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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말과 공약

이명균창원대학교 명예교수·영문학 성서에 의하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이 표현은 그 심오한 뜻을 종교적·신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언어의 일반적 특성에 비춰 해석하더라도,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한다 하겠다.사람은 말(소리와 문자 통틀어)을 사용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다. 사람이 일단 말을 습득하면 그 후로는 모든 생각과 행위를 말을 통해 이루어내게 된다. 말은 인간에게 제2의 자연이라고도 한다. 사물(事物)이나 현상과 개념까지도 말을 통해 생겨나고 인식되며 형성된다. 생각한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생각한 뒤에 그것을 소리나 글로 표현하게 된다. 이처럼 말은 우리 인간의 모든 의식과 행위가 일어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가족 간에, 친구나 이웃 사이 또는 사회의 여러 조직 내에서 생겨나는 어떤 갈등이나 문제도 말로 충분히 소통이 이루어지면 잘 해결될 수 있다. 서로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말로 진솔하게 나눈다면 국가 간의 웬만한 전쟁까지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다소 다른 얘기이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적 유수기업인 삼성반도체가 1993년 세계 최초로 64D램을 개발한 이후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 최초’를 휩쓸면서 가장 창조적 기업이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해 전 어느 신문기자가 삼성전자 사장에게 회사가 어떻게 현재처럼 성공했느냐고 물으니, 그 사장은 “회의 방식에서 전무부터 대리까지 함께 자리한다. 누구든 반박한다. 서슴지 않는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또한 삼성은 기술자, 연구원 외에 매니저도 함께 고민하면서 의사결정을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이는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참된 말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떠한 효과와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실례(實例)이다.여기서 말이란 참말, 바른말을 가리키는 것이지 거짓말이나 궤변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참말로 솔직하게 소통하며 뜻을 모은다면 인간사회의 어떤 문제점들도 해결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조도 이루어낼 수 있으나, 거짓말이나 왜곡된 말이 작용한다면 문제와 갈등은 증폭되며 개인이나 사회를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다.한편 사람은 평소 그가 하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 자질 성품 등 거의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차마 얘기 꺼내기 싫은 사항이지만, 올해는 나라경영의 지도자를 뽑는 해이다. 지도자가 되려는 인물들의 현재 소속 정당들을 보면 어느 당 할 것 없이 정말 심하게 짜증이 난다. 그렇더라도 누구든 한 사람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후보자의 번지르한 공약이나 선동적 어휘에 속지 말고 그 사람이 평소에 하는 말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나라가 벼랑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국운회복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느냐의 방향을 잡는 선택이 될 것이다. 참되고 진실한 말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할 것 같은 사람, 거짓말이나 궤변을 덜 할 것 같은 사람이 꼭 선택받기를 손 모아 빈다.

2022-01-11

脫원전 vs 親원전

최근 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을 녹색경제와 연관지어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하는 정책 초안을 채택해 주목을 끌었다. 독일 등의 반대로 논란도 있지만 선진국의 원전정책은 탄소중립 달성의 강력한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친환경쪽이 큰 흐름이다.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 간 정책대결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지속 여부가 관심이다. 이미 대선후보들이 이와 관련, 입장을 조금씩 밝혀 현 정부의 원전정책 기조가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달라질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다. 특히 원전을 많이 보유한 경북의 입장으로서는 탈원전 정책의 기조변화가 줄 영향이 커 대선후보들의 정책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한 모임에 참석, “탈원전의 방향성에 공감을 하지만 추진방식이나 속도 등에 있어서는 현 정부와 차별화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가동중이거나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는 그대로 두되 새로이 짓지는 않겠다는 감(減)원전 정책을 언급했다.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원자력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라고도 했다. 두 후보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중단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는 윤 후보가 당선되면 재개되고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재개 여지는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7천억원을 투입하고도 5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는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탈원전 정책 후 울진경제는 깊은 침체 늪에 빠져 있다. 사람은 떠나고 소비가 줄고 문 닫는 가게는 늘었다. 문 정부의 섣부른 탈원전 정책이 낳은 비극이다. 탈원전이 이제 기로에 섰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11

설에는 골목상권에 活氣 넘쳤으면…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이번 주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방역패스’ 대상에 추가로 포함시키자 수도권 주요언론사들이 일제히 비판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 시설을 이용하는 소비자 입을 통해 방역패스 적용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집중 보도하고 있다. 예를들면, ‘임신이나 기저질환, 백신 부작용이 있으면 백신을 맞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맞는 것인데 갑자기 장도 볼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드느냐’, ‘대형마트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돕는 생필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모든 고객이 모바일로 방역패스를 확인해야 하는 절차를 거치게 됨으로써 고령 고객들의 불만이 높다’, ‘고객 불편이 증대되고 기본권을 보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등의 논리다. 취재내용에 수긍은 가지만, 한편으론 생필품을 꼭 대형마트에서 구입해야 되느냐는 생각이 든다. 집주변에는 전통시장도 있고, 동네가게도 널려 있다.여기에서 대형마트에 대한 일부 언론사들의 보도태도를 언급하는 것은 지난 2013년 ‘대형마트 규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도 이들 언론사들이 대형마트 입점규제와 의무휴업을 문제 삼는 기사를 약속한 듯이 쏟아낸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대형마트 규제법은 중소도시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대형 유통시설이 골목상권을 붕괴시키자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월 2회 의무휴업을 해야 하고, 점포를 개설할 때 주변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도록 등록요건을 강화한 내용이었다.당시 이들 언론사들은 대형마트가 일요일 휴업을 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의 피해사례를 집중 부각시키며 영업규제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형마트들은 당시 수도권 언론을 마치 전단지처럼 활용하며 광고비를 뿌려댔다.그동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할 경우, 골목 가게들과는 달리 안심콜이나 QR코드만으로 입장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주부터는 전자출입명부 QR코드 등으로 백신 접종 완료 인증을 하거나 PCR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입장할 수 있게 됐다. 일주일의 계도기간을 거쳐 다음주(17일)부터는 방역패스를 위반할 경우 해당 시설은 물론 개인에게도 과태료가 부과된다.정부가 이번에 대형유통시설에 대해 방역패스를 확대한 것은 집단감염 위험성에 대비한 측면도 있지만 타 시설과의 형평성 문제를 많이 고려했다. 자영업자들과 학부모들은 그동안 식당과 학원, 독서실, 도서관은 방역패스를 적용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왜 포함시키지 않느냐는 불만을 많이 제기해 왔다.설 연휴가 이제 보름 남짓 남았다.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이번 설 장은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이나 주변가게에서 봤으면 좋겠다. 똑같은 돈을 골목상권에서 쓰는 것과 대형마트에서 쓰는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대형마트에서 쓰는 돈은 당일 서울본사에 입금되지만, 골목상권에서 쓰는 돈은 곧바로 지역사회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번 돈은 은행에 들어갈 여유도 없이 생계비로 쓰여진다.

2022-01-11

내가 바라는 삶

인생을 살면서 종종 길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낀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특별한 사건이 벌어져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았고 특별한 일도 없을 때, 모든 것이 평소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면 그런 기분을 느낀다. 전에는 이런 기분을 느낄 때면 친구들에게 그 기분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네가 살만해서 그렇다’는 말을 들은 이후론 그런 이야기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그건 한편으로 맞는 이야기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었나?’하는 기분은 들지라도, 완전히 길을 잃고 떠밀려가고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버리곤 하니까. 오히려 그럴 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더욱 확고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일에 치이며 정신없이 흘러가는 지금과는 다른 삶의 모습 말이다.그때 내가 원했던 건 아주 단순하고 명료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공부를 하고 삶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게 한편으로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글을 계속해서 써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걸 이루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종종 힘겨웠던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마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반쯤은 이룬 것 같다. 적은 돈이지만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공부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완전하게 글을 쓰는 일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건 아니지만, 다른 일을 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으니까. 좀 더 지출을 줄이고, 삶을 소박하게 꾸려간다면 지금도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지향했던 삶의 목표에 어느 정도는 다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그런데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건 참 단조롭고 볼품없는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 종일 집에 머물면서 타인과 마주칠 일 없이 혼자 글을 읽고 쓴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그런 순간이 기쁘고 행복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라는 사이에 숨겨진 괄호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우리는 종종 꿈과 삶의 외관을 착각하곤 한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과 과학자처럼 살고 싶다는 것을 착각하는 것처럼, 혹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과 연예인처럼 살고 싶다는 것을 착각하는 것처럼, 나 또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과 작가처럼 살고 싶다는 삶의 외관을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어린 내가 바랐던 것은 좋은 글을 쓰려 분투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작가의 삶이 아니라, 조금의 여유를 갖고 우아하게 책을 읽고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그런 삶이었던 것 아닐까.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라는 선망 사이에 숨겨진 괄호는 바로 그 여유와 우아함이었을 것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쩌면 내가 그때 꾸었던 것은 꿈이 아니라 타인의 삶의 외관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건 글 쓰는 일에서 나오는 매혹이 아니라, 내가 가정한 여유로움과 우아함에서 나오는 착각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건 지난하고 무기력하며, 패배감 넘치는 사투의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나는 내가 꾸었던 것이 꿈이 아니라 막연한 동경이나 선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건 다음과 같이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리라.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먹고 사는 삶’으로. 내가 길을 잃은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는 건, 그 괄호를 인식하지 못해 생긴 방향감각의 상실이었던 것 같다.이제 나의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은, 그런 생각을 해야 할 시간이라는 알림 같은 것이었으리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여유롭고 우아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쓰고 싶은 글이 있는 것인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한 것인지. 그 질문들 사이에서 삶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시간이다. 나의 삶을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들어줄 하나의 문장을, 여유롭고 우아한 삶의 외관이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질문을 찾아내고 싶다.

2022-01-11

1월에는 1월의 일을

1월은 이상한 달이다. 연말만큼의 설렘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각오하게 만든다. 한 해의 시작이면서 가장 조급한 마음이 드는 때이며 하루하루가 버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매분 매초가 아쉽고 아깝게 느껴진다.작년을 반성하며 올해는 제대로 살아내겠다고 다짐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문득 오늘이 며칠이더라, 하고 달력을 마주한 순간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벌써 1월이 이렇게나 지났어? 이러다 곧 2월 되겠어!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절규해보지만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째깍째깍 흘러갈 뿐이다.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염연히 같지만 12월 31일의 나와 1월 1일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차이와 비슷하다. 온몸에 덕지덕지 쌓여있던 케케묵은 먼지를 씻어낸 뒤의 가뿐한 기분.개운한 발걸음으로 찬바람을 맞을 때의 희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왜인지 모를 힘이 퐁퐁 솟아오른다. 어제의 나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세포 구석구석을 휘감는다.어쩐지 강인한 힘을 가지게 된 것 같은 나는 신년을 맞이하면서 올해의 다짐을 빼곡하게 적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조깅하자. 빈속에 커피 마시는 일은 그만두자. 귀찮더라도 아침밥을 꼭 챙겨 먹자. 원고는 미리미리 써놓고 마감 날짜가 닥치면 괴로워하지 말자.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작가들의 책을 독파하자.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미루지 말자. 자극적인 배달음식을 줄이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하자.이러한 다짐을 계획하는 순간만큼은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의기양양해진다. 그래, 이제는 정말 달라지겠어. 모두가 나의 부지런함에 깜짝 놀랄 거야. 주먹을 꽉 쥐고 허공에 흔든다. 올해만큼은 다르다고 자부하며 당차게 고개를 끄덕인다.이 굉장한 결의는 침대에 눕는 순간 모두 휘발되어 버린다. 해야만 하는 일은 어째서 미루고만 싶은 건지. 뜨끈한 전기장판에 등을 지지면서 보는 유튜브 영상은 왜 이렇게 재밌는 건지. 새콤한 귤을 까먹다가 스르르 빠져드는 단잠은 얼마나 달콤한지.눈을 떠보면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고 고요한 방 안에 놓인 건 평소와 다름없는 한심한 나 자신이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재빨리 고개를 젓는다. 이불 밖은 너무 춥고 어쩐지 온몸이 쑤시는 것만 같다. 함부로 밖에 나갔다가 괜히 감기라도 걸리면 손해이지 않은가.죄책감이 뱃속을 쿡쿡 찌른다. 이러다간 작년과 똑같은 한 해를 보내게 될 거라고 누군가 귓속에 속삭이는 듯하다. 잠시나마 몸을 일으켜 억지로 움직여보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영 불편하다.결국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조용히 되뇐다. 아직 1월은 지나지 않았으니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고.작년의 나도 재작년의 나도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새해의 다짐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를 분명 깨달았음에도 또다시 새로운 나를 기대한다. 내년의 나도 내후년의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나를 다짐하고 몇 시간 뒤에 침대에 누워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애당초 새해라는 건 사회가 편의에 의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시간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자조하면서.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올 한 해를 현명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어리석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키지 못할 계획일지라도, 이뤄지지 않을 소망일지라도, 우리는 자꾸자꾸 무언가를 바라야 한다. 내가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세상이 나아지기를 원해야 한다.바뀌지 않는 것들에 분노하고 덧없는 시간 속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또 일어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계획해야 한다.그렇다. 좌절은 이르다. 아직 1월이 지나지 않았으니. 후회는 2022년 연말의 내가 해야 하는 몫이다. 지금은 여러 계획을 다짐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할 때다. 그렇게 1월이 가고 2월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결심하고 후회하고 포기하고 다시 기대하면서. 부지런히 매월의 몫을 해내다 보면 느리게 나아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22-01-11

남을 것인가, 귀환할 것인가

“우주선 시각 19:00에 나는 발사 플랫폼으로 갔다. 발사관 입구의 승무원들이 옆으로 비켜선 가운데 좁은 계단을 내려가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과학소설가인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의 맨 첫 단락이다. 매년 이맘때면 이 책을 읽는다. 연말에 시작해 그해 마지막에 끝나던가, 연초를 넘기기도 하면서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습관이 되었다. 많은 책 중에서 왜 하필 이 책이며, 이 기간동안 반복적으로 읽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연말과 연초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머나 먼 미지의 행성으로 출발한다는 묘한 긴장감이 서린다.한 해를 돌이켜보거나 새로운 계획을 구상할 시기,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행성 솔라리스로 간다는 것.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불가해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 풀리지 않는 사건을 끌어안고 새해를 맞는다. 연말과 연초, 마지막 날과 첫 날, 정리와 시작이며, 반성과 약속의 의미가 가득한 시기를 모호한 미지의 가상 세계 속에서 보내다 돌아오는 반복된 습관이다.소설 속 주인공 켈빈은 솔라리스라는 외계 행성의 탐사기지로 파견된다. 켈빈이 태어나기 100년 전. 서로 마주보고 회전하는 두 개의 태양을 공전하는 독특한 행성을 발견한다. 이후 행성 탐사에 이어 행성과의 본격적인 ‘접촉’을 시도하던 인간들은 뜻하지 않은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도 유사한 줄거리를 가진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는 전개와 내용에 있어서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소설은 과연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고찰을 다루고 있다. 이에 반해 영화는 애초부터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비록 원작의 내용을 가지고 왔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한다. 같은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데 함의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소설과 영화 모두 ‘접촉’에서 시작된다. 100년 전 발견된 독특한 행성에 대한 본격적인 접촉을 시도한 이후 불가해한 상황이 펼쳐진다. 차이가 있다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영화 시작 단계에서 이미 원작에는 없는 존재론적 물음을 시작한다.소설은 인간이 규정한 생명체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넘어선 존재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사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규정지을 수 있는가. 소설 ‘솔라리스’는 인간적 사고의 한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우리는 우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죽었던 사람이 재구성되어 등장하게 되면서 겪게되는 감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졌던 죽은 사람이 물질로 완벽하게 구성되어 나타났을 때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단계의 과정이 펼쳐진다. 과학이라는 합리적이고 지극히 이성적인 영역 속에서 그것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마주했을 때, 과학은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동요한다.절대적 진리가 무너지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그것의 해결책으로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깊고도 지루한 철학적 사고를 영화 ‘솔라리스’ 속에서 반복한다.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존재와의 ‘접촉’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미지의 존재는 우리의 어떤 기억으로 오는가’에 대한 전개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소설과 영화는 갈래를 달리하며 우주를 대상으로 한 ‘인식론’과 ‘정체성’에 대한 각자의 길을 걷는다.비록 존재의 실체에 대한 결말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소설과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집요하고 끌고가면서 나라면 ‘솔라리스에 남을 것인가 지구로 귀환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놓이게 만든다. 이것이 매년 소설 ‘솔라리스’를 읽고, 가끔씩 영화 ‘솔라리스’를 다시 보는 이유다. /(주)Engine42 대표

2022-01-10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Ⅱ)

만식의 첫 인공 장기는 심장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부정맥으로 고생을 했다. 인공 심박동기를 왼쪽 쇄골 아래에 심었고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그러던 중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고전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을 사용하거나 스텐트를 넣어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나노 로봇을 이용해 혈관을 청소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만식에게 누군가 인공 심장 이야기를 했다. 너무 비싸서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협심증이나 부정맥 환자에게도 훨씬 나은 효과를 보일 것이라 하더군요.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인공 심장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인공 장기 회사의 한국 지점에 연락을 했다. 독일 본사의 기술 팀장이 직접 한국으로 왔다.-연료 배관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타이밍 벨트를 바꾼다고 해서 자동차 엔진이 좋아지겠습니까? 이미 수십 년 사용한 것인데 말입니다. 차를 새로 살 수 없다면 엔진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제일 좋은 거지요. 엔진이 신품이면 차도 신품이 되는 겁니다. 디자인은 좀 구식이겠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만식은 인공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만식의 나이 일흔 넷이었다. 필립이 서른아홉이 된 해이기도 했다. 만식은 수술동의서에 직접 사인을 한 후 필립을 보았다. 가까이 오라 손짓을 했고 침대 가드레일에 손을 얹고 서 있던 필립은 만식의 곁으로 왔다.-의사들은 나에게 말한 것을 너에게도 말할 것이다. 동의니 서명이니 하는 것들을 받겠지. 수술 중 그리고 수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기계의 오작동 가능성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최악의 경우 내가 죽거나 죽은 사람과 같을 수도 있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건강하게 수술실을 나올 것이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다.-당연한 말씀입니다.필립은 만식의 손을 잡았다.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입원실에서 눈을 뜬 만식이 필립을 보며 말했다.-너는 지금 웃는 것이냐, 우는 것이냐? 너의 표정으로는 알 수가 없구나.-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깨어나셔서 웃는 것입니다. 아버지마저 잃을까 두려웠습니다.필립은 이불을 끌어 올려 만식의 배를 덮었다. 만식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수술 전 내리던 비가 멈춘 것 같았다.-기대를 했었냐?필립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식의 목소리가 작아 듣지 못한 듯 했다. 필립은 침대 옆에 가져다 두었던 의자를 제자리에 옮겨 놓은 뒤 방을 나갔다.이후 인공 심장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세 번, 배터리 교환이 네 번 있었다.-더 이상 교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충전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비상 배터리까지 장착되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코디네이터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면 됩니다.마지막 배터리 교환 후 인공 장기 회사가 만식에게 한 말이었다.만식은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간과 우측 콩팥을 인공 장기로 대체했다. 심각한 질환이 있어 이식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만식은 오래된 장비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라 여겼다. 인공 장기 회사의 기술 팀장에게서 들었던 자동차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몸이 자동차라고 치면 말이지. 게다가 새 자동차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면 말이야.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태어날 때 가지고 난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게 우리 몸이잖아. 그런데 지금 내가 타는 자동차가 칠팔십 년 되었어. 이게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거잖아. 정상일 수가 없지.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난 사고는 어쩔 수도 없고 내가 감당할 몫이라 치더라도 부품이 낡아서 사고가 나는 것은 좀 억울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부품이라도 갈아야지. 디자인? 그건 어쩔 수 없지. 바라지도 않고.누군가 물었다. 김강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그 자동차는 언제까지 달리고 싶답니까?사람들이 웃으며 만식을 보았다. 만식은 두 손을 들어 핸들을 잡는 흉내를 냈다.-길이 있는 한, 달려야 하는 길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걸세. 달리는 것, 그게 자동차의 본질이자 운명이니까.인공 심장 이식 수술 이후 몇 번의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 시에 필립은 병원을 찾지 못했다. 만식이 오지 말라 했다. 걱정하는 모습, 안도하는 모습, 아쉬워하는 모습. 그게 무엇이든 만식은 보고 싶지 않았다.-필립아, 네가 나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네 녀석을 싫어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저 병원에 있는 동안 너를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을 뿐이다. 네 형이 그리되던 날, 네 엄마가 죽던 날 모두 네가 그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필립은 가만히 들었다.

2022-01-10

빅블러 시대

코로나19 팬데믹 확산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세계에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블러(Blur)는 사전적으로 흐릿해진다는 의미로, 빅블러는 빠른 변화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특히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인공지능(AI),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빅블러 현상이 대두됐다. 예컨대 금융회사 대신 핀테크를 이용해 해외 송금을 하는 것이나 온라인 지급결제 서비스가 온라인 가맹점을 내는 것, 온라인으로 신청해 오프라인으로 서비스를 받는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Airbnb) 등이 이에 해당된다.최근에는 간편 송금으로 대변되는 토스의 등장과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의 금융업 진출로 금융 소비자들은 기존 금융사 DNA와 다른 기업이 금융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보다 더 간편하고 편리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블록체인, 가상자산,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와 같은 새로운 디지털 자산의 등장 역시 금융사 중심의 지급결제 시스템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의 비대면 생태계를 가속화하면서 금융사들의 대면거래, 대면영업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비대면거래가 일상화됐다. 이 와중에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반의 빅테크 업체들의 금융시장 진입은 기존 금융권을 긴장시키고 있다.막강한 사용자 기반과 편의성, IT와 디지털을 무기로 금융은 물론, 유통, 물류,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빌 게이츠의 말처럼 ‘은행 없는 은행 서비스’가 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 세계는 이미 빅블러 시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10

‘15분 도시’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요즘 ‘15분 도시’라는 도시계획 용어가 서울, 부산, 대전 등 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정책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15분 도시’는 ‘15분 지역생활권 도시’의 약칭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여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범위를 말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전기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와 같은 PM(Personal Mobility)은 이용하지만 승용차나 버스 그리고 지하철은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는 정도의 생활권 범위를 말한다.그리고 ‘15분 도시’ 생활권 안에서 통학, 쇼핑, 운동, 산책, 치료 및 관공서 업무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터가 있어 출퇴근도 가능하다.‘15분 도시’는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이 지난 2020년 재선에 성공할 때 ‘15분 도시’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크게 주목 받았다. 파리의 도전적 실험이 미국 디트로이트, 호주 멜버른,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세계 주요도시에서 크게 호응 받으면서 전 세계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15분 도시’와 같은 N분 도시가 선거공약으로 발표되면서 큰 이슈가 되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먼저 미래로, 15분 도시 부산’이란 슬로건으로 부산시를 15분 도시로 가장 먼저 전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이처럼 많은 도시들이 ‘15분 도시’ 만들기에 열광하는 것은 우선 시민들이 각종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교통비도 크게 줄일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금 전 세계를 고통 속에 몰아넣은 코로나19와 같은 불의의 대형 감염병 사고에도 거리두기가 매우 유효해서 효과적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통과 물류 등 도시 내 사람과 상품의 이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와 미세먼지 등 각종 환경 오염물질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IoT, ICT, AI 등 최신 스마트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그간 도시생활을 위해 필요했던 시간과 거리의 한계를 충분히 극복가능 해졌기 때문이다.결국 이러한 ‘15분 도시’로의 변모는 우리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설정한 시간적 마지노선인 2050년까지 나무에 흡수되고 땅속에 포집될 수 있는 소량의 탄소 외에는 추가의 탄소는 전혀 배출하지 않은 탄소중립의 미래시대를 준비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연말 대구시는 탄소중립 시민협의체와 함께 2050 탄소중립 전략 시민보고회에서 ‘시민중심! 탄소중립 선도도시 대구’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핵심전략사업으로 ‘15분 도시’ 만들기 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을 제안하였다.그런데 대구시 통계DB에서 2019년 기준 통근·통학이 대구시의 총 통행목적의 약 58%나 되는데, 여기에 소요시간은 20분미만이 약 25%에 불과하고 20~60분은 67%이며, 60분이상도 8%나 되었다. 주요 교통수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승용차가 43%로 가장 많고, 시내버스와 철도가 41%인 반면, 자전거와 걷기는 11%에 불과하였다. 우리가 ‘미래 탄소중립 15분 도시’로 전환하기 위해서 얼마나 갈 길이 먼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22-01-10

깨어 있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울수록 겨울바다의 빛깔은 깊고 진하다. 멀리서 보면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쉴 새 없이 뒤척거리며 물결이 움직이고 있다. 해변의 모래톱으로 긴 여울 자락을 펼치며 나울거리는 파도는 육지의 안부를 묻는 잔잔한 속삭임 같고, 갯바위에 철썩거리며 흰 포말로 부서지는 너울은 간간이 응축된 힘을 발산시키는 물살의 함성같이 들린다. 혹한의 계절에도 바다는 온갖 생명체와 유기체를 온전하게 품으며 재우고 걸러내고 찰방이고 있다. 은빛 햇살 부서지는 한적한 해변에 갈매기들의 겨울 나들이가 시작됐다. 추위에 떠는듯 깃을 접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먹이라도 발견한 걸까? 시퍼런 물살이 일 때마다 조금씩 깃을 터는 갈매기들, 이윽고 몇 마리가 날아오르자 마치 군무라도 펼치는 듯 연이어 날갯짓하며 끼룩끼룩 퍼덕퍼덕 그들만의 어설픈 외침으로 일제히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비상의 나래를 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갈매기 날갯짓 따라/파랑(波浪)으로 손짓하며/짙푸른 함성인 듯/근육으로 이는 물살/벅차게 용솟음치는 꿈/깨어 있는 자의 삶//자정(自淨)의 먹을 갈아/뭍의 배설물을 삭히며/트인 가슴으로/넘실대는 사유의 자락/수평선/가뭇한 언저리에/각인되는/올곧음’ -拙시조 ‘깨어 있는 바다’전문(1994)바다는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었다. 탁 트인 전경에 가슴이 절로 시원해졌고 가물가물 수평선이 자꾸만 마음을 꾀는 듯했다. 한없이 너른 품새로 모든 것을 받아주다가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격정의 몸부림은 사람의 성질이나 삶의 양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면서 바다는 언제나 쉼없이 찰랑이고 삭히고 밀어내면서 평상심으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듯했다. 중 2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 가면서 처음 본 동해바다의 설레임과 신기함에, 속내 깊은 바다의 진중함과 유장함이 투영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 인 것 같다.바다는 늘 깨어 있기에 파도치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고 열려 있기에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고 포용하는 가슴을 열어 바르고 곧은 사유를 일깨우는 것이다. 생각의 물길이 파도로 출렁이고 근육 같은 물살이 일렁이며 꿈을 외치는 것이다. 넘실대는 물의 평정(平靜)이 올곧은 수평선으로 뜨기에 비늘 같은 햇살을 쪼며 갈매기들이 화답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채근하며, 파랑의 몸짓으로 꾸준히 뒤척이고 노력하고 진취해야 하는 것이리라.지구의 2/3 이상을 뒤덮고 있는 어머니 같은 바다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일깨우지만, 문명의 진화에 수반되는 온갖 해악과 해양 쓰레기는 갈수록 바다를 피폐하고 신음하게 만들고 있다. 바다로부터의 일깨움은 소소한 삶의 편린일 수 있지만, 인류와 미래의 생존과 지속에 직결되는 심대한 영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낮없이 읊조리는 바다의 그침 없는 해조음에 귀 기울이며, 바다 살리기와 탄소중립 실천의 시대적 요구와 역할에 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해보자.

2022-01-10

여론은 ‘정권교체’… 담을 그릇이 없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강력한 ‘정권교체’ 열망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교체’를 원했다. 지난 12월 초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55.1%가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37.8%였다. (이하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 가치에 대한 결핍감이 절박하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 이후 공정 문제는 시대적 화두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후원금 유용 의혹은 ‘가재·붕어·개구리’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부동산 가격 폭등, 취업 대란이 그 근본적인 배경이다.서울·부산·충남 광역자치단체장의 잇따른 성 추문은 도덕적 타락상까지 노출했다. 오죽하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마저 ‘4기 민주 정부’보다 ‘이재명 정부’라고 부르고, “정권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 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하겠는가.그런데 후보 지지도는 다르게 움직인다. 알앤써치의 지난 4~5일 조사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3%로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윤 후보 지지율은 34.2%에 그쳤다. 정권교체 하려는 열망을 담아줄 정당도, 후보도 찾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5일 45.8%(PNR)에서 불과 두 달 사이에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지경으로 추락했다.처음부터 윤 후보에게 쉬운 승부가 아니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에는 선거 전문가가 많다.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다. 목표 지향적으로 작전해왔다. 그에 반해 윤 후보는 정치 초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국민의힘에 치밀한 전략가도 부족하다. 후보감이 없어 밖에서 초보운전자를 데려오고, 전략가가 아쉬워 나쁜 기억이 남아있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다시 모셔 왔다.어느 정도 풍파는 예상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난장판일 줄은 몰랐다. ‘민주당에 갖다 바친다’는 표현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민감한 부인 문제를 아무 준비 없이 불쑥불쑥 외부로 토로했다. 사과는 시간도 놓치고, 진정성 전달도 실패했다. 후보와 총괄선대위원장, 당 대표는 불통했다. 냉소와 가시 돋친 메시지만 난무했다. 노력해서 얻은 표가 없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 열망마저 4할은 실망과 좌절 속에 던져버렸다.축구 선수가 서로 슈팅을 욕심내면 이길 수 없다. 민주당은 ‘머리’가 많다. 후보가 있고, 대통령, 당 대표도 있다. 그러나 모두 이재명 후보가 빛나게 물러섰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라고 선언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모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노태우 후보를 위해 ‘6.29 항복선언’을 연출해줬다.국민의힘은 거꾸로 움직인다. 다 주인공이고, 다 잘났다. 윤 후보가 초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정치 비전이나 정책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말을 할 때마다 설화다. 하지만 그런 줄 다 알고 데려온 것 아닌가. 당에서 다듬고 챙겨줄 수밖에 없다. 생색을 낼 일도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선거를 앞두면 누구나 화장한다. 중간 표를 노려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동운동가이던 이재호·김문수 전 의원을 영입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후보가 정체성을 버렸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노력이 후보 간 대결이 되기도 전에 당내 분란으로 번진다. 윤 후보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혼란스럽다.지금은 후보의 시간이다. 국민의힘 당헌은 “대통령 후보자는…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제74조)고 규정하고 있다. 당내에서 갈등할 시간이 없다. 국민의힘이 무능해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자멸하는 것이야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민심은 분명한데 그것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상황은 비극이다. 엉뚱한 다툼에 정작 필요한 미래 비전을 둘러싼 후보 간 대결이 실종된 것도 안타깝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1-09

포항지진, 위기를 기회 만든 반전 드라마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출발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세계사에서 이보다 더 극적일 수가 없는 대반전의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16세기까지만 해도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유럽 최강대국 스페인의 위상에 눌려 해상 변방국에 불과했던 영국은 200년 후 비교가 되지 않는 절대 열세의 해군력으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침 시킨다.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절대 열세의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기동력과 기습공격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전술과 영국 최고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리더십을 말 한다. 전선으로 출격하는 군인들에게 ‘그대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리더를 만날 수 있어도 나보다 그대들을 더 사랑하는 리더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평생 미혼으로 보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연설은 단연 압권이다. 환호하는 영국해군의 사기는 하늘을 집어삼킬 듯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지난해 12월 초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 대책위원회 활동 시민보고회’가 열렸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에 포항에서 규모 5.4도의 대형지진이 발생했다. 외형적으로 나타난 강도는 5.4도였지만 진원지가 지표면 얕은 지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는데 모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고 대입 수능이 일주일 연기될 만큼 사상 초유의 국가 대재난 이었다. 이런 와중에 참으로 놀랍고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려왔다. 포항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공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세계적인 학술정보지인 미국의 ‘사이언스’에 게재한 두 교수의 용기 있는 발표는 2019년 3월 정부조사 연구단이 두 학자의 발표와 동일한 결론을 내림으로써 포항시민들에게 어둠속의 한줄기 빛과 같은 선물을 안겨주었다.정부조사단의 발표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포항 11. 15 ‘촉발지진 범시민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포항시를 대표하는 57개 사회단체에서 77명이 참여할 만큼 메머드 급 규모였다. 이날의 시민 보고대회는 위원회가 걸어온 2년여의 험난한 여정과 눈부신 활동으로 가득 채워 졌다. 어쩌면 지방자치 시대의 관, 학이 서포트(Support)하고 민(民)이 주도하는 단체의 성공한 모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경이로운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범시민 대책위원회는 대 시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촉발지진을 일으킨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국회, 산자부, 청와대로 보폭을 넓히며 지진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특별법 제정이 지지부진하자 여야당사 항의집회와 2019년 10월에는 총 3천여명의 시민들이 청와대 상경집회를 통해 그해 연말 드디어 지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잘 아는 바처럼 촉발지진 범시민 대책기구는 4인의 공동체제로 출발한 그대로 마무리하고 있다. 포항사랑과 책임감으로 다져진 이들 4명의 리더십도 주목할 만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조직의 균열이나 잡음하나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한 찰떡공조를 이룩해낸 열정어린 노력은 포항시민들의 눈높이를 충족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세상에 그저 되는 부자는 없듯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 기회보다는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기회가 훨씬 소중한 것이다. 좌절과 시련은 괴롭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세계 역사에는 국가나 개인도 예외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2세기 세계최강 마케도니아 제국의 건설은 5만의 군사로 40만 다리우스 황제의 페르시아 대군을 궤멸시키는 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고조 유방도 항우에게 쫓겨 간 파촉 지방에서 와신상담하며 통일제국 한나라를 건국하였다. 개인도 예외는 아니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리노이 주의원을 시작으로 부통령, 상원의원 등 7번의 선거에서 낙선한 링컨은 실패를 교훈삼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정약용의 생애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는 유배지에서 독서와 저술에 온 힘을 기울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을 쏟아냈다. 유배지에서 자책과 울분으로 세월을 보냈다면 결코 해 낼 수 없는 업적이다.포항에는 철강도시 이후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의료, 관광분야를 망라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가야하는 막중한 책무가 기다리고 있다.아무리 깊어도 세월이 지나면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친환경적인 정책을 실천하는 유산을 물려준다면 포항지진의 아픔보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포항시민인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주지하는 바와 같이 새해는 검은 호랑이 해다. 숲을 지배하는 흑호는 뛰어난 리더십과 열정, 용맹함을 자랑한다. 포항의 지도자, 시민이 하나가 되어 호랑이의 기운을 듬뿍 받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더불어 51만 포항시민에게 전화위복, 부위정경의 반전의 드라마를 쓴 지진대책 위원회의 노고에 진심어린 신뢰와 감사를 표하고 싶다.

2022-01-09

공정과 효율성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공정성이 효율성을 보장 할 것인가.때로는 이 질문에 깊은 의문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효율을 위해 공정성을 조금 희생할 수는 없을까?산업경영공학에는 OR(Operations Research) 또는 운용공학이라고 불리는 과목이 있다.시스템의 최적화를 위한 여러 가지 기법을 배우는 과목인데 여러 가지 기법 중에 ‘대기행렬 이론’(Queuing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OR은 전체적으로 확정적 모델과 확률적 모델로 나누는데 대기행렬 이론은 확률적 모델에 속한다. 확률적인 상황에서 최적을 구하는 것이다. 즉 은행창구 같은 곳에서 무작위로 방문하는 고객들을 한 줄로 세울 것이진, 여러 줄로 세울 것인지 어느쪽이 더 효율적인지 검토하는 이론이다.요즘 공공장소에 가면 ‘한 줄 서기’ 운동을 장려한다. 기차표를 살 때도 여러 개의 창구가 있어도 창구마다 줄을 서지 말고 한 줄로 서라는 의미이다.“왜 한 줄로 서는 것이 좋은가”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잠시 생각하다가 나오는 답은 “공정하니까”라는 답을 한다.훌륭한 답이다.여러 줄로 서면 늦게 온 사람도 줄만 잘 서면 먼저 표를 살 수 있는데 반하여 한 줄로 서면 적어도 뒤에 온 사람이 앞에 온 사람보다 먼저 표를 구입할 수는 절대로 없다.그런 의미에서 ‘한 줄 서기’는 확률적으로 공정성을 보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정성보다 더 중요한 한줄서기의 효과는 대기행렬에 있는 사람들의 대기시간의 합이 확률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다.이는 수학적으로 간단히 증명 가능하다.맨 앞줄의 사람이 티켓구입에 시간을 많이 끄는 경우 한 줄 서기는 그 손님만 제외하고 다른 창구에서 빠른 순환을 할 수 있지만 여러 줄 서기에는 그 손님 뒤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의 대기시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이 예는 ‘공정과 효율성’은 서로 상관관계가 높다는 대표적인 예이다. 즉 시스템이 공정하게 돌아가면 효율도 올라간다는 것으로 OR에서 자주 인용되는 예이다.한국 건설 현장에 가면 ‘돌관공사’라는 말이 있다. 빠른 속도로 공사를 한다는 것인데 부실공사를 만드는 요인도 된다. 적당히 하면 효율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창피하게도 수백 명의 사망자를 만든 건물 다리 붕괴 등 대충주의에 의한 사고도 잦고, 이러한 공정을 해친 적당주의에 따라 세계적으로 교통사고율이 높다.공정과 효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신호등 없는 사거리의 차의 주행이다.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꼬리 잇기를 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이다.한국에서는 신호등 없는 네거리에서 대부분 멈추지 않고 꼬리 잇기를 한다. 일견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자동차 사고가 여기서 많이 난다. 한국의 신호등 없는 사거리는 바닥에 하얀 페인트로 차 사고 표시를 한곳이 유난히 많다. 잘못된 교통질서 지키기와 함께 잘못된 신호체계도 문제다. 차량이 거의 없는 새벽에는 교차로의 신호등은 깜빡등으로 처리해야 하는데도 많은 경우 신호등이 방치돼 있어 빨간불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리는 차를 흔히 볼 수 있다. 삼거리에서 마주 오는 차량에 우회전과 직진을 줄 때 내게는 직진을 줄 수 있는 데도 빨간불로 막는 예도 있다.일부 신호체계의 모순은 운전문화의 후진성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비보호 좌회전’이 우리에게 일반화되지 못하는 것도 급하게 좌회전하는 ‘빨리빨리’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경적소리를 남발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선 거리에서 경적소리를 거의 듣기 어렵다고 한다.한국 교통문화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이러한 후진성이 공정성을 파괴하는‘적당주의’와 관련이 있고, 그런 적당주의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생각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공정성을 해치는 적당주의를 거부하는 엄격한 제도 때문 아닐까?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및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사고, 연구업적 부풀리기 같은 학계의 문제, 또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사회, 학계,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오는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종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그러한 공약에 공정성이 정밀히 검토되지 않고 표를 얻기 위한 것만이 기준이 된다.공정을 해치더라도 효율(득표)만 된다고 생각하면 공약을 발표한다. 그러나 유권자는 그렇게 가볍고 단순하지 않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공정성이 효율을 가져온다는 즉 공정한 정책이 득표를 가져 온다는 ‘대기행렬 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22-01-09

후임 시장에 대한 바람

고윤환 문경시장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여정은 낯설고, 어렵다.더 나은 시민의 삶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늘 고민하고, 혁신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인물이 시정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방도시의 인구감소 문제는 사회·경제 전반으로 큰 영향을 미치며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제 지방도시는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문경시는 탄광산업이 호황이던 1974년에 16만 명이라는 최대 인구를 기록하고, 폐광을 기점으로 3년만인 1994년에 인구 10만, 그 이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인구 7만명 사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왔다. 전국적으로 출생아 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파격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하여 2019년, 2020년 2년 연속으로 출생아 수가 증가했고, 합계 출산율도 1.291명으로 전국 260개 시군구에서 26번째로 높은 수준이다.고령화된 인구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청년을 지역에 정착시키고자 문경시 청년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달빛탐사대 출범, LH 행복주택 준공, 지역정착맞춤형학과 개설 등 다양한 방안도 모색했다. 또 맞춤형 귀향·귀촌·귀농 정책과 인구증가시책을 추진했다. 우리 시 귀농·귀촌인구는 2012년 121명에서 2020년 1천399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해 이 같은 노력의 결과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처럼 지난 10년간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고령화시대의 대응기반을 구축하는 등 모든 시책을 시민의 보다 나은 삶을 바탕으로 인구증가에 중점을 두고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구감소라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의 2배가 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고, 청년층의 이농현상이 가속화되는 시대의 조류를 탓할 수도 있지만, 인구는 지역의 성장 동력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해서도 안 된다.이런 현상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지방행정의 선도적인 노력과 함께 재정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이번 대선 의제 1위가 집값 안정, 즉 주거문제 해결이다. 우리 시는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혁신적인 인구정책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새문경 뉴딜정책을 구상해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다.귀향·귀촌·귀농인의 조기 정착을 위해 충족돼야 할 필수조건인 보금자리를 제공함으로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도시민의 유입으로 만성적인 농촌 일손 부족문제를 해결하며, 마을 내 폐가와 빈터를 정비함으로 농촌주거환경 개선이 함께 이루어진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큰 산업축인 건설수요가 활기를 찾으며, 지역 경기를 이끌고, 무엇보다 늘어난 인구만큼 내수가 진작되게 된다. 영순 의곡리에 설치한 모듈주택 3동은 입주자 공모결과 31명이 지원했으며, 공평동 모듈주택 10동은 63명이 신청해 6.3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안정적 정착을 바라는 도시민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입주자 모집 시 취업 또는 창업하는 청년세대를 우선적으로 선발해 출산 및 취학아동이 있는 젊은 세대가 많이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어린이집, 학교의 폐교를 미연에 방지하고 도시가 젊어져 기업체의 구직난 해소로 기업이 유치되는 선순환의 인구구조를 만들어 갈수 있다.문경을 이끌어갈 차기 시장이 시민의 삶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혁신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분이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여정은 낯설고, 어렵지만, 그만큼 값어치 있는 길이다. 주어진 틀 안에서 관습적으로 접근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인구문제, 지방소멸 문제 어렵지만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으면 해낼 수 있다.예산 확보를 위한 준비와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예산확보는 예로부터 단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설명되기도 했다. 정부 정책방향에 맞추어 세밀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중앙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책 동향자료 수집 등 중앙부처 예산편성 요구 단계부터 직접 챙겨야 한다. 부처예산에 반영되지 못한 사업이 정부안에서 다시 살아나거나 부처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금액이 정부안에서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후 국회 확정시까지 체계적으로 대응해 국가예산 확보 의지와 활동을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2022-01-09

에덴동산

추억은 식물과 같다. 어느 쪽이나 싱싱할 때 심어두지 않으면 뿌리박지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싱싱한 젊음 속에서 싱싱한 일들을 남겨놓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 비평가 생트뵈브가 우리에게 남긴 명언이다.공감하는 명언에 충실하고자 오늘 추억 하나를 남겼다. 경양식이라는 낱말이 옛날을 떠올리게 해서 오래된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자는 내 말에 친구들 모두 얼른 따라나섰다. 입구부터 복고풍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묵직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벨벳이 눈에 뜨였다. 푹신한 쿠션까지 더해 소파 깊숙이 당겨 앉고 싶게 했다.오래된 포스터와 샹들리에로 꾸민 실내장식은 이 집이 오래 한자리를 지켰노라고 말해주었다. 최근에 레트로풍이 유행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젊은 연인도 옆 테이블에서 음식을 고르고 있었다. 추억이라는 뜻의 준말인 레트로는 과거의 추억이나 전통을 그리워해 그것을 본뜨려고 하는 성향을 말한다. 뉴트로·힙트로·빈트로 등의 새로운 개념도 등장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레트로가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과거에 유행했던 것을 다시 꺼내 그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같은 과거의 것인데 이걸 즐기는 계층에겐 신상품과 마찬가지로 새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래되어도 가치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빈티지하다’라는 말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집이다.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에 올드카 번호판 느낌의 철판을 살짝 덧대어 놓았고, 2인 식탁에는 뜨개실로 레이스 뜨기를 해서 늘어뜨렸다. 다락방 같은 분위기라 아늑했다. 들창의 형식으로 열어놓은 창문도 요즘 보기 드물어 시골 할아버지 댁에 온 듯한 기분으로 추억을 더듬었다.경양식(輕洋食)의 한자를 풀이하면 ‘가벼운 서양 요리’라는 뜻이다.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세월이 흐르며 한국식으로 완성됐다. 20대에 소개팅하러 나간 곳이 대부분 양식당이었다. 그땐 포항에도 이런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언제 마지막으로 왔던가 추억의 책장을 넘기려는데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우린 경양식 대표메뉴인 돈가스와 부채살 스테이크와 연어 샐러드를 시켰다. 그러자, 모든 코스에 샐러드가 기본으로 나오니 샐러드 말고 다른 음식을 시키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파스타로 바꿨다.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묻지 않았다. 이 집은 식전빵-스프-샐러드-김치와 피클-본식-디저트 순서로 꽉 채워 주는 곳이었다. 돈가스가 나올 때 밥을 접시에 얇게 펴 담아 오니 빵과 밥을 고를 필요가 없다. 너무 좋다.경양식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르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절대 돈까스나 다른 고기메뉴들을 썰어서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질하러 간다는 말이 곧 양식집에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 돈가스와 스테이크는 썰어줘야 추억 완성이다.오늘 제대로 썰었다. 식전빵은 피자 도우를 구운 것 같은 모양의 따뜻한 빵이고, 수프도 오뚜기 수프가 아닌 단호박 맛이 깊게 났다. 샐러드에는 색색의 채소 위에 견과류까지 토핑되어 대접 제대로 받는 손님으로 만들어 줬다. 돈가스는 돈가스 맛집이고 스테이크 굽기도 적당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종업원들이 지나며 슬쩍 보다가 돈가스 접시가 비어가자 디저트를 고르라 했다. 귤차, 커피, 아이스크림 중에 나는 커피를 친구는 귤차를 선택했다. 은은한 귤차는 단지 모양의 미니어처와 작은 꽃병이 함께 차려진 찻상이었고 다섯 가지 과일이 얌전히 깎여서 소스로 그림이 그려진 접시에 분홍장미가 살포시 누운 채로 함께 나왔다.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다.하나씩 대접받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주인장이 스물아홉 살에 ‘에덴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26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심어 주었다. 생트뵈브가 와도 별 몇 개는 주고 남을 추억 맛집이다. /김순희(수필가)

2022-01-09

‘毛퓰리즘’

AP와 로이터 통신,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이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조명하면서 지금 한국에선 탈모치료제 의보 적용이 뜨거운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모인 커뮤니티에선 이를 지지하는 메시지가 넘치는가 하면 반대로 뜨거운 만큼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도 거세게 받는다고 했다.한국에는 약 1천만명 가량의 탈모 인구가 있다고 한다. 그들에겐 탈모 치료의 건보 적용은 대단한 희소식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건강보험재정이 충분하다면야 의보 적용을 한다해도 무방하겠지만 탈모 치료보다 더 긴급한 질병이 있는데도 이를 적용하는 문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예컨대 최신 도입된 항암치료제 가운데는 의보재정 부담 때문에 본인이 엄청난 부담을 물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돈 없는 사람은 일찍 죽으라는 것과 같다. 이 후보의 논리대로 신체의 완전성을 위해서라면 보톡스 시술이나 성형수술, 쌍꺼풀 수술 등도 의보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형평성 논리에 맞다.특히 선거를 앞두고 건보재정이나 형평성은 도외시하고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건보 적용대상으로 하자는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포퓰리즘이란 대중의 인기만을 쫓는 대중 영합정치다. 아르헨티나 페론이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을 수용하며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하다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사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국민건강보험은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보장제도다. 건보 적용 여부는 정치인이 하는 것보다 전문가 집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 특히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 문제를 꺼낸 자체가 무책임해 보일 수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1-09

꿈과 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언제부턴가 국립대 교수들은 학생 면담이 의무가 되었다. 한 학기에 1회, 1년에 두 차례는 반드시 지도학생 면담이 필수적인 과제로 부과된 것이다. 이른바 학생 지도비라는 명목의 수당이 예전의 봉급에서 차감 지급된다. 학생들과 대면하기를 꺼리는 교수는 거의 없다. 가르침이라는 것이 학문의 전수에 그치지 않는 것이 우리 대학사회의 풍토이기 때문이다.학생들과 면담하노라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그들의 내부에 깊이 각인된 수동성과 흐느적거림이다. 젊은 시절의 담대한 패기와 무모할 정도의 배짱과 오기, 무엇인가를 향해 달려가는 저돌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학생을 대학에서 찾을 수 없다. 예전에는 완전히 멸종되지 않아서 드문드문 만날 수 있었기로, 커다란 기쁨이었건만, 이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영리한 학생들은 그들의 향방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난 연후에 가장 안전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전무(全無)한 길을 택한다. 그러하되 그 길의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를 나한테 검증받으려 한다. 그러면 나는 속이 짠하다! 학부 3년 동안 그가 들여다본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 사회의 국립대 졸업반 학생의 함축적인 선택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저토록 범속한 소시민으로 만들어버렸을까?!꿈이 없는, 아예 처음부터 꿈이라고는 꿔본 적 없는 청춘이 나날이 늘어간다. 그들에게 꿈이 뭐야, 하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공무원이라 답한다. 그들은 꿈이 미래에 가질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앞으로 희망하는 직업이고, 내가 묻는 것은 꿈이야, 하고 말해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위대한 축복을 받아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찬란한 20대에 아스라한 창공으로 비상하는 꿈을 꾸지 않는 세상이 찾아온 것이다.언젠가 서른 명 남짓한 학생들과 꿈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꿈 아닌 꿈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던 중 유일하게 어느 학생이 꿈을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40대가 오면 저만의 고유한 카페를 차리고 싶고요. 그 전에 제힘으로 세계일주 여행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 들었지?! 내가 듣고 싶은 꿈 이야기가 바로 저거다.”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멸종단계에 이른 우리 사회는 중증의 질환을 앓고 있다. 그것은 아파트와 승용차와 안정적인 공무원 일자리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꿈’으로 집약된다. 그들이 말하는 공무원은 9급이고, 따라서 굳이 대학에 들어오지도 않아도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면 그들과 그들의 부모가 굳이 아들딸을 대학에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일이 이쯤 되면 대학이 특히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 이 땅에 존립할 근거가 무엇인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대학의 강단 역시 허다한 소시민 교수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연구비, 프로젝트, 빈곤한 화제와 얄팍한 지적-정신적 풍토가 대학의 주류문화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대학은 무엇인가?!

2022-01-09

이준석의 연습문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주어진 이준석의 연습문제를 둘러싸고 화제 만발이다.이준석 대표는 5일 SNS를 통해 “선거에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다시 움 틔워 볼 수 있는 것들을, 상식적인 선에서 소위 ‘연습 문제’라고 표현한 제안을 (윤석열 후보 측에) 했고, 그 제안은 방금 거부됐다”면서 “3월 9일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기원하며 무운을 빈다”는 말로 사실상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이 대표가 윤석열 후보에게 제시한 제안은 △지하철역 출근 인사하기 △젠더·게임 특별위원회 구성 △플랫폼 노동 체험 등 세 가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이 대표의 연습문제를 거부했다던 윤 후보가 6일 아침 서울 여의도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향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윤 후보는 ‘출근길 인사가 이 대표의 제안 때문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연습문제 가운데 하나를 풀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권영세 선대본부장 역시 윤 후보의 ‘전격적 결정’이라며, “이준석 대표가 내놓은 ‘숙제’라는 부분에 대해 본인이 고심 끝에 나가서 했다는 건 (갈등 봉합)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준석 대표는 이에 대해 “관심 없다”면서도 윤 후보를 찾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 극적 타결의지를 내비쳤다.문제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었다. 원내수석부대표인 추경호 의원이 ‘이제는 참을 수 없다’며 대표 퇴진 결의안을 제안하면서 찬반토론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당원은 법령 및 당헌·당규, 윤리강령을 위반하거나 당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해당 행위를 한 당 대표 및 선출직 최고위원을 대상으로 소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당원소환제’가 명시돼 있다. 당원소환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전체 책임당원 100분의 20 이상, 각 시·도당별 책임당원 100분의 1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고, 실제 소환은 책임당원 3분의 1이상 투표에 참여해서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확정된다. 대통령선거를 60여일 앞둔 마당에 당 대표와 후보가 의견차이를 보인다고 당 대표를 소환하는 정치일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랬다가는 대선패배는 명약관화다. 결국 당 대표가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 한 법적으로 대표를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당 대표 사퇴론의 목소리는 높았고, 당은 분열되는 분위기였다.윤 후보는 이날 청년보좌역 간담회에서 “이 대표와 함께 가야한다” “패배를 향해가고 있다”는 쓴소리를 메모까지 하며 경청했다. 신년초“저부터 바뀌겠다”고 약속한 윤 후보는 결국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이날 저녁 윤 후보는 이준석 대표의 의총발언 직후 의총장에 들어서서 “모든 게 다 후보인 제 탓이다. 이 대표와 여러분,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대선을 승리로 이끌자”며 이 대표를 끌어안았다. 이 대표의 연습문제가 윤 후보의 문제해결 의지를 보여줬고, 윤 후보는 이를 지렛대로 극적 대타협을 이뤄냈다. 국민의힘이 원팀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길 기대한다.

2022-01-06

위기의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는 사라져가는 이 나라를 위해/ 애써 ‘대한 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그래, 한 국가로써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기만 하다….”독일인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11년 우리나라를 다녀가면서 쓴 글이라 한다. 한일합방으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이듬해이니,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글이다. 일본이 소위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진주만을 기습해서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일본 영토가 되고 우리는 모두 일본인이 되었을 것이다. 베버 신부가 본 것처럼 우리에게는 일제의 손아귀를 벗어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당시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구한말의 백성들은 가난에 찌들어 누추하고 무력한 모습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인에 비해 체구도 크고 성품도 좋아 보였지만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려 몹시 피폐한 생활상이었다는 것이다. 의욕을 가지고 노력을 해봤자 부패하고 악랄한 한 관리들에게 수탈의 빌미를 줄 뿐이니 가난과 체념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다. 여행가 헤세 바르텍은 ‘조선, 1894년 여름’이란 책에서 당시 서울(한양)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거리로 하수가 흘러들어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한양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집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으며, 변소는 직접 거리로 통해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그랬던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선 것은 무엇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6·25 전쟁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난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때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부강한 통일국가가 되었을 텐데 천추의 한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산업화에 매진한 박정희 대통령의 통찰력과 추진력도 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새마을 운동’으로 다잡아 의욕과 희망을 가지게 한 것도 인류역사에 남을 혁신적 혜안이고 쾌거였다.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좌파정권이 보여주었다. 좌파세력들의 집요한 세뇌공작으로 국민 대다수가 무의식중에 좌파성향을 갖게 되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패망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2022-01-06

호랑이 꼬리에 서다

윤영대​​​​​​​수필가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 해에는 동물의 왕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바닷가에서 붉은 태양을 보고 싶었지만 올해도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고 일출명소는 폐쇄되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있다가, 사흘 후 새벽 호미곶으로 차를 몰았다. 포스코 불빛을 보며 영일만의 희끄무레한 여명을 뚫고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섰다. 잠시 후 수평선에 태양이 솟는다. 백여 명쯤 되는 관광객의 환호 속에 ‘상생의 손’은 ‘화합하고 화해하며 서로 도우며 살라’는 의미를 담아 붉은 해를 떠올린다. 나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두 손을 모았다.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행사는 취소됐지만 포항시장은 사자성어 ‘임난용지(臨難勇智)’를 펼쳐 들고 ‘어려운 일에 임할 때 용기와 지혜로 극복하자’는 새해 인사를 전하며 시민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했고, 경북도는 ‘호랑이 기상으로 당당한 경상북도’를 신년 화두로 삼았다. 호미곶, 대보(大甫)는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이라고 했고, 격암 남사고는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보고 백두산은 코, 이곳을 ‘범꼬리’라 하여 호미등(虎尾嶝)이라 했다. 호랑이 꼬리는 바로 힘, 지도력의 표시다.광장으로 올라오면 왼손 모형 앞의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에는 새천년이 시작될 때 변산반도 해넘이, 호미곶 해돋이 그리고 독도와 태평양 피지섬의 햇살로 채화한 ‘영원의 불씨’가 타고 있어 기쁘지만, 새해 첫날 많은 관광객에게 떡국을 끓여주었던 국내 최대 가마솥은 뚜껑이 닫혀있어 아쉽다. 연오랑세오녀가 마주 보며 반기는 조각상을 보고 부부의 정을 생각해보며 새천년기념관 옥상에 오르면 하얗게 빛나는 태양의 난반사가 고운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립등대박물관과 등대역사관, 국내 최대의 호미곶등대를 둘러보노라면 광장과 바다전망대의 돌문어 조각 두 개가 미소를 자아낸다.검은 돌이 파도에 씻기는 바닷가 해파랑길 옆 낮은 해송 숲속에서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를 찾아 시도 읊조려 보고 ‘영일노래비’에서 옛 이름 ‘도기야’와 영일(迎日)의 뜻도 새겨본다. 과메기 말리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대보항을 둘러보고, 고금산 정기 받은 호미곶과 보리향기 그윽한 구만리 벌판을 노래한 호미곶면가를 되새기며 언덕을 넘으면 흑구문학관 뒤쪽으로 넓은 청보리밭이 펼쳐지는데 아직은 파란 새싹들이다. 청어를 갈고리로 끌었다는 ‘까꾸리개’에는 일본 실습선 쾌응환(快鷹丸) 조난비가 있고 그 아래 신비로운 독수리바위가 영일만을 지키려는 듯 고개를 쳐들고 있다.호미곶은 원래 ‘말갈기 같다’고 장기곶(長鬐串)이라 했는데 학창시절에 토끼꼬리라고 배웠고 이제는 호랑이 꼬리다. ‘호랑이 꼬리에 나무를 심자’는 호미수회의 열정이 담긴 호미숲터에서 소맷돌 ‘악어바위’를 내려다보며 호랑이 꼬리 만지듯 지나 본 새해 아침, 청보리 푸른 3월 지나 노란 유채꽃 넘치는 5월도 지나면 청포도 익는 7월엔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려니… 호랑이 기상을 받아 국운의 상승과 국태민안을 이루는 큰 손님을 맞이하고 싶다.

2022-01-06

또 높인 출산장려금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예측 발표한 2025년 국내 합계 출산율 0.52명은 실로 충격적 수치다.세계적으로 0명대의 합계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국가 장래인구 추계에서 0.52명까지 빠르게 급락할 것으로 예측된 통계청의 이날 자료는 놀라움을 넘어 국가적 위기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자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결혼과 출산이 지연되는 추이를 반영한 자료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인구절벽의 속도가 급전직하하고 있음을 뜻하는 내용이다.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합계 출산율 3.1명이다. 이스라엘 여성 한 명이 3명의 자녀를 낳을 때 우리나라 여성은 한 명도 낳지 못한다는 통계다.이스라엘의 출산율이 높은 것은 가족중시 문화와 유대교, 출산장려제도에 전적으로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 중 특이한 것은 체외수정과 수정란 동결보존 등의 생식보조 의료를 의료보험으로 보장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880만명 중 체외수정이 연간 4만 건이 넘는다. 인구대비 체외수정 건수는 세계 최고다. 신생아의 5%가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난다고 한다.우리나라도 소멸위기를 느낀 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출산지원금을 지원하며 출산율 높이기에 전전긍긍하나 효과는 맹탕이다. 감사원이 지난해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관련한 감사에서도 인구가 적은 시군이 지급하는 출산장려금이 해당 시군의 인구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복지부가 올해부터 우리나라 신생아에게 지급하는 출산장려금 등 각종 지원금을 연간 680만원까지 크게 높였다. 돈만 준다고 애를 많이 낳지는 않을 텐데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06

코로나 방역에 지친 경산보건소 인력 충원 절실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보건소 직원들이 지역 내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2월 19일 이후 2년 가까이 방역 일선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경산은 대구시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과 교통 편의성으로 지역 간 왕래가 활발해 인적 접촉 빈도가 매우 높다. 10개 대학과 5개 산업단지 입지 등으로 유동 인구가 많아 감염병 확산 위험률이 높아 코로나19 대응 업무강도 또한 타 지자체에 비해 현저히 높다.경산지역 확진자는(5일 오전 8시 기준) 2천878명으로 경북도 확진자 1만5천733명 중 18.29%를 차지해 경북도내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2020년 2월부터 12월까지 자가격리자는 5천681명이었지만 확진자 급증으로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자가격리자는 1만6천486명으로 지난해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경산시 선별진료소 검사 건수는 총 43만7천229건이고, 확진자가 급증한 최근 12월 검사 건수는 4만7천366여 건으로 하루 평균 1천500여 명을 검사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와 코로나19 확산세에 선별진료소 직원의 고충이 깊어지고 있다.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을 목표로 무증상·경증 확진자의 재택치료를 위해 지난해 11월 재택치료 TF팀이 구성됐다. 40명이 치료 중이며, 87명이 공동격리 중이다.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보건소 직원을 중심으로 의료방역대책본부 14개 팀을 구성했다.확진자 발생 시마다 쏟아지는 민원 전화응대, 확진자 역학조사와 접촉자 파악, 집중 방역 소독, 백신 예방접종, 임시선별검사소 운영 등 지난 2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현재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를 포함,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2, 3개 업무(선별진료, 사례조사, 야간검체 등)를 겸임하고 휴일 없이 밤늦도록 근무하고 있음에도 줄어들지 않는 확진자 숫자에 체력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시는 감염병의 전문적인 대응을 위해 역학조사관 임명, 감염병대응팀 신설, 전국 최초 코로나19 PCR검사 보건소 자체 실시 등 감염병 대응 역량을 높이고자 노력했고, 이를 인정받아 최근 경북도에서 주관하는 ‘코로나19 대응 우수시군 선정 평가’에서 대상을 받았다.하지만 한정적인 인력과 자원으로 코로나19 대응을 2년간 했기에 직원들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이에 지속되는 코로나19 유행과 향후 신종 감염병의 출현에 대비해 보건소 직원 인원 확충과 감염병 전담 조직(과) 신설, 예산 확대 등 감염병에 대응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shs1127@kbmaeil.com

2022-01-05

구미에서는 7급 승진보다 4급 승진이 쉽다?

김락현​​​​​​​​​​​​​​경북부 최근 들어 구미시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발언이 “구미에는 7급 승진보다 4급 승진이 더 쉽다”이다.겉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번 신년 정기인사에서 국장(4급) 승진은 총 4명인데, 국장 승진 요인을 갖춘 대상자가 5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나마 구미시가 승진 요인을 갖춘 5급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정기인사를 오는 13일까지 미뤘기에 5명까지 늘었다. 당초 대상자는 3명에 불과했다.구미시가 승진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7급 승진보다 4급 승진이 더 쉽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현재 대상자들 간의 경쟁이 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구미시의 국장은 보통 5∼8개 과를 통솔하게 되는데 그러한 막중한 자리에 경쟁도 없이 승진요인을 갖추었다는 이유만으로 승진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은 아닐까.더욱 깊이 들어다보면 현재 대상자들이 국장직을 맡기에 능력이나 인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현재 국장 승진 대상자조차 “만약 이번 국장 승진 대상자가 2배수라도 됐다면 현재 대상자들은 나를 포함해 아무도 승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이러한 상황으로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에서도 국장자리를 공석으로 둬야한다는 지적도 있다.경쟁자도 없이 단순히 승진요인, 즉 순번이 됐다는 이유로 국장으로 승진한다면 자칫 공직사회가 일하지 않는 분위기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더이상 국장을 공석으로 두긴 힘들어 보인다. 국장 승진요인을 갖춘 대상자도 있는데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 현직 시장도 출마하기 때문에 국장자리를 비워두기에는 행정공백이 우려된다.결국, 국장에 승진하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부정적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또 구미시는 10여 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지적한 ‘베이비 붐 세대들의 정년 시대’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벌어진 이번 경쟁력 없는 국장 승진인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되긴 위해선 최소 10년은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kimrh@kbmaeil.com

2022-01-05

대통령을 선택하는 프레임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2022년, 임인년(壬寅年)이 밝았다. 육십간지 중 서른아홉 번째로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올봄에는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올해의 흑호(黑虎)가 되기를 바라는 여야의 후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호환마마(虎患媽媽)가 가장 무서웠다. 그런데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호환보다 더 무섭다. 천연두는 박멸됐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변화무쌍하다. 아직도 호환마마가 옛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나라를 안전하고 부강하게 만들어 준다면 유권자들은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팬데믹 여파에도 마스크 쓰고, 비닐장갑 끼고 지난 총선 때 투표했던 국민들이다. 이번에는 정말 잘 뽑아야 한다면서 마음을 다잡지만, 올해 대선은 역대 최악의 대선으로 불리고 있다. 대권을 거머쥔 후보가 구원의 빛을 비춰줄지, 호랑이보다 무섭게 괴롭힐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그래서 투표에 나서는 이들은 저마다 ‘프레임(frame)’이라는 안경을 걸쳤다. 심안의 시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테두리 안에 마음이 갇히기도 한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 달라지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도 바뀐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거철엔 유권자의 무의식을 선점하기 위해서 프레임 전쟁이 벌어진다.대통령을 선택할 때 상당히 효과적인 프레임이 있다. 그것은 ‘최초 타이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단순해 보이지만, 시대정신과 결합하면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최초의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최초의 대기업 CEO 출신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감성적으로 상징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도 한몫했다. 전직 대통령 탄핵 후 집권한 첫 대통령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겹쳐 있다.현재 거대 양당의 두 여야 후보들은 어떤 프레임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일 잘하는 행정가의 면모를 내세운다. 그는 최초의 민선 도지사 출신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적폐 수사를 지휘하며 정권에 맞섰던 결기를 부각시킨다. 그는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두 후보의 최초 타이틀 프레임에 벌써부터 흠집이 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윤석열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에 휘말렸다. 최초 타이틀의 감성 스토리가 퇴색하고 있다.이쯤 되면 새로이 보여줄 프레임도 군색해진다. 앞으로 네거티브 공방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처뿐인 영광으로 최초 타이틀을 달성할 것이다. 대권을 잡은 승자는 최초 타이틀에 깃든 시대정신은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투표자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도 아니면 최악을 피하자는 심리가 있다.선택이 어려울 때는 또 다른 프레임을 찾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다는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을 내려놓고 “누구?”가 아닌, “왜?”의 프레임으로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져볼 때이다.

2022-01-05

달빛조각 춤사위

양태순수필가 겨울 밤하늘은 시푸르다. 파랑물을 잔뜩 머금은 무명처럼 시린 차가움으로 깊이를 더한다.툭 건드리면 물방울이 아니라 은가루가 좌르르 쏟아질 것만 같다. 피터 팬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가는 웬디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자꾸 하늘을 더듬는다. 그럴 때면 내 머리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말랑말랑 파랗게 살아난다.달이 나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친구 선이집을 찾아가는 길이나 배꼽마당에 숨바꼭질 할 때, 뒷간에 볼일 보러 갈 때면 나를 따라왔다. 떡하니 나서서 내가 너를 지켜준다는 자랑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은근하게 동무해준다. 든든하게 지켜주니 밤마실이 무섭지 않아 자주 친구집을 찾고는 하였다.섣달 보름날 달빛의 촉감은 벨벳 같았다. 절기상 엄청 추울 때인데 구름의 두께가 두꺼워진 푸근함이 있었다. 둥두렷이 떠오른 달의 주위에 오리온자리, 황소자리를 비롯한 별자리가 선명했다. 마치 땅으로 내려올 것처럼 가까웠다. 손을 뻗으면 공기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그 달빛이 가장 장관을 이룬 곳은 장독대였다. 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다다른 달빛은 교교했다. 둘레를 감싼 보송한 빛에 의해 검은 항아리는 은가루가 묻은 듯 은빛이 돌았다. 어머니께서 떠놓은 정화수에 별들이 내려왔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바람조차 살곰 지나다녔다. 그 무엇도 깨뜨릴 수 없는 신성함이 깃든 장소였다.나는 거미줄에 낚일 곤충을 기다리는 거미처럼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너무 신비스러워 숨이 막혔던 풍경은 감동이었다. 그후 고요하다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그밤의 장면이 재생되고 재생된다.그날부터 달은 그저 달이 아니었다. 뭔가 내가 모르는 비밀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아득히 먼 조상들부터 정화수를 떠 놓고 기원하던 의식이 단순히 무속적인 행위만은 아닐 거라고. 과학의 진실과는 별개로 작용했다. 성년이 되어 하늘 보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달빛이 창으로 스미는 날이면 두근거리며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밤 이후로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며칠 전 바닷가를 걷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한 곳에서 은빛 군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밤바다는 검게 누워서 가는 코골이를 하듯 가릉거리는데 등대 주위에서 날비늘 같은 것이 파닥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물결에 음표를 걸어두고 엷은 날개를 파르르 흔드는 빛무리였다. 넋을 놓고 보았다. 심장 소리가 들릴까 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조각조각 나뉘어 희게 반짝이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에는 분명 달이 있었다.수십 년이 지난 섣달 보름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밤이 고요의 대명사라면 이밤은 바다에 생을 펼친 이들에게 축원을 바라는 신성한 춤사위였다. 욕심을 닦아낸 각자의 원을 조각에 담아 하늘로 올리는 숭고한 기원제 같았다.긴 세월 달은 하늘에 있었다. 믿지 못할 전설이 이어져 왔고 별자리에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도 전해 왔다. 그 모두가 이야기로만 끝난다면 우리의 가슴에는 물기가 마르고 심장은 딱딱해지지 않을까.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세계와 과학이 풀지 못하는 상상의 공간이 있으므로 인간은 보다 겸손해지리라 생각해본다.나는 두 번의 신비한 경험을 했다. 이제 달하면 달나라에 가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신성한 무엇으로 기억되는 달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무엇을 담아 달을 보는지에 따라 그 형태는 무수히 변할 것이다. 때로는 신령함이나 엄마를 대신할 포근함이 될 것이나 더러는 무시무시한 심판관으로 다가올 것이다.가슴에 새겨본다. 달이 조각으로 나뉘어 쏟아져도 빛의 형태가 변하지 않듯 마음이 조각으로 나뉘어 여럿에게 가더라도 마음은 줄어들지 않고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내게는 아직 감염되지 않은 싱싱한 마음이 있다. 아까워하지 말고 두루두루 나눠줘야겠다.

2022-01-05

① 임인년(壬寅年), 희망과 생동의 바다

바다가 좋아 십수 년 째 바닷가 근처를 헤매며 살고 있다. 선박검사 기관에서 일하며 바다에 매료됐다. 국제학 전공 때에도 바다의 광활함에 이끌렸다. 망망대해의 신비를 여러분과 함께 바라보고자 한다. ‘정현미의 바다이야기’는 격주 목요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로 불리는 임인년은 희망과 생동의 기운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일상을 회복하는 길목에서 만난 임인년의 물상(物象)은 그래서 더욱 반가운 지도 모른다. ‘위드 코로나’를 향해 나아갔지만 결국 미완의 자리에서 멈춰야했던 신축년(申丑年). 잃었던 기회를 되찾고,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길 바라본다.명리학에서 임인년(壬寅年)은 지혜와 성장을 표상한다. 천간인 임(壬)은 오행상 수(水)에 배속되어 차가운 겨울바다이자 응축된 생명력, 지혜 등을 내포한다. 지지인 인(寅)은 오행 중 목(木), 그 중에 양의 기운을 가진 인목(寅木)으로 성장과 동력을 의미한다. 결국 임인년(壬寅年)은 태초의 공간에서 탄생한 생명력과 그 존재의 성장을 함축하고 있다. 어둡고 차가운, 미지의 바다에서 태동하는 생명력을 그려낸 임인년의 물상(物象)은 코로나 일상에 갇힌 우리에게도 깊은 혜안을 던져준다.생명을 잉태한 바다는 암흑의 이미지다. ‘자원의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라 불리는 지금의 바다와는 사뭇 다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인된 바다는 절망에 가깝다. 조업 나가는 어민들의 뒷모습은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양망기에 잘린 손가락으로 무심히 그물망을 정리하던 노쇠한 어르신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풍어와 만선의 포부는 그저 젊은 한 때의 추억일 뿐, 뱃일은 그저 숙명으로만 존재한다.어촌마을은 늘 조마조마하다. 평생 해 온 뱃일에 인이 박혔지만, 낡은 어선과 조악한 어로 장비는 제 기능을 못할 때가 많다. 매년 100명 안팎의 어민들이 조업 나가 돌아오지 못한다. 부상과 실종까지 합치면 500명이 넘는다. 열악한 조업 환경은 생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20년 전 25만 명에 이르던 어가 인구도 지난해 9만 7천명으로 줄었다. 만 65세 이상 인구는 이미 전체의 44%를 넘어섰다. 어촌마을의 내일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기후 변화는 또 다른 형태로 어촌마을을 위협한다. 기상 예측은 어민들의 안위와 직결된다. 자원 고갈은 어민들을 먼 바다로 내몰고, 심해는 더 거친 야성을 드러낸다. 기상이변까지 겹치면, 결국 해양사고로 안부가 전해진다. 매년 증가하는 해양사고 발생률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그럼에도 우리는 바다에서 희망을 품는다. 제철 수산물로 일상의 원기를 돋우고, 문학작품에서 긍정을 긷는다.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바다는 막강하다. 주인공은 항전을 불사하며 바다를 넘어서거나 응축의 기운으로 받아들인다. 결말은 한결같다. 결국 일어서고 나아간다. 신화와 역사도 마찬가지다. 기록의 범주에서 만나는 바다는 존재의 변이를 돕는다. 주체는 확장하고 성장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전 세계 청소년의 필독도서인 이유다.어촌마을의 바다는 전변의 시기를 겪는 중이다. 연근해 어업은 양식업과 수산가공업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수산 강국들은 이미 진행 중이고, 우리는 짧고 굵게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고령의 어민을 위협했던 영세하고 열악한 어업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정현미작가 일상의 바다는 지역의 전통과 음식 문화를 주도하며 살아 숨 쉰다. 각기 다른 제철 수산물은 마을 전통음식으로 전승되고 동시에 낚시꾼과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어촌마을의 명맥은 방문객들로 이어져 변형, 계승된다. 코로나 이전인 2017년, 연안 여객선 이용객은 1천600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의 기록이다. 섬을 오가며 만나는 바다에서 위로받고 기운을 얻는다.올해로 코로나 팬데믹 3년째를 맞는다. 존재는 희미해지고 관계는 단절됐다. 생동하는 기운이 낯설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한다. 팬데믹은 엔데믹으로 바뀌고, 곧 평범한 일상이 찾아올 것이다. 미지의 바다가 생동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듯이, 우리 앞에 놓인 칠흑 같은 현실도 곧 북적거리는 일상으로 변할 것이다.그러니 오늘의 일상을 당당히 마주해보자. 나아가는 용기는 크게 발복하는 기운으로 다가올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소중한 오늘이 곧 도래하길 기원해본다.※정현미 작가 프로필-前 매일신문사 취재기자(46기)-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국제학 석사(국제물류 및 항만 전공)-前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대외협력실 홍보작가

2022-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