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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풀 이름 부르기

김병래시조시인어느 시인은 구절초와 쑥부쟁이도 구별하지 못하고 시인행세를 한 것이 부끄럽다고 했지만, 종자식물과 포자식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시인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가끔씩 시(詩)에다 ‘민들레 홀씨’란 말을 써먹는 게 그 예다. 이끼나 버섯, 곰팡이처럼 무성생식을 하는 식물의 포자(胞子)를 홀씨라고 한다는 건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우는 상식이다. 그것을 종자식물인 민들레에 갖다 붙이는 건 코끼리를 곤충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림없는 소리다. 남달리 사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다는 시인들조차 이 정도니 틈만 나면 휴대폰이나 들여다보는 아이들이야 오죽할까.이제는 어른들 중에도 억새와 갈대를 구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밭에서 자라는 밀과 보리, 콩과 팥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좁쌀과 기장쌀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그러니 한 술의 밥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거름 주고, 김매고, 추수하고, 타작하고, 말리고, 찧어서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들녘에는 음식이 되는 농작물만 있는 게 아니라 잡초라 불리는 온갖 풀들이 있다. 김매는 아낙들에겐 지겨운 일거리기도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듯이 지천인 들풀인들 어찌 소용이 없겠는가. 풀 한 포기 없이 삭막한 사막에 비한다면 잡초 우거진 이 땅은 얼마나 우리의 정서를 생기롭고 풍성하게 하는 낙원인가. 먹고 사는 게 어려울 때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채소나 곡식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잡초에도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곡식이건 잡초건 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요즘은 참 편리하게도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만 하면 풀꽃의 이름과 정보를 알려준다고 하니 관심이 있으면 손쉽게 풀꽃들과 친해질 수가 있겠다. 우선은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특별하거나 희귀한 것보다는 가장 가까이에 가장 흔하게 있는 것들이 우리 정서의 바탕이 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는 생각이다. 풀꽃으로는 이른 봄의 봄까치꽃, 냉이꽃에서부터 민들레, 제비꽃, 양지꽃, 여름의 개망초와 엉겅퀴, 클로버, 애기똥풀, 달맞이꽃, 가을의 여뀌와 물옥잠, 고들빼기, 씀바귀, 쑥부쟁이 등이 가장 흔하게 보이는 꽃이다. 그 밖에도 꽃이 보잘 것 없는 뚝새풀, 겨이삭, 메귀리, 포아풀, 수크렁, 강아지풀 같은 벼과식물이나 방동사니, 하늘지기, 괭이사초 같은 사초과 풀들은 종류도 많고 구별도 어려워서 풀이름 공부의 중급과정은 될 것이다.그까짓 풀이름 따위 알아서 무슨 소용이냐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김춘수 시인도 말하지 않던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들녘에 피고 지는 수많은 풀꽃들 그 하나하나에 눈 맞추고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 어찌 쓸데없는 짓이겠는가. 그들이 전해주는 거짓도 왜곡도 의혹도 없는 생명의 메시지가 한갓 부질없는 게 아니라면.

2020-04-16

석가모니 부처님

철산 스님 포항 보경사 주지석가모니의 호칭은 붓다, 부처, 고타마 싯다르타, 여래, 천인사 등 여러 가지이다. 부처라는 말은 인도에서 온 말로 ‘붓다’인데 이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의 불(佛)은 부처, 교(敎)는 가르침으로, 불교를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하면 ‘깨달은 이의 가르침’이다.석가모니가 출가를 했던 이유, 6년 간의 고행을 단행했던 이유에 비추어 봤을 때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세상 일체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고 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의미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모든 고통의 원인은 ‘무명’(無明)이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바르고 청정한 지혜를 증득하여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불교를 흔히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이해하고, 이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속세를 떠나 산 속에 묻혀 선정을 닦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면을 묘사한 경전 구절에 비추어 보면,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는 결코 세상과 관계없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른 지혜와 청정한 눈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진리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디디고 선 바로 이 현실 자체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석가모니의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緣起)로 대표된다. 연기는 석가모니가 세계와 존재의 구성 원리에 대해 발견한 것이다. 연기란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뜻으로서, 세계나 존재는 조건들의 모임이고, 이 조건이 변해가기 때문에 존재도 끝없이 변함을 설명하는 원리이다. 연기는 존재의 인식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존재의 고통과 혼란의 근본원인을 무명이라고 말하고, 무명이 소멸하면 모든 고통이 해결되어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즉,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이며, 열반은 완성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선포한 후에도 평생 동안 팔정도(八正道) 수행을 하고, 그 수행의 방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한 것은 궁극적인 열반을 향한 일체의 자기 수행, 자기 공부였다.세계적 대유행이 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당함과 고난, 그리고 두려움을 겪고 있지만 냉정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역대 불문의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한 대응을 잊지 말 것을 모든 분들께 당부드린다. 어떠한 곤란이 있더라도 오직 자비와 지혜로 대응하고 모든 사람들이 환경보호와 생명보호를 중시해 이 위기를 평안함으로 전환 시킬수 있기를 바란다.

2020-04-15

봄은 왔건만

윤영대 수필가춘삼월도 지나고 목련 꽃이 아름답게 피는 4월, 완연한 봄이다. 벌써 일찍 만개한 창포동 뒷산의 진달래는 꽃잎을 접어가고, 효자 영일대, 환호공원 등 시내 곳곳의 벚꽃길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지나는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한 폐렴-코로나19의 검은 구름이 몰려온 탓이다. 그야말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다. 국내 확진자가 1만 명을 넘고 감염예방수칙도 강화됐다.늘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이 딸꾹거릴 때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알림이 온다. 감염예방을 위해 저녁 시간 밀폐된 장소에 가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오기, 행사와 모임 자제하기, 손씻기와 기침 예절 준수하기 등 창살 없는 감옥이리라. 국민이 지켜야 할 사항들이 긴 겨울 동안 따뜻한 봄날을 기다렸던 마음에 어두운 장막을 치게 한다.감염확산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한다. 거리 2m는 코로나 세균의 비말이 미치지 않는 간격이고 거리두기라는 의미는 사람 간 접촉을 줄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회적 거리’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씹어 보면 씁쓸하게 들리기도 한다. 사회적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역할을 하는 관계, 감정 등의 의미가 있으리라. 이 보이지 않는 거리를 멀리하라고 하니 무관심 아니면 적대적 관계로 오해될 수 있겠다. 오히려 ‘물리적 거리’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어쨌든 이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서 인간적 거리는 배려와 양심적 행동을 통해 더 따뜻하게 가까워져야 하리라.치료와 점검, 방역활동 등을 위해 전국에서 스스로 참여하는 의료인들과 소방대원들의 봉사 정신, 그리고 자가격리, 거리 두기 등 방역수칙을 묵묵히 따라주는 국민의 공동체 의식 수준이 바로 이 코로나 사태 극복의 힘이 될 것이라 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모양이 태양 표면의 불꽃, 즉 홍염(corona)을 닮아 붙인 이름 같은데 그 타오르는 열기를 이제 모두의 정신적 차분함으로 이겨나가야 한다.아직 개학이 불투명한 학교 교정은 노랗게 피어나던 개나리의 합창 속에 재잘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각종 문화시설과 노인학교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노년의 즐거운 일상도 낙을 잃었다.시골 장날이 열리지 않으니 봄나물, 채소들도 밭에서 시들어 버렸고, 재래시장과 소규모 식당들이 개점휴업 상태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들도 그 맛을 잃어간다. 졸업식 입학식을 못하게 됐고 결혼식도 축제도 취소되곤 하였으니 아름다운 꽃들도 겨울 내내 가꾸어왔던 향기를 전할 일이 드물다. 사람의 만남과 자연과의 교감이 없으니 허전한 계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은 만나야 하고 얼굴을 맞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사회적 격리로 이제 가족과는 더 밀착된 시간이 많아져서 그동안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족의 의미를 되찾고 근심 걱정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이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매일 TV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지니 눈도 피로하지만, 다행히 SNS의 세계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답답한 마음에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푸른 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날갯짓에 몸은 가벼워지고, 산골에 있는 친구 만나러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정겨운 새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시외의 벚꽃 터널을 자동차를 타고 그야말로 ‘드라이브 스루’로 훑고 지나가며 서로 격리된 모습을 느끼기도 하고, 마스크를 낀 채 시내 철길공원 숲을 거닐어 보면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피하여 지나가지만 그래도 눈빛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좋다. 인간은 서로 보고 웃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고맙다.이제 식목일도 지났다. 산과 들, 마을과 집 안뜰에서 숲의 맑은 숨결을 바라며 나무를 심던 즐거움도 빼앗겼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생명의 꽃나무를 심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국경 없이 넘나들고 있는 바이러스가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코로나에 빼앗긴 마음의 들에도 봄은 오리라. 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이번 봄은 우리 인간들에게 또 많은 가르침을 준다. 입으로는 어렵더라도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자.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2020-04-15

드라이브 스루

봄볕이 따습습니다. 겨우내 갇혀 있던 화분들을 베란다 창턱에다 내놓았었지요. 다육이들 작은 잎새마다 새순이 돋고, 빨갛거나 노란 기왕의 잎들도 선명한 때깔을 자랑합니다. 물리적 거리 두기 캠페인으로 갑갑하지만, 앙증맞은 잎들을 살피노라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됩니다. 몇몇 화분을 더 들여야지 하는 핑계를 앞세워 봄 마중을 나섭니다.봄을 보채는 온갖 물상들이 점멸등처럼 깜박입니다. 차창으로 스며드는 먼빛의 아른거림을 시작으로, 아파트 꾸밈 벽 바위틈을 뚫고 핀 영산홍의 춤사위며, 물기 서린 바닥으로 내려앉는 벚꽃들의 분분함이 차례로 어룽거립니다. 볕이 다사로울수록 쉬엄쉬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길섶, 사과 바구니를 갈무리하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넓디넓은 과수원을 배경 삼아 앉은 품새가 쩨쩨하거나 손이 작아 보일성싶지는 않습니다. 잠깐 실리적인 계산속이 제 머리를 스칩니다. 공판장이나 마트보다는 싸고 맛난 과일을 ‘득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비쌌지만 흥정도 에누리도 없이 한 바구니를 샀습니다. 할머니가 사과를 꾸리는 동안 저는 과수원에 내려앉은 별사탕 같은 봄까치꽃을 앵글에 담았지요.다시 길을 나섭니다. 벚꽃 터널이 시작되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상춘객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drive-thru) 안내 현수막이 꽃길 따라 나부낍니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나 필요했던 이 첨단의 방식이 행락에도 적용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지요.아시다시피 드라이브 스루는 주차하지 않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우리말로 다듬자면 ‘승차 구매’쯤이 될까요. 장소를 가리키는 의미라면 ‘승차 구매점’도 될 수 있겠네요. 순화한 표현도 순우리말이 아니니 굳이 바꿔 부를 필요까지는 없겠지요. 일찌감치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다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비대면 방식으로 서로를 연결한 것은 아니었겠지요.단순하고 스피디한 것을 마다않는 저는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드라이브 스루에 호의적이었답니다. 햄버거 한 세트를 사기 위해 매번 매장 안을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니 이보다 매혹적인 편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미가 좀 없어 보이긴 하지만, 서비스 주체와 손님 간에 신뢰만 있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겠지요. 실제 드라이브 스루로 구매한 햄버거가 잘못 나온 적이 있었는데, 직원의 친절한 전화 응대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경험도 드라이브 스루에 긍정적인 제 마음에 일조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경상도식 발음 영향인지 ‘드라이버’라고 틀리게 인쇄된 현수막 글씨마저 인간적입니다. 드라이브 스루는 원조 격인 미국보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것처럼 보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는 동안 우리 의료진이 보여준 창의적이고도 성공적인 이 검진 방식에 전 지구촌이 주목했다니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하염없이 꽃터널만 드라이브 스루하다 화원엔 들르지도 못한 채 귀가합니다. 목이라도 추길 겸 봉지에서 사과를 꺼내는데 썩은 것이 눈에 띕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좋이 삼분의 일은 검은 구멍이 송송 나있습니다. 에누리 없는 장사 없다지만 속임수 없는 이문 또한 불가능한 것일까요. 시골할머니에게 장삿속이 있을 리 만무하다고 믿는 것은 사랑이 로맨스만으로 이뤄진 거라고 착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되어 버렸네요. 순박한 꽃을 입은 악덕에 상처 받은, 착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저는 괜히 꿀꿀해집니다.가만 되돌아봅니다. 더 싸고 맛난 과일을 접수할 수 있을 거라고 설레발친 것은 제 마음이었지요. 할머니가 저를 속인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를 속인 셈이지요. 욕심 낀 마음이야말로 가장 속이기 쉬운 상대니까요.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면 스스로를 속일 때야 가능한 일임을 알겠습니다.눈 마주치고 손 맞잡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사람 모인 곳이 항시 비로드 조각보처럼 포근하거나, 데워진 찻잔처럼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내 한 가슴에서 두 심장이 뛰면, 한 입에서 두 혀가 움직김살로메소설가이는 화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게 사람입니다. 반대로 직접 부딪히지 않더라도 신용이란 끈으로 선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게 관계입니다. 긴가민가하지만 결과적으로 단호한 믿음을 주고, 갸우뚱대지만 결국 정한바대로 얻을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같은 것 말입니다. 물리적 대면이 없다고 해서 마음마저 드라이브 스루하는 건 아니니까요.머잖아 식당, 건강검진, 은행 등 도처의 업무에 드라이브 스루가 적용될 날이 오겠지요. 하지만 제 아무리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에 동조하는 저 같은 이라도 그 바퀴 굴리고 싶지 않은 분야도 있답니다. 이를테면 꽃 터널에 갇혀 못다 본 봄꽃 거래라면 드라이브 스루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눈으로 느끼고, 손으로 맛보며, 코로 만질 수 없는 방식이라면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것들이 우리 곁엔 있으니까요. 달디 단 꽃잎 옆에는 벌 나비가 바싹 붙을수록 섭리에 가까운 거잖아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0-04-15

선진의 조건

김규종 경북대 교수한국인들은 요즘 ‘국뽕’에 취한 상태다. 날마다 외신이 전하는 코로나19 소식 때문이다.세계 전역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유일한 예외가 대한민국이다. 한국산 진단키트를 공급해달라는 국가가 130개가 넘고, 우리의 방역방식을 공유하겠다는 나라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시자 빌 게이츠도 4월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코로나19 대응에서 한국이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다.코로나19가 창궐하던 얼마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극적인 반전에 환호작약하는 것은 이 나라 백성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저명 학자들과 언론들은 앞다투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상을 예견하느라 여념이 없다.우리가 지금까지 떠받든 ‘선진국’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의 상황에서 선진의 조건이 무엇일까, 문득 생각한다.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이라는 말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왔다. 우리의 사유와 행동과 미래기획과 꿈의 절대적인 기준은 늘 선진국이었다. 우리의 기준인 KS는 그저 그런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숱한 방송사와 기자들은 ‘미국과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 타령을 되풀이하고 있다.그런데 하루아침에 선진국들이 대한민국을 배우겠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던 기자들은 어안이벙벙한 모양이다. 세계 각국의 수뇌가 한국 대통령에게 경쟁하듯 전화하고 원조와 조언과 협력을 구하는 상황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그래서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나가는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숙고하는 것이다.생존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보장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생명과 안전에 필수적인 보건의료는 물론이려니와 교육과 계몽, 민주주의, 과학기술, 법과 제도, 문화와 예술, 교양과 문명 같은 요소가 선진의 조건으로 거명 가능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보건의료 부문에서 세계적인 공인을 받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지구최강 미국마저 허망하게 무너지는 판국에!코로나19의 침공과 미국의 붕괴는 의료 민영화가 주범이다. 오바마케어를 무산시킨 트럼프가 붕괴의 수괴지만,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는 부자를 기준으로 한다.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라, ‘유전생존 무전죽음’이란 등식이 성립한다. 실제로 미국 코로나19 사망자의 7할이 흑인이다. 빈자는 죽어 나가고 부자만 살아남는 나라를 우리는 선진국 운운하며 천조국으로 모셔왔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이제는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우리가 세계 최강이자 선진이라 자부해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문제는 사회의 여러 부문과 분야에서 선진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리라. 이래저래 유쾌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2020년이다.

2020-04-15

노련한 사냥꾼 방식(1)

노련한 사냥꾼은 사냥감을 찾아 헤매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사냥감이 스스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지요. 소리치며 뛰어다닌다고 사냥감이 나타날 일은 없습니다.우리 내면도,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도를 늦추고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한 주도적 선택을 할 때 내면의 진정한 보석들이 두 눈에 반짝이기 시작하고 귀에 천상의 소리가 들려오는 법입니다.한 꼬마가 있습니다. 도시 생활이 아이들에게 금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는 제주로 이주할 것을 결심하지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고 놀고 소리칠 수 있게 된 아이. 제주의 오름을 보고 반짝이는 영감을 받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사람들은 원래 발이 있어서 걸어다녀야 하잖아요? 일은 안 하고 대신 로봇한테만 시키니까 점점 힘이 없어지고 살만 쪘어요. 그래서 몸은 커지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요. 사람을 산 (山)이라고 하면 너무 크니깐 이렇게 오름이 되어 버린 거예요.”레미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엄마와 대화를 나눕니다.“엄마, 레미콘은 왜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예요?” “시멘트가 굳지 말라고 돌아가는 거지.” “엄마. 지구도 사람이 굳지 말라고 계속 돌아가는 거예요?”아이의 철학적인 질문을 엄마는 마음에 간직합니다. 제주 한적한 마을 모퉁이에 자리한 아이 가족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느리고 충만한 삶을 만끽합니다. “도시에 있을 때는 하면 안 되는 것, 차단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요. ‘아니야. 거긴 안 돼, 그만!’ 소리가 입에 붙어 있었죠. 제주에 온 이후로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상관없어요. 그야말로 마음껏 발산하고 내지르죠.”TV도 없고 놀이터도 없고 덩그러니 집 한 채만 있었지만, 제주는 가족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5

온라인 수업과 PC방 등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우여곡절 끝에 일부 학년의 온라인 학교 문이 열렸다. 개학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지만, 온라인 개학 전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학교가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택했기 때문이다. 휴업 기간 동안 학생들은 과제 폭탄에 허덕였다. 수업이라고 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던 학생들의 실망감은 크다. 간혹 선생님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도 있지만, 대다수가 인터넷 강의 재생 수준이다.달라진 것도 있다. 출석이 인정된다는 것과 교사 권위가 크게 상승했다는 것! 교사의 권위 상승에 대해 의아해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교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교사들은 온라인 개학 이후 수업 진행자라기보다는 절대 권력의 감시자와 점검자가 되었다. 특히 자신이 낸 과제에 있어서는 확실한 갑이다. 과제를 안 내는 학생에게는 벌점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는 교사들, 그들은 분명 거역할 수 없는 학기 초 “갑”이다. 속마음이야 학생을 위하는 것이겠지만, 학생들의 마음엔 불신과 분노만 자란다. 과제를 해야 할 이유에 관한 설명도, 또 시스템 점검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교사들의 마음을 학생들은 모른다.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수업이 뭔지?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정말 수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필자는 수업이라는 자리에 “학습”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제 수행 중심 학습! 이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또 설사 이걸 수업이라고 한다면 분명 순서가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과제 수행 전에 과제와 관련된 교사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생략되었다.일부 학생들은 과제 수행을 위해 PC방으로 달려갔다. “PC방 등교”라는 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친정부 언론은 이를 두고 과제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악마의 편집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로그인 후 학생들은 무엇을 했을까? 온라인 개학, 교사들은 당연히 학생들이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교사들을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당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학생들을 탓해야 할까? 그런데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와 교사가 온라인 개학의 최우선순위를 학생에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교사가 먼저였다. 대표적인 예시가 시간표이다.다음은 “체계적인 원격 수업을 위한 운영 기준안”에 나와 있는 “수업량”에 대한 내용이다.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중략) 적정 수업량을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함. 학교급, 학습내용의 수준, 학생의 학습부담 (중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운영이 가능함”분명 기준안에는 학생의 학습 부담을 고려하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일선 학교의 온라인 수업 시간표에는 학생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학생을 위한 시간표가 아니라 교사의 수업 시수 확보와 NEIS 기록을 위한 순전히 교사 중심의 시간표이다.그러기에 일일 7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표가 나왔다. 과연 교사들은 자신들이 짠 시간표대로 7시간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을까! 온라인 개학에 결단코 학생은 없다!

2020-04-15

오디오북 전성시대

최근 국내 오디오북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오디오북은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들을 수 있게 제작한 디지털 콘텐츠를 가리킨다. 테이프, CD 등 물리적 저장 매체뿐만 아니라 다운로드가 가능한 MP3 파일 등 디지털 음원이나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된다.오디오북이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스마트폰 앱 형태의 가입형 오디오북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지난 해부터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B2C(Business-to-Customer) 판매 형태로 신규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가 가장 앞서 있고, 오디오북 플랫폼인 윌라, 팟빵 등이 뒤쫓고 있다.실제로 지난 4월 현재 국내에 판매 중인 오디오북은 2천429종으로, 전년 대비 418% 폭풍 성장했다. 성장률만 놓고 보면 귀로 읽는 책, 오디오북은 이미 전자책을 넘어섰다.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지난해 12월부터 오디오 클립(audioclip.naver.com)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오디오북 구매 가격은 권당 3천~6천원, 대여료는 1천500~3천원이다. 독서 애플리케이션 ‘밀리의 서재’는 지난해 7월부터 오디오북을 선보였고, 월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첫 달은 무료이고, 이후 월 9천900원이다.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의 오디오 북클럽 역시 현재 월 9천900원에 이용 가능하며, 첫 달은 무료다. 명강의를 들을 수 있는 윌라 클래스 멤버스 역시 9천900원이고, 윌라 프리미엄 올패스는 월 1만3천500원에 판매 중이다.새로운 독서매체로 등장한 오디오북은 유튜브에 식상한 고전적 책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틈새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15

새 국회에 바란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총선이 지나갔다. 한편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복잡하게 수많은 생각과 느낌이 흐르며 선거를 마쳤다. 코로나19와 함께 다가와 세계의 이목마저 끌어낸 민주주의의 잔치는 이제 한 자락 역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정치의 실체를 분명히 목격하였다. 한 표의 가치가 얼마나 묵중한지도 새삼 절감했으며 정치의 방향을 설정하는 국민의 힘을 다시 보았다. 당선의 영광을 얻었거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어도 국민의 결정 앞에 겸허해야 할 터이다. 지난 국회의 모습이 거울이 되어 새 국회는 나라와 국민에게 희망과 격려가 되는 집단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국민은 ‘일하는’ 국회를 기대한다. 진영으로 편갈라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에 국민은 지쳐있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해 가는데 국회가 발맞추어 정책과 제도로 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장성세로 세월을 보낼 일이 아니라 실속있는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 의지와 실력이 함께 드러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국민은 ‘하나가 되는’ 국회를 바란다. 생각의 차이와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고 치열하게 다투고 견주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최적의 해결책을 만들길 기대한다. 이념이 다르고 방법이 다를지언정, 의원들은 모두 국민을 위한 ‘한 편’이었음을 확인하여 주시라. 어려움 앞에 하나가 되는 국민에게 더이상 부끄럽지 않을 국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국민은 품위있는 국회를 기대한다. 막말과 선동을 수다히 겪은 국민은 실체가 있는 담론과 결실을 맺을 토론을 기다린다. 속시원한 한마디나 통쾌한 말펀치가 긍정적인 결과까지 이끌어냈던 기억이 없다. 당신을 뽑아준 지역을 부끄럽게 하고 국가의 의정단상을 더럽히는 행태를 더는 안 보았으면 한다. 다음세대에게 본이 되길 바란다.국민도 바뀌어야 한다. 임기 내내 불꽃같은 눈으로 감시와 견제를 게을리 아니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를 우습게 보게 하며 선거 때만 큰절을 받는 구태를 끊어내야 한다.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는 국회의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되 끊임없이 결실과 성과를 기대하는 적극성을 길러야 한다. 국회를 통하여 민의가 구체적으로 반영되도록 아이디어를 만들고 제안에도 나서야 한다. 정치가 긴장하여 열매를 맺으려면 국민이 부지런해야 한다.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구현하려면, 국회의 임기를 국민의 목소리로 채워야 한다.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다른 세상일 터이다. 새 국회가 만나는 나라도 새로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놀라운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던 싱싱한 국회의원이 되어 주시라. 세상을 바꾸어 가는 희망 가득한 길 위에 당신의 노력이 분명히 보이는 국회를 만들어 주시라. 국민의 요청에 국회가 귀를 기울이고 국회의 노력에 국민이 화답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부러워한다는 그 이상으로 우리 스스로 가슴 뿌듯한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2020-04-15

쉘 위 악수?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쉘 위 댄스’ 춤추실래요? 감미롭고 낭만적인 말이다. ‘쉘 위 악수’ 악수 가능하세요? 공생을 위한 몸부림의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변한 생활 패턴 중 하나가 악수하는 것을 주춤거리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역 방법이라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경각심이 일상화 되고 있다. 신체적 접촉 행위인 악수 관행이 타격(?)을 입고 있다. 평소처럼 손을 내밀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현대인의 악수는 만남의 전위행위이다.악수란 신체적 접촉행위로 친근감과 신뢰감을 표시한다. 더하여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그 유래에 비해 간편하고 좋은 인사 방법이다. 악수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상대방에 대한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는 행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무기는 오른 손으로 잡으니 악수는 오른 손으로 하는 것이 원칙. 또한 전쟁행위는 주로 남자들이 하니까 악수는 두 남자의 행위였다고 한다. 연장자, 상사, 여성이 먼저 청하는 것이 악수예절이다. 선거철이면 선량 후보자들이 갑자기 친한 척하기 시작한다. 유권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표를 호소한다. 대선주자급이면 너무 많은 사람과 악수를 하여 손이 퉁퉁 붓고 밤이면 그 통증에 시달린단다.그 통증이 대수랴? 한 표가 중요한데. 선량 후보자들은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다가 보면 감이 온단다. 그래서 더욱 악수에 매달리게 된다. 악수와 목례의 반복행위를 하는 선량후보자들의 눈길을 살펴본다. 그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선량의 마음인지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인지. 악수하는 사람과의 눈맞춤에서 진심어린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터인데 눈길은 다음 악수할 사람에게 미리 옮겨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표를 얻기 위한 쇼를 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권위주의 시절 사관학교나 경찰간부 임용식 예행연습이 떠오른다. 정부의 고관들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신임장교나 초임경찰 간부들이 고관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하는 순서가 있다.‘손은 잡는 듯 마는 듯할 것이며, 눈은 상대의 인중을 봐야한다’는 엄격한 악수통제로 예행연습 때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악수가 친근감과 격려의 표시보다는 충성서약을 하는 의식이었던 것 같다.몸에 밴 일상속의 악수가 코로나 바이러스사태로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손바닥을 펼쳐서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던 행위가 전염이 두려워 주먹을 쥐고 서로 마주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상황을 서로 의식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주먹을 상대방에게 보인다는 사실이 자칫 전투태세를 연상시킨다. 가뜩이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인사가 전투적으로 변하는 건 아닌가하는 감정비약까지 하게 된다. 상황의 위중함을 감안하면 손을 잡는 악수가 주먹을 치는 인사로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쉘 위 댄스’ 영화 제목처럼 ‘쉘 위 악수’라는 말로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악수하는 불편을 감수하거나 주먹치기하는 어색한 인사를 피하려면 코로나 바이러스 조기종식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접촉을 삼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올인 하는 게 낫겠다. ‘쉘 위 사회적 거리두기’.

2020-04-14

글을 잘 쓰는 방법(3)

할머니 시집은 100만 부가 넘겨 팔립니다.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 문을 열어 주었지 /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 셋이서 수다를 떠네 / 할머니 / 혼자서 외롭지 않아? /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 나는 대답했네 / 그만 고집부리고 / 편히 가자는 말에 / 다 같이 웃었던 오후책은 생각을 깊게 만듭니다. 위대한 책은 생각을 넓게 확장시키지요. 글을 쓸 때는 오히려 생각이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첫 관문은 생각의 검열관 죽이기입니다. 말이 말하게, 글이 글을 불러오게 해야 합니다.라틴어의 유명한 경구가 있습니다. Veritas Veritatum이지요. 베리타스베리타툼, 진실이 진실을 낳는다는 것과 글쓰기는 비슷합니다. 글은 생각으로 불러와지지 않습니다. 글을 오직 글로서만 불러낼 수 있습니다.오직 글로 기록한 것들만 역사로 남습니다. 읽기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써야 합니다. 생각은 흔적도 없이 공중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쓰기의 결과물은 우리 곁에 남습니다. 책으로 묶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100세 일본 할머니가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봐요. 나는 92세에 시작했다우. 당신은 나보단 젊잖아? 시작해 봐요. 노트에 몇 글자 끼적이면 되는 거예요. 그 몇 글자가 기적을 불러와요. 단어가 단어를 불러오고 문장이 문장을 불러온다니까요. 생각을 멈춰요. 그냥 써봐요.”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누에는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만들고, 사람은 말과 글을 통해 언어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이제 나만의 글쓰기를 통해 내 존재가 한층 더 성장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위를 둘러보면 글쓰기에 도움을 얻을 만한 책과 영상, 강의 등이 널려 있습니다. 선택은 내 몫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4

예술인이 예술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

최미경동화작가“엄마, 엄마 직업은 뭐라고 써야 해?”저녁을 준비하던 내게, 학교에서 보내온 온라인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며 첫째가 불쑥 물었다.“선생님 아니야?”/“아니지 작가지.”/“아니야, 엄만 요리를 잘하니까 요리사야.”내겐 말할 틈도 주질 않고 둘째와 셋째가 서로 내 직업에 대해 옥신각신할 때, 나는 한숨이 절반인 말로 뱉어냈다.“엄마 사실…. 잘 모르겠어. 엄마가 뭐 하는 사람인지.”그렇게 종일 마음을 썼던 일이 아슴아슴 떠올랐다.오전 일찍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A작가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예술활동증명’을 어떻게 하느냐며, 몇 해 전 내게 그 이야길 들었던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 가입과 증빙서류에 대해 이야길하며 걱정이 먼저 앞섰다. 예전에 비해 절차와 서류들은 간소화되었지만 처음 해 보는 이들에게 컴퓨터 서류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 3월 ‘예술활동증명’을 꼭 하라고 당부했던 B작가에게 전활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도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결국 나는 B작가에게 그동안 작업했던 전시도록과 리플릿을 챙겨 오라며 약속을 잡았다.사실 나는 내 일 아닌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아이 셋을 키워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고 그 와중에 작가로써의 자존심도 지켜내기 위해 틈틈이 글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내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도 사치라고 여기고 내 앞만 보고 살았다.그런 내가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 종일 전화를 돌리고 의견을 묻고 약속을 잡았다. 그러던 중 일부 작가들은 자신이 예술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왜 ‘예술활동증명’을 따로 해야 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코로나19로 전시, 공연, 예술수업 일정이 전면 취소되었을 것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도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런데 예술의 가치라는 것이 경제적인 접근으로는 측정되기 어려운 가치이기에 예술인들의 예술활동을 시장가치평가방법으로 접근하면 안 되지만 보통 그렇게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창조해내는 예술인들은 생산자로써 그들의 예술작업을 공적 차원에서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예술인으로의 공증된 자료, 즉 국가에서 원하는 몇 가지 장치들을 알고 다소 어려워도 당장 쓸모가 없는 것 같아도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한데 그렇게 했던 일들이 뜬금없는 오지랖은 아니었나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것에 대한 푸념으로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뱉어낸 것인데 셋째가 갑자기 두 팔을 크게 벌려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10살 막내의 작은 품에서 하루의 피곤함이 사라락 녹아내리는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나직한 막내의 목소리.“엄마가 뭘 하는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엄마는 내 엄마야.”

2020-04-14

모사재인 성사재천

사람에게 운(運)이라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지만 영 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의 일은 운이 칠할, 재주나 노력은 삼할이다”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논리도 그래서 생겨났다.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한계적 영역이 있음을 드러낸 표현이다.불과 100여년전 만해도 길흉화복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웬만한 병은 쉽게 고치기도 한다. 그 시절은 맹장염조차 손을 못 써 죽는 일이 허다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 실감나던 때다. 사람이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감동시켜야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도 비슷한 말이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태생적 한계를 인간 스스로 인정한 말이다.그러나 이런 표현이 어차피 운명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력을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떠한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된다는 것과 동시에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삼국지의 제갈량은 위나라 사마의를 제거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폭발물을 계곡에 설치하고 그를 유인한다. 제갈량의 계략대로 사마의 부대는 곧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계곡에 설치된 폭발물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 모습을 바라본 제갈량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일은 사람이 꾸미고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謀事在人 成事在天)고 말했다.21대 총선이 결과만 남겨놓았다. 후보들이 발로 뛴 결과가 오늘밤 늦게 쯤 윤곽을 드러낸다. 그들은 얼마나 민심에 대해 최선을 다했을까. 하늘은 어떤 심판을 준비했는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14

이름값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배민’. 어떤 후보자의 이름이기에 선거철인 요즘 이렇게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국회의원 후보자의 이름이 아니라 ‘배달의 민족’을 줄인 말이다.배달의 민족은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가 운영하는 배달 주문 서비스 브랜드 이름이다. 이름 참 잘 지었다. 경영진의 실력과 기술이 한 회사의 흥망을 좌우하는 주된 요소인 것은 맞겠지만 회사나 브랜드의 이름도 회사를 키우고 매출을 올리는 데에 큰 몫을 한다.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회사 이름도 잘 지었고, 배달의 민족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잘 지었다. 소비자들의 머리에 빠르게, 쉽게 떠올라야 주문을 잘 할 수 있는 게 배달앱 아니던가. 배달의 민족은 이름에서부터 벌써 성공의 토대를 마련하였다.우리 겨레- 나는 ‘민족’이라는 말보다는 ‘겨레’라는 말이 더 좋다-가 어떤 겨레인가? 배달겨레 아니던가. 한자로 ‘倍達’이라고 쓰기도 하지만 배달은 원래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로 어원이 ‘밝다’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배달겨레의 시조 단군(檀君)의 ‘단’은 박달나무를 뜻하는데 박달나무의 박달 또한 ‘밝다’에서 왔다고 한다.2010년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시작한 배달의 민족은 ‘물건을 가져다가 몫몫으로 나누어 돌림’이라는 뜻을 가진 ‘배달(配達)’과 한소리다른뜻말(동음이의어)인 배달겨레의 ‘배달’을 교묘히 엮어 애국심 마케팅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이 배달의 민족이 2019년 12월에 세계 배달 애플리케이션 1위인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억 달러(약 4조7천5백억 원)에 인수합병이 되었다. 10년 만에 15만 배가 넘는 금액으로 회사를 넘김으로써 단군신화 이래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성공신화를 쓴 것이다. 경영권을 보장받았다고는 하지만 배달겨레의 배달앱은 독일 기업의 소유가 되었다.독일 기업이 된 지 넉 달도 지나지 않은 4월 1일에 배달 수수료 체계를 개편함으로써 수수료 인상이라는 외식 업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더 나아가 공공배달앱 논란까지도 불러일으킨 배달의 민족은 지난 6일 공식 사과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이름 잘 지어 성공한 회사가 결국에는 그 이름값을 하기는커녕 ‘우아한’ 이름에 먹칠을 하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겠다.오늘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 수는 모두 41개라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하여 미래통합당, 민생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우리공화당, 민중당, 한국경제당, 국민의당, 친박신당, 열린민주당(정당기호순) 등 그 이름들의 면면은 멋지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정당들이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이들 정당이 국민과 시민과 더불어 갈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산시킬지,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고 미래를 밝고 정의롭게 만들어 갈지,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작금의 모습들을 보면 기대보다는 의구심이 더 크다.배민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정당들도 제발 이름값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2020-04-14

서양미술사를 통해 보는 원근법의 역사

가치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하고 그 관점은 미술의 형식을 결정한다. 종교적 신념을 작품에서 표현했던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 사람들은 보고 있는 세계를 옮기는데 관심을 집중한다.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경험한 세계를 그대로 작품 속에 옮길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원근법이다.서양미술사 최초로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은 1427년경 화가 마사초가 그린 ‘성 삼위일체’이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신학적 관계성이 묘사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벽면에 소예배당을 만들어 부호들에게 분양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 가족 예배당을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지만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을 프레스코로 장식하면서 마사초는 실제 예배당의 공간감을 생생하게 전달할 목적으로 원근법을 적용했다. 화가는 착시효과를 증가 시기키 위해 실제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원통 모양의 천장을 그려 넣었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 실재감과 현장성을 부여하기 위해 당시 피렌체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며 흔히 볼 수 있었던 고전적인 기둥과 둥근 아치와 같은 건축적 요소를 사용하였다. ‘성 삼위일체’에 나타나는 건축물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에 지은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 그리고 건축가 알베르티가 만토바에 지은 산탄드레아 성당(1472) 파사드에서 찾아 볼 수 있다.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활동한 안드레아 만테냐는 독특한 시점으로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장면을 담아낸다. 감상자가 안치된 그리스도의 시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도록 선택된 시점이다. 시각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극도로 단축시켜 묘사했다.원근법을 통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만테냐의 또 다른 대표작은 만토바에 위치한 팔라초 두칼레의 신혼의 방 천정에 그려져 있다. 벽면 전체가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가운데 천정에 그려진 벽화는 하늘로 열려 있는 건축 구조를 모방하고 있으며 그곳을 통해 그림 속 인물들이 방안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르네상스가 발명한 원근법은 수백 년 동안 서양미술사가 지켜온 절대적인 원칙과 같았다. 그런데 원근법을 통해 역으로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서양미술사를 움직여 온 가장 중요한 미학적 원리가 시각적으로 경험한 세계에 대한 모방과 재현이라는 사실이다. 그려진 대상이 얼마나 실재의 것에 닮아 있는가, 얼마나 완벽하게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있는가하는 것이 미술의 중요한 원칙으로 작동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원칙과 같았던 원근법의 지배가 느슨해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보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 그 자체를 그리면서부터 미술은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원근법적 공간이 하나의 시점으로 대상을 보았다면 여러 시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심지어 시점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작품까지 나타나게 된다.기계적으로 세계를 완벽하게 모방해 내는 카메라의 발명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고, 미술은 관념화되고 개념화 되었다. 그렇다고 원근법의 역사가 그대로 끝이 난 것은 아니다. 본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이상, 비록 고전적 원근법은 고리타분한 유물이 되어 버렸을 지라도 미술가들은 원근법과 대결하며 새롭게 보는 방식들과, 존재하지만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작품을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0-04-13

가릉빈가의 울음을 찾아서… 경산 환성사(環城寺)

차는 대규모 공사현장 근처에서 길을 잃고 몇 번을 헤매다 쉬엄쉬엄 산길로 접어든다. 끊임없이 개발을 서두르는 도시의 풍경들을 순식간에 따돌리고 고개를 넘어 팔공산 깊은 자락으로 숨어든다. 마치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듯.파스텔톤의 옷을 갑아 입은 분지형의 명당 터에 벚꽃이 부풀어 올라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사위는 조용하다.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부도밭을 서성이다 키 낮은 벚나무 아래에 서서 천년고찰을 올려다본다. 바람 한 점 없는 햇살 아래 벌들의 비행소리만 요란하다.환성사(環城寺)는 성처럼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신라 흥덕왕 10년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가 창건했지만 고려 말에 화재가 발생하여 사찰 일부가 소실되었다. 1635년 중건 후 여러 차례 불사를 거듭하여 현재는 대웅전과 심검당을 비롯한 여러 당우들이 아픈 기억을 지우고 좌선하듯 평화롭다.일주문을 지나 수월관으로 향하는 흙길도 좋다. 옛것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는 또 하나의 시간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을 수 있다. 아른거리는 벚꽃잎 그림자를 앞세우고 바람이 잠든 길을 걷는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저만치 계단 위에 서 있는 수월관이나 보물 제 562호 대웅전조차 궁금하지 않다. 계획하지 않은 봄날, 환성사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용연(龍淵)이라는 작은 연못이 기어이 나를 불러 세운다. 연못을 메우면 절이 쇠한다는 설화를 간직한 못이다. 절이 번창하던 시절, 게으른 주지가 손님 많은 것을 귀찮게 여겨 연못을 메우는데 물속에서 금송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 슬피 울면서 날아가 버렸다. 연못을 완전히 메우자 절은 불에 타고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았다고 한다.발길이 뜸한 환성사의 봄은 슬픈 옛 기억은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찬란하다. 초록빛 물 위에는 벚꽃잎이 하얗게 떠돌고 못가에는 백목련 한 그루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빈 벤치가 그림처럼 처연하다. 나는 하나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벤치에 앉는다. 수월관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물가에 비쳤을 그 옛날의 수월관을 그려본다.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한 수월관 안마당에는 연화탑이라 불리는 특이한 석탑이 대웅전을 지킨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절의 배치가 오히려 안정적이다. 서원에 온 듯하여 신발을 벗고 수월관 난간에 기대어 앉는다.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 벚꽃 만발한 이곳으로 이끌어 준 이는 누구일까. 일주문 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길은 모든 소리를 삼킨 채 벚꽃에 안겨 나른하게 졸고 있다.적막한 산사에 가면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법구경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오늘은 숨 멎을 듯한 고요가 고마운 날이다. 일주문 쪽에서 벚꽃잎 아래를 걸어오는 노부부가 보인다. 두 손을 꼭 잡은 둘은 잠시 서로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다가 또다시 손을 잡고 걷는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했지만 잔잔히 퍼지는 그윽함만은 감출 수가 없다.봄날의 환성사에 어울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는 눈을 떼지 못한다.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들은 수월관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긴 담장을 끼고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멀리서 전각을 감상한다. 불자가 아닌 듯한 그들의 조신한 행동에서 부처님의 시선이 느껴진다.나는 뒤늦게 대웅전으로 향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다포양식의 팔작지붕이 막돌로 쌓은 석대 위에 균형감 있게 앉아 있다. 깔끔한 외양과 달리 법당 안은 고색찬연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색이 바랜 단청 사이, 천정에 달려 있는 용 모양의 종이 이색적이다. 파이프 오르간과 비슷한 용도로 종에 줄을 달아 당기면 위에서 신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고 오늘날에는 스님들조차 용도를 아는 이가 드물다고 한다.통판에 투각을 한 수미단도 목공예 작품을 보듯 훌륭하다. 책에서만 보던 가릉빈가 한 마리가 푸드득 내 눈으로 날아든다. 머리는 사람이지만 새의 몸을 한 인두조신(人頭鳥身)의 기이한 형태, 소리 또한 묘하고 아름답다는 상상의 새다. 가릉빈가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귀를 기울여보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지구상에서 멸종된 도도새만 떠오른다.조낭희 수필가영원히 듣지 못할 울음소리, 무엇으로도 저울질 할 수 없는 인간의 욕심이 존재하는 한 가릉빈가는 경전 속에서만 살아가야 하리라. 바람 불어 벚꽃이 휘날리는 날, 좋은 사람과 함께 환성사를 찾고 싶다. 젊은 날엔 홀로 드나들 수 있는 찻집 하나 간직하길 원했다면 이제는 좋은 절에 가면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행복은 자주 불러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주변을 맴도는 작은 행복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날마다 가릉빈가가 날아와 울지 않을까. 가릉빈가 울음소리가 궁금하다. 어쩌면 아침마다 설중매 가지에 날아들어 배설물을 난사한 뒤 사라지는 참새 떼나 뒷산에서 구슬피 우는 멧비둘기 울음처럼 지극히 평범할지 모른다.우리는 귀한 것일수록 멀리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2020-04-13

춘곤증 주의보

춘곤증은 봄철로의 계절 변화에 따라 피로감, 졸음, 의욕없음 등을 경험하는 현상을 말한다. 춘곤증의 원인은 신체의 생리적 불균형 상태를 들 수 있다. 봄이 되어 따뜻해지면 추위에 익숙해있던 인체의 신진대사 기능들이 봄의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약 2~3주 정도 필요한데, 이 기간 쉽게 피로를 느낄 수 있다. 활동량의 변화도 춘곤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봄이 되어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수면 시간은 줄어들고, 저녁 늦게까지 야외 활동량이 많아져 피로를 느낄 수 있다.또한 봄에는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비타민 B1, 비타민 C를 비롯한 무기질 등 영양소의 필요량이 증가한다. 이때 비타민이 결핍되면 춘곤증을 더 느끼게 된다. 스트레스의 증가도 춘곤증의 원인 중 하나다. 학생들에게 봄은 새 학기 학업·교우관계 스트레스가 과중되는 시기다. 직장인들은 인사·승진 발표로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그렇다고 춘곤증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증가한 활동량과 변화한 주변 환경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게 되면 춘곤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건강한 춘곤증 극복법은 운동·규칙적 수면·식단조절 등이다. 평소에 운동량이 적었던 사람은 천천히 걷는 운동부터 시작해 1주 간격으로 걷는 속도·시간을 늘리는 게 좋다. 또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기상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수면 부족을 느낀다면, 점심시간 휴게실에서 잠시 낮잠을 자는 것도 좋다. 아울러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해 비타민을 보충하면 나른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요즘처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야외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지내다보면 춘곤증과 더불어 우울증까지 겹칠 수 있으니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13

문학과 삶의 거리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많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유는 경쟁 없는 삶,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로의 ‘월든’(1854년)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월든’은 소로가 월든 호수 북쪽 토지에 오두막을 짓고 1845년 7월 4일부터 2년 2개월 간 살았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소로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소로는 ‘인생의 본질적 사실만 직면하기 위해, 인생의 정수를 살기 위해’ 오두막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실재’에 입각해서 간소하고 밝고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며 소로의 월든 생활을 동경한다.그러나 그의 삶을 따르고 싶다고 해도,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잘 따져보아야 한다. 실천에는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소로는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하루 세 끼의 식사도 필요하다면 한 끼로 줄이고, 백 접시는 다섯 접시로 줄여나가자고 한다. 이런 표현을 문학적 수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로 자기 삶에 적용하려 든다면 문제가 생긴다. 극단적인 금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또 소로는 10센트밖에 없는 상태에서 할로웬 농장을 사려다 농장 주인이 취소하면서 위약금으로 10달러를 주겠다고 하자 거절한 후 이런 사색을 한다. “내가 10센트를 가진 것인지, 농장을 가진 것인지, 10달러를 가진 것인지 또는 그것들 모두를 소유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10달러도 농장도 받지 않았다. 이미 농장 경영의 꿈은 충분히 이루어진 상태였으니까” 이 말은 궤변처럼 들린다. 보통 사람이라면 10센트로 농장을 사려고 하지도 않았겠지만, 종자는 샀으니 농장 경영의 꿈을 이루었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소로는 농사짓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농사짓는 젊은이들을 토지의 노예라고 하면서 안타까운 눈으로 보았다. 소로는 월든에서 노동을 최소화하고 정신적인 삶을 살고자 했다. 이런 생활이 삶의 정수요, 자연의 섭리에 입각한 삶이라고 읽을 근거는 없다.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니 자연의 섭리에 따르자는 명제는 너무나 당연해보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농사일에 지친 이에게 밭은 어미의 자궁과 같다는 말이 무슨 위안을 줄 것이며, 하늘에 나는 새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새처럼 살 수도 없다.‘월든’이라는 책은 자연을 묘사한 수필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크지만, 월든에서의 삶까지 엄청난 가치를 둘 일인지는 잘 따져보아야 한다. 집필을 위한 한시적 칩거 생활로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섣불리 실천에 옮겼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잘 살펴보고 실행하는 것이 좋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좋아보여도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4-13

온라인 강의 병행(竝行)을 통한 대학의 활로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이달 초부터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시행됐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전의 사스나 신종플루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 대규모의 집단감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온라인으로 개학을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이버 세계라도 없었다면, 개학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보화에 힘입어 가상의 세계가 열리면서 우리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기반 인프라가 사이버 공간에 의존한다.대학의 경우 정보화시대의 개막 이후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대학이 등장하면서, 학생들이 진학하거나 사회활동을 하는 성인들의 학위취득, 자격증취득 등 다양한 재교육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온라인 대학의 위상과 일반인들이 대체로 기존의 대학들이 주류라는 생각하는 데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이번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학교 개학의 연기와 이에 따른 온라인 강의의 제공으로 온라인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그 역할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일반대학이든, 온라인 대학이든 그 운영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보완이 있어 준다면, 첫째, 대학진학 인구의 부족에 따른 학생모집, 둘째, 학생들의 취업을 제고하기 위한 전환, 셋째,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유학생 유치, 넷째, 사회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대학이나 학과 및 전공들은 이미 축소, 통합, 폐지 등 존폐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교육도 시대의 흐름에 동조하는, 아니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하는 방향으로의 교육시스템 전환이 시급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온라인에 기반한 교육으로서. 그 백미(白眉)는 바로 온라인에 기반한 다양한 융복합전공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온라인에 기반한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여 사회에서 즉각 필요로 하는 융복합전공을 주도적으로 설계, 운영해 나가도록 한다. 예를 들어, 내 꿈이 사이버 경찰이라면, 경찰행정과 전산, 정보보호 과목을 수강하면서 내가 융복합전공을 운영하면 된다. 국내에 베트남어학과가 개설된 대학교는 세 군데이다. 베트남어를 배우고 싶다면, 베트남어 과목을 제공하는 대학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학점을 따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스펙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다시 공부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없이 말이다. 온라인 로스쿨과 야간대 로스쿨은 민주당의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기대가 된다.앞으로 각종 오프라인과 온라인 교육을 상시적으로 병행, 내지 통합해 가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급변하는 사회가 생물(生物)이라면, 대학과 전공도 같이 생물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을 전통적인 하나의 학과나 전공이 모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학생도 생물이 되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사회와 현실에서 필요한 융복합적 지식과 전공을 통해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2020-04-13

일성록(日省錄)에 비친 구휼(救恤)

강희룡 서예가정조는 세손시절부터 논어에서 증자가 말한 ‘나는 날마다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한다.’는 글귀를 좇아 스스로 반성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자신의 언행과 학문을 기록한 ‘존현각일기’를 기록한다. 이 책은 1783년부터 임금의 개인 일기에서 규장각 관원들이 시정(施政)에 관한 내용을 작성한 후 왕의 재가를 받은 공식적인 국정일기로 전환되었다. 1760년부터 1910년 8월까지 임금의 입장에서 조정과 내외의 신하에 관련된 내용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일성록(국보153)’은 이 존현각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되었기에 그 공정성과 사실의 정확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승정원일기 또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개수하는 일이 자주 있었으므로, 진실된 역사기록으로서의 일성록은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동부는 구(舊) 병민 146명과 신(新) 병민 5명, 남부는 구 병민 502명과 신 병민 21명, 서부는 구 병민 112명과 신 병민 6명, 북부는 구 병민 314명과 신 병민 7명입니다. 신구 병민 총 1천113명 가운데 나아서 도성으로 돌아간 사람이 94명, 사망한 사람이 7명, 현재 앓고 있는 사람이 154명, 나아지고 있는 사람이 858명이며 현재 남아 있는 병막(病幕)이 421곳이니 지난번에 비하여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구 병민 중에서 굶주림과 곤궁함이 더욱 심한 자 13명을 뽑고 신 병민 중에서도 22명을 뽑아 총 35명을 건장한 자와 약한 자로 구별하여 규례대로 쌀을 지급해 주었는데 총 11말입니다.’위 기록은 정조 12년(1788) 5월 중순부터 도성에 역병이 돌기 시작한 뒤 두 달쯤 지난 7월 19일에 비변사의 담당 낭청이 병민의 치료와 관리현황을 보고한 내용으로 전후의 과정을 포함하여 일성록에 소상하게 실려 있다. 전대미문의 이러한 구체적인 보고와 유기적인 노력이 계속 이어지던 끝에 위에서 본 7월 19일의 보고에서 총 1천113명의 환자 중에 새 환자는 39명 정도로 현저히 줄었다고 하였던 것이다.정조는 세손 시절에 영조를 간호하면서부터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수민묘전(壽民妙詮)이라는 의학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그 서문에서 ‘사람을 치료하는 이치나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가 똑같다.’라고 하고 나라도 폐단의 근원과 실정이 각기 다르니 이를 밝혀 처방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국정운영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230여년이 흐른 지금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세계 물류체계가 마비되면서 모든 경제활동은 위축되고 경기가 침체되어 삶의 질은 떨어졌다. 정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을 받으나 실제지급방식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다행이 지자체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나 일부에서는 지급기준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오늘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도 백성의 생명을 지켜줘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정에 맞게 지휘해 나간 정조와 최선을 다한 신하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거울로 삼을만하다.

2020-04-13

글을 잘 쓰는 방법(2)

“자말, 글은 머리(head)로 쓰는 게 아니란다. 마음(heart)으로 쓰는 거지. 먼저 그냥 키보드를 두드려.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 아니야. 글이 글을 쓰게 하는 거라고. 생각은 나중에 글을 고칠 때(rewrite) 하는 거란다.”짧지만 강렬한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3분쯤 보여주고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죠. 저 역시 작가로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할 때, 자말과 포레스터의 이 대화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대목을 강조합니다.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각을 잘 정리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렇게 글을 쓰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멋진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 많이 쓰는 것입니다.몇 글자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종이에 적힌 글씨를 보면서 그때부터 생각이란 녀석이 자기 본연의 역할을 시작합니다. 즉, 생각이 글을 낳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글이 글을 낳게 하는 겁니다.그 최초의 글 몇 자가 생각을 불러오고, 생각이 다시 글을 낳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거죠. 글쓰기에서 중요한 원리입니다.시인 이성복은 이렇게 말합니다.“시인은 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철학자가 하게 내버려 두고, 시인은 언어로 언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 철학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로 시를 써야 하는 것이다.”일본에서 ‘약해지지 마’ 라는 시집으로 돌풍을 일으킨 여류 시인이 있습니다. 일본 열도가 그녀의 시에 열광합니다. 시바타 도요 시인은 아들 권유로 92세에 첫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100세 할머니입니다. 틈틈이 끼적인 시들을 차곡차곡 모아 장례 비용으로 준비한 100만 엔을 털어 첫 시집 ‘약해지지 마’을 출판합니다. 일본 출판계가 깜짝 놀랍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3

온라인 개학 4일차, 향후 가야할 길은

김재욱경북부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 개학을 시작한 지 4일차다.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가슴 졸이는 중학교·교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마음은 설렘 반 걱정 반이다.교육부 역시 전례가 없는 첫 온라인 개강이기에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살피고 있을 것이다.지난 10일 온라인 강의를 들은 고3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김모(18·대구)군은 “막상 접해보니 학교에서 과제만 제시해준 것 보다는 선생님의 설명도 듣고 질문도 할 수 있어서 훨씬 좋았던 것 같다”며 “다만 첫 날이라 그런지 하루종일 듣기에는 집중도가 너무 떨어진 것 같다. 또 교과별로 수업시간과 과제시간이 달라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박모(18·여·대구)양은 “확실히 학교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들고, 학습 시간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은 장점인 것 같다. 놓친 부분을 다시 들을 수도 있고 필기할 시간도 충분히 있다는 것 역시 이전과 다른 경험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 주가 되면 모든 중·고등학생이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인터넷이 먹통된 것이 걱정이다”고 불안한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한 고등학교 교사는 3일정도 지켜본 결과를 전해줬다. 그는 “상위권 학생은 잘 따라오는거 같다. 하지만 하위권으로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지고 과제하는게 힘들어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지난 목·금요일은 예상보다 잘 운영이 됐지만 다음주부터 전학년에서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고 불안함을 전했다.향후 온라인 개학으로 인해 장단점에 대한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다.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닐 때 발생하는 규칙적인 생활과 교우들과의 관계를 통한 긍정적인 에너지 창출이 없어지는 것도 문제가 된다.입시준비에 대한 긴장감 유지가 떨어지는 부분은 물론이고, 중·하위권 학생들의 경우 혼자서 공부를 하는 부분이 힘들기 때문에 상위권과 격차가 더욱 커질 수도 있다.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연스레 공교육에서 받을 수 있는 이점이 많이 사라지기에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이에 대해 교육부는 원격 수업 운영 기간 및 구체적 계획을 대략적으로 제시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kimjw@kbmaeil.com

2020-04-12

황당한 두 ‘전쟁’

안재휘 논설위원범여권 최고의 궤변 기술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4·15 총선 결과를 ‘민주당 180석’으로 예측했다. 대중이 이기는 쪽에 줄 서고 싶어 하는 밴드웨건(Bandwa gon·편승효과)을 노린 꺾기 기술에 들어간 모양새다.선거 막바지 미래통합당은 화들짝 노란 표정이다. 당초 130석이 목표라고 밝혔던 제1야당 통합당은 민주당 대승론에 “섬뜩한 일을 막아야 한다”며 언더독(Underdog·동정표) 전략을 이어갔다. 여론조사 공표일 직전까지 발표된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여당의 강세는 역연했다. 다만 각 지역구 지지율 트랜드(흐름)에서 많은 야당 후보의 상승세 또한 감지된 것도 사실이다.섣불리 예단할 상황은 아니지만,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체면 불고하고 두 개의 통발(비례 위성 정당)까지 장만한 민주당의 작전은 일단 성공적으로 읽힌다. 반면에 통합당은 호재들을 하나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총선 너머 대선까지 함수로 놓고 휘두른 황교안 대표의 서툰 공천작업부터 패착이었다.이번 총선은 소득주도성장 파탄·조국 사태·공수처법·탈원전·386 집권세력의 위선과 몰염치·통일정책 혼선·국민 분열 심화 등 문재인 정권의 기록적인 실정(失政)에 대한 예리한 심판이어야 맞다. 그러나 민주당은 잃었던 호남을 전면장악하고 전염병 사태를 극적으로 이용해 민심 틀어쥐기에 성공하고 있다.한국은 세계적인 ‘코로나19’ 창궐 사태에서 확실히 남다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들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잘 대응해왔는지를 반증한다. 우리의 선방은 의료시장의 오랜 자유경쟁과 전면적 의료보험이 길러낸 수준 높은 의료기술, 그리고 의료진의 놀라운 헌신성과 온 국민의 감동적인 의병 정신이 합작해낸 결과물이다.그런데 그 열매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몽땅 가로채어 독차지하고 있다. 중국인 입국을 끝내 차단하지 않은 미심쩍은 아집을 포함하여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이 정부가 잘못한 일은 한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진보 논객들마저 문 대통령이 ‘야당 복’에다가 ‘코로나 복’까지 타고났다고 찬탄하고 나설까.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50%를 훌쩍 넘어서서 고공행진 중이다.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와 ‘21대 총선’ 두 전쟁의 양상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선거기간 내내 전국을 운동복 입고 혼자서 달음박질하고 다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예언은 끔찍하다.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정부·여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공작과 술수를 다 동원”하고,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묻힐 것”이라는 내용이다. 정말 그의 예언대로 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실로 절망적이다. 표심은 이미 다 갈렸고, 이제 샤이(shy)보수의 선택만 남았다. 대략 25%로 헤아려지는 부동층 가운데 숨어있다는 7~12%가량의 샤이보수는 과연 움직여줄 것인가. 총선의 본질인 ‘견제와 균형’ 정신은 막판에라도 살아날 것인가 궁금하다.

2020-04-12

심판대 선 여론조사

1936년 미국은 대공황이란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 대선을 치렀다. 주로 서민층이 지지하던 민주당 루스벨트와 부유층 지지의 공화당 랜던 후보간 대결이었다.이때 미국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사는 1천만명에게 엽서를 보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자기 잡지를 구독하는 자와 자동차 등록부에 기재된 주소가 설문 대상자였다.여론조사 집계는 공화당 후보가 루스벨트를 꺾고 승리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처참하게 틀렸다. 루스벨트의 압승이었다. 당시는 대공황 국면이어서 잡지나 차를 보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표본 집단의 편향성이 만들어 낸 심각한 오류였다. 조사를 한 잡지사는 이후 망해버렸다고 한다.선거 때마다 여론조사의 편향성이 비판을 받는다. “여론조사는 빈 그릇이다”, “민심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때로는 음험한 공작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등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의 꼬리가 끊이질 않는다.21대 총선도 마찬가지다. 들쑥날쑥한 여론조사가 유권자를 혼란케 한다. 여론조사는 선거가 시작될 시점에 누가 당선될지 하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방법이다.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표본 구성에 달려있다. 표본구성을 조사 목적에 맞게 잘했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구성하는 요소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오악가락 할 수 있다. 표본 구성 요소에는 성별, 나이, 지역, 학력, 소득, 유무선 비율 등 매우 복잡한 오차변수들이 존재한다.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내 여론조사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승리를 전망했다. 그러나 당시 결과는 야당의 승리였다. 여론조사기관의 망신살이었다. 선거가 이틀 앞이다. 그동안 조사 발표됐던 내용이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4-12

자신의 가족부터 살펴보자

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19로 각 국가 지역에서 주민들의 외출, 이동을 제한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지난 4월 5일 안토니오 쿠데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가정내 폭력(DV·domestic violence)이 급증하고 있다며 각국 정부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하였다. 신형 전염병 대책으로 외출이 제한되는 가운데 여성에 대한 가정내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에 대한 구제와 가정내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유엔에 따르면 외출이 금지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1주일 동안 가정내 폭력 건수가 30% 이상 증가하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트위터 트렌드에서는 코로나이혼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원격근무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생활환경이 급변하여 상대방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가치관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충동적으로 이혼으로 발전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가장 밀접하고 서로 이해하며 보듬어야 할 부부 사이가 오히려 벌어지게 된 셈이다. 이는 유엔이 지적한 가정내 폭력과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이러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졌던 일상생활의 리듬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무너지고 깨어졌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단체 등의 주요 행사가 취소, 연기되는 한편 직장인의 재택, 원격근무 등이 확대되면서 종전과 다른 생활 리듬을 갖게 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쌓이고 있다. 평소에 직장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던 가장이 익숙치 않던 재택근무 환경과 원활하지 않은 업무처리에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때로는 육아, 청소, 가사노동 등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생활 근육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 나누던 학교생활을 보내지 못한지 제법 시일이 지나 학습 리듬이 망가지기 직전이다. 게다가 학교에서야 선생님보다 학생들 숫자가 많아 각자에 대한 간섭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온종일 집에 있는 동안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부모님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일일이 지적까지 받게 되자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그러나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대상은 단연코 주부일 것이다. 평상시라면 아침 밥상만 제대로 준비하고 나면 자녀들은 학교나 유치원에서 급식을 먹고 일정 시간 동안 자신과 떨어지기에 일상적인 가사만 마치면 사실상 소중한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저녁도 대부분 남편은 직장에서 회식, 야근, 친구 모임 등으로 자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과 간단한 식사로 대체하면 되었다. 편안하게 커피 한잔하면서 가계부를 정리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감정을 이입하면서 주부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상황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대낮의 고요한 일상이 사라진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까지 온 가족이 모두 집안에서 지내는 기일이 길어지자 당장 메뉴 구성하는 데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가족들도 며칠 정도는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가사노동은 주부의 몫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녀들은 공부를 핑계로 방으로 사라지고, 가장은 모처럼 편안한 시간이라며 거실 소파에서 리모컨만 잡고 있다가 밥때가 되면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메뉴를 찾는다. 평소 과묵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가장의 발언도 늘어난다. 집안의 가구 배치부터 자녀의 생활 태도, 주부에 대한 반찬 투정까지 눈에 거슬린다고 일일이 늘어놓기 시작하면 가족 구성원 모두 스트레스가 차오르기 마련이다.이처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것은 가족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 자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지면서 구성원 모두의 생활 리듬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면 역시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나 조기에 개발되어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뿐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회복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족마다 다른 구성원과 다른 사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화나 가정내 폭력 등의 문제는 가족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대화가 부족하였던 가족들이라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예전보다 더욱 화목해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흔히 자동차운전만큼은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배우라고 하듯이 온종일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즐거운 대화만으로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아무리 시간이 나더라도 가족 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쌓여 있던 마음속의 이야기를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그리고 부부간에 나누는데 한 달 이상 이어지기도 어렵다. 결국은 평소 같으면 다양한 시간상의 제약으로 빠르게 봉합되었을 화제가 끝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해와 다툼이 일어나고, 그것이 새로운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그 불씨를 태우는 원료로 작용하면서 가정내 폭력이나 코로나이혼과 같은 결말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은 자신이 청소년이건 가장이건 주부건 그 위치를 떠나 무엇보다도 최우선 보호하고 감싸주어야 할 대상이다.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자신이 느끼는 짜증과 스트레스를 가정내 폭력이나 코로나이혼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로 이끄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코로나19로 재택 시간이 늘어나도 생활 관련 소비지출이 바뀔 일은 크게 없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사는 대신 온라인쇼핑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택배로 받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지역 주민들의 소비지출에서 나타난 현상은 가족의 위기상황보다는 화목으로 이어지는 방향이어서 기대감을 주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이다. 포항 등 경북동해안 지역 주민들은 지난 1∼2월 중 예년과 달리 악기점과 케이블TV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렸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재택 시간을 활용하여 가족들과 영화, 드라마를 함께 시청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그 누구라고 그동안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로 소홀히 했던 악기를 다루는 취미생활도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번 재택 시간 동안 가족들과 집에서 영화를 시청하거나 가족의 악기 연주에 즐거워하는 시간은 어쩌면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모두 평생에 한 번 정도로 주어진 시간일 수도 있다. 학생은 졸업 후 부모를 떠나 취업과 결혼까지 하고 나면 명절 때 몇 시간 정도 외에는 지금처럼 부모들과 함께할 시간은 만들지 못한다. 가장이 은퇴할 무렵에는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기에 지금과 같은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주부가 가족의 세끼 식탁을 차리는 시간도 생각만큼 길지 않다. 사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지금 주어진 재택 시간은 지겹고 남는 시간이 아니라 매우 귀중하게 아껴야 할 시간이다. 그 귀중한 시간을 스트레스로 인해 정작 자신의 가정을 위기에 빠트리지 않고 가족을 살펴보며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쉬운 문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4-12

글을 잘 쓰는 방법(1)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거예요. 생각을 정리한 다음 글을 쓰려 하지 말고 글이 글을 쓰게 해 보세요.”생각학교 ASK에서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할 때는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말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잠깐 화면을 켜고 비디오 클립을 보여줍니다.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 ‘파인딩포레스터’ 한 장면입니다.뉴욕의 한 건물에 은둔해 사는 대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가 동네에 사는 흑인 소년 자말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농구 장학생으로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말이 우연한 기회에 포레스터를 만납니다. 친구들과 허세를 부리며 내기를 하던 중 자말이포레스터의 집에 무단 침입을 합니다. 발각되자 놀라 꽁무니를 빼면서 가방을 깜빡하지요. 자말의 노트를 본 포레스터는 아이의 글 솜씨를 알아보고 자연스레 우정을 쌓는 관계로 발전해 나갑니다. 자말이 한 번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는 노인이 작가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지요.“아저씨는 혹시 글쓰기 대회에서 상 같은 것 타 본 적이 있어요?”“그게 네가 묻는 정확한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상을 타 본 적이 있긴 하지.”“오! 정말요? 대회에서 일등 하셨어요?”“글쎄다, 남들은 그걸 퓰리처상이라고 하더구나.”자말에게 본격적인 쓰기를 가르치면서 은둔 작가 포레스터는 타자기를 갖다주고 뭐든 써 보라 합니다. 자말은 생각에 잠기죠. 포레스터는 한참 동안 멍하니 타자기를 바라보는 자말에게 말합니다.“자말, 내가 하는 것을 잘 보렴.” 타자기 앞으로 가서 앉더니 피아노 연주자가 건반을 두드리듯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탁탁. 타타.. 탁. 타타탁. 탁. 타타탁. 탁….”경쾌한 리듬을 타며 타이핑하던 포레스터는 마침표를 꾹, 찍고 종이를 뽑아 자말에게 건네며 말합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2

총선 막판 변수가 선거판을 뒤집기 어렵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4·15 총선 이틀 전이다.전국적으로 관심 있는 접전 지역이 30여개나 된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선거의 결과는 더욱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선거 종반에 올수록 여야 모두 이번 선거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동정표를 노리는 ‘언더독’전술 보다는 자신 있는 집을 밀어준다는 ‘밴드왜건’ 효과를 기대한 탓일 것이다. 선거에서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이해찬 대표의 말이 맞을지, 여야를 넘나들며 선거의 마술사를 자칭하는 김종인 위원장의 말이 적중할지는 두고볼 일이다.이번 선거는 쟁점도 바람도 없이 조용한 선거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라는 돌발 사태가 초래한 선거분위기 탓일 것이다. 여야는 경쟁적으로 재난 지원을 위한 포퓰리즘 식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야당 류승민 의원만이 자당의 재정 지원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야당이 제기한 ‘조국 살리기냐, 경제 살리기냐’는 슬로건도 착근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응징이라는 강풍이 불지 않으면 야당의 승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대구 경북의 표심은 예외일 것이다.야당의 막말 변수가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김대호와 차명진 후보의 막말은 선거의 악재가 되고 있다. 김대호 후보의 30∼40대 유권자의 착각, 무지라는 세대 ‘비하 발언’, 차명진 후보의 세월 호 텐트 속의 ‘불륜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선거 전야에는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야 한다는데 두 후보의 망발은 자신의 선거구뿐 아니라 남의 선거구까지 재를 뿌린 격이다. 이 같은 막말은 상대방의 표심을 결집시키고 부동층의 지지를 멀어지게 한다. 당 지도부가 급기야 제명과 탈당 권유라는 조치를 취했지만 전세를 만회하기는 어려을 것이다.선거 전야에 흔히 등장하는 마타도어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는 가장 퇴행적 선전 행태지만 우리 선거 전야에 종종 등장하는 변수이다. 우리는 과거선거에서 북풍, 총풍, 병풍이라는 흑색선전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근거도 없이 폭로되는 마타도어가 수습도 하지 못하고 선거는 끝난 경우가 많다. 지난 주말 이미 여당 대표가 곧 2∼3개의 대형 공작이 주말에 폭로될 것이라 발표했다. 야당의 선거 전략 본부장도 가증스런 사건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벌써 N번방의 유력인사 개입설, 대형 부정 축재 설, 윤석열 검찰 총장의 갑작스런 사퇴설 등 종잡을 수 없는 시나리오가 퍼지고 있다.한국 갤럽의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55%에 이르고, 정당 선호도는 민주당 44%, 통합당 23%로 간격이 더욱 벌어졌다. 여론 조사가 반드시 선거 결과와는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러 선거 막판 변수를 어떤 것을 대입해 봐도 총선 판세는 야당에게 불리하다. 여야는 마지막 변수인 투표율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틀간의 사전 투표율은 26.7%로 급등하여 15일 최종 투표율마저 상당히 높아질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고,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이 가설이 적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15일 저녁의 선거 결과를 지켜 볼 수밖에 없다.

2020-04-12

강물을 보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거의 매일 형산강 하류의 물을 본다. 근 10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형산강 둑에 조성된 자전거길을 달리며 강물과 물빛을 대하게 된다. 가끔씩 물안개가 피어나는 아침과 노을이 얼비치는 저녁 무렵에 바라보는 형산강은 시시각각 형색을 달리하지만, 언제나 유유히 바다를 향해 쉼없이 흘러가고 있다.하류의 형산강은 여유롭고 넉넉하기만 하다. 강폭이 넓고 완만한 물길 탓인지 강물은 흐르는 듯 멈춘 것 같고 멈춘 듯 흐르는 것 같다. 발원지에서 약 60여km를 밤낮없이 달리고 부지런히 흘러와 지척의 종착지를 앞두고 안도하면서 가뿐 숨을 고르는 듯하다. 형산강 하류에는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흐르는 물결따라 다수의 동,생물이 서식하고 철새가 도래하는가 하면, 둔치에는 갈대와 억새를 비롯한 무수한 초목이 자생하고 있다. 구비구비 흐르면서 너른 들을 적신 후 하류에서는 마치 배려와 포용의 가슴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생명을 생장시키고 더불어 공생하는 터전을 마련해온 듯하다.지난 3월 말경 섬진강 종주 자전거 라이딩을 다녀왔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 섬진강댐을 기점으로 전남 광양시 배알도수변공원까지 이르는 총 153km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들과 함께 달리면서 한껏 유쾌함을 누렸다. 강진~순창~남원을 지나는 상류는 거의 계류(溪流) 수준으로 간혹 협곡 사이의 강폭이 좁고 천탄(淺灘)을 군데군데 드러내며 빠르거나 늦은 유속으로 산골과 물가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이어 곡성~순천~구례 주변의 지류와 하천, 작은 강과 합류되는 중류는 강의 너비와 수량, 수심이 변하면서 완급의 물길로 접어들었다. 이윽고 구례~하동~광양으로 이어지는 하류지역에서는 너른 강바닥에 모래톱을 밋밋하게 펼쳐놓고 서두름없이 산과 들과 마을을 휘돌아가며 바다에 이르고 있었다. 호남정맥 계곡을 타고 흐르는 청정한 섬진강 언저리를 봄바람 속에 달리니 신나기 그지 없었고, 특히 구례에서 하동까지 이어지는 70리 벚꽃길은 덤으로 누리는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물길을 따라 나란히 달리면서 많은 것을 느낀 여정이었다. 세찬 여울이나 협곡을 거침없이 흐르는 상류의 물살은 청년의 패기처럼 보였고, 합류와 집수로 더디거나 빠르게 흐르는 중류의 굳센 강줄기는 중년의 왕성함으로 여겨졌으며, 여유롭게 휘돌아가는 하류의 수면은 인생행로의 달관과 초탈을 겪은 노년의 느긋한 몸짓으로 비춰졌다. 그러면서 앞서기를 다투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水流不爭先)을 보며 나를 되비춰 보고, 파란만장한 삶의 여로에 주야장천 흐르는 물(川流不息)처럼 과연 나 자신도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는지 성찰해보기도 했다.물(水)이 흘러(去) 법(法)이 되었듯이 물은 순리이고 이치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막히면 돌아가고 패인 곳을 채운 뒤에 나아가는(盈科後進) 물은, 기꺼이 낮은 곳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세상 만물에 생기를 주고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 같은 물이 고맙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때때로 윤슬로 화답하는 물을 닮아가며 오늘의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2020-04-12

특별한 소풍

이미하영어 강사내 인생에서 큰 축복 하나를 꼽으라면 평생 동지로 함께 하는 세 친구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총사는 같은 교회를 다니며 학창시절부터 오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친자매 이상의 정을 나누며 삶을 함께하고 있다. 부모님도 모두 같은 교회를 다니고 넷 모두 청년부에서 연애하고 짝을 맞춰 가정을 이루었다. 이런 공통점을 기반으로 우리는 결혼 이후 더욱 끈끈한 연대를 지속하고 있다.매년 만개한 꽃들이 새봄 축하 팡파르를 울리는 이맘때 우리 사총사는 특별 행사를 계획한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소풍이다. 이 특별한 소풍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다. 당시 자녀들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로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모두 통감하고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힘드셨겠구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일을 계획했다. 우리를 위해 애써주신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네 부부는 다가올 어버이날을 맞이해 부모님들께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드리자며 의견을 모았다. 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정한 후 모두 함께 타고 갈 버스를 예약하고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다.소풍날에는 빨강, 노랑, 나들이옷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들이 봄꽃보다 더 화사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버지 두 분은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다.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너스레 담당 우리 남편. 부모님과 딸, 딸들의 사위 또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들을 짝 맞춰 세트로 소개하고 지금껏 길러주고 보살피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렸다. 사진 담당인 나는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작은 카메라 뷰파인더에 부모님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또렷하게 잡힌다.즐거운 소풍 길에 흥겨운 노래 한 판 빠질쏘냐? 마이크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손사래 치며 사양하던 분들이 흥이 오르자 마이크를 좀체 놓지 않는다. 숨겨 둔 뜻밖의 노래 솜씨를 뽐내시는 아버님께 앙코르 요청이 쏟아진다. 몇 바퀴 돌아가자 레퍼토리가 떨어지신 어르신들이 우리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셨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마이크를 꼭 잡고 며칠 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노래를 불렀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두우~~울이 앉아…….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울컥하는 마음을 눌러가며 노래를 마쳤다.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면서 자녀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시는 어르신들 눈에는 어여쁨과 사랑이 가득했다.소풍 장소에 도착해서 일행은 산책을 시작했다. 부모님 걸음 속도에 우리도 보조를 맞추며 함께 손잡고 봄의 한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 네 딸은 가슴 뭉클함과 죄송한 마음을 동시에 느껴졌으리라. 이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우리는 곳곳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딸의 손만 살짝 끌어당겨 닮은꼴 미소를 남긴다. 아들은 엄마의 가냘픈 어깨를 팔로 감싼다. 아들의 든든함에 엄마는 자랑스러움이 얼굴에 한껏 배어난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꼭 붙어 앉은 딸과 사위, 다정한 웃음 띤 얼굴이 모두 둥글둥글 닮은꼴이다. 한껏 흥분한 어머니들 뒤편에서 어색해하는 아버님 챙기기는 딸 몫이다. 어머니 곁에 앉힌 후 함께 찍은 사진 속 아버지들은 소년마냥 수줍어한다.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화사한 봄꽃 기운을 받아서일까? 피곤할 법도 한데 여전히 어른들 얼굴에는 흥분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가는 길에 미처 부르지 못했던 노래로 마이크는 다시 돌아갔고 흥겨움 속에 포항에 도착했다. 엄마 중에 가장 맏언니가 자녀들에게 감사 인사를 나눈 후 부모님 시작한 첫 소풍을 기쁨과 감격 속에 마쳤다.해마다 부모님의 기대 속에 이 특별한 소풍을 지속했는데 근래 부모님들의 기력이 현저히 떨어져 재작년부터는 여행 대신 가까운 콘도에서 함께 일박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함께 모이기 불가능한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특별한 소풍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가는 날, 다시 특별한 소풍을 시작할 것이다. 부모님, 부디 건강해 주세요!

2020-04-12

청정자연을 이용한 관광활성화

이승율청도군수청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신도리 새마을운동 발상지와 화랑오계(花郞五戒)로 대표되는 화랑정신이지만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청정자연과 이를 이용한 관광자원이다.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물결로 국토 대다수가 개발되며 청정자연은 현대의 귀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특히 휴식이 있는 삶과 깨끗한 공기의 질이 대접받는 현실을 반영하면 청정자연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배다.또 관광사업은 지자체들을 먹여 살릴 먹거리로 각광받으며 자원이 없는 경우라도 스토리텔링으로 자원을 개발할 만큼 지자체들이 선점하고자 각종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현 방법에 골몰하고 있다.“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물”이라는 속담처럼 청도는 청정자연을 이용한 관광자원의 활성화를 위해 올해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애초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지만, 청정지역과 자원을 이용한 관광 상품의 홍보는 지속적으로 실행에 옮길 것이다.청정 청도의 관광자원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무궁하다.전통을 자랑하는 청도읍성예술제, 운문사와 처진 소나무, 청도읍성, 와인터널, 신화랑풍류마을, 유등연지, 석빙고(보물 제323호), 향교, 서원, 고택 등의 볼거리에 청도추어탕과 반시, 운문사 입구의 먹거리촌, 수제 맥주, 한재미나리 등 먹을거리, 숙박시설도 훌륭해 누구나 만족하며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 청도다.전국 최대 규모의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유명한 운문사와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는 수형이 매우 아름답고 5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어 세속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을 수 있다.신화랑풍류마을은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전수한 화랑오계의 정신을 현대와 연결하는 통로로 체험활동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화랑의 정신과 문화를 체득할 수 있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국내 최대 규모의 자전거공원에서는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고 레일바이크와 시조공원에서는 시와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어 가족단위 레저장소로는 딱 맞다.올해 개장할 루지트랙은 청도의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길이 1.9km의 루지트랙을 무동력으로 가로질러 짜릿한 쾌감과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친환경 에코루지로 어른은 물론 어린이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다.지난 4일에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운문생태여행 사업’이 문체부의 2020년 생태테마관광육성 사업에 선정돼 운문·금천면 일원을 또 하나의 생태체험 관광명소로 개발하게 됐다.군은 관광 청도의 활성화를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만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관광정책을 펼친다.도시지역의 관광객의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청도나드리 투어’, 청도읍성을 야간관광지로 도시민관광객에게 처음 공개하는 ‘쿨한 청도 마실 나들이 야간투어’, 개인택시운행자 중 9명이 사전예약을 통해 관광객이 선택한 코스를 돌며 관광가이드와 문화 해설사 역할을 담당하는 ‘톡톡한 관광택시’ 등은 운영되는 대표적인 시책이다.청도나드리 투어는 전담여행사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여행상품으로 판매·여행객모집 후 운행할 정도로 모든 것에 정성을 기울인다.청도군이 올해 지역을 알리고자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들은 미스코리아 경북선발대회와 KBS 전국노래자랑, 소싸움축제, 청도반시축제·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등으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최시기를 확정할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빠른 준비과정을 거쳐 청정 청도 알리기에 나설 것이다.이처럼 청도가 관광자원 활성화와 알리기에 나서는 것은 청정자연을 유지하면서 군민이 행복한 지자체로 만들려는 것이다.풍요로운 삶이 있다 해도 주변여건이 불편함으로 가득하다면 그 삶이 가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정자연을 즐기며 삶의 질이 향상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202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