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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화등선

김규종 경북대 교수당송 팔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동파(東坡) 소식은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렸다 한다. 그의 ‘적벽부’에 나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실상을 보고 나니 감회가 적이 새롭다. 본디 ‘우화등선’이라 함은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 변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일정한 상태의 근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충분하다.며칠 전 오후의 일이다. 마당에 심은 루드베키아의 크고 노란 꽃잎 하나가 아래로 축 처져 있는 것이다. 다른 꽃잎들은 하늘로 당당히 얼굴 쳐들고 있는데, 쟤는 무슨 일이야, 하고 혼잣말한다. 가까이 가보니 매미 유충이 여섯 개의 발가락으로 꽃잎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녀석의 두 눈이 마치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오호라,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갈 심산이로구나.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살핀다.멀지 않은 곳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그렇군, 저 아래 칠흑 같은 땅속에서 대여섯 해를 살았다는 얘기지. 미국에 사는 어떤 매미 유충은 지하세계에서 15년 넘게 견디는 일도 있다고 한다. 보름 남짓 밝은 세상 구경하려고 장구한 세월 굼벵이로 살아야 하는 매미의 가혹한 운명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짧지 않은 세월 굼벵이는 땅속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일까?! 몸집을 불리고, 밖으로 나갈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견디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해 질 무렵까지도 루드베키아 꽃잎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튿날 아침 동트기가 무섭게 마당으로 나가본다. 어제와 다르게 꽃잎이 빳빳하게 고개 쳐들고 있다. 옆 줄기에 딱딱한 껍데기가 남아있다. 등줄기 한복판에 세로로 찢어진 자국을 남긴 황갈색 껍데기만 동그마니 남았다. 그래, 언제 우화한 걸까?!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어찌 됐거나 녀석이 성공적으로 날개를 달고 창천으로 날아오른 것은 분명하다.그러다가 생각이 오래전 옛일로 미친다. 백양로를 따라 늘어선 사철나무에서 기괴한 물상(物像)과 만난다. 등껍질을 뚫고 나오려던 굼벵이가 때마침 쏟아진 소나기에 날개를 펴지 못한 채 죽어 있었다. 굼벵이의 몸은 절반가량 껍데기 밖으로 나온 채 화석처럼 굳어 버렸다.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질주하다가 현재의 족쇄에 걸려 처참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해괴한 몰골의 그것, 굼벵이도 아니고 우화를 마친 매미도 아닌 사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연구실로 데려왔다. 강의자료로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다. 학생들이 어렵다는 ‘그로테스크’ 개념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재료는 찾기 어렵다. 과거와 작별하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 온 힘을 다했으되, 시운을 만나지 못해 참혹하게 죽어버린 생명체. 그런 까닭에 우리는 과거가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대못을 소리 나게 내려쳐야 한다.누군가는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현재는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과거에서 미래가 나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화등선에서 확인하는 아침이다. 현재가 붕괴한다 해도 미래의 토대는 현재와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2020-07-01

장원급제 납시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지난 주말 포항지역의 연일향교에서는 다소 특별하고 이색적인 백일장이 열렸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백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같은 시문(詩文) 겨루기와 시상식 등을 옛 과거장의 모습으로 재현하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대과 과거제도의 형식을 빌어 치뤄진 백일장에 급제한 33명의 초등학생들은 갑과, 을과, 병과 등 수상 훈격에 따라 고유한 어사복으로 갈아입고, 특히 장원급제생에게는 연일향교 전교(典校)가 직접 교지(敎旨) 형태의 족자 상장과 어사화를 하사하는 등 시종 이채롭게 진행됐다. 또한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진 행사장 입구에서는 호패, 장명루(오색팔찌) 만들기와 가훈, 좌우명, 부채 써주기 등의 다양한 전통체험코너가 함께 열려 다채로움을 더했다.이러한 일련의 장면들은 문화재청이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사)한국예절녹색교육원이 주관하고 포항시와 연일향교가 후원한 ‘과거제 재현 제1회 어린이 백일장’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이번 백일장은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선비임을 재인식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포은 선생의 충효예의를 표상으로 하여 인성과 재능을 길러 장차 나라의 동량이 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기 위해 개최됐다.선현의 얼을 기리고 충효예절과 인성지도로 전통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한국예절녹색교육원의 기획과 노력이 돋보인다. 한국예절녹색교육원은 수년 전부터 연일향교와 연계하여 충효예절학당, 선비체험, 시(詩)가 있는 야(夜)한 향교, 전통혼례, 인문학콘서트 등의 다양한 ‘살아 숨쉬는 연일향교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지역민들과 호흡하며 체계적이고 밀도 있게 추진하고 있다.향교는 조선시대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여러 성현들을 배향(配享)하며 한국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다양한 문화체험활동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일은 향교나 서원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현대에 맞도록 새롭게 재해석하여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옛것이고 오래된 것이라 해서 방치하고 보존에만 급급해하기 보다는 지역과 특성에 맞는 문화적인 아이템이나 콘텐츠로 개발, 접목하여 문화유산의 활용도와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통이나 구습들은 지루하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 전반에 참으로 가까이 와있고 깊게 스며든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전통이나 문화는 우리 스스로 아끼고 가꾸고 지켜나갈 때 그 가치와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다. 뿌리 약한 나무는 이내 시들고 말라버리듯이 전통의 기반이 취약해지면 저력과 자생력이 약해진다. 가뜩이나 움츠러들고 어려운 때, “장원급제 납시오!” 같은 외침이 가뭄의 단비 같이 지역사회의 문화마당에 울려 퍼졌으면 한다. 아울러 전통의 현대화를 통해 난국을 타개하는 희망과 위안의 손길이 문화 속에서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2020-06-30

관계의 온도

최미경동화작가“넌 대체 꿈이 뭐니?”라는 남편의 질문에 큰애가 머뭇거렸다.그 사이 셋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직업을 말하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투덜댔고 둘째는 눈을 한참 굴리더니 셋째가 뱉어놓은 몇 개의 직업에 토를 달았다.“우리 선생님이 그러던데 예술가, 라는 직업은 사라질 수도 있다던데.”둘째의 말에 남편과 첫째와 셋째가 나를 동시에 바라보았다.“진짜?”라며 내가 되묻자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신들의 대화 내용으로 이내 돌아갔다. 직업에 대한 고민, 삶의 방향에 대한 근심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커서 뭐 되고 싶어?”라는 식의 질문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 질문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직업이 20년 후에도 존재할지 장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장 나만 하더라도 “글 그만 쓸래!”라고 내일 당장 두 손 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른인 나도 아직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헷갈릴 때 있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내 삶이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왔는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비현실주의자 혹은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험난하고 다사다난한 시대를 살금살금 건너며 내가 겨우 알아낸 건 정말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 뿐이다.6개월 전만 해도 팬데믹으로 발칵 뒤집어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환경문제 먹거리문제가 늘 따라다녔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잠금상태가 되리라고 설마 짐작이나 했겠는가.코앞까지 왔다는 4차 산업혁명시대도 두렵고 전염병도 무섭고 엄마라는 자리도 무거운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대화에서 슬그머니 빠져서 애꿎은 TV리모컨만 요리조리 돌렸다. 그러다 모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소라가 버스킹하는 모습을 보았다.“노래를 혼자 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누군가 들어주고 이해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그 공간이 같은 마음으로 이뤄져서 그 마음이 커지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 같다.”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면서 나누는 것이 노래이고 예술이라는 그녀의 말에 가슴의 온도계가 뜨겁게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코로나19로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가 미뤄지고 잠정연기되면서 많은 예술인들이 작품을 선보일 곳을 잃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예술인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렸던 관객도 마음 둘 자리를 잃은 것이다. 위로, 카타르시스, 심리적 보상…, 눈으로 가늠할 수 없지만, 계산기로 두드려볼 수는 없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분명 무언가를 준다.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정교하게 작품을 구성하고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악을 완성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모방하는 시대가 곧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예술가와 관객이 나누는 뜨끈뜨끈한 관계, 이 관계의 온도를 최첨단 기술이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기로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시대를 조심조심 건너며 그래도 예술이 우리 관계에 버틸 힘을 준다는 것을 끝까지 믿고 싶다.

2020-06-30

6·25 전쟁, 인민군 점령지역 기억 공간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6·25 한국 전쟁 70주년, 당시의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이 참석한 70주년 6·25 기념행사에는 전쟁 영웅 147위의 복귀신고가 있었다. 대통령과 육해공해병대 사령관이 유족들과 함께 이들의 뒤늦은 귀환을 가슴으로 맞이했다. 미군 전사자로 분류돼 하와이로 갔던 전사자들이 애타게 그렸던 고향 땅을 밟은 것이다.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님은 저세상 사람이 됐다. 희생자의 얼굴도 모르는 아들 딸들이 그 영웅을 맞이했다. 70년 전 인민군 점령지역에 살았던 당시의 비극이 또 다시 떠오른다.1950년 6월 25일 당시 여섯 살 우리 또래는 전쟁 전야에도 종이로 만든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종이마저 무척 귀하던 시절 우리는 빳빳하고 힘이 좋은 일본 헌 교과서로 딱지를 만들어 따먹기 놀이를 했다. 가끔 비행기 소리가 들려오고 멀리서 대포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지만 우리는 이에 아량곳 하지 않고 놀이를 즐겼다. 밤에는 집집마다 석유 호롱불을 가리개로 가리고 무명천 커튼으로 불빛을 가렸다. 동네 앞 신작로에는 사람들의 피난 행렬이 늘어나 신기해 보였다. 그것이 전쟁의 시작인 줄은 우리 또래는 전혀 모르고 놀기만 했다.며칠 후 우리 집 마당에는 복장이 다른 북한 인민군들이 들어닥쳤다. 인민군에 점령당한 우리 동네, 천진난만한 우리 또래는 군인 아저씨에게 총을 만져 보자고 조르기도 했다. 철없는 친구는 인민군들에게 총을 한번 쏘아 보라고 보채기도 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는 격이었다. 국군과 다른 누런 군복을 입은 인민군 아저씨가 신기했으며 그들의 이북 사투리가 더욱 이상했다. 그들은 동네 소를 잡고 쌀을 공출할 때도 북한 인민 패를 사용했다. 모두가 점령지 민심을 얻기 위한 수단임을 뒤늦게 알았다.당시 동네 학생들은 그들에게 불려가 ‘장백산 줄기줄기’로 시작하는 빨치산 노래를 배웠다. 우리는 멀리서 구경만 했다. 당시 동네 청년들은 그들이 조직한 ‘치안대’에 강제 편입됐다. 그들은 매일 훈련을 받기도 하고 인민군들이 지시하는 일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인민군이 철수한 후 그들에게 협조한 ‘부역자’들은 우리 경찰에 의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동네 어른들 중에는 반죽음을 당하여 지게에 실려 오는 모습도 보았다. 우리 동네는 결국 전쟁 초기 인민군에게 피해를 당하고, 수복 후에는 우리 경찰에 의해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우리 친구들 중에는 연좌제에 의해 출세 길이 막혀 버린 사람도 있다.당시 북에서 온 어느 인민군은 철수하지 못하고 우리 동네에 그대로 남아 머슴살이를 했다. 당시 서울대 졸업식에 간다던 이웃집 아저씨는 갓 시집온 색시를 남겨두고 행방불명이 됐다. 그가 어수선한 전쟁 통에 인민군에 끌려갔는지 의용군으로 입대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행히 그 아저씨가 10여 년 전 중국을 통해 북에 살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 그가 북에서 새 장가가서 자식 5명과 함께 잘살고 있다는 소식에 수절했던 아주머니는 기절하고 말았다. 처절한 6·25 전쟁의 비극은 우리 고향 마을에도 아직도 상처로 흐르고 있다.

2020-06-30

말 말 말

중국 오대십국 시대에 풍도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무려 다섯 왕조에 여덟 성씨, 열한명의 천자를 섬기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진 이름난 재상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그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렸다. 오로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주인을 수없이 갈아 치운 간신배라는 것과 처세의 달인이자 임금보다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한 뛰어난 재상이라는 두가지 평가였다.그가 재상으로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함부로 적을 만들지 않는 그의 처세술에 있었다고 한다. 그가 사람의 혀를 가지고 지은 시(詩)가 하나 있어 소개한다. “입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이다.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어 두면 가는 곳마다 마음이 편안하다.”혀를 뜻하는 한자의 설(舌)은 입(口)에서 혀가 튀어나온 모양의 글자다. 구설수(口舌數)라는 말은 말을 잘못하여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수는 운수를 의미한다.말을 잘못해 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동서양의 격언은 수도 없이 많다. 글은 잘못 쓰면 고치면 되지만 말은 한번 뱉고 나면 다시 주워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말은 그 사람의 생각뿐 아니라 인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품위 있는 표현과 논리정연한 말은 말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과 품격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한 나라의 장관이라면 그 말에 권위와 품격이 묻어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거친 말이 정치권에서 거듭 논란이다. 추 장관의 주장이 맞는지 여부를 떠나 그의 거친 말만으로 그의 주장은 이미 상당한 설득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30

코로나 시대의 책읽기

우리가 길고 느리게 이어지는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그 터널에 붙은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마치 어떤 시대의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동안에 그것이 변곡점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시대의 색깔을 규정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그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품의 하나로 참여하고 순간에는 불가능한 과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역사에 오래동안 남겨질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감지할 수 있다. 마치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던 한 병사의 마음처럼, 우리는 분명 역사에 기억될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유행병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아직 이 흐름이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조차 알 수 없다.세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일들을 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필자도 대학에서 단 한 명의 학생의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이례적인 첫 번째 경험을 마무리하고 있다. 주어진 변화에 대해 인간이 항상 상상가능한 가장 최적의 대처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대학 사회의 각 영역에서는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교육’이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 사이에 이해의 충돌이나 소통의 상실 등의 사례가 없지 않았겠지만 말이다.하나의 이례적인 사례가 우리의 현재를 바꾸어 다시는 그 현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른바 ‘뉴노멀’의 혁명적인 경험을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모든 일들은 언제나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변화하여 우리에게 익숙할 정도로 찾아오지 않았던가. 이 낯설고 비가역적인 경험이 전쟁이나 혁명과 비견될 경험인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전쟁이후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파편은 우리를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든다.요즘 눈에 띌 정도로 외부 활동이 줄어, 책을 꺼내드는 시간이 조금은 더 늘었다. 물론 ‘강의준비’ 같은 직업적인 목적이 아닌 독서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래도 아무 일 없는 저녁에 멍하니 TV를 틀어놓는 경우보다는 서가를 뒤적거리는 시간이 조금 더 늘었다. 인간들 서로가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 균열이 나게 되니,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독서는 분명 책을 매개로 한 나와의 대화이다. 책에는 보통 글자들만으로 지금 어디나 넘쳐나는 과잉된 이미지들이 존재하지 않은 까닭에 책을 읽고 있으면 머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스마트폰과 SNS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줄로 타인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던 인간이 그 연결에서 잠시 단절되어, 글자들이 주는 막막함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잠깐의 멈춤 뒤에 다시 그 글자들을 모아 만들어내는 세계를 창조해내기 시작하게 된다. 글자들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와 대화하며 생각의 세계가 구체화되는 것이다사실, 지금처럼 얼마나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재능이나 개성 같은 독특한 자질들을 모두 양화하여 대신하게 된 시대에 있어서, 이와 같이 나와의 대화 같이 고립된 독서나 소통은 그저 불가피한 이례의 상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이상 상상을 필요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초연결되어 저 멀리에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조차 얼마든지 억세스하거나 다운로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또 발생했다는 문자가 씁쓸해 아무도 만나지 않는 저녁에 습관처럼 TV를 켜거나 넷플릭스의 영화 목록을 뒤지고 뒤지기 보다는 서가에서 예전에 너무 열심히 읽어 마음 속에 구체적인 상상의 풍경들이 즐비했던 책을 다시 한 번 꺼내 읽는 일은 무엇보다 위안을 주는 일이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도 말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0-06-29

일상 속에서도 ‘나무아미타불’…청도 불령사(佛靈寺)

여기저기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는 효양산 초입에 차를 세우고 운동 삼아 비탈길을 오른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불령사가 보인다. 좋은 친구와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은 물리적인 거리조차 단축시킨다.불령사는 신라 선덕여왕(645년)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중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1912년 봉주 스님이 중창했지만 허물어져 1985년 지선 스님이 요사채와 산신각을 짓고 2000년에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가파른 계곡을 따라 오밀조밀 전각이 들어선 불령사는 시멘트 다리가 일주문인 셈이다. 낯선 소리에 순한 개 두 마리가 짖고 주지 스님이 소탈한 차림으로 나와 인사를 건네신다. 원효대사가 수행하던 동굴과 범바위, 절의 자랑거리인 전탑까지 하나하나 안내하며 설명해 주신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론이나 무아사상, 대승기신론, 요석공주의 지아비를 향한 사랑까지. 스님은 원효대사에 대한 존경심과 절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문양이 새겨진 벽돌로 만든 전탑을 보러 가는 산길에는 바람과 누워 있던 고요가 몸을 일으키고, 천불천탑이라 불리는 삼층탑은 지방문화재답게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서서 산새를 기다린다. 허리 굽혀 부처님과 전각 들이 새겨진 문양들을 찬찬히 살펴보지만 세월의 깊이는 얕고 푸르기만 하다.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는 벽돌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대부분 새로 제작하여 쌓은 것으로 3층이던 탑은 5층으로 변하고 2009년에 해체하여 다시 3층으로 보수하였다고 하니 그 원형이 궁금하다. 일제강점기 때 찍은 흑백 사진이 자꾸만 아른거리는데 탑은 맹숭한 낯빛으로 말이 없다.스님은 열흘 만에 맞는 불자인 우리가 반가운 모양이다. 털털한 입담과 말투로 스산한 추억을 재미있게도 풀어내신다. 흔들리며 흘러가는 계곡물처럼 스님의 말씀은 꾸밈없고 거침이 없다. 권위적이고 형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스님 같지 않은 스님의 말씀이 조용히 바위가 되었다가 시원한 폭포수가 되기도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전탑을 지키는 참나무들과 산새들도 귀를 세운다.“발 조심하세요! 발 조심!”무심코 발장난을 하는데 스님이 소리치신다. 놀라 발밑을 보니 개미떼가 무리지어 이동 중이다. 작은 생명까지 놓치지 않는 스님의 산중 생활이 꽃처럼 환하다. 아주 소소한 것이 스님을 다시 보게 만든다. 말씀은 투박하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부처님의 말씀 실천하며 살아가는 든든한 참나무 같은 분이리라.가난한 시절 뱀을 잡아 모은 돈으로 학교를 다녔다는 스님, 아직까지 기도를 할 때마다 기억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참회하게 된다는 서늘한 말씀들이 법문처럼 가슴에 꽂힌다. 나는 얼마만큼 나 자신도 모르는 죄를 짓고 살아왔을까? 꿀벌들이 참나무 가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느라 허공을 털어내는 명징한 소리들과 마을의 진돗개에게 물려 한쪽 다리를 절면서도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강아지 발걸음에 실린 설렘들, 삼성각 벽에 그려진 호랑이의 눈동자에 서려 있는 죽은 이의 영혼들까지, 고요한 절집에도 보이지 않는 관계들이 저마다 얽혀 활기차다.“젊음도 잠깐이에요. 나이들 수록 베풀며 살아야 돼요.” 격의 없이 던지는 스님의 말씀이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이 되어 내 안으로 떨어진다. 나도 모르게 몸과 입, 행동으로 쌓은 카르마들, 여전히 욕심에 휘둘려 부질없는 일에 집착하는 아둔함이 생채기를 낸다.대웅전 법당에서 백팔 배하는 나를 위해 스님은 일일이 법당 문들을 활짝 열어주시고 법구경까지 틀어주신다. ‘언제나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라. 남에게 베푸는 보시보다 더 큰 선은 없다’ 향기로운 법구경 말씀들이 숲과 계곡, 마음까지 촉촉하게 적신다. 불자가 아닌 친구는 참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나의 기도는 누군가의 수고로움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조낭희수필가하던 청소를 멈추고 시간을 내어주신 주지 스님, 흔쾌히 불령사까지 따라나서 준 친구가 소중한 탑이 되어 오늘을 밝힌다. 불령사가 불자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기를, 친구의 마음에도 법구경 한 구절이 바람처럼 머물다 가기를 기도한다. 속세를 등지며 살아간다고 해서 저절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있든 나의 마음이 결과를 만든다.부담 없이 찾아간 사찰에서 수행과 명상이 얼마큼 내 삶에 자리하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마음들, 화가 나거나 누군가를 미워하고 사랑하는 일조차,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마음을 제대로 관찰하며 살리라.“배가 고프면 가다가 매운탕 한 그릇 사먹고 가세요. 내 배를 채워준 물고기를 위해 나무아미타불 정도는 해주고, 뭐든 맛있게 먹으면 돼요.”농담처럼 던지는 스님의 말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생활 속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 정도는 놓치지 말고 살아가라, 염불을 읊다 보면 일상은 조금씩 변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리라. 붓다의 말씀대로 사는 일은 아주 쉬울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자주자주 길을 잃는다. 애석하게도.

2020-06-29

당근마켓

당근마켓은 요즘 가장 인기를 모으고 있는 중고거래 앱으로,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뜻이다.한때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가 독주하던 중고거래 시장에서 서비스 시작 5년 만에 월간 실 이용자 수(MAU) 800만명을 끌어모아 압도적인 1위를 하고 있다.김용현·김재현 공동대표가 카카오 재직 시절 접한 사내 거래 게시판에서 영감을 얻어 2015년 7월 창업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용인시 수지구에서 시작해 2018년 1월부터 전국 단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본격적인 성장은 지난 해부터였다. 2018년 8월만 해도 100만명 수준이었던 당근마켓 MAU는 1년도 되지 않아 3배로 늘어났고, 올해 4월엔 700만명을 넘겼다.현재 국내 중고거래 앱 중에서는 독보적인 1위, 커머스 앱 중에선 쿠팡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당근마켓의 가장 큰 장점은 ‘동네 기반 직거래’에서 오는 신뢰다. GPS 기반 지역 인증 후 거주지 기준 반경 2~6㎞ 안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제한한 것이 높은 소비자 신뢰로 돌아왔다.또 당근마켓의 경우 같은 동네에서 당사자 얼굴을 직접 보고 물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기존 택배거래에서 생길 수 있는 사기의 위험을 방지했다. 소위 ‘업자’라고 불리는 전국 단위 전문판매업자 거래를 공지능(AI)을 활용해 걸러낸 것도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당근마켓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동네생활’에선, 동네 숨은 맛집이나 믿을 만한 병원, 맛있는 반찬가게 등을 소소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당근마켓이 가까운 이웃 간 유용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동네 생활 플랫폼으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29

‘민족’과 ‘동맹’의 사이에서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2018년 9월 20일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서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우리민족’과 ‘민족자주’를 역설하면서 감격에 젖었다. 남북정상의 집무실 간에는 핫라인(hot line)이 연결되고, 개성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되었다. 북·미 정상회담도 세 차례나 있었으니 평화와 협력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고 천명하였다. 권정근 외무성국장은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 한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문대통령의 6·15연설에 대해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하면서 대북특사파견 요청을 “불손한 제안”이라고 즉각 거절했다. 심지어 옥류관 주방장까지 나서서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떨더니 한 일이 없다”고 조롱한다. 돌연 김정은이 대남군사행동을 유보하면서 우리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역할을 분담해서 ‘때리고 달래는’ 전형적인 ‘한국 길들이기’ 전략이다.동맹의 입장이 나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은 역효과를 낳는 추가 행위를 삼가라”고 경고하면서 “동맹인 한국과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특사가 미국을 방문해 공동대응을 협의했다. 하지만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신중하다. 북한의 군사도발이 미국을 겨냥할 경우 재선 가도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우선주의’를 역설하는 트럼프는 북한이 직접적으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한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최선이라는 정치적 계산이다. 게다가 최근에 발간된 볼턴(J. Bolton)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한국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민족도 동맹도 ‘대한민국이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 ‘존재의 가치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 ‘민족통일은 미래의 담론’이지만 ‘남북대치는 현재의 위기’이다. 현재를 지켜내지 못한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핵무기는 남북 간 비대칭전력의 핵심인데, 북한이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것은 동맹인 미국의 핵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유약한 이상주의’로서는 핵무장한 ‘강력한 현실주의’를 결코 이길 수 없다.따라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북핵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 즉 동맹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맹으로 현재를 지켜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족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만약 민족과 동맹이 충돌한다면 생존을 위해서 동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6·25전쟁의 교훈이며 비핵국가의 운명이다. ‘한반도 운전자’를 주장하는 문대통령의 운전이 서툴면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대통령은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운전해야 한다. 부디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하고 ‘장밋빛 환상’에서 조속히 깨어나기를 바란다.

2020-06-29

더 큰 안동,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쉼 없이 달린 10년

권영세안동시장2016년 2월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이전했다. 50만 안동인에게는 안동대호부의 영광을 되찾은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으며, 안동시의 수장으로 역사적인 대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돼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경북도청 이전에 따라 수도권과 남부경제권을 연결하는 국토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은 물론 경북 북부지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경북 중심도시로의 발전 동력을 갖추게 됐다.지역을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백신 산업을 내걸었으며, SK케미칼의 투자를 시작으로 바이오·백신 산업의 메카로 입지를 확고히 했다.일반 제조기업 하나 유치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내 최대 백신 기업인 SK케미칼, SK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3천억 원대의 투자를 끌어냈다. 각종 연구소·기업 유치, 백신 산업 기반 인프라 구축과 지역 전문 인력 육성 등 백신 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으로, 바이오·백신 산업이 지역 미래 먹거리 창출의 핵심이 될 것이다.안동 문화유산의 세계문화유산·기록문화유산 등재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2010년 하회마을 등재를 시작으로 2015년 유교책판 등재, 2018년 봉정사가 등재됐다. 지난해는 유례없이 도산·병산서원 2곳이 동시에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여기에 더해 유네스코 3대 카테고리 달성의 마지막 퍼즐인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가시권에 들어왔다.안동이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과 함께 안동 문화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안동 유무형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문화를 논하는 데 ‘안동’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지난 1월에는 5년간 1천억 원이 지역에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인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에 우리 시가 선정되는 경사스런 일도 있었다.관광거점도시 선정은 한국을 대표하는 안동의 유교문화 자원과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안동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등 문화·관광 정책이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전국의 유명 관광도시를 모두 제치고 선정되며, 안동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돼 정말 뿌듯했다. 지역의 문화·관광자원 활용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과도 긴밀히 협력해 내·외국인 모두가 가장 가보고 싶은 글로벌 관광도시로 만들어갈 계획이다.올해 ‘안동 대도약 10대 프로젝트’와 ‘안동형 일자리모델’을 발표하고, 3대문화권사업단지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보고회를 했다.‘안동 대도약 10대 프로젝트’에는 중부내륙선과 중앙선 복선 연결사업, HEMP기반 바이오산업 규제자유특구 지정, 생명그린밸리 안동 국가산업단지 등 관광거점도시를 견인할 과제들이 담았다. 아울러, ‘안동형 일자리 모델’로는 백신, 문화, AI 등 5대 미래전략과 20개 신산업을 발굴했다. 향후 10년간 가용재원의 10% 정도를 꾸준히 투입해 2030년까지 핵심 인력 1만 명, 지역특화 강소기업 100개, 청년벤처 100개, 중견기업 20개를 육성할 계획이다.3대문화권사업은 내년에 모두 완공되면 사업 단지와 함께 750m의 세계 최장 보행 현수교를 건립해 도산 권역을 아우르는 디오랜드(DO LAND)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대도약 10대 프로젝트는 그릇 역할을 하는 하드웨어 구축사업이고, 안동형 일자리 사업은 20개 신사업으로 그릇을 채우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2030년까지 인구 30만 명의 활력이 넘치는 도시, 기업하기 좋은 강소기업 중심의 첨단 AI도시, 그린컬쳐벨리를 표방하는 국제적인 관광 글로벌 도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안동시장으로 취임한 그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하며, 축산산업뿐만 아니라 지역 전반에 큰 타격을 입었고, 올해 2월에는 전국의 휩쓴 코로나19도 지역을 강타하며 위기를 맞았다.취임하자마자 맞은 구제역의 칼날은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19의 광풍은 매서웠다. 시민들과 공직자 모두 힘든 시기였고, 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안동시민들은 강했고, 공직자들은 제자리에서 묵묵히 싸워줬다. 안동인에게는 위기 때 당당히 맞서 함께 이겨내는 대동 DNA가 있다. 구제역 때도 그랬고, 코로나19도 극복하고 다시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2020-06-28

지역 호텔숙박업계의 브이(V)자 회복을 바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아직은 종식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외로부터의 입국자로 인한 확진자를 제외한다면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단지 록다운 상태에서 기업 간 거래를 포함한 실물 수요가 제약되었던 분야라면 이후 완전한 브이(V)자 회복까지는 장담하기 힘들겠지만 엘(L)자 회복과 같이 수요 자체가 낮아진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당연히 업태나 업종에 따라 회복되는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지만 그중에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분야도 분명히 있다. 그동안 교류하고 있던 다양한 모임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일수록 지금과 같이 속칭 혼밥, 혼술을 하며 홀로 지내야 했던 고통은 컸을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동안 자유롭게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관광이나 여행이 취미였던 사람들이라면 작용과 반작용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브이자 회복의 형태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여행객과 관광객이 증가함에 따라 여행사, 호텔, 숙박업소 등의 업황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다.이미 지난 5월 중국에서는 노동절의 5일 연휴를 맞이하여 국내 여행 건수가 1억1천500만 건으로 올라갔다. 우리나라 주요 항공사의 국내편 운항도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과 태국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완화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 이르러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태국, 홍콩 등과 같이 비교적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기 시작한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호텔업계에서는 이에 대비하기 위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기고 있던 것들을 전면 재검토하여 본격적인 코로나19 이후에 다가올 뉴노멀 시대에 적합한 호텔 서비스로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80개국에 영업망을 두고 있는 세계적인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업체인 미국의 존스랭라살(JLL·Jones Lang LaSalle)은 최근 서비스 분야의 최전선에 있는 호텔업계가 판데믹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발 빠른 진화를 시작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갑갑증을 겪던 여행자, 관광객들이 조금씩 몸을 들썩이기 시작한 시점에 맞추어 아시아지역 호텔업계들도 발 빠르게 서비스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고, 뉴노멀 시대에 어울리는 호텔로 진화하기 위해 호텔설계까지도 바꾸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존스랭라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호텔들의 공통적인 변화 사례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안전조치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 프런트와 뷔페 등과 같이 여러 숙박객이 밀집되기 쉬운 서비스 분야에는 투명한 아크릴수지를 이용한 칸막이를 설치하는 한편 호텔 바에서의 좌석 거리를 1미터 이상 간격을 두도록 조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뷔페식당에서는 손님들의 이동 경로 등과 연관되는 메뉴의 재배치, 비접촉을 보장하는 메뉴의 구성, 식당 테이블 등의 배치 조정 등 최대한 숙박객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특히 존스랭라살은 앞으로 호텔업계에서는 손님들 간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혼잡한 시간대에는 화물용 승강기를 손님용 승강기로 증편시킨다거나 클럽 라운지 면적의 확장, 그리고 주요 행사용 공간은 대형보다는 소규모 단체용으로 조정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아예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가구, 표면 소재 등도 청소나 소독이 손쉬운 코르크 등과 같은 항균성 소재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게다가 일일이 호텔 직원들과 대화가 필요했던 서비스부문에는 키오스크와 같이 셀프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바뀔 것으로 보았다. 실제 코로나19 경증환자가 투숙하였던 일본 도쿄의 호텔에서는 객실에 격리된 환자에 대한 룸서비스 제공 등에는 인형 로봇,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에서는 청소 로봇 등을 도입하였다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앞으로는 로봇은 물론 스마트소독 화장실, 객실 소독용 세균 감지 자외선 스캔 등 다양한 첨단기술의 도입도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이러한 움직임은 경북 지역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급호텔이 밀집된 경주 보문단지, 여름철이면 성수기를 맞이하는 울릉도는 물론이고 해수욕장과 연동되는 울진에서 영덕, 포항, 경주로 이어지는 경북 동해안 바닷가의 해수욕장과 연동성이 높은 상인들도 최대한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그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호텔업계는 가장 간절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던 지난 1월 중순 이후부터 최근까지 지역의 모든 업종에서 피해가 발생하였다. 그중에서도 호텔업계는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경북 동해안 지역 특급호텔의 지난 3월 신용카드매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98.4%, 기타 호텔은 마이너스 77.6%, 일반숙박업소는 마이너스 49.5%, 콘도도 마이너스 48.6%를 기록하며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뿐 아니라 호텔의 숙박객이 줄어들면서 호텔 로비를 비롯한 호텔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뷔페, 레스토랑, 명품취급점 등 대표적인 입주업체들도 비슷한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렇다면, 지금 지역의 호텔 숙박업계는 앞으로 관광객이 늘어나게 되면 저절로 당연히 브이자 회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답은 누구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조기에 움직이기 시작한 관광객들이 글로벌 호텔업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를 시도한 새로운 서비스와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지역 업체들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의 회복속도는 의외로 보이지 못할 우려도 있다. 회복속도는 그동안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있던 지역 호텔, 숙박, 관광 관련 업소들이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른 호텔업계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호응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어쩌면 기존의 경영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호텔 입구에서는 온도측정기를 설치하고, 호텔 객실에는 소독제나 일회용 마스크 정도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가진 여행객, 관광객들이 적어도 과거와 같이 코로나19 이전의 행동 양식과 생각으로 지역의 호텔, 숙박, 음식점 등을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경북 지역 관광산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지역에 방문객이 많이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기에 앞서 선행해야 할 과제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이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지역 호텔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철저한 방역과 검역체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염두에 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 다른 지역 호텔만큼의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형 호텔 서비스가 있는지 등이 재방문율을 높이는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호텔 객실이 들어차기만을 기다리기 전에 최근 특급호텔들의 진화에 주목하여 최대한 안전조치와 선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서비스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 준비가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브이자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6-28

‘북한 비핵화’…그 가혹한 희망고문

안재휘논설위원최근 확인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TK(대구·경북)의 여야 대권 주자들의 엇갈린 반응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은 “화해의 손길엔 적극 협력하되 도발은 강력히 응징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유승민 전 의원은 “북핵은 남한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 (문 대통령이) 북한에 굴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북한의 냉탕-온탕을 오가는 분탕질 바람에 6·25전쟁 70주년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지나갔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김여정이 앞장서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온갖 험구들을 쏟아내며 시작됐다. 남북 긴장 고조는 우리의 천문학적 수치의 혈세가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도하게 폭파하는 시점에 최대치로 끌어올려 졌었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북한은 모든 도발 책동을 돌연 중단했다. 과연 수령 1인 통치 독재국가의 전형적인 행태가 또다시 드러난 셈이다.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펴낸 자서전 한 권이 여론을 들쑤시고 있다. 그의 자서전 내용에 언급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종의 평가절하를 놓고 야당은 ‘그러면 그렇지’하는 심사로 내막을 밝히자고 파고드는 중이고, 여당은 볼턴을 잡놈 취급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볼턴의 주장을 종합하면, ‘북미 정상회담’은 애초부터 문재인 정권의 실속 없는 작품이고, 문 대통령이 중간자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뜻을 너무 낙관적으로 전달하는 바람에 파탄이 났다는 것이다.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문 대통령이 부득부득 갔다는 폭로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대목이다.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북핵 폐기’다. 우리 국민은 물론, 온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숙제는 ‘북한 비핵화’인데 그게 1인치도 진전되지 않았다. 북한은 핵을 완성할 시간을 넉넉하게 벌었고, 실질적 핵보유국이 돼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워졌다.굴종으로 유지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북한 비핵화’라는 희망고문에 순치된 국가안보와 무장해제 상태에 접어든 국민 정서는 대한민국의 존폐문제에 직결돼 있다. 이제 ‘북핵 폐기’는 환상으로 끝났고 ‘핵 균형’ 같은 수단만이 남게 된 형국이 아닌가 느껴진다.‘강력한 국방력’이나, ‘한미동맹 강화’를 말하면 무조건 수구꼴통 취급하는 진보 인사들의 편견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위정자들은 이제 국민을 ‘북한 비핵화’라는 희망고문 속에 더 이상 가두지 말아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말처럼 김정은은 핵을 폐기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게 분명하다. 힘으로 지키는 평화만이 참된 평화다. 상대방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낭만적 평화론은 백해무익할 따름이다. 김부겸의 말과 유승민의 말이 모두 ‘평화’를 염원한다는 차원에서 같은 말이었으면 좋겠다.

2020-06-28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는 천년고찰 인각사(麟角寺)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내에는 보물 428호인 보국국사탑과 비가 있다. 이 사찰이 더 유명한 것은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생애 마지막 5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삼국유사를 집필 완성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승려 일연은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로 출가해 40대에 대선사, 70대에는 국사로 봉해진다. 불교가 국교였던 당시 국가의 스승인 국사로 봉해진 것만으로 그의 종교적 위치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가 저술한 삼국유사는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현존의 고대사 책으로서는 최고의 가치가 있다.삼국사기가 신라, 고구려, 백제의 정사(正史)를 기록했다면 삼국유사는 3국의 야사(野史)를 수록한 서적으로 우리나라 고대사를 이해하는데 두 서적은 쌍벽을 이룬다. 특히 삼국유사에는 한국의 고대신화와 설화, 향가 등이 집대성돼 고대 민간역사를 이해하는 소중한 자료다.최근 군위군은 인각사가 위치한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삼국유사의 산실이자 삼국유사의 고장임을 더 널리 알리자는 의도다. 한 고장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행정 절차상 쉽지 않으나 군은 주민투표를 거쳐 압도적 찬성으로 면의 고유명칭을 변경키로 한 것이다. 주로 방향과 위치 등을 따져 붙이는 우리나라 읍면동 명칭 명명에 비해 용기 있는 결정이라 하겠다. 북면, 서면 등과 비교하면 훨씬 유래 있고 진취적 방식이다.국내서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가 있는 강원도 영월군이 2009년 김삿갓면으로 개명한 사례가 있다. 삼국유사면처럼 내 고장의 역사를 담은 마을 명칭이 더 많이 생겨나면 우리 고장 역사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28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가르침

김현욱 시인괴로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태. 또는 그런 느낌’이라고 나온다. 유의어가 재미있다. 쓰라림, 어려움, 고통, 고충, 아픔, 고초, 곤란, 고(苦)가 괴로움의 비슷한 말이다. 괴로움의 옛말은 ‘고모’, 준말은 ‘괴롬’이다. 한설야의 소설 ‘황혼’에 “괴롬 많은 그 길을 걸어갈 근기가 있을까?”라는 예문이 나온다.뜬금없이 괴로움 이야기를 꺼낸 건 얼마 전에 읽은 기사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30세대의 공황장애는 2015년 3만1천674명에서 2019년 6만1천401명으로 93.8% 증가했다고 한다. 우울증도 2015년 12만3천339명에서 2019년 22만3천71명으로 80.8% 늘었고, 조울증은 2015년 2만6천915명에서 2019년 3만8천825명으로 44.3% 느는 등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단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까봐 병원을 찾지 못하는 숨은 수까지 합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다.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그러한 상태를 우리는 ‘괴롭다’라고 한다. 통계만 놓고 보자면, 우리 주위에 괴로운 사람이 너무 많다. 질리언 웨어링의 사진 ‘나는 절망적이다’를 보면 말쑥한 양복차림의 청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고 서 있다. 누구라도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나는 절망적이다”라고 쓰여 있다. 어리둥절하다. 그의 밝은 모습과 그가 들고 서 있는 글귀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다. 사진작가 질리언 웨어링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은 같지만 겉모습과 속마음은 이토록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는가.나도 한때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움의 나날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받아들이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 아프다고 표현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아프면 드러내야 한다. 상처는 숨기면 곪는다. 곪고 곪으면 정말 방법이 없다. 도려내는 수밖에.그리고 가장 중요한 깨달음. 감각적 욕망을 향해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자기 자신을 소진하던, 어리석은 ‘나’를 이제야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아프고 괴로웠던 게 내 인생의 전화위복이었는지 모르겠다. 크게 아프면 크게 성장한다. 2천500년 전에 괴로움의 실체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유일한 길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 붓다의 수행과 깨달음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이 핵심이다.수많은 청년들이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감각적 욕망은 행복이 아니고 괴로움의 씨앗이다. 불교는 극락왕생이나 부처님 가피를 바라는 종교가 아니다.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삶이 괴롭다면,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시작하면 좋겠다.

2020-06-28

권위가 도전받는 세상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19세기 이탈리아의 의학자이자 범죄인류학의 창시자인 롬브로조는 ‘생래적 범죄인설’을 주장했다. 생래적 범죄인은 원시선조의 야만성이 격세 유전하여 후대에 나타나고 선천적인 범죄인이라고 주장했다. 생래적 범죄인은 환경에 관계없이 운명적으로 범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들은 예방과 교화가 불가능하므로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는 범죄학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사람의 두개골 형상을 관찰한 결과에서 착안했다고 한다.오랜 세월 범죄인을 접한 경험에 의하면 범죄꾼임을 얼굴에서 얼핏 읽게 된다. 특히 강도, 살인 같은 흉악범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면 롬브로조의 주장이 마냥 낡은 학설로 치부하기엔 자신이 없어진다.두상(頭相)을 보고 사람 됨됨이를 파악하는 것은 동양에서도 있었다. 삼국지에 촉나라 장수 가운데 위연이 유비에게 투항해 올 때 위연의 두상을 보고 제갈량이 그의 투항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위연의 뒤통수가 튀어나온 형상을 보고 그는 후일 배반을 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유비의 관대함으로 위연은 받아들여졌지만 결국에는 위연이 반란을 시도하였다. 이때 위연의 두상을 ‘반골(反骨)’이라 칭하였다. 반골은 세상의 일이나 권위 따위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거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인 권위나 방식, 관습 등에 맹종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비판과 반항을 일삼는 기질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왕조시대 궁중에서 후궁의 소생들이 태어나면 관상을 보아 반골이면 후일 모반을 할 가능성 있다며 제거했다는 설도 있다. 두상을 통해 범죄인이거나 배반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니 현대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일이다. 그럼에도 반골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시대를 초월하여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행동으로 자신과 가족에 대한 핍박으로 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면 그들의 처절했던 행동과 절규는 한 순간에 선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유독 굴곡 많은 역사를 지닌 우리는 반골 기질 사람들의 역사로 점철된 것 같다. 지나온 시절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출세를 하며 살던 세상이었다. 학창시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세상을 경영하던 시절이었다. 기존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한 사람들, 경영자의 지위를 타박하는 노조원들, 교장의 권위에 도전한 평교사들, 장군의 권위에 도전한 병사들, 검·경의 상명하복 지휘체계에 반기를 든 사람들 등등. 이들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중심으로만 집중되었던 권위가 파편화되어 비산하고 있다. 정당한 권위 행사가 주저되거나 포기되며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이념으로 채색되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체념이다.오랜 경험과 세상 지혜를 전수하려는 어른의 권위마저 없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밀려온다. 새로운 질서와 권위도 시간이 지나면 도전받을 것이다. ‘신(新)반골들로 세상이 또 다시 소용돌이치면 어쩌지?’꼰대의 기우가 아니길 빈다.

2020-06-28

소탐대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는 역사 속 사실 여부를 떠나 한 나라가 망했던 비극적 운명의 스토리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약 10년 동안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왔던 성곽이 트로이 목마 속에 숨겨졌던 군사에 의해 성문이 열리고 급기야 나라가 망하게 되는 트로이 비극과 유사한 고사가 중국에도 있다.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욕심 많은 촉왕의 심리를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혜왕은 그의 신하로 하여금 소를 조각하여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 넣고 ‘보석의 소’라 명명했다. 그리고 이를 촉왕에게 우호의 예물로 바칠 것이란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촉왕은 신하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보석의 소를 맞이하기 위해 백성을 동원해 길을 만들었다. 보석의 소가 온다는 날 그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직접 마중까지 나왔다. 보석의 소와 함께 숨어온 수만명의 진나라 병사에 의해 촉왕은 사로잡히게 된다.중국고사 소탐대실(小貪大失)은 보석의 소에서 유래했다. 무릇 작은 것에 현혹되어 큰 것을 놓치게 된다는 교훈의 뜻이다.세상의 일은 세옹지마(塞翁之馬)여서 사람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에 부닥친 일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바르게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군위군과 의성군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지를 둘러싸고 양보 없는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이미 주민투표를 끝낸 상황에서 더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의성군과 군민의 뜻이 아니라는 군위군의 주장이 맞붙어 신공항 사업이 자칫 물 건너갈 판이다. 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을 위한 대의적 사업이다. 지역의 명분만을 쫓다가 사업 자체가 무산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소탐대실하는 것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25

포항지진 피해구제심의위원회 활동에 거는 기대

공원식포항11·15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 4월 1일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어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5월 29일 출범해 활동을 벌이고 있다.정세균 국무총리는 피해구제심의위원 임명식에서 ‘포항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고 조속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해 줄 위원회의 역할을 주문했다.첫째, 국민 눈높이에 맞고 지진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와 주민들께서도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피해구제 기준을 마련하고, 둘째,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피해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사·심의·의결 과정에서 지역의 목소리에도 충분히 귀 기울이며, 셋째, 피해조사, 피해구제 및 지원대책 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잘 청취하고 긴밀하게 소통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마지막으로, 포항시의 경제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원대책 마련 등에도 위원회의 역량을 함께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총리의 이러한 당부가 일회성이나 형식적인 발언이 아니라 총리를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또한,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피해주민들의 아픈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살펴 주어야 한다. 아울러 포항시의 경제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원대책 마련 등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은 만큼 배상해 주어야 한다는 포항지진특별법 취지와 정신에 맞게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 주민들이 제대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피해구제심의위원들 중에는 2명이 포항시에서 추천한 포항출신 변호사 2명이 있다. 그렇지만 4명은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인 관계로 정부 방침만 강조하고 피해주민들의 아픈 마음을 잘 헤아려서 배상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걱정이 되기도 한다.자칫 법의 해석을 너무 경직되게 하여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은 만큼 배상해 주어야 한다는 포항지진특별법 취지와 정신에 어긋나게 업무를 처리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또한, 지진 피해 주민들로서는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소명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피해주민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깊이 헤아리고 살펴서 피해를 입은 사실들을 상세하고 소상하게 입증하고 소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는다면 피해주민들은 불만이 쌓이고 불신이 쌓여서 피해구제심의위원회의 심의 결정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아무쪼록 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피해 주민들에 대한 피해 보전에 있어서 재산적, 정신적 피해와 그들의 아픈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살펴서 피해 입은 만큼 배상해 주어야 한다는 포항지진특별법 취지와 정신에 맞게 한치의 오차도 없기를 피해주민들과 함께 기대해 본다.

2020-06-25

‘국뽕’

국뽕, 국뽕 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다. 신조어 같은데, 뭘까? ‘나라 국(國)’ 자에 ‘뽕’은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 ‘히로뽕’의 ‘뽕’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니까 나라 사랑이 지나쳐 ‘뽕’을 맞은 것 같은 상태에 다다른 것을 가리켜 ‘국뽕’이라 하는가 보다.요즘 유튜브에 이른바 ‘국뽕’ 방송들이 넘쳐나는 추세다. 일본에 ‘혐한’이라 해서 ‘국뽕’의 왜곡된 형태가 판을 치고 있는데, 한국에도 반일, 염일 감정에 호소하는 방송이 한둘 아니다. 코로나19 유행에 ‘K방역’으로 성공을 거두다 보니 웬만한 선진국도 ‘우리’만 못하다는 인식도 확산되는 추세다.과연 나라나 민족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면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나라와 민족이라는 ‘대집합’ 공동체의 ‘타자’로 대상화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편과 고통을 느끼지만 그래도 이 ‘집합’의 논리는 강하고 커서 함부로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 대일협력을 변호하고 일본에 의한 강점을 근대화의 필요악이었다 강변하는 ‘태극기 부대’도 시발점은 나라사랑, 민족 사랑에 있고, 여기에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 정권의 민족 파괴에 대한 ‘적대감’이 바탕이 되어 있다.심지어는 1980년대의 이른바 진보 학생 운동도 ‘애국’을 내세워 ‘매국’ 세력을 타매하는 애국주의를 내세웠고, 지금도 이런 경향은 여전하다고도 할 수 있다. 진보와 민족 또는 국가라는 집합적 논리를 결합시킨 이 한국적 사상은 현실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을 형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사실, 한국을 둘러싼 모든 나라들이 지금 ‘국뽕’ 몸살을 앓는 중이다. 일본은 아베의 극우민족주의, 중국은 시진핑의 중국 ‘대민족’주의, 미국은 트럼프의 배타적 미국 제일주의, 러시아는 푸틴 식 제왕주의 등등, 그리고 북한 역시 수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조국을 옹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국뽕’ 대세 속에는 불가피하게 사회 현실에 대한 허위적 해석과 은폐 같은 것들이 섞여 들게 마련이고, 특히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혐오, 질시, 비하 같은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혼재되게 마련이다.한국은 어떠냐 하면 우리 역시 ‘국뽕’ 체질을 남들 못지 않게 내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바야흐로 이 ‘국뽕’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감에 따라 ‘급고조’ 중이다. 돌아보면 숱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우리들이다.나라사랑은 좋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소수자들, 하위 계층 사람들은 더 많은 배려를 받아야 한다. 그들 없는 국가는 허위의 이념일 뿐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6-25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무척 재미있는 영화 제목이었다.과거에는 사랑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랑한다, 정도의 연애감정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거꾸로 과거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다라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고가 판을 치고 있다.그런데 반대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정치적 사회적 관점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필자는 1965년 그 유명한 ‘무즙파동’중학입시의 피해자 중에 하나이다. 그 파동은 결국 중학교 입시 폐지에 이어 고교입시 폐지까지 이어졌다. 그때는 과도한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입시준비가 건강과 창의력을 해친다는 이유가 중교 입시페지 및 평준화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 각종 특목고, 과학고, 자율고 설치 등은 차별화된 교육이 엘리트를 길러내고 노벨상 같은 특출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평준화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는 생각이었다.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특목고, 자율고 등의 특성화 고교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특성화 고교가 평등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인데 수험생들 입장에서 보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의 전형이다. 언제는 엘리트를 기르는 차별화된 교육은 이렇게 여러 번의 부침을 거듭하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반복했다.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의 발언이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윤 총장은 살아 있는 정권의 비리도 과감히 파헤칠 멋지고 강직한 검사라는 주장과 검찰개혁에 방해가 되는 검사라는 주장이 맞선다.검사 윤석열은 2013년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당시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어 지금 여권인 당시 야권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그래서 대구 고검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당시 국정 감사 증인으로 나와서 윤석열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당시 야권 즉 지금의 여권 인사들에게 “멋쟁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이다.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 윤석열 검사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국정원 수사와 국정농단 특검 활약으로 보수진영에 깊은 아픔을 주어 진보진영의 찬사를 받던 인물이었기에 검찰총장 임명 당시 여권과 진보진영에서는 “정의로운 검찰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격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지금 여당에서는 그토록 그들이 칭찬하던 윤 총장에 대한 교체 압박을 하고 있다.윤 총장을 향해 쏟아지던 여권의 찬사는 ‘검찰개혁 방해 정치검사’라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검사 윤석열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그때도 권력에 굴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권 정치인들에게는 윤석열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것이다. “내 입맛에 맞으면 맞고 아니면 틀린다”이다. 이런 정치적 풍토에서는 법조계를 떠나고 싶다고 변호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낙향한 변호사 친구가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2020-06-25

상기하자 6·25

김병래시조시인‘아아 잊으랴 ,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박두진 시인이 지은 이 노랫말을 곰곰이 새겨 보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하고 원통했던가 짐작이 간다. 이 피맺힌 원한의 노래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금지곡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가사를 바꾸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밥술이나 먹고 살만해 졌다고 과거를 깡그리 왜곡하고 폄훼하는 어리석음으로 얻는 것이 뭐겠는가.상기하자 6·25!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에 외치던 구호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잊지 말자는 것인데, 상존하는 북쪽의 위협을 환기시켜 민심을 단속하려는 구호였다. 그런데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금기시되고 잊혀졌다. 수백만의 사상자가 나고 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한 민족 최대의 비극을 과연 그렇게 잊어버려도 되는 것일까?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6·25 동족상잔은 김일성의 야욕이 아니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참극이었다. 민족을 위하는 생각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어찌 동족의 가슴에다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도발할 수 있겠는가.동족을 죽인 6·25전쟁을 강대국들의 대리전이니 뭐니 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있다. 남이 시킨다고 부모 형제를 죽여 놓고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걸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남이 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김일성이가 전쟁을 허락해 달라고 스탈린을 찾아가서 애걸을 하지 않았던가. 강대국들에 의해 나라가 갈라졌으면 민족이 합심으로 다시 뭉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어떻게 동족상잔의 구실과 핑계가 된단 말인가.김일성이 적화통일 야욕으로 전쟁을 도발한지 70주년이 되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6·25전쟁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고 거듭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은 천만 번 부관참시를 한들 만분지일도 풀리지 않을 원한일진대. 남북을 막론하고 전범 김일성을 호도하고 비호하는 자들은 모두가 민족의 반역자들이다. 투철한 반공정신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헐벗고 굶주린 오합지졸이었던 국민들을 결집시킨 구심력이었다. 누가 사악하고 해괴한 논리로 반공정신을 폄훼하는가. 공산주의는 수천만 명을 숙청 살상하고도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반공의 정치적 악용으로 희생자가 없지 않았다 한들 그것이 어찌 반공의 탓인가.무오류 순백주의나 원리주의만으로 된 역사란 있을 수가 없다. 패망하지 않고 번영하였으면 성공한 역사요 자랑할 만한 역사인 것이다. 반공과 개발독재가 아니었으면 우리도 북한 꼴이 되었거나 중구난방 분쟁이나 일삼다가 후진국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의 망령이 들린 비뚤어진 좌파들에겐 이런 말인들 먹힐까마는, 김일성 일당이 자행한 천인공노할 동족살상의 만행을 왜곡하거나 호도하는 자들은 수백만 원혼들의 저주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2020-06-25

학교와 역사의 의미를 잃어가는 아이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가 지났다. 시간은 동지(冬至)로 출발했다. 낮과 밤의 교대가 시작되었다.하지는 “모내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며, 더불어 늦보리, 햇감자와 햇마늘을 수확하고 고추밭 김매기, 늦콩 파종 등으로 논밭의 농사가 몰아쳐서 무척 바쁜 시기”이다.“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라는 속담처럼 자연의 순리를 아는 농부들은 자연이 더 내어준 낮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여름 뙤약볕도 잊고 일에 열중이다.코로나19에 갇힌 인간 사회와는 다르게 자연은 절기의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농부들의 모습이 건강한 이유는 바로 자연의 섭리를 지켜 살기 때문이다. 그들의 땀방울이 키운 농작물이 세상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지사에도 농부들의 자세는 다르다. 할 일을 다 한 농부들은 겸손하다. 그 겸손에 자연은 풍성한 결실로 답을 한다.자연과 달리 우리 사회는 부자연스러움의 연속이다. 언제부터 그런 모습이 낯선 모습이 아니게 되었지만, 최근에 북쪽이 보여준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민족상잔 비극의 날을 얼마 앞두고 이루어진 만행에 어이는 더 없다.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남쪽의 모습이다. 북쪽에 대해서는 왜 저리도 마음이 넓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명 북쪽이 한 행동은 일방적인 폭거다. 그런 범죄적 폭거에 남쪽은 유감이라고만 하고 있다. 이런 남쪽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한국 전쟁에 대한 일선 학교의 교육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역시나 아닐까 한국 전쟁에 관한 내용은 부실 그 자체였다. 일본 정부의 역사 교육 왜곡으로 일본 학생들은 일제감정기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모른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역사 교육이라면 조만간 한국 전쟁의 주범을 우리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뭐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 의미는 변질한다. 얼마 전 필자는 한 정당이 내건 가로 펼침막을 보고 매우 놀랐다. 띄어쓰기도 잘못된 그곳엔 “평화! 멈춰서는 안됩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이미 역사 속 인물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이 이미지로 새겨져 있었다.우리 현대 역사에는 아픈 숫자들이 많다. 그중 필자가 느끼는 가장 아픈 숫자는 6·25이다.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의 뜻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뜻이 퇴색되고 사라져 가고 있다. 평화도 좋지만 최소한의 양심적 사과부터 받으면 어떨까!한국 전쟁 추모 주간에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의미 없이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수업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지금 격주로 진행되고 있는 중고등학교 온라인 수업을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선생님, 제 친구들은 등교 수업 주간에 일부러 가정학습 내고 학교 안 와요. 그리고 저희 반 대부분 학생이 학원 다녀요. 차라리 학교 다니지 말고 학원만 다니겠다고 하는 친구도 많이 있어요. 선생님 이게 학교예요.”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제자의 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온라인 학습인지, 정말 과제 학습형 수업이 학교 수업인지 묻고 싶다. 학교가 없어질 날이 눈앞에 보인다.

2020-06-24

6·25와 남북관계

김규종 경북대 교수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어언 70년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은 귀동냥이나 관념으로만 6·25를 체험할 뿐이다. 4·19 시민혁명도, 5·18 광주항쟁도 60년, 40년 전의 일이니 무슨 말을 덧대겠는가. 신속한 시간의 흐름에 무연히 입을 벌릴 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되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냉각되고 있어서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전쟁의 상흔(傷痕)을 딛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도 대한민국은 30-50클럽에 가입하는 놀라운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여전히 어둡기 그지없다. 2016년부터 실행된 미국의 대북제재가 4년 이상 유지되었고,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북한경제는 오리무중 첩첩산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그런 와중에 중국은 북한에 쌀 60만 톤과 옥수수 20만 톤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끈다.2018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북한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군중을 상대로 대중연설을 한 것은 거대한 사변으로 기억된다. 당시 남북한 8천만 민중은 전쟁과 대립, 갈등과 알력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남북화합의 마당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2019년 6월 30일 남북과 북미 정상이 손에 손잡고 판문점에서 회동함으로써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염원은 현실로 현현하는 것으로 보였다.화해 분위기로 달리던 남북관계는 미국의 대북제재 연장과 탈북자를 비롯한 일부 단체의 무분별한 대북전단 살포, 날로 가중되는 북한의 경제난 등으로 악화하게 된다. 그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매우 엄중한 남북관계를 보고 있다. 통일부 장관의 사임에 이어 외교 안보 사령탑의 전면적인 교체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목숨 걸고 남북과 북미대화 복원을 성사시켜야 할 시점이다.아무리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대체(代替) 불가능한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앗아가는 전쟁의 참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간첩 사건 이후 남과 북이 어떻게 갈등했는지 보여준다.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김신조 일당에 맞서 박정희는 주석궁을 급습해서 김일성의 목을 따오도록 684부대를 신설한다. 허구와 현실이 공존한다지만,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이제라도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위기상황의 근본적인 원인과 진행과정 및 대응자세를 숙고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사태가 꼬여서 어떤 계기로 이토록 악화하였는지, 그것부터 냉정히 살펴봐야 한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무조건의 평화와 대화의 원칙 확인이다. 일부 야권에서 구두선(口頭禪)처럼 주장하는 핵무장이나 무력을 통한 대북대응은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남북의 갈등과 위기상황은 일본의 아베와 우익세력,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볼턴, 트럼프, 폼페이오 같은 자들이 기대하고 획책하는 최종지점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020-06-24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며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시간은 찰나의 봄을 지나 푸른 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계절은 이렇게 변화를 주는데, 달갑지 않게 다가온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형태를 많이 바꾸어놓았다. 텅 빈 베드로광장, 한산한 거리, 비어 있는 학교 운동장, 그 빈 공간을 마주보며 마음이 아프다. 빈 무덤! 그곳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얼마나 공허했을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분의 시신도 없어진 빈 무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마주하며 가슴이 얼마나 헛헛했을까.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병고와 가난이다”라고 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인데, 왜 그는 이런 말을 하였을까. 먹고 살기 위하여 더 가지기 위하여 바빠 본질적인 것을 놓치는 무한질주의 현실에서 가난과 고통은 삶의 브레이크와 같다고 할 것이다. 즉 그것은 다시금 본질,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한다.도공들은 정성껏 준비한 그릇과 항아리들을 불가마에 넣는다. 그것들이 높은 온도의 불길에 예상도 못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여 뛰어난 작품이 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찌부러지기도 한다. 고난과 실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고난에 맞을 용기를 청하자.예수님은 고별사에서 고난에 맞을 용기를 갖게 하셨을 뿐 아니라 평화를 얻게도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떠남, 그 빈자리에 오실 성령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제자공동체에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낙원을 되찾게 되고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게 된다. 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 또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 주신다.”헬렌 켈러는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다만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할 뿐이다.”라고 했다. 닫힌 현실의 문만을 바라보고 있지 말고 주님께서 열어주신 부활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청하자.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새로운 만남을 준비시키시고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2020-06-24

아, 20학번!

장규열 한동대 교수대학입시가 사람잡는다. 수험생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이 비상이다. 원하는 대학에만 들어가면 세상이 바뀔 모양이다. 젊은 시절 사서도 할 고생이라 여기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참고 견디며 어려운 시간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신입생들을 맞아 한 학기를 보냈다. 그런데 공허하다.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은 아직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하였다. 문제가 많다는 신입생환영회는 구경도 못했다. 대학 강의실은 고등학교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교수님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같은 과 동기들은 모두 어디서 왔을까.코로나19가 질기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대학들이 몸살이다. 온라인강의로 한 학기를 보냈지만 다음 학기는 어떨 것인지 아직 모른다. 교수들이 대학지성을 길러야 하는데 영락없는 지식장사꾼이 되어 자괴감으로 한가득이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이런 날이 올 것으로 알기는 했지만 이렇게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대면 강의로 만나는 교수와 학생에게 소통과 교감은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쌍방향소통이 가능하지만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나누는 대화와는 비교도 안 된다. 가족에게 집이 필요하듯이 대학에도 ‘장소’가 있어야 한다. 온라인콘텐츠로서 강의가 주목받지만 그것으로 대학을 완성할 수는 없다.온라인 소통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는다. 강의와 회의, 업무와 협력을 만나지 않고도 이렇게 광범위하게 할 수 있어 다행이긴 하다. 위기 가운데 교육과 업무가 끊이지 않고 진행되지 않는가. 새로운 발견이자 신통한 깨우침이다. 건물과 장소의 의미를 여러 방향에서 다시 생각한다. 수요가 줄면 부동산의 가치도 다시 평가되지 않을까. 교육공간과 업무공간은 이미 다시 바라보는 중이다. 강의의 온라인화는 가속될 전망이다. 기술의 진보로 소통과 교감이 보완되면서 콘텐츠의 심도가 유지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갈 터이다. 강의실의 명강의는 사이버공간으로 옮겨오지 않을까.디지털원주민(Digital natives)으로 태어난 올해 대학신입생들은 디지털시대의 본격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앞선 세대가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는 처음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낯선 상황을 함께 겪으며 헤쳐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게 아닌가. 세월호 사건 탓에 수학여행도 자제했었는데 오늘은 코로나19를 겪는다. 그 사이에는 대통령이 물러났던 촛불혁명도 보았다. 강고했던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새로운 기술과 질서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세상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들 가운데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세대가 되지 않을까. 정답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할 줄 아는 첫 세대가 되지 않을까.20학번들을 만나보고 싶다. 오늘은 어렵고 안타깝지만, 그대들에겐 거역할 수 없는 미래가 있다. 못 만나는 동안에도 열심히 갈고닦아 여러분의 내일을 준비하기 바란다. 온라인으로라도 길이 닿아 소통에 이른다면 기꺼이 함께 할 선배들이 있다. 20학번, 파이팅!

2020-06-24

피싱주의보

피싱(phishing)은 컴퓨터에서 전자우편 또는 메신저를 사용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또는 기업이 보낸 메시지인 것처럼 가장해 비밀번호 및 신용카드 정보와 같이 기밀을 요하는 정보를 부정하게 얻으려는 행위를 말한다.피싱(phishing)이란 용어는 사적 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의 합성어다. 보이스피싱은 2000년대 초반에 대만에서 시작돼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지역으로 확산됐다.보이스피싱은 본부와 콜센터, 인출 팀, 환전·송금 팀, 계좌모집 팀 등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움직이는 조직형·지능형 범죄다.사기수법이 날로 진화해 연령, 직업, 계층과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사기범이 미리 확보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언급하거나, 정보유출, 해킹사고 등 사회적 이슈를 내세우며 치밀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SNS)의 발달에 따라 전화 대신 메신저를 이용한 메신저피싱도 나타났다.메신저피싱은 다른 사람의 인터넷 메신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로그인한 후 이미 등록돼 있던 가족, 친구 등 지인에게 1:1 대화 또는 쪽지 등을 보내 치료비, 교통사고 합의금 등 긴급 자금을 요청하고, 이에 피해자가 속아 송금하면 이를 가로채는 사기 수법이다.가족이나 지인이 메신저로 급하게 송금을 요구할 경우 반드시 전화를 걸어 송금사실을 추가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가족과 지인외의 타인 계좌로 송금하지 말고, 출처가 불분명한 이메일과 문자, URL주소는 삭제해야 한다. 메신저 비밀번호도 정기적으로 변경해 스스로 사기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24

우리집 잡초

윤영대수필가6월 초에는 집안에 큰일이 있어서 시골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시골이라지만 포항시 북구 기계면 외곽에 마음의 쉼터로 마련한 조용한 한옥이다. 마당은 잔디가 곱게 깔렸고 담을 따라 아름드리 돌로 아름답게 둘러싼 작은 화단에는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어저께 비가 온 후, 단오날도 다가오는지라 마음도 정리하고 집도 살필 겸 갔었다. 더위가 성큼 온 듯한 날씨에 읍내를 지나 작고 조용한 마을의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은 잡초들의 환영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 끝 내가 손수 만든 나지막한 대문 앞에 서니 빨간 줄장미와 분홍색 찔레꽃이 반긴다. 마당에 들어서면 앞뜰의 소나무 순은 쑥 자라있고 집 뒤의 뽕나무, 대나무들이 엄청난 잎새들을 자랑(?)하며 지붕을 덮고 있다. 차를 마당 한편에 세우고 제일 걱정이었던 채소밭부터 살피니 다행히 고추와 상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 취미 삼아 일군 서너 평 정도의 밭에 비료도 많이 주지 않았는데 잘 자라주어 고마웠다. 그런데 밭이랑에는 흙이 보이지 않고 무언가 풀들이 가득하다. 가까이 가보니 채소밭의 골칫거리 쇠비름과 바랭이가 신나게 번지고 있었다. 아! 이놈들부터 뽑아야겠다 싶어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부터는 잡초와의 전투다.우선 고추밭 이랑부터 호미를 들고 들어가 낮게 기어 다니는 쇠비름을 뽑았다. 비 온 뒤라 쉽게 뽑혔다. 한 소쿠리 정도 뽑아버리려니 작고 두툼한 잎과 튼실한 줄기가 어렸을 때의 밥상이 생각난다. 돼지풀이라고 하는 쇠비름은 ‘밭에서 나는 생선’이라 할 만큼 오메가3가 풍부하여 많이 먹으면 생명이 길어진다고 장명초(長命草)라고 한단다. 옛날에는 봄여름 나물 무침으로 먹었지만 지금 우리 집에는 아직 못 먹는 잡초이려니…. 또 종기 치료에도 좋고 끓인 물을 바르면 습진과 무좀에도 좋다고 하여 약으로 보관하려 하다가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바로 옆에는 맑은 햇살을 받아서인지 상추가 풍성하게 잎을 펼치고 있어 아내가 즐겁게 한 잎 한 잎 따고 난 후, 나는 고랑 사이에서 줄기의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랭이를 뽑았다. 마당 잔디 사이에 가끔 듬성듬성 나 있는 것은 잘 뽑히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푸석한 밭 흙에서는 쉽게 뽑혀 다행이다. 그야말로 잡초의 대명사인 바랭이는 한국 원산인 한해살이풀로 가축의 사료로 쓰이지만 눈과 귀를 밝게 하고(明耳目) 폐를 맑게 하는 약재로도 쓰인다고 한다.허리 굽혀 땀 흘려 다 뽑고 나서 좀 쉬려고 마루에 앉으니, 앞쪽 화단의 낮은 키 나무들 사이에 튼실한 줄기와 거친 잎 위에 핀 노란색과 보라색 꽃이 눈에 들어온다. 몸통은 닮고 얼굴은 다른 엉컹퀴와 방가지똥이다. 꽃은 둘 다 수수하게 예쁘고 잎에는 가시가 있다. 예쁜 자주색 꽃을 피운 엉컹퀴는 잎의 가시에 찔리고 고약한 느낌이 나는 이름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잎도 줄기도 비슷하고 가시가 있는 방가지똥은 민들레와 닮은 노란색 꽃을 야생화 사진을 찾아보고 이름을 알았다. 또 ‘피를 멈추고 엉기게 하는 풀’ 엉컹퀴는 줄기 속이 차 있고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관절염에 좋은 약용으로 쓰이며, 방가지똥의 줄기는 비어있고 어린잎은 역시 나물로 먹고 간에 좋은 약재로 쓴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화단의 모과나무 앞쪽에는 뽑히지 않고 쭉쭉 자라고 있는 참나리 한 무리가 있다. 점박이 주황색 꽃잎을 뒤로 말아 재껴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 백합 닮았고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기에 야생화의 자격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렇듯 텃밭에 성가신 잡초도 화단에 제멋대로 자리 잡는 야생화도 깨끗한 정원에는 필요 없는 식물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몸을 살리는 유용한 약재라고 하니 쓸모없는 풀과 꽃들에게도 각자의 존재 가치가 있으리라.골목 안쪽부터 집 안뜰까지 자라는 돌나물-내 어릴 때는 돈나물이라 했다- 은 봄에 뜯어 생나물로 무쳐 먹었고, 화단 귀퉁이에서 무릎까지 자란 인진쑥은 한 움큼 잘라서 묶어 황토방 벽에 걸어두었다. 향기도 있지만 벌레들이 싫어한단다. 뽑아내는 잡초들도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그들이 품고 있는 약용으로서의 가치로 보면 모두 소중하다. 나의 시골집 마당은 잡초들로 가득한 작은 한약재 텃밭이다.

2020-06-24

좋은 사람

공자와 자공의 수많은 대화 중 ‘좋은 사람’에 관한 부분은 제법 회자 됩니다.자공이 묻습니다.“마을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 아니다.”“마을 사람이 다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좋은 스승답게 공자님 화법은 에둘러 갑니다. 곧장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두어 번 호흡을 가다듬을 여지를 줍니다. 우선, 공자님이 말씀하신 좋은 사람 아닌 것에 대해 짚어봅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야합에 물들었을 수 있고, 모든 이가 싫어하는 대상이라면 실없이 굴어 신뢰를 잃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 아닌 것이 맞습니다.좋은 사람 아닌 것을 예시로 들면서, 공자가 정의한 좋은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의롭지 못한 이들이 미워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부조리 앞에서 단호하게 비타협을 실천할 것이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사심 없이 공정함을 논할 것입니다. 공자의 ‘좋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참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이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착한 사람은 좋아할 것이지만, 나쁜 사람은 미워할 것이 자명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나쁘게 말할 리 없고, 나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을 좋게 말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못된 사람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부정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공자가 정의내린 좋은 사람이 되거나, 그런 대상을 만나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시각각 타협을 종용 받고, 공정함 따위는 버리라고 재촉 당합니다.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을 꿈꾸기는커녕, 비겁함을 무기삼아 조금씩 나쁘게 살아가는 편리를 택합니다. 좋은 사람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은 철학적 이상으로 새길 수는 있으되, 현실에서 접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애초에 좋은 사람, 운운하면서 규정을 지으려고 한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그러한 판단은 하지 않을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좋은 물건은 그냥 좋은 것이고, 좋은 사람은 마냥 좋은 것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챙기고 싶은 마음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심리적인 호응 관계에 기반한 지극히 감정적인 반응 체계니까요. 분명히 좋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없어야 그 대상을 좋은 사람의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좋은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마음에서 자주 불러내는 일입니다. 좋은 사람은 정의 내리는 대상이 아니라 곁에 있음을 자각하는 거울 같은 존재니까요.많은 곁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감히 따라갈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정서적 감성과 예술적 감각을 지닌 다정한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따뜻함과 성실함을 접하면서 세상엔 좋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고 반성합니다.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음나무 장아찌가 잘 익었다고 누군가가 집 앞까지 배달해주고 갑니다. 새 집에 어울릴 거라며 오르골과 스노우볼을 놓고 가는 이도 있습니다. 며칠 앓았다는 것을 안 누군가는 죽 쿠폰을 전송해 옵니다. 천사 이름표를 단 것도 모자라 긍정의 에너지로 세상을 가꾸는 이들입니다. 처방전 없이도 받을 수 있는 명약이자, 예약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명의 같은 존재들. 울컥해집니다. 제 진심을 다 표현하기엔 오글거리고 그 마음을 다 갚기엔 아득하기만 합니다. 제대로 된 보답조차 없이 다만 오래토록 좋아할 뿐입니다. 은근히 까다롭고 대놓고 급한 제 곁에 훈풍 같은 여운이라니요.김살로메소설가좋은 것과 싫은 것에는 실체적 결론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호불호가 있을 따름이지요. 점점이 떠있는 저 부표처럼 사람들은 닮은 듯 다른 듯 제 하루를 표류합니다. 그 단독자의 삶이 서로 엮여있음을 느끼는 때가 바로 여운을 맛볼 때입니다. 이런 날이면 공자님의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를 제 식으로 바꿔봅니다. 꿈속에서 공자의 제자가 된 누군가가 묻습니다.“마을 사람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본받으려 하기 때문이다.”아뿔싸!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가 없는 줄 알았는데, 공자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2020-06-24

바이러스가 소환한 미래세상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비대면(Contact-free)’이 요즘 세계 IT 연구와 산업계의 큰 화두다. 비대면이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 상호작용의 방식을 의미하는데, 온라인 쇼핑과 로봇 배송을 비롯하여 원격근무, 원격학습, 원격의료,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샵스트리밍(Shopstreaming) 같은 가상경험경제가 대표적이다. 기술적으로는 가상현실, IoT, 센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등 소위 ‘4차산업혁명기술’이 총동원되어야 실현될 수 있다.바이러스 이전에도 원격, 온라인, 무인화, 자동화 등의 이름으로 선보여진 ‘사촌’ 개념들이 많았지만 대세가 되지는 못했다. 대면 때보다 비언어적 소통이 차단된다는 한계로, 소비자 불만을 우려한 기업들이 대면적 상호작용을 더 선호하여 항상 보조적인 수단 역할에 그쳤다. 비대면은 이제 옷, 신발처럼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 마스크처럼 포스트 팬데믹 시대 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 산업경쟁력의 핵심으로 등극한 것이다.빠른 종식을 기다리는 모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가까운 시일 내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멈춰버린 경제가 저절로 회복될 거라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인간성의 상징인 사람과의 교류가 건강과 생명의 위협이 되어버린 지금, ‘비대면’이 구성원과 고객의 불안감을 극복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비대면 상황에서도 생산성을 유지하여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화해 줄 포스트 팬데믹 시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사람 대하기가 불안해진 마음이 앞당겨 소환한 미래세상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최근 몇 달 우리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애써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기업에서는 선택의 여지 없이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생존을 위해 업무방식, 조직구조, 근무장소와 시간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비즈니스의 상징인 회의와 출장은 크게 줄었고, 이메일, SNS, 화상통화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업무가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재택근무나 비대면 업무가 가능한 직업은 전체 직업의 27%에 불과하다고 한다. 학교, 공연장, 소상공인, 관광지, 병원, 복지시설 등 대면접촉과 현장성이 요구되는 그 외 대다수 사업체는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사악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부터 먼저 공격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지탱해 오던 선량한 사람들을 재난 전선의 최전방으로 밀어내었다. 그러니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의 ‘비대면’ 활성화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들부터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미래기술은 꼭 필요한데 아직 실현되지 않은 바람직한 모습을 떠올리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어머니가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바이러스의 위험 속으로 나가시지 않아도 되는 세상, 집 거실에서 가상현실 안경을 끼고 동네 반찬가게, 빵집, 야채가게를 한 바퀴 돌고, 서울 친구 집에도 휙 하니 마실 다녀오실 수 있는 세상처럼….

2020-06-23

울릉도行 대체 선박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천혜의 비경이 돋보이는 울릉도를 다녀왔다. 지난 80년대 초에는 고교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처음으로 가봤고, 2011년엔 가족들과 함께 명소 관광과 산행, 독도 탐방을 겸해 갔으며, 이번엔 직장동료들과 함께 자전거 라이딩과 성인봉 등반을 위해 갔었다. 풍랑 등의 기상조건에 따라 계획대로 섬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쉽질 않은데, 근 40년 동안 큰 차질없이 세번을 다녀왔으니 그나마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다.여행의 반 부조는 날씨라고, 입도(入島) 첫날 약간 흐리고는 이틀 동안 쾌청해서 섬 일주 라이딩과 성인봉 등정을 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더구나 시원한 바람의 결 속에 온갖 비경을 접하며 파도소리와 원시림의 녹음 추임새에 맞춰 페달을 밟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국토의 막내 울릉도는 약 250만 년 전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섬이다. 성인봉(986m)을 주봉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와 죽도, 관음도 등을 거느린 거대한 산 같은 섬이다. 전체가 하나의 섬이지만 화산성 물질의 분화로 험준한 봉(峰)과 유일한 나리분지가 형성되는 등 지질학적으로도 학술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부속섬인 독도는 고유한 우리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터무니없는 영유권 주장으로 외교적인 마찰이 끊이질 않는 민족의 자존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지난 40여년 간 포항∼울릉도를 오가던 배의 운항에도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필자는 무려 11시간이나 걸리던 청룡호를 타고 갔다가 6시간 걸린 한일호를 타고 나온 적이 있다. 그 후 2천400톤급 썬플라워호를 타고 비교적 빠르면서 안정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는데, 지난 2월말로 선령을 채운 뒤 대체 선박 투입 문제가 연일 뜨거운 감자처럼 떠오르고 있다. 썬플라워호의 선령 만기가 벌써 4개월이 지나가는데도, 무슨 뒷북 치는 것도 아니고 사전에 운항사와 울릉주민, 포항해수처와의 협의, 조정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여태껏 난항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모름지기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이라 했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휘호한 유묵의 글귀이기도 하다. 세상이 복잡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미래를 예견하고 통찰하는 안목과 지혜를 길러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준비와 계획, 대비와 기획을 잘 해야 한다. 그것은 곧 나무도 알고 숲도 볼 줄 아는 혜안이기도 하다. 근시적이나 임시변통식 대처는 소모적인 논쟁과 손실을 끼칠 따름이다. 타협과 조율의 퍼즐로 상생하는 기틀을 빠르고 신중히 마련했으면 한다.파고 탓인지 기존보다 1/4 정도로 줄어든 규모의 엘도라도호를 타고 포항을 출항하는 것부터가 상당한 고역이었다. 승객 대부분이 선체의 심한 롤링으로 인해 역겨운 배멀미에 시달리는데, 배가 작아 조금만 너울이 일어도 크게 흔들리고 기상악화에 결항이 잦다는 어떤 분의 씁쓸한 푸념이 울렁거림을 더하는듯 했다.

2020-06-23

삐라 갈등

우리말 사전에 삐라는 전단과 같은 의미이나 북한어라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로 쓰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 밝히고 있다.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전단 또는 광고용 포스터라는 뜻의 영어 표현인 빌(bill)에서 나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빌이 일본식 발언인 삐라로 변형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삐라는 전단의 성격이지만 주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될 때 부르는 표현이다. 상업용 전단지와는 어감부터 다르다.삐라 살포의 시초는 16세기 종교개혁 중 교황을 고발하는 그림이 뿌려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심리전 목적으로 전선에 뿌려져 적의 심리를 교란한다 하여 종이폭탄이라는 별명도 붙었다.우리나라도 해방 후 남북이 극심한 이념대립을 하면서 삐라가 많이 활용됐다. 특히 6·25전쟁 중에는 남북이 심리전의 매개로 사용하면서 엄청난 양의 삐라가 뿌려졌다. 체제의 우월성, 전쟁의 당위성 등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 남북은 같은 민족이어서 언어나 문화적 장벽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당시 뿌려진 삐라는 약발은 잘 받았다. 6·25전쟁 기간 중 남한과 유엔은 25억장, 북한과 중국은 5억장 정도의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 전쟁 후에도 남북은 더 많은 삐라를 뿌렸고 삐라를 보고 월북 혹은 탈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정부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고 있는데도 북한이 되레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하고 있어 남북 간 삐라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북한이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사진을 담은 삐라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통일부가 유감을 표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삐라의 역사를 보면 삐라는 남북간 갈등의 선봉에 늘 서 있었다. 최근 삐라 갈등도 남북관계가 범상치 않음을 말해준 일례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