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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예모(張藝謀)를 생각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1950년에 출생한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장예모의 ‘원 세컨드 (1초)’가 상영되고 있다. 대구에서도 상영관이 희귀하여 한 군데서만 영화를 볼 수 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 당시 하방을 경험한 반동 집안 출신 지식인 장예모의 아픈 기억을 담은 영화다.3년에 걸친 하방을 마치고 갖은 고생 끝에 그는 모택동이 죽고 난 다음인 1978년에야 북경 영화학원의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영화 인생 밑그림을 그린다.1982년 대학 졸업과 함께 ‘광서영화제작공사’의 촬영기사로 입사하여 본격적으로 영화와 만난다. 1982년 5세대 감독의 선두주자 진개가(陳凱歌)의 영화 ‘황토지’의 촬영감독이 된다. 1987년에 그는 ‘오래된 우물’의 촬영감독 겸 주연배우로 이름을 알린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장예모는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을 받아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1992년 ‘귀주 이야기’, 1999년 ‘책상 서랍 속의 동화’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는다. 1994년에는 ‘인생’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다. 이외에도 그가 받은 국제 영화제의 수상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가 세계 영화제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은 현대 중국의 복잡다단한 사회·정치문제의 천착이 바탕이다. 소품을 만들되 소품 이상의 사회적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과 날카로운 시각을 소유했던 덕이다.1999년 ‘집으로 가는 길’로 대약진운동 시기의 사회상을 그려낸 장예모의 영화 세계는 2002년 ‘영웅’을 기점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천하를 통일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국가)를 위해 소(개인과 가문)는 얼마든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일관되게 관철되기 시작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08년 북경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괄하는 총감독 자리에 오른다. ‘어용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다.1990년대 중국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장예모의 영화는 서서히 관객들에게 잊히기 시작한다. 여전히 뛰어난 색감과 활달한 무협을 바탕으로 한 ‘연인’이나 ‘천리주단기’ 혹은 ‘황후화’ 같은 영화도 속절없이 망각(忘却)되기에 이른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원 세컨드’로 귀환했다. 단 1초를 위해 고군분투를 마다하지 않는 어떤 아비의 삶을 그려내는 따사롭고 온정이 넘치는 영화.고희를 넘긴 그에게 문화혁명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는 듯하다. 대수롭지 않은 싸움으로 여덟 살짜리 딸과 생이별하고 오랜 수형생활을 해야 했던 사내의 고통과 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강렬하게 그려져 있는 ‘원 세컨드’. 그와 함께 어린 동생의 소원을 들어주려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는 누이의 살가운 혈육사랑도 애틋하게 묘사된다.‘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장예모의 시선과 연출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특히 부드럽게 춤을 추는 사막의 모래가 연출하는 기막힌 능선의 풍경을 잡아내는 렌즈는 아, 하는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영화 인생 후반기가 환하게 열리기를 기원한다.

2022-02-06

‘작심삼일(作心三日)’은 정상적 반응이다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지난 칼럼 ‘새해 결심’에서 비록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변했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이 목표가 없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이기에 ‘새해 결심’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바 있다.갈등이론의 대가로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셜링(메릴랜드대) 명예교수도 새해 결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갈등할 때 “할 것인가”로 결정하라는 것이 갈등 이론의 핵심 이론이다.미국 설문조사 기관 통계뇌조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새해 결심을 연말까지 그대로 지키는 사람은 8%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새해결심이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다.왜 우리의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될까? ‘작심삼일’은 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로버트 마우어(미국 UCLA 의과대) 교수에 의하면, 뇌의 ‘방어 반응’때문이다. 급격한 행동의 변화는 뇌의 입장에서는 오랜 세월 유지했던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거부감을 보이는 ‘방어 반응’을 불러일으킨다.즉, 안 하던 공부나 운동을 갑자기 하면 뇌는 마치 “호랑이 같은 맹수가 나타났다”고 느끼고 ‘방어 반응’이 작동되는 것이다. 이 때 뇌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과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들이 스트레스를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안타깝게도 3일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3일이 지나면 더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이다.새로운 변화가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 뇌가 새로운 변화를 기억해야 한다. 뇌가 새로운 변화를 기억하려면 3주간 새로운 일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단기 기억으로 입력된 정보가 뇌 전체에 정착됨으로써 중기 기억으로 이행 저장돼 새로운 변화가 새로운 습관 회로로 바뀔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그런데 이것이 중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이 되어 새로운 습관 회로를 만들어 새로운 습관이 되려면 평균 66일이 필요하다.뇌 과학과 마음의 원리에 따른 ‘작심삼일’을 벗어나 기어코 새해 결심을 이루어 내는 두 가지 제언을 하려한다.첫번째 전략은 전래동화 ‘3년 고개’에서 찾았다. 넘어지면 3년 밖에 못 산다는 어느 산골 마을, 그 고갯길에서 넘어져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깊은 고민을 본 손자가 “계속 넘어져 넘어질 때마다 계속 3년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 않느냐”고 알려준 고정관념을 깬 역발상이 있는 반전의 이야기이다.‘작심삼일’이 됐다면, 또 ‘작심삼일’하면 된다. ‘작심삼일’을 7번 반복하라. 3일을 7번 반복하면 21일이 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 해석을 잘해야 하는데, 시작은 반이지만, 두 번 시작한다고 ‘합해서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수학적으로 7번 연속해야 확률이 99%가 된다. 21일이 되어야 뇌 변화의 기초가 마련되고 평균 66일이 되어야 비로소 새로운 습관 회로가 만들어지며 정신적 요소까지 감안 한다면 최소 100일은 돼야 새로운 회로가 굳건해진다.두 번째 전략은 “과잉 목표를 세우지 마라”이다. 자넷 폴리비(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실패를 거듭해도 계속해서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는 행위에 대해 ‘헛된 희망 증후군(false hope syndrome)’이라고 했다.새해 결심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방법론이나 내·외부 상황 탓보다 가능한 목표가 아닌 과시하기 좋은 과잉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뇌 습관 회로를 단기간에 급속한 변화를 이끌어 내려하기에 뇌의 ‘방어 반응’에 막혀 실패하는 것이다.큰 변화보다는 작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좋다. 로버트 마우어(미국 UCLA 의과대) 교수는 ‘스몰 스텝(small step)’을 제안한다.즉 평소 안 하던 운동을 새해를 맞아 갑자기 하루 1시간 일주일 내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10분, 주 몇 회’처럼 가볍게 시작함으로써 뇌의 ‘방어 반응’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새로운 목표를 한 순간에 모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스몰 스텝(small step)’을 강조했던 것이다.터무니없고 무리한 결심으로 인한 반복된 실패로 마틴 셀리그만이 말한 학습된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자포자기 하지말자. 실패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난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성공할 때까지 반복하자.무리하지 않게 포기하지 않고 뇌의 ‘방어 반응’을 잘 달래면서 반복을 통해 습관을 잘 들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계획대로 목표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임인년(壬寅年) 2022년에는 뇌 과학과 마음의 원리를 알고 새해 결심을 이루기를 응원 드린다.

2022-02-06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는 총체적 부실 탓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최근 국내 대기업이 건설 중이던 광주의 한 아파트가 무너졌다.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처참했다.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한국건설신화와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거주공간인 아파트의 붕괴사고는 예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린 것과 분명 결이 다른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것일까? 건설현장에서 붕괴사고는 거푸집공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거푸집이란 콘크리트 타설시 유출 방지 및 타설 후 강도를 발현, 경화하기까지 작용하는 내·외부 환경으로부터 콘크리트를 보호해 형상과 치수를 확보하는 가설구조물이다. 거푸집 붕괴사고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고 다수가 부상당하거나 사망하는 중대재해로 이어진다.이번 사고를 살펴본 전문가들은 콘크리트의 품질을 우선 지적했다. 최상층까지 콘크리트를 쉽게 올리기 위해 물을 많이 배합해 점성을 낮추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렇게 되면 거푸집이 받는 압력이 커지고 콘크리트와 철근이 잘 붙지 못한다고 한다. 사고현장에 콘크리트 가루가 많은 점이 의혹의 핵심이다.또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자갈·모래 등 골재를 잘못 관리했거나 배합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않았을 공산도 크다.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기 위해 넣는 혼화제나 시멘트 관리가 부실한 업체 등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업체 10곳 중 8곳이 품질 관리 미흡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이었다고 한다. 레미콘업체에서 사용하는 골재에 대한 전수조사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골재의 출처와 강도가 적절한지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부실시공도 큰 문제였다. 통상적으로 14일의 굳힘 과정과 28일의 동바리(공사 중의 중량물을 일시 지지하는 가설기둥)의 설치 기간이 필요하지만, 사고당일 작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37층까지 동바리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콘크리트 타설 또한 35층은 7일, 36층은 6일 만에 타설 공정을 마쳤다고 한다. 시공과정의 허술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이다.설계는 잘 지켰을까? 광주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는 건축물 뼈대를 보 구조물이 없이 기둥과 슬래브로 구성하는 무량판 구조로 설계됐다. 사업 승인시 6개의 기둥을 세우기로 돼 있었는데 시공 도면에는 기둥이 2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감리과정도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6월부터 3개월에 1회씩 총 11권 분량의 감리보고서가 사업승인주체인 구청에 제출되어 자재, 시공 및 구조안전 모두 적합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붕괴사고를 통해 결과적으로 건축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감리 과정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필자는 과거 건축자재중 난연샌드위치패널의 문제점을 알리고 화재에 약한 가짜난연샌드위치패널을 건축현장에서 퇴출시킨 경험이 있다. 공인된 시험기관이 업체에 로열티를 받으며 일반스티로폼과 철판사이를 난연 접착제로 접합한 엉터리 기술을 업체에 넘겨 생산했다. 이를 국토부와 시험기관이 비호하고 현장단속에 제외하는 것도 모자라 불량난연패널 시공 된 곳에 덧대어 시공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언론과 경찰의 도움으로 바로 잡을 수 있었다.건설현장과 건설자재, 건설시공의 문제는 일일이 나열하기가 버거울 정도이다. 건축자재의 부실은 시공을 아무리 잘해도 사고와 직결된다. 건축자재의 품질 기준을 엄격히 지키고 시험기관의 비리를 확실히 바로 잡아야 건설현장의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중요한 인부 수급 문제나 전문성 결여도 심각하다. 인력부족으로 현장 기술직에 숙련되지 않는 인력들이 투입되고 이마저도 인부를 구하기 어려워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들로 충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불법 외국인들이 없으면 현장이 멈춘다고 할까. 이를 빌미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서로 상대의 현장에 확성기를 단 차량으로 연일 집회를 일삼는다. 주변 시민들이 소음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과거 여러 사고와 마찬가지로 땜질 처방만 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현장방문과 국감 등에서 호통치는 모습 외에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국토부는 현재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2달간 운영해 사고원인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한다고 한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지만, 이번만은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이 제대로 나오길 희망해본다.광주시는 피해자 긴급지원 대책과 겨울철 사용하는 한중콘크리트의 품질관리 강화를 발표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개선과 건설현장에 대한 행정지도, 지도점검을 정확하게 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도 기업에게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제도개선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데 노력해야한다.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각자 위치에서 다시는 붕괴사고가 나지 않게 노력을 이제라도 시작했으면 한다.

2022-02-06

밝은 봄날을 맞고 싶다

윤영대​​​​​​​​​​​​​​수필가 쓸쓸한듯 설 명절을 보내고 나니 바로 입춘(立春), 봄의 문턱에 선다. 그러나 아직 진정한 봄은 아니다. 겨울이 끝난다는 느낌을 가슴에 안을 뿐…. 일일 평균 기온이 5~10℃, 최저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아야 초봄이 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벌써 새 생명이 태동하는 첫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의 입춘 절입 시간은 2월 4일 오전 5시51분. 입춘방을 붙이려면 동트기 한참 전인 새벽이라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야 복이 온다고 하니 어쩌랴. 작년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붙였으나 올해는 대선도 있고 하니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써 볼까? 아니면 코로나 난리에 우울한 마음을 풀고 문 활짝 열어 마당 쓸며 황금 주워 복 받을 욕심에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로 할까? 아니, 올해는 검은 호랑이 해이니 호랑이 호(虎)자를 크게 써 붙여볼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춘첩 붙이는 것이 굿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있으니 먹 갈아 한 장 멋있게 써 붙여야겠다.중부지방엔 흰 눈이 흠뻑 내려 산과 들을 하얗게 덮어 아름답지만 이곳 동해안에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참한 겨울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입춘에 맑고 바람불지 않으면 풍년이 든다 했으니 만족하자. 새해 첫날 새벽 마을로 나가 처음 듣는 짐승 소리로 그해의 운수를 점친다는 청참(聽讖)의 풍속에는 까치 소리는 풍년과 행운을, 참새의 재잘거림은 흉년과 불행이라고 한다. 선거 바람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까치인가 참새인가? 빌딩 숲속에서는 새소리도 듣기 힘드니 만나는 이웃과 덕담 인사를 밝게 나누어야겠다.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의 배꼽 인사가 바로 까치 소리다.이제 복조리 풍습도 잊은 지 오래다. 내 서재에는 수년 된 복조리 1쌍이 아직도 걸려있어 또 동전 몇 푼 넣어두어야겠다. 복조리는 쌀을 일어 낱알을 고르듯 그해의 행복을 일상에서 일어 얻어려는 기원이리라. 대나무를 잘게 쪼갠 죽사(竹絲)로 엮어 만들거나 사서 방이나 부엌 귀퉁이, 대청마루 기둥에 달아 돈과 엿 등을 넣어두곤 했지만 지금은 새벽녘에 복조리 사라 외치며 팔러 다니는 장수들도 없다. 올봄에는 밝은 정신으로 복조리 하나 잘 엮어서 나라를 맡길 인재를 잘 골라내자. 봄은 ‘보다’의 어원을 갖는다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자연과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도 밝은 마음과 올바른 눈,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다봐야 하며, 특히 올해는 잘 살펴보아야 참된 봄을 맞을 것 같다.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라 한다. 봄은 영어로 spring- ‘튀다 솟아오르다’의 뜻처럼 봄기운에 땅이 녹으면 샘물도 힘있게 솟고 식물도 대지의 기운을 끌어올려 새싹을 틔운다. 서설(瑞雪)이 내려 덮인 대지의 껍질을 뚫고 생명의 봄날을 올리는 것이다. 이 계절을 많은 음악가도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고 시인도 따뜻한 마음으로 얘기해 왔다. 봄은 모든 생명의 교향악이기도 하다.화창한 봄날에 봄바람 살랑 부는 봄동산에 올라 봄나들이 나온 어여쁜 봄처녀가 부르는 봄노래 들으며 봄꽃 한아름 안고 봄맞이를 하고 싶다.

2022-02-03

입춘첩(立春帖)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일 년을 24등분 한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는 중국 주(周)나라 때 만들어 졌다고 한다. 동이족으로 알려진 희화자(羲和子)라는 사람이 주나라 책력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지구에서 보기에 태양이 하늘을 일 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인 황도(黃道)를 기준으로 해서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陰曆)과는 맞지 않는다.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변하는 온도의 차가 농경사회에서는 중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따로 24절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황도 좌표의 경도(經度)를 황경이라 하는데 춘분을 기점(0°)으로 하지는 90°, 추분은 180°, 동지는 270°, 다음 춘분까지는 360°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때 도입이 되었고, 2016년 12월 1일 중국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입춘(立春)은 이십사절기의 시작인 첫 번째 절기다. 봄이 들어선다는 의미가 있지만,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이르다. 아직은 겨울이 가시지 않았지만 설명절과 겹치니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고, 봄을 좀 가불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입춘첩을 써 붙이는 등 한 해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풍습은 지금도 남아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대궐에서는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입춘첩을 써 붙이는데, 이것을 ‘춘첩자’라고 한다. 경사대부 및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입춘첩을 붙이고 새봄을 송축한다. 이것을 ‘춘축’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민간에서는 입춘첩으로 그 해의 행운을 빌고 축원하는 상서로운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대들보, 부엌문 등에 붙였다. 주로 쓰이는 입춘첩으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댜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거천재(去千災) 래백복(來百福)’,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등이 있고, 사대부들은 좋은 글귀를 새로 지어 쓰거나 혹은 옛사람들의 문장 중에서 좋은 구절을 골라 쓰기도 했다.나라가 하 수상해서 입춘첩이라도 써 붙이고 싶은 심정인데, 이 시국에 어울리는 문구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우선은 ‘괴질극복, 평상회복’이었으면 좋겠다. 2년 동안이나 조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온 세계를 불안과 우울의 그늘로 뒤덮고 있다. 올해는 부디 그 먹구름이 걷히기를 기원한다. 또 하나는 대선이 임박한 때이니 만큼 제대로 된 인성과 식견을 가진 사람이 선출되어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의미로 ‘양재선출, 정상국가’를 써 붙이고 싶다. 특히나 북한의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급변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굳건하고 긴밀한 한미 동조로 일단 유사시에 대한 철저한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확고한 한미동조’야 말로 ‘확실한 통일한국’의 첩경이다. 위태롭고 불안한 정권은 바꾸어야 한다.

2022-02-03

영부인 검증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영부인(令夫人)’은 원래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다가, 현대에는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선출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영부인은 법적 직책이 아니다. 따라서 의전과 예우 규정은 있지만, 법적 책임과 권한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정치 현실에서 영부인은 대통령에 대한 사적 영향력이 워낙 큰데다 실제로 최고 권력을 구성하는 핵심으로서 관행처럼 정치·사회적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우리나라에서 영부인의 지위와 역할을 가장 인상적으로 구현한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 여사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초대 영부인이자 유일한 외국인 영부인이었으나 공적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에 육 여사는 권위적이고 외골수였던 박 대통령을 목련처럼 온화한 기운으로 감싼 현숙한 부인 이미지에다 어린이와 장애인 등 약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사회운동가로서 활동을 많이 해 생전에 ‘국모(國母)’칭호를 들었다.전·현직 대통령의 영부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 육영수 여사가 과반수를 넘는 65.4%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민주화 이후 영부인의 역할이나 정체성도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나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국모’대신 대통령과 동지적 지위와 역할을 한 사례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나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동지적 역할보다는 내조에 더 치중한 영부인으로 평가된다.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 역할과 정체성이 바뀌고 있지만 영부인은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란 점에서 언제든지 쟁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영부인 검증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지난 연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모 언론사 기자와 7시간 통화한 내역이 방송을 통해 공개돼 국민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이번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가 황제의전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논란은 경기도청 전직 7급 주무관 A씨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전직 5급 사무관 배씨와 나눈 문자 등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이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배씨와 A씨는 의전 업무를 위해 각각 비서실과 총무과 소속 별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A씨는 김씨의 약품 대리 처방, 음식 배달 등의 개인 심부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등을 제기했다.이 후보 측과 민주당은 가족 문제가 불거진 데 대해 사과하면서도 5급 사무관인 배씨가 7급 주무관이었던 A씨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며 김씨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배씨도 김씨와 무관하게 자신이 A씨에게 지시한 것이라고 했지만 궁색한 해명이다. 특히 공무원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경기도 법인카드를 생활비로 쓴 게 사실이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행위다.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다. 영부인 검증은 후보검증에 맞닿을 수 있다. 한 점 의혹없이 사실규명이 이뤄지길 바란다.

2022-02-03

중산층의 붕괴

중산층은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에 중간 정도의 부를 가진 집단이다.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하지만 부자라고 보기에는 어렵게 느껴지는 계층이다.과거 직장인 상대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중산층을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자, 월급여 500만원 이상, 자동차 2천cc급 중형차 소유, 예금 1억원 이상 소유자 등을 기준으로 본다고 대답했다.OECD는 중산층의 기준을 소득 중간값의 75∼150% 소득계층을 말하고 있다. 중위소득의 75% 미만은 빈곤층, 150% 이상을 고소득층으로 본다는 것이다.서구에서는 중산층을 소득보다는 생활방식이나 태도를 판단 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사람은 외국어 하나쯤은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영국 사람은 불의와 불법에 대처하는 정의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또 미국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정의감이 중산층 분류 기준에 포함된다.지난해 대선에 출마한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는 중산층 경제론을 내세운 바 있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국가 경제도 튼튼하다는 뜻이다. 중산층은 나라마다 기준은 다르나 국가 경제의 허리라는 데는 생각이 같다.최근 통계청이 밝힌 2021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가구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사람의 91%가 본인은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상당한 수준의 소득이 있으면서도 대다수가 상류층은 아니라는 것이다.이는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근로소득과 지산소득 간 격차가 커진 것에 따른 인식의 변화로 풀이되고 있다. 집이 없는 무주택자는 소득이 많아도 자신을 상류층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 폭등이 낳은 또다른 사회적 부작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03

일요일 아침의 페미니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에게는 7살 4살, 두 딸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다. 미투(ME TOO) 운동 등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하고,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낑낑대며 읽고 있던 어느 주말로 기억한다. 소파에 누워 소꿉장난을 하는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큰 아이가 엄마, 작은 아이가 아빠 역할이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언니가 매번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왜 나만 자꾸 아빠 역할을 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다. 동생의 투덜거림에 큰 아이는 너무나 당당하게 “너는 머리가 짧고 나는 머리가 길잖아”라고 답했다. 머리카락의 길이와 엄마/아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차분히 설명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아침.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세탁이 막 끝난 빨래를 건조대에 널기 위해 가져왔다. 별 생각 없이 아내에게 빨래를 받아서 널고 있는데, 큰 아이의 말이 귓가에 내리 꽂혔다. “아빠가 왜 빨래를 널어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큰 딸이 왜 머리카락의 길이와 엄마·아빠를 연결시켰는지 말이다. 부끄러웠다.대선을 앞두고 ‘이대남’의 마음을 얻기 위한 거대 양당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성폭력 무고죄 신설, ‘여성가족부’ 폐지 등과 같은 공약이 들린다. 이 와중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젊은 여성 정치인은 자기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힘 있는 야당에 입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가, 정확히는 ‘힘’있는 ‘정당’이 정말 젠더평등을 만들 수 있을까?제도가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 제도를 만든다. ‘이대남’을 의식한 정치권의 정책도 ‘취업’이란 일상에서 이대남이 느낀 분노로부터 시작된 것 아닌가. 취업을 위한 ‘공정’과 ‘경쟁’이란 원칙은 최소한의 규칙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정부가 무능력하고 위선적인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서? 그럼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까?지금의 취업 전쟁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치계와 경제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공정’과 ‘경쟁’이란 원칙은 ‘위계’를 동반한다. 2020년 인천국제공항에서 벌어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 싼 논쟁을 생각해보자. ‘내가 이 스펙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데….’로 요약되는 분노는 결과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의 위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왜 우리는 정규직·비정규직이란 구도를 벗어나기 어려운가? 젠더평등이란 단순히 남성·여성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등과 같은 이분법적 사회 체계 전반을 겨냥한 언어이다.이런 일상에서 아이들이 학습하는 젠더 감각은 어떤 것일까? 나의 일상과 무의식을 다시 돌아볼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공범이 될 수 있다.

2022-02-02

③ “해양치유 - 안온함을 얻다”

스위스의 한 고급 호텔,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는 이곳에서 지인들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 가벼운 산책과 마사지, 목욕 등으로 하루를 채우며 과거를 회상한다. 가족과 친구, 직업, 예술혼 등 가벼운 대화가 오간다. 평생을 지휘자로 살아온 예술가답게 곳곳에서 소명의식이 묻어난다. 물론 대화의 진짜 화두는 ‘나이 듦’이다.세계적인 영화 거장 ‘파울로 소렌티노’의 2016년 작품, 영화 ‘YOUTH’(유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젊음과 쇠퇴하는 육체를 주제로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동시에 대자연의 풍광과 머드 마사지, 물의 이미지로 영상미를 추구한다. 의사와 함께 건강상태를 확인하며 목욕과 산책, 마사지하는 모습이 무한 반복된다. 유영하는 신체는 신비와 노화의 양극단을 오간다. 휴양의학을 풍경 삼아 인생 황혼기를 의미심장하게 그려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휴양의학의 관심이 높다. 휴양의학은 산과 바다, 기후에 숨어있는 치유자원을 의학적으로 활용해 질병 예방과 증상완화, 재활을 돕는 의학이다.영화에서처럼 노년층의 항노화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심리·재활치료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 코로나 이후 각광받고 있다. 바닷가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휴양의학의 경우, 현재 시범 사업에 들어가 태동기를 맞는 중이다.실제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테레인쿠어(Terrainkur·지형요법)를 진행하는 치료집단을 만난 적이 있다. 해양 테레인쿠어는 백사장이나 해안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운동치료로 해양지형요법이라고 한다. 도심의 평지보다 운동효과가 좋고 지구력 향상에 제격이다. 당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오를 갖춰 백사장을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해풍을 맞으며 파도소리에 집중했다.해풍 또한 해양치유자원의 하나로, 음이온이 풍부해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해양수산부는 완도와 태안, 울진, 경남 고성에서 해양치유 시범사업을 추진, 해양치유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해양치유, 아직은 생경한 단어다. 해수와 해풍, 머드 등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자연치유법으로, 휴양의학의 한 분야다. 프랑스와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치료 효과가 입증돼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식이나 폐쇄성 폐질환 환자의 경우, 의사 처방으로 해양치유센터에서 휴양 치료가 권해진다.프랑스에서는 탈라소테라피(thalsso-theraphy)라는 해양치유법이 하나의 의료체계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드라보나디르 의학박사에 의해 처음 도입된 치유법으로, 의료인과 해양자원 전문가 등이 참여해 치유 대상과 목적, 치유방법 등을 면밀히 살펴 만성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 불면증 등을 치료한다. 이 외에도 해양치유법에는 해양 테레인쿠어(Terrainkur·지형요법-해안가 걷기)와 해풍욕, 솔트테라피(Salt therapy·소금치료요법), 헬리오테라피(Heliotherapy·태양광선요법), 해초요법 등 다양한 치유법이 존재한다.해양수산부는 지난 달 ‘해양치유자원의 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26년을 목표로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형 해양치유 모델(K-Marine Healing)을 창출, 해양치유 자원을 발굴하고 해양치유 서비스 인프라를 조성한다고 한다. 해양치유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지정하고 전문자격 이수 과정도 설계한다. 해양치유 전문가와 함께 바다를 벗 삼은 치료를 받는 날도 멀지 않았다.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모래성을 쌓다보면 안온한 몰입을 경험하곤 한다. 칼 구스타프 융의 모래놀이라는 전문적인 심리 치료법을 언급하지 않아도 모래 놀이의 효능은 이미 입증돼 있다. 정현미작가 필자 역시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감을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해풍을 맞으며 날려 보내곤 했다. 아이와 함께 모래동굴을 파고, 바닷물을 길어와 채우며 바다를 만끽했다. 의료진과 해양치유자원 전문가가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었는데도, 효과와 효능은 그 어떤 항우울제보다 탁월했다.관계는 존재를 선행한다. 오롯이 혼자 존재하는 이는 없다. 코로나19 이후 단절된 관계는 존재를 흔들었고,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결국 다시 회복이다. 해수부에서 내건 슬로건 역시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바다에서 치유하라’고 권한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지고 바다는 흐른다.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겨울바다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불안은 던져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걸어보자. 눈 시린 겨울바다를 응시하며,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안온함이 느껴질 것이다.

2022-02-02

마음 계산법

양태순수필가 울진 매화리에 갔다. 만화 원작을 그린 벽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추억이 돋는 그림이 많다. 만화가 이현세가 직접 그렸다는 벽화 앞에서 천천히 읽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 만화를 고등학생 때 읽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기억날 뿐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으면서 엄지는 왜 오혜성보다 마동탁을 더 좋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나를 위해 야구 경기에서 져달라는 엄지의 부탁 앞에서 기가 막혔다. 혜성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되어 가슴이 쩌정 울렸다. 그때도 지금도 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가정은 만약을 포함한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라면, 만약에 그렇다면을 생활에서 사용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은 대개 어떤 대처 방법을 묻는 뒷말이 따라붙는다. 듣는 상대방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게 된다.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가사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영화가 있었다.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영화 개봉과 동시에 주제가는 온통 거리를 점령했다. 커피숍과 백화점을 비롯하여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었다. 데이트하는 연인 사이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기뻐하는 일이면 다 해줄 거야? 이런 질문으로 연인을 시험에 들게 하여 답이 마음에 안 들어 다투기도 했다. 친구는 이 노래를 좋아했고 우리는 손잡고 다니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내 젊은 시절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만화였다.나는 학생 때 만화가게에 자주 갔다. 안타나 홈런처럼 깔끔한 직설화법에 매력을 느꼈다. 시리즈로 빌리면 다섯 권에서 열 권이 넘는 것도 있었다. 용돈 대부분을 거기서 썼다. 밤새 읽느라 눈동자가 뻑뻑했다. 주제는 주로 축구, 야구, 복싱 등 스포츠 경기에서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선수로서 성공하는 스토리였다. 결론은 뻔했지만 만화책을 놓을 수 없었다. 소설처럼 문장이 화려하거나 사건을 베베 꼬지 않는 단순 명쾌함이 좋았다.나는 지금도 해피앤딩을 좋아한다. 드라마에서 고생 끝에 성공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살게 되었다는 결말에 웃음이 난다.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고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을 만나면 짜증이 난다. 현실이 갑갑한데 드라마라도 행복하면 엔도르핀 충전으로 다운되었던 기분이 업되고 피곤한 뇌도 쉴 수 있으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매화리에서 나에게 물어본다. 상대방을 위해 뭐든지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외인구단 오혜성은 시합에 져주기 위해 일부러 야구공에 눈을 맞기도 했다. 내 몸을 다치거나 꿈을 버리면서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것을 아무것도 잃지 않는 선에서 타협할 확률이 높다. 아마 신체나 정신 둘다를 포기하지 않는 가정하에서 최선이란 이름을 붙일 것이다.나는 아직도 둘을 주고 하나를 얻는데 익숙하지 않다. 반값에 물건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마음 계산법은 다르다. 목도리를 선물하면 장갑을 받고 싶고 밥을 샀으면 커피는 얻어먹고 싶다. 늘 받기만 하는 것은 미안해서 거리가 멀어지고 늘 주기만 하는 것은 쪼잔해서 불만이 쌓일 것 같다. 서로 간의 마음이 오고가야지 일방통행은 찜찜하고 눈치가 보여서 싫다. 마음을 쌓는데는 똑 부러지는 계산 말고 넉넉한 어림이 좋지 싶다.요즘은 언택트 시대다. 마주 앉아 밥 한번 먹기도 어렵다. 이 시기만 지나면 얼굴 보자는 인사를 한 지 2년이다. 그 사이 연락처에 오른 인물들 대부분과 마음의 거리가 늘어났다. 가족과 친구 몇 명만이 전화와 잠깐의 만남을 이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주파수 반경을 벗어났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과 나누는 정을 대신하는 것은 없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연결선 선로를 보수해야겠다.곧 봄이 오고 매화가 필 것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홀로 고군분투하여 만개한 매화는 늘 반갑고 어여쁘다. 힘들여 꽃을 피워 대가 없이 향기를 멀리까지 나누어 준다. 참 대견하다. 이번 봄에는 마음 계산법을 내려놓고 줘도 줘도 더 주고 싶은 일방통행 사랑법을 실천하리라. 두루 봄소식을 전하는 전화기에서 단내가 나고 웃음이 넘쳤으면 한다. 매화나무가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2022-02-02

새해 아침,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

장규열 한동대 교수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와 대선정국은 새해라 하여 긴장과 혼돈을 멈추지 않는다. 새롭게 시작하고자 해도 두 해를 넘게 넘실거리는 코로나의 기운은 감염자 하루 이만명을 넘기며 머물고 있다. 새 대통령을 뽑으면 새로운 나라가 펼쳐질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은가. 밖에서 들어온 코로나와 안에서 자란 대선판은 새해가 되어도 희망과 기대를 불러오기보다 체념과 실망을 안기는 모습이다.새해 덕담은 후보들 험담에 쓸려가고 호랑이해의 기대는 코로나 긴장에 발목이 잡혔다. 어느 해라고 똑같을 수 없겠지만, 올해 설 풍경은 사뭇 서먹하고 서글프다. 그렇다기로 남은 기운마저 꺾을 수 있을까. 새롭게 만날 새날들을 낙담과 실망으로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라와 겨레는 용기와 희망을 기대하지 않을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코로나로 바뀐 세상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긴 힘들 터이다. 만남과 소통, 문화와 경제, 디지털과 온라인은 예견해 오던 ‘완전히 다른 세상’을 당기고 말았다.학교와 직장은 비대면교육과 원격근무가 기본이 되었고 인간의 일상은 만나지 않고 거의 해결하게 되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낭만과 즐거움은 모니터와 유리벽 너머로 해소해야 한다. 고약한 대선판은 인간존재의 바닥을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처연하고 부끄러운 밑바닥을 흔들며 보여주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된들 바람직한 사회문화적 품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 설득하기보다 남의 흠결을 끝없이 들추며 공격과 험담으로 채우는 선거판은 ‘투표의 의미’를 거의 잊게 만드는 게 아닌가.코로나도 선거도 곁으로 밀고서 새해에 보았으면 하는 징조들을 헤아려 보자.새해에는 정치뉴스를 조금 덜 보았으면 한다. 일상이 정치로 오염된 나머지 보통 사람들 속내까지 다툼과 혐오가 물든 세상은 바른 모습일 수가 없다. 정치가 뭐라고 편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어 당신은 어느 편인지 굳이 묻게 만드나. 어느 한쪽이 언제나 맞거나 온통 틀렸던 적도 그리 없으니 이제는 그만 좀 하시라고 외치고 싶구만,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쉬지도 못하고 흠결만 나눈다.새해에는 일상에 성실한 나날을 되찾고 싶다. 정치가 일상을 왜곡하게 하기보다 일상이 정치를 흔들어 정신차리게 해야 할 모양이다. 자기네들 싸움판에 국민을 핑계삼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오로지 국민의 삶이 나아지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정치를 찾아와야 한다.새해에는 더 넓게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배우고 싶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좁은 국토에만 갇혀 있을까. 생각의 지평이 길었으면 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넓었으면 한다. 특별히 다음 세대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광각의 시야를 심었으면 한다. 우물 안에서만 복닥거리며 다툴 게 아니라 너른 세상으로 눈길을 돌렸으면 한다.‘그래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아직도 많다’는 걸 배웠으면 한다. 코로나도 대선도 지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이제부터 헤아리며 기다려야 한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2022-02-02

포모 증후군

포모(FOMO)증후군은 영어로 ‘Fear Of Missing Out’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말로,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심각한 두려움 또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 제외되고 있다는 공포를 나타내는 일종의 고립공포감을 뜻한다.예를 들어 비행기나 기차를 놓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나 몇억 원씩 오르는 아파트 가격을 보고 영끌해 집을 매수하는 현상, 주식시장의 무서운 상승세에서 수익을 냈다는 지인들을 보고 빚투나 몰빵을 하는 사례가 포모증후군 때문일 수 있다.원래 포모 현상은 마케팅 분야에서 유래됐다. 1996년 마케팅 전문가 단 허먼이 처음 이런 현상을 확인하고, 논문을 ‘브랜드 관리 저널’에 발표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어떤 기회나 기쁨을 놓칠지 모를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소비자 심리학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했다.그 이후 벤처투자가 패트릭 J. 맥기니스가 2004년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매거진 ‘하버스’에 기고한 글에서 ‘포모’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홈쇼핑 방송에서 ‘매진 임박’, ‘한정 수량’ 등을 강조하는 것 역시 포모 마케팅의 사례다. 일종의 사회적 불안인 포모증후군은 소셜미디어의 부상과 함께 널리 알려졌다. 이 증후군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계속 알고 싶어 하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에 빠져들게 하는 특징을 갖는다.포모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행기나 기차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출발 1~2시간 전 공항이나 기차역에 도착하게 한다. 다만 주식 투자자들은 이 증후군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다수의 개인투자자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투자를 시작하게 하고, 투기적 자산에 거액을 베팅하게 하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02

설 명절 연휴는 어떻게…

윤영대수필가 이번 설 연휴는 5일이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각종 여가활동을 계획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하는 달력 제작 기준인 ‘월력요항’을 보면 일요일 52일에 국경일, 설날 등 공휴일 19일을 합하여 71일이 휴일인데, 올해는 석가탄신일, 추석, 한글날, 성탄절 등이 일요일과 겹쳐져 그 4일을 빼면 67일이나 된다. 여기에 토요일까지 포함하면 전체 휴일 118일 중에서 가장 긴 연휴이고 여기에다 유급 휴가를 잘 쓰면 최장 9일간을 쉴 수가 있다고 한다. 대체공휴일 때문이다. 공휴일이 토·일요일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대체공휴일을 지정할 수 있는 제도이며 설·추석날 전·후와 어린이날 등 7일만 적용되었으나 2021년 8월15일부터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국경일 4일이 추가되어 11일로 늘어났다. 그래서 일 년 중 1/3쯤 쉬게 되는데 올해는 3일 이상 연이어 쉬는 날들이 6번이나 있다. 우리에게 휴일의 의미는 바쁜 직무와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쉬는 날이었고, 토요일도 조기 퇴근도 없이 살아온 지난날에 비하면 토요일 휴무제가 있고 최저임금 탓인지 퇴근 시간이면 칼같이 직장을 빠져나오고 야간근무도 거의 없어진 듯한 지금, 쉬는 것은 그냥 일상이 된 듯하다. 우리의 전통명절에는 설날, 정월 대보름, 단오, 칠석, 추석이 있어 피곤한 삶의 중간중간에 가족과 이웃, 지인들과 따뜻한 정을 느끼고 민족의 하나 됨을 느끼기도 하지만 점점 희미해져 가는 현실에서 고유한 풍속들의 가치를 잊고 명절 휴일의 의미는 그냥 ‘논다’는 것이 아닐까?올해 가장 길다는 이번 설 연휴도 마음 느긋이 가족들과 어울려 행복을 느껴보는 것이 좋겠지만 벌써 2년째 법석을 떨고 있는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 사태로 불안한 마음에 진정한 명절 휴일을 느껴보기 힘들 것 같다. 갑자기 8천 명대를 넘어 여태껏 기록을 경신하더니 이제 1만 명 선을 넘었다. 설 연휴 비상사태를 염려한 각 지방자치단체도 특별방역대책을 세우고 선별진료소를 증설하고 강화된 시민 행동수칙을 알리고 있다. 귀향하기 전 예방접종을 완료하고 가능한 방문을 자제하며 거리 두기 등으로 모임 자체를 줄이라고 한다. 차례도 소규모 가족으로 지내고 온라인 성묘를 권하며 어른들에게는 비대면 세배를 드리란다. 귀향 때 개인차량 운행 시 고속도로휴게소도 가능한 패스하라고 한다.이러한 연휴에 택배노조의 투쟁으로 배송 대란이 우려되고 그에 따른 배송지연과 파손, 훼손, 분실 등의 피해도 염려된다. 물류뿐만 아니라 통신 서비스 문제를 걱정한 통신3사는 안정적 서비스 제공을 위해 시설의 집중관리 체제를 점검 보완하여 통신 인프라의 품질향상에 힘을 쏟고, 자가용 운행 증가에 따른 고속도로 정체 구간의 트래픽에 대한 대책도 강구하며 비대면 가족 모임을 돕기 위해 무료 영상통화를 제안했다니 고맙다. 또 설 연휴 기간 중 택배 선물과 안부 인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위험도 우려된다고 한다.명절을 명절 같이 보내지 못하는 요즈음의 세상, 참된 시민질서의식을 발휘하여 질병의 큰 파도를 넘어 밝은 우리의 명절을 즐기도록 하자.

2022-01-27

선거판 막장드라마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광산 갱도의 가장 안쪽 막다른 곳을 막장이라고 한다. 광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땀 흘려 일하는 절실한 삶의 현장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대한민국 산업을 일으킨 동력을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막장이란 말이 ‘막장드라마’나 ‘막장국회’처럼 좋지 않은 쪽으로 쓰여 광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이 때의 막장이란 ‘갈 데까지 간, 가장 나쁜 상태’란 의미가 된다. 막장드라마란 조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보통은 불륜, 패륜, 선정, 폭력 등 불건전하고 비상식적이거나 자극적인 요소들을 남발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저질 드라마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대선정국이 가열되자 여기저기서 막장드라마를 뺨치는 사건들이 불거지고 있다. 공영방송이 야권 대선후보 배우자의 사적인 전화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사건이 그 한 가지다. 유튜브방송 기자를 자칭하는 인물이 비열하고 간교한 속임수로 접근해서 수십 차례 통화한 것을 몰래 녹음하여 퍼뜨리고 공영방송에까지 넘겨준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조차 짓밟은, 인간성의 막장을 보여주는 추악한 짓이다. 그것을 받아 방송한 MBC나 한 건을 잡았다고 쾌재를 부르며 본방사수니 뭐니 호들갑을 떤 여권 인사들이나 상식적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여권 대선후보를 둘러싼 추문과 의혹들은 어떤 막장드라마도 따라가지 못할 막장의 극치를 보여준다. 먼저 후보자가 친형과 형수에게 내뱉은 악담과 욕설은 보통의 비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인성의 밑바닥까지 더럽혀진 사람이 아니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자신을 닦고 집안을 바로 꾸린 후에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진대, 피를 나눈 형제에게도 그런 패악질을 해대는 사람이 생판 남인 국민을 위해서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그야말로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이다. 국민은커녕 형제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야욕과 영달을 위해서만 못할 짓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나라를 맡기겠는가.관련자들이 몇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장동사건’도 또 다른 막장드라마다. 월세도 못 내서 폐업하는 소상공인들이 부지기수인데, 불과 몇 억의 자본금으로 수천억을 벌었다는 것은 막장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닌가. 당시의 시장이었던 사람은 본인이 설계하고 결제한 일인데도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열흘이나 함께 여행을 한 부하직원도 모른다는 사람의 말을 누가 믿는가. 그런 인물을 대선후보로 지지하는 국민들이 무려 40% 가까이 되어서 지지율 1위인 여론조사도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대통령직은 국운을 좌우하는 자리다. 악화일로의 미·중관계나 연이은 북한의 도발로 위험이 고조되는 시국에 사리사욕이나 진영논리로 대선에 임하는 것은 천추의 한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누가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방관이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적인 양비론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한 무책임한 태도다.

2022-01-27

달성군의 송해 선생님

송해 선생님(95)은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자 방송 진행자로 모르는 이가 없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월남하였다.군 생활을 대구에서 했고 이곳에서 달성군 기세리가 고향인 부인 석옥이 여사를 만났다. 처가가 대구였으니 대구와의 인연이 적지 않다. 지금도 그는 대구가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한다.그가 특별히 달성군과 인연이 더 깊어진 배경에는 김문오 달성군수와 오랜 교분 덕분이다. 부인의 고향이 달성군이라는 사실을 계기로 2011년에 달성군은 그를 명예 군민으로 위촉했다. 다음해는 달성군 홍보대사로 모셨고 해마다 열리는 비슬산 참꽃축제의 사회자도 맡겼다.그는 달성군내 주요 행사 때마다 자주 방문하면서 달성군과의 인연을 쌓아갔는데 김 군수의 공로가 컸다는 것이다.달성군 옥포면 기세리에는 옥연지를 배경으로 송해 공원과 그 옆자리에 송해기념관이 있다. 2016년 조성된 송해공원은 송해 선생을 모티브로 해 꾸며져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져 한해 70만∼8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지난해 12월 개장한 송해기념관에는 선생이 기증한 물품 432점과 송해 선생의 발자취, 전국 노래자랑 공간 등이 마련돼 송해 공원과 잘 조화돼 가볼 만하다.KBS가 최장수 TV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MC 송해의 기네스 세계기록 도전에 나섰다고 한다. 도전부문은 ‘최고령 TV음악 탤런트 쇼진행자’다.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라 한다.그의 기네스 도전이 성공되길 기원한다. 그의 도전이 성공하면 대구 달성군에는 ‘세계 최고령 MC’ 보유 기념관이 있는 새기록을 가지게 된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27

거짓과 진실의 경계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대선후보들의 TV토론에서 어느 후보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을까.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여야 후보간 박빙승부가 예상됨에 따라 대선후보에 대한 최종 판단이 TV토론에서 갈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당초 31일 예정됐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양자 TV토론은 법원이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무산됐고, 같은 날 TV방송 없이 양자토론이 벌어지게 됐다.민주주의 직접선거 역사상 최초의 TV토론은 1960년 미국의 케네디(민주)와 닉슨(공화당)간에 벌어졌다. 당시 선거 분위기로는 유명세나 실력면에서 차기대통령은 닉슨이 따논 당상으로 보였다. 하지만 TV토론 한판으로 승부가 뒤집혔다. 케네디의 상쾌한 말투, 쾌활한 미소와 표정에 여성 표심이 확 쏠렸고, 닉슨은 침울하고 창백하고 딱딱해보였다.그러나 요즘 선거에서 이처럼 일방적으로 당할 후보는 없다. 유권자들도 TV토론 내용만 보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간 다툼으로 규정되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더 잘했다는 진영논리가 작용한다. 그래서 토론을 누가 더 잘했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지난 2012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간 TV토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후보가 터무니없는 동문서답의 답변을 했는데도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토론기술이나 능력측면에서 보면 이재명 후보가 앞설 것이 분명하다. 이 후보는 TV토론을 위해 수많은 스파링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였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를 줌으로 연결해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해 논쟁했고,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해 학자들과 토론을 주도했으며, 경총을 방문해 10대그룹 CEO들과 경제현안에 대해 토론했다. 관훈클럽, 한국지역언론인클럽, 신문방송편집인협회, 방송기자토론, 삼프로TV 등에 나와 막힘없는 토론실력을 보여줬다.이에 비해 윤석열 후보는 삼프로TV에 나와 몇몇 경제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래선지 윤 후보는 TV토론을 피했다. 그랬던 윤 후보가 올들어 TV토론에 대해 적극 임하겠다는 태세다. 어차피 이재명 후보와는 대통령 자리를 건 한판승부를 피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으리라.사실 TV토론에서 누가 더 잘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논리에는 이겼지만 태도가 나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지식보다 신사적으로 발언하고, 상식에 부합하는 발언이 중요하다. 특히 이번 비호감대선에서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평가에 유의해야 한다.즉, 누가 더 진실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따라서 임기응변으로 진실성이 떨어지거나, 논리의 변경, 과거 발언과의 일치성 여부가 작용하는 도덕성 같은 것들이 함께 작용하는 TV토론은 윤 후보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 다가오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어디쯤일지 다같이 지켜보자.

2022-01-27

정부주도 공정한 산업정책 전환해야

서정헌 스틸앤스틸 대표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철강관련 산업정책은 선도기업을 우선적으로 키우고 선도기업으로부터 낙수효과로 여타 철강사를 동반성장시키는 선도기업 주도의 양적성장이었다. 철강은 기초소재 산업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상공정을 장악하고 있는 선도기업이 잘 돼야 하공정도 잘 될 수 있다는 선도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이 유효하다.우리 경제가 탈제조업화 되고 한중간 국제분업구조에서 한국 철강산업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성숙기를 지나고 있다.더 이상 신규투자를 통해 선도기업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 어렵게 되면서 선도기업 중심 양적성장이 부담스럽게 되는 것이다. 선도기업 주도의 산업정책은 고도성장기 양적성장에는 유효할지 몰라도 성숙기를 지나면서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이제 선도기업이 잘 되는 것이 한국 철강산업이 잘 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선도기업 입장에서도 다른 철강사에 대한 배려와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선도기업으로부터 낙수효과가 줄어들면서 선도기업과 여타 철강사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철강산업에서 선도기업의 입지와 역할이 그만큼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선도기업 주도의 성장전략은 진정한 산업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진정한 철강산업 경쟁력은 상공정을 장악하고 있는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철강 하공정의 경쟁력과 철강과 철강수요산업의 산업간 관계에서 나온다. 철강과 수요산업이 효율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야 철강산업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철강산업 경쟁력은 철강 선도기업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강 하공정과 수요산업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리듯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때로는 경쟁력 있는 상공정 제품을 수입하더라도 하공정 경쟁력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철강 하공정과 수요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철강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수요중심의 성장전략이 바람직할 것이다.철강 하공정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도기업의 힘이 지나치게 남용되지 않도록 정부가 선도기업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만약 공정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구조조정도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 하도급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를 통해 철강 하공정과 유통이 경쟁력을 회복할 때 진정한 철강산업 경쟁력도 가능해진다.우리나라 철강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생각하면 공정한 철강사 간 경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정부 주도의 공정경쟁을 위한 노력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공정경쟁을 이유로 철강 선도기업을 지나치게 견제할 경우 선도기업과 철강산업의 경쟁력이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철강사 경쟁력을 위해서는 공정경쟁이 중요하지만 철강산업에서 경쟁이 지나치면 신규투자를 유발하고 과잉으로 초래할 수 있다.그래서 철강시장에서는 적정 경쟁의 강도가 중요시된다. 철강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소규모 경제에서는 독과점적 시장구조가 불가피하다. 과점적 시장구조에서 적정경쟁을 위해서는 선도기업 간 경쟁구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철강시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두 선도기업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경쟁과 공조가 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경쟁과 공조를 통해 분업화와 특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국민경제를 생각하면 철강산업은 자신보다 수요산업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일 수 있다.따라서 철강관련 산업정책을 추진할 때 철강뿐만 아니라 철강 하공정과 전후방산업 그리고 국민경제를 함께 고려하는 더 넓은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수입규제와 같은 대외 이슈를 다룰 때도 철강사간 경쟁구도와 같은 국내 이슈를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사양화와 수입규제, 구조조정, 탄소중립 이슈도 마찬가지다.2022년에는 한국 철강산업은 선도기업과 상공정 중심이 아니라, 하공정과 수요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철강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공정한 산업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22-01-26

인류의 또 다른 동반자

오낙률시인·국악인 겨울이면 땔감과 먹거리가 곤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음식물을 버리는 행위가 사회적 차원에서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사람들은 음식물에 조금만 이상이 있거나 과식의 위험이 있다 싶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음식물을 내다 버린다. 과거, 음식물을 버리는 행위가 크게 죄악시되던 시절과는 크게 비교가 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음식물을 버리는 방법에서도 과거와 현재는 많이 비교된다.필자의 어릴 적 기억에 의하면, 커다란 물통을 부엌 가까운 곳에 두고 버려진 음식물 하며 심지어는 설거지 한 물마저도 한데 모아 쇠죽 끓이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부엌과 연결된 하수구에는 지렁이 같은 미물들이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극소량의 음식물 찌꺼기를 받아먹으며 공생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가축이 없는 집에서는 버려야 할 음식물이 생기면 가축을 기르는 이웃집까지 가져가서 가축에게 먹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과거에는 음식을 버려도 버리는 게 아니라, 심지어 지렁이나 박테리아 같은 미물들의 먹이로 이용된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도시에서 엄청난 양으로 버려지는 음식물들을 생각하면 그 버려지는 방법에 있어서 의심의 눈길을 멈추기 어려운 형편이다.실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생명이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음을 통해서 시야에서 멀어져 갔는지를, 만약에 그들의 죽음이 모두 분해되지 않고 쌓여 있거나 땅속에 묻혀 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땅의 여기를 파도 저기를 파도 그들의 주검이 나온다면 인간의 삶은 어떠했을까.인간에게 그런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파리이거나 구더기이거나 그보다도 더 작은 하등의 생물들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삶의 동반자에게도 눈길을 돌려 보은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렇다고 파리나 구더기가 득실대는 환경에서 살아도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작은 생명에게까지 감사한 마을을 가지고 그들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연물임을 인정하는 것이 자연을 마주하고 사는 인간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지상에 사는 생명체가 어디 인류뿐일까. 어차피 자연과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이 인류의 삶이라면, 인간에게 별로 유익하지 않다고 느껴지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하등의 생명에게까지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함이 마땅하다.아마, 인간부터 먼저 살고 봐야 하던 시절엔 주위의 다른 생명들에게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제 물의 순환이라는 커다란 명제 앞에서 어느 정도 풍요를 누리고 사는 인간은,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저 인류의 또 다른 동반자들에게 배려와 사랑의 눈을 돌려 세심하게 그들의 삶도 응원해야 함이 마땅하다. 물론 필자가 말하는 하등의 생명이란, 요즘 인간 사회활동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바이러스류는 포함하지 않는다. 적어도 생명이라 말함은 햇볕과 물과 흙을 근간으로 하는 생명을 말함이다.

2022-01-26

회색 코뿔소와 저승사자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코스피가 이번 주 들어서 블랙 먼데이를 기록했다. 13개월 만에 2천800선 아래로 하락한 것이다. 미국발 긴축 한파가 우리나라 자산 시장을 덮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이 4회 이상을 초과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그렇지만 우리 경제는 작년까지도 유동성 파티를 즐겼다. 부동산은 폭등세를 멈추지 않았고,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로 양분된 개인 투자자들은 국내외 주식 시장에 올인했다. 대출이 증가하면서 국내 은행이 작년에 벌어들인 이자 수익만 30조 원을 넘었다.미국의 정책분석가인 미셸 부커 전 세계정책연구소장은 ‘회색 코뿔소가 온다’라는 책에서 분명히 눈에 보이는 위험 징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회색 코뿔소 현상’이라고 지칭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를 회색 코뿔소에 비유하며 경고했지만, 국내 가계 대출은 이미 1천800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자고 나면 자산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극도로 커졌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눈앞의 공포보다, 벼락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영끌족과 빚투족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가 말했던 것처럼 불안은 본질적으로 온 마음을 빼앗아버리는 속성이 있다.회색 코뿔소가 목전에 다다르자 금융당국의 수장들이 잇따라 경고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가계 부채 저승사자를 자처하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회색 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들이 하나둘씩 현실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양한 리스크가 일시에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을 경고했던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금융회사들은 부동산 관련 자산에 대해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저승사자의 대출 규제 처방으로 가계 부채 증가세는 잠시 주춤한 상태이다. 하지만 대선 정국에 돌입한 정치권에서는 저승사자가 잠가놓은 빗장을 다시 풀고자 할 수 있다. 전방위적 대출 규제에 대해 실수요자 프레임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올해 1분기에는 은행의 대출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최근에 정부는 14조 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가 1월에 추경을 편성한 것은 1951년 이후 71년 만에 처음이다. 대선 직전의 추경은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2022년판 고무신·막걸리 선거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회색 코뿔소가 코앞에 와있다지만,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고 있다.경제 상황에 대해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인식이 엇박자가 날 때마다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는 진동음도 커진다. 일각에서는 회색 코뿔소가 블랙 스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도 경고하고 있다. 그만큼 모든 자산에 심각한 거품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예견되는 경제 위기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회색 코뿔소를 막아낼 저승사자의 존재가 절실하다. 대권을 잡겠다고 나선 후보들도 회색 코뿔소에 대응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무섭게 느껴지는 저승사자를 이번에는 국민들이 반길지도 모를 일이다.

2022-01-26

갑자(甲子)

올해가 어떤 해인지 결정짓는 것은 ‘60갑자(甲子)’다.하늘에서 받은 천간(天干)과 땅에서 받은 지지(地支)로 만들어진 것이 간지이며 60갑자다. 동양 농경사회에서 대자연의 흐름에 인간의 시간을 맞춰보는 노력의 산물이다. 60갑자(갑자-계해)를 한 생애(生涯)라 하고, 61살이 되는 해가 되면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회갑(回甲)이라 한다. 60갑자 첫 번째인 갑자(甲子)는 천간은 갑목(甲木), 지지는 자수(子水)로 되어 있다. 자(子)는 시간으로는 23시-01시, 물상으로 쥐로 표현했다. 쥐는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률이 높다. 사자성어로 수서양단(首鼠兩端·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 또는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은 쥐가 자연생태계의 맨 아래 위치하므로 생존하기 위한 수단을 의미한다. 갑자년에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가 있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위 문제로 인하여 일어난 사화로,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복위를 추진하면서 성종 때 폐비를 찬성한 훈구 원로세력이 대부분 숙청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중종반정(1506년)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 희생된 사람들은 중종반정 직후 대부분 복권된다. 최우경作 ‘십일면32수 관세음보살상’ 1924년 갑자년에 일본은 조선반도에서 처음으로 징용을 모집해 보국대란 명분으로 나이 18∼19세의 젊은이들이 신체검사 후 군수물자 생산 공장으로 끌려가 일했다. 일명 ‘묻지마 갑자생’이라 불렀다. 또한 ‘암태도 소작쟁의’는 조선에서 처음 일어난 소작농이 일으킨 지주에 대한 투쟁이었다.‘암태도 소작쟁의’를 소설화한 송기숙 작가의 ‘암태도’가 1979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되었다. 쟁의 주도자 서태석(1885∼1943)은 그 당시 쟁의에 가담한 농민 전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작쟁의는 추수한 곡물을 나누는 비율을 놓고 지주, 그 배후의 일본 관청, 경찰과 싸우는 싸움이지만, 한국 농민의 근본 심성은 농토와 노동 위에 생계를 세울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도덕성까지도 그 위에 세우는 제1차 생산자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소작쟁의는 생존권의 확보뿐만 아니라 땅과 관련된 인간의 도덕성 회복 그리고 그들의 오랜 농경의 역사 속에서 체득해낸 공동체적 삶의 가치로의 복귀까지를 의미한다.투쟁과정에서 소작인들의 힘겨운 노력은 눈물겨웠을 것이다. 지주와 그 배후의 일본 관청은 농민들의 응집력이 무력이나 행정력으로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협상에 나섰다. 결과는 소작료를 8할에서 4할로 내리고 1923년도의 소작료는 33년에 걸쳐 무이자로 분할 상환한다는 조건이었다.암태도의 소작인들 개개인은 힘이 없지만 여럿이 모이면 서로 의지가 되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지도자의 탁월한 의협심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삶의 밑바탕을 빼앗고 해체시키는 이 노예화 정책에 대한 한국농민들의 항쟁은 1920년대 초부터 전국으로 번져 나간 소작쟁의로 폭발되었고 ‘암태도 소작쟁의’는 1920년대 수많은 소작쟁의들 중에서도 가장 결렬하고 끈질지게 진행되었으며 80% 소작료를 40%로 내린 암태도의 승리는 전남 서남해안의 여러 섬들의 생존권 투쟁을 불러일으킨 기폭제가 되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피지배계급 소작인에서 소상공인으로 바뀌었다. 코로나사태에 이들은 영업시간 단축과 거리 두기 등 많은 어려움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소득이 증가할수록 소득격차는 커지는데 저소득층들의 소득이나 생활수준은 나아져도 상대적인 박탈감의 확대는 무시할 수 없다. 이는 기득권과 사회제도에 불만을 일으키고 또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는 지방의 문화생활을 더욱더 위축시키고 있다.갑자를 ‘고목나무 아래 쥐’로도 표현한다. 그러나 ‘춘양목 아래 쥐’가 노는 평화로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지식인, 기업인, 언론인 그리고 시민들이 건강한 자유 시민으로서 행동에 동참하여 지역의 낙후된 문화, 예술, 언론 분야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원 전 73년 일어난 로마 스파르타쿠스는 노예 반란을 통해 ‘주인이 노예의 족쇄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족쇄를 풀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1979년 출간된 김훈, 박래부기자의 문학기행 2권 중 소설 ‘암태도’를 참조했음)1960년대 우리나라 인기 수출품이 다람쥐였다. 다른 나라 다람쥐들과는 다르게 작은 크기에 줄무늬도 뚜렷하고 귀엽고 영리해서 해외 동물애호가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끌어 수출증가에 한 몫을 했다.

2022-01-26

정치가 방역에 성공하려면

장규열 한동대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상을 삼킨 지 두 해를 넘긴다. 오미크론에 대비한 특별방역대책이 나오자 마자 일일 감염자 일만 명을 훌쩍 넘겼다. 증상은 심하지 않다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으니 사회적 긴장의 강도는 여전히 높다. 개인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온 국민이 집중해야 한다.방역체계가 흔들리는 건 오히려 대선정국 탓이 아닌가 싶다. 이슈와 담론이 대통령선거 추이에 쏠리는 현상으로 팬데믹을 향한 경각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대선승리를 향한 메시지에 방역상황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여도 야도 방역을 정치에 끌어다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 K-방역이 나름 성공적으로 방어해 왔다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새로운 국면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조급하게 정부와 여당을 몰아세워서 해결되지도 않는다.방역이 정치인가. 성공스토리를 반복하며 체계적인 시스템방어에 실패해서도 안 되며, 실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방역체계를 비난만 해서도 될 일이 아니다. 의학과 과학이 철저하게 분석하고 분명하게 대처하도록 전문역량을 믿어야 한다. 정치권이 부적절하게 목소리를 높여 방역이 정치에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미국 정부는 팬데믹 대처방안 6단계 안에 방역조치 강화에 직접 관련된 4개 항목 외에 ‘학교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과 ‘폐쇄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경제를 보호하는 일’을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로 발표하였다. 일반인은 물론 어린이들을 위한 백신접종을 늘이면서, 중소상공인들이 자유롭게 생업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부의 노력을 기울인다. 방역에 최선을 다하면서 경제를 방어함과 동시에 교육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앤토니파우치(Anthony Fauci)를 비롯한 미국의 의학전문인들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미크론에 감염될 것이며 코비드 바이러스가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팬데믹은 인류가 예견하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출현이며 오미크론을 비롯한 변종의 발생도 어느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의학과 과학이 지혜를 모아 대처하며 극복해야 할 인류의 과제인 셈이다. 정치적 수사가 들어설 일이 아니며 정파적 이해가 걸린 일도 아니다. 유효한 치료제의 개발과 함께 스러져 갈 때까지 국민은 방역당국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신뢰하며 수반되는 조치들에 협조하여야 한다. 역사를 통해 수다한 역경들을 이겨냈듯이 인류는 팬데믹의 거센 파도도 거뜬히 넘어설 터이다.대선과 맞물린 정치적 바람이 팬데믹 방역의 경로에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적 광풍이 방역마저 흔들어 의료대란에 미치면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선들 나라의 기본은 무너진다. 정치와 방역은 구분하여야 하며 정치적 간섭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국민의 보건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는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여야 한다. 정치와 의료가 뒤섞여 혼란이 야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 방역에 성공하여야 한다.

2022-01-26

경영계와 노동계, 엇갈린 시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가 숨지는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27일부터 시행된다.이 법을 제정하자는 여론이 확산된 직접적 계기는 2020년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정부는 이 사고를 계기로 후진국형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서 경영책임자와 기업을 처벌하는 특례법 제정에 나섰다.당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으로 일명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졌지만,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낮아서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에서는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단,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뒤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받게 돼 2024년부터 적용된다.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경영계에서는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지게 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각각의 조문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처벌 수위가 낮고, 유예 조항이 마련돼 입법 취지가 후퇴했다고 불만이다.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어이없게 목숨을 잃는 일은 사라져야한다. 기업과 경영책임자는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런 차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 기업에 새로운 문화로 뿌리내리기를 소망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26

봉황이 단청하다

백후자수필가 골짜기를 돌아든다. 산이 산을 겹쳐 안았다. 활엽수가 침엽수를 안고 침엽수가 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았다. 안고 안긴 풍경을 안고 안동 봉황사로 들어선다. 봉과 황이 조화를 이룬 봉황이 살고 있으려나. 용마루 위로 한 쌍의 봉황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봉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13년에 창건되었다. 누가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관음전, 만월대, 범종각, 만세루, 천왕문 등 여러 전각과 딸린 암자까지 갖춘 규모가 꽤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전, 남덕루, 요사채, 산신각이 있다. 봉황사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17세기 말경엔 대웅전만 다시 중건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당당한 격식을 간직한 조선 후기의 불전으로 보물 제2068호로 지정되었다. 천장의 우물반자에 그려진 오래된 단청과 빗반자의 봉황 그림이 고찰의 품위를 더해준다. 대개 사찰의 대웅전 법당 안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봉황사는 봉황 그림만 보인다. 구석구석을 살펴도 온통 봉황이다. 여러 사찰을 다녀 보았지만 봉황만 그려진 사찰은 처음이다. 봉황사에는 대웅전 단청에 유래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사찰을 창건할 당시였다. 단청을 할 화공이 왔다. 외모가 수려하고 품격이 남달라보였다. 그는 주지스님을 찾아 고아(高雅)한 모습으로 고개 숙여 청했다.“스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대웅전 단청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어찌 그러시는지요?”“신성한 기운이 빠져나갈까 염려하는 마음입니다.”주지스님은 화공의 청을 받아들여 그곳에 기거하는 모든 스님과 보살에게 당부했다.“대웅전 단청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들여다봐서는 안 됩니다. 혹여나 산사를 찾는 이가 있을 경우에도 꼭 그리하여야 합니다.”주지스님의 당부가 있었지만 스님들은 그곳을 지날 때면 궁금증을 누를 수 없었다. 문살에 바싹 귀를 들이대고 안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안에선 고요를 감싸 안은 붓질 소리만 공기를 타고 흘렀다. 붓질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하마터면 문을 열뻔한 일도 종종 생겼다. 어느 날엔 문틈을 비집고 보려다가 주지스님께 불려가 꾸중을 듣기도 했다.“자그마한 호기심이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호기심을 다스리는 것 또한 수양입니다. 그것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어찌 도량을 닦는다 할 수 있겠소.”이후 스님들은 마음을 닦으며 야릇한 호기심을 눌렀다.며칠에 걸쳐 단청을 그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화공을 못 보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공양간에서 일하는 보살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중얼댔다.“화공은 밥도 먹지 않고 일을 하나.”공양간 보살은 괜한 선심이 발동했다. 주섬주섬 먹을 것을 챙겨 대웅전으로 향했다. 주지스님의 당부 말씀은 새까맣게 잊고 보살은 대웅전 문을 빼꼼히 열었다.“화공님….” 어찌된 일인가. 열심히 단청을 칠하던 화공이 봉황이 되어 훨훨 날아가 버렸다. 법당 앞쪽은 단청을 다 그렸지만 뒤쪽은 아직 미완이었다.인간의 심리가 얄궂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다. 전해 온 이야기 가운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인간의 얄궂은 호기심으로 인해 대부분 일을 그르치고 만다. 단청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서 잘 마무리 되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전해왔을지 궁금하다. 화공은 봉황이었을까. 단청을 끝냈다면 봉황이었던 화공이 사람이 되었을까. 전설 속으로 들어가 알아보고 싶다.봉황사 경내를 둘러보는데 보살님이 부른다. 점심공양하고 가라고 몇 번을 이른다. 때마침 출출한 차에 공양간으로 들어가 맛있게 비빈 비빔밥 한 그릇 비웠다. 주지스님이 상을 물리며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데 봉지 하나를 쥐어준다. 몇 쪽의 떡이 들어있다. ‘아, 이것이 봉황사의 인심이었구나.’오래전 단청 화공을 부른 공양간 보살님의 마음이 보인다.

2022-01-26

시장지배력→ 시장적응력 중심 전략 전환해야

서정헌 스틸앤스틸 대표 새해 우리나라 철강사 경영전략의 방향은 무엇일까?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 철강사 경영전략의 흐름을 지배했던 것은 시장지배력이었다. 모든 철강사는 투자를 통해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영전략이었다. 상공정에서 하공정으로, 하공정에서 상공정으로, 구색을 위한 투자를 함으로써 한편으로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철강산업의 양적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시장지배력은 철강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것이었다.그러나 한국 철강산업이 성숙기를 지나면서 신규투자 기회가 줄어들고 신규투자를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철강시장의 통합과 중국의 부상으로 철강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하면서 시장의 위험요인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요인을 회피하기 위해 철강사는 시장적응속도를 높이고 있다. 철강사 경영전략이 시장지배력 중심에서 시장적응력 중심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2021년 사례를 보자.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 철강가격이 급등하면서 우리나라 철강사들은 높은 시세차익을 누렸다. 과연 어떤 회사가 더 많은 수익을 확보했을까? 시장지배력이 강한 철강사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시장적응속도가 빠른 철강사도 많은 돈을 벌었다. 시장적응속도가 빠른 철강사가 재고관리를 통해 시세차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철강사 경영에서 시장적응력이 차츰 더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시장적응속도에 따라 각 철강사의 수익성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철강산업이 가지고 있는 생산중심의 경직성 때문에 시장적응력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철강사 시장적응력은 정확한 시장예측과 철강사 내부의 빠른 의사결정으로 가능해진다. 철강사가 시장적응속도를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감산, 통합, 공조 등이 있을 수 있다.감산으로 생산에서 유연성이 높아지면 판매나 구매에서도 유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생산과 타 부문의 갈등이 조정되고 부문전략이 통합됨으로써 철강사의 의사결정속도가 빨라진다. 각 부문이 전사적 수익성 극대화로 통합됨으로써 시장적응력이 빨라지는 것이다. 부문전략의 수단간 통합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철강사의 가격 적응속도는 단기적으로 철강사 수익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타 철강사와 공조나 합병도 시장지배력과 시장적응속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유용한 경영전략의 수단이 될 것이다.철강사가 롤마진을 넓히고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시장지배력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적응력이다. 시장지배력은 고도성장기 철강사 경영전략으로 선도기업 중심 생산 중심의 힘이고, 시장적응력은 성숙기 이후 경영전략으로 주로 유통이나 가공에서 강조되는 힘이다. 한 철강사가 두 가지 힘을 동시에 가지기는 쉽지 않다. 시장지배력이 큰 철강사는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최대로 활용하는 생산중심의 경영전략을 펼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시장적응속도는 느리다. 반대로 시장지배력이 약한 철강사는 생존을 위해 시장적응력을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철강사가 아무리 시장적응속도가 빨라도 철강재 물량확보가 어려우면 시세차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시장지배력이 있는 철강사가 물량확보가 용이하다. 따라서 각 철강사가 선택하는 경영전략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장지배력만큼 시장지배력 중심 경영전략을 펼치고, 나머지는 시장적응력을 높이는 것이다.자신이 가진 시장지배력 보다 더 강한 시장지배력 중심 경영전략을 펼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자신의 시장지배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시장지배력 중심 경영전략을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각 철강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경영전략은 시장지배력과 시장적응력의 최적의 믹스다. 이를 위해 먼저 각 철강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장지배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철강사는 규모도 중요하지만 시장적응속도가 수익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철강시장이 중국시장으로 편입되면서 철강가격이 중국과 연동하고 있다. 따라서 2022년 새해 우리나라 철강사 경영전략의 방향은 중국 철강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수집과 예측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철강사 부문전략을 전사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시장적응속도를 가속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22-01-25

왜 나의 고통에 침묵해야 하나

대다수 한국 남성의 의식 구조는 군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조화 된다. 남성의 삶은 군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의미화 되며, 사회생활은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와 같은 재구조화는 군복무 경험이 한국 남성에게 있어 치유될 수 없는 상처, 극복될 수 없는 트라우마, 돌이킬 수 없는 왜상임을 의미한다.현재 한국 사회는 군복무의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의 경험을 발화하는 것을 제한한다.표면적으로 이러한 발화 행위는 군복무 경험을 특권화시킴으로써 한국 사회 내 남성 화자의 위치를 특권화 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는 한국 사회가 구성원의 남성성을 착취하는 구조를 은폐시키는 역효과 또한 발생시키며, 한국 남성의 젠더 이슈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시각을 합리화시키는 내적 기제를 형성하고 공유하게 만듦으로써 동성 간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만드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군복무 경험에 대한 발화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젠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제이기도 한 것이다.군복무 피해를 사회적 이익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이는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인 너는 그러한 피해로부터 충분한 사회적 이익을 취했으니 그에 대한 발화를 멈춰야 한다’는 논리와 동일한 것으로, 이때 피해자는 이익의 실제적인 유무와 관계없이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으로 전제된다.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실증적인 것이 아니며, 공동체를 위해 너의 사적 피해를 공공연히 드러내지 말라는 전체주의적 태도를 대리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이는 군복무 피해자를 향한 이차 가해의 한 사례일 뿐이다. 과거에 비해 군대가 편해졌으니 군복무 경험을 트라우마라 말하는 것은 과잉된 해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그와 같은 논리는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고통을 과소평가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의미화하고 이를 인격에 통합하는 과정에 있어 불필요한 왜곡을 초래한다. 이와 같은 발언 역시 2차 가해의 한 사례인 셈이다.한국 사회에서 군복무 피해의 당사자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정당한 의미화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동일한 경험을 한 피해 당사자들의 집단 내에서만 의미화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러한 구조 속에서조차 개인의 트라우마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 롤에 맞춰 왜곡된 형태로 의미화 된다. 동성 내 담화 속에서 개인의 트라우마는 수평 구조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 역할에 기인한 수직 구조의 형태로 의미화 되며, 그러한 기제 속에서 피해자의 발화는 동성에 의해서도 다시금 제한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동성 간 군복무 경험에 대한 담화에서도 2차 가해는 발생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한국 남성은 최근의 위문편지 문제와 같은 젠더 이슈에 대해 언어를 통한 성폭력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나는 그러한 반응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합리적 언어로 의미화 시키지 못했기에 발생하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격에 통합하는 과정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여 형성된 인격의 병리적 사례라고 생각한다.타인의 언어를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남성성이 훼손되었다고 느껴 이를 회복하기 위해 타인에게 언어를 통한 성폭력을 수행하는 구조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러나 이를 군복무라는 트라우마에 따른 병리적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의견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한국 남성 대다수가 경험하는 자기 인식으로서의 남성성이 한국의 기형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병리적 증상임을 전제한다. 군 복무를 경험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험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에게도 증상은 동일하게 나타난다.)위문편지 문제를 ‘단순화된’ 젠더 갈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심각한 오판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내속된 문제를 일차원적인 젠더 갈등의 사례로 치환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시키며, 실존하는 젠더 갈등의 복잡성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젠더 갈등의 복잡성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면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설정하고 이를 소비하는지, 기형적 사회 구조의 영속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따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군복무로 인한 피해 경험을 왜 언어화 시켜야 하며, 어떻게 언어화 시킬 것인지에 대해 사유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금-여기’의 군복무 피해 경험에 대해서 말이다.

2022-01-25

새롭게, 더 새롭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열정적으로 시청했던 때가 있었다. 목표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하는 참가자들을 응원하는 재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시기였다. 가수, 요리사, 패션 디자이너, 슈퍼 모델 등등 다양한 꿈을 가진 이들이 등장해서 저마다의 사연을 내어놓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랜 시간 소망하던 것을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 타오르는 열망은 지난한 일상의 신선한 자극이었다.라운드가 계속될수록 오디션 참가자들은 더욱 간절해 보였고 한편으론 괴로워 보였다. 짧은 시간 내에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업물을 내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기성의 틀을 깨는 새로운 발상으로 극찬을 받던 참가자가 진부하다는 혹평을 받게 되면 어쩐지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이룩해놓은 반짝이는 작업물 또한 언젠가는 식상하고 진부한 과거의 것으로 남겠구나 하는 슬픔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신선함은 영원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결국 썩어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새롭다는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오히려 독에 가깝지 않은가. 찰나의 싱싱함을 붙잡고 일말의 위안으로 삼는 것은 아닌가.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어느 시대이고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도 마찬가지다. 서점가를 강타했던 ‘90년생이 온다’부터 현재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MZ세대’라는 용어까지, 이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전언이며 일말의 두려움 혹은 기대감이다.그러나 새로움의 주체가 되는 이들을 그저 새롭다고 규정짓는 것은 일종의 속박일 수 있다. 실제로 MZ세대로 대표되는 한 연예인은 세대를 구분 짓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욕심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대로 특징지어지는 이들은 특별하다고 취급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을 내어놓을 것을 요구받으며 그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특히 젊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함의를 피해가기 힘들다. 새로운 얼굴로 세상에 나온 예술가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며 기성세대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주기 마련이다. 더욱 발랄하게, 더욱 난해하게, 더욱 친근하게, 더욱 폐쇄적으로. 계속해서 더 새로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이며 젊음의 역할이라는 목소리를 듣는다.사회가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떠밀게 된다면, 그러니까 계속해서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면, 분명 건강하지 못한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젠가를 쌓듯 높게 더 높게 허상을 붙잡고 단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공들여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릴지도 모른다.새롭다는 가치 평가 자체가 문제일까? 기존의 체계에 브레이크를 걸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이들 역시 어느 순간 자신이 가진 안정된 위치를 지키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본다.그들은 이제 전혀 새롭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기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끝도 없이 매일매일 새로워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어떠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 아니며 사회구조적으로 약속된 일이다. 그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가변적인 약속이다. 고정된 값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새로운 것들도 언제든지 진부해질 수 있는 것이며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도 언젠가는 새로워질 수 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냉소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야말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고 세상을 밝히는 불꽃과 같기 때문이다.그러니 세상을 규정짓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부산물로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허상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눈을 믿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진부한 무언가가 자신에겐 새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것이다. 당장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만의 올바른 가치를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요즘이다.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 주관을 갖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안다. 복잡하고 모호한 사색을 멈추지 않고 그 리듬 자체를 즐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야말로 이전에는 없던 놀라운 생각을 데리고 올지도 모른다.

2022-01-25

무속인

국어사전에는 무속인을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여성 무속인을 무당, 남성은 박수라는 말로 구분했으나 지금은 무당이라는 말이 혼용해 쓰이고 있다.지역에 따라 만신, 법사, 보살, 화랭이 등으로 불리는 무속인은 법률상으로 보면 종교가 아닌 상업적 서비스업 종사자로 분류된다. 승려나 신부, 목사처럼 종교적 특권이 부여되지 않는다.한국표준직업분류에 의하면 점술관련 종사자라는 직업으로 분류돼 있다. 세금도 낸다. 조선시대에도 정식 직업으로 인식되어 무세(巫稅)를 낸 것으로 사료에 나온다.샤머니즘은 기복적 신앙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샤머니즘은 전형적이며 원초적 기복신앙으로 오래전부터 전래돼 왔다. 일반 종교가 신앙의 대상을 섬기고 따르는 것과는 달리 복을 기원하는 신앙이다. 자신의 소원성취나 무병장수, 자손번영 등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현세적 신앙의 한 형태다.전국적으로 아직 많은 무속인이 존재한다. 극히 일부지만 민속학적으로 주목을 받아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사례도 있다. 김금화 씨는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무속인이다. 한미수교 100주년 사업에 문화사절단으로 참여, 미국서 순회공연도 가졌다.대선 정치판이 난데없는 무속인 논란으로 시끄럽다. 단발로 끝날 것 같은 작은 이슈가 오래간다. 선거판에 무속인이 끼어든 것이 정치적 비방거리가 될 일인지 모르나 이를 혹세무민하는 집단으로 폄훼하는 것도 옳지는 않아 보인다. 과거 부모 묘를 옮겨 대통령 선거에 나선 이도 있지만 지금처럼 논란을 일으킨 경우는 드물다. 무속인 논란이 선거전에 어느 한쪽의 정치적 이익으로 작용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