송의 수신료를 2년간 동결하고 면허기간이 끝나는 2028년에 폐지키로 했다는 외신이다. 현 총리의 정국 타개용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수 백개 채널이 경쟁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등으로 존재감을 잃은 것이 근본 원인이다.BBC는 2020년 시청자 평가에서 넷플릭스에 선두자리를 내주었고 유튜브에 추격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또 최근에는 젊은층이 거의 보지 않는 방송사로 조사돼 수신료 폐지에 결정타를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시청자나 독자가 없는 언론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것은 저널리즘의 냉혹한 현실이다. 저널리즘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언론사에 시청자나 독자가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진보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최근 야당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통화녹취 파일 방송과 관련, “공영방송의 선택적 공익”이라는 비판을 했다. 어느 한쪽이 생각하는 공익만으로 진정한 공익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공영이든 그 어떤 언론도 본분을 잃으면 수용자가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20

‘미러링 대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요즘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용어가 ‘미러링 현상’이다. 서로 다른 정당 후보의 주요 정책이 닮아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실제로 20대 대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제1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주요 정책이 매우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이들 후보의 정책공약 발표 현장에서 만난 상당수 당원들도 “우리당 후보의 정책공약과 상대당 후보의 공약이 서로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관전평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특히 두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파괴력이 큰 정책으로 꼽히는 부동산정책 해법과 코로나19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방안에 대해 사실상 똑같은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두 후보의 부동산 정책 해법은 파격적인 규모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것과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 후보는 임기 내 전국 25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설 연휴 전후 구체적인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윤 후보 역시 서울에만 50만호, 전국적으로 250만호를 신규 공급하겠다고 했다. 또 이 후보는 최근 서울 노원구 노후아파트 현장에서 500%까지 용적률 상향이 가능한 4종 주거지역을 신설한다고 밝혔고, 윤 후보 역시 민간 재건축 용적률을 현행 300%에서 500%로 상향하겠다고 공약했다.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과 영세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방안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앞다퉈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이 후보는 위기 극복을 위한 부담을 국가가 가계 및 국민 개개인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면서 25조~30조원 규모의 설 전 추경을 제시했다. 윤 후보 역시 지원 규모를 50조원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데 이어 국민의힘은 1인당 지원금 규모를 1천만원까지 늘리는 요구안을 정부에 제시했다.미러링 현상의 원인은 뭘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부동산 가격폭등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너나할 것 없이 고통을 받아은 국민들 사이에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또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기성 정치인과 다른 성장배경을 가졌기에 민심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타난 결과라는 설명이다.정책이나 공약의 유사성으로 이뤄진 미러링 대선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이 대목에선 여야 모두 자신의 후보가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후보측은 ‘이재명은 합니다’란 캐치프레이즈가 보여주듯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검증된 실천력을 내세우며 윤 후보에 대한 우위론을 강조한다. 반면 윤 후보 측은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김건희 리스크’등 양 진영의 네거티브전이 뜨거울수록 정책적 차별화는 사라지게 될 것이며, 후보 간 정책적 차별화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과반수 표심이 윤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할 것이란 분석이다.정치권에선 예측불허의 승부가 펼쳐질 미러링 대선의 결말이 다가오는 설을 전후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다.

2022-01-20

정상과 비정상 사이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조지 오웰의 에세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주거 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방 하나에 열 한 명이 살고,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200미터를 가야 하는 곳에서 사는 광부들에게 “주거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고 기자가 물었다. 광부가 대답했다.“심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아닌가요?”기자는 이들에게 정상적인 마을의 집을 보여 주면서 다들 이런 집에서 산다고 했다. 그제야 광부는 자신이 사는 마을의 주거 환경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개선 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루주 캉길렘은 이것을 질병과 연관시켜 ‘정상과 질병’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보면 대부분 중환자가 되는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건강한 정상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하면서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질병은 자란다고 했다.예수 시대에 가장 주류가 되는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다. 누가는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라 했다. 예수는 “자기 눈에는 들보가 있어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남의 눈의 티는 밝히 보는 자들”이라 했다. “병 없다 하는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이 있다고 하는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바울은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서 100% 정상인은 없음을 강조했다. 심지어는 남의 병을 치료해야 할 의원도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 예수에게서 “의원아 너의 병부터 먼저 치료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자신들은 정상이요 다른 사람들은 비정상이라면서 정죄하고 징벌하였다. 이스라엘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짐으로 이스라엘의 몰락을 초래했다. 조지 오웰이나 캉길렘이나 예수가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 한 사회의 개선과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지금 우리는 어떤가? 내로남불 남 탓만 너무하고 있지 아니한가? 나는 정상이고 너는 비정상이라고만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나는 정상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는 비정상인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회칠한 무덤과 같은 사람이라 했다. 육신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사회적 병이든, 신앙의 병이든 그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속이 썩어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나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2022-01-19

② 어선과 어업인의 안전을 기원하다

겨울이다. 변화무쌍한 파도가 맹렬함을 드러낸다. 바닷가 곳곳에도 경고문이 나부낀다. 일상의 표어지만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어민들에게 경고문은 공포이자 아픔이다.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한 어촌마을이지만 사고 소식은 언제나 가슴 철렁하다. 안전사고와 충돌, 어선전복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깨지고 흔들리며 뒤집어지는 순간,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50여 년 전 발생한 최악의 어선참사도 그 중에 하나다.동해 일대 항·포구에는 1976년을 기억하는 어민들이 많다. 함께 조업하던 동료들이 실종됐던 그 날의 비보는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가슴 미어지는 상처로 남아있다.1976년 10월 28일, 대화퇴 어장으로 조업 나갔던 선원들에게서 긴급 조난 신호가 들어왔다. 우박과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6m가 넘는 파도가 덮친다는 것. 동시에 선단 주변의 어선에서도 하나 둘씩 무전신호가 끊겼다. 성난 파도에 구조를 나설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사흘간 이어진 폭풍우에 20여 척의 어선, 300여 명의 선원이 실종됐다. 곧바로 수색이 시작됐지만, 생환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얼마 뒤 일본 연안에서 해류에 떠밀린 실종자들이 발견됐다. 정부는 수색을 종료하고 실종·사망자 집계를 발표했다. 실종 및 사망 총 325여 명, 역대 최악의 어선사고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참사 후 본격적인 원인 규명이 이뤄졌다. 소형 어선들이 어로장비만 갖춘 채 원거리 조업에 나선 것이 밝혀졌다. 대화퇴 어장은 울릉도에서 직선거리로만 55㎞에 달한다. 어족자원이 풍부하지만 그 만큼 위험천만한 곳이다. 당시 선박 안전조업규정도 15t 미만의 선박은 동경 131도 밖 항해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민들은 출어를 강행했다. 연근해 어장이 황폐해 먼 바다 조업으로 내몰렸다는 게 생존자들의 전언이었다. 당시 저인망어선들은 연안의 밑바닥까지 훑으며 남획과 혼획을 일삼았다고 한다. 게다가 치어 어획도 허용된 상황. 생계를 위해 무리한 조업에 나섰던 소형 어선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노후 어선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선령 10년 이상의 노후 목선에 발전기와 선도용 얼음 등을 과도하게 실어 복원성을 헤쳤다는 것이다. 오징어잡이 배 특성상 집어등을 밝히기 위한 발전기는 필수장비다. 다만 노후 어선의 만선을 실현하기에는 어로장비의 무게가 지나치게 과했다. 오가는 거리가 멀어 짜낸 고육지책이 결국 악천후 대참사로 이어졌다.대화퇴 참사 발생 후 46년이 지났다. 오늘의 어선과 어업인의 현실은 어떨까. 소형어선은 여전히 원거리 조업에 나선다. 기후변화라는 시대적 과제까지 더해져 연근해 어업은 악화일로다. 텅 빈 그물을 올리는 날이 늘고 있다. 게다가 2020년 기준, 5t 미만 소형 어선은 전체 어선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어족자원 보호와 어선감척 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어선사고 발생건수는 매년 증가세다.물론 사고의 종류는 달라졌다. 악천후 사고보다는 기관손상과 부유물 감김, 안전사고 순으로 발생한다. 원인으로는 경계소홀과 안전수칙 미준수 등 운항과실이 80% 가량을 차지한다. 기관 손상의 경우, 기관설비의 결함이나 취급불량이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어선의 안전이 담보되지 못한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여기에 하나의 원인이 더 추가된다. 바로 어촌마을의 노령화다. 운항과실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되고 어업인의 문제로 좁혀진다. 어가인구의 약 40%가 만 65세 이상 노인이다. 고령화에 인구마저 적다. 전국의 어가인구는 2021년 기준, 9만 7천여 명이다. 어선관리에 힘이 부치고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현미작가 대화퇴 참사 3년 후 정부는 한국어선협회를 발족했다. 다시는 동일한 참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협회는 역할의 변화와 확장을 거쳐 현재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거듭났다. 해양교통안전을 총괄하지만 정체성은 여전히 선박검사다. 어선을 꼼꼼히 살펴 해양 사고를 줄이고, 어업인과의 소통을 통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공단의 존재 이유다.타이타닉 침몰 사고 이후 ‘솔라스 협약(SOLAS·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이 채택됐다. 솔라스 협약은 현재 국제항해 선박의 안전 기준이자 척도로 여겨진다. 대참사 후 새로운 기준이나 단체가 만들어지는 현상은 안타깝지만 그동안 해양사고에 대처해온 우리의 방식이기도 하다.어선과 어업인의 안전, 수산업의 미래 등은 예측의 범주를 넘어선다. 기후변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며, 수산업 역시 규모의 경제에 편입될 것이다. 그 이후의 변화상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다시 예방의 문제로 돌아간다. 현재 처한 상황을 면밀히 살펴 사고예방에 앞장서는 것, 다시 정공법이 소환된다. 지난 달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해양사고 예방대책이 이번만은 실효를 거둘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2-01-19

흔들리지 않아야 되는 것들

정미영 수필가 아르떼뮤지엄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만났다. 명화를 담은 빛의 정원에서는 르네상스부터 상징주의까지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모네, 피카소, 클림트 등의 작품들이 벽면 가득 펼쳐질 때마다 내 몸의 세포 인자들은 감동으로 소용돌이쳤다.설렘의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사진을 찍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이 천장까지 펼쳐질 때에는 사이프러스나무 옆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여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았다.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았다. 고흐의 그림들을 살펴보는데 문득 전시관에서 만나지 못했던 화가의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감자 먹는 사람들’이 연상되면서, 자연스레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썼던 편지도 생각났다. 고흐는 동생의 생일에 맞추어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지만,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말을 서두로 자신의 예술관을 적었다.“나 또한 물질적 어려움에 주춤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에 무너져 파묻혀 있을 수는 없을 거야.”나는 이 문장에서 목울대가 울컥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고흐는 살면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을 텐데도, 가난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고흐는 위대했다.산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흔들리며 사는 것임에랴. 깃발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깃발이라 할 수 없고, 나무도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움켜잡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린다고 했다. 우리네 삶도 무수히 환경에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 그러니 인생을 ‘나답게’ 살기 위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한두 개쯤 가지고 있어도 좋을 성싶다. 고흐의 예술적 신념이나 학생들의 공부 루틴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들로 개인의 내면은 단단하게 여물고 성장하리라.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초등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면 특강 준비로 분주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방학동안 보람되게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의를 기획하는 것이다. 특강은 차시별로 관련 책을 읽고 주제와 연계한 다양한 글쓰기 독후활동 및 북아트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고 다양한 영역으로 사고력을 확장시켜 준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그런 의미로 도서관 운영 원칙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2020년 여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 조치로 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던 강좌들이 열리지 못할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 관계자들은 집에서도 안전하고 즐거운 독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비대면 강의를 제공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강의를 해오던 내 삶의 조각들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온라인 쌍방향 수업을 할 때였다. 학생들은 어색함도 없이 눈빛을 반짝이며 수업에 집중했다. 그 때 나는 심훈 소설 ‘상록수’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일제의 압박으로 학생 인원을 줄여야 했던 영신의 안타까움과 배우고 싶어도 쫓겨나야 했던 학생들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면이었다. ‘누구든지 학교에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에 매달려서도 배우고자 했던 아이들의 얼굴과 코로나19로 외출이 힘들지만 비대면 도서관 수업에 열의를 다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고마웠다. 지금도 그 때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주인공 영신처럼 콧마루가 시큰해진다.2022년 1월, 올해도 도서관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인문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내 꿈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었다. 독서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책을 통해 다양한 간접 경험을 쌓으며 세상과 소통했으면 좋겠다. 그 따뜻한 여정 속에서 학생들이 흔들리지 않고 꿈과 희망을 노래하기를 나는 소망해 본다.

2022-01-19

불확실성의 시대, 무속의 존재 이유

장규열 한동대 교수 이성의 시대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신의 음성에 의지하며 억눌리기보다 인간의 생각하는 힘을 믿기로 하였다. 논리와 분석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주변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의 안개를 걷어내면서 눈부신 21세기에 돌입하였다. 이성적인 사고(思考)능력은 인간이 더이상 주술과 무속에 휘둘리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하였다고 여겨진다.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바를 다한 후에 마지막 한 자락 하늘의 섭리에 기대하는 것쯤은 애교로 봐줄만 하다. 수험생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쌓은 다음 시험에 임할 적에 천지신명의 도움을 비는 부모의 심정은 차라리 모든 정성을 모으는 진심이 보인다. 과학기술 뿐 아니라 인간이 복무하는 모든 영역에서 샤머니즘은 설 자리를 잃었다.현대사회에는 무속이 기능할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짐작이었을까. 대한민국 대선판의 권력핵심에 무속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습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선거의 결과가 극도의 불확실성을 전제하기는 해도, 근거없는 사술과 허무맹랑한 무속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거는 모습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기독교계와 천주교계 등이 이런 현상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모습은 놀랍지 않은가. 복잡다기한 나라의 문제들에 관하여 이성과 분석으로 접근하지 않고 손쉬운 주술에 의존하려는 원시적인 종교행위에 사회적으로 경계하는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탄핵당한 전임 대통령의 경우에도 사이비종교와 무속의 그늘이 드리워져 온 국민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았던가.정치가 만나는 불확실성을 해결할 방법은 무속과 굿판이 아니다. 정책과 인물, 구도와 비전으로 겨루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을 향하여 투명하여야 하며 후보들 간의 겨룸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서로 다투기 위해 견주라는 게 아니라 국민이 이성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겨루라는 요청이다.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몰두하기보다 본인의 역량과 비전을 드러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의 무엇을 보고 국민이 선택해야 할 것인지 상대적 우위가 확인되어야 하며 국민의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소상하게 알려져야 한다. 국민이 표피적인 구호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충분히 숙성하여 나서는 것도 후보의 정치적 책임이 아닐까.무속은 아니다. 곧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판매를 위한 상업적인 계산이 들어있다고 믿지 않았던가. 정치에 길일(吉日)이 따로 있을 턱이 있나. 국민을 섬기는 일에 ‘손없는 날’만 골라 나설 셈인가. 정권을 교체하든 안정을 택하든 당신의 소신과 비전으로 나서길 바란다. 후보의 출세가도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달린 길이다. 무당과 박수는 이제 물러서길 바란다. 나라와 국민은 진정한 변화를 바랄 뿐이다. 민생에 주름이 걷히고 국격이 올라가는 길에 무속의 존재 이유는 터럭만큼도 없다. 선거는 이성의 잔치가 되어야 한다.

2022-01-19

카카오페이 먹튀방지법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상장 후 스톡옵션을 행사해 수백억원의 차익을 얻는 과정에서 일반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카카오페이 먹튀 방지법’이 도입될 전망이다.이 법은 상장사 임직원이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행사해 자사주를 매도할 때 이를 시장에 미리 알리는 법안으로, 상장사 임직원 등 내부자가 주식을 매매하기 위해선 사전에 거래 계획을 감사위원회나 상근감사에게 허가를 받고, 회사는 이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고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또 내부자 주식은 공시한 날로부터 90일이 경과해야 거래가 가능하고, 사전에 매도 시점을 적시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서 협의가 끝나는 설 이후 발의될 전망이다. 카카오페이 먹튀 방지법의 추진 배경은 이렇다.카카오페이 류영준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지난해 11월 회사를 상장시킨 후 한달여만에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 900억원 상당을 블록딜 방식으로 팔았다. 이 과정에서 류 대표는 주당 5천268원에 산 카카오페이 주식을 주당 20만4천17원에 매도해 468억원 상당의 엄청난 차익을 봤다. 카카오페이 주가는 경영진 매도 공시가 나온 당일 6% 급락했고, 최근까지 연일 최저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카카오, 카카오뱅크 등 계열사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카카오에 투자한 일반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필연적으로 먹튀논란이 일었고, 류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마침내 국회서 민법상 내부자거래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일었고, 카카오페이 먹튀방지법이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경영진의 이익을 탐한 행동 하나가 자신은 물론 기업의 평판을 크게 추락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19

#위문편지는 이제 그만

최근 진명여고에서 군인을 향해 보낸 위문 편지를 보내 큰 논란이 일고 있다.편지 내용은 “군 생활이 힘드신가요? 그래도 열심히 사세요 앞으로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가 아닐까요?”, “저도 X지겠는데 이딴 행사나 참여하고 있으니까 님은 열심히 하세요.”,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이 편지를 받아든 군 장병이 불쾌함을 느껴 해당 편지를 인터넷에 올려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기 시작했다.더 심각한 문제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해당 여학생을 찾기 위해 신원 조사를 시작했고 신상 정보를 유출한 것에 이어 SNS에 성희롱 메시지를 보내었다는 것이다.더군다나 해당 학교 졸업생에게까지 무차별적인 폭언을 가하고 있을 정도다. 문제의 본질이 위문편지가 아닌 특정 학교 비하와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는 것은 심각하게 재고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이러한 제반의 사태가 발생한 후 머지않아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 게시판에 ‘미성년자에게 위문편지를 강요하는 행위를 멈춰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가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 숫자가 2만 명이 넘었으며, 청와대 국민 청원에도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 편지 금지해주세요’라는 글이 동의자 13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건 이러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마찰을 일으킨 전체적인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누구 한편의 잘잘못을 따져들며 극단적으로 비방하며 조롱하기 보단 시대착오적인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옳은 비판을 해야 함이 우선이다.진명여고 학교 측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국군 장병을 위한 위문 편지는 1961년부터 시작되었고, 이는 해마다 이어진 행사라는 입장을 내놓았다.그러면서 원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사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앞으론 본래의 목적에 맞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전형적인 나 몰라라 방식의 입장문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전통성을 앞세우며 위문편지라는 악습을 진행한 학교측이 두 손 놓고 두어 발자국 물러나 있는 동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남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유치한 말싸움과 감정 싸움이 난무하는 동안 정작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는 공들여 외면하고 있으니, 제3자인 이들끼리 계속해서 과열화 되고 있는 이 상황이 내가 보기에는 그저 답답할 뿐이다.서울시 교육감은 이 문제에 대해 편견이 반영된 교육활동에 고려하지 못한 지점을 돌아보았다며, 해당 학생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 달란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다.해당 학생이 위문편지를 쓰게 된 정확한 이유와 사정, 그리고 학생과 학교 편지를 받아든 국군장병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사실관계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다.정말 확실한 팩트를 알고자 하려면 무조건적인 비방은 멈추고 진실을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다 싶어 당사자들의 이해 없이 제3자들끼리 악랄하게 비난하는 일은 이쯤해서 멈추어야 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더군다나 위문편지라는 악습을 이젠 학교 측이 나서 먼저 끊어내었으면 한다.학계의 입장에 의하면 학교에서 군대로 보내는 위문 편지는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며, 중·일 전쟁을 시작으로 본격 강제화 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굳이 일제시대 잔재인 위문 문화를 이어오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까? 그것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으로 느껴진다.편지 쓰기는 사실 미디어가 발달된 시대에서 성장한 10대와 20대에겐 늘 어려운 숙제 같은 존재다. 글을 읽는 것도 난해한데 그것을 넘어 생판 모르는 남에게 진심이 담긴 응원의 편지를 제대로 쓸 수 있을 리 없다.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은 위문 편지라는 방식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젠더 갈등 양상을 띄지 않는, 조금 더 온전하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시대에 맞추어 고안해보아야 할 것이다.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고, 존중과 배려로 문제가 잘 해결되어 상처 받은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2022-01-18

백파이프 선율 속에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 중 한 곳이 스코틀랜드다. 내게 스코틀랜드를 처음 각인시킨 건, 어릴 적 AFKN으로 본 미국 프로레슬링에서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 연주곡에 맞춰 등장하던 레슬러 ‘로디 파이퍼’였다. 그 선수를 좋아해서 사탕 봉지에 그려진 백파이프 연주자도 늘 반가웠다. 그 사탕은 초록색 바나나 맛이 맛있다.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첫 장면, 미국 사립 명문 고등학교인 웰튼 아카데미 입학식에서 울려 퍼지던 백파이프 연주는 ‘전통’, ‘명예’, ‘규율’, ‘최고’라는 제도권의 교훈과 ‘카르페 디엠’이 끝내 어긋나는 불협화음을 암시한다. 윌리엄 월레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처절한 전투 장면에 흐르던 백파이프 선율은 내 가슴을 뛰게 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악기에 소질이 없어 금방 마음을 접었다.늘 패배하기만 하던 로디 파이퍼도, 학생들에게 ‘시인의 마음’을 가르쳤다가 학교에서 해고당한 키팅 선생님도, 키팅 선생에 경도되어 연극배우의 꿈을 꾸다 권총 자살한 닐도, 민중봉기를 일으켜 잉글랜드에 대항하다 처형당한 윌리엄 월레스도 모두 비주류다. 스코틀랜드 역사도 그렇다. 그래서 백파이프는 마이너리티의 악기, 울음 섞인 행진곡, 서글픈데 힘차고, 울면서 웃는, 저녁 황혼보다 새벽놀의 소리다.19세기 독일 작곡가인 막스 브루흐의 ‘스코티시 판타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환상곡이다.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무수히 많이 연주되었는데, 나는 클라라 주미 강이 성시연 지휘의 서울시향과 협연한 것을 주로 듣는다. 스코틀랜드 민요를 차용한 이 곡 4악장엔 로버트 번즈의 시에 곡을 붙인 전쟁가 ‘스코트 사람들은 월레스의 피를 흘렸다(Scots Wha hae wi Wallace bled)’가 바탕 선율로 흐른다. ‘집시의 악기’여서일까? 바이올린에서는 묘하게 백파이프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백파이프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영화 ‘분노의 역류’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순직한 소방관들의 장례식을 메우는 백파이프 행렬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소방관이나 경찰관의 장례식 운구 행렬에 백파이프 악단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한다. 이는 19세기 말엽부터 미국에 정착한 스코티시, 아이리시 이민자들이 당시 3D 업종이었던 소방관, 경찰에 주로 종사했기 때문이다.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백파이프 선율은 미국 다문화, 다민족, 다인종 공동체를 위해 앞장서 희생해온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사람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그 헌신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인 것이다.얼마 전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평택의 한 냉동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세 분이 화마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순직한 이형석 소방경, 박수동 소방장, 조우찬 소방교의 마지막 사진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짧은 휴식 시간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환하게 웃던 소방관들은 그것이 생의 마지막 사진임을 알았을까? 짧은 휴식 후 그들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시커먼 연기와 빨간 불길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홍을 겪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순직 소방관들의 빈소에 함께 방문하는 것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원팀’을 다시 선언했다. 빈소를 찾아 소방관들을 추모한 것은 잘 한 일이지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정치적 쇼맨십을 위해 소방관들의 죽음을 이용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탓이다. 그런가하면 한 여고에서 군인들에게 조롱의 내용을 담은 위문편지를 보내 논란이 됐다. 이는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구시대적 관습을 아직까지 강요하는 학교 잘못이다. 하지만 군인들을 폄하하는 단어들이 어린 학생들에게마저 보편화된 현 세태가 안타깝기만 하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마지막 장면에서 참전용사 크리스 카일의 실제 장례식 영상을 보여준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미식축구 슈퍼볼과 팝 스타들의 공연이 열리는 댈러스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장례식, 운구차가 도로로 나서자 시민 수만 명이 성조기를 흔들며 영웅을 추모했다. 자신들을 위해 고통 속에서 삶 전체를 희생한 이에게, 단 몇 분이나마 평온한 하루의 일부를 내어주며 존경과 감사를 보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최근 마블 히어로 영화 ‘이터널스’가 개봉했다. 순직한 소방관들은 물론이고 경찰, 군인, 제복을 입은 모든 분들이 우리 사회의 진짜 ‘어벤저스’들이다.

2022-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