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코로나 개강

3월 하면 떠오르는 것은 뭣보다 3·1절. 그러고 나면 그 다음날 운동장에서 ‘조회’하던 옛날 광경. 그 다음엔 봄이 왔는데도 늘 추웠었다는 기억. 그때는 3월에도 손발이 시렸다. 그러니까 3월 하면 아직도 ‘맹렬하게’ 남아 있는 추위를 뚫고 학교에 가서 조회를 하고 새 교실에서 새 책을 받고 새 친구들과 왁자지껄, 우당탕탕 놀아제껴야 제 맛이었다. 대학이라서 수업이 없는 날도 있다. 월요일 하고 수요일에 수업이 있는 과목에 3.·1절이 월요일 차례가 되었다. 화요일을 건너뛰어 수요일, 3월 3일이 첫 개강날이었다.‘어김없이’ 며칠 전에는 봄을 시샘하는 늦겨울비가 제법 내려 3월을 맞을 준비는 다 된 것도 같았는데, 캠퍼스에 학생들이 ‘없다’. 이번 학기도 지난 학기, 지지난 학기처럼 ‘줌(zoom)’으로 수업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겨울방학중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한산한 캠퍼스를 가로질러 연구실 있는 건물로 향한다.코로나가 창궐하면서 건물들은 죄다 ‘자물쇠’가 채워졌다. 신분증, 전자 ID카드가 없으면 문을 열 수 없다. 바로 옆에 시스템 관리팀을 부를 수 있는 벨이 있지만 ‘규정’이라서 절대로 열어줄 수 없단다. 신분증을 잊어버린 날은 다른 사람이 드나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학생들과 수업을 하려면 먼저 ‘줌’ 어플로 ‘새 회의’라는 것을 개설하고, 그러면 생성되는 회의 ‘주소’를 학생들에게 문자로 전송해 주어야 한다. 수업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이 주소를 따라 단체 ‘회의실’에 입장하게 되고, 그러면 이것이 인터넷 수업이 된다.겨울 내내 연구실을 정리한다, 한다 해놓고 그대로 3월을 맞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요즘 학생들은 ‘줌’으로 자기 사는 방의 풍경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는데, 나 또한 지금 내 얼굴 뒤에 ‘가상배경’을 깔아놓고 수업을 해야 할 판이다.이번 학기부터는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아 미리미리 출석부도 출력해 놓고 강의계획서도 꺼내서 첫 개강 수업 준비도 하고 일찌감치 ‘줌’ 수업 주소도 학생들에게 전송한다.학생들 명부를 보는데 학번이 ‘2020’인 학생들이 많다. 작년 코로나 ‘개시’ 시절에 대학에 들어와 올해로서 2년째 ‘줌’ 수업으로 공부하고 캠퍼스는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찾아오는 ‘운 나쁜’ 친구들이다. 더 잘, 더 자세히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앞으로 코로나가 물러가도 대학이 이런 메커니즘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인다.결혼식, 장례식은 확실히 그럴 것 같은데, 과연 일상은? 간단치 않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져온 충격이 참으로 큰 것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3-04

파렴치

한자어가 우리말로 국어화한 단어가 간혹 있다. 숭늉은 숙냉(熟冷)에서 나왔고 성냥은 석류황(石硫黃)에서 나왔다. 얌체는 염치(廉恥)라는 한자어에서 출발했다.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다.이 염치가 다시 얌치로 어형이 바뀐다. 어감의 차이는 있으나 의미는 별 변동이 없다. 그러나 얌치라는 말이 얌체로 바뀌면서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의미도 달라졌다.말이란 세월과 시대 흐름 등에 따라 변형을 거듭하는 경우가 많다. 염치는 파렴치라는 말을 낳는데 염치를 부숴버렸다는 뜻이니 염치가 전혀없는 무례한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부끄러워할 치(恥)자는 귀(耳)와 마음(心)으로 이뤄진 글자다. 남의 비난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해석한다.2012년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이란 말이 있다.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 홀로 깨어 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 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당시 우리 사회에 번진 지도층의 혼탁함을 비판했던 표현이다.한국토지주택공사 일부 직원이 신도시 후보지에 100억원의 토지를 매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투기 의혹과 함께 후폭풍이 심각하다. 집값 폭등에 가슴앓이를 했던 서민에겐 온몸의 힘이 빠지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정부의 집값 안정책이 불신받게 될 처지니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을 규명을 엄명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았다는 비난도 잇따랐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도 나왔다.진상규명이 제대로 안 되면 무주택 서민의 분노를 잠재우기가 어려울 것 같다. 국민을 기만한 참으로 파렴치한 일이 벌어졌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3-04

윤석열의 결심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총장임기 만료를 4개월 남겨두고 사표를 던진 윤석열 검찰총장 얘기다.집권여당의 검찰개혁을 빙자한 검찰장악 노력에 제동을 걸었던 윤 총장이 마침내 정치를 시작할 결심이 선 모양이다. 집권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움직임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직후 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행보를 시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4일 오전 대검찰청사앞 현관에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오늘 총장직을 사직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은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말해 정치행보에 본격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이에 앞서 전날 보수세력의 본산인 대구를 찾은 윤 총장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사회적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를 막을 수 없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 뒤 중수청법을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법)이라는 4자성어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윤 총장은 검찰의 수사권이 폐지되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후퇴하며,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윤 총장의 전격 사퇴행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있다. 그동안 “정치를 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윤 총장이 돌연 대구고검을 방문해 중수청 설립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국민’과 ‘헌법’을 명분으로 권력에 대항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사퇴카드를 던졌으니 대선경선 구도에 파란이 예상된다. 윤 총장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결과에서 15.5%의 지지율로 이재명 경기도지사(23.6%)에 이어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에 정계 진출의 뜻을 굳힌 만큼 추후 지지율이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이제 관심사는 윤 총장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야권의 대권후보군에 합류할 것이냐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로는 4·7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총장이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실상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권실세의 비리를 폭로하는 등의 활약으로 자연스럽게 국민의힘 진영에 합류하는 방안이다. 부산표심을 겨냥해 내놓은 가덕도 특별법은 성추문으로 물러난 전임 오거돈 시장 집안이 가덕도 땅을 사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별무효과가 됐고, 서울시장 선거도 신도시 개발정보를 빼돌린 LH직원들의 땅투기 정황이 밝혀지면서 야권에 유리한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판이 왠지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급박하게 돌아간다. 대권후보 부재로 곤궁한 처지였던 야권 입장에서 윤석열의 결심은 반가운 흥행호재가 됐다.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는 야권 지지자들에게도 이제 대선향방이 흥미진진해졌을 듯 싶다.

2021-03-04

자원투자의 개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포스코가 3년 전 인수한 아르헨티나 리튬 호수가 리튬 가격 급등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이다.2018년 3천100억 원에 인수한 호수에 매장된 리튬을 생산해 현 시세를 적용해 판매시 누적 매출액이 35조원에 달하며, 이는 중국 탄산리튬 현물 가격이 올해 급등한 덕분이라고 한다.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리튬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포스코는 지난해 말 호수의 리튬 매장량이 인수 당시 추산한 220만t보다 6배 늘어난 1천350만t임을 확인했고 이는 전기차 약 3억7천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자원외교에서 가장 미래세대 전략적 측면에서 큰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리튬 확보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로 포스코와 함께 남미 에콰도르의 소금호수 산을 구매하며 2천억 원을 지출하였고, 이는 당시에는 여론이 좋지 않았고, 기업비리, 세금 낭비라는 주장이었지만, 결국 포스코가 산 소금호수는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2011년도부터 자원외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그에 대해 준비하고 자원외교를 펼쳐 자원을 확보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먼 앞을 내다본 혜안이라고 본다.최근 미·중의 무역전쟁이 가속화 되면서 자원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자국 내 희토류 처리 가공시설 건설 사업에 300억원 넘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다고 한다. 처리 가공시설 완공 시, 미국의 희토류 생산량은 전세계 수요의 25%를 책임질 것으로 나타났다.향후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군사 장비와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 첨단기술 부품의 핵심 재료인 희토류 최대 생산국인 중국의 수출 제한에 대비해 자급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자원 확보에 필요한 외교정책, 기술, 자금지원 등과 함께 인재양성도 중요해 보인다.여러 가지 다양한 공학분야 중에서도 묵묵히 ‘에너지자원 공학’을 공부하는 공학도들이 있다. 이들이 일선에서 향후 자원 확보를 위해 뛰고 있는 인재들이다.필자는 대학에서 산업경영공학 이전에 에너지자원공학을 공부한 경험이 있다. 사우디, 인도네시아 등 세계전역을 돌면서 자원 확보를 위해 애쓰는 엔지니어 동문들을 보면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있다. 사실상 자원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활에 필수품인 전기공급, 자동차도 도로를 달릴 수 없고, 공장 등이 가동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필수품이 된 핸드폰도 만들 수 없다.포스코 자원투자의 개가를 보면서 에너지자원 기술에 대한 학문적 뒷받침과 인재양성, 연구투자, 기술투자들이 절실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자원은 유한한 것이다. 미래는 자원전쟁과 자원외교의 장이 될 것이다.

2021-03-04

경칩(驚蟄)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놀란다는 경칩이다. 양력으로는 삼월 초순이니 실지로 봄이 시작되는 절기다. 흔히들 개구리가 놀라서 잠을 깨고 나온다고 하는데 개구리는 물론 벌레가 아니다. 벌레들은 대부분 알이나 번데기로 월동을 하고 애벌레나 성충으로 겨울잠을 자는 것은 장수풍뎅이, 무당벌레, 노린재 등이다. 24절기가 처음 만들어진 중국의 화북지방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그런 벌레들은 물론 개구리가 나오기에도 이른 때이다.벌레든 개구리든 놀란다는 표현이 좀 의아하다. 봄기운이 돌아서 얼었던 땅이 풀리면 동면하던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잠에서 깬다고 해야 더 적절하지 않겠는가. 놀라서 잠을 깬다는 건 갑자기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나 어울리는 표현이다. 봄비의 차가움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얼었던 땅을 녹이는 봄비라면 새삼스럽게 차가움을 느낄 정도는 아닐 터이다. 물리적 충격 때문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놀라움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총욕약경(寵辱若驚)이란 말이 있다.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로, 사랑(寵)을 받든 수치(辱)를 당하든 놀란(驚)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 얼핏 들어서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그보다는 총애를 받든 수모를 당하든 담담하고 초연하라는 말이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런 일에 놀라기까지 한다는 것은 어딘가 군자답지 못하고 경망스러워 보일 터이다. 도덕경의 해설서에는 ‘경계하라’는 의미로 풀고 있지만 왠지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명상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알아차림’의 상태를 가장 바람직한 경지로 본다. ‘마음 챙김’이라는 말로도 표현되는 알아차림은 시시각각 자신과 세상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지각한다는 뜻이다. 둔감하게 지나치거나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오해 따위로 사물이나 현상을 여실하게 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온갖 괴로움과 불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살아 숨 쉬는 것에서부터 생각, 감정, 오감으로 부딪치는 모든 것에 각성의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함부로 판단하거나 추측하지 말고 과장이나 흥분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명한 진리에 도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말도 있지만, 세상만사에 놀란 것 같은(若驚)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가장 천진무구하고 생기로운 삶의 모습일 것이다. 미세한 봄의 기미에도 놀란 것 같이 하고, 보잘 것 없는 풀꽃 하나에도 경이로움을 갖는 것에 생명의 참뜻이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그저 사소하고 미미한 것이 아니라 우주와 생명의 본질과 에너지에 닿아있는 것이기 때문에.벌레와 개구리뿐 아니라 나무와 풀도 동면에서 깨어나는 계절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을 시시각각 놀랍게 느끼며 살 일이다. 그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고 소통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실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실하기 마련이다. 작은 것에도 불충한 사람에게 어찌 큰 것을 맡길 수가 있으랴. 불통과 비리와 파렴치가 판을 치는 정치판을 바꾸는 일도 국민 각자의 사소한 자각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2021-03-04

3.1운동 102주년의 의미와 독도! 그리고…

길종성(사)영토지킴이독도사랑회 회장·독도홍보관장·2004년 건국 최초 울릉도~독도 수영종단 추진위원장매년 이맘 때가 되면 일본정부와 극우단체들은 대한민국의 독도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날조된 발언들로 대한국민을 자극하고 있다.특히 일본은 2월22일을 국적불명의 보지도 듣지도 못한 엉터리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활동하고 3.1절이 되면 일본정부와 극우세력들은 반성은커녕 과거사를 왜곡하며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역사 왜곡형태에 일본정부가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심지어 일본 전범기업들은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램지어교수를 매수해 엉터리 역사논문을 지원하고 램지어는 일본기업의 알량한 지원금으로 왜곡된 논문으로 일제강점기 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위안부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는 일에 동조하고 있다.더욱이 이를 학문적 견해라며 방조하는 하버드대학 총장의 행태는 학문적 자유라는 장막 뒤에 숨어 교육자적 양심을 저버린 행태라 볼 수 있다. 필자는 일본의 행태도 행태지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처신에 일침을 가하고자 한다.정치권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침탈 행태,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문제에 제대로 항의하고 앞장서는 의원들이 과연 얼마나 되나?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더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자들이 할머니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감싸고 보호하는 행태를 볼 때 일본은 뭐라 하겠는가? 정말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필자는 19년째 독도수호 활동을 하면서 황당한 일들을 많이 겪는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일부 생색내기와 인기 영합주의식 활동에만 치중하려는 정치권이 정말 답답하고 한심하다.위안부 문제를 위해 활동한다는 정의기억연대에는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해 왔던 정부지만 국가 사무를 대신하는 독도 단체들에 대해선 예산이 없다며 등한시하는걸 보면 독도수호가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체감한다.이제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도 변해야 한다. 정부는 일본과의 마찰, 외교적 문제 등을 이유로 독도문제에 미온적이라면 국가사무를 대신해 활동하는 독도단체들에 대해 선별적 지원을 해야 한다.정부는 독도단체들이 국가를 대신해 강력한 대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사죄와 반성을 통한 진일보한 생각을 해야 함에도 해를 거듭할수록 독도침탈 야욕과 역사 왜곡에 혈안이 되어 있다.정부는 일본과의 과거사문제에 따질 것은 따지고 잘못된 부분은 강력히 요구하며 미래세대에 대한 발전적 문제와 아시아 동반 국가로서 함께 가야 할 일이라면 양날의 칼처럼 대응하면 될 것이다.3.1운동 102주년을 맞아 정부와 정치권은 더는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독도단체들에 대해 국민적 행동과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과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2021-03-04

동파육(東坡肉)과 성계육(成桂肉)

탄탄 스님불교중앙박물관 관장용인대 객원교수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근접한 동남아조차 여행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여행이란 호기심을 충족하고, 여행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간혹 여행국의 음식을 이해하는 것도 인문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중국의 항저우를 가면 당송 팔대가이며 북송의 대문장가인 소식(1037~1101)의 호(號)를 붙인 ‘동파육(東坡肉)’이라는 이름난 요리가 있다. 소동파가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황저우의 단련부사로 좌천되었을 때 그가 개발하여 유명해진 음식이다.손수 음식을 해 먹으며 궁핍하게 지내던 그에게 어느 날 오랜 친구 마정경이 찾아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에 정신이 팔려 그를 대접하려 불 위에 올려놓은 돼지고기를 깜빡 잊고 있었다. 나중에 졸아 버린 돼지고기가 오히려 더 맛있게 변해 일품요리가 되었다는 것이다.동파는 돼지고기를 예찬하는 ‘식저육(食猪肉)’이라는 시를 남긴다. 서호의 둑이 무너져 범람할 위험에 처하자 조정에 상소하여 서호를 재정비 하였는데, 이때 항저우의 백성들이 감사의 표시로 돼지고기를 바쳤다. 동파는 자신이 개발한 방식으로 정성껏 요리하여 백성들과 나누어 먹으니 모두들 그 맛에 탄복하였으며, 이후 그의 호인 ‘동파’를 붙인 ‘동파육’이라는 항저우의 유명한 향토음식이 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항저우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돼지고기를 오래도록 졸여 즐긴 요리가 ‘동파육’의 원형이다.식저육이란 시 후반부에 요리법까지 일러준 것을 보면 동파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난 듯하다. 어찌 되었거나 가진 자들이 즐기지 않고 가난한 이들은 요리를 할 줄 몰랐던 값싸고 맛있는 돼지고기를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그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한 그의 애민 정신이 돋보인다.우리 나라에서도 돼지고기 요리에 인명을 붙인 ‘성계육(成桂肉)’이 있다. 이는 개성의 무당들에 의하여 전국 각지에 전파된 것이다. 당제(堂祭)에 올린 돼지고기를 음복할 때 칼로 마구잡이 난도질하고, 혹은 머리를 내치기도 하며, 배를 가르고 살점을 뭉텅뭉텅 썰어 고기를 마구 씹어 먹는다.이 험한 표정은 이성계에 대한 복수를 하는 듯하다. 이는 최영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무당들이 장군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성계육’을 씹는 것이다. 민중은 원한을 삭이며 오래도록 성계육을 씹었다고 전해진다.이렇게 ‘동파육’과 ‘성계육’은 감사와 복수의 뜻을 담고 있으며 그 의미는 다르지만, 돼지 고기요리에 인명을 붙인 스토리를 품은 텔링의 음식이다.

2021-03-03

바람의 手채화

소소리바람이 옷깃을 차갑게 파고들더니 어느새 샛바람(春風)이 불어온다. 샛바람이 가지 끝을 간질이면 꽃이 눈을 비비며 깨어난다. 꽃이 피면 이를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이어 산과 들에 봄기운이 완연하면 명지바람이 불어와 온누리를 따뜻하게 쓰다듬는다.봄바람은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의 마음도 깨운다. 하늘 맑고 바람 좋은 날, 우리네 아낙은 겨우내 때 묻은 이불 홑청을 뜯고 두꺼운 옷을 꺼냈다. 우물가에서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리고 치대고 차박차박 발로 밟았다. 때가 빠지면 빨래를 헹궈 두 손으로 쥐어짰다. 물기 빠진 빨래를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었다. 바지랑대를 높이 치켜세우면 높다란 빨랫줄에서 빨래가 휘날렸다. 그러고 나면 겨우내 찌들었던 마음까지 상쾌해졌다.가는바람: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간들바람: 부드럽고 간드러지게 부는 바람.갈바람: 가을바람.강바람: 비는 내리지 아니하고 심하게 부는 바람.강쇠바람: 첫가을 부는 동풍.갯바람: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건들바람: 초가을 선들선들 부는 바람.고추바람: 살을 에듯 매섭게 부는 차가운 바람.꽃바람: 꽃이 필 무렵 부는 봄바람.꽃샘바람: 이른 봄, 꽃이 필 무렵에 부는 쌀쌀한 바람.높새바람: 동북풍을 달리 이르는 말.도리깨바람: 도리깨질을 할 때 일어나는 바람.꽁무니바람 :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마파람: 뱃사람들의 은어로, 남풍(南風)을 이르는 말.명지바람: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내기바람: 산비탈을 따라 세게 불어 내리는 온도가 높거나 건조한 바람.높새바람: 동북풍을 달리 이르는 말.박초바람: 배를 빨리 달리게 하는 바람.벼락바람: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서늘바람: 첫가을에 부는 서늘한 바람.서릿바람: 서리가 내린 아침에 부는 쌀쌀한 바람.선들바람: 가볍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손돌바람: 음력 10월 20일께,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의 원혼이 몰고 온다는 매서운 바람.소슬바람: 소나무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솔솔바람: 부드럽고 가볍게 계속 부는 바람.하늬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황소바람: 좁은 틈으로 세게 불어 드는 바람.흘레바람: 비를 몰아오는 바람.가을이 오면 하늬바람이 불어왔다. ‘하늬’는 하늘바람으로 갈바람 또는 가을바람이라고도 한다. 옛말로는 가슬, 가실, 秋風인데, 뱃사람들은 이를 가수알바람이라고 불렀다. 먼 하늘에서 솔솔 불어오기에 실바람이며 선선하기에 선들바람이다. 서리가 내리면 서릿바람이 불고 이어서 손돌바람이 분다. 겨울이 오면 문풍지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부는 바람만 바람이 아니다. 가마를 타고 가면서 쐬는 바람은 가맛바람, 신이 나서 엉덩이를 흔들며 걸으면 궁둥잇바람, 여자가 극성스럽게 설치면 치맛바람, 신이 나면 신바람, 춤에 빠지면 춤바람, 쓸데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헛바람이다. 그뿐인가. 산과 들로 놀러 가면 소풍이고 투기하러 떼를 지어 몰려가면 광풍이다. 몽고풍, 왜색풍, 복고풍, 바람을 닮은 현상도 바람이다.바람의 이름에는 우리네 삶의 정서가 배어 있다. 바람에 따라 삶도 달라졌다. 재를 넘어 문틈으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을 황소바람이라고 부른다. 모내기할 즈음 부는 아침의 동풍과 저녁의 북서풍을 피죽바람이라고 하는데, 이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들어 밥은커녕 피죽도 못 먹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음력 10월 20일께 불어오는 몹시 매서운 바람은 손돌바람으로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의 원혼이 몰고 온다고 믿었다.바람은 때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 이름이 다르다. 덴바람, 댑바람, 도래바람, 돌개바람, 회오리바람, 된새바람, 들바람, 마칼바람, 맞바람, 몽고바람, 벼락바람, 갈마바람, 용숫바람, 짠바람, 흔들바람, 산들바람, 흙바람, 갑작바람, 날파람, 꽃바람, 새벽바람, 노대바람, 왕바람, 문바람, 윗바람, 싹쓸바람(태풍), 틈새바람….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은 구석구석 가리지 않고 쏘다니며 제 할 일을 한다. 겨우내 땅속에서 잠자던 화신花神을 깨우고 가지 끝 꽃눈을 간질인다. 심술이 나면 꽃샘바람을 불어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명지바람으로 쓰다듬는다. 그러다 먹구름을 몰고 우르르 몰려와 나무의 멱살을 흔들고 지붕을 날려버린다. 때로는 몸을 비틀어 하늘로 용솟음친다.바람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바람이 없다면 세상은 활기를 잃고 적막해진다. 바람이 아니면, 누가 씨앗을 퍼트려 산과 들을 푸르게 할 것이며 누가 청둥오리를 높이 밀어올려 히말라야 산맥을 넘게 할 것인가. 누가 사막을 쓰다듬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소녀의 머리칼을 누가 휘날려 소년의 숫기를 깨울까.보이지 않는 손, 바람은 산들바다를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람이 그린 手채화이다. /김이랑 문학평론가

2021-03-03

우리 새싹들에게

강길수수필가우리 두 새싹, 태극이와 광복아!너희들 만난 지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또 보고 싶구나. 너희 아빠들 자랄 때 보다 우리 새싹들이 더 보고 싶으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할아비와 할미에겐, 너희들이 가장 소중하고 큰 행복이란다. 지금은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모를 혼돈시대다. 하여, 우리 새싹들에게 무언가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될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련다.일주일만 있으면 3월이 되는구나. 봄이 온다는 뜻이지. 입춘과 우수도 지났으니 지금도 봄일 테지만, 경험상 3월부터 봄이라 하고 싶다. 할아비 유년기의 봄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다. 바로 새싹이란다. 고향 산골에 3월이 오면, 앞산 뒷산의 눈이 녹아 개울마다 도랑마다 맑은 물이 졸졸졸 흘렀지. 우리 집 앞 양지바른 밭둑 이곳저곳엔, 연둣빛 새싹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고…. 어린 할아비는 매일같이 새싹들을 만지기도 하며 노는 게 마냥 즐거웠단다.오늘, 할아비는 너희 할미와 텃밭에 갔었다, 지난 늦가을과 초겨울에 심은 양파와 마늘이 궁금해서였지. 전에 안 보이던 마늘 새싹이, 메말라 보이는 이랑에 다문다문 너희들 손가락처럼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니겠니. 할미는, “와! 마늘 새싹 났구나! 아이고, 귀여운 것들….” 하며 뛸 듯이 좋아하였다. 할아비는 연두색 마늘 새싹을 보는 순간, 손으로 만져보며 꼭 너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옛날, 고향에서 좋아했던 봄 새싹의 기억이 덩달아 되살아나더구나. 텃밭 가꾸기를 처음 시작할 때, 비록 적게 거두더라도 할아비 유년 시절 보던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단다. 즉, 비닐과 농약은 쓰지 말고 해롭지 않은 거름만 쓰자고 말이다. 심은 씨를 하늘이 길러주는 대로 받아먹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지. 사람들은 이런 할아비의 생각을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땅이 작을수록 농약과 비료, 비닐도 써서 수확량을 늘려야지 배부른 소리’라고 말이다. 하긴 텃밭이 크고 살림살이가 밭에 매여 있다면, 할아비도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우리 새싹들아!무엇보다, 너희들에게 유해물질 없는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먹이자는 마음이 앞섰단다. 올여름 네 돌을 맞을 태극이와, 올봄 두 돌이 올 광복이가 할아비 할미가 노지재배로 거둔 푸성귀를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 물론 잘 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태계를 희생하며 이룩한 지구촌의 현대 과학 문명이, 되레 생명이 살기 어려운 생태계를 만든다는 자각도 뒤따랐단다. 오늘날 점증하는 기후변화는, 푸른 별 지구가 사람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울부짖음이 아니겠니?서구(西歐)에서 부는 웰빙(well bing), 로하스(LOHAS), 슬로시티(slow city) 같은 운동은 지구의 경고에 대한 사람의 응답이라 여긴단다. 할아비가 어린 날 경험한 우리 농촌은 그야말로 친 생태적 삶을 살았지. 사람과 가축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기에, 하늘이 주는 자연 먹을거리를 얻어먹으며 소박하게 살았으니까 말이다. 유불선(儒佛仙) 사상이 어우러진 전통 우리 사회는 그 자체가 웰빙이요, 로하스며, 슬로시티였단다. 불행하게도, 지구촌 생태 운동은 아직 역부족으로 보이는구나.할아빈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기후변화란 원죄’를 너희들에게 물려주게 된 기성세대로서, 그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지구촌이 작년 초부터 겪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병 대유행은 그 벌이 아닐까 싶어 겁이 난단다. 정치인들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은 안중에도 없이, 편 가르기만 일삼고 있다. 어찌 한 나라의 국민이 내 편만 있고, 내 편만 옳겠니? 나랏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도 퍼줄 생각만 하는구나, 나라 곳간을 제대로 챙기는 정치인과 관료는 안 보인단다. 불안한 나라 앞날을 생각하면, 할아비는 우리 두 새싹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우리 새싹들아!하지만 앞으로 세상이 더 암울해지더라도 너희들은 절망하지 말고, 희망으로 살아내기를 바라고 믿는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역사가 가르쳐 주기 때문이란다. 애국가에도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 새싹들과 우리나라와 푸른 지구를 꼭 지켜주고 도와줄 테니까. 봄, 여름, 가을을 다 품은 새싹처럼….

2021-03-03

문제는 숫자보다 본질에 있다

장규열한동대 교수올 것이 왔다. 오래전부터 예견하였던 인구절벽이 이제는 손에 잡힌다. 새 학기 신입생을 채워야 하는 대학들은 이미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하였다. 전국에서 무려 175개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여 신입생 유치에 비상등이 켜졌다. 추가모집에도 미달이 속출한다는 게 아닌가. 비수도권 지방소재 대학들에게는 위기가 절벽으로 느껴질 만큼 가파르다. 정원을 채우는 일이 다급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으로 살펴야 할 문제는 혹 없을까. 우리 대학들은 거의 같지 않은가. 이름만 달랐을 뿐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트렌드와 유행을 좇아 서로 흉내만 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교육부의 지원에 기대고 지침을 따르느라 저마다 특별함을 혹 잊은 것은 아닐까. 대학뿐일까.지역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균형발전은 말뿐인지 온 나라는 수도권 소식에만 집중하고 있다. 인구위기를 가늠하는 인구소멸지수가 있다. 20세에서 39세 사이 여성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비율을 의미한다. 지수가 0.5 이하면 소멸위험, 0.2 이하면 소멸고위험으로 읽는다. 경북에는 23개 시군 가운데 군위, 의성, 청송, 영양, 봉화, 청도, 영덕 등 7개 지역이 소멸고위험, 그 밖에 12개 지역이 소멸위험으로 구분되었다. 포항도 0.63으로 주의단계에 처하여, 현재 진행중인 ‘포항시인구 51만회복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수도권집중 현상과 인구감소 상황이 가져온 전국적인 문제이겠지만, 지역은 스스로 문제의 근원을 살펴야 한다. 중앙정부 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라오느라 지역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부분도 혹 있지 않을까.대학도 지역도 본질을 회복하여야 한다. 대학은 대학마다 특성을 찾아내어 다른 대학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전공영역에서 남들과 다른 특화된 부분을 찾아야 하며, 교육철학과 교과과정 등에서도 분명히 다른 지향점과 접근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아무리 멀어도 독특한 무엇을 가진 대학에는 학생들이 찾아오게 된다. 구미 각국의 대학들이 모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모습에서 배워야 한다. 전공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 담아 백화점식 운영을 하는 특색없는 비차별적 대학경영은 인구감소와 함께 그 운명을 다하였다.지역은 어떨까. 인구숫자도 급하지만, 우리 지역이 매력을 가지지 못하는 까닭부터 찾아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떠나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며 삶을 영위하게 할 것인지 궁리하여야 한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색있는 문화가 보이고 꿈을 실어 매진할 수 있는 독특하고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떠나지 말라고 애원할 게 아니라 떠나지 않을 까닭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지역을 벗어나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친지들이 고향을 찾아 돌아올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남들에게 다 있는 무엇으로 할 게 아니라, 다른 곳에는 없는 매력을 구사해야 한다. 숫자보다 본질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도 산다.

2021-03-03

터무니없는 백신 가짜뉴스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첫 접종이 이뤄진 이후부터 백신접종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극성이다.대표적인 게 치매환자가 맞으면 신경계에 이상반응이 나타나 치매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인 백신이 단백질 분자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DNA를 조작하기 때문에 백신을 맞으면 신경계에 이상반응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까지 덧붙인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전제부터 틀린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의 염기서열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중요한 염기서열, 스파이크 단백질에 해당하는 염기서열을 끼워넣은 것이며, 단백질 분자 운운하는 것은 전혀 관련이 없다.또 “코로나 백신안에는 DNA변경장치가 들어있다.” “백신을 맞으면 DNA가 변형돼 인간이 아닌 기괴한 다른 종이 된다.” “백신접종을 핑계로 국민들에게 전자칩을 심으려 한다.” 등 온갖 음모론으로 가득찬 가짜뉴스가 SNS로 무차별로 퍼지고 있다.의학적으로 주입된 백신의 유전물질은 분해되기 때문에 사람의 유전 정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전자칩은 동물한테 하는 게 있지만 인식표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어쨌든 이같은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자 반복되는 가짜뉴스를 사실로 믿고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는 “언론이 공포감을 조성해 백신을 맞게 세뇌시킨다” “백신을 거부해야 한다”는 댓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서 70%이상의 접종률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백신 가짜뉴스는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중대범죄에 해당한다. 가짜뉴스에 현혹돼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03

교육 지우기 2 - 온라인 수업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어디서 노란 박수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었어요. 오랜만에 연 창문 사이로 노란 바람이 불어와 저를 데리고 갔어요. 바람이 멈춘 곳에서 봤어요, 봄을 안내하는 산수유꽃을요!”고등학교 2학년이 된 제자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온 것은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날이다. 백신 접종 소식보다 필자는 제자의 봄 편지가 훨씬 더 반가웠다. 정치 좀비들에게 감염된 괴물 이야기가 아니면 이야깃거리가 없는 나라에서 제자의 편지는 산소 같은 선물이었다.“선생님, 산수유의 노란 응원에 답하기라도 하듯 개나리도 노란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필자는 몇 달째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시를 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시는 멀리 달아났다. 시를 잡기 위해 허둥대는 마음은 조급증만 낳았다. 조급증은 억지를 불러왔고, 억지는 결국 세상을 향한 필자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그래서 필자는 봄이 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제자의 편지를 읽고서야 필자도 산수유의 노란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봄을 들인 제자의 넉넉한 마음이 고마웠다.하지만 고마움은 곧 미안함으로 변했다. 제자의 절규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절규하는 학생이 문자를 보낸 제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학생의 절규 소리가 마치 진혼곡처럼 들린다. 억지 교사들은 그 소리에 귀를 닫았다.“선생님! 올해 또 온라인 수업한대요. 작년처럼 온라인 수업하면,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 혼자서도 EBS와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게 어떻게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우지도 않은 과제를 하는 게 어떻게 학교 수업이에요? (….)”비록 문자 메시지였지만, 아이의 울분이 느껴졌다. 말줄임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필자는 정확히 알았다. 2020년 3월 17일, 필자는 온라인 수업을 정규 수업 시수로 인정해달라는 민원을 교육부에 냈다. 돌아온 답은 생각해보겠다는 상투적인 말뿐이었다. 그런데 답변이 온 바로 다음 주에 갑자기 온라인 개학을 한다는 뉴스가 특보로 나왔다. 그렇게 시작한 온라인 수업이 1년이 지났다. 2020학년도 온라인 수업은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는 핑계라도 있다. 그럼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2021학년도 온라인 수업은 어떨까? “초중고 원격수업, 올해 쌍방향 수업 확대 전망”이라는 뉴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조금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업의 탈을 쓴 수업 아닌 온라인 수업이 여전히 올해도 진행된다는 것이다.학교에 가지 않는 게 당연함이 된 지금, 학생들은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학생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수업의 주체는 교사와 학생이다. 더 이상 학생 없는 억지 가득한 교사 편의 중심의 온라인 수업은 안 된다. 학생을 학교에서 내모는 온라인 수업 자체를 당장 멈춰야 한다. 아니면 학교에서 학생이 사라지는 비극을 곧 맞게 될 것이다.

2021-03-03

램지어의 위안부 관련 논문은 반드시 철회돼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존 마크 램지어(J.M.Lamseyer)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18세까지 일본에서 자랐고 현재는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이다. 그는 하버드대학 일본 미쓰비시 연구 기금 교수이다.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 시 조선 노동자를 강제 징용시킨 대표적 기업이다. 그의 ‘태평양 전쟁 시의 성 계약’이라는 논문의 골자는 일본 종군 위안부제는 자발적 매춘 행위이며 일본 정부와는 관련 없는 민간의 계약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편파적 망언이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게재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램지어의 이 같은 주장은 종군 위안부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양식 있는 내외의 학자들까지 비판하고 있다. 대구에 생존해 있는 이용수 할머니뿐 아니라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미국의 한국사와 일본사를 전공한 학자들까지 반론을 제기하고, 일본의 학계와 시민 단체들까지 그의 주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버드 대학의 총장은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관했지만 논문에 대한 계속되는 반발 앞에 그 입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급기야 미 하원에서도 램지어의 주장은 보편적인 인권에 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사회과학 논문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할 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램지어는 당시의 지원자와 민간 운영 업자 간 계약서를 통해 자발적 매춘행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종군위안부는 일본 정부나 군 당국과는 무관한 자유 계약이라는 게임이론으로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 하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계약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 증거도 없다. 그의 주장은 일본 관방장관 고노의 1993년 위안부모집에 군 개입을 인정한 담화에도 배치된다. 그는 조선에서의 위안부 계약서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했다. 그는 ‘실수’는 인정했지만 불행히도 논문의 철회의사는 없는 듯하다. 특히 특정이념이나 단체의 입장을 옹호하는 그의 논문은 일종의 정치 선전물이다. 더욱이 미쓰비시 기금을 받고 일본 극우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의 논문은 진실성(integrity)을 상실했다. 그는 일본 간토 대지진 시 조선인 대학살 사건도 조선인의 책임이란 취지의 글을 쓴 적도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그의 주장은 논문으로서 생명이 없다. 서방 선진 자유 국가의 논문은 언제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그의 입장을 옹호 지지하는 학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편향된 이번 논문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사적 이익 목적의 논문은 비판을 통해 폐기되었다. 과거 유신체제를 옹호한 H, G 교수의 입장은 당대뿐 아니라 아직도 법학계의 오점으로 남아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모 대학 토목과 교수의 북한 금강산댐의 서울 수공작전에 대비한 평화댐 건설 프로젝트는 사실을 부풀린 허위임이 드러나 폐기된 적도 있다. 공익과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학자의 논문은 반드시 검증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일본 극우 입장을 대변하고 아시아 여성 인권을 유린한 램지어의 논문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우리 학계도 지혜를 모아 총력 대응할 시점이다.

2021-03-03

레임덕

레임덕은 임기 종료를 앞둔 지도자의 권력공백 상태를 일컫는 용어다. 본래 채무불이행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제용어였으나 대통령의 권력 누수 현상을 가리키는 정치용어로 바뀌었다.레임(lame)은 절름발이라는 뜻으로, 임기만료를 앞둔 권력자의 통치력 저하를 기우뚱거리는 오리걸음에 비유한 표현이다.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파동을 시작으로 정치권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시비가 불붙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에 대한 당·정·청의 이견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관련부처의 반기 등이 레임덕의 실체라는 주장을 한다.특히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검찰개혁과 관련 “대통령의 한 말씀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은 레임덕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면 국가정책 결정이 늦어지고 공무원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등 국정 수행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미국선 현직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해 떨어져 생기는 공백을 줄이기 위해 재직기간을 단축하는 법까지 제정했다.역대 모든 대통령이 임기말이면 알게 모르게 레임덕을 겪는다. 차기 권력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며 생긴 자연스런 현상이다. 최근 불거진 당·정·청 불협화음을 집권 여당의 세력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이런 이유다.“대통령이 no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등 레임덕을 지적하는 말들이 이곳저곳에서 난무하는 것에 대해 여당에선 “지지율 40%를 내세워 레임덕은 없다”고 대응한다. 그러나 레임덕을 논란으로 삼은 것만으로 이미 레임덕은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레임덕은 밤사이 내린 눈처럼 소리 없이 찾아오는 법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3-02

시드니의 개나리

이창훈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세월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했고 아직 진행 중인 코로나19도 시간을 멈추지 못한 채 세월을 지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춘 3월을 기다렸다는 듯 주변의 개나리가 샛노란 잎을 틔우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개나리는 봄의 전령뿐 아니라 샛노란 꽃으로 무장해 오고가는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기에 더욱 아련하다.개나리를 보면서 문득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이민을 가 호주 시드니에서 성공한 교민이 있었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부한 삶을 누렸지만, 항상 향수병에 시달리는 등 마음속 깊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됐고 그는 개나리가 만개하기를 기다렸다. 깨끗한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개나리의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 보다 더욱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첫 해라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됐다.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가 아예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뿌리가 일정한 저온기간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용어로 ‘춘화현상(Vernalization)’이라 하며 튤립과 백합, 라일락, 진달래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봄철 한때 지나가는 자그마한 식물도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춥고 어렵고 힘든 시간을 거친다.개나리를 보면서 우리의 인생판과 정치판을 들여다 봤다.지금 지역의 화두는 어떤가. 사라져 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어렵게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군위의성에 유치했지만, 첫삽도 뜨기 전에 가덕도 신공항이라는 굴러들어온 돌에 튕겨나갈 위기상황이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초법적으로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인 결과다. 이는 권력욕에 눈이 먼 정치권이 법과 이성을 깡그리 무시한 채 힘의 논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정상적으로 거치면서 성장해 온 이성과 합리성을 갖춘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들어가야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결과다.올바른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휴지통에 들어간 좌파사상으로 무장된 세력들이 진보라는 미명 아래 대거 정관계에 진입하면서 선무당이 생사람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이들은 철저한 사상무장으로 각종 분야에서 이분법적인 사고로 자신들의 논리가 최고의 선인양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면서 국책사업마저 뒤집고 있다. 이런 판을 깔아준 국민도 문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장래를 책임지는 정치인은 자신의 당리당략보다 먼저 국익을 생각해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이들 정치인을 ‘춘화현상’을 거치지 않은 시드니의 개나리로 보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시드니의 개나리도 일정기간 냉장고에서 저온기간을 거친 뒤 심으면 꽃이 핀다고 한다. 작금의 정치인을 냉장고 넣어 저온숙성을 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다. 이로움(利)이 보이면 의로움(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2021-03-02

우리는 폭력이 아닌 접촉을 원한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요즘 날씨는 추웠다가 따뜻했다를 반복하며 우리를 시험한다. 세상은 폭력과 고통과 관련된 뉴스들로 시끄럽다.차들은 막혀있고 사람들은 욕설한다. 그 대기 위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고 있다.사람들은 회색빛 대기 위를 마스크를 쓰고 종종걸음친다. 집에서는 이웃들이 내는 소음에 귀를 틀어막는다.감정은 갈 길을 잃고 우울해하다가 화를 내며 소리까지 치게 한다. 이것은 공포영화보다 더 두려운 우리의 현실이다.요즘은 운동선수들의 학교폭력사건이 우리의 눈과 귀에 들어오고 있다.단어 상으로 폭력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때린다는 행동적인 모습이 연상되게 된다. 누군가 쓰러지고 코피가 나고,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등등. 폭력 행위의 결과로 신체가 손상되면 병원치료를 받으면 일정 시간이 되면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된다.그렇지만 그 폭력의 과정에서 마음도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자신도 마음의 아픔을 잘 인지하지 못하며 시간이 흘러서 증상이 생겼을 때 비로소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마음의 고통을 타인들은 알 리가 더더욱 없다.사람들은 ‘왜 이제 그 사실을 이야기하냐?’고 묻는다.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다.나는 심리상담 장면에서 소위 ‘왕따’ 사건을 많이 접한다. 상담하다 보면 왕따 사건이 공식처럼 내재하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왕따에는 폭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그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경험한 왕따나 폭력에 대해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밤에 악몽을 꾸기도 하고, 직장생활이나 대인관계가 어렵다고도 한다.심리학자 등은 이러한 마음의 상처에 주목했다. 대중적인 용어로는 트라우마라고 하지만 진단기준에 부합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될 수 있다.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되려면 1)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외상사건, 2) 그 사건이 반복해서 생각나는 침투증상(기억, 꿈 등), 3) 재경험 및 회피 반응(외상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회피하려고 함), 4) 생각과 감정의 부정적인 변화(자신, 타인, 세상의 우호성에 대한 가정이 박살 남), 5) 과민반응(예, 수면의 어려움, 놀람 등)을 보여야 한다.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다시는 사랑과 행복을 꿈꿀 수 없게 된다. 마음의 병도 생기게 되어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불면, 중독 등의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곁에 정신과적 진단명을 붙이고 살아가는 그들은 누군가가 행한 폭력의 희생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코로나 시대, 폭력과 고통이 난무한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우정이 필요하다. 따뜻함이 필요하다.‘서로 간 마음의 접촉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2021-03-02

2·28 민주운동기념일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2월 28일은 61번째 맞은 2·28 기념일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타오른 민주주의를 향한 봉화가 나라 전체로 번진다.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 이승만의 예정된 부정선거에 저항하는 청춘들의 피 끓는 함성이 달구벌에 울려 퍼진다.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급사하는 바람에 이승만은 당선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 이기붕은 장면 민주당 후보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특히 대구에서 그런 양상이 강했다고 한다.올해처럼 1960년 2월 28일도 일요일이었다. 그날 장면 후보의 유세가 신천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자 대구의 8개 고등학교에서는 일요일 등교라는 희한한 고육책을 감행한다. 이런 불의하고 참람(僭濫)한 행태에 반대하여 경북고, 대구고, 대구여고, 경북여고, 경북사대부고, 대구농고, 대구공고, 대구상고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팔청춘 고등학생들이 주역이 되어 독재자 이승만에게 목숨을 걸고 투쟁한 것이 2·28이다.2·28운동은 3월 8일 대전으로, 3월 15일 마산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저항운동의 씨앗으로 작동한다. 마침내 2·28은 위대한 4·19혁명을 촉발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영원히 빛내게 한다. 2·28은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3년 동안 독재의 외길로 일관한 이승만을 권좌에서 축출한 기폭제가 대구의 청년학도들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 뜨겁다.당시 항쟁에 참여한 장주효 선생의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구고 2년생이었던 장주효 선생은 경북고 학생대표 등과 거사를 모의하면서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죽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장가도 못 가고 죽는 게 가장 한스러울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만 18세 소년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눈앞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다. 한편으로 담대하고, 다른 한편으로 천진스러웠던 그들!2·28과 관련하여 인상적인 분은 ‘2·28 행진곡’을 작곡한 백남영 선생이다. 능인고 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동료 김장수 선생이 작사한 가사에 곡을 붙인다. 평양 출신으로 만주에서 활동하던 그는 6·25 한국동란에 대구로 피란 와서 주저앉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는 김장수 선생과 함께 대구에서 ‘4·19의 노래’도 만들었지만, 기억해주는 이가 없는 실정이다.언제부턴가 대구와 경북이 수구의 본산처럼 각인되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1946년 10월의 대구 봉기가 제주의 4·3과 직결되어 우리나라의 아픈 현대사 첫 장을 대구가 연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1960년 4·19 대혁명의 진원지였던 대구는 오랜 세월 자유와 민주를 향한 열렬한 투쟁의 본산이었다. 그러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부독재의 서슬로 풀 죽은 형국이 되어 30년이 지났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30년이면 한 세대가 종언을 고하는 법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불변하는 것은 없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동토(凍土)의 대구에도 산수유와 홍매, 백매 환하게 피어나기를 고대해본다.

2021-03-02

인간은 시간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독일 작가인 미하엘 엔데(1929~1995)는 1973년 ‘모모’를 쓰면서 일약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동화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동화를 통해 화폐와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 사회를 풍자했다.요즘엔 스마트폰만 켜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시계 앱으로 전 세계가 시간대에 따라 똑같은 ‘시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니,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는 패션 아이템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시간은 더 이상, 시계의 태엽과 톱니바퀴가 째깍 거리는 소리의 감각으로 실감되는 것이 아니라 12과 12, 합쳐서 24라는 큰 숫자와 60의 작은 숫자,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동기화된 시간 감각에 대한 확신으로 체감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조금은 다른 시간의 리듬을 상징했던 시계의 재깍거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생기는 서로의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일종의 여유는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되었다.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시간에는 본래 눈금조차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하루만큼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하는 자연의 변화도 존재하고, 하루, 또 하루가 쌓여 생기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1년, 2년의 시간적 흐름도 존재하며, 인간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 ‘나이’라는 형식으로 한 해 씩의 시간이 지나간다는 식으로 시간을 감각한다는 형식은 물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존재해왔다.인간은 이처럼 자연이 부여하는 시간 감각 외에 또 다른 제도적인 시간 감각을 만들어낸다. 하루의 시간에 눈금이 생겨서 오히려 그 눈금의 형식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사건에 선행하고, 365일이 1년이 되어, 달력이나 일력의 형식이 오히려 계절의 변화에 선행한다. 게다가 도무지 시작을 알 수 없었던 인류의 최초에 기원을 잡아, 그 기원으로부터 하나하나 쌓아나가 인류 문화의 시작에서부터 2021년에 이르는 하나의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인류는 한 시간이 가지고 있는 노동력이라는 관점으로 노동의 시간을 화폐 가치로 환산할 수도 있게 되었고,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한 방향으로 진보해 나가는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가질 수 있게 된다.작가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는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근대적인 시간성에 대한 우화이다. 어느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모모에게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듯, 나이를 묻지만 모모는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모모에게 있어 시간은 그저 자신이 가진 넘쳐나는 재산일 뿐, 자기를 증명하는 정체성의 형식이 아니다.그러다가 모모가 정착한 이 마을에 갑자기 회색 신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시계와 달력으로 시간을 재고 동기화하는 것을 넘어서, 시간에 화폐적 가치를 부여하여 시간의 가치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 이런 ‘시간도둑’들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은, 사실은 노동을 해서 벌 수 있었던 얼마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돈’이 되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시간에 대한 감각은 사라지고, 시간과 맞바꾸어 교환된 ‘돈’만이 남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휴식이나 놀이 같은 시간의 허비가 실은 벌 수 있었던 ‘돈’에 대한 기회비용이었다는 죄의식이 남게 된다. 그 죄의식 속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거나,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보거나, 길가에 피어 있는 꽃냄새를 맡거나 하면서도 그것이 생산적인 시간인가 아니면 낭비하는 시간인가 생각해버리게 되는 것이다.시간을 자신이 가진 재산처럼 써서 감옥에 갇힌 모모가 그곳을 탈출하는 과정은 물론 동화적인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게 시간은 규칙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무한한 재산이다.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한 시간은 ‘시급’이라는 화폐의 가치가 모두인 가치가 아니라 무엇이든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이다. ‘모모’는 바로 그런 우리가 잃어버렸던 시간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1-03-01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은 어디에서 왔을까?

경주에는 알려진 155기와 더불어 무수히 많은 신라 고분이 시내에 자리하며, 현재까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무덤의 묘제, 구조, 형태 등이 밝혀졌다.신라의 중심묘제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 있다.이들 적석목곽분이 구조적으로 매우 특이해서 ‘왜? 이 고분을 만들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발굴이 처음 이루어진 190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됐다.신라 고분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서기 4세기 후엽부터 6세기 전엽까지 집중돼 조성됐다. 이 무덤들의 주인공은 신라의 왕과 왕족, 귀족 등과 같은 지배층으로 집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신라 고분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라는 의문은 일제강점기 경주지역의 첫 고분 발굴과 함께 시작됐다.발굴을 통해 드러난 신라고분은 흙으로 높게 쌓은 일반적인 고분이 아닌 형태였다. 신라 고분은 나무로 무덤방을 만들고 돌을 겹겹이 쌓아 올린 후 다시 돌 위에 흙을 덮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이다. 처음 발굴한 사람들은 다른 고분과 달리 돌무지로 덮인 적석부를 확인한 이후 고분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발굴을 진행하지 않았다. 신라 고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굴된 1921년 이후이다.1920~1930년대에는 황금유물의 기원과 함께 이 무덤의 기원도 한반도 밖에서 찾기 시작한다.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러한 무덤의 형태는 경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그 모습이 확인된다. 그리고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앙아시아 지역 고분이 소개된다. 특히, 카자흐스탄 남부의 ‘제티수’ 지역에 위치한 ‘이식쿠르간’, ‘베스샤티스 쿠르간’, 러시아 남부의 ‘파지릭고분’ 등이 신라 고분과 비교된다.1970년대 천마총과 황남대총의 발굴은 적석목곽분의 기원에 대한 또 하나의 확신을 낳았다.이전의 발굴에서는 대부분 파괴된 무덤을 조사해 명확하게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천마총과 황남대총 남분과 북분의 발굴은 나무곽(덧널)과 돌무지, 흙무더기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무덤형태는 중앙아시아 지역과의 유사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따라서 적석목곽분의 북방기원설이 대두됐으며, 1990년대 이후 이와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그렇다면 신라 고분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일까?아쉽게도 중앙아시아 지역 무덤과 신라 무덤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출토되는 유물도 다르다. 또 두 지역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2000년대 들어서 경주를 비롯한 울산, 포항, 경산 등지의 발굴조사가 증가하고 자료가 쌓이면서 돌무지덧널무덤의 순차적인 변화가 확인됐다. 그 이후 거리와 시간의 격차가 큰 북방기원설보다 신라에서 만들어진 무덤이라는 자체발전설이 대두됐다.박형열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자체발전설은 목곽묘에서 점차 목곽주위에 사방으로 돌을 쌓는 적석목곽묘로 발전하고 그 이후 적석을 쌓는 범위가 확대돼 목곽 상부에 적석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것은 점차 목곽이 지상화되면서 적석목곽분으로 나타난다고 이해한다.그러나 이와 같은 자체발전설은 황남대총과 같은 거대 지상식 무덤과, 그 이전 무덤 또는 주변 무덤과의 연결 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르면 목곽 주위에만 적석을 한 무덤이 아닌, 황남대총 등 지상화된 상부적석식(上部積石式) 무덤만을 적석목곽분으로 보고, 이 견해를 ‘자체발생설’이라 부르고 있다. 앞서 살펴본 ‘자체발전설’과 더불어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볼 때, 외래(북방)기원설과 다른 ‘자생설’로 설명할 수 있다.2010년대 이후에는 신라 고분이 자체적인 발생과 발전이 함께 이뤄졌을 가능성이 새롭게 논의됐다. 이 의견은 적석목곽분이 계통적으로 지상식(地上式)과 지하식(地下式)으로 분리되고, 황남대총이나 천마총과 같은 지상식의 경우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황남리 109호분 3·4곽과 황남동 110호분 등 지하식의 경우 목곽묘에서부터 발전한 것으로 보는 등 계통에 따라 각각 다른 변화상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분 발굴이 증가하면서 이 지역 무덤 구조에 대한 다양한 모습이 밝혀지고 있는데, 기존에 알려졌던 무덤의 형태와 구조 등이 신라 무덤과는 다르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신라 적석목곽분은 신라 사람들의 차별화된 사회체계에 따라 만들어낸 독특한 무덤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무덤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아직도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으로 신라의 과거를 밝혀낼 기회일지 모르겠다.

2021-03-01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처음 만나면 통성명을 하고, 바로 다음에 따라 오는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실례지만, 하시는 일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이, 사는 곳, 관심사 같은 것에 대한 질문은 보통 그 다음에 이루어진다. 최근 한 술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도 직업을 물었다. “저는 가수 겸 시인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에게 내 직업은 생소하게 여겨지곤 한다. 금융권에 종사한다는 그 역시 내 직업을 듣고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독특했다.“시를 쓴다고 다 시인은 아니잖습니까. 시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내가 언제부터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는지를 떠올려보면 별로 어려운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2008년에 계간 ‘시와 세계’에 시를 발표한 이후로 시인이라 소개하기 시작했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불리게 되었으니까.“아,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가수가 되는 것에도 그런 기준이나 절차가 있나요?”가수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시인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처럼 간단치가 않았다. 시인처럼 등단이라는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변호사나 의사처럼 라이선스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 사람이 가수임을 인증할 수 있는 국가공인 기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가수라는 직업은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일까. 가수란 무엇일까.노래를 불러 소득을 올리고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가수일까? 아니, 내 주변에는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내며 업계 내에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그것이 소득으로는 연결되지 못해 다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동료들이 얼마든지 있다. 앨범을 내면 가수가 될까? 그 또한 틀린 말이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단지 취미나 호기심으로 앨범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들을 가수라고 부르는 것은 민망한 일일 것이다. 나는 어떻게 스스로를 가수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첫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나는 홍대 앞의 작은 무대에 서서 “안녕하세요, 가수 강백수입니다” 하고 소개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당위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나 스스로 ‘그래, 나는 가수야’라고 생각한 것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결국 가수라는 말은 사회적 위치인 직업과는 별개로 스스로 규정하는 정체성인 것이다. 앨범을 내지 않은 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더라도 스스로 가수라는 정체성이 있다면 가수일 수 있고, 취미로 낸 앨범이 어쩌다 화제가 되어 수익을 창출했더라도 정체성이 없다면 가수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소속이나 사회적인 위치보다 삶에 있어 훨씬 강력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직업이나 소속이 정체성과 일치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회적인 위치와는 별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박 대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전자회사 사옥에서 보내지만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언제든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차릴 준비가 되어 있다. 반도체건 아메리카노건 귀여운 아들, 딸이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줄 수 있다면 아무 상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박 대리라는 사회적인 위치보다 아빠라는 정체성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가족에 대한 그의 애착을 알지 못한 채 그의 회사와 직함만을 기억하는 건 그에 대해 절반도 알지 못하는 것이 된다.독립음반 기획사 대표 송 형은 언제나 자신을 음반제작자라 여기며 살아간다. 비록 그가 꾸려가는 음반제작사의 매출이 가계를 책임지고 있지 못하고, 다른 일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그는 음반제작사를 통해 자아실현을 해나가고 있다. 그에 대해 알기 위해 더 중요한 것도 그가 무엇을 통해 먹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새로운 사람을 알고, 이야기를 들어도 그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내가 그가 하고 있는 일이나 사회적 위치만큼 그의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가 아니라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를 물어야 했던 것이다.

2021-03-01

의도하지 않은 상처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상처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최근 여러 유명인의 학교 폭력 논란이 잇달아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곳에 꼬깃꼬깃 접어놓았던 상처를 간신히 펴서 내어놓는 사람들을 본다. 대부분 다수가 소수를 짓누르거나 힘으로 위계관계를 정립한 경우다. 그럴 때의 참담함을 잘 안다. 나 역시 학교 가기가 끔찍하게 싫었던 사람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나 역시 무수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처를 받았다.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함도 있었고 비수로 꽂히는 것을 알면서 정확하게 던지는 말도 있었다. 그때의 괴로움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과 공기와 감촉은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상처받은 과거를 허공으로 탈탈 털어버렸다고 자부했지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동시에 나 역시 타인에게 뾰족한 무언가를 겨누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특히 글을 쓸 때 그런 죄책감은 강해진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소재로써 함부로 다루고 있는 건 아닌가. 이 모든 것이 내 결핍을 채우려는 욕심은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그건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명백한 과오다. 지면에 글을 발표한 뒤에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의 방식으로 다가갔다면 그것보다 참담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만나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스스로가 너무 서투른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고 동시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상대와 사이가 깊어질수록 어쩐지 실수와 실언이 늘어 가는 것만 같았다. 문을 닫고 누구도 내 세계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었다.이렇듯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혼자만의 세상에 남기를 자처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고립을 선택한 청년이 작년 기준으로 13만 명에 이르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들은 6개월 이상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사회에서 마주한 다양한 상처의 경험이 있다. 당연히 학교 폭력의 피해자도 존재한다.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법과 제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동시에 가해자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피해자에게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고 건네는 힘이 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문제는 가해자가 그런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라 단순한 다툼이나 학창 시절의 싸움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거는 자신에 의해 재구성되기 쉬우므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앞서 ‘의도하지 않았다’라는 변명만을 내어놓는 것은 자신이 게으르며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방증이나 마찬가지다.나는 반려견 보리와 산책하면서 비슷한 상황들을 자주 직면한다. 공원을 걷다 보면 이따금 보리가 귀엽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무게가 고작 3kg에 불과한 이 작은 개는 한 번 버려진 아픔이 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보리의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기에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는다. 그러면 보리는 이빨을 드러내고 매섭게 짖는다.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예뻐해 주려는데 넌 왜 그래?” 하고 오히려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다.그것이 일방적인 대화의 전형적인 예시다.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내 행동이 상대에게 폭력으로 받아들여졌다면 그 또한 잘못일 수 있다. 당시의 상황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매번 서로가 그저 대화하는 줄로만 알았을지도 모른다.우리는 필연적으로 생긴 것이 어쩔 수 없는 모난 존재이기에 기어코 상대를 아프게 찌르고야 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면 삶은 끝끝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다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사람과 사랑을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2021-03-01

다시, 새로운 시작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떠오르는 해를 보면 늘 가슴이 벅차다. 바다나 산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탁 트인 시야와 여명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기에 느낌과 감동이 더 크다. 강변이나 들녘, 도심에서 보는 일출도 또 다른 감흥이 생기기는 마찬가지다.해맞이 장소 어딜지라도 솟아 오르는 해를 보면 누구나 마음이 차분하고 경건해지며 시나브로 밝아지는 장관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파문이 여울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 첫날의 해맞이를 위해 등고산망사해(登高山望四海)로 의미를 되새기는지도 모른다.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장엄하다면 저녁에 지는 해는 안온하다. 찬란한 아침해가 뜸으로써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은은한 저녁해가 짐으로써 하루를 갈무리하게 된다. 누구나 여명과 부신 햇살 속에서 하루를 시작해 저마다의 위치와 환경에서 움직이고 활동하다가, 서녘에 어리는 노을빛 속에 그 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게 해와 달, 별들의 운행에 따라 우리는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춘분이 다가와선지 낮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필자는 거의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요즘은 철강공단 위로 떠오르는 해와 형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수 일째 그렇게 강변을 달리며 먼동이 틀 무렵과 노을피는 하늘빛을 보면서 불현듯 아침과 저녁은 시작과 끝이 따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저녁의 여유로움으로 얼마든지 넉넉하게 시작할 수 있고, 저녁에도 아침 같은 신선함으로 충분히 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 신영복의 언약 ‘처음처럼’ 중.아침은 시작의 다른 말이며 저녁은 마감의 또다른 이름이다. 아침과 저녁은 상이하면서도 상통한다. 아침은 밝음과 움직임의 현상을 낮이라는 얼개로 보여주고, 저녁은 어둠과 침잠의 적요를 밤이라는 휘장으로 두른다. 아침은 저녁으로 이어지고 낮은 밤을 기약하기에 아침이 곧 저녁이고 저녁은 새로운 아침을 품으며 물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무렵에도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코로나 바이러스가 그지없이 요동쳐도 만물엔 물이 오르고 삶의 욕구 꿈틀거리는 새봄이 시작됐다. 흐르는 시간 속에는 시작과 끝이 없고 소소히 반복되는 일상과 생이 있을 뿐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무수한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경계와 구분 상 시작과 끝이라 하지만, 기실 끝은 또다른 처음으로 이어지고 시작은 미지의 종착을 향한 새 출발이니,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고 피날레가 잘 돼야 처음이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고 기대되며 도전과 열정은 삶과 꿈을 춤추게 하는 것이다. 3월의 시작 새로운 출발! 꿈나무들의 입학과 진학, 입사와 사업의 시작에 희망 가득한 봄햇살이 비춰서 꿈과 뜻이 뭉근하게 싹과 꽃으로 피어나길 염원해본다.

2021-03-01

공소시효가 없는 학교폭력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법률 제7119호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 간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과거의 학교폭력은 넘어가는 기억의 하나로, 지난 시절의 추억으로 미화되기 쉬웠으나, 이제는 범죄로 인식하는 사회분위기에서 가해자가 수많은 언론 매체와 대중에 주목을 받는 공인의 자리에 있을 때 피해자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언론에 고발하는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국가대표 이다영 이재영 쌍둥이 배구선수의 과거 10년 전 학교폭력으로 고발한 SNS 글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 엘리트 교육을 지금 보고 있다. 그 내용은 더욱 처참하고 참혹하다. 돈을 갈취 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부모님 욕하고, 뭔가를 시켰고 거부하면 칼을 가져와 협박하고, 가슴을 때리거나 다른 학생들의 공범자를 만들기도 했다. 연맹은 “피해자들에게 용서받기 전까지 징계를 해제할 계획은 없다.” 무기한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이재영, 이다영이 징계 기간 연봉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또한 한국배구연맹이 학교폭력 징계와 예방을 위해 학교폭력과 성범죄 등에 중하게 연루된 선수는 신인선수 드래프트 참여에서 전면 배제하고 학교장의 확인을 받은 학교폭력 관련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약서가 허위이면 영구제명 징계를 받는다. 또한 ‘20년 전 학교폭력 가해자가 ‘미스트롯2’에 나옵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충격을 주었다.“엄마랑 같이 있는데 인사를 너무 90도로 했다고 때리고, 몇 분 내로 오라고 했는데 그 시간에 못 맞춰왔다고 때리고, 공원으로 불러내 가슴뼈 있는 곳을 차고, 머리도 차고, 주먹 쥐고,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그 상태로 발로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진달래 본인이 학교폭력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을 모두 인정함과 동시에 사과를 했지만 충격전인 진달래의 학교폭력 내용에 많은 국민들이 실망과 분노감을 나타내고 있다.학교 폭력의 문제는 학교폭력을 망각하고 성장한 어른의 자녀들이 자라서 부모와 똑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운다, 아이의 거울이다.과거에는 언론을 통해 학교폭력을 접할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세대가 바뀔 때마다 계속 반복되고 그리고 학교폭력을 추억으로 자랑했다. 가해자는 늘 ‘장난이었다’라고 말한다. 오늘도 내일도 학교폭력을 뿌리 채 근절하기 힘들고, 피해자는 가슴속 상처가 뼛속 깊게 남는다. 피해자는 성장하면서 그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더 심각하다. 가해자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한다.학교폭력의 책임은 공소시효가 없다. 10년 20년 30년 무기한이다. 우리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미지의 세계다. 진정한 교사는 말로 가르치지 않고 행동으로 가르친다. 지혜는 안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학교폭력의 해답은 법이 아닌 제도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2021-03-01

메타버스(Metaverse)

지난해 9월 방탄소년단(이하 BTS)은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뮤직비디오나 쇼케이스가 아닌 에픽게임즈의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공개했다.BTS는 포트나이트 속 게이머들이 자신의 아바타로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콘서트를 즐기는 공간인 ‘파티로열’ (Party Royale)에 등장했고, 참여한 게이머들은 BTS의 다이너마이트에 맞춰 춤을 추고, 새로 나온 BTS 안무 이모티콘을 샀다.BTS가 가상 공연을 한 포트나이트 속 공간을 ‘메타버스(Metaverse)’라 부른다.메타버스는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유니버스)’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메타)’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이용자들은 아바타를 이용해 그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마찬가지로 사회, 문화적 활동을 한다.메타버스란 용어는 원래 닐 스티븐슨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나왔다.메타버스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급격하게 확산중이다. 지난해 3월 출시된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대표적인 메타버스다. 현실과 같은 시간이 흐르는 가상 세계에서 게이머들은 낚시, 식물 재배, 집 꾸미기 등을 한다.국내에서는 네이버제트의 ‘제페토’가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이용자가 자신의 아바타로 게임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연예인 춤을 따라 추며 즐긴다. 벌써 아시아, 북미, 유럽 등지에서 누적 이용자 2억명을 확보했다.메타버스는 인터넷(웹)의 다음 버전이며, 앞으로 사람들이 메타버스로 일하러 가거나 게임을 하거나 쇼핑을 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눈부시다 못해 아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01

이성과 광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누구나 억울한 일을 겪으면 ‘선이란 무엇일까, 정의란 무엇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단테 역시 정쟁에 휘말려 1302년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1321년 열병에 걸려 객지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1307년부터 쓰기 시작한 ‘신곡’에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단테의 생각이 담겨있다. 지옥에 교황과 황제도 있는 것을 보면, 살아있을 때 명예가 천국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풍자로도 읽을 수 있다. 두 연인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지옥에 있는데, 쿠니차라는 여인은 천국에 있다는 이야기는 선한 삶에 대해 생각거리를 준다.‘지옥편’ 5곡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비극적 사랑은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주제가 될 만큼 유명하다. 이들은 사실 사기 결혼의 희생자였다. 두 집안은 성의 영주였는데 앙숙이다가 자식을 볼모로 협정을 맺으려 한다. 파올로의 아버지는 큰아들 조반니가 추남에 절름발이에다 폭력적이어서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하자 프란체스카에게 둘째아들 파올로를 보여주고 승낙을 받은 후 조반니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조반니에게 살해당하고 지옥에 온다.쿠니차 이야기는 ‘천국편’ 9곡에 나온다. 열 겹으로 된 하늘 중 쿠니차는 세 번째 하늘 금성천에 올라가 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넷이고 애인도 둘 있을 만큼 애욕이 넘쳤는데 천국에 있다. 단테는 음욕을 죄로 보기 때문에 이런 설정은 당혹스럽다. 실제로 쿠니차가 천국에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그러나 그 이유를 작품 안에서 짐작해볼 여지는 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갈레오토’라는 연애소설을 같이 읽다가 자신들도 모르게 육욕에 빠져들었고 지옥에 와서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들을 그린 여러 그림에서도 두 연인은 밀착되어 한 몸처럼 붙어 있다. 반면, 쿠니차는 자신의 음욕을 후회하고 선한 생활을 하다가 죽는다.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자유의지로 선을 선택한 것이다. 단테에게 자유의지는 이성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고,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그러나 이성에 따르는 선택은 언제나 선일까? 영화 ‘인페르노’에 나오는 조르비스트는 맬서스의 인구론에 근거하여 인구 증가가 지구 위기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구를 3분의 1로 줄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면서 자신은 인류의 구원자라고 자부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조르비스트는 ‘신곡’의 ‘지옥편’을 그림으로 그린 보티첼리의 ‘지옥도’를 이용한다.이런 조르비스트의 행동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처럼 자유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서로에게 빠져든 것과는 다르다. 자기 나름대로 사실을 분석하고 이론에 입각하여 지구 구하기라는 선 실천 의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광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옥편’에 이런 죄는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산 책 중에 읽는 거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래도 책을 사놓은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1-03-01

코로나 졸업 시즌

지금은 바야흐로 겨울 졸업 시즌이다. 학교를 오가다 보면 학생들이 일주일 내내 졸업 가운을 입고 ‘삼삼사사’ 모여 사진들 찍은 풍경을 본다. 다섯 명 이상은 아직 모일 수 없으니 삼삼오오오가 될 수 없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2월의 졸업 시즌은 닥쳤다. 대학 전체 차원이나 단과대학 차원에서 정식으로 졸업식을 가질 수 없는 코로나 시절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축하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아하, 이게 좋겠구나 했다.학과 홈페이지에 졸업생 명단을 띄워올리고 “여러분의 뜻 깊은 졸업을 축하합니다!” 문구 정도로 분위기를 살리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조교 선생님도 이야기를 듣고는 그거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이다. 학과에서 만난 조교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졸업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수 있어, 자칫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졸업생 이름을 다른 곳도 아니고 학과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을 꺼려 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을까?그러나 이때는 물러서는 것이 좋다. 개인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강조되는 요즘 졸업도 ‘개인정보’라는 인식에 맞서 좋을 것이 없다. 또 엄밀히 말하면 확실히 개인정보인 것은 맞으니까. 다시 또 생각한 것은 학과로 통하는 외벽에 졸업 축하 플래카드를 써붙여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요즘 학교 전체적으로 플래카드 ‘단속’이 여간 심한 게 아니어서 일일이 허락받아야 할 뿐더러 부착 지점도 까다롭게 제한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 ‘시즌’의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려던 아이디어들은 무위로 돌아갔다. ‘축하의 말’이나 ‘달랑’ 올려 드리고 기념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졸업 시즌을 때우는 셈이 되었다. 옛날에는 사회가 이런데 졸업식이 무엇이냐고 졸업식 거부까지 했건만, 이제 그런 인식은 아예 사라졌다. 학교 학생들은 학교 마크가 찍힌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고 졸업식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참석하는 중요 행사가 되었다. 코로나 시절은 이렇게 ‘정상’으로 되돌아온 졸업식이 없는 졸업 시즌을 만든다. 그래도 교문을 들어오고 나가면서 보는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다.내가 혹시 졸업식 축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글쎄, 혹시 대학 시절 이후로 코스모스 졸업밖에는 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원까지 세 번 졸업을 했지만 매번 가을에만 학업을 끝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졸업 가운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어서 코로나 염병이 물러나야겠다. 학생들이 학업 마치는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그날을 위해./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2-25

TK의 수모

국회상임위에서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통과되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보류되는 순간을 지켜본 대구·경북이 자괴감에 빠졌다.집권세력은 물론 야당 국회의원들로부터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외면을 당했으니 시·도민 모두가 왕따를 당한 기분이다. 지역민들이 이처럼 수모를 당하는데도 뒷북만 치는 TK 정치권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문재인 정부는 내년 대선에 대비해 수도권과 호남, 충청권, 부산·경남권에 국가자산을 집중배분하고 있다. 5년마다 수도권 규제를 풀 수 있도록 법률을 바꿔 대부분 업종의 기업이 비수도권에서 경기도로 이전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세종시에 행정수도가 둥지를 틀고 있는데도 인근 대전시에 혁신도시가 들어설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전남 나주에는 한전공대를 세우고, 목포에는 의과대학 설립을 약속했다. 적법성 문제가 제기되는 가덕도 특별법도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대구·경북은 이제 정치적인 현실을 직시할 때도 됐다.지난해 4·15 총선에서 야당에 몰표를 몰아주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반성해 봐야 한다. 자신을 당선시켜준 지역민들의 분노도 대변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노골적인 지역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상대진영과 싸워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인가.곧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금 분명한 것은 대구·경북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기득권을 가진 이너서클 구성원들의 의도대로 배타성과 폐쇄성을 고집할 경우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한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특히 서민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부존자원이 없는 도시는 국내든 국외든 열려 있어야 살길이 생긴다./심충택(논설위원)

2021-02-25

정치과잉 대한민국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이명박 정부 때 영남권 민심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던 가덕도 신공항이 또다시 논란이다.4월 7일 치러질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여야후보가 모두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돼야 한다고 목청높여 외친다. 영남권 신공항은 2016년 파리공항공단(ADPi) 검증 결과 1위를 차지한 김해공항 확장안에 5개 시도가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또 다시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에서 부산 지역의 민심을 움직일 ‘필승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포석 때문이다. 무리수 놓는 여당은 그렇다 치자. 야당 역시 부산지역 민심을 거스르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이러니 국회 역시‘못먹어도 고’형국이다.국회는 이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6일 본회의를 통과시킬 전망이다. 문제는 가덕도 신공항은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안정성과 시공성, 운영성, 접근성 등 공항입지검토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항목에서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돼도 건립은 순탄치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토교통부가 이달 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에게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막아달라고 설득 작업에 나섰던 사실만 봐도 그렇다. 국토교통부가 대외비로 국회 국토교통위에 제출한 자료를 한번 훑어보면 가덕도 신공항은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 문제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소요 예산은 부산시가 주장하는 7조5천억원이 아니라 28조6천억원에 달한다.현재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로 언급되는 부산시안은 국제선만 개항하고 국내선은 기존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것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관문공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군시설을 포함한 국제선과 국내선 신공항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 28조6천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된다는 게 국토부 추산이다. 최소 3천500m 활주로 2본을 활용하는 국제선과 국내선을 설치한다 해도 15조8천억원이 든다. 또 해상공항 건립을 위해서는 산을 깎아서 바다를 메꿔야 하는 데, 이는 엄청난 환경훼손을 수반한다. 남해는 대륙붕을 지나면 수심이 급격히 깊어져 현재 기술로는 시공 자체도 어렵다. 바다를 매립해 건설한 일본 간사이 공항은 약 13m 침하로 10조원의 유지비를 써야 했다. 어렵게 완공해도 지반 침하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유지비가 드는,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막무가내다. 이러면 법안통과 이후부터가 문제다. 선거가 끝나고 예산초과 등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면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좌초될 게 뻔하다. 그제서야 국민들은 정치권의 공수표에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듯 싶다.마냥 지켜보기만 하기에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공항과 같은 SOC투자가 전문가들의 검토결과와 달리 여론재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정치과잉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2021-02-25

독락(獨樂)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포항에서 가까운 옥산서원 근처에 회재 이언적이 기거했던 독락당이 있다. 이언적이 당파싸움의 정치적 분쟁 속에서 파면당해 귀향하면서 옥산의 독락당으로 갔다. 그가 본가가 있는 양동으로 가지 않고 독락당으로 가서 살았던 것은 정파적으로 죽고 죽이는 사람들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넓은 반석 위로 흐르는 자계천과 계곡, 숲과 나무와 개울이 변치 않는 벗이 될 수 있는 생각에 청산유수의 옥산으로 가게 했던 것이다. 이언적은 ‘무위’라는 시의 마지막에 “장대청산불부시(長對靑山不賦詩)”라고 읊었는데 의역하자면 “이제껏 세상일에 쫒기다 보니 좋은 청산 옆에 두고 시 한번 못 읊었소”이다. 이제라도 이 좋은 청산이 주는 낙을 홀로 누리며 살자는 뜻에서 자신이 기거하는 집을 ‘독락당’이라 이름 하였다.최근에 여기저기서 독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독신과 졸혼도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이전부터 부쩍 늘어난 남의 간섭을 피해 홀로 낙을 누리는 나홀로 족들을 일본에서는 소확행족, 스웨덴에서는 ‘라곰’, 덴마크에서는 ‘휘게’, 프랑스에서는 ‘오캄’이라 하고 이를 통틀어서 ‘라운징족’이라 부른다. 이런 나홀로 독락을 추구하는 라운징족의 증가는 이웃과의 관계를 끊고 이웃의 삶을 외면하면서 혼자만의 낙을 즐기는 비사회적 삶을 유발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독락이 확산되고 보편화가 되어 버린다면 사회적 큰 문제가 되므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해서 세상일을 내려놓고 이제 자신의 삶을 즐기며 독락을 권유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그렇다면 청산을 옆에 두고 홀로 즐기려 했던 이언적의 독락은 무엇이었을까? 이언적의 독락은 세상을 외면하고 피하여 홀로 즐기려고 했던 독락이 아니다. “닫히면 홀로 마음을 세정하고 열리면 세상을 세정한다”는 맹자의 글을 좋아한 이언적의 독락은 더러워진 세상을 피하여 홀로 낙을 누리기 위한 독락이 아니라 지금은 귀향 온 닫힌 세상이니 어쩔 수 없이 홀로 마음을 세정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독락이었다. 언젠가 길이 열리면 세상을 세정하는 일을 위하여 자기 삶을 완성해 가는 독락인 셈이다. 놀이에 道(도)를 더함이 풍류도가 되듯이 이언적은 독락을 풍류도로 승화시켰다.나이가 들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제 하고 싶은 일하면서 독락을 누려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독락이 단순히 나홀로 즐기는 독락이라면 어쩌면 솔로몬이 허망한 것이라고 했던 오락에 불과할지 모른다. 진정한 독락은 길이 열리면 온 세상을 즐겁게 할 독락이 되어야 하고 이언적의 독락은 바로 그런 독락이었다.

2021-02-24

길을 떠나도 여전히 길

요즘 ‘꽃길만 가자’는 말이 유행이다. 인생길을 가면서 숱한 길을 다 겪는다. 그 고난이 어떤지 다들 알기에 건네는 덕담인데, 인생길이 맑고 평평하면 삶이 재미있을까. 아름답고 향기로운 길만 있다면 삶이 맛있을까.사는 재미는 희로애락에 있다. 사는 맛은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짠 데 있다. 맵디매운 시련을 이겨내고 성취했다는 기쁨과 쓰디쓴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길을 가다가 건지는 개똥철학 같은 깨달음도 있어야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 사는 재미와 사는 맛 모두 길을 가면서 얻는 것이다.벼룻길 : 아래쪽이 강가나 바닷가로 통한 벼랑길.외통길 : 한 곳으로만 난 길.에움길 : 에워서 빙 둘러 가는 길.거님길 : 산책길의 옛말.두멧길 : 두메 산골에 난 길.뒤안길 : 뒤꼍으로 난 길.발구길 :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 나르는 썰매가 다닐 수 있는 길.푸서릿길 : 풀이 자란 정리 안 된 길.눈석잇길 :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돌서덜길 : 냇가나 강가에 돌이 많이 깔린 길.자드락길 :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에 있는 좁은 길.길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간 발자국이 모여 길이 되었다. 짐승을 잡으러 가면 사냥길, 나무하러 가면 나뭇길, 시장에 가면 시장길, 물건 팔러 가면 장삿길, 놀러 가면 나들잇길, 과거 보러 가면 과거길, 벼슬하러 가면 벼슬길, 죄를 짓고 쫓겨나면 귀양길, 몰래 가면 잠행길, 밥 얻으러 가면 동냥길, 처음 가면 첫길, 누군가와 함께 가면 동행길, 산소에 가면 성묫길, 임금이 가면 거둥길, 길은 목적이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목적에 따라 : 마중길, 배웅길, 과거길성질에 따라 : 비탈길, 가시밭길, 오르막길일기에 따라 : 빗길, 눈길, 밤길, 새벽길재질에 따라 : 황톳길, 자갈길, 돌서덜길거리에 따라 : 지름길, 하룻길, 에움길장소에 따라 : 오솔길, 숲길, 산길, 둑길, 고갯길, 논두렁길, 밭두렁길모양에 따라 : 꼬부랑길, 곧은길이뿐일까. 사람이 가는 곳은 다 길이다. 길이 없어도 내가 가면 길이고 누군가가 갔으면 그 또한 길이다. 산, 들, 바다, 하늘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속에도 길이 있다.첫길, 꽃길, 둑길, 샛길, 잿길, 논길, 산길, 빗길, 눈길, 돌길, 숲길, 큰길, 갓길, 밤길, 곁길, 외길, 촌길, 물길, 하늘길, 진창길, 갈림길, 흙탕길, 지름길, 자갈길, 비탈길, 벼랑길, 황천길, 모랫길, 바른길, 에움길, 돌림길, 고샅길, 언덕길, 외딴길, 나뭇길, 덤불길, 두렁길, 황톳길, 오름길, 내림길, 비탈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가시밭길, 돌너덜길우리네 길은 잘 빠지고 평평하고 반듯하지 않다. 가파르고 질척하고 거칠다. 아슬아슬하고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하다. 이는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진창길을 만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이 튀고 비탈길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고 벼랑길 지나느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길을 잘못 들어 한동안 헤매기도 한다.그래도 우리는 늘 길을 떠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러, 때로는 무작정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났으면 길이 아닌 곳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왜 그럴까. 여자의 길, 배움의 길, 출세의 길, 고행의 길, 설욕의 길, 재기의 길, 군인의 길, 영광의 길, 임금의 길, 신하의 길, 군자의 길, 인생 그 자체가 길이기 때문이다.길에는 나름의 맛이 있다. 오솔길은 호젓한 사색에 드는 맛이 있다. 갈림길 앞에서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 하나를 선택하는 맛이 있고 나중에 후회하는 맛도 있다. 외통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이겨내야 하는 맛이 있다. 꽃길은 화려하고 향기로운 맛이 있고 뒤안길은 쓸쓸한 맛이 있다.먼저 닿기 위해 길을 가면 길을 알지 못한다. 산길을 발밤발밤 노래하는 사람은 산꽃이 차례대로 피고 지는 까닭을 알게 되고, 들길을 거니는 사람은 알곡이 도담도담 여무는 속도를 보게 된다. 다람쥐며 산새며 송사리며 풀꽃이며, 길섶에 있는 것들은 느릿하게 눈을 맞추는 영혼에게 말을 걸어오므로.진달래, 찔레꽃, 산딸기가 줄지어 피는 산모롱이 길은 통째로 먹어도 맛있다. 짤랑짤랑 가위소리가 먼저 뛰어오는 길은 엿가락처럼 몇 토막 뚝 잘라 먹어도 좋다. 바깥에만 두기 아까워 내 안으로도 내고 싶은 길을 찾아 나는 또 길을 떠난다.(길 위의 명상/김이랑/일부 발췌)살아봐야 인생을 알 듯, 길을 걸어야 길을 알고 길가의 것들과 눈을 맞추어야 길맛을 안다. 만약 당신이 빨리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린다면 그것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도(速度) 위에 있다. /문학평론가 김이랑

20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