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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생존하기 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소비자의 비대면, 비접촉에 대한 수요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러한 소비자 행동의 결과는 우리나라는 물론 주요국에서도 대형 유통소매업체들의 매출 하락으로 뚜렷하게 증명되기 시작하였다. 실제 미국의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3월 마이너스 25.1%에서 4월 마이너스 47.0%로, 의류(apparel) 업체는 3월 마이너스 49.8%에서 4월 마이너스 89.3%로 하락 폭이 확대되고 있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패션업체인 에이치앤엠(HM)은 지난 3월 이후 약 2개월간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마이너스 57%를 기록하였다. 일본의 백화점 매출도 3월 마이너스 33.4%에서 4월 마이너스 72.8%를, 의류 분야는 3월 마이너스 22.7%에서 4월 마이너스 53.6%로 확대되는 등 전 세계의 소매업종이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만큼 그동안 사람이 밀집되고 있던 백화점,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입어보고 만지게 되는 의류와 같은 소매업종일수록 비대면, 비접촉시대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는 지금 시기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유통소매점들이 그동안 온라인쇼핑몰과 택배 서비스로 연결되는 전자상거래에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5년간 일본의 편의점업체 세븐앤아이는 총매출액 대비 전자상거래를 통한 매출비율이 0.9%에서 2.7%로 늘었고, 미국의 월마트는 2.3%에서 6.8%로, 코스트코는 4.0%에서 7.0%로 늘어났다. 또 미국의 가전유통업체 베스트바이(Best Buy)는 10.1%에서 20.3%로, 영국의 식품마트 세인스베리(Sainsbury’s)는 5.1%에서 14.8%로 대부분의 소매유통업체는 온라인 쇼핑 거래 비중을 상당히 큰 폭으로 확대해왔다. 이들의 온라인거래 강화는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조준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한다.더구나 이들 대형 소매점들은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그동안 추진 중이던 디지털화, 온라인화에 더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더욱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역시 관점 내지는 시각의 변화다. 지금까지 소매점들은 최대한 고객들이 물건을 찾기 위해 점포를 몇 차례나 둘러보게 만드는 등 고객의 점포 내 체류 시간을 늘려 매출을 극대화하는 상품 진열방식 등 다양한 전략을 채용하여왔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이 원하는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점포 내 체류 시간을 줄이려는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많이 찾는 생필품들을 점포 내 최단 이동 거리에서 선택하여 점포 체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상품배열을 조정하고 있다. 일부 점포에서는 스마트폰 앱으로 고객이 물품을 즉각 찾을 수 있는 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특정 점포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와 한적한 시간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등장한 신규 서비스로는 소비자가 방문 전 미리 온라인으로 선택한 물품을 점포 외부 로커(locker)에 넣어두면 해당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인증한 후 로커를 열어 물품을 직접 인수하는 방식이다. 점포의 종업원과는 아예 비대면 비접촉이 실현되는 셈이다. 그리고 고객이 물품을 손수레(cart)에 담아오면 종업원이 바코드만 인식시킨 후 계산은 고객이 무인 결제하는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게다가 이들 소매점 업체의 수익확보를 위한 경영전략도 다각화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지금 백화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사한 방식을 채용하여 해당 소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주요 제품의 진열 장소를 해당 제품 제조업체에 맡겨 제조업체가 자사 제품을 직접 홍보하는 부스로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채용으로 제조업체는 자사 제품의 홍보와 장점을 고객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를 얻고, 해당 소매점 경영자는 제품이 판매되지 않더라도 일정 공간을 대여해 주는 것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소매점에서는 가게 안에 다양한 센서 등 전자기기를 설치하여 두고 고객들이 어느 제품에 관심을 두는지, 어떤 제품을 만져보는지, 그 체류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수료를 받고 해당 제조업체에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별도의 대화나 설문 조사 등이 없더라도 고객 행동이 시사하는 정보를 해당 제조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매점은 새로운 수익원을 얻는 뉴노멀의 비즈니스가 탄생하고 있다.포항과 같은 지방 도시는 대체로 전국 유통망을 지닌 대형 소매점이 아닌 한 소상공인들이 경영하는 소매점이 주축을 이룬다. 아무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가 지금까지 없었던 온라인상거래를 즉시 도입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통한 대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처럼 세계적인 소매점들이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생존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는 모습만큼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에서 충분히 아이디어를 짜낸다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예를 들어 전통시장에서 배달서비스를 하기 어렵다면,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미리 전화로 주문을 받아주고 손님은 주문한 물건을 확인한 후 바로 계산하여 가져갈 수 있는 장치만 마련해도 시장 내 체류 시간의 단축과 최대한의 비접촉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생각 같아서는 시장상인회에서 손님이 시장에 방문하기 전에 필요한 수량, 물건, 가격대 등을 알려주면 상인회가 책임지고 하자 없는 물건을 모두 마련하여 두고 고객이 물건과 가격을 확인한 다음 한꺼번에 계산하고 장보기를 끝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고객의 시간 절약, 시장의 새로운 매출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골목상권에서도 조금은 유사한 아이디어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당장 온라인매출이나 배달서비스가 어렵다면, 적어도 미리 전화로 주문을 받은 물품을 상자에 담아두기만 해도 주변 소비자들은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좁은 가게 안에서 다른 손님들과 어깨를 부딪칠 필요도 없이 주문해둔 내용을 확인한 후 계산해서 물건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비대면 비접촉시대에는 장보기 대행서비스가 다시 인기를 끌지도 모른다.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변화에 대해 개인, 중소기업, 소상공인 모두 각자의 영역에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 비대면, 비접촉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아예 눈을 감아버리면 생존은 보장되지 않는다. 특히 고객과 만나고 접촉해야 하는 소매 분야일수록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한다. 앞으로 지역의 소상공인, 전통시장 등 각 경제주체가 지속 가능한 생존에 성공하려면 과거부터 수없이 겪어왔던 많은 외부 충격에서도 큰 탈 없었던 점만을 믿어서는 아니 된다. 지금까지 고수했던 모든 방식이 더는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접촉, 대면 시대의 경험을 모두 지운 백지상태에서 받아들여야만 할 것, 바꾸어야만 할 것, 버려야만 할 것, 끝까지 고수해야 할 것 등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때가 왔다. 그리고 때로는 단순한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위기를 극복할 수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6-21

취미가 밥 먹여 주냐?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식사하셨습니까?” 인사말이다. 밥 먹었냐고 묻는 말로 인사를 하는 나라가 몇 나라일까 싶다.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을 수 없던 시절엔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일이 제일 중요한 관심사이기에 인사말이 된 것이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프랑스 혁명의 초기 외침도 결국 원초적인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의 다름 아니다. 지금도 혁명정신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에서는 빵 값을 국가에서 관리한단다. 젊은 세대들은 이 인사말의 유래를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다. 배고픔과 같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밥만 먹고 사냐?’는 우스갯말이 생겨난 것을 보면 적어도 밥만 먹기 위한 경제 활동을 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기본적인 생존 위협에서 벗어나니 풍요로움 삶에 대한 욕구는 문화적 욕구로 넘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취미활동이 풍성하다. 한 때 일부 상류사회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지던 테니스, 골프, 승마, 요트 같은 놀이가 대중화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골프채를 닦으며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던 회장님만의 장난감이 웬만한 직장인은 물론 주부들도 주방의 국자 휘두르는 일처럼 일상화되었다. 중년 남자들이 삑소리를 무릅쓰고 굵직하게 내뱉는 저음의 부르스 곡 색소폰 연주(청중의 불안감은 내 알바 아니다)로 여심을 흔들고 싶어 한다. 헌팅캡을 삐딱하게 눌러쓴 채 긴 후드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향해 연신 카메라 샷을 눌리는 이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반열이다. 유화 물감으로 캔버스 한 모퉁이를 알지 못할 형상의 덧칠을 하더니 붓끝을 왜 그리 열심히 보는지 이쯤 되면 피카소도 고개를 숙일만하지 않는가? 나무토막이 이유도 모른 채 끌 칼에 깎이고 톱에 잘리며 주인 잘 못 만난 탓을 하는 사이에 전문가 뺨치는 목공예 소품으로 만들어져 새 주인을 기다린다. 넘치고 넘치는 취미생활이다.이쯤 되면 그 동안 들어간 비용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봄직하다. 가정경제를 꾸리는 주부의 찡그린 타박이 들려온다. 남정네의 과다한 관심영역을 채워주는 취미생활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학원비, 아파트관리비 등등. 기본 지출항목에 취미생활비용이 점점 잠식해 들어온다. “취미가 밥 먹여주느냐?”는 극언(?)이 뒤통수를 내리친다. 그동안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지쳐버린 내 영혼의 안식과 미래를 위해 재투자하는 충정을 이해 못하고 등 뒤로 던지는 비수에 급소를 맞는다. 여심을 흔들고 싶었던 악기연주도,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피카소를 소환하는 일도, 여인의 누드사진도 아니고 삶의 찐한 향기를 우려내려던 일생일대의 흑백사진도 찌든 삶의 아우성에 도로 다 물려야할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말자. 잘 키운 취미 하나, 열 직장 안 부러운 시대다. SNS로 하는 취미생활 자랑이 돈벌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조회 수가 많아지면 돈을 준단다. 취미가 밥 먹여주고 때론 직업으로 변신하는 시대다. 마른하늘 적시겠다고 가정용 가습기 한 대 트는 일이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밥 먹고 사는 방법이 다양해진 세상이다.

2020-06-21

식물에게 말하기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멀쩡하게 잘 자라던 ‘뱅갈고무나무’가 하나 둘 잎을 내리더니 급기야 남은 잎들도 비틀어지는 꼴이 심상치가 않아 식물원에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다.처방으로 영양제 한 봉지를 주며 계절도 좋고 하니 당분간 밖에다 두고 신선한 바람을 맞히라 하였다. 반신반의했다. 전문가의 의견이니 존중해야겠지만, 내심으로 절반은 믿기가 어려웠다. 전원으로 이사하고 나서, 지난 20여 년 간 잘 키우던 식물에게 자연의 햇살을 보여주고 좋은 공기를 마시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밖에 내놓았더니 불과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것이 여럿이었고, 온실을 만들어 이번에는 잘 살겠거니 기대하며 두었다가 또 많은 식물을 죽게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온실 유리를 통한 따가운 햇살을 식물들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집 안에서 키우던 식물이 죽는 일은 없었으니 선뜻 내놓기가 망설여짐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집안에서 이미 시들고 있는 고무나무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흔히 보던 알갱이 모양의 영양제를 화분위에 뿌리고 물을 흠뻑 준 다음 햇살과 그늘이 적당한 밖에 내놓았다. 그동안 날씨가 좋았고, 두 번의 비가 내렸으나 비를 맞게 그냥 두었다. 며칠 전부터 놀랍게도 비틀어졌던 잎들이 곧게 펴지고 새잎들이 나기 시작했다. 자연의 치유 능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의 질서를 헤아려 잘 적응할 수 있게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신비, 생명의 신비는 무한하다.이기심이 많은 탓인지 모르겠으나, 평소 나 이외의 타인이나 동식물에 대하여 비교적 무심한 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지독한 어둠에 빠져있을 때, 나를 건진 건 사색을 통한 자경(自敬)이 아니라 언제나 자연이었고, 동식물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언젠가도 지독한 회의에 빠져 방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식물과의 대화를 권하였다.“식물과 얘기하세요. 그들은 당신의 말을 아주 잘 들어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함부로 옮기지도 않습니다.”그때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있던 식물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20여 년간 시시때때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며 보살펴서 한 포기의 식물도 죽이지 않았다.식물에게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 성장이 촉진되고 병충해에 저항력이 생겨서 튼튼하게 자란다. 식물학자들의 연구에서 해충이 클로버 잎을 뜯어먹자 다른 클로버들이 서로 경고하는 신호를 보내고, 해충이 싫어하는 물질을 배출하여 벌레를 물리치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하였다 한다. 그래서 식물도 지적생물체라 하는가 보다. 식물은 말을 못할 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난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온 천지가 녹음으로 우거진 6월, 여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활동이 편치 않다. 가까운 식물원이나 솔숲, 자연을 찾아 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지.

2020-06-21

신나라 레코드

턴테이블을 샀다. 오래전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분리수거 해 버렸는데 쇼핑몰에서 아담한 녀석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의 올드 팝에 이끌려 가보니 LP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가끔씩 지직거리는 소리가 정겨워 한참을 멈춰 서서 들었다. 쇼핑목록에 없었지만 사지 않으면 눈에 밟힐 거 같아 업어와야만 했다.이 녀석은 자세히 보니, 최첨단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LP판을 돌리는 건 기본이고, CD를 넣는 곳도 있었고 USB도 꽂는 데가 따로 있고, 라디오 채널을 잡는 다이얼이 있어서 소리를 높일 때 사용하기도 했다. 블루투스 기능도 있어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노래도 받아 전해준다. 더 깜찍한 것은 지금은 거의 모든 기기에서 사라진 마그네틱테이프를 재생하는 기능이었다. 턴테이블이 아니라 어벤져스였다.친구 정덕이가 집안 정리한다며 오래된 LP판을 수십 장 가져와서 쓸데 있으면 쓰라고 해서 보관한 것이 산울림, 신승훈, 김현식…. 열 개 정도 된다. 소리로 재생할 기계가 집에 없는데 뭐 하러 들고 왔냐는 남편의 타박에 추억의 책갈피처럼 사용하면 되겠지 했는데 이렇게 턴테이블이 다시 생길지 나도 몰랐었다.어린 시절, 할아버지 집에 나팔 모양을 단 축음기가 있어서 제삿날에 친척들이 모이면 LP음반을 올려 들려주셨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캐나다에 선교사로 나가 오래 사신 용출삼촌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이라고 문자로 보내왔다. 그때 할아버지는 누구의 노래를 들려주셨을까? 기계 하나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억까지 소환했다.새로 들인 어벤져스를 이용해 보리라. 레코드가게에 가보기로 하고 검색을 했더니 포항에 ‘신나라레코드’란 가게가 있었다. (구)해변레코드란다. 학창시절에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 무지 반가웠다. 좋아하던 가수의 신곡이 발매되자마자 가서 테이프를 샀던 곳이다. 이문세의 4집, 5집을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 났었더랬다. 라디오에 좋아하는 노래가 샘물처럼 흐르면 공테이프에다 퍼 담듯 모았었다. 특히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자주 찾던 옹달샘들이다.시내 가장 번화가 중앙로 292-1번지에 자리 잡은 레코드가게, 매장이 제법 넓었다. 테이프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몇 개 골라서 물어보면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많았다. 연도가 가장 오래된 것을 보니 1977년에 대도레코드사에서 만든 판소리춘향가였다. 인간문화재 박초월 외 여러 분의 사진이 뒤표지에 있고 앞표지는 신성일과 이름을 모르겠는 여배우가 출연한 춘향전의 한 장면이 그려진 포스터였다. 남편 말이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한다.오늘의 국가기념일 음악 테이프도 사왔더니 이건 뭐에 쓰려고 샀냐고 웃었다. 개천절노래 반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음악 같은 제목이 길가다 멈춰 서서 국기 강하식을 하던 그때를 떠올리게 해서 샀다. 테이프는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장님의 말이 가진 거라도 잘 간직하세요라는 말로 들려 더욱 사게 됐다.LP판이 벽면 가득했지만 비매품이었다. 또 다른 코너에는 CD가 가득했다. 최근에 나온 아이돌 가수의 앨범은 책 같기도 하고 디자인이 다양해서 팬도 아닌데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들은 레드벨벳의 한정판 앨범을 구입했는데 브로마이드가 사은품으로 딸려왔다.여고시절 드나들던 가게에서 아들과 같이 한나절 놀았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와 가수 이야기를 해주며 아들이 군대에서 선임이 하도 즐겨 들어서 자기도 좋아하게 된 여자 아이돌 그룹 음악도 나누었다. 노포가 많이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였다.계산대에 고르고 고른 테이프와 CD를 올려놓고 기다리며 보니 두 손이 세월의 먼지가 묻어 새까맣다. 몇 년 전의 먼지일지 그것조차 정겨웠다. 거기 있어줘서 감사해요, 오래 버텨주세요. 사장님께 부탁의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2020-06-21

포스트코로나 관광을 선도한다

최영조 경산시장경산시는 최근 코로나 방역이 상당기간 안정단계로 접어들고 재난 대책을 신속하게 시행함으로써 경북 최대 피해지역의 상흔을 치유하는 데 성과를 보이고 있다.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전국 자치단체 최초로 테스크포스 팀을 만들어 중앙정부의 지원기준을 지역실정에 맞게 완화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한 시설 업종까지 지원하는 등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했다.이같은 소상공인과 자영업 경제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아직 지역 경제는 회복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방역과 경제회복이 함께 성공하는 것이 최대 정책 과제가 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시민 생활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가족주의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생활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경산시의 관광정책도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음 몇 가지의 정책을 도입할 것이다.먼저, 맛보기 관광 전략이다. 국내 중심의 소규모 가족단위 여행객을 대상으로 지역 특유의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먼저 맛보기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가상관광 또는 랜선 여행 형태로 관광자원을 직접 소개하는 콘텐츠와 식도락관광 수요를 겨냥한 레시피 등 집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다음으로, 보이지 않는 관광 인프라를 세심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경산시는 청정하고 안전한 지역, 친절한 지역이란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한 캠페인을 실시 중이다.매주 금요일을 ‘클린 경산을 위한 방역·대청소의 날’로 지정해 사회단체와 자원봉사자 등의 자발적 참여로 공공시설, 시가지, 관광지, 집 앞, 일터와 공공기관, 문화예술 체육시설, 대중교통시설 등에 대해 대청소, 방역소독, 환경정화 활동 등을 실시하고 있다.또다른 방법중의 하나로 안심 경산을 위한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 캠페인이다. 관광협회와 상인회 등이 참여해 음식점 카페, 유흥시설, 종교시설, 도서관, PC방, 학원 독서실, 대형유통시설 등의 시설은 거리 두고 손님 받기, 개인 음식문화 개선 활동을 펼친다. 물론 전통시장도 방문객들이 안심하고 이용하도록 코로나19 안심 클린시장 만들기에 동참한다.시는 코로나 사태로 앞으로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며 도로는 물류와 이동의 수단보다는 관광의 요소로 더 두드러질 가능성이 커 도로 교통의 기능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경산으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와 교통수단이 지역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고 주변 경관과 승차감이 좋은 도로는 관광객을 다시 오고 싶게 만든다. 특히, 대중교통의 편리성은 관광의 기본으로 경산의 관광 지도를 바꿀 굵직한 도로철도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대구 안심역에서 경산 하양역까지 구간을 연결하는 8.89km의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사업은 3개의 역이 들어서며 2023년 개통하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미~칠곡~대구~경산 간 61.9Km 구간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망 구축 사업도 지난해 3월 착공해 2023년 개통 예정이다. 남산면 하대리에서 하양읍 은호리까지 9.8km의 국도 대체 우회도로도 2022년 6월 착공 예정이다.경산은 인근 지역과의 대중교통 연결망이 사통팔달 발달해 있으며 특히 지난해 대구-경산-영천 간 버스 환승으로 지역생활권이 크게 개선되고 확대되었다.관광은 교통이 발달하여도 우수한 콘텐츠가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경산은 분지 지역으로 어디서나 가볍게 오르기 좋은 명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남천과 오목천, 금호강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흐르는 물과 숲의 고장이다. 경산과 자인, 하양 등 지역 중심지 주변에는 관광명소가 즐비하다. 갓바위, 반곡지 등 핫 플레이스도 많지만 새로운 관광 트렌드에 적합한 숨은 명소들이 더 많다. 경산시는 숨은 명소 찾기 대회를 열어 구연정 등 새로운 명소를 발굴했으며 삼성역 역사테마공원 등 개발사업도 꾸준히 전개하는 등 새로운 볼거리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준 코로나19를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기회, 변모의 기회로 삼고자 경산시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2020-06-21

조삼모사 정책

중국 고사에 나오는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송나라 때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狙公)의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원숭이 키우는 것을 워낙 좋아했던 저공은 원숭이와 소통은 물론 원숭이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그러나 원숭이 숫자가 불어나면서 먹이 문제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가족의 식량을 줄여 나눠주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이번에는 원숭이를 불러 모아 이렇게 설명했다.“앞으로 너희들한테 아침에 도토리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원숭이들이 심하게 반발을 했다. 그러자 저공은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조삼모사에 얽힌 유래다.당장의 차이에 신경을 쓰지만 매한가지라는 의미다. 또는 잔꾀로 남을 농락하는 것을 말할 때도 쓰는 말이다.조삼모사와 비슷한 말로 조령모개(朝令暮改)와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법을 자주 고쳐 일관성이 없고 갈팡질팡한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할 때 비유해 쓰는 말이다.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17일 또 다시 발표됐다. 이번 정부 들어 21번째 부동산 규제 정책이라 한다. 그동안 20번이나 규제책을 발표하고도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서울에서는 강남지역 집값을 잡으려다 서울 전체 집값만 올렸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30여 차례 부동산 규제책을 발표하고도 집값을 잡지 못했던 경우가 재차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매번 헛발만 짚어 왔다는 비난을 보면서 조삼모사 고사가 새삼 생각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18

통합당의 산타클로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미국의 우박사과를 둘러싼 일화다. 미국 뉴멕시코주 고산지대에서 사과를 재배하던 농장에 우박이 내렸다. 수확을 앞두고 미리 판매계약을 마친 사과들이 우박피해를 입어 상처투성이가 돼 버린 것이다. 주변 농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넋을 잃고 힘들어할 때 영거라는 농부가 상처입은 사과를 서둘러 구매자들에게 보내면서 편지 한 장을 같이 보냈다. “우박이 내려서 사과가 뜻밖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의 상처는 고산지대에서 자란 특산품이란 증거입니다. 고산지대에서는 가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 그 때문에 사과 속이 조여져서 맛있는 과당이 만들어집니다. 맛이 없으면 전액 환불해드리겠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편지와 함께 상처는 있지만 맛있는 사과를 받은 고객들은 한 명도 환불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이것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주는, 산타클로스를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다.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지만 관점을 바꾸면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생기고, 그리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존재일 수 있다.21대 국회가 원구성을 시작하자마자 파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院) 구성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치끝에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미래통합당이 향후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특히 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 결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여야 협상 채널 조차 사라져 국회정상화가 언제쯤 가능할 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태에 빠졌다.다수당이 단독으로 개원 국회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것은 7대 국회 시절이던 지난 1967년 이후 53년 만이다. 여야는 그동안 법사위의 위원장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해왔다. 이번 사태는 법사위의 국회법상 권한인 체계·자구심사 권한으로 번번이 야당에 ‘발목잡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민주당이 원활한 입법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빚어진 사태다. 민주당은 오는 19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남은 12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끝내고 21대 국회 원구성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이에 맞선 통합당은 여당의 입법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선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며, 여당의 일방적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을‘1당 독재’로 규정하고 향후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예전 통합당이 여당이었던 시절 법사위원장을 보장해줬던 전례마저 무시한 채 민주당이 법사위원회를 장악하려고 하려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어떤 무리수를 둬도 국민의 지지를 받아낼 자신이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암울해 보이는 이 상황이 오히려 민주당의 무릿수를 응징할 통합당의 산타클로스를 만들어야 할 때다.

2020-06-18

코로나19속 기말시험 풍경

코로나19 ‘재유행’은 학교 캠퍼스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어제는 그래도 ‘교수 발표회’라는 것을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치른 날이었다.대학교에는 학기마다 늘 거쳐가는 행사가 있게 마련이다. 3월이 되면 내가 몸담은 곳에서는 첫째 주나 둘째 주에 학과 전체 교수회의를 한다. 비슷한 시기에 학부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은 학과 설명을 겸한 신입생, 진입생 환영회, 개강 모임 등을 연이어 갖게 되며, 중간고사 끝날 때쯤 답사 여행을 가게 된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다들 지친 기색 역력하지만 한두 주만 기다리면 시험 끝나고 방학이다. 하지만 학생들, 교수들 만남은 끊기지 않는다. 교수들은 학생 ‘지도’ 명목으로 학생들과 점심식사를 하기도 하고 종강모임도 기다리고 있고 시험 끝나면 강의 과목에 따라 뒤풀이를 하기도 한다. 앞에서 말했듯 ‘교수 발표회’라 해서 교수들이 학과의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공부를 논문 형태로 발표하는 행사도 있다.그런데 기말시험이 문제다. 수업은 줌(zoom) 앱으로 한다고 치는데, 시험은 또 어떻게 한다? 한 학기 내내 그 ‘비대면’이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는데, 시험마저 인터넷 화상 시험 형태로 치러야 한단 말이다? 책상 띄엄띄엄 ‘사회적 거리’ 두고 시험 치를 수 있는 ‘작은’ 강의는 그렇다 하지만 대형, 밀집 강의는 한곳에 모이는 것 자체가 무섭다. 결국, 인문대학에서는 기말시험 기간 내내 출입문을 일부 제한하고 출입 가능한 문에는 열화상 카메라와 소독제를 구비하고 시험생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전체가 다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한편, ‘줌’으로 시험 보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없지 않다. 이 ‘줌’ 앱은 비디오 중지니 음 소거니 하는 기능들이 있다. 회의용으로 개발된 이 앱에서 상대방이 말하는 시간에 자기 쪽의 화면이나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시험 치르는 학생이 자기 쪽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해놓고 화상에 나오지 않는 친구 학생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학생들의 양식에 맡겨야 하지만 시험은 부정 소지를 줄일 수 있어야 하는데, 실로 ‘인지’가 날로 발달하니 반드시 신뢰를 부여한다고 해서 다 되었다 말할 수 없다.아니나 다를까. 조교 선생이 우리 과에서 개설한 과목의 기말시험에 외국인 학생의 부정행위가 있었단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생각해 보지만 다른 답은 없다. 시험은 대학생활의 가장 밑바닥 규범이다. 이게 허물어지면 다른 무엇을 얼마나 잘 해 놓아도 결과가 좋지 않다.학생들아, 코로나19 ‘비상시국’이라지만 시험 부정 행위가 웬 말이란 말이냐. 이런 때일수록 ‘정도’를 걸어야 하지 않으리?/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6-18

감성을 젊게

김병래시조시인먹고사는 것에 여유가 생기면서 각종 노화방지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좋은 세상 만났으니 보다 젊게 오래 살고 싶은 걸 누가 말릴까마는 외모를 더 젊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들의 욕구는 거의 필사적인 경우도 있다. 온갖 물리적 요법에서 식이요법, 약물요법에 수술요법까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다가 부작용으로 몸을 망치기도 한다.노화는 나이가 들면서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차츰 저하되고 질병과 사망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하면서 쇠약해지는 과정을 말한다. 세포의 단백질 합성 능력이 감소하고 면역 기능도 떨어지며 근육은 작아지고 근력은 감소하는 한편 체내의 지방 성분은 증가하고 골 밀도가 감소하여 뼈가 약해지는 등의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노화현상은 몸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온다. 젊게 살기 위해서는 피부나 몸매를 가꾸는 것보다 마음의 긴장과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몸이 젊어야 마음도 젊어진다는 논리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젊음이 몸의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말이 더 타당할 것 같다.뇌의 노화방지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노화현상의 상당부분이 뇌기능의 저하에서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뇌세포에 영양과 산소의 공급이 원활해야 함은 물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와 풍부한 감성이 뇌를 젊게 한다고 한다. 오감을 포함한 다양한 감각을 느끼고 지각하는 능력인 감성(sensibility)은 나이를 먹으면 무디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젊은 나이에도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세 고령에도 아이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도 없지 않다.감성의 젊음을 유지하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늙을수록 고집이 세다는 것은 편견이나 아집,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가을이 되면 풀이 쇠어지듯이 마음이 완고해지는 것이 바로 노화다. 사고가 넓고 유연해지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문학이나 철학, 예술 등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아가야 한다. 그래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감능력과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적 정의감도 놓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무엇보다 자연현상에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계절을 따라 싹이 트고 성장하고 열매 맺고 월동하는 초목들과 친밀히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감성은 늙지 않는다. 지극히 미세한 것에서부터 광대무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한 것이 자연이다. 지구의 생태계만 하더라도 생로병사가 수미상관으로 맞물려 생명의 역동성을 이어가는 것이고, 해마다 새 잎을 내는 고목처럼 늙을수록 감성의 잎이 더 무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감성이 메마르고 완악해진 마음을 꾸짖는 예수의 말씀이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감성이야말로 천국에 이르는 길일진대 마다할 이유가 뭐겠는가.

2020-06-18

북한과 평화가 가능할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한 깡패 같은 친구가 힘이 없는 친구를 매일 괴롭힌다. 때리기도 하고 돈을 뺏기도 한다. 힘이 없는 친구는 평화를 위해 돈도 가져다주고 그 깡패 같은 친구가 때려도 참고 웃음을 지으면서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힘없는 친구가 주머니에 짱돌을 쥐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깡패를 공격했다. 난투극이 벌어지고 힘없는 친구는 크게 다쳤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부터 그 깡패가 힘없는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끝났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직접 목격한 사건이다.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세계사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사에서 서로 합의하여 지은 건물을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폭파시킨 예는 없다. 북한과 평화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김대중 정부 때 이야기한 햇빛정책으로 가능할까?힘없는 친구가 했던 것처럼 소를 몰아가져다 주기도 하고 돈도 엄청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북은 평화를 함께 할 것처럼 웃음 지었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돈을 달라고 하고 떼를 쓴다. 말을 안 들으면 욕을 하고 난리를 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갈취한 돈으로 무기를 만들고 핵을 개발한다.미국과 일본과 멀어지라고 “우리끼리”라는 감언이설로 남측을 속인다. 결국 북측이 원하는 건 핵을 개발하여 남측을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남측을 미국과 일본과 멀어지게 해야 한다.남북 군사 합의 이후 북측이 말하는 것처럼 남측은 무엇을 배신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 풍선전단을 시비로 걸었지만 그건 사실상 폭파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풍선전단을 규제하겠다고 정부가 약속했지만 그 약속조차 비난받았다. 폭파 후 북은 비무장지대 초소 진출, 접경지역 군사훈련,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했다. 남측에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돌리며 대남비난도 이어갔다. 남측을 “비겁하고 나약하며 저열한” 상대로 매도하며 남북관계를 더는 논할 수 없고, 남북 간 접촉공간도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뒤늦게 정부도 대응한다. 응당한 대가를 치른다고 했지만 타이밍이 늦었다. 공산주의와의 평화는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우군들인 우방들과의 강한 유대에서만 가능하다. 상대는 그걸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우방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기 위해 늘 “우리끼리”라는 구호로 유혹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이 아니고 북의 대남, 대미 공작의 하청 용역이었다는 혹평들도 있다. 이제 하청업자 역할을 더이상 해서는 안 된다.이제는 강한 한미, 한일 공조를 통해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핵우산이든 자체 핵개발이든 강한 모습을 보여줄 때 평화가 유지 되는 것이다. 통일을 구걸하지 않을 때 통일의 기회는 더 가까이 올 수 있다. 북한과의 평화는 우리가 우방과 관계를 공고히 하고 강한 힘을 보여 줄 때에만 가능할 뿐이다.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2020-06-18

꼭 기억해야 할 아픔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섬나라 일본이 앞선 근대화로 저들이 가진 힘으로 야욕을 불태우며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도발과 동시에 대한제국 침략의 발판을 굳히고 대한제국 황성을 공격해 당시 황궁이었던 경운궁을 점령했습니다. 이어 1904년 2월 23일에는 대한제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제국 영토를 일본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한일의정서를 강압적으로 체결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군사 요충지를 강제 점령했습니다.그 이후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찾기까지 약 36년간의 치욕적인 시대를 우리의 역사 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당시 한일합병이 무효라고 일본 역사학자들과 우리 학자들이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해방에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틈타 북쪽 김일성의 야욕으로 남침함으로 민족의 한을 남긴 전쟁이 이 땅에 발발했습니다.6·25 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엄청난 희생과 재산을 함께 잃어버린 비운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국난에 자유수호를 위해 전투 병력을 파견한 나라 가운데 3천 명 이상 나라가 프랑스(3천421명), 뉴질랜드(3천795명), 네덜란드(5천322명), 필리핀(7천420명), 오스트레일리아(8천407명), 터키(1만4천936명), 영국(5만6천명), 미국(1백78만9천명) 등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태국,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노르웨이 등 많은 나라 군인들이 전사했거나 부상당하였습니다.6·25 전쟁으로 희생된 전사 및 사망자가 17만8천569명. 부상 5만5천22명. 실종 2만8천611명. 포로 1만4천158명, 우리나라 통계는 전사자 13만7천899명, 부상자 45만742명으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얼마나 많은 희생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까?그 아픔과 상처의 자리에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역사로 오늘의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6월에 이제 조국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얼룩진 역사 현장을 기억하며 다시 이런 아픔과 슬픔을 후세대에 물러주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결단으로 새 역사를 다시 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0-06-17

거리 두기

여전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 되는 나날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가족 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음을 의미합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아들이 코로나를 핑계로 귀가했습니다. 스무 살 넘으면 집 떠나야 한다, 는 생각을 지닌 터라 갑작스런 아들과의 동거가 적잖이 신경 쓰입니다. 일찍이 객지 생활을 한 아이였기에 애틋한 감정이 앞서지만, 며칠 새 불편한 상황들이 그 감정을 섞어버리는 걸로 보아 제 모성에도 이끼 같은 스트레스가 끼나 봅니다.여기까지야 엄마로서 감당할 저만의 상황이니 괜찮은데, 살짝 한 발 더 나가는 게 문제입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부모 입장에서의 당연한 말씀이 뒤따르는 것 말입니다. 일찍 일어나라, 운동해라, 감성을 잃지 마라, 그리고 계획해라……. 네, 하고 건성으로 돌아오는 대답 또한 십 년째 변함이 없습니다. 지리멸렬하기만 한 훈화와 답하기 속에서 두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엄마는 누르고 눌러 겨우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아들은 오늘도 어제와 같은 레퍼토리를 들어야 하나 하는 부담감을 맛봅니다. 가까이 있는 한, 엄마는 하나마나한 ‘좋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자식은 들으나마나한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는 경험한 대로의 삶의 나침반을 제시한다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바라던 바가 아닌 모정의 덫에 걸리는 격입니다. 거리 두기는 ‘사회적’으로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가정적’으로도 요청된다고나 할까요.적당한 거리가 확보 되어야 현명한 소통에 이를 수 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입니다. 시공간적으로 너무 가까운 거리는 느긋하고 성숙한 관계를 해치는 훼방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애든 우정이든 또는 사회 관계망이든 다 해당 되는 말씀 같습니다. 일단 너무 가까우면 상대의 초심에 괜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흔히, 믿었던 상대에게서 실망감을 맛보면 우리는 ‘초심을 잃었다.’라고 표현합니다. 곰곰 생각하면 그 누구도 초심을 잃은 적 없는데 말입니다. 초심은 한 가지가 아닐뿐더러 거기 그대로 있는데다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이런저런 초심들이 사람 안에 살지만 우리는 상대에게서 보고 싶은 한두 가지만 봅니다. 좁은 거리감에서 오는 기대감이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요. 초심을 잃은 건 상대가 변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믿음이나 환상을 가진 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자신의 환상을 상대에게 투사해 초심을 잃었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지요. 내 환상이 걷힌 자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상대의 초심이 되는 겁니다. 기대라는 가지에 달아버린 나의 환상이 언제나 문제인 것이지요. 이 모든 게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심리적 착시라는 생각이 듭니다.누구나 타고난 단점과 성장 과정의 결핍, 그로 인한 묻어버리고 싶은 콤플렉스를 지니고 삽니다. 약점 많은 사람끼리 잘 지내려면 거리가 필요합니다. 저 테라스에 피어난 제라늄 화분만큼의 거리면 딱 좋겠습니다.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 만큼 꽃끼리 뭉치는 법도 없고, 남의 화분을 침범할 이유도 없습니다. 안심 거리를 확보한 꽃들은 거리낄 것 없이 화사한 빛깔을 피워 냅니다. 화분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다면 저마다의 꽃잎들이 저토록 창 아래서 생기를 뿜지는 못하겠지요. 다닥다닥 좁혀진 거리라면 작은 바람에도 꽃잎끼리 부딪혀 물러지고 질척거리게 될 테니까요.찢어지기 쉽고 떨어지기 쉬운 꽃잎 같은 관계의 속성에 주목한다면 적당히 무심해야 오래 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랄 게 없으면 야속할 일도 없습니다. 물이나 주고 바람정도나 통하게 두면 꽃피울 것을, 매일 물을 주고 매만지다 보면 꽃 피우기는커녕 새싹 돋는 것도 만나기 힘들겠지요. 매일 보면 찡그릴 수 있지만 가끔 만나면 웃음 짓게 됩니다. 괜히 고슴도치 이론이 있는 게 아니겠지요. 좋다고 비비대면 서로 돋은 가시에 상처만 입을 뿐입니다. 근원적인 친밀감이 형성되었다면 적당히 멀 때, 오래 가고 피로도도 덜합니다. 가까워지려고 허둥대는 마음이 항상 상대에게로 순정하게 전달되지만은 않습니다. 적당히 떨어져야 가볍고 산뜻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핀 꽃도, 예쁘다고 꽃병 앞에서 코를 박는다면 꽃병도 깨지고 내 코에도 파편이 박힙니다. 코를 들이미는 대신 맞춤한 거리에서 덤덤히 바라보면 그 꽃은 오래 갑니다. 자주 본다고 깊어지지도, 멀리 있다고 얕아지지도 않는 게 관계입니다. 요란한 결속일수록 풀어지고 흩어지기 쉽습니다. 관계의 밀도는 지근한 거리가 아니라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두는 것이니까요.마인드맵처럼 번져가는 반성문을 쓰다 보니 당장 아들에게 필요한 건 ‘모성의 거리’라는 걸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리 두기의 지향점은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이네요. 타자로부터의 거리 두기는 스스로부터의 거리 두기에로 종결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내면과 떨어지는 연습을 통해 자기 객관화를 도모하는 길 말이에요. 가족애든, 인류애든 조금 떨어지는 과정을 통해 좀 더 성숙된 사랑을 연습하고 실천할 일입니다.

2020-06-17

지식

강길수수필가쪽지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앞선 이들은 한 번에 잘도 집어내던데, 나는 그러지 못하다. 아마도 다른 쪽지들보다 깊게 꽂혀있거나, 약하게 뽑았을 것이다. 두 번째 당겨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황스러워지며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왼손 엄지와 검지에 힘을 더 주어 뽑아낸다. 세 번 시도 끝의 성공이다.삼세번 당겨 손에 잡은 불혀 모양의 연녹색 성령칠은(聖靈七恩) 낱말쪽지…. 어느 은혜를 선택했을까 아니, 주어졌을까. ‘코로나 19로 모두가 어렵게 사는 지금 내게 긴요한 은총은 무얼까’하고 마음이 자문하지만, 미사 중에 열어볼 수가 없다. 공지사항 시간에 보리라 마음먹고, 궁금증도 함께 담아 매일미사 책갈피에 넣어 둔다.미사 끝자락, 공지사항 시간이다. 책갈피의 쪽지를 꺼낸다. 이른 봄, 돋아난 지 얼마 안 된 연록 생강나무 잎을 닮은 성령칠은 쪽지다. 불혀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란 생각이 스친다. 두 겹으로 접어져 있다. 색종이에 낱말을 써넣고 접어서 불혀 모양으로 오린 것이다. 연록 불혀를 살짝 연다. 왼쪽 면의 “지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시 접어 책갈피에 꽂는다. 집에 가 자세히 보리라 마음먹는다.미사가 끝났다. 신부님과 교우들의 작별 인사를 안고 집으로 향한다. 올핸 왜 ‘지식’을 받았나 하는 의문이 오는 동안 뇌리를 맴돈다. 명색이 글도 쓰는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라는 건가. 아니면, 얕은 지식에 기대어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등등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드디어 집 거실이다. 찬찬히 성령칠은 쪽지를 연다. 왼쪽 면에, “지식”이란 굵고 큰 글자 아래 “(scientia)”라 씌어있다. 오른쪽 면에는 “신앙감, 믿어야 할 진리와 허위를 식별하는 은혜.”라고 적혀있다.미사 끝 무렵 처음 확인 때 들었던 생각과는 다른 내용이다. 물론,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는 그 옛날 고교 시절의 교리문답 내용과 이후 받았던 여러 교육을 통해 가진 지식에 대한 관념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핵심내용이 ‘식별’이란 점에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즉,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나 ‘사물, 상황에 대한 정보’가 사회에서 말하는 지식의 내용일 테니까 말이다.오히려, 철학에서 말하는 ‘객관적으로 확증된 판단의 체계’와 내용이 일맥상통해 보인다. 인식의 총체나 정보에 따라 판단하고 진리와 거짓을 식별하여, 그것을 믿고 받들며 살게 하는 힘이 지식 곧, 시엔티아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또, 진리는 신앙적 내용뿐 아니라 온 세상을 품을 것이므로, 진실도 그 안에 자리함이 마땅하다. 즉, 지식은 신앙적 진리뿐 아니라 사회적 진실도 당연히 식별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식과 관련하여 어찌 살고 있는가.한마디로 성령의 은혜로 주어지는 지식과는 별개로 살아왔다. 공부도, 직장 일도, 신앙생활도, 사회생활도 식별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믿어야 할 진리와 믿지 않아야 할 거짓을 구분하려 들지 않았다. 다다익선처럼 ‘나와 가정과 사회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윤리 도덕 내지 신앙적으로 꼬치꼬치 따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으로 살아 온 것이다.진실과 거짓을 식별하는 지식의 눈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어떨까. 지난 4·15총선 부정선거 의혹만 하더라도, 언론이 담합이라도 한 듯 보도치 않아 국민의 알 권리는 유린당하는 현실이다. 동일한 모집단의 사전투표 결과가 본 투표와 달리, 거의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기이한 통계적 패턴을 보이며 여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또, 비례대표의 정당별 득표율과 정당별 의원당선자 수의 비율이 상식 밖으로 차이가 났다. 경영학을 배웠던 내 통계적 소견에 비추어 보아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선거 결과다. 이러한 팩트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 연유는 무엇일까. 나도, 국민들도 지식에 근거한 식별의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지식의 은혜가 온 세상에 내려, 진실과 거짓이 제대로 식별되면 좋겠다.

2020-06-17

국가경쟁력

국가경쟁력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국가의 총체적인 능력, 주어진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한 나라의 경제 주체들이 다른 나라와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을 모두 국가 경쟁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회간접자본 외에 국제화, 경영능력, 금융과 같은 경제의 소프트웨어도 포괄한다.지난 95년부터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1년에 한 번씩 각국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내놓고있다.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총 63개국 중 23위로 평가했다. 지난 해 28위에서 5계단 상승함으로써 30위에서 34위로 추락한 일본을 넘어섰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게 순위 상승의 배경으로 알려졌다.이는 역대 최고치인 22위(2011~2013년)에 근접한 수준이다. 인구 2000만명 이상 국가(총 29개국) 중에선 8위다. 국민소득 3만달러-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 중에선 4위다. IMD의 4대 평가 분야 가운데 경제성과(27위)는 그대로였고, 정부효율성(31→28위), 기업효율성(34→28위), 인프라(20→16위)에서 순위가 올랐다. 경제성과에서는 양호한 경제성장(28→27위), 경제회복력(40→30위), 낮은 소비자 물가상승률(17→7위) 등에서 순위가 오른 반면 실업률(18→20위), 공공부분 고용 비중(9→12위) 등에선 순위가 하락했다. 국가경쟁력 1위는 싱가포르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유지했다.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홍콩이 뒤를 이었고, 지난해 3위였던 미국은 10위로, 중국은 14위에서 20위로 떨어졌다. 코로나 사태가 국가경쟁력 순위까지 흔들어놓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17

마스크보다 답답한 정치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가 더이상 갑갑하지 않는 일상이 됐다.하지만 북한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과 여당의 수적 우세를 앞세워 제1야당을 배제한 상임위원장 선출 등 현 정세가 답답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대 이 정도의 난맥상을 보인 정국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코로나19 사태야 국민 개개인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아가는 상황이지만, 북한의 요즘 행태와 정치권의 행보는 타결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코로나19는 이미 우리 국민의 뛰어난 위기대처 능력으로 인해 ‘K방역’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부러움의 대상이 된 반면에 북한과의 관계나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로 회귀하는 씁쓸한 모습이다.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정치권의 협치가 되살아나야 적극적인 대응이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여당은 수적 오만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연일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이런 국내 정치의 파행적인 상태를 즐기는듯 연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미의 행동을 보여주며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당은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라고 비난을 하고 있지만 정작 구태라는 표현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과거 여당이 해온 행보를 그대로 보는 듯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에서 든든한 맏형 역할을 해야 할 여당이 힘의 논리만을 앞세워 어린 동생들을 막 다루는 모습으로 비치는 우를 범하는 것으로 보인다.통합당도 여당의 숫자놀음에 그냥 속수무책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전혀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강수를 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돌파구나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과거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를 상기하면 지금의 통합당보다 적은 국회의원 숫자로 견제와 협상 능력을 보여줬고 자신들의 견해를 관철하기 위해 성명을 통해 여당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면모를 보이는 등 상당히 압박을 가했다. 지금의 통합당은 야당 경험 부족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속수무책인 상태이고 당 비대위 역시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진행에도 당의 진로를 모색하지 못하는 무기력증만 노출하고 있다. 이 정도의 정치국면이라면 현재 통합당 대표인 비대위원장이라도 나서서 자신의 경륜과 식견을 바탕으로 혜안을 제시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야당은 여당의 과거 수적 우위의 오만함으로 이어진 선거에서 국민이 야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마저 드는 부분이다. 물론 과거 강한 여당의 수적 횡포에 국민은 표로서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심판해 왔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판단에는 반드시 야당의 눈물겨운 대여투쟁의 노력을 눈여겨봐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당의 거친 행보에 지친 국민이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표로서 반응했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와 있다.

2020-06-17

방아쇠 수지 증후군

김규종 경북대 교수마당이 딸린 집에서 살려면 적잖은 노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6년 넘도록 촌에서 살다 보니 생각지 못한 수고가 곳곳에 필요하다. 처음에는 농촌생활이 즐겁고 행복했다. 층간소음도 없고, 콘크리트와 자동차 경적(警笛)과 온갖 소음에서 벗어난 만족감이 깊이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퇴색하고 시들어지기 마련 아닌가.작년에는 전남대 교환교수로 지내다 보니 집안일에 더욱 소홀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가 ‘집콕’을 유도했기로, 기회다 싶어 육체노동을 아끼지 않았다. 오래도록 방치된 유리창을 정성스레 닦고, 현관 데크에는 오일 스테인을, 계단과 가구에는 니스를 칠했다. 뒷마당의 대나무 뿌리 제거작업을 신호탄으로 좁지 않은 대지의 식물 전체를 손보기로 한다.땅속에서 종횡으로 뿌리내리는 대나무를 대적하는 작업은 상상 이상이다. 호미와 전지가위, 삽과 톱을 동반한 작업이 1주일 넘도록 진행됐다. 뿌리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곳곳에 박혀 있는 돌을 캐내면서 구슬땀으로 범벅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잘 골라진 터에 왜성 체리 세 그루를 심고, 금계국과 안개꽃, 코스모스와 데이지, 구절초와 루드베키아 씨를 뿌린다.그뿐이겠는가! 체리 세이지와 정향초, 사계절 패랭이와 겹물망초를 사다가 심어준다. 장소를 안마당으로 옮기니 일이 더 많다. 30여 종에 이르는 나무를 전지(剪枝)하고, 대나무와 쑥의 뿌리를 캐내고, 사초를 한곳으로 몬다. 오래전부터 대나무에 꽂혀 있었기로 화분의 사초를 마당에 옮겼더니 제 세상 만난 듯 창궐(猖獗)했다. 그것들을 마당 한구석으로 몰아놓고 그 위에는 흑백의 자갈로 덮는 중노동을 감행한다.그러다 어느 날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이 90도로 접히면서 펴지지 않는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손가락. ‘햐, 뭐 이런 일이 있나?!’ 정형외과 의사는 그것을 ‘방아쇠 수지 증후군(Finger Trigger)’이라 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당기고 펴줘야 하는 것 같은 증상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약물요법과 수술요법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덧댄다. 주사기로 약물을 투입하고, 사흘 분량의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옆집 사람들에게 사정을 말하니, 남매가 유경험자였다. 한 사람은 수술했고, 다른 사람은 증상을 버려두었다고 한다. “사는 데 지장 없어예!” 남의 일처럼 말하는 품새에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진다. 통계에 따르면, 1년에 1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아쇠 수지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나도 그냥 견디기로 한다. 오랜 세월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살아온 인간이 불과 두어 달 일했기로 겪는 고초가 그리 만만찮다. 하되 육체노동이 주는 쾌감과 성취감은 크다. 집이 모양새가 나고 틀을 갖춰나가는 것을 보면 흥이 절로 난다. 손가락에서는 아직도 소리가 나고 불편하지만, 특별한 경험으로 날로 풍성해지는 초여름날이 깊어지는 시절이다.

2020-06-17

선생님, 아파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등교 개학 2주가 지났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계속되는 지역 감염 소식에 긴장은 오히려 더하다. 등교 후 매시간이 열(熱)과의 전쟁이다.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밤을 잊고 연구를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직 인류와 타협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열렸다고 인류는 야단법석이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마스크뿐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마스크에 유독 민감하다. 다른 건 몰라도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학생에겐 어느 때보다 지도의 소리가 높다.예방이라는 최고의 백신 역할을 하는 마스크지만, 온종일 마스크 안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답답함도 답답함이지만,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마스크는 벽이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벽을 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평소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목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근 코로나와 별개로 인후통을 호소하는 교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열정은 교실을 넘어 복도를 점령했다. 그래서 등교 개학 이후 복도는 쉴 시간을 잃었다. 복도에는 쉬는 시간에는 학생의, 수업 시간에는 교사의 소리로 가득하다.그 복도에 갑자기 학생의 외마디 외침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아파요!”처음에는 겨우 들릴 정도였으나 점차 소리는 세상 모든 소리도 삼킬 정도로 커졌다.“선생님, 진짜 아파요. 아아!” 비명은 절규로 바뀌었다. “그래 소리 질러.” 비명 섞인 학생의 절규는 계속되었다. 교사는 멈추기는커녕 학생을 더 독려했다. 그냥 소리만 들으면, 누구라도 폭력 장면을 생각할 것이다.“그래 소리 질러. 아프면 소리 지르는 거야. 참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해!”이 소리는 필자의 소리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단속을 하기 위해 학교를 둘러보다가 필자는 교실에 혼자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학생의 표정은 어두웠고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경직된 몸을 좀 풀어줄 겸 해서 어깨 마사지를 해주었다. 학생은 손이 닿기도 전에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소리 대신 표정으로 아픔을 말할 뿐이었다.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극도로 절제된 소리로 아프다고 말했다. 그 소리에 자신도 놀랐다. 놀람 속에서도 학생은 뭔가 희망을 찾은 표정이었다. 늘 뭔가에 주눅 든 모습의 학생은 지난 학교에서 학교로부터, 교사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입을 다물라는 강요부터 배웠다.“이 아픔을 가슴에 안고 어떻게 살았니. 이제부터는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선생님, 진짜 그래도 돼요?” 학생은 소리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어깨를 누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학생의 얼굴이 점점 환해졌다. 줄세우기식 시험이 학생들을 옥죄는 6월, 우리 주변에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시험 점수 올리는 요령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6월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0-06-17

외눈박이 역사의 표본

강희룡서예가조선의 선비 중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기인이라 하였고, 또 다른 편에서는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 하여 글은 취하되 사람은 사귀기를 꺼렸던 선비가 있었으니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임제(1549~1587)다. 그는 초서에 능하였으며 호방한 필치로 막힘이 없이 써내려간 풍모를 통해 구속을 싫어하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기개와 곧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글공부에 뜻을 두어 몇 번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28세가 넘어 벼슬길에 나아갔다. 하지만 당시 조정에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 다투는 당파싸움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명산을 유람하였다.어느 날 임제가 잔치 집에 갔다 술이 취했다. 신을 신고 문을 나서는데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다. 이를 보고 하인이 곁에서 왼발은 가죽신이고 오른발엔 나막신을 신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술 취한 임제는 끄떡도 않고 그냥 말 위로 훌쩍 올라타며 하인에게 하는 말이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저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구나 할거고, 길 오른편에서 본 자는 저 사람이 나막신을 신었구나 할테니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서 가자.’ 맞는 말이다. 말 탄 사람의 신발은 한 쪽만 보인다. 짝짝으로 신을 신었을 줄은 누구도 짐작 못한다. 각자 본 것만 가지고 반대쪽도 같은 신발이려니 하며 생각을 결정짓는다.사람의 판단 역시 항상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된다. 한쪽만 보고 다른 쪽도 으레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나 아예 반대편은 보지도 않으려고 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힌다. 하지만 막상 말에서 내려 보면 그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한쪽만 보는 외눈으로 결정을 내리면 이런 생각들은 늘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외눈박이 결정이 국가에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사관(史觀)이다. 역사를 양 눈으로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이념의 틀에 묶여 외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현대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들이 뻔히 두 눈을 뜨고 과거 속의 지도자들 공과(功過)를 읽고 있는데도 국사책은 너덜거린다. 국가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국가지탱에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독립유공자가 친일파로,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바뀌는 외눈박이 역사를 평가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수립 7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키운 이들을 친일의 오명 속에 빠뜨려 파묻으려 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이고 누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인가.이 사회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시민단체는 시민이 스스로 모여 한 개인이나 집단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환경이나 인권과 같은 사회 공동체 발전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사회정의로 포장된 개인들의 영욕을 목표로 하는 집단행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짝짝이 신발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는 어디인가! 바로 헛된 약속과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을 위치를 찾는 게 국민들에게 던져진 숙제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더욱 무거운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외눈박이 역사의 표본’이라고 규정해 본다.

2020-06-16

사름하다

김현욱시인“그렇게 다양한 글감을 어디서 구해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얻는다. 첫 번째는 신문이나 잡지, 두 번째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세 번째는 생활 속 관찰이다.가장 유용한 것은 신문이나 잡지다. 매일 중앙지와 지방지를 합해서 4~5종을 훑어본다. 정치나 스포츠는 건너뛰고 사회, 국제, 과학, 문화, 칼럼을 정독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요건 글이 되겠다, 안되겠다, 금방 감이 온다. 오늘 읽은 기사 중에 ‘아무 영상이나 보고 욕 배운 AI 어린이’는 동화로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크랩해두었다. 서너 달 열심히 신문을 보면 글감이 제법 모인다. 시, 동시, 동화 순으로 분류해둔 것도 제법 양이 많다. 그럼에도 엉덩이가 가볍다보니 진득하게 앉아서 초고를 못 쓰고 자꾸만 묵혀둔다. 생각지 못한 청탁이 와서 급할 때면 글감 폴더를 열어본다. 내겐 보물 상자 같은 것이다.월간 ‘좋은 생각’과 ‘샘터’, ‘작은 책’ 같은 잡지도 즐겨 읽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서 좋다. 잡지를 읽고 밑줄도 치고 블로그에도 가려 올린다. ‘좋은 생각’ 6월호에서 ‘달빛 스쾃’이란 글이 뭉클했다. 화물차는 모는 아버지가 자신의 처지에 맞게 화물차 좁은 칸에서 스쾃을 하는 내용인데 생각할수록 코끝이 찡했다. 춤을 소재로 한 영화의 주제가 ‘What a feeling!’도 처음으로 들어봤다. 단란했던 가정에 병마가 들이닥쳐 한순간에 남편을 잃었지만, 역경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러나 수기’도 시큰한 감동을 주었다. ‘아들은 예순 셋, 어머니는 여든여덟’에서 용돈보다는 자주 얼굴 보고 맛있는 것 많이 먹기를 실천하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했다. 특히, “우리 모자의 점심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삼 년은 더 지속되면 좋겠다.”는 마지막 문장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월간 ‘작은 책’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긴 책인데, 이번 달에 창간 300호 특별호가 나왔다. 1995년 1호를 창간할 때 “노동자가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고 이오덕 선생의 말씀을 잣대로 삼았다고 한다. 6월호에서 가장 좋았던 글은 30년차 항공사 객실 승무원 김수련 씨의 ‘사름하다’란 글이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 30년차’란 말의 무게를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동생과 함께 너른 논을 다 채우면서 느꼈던 감동, 함께해서 이뤄 냈다는 성취감 같은 거. 오늘같이 힘든 비행이 끝날 때마다 함께 일한 동료들을 보면 그때의 감동이 문득 살아날 때가 많아요. 그때 난 동생과 모를 심고 ‘우리의 벼’가 자라는 동안, 내가 온전히 내 일의 주인이 되는 경험 같은 걸 했나 봐요. 저는 그런 순간들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혼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해내고 그런 감동을 순간을 기억하면 좋겠어요.”‘사름’을 하고나면 ‘모’는 더이상 모로 불리지 않고 ‘벼’가 된단다. 인생도 사랑도 ‘사름’이 필요하다.

2020-06-16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장규열 한동대 교수북한이 수상하다. 미국과 북한 관계에 진전이 없자 북한의 비난이 봇물같다. 우리 대통령에게까지 막말이 쏟아진다. 정부도 여당도 까닭을 새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귀에 솔깃한 외침이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 대통령 폄훼를 중단하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 어느 야당 국회의원의 일갈이라 더욱 새롭다. 진영논리에만 갇혀 답답하게 정쟁만 이어가던 우리 정치권에 이런 싱싱함이 살아있다니! 지금은 힘을 하나로 모을 때라서 여당야당 따질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분명하다. 대의와 국익을 온갖 논의의 제일 앞에 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난 게 아닌가.정치가 의심스럽다. 겨우 두 달 전 선거운동 때에는 뽑아만 주면 분골쇄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당장 모든 걸 바꾸겠다고들 하지 않았나. 뽑아놓은 삼백인 국회가 어느 틈에 슬로우모션이다. 산적한 입법과제와 쌓여있는 개혁이슈, 일으킬 경제동력과 시급한 교육담론, 집중해도 부족할 남북관계와 국제질서. 해야 할 일은 끝도 없는데 당신들은 지금 무엇 하는가. ‘일하는 국회’를 기대했던 국민은 이미 실망스럽다. 고작 다툰다는 게 자리싸움이라니. 국민이 보기에는 남북관계 뿐아니라 그 어떤 담론에도 여당야당 따질 일이 아니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며 당략에 갇혀 발목잡을 일도 없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 진정성을 기대할 뿐이다.견제와 균형이란다. 민주주의 교과서에 따르면, 그건 정당 간의 이해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행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입법부와 사법부를 따로 둔 ‘삼권분립’의 정신이다.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여 국정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당 사이의 다른 의견은 협의하고 조율하며 결정방법에 따라 수용하고 결의해야 한다. 국회 내 정책집단 사이에는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 ‘토론과 협상’이 있어야 한다. 결정방식의 토대는 물론 국민의 선택에 기초함이 상식이다. 국회가 만드는 법과 제도의 틀에 따라 국정을 행정부가 수행하고 그것이 적절한지 살피는 사법부가 있어 국가경영이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국민은 목이 마르다. 당신들 가운데 누가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가는 다음다음 문제다. 경제가 얼른 기력을 차렸으면 하고, 코로나19가 이제는 물러갔으면 하며, 남북에 평화의 숨결이 돌아왔으면 하여 목이 마르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기술의 진보는 어떤 세상을 펼칠 것인지, 모이고 흩어지는 일을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답답하고 궁금하다. 여의도에 모인 삼백인 집단, 당신들의 어깨에 어떤 짐이 놓여있는지 다시 좀 살펴주시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 북한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처럼,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해야하지 않겠나. 슬로우모션은 볼 만큼 보았다. 이제는 정말 일하는 당신을 만나고 싶다. 여당야당을 뛰어넘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자주 더 듣고 싶다. 지금은 힘을 모을 때가 아닌가.

2020-06-16

야시장의 위기

야시장은 저녁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 포장마차다. 음식과 일상용품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 형성한 야간 시장을 말한다.굳이 유래를 따지자면 중국에서 발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26년 서울 종로 보신각부터 종로3가까지 전차가 다니던 길의 북쪽에 형성된 야시장이 최초의 야시장이라 한다.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야시장은 그 나라 문화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각광을 받으며 동남아국가에서 야시장이 많이 만들어졌다. 대만의 한 야시장은 2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기도 한다.우리나라도 지역상권을 살리고 관광자원화 하려는 취지로 야시장들이 도시마다 특성에 맞게 많이 생겼다. 서울의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처럼 대구에서는 서문시장 야시장이 2016년 6월 처음 문을 열었다.350m에 이르는 80여 매대에서 판매하는 각종 음식과 생활용품 등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개장 첫날 10만여 인파가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서문시장 야시장의 인기에 편성해 지난해 11월에는 칠성시장 야시장도 개장했다.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안겨주었다.그러나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이들 야시장은 된서리를 맞았다. 우선 몇 개월의 휴장기간을 가져야 했고 그로 인해 방문객의 발길도 자연 줄어들었다. 서문시장 야시장의 경우 하루 방문객이 지난해보다 60%가 줄었다. 매대 운영자도 절반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칠성시장 야시장도 비슷하다.상인들은 예전 같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해가 야시장까지 마수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모여야 장사가 되는 야시장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같아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16

대구 도성사(道成寺)

예정되지 않는 만남과 계획 없는 여행이 좋을 때가 있다. 휴일 아침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불현듯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만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일 년에 고작 서너 번 정도의 만남이지만 그 시간들은 값지고 소중한 추억으로 이어진다.“네가 좋아할 만한 절을 발견했어. 천년고찰이 아니기에 재미있는 전설이나 볼거리는 없지만 꽤 느낌이 괜찮은 절이야. 너도 가보면 분명 좋아할 거야.”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작은 절을 떠올리며 나는 온갖 상상으로 행복해진다. 한 달째 허리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배려하는 친구의 마음씀이 더 고맙다. 성격이나 전공은 다르지만 정서적인 교감 하나로 언제나 든든한 친구, 그녀는 나를 믿고 아픈 몸을 움직였고 나는 그녀를 의지하며 운전대를 잡았다.천연기념물 제 1호인 도동 측백나무숲을 조금 지나자 좌측 편으로 절의 안내판이 보인다. 들꽃처럼 소박한 눈을 뜨고 길가를 지키는 생소한 이름이다. 이 길을 몇 번이나 오가며 관심없이 지나쳤던 나의 무심함이 부끄럽다. 낯설고 조심스럽던 길은 다리지라는 작은 연못 하나로 갑자기 익숙하고 친근해진다.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주 작고 정겨운 못이다.못 둑에 갈대가 필 무렵, 도시에서 공부를 하던 삼촌이 양동이 가득 우렁이를 잡아주던 오랜 기억 하나가 월척이 되어 낚인다. 못물을 빠져나간 진흙 속에서 팔딱거리던 미꾸라지들의 몸부림, 눈부시게 뽀얗던 삼촌의 발목, 산골짜기를 울리던 때묻지 않은 웃음들을 떠올리며 나는 오랫동안 전하지 못했던 안부를 전한다.그 많은 꿈들과 따스했던 눈빛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기억들로 내 영혼은 촉촉해져 온다. 추억은 변함없이 삶에 물기를 더해주는데 육신은 늙어가며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친구의 심장에도 월든의 호수같은 무욕의 자연 하나 박혀 있나 보다. “좋재 좋재”만 되풀이 하던 친구도 생각에 잠겨 말이 없다.자동차는 한껏 무거워진 몸으로 가파른 시멘트 길을 오른다. 각박한 삶처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인 오르막이다.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다. 비탈길을 오르고 나니 한적한 솔밭 내리막길이 펼쳐지고 구릿빛으로 그을린 중년 남자가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맞은편에서 올라온다. 건강한 열정을 토해내는 숲길을 들어서기가 참으로 미안해진다.길은 혈류처럼 천혜의 자연 속으로 이어지고, 절은 숨바꼭질을 하듯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솔숲 그늘 길은 이따금씩 이글거리는 태양에 목덜미를 잡히기도 하면서 도성사를 찾아 나아간다. 밤꽃 향기가 스멀스멀 숲으로 숨어들 무렵 내리막길 끝에 제법 너른 하늘이 열리며 절이 있음을 알린다. 담장은 낮아서 넉넉하고 그 뒤로 나무로 만든 사립문이 도성사의 불이문을 대신한다.몸집 자그마한 여인 홀로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걸어 나온다. 하늘과 숲과 하나가 되어 힐링 중인 그녀에게서 나무냄새가 날 것 같다. 정자에서 자전거와 쉬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가 도착하자 헬멧을 쓰고 폐달을 밟으며 다시 숲으로 향한다. 숲은 말없이 그들을 받아주고 그들은 힘들게 숲을 통과하여 또 도시로 향할 것이다.결코 적막하지 않은 일련의 풍경들을 높은 곳에서 대웅전이 내려다보고 있다. 긴 계단을 오르며 친구는 조심스럽게 할미꽃씨를 따서 주머니에 넣고 나는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요즘은 채송화, 할미꽃, 봉숭아 같은 꽃들이 좋아지더라.” 친구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또 다시 숲을 빠져 나오는 자전거들의 반짝거림을 응시한다. 사람들은 정자 앞에 멈춰 헬멧을 벗고 약속이나 한 듯 대웅전을 바라본다.조낭희 수필가평화가 흐르는 풍경, 무탈을 기원하는 대웅전, 어느 새 법당에 들어가 아픈 몸으로 삼배를 하는 친구, 이 모든 광경들이 보석처럼 눈부시다. 나도 뒤늦게 백팔 배를 시작한다. 친구의 건강이 빨리 회복될 수 있기를, 배낭을 메고 이 솔숲을 다시 걸어와 나란히 백팔 배할 수 있기를, 나의 기도는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간절해진다.절을 하는 동안 삽질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서걱서걱 염불소리만큼 경건하게 만든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절에는 주지 스님의 살아있는 기도가 끊이지 않을 것만 같다. 백우당 쪽에서 젊은 처사님과 울력 중인 스님의 야심찬 정성을 위해 가만히 두 손을 모은 후, 친구를 찾아 나선다.칠성각에 부처님처럼 앉아 있는 친구의 얼굴에도 생기가 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소소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고, 내 힘으로 열지 못하는 문 앞에 설 때까지 감성 충만한 풀꽃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들이 일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절을 내려온다.추억이 우리를 겸허하게 성장시키듯 도성사도 아름답고 건강한 염원들로 채워질 것이다. 오층석탑은 교신이라도 하듯 저 멀리 팔공산 레이더 기지를 응시하고, 스님은 또 손수레를 끌고 유월의 햇살 속을 걸어가신다. 가까이서 팔공댐은 저토록 태평스레 졸고 있는데도.

2020-06-15

속도와 리듬, 그리고 밀도의 영화를 감상하는 법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드라마는 단순하다.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밀어붙이는 속도감으로 인해 스토리가 있었는지, 굳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의 되새김보다는 강렬했던 이미지들이 남아 그것들의 조합으로 남는다. 의미보다는 이미지가 먼저 다가와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는 영화다.영화가 시작되고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시작해 황량한 모래벌판을 내리 달린다. 모래 먼지와 모래 폭풍, 화염과 기괴한 모양의 자동차들이 질주하며 부딪치고 폭발한다. 그 사이로 인간들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며 질주한다. 거칠지만 아름답고, 기괴하지만 ‘리듬’을 가진다. 이 리듬이 강렬한 이유는 ‘속도’에 있다.맹렬한 속도와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무언가가 옥죄었던 모든 것을 풀어 헤치고 거침없이 질주한다. 속도는 자동차의 엔진과 함께 한다. 시동을 걸면 질주하고 시동을 끌 때 영화 속 모든 이들은 잠시 숨을 고르거나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속도를 가진 리듬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내연기관의 강도에 따라, 그 강도의 리듬을 타고 영화가 흘러간다. 뿐만 아니라 황폐한 미래의 지구에서 이들이 가늠하는 시간도 내연기관의 엔진이 식어가는 정도와 내연기관으로 달려가는 거리로 측정된다.단순하게 속도를 가진 리듬만으로 이 영화가 주는 액션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하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강도를 더해가는 액션만으로 채워졌다면 지루한 자극만으로 이어진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황량한 모래 벌판의 배경은 단순한 풍경으로 지루함을 더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잡다한 요소를 제거하고 오로지 액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이 되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주는 쾌감과 속도감이 남다른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밀도’에 있다. ‘속도를 지닌 리듬’이 ‘밀도감’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드라마에 많지 않은 대사들.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액션의 이유가 구구절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불친절하거나 어설픈 구성으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우선 내리 달리고, 달리면서 부딪치고 폭발하면서 단순한 드라마에 강렬한 이미지를 채워넣으며 시종일관 질주한다. 핵전쟁으로 인류 대부분이 사라진 황폐한 세계 속에서 오로지 “유일한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라는 맥스의 대사처럼, 살아남기 위해 질주하고 부딪치며 생존할 최소한의 액체를 쟁취하기 위한 속도, 리듬, 밀도가 가득한 향연이다. 결핍과 생략, 단순함의 선택이 효율성으로 자리잡는다. 이것이 액션을 쉼없이 나열하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점이며, 그 많은 액션 중에서 단 한 순간도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래와 바람, 불과 쇳덩이로 이루어진 자동차, 그리고 살아남은 몇몇의 인류가 황량하고 거친 모래사막을 질주한다. 질주의 이유는 등장하는 모든 것들과 대비되는, 생존의 기본이 되는 액체를 얻기 위함이다. 황폐한 사막에 대비되는 물과 불을 만들고 쇳덩이로 이루어진 자동차를 움직이는 기름과 기괴한 착취의 상징인 피와 모유를 통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건조함과 촉촉함의 강렬한 대비다. 다채로움과 속도감에 리듬을 더하고 거기에 밀도를 채워넣는다. 그리고 이것들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은 단순화시킨다. 등장하는 인물의 사연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며,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을 구체화시키지 않는다. 영화 속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멈춤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다. 내연기관이 멈췄을 때 그들은 불안해 했고, 그들의 목표는 아득해진다. 반대로 속도 속에서 안정을 찾고, 속도의 정도에 따라 희망과 목표가 더 강렬해진다.‘시타델’이라는 물이 있고 식물이 자라는 지배와 착취의 세계에서 출발한 영화는 ‘녹색의 땅’이라는 생명과 자유의 땅으로 핸들을 돌린다. 그리고 이상의 도피처가 황폐해져 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곳을 반환점으로 다시 출발점(시타델)으로 향한다. 강렬한 대비의 요소에 시작점에서 출발해 시작점에서 끝나는 순환과 반복의 영화다. 이는 희망없는 미래에 반복을 통한 문명의 단초를 놓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오직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유일한 목표를 강렬한 액션의 향연으로 목도하는 영화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는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0-06-15

생활 속 운동습관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한다. 천성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격이지만, 습관은 어떤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질 때까지 반복함으로써 형성된다. 습관은 한번 깃들여버리면 타고난 성격과도 같아져 다시 바꾸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즉, 습관이 패턴으로 굳어진 후에는 그 반복되는 패턴 속으로 자꾸 끌어당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어려서부터 들이고 나쁜 습관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삶은 습관의 연속이다. 먹고 입는 양식, 말하고 행동하는 버릇, 학습하고 일하는 방식 등 사람은 일생에 걸쳐 제 나름의 습관으로 이어지고 굳어진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개개인의 정서나 습관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 관습이나 풍습이 되고 그것은 곧 지역과 사회적인 문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습관은 의식주와 생활 전반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몸을 움직여 신체를 단련하거나 건강을 도모하는 운동도 습관에서 비롯된다. 지구 상의 모든 생물체는 움직임이 있어야 신진대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자생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움직이고 활동해야 한다. 원활한 대사(代謝)작용과 활력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은 움직임이나 자극을 통해 땀을 배출시키고 신체를 유연하고 활발하게 하며 심신의 활기를 더해준다. 또한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운동은 신체리듬을 활성화시키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운동을 습관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걷기, 구기, 수영 등 운동의 방법도 무수하지만 필자는 수년 전부터 생활운동을 고수하고 있다. 매일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 하루에 계단 2천개 이상 오르내리기, 맨손체조 등 말 그대로 일상생활 자체를 운동처럼 여기며 실행하고 있다고나 할까? 바쁘고 각박한 시대를 살면서 운동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기 보다 생활과 병행하는 가벼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습관화되어 심신의 긍정적인 효과와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최근 포항지역의 영일대 해변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서 이색적이다. 새벽같이 영일대 해상누각 주위에 약속처럼 나타나 모래의 감촉을 온 발바닥으로 느끼며 왕복 5㎞ 정도 2시간 남짓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어김없이 맨발걷기한지 벌써 106일, 삼삼오오 함께 걸으면서 그들은 찬란한 해맞이도 하고 파도소리의 추임새를 듣는 것을 흡족해하는 듯하다. 이에 포항시북구보건소에서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실외에서 할 수 있는 손쉬운 생활 속 걷기운동이나 건강체조교실을 운영하고 장려하고 있어서 한층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운동이나 기타의 건강한 습관은 평소 스스로 실천하고 지켜나가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만, 단발성이나 너무 과도한 생활 속 운동습관은 자신의 취향과 형편에 따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반복과 지속은 기적을 낳는다. 습관이 무기가 될 때, 평범했던 자신을 최고로 만든 요체는 단 하나의 습관이 아닐까?

2020-06-15

북한은 왜 대남 강경노선을 선택했을까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여정의 강경 발언 이후 북한 당국은 연일 대남 선전포고식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남북의 통신선을 전면 단절하고 대남관계를 ‘적대관계’로 바꾼다고 선포하였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9·19 군사적 합의마저 폐기할 의사를 표명했다. 폐쇄한 전방 GP를 복원하고 단거리 포사격 훈련도 재개할 의사까지 보이고, 개성공단 지역을 과거처럼 군사적 요충지로의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남한은 이제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북한이 과거의 강경노선인 군사적 모험주의로 회귀한 배경은 무엇일까.가장 직접적 요인은 그들이 밝힌 대로 탈북 시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행위이다. 북한은 ‘수령의 권위’를 손상하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경계하고 비난해 왔다. 그들은 전단 살포 행위의 주체가 일부 탈북 단체라는데 분노하면서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했다. 대북 전단에는 그들의 수령을 비하·비판하는 글귀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미국 달러 1장과 남한 CD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그들은 더욱 싫어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국가 존엄’ 모독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북한의 노선 선회의 본질적 배경에는 북미 관계가 조금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그렇게도 기대했던 하노이 정상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그간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 3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셈이다. 북한 당국이 애원하는 북한 체제 보장과 북미 수교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는 종래의 ‘벼랑 끝 전술’도 핵실험 위협도 통하지 않음을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북한은 트럼프를 직접 상대하기 보다는 남한 당국을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또 다른 강경 요인은 외재적 요인을 내부 주민 통치용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북한도 이미 정보화 사회에 진입했고 초보적인 시장 경제는 작동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보다 어려운 민생 경제는 카리스마가 약한 김정은 수령에게 향하고 있다. 더구나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는 북한 경제를 목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국가 존엄’에 대한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의 적을 이용할 필요가 절박한 것이다. 북한 땅에서 학생, 청년, 군인들의 대남 선전 선동이라는 관제 시위에 연일 동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러므로 북한의 대남 강경 노선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11월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트럼프나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내부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대남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강경 노선의 직접적 요인인 전단의 살포만은 막아야 한다. 그것은 4·27 판문점 선언이나 남북 군사적 합의에도 위배되고 남북 교류 협력법이라는 현행법에도 위반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급히 대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협상의 지연 전술도 필요할 것이다.

2020-06-15

핵 그림자 효과

핵그림자 효과는 직접적으로 핵공격 위협을 가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핵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상대를 위축시키고 이를 통해 전략적 우위를 갖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특히 한반도에서 북한은 핵무력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같은 효과를 상당부분 거두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핵그림자 효과와 달리 핵우산은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이 핵으로 응징한다”는 것과 같은 미국의 공약을 가리킨다. 미국의 핵전쟁 억제의 기본개념은“미국에 핵공격을 가하면 반드시 핵으로 보복한다”는 것인데, 이같은 핵우산 개념에 더해 한국에 대한 핵공격을 미국에 대한 핵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문제는 핵우산이 북한의 핵사용을 억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핵그림자(Nuclear Shadow)’까지 차단해 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핵무기의 특성때문이다. 핵무기는 일단 사용되면 엄청난 파괴와 살상 효과를 나타내는 군사적 무기지만, 사용하지 않고 보유한 상태에서도 상대를 주눅들게 만들어 각종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심리전 수단이자 정치·외교적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걸핏하면“궁극무기의 맛을 보여주겠다”“불벼락을 내리겠다” 는 등의 핵공갈(Nuclear Blackmail)을 남발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핵그림자 효과 때문이다.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연평도 도발 역시 핵그림자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북한의 핵사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한반도에 핵 그림자를 드리운 채 남북관계를 지배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차단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15

미·중 충돌, 기로에 선 한국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미·중 패권경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외교가 중대한 기로(岐路)에 섰다.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던 문재인 정부의 ‘줄타기외교’가 이제 더이상 계속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코로나19의 세계적 팬데믹(pandemic)을 계기로 더욱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의 본질은 패권국 미국과 도전국 중국 간의 패권전쟁이다. 외교·안보·군사차원에서 볼 때 중국이 세력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전략’에 맞서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중국을 포위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독려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G7에 한국을 초청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핵심이익(core interest)’으로 중시하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국제수로 항행자유’를 주장하며 핵항모전단·강습상륙함 기동훈련을 계속하면서 반중(反中)성향의 동남아국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이 주권문제라고 강변하는 ‘홍콩보안법’ 제정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을 위협하는 등 대중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 국방부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는 중국에 대한 ‘경쟁적 접근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신냉전을 공식화했다.경제·금융·무역차원에서의 미·중 패권전쟁도 심각하다. 미국은 세계 공급망의 중심국인 중국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방국들과 함께 새로운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설립을 통한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화웨이(Huawei)를 비롯하여 첨단기술을 적용하는 ‘중국제조 2025’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견제는 중국의 ‘기술패권’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이 위안화 기준환율을 인상하자 미국은 이를 환율조작으로 간주함으로써 미·중 통화전쟁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단순한 협박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미어세이머(John J. Mearsheimer)는 그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강대국 간 패권전쟁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미·중 패권전쟁의 전운(戰雲)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양 강대국으로부터 ‘줄서기’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줄타기’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미·중 패권전쟁에 대비하는 한국외교의 좌표설정이 시급하다.한국은 한·미 동맹의 당사국, 즉 행위자(player)라는 점에서 미·중 사이에서 중재자(mediator)가 될 수는 없다. 만약 불가피하게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패권전쟁에서 이기는 편에 서야 하는데, 대다수 국제정치학자들은 상당 기간 미국의 패권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 또한 정치이념과 가치체계가 이질적인 나라보다는 동질적인 나라가 우리의 국익에 더욱 부합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로에 선 한국외교의 진로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2020-06-15

불확실성 시대에 확실한 것부터 해결하자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1월 전망치보다 낮춘 마이너스 3.0%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약 2달 정도가 지난 6월 8일 세계은행(World Bank Group)은 세계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에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5.2%로 예측하였다. 미국과 일본 모두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 6.1%로, 유로지역은 마이너스 9.1%로 예측하는 등 선진국은 약 마이너스 7%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는 한편, 중국(+1.0% 성장)을 포함한 신흥개발도상국도 마이너스 2.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경기후퇴로 보이는 이러한 무차별적인 역성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각 지역 간, 지역 내 물류 이동이나 수급이 차단된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무역 규모가 13.4% 감소할 것으로 보았다. 신흥개발도상국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지난 6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문제는 세계은행 보고서의 예측이 정확한 것인지를 떠나 적어도 전망을 위한 전제 조건 즉 기본 시나리오가 대부분 올해 중반 또는 다소 지연되는 시점에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 가정하고 있어 크게 낙관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다만,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밝혔듯이 코로나19로 인한 각 지역이나 나라별로 겪을 경제적 영향의 정도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역시 제일 심각하게 코로나19의 피해가 컸던 지역이나 나라일수록 경제적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제무역, 관광, 1차 산품 수출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영향이 클 것이다. 해외로부터의 자금조달 의존도가 높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다들 자국 경제의 회복에 자금을 투입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기에 해외로부터 자금 조달 의존도가 높은 곳은 높은 국제금리를 감내하거나 아예 상환독촉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얼마나 자율적인 경제순환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달린 셈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세계은행이 전망한 것과 다른 결과가 초래된다면 바로 이 외부요인으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내성이나 메커니즘이 각 나라나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그만큼 지금의 전망치조차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다.경북 동해안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의 최근 조사결과에서도 지역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느끼고 있다. 당연히 과감한 투자나 어떠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하물며 대기업과 달리 정세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안테나도 없는 지역 대다수 중소기업은 오직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저 시간이 흘러 사태가 종식되고 기존 거래처들과 거래를 재개하여 자사의 공장이나 영업점이 정상화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기업의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구어왔던 공장, 가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나 또 언제나 가능하지도 않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최적기일 수도 있다. 다시 경제 활동이 정상화되는 순간부터는 또다시 중소기업 경영자의 뇌리에는 당장 공장 가동문제에 매달릴 것이기에 정말 해결해야 할 확실한 문제는 다시 봉합될 가능성이 크다. 다름 아닌 후계자 문제다.전 세계 어느 나라나 지역에서도 중소기업들은 후계자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미국과 같은 서양에서는 기업 간 흡수합병이나 외부로부터 경영자를 초빙하는 경영 방식이 동양보다는 활발한 관계로 해당 기업을 처음 만들었거나 육성한 개인이나 가문이 바뀌더라도 기업 자체의 존속 확률이 동양보다는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비교적 ‘뿌리’나 ‘전통’을 중시하는 ‘피의 계승’ 경향이 기업에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결과가 재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면서 불법 승계니 뭐니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그 누구라도 자신이 피땀을 흘려 청춘을 바쳐 이룩한 기업을 자기 자식이나 친족이 아닌 제3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일례로 어느 중소기업 경영자가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기술이나 공법 등을 이용하여 독보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그 비밀은 함부로 전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종업원이 지닌 암묵지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포항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유명 음식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지역 중소기업의 업종 중에서도 그나마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고 있는 분야는 역시 중소제조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중에서도 포스코가 포항에 자리 잡은 이후부터 자수성가하여 지역에서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고 기술력만으로 버티고 생존해온 중소제조업체가 이 문제를 안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때부터 출발하여 성장해온 기업이라면 20세에 창업하였더라도 이미 70세 고령일 것이다. 다행히도 친족이나 자식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2세 경영 심지어는 3세 경영으로 진입한 기업도 없진 않을 것이다. 다만 2세, 3세가 경영권을 인수하여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대개가 충분히 먹고 살 만하고 경영자 스스로 기름때를 손에 묻히지 않아도 되는 기업일 것이다.하지만 종업원 10명 이내의 기업으로서 그동안 기술력으로 때로는 종업원들과 일치단결하여 지금까지 생존해온 중소기업이라면 과연 그 경영자의 2세도 기꺼이 부모의 가업을 계승하려는 마음으로 스스로 손에 기름때를 묻히려는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이들 중소기업을 경영해온 부모의 희망, 자식의 야망 등이 융합되어 2세들 대부분은 진작에 대구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여 공업과는 무관한 상업이나 공무원 등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기 쉽다. 그러하기에 이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어쩌면 나이가 더 들어 기력이 쇠퇴하면 그냥 공장문을 닫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양과 같이 비록 자신이 이룩해온 공장이지만 누구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해당 공장, 해당 기업을 제대로 살려 끌고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전혀 다른 타인이라도 기업의 후계자로 삼아 물려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진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 가운데 한두 기업이 고령화 문제로 공장문을 닫는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 중소기업의 입장이 이와 유사한 후계자 단절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면 이는 기업문제가 아니라 포항이라는 도시 자체의 문제가 된다. 우리가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것은 그들이 지역의 고용생태계를 형성하고 그 종사자들은 시민이자 소비자, 학부모, 납세자, 유권자로서 지역의 정치, 경제, 행정,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후계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폐업하게 된다면 지역의 고용창출력은 물론 과거 수십 년간 축적해온 지역의 기술력, 지역의 잠재성장력, 지역의 경영자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크다고 해서 잠자코 있을 때가 아니다. 이때야말로 냉정하게 자신이 몸담은 중소기업의 후계자 문제, 기업의 지속성 확보문제 등 보다 확실한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6-14

튼튼한 방역 위에 민생경제 활력 ‘올인’

이강덕 포항시장미증유(未曾有)의 ‘코로나19’ 여파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2분기에 들어서면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대세이다.국내에서도 코로나19가 가장 거세게 휩쓸었던 대구 경북은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포항지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지역경제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비심리의 위축이 경제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고,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고 한다.당장 가뭄을 해결할 단비 같은 응급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포항시는 신속하게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생활안정 대책을 마련하는 등 경제적 지원에 시동을 걸었다.지난 4월에는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의 제도적 근거 마련을 위해 ‘포항시 저소득주민 생활안정 지원조례’를 신속히 제정한데 이어, 동시에 예비비를 신속하게 집행하는 한편 1차 추경예산에 ‘코로나19’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아동양육수당 지원, 저소득층 한시생활지원, 긴급복지지원, 입원자가격리자 생활지원 등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위기 상황에서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 경제 살리기 대책과 지원 사업들을 최대한 확대하고 신속하게 추진했다.이제는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즉, ‘포스트 코로나’가 화두다. 이에 어려운 민생의 안정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포항시는 ‘포스트(post) 코로나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핵심 현안사업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모든 힘을 쏟을 방침이다.이를 위해 의료, 보건, 경제, 산업, 기업, 소상공인, 시민생활 등을 각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포스트(post) 코로나 전문가 자문회의’도 열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금순환 촉진, 디지털·바이오산업 육성,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대응한 생활방역의 확산, 뉴노멀(New normal)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 발굴, 지속가능한 도시환경 조성을 비롯해 보건·의료, 경제·산업, 시민생활, 도시·환경 등 4대 분야별 전략과제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또한 경북도와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 간담회’를 열어 포항지역의 핵심 현안들을 공유하고, 미래 사업 발굴 및 국비확보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관련해서 포항시는 ‘코로나19’로부터 일상회복을 통한 사회통합과 경제활력으로 민생안정 도모를 목표로 의과대학·대학병원 유치와 환동해 해양복합전시센터 건립,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 융합기술산업지구 국제학교 신설 등 ‘포항형 뉴딜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그동안 신속하고 빈틈없는 방역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해주고 계신 시민 여러분께 거듭 깊이 감사드린다. 포항의 성공적인 방역체계 구축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과 경제 사회구조 변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시민과 함께 ‘코로나19’의 높은 파고를 넘어 새로운 포항을 위한 준비를 꼼꼼히 챙겨나갈 계획이다.단란한 일상을 멈추게 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그 어둠은 생각보다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예견이 나오기도 한다.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희망의 불씨’가 찾아올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유난히 위기에 함께하고 뭉치는 힘이 유난히 강한 민족이지 않은가? IMF 때가 그랬고,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그랬지 않은가?

2020-06-14

상서로운 집

영양은 경북에서는 오지 중에 오지이다. 육지 속에 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첩첩산중이다. 예전엔 포항에서 가려면 3시간은 걸리니 쉽게 나설 수 없는 곳이었지만 영덕상주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1시간 정도면 도착하니 옆 마을이 된 듯하다. 한걸음에 달려갔다.전국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하고 오염이 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가는 곳마다 경치 좋은 명승지요, 그 속에 품고 있는 문화재도 많다. 산이 깊으면 물이 많은 것인지 차를 타고 달리는 내내 어디나 내가 흐르고 내에 엎드려 다슬기를 잡는 어르신들이 눈에 뜨였다.오지라 해도 역사가 깊은 곳이다. 신라 때 고은(古隱)이라 불렀으며, 고구려 장수왕 때 잠깐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신라에게 돌아왔고 이후 영양(英陽)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조선시대 대표 정원인 서석지다. 오래전에 찾았을 때에는 없던 주차장이 생겼고, 담장을 새로 단장하는지 7월 2일까지 ‘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섰다. 그래도 아쉬워 잠시 들어가 봐도 되냐고 물으니 포클레인이 길을 비켜주었다.들어가는 문이 옆으로 놓였다. 왜 이렇게 돌아가게 해 놓았는지는 마당에 들어서면 알게 된다.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다. 마당 전체가 연못이니 말이다. 마당이 없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연못의 풍경에 또 놀라게 된다. 여름에 가면 분홍빛 진한 연꽃이 만발해 이 동네가 연꽃을 심은 연못이라는 ‘연당리’라고 이름 붙여진 연유를 알게 된다.반변천 지류의 개울을 이용해 물을 끌어들이고 자연석의 오묘함을 최대한으로 살려 지은 집이다. 근처의 풍광을 외원으로 삼아 조선시대 사대부의 자연관과 넓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멀리 있는 보길도 세연정과 담양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정원에 들어가는 서석지, 광해군 때 정영방이라는 사람이 만든 조선 전통 정원으로 중요 민속 문화재 제108호이다.정원 풍경의 압권은 400년이 훨씬 넘게 이곳을 지킨 은행나무다. 아마도 서석지 역사와 함께 했을 것이다. 담장에 기댄 가지들은 담을 벗어나 마을 입구에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의젓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하늘을 향해 팔을 뻗은 품새다. 벌어진 가지에 은행 알이 떨어져 싹을 틔워 나무에 어린 나무가 자랐다. 자식을 품은 어미의 모습이다. 여름에는 연꽃을 보러 가고 가을에는 금빛 찬란한 은행나무를 보러 이곳에 가야한다.김순희 수필가은행나무를 돌아 연못 북쪽에 자리한 주일재(主一齋, 서재) 앞에 선다. 네모난 단을 만들어 매화(梅),소나무(松),국화(菊),대나무(竹)를 심어 벗하였다. 사우단(四友壇)이다.‘매란국죽’이라 하여 사군자를 뜻할 텐데 난 대신 소나무를 심어 ‘매송국죽’이 되었다. 또한 서석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있으니 바로 연못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위 같은 돌(瑞石)이다. 울퉁불퉁 솟아난 60여개의 서석들은 때로 물속에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여 오묘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상서로운 돌이란 뜻으로 정자의 이름이 되었다. 서석지의 주인공이다. 저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연못의 물은 북동쪽 귀퉁이로 흘러 들어와 남서쪽으로 흘러나가도록 되어 있다.연못을 한 바퀴 돌면서 감상하고 이제 경정이라는 현판이 있는 정자에 올라 가 본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경치가 달리 보인다. 경정(敬亭)의 경은 성리학의 처음과 끝이다.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고 가지런히 하는 것이 경이라고 한다.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시원한 마음이 절로 든다. 몇 해 전 이곳에 올라 지인들과 두런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서늘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닥쳐왔다. 유월의 한낮의 뜨거움을 식히고 사라진 소나기로 주위가 더 고요해져 마루에 누워 한나절을 즐겼었다.오래된 건물에 들어가는 일은 타임머신을 타는 일이다. 시간은 다르지만 경정에서 글을 읽고 제자를 키우던 주인의 숨결을 느끼며 나도 한순간 조선의 선비가 되어본다. 낭랑한 시 읊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2020-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