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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야기에 내일을 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포항은 어떤 도시일까. 포항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할까. 거친 바다, 딱딱한 철강, 투박한 말씨, 거친 느낌 등이 아니었을까. 그랬던 포항이 바뀌어 간다. ‘문화도시’로 지정되었으며 ‘축제도시’로 풍성한 이야기를 담는다. 폐철도를 따라 만들어낸 철길숲은 도시에 숨길을 트이게 하였다. 바다와 육지, 도시와 사람이 함께 호흡하는 지역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의 배경이 되어 전국적인 관심도 자아낸다. 포항은 산업경제도시에 더하여 문화관광도시로 변모해 간다.‘철강 다음은 무엇일까.’ 도시는 같은 질문을 십 년도 넘게 던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나라의 기간산업을 일으키는 토대를 만들며 분주했던 도시는 새로운 도약대를 찾느라 상상력과 창의를 모은다. 지역이 이제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철강을 모티프로 사람을 모았다면 앞으로는 무엇을 테마로 흥미를 끌고 모여들게 할 터인가. 어떤 이야기가 있어 청년들에게 가슴이 뛰는 기회의 문을 열어줄 것인가. 문화를 주제로 노력을 기울인 끝에, 포항은 ‘경북콘텐츠기업 육성센터’를 유치하였다. 지역문화와 콘텐츠를 기르면서 안정적인 창업환경을 만들라는 명제를 짊어지게 되었다.숲길과 함께 물길도 트인다. 육지와 바다를 잇는다. 포항시는 도시하천의 복개 구간을 걷어내 생태하천을 만들 계획이다. 학산천, 두호천, 양학천과 칠성천의 옛 모습을 회복하여 이미 조성된 도시숲과 함께 시냇물과 숲이 도시에 어우러지는 자연환경을 되찾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가 더할 나위 없이 버무려지는 흔하지 않은 지역이 되어갈 모양이다. 포항뿐 아니라 경북 전역에 이런 트렌드를 나눌 거점이 되어 나라의 문화지형에도 기여하게 될 터이다. 지나온 길이 가지는 의미가 깊을 뿐 아니라 미래지향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지역의 내일에 높은 기대가 걸린다.보이는 물건에 승부를 거는 시절은 저물어 간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 내일을 거는 방향이 보이지 않는가. 끝내 손에 쥐는 물건이 있다고 해도 그를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콘텐츠기업을 기르겠다는 뜻은 이야기를 찾아내어 영향력과 경제성을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포항은 이제 상상력에 미래를 걸게 되었다. 바닷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에서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철강을 다듬던 기억에서 이야기를 드러내야 한다. 고을마다 배어있는 옛날이야기의 가치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센터를 세우지만, 이야기를 찾는 일은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콘텐츠에 기대를 걸지만, 문화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산과 바다, 사람과 이야기, 문화와 기술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힘들여 잡은 기회로부터 구체적인 성과가 일어나도록 필요한 사람도 잘 찾아야 한다. 콘텐츠가 살아나는 길목에는 글로벌시장을 겨냥하는 열린 안목도 갖추어야 한다. 포항과 경북은 소프트파워를 창작해내는 거점이 되어 세계로 다가가는 중이다.

2020-12-30

집단면역

집단면역은 집단 내 구성원 상당수가 전염병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되면 집단 전체가 면역을 가진 것과 같은 효과를 보이는 현상이다.감염이나 예방접종을 통해 이뤄지며,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국가가 예방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을 유도하고 있다.이 현상은 1923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윌리엄 화이트 토플리 교수, 그레이험 윌슨 교수가 장염균을 이용한 쥐 실험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후 여러 전염성 질환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대량의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 면역을 유도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실제로 집단면역은 1977년에 종결된 천연두의 박멸과 다른 질병들의 지역적인 박멸에 유용하게 활용됐다. 집단면역의 목적은 질병 전파를 억제해 방사선요법 등 여러 요인들로 면역성을 잃어 버리게됐거나 면역력이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다.코로나19의 경우 우리나라가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전체 인구의 60∼70%가 접종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개발된 백신은 18세 미만에 대한 접종 계획이 없으므로 국내 18세 이상 인구 4천410만 명 중 80%가 넘는 3천600만 명이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면역이 생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9월까지 3천600만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해 집단면역을 완성할 계획이다.다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계속되는 변이 때문에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어 걱정을 더해준다. 영국과 남아공발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풍토병이 돼 인플루엔자(독감)처럼 매년 재유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어떻든 하루라도 빨리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집단면역이 완성돼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길 바랄 뿐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30

백신여권

예전에는 비정상으로 보였던 현상이 어느 날 흔한 현상이 되고 표준이 되는 것을 뉴노멀(new normal)이라 부른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생활에 등장한 비대면 문화가 바로 뉴노멀 시대의 대표적 현상이다.IT기술의 발달이 금융계의 대혁신을 이끈 것처럼 근로자의 재택근무가 어느 날 대세가 되어 또다른 뉴노멀로 등장할지 알 수 없는 시대다.과거에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던 현상이 지금은 흔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코로나가 만들어 낸 뉴노멀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중국은 뉴노멀을 새로운 정상상태(新常態)라는 말로 표현한다.해외여행 갈 때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것 중 하나가 여권이다. 여권이 없으면 국내에서 출국도 목적지 나라의 입국도 불가능하다. 여권이 나라마다 엄격히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라고 하니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 이전에는 여권이 없어도 각국을 잘 돌아다녔다.여권이 상용화된 주요 배경은 교통수단의 발달이다. 열차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빠른 시간내 대량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국가간에 상호 인정할 수 있는 자국민에 대한 국제적 신분증이 필요했던 것이다.코로나19 백신접종이 시작되면서 최근 미국과 유럽국가사이에는 백신접종 사실을 증명할 백신여권 개발이 한창이라는 소식이다. 백신여권은 백신을 맞은 사람이 백신접종 사실을 국제적으로 입증하는 일종의 증명서다.앞으로는 이 증명서가 없으면 비행기도 탈 수 없고 가고자 하는 나라에 입국도 못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나라에 따라서는 국내서 벌어지는 스포츠나 콘서트 등 다중이 모이는 곳에서도 백신여권을 소지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뉴노멀 시대를 실감케 하는 현상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29

저무는 날 삽을 씻고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 우리가 저와 같아서 /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정희성 시인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1970년대 고통받고 암울하게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 당시 공사판의 일용직 막노동자에게 삽은 없어서는 안될 생활의 마지막 밑천이자 꾸역꾸역 살아내야 하는 물리적 고통의 표상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저물 무렵 강변에서 삽을 씻으며 하루를 마감하면서 힘듦과 아픔 그리고 슬픔도 함께 씻어 버리려, 삽으로 퍼다 버리려 무진 애를 썼겠지. 그래도 삽을 씻고 돌아가서 보듬고 사랑을 나눌 식구가 있었고 좁다란 동네 골목 어귀 허름한 선술집이나 포장마차에서 탁한 술 한 잔 기울이며 노동의 고단함을 함께 삭일 이웃이 있어 숨쉴 구멍 하나쯤은 뚫려 있었으리라.시인의 노래가 40여 년이 흐른 2020년 올해도 어느덧 해가 바뀌고 달이 기울고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저물어 가는 시간에 삽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퇴치와 감염자의 치료를 위해 삽보다 몇 배 무거운 장비들을 온몸에 칭칭 두르고 땀범벅의 한여름을 지나 한겨울 맹추위에도 땀을 흘리고 있다. 삽을 씻기는커녕 기진맥진하여 몸을 씻기조차 버겁다.삽질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 한구석에 처박힌 채 녹슬어버린 삽을 절박한 심정으로 고통스럽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들도 너무 많다. 씻을 삽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저물어가는 올해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구정물 흐르는 샛강에라도 담그고 씻을 삽을 찾으려 우리는 얼마나 애타게 헤매고 다녔던가.‘삽질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다’라는 본뜻으로보다 ‘헛된 일을 하다’라는 속된 표현으로 더 자주 쓰인다. 그렇지만 올해는 헛삽질도 한 번 못해본 이들의 날들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쥐의 해가 저문다. 왕성한 생산력과 부지런하고 활발한 달음질이라는 쥐의 표상을 좇고자 했던 우리 인간은 지금 하릴없이 ‘쥐 죽은 듯이’ 지내고 있다. 올해는 이렇게 가게 놔 두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불러야겠다. 그 사내에게 피리를 불게 하자. 부정의 쥐, 불의의 쥐, 탐욕의 쥐, 반목의 쥐, 질시의 쥐, 고통스러운 불황의 쥐를 저문 날 강물 속으로 퐁당퐁당 들어가게 하자. 거기에다 하나 더. 그 사내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죄다 휘몰아 가면 좋겠다.‘피리부는 사나이’는 독일의 하멜른 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 그림 형제의 동화로 우리에게 왔다. 이 동화를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제목의 동시 버전으로 만들었다. 브라우닝은 이 버전에서 “너와 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독여 주는 사람이 되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리를 불어 쥐를 쫓아주겠다고 하든 안하든 우리가 약속한 것이 있다면, 그 약속을 꼭 지키자.”라고 말한다.그래, 이제 삽을 씻고 희망을 품고 약속을 꼭 지킬 새해를 맞으러 가야겠다.

2020-12-29

엑스맨

김락현 경북부예전에 한 방송사에서 ‘X맨 일요일이 좋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큰 틀은 팀을 나눠 게임을 진행하는 식인데, 제작진은 경기에 앞서 ‘X맨’을 지정했다. 엑스맨을 맡게 된 사람은 특별한 역할을 비밀리에 수행해야 한다. 일부러 실수를 저지르고, 본인이 속한 팀을 패하게 만드는 것이다.최근 구미의 한 시의원이 대둔사 신도라 예산을 몰아줬다고 주장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일부 시의원들을 보면서 엑스맨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유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도 아니거니와, 자신들이 소속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 방향과 다르기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 홍난이 시의원은 최근 자신의 SNS에 “18억6천만원의 혈세가 1인 사찰에 모두 집행됐다. 한 시의원이 신도인 절에…”라는 글과 함께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대둔사에 집행된 관련 예산안을 올렸다. 이에 불교계는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과 구미시 지역위원회를, 29일에는 구미시의회를 공식 방문해 항의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대둔사를 1인 사찰로 비유한 것과 대둔사가 보관된 국가지정 보물3점을 보호하기 위해 국비로 진행하는 재난방지시설 및 유지보수사업을 개인 비리가 있는 것처럼 비유한 것은 불교 탄압이라는 것이다.홍 시의원은 불교계의 항의에도 SNS에 또다시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홍 시의원의 말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결국 국민의힘 소속 한 명의 시의원이 자신이 신도로 있는 사찰에 18억6천만원의 혈세를 퍼붓는 동안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2018년 7월 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은 9명이었고, 현재는 6명이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무능함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또, 같은 당의 이선우 시의원은 내년부터 대둔사에 배치되는 안전관리요원 2명에 대한 예산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정부의 일자리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재청이 전체 예산 1억2천만원 중 70%를 부담한다. 나머지 30%는 경북도와 구미시가 반씩 분담한다. 현 정부는 일자리창출을 가장 시급한 국정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다.여당 시의원이라면 응당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어찌 된 일인지 구미에서는 집권여당의 국정 방침과 정반대로 가려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구미 시의원들은 ‘엑스맨’이 분명해 보인다./kimrh@kbmaeil.com

2020-12-29

2020 경자년을 돌이키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나간 일과 관계와 사건은 아쉬움을 남긴다. 더 나은 결과와 평안한 관계, 안정적인 사후처리가 가능했음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나중이다. 일컬어 ‘사후 약방문’이거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한다. 차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것과 같이 만사휴의(萬事休矣) 상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실패와 좌절을 돌이키면서 우리는 같은 성질의 패배와 절망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1960년생이 환갑을 맞은 경자년(庚子年)이 저물어 간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여태까지 겪지 못한 쓰라린 상처를 지구촌 곳곳에 남기면서 코로나19는 아직도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종식(終熄)은 내년 가을 이후에나 가능하리란 것이 중론이다. 나는 열네 살 먹은 인도 소년 아난다의 예언에 500원을 걸었다. 내년 11월에 코로나가 끝날 것이라는!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기억은 100년 전 일인 성싶다. 1918년에 발생한 에스파냐(스페인) 독감 때문에 세계적으로 2천500만에서 5천만의 인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한다. 지난 12월 26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8천만, 사망자는 176만에 이른다. 페니실린도 발명되기 이전의 에스파냐 독감과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있은 2020년 코로나19의 수평적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문제는 코로나19의 뒤를 이어 훨씬 강력한 바이러스 침입이 일상화하리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알다시피 1976년 에볼라 바이러스, 2002년 사스, 2012년 메르스에 이은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은 인간이 자행한 생물 서식지 파괴다. 지구촌에 거주하는 다수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는 거주공간을 인간이 무차별적으로 훼손하고 개발한 결과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수용된다.그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인간의 무한욕망이 불러온 자연 생태계의 무차별적인 파괴와 유린은 반대로 인간의 생명을 옥죄는 카르마로 작용하고 있다. ‘노 마스크’로 일관한 트럼프나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의 코로나 확진은 인과응보의 성격이 짙다. 정치와 경제의 효능과 이해관계를 위해 대중의 방역과 예방을 소홀히 한 업보를 고스란히 경험한 셈이다. 일본의 전임수상 아베의 행적도 그들과 비슷한 궤도를 보인다.코로나19의 창궐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깃발을 든 신자유주의 기조로부터 발원한다. 그들은 한물간 19세기 자유주의 정책을 20세기 후반기에 실현하려는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정치적 하수인들이다. 그들로 인한 폐해는 지금까지도 온존된다. 20대 80의 사회에서 1대 99의 사회로, 숱한 비정규직과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양산(量産)으로 해를 보내고 있다. 이제라도 반성해야 한다.코로나19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노동자들을 사지에서 구출해야 한다. 가혹한 시련과 아픔을 남긴 경자년이 저물기 전에 우리가 돌이킬 대목이다.

2020-12-29

일개인(一介人)들이 멸종하는 새해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우리는 낯선 이들의 친절함에 감명을 받고, 가장 어두운 밤에도 새로운 여명에 대한 희망에서 편안함을 이끌어 냅니다. (….) 크리스마스의 빛, 이타심,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우리를 앞으로 다가올 시간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성탄 메시지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2020년! 언론들은 성탄을 맞아 세계 지도자들의 희망 메시지를 보도하였다. 그중에서 필자의 마음에 가장 오래 머문 이야기다.그나마 인류가 길고 긴 코로나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인류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선별 진료소, 병원, 보건소, 소방서, 지자체 코로나 대응부처, 질병관리청 등은 바로 코로나 영웅들이 있는 곳이다. 물론 이 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많은 사람, 그들이 바로 우리 삶의 영웅들이다.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특별법을 만들 정치인이 없다. 혹여 있다고 해도 떼거리 정치꾼들에게 밀려 소리조차 못 내고 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곳, 그곳이 바로 이 나라 정치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민주주의, 개뿔이라고 해라!”최근 떼거리즘에 빠진 인간들의 말도 안 되는 소음에 귀가 아프다. 그들이 공통으로 쓰는 단어는 “일개”다. “행정법원의 일개 판사가 (….)”, “일개 재판부가 (….)” 정말 웃기지도 안 된다. 만약 그들에게 일개 방송인, 일개 정치인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의도, 기본도 없는 일개(방송, 정치)인의 오만방자를 국민이 심판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일개인들의 정신없는 소리에 묻혀버린 어느 학부모님의 이야기를 전한다.“전학이 가능할까요?” “왜 전학을 하시고자 하는지요?”최근 들어 전학 문의가 부쩍 많다. 대상 학생은 대부분 중학교 2학년이다.“아이가 시험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요. 1학년까지는 자유학년제 한다고 시험도 안 보다가 2학년에 와서 갑자기 시험으로 압박을 하니 아이가 견딜 수가 없어 해요.”이 말이 나오는 순간 필자는 죄인이 된다. 처음에는 전학 상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용은 학교 교육, 특히 자유학년제와 온라인 수업에 대한 성토로 이어진다.“올해는 더군다나 5월 중순부터 학교에 갔는데 6월에 바로 중간고사를 쳤어요. 온라인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EBS 보거나 과제를 하는 거였어. 뭐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데, 시험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일개인들은 어떤 답을 할까! 그들은 생뚱맞게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올해도 올해지만, 내년 중학교 2학년이 걱정이다. 코로나야 백신이라도 있지만, 학생들의 방황에는 약도, 답도 없다. 이 나라 일개 방송·정치인과 교육 관료에게 학부모님의 말씀이 여왕의 말씀처럼 전해지길 바란다.

2020-12-29

변창흠, 말로 흠을 만들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미국의 무명배우 루카스 게이지는 집에서 화상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간절함을 담아 마지막 대사 연습을 하고 카메라 테스트를 마칠 무렵, 마이크 끄는 것을 깜빡한 감독의 부적절한 말이 들려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런 작은 아파트에 사는군. 저 낡은 티브이 좀 봐” 당혹스러울 만도 한데 게이지는 “음소거가 되어 있지 않네요. 저도 알아요. 형편없는 아파트죠. 제가 좋은 집에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라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감독은 즉시 사과했다.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느낀다는 감독에게 게이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예요. 저는 작은 상자 안에 살고 있지만,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는 괜찮아질 겁니다”라며 오히려 위로를 건넸다. 막말을 한 감독은 트리스트램 샤피로. 1966년생인 그는 루카스 게이지보다 서른 살 더 많다. 나이, 경력, 지위, 물질적 풍요와 인격의 성숙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부패한 정치권력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느 국회의원 후보가 티브이 연설을 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을 섬기고 사랑하겠습니다” 온화한 얼굴로 연설을 마친 그는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돌변한다. “멍청한 개돼지들이 뭘 알기나 해? 이만큼 먹고 살게 해주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지” 곧이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억울한 일을 겪은 상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다. 연민의 표정을 짓는 그에게 상인은 와락 안기며 눈물을 쏟는다. “제가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상인의 등을 토닥여주던 그는 재래시장을 나서자마자 보좌관의 뺨을 때린다. “더러운 것들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막지 않고 뭐했어?” 썩은 오물이라도 묻은 듯 신경질적으로 옷을 터는 국회의원 후보를 보며 관객들은 씁쓸함을 느낀다. 영화 속 가상인물이지만, 현실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공직 근처에는 평생 가볼 일 없는 내게도 부끄러운 ‘막말의 추억’이 있다. 15년 전쯤인가 다니던 교회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바자회 겸 야외 음악회를 열었는데 내가 기획 및 MC를 맡았다. 이전에 트로트나 사물놀이를 공연했을 때는 반응이 좋더니 바이올린과 첼로 등 클래식 연주를 한 그날은 영 썰렁하고 산만했다. 연주자들이 정성껏 연주하는 동안 누구도 음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연주자들 보기 민망하기도 하고, 화도 났던 것 같다. 미성숙한 이십대 초반, 왜곡된 문화의식을 가졌을 때다. 다른 진행 스태프에게 “이런 공연은 강남 같은 데서 해야지 우리 동네랑은 수준이 안 맞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한 주민이 그걸 듣고는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항의했다. 그 즉시 여러 번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해명할 것도 없는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분이 사과를 받아주어 일단락됐지만 그 말실수를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럽다.그 일을 통해 나는 말의 경솔함을 경계하게 됐으므로 실수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깨달음의 대가로 부끄러움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몫이 됐다. 한 번 뱉어진 말은 발화자의 입을 떠나도 세상에 내내 떠돌기 마련이다.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막말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을 두고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며 사고의 책임을 김 군에게 돌렸다. 노동자와 노동 현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막말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공공임대주택 공유주방 사업 논의 중 “못 사는 사람들은 밥을 집에서 해 먹지 미쳤다고 사 먹냐”라면서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인 서민들을 비하했다. 얼마 전 그걸 해명한답시고 한 말은 더 가관이다. “특히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아침을 먹지 않으려 한다”고 했는데, 그가 평소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각각의 막말마다 그럴듯한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말이라는 것은 뱉어지는 순간 그 소유관계가 달라진다. 말한 사람이 말의 진의를 ‘가나다라’ 주장해도 듣는 사람이 ‘아자차카’ 들으면 그 말은 결국 ‘아자차카’가 된다. “엎질러진 말은 주울 수 없다”라든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언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건데, 너무 오래되어 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한 마디로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상처와 절망을 줄 수도 있는 공직자라면 자기 말에 부드러운 깃털이 달렸는지 아니면 날카로운 가시와 이빨이 달렸는지 철저한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특히 그는 주거와 교통 등 국민의 기본 생활을 관장하는 부서의 장관이다. 나 같은 삼류 시인의 글도 1차, 2차, 3차 교정을 거쳐야만 세상에 나오고, 막걸리 한 병을 생산하기 위해 양조장의 설비 시설은 수차례의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 변 장관 막말의 경우,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속어는 막걸리 입장에서 치욕이다. 음가를 가지고 유치한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변창흠은 ‘말로 흠을 만든 사람’이 된다.말의 진의가 어떻든 국민이 듣는 ‘아자차카’는 이렇게 풀이된다.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운운은 “위험의 외주화 등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계속 쉬쉬하며 덮을 수 있었는데 재수도 없게 노동자 하나가 사고를 쳐서는 골치 아프게 됐다”, “못 사는 사람들” 어쩌고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들인데 분수도 모르고 무슨 외식을 하겠냐”, “여성은 화장을” 저쩌고는 “여자들은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한다. 화장을 안 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그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들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까 말을 가려 했어야 한다. 말의 무서움을 알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야 한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과 인식의 표현이므로, 한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든 말을 통해 표출된다. 말에 나타난 변 장관의 노동인식, 사회인식, 여성인식은 공직자의 것으로는 부적합하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동안 많은 공직자들이 막말과 말실수로 몰락했다. 2008년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버스 요금이 70원쯤 하나?”라고 했다가 민생을 전혀 모른다고 맹비난을 받았다. 그 말실수는 정 의원의 정치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서민과 괴리된 재벌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한편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분들이 꼭 미래를 결정해 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노인을 폄하했다며 거센 반발을 불렀고 그 결과 정 의장은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의 아우라를 상실하고 말았다. 정몽준 의원과 정동영 의장의 말은 막말이라기보다 말실수에 가깝고, 변창흠 장관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다.지난 2016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은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고, 이듬해 충북도의원 김학철은 “국민은 레밍”이라고 했다. 이런 게 진짜 막말이다. 무슨 이솝우화도 아니고 국민을 개, 돼지, 쥐에 비유한 상소리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두 사람의 사퇴 및 제명을 촉구했다. 변창흠에게도 똑같이 해야 하거늘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분노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변창흠의 장관 임명은 이번 정부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다. “저쪽은 더 심했는데…”라는 볼멘소리가 이번만큼은 씨도 안 먹힐 듯하다. 변창흠 장관의 막말은 비교불가 ‘역대급’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부디 정부와 여당에서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변 장관이 조금만 말에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막말도 문제지만 말만 번지르르한 것도 곤란하다. 국민들은 도덕성과 청렴성, 철학, 능력을 두루 갖춘 인사를 원한다. 대단하고 특별해보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일 뿐이다.

2020-12-29

2021년, 더 큰 희망을 품고

정석수신부·대구가톨릭 요양원 원장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는 이는 희망을 품은 사람입니다. 2020년을 지나며 우리 모두는 간절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안전에 대한 것이요 코로나로 인하여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는 노력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한 인물, 마타디아스는 죽음의 나날이 다가오자 자녀들에게 선조들의 삶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일을 열거하며 당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대대로 명심하여라. 그분께 희망을 두는 이는 아무도 약해지지 않는다.”(1마카2,61)하지만 성경에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희망이 꺾인 고백도 있습니다.“도대체 어디에 내 희망이 있으리오? 나의 희망? 누가 그것을 볼 수 있으리오?”(욥기17,15)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일상의 삶이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연말연시에 확산을 우려하여 정부는 더 강한 조치를 내렸습니다. 희망의 뉴스가 보도 되지만 아직도 코로나19의 백신에 대하여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시편의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힘을 내어 마음을 굳세게 가져라.”(31장25절) 또 “내 영혼아, 오직 하느님의 향해 말없이 기다려라. 그분께서 나의 희망이 오느니!”(시편62,6절)코로나19로 인한 전환기의 위기(危機)를 겪고 있습니다. 위기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라는 요소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며 화상회의를 하게 되어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삶이 정지된 시기에 우리는 기회를 만들고 더 큰 희망을 세워야겠습니다. 2020년은 온 세상이 치유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였고, 대구로 한걸음에 달려온 이들로 인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직접 현장에 투입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수도권의 위기가 벗어날 수 있도록 십시일반 공동모금회의 통장을 살찌우는데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IMF시대에도 준 적 없는 모금액이 하향 조정되었다는 뉴스입니다. 어려울수록 더 저력을 발휘하는 근성이 필요로 합니다. 오늘의 위기에서 고통과 아픔을 넘어 희망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무엇보다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1베드4,8.10)베드로 사도의 이 말씀은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여 희망을 더욱 키워라는 말씀입니다.

2020-12-29

흔들리는 바다와 등대

어디로 가야 하나. 망망대해 더 넓은 한가운데 거친 파도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좌우로 번갈아 가며 쉼 없이 기울기를 멈추지 않는 바다다. 언제부터였는지, 언제까지 일지, 종잡을 수 없이 점점 더 거칠게 흔들리고 있다. 손을 뻗어 휘저어 보아도 손 하나 걸치고 의지할 곳 없는 바다다. 함께 하자며 위로해주거나 관심 둬주는 이 없는 오롯이 혼자가 되는 바다다. 이상(理想)과 현실이 뒤섞여 파도의 물거품처럼 시야를 가린다. 잃어버린 방향을 찾고자 하는 의지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가 어딘가. 나는 무엇인가. 바다는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바다는 태초부터 흔들렸다. 그리고 지구가 사라지고 없어질 때까지 흔들릴 것이다. 바다의 흔들림은 순리(順理)이고 이치(理致)이다. 더 많이 흔들리고 좀 적게 흔들릴 뿐이다.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하여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름에 가려져 있거나 서산 넘어 반대편 세상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태양은 언제나, 어떤 때나, 그 어디에 있다. 마찬가지로 쉼 없이 흔들리는 바다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있는 수평선이 존재하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한 줄기 빛으로 방향의 기준이 되어주는 등대가 있다./신연우(사진작가)

2020-12-28

콩나물시루

아내가 관여하는 단체에서 장난감 같은 콩나물시루와 나물 콩을 받아들고 들어왔다. 시루 안 지름이 겨우 12센티밖에 되지 않아 두 식구가 한번 먹을거리도 되지 않을만하게 작았다. 호기심 반, 장난 반의 심정으로 콩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갔다 시루에 안쳤다.시루를 식탁 의자 위에 올려놓고 오가며 심심풀이로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콩나물 머리가(대가리가) 커지고 줄기가 나오며 시루 위로 솟구쳐 올라와 무너지려 하였다. 처음 시도하다 보니 요령 없이 콩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이다. 임시변통으로 반 뼘 높이로 테를 매고 나서 사흘이 지나자 또다시 넘어지려고 하였다. 그러자 아내가 묘수를 부린다. 돌아가신 장모님도 이렇게 했다며 짚을 들고 들어와 촘촘하게 묶어주었다. 그러나 자라는 속도를 제어할 방법이 없어 이제 겨우 콩나물 모양을 하고 있는, 넘치는 부분을 뽑아 실로 60년 만에 기른 콩나물국을 끓여 먹었다.밭이 구멍가게이고 텃밭이 반찬가게이던 1960년대 시골에서는 추수를 모두 끝내고 한해 양식인 김장을 담고 나서는 집집마다 콩나물시루를 안쳤다. 한 번에 안치면 한꺼번에 자라 나중에는 발이 길게 자란 뻣뻣한 놈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맨 아래에는 생콩을 깔고, 중간에는 하루 동안 물에 불린 콩을, 맨 위에는 싹이 터서 자라기 시작하는 콩을 올렸다. 안방 따듯하고 그늘진 장소에 두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가는 식구마다 수시로 물을 주어 키웠다. 가지런히 올라오면서 노란 머리에 모자를 반쯤 벗은 모습이 귀여웠다.추수 후에나 잠시 먹을 수 있었던 하얀 쌀밥을 콩나물국에 말아 김장김치를 올려 먹을 때 정말 맛있고도 행복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물질의 풍요 속에 희망을 잃어버린 채 흩어져 지내는 오늘보다는, 조금 헐벗고 배고팠지만 기다리는 희망 속에서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누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장난감 같은 콩나물시루 하나가 타임캡슐이 되어 육십 년 세월을 갔다 왔다 하게 한다. /류대열(경주시 외동읍)

2020-12-28

첫눈

11월 27일 올겨울 첫눈이 왔다. 종일 오더니 많이도 왔다. 11월에 폭설이 내린 것은 1966년 11월 2일 이후 처음이란다. 무려 19.4cm를 왔기 때문이다. 겨울 채비로 황량했던 대지도 나무도 흰 솜털 이불을 덮은 것 같다. 갑자기 하얗게 채색된 사위(四圍)가 동화(童話)속의 나라를 연상케 한다. 옛날, 어린 시절 겨울 어느 날, 고향 집, 아침에 일어나면 장독대 위에 하얗게 쌓여 있던 눈, 첫눈만 보면 단숨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동화 속의 나라가 거기쯤일까. 동화속의 나라라면 북유럽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 눈의 나라들에서는 눈을 나타내는 말이 3백여 개나 된다지. 눈을 사랑한 연고일 것이다. 그중에 첫눈은 연인이라는 말도 있겠지.이곳, 토론토, 우리 집 주위, 며칠 전까지 푸르던 나뭇가지는 어느새 눈꽃을 이고 있다. 날씨가 조금만 풀리면 금방 떨어질 눈꽃이지만 절세의 미인이 따로 없다. 사진을 찍었다. 눈이 부시다. 저리도 희고 깨끗한 순백(純白)에 내 마음마저 경건해진다. 다 덮었다. 지상의 잡다한 것들을 포용한 저 순백, 순진무구(純眞無垢), 그래서 더 아름답다.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덮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순백을 생각하면 신부의 드레스를 빼놓을 수 없다. 신부의 드레스가 순백이어야 할 이유를 눈꽃에서 본다. 순결한 신부, 그는 눈꽃과 같으리라.11월 말부터 겨울이 우기(雨期)인 이곳 캐나다는 사나흘이 멀다 하고 눈이 올 것이다. 그러면 도로 위의 눈은 아스팔트와 함께 짓이겨져 흉한 색깔로 변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눈이 원수가 된다. 천대받는 눈이 된다. 제발 눈이 그만 왔으면 한다. 그래도 나는 첫눈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으리라. 아스팔트 위의 눈이 아닌 저 능선을 덮은 하얀 눈을 보리라. 첫눈에 반해서 사랑하고 결혼했다는 청춘남녀와 같이 첫눈이 준 설렘과 환상을 버리고 싶지 않다. 순백의 저 눈이 이 세상의 온갖 고통을 다 덮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첫눈의 감상에 젖는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12-28

우리 집 그녀 이야기

옥상에 그녀가 산다. 이른 봄부터 부지런을 떨어 꽃망울을 맺어 우리 집 옥상을 환히 밝히는 예쁜 그녀, 미니장미. 6월 어느 날 꽃을 잘 기르는 친구에게서 화초를 튼튼하게 해 준다며 비료를 선물 받았다. 한창 꽃을 피우는, 기특하고 예쁜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영양제라 생각하며 비료를 한 움큼 넣어주었다.그런데 아뿔싸, 애정이 넘쳤는지, 손이 너무 컸는지, 나의 일방적인 애정행각으로 의도치 않게 꽃이 마르고 초록 잎이 연두로 변하면서 우수수 낙엽 지고 쪼그라들었다. 한창 꽃 필 시기에 황량하게 말라버린 그녀를 보며 어쩌면 우리 애들 키울 때도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애들이 원치 않은 방식으로 내 사랑을 강요하며 애들을 쪼그라들게 하지 않았는지, 많이 반성했었다.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국화와 구절초의 계절인 가을도 지나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왔다. 옥상의 꽃들이 거의 다 사라진 뒤라 옥상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도 점점 뜸해졌다. 그러다 엊그제, 얼마나 추운지 어떤 외투를 입고 외출하는 게 좋을지 알아보러 옥상에 잠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여름과 가을 내내 힘없이 늘어져 있던 미니장미 줄기에 발갛게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칼바람을 맞고 일조량도,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녀 혼자 씩씩하게 피어 있었다. 애썼다 애썼어.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꽃 피워야 할 시절에 나의 실수로 마르고 사그라들어 죽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었는데,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이 차가운 겨울에 다시 꽃을 피워줬구나.두두물물이 스승이라더니, 예쁜 미니 장미에게서 삶의 의지와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 피우는 자세를 배운다. 그리고 우리 애들도 어설픈 내 사랑을 잘 승화해서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꺾이지 않고 힘차게 살아남아 장미 같은 삶을 꽃피우길 희망해 본다./이홍숙(경주시 안강읍)

2020-12-28

밤이 꿈꾸는 낮, 빛이 꿈꾸는 어둠

꿈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내가 꾼 꿈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있다. 꿈은 논리보다는 비논리에, 이성보다는 비이성에,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에 놓인다. 이러한 꿈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도가 예로부터 꾸준했었다.신화와 구전, 역사적 사실 속에서 꿈을 통한 앞날의 예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던 시도였다.여기서 더 나아가 꿈을 좀 더 체계적이며 이성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려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으니,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그것이었다. 프로이트는 동명의 책에서 무의식의 작동체계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무의식의 기저를 찾고자 했다. 쉽게 말해 무의식(꿈)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찾고자 한 것이다.동양에서는 꿈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랐다. 꿈에 대한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하기 보다는 그것을 고유 영역에 두고자 했다. 또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 자체를 허물어 뜨리기도 한다.접근 방식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꿈의 세계를 완전히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그것을 명징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문학과 연극, 미술과 음악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시도되고 있는 작품들을 볼 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영화에 있어서도 꿈에 대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꿈에 대한 대표적 영화를 꼽으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몇 년 전 곤 사토시 감독이 꿈의 영역에 대해서 파고들었던 영화가 있었다. 바로 ‘파프리카’다. 영화 ‘인셉션’이 2010년 개봉을 했고, ‘파프리카’가 2006년 개봉을 했으니 4년이 앞선 셈이다.곤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를 먼저 접했던 이들에게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을 보면서 많은 비교를 했으리라고 짐작된다. 두 영화는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꿈에 대한 설정에서부터, 타인의 꿈 속으로 잠입하는 내용과 몇몇의 장면은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영화 ‘파프리카’는 꿈과 현실의 이분화된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인셉션’은 여기서 더 들어가 꿈의 다양한 층위들을 배열한다. 물론 그 배열된 층위들은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파프리카’가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면 ‘인셉션’은 최소 2개 이상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꿈 속의 꿈을 통해 현실 세계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인셉션’이라면, ‘파프리카’는 잠식된 무의식(꿈)이 현실에 발현되면서 꿈과 현실의 기반이 무너진 지점을 영화화 했다. 그렇기에 ‘파프리카’는 난해한 꿈의 형상화에 치중하고 있으며, 비논리적인 꿈의 시스템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그래서 장면은 곧잘 반복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여기에 대사들 마저 비논리적이니 꿈의 표현에 있어서는 ‘파프리카’가 훨씬 탁월한 부분을 지닌다.‘인셉션’은 가장 낮은 층위(가장 깊은 꿈 속의 꿈)에서 순차적으로 깨어남(킥)으로 사건을 단계적으로 해결한다. 흔히 크리스토퍼 놀란을 ‘레이어(층위)’를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칭한다. 그의 레이어는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의 나눔이다.‘인셉션’의 단계적 해결방식에 비해 ‘파프리카’의 해결 방식은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상황은 꿈과 현실이 뒤섞여 어느 지점이 꿈이며 어느 지점이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꿈을 꾼다기보다 현실이 꿈에 의해 잠식당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꿈은 고유의 영역을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에 침입한다. 영화의 스크린을 통해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웹사이트를 통해서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며 밀려들기 시작한다. 분명히 우리는 꿈을 꾸었지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 못하는 것과 같이 분명히 영화를 보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크리스터퍼 놀란 감독이 꿈의 웅장하고 체계적인 표현을 이루었다면, 곤 사토시 감독은 꿈의 난해함을 난해한 상태로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꿈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접근 방식과 장자의 ‘호접지몽’과 같은 방식으로 각각의 영화가 표현되었다고 하겠다./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0-12-28

말로 다할 수 없는 기도들… 완주 화암사(花巖寺)

꿈결에 다녀온 듯 어렴풋하지만 문득문득 사진첩을 펼쳐보듯 생각나는 절이 있다. 아름다운 오솔길, 속세를 등진 고독감이 눅눅하게 온몸으로 배어들던 산사, 나는 벼르고 별러 마지막 산사 기행을 화암사로 정했다.새파랗던 청춘이 고스란히 살아서 반겨줄 것만 같아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멀고 먼 길을 달려 불명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모든 기대감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넓은 주차장과 맞은편으로 뚫린 포장길 앞에서 변화의 예감은 적중했다. 신비롭던 오솔길은 넓고 완만해졌으며 가랑잎의 뒤척임조차 없이 산길은 적적하기만 하다. 도솔천을 찾아가듯 몽환적이던 그 가을날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오솔길에 취해 홀린 듯 따라가면 별천지처럼 숨어 있던 절, 화사한 단풍 속에서도 유난히 외로워 보이던 산사였다.계곡물도 폭포수도 하얗게 얼어붙었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고로쇠나무 한 그루가 귀 기울이며 들을 뿐, 겨울 숲은 고요하다. 산은 가파르지만 길은 끝까지 친절하다. 나는 군데군데 잉크자국이 번진, 젊은 날의 일기장을 펼쳐보듯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져 내리지 않기를 기도한다.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던 화암사 앞에서 선뜻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한참이나 서서 그 옛날을 회상한다. 먼 속삭임들이 하나 둘 마중을 나오고 나는 몇 미터 앞에서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기억들을 조립한다.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잘려나갔지만 그 옛날의 애잔함은 보이지 않는다. 자기의 세계가 확고한 선비처럼 반듯하다.밤 새 눈발이 날렸나 보다. 응달에 남아 있는 잔설을 뒤로 하고 절로 향한다. 사찰의 규모에 비해 높고 큰 우화루가 요새처럼 든든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절의 배치로 보자면 우화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가는 게 제일 흔한 방법인데 이곳 우화루는 반누각식으로 만들어져 아랫부분은 돌벽으로 막혀 있다. 요사채처럼 보이는 행랑채에 크지 않은 문이 있어 마치 여염집을 연상시킨다.요사채 댓돌 위에 놓인 털신 한 켤레와 스님의 지팡이로 보이는 알루미늄 폴대가 벽에 기대어 있을 뿐, 인기척이 없다. 겨울바람 홀로 우화루 처마 끝에서 풍경을 타고 논다.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그 이름 앞에만 서면 왜 쓸쓸하고 처연해지는지 모르겠다. 지독히도 고독해 보이던 옛 기억과 달리 절은 엄숙하고 평온한 적요에 잠겨 편안하다.주인 없는 집을 기웃거리듯 조심스럽게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ㅁ자 형식으로 전각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주법당인 극락전이 제일 높게 자리하고, 마주보는 우화루와 그 옆에 적묵당이 서열대로 키 높이를 달리한다. 탑 하나 없는 마당과 적묵당에 딸린 부엌문 때문인지 절집이라기보다 자식을 대처로 떠나보낸 노부부가 살아가는 시골집 같기도 하다.한마음으로 둘러앉은 어깨들 사이로 깊고 깊은 깊은 시간들이 살아간다. 절의 배치가 안정적이면서도 신비롭다. 외부의 나쁜 기운이 함부로 기웃대지 못하도록 경계라도 하듯 절은 폐쇄적일 수도 있다. 겨울 햇살 몇 줄기가 떨고 있는 우화루의 거친 마룻바닥, 투박한 나뭇결이 아름다운 목어, 적묵당 기둥에 박혀 있는 나비 모양의 짜깁기까지, 누수된 세월의 흔적들이 가슴을 뭉클거리게 한다. 무욕(無慾)의 작은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가 서로를 향한 저 공(空)의 눈빛들에서 나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맛본다.국보 제 316호 극락전은 화암사의 주불전으로 중국과 일본의 건축에서 쓰이는 하앙 기법이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서까래가 빠져나온 처마, 그 밑에 길게 가로 놓인 처마도리 밑으로 조각된 용머리들이 보인다. 그것이 하앙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건축에 주로 쓰였지만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절에 대한 연혁은 전해지는 게 없고 조선 초에 세워진 중창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머물며 수도했다는 내용만 전해진다.적묵당 차가운 툇마루에 앉아 처마 끝으로 와 안기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적막한 숲에도 여름이면 별들이, 겨울이면 새하얀 눈들이 소리 없이 화암사 안마당에 내려와 예불을 볼 것이다. 산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숲을 등지고 내면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절, 바위 위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 같은 사찰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고요 속으로 나는 빠져들어 간다.조낭희 수필가극락전 법당 안은 바깥보다 훨씬 춥다. 손과 발이 시리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백팔 배를 시작한다. 다시 시작된 1년 4개월의 기행, 돌아보니 부처님의 자비로 충만했던 날들이었다. 날마다 백팔 배로 나를 돌아보고 하루를 접는 일은 이제 일기를 쓰듯 자연스러워졌다. 남은 세월도 소를 찾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로 한 걸음씩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나의 청춘이 쫓기듯 불안했다면, 지금은 새로운 희망과 목표가 있어 든든하다. 짧은 나와의 조우가 행복하다. 뒤안에서 일렁이는 대나무 숲, 한 자 한 자 떨어져 앉은 극락전 현판, 요사채를 지키는 늙은 모란에게도 두 손을 모은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기도들이 내 안을 채우자, 우화루 처마 끝에서 다시 풍경이 울어댄다.끝

2020-12-28

동학개미와 서학개미

동학개미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주식 시장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2020년 초들어 코로나 19 사태로 외국인 투자자가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국 주식을 팔며 급락세가 이어지자 이에 맞서 개인투자자들이 적극 매수에 나섰다. 외국 기관과 외국인에 맞서 매물을 힘겹게 받아내는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 마치 1894년 반외세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동학개미’다.실제로 하락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1월 20일부터 3월 31일까지 동학개미들의 순매수 규모는 코스피 19.9조원, 코스닥 2.3조원에 이르며, 고객예탁금의 경우 1월 20일 28.1조원에서 3월31일 43조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이들은 2000선을 넘었던 코스피지수가 1430선까지 주저앉았던 3월에만 코스피 시장에서 11조원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이에 반해 ‘서학개미’는 국내주식을 사모으는 ‘동학개미’에 빗댄 표현으로, 미국 등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를 일컫는 말이다.특히 미국 증권 시장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투자한 1위 기업은 테슬라로, 2위인 애플보다도 2배나 많은 금액이다. 테슬라의 2020년 3분기 실적을 보면 이익은 2분기 대비 +60%, 마진율은 27.7%(2분기 21%), 현금유동성도 13억9천5만달러(2분기 대비 234% 증가)에 이르니 서학개미들이 환호할 만 하다.재미있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적극적으로 주식 매수에 나서는 개인투자자를 미국에서는 ‘로빈후드’, 일본에서는 ‘닌자개미’라고 부른다니 어느 나라할 것 없이 외국인 투자자에 맞서 자국의 증시를 떠받치는 행위를 높이 평가하는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28

절망의 세밑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미국·캐나다·영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멕시코·칠레까지도 코로나 백신접종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언제 그 수혜자가 될지 기약이 없다. 경제는 무너져 실업자가 속출하고, 부동산정책 실패로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오만과 독선에 빠진 정권이 폭주하는데 야당은 무기력하고 무능하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서민들은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절망 속에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처연한 세밑 풍경이다.대통령 탄핵으로 유권자들이 선택한 정권이니 누구를 탓하랴. 촛불정신을 역설한 정권은 다를 줄 알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박수를 보냈다. ‘착한 사람(?)’ 이미지를 가진 인권변호사는 대통령이 되어도 ‘권모술수(權謀術數)’를 부리지 않을 줄 알았다.착각이었다. 정치권력의 속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통합을 약속한 대통령이 권력을 잡자, 편 가르기로 나라를 완전히 두 동강 내어버렸다.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신 적폐’를 양산하고, 권력기관을 개혁한다면서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려고 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재가한 검찰총장 징계를 법원이 효력을 정지시켰겠는가? 촛불 덕에 권력을 줍다시피 한 정권이 촛불정신을 왜곡하고 국민을 배신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끝판 왕이다.이처럼 무도한 정권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해도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절망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도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며, 이것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는 희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우리는 권력밖에 모르는 위선자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야 한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니 말이다.우리의 희망가는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우리가 희망이 되려면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 우리도 성현들처럼 ‘불의의 꽃길’을 단호히 거부하고 ‘정의의 가시밭길’로 당당하게 나아가자. 권력에 빌붙어 사익을 탐하는 ‘간상배(奸商輩)’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정의의 사도’가 되자. 공자·석가·예수·소크라테스와 같은 성현들의 말씀이 우리에게 구원(救援)인 것은 진리를 깨닫게 함으로써 삶에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우울한 세밑이지만 희망을 노래하자. 셀리(P. Shelley)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고, 푸시킨(A. Pushkin)은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기쁨의 날이 오리니…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우리가 목 놓아 부르는 ‘정의와 진리의 노래’는 반드시 새해를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다.

2020-12-28

세모와 송년회

강희룡 서예가세밑(歲─) 또는 세모(歲暮)는 한 해가 거의 다 가서 얼마 남지 않아 곧 한 해가 다가는 무렵을 가리킨다. 올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기승으로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운 처참히 무너진 일상으로 우울하게 저물어 간다. 우리가 부르는 세모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일본식 한자라 하여 세밑으로 순화해 쓰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초간본)에 “세모에 음양이 짧은 해를 재촉하니, 하늘가의 상설이 찬 하늘이 개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율곡이 지은 연시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제9곡 문산(文山)의 경치를 읊은 부분에 ‘구곡은 어드메오, 문산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무쳐셰라’란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시대에도 세모란 말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세모로 사용해도 틀린 어휘는 아닌 것 같다.우리의 세시풍습은 입춘으로 시작하여 대한으로 끝나는 24절기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섣달그믐이 되면 고관들은 왕에게 문안을 하고 사대부집안에서는 가묘(家廟)에 절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집안마다 어른을 찾아뵙고 묵은세배를 올리는 한편, 친지끼리 특산물을 주고받으면서 한 해의 끝을 뜻있게 마무리하였다. 또한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 부엌, 마구간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 놓고 조상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렸다. 부엌신인 조상신은 1년 동안 그 집안사람들의 선악을 섣달 스무 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마지막 날 밤에 하강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때문에 연말 일주일은 한 해 동안의 처신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심판받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풍속은 36년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일관된 식민 지배의 탄압과 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 말살 및 우민화정책으로 철저히 왜곡되거나 실종되었다. 해방 후 우리의 고유 세시풍속이 사라진 자리를 ‘망년회(忘年會)’란 이름의 술 파티가 등장한다. 이 망년회는 연말과 연시로 이어지는 일본의 비공식적인 연휴로 신년회까지 이어지는 오랜 풍습이다. 한 해 동안의 온갖 핍박과 수탈을 모두 술로 잊어버리자는 의미로 망년회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를 일본어투의 말이라 하여 90년대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송년모임 또는 송년회’로 순화했다.사회구조가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현대인들은 직장을 비롯해 여러 갈래 집단 간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임들은 연말이면 송년회란 이름을 빌어 본격적인 권주절(勸酒節)을 만들어 간다. 망년회란 의미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겉으로 이름만 송년회로 포장한 이 상품을 우리는 목청 높여 뜻도 의미도 없는 ‘위하여’를 외치면서 건강을 해치고 경제력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를 맞는 심정은 동서고금이 모두 같다. 지나가는 한해가 안타깝고 아쉽지만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과 비전이 있기에 즐겁기만 하다. 이웃을 한번쯤 둘러보면서 서로 갈등으로 반목했던 사람들도 화합과 용서로 바뀌는 것이 바로 새해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밝아오는 신축년에는 전염병을 속히 퇴치하고 서로가 소통하는 일상을 찾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2020-12-27

우리는 할 수 있다

윤영대 수필가한 해가 저문다. 희망과 설레임으로 맞이했던 2020 경자년도 코로나19라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역병의 창궐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작년 12월 말 중국 우환에서 들어온 원인불명의 폐렴 전염병이 이제 매일 1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국민의 불안은 가중되어 간다.우리 생활의 변화는 엄청나다. 거리 두기 2m라는 제한 속에 비대면, 랜선, 언택트라는 신조어들을 머리에 새기고 확찐자, 집콕족, 금스크 같은 우스개 소리도 챙겨야 했다. 이제 마스크 쓰기와 언택트로 소통하는 방식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이자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서로의 만남이 두려운 우리는 ‘우리’라는 넓은 범위의 이웃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다 같이 노력하여 되찾고 모두가 긍정적 생각으로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개인의 삶도 우울하지만 사회도 우울하고, 마음의 평온과 삶의 믿음을 위해 교회나 절에서 모여 영혼을 위로받고 싶지만 어려운 실정이다.세계 각국은 자국의 방역을 위해 외국과의 왕래도 통제하고 세계 축제인 올림픽도 연기된 아픈 기록을 남겼다. 국내는 백신 구입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을 받는 와중에서 정치권의 줄다리기 싸움을 지켜보며 마음은 짜증나고 어둡기만 하다. 학생들의 생활도 빗나가버렸다. 한창 감성이 무르익을 학창시절을 등교의 불확실성에 비대면 수업이라는 사태까지 와버렸으니 앞으로 코로나 세대라는 신세대가 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기억을 할지….올해는 문화예술계와 체육계도 힘을 잃었다. 전시회가 취소되거나 인원 제한에 언택트 공연이 되었고, 국민 생활의 활력소를 얻던 각종 경기 등도 취소되어 함성과 박수가 요란했던 경기장은 조용하다. 연말이면 안방을 달구었던 각종 시상식들의 화려함도 볼 수 없다. 해외여행 불가로 나의 꿈, 버킷리스트 하나를 접어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그러는 가운데 망년회도 없이 연말을 맞은 마음은 쓸쓸하다. 이제 마음을 추스르며 나의 주위를 정리해 본다. 소소하게 즐겼던 취미 생활의 흔적을 차곡차곡 정리해 보고 단조로운 일기장을 뒤적이며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과 무언의 대화들을 하나둘 지우며 나의 기억 속에 묻어둔다.내년은 신축년 소띠의 해이다. 말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소와 같이 정부는 선지적인 상황판단과 결단력으로 현명하게 대처하고 국민 각자는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역대책을 준수하며 병상 부족 상황에서도 고된 업무를 이겨내려는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봉사 정신을 가슴에 품고 이 난관을 타개하고 밝은 내일을 만들어 가자.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다.내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맑은 마음, 밝은 웃음으로 깨끗한 몸을 가꾸고 이웃들과의 관계를 더욱 따뜻이 하여 이 환란을 이겨내자. 제야의 장엄한 종소리도 새해 첫날 타오르는 일출도 각자의 위치에서 마음으로 듣고 보며 새해를 맞이하자.“우리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2020-12-27

포항경제의 혁신적 발전을 위한 의견

지난 12월 14일 포항세관이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누적 수출액은 64억5천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8억4천500만 달러보다 17.7%가 감소하였다. 지금 추세로는 역시 연간 전체로도 전년 대비 감소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원인이라면 역시 지역 철강제품의 수출 부진에 따른 것이다. 지역별로는 최대 수출 지역인 유럽에 대한 수출이 1~11월까지 누적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0%가, 동남아시아 지역은 10.9%가 각각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지역에서 코로나19에 따른 피해가 컸던 탓인데, 이 추세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 같다. 포항경제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올해 중국의 달러화 표시 무역총액은 1~11월 기간 중 전년 동기 대비 0.6% 증가하여, 10월까지 누적 기준 감소에서 증가로 전환하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밝혀진 약점을 최대한 보완하고 이를 극복하여 더욱 도약하기 위한 대외무역과 관련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였다. 지난 11월 9일 중국 국무원은 “대외무역의 혁신적 발전 추진에 관한 실시의견”(关于推进对外贸易创新发展的实施意见)을 발표하였다. 이 실시의견은 혁신과 최적화를 키워드로 삼아 대외무역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모두 11항으로서 1항은 2항부터 10항에 이르는 9개의 대책을 포괄하는 전반적인 방향과 기준을 나타내고, 마지막 11항은 9개 대책을 지속 달성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보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시의견이 지향하는 전체적인 요지를 나타낸 1항에서는 5개 부문(국제시장과 국내지역 배치, 경영 주체, 상품구조, 무역방식)의 최적화와 더불어 3대 부문(대외무역의 구조 전환과 고도화를 위한 기지, 무역 촉진 플랫폼, 국제 마케팅 체제)의 정비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최근 중국 당국이 강조해 온 국내외간 치밀한 상호작용(쌍순환)을 기반으로 하되 여기에는 과학기술, 제도, 모델, 업태를 모두 포괄하는 혁신으로 국제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여 대외무역의 혁신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2항부터 10항까지는 실천적인 9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1)개척방식의 혁신과 국제시장배치의 최적화(국제경제, 무역환경의 최적화, 무역원활화 메커니즘의 정비, 신기술, 새로운 채널 활용에 따른 국제시장 개척), 2)비교 우위에 바탕을 둔 국내 지역배치의 최적화(동부지역에서 무역의 질적 향상, 중서부지역에서 무역 비중의 확대, 동북지역에서 대외개방 확대, 지역간 대외무역협력 메커니즘의 혁신), 3)부문별 지도 강화와 경영주체의 최적화(선도기업의 육성, 중소기업 무역경쟁력의 강화, 협동적인 발전 수준의 향상, 기업에 대한 서비스의 적극적 제공), 4)생산요소 투입방식의 혁신과 상품구조의 최적화(산업망, 공급망의 보호와 발전 촉진, 산업구조의 전환, 고도화 추진, 수출제품의 품질향상, 수출입제품 구조의 최적화), 5)발전모델의 혁신과 무역방식의 최적화(일반무역 규모 확대와 부가가치의 향상 등 강화, 가공무역의 고도화, 국경무역과 같은 기타무역의 확대 촉진, 대외무역의 일체화), 6)운영방식의 혁신과 국가 차원의 무역구조 전환, 고도화기지의 건설추진(조직체제를 건전화하고 연구소, 대학, 무역촉진기구, 업계단체, 기업 등에 의한 공공서비스플랫폼의 정비). 7)서비스모델의 혁신과 무역촉진 플랫폼의 정비 추진(국제수입박람회의 역할 강화, 수입 촉진을 위한 모니터링, 평가, 퇴출 메커니즘을 정비한 혁신적 모델 구역 육성), 8)서비스채널의 혁신과 국제마케팅체계의 정비추진(기업 단독 또는 협력방식의 국제마케팅체계의 정비 가속, 자원공유 공공플랫폼의 정비). 9)업태모델의 혁신과 대외무역의 새로운 원동력 육성(국경을 넘는 전자상거래 등의 새로운 업태 발전 촉진, 중고차 수출의 적극적 추진, 신흥서비스무역의 발전 가속, 대외무역의 디지털화의 발전 가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11항에서는 이와 같은 발전 환경을 최적화하고 보장할 수 있는 건전한 체제 확보를 위해 자유무역시험구, 자유무역항의 역할 강화, 수출입관리 및 서비스 최적화, 국제물류에 의한 보장의 강화, 리스크 방지 능력 향상 등을 제시하였다. 한 국가의 종합적인 전략 내지는 정책을 망라하고 있는 만큼 매우 방대한 내용이지만 이 모든 대책을 지역에 적절하게 적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책들이다.이상과 같이 중국이 대외무역을 보다 혁신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의 핵심적인 단어는 역시 혁신과 최적화다. 포항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혁신과 최적화는 늘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어떠한 방향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가는 다른 이야기다. 이에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대책들을 포항경제의 실상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가칭 ‘포항경제의 혁신적 발전을 의견’으로 9가지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해 보았다.1)지금과 같이 관세부과와 같은 충격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회피하기 위해 유럽, 동남아시아와 같은 지역으로 수출대상국을 변경하는 순응형 해외시장개척에서 벗어나 철저한 신기술, 고부가가치제품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을 개척, 2)중국의 대외정책에서 동북지역의 대외개방 확대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동북3성 지역에 대한 수출시장 개척을 강화, 3)포항시가 지원하는 강소기업 등 지역 선도기업을 지속 육성해 나가되 이와 더불어 비철강부문의 중소기업에 대한 무역지원과 행정서비스도 적극 제공, 4)지역 철강산업의 생태계 조성과 혁신을 위해 기초 소재만이 아니라 중간재, 최종재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최대한 보호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국에 산재한 소규모 철강공장들을 적극 수용, 집약시키는 방법도 동원, 5)포항시 발전모델은 지금까지 소재인 제철, 제강에만 주목해왔으나 앞으로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철강과 금속을 묶는 철강금속산업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영일만항 등을 기반으로 식품가공과 입항선박에 대한 보급기지로서의 기타 거래도 확장, 6)포항시 전체에 산재하여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 연구소, 상공회의소, 중소기업단체 등을 연결하는 정보 공유와 산학협력체제를 더욱 활성화, 7)단순한 철강 소재를 활용하는 연례행사보다는 전국 대상의 가칭 ‘철강금속제품박람회’를 기획하여 철강소재가 포함된 최종재 생산 중소기업을 초청, 포항에서 판촉활동을 지원하고 소비자가 구매토록 함으로써 생산기업과 관광소비객의 유치를 동시 달성, 8)비대면 비접촉 시대에 본격화에 대비하여 지역 특산물의 국내외 판매온라인채널을 구축하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빅데이터를 수집 축적하며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과 관련 기반을 정비, 9)포항은 철강도시에 더하여 관광, 문화도시를 표명하지만 국제항만도시인 만큼 기존의 특구 기능을 활성화하되 출입구인 영일만항을 비롯한 항만의 검역, 방역, 통관기능 등 다양한 부문에서 최적화된 물류 체제를 지속 정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그동안 포항경제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의 많은 조언이 있었고, 이상의 9개 대책도 분명 제시된 바 있었다. 하지만 의견을 제시하고 듣기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이룰 수 없다. 이제는 움직여야만 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끝

2020-12-27

레임덕

레임덕은 본래 18세기 유럽 증권가에서 채무 불이행자를 가르키는 경제용어로 사용되다 19세기 미국으로 건너와 임기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을 가르키는 말로 바뀌었다. 절름발이의 lame과 오리의 duck을 합친 말로 뒤뚱되는 오리걸음을 묘사한 표현이다.권력이란 영원히 거머쥘 수 없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권력 누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 속담의 권불십년(權不十年)이 이런 의미다. 세상의 아무리 높은 권세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력을 잡으면 언젠가는 물러나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여서 열흘 피는 꽃이 없다(花無十日紅)는 말도 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면 반드시 가슴에 새겨둬야 할 경구다. 거대한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최초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장생의 약초를 구하지 못하고 겨우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룩한 진나라도 그의 사후 5년만에 멸망한다. 세상사 사람이 하는 일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유한한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정치학자가 제시하는 권력자의 레임덕 이유는 대체로 이렇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권력자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또 집권당의 다음 후보가 자신의 세력을 빠르게 결집했을 때, 권력자 본인이나 친인척의 비리가 드러나는 경우, 리더십이 현격히 떨어질 때 등등이다.정경심 교수 유죄판결과 윤석열 총장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레임덕이 화두다. 일반적으로 집권 4년차가 되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기여서 레임덕 거론이 자연스러울 때도 있다.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최초의 레임덕 없는 정권이 될 것이란 기대감을 받아온 정권이라는 점에서 이번 레임덕의 등장은 각별하게 느껴진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2-27

외눈박이들의 ‘탄핵’ 놀이

안재휘 논설위원조선 숙종 때 당하관(堂下官) 벼슬에 있던 이관명(李觀命)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와 왕에게 아뢴다. “황공하오나,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는 통영의 섬 하나에서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이 참혹하옵니다”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면서 책상을 내리쳤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그러나 이관명은 굴하지 않고, “누구 하나 전하의 거친 행동을 막지 않았으니 저와 대신들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주십시오”라며 엎드린다. 숙종은 화가 치밀어 올라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라고 명한다. 그리고는 “전 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고 명했다. 그리고 곧 명을 고쳐 ‘홍문제학’을 제수한다고 했다가, 마지막에 “예조참판을 제수한다”고 다시 명을 바꿨다.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정직 2개월’ 징계 결정이 법원에서 뒤집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재가가 난 징계결과를 일개 판사가 어떻게 뒤엎을 것이냐 하고 벌인 막장 싸움에서 완패했다. 또다시 나타난 여권의 치사한 분기탱천이 기가 막힌다. 어째 이렇게들 끝까지 쪼잔한지 도통 모르겠다.때마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1심 판결도 나왔다. 정 교수는 입시 비리 등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판결에 볼복하는 친여 세력들이 서울중앙지법 재판관들의 이름을 낱낱이 적시하며 탄핵 국민청원을 냈다. 이 청원에 순식간에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윤석열 찍어내기’ 집착에 빠진 민주당 쪽의 광기 또한 가관이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총대를 멨다. 김 의원은 윤 총장을 국회에서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추미애 장관에게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어 해임하라고 떼를 썼다. 입법을 통해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제거하겠다는 격앙된 반응도 등장했다.이쯤 되면 이 나라는 ‘법치’뿐만 아니라, 국가의 근본 틀인 ‘3권분립’에도 통째로 빨간 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국민청원 놀이터에서 올곧은 ‘판사’들을 쫓아내라고 ‘난리굿’을 치기 시작한 무리는 한낱 패거리 맹신주의에 빠진 외눈박이 좀비들에 불과하다. 선택적 ‘정의’에 만취해 몰려다니는 홍위병 망령의 허수아비들이 이 나라를 망국의 블랙홀로 내몰고 있다.“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이라는 김두관의 험구에서 ‘검찰 해체’를 노리는 확증편향 조폭 조직의 가없는 복수심 같은 살기마저 읽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작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외눈박이들의 ‘탄핵 놀이’를 허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임금의 잘못을 탄원하는 당하관 이관명을 단숨에 예조참판으로 임명해 오히려 나라의 큰 그릇으로 쓴 숙종처럼 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라면 패거리 적개심에 취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검찰총장과 판사들을 물어뜯는 추한 모습을 연출할 리가 절대로 없다.

2020-12-27

허리 끊긴 철도 ‘문경~상주~김천’ 구간 반드시 연결해야

강영석 상주시장근·현대사에서 경부축 교통망을 비켜나 낙후의 쓰라림을 감내 했던 상주가 이제 사통팔달의 교통 결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데다 중부내륙, 당진~영덕, 상주~영천 등 고속도로 3개 노선이 지나고 나들목도 6개에 이른다. 이 같은 교통 여건과 앞선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경북도농업기술원을 유치해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기업과 귀농귀촌인 유치, 관광산업 육성 등 도시를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하지만 고속도로 외에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프라가 있다. 바로 철도다. 정부는 서울 수서에서 출발해 경남 거제에 이르는 철도 노선을 구축하고 있다. 국토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노선이다.현재 수서에서 문경까지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2023년 완공 예정이다. 김천~거제 노선은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되면서 철도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수립 용역이 진행 중이다.문제는 서울에서 거제까지 노선 가운데 중간 지점인 문경~상주~김천 구간(73㎞)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노선이 없다는 것은 국토 종단 철도의 허리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다.올해 4월 시장으로 취임한 후 이 노선의 연결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래형 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가 없이는 지역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수도권의 기업과 귀농귀촌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개선해야 상주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볼 때도 그렇다. 수도권에서 충청·경북·경남의 주요 도시를 연결해야 철도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지방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된다. 미래 세대와 국가의 재도약을 위해 필수적인 사업이다.그동안 철도 연결을 위해 정부 관련 부처와 출향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당위성을 역설했다.청와대·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국회 등 관련기관을 40차례 가까이 방문하는 등 노선 건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시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문경~상주~김천 구간 조기 구축 탄원서 서명 운동에 상주 시민의 97%인 9만5천300여 명이 뜻을 함께했다.이웃 도시인 문경과 김천 역시 힘을 보탰다. 지난 6월 상주·문경·김천시의 관련 부서장이 모여 중부내륙철도 문경~상주~김천 구간 건설 실무협의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 이어 각 도시별로 서명운동이 시작됐고 철도 연결을 촉구하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이 결과 상주·문경·김천 시민의 79%인 24만4천여 명이 서명에 참여할 정도로 반향이 컸다. 지난 7월에는 세 도시 시민의 강력한 바람이 담긴 탄원서를 대통령 비서실, 국회의장,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철도시설공단 등에 제출했다.철도 조기 구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물불가리지 않고 달려가 예비타당성 조사의 조속한 통과와 당위성을 강조했다. 문경~상주~김천 노선은 총 길이 73㎞에 예상 사업비가 1조3천700여억 원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5월부터 이 노선의 경제성 여부를 확인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민은 지방에서 하는 대형사업 중 경제성이 제대로 인정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런 만큼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최근에는 공사비 절감 방안을 마련해 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다시 제출하는 등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런 노력 덕분에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취임 직후 상당히 걱정스러웠던 상황과 달리 희망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통과된 2021년도 정부 예산에 문경~상주~김천 철도기본계획 수립비 35억원이 확정되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이르면 내년 2월께 나올 예비타당성조사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국책사업을 유치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시민과 함께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상주 시민과 경북 도민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철도망 확충으로 경북의 도시들이 상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20-12-27

폐교에서

기억의 첫 장은 골목에서 시작된다.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되살아난 골목에는 옛날을 떠올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걷다보니 머릿속에서 스러져가던 풍경이 하나씩 깨어난다. 골목 끝에 추억을 파는 상점이 있어 쫀드기 하나 집어 든다. 쫄깃쫄깃한 옛 맛을 씹으며 언덕을 오르니 야트막한 동산 위에서 허름한 건물이 구룡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기에 폐교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하릴없는 바람이 붙잡고 흔들어보는 국기 게양대를 바라보며 조회라도 하는 걸까, 운동장에는 작물들이 삐뚤빼뚤 줄을 맞추고 있다. 아이들의 수다는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느티나무 위에서 참새들만 재잘거린다. 빈 책상이 점점 늘어 학교가 문을 닫기까지 참새는 출석부에 이름 한 줄 채우지 못했다. 첨성대모형을 바라보며 별처럼 반짝이는 꿈을 키우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떠났을까.‘끼익!’ 교무실 문을 열자 우당탕거리며 자리에 앉는 아이들의 환영이 스쳐간다. 벽에 기우뚱 기댄 뜀틀과 먼지를 뒤집어쓴 구름판 위에 줄다리기 밧줄이 축 늘어져있다. 아이들의 마지막 낙서를 붙잡고 있는 칠판 앞에서 생활기록부를 툭 건들자 사진 몇 장이 떨어진다. 촌스런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언니들, 두 줄이 선명한 하늘색 운동복을 입고 손등에 1등 도장을 찍기 위해 달리는 주자들, 가을볕에 그을린 그들의 운동회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초점이 흐려서인지 인물보다 많은 수를 뽑았는지 앨범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사진은 여태껏 오지 않은 주인을 기다린다.내 마음속에도 학교가 있었다. 걸음이 느린 내게 운동장은 뜀박질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그림이었다. 그네 타는 아이의 흔들림, 지구본을 열심히 돌리는 친구의 발동작, 아침조회 때 미끄럼틀 너머에서 철거덕철거덕 내달리던 기차. 쉬는 시간이면 그것들을 스케치북 위에 담았다. 단풍이 들면 온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에 올라 몰래 훔친 언니의 물감으로 달력 뒷장에다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화가가 되는 꿈을 한 장 한 장 꾸었다.어렸을 적에는 꿈을 꾸면 그것이 내게로 다가올 거라고 믿었다. 오늘 벌어야 내일 끼니를 거르지 않던 20대, 결혼 후 반복되는 일상을 버리지도 못했다. 길고 지루한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 무작정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배우고 읽으며, 하루를 서두르면서 살다보니 내 마음의 학교도 문을 닫았다. 어릴 적 저축해두었던 꿈을 곶감 빼 먹듯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지금이라도 꿈을 키우지 않는다면 다시 되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꿈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끝나기 전에 불씨를 되살려야 했다.‘삐그덕!’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창고에는 하나씩 버린 것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게시판에는 ‘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탈색된 그림이 활짝 웃고 있었다. 스케치북과 연필을 찾아 입으로 호호 불었다. 구석에 드러누워 있는 구름판을 꺼내 놓고 몇 발짝 물러났다. 도움닫기를 하자 야무진 꿈들이 부스스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매년 전시회를 여는 화가, 베스트셀러 작가, 여백이 없는 여권을 가진 여행가. 생각만 해도 행복한 꿈들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학교 문을 열어 펄럭이는 깃발을 게양대에 올렸다.김순희 수필가운동장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하늘은 각도기 전체를 다 써야 할 만큼 넓다. 수평선은 전교생이 두 팔을 뻗어도 모자랄 만큼 길다. 탁 트인 하늘과 바다를 보며 저만한 꿈을 키운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폐교가 모교가 된 그들도 나처럼 문득 뒤를 돌아보다가 빛바랜 꿈을 꺼내 닦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기억의 첫 장이 있는 골목을 찾아 추억의 조각을 주워 마음의 책갈피에 간직할 것이다.어린 시절에는 밥보다 별을 많이 먹었다. 평상에 누워 따먹는 밤하늘의 별은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꿈이었다. 되살아난 골목을 걷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꿈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다들 학교는 졸업했지만, 인생학교는 걸음을 멈추는 날까지 재학 중이기에.

2020-12-27

코로나 일상 속 통계조사, 언택트로!!

김원식동북지방통계청 포항사무소 소장이제 경자년(庚子年) 쥐띠의 해 끝자락이다. 코로나19 확산부터 관광 및 여행 등의 관련산업 불황, 학생들의 멈춘 등교, 재택근무 등 개인, 기업, 국가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너무 힘든 1년이었다.통계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3월에 실시하려던 투입구조조사는 코로나19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중지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공무원 복무관리 지침이 하달됐고, 대면 및 현장방문 조사에서 비대면·비접촉 조사로 원칙이 변경됐다.그 후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지역별고용조사, 경제통계통합조사, 인구주택총조사 등 13종의 연간조사를 벌였다. 마지막으로 실시한 12월 농림어업총조사(12월 1일∼18일)도 마무리됐다.이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올해만큼 ‘안전’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다. 올해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통계청 포항사무소도 안전한 통계조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먼저 통계조사원 모집 시 온택트(Ontact) 면접을 도입한다. 온택트는 비대면을 일컫는 ‘언택트(Untact)’에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On)을 더한 개념으로 온라인으로 대면하는 방식이다. 온택트 면접은 2021년 고령자조사(3월 17일∼30일)를 대상으로 시험 운영할 예정이다. 이러한 경험 축적을 통해 효율적인 언택트 인프라 탐색 및 적용, 온라인 면접 프로세스 구축, 온택트 면접심사 매뉴얼 제작 및 공유를 통해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통계청에서 매달 실시하는 경상조사를 언택트 방식으로 운영한다. 조사 안내, 답례품 배부, 온라인 조사 등으로 개인과의 접촉점을 최소화해 전염병 확산 예방은 물론, 대상자의 편의를 도모한다.내년에도 경제총조사 등 40종의 크고 작은 연간조사와 경상조사가 예정돼 있다. 2021년에도 믿을 건, 성숙한 시민들뿐이다. 사실 올해에도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국가통계 생산에 많은 차질을 생겼을 것이다. 내년에도 코로나19에 대비해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자체 노력을 강구해 언택트 통계행정을 펼치겠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2020-12-23

그러던 어느 날, 빈 캐럴이!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추수는 끝났지만, 다시 푸름으로 조용히 분주한 12월 들판을 본다. 11월까지 콤바인이 그리는 그림 제목은 ‘비움’이었다. 기계는 들판의 바닥을 향해 나아갔다. 바닥에는 농부들의 발자국이 화석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유례없는 태풍에 인간사회는 초토화되었지만, 벼는 풍년이라는 선물을 농부에게 주었다. 그 이유를 서로 엉켜 하나 된 발자국을 통해 알 수 있었다.지금 사회는 진리가 죽은 사회다. 물론 그 원흉은 자신들의 헤게모니에 빠져 절대 진리조차 그들의 입맛대로 바꾸는 떼거리 정치인이다. 천지를 모르고 날뛰는 그들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식인은 변(便)을 피하듯 그들을 피하고 있다. 가면 갈수록 우리 사회에는 변을 치울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는 구린내만 진동한다.사람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은 후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적응이 빠른 감각 또한 후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썩는 냄새를 못 맡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때는 불처럼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때 냄새가 너무 강해서인지 사람들은 그보다 더 썩은 냄새는 맡지 못한다. 이는 후각의 진리인 ‘베버2013페흐너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다.비록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베버와 페흐너는 다음과 같이 후각의 특징을 말했다.“지독한 냄새를 맡고 난 후 99%의 냄새를 제거해도 1%의 냄새만 있어도 사람은 30% 정도 악취를 느낀다. 그만큼 독한 냄새를 맡게 되면 이후 조금의 냄새만 있어도 독하게 느낀다.”필자는 한때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과 함께 갑니다.”라는 말에 모든 감각이 열린 적이 있었다. 곧 신세계가 펼쳐지는 줄 알았다. 헌법에서조차 소외된 대안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회 약자들이 최소한 법이 정한 정당한 대우라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말이 독인지는 몰랐다. 무감각할수록 상처는 커진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상처가 너무 크다.그러던 어느 날, 필자에게 감각을 되찾아 준 것이 있다. 바로 자연이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필자는 눈을 뜨고도 못 보는 무지에 빠져 살았다. 절기는 소설과 대설은 물론 동지까지 지났는데, 들판은 다시 푸름으로 영롱하였다. 필자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내려 푸름이 자라고 있는 들판으로 갔다. 거기에는 마늘 싹이 푸른 길을 내고 있었다. 순간 마늘이 매운 이유를 알았다. 소한과 대한을 지내려면, 그들을 오롯이 들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마늘은 땅한테 독하게 배웠을 것이다. 독함과 매움, 삶이 같은 단어라는 것을 마늘은 푸르게 말해주었다.마늘과의 교감을 끝내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거는데, 캐럴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너무 슬프게 들렸다. 소리는 있지만 모든 것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어느 학생의 울부짖음이 메아리 되어 들렸다.“학교 가기 싫어요! 집에서 과제만 하라는 게, 이게 무슨 학교에요!”2020년 캐럴과 학교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둘 다 텅텅 비었다는 것이다. 빈 캐럴은 끄면 되지만, 빈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20-12-23

김종인 위원장의 사과 눈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종인 위원장은 이번 대국민 사과에서 잠시 울먹이는 장면을 보였다. 그는 지난달 광주를 찾아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광주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솔직히 사과했다. 사실 직전 대통령이 두 명이나 수형생활을 하는 것은 세계 어느 정치사에도 드문 일일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 역시 수감된 적이 있으나 오래지 않아 풀려났다. 김 위원장은 당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공개사과 했다. 그는 위원장직 사직이라는 배수진을 치면서 이를 강행했다.김 위원장의 공개 사과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했다. 전직 대통령 구속에 대한 사과 없이는 내년 보선도 당의 개혁도 어렵다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취임 초부터 사과할 뜻을 비쳤으나 당내 반발이 여의치 않아 이를 미룬 것이다. 내년 서울·부산 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당 이미지 개선 없이는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이다.그는 당 뿌리부터 개혁 없이는 당의 외연 확대도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는 당 인적쇄신의 걸림돌인 수구 보수 세력의 제거를 당 개혁의 당면과제로 인식한 듯하다.이에 대한 당내의 반응은 입장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58명의 초선의원과 당내 중도 개혁파는 대체로 그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 보수 강경세력들은 여전히 그의 행태를 비판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박근혜 구속에 항의해온 석방을 요구해온 조원진, 김진태, 민경욱 등 친박세력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야당 입당문제가 여의치 않는 홍준표는 ‘얻어터진 사람이 가해자에게 사과하니 배알도 없느냐.’고 김종인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침묵하고 있으며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이번 김종인의 사과는 당 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의 대국민 사과는 당 개혁엔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그의 과거 사과는 당 이미지를 중화시키고 당의 인적 쇄신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실망한 일부 보수층을 회귀시키고, 중도 층의 외연 확장에는 기여할 것이다. 지구당 개편 시 정치신인 확보등 인적 쇄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좌 클릭 정책이 보수정당의 정체성에 상처만 준다는 반론도 있다. 그 결과 내년 4월 보선과 대선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80대 고령 김종인의 정치는 피아의 전선이 분명한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무척 이해하기 힘든 행보이다. 그는 정치의 달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변신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비례 대표 한 번도 어려운 정치 풍토에서 5선 의원이라는 그의 처신은 누구도 모방하기 어렵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며 2명의 대통령을 당선시킨 후 불화가 있자 흔쾌히 결별했다. 그렇다고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 받지는 못한다. 그의 ‘경제민주화’정책은 개발 독재 시대용이며 유효기간은 끝나 버렸다. 그의 정치 행보를 노탐(老貪)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의 마지막 정치 행보를 주시할 뿐이다.

2020-12-23

다시 봄을 추억하다

배문경수필가1954년 오늘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환자에게 쌍둥이의 콩팥을 이식했다. 인간의 장기이식에 성공했다. 신장이식이라는 획기적인 일을 통해 인간의 수명은 더욱 연장되었다. 더 나아가 생명은 선순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오래전 만난 할머니는 흰 머리를 곱게 빗어 늘 비녀를 꽂았다. 참빗이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통과하는 사이에 몇 올은 버려지고 매끄러워진 머리는 정수리에서부터 쓸어내려 뒤로 쪽을 지었다. 여든을 넘긴 몸 어디에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단호함이 서렸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죽음으로 가면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호스피스병동이 없는 병원의 일 인실에서 통증을 어떻게 참으며 자신을 다독였을까.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암이 천천히 전이되거나 죽음으로 천천히 간다. 그래서 가족들은 환자 당사자에게 쉬쉬하며 돌아가실 때까지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들이 힘들까 봐 도리어 침묵한다. 그 마음속에는 묵직한 바위 하나가 들어 있었으리라.할머니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아들과 며느리, 딸들이 그들의 자식들을 데리고 자주 왔다. 먼 곳의 자식들은 주말에 들러 계절과일을 깎아 두거나 정성들인 음식을 갖고 왔다. 할머니는 큰소리로 말하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다.간혹 할머니가 창가를 서성이거나 밖을 바라볼 때 슬픔의 무늬가 어른거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담아둔 살아온 삶의 회한이 왜 없었을까. 살고 싶다고 발버둥을 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아무도 할머니께 그 죽음으로 가는 길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이 결국 마지막을 향해 열려있는 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했다. 찬찬히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단단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자신을 잘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은 늘 무거웠다.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직감할 때가 있다. 어린 날 추억 속을 더듬어보면 집에서 키우던 송아지가 암소가 되었다. 부모님께는 큰 재산이었고 나에게는 누렁소가 가족처럼 정다웠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소를 팔았다고 했다. 그 소리에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소를 실은 트럭이 덜컹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그 트럭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하던 소를 보았다. 소는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도살장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알고 있는 듯이.밤새 안녕이었다. 누웠던 침대 시트는 새로 깔아져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임을 알고 얼마나 절망했을까. 자식들이 힘들어할까 봐 혹은 타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면벽 승처럼 단단히 자신을 옭아맨 채 버텼을 노인을 생각하니 마음은 나사가 빠진 듯이 덜컹거렸다. 창밖에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할머니의 몸은 대학교에 기증되었다. 의대생들의 해부학 시간에 실습용으로 제공되리라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몸이 의학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속내를 밝혔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기증을 생각했을까. 그토록 대단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정신력의 산물은 아니었을까.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 사체 기증을 승낙한 할머니는 온 도시를 불붙이던 벚꽃이 채 다 떨어지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맺혔을 눈물 한 방울은 금강석처럼 반짝이지 않았을까. 고요의 시간 속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다.오늘 그 할머니를 다시 생각한 것은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에 의해 살아나고 있으리란 희망 때문이다. 겨울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봄엔 환하게 꽃이 필 것이고 냉골 같은 고통에서 벗어난 환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웃을 것이다. 선순환을 몸소 실천한 할머니가 봄꽃처럼 환하게 웃으실 모습을 떠올려본다.

2020-12-23

비춰 보기

아침마다 돈나무 화분을 들여다봅니다. 부자 되라고 집들이 선물로 지인이 놓고 간 것이지요. 덕담 달린 그 나무를 누군들 싫어할까만, 아침마다 돈나무를 관찰하는 건 부자 되라는 그 덕담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루살이 버섯 때문입니다.어느 날 선잠을 깨 화분에 물을 주려는데 신기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흙더미를 뚫고 작고 흰 버섯 한 송이가 우뚝 솟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독야청청 고매한 소나무처럼 이끼를 뚫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요. 분명 간밤에는 뵈지 않던 것이었지요. 시쳇말로 하루만에 ‘갑툭튀’한 생명의 신비라니요. 비록 작고 앙증맞은 식물이지만 하룻밤 새 성체로 자라 꽃피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혹 잘못 본 건가 싶어 녀석의 하루를 관찰했습니다. 이른 아침엔 종 모양으로 팽팽하더니 조금 있으니 우산모양으로 제 머리를 부풀렸습니다. 변화무쌍한 그 기개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눈치 채지 못할 사이에 이끼를 뚫고 나와 온 낮을 새침한 원맨쇼로 장식하는 녀석을 보니 호기심 대신 의구심이 싹트지 뭡니까. 독버섯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자신의 별을 위협하는 바오밥나무 어린순을 뽑아야 하는 어린왕자의 심정이 되어 녀석을 퇴치해버려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하지만 돈나무와 공생하는 독버섯 콘셉트도 괜찮아보였습니다. 좀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부자로 키워줄 돈나무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독버섯이란 이름 정도와 더불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한데 웬 일입니까. 볼일을 보고 저녁에 귀가하니 버섯이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낮에 분명히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버섯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뵈질 않던 녀석이, 원래 있던 반대쪽 이끼 위에서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습니다. 잡초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뽑아버렸나 싶어 물었더니 자신은 모르는 일이랍니다.그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새로이 피었다가 사라지는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피어난 버섯이 죽고 나면 그 옆에 새로운 놈이 내일 돋아나는 식이었습니다. 그제야 이 버섯의 생애가 궁금했습니다. 뒤늦게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녀석 생애의 비밀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살이 개체였습니다. 밤새 이끼 밑에서 뿌리를 만들고 조금씩 몸피를 밀어내, 아침이면 팽팽하게 부풀다가 한낮이 오기 전에 활짝 피어납니다. 해가 강렬해지면 서서히 지다가 저녁이면 저 먼 우주를 향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 버섯이었던 거지요. 물기 많은 화분에 잘 피었다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녀석처럼 하루살이 개체 버섯이 더러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분명 예쁜 이름도 있을 터인데 살뜰히 찾아 봤지만 끝내 버섯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망태말뚝버섯의 경우도 그렇다는데 제가 본 버섯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하얗고 소담스런 그 버섯이름을 몰라 제 맘대로 ‘하루살이 버섯’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한나절을 살다 저녁이 오기 전에 제 삶을 마감하니 ‘한나절살이’ 버섯이라고 해야 옳을까요.돈나무에 기생하는 하루살이 버섯. 아무 의미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러 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독버섯이든 이로운 버섯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룻길 사념들로 균형을 잃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로 그 작은 생명체가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생기는 허욕, 때때로 얽히는 오해, 시간 단위로 붙는 게으름 등등을 제때 살피라고 은유적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한나절이라는 짧은 생을 마디고 알차게 살다가는 녀석들. 그에 비하자면 영겁에 가까운 인생 주기이니 자신들보다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인간답게 살다 가라고 깨쳐주기 위해 제 곁에 온 것 같습니다. 즐기되 허비하지 말고, 열정을 가지되 헐레벌떡 쫓기지 말 것이며, 섞이되 아웅다웅 하지 말라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명랑한 감성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라고 녀석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삶의 기본 가치 이를 테면 성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 배려할 것 등등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 하루가 근심으로 얼룩지는 건 이런 선(善)의 기준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만 보면 오늘 하루도 만족함이 없이 보냈습니다. 늦잠으로 시간을 축냈고, 저녁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도 무너뜨렸습니다. 가족이나 타인에 대한 마음 씀도 부족했습니다. 후회와 번민은 큰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데서 생깁니다. 하루살이 버섯만큼 짧은 생의 주기에도 최선을 다하는데, 사람살이라는 맞춤한 생의 주기가 주어졌는데도 하루살이 버섯보다도 못한 시간을 꾸려서야 될는지. 하루살이 버섯이라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비춰보는 저녁입니다.

2020-12-23

AI동맹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업협의체 또는 산학연협의체인 AI동맹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AI기술 개발에 나서 화제다.최초의 AI동맹은 올해 1월 박정호 SKT CEO가 삼성전자 등에 AI분야 협력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SK텔레콤, 삼성전자, 카카오는 각사 CTO 또는 AI 전문임원이 참여하는‘AI RD 협의체’를 구성, 코로나19 조기극복과 공공이익을 위한 AI개발에 나섰다.우선 내년 상반기 ‘팬데믹 극복 AI’를 첫 합작품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팬데믹 극복 AI는 유동인구, 빅데이터, 공공재난 정보 등을 통해 현재 위치의 코로나 위험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스마트폰 등에 기록된 일정, 예약정보, 평시 이동경로 등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도를 분석해 이용자에게 안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울 을지로입구 주변 건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당시 주변 유동인구가 800명이었고, 이중 20%가 역삼동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분석해 을지로 입구의 위험도를 ‘상’으로, 역삼동을 ‘중’으로 분류한다. 그러면 을지로로 출퇴근하는 이용자에게는 자차 이용을 권유하고, 역삼동 영화관을 예약한 이용자에게는 거리두기를 권고하게 된다.또 다른 AI동맹은 KT가 주도하고 있는‘AI 원팀’이다. AI 원팀은 지난 2월 출범한 산·학·연 협의체로, 이 팀에는 현대중공업지주, KAIST, 한양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이어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합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데이터와 기술을 공유, KT의 감염병 확산방지 노하우와 LG유플러스의 통신 및 로밍 데이터를 함께 활용키로 했다.AI동맹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맘껏 뽐내주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