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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찌라시 전쟁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광고의 홍수시대다. 찰나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광고 전쟁이 치열하다. 광고경쟁을 뚫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입장에서는 광고는 핵심 전략이다. 유명 연예인에게 거액의 모델료를 주고 광고를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광고문구(일명 카피)를 만들까 골몰하게 된다.일부 광고물은 사람들에게 공해가 되는 것 같다. ‘찌라시’라 불리는 전단지가 광고에 활용된다. 특히 청소년에게 유해한 음란성 전단지를 대로상에서 버젓이 나눠주는 경우가 있다. 단속관청의 관심이 소홀해지면 길거리 한 모퉁이를 차지하곤 한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들이 나온 부모들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다.유흥가 주변의 음란 전단지를 전쟁 치르듯 일소한 여성경찰지구대장이 있어 신문지상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단지를 뿌리고 도주하는 사람을 추적해 제작 장소까지 단속을 해서 발길을 끊게 했다고 한다. 청소년 유해환경을 정화시켰을 뿐 아니라 매일 아침 청소 부담을 줄여 학부모와 지자체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던 일이다. 시민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준 참다운 경찰활동이다.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면 가던 길을 멈칫하게 된다. 호주머니에 구겨 넣거나 휴지통이나 길거리에 내팽겨진다. 외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전단지를 돌리던 청년들이 전단지가 구겨져 내던져지는 것을 보고 처음부터 구겨서 종이 뭉치로 나눠주자 사람들이 오히려 펼쳐보는 재기 넘치는 장면이었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로 일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외면을 참고 견디며 노상에서 하는 일이다. 나이가 제법 있는 아주머니나 심지어 연세를 드신 분들도 눈에 많이 띤다. 일정량을 배부해야 소액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한여름 뙤약볕이나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해내기 힘든 일이다.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어진 손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란 쉽지 않다. 길거리에서 무단으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이 법적으로 허용된 일도 아니다. 단호히 거절하고 받지 않는다면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전단지 홍보는 음란성 전단지 살포와 같은 법적, 정서적 불허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있다. 주로 소상공인, 동네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홍보다. 이들이 고용한 사람들의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전단지 내용을 보지 않거나 전단지에 실린 것들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힘겹게 전단지를 내미는 손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머니 깊숙이 찔러둔 손을 꺼내 한번쯤은 받아드는 것은 어떨까? 법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유익하게 집행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북쪽으로 전단지 날리는 일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법적으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생계형으로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뜨끔해할지 모르겠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법적 형평성’이라는 말을 워낙 좋아하니까!

2020-06-14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에 바란다

양만재포항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가 지난 12일 포항에서 현지 조사 및 회의를 개최했다. 조사위는 지난해말 제정된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9명의 위원으로 지난 4월 1일 공식 출범했다. 조사위원이자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사위에 몇 가지 건의를 하고 싶다.진상 조사 결과에 대한 중간보고 형태로 시민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적어도 분기별로 조사 진척사항을 포항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생각된다.또한 지진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관련자를 소환할 경우 참석하지 않아도 특별법에서의 처벌 제재조항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조사위의 소환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조사위원 9명은 모두 탁월한 역량을 소유한 전문가들이다. 특히 지진관련 분야 두 위원은 교수이자 전문 과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학술지에 포항지진에 연구 논문을 발표해 이번 진상 조사에 대한 기대가 크다.진상위원회는 감사 결과 보고서를 조사의 중요한 근거로 삼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읽어 보고 분석한 감사보고서는 상세히 잘 정리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도 조사한계가 있는 걸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그 한계는 몇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첫째, 지진발생을 아주 단순하게 진단해 입지선정과 수리압력 분야에서 문제가 없다고 평가부분이다. 둘째, 조사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 조사를 하지 않은 분야 산업부, 3·1 지진이후 경주 방폐장, 원전/ co2 저장고를 고려해서 위험조사의 하지 않은 산자부 책임은 거론하지 않았다. 셋째, 조사를 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 규명이 없다. 서울대 교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 건설기술연구원 등에 해당한다. 넷째는 책임감을 물었지만 처벌 제재 강도의 적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감사원 조사는 성격이 법적인 근거에 의한 업무 조사가 체계적이고 면밀한 조사를 하였지만, 포항지열발전소 참여자들이 주로 과학자 전문가라는 점이고 이들은 국내외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한 경력을 가진 참여자들이다. 감사원 감사는 그들이 발표 논문의 증거를 토대로 지열발전소 참여자들의 조사가 부족했다고 본다. 미국 에너지국의 7단계 프로토콜에서는 보험 가입이 적시되었지만 감사원은 이 부분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았다.따라서 진상위원회는 이상의 부족한 조사를 보강하고 그 책임을 다양한 차원, 즉 국가, 포항시, 과학공동체에서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특히 포항지열발전소에 참여한 산업부를 비롯한 컨소시엄의 참여자들을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규명해야 하지만, 그들 중에는 전문적인 과학자이자 교수로서의 참여한 점을 고려해 그들에게 법적인 책임은 물론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 책임을 조사해 조사위원회의 차별성을 확보해주시길 바란다. 그 차별성은 과학자와 교수의 개발프로젝트의 관행과 문화를 변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6-14

‘김여정’과 ‘진중권’

안재휘 논설위원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남 말 폭탄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일부 탈북인들이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며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대북 전단을 문제 삼더니, 이제는 아예 전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비방들을 연일 쏘아대고 있다. 13일에 날아온 김여정의 폭언 미사일은 실로 오싹한 내용을 담고 있다.김여정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다음번 대적(對敵)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북한의 도발과 생트집에 대해서 국방부는 물론 우리 정부 누구도 까칠하게 되받아치지 않는 진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김여정 한 마디에 마치 창고 안에 든 빈대 때려잡듯 온갖 부처가 다 나서서 타작 놀음을 하는 것도 일단 북한의 생떼를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치자.그런데 아주 엉뚱한 곳에서 이와 대비되는 야릇한 공방이 벌어졌다. 바로, 재야 평론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 마디에 발끈하여 집권세력이 앞다투어 모다깃매를 가하고 있는 행태다. 정의당 당원 출신으로서 ‘진보 논객’임을 자부하는 그는 지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집권당에 대해 예리한 비판의 메스를 가하고 있다.그는 얼마 전 국민의당 초청 강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겨냥해 “대통령에게 철학이 없다, 의전 대통령처럼 느껴진다”는 인상비평성 발언을 내놨다. 그러자 윤영찬, 하승창, 최우규 등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그 발언을 융단폭격했다.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기형도 시인의 시 ‘빈 꽃밭에서’를 동원해 비난 대열에 동참했고, 진중권은 곧바로 ‘빈 똥밭’이라는 패러디 시로 응수했다. 진중권은 “품격과 예의를 갖추라”는 신동근 민주당 의원의 공격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향해 ‘쥐박이’·‘귀태’라고 한 건 민주당”이라며 반격했다.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아직, 진중권의 비평 한 마디에 떼거리로 달려들어 몰매를 퍼붓는 충신(?)들이 핵 위협을 일삼는 북한의 막강한 실력자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향해 퍼붓는 악담에 일언반구라도 반박했다는 소식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말이 안 되는 이중잣대다.더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우상화가 빚어낼 반민주적 통치행태다. 우리의 정치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분산되고, 소수의견도 알뜰히 존중되는 다양성 충만한 선진 민주정치로 발전돼가야 한다. 김여정의 폭언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건전한 표현의 자유는 충성경쟁을 벌이면서 무참히 깔아뭉개는 이중성은 타파돼야 한다. 진영논리가 빚어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도그마 앞에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휘청거리고 있다.

2020-06-14

호모스펙타쿠스

그 시대의 취업난 풍경을 잘 반영한 것 중 하나가 취업 준비생이 만든 신조어다. 그 말 속에는 취업을 제때 못한 젊은이의 애절한 심정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취업 세태도 반영하고 있다.촌철살인이 따로 없다. 취준생의 표현에는 구구절절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녹아 있다.코로나 사태가 젊은이의 취업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2020년 현재 10%를 넘었다. 2000년대 들면서 청년취업난은 거의 만성화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5월 중 우리나라 실업률은 20년 이래 최고다. 실업자 수도 127만 명에 달해 역대 최고다. 이대로 가면 우리경제가 제대로 돌아갈지 걱정이다.젊은이가 부모세대에 얹혀사는 것을 두고 캥거루족이라 한다. 비슷한 빨대족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30세가 넘어서도 부모한테 의존해 사는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금수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취업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젊은이다. 반대로 흙수저가 있다.취직이 안 돼 연애와 결혼, 출산을 아예 포기한 세대를 N포세대라 한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도 있다. 인구론은 인문대 출신 졸업생의 90%는 논다는 뜻이다.취직이 어렵자 대한민국을 지옥과 비교해 헬조선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 때 취업 3종 세트가 유행했다. 학벌과 학점, 토익점수만 잘 받으면 취업이 되던 시절 나온 유행어다. 그러나 이것도 지금은 자격증, 어학연수 등이 추가돼 취업 9종 세트로 바뀌었다.호모사피엔스에 스펙을 붙여 호모스펙타쿠스라는 말도 등장했다. 스펙이 중시되는 취업 현실을 표현한 말이다. 지금의 실업률을 놓고 보면 취업을 위한 정부 그간 대책은 매번 헛발질했다. 젊은이를 실업의 공포에서 해방시킬 묘안은 없을까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14

두 마리 토끼 잡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출범하면서 진로선택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때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 정국을 이끌었고, 1981년부터 2016년까지 여당과 야당을 넘나들며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좌클릭에 대한 우려가 당내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에는 미래통합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와 김 비대위원장을 ‘용병’ ‘히딩크’에 비유하며 비판했다.원 지사는 이날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 강연자로 나와 “앞으로는 용병이나 히딩크같은 외국 감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에 의한 승리를 해야 한다”라며 통합당의 혁신 작업을 추진중인 김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원 지사는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던 김 위원장을 겨냥한듯 “보수의 이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유전자”라며 “보수의 선택은 지난 100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우리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은 보수 정당이고, 보수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해 온 세력이니, 외부 세력이 아니라 보수 자체의 힘으로 정권을 되찾아오자는 얘기다.좌클릭 정책으로 중도층 공략에 나섰던 김 위원장은 급기야 당내 중진의원들과 만나 “보수의 가치를 부정한 게 아니다”라며 다독여야 했다.지난 10일 국회서 열린 비대위원장·중진의원 회의에는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 정진석, 서병수(이상 5선), 권영세, 박진, 이명수, 홍문표(이상 4선)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중진의원들은 대체로 보수노선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좌클릭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적극 표명했다. 중진 의원들은 “‘보수’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근본 가치를 유지하면서 진취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박 진) “확실한 당의 좌표가 설정되면 조금 서운하고 부족해도 ‘가자’하는 합창이 나올 수 있는데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우려스럽다” (홍문표)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제, 전일보육제 등 이슈를 선점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이슈 선점에 따른 당의 정책 대안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이명수) 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아이러니한 것은 통합당 중진들이 김 비대위원장의 ‘기본소득’ 카드를 선뜻 받아들지 못하는 사이에 더불어민주당 대권잠룡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고 나서는 바람에 범여권내 ‘기본소득제 도입’대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구도가 형성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김 비대위원장 체제 출범이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했지만 4주째 하락한 반면 미래통합당 지지율은 총선 이후 최고치인 28.7%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이는 김 비대위원장의 ‘중도 공략 전략’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추후 계속될 미래통합당의 보수와 중도, ‘두 마리 토끼잡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다.

2020-06-11

공중보건과 에너지 절약

매년 8월 22일은 에너지의 날이다. 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미래에 대비한 에너지 절약을 홍보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2003년 8월 22일 국내 전력소비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날을 기념해 만들었다. 이날은 ‘전국 동시5분 소등’ 행사가 벌어진다. 전국의 지자체가 중심이 돼 저녁 9시에 5분간 실내 전등을 끄는 행사다. 에너지 절약을 국민이 직접 실천하고 또 에너지의 소중함도 체험케 한다.에너지 절약은 지구온난화 속도를 감소시키고 기후 변화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에너지 절약운동은 아무리 많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범국민적 캠페인이다.에너지 당국은 여름철에 과다 사용되는 전력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 설정온도 2℃ 올리기와 같은 각종 절약 캠페인을 매년 벌인다.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의 플러그 뽑기나 엘리베이터 사용 자제, 에너지 효율 등급품 사용 등이 그런 운동의 일환이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문 열고 냉방영업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단속을 벌여 왔다.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서 실내 냉방과 코로나 감염증 발생과의 상관관계가 관심을 받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순환 없이 지속적으로 냉방을 한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실내공기 환원차원에서 문을 열어놓는다면 에너지 낭비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산자부는 매년 단속하던 문 열고 냉방영업에 대해 단속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밀폐된 작은 공간에서 문 닫고 영업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다.공중보건을 생각하면 문 열고 냉방을 허용해야겠지만 에너지절약 차원에서 본다면 낭비 규모가 너무 커 이래저래 고민이라는 소식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11

문제는 ‘나’의 바깥에도 있다

사람은 역시 여러 유형의 기질을 타고 나는 것 같다. 프로이트가 말하기를, 장미꽃 만발한 화원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저 꽃도 곧 시들겠구나 하고 우울해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낙천가와 우울증 성향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이겠지만, 같은 현상을 대하고도 전혀 다른 해석에 기우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많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부류의 사람들은 원인을 여러가지로 따져 이런 원인, 저런 원인, 하고 양적인 비율을 할당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 가운데 오로지 하나의 근본적인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어 그것과 싸우고자 한다.생각해 보면 나는 2,30대 어디쯤까지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얽힌 실타래 풀리듯 저절로 풀릴 것 같은 마법적인 사고에 빠져 있었다고 할까. 그후에는 그런 사고를 버리려 노력했다. 질 대신에 양을, 본질 대신에 문제를 이루는 원인 그룹을 찾아내서 비중이 높은 것부터 낮은 것까지 중요성을 그에 맞게 부여하려 했다.그럼으로써 사실 나는 후자의 사고법에 익숙했을 때 친했던 사람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종교적 근본주의 같은 것으로는 현실 문제에 무력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삶을 결코 많이 살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도 나는 한때는 문제를 주로 내 안에서 찾는 이른바 ‘반성적’ 체질을 갖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남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해 볼 수 없었고 내 자신 아주 약점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사람들, 사태를 호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야말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문제의 원인을 나와 내 바깥에서 고루 찾고 그 원인자의 중요도만큼 의미를 부여해서 함께 해결해 나가려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전히 나는 본질주의적 사고법에 기울어 있는 불균형의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그런 불완전, 결핍, 편향을 가진 존재이고, 그래서 조화니 원만이니 원융이니를 이상으로 삼는다. 문제는 나만에 있지 않고 내가 없어져도 문제는 남는다. 또 나에게만 이유가 있지 않기에 내 외부의 문제들과 싸우다 보면 내 삶이 좀더 나아질 수도 있다.며칠 전 파주 자택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마포 쉼터 소장님의 소식이 들렸다. 왜 ‘스스로’였나? 어디까지 진실일까? 생각하면서 짓눌리기 쉬운 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서 싸워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이 사회가 그런 힘 필요한 사람들을 더 잘 지켜줄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늘 문제에 직면해 있고 어떻게든 견뎌가며 나아가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6-11

대북 전단이 통일의 열쇠다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넘도록 통일을 노래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이 수차례 회담을 하고, 정상들이 만나고, 공동선언문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김일성일족의 세습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기극에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 햇빛정책이니 남북교류니 하는 것도 세습독재를 연장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돈과 시간을 대준 것이 전부였다.통일이 우리 민족의 숙원인 까닭은 천만 이산가족의 해원이 그 첫째요, 압제와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의 해방이 그 둘째고, 민족이 하나로 뭉쳐 더 부강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 그 셋째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절실한 것이 통일에 대한 염원일진대 도대체 무엇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어느 정권이 통일을 원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통일에는 딱 두 가지 방법밖엔 없다. 남북이 합의를 하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란 말은 같지만 그 내용은 남북이 정반대다. 북쪽은 어디까지나 적화통일이고 남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이다. 그러니 합의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고, 남은 하나는 흡수통일인데 국력으로 보나 뭐로 보나 남한이 북한에 흡수된다는 건 가당한 일이 아니다. 그런즉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방법밖엔 없는데, 그것은 곧 북한의 세습체제의 종식을 전제하는 것이다.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치고 북한의 세습체제가 존속하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을 터인데, 지금 한국 정부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남북이 이념적 노선을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통일을 위해서 분단의 간극을 좁히는 길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일단은 남한이 사회주의 체제로 가야 한다는 속셈인데,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남한의 경제가 망해서 북한과 비슷한 수준이 되게 하려는 것이나 다를 게 없는 수작이다.며칠 전 북한의 김여정이 대북전단을 날린 탈북인 단체와 남한 정부에 대고 온갖 쌍욕과 공갈 협박을 해댔다. 그렇게 발악을 하는 것은 대북전단이 그만큼 김정은 세습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얘기다. 외부에서 무력으로 북쪽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거라면 민중들의 봉기나 김정은의 조기사망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밖에서는 미국과 유엔의 제재로 계속해서 숨통을 조이고, 전단 살포 등으로 내부의 봉기를 유도하는 줄탁동기가 가장 유력한 통일의 방안임에 틀림이 없다. 꾸준하고 대대적인 전단 살포야 말로 김정은의 명줄을 단축하는 가장 효과적인 통일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북한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아는 탈북인들이 온갖 위협과 박해에도 목숨을 내놓고 북녘을 향해 전단지를 날리는 까닭이다.김여정의 공갈협박에 안절부절못하는 이 정부의 꼴이 참으로 가관이다. 세습독재의 주술에 걸려있는 북한 주민을 깨우는 대북전단을 백해무익이라고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들이야말로 이념의 망상에 사로잡혀 통일에 역행하고 민족에 반역하는 백해무익한 자들이다. 머지않아 역사의 심판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2020-06-11

포스텍, 세계 30위권 대학으로 가야 한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2010년 9월 필자는 프랑스 낭트에서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있었다.저녁때 호텔방에서 이메일을 열어보니 영국의 유명한 평가기관 THE라는 곳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그 이메일을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시간을 보았다. 한국시간 새벽 4시. 그래도 좋다. 당시 백성기 총장께 전화를 했다. 한국은 취침 시간이었다. 한국 최초로 세계 30위 내에 한국대학이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압도적으로 카이스트, 서울대를 제치고 1등으로 랭크되었다.1994년부터 시작된 중앙일보 랭킹에서 포스텍이 국내 1위를 종종 차지하곤 했지만 국제랭킹에서 국내 1위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전화를 잡은 두 사람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고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포스텍 세계 28위”기사가 도배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28위의 자존심은 여전히 포스텍의 그리고 한국대학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다.이번주에 THE와 함께 유명한 QS 랭킹 기관이 월드 랭킹을 발표하였다. 포스텍은 100위안에 들긴 했지만(77위)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에 이어 4위에 랭크되었다. THE 월드랭킹에서는 작년 146위로 서울대, 카이스트 성균관대에 이어 역시 4위로 랭크되었다. 현재 포스텍은 주요 6개 대학(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연대, 고대, 성균관대) 중에서 학계평판도(AR)가 최하위이다. QS 기준으로 서울대의 98점, 카이스트 87점에 비하여 포스텍은 43점이다. 만일 포스텍의 AR이 카이스트 만큼만 되어도 바로 국내 1위로 랭크 되는 상황이다.연구력은 국내 1위인 포스텍이 대학 랭킹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건 AR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AR은 대학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대학의 서열은 연구력의 서열이 아니며 선호도의 서열이기 때문이다.포스텍은 AR을 카이스트 만큼 끌어올려 대학평가를 논문피인용 경쟁으로 끌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포스텍은 AR 향상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력은 방법론이 맞아야 한다.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로서 가치를 가지려면 랭킹도 리더가 되어야 한다. 랭킹이 낮은 상태에서 외치는 구호는 공허한 구호일뿐이다.세계 30위권에 들어가고 국내 1위로 복귀하는 것은 포스텍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포스텍의 위상은 더이상 떨어져서는 안 된다. 대학의 위상이 높아야 좋은 학생,·대학원생, 좋은 교수를 지속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이 지역 그리고 한국의 자랑과 자부심인 포스텍은 이제 물러날 수 없는 벼랑에 와있다. 배수진을 치고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세계대학 랭킹을 회복해야 한다. 불과 같은 욕망을 불살라야 한다. 그건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포스텍이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다.

2020-06-11

변하는 세상이 차별을 극복해야

장규열 한동대 교수세상이 빠르게 변해간다. 코로나19와 겹치면서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일마저 경험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사회활동. 재택근무와 온라인교육. 변화의 가닥과 범위가 워낙 다양하고 글로벌하여,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접촉을 최소로 하고 가능한 한 만나지 않으면서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감염위험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하여 변화에 적응하면서, 한편으로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을 발견하고 있다. 차별.미국이 흔들린다. 백인경찰의 인종차별적 행태에 흑인남성이 스러져간 일을 기화로 온 미국이 다시 한번 몸살을 앓는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지만, 집요하리만큼 사라지지 않는 미국의 치부로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인종차별이 그들의 약점이라면 혹 우리에겐 약점이 없을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어두운 구석이 우리에게도 있다. 우선 ‘다문화현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 디지털 초연결사회로 진입하고 글로벌환경이 펼쳐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차피 섞여야 한다.닮은 사람들만 가까이 하겠다는 고집은 내려놓아야 한다. 중국화교 공동체가 흥왕하지 못했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는 소리도 있다. 예멘 난민들이 제주를 찾았을 적에도 대단히 부정적이지 않았던가. 초등학교에는 이미 다문화자녀들이 우리 국민으로 자라나고 있다. 좁다락한 나라에서 우리만큼 지방색을 드러내며 살기도 힘들지 않을까. 다른 것은 그냥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오해부터 씻어야 한다.다른 것을 틀리고 잘못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수정해야 한다. 차별하고 배격하기 보다 궁금하고 신기해야 한다. 다른 이들로부터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무엇을 배울 것인지 또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그들과 무엇을 나눌 것인지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 공감과 배려를 발휘해야 한다. 겉모양이 바뀌어 가듯이 속에 든 생각에도 변화를 불러와야 한다. 상생과 화합은 구호로만 성취되지 않는다. 호기심과 관심으로 가까이 당겨야 한다.사회관계망(Social Network Services)은 더욱 촘촘해 질 터이다. 지구상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할 정도로 변화해 간다. 다른 사람들을 낯설게 여기고 편가르며 등돌리는 습관은 이제 벗어야 한다.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을 반기며 포용하는 습관부터 들여야 한다. 미국이 진정으로 앞선 나라가 될 양이면 사람을 피부색으로 다르게 보는 구태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한국이 참으로 국격을 높여가려면 여러 모양의 차별과 혐오부터 멀리해야 한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안타깝도록 그대로인 차별의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풍성하게 다양한 모습들이 문턱없이 어울리며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일어나야 한다.인류가 만나는 변화가 단절과 반목을 극복하기 위해서,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 코로나19와 함께, 차별과 혐오도 가라.

2020-06-10

QR코드

QR코드는 요약 바코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격자무늬의 2차원 코드를 말한다.사각형의 가로세로 격자무늬에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2차원(매트릭스) 형식의 코드로, ‘QR’이란 ‘Quick Response’의 머리글자다. 1994년 일본 덴소웨이브사(社)가 개발했으며, 덴소웨이브사가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QR코드는 숫자 최대 7천89자, 문자(ASCII) 최대 4천296자, 이진(8비트) 최대 2천953바이트, 한자 최대 1천817자를 저장할 수 있으며, 일반 바코드보다 인식속도와 인식률, 복원력이 뛰어나다.바코드가 주로 계산이나 재고관리, 상품확인 등을 위해 사용된다면 QR코드는 마케팅이나 홍보, PR 수단으로 많이 사용된다.QR코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스마트폰 사용자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QR코드 스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은 후, 스마트폰으로 광고판·홍보지·포스터·잡지·인터넷 등에 게재된 QR코드를 스캔하기만 하면 각종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나 영화 포스터의 QR코드를 스캔하면 홍보동영상 및 사진 정보, 할인권 및 입장권 정보, 영화관 또는 경기장 정보 등을 받을 수 있는 식이다.코로나19사태를 맞아 접촉자 추적 및 역학조사 등에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는 데, QR코드의 사용은 필연적 귀결이다.노래연습장과 클럽, 헌팅포차 등 감염병 전파 위험이 높은 고위험시설 출입자는 반드시 개인신상 정보가 담긴 QR코드를 찍어야 한다니 QR코드에 대한 활용도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10

인문학적 마인드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얼마전 필자의 모교인 동국대학교의 이사장을 역임하신 큰스님을 뵈었다.모교 사랑이 남다르신 분이다.더구나 종립 학교인 모교의 이사장을 역임하시었으니 오죽하실까만은 만나자마자 우리 동국대학이 배출한 만해 스님과 무애 양주동, 미당 서정주를 거론 하시더니 우리 대학은 인문학의 보고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학 중심 대학임을 갈파하시는 것이었다.요즘 세상이 하수상 하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게 된다.‘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가, 온 곳도 모르니 갈 곳인들 알을 손가’살아가면 느끼는 바이지만, 세상이 살기 편리해지고 문명이 천지개벽을 하였다고 하지만, 인간의 생존은 더욱 각박해지고 험난 일변도로 변해 가는 듯하다.이러한 때에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보며 삶의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얼마전 대학에 적을 둔 젊은 친구들에게 인문학에 대하여 물었다.여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인문학이 단순히 유적을 탐방하거나 역사적 인물의 삶 속에 내재된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것만은 아니다.어떤 이는 공자, 맹자의 논어 대학 등 고전읽기가 인문학이라고 목청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인문학이 경험적인 세계에서의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이었다면 르네상스 이후의 인문학은 분석적, 비판적 방법으로 인간의 여러 조건들을 연구하는 좀 더 사변적인 학문이다.그러니 ‘인문학이 돈이 되는 학문은 아니다’라는 말은 결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흐름과 그 근원만은 알 수가 있다.현대적 의미에서 철학, 미학, 문학, 역사 등 대학의 교양 과목이 인문학을 의미하고 고대어, 현대어 등의 언어와 언어학, 문학, 역사, 철학, 종교가 포함되며 흔히 예능으로 분류하는 음악, 연극, 시각예술, 공연예술, 등도 포함되기도 하고 사회과학 분야인 인류학, 지역학, 커뮤니케이션학, 문화연구, 법학 등도 광의적 의미에서의 인문학이다.인문학 내용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디지털 기기와 방법을 사용하거나 고전 문헌을 데이터화한다든가 하는 방법적 과정을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어찌되었든 인문학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제반 문제를 성찰하는 학문이며 인간이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이며 삶과 죽음, 대립과 갈등이 있고 사랑과 증오가 인간세계에 공존한다는 사실이다.또한 이성과 야만의 틈에서 비합리성과 절망, 고독의 문제를 직시하고 분석하여 성찰하는 것이 인문학이다.그러므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는 길은 인간에 대한 모든 관심 혹은 배려심을 지니는 것이며 넘쳐 나는 자본의 물결과 전염병의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할 인문학적 마인드를 지닌 대학인 양성이 가장 시급한 시점이라 하겠다.

2020-06-10

슈가 하이

병원 가는 날입니다. 한 달에 한 번, 흡입기와 천식 비염약 등을 처방 받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호흡기내과를 찾는 게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올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랍니다. 여름이 채 오지도 않았는데 36도가 넘는데다 습도마저 높습니다. 차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납니다. 비상용 인삼 캔디 한 알을 머금습니다. 사실 출발할 땐 더운 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후식으로 달달한 케이크까지 먹은 터라 도리어 상기된 기분이었습니다.병원 마당 천막, 1차로 체온을 잽니다. 무사통과입니다. 호흡기내과가 목적지라고 했더니, 안내하는 분이 병원 모퉁이를 가리킵니다. 그 새 출입구가 바뀌었습니다. 공용 출입구에서 호흡기 환자 전용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2층에 있던 호흡기내과는 입구와 가까운 1층 구석자리로 옮겨졌습니다. 모두를 위한 세심한 배려이자 온당한 조치입니다. 호흡기 질환이야말로 코로나 앞에서 주의가 필요한 기저질환이니까요. 취약한 면역력으로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건장한 이들에 비해 몇 배나 위험할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묘한 긴박감과 미세한 파장이 일어납니다.진료실 입구, 2차로 체온을 잽니다. 미열이 있나 봅니다. 오늘 같은 날씨엔 다들 체온이 조금 높으니 괜찮다며 간호사는 진료 대기실을 안내합니다. 대기실 앞 접수대, 3차로 귀의 체온을 잽니다. 미심쩍은지 왼쪽 귀로 바꿔 잽니다. 37. 7도. 양쪽 귀 체온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규정 체온보다 높아 진료가 불가하답니다. 비대면으로 처방전은 받을 수 있답니다. 그토록 원했던 비대면 진료가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성사 되게 생겼습니다.다시 진료실 입구, 밀려나 처방전을 기다리는 동안 4차로 체온을 잽니다. 여전히 열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담당 간호사가 의자를 권합니다. 상냥함과 친절함을 장착했지만 그 맘이 편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감 있는 환자를 대면할 텐데 그 스트레스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앉는 시늉만 하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마음 씀이 진심으로 느껴져 더 미안해집니다. 친절 카드 작성으로 화답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걸로 보아 저 스스로 당황한 게 분명합니다. 멀쩡한데 체온이 높다니 어인 일일까, 그 생각에만 갇혀 있습니다.처방전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자주 들어도 금세 까먹는 각종 꽃들이 병원 뜰을 장식합니다. 꽃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대궁을 꼿꼿이 말아 올리지는 못합니다. 등나무 벤치에 맞춤한 그늘이 집니다. 가서 앉습니다. 왜 열이 나지? 하기야 밖의 열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 지경의 날씨이니 열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높은 온도와 습도, 에어컨을 켠 차 안과 바깥의 온도 차, 달라진 병원 환경, 숨 돌릴 틈도 없이 재고 또 잰 체온, 가장 높은 체온의 시간은 늦은 오후라는 점 등이 갑작스레 열이 돋은 원인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부대껴 열을 방출하지 못한 제 몸이 일시적으로 과부하를 일으킨 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그 와중에 강력하게 덧붙이고 싶은 요인이 있으니, 단 맛 중독이 그것입니다. 후식으로 먹은 케이크와 차에서 내릴 때 긴급으로 입가심한 인삼 캔디 말입니다. 저는 단 것을 유달리 좋아합니다. ‘달콤함’을 먹으면 가라앉았던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슈가 하이(sugar high)라는 말이 제게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설탕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피로가 풀리고 흥분감 같은 걸 느끼는 현상 말입니다. 그 효과가 소멸되면 안 먹은 만 못하는데도 자꾸 찾게 됩니다. 완전한 공복에는 그런 욕구가 덜한데, 식후엔 뭔가 허전함이 밀려오면서 단 것이 뇌리에 맴돕니다. 욕구가 채워지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면서 활기가 돕니다. 높아진 오늘의 열은 여러 요인 못지않게 슈가 하이 현상도 한몫했다는 생각이 듭니다.김살로메소설가단맛은 생래적입니다. 기억의 원형처럼 자리 잡은 엄마 젖의 달콤함이 그 매혹적 중독의 출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탕맛에 홀릭 된 제 흥분지수가 열감에 기름 역할을 한 건 아닐까요. 몸은 마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설탕에 기댄 제 심리 상태가 피톨도 달뜨게 했나 봅니다. 여러 약점이 드러남에도 쉽사리 단맛의 쾌감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커피 없이 못 산 ‘커피 칸타타’의 여주인공처럼 노래해 봅니다. 다 없어도 괜찮아. 하지만 설탕만은 못 끊어. 열이 돋는대도 순간의 기쁨이 보장되는 설탕만은 못 끊어.사랑에 빠지는 게 죄가 아니듯, 적당한(!) 달콤함에 빠지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각설하고 처방약을 받아들고 귀가한 뒤 체온부터 쟀습니다. 정상입니다. 멀쩡하게 돌아온 몸의 온도, 혹시라도 당 떨어져 그런가 싶어 제 눈은 벌써 남은 케이크가 든 냉장고를 더듬습니다.

2020-06-10

화초를 들이며

윤순옥수필가봄맞이 행사를 하는 동네 꽃집에서 화초를 골라보았다. 욕심을 내다보니 주인이 끼워준 꽃까지 합해 열 개가 넘었다. 발렌타인자스민, 스투키, 산세베리아, 크로톤 등 이름표 하나씩을 달고 꽃집 직원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설레고 반가웠다.새 식구를 들이면서 베란다 터줏대감들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봄이 다 가도록 연분홍 꽃을 피우던 삼단 철쭉, 노르스름한 줄이 예뻐 자꾸 눈이 가던 관음죽, 한결같은 모습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군자란도 예외가 아니었다.새로 들인 화초에 정성을 쏟느라 하루가 바빴다. 아침저녁으로 물때를 살피고 햇빛을 쫓아 베란다에 들락거렸다. 그 때문인지 홍콩야자는 잎이 풍성해지고, 꽃기린, 제라늄도 꽃망울을 터뜨려 내 애정에 보답했다. 새 식물에 전념하는 사이 구석으로 밀려난 화초에 차츰 물주는 일도 잊었다. 햇빛 한 줌이 귀해도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그렇게 봄이 무르익었다. 주인의 홀대에도 오래 된 화초들은 제 빛을 내고 있었다. 피울 꽃은 피우고 키울 잎은 키웠다. 아차! 싶었다. 새 화초를 보는 즐거움에 빠져 그것들에 소홀했던 사실을 깨달았다.수도꼭지를 틀었다.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호스가 꿀렁거렸고 줄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막힌 것이 터지듯 시원했다. 그동안의 일을 만회라도 하듯 옛 화초에 오래 물을 주었다. 물줄기에 군자란 잎이 흔들리자 잎과 잎 사이에 희끗한 것이 드러났다. 꽃대였다. 꽃망울을 만들기 시작한 어린 꽃대가 숨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주황색 탐스러운 봄을 안겨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꽃망울을 보니 더욱 미안하고 감격스러웠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슬렀다. 호들갑스러운 내 모습과 달리 언제나 조용히 꽃대를 피어 올리는 군자란은 과연 이름값을 하고도 남았다.화분 배치를 새로이 했다. 화분 끄는 소리, 낑낑대며 내 뱉는 거친 내 숨소리까지 겹쳐 시끄러웠다. 식생이 비슷한 종류별로 자리이동이 끝나자 비로소 모두 제자리에 든 듯하였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였다.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마음 따로 몸 따로 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진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전기 포트에 적당량 물을 붓고 끓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사람의 일이라고 다를까. 오래 알던 사람을 군자란 밀어내듯 했더라면, 상황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식물을 두고 마음 쓰는 나에게 또 한마디 던질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균형이 깨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되돌릴 기회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겠는가. 생각에 잠기는 동안 전기 포트에서 신호음이 울렸다.원영 스님의 책 ‘삶이 지금 어딜 가느냐고 불러 세웠다’를 손에서 놓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즈음 나는 바쁜 일상에 쫓겨 방향도 목적지도 잊은 채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만난 책 한 권이 멈추면 안 될 것 같던 나를 멈추게 했다. 한두 번 보고 들은 말이 아니었을 텐데 ‘삶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멈칫했다.책 읽기를 멈추고 나를 보았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내 모습과 마주했다. 욕심에서 비롯된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래 전부터 해왔던 과외 일을 줄이는 것이었다. 학생들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고 새 일을 하면서도 붙들고 살았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삶의 지혜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지혜를 얻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새로운 것에 눈이 팔려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진 않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다시 가져봐야겠다.어느새 봄도 지나고 초여름 햇살이 베란다에 가득 내린다.

2020-06-10

재난 지원금으로 전국 학교에 코로나19 검사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적막강산이던 학교가 드디어 활기를 찾았다. 5월까지만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교사들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분명 메아리가 되어 돌아와야 할 학생들의 소리는 모니터 안에서만 맴돌았다. 교실이 힘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학교에 아이들이 돌아왔다.물론 지금의 등교 수업을 교사라고 다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EBS 수업을 자신의 수업인 것처럼 제공한 교사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마스크 쓰고 수업하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알기나 아나.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온라인에서 EBS 수업 틀어주고 학생보고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차마 학교 수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진 지난 몇 달 동안 학교는 교육수요자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필자가 만난 많은 학생의 이야기이다. “시험 기간에 학교에 가서 시험만 치면 되잖아요. 지금도 대부분 EBS 듣고 있어요. 학교에서 도와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학교에 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이들 학생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말해주는 언론 보도 자료가 있다.“원격수업 방식은 기대만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가 교사 22만4천여 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 쌍방향으로 원격수업을 한 교사는 5%뿐입니다. 독후감 등 숙제를 내주는 ‘과제 수행형’이 10%, EBS 강의 등을 보는 ‘콘텐츠 활용형’이 40%였습니다. 나머지 43%는 혼합형인데 과제형과 콘텐츠형을 섞은 교사가 대다수였습니다. (….)”교육부 자료가 말해주듯 지금까지 학교에서 해 온 온라인 수업은 수업이라고 할 수 없다. 교육부 어느 관계자가 필자에게 말한 것처럼 학습 도움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 정부와 관련 있는 교육평론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당 언론은 기사 제목을 “한국 온라인 수업 짱”이라고 달았다. 웃기지도 않는다.“다른 나라 대비 굉장히 잘 됐습니다. 지난 3월 (….) 영국 고등학교를 둘러봤습니다. 쌍방향 실시간 수업을 잘하는 곳도 있었지만, 우리나라만큼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어요.”그에게 묻고 싶다, EBS 틀어주는 것이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인지?산자연중학교는 지난주 월요일에 전국에 주소를 둔 전교생이 모두 등교했다. 처음에는 우려도 컸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등교 다음 날 교육청의 도움으로 전교생과 강사 선생님을 포함하여 전 교직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검사자 전원이 음성이 나왔다. 검사 전후 학교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검사 전에는 서로를 못 믿었다. 불신은 교육 활동을 위축시켰다. 하지만 검사 후 학교 교육 활동은 정상을 되찾았다.전 국민 재난 지원금 등 천문학적인 국가 돈이 풀리고 있다. 물론 모두 빚이다. 이왕 빚내서 하는 빚잔치라면 가장 시급한 전 국민 코로나 검사부터 하면 어떨까! 전 국민이 어려우면 전국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부터라도 하면 지금의 이 막연한 공포가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격주 등교 같은 해괴망측한 일은 안 해도 된다.

2020-06-10

87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네

김규종 경북대 교수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사건이 있다. 그들 덕에 인생은 풍성하고 화사해진다. 나이 들어서 얘깃거리가 부족한 사람은 사건과 관계가 궁색한 때문이다. 나와 무관하고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과 관계와 사건을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대상에 대한 지적(知的) 호기심이 태부족한 때문일 것이다. 지구별이 오직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강박증 환자 역시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1987년 6월 서울은 뜨거웠다. 6월에 예정된 평화 대행진은 시민들을 들뜨게 하였다. 피 끓는 열혈 청춘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6월 10일, 18일 그리고 26일의 세 번에 걸친 저항운동을 뭉뚱그려 ‘6·10민주항쟁’이라 부른다. 대학원 박사과정생이면서 강사이자 러시아문화연구소 간사에 민족극연구회 회원이었던 나도 1987년 6월의 소용돌이 속으로 합류한다. 80년 5월을 되새기면서!6월 10일 저녁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난다. 그러다 불쑥 명동성당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가볼까, 한 마디로 그 자리를 뜬다. 명동성당은 넓지 않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생들과 전투경찰로 양분되어 있었다. 평온한 분위기에서도 감촉되는 팽팽한 긴장감이 한밤중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상황. 그 순간, 날카롭고 새된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전투준비!”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지?! 들어가, 아니면 후퇴?!” 친구와 나는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 물러선다. 그는 출근해서 아이들 건사해야 할 가장이었고, 나는 시간강사이자 간사로서 직분이 있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우리가 물러선 이유는. 28∼9세의 호기로운 나이에도 우리는 쫓기듯 자리를 물러 나왔다. 살면서 지난날을 돌이키다 후회하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때 일이 간간이 떠오르곤 한다.대학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매일같이 모친은 “데모하지 마라! 네가 우리 집안 기둥이다.”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모질도록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모친에게 둘째 아들은 무너진 집안을 재건하는 첨병이었다. 어떻게 해서 대학에 보낸 자식인데 데모 한 번으로 속절없이 자식을 잃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언제나 먼발치에서 시위대를 보고, 마음속으로나 동조했던 소시민의 전형으로 살았던 내가 늘 우울하고 억울했다.80년 5월 15일 데모하다가 경동시장 부근에서 전경한테 잡혀들어갔던 기억이 80년대의 나를 구원해준 유일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87년 6월의 사흘을 나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시위대와 함께했다. 개운사 젊은 승려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같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들은 모두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그토록 뜨겁던 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 현대사는 다시 써졌고, 30년 넘도록 87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한낱 추억이나 영화로 반추되는 6월 민주항쟁기념일이 어제였다. 과연 나는 온전하게 사람과 사건과 대면하면서 우리의 기억과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2020-06-10

김여정의 대남 위협 발언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여정은 공식적으로는 북한노동당의 선전선동담당 부부장이며 정치국 후보위원이다. 그는 평창올림픽 때 사절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하노이 회담 시에도 오빠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였다. 김정은의 형 김정철은 정치보다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이복형 김정남은 이미 독살되었고 고모부 장성택은 무참히 숙청되었다. 고모 김경희는 투병중이고, 폴란드 대사였던 이복 삼촌 김평일도 귀국했으나 실권이 없다. 결국 김여정은 현재 백두 혈통 중 최고 권력 실세이다.북한 실질적 권력 2인자 김여정의 이번 대남 압박 발언은 그 강도가 높다. 그는 휴전선 일대에서 남측이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할 경우 개성 공단과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9·19 남북 군사 합의서까지 폐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남쪽의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공들인 남북 관계가 다시 냉각상태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치적인 4·27 판문점 선언과 세 차례의 정상회담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이번 김여정 발언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김여정의 발언은 김정은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남한의 자유북한 연합 박상학 대표가 보내는 전단의 핵심은 김정은에 대한 폭로에 있다. 탈북자 출신인 그는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대북 삐라를 살포하고 있다. 이번 전단에도 김정은을 ‘새로운 핵무기로 충격적인 행위를 하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발언 배경은 수령 모독은 언제나 응징한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을 뿐 아니라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이 좌절된 시점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김여정의 이러한 발언에 대한 여야의 대응은 판이하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발언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여당 김홍일 의원은 국회에서 ‘전단 살포 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그러한 법의 제정은 ‘김여정의 하명법’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초래한 결과로 보고 있다. 사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유엔 대북 인권 결의안의 공동 발의국에도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북한연합은 6·25 70주년인 6월 25일 전단 100만장을 다시 북으로 보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정부는 북한의 강경 발언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대화부터 제의해야 할 것이다. 북의 공세적 발언은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대화제의라는 의도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코로나19 사태와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중첩되어 있다. 그들의 대중 무역과 교류 협력은 현격히 위축되고 식량도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은 내부적 위기 앞에 종종 대남 강경노선을 천명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즉각적 반응보다 대북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선 판문점 연락사무소부터 재가동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0-06-09

중심에서 벗어나기

최미경동화작가석 달 만에 서울에 왔다. 약속시간보다 2시간 정도 미리 도착한 터라 홍대 근처 카페에 들어가 밀크티를 주문했다. 일요일 오전 9시, 게으른 햇살이 카페 안을 기웃거렸다. 진동벨이 울리길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1층과 지하 1층으로 연결된 카페 안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각자의 작업을 하는 젊은 청년층들이 대부분이었다.젊음, 그 찬란하고 불안한 시절을 건너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스쳤다. 그리고 창가 근처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은 나에게 불쑥 미련스러운 생각이 밀려든다.20년 전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혼은? 아이는? 일은?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아닐까.그 짧은 물음이 나를 흔드는 사이,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만약’과 ‘혹시’와 ‘어쩌면’이 부스스 일어나 2020년 6월의 나를 2000년 6월의 나에게 데려다 놓았다.그해 6월, 나는 서울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선로를 타고 뜨거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부산행 열차가 막 들어오고 있었고 어린 나는 바닥에 있던 가방을 어깨에 매고 노란선 뒤로 한발 물러나고 있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 그녀가 터벅터벅 열차로 향했고 나는, 어느 틈엔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돌아보았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안 가면 안 돼?내가 먼저 물었다. 그녀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스쳤고 반가움이 지나갔고 쓸쓸함이 머물렀다.-어때? 그곳은?그녀가 던진 뜻밖의 물음에 나는 혼란스러웠다.-너는 어떤데?/네가 더 잘 알잖아/잘 모르겠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어.내 말에 그녀는 푹, 하고 웃고는 작게 중얼거렸다.-그렇구나, 나는 그때도 여전히 헤매고 있구나.그녀의 말에 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잠시 웃었던가. 나는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다행스러웠던 걸까. 가 보지 못하는 길을 코앞에 두고 그녀는 내가 걸었던 그 길로 들어섰다. 그녀를 실은 부산행 열차가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문한 음료가 나왔음을 알려주는 진동벨이 울릴 때까지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그랬다. 서울을 떠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중심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었다. 그 중심이라는 것이, 타인이 만들어놓은 중심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불안했다. 그러는 사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했다. 첫째를 키우고 둘째와 셋째를 키우는 동안 나도 함께 커나갔다. 그렇게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밀려나고 주변이라고 밀어냈던 것들이 내 삶을 채워나갔다.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안다. 내가 믿었던 중심이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유연성, 그걸 인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중심이 보인다는 걸. 학교를 졸업하고서 20년 만에 배운 것이다.

2020-06-09

질병관리청의 무늬만 승격… 국민 기만행위 즉각 멈추라

송언석미래통합당 국회의원질병관리청 승격을 두고 여론이 시끄럽다. 3일 행정안전부는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성과 독립성,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강화하여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독립시킨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함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조직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질병관리청 승격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그런데 정부의 발표가 있은 후 전문가들과 언론이 일제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질병관리청의 ‘무늬만 승격’이었고, 복지부 조직만 늘어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을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로 재정립하겠다고 하면서, 핵심인 연구기능은 전문가 집단인 ‘질병관리청’이 아니라 공무원 조직인 ‘보건복지부’로 옮긴다고 한다. 또 질병관리청 신설로 복지부 업무가 줄어드는데 오히려 차관을 추가하겠다고 한다. 이로써 복지부 소속의 차관(급)은 1명에서 3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사실상 국민 기만 행위이다.행정안전부의 발표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역시 “질병관리청 안에도 역학조사나 감염병 예방·퇴치와 관련한 정책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조직과 인력이 확충되어야 한다”며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대통령이 나서서 “국립보건연구원 이관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행정안전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건차관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조직개편은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발표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가 되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문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는 정은경 본부장의 지적에 대한 책임회피, 꼬리 자르기이며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정부와 청와대에 강력히 촉구한다. 질병관리청의 무늬만 승격이 아닌, 실질적인 감염병 대응역량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 또한, 자리만 늘리는 조직 개편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코로나 19로 국민들의 삶이 너무나도 고달프다. 정부와 청와대는 국민 기만 행위를 즉각 멈추고, 국민들이 감염병 불안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2020-06-09

여행 유감

여행을 하고나면 보통 몇 가지 여행의 유익함을 느낀다. 타향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됐다는 점. 또 내 고향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한다는 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인생의 묘미도 한번쯤 느껴볼 수 있다는 것 등이다.그래서 여행은 즐거움 이상의 가르침이 있다고들 한다. 인생의 맛을 느끼기에 여행만 한 것도 드물어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여행의 길을 다시 찾아 나선다.그러나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여행을 즐길 기회가 점차 사라져 아쉬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물론 코로나 사태가 수습되면 다시 여행의 기회가 생기겠지만 당분간 여행은 자제돼야 할 일상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특히 해외여행은 정상을 되찾기까지는 상당기간이 걸릴지도 몰라 이래저래 아쉬움이 커지는 모양이다.한 여행전문 리서치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앞으로 1년간 여행 지출을 대폭 줄일 것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특히 해외여행은 응답자의 59%가 향후 1년 동안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해 여행과 관련한 산업 전반이 전례 없는 불황을 겪을 전망이다.여행은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유익한 경험을 안겨준다는 측면에서 날이 갈수록 각광받는 산업으로 뜨고 있다. 생활이 윤택해진 현대사회에서 여행은 대중화된 문화의 한 장르가 됐다. 웬만하면 1년에 한 두번씩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이 요즘의 대세다.국가적 관점에서 볼 때도 여행업은 주목받는 산업이다. 관광산업을 굴뚝 없는 공장이라 부르는 것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없어도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 됐으나 마음같이 움직이지 못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09

마음껏 숨쉴 수 있다는 것

이재현동덕여대 교수6월로 접어들면서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발령되기 시작했다. 폭염주의보의 기준은 섭씨 33도, 폭염경보의 기준은 섭씨 35도이라는데 6월 9일에는 올해 들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북 경산에 첫 폭염경보가 발령되었다.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훨씬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까지 있다.외출 시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는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새로운 시대풍속도이다. 그렇지만 이 더위에 마스크라니. 그냥도 더운데 얼굴의 절반 가까이를 가리고 활동하려니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가볍고 통기성이 높은 치과용 마스크 수요가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 1일 비말차단용 마스크(KF-AD)를 새로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판매하도록 했다. 기존 KF 공적마스크보다는 얇아 숨 쉬기가 편하고, 치과용 마스크보다 비말 입자 차단 성능이 높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기존 공적마스크의 3분의 1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가정경제에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기까지 한다. 국민의 안전과 숨쉬기의 편의성, 가정경제까지 신경을 써 주는 정부의 빠른 대처에 박수를 보낸다.“I can’t breathe!” 국민들의 숨쉬기 불편함을 배려하는 나라가 있는 한편, 공권력이 국민의 숨을 틀어막은 나라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20달러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비무장 비저항 상태의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8분 46초 동안 목이 눌린 상태로 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포유동물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 쉬기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바다에서 사는 포유동물인 고래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끔씩은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한다. 포유동물 가운데 사람은 유독 숨을 오래 참기 힘들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현재 사람의 숨 참기 최고 기록은 23분 1초이지만 이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말 그대로 세계 기록일 뿐, 보통 사람은 1분 안팎 숨을 참고 버티기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해녀들의 잠수 시간도 기껏해야 2~3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온몸을 꼼짝 못하고 숨길이 막힌 채로 고통을 받은 시간 8분 46초!용광로 국가 또는 샐러드그릇 국가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인종 간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은 갈등을 해소하고 줄이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의 경찰은 갈등을 증폭시켰고, 한 시민의 숨길을 틀어막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시민들을 보호하고 사회에서 마음껏 숨쉬며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할 경찰이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 활동인 숨쉬기를 강제로 멎게 한 것이다.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을 쉬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했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민주화의 기폭제가 됐던 사실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죽음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이 땅에서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래저래 감사한 요즘이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편히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있음 또한 기억하자.

2020-06-09

저 아름다운 자유의지들… 영천 죽림사(竹林寺)

누적된 피로로 절을 찾아가는 몸과 마음이 밝지만은 않다. 결국은 네비게이션의 지시를 몇 번이나 놓치고 헤매듯 죽림사를 찾아간다. 차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착각할 만큼 어수선한 도로를 달리다 어느 사이 산속으로 숨어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죽림사 일주문 앞에서 나는 엉클어진 내면의 길을 보고 말았다.양쪽으로 대나무 숲을 거느린 쭉 뻗은 길이 화강암으로 만든 배흘림기둥 안으로 이어진다. 절은 은해사 말사로 신라 헌덕왕 1년(809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사찰이 전소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가 또 다시 6.25 전쟁을 겪으며 폐사되고 만다. 그 뒤 1990년 성수 주지 스님이 대웅전을 지으면서 대대적인 불사가 시작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나를 반기는 건 따가운 유월의 햇살뿐이다. 언덕길을 오르는 몸이 유난히 무거운데 드디어 죽림사가 보인다. 뜻밖에 절 앞의 작은 주차장에 제법 많은 차들이 모여 있다. 가파른 돌계단 위에서 보화루가 조금은 위압적으로 내려다본다.오천관음불전이라는 또 다른 현판을 단 보화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자 극락보전 앞 삼층석탑이 연등에 싸여 화사하다. 눈이 부실 만큼 티끌 한 점 없이 가볍게 허공에서 일렁이는 연등들, 나풀대는 저 수많은 ‘자유의지들’을 향해 나는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마당에서 담소를 나누던 주지 스님이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소탈한 말투로 먼저 인사를 건네며 맞아주신다. 낯설지 않은 편안함이 일순간 지친 시간들을 몰아내고, 태어난 지 한 달이 막 지난 강아지 두 마리의 재롱에 빠져 사찰에 온 걸 잊는다. 강아지와 노는 스님의 장난스런 손길에는 애정이 가득하다.불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격식과 권위의 옷은 일찌감치 벗어버린 듯하다. 순진무구한 강아지와 선지 주지 스님의 사람 좋은 웃음이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게 하는 절, 깊은 산중이 아니라서 그런지 절 일을 돕는 보살님과 처사님들도 많아 생동감이 느껴진다.극락보전 법당으로 향하는 등 뒤로 날씨만큼 쾌청한 보살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참배 후 꼭 공양하고 가세요.” 모처럼 절에서 들어보는 사람 반기는 소리, 인간다운 따뜻함이 살아 있는 사찰이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내 걸음에 비로소 작은 연등이 걸린다. 백팔 배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마음은 잠시, 절을 하는 동안 몸은 점차 가벼워져 온다.지난 한 달간은 힘에 버거울 만큼 손님을 맞느라 기력이 쇠하여 멘탈이 붕괴되고 말았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벗어나고자 전원으로 왔는데 그 새로운 환경이 덜미가 되어 평온했던 삶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모처럼 시간을 거슬러 삭막한 도시 이야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거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자고나면 피로가 풀린다는 착각은 내 몸을 함부로 평가하는 오만이었다. 육신을 보살피지 않은 탓에 모든 관계들이 부담스럽고 무의미해지기 시작했으며,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한없는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했다. 전원에도 삶이 따라온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정신과 육체의 예민함을 알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고 말았던 것이다. 휘슬 소리는 늘 아픔과 함께 왔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살아 있음을 뜻하며 여유로움을 내포한다고 위안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백팔 배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던 걸가? 스스로 나약한 존재가 아니길 바라며 기운을 담아 백팔 배를 한다.조낭희 수필가수많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좀 더 성장하고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늘 인스턴트식 자기 위안으로 끝낸 건 아니었던가. 절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자기 점검은 간절해진다.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멀리하고 때로는 대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크고 육중한 몸을 금빛으로 숨기고 빛나는 철조여래좌상, 형상화된 부처님이지만 분명 자기만의 아트만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한동안 관계에서 벗어나 내면을 응시하라는 답을 안고 법당을 나선다. 극락보전 앞에서 눈과 귀, 입을 가린 귀여운 동자상 셋이 나를 붙든다. 겸허하게 두 눈 가리고, 두 귀를 막으며, 말을 줄이는 절제성, 그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되도록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듣고 말하며 고귀한 생각 속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다.모처럼 공양간에서 맛보는 절밥도 감사하다. 뽀드득 소리 나도록 내 그릇까지 씻어주는 불자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몸에 배인 익숙한 정성의 언어들, 나는 그녀의 오래된 기도를 읽는다. 설익은 배려와 정성은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남을 위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지쳐 있던 세포가 깨어나고 다시 아름다운 생각들로 채워진다. 눈부신 생각들이 삶에 잔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가지를 뻗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돌아오는 길에는 끊임없이 하품만 따라온다. 삶은 수많은 장애물과의 싸움인 걸 어찌하겠는가.

2020-06-08

예술과 콘텐츠 사이

누구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콘텐츠’ 삼아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고, 작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에 자신의 예술적 생산물이 화폐로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일말의 거리낌조차 느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 신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규정하는 정신의 발현으로 중요한 대상이었던 시기는 이미 우리에게 멀리 떠나버렸다. 지금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한껏 경멸의 의미를 담아 불렀던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지금 우리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 된 셈이다.예술의 가치는 가늠하기 어려운 복잡한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화폐의 가치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예술가의 생계 때문에, 비싼 예술품에 대한 환호 때문에, 예술작품을 점유한 화폐 가치는 그것 외에 예술 속에 존재하는 모든 다른 가치를 축소시킨다.작가 이상이 1936년에 쓴 소설 ‘날개’는 사실, 그가 화폐의 가치에 의해 예술이 전도되는 당시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두고 쓴 작품이다. 우리는 작가 이상이라고 하면 골방에 유폐된 천재라는 이미지만을 기억하지만, 이 무렵 그의 글들 속에는 당시의 사회 현상에 대한 예민한 관찰의 결과들이 들어 있었다.이상은 폐병을 치료하고자 갔던 온천에서 우리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물에도 값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세상에 빈 땅이 없음을 한탄하며 여기저기를 쏘다니다가 자신의 책상에 있는 화분만이 유일한 빈 땅임을 깨닫고 한탄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이상이 살았던 시대는 모든 것에 화폐가치가 붙어 본래의 가치를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사회였으니 말이다. 그러한 시대에는 화폐로 교환되지 못할 것은 없다. 시간이나 공간, 취미나 기호, 심지어 인간의 노동력과 성(性)까지도 화폐로 환산되는 것이 바로 그가 목도한 시대상이었다.이상의 ‘날개’속에는 소설의 주인공과 아내가 살고 있는 33번가가 등장한다. 모두 꽃과 같이 아름다운 그 33번가에 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카페(당시의 카페는 술을 파는 곳이었다)에서 일을 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나’의 아내와 이웃들은 모두 술과 ‘웃음’을 팔면서 살아가는 자본주의적 존재들이다.작가 이상.이 소설 속 주인공인 ‘나’가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그가 화폐가치에 전혀 무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가치에 무지하다는 것은 사회적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인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작가 이상 자신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안된 인물이다. 이 소설은 결국 화폐가치를 알지 못하던 주인공이 그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에는 파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화폐가치에 무지한 ‘나’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인물은 그와 유일한 관계인 아내이다. 어느 날 외출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외출해서 쓰라고 준 돈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그랬더니 아내는 자신의 방에서 하룻밤을 재워준다. 이때 ‘나’는 시간과 공간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점점 현대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어 어느덧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에 있는 티룸에서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우리가 카페에서 돈을 내고 사는 것은 커피 한 잔이라는 실물인가. 아니면 그 장소의 시간을 사는 것인가. ‘날개’를 통해 이상은 바로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비록 ‘날개’의 후반부에서 ‘나’는 완연한 현대의 인간이 되어 나중에는 ‘돈’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것을 파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달콤한 즐김이라고 해야 할까.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0-06-08

군자와 소인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얼마 전, 지방 모 대학에 늦깎이로 교수 임용 막차에 오른 친한 동생 하나가 전화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사연인즉슨, 얼마 전, 학과 회의를 했는데, 글쎄, 실컷 잘하고 헤어진 뒤,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업무분장 정리 톡을 받으니, 동생한테 은근슬쩍 까다로운 업무 하나가 끼워져 있더라는 것이다. 동생은 그래, 실수겠거니 하고서 단톡방에 이야기를 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일은 당신이 맡기로 했다며 벌떼같이 달려들더라는 것이다. 일을 더 하고 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심지어 기억 및 상황까지 조작하며 몰아붙이는 게 너무 황당해 조목조목 얘기하니 그제야 다들 ‘그럼, 말고’하는 식으로 수그러들더라는 것이다.일을 맡기고 싶으면 차라리 면전에다 부탁을 하든지 할 것이지, 배운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잔머리를 굴릴 수 있는가 하고 장탄식하는 동생을 보며, 문득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평생 고민했던 춘추시대 공자가 떠올랐다.공자는 세상의 인간을 크게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한다. ‘군자’는 논어에 66번이나 나오는 만큼, 공자의 인간학을 이해하는 핵심 중 하나다. 논어 첫 편인 ‘학이 1장’과 마지막 ‘요왈’ 편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라 할 수 있고(人不知而不614D 不亦君子乎), 그렇더라도 천명을 알지 못하면 또한 군자가 될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는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군자는 논어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중요한 개념이다.보통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화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군자는 그런 데 개의치 않는다. 묵묵히 제 할 일 하면서, ‘천명’을 알고 실천하는 삶을 살 뿐이다, 여기서 ‘천명’은 주어진 사명, 곧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책임감을 갖는 것은 군자의 기본이자 사실 인간의 기본이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칸트도 ‘인격이란 바로 책임 능력’이라 했고, 청말 사상가 양계초 또한 ‘음빙실(飮氷室)’에서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간의 시작이요,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인간의 끝”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그런데 소인은 책임감이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잔머리를 굴려 책임을 피할까만 생각하고, 통수, 꼼수를 쓰며 이익을 챙길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소인은 도량이 좁고 간사한 것이다. 공자가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으며(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남과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으나, 소인은 남과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는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이처럼 소인은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편 가르기나 하면서도 이 세상을 잘 살아간다고 착각하곤 한다. 남의 고통·아픔을 이용해 수년간 사리사욕 채워 본들 뭐할까? 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인데.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6월이다.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마무리되는 올 상반기, 이럴 때일수록 더욱 책임 전가, 통수, 꼼수로 무장한 소인 대신, 진정한 군자 되기 프로젝트에 한번 동참해 보면 어떨까. 아마도 삶이 이전보다 몇백 배나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2020-06-08

우국지사의 선비정신

강희룡 서예가한말의 의병장 유인석은 국권이 강탈당하는 것처럼 나라에 큰 변고가 생겼을 때 처신하는 방법으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내놓았다.첫째는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우는 일이요, 둘째는 해외로 망명하여 옛 정신을 지키는 일이요, 셋째는 자결을 하여 뜻을 이루는 것이다.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만주와 러시아로 망명해 독립에 투신한 유인석은 첫째와 두 번째 방법을 함께 사용한 셈이다. 구한말 3대 시인이면서 우국지사였던 김택영, 이건창은 과거 보러 상경한 구례의 선비 황현을 만나 서울에서 교분을 쌓으며 의기투합했다. 황현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당시의 과거시험에 환멸을 느끼고 곧 낙향하였지만, 지역을 달리하면서도 세 사람의 교유는 지속되었다.융희 4년(1910) 7월 일본이 마침내 대한제국을 병합했다. 8월에 황현이 그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절명시 4수’를 짓고 자제들에게 유서를 남겼다.‘사람이 죽는 일이란 쉽지 않은가 보다, 독약을 마실 때 세 번이나 대었다 떼었다 하였으니 내가 이처럼 어리석었단 말인가.’ 하였다. 얼마 있다 운명하니 향년 56세였다. 이 글은 김택영 선생의 ‘소호당집, 황현 전기(韶濩堂集,黃玹傳)’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강화도에 내려가 살던 이건창이 먼저 세상을 떴다. 그즈음 열강의 침략이 거세지면서 개화나 척사 등 지식인들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을사늑약으로 국운이 다했다고 판단한 김택영은 망명을 택하였다. 김택영이 황현의 순국 소식을 들은 것은 중국 상해 인근의 남통에 있을 때였다. 동생 황원으로부터 매천의 자결상황을 자세히 전해들은 김택영은 친구를 기리며 ‘황현의 전기’를 썼다. 매천은 아편을 술에 타서 마셨다. 약효가 발휘되어 숨을 거두기까지는 만 하루가 걸렸다. 김택영은 황현의 전기를 작성하면서 특히 그의 죽음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궁벽한 시골에 사는 선비가 목숨을 끊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택영은 여기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유인석과 동시대를 살았던 매천도 유인석의 세 가지 상황에 직면했다. 김택영은 매천에게 망명을 제안하였으나 가난한 시골 선비가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에는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매천은 승산이 적고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라는 그의 판단으로 의병항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매천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국가와 운명을 같이하는 일이었다. 죽어야 할 의리가 없는 매천이 자결한 것은 선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끊은 매천은 자기를 성찰하며 역사와 현실을 읽어낸 110년 전의 지식인이었다. 오늘날 여의도에서 도금된 금배지를 달고 도나 개나 민주주의를 외치며 패거리지어 희희낙락하는 위정자들의 머리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을까? 직에 주어진 과한 특권을 자신의 범죄행위 방어에 이용한다거나, 일신의 영욕만 가득 차 국민을 기만한다면, 이 나라는 곧 110년 전과 같은 국가우환을 맞을 것이다.

2020-06-08

선택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앞자리에 6자를 달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때 무엇을 선택하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그중 하나다. 고3 가을에 문과로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대학원 때 전공을 바꾼 것, 논문 쓰기보다 생협 활동에 더 열을 올린 일들이 꼬리를 문다.되돌아보면, 그 전환들은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조건에 떠밀려 감정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결정과 선택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의 주인공 니모도 자신의 지난날이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영화의 설정은 매우 특이하다. 니모는 6개의 시간 차원으로 이루어진 평행 우주를 경험한다. 평행우주는 니모가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한 우주에서는 엄마를 따라가고, 다른 우주에서는 아빠 곁에 남는다. 각각의 우주마다 결혼하는 여자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그러나 니모가 자신을 ‘노바디’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우주에서도 행복하지는 않다. 니모는 사고로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꿈에서 깨는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간다. 그런 이동은 니모의 삶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영화는 상당히 극적인 설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결정이 선택이 아닐 수 있음을 깨우쳐준다. ‘믿음의 배신’에서 저자 마이클 맥과이어는 메뉴를 고르고 여행지를 선택하고 자유의지로 선택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기억이나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자극을 고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니모가 안나를 사랑하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그동안 니모는 사고나 꿈 깨기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이동했지만, 2092년 117세의 니모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세포재생술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 후 니모는 부모님이 이혼하던 9살로 다시 돌아가서 엄마와 아빠의 요구를 거부하고 제3의 길로 달려간다. 니모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죽음을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렇다고 이후 펼쳐질 니모의 삶이 장밋빛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니모가 지난 여러 번의 삶보다 행복할 가능성은 더 많다. 무엇보다 니모는 자신을 더 이상 ‘노바디’라고 부르지 않게 될 것은 확실하다.한 연구에 의하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감정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면서 ‘왜’를 질문하라고 한다. ‘왜’를 질문하다 보면, 의식하지 못했던 자기 안의 비합리적 믿음을 발견하고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3 가을이 다시 떠오른다. 왜 문과여야 하는지 조금 더 질문했더라면 그것이 결정인지 선택인지 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꾸만 찾아오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떨고 싶지 않다면, ‘왜’라는 질문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2020-06-08

자동차 온라인 판매시대

화려한 쇼윈도에 자동차를 전시해놓고 팔던 시대가 지나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시대가 다가왔다.일론 머스크가 2003년 창립한 테슬라가 비대면(언택트) 자동차 판매 선두주자다. 테슬라코리아는 온라인 판매만 고수하고 있는데도 올해 1분기 총 4천70대의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하며 전년 동기 대비 231% 성장했다. 테슬라는 지난해 9월 기존 오프라인 영업을 대거 감축하고 온라인에서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국내에서 100% 온라인 판매만 하고 있다.테슬라가 온라인 판매를 강화한 것은 장기적으로 오프라인 판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대비용을 절감해 차량 가격이 평균 6% 가량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최초 예약하고 나서 출고까지 철저한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는 것 외 모든 서류작성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자동차 데이터 연구소 카이즈유에 따르면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3는 지난 3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를 제치고 전기차로서 국내 최초로 월간 신차등록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 시장에서는 자동차 온라인 판매 활성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중국 길리자동차는 코로나19로 인해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자 지난 2월부터 온라인 판매 서비스를 시작했다.이외에도 중국 내 BMW, 벤츠 등 많은 수입차가 중국에서 온라인 판매에 나섰다.현대·기아자동차도 올해 들어 해외시장에서 온라인 판매망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선 판매노조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온라인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국산차 소비자만 독박을 쓰고 있는 꼴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08

고령자 친화 도시로 거듭나자

포항시 총인구가 조금씩 줄어드는 가운데 75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인 2015년 5월 2만4천458명에서 2020년 5월 3만2천740명으로 8천282명이 늘어났다. 우연히도 5년간 늘어난 숫자(8282)처럼 고령자가 빨리빨리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령자고용법(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보고 있다. 포항시 주민등록인구는 2020년 5월 말 현재 50만4천829명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인구감소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나이별 인구구성에서 유소년과 청장년층이 빠르게 줄어드는 게 더 큰 문제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학업에 묶여 있을 24세 이하 인구는 지난 5년간(2015년 5월 ~ 2020년 5월) 2만1천704명이 줄었고, 지역에서 노동력 제공과 소비력을 책임지는 이른바 현역인 25세부터 59세까지는 무려 2만3천775명이 줄었다. 지역경제의 핵심인 철강산업의 부진 때문이다. 그나마 포항에서 청춘을 보냈던 정년퇴임자들이 은퇴 이후에도 남아 자연스럽게 60세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심각한 인구감소 현상을 완화해주고 있어 다행인 셈이다. 6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인 2015년 5월보다 3만2천122명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60세 미만 인구가 거의 5만 명가량 감소하였는데도 포항의 겉모습은 2015년 5월 51만 8천186명에서 2020년 5월 50만4천829명으로 1만3천여 명만 줄어든 일종의 착시현상을 보이는 것이다.문제는 지난 5년 사이 포항시 인구사회구조가 큰 전환점을 맞이하였다는 점이다. 유엔(UN)에서는 1956년 보고서에서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인구사회구조를 분류한 바 있다. 유엔은 총인구에서 고령 인구(65세 이상)가 차지하는 고령화율이 7% 이상 14% 미만이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 이상 20% 미만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그리고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 또는 후기고령사회(Post-Aged Society)로 정의하였다. 포항시 고령화율은 2012년 10.7%에서 2016년 13.2%로 늘었지만 아직은 ‘고령화 사회’에 속했었다. 그러나 포항시는 2017년 말 고령화율이 14.2%를 기록함으로써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정확하게는 2017년 8월 13.9%에서 9월 14.0%를 기록하였으므로 2017년 9월이 포항시가 ‘고령사회’로 진입한 기점이 된다. 그리고 2020년 5월 현재 포항시 고령화율은 16.8%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빠른 속도를 고려하면 앞으로 불과 4년 정도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사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되었다고 해서 큰 변화를 느끼기는 힘들다. 그저 수치상 총인구의 14%라면 포항시민 100명 가운데 14명이 65세 이상이니까, 만나는 사람 열 가운데 한두 명 정도는 고령자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도시의 활발한 경제 활동 그중에서도 특히 소비 활동을 결정하는 것은 총인구가 아니다. 대낮의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 시내 가게들이 통상적인 영업시간(오전 9시부터 저녁 6시)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유동인구다. 그렇다면 포항 도심지 유동인구는 과연 어느 정도가 될지 생각해보자. 외부 방문객은 전혀 없다는 가정이다. 포항시 총인구를 50만 명이라 보면 그중 24세 이하 인구는 주말이나 특별한 공휴일이 아닌 한 유동인구에 넣을 수는 없다. 모두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25세부터 59세까지의 현역인구들도 직장에서 생활할 것이기에 대낮의 도심 상권과는 무관하다.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포항시 총인구가 50만 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중 20만 명 정도는 도심 경제권을 이루는 동(洞)지역이 아닌 외곽의 읍면지역에 있다. 때문에, 포항 시내 상권과 관련된 순인구는 30만 명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에서 유동인구를 산출해보자. 일단 2020년 5월 현재 23.4%에 이르는 24세 이하 인구와 현역(25세 이상 59세 이하) 인구(51.1%)는 제거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역 비율에서 모두 맞벌이는 아닐 것이므로 부부중 한 사람만 직장생활을 한다고 보면 이 현역인구의 절반 정도는 유동인구에 넣어야 한다. 반면 언제든지 외출이 가능한 65세 이상 고령자는 16.8%이므로 시내 기준 30만 명에 이 비율을 대입하면 약 5만 명이다. 결국, 포항 도심지를 대낮에 활보할 수 있는 유동인구의 최대치는 30만 명에서 각 비율을 적용한 24세 이하 7만 명, 현역에 해당하는 25세 이상 59세 이하 약 7만 명을 뺀 16만 명 정도인 셈이다. 여기에 고령자 5만 명이 포함되었다고 본다면 시내에서 활동하는 유동인구 가운데 고령자 비율은 16.8%가 아닌 31.3% 정도가 현실에 가까운 시내의 고령자 비율이 되는 셈이다. 시내 유동인구 100명 중 14명이 아니라 31명 정도가 고령자라는 뜻이며, 포항 인구 절반이 여성이고, 핵심 업종이 철강산업인 점을 고려하면 시내 곳곳에서 주도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유동인구 가운데 대부분이 여성이고, 또 열에 셋은 65세 이상의 어르신일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낮 시내 커피숍 고객 대부분이 주부들인 것도, 죽도시장과 같은 전통시장이 점차 어려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달서비스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체력이 예년 같지 않은 여성 고령자가 과연 과거처럼 시장에서 장을 보고 귀가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필자도 사실 국내법상으로는 고령자에 해당하나 포항 시내 어느 장소, 어느 행사에 참여하더라도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다. 함부로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즉각 ‘어린 녀석이 버릇도 없이’라는 이야기 듣기 십상이다.앞으로 포항은 도시의 이미지메이킹을 미세 조정해 나가야만 한다. 당연히 늦었다. 도시 곳곳에는 아직도 과거 고도성장기 열혈남아의 관습이 남아있다. 특히 도로교통 분야가 그렇다. 대체로 도로교통 시설들은 자동차 운전자 관점에서 설계되곤 한다. 최근에는 고령자 운전 부주의가 문제시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반사 속도나 판단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고령의 운전자가 확실하게 신호를 발견할 수 있는 적정 위치에 충분한 숫자의 신호가 배치되었는지도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 지금도 각종 표지안내판을 보며 운전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노화되는 시력이라도 표지판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글자 크기 자체를 키우는 것은 어떨까.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체계도 재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필자조차 어떤 때는 파란 디지털 숫자가 줄어들며 깜박일 때마다 심리적 압박감이 커져 빠른 걸음으로 건너지만 미처 다 건너기도 전에 영(0)이 될 때도 있다. 분명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건널 때 적지 않은 심력을 소모할 것이다. 이러한 신호시스템도 점차 ‘고령사회 포항’에 걸맞게 바꿔나갔으면 한다. 이밖에도 과속, 난폭, 보복, 불법 유턴 등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를 불안하게 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자동차문화도 바뀔 때가 되었다.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두둑한 지갑을 가진 다른 지역에 있는 은퇴고령자들이 포항 시내를 편하게 걷고 운전하는 데 불안함을 느낀다면 점차 그들이 선택하는 여행지에 ‘포항’은 빠질 수밖에 없다. 포항시 나이도 벌써 71세다. 나이만큼 여유와 느긋함을 느낄 수 있는 고령자 친화 도시라는 소문이 났으면 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6-07

나무와 숲을 보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어느새 신록이 짙어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이른바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낫다는 때다. 온통 푸르름으로 일렁이는 산과 들에는 싱싱한 기운과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세상이 코로나19의 난마로 어수선해도 계절은 차분하고 왕성하게 풀과 줄기, 잎사귀를 흔들며 초여름을 노래하고 있다.벌써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데, 세상만사는 희대의 요지경처럼 여전히 복잡다단하기만 하다. 이 또한 멀지 않아 가닥이 잡히고 순순히 지나가겠지만, 여파와 상흔은 좀처럼 가시지 않을 듯하다. 자연현상의 경외함과 세상살이가 만만찮음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기치 못한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유연해지고, 각자도생의 방편을 꾸준한 각도로 추스려 나가야 하는 지혜를 얻었다고나 할까?햇볕이 뜨거워지는 여름날이 다가오면 시원한 그늘을 찾기 마련이다. 커다란 느티나무나 굴참나무 아래면 더 좋을 것 같고 간간이 잎새 흔드는 바람마저 불어온다면 한결 낫다. 그러한 곳에서 여유롭게 쉼을 누리거나 한가롭게 낮잠을 즐긴다면 그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을 정도다. 여름날에 흔하게 느끼거나 접할 수 있는 풍경, 그러한 쉼과 여유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의 찌든 때를 털고 마음을 정리하며 보다 평온함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쉼이란 무엇일까? 한자를 풀이해 보면 사람(人)이 나무(木) 옆에 있는 모습(休)으로, 글자 그대로 나무 옆에 머물며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이다. 예컨대,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지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집을 떠나 나무 그늘 아래서 그냥 쉬거나 몸과 마음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두는 것이다. 굳이 나무 그늘이 아니더라도 숲길이나 들길을 거닐다 보면 번잡했던 일상이 정리되고 마음이 안정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쉼이란 그런 것, 마음과 정신의 각박함을 접어두고 잠시나마 영혼의 안식처를 찾으며 일탈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그러나 나무와 함께 즐기는 것이 쉼이라면, 숲이나 산, 강과 바다와 함께 하는 누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디테일도 맛보고 숲이나 물에서 풍기는 그윽함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각기 다른 맛과 느낌이 있겠지만, 세밀하게 느끼는 멋과 유장하게 젖어드는 울림이 보다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도 보고 숲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춰야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아무리 일상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코로나19의 엄습이 있을지라도 나무와 숲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즉각적이고 근시적, 장기적인 대응과 원시적인 방안을 유효 적절하게 입안하고 운용해야 한다. 이미 신속한 초기 대처와 효과적인 방역, 검사체계로 세계의 정평이 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나무와 숲은 결코 단기간에 자라거나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 속에 나름의 생리와 섭리로 지금까지 존속해왔고 영속해 나갈 것이다.

2020-06-07

케렌시아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치열한 경쟁을 살아가는 이 땅의 중년 가장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50대. 앞만 보고 살다가 잠시 되돌아보게 되는 나이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모든 걸 버리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살아온 날에 대한 회환과 남은 생의 변곡점을 어떻게 통과해야할까 하는 고뇌에 이르면 불쑥 짊어진 짐을 모두 내려놓고 싶어진다. 물론 짐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안다. 대책 없는 푸념과 넋두리일 수밖에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은 어디서 어떻게 받을 것인가?이제 지난날 자신감에 찬 질주는 숨도 차고 힘겨워 후진의 추격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거친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항구에 정박 중인 자식들의 인생항로를 위한 선장으로서 역할도 버겁긴 마찬가지다. 절대적 지지자로 생각했던 부부간극은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틈을 메우기 힘들 정도로 벌어져 있다. 바쁜 일상으로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언제나 내가 하자는 대로 움직여 줬던 몸뚱이가 어느 날 매몰차게 나를 외면하면 어쩌지 하는 건강염려증도 뇌리 한쪽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불안정과 불안감을 술로 잊으려 해보지만 건강 하향곡선 탓에 능사가 아님을 안다. 주말이면 골프모임, 등산모임으로 구심력 잃은 공처럼 이쪽저쪽 튀어나가 기웃기웃 해보지만 이것 역시 허한 가슴을 채우지 못한다. 그러다 어쩔수 없이 또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50대의 중년이다. ‘무소유’, ‘내려놓아야 한다’는 법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니 아직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은 자전거 삶이다. 질주본능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힘들게 페달을 밟게 된다. 하지만 탄력 좋은 고무줄도 당기고 놓기를 반복하면 결국은 끊어진다. 중년의 삶, 속도를 늦추고 마디마디 휴식이 필요하다.케렌시아(Querencia)란 스페인어가 있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말이다. 투우장의 투우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중년위기의 탈출, 나만의 케렌시아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이 땅의 대부분 50대 가장들은 어린 시절 여러 형제들이 방 하나의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병영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았다. ‘함께’, ‘단체’, ‘집단’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라 전체가 압축 성장 과정이었기에 개인에겐 잠깐의 휴식과 여유도 터부시된 것 같다. 100미터 달리기 같은 삶을 살아왔다. 심리적·공간적 나만의 케렌시아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나만의 케렌시아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곳이 꼭 조용한 산사이거나 물리적 휴식공간이 아니어도 좋다. 바쁜 일상 속에 복잡한 관계를 끊고 잠시라도 오롯이 자신의 시간만을 가질 수 있는 장소나 꺼리라면 어떤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휴대폰은 꺼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혹시 그동안 급한 카톡 오면 어쩌지?” 좀 무시해 보자.

202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