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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열쇠는 타협이다

장규열한동대 교수국민은 선택하였다. 나라가 어려운 한 가운데 내려진 결론은 엄중하다. 정부는 심기일전하여 각오를 다지고 목표를 분명히 하여 달려가야 하며 국회는 국민의 목소리를 모아 국정이 정상을 회복하도록 주시하며 지원해야 한다. 국회의 지나온 모습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식물국회, 동물국회, 짐승국회…. 여러 가닥 부끄러운 모습을 국민에게 들켜버린 국회를 향해 국민의 요청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일하는 국회’가 되라.이제는 의정단상이 국민에게 훤히 들여다보인다. 속일 수가 없고 숨길 수도 없다. 밀실에서 비밀스럽게는 불가능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설 자리가 없고 대안없는 발목잡기도 국민이 허락하지 않는다. 국민은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장착하였다. 일하는 국회는 어떻게 만드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채워야 국회가 국회다워질까. 생각만 하고 기대만 걸다가 이번에도 우리는 실망에 이르고 마는 것은 아닐까. 대표를 선출해 국회로 보낸 국민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을 요청해야 할까.미 하원의원을 역임했던 국제정치학자 리 해밀턴(Lee Hamilton)은 ‘민주정치의 열쇠는 타협’이라고 하였다. 국민을 위한 좋은 정책과 든든한 입장을 우선 잘 만들어야 하지만 상대가 있는 정치의 장에서 ‘타협과 협상’은 필수가 아닐까. 타협을 잊은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타협을 싫어하는 정치인은 위험하다. 국회는 다투는 곳이지만, 몸으로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생각으로 다투어야 하고 논리로 겨루어야 한다. 아이디어와 주장이 부딪히는 곳에 욕심과 고집이 들어서면 이내 협상은 깨지고 토론이 무너진다. 양보가 가능한 부분을 찾아야 하고 타협의 문을 열어야 한다. 타협을 배신이나 배반 또는 변절로 치부하는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한다. 뜻을 굽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탄생이어야 한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끝내 국민을 위한 방향을 함께 찾아내야 한다. 독일의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는 ‘모든 사람이 함께 할 때에야 좋은 타협이 가능하다’고 하였다.민주주의는 타협으로만 가능하다. 타협을 이루어야 한다. 양보하기 어려운 선이 있었다 해도 상대 주장의 진의를 가늠해야 한다. 조절과 절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내 생각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진정성도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이 폭넓게 반영되려면 타협은 필수가 아닐까. 일하는 국회가 타협에 강하길 기대한다. 타협을 주저하지 않으며 협상에 강한 국회가 되어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책의 다툼에 정답이 하나뿐일 리가 있을까. 팽팽한 토론과 건강한 타협이 가득한 국회를 만나고 싶다. 주먹다짐과 막말비난이 타협과 협의로 바뀌는 국회를 기대한다. 그런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은 또 얼마나 안심할 것인가. 타협에 약한 사람을 국회로 보낸 국민은 또 얼마나 부끄러울 것인가. 일하는 국회는 타협에 강해야 한다.

2020-04-22

펫코노미(petconomy)

펫코노미는 반려동물과 관련한 시장 또는 산업을 일컫는 신조어로 반려동물을 뜻하는 영단어 펫(Pet)과 경제(Economy)를 결합한 말로, 반려동물 관련 시장을 가리킨다.펫코노미의 성장배경은 저출산의 심화와 1~2인 가구의 급증과 같은 사회적 변화에 따른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자녀에게 투자하듯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않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펫팸족(Pet+Family)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약 1천만명이 반려동물을 키워 관련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펫코노미 시장규모는 2012년 9천억원에서 2015년에는 두 배 증가한 1조8천억원을 기록했으며, 2020년에는 6조원으로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규모 6조원은 2016년 아웃도어시장, 주얼리 시장, 의료기기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가장 시장규모가 큰 펫푸드 분야에서는 CJ제일제당이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오프레시’를, 서울우유 협동조합은 유당분해를 돕는 ‘아이팻밀크’를 내놨고, 풀무원은 반려동물 전용 다이어트 식품까지 선보였다. 유통업계에는 정용진 부회장이 내놓은 애완토털 솔루션 전문점 ‘몰리스펫샵’이 최대 2천500개의 반려동물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롯데는 반려동물 전문 컨설팅 스토어 ‘집사(ZIPSA)’를, CJ몰은 반려동물 전용관 ‘올펫클럽’을 선보였다. 이밖에 펫 택시, 유치원, 장례서비스, IT 결합상품 등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또 반려동물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펫보험이 각광받고 있으며, 주인이 사후에 홀로 남겨질 반려동물을 위한 신탁상품까지 나왔다. 바야흐로 반려동물 전성시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22

수업, 양심, 사기(詐欺)!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너는 온다. (….)”과연 여기서 ‘너’는 누구일까, 또 무엇일까? 사람마다 마음속에 이런 ‘너’ 한 명, 또는 하나는 꼭 있다. 인용 글은 이성부 시인의 ‘봄’의 일부이다. 시인의 시상처럼 산을 옮겨놓아도 깨지질 않을 정도로 얼음이 꽝꽝 언 강에도 봄은 얼음을 달래어 버드나무를 타고 온다.곡우(穀雨)가 지난 자연과 들판에는 봄이 한창이다. 봄이 지천인 산과 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분주함이다. 철없는 인간 세계와는 달리 자연은 절기(節氣)에 맞는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그 모습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의 동의어는 균형감이다. 자연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무한한 자연과는 달리 인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개발주의 신화에 도취 된 인간들은 그것을 모른다. 1㎜도 안 되는 바이러스에 숨 쉴 권리조차 빼앗겨 버린 게 인간 현실이지만, 망각이라는 만병통치약을 가진 인간은 바이러스를 정복하겠다며 또 야단법석이다. 인간의 망각은 어제의 기억을 오늘도 아닌 어제에 지워 버리는 힘을 가졌다. 바이러스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유통기한을 앞당기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인간 몸속에서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완전 멸망(종)의 제일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자기 멸망(종)이다. 외부에 의한 붕괴는 재건(생)의 여지를 남기지만, 내부에 의한 붕괴는 그런 여지조차 없다. 그러기에 없어져도 흔적도 없이 확실히 사라진다. 자기 멸망(종)의 촉매제는 모든 감각을 자기한테만 집중시키는 자아도취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공감 능력 상실이다.“자기도취적 리더”라는 말을 보고 필자는 선거가 떠올랐다. 필자는 선거 결과에 만취된 이들이 더더욱 자기도취에 빠져 영원히 헤어나지 않기를, 그래서 최대한 빨리 사라져 주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그래야 교육을 그들의 편협한 이념의 눈으로 재단하지 않으니까!“EBS 수업만 듣고, 학교 선생한테 배우지도 않은 과제를 하고, 저게 무슨 학교 수업이고. 저렇게 할 거면 나도 선생질하겠다. 저거는 사기다, 수업 사기.”퇴근 무렵 잠시 들른 휴게소 식당에서 “2차 온라인 개학 출석률 99%, 접속 문제 있었지만, 즉각 조치”라는 어느 방송사의 뉴스를 보면서 작업복 차림의 어느 손님이 한 말이다. 수업 사기(詐欺)라는 말이 너무 크게 들렸다. 주문한 음식을 손도 못 대고 필자는 사기라는 말이 양심에 걸려 그 자리를 빨리 떴다. 운전하는 내내 “학교 수업 사기”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많은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온라인 수업은 학교 수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학생은 없고, 교사 편의에 따라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들!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교사들의 말은 변명조차 안 된다. 지금 하는 온라인 수업이 출결을 위한 “수업 사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업 본질에 가까운 수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학생들이 기다리는 학교의 봄이 온라인 수업을 타고 온다.

2020-04-22

지구의 날과 코로나19

김규종 경북대 교수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심각하게 오염된 지구환경을 돌이켜봄으로써 인간과 지구의 공동 운명체를 각성하도록 인도하는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해상원유 유출사고를 계기로 촉발된 지구의 날이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 원년은 1990년이라 한다. 그해 150여 나라가 참가하여 지구를 보호해야 인류도 생존해나갈 수 있음을 확인한다.코로나19로 인해 인간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자 지구대기가 맑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4월 10일 CNN에 따르면, 극심한 미세먼지로 악명높은 인도 북부 펀자브주 주민들에게 160㎞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이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인도 정부는 3월 22일 이동제한령을 발령했다. 차량운행이 대거 줄고,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대기 오염도가 최대 44% 감소함으로써 설산(雪山)이 맨눈으로 보인 것이다.이런 현상이 인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각종 영상은 세계 곳곳의 하늘이 맑아졌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올해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공습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오늘날 일부 식자들은 21세기를 ‘인간세’라 규정한다. 인간으로 인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그것을 코로나19가 잠시 멈춰 세운 것이다.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고 갈파했다. 사단논법은 당연히 사람은 자연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자연은 스스로 그리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지구나 자연환경과 똑같은 의미는 아니겠으나, 인위적인 행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폐해를 강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욕망의 무한대를 긍정하고 성장해온 현대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제어되지 않은 욕망의 정점이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으로 극대화되고, 그것은 쓰레기로 전락할 숱한 물품으로 이어진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는 거대한 쓰레기더미에 포위돼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하며 쌓아둔 물건이 얼마나 많이 나뒹굴고 있는가.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주창한 데에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사람도 과식하면 속이 더부룩하고 고통받기 마련이다. 대략 60조 톤으로 측정되는 지구도 인간으로 인해 끝없이 고통받고 있다. 자연계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멸종위기종은 얼마나 많은가?! 누가 그것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는가. 현대판 도도새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생명의 숨통을 옭아매고 있는 인간의 거칠고 우악스러운 탐욕이 이제는 멈추었으면 한다.얼마 전 마당에서 일하다가 슬며시 담장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황구렁이를 보면서 한편으로 놀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하, 아직은 살만한 모양이구나, 생각한다.지구의 날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상상한다. 코로나19가 인간과 지구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듯하여 입가에 역설(逆說)의 미소가 감돈다.

2020-04-22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잰더(2)

“20년 동안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리더십이란 연주자들에게 내 아이디어와 음악적 해석을 따라오게 강요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에요. 지휘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소리는 연주자들이 만드는 거죠. 그러면 내 뜻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힘과 열정, 사랑을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잰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의 실현은 측정의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이동할 때 가능합니다.” 측정의 세계란 사람들을 경쟁시키고 등급을 매겨 이긴 자들에게 자원을 제공한다는 논리이죠.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이 틀을 깨부수어야 합니다. 가능성의 세계란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족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경쟁이 필요 없고 모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원하는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요.“리더는 구성원들을 측정의 세계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해야 합니다.”벤저민 잰더는 대학생들에게 생애 최초로 가능성의 세계를 체험하게 합니다.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눠줍니다. “모두에게 A 학점을 줄 것입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 나눠 드린 종이에 저에게 편지 한 통을 쓰는 겁니다.”학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학기 말에 여러분이 자신의 노력으로 A 학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는 겁니다. 내가 A를 받은 이유를 저에게 편지로 써 보세요.”경쟁할 필요가 없게 되자 학생들은 서로 협력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대담하게 사고를 확장합니다. 등수를 매기는 방식으로부터 해방을 경험한 학생들은 잠재력을 극대화하지요. 측정의 세계에 길든 우리의 한계를 깨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리더와 조직들이 하나씩 늘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2

때(時)와 때의 공통점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가 어렵다고 한다.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도 잘 늘지 않는 영어도 우리에겐 만만치 않은 언어다.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어의 어려움을 생각해본다.‘배’라는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신체부위, 선박, 과일과 같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외국인이 익히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라는 단어도 같은 경우다.한자로 시(時)라는 의미와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찌꺼기라는 의미를 가진다.한 때 소리는 같은데 의미가 다른 단어들이 썰렁한 아재개그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말(言)과 말(馬)이 말장난 개그의 일반적 소재가 된 것은 익히 아는 일이다.한국인이라면 음의 고저장단이나 대화상황을 감안하여 비록 같은 음의 단어라 해도 그 의미에 혼란이 없을 것이다.한국어를 익히는 외국인에게는 대략 난감이겠다.그런데 전혀 다른 의미의 ‘때’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바닷가 작은 포구에는 썰물 때 갯벌에 삐딱이 누워있는 고기잡이배가 있다. 밀물이 밀려와야 뜰 수 있다.‘때(時)를 기다려라’는 말을 실감케 된다.썰물인데 먼 바다로 나가려면 그 배를 갯벌위에서 밀고 나가야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고 꼭 나가야한다면 대단히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공중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 때 탕에서 몸을 불리는 절차가 있다.급한 마음에 바로 때를 밀어달라고 하면 때가 잘 밀리지도 않아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작업이 된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목욕탕의 흐릿한 조명아래 잡티나 검버섯과 같은 것을 때인 줄 알고 밀다가 피부가 따가운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이 역시 때가 아닌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본다면 지나친 갖다붙이기일까?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경우에 이런 저런 폐단이 생긴다.직장에서 승진도 적당한 때에 해야 좋다고 한다.성과와 능력에 과분하게 지나친 승진욕심으로 무리해서 때 아닌 승진을 하면 뒤탈에 시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 역시 때를 기다리는 삶의 지혜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선거가 끝났다.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는 게임이었다.승자의 축배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 들리며 석패의 분루를 삼키는 후보자와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게임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의 눈길과 남 탓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할 것이다.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있을 수 있는 감정표출이다.하지만 한발치만 물러서서 생각하면 오늘의 패배가 결코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는 자기위로가 가능하다.아직 ‘때(時)가 아니다’, ‘때가 덜 불어서….’라는 말로 재기를 꿈꾸면 된다고 본다.패인을 분석하고 보충하여 나를 위해 기다리는 때(時)를 만들면 될 것이다.사회 초년병 시절, 승진시험에 물을 먹고 풀죽어 고개 떨군 채 복도를 걸어가는 나에게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한 상사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그리곤 잠시 뒤 “박 반장! 그런데 그거 누가 한 말인지 아는가? 목욕관리사 말이라네.”

2020-04-21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잰더(1)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공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해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뒤흔들었고 종래의 시간, 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습니다. 철학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묻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을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아인슈타인은 생각에 잠기더니 컵에 손가락을 살짝 담갔다가 꺼냅니다. 물 한 방울이 책상 위에 또르르 굴러 떨어집니다. “내 학문은 바로 이 물 한 방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제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셨나요?” 아인슈타인은 칠판으로 걸어가더니 큰 글씨로 공식 하나를 씁니다. A = X + Y + Z“A는 학문적 성과다. X는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것. Y는 생활을 즐겁게 하는 것. Z는 한가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농담처럼 들리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말과 정반대로 행동해야 성공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첫째,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화려한 언변이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비록 즐겁지 않더라도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셋째, 한가한 시간이라고요? 24시간도 모자라 잠을 포기하면서 일해야 성공하는 것 아닌가요? 아인슈타인은 누구나 상식으로 여기는 것을 뒤집어버립니다.지휘자 벤저민 잰더(Benjamin Zander)는 지금도 현역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리더십 강연도 활발하게 합니다. TED영상은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조직이 오케스트라입니다. 단원들이 지휘자에게 말을 걸거나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벤저민 젠더는 20년 넘는 지휘자 생활을 하면서 문득 아인슈타인다운 발상을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1

이제 마인드를 바꿔야할 시기는 아닐까?

조현명 시인코로나19가 지나가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두 가지 의미다. 먼저 아직 그 때로 돌아가긴 이르다는 경고, 또 하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내다보는 시각이다. 나는 아직도 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정부는 고강도 거리두기에서 ‘고강도’라는 말을 빼면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거리두기를 실천하자고 당부하고 있다.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언제까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학기 중 홍수가 나서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학생과 교사는 학교장의 결정에 기린목이 된다. 한명의 교사가 앞서서 학생들에게 “너희들 곧 집으로 갈 것이다.” 귀띔만 해도 술렁이며 난리가 난다. 학교장은 고민에 빠진다. 현재 상황이 학생들을 하교시켜야 할 정도인가? 고민이다. 하교를 늦추었다가 큰 화를 부른 적도 있다. 반대로 하교를 미리 단행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에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사립학교는 윗사람의 눈치까지 봐야하니 매우 결정이 어렵다.매뉴얼이 잘 갖추어진 대한민국에서도 여기까지이다. 전염병의 방역에는 최대한 조심해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현재 확진자를 줄이며 안심단계에 접어들게 했다. 그런데 당국은 생활방역으로의 전환 시기 결정을 ‘확진자 50인 이하,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 5%이내’라는 당초의 원칙을 슬그머니 미루었다. 그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후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그 난세의 영웅은 평상시에는 지질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이 말은 시기에 따라 성공적인 대응의 마인드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기에는 ‘나는 이런 사태를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마인드의 소심한 관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을 내리는 시기에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용기 있는 마인드가 필요하다.렘데시비르나 혈장치료제 혹은 그것보다 30배의 효과가 있다는 우리나라 제약 회사의 발표가 있기도 하다. 게다가 6시간 이내로 진단하는 진단키트를 가지고 있고 하루 900명이 넘는 확진자를 처리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은 아직 소심한 마인드를 보인다. ‘책임지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다. 난세의 영웅들이다.지금까지 잘 해온 것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은 한참 후에나 가능하다. 이제 새로운 마인드로 접근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올해 안으로 개학을 못할 수도 있다’는 발언에서 과거 홍수가 났을 때 하교를 늦춘 교장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단계적으로 경제활동을 실시하는 유럽과 미국의 선택이 나중에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자. 치료약은 결국 사망자를 줄이고 집단면역을 만들어내는 효과로 건너가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대응이 항상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제 마인드를 바꿔야할 시기가 된 건 아닐까?

2020-04-21

경제 쓰나미

구조조정은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업의 효율적 구조혁신 과정이다. 말인즉 혁신적 조직개편이라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력감축이나 임금삭감 등이 주요 골자다.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사회는 구조조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업의 구조조정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듯한 분위기다. 현대자동차가 임원의 급여 20%를 회사에 반납키로 결정했다. 현대차 그룹 51개 계열사 1천200여 명은 이달부터 당장 급여를 줄여서 받게 된다. 코로나 사태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데 대한 선제적 대응조치라 했다.IMF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그 당시 우리경제는 대마불사라는 대기업이 여지없이 쓰러지고 금융기업의 부도가 발생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구에 본점을 둔 대동은행의 도산도 이때 빚어진 참사다.총선의 열기는 사라지고 어느덧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쓰나미급 경제위기가 지금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감염증 사태로 발이 묶인 항공사와 관련업계는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유급휴직을 시작했다. 대기업마다 희망퇴직, 부동산 자산의 매각, 신규투자 동결 등의 조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IMF 때 겪었던 악몽 같은 그림자들이 벌써 우리 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정부가 100만 명 공무원의 내년도 임금 동결을 검토하는가하면 대통령과 장차관급 고위공직자의 급여도 4개월치 반납을 결정했다. 이른바 고통분담이라는 미명을 앞세워 공공분야의 구조조정도 시작한 것이다.그러나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서민경제는 사면초가다. 고통분담할 것도 없다. 경제 쓰나미에 대응할 어떤 대책도 없다. 걱정만 커갈 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1

경북도는 전진해야 한다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코로나19는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대구와 경북이 코로나의 진원지가 되면서 지역의 모든 일이 마비됐다.경북도는 올초 대구경북관광의 해인 올해를 기점 삼아 관광 붐을 일으켜 일자리와 경제 살리기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계획했다. 또 숙원사업인 신공항건설과 대구경북 행정통합으로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을 경북에서 출발시키는 프로젝트를 초안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코로나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모든 것을 새로 짜야 하는 형국이 됐다.이제 코로나 판세가 안정곡선을 그리고 있는 만큼 국난극복의 시발점이 된 과거 지역의 역사를 발판삼아 경북도를 재건해야 한다.이철우 도지사는 최근 그동안 침체된 지역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범지역경제살리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고, (가칭)범도민대책위를 발족시켰다. 과거 국난 때 왕성한 의병활동을 비롯 국채보상운동 등 청사에 남을 범국민운동을 전례로 삼아 경제 살리는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범도민대책위는 대구경북 상생 차원을 비롯 당초 이 지사가 구상했던 것과는 약간 차이가 보이지만 이 운동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돼 무너진 지역의 자존심이 제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그동안 중단됐던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신공항추진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 모두가 지역의 향후 지도를 개편하는 대역사로,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 시간을 너무 허비해 골든타임이 부족하지만 백년대계의 심오한 프로젝트이니 만큼 한발 한발 전진해야 한다.행정통합의 경우, 그 과정의 지난함으로 인해 반대의 목소리도 상당하고 이 지사가 이를 통해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말들도 많은만큼 진정성으로 이를 불식시켜야 한다.행정통합은 거시적으로 향후 지역의 100년을 내다보고 미래발전을 위한다는 대원칙이 있는만큼 좌고우면 하지말고 진행돼야 한다.신공항문제도 풀어야 한다. 어려운 고비를 몇 번 넘기고 주민투표도 완료됐지만 신공항이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경북의 보다 큰 미래전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신공항이 필수불가결한 만큼 불씨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도내 외부가 어려운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직자들이 분발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몇몇 사건들을 보면 코로나에 진력하는 사이 도 공직자의 기강이 좀 풀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다.최근 도 내부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해 경찰조사를 받는 불미스런 사건도 불거졌고, 한 중간 간부는 사석에서 부하직원들을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험구를 쏟아내기도 했다. 과거 이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한 막말이 흘러나와 공직자들의 대화가 과연 맞는가라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또 조직의 최고수장에 대한 불만이 정제되지 않은 채 공식 언로를 통해 표출되는 것도 자제돼야 한다.수천 명의 공직자가 북적이는 도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작은 구멍이 둑을 허물어뜨리는 만큼 경북도는 조직을 추스르고 다잡아 전진해야 할 것이다.

2020-04-21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진다

김동리의 단편집 ‘무녀도’.인간이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그 대상을 어떤 언어로 포획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때로는 그에게 딱 맞는 그가 자신을 부르고자 하는 이름으로 그를 불러주지만, 때로는 싫어하는 이름을 강압적으로 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가 붙인 이름은 그의 정신과 신체를 옭아매는 구속이 되고, 혐오의 언어가 된다.제국주의 시대 유럽이 ‘아시아’라는 신비에 싸여 있는 공간을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고(혹은 바라보지 않고) 붙였던 이름은 오랜 기간 동안 아시아를 비롯한 비유럽의 공간들을 탐험과 모험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탐험의 대상으로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의 열망은 그렇게 언어와 매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명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구 문학사의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동방을 향한 모험이나 여행기들 속에 담겨 있는 진귀한 동양의 이야기들의 편린들은 바로 그 명명의 역사를 증언한다.지금은 보편적인 모험 이야기로만 생각되는 대니얼 디포(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1719)’는 당시의 유럽인들이 외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표상하는가 하는 것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자신과 똑같이 숨 쉬고 움직이고 있는 한 자율적 인간에게 로빈슨 크루소가 붙인 ‘프라이데이(금요일)’라는 이름은 인간의 지식문명이 대상에게 보여주는 인식적 폭력,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대상을 신격화하는 언어나 악마화하는 언어, 모두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김동리(1913~1995)의 ‘무녀도(1939)’, 그리고 나이지리아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1930~2013)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는 식민지를 겪었던 국가의 비슷한 시기,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이 두 편의 작품은 제국주의적 폭력 속에 자기의 이름을 잃은 ‘프라이데이’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패배해갔는가 하는 것에 대해 기록한다.‘무녀도’의 무당 모화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이보족의 오콩고는 모두 서구로 대표되는 외부 세계의 문화적 식민지화 속에서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어 자신이 평생 지켜온 가치를 부정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치누아 아체베물론, 그들은 단지 피해자는 아니다. 서구에 의해 식민지를 겪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낭만화하거나 합리화해주지는 않는다. 무당인 모화는 자신의 아들 욱이가 자신과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는 욱이가 소중하게 품고 있던 성경을 불태우고 욱이를 칼로 찌른다.‘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지다’속 주인공인 오콩고의 아버지는 호칭이 없는 남자, 즉 부족 내에서는 ‘여자’라고 불리는 남자였고, 오콩고는 그런 그를 경멸하여 최선을 다하여 부족 내에서 성공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라져야 한다는 그 힘으로 살아온 그는 점점 사회에서 폭력을 용인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그의 아들 은워예는 그를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이후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따라서, 이 두 작품을 단지 서구 열강의 문화적 침략에 저항하다 파멸해간 영웅들의 이야기로만 보는 것은 어쩌면 이 작품들을 읽는 올바른 독법은 아닐 것이다. 단지 ‘우리 것이 아름답다’는 막연한 긍정은 타인이 우리를 규정한 언어를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할 뿐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리 아픈 것이라도 스스로 바라보고 자기 규정할 수 있는 언어, 바로 그것이리라./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0-04-20

사월, 충만한 영혼이 꽃 피고… 함양 벽송사(碧松寺)

비가 그친 지리산은 봄이 한창이다. 저마다 다른 연둣빛 사이로 산벚꽃이 어울려 꽃길을 연다. 민족상잔의 비극이 서려 있는 골짜기에도 4월의 유순함이 피어나는데 벽송사 가는 길은 가파르기만 하다.지리산 칠선계곡에 위치한 벽송사는 1520년(중종 15년) 벽송 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정통 조사들이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룬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정책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6·25때는 빨치산 토벌을 위해 방화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이곳은 판소리 여섯 마당 중 ‘변강쇠가’의 배경이기도 하다. 변강쇠가 나무는 하지 않고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쓰자, 장승 우두머리가 통문을 돌려 팔도의 장승을 불러 모아 변강쇠를 혼내준다는 이야기이다. 부당한 대접과 억압을 받는 민중을 장승에 비유하고 변강쇠를 기층 질서로 풍자한 민중문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벽송사에도 밤나무로 만든 한 쌍의 목장승이 보호각 안에 서 있다. 왼쪽 여장승은 잡귀 출입을 통제하는 금호장군(禁護將軍)으로 산불에 윗부분이 타서 파손이 심하다. 오른쪽 남장승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대신(護法大神)으로 짱구모양의 민머리에 돌출된 큰 눈과 주먹코, 합죽한 입, 무성한 수염으로 표정이 풍부하면서도 익살스럽다.변강쇠와 옹녀의 외설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면 장승과 벽송사의 만남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하지만 질박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한 쌍의 목장승이 사천왕이나 인왕의 역할을 대신했다는 걸 알면 궁금증이 풀린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자연스런 융합인 셈이다.세 단으로 조성된 벽송사의 첫 느낌은 여느 사찰과 다르다. 절의 중심에는 주법당이 아니라 벽송선원이 자리하여 맑고 고요한 기운을 뿜어낸다. 선불교의 종가다운 배치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내로라하는 대사들을 배출한 사찰치고는 소박하다. 흐트러짐 없는 선원의 이미지가 제대로 살아있어 발걸음은 저절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간월루와 선원 사이로 고독한 눈물처럼 서 있는 홍도화가 방문객을 응시한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낮은 탄성이 터지고 말았다. 저 대책 없는 붉음 앞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한옥을 배경으로 홍도화는 너무나 고혹적이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이토록 이지적인 붉음을 본 적이 있는가.선원을 돌아서 가는 발길이 까닭 없이 바쁘다. 유일하게 단청옷을 입은 원통전과 산신각은 겸허히 뒤로 물러나 있다. 안정감 있는 배치에 감탄하면서도 내 눈은 온통 선원 뒤뜰의 봄꽃에 팔려 있다. 붉게 하혈을 시작하는 동백과 청승스러울 만큼 창백한 돌배나무꽃, 우아함을 갖춘 키 큰 자목련까지, 홍도화와 어울려 만다라가 따로 없다. 모처럼 내린 봄비에도 벽송사 풍경들은 지나치게 차분하다.젖은 봄꽃들의 자태에서 숭고함이 듣는다. 벽송사는 이름난 선원답게 뒤안의 분위기까지 완벽하다. 비가 온 뒤의 4월, 함양에서 오도재를 넘고 추성마을을 지나면서 쏟아냈던 감탄들과는 또 다르다. 아찔한 계절, 중심을 향해 살아가는 벽송사 풍경에 취해 나는 한참을 뒤뜰에서 서성이고, 곧게 뻗은 도인송은 그런 나를 지긋이 내려다본다.높은 축대 위에서 도인송을 향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미인송의 구애도 눈물겹다. 높다란 지지대에 의지하면서도 아슬아슬 기울어진 채 살아가는 미인송의 한결같은 마음과 도인송의 곧은 정신이 살아 있는 죽비가 되어 준엄하게 꾸짖는다. 삶에는 수많은 유혹이 따른다. 나는 얼마만큼의 진중한 자세로 나다움을 지키려 노력해 왔는가.돌계단을 오르자 보물 제 474호 삼층석탑이 홀로 너른 터를 지킨다.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초에 조성되었을 거라 보는 석탑은 미인송의 기울어진 목덜미를 외면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강인한 홀로는 언제나 눈길을 끄는 법이다. 석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옛날에는 분명 이곳에 금당이 있었으리라.뒤늦게 원통전 법당 문고리를 잡는 손이 떨려온다. 작고 아늑한 법당, 백팔 배를 하는 몸이 신기할 만큼 가볍다. 기도는 단조롭고 엄숙하지만 잡념이라고는 일지 않는다. 그런 우리를 관세음보살부처님의 자비로운 눈길이 함께 한다. 문 밖에는 다시 봄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원통전을 향해 오시는 부처님 발걸음 소리 같기도 하고, 떠나는 동백을 위한 아련한 연가 같기도 하다.절을 하는 동안 법당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만을 위한 작은 공간에는 오로지 감사와 행복이 물결친다. 봄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우산을 가지러 뛰어가고 홀로 원통전 뜨락을 서성인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처연히 비를 맞고 있다. 용기를 내어 돌계단을 내려선다. 허둥대거나 서두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늘만큼은.인적 끊긴 벽송사는 봄비 맞으며 다시 참선에 들고, 간월루 뒤 요사채 뜰 위에는 비에 젖은 우산 하나가 물기를 머금은 채 절을 지킨다. 따뜻한 풍경이다. 벽송사를 향해 두 손 모으는 순간 고단했던 나의 하루는 감사함으로 충만해진다. 깊어 가는 4월, 봄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2020-04-20

오만의 정치는 망국의 지름길

강희룡 서예가‘당 현종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은/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수용했기 때문이네/ 황금 상자를 길이 두고 거울로 삼았던들/ 행차가 어찌 서촉(西蜀)까지 이르렀겠나.’고려시대의 문신이며 명문장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금함(金函)이다. 당나라 예종을 이어 즉위한 현종은 연호를 개원(開元)이라 고친 뒤에 요숭, 송경, 장구령과 같은 어질고 뛰어난 인재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여파로 혼란에 빠진 국가를 안정시키고 3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개원의 치세(開元之治)이다. 개원 연간 동안 현종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의 상소가 올라오면 그 가운데 긴요한 것을 골라 황금으로 장식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읽으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고 한다.하지만 즉위한 지 30년이 되어 연호를 천보(天寶)로 바꾼 뒤로는 양옥환(일명 양귀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국정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틈을 타서 이임보, 양국충과 같은 간신들이 국정을 농간하더니, 양귀비의 양자가 되어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절도사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니 장안은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목숨만 부지한 현종은 지금의 중국 성도(成都)인 서촉으로 피난하고 나라는 성당(盛唐)시대에서 기울기 시작한다.사람은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성공하고 잘한 행위만을 자랑스러워하고 패배와 잘못은 숨기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발전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성공을 자부하고 안주하는 데서 발전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고치는 데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칠 것이며,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는가.4·15 21대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를 보면 보수 세력이라고 자칭하던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넘겨 헌법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 활동에 있어 일방적 추진이 가능해졌다. 이는 향후 국내의 입법 작용이나 대통령의 정치행위의 결과가 오로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귀결된다는 점이다. 2년 후 국가상황과 여당의 실정은 대선을 통해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벌써부터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오만한 자들의 막말이 쏟아진다. 더불어시민당의 한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젠 보안법 철폐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촛불 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라고 적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18일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이 계속될 것’이라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현종이 서촉까지 피난하고 나라가 망한 역사적 사실이 새삼 떠오르는 현실이다.

2020-04-20

올해부터 달라지는 유아교육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모든 학교는 대면교육을 늦추고 온라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유아교육에서는 초·중등교육과는 달리 놀이 중심의 하루 일과를 운영하므로 온라인교육이 적합하지 않아 개학이 미뤄지고 있다. 발달단계에 따라 적합한 교육의 형태가 다르다. 어린 연령의 아이들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주변을 탐색하며 놀이를 통해 배운다. 초중등학교에서는 가장 추상적인 의사소통 기호인 언어로 교육하는 반면, 유아교육에서는 구체물을 활용하여 행동으로 체득하도록 교육한다. 이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개학을 보류해서라도 온라인 교육을 지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올해부터 유아교육은 놀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교육의 질 제고와 균등한 교육 기회 마련을 위해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정하고 있으며 국가수준의 유아교육과정을 누리과정이라고 부른다. 올해부터 시행될 누리과정은 한 차례 개정되었으므로 개정 누리과정으로 명명한다.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놀이를 지원하고 이를 위해 유아교육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의 역사를 통틀어 유아교육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으며 지금까지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이 운영되어 왔다. 개정 누리과정은 아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놀이를 하면서 세상을 배워나간다는 믿음을 근간으로 하여 유아의 놀이를 좀 더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진달래 꽃잎을 따다가 화전을 굽는다면 유아는 물질(찹쌀가루)의 변화, 전통음식(화전), 기본생활습관(손씻기), 도구(뒤집개)의 유용성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유아는 소꿉놀이를 하면서 가상의 때와 장소에 적절한 언어 사용, 실생활에서의 역할 시연, 또래와 갈등이나 의견 조율하기 등을 경험할 수 있다. 계몽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성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미숙해 보이는 유아를 계몽과 교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교육 성과를 효율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유아 발달의 측정도구를 계량해서 유아를 일률적으로 측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9년 제1차 유치원 교육과정이 제정되기 전에는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전쟁고아를 포함하여 유아를 교육하는 일은 사회복지단체나 민간인의 주도로 이루어져 왔으며 유아교육 행정체계나 질 관리가 부재했다. 때문에 교육의 질 편차를 줄이고 각 유아교육기관을 일괄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교육의 질 관리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부족했음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있었고 이 반성이 누리과정의 개정으로 이어진 듯하다. 유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한 유아교육 학자와 교사는 유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능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올해부터 달라질 유아교육도 유아의 역량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유아를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놀이하며 세상을 배워나가는 존재로 재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2020-04-20

천 명의 천사와 동행하는 사나이(2)

즐겁게 한 편을 외우고, 신나서 또 한 편을 외우고 이렇게 꾸준히 시를 읊조리다 보니 어느새 50편, 100편을 암송합니다. 400편을 암송하자 시를 외우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무료할 시간이 없습니다. 불면증도 사라집니다. 침대에 누워 시를 외우다 보면 스르르 잠들곤 하지요. 화가 나고 감정의 기복으로 힘들 때도 시를 따라 평화로운 별을 산책하노라면 어느새 마음의 평화를 누립니다. 그의 이름은 문길섭. 광주에서 소공연장을 운영하는 문화인입니다. 시를 외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력인지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하늘이 짙푸르고 구름은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시가 내 육체 안으로 흘러 나를 적시고 내 몸통을 울리고 내 성대를 거쳐 입 밖으로 음파가 되어 허공을 울리는 경험을 해 보면 어떨까요? 천 편의 시를 외우는 사내,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짐작이 갑니다. 그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1천명의 천사들이 부럽습니다. 400편을 넘기며 시를 외우고 읊조리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는 고백을 하는 그의 설렘과 떨리는 입술이 부럽습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이 시구를 읊조리다 보면 어느새 내 발걸음은 숲에 가 있겠지요.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 몸의 세포와 혈관에 흐르는 피를 격동하며 춤추게 하는 순간을 경험하겠지요.우리도 숲 속 길로 들어갑니다. 세상에 물든 때 숲속 맑은 공기로 씻어내고 시인의 언어가 천사 되어 내 삶에 흘러들도록 숲 속 길로 들어갑니다. 우리 안에도 천사가 하나 둘, 늘어나는 기적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자크 데리다는 말합니다.“은유(metaphor)가 모든 창의성의 근간이자 핵심이다. 은유 없이는 우리의 사고, 언어, 예술, 학문 자체가 불가능하다.”시적 은유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은 삶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조신영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0

톨레랑스(tolerance)를 아시나요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과 통합당의 참패, 중도 군소정당의 소멸, 진영과 지역대결의 심화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에서 볼 때 적지 않은 우려를 낳는다. 왜냐하면 정부·여당이 주도해왔던 범 진보연합의 진영정치가 이제는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한국은 복수(vengeance)에 함몰된 정치로 항상 내전(內戰) 상태”라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 행사가 아니라 상대 진영에 대한 존중”이라고 했다. 그는 “진영정치가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 슬프지만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을 100회 이상 방문한 세계적 석학의 논평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정치선진국 프랑스에서 ‘톨레랑스(tolerance)’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무기’로 인식되고 있다. 민주적 가치관으로서 톨레랑스를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감성적 관용’보다는 ‘이성적 관용’에 가깝다. 상대방의 정치적 의견과 입장을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의견과 입장도 존중받는 것이다. 톨레랑스는 나의 생각과 다른 남의 생각을 허용하고 관용하는 정신이다. 따라서 대화와 타협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톨레랑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한국 민주주의의 후퇴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인간 능력의 유한성과 상대성을 부정하면서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과 아집이 민주주의를 왜곡시켰다. 여당은 권력으로 정의를 합리화하고, 야당은 정의를 명분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 권력에 눈이 먼 외눈박이 정치꾼들의 교활한 선동 때문에 국민들마저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핏발선 눈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한 나라 두 국민’의 비극적 현실이다.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다른 점’과 ‘틀린 점’을 구별하지 못한다. 여당과 야당의 생각이 다를 뿐인데,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차이(差異)’가 ‘불의(不義)’와 동의어로 둔갑한다.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태도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다. 격앙된 적대적 감정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민주주의는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정치문화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 게다가 진영논리에 갇힌 독선정치는 필연적으로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보복을 부른다. 한국정치사가 증명하듯이 역대 대통령들의 퇴임 후 불행은 바로 이러한 진영정치의 결과였다.진영정치는 국론분열을 초래하지만 톨레랑스는 국론통일을 모색하게 한다. 통합과 협치를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격화시킨 것은 진영정치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민주정치와 독재정치의 근본적 차이는 톨레랑스의 가치를 인정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따라서 21대 국회를 장악한 정부·여당은 더욱 낮은 자세로 야당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톨레랑스 없는 다수당의 폭주는 민주주의로 포장된 의회독재일 뿐이다.

2020-04-20

소셜믹스

소셜 믹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 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 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으로, 사회적·경제적 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게 함으로써 주거 격차로 인해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다. 최근 정부가 30년 넘은 노후 영구임대주택을 재건축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입지가 좋은 단지는 종상향을 통해 기존 임대에다 공공분양까지 얹어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소셜믹스’를 적극 도모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소셜 믹스의 기원은 1980년대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시작됐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주거지가 점차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고소득층이 사는 주거지역은 부촌으로 치안도 좋고 교육 시설도 고급스러운데 비해, 저소득층이 사는 주거지역은 점차 슬럼화되면서 치안이 불안하고 위생 및 교육환경이 열악해지게 됐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아파트나 주택단지 내에 분양과 임대를 함께 조성,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같은 단지 내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학교 및 교통시설을 함께 이용하고 사회적 교류를 확대시켜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영국 런던, 프랑스의 파리와 리옹,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대만 타이베이 등으로 확산됐다.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서울특별시에서 장기전세주택이라는 이름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시행하면서 소셜 믹스 정책을 처음 도입했다. 노후 영구임대아파트를 기존 저소득층과 신혼부부와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소셜믹스 단지로 전환하자는 구상이니 환영할 만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20

승자독식제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독식사회’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어지는 양극화 문제점을 꼬집은 책이다. 0.1초의 차이로 올림픽 금메달과 은메달이 갈라지고 금메달 수상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할까 하는 의문에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진단한 것이다.“세상은 1등만 기억 한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보상구조가 판치고 있다. 승자독식은 능력 차이로 보상을 받는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미한 차이가 엄청난 소득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미국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대선에서 승자독식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일반 유권자가 직접 뽑은 각 주의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선출된 선거인단은 단 1명이라도 더 많이 뽑힌 쪽이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독식하는 제도다.전체 유권자 득표에서 이겨도 선거인단 확보 수에 밀리면 낙선도 한다. 몇 번의 그런 사례도 있었다. 2000년 당선된 부시 대통령이 이런 경우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포함 범여권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190명에 달했다. 반면에 통합당의 범보수권은 110석을 얻는데 그쳤다. 거의 더불 스코어 수준이다.그러나 선관위가 집계한 정당 투표수를 보면 더불어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간 득표율 차이는 8.5%다. 8.5%의 표차가 결과적으로 국회의원 80석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소선거구제가 가진 승자독식체제의 결과물이다.21대 총선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을 바로 볼 줄 아는 정치인의 혜안이 아닐까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19

‘보수’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안재휘 논설위원‘보수’는 끝났다. 변질하고 퇴락한 그 낡은 가치는 국민으로부터 드디어 멸종 선고를 받았다. ‘보수’ 본산을 자임한 미래통합당 정치세력은 수술이 급박한 환자의 환부에 분홍색 머큐로크롬 잔뜩 발라놓고 요란스레 굿판만 벌이다가 망신당하고, 드디어 경각에 다다른 중환자 꼴이다.그렇게 망가진 지금 순간마저 서푼 어치도 안 되는 권력 놓고 서로 주도권을 잡겠다고 아우성치는 구제 불능 바보들의 대행진 군상은 참으로 딱하다.4·15총선 성적표는 참혹하다. 썩어 문드러진 ‘꼴보수’ 간판 부여안고 격랑의 바다에 대책 없이 뛰어든 구닥다리들은 이제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운 난민 몰골일 따름이다. 초유의 실패작으로 끝난 보수 농사 판은 완전히 갈아엎는 게 정답이다. 수치심 내팽개친 채 추한 권력의 욕망을 널름대는 철면피들은 또 뭔가.민주당의 압승은 민주당이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가 결정적 승인이라는 해석도 100% 공감하기 어렵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민주당 승리로 이어진 결과로 풀이하는 게 맞다. 4·15 총선 정당별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불과 8.4% 차이였다. 지역구 의석을 163대 83으로 가른 것은 소선거구제의 맹점 때문이다.김무성·홍준표 등의 공천을 굳이 배제한 황교안의 처사는 졸렬한 패착이었다. 그러나 대구에서 무소속 당선된 다음 황교안을 욕하고 차기대선 출마를 떠들어대는 홍준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엔 또 한 번 경기가 날 지경이다. 홍준표를 당선시킨 대구 민심은 황교안의 공천이 잘못됐다는 경고, 딱 거기까지다. 그게 무슨 홍준표의 대선후보 특허권이라도 되는 양 설치는 것은 망발이다.우리 사회의 이념 패러다임은 확실히 바뀌었다. ‘보수’는 이제 더 이상 기득권층도 지배계층도 아니다. 국민은 이제 ‘자유 우파’니, ‘보수’니 하는 구호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진보세력이 아니라 바로 수십 년 째 ‘보수’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되뇌면서 제대로 된 미래비전 하나 못 내놓은 우매한 보수 지도자들이었다.미래통합당은 기초공사부터 새로 하는 전면 재건축에 들어가야 한다. 누누이 강조해온 이야기이지만, 이념좌표부터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건전한 중도실용 이념으로 클릭 이동을 해야 한다. 청년들을 정치 중심에 세워야 한다. ‘방탄소년단’에 코 웃음치고, ‘기생충’을 이념의 눈으로 폄하하는 따위의 가치관으로는 안 된다. 눈속임 리모델링으로는 어림도 없다. 모조리 다 때려 부수고 기초공사부터 새로 해야 한다. 그 기초공사가 바로 이념좌표의 재설정이다. 수구꼴통 민심에 묶인 발목의 족쇄를 미련 없이 풀어헤쳐야 한다.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꼰대 짓’만 거듭하는 일을 더 이상 지속해선 안 된다. ‘보수’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다.

2020-04-19

디자이너가 활약할 때가 왔다

정치, 문화, 경제 등 어떠한 분야라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외부충격이 없는 한 스스로 진화하여 변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간혹 혜안을 지닌 석학들이 사전 경고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수의견으로 치부되어 무시되기 쉽다. 때로는 다수파에 의해 비난받기도 한다. 그러다 실제 위기상황이 발생하여 그 여파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온갖 전문가들이 나타나 호들갑을 떨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게 된다. 과거 90년대 초 일본 부동산 버블의 붕괴, 2000년대 초 디지털혁명의 도래, 10여 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모두 그랬다. 분야마다 충격의 크기나 범위가 어떤지에 따라 해당 분야에서 발생하는 변화의 폭도 찻잔 속의 태풍처럼 가라앉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는 대변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때마다 막연히 늑장을 부리던 기업이나 특정 직업군은 사라졌으며,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적응한 기업이나 특정 직업군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패러다임의 변화다.이번 코로나19사태로 최근 일본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기도 질시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방역대책과 검사 실시,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감염자 이동 경로의 확인과 공개로 확산을 차단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마스크의 5부제 판매로 사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사례들이 대상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에 살고있는 일본인이 ‘이 시기에 한국에 있어서 좋았다’라는 인터뷰를 소개하며 한국을 배워야 한다며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다. 또 다른 일부 언론에서는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개인 모바일 위치정보를 공개하거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감시체제와 수많은 CCTV가 존재하는 통제국가여서 가능한 성과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였다. 외형적인 특정한 사안만으로 쉽사리 평가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종전이 아닌 전쟁 중 휴전상태에 있는 특수한 상황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우리나라가 통제국가라 하더라도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디지털화되고, 모바일 앱을 개발할 실력자들이 무수히 양성되어 있고, 높은 수준의 인터넷보급망과 모바일보급률이 갖추어져 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자정부가 일정 수준에 달하여 있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하였던 일이다. 바로 그러한 성과야말로 우리나라가 갖춘 사회적, 정보통신 기반과 국민의 단합된 행동력 덕분이다. 어떠한 큰 충격이 왔을 때 이것을 극복하거나 타파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위기 극복이나 대책의 효과도 달라진다. 같은 충격을 받고 대응수단을 알고 있더라도 그 기반이 적기에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최근 정부는 비대면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로 하였다. 물론 전혀 새로운 산업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비대면 서비스 시대에 살고 있고, 활용하고 있다. 모바일뱅킹으로 자녀들에게 용돈을 입금하는 행위도 비대면 서비스다. 이번 전염병으로 인해 외출 자제와 재택근무가 늘어나 CATV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홈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한 것도 모두 비대면 서비스다. 하지만 정부가 육성하려는 비대면 서비스는 이미 활성화되어있는 이러한 분야보다는 전형적인 오프라인 분야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면 서비스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일종의 우회경로를 만드는 기반의 구축일 수도 있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효과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비대면 서비스 분야는 물론 소비자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이 대상일 것이다. 다만, 해당 분야의 기업에 기반이 구축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새로운 비대면 서비스에 적응하는 기간과 효과는 달라질 것이다. 기업의 내부 경영에도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은 적용될 것이다. 직원들을 물리적인 특정 장소에 모아두고 특정사안을 전달하던 경영자는 자사의 인트라넷을 통해 전국에 산재한 직원들에게 동영상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미 대기업이라면 시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다.다양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해야 하는 제조업체들은 이번 코로나19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미 인터넷쇼핑몰을 직접 운영하고 있던 대기업이면 몰라도 중소제조업체와 소상공인들 대부분은 위기에 빠졌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모두 자체 유통망이 없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이라고 하는 소상공인들은 말 그대로 골목이라는 공간 지리적인 제약에 묶여있다. 그 골목으로 찾아오는 유동인구의 움직임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아예 사람들의 출입과 이동이 제한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그야말로 무인도에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하기에 비대면 서비스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위기 탈출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대기업보다 부족한 부분이라면 특히 인력 부족, 자사 제품을 알릴 판촉, 광고수단의 제약일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비대면 서비스를 육성시킨다고 해도 문제다. 중소제조업체들 대부분은 사장과 직원들이 함께 만든 제품을 유통대행업체에 납품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공장 한구석에 비대면 서비스 육성 지원자금을 빌려 새로운 컴퓨터 서버를 들이고 관리직원을 채용하여 직판한다고 해서 들인 비용만큼 수익이 확보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사실 진정한 강소기업, 성공한 소상공인은 이러한 수단과는 큰 상관이 없다. 대량생산체제가 아닌 한 대기업과의 가격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다. 자사만의 기술력과 품질을 갖춘 제품군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소상공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력한계, 광고비용 제약으로 유통대행점에 거의 원가로 납품하기 급급하였던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 비대면 서비스 분야의 진출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세상에는 저비용으로 활용 가능한 수많은 소셜네트워크가 넘쳐나기 때문에 비교적 저비용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그러나 비대면 서비스에서 정작 유의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디자인이다. 현대 소비자들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싫어한다. 물건을 고를 때도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이 채워진 제품설명서는 아예 뜯지도 않는다. 제품디자인이 예쁘거나, 해당 제품의 장점을 직관적으로 시각화된 한두 줄의 설명만으로 충분하다.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링크나 동영상 속에 담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진의 축소판인 엄지손톱(Thumbnail)이 선택의 핵심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는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더라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한눈에 알 수 있는 직관적인 화면 한 장, 한 줄의 제품 설명은 전혀 차원이 다른 분야다. 아주 특별한 예외를 빼면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품 사이에 기술력과 기능의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제품가격이 비싼 이유는 제품의 성능보다는 대기업 이름 즉 브랜드의 힘과 편리한 A/S 정도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대기업의 브랜드 힘에 대항할 유일한 수단은 디자인의 힘뿐이다. 앞으로 비대면 서비스산업이 전 분야에서 성장해 나가려면 국가나 지역은 물론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모두 디자인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제 디자이너가 활약할 때가 왔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19

야당이 선거에서 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선거의 결과는 제1야당의 처절한 패배로 끝났다. 이번의 여론조사는 총선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 민주당 180명, 미래통합당은 103석 당선으로 나타났다. 범여권 당선자 190명, 범야권 당선자 110명은 야권의 처절한 패배이다. 야당은 총선, 대선, 지방선거에 이은 4연속 패배이다. 이번에는 사이 보수도 사이 진보도 없었다. 열성적인 야당 지지자들의 실망은 더욱 컷을 것이다. 6·25 전쟁 중 치른 선거에서도 야당이 이렇게까지 패하지 않았다. 선거의 철칙인 구도, 정책, 인물 면에서 야당은 패할 수밖에 없었다.야당은 선거구도 면에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야당의 보수 통합은 진정한 통합이 아닌 급조된 임시 통합이었다. 이는 보수 개혁 통합과는 거리가 먼 각자 생존을 위한 자구적 통합이었다. 또한 이번 선거전에서 야당은 황교안 대표 외에는 잠재적 대권 후보가 보이지 않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낙연 외에도 박원순과 이재명이 지원사격하는 여당의 구도와는 판이하였다. 더욱이 야당은 선거의 사령탑마저 구축하지 못했다. 황교안 대표의 종로구 출마부터 혼선이 있었고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영입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야당은 공약이나 슬로건 등 정책과 이미지전에도 실패하였다. 야당은 코로나 사태가 심각했음에도 ‘문재인 정권의 심판’론에만 매달려 있었다. 문재인 정부를 ‘좌익 독재 ’로 규정한 것도 총선 민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여 문재인 정권을 탄핵하자고 주장하였다. 전 세계가 한국의 방역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들만 방역 실패만을 강변하였다. 야당은 정부의 탈 원전,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구태의 선전 선동 이미지는 중도 보수층의 표심을 얻을 수 없었다.야당은 후보의 공천도 실패하였다. 급조된 공관위는 ‘개혁공천’이라는 슬로건은 요란하게 걸어 놓았지만 후보 검증에는 실패하였다. 그들은 물갈이를 강조하면서도 공천 후보의 참신성은 보여 주지 못했다.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초래한 막말 파동에 대한 대응책도 적절치 못했다. 황 대표는 공천확정 후에도 공천취소와 재공천이라는 파동까지 겪었다. 관료 출신 황 대표의 리더십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공천에서 탈락했다 당선된 5명의 무소속은 이를 잘 입증한다. 대선 주자급의 공천 배제는 ‘이기는 선거’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처음부터 따라다녔다.이번 야당의 패배는 결국 구도, 정책, 인물이라는 선거의 3대 고리의 총체적 실패에 기인한다. 근원적으로 보수 야당의 개혁 없이는 선거의 승리는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야당은 식물국회, 동물국회, 대여 강경 투쟁, 삭발과 청와대 앞 시위만으로 변화된 표심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 세월은 빠르고 유권자의 표심은 변한지 오래인데 과거에 안주하는 수구 꼴통 정당에 누가 표를 주었겠는가. 결국 야당은 텃밭인 경상도와 강남, 60대 이후의 노령 보수층의 지지만을 얻어 좌초하였다. 그러나 내 후년 2022년은 다시 대선과 지방 선거가 있다. 야당은 이번 총선 패배가 당의 체질 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임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2020-04-19

책 깊이 읽기 좋은 시절

김현욱 시인대한민국 교육 역사상 최초로 온라인개학이란 걸 했다. 더는 출석을 미룰 수 없어 취한 고육지책이다. 학부모도 학생도 교사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온라인수업이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에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배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가진 사람에게 온라인수업은 큰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푸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위기가 기회다. 온라인수업을 계기로 교육환경도 개선되고 미래 교육의 토대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5월에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현명한 부모나 교사들은 이 기회를 ‘책 깊이 읽기’로 활용 중이다. 학원도 학교도 자유롭게 못 가는 때라 아이들에게 시간이 많다. 이번 기회에 글밥이 많은 책을 선택해서 가족이 함께 읽으며 좋다. 읽어, 라고 시키면 안 된다. 같이 읽자, 라고 해야 한다. 오빌 프레스콧의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아버지’에는 다음과 같이 말이 나온다. “저절로 책을 좋아하게 되는 아이는 거의 없다. 누군가는 아이를 매혹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끌어들여야 한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그 길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를 매혹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책의 세계로 이끄는 방법은 부모나 교사의 책 읽어주기 뿐이다. 우리 아이의 독서지도는 꾸준한 책 읽어주기를 통해 함께 읽기, 혼자 조용히 읽기(SSR) 단계를 거친다. 책 읽어주기를 통해 책 읽기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에게 조금씩 혼자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책 읽어주기에서 자연스럽게 혼자 조용히 읽기로 가면 우리 아이의 독서지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독서교육 전문가 맥 크라켄에 따르면 혼자 조용히 읽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첫째, 교실이나 가정에서는 15분 정도가 적당하다. 물론, 아이의 상태나 상황에 따라 교사나 부모가 적절하게 조정한다. 둘째, 아이가 스스로 읽을 책을 선택한다. SSR 시간 전에 읽을거리를 고르고, SSR 시간에는 다른 책으로 바꾸지 못한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의 성향이나 흥미를 파악해 재미있는 책을 권할 수도 있다. 셋째, 아이가 SSR를 할 때 교사나 부모도 반드시 책을 읽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넷째, 일체의 독후감, 독후 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SSR을 절차나 결과물, 성적에 연관시키지 않는다. 책 읽어주기의 최종 도착지가 바로 혼자 조용히 읽기(SSR)이다.단, 책 읽어주기를 통해 책에 흥미를 느낀 아이가 혼자 조용히 읽기를 할 수 있다. 독서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혼자 조용히 읽기를 시키는 것은 벌을 주는 것과 같다. 대안은 가족이 함께 읽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위기철의 ‘무기 팔지 마세요’,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 같은 작품들은 부모, 아이 할 것 없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이다. 밥상머리 회의를 통해 읽을 책을 선정하고 1~2주 정도 책 깊이 읽기를 해보자. 그리고 모여서 가정 독서토론을 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슬기로운 배움과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2020-04-19

천 명의 천사와 동행하는 사나이(1)

오솔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숲 속 향긋한 바람이 귀를 스칩니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그렇군요. 이 남자는 시를 읊조리며 걷는 중입니다.“저는 마음이 산란할 때면 숲길을 찾습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시를 읊조리지요. 물론 외우고 있는 시입니다. 걷지만, 시를 외우는 동안 가슴엔 바람이 불고 시냇물이 졸졸 흐릅니다. 여름이면 더위를 사라지게 하고 겨울이면 시 한 편이 모닥불을 지펴주지요. 슬플 때는 한없는 위로가 시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괴로운 날은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낙원으로 저를 이끌어주는 천사랍니다.”이 남자, 천 편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10시간쯤은 꼬박 새우며 시를 외우고 세상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의 곁에는 늘 1천명의 천사가 동행한다지요.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김소월의 ‘초혼’을 단숨에 외우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울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멋질 수 없었지요. 고등학교 때 저수지 둑에서 빛나는 별을 보며 친구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을 암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를 들으며 사내의 가슴에도 하늘의 별이 콕콕 박히는 경험을 합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이 남자, 프랑스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철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프랑스에서는 초등학생 숙제에 시 한 편 암송하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모두 100편의 시를 외웁니다. 그는 이것이 프랑스의 문화적 힘이라는 것을 직감합니다.자신에게 질문하지요. 나도 시를 외워 보면 어떨까?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외우면 잊어버리고 또 외워도 머리에서 감쪽같이 언어가 사라져버리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9

똘똘 뭉쳐 ‘코로나 19’ 위기 극복

고윤환문경시장코로나19 국내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지 3달이 지났다. 그동안 문경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코로나19에 대응해 사실상 지역사회 감염이 없는 ‘안전 도시’를 지켰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고 신규 확진자 증가세가 완만해지면서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현실로 다가오나 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사이 문경과 생활권이 상당히 겹치는 인근 지자체에서 2차, 3차 감염으로 의심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적으로 발생했다.문경시는 즉시 비상사태에 돌입해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전 시민에 대해 발열 등 건강 상태를 13일부터 전수 조사하고, 버스 노선 변경, 전통시장 자율 휴장 등 코로나19 전파 차단을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드라이브 스루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도입해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와 위축된 지역경제 회복도 꾀하고 있다.잠잠해지던 코로나19의 위협이 예기치 못하게 가까이 다가왔다. 우선 문경시청 각 부서에서는 읍면동별 담당 마을을 지정 했다. 이후 비대면 조사를 위해 유선전화로 모든 세대에 개별 연락을 실시해 발열, 인후통, 후·미각 이상 등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유증상자는 곧장 병원에 방문하지 말고 보건소로 전화해 상담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이는 코로나19가 무증상이나 경증으로 인해 개인이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발병 초기에 전염력이 가장 높기에 코로나19 확산에 시민들이 경각심을 가지도록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모니터링 중 감염 의심 대상자들을 조기에 찾아 지역 사회에 확산되기 전 차단하고자 함이다.이번 전수조사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약 29%인 문경지역에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코로나19 예방법과 진행사항을 안내하고, 1대 1로 소통하며 건강상태를 확인하여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기대한다.시는 코로나19 전파 차단을 위해 선제적으로 전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문경과 예천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노선을 변경해, 타 지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관외 이동 없이 관내에서 회차 하도록 조치했다. 장날이 되면 타 지역 상인들의 왕래가 많은 문경전통시장, 가은시장, 점촌시장 등 전통 시장도 코로나19 확산이 안정될 때 까지 잠정적으로 자율 휴장에 들어갔으며, 미돈가 등 인근 지자체 주민이 많이 찾는 식당들도 임시 휴업을 실시 중이다.시는 버스터미널, 기차역, 관광지, 공공청사 등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는 대인소독기를 설치하여 소독과 발열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생활시설에는 재해재난예비비 1억8천400만원을 투입해 증상이 발견된 경우 즉시 격리할 수 있도록 이동형 음압기를 보급했다.외부로부터 오염물질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의류소독기, 위생복을 지원한 바 있다. 코로나19 환자의 조기발견과 의료기관내 전파를 방지하기 위해 선별진료소(3곳), 드라이브 스루 진료, 카라반형 이동식 음압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예방이 최고의 치료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지역 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코로나19의 여파로 지역 경기는 침체되고 있다. 시는 코로나19 확산방지와 경기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드라이브 스루 도시락을 추진 중이다.드라이브 스루 도시락은 차에서 주문하고 상품을 받는 승차 판매 방식으로서 받은 도시락은 주변 공원이나 사무실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며 먹을 수 있다. 앞서 시는 ‘택시 드라이브 스루 도시락’ 배달운동을 전개 하여 지역 택시와 식당의 어려움 극복에 동참 중이다. 문경새재에서 시작한 드라이브 스루 도시락은 문경시 전역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문경이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이 되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문경은 머물러 있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시민들에게 문경이 위기 대응능력이 뛰어난 도시임을 보이도록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겠다.

2020-04-19

잠시 멈춤

한효정한동대 4년·ICT창업학부미국의 작은 교차로에는 어디든 붉은색 STOP 표지판이 있다. 잠시 차를 멈추고 1, 2, 3을 세고 오가는 차가 없으면 출발해도 무방하다는 안내판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익숙한 한국인들은 간혹 이 표지판 앞에서 경찰에게 딱지를 많이 끊긴다고 한다. 주변에 접근하는 차가 없으니 잠깐 속도를 줄였다가 서행하면 괜찮겠지, 방심했다가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적발당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STOP 표지판을 만났다. 일상을 멈추고 우리는 하나둘 셋 숫자를 센다. 자기 몸에 별문제가 없어 보여도 서로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했던 여러 일에 머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미국 전역에 자택 대기령이 떨어진 이후 처음에는 밀린 잠도 늘어지게 자고 맘껏 넷플릭스도 보며 지냈다. 허리가 아파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지 못하겠고 화면을 멍하니 노려보는 일도 귀찮아진다. 분리 수거하듯 미뤄 놓은 일들을 시작했다. 포항을 떠나 미국에서 인턴을 시작하면서 배운 작은 차이들을 하나, 둘, 셋 쉬어 가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하나, 가족 단위 활동이 많은 미국에 있으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은 한국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여기는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당연하다. 받아들이기 조금 낯설기도 했다. 이런 우리 민족에게 가족 얼굴 볼 기회가 찾아왔다. 옛말에 가화만사성이라 했다. 그동안 얼굴 보지 못해, 낯 뜨거워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표현들을 서로 건네는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둘, STOP 표지판에 잠시 멈췄다가 셋까지 센 다음에는 다시 액셀을 밟아야 한다. 이때 우회전을 할지 직진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잠시 멈춰있으니 길을 잘못 들었어도 좌나 우로 방향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얻은 잠깐의 여백은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황금의 기회다. 치열하게 싸우고 죽음을 앞둔 고지전 마지막 순간에 왜 이렇게 열심히 싸웠는가 전쟁의 이유를 까먹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왜(why?)라는 질문을 꺼내 들어야 한다.셋, 이렇게 텅 빈 것 같은 시간을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작년에 쉬려는 마음으로 휴학을 감행했지만, 정작 포항을 떠나 수도권에서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나를 보며 인생에 쉼이란 불가능한 일인가보다 회의에 빠진 적이 있다. 그래서 남보다 더 잘해보려고 경쟁하던 내 본연의 모습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그냥 쉬어 보았다. 푹 자고 일어났고, 귀찮으니 대충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던 밥을 건강해 보이는 재료로 해 먹어도 보고, 치우지 않았던 책상 위도 한 번 쓱 훑어내고, 이렇게 방에만 있다가는 죽겠네 싶어 집 앞 산책도 나왔다. 일상에서 터부시하던 모습을 하나씩 지워가니 문득 어느 순간 “나 지금 진짜 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쉼이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숨겨진 보물찾기처럼 일상의 작은 일들을 꼭꼭 씹으며 살아갈 때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를 벌벌 떨게 한다. 돈과 성공을 정신없이 좇던 교만한 인간들에게 채찍처럼 나타난 아주 작은 바이러스. 조용히 다가와 매운맛을 보여준다. 경제를 힘들게 해 부모님 사업과 내 취업을 어렵게 하는 그 바이러스가 밉기도 하지만, 이 사태가 가져온 감사한 면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자의로 쉬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쉼을 선물하기도 하고, 여러 온라인 강의나 원격지원 업무를 통해 기술의 진보를 깨닫기도 한다.20대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는 남은 날 동안 이런 전염병이 과연 한 번뿐일 해프닝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벌써 그 횡포는 시작했고 세상은 바뀔 것이다. 뉴노멀(New Normal)이 찾아올 것이고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격변하는 구름 아래가 아닌, 구름 위로 올라가 잔잔한 나만의 시간을, 방법을, 고민하고 찾을 수 있다. 잠시 후 다시 구름 아래로 내려와 뚝심 있게 남은 날들을 우리는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20-04-19

코로나 이후

마치 전쟁 같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다소 진정 국면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이 넘는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고 그로인해 죽은 자가 13만 명에 다다랐다.20세기 들어 이보다 더 인류를 놀라게 한 사건은 없다. 현대 문명의 인간이 받은 충격은 가히 압도적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상을 코로나를 통해 깨달았다. 문제는 인류의 미래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예측이다. 불안감이 엄습한다.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지 기고를 통해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대부분 살아남을 테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코로나 이후 우리의 가장 기본적 삶의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한 말이다. 인류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의 결속이 이에 대한 대응이 된다고도 말했다.코로나 이후 가장 예상되는 변화 중 하나가 비접촉 생활 패턴이다. 서로 만나 얼굴을 맞대고 가까이하는 모든 행동은 지금부터 서서히 자제된다. 꼭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그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대안이 온라인의 활성화다. 모든 것이 디지털 세상으로 바뀐다.온라인이 오프라인 유통을 무너뜨리고 서비스나 공정의 자동화가 인간의 일을 빼앗게 된다. 대량의 실업 사태가 생겨날지도 모른다.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자제품은 더 많이 팔릴 것이고 드라이브 스루 같은 영업장은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된다. 재택근무, 원격 비대면 진료, 학원 대신 화상영어가 일상화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예측이 안 되는 일상의 진짜 변화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할 지금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4-16

미래통합당의 성공과 실패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성공했지만 전체 판도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에 참패했다. 원내의석 과반수를 넘어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허용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미래통합당은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비니트 데사이 교수팀이 우주왕복선 성공과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틀란티스호와 챌린저호를 비교·조사했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아틀란티스호는 2002년 발사 준비 당시 절연체가 고장 나고 대기권의 저항을 돌파하는데 필요한 증속 로켓의 왼쪽 부분이 손상됐어도 발사에는 성공했다. 그 결과 발사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에 대한 후속 조사나 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챌린저호는 절연체가 분리돼 고장 나는 바람에 기체가 폭발,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하는 참사를 빚었다. 챌리저호 사건 이후 우주선들은 문제가 생기면 즉각 발사시간을 연기하게 됐으며, 철저한 후속조사로 우주선 발사 시스템에 29가지 보완 조치가 취해졌다. 미국 우주왕복선 개발의 역사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확실한 ‘반면교사’가 됐다는 것이다.미래통합당 역시 이번 총선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이같은 맥락에서 다시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대구·경북지역 25개 선거구에서는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한 대구 수성구을을 제외한 전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가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후보 역시 통합당 복당을 전제로 선거에 나섰으니 사실상 TK지역은 25개 의석 모두 통합당이 차지한 셈이니 부분적으로는 성공이다. 그러나 전체 판도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당과 함께 180석을 확보했으니 통합당 입장에선 너무나 뼈아픈 실패요, 패배다. 더구나 차기 대권경쟁에 나설 대다수의 통합당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흐드러진 벚꽃잎처럼 떨어져 내린 게 너무 아프다. 마땅한 대선주자 하나 제대로 국회에 입성시키지 못한 제1야당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 통합당이 이번 총선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돌려놓을 만한 체질 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민주당에 빼앗긴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흔히 어떤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진영을 나눈다면 6대4 정도로 나뉜다. 그럴 경우 보수당이 대체로 정권을 잡게되지만 큰 실책을 할 경우 실망한 보수표가 진보에 힘을 실으면서 보수와 진보 양진영을 오가는 권력교체가 이뤄진다. 그리 길지않은 민주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바로 이같은 양상으로 정권교체를 해내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이같은 양상의 정권교체와 함께 정치가 발전하기를 바라지만 그게 욕심일까.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미래통합당에 조언한다. 오늘의 실패를 배울 수 있는 큰 기회로 삼고, 지금의 작은 실패를 통해 큰 실패를 예방하는 데 총력을 쏟아주길 바란다. 코로나19로 지친 이 나라에는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필요하다.

2020-04-16

선거도 끝났으니 평화 세상을

드디어 그 ‘무서운’ 선거가 끝났다. 민주주의 국가의 축제라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어지간히도 으르렁들 거렸다.우리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대통령 되면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 그렇게 많았단다. 또 일본처럼 평생을 살아도 제 손으로 대통령 한 번 못 뽑아보는 세상도 있다.그래도 선거라면, 지금보다 좀 더 재밌었으면 한다. 싸우는 재미 말고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 현안을 놓고 깊고 넓게 생각하는 재미, 그런 선의의 다툼, 승자와 패자가 함께 웃는 선거 말이다.아직은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참된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 국민이 슬기롭지 못해서? 어느 하나에 정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나는 지금 이 ‘정국’이 어떻게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심중에 있다. 하하, 그런데 그걸 공표하기 어렵다. 함부로 발설하지 말자. 세상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유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여기서 유 선생이란 ‘유튜브’를 말하는데, 가짜 보수, 가짜 진보는 가야 한단다. 진짜 보수, 진짜 진보가 나서는 세상이 되어야 한단다.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이 그런 이분법이 싫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민주주의 하나만 있으면 된다.옛날에는 ‘이쪽’이 민주주의고 ‘저쪽’은 독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주 명확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정직하지 못하다. 뭐가 뭔지 알겠는데 말하기 어렵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쉬운 말을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예나 지금이나 나는 균형이 좋고 중간이 좋다. 물론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중심 잡고 살아본 적 없다. 또, 중간을 어중치기나 박쥐 정도로나 여기는 세상이다. 중간을, 중도를 꿈꾸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나 같은 부류는 정치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다들 선의에서 저렇게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싶다. ‘나’만 선의가 있는 게 아니요, 저 사람도 선의가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잘 되기를 꿈꾼다고, 그래서 자기 방법을, 노선을 고집하는 것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믿으면, 가정하면, 대화도 타협도 다 가능할 것이다.선거가 끝났으니 그 끝난 나날만큼 조금은 더 평화로워지기 바란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라도 한 뼘이라도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 그 무서운 코로나19 때문에 아직 어려우려나?아무튼 패배한 쪽에 손을 먼저 건네라. 함께 가자고 하라. 뭐라도 먼저 드리라.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4-16

민심이 천심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63 : 84.이번에 치러진 21대 총선의 지역구 선거 결과이다. 미래통합당이 더블 스코어로 참패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참패이다. 미래한국당의 비례 의석을 합하더라도 100석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개헌선은 막았다 해도 받아든 성적표는 참혹하고 비참할 정도이다. 보수는 왜 이렇게 몰락하고 있는가?1987년 민주화 이후 치른 전국 단위 선거에서 주요 정당이 네 번 연속 패배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민심은 한쪽으로 힘이 연속적으로 몰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총선·대선·지방선거에 이어 다시 보수는 패했다.민심이 천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민심일까? 이번 선거는 그동안의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실패로 인한 경기침체, 탈원전, 조국 사태, 울산 선거 공작 사건 등 정권의 행태는 선거로 심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러한 실정 등이 묻힌 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여당의 180석 예상과 20년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적중하는 신호탄일까? 그렇다면 민심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이번 통합당의 패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공천 파동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보가 4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대권에 초점이 맞추어진 공천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공천 파동은 개인적 손익 계산에 따른 공천이었다는 인상을 국민들은 깊이 받았을 것이다.혹자는 지금 활동세대인 30∼40대가 성장했던 80∼90년대에 교육이 전교조에 의해 젊은이들을 진보 클릭으로 세뇌했다는 주장도 한다. 어려서 교육은 사상을 좌우한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주장이다. 지난 3년 문재인 정부의 모든 국정 어젠다가 선거에 이기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막판엔 유권자 지갑에 현금 주는 환심정책까지 나왔다. 선거 승리라는 목표에만 집중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략은 성공했다.현 정권으로선 어떻게 국정을 챙기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설픈 우파와의 타협이 더 손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재집권이 지상 과제인 상황에서 이런 기조로 내달리면 대선 승리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사실상 이대로는 2년 뒤 대선에서도 보수와 통합당의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다. 국가의 모든 구석구석이 진보 세력 한 곳으로 장악하게 되면 국민에게서 수권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략이 성공해 왔기 때문이다. 보수 그리고 통합당이 걸어야 할 길은 정말 험하고 멀다. 한국은 이제 남북 분단에 이어 동서로 분할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동서 분할은 더 뚜렷해졌다. 이 나라는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그리고 진정한 민심은 어디에 있는 것 일까? 선거가 끝나고 맑은 햇빛이 익어가는 봄의 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지만, 우리 마음은 그리 맑고 환한 것 같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20-04-16

노련한 사냥꾼 방식(2)

잠자리에 들 때 심심하다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이불에 나란히 누워있는 4남매에게 엄마는 매일 이야기를 지어 들려줍니다. 방귀 공주, 코피 공주 등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에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갑니다.“자연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터전이다.” 아이가 노트에 적은 글귀입니다.아이의 이름은 전이수. 이미 그림책을 세 권이나 쓴 꼬마 작가입니다. 제주의 자연을 만나면서 이수의 감성은 날마다 꽃피우고 있지요. 철학적인 사고, 뛰어난 감수성, 문학적 구성 능력 등 이수는 끝없는 잠재력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아이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니까 책을 많이 읽혔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우리 집엔 책이 거의 없어요.” 이수 엄마는 말합니다. 아빠가 사 준 중고 전집 한 세트가 전부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는 부모들과 다른 철학을 가진 부모입니다.“나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라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다”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피에르상소의 말입니다. 무엇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 애쓰는 보통의 부모에게 낯선 개념이지요. 엄마가 더 잘 해보려는 의욕으로 가득한 두 손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아이들이 마음껏 성장합니다.텅 빈 공관을 아이들에게 허락해야 합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책은 몇 권 없지만, 이수 엄마는 텅 빈 캔버스를 마련해 이수가 마음껏 그릴 수 있게 합니다. 집안이 엉망 되어도 밀가루를 거실 바닥에 뿌려 놓고 물감을 풀어 온 가족이 뒹굴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공간을 만들어 주고 아이가 무심히 그 안에 머물 수만 있다면 아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천재성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6