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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더 큰 안동,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쉼 없이 달린 10년

권영세안동시장2016년 2월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이전했다. 50만 안동인에게는 안동대호부의 영광을 되찾은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으며, 안동시의 수장으로 역사적인 대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돼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경북도청 이전에 따라 수도권과 남부경제권을 연결하는 국토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은 물론 경북 북부지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경북 중심도시로의 발전 동력을 갖추게 됐다.지역을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백신 산업을 내걸었으며, SK케미칼의 투자를 시작으로 바이오·백신 산업의 메카로 입지를 확고히 했다.일반 제조기업 하나 유치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내 최대 백신 기업인 SK케미칼, SK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3천억 원대의 투자를 끌어냈다. 각종 연구소·기업 유치, 백신 산업 기반 인프라 구축과 지역 전문 인력 육성 등 백신 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으로, 바이오·백신 산업이 지역 미래 먹거리 창출의 핵심이 될 것이다.안동 문화유산의 세계문화유산·기록문화유산 등재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2010년 하회마을 등재를 시작으로 2015년 유교책판 등재, 2018년 봉정사가 등재됐다. 지난해는 유례없이 도산·병산서원 2곳이 동시에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여기에 더해 유네스코 3대 카테고리 달성의 마지막 퍼즐인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가시권에 들어왔다.안동이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과 함께 안동 문화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안동 유무형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문화를 논하는 데 ‘안동’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지난 1월에는 5년간 1천억 원이 지역에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인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에 우리 시가 선정되는 경사스런 일도 있었다.관광거점도시 선정은 한국을 대표하는 안동의 유교문화 자원과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안동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등 문화·관광 정책이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전국의 유명 관광도시를 모두 제치고 선정되며, 안동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돼 정말 뿌듯했다. 지역의 문화·관광자원 활용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과도 긴밀히 협력해 내·외국인 모두가 가장 가보고 싶은 글로벌 관광도시로 만들어갈 계획이다.올해 ‘안동 대도약 10대 프로젝트’와 ‘안동형 일자리모델’을 발표하고, 3대문화권사업단지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보고회를 했다.‘안동 대도약 10대 프로젝트’에는 중부내륙선과 중앙선 복선 연결사업, HEMP기반 바이오산업 규제자유특구 지정, 생명그린밸리 안동 국가산업단지 등 관광거점도시를 견인할 과제들이 담았다. 아울러, ‘안동형 일자리 모델’로는 백신, 문화, AI 등 5대 미래전략과 20개 신산업을 발굴했다. 향후 10년간 가용재원의 10% 정도를 꾸준히 투입해 2030년까지 핵심 인력 1만 명, 지역특화 강소기업 100개, 청년벤처 100개, 중견기업 20개를 육성할 계획이다.3대문화권사업은 내년에 모두 완공되면 사업 단지와 함께 750m의 세계 최장 보행 현수교를 건립해 도산 권역을 아우르는 디오랜드(DO LAND)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대도약 10대 프로젝트는 그릇 역할을 하는 하드웨어 구축사업이고, 안동형 일자리 사업은 20개 신사업으로 그릇을 채우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2030년까지 인구 30만 명의 활력이 넘치는 도시, 기업하기 좋은 강소기업 중심의 첨단 AI도시, 그린컬쳐벨리를 표방하는 국제적인 관광 글로벌 도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안동시장으로 취임한 그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하며, 축산산업뿐만 아니라 지역 전반에 큰 타격을 입었고, 올해 2월에는 전국의 휩쓴 코로나19도 지역을 강타하며 위기를 맞았다.취임하자마자 맞은 구제역의 칼날은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19의 광풍은 매서웠다. 시민들과 공직자 모두 힘든 시기였고, 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안동시민들은 강했고, 공직자들은 제자리에서 묵묵히 싸워줬다. 안동인에게는 위기 때 당당히 맞서 함께 이겨내는 대동 DNA가 있다. 구제역 때도 그랬고, 코로나19도 극복하고 다시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2020-06-28

지역 호텔숙박업계의 브이(V)자 회복을 바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아직은 종식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외로부터의 입국자로 인한 확진자를 제외한다면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단지 록다운 상태에서 기업 간 거래를 포함한 실물 수요가 제약되었던 분야라면 이후 완전한 브이(V)자 회복까지는 장담하기 힘들겠지만 엘(L)자 회복과 같이 수요 자체가 낮아진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당연히 업태나 업종에 따라 회복되는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지만 그중에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분야도 분명히 있다. 그동안 교류하고 있던 다양한 모임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일수록 지금과 같이 속칭 혼밥, 혼술을 하며 홀로 지내야 했던 고통은 컸을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동안 자유롭게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관광이나 여행이 취미였던 사람들이라면 작용과 반작용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브이자 회복의 형태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여행객과 관광객이 증가함에 따라 여행사, 호텔, 숙박업소 등의 업황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다.이미 지난 5월 중국에서는 노동절의 5일 연휴를 맞이하여 국내 여행 건수가 1억1천500만 건으로 올라갔다. 우리나라 주요 항공사의 국내편 운항도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과 태국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완화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 이르러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태국, 홍콩 등과 같이 비교적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기 시작한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호텔업계에서는 이에 대비하기 위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기고 있던 것들을 전면 재검토하여 본격적인 코로나19 이후에 다가올 뉴노멀 시대에 적합한 호텔 서비스로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80개국에 영업망을 두고 있는 세계적인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업체인 미국의 존스랭라살(JLL·Jones Lang LaSalle)은 최근 서비스 분야의 최전선에 있는 호텔업계가 판데믹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발 빠른 진화를 시작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갑갑증을 겪던 여행자, 관광객들이 조금씩 몸을 들썩이기 시작한 시점에 맞추어 아시아지역 호텔업계들도 발 빠르게 서비스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고, 뉴노멀 시대에 어울리는 호텔로 진화하기 위해 호텔설계까지도 바꾸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존스랭라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호텔들의 공통적인 변화 사례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안전조치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 프런트와 뷔페 등과 같이 여러 숙박객이 밀집되기 쉬운 서비스 분야에는 투명한 아크릴수지를 이용한 칸막이를 설치하는 한편 호텔 바에서의 좌석 거리를 1미터 이상 간격을 두도록 조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뷔페식당에서는 손님들의 이동 경로 등과 연관되는 메뉴의 재배치, 비접촉을 보장하는 메뉴의 구성, 식당 테이블 등의 배치 조정 등 최대한 숙박객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특히 존스랭라살은 앞으로 호텔업계에서는 손님들 간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혼잡한 시간대에는 화물용 승강기를 손님용 승강기로 증편시킨다거나 클럽 라운지 면적의 확장, 그리고 주요 행사용 공간은 대형보다는 소규모 단체용으로 조정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아예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가구, 표면 소재 등도 청소나 소독이 손쉬운 코르크 등과 같은 항균성 소재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게다가 일일이 호텔 직원들과 대화가 필요했던 서비스부문에는 키오스크와 같이 셀프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바뀔 것으로 보았다. 실제 코로나19 경증환자가 투숙하였던 일본 도쿄의 호텔에서는 객실에 격리된 환자에 대한 룸서비스 제공 등에는 인형 로봇,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에서는 청소 로봇 등을 도입하였다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앞으로는 로봇은 물론 스마트소독 화장실, 객실 소독용 세균 감지 자외선 스캔 등 다양한 첨단기술의 도입도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이러한 움직임은 경북 지역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급호텔이 밀집된 경주 보문단지, 여름철이면 성수기를 맞이하는 울릉도는 물론이고 해수욕장과 연동되는 울진에서 영덕, 포항, 경주로 이어지는 경북 동해안 바닷가의 해수욕장과 연동성이 높은 상인들도 최대한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그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호텔업계는 가장 간절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던 지난 1월 중순 이후부터 최근까지 지역의 모든 업종에서 피해가 발생하였다. 그중에서도 호텔업계는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경북 동해안 지역 특급호텔의 지난 3월 신용카드매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98.4%, 기타 호텔은 마이너스 77.6%, 일반숙박업소는 마이너스 49.5%, 콘도도 마이너스 48.6%를 기록하며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뿐 아니라 호텔의 숙박객이 줄어들면서 호텔 로비를 비롯한 호텔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뷔페, 레스토랑, 명품취급점 등 대표적인 입주업체들도 비슷한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렇다면, 지금 지역의 호텔 숙박업계는 앞으로 관광객이 늘어나게 되면 저절로 당연히 브이자 회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답은 누구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조기에 움직이기 시작한 관광객들이 글로벌 호텔업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를 시도한 새로운 서비스와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지역 업체들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의 회복속도는 의외로 보이지 못할 우려도 있다. 회복속도는 그동안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있던 지역 호텔, 숙박, 관광 관련 업소들이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른 호텔업계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호응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어쩌면 기존의 경영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호텔 입구에서는 온도측정기를 설치하고, 호텔 객실에는 소독제나 일회용 마스크 정도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가진 여행객, 관광객들이 적어도 과거와 같이 코로나19 이전의 행동 양식과 생각으로 지역의 호텔, 숙박, 음식점 등을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경북 지역 관광산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지역에 방문객이 많이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기에 앞서 선행해야 할 과제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이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지역 호텔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철저한 방역과 검역체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염두에 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 다른 지역 호텔만큼의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형 호텔 서비스가 있는지 등이 재방문율을 높이는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호텔 객실이 들어차기만을 기다리기 전에 최근 특급호텔들의 진화에 주목하여 최대한 안전조치와 선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서비스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 준비가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브이자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6-28

‘북한 비핵화’…그 가혹한 희망고문

안재휘논설위원최근 확인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TK(대구·경북)의 여야 대권 주자들의 엇갈린 반응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은 “화해의 손길엔 적극 협력하되 도발은 강력히 응징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유승민 전 의원은 “북핵은 남한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 (문 대통령이) 북한에 굴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북한의 냉탕-온탕을 오가는 분탕질 바람에 6·25전쟁 70주년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지나갔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김여정이 앞장서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온갖 험구들을 쏟아내며 시작됐다. 남북 긴장 고조는 우리의 천문학적 수치의 혈세가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도하게 폭파하는 시점에 최대치로 끌어올려 졌었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북한은 모든 도발 책동을 돌연 중단했다. 과연 수령 1인 통치 독재국가의 전형적인 행태가 또다시 드러난 셈이다.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펴낸 자서전 한 권이 여론을 들쑤시고 있다. 그의 자서전 내용에 언급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종의 평가절하를 놓고 야당은 ‘그러면 그렇지’하는 심사로 내막을 밝히자고 파고드는 중이고, 여당은 볼턴을 잡놈 취급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볼턴의 주장을 종합하면, ‘북미 정상회담’은 애초부터 문재인 정권의 실속 없는 작품이고, 문 대통령이 중간자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뜻을 너무 낙관적으로 전달하는 바람에 파탄이 났다는 것이다.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문 대통령이 부득부득 갔다는 폭로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대목이다.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북핵 폐기’다. 우리 국민은 물론, 온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숙제는 ‘북한 비핵화’인데 그게 1인치도 진전되지 않았다. 북한은 핵을 완성할 시간을 넉넉하게 벌었고, 실질적 핵보유국이 돼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워졌다.굴종으로 유지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북한 비핵화’라는 희망고문에 순치된 국가안보와 무장해제 상태에 접어든 국민 정서는 대한민국의 존폐문제에 직결돼 있다. 이제 ‘북핵 폐기’는 환상으로 끝났고 ‘핵 균형’ 같은 수단만이 남게 된 형국이 아닌가 느껴진다.‘강력한 국방력’이나, ‘한미동맹 강화’를 말하면 무조건 수구꼴통 취급하는 진보 인사들의 편견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위정자들은 이제 국민을 ‘북한 비핵화’라는 희망고문 속에 더 이상 가두지 말아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말처럼 김정은은 핵을 폐기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게 분명하다. 힘으로 지키는 평화만이 참된 평화다. 상대방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낭만적 평화론은 백해무익할 따름이다. 김부겸의 말과 유승민의 말이 모두 ‘평화’를 염원한다는 차원에서 같은 말이었으면 좋겠다.

2020-06-28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는 천년고찰 인각사(麟角寺)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내에는 보물 428호인 보국국사탑과 비가 있다. 이 사찰이 더 유명한 것은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생애 마지막 5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삼국유사를 집필 완성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승려 일연은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로 출가해 40대에 대선사, 70대에는 국사로 봉해진다. 불교가 국교였던 당시 국가의 스승인 국사로 봉해진 것만으로 그의 종교적 위치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가 저술한 삼국유사는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현존의 고대사 책으로서는 최고의 가치가 있다.삼국사기가 신라, 고구려, 백제의 정사(正史)를 기록했다면 삼국유사는 3국의 야사(野史)를 수록한 서적으로 우리나라 고대사를 이해하는데 두 서적은 쌍벽을 이룬다. 특히 삼국유사에는 한국의 고대신화와 설화, 향가 등이 집대성돼 고대 민간역사를 이해하는 소중한 자료다.최근 군위군은 인각사가 위치한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삼국유사의 산실이자 삼국유사의 고장임을 더 널리 알리자는 의도다. 한 고장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행정 절차상 쉽지 않으나 군은 주민투표를 거쳐 압도적 찬성으로 면의 고유명칭을 변경키로 한 것이다. 주로 방향과 위치 등을 따져 붙이는 우리나라 읍면동 명칭 명명에 비해 용기 있는 결정이라 하겠다. 북면, 서면 등과 비교하면 훨씬 유래 있고 진취적 방식이다.국내서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가 있는 강원도 영월군이 2009년 김삿갓면으로 개명한 사례가 있다. 삼국유사면처럼 내 고장의 역사를 담은 마을 명칭이 더 많이 생겨나면 우리 고장 역사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28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가르침

김현욱 시인괴로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태. 또는 그런 느낌’이라고 나온다. 유의어가 재미있다. 쓰라림, 어려움, 고통, 고충, 아픔, 고초, 곤란, 고(苦)가 괴로움의 비슷한 말이다. 괴로움의 옛말은 ‘고모’, 준말은 ‘괴롬’이다. 한설야의 소설 ‘황혼’에 “괴롬 많은 그 길을 걸어갈 근기가 있을까?”라는 예문이 나온다.뜬금없이 괴로움 이야기를 꺼낸 건 얼마 전에 읽은 기사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30세대의 공황장애는 2015년 3만1천674명에서 2019년 6만1천401명으로 93.8% 증가했다고 한다. 우울증도 2015년 12만3천339명에서 2019년 22만3천71명으로 80.8% 늘었고, 조울증은 2015년 2만6천915명에서 2019년 3만8천825명으로 44.3% 느는 등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단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까봐 병원을 찾지 못하는 숨은 수까지 합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다.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그러한 상태를 우리는 ‘괴롭다’라고 한다. 통계만 놓고 보자면, 우리 주위에 괴로운 사람이 너무 많다. 질리언 웨어링의 사진 ‘나는 절망적이다’를 보면 말쑥한 양복차림의 청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고 서 있다. 누구라도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나는 절망적이다”라고 쓰여 있다. 어리둥절하다. 그의 밝은 모습과 그가 들고 서 있는 글귀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다. 사진작가 질리언 웨어링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은 같지만 겉모습과 속마음은 이토록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는가.나도 한때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움의 나날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받아들이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 아프다고 표현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아프면 드러내야 한다. 상처는 숨기면 곪는다. 곪고 곪으면 정말 방법이 없다. 도려내는 수밖에.그리고 가장 중요한 깨달음. 감각적 욕망을 향해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자기 자신을 소진하던, 어리석은 ‘나’를 이제야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아프고 괴로웠던 게 내 인생의 전화위복이었는지 모르겠다. 크게 아프면 크게 성장한다. 2천500년 전에 괴로움의 실체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유일한 길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 붓다의 수행과 깨달음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이 핵심이다.수많은 청년들이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감각적 욕망은 행복이 아니고 괴로움의 씨앗이다. 불교는 극락왕생이나 부처님 가피를 바라는 종교가 아니다.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삶이 괴롭다면,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시작하면 좋겠다.

2020-06-28

권위가 도전받는 세상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19세기 이탈리아의 의학자이자 범죄인류학의 창시자인 롬브로조는 ‘생래적 범죄인설’을 주장했다. 생래적 범죄인은 원시선조의 야만성이 격세 유전하여 후대에 나타나고 선천적인 범죄인이라고 주장했다. 생래적 범죄인은 환경에 관계없이 운명적으로 범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들은 예방과 교화가 불가능하므로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는 범죄학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사람의 두개골 형상을 관찰한 결과에서 착안했다고 한다.오랜 세월 범죄인을 접한 경험에 의하면 범죄꾼임을 얼굴에서 얼핏 읽게 된다. 특히 강도, 살인 같은 흉악범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면 롬브로조의 주장이 마냥 낡은 학설로 치부하기엔 자신이 없어진다.두상(頭相)을 보고 사람 됨됨이를 파악하는 것은 동양에서도 있었다. 삼국지에 촉나라 장수 가운데 위연이 유비에게 투항해 올 때 위연의 두상을 보고 제갈량이 그의 투항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위연의 뒤통수가 튀어나온 형상을 보고 그는 후일 배반을 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유비의 관대함으로 위연은 받아들여졌지만 결국에는 위연이 반란을 시도하였다. 이때 위연의 두상을 ‘반골(反骨)’이라 칭하였다. 반골은 세상의 일이나 권위 따위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거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인 권위나 방식, 관습 등에 맹종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비판과 반항을 일삼는 기질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왕조시대 궁중에서 후궁의 소생들이 태어나면 관상을 보아 반골이면 후일 모반을 할 가능성 있다며 제거했다는 설도 있다. 두상을 통해 범죄인이거나 배반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니 현대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일이다. 그럼에도 반골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시대를 초월하여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행동으로 자신과 가족에 대한 핍박으로 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면 그들의 처절했던 행동과 절규는 한 순간에 선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유독 굴곡 많은 역사를 지닌 우리는 반골 기질 사람들의 역사로 점철된 것 같다. 지나온 시절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출세를 하며 살던 세상이었다. 학창시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세상을 경영하던 시절이었다. 기존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한 사람들, 경영자의 지위를 타박하는 노조원들, 교장의 권위에 도전한 평교사들, 장군의 권위에 도전한 병사들, 검·경의 상명하복 지휘체계에 반기를 든 사람들 등등. 이들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중심으로만 집중되었던 권위가 파편화되어 비산하고 있다. 정당한 권위 행사가 주저되거나 포기되며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이념으로 채색되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체념이다.오랜 경험과 세상 지혜를 전수하려는 어른의 권위마저 없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밀려온다. 새로운 질서와 권위도 시간이 지나면 도전받을 것이다. ‘신(新)반골들로 세상이 또 다시 소용돌이치면 어쩌지?’꼰대의 기우가 아니길 빈다.

2020-06-28

소탐대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는 역사 속 사실 여부를 떠나 한 나라가 망했던 비극적 운명의 스토리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약 10년 동안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왔던 성곽이 트로이 목마 속에 숨겨졌던 군사에 의해 성문이 열리고 급기야 나라가 망하게 되는 트로이 비극과 유사한 고사가 중국에도 있다.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욕심 많은 촉왕의 심리를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혜왕은 그의 신하로 하여금 소를 조각하여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 넣고 ‘보석의 소’라 명명했다. 그리고 이를 촉왕에게 우호의 예물로 바칠 것이란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촉왕은 신하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보석의 소를 맞이하기 위해 백성을 동원해 길을 만들었다. 보석의 소가 온다는 날 그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직접 마중까지 나왔다. 보석의 소와 함께 숨어온 수만명의 진나라 병사에 의해 촉왕은 사로잡히게 된다.중국고사 소탐대실(小貪大失)은 보석의 소에서 유래했다. 무릇 작은 것에 현혹되어 큰 것을 놓치게 된다는 교훈의 뜻이다.세상의 일은 세옹지마(塞翁之馬)여서 사람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에 부닥친 일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바르게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군위군과 의성군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지를 둘러싸고 양보 없는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이미 주민투표를 끝낸 상황에서 더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의성군과 군민의 뜻이 아니라는 군위군의 주장이 맞붙어 신공항 사업이 자칫 물 건너갈 판이다. 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을 위한 대의적 사업이다. 지역의 명분만을 쫓다가 사업 자체가 무산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소탐대실하는 것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25

포항지진 피해구제심의위원회 활동에 거는 기대

공원식포항11·15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 4월 1일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어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5월 29일 출범해 활동을 벌이고 있다.정세균 국무총리는 피해구제심의위원 임명식에서 ‘포항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고 조속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해 줄 위원회의 역할을 주문했다.첫째, 국민 눈높이에 맞고 지진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와 주민들께서도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피해구제 기준을 마련하고, 둘째,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피해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사·심의·의결 과정에서 지역의 목소리에도 충분히 귀 기울이며, 셋째, 피해조사, 피해구제 및 지원대책 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잘 청취하고 긴밀하게 소통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마지막으로, 포항시의 경제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원대책 마련 등에도 위원회의 역량을 함께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총리의 이러한 당부가 일회성이나 형식적인 발언이 아니라 총리를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또한,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피해주민들의 아픈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살펴 주어야 한다. 아울러 포항시의 경제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원대책 마련 등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은 만큼 배상해 주어야 한다는 포항지진특별법 취지와 정신에 맞게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 주민들이 제대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피해구제심의위원들 중에는 2명이 포항시에서 추천한 포항출신 변호사 2명이 있다. 그렇지만 4명은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인 관계로 정부 방침만 강조하고 피해주민들의 아픈 마음을 잘 헤아려서 배상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걱정이 되기도 한다.자칫 법의 해석을 너무 경직되게 하여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은 만큼 배상해 주어야 한다는 포항지진특별법 취지와 정신에 어긋나게 업무를 처리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또한, 지진 피해 주민들로서는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소명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피해주민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깊이 헤아리고 살펴서 피해를 입은 사실들을 상세하고 소상하게 입증하고 소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는다면 피해주민들은 불만이 쌓이고 불신이 쌓여서 피해구제심의위원회의 심의 결정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아무쪼록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피해 주민들에 대한 피해 보전에 있어서 재산적, 정신적 피해와 그들의 아픈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살펴서 피해 입은 만큼 배상해 주어야 한다는 포항지진특별법 취지와 정신에 맞게 한치의 오차도 없기를 피해주민들과 함께 기대해 본다.

2020-06-25

‘국뽕’

국뽕, 국뽕 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다. 신조어 같은데, 뭘까? ‘나라 국(國)’ 자에 ‘뽕’은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 ‘히로뽕’의 ‘뽕’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니까 나라 사랑이 지나쳐 ‘뽕’을 맞은 것 같은 상태에 다다른 것을 가리켜 ‘국뽕’이라 하는가 보다.요즘 유튜브에 이른바 ‘국뽕’ 방송들이 넘쳐나는 추세다. 일본에 ‘혐한’이라 해서 ‘국뽕’의 왜곡된 형태가 판을 치고 있는데, 한국에도 반일, 염일 감정에 호소하는 방송이 한둘 아니다. 코로나19 유행에 ‘K방역’으로 성공을 거두다 보니 웬만한 선진국도 ‘우리’만 못하다는 인식도 확산되는 추세다.과연 나라나 민족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면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나라와 민족이라는 ‘대집합’ 공동체의 ‘타자’로 대상화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편과 고통을 느끼지만 그래도 이 ‘집합’의 논리는 강하고 커서 함부로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 대일협력을 변호하고 일본에 의한 강점을 근대화의 필요악이었다 강변하는 ‘태극기 부대’도 시발점은 나라사랑, 민족 사랑에 있고, 여기에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 정권의 민족 파괴에 대한 ‘적대감’이 바탕이 되어 있다.심지어는 1980년대의 이른바 진보 학생 운동도 ‘애국’을 내세워 ‘매국’ 세력을 타매하는 애국주의를 내세웠고, 지금도 이런 경향은 여전하다고도 할 수 있다. 진보와 민족 또는 국가라는 집합적 논리를 결합시킨 이 한국적 사상은 현실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을 형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사실, 한국을 둘러싼 모든 나라들이 지금 ‘국뽕’ 몸살을 앓는 중이다. 일본은 아베의 극우민족주의, 중국은 시진핑의 중국 ‘대민족’주의, 미국은 트럼프의 배타적 미국 제일주의, 러시아는 푸틴 식 제왕주의 등등, 그리고 북한 역시 수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조국을 옹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국뽕’ 대세 속에는 불가피하게 사회 현실에 대한 허위적 해석과 은폐 같은 것들이 섞여 들게 마련이고, 특히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혐오, 질시, 비하 같은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혼재되게 마련이다.한국은 어떠냐 하면 우리 역시 ‘국뽕’ 체질을 남들 못지 않게 내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바야흐로 이 ‘국뽕’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감에 따라 ‘급고조’ 중이다. 돌아보면 숱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우리들이다.나라사랑은 좋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소수자들, 하위 계층 사람들은 더 많은 배려를 받아야 한다. 그들 없는 국가는 허위의 이념일 뿐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6-25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무척 재미있는 영화 제목이었다.과거에는 사랑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랑한다, 정도의 연애감정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거꾸로 과거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다라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고가 판을 치고 있다.그런데 반대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정치적 사회적 관점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필자는 1965년 그 유명한 ‘무즙파동’중학입시의 피해자 중에 하나이다. 그 파동은 결국 중학교 입시 폐지에 이어 고교입시 폐지까지 이어졌다. 그때는 과도한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입시준비가 건강과 창의력을 해친다는 이유가 중교 입시페지 및 평준화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 각종 특목고, 과학고, 자율고 설치 등은 차별화된 교육이 엘리트를 길러내고 노벨상 같은 특출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평준화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는 생각이었다.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특목고, 자율고 등의 특성화 고교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특성화 고교가 평등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인데 수험생들 입장에서 보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의 전형이다. 언제는 엘리트를 기르는 차별화된 교육은 이렇게 여러 번의 부침을 거듭하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반복했다.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의 발언이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윤 총장은 살아 있는 정권의 비리도 과감히 파헤칠 멋지고 강직한 검사라는 주장과 검찰개혁에 방해가 되는 검사라는 주장이 맞선다.검사 윤석열은 2013년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당시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어 지금 여권인 당시 야권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그래서 대구 고검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당시 국정 감사 증인으로 나와서 윤석열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당시 야권 즉 지금의 여권 인사들에게 “멋쟁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이다.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 윤석열 검사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국정원 수사와 국정농단 특검 활약으로 보수진영에 깊은 아픔을 주어 진보진영의 찬사를 받던 인물이었기에 검찰총장 임명 당시 여권과 진보진영에서는 “정의로운 검찰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격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지금 여당에서는 그토록 그들이 칭찬하던 윤 총장에 대한 교체 압박을 하고 있다.윤 총장을 향해 쏟아지던 여권의 찬사는 ‘검찰개혁 방해 정치검사’라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검사 윤석열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그때도 권력에 굴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권 정치인들에게는 윤석열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것이다. “내 입맛에 맞으면 맞고 아니면 틀린다”이다. 이런 정치적 풍토에서는 법조계를 떠나고 싶다고 변호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낙향한 변호사 친구가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2020-06-25

상기하자 6·25

김병래시조시인‘아아 잊으랴 ,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박두진 시인이 지은 이 노랫말을 곰곰이 새겨 보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하고 원통했던가 짐작이 간다. 이 피맺힌 원한의 노래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금지곡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가사를 바꾸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밥술이나 먹고 살만해 졌다고 과거를 깡그리 왜곡하고 폄훼하는 어리석음으로 얻는 것이 뭐겠는가.상기하자 6·25!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에 외치던 구호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잊지 말자는 것인데, 상존하는 북쪽의 위협을 환기시켜 민심을 단속하려는 구호였다. 그런데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금기시되고 잊혀졌다. 수백만의 사상자가 나고 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한 민족 최대의 비극을 과연 그렇게 잊어버려도 되는 것일까?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6·25 동족상잔은 김일성의 야욕이 아니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참극이었다. 민족을 위하는 생각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어찌 동족의 가슴에다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도발할 수 있겠는가.동족을 죽인 6·25전쟁을 강대국들의 대리전이니 뭐니 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있다. 남이 시킨다고 부모 형제를 죽여 놓고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걸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남이 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김일성이가 전쟁을 허락해 달라고 스탈린을 찾아가서 애걸을 하지 않았던가. 강대국들에 의해 나라가 갈라졌으면 민족이 합심으로 다시 뭉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어떻게 동족상잔의 구실과 핑계가 된단 말인가.김일성이 적화통일 야욕으로 전쟁을 도발한지 70주년이 되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6·25전쟁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고 거듭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은 천만 번 부관참시를 한들 만분지일도 풀리지 않을 원한일진대. 남북을 막론하고 전범 김일성을 호도하고 비호하는 자들은 모두가 민족의 반역자들이다. 투철한 반공정신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헐벗고 굶주린 오합지졸이었던 국민들을 결집시킨 구심력이었다. 누가 사악하고 해괴한 논리로 반공정신을 폄훼하는가. 공산주의는 수천만 명을 숙청 살상하고도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반공의 정치적 악용으로 희생자가 없지 않았다 한들 그것이 어찌 반공의 탓인가.무오류 순백주의나 원리주의만으로 된 역사란 있을 수가 없다. 패망하지 않고 번영하였으면 성공한 역사요 자랑할 만한 역사인 것이다. 반공과 개발독재가 아니었으면 우리도 북한 꼴이 되었거나 중구난방 분쟁이나 일삼다가 후진국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의 망령이 들린 비뚤어진 좌파들에겐 이런 말인들 먹힐까마는, 김일성 일당이 자행한 천인공노할 동족살상의 만행을 왜곡하거나 호도하는 자들은 수백만 원혼들의 저주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2020-06-25

학교와 역사의 의미를 잃어가는 아이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가 지났다. 시간은 동지(冬至)로 출발했다. 낮과 밤의 교대가 시작되었다.하지는 “모내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며, 더불어 늦보리, 햇감자와 햇마늘을 수확하고 고추밭 김매기, 늦콩 파종 등으로 논밭의 농사가 몰아쳐서 무척 바쁜 시기”이다.“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라는 속담처럼 자연의 순리를 아는 농부들은 자연이 더 내어준 낮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여름 뙤약볕도 잊고 일에 열중이다.코로나19에 갇힌 인간 사회와는 다르게 자연은 절기의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농부들의 모습이 건강한 이유는 바로 자연의 섭리를 지켜 살기 때문이다. 그들의 땀방울이 키운 농작물이 세상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지사에도 농부들의 자세는 다르다. 할 일을 다 한 농부들은 겸손하다. 그 겸손에 자연은 풍성한 결실로 답을 한다.자연과 달리 우리 사회는 부자연스러움의 연속이다. 언제부터 그런 모습이 낯선 모습이 아니게 되었지만, 최근에 북쪽이 보여준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민족상잔 비극의 날을 얼마 앞두고 이루어진 만행에 어이는 더 없다.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남쪽의 모습이다. 북쪽에 대해서는 왜 저리도 마음이 넓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명 북쪽이 한 행동은 일방적인 폭거다. 그런 범죄적 폭거에 남쪽은 유감이라고만 하고 있다. 이런 남쪽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한국 전쟁에 대한 일선 학교의 교육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역시나 아닐까 한국 전쟁에 관한 내용은 부실 그 자체였다. 일본 정부의 역사 교육 왜곡으로 일본 학생들은 일제감정기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모른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역사 교육이라면 조만간 한국 전쟁의 주범을 우리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뭐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 의미는 변질한다. 얼마 전 필자는 한 정당이 내건 가로 펼침막을 보고 매우 놀랐다. 띄어쓰기도 잘못된 그곳엔 “평화! 멈춰서는 안됩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이미 역사 속 인물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이 이미지로 새겨져 있었다.우리 현대 역사에는 아픈 숫자들이 많다. 그중 필자가 느끼는 가장 아픈 숫자는 6·25이다.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의 뜻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뜻이 퇴색되고 사라져 가고 있다. 평화도 좋지만 최소한의 양심적 사과부터 받으면 어떨까!한국 전쟁 추모 주간에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의미 없이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수업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지금 격주로 진행되고 있는 중고등학교 온라인 수업을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선생님, 제 친구들은 등교 수업 주간에 일부러 가정학습 내고 학교 안 와요. 그리고 저희 반 대부분 학생이 학원 다녀요. 차라리 학교 다니지 말고 학원만 다니겠다고 하는 친구도 많이 있어요. 선생님 이게 학교예요.”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제자의 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온라인 학습인지, 정말 과제 학습형 수업이 학교 수업인지 묻고 싶다. 학교가 없어질 날이 눈앞에 보인다.

2020-06-24

6·25와 남북관계

김규종 경북대 교수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어언 70년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은 귀동냥이나 관념으로만 6·25를 체험할 뿐이다. 4·19 시민혁명도, 5·18 광주항쟁도 60년, 40년 전의 일이니 무슨 말을 덧대겠는가. 신속한 시간의 흐름에 무연히 입을 벌릴 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되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냉각되고 있어서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전쟁의 상흔(傷痕)을 딛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도 대한민국은 30-50클럽에 가입하는 놀라운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여전히 어둡기 그지없다. 2016년부터 실행된 미국의 대북제재가 4년 이상 유지되었고,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북한경제는 오리무중 첩첩산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그런 와중에 중국은 북한에 쌀 60만 톤과 옥수수 20만 톤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끈다.2018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북한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군중을 상대로 대중연설을 한 것은 거대한 사변으로 기억된다. 당시 남북한 8천만 민중은 전쟁과 대립, 갈등과 알력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남북화합의 마당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2019년 6월 30일 남북과 북미 정상이 손에 손잡고 판문점에서 회동함으로써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염원은 현실로 현현하는 것으로 보였다.화해 분위기로 달리던 남북관계는 미국의 대북제재 연장과 탈북자를 비롯한 일부 단체의 무분별한 대북전단 살포, 날로 가중되는 북한의 경제난 등으로 악화하게 된다. 그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매우 엄중한 남북관계를 보고 있다. 통일부 장관의 사임에 이어 외교 안보 사령탑의 전면적인 교체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목숨 걸고 남북과 북미대화 복원을 성사시켜야 할 시점이다.아무리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대체(代替) 불가능한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앗아가는 전쟁의 참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간첩 사건 이후 남과 북이 어떻게 갈등했는지 보여준다.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김신조 일당에 맞서 박정희는 주석궁을 급습해서 김일성의 목을 따오도록 684부대를 신설한다. 허구와 현실이 공존한다지만,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이제라도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위기상황의 근본적인 원인과 진행과정 및 대응자세를 숙고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사태가 꼬여서 어떤 계기로 이토록 악화하였는지, 그것부터 냉정히 살펴봐야 한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무조건의 평화와 대화의 원칙 확인이다. 일부 야권에서 구두선(口頭禪)처럼 주장하는 핵무장이나 무력을 통한 대북대응은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남북의 갈등과 위기상황은 일본의 아베와 우익세력,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볼턴, 트럼프, 폼페이오 같은 자들이 기대하고 획책하는 최종지점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020-06-24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며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시간은 찰나의 봄을 지나 푸른 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계절은 이렇게 변화를 주는데, 달갑지 않게 다가온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형태를 많이 바꾸어놓았다. 텅 빈 베드로광장, 한산한 거리, 비어 있는 학교 운동장, 그 빈 공간을 마주보며 마음이 아프다. 빈 무덤! 그곳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얼마나 공허했을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분의 시신도 없어진 빈 무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마주하며 가슴이 얼마나 헛헛했을까.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병고와 가난이다”라고 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인데, 왜 그는 이런 말을 하였을까. 먹고 살기 위하여 더 가지기 위하여 바빠 본질적인 것을 놓치는 무한질주의 현실에서 가난과 고통은 삶의 브레이크와 같다고 할 것이다. 즉 그것은 다시금 본질,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한다.도공들은 정성껏 준비한 그릇과 항아리들을 불가마에 넣는다. 그것들이 높은 온도의 불길에 예상도 못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여 뛰어난 작품이 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찌부러지기도 한다. 고난과 실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고난에 맞을 용기를 청하자.예수님은 고별사에서 고난에 맞을 용기를 갖게 하셨을 뿐 아니라 평화를 얻게도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떠남, 그 빈자리에 오실 성령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제자공동체에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낙원을 되찾게 되고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게 된다. 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 또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 주신다.”헬렌 켈러는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다만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할 뿐이다.”라고 했다. 닫힌 현실의 문만을 바라보고 있지 말고 주님께서 열어주신 부활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청하자.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새로운 만남을 준비시키시고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2020-06-24

아, 20학번!

장규열 한동대 교수대학입시가 사람잡는다. 수험생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이 비상이다. 원하는 대학에만 들어가면 세상이 바뀔 모양이다. 젊은 시절 사서도 할 고생이라 여기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참고 견디며 어려운 시간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신입생들을 맞아 한 학기를 보냈다. 그런데 공허하다.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은 아직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하였다. 문제가 많다는 신입생환영회는 구경도 못했다. 대학 강의실은 고등학교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교수님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같은 과 동기들은 모두 어디서 왔을까.코로나19가 질기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대학들이 몸살이다. 온라인강의로 한 학기를 보냈지만 다음 학기는 어떨 것인지 아직 모른다. 교수들이 대학지성을 길러야 하는데 영락없는 지식장사꾼이 되어 자괴감으로 한가득이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이런 날이 올 것으로 알기는 했지만 이렇게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대면 강의로 만나는 교수와 학생에게 소통과 교감은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쌍방향소통이 가능하지만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나누는 대화와는 비교도 안 된다. 가족에게 집이 필요하듯이 대학에도 ‘장소’가 있어야 한다. 온라인콘텐츠로서 강의가 주목받지만 그것으로 대학을 완성할 수는 없다.온라인 소통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는다. 강의와 회의, 업무와 협력을 만나지 않고도 이렇게 광범위하게 할 수 있어 다행이긴 하다. 위기 가운데 교육과 업무가 끊이지 않고 진행되지 않는가. 새로운 발견이자 신통한 깨우침이다. 건물과 장소의 의미를 여러 방향에서 다시 생각한다. 수요가 줄면 부동산의 가치도 다시 평가되지 않을까. 교육공간과 업무공간은 이미 다시 바라보는 중이다. 강의의 온라인화는 가속될 전망이다. 기술의 진보로 소통과 교감이 보완되면서 콘텐츠의 심도가 유지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갈 터이다. 강의실의 명강의는 사이버공간으로 옮겨오지 않을까.디지털원주민(Digital natives)으로 태어난 올해 대학신입생들은 디지털시대의 본격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앞선 세대가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는 처음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낯선 상황을 함께 겪으며 헤쳐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게 아닌가. 세월호 사건 탓에 수학여행도 자제했었는데 오늘은 코로나19를 겪는다. 그 사이에는 대통령이 물러났던 촛불혁명도 보았다. 강고했던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새로운 기술과 질서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세상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들 가운데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세대가 되지 않을까. 정답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할 줄 아는 첫 세대가 되지 않을까.20학번들을 만나보고 싶다. 오늘은 어렵고 안타깝지만, 그대들에겐 거역할 수 없는 미래가 있다. 못 만나는 동안에도 열심히 갈고닦아 여러분의 내일을 준비하기 바란다. 온라인으로라도 길이 닿아 소통에 이른다면 기꺼이 함께 할 선배들이 있다. 20학번, 파이팅!

2020-06-24

피싱주의보

피싱(phishing)은 컴퓨터에서 전자우편 또는 메신저를 사용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또는 기업이 보낸 메시지인 것처럼 가장해 비밀번호 및 신용카드 정보와 같이 기밀을 요하는 정보를 부정하게 얻으려는 행위를 말한다.피싱(phishing)이란 용어는 사적 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의 합성어다. 보이스피싱은 2000년대 초반에 대만에서 시작돼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지역으로 확산됐다.보이스피싱은 본부와 콜센터, 인출 팀, 환전·송금 팀, 계좌모집 팀 등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움직이는 조직형·지능형 범죄다.사기수법이 날로 진화해 연령, 직업, 계층과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사기범이 미리 확보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언급하거나, 정보유출, 해킹사고 등 사회적 이슈를 내세우며 치밀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SNS)의 발달에 따라 전화 대신 메신저를 이용한 메신저피싱도 나타났다.메신저피싱은 다른 사람의 인터넷 메신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로그인한 후 이미 등록돼 있던 가족, 친구 등 지인에게 1:1 대화 또는 쪽지 등을 보내 치료비, 교통사고 합의금 등 긴급 자금을 요청하고, 이에 피해자가 속아 송금하면 이를 가로채는 사기 수법이다.가족이나 지인이 메신저로 급하게 송금을 요구할 경우 반드시 전화를 걸어 송금사실을 추가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가족과 지인외의 타인 계좌로 송금하지 말고, 출처가 불분명한 이메일과 문자, URL주소는 삭제해야 한다. 메신저 비밀번호도 정기적으로 변경해 스스로 사기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24

우리집 잡초

윤영대수필가6월 초에는 집안에 큰일이 있어서 시골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시골이라지만 포항시 북구 기계면 외곽에 마음의 쉼터로 마련한 조용한 한옥이다. 마당은 잔디가 곱게 깔렸고 담을 따라 아름드리 돌로 아름답게 둘러싼 작은 화단에는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어저께 비가 온 후, 단오날도 다가오는지라 마음도 정리하고 집도 살필 겸 갔었다. 더위가 성큼 온 듯한 날씨에 읍내를 지나 작고 조용한 마을의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은 잡초들의 환영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 끝 내가 손수 만든 나지막한 대문 앞에 서니 빨간 줄장미와 분홍색 찔레꽃이 반긴다. 마당에 들어서면 앞뜰의 소나무 순은 쑥 자라있고 집 뒤의 뽕나무, 대나무들이 엄청난 잎새들을 자랑(?)하며 지붕을 덮고 있다. 차를 마당 한편에 세우고 제일 걱정이었던 채소밭부터 살피니 다행히 고추와 상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 취미 삼아 일군 서너 평 정도의 밭에 비료도 많이 주지 않았는데 잘 자라주어 고마웠다. 그런데 밭이랑에는 흙이 보이지 않고 무언가 풀들이 가득하다. 가까이 가보니 채소밭의 골칫거리 쇠비름과 바랭이가 신나게 번지고 있었다. 아! 이놈들부터 뽑아야겠다 싶어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부터는 잡초와의 전투다.우선 고추밭 이랑부터 호미를 들고 들어가 낮게 기어 다니는 쇠비름을 뽑았다. 비 온 뒤라 쉽게 뽑혔다. 한 소쿠리 정도 뽑아버리려니 작고 두툼한 잎과 튼실한 줄기가 어렸을 때의 밥상이 생각난다. 돼지풀이라고 하는 쇠비름은 ‘밭에서 나는 생선’이라 할 만큼 오메가3가 풍부하여 많이 먹으면 생명이 길어진다고 장명초(長命草)라고 한단다. 옛날에는 봄여름 나물 무침으로 먹었지만 지금 우리 집에는 아직 못 먹는 잡초이려니…. 또 종기 치료에도 좋고 끓인 물을 바르면 습진과 무좀에도 좋다고 하여 약으로 보관하려 하다가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바로 옆에는 맑은 햇살을 받아서인지 상추가 풍성하게 잎을 펼치고 있어 아내가 즐겁게 한 잎 한 잎 따고 난 후, 나는 고랑 사이에서 줄기의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랭이를 뽑았다. 마당 잔디 사이에 가끔 듬성듬성 나 있는 것은 잘 뽑히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푸석한 밭 흙에서는 쉽게 뽑혀 다행이다. 그야말로 잡초의 대명사인 바랭이는 한국 원산인 한해살이풀로 가축의 사료로 쓰이지만 눈과 귀를 밝게 하고(明耳目) 폐를 맑게 하는 약재로도 쓰인다고 한다.허리 굽혀 땀 흘려 다 뽑고 나서 좀 쉬려고 마루에 앉으니, 앞쪽 화단의 낮은 키 나무들 사이에 튼실한 줄기와 거친 잎 위에 핀 노란색과 보라색 꽃이 눈에 들어온다. 몸통은 닮고 얼굴은 다른 엉컹퀴와 방가지똥이다. 꽃은 둘 다 수수하게 예쁘고 잎에는 가시가 있다. 예쁜 자주색 꽃을 피운 엉컹퀴는 잎의 가시에 찔리고 고약한 느낌이 나는 이름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잎도 줄기도 비슷하고 가시가 있는 방가지똥은 민들레와 닮은 노란색 꽃을 야생화 사진을 찾아보고 이름을 알았다. 또 ‘피를 멈추고 엉기게 하는 풀’ 엉컹퀴는 줄기 속이 차 있고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관절염에 좋은 약용으로 쓰이며, 방가지똥의 줄기는 비어있고 어린잎은 역시 나물로 먹고 간에 좋은 약재로 쓴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화단의 모과나무 앞쪽에는 뽑히지 않고 쭉쭉 자라고 있는 참나리 한 무리가 있다. 점박이 주황색 꽃잎을 뒤로 말아 재껴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 백합 닮았고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기에 야생화의 자격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렇듯 텃밭에 성가신 잡초도 화단에 제멋대로 자리 잡는 야생화도 깨끗한 정원에는 필요 없는 식물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몸을 살리는 유용한 약재라고 하니 쓸모없는 풀과 꽃들에게도 각자의 존재 가치가 있으리라.골목 안쪽부터 집 안뜰까지 자라는 돌나물-내 어릴 때는 돈나물이라 했다- 은 봄에 뜯어 생나물로 무쳐 먹었고, 화단 귀퉁이에서 무릎까지 자란 인진쑥은 한 움큼 잘라서 묶어 황토방 벽에 걸어두었다. 향기도 있지만 벌레들이 싫어한단다. 뽑아내는 잡초들도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그들이 품고 있는 약용으로서의 가치로 보면 모두 소중하다. 나의 시골집 마당은 잡초들로 가득한 작은 한약재 텃밭이다.

2020-06-24

좋은 사람

공자와 자공의 수많은 대화 중 ‘좋은 사람’에 관한 부분은 제법 회자 됩니다.자공이 묻습니다.“마을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 아니다.”“마을 사람이 다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좋은 스승답게 공자님 화법은 에둘러 갑니다. 곧장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두어 번 호흡을 가다듬을 여지를 줍니다. 우선, 공자님이 말씀하신 좋은 사람 아닌 것에 대해 짚어봅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야합에 물들었을 수 있고, 모든 이가 싫어하는 대상이라면 실없이 굴어 신뢰를 잃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 아닌 것이 맞습니다.좋은 사람 아닌 것을 예시로 들면서, 공자가 정의한 좋은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의롭지 못한 이들이 미워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부조리 앞에서 단호하게 비타협을 실천할 것이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사심 없이 공정함을 논할 것입니다. 공자의 ‘좋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참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이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착한 사람은 좋아할 것이지만, 나쁜 사람은 미워할 것이 자명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나쁘게 말할 리 없고, 나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을 좋게 말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못된 사람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부정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공자가 정의내린 좋은 사람이 되거나, 그런 대상을 만나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시각각 타협을 종용 받고, 공정함 따위는 버리라고 재촉 당합니다.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을 꿈꾸기는커녕, 비겁함을 무기삼아 조금씩 나쁘게 살아가는 편리를 택합니다. 좋은 사람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은 철학적 이상으로 새길 수는 있으되, 현실에서 접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애초에 좋은 사람, 운운하면서 규정을 지으려고 한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그러한 판단은 하지 않을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좋은 물건은 그냥 좋은 것이고, 좋은 사람은 마냥 좋은 것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챙기고 싶은 마음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심리적인 호응 관계에 기반한 지극히 감정적인 반응 체계니까요. 분명히 좋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없어야 그 대상을 좋은 사람의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좋은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마음에서 자주 불러내는 일입니다. 좋은 사람은 정의 내리는 대상이 아니라 곁에 있음을 자각하는 거울 같은 존재니까요.많은 곁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감히 따라갈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정서적 감성과 예술적 감각을 지닌 다정한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따뜻함과 성실함을 접하면서 세상엔 좋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고 반성합니다.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음나무 장아찌가 잘 익었다고 누군가가 집 앞까지 배달해주고 갑니다. 새 집에 어울릴 거라며 오르골과 스노우볼을 놓고 가는 이도 있습니다. 며칠 앓았다는 것을 안 누군가는 죽 쿠폰을 전송해 옵니다. 천사 이름표를 단 것도 모자라 긍정의 에너지로 세상을 가꾸는 이들입니다. 처방전 없이도 받을 수 있는 명약이자, 예약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명의 같은 존재들. 울컥해집니다. 제 진심을 다 표현하기엔 오글거리고 그 마음을 다 갚기엔 아득하기만 합니다. 제대로 된 보답조차 없이 다만 오래토록 좋아할 뿐입니다. 은근히 까다롭고 대놓고 급한 제 곁에 훈풍 같은 여운이라니요.김살로메소설가좋은 것과 싫은 것에는 실체적 결론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호불호가 있을 따름이지요. 점점이 떠있는 저 부표처럼 사람들은 닮은 듯 다른 듯 제 하루를 표류합니다. 그 단독자의 삶이 서로 엮여있음을 느끼는 때가 바로 여운을 맛볼 때입니다. 이런 날이면 공자님의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를 제 식으로 바꿔봅니다. 꿈속에서 공자의 제자가 된 누군가가 묻습니다.“마을 사람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본받으려 하기 때문이다.”아뿔싸!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가 없는 줄 알았는데, 공자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2020-06-24

바이러스가 소환한 미래세상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비대면(Contact-free)’이 요즘 세계 IT 연구와 산업계의 큰 화두다. 비대면이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 상호작용의 방식을 의미하는데, 온라인 쇼핑과 로봇 배송을 비롯하여 원격근무, 원격학습, 원격의료,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샵스트리밍(Shopstreaming) 같은 가상경험경제가 대표적이다. 기술적으로는 가상현실, IoT, 센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등 소위 ‘4차산업혁명기술’이 총동원되어야 실현될 수 있다.바이러스 이전에도 원격, 온라인, 무인화, 자동화 등의 이름으로 선보여진 ‘사촌’ 개념들이 많았지만 대세가 되지는 못했다. 대면 때보다 비언어적 소통이 차단된다는 한계로, 소비자 불만을 우려한 기업들이 대면적 상호작용을 더 선호하여 항상 보조적인 수단 역할에 그쳤다. 비대면은 이제 옷, 신발처럼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 마스크처럼 포스트 팬데믹 시대 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 산업경쟁력의 핵심으로 등극한 것이다.빠른 종식을 기다리는 모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가까운 시일 내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멈춰버린 경제가 저절로 회복될 거라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인간성의 상징인 사람과의 교류가 건강과 생명의 위협이 되어버린 지금, ‘비대면’이 구성원과 고객의 불안감을 극복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비대면 상황에서도 생산성을 유지하여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화해 줄 포스트 팬데믹 시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사람 대하기가 불안해진 마음이 앞당겨 소환한 미래세상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최근 몇 달 우리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애써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기업에서는 선택의 여지 없이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생존을 위해 업무방식, 조직구조, 근무장소와 시간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비즈니스의 상징인 회의와 출장은 크게 줄었고, 이메일, SNS, 화상통화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업무가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재택근무나 비대면 업무가 가능한 직업은 전체 직업의 27%에 불과하다고 한다. 학교, 공연장, 소상공인, 관광지, 병원, 복지시설 등 대면접촉과 현장성이 요구되는 그 외 대다수 사업체는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사악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부터 먼저 공격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지탱해 오던 선량한 사람들을 재난 전선의 최전방으로 밀어내었다. 그러니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의 ‘비대면’ 활성화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들부터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미래기술은 꼭 필요한데 아직 실현되지 않은 바람직한 모습을 떠올리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어머니가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바이러스의 위험 속으로 나가시지 않아도 되는 세상, 집 거실에서 가상현실 안경을 끼고 동네 반찬가게, 빵집, 야채가게를 한 바퀴 돌고, 서울 친구 집에도 휙 하니 마실 다녀오실 수 있는 세상처럼….

2020-06-23

울릉도行 대체 선박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천혜의 비경이 돋보이는 울릉도를 다녀왔다. 지난 80년대 초에는 고교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처음으로 가봤고, 2011년엔 가족들과 함께 명소 관광과 산행, 독도 탐방을 겸해 갔으며, 이번엔 직장동료들과 함께 자전거 라이딩과 성인봉 등반을 위해 갔었다. 풍랑 등의 기상조건에 따라 계획대로 섬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쉽질 않은데, 근 40년 동안 큰 차질없이 세번을 다녀왔으니 그나마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다.여행의 반 부조는 날씨라고, 입도(入島) 첫날 약간 흐리고는 이틀 동안 쾌청해서 섬 일주 라이딩과 성인봉 등정을 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더구나 시원한 바람의 결 속에 온갖 비경을 접하며 파도소리와 원시림의 녹음 추임새에 맞춰 페달을 밟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국토의 막내 울릉도는 약 250만 년 전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섬이다. 성인봉(986m)을 주봉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와 죽도, 관음도 등을 거느린 거대한 산 같은 섬이다. 전체가 하나의 섬이지만 화산성 물질의 분화로 험준한 봉(峰)과 유일한 나리분지가 형성되는 등 지질학적으로도 학술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부속섬인 독도는 고유한 우리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터무니없는 영유권 주장으로 외교적인 마찰이 끊이질 않는 민족의 자존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지난 40여년 간 포항∼울릉도를 오가던 배의 운항에도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필자는 무려 11시간이나 걸리던 청룡호를 타고 갔다가 6시간 걸린 한일호를 타고 나온 적이 있다. 그 후 2천400톤급 썬플라워호를 타고 비교적 빠르면서 안정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는데, 지난 2월말로 선령을 채운 뒤 대체 선박 투입 문제가 연일 뜨거운 감자처럼 떠오르고 있다. 썬플라워호의 선령 만기가 벌써 4개월이 지나가는데도, 무슨 뒷북 치는 것도 아니고 사전에 운항사와 울릉주민, 포항해수처와의 협의, 조정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여태껏 난항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모름지기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이라 했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휘호한 유묵의 글귀이기도 하다. 세상이 복잡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미래를 예견하고 통찰하는 안목과 지혜를 길러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준비와 계획, 대비와 기획을 잘 해야 한다. 그것은 곧 나무도 알고 숲도 볼 줄 아는 혜안이기도 하다. 근시적이나 임시변통식 대처는 소모적인 논쟁과 손실을 끼칠 따름이다. 타협과 조율의 퍼즐로 상생하는 기틀을 빠르고 신중히 마련했으면 한다.파고 탓인지 기존보다 1/4 정도로 줄어든 규모의 엘도라도호를 타고 포항을 출항하는 것부터가 상당한 고역이었다. 승객 대부분이 선체의 심한 롤링으로 인해 역겨운 배멀미에 시달리는데, 배가 작아 조금만 너울이 일어도 크게 흔들리고 기상악화에 결항이 잦다는 어떤 분의 씁쓸한 푸념이 울렁거림을 더하는듯 했다.

2020-06-23

삐라 갈등

우리말 사전에 삐라는 전단과 같은 의미이나 북한어라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로 쓰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 밝히고 있다.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전단 또는 광고용 포스터라는 뜻의 영어 표현인 빌(bill)에서 나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빌이 일본식 발언인 삐라로 변형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삐라는 전단의 성격이지만 주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될 때 부르는 표현이다. 상업용 전단지와는 어감부터 다르다.삐라 살포의 시초는 16세기 종교개혁 중 교황을 고발하는 그림이 뿌려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심리전 목적으로 전선에 뿌려져 적의 심리를 교란한다 하여 종이폭탄이라는 별명도 붙었다.우리나라도 해방 후 남북이 극심한 이념대립을 하면서 삐라가 많이 활용됐다. 특히 6·25전쟁 중에는 남북이 심리전의 매개로 사용하면서 엄청난 양의 삐라가 뿌려졌다. 체제의 우월성, 전쟁의 당위성 등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 남북은 같은 민족이어서 언어나 문화적 장벽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당시 뿌려진 삐라는 약발은 잘 받았다. 6·25전쟁 기간 중 남한과 유엔은 25억장, 북한과 중국은 5억장 정도의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 전쟁 후에도 남북은 더 많은 삐라를 뿌렸고 삐라를 보고 월북 혹은 탈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정부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고 있는데도 북한이 되레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하고 있어 남북 간 삐라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북한이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사진을 담은 삐라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통일부가 유감을 표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삐라의 역사를 보면 삐라는 남북간 갈등의 선봉에 늘 서 있었다. 최근 삐라 갈등도 남북관계가 범상치 않음을 말해준 일례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23

오른쪽, 왼쪽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은 왼손으로 비비지 말고 오른손으로 돌려 먹어라.”젊은이들에게는 꽤 알려진 남성 가수 그룹 ‘노라조’의 노래 ‘카레’의 가사이다. 인도 전통 음식인 카레는 오른손으로 조물조물 다져서 먹는다. 인도에서는 식사 때 불결하고 부정한 손으로 여겨지는 왼손을 사용하면 안 된다. 어디 인도뿐이랴. 우리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어린 시절 내 수저는 늘 왼손에 들려 있었다. 부모님은 왼손에 가 있는 수저를 오른손에 무던히도 옮겨 주시다가 결국은 포기하셨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사달이 났다. 왼손에 연필을 쥐고 있는 나를 보신 담임 선생님은 내 자리로 오셔서 오른손에 연필을 쥐여 주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뒤돌아섬과 동시에 연필은 다시 왼손에 가 있었다. 교육자적 사명감에 투철하셨던 선생님은 며칠을 교탁과 내 자리를 오가시다가 급기야 내 왼손을 당신의 향기로운 손수건으로 묶어버리시고야 말았다. 그래서인가, 5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선생님의 성함과 얼굴, 그 향기는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내 가슴에 생생하게 간직되어 있다. 아무튼 오롯한 왼손잡이인 나는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쓰게 되었고, 졸필의 탓을 여기에 돌리고 있다.오른쪽의 ‘오른’은 ‘옳다’에서 왔고, 왼쪽의 ‘왼’은 ‘외다’ 곧 ‘그르다’의 관형형에서 비롯됐다. 우리말을 풀어보니 왼쪽이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르고 잘못 됐으니 왼쪽이 부정적일 수밖에.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좌우의 개념이 한 쪽이 긍정적이고 다른 한 쪽이 부정적인 것은 원래 아니었다. 조선시대 의정부 세 정승 중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서열이 높았다. 우리말로는 ‘오른쪽 왼쪽’이지만 한자로는 ‘좌우’로 왼쪽이 우선한다.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제가 들어서면서 우리의 국회격인 국민공회가 만들어졌다. 의장석에서 볼 때 보수적이고 혁명에 소극적이며 자본가 계층을 대변하는 온건파인 지롱드 파가 오른쪽에, 급진적이고 과격한 혁명 추진세력으로 소시민과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코뱅 파가 왼쪽에 자리 잡으면서 우파와 좌파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역사적으로는 좌파가 더 진보적이고 과격하다고 하는데 요즈음은 오른쪽도 만만찮다. ‘가장 옳’아야 할 ‘맨오른쪽’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극우 단체, 극우주의자들의 문제는 바다 건너 일본이나 유럽 등 딴 나라 이야기거니 했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덧 우리 사회의 한 복판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은 구제와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하라는 뜻인데, 지금 오른쪽 왼쪽은 드러내놓고 서로 제 잘났다 대립하고 반목하고 있다. 리영희 교수가 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 이름을 되뇌어 본다. 아무렴, 오른쪽과 왼쪽은 반목이 아닌 협조의 관계로 살아야지. 함께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날아갈 수도 있는데.“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두 손을 다 쓰면 더 잘 비벼지고 더 맛있어지지 않을까. 오른쪽과 왼쪽이 힘을 합하고 어울려 사는 맛깔나고 멋진 세상이 아스라하다.

2020-06-23

에브리맨으로 살아가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요즘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대통령이었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연예인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주목받는 사람들이니, 예나 이제나 특별해지고 싶은 소망은 변함없는 듯하다. 오죽하면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까지 있을까.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도 사그라진다. 이제 흔해빠진 평범한 삶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작가 필립 로스는 그의 소설 ‘에브리맨’에서 그런 흔해빠진 인물을 그려낸다.‘에브리맨’의 주인공 그웬은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나이 들어서는 병원에 자주 다니는 남자다. 그러나 세 번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난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생활을 책임져야 해서 직장에 다니며 꿈을 미룬다. 생애 마지막 7년 동안은 매년 병원에 입원하다가 결국 수술실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무슨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그웬의 삶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비슷하다. 이런 상황과 감정들은 누구나 겪을 법한 것들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이런 삶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것, 흔해빠진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흔해빠진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하고 각인된다고 한다.그웬은 세 여자와 이혼하면서 가족들에게 상처는 많이 주었지만, 이혼 후 양육비는 꼬박꼬박 보낸다. 늙어서는 딸 낸시의 쌍둥이를 돌봐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기 집 근처로 이사 오기를 바라는 소심한 사람이다. 은퇴 후 그토록 원하던 이젤 앞에 섰을 때는 눈물을 흘릴 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많다. 주 1회 그림 교실을 열어 같이 늙어가는 이웃과 교류한다. 이런 일들은 정말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평범한 일들이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냥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죽음 역시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웬은 큰 수술을 앞두고 가족 공동무덤에 찾아가 무덤 파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남자는 무덤 파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침대를 놓아도 될 만큼 평평하게 해야 하고,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멋있어 보여야 한단다. 그웬은 나이 든 사람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다며 고마워한다. 이 말이 그웬에게 안정을 주었을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자책하고 실망한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위인전을 읽으며 모름지기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겨야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가끔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난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연이 있고, 열정이 있고, 선택이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라는 말이 있다. 부귀영화만이 삶의 의미는 아니다. 평범함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만들고 확인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2020-06-22

편리미엄

편리함과 프리미엄을 결합한 용어로, 편리함이 중요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소비자들이 가격이나 품질 등 가성비를 넘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 편리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호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컨대 외식업계에서는 이미 손질된 음식 재료를 받아 데우기만 하는 간편식이나 즉석조리식품(RTC·Ready to Cook) 등이 부상하고 있으며, 가전업계에서는 적은 노동력으로 가사 부담을 덜어주는 의류건조기나 식기세척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또한 뷰티업계에서는 다기능성 제품인 올인원 에센스와 머리 감는 시간을 줄여주는 드라이 샴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맨처음 가사 노동의 강도를 줄이고자 가전제품에서 시작한 ‘편리미엄’이 식품 업계에도 나타나 가정간편식과 레토르트 식품 시장이 성장했다.환자의 식단도 편하게 섭취할 수 있고 더욱 전문적으로 영양 성분이 설계된 케어푸드로 변화하고 있다. 영양 성분에 맞춰 따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외출할 경우 도시락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케어푸드를 통해 해결됐다. 케어푸드는 영유아나 노인, 환자 등 맞춤형 식사가 필요한 이들이 균형 있는 영양 성분을 섭취하고 소화하기 편하게 만들어진 식품이다.최근 고령자와 환자뿐 아니라 바쁜 일상 때문에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이들에게 식사대용식으로도 주목받고있다. 최근에는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 상품이 인기를 얻자 1~2인 가구의 니즈(Needs)를 반영해 잘라서 소분한 ‘조각 과일’과 일반 과일보다 크기가 작은 ‘소과종 과일’ 등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누를 수 있는 시장은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22

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4·19에 의한 하와이 망명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최측근의 손에 의해 희생되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비리로 옥고를 치른 후 아직도 재산을 추징당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역시 아들의 비리로 명예의 손상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조사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비리로 재판중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으로 탄핵되어 아직도 수감 중이다. 해방 후 짧은 정치사에서 이토록 많은 대통령이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사례는 세계사에서 드문 일이다.불행히도 우리는 자랑스러운 전직 대통령을 가지지 못한 셈이다. 상당수의 전직 대통령은 본인과 친인척의 비리,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을 겪었다. 권력이 집중된 우리나라의 단임 대통령제는 원천적으로 직권남용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순수성은 지지층뿐 아니라 상당수의 국민들이 신뢰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다행스럽게 대통령 주변의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권이나 말기에 가까울수록 친인척 등 권력 측근들의 비리 가능성은 높아진다.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주변부터 경계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재판에 계류 중인 대통령 측근에 대한 재판의 공정성부터 보장하여야 한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뿐 아니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정의연과 윤미향 사건은 이미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조국 전 장관과 그 부인 사건은 아직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정에서는 대통령의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마음의 빚’이 사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와 대통령 주변 사건에 대한 심판이 공정해 질 때 권력형 비리의 의혹은 해소될 것이다.또한 여당이 압승한 21대 국회도 문재인 정부의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60%를 유지하고 집권 여당은 민주화 이후 최대의 의석을 확보하였다. 이럴 때일수록 문재인 정부는 오만과 독선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19세기 영국 역사학자 로드 액튼은 일찍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해방 후 짧은 우리 헌정사에서 우리는 집권 여당의 권력형 비리를 수없이 보았다. 벌써 집권 여당의 ‘의회 독재’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독주가 임기 말의 문 대통령에게는 부메랑이 될 수 있음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민중 항쟁인 촛불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임을 자인하였다. 대통령은 이제 그가 약속한 ‘공정하고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답변서를 써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독선적 권력은 끝까지 감시 통제해야 한다. 대통령의 눈과 귀는 그를 구해준 친문 여론에만 의존해서 안 된다. 특히 ‘대깨문’이라는 절대적 지지 세력의 좌익 모험주의는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임기 말의 한탕주의적 권력비리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척결되지 않는다. 신설되는 공수처의 최우선 과제는 권력 측근의 비리 수사에 두어야 할 것이다.

2020-06-22

합리적인 예술인 고용보험이 절실하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달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코로나19 관련법과 n번방 방지법, 구직자 취업촉진법, 예술인 고용보험법 등 민생법안들이 황급히 국회를 통과했다. 소위 고용보험 대상에 예술인을 추가한 ‘고용보험법’ 및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이 새로운 제도로 법정효력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제21대 국회에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과 시행령이 제정되어져야하는 후속 조치는 아직 남아있지만 그 실효성에 관한 뒷이야기들은 문화예술행정가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올해 초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패닉상태에 직면한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고용보험법이란 제도가 과연 예술가를 위한 복지정책인지 아니면 증세를 위한 또 다른 세금정책인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우리나라에서 고용보험법이 처음 도입된 건 1995년이다. 이 법은 근로자가 실직하였을 경우 실직한 근로자 및 그 가족의 생활안정과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근로자 복지제도로 , 실업보험이 실업급여 중심이라면 우리나라는 고용보험제도의 도입이라는 특수성을 갖는다. 즉, 실업 이후에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것보다 실업 그 자체를 예방하고 고용구조를 개선하는데 그 비중이 더 크다. 근로자의 직업능력 향상으로 전통적인 실업보험제도와 직업훈련, 고용 안정 사업 등이 결합된 제도라 할 수 있다. 적극적 정책의 수단이 연계된 시스템의 개념이다. 일반 근로자의 경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의 폐업 등의 이유로 휴직 기간일 때는 고용보험의 적용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문화예술 용역계약을 체결한 예술인 역시 고용보험 적용대상이 되며 임금근로자와 유사한 수준으로 실직시 실업급여와 출산시 출산전후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예술인의 경우는 이처럼 권고사직, 계약기간 만료, 정년, 회사 폐업 등 비자발적인 사유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현안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에는 130만 명 예술인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예총 이외 단체와 개인으로 활동 중인 예술인까지 모두 합친다면 30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자신들의 열정과 예술세계를 피력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 왔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문화행사가 취소 또는 연기된 사례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2천500건 이상, 피해액만 500억원대라고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술인들의 보험계약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기획재정부에서는 “전 국민 대상의 고용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에 2022년까지 9천억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하려 한다. 그리고 우선 예술인과 특고 대상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사업과 구직급여 재정도 확충하고자 한다”는 정책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제도라도 일반직장인과 예술인과의 차별이 균등하게 이루어지고 분배되어진다면 예술인들은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 예술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무시한 일방적 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6-22

렘브란트의 자화상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화가 렘브란트(1606∼1669)는 ‘빛의 마법사’라고 불린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극명한 신비한 분위기의 걸작들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20대 초반 화가로 성장해 가던 풋풋한 청년의 모습에서부터 대성공을 거두며 자신에 차 있는 당당한 모습 그리고 한 순간 몰락을 경험하며 깊어가는 고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자화상까지 렘브란트가 남긴 몇몇 점의 자화상만 살펴보더라도 한 명의 거장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자취를 찬찬히 쫒아갈 수 있다.렘브란트가 활동하던 17세기, 해상무역의 강자로 떠오른 네덜란드는 큰 부를 축적한다. 길드들은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최고의 미술가에게 작품을 의뢰하곤 했는데 1632년 암스테르담 외과의사협회는 아직 젊은 화가 렘브란트에게 단체 초상화를 의뢰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렘브란트의 걸작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이다.렘브란트 이전의 화가들은 그림 속 인물들을 마치 개개인의 증명사진을 오려붙여 놓은 듯 경직된 모습으로 그렸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초상화에 연출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생동감 있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배경은 연극 무대처럼 배치했고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이 그림으로 스물여섯의 렘브란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부호들과 협동조합들은 앞다투어 청년 화가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큰 부와 명예를 쌓았다. 1634년 성공가도를 달리던 렘브란트는 베레모를 쓰고 고급 모피 외투를 두른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밝은 빛이 화가의 얼굴을 밝히고, 자신에 찬 매서운 눈빛으로 감상자들과 시선을 교환한다.1640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대가의 여유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열정의 시기가 지나고 본질을 꽤 뚫고 있는 그런 분위기의 자화상이다. 그림 속 화가가 오른 팔을 난간에 걸치며 여유로이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데, 이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티치아노(1490∼1576)가 그린 ‘누빈 소매 옷을 입은 남성’(1515년경)의 초상에서 가져온 것이다.정점에 올랐다는 것은 서서히 또한 기운이 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는 회화적 실험 정신이 렘브란트의 화가 인생을 내리막길로 안내하고 만다. 시민 민병대에서 의뢰한 단체 초상화가 문제였다. 1642년 폭이 4미터가 넘는 대작을 완성하고 의뢰인에게 건넸을 때 그 반응은 예상 밖으로 아주 부정적이었다. 민병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출동하는 절도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기대했을 텐데,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제각기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무질서함을 보이고 있다. 렘브란트는 연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해 자유분방한 화면을 구성하였지만, 의뢰인들의 기대에서 아주 벗어났던 것이다.한 점의 그림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렘브란트는 한 점의 그림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경험한다.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불렀는지 세 명의 자녀들이 세상을 떠났고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세가 기울었고 화가는 일순간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에는 의욕과 자신감이 넘쳐났고, 전성기 시절에는 고귀한 모습으로 자신을 그림에 담았다면 몰락을 경험한 노년기 렘브란트는 새로운 차원의 정신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자화상은 인물화의 한 종류로 미술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은 것을 이야기한다. 초상화가 그렇듯 화가의 자화상 또한 단순히 그려진 인물의 외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품과 내면 그리고 생의 단면들이 색과 선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며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0-06-22

진정한 행복의 척도는… 영천 부귀사(富貴寺)

산길을 접어들자 더이상 민가는 보이지 않고 차는 하염없이 숲을 빠져들듯 나아간다. 산은 적막감에 싸여 베일에 가려진 듯 조심스럽고, 무성한 나무들의 푸른 눈빛은 너무나 성성하여 두려움조차 인다.네비게이션은 태연하게 그 길을 고집하는데 친구와의 대화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말수마저 줄어든다. 흔치 않은 경험이다. 잠시 그늘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연다. 커피를 마시며 애써 숲을 예찬해보지만 하오의 신록은 끊임없이 나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다. 용기를 내어 꾸역꾸역 낯선 이름, 부귀사를 찾아 산길을 오른다.부귀사는 신라 진평왕 13년(591년)에 혜림대사가 거조암과 동시에 창건한 14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지닌 절이다. 고려 때는 보조국사 지눌이 주석한 절로, 도중에 폐사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고찰인 것이다. 산이 좋고 귀한 물이 있다는 산부수귀(山富水貴)로 알려져 약수는 아토피성 피부병에 효험이 탁월하고 각종 차맛을 내는 찻물로 유명할 만큼 수질이 뛰어나다고 한다.몇 개의 굽이를 지나자 커다란 바위 아래 부도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아늑한 분지형 터에 부귀사가 자리하고 있다. 어떤 인위적인 꾸밈도 없이 환하게 트인 공간 위로 뻐꾸기 소리만 쏟아져 내린다. 신비스러울 만큼 작은 절이 고요를 삼키며 참선 중이다. 결코 낯설지 않은, 그런데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신세계에 이른 듯 경이롭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깊고 깊은 산중에 자리한 때 묻지 않은 절이다.불안했던 여정은 계단 위 보화루 앞에서 씻은 듯 사라지고 감탄사만 쏟아낸다. 소박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절이다. 보화루를 향해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저절로 경건해진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은 없지만 보화루는 사찰의 마지막 문인 불이문에 해당한다. 저 해탈문을 들어서면 부처님의 나라, 불국정토에 이른다. 우측 담장 끝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큰 나무들의 눈빛도 넓고 깊다.어쩌면 부귀사에 오는 동안 우리를 두렵게 했던 나무들은 천왕문을 대신했던 것이 아닐까. 현란하고 삿된 마음 돌아보지 않고 잡담을 이어오는 우리를 향한 무언의 경고였으리. 산 아래에서부터 이어지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마음으로 읽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숲의 적막함만 보였던 것이다. 모든 나무와 숲, 자연에는 오염되지 않은 혜안을 가진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아담한 보화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면 부처님 세상에 닿을 수 있다. 누각 아래의 어두운 통로 저쪽 편은 마치 딴 세상처럼 밝고 환하다. 누각 밑의 어두움은 나의 어리석음을 뜻한다. 그 장애물을 극복해야 비로소 극락에 들어설 수 있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처럼 누각을 낮게 만든 것도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머리를 숙이며 나를 내려놓고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즉 하심(下心)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다. 불교 공부에서 첫걸음이자 마지막이 곧 하심이다.그 동안 수도 없이 머리를 숙이고 절을 들어섰으며 법당에서의 백팔 배도 오로지 하심을 위한 기도였다. 그런데도 절문을 나서면서 그 간절함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일상은 또 허둥거리며 자기반성만 되풀이하느라 바쁘다. 절실함이나 일념의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절 기행은 성숙한 외관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멀고 힘든 일이지만 하심하는 마음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리라.보화루를 통과하는 마음이 더없이 차분하다. 경내에 들어서자 몸과 마음이 불국토임을 먼저 알고 편안해진다. 절은 어떤 인기척도 없고 오래된 석등 하나 외롭다. 극락전을 지키는 배롱나무 그늘 뒤편으로 하얗게 피어서 지고 있는 클로버 무리들과 알 수 없는 꽃향기로 경내는 아찔하다. 빈 절에 들어서면 몸가짐과 행동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고향집에 돌아온 것처럼 따뜻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조낭희 수필가극락전에는 주존불인 아미타여래불을 중심으로 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삼존불 뒷벽에는 1754년에 제작된, 18세기 중엽의 전형적인 양식의 후불탱화 미타회탱이 보인다. 부족한 안목으로 탱화를 감상하기보다는 법당의 아늑한 분위기에 이끌려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불안과 공포, 평화와 행복을 오갔던 일련의 마음들을 모처럼 들여다본다. 일상을 따라다니던 생각과 잡념의 징그러운 고리들, 쓸어내고 비워내도 다시 쌓이는 탐욕들을 가만히 응시해 본다. 이내 마음이 고요해져 온다. 친구는 요사채 뜰에 앉아 시간을 즐기고 나는 수행기도도량인 부귀사의 청정한 맥박 소리를 듣는다.요사채를 돌아 작은 마당에 들어서니 요사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스님은 잠시 포행이라도 나가신 듯하다. 뜰 위에 쌓여 있는 장작과 큰 채반에 널린 밥이 유월의 햇살 속에서 말라가고 있다. 수행 중인 스님의 삶과 첩첩 산중에 홀로 깨어 있는 작은 절이 내 안에 불을 밝힌다. 보화루 처마에 걸린 하얀 지등(紙燈)을 향해 두 손 모으는 내게 말씀 하나 들린다.‘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2020-06-22

부국강병책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나라 살림을 살찌우고 군사력을 튼튼하게 하는 국가 안위와 관련한 주요 정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자들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이라 말할 수 있다.지금도 부국강병책은 국가 안보전략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전쟁의 결과에 따라 그 줄기를 이어갔던 것을 나라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수백 개의 제후국에서 전국 7웅으로 재편되고, 다시 진(秦)나라로 천하가 통일됐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으로 날이 새던 시절이었다. 전쟁을 통해 나라가 이합집산하고 결국은 힘이 센 나라가 천하를 얻게 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보여준 시대였다.오늘날도 국가의 안위를 보전하는 방법은 예전이나 다름없다. 나라의 힘이 세야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수많은 고사성어 중에 전쟁과 관련한 것이 유독 많았던 것은 전쟁만큼 인간에게 혹독한 교훈을 주는 것도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전쟁은 자국의 이익과 번영을 위한 무력 수단이다. 힘으로 다른 나라를 침범해 주권과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는다. 춘추좌씨전에서는 거안사위 유비무환(居安思危 有備無患)이라 가르치고 있다.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고 미리 대비하라는 뜻이다.북한이 온갖 위협을 일삼고 있다.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 폭파 후 “이것은 처음 시작에 불과하다”고 엄포까지 놓고 있다. 북한의 추후 도발이 무엇이 될지 모르나 국민을 불안케 하기에 충분히 고조된 분위기다. 국민의 불안감을 다독여 줄 정부의 확고한 응징의지가 필요하다. 부국강병의 안보관이 절실한 지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21

‘봄’이 폭파되다

안재휘 논설위원중매에는 ‘잘 하면 술이 서 말이요,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이 따라다닌다. 속담은 중매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경계를 전한다. 사전적 의미로 혼인은 억지로 권할 일은 못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중매 또한 함부로 할 일이 못 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깜냥도 안 되는 서툰 사람이 큰일을 망친다는 뜻의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담도 있다.한반도 비핵화라는 세기적 과업을 목표로 하는 북미회담의 중매 역할을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북한이 예고했던 대로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저들이 끝내 ’남북 합의’ 전면 파기 수순에 돌입하는 사태를 보면서 왕조 세습국가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 요 몇 해 남북이 ‘봄이 온다’, ‘봄이 왔다’ 운운하며 열광했던 ‘평화의 봄’은 연락사무소 폭파 쇼로 끝장이 났다.평화는 ‘평화 타령’만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굴종으로 잠시 유보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무래도 신변이 무탈하지 않은 것 같은 김정은의 형편과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지 사이에서 한반도의 작금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우리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이 미지의 시한폭탄이 작동되고 있는 느낌이다.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코너에 몰린 것인가. 지난 일들을 차례로 복기해보면, 북미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섣부른 ‘낙관’이 중대한 원인으로 짚어진다. 때마침 폭로되고 있는 존 볼턴 전 미국 대통령 안보보좌관의 고백 속에 힌트가 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에 전혀 관심이 없이 사진찍기에 혈안이 됐던 트럼프와 내부 갈등을 빚은 볼턴의 장난질을 간파해내지 못한 패착이었던 것으로 유추된다.절박했던 것은 우리뿐이었다. 집권 이래 ‘세계 대통령’의 지위를 포기하고 국수주의(國粹主義)적 외교 행태를 보인 트럼프는 한반도의 운명을 한바탕 체스판처럼 다뤘는데, 청와대는 그걸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북미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희망 섞인 낙관은 결국 양쪽으로부터 세찬 원망을 듣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조선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의 근본적 차이를 묵과한 문 대통령의 전술이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이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반미 운동권이 ‘대북 전단’과 ‘한미워킹 그룹’을 철천지원수 삼아 잡드리하는 행태에서는 그 어떤 해법도 있지 않다. 희생양을 자처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퇴임사에 성성한 날카로운 가시들을 잘 읽어야 한다. 최소한 지금처럼 낭만주의 평화론에 찌든, ‘무능한’ 청와대 참모들과 국정원으로는 출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평화 쇼를 연장하며 시간을 번 북한의 핵 무력은 한층 업그레이드돼 있을 게 분명하다. 시계 제로의 안개 속에 묻힌 나라의 아찔한 운명 앞에, 우리는 연일 조마조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2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