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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엘리트냐? 이리떼냐?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 · 전 경북지방경찰청장말장난이 개그소재로 유행한 적이 있다. 썰렁하다면서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 너나없이 한마디씩 했던 것 같다. 영어가 원래 우리말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썰렁 개그 한 번 해보자. 상을 당하면 상주들이 곡(哭)을 한다. 대부분이 ‘아이고’라며 울먹인다. ‘I go’(나는 간다)는 영어 표현이 된다. 저 세상을 떠나는 망자의 말을 연상시킨다. 어느 지역의 말투는 거의 영어다. ‘왔시유’(What see you). ‘인식하다’(acknowledge)는 ‘아이쿠 알지’ 머 이런 식이다. 우리말의 우수성을 설파하며 영어의 기원은 우리말이라며 책을 쓴 사람도 있으니 문화 자존감의 엉뚱한 발상이지만 그리 기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비슷한 발상으로 최근 우리 사회 여러 현상을 겪으며 ‘엘리트(elite)’라는 말도 우리말 ‘이리떼’에 어원을 두고 있거나 이웃사촌 쯤 관계가 있는가 싶다. 문헌을 보면 엘리트란 말은 17세기경에는 ‘고급 상품’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우월적 사회집단을 뜻하는 말이 되어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나타낸 집단, 어떤 형태든 높이 평가된 사회적 가치를 가진 집단을 엘리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파워 엘리트’,‘ 창조적 소수자’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선택된’이란 뜻의 라틴어 ‘electus’에서 유래되었단다. 엘리트가 지나친 특권과 독점으로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늘 급진주의자와 무산자의 정치적 타도대상이 되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역사 발전에서 엘리트의 역할과 기여를 부정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우리 사회 곳곳에서 엘리트 죽이기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교육현장에서 폐해만 부각되어 엘리트 교육이 멸종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남보다 우수함을 위한 노력과 땀에 대해 경의와 찬사를 보내기 보다는 배경을 의심하거나 기울어진 운동장, 금수저 논란으로 폄하시키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우수한 인재의 확보와 양성은 최고 회수율을 보이는 투자임에도 하향평준화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우리가 내세울만한 세계적 엘리트 기업들도 부도덕과 부패의 상징이 되어 휘둘리고 있다. 엘리트를 죽여서는 미래가 없다. 시민의식이 투철한 건전한 엘리트로 양성해야 한다.코로나 바이러스의 광기 속에 의사들의 파업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밥그릇 작아질까봐 파업을 한다고 몰아친다. 국민건강권을 인질로 잡았다며 반인륜적 범죄행위처럼 프레임을 짜고 있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법률서비스의 특권을 깨겠다며 도입한 로스쿨이 오히려 사다리를 걷어찬 결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더 좋은 의료혜택을 주는 정책이라는 주장에 앞서 질 저하를 우려하는 젊은 의사들의 쉰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을 떼로 몰려다니며 건강권을 뜯어먹는 이리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엘리트들이 오히려 진짜 이리떼에게 뜯어 먹히는 지경이 될 수 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체육 등 엘리트들을 사납게 뜯어 먹은 이리떼들이 결국 먹을 것이 없어 서로 뜯어먹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그 땐 토끼만 더 떨게 될 것이다.

2020-08-30

빗나간 일기예보

나비효과란 본래 기상예측 모델 연구에서 유래한 말이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상변화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소수점 이하의 작은 수치가 결과적으로 완전히 다른 기후패턴으로 나타난 것을 두고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과학이 발달하기 전 옛날 사람들은 구름이나 동물의 움직임 혹은 피부로 느껴지는 기온의 변화로 내일의 날씨를 점쳤다. 중국 스찬성 대지진 직전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대이동했다는 것을 두고 지진의 전조로 보는 것 등이 그런 사례다.우리 속담에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모기나 잠자리 등 곤충들은 습기가 많아지면 날개가 무거워서 낮게 날게 된다. 곤충을 잡아먹는 제비도 자연 낮게 날게 되므로 비올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개구리가 크게 울면 비가 온다”는 속설도 마찬가지다. 공기 중 습도가 많아지면 개구리의 호흡량이 늘어 울음소리가 커진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동물적 본능을 일기와 연관 짓는 것은 흔한 일이다.신라시대에 이미 천문기상 관측소인 첨성대를 세웠던 것이나 세종대왕이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발명한 것 등으로 보아 일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민적 중요 관심사임에 틀림이 없다.올여름 내내 폭염이 예상된다던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면서 기상 불신이 심하다.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빗나간 사례가 한두 번 아니지만 올 여름 유독 기상청은 고개를 들 면목이 없어 보인다. 여름 내내 폭염이라던 예측과 달리 역대급 장마가 이어지고 수해 발생이 빗나간 일기 탓이란 항의가 연일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 해외 사이트에서 국내 일기를 확인하는 이른바 기상 망명족까지 늘어났다고 하니 기상청의 체면이 말이 아닌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30

‘공수처법’과 찐빵

안재휘논설위원소문난 명품 찐빵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좋은 밀가루를 골라서 쓰고 비법을 발휘한 반죽 기술이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찐빵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반죽 안에 들어가는 팥소다. 항간에 실속 없는 일이나 사건, 물건을 일러 ‘앙꼬(팥소의 일본어) 없는 찐빵’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불량한 팥소가 들어있는 찐빵을 놓고 명품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지난 20대 국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이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떠올랐다. 공수처라는 조직은 많은 국민이 걱정하듯이 운용하기에 따라서 최고 권력자의 강력한 독재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 위험성 때문에 국민은 공수처장 선출규정에서부터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는 완전한 장치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21대 국회가 시작되고, 통합당의 비협조에 민주당은 안달이 났다. 지난해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밀어붙일 적에 야당과 국민을 설득한 가장 중요한 논리는 “절대로 여당이 일방적으로 뽑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통과된 공수처법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구성에서 여당 교섭단체 2명, 야당 교섭단체 2명 추천이고, 후보 결정은 추천위원 7분의 6 찬성으로 돼 있다.국회의장이 거듭 후보추천위원 선정을 요구했지만, 유령 취급 당하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공수처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한 만큼 결과가 나온 뒤에 하자는 주장을 펴 왔다. 민주당이 몇 차례 공수처법 개정을 을러대더니 정말로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예상대로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인사를 공수처장에 임명하고, 수사관들도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채울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법사위 소속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를 여야 구분 없이 국회가 추천하는 4명 등 7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또 공수처장 후보 추천 조항도 5명 이상만 동의해도 되도록 바꿨다.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완전히 제거한 것이다.공수처 수사검사 인원도 현행 공수처법에서 정한 25명에서 ‘최대 50명’으로, 수사관은 40명에서 ‘최대 70명’으로 늘렸다. 수사검사 자격도 ‘10년 이상의 변호사’ 에서 ‘5년 이상’으로 대폭 낮췄다. 3년이었던 수사검사 임기는 7년으로, 최대 3회까지만 허용한 ‘연임 제한’ 조항은 아예 삭제했다. 법조계에서는 “젊은 민변 변호사들의 진입허용 노림수”라는 해석이 나온다.안 되면 법을 바꿔서라도 강행하는 여당이 다시 무슨 수상한 작전에 돌입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핵심 중립성 담보 조항을 제거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입법과정에서 국민을 완전히 속이고 배신한 게 돼 버린다.좋은 재료를 넣기는커녕 팥소를 아예 빼버린 찐빵이 어떻게 명품이 되나. 아니, 맛있는 팥소는 제거하고 먹어선 안 되는 독소(毒素)를 잔뜩 넣은 찐빵으로 대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또 얼마나 죽일 작정인가, 걱정스럽다.

2020-08-30

미국 정권의 향방과 지역의 대응전략

최근 미국 정계가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는 11월 3일 치뤄질 제46대 미국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부통령을 지냈던 조 바이든(Joe Biden)씨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공화당 측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공화당 전당대회 이전부터 미국 연방정부 직원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해치법(Hatch Act) 위반 논란이 있었는데도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남편을 지지하는 연설을 강행하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동 순방 출장 중인 가운데 영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였다. 뉴욕타임스지는 현직 국무장관의 특정 정당 지지연설은 7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이는 국무부 내규에도 어긋난다고 보도하였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서 승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앞으로 미국 정계에 어떠한 변수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여론조사결과 등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면서 백악관의 초기대응 미흡, 이로 인한 미국경제의 급격한 감속과 실업률 급증 등이 얽히면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전국 여론조사결과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미국 대선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고 알려진 접전지역에서조차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우세를 나타내고 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각 여론조사회사의 질, 시기적 근접성, 조사 수를 고려하여 평균한 데이터를 발표하는 미국의 정치분석 전문매체인 파이브서티에잇(538.com)에 따르면 8월 13일 현재 2020년 46대 미국 대선의 최대접전 지역인 6개 주(미시간, 팬실베니아, 위스콘신, 플로리다, 아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모두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6개 주는 사실 지난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 트럼프 후보가 모두 우세를 차지하였던 지역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전국 집계치에서 현직 트럼프 대통령은 42.4%의 지지율에 그쳤지만 바이든 후보는 51.0%의 지지를 받으며 8.5포인트나 앞섰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그 이후 조금씩 추격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전하지는 못한 상태다.하지만 지난 2016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에서 뒤졌던 트럼프 대통령을 역전시켰던 ‘감춰진 트럼프지지자(hidden Trump voter)’가 이번에도 활약할 수는 있겠지만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져 역전시킬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접전지역이었던 라스트벨트로 불리는 디트로이트나 클리블랜드 등 자동차와 철강산업 중심 지역에서 트럼프 후보가 경기 부양을 통한 고용개선을 주장하며 역전 득표에 성공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개정하고, 중국, 한국 등에 대한 철강 관세를 인상하며 ‘관세맨’으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정계에 몸담은 사람이 아닌 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궁금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현 미국 대통령이 던진 관세 폭탄으로 큰 피해를 겪고 있는 포항의 철강업계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미국 대선 결과 대통령이 바뀐다면 과연 포항지역 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무역정책의 기조는 사실상 민주당 강경파의 무역정책 기조와 흐름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급격하게 감속한 미국경제의 조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현행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쉽다. 정책수단이야 관세보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경제블록을 통한 간접적인 보호무역을 따를 수도 있겠지만.대통령선거와 같이 치뤄질 미국 통상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연방의회의 선거결과에 따른 영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는 민주당의 압승이 예측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누르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제46대 대통령으로 바뀌거나, 연방의회에서 민주당이 절대적인 의석을 차지한다고 해서 포항의 철강업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절로 벗어나게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의 통상정책에서 중국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중국산 철강제품에 적용하는 강력한 제재조치의 여파는 고스란히 포항 철강업계에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든,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든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가격경쟁력만을 무기로 내세워서는 미국의 장벽을 넘기 어려운 현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 철강업계가 미국 시장에 침투하여 생존하려면 신제품, 신기술 등 고부가가치의 품질경쟁력을 내세운 제품, 그것도 세계적인 수준이 아닌 세계 유일의 철강제품이어야만 전천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능할 일도 있다. 지역 철강업계가 노릴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국내시장이며, 이 또한 지금까지와는 획기적인 전략전환이 필요하다.우선, 암묵적으로 국산 강재를 이용하는 광범위한 비관세장벽을 관련 업계가 함께 높여야만 한다. 저성장 기조에도 건설, 투자는 이루어진다. 문제는 빌딩, 아파트, 공장, 도로 등 인프라구축 등에 원가절감 등을 이유로 중국산 등 저가의 수입제품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등에서는 최대한 자국 철강을 위해 표준품셈, 주요 설계기준 등 보이지 않는 내부규칙을 이용하여 자국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교묘하게 장벽을 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각국 모두 대문을 잠그는 데 우리만 열어두는 것은 어리석다. 국내산업의 쌀인 철강이 정상 작동하여야만 여타 기계, 금속, 자동차 등도 상호 간에 동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철강업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서야만 한다.그리고 철강과 수요산업 간 전략적 제휴도 시급하다. 그동안 철강업계는 철강재를 만들어 놓기만 하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전방수요업계가 자신에게 적합하게 다시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하지만 독점적 공급자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손이 가는 고가의 국산 철강재를 사용할 수요자는 없다. 이제는 장사꾼처럼 고객이 어디에, 무슨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지까지 알아서 입에 떠먹여 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그들의 신제품에 적합한 소재를 맞춤 제공하여 두 업체가 함께 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적 연대를 확대해야만 한다.앞으로도 세계의 정치지도는 바뀔 것이고 그 변화의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의 수출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포항 철강업계가 앞으로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외충격에서도 흡수 가능한 내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국내 수요 산업과의 끈끈하고 질긴 공급망의 치밀한 연결을 이어나가야만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30

맥문동 앞에서 仁을 이루다

해가 지기 전 황성공원 맥문동 군락지를 찾아갔다. 기와가 늠름한 시립도서관 앞에 주차를 하고 산책로로 걸어 들어갔다. 수백 년 된 나무들과 굴곡진 모습의 소나무들 사이로 남은 햇살이 옆으로 드러눕는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 사이로 빛내림이 환상적이다. 그 햇살을 비껴 받은 보랏빛 자태가 곱다.여름의 마지막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보랏빛 맥문동이 8월의 경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것은 맥문동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묵직한 무게감의 굽은 소나무가 산책로 사이를 채우고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더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바람이 불 때는 맥문동이 향기를 내뿜은 듯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황성공원 맥문동 군락지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노을 무렵 방문하면 좋다. 한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고, 사진을 찍기에도 훨씬 좋다. 새벽녘 물안개가 드리워진 모습을 찍으면 금상첨화겠지만 매일 새벽 찾아가도 몇 번 만나기 힘든 장면이다.비스듬히 보랏빛 융단 위로 솟은 소나무가 사람 인(人)자 형상이다.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한 성인들의 말을 대변하듯 굵은 소나무들이 서 있다. 맥문동 군락지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으면 심신이 안정되고 저절로 힐링이 되는 이유는 땡볕아래 꽃만 있어서는 느낄 수 없다. 소나무가 하는 역할이 큰 것이다.첫 날은 오래 사귄 벗과 그 꽃길에 들어섰다. 며칠 지나 두 번째로 갈 때는 새로 사귄 벗들과 함께였다. 친구들과 꽃에 취하고 저녁 어스름에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취해 꽃길을 거닐었다. 사람 둘이 만나서 친구가 되면 仁(인)이 된다. 仁자는 ‘어질다’나 ‘자애롭다’, ‘인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친구가 되어야지만 어질고 인자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이다.황성공원은 원래 신라시대 화랑들의 훈련장이었다. 젊은 청년들이 만나 친구가 되어 호연지기를 키우던 곳이었다. 지금은 경주 사람들의 휴식처이다. 산책로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 운동기구에 앉아 몸을 단련하는 사람,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가족들로 늘 수런거린다. 그 위로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이팝나무·회나무·떡갈나무·살구나무·향나무·상수리나무가 우거져 다람쥐와 청설모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쉽게 만난다.호림정 뒤로 솟아 있는 동산 위에는 높이 16m의 김유신 장군 동상이 서 있다. 공원 안에는 경주실내체육관, 시립도서관, 공설운동장, 충혼탑, 박목월 시비, 국궁(國弓) 궁도장 호림정 등이 있다. 2년에 한 번씩 짝수 해의 10월 초순에 이곳에서 신라문화제가 열리며, 공설운동장에서는 매년 동아마라톤대회가 열린다.경주 황성공원은 이제 전국 최고의 맥문동 성지가 됐다. 2015년부터 심은 맥문동이 약 1만5000㎡에 이른다. 맥문동은 여름철 산과 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길 가다 보면 한두 포기 띄엄띄엄 꽃이 피어 있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맥문동이 군락지를 이루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백합과에 속하며 늘 푸른 여러해살이 식물이다.김순희수필가높이는 20~30cm 정도 자란다. 꽃말도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좋은 ‘기쁨의 연속’이다. 맥문동이란 이름은 뿌리의 굵은 부분이 보리와 비슷하다 하여 맥문(麥門)이라 하고, 겨울을 이겨낸다 하여 동(冬)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잎이 난(蘭) 모양이며 뿌리는 한약재로 가래, 기침 등에 사용된다.가을에 접어들면서 보랏빛 꽃은 눈동자가 까만 열매로 변신한다. 꽃대마다 다닥다닥 붙은 구슬이 또한 볼거리이다. 꽃말처럼 여름부터 가을까지 연속적으로 기쁨을 주는 존재이다. 그늘에서 잘 자라는 본성 때문에 둥치가 굵은 소나무와 궁합이 딱 맞은 듯하다.보랏빛 꽃물결에 흠뻑 젖었다가 숲을 빠져나왔다. 화랑이 거닐던 그 숲에서 좋은 기운을 받았더니 친구들의 얼굴에 보랏빛 웃음이 활짝 피었다. 仁(인)을 이루었다.

2020-08-30

경각심 늦추지 않고 자기주도 방역에 만전 기해야

이강덕포항시장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발생한 이후로 전 국민은 답답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인 것처럼 아득하기는 하지만 ‘코로나19’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년 전의 지금은 푸른 숲이 우거져 나무의 그늘이 깊어지는 자연을 찾아 막바지 여름 휴가철을 즐기던 시기였다.‘코로나19’로 인해 ‘뉴노멀’(new normal)과 ‘비대면’(untact)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했고, 일상에서 마스크 착용, 꼼꼼히 손 씻기, 생활 속 거리두기를 비롯한 개인위생수칙의 철저한 준수를 통한 자기주도 방역의 중요성도 강조되기 시작했다. 밀집(密集), 밀접(密接), 밀폐(密閉)와 같은 3밀(密)을 멀리하면서 정(情)을 기반으로 살았던 우리의 삶이 분명 다른 세계를 맞고 있다.그동안 집단감염 발생 건수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포항시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민·관 합동으로 감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대책반을 구성·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의 확산 차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기본적으로 모임과 행사를 개최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발열체크, 출입명부 작성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조건하에, 실내행사는 50명 미만으로, 실외행사는 100명 미만으로 제한했고, 불요불급(不要不急)하지 않은 외출과 모임, 다중이용시설 출입은 자제하도록 했다.특히 고위험시설과 위험도가 높은 다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핵심방역 수칙을 의무화하고 수시 현장점검을 통해 준수사항의 이행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위반할 시에는 고발 조치 및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입원·치료비 및 방역비 손해배상(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다.또한 교육지원청과의 협력을 통해 학생들의 밀집도를 최소화해 안전한 등교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지역 대학의 경우 해외 유학생과 수도권 등 타지역 출신 학생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노인요양시설과 생활복지시설, 요양병원, 정신과병원 등 집단감염 4대 취약시설 역시 외부인 출입통제와 호흡기 환자에 대해 별도로 격리 조치하는 등 집단감염을 차단하고자 집중관리에 나섰다.이와 함께 불특정 다수가 접촉하는 대중교통 및 카페·음식점 등에 방역컨설팅단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예방지침 이행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고, 의료기관별로 감염병 담당자를 지정해 포항시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코로나19’ 모니터링도 한층 강화했다.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가을철을 앞두고 ‘코로나19’의 대유행을 대비해 감염병 전담병원 운영과 함께 격리병상 및 생활치료센터 추가 확보, 민·관 합동 통합선별진료소 설치, 비상용 마스크 및 손소독제 구입 등 ‘코로나19’ 신속 대응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이처럼 지금 우리는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모두에게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만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모두 다 사라지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기게 하는 병(病)이 ‘코로나19’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멀리하는 병, ‘코로나19’. 사회적인 거리를 두더라도 인간적인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무엇보다 스스로 위생안전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자기주도적인 방역이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예방이라고 확신한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서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생활수칙을 준수하는 것만이 최고의 방역대책인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에 의한 봉쇄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동안 우리는 일상이 송두리째 막혀버리고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격려하고 배려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감염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원, 그리고 자신과 싸워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더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태’라고 표현할 만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중한 상황을 만들어버린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숨어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속에서도 성숙한 시민의식과 견고한 방역체계 구축을 통해 그동안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희망의 싹을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이다.

2020-08-30

가을이 온다

김병래시조시인처서 지난 들판에 일제히 벼가 팬다. 이곳은 다행히 홍수 비해가 없어 가을 태풍만 무사히 넘기면 풍년이 들 것이다. 작년 가을에는 벼가 익을 때쯤 두 차례나 태풍이 와서 벼가 눕거나 물에 잠겨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 그래도 식량 수급에 큰 지장이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엔 그만큼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옛날에는 가뭄이나 홍수로 농사를 망치게 되면 굶어 죽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풍년이 들면 배불리 먹고 흉년이 들면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 농경사회 백성들의 애환이었다. 그러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행여 하늘이 노할 짓은 삼가는 삶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서 웬만큼 가뭄이나 홍수가 나도 농사를 아주 망치지는 않는다. 이 들녘만 하더라도 인근에 제법 큰 저수가 있고 들판 곳곳에 관정을 뚫어 놓아 지하수를 퍼 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고나 할까.어린 시절에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은 벼가 패는 들판을 바라보는 감회가 무덤덤할 수 없을 것이다. 배를 곯아본 사람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다행한 일이 없다는 걸 잘 안다. 불치의 병이나 큰 사고를 당한 경우가 아니라면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족할 조건이 된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10억이 넘는 인구가 기아에 허덕이거나 아사하는 실정이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자원조건이 나은데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나라도 많다고 하니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얼마나 다행하고 자부심 가질 일인가.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의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더럽고 게으른 나라 중 하나였다고 한다. 민족의 본성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당파싸움에다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백성들은 잘 살아 보려는 희망도 의욕도 잃어버린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통째로 남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식민지가 된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친일파 타령을 하는 것도 같잖은 정치적 수작일 뿐이다.올해도 북한의 홍수피해가 심각한 것 같다. 가뜩이나 식량난이 극심한데 곡창지대가 침수되어 또다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핵폭탄을 끌어안고 백성들을 사지로 몰고 가는 김정은 일당에 대한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포악한 독재자는 어떻게든 제거하는 수밖에 달리는 방도가 없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할 수는 없다면, 암암리에 김일성 일가의 마수(魔手)를 종식시키는 일에 모든 지혜와 역량을 다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이 정권은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처럼 거꾸로만 가고 있다. 저들의 이념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이나 인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김일성 일족의 체제유지를 돕지 못해 안달을 하는 꼴이다. 머지않아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겠지만, 그 때까지 기다리기엔 북녘 동포들의 형편이 너무 참담하고 절박하다. 속절없이 또 가을이 오고 있다.

2020-08-27

포항과 서울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포항의 의대 유치 운동으로 ‘포항과 서울’의 도시 인프라와 미래지향적 관점을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포항에 의과대학을 세우는 일이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경북 지역은 전국 평균 의사 수가 서울의 반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료 서비스라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된다.그런 반면, 포스텍은 과학기술 인용 논문 수 등으로 국내 최강이다. 한국의 고교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대학중 하나이다. 과학기술 연구의 가장 중요한 국내 유일의 방사광 가속기도 포항에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의료연구의 많은 부분이 가속기에 의존하고 있다. 도시 기반 인프라는 부족한데 최첨단의 연구시설과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포항의 실정이다.필자가 90년대 썼던 칼럼들을 한번 들추어 보았다. 90년대 언론들은 포스텍과 서울공대를 비교하는 보도를 쏟아내었는데, 사실상 두 대학과 두 도시를 비교하는 것은 그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구는 20배,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인프라 면에서 앞서는 서울이었다. 그러나 포항은 서울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 간의 싸움처럼 보였다. 포스텍이 “지역에 있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었고 포스텍은 다윗이 들고 있는 물맷돌의 역할을 했다. 사실상 포항의 도전은 지역의 세계화라는 선진국형 개념 정착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결국 한국 전체를 위한다는 점에서 골리앗인 서울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러기에 포항의 도전은 엄격히 말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보다 훨씬 더 명분이 강한 도전장이다. 다윗의 물맷돌이 힘을 발휘하여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다고 한다.포항의 한 개 대학이 서울대라는 골리앗에 도전한 것처럼 포항은 서울에 도전하기 위한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인프라의 확충과 경쟁력이다.포항의 발전은 한국 지역 균형발전의 시금석이 돼 왔다. 포스코의 등장으로 산업화 분산, 포스텍으로 엘리트 대학의 지역 분산 등을 실천하였다. 이제 의과대학 신설과 의료 기반의 확충으로 의료서비스의 포항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필요한 모든 인프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의료 인프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필자는 포항에 도서관겸 조그만 방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너는 언제까지 경상도에 살래?” 친구들이 웃으면서 묻는다. 그들의 눈에는 퇴임 후에도 경상도에 드나들고 있는 필자가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다.세계화의 전제 하에서 각 지역은 각 지역에 대한 강한 긍지를 가지고 지역별 특성을 강조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삶이 중요하다. 그리고 각 지역은 세계로 약진해야 한다. 더 이상 지방은 지방이 아니다. 한국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핵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포항의 서울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진행형을 뒷받침하는 것은 도시 인프라이고 그리고 의대의 신설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2020-08-27

코로나 서울을 다시 사는 법

광복절 광화문 집회 이후 서울은 온통 ‘코로나밭’이 된 것 같다. 마침 한동안 하루 확진자 수가 많이 줄어들어 마음도 많이 풀린 참이었다. 은평구에 확진자가 심심찮게 나오는 걸 알면서도 몇 사람이 모여 연서시장에서 저녁 먹고 무지개 호프라는 곳에서 2차까지 하기도 했다. 아무리 코로나 시절이라고, 어떻게 좋은 사람들도 안 만나고 사나?학교도 그런 생각이었다. 방학마다 같은 과 교수들끼리 가는 학사협의회라고, 1박 2일도 가고, 한나절도 가는 행사가 있었다. 학과 일 의논도 하고 친목도 다지자는 것이다. 한동안 코로나가 잠잠했으므로 강화도 함허동천 같은 곳이면 조용하니 같은 사람들끼리 제법 분위기도 좋을 것 같았다. 하필 예정된 날짜 사나흘 전부터 그 난리가 없다. 하루 1, 2백 명도 아니고 3백명 넘게 확진자가 나오는 판에, 감염 경로조차 알 수 없는 환자들이 우후죽순이다. 종교집회다, 태극기 집회다 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 동안 꽤나 안심하고 지내온 탓도 크리라. 결국은 강화도 나들이는 엄두도 못냈다. 당장 코앞에 닥친 졸업식마저 그냥 넘겨야 할 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티비에서는 연일 코로나 후유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한다. 낫는다고 다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당장 곧 졸업식인데, 정식 졸업식은 꿈도 못 꿀 상황. 급한 마음에 기념품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텅 빈 마음들에 보상이라도 될까. 마침 학과장이라는 직책이랍시고 앞으로 닥칠 2학기가 걱정이 앞선다. ‘예술주간’이라고 학생들 시낭송회 준비가 한창인데, 이것도 예외 없이 웹으로만 ‘공연’할 수 있다. 올해 입학한 학생들은 캠퍼스 구경도 변변히 해 본 것 없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생도 달라 보인다. 요즘 내 건강상태라면 코로나 걸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황천길로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상황이다. 25년 ‘글쟁이’ 생활에 잃은 것은 건강이요, 얻은 것은 죽을 때까지 이 길을 놓지 않으리라는 일념뿐.오늘은 또 무슨 태풍 ‘바비’라던가? 이름은 귀여운데, 그렇게 바람이 셀 수 없다 한다. 그렇다고 코로나 쓸어갈 것도 아니고. 태풍 예보 속에서 일찍 집으로 돌아와 마음 차분히 가라앉혀 본다. 이런 때니 더는 돌아다니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밀린 글이며, 논문이며, 시 한 편이라도 정성을 들이자.한밤이 되자 안 듣던 고전음악까지 들어본다. 본 윌리엄스의 ‘토마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오랜만에 유튜브로 듣는 이 악곡은 모던시대에 영국적 전통을 되살린 것이라고 했다. 앞서 가는 것보다 깊이 침잠하는 것이 오래 가는 것이라는 뜻일까. 장려한 음악 속에서 옛날 소설 ‘몽유록’들을 펼친다. 오늘 단재 신채호와 관련해서 다 못 푼 문제다. ‘원생몽유록’ 속에 무슨 해답이 있을 것도 같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27

질책에 답하는 지도자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한 조선시대 상소문 형식의 청원글이 화제다. 대통령과 측근 참모들을 통렬하게 질타하는 이 글에 대한 반응 역시 찬반양론으로 나뉘었다. 원고지로 약 70매에 달하는 ‘시무7조’ 청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청원인은 코로나19로 적지 않은 사람이 죽고, 이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서민들의 삶이 더욱 힘겨워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적시한 뒤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제 당파와 제 이익만 챙기며 폐하의 눈과 귀를 흐리고 병마와 증세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며 시무 7조를 고한다고 밝혔다.특히 이 글이 청와대 게시판에 제대로 노출되지 않자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일부러 비공개 처리를 한 것 아니냐는 은폐의혹도 나왔으나, 청와대는 “명예훼손 성격의 청원이나 중복청원 등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작년부터 100명 이상의 사전동의를 받은 글만 내부 검토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지난 12일 작성된 이 글에는 27일 오후 4시 현재 9만여 명이 동의했으나 게시판에는 공개처리가 돼 있지 않다. 게시물을 보려면 연결주소(URL)를 직접 입력해야 한다. 청원인은 이 글에서 “세금을 감하라”를 비롯해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는 정책을 펼치라”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는 외교에 임하라”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라” “헌법의 가치를 지키라” “스스로 먼저 일신하라” 등을 조언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과 경제정책 전반을 조목조목 비판한 셈이다.집권 초기 겸손하고 온건했던 문 대통령이 진영논리에 휩쓸렸다고 공개비판하는 목소리는 여당 내에서도 터져나왔다. 여당 내 쓴소리 4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금태섭 전 의원은 27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국사회의 진영논리와 편가르기의 폐해를 언급한 뒤 진영논리를 부추긴 행위를 자제하라는 경고를 않은 문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쐈다. 그는 “지도자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그 자체가 메시지”라며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정권 초기 반대의견에 관대할 것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권위주의적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해외에서도 제기됐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에 대해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 진보통치자들이 발산한 내면의 권위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임자로 나선 진보진영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보다 평등하고 개방적이며 이견에 관대할 것을 약속했다. 이런 좋은 의도가 시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코노미스트는 기사 말미에 “세종대왕의 1425년 어록에 글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오늘 우리는 질책에 답하는 지도자가 그립다.

2020-08-27

마스크의 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을 하는 마당에도 미국인들은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다. 왜 미국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에 이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일부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미국이 가진 문화의 특성으로 해석했다.미국은 집회나 시위에 복면을 착용해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는 것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이 시행되는 나라다. 우리도 과격시위와 관련 몇 차례 복면금지법이 국회에서 발의 됐으나 표현의 자유와 인권침해 논란으로 법제화 되는데 실패했다.미국에서는 남의 땅에 별 생각없이 마스크 차림으로 들어갔다가 강도로 오인받아 총격사고가 벌어진 일이 종종 있다. 지난 5월에는 미시간주 한 상점의 경비원이 고객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다 총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미국 사람들은 눈 맞춤이나 얼굴 표정을 중시하는 사회적 관념이 있어 마스크 착용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마스크의 역사는 오래됐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이미 마스크를 쓴 기록이 있다. 14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번진 흑사병에 대응키 위해 새부리 같은 기괴한 마스크를 의사들이 사용한 적도 있다. 1918년 미국 시카코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퍼진 스페인 독감 때도 마스크가 가장 훌륭한 대응 수단으로 동원됐다.코로나19가 또다시 대유행 조짐이다. 학수고대하는 백신 개발은 기약이 없다. 지금 상태에선 마스크가 곧 백신이다. 외신들은 한국의 파주 스타벅스점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나왔음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했던 직원들은 감염을 면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마스크 착용의 유용성을 부각했다. 의료계는 코로나 백신이 개발된 데도 100%의 보장은 어렵다고 한다. 마스크 위력에 감사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27

아버지가 낚은 사랑

정미영수필가이른 새벽, 흥해 용연지에 도착했다.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해가 물속에 풀어지자, 졸고 있던 물고기들이 햇귀와 타전을 시작했다. 물빛 그리움 하나 가슴에 구겨 넣고 찾아왔더니, 내 마음에 곰비임비 막혀 있던 응어리들이 무게를 덜어냈다.수풀 사이에서 한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속을 응시한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어 조심스레 가까이 가보았다. 그물망에 작은 물고기 서너 마리가 파닥거렸다. 은빛 물고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검게 탄 얼굴로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붕어를 낚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오롯이 겹쳐졌다.어느 해 여름, 어머니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어린 남매를 건사하고 병수발은 물론 집안일까지 모두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즈음 아버지의 낚시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따라 간간히 절에 다녔던 아버지는 이전까지 낚시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술한 어머니에게 참붕어가 약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곧장 가느다란 낚싯대를 빌려왔다.나는 펄떡이는 노르스름한 붕어를 아버지가 직접 낚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버지가 달랑 낚싯대 하나만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날이었다. 나도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위험해서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의 손을 얼른 잡았다.낚시터에 다다랐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세 번 지나자 제법 넓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저수지는 한가로웠다. 산그늘에 물빛이 더욱 짙어 보이는 곳이 있었고, 햇살이 비쳐 물비늘이 반짝이는 곳도 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 몇 장이 물살에 일렁거렸다.아버지는 나에게 낚시를 할 때는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신신당부의 말도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왜 떠들면 안 되느냐고, 물 위에 떠다니는 저 새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다가 지치면 동요를 불렀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알고 있는 노래를 다 부르고, 다른 노래가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불렀다.그때쯤이면 저수지는 다시 고요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따라 아버지와 나뿐이었다. 나는 소금쟁이가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이따금 나에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묵묵히 찌를 바라보며 낚시질만 했다.한참 지났다. 아버지는 작은 물고기는 물에 도로 놓아주고, 손바닥 크기의 붕어들만 집에 가져왔다. 붕어를 손질해서 찜통에 넣고 푹 고았다. 가스 불 옆에서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행여 넘칠세라 정성을 다했다. 비린내가 나면 어머니가 먹지 못할까 봐 참기름을 듬뿍 넣고 들깨가루도 넣었다.“참붕어 국물은 약이라고 하더라. 식기 전에 후딱 마셔라.”“부처님을 믿는데….”“내가 붕어 잡기 전에 부처님께 약속했다. 당신 약으로만 쓴다고.”핼쑥한 얼굴의 어머니는 뜨거운 국물을 쉬엄쉬엄 마셨다. 아버지의 낚시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집안에는 붕어 고는 진한 냄새가 배다시피 했다. 그 덕분인지 어머니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다.저 낚시꾼도 예전의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위해 고기를 잡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재미 삼아 낚시질을 하는가. 가까운 나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간 저수지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그 때 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흘러가는 구름에 근심을 실어 보내고, 불어오는 바람에 고단함을 딸려 보냈을까? 나는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아버지와 나만의 또 다른 추억 조각들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퇴적된 기억들이 한순간 튀어 올라 수평선 밖 허공을 맴돌았다. 순간 내 가슴 가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고였다.용연지의 바람이 내 마음을 눈치 챈 듯 잔잔하게 윤슬을 일으키며 흘렀다.

2020-08-26

다래담배집

오래 전, 은사님 개인전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빛바랜 담배 간판이 흰 벽에 걸려 있고, 처마 아래엔 노란 벤치가 놓여 있었지요. 휘돌아선 골목 어디선가 장정 한둘이 담배를 사러 나올 것만 같은 낯익은 풍경이었습니다. 제 어린 날을 상기시키는 담배포가 있는 풍경이었지요.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기억의 이동선이 천천히 뒤로 되감기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아련한 감동과 먹먹함에 오래 그림 앞에 머물렀습니다.시골에 살 때 우리집은 담배포를 했습니다. 담배와 잡화를 파는 구멍가게였지요. 가게는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본채와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다래 담배집. ‘달’이 뜨고 ‘내’가 흐르는 ‘다래’라는 마을 이름을 따라 사람들은 가게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식구들끼리는 살림집인 본채와 구분하기 위해 ‘점빵’이라고 불렀습니다. 전매청에서 허가를 내주는 담배포는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이십 리 안팎에 담배포가 하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담배 가게가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자연스레 다래 담배집은 이웃 동네끼리의 정보 집합소 역할을 했습니다. 웬만한 소식은 다래 담배집에서 퍼졌다가 다시 모이곤 했습니다.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담배포는 그야말로 불이 났습니다. 아직 십 리나 남은 읍내 장터, 신작로를 지나던 장꾼들은 입 동무라도 삼으려고 담배 한 두 갑씩을 사갔습니다. 귀가하는 해거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보루 째 사들고 가곤 했습니다. 새마을, 청자, 태양, 거북선 그리고 엽초.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담배 이름들을 사람들은 부지런히도 찾았습니다. 제 눈에는 라면땅, 크라운 산도, 눈깔사탕이 더 맛있어 뵈는데 어른들은 그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네모난 곽에 스무 개씩 하얀 막대처럼 담긴 담배만을 원했습니다. 어린 제게 그건 불가사의 세계였습니다. 호기심에 골방 장롱에 숨어들어 담뱃불을 붙여 본 것은 담배포집 딸로서 당연히 겪은 에피소드이긴 합니다. 글로 회상할 만큼 극적인 내용이 아닌 게 아쉽다고나 할까요.산골에 추위가 온다는 신호는 담배포 간판 흔들리는 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내내 그 소리는 크레센도로 변주되곤 했습니다. 세찬 바람 골을 따라 담배 간판은 쇳소리를 내며 울부짖었습니다. 휘익휘익 피리릭피리릭. 무섭고 떨리는 소리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론 먼 곳의 피리소리 같은 특이한 내음이 묻어나곤 했습니다. 익숙한 공포와 생경한 음색이 만들어내는 그 소리에 한껏 귀가 쏠리곤 했습니다. 어린 귀에 박히는 복잡 미묘하고도 이국적인 그 소리가 싫지는 않았습니다.가을걷이를 끝낸 남정네들은 담배포가 있는 가겟방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좁았을 그 공간이 사랑방 구실을 했습니다. 무료한 겨울이 어서 빨리 지나기를 바라면서 장정들은 화투장을 두드리고, 장기알을 주고받곤 했습니다. 제 귀는 어른들의 그런 소요보다 담배간판 흔들리는 소리에 고정되곤 했습니다. 공포와 매혹이 공존하는 칼바람 연주 속에서 지금으로 치자면 얼음 왕국 같은 조금은 차갑고 엉뚱한 동화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지요. 아버지 등 곁에 꼽사리로 끼어 담배 간판 소리에 귀를 열어놓고 있다 보면 어느 새 가겟방은 자욱한 담배연기로 차오르곤 했습니다.마을은 댐으로 수몰될 예정이었고, 너무 이른 나이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에 버려진 저는 한동안 우리집 담배포가 몹시 그리웠습니다. 그 겨울, 담배 연기 가득했던 점빵의 번잡스러움도, 빈둥거리거나 바지런했던 마을 장정들의 거친 숨소리도 모두 떠올랐습니다. 북풍이 지날 때마다 쇳소리를 내며 울부짖다 이내 피리 소리로 바뀌던 간판 소리는 그 리듬까지 기억날 정도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옛날 물건들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만납니다. 그곳에서 추억 서린 청자, 새마을, 거북선 같은 담배를 만나면 슬그머니 미소가 그려집니다. 드물게 70년대 풍 붉은 담배포 간판이라도 눈에 띄면 옛친구를 만난 것 같은 아련함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곤 합니다. 이 글을 정리하다 말고 담배포가 있던 신작로 풍경이 궁금했습니다.오랜만에 고향마을에 들렀습니다. 옛사람 떠난 자리에 댐 물만 가득합니다. 댐 어귀를 서성입니다. 선착장 오른쪽으로 집터 위치를 가늠해 봅니다. 늪으로 변한 저 땅 어디쯤에 신작로와 담배포와 살림집이 있었지요. 만수위가 되면 그 늪조차 물속에 잠겨들곤 한다지요. 먼발치로 옛집을 떠올리며 그 겨울 담배 간판의 시간으로 다시 연결합니다. 뒷산을 넘어온 황소바람이 담벼락을 휘돌아 간판을 깨웁니다. 이내 담배, 라는 빨간 글씨가 겹쳐지며 쇠 간판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공포와 매혹이 연주하던 그 유년의 무대로 서서히 빠져듭니다.

2020-08-26

위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배에 동력이 발명되기 전에 바다 위에 모든 배는 바람에 의해 항해해야 했기에 초창기 돛단배는 돛의 방향이 배와 수직이었습니다. 따라서 순풍이 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역풍을 맞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원래 돛의 방향을 바람과 수평 방향으로 바꾸고 제내커(Gennaker)라는 보조 돛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돛의 크기가 커지더라도 조절이 쉬워졌고 더 많은 바람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이전보다 빠르게 항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더 많은 지역으로 이동이 필요해지고 동시에 왕복 이동을 위해 역풍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습니다.이때 등장한 것이 지브세일(Jib Sail)입니다. 지브세일은 역풍이 불 때 제내커대신 사용되는 작고 팽팽한 삼각형 모양의 돛입니다. 돛단배가 지브세일을 이용하여 역풍에도 순항하는 원리는 비행기 날개에서 양력이 발생하여 비행기가 뜨게 되는 원리와 동일합니다. 비행기 날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돛의 주위에 공기가 흐를 때 돛을 경계로 하여 형성되는 양력을 받아 순항할 수 있습니다.바람이 유일한 동력원이라 변화무쌍한 역풍 앞에서는 더 이상 전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여기는 돛단배이지만, 이러한 역풍 활용 덕분에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식 요트로까지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역풍을 활용하려 하지 않고 역풍을 피하고자 역풍이 불지 않을 때나 적게 부는 지역에서만 사용되어졌다면 돛단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자리에 불쑥 다가오는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날 때 불확실성을 회피하거나 관리하는 데만 주력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1980년대 크라이슬러를 파산에서 구해내고 위기관리와 변화의 심벌로 떠올랐던 리 아이어코카는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장된 위대한 기회를 항상 접하며 산다”라고 말했습니다.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불확실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의 결단력’입니다. 위기야말로 자신의 리더십을 테스트해 볼 좋은 기회입니다. 위기를 직면해 뚫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리더들의 숙명입니다. 위기 가운데 있는 돛단배이지만 당당히 올라 자신 있게 ‘호이스트(돛을 바꿀 때 쓰는 신호)!’를 외쳐봅시다.2020년은 너무나 인간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일들로 인해 자포자기하고픈 일들이 있을 수 있지만 역풍도 감사하며 전진하고 도전합시다.

2020-08-26

온라인 수업 시스템 수준은 (上)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절기가 입추를 거쳐 처서를 지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의 마음은 보통 “벌써”와 “아직”으로 갈린다. 그래도 예전에는 “벌써”든 “아직”이든 시간 흐름을 판단하고, 표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건 시간 자체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시간에 대한 느낌이다. 계절감이라는 말이 지금은 사치(奢侈)처럼 들리지만, 사람들은 계절감이 있었기에 그나마 팍팍한 세상을 살아냈다. 지금이 더 힘든 이유는 바로 계절이 마스크에 가려져 우리 마음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코로나19에 계절감을 잃은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은 사람들이 망쳐 놓은 절기를 지키느라 부단히 애쓰고 있다. 자연의 노력은 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분명 소리가 바뀌었다. 매미 소리만 가득하던 자연에 귀뚜라미가 소리를 보태기 시작했다. 밤이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처서(處暑) 관련 속담을 이해할 수 있다.최근 또 뚜렷하게 바뀐 것이 있다. 그것은 기온이다. 아직 낮에는 햇살이 강하지만, 밤에는 확실히 열의 농도가 달라졌다. 비록 간간이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실감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처서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다 계절과 생활은 밀접하다는 생각을 확인하는 속담을 찾았다.“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 리 백석을 감한다.”이제 시험에서나 간혹 나올 법한 속담이지만 선조들의 빅데이터 활용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문장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런데 언론에서 연일 코로나19 재확산 소식과 함께 전하는 초강력 태풍 바비 소식에 감탄사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국난(國難) 상황이다. 지금 시기에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교육이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이 나라에 교육에는 다른 것은 다 있다. 엄청난 예산, 국민적 관심, 세상에서 가장 잘난 교사와 교육 관료 등! 그런데 희망은 없다.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다. 그러면 교실은 또 문을 닫아야 한다. 이미 수도권 등에서는 고3을 제외한 초중고 모든 학생에 대한 원격 수업을 발표하였다. 과연 지금 하는 온라인 수업을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원격 수업은 진급과 진학, 그리고 시험을 위한 교육 행정 편의 중심의 전시성 정책밖에 안 된다.그럼 온라인 수업이 과제 중심형 수업으로 굳어진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 수업 시스템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을 처음 시행한 지난 4월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있을까? 없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개발하자고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정말 요지부동이다. 이럴 거면 정말 학교가 왜 필요하나? 그냥 시험을 위한 문제 은행이나 만들어서 학생들보고 집에서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고, 특정일에 학교에 와서 시험만 치라고 하면 되지!학교 소멸 전에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2020-08-26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8·15 광복절을 빙자해서 반사회적인 ‘건국절’ 행사가 거행됐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부르는 일군의 무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전광훈 목사를 선봉에 내세워 문재인 독재 운운하면서 나라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경찰 추산으로 2만, 주최 측 추산 4만이니까, 대략 3만을 참가자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대개 60대 이상의 나이든 축들이 성조기와 태극기, 게다가 일장기에 욱일기까지 들고 ‘문재인 아웃’을 외쳤다. 참으로 해괴한 풍경이다.광복절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300만에 이르는 활동가들의 피어린 독립운동을 발판으로 35년 만에 얻어낸 기쁜 날이다. 가슴 벅찬 감동의 날에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들어대며 현 정부를 독재라고 외쳐댄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들어댄 것은 일제 강점기의 토착 왜구들조차 꿈꾸지 못한 짓 아닌가. 그런 치 떨리는 짓을 당당하게 해대는 저들의 혈관에는 어느 나라 국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이른바 ‘광복절 집회’는 소위 보수 기독교 계열 종교인들과 전·현직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극우 유튜버가 합세해서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면면은 다음과 같다. 차명진, 홍문표, 민경욱, 김진태, 박찬종, 김경재 등 전·현직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전 자유한국당 당 대표 법무특보 강연재,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신혜식 극우 유투버 등등.문제는 또 있다. 코로나19의 전국적이고 전방위적인 전파에 있다. 사랑제일교회와 관련한 코로나19 확진자가 875명에 달하는 상황인데도 일부 신도의 도주와 검거, 검진 거부에서 나타난 반사회적인 행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미래통합당은 8월 16일 대변인 명의의 구두 논평에서 “정부-여당은 광화문 인근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람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국민이 가장 우려한 코로나19 확산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 방역에 동참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한쪽에서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뙤약볕 내리쬐는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다른 한편에서는 극우적인 행태를 두둔하는 모순을 보인 셈이다.권력을 잡으려면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건전보수에서 극우까지 모두 포괄하는 보수정당은 지구상에 없다. 그것은 극좌에서 건전진보까지 전부 포괄하는 진보정당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권력을 얻으려면 무엇이 급선무고, 무엇이 해서는 안 될 것인지 앞뒤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양손에 떡 들고 두 개 다 먹으려다가는 모두 잃기 마련이다. 대상을 정확히 선별하여 제대로 대응하고 행동해야 한다.지금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전대미문의 난감한 상황에서도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행태는 국민의 비난을 받기 쉽다는 점, 그것을 간과하지 않기 바란다.

2020-08-26

혁신금융 디파이

디파이(De-Fi)는 탈중앙화를 뜻하는 ‘decentralize’와 금융을 의미하는 ‘finance’의 합성어로,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을 일컫는다. 정부나 기업 등 중앙기관의 통제 없이 인터넷 연결만 가능하면 블록체인 기술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즉,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정부나 기업 등 중앙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금융 생태계를 말한다. 디파이는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어도 인터넷 연결만 가능하면 블록체인 기술로 예금은 물론이고 결제, 보험, 투자 등의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디파이는 지난 6월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프로젝트의 인기도가 급상승하면서 고이율을 통한 자금유치로 6월에만 TVL(Total Value Locked)은 9억5천만달러에서 16억8천만달러까지 증가했고, 77.6%의 증가폭을 기록했다. TVL은 디파이 프로젝트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제공되는 가상자산 대출 서비스에 예치된 자산을 나타내는 지수다.디파이는 투자자에게 투명성을 제공해 건전한 금융 시스템을 만들고, 금융 서비스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중개인을 제거해 거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반면 보안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질 주체가 없어 문제다. 실제로 최근 출시 하루만에 4억달러이상의 예치금을 모은 디파이 프로토콜 얌 파이낸스의 경우 치명적인 프로그램 설계오류로 프로젝트 실패를 선언해 159달러까지 올랐던 얌 토큰 가격이 0달러선까지 폭락,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26

지금은 아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답답해 보였다. 경북 안동 시골마을의 내과 의사였던 외할아버지는 늘 같은 모습이었다. 개인병원이었지만 ‘신내과’는 오늘날 동네 보건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랑방 같기도 하였다.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의술 이야기’ 가운데 가장 신통하다 생각했던 한 자락이 있다. ‘전쟁통에도 병원 표식 빨간 십자가를 붙인 앰뷸런스는 폭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을 살리는 자동차이므로.’ 어린 마음에도 의술과 의사를 존경스럽게 여기는 세상의 생각이 느껴졌을까.전쟁 한가운데가 아닌가.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 유엔(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티에레스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도 ‘이미 예견되었던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고 하였다. 뉴욕시장 앤드루 쿠오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싸우고 있는 중’이라 표현했으며, 영국의 보건상 매트 핸콕도 ‘모든 것을 걸고 싸워 이겨야 하는 전쟁’이라 하였다. 위기를 거쳐오면서 보여준 우리 의료진의 노력과 수고가 돋보였다. 그들이 흘리는 땀 덕분에 K-방역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나라의 국격도 한층 향상되었다.어려운 싸움 복판에 들려온 의료계 파업 소식은 충격이다. 국민은 영문도 모르고 어려움을 겪을지도 몰라 혼돈스럽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히는 걸 보며 얼른 판단하기 쉽지않다. 의사를 더 많이 기르면서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생각의 틀은 보이지만, 준비 없이 졸속으로 진행하는 건 위험하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정부도 보다 세심하게 알리고 기획하며 입안했어야 했다.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까지 받은 의료계는 어찌해야 할 것인지. 의료공백은 평시에도 허용할 수 없지만, 오늘같은 전쟁터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다.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국민의 건강이 경각에 달린 오늘,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했으면 한다. 나라가 가진 의료정책상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다음다음 문제가 아닌가. 전문적인 영역에서 심도있는 숙고와 토론으로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여도 탈이 날 터이고 집단행동으로 무엇을 끌어내어도 문제가 아닌가. 한 걸음씩 물러서는 용기를 발휘했으면 한다. 코로나19부터 물리쳐야 한다.의사들을 믿는다. 섣부른 정책 추진이 의료 전반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는 당신들의 진정을 믿는다. 정부를 믿는다. 모자라는 의사숫자를 확충하고 공공의료의 기틀을 세우겠다는 보건당국의 진정을 믿는다.지금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어지러운 판에 혼란만 더할 뿐이 아닌가. 몸도 마음도 지쳤을 국민을 좀 편안하게 해 주시라. 주장으로 부딪힐 게 아니라 정책으로 겨루어 주시라. 행동으로 을러댈 게 아니라 이성으로 맞서 주시라. 의료는 남의 일이 아니라서, 국민도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하시라. K-방역과 K-의료에 대한 신뢰를 믿어주시라.

2020-08-26

유튜브의 이면, 진정성 찾기 위해서는

유튜버 ‘뒷광고’ 논란이 연일 화제다. ‘뒷광고’란 유튜버가 특정 업체로부터 광고 대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지하지 않은 채 자신의 콘텐츠에 상품을 소개, 노출하는 것을 말한다.최근 유명스타일리스트는 유튜브에서 자신이 직접 샀다는 신발을 소개했으나 수천 만 원의 광고비를 받은 제품으로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유명가수도 자신이 직접 샀다는 속옷을 소개했지만 추후 유료 광고임을 정확히 표기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유명 연예인을 시작으로 인기 유튜버와 인플루언서(온라인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 또한 뒷광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줄줄이 드러났다.게임, 먹방, 뷰티, IT, 패션, 수험, 음악,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유튜버들이 사과문, 해명문, 입장문 등을 줄지어 발표했다. 대부분은 유튜브 안에서 구독자들이 쉽게 찾아 읽기 힘든 더보기란이나 고정 댓글을 통해 교묘히 광고나 협찬임을 표기했다. 광고나 협찬의 차이를 몰라 정확히 표기하지 않은 점의 문제도 있었다.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내돈내산(내가 직접 돈주고 산)’을 밝히며 ‘그만큼 믿고 사는 좋은 상품’을 강조했지만, 결국 광고임이 밝혀져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먹방 유튜버 사이에서도 뒷광고는 그들만의 암묵적인 비밀이었다. 지난 8월 1일, 먹방 인기 유튜버인 ‘홍사운드’는 광고주가 전체메일로 유튜버들에게 광고 제안을 전달할 정도로 뒷광고는 만연한 일이라며 폭로했다.이번 뒷광고 논란의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름만 대면 대부분이 알 법한 유명 유튜버들이 뒷광고를 오래전부터 꾸준히 만행했다는 점도 충격이었지만, 처음 뒷광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부분의 유튜버가 ‘자신은 그럴 일이 없다’며 무시를 하거나 댓글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대두되자 계속되는 말의 번복과 사과문 대필 의혹, 잠적 등 태도의 문제가 불거져 더욱 분노와 비판을 받았다.그간 유튜브에선 의료행위나 건강기능식품 관련 광고 등 처벌수위가 높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례가 빈번했다. 의료인이 아닌 개인이 시술을 받는 체험기, 수술 부위 노출, 해당 병원을 조금씩 언급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다수 유튜버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초기 유튜브에 먹방을 알렸던 한 유튜버는 식품 관련 광고를 무분별하게 진행해 논란이 되었고 이후 시청자의 신뢰를 잃어 꾸준히 하락세를 띄고 있다. 이에 대한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의 처벌 기준이 있지만 처벌에 비해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에, 지속적으로 불법이 자행되는 현상을 빚어 논란이 일고 있다.뒷광고를 행한 유튜버들은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드라마나 예능에서 자주 보이는 간접광고(PPL)는 방송법상 방송 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상품을 노출시키는 형태를 광고로 규정하고 있다. 간접광고는 해당 방송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 5를 초과할 수 없고, 화면 크기의 4분의 1을 넘을 수 없으며, 간접광고가 포함되어 있음을 자막으로 표기하여 시청자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철저한 규제를 받는다.그러나 유튜브는 방송이 아닌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된다. 방송법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간접광고’ 규제 또한 받지 않아 사실상 유튜버에 관한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 표시광고법 제3조인 ‘기만적인 표시·광고’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으나, 사업주만을 처벌 대상으로만 하고 있는 모순을 띈다. 이처럼 뒷광고는 만연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언젠가 크게 터져 나올, 누구나 예상 했을 법한 문제였다.오는 9월 1일부터 ‘뒷광고’를 규제하려는 목적으로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안을 시행한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유튜브 콘텐츠에는 게시물 제목이나 영상 시작과 끝 부분에 경제적 대가를 받았다고 표시해야 한다. 해당 문구는 영상 안에서도 반복적으로 잘 보이도록 넣어야 한다. 현재까지는 광고를 의뢰한 광고주만을 처벌이 가능해 어설픈 제재가 아니냐는 문제가 있었지만 다음달부터는 막대한 수익을 얻은 유튜버, 인플루언서를 ‘사업자’로 인정해 처벌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는 지침을 꼼꼼히 확인하여 영상 제작에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시청자와 소비자 또한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SNS의 인플루언서, 그리고 유튜버에 대한 제재가 어떻게 촘촘히 적용될지 지켜보아야 한다.이번 유튜브 뒷광고 사태를 보며, 나는 그간 유튜브에서 느껴온, 한 문장으로 명징할 수 없는 괴이와 이질감을 느꼈다. 뒷광고 폭로가 줄지어 이어지자, 뒷광고 정황이 없는 유튜버의 댓글창에도 ‘뒷광고 하셨어요?’라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어떤 이들은 유료광고 배너, 제목, 더보기란, 댓글을 해당 유튜버가 수정하거나 삭제한 것 같다는 추측글을 거듭 올리며 무작위로 비판을 가했다.뒷광고를 받지 않은 유튜버는 자신의 의혹을 겨우 해명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던 이들은 아무런 책임 없이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유튜버들에게 “뒷광고 했지?”라고 몰아붙인 뒤 ‘아님 말고’식의 의혹제기가 빈번히 나타났다. 근거 없는 루머와 추궁, 무분별한 비난이 난무하며 한 인간에 대한 평가와 잣대뿐인 댓글 창을 읽으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주 가까이 그 말을 마주한 듯 혼란스러웠다.유튜브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유튜브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의 말은 유행어가 되기도 하고 그들이 입은 옷과 신발, 화장품, 먹는 음식이 주목 받기도 한다. 방송연예계나 각 프로그램에서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로 다가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건 1인 방송 안에서 친구이자 자매, 형제, 남매 등 가깝고도 친밀한, 솔직한 모습을 내세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간 티비나 스크린에서 본 연예인이나 배우는 내 이상과 가까운,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 존재라 여겨지는데 비해, 1인 방송안의 유튜버는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고, 소개하고, 소통하려 하기에 언젠가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친구로 느껴지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작년 6~7월 한 달간 교육부가 7500명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직업을 조사한 결과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초등학생 희망 직업 3위에 올랐다. 이는 전문직 의사를 밀어낸 결과였다. 희망직업이 있다고 한 학생들은 그 직업을 고른 이유에 대해 약 50%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약 20%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할 정도로 유튜버에 대한 친밀감과 호감도를 높게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유튜브 속의 광고는 더 자연스럽게, 또 더 정확하게 구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표기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광고를 더 드러낸다던지, 오히려 개그 소재로 사용해 돋보이게 하는 등의 홍보 기법이 눈에 띄고 있다. 이는 광고를 숨기고 자신이 직접 산 것처럼 흉내 내는 것보다 훨씬 호쾌하게 받아들여진다.100만을 훌쩍 뛰어넘는 구독자 수, 팬들과 나누었던 시간과 소통,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의 첫 마음, 그리고 공을 들여 만들었을 동영상은 뒷광고와 함께 전부 삭제되거나 비공개 처리되었다. 정직과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거짓으로 인한 불신은 한순간 소용돌이가 지나간 듯, 홀연히 사라지고 없다.

2020-08-25

나라빚

아르헨티나,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이 경제적으로 망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안다. 포퓰리즘 정치가 나라를 망치게 한 사례로 이미 수없이 거론된 나라들이기 때문이다.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경제대국이다. 1차 세계대전 직전 국내 총생산(GDP)은 유럽의 강국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보다 앞섰다. 1946년 페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과다한 복지비 지출이 국가 재정을 바닥내고 만다. 이 나라는 지금도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의 하나다. 2001년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도 겪었다.정부의 2차 긴급재난지원금이 또다시 화두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때와 마찬가지로 정치권 특히 여당이 적극적이다. 이번에는 야당도 지급에 찬성 쪽이다. 단지 정부 살림을 사는 기획재정부쪽 입장은 신중론이다.1차 때도 기획재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더라도 소득하위 50%이하 가구에만 주자고 했다. 정부 재정과 지원금의 효과를 따져 지급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4·15 총선을 앞둔 가운데 정치권의 주장에 밀려 전 국민에게 11조원의 돈이 풀렸다.코로나19가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만 아직 재난지원금을 거론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성급해 보인다. 상반기 중 우리나라 재정적자는 111조원으로 사상 최악이다. 곳간이 텅 비었다는 얘기다.불가피하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빚을 내더라도 해야겠지만 국민의 세금을 남의 호주머니 돈처럼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의 생각부터 먼저 달라져야 한다. 나라 빚은 다음 세대가 짊어질 부채이자 경제망조의 출발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25

김정은 성격으로 본 통치 스타일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이 정권을 승계한지 벌써 9년이 지났다. 13년간(1990∼2003) 김일성 일가의 요리사였던 후지모리는 일찍부터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을 예고했다. 김정은은 어릴 때 형 정철과의 구슬치기에서도 승부욕이 유별나게 강했다. 그는 이복형 김정남과 친형 김정철을 제치고 아버지의 정권을 세습하였다. 그의 강한 승부욕이 권력승계로 이어졌다. 2011년 김정일의 사망 당시 27세(1984년생)였던 그는 세습 준비기간도 짧았고, 정치 경력 구조도 일천했다. 그의 성격유형과 리더십을 살펴본다.김정은의 성격은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외향적 사고형’이다. 그의 성격은 아버지 김정일의 ‘내향적 감각형’과 매우 대비된다. 외향적 사고형은 추진력이 강하고, 현실적이며 순발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독단적이고, 공격적이며, 충동적인 단점이 있다. 그간의 김정은의 통치 행태는 이를 잘 입증한다. 내향형인 김정일이 행적을 감추고 대중 연설을 피하는데 비해 그는 대중 연설을 즐겨한다. 그의 연설은 김정일의 군중 앞에서의 ‘전 인민군대에 영광 있으라’는 외마디 연설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최근 당 핵심 간부들과 백마 탄 모습으로 눈 내린 백두산 등정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김정은의 외향적 모습 뒤에는 고도로 계산한 사고형 성격이 깔려 있다. 그의 대미, 대남협상에는 북한의 이익이라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북의 대미협상이 자주 지연되는 것도 결코 이와 무관치 않다. 카다피와 후세인의 종말을 목도한 그는 ‘생존’을 위해 핵개발을 선택하였다. 그의 ‘핵·경제 병진 노선’이 현재 북한의 ‘경제 발전 노선’으로 변화된 것도 협상을 위한 불가피한 계산이다. 북한이 하노이에서 트럼프에게 ‘새로운 셈법’을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의 제스처나 유화력 만으로 그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이 겉으로는 통이 큰듯하지만 그의 머리에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그의 성격에는 충동적, 즉흥적이라는 단점도 내재돼 있다. 판문점에서 그는 문 대통령과의 평양냉면 식사 자리에서 ‘이것 멀리서 가져 왔는데’ 하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구먼’하고 즉흥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집권 초기 고모부 장성택까지 무자비하게 처형하였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아무런 진척이 없자 그는 개성의 남북 연락사무소까지 김여정을 통해 폭발해 버렸다. 그는 앞으로도 외향적 사고형의 약점을 노출할 가능성이 많다.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이러한 양면성을 감추고 애민(愛民)정치의 이미지를 부각한다. 대북 제재, 코로나, 수재라는 극한 상황에서 그는 북한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보내고 있다. 농장과 어장을 현지 지도하는 김정은의 자애로운 모습이 노동 신문에 등장한다. 모두가 인민을 지극히 사랑하는 지도자 모습이다. 그의 애민 정치는 김일성의 위민(爲民)정치, 김정일의 인덕(仁德)정치에 버금간다. 봉건시대 군주의 인의(仁義) 정치를 모방한 민심 수습책이다. 최근 김여정에 대한 ‘위임통치’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현대 민주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2020-08-25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카라바조의 바로크 회화

서양미술사에서 바로크는 르네상스에 이어서 나타난 양식으로 1600년경에서 대략 150여 년간 지속되었다. 바로크의 양식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는 카라바조(1573∼1610)이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인데, 북부 이탈리아 카라바조라는 시골마을 출신이기 때문에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다. 어린 시절 롬바르디아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1598년경 로마로 건너와 역사화, 풍속화, 정물화 등 회화의 여러 장르를 기웃거리다 1599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한 대형 작품을 의뢰받으면서 종교적인 주제에 집중한다.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해 그린 세 점의 유화작품 중 ‘그리스도가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은 카라바조의 대표작이자 바로크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공간. 다섯 명의 사내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돈을 세고 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손을 들어 마태를 가리킨다. 위엄 있는 그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마태는 “저 말이십니까?”하고 반문하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마태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던 세리였다. 당시 세리는 악랄하게 세금을 뜯어냈기 때문에 모두가 경멸하던 직업이다. 물질적 탐욕의 대명사이자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초라한 세리 마태를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로 불렀던 것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9장 9절은 이 장면을 고작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지만, 카라바조는 바로크적 상상력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광경으로 재구성하였다.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바로크적 스펙터클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빛이다. 어둠이 지배적인 공간을 강렬하게 침투하는 직선적인 빛은 극적인 명암대비를 만들어내 묘사된 장면에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카라바조의 빛은 공간 전체를 밝히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광원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빛은 그림에 묘사된 인물들을 읽을 수 있도록 시선의 통로를 마련해 준다. 그리스도는 짙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지만 얼굴과 손을 밝혀주는 강한 빛으로 인물의 심리는 물론 그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지나친 빛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인물들의 얼굴을 강하게 비춰주고 있어 이들의 표정을 빠짐없이 읽을 수 있게 해 준다.빛을 통한 명암대비가 그림 전체의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독특한 화면 구성방식이다. 카라바조는 그림 속 장면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구성한다. 협소한 공간에 인물들을 밀집시킴으로써 집중력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감상자들의 시선을 산만하게 만들 수 있는 부차적인 요소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다.카라바조의 회화적 연출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성서가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AD 30년경 중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인물들은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의상을 입고 있다. 이것은 그림에 현재성과 현장성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인데, 성서의 이야기가 마치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가장 바로크적인 요소는 현실의 건축적 공간과 빛을 회화 속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 ‘마태를 부르시는 그리스도’는 콘타렐리 예배당 좌측 벽면을 위해서 그려졌다. 예배당 중앙 상단 부분에는 반원형의 작은 창이 나있고, 그곳으로부터 빛이 들어와 실제로 예배당을 밝힌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화면 우측 상단에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림만 보아서는 그 빛이 어디서 흘러들어오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화가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실제의 빛을 알고 있었고, 그 빛을 그림 속으로 가지고 들어와 현실과 그림,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처럼 정형화되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상식을 뛰어넘는 극적인 방법을 통하여 르네상스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세계이다. /미술사학자 r김석모

2020-08-24

삶의 뒤안길에 부는 바람… 상주 도림사(道林寺)

일명 육산이라 불리는 백원산 국사봉 기슭, 상주 시내가 지척에 보이는 곳에 도림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지만 모두 훼손되어 변변한 법당조차 없는 절을 자용, 탄공, 법연 세 비구니 스님이 재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마을을 지나 비탈길을 오르면 일주문 대신 600여 개의 장독이 먼저 반긴다. 오래된 독에는 건강한 시간들이 익어가며 향수에 젖게 한다. 탄공 주지 스님은 전통 사찰음식의 맥을 잇기 위해 사찰음식과 장 담그기에 열정을 쏟는 분이다.해마다 정월이면 3000장의 메주로 장을 담근다고 하니 그 정성과 규모가 놀랍다. 외부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스님들이 손수 된장과 간장을 빚어 판 수익금으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지금의 불사를 이루었다고 하니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다. 스님들의 정성어린 노동력이 곧 수행이다.절 옆으로는 한양 옛길이란 안내판이 무료하게 서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옛날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앞산의 천년 아미타부처님 와불을 향해 소원을 발원하고 도림사에서 불공을 드리면 그 기돗발이 영험했다고 한다. 그들이 금의환향하여 다시 도림사에 시주를 하였으니 도림사의 위세는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으리라.도림사는 고즈넉한 산중의 정취를 고수하기보다 대중과 소통하는 사찰, 좌선의 수행보다 세상과 하나가 되는 도량을 꿈꾸고 있다. 행여 자본의 위력에 초심을 잃지 않기를, 몸소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대중과 더욱 친숙해지는 멋진 사찰로 거듭나기를 소원하며 나는 경내로 들어선다.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전각들이 산재해 있다. 와불산이 잘 보이는 와불전 앞에 108탑 불사가 눈길을 끈다. 한낮의 열기가 후끈거리는데 어디선가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운이 좋다 생각하고 법당으로 달려갔더니 빈 법당에는 녹음된 염불소리가 홀로 더위를 쫓으며 맞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큰 유리 안에 봉안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불보살들이 가득 차 있으며 수미단 풍경도 이색적이다.법당까지 좇아 온 더위를 업고 백팔 배를 시작한다.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치매 증상으로 몸과 마음이 무거운 터라 법당이 더없이 안온하다. 절을 해도 가슴 한 켠에이는 찬바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를 뵙고 오는 날이면 허무함으로 힘들었다. 효를 위한 약속들은 언제나 일상에 쫓겨 밀려나기만 했다. 결국은 예기치 못한 사태 앞에서 큰 불효를 한 것을 깨닫는다.온몸은 금세 땀으로 젖고 절을 할 때마다 좌복 위로 뚝뚝 땀이 떨어진다. 눈물도 떨어진다. 불경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 때 3말 8되의 응혈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를 먹인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양쪽 어깨에 부모를 업고 수미산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제야 가슴을 후벼 판다.젊은 날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말씀들이 이토록 절절할 줄이야. 흐르는 눈물은 부모에게 무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속죄와 회한이리라. 삭아서 푸석거리는 시간을 안고서도 어머니는 젊은 우리보다 의연하시다. 자식들이 걱정할까 혼자서 병원을 다니며 약을 복용하는 모습은 평생 나를 아프게 할 것이다.조낭희 수필가삶의 뒤안길만큼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를 바랐다. 신은 왜 인생의 말년을 한평생 살아온 삶으로 평가받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긍정적이고 강인했던 어머니에게 이런 시련쯤은 비켜갈 줄 알았다. 요양사의 도움을 받는 시어머니와 분노조절 장애가 나타나 작은 일에도 화를 내신다는 아버님의 증상까지,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노후는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들의 서글픈 뒤안길을 지켜보는 일만큼 잔인한 게 있을까. 머지않아 그 씁쓸한 바람들은 방향을 돌려 내 쪽으로 불어오리라.법당을 나와 멀리 서쪽하늘 아래 열반에 드신 와불 형상의 부처님을 바라본다. 도시는 열기에 눌려 꿈쩍도 않고 극락정토를 지키는 아미타부처님은 폭염 속에서도 한량없이 편안하다. 삶이 짊어져야 할 무게와 고통이 없는 세계, 그 머나먼 나라도 지척에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하는 것들 앞에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기보다 초연해져야 하리라. 누구나 업고 가야할 세상의 마지막 짐들, 당신들의 짐이 좀 더 가볍기를 바라며 와불을 향해 합장한다.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기 위해 내려가다 옛 양반들이 풍류를 즐겼을 법한 고옥 하나 만난다. 도림원이란 현판에 용기 내어 문을 열었더니 관세음보살 부처님과 수많은 불보살들이 봉안되어 있다. 눅눅한 나무 냄새가 안겨드는 법당에는 오랜 향수와 그리운 시간들이 숨을 쉬고 있다. 어머니의 자궁 같은 공간에 나를 맡기고 절을 한다.어머니의 애틋한 여름은 속절없이 가고 있는데, 이 잠깐의 여유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야윈 슬픔들 앞에서 속수무책 무릎 꿇지 않기를, 잃은 것에 안타까워하기보다 남은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자고 다짐한다. 계곡물이 토닥토닥 법문을 들려주며 흐른다. 앉아 있어도 저절로 기도가 자랄 것만 같은 곳, 나는 또 시간에 떠밀려 자리를 떠야 했다.천년 와불 하나 묵직하게 가슴에 안긴다.

2020-08-24

누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가!

강희룡서예가명나라의 환관이었던 유약우(1584-?)는 그의 저서 작중지(酌中志)에 ‘나는 석가의 가르침을 극도로 증오한다. 불교는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이는 것(惑世誣民)으로 여겨 가장 먼저 배척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적고 있다.유약우가 이 말을 남긴 두 가지 이유는, 첫째는 명 황실과 고위관료들의 주자학 숭상이다. 주자학은 주희의 유교 경전 해석을 바탕으로 발전된 것으로 삶의 개별적, 실존적 현상보다는 그 이면의 보편적 이치를 성찰하고 깨닫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에 태생부터 귀족적인 학문이었다. 현학적 태도로 만물의 이치를 통달한 자들만이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에 이 정도 학문에 심취할 수 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관료나 토호가문 출신의 유학자들뿐이었다. 주자학측면에서 불교를 위험하고 천박한 사상으로 분류한 까닭은 불교가 근본적으로 인간평등사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과 출신에 관계없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주장은 고정된 신분질서를 옹호하던 이들에게 경멸과 증오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은 신분제의 타파를 외치고 있었기에 혼란한 조선말 상황에 가난한 농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종교였다. 반봉건적, 반외세적으로 농민이 주축이 되어 지배계층에 대한 조선의 최대 항쟁이었으나, 이단으로 규정되어 최제우는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되었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으며 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2017년 8월에 방영된 TV 드라마‘구해줘’에 묘사된 무지군의 권력구조는 한국사회 전체 권력구조의 축소판으로 불의한 권력이 사람들을 이단의 유혹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이단들이 적극적으로 이 권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묘사된 권력과 이단의 협력은 절대로 허구가 아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JMS(기독교복음선교회)를 예로 보면, 교주 정명석이 1978년 창설한 신흥종교로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교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정명석은 강간, 성추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2018년 2월까지 복역한 뒤 출소했다. 교단마다 교세경쟁이 심하다 보니 이단 문제가 불거져도 쉬쉬하기에 급급하고, 설사 해당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아도 다른 교단으로 옮기거나 새 교단을 차리면 그만이다. 신천지는 2018년에 공개리에 정통과 이단을 가리자고 한기총에 제안도 했으며, 같은 해에는 신천지가 정통이고 한기총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 올 초 코로나19의 확산중심에 신천지가 지목되자 8개 개신교단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만희 총회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수그러들던 전염병이 하반기에 다시 고개를 들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표후보는 지난 광복절 집회 중심에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신도를 위시한 한기총이 있으며, 이들이 사실상 테러 집단으로 정부를 흔들고 정권붕괴까지 노리는 정치세력이며,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열을 올렸다. 한기총의 집회행위에 대해 사이비인지는 더 두고 보면 알 것이지만, 유튜브나 다른 매스컴을 통한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은 현대판 혹세무민의 한 행태인 것은 확실하다.

2020-08-24

칠석날 생각

윤영대수필가여름의 끝자락 처서(處暑)가 지나면 가을바람이 분다. 그리고 음력 7월7일 즉 칠석(七夕)이 있다.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서 1년에 한 번 만나 회포를 푸는 날, 우리에게는 익숙한 전설이다.이 견우직녀 설화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옥황상제가 손녀인 직녀와 강 건너 견우를 혼인을 시켜 주었는데 둘이 사랑에 빠져 게으름을 피우기에 화가 나서 은하수 양쪽으로 갈라놓고 1년에 한 번 만 만나게 했단다. 이날 까마귀와 까치들이 하늘로 날아가서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게 했고, 그래서 이날 까마귀들이 안 보이는데 다음날 보면 머리가 벗겨져있고 그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한다.사실 이날쯤 천문학적으로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독수리자리에 있는 견우성과 거문고자리에 있는 직녀성이 가장 가까이 접근한다고 하는데, 수 천 년 전에도 은하수와 별자리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살피고 그에 맞는 재미있는 설화도 만들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요즈음 도시에 사는 일반인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1등성 밝기의 견우와 직녀별을 살펴보기도 어렵겠지만 은하수의 흐름도 느끼기 어렵다. 수년 전 몽골여행 때 그 넓은 풀밭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까만 하늘에 꽉 차 있는 수많은 별을 보고 감탄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공해로 낮에도 흐린 하늘을 보지만 수천 년 전 그때의 밤하늘은 그야말로 하늘의 끝까지 보였었겠지.여름 밤하늘을 보며 아기자기한 별들의 얘기들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잘 때면 그나마 은하수를 보며 어릴 때를 기억해 보곤 한다.우리는 기억이 없는 사람들에게 ‘까마귀 고기 먹었나?’ 하고 핀잔을 주는데 기억력이 으뜸인 까마귀를 왜 건망증과 관계를 짓는지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칠월칠석은 안 잊어버린다.’고 할 만큼 칠석이 중요했던가 보다. 그러니 이번 칠석날에도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작교를 놓으러 올라가겠지. ‘칠석날 까치 대머리 같다.’는 속담도 있으니 다음날 들판의 전깃줄에 까맣게 앉은 까마귀들의 머리가 벗겨진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칠석우(七夕雨) 즉, 칠석날 비가 오면 견우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이고 다음날 비가 오면 헤어짐을 슬퍼하는 눈물이라는데, 올해 8호 태풍 바비(BABI)가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칠석 전후쯤 우리나라 남쪽으로 상륙하여 큰 눈물을 보일지도 모른다니 지난번 물난리를 겪은 지방에는 견우직녀의 이별이 매우 서러울까 염려될 것 같다. 제발 둘이서 즐겁게 놀다가 내년의 만남을 약속하며 웃으며 헤어지기를 갈망해본다.그러나 칠석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들거나 땀띠나 부스럼 등 병을 쫓는 영험이 있어 옛사람들은 빗물로 목욕하고 물맞이를 하였다고 하니 태풍이 오더라도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서 맞으면서 나라의 안녕을 빌어보자.칠석날에는 옛 풍습대로 오이와 참외 먹으며 더운 마음 씻고 한창 익을 호박으로 부침 만들고 밀국수 한 그릇 말아서 칠성님께 이번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빌어볼까. 그리고 그동안 습기 찼던 옷과 책들을 꺼내어 햇볕에 말려야겠다.

2020-08-24

탈진실시대의 정도(正道)정치를 위하여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9년 그의 작품 ‘1984’에서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했다. 70여 년 전 전체주의와 독재를 비판한 그의 명언은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탈진실(post­truth)시대’에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거짓에 맞서는 ‘진실이라는 혁명’은 지금도 절실하기 때문이다.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fact)보다 개인적 신념(belief)과 감정(emotion)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인간은 행위결정에 있어서 감정의 영향이 매우 크며, ‘불편한 진실’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성향이 있다. 게다가 SNS의 급속한 확산으로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흐려져서 미디어 사용자는 자신의 믿음에 부합되는 정보만 취사선택함으로써 ‘확증편향’의 외눈박이가 된다. 나아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반향실(echo chamber)효과’로 인하여 편견과 독선은 더욱 심화된다.이러한 유권자들의 탈진실 성향은 선거정치에 악용되고 있다. 정당과 후보자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거짓을 서슴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서는 ‘객관적 사실’에 맞서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까지 만들어서 진영정치의 선전·선동을 통하여 유권자들을 현혹한다.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지 않고 ‘내편은 무조건 믿어주는 진영’이 있고, 선거와 후보자를 보는 유권자의 눈이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치는 한 이미지 조작을 통한 탈진실 정치는 사라지기 어렵다.그렇다면 진실에 기반을 둔 정도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지도자의 각성이다. 대통령은 정치행위의 결과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음을 명심하고 권력유지를 위해 인기에 영합하는 ‘감성정치’를 거부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권력’이다. 따라서 정치에 입문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국민을 위해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정도정치는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야당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주권자인 국민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마약 같은 권력에 취한 정치꾼(politician)에게 정도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민주시민은 늘 깨어 있어야 하며, 탈진실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팩트 체킹(fact checking)’ 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른바 ‘문빠’ 또는 ‘대깨문’처럼 진보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진영정치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국민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머슴들(대통령·국회의원)에게 권력을 위임한 주인이다. 주인의 감시·감독이 느슨해지면 ‘머슴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과 오만한 권력에 대한 채찍만이 정도정치를 회생시킬 수 있다.

2020-08-24

킬링타임 전성시대

킬링타임(killing Time)은 무엇이든 할 일이 없을 때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말하며, ‘시간 때우기’라고도 한다. 하지만 요즘 같으면 코로나19의 팬데믹탓에 전세계가 킬링타임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주말 혹은 쉬는 날에 킬링타임을 한다고 쳤을 때, 가성비가 좋은 것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작품성은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그럭저럭 재미있는 영화를 킬링 타임용 영화라고 부른다.이밖에도 실내에서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생활 용품들도 많다. 특히 ‘구슬꿰기’ ‘십자수’등 각종 취미용품부터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완성해 홈 데코에 활용할 수도 있는 직소퍼즐, 컬러링북 등의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옥션은 최근 한 달을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카테고리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각종 실내 취미용품의 인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밝혔다.먼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실꿰기·구슬꿰기 판매량이 무려 6배 이상(560%) 증가했다. 형형색색의 구슬들을 취향대로 엮어 원하는 모양과 길이로 꿰어 이으면, 팔찌부터 머리끈까지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 십자수 용품은 2배 이상 더 많이 팔렸고, 퀼트용품과 펠트용품도 각각 116%, 78% 씩 증가했다.각종 실내 미술 공예용품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색칠하며 정서적인 안정을 주며 성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컬러링북은 54% 판매가 늘었고, 클레이공예와 점토공예,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조립키트, 직소퍼즐도 날개돋힌 듯 팔린다. 그러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24

첫인사

궁금하고 설렌다. 딸이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결혼을 해서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키워 시집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시집갈 때는 되었지만 스스로 나서는 것을 보니 이제 다 키웠구나 싶다.나는 퇴근하고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예약된 이름을 부르면서 주인을 찾았다. 그 소리에 어떤 총각이 방문으로 나와서 목례를 했다. 어이쿠, 목소리가 컸다 싶어 부끄러워 일단 식당 문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딸이랑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 소매 자락을 잡고 뒤따라갔다.그가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미리 준비해온 꽃다발을 내 손에 안겨주었다. 날이 날인지라 화사한 꽃다발만큼이나 그의 얼굴도 환했다. “인상이 참 좋으네요.” 나도 모르게 첫인사가 술술 나왔다. 얼굴이 희고 눈웃음이 부드럽고 머리숱이 적어서인지 이마 너머로 인상이 넉넉해 보였다.한정식이 입에 맞는지 잘 먹었다. 특히 배추김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둘은 친구의 소개로 만난 지 몇 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편안한 사이로 보였다. 반찬을 들어서 옮겨 놓기도 하고 부족한 것은 더 시켰다. 밥 먹는 모습을 보니 다정해보였다.며칠이 지나서 그의 집에도 딸이 인사를 갔다. 우리가 만났을 때처럼 저녁은 밖에서 먹고 다과는 집에서 먹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딸을 보고 “고맙다.”라며 첫인사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고맙기도 했지만 약간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내 딸을 과분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담도 되었다.상견례에서 어른들을 만났다. ‘고맙다’는 그 말이 겸손인 걸 느꼈다. 조용하고 편안했다. 반대로 옆에 앉은 바깥 분은 세상사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재미있게 분위기를 끌어가셨다. 취미로 불화를 그린다고 하며 폰에 저장된 작품을 보여 주었다. 바닥에 엎드려 작업을 하기 때문에 무릎관절이 안 좋다고 했다. 그래도 이 나이에 용기가 생겨서 만족한다며 멋쩍은 듯 웃으셨다.돌아오는 길에 ‘고맙다’는 인사말이 자꾸 맴돌았다. 사람을 만나면 말 한마디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은 재밌는 책 한권을 단숨에 읽은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 읽고 난 책을 껴안고 한동안 음미하듯이, 고맙다는 말이 떠나질 않아 가슴 위로 두 손을 모았다.또 다른 자식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다. 친구의 말처럼 ‘보고 싶은 장모님’이 되리라./최경하(경주시 현곡면)

2020-08-24

초롱이의 일기

2020년 8월 21일. 내 이름은 ‘초롱이’다. 나이는 네 살, 우리 엄마의 이름은 샛별이고 아버지는 가까이에는 사신다는 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초롱이란 이름은 주인님에게 오기 전 외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나는 초롱이란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비록 덩치가 작은 발바리지만 싸나이 이름이 초롱이가 무엇인가 말이다. 깡다구 있어 보이게 백호나 청룡이라면 맘에 들겠지만 하다못해 바둑이나 독구는 되어야 하는데 여자이름인 초롱이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그래도 초롱이란 이름이 싫지 않을 때가 있기는 하다. 며칠 집을 비우신 주인님이 돌아오시며 “초롱초롱 초롱이 우리 초롱이 집 잘 보았나?” 하시며 과자를 주시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이다. 한번 지어진 이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초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바에는 초롱이란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자꾸만 생각해 볼 것이다.2020년 8월 23일. 오늘은 쥐를 두 마리나 잡았다. 우리 주인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일 중 하나가 내가 쥐를 잡았을 때이다. 그래서 나는 쥐를 보면 숨어있다 꼭 잡는다. 사실은 쥐를 보고 잡을 때 보다는 못 잡을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주인님은 내가 쥐를 보고도 놓치는 경우도 많고, 주인님이 기분 나쁘게 하실 때는 일부러 잡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을 모르신다. 하룻밤 사이 두 마리를 잡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연달아 이틀 동안은 한 마리씩을 잡아 주인님에게 칭찬을 들었고, 안주인님께서 챙겨주신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쥐를 잡으면 주인님이 다니는 길 중간에 배를 위로 가게 놓아둔다. 아마도 쥐를 보시면 또 맛있는 무엇인가를 주실 것이다. 오늘은 기록을 깼으니 무엇을 상으로 주시려나 기다려진다. 더 많은 쥐를 잡기 위해 몰래 그들의 말을 엿들으니 쥐들은 내가 고양이보다 더 쥐를 잘 잡는 개라는 것은 모르는가보다. 나는 그것이 정말 다행스럽다./류대열(경주시 외동읍 입실리)

2020-08-24

도원경(桃源境)

부친께서는 6·25전쟁이 발발하여 북한군이 낙동강 아래로 내려올 당시 보급품을 운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경북도 영덕군 창수를 거쳐 영해로 내려올 당시 적군 비행기가 보급품인 것을 알고 공중 사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때 부친께서는 어깨에 짊어진 보급품을 벗어 던지고 숨은 곳이 복숭아 나무 밑이었습니다. 복숭아 나무를 잡으니 나무가 물렁물렁 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복숭아 나무가 그 시절에도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산문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나오는 무릉도원 역시 복숭아 꽃이 대표적인 무릉도원의 상징입니다. 어부가 발견한 무릉도원 마을 사람들 또한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피난한 사람들입니다.‘도화원기’내용을 보면 “민물고기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 주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아름답고 향기롭기 그지 없고, 복사꽃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커다란 산이 가로 막고 있다”고 했다. 바로 그곳 무릉도원의 배경과 마치 흡사한 이미지를 지닌 영덕은 무릉산 밑으로 흐르는 오십천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눈앞에 옥계계곡과 팔각산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영덕 복사꽃이 오십천 강줄기 주변으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도화원기’에서 나오는 민물고기 어부가 본 풍경은 영덕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합니다.우리는 무릉도원과 같은 아름답고 아무 걱정 없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갈망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잠시 행복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움츠려 있습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고, 코로나 유행 이전의 도원경과 같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영덕에는 장사상륙작전과 같은 학도병과 군 장병 등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무릉도원과 같은 영덕을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운을 이어 받은 영덕 복숭아가 익어가는 이 계절, 무릉도원의 결실인 복숭아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드시고 모두 코로나를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이두환 사진작가

2020-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