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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통신조회 스트레스

게슈타포는 독일 나치스정권하에 있던 정치경찰이다. 비밀경찰이라는 뜻이나 나치스친위대와 더불어 체제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악명높은 조직이다. 모든 법적 규제를 초월하여 반정부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면 무엇이든 잔혹한 방법으로 수사를 벌였다.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는 최근 정치인과 언론인 등에 대한 무차별적 통신조회로 논란을 빚은 공수처에 대해 “게슈타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일갈했다. 검찰총장 출신이 보아도 공수처가 벌이는 통신조회가 지나치게 남발된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통신조회 대상으로 밝혀진 인사는 윤 후보와 그의 부인을 포함해 야당 정치인이거나 정부 비판 언론인, 교수, 대학생,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드러났다. 대체로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낸 인물이 공통점이다. 그래서 조회 자체의 편향성이 문제가 된다. 최근에는 5·18 특별법을 비판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통신조회를 당하면서 “나는 무섭다”고 말했다.통신조회는 개인의 사생활을 수사를 이유로 사법기관에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매우 신중하고 엄격히 통제돼야 할 영역이다. 법률에 따른 절차는 물론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판단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사법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남발할 수는 더욱 없다.야당이 통신법 위반과 직권남발을 이유로 공수처장을 고발했다. 불법성 여부에 대한 올바른 진실규명을 위해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할 부분이다. 사법기관의 통신조회 남발 여론이 돌면서 괜시리 사생활 노출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다. 보통 시민도 행여 내 일상이 감시당하는 느낌에 섬뜩할 때가 있다고 말하니 사법기관의 통신조회가 주는 스트레스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18

‘선거구 수도권 집중’ 두고만 볼텐가

심충택 논설위원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오늘(19일)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을 위한 간담회를 갖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해 아쉽다. 대선보도 영향도 있겠지만, 인구만을 기준으로 한 현행 선거구 획정방식이 농어촌지역 정치소멸을 가져온다는 문제의식을 언론사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반영하는 현상이다. 현행대로 사람수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나눌 경우, 인구가 집중되는 수도권은 지방선거나 총선거 의석수가 계속 증가하게 되고, 반대로 비수도권 의석수는 정원을 늘리지 않는 한 줄어들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구의 경우 지금도 수도권 의석이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다.최근 경북 성주·청도군을 비롯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선거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전국 농어촌 자치단체 13곳이 집단행동에 들어간 것도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8년, 광역의원 인구 상하한선 편차를 4대 1에서 3대 1로 바꾸라고 판결하면서 올해 지방선거부터 이들 자치단체의 광역의원이 각각 한 명씩 줄어들게 돼 있다.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농어촌 지역 선거구의 경우 인구 하한선과 함께 선거구 면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예천군을 예로 들면 현행 선거구 획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예천군은 19대 총선(2012년)부터 21대 총선(2020년)까지 매번 선거구가 조정됐다. 19대에는 문경·예천 선거구, 20대에는 영주·문경·예천 선거구, 21대에는 안동·예천 선거구에 속했다. 예천군은 2024년 치러지는 22대 총선에서도 군위군의 대구편입이 예고돼 있어 또다시 선거구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선거 때마다 예천군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소외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고도 남는다.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선거구획정의 기본방향과 관련해 ‘사람 수가 적은 농어촌지역은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지역대표성이 선거구획정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도시로의 인구유입과 농어촌 인구감소가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인구수만을 편향되게 적용한다면 농어촌 선거구는 도시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면적이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대부분 주에서 하원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인구수 외에도 지리적 인접성, 지역이익의 대표성 등을 일반적인 획정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거구획정 개선과 관련한 입법안이 여러차례 국회에 제출됐지만, 정개특위에서 한번도 심사받지 못한 채 폐기돼 왔다. 총선때마다 수도권 의석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국회에서는 수도권 규제완화 입법이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4일 수도권 군사시설 제한보호구역이 대거 해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반의석을 획득한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의사결정은 블랙홀처럼 모든 자원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국회가 국토 전체를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개특위에서 선거구 획정 개선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길 기대한다. 선거구 획정이 합리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의석수를 무기로 한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권력남용을 막을 수가 없다.

2022-01-18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Ⅲ)

만식의 아내는 만식보다 여덟 살 어렸다.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만식을 만나 결혼했다. 만식이 사업을 하느라 집 밖을 맴도는 동안 그녀가 의지했던 사람은 필립의 형이었다. 필립의 형이 죽던 날 만식의 아내는 첫째 아이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내 아이가 아니야. 어미가 어찌 자식을 못 알아보겠어. 이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야. 필립아, 너의 형은 어디에 있는 거니?퉁퉁 불은 첫째 아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식이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우리 아이 맞아.그녀는 만식의 손을 뿌리치며 악을 썼다.-아악! 이 새끼야! 네가 아이 얼굴을 어찌 알아? 집구석에 들어와 있던 날이 얼마나 된다고. 나만큼 아이를 알아? 이 살덩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내 눈 앞에서 치워!시신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시신은 꼼짝하지 않았다. 시신에서 배어 나온 비릿한 냄새만 흔들렸다.-가지고 가, 저리 치우란 말이야. 내 아이 데려오라고.사람들이 달려들어 시신에서 그녀를 떼어냈다. 필립이 그녀를 안았다.-필립아, 너의 형은 어디에 간 거냐?-어머니, 형 저기 있잖아요. 형 맞아요.필립은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필립을 밀어내고 시신에 다가갔다. 검푸른 시신을 끌어안았다.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필립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가끔씩 고개를 들어 첫째 아이의 영정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어머니, 제가 있잖아요. 필립은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찾는 아이를 대신할 수 없다 생각했다.그녀는 첫째 아이를 보내고 난 후 식욕도 의욕도 없이 지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가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 다는 게 말이 되느냐,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다가도 한숨을 내쉬었다.만식의 아내는 첫째 아이가 죽은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우리 아이가 외롭지 않게 나도 그곳에서 죽을 수 있게 해줘요.-당신마저 잃고 싶지 않으니 제발 그런 생각도, 그런 말도.만식은 두 손으로 그녀의 차가운 손을 감쌌다. 좀처럼 따듯해지지 않았지만 놓지 않았다.필립이 말했다.-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오겠습니다. 고향 이곳저곳 다니시다 보면 어머니 마음도 조금 안정되지 않겠습니까?그럴 듯 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게 그녀를 막고 있던 만식이었다.-그래, 그게 좋겠다. 나도 같이 가야겠다. 너의 엄마와 같이 있어야겠다.만식과 그의 아내, 필립이 제주도에 갔다.초저녁이었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제주시를 벗어나 산업도로로 접어들었다. 만식의 아내는 말없이 차창 밖을 보았다. 만식이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뭐를 그렇게 보고 있으신가?만식의 아내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오름이 보이네요. 검은 오름. 검은 오름이 검은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어요. 검은 나무, 검은 풀들.차창에 입김이 서렸다.-하루에 한 가지씩만 구경합시다,나머지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텔에 머무르자 했다. 만식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맛집은 당신이 안내해야 해.만식이 농을 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제가 찾아 놓았습니다.필립이 거들었지만 만식은 만식대로 만식의 아내는 아내대로 필립의 얼굴을 보기만 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가까운 거리의 낮은 오름과 몇몇 유명한 해안가를 둘러보며 일주일을 보냈다. 만식의 아내는 가끔 웃기도 했고 갈치조림을 먹고 싶다 말하기도 했다. 제주로 내려오던 날 저녁보다 나아진 듯 보였다.-내일부터 며칠 동안 뭍에 다녀오겠소. 가서 결재할 일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네, 그러세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볼 일 충분히 보세요.만식은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 오르며 필립을 불렀다.-엄마를 잘 살펴라. 아내마저 잃고 싶지 않구나. 자식을 잃은 것만으로도 이미 넘친다. 감당하기 힘들다. 만식이 육지로 간 날, 만식의 아내와 필립은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네 원망을 많이 했어. 네 형을 두고 어찌 혼자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 왜 형을 구하지 못했는지. 너 또한 내 자식인데도 너를 원망했구나. 너 하나라도 살았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데 말이다. 알아. 그런데 아직도 그래. 너도, 내 마음도 잘 모르겠구나. 너를 보는 것이 여전히 편하지 않구나. 그날, 너의 형이 죽던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너는 무엇을 했던 거니? 네가 형을 대신 할 수 있다 생각한 거니?

2022-01-17

사랑이라는 불꽃

노자영의 작품은 권보드래가 엮은 범우비평판 한국문학 ‘사랑의 불꽃반항(외)’에서 실제로 읽어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연애소설의 인기가 궁금하다면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 2003) 등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1920년대는 일제에 의해 강점되어 있던 비극적 시대이기도 했지만, 찬란한 연애의 시대이기도 했다. 국가를 잃고 식민지가 되었더라도 매 순간 슬퍼하기만 하고 있을 리야 없지 않은가. 또 그런 때야말로 사랑의 불꽃은 더욱 타오르기 마련이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이 생겨야 민족이든 국가든 사랑할 수 있을 테니, 청춘들이 꿈을 꾸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위험한 것이지, 국가의 상실과 사랑의 열망이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오백 년에 걸친 기나긴 조선이라는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왕이든, 국가든 어딘가 바깥에 삶의 중심을 두고 있던 세계가 종언을 고하고, 개인적인 욕망에 눈뜨기 시작했던 시기 역시 바로 이 무렵이다. 인간이 자기 생의 의미를 온전히 자기 내부에 두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류가 중세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인간 사회의 한 패러다임이 바뀌는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좋아한다는 것이야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늘 마찬가지였겠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문제로 세상이 무너질 듯 고민하며 불길 같은 열정을 품는 것,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마저 서슴지 않는 것은 바로 근대적인 연애에서만 일어나는 특징적인 징후였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단지 한 젊은이의 번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던 것은 바로 중세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모두가 자기 안에 자기만의 신을 갖게 되어, 누군가를 욕망한다는 문제가 한 없이 불안하면서 또 한 없이 귀중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그런 의미로, 1920년대는 연애 베스트셀러의 시대이기도 했다. 글로 쓰인 타인이 겪었던 ‘연애’가 겨우 누군가가 겪은 연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겪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감정적 전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이 시기 무렵부터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 되었다. 연애는 인간의 감정이자, 감정의 분자를 전달하는 미디어가 되었던 것이다.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속 B사감이 ‘연애소설’에 열광하듯, 기숙사 학생들에게 온 편지를 읽으면서 연애 감정을 고양시키고 있는 대목은 물론 기괴한 장면이지만, 이것만큼 당시의 시대를 잘 요약하고 있는 장면은 또 없을 것이다. 1926년 낭만적 사랑과 불륜이라는 현실 사이를 봉합하지 못하고 현해탄에서 정사(情死)했던 ‘사의 찬미’의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사례는 한 없이 비극적인 연애의 시대의 감정적 정점에 해당한다.이 시대 가장 잘 ‘팔렸던’ 연애 작가는 바로 춘성 노자영이었다. 그가 1920년대 초에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펴낸 연애서간집 ‘사랑의 불꽃’은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죽하면, 당시 세간에는 춘원(이광수)은 몰라도 춘성(노자영)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노자영의 연애서간집의 성공에 힘입어, 유사한 일련의 사랑 시리즈가 잇달아 나오게 될 정도로, 이 ‘사랑의 불꽃’은 ‘연애’를 모티브로 한 기획출판물의 시작점이 되었다. 비록 이 연애서간집으로 당시 불꽃과도 같은 사랑의 열정을 마주했던 노자영은 이후 창작에 전념하여 시집 ‘처녀의 화환’’, ‘내 혼이 불탈 때’로 이어졌지만, 그다지 문학사 내에는 기억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청춘의 사랑이 그러하듯 말이다. 노자영은 자신의 단편소설 ‘반항’의 시작에 다음과 같이 쓴다.“이 작품은, 예술이라는 것보다도, 청춘의 핏덩어리요 눈물방울이다. 이로써 나는 나의 청춘의 한 시절을 종이 위에 옮겨, 나와 같이 울고 서러워하는 여러 젊은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송민호(홍익대 교수)

2022-01-17

새로운 끌림, Space Walk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영일만 한 켠의 이색적인 조형물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포항 환호공원 등성이에 구름처럼 걸터앉은 이른바 ‘Space Walk’가 개장한지 8주만에 총 관람객이 15만명에 이르고 있으니, 과연 ‘핫플’이 아닐 수 없을 정도다. 코로나19가 집요하게 일상의 발목을 잡아도 곡선형 루프 조형물을 따라 올라 영일만을 조망하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가슴 결로 갑갑함과 침울함이 싹 가시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스페이스 워크는 새로운 매력과 끌림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환호해맞이공원은 한낱 야산에 불과하던 환호동의 바닷가 일대를 포스코의 지역협력사업으로 200억원을 기부받아 포항시가 2001년 8월에 준공하여 시민의 건강과 휴양, 정서생활 향상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돼 왔다. 거기에 2019년 4월 포스코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포항시와 ‘환호공원 명소화’ 업무협약으로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에 걸맞는 랜드마크 스페이스 워크를 포스코에서 설치, 포항시에 기증해 오픈한지 오늘로 꼭 두 달이 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는 제막하면서부터 세간에 회자돼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입소문을 타거나 언론, 방송에 앞다투어 보도되고, SNS 등에 일제히 소개되면서 일약 국민적인 이목과 호기심을 부추겼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새로운 체험형 조형물로, 333미터 길이의 계단통로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공간예술 속으로 빠져들고 마치 구름 위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 위에서 360도로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을 접할 수 있고, 무한한 루프(고리)가 보여주는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배우며 사람과 기술, 예술로 이어지는 상상의 발걸음 속에 신기한 듯 놀라운 희열과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연오랑세오녀를 연상하며 해와 달을 상징하는 공중의 두 개의 큰 원과 공간, 시간, 사람을 이어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속도와 균형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의 체험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인 스페이스 워크는, 포항시와 포스코가 하나되어 새로운 100년을 함께 할 지속가능한 발전과 상생의 미래를 상징하는 빛과 철의 하모니라 할 수 있다.포항시가 올해 시무식을 바다 건너 포스코가 보이는 스페이스 워크에서 개최한 것도 해양관광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공동체 의식의 확고한 표명이 아닐까 싶다.전국 각지에서 스페이스 워크를 걸어 보려는 사람들로 환호공원엔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왕래부절의 관람객들을 안내하고 체온 체크, 출입 개폐기 관리, 주변 환경정화 등을 자발적으로 역할 분담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핫플만큼 뜨겁기만 하다. 개장 이후 한번도 빠짐없이 매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Space Walk 운영 도우미에 나선 포스코 봉사단과 영일만 서포터즈 등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이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타지인이 90% 이상인 방문자들에게 개장 초기의 친절하고 편안한 안내로 스페이스 워크가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2022-01-17

소통으로 완성되는 기업의 문화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현재는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팬데믹 상황으로, 비대면 언택트가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고, 기업에서도 대면보다는 화상으로 미팅하고 교육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비대면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이해관계자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함으로 소통이란 단어가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소통은 리더의 덕목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기업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가 되었다. 기업에서 문화로 가는 혁신활동이나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항목이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본다면 필자는 첫번째가 소통이라 말하고 싶다. 소통(疏通)이란 사전적 의미로 막힌 것을 터버린다는 소(疏)의 개념과 사람 간에 연결을 뜻하는 통(通)이란 개념의 합성어이다.필자는 삼통(三通)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한다. 삼통은 소통, 화통, 심통인데, 소주(燒酒)로 통한다, 대화(對話)로 통한다, 마음(心)으로 통한다라고 재미있게 풀면서,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인간관계 형성 방법이라고 한다.생각해 보면 2천년대 이전에는 한 방향 소통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다. 고도 성장을 위해 목표가 명확 했기 때문에 사장의 지시사항이 전 직원에게 얼마나 빨리 전달되는 가가 중간관리자의 추진력 또는 카리스마로 인식되었다.하지만 현재는 직원들과 더 많은 대화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본인의 주장보다는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추진할 때 직원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꿈을 꿀 수 있다고 본다.독일 철학자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강제적으로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 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해와 바람’이란 이솝 우화를 보면 바람과 해는 누가 더 힘이 센 지에 대해서 다투었고,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한다. 바람은 강한 바람을 힘차게 뱉어냈지만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데 실패했고, 부드럽고 따스한 햇살을 비춘 해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데 성공한다.이 이야기에서의 교훈은 강함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이 이기는 것이고, 나그네가 외투를 스스로 벗을 수 있도록 해님이 배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필자는 소통 노하우라 하면 진심 어린 대화(對話), 존중하는 경청(傾聽), 사려 깊은 배려(配慮)를 꼽고 싶다.P사는 고객, 구성원,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기 위하여 각 부서별 별도의 소통 섹션 조직을 구축하고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해당 직원의 다면 평가가 담당임원 승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기업의 좋은 문화는 진정한 소통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진정한 소통이란 단순한 의사전달을 넘어서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쌍방향 소통을 말한다. 한사람의 직원이라도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열고 나올 수 있도록 나부터 실천해 보길 바란다.

2022-01-17

동백꽃이 정치인에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정치인들은 ‘자연이 말해주는 거룩한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권력의 독선과 남용, 오만과 위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참된 정치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스승, 대자연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혜안(慧眼)이 필요하다.겨울의 꽃, 동백은 ‘청렴과 절개’를 상징하는 ‘선비의 꽃’이다. 동백은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의지와 고투(苦鬪)가 청렴하고 절조 높은 선비를 닮았다. 동백은 눈보라치는 혹한 속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선비는 ‘견위수명(見危授命)’, 즉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더욱 위대하다. 대통령 후보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즉흥적으로 남발하는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말과 행동, 겉과 속이 다른 정치꾼들은 동백의 지조와 절개를 배울 일이다.동백꽃은 정치인들에게 ‘공생과 상생’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동백꽃은 조매화(鳥媒花)다. 벌과 나비가 없는 겨울에 새가 수분(受粉)을 도와준다. 동백꽃은 동박새가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 꿀을 주고, 동박새는 동백꽃에게 수분을 도와 열매를 맺게 해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생인가? 바로 이 공생이 상생의 기반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들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한국정치에서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는 공생이 아니라 공멸의 길을 가고 있다. 서로가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진영의 보스가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분열과 공멸의 논리를 거부하고 통합과 공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동백꽃은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커다란 가르침을 준다. 동백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툭!’ 하고 송이채 떨어진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꽃잎이 시들어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동백꽃은 가장 아름다운 날에 스스로 땅에 떨어져 황홀한 꽃길로 다시 피어나니 ‘사즉생(死卽生)’이다. 권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어떤 시인의 말처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제 아무리 화려한 권력도 동백꽃이 낙화하듯이 한 순간에 지고 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은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한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스로 명예를 지키라’는 동백꽃의 가르침을 거역한 권력의 말로가 비극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동백꽃은 세 번 피는 꽃이다. 나무에서 활짝 핀 다음, 송이채 떨어진 꽃은 붉은 융단으로 다시 피어나고, 그 아름다움을 본 우리들의 가슴속에 또 다시 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인들도 동백꽃이 가르쳐주는 청렴과 절개, 아름다운 공생, 그리고 눈부신 낙화의 의미를 깨달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2022-01-17

논란의 방역패스

방역패스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하거나 코로나19 음성을 확인했다는 일종의 증명서다. 이는 2021년 11월 1일부터 시행된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방안 중 하나로, 집단감염 우려가 높다고 판단되는 다중이용시설이나 유흥시설 출입 시 백신 접종 완료 또는 코로나19 음성을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다.방역패스는 접종 완료 후 접종기관이나 보건소, 정부24 사이트나 예방접종도우미 홈페이지(https://nip.kdca.go.kr/irgd/index.html)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그 유효기간은 2차 접종일부터 14일∼6개월(180일)이다. 18세 이하 청소년의 경우 방역패스 예외 대상이지만, 오는 3월 1일부터는 12∼18세 청소년도 방역패스 대상자에 포함된다.방역패스가 논란이 된 것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과학적 방역 기준에 따른 방역패스 및 거리두기 완화를 약속하면서 우선 마스크를 항상 쓰고, 대화를 하지 않는 실내에서는 방역패스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이후부터다.즉, 독서실, 스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 미술과, 과학관, 영화관, 공연장, PC방, 학원 종교시설 등에 대해서는 방역패스를 폐지하겠다는 것.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정부도 보습학원, 독서실, 박물관, 영화관, 대형마트 등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를 해제하기로 했다. 이는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가 최근 서울 지역의 청소년과 대형마트·백화점 대상 방역패스를 중지하라고 결정함에 따라 시행에 혼선이 생긴 방역패스 정책을 조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코로나 전파를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국민의 삶을 제대로 배려한 방역정책을 펼치고 있는 지 궁금해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17

여론은 이번에도 양자 대결로 몰아갈까

대선이 3파전이 됐다. 한국갤럽이 14일 발표한 대통령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37%, 윤석열 31%, 안철수 17%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확실한 3자 구도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15%는 선거에서 중요한 고비다. 이 선을 넘으면 선거비용을 모두 돌려받는다. ‘한 달 평균 지지율 5%’를 넘으면 법정 토론회에 참가할 자격도 생긴다. 이 기준은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늪에 빠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당내 갈등과 20대의 이탈, 부인 리스크 등이 차례로 윤 후보를 덮치면서 정권교체의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유권자가 늘어났다.덕분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앞섰다. (이 37%, 윤 31%, 안 17%) 그러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이 후보를 오차범위 밖(7%포인트)으로 이긴다. (안 45%, 이 38%) 윤 후보가 단일후보가 돼도 2%포인트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윤 42%, 이 40%)1987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지만,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에 실패한 탓이다. 김대중 후보 진영에서는 ‘4자 필승론’도 나왔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함께 출마해야 김대중 후보가 이긴다는 주장인데, 참혹한 실패(3위)로 끝났다.그 교훈인지 1997년 15대 대선에선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성공시켰다. 선거 두 달 전 김대중 후보는 30~35% 박스권이지만 선두였다. 그런데도 과감한 양보로 DJP연합을 만들었다. 총리와 내각의 절반을 JP에게 넘겼다. 내각제 개헌도 약속했다. 선거 40여 일을 앞둔 시점이다.덕분에 김대중 후보는 충청지역에서만 이회창 후보를 무려 43만 표 이겼다. 39만 표 차 대선 승리의 화룡점정이다. 그렇게 시달리던 색깔론을 극복하고, 대구·경북(TK) 지역에서 14대보다 5% 더(13%) 얻은 것도 그 덕분이다.바로 그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인재 후보의 492만 표 가운데 12분의 1만 가져갔어도 승패는 뒤집혔다. 저울추는 작은 무게에 기운다. 캐스팅보트 한 표는 한 표가 아니다.물론 단일화가 박수받을 일만은 아니다. 유권자의 뜻이나 정치적 이상 실현보다 자리 나눠 먹기를 위한 야합이 많다.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자기 정책을 일부라도 반영하기 위해 치밀한 공동정부 합의서를 만든다. 윤 후보가 ‘분권형 책임장관제’, 안 후보가 ‘권력 축소형 대통령제’를 언급한 것은 공동정부로 갈 수 있는 작은 길을 연 것은 아닌가. 단일화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평균 지지율이 5%를 넘은 후보는 법정 토론 기회가 생긴다. 적어도 선거 막판까지 목소리를 내면서 지지율 상승을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선거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번 선거비용 상한은 513억 원. 15%를 득표하면 지출 비용 전액을, 10%만 넘어도 절반을 보전받는다. 중간에 포기하면 그동안 쓴 게 모두 빚으로 남는다.단일화 룰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다.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앞선다. 윤 후보 측은 민주당 지지자의 역선택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윤 후보 뒤에는 국민의힘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있다. 이준석 대표처럼 안 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3석짜리 정당 후보에게 양보하는 결론은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단일화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다. 안 후보로 단일화하면 윤 후보 지지자의 78%가 안 후보에게 가지만, 윤 후보로 단일화하면 안 후보 지지자의 49%만 윤 후보로 간다. (한국갤럽) 이탈표 단속이 어려운 과제다.아직 52일이 남았다. 지지율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막판 작은 실수 하나가 판세를 뒤엎을 수도 있다. 18대 대선에서 두 달 전까지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앞섰으나 갑자기 지지율이 급속히 빠지면서 사퇴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단일화해줬다. 19대 대선에서도 안 후보는 선거 한 달 전까지 문재인 후보와 1, 2위를 다퉜지만 3등에 그쳤다. 인위적으로 단일화하지 못해도 국민이 힘을 몰아줄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본사 고문

2022-01-16

그리운 닭찌짐

언니들이 드라이브하자고 나를 싣고 달렸다. 신광을 지나 구불구불한 동네 길을 지나 기계로 향했다. 기계가 종착지인가 했더니 산을 넘어 죽장에 다다랗다. 계곡에 물이 얼었다. 커다란 김장배추 절이는 것으로 보이는 깊은 다라이에 아이들을 싣고 삼촌쯤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줄을 달아 얼음을 지치고 있다. 놀이공원에 바이킹을 타는 듯한 아이들의 표정이 멀리서도 보였다. 그곳이 종착지인가 했더니 더 깊은 산속으로 차를 몰았다. 입암서원을 지나 산을 넘으니 청송으로 접어드니 썰매장 가득 사람들로 붐볐다. 추운 날을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꽃을 머금었다. 우리는 그곳도 그냥 지나쳤다. 가다 보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키는 동네가 나타나고, 사과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쌌다. 낮게 엎드린 산의 능선이 공룡의 등허리를 닮아서 어느 시대 즈음에 이곳에 어슬렁거리던 티라노사우루스를 상상했다.그렇게 두 시간을 달려 언니들의 선택지는 누룽지불백숙 맛집이었다. 구불구불 돌아서 오니 어디인지 모르겠다가 차에서 내리니 자주 지나치던 곳이었다. 영양에 가려고 영덕-상주 간 고속도로에서 내리자마자 만나는, 약수로 백숙을 하는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손님을 부르는 그 동네였다. 점심시간을 조금 지나 갔더니 한산했다. 백숙, 닭불고기 두 개 다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세트메뉴가 있었다. 밑반찬 상이 차려졌다. 샐러드, 겉절이, 장아찌 사이에 정체 모를 무침 하나가 놓였다. 한 입 먹으니 사과무침이었다. 사과가 많이 나는 청송다운 반찬이다. 상주에 가면 감말랭이 무침이 있듯이 말이다. 매콤한 사과가 입맛을 돋우어 배가 더 고파졌다.언니들이 추천한 집이라 물에 빠진 고기 싫어하는 나는 닭불고기가 무척 궁금했다. 밑반찬으로 초요기를 하는데 전 한 접시가 나왔다. 닭불고기란다.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김치전인가 할 만큼 겉모양이 닮았다. 젓가락으로 한 점 뜯어 먹으니 닭 맛이 느껴졌다. 불 향이 더해져 자꾸 손이 갔다. 닭찌짐 같다고 했더니, 언니들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어릴 적 제사가 있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마당에 판을 벌였다. 먼저 칼을 갈고 제사에 쓰일 고기 손질을 하셨다. 소고기, 돔배기를 비롯한 생선을 장만해 부엌의 며느리에게 보내고 드디어 닭을 꺼냈다. 살이 많은 다리와 가슴은 따로 쪄서 상에 올리고, 그 나머지 날개, 목 따위 닭의 모든 부위를 도마에 놓고 다지셨다. 닭 뼈가 세다며 칼이 오래 도마 위를 오갔다.그렇게 할아버지의 역할이 끝난다. 그때부터는 집안 여자들이 맡는다. 뒤집은 솥뚜껑이 뜨겁게 달면 제일 먼저 배추전를 부친다. 차례로 갖가지 전이 구워질 때쯤, 할아버지의 닭 손질이 끝나 배달된다. 다진 닭고기는 고기가 서로 붙을 정도의 밀가루만 섞어 기름을 두르고 지진다. 이것을 닭찌짐이라 불렀다. 다졌지만 닭의 잔뼈와 오도독뼈가 존재감을 버리지 않아 씹는 식감이 남달랐다.안동이 고향인 내가 닭찌짐을 열심히 설명해도 모두 처음 듣는 음식이라고 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나오거나, 음식 이름인데 처음 접하는 것이라 상상이 가지 않을 때, 그때마다 물어보는 척척박사님이 있다. 오늘 딱 맞게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정갈하게 내온 팥죽을 한 그릇 맛있게 먹은 후, 닭찌짐 이야기를 하니, 지인의 경주 할머니 댁에서도 제사 음식으로 썼다고 했다. 쇠고기 섭산적이 귀해 닭고기로 대신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안동은 종가가 많아서인지 제사 장부터 고기 손질까지 남자가 참여해서 보기 좋다는 칭찬도 얹어주었다.청송에서 우리 앞에 놓인 닭불고기가 붉은 양념이라면, 제사 음식이었던 닭찌짐은 고춧가루 없이 누르스름했다. 물론 식감이 완전히 달라 같은 음식이라고 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오랜 칼질이 무색해질 터이니 모양만 닮은 걸로 하자. 그나마 뒤따라 나온 누룽지백숙이 늘 먹던 백숙보다 한 단계 위라 닭찌짐보다 한 수 아래인 닭불고기도 인정해주기로 했다. /김순희(수필가)

2022-01-16

차별화된 정책선거로 새로운 영덕 도약의 원년으로!

박진현영덕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 선거는 우리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잘 뽑아야 지역이 더욱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역이 발전돼야 개인의 삶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선거가 도래하면서 출마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치열해지고, 후보자 간에 비방도 늘어난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국민들은 양대 정당의 대선후보를 두고 국가의 미래에 대해 고심이 커져보인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대통령 선거에 묻혀 대체로 잠잠한 편이다. 이 또한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본격화되겠지만, 이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만이라도 혼탁선거가 아닌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공약으로 미래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공명선거가 되기를 기대한다.6월 1일은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게 된다. 지방자치 성과는 물론 군민의 삶의 질에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역군이 될 어떤 자치 단체장·의원을 뽑느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지방 단체장과 의원은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미리 한 번쯤 후보상을 그려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영덕군수 후보자들도 지역 민심과 유권자의 선택을 받고자 각 분야의 정책공약을 제시할 것이다.공약은 단순히 지지율을 높이는 수단이 되거나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공약의 수립과정은 보다 전문적이어야 한다. 검증된 공약이어야 한다. 분야별 전문가에 의해 자문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주민의견을 수렴한 공약이어야 할 것이다.영덕군수 후보는 지역의 비전과 미래를 열어가는 정책공약을 철저히 준비해 줄 것을 기대한다.우선적으로 지역의 존폐를 가르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반드시 기업 유치가 절실하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의 인구유입과 일자리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이뿐인가. 타 지역과 차별한 미래 산업 육성이 필요하고, 관광산업의 육성, 9개 읍면별 균형적 발전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위해 복지분야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선거가 끝나면 선거로 인한 갈등이나 나누어졌던 민심도 아울러야 한다. 주민 화합이 없는 지역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과 화합을 위해서는 군수가 직접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그 소통은 반드시 경청하는 소통이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지방선거에서의 후보상을 그려보았다.첫째, 정말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사람인가?둘째, 영덕발전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 봉사하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갖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어야겠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본다.셋째, 일정한 경륜과 소양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다. 속담에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단체장은 행정에 대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넷째,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겠다. 현행 법과 예산 그리고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공약은 거짓말임으로 유권자는 이에 현혹되지 말아야 된다.다섯째, 공명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이번 선거에서 투표해야 할 선출직 공무원은 도지사, 시장·군수, 시·군·도 의원, 교육감이다. 이들은 하는 일과 요구되는 역량도 모두 다르다. 때문에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해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모든 후보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잣대가 있다.능력이 있는가? 청렴한가? 도덕성은 있는가? 이 사람이 당선돼도 달라지지 않을 사람인가 따져 보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다.이번 선거는 지역 미래를 위해 보다 생산적인 정책경쟁의 장이 되고, 새로운 영덕을 창출하는 원년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영덕군수는 지역주민의 행복한 삶과 지역발전을 위해 영덕의 비전과 가치를 쌓아온 준비된 자치단체장이 선출되기를 바란다.

2022-01-16

뉴노멀은 빼기다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조각은 빼기다. 사자를 만들려는 조각가는 바위를 앞에 놓고 바위에서 사자 이외의 부분을 조각조각 떼 내야하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코메티는 거기서 더 나아가 형상이 실재처럼 안 보일 때까지 ‘더’ 떼 냈다고 한다. 마치 본질만 남기고 본질 이외의 것은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역설적이게도 본질 이외의 것을 떼 낸 그의 조각은 훨씬 실재적이라는 평을 받았다.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다. 뭔가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성장, 더하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조각가처럼 빼기를 해야 하나? ‘욕망과 거리두기’를 하자는데 그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의 답을 고민하며 며칠 동안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날 목이 말라 숲속의 샘물을 찾아간 그리스의 철학자가 양치기 소년이 나뭇잎으로 샘물을 떠먹는 것을 보고 자신의 바랑에서 컵을 꺼내 버렸다는 이야기로 옮겨갔다.그러다가 에스키모 인들의 늑대 사냥 법을 만났다. 눈벌판위에 동물의 피를 묻힌 칼 한 자루를 꽂아두면 늑대가 피 냄새를 맡고 와 칼날을 핥는다. 동물의 피를 맛있게 핥다가 자신의 혀가 칼날에 베이고 결국 자신의 피 인줄도 모르고 핥다가 늑대는 죽는다는 내용이다.“그렇지. 우리 인간도 똑같아. ‘욕망과 거리두기’는 안 될 거야. 더하기도 만족을 못하는데 빼기라니 가당키나 한 일이야”하던 참에 이번에는 ‘아침식사로 지구 구하기’라는 부제가 붙은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책 ‘우리가 날씨다’를 만났다. 무슨 답이 있을 것 같아 읽어보니 ‘공장식 축산이 이산화탄소배출의 51%를 차지하며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는 내용이다.샤프란 포어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인류세 멸종’이 그것이다.1960년 공장식 축산이 시작되고 1999년까지, 메탄의 농도는 지난 2000년 중 어느 시기의 40년과 비교해도 여섯 배 더 빨리 증가했단다. 지구상의 모든 포유동물의 60%는 식용으로 대부분 공장식 농장에서 키워지는데 인간은 해마다 650억 마리의 닭을 먹으며 아마존 벌목의 91%는 축산업 때문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는 당뇨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며 세포가 치명적으로 퍼지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악성종양 같은 사건이라는 것이다.“국제 에너지 기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필요한 재생에너지 기반시설을 갖추려면 적어도 53조 달러의 비용에 적어도 2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그때쯤이면 기후변화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을 겁니다. 이와 달리 동물성제품을 대체품으로 바꾼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급속히 줄이면서 동시에 땅을 비워 더 많은 나무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기 중 탄소초과분을 가둘 수 있게 하는 이중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물성제품을 대체품으로 바꾸는 것이 너무 늦기 전에 기후변화를 되돌릴 유일한 실용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날씨다/조너선 샤프란 포어/민음사)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실존적 위협은 ‘우리가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삼는 법을 제시한다’고 말한 유발 하라리의 말이 현실이 되려면 적어도 하루에 두 끼는 채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육식에 대한 욕망과 ‘거리두기’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 입으로 들어가느냐에 지구의 생사가 달려있다면 우리의 오래 길들여진 혀의 그 탐욕스런 미각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늦어도 2030년까지 50% 줄이고, 2050년, 이상적으로는 2040년까지 온실 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환경학자들은 이야기 한다.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지구가 자연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른바 ‘탄소 중립’이라고 불리는 상태다. 과학적으로 수립된 이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서 가장 실현 가능한 방법이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육식을 현격히 줄이는 방법이다.답은 나와 있다.먼 훗날 후손들이 우리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때 뭘 하셨어요?”라고 물을 때 우리의 대답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것이어야 한다.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도 했다”고 해야 한다. 칼날위의 피가 자신의 피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늑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혀를 유혹하는 수많은 메뉴를 포기해야한다. 지구를 위해 치맥의 횟수도 줄여야 한다. 나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지구공동체가 살기위해서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각인된 육식의 욕망과 거리두기를 해야 할 때다.뉴노멀은 빼기다. 우리는 이 슬로건을 밥상에서부터 실천해야한다. 슬기롭게 살려면 ‘매일 매일 채소롭게’ 살아야 한다.

2022-01-16

유권자의 후보 선택 기준을 점검한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올 3월 9일 대선이 이제 50일밖에 남지 남았다.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등락을 반복하다 오차 범위 내 접전을 이루고 있다.과거 어느 대선보다 마타도어와 흑색선전이 난무하여 선거판이 어지럽고 혼탁하다.여야 선대위는 물론 후보까지 오직 득표에만 혈안이 되어 상대를 비난하는 정황이다. 나라의 장래는 뒤로 두고 자신의 당선만을 위해 인기 영합 전술까지 횡행하고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보기에 부끄러운 인신비방과 폭로 전술이 줄을 잇고 있다.선거에서의 후보 선택 기준은 그 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이며, 정치의 수준이다. 이럴 때일수록 유권자들은 나라의 장래를 맡길 유능한 후보의 선택기준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대선 후보의 공약과 정책, 구도와 프레임, 인물 평가 시 유권자들이 유의해야 할 후보 선택기준을 살펴보기로 한다.우선 유권자들은 후보의 선택기준으로 공약이나 정책의 실천가능성부터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20대 대선이 중반전으로 넘어 올수록 오직 득표만을 위한 후보의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 인기를 끌려는 포퓰리즘적 공약이 경쟁적으로 남발되기 때문이다.이재명 후보는 지금은 철회했지만 전 국민 재난지원금 100만원 지급, 탈모 치료제까지 건강 보험으로 지원한다는 공약을 발표하였다.윤석열 후보는 이에 뒤질세라 군인병사 봉급 월 200만원, 산모에게 월 100만원 1년간 지원한다는 공약까지 발표하였다.생활 밀착형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는 현금 살포 식 공약은 모두가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공약이다. 재원 마련이나 나라의 곳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인기 영합적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국리민복을 위한 중장기적 정책 비전은 보이지 않고 달콤한 득표 공약만 발표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인기 영합적 공약을 분별하는 혜안부터 지녀야 할 것이다.둘째,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아군과 적군이라는 진영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번 선거 역시 종래의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의 진영 대결이 과열되고 있다. 사실 이 나라 정치에서 이미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 대결은 종결되어야 할 논리이다. 반독재 민주화 과정에서 등장했던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프레임 전쟁은 이제 허구일 뿐이다. 그러한데도 여야의 진영논리라는 악의적 정쟁만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진영 프레임은 유권자와 시민 사회, 심지어 언론까지 편을 갈라 상호 네거티브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판에서는 자기편은 항상 선이고 상대편은 악이라는 적대적 전선이 형성될 뿐이다.그 결과 양측은 선거 패배이후에도 대선의 결과에 승복치 않고 차기 선거까지 전투 준비에 열중하는 악순환이 반복한다. 우리의 언론부터 유권자들이 진영 프레임의 늪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 자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셋째, 유권자의 후보 선택의 최종기준은 후보의 인물 됨됨이를 종합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공약뿐 아니라 공직자로서 그의 업적, 공약의 실천의지, 도덕적 품성까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편향되지 않고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을 거친 경기 지사 출신이고, 윤석열 후보는 검찰 총장 출신이다. 두 사람 공히 율사 출신이면서도 여의도의 국회의원 경력은 없다. 이 점이 이들의 단점이면서도 이 나라 정치개혁을 위한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공직자로써 두 분 다 재직 시 상당한 공(功)과 함께 과(過)도 남겨 두었다. 대장동 특혜의혹과 검찰의 고발 사주의혹은 그들의 과거 행적이 초래한 부메랑이다. 설 전 개최될 양자의 대선 후보 토론은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유권자들은 편견을 갖지 않고 객관적으로 후보의 인물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부터 길러야 할 것이다.우리나라는 다행히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진입해 있다. 우리의 영화, 노래, 음식 등 한류라는 문화 콘텐츠는 문화 강국으로 발돋음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정치는 아직도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국민 절대다수가 존경하는 대통령 한명을 모시지 못한 불행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건국 대통령마저 하와이 망명지에서 사망하였고, 불행히도 자살한 대통령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 네 명이 재직 시의 비리로 감옥살이를 하였다.이번 대선에서는 우리의 국격에 걸 맞는 대통령이라도 선출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야 유력 후보는 이미 도덕성에서 상당한 흠결이 드러나 있다. 어느 때보다 후보의 비호감도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는 차선의 후보라도 선출해야 한다. 우리가 존경받는 대통령은 아닐지라도 유능한 대통령이라도 선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022-01-16

나노 사회와 휴머니즘

유영희 작가 1월 4일 오전 6시쯤,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용차 기사가 경사로에서 택배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으려다 택배차와 주차된 차량 사이에 끼어서 사망한 것이다. 용차 기사는 택배 기사가 쉴 때 투입되는 재위탁 기사이다. 아내는 임신중이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더 크게 안타까운 것은 택배 기사들은 소속 택배 회사와 노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용차 기사는 아르바이트 같은 개념이어서 사후 보호 조치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노동 형태를 긱 노동이라고 한다.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인 1회성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이다. 현대 사회의 노동이 파편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나노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나노 사회란, 이렇게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은 모래알처럼 부스러져 고립된 섬이 되어가는 사회를 말한다. 나노 사회 현상은 산업화 이후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더 심각해지고 있다.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산하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다음 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를 2008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데, 며칠 전 나온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도 내년 10대 키워드로 나노 사회를 들고 있다. 이 책에서는 나노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감 능력을 키우고 우연한 경험의 폭을 넓히며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춰나가자고 하면서 이 모든 것이 휴머니즘의 회복이라고 말한다.휴머니즘은 인간다움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로마인에게는 세련된 로마인만 인간이었고, 인도인과 흑인, 아메리카 인디언은 1537년에야 인간으로 인정받았던 것을 보면, 누구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역사의 발전으로 인간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풍속, 습관, 사상이 자기와 같은 사람만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만 ‘존중할 만한’ 인간이라고 은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해야 진정한 휴머니즘이라고 하지만, 그런 휴머니즘을 장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무엇보다 나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활 패턴이 다양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만나지 못하니 공감할 기회도 없다.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거나 길을 묻지도 않고, 여행을 떠나도 노선을 완벽하게 짜서 떠나니, 알고리즘을 벗어나는 우연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파트에서는 몇 년을 살아도 옆집조차 모른다. 이웃과의 공동체도 만들기 힘든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불행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특별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에게나 가능해 보인다.용차 기사의 죽음 앞에서, 아쉽게도 인문학적 처방은 힘이 될 것 같지 않다. 공감은 스쳐 지나가는 감상에 그치고, 휴머니즘은 공허한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 모래알처럼 존재하면서 파편화된 노동자로 살아가는 나노 사회의 문제는 공감이나 휴머니즘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2022-01-16

어린이 대학을 설립하자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얼마 전 ‘시인의 저녁’을 방송하다가 도이칠란트의 ‘어린이 대학’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내가 유학했던 나라의 소식을 타자에게 전해 들으니 조금 쑥스러워졌다. 하지만 그 내용이 의미 있고 아름답기로 여러 사람이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세상에 특별한 비밀이나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알고 계신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우리나라가 들썩거릴 때 도이칠란트 ‘튀빙엔 대학’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대학이 시작된다. 일곱 살 이상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수들이 다채로운 주제를 가지고 강의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 대학 참가자들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 따라서 성적도 없다. 학생들은 대학의 학생 식당을 이용하고, 대학 당국은 학생증까지 발급한다. 어린이 대학생들을 위한 대우가 극진한 것이다.대학 교수들이 제공하는 강의 주제 몇 가지를 소개한다. ‘왜 공룡은 사라졌을까?’,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학교는 왜 그렇게 지겨운가?’, ‘어째서 우리는 웃기는 얘기를 들으면 웃는가?’, ‘왜 누구는 가난하고, 누구는 부자인가?’, ‘왜 나는 나일까?’ 이런 주제를 놓고 해당 분야의 전공 교수들이 최대한 쉬운 어휘와 본보기로 어린이들에게 강의를 베푼다는 게다. 야, 하는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다.2002년 이후 ‘어린이 대학’ 기획은 세계 전역으로 확산하여 이웃 나라 일본과 동유럽의 루마니아, 남미의 브라질과 오스만튀르크의 후예 터키에서도 어린이 대학 프로그램이 성행한다. 더욱이 ‘유럽 어린이 대학 네트워크’ 회원국이 무려 29개국에 달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물론 어린이들이 강의 내용을 모두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최고 교수들에게 세상의 온갖 궁금증을 묻고 대답을 듣는다는 즐거움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나의 경각심을 잡아끈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어린이 대학 설립에 딸린 원칙 네 가지다. 첫째, 분과학문을 넘어 석학의 전문지식을 어린이 눈높이로 전달할 것. 둘째, 어린이들에게 대학을 재미있게 경험하는 기회를 줄 것. 셋째, 모든 강사는 재능기부를 원칙으로 하여 강의는 모두 무료로 운영할 것. 넷째, 신청하는 학생은 전원 수용할 것. 만세! 하는 탄성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우리나라 어린이들의 교육 현장을 생각해보시라. 어린이 대학은 만 7세 이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기에 우리 기준으로 보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다. 한국의 초중등생들은 저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교 수업도 모자라 각종 학원에서 속셈, 영어, 태권도, 피아노, 웅변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것들을 배우느라 진이 빠지고 있지 아니한가?! 무엇을 위해서 왜 그렇게 이런저런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가?!우리는 사람 대신 인적 자원이라는 용어를 쓰는 희한한 나라다. 인간을 소모품이나 생산재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인식하는 인간 본연의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면 이제라도 어린이 대학을 설립해야 하지 않을까?!

2022-01-16

불안한 국민연금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국가가 국민의 생애 중 발생하는 예측 가능한 사고는 최저한도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복지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경제학자 베버리지가 주창한 것으로 지금 영국 사회보장제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다. 스웨덴에서는 영국보다 복지정책이 낫다는 뜻으로 “태내에서 천국까지”란 말로 바꿔 쓴다.복지국가란 국민의 복리와 행복 증진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다. 사회보장, 완전고용, 재분배 등 복지정책을 국가가 얼마나 잘 펼치느냐에 따라 선진복지 국가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우리나라 국민연금이 지금 상태로 가면 2055년에는 적립금이 고갈된다는 연구발표가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현행 국민연금제를 개혁 않으면 1990년생은 연금 수령자격을 얻는 만65세 되는 해인 2055년에 한 푼의 연금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다. 또 노인빈곤률도 OECD가 국가 중 가장 높다. 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할 공적연금의 불안정한 구조를 시급히 개선하라는 경고다.보험료를 덜 내고 더 빨리 받는 현재의 연금에서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은 적게 받는 방식으로 바꿔야 미래세대 노후를 보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폭망할지 모른다. 현 정부도 국민연금 개혁안만 그려놓고 민감하다는 이유로 지금껏 나몰라라 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이 문제 만큼은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국민연금은 나이가 들어 더 일할 수 없을 때 국가가 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정책적 신념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를 책임질 대선후보들의 대안 공약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에서 이탈할지 알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1-16

겨울 들판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흰 비닐로 감싼 볏짚뭉치들이 박하사탕을 뿌려놓은 것 같던 진풍경도 사라지면 겨울들판은 자유의 몸이 된다. 옛날처럼 이모작으로 보리를 심지 않으니 내년 모내기철이 될 때까지는 휴식의 기간이다. 텅 빈 들판을 불어가는 바람도 거칠 것이 없고 오가는 새들도 얽매임이 없다. 날마다 들판을 한 바퀴 돌아오는 내 발길도 자유롭고 해찰하는 마음에도 걸림이나 구속이 없다.사방이 트인 들판에는 사철 바람 잘 날이 없다. 미풍에서 태풍까지, 삭풍에서 열풍까지, 무수한 스펙트럼의 바람이 시시때때 방향을 바꾸어 불어간다. 그래서 바람은 들판의 호흡이고 기분이다. 방한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태풍 급의 칼바람 속을 걸어가는 것은 가슴 뿌듯한 겨울의 맛이다. 거침없이 불어가는 바람을 안간힘으로 버티며 걷다보면 원초적 존재감 같은 것이 차오른다. 찌들고 남루해진 목숨이 한 아름 벅찬 생명감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바람을 거슬러 걸어간 길을 등 떠밀려 돌아오는 건 또 다른 기분이다. 이 풍진 세상을 사는 동안 누가 이렇게 확실하게 등을 밀어 준 적이 있었던가.겨울 들판엔 씨를 뿌린 듯 온통 참새들 천지다. 추수할 때 떨어진 낟알 때문에 겨울 동안 들판은 새들의 나라다. 비둘기나 까치 같은 텃새도 없지 않지만 가장 흔한 것이 참새다. 새 이름에 ‘참’자가 든 것은 ‘참한 새’라는 뜻인가? 농부들에게는 참하기는커녕 애써 지은 농작물을 축내는 얄미운 새이다. 허수아비를 세우거나 솔개모형의 연을 매달아 놓기도 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참새들은 잠시를 가만히 있지 않는다. 땅에 내려서도 걷는 법이 없다. 아무튼 끊임없이 날고 뛰고 재잘거리는, 한 점 어둡고 무거운 기색이 없는 그 생기발랄이 좋다.이 들녘엔 해마다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청둥오리와 고니와 기러기들이다. 청둥오리는 텃새가 된 것까지 합해서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은데, 멸종위기생물 2급에다 천년기념물 20-1호로 지정된 고니는 흔하지가 않다. 기러기도 이 들에선 보기 드문 손님들이다. 편애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같은 머나먼 곳에서 이곳 한반도 동남쪽까지 찾아온 손님들이라 사뭇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다. 이번 겨울에는 고니 50여 마리와 기러기 일곱 마리가 산책길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놀라서 달아나지 않도록 멀리서 조심스럽게 바라보곤 한다.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다가가면 후다닥 날아오르는 걸 보면 본능적으로 사람을 위험한 동물로 느끼는 것 같다.얼핏 보면 무채색의 텅 빈 들판 같지만, 이렇듯 뜨거운 생명감이 있는가 하면 발랄한 생동감이 있고, 기쁘고 설레는 긴장감도 있다. 나는 그 모두를 통틀어 자유라 부르고 싶다. 인류가 추구하는 자유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진정한 자유란 자연스러움에 더도 덜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 들판엔 아무런 구속이나 억압이 없다. 정치적 이념도 없고 백신패스도 없다. 누구든 틈나는 대로 겨울들판의 자유를 누려보시길 권한다. 무겁고 어둡고 복잡한 마음 다 내려놓고 겨울바람 속을 걸으며 새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힐링’이 될 것이다.

2022-01-13

포스코 1고로, 불을 끄다

윤영대수필가 지난해 12월 29일, 우리의 삶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초석을 다진 포항제철 1고로의 종풍식(終風式)이 있었다. 허허벌판 모래밭에 뿌리를 박고 50여 년간 쇠를 녹여왔던 첫 용광로의 불을 끈 것이다. 그동안 영일만의 꿈을 키우며 2차례의 치료를 통해 생명을 연장해 왔었지만 이제 수명을 다해 연명치료의 호스를 제거한 것이다.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그런데 그 종무식은 너무 조촐했던 것 같다. 코로나 탓인지 몇몇 포스코 임직원들이 참석한 내부행사로 끝난 영상을 보노라면 70년대 자전거를 타고 형산강 다리 위를 건너던 노란 제복 입은 산업역군들의 힘찬 대열이 눈에 아른댄다. 뜨거웠던 용광(鎔鑛)의 생을 마감하는 날, 그 흔한 현수막 하나 걸린 것을 보지 못했다. 그에 힘입어 발전을 거듭한 포항시도 무관심한 것인가, 내가 못 본 것인가….1고로가 숨을 멈춘다고 포스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포항시가 다른 나라 몇 개 도시처럼 도시몰락의 길을 가는 것도 아니다. 50년 전, 송도 죽도 해도 대도 상도 5개의 섬마을이 있던 형산강 하구에는 매일 힘찬 마음으로 출퇴근하는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물결이 넘쳤고 영일만에는 철광석을 싣고 오가는 거대한 선박들이 꽉 찼던 광경이 그립다. 그 철강 역사의 산실은 영일만의 기적을 낳았고, 녹슨 고로는 다만 산업 현장에서 임무를 다하고 사라질 뿐이다.1970년 4월 1일 첫 불을 당긴 고(故) 박태준 회장이 ‘선조들의 피 값으로 건설하는 제철소가 실패하면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하자’고 외친 ‘우향우 정신’은 포항을 제철입국(製鐵立國) 중심지로 만들었다.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오는 날, 국민 모두의 가슴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을 테고, 그날은 ‘철의 날’로 지정됐다. 그 후 연간 생산 130만t의 소형로에서 1천500도의 열기를 뿜어내어 현재까지 5천500만t의 철강과 국가의 어려움을 녹여온 1고로, 수명 15년의 3배까지 일하면서 ‘민족 고로’로 힘을 다했지만 이제 생산효율과 탄소 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밀려 사라져간 것이다.그간 생산한 ‘산업의 쌀-철’은 가발, 섬유제품 수출로 겨우 연명하던 국내산업을 조선, 자동차, 가전제품 생산 왕국으로 탈바꿈시켰고, 연간 조강생산 3천600만t의 세계 5대 철강회사로 성장하며 세계 만방에 그 이름을 각인 시켰고 ‘철강도시 포항’이라는 명예도 안겨줬다.그 역사를 형제 고로들과 함께 묵묵히 다독여 왔던 높이 90m 키다리 아저씨, 그 1고로의 영구침묵을 지켜보며 산업역사의 기념물로 보존하자. 지금까지는 제철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시킨다고 하지만 포항시와 포스코 둘만의 일을 넘어 국가가 나서야 하는 기념비적인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국가 경제를 세운 기틀을 마련한 포스코의 첫 쇳물 정신을 기리자. 1고로는 단순한 산업폐기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근대화의 모체이고 상징이다. 비록 종풍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민족 고로, 경제 국보1호’의 위용으로 세계 경제 10위의 꿈을 이루게 한 1고로의 불꽃을 가슴속에 간직하자.‘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2022-01-13

K-노익장

언제부턴가 K팝, K푸드 등의 방식으로 Korea의 K 이름을 붙인 우리문화가 많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2012년 발표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대표적 K팝이다. ‘강남 스타일’은 SNS 등을 타고 전세계를 강타했고, 이후 세계는 우리의 K팝에 열광하기 시작했다.한류 문화와 각종 콘텐츠 등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뛰어난 역량이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K컬처는 자랑할만한 일이다.K-노익장이란 말이 등장했다.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78) 씨가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고, 지난해 윤여정(76) 씨가 ‘미나리’에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이는 많지만 세계 무대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예술적 기량을 보여준 것을 이르는 표현이다.노익장은 늙어서도 젊은이 같은 열정과 기력으로 주변을 놀라게 할 때 쓰는 말이다. 원래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고 늙을수록 건강해야 한다”(窮當益堅 老當益壯)는 중국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가 넘는 고령사회다. 사회 전반이 고령화됐다는 의미지만 한편으로는 사회가 건강해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도 있다.환갑잔치는 옛말이다. 예로부터 70세까지는 사는 게 드물어 고희(古稀)잔치를 거창하게 벌였으나 요즘은 이도 눈치보고할 판이다. 2020년 태어난 아이의 평균 수명이 83.5세다. OECD 평균보다 우리나라가 더 높다. 드물지만 100살까지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한 것이다.깐부 할아버지 오영수는 수상 소감으로 “나는 괜찮은 놈이야”라며 자신을 격려했다. 건강하고 밝은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익장이 많이 등장하는 우리사회면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1-13

준석의 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을게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말이다. 최근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가 ‘준석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보수당인 국민의힘에서 국민이 바라는 개혁 이미지는 30대의 젊은 이준석을 당 대표로 만든 그 무엇에 축약돼 있다. 이준석 대표는 대표 당선 이후부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최근까지 2030세대를 비롯한 상당수 국민의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를 오롯이 짊어지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졌다.당 대표 선거 당시 5선의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대선 출마자격인 40세도 안된 젊은 청년에게 표심에서 밀렸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 당 대표에 당선될 당시 분위기는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그때 이준석을 지지한 국민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그를 지지했을까. 가늠해보자. 아마 정치현실은 마음에 안들고, 뭔가 바꾸고 싶은 데, 기존 정치인들은 왠지 말뿐이라는 실망감이 많았으리라. 정권을 교체하려면 지금 이대로의 야당은 안되고,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이 이 대표의 당선을 통해 표출된 것이리라.당시 국민의힘은 제1야당이면서도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맞설만한 대권주자를 내지 못한 채 외부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후보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영입했다. 그랬던 국민의힘이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전 대표 등을 포함한 경쟁자들이 함께 경선을 벌이면서 서서히 국민의 기대를 모았다. 여의도식 화법에 적응하지 못해 말실수가 잦았던 윤 후보가 홍준표 후보와 막상막하 각축전을 벌이며 국민의 눈길을 끌었다.국민의힘이 윤 후보를 선출하자 이번에는 내부의 위기가 닥쳤다. 소위 윤핵관으로 일컬어지는 후보 측근들의 이 대표 견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 대표가 선대위 직을 사퇴하는 파동이 일었다. 그 여파로 대선 경선의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이재명 후보를 여유있게 앞지르던 지지율이 급락했다. 윤 후보는 결국 당 선대위를 전면해체하며 극적으로 이준석 대표와 손잡고 원팀을 이뤘다. 윤 후보가 이준석과 화해하고, 함께 선거운동에 나선지 2, 3일만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 대표는 SNS에서 “이틀 걸렸군”이라고 했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그의 화법은 에둘러 말하기 좋아하는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생경하고 불편했으리라. 또 평생 상명하복이 원칙이었던 조직문화에 익숙한 윤 후보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으리라.그러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 이 대목에서 윤 후보의 결단이 빛난다. 주변의 많은 측근들이 이 대표를 욕할 때 “모든 게 후보의 잘못”이라며 함께 정권교체하자고 이 대표를 끌어안았다. 당소속 의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갈라지고 흩어졌던 당심이 하나로 뭉치고, 서로 욕하고 질시했던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지지율을 회복할 묘수찾기에 나섰다. 그 결과 보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다시 살아났다. 승부는 아직 예측불허다. 다만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여론이 과반을 넘는다는 여론조사를 감안하면 준석의힘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 윤 후보의 선전이 기대된다.

2022-01-13

먹는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

먹는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가 13일 국내에 도입된다는 소식에 코로나 환자들의 근심이 다소 가벼워질 전망이다. 물량이 한정돼 도입된 팍스로비드의 투약대상은 우선 순위를 정해 투약하게 된다.정부는 국내 첫 도입된 팍스로비드를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경증, 중등증 환자이면서 65세 이상 또는 면역저하자 중 재택치료를 받거나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사람에게 우선 투약한다고 밝혔다. 이들 중 증상이 나타난 지 5일 이내의 환자에게 먼저 투여하며, 무증상자는 투약 대상에서 제외된다.약은 전문의의 처방과 상담하에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2번 5일간, 한번에 3알씩 복용한다. 분홍색 약(니르라트렐비르) 2알과 흰색 약(리토나비르) 1알을 동시에 통째로 삼켜야 한다. 정제를 씹거나 부수면 안 된다. 복용 시간은 식사 여부와 관계없으며, 복용을 잊은 경우, 기존 복용 시간에서 8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면 생각나는 즉시 복용하면 된다.8시간 이상 복용을 잊었다면 놓친 용량을 건너뛰고 다음 회차 용량을 정해진 시간에 먹는다. 한꺼번에 두 배의 용량을 복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은 15∼30℃ 실온에서 보관한다. 팍스로비드 복용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미각이상, 설사, 혈압상승, 근육통 등이 임상시험에서 관찰됐으나 증상은 대부분 경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부작용 의심 증상이 나타났다면 처방받은 의료기관에 연락해 처방 중단·변경을 상담해야하며,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상담전화(1644-6223)나 한국화이자제약(02-317-2114)으로 신고·문의할 수 있다. 먹는 코로나 치료제 도입으로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블루가 사라지기를 소망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12

악의 침전물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부자(父子)가 닮고 모녀(母女)가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한 집에서 살다보니 은연중에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몸에 배어 무의식적으로 닮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자 칼 융은 잠재의식이라 했고 인간의 행동은 의식보다 잠재의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잠재의식은 그가 사는 곳의 전통과 문화와 관습에 의해 형성된다. 이것을 굴레이니, 유산이니, 업보이니, 맥이라고도 하지만 칼 융은 그것을 ‘집단 무의식’ 또는 ‘잠세태’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찌끼(침전물)’라고 했다. 의식이 작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행위는 모두 잠재의식에서 나오며 결국은 그 잠재의식이 우리의 삶을 주도한다. 의식은 가식(假飾)으로 숨기고 위장할 수 있지만 잠재의식은 꾸며 낼 수 없는 근본(根本)이다. 바닥에 잠재된 침전물이 근본이고 그 근본을 숨기기 위해서 덮는 의식은 가식이다. 가식은 언젠가는 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잠재의식의 표출로 드러나게 되어 결국 진실을 숨길 수 없게 된다.예레미야는 모압족속의 멸망이 악의 침전물 때문이라 했다. 그 악의 침전물을 쏟아버리지 않으면 멸망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다. 예레미야 48장에 “모압은 겉으로 보면 맛과 향이 좋은 술 같지만 썩은 찌끼가 바닥에 침전되어 있기에 모압이 살려면 술 거르는 자들을 보내어 포도주를 모두 쏟아 버리고, 그릇들을 비우고, 항아리를 깨뜨려 악의 찌끼(침전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모압족은 시작부터 악의 침전물을 바닥에 깔았다. 롯이 타락하여 그 딸과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이 모압이고 그 후손이 모압족이다. 이후에도 정의의 편을 버리고 발람과 같은 거짓된 자들을 발탁하여 정치를 펼쳐 나감으로 악의 침전물을 두껍게 만들었다. 이들은 악의 침전물 위에 달고 맛있고 향이 좋은 거짓 정치의 술을 담아 위장했지만 결국은 그 침전물에서 악이 배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악한 침전물에 기초하여 세운 모든 역사는 결국은 부패하여 망하게 된다고 경고했고 그 침전물을 쏟아내지 못한 모압은 결국 멸망했다.불행하게도 유독 우리 정치 역사에는 악의 침전물이 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악의 침전물을 쏟아부어 버리지 않은 채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술을 부어 감춘다 할지라도 결국은 침전물 속에서 악한 것이 나오게 되므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악의 침전물을 제거하기 보다는 그 위에 단맛과 향을 내는 술을 부어 악의 침전물을 덮으려고만 한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그 술에 취하게 하여 바닥에 있는 악의 침전물을 보지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가 모압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악의 침전물을 쏟아내어야 할 것이다.

2022-01-12

대한(大寒)을 며칠 앞두고

오낙률​​​​​​​시인·국악인 설레며 밝아오던 새해도 벌써 며칠 지나고, 소한을 지나 일 년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대한을 앞두고 있다. 대한까지 지나면 민족의 고유 명절 설날이 되는데 그때 또 한 번 우리는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느라 너나없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예부터 사람들은 양력설과 음력 설날을 모두 지내야만 음과 양의 기운을 두루 갖춘 완연한 새해라 여겨왔다. 그러나 신정과 구정 사이에는 약 한 달여의 시간이 있는데 이 시기는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에 해당하므로 아마도 겨울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지상의 나약한 생명들에게는 가장 힘든 삶의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달력이라는 시간의 도표에는 24개의 마디가 설정되어있다. 그 마디를 24절기라고 부르며 그 24절기는 ‘절’이라는 12개의 마디와 ‘기’라는 12개의 마디로 조합되어 있다. 그 조합 또한 음양의 원리로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 24절기가 순환을 반복하면서 세월 또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시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래떡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데 우리가 나름의 크기로 종종 썰어 쓰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평생을 꿈꾸며 살다가 끝내는 또 꿈을 꾸려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생명체의 사명은 물의 순환에 있다. 식물이나 동물 할 것 없이 죄다 그렇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의 입장은 좀 다르다. 동물이라는 생명체는 동(動)적인 존재로 타자의 몸에 지닌 물을 취해야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한자리에 뿌리를 박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살아가는 식물보다도 오히려 더 힘든 생을 꾸려 간다. 그것은 동물류에 해당하는 생명체들의 원죄라 할 수 있다. 해서 원죄라는 단어는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동물류의 공통적 원죄를 관통한다.새해의 초입에 들면 필자는 습관처럼 죽도시장 어판장을 찾는다. 그리고 가끔 걸음을 멈추고 생선 파는 아낙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곤 한다. 행여 새해의 힘찬 기운을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볼까 해서다. 죽도시장 어판장에서 나이 칠십은 족히 넘었을 아주머니들의 표정에서 향내를 느낀 기억이 있다. 장사꾼의 돈은 개도 안 물어 간다는데 수많은 손님을 대하면서도 싫은 표정 한번 짓는 법이 없었다. 그 아주머니들의 속내는 발효가 잘되어 마치 백설처럼 하얀 것 같았다. 속이 거름처럼 썩은 게 아니고 배꽃처럼 하얗게 발효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려도 싱싱한 꽃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올해도 마스크 때문에 그 싱싱한 참꽃 미소를 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필자의 어린 시절엔 들일 나가는 소의 입에 머거리라는 마스크를 채웠다. 좁은 들길에 소를 몰고 가노라면 소가 길가에 자라는 농작물을 한입씩 뜯어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려는 주인 농부의 특별한 조치였다.어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죄다 소 머거리 같은 마스크를 하고 살아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2022-01-12

안철수의 물맷돌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의 입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이름도 같이 언급됐다. 그는 자신이 거대 양당을 상징하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다윗임을 강조한다.현재 국회의원이 3명뿐인 국민의당이지만, 마크롱이 당선됐을 때는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도 상기시키고 있다. 시계를 5년 전인 19대 대선 때로 돌려보자.안철수 후보는 그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골리앗은 기득권을 상징하는 거대 양당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돌풍을 일으킨 마크롱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시켰다. 한 번만 더 타임 슬립을 해보자.2013년, 서울시 노원구에서 재보궐선거를 준비하던 안철수 후보는 청소년들과 즉석 만남을 가졌다. 늦은 밤에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고등학생들에게 그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했다. “거대한 골리앗과 맞설 때 다윗은 원래 입던 양치기 옷에 원래 쓰던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가장 잘하는 걸로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안 후보가 말했던 돌멩이는 물맷돌이라고 일컬어진다. 물매는 가축을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대의 목동들이 쓰던 투석구였다. 물맷돌은 시속 70~80㎞의 속도로 날아가면서 200미터 떨어진 곳의 목표물도 명중시킨다고 한다. 목동 출신 다윗의 비장의 무기가 물맷돌이었던 셈이다.근 10년간 안철수 후보는 다윗과 골리앗의 예화를 애용해왔다. 자신의 정체성을 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갈고닦은 물매 실력을 보여줄 때도 됐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의사이자 벤처기업 CEO 출신답게 과학기술 강국의 청사진과 코로나19 극복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안철수 후보는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신화란 말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는 서울 시장 후보와 대통령 후보를 당시 야권에 모두 양보했다. 다자 대결 구도로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는 독자 출마를 선택했다. 하지만 MB 아바타 논란으로 고전하며 3위에 그쳤다.올해 치러지는 20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현상이 아니라 안철수 현실이 존재한다. 그의 선택 여하에 따라 대선판이 흔들릴 수 있다. 그는 독자 출마와 후보 단일화의 경계에서 제3지대를 구축하고 있다. 그로 인해 거대 양당 후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1위와 2위 후보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 있을수록 안철수의 존재감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안철수 후보가 독자 출마를 감행할지, 후보 단일화를 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설날을 전후한 지지율 추이가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에는 간철수가 아닌 강철수가 될 수 있을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팬데믹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해에는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골리앗이란 존재는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일 수 있다. 안철수의 물맷돌이 비유인지, 실체인지를 증명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2-01-12

무인상을 떠올리며

오전 내내 시끄러웠다. 아래층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망치를 치고 두드리는 뭇소리까지 들려왔다. 공사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현장을 보러 갔다. 유리 슬라이딩 문 안에서는 벽면의 타일을 깨고 이젠 쓸모없어진 장식물을 부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닥엔 자재가 뒹굴고 꽉 닫힌 공간으로는 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해 뿌옇게 고여 있었다.안쪽을 들여다보자 나이든 늙수그레한 인부 한 사람과 러시아계의 노동자 두 사람이 제대로 마스크도 하지 않고 등산용 스카프로 대충 입을 가린 채 먼지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입구에 작업을 지시하는 사장님을 잠시 불러내서 “마스크라도 좀 드릴까요?”라고 의견을 제시하자 “저들도 숨쉬기 힘든데 일이 빨리 진척이 없어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가변 벽 너머 창문이 있으니 일부를 부수면 먼지가 빠져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옆방으로 가서 밖으로 난 창문을 힘껏 열어 젖혀두었다.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다시 가서 보니 먼지는 좀 가라앉고 가변 벽이 부서져 뼈대만 남은 채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업하던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부서진 벽의 잔해 등을 실어 나르고 식사를 하러 간 모양이었다. 카페가 있던 자리도 이용의 목적이 달라지니 남김없이 벽면과 장식이 부서지고 사라진 상태였다.올여름 시 낭송을 야외에서 한다며 간 원성왕의 무덤인 괘릉이 생각난다. 작은 연못이 있던 자리를 돌로 메워 그 위에 묘를 만들었는데 물이 자꾸 배여 나와 왕의 시신을 땅에 놓아둘 수 없어 허공에 매달아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걸 괘(掛)자를 써서 괘릉이라고 부른다는 설화이다. 그 능 앞의 무인상과 문인상은 정교한 조각이 훌륭해 여러 예술작품에도 제법 인용이 되곤 한다.그 무인상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곱슬한 머리를 보아 신라와 활발하게 무역을 하던 때 흘러들어온 페르시아 사람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한다. 손에 든 긴 칼을 보면 신라왕의 호위무사를 하겠노라 달려온 용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인상의 뒷모습을 보니 주머니를 차고 있다. 이국땅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노라 고향을 떠나온 상인이었을까를 상상해본다. 그들이 아마도 안강읍에 위치하는 흥덕왕릉의 호위무사로도 간 모양이다. 신라인에 비해 덩치가 크고 단호하면서 부리부리한 눈매가 신뢰를 주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그들이 보디가드를 했다면 왕도 훨씬 편하게 눈을 감고 이승을 떠나지 않았을까. 저승에 간 후까지 왕을 호위하는 무사로 곁에 두고 싶었던 모양이다.그러고 보니 1960년대에 서독으로 갔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광부와 간호조무사들이 그 험한 곳에서 살아남아 당시 대통령을 만나 눈물 흘리던 모습은 늘 마음의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시체를 알코올로 닦거나 병원에서 모두가 외면하던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해야 했던 이들과 컴컴한 탄광 속에서 이빨만 하얗게 드러내고 웃던 이들. 탄광의 저주인 진폐증에서 그들도 자유롭지 못했다. 배문경수필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사람들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도 새벽 노동은 이루어지고 한여름 폭염에도 공사는 진행될지니, 우리의 삶이 영속적이듯이 노동의 하루도 그렇게 이어진다. 새벽 어두컴컴한 도로의 길섶에 버스가 선다. 그곳에서 벗어난 외국인노동자들이 어둠과 함께 걷는다. 그들만의 언어로 피곤한 밤을 견딘 동료들과 대화가 깊다. 이제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안한 아침을 맞길 바라는 마음으로 옆을 스친다.카페가 사라진 자리로 종합 검진실이 자리 잡을 것이다. 새롭고 환한 의료 환경이 제공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바닥은 무엇으로 채워질지 광고 간판은 어떤 걸 사용할지 얼마 후 이전 개업하게 될 새로운 공간이 먼 곳에서 달려온 낯선 사람의 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삶도 두 손이 만들어낸 하나의 생(生)이란 건축물이다. 한 사람의 건축물이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며 인간의 역사가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잠시 무인상을 닮은 노동자들의 안녕을 마음으로 빌어본다.

2022-01-12

임인년…육십갑자와 함께 명리인문학 여행 떠나보자!

류대창 명리연구자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인생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류는 많은 방법으로 운명 해석에 몰두했다. 명리인문학은 그런 지혜를 축적한 학문이다. 코로나19의 창궐에 지친 독자들에게 육십갑자를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 해 위안과 안식을 드리고자 한다. ‘류대창의 명리인문학’은 격주 목요일마다 독자들을 찾게 된다.인간은 본성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기를 원한다. 인간 본성에 내재한 길흉화복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천명한 말이다. 하늘이 점지해주는 능력을 깨달아 자기의 분수와 능력을 알고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분수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므로 정해진 사주팔자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마음 자세에 따라 길흉은 상당한 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돈, 둘째는 자식문제, 셋째는 건강문제다.중국 당나라 때, 유종원(柳宗元·773~819)이 영주(永州)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귀향살이를 하고 있을 때 일이다. 그곳 사람들은 누구나 헤엄을 잘쳤다. 어느 날 강물이 무섭게 불어났는데도 그곳에 사는 대여섯 사람이 자그마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고 했다. 강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배가 부서져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강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쳤다. 같이 헤엄을 치던 사람들이 “우리들 가운데 가장 헤엄을 잘 치는 자네가 오늘은 어째서 뒤로 처지는가?”라고 물었다. 그 사람이 대답하길 “나는 허리에 동전을 천 냥을 차고 있어 자꾸 뒤처지는구먼”이라고 말했다. 같이 강을 건너가던 사람들이 “어째서 그것을 버리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지쳤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딴 일행은 이미 강을 건너가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니, 이 어리석은 친구야! 돈에 심장이 뒤집히고 눈이 멀었군! 너 하나 죽고 나면 그 돈은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가?”라고 나무라면서 큰소리로 그 사람 이름을 불러댔다. 그래도 그 사람은 고개만 설레설레 젓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 일은 나를 매우 슬프게 했다. 돈 있고 권세 있는 몇몇 사람들이 스스로 쌓아 놓은 그 엄청난 돈더미에 깔려서 죽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유하동집(柳河東集)’에 나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오징어 게임’, ‘지옥’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변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은 더욱더 가열되어 가고 있다. 마치 불나방처럼….신축년이 지나고 임인년이 도래했다. 자연은 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운행되고 있지만 인간은 자연법칙이란 테두리를 벗어나 살 수 없다. 신년이 도래하면 올해의 운수가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해 철학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 한 해의 운수를 알고자 한다.옛말에 이르기를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천명을 알 수 있으며 나 자신을 알 수 있는지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하늘의 때도 알고 땅의 유리함을 얻어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생존을 위해 이고득락(離苦得樂·고통을 멀리하고 즐거움을 취한다)을 원하고 있다. 인간은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속성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결과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것의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명리학이다. 하늘의 이치(天文)를 인간의 문학(人文)으로, 하늘의 비밀을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명리학의 주된 목적이다.기해년(2019년), 경자년(2020년) 추운 겨울이라 활동이 움츠렸던 시기다. 신축년(2021년)은 하늘은 매섭고 찬바람이 휘날리는 신(辛)이지만 땅은 축(丑) 소의 눈망울 같은 순하고 순수한 해였다.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따뜻한 눈으로 봐주지만 매울 신(辛) 때문에 묵묵히 지켜보는 형상이었다.임인년(2022년) 하늘의 기운 임수(壬水)는 지혜와 큰 바다 같은 포용력을 보여준다, 땅의 지령인 호랑이가 배가 고플 인시(寅·새벽 3시~5시)이기에 냉정하고 내적인 힘이 있어서 뭔가 준비를 하고 시작하려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목(寅木)은 봄의 계절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1347년 이탈리아를 강타한 흑사병(페스트)으로 유럽의 인구 1/3이 사망했고, 그래도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았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의 경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며, 우리 서민의 살림살이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허탈감이 든다. 그러나 이 고난을 극복해야 하고 이겨내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서다. 호랑이 같이 용맹스러운 기운이 도래하고 있으니 서두르지 말며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많지않음을 알고 자기 처지에 맞는 역량으로 이 고난을 헤쳐 나가야겠다.-1951년 대구 출생-서예가 동애 소호영·문강 류재학 사사-불화장 이수자 본연 전연호 사사-제2회 불교미술 본연문도전(2008년) 개최

2022-01-12

수능은 학종과 겨루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에 할 일이 많다. 진작 풀었어야 할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지 않은 탓에 문제가 켜켜이 쌓인 가닥들도 여럿이다. 해마다 겪으면서 지나고 나면 거듭 잊으며 지내온 숙제가 있다. 대학입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의미가 왜곡되고 교육현장 부조리의 뿌리가 대학입시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전국의 교육청들이 제아무리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구사해도 대입제도의 벽은 넘어설 방법이 없다. 유아교육과 초중등 교육이 인성바르며 바람직한 사람을 기르고 싶어도 대학으로 가는 길에서 모든 선의가 무너져 내린다. 불공정의 대명사처럼 누더기가 되어버린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불러오는 꼴을 보이고 있다.학종 대 수능. 극한의 경쟁구도를 완화하고 사교육의 폐해를 줄여보기 위해 교육계의 지혜를 모아 만들었던 학종이 아니었던가. 수시와 정시로 대학입학결정 시점에 차이를 두고 학종과 수능을 나누어 배치한 듯한 구조가 문제였을까. 학생부 종합평가의 본질과 취지에는 문제가 없다. 학교현장에서 적용하고 운용하는 방식과 대입전형에 반영하여 학생을 평가하는 방법에 다소 개선의 소지가 보인다 하여 이를 전면 부정하는 태도는 옳지않아 보인다. 일부 대선후보들조차 교육정책을 제안하면서 학종과 수능을 서로 대척점에 놓고 입안하는 일은 교육의 관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의 노력을 넘어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사교육과 극한경쟁의 조건이 수능의 진행과 결과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능은 그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시험한다는 모양인데, 오늘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진로와 학문영역의 문턱에서 대학에 들어가 수학할 능력을 포괄적으로 평가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정규 교육과정을 적절하게 마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여 수학할 최소한의 능력을 인증하는 정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학생의 실력을 평가한 결과로 줄을 세워 대학입시전형의 성적표로 사용하는 오늘의 방법은 교육적으로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그것도 일 년에 단 한 번 전국단위 시험으로 대입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으며 이해하기도 힘들다. 수능점수의 수준에 따라 특정대학과 학과에 입학이 가능하다는 식은 낡아도 너무 낡은 습관이 아닌가. 수능이 더이상 석차를 갈라놓는 기능을 하지않아야 한다.수능과 학종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수능의 역기능을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학종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수학능력인증시험으로서 수능과 학생부종합평가를 전형자료로 삼아 대학은 학생을 면담한 결과를 토대로 입학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수시와 정시의 시점 구분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특정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로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판단하는 인식과 잣대도 바뀌어야 한다. 대학은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여하는 기관으로서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 아닌가. 수능과 학종은 모두 건져야 한다.

2022-01-12

긍정 에너지

조현태​​​​​​​수필가 미국에 흑인으로 최초의 호텔 총주방장이 된 사람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고급 호텔 ‘벨라지오’의 제프 핸더슨 총주방장이다.그는 가난과 범죄가 난무하는 LA 뒷골목에서 출생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하며 마약 밀거래에 빠지고 말았다. 소중한 20대를 교도소에서 보내고도 인생의 방향을 확 바꾼 계기는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교도소에서 꿈을 찾은 뒤 자신이 가장 간절하게 원한 것은 ‘배움’이었다고 한다.그는 교도소에서 마당청소를 맡았으나 매우 게을렀다. 그러자 재소자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설거지 일을 배정받아야 했다. 1천500명분의 식기를 하루 세 번씩 닦아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하루는 주방에서 빵 굽는 조리실을 보고 흥미를 가졌다. 커다란 반죽기와 발효기, 프라이팬에서 튀겨지는 도넛을 보며 요리사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설거지부터 온갖 잡일을 하면서 하나씩 기술을 익혀 교도소 생활 10년 만에 보호관찰로 석방된다. 요리를 배우면서 책과 신문을 읽기 시작했고 좀 더 수준 높은 요리를 배우기 위해 최고의 인물을 찾아다녔다. 수없이 많은 주방을 거치고 다양한 요리사들을 만나면서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올라갔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최고급 호텔의 총주방장이 된다.흑인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코치로 활동하는데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흑인들은 자신의 범죄 이유가 사회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총을 겨누며 범죄하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그 선택은 바로 자신이다. 자기를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저서 ‘나는 희망이다’에서 강조한다. 생각을 바꿔라. 목표를 정하면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것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과 다르다.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가난, 부모 이혼, 도둑질, 퇴학, 마약 그리고 감옥. 거기서 설거지하며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던 것이다. 희망이 싹트면서 자신을 바로잡는 방법은 꾸준히 참아가며 맡은 바를 충실히 하는 것이다. 흔들리거나 절망하지 말고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강요하는 것보다 더 줄기찬 에너지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긍정 에너지가 아닐까 한다.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얼마나 간절한 가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 바람이 절실할수록 생각의 전환에 따른 긍정 에너지가 커져야 한다. 주변에서 조롱하거나 방해하는 사람들이 왜 없었으랴. 내가 곧 희망이라는 긍정이 아니면 설거지에서 총주방장으로의 과정을 견딜 수 있었겠는가.대형 산불은 늘 조그마한 불씨에서 비롯된다. 건조한 날씨에다 몰아치는 바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키워간다. 대한민국 사회에도 대형 산불 같은 상황을 불러일으키려는 사람이 몇 있다. 자신이 추구하려는 일에 건조함과 바람 같은 에너지가 더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온 정성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제프 핸더슨을 빗대어 보자.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기보다는 자신이 에너지를 만들어 마침내 성공하는 케이스다. 하물며 많이 배웠고 이미 성공했으나 더 큰 최고치를 원한다면 스스로 긍정 에너지를 휘몰아쳐야 하지 않겠는가.

20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