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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봄갈이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날마다 산책을 하는 들판이 말끔히 봄단장을 했다. 겨우내 굳어있던 논바닥을 갈아놓은 것이다. 쟁기로 논을 갈던 시절에는 이른 봄이면 여기저기 소모는 소리가 온종일 들판을 울렸는데, 요새는 트랙터가 참 쉽게도 갈아엎는다. 논을 갈아 놓으면 공기에 노출된 속흙에 미생물의 번식이 왕성해져서 지력이 좋아진다. 식량이 모자라 이모작으로 논에도 보리를 심었던 지난날엔 모내기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보리를 베어내고 논갈이를 했지만, 지금은 미리 논을 갈아 놓은 채로 봄철 내내 바람과 햇볕을 쐬고 눈비를 맞게 한다.논밭은 한 해만 묵혀 두어도 온갖 잡초가 길길이 자라서 묵정밭이 되고 만다. 쑥대와 억새와 망초 같은 거친 풀들을 베어내고 쟁기로 깊숙이 갈아엎어야 다시 옥토가 된다. 물론 농사를 짓는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논밭은 수시로 돌보지 않으면 금방 잡풀이 우거진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농작물을 잘 키우려면 물을 대고 거름을 주는 것보다 풀과의 전쟁이 더 큰일이라는 것을. 요즘은 아예 잡풀이 나오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해서 김매는 일손을 대신한다.사람의 마음 밭도 수시로 갈지 않으면 황폐해진다. 편견이나 고정관념, 맹신 따위로 굳어진 마음 밭에 탐욕과 거짓, 적개심 같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묵밭이 된다. 심지어는 그렇게 무성한 잡초를 오히려 풍성한 농작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은 것 같다. 재물이나 권력, 명예 따위의 열매는 바로 그런 잡초들에 열린다는 믿음이다. 저 혼자 그렇게 살다 죽겠다는 걸 말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곧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 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마음이 황폐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란 삭막하고 패역한 황무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봄맞이를 위해서 논갈이를 하듯이 사람들 마음 밭도 봄갈이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오래 돌보지 않아서 묵정밭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늘 무엇에 쫓기듯 사느라 차분히 자기성찰을 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일이 많아서 바쁜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왠지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거북하고 싫어서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든 오래 살피지 않고 묵혀둔 마음 밭은 굳어지고 잡초가 우거지게 마련이다. 우거진 잡초를 제거하고 갈아엎기 위해선 위해서는 낫과 쟁기가 필요하다. 철저한 자기성찰로 낫을 벼리고 종교의 경전이나 성인들의 금언으로 마음을 가는 보습을 삼아도 좋을 것이다. 좋은 책이나 강의를 통한 공부나 돈독한 신앙생활, 명상수련 등이 낫과 쟁기가 될 수도 있을 터이고.나라 역시 갈지 않으면 온갖 비리와 부정이 우거진 묵정밭이 된다. 도무지 자기성찰이라곤 없는 후안무치, 적반하장, 내로남불로 철갑을 두른 자들이 정권을 잡고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는 반드시 갈아엎어야 하는 이유다.

2021-03-11

교육 지우기 3 - 교사 멋대로 규정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학교가 해결해 줄 것 같아!”말에는 어조가 있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하는 말에는 아이들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였지만, “같아”라는 말 안에는 체념과 불신, 그리고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 학생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학교는 이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생산하는 곳이 되었다.학교가 죽은 지는 오래전이다. 물론 필자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학교의 모습을 보면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지는 못할 것이다.“아침부터 운동장 7바퀴 돌았어. 하라니까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가만히 듣던 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라면을 건져 올리던 젓가락을 내리고 이유를 물었다.“교복 위에 후드티 입어서. 근데 이해할 수 없는 건 지퍼가 있는 후드티는 괜찮다는 거야.”그날은 분명 추웠다. 뉴스는 연일 이상 한파에 따른 사건 사고 소식을 보도하였다. 굳이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한용품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의 모습에서 추위의 강도를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옷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학생을 보았다. 그 학생은 추울 정도로 너무도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벌을 받았다니, 필자가 더 화가 났다.“화장 규정 등 다른 규정은 그래도 이해하겠어. 그런데 복장 규정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그래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방법을 찾아 주시지 않을까? 날씨가 정말 춥잖아!”어떤 답을 할지 필자는 귀를 최대한 열고 기다렸다. 학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학교가 해결해 줄 것 같아!”학생의 말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화가 가득 묻어 있을 법도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모든 것을 단념했을 때, 기대감이라고는 전혀 없을 때 나오는 어조였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은 괜한 것에 시간을 빼앗겼다는 듯 빠르게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학원 시간에 늦었다며 자신들의 자리를 치우고 편의점 점원에게 인사를 하고는 학원을 향해 뛰어갔다.학생들이 떠난 자리에는 강추위보다 더 매서운 학교에 대한 불신만 가득했다. 추운 날씨에 운동장을 도는 학생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곳이 학교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래놓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두루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니, 대한민국 교사들이시여, 이 어찌 부끄럽지 아니한가!여러 이유에서 규정은 필요하다. 그런데 법을 자기들 편한 대로 주무르는 정부나 거기에 속한 일부 인권 단체가 말하는 모든 학생이 만족 하는 규정은 없다. 분명한 건 최소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규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월, 강추위에 후드티를 입었다고 운동장을 도는 학생이 더는 없도록 학생 학대 수준의 교사 멋대로 해석하는 규정은 없는지 점검하자!

2021-03-10

미얀마의 후진적인 군부 쿠데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1960년대를 전후하여 신생 독립국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빈발했다. 1952년 이집트 자유 장교단 소속 나세르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는 쿠데타의 모델이 되었다. 그 후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의 군부 쿠데타는 유행처럼 번져 갔다.우리나라에서도 4·19혁명 이후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16에 이은 전두환의 12·12 쿠데타가 있었다. 쿠데타(coupd’Etat)는 군부가 물리력으로 정상적인 정권을 전복 탈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쿠데타나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부패 청산, 정치혁명이라는 명분을 앞세운다.미얀마 쿠데타의 참극은 우리의 두 차례 쿠데타를 회상케 한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의원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갖고 정권을 전복하였다. 미얀마 독립영웅의 딸 아웅산 수지는 감금되었고 관련자 1천700여명이 구금되었다. 5·16 쿠데타 세력이 민주당 정부의 장면 총리를 연금하고 수많은 정치인들을 구금한 사실과 대동소이하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민간 정권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약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5·16 쿠데타 세력이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양심세력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공약과 거의 같다.미얀마 군경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청년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하고 있다. 미얀마의 평화적인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일부 공무원과 교사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승려 200여명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일요일 38명의 시위자들이 거리에서 조준 총탄에 희생되었다. 19세 소녀 치알 신은 ‘다 잘 될 거야’라는 조끼를 입은 채 사살 되었다. 그녀는 미얀마 민중 항쟁의 상징이 되고 있다. 쿠데타의 부당성을 폭로한 UN 미얀마 대사는 군부정권에 의해 전격 해임됐다.미얀마 쿠데타 정권은 스스로 탈취한 권력을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손가락 세 개를 편 시민들의 극한적인 반대시위는 계속될 전망이 우세하다. 이러한 대치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얀마의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희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극한적인 대치 상황에서 ‘국민 대학살’을 자행할 지도 모른다. 곧 계엄령이 선포되고 수많은 시위자가 체포 구금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쿠데타가 미얀마에서 재발한 것은 그들의 정치적 후진성을 노출한 것이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 될 수 없지만 이를 저지할 처방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미얀마의 민주화 세력은 국제적인 연대와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 암울했던 시절 국제 앰네스티에 지원을 호소한 것과 같다. 그러나 유엔도 미국도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은 꺼리고 있다. 불행히도 인접 중국은 미얀마 군부의 정치 개입을 묵인하고 오히려 지지하는 입장이다. 미얀마 무역의 40%, 투자의 38%를 중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도 과거 미국의 국익에 반하지 않으면 후진국의 쿠데타를 승인한 전력이 있다. 미얀마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유엔 인권 위원회는 미얀마의 인명피해를 막는 긴급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후진국의 민주주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성공할 방도는 없을까.

2021-03-10

바보 아버지

장규열한동대 교수탐관오리(貪官汚吏). 탐욕스러운 관리와 더러운 벼슬아치. 옛날이야기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만 멍이 드는 느낌이 아닌가. 국민이 모아준 세금으로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터에, 일터에서 얻은 정보를 가로채 자신들만 배를 불렸다. 국민을 대신해서 일하라 했더니, 국민을 속이면서 얼마나 고소했을까. 도둑이 들끓는다 듣기는 했지만, 이처럼 당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게 만약 공직사회에 만연한 평균적 조류라면, 국민은 누굴 믿고 일상을 이어갈 것인가. 나라의 내일은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다음세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선진국이 된다한들 무너질 질서를 어찌할 것인가.70년대와 80년대를 가로지르며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이어질 무렵에 기초조사와 기본설계의 맨 앞에서 일했던 토목기술자가 있었다. 필자의 선친이었던 그는 사업가였던 선대의 핏줄을 따라, 나라의 동맥을 연결하는 일이 부동산에 미칠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장차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주변의 땅값은 폭등할 것이며 한 덩어리라도 구입하면 큰 이득이 생길 것도 알고 있었다. 공직자로서 그는 그리 하지 않았다. 손수 설계하고 모든 정황을 다 꿰뚫고 있었지만, 아내에게마저 한 톨도 발설하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을 가를 대역사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모친은 지금도 당시 일을 회상하며 안타깝다 하신다. 한 자락만 알려줬어도 아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을 터인데.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의 어깨에 걸렸던 성실함과 정직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아들은 직장생활 몇 년 만에 모은 돈만 가지고 떠난 유학길에서 동네 신문도 배달했었다.아버지는 바보였을까. 나라가 맡겨준 일을 통해 획득한 정보가 본인에게는 나름 기특할 것이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하게 된 정보를 사사로이 유용하면 챙길 이득이 분명히 있다. 거대한 부와 걱정없는 내일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여, 어지러워질 세상과 복잡해질 속내는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싫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신의와 성실을 지키며 밤낮을 뛰는 공직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 덕에 나라가 굴러가고 사회가 평안하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당신같은 관리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이만큼 자라왔다는 믿음이 있다. 바보같이 욕심없이 섬겨온 덕에 나라의 길들이 무사히 이어졌을 터이다.‘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시인 윤동주가 적어내린 심정에 우리는 어떻게 답하여야 하는가. 공직을 사익에 이용한 당신은 그래도 잘못이 없다고 우길 참인가. 공직사회의 청렴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특단의 결단을 하여야 한다. 다음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하여 사회가 맑아져야 한다. 그의 삶이 일을 잘하기 위한 욕심으로 가득했었지만, 어느 한 자락도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던 ‘바보 아버지’가 오늘 새삼 그립다.

2021-03-10

규제의 역설

‘규제의 역설’은 좋은 의도로 특정행위를 규제한 정책이 정반대의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가리킨다.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영국의 비닐봉투 절감정책이다. 정부는 비닐봉투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게 ‘생명을 위한 가방’을 만들고, 가방에는 ‘비닐이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0년, 한 번 쓰고 버리지 마세요. 환경오염을 막는 방법’이란 문구를 썼다. 결과는 의도와 달랐다. 비닐쓰레기의 양은 매년 증가했다. ‘가방’을 만드는 데 비닐이 3배나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자는 ‘가방’을 습관처럼 한 번만 사용했다.성매매 금지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성매매를 금지했지만 아무리 강력히 금지해도 성매매는 음지에서 확대됐다. 한국에서도 성매매를 강력범죄로 단속, 성매매를 대표했던 집창촌은 없어졌지만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변종 성매매 업소들이 대폭 증가했다. 다만 최근 통신 시장에서 벌어진 ‘규제의 역설’은 뜻밖의 결과다.지난해 12월 30년간 통신 요금시장을 지배했던 요금인가제가 폐지되자 SK텔레콤이 기존보다 30% 싼 온라인 전용 요금제를 깜짝 발표했고, 잇따라 LG유플러스와 KT까지 비슷하거나 더 싼 요금제를 내놔 요금 인하경쟁이 벌어졌다.어떤 사회의 규제와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규제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 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빈부격차 감소에 실패한 부유세, 실업자를 늘린 비정규직 보호법, 전통시장 매출을 감소하게 만든 대형마트 의무휴업, 도박 중독을 심화시키는 카지노 입장 제한조치 등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규제의 역설이다. 선한 의도보다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10

당신의 작은 두 손을 내밀어 보세요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빅토리아(1819∼1901)는 영국의 여왕으로서 가장 오랜 기간인 64년 동안 재위하였고 그 기간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의 최고 전성기이었다. 여왕은 1877년에는 영국의 군주 중 최초로 인도 황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을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였으며 1861년 남편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두문불출하기도 하였다. 남편과의 사이에 4남 5녀를 두었으며 대부분 자녀가 유럽의 주요 왕족과 결혼하여 말년에는 유럽의 할머니로 불렸다.빅토리아 여왕은 입헌 군주로서 현실 정치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였으나 그녀의 정절과 화목한 가정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주의의 상징이 되었으며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군주들 가운데 하나였다.여왕은 어느 평범한 농부의 아내가 아기를 잃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여왕은 남편을 잃은 깊은 슬픔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농부의 아내가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여왕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서 그리 멀지 않은 농부의 아내를 찾아갔다.불시에 찾아온 여왕 때문에 농부의 아내는 무척이나 당황하고 놀랐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대하는 여왕의 태도에 마음이 놓여 곧 평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여왕은 얼마 동안 농부의 아내와 함께 머물다가 왕궁으로 돌아갔다. 여왕이 떠나고 나자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서 농부의 아내에게 물었다.“여왕님이 무슨 말씀을 하던가요?” 그러자 농부의 아내가 말했다. “여왕님은 내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저 내 손을 끌어다 두 손으로 잡아 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서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빅토리아 여왕이 농부의 아내에게 한 것이라고는 두 손을 잡아 준 것뿐이었지만 그 농부의 아내는 빅토리아 여왕의 그 따뜻한 마음을 평생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여왕이 농부의 아내 마음을 헤아려 준 따뜻한 마음이 농부의 아내에게는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감동들이 모여 빅토리아 여왕은 가장 훌륭한 영국의 여왕으로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두 손을 잡아 준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감동이라 할 것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봄이 왔다. 우리 곁에 상처 입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시기 바란다. 누군가 다가와 우리들의 따뜻한 작은 두 손을 기다리는 이웃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따스한 손을 내밀어 보자. 그곳에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다.

2021-03-10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 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햇빛촌이 부른 ‘유리창엔 비’ 노랫말이다. 창밖엔 비가 내리면 메마른 마음도 이런저런 상념에 촉촉이 젖는다. 그것은 그리움이기도 하다가 외로움이기도 하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서러움이기도 하다. 그 눈물은 눈가에 이슬처럼 방울 맺히고 보슬비처럼 보슬보슬 젖고 장대비처럼 주르르 흘러내리기도 한다.·가랑비-가늘게 내리는 비. 이슬비보다 더 굵다.·개부심-장마로 홍수가 난 후에 한동안 멎었다가 다시 내려, 진흙을 씻어내는 비.·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도둑비-밤에 몰래 살짝 내린 비.·먼지잼-먼지가 일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 내리는 비.·발비-빗발이 발처럼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보슬비-바람이 없을 때 작은 알갱이로 보슬보슬 내리는 비.·부슬비-보슬비 알갱이보다 조금 굵은 비.·산돌림-이 산 저 골짜기로 돌아다니면서 한 줄기씩 내리는 소나기.·싸락비-싸래기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비.·실비-실처럼 가늘게, 길게 금을 그으며 내리는 비.·소낙비-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이내 그치는 비(소나기).·색시비-수줍은 새색시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비.·안개비-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비.·여우비-맑은 날에 잠깐 뿌리는 비.·웃비-좍좍 내리다가 잠시 그쳤으나 다시 내리는 비.·이슬비-는개보다 굵고 가랑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작달비-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자드락비-굵고 거칠게 내리는 비.·장대비-빗줄기가 굵은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진눈깨비-눈도 비도 아닌, 눈과 비가 뒤섞인 비.·채찍비-채찍으로 후려치듯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비는 때에 따라 나름의 이름이 있다. 음력 보름 무렵에 내리는 비는 보름치며 음력 그믐께 내리는 비는 그믐치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에 내리는 비는 칠석물이며 양이 모종하기에 알맞도록 내리는 비는 모종비이다. 모내기할 무렵에 한목 오는 비는 목비며 뜨거운 복날 전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복비다. 농사를 짓도록 적합하게 내리는 비는 꿀비며 필요할 때를 맞추어 알맞게 내리는 비는 단비요, 약처럼 요긴할 때 내리는 비는 약비다.그런가 하면 어떠한 행위를 부르는 비도 있다. 할 일 많은 봄에 내리는 비는 일을 부르므로 일비라고 한다. 바쁜 일이 없는 여름에는 비가 오면 낮잠을 자기 좋으므로 잠비라고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비가 오면 떡을 해 먹으면서 여유 있게 쉰다고 떡비라고 한다. 농한기인 겨울에 내리는 비는 술 마시며 놀기 좋다고 술비라고 부른다. 비의 이름에 삶의 정취가 고스란히 녹아있지 않은가.우리네 조상은 일상을 비에 맞추었다. 잔비, 흙비, 해비, 가루비, 누리비, 봄장마, 장맛비, 달구비, 궂은비, 마른비, 비보라, 바람비, 우레비, 가을비, 겨울비, 건들장마, 억수장마, 모다깃비, 무더기비, 비에 따라 일을 하거나 집에서 쉬었다.농경문화에서 비는 곧 하늘의 말씀이었다. 천둥, 번개와 함께 비를 퍼부으면 하늘이 노했다고 믿었고 오래도록 하늘이 외면한다고 여겼다. 가뭄을 끝내는 비에 웃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울었다. 다 마른 빨래를 적시는 소낙비를 원망하고 더위를 식히는 소나기에 고마워했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존재인 비, 그래서 정선아리랑에는 목놓아 울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우리네 가요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새벽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안개비가 소리 없이 마음을 적신다. 그대는 봄비를 무척 좋아하는지 다정하게 묻고 이 빗속을 둘이서 말 없이 걸어보자고 청한다. 비라도 내리면 금방 울어 버리겠네 라고 울먹이고 가랑비야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려달라고 읍소한다. 이별 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찬비야 내려라 밤을 새워 내려라고 절창한다.요즘은 비에 대한 서정이 옛날 같지 않다. 비가 삶을 좌우하는 시절이 아니므로 일상에서 비에 울고 웃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선지 무엇에 젖는 문화보다 무엇을 즐기는 문화가 성행한다. TV는 먹고 놀고 즐기고 춤추는 예능 프로그램이 점령한 지 오래다. 생각하고 사색하는 프로그램이 몇 있지만, 그 분량이 적어 안타깝기도 하다.어느새 버들가지에 연둣빛 봄물이 파릇하다. 봄비 내리면 우산을 들고 들녘에 나가봄직도 하다. 차박차박 빗방울이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고, 발끝으로 고인 물 찰박찰박 차며 걸어도 보고, 그렇게 젖다 보면 무엇에 젖는다는 것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터이니./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3-10

때로는 기적이

배문경수필가겨울 끄트머리에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번쩍하며 벼락이 떨어졌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세 마리의 개와 산책하던 남자가 벼락을 맞고 의식을 잃는 모습을 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소방관이 심폐소생술로 그를 살렸다는 기사와 현장상황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졸지에 벼락을 맞은 남자는 몇 달째 치료중이라니, 지독스럽게 운이 나빴지만 그 와중에도 목숨을 건졌으니 천운은 아니었을까.사람이 길을 가다 벼락을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57만6천분의 1이다. 그리고 그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은 223만분의 1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 벼락을 맞았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 두 사람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처음 바닷가로 떠난 MT에서 금속벨트를 착용한 친구가 벼락을 맞으면서 그 옆에 있다 변을 당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에 그대로 쿵하고 뒤로 넘어졌다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다른 한 명은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플라스틱 우산 꼭지가 벗겨지며 피뢰침이 되어버린 우산대로 전류가 흐른 모양이었다. 그때 평생들을 수 없을 만한 굉음으로 인해 한동안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플라스틱 손잡이였기에 전류가 몸으로 통과되지는 않았다. 역시 살 사람은 사는 모양이다.벼락을 맞는 것도 드물지만 벼락을 맞고 산 사람도 흔하지 않으리라. 그럼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얼마일까? 무려 814만5천60분의 1이다. 이것은 하루 동안 벼락을 세 번 맞은 사람이 다시 차에 치이고 뱀에 물리고도 죽지 않을 확률이다. 더욱이 로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당첨될 확률은 1억7천522만3천510분의 1이다. 이 기막힌 숫자계산을 한 사람이 도리어 놀랍기도 하다.국내에서 발행한 최초의 복권은 1947년에 다음해 있을 런던 올림픽 참가비용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때 액면가는 백 원이었고 일등 당첨금은 백만 원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경비 팔만 달러로 선수단은 런던으로 떠날 수 있었다. 사소한 듯 낸 돈은 큰 목적에 사용되고, 다수가 낸 돈을 소수의 사람에게 행운으로 몰아주는 방식이다. 요행히 나도 5만 원에 당첨된 적이 있었다. 흥분되었던 나의 기억도 총 구입비용을 계산한다면 빙산의 일각이었다.복권에 인쇄된 것은 아니지만 당첨만 된다면 자신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상사 눈치 안보고 작은 봉급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표를 쓰리라. 날마다 치솟아 오르는 아파트에 나도 몸을 실어보리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인심을 내리라. 가난한 이웃을 도우리라. 무엇 무엇에 대한 수많은 기대와 포부가 복권 안에 담겨있다. 숫자 여섯 개를 맞추다 실망하여 ‘오늘도 안 되는구나’라는 한숨을 내쉬며 한두 개 일치하는 숫자나 세 개 정도 맞아 본전을 건지면 아쉬운 마음을 정리한다.그렇지만 오늘이 주는 힘듦을 잠시잠깐 상상력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힘이 하늘과 맞닿으면 일등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선택은 로또 자신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숫자의 배열 그 신비한 힘이야 말로 번개에 몇 번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기적이다. 때론 광고를 보며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복권(福券)이 복권(福權)이 되길 바란다.그러고 보면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과 복권 일등에 당첨된 사람은 행운을 거머쥔 사람이다. 어쩌면 유년에 연탄가스에 취해 죽다가 살아난 나의 삶도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한 인간으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것이 진정 기적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승리자다. 지금 이 순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운이리라.연탄가스로 죽다 살아난 자의 운과 이십년 운전하며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행운에 산을 그렇게 올라도 뱀에 물리지 않고 내려온 운을 보태 이번 주말에도 복권을 샀다.문을 열자 천둥번개는 사라지고 새소리가 초록을 잉태한 봄을 깨우고 있다. 오늘도 기적의 하루를 열어젖힌다.

2021-03-10

민주주의의 후퇴

미국에 본부를 둔 프리덤 하우스(Freedom Hause)는 전 세계의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시장 및 국제언론 감시활동을 하는 비영리 인권단체다. 1941년에 세워져 1950-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70년대는 베트남 난민을 지원하고, 1980년대는 폴란드와 필리핀의 민주화를 지원한 단체다. 또 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 증진에 공헌 인사들을 찾아내 매년 프리덤 어워드를 수여하고 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이 상을 받았다.프리덤 하우스는 매년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자유 정도를 조사해 수치로 발표하는데 올해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83점을 받아 우수한 자유국가에 포함됐다. 북한은 100점 만점에 3점을 받아 지난해에 이어 꼴찌다. 공정한 선거와 자유로운 언론 활동 등이 자유를 평가하는 주요 척도다.특히 코로나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코로나가 창궐했던 지난해는 많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일부 민간단체에서도 이 같은 우려를 제기했으나 프리덤 하우스가 이번에 똑같은 평가를 낸 것이다.프리덤 하우스는 조사 대상 205개 국가 중 36개국이 코로나와 관련해 민주주의가 후퇴한 나라라고 했다. 대표적 국가로 인도와 필리핀, 헝가리, 터키 등을 손꼽았다.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를 핑계로 정치 권력의 강압적 통치가 알게 모르게 물들고 있다. 이동제한과 같은 아주 손쉬운 조치가 곧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사례다. 우리 주변에서도 코로나를 이유로 이와 유사한 개인의 기본권이 침탈당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코로나의 위세가 놀랍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09

어머, 어메이징, 어머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산이 저문다 / 노을이 잠긴다 /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주인 잃은 은수저로 그려내 주고 있는 김광균의 시 ‘은수저’의 첫 연이다. 옛 어른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다. 시인은 아들의 부재에 목놓아 울 수 없기에 그 끝모를 슬픔을 은수저에 눈물을 고이게 하는 것으로만 그려내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나는 두 분의 아버님을 보내면서 하늘이 두 번 무너졌다. 그러나 두 분 아버님께서 이 땅에서의 오랜 투병을 끝내고 하늘에서 평안히 쉬실 것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자식의 죽음은 또 다를 것 같다. 천붕보다 덜 알려진 ‘참척’(慘慽)이라는 말이 있다.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은 일을 이르는 말이다. 먼저 오면 먼저 가는 것이 순리라 하지만, 어디 삶이 순리대로만 흘러가던가. 죽음의 순서 또한 나이순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연세 드신 분들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참척은 아무래도 우리 귀에 익숙치 않을 것이다. 사고나 병이 아니면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가는 일은 좀체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식의 죽음은 변고(變故)다. 참혹한(慘) 일이고 설령 참혹하기까지는 않을지라도 근심스러운(慽) 일이다. 자식 잃은 침혹한 변고에 김광균 시인처럼 담담히 은수저에 눈물을 담아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부모 마음이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니의 심정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열 달 동안 자식을 자신의 몸 안에 품고 사랑과 영양분을 주며 함께 있다가 이백 여개의 뼈마디가 다 벌어지고 무른다는 출산의 고통을 겪고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이다.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다 해도 어머니의 고통과 수고는 자연분만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인가.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가 ‘어머!’라는 감탄사로 반응하고 ‘어메이징’(amazing) 하며 놀란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렇기에 자식 또한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 게다. 나도 아버지이지만 자식으로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세상에 나온 아이가 가장 처음 배우고 하는 말이 ‘엄마’라고 한다. 이건 세계 공통 현상이다. 어머니는 엄마이자 밥이다. 엄마와 맘마는 같은 말이다. ‘ㅁ, ㅂ, ㅃ’과 같은 입술소리를 가장 먼저 낸다는 유아의 언어 발달 단계에 관한 언어학의 지식에 기댈 것도 없이 이는 상식에 가깝다.그런데,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양부모뿐 아니라 친부모의 자녀 학대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귀를 울린다. 세상이 변해도 어머니는 그대로이고 모성(母性)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어머니를 향한 밝은 놀람의 ‘어메이징’, 긍정적 감탄의 ‘어머!’가 다시 우리들 입에서 많이 퍼져나가기를 소망한다.

2021-03-09

‘낄끼빠빠’

김락현 경북부TV 예능프로그램에서 종종 사용되던 ‘낄끼빠빠’라는 말이 최근에는 사회 전반에서 쓰이는 것 같다. ‘낄끼빠빠’라는 말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줄여 이르는 말로, 모임이나 대화 따위에 눈치껏 끼어들거나 빠지라는 뜻이다.최근 구미시의 노조들의 행태를 보면서 ‘낄끼빠빠’라는 말을 자주 떠올렸다. 우선, 낄 때 끼지 못하면서 노조원인 구미시 공무원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 구미시공무원노조가 그렇다. 구미시공무원노조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노조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구미시의원들이 공무원들을 상대로 수차례 갑질을 일삼았음에도 항상 침묵으로 일관해왔고, A 시의원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공무원을 고발해도 모른 척 외면했다.고작 한다는 게 해당 시의원이 시의회 윤리특위에 회부된 후 그 결정이 발표되는 날 1인 시위를 펼치고, 다음날 현수막 한 장을 게시한 게 전부다. 낄 때 끼지 않고 팔장만 끼고 있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반대로 빠질 때 빠지지 못하는 노조도 있다. 구미시립예술단노조는 최근 출근 문제로 연일 구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체 인원 중 80%가 외지인으로 구성된 시립예술단은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택근무를 명령받았지만, 노조가 단원들에게 출근을 지시하고 출근을 시켜달라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 노조는 단원들에게 출근을 지시할 권한이 없다. 또한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임금이 나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구미시는 이들에게 정상 출근할 때와 같은 임금에다가 설 명절 상여금까지 지급했다.지난달 23일에는 구미문화예술회관 운영위원회에 노조지회장이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참석해 다른 위원들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운영위원회에는 보통 운영위원장과 위원들만 참석하는데, 노조지회장이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참관한 것이다. 다른 어느 지역의 문화예술회관에서도 노조가 운영위원회에 참관하는 경우는 없다.노조는 노조원들의 입장을 외면해서도 안 되고, 그 입장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지나친 간섭을 해서도 안 된다. 구미시 노조들이 하루라도 빨리 ‘낄끼빠빠’를 아는 조직이 되길 바란다./kimrh@kbmaeil.com

2021-03-09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동참을!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2월 초하루에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축출하는 쿠데타를 감행한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열렬한 민주화운동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미얀마의 정치상황을 본래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시민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최소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천700명이 넘는 시민이 군부에 억류돼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진정 피를 먹고 자라나는 것인가?!미얀마 시민들의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을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르는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고립무원의 절체절명 상황에서도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일당의 군사 쿠데타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싸웠다. 광주의 피어린 항쟁은 도이칠란트의 위르겐 힌츠 페터 기자의 기록으로 세계 전역에 알려진다. 우리는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그것을 가슴 절절하게 확인한 바 있다.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트위터나 텔레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고 있다. 딴 툿 우(다니엘딴) 동국대 초빙교수는 이런 정황을 “불행 중 다행”이라 말하면서도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이다. 대구 문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시인의 저녁’에 출연한 그는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한국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여러 차례 부탁한다.2007년부터 한국에서 공부했던 그는 동국대 아시아연구원의 초빙교수가 되어 한국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한국인처럼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면서,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격변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희구하고 있다. 그와 대담(對談)하면서 나는 41년 전 절해고도(絶海孤島) 광주에서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롭기 그지없었다.우리는 광주 시민들의 희생 위에 견고한 민주주의의 성채를 세울 수 있었다. 오늘날 경제와 정치,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우리가 도달한 성취의 배후에는 광주의 고귀한 희생이 자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한창 진행되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의 강고하고 열렬한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와 경제의 대표적인 모델이 우리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지구촌 전역의 상황이 순식간에 알려지는 시대에 미얀마 군부의 자국민 살해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총칼로 자국민을 살해하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학살자나 도살자에 지나지 않는다. 1980년 광주에 투입된 한국군이 그러했고, 지금의 미얀마 군대가 그러하다.미얀마 군부의 야만적인 폭거에 대응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하다. 상황이 종식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세대 전에 겪은 학살과 폭력의 기억을 현재화하여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일일 것이다. 스테판 에셀의 말처럼 분노하고 연대하는 길밖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분노하라! 연대하라!

2021-03-09

어쩌면 우리가

최미경동화작가3월은 꽃을 볼 일이다. 노오란 풍년화와 복수초를, 솜털 보송한 노루귀와 붉은 매화를 눈에 가득 담을 일이다. 지난겨울 잘 견디고 여린 줄기를 밀어 올려 꽃잎 하나하나를 피워 낸 저 생명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혹여 우리가 무심히 꺾었던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희망이 아직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시간이다.4월과 5월은 작은 열매가 맺히는 나무를 심을 일이다. 산사나무와 명자나무를, 앙증 맞은 앵두나무와 올망졸망한 산수유나무를 양지 바른 뜨락에 심을 일이다. 한 두 계절 지나 반드시 찾아올 열매들의 약속에 감사할 일이다. 혹여 오래전 마음에 심어놓고 잊었던 씨앗을 찾게 된다면 그 간절함의 약속을 지켜낼 시간이다.6월은 아이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 일이다. 아이의 걸음에 폭을 맞추며 아이가 건네는 말과 웃음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말 일이다. 그와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분명 우리가 보냈던 지난 시간 안에 아이와 같은 모습이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풀지 못했던 생의 조막만한 비밀상자를 열게 될 시간일 것이다.7월과 8월은 냇가에 발을 담그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일이다. 잠시 하던 일은 옆으로 미뤄놓고 바람 좋은 그늘에 앉아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그 흐름의 방향을 넋을 놓고 볼 일이다. ‘하루’는 늘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그 하루 온전히 나에게 쓰이던 시간은 얼마나 되었던가. 내 마음이 흐르는 소리와 방향에 귀 기울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9월과 10월은 오래 같이 한 사람들과 가을의 밥상에 둘러앉을 일이다. 안타깝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바로 사람이고 인연이었을 일이다. 상처로 남아있는 이, 슬픔을 나눌 이가 있다면 초대할 일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채워가며 밥을 나눌 일이다. 함께 먹는 밥상은 마음의 약상이 될 시간일 것이다.11월은 밤바다에 뜬 별을 셀 일이다. 찬 모래를 맨발로 밟고 밤바다를 바라보면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한 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점을 위해 여태껏 달려왔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때 우리가 응시해야 하는 것은 바로 밤바다에 내려온 별이다. 수 천 년을 달려 우리 눈앞에 내려온 그 별을 세어 보며 차고 매서운 바닷바람에 맞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애틋한지 느껴 볼 시간이다.12월에는 말이다. 올 한해 누군가 아프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누군가 쓸쓸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누군가 환하게 웃었음에 기뻐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를 잠시 속상하게 했던 누군가와 우리를 잠시 혼란에 빠뜨렸던 누군가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스스로 기뻐할 일이다.어쩌면 우리가 지금, 바로 3월이 막 시작되는 이 봄의 초입에 올 한 해를 위한 기도를 한다면 말이다. 종교와 피부색, 성별과 나이를 모두 떠나 그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한 기도를 한다면 작년 한 해 우리가 절망했던 그 순간순간들을 올해는 훌훌 털어버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나는, 지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낸다.

2021-03-09

Everything will be Ok

미얀마 전역에서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군부는 유혈진압에 나서 비무장한 민간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현재까지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 3일,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의 시위 행렬 속에는 19세 여성 치알 신(Kyal Sin)도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댄서로 활동하는 꿈 많고 씩씩한 소녀였다.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와 총탄이 빗발치는 사선에서 검은색 바탕에 하얀 글씨가 프린팅된 셔츠를 입고 왼손에는 코카콜라를 쥔 채 군부를 규탄했다. 그녀는 끝내 군부의 총격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피 묻은 셔츠에 적힌 ‘Everything will be Ok(다 잘 될 거야)’는 평화를 염원하는 저항의 문구가 되었고, Angel(에인절)이라는 영어 이름을 지닌 신은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신은 자기 죽음을 미리 알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녀는 2월 28일 페이스북 계정에 혈액형과 비상 연락처를 남기며 자신이 사망할 경우 장기와 시신을 기증해달라고 적었다. 지난해 11월 8일 생애 첫 투표에 참여한 뒤 ‘투표 인증샷’을 올리며 “나의 첫 투표.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내 나라를 위한 내 의무를 다하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2월 11일에 작성된 게시물이다. 신은 ‘Justice for Myamar(미얀마의 정의를 위해)’, ‘Save Myanmar(미얀마를 구하소서)’, ‘Democracy(민주주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길게 말하지 않을 거야! 아빠 고마워요. 이 한 마디만”이라는 글을 남겼다. 사진 속 아버지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딸을 막는 대신 옳은 신념을 향해 나아가는 딸의 손목에 저항의 상징인 붉은 끈을 매어주었다. “다 잘 될 거란다 딸아”, “다 잘 될 거예요 아빠”KTX 열차 내에서 마스크를 벗고 햄버거를 먹은 여성이 화제가 됐다. 방역수칙을 지켜달라는 승객의 항의에 “천하게 생긴 게 우리 아빠가 누군 줄 알아?”라며 도리어 큰소리를 쳤다. 논란이 커지고 비난이 거세지자 사과했지만, 씁쓸함은 가시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받고는 왜 다짜고짜 아빠부터 내세운 걸까? 아마도 그녀의 아버지는 평소 딸에게 “다 잘 될 거야. 아빠가 다 해줄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몸은 컸어도 정신은 유아기에 머문 ‘어른이’가 된 것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제 아들이 연세대 원주의대 해부학교실의 조교수가 되었습니다. (연구조교수가 아닌 조교수) 순천향대 의대를 졸업하고, 아주대 의대에서 제 도움으로 의학박사를 받았습니다. 1989년 9월생이므로 만31살에 조교수가 된 셈입니다. 이제 집안에서 정 교수라고 부르면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만화가 의사’로 알려진 아주대 해부학과 정민석 교수가 지난 1일 트위터에 올린 천박한 글이다. 이런 한심한 아버지가 있으니 ‘수저계급론’ 따위 정신병이 시대를 좀먹는다. 자식 자랑하려고 놀린 펜이 도끼가 돼 제 발을 찍었는데, 아버지의 논문 다수에 아들이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이 알려지며 ‘아빠 찬스’를 넘어 특혜를 의심받는 중이다. 꼴사나운 자식 자랑 글을 황급히 삭제했지만 논란은 또 다른 데서 터져 연재한 웹툰의 저급한 성희롱, 여성 비하 내용이 문제가 됐고, 성매매 계정 팔로우 의혹도 제기됐다. 지금 ‘정 교수’는 칩거한 채 ‘정 교수’에게 “다 잘 될 거다 아들아”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Everything will be Ok’의 잘못된 사례들을 보면서, 자기 영달과 이익만을 위해 사는, 졸렬한 세습과 상속에 매달리는 이들을 생각한다.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고슴도치 부모들에게서, 또 부모 찬스에 기대는 의존성 인격장애자들에게서 빼앗고 싶다. 삶 앞에 부끄러운 부모 자식들이여,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치알 신의 피 묻은 셔츠를 보라.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다. 하늘로 올라간 천사 치알 신과 미얀마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Everything will be Ok.” 다 잘 될 겁니다.

2021-03-08

사실과 가상 사이, 딥페이크의 덫

최근 SNS에서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았다. 그런데 사진 속 눈, 코, 입이 자연스레 움직이는 게 아닌가. 늘 멈추어 있던 유관순 열사의 눈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순간 맑은 빛이 어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오며 옅게 웃는 듯한 모습이 실제 눈앞에 마주한 듯 생생했다.윤봉길 의사의 얼굴은 더욱 생동감 있어 보였다. 광대뼈가 움직이며 고개가 돌아가기도 하고, 눈동자가 위아래로 흐르기도, 닫히는 입술은 곧은 결의를 보여주는 듯했다.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움직이는 독립 열사의 영상은 모두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이 사용된 결과물이다.딥페이크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활용한 이미지 합성 기술이다. 기존에 있던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편집물을 일컫는다. 여러 인물의 얼굴을 합성하여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특정 인물의 얼굴을 원하는 영상에 합성하기도 한다.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대의 한 현상이다.딥페이크 기술은 빠르게 인간 생활 가까이에 스며들고 있다. 이미 SNS상에서는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란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성된 가상의 디지털 인물들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릴 미켈라(Lil Miquela), 일본의 이마(Imma)를 꼽을 수 있다. 최근엔 LG전자에서도 가상인물인 레아 김(Reah Keem)을 선보였다. 레아 김은 서울에 거주하는 23살의 여성으로 음악 작업을 하는 인플루언서다. 레아 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실제 MZ세대가 흔히 쓰는 언어 사용과 패션을 선보이고, 이태원이나 대림미술관을 방문한 사진을 남긴다. 이들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여 의상과 소품의 유행을 선도하며, 얼굴 특징, 피부색, 신체 타입, 헤어스타일 등에서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모습으로 인간들 앞에 서고 있다.딥페이크 기술은 나날이 놀랍게도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인물 합성은 물론 표정이나 이목구비의 움직임, 목소리까지 똑같이 복제할 수 있다. 최근엔 기존 포르노 영상에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포르노’가 급증하고 있다. 영국 BBC는 2019년 기준 딥페이크 비디오 중 96%는 포르노로 소비되고 있다고 밝혔다. 얼굴 합성 피해자는 미국과 영국의 여배우, 그 다음으로는 25%의 수치로 K-POP 여자 가수가 해당된다. 더욱 심각한 건 인터넷상에서 쉽게 인물의 이미지 데이터를 구할 수 있기에, 일반인에게도 피해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딥페이크 기술은 꽤나 정교하다. 일반인이 맨눈으로 딥페이크 기술이 적용된 가짜 인물을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데, 최근엔 스마트폰으로도 딥페이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그간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 문제는 늘 대두되어 왔다. 그럼에도 인간이 가져야 하는 윤리의식이나 교육, 구체적인 법적 제도의 준비 없이 시간이 흘렀다. 다행인 건 올해 6월부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개정으로 포르노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유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제도가 실시된다.딥페이크를 활용한 인공지능은 나날이 인간과 비슷해지고, 어쩌면 머지않은 날에 인간이 가진 놀라운 능력을 완벽히 베낄 것이다. 앞서 말한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버추얼(virtual)은 ‘가상의’ ‘현실적인’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 상반되는 의미를 지녔다. 사실과 가상의 경계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진짜와 가짜의 판가름이 더욱 중요해지는 지금 시기에, 인간과 인공지능은 어떻게 공생하며 살아갈까. 인간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딥페이크가 던지는 여러가지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민해 나가야 할 숙제다.

2021-03-08

최고의 라스트신을 위해 촘촘히 쌓아 올린 시대상황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유럽은 무너져 내린 물질적·정신적 기반을 복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덜 입은 영국은 승전국으로써의 지위와 함께 어느 곳보다 빠르게 일상의 복귀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제국주의의 유산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의 탄생을 알렸던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크게 위축됨 없이 나쁘지 않은 호시절을 맞고 있었다. 이러한 영국을 떠받들고 있었던 중심은 바로 중산층이었다.그러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영국 경제는 고비용, 저효율의 늪에 빠진다. 비효율적이고 경쟁력 없는 산업들을 국유화를 단행하면서 재정적인 부담을 안게 된다. 집권당에 따라 다양한 처방들이 시행되지만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중산층은 엷어지면서 영국경제는 흔들리고 있었다.1979년 영국의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임명된다. 대처는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며 경제구조의 전환을 꿰하는 정책에 착수한다. 저비용 고효율을 내세우며 각 분야의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각종 규제의 완화를 통해 시장지향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다. 그리고 1981년 석탄산업의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23개 탄광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하며 대량해고를 예고한다.산업혁명에서부터 영국 산업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탄광산업이었다. 영국에서 탄광산업이 가진 사회적 중요성이 그만큼 컸으며 대대로 광부로 살아왔던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광부’라는 직업은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영국에서 탄광 노조는 사회적 영향력도 강해서 대처 이전에 총리(에드워드 히스)의 연임을 저지하기도 했었다.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로 재선에 성공한 대처는 그 여세를 몰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1984년 탄광 산업의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이에 노조는 총파업으로 맞선다.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바로 이 시기의 영국 동북부에 위치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탄광촌은 경찰 병력이 겹겹이 방어막을 치고 강력한 공권력으로 고립무원의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곳에서 열한 살 소년 빌리의 발레리노 꿈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년의 성장을 감동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소년의 꿈이 자라났던 시대적 상황과 토양을 촘촘히 배치하고 있다. 파업이 진행될수록 연대의 고리는 느슨해지고 노동자의 삶은 궁핍해진다. 영화는 소년의 꿈을 향한 과정과 함께 아버지와 형을 통해 탄광 파업의 패배과정을 엮는다.1984년 시작된 탄광 노조의 파업은 1985년 패배한다. 1년 여의 과정 속에서 빌리는 그의 의지에 따라 가족들을 설득하고,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순 없어”라는 말과 함께 아들의 꿈을 위해 파업 대열을 이탈해 출근하는 버스에 오른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그의 신념을 접는 모습으로 당대의 아픔을 그린다.마침내 빌리는 로얄발레학교에 합격하고, 파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형은 무거운 마음으로 막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빌리는 검은 색의 탄광촌에서 흰색의 백조로 날았지만, 1980년대 중반의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빌리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상황들만으로 감정을 이끌어 갔다면 오히려 그 여운이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시장 논리에 의해 궁지로 내몰렸던 노동자들.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 무너져가는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시대상황이 함께 했기에 영화의 감동은 더 깊고 크게 울린다.1980년 격렬하고 뜨거웠던 시대를 알게 된다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백조가 되어 날아오르는 빌리의 모습이 아니라 아들의 모습을 보며 벅찬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김규형

2021-03-08

신라 황금시대의 시작은?

‘황금의 나라’라는 말이 익숙한 경주다.사실 신라 고분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황금으로 만든 금관(金冠) 때문이다. 황금유물은 경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금으로 만든 유물은 금관, 목걸이, 귀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그릇, 칼장식 등 다양하다.이것들은 사람을 치장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했다. 특히 금관(머리장식)은 대형 무덤에서 발견되고 있어서 무덤의 주인공이나 사용된 시기와 관련하여 궁금증을 유발한다.경주 무덤 중에서 금관이 출토된 곳은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북분 등이다. 이들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마립간기(麻立干期)라고 불리는 시대에 만들어지며,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사실 왕만이 금관을 쓴 것은 아니라서 앞서 이야기한 5기의 무덤이 모두 왕의 무덤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또한 금관이 출토되지 않아도 왕릉으로 보는 무덤도 있다. 황남대총 남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황남대총 남분은 북분과 연결되어 황남동에서 가장 큰 무덤이며, 남북 120m, 동서 80m로 초대형분으로 분류된다.남분보다 작은 크기의 무덤인 금관총, 천마총, 서봉총 등에서 금관이 나왔기 때문에, 1975년 7월 1일 발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무덤에서 금관이 나올 것으로 추정했다.그러나 무덤 주인공의 머리에는 금동관(金銅冠)의 흔적만 확인됐을 뿐이다. 그날 아침, 금관이 출토됐다고 금관 사진을 오려 붙여 기사를 쓴 신문기사는 분명한 오보였다.황남대총 남분 발굴 이전까지는 신분이 높아야만 금관을 착용했던 것으로 인식했다. 아니 왕만이 금관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아직도 금관이 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뚜렷한 답은 없다.주목할 점은 무덤 주인공이 착용한 장신구(裝身具)의 조합상이다.머리장식, 가슴걸이,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 등이 하나의 조합으로 모두 출토되는 것과 이 조합에서 하나 혹은 두 개 정도가 빠져 있는 경우만 신라 고분에서 확인된다.전자는 신분이 가장 높은 왕이나 왕족으로 볼 수 있으며, 후자는 차상위 계층이다.이것으로 보면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모든 장신구 조합이 확인되므로 분명히 왕에 버금가는 인물로 볼 수 있다.다시 말해 금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무덤 주인공의 신분이 낮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금관은 가장 높은 신분을 나타내기 때문에 황남대총 남분의 시기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황남대총에서는 금동관(金銅冠)과 은관(銀冠), 은제관모(銀製冠帽), 금제관식(金製冠飾)와 은제관식(銀製冠飾) 등이 확인된다.이들 제품에서는 이전 단계보다 금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으로 보면 금관이 나타난 시기는 금이 신라에 도입된 이후 금의 수량과 금제 세공술의 변화, 장신구류의 활성화와 관련됐을 것이다.즉 금관이 사용되지 않던 시기와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으며, 황남대총 남분 이전까지는 금관이 없던 시기로 볼 수 있다.경주 월성로 가-13호묘에서 금으로 만든 그릇이 처음 나타나며, 남분에서는 기형이 다양해진다. 이후 북분과 천마총에서는 금으로 만든 장신구나 그릇은 부장이 증가하며, 대부분의 금제품은 순금만을 사용하여 제작한다.박형열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결국 신라에서 황금은 황남대총 남분 이후 단계인 북분이 만들어지는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다.황남대총 북분 이후에는 금관총, 서봉총, 천마총, 금령총 등에서 금관이 출토되고 은제품은 이들 무덤보다 낮은 계층에서 사용하는 비중이 높아진다.이러한 현상은 계층별로 금속 장신구의 재질 차이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왕권의 강화와 장신구류의 발달로 인한 금세공술의 발전을 짐작케 한다.신라에서 황금유물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경주 월성로 가지구 13호묘를 통해 서기 4세기 말경으로 인식된다.이후 황남대총 남분이 조성되던 5세기 전엽에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점차 금의 비중이 높아지다가 황남대총 북분 단계인 5세기 중엽부터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금제품이 등장한다.즉, 신라 왕과 귀족의 무덤으로 이용된 돌무지덧널무덤의 최전성기이며, 그 무덤 속에는 황금으로 만든 금관, 가슴걸이,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등 수많은 유물이 묻혀있다.이 시기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황금의 나라’ 이자 가장 화려한 신라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2021-03-08

봄의 속삭임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언제 봄이 올까 했는데 어느새 성큼 다가선 듯하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에 봄바람이 살랑거리더니 매화, 산수유 꽃이 속닥이 피어나고 양지 바른 곳에선 가녀린 풀잎들이 손을 흔들며 봄을 부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황량한 대지의 여기저기서 싹이 돋고 움이 트며 물이 오르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나긋나긋 보이고 자박자박 들리는 것 같다. 차디찬 땅 속에서도 내밀한 생명력을 키우고 창조적 일손을 멈추지 않으며 저마다 수많은 믿음의 교감으로 약속처럼 새봄으로 솟아나는 것이다.많이 보라고 봄이라 했던가? 관찰하고 눈여겨보면 정말 보이는 것들이 많고, 신기할 정도로 일어나는 만물의 변화를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봄의 느낌을 잘 전달받을 수 있기에 봄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씨앗’ ‘태양’ 등을 뜻하는 ‘볻’에서 유래돼 만물이 소생하고 씨앗을 뿌리는 때로 햇빛이 따스해지는 시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봄을 한자로 풀이하면 춘(春) 즉, 해(日)의 기운을 받아 풀(8279)이 돋아나는 모양이고, 영어로는 스프링(Spring)으로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모습에서 가볍게 튀어 오르는 형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긴 겨울 잠을 깨고 봄이 일면/나른한 언덕 위에 花香 흐르다/스치는 바람 결에 버들잎 흩어져도/빨래터 아가씨는 고갤 숙이고(春破冬眠起 花開處處幽 吹風楊柳散 漂女暗低頭)’ -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1991)’ 중 ‘春’봄을 품은 겨울은 혹독하기 마련이다. 마치 누구에게나 삶의 고난과 시련이 냉혹한 것처럼…. 그러나 역경을 이기고 난관을 극복한 인내의 결실이 값지듯이, 혹한 끝에 피어난 꽃이 더욱 향기로운 것이리라. 도처에 돋아나고 피어나는 화초와 수목은 무덤덤하게 손짓하는 것 같지만, 기실 얼마나 매운 인동의 시간 속에 생동과 개화의 꿈을 끈덕지게 키워왔을까? 그렇기에 풀 한 포기, 꽃망울 하나에도 숙연하고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냇둑의 수양버들이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개울 가로 미나리 싹이 파릇하게 돋아는 곳에 동네 빨래터가 있었다. 아직은 시릴 정도의 찬 물에 손을 담가 빨래를 하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간간이 빨랫방망이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는 모습은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수시로 명지바람이 불어와 긴 치맛자락 같은 실버들이 하늘거리면 괜스레 빨래하던 아녀자의 얼굴이 붉어짐은 무슨 연유였을까? 40~50년 전의 아슴한 고향 정경이 엷은 감미로움으로 피어나는 듯하다.자연의 속삭임 같은 봄날이 사뿐사뿐 다가오고 있다. 무채색 대지의 화폭에 입김 같은 양광(陽光)의 붓질로 살며시 채색하며 연초록 싹을 보듬고 꽃과 잎을 그려내고 있다. 거기에 향기까지 스미게 해 벌과 나비를 부르고 인향까지 어우러지게 하니 춘삼월 호시절이 멀지 않을 듯 싶다. 분분한 코로나 난국에도 봄이 오는 걸까? 한 줄기 희망 같은 백신의 효능이 봄햇살처럼 펴지고, 방역의 체질화,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봄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본다.

2021-03-08

지워지지 않는 상처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속보] 구미 3세 여아 중간 부검 결과 ‘사망원인 미상’, 정인이 양모 측 “머리 찢게 한 것 맞지만 학대 의도 아냐” 최근들어 이런 기사를 많이 본다. 가정폭력과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일 일어나고 있다.신고가 세 번이나 들어갔는데 아이가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 너무 슬프고 화가 나고 아이의 몸이 저지경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근데 어떻게 경찰이 저런걸 보고도 그냥 넘어갈 수가 있는가. 경찰관들도 이제는 권한이 엄청 높아졌다. 아이를 생각해서 증거모아 신고한 어린이집 선생님들만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학대가 인정 되어도 아동의 거처 때문에 다시 부모 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갈 수 있는 시설이나 기관들이 부족하다. 가슴이 미어져온다. 어른이라는 게 참 죄스럽고 미안한 일이다. 정인아 미안해. 하늘에서는 정인이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뭔지 행복이 뭔지 느낄 수 있길 바란다.정인이 사건 이후 입양기관 전화가 줄고, 입양아를 기르고 있는 양부모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버림받은 아이들을 입양하여 기르는 것은 정말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아이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고 부모가 되어 준다. 필자도 이런 분들을 존경한다. 미혼모나 미혼부도 친부모로서 양육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위에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수 있는 자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둘러보아야 한다.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고가 여기저기 또다시 터졌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고는 이번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고 역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공포의 어린이집 원장과 원장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부모에 대한 욕을 하거나 단지 오줌을 쌌다는 이유만으로 3세 미만의 영아반 아이들을 때리기까지 했다. 또 대전 어린이집에서 폭행 사건이 있었다. 20대 보육교사가 4, 5세 아이들을 폭행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서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이는 상처를 치유해야 하고, 부모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지워지지 않는 아이의 상처는 치유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이 아프다.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눈을 가리고, 가해자를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왜?잊을 만하면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어린이집 폭행사건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는 정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원인이고, 행정 처분을 강화하고, 해당 어린이집은 영구 퇴출하고, 보육교사의 자격을 강하를 하고, 교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관리당국의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 대책이 필요하다.아이의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웃음을 지켜줄 책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사건을 계기로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시간이 나면 요즘 상영되는 영화 ‘고백’을 권한다.

2021-03-08

실용외교 vs 이념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19일 국무회의에서 “국익과 국민을 우리외교의 최고 가치로 삼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용외교를 펼쳐나가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정치적 이념보다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여 외교적 활로를 열겠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실용외교의 성공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실용외교에는 필수적 전제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설정된 외교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에 있어서 정치적·이념적 제약이 없어야 한다. ‘외교는 내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국내적 이념경쟁과 정치논리로 외교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이는 외교가 대통령의 정치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용외교를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외교환경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균형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경직된 정치이념과 제한된 선택수단의 강요는 이념외교일 뿐이다.둘째, 실용외교를 위해서는 ‘이상보다 현실에 대한 민감성’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 남북대치, 미중갈등 등은 우리외교가 직시해야 할 분명한 현실이다. 현실의 국제정치는 힘의 정치이다. 힘의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외교가 실용외교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노련한 실용주의 외교전문가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실용외교는 한미동맹에 의한 확산억지력의 보장이다. 반면에 북한의 협상의도를 간과하고 대화를 통해서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은 ‘장밋빛 환상’에 빠진 이념외교에 지나지 않는다.셋째, 실용외교는 반드시 외교전문가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외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외교관은 현안 장악력이 강력해야 효율적으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전문성이 없는 정치권력이 ‘외교의 전문성’을 지배하면 실용외교는 사망한다. 외교부장관이나 대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정치이념이 아니라 실용외교에 걸맞은 능력이다. 그럼에도 진보라는 정치이념으로 무장한 청와대가 외교의 전문성을 부정하고 권력에 충성하는 ‘코드인사’를 통해 이념외교를 고집하였으니 외교참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마지막으로 최고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의 열린 사고와 합리성이다. 실용외교는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합리적 토론의 결과물이다. 때문에 닫힌 사고와 이념적 경직성은 실용외교의 적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동일한 사고를 가진 청와대의 집단사고나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로 실용외교가 성공할 수는 없다. 국민과 권력, 국익과 이념이 충돌할 때 전자를 위해 후자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으려면 대통령의 열린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문 대통령이 대외적으로는 실용외교를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그에 역행하는 인식과 행태를 보였으니 치열한 외교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이념외교의 환상을 버리고 실용외교의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2021-03-08

미닝아웃족

미닝아웃족이란 요즘 소비트렌드의 하나로,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에서 나온다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된 단어인 ‘미닝아웃’을 하는 소비자를 가리킨다. 국립국어원의 대체단어로는‘소신 소비자’가 쓰인다.정치·사회·문화적 신념과 가치관을 소비행위를 통해서 표출하는 소신있는 가치소비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신념에 따른 소비를 지향한다.보통 SNS 등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서 표현과 공유를 하기 때문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가 주도한다.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거나 선행을 한 착한 기업에 대해서는 흔쾌히 지갑을 연다. 오랜 선행으로 미담을 쌓아온 기업 ‘오뚜기’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갓뚜기’(God과 오뚜기를 합친 말)로 불리며 사랑받고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최근 SNS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치소비 캠페인’도 미닝아웃족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다. 이 캠페인은 동네식당에서 결제한 영수증이나 음식 사진 등을 SNS상에서 인증하는 운동으로 신총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형편이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다.미닝아웃족들은 흔히 바이콧(buycott: 어떤 물품을 사는 것을 권장하는 행동)운동에서 주로 나타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경영진의 갑질 등이 알려진 부도덕한 기업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불매운동을 벌언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이 벌어진 남양유업은 아직도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고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나의 참여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미닝아웃족의 건강한 소비운동을 응원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08

3·1운동 102주년의 의미와 독도! 그리고…

길종성 (사)영토지킴이독도사랑회 회장매년 이맘 때가 되면 일본정부와 일본 극우단체들은 대한민국 독도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 날조된 발언으로 대한국민을 자극하고 있다.일본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활동하고 있다. 반성은커녕 과거사를 왜곡하며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있다.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역사 왜곡형태에 일본정부가 앞장서고 있다.심지어 일본 전범기업들은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램지어 교수를 매수해 엉터리 역사논문을 지원하고 있다.램지어는 일본기업의 알량한 지원금으로 왜곡된 논문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성마저 짓밟는 일에 동조하고 있다.이를 학문적 견해라며 방조하는 하버드대학 총장의 행태는 학문적 자유라는 장막 뒤에 숨어 교육자적 양심을 저버린 행태라 볼 수 있다.필자는 일본 행태도 행태지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처신에 일침을 가하고자 한다.정치권에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침탈 행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문제에 제대로 항의하고 앞장서는 의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되나?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더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자들이 할머니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19년째 독도수호 활동을 하면서 황당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다가 3월이되면 생색내기와 인기 영합주의식 활동에만 치중하려는 일부 정치권이 답답하고 한심하다.위안부 문제를 위해 활동한다는 정의기억연대에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해 왔던 정부도 국가 사무를 대신하는 독도 단체들에 대해선 ‘예산이 없다’며 등한시하는 걸 보면 독도수호가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체감한다.이제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도 변해야 한다.정부는 일본과 마찰, 외교적 문제 등을 이유로 독도문제에 미온적이라면 국가사무를 대신해 활동하는 독도단체들에 대해 선별적 지원을 해야 한다.독도단체들이 국가를 대신해 강력한 대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정부는 일본과의 과거사문제에 따질 것은 따지고 잘못된 바로 잡아야 한다. 미래세대에 대한 발전적 문제와 아시아 동반 국가로서 함께 가야 할 일이라면 양날의 칼처럼 대응하면 될 것이다.3·1운동 102주년을 맞아 정부와 정치권은 더는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독도단체들이 국민적 행동과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과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2021-03-07

누구나 마음 처방전이 필요하다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우리는 정신과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애국정신’이나 ‘화랑정신’처럼 정신이 뒤에 들어가면 괜찮다. 그런데 ‘정신과’ 처럼 정신이 앞에 나오고 그것도 ‘정신’ 뒤에 ‘과’가 붙으면 굉장한 왜곡이 일어난다.정신과는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건강의학과이다.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2011년에 개명되었다. 진료과명을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한 것은 정신의학이 발달하면서 그 범위가 단순히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예방·건강 증진 등으로 넓어지고 있는 현재의 추세를 반영하고, 현대 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는 정신건강의 개념을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우리는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 모두 정신병 환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병이라는 용어도 오해의 소지가 많다. 정신과는 정신질환(mental illness)을 치료하는데, 일반인들은 정신병(psychosis)을 정신질환(mental illness)의 모든 것으로 잘 못 아는 경우가 많다.정신건강의학과는 망상이나 환각, 현실에 대한 판단 능력 저하로 적응에 상당한 문제를 겪는 정신병 상태 즉, 조현병, 조현양상장애, 조현정동장애, 망상장애, 단기정신병적 장애 등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를 포함해서 중증 치매 등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수면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신체증상 장애 및 관련 장애(신체적인 검사상의 이상 유무와 관계없이 그 원인이 정신적이거나 정신적인 원인에 의해 신체 증상이 나타나거나 악화되는 경우를 말함)와 같은 비교적 가벼운 정신건강 문제인 스트레스성 질환 소위 신경성 질환 등을 치료하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 질병에 대한 불합리한 스트레스 반응이 있는 경우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의 대상이 된다.내과 치료를 받으면 모두 중병(重病) 환자라고 생각하는가? 내과에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수 백 가지의 경우가 있다. 감기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갈 수도 있고, 건강 검진을 위해 갈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도 마찬가지이다.우리는 정신병환자들이 ‘정상인’에 비해 위험하고 폭력적이고 끔찍한 범죄를 더 많이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욱이 정신병 환자를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그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낯선 것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합쳐지면, 그 두려움은 배가된다.그러나 정신병 환자들이 범죄 및 폭력을 일으키는 빈도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낮다고 한다. 2017년 발표된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신병자의 범죄율은 1.2%, 정신병환자의 범죄율은 0.08%였다. 정신병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비정신병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의 15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이러한 편견은 정신병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질환의 치료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에 대한 커다란 편견과 낙인은 환자가 병을 숨기게 만들고, 치료를 더 어렵게 만들고, 정작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던 환자의 발길도 멈추게 한다. 결과적으로는 위험하지 않던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해 자·타해 위험으로 내몰리고, 완치되어야 하는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해 재발과 만성화로 떠밀리는 상황이 될 수 있다.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성인 4명 중 1명꼴로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고, 성인 8명 중 1명꼴로 최근 1년 동안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고 있을 만큼 정신질환은 매우 흔하다. 그럼에도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해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울이 증가되고 있고 생활고가 문제가 되는 분들이 증가하고 있다. 자살의 가장 많은 의학적 원인 질환으로 알려진 ‘우울장애’ 예방과 자살의 가장 많은 사회적 원인인 경제적 문제, 생계의 위협에 내몰린 분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이 위중한 시대에 우리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에 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나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을 개선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모든 병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예방은 더욱 중요하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신체가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도 하고 좋은 식이 습관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운동 처방전과 식이 처방전은 소위 성인병인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병이 오기 전에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운동 처방과 식이 처방을 받고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다.정신이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트레스 관리 즉 마음 관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 처방전은 정신질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마음 처방을 받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1-03-07

코로나19 백신 접종, 어디까지 왔나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2021년 3월 현재, 정부는 해외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7천900만명분을 확보하고 지난달 26일부터 접종을 시작했다.보건당국에 의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75만명분과 화이자 백신 50만명분을 시작으로 얀센, 모더나, 화이자, 노바백스 백신 등을 순차적으로 접종한다. 정부는 오는 11월까지 국민의 70% 이상 백신을 접종, 집단면역 형성을 통해 코로나19를 극복한다는 계획이다.먼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접종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바이러스 벡터(운반체) 백신으로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인체 내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단백질(항원)을 만들어 면역을 가지게 한다. 이 백신은 유럽과 영국 등 50개 국가에서 조건부 허가 또는 긴급 사용승인을 받았지만 비교적 짧은 임상기간과 백신 효능에 대한 통계적 수치가 적어 우리나라와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65세 미만에 대해서만 접종을 권고했으며, 스위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승인을 보류했다. 하지만 최근 접종자수가 많아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만 65세 이상에 대해서도 백신 접종을 승인하고 있는 추세이다.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인 얀센에서 만든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같은 방식의 바이러스벡터 백신으로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긴급사용 허가를 받았으며 국내에도 2분기 중에 600만명 분이 도입된다. 얀센 백신은 1회 접종만으로 효과가 나타나며 냉장고에서도 3개월까지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2회 접종과 초저온 냉동시설과 같은 콜드체인이 필요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보다 효율적인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백신의 효율이 다소 낮은(66%) 것으로 보고되었다.화이자와 모더나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핵산(mRNA) 기반 백신으로 예방효과(각각 95%, 94.1%)가 가장 우수하지만 유통과 보관 조건이 까다로워 전국의 250곳 접종센터에서만 접종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독감 백신의 예방효과가 40~60% 수준인데 코로나19 백신은 짧은 개발기간에 비해 임상시험에서 매우 높은 예방효과를 보였다.그리고 지난달 정부에서 2천만명분의 구매계약을 체결한 노바백스 백신은 재조합단백질 기반 백신으로 기존에 B형 간염백신 등에도 널리 사용되던 플랫폼으로 인체에 대한 안전성이 높으며 냉장보관 만으로도 운송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노바백스 백신은 89.3%의 예방 효과를 보이며, 65세 이상의 고령층과 영국에서 확산 중인 변이 바이러스에도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 종식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최근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서 지난 1월 전염병 연구자와 면역학자 등 코로나19 관련 100여명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0%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질병이 종식되지 않고 풍토병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풍토병이란 특정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의미하며 계절성 독감(인플루엔자A)이 이런 풍토병에 해당한다.아쉽게도 올해 국내에 도입되는 코로나19 백신은 전량 해외기술로 개발한 백신으로 향후 해외에서 수입되는 백신의 물량이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며 수입 의존성이 높아 다양한 유형의 백신 개발과 국내 기술기반의 신종 감염병 대응 백신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2월말 기준으로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총 6곳(국제백신연구소, SK바이오사이언스, 셀리드, 제넥신, 유바이오로직스, 진원생명과학)이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으며 이중에서 제넥신에서 개발한 코로나19 DNA 백신이 3월 현재 임상2a에 돌입해서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경북에 소재한 기업과 대학, 기관에서도 국내기술 기반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안동의 SK바이오사이언스와 포항의 바이오앱이 대표적이다.특히 포항의 바이오앱은 식물을 생산 플랫폼으로 활용하여 생산하는 재조합단백질 기반의 코로나19 그린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포스텍, 한미사이언스와 협력하고 있으며, 현재 비임상 단계에서의 효능을 확인하고 연내 임상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 바이오앱은 포항테크노파크 내 식물공장과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에 조성 중인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 식물공장을 활용하여 그린백신 제품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린백신은 안전성과 신속성, 경제성 등이 우수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미래사회 안전을 위한 10대 미래유망기술(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14)로 선정되기도 했다.해외 기술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 수입을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지출해야되고 당분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가까운 미래에 국내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미래 신종 감염병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백신개발을 통해 우리나라가 백신강국으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재 포항과 안동에서 백신강국의 토양이 조성되고 있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21-03-07

윤석열과 TK민심

심충택​​​​​​​논설위원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주 사퇴하면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이 나라 권력자들이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는 국책사업이나 정부예산 배분, 인사를 할 때 지역과 이데올로기를 우선시했다. 국민을 양 진영으로 쪼개 한쪽 진영을 자원 배분에서 배제시키며 다른 한쪽을 응집시키는 결정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대구·경북은 철저히 소외당하는 쪽이었다. 그 결과 현재 정부 고위관료나 공기업, 공공기관 임원 중에서 대구·경북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국회 예산심의 때마다 ‘TK패싱’이라는 소리도 유행가처럼 나온다. 국회가 ‘가덕도 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휴짓조각 취급을 하자 부산 국회의원조차 두고 볼 수 없었던지 “노골적인 지역차별을 중단하라”고 했다. 지난해 봄 이 지역이 코로나19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친여성향 한 교수는 “대구는 독립해 일본으로 가라”는 기막힌 소리를 하기도 했다. 요즘도 나는 이 말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현 정권의 대구·경북에 대한 지역차별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진행돼 ‘정부가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어색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현직 검찰총장 마지막 날 대구검찰청을 방문해 ‘대구가 친정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대구시민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윤 전 총장이 대구를 다녀간 후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최근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그의 얘기를 화제로 삼을 정도다. 내년 대선에서 윤 전 총장이 주도적으로 나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민심이 주류인 것 같다. 윤 전 총장은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면서 이제 자연인 신분이 됐다. 현재 서울 집에 머물며 조용하게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 개입 논란을 피하기 위해 당분간 정치적인 행보를 자제할 것이란 분석이 있지만, 국민의 힘 내부에서는 충청권 의원을 중심으로 ‘윤석열계’ 세력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윤 전 총장은 서울출신이지만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남 공주출신이다.대구·경북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현 정권 출범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돼 박근혜 정권 수사의 책임을 맡은 것을 두고 ‘TK에서 넘어야 할 산’이라는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논리는 내년 대선에서 또다시 박근혜 탄핵을 대선후보 판단의 변수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박근혜 탄핵에는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이미지가 유령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도 대구·경북이 이를 이슈화 할 경우 전국적인 외톨이 신세가 될까 걱정된다. 윤 전 총장이 현 정부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국일가에 대한 수사를 강행했듯이, 검찰이 이전 정부의 권력 비리를 수사한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2021-03-07

희망의 봄

우리 선조들은 우수(雨水)와 경칩(驚蟄)이 지나면 대동강물도 녹는다 하여 이때부터 완연한 봄이 왔다고 믿었다. 절기상 입춘부터 입하전까지를 봄이라 한다. 양력으로는 3월부터 5월까지가 봄이다.기상학적으로는 일 평균 기온이 5도 이상으로 올라가 9일 동안 떨어지지 않으면 5도 이상 올라간 첫날부터 봄이라 한다. 지구 온난화가 확대되면서 우리나라의 봄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제주와 부산, 대구, 울산 등 남부지방은 빠르면 2월 중순부터 봄이 시작된다. 그밖의 지방은 3월초부터, 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 등은 3월말부터 봄이 시작된다.봄철이 되면 심한 일교차와 변덕스런 날씨가 우리를 괴롭힌다. 먼지와 황사가 사방으로 날리고 건조한 날씨 탓에 산불도 자주 발생한다. 환절기성 기후로 감기 환자도 늘어난다. 그러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계절이 주는 생기 발랄함으로 모든 이에게 새로움을 선물한다. 이제 고생이 끝나고 행복한 날이 시작할 것 같은 기분이다. 봄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봄의 이미지는 밝고 긍정적이다.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와 진달래, 산수유 등의 만개 소식에 모두가 귀를 쫑긋하며 마음을 설레인다.코로나19 발생 후 두 번째의 봄이 돌아왔다. 오랫동안 희망의 봄을 기다려왔지만 아직은 희망을 노래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백신접종이 시작됐음에도 환자 발생이 여전하며 코로나 퇴치의 종착지가 언제가 될지 까마득해 보인다.우리나라 봄꽃 축제의 대명사격인 진해군항제가 취소됐다는 소식이다. 올봄도 유명 봄꽃 축제를 구경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 한켠은 우울하다. 그래도 우리에게 봄은 여전히 희망의 계절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07

봄, 새롭게 깨어나라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춘삼월, 이제 완연한 봄이다. 경칩(驚蟄)도 지났다. 동면하던 동물들도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하는 음력 정월-인월(寅月)은 만물이 생동하는 깨어남의 절후이다. 흔히 경칩에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고 말을 한다. 어디 동면을 하는 동물이 개구리뿐일까. 뱀, 거북 등 양서류와 파충류도 땅속에서 잠자고 박쥐, 고슴도치는 가사상태로 겨울을 나고 곰들도 얕은수면 상태 속에서 겨울잠을 자며 새끼도 낳아기른다.겨울 가뭄에 바짝 마른 개울을 찾았더니 산개구리 몇 마리가 벌써 뛰어다니고 새싹 돋는 풀숲을 헤쳐보면 까만 개구리가 툭 튀어나온다.어저께 비가 내린 탓에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낙엽들을 말리려고 들추어 보니 그 속에 파릇하게 봄을 준비하는 꽃창포의 여린 잎들이 깨어나고 있었고, 여름이면 연보라 꽃을 피우는 비비추도 연두색 새순을 올리고 있었다. 따뜻하게 봄기운 받으라고 모두 긁어내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 어린싹들이 낙엽을 덮고 더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힘을 기르고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이불을 벗긴 것은 아닐까?’하고는 얼른 덮어두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생종인 여러해살이풀이니 그 추위쯤이야 훌훌 이겨내겠지. 깨어나라. 봄이 왔다. 축축한 해묵은 낙엽 속에서 꾸물거릴 때가 아니지않느냐. 개구리도 긴 잠을 깨고 눈 녹은 물이 고여 있는 갯가에서 짝짓기하고 투명한 알들을 낳는데….기계면 언저리에 있는 시골집을 나와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드라이브 스루 나들이를 나섰다. 기계천을 따라올라 한티 터널을 지나고 자호천을 끼고 달리며 창밖을 기웃거려보니 개천에는 겨울 가뭄에 물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아련히 봄기운이 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죽장에서 상옥으로 가는 길의 초입, 입암리의 선바위도 가사천 개울을 보며 봄을 기다리는 듯하고 상옥 마을을 굽이돌아 진달래 꽃망울 보며 고갯마루에 서면 경북수목원도 봄을 맞고 있다. 청하에 들어서면서 기청산식물원에 들리니 빨간 동백과 노란 산수유의 웃음 속에 동강할미꽃이 고개를 살짝 들고 있다. 봄의 기운이다.동물의 겨울잠은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기온의 변화로 주위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고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동물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이다. 그 활력 징후를 보면 각성상태라고 한다. 동면에 들면 몸의 내부상태 즉, 심박동수와 호흡량을 조절하는 호르몬 등이 있기 때문이다.요즘 우리나라 정세를 보면 계절 변화의 우려 속에도 국민은 아직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아니, 배고프고 추웠던 시절을 힘겹게 보낸 것을 모두 잊고 풍요와 자만에 빠져 멋모르고 마신 축배에 너무 빨리 취해버린 듯, 숙취의 잠이다. 그 활력 징후는 어떨까.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듯 우리도 사회적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기이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성경 구절이 와닿는다.경칩 전후, 고로쇠나무에서 얻는 수액은 술독을 푸는 데 좋다고 한다. 한 모금 시원히 마시고 숙취도 풀고 뼈도 굳건히 하여 더 따뜻한 이 봄의 훈기를 느껴보자. 우리 모두 새롭게 깨어나자.

2021-03-07

살구꽃 필 무렵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산골에 살다보니 아침마다 자연스레 창밖의 풍경들을 살피게 된다. 우리 집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풍경 중 으뜸은 큰 살구나무의 늠름한 모습이다. 어제는 살구나무 가지 끝에 물이 차오르고 있음을 살짝 느꼈는데, 오늘 아침에는 붉은 생명의 기운이 완연하였다. 이제 곧 연분홍 살구꽃이 만발할 것이다. 창가에 앉아 나무열전이라는 책을 뒤적거리다 ‘살구나무와 공자의 교육철학’이라는 대목에 눈길이 닿았다. 공자가 자주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하여 학문을 배워 익히는 곳을 ‘행단’(살구나무 뜰)이라 하는데, 지금은 살구나무가 은행나무로 변했다고 한다.지난해 통계자료를 보니 국가별 GDP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로 기록되어 있었다. 작은 국토면적에 부족한 자원, 게다가 분단국가라는 불편한 현실 등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루어 낸 결과이다. 이처럼 놀라운 성장을 견인한 힘은 우리의 우수한 인적자원이며 그 바탕이 교육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높다. 그 까닭은 교육적 성취가 신분상승의 가장 유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산업화로 인하여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전까지 우리는 벼농사 중심의 농업사회였다. 농사를 짓는 집에는 반드시 마구간이 있었으니 농사에 황소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힘센 황소는 농사에 꼭 필요한 존재이면서 가난한 농가의 재산목록 1호이기도 하였다. 집안의 기둥인 장남의 손에 그 소의 고삐를 쥐어주며 대학 진학을 하락하던 농부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래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했다던가.교육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방법을 수정하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교육의 특징은 입시위주의 정답 찾기, 압축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압축적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창의성과 인성이 실종된 이런 방식의 교육은 다변화된 현실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 최근 스포츠계의 ‘학폭’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 현상이나 인명 경시, 성폭력 등의 심각한 문제들이 교육의 현주소와 깊게 맞물려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는 창의력의 발현과 바람직한 인성의 형성을 기대할 수 없다. 창의적인 교육은 공부 방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공자는 수시로 제자들을 야외에서 가르쳤는데, 주로 살구나무 아래였다고 한다.필자가 유년을 보낸 시골마을, 담장을 공유한 바로 옆집에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 마을 곳곳에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유실수가 많았는데, 가지를 꺾거나 심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떨어진 과실을 주워 먹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이웃집 뒤꼍에서 주워 먹었던 달고 찰진 살구 생각에 입안에 군침이 돈다. 열매의 씨방이 개를 죽일 수도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살구, 올해도 어김없이 살구꽃 피는 봄은 오고 꽃샘바람도 매섭게 불어올 것이다.자연의 섭리를 가르치는 교육이 올바른 인성의 형성에 꼭 필요한 것이라 믿는다.

2021-03-07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이환위리(以患爲理)

김학동 예천군수지난해는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로 매우 힘들고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계속된 경기침체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했고,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국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예천군은 군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튼튼한 방역위에 경북의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시켰다.임기 초부터 강조해 온 ‘변화와 도전’이 행정 전반에 녹아들었으며, 사소한 민원도 놓치지 않고 군민의 시선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은 사업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예천 도약을 위한 발전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해이다. 또한 지역에 산재돼 있던 현안들을 속속 해결 하는 등 예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냈다.지난 해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곳은 스포츠 분야이다.아시아육상연맹이 주최하는 2022년 아시아U20육상선수권대회를 군 단위 최초로 유치했다. 이 대회는 아시아 45개국이 22개 종목 선수 및 임원 1천500여명 규모가 참가하며 경제적 파급효과는 수백억 원이 기대된다. 11월 3일에는 대한육상연맹의 육상교육훈련센터를 유치해 연간 16만5천여명의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예천을 방문하게 되고,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올해에도 예천군은 이환위리(以患爲理) 정신으로 ‘변화와 도전’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이환위리는 ‘목표를 향한 길에 예상치 않은 고난이나 장애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한다’라는 뜻으로 코로나19 극복과 함께 군정운영에 고삐를 늦추지 않고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 군민복지와 지역발전을 위해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져 있다.예천군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원도심 활성화이다.신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갔고, 이어서 찾아온 코로나19로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원도심을 되살리기 위해 도시재생뉴딜사업, 전선지중화사업, 공영주차장 조성, 간판개선사업에 속도를 더할 예정이다.도시재생뉴딜사업으로 구(舊) 예천읍행정복지센터를 리모델링해서 역사·문화전시관, 도시재생지원센터, 청년희망키움센터, 시니어아카데미 등의 시설을 배치해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거점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동본리 상설시장에는 공공임대 상가와 공영주차장이 있는 예천한우특화센터를 만들고, 서본리 구 119안전센터 부지에는 건물을 신축해 장난감도서관, 다함께돌봄센터, 작은도서관 등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복합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지난해 연말에 착공한 전선지중화사업과 주차장 확보 그리고 간판개선 사업으로 원도심을 쾌적하고 편리한 공간으로 만들어 상가 고객과 방문객을 늘려간다면 원도심이 다시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한다.도청이전과 통합신공항 이전시대를 맞아 경북의 중심도시로 우뚝 성장할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예천군은 역사· 문화·예술 분야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박서보 화백 미술관 건립이다. 지난해 8월 28일 미술관 건립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었고, 올해 1월 14일 작품기증 협약과 함께 공증까지 완료했다. 단색추상화의 거장인 박서보 화백의 작품과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축물이 만나 미술관이 탄생한다면 경북 북부지역 관광의 대표적인거점이 될 것이다.예천군은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시련 앞에서 더욱 강인해지는 예천 정신으로 이겨내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공동체, 예술과 문화가 마음껏 융성할 수 있는 예천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1-03-07

선비들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관동팔경을 돌아보는 것은 선비들의 버킷리스트였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 만 19세가 되면 짐을 꾸려서 강원도로 향했다. 젊어서 못 떠나면 40대 중반의 문인이 되어 길을 나서기도 했고, 그때도 못 떠나면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구경을 했다고 한다. 그 길에 나도 서 보았다.관동이란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큰 고개를 넘어 여행하는 선비들이 챙겨 갔던 것은 해시계와 나침반과 작은 지도였다. 그리고 멋진 경치를 보고 그림과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내야 하기에 여행용 문방구류도 필수였다. 한양에서도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여행길이라 아주 작게 만든 벼루와 먹과 붓으로 무게를 줄이고 짐은 되도록 가벼이 가져갔을 것이다. 지금 나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걸어서가 아닌 선비들이 천리마라고 깜짝 놀랄 자동차를 타고 팔경 중 하나인 울진에 있는 망양정으로 향했다.팔경을 한반도 지도를 놓고 보면 위에서부터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는 북한에 있다. 그 아래에 고성의 청간정(淸澗亭)은 둘째가 근무한 부대가 고성에 있어서 면회 시간에 맞추느라 들렀다. 조선 선비들도 금강산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 아래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는 수학여행으로 가 보았다.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은 가까워 몇 번 다니러 갔지만, 그곳에서 가까운 망양정은 이번이 초행길이다.강원도로 가는 국도에서 내려서니 왕피천을 따라가라고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한다. 입장료도 없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언덕을 200m쯤 오르니 날아갈 듯한 누각이 나타났다. 왕피천이 동해를 만나 강의 이름을 반납하고 태평양의 품에 안기는 곳에 위치한 망양정이다. 관동팔경 중에 최고의 경치라 칭찬을 받을만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정자의 기둥은 풍경을 품은 액자의 프레임이다. 옛사람들은 그 안에 산과 강과 바다를 함께 넣어 걸어놓고 즐겼다. 품이 아주 넓었다. 그 품에 앉아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한껏 들이켰다. 어디선가 풍경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바람 소리길’이 나왔다. 망양정에서 울진대종이 매달린 종루까지 가는 길에 대나무숲 사이로 풍경을 문처럼 매달아 놓아 바람이 지날 때마다 협주가 시작된다. 댕그렁댕그렁, 사그락사그락. 천천히 걸으며 힐링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계단에 앉아 소리에 마음을 기울였다.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관동팔경을 하나하나 설명해놓은 입간판이 있다. 선비들의 그림으로 예전 풍경을 보여주고 바로 옆에 현재의 사진으로 이렇게 변했어요 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덟 곳 중에 북한에 있어서 가 보지 못한 두 곳의 풍경이 보지 못해서인지 더 절경으로 보여 통일이 되면 꼭 가야겠다고 내 버킷리스트에 저장했다.이렇게 경치가 좋아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 이유는 여기가 송강 정철이 노래했던 그 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는 평해현에 있던 것을 울진 현령이 거긴 월송정이 있으니 하나만 나눠달라 철종에게 읍소해서 옮긴 것이라 한다.동해안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망양휴게소가 나온다. 동해안의 휴게소는 음식 맛집이기보다 대부분 뷰 맛집이다. 특히 망양휴게소는 바다로 통창을 내놔서 바다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전망대도 있어서 그곳에 망원경으로 더 먼 곳의 수평선을 볼 수도 있다. 이 자리가 송강 정철이 바라보았던 관동팔경이라는 설이 있어서 지나는 길에 꼭 들러 정철이 되어 본다.산을 즐기고 기록한 유산록(遊山錄)은 선비들의 여행 후기였다. 70여 편의 유산록을 참고하여 국립춘천박물관은 정선과 김홍도를 비롯한 여러 선비들의 그림 위에 상상을 덧입혀 관동팔경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음악과 어우러진 풍경이 살아 움직였다. 그 옆에 슬그머니 내 유산록 한 구절을 내려놓는다. /김순희(수필가)

2021-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