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코스믹 댄스(the cosmic dance)

강영식포항 하울교회 목사아이들이 어릴 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아빠, 하나님이 왜 모기와 같은 해충을 만드셨어요?” 정말 모기는 해만 끼치는 해충일까? 수많은 모기의 유충들은 곤충들의 양식으로 모기가 없으면 먹이사슬의 체계가 무너지고 결국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더러운 물이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들이 있는데 걸음을 방해하고 옷을 더럽히는 무용한 웅덩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상에 수많은 이 작은 웅덩이들은 물을 담수하고, 주변의 생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하고 기온과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나에게는 해로운 것일지는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생명을 살리는 각자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자연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요 생명체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만물을 연계하여 상생케 하는 우주 생명의 기운이다. 나비의 날갯짓으로 생겨난 작은 바람이 태풍에 영향을 끼친다는 ‘나비효과’도 모든 만물의 작은 움직임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서로 영향을 끼치는 합연적 존재임을 의미한다. 내가 내 쉬고 흡입하는 숨 하나하나가 우주생명과 연합하는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우주의 모든 생명은 성령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했고 그 성령을 ‘숨(호흡)’이라고 했다. 내 가 내 쉬는 한 숨 한 숨이 생명의 기운으로 성령이라는 것이다. 온 우주는 그 생명의 숨으로 가득 찼고 그 상태를 신학적 용어로 ‘성령충만’이라 한다.J.E.러브룩은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은 각기 독립된 개별체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연계하는 ‘하나의 생명체’라고 했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은 하나의 몸을 이루면서 그 움직임 하나하나는 생명의 춤을 추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토머스 머튼은 ‘우주적인 춤(the cosmic dance)’이라고 했는데 곧 성령의 춤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와 풀들의 움직임, 파도의 출렁임, 별들의 반짝임, 나비의 나풀거림 등등 이 모든 것이 생명의 힘으로 가득 찬 환희는 ‘코스믹 댄스’이다.팬데믹은 공생하며 살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태파괴로 인하여 거주지 잃어버리고 인간을 숙주로 택한 것에서 생긴 것이다. 이런 생태파괴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공존하려는 우주적 춤을 거부하고 인간만이 홀로 추는 춤, 독무(a solo dance)에서 비롯되었다. 팬데믹의 근본적 해결책은 더 이상 독무하지 않고 우주적인 춤을 함께 추는데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 “너희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았다”는 말의 더 큰 뜻은 우주만물의 생명을 살리는 우주적 춤을 추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 모두가 코스믹 댄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2021-01-06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장규열 한동대 교수해를 넘기며 가슴 아픈 뉴스가 들려왔다. 입양한 어린아이를 때려죽인 양부모. 세상이 무너진대도 그럴 수는 없다. 그럴 만한 까닭은 도무지 안 보인다. 대학까지 나온 부부는 둘 다 목사님 자녀라고 했다. 교육과 종교는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는가.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와 교회는 어찌 입을 다물었는가. 개인의 잘못이라 비난하며 성찰없이 혀만 차고 말 터인가. 안타깝고 불쌍한 건 정인이의 어린 생명뿐일 것인가. 언론이 다루는 수다한 이슈들처럼 짧은 동안만 후루룩거리고 말지는 않을까. 피어나 보지도 못하고 한 아이의 온 세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아동학대.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접수된 사례들이 2001년에 2천105건이었다가 2018년에는 2만4천604건에 이른다고 한다. 열 배도 넘게 증가한 셈이다.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과 유기 등으로 구분되지만 정인이의 경우는 매우 복합적인 학대를 겪은 일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대하고 어른이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는 없을까. 아동학대 경우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데이터는 우리 안의 인식이 나아지기 보다 부정적인 방향을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그러는 것일까.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 일일까. 폭력의 모습에 경악함을 넘어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하여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스페인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르(Francisco Ferrer)는 ‘권위에 의한 어떠한 억압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모든 폭력에 반대하였다. 그 어떤 선한 명분을 가진다 해도 아이에 대한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것이다.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교육을 주창하였으며, ‘폭력의 배제’가 교육의 방법이자 목표여야 한다고 했다. 우등생과 열등생이 존재하지 않으며, 수학을 잘 하거나 미술을 잘 할 뿐이라고 했다. 경쟁으로 휘몰아가는 교육에서 협력으로 함께 일어나는 교육을 선언하였다. 교육의 장에 서 보기도 전에 폭력으로 스러져간 생명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언론이 ‘아동학대’ 이슈를 붙들고 있는 데서 한 자락 희망을 본다.해결책언론(Solutions Journalism). 뉴스는 선정적, 충격적, 부정적이어야 한다고 인식하여, 보여주고 드러내는 데만 집중하는 언론행위는 독자를 피곤하게 한다. 2008년 미국 AP(Associated Press)의 발표에 따르면, 젊은 독자들이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휘발성이 높은 언론보도를 회피한다고 하였다. 오늘 독자들은 여러 이슈들에 대하여 시민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사회가 제시할 접근방법은 무엇인지,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솔루션을 향한 지향점을 제안하는 언론행위를 기다린다.어린 생명의 희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아동폭력만큼 비열한 행위도 드물다. 교육과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법과 제도는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 사회와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1-01-06

앱테크

앱테크는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돈을 버는 새로운 재테크 풍조를 일컫는 용어다.앱을 통해 광고 시청, 특정 상품 관련 퀴즈 맞추기, 사이트 회원 가입, 앱 다운로드, 잠금화면에 팝업 광고가 뜨는 만보기를 설치하기 등의 행동을 통해 모바일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하거나 실제 자신의 계좌에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모으는 재테크 방식이다.예컨대 앱 ‘캐시워크’ 팝업 광고를 보며 매일 1만 보를 걸으면 최대 100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앱을 활용하면 2달 후엔 약 6천캐시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구매하는 식이다. 스마트폰만 휴대하면 어디에서든 간편한 방법으로 재테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단체에 필요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모바일로 해주고 노동의 댓가를 받는 미션형 앱도 존재한다.또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마트 그리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전자나 종이 영수증과 바코드를 등록해 포인트를 적립 받는 ‘캐시카우’앱도 인기다. 상품별로 각각 지급 포인트 금액과 한도가 달라 하루에 몇 건, 몇 포인트, 상품 몇 개를 포인트로 지급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구매일 포함 6일 이내의 영수증이면 앱에 등록할 수 있고, 5천포인트 이상 모으면 현금으로 바꿀수 있다. 앱테크가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에는 각종 리워드앱의 특징과 포인트를 얻는 방법 등을 연구하는 카페동호회도 속속 생겼다.최근에는 주요 리워드앱의 특징 등을 소개하면서 이를 이용해 벌 수 있는 금액까지 알려준다. 앱테크는 기업입장에서 마케팅 수단이나 비지니스 모델로 유용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그저 일상생활 속에서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팁으로 사용하면 제격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06

교사가 답이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그렇게 하고 어떻게 삽니까!”지난주에 교사 초빙 공고를 냈다. 공고 끝부분에 급여와 근무조건이 다르니 지원하기 전에 꼭 학교로 먼저 문의하라는 내용을 적었다. 공고가 나가자마자 많은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비록 인가 중학교이지만, 교육청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급여가 다른 학교 선생님에 비해 적고, 급여 체계도 다릅니다.”여기까지 말하면 백이면 백 전화기 너머에서는 한숨 소리가 크게 난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혹여나 호기심을 가지고 끝까지 물어보면, 자본주의가 점령한 이 나라 교육 판에도 오로지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필자는 더 힘을 내어 설명한다.“기숙사 학교여서 출퇴근 시간이 빠르고 늦습니다. 저녁에는 저녁 교육 프로그램 지도해야 하고, 아침에는 식사 지도까지 해야 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한 근무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교육에 투신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어렵습니다.”굳이 끝부분의 말은 안 해도 되지만, 필자는 그들의 선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꼭 한다. 인내를 가지고 필자의 설명을 끝까지 듣는 사람도 드물지만, 투신이라는 말이 끝나면 공통으로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헛웃음이다. 간혹 헛웃음 소리와 함께 비속어가 들릴 때도 있다. 7년 동안 경험한 일이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올해는 달랐다.2020년 12월 31일, 늦은 오후에 역시 문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아주 젊은 사람이었다. 학교에 관해 많은 관심이 있어 보였다. 듣는 태도가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좀 더 자세히 학교의 근무 여건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사람은 통화가 끝나고 필자에게 따지듯 물었다.“교사도 사람인데,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삽니까! 대단하십니다.”청년 실업 문제가 국가 재난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중소기업이 심각한 인력난으로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필자는 이 전화 한 통으로 확실히 이해했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교육에 투신하고 있는 산자연중학교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교사도 사람이다. 교사도 월급쟁이가 된 이상 다른 직장인처럼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교사가 많다.또 이를 위해 단체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요즘은 워라밸 대신 워라블(Work-life blending, 일과 삶의 조화)을 외치기도 한다.물론 둘 다 필요하다. 교사가 힘이 있어야 교육도 힘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교사의 힘은 예전에 비하면 넘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다. 교육 재건의 몫은 바로 교사다. 교사 개인의 삶도 삶이지만, 그것보다 먼저 이번 방학에는 사표(師表)가 무엇인지, 또 진정한 희생과 배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교사가 바로 서야 교육도 바로 선다.

2021-01-06

새해의 소망, 한국인의 자긍심 회복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가 바뀌어도 이 나라 정치는 시끄럽기 그지없다. 여야 갈등은 더욱 첨예하고 진영 간의 편 가르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정쟁을 멈추었다는 소식은 언제 들을지 의문이다. 이러다가 나라가 거들난다고 불안해 하면서 서로 그 책임은 상대방에 미루고 있다. 모두 교수신문이 말하는 아시타비(我是他非)요 ‘내로남불’이다. 서로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이다. 그러다가 나를 뺀 한국인은 모두 안 된다는 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외국인들은 우리를 인정하는 대 정작 우리는 자긍심을 잃은 사람이 주변에는 너무 많다.30여 년 전 외국 여행길에 코리아하면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 어딜 가나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람이 많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괄목할 만큼 성장하고 한류가 코리아의 이미지를 살린 결과이다. 한국의 GDP는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하에서도 지난달 우리의 수출 물량이 증가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반도체 수출은 일본을 제친지 오래다. 선박 수주량도 다시 세계 일등국이 됐다. 이러한데도 이를 인정치 않으려는 한국인이 많으니 안타까울 뿐이다.근년 한국은 스포츠, 예술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사람이 많다. 차범근, 박지성 뒤를 잇는 축구 스타 손흥민은 우리시간 2일 대망의 100골을 달성했다. 박찬호에 이은 야구 투수 류현진의 활약이 우리나라를 빛내고 있다. 박인비 등 한국 출신 골프 여제들도 LPGA를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는 예상을 뒤엎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점령한 지 오래다. 한류의 불을 지핀 이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이쯤 되면 우리도 문화적인 자부심이라도 가져야 한다. 세계 선진국민의 추한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20여 년 전 일본의 어느 해수욕장 화장실 문화를 보고 와서 우리도 벤치마킹하자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무런 감시 없는 화장실 선반의 화장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리의 고속도로 화장실 문화는 세계적 수준이 됐다. 우리의 사통팔달의 고속도로는 일본, 미국, 독일을 능가하는 수준이 되었다. 코로나 방역에 역행하는 서구인들의 무질서, 사재기까지 하는 추악한 미국인들, 선거 패배를 승복치 못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아직도 반한의식에 젖은 일본인들 모두가 후진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정황에도 우리 주변에는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어쩌다 우리가 자긍심을 잃은 국민들이 되었을까. 국민들의 자만심과 우월의식도 문제지만 자기비하나 자긍심 상실은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다. 우리는 일제 시부터 ‘조센징’은 안된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다. 일제의 식민지배 정당화라는 그들의 조작된 논리를 우리가 수용한 결과이다.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학자까지 있다. 강대국을 향한 사대의 논리는 아직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자긍심 가진 당당한 국민으로 태어났으면 한다.

2021-01-06

천천히, 멀리 가는 소걸음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한 세월 또 잊어야만 시간이 흘러 2021년으로 세월의 바톤이 넘겨졌다.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고 새 출발은 늘 설레고 희망찬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 밝아오는 해를 보며 소망을 빌고 각오나 포부를 다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1년 내내 전대미문의 코로나19 괴질이 일상을 위협하더니, 급기야 온 나라 아니 세계인들의 연례적인 해맞이 행사마저 가차없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생각 같아서는 저무는 경자년과 함께 약삭빠른 쥐 같은 바이러스가 죄다 떨어져 나갔으면 바랐었는데, 보란듯이 변이, 변종까지 파생시키며 몹쓸 바이러스는 갈수록 집요하게 삶의 근간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나라에서는 최근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해외 백신 조달과 자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도전과 응전의 원리’가 말해 주듯이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이 바로, 인간 사회의 문명과 역사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되고 생존의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어쨌든 새해는 밝았고 모든 것이 녹록잖은 한 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만 한다. 경제와 무역, 산업과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의 위축과 침체가 더욱 가중될 수 있는 현실에서 저마다 자중하고 결연한 의지와 인내심으로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 서두름 보다는 차분함으로, 한숨 보다는 진중함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서로에게 배려와 위로의 손길을 내밀며 공생의 묘안을 찾아 우직하고 한결같이 밀어 부쳐야 한다.그것이 신축년 소의 해에 대두되는 암시가 아닐까 싶다. 느릿느릿 황소 걸음도 만리에 이른다(牛步萬里)는 말처럼, 꾸준함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기도 하고(水滴穿石) 사람이 산을 옮기기도(愚公移山) 한다. 소걸음은 더디지만 부지런히 멀리 갈 수 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보는 것처럼 빨리, 먼저 가는 것만이 굳이 능사가 아님을 주위에서 흔하게 보아왔다. 말 가는데 소도 가듯이,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음(一勤天下無難事)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세상이 편리하고 스마트해지는 사이 그 이면에는 암울의 그림자가 소리없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첨단과학문명의 발달로 개인화가 증가함에 따라 인간성이 메말라 간다든지,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여 곤경에 빠지게 하는 등으로 어쩌면 인간사회에 모종의 경고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너 나 없이 모두 어렵고 힘든 작금의 상황에 미련스럽게 보일지라도 필자는 우보만리의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와 단계별 거리두기를 빈틈없이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하나씩 지키고 참여하여 과정을 밟아 나갈 때 걷잡을 수 없는 바이러스의 확산세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느리지만 신중하게 방역의 기본과 원칙을 따르고, 불편하지만 타인과 사회를 배려하면서 소의 걸음으로 방역지침을 착실하게 이행해야 함께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21-01-05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는 비법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지난 여름, 어머니와 백화점 식품관에서 장을 보다 복숭아가 탐스러워 보여서 한 상자를 샀다. 지역 특산품을 좋은 가격에 파는 특판이라며 대대적으로 멋지게 홍보를 하고 있어서 더 믿음이 갔다. 달콤한 과즙이 터져 나오는 말랑한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 상상을 하니 집에 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질 지경이었다.그러나, 어머니와 나를 잔뜩 설레게 했던 그 복숭아는 우리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푸석하고 단맛이라곤 없는 기상천외한 맛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도 아니고, 평소 믿고 이용하던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서 사 온 것이라 그런지 실망감이 더 컸다. 우리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그 복숭아 한 상자는 가족 모두에게 외면을 받아 이내 어머니의 골칫거리로 전락했고, 얼마 후 ‘복숭아 잼’이 되어서야 식탁에 다시 올라왔다. 복숭아 한 상자에서 시작된 실망감은 그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다른 상품들까지 불신하게 했고, 그 후 우리는 그 백화점 식품관을 다시 찾지 않게 되었다.코로나가 극성을 떠는 와중에도 먹거리 장을 보러 매일 직접 나가시는 어머니가 불안해서,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를 이용해 보시라 말씀드려 보지만, 어머니는 ‘먹거리는 직접 보고 골라야 한다’라며 듣지 않으신다. 그런 어머니가 유독 전화로 주문해 드시는 것이 하나 있다. 어머니 휴대전화 주소록에 ‘부산 조기’로 저장된 집이 그것이다. 대화 중에 그 부산 조기 집 얘기가 나올 때면 어머니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날 잡은 신선한 조기를 큰 것, 작은 것 적당히 섞어 깔끔히 포장해서 보내 주니, 제수용과 식구들 먹는 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맛이 늘 한결같아서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얘기를 듣고 나면 누구나 그 집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싶어지니, 우리 어머니가 부산 조기의 대변인 역할을 하시는 소위 ‘충성 유저(User)’인 셈이다.얼마 전부터 나는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뜻을 같이하는 기업들과 함께 소상공업 지원 연구를 하나 시작했다. 소상공인에게는 좋은 상품을 더 널리 더 잘 알려서 우리 어머니 같은 ‘충성 유저’를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돕고, 소비자에게는 가게에 직접 가지 않고도 좋은 상품을 제대로 고를 수 있게 돕는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다. 처음에는 우리 지역 소상공업이 글로벌 IT 기업 수준의 비대면 경쟁력을 갖추게 돕겠다는 것이 우리 팀의 야심 찬 목표였다. 그런데, 어머니와 부산 조기 집의 경우를 통해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강력한 비대면 역량은 바로 다름 아닌 상품의 경쟁력이며, 비대면 IT 기술의 역할은 그 좋은 상품을 알리는 데 작은 도움을 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믿을 수 있는 품질 좋은 조기로 우리 집 식탁을 행복하게 해주는 부산 어느 어부의 바닷길이 오늘도 부디 순탄하기를, 그리고 그 좋은 조기에 대한 소식이 더 널리 전해져 다른 가정의 식탁 위에도 행복한 웃음꽃이 피기를 기원해본다.

2021-01-05

복권의 꿈

일반적으로 복권은 경기가 나쁠 때 잘 팔리는 불황형 상품이라 한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일확천금의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해 상반기 국내 복권 판매액은 2조6천여억원으로 2005년 이래 최고 판매액을 기록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복권당첨을 희망으로 삼았던 사람이 꽤 많았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새해 첫날 영국에서는 유로밀리언 복권추첨에서 한화로 약 591억원의 돈벼락을 맞은 사람이 나왔다고 한다. 신년 운수가 정말로 대통한 사람이다. 일확천금을 얻어 단숨에 부자 행렬에 들어섰다.복권이 불황형 상품이라 부르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적 현상인 상대적 박탈감을 이유로 보는 것이 보통의 견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양극화 등이 이런 경우다.작년처럼 집값이 폭등하면 집이 없는 서민에겐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몇 달 사이에 수억씩 오르는 집값을 바라보면 일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 요즘처럼 활황을 보이는 주식시장도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분야다. 하루 먹고살기에 바쁜 서민에겐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인 주식을 해서 몇억씩 벌었다는 소문은 패배감과 무력감만 안겨줄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겐 복권이 유일한 희망일지 모른다. 당첨확률로 보면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들에겐 희망의 등불이다.올 초 첫 로또복권 당첨자가 발표되고 13명의 1등 당첨자에게 19억원의 당첨금이 돌아간다고 한다. 해가 바뀌면서 복권당첨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올해는 복권보다 경기가 확 풀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대가가 돌아가는 세상이 되길 희망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05

새해 소망

김규종 경북대 교수신축년 2021년 올해 전국의 해맞이 명소가 폐쇄되었다. 달갑잖은 코로나19의 선물이었다. 해마다 1월 초하루면 해맞이 차량으로 몸살을 앓던 국도 7호선도 조용했으리라. 해맞이 차량 행렬에 끼지 않으면 무슨 사달이나 나듯 호들갑 떨던 사람들은 어디서 뭘 했을까, 궁금하다.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맞물려 있다. 고3은 대학 신입생이 되고, 대졸자는 사회 초년생이 되는 이치와 같다. 노자(老子)는 그것을 ‘전후상수(前後相隨)’로 풀었다.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는 뜻이다. 등산 가다가 길을 잘못 들으면 되돌아서야 한다. 끝에 가던 사람이 선두가 되고, 가장 앞선 사람이 최후미에 자리한다. 앞서간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고, 뒤처져 있다고 위축될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전후상수’는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연상하면 좋겠다. 가난한 집 자식들이 공부든 노동이든 열중하여 사회에서 대접받는 자리에 올랐을 때 하는 말이다. 지난 세기 6-70년대 우골탑 신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산업화의 첨병으로 활약했던 신진기예는 대개 개천에서 나온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었다. 그들이 이룩한 고도성장 신화가 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었다.그런데 21세기에 개천과 용의 관계는 전면 실종되었다. 요즘 개천에는 용은커녕 토룡조차 찾기 어렵다. 실지렁이 몇 마리 떠돌 뿐 적막하기 그지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와 관련된 기사는 차고 넘친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현상의 근저에 자리하는 불의와 불평등이다. 아빠와 엄마 찬스, 부의 대물림과 불법 편법 무법 초법 탈법 같은 무소불위 권력자들의 ‘내로남불’에 잠재된 이데올로기가 두려운 것이다.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계층의 자유로운 이동이 무시로 일어나야 한다. ‘역동적인 대한민국’이라는 용어에서 긍정적인 면모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대한 호수가 아니라, 실개천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용들이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반대 아닌가. 사회 기득권층이 막강한 특권을 행사하고, 그것을 대물림하는 풍경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병약하게 하는 근간이다.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어둡고 출구 없는 칠흑 같은 무간지옥을 연상시키는 흑색 스릴러 영화와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언론 뉴스만 본다면 한국 사회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고 휘청거린다.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젊은 세대의 장탄식과 고통스러운 한숨은 분명 이유가 있다. 그들의 비상(飛翔)과 장쾌한 미래기획이 실현될 방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나이 먹은 축들이 할 일이다.부동산 투기로 자식 세대의 돈을 갈취한 자들은 그만 자제했으면 한다. 전국 곳곳의 기획부동산에 철퇴를 내리지 않는 국토부의 소임은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꿈과 미래를 걸 수 있도록 선명한 방침과 실행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21-01-05

신라 이전의 시간

경주와 신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며 ‘수수께끼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공간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본지는 올 한 해 공동 연중기획으로 신라와 경주의 비밀을 풀어가는 칼럼 연재를 진행한다.사학자와 신라 연구자로 구성된 필진들이 ‘선사시대의 경주’에서부터 ‘신라의 왕실문화와 불교문화’ ‘신라 역사 속 인물들’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격려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사람들은 아직 집을 짓지 않았고, 평생의 정착지를 정하지 않았다.바람과 물을 따라,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며 살았다.점차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는데,그런 의미에서 강과 바다는 마실 물과 음식을 얻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비와 홍수의 피해가 적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집을 중심으로 생긴 울타리는 그 안과 밖의 경계가 되었다.울타리 안의 사람들은 무리지어 살기 시작했다.그렇게 역사가 시작되었다.신라가 태동하기 전, ‘신라 땅’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가장 이른 사람의 흔적은 안동시(와룡면 태리, 마애리)에서 확인되었고, 약 4만 년 전부터다. 동해안과 낙동강을 중심으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이동하며 머물렀던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그들은 정형화된 형태의 도구를 돌로 만들어 냈다. 대표적으로 주먹도끼는 좌우, 앞뒤가 대칭을 이루고 끝 부분이 뾰족한 형태인데, 찍거나 자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후,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도구들은 점차 크기가 작아지는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포항·대구·성주 등 넓은 범위에서 보인다. 경주지역에서는 감포읍의 대본리에서 확인된다. 그들은 여전히 집을 짓지 않고 이동하였으며, 토기(土器)를 만들지 않았다.석기시대 사람들의 시간은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흘렀다. 그리고 신석기시대로 지칭되는 문화적 변화는 3만 년이란 시간이 더 흐른 뒤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집을 짓고, 불을 이용해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흙 그릇을 굽고, 사후 세계를 위한 무덤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흔적은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에서부터 이어졌으며,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대구·청도·김천 지역, 형산강을 중심으로 한 경주지역 곳곳에서 확인된다.경주지역에서도 동해안의 봉길리·대본리, 형산강 북천에 맞닿은 황성동, 남천에 맞닿은 교동 등 그 분포가 넓다. 우리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시간의 흐름을 그들이 남긴 토기를 통해 찾아내곤 한다. 경북과 경주에서는 흙을 덧대어 그릇을 장식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덧무늬 토기부터, 빗살무늬를 선으로 그어 만든 토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늬를 긋거나 장식하지 않은 신석기시대 마지막 토기의 형태가 연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시간은 신석기시대의 시작과 끝, 그리고 다시 청동기시대로 이어진다.최문정학예연구사그럼에도, 지금까지 드러난 석기시대 문화는 매우 단편적이다. 이러한 파편으로 남겨진 흔적으로 석기시대와 신라 문화와의 연속성을 도출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석기시대의 경북 그리고 경주로 대표되는 지역에서는 동해안·남해안·내륙에서 이어지는 문화의 흐름들이 공존하였고, 나아가 독특한 문화 형태를 띄기도 했다는 점이다.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등의 지리적 한계는 어쩌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동해와 남해를 통해, 그리고 산 너머 내륙에서 전해지는 문화를 온전히 받아드렸고, 또 환경에 적응시켜나갔다. 이러한 교류와 확산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한 조각을 우리가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경주지역의 신석기시대의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월성(月城)’의 가장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일제강점기 1915년 동경제국대학 인류학 교수였던 도리이류조(鳥居龍藏)가 ‘경상북도 경주 반월성대하(半月城臺下)’에서 석기시대 유물층을 확인했다는 기록이 최초다. 이후 그 ‘월성’을 중심으로 신라가 이루었던 찬란한 문화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월성에서 처음 확인된 가장 아래층의 문화는 잊혀져갔다.역사가 기록되기 전의 시대. 선사(先史)시대의 경주는 여전히 그 실체가 선명하지 않다. 하지만 ‘가장 처음’의 흔적을 찾고 연구하는 일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부터 이어질 ‘신라에 대한 모든 이야기’보다 4만년이 앞선 시간이, 또 1만년이 앞선 시간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신라인’들이 그러하였듯, 또한 오늘날의 ‘우리들’이 그러하였듯 대륙과 해양, 그리고 또 다른 문화의 흐름 한 가운데 서있었다. 그 시작점에 있었던 사람들을 기억해두고 싶다.

2021-01-04

도서관은 움직인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모아둔 커다랗고 컴컴한 건물을 가리키는 단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착각중에 하나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도서관에 가보면, 그렇게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서관이 폐쇄되는 상황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에 앞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식의 정리보다는 단지 문화와 관련된 행정기관으로 간주되고 말거나, 자기 공부를 할 공간을 찾는 이들의 공공 공간 정도로만 생각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분명 책문화의 급격한 몰락으로 인해, 도서관의 의미 역시 점차 퇴색해가고 있는 것이다.물론, 공간의 의미는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채우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영위하는 지식은 책을 벗어나 디지털 미디어로, 네트워크로 점차 변화해 나가고 있는데, 도서관만은 여전히 책을 가득 안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아쉬움은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류의 문화는 변화해가는 중이다.도서관이 갖고 있는 일차적인 힘은 정리와 분류에서 나온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밤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에서 ‘정리’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개인적이고 느슨한 분류로부터 학문적 분류가 포함된 주제명 표목 등으로 발전하여 결국 멜빌 듀이에 의해 완성된 현재 대다수의 도서관에서 채택하고 있는 분류법으로 정착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도서관은 인간이 쌓아올린 학문적 결정체인 책을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할 것인가 하는 인간의 지식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실체였다. 인간이 새로운 학문을 추구해나가면, 당연히 그것에 대한 분류법 역시 다르게 바뀌어 나갈 것이다.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여 ‘밤의 도서관’을 만들었던 망구엘에게 있어서도 도서관이란 그저 어떤 건물 속에 머물러 있는 실체가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무한한 세계로 펼쳐질 수 있는 인간의 지식의 저장과 정리, 그 분류방식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도서관을 조금은 달리 사유해야할 이유를 부여한다.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쓴 단편 ‘바벨의 도서관’은 어쩌면 이러한 도서관과 학문의 사유의 정점에 놓여 있다. 그에게 있어 ‘우주’는 무한한 갯수의 육각형 진열실로, 또 그 진열실 속에는 스무개의 책장들이 들어서 있는 무한의 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한 권의 책, 아니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 방황을 하며 여행을 한다. 신의 암호를 풀어냈다는 사람의 뒤를 따라 가보기도 하고, 책들의 놓여 있는 곳의 정보를 알기 위한 책들이 놓여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기도 한다. 보르헤스에게 있어서 이 도서관의 비유는 인간이 태어나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면서 방황하는 삶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그 의미는 인간이 평생 찾아야할 지식이나 학문과 관련되어 있다. 이 계시와도 같은 짧은 소설의 마지막에 보르헤스는 이 도서관이 한계가 없지만 주기적으로 움직인다고 쓴다. 한 세기도 살기 어려운 인간의 아득한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 질서와 무질서 사이를 주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다시 도서관을 생각한다. 우리에게 도서관은 무엇이었고 무엇이어야 할까. 책들을 가득 저장하고, 진열하고, 정리하여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 적절한 정의이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우리는 우리의 ‘도서관’을 되찾을 수 없다. 망구엘은 다시 독서가의 힘은 정보를 수집하고 목록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변형시키는 재능에 있다고 말한다. 책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고 도서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지식들을 변형하여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에서 도서관의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도서관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1-01-04

기다림의 끝이 보일 무렵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야 얼마나 되겠냐마는 2020년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아쉬움보다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한 해가 끝났다는 후련함이었다. 2020년 한 해가 그만큼 지긋지긋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코로나19 때문이었을 것이다.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매일매일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 그래서 돋아나는 뾰루지, 사이버 강의, 음식점 및 주점 아홉시 이후 영업 금지, 헬스장을 비롯한 운동시설 집합금지, 하나하나 영업을 포기하는 작은 가게들과 같은 풍경들이 일상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스크 하나 쓰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이 불과 일 년 전의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억들이 까마득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에게 이 시절이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차라리 코로나 19와의 싸움이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 날까지의 기다림이 일 년이건 이 년이건 그 기간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원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 기다림 자체보다 기약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고통스럽기 마련이므로.새해의 시작부터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온다. 정부가 미국 제약사인 모더나와 2천만 명분의 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계약으로 인해 정부가 구매한 백신의 수는 인구의 100%를 상회하는 5천600만 명분이 되었고, 5월부터 백신의 접종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멀든 가깝든, 그 끝이 정해져 있는 기다림은 그렇지 않은 기다림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 지긋지긋했던 우리의 기다림에도 드디어 예정된 끝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게 되었다. 적어도 여태까지 우리가 기다린 것보다 앞으로 기다려야 할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니 한결 희망적인 기분이 된다.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모두의 기다림을 끝내는 일보다 당장 작은 것들을 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모양이다. 간절곶, 호미곶, 해운대, 정동진, 성산 일출봉 등 해돋이 명소를 보유한 지자체들은 제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이지 말아달라며 1월 1일 당일 해당 장소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해돋이 인파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폐쇄된 해맞이 명소들의 변두리에서라도 해돋이를 보겠다며 해당 장소들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곳에서마저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조차 지키지 않는 일부 시민들을 보며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들 중 대다수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자신들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코로나 방역지침을 어겨가며 빌었을 소원이 건강과 행복이라니, 이보다 더한 역설이 또 있을까.올해는 기필코 이 긴 기다림을 끝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회사원이건 자영업자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이 끝난 후에는 다섯 명이건 여섯 명이건 상관없이 모여 자신들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하며, 거리를 밝힌 음식점과 주점의 간판들은 아홉시건 열시건 꺼지지 않고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거저 오지는 않을 것이다.여태까지 해온대로 지루하고 고단하게, 우리의 즐거움을 조금씩 희생하며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는 것이 긴 기다림의 끝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2021년 새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며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이 기다림이 무사히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1-01-04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긋게 되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켄 윌버의 책 ‘무경계’. /정신세계사늘 그렇듯 한 해의 시작은 기대와 설렘을 몰고 온다. 힘겨웠던 2020년을 지나 보내고 나니 새해라는 단어가 더욱더 귀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한 모두가 각자의 소망을 움켜쥔 채로 힘차게 나아가는 중일 것이다.한 해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꼭 지키는 규칙이 하나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다이어리의 가장 마지막 장에 적어두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 포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되 그것에 집착하거나 일부러 곱씹지 않는다. 열두 해를 살아가며 내가 어떤 각오를 다졌는지 까맣게 잊어버리다가 12월의 마지막 날 비로소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펼쳐본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하지만 성공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막막한 종이를 앞에 두고 골몰하던 작년의 나를 돌아보며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다.이 작업은 해마다 달라지는 나의 상태를 조망할 수 있기에 흥미롭다. 건강과 주변의 안녕 또는 작년보다는 조금 더 두툼해진 지갑을 바랄 때도 있다. 공통된 점이라 하면 당시의 상황에서 결핍된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이다.이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나의 기준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그렇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이라는 숫자에 연연하면서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켄 윌버의 저서 ‘무경계’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긋게 되는 경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떠한 관념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세계로부터 두 개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음, 빈곤과 부, 흑과 백, 젊음과 늙음. 이것은 모두 다르긴 하지만 결국 단일한 사건을 나타내는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반쪽에만 집착하며 다른 쪽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출구가 없는 입구만의 세계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제에 살면서 내일을 꿈꾼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시간을 둘로 나눈다. 과거와 미래가 압박하고 있다는 기분과 함께 괴로워하며 자신을 속박하게 된다.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허망하게 흘려보내고 있는지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현재는 한정되고, 담으로 둘러싸이고, 제한된다. 열린 순간이 아니라 짓눌린 순간, 압착된 순간, 즉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덧없는 순간이 된다. 과거와 미래가 너무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샌드위치 속의 고기인 현재의 순간은 단지 얇은 종잇조각처럼 축소되고 우리의 실재는 이내 내용물 없는 두 조각의 빵이 되어버린다.’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내일을 원한다. 그러나 힘겹게 걸어온 끝에 당도한 순간이 바로 현재라는 것은 쉽게 망각하곤 한다.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 주요한 명절을 앞뒤로 두고 마치 공백으로 남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탁월하게 묘사한 것이다.어쩌면 우리는 소중한 매일을 이러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직 진짜가 아니라고,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고요히 내리는 눈을 그저 바라보는 대신에 꽝꽝 얼어붙은 도로의 출근길을 맞이해야 하는 내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멈추는 것만으로 우리는 한결 더 가벼워질 수 있다. ‘바로 지금’ 보고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체험은 없다. 변화와 지속이 공존하는 삶 속에서 미래는 현재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리라. 새해에는 그런 다짐을 해본다.

2021-01-04

프로토콜 경제

프로토콜 경제(Protocol Economy)는 현재 대세가 되고 있는 우버나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 경제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 탄생한 경제 개념으로, 탈중앙화를 통해 여러 경제 주체를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모델이다.독점자본주의에 대한 반(反)작용으로 수정자본주의가 나온 것과 같다. 플랫폼 경제는 폐쇄적인 프로토콜(약속)로 열심히 일한 플랫폼 근로자에겐 적은 댓가가 가게끔 설계됐고, 소수의 운영자에게만 부(富)를 몰아줬다. 하지만 프로토콜 경제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일정한 규칙(프로토콜)을 만들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제로, 보안과 프로토콜 공유 문제를 해결했다.플랫폼 사업자가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탈중앙화·탈독점화가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창업자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여기에 참여한 소상공인이나 배달원들의 소득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프로토콜 경제 시대에는 성장에 기여한 소상공인·배달원에게도 주식배분 등 합당한 경제적 보상이 이뤄질 수 있게됐다.프로토콜 경제는 블록체인 기반의 기술을 이용해 플랫폼에 모인 개체들이 합의를 한 뒤 일정한 규칙(프로토콜)을 만드는 등 참여자 모두에게 공정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참여형 경제체계를 구축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프로토콜 경제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고 있는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지난 해 11월 블록체인 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처음 이슈로 꺼낸 이후 정부의 2021년 경제정책방향에도 과제로 담겼다.부의 분배를 위한 새로운 개념의 프로토콜 경제가 얼마나 뻗어나갈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04

내가 케이크를 자른다면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며칠 전 여고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희야, 항상 네 글 잘 보고 있어. 글 읽을 때마다 이런 걸 공짜로 읽어도 되나 항상 생각해. 나는 선반에 있는 약을 꺼내서 손님에게 전해주기만 해도 돈을 받는데 글 쓰는 사람들은 그냥 나눠주니까 불공평한 것 같아. 내가 책값 보내고 싶은데 꼭 받아줘.” 하면서 책값이라고 할 수 없는 큰돈을 보내왔다.그 후 불공평이라는 말이 자꾸 맴돌다가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렸다’는 말이 떠올랐다. 중국 고전 ‘회남자’에 나오는 말이다. 문자가 생기면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하늘이 곡식을 내려주었다는 말이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계급 차이는 있었겠지만, 문자 시대 이후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문자를 쓰지 않고 새끼줄을 꼬아 의사소통하는 시대’를 이상사회로 보았다.문명이 발달하면서 단순히 문자를 아는 것만으로 지배층이 될 수는 없고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기술을 습득할수록 기득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등장해서 분야에 따라서는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있어도 어려운 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분배 문제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사서삼경만 외워도 행세할 수 있는 전근대 사회에서도 지식인들은 과하게 특혜를 누렸고, 현대 사회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의 기준은 어떻게 정할까?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이익의 원천을 평가해야 할 텐데 과연 이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에서 생산력을 산출하는 요소를 토지, 자본, 노동 세 가지라고 한다. 여기서 토지와 자본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변하지 않고 오히려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는데 노동은 평가가 요동을 친다. 어떤 노동은 엄청난 보상을 받고 어떤 노동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같은 노동이라도 시대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때로는 동일한 사람이 그 능력으로 강의를 하면 보상이 높고 글을 쓰면 보상이 낮다. 중앙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꽤 유명한 작가 역시 글만 써서는 생활할 수 없다며 코로나19로 강의가 끊겨 살기가 곤란하다고 고충을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강의는 같은 말을 무수히 반복해도 상관없지만, 글은 절대로 같은 내용을 허용하지 않는데도 그렇다.‘내가 케이크를 자른다면’은 공정한 분배를 탐색하는 그림책 제목이다. 만약 내게 케이크를 자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나는 조용히 그 칼을 내려놓을 것이다. 공정하게 자를 자신도 없고, 어느 한 사람에게 케이크를 자르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작가 조승연은 인문적 교양이란 감성비를 높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사람답게 사는 데 가성비만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감성비를 높여주는 활동에 대한 보상은 지나치게 탄력적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의 책임을 사회에만 미룰 수는 없다. 감성비 높이는 활동에 보상받는 방법을 당사자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2021-01-04

집콕 시대에 팔자 고치기 (上)

김현욱 시인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아이들은 2020년의 마지막 날, 글기지개에 공통으로 ‘지옥 같았던 2020년’이라고 썼다. 소풍은커녕 운동장에서조차 마음껏 뛰어놀지 못했던 아이들이다. 특히, 1학년 아이들은 순한 사슴처럼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투명 가림막 안에서 생활했다. 얼마나 갑갑하고 힘들었을까? 2021년에는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우리 아이들의 소망이 과연 이뤄질까? 안타깝지만, 2021년도 기약하기 어렵다.전문가들은 팬데믹(pandemic)이 기후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대재앙의 전조도 전 세계에서 연일 보고되고 있다.12월 31일, 겨울방학식은 줌(Zoom)으로 진행됐다. 화면 속에 아이들은 자기 방이나 거실에 앉아서 멀뚱멀뚱 캠 카메라를 쳐다봤다. “겨울방학 동안 방역수칙 잘 준수하고 독서, 글쓰기, 운동 꾸준히 하기. 알았지? 약속!” 나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힘주어 말했지만, 어딘가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원격으로 ‘지옥 같았던 2020년’을 마무리 짓는구나, 하는 서글픈 기색이 서로 역력했다.2021년 새해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잠잠하던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일이 커다란 민폐가 되고 있다. 올해도 역시나 ‘집콕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집콕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문득 동양학자 조용헌 교수의 ‘팔자 고치는 법’이 떠오른다.조용헌 교수는 적선(積善), 스승 만나기, 독서, 명상(기도), 명당, 자신의 사주팔자를 아는 여섯 가지 방법으로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집콕 시대에 안성맞춤이다. 적선(積善)이라고 꼭 만나서 몸으로 때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SNS나 통화로도 얼마든지 선을 쌓을 수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부를 전하는 일 따위가 모두 적선(積善)이다.조용헌 교수는 “적선(積善)이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도록 투자하는 이치와 같다. 주변이 우호적인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그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면서 적선(積善)을 팔자 고치는 첫 번째 방법으로 제시했다. 나는 요즘 카톡 창에 생일이라고 뜨는 지인이 있으면 정성껏 챙긴다. 몇 글자 진심을 담아 축하해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기뻐하고 감사해한다. 연락처를 살피며 오래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하기도 한다. 얼마나 좋은가. 집콕 시대에 비대면으로 적선(積善)하기.두 번째 방법은 스승을 만나는 것인데, 이것 또한 집콕 시대에 절묘한 해법이다. 물론, 위대한 감화를 주는 스승을 랜선으로 만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랜선을 통해 세상에 숨은 고수들을 만나 다양한 잡기를 배울 수 있다. 배우고자 하면 랜선으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갈고 닦을 수 있다. 올해는 피아노 기초를 배우고자 한다. 피아노 반주를 넣어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구독과 ‘좋아요’로 스승을 정했다. 뭐든 자기 하기 나름이다. 올 연말에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집콕 시대에 팔자 고치기 2는 다음 회에.

2021-01-04

빚 갚는 한 해가 되길

강희룡 서예가사람은 소규모 집단인 가족과 친족만으로 형성된 자연적 공동체에서 다수 언어와 다수 인종으로 구성된 대규모 집단의 사회나 국가를 이루고 다양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삶의 유형 속에서 개인이 속한 사회나 국가에 빚이 없는 사람은 없다. 빚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남에게 빌린 물질적인 빚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 신세지고 도움 받으며 사는 마음의 빚이다. 성현은 도의 가르침을 세상에 세우는 것이 빚이고 학자는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잇는 것이 빚이며,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빚이다. 공직자들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빚이고, 출가자들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빚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빚이 없다는 것은 주어진 책임이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같다.한(韓)나라에서 대를 이어 정승 벼슬한 사람으로 장량(장자방)이란 사람이 있었다. 장량은 본래 한나라가 진(秦)나라에 멸망당하자 조국의 원수를 갚기 위해 집안의 재산을 모두 털어 진나라 시황제의 암살을 도모하였다. 후에 한나라 고조를 도와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공을 다 이룬 뒤에는 물욕을 버리고 물러나 신선의 도를 즐겼으므로 세상에 빚이 없는 사람으로 전해진다.시골선비 박수(1864~1918)가 살았던 시대는 지도층의 분열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구한말이다. 지도층의 분열은 외세의 압박을 불러들여 백성들의 삶의 궁핍과 정신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박수는 그의 저서 ‘중당유고(中堂遺稿)’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빚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빚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그저 빚을 갚기만을 바라며, 빚이 있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저 빚이 없는 사람이 될까 염려할 뿐입니다. 저는 마음속에 빚 문서가 수북이 쌓여 있는데 아직 한 푼도 청산하지 못하여 늘 개탄하고 있습니다.’여기에서 박수가 말하는 마음의 빚은 자신과 사회구성원인 백성으로서의 책무이다.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근원적인 빚을 지고 산다는 의미이다. 박수는 얽히고설킨 사회 속에서 빚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살기가 힘들수록 맹자는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했다. 즉 일정한 소득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유지하기 힘들며 독립적 인격체로 살기가 어렵기에 마음의 빚은 더욱 움츠릴 수밖에 없다. 구한말은 500여 년을 유지해 오던 한 왕조가 스러져가던 때였다. 당시의 백성들은 지배층의 부패와 정치놀음에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삶을 겨우 유지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중산층은 무너지고 실업자는 이중 삼중으로 쌓였다. 정치는 진영논리에 빠지고 부패는 개혁으로 포장되었다. 다수의 횡포는 규정과 법치를 농락하고 있다. 새해에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박수가 원하는 빚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그 빚을 갚기만을 바라며, 빚을 근심하지 말고 빚이 없는 사람이 될까 염려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2021-01-04

안동, 새로운 시대의 기적 소리 울려 퍼지다

권영세안동시장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의 일이다.1930년 당시로써는 거액인 이백만 원을 들여 안동역이 세워졌다. 이듬해 증기 기관차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전쟁의 중심에 있던 철도는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동맥이었다. 당시 남하하는 인민군은 7월 31일 안동 북부지역을 지나 시내로 향했고 안동역을 포함한 주요 철도 건물은 대부분 소실됐다. 급수탑만 살아남아 200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의 안동역사 건물이 준공된 때가 1960년 8월 25일이었다. 70년~90년대에 이르기까지 호황기를 누리며 안동역 광장은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지로 만남의 장소였다. 주변으로 각종 공공기관과 상점가 등 시가지가 뻗어 발달하고 역세권 인근의 안동 시내는 문화와 교통, 경제의 1번지였다.지난 17일 안동시민들과 더부살이하며 삶의 애환이 서린 구역사가 그동안의 세월을 뒤로하고 송현동으로 신축되어 이전됐다. 이에 발맞춰, 중앙선 복선전철이 개통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예고됐다. 2001년 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용 인구가 급감했던 철도 이용객이 차세대 KTX개통으로 경북 교통 거점을 다시 견인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이와 함께, 안동은 올초 관광거점도시에 선정되며 세계적 수준의 문화관광도시로서 2024년까지 1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으로 첫발을 디뎠다. 앞으로 신역사를 교통의 축으로 두고 서울 등 수도권으로부터 접근성을 개선하고 안동역에 내려 각 관광지까지 이동하는 대중교통체계를 개편하고 렌터카, 농특산물 판매장 등 편의시설도 구축한다.또 1942년 2월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를 끊어놓기 위해 임청각 마당을 가로지르며 놓인 철로가 곧 철거된다. 임청각은 2025년까지 280억원을 들여 옛 모습으로 복원되고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애국애족의 정신을 교육하는 기능까지 담을 예정이다. 지난 17일 문화재청장과 경북도지사 등 각계 인사가 모여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기존 역사부지를 포함한 폐선부지는 시민들과 관광객의 문화관광시설로 조성된다. 특히 안동 원도심의 중심지인 구역사부지는 테마공원, 지하주차장, 문화시설 등으로 조성해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줄 계획이다. 경북도청 이전, 터미널, 기차역 이전 등으로 성장의 축이 서쪽으로 편향된 것을 만회하고 구역사부지를 원도심 발전의 중심지로 새롭게 개발해 나갈 것이다. 현재 역사부지 관련 기관과 상당한 협의의 진전을 이루고 있다.그런데 녹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올 10월 지역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작년 10월에 비해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더욱이 12월 8일부터 비수도권 2단계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대부분 상가가 9시 전에 문을 닫아야 해 시내 발걸음이 뚝 끊겼다. 코로나 퇴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영시간을 통제하고 모임 자제를 권유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고통이 하루바삐 만회되도록 방역관리와 지원대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그래도 희망은 있다. 안동에 SK바이오 사이언스의 국내 최대 백신 공장이 가동되고 있고, 여기서 세계적 제약회사의 코로나19 백신이 생산 중이다. 관련 바이오 백신 산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경북바이오 일반산업단지에 SK플라즈마, 국제백신연구소 분원이 유치돼있고 최근 동물세포 실증센터도 준공을 앞두고 있다. 안동시는 대한민국 코로나19 극복의 최전방에 안동이 함께한다는 자부심으로 백신 개발 산업이 더욱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지원을 펼칠 계획이다.신축년 새해 안동시 사자성어는 “성윤성공(成允成功)”으로 정했다. 안동시 전 공직자는 더 낮은 자세로 시민이 주인인 행복안동 건설을 위해 “진실을 다하며 목표했던 일을 끝까지 완수한다”는 정신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시민들의 염원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2021-01-03

별이 빛나는 밤에

아들 둘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었다. 큰아이는 ‘이문세’라고 했고, 그림을 배운 둘째는 고흐라고 했다. 큰아이에게 너도 라디오를 듣냐고 했더니 그 세대는 아니지만 문득 떠올랐다고 하니 별밤지기 이문세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별밤을 오래 들었던 엄마의 어깨너머로 들은 추억담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여고시절을 별밤과 함께 보냈다.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듣다가 집에 오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옷을 갈아입고 책상 앞에 앉아 또 들었다. 숙제를 할 때도 소설을 읽을 때도 내 생활의 OST처럼 들려오는 소리였다. 물론 내가 들은 것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아닌 포항MBC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지만.엽서를 써서 보내놓고 내 엽서가 읽혀지길 기대하며 라디오에 귀를 붙이고 들었다. 반 친구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써서 보낸 것이 방송을 타면 그 다음날 아침 교실은 엽서이야기로 채워졌다. 예쁜 엽서를 뽑아 전시회도 했었다. 한 번 뽑혀 보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디어 짜는 데만 며칠을 보냈다. 친구들의 캐릭터를 고양이로 바꿨다. 느릿한 잠꾸러기 고양이, 하이틴 로맨스만 파는 고양이, 손톱을 물어뜯는 고양이, 그리고 열심히 라디오에 덕질하는 고양이 나. 관제엽서 두 장을 세로로 붙여서 네 마리 고양이를 그렸다. 파스텔에 물을 묻힌 붓을 문질러서 그리면 수채화느낌이 나는 그림이 된다. 그리고 옆에 재미난 설명을 붙였다.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일요일 오후에 대문이 열리면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보가 왔다는 것이다. 우체부 아저씨 복장이 아닌 평복이어서 긴가민가했다. 예쁜 엽서전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전보라는 것을 처음 받아봤다. 봉투도 없이 길게 찢어진 종이에 타이프로 쳐서 온 내용은 은상을 받았으니 몇날며칠까지 시상식에 참여하란 소리였다. 너무 아쉽지만 학교 가는 날이라 못 갔다.김순희수필가지나고 보면 그때 갈 걸, 무려 시상자가 조용필이었다는데 말이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하루쯤 빠져도 내 인생에 아무탈도 없을 일이었는데, 시상식에 가는 것이 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었는데 그땐 몰랐었다. 주말에 방송국에 가서 상을 전해 받았다. 표창장과 부상으로 커다란 헤드폰을 주었다. 용필오빠의 사인도 들어있었다. 잦은 이사로 지금은 사라져버린 물건들. 별밤을 방송하는 DJ를 별밤지기라고 한다. 이는 이문세가 DJ 시절 한 청취자가 ‘등대지기’라는 말에서 창안하여 엽서로 제안한 것으로 이문세가 수용한 것이라고 한다. 1969년 3월 17일에 처음 편성되었으며 무려 52년째 방송 중인 MBC의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상상이 잘 안 가지만, 처음 편성 당시에는 청소년 교양 진작 차원의 명사와의 대담 프로그램이었다. 3대 별밤지기로 당시부터 유명 DJ였던 이종환이 들어서면서 음악 방송으로 전환했다.당시 이문세의 별명은 ‘밤의 문교부장관’이었지만 포항에서는 아쉽게도 공개방송을 들려주는 날만 서울방송이 들렸을 뿐이다. 그래도 이문세는 별밤지기이면서 내 학창시절을 채운 음악 자체였다. 이문세 4집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으면 앞뒷면이 자동으로 돌아가며 밤샘 공부에 동행 해 주었다. ‘어허야 둥기둥기’가 나오면 한 바퀴 다 돌았구나 싶었다.이문세 콘서트를 포항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두 장의 표를 예매했다. 같은 세대를 살았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다들 시간이 안 맞았다. 이틀 전까지도 함께 갈 친구가 없었다. 슬그머니 남편에게 당신을 위해 준비한 표라고 하며 가자고 꼬셨다. 흔쾌히 따라 나섰다. 나는 내내 서서 몸을 흔들며 괴성을 질렀고, 남편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공연을 찍는다며 내 옆자리를 피했다. 공연 시작 전에 문자를 보내면 문세 오빠가 공연도중 읽어준다 해서 나도 보냈고 내 사연이 읽혔다. 노래제목 소녀를 숙녀로 보내서 누군지 얼굴을 보아야겠다고 해서다. 창피했지만 더 즐거운 추억으로 곱씹게 되었다. 별이 유난히 빛나는 오늘 밤에 문세오빠 노래를 꺼내 듣는다.

2021-01-03

코로나19 그리고 그린백신

김도영 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최초 확진자 보고 이후, 불과 1년여 만에 219개국에서 8천만명 이상이 감염되었으며, 이 중 사망자가 18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한 달에 3천750억 달러(한화 약 444조 원) 이상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2020.08)에 의하면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국내의 경제적 피해규모가 67조2천억 원에 달하며 일자리도 67만개 넘게 사라지면서 사회·경제적 불균형이 갈수록 악화될 수 있다고 한다.코로나19는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감염으로 발생하는 호흡기 증후군을 의미한다.특히 21세기를 강타했던 사스(2003년), 에볼라(2014년), 메르스(2015년) 모두 유전정보가 리보핵산(RNA)으로 이뤄진 RNA 바이러스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세계 10대 전염병 중 8종이 RNA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성 질병을 효과적으로 방어·대응·예방하기 위해서는 감염성 병원체의 유입 차단이나 방역, 현장 대응 등의 국가적 차원의 방역체계와 함께 진단·검사, 치료, 예방 등의 의료체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와 치료제, 백신 개발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감염병의 확산방지와 치료를 위해서 진단키트와 치료제 반드시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백신 개발이 필수적이다.백신이란 병원체(항원)를 약하게 만들어 체내에 주입한 뒤 항체를 생성하게 해 그 질병에 저항하는 후천 면역이 생기도록 하는 의약품이다. 백신은 항원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구분되며 최근 영국과 미국 등에서 접종을 하고 있는 모더나(Moderna)와 화이자(Pfizer)에서 만든 백신은 유전물질인 리보핵산(RNA)을 체내에 주입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한 단백질을 만드는 핵산 백신이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에서 만든 백신은 바이러스 벡터 백신, 중국의 시노백 바이오텍(Sinovac Biotech)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바이러스 백신에 해당한다. 그리고 노바백스(Novavax)와 사노피-GSK 등에서 개발하고 있는 백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단백질(항원)을 체내에 주입하여 항체가 생기도록 하는 단백질 기반 백신이다.식물을 생산 플랫폼으로 활용하여 만드는 그린백신은 단백질 기반 백신이며 전통적인 백신 생산 플랫폼인 유정란이나 동물세포배양 방식에 비해 빠르고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캐나다와 미국의 그린백신 기업에서는 담배(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에서 생산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단백질에 대한 임상시험(임상2/3상)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국내에서는 그린백신 중소벤처기업인 바이오앱과 지플러스생명과학에서도 담배를 활용하여 생산한 코로나19 백신 후보 단백질에 대한 전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린백신 기술은 백신이나 치료제 등의 단백질 의약품을 비롯하여 성장인자 단백질, 효소 등의 기능성 단백질소재 개발에 활용할 수 있어 기능성 화장품, 메디푸드, 바이오프린팅 등의 그린바이오 융복합 산업으로의 확장성과 파급효과가 매우 우수한 기술이다.경북도와 포항시에서는 지역의 우수한 인적·물적 연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단백질 신약이나 그린백신과 같은 기술집약적 바이오산업을 지역의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에 3대 바이오산업 혁신성장 플랫폼인 세포막단백질연구소, 포항지식산업센터,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를 구축하고 있으며 2021년에 완공될 예정이다.이 곳은 2019년 6월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었으며, 한미사이언스에서도 2020년 6월 스마트 헬스케어 단지 조성을 위한 3천억원 규모의 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특히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는 국내 그린백신 중소벤처기업을 포항에 유치하고 백신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구축되는 시설로 향후 감염성 질병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그린백신 기술개발과 그린백신 산업화를 위한 기업지원 등이 추진될 예정이며 센터의 관리와 운영은 포항테크노파크에서 전담한다.21세기 들어 인류는 잇따른 신종 감염병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으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모두 알고 있듯이 외국에서 만든 코로나19 백신을 수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 현실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신종 감염병이 더 이상 팬데믹으로 확대되지 않고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도 더 이상 외국에서 수입한 백신과 치료제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 기술로 개발한 백신과 치료제로 글로벌 백신 리더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중심에 그린백신과 그린바이오산업의 거점기지인 경북도와 포항시가 있기를 기대한다.

2021-01-03

일상에 침투한 ‘미세 플라스틱’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종이컵을 사용하면 한 컵당 마이크론 크기의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을 약 2만5천개(100㎖ 당)를 마시게 된다는 학계의 연구결과가 나와 충격이다. 이러한 결과는 종이가 물에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름 코팅을 하는데, 이 필름이 뜨거운 물에 녹아내려 미세 플라스틱이 되고 사람이 음료를 마시게 되면 함께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종이컵을 사용하게 되면 미세 플라스틱 외에도 불소, 염화물, 황산염, 질산염 등 유해물질도 사람들은 마시게 된다.이 연구결과는 환경 분야 국제학술지인 ‘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유해물질저널)에 실리면서 언론에 보도되었다. 기사를 보면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필자도 많이 놀랐으며 사람들이 편리함을 위해 사용하는 종이컵에도 이런 유해물질들이 있고 이를 아무런 생각 없이 마셨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생각이 든다.미세플라스틱은 제품에 사용되기 위해 제조되었거나 기존 제품이 조각나서 미세화된 크기 5㎜ 이하의 합성 고분자화합물이다.현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치약, 세안제 등 각종 생활용품 속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제품이 과다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매립방식도 한계에 처한 상황으로 쓰레기 문제의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다.미세플라스틱은 독성 화학물질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더욱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고 있다.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나일론과 같은 석유화학 물질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자석처럼 유해 화학물질을 끌어당기며 이를 흡수한 먹거리 등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플라스틱 생수병에서도 용출되는 물질들이 환경호르몬(비스페놀A, 프탈레이트 등)으로 비만,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병, 갑상선호르몬 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연구결과는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플라스틱 생수병의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고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용기는 더 작아져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대폭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플라스틱 제품으로 인한 유해성은 흔히 환경호르몬이라고 하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들로 알려져 있는데 유럽의 경우, 물질 자체에 대한 규제와 물질을 사용해 만드는 물건에 대한 규제 등으로 세분해 관리하고 있다.환경호르몬은 지구온난화와 오존층파괴 등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생물종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3대 환경문제 중의 하나이다.다행스럽게도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24일에 플라스틱 전주기 발생 저감 및 재활용 대책수립에 관한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의 1회용 플라스틱 감축 대책에 더하여 생산 단계부터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가고, 사용된 생활용 폐플라스틱은 다시 원료로 재사용하거나 석유를 뽑아내어 재활용률을 높인다는 내용이다.구체적으로는 플라스틱 용기의 비율을 현재 47% 수준에서 2025년에는 38%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마트에서 유리 생수병을 찾기 쉬워지게 만들겠다고 한다. 배달용기도 종류에 따라 두께를 줄여서 20% 감축하겠다고 하며 1회용 컵의 경우 사용후 반납시 보조금 제공하는 제도를 신설하고 판매되는 제품을 3개 이하로 묶음 포장하는 행위가 금지 된다. 아파트에서는 투명한 페트병을 별도 분리수거해 재활용률을 높이고 폐비닐로부터 석유를 추출하는 열분해시설도 정부가 나서서 2025년까지 10기를 확충한다고 한다.플라스틱 감축 및 재활용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따라야 한다. 환경부가 대책 발표만 할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방안도 만들어 지자체와 함께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국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교육과 홍보에 대한 많은 투자도 뒤따라야 한다.규제를 통한 절감이 아니라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용기에 대한 정책이 탁상공론에 머문다면 경북지역의 쓰레기 산이 외신에 보도되어 세계적으로 망신당한 일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앞서 설명한 환경부의 대처는 생산과정과 사후 폐기물에 대한 정책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대책으로는 매우 미흡하다. 선진국처럼 물질 자체에 대한 규제와 물질을 사용해서 만드는 물건에 대한 규제 방안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한다.다른 각도에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플라스틱 물병의 사용량 증가는 환경부가 하천이나 취수용 댐의 수질관리를 못해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진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1991년 낙동강 폐놀 사고가 난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부는 낙동강 수질을 살리는 방안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고 취수원이전으로 인한 지역갈등만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플라스틱 과다 소비만 이유로 대고 정책을 만들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문제는 없는지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인지를 잘 살피는 2021년이 되었으면 한다.

2021-01-03

불면의 밤에

류영재포항예총 회장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가 넘친다는 성탄절 밤을 불면으로 지새웠다. 아마도 회개해야 할 일이 많았던가 보다.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참된 회개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겠지만 신앙심이 깊지 못한 나의 경우는 그것이 과거의 행동에 대한 후회, 회한의 감정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밤잠을 설치게 한 번민들이 희망의 새해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 신축년 새해에는 날마다 숙면에 들 수 있는 평화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예술가에게 어느 정도의 불면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예술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당연히 그 과정이 만만치가 않고, 고요하게 가라앉은 심야가 되어야 영감의 깊이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이젤에 캔버스를 올려놓고는 항상 주변 청소부터 하는 등 붓을 잡기위한 이른바 루틴이 있으니, 어느 정도 주변정리가 되어야 비로소 작품 구상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에스키스 과정을 거치고 물감을 짜기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되는데, 금연하기 전까지는 습관적으로 담배도 물었고, 커피도 마시며 뜸 들이는 시간이 또 필요하였으니 정작 붓을 잡고 화면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시간은 늘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시작 시간이 그러니 밤샘 작업이 일쑤요,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라 잠 안자는 밤이 숱하게 많을 수밖에. 그러나 그건 젊은 시절의 일이다. 요즘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잠 잘 시간에는 덮어두고 잠자리에 든다. 나이가 드니 밤샘하여 일 할 에너지가 달리기도 하고 애써 해봐야 별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찍 잠자리에 들고도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는 고통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잠은 모든 생물의 생존에 필요하다. 특히 인간의 경우는 매일 밤 이런 휴식이 꼭 필요하다. 일정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의 활동을 쉼으로써 피로한 근육이 이완되어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상태로 정돈되고, 하루 동안 습득한 지식이나 정보들을 잠자는 동안 뇌 속에 저장한 후 새롭게 머릿속을 포멧함으로써 또 다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잠이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정해진 기간 내에 처리해야할 경우가 있으니 밤잠이 부족할 때가 허다하다. 잠이 부족한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일을 미루기도 곤란하니 어쩌겠는가. 그러나 일 때문에 안자는 게 아니라 자고 싶어도 불편한 상념들 때문에 못자는 거라면 그건 불행이다. 이 경우는 그 원인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불면의 원인은 카페인 성분의 과다섭취나 잠자리의 온도 등과 같이 조절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와 걱정 등은 내 맘대로 제거하기가 어렵다.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초유의 감염병 사태로 보신각 타종도 온라인으로 실시하였고, 해마다 열리던 호미곶 해맞이축전도 취소되어 쌓이는 스트레스의 탈출구가 없다. 여기에다 검경갈등과 여야의 막장대결 등 끝없는 정쟁, 사회안전망 곳곳에 난 구멍들로 피로와 불안이 더욱 쌓여가고 있으니 맘 편하게 다리 뻗고 숙면할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오려는지.

2021-01-03

황토방에 불 때고

윤영대수필가새해가 밝았다. 신축년 소띠 해다. ‘신(辛)’은 흰색, 그러니까 올해는 ‘흰 소의 해’이다. 사실 띠로 말하는 음력 새해 즉, 설날은 아직도 한 달 열흘가량이 남았으나 양력을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소는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우직하기도 하다. 어떤 힘든 일도 순종하며 참을성 있게 묵묵히 해내는 소. 그러나 한번 성나면 주인이 와도 못 말린다. 지난 쥐띠 해는 쥐새끼들이 날뛰듯 코로나 세균이 설치고 세상이 시끄러워 평온한 일상이 뒤틀려 버렸지만 올해는 소의 성실함으로 나라 안팎이 평정을 되찾기를 빌어본다.매년 새해 첫날은 일출을 보러 간다. 먼동이 트는 새벽녘 영일대 해수욕장과 호미곶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올해는 이들 주요 해맞이 장소가 모두 폐쇄되었다. 12월 마지막 날 저녁에 영일대 바닷가에 가보았더니 빨간 출입금지 줄이 길게 둘러져 있었다. 신년행사는 취소되고 거리는 한산했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새해의 안녕을 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엇비껴 들어오는 첫 태양의 난반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 새해의 시작에 즐기는 일은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이 또한 온라인 행사로 텅 빈 종각 영상에 종소리만 울릴 뿐 새해의 복을 비는 군중의 함성은 없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가 처음 알려진 것이 벌써 1년째, 전 세계로 번진 역병은 걷잡을 수 없이 혼돈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코로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계의 팬데믹은 얼마나 갈는지…. 내 마음속의 맑은 종을 울리며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대해 본다.새해 첫날 시골집 황토방에 군불을 때고 뜨뜻한 방구들에 엎드려서 이 글을 쓴다. 밖에는 하얀 첫눈이 내리고 있다. 불을 지피니 잘 안 타고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밀려 나오기에 오랫동안 굴뚝 청소를 하지 않은 탓이려니 하고 연통을 뽑아보니 밑둥이 꽉 막혀있다. 뭉쳐 있는 그을음을 털어냈더니 시원하게 불길을 잘 빨아들여 방이 금방 뜨거워진다. 우리 일상도 무관심하게 오래 지나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 뭉쳐져 있는지를 잘 모른다. 한 번씩 살펴보면서 고쳐나가야 한다. 올해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연말부터 카톡과 문자로 지인들과 옛 제자들로부터 고마운 연하 인사를 전해온다. 격리된 느낌의 한 해를 견뎌온 외로움을 따뜻이 풀어주는 고마운 글들이다. 나도 간단히 그린 연하장에 덕담을 쓰고 휴대폰 사진으로 담아 감사의 답장을 보내고 있다. 올 신축년에는 역병이 사라지고 웃음이 넘치는 일상으로 되돌아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새 달력도 걸었다. 황토방의 열기를 배에 깔고 1년의 계획을 적어본다.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난 것은 없다. 문화원의 새로운 과목을 들어볼까도 하고, 국내 여행과 산행 코스도 몇 개 잡아두었다. 해외여행도 계획해 보지만 코로나 확산 속에 실현될지 의문이다. 가진 것들을 정리하며 건강생활과 자기성찰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뜻이 ‘마음먹고 한 일이 사흘도 못간다’는 말인지 ‘마음먹는 일에 사흘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나는 뒤의 뜻으로 받아들여 작심하고 올해의 계획을 세워보고자 한다.근하신년 첫날, 마당엔 흰눈이 쌓이고 있다.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

2021-01-03

‘레임덕’이 보인다

안재휘 논설위원‘레임덕(lame duck)’은 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의 통치력 저하를 기우뚱거리며 걷는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권력 누수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국가와 국민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접어들면서 ‘레임덕’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집권 4년 동안의 초라한 성적표가 드러나고, 무리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로 민심을 크게 잃은 끝에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말연시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 교체는 흔들리는 국정 장악력을 다잡기 위한 안간힘 승부수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임덕’ 현상은 시시각각 다가와 이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윤석열 징계 전쟁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간접적일망정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집권 여당 의원들 사이에는 ‘윤석열 탄핵’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2개월 정직도 관철 못 시킨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주로 친문계(친 문재인계) 정치인들이 딴소리를 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충성심의 발로’라는 분석은 순진한 해석이다. 어디까지나 내리막길 대통령보다도 자기 정치가 더 중요해진 얄팍한 정치꾼들의 ‘레임덕’ 일탈로 보는 게 맞다. 1천 명을 헤아리는 재소자들이 무더기로 확진된 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문제는 또 어떤가. 추미애 장관의 부실관리를 포함해서 영락없는 ‘레임덕’ 현상이다. 대통령의 제1 자랑거리인 ‘K-방역’을 국제적 망신거리로 만든 참사 아닌가.정초에 이낙연 대표가 터트린 ‘이명박-박근혜 사면론’ 메가톤급 뉴스도 그렇다. 국정 통수권자의 고유권한에 관련된 언급인 만큼 문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이 심지어는 이 대표를 향해 대놓고 “탈당하라”고 을러댄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꾼들의 ‘레임덕’ 현상 말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위태로워진 나라와 민생의 형편을 생각하면 ‘레임덕’ 현상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선택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정책을 다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민생과 관련된 정책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탈원전’을 포함한 이미 실패가 확인된 정책들을 필두로 현실에 맞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필요하다.또 하나는 ‘불통’ 해소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국민과의 대화’를 포함해 고작 6회밖에 되지 않는다. 지독한 ‘불통’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5회보다 고작 1회 더 많다. 이명박 대통령도 20회의 기자회견을 기록했다. 생색낼 일이 있을 때 ‘쇼통’만 추구해온 이 정권의 ‘소통방식’은 완전히 구닥다리 행태다. 이런 ‘불통’ 고질이 ‘제왕적’ 대통령에서 ‘황제적’ 대통령으로 역주행했다고 지탄받는 이유다. 기회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2021-01-03

황소처럼

옛날부터 소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옥수수를 신의 작물이라고 하면 소는 신의 가축에 비견된다. 짐을 운반하거나 농사를 지을 때는 필수적으로 소의 힘을 빌린다. 고기나 젖은 식용으로 사용되고, 가죽과 뿔은 다른 용도로 이용한다. 오래전부터 소는 지역공동체의 공동재산이자 가장 값비싼 자산이었다.소는 덩치가 크면서 힘이 세고 일을 열심히 해 황소하면 일의 상징처럼 인식된다. “우직한 소가 만리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는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소의 성질은 보통 온순하나 한번 성질이 나면 아무도 못 말린다. 맹수인 호랑이도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는다. 몹시 고집이 센 사람을 우리는 황소고집이라 부른다. 스페인에서는 소를 거칠게 키워 투우를 시키기도 한다.소는 아주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해 와 인류 역사에서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힌두교에서는 신성시 하기도 하지만 동물답지 않은 소의 믿음직한 행동이 사람과의 신뢰도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한 것이다.경북에는 두 곳에 의우총이 있다.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와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에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의로운 소를 기리기 위한 소 무덤이 있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호랑이와 맞서 싸운 소와 주인이 돌아가자 산소에 제발로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는 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신축년 새해는 소의 해다. 소가 인류와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소의 유용성과 사람과 유지된 특수한 친밀감이다.새해는 주인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는 황소처럼 우리의 정치도 아집을 버리고 헌신과 봉사의 정신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03

서명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 생각하면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 떨쳐 버리기 힘들다.정의라는 말은 이제 정의가 아닌 것을 가리키는 말, 어느 패를 지지하는 용어가 되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무슨 민정당 시절 어법 같은 느낌을 준다.진보라는 말처럼 터무니 없는 표어는 없다. 자유 없는 땅의 인권조차 문제 삼지 않는 진보가 무슨 진보며 유토피아란 말이냐.애국이란 말처럼 쉽게 더럽혀지는 말도 없다. 옛날에는 애국학생이란 말이 그렇게도 유행했다. 요즘에는 애국시민, 애국보수 등으로 말이 새끼를 쳤다. 서로 다른 극은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다.시절이 이렇다 보니, 서명처럼 부질없는 행위도 없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654라는 숫자를 인터넷 화면에서 발견한다. 성직자들도, 교수들도 이 진흙탕 싸움에 이름을 걸었댔다. 이번에는 작가들이다.지금 벌어지는 일에 무슨 근본적인, 중차대한 함의가 있었던가를 다시 생각한다. 어딘가를 개혁하는 일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이었던가.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가 거기 있지 않다고들 난리가 났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치부를 가리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일단 벌이는 모양부터 안 좋다고들도 한다.지난 정부 때 억울했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날 SBS 8시 뉴스에 내 이름이 버젓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이름하여, 제주 미 해군기지 건설 반대, 성주 사드 배치에 반대 등에 서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야겠다. 나는 미국이며 중국의 국제 군사전략 같은 것을 둘러싸고 어떤 의사도 표명해 본적 없다. 하물며 서명이라니 말이다.뭔가 불온해 보이는 자를 처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옛날에 작가 이상은 일본에 갔다 거기서 불령선인으로 몰렸다. 경찰에 잡혀 들어가 차가운 유치장에 갇혀 죽게 되어서야 풀려났다. 그가 세상 떠날 때 병원에서 결핵성 뇌매독이라 판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령선인에게 억지로 뒤집어씌운 병명일 가능성이 높다.이름은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돈화의 ‘천도교 창건사’에 동학 때 일어난 사람들 이름이 몇 장에 걸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오로지 이름 석 자가 그네들의 삶과 투쟁과 죽음을 대변할 뿐이다. 거기 그 책에 그네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이다.작가는 저마다 자기 한 세상을 여는 사람이다. 남의 세상 여는 데 따라다니는 사람도 아니요, 시간 지나면 헛될 싸움에 매달릴 것도 아니다.왜들 말리지 않는지? 힘든 백성들 지치고 병들어 가는 그 모든 것 다 안 보고 무엇에 매달려 싸움을 벌이는지?남정현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부고. 인생은 덧없고 작가로 살기 어렵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30

책 읽는 여자

책이 없었다면 여성들의 삶이 어땠을까요? 역사 이래 억눌렸던 여성 삶의 진일보를 그나마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가정에 독일 작가 슈테판 볼만이 명쾌한 답을 선사합니다. 작가는 우선, 한 때 여성의 독서가 지극히 위태로운 것으로 취급받던 시대가 있었음을 고찰합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선언한 시대가 있었음을 책 제목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근대 이전의 유럽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 그랬습니다. 세상에 대한 대범한 호기심을 갖는 일, 여성들에게 그것은 심히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고급한’ 사회는 남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넘쳐나던 시대였지요.작가는 유럽의 명화 속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책 읽는 여자들을 불러냅니다. 동시대 밖으로 여성은 하녀이거나 안주인이거나 후작부인이거나 아주 가끔은 왕비이기도 합니다. 그림 속 여자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지요. 신분에 관계없이, 책을 가까이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은 불온한 여자의 혐의가 짙었습니다. 남성의 거울로 비추어볼 때 그 시대 여성의 독서는 백해무익한 것이었으니까요. 세상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것은 남성 고유의 영역인데, 더 많은 유익한 것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은 피곤한 일에 속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책 따위와는 여성이 멀리 있기를 바랐을 테지요.이것을 눈치 챈 여성들은 그들만의 독서 장소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나기를 바라고, 읽을거리만 있다면 전장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하녀의 책읽기부터 볼까요. 장소라면 볕 잘 드는 다락방이 제격일 것입니다. 감질 나는 중세시대의 로맨스, 그 뒷장을 위해 그녀는 어서 빨리 주인이 집을 비우고 먼 길을 떠나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주인의 실내화도, 씻어야 할 물주전자도 읽어야 할 책보다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불온한 독서의 자유야말로 달콤한 휴식의 절정이 아니겠어요. 귀부인은 어땠을까요. 침실이 그녀의 독서실이 되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높은 신분과 관계없이 여전히 여성에게 세속적이고도 낭만적인 내용의 책 읽기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방해꾼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근육을 한껏 이완한 채 그녀들은 독서가 주는 신세계의 광풍 속으로 빨려들 수 있었습니다. 공간적 은밀함이 책읽기의 나른하고도 무한한 상상에 보탬이 되었겠지요.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소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지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지구촌에 팽배했습니다. 종교 서적을 제외하고는 여자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행위였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자신만의 규방으로 내몰린 채, 여성들은 책의 향연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왜 초대받지 못했는지 알 겨를도 없이 그저 다락으로 침실로 창고로 내몰렸던 것이지요. 그곳에서 세상을 읽고 낭만적 유희를 꿈꿨습니다. 남성들이 볼 때 그것은 불온한 자각이었고, 음탕한 유희였지요. 정보를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그들 눈에는 용서하기 힘든 광경이었지요.그 시대로 돌아가 책 읽는 여자들 곁에 머물러 봅니다. 저 불온한 자유주의자들 저마다 가슴 속에 화약고 한 보따리씩을 안고 살았을 것이에요. 여성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구와 드넓은 우주 질서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요. 멀리 나갈 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쾌락마저도 공유하지 못한 세상이었다니요.용감하게도 억누를수록 여성들은 유쾌한 고립행위 속으로 빠져들어갔지요. 남성이 전하는 말씀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독서야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막힘없는 통풍구라는 것을 안 이상 물러설 수는 없지 않았겠어요. 숨어서 책 읽던 그 여자들이야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당연하게도 이제 여성에게 독서는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책 권하는 사회가 되었지요. 책 때문에 불온해진 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진다면 그 보다 나은 독서의 진가가 어디 있을까요. 덜 불온한 여성일수록 더 상처받습니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에서 힘과 위안을 얻는다면 이 또한 독서의 효용이 아니겠어요. 과감하고 은밀한 독서일수록 그 파장은 큽니다. 책 읽기 좋은 나날, 과도한 휴머니즘이나 뻔한 교훈서, 오그라드는 미담 수준에서 벗어나 불온한 독서광이 되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상처 입은 영혼들이여, 유쾌한 고립의 여정을 떠납시다. 책 읽는 것이야말로 불온해서 종내는 매혹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끝

2020-12-30

지금은, 기원할 시간

정미영수필가한 해의 끝자락과 한 해의 첫자락을 알리는 접점에 있다. 12월 31일. 새해 달력을 넘기자 1월이 맑은 얼굴로 나를 반긴다. 매년 이맘때가 되어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면 분분히 떠나가 버린 시간과 만리장천을 건너가 버린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교차한다.신년 목표를 성실하게 세우리라 마음먹고 책상에 앉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맞이’란 낱말이 달려오면서 내 몸과 마음을 들쑤성거린다. 첫 다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새해 첫날 해돋이를 바라봤을 때의 마음가짐을 품고 생활하는 것은 아닐 런지.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처음 마음먹었던 때를 되새기듯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해 소망을 빌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추슬러지고 힘차게 분발하게 된다.새해 아침을 호미곶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에 소원을 빌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해맞이 명소 중의 하나다. 나는 새벽 동이 트면서 빛줄기가 비출 때 제일 먼저 바닷가에 자리 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돋이를 기다리려고 했다. 상생의 손 위로 물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그 순간, 해오름에 흩뿌려지는 금빛가루를 맞으며 소망을 비는 내 모습이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호미곶에서의 해맞이 기원은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올해 새해 소원은 친정어머니처럼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겠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면 대접에 정화수를 받아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그 모습이 늘 한결같다. 주택에 살 때는 이른 새벽 장독대 위에 물을 놓고 식구들을 위해 기원했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니 싱크대가 장독대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우물에서 길어온 물은 정수기물이 대신한다.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이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가도, 모처럼 여행길에 올랐어도, 생수 한 사발을 떠놓았다.“엄마, 어쩜 그리 부지런해.”“물 한 그릇 떠놓는 게 뭐가 어렵노!”어머니는 나에게도 권한다. 내가 보기에 기도할 경건한 장소를 찾아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니 번거롭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손을 하지 못하고 있다.작년 여름,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냈다. 어느 바닷가 근처에 하늘을 지붕 삼아 텐트를 쳤다. 그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코펠 그릇에 물을 떠놓고 여행지에서의 안전을 빌었다.나는 조그마한 그릇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만한 그곳에 파란 하늘이 들어 있고 흘러가는 구름이 잠시 머물러 있었다. 바람과 새가 드나들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내가 무심코 보았던 어머니의 정화수는 생명을 담고 우주를 담고 있었다. 그냥 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믿음과 정성이 들어 있었다.어머니는 소원성취를 빈 물로 쌀을 안친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밥이라 친정에 들렀을 때 가끔 식사를 거르고 싶다가도 억지로 한 술 뜬다. 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면 역시 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내 평범한 행동 하나에도 어머니는 행복해 하고 특별한 의미를 둔다.어머니의 삶은 항상 식구들 위주다. 어머니의 촉각 더듬이 또한 항상 자식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내 몸이 아플 때면 남편보다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뜨거운 것을 만질 때에도 ‘엄마’하고 소리 내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이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고,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손. 나이가 들면서 여성은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서툴지만 비손을 하련다.신축년 새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기원할 시간이다.

2020-12-30

‘검찰개혁’이라는 막장드라마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2020년 대한민국 정국은 일련의 막장드라마였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사고가 버라이어티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드라마의 표면상의 주제는 검찰개혁이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주연을 맡고, 그 안티히어로 격인 상대역은 윤석열 검찰총장이었다. 두 캐릭터의 등장 배경부터가 격렬한 갈등과 충돌을 예감케 한다. 거기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서 드라마 전편에 음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더했다.남자 주인공은 소위 ‘촛불혁명’이란 민중봉기에 고무된 검찰의 선봉장이 되어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모조리 법정에 세우는 공로를 인정받아 일약 검찰총장이 됐다.그는 임명하는 자리에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비리가 있으면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의례적인 덕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도 법의 칼끝을 들이대었다. 화들짝 놀란 대통령은 측근 실세인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여 검찰개혁을 구실로 제압하려 했으나, 하자가 많은 인물이라 야권과 여론의 거센 반발로 한 달여 만에 물러나고 만다. 후임으로 판사출신에다 5선 국회의원으로 당대표를 지낸 추미애를 임명하면서 드라마의 막이 오른다.주역을 맡은 추미애 장관은 기대 이상의 맹활약으로 막장드라마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등장하자마자 마구잡이로 인사권을 휘둘러 정권실세들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하는 ‘학살인사’를 두 차례나 단행해서 검찰총장의 수족을 다 잘라버리는 위력을 과시했다.검찰개혁이란 한갓 허울일 뿐이고, 속속 들어나는 비리와 부정을 덮고 검찰을 장악하기 위한 꼼수라는 걸 잘 아는 야권의 반발과 검찰내부의 집단 저항에 부딪치자 한술 더 떠서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일단계로 총장의 직무배제에 들어갔지만 법원이 집행정지신청을 인용하는 바람에 무산되자, 이번에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서 두 달 간의 정직(停職)처분을 내렸다. 그마저도 절차상의 하자와 징계사유의 부당성을 이유로 또다시 집행정지신청이 인용되어 드라마는 바야흐로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막장드라마’란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설정으로 사회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드라마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다. 지난 한 해 매스컴을 온통 도배한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 활약상은 한 편의 막장드라마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법무장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법은 물론 일말의 양식도 깔아뭉개는 인성의 막장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광기어린 오기와 독기로 시청자들의 분노게이지를 높여가는 전개는 가히 막장드라마의 끝판이라 할만 했다.일 년 내내 숨 가쁘게 달려온 드라마는 추미애 장관의 사의표명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막장드라마답게 한국사회에 끼친 해악은 결코 적지가 않지만, 한편으로는 집권세력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서 맹종하던 민심이 이반하는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 새해에도 새 장관이 임명되면 검찰개혁 막장드라마의 속편이 또 시작될 것이다. 모쪼록 후속 편에는 반드시 사필귀정의 결말이 있기를 바란다.

2020-12-30

어느 신부님의 러시아 선교 체험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어느 신부님을 알고지낸지는 꽤 오래되었다. 1980년께, 40년 지났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연히 성당 옆 어느 포장마차에 함께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포장마차에는 술안주로 참새구이까지 나오는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격식 없는 태도가 무척 좋았다. 그 날 포장마차에서는 그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날 밤 신부님과 함께한 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후 그 신부님은 다른 성당으로 떠나버렸다. 몇 년 후 그 신부님이 선교 목적으로 러시아 오지로 떠났다는 소문만 들렸다.오늘 이야기는 그 신부님의 러시아 체험 이야기다. 1990년대 초 러시아는 사회주의 소련이 무너지던 시기였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한국서 온 자그마한 신부님에 무척 호기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종교행사조차 보기 힘든 그들은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매우 수상했던 모양이다. 어떤 러시아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묻더란다. 그는 엉겁결에 선교 사업은 감추고 남을 돕는 일을 한다고 대답했단다. 그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면서 당신은 사기꾼이 아니냐고 의심했단다. 당과 혁명, 지도자를 위해 살아온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다시 러시아인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묻더란다. 그는 (예수님처럼) 남을 사랑하기 위해 산다고 대답했단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사랑하느냐 묻기에 모든 사람이라고 대답했단다. 여성들도 포함되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당신은 바람쟁이구먼’하고 웃더란다.무신론적 가르침에 따라 살아온 그들이 종교적 사랑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공산당이 인정한 러시아 정교는 남아 있었지만 신앙인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였다. 더욱이 종교의 자유가 금지된 땅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얼마 후 친밀감이 생긴 러시아인은 신부님께 무엇으로 생활하느냐고 묻더란다. 한국에서 보내온 신자들의 헌금으로 생활한다고 대답했단다. 그들은 이 대답에는 더욱 눈이 휘둥그레지더란다. 그들은 자신이 노동하지 않고 남의 돈으로 살아가는 당신은 ‘흡혈귀’라고 핀잔까지 주었단다. 노동 가치에 따라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그들로서는 남의 돈으로 살아가는 사제의 생활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착취해 살아간다고 교육을 받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일는지 모른다.종교를 부정하던 소련은 벌써 30여 년 전 붕괴됐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배척하던 러시아인들은 오늘날 공산주의까지 배척해 버렸다. 그들은 빵문제도 해결치 못하는 사회주의를 포기해 버리고 자본주의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자주 찾은 러시아는 시장경제로 넘어온지 오래지만 관료적 독점과 독재라는 사회주의 구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선전하던 땅에 러시아 정교회는 소리 없이 확산되고 있다. 그때 러시아 선교를 위해 고생했던 신부님은 귀국했지만 아직도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2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